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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통체증에 고속도로서 광장무 펼친 中 여성들

    교통체증에 고속도로서 광장무 펼친 中 여성들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펼쳐진 중국 여성들의 단체 퍼포먼스가 온라인을 강타했다. 16일(현지시간) 중국 다하보(大河报)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최근 중국 화베이 지역에는 갑자기 짙은 농도의 스모그가 끼면서 고속도로 일대에 심각한 교통체증이 발생했다. 차들이 꼼짝 않고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 상황, 바로 그때 진풍경이 펼쳐졌다. 차 안에 타고 있던 여성들이 일제히 밖으로 나와 일명 광장무(廣場舞)를 추기 시작한 것. 고속도로 위 좁은 공터에 모여 춤을 추는 중년 여성 30여 명의 모습에 차에 타고 있던 다른 사람들도 밖으로 나와 이들의 공연을 지켜봤다. 이날 교통체증은 5시간가량 지속됐지만 중년 여성들의 광장무로 운전자들의 스트레스는 많이 감소했다는 전언이다. 사진·영상=热门视频/유튜브 영상팀 seoultv@seoul.co.kr
  • [금요 포커스] 내 사진 한 장이 관광 역사의 한 페이지로/김정만 한국문화관광연구원장

    [금요 포커스] 내 사진 한 장이 관광 역사의 한 페이지로/김정만 한국문화관광연구원장

    여행지에서의 멋진 풍경을 스마트폰에 담고, 근처 맛집과 관광지의 다양한 모습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고 공유하는 것이 이제는 일상이 됐다. 휴대폰으로도 충분한 지금과 달리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카메라는 집안의 보물로 여겨졌었다. TV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보듯 덕선이가 수학여행에서 카메라를 잃어버려 집안이 발칵 뒤집힐 만큼 카메라 한 대가 귀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만큼 사진 속에 담긴 날은 특별한 곳에 가서 사진을 찍거나 뭔가를 기념하는 날이었다. 그런 소중한 한 컷을 담은 사진을 앨범 속에 고이 간직하다 여는 날이면 사진 한 장이 추억을 소환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곤 한다. 최근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 진행한 ‘옛 관광지 사진 공모전’(부제 ‘당신의 빈티지 여행 앨범을 펼쳐 주세요!’)은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이 성행하는 시대에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 아날로그적 행보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식품업, 가구업뿐만 아니라 가요계에서까지 복고가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아날로그적 감성을 자극하는 이번 공모전은 수요자의 요구가 빠르게 변화하는 관광산업의 특성에 발맞춘 행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공공 연구기관으로서 데이터 베이스 구축 및 공공 데이터 서비스 제공에 대한 노력의 일환으로 해석해도 되겠다. 과거와 현재 여행자들의 모습은 많이 변했을까. 요즘 여행자들의 모습은 또 어떠할까. 현대의 스마트한 여행자는 인터넷을 통해 여행지 정보를 얻고, 지도 위치 서비스 정보를 통해 안전하게 길 안내를 받는다. 숙박 장소도 스마트폰 앱을 통해 검색하고 예약, 결제까지 한 번에 해결한다. 그리고 여행을 마친 후 사진을 보거나 SNS에서 여행지 이야기를 공유하며 추억을 회상한다. 정보에 민감한 여행자들은 최적의 정보를 선택하고, 또 이를 공유하길 원한다. 이 덕에 과거에 비해 훨씬 쉽고 편한 여행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한 가지 달라지지 않은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여행 후 남는 사진 한 장에 추억을 공유한다는 점이겠다. ‘여행’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정보의 도움을 받아 이루어진다. 이러한 차원에서 보면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이 주는 정보는 매우 중요한 데이터가 된다. 여행지 사진이 주는 데이터가 관광 활동의 동기 유발뿐만 아니라 관광지의 변화된 모습을 회상하거나 미래를 예측하는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12년 이후 데이터 관리의 활용성 제고를 위한 ‘정부 3.0’ 공공정보 개방 사업이 시행돼 왔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도 관광지식정보시스템(tour.go.kr)을 통해 관광 데이터 관리 및 서비스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옛 관광지 사진 공모전’은 데이터 베이스의 축적, 관리 및 보급을 위한 새로운 차원의 데이터 베이스 관리 사업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찍은 관광지의 멋진 사진들이 앨범 혹은 스마트폰에 있을 때는 개인의 추억에 머무를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진 데이터가 축적되고 활용될 때 정보로서의 가치가 생긴다. 어렸을 적 솜사탕을 들고 가족들과 함께 놀러 갔을 법한 옛 자연농원, 광화문, 경포대를 배경으로 한 사진, 우리 지역의 명소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이 관광지 역사의 한 페이지를 보는 소중한 자료임과 동시에 관광 정보로도 중요한 가치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관광 통계, 정책 및 연구, 관광자원 등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국민들에게 서비스하는 것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중요한 업무다. 기술의 발달과 함께 관광 서비스도 변해 왔고 그 범위도 확대돼 왔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앞으로 관광 분야의 다양한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축적해 데이터 베이스를 확대하고 유지, 관리하는 것은 연구원의 중요한 역할이 될 것이다. 가까운 미래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관광지에 가기 위해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에서 여행 지도를 활성화시켰을 때, 관광지의 현재 모습뿐만 아니라 우리 지역 명소의 변천사까지 살펴볼 수 있는 스토리가 있는 관광지도와 그 지도로 우리나라 관광지의 다양한 모습을 설명해 주는 가이드의 모습을…. 이러한 아날로그적 수고를 통해 귀중한 관광 자원의 가치를 만들어 냄과 동시에 다양하게 활용되기를 기대해 본다.
  • ‘이러려고 대박’ ‘온 우주의 기를 모아 합격’ ‘최대한 정답에 접근혜’…‘풍자 만점’ 수능 응원

    ‘이러려고 대박’ ‘온 우주의 기를 모아 합격’ ‘최대한 정답에 접근혜’…‘풍자 만점’ 수능 응원

    시험장 인근 국정농단 패러디 피켓 1232명 경찰 순찰차로 시험장 찾아 도시락 가방서 엄마폰 울려 퇴실도 시험 끝난 수험생들 정권 퇴진 시위 ‘이러려고 대박 났나. 만족감 들어’, ‘우주의 기운을 모아 수능 대박’, ‘최대한 정답에 접근혜’…. 17일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전국 시험장에서는 최근 불거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풍자하는 피켓과 응원 구호가 눈길을 끌었다. 현관문이 고장나서, 수험표를 잊어서, 시험장을 착각해서 지각한 학생들이 경찰차나 응급차를 타고 정문을 가까스로 통과하는 풍경도 여전했다. 맞벌이 부모들은 시험장에 들어가는 자녀의 뒷모습을 보며 출근길을 서둘렀고, 몇몇 부모는 교문 앞에서 수능이 끝나는 시간까지 자리를 지키며 기도했다. 이날 오전 전북 전주시 완산구 기전여고 앞에서는 국정농단 사태를 수능 시험문제로 낸 ‘2016년 헬게이트 시험’이 학생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한국사 영역으로 최순실씨와 그의 딸 정유라씨 사진을 놓고 두 사람은 어떤 학파 출신인지를 물으며 ‘차움학파’, ‘그네학파’ 등을 보기로 뒀다.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을 두고 누구인지 묻는 영어 영역 질문의 보기에는 ‘Siri’(시리), ‘Siho’(시호), ‘Yura’(유라), ‘Gil La Im’(길라임)이 등장했다. 서울 송파구 가락고 앞에는 ‘우주의 기운을 모아 수능 대박’, 인천 연수구 인천여고에서는 ‘온 우주의 기를 모아 합격’ 피켓이 등장했다. 광진구 자양고 학생회는 ‘최대한 정답에 접근혜’라고 적힌 피켓을 들었다. 영등포구 여의도고 앞에서는 입실 마감 3분 전인 오전 8시 7분 경찰차를 타고 도착한 수험생이 취재진의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어머니 정모(51)씨는 “서울 지리를 잘 몰라 늦을 뻔했다”며 “서울에서 재수하느라 고생한 아이에게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한다”고 기원했다. 시험장 반입 금지 물품을 소지하고 들어왔다가 부정행위자로 적발된 수험생도 다수 발생했다. 경기도에선 14명, 대구에선 10명이 휴대전화를 소지했다는 이유 등으로 적발돼 성적이 무효 처리됐다. 부산에서는 부정행위자 4명이 발생했다. 남산고에서 시험을 본 한 학생은 도시락 가방 안에서 어머니의 휴대전화 벨이 10초간 울려 귀가 조치됐다. 다른 한 명은 자신의 휴대전화가 가방 안에서 적발됐고, 2명은 시험 시작 벨이 울리기 전에 문제를 풀었다가 퇴실당했다. 앞서 경찰은 이날 1만 4000명을 투입해 수험생 수송 작전에 나섰다. 순찰차로 시험장을 찾은 경우는 1232건이었고 분실한 수험표를 찾아 준 것이 49건, 고사장을 잘못 찾은 학생을 수송한 경우가 96건이었다. 오전 7시 20분쯤 경기 용인시에서는 빌라 엘리베이터 안에 갇혔던 수능 감독관이, 의왕시에서는 아파트 현관문이 갑자기 고장나 집 안에 갇힌 수험생 2명이 소방관의 도움을 받아 시험장에 제시간에 도착했다. 한편 이날 수능이 끝난 뒤 100여명의 수험생은 오후 7시부터 종로 보신각 앞에서 ‘21세기청소년공동체 희망’이 주최한 박 대통령 퇴진 시위에 참여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우주전투·총쏘기… 아찔한 VR에 게이머 열광

    우주전투·총쏘기… 아찔한 VR에 게이머 열광

    “비행기를 타고 날아다니는 느낌이었어요.” 4차원 가상현실(VR) 우주전투 시뮬레이션 게임인 ‘탑 발칸’을 체험한 이성준(21)씨의 얼굴에는 흥분이 가시지 않았다. 체감형 게임 개발사 모션디바이스가 개발한 ‘탑 발칸’은 게임장에서 볼 수 있는 4D 우주체험 아케이드 게임에 VR을 접목했다. VR헤드셋을 머리에 쓰고 의자에 앉으면 3차원 우주 공간이 눈앞에 펼쳐진다. 의자가 상하 좌우로 90도 가까이 움직이며 격렬한 전투를 벌이자 지켜보고 있던 관람객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씨는 “사방에서 적이 날아오고 사운드도 생생하다”면서 “조금 어지럽긴 하지만 생생하고 재미있다”라고 말했다.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 주최로 17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개막한 국제게임전시회 ‘지스타 2016’의 화두는 단연 VR게임이다. VR헤드셋을 쓰고 손을 허공에 휘두르며 총을 쏘는 모습은 흔한 풍경이 됐다.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거나 온몸에 센서를 부착해 뛰어다니는 등 VR에 다른 기기들을 접목한 게임들이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올해 지스타는 VR게임 시장의 개화(開花)를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지스타에서는 소니와 HTC, 엔비디아 등 VR 분야 글로벌 선두기업들의 높은 수준을 눈앞에서 체감함은 물론 늦게나마 경쟁에 뛰어든 국내 게임업계의 가능성도 확인할 수 있었다. ●소니 40개 부스 북적… HTC ‘바이브’ 출시 골드만삭스는 VR 게임 시장이 2025년 110억 달러(약 13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일본 소니와 페이스북 자회사 오큘러스, 대만 HTC 등 글로벌 기업들은 VR기기를 출시하고 게임업계와 콘텐츠 생태계를 넓히며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지스타에서도 소니와 HTC는 VR기기를 들고 한국 시장 공략의 속도를 높였다. 소니인터렉티브엔터테인먼트코리아(SIEK)는 지스타 조직위원회와 공동으로 40개 부스 규모의 VR 특별관을 꾸렸다. ‘배트맨 아칸’ ‘레지던트 이블’ 등 플레이스테이션VR 게임들을 체험하려는 관람객 수십명이 소니의 부스에 줄을 섰다. HTC는 ‘현존 최고 성능의 VR기기’라 평가받는 ‘바이브’(VIVE)를 이날 국내에 출시했다. 부산시와 손잡고 내년부터 VR 스타트업을 발굴·지원하기로 하는 등 생태계 확장에도 나서고 있다. ●함께 즐기는 국내 VR게임‘ 다크에덴2’ VR게임 진출이 다소 늦은 국내 게임업계도 성과물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푸토엔터테인먼트는 국내 최초로 개발된 VR 기반의 혼합현실(MR·Mixed Reality) 게임 ‘다크에덴2’를 공개했다. 초록색 배경의 스튜디오에서 스틱을 쥔 손을 흔들면 컴퓨터 화면에서는 칼을 휘두르며 악마를 물리치는 유저의 모습이 합성돼 나온다. 홍철운 푸토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주로 혼자 즐기는 VR게임을 관람객들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개발했다”면서 “게임방송과 같은 플랫폼으로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엘케이컨버전스의 ‘폴 얼론’은 VR에 러닝머신의 일종인 트레드밀을 결합해 유저의 걸음걸이까지 인식한다. 유저는 어두운 지하실을 직접 달리며 좀비들과 전투를 벌인다. 그 밖에 탁구와 야구 게임, 스키점프, 패러글라이딩 체험등 각양각색의 VR게임들이 쏟아져나왔다. 이날 VR게임을 선보인 국내 게임사들은 대부분 중소, 중견게임사들이었다. VR기기의 가격 장벽과 어지럼증 등을 이유로 VR게임의 대중화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대형 게임사들은 투자와 개발을 머뭇거리고 있다. 그러나 모바일게임 시장이 성장 둔화에 놓인 가운데 VR 등 차세대 플랫폼에 투자를 꺼리다 성장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시작은 늦었지만 국내 VR게임의 가능성은 밝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이날 국내 VR게임을 둘러본 레이먼드 파오 HTC 부사장은 “한국 게임은 창의성과 그래픽 아트, 게임성에 있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이들 기존의 강점이 VR 영역에서도 발휘돼 수준 높은 게임을 만들고 있다”고 평가했다. ●레고·스타워즈 등 지적재산권 경쟁도 치열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인기 지적재산권(IP)을 둘러싼 경쟁도 치열했다. 게임업계 1위인 넥슨은 인기 장난감 ‘레고’의 캐릭터를 활용한 모바일게임 ‘레고 퀘스트앤콜렉트’를 공개했다. 올해 지스타의 메인 후원사인 넷마블게임즈는 엔씨소프트의 온라인게임 ‘리니지2’를 모바일로 옮긴 ‘리니지2:레볼루션’과 영화 ‘스타워즈’의 세계관과 등장인물을 바탕으로 한 ‘스타워즈:포스아레나’를 선보였다. 부산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뮤직뷰!] 박원, ‘노력’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뮤직뷰!] 박원, ‘노력’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나도 노력해봤어 / 우리의 이 사랑을안 되는 꿈을 붙잡고 / 애쓰는 사람처럼사랑을 노력한다는 게 / 말이 되니 사랑에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또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게 사랑이다. 싱어송라이터 박원이 이런 사랑과 노력의 오묘한 상관관계를 노래로 풀어냈다. 17일 발매한 정규 2집 ‘1/24’의 타이틀곡 ‘노력’을 통해서다. 박원의 ‘노력’은 그 제목만큼이나, 들으면 들을수록 애절함이 묻어나는 곡이다. 언제까지나 계속 될 것 같던 ‘사랑’이 언제부터인가 억지로 하는 ‘노력’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버린 순간의 고백을 담아냈다. 진지하고 애절한 가사도 그렇지만 가슴을 잔잔하게 파고드는 박원의 목소리는 노래의 감성을 배가시킨다. 박원이 직접 작사와 작곡에 참여한 이 곡은 올해 초부터 박원의 카페 라이브와 페스티벌 무대를 통해 선보여지다가 마침내 완성된 것으로, 노래 제목이 적시하듯 박원의 ‘노력’이 역력히 담긴 곡으로 그 의미를 더한다. 이날 함께 공개된 ‘노력’의 뮤직비디오는 버스 안 눈 내리는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애절히 노래하는 박원의 모습을 원테이크 기법으로 담아냈다. 특별한 줄거리 없이도 노래의 슬픈 감정을 담담하게 풀어냈다는 평이다. 한편 박원의 정규 2집 ‘1/24’은 ‘하루 24시간 중의 1시간은 음악과 함께하자’는 박원의 신조를 담아낸 앨범으로, 타이틀곡 ‘노력’을 포함해 ‘여행’, ‘끝까지 갈래요’, ‘기억해줘요’, ‘찢어주세요’, ‘이렇게 만들어’, ‘하루종일’, ‘어젯밤에’ 등 총 8곡이 수록됐다. 사진·영상=[MV] PARK WON(박원) _ Try(노력)/유튜브 김형우 기자 hwkim@seoul.co.kr
  • [말빛 발견]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조지훈의 시 ‘승무’는 그림 같다.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시를 읽는 게 아니라 한 폭의 그림을 감상하는 것처럼 다가온다. 나비 같은 고깔, 파란빛이 도는 머리, 고와서 서러운 두 볼, 긴 소매와 사뿐한 버선, 오동잎 잎새마다 지는 달…. 시가 그리는 이 풍경들을 천천히 감상하게 된다. 그러다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인 양’ 같은 내면이 그려질 땐 더 오래 ‘그림’에 머물게 된다. 시 속의 말들이 그렇게 되도록 잡아당긴다. ‘승무’의 말들은 서럽고, 여리면서도 곱고 아름다운 모습을 그려 낸다. 두 볼에 흐르는 빛, 까만 눈동자, 복사꽃 고운 뺨, 아롱질 듯 두 방울…. 여기에 ‘하이얀, 나빌레라, 파르라니, 모두오고’ 같은 말들은 부드러움과 함께 예스러움을 전한다. ‘승무’가 예스러움, 즉 옛것과 같은 맛이나 멋을 전하는 데는 이 같은 말들이 구실을 한다. 이 가운데 ‘나빌레라’ 같은 투의 표현은 옛맛을 더욱 짙게 한다. ‘나빌레라’는 ‘나비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ㄹ레’라가 이런 뜻을 갖게 하는데, ‘-겠더라’, ‘-겠도다’와 비슷한 의미를 덧붙인다. 이 시에서 ‘나비’에 ‘-ㄹ레라’를 붙이지 않았다면 분위기는 전혀 달라졌을 것이다. ‘나빌레라’는 여운도 주고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가는 느낌도 전한다. 일상에서 쓰이지 않으니 이제 ‘나빌레라’의 의미를 얼른 알기는 어렵다. ‘-ㄹ레라’는 글에서나 어쩌다 보인다. ‘승무’에서는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의 끝에 반복해 사용했다. 이경우 어문팀장 wlee@seoul.co.kr
  • [김남경의 예술마을 기행] 영감의 원천 제주의 바다 예술 샘솟다

    [김남경의 예술마을 기행] 영감의 원천 제주의 바다 예술 샘솟다

    아이들과 해변가를 노닐던 이중섭 새로운 화풍 ‘제주화’ 남긴 변시지 개인 글씨체 완성한 서예가 현중화 제주 서귀포의 바다는 언제 어디서든 그림 같다. 좋은 날엔 말할 것도 없지만 물안개 낀 여름이나 찬바람 부는 겨울, 흐린 날에는 또 다른 그림을 그린다. 거센 비바람이 몰려드는 날조차도 제주의 바다는 경외할 만한 그림을 그린다. 그런 서귀포의 바다는 예술가들에게 무한한 영감을 주는 원천이다. 서귀포항을 끼고 있는 구시가지는 지금은 쇠퇴한 도시의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지만 한때는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예술가들이 거쳐 가거나 생활 터전으로 삼았다. 그리고 여전히 젊은 예술가들도 이곳을 찾아온다. 그리고 이곳에서 받은 영감을 작품으로 남긴다. ‘작가의 산책길’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준 서귀포의 자연과 문화를 알기 위해 태어난 길이다. ‘작가의 산책길’은 동쪽 소정방폭포에서 서쪽 기당미술관, 남쪽의 서귀포항을 연결하는 서귀포 구시가지 둘레길로 약 5㎞에 이른다. 화가 이중섭은 아이들과 이 길의 해변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냈고 폭풍의 화가 변시지는 제주화라는 새로운 화풍을 남겼다. 서예가인 현중화는 자신만의 글씨체를 완성하고 후학을 양성했다. 이들의 작품 세계와 발자취는 이중섭미술관, 기당미술관, 소암기념관에서 만날 수 있다. 이중섭은 예술의 고장 서귀포를 가장 대중적으로 알린 예술가다. 그가 서귀포에 머물렀던 것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년도 못 미치는 기간이었다. 아내와 두 아이들을 데리고 피난 삼아 온 이곳에서의 생활은 매우 궁핍했지만 가족 모두가 모여 가장 단란한 추억을 남긴 이 시기는 그의 작품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아이, 새, 게, 섬 등이 서귀포 생활을 모티브로 하며 이후 아내와 아이들을 일본으로 떠나보낸 후 외롭게 생활을 이어 갔던 이중섭에게 ‘지상 유토피아의 공간’으로 남게 됐다. 이중섭미술관 아래 이중섭이 살았던 집이 있으며 그와 아이들이 자주 게를 잡고 놀았을 것이라고 알려진 자구리 해안까지도 걸어서 10여분이면 갈 수 있다. 섶섬과 문섬, 새섬이 한눈에 들어오며 반대편으로는 한라산까지 보이는 자구리 해안은 가장 아름다운 서귀포 해안의 풍경을 간직한 곳이다. ‘작가의 산책길’의 한 축은 바로 이중섭미술관이 있는 거리와 자구리 해안을 잇고 있다. 현실로서의 제주를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한 화가로 변시지(1926~2013)를 빼놓을 수 없다. 제주 서귀포에서 태어났지만 일본과 서울 등에서 생활해 온 그는 1975년부터 제주에 다시 정착하며 제주를 대표한 화가가 됐다. 황토색 바탕에 검은색 선으로 제주의 풍광을 자신만의 해석으로 표현해 온 그는 특히 미친 듯이 불어 젖히는 제주의 바람을 잘 묘사해 ‘폭풍의 화가’라고도 불린다. 그의 그림을 바라보고 있으면 묘한 여운들이 그림의 바람처럼 일렁인다. 잠시 비바람을 피하러 들렀던 기당미술관에서 그의 작품들을 우연히 만났고 더 현실 같은 그의 그림 속에 빠져 한참을 미술관에서 서성거려야 했다. 현재도 활발히 활동 중인 화가 이왈종의 미술관은 정방폭포 앞에 있다. ‘제주생활의 중도’ 연작을 해 온 그는 이중섭과는 다른 제주의 또 다른 유토피아를 보여 준다. 화려하고 풍자적인 분위기로 일상과 꿈을 잘 조화시켜 그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화사한 색감과 위트 넘치는 그림체는 요즘 젊은 세대에게도 매력적이다. ‘작가의 산책길’은 이러한 이야기 위에 서예가 소암 현중화가 자택에서 서쪽의 삼매봉까지 자주 산책을 했던 것에서 모티브를 따 2010년 정비되기 시작했다. 거기에 공공미술 작품들도 합류했다. 2012년 서귀포시와 마을미술프로젝트의 주도로 50여점의 공공미술작품이 작가의 산책길 위에 놓이게 된다. 국내외 작가들이 참여해 제주와 서귀포, 자연과 문화 등을 재해석해 거리를 수놓았다. 당시 프로젝트를 진행한 김해곤 감독은 “제주의 숲, 집, 바다, 길을 작품으로 고급스럽게 표현하려고 했다. 결국은 제주의 자연과 문화예술가는 물론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이 작품들은 서귀포시에서도 관광객들에게 소외받던 구시가지의 골목과 칠십리시공원, 자구리 해안 등을 주요 명소로 부각시키는 역할을 했다. ‘작가의 산책길’ 일부는 제주 올레길 6코스와도 겹친다. 서귀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지금의 40~50대에겐 지난해 이중섭 거리에 문을 연 서귀포관광극장이 더욱 반갑다. 1963년 개관해 90년대까지도 영화가 상영됐던 곳으로 40~50대에겐 많은 추억을 안겨준 곳이다. 이 극장이 10여년 만에 노천으로 운영되던 옛 모습 그대로 개관하며 음악회, 시낭송, 전시회, 강연 등을 이어 가자 지역 주민은 물론 관광객, 영화, 건축 전문가들에게도 주목받고 있다. 건물이 방치됨으로써 약 50년의 세월을 예술처럼 고스란히 남겼다. 이중섭 거리에서는 매주 토요일 젊은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아트 플리마켓도 열린다. 제주가 좋아 제주를 찾은 젊은 예술가들이 만들고 그린 자신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직접 판매한다. ‘작가의 산책길’을 관리하는 지역주민협의회 김준형 사무국장은 “지역 주민들의 삶을 어떻게 더 담을 수 있을지 시와 함께 고민 중”이라고 했다. ‘작가의 산책길’은 지역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으며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글 사진 여행작가 enkaykim@naver.com ■여행수첩(지역번호 064) →가는 길 : 제주공항에서 600번 리무진 버스를 이용해 경남호텔 리무진 버스 정류장에서 하차한다. 이중섭미술관(760-3567) 입장료 1000원. 기당미술관(733-1586) 400원, 매주 월요일 휴관. 왈종미술관(763-3600) 입장료 5000원. →함께 둘러볼 곳 : 천지연폭포와 정방폭포는 제주를 대표하는 폭포다. 천지연은 높이 22m, 넓이 12m에 이르며 숲이 조성돼 있어 산책하기 좋다. 밤 10시까지 야간개장도 한다. 천지연폭포와 함께 새연교를 통해 새섬 산책로를 걸어도 좋다. 정방폭포는 높이 23m로 우리나라 유일하게 바다로 바로 떨어지는 폭포다. →맛집 : 서귀포항 부근의 호림식당(732-8184)은 지역 주민들이 더 알아주는 식당이다. 매년 겨울 아귀 스페셜을 선보인다. 붕장어 샤부샤부, 제철 해산물, 생선을 이용한 물회, 조림, 탕 등도 맛있다. 이중섭 거리 위쪽 서귀포매일올레시장은 상설 시장으로 다양한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다. 시장 안 금복식당(762-2243)에서는 할머니 밥상 같은 보리비빔밥을 맛볼 수 있다. 1인분 가격이 3000원이다. 통닭, 오메기떡, 한라봉 주스 등이 특색 있는 먹거리로 꼽힌다.
  • 바스락, 떠나는 발걸음…보고 또 봐도 그립구나

    바스락, 떠나는 발걸음…보고 또 봐도 그립구나

    아산 공세리성당, 300살 넘은 느티나무, 가을빛 머금다 공주 갑사, 은행나무 터널 지나니 오색 단풍 반기다 보령 청라 은행마을, 3000여 그루 노란빛 자태에 넋을 잃다 가을도 끝자락이다. 나무들은 북풍 한 자락에 하릴없이 나뭇잎을 떨군다. 이제 가지 끝에 이파리 매달고 있는 건 몇몇 노거수(老巨樹)뿐이지 싶다. 단풍 좋은 곳을 찾아 헤매다 돌아오니 제집 담장 옆의 단풍이 가장 곱더라는 옛말이 있다. 멀리 가지 않아도 예쁜 단풍은 곳곳에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여태 자연이 벌이는 색의 축제에 참여하지 못한 당신, 충남권의 단풍 명소들에 주목하시라. 가까워서 좋고, 늙은 나무들이 깊은 풍경을 펼쳐 내서 더 좋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불리는 곳, 그래서 ‘태극기 휘날리며’ 등 70여편의 영화와 드라마가 촬영됐던 곳. 이 모두가 아산의 공세리성당을 일컫는 표현들이다. 공세리성당이 깃든 내포(內浦) 지역은 충남뿐 아니라 한국 천주교의 요람 같은 곳이다. 당연히 공세리성당의 역사도 1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895년 프랑스에서 에밀리오 드비즈(한국명 성일론) 신부가 공세리로 부임해 온다. 두 해 뒤 그는 한옥 성당을 신축했고 1922년엔 직접 설계까지 맡아 성당을 짓는다. 그게 지금의 공세리성당이다. 공세리성당엔 유명한 일화가 전해 온다. 바로 ‘이명래 고약’이다. 1900년대 아산 지역엔 종기로 고생하는 사람이 많았다. 당시 외국인 선교사들은 포교를 위해 일정 수준의 의학 지식을 갖추고 있었는데, 드비즈 신부 또한 치료와 선교를 병행하고 있었다. 드비즈 신부는 의학 지식을 활용해 종기 퇴치 약을 만들어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 줬다. 당시 공세리성당에서 심부름을 하던 소년 이명래는 드비즈 신부에게서 고약 조제법과 치료법을 배웠다. 이어 1906년 아산에 ‘명래한의원’을 개업하고 종기를 치료하는 고약을 만들었다. 그게 ‘이명래 고약’이다. 요즘 젊은이들에겐 ‘화석’ 혹은 ‘유물’처럼 여겨질 약이겠지만 당시엔 거의 유일한 종기 치료제였을 만큼 ‘전설적인’ 고약이었다. 성당은 아름답다. ‘고딕과 로마네스크 양식이 혼합된 건축물’이라고는 하는데 범부의 눈엔 그저 여느 성당과 다름없는 단아한 건물로 각인된다. 공세리성당을 완성하는 건 주변 풍경과의 조화다. 수령 350여년의 느티나무, 시퍼런 힘줄 같은 뿌리를 드러낸 팽나무 등의 노거수들이 성당 건물을 둘러쳤다. 여기에 가을빛이 더해져 풍경이 더욱 깊어진다. ‘공세리성당’은 그러니까 성당뿐 아니라 주변 모든 풍경을 수렴하는 의미로 봐야 옳지 싶다. 사람들은 대개 성당 앞만 보고 간다. 한데 성당 오른쪽으로 돌아 건물 뒤편으로 가면 또 하나의 볼거리가 나온다. 바로 ‘십자가의 길’이다. 예수가 십자가를 진 채 처형장까지 갔던, 저 유명한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를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이 길, 짧지만 참 멋지다. 낙엽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고, 예수 고난을 상징하는 조형물들이 14처에 걸쳐 세워져 있다. 종교와 무관한 이라도 조용하게 걸어 볼 만하다. 공세리성당에서 승용차로 10분 거리의 곡교천 은행나무 가로수길은 ‘전국의 아름다운 가로수길 10선’에 이름을 올렸던 아산의 명소다. 곡교천 북쪽 충무교에서 현충사 입구까지 2.5㎞ 구간 뚝방에 350여 그루의 은행나무가 식재돼 있다. 40년이 넘는 세월을 거치면서 아름드리 거목으로 성장해 해마다 가을이면 주변을 온통 노란빛으로 물들인다. 다만 올해는 이상 기온 등으로 잎의 빛깔이 그리 곱지는 않다. 공주에 들른다. 어차피 내려가는 방향이어서 시간 손실을 걱정할 일은 없다. 목적지는 갑사다. ‘춘마곡 추갑사’(春麻谷 秋甲寺)라 했던가. 봄엔 신록이 아름다운 마곡사를, 가을엔 단풍이 고운 갑사를 찾으라는 뜻이다. 갑사로 드는 길에 만나는 은행나무 터널이 이방인의 시선을 잡아끈다. 늙은 은행나무들이 400~500m 남짓 터널을 이뤘다. 옆으로 펼친 가지 끝엔 노란 이파리가 매달렸다. 갑사에 이르는 길은 흔히 ‘오리숲길’로 불린다. 오색 단풍이 일품인 곳. 참나무 등의 활엽수와 단풍나무가 다채롭게 어우러졌다. 낙엽들이 쌓여 만든 푹신한 길을 걷는 맛도 각별하다. 보령 땅에 들어선다. 40~50대 장년층이라면 1995년 보령과 통합되면서 제 이름을 잃어버린 ‘대천’이란 지명이 더 귀에 익을 터다. 라면처럼 휘어진 철길을 달리던 옛 장항선 열차를 타고, 가수 윤형주가 그랬듯 ‘조개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어 주고야 말겠다’는 강렬한 꿈을 꾸던 곳이 바로 대천 땅, 대천해수욕장이다. 실제 윤형주가 노래 ‘조개껍질 묶어’를 만든 곳도 대천 바다였다. 이 계절 보령에서 찾아야 할 곳은 청라면이다. 은행나무들이 노란 꽃구름을 만들고 있는 곳이다. 청라면으로 드는 길목 여기저기 가을빛이 화사하다. 저수지는 노랗게 물든 단풍을 그대로 수면 위에 담아내고, 사방을 둘러친 산자락엔 붉은 빛깔로 단장한 단풍나무들이 단풍 명산 못지않은 요염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은행나무 많기로 이름난 청라면에서도 뭇사람들이 ‘엄지 척’ 꼽는 곳은 청라 은행마을이다. 수령 100년이 넘는 토종 은행나무 30여 그루를 포함해 모두 3000여 그루에 달하는 은행나무가 식재된 우리나라 최대 은행나무 군락지 중 한 곳이다. 마을에 들면 신경섭 가옥이 객을 맞는다. 조선 후기 가옥 형태가 오롯이 남은 고택이다. 담장 안팎으로 100년 이상 된 은행나무들이 시립하듯 서 있다. 특히 대문 앞을 지키고 있는 은행나무는 수령이 500년을 헤아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늙은 은행나무들은 가지마다 노란 이파리를 가득 매달고 있다. 바닥엔 또 그만큼의 잎을 떨궜다. 꼭 노란 융단을 밟고 선 듯한 느낌이다. 청라 은행마을에서는 해마다 전국 은행 수확량의 절반이 넘는 100t가량의 은행이 수확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가로수나 경관을 위해 심은 은행나무와 달리 이 마을의 나무들은 죄다 소출을 위해 심었다는 뜻이다. 그 탓에 비록 빼어난 조형미를 갖추지는 못했어도 이방인들에게 자연스럽고 정감 넘치는 풍경을 안겨 준다. 글 사진 아산·보령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41) →가는 길 :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아산 공세리성당, 곡교천 은행나무 거리, 현충사 등의 순으로 돌아보면 효율적이다. 이어 공주 갑사를 둘러본 뒤 보령 청라 은행마을, 천북면 순으로 일정을 짜면 무난하다. 올해 수능 수험생이라면 아산레일바이크(547-7882)와 피나클랜드(534-2580)를 찾아도 좋겠다. 수험표를 지참한 본인은 50%, 동반 3인까지는 30% 할인된다. →맛집 : 공세뜰두부집(533-1545)은 집에서 만든 두부를 내는 집이다. 두부 요리도 맛깔스럽지만 무엇보다 두부를 큼직하게 썰어 넣고 칼칼하게 끓여 내는 김치찌개가 일품이다. 청국장도 별미다. 아산 공세리성당 앞에 있다. 보령 쪽에선 굴구이가 계절 별미다. 천북면 쪽에 굴구이집들이 밀집돼 있다. 서너 명이 3만원짜리를 먹는 게 보통이지만, 적은 인원이 갈 경우 양과 값을 조정할 수 있다. 굴을 구울 때 파편이 많이 튄다. 다소 위험할 수 있으니 안경이나 선글라스로 눈을 가리는 게 좋다. 오천항의 키조개도 달짝지근하고 쫄깃한 식감이 일품이다. 성주면의 황해원(993-5051)은 짬뽕으로 유명한 집. 점심때만 문을 연다. →잘 곳 : 아산은 온천 도시다. 조선 시대 온천 행궁이 있던 온양온천, 충남도 1호 보양 온천인 도고온천, 게르마늄 온천인 아산온천 등 이름난 온천 지구만 세 곳이다. 보령 쪽 바닷가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싶다면 호텔뷰(641-7890)를 권한다. 객실은 조리를 할 수 있는 펜션형과 호텔형 두 가지다. 바다 쪽 전망은 펜션형이 더 낫다.
  • 우유 수육-김장 김치가 찰떡궁합?... 첫눈 올 때가 기다려지네

    우유 수육-김장 김치가 찰떡궁합?... 첫눈 올 때가 기다려지네

    어느덧 소설(小雪)이 코앞이다. 소설은 김장을 준비해야 할 시기가 왔음을 알려주는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예부터 조상들은 첫눈이 내릴 즈음이면 본격적인 겨울채비를 위해 김장을 담갔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기 전에 김장을 해야 김치의 주재료인 채소가 얼지 않기 때문이다. 커다란 대야에 갖가지 채소를 넣어 김칫소를 버무리고 적당히 절여진 배춧잎 켜켜이 속을 채워 넣고 나면 공식처럼 생각나는 것이 있다. 바로 뜨겁게 삶아낸 야들한 돼지고기 수육이다. 김장을 끝낸 뒤 삼삼오오 모여 김장 김치에 수육을 곁들이는 모습은 우리에게 마치 겨울의 관문에 들어서는 풍경처럼 낯익다. 수육을 잡내 없이 잘 삶는 데에도 저마다의 노하우가 있다. 그 가운데에도 우유는 으뜸으로 꼽힌다. 우유의 단백질 성분이 돈육 특유의 비린내를 유발하는 트리메틸아민을 흡수하기 때문이다. 이 때 우유량은 고기가 잠길 정도의 선에 맞추는 게 좋다. 이렇게 하면 김장 김치와 한껏 잘 어우러지는 부드러운 수육 요리를 즐길 수 있다. 문미선 요리연구가는 16일 “우유의 유지방 성분은 돼지고기의 육질을 부드럽게 하고 육즙을 풍부하게 해준다”며 “수육이나 조림류에 우유를 활용하면 더욱 깊은 풍미를 즐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무, 배춧값의 고공행진으로 시판 김치를 사먹는 편이 경제적이라고들 한다. 가족 구성원의 수가 줄고 성능 좋은 김치냉장고가 등장하면서 수십 포기에 달하는 김장의 필요성도 예전보다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장은 유네스코에 등재된 우리의 소중한 문화 유산이다. 배추 등 다양한 채소와 수십 가지 재료가 어우러진 김치에는 비타민과 칼슘 등 무기질과 식이섬유가 풍부하게 함유돼 있어 겨우내 우리의 건강을 보필하는 훌륭한 반찬거리가 된다. 여기에 우유를 넣어 부드럽게 삶은 수육을 곁들이면 맛의 균형은 물론 영양학적인 밸런스까지 동시에 챙길 수 있을 것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광장] 촛불의 이면엔 허기가 있다/임창용 논설위원

    [서울광장] 촛불의 이면엔 허기가 있다/임창용 논설위원

    지난 일요일 아침이었다. 세종로 네거리엔 바쁜 일상의 군상들만 가득했다. 간밤에 넘실대던 100만 촛불은 다 어디로 간 걸까. 북악산을 향해 돌진하던 거대한 함성은 단단한 바위에 부닥쳐 산화하고 만 걸까. 밤새 몰아친 붉은 폭풍의 장엄이 아직 생생한데, 그 흔적은 적막하고 허전했다. 1987년 6월 항쟁 때도 그랬다. 격렬한 시위 다음날 캠퍼스의 아침은 적요했고 우린 늘 무언가에 허기져 있었다. 6월 항쟁은 단순히 박종철·이한열이란 두 젊은이의 희생에 대한 보상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 이면엔 박정희 정권 이후 20년 넘게 억눌려온 자유와 민주에 대한 갈망과 허기가 있었다. 두 젊은이는 더는 허기를 참지 못한 민초들의 분노에 불을 댕긴 도화선이었다. 광화문에서 촛불에 불을 댕긴 것은 분명히 국정을 자신의 살림살이인 양 농단한 최순실 세력이었다. 하지만 그 이면엔 지난 4년간 쌓인 부조리와 파탄 지경의 민생이 겹겹이 쌓여 있다. 갈수록 피폐해지는 민생과 끝 모를 바닥을 향해 추락하는 삶의 질에 서민들은 이미 탈진 직전에 있다. 촛불은 공정사회에 허기진 민초들의 반란이다. 상식과 합리가 존중되는 사회를 향한 국민의 갈망을 담고 있다. 한국은 각종 삶의 질 지표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을 보이고 있다. 근로자의 노동시간은 34개 국가 중 두 번째로 긴데 임금 불평등은 가장 심하다. 노동생산성도 꼴찌 수준이다. 밤낮으로 죽으라고 일을 해도 벌어들이는 돈은 형편없이 적은 노동자가 많다는 의미다. 지난 7월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 중 숨진 ‘스무 살 김군’의 가방 속 컵라면은 많은 부모의 눈시울을 적셨다. 김군이 불쌍해서라기보다는 불합리에 대한 분노, 공정사회에 대한 허기 때문이었다. 그뿐인가. 한국인들의 자살률은 10년 넘게 부동의 1위다. 노인 빈곤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최저 수준의 출산율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광화문 일대를 뒤덮은 ‘이건 나라가 아니다’라는 구호는 지금까지 누적된 모든 부조리를 포괄하고 있다. 이제 민초들은 더이상 이런 부조리와 불공정을 인내하지 않으려는 듯하다. 지난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확산된 ‘한국을 헬조선이라고 하는 60가지 이유’란 콘텐츠는 다소 표현 방식이 거칠기는 해도 부조리한 우리 사회의 민낯을 잘 보여준다. 방송뉴스를 캡처해 만든 콘텐츠엔 ‘한국 복지 지출 OECD 꼴찌’,‘“일한 만큼 못 번다”…한국 최하위권’,‘직장인 유급휴가 한국이 꼴찌’,‘유리천장 지수 OECD 최하위’ 등이 줄줄이 나열돼 있다. 촛불시위에 참가한 부모들은 그 이유를 “이런 나라를 자식들에게 물려줄 수 없어서”라고 했다. 취업 준비생들은 “열심히 살려고 아등바등하다 허탈감이 너무 커 나왔다”고 했다. “수능이 대순가. 좋은 나라에 사는 게 우선 아닌가”라고 반문하는 대입 수험생에게 어른들은 대체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가수 이승환은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오르지 않아 마냥 창피하다”며 히트곡 노랫말을 ‘하야하라 박근혜’로 바꿔 불렀다. 이들이 광화문을 찾은 이유는 조금씩 달랐지만, 결국 공정사회에 대한 갈망과 허기로 수렴됐다. 최순실 세력은 지난 4년간 우리 사회에 심화된 부조리현상의 똑 떨어지는 표상과도 같다. 열심히 일해 돈을 벌고, 밤새며 공부해 좋은 대학에 간다는 상식을 간단히 뒤엎어버렸다. 확산 일로의 촛불시위는 미국 작가 존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 속 상황을 연상케 한다. 1930년대 대공황기, 실업자가 폭증하고 빈곤이 전국을 휩쓸던 미국의 대도시는 살풍경했다. 농촌은 농촌대로, 도시는 도시대로 피폐해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서부로 이동했다. ‘세일즈맨의 죽음’의 작가 아서 밀러는 이 시절을 “모든 게 다 고갈돼 버린 느낌이었다”고 묘사했다. 사람들의 눈에는 좌절의 빛이 떠올랐고, 분노가 알알이 맺혀 포도송이로 영글어갔다. 지난 12일 촛불시위는 ‘고요한 폭풍’ 같았다. 거대했지만 평화로웠다. 하지만 터지기 직전의 포도 알갱이처럼 탱탱하게 영근 분노를 품고 있었다. 누적된 분노는 단순히 최순실 세력이 소탕된다고 해서 가라앉을 거품 같은 게 아니다. 누가 집권하든 새로운 국정의 패러다임이 필요한 이유다. 공정사회, 상식과 합리가 통하는 나라를 위한 패러다임 말이다. sdragon@seoul.co.kr
  • [新전원일기] 음악 듣는 배, 행복 두 배… 농약 없는 배, 건강 열 배

    [新전원일기] 음악 듣는 배, 행복 두 배… 농약 없는 배, 건강 열 배

    배나무숲 너머 산등성이 그애의 집을 바라볼 때마다/(중략)/배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밤이면 옹골지게 익은 배가/후두둑 후두둑 녀석은 도둑고양이처럼 잽싸게 주워담았다/배로 허기진 배를 채운 새벽, 녀석과 난 텅 빈 신사동 사거리에서/유령처럼 축구를… 해골바가지… 난 자식아, 여기 최후의 원주민이야.(유하 시인의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1’) ‘배’ 하면 여지없이 유하의 시가 떠오른다. 국가적 단위의 개발사업에 떠밀려 사라졌으나 여전히 어딘가에 살아 있을 고향, 푸른 공간으로 대변되는 추억의 장소가 배나무숲과 함께 눈앞에 펼쳐진다.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탐스러운 배, 배 서리에 나선 동네 꼬마들, 꼬마들을 뒤쫓으며 허투루 소리를 지르는 배나무 주인. 생각만으로도 들큼한 배를 한입 가득 베어 문 듯 감미롭고 달착지근한 기분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1970년대 이전에 서울 압구정동은 배밭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그런데 불과 30여년 만에 압구정동은 높은 빌딩과 아파트, 성형외과에 점령당했다. 압구정동 사거리에 서 있자니 그 많던 배나무는 어디로 갔나 궁금해진다. 건물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이 모두 바람에 흩어지는 배꽃이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상상하기도 한다. 모든 게 너무 빠르게 변화하고 소멸한다. 그래서인지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자신의 모습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쩍 그립고 고맙다. 권윤주(59) ‘미디안 농산’ 대표는 3대째 경기 양평군 지평면을 지키며 4000평 규모의 배 농사를 짓고 있다. 1896년 조부가 이곳으로 이주해 배 농사를 짓기 시작한 후 100년이 넘게 붙박이 농군으로 살아왔던 것이다. 물론 재배 방법이나 상품종과 관련해서는 많은 변화가 있어 왔다. 그 계기가 된 것이 1984년 농약 중독으로 쓰러져 죽을 뻔한 일이다. 병상에 누운 권 대표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이렇게 유해한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해 농사를 짓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사람이 먹자고 농사를 짓는 건데 이것을 사람이 먹어도 되는가 생각하니 섬뜩하더군요. 그래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마자 농약을 쓰지 않고 농사 짓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만류하는 사람도 많았고 더러 미쳤다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유기농법에 대한 개념 자체가 희박했으니까요. 힘들고 외로웠죠. 그러다 ‘정농회’(正農會)를 알게 됐습니다.” 정농회는 1970년대 후반부터 친환경 유기농법을 개발하고 실천 활동을 벌여 온 단체로서, 권 대표는 당시의 심정을 “한 줄기 빛을 보는 기분”이었다고 표현한다. 권 대표는 정농회와 정보를 공유하며 환경친화적 농법을 도입해 흙과 생명을 살리는 먹거리 재배에 박차를 가했다. 또 한 번 변화의 계기가 찾아왔다. “서울신문을 보다가 해외 토픽란에 눈길이 멈췄어요. 모차르트 사과라는 게 시판돼서 소비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는 기사였습니다.” 태교 때 음악을 듣는 게 태아의 정서와 지능개발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농사를 짓는 데도 음악을 사용한다니, 놀라운 발상이 아닐 수 없었다. 권 대표는 당장 관련 자료를 찾기 시작했고 음악이 작물의 생육과 해충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음악의 파동을 느끼면 식물도 반응해 숨구멍을 많이 연다. 이로써 호흡 작용이 왕성해지고 비료 흡수율도 높아져 생육이 향상된다는 것이다. 또 식물에는 ‘자기방어 기능 물질’이라는 게 있어 해충의 섭식성을 방해하고 해충의 대사를 교란시키는데, 음악을 들려주면 이러한 물질 분비가 왕성해진다. 더불어 음악은 해충 자체가 갖고 있는 호르몬 균형을 깨뜨리고 성충이 되는 것도 방해하기 때문에 자연히 해충발생 억제 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권 대표는 1987년 친환경 농업으로 전면 전환하는 것과 동시에 전국 최초로 음악 농법을 시도했다. 그리고 배밭을 지나며 의아해했던 질문 하나가 풀렸다. 갑자기 싸늘해진 날씨에 옷깃을 여며야 했음에도 배나무 잎은 여전히 푸르렀고, 배밭 여기저기에는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허수아비와 수확한 배를 가득 담은 상자가 놓여 있었다. 머릿속에서 그려 왔던 풍경, 언젠가 한 번은 보았던 익숙한 풍경에 몸이 저절로 녹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배나무 곳곳에 숨바꼭질하듯 숨어 있는 네모난 스피커의 정체를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아, 너희들이 음악을 들으며 자란 거구나. 모차르트를, 베토벤을, 사물놀이를 듣고 자라서 그렇게 푸르고 건강했던 거로구나. 비로소 머리가 탁 트이는 듯했다. 권 대표의 노력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사람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배를 재배한다는 자부심이 생산성과 수익까지 보장해 주지는 못했던 것이다. 매년 물가는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는데 기존의 방법만으로는 기초 생활을 유지하는 것만도 힘들 지경이었다. 권 대표는 상품성이 떨어진 배를 상품화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동의보감’에서 그 해법을 찾았다. 배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효능이 숨어 있다. 환절기에는 몸이 쉽게 지치고 면역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크고 작은 질병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 이때 면역력을 향상시키는 식품으로 배를 빠뜨릴 수 없다. 비타민과 미네랄 등 각종 영양성분이 풍부할 뿐더러 면역력 강화에 좋은 ‘케르세틴’과 ‘카테킨’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서다. 이 밖에 두 성분은 동맥경화와 고혈압 등 심혈관 질환을 예방하는 데도 효과적이다. 또 배에는 ‘알부틴’이 많이 함유돼 있다. 알부틴은 주근깨와 기미의 원인이 되는 멜라닌 색소 발생을 억제해 피부를 맑고 청결하게 가꿔 준다. 최근에는 배의 성분 중 하나인 ‘폴리페놀’이 주목을 끌고 있는데 폴리페놀은 몸속의 유해 산소를 제거하고 암을 예방하는 데 뛰어난 효과를 보이는 물질로 요즘 같은 환절기에 섭취하면 더욱 좋다. 한방에서는 기관지염이나 감기 환자에게 배를 권하는데, 동의보감에 따르면 배를 즙으로 내 먹으면 기침·감기·천식이 잦아들고 폐와 기관지, 코 등의 열독을 빼낼 수 있다. 권 대표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 배를 달이던 엄마 생각이 났다. 배 윗부분을 잘라내 속을 파내고 그 안에 꿀과 배의 속살을 넣어 오랜 시간 중탕하던 모습이며, 갈색즙을 후후 불며 식기 전에 마시라며 내밀던 모습이 옛날 영사기 속의 한 장면처럼 떠올랐다. 추억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나를 권 대표의 목소리가 잡아끌었다. “처음에는 배잼으로 특허 출원을 했어요. 그게 1993년의 일이었죠. 1995년에는 양평군 최초로 농가공 공장을 설립했고요. 1997년에 배로 만든 잼의 특허를 획득했는데 조금 더 먹기 편한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1998년에 전국에서 최초로 배즙을 출시하게 됐습니다.” 그 후로 권 대표는 상품의 다양화에 전력을 다했다. 허브배즙과 도라지배즙, 산수유청과 산수유엿을 개발해 경기도 G마크를 획득하고 농림축산식품부장관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기능성 순무 배즙과 오디뽕즙도 출시된 상태다. 배 농사와 배 가공산업에서 나오는 연 매출액은 7억원 수준이다. 배와 함께한 일련의 과정이 소득증대와 관련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권 대표는 “소득은 중요한 게 아니다”라고 말한다. “소득보다 중요한 것은 삶의 질”이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행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말인데 일상에서 이를 실천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그런데 권 대표는 이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고민한 결과를 일상 속에서 적극적으로 실천한다. 권 대표는 경기 양평군 지평면 가루매마을 위원장이기도 한데, 여러 개의 협동조합을 설립하는 데 큰 몫을 담당했다. 6차 산업은 현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이지만 개별농가에서 이를 실현하기란 매우 어렵다. 농산물 생산(1차)만 하던 농가가 고부가가치 제품을 가공(2차)하고, 향토 자원을 활용한 서비스업(3차)까지 확대하기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권 대표는 이에 대한 해법으로 농가가 서로 협력하고 연대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마미온푸드 협동조합’ 설립과 마을 단위의 체험 프로그램 진행이 그중 하나다. 가루매마을에서는 각 농가에서 재배하는 품종과 관련해 유아식품을 개발·생산하고, 농사나 농촌 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을 단위로 진행한다. 그중에서 특히 ‘따뜻한 한 끼 밥상’은 권 대표가 생각하는 ‘행복’이 어떤 것인가를 확연하게 드러낸다. “농사꾼의 눈에는 보이는 모든 것이 일거리예요. 특히 농번기에는 밥을 챙겨 먹는 게 아주 큰일이죠. 시간도 없고 일손도 부족하거든요. 그래서 마을회관을 이용해 농부와 노인들에게 점심을 제공하기로 했어요.” ‘따뜻한 한 끼 밥상’ 식당은 마을 부녀회가 중심이 된 협동조합으로, 마을에서 생산하는 농산물을 위주로 제철 밥상을 차려 저렴하게 공급한다. 농부들이 가져온 농산물은 소매 가격으로 사주고, 식당에서 일하는 부녀자들에게는 별도로 수당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니 진정한 로컬푸드라 할 만하다. 고개를 주억거리며 배밭을 빠져나오는데 권 대표가 뛰어와 도라지배즙을 건넨다. 이야기하는 내내 기침하던 모습을 눈여겨보았던 모양이다. 배 서리꾼을 잡는 시늉만 하다가 허허 웃어버릴 것 같은, 공동체 안에서 서로 배려하고 함께 잘 사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2016년을 살고 있으나 마음은 정으로 가득 찬 과거의 어디쯤에 가 있을 것만 같은 농부의 손길이 따뜻하고 정겹다. ■ 글쓴이 소설가 진연주 200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방’(房)으로 등단. 2015년 문학동네에서 장편소설 ‘코케인’ 출간.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팔만대장경의 기운, 수능성공으로…해인사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팔만대장경의 기운, 수능성공으로…해인사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너무나도 유명한 성철 스님(1912~1993)의 법어(法語)다. 1981년 1월, 조계종 종정으로 취임하면서 내린 이 말은 단번에 대중의 눈과 귀, 그리고 입까지 벌리게 하였다. 이후 성철 스님은 한국 선종을 대표하게 된다. 그가 젊은 시절 파계사(把溪寺) 성전암에서 8년간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통해 공부했던 일화는 아직도 납자승들 사이에서도 전설로 구전되고 있다. 이러하니 현재도 그의 가르침은 늘 생생히 불교계에 선풍(禪風)을 고양시키고 있다. 바로 성철 스님이 1936년 동산(東山)스님으로부터 사미계를 받은 곳이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산에 자리잡은 해인사(海印寺)였다. 이후 1993년 11월 4일 향년 82세(법랍 58세)를 일기로 입적할 때까지 해인사의 공부하는 큰 스님으로 머물렀다. 해인사는 순천의 송광사, 양산의 통도사와 함께 한국의 3보 사찰로 꼽힌다. 3보란 불교에서 불(佛), 법(法), 승(僧)을 뜻하는데, 해인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공부하는 법보(팔만대장경)사찰로 유명하다. 그러다 보니 예로부터 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글이 있는 절’이라 하여, 해인사는 큰 시험을 앞둔 불자들에게는 방문 1순위의 불법(佛法) 높은 발원(發願) 사찰로 유명하다. 특히 매년 11월만 되면 수능 대박을 기원하는 중생들의 간절한 1000배 합장, 무릎 꺾는 소리가 경내 곳곳에 그치지 않는 이유가 있다. 수능을 앞둔 11월, 합천 해인사다. ● 팔만대장경의 불력으로 수능 성공을 기원하다 해인사는 802년 신라 애장왕 3년에 ‘순응’과 ‘이정’이 창건한 후 918년에는 고려 태조가 국찰로 삼은 유서 깊은 사찰이다. 1000년이 넘는 시간동안 해인사 역시 화마의 불길을 피해가지 못해 기록으로 남은 화재만 5차례가 넘는다. 따라서 창건 당시의 건축 원형은 알 수가 없고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대부분 조선 말엽때 중건된 것들이다. 이 중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는 국보 52호 장경판전(藏經板殿)은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건축물로서 숱한 화재 속에서도 불길이 닿지 않은 영험한 곳으로 현재는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유네스코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장경판전은 대장경판의 부식을 막기 위하여 창의 아랫부분은 넓고, 윗부분은 좁게 만들어 습기가 경내에 머무르지 않도록 통풍을 유도하는 건물로 지어졌다. <사진4.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는 장경판전 입구. 위 사진 양 옆으로 팔만대장경 경판이 보관되어 있다.> 또한 흙바닥에는 숯, 소금, 횟가루, 모래를 넣어 습도를 조절하도록 하고, 장경판전 자체를 사찰 제일 위쪽에 배치하여 인적이나 화마의 위험으로부터 멀리하도록 하였다. 또한 선조들의 건축술을 확연히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전각의 방향이다. 특이하게도 남향에서 약간 비스듬하게 방향을 돌린 서남향으로 건물을 배치하여 하루동안 모든 경판에 햇살이 한 번은 닿도록 만들었다. 바로 이 장경판전에 보관되어 있는 것이 팔만대장경이다. 역시 국보 32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해인사 대표문화재다. 현재는 일반에 공개되지 않고 있어 관람객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한다. 팔만대장경을 좀 더 살펴보자면,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는 대장경판은 총 8만 1258판이며, 경판의 크기는 세로 24㎝ 내외, 가로 70㎝ 내외이며 두께는 2.6㎝, 내지 4㎝, 무게는 3~4kg이어서 전체 무게는 약 280톤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다. 원래는 ‘고려대장경’이라고 불려야 할 팔만대장경 명칭의 유래는 장경 판수가 8만이 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불교에서 말하는 팔만 사천 번뇌에 대치하는 8만 4천 법문을 수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불교에서는 팔만이라는 숫자는 불력(佛力)으로 다다를 수 있는 ‘큰’ 숫자를 대표하기도 한다. 팔만대장경은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장경판이면서도 제작 연대가 정확하게 알려진 경판이기도 하다. 고려 고종 23년(1236)부터 38년(1251)까지 16년에 걸쳐 완성한 대장경으로 부처의 힘으로 외적을 물리치기 위해 만들었다. 원래는 강화도성 서문 밖의 대장경판당에 보관되었다가 신원사를 거쳐 태조7년(1398) 5월에 해인사로 옮겨져 오늘까지 이르고 있다. ● 거대한 사찰 규모에 또 한 번 놀라, 발길 바쁜 관람객들 해인사에는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장경판전 이외에도 눈여겨 볼만한 것들이 많다. 우선 절의 입구에 있는 일주문은 조선 초기 양식으로 사찰 제일 첫 관문이다. 모든 중생이 성불의 세계로 나아가는 길의 첫 문을 상징한다. 일주문을 지나 봉황문을 건너가면 제 3문인 해탈문을 만나게 된다. 유독 해탈문 아래에 높이 33 계단이 있는 데 이는 도리천, 즉 삼십삼천(三十三天)의 삼라만상의 우주를 의미한다. 이 해탈문 아래 오른편에 가야산의 산신과 토지가람신을 모시는 국사단이 있다. 바로 이 앞에 노란 소원지 한 가득 모여있는 나무가 있어 '수능성공’을 기원하는 글귀가 많다. 해탈문을 지나 구광루를 넘어가면 해인사 중심법당인 대적광전이 있다. 해인사는 화엄경의 주불인 비로자나부처님을 모시기 때문에 대웅전이 아닌 대적광전이 중심 법당이다. 바로 이 법당에서 수험생을 자녀로 둔 수많은 불자들이 그들의 염원을 위해 108배에서 3000배까지 합장발원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해인사에는 이외에도 이름난 전각들이 많다. 보경당, 청화당, 적묵당, 궁현당, 관음전, 경학원, 명부전, 응진전, 독성각, 선열당, 퇴설당, 극락전, 조사전, 대비로전 등 우리나라 3대 사찰 명성에 걸맞는 규모의 법당이 많아서 이를 다 둘러보려 해도 한 나절은 족히 걸린다. 11월 중순, 수능을 앞둔 수험생을 자녀로 둔 부모님들의 간절한 발원 염원이 종교를 넘어 모두 해인사 하늘 위 비로자나불에 닿기를 기원한다. <해인사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우리나라 3대 사찰 중의 하나다. 경상남도를 방문할 일이 있으면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어 가 보는 것도 좋다. 특히 해인사는 겨울 풍경 좋기로 유명한 곳이다. 2. 누구와 함께? -누구라도. 특히 나이드신 부모님이 계시다면 함께. 3. 주소와 입장료는? -경남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22 (055)934-3000/ 입장료(개인기준) 성인 3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700원/ 동절기 오전 8시 반~오후 5시(하절기는 오후 6시까지) 4. 감탄하는 점은? -가야산 깊은 산속에 이렇듯 큰 절이 있다니. 해인사로 오르는 길 왼편에서 만나는 계곡의 아름다움, 늦가을 떨어지지 않은 은행나무 잎에서 불어오는 노란 흔들림.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해인사는 생각보다 훨씬 큰 절이다. 홍길동전에서 묘사되는 부정적인 모습의 이유는 아마도 사찰 규모의 거대함때문이었으리라. 6. 꼭 봐야할 장소는? -장경판전, 대적광전, 구광루, 봉황문, 일주문 7. 먹거리 추천? -해인사 주변은 예로부터 관광지로 잘 발전되어 있는 곳이다. 그러나 대개는 단체 관광객을 맞이하기 위한 곳이 많기 때문에 의외로 가족 단위 나들이객이 들어갈 만한 식당은 많지 않은 듯하다. 해인사 아랫마을에 소소한 식당들이 산채비빔밥 위주로 메뉴를 구성하고 있다. 8. 홈페이지 주소는? -www.haeinsa.or.kr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합천영상테마파크 적극 추천함. 10. 총평 및 당부사항 -해인사 소리길을 걷는 관람객들이 많다. 해인사는 가야산 깊은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천천히 가야산을 등산하듯 걸어 올라가다보면 제대로 된 해인사 나들이가 될 수 있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벽돌로 쌓은 도시… 다른 듯 닮은 어울림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벽돌로 쌓은 도시… 다른 듯 닮은 어울림

    쿠알라룸푸르는 ‘흙탕물(lumpur)이 만나는 곳(kuala)’이라는 뜻이다. 그 이름에 걸맞게 구도심의 중심에서 곰박과 클랑이라는 이름의 두 탁한 강줄기가 만난다. 그 교차점에는 이슬람을 국교로 하는 말레이시아의 수도답게 자멕 모스크가 자리 잡았다. 국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의 자유가 헌법에 보장돼 있다는 것 또한 다민족, 다종교 사회인 말레이시아의 특징, 그리고 고민을 동시에 보여주는 듯하다. 자멕 모스크의 동남쪽 일대가 쿠알라룸푸르의 구도심이다. 동남아시아의 상가주택(숍하우스)에 관심이 있다면 꼭 가봐야 하는 곳이다. 그만큼 숫자도 많고, 건축 양식도 다양하다. 싱가포르에도 상가주택이 많이 있지만 쿠알라룸푸르가 양적으로, 그리고 다양성 면에서 앞서는 것 같다. 쿠알라룸푸르라는 도시와 상가주택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두 인물이 있다. 그 하나는 얍 아 로이라는 광둥 출신의 중국인이고, 또 다른 하나는 프랑크 스위튼햄이라는 영국인이다. 얍 아 로이는 다수파인 말레이족과 대별되는 이 지역 중국인의 지도자로서 인근 주석 광산의 배후 지역에 불과했던 쿠알라룸푸르의 근대화를 추구했던 인물이다. 그런 그에게 도시 근대화의 구체적인 방법을 제공한 인물이 쿠알라룸푸르가 위치한 셀랑고르 주의 외국인 고문 스위튼햄이었다. 1882년 고문이 되자 그가 처음으로 한 일은 거리를 청소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는 도시를 개조하기 시작했다. 마침 그 전 해인 1881년 쿠알라룸푸르에 대화재가 발생, 대대적인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는 우선 초기 주석 광산 시대의 유산인 목구조의 초가 지붕 건물 대신 벽돌과 타일로 건축할 것을 법으로 정했다. 이렇게 해서 건물의 물리적인 수명을 늘리고 무엇보다 화재에 대비하려 했다. 벽돌 수요가 대대적으로 늘어나는 것에 대비해 얍 아 로이는 넓은 지역 하나를 인수해서 여기에 도시 재건을 위한 벽돌 공장을 설립했다. 그것이 지금 쿠알라룸푸르의 ‘리틀 인디아’로 불리는 ‘브릭필즈’다. 이 두 사람은 정치적으로는 서로 경쟁하는 관계였을지 모르지만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쿠알라룸푸르를 근대 도시로 변화시키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여러 제도가 만들어지고 산업 인프라도 갖췄다. 이렇게 해서 집단적으로 출현한 것이 1880년대 중반의 과도기형 상가주택이다. 구도심 중심가로의 하나인 툰에이치에스리(Tun H. S. Lee)가(街)는 당시의 상가주택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스위튼햄이 만든 또 다른 규정은 가로에 면한 1층의 전면에 대한 것이었다. 상점의 전면을 5피트, 즉 1.5m 정도 후퇴해 일종의 아케이드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상가주택은 벽을 공유하는, 소위 합벽건축이어서 이 아케이드는 가로 전체로 확대될 수 있었다. 이것은 곧 사람들이 비가 와도 젖지 않은 채로 거리를 다닐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오척가로(five-foot way)다. 현대적인 언어로 풀어쓰면 사유재산에 대한 제도적인 개입을 통해 공공의 선을 확장한 정책인 셈이다. 스위튼햄이 이러한 제도를 처음 고안한 것은 아니었다. 싱가포르를 세운 스탬퍼드 래플스 경이 이미 1822년에 이 규정을 도시 계획에 포함시킨 바가 있었다. 오늘날 동남아시아의 도시적 전통으로 여겨지는 것들이 알고 보면 유럽인 식민지배자들에 의해 제도로 정착됐다. 초기 상가주택은 2층이었으나 이어 3층으로 수직 확장됐다. 그러나 대체적인 폭은 20피트, 즉 6미터 정도를 유지했다. 정면이 좁은 대신 안쪽으로는 깊었다. 너무 깊어지면 채광과 환기를 위한 중정이 추가되는 것 또한 공통점이었다. 그리고 시대에 따라 다양한 건축 양식이 반영됐다. 중국, 말레이 양식이 도입된 것은 당연했고 거기에 다양한 유럽의 영향, 즉 신고전주의, 네덜란드, 심지어 아르데코와 모더니즘의 영향까지 발견된다. 초기에 소박했던 상가주택이 본격적으로 화려해지기 시작한 시기의 모습을 쿠알라룸푸르 구도심의 거점 중 하나인 구시장 광장에서 볼 수 있다. 구시장 광장을 찾아간다. 열대지방치고는 비교적 견딜 만한 날씨다. 여기에도 상대적인 4계절이 있어서 이제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있는 중이다. 두 개의 강이 만나는 지점 일대에서는 한창 강변 미화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공사장이나 다름없는 거리를 지나, 현대 건축물과 오래된 건물이 불편한 동거를 하고 있는 듯한 업무 지역을 빙 돌아가자 한눈에 봐도 반듯하게 정리가 된 광장이 나타난다. 광장 서쪽에는 고층 오피스가 가지런히 서 있었지만 그 반대편인 동쪽은 완전히 분위기가 다르다. 제과점의 쇼윈도를 들여다보는 느낌이랄까. 다채로운 색상의 상가주택들이 한 줄로 서 있다. 흰색, 하늘색, 노란색, 붉은색…. 하지만 명도가 높아 서로 싸우지 않는다. 마치 자로 잰 듯이 모두 3층이고 정면의 폭도 일정해서 가로의 연속성이 잘 유지되고 있다. 세부 디테일은 조금씩 차이가 나서 창문은 창문대로, 옥상의 페디먼트 장식은 장식대로 모두 저마다의 특성이 있다. 몇 가지 요소들에 차이를 주고 그것과 색상 몇 가지를 조합한 결과 단 한 채도 같은 건물이 없는 것이다. 통일성과 다양성을 잘 겸비하고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1층은 모두 상점인데 위에서 설명한 오척가로의 원칙이 잘 지켜지고 있다. 누군가는 자기 상점의 면적을 늘리겠다며 전면을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인데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제도와 문화가 동시에 작용하고 있는 결과가 아닌가 싶다. 다만 간판이 어지럽게 붙어 있는 모습을 보면 삶의 구석구석까지 그런 생각이 침투하지는 않은 듯하다. 다시 길을 걷시 시작해서 툰에이치에스리가를 따라 내려간다. 건축 양식이 또 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과감한 색상을 사용한 건물도 보인다. 간판만 좀더 정리되면 유럽 어디의 거리라고 해도 믿을 것이다.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곳’이라는 곳이라는 표현은 한국보다는 이런 곳에 훨씬 더 잘 어울린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쿠알라룸푸르가 이렇게 다양한 문화를 갖고 있는 도시인 것은 미처 몰랐다. 다만 그 수많은 다양성 중에 이슬람 문화가 상가주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확실치 않다. 짧은 일정 동안 육안으로 확인하는 것은 당연히 한계가 있고 관련 자료에서도 이에 대한 언급은 아직 보지 못했다. 다양한 문화가 섞여 있어도 그것의 발현은 선택적인 것인가. 쿠알라룸푸르의 구도심은 꽤 넓고 게다가 도시적 연속성이 비교적 잘 유지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길모퉁이를 돌면 또 다른 분위기의 거리가 나오는 것이 아주 흥미롭다. 차이나타운에 가까워질수록 상업의 밀도는 점점 더 높아진다. 그중에서도 차이나타운의 중심가로라고나 할 페탈링가는 전체 가로 위에 거대한 유리 지붕을 덮어 놓았다. 고풍스러운 상가주택과 현대식 유리 지붕이 대비를 이루면서 거리의 풍경을 더욱 다채롭게 만든다. 이 지역에서 다시 상가주택의 층수는 2층 정도로 통일된다. 그러면서 벽돌 혹은 목재의 중국풍 장식들이 추가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대목에서 쿠알라룸푸르의 상가주택과 한국의 2층 한옥 상가를 비교해 본다. 일단 시기로 보면 1900년 무렵 등장한 한옥 상가가 다소 늦었다. 게다가 목구조 건축술의 한계, 그리고 아마도 경제적인 이유 등의 이유로 2층을 끝내 벗어나지 못했다. 쿠알라룸푸르의 상가주택도 당초 목조였으나 얍 아 로이와 스위튼햄의 지시에 따라 벽돌조로 전환했다. 지난번 연재에서 잠시 다룬 싱가포르 차이나타운의 역사박물관 건물은 기둥과 보 등 주요 구조부가 아예 콘크리트였다. 하지만 대체로 이 지역에서는 이것을 시대의 변화에 따른 당연한 건축술의 진보로 보는 듯하다. 즉 일부 문화재 건물을 제외하고는 목구조 자체의 물리적 ‘진정성’에 그리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은 그 반대다. 목구조 이외의 한옥은 상상할 수 없다. 그것이 낳은 결과의 차이는 크다. 쿠알라룸푸르의 상가주택은 벽돌이라는 새로운 구조 방식을 받아들인 결과 3층 이상의 층수를 확보하면서 근대화가 야기하는 도시적 밀도의 압박을 어느 정도 이겨낼 수 있었다. 물론 최근 들어서는 그 이상의 밀도가 요구되면서 도시 건축의 보편적 유형으로서의 상가주택이 갖는 의미는 점점 더 사라지고 있으나, 적어도 상당한 기간 동안 그 역할을 해 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반면 2층 한옥상가는 애초에 보편적 유형으로 보급되지도 못했고, 근대화 과정에서 도시적 밀도가 금방 2층 그 이상을 요구해 왔기 때문에 유효 기간이 길지도 않았다. 결국 현재 한국 도시에서 2층 한옥 상가는 지극히 희귀한 존재다. 최근 화제가 된 남대문로의 2층 벽돌 한옥상가처럼 문화재 대접을 받으며 가까스로 파괴의 위험을 벗어난 것은 정말 보기 드문 예다. 얼마 남지도 않은 그 나머지는 소리 없이 사라지거나, 정면을 뒤덮은 간판과 가벽 뒤에서 자기 정체성을 숨긴 채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도시란 결국 밀도와 복합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로 구성되는 인간의 정주 형태다. 도시 건축의 유형이 이 두 가지 중에서 어느 하나만 무시해도 결국 도시적 보편성을 상실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종종 그 유형 자체가 아예 송두리째 사라지는 무시무시한 결과를 가져온다. 특히 밀도의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그래서 문화유산이라는 이름으로 상당한 제도적·경제적 보호를 받지 못하면 명맥을 유지하기 어렵거나 특수 용도의 건축물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다. 이것은 우리의 한옥이 밟아 온 과정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도 상가주택의 미래에 대해 수많은 고민이 쏟아져 나온다. 싱가포르, 그리고 같은 말레이시아의 도시 중에는 말라카 등이 모범 사례로 종종 제시된다. 최근에는 젊은 세대가 이런 역사적 건축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들이 힘을 모아 쿠알라룸푸르 구도심의 한 가로를 ‘더로’(the Row)라는 이름의 매우 매력적인 상가주택 지역으로 탈바꿈시켰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이런 현상이 이미 2000년대의 한국에서도 시작되고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무수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북촌과 서촌, 그리고 전주와 경주 등의 한옥 마을에 일어나고 있는 변화가 이를 증거한다. 역설적이지만 전통의 미래는 젊은 세대에게 달려 있다. 이렇게 몸은 이국의 거리에 서 있으나 생각은 한국을 향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 신혼여행 갔다가 일몰 사진 찍었는데 “완전 호주 대륙이네”

    신혼여행 갔다가 일몰 사진 찍었는데 “완전 호주 대륙이네”

    세상에, 나무가지와 잎 사이로 비친 해변의 일몰 풍경이 놀랍게도 호주 대륙 모양을 똑닮았다. 호주 서부에 거주하는 응급구조 전화 안내원인 캘리 매튜스가 신혼여행으로 노던 테러토리의 다윈 에스플라나데를 찾았던 첫날 저녁 우연히 이런 놀라운 풍경을 카메라에 담게 됐다. 매튜스는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친구들이 모두 ‘꼭 호주 지도 모양 같네’라고 말하대요”라고 14일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털어놓았다. 사진은 소셜미디어에서 놀라운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일부는 뭔가가 눈에 띄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다름 아닌 호주 대륙 동쪽 끝에 외따로 떨어진 타즈메니아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윌리엄 레먼은 “아무렇지도 않게 타즈메니아가 빠졌다”고 지적했다. 엘리 치콜리는 이에 대해 “친구야. 그냥 거기 가서 덤불 속에 구멍을 하나 내봐”라고 농을 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위너 남태현, 심리 치료 중 SNS에 남긴 글 보니 “나는 단지..”

    위너 남태현, 심리 치료 중 SNS에 남긴 글 보니 “나는 단지..”

    활동을 중단하고 휴식 중인 남태현이 심경을 드러내는 게시물을 올려 눈길을 끈다. 그룹 위너 멤버 남태현은 13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I JUST WANT TO SING(나는 단지 노래하고 싶다)’는 메시지가 적힌 사진을 게재했다. 이와 함께 “Yes(네)”라는 짧은 코멘트를 달았다. 또 남태현은 이국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선글라스를 낀 채 여유를 만끽하고 있는 모습을 담은 근황 사진도 공개했다. 현재 남태현은 활동을 잠정 중단하고 휴식 중이다. YG엔터테인먼트는 지난달 “남태현이 연습생 시절부터 앓고 있던 심리적 건강 문제가 지난 몇 달 간 매우 안 좋아져 안정적인 치료를 위해 본가에서 어머니와 함께 지내며 치료를 받고 있다”며 위너 컴백 일정이 무기한 연기됨을 알린 바 있다. 사진=남태현 인스타그램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현장 블로그] “삼류 정치에 일류 촛불”… 시민도 경찰도 빛났다

    [현장 블로그] “삼류 정치에 일류 촛불”… 시민도 경찰도 빛났다

    도도한 민심이 경찰 차벽에 가로막혀 소용돌이치고 있었습니다. 지난 12일 오후 7시 30분부터 13일 오전 1시까지 5시간 30분 동안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삼거리에 서 있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3차 촛불집회의 최전선이었던 그곳에서 시민과 경찰의 대치를 똑똑히 봤습니다. ●일부 몸싸움·경찰 저지선 넘기도 선두를 향해 시민들이 계속 몰려들었습니다. 말 그대로 ‘송곳 하나 세울 틈’이 없었습니다. 박 대통령을 향한 분노가 들끓었습니다. 일촉즉발, 둑을 터뜨리고 청와대로 밀고 들어갈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평화시위’라는 기치 아래 모인 시민 대부분은 끝까지 이성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대다수 “차벽 내려와” “방패 돌려줘” 작은 물리적 충돌이 몇 차례 있었습니다. 선두에 있던 대학생들이 경찰의 방패나 헬멧을 뺏으려 몸싸움을 벌였습니다. 몇몇 시민은 최종 저지선의 장벽을 넘어가기도 했습니다. 경찰의 해산 명령을 거부하고 끝까지 버틴 시민 23명은 도로점거, 경찰관 폭행 혐의로 연행됐습니다. 하지만 기조는 흐트러지지 않았습니다. 시민들은 과격한 행동을 하는 또 다른 시민들을 향해 “(방패) 뺏지 마”, “비폭력”, “(차벽에서) 내려와” 등의 구호를 외쳤습니다. 경찰에게 빼앗은 방패를 돌려주는 진풍경도 여러 차례 벌어졌습니다. ●경찰도 마지막까지 유연한 대응 몇몇 시민은 ‘물러나라’는 구호만으로는 될 일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싸우겠다는데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힘 빠지게 하지 말라”며 반발했습니다. 하지만 “평화시위를 하자고 모였으니 약속을 지키자. 폭력시위로 번지면 집회의 의미가 사라진다. 보수 세력에게 공격할 빌미도 제공하지 말라”는 목소리가 더 컸습니다. 시민뿐 아니라 이날 최대한 유연하게 대응한 경찰도 “수고했다”고 다독이고 싶습니다. 경찰은 신고된 집회 시간인 12일 오후 11시 55분을 훌쩍 넘긴 13일 오전 2시 30분 해산에 돌입했다고 합니다. 13일 오전 2시 집에 돌아가던 길에 들은 한 시민의 외침이 아직도 귓가에 울립니다. “시민이고 경찰이고 대통령 잘못 뽑아서 휴일에 이게 다 무슨 고생이야. 이 버스에 탄 여러분은 다 애국자입니다. 민주투사입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소세키 발자국 좇다가… 수레 속 보물 찾았다

    소세키 발자국 좇다가… 수레 속 보물 찾았다

    1장 - 도쿄역서 한 정거장에 책 천국이 일본의 수도인 도쿄, 그 중심에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도쿄 기차역이 있고 거기서 지하철을 타고 한 정거장만 가면 간다역이다. 도쿄의 고서점거리는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의외로 시내 중심부와 가까운 곳에 고서점거리가 있다는 것에서 우선 신선한 자극을 받는다. 올해 57회인 진보초 고서축제는 간다와 진보초 일대의 헌책방 200여곳이 참여하는 가장 규모가 큰 행사이다. 규모가 큰 만큼 축제 기간도 길어서 매년 10월 마지막 주 금요일부터 11월 첫 주까지 2주 동안 이 거리가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이 기간 동안 유통되는 책만 해도 100만권에 이른다고 하니 직접 가보지 않고는 축제의 면모를 다 알기 힘들 정도다. 이 지역에 헌책방들이 들어서게 된 것은 130여년 전부터다. 당시 일본은 근대 학문을 배우고 익혀 서양에 뒤지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여러 대학이 만들어졌다. 메이지대학(1881년 개교), 도쿄대학(1887년 개교) 등이 차례로 생겨났고 그에 따라 자연스레 책의 수요도 많아졌다. 진보초의 헌책방은 이런 역사를 배경으로 하나둘씩 문을 열었고 그것이 지금에 이르러 현재는 ‘세계 최대의 헌책방거리’라는 명성을 가지게 되었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거리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기는 했어도 진보초에 있는 헌책방들은 여전히 예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이 많다. 1918년에 처음으로 영업을 시작한 ‘야구치서점’은 100년 전 간판을 아직도 그대로 쓰고 있다. 그런가 하면 비틀스의 멤버인 존 레논이 직접 안경을 맞춘 곳으로도 유명한 안경점이 당시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여전히 그 자리에서 영업을 이어오고 있다. 그 외에도 둘러보면 곳곳에 100년 전 헌책방 거리의 모습을 이렇게까지 잘 보존하고 있는 것에 부러운 마음이 앞선다. 우리나라에도 인천의 배다리, 서울의 청계천, 부산의 보수동 등 헌책방 거리가 있지만 1980년대 이후 빠른 속도로 헌책방들이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헌책방의 인기가 줄어드는 건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다 1991년 ‘북오프’(Book-off)라고 하는 대형 헌책방 프랜차이즈 업체가 등장하면서 헌책방 업계는 큰 변화를 겪게 되었다. 북오프는 헌책방이지만 새 책을 파는 대형서점처럼 깔끔한 분위기를 갖추고, 컴퓨터로 즉시 검색까지 할 수 있는 편리함이 강점이다. 사람들로부터 책을 매입하는 절차도 처음부터 시스템을 갖추고 시작했기 때문에 많은 중고 책들이 일반 헌책방보다는 북오프로 유입되었다. 매출과 매입에서 동시에 경쟁력을 잃은 기존의 헌책방들은 도미노처럼 도산했다. 진보초 헌책방거리의 상인들은 함께 모여 이 어려움을 헤쳐 나갈 방법을 고민했다. 진보초 고서축제는 이미 1960년대부터 해 오고 있었지만 새로운 콘텐츠가 없다면 앞으로 이곳의 상황도 어찌 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이에 고서협회와 진보초 상인연합회는 199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와는 다른 진보초 고서축제를 기획하기 위해 힘을 합쳤다. 그런 노력의 결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2010년부터 매년 축제 기간에 발행되는 고서축제 공식 가이드북은 올해 축제의 주제와 함께 진보초 헌책방들의 면면을 소개하는 자료집이다. 가이드북이라고는 하지만 내용이 충실해서 1200엔이라는 가격이 아깝지 않다. 올해 발행된 7호 가이드북에는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의 사후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 소개가 특집으로 실렸다. 소세키는 일본의 1000엔권 화폐에 얼굴이 실렸을 정도로 인기와 문학성을 함께 인정받은 국민작가의 한 사람이다.(현재는 세균학자인 노구치 히데오로 도안이 바뀌었다) 그는 일본의 제1호 국가유학생으로 영국에 건너가 신식 학문을 공부했고 돌아와서 교사생활을 하며 ‘도련님’, ‘마음’ 등 훌륭한 소설작품을 남겼다. 그런 작가에게 있어서 대학과 서점이 몰려 있는 진보초 일대는 특별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그 때문에 소세키가 쓴 작품 안에는 메이지시대 도쿄의 풍경과 당시를 살았던 지식인의 고민이 잘 드러나 있다. 2장 - 2주간 책 100만여권 유통 가이드북은 진보초 일대의 지도를 일러스트로 그려 놓고 소세키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에 따로 표시를 해 두었다. 소세키가 산책을 즐겼던 길, 소세키가 책을 구입했던 곳, 소세키가 점심을 먹었던 곳, 소세키가 차를 마시며 오후를 즐겼던 가게…. 옛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면 자료조사를 통해 예측한 장소까지 자세하게 넣었다. 고서축제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은 책도 책이지만 소세키의 흔적을 찾아 함께 헌책방거리를 걸어보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이런 행사를 기획할 수 있는 이유는 100년 전에 활동한 작가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존해 놓은 노력 덕분이다. 이렇게 쌓아 놓은 역사가 나중에 소중한 콘텐츠가 된다는 걸 배운다. 고서축제의 가장 큰 볼거리는 역시 거리로 쏟아져 나온 200여개 헌책방들이 만드는 ‘야외 책 수레’다. 책이 담긴 리어카를 야외로 갖고 나와서 파는 것이 뭐 그리 특이할까 싶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다. 일본의 헌책방은 우리나라와 문화가 조금 다르다. 책을 구입하려는 의사와는 상관없이 손님이 헌책방에 들어가서 오랜 시간 동안 서가를 둘러보고 책을 뒤적거리는 것을 실례라고 생각해서 대개 매장에 들어갈 때에는 조심스러운 마음이 든다. 헌책방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해당 헌책방에서 정기적으로 발행하는 도서목록을 이메일이나 우편으로 받아서 살펴본 뒤 필요한 책이 있으면 전화로 해당 책을 문의하고 방문 약속을 잡아서 책을 구입한다. 헌책방 이용이 이렇게 조심스럽다 보니 축제 때에 거리로 나온 야외 책 수레가 반가운 것이다. 여기라면 책을 마음대로 살펴보고 구입할 수 있으니 매년 고서축제 기간이 기다려진다. 더구나 이때에 맞춰서 각 점포는 그동안 숨겨 뒀던 특별한 책들을 공개하는 일도 있기 때문에 책 구입을 위해 이곳을 찾은 방문객에겐 더할 것 없이 좋은 기회인 것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영국 작가 루이스 캐럴을 좋아해서 운영 중인 헌책방 이름도 그가 쓴 작품 제목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비슷하게 지었다. 일본은 루이스 캐럴 학회가 있을 뿐 아니라 진보초에는 빅토리아시대 작품들에 대한 책이 많아서 올해도 앨리스 책을 찾기 위해 서점을 몇 군데 들렀다. 맨 먼저 찾은 곳은 진보초 헌책방거리의 시작 시점인 스즈란거리 앞쪽에 자리잡은 ‘보헤미안 길드’이다. 이곳은 서양화가의 화집과 근현대 사진집을 주로 다루고 있는데 작년에 이곳에서 초현실주의 작가인 얀 슈반크마이어가 작업한 앨리스 그림책을 발견했다. 그다음은 고서센터 건물 근처에 있는 ‘오가와도서’다. 여기는 19세기 영문학에 관련된 책만을 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앨리스 책을 찾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들러야 하는 곳이다. 하지만 1800년대 후반에 출판한 초기 앨리스 책은 너무도 가격이 높기 때문에 발견한다고 하더라도 내 주머니 사정에 구입은 어림없다. 이번에 찾아갔을 때는 도서목록표에 16만엔짜리 ‘스나크 사냥’이 있었는데, 역시나 책을 눈에다가 담아 오는 것으로 서운한 마음을 달랬다. 대신 올해는 찰스 디킨스에 관한 책을 몇 권 구입했다.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영문학 고서의 성지라고 불리는 ‘기타자와서점’이다. 1902년에 문을 연 서점은 지금까지 한 번도 문을 닫은 일이 없이 3대째 가업을 이어 오고 있다. 100년을 훌쩍 넘긴 서점의 역사만큼 고서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 곳이다.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오에 겐자부로가 이 서점에 드나들었다고 하니 어쩌면 이곳 서가 어딘가에 그들의 손때도 묻어 있으리라. 나도 이 서점에서 1930년대에 출판된 앨리스 책을 구입한 일이 있다. 오래된 책이었지만 보존상태가 매우 훌륭했고 주인의 해박한 서지학(書誌學) 지식에 놀랐던 기억을 지금껏 간직하고 있다. 그 외에도 진보초에는 수많은 헌책방들이 있는데 가장 놀라운 점은 200개에 이르는 헌책방들이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곳은 영문학 전문, 다른 곳은 고지도를 전문으로, 만화나 잡지만을 다루는 곳도 있으며, 일본인에게 인기 있는 쇼와시대 문화에 대한 책을 주로 취급하는 가게도 있다. 물론 성인물이나 오컬트, 만화, 스포츠, 서브컬처 전문 서점도 있다. 그러니 독자가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든지 진보초에 오면 그것을 전문으로 삼고 있는 서점이 반드시 있다는 말도 있다. 3장 - 역사·개성·새로움 다 잡은 축제 헌책방들이 이렇게 자신만의 색깔을 간직하며 오래 영업할 수 있는 원동력은 상인연합회와 고서협회의 오랜 노력 때문이다. 고서협회는 회원 헌책방들이 달마다 내는 회비로 각종 사업과 헌책 매입을 주도한다. 매입한 헌책은 회원을 상대로 한 자체경매를 통해 순환시키고 전문 서점에는 경매를 진행할 때 나름의 우선권을 보장하기 때문에 헌책방들은 새로운 콘텐츠를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새로이 헌책방을 개업하려는 사람에게는 협회에서 마련한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해서 첫 시작부터 돕는다는 신뢰의 이미지를 더한다. 진보초 고서축제는 단지 많은 책을 늘어놓고 판매하는 행사에서 그치지 않는다. 매년 가도 언제나 새로운 이벤트가 있기 때문에 올해 고서축제가 끝나면 내년 축제기간이 기다려질 정도다. 일본은 축제의 나라라고 부를 만큼 전국에 다양한 마쓰리(축제)가 있다. 수십년 정도 이어 오는 고서축제가 있는가 하면 수백년 전통을 간직한 지역축제도 여럿이다. 이런 축제를 바라보면서 크게 느끼는 점은 역시 역사성이다. 축제의 콘텐츠 자체가 두터운 역사성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깊은 맛을 내기 어렵다. 말 그대로 때가 되면 하는 행사가 되고 만다. 도쿄의 명물이라 불리는 고서축제를 탐방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우리나라의 책 문화를 다시금 되돌아본다. 책은 읽으라고 강요해서 독서량이 많아지는 건 아니다. 책을 읽을 수 있는 장치보다는 책을 읽어도 되는 환경을 만드는 게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런 환경은 갑자기 만들어내기 힘들다. 일본의 경우만 보더라도 헌책방과 오프라인 서점들이 계속해서 인터넷서점과 멀티미디어매체 쪽에 밀리고 있을 때 생각해낸 해법이 문학의 역사를 발굴해서 독자들에게 그것을 직접 체험해 보도록 하는 것이었다. 인터넷의 약점을 제대로 공격한 통쾌한 한 방이다. 독자들이 방 안에만 있지 않고 서점거리로 나와서 함께 걷고, 즐기고, 작가의 흔적을 찾으면서 나와 비슷한 이름 모를 타인을 길거리에서 만나 자신도 모르게 느슨한 독서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이다. 윤성근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대표
  • [해외 이색광경] 도로 한복판서 싸움질하는 모니터 도마뱀

    [해외 이색광경] 도로 한복판서 싸움질하는 모니터 도마뱀

    도로 한복판서 싸움을 벌이는 도마뱀 영상이 화제네요. 최근 해외 온라인 커뮤니티인 데일리 픽스 앤 플릭스(daily picks and flick)는 페이스북 이용자 피트 퍼스(Pete Firth) 촬영한 서호주의 한 도로 한복판서 서로 엉겨붙은 채 결투를 벌이는 레이스 모니터 도마뱀(Lace Monitor Lizard) 영상을 소개했다. 도로에서 펼쳐진 진풍경에 운행 중인 차량이 멈춰서 구경을 합니다. 둘은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싸우다 풀숲으로 도망칩니다. 레이스 모니터 도마뱀은 키가 2m, 몸무게 20kg까지 자라며 호주에서는 특정 지역 레이스 모니터들이 먹이를 찾기 위해 사람이 사는 곳으로 내려와 먹이를 받아먹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진·영상=Pete Firth Facebook / DailyMail Online youtube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당신 선 곳이 가장 아름다운 곳/손원천 문화부 전문기자

    [세종로의 아침] 당신 선 곳이 가장 아름다운 곳/손원천 문화부 전문기자

    지금 이곳은 가나자와. 일본 이시카와현의 현청 소재지로 우리와 동해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는 도시다. 이 계절에 가나자와를 찾은 건 단풍이 곱다고 해서다. 우리에겐 다소 생경하지만 일본의 전통 문화와 옛 모습이 여태 잘 남아 있고, 특히 가을이면 단풍과 고도가 어우러져 기막힌 풍경을 선사한다고 알려진 곳이다. 국내 한 홍보 업체에 따르면 올해 일본으로 단풍 구경을 가려고 하는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검색했던 곳도 바로 가나자와였다. 며칠 동안 지켜본 가나자와의 단풍은 뜻밖에 그리 화려하지는 않은 편이었다. 이시카와현에 속한 다른 도시들의 단풍도 상황은 비슷했다. 아직 일정이 끝나지 않았으니 조금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여태까지 본 것으로 판단하자면 소문난 잔치엔 역시 먹을 게 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한데 찬찬히 뜯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 지역의 단풍은 수수한 편이다. 우리 내장산처럼 빨간 애기단풍으로 온통 붉게 물든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쭉쭉 뻗은 삼나무 사이에 낙엽활엽수 한 그루가 노랗게 물들어 있거나, 낡은 건물 기왓장 너머로 주황색 나뭇잎을 매단 나무 몇 그루가 서 있는 모양새다. 분명 ‘오매 단풍 들겄네’라고 할 만한 빛깔은 아니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웅숭깊다는 느낌을 갖게 되고 여운도 길게 남는다. 국민 감정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닌데 굳이 일본 단풍을 들먹이는 건 내 나라의 단풍이 더 아름답다는 걸 말하려는 게 아니다. 내장산의 화사한 단풍과 가나자와의 수수한 단풍이 다르다는 걸 말하고 싶은 거다. 내 나라의 아름다움을 찾고 전하는 일을 하다 보면 우리나라에 볼 것 없다는 말을 참 많이 듣는다. 그만큼 속도 자주 상하는 편이다. 늘 주장하지만 다르다는 것과 층위를 나누는 것은 전혀 별개의 일이다. 다르다는 것은 이것과 저것이 비슷한 가치를 갖지만 층위를 나누는 것은 말 그대로 이것보다 저것이 낫다는 뜻이다. 그런데 내장산에 단풍 든 풍경이 가나자와보다 더 낫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단언컨대 그런 표현은 성립하지 않는다. 미국 애팔래치아산맥의 단풍이 대단하고, 캐나다 메이플로드의 단풍이 현란하다는 얘기도 곧잘 듣는다. 가보지도 않은 터에 뭐라 말하긴 어렵지만, 추측건대 그곳엔 우리와는 다른 집들과 다른 사람들, 다른 습속이 깃들어 있을 것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도 비슷하겠지. 자신과 다른 집, 다른 사람, 다른 습속들이 어우러진 풍경을 동경하고 있을 터다. 이쯤 되면 결론도 자명해진다. 우리나라에 볼 것 없다는 말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 말이다. 그럼 남들이 보고 싶어 하는 화사한 단풍을 가진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뭘까. 내 나라에 속한 풍경들을 아끼고 존경하는 것이다. 자신의 나라에 자부심을 갖게 되면 함부로 꽃을 꺾지도, 자연을 더럽히지도 않는다. 뒤집어 말하면 자국민이 감동하고 우러르지 않는 풍경을 외국인이 그리할 리는 만무하다는 얘기다. 그러니 꼭 기억하시라. 내장산을, 속리산을 찾은 당신은 지금 세계 다른 구석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도 가 보고 싶어 하는 풍경 한가운데 있다는 것을 말이다. angler@seoul.co.kr
  • 가을아, 천천히 가줄래…내 마음 시리지 않도록

    가을아, 천천히 가줄래…내 마음 시리지 않도록

    충북 보은의 속리산 국립공원에 ‘세조길’이 새로 생겼다. 조선의 4대 임금 세조가 재임 중 속리산 복천암을 찾았는데 이때 일을 바탕 삼아 이야기 길을 만들었다. 길은 속리산 아랫자락을 휘휘 돌아간다. 급한 오르막이 없으니 무르팍 아플 일도 없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국립공원 단풍길 10선’에 꼽을 만큼 단풍도 곱다. 이 계절에 딱 맞는 길이다. 세조길의 시작은 법주사, 끝은 세심정이다. 불법이 머무는 절집을 나서 마음을 씻어내는 곳까지 이르러야 비로소 홍진과 거리를 둘 준비가 끝난다는 뜻이 이 구간에 담겼지 싶다. 속리산 국립공원 초입. 정이품송(천연기념물 103호)이 객을 맞는다. 1464년 세조가 속리산 법주사로 행차할 때 가지를 번쩍 들어 임금이 탄 가마를 안전하게 통과시켰다는 나무다. 이런 이유로 세조가 소나무에게 정이품 벼슬을 하사했다고 한다. 한때 완벽한 삼각형을 자랑했으나 지금은 한쪽 면이 병들어 온전하지 않다. 속리산 터미널을 지나 오른쪽으로 난 길로 접어든다. 이른바 ‘오리숲길’이다. 상가 지역에서 법주사까지 거리가 5리(2㎞)라 지어진 이름이다. 법주사가 생기며 이 숲길의 역사도 시작됐을 터. 그만큼 숲은 깊다. 늙은 소나무와 참나무들이 어우러졌다. 한때 아스팔트였던 길은 황토로 바뀌었고, 눈을 즐겁게 하는 조각작품들도 나무 사이사이에 숨겨 뒀다. 일주문을 지나 경내로 드는 길이 호젓하다. 전나무, 참나무 어울린 숲길이 발걸음을 늦춘다. 숲이 주는 피톤치드로 속세의 때를 씻을 무렵, 길 끝에서 법주사가 자태를 드러낸다. 법주사는 ‘보물사찰’로 불린다. 그만큼 문화재가 많다는 뜻이다. 목탑 형태의 팔상전(국보 55호)은 언제 봐도 아름답다. 건물은 못을 쓰지 않고 나무를 덧대 짜맞췄다. 그 기술이 워낙 뛰어나 한 부분이 소실돼도 나머지는 끄떡없다고 한다. 팔상전 뒤엔 쌍사자석등(국보 5호)이 있다. 사자 두 마리가 석등을 받치고 선 모양새다. 암수를 구분할 수 있을 만큼 두 사자 사이에 미세한 차이가 있다는데, 범부의 눈으로는 당최 구분이 가질 않는다. 연꽃모양의 석연지(국보 64호), 옛날 3000여명의 승려들이 먹을 밥을 지었다는 철확, 독특한 모양의 희견보살상, 바위에 새긴 마애여래의상, 수정봉에 굴러떨어졌다는 추래암 등 경내에 독특한 볼거리가 많다. 마당에는 높이 33m의 거대한 미륵대불이 세워져 있다. 지난해 개금불사(불상에 금칠을 다시 할 때 행하는 의식) 논란으로 홍역을 치렀지만, 관람객을 굽어보는 시선은 여전히 고요하다. 세속의 일 따위는 안중에 없다는 달관의 뜻일 터다. 세조길 탐방에 나선다. 법주사 옆에 들머리가 있다. 법주사 삼거리에서 상수원지~탈골암 입구~목욕소~세심정으로 이어진다. 세조는 1464년 신미대사를 만나기 위해 속리산 복천암을 찾았다. 이때 일을 각색한 것이 세조길의 바탕이 됐다. 세조길은 문장대 등으로 가던 옛 등산로와 붙었다 떨어지길 반복하며 세심정까지 간다. 거리는 2.5㎞ 정도다. 왕복 5㎞에 달하는 산길이지만 급한 오르막이 없어 산책하듯 설렁설렁 다녀올 수 있다. 들머리를 나서면 쭉쭉 뻗은 나무들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길은 폐목을 재활용한 목재블록을 써 조성됐다. 나무 재질이라 대기열은 흡수하고 빛의 반사를 줄여 한여름에도 시원하고 눈부심이 덜하다. 걸을 때 무릎에 전해지는 하중은 콘크리트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나무가 완충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무장애 탐방로도 일정 구간 조성해 뒀다. 이 길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역사는 옛 법주사 터다. 옛 법주사의 흔적 일부가 남아 있는 곳이다. 법주사는 한때 약 3000명의 승려가 머물렀던 대가람이다. 임진왜란을 겪으며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됐고 현재는 건물 터만 남았다. 안내판에 따르면 신미대사를 찾아 복천암으로 향하던 세조가 이곳에서 승려들과 담소를 나누며 자신의 죄를 깨달았다고 한다. 바로 옆은 눈썹바위다. 생김새가 사람의 눈썹을 닮았다는 바위다. 너럭바위 형태의 바위는 길 쪽을 향해 꽤 너른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오래전 이 길을 오가던 많은 이들이 비와 햇볕을 피했을 터. 세조도 이 바위에 앉아 다리쉼을 했다고 전해진다. 눈썹바위 바로 위는 상수원지다. 세조길 여러 구간 가운데 최고의 풍경을 선사하는 곳이다. 맑은 계곡수와 단풍 숲이 멋들어지게 어울렸고 이를 저수지가 또 한 번 그대로 비춰내고 있다. 저수지 주변에 의자가 여럿 놓여 있다. 새소리 바람 소리 들으며 다리쉼하기 맞춤하다. 세조길 주변엔 여러 이야기들을 담은 안내판이 여러 곳에 세워져 있다. 그중 하나가 세희공주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내용은 이렇다. 세조에겐 알려지지 않은 큰딸이 있었다. 그가 바로 세희공주다. 세조의 단종 왕위찬탈을 반대한 세희공주는 궁궐을 도망치듯 나왔고, 도피 도중 한 나무꾼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이 나무꾼은 세조에게 죽임을 당한 김종서 장군의 손자였다. 둘은 속리산에 숨어 산다. 그러다 요양 차 속리산을 찾은 세조의 눈에 띄게 됐다. 둘은 함께 궁궐로 돌아가자는 세조의 청을 뿌리치고 다시 도망을 쳤고, 낙담한 세조가 사위에게 주려던 벼슬을 자신을 위해 나뭇가지를 쳐들었던 정이품송에게 대신 하사했다는 게 이야기의 얼개다. 조선 후기 서유경이 지은 ‘금계필담’에 나오는 허구적 야담으로, TV드라마 ‘공주의 남자’로 각색돼 방송되기도 했다. 이어서 목욕소. 세조가 몸을 씻었다는 작은 못이다. 법주사에서 국운 번창을 위한 대법회를 연 세조가 목욕을 했는데 뜻밖에 몸의 종기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고 한다. 목욕소 바로 위는 세심정이다. 세심정 휴게소에서 오른쪽 상고암 방향으로 작은 다리를 건너면 두 개의 돌 절구와 만난다. 13~14세기까지 실제 사용됐던 돌 절구다. 계곡수를 이용해 물레방아 형태로 곡식을 빻았다고 한다. 돌 절구 너머로 너럭바위가 있고 기암 사이사이로 여러 개의 크고 작은 폭포들이 흘러내린다. 여기가 세심정이다. 마음 씻기 어려운 장삼이사라도 최소한 눈은 씻을 만한 풍경이 여기에 있다. 속리산 주변에 둘러볼 곳이 많다. 선병국 가옥은 속리산 가는 길목에 있는 고택이다. 보성선씨 종갓집으로, 호남에서 첫손 꼽히는 만석꾼이었던 보성선씨 가문이 당대 최고의 풍수사를 대동하고 전국을 돌다 찾아낸 명당자리에 지었다. 1903년부터 1925년까지, 건립 기간만 무려 22년을 헤아린다. 삼년산성은 신라 자비왕 13년(470년)부터 3000여명의 인부를 동원해 3년 동안 쌓은 성이다. 높이 13~20m의 성벽이 1.7㎞ 정도 산자락을 둘러치고 있다. 삼년산성은 신라 축성술의 정수다. 당대 최고의 기술이 총동원돼 세워졌다. 성벽은 대단히 견고하다. 어지간한 투석기로는 흠집조차 내지 못할 정도다. 이 덕에 크고 작은 150여 차례의 전투를 치르면서도 단 한 차례도 함락되지 않았다고 한다. 선병국 가옥에서 8㎞쯤 떨어져 있다. 글 사진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43) 산채비빔밥에 대추왕순대찜‘산해진미’에 살오른 가을 →가는 길 :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가자면 당진영덕 고속도로 속리산 나들목으로 나오는 게 알기 쉽다. 고속버스는 센트럴, 남부, 동서울에서 각각 출발한다. 10여분 간격으로 고속버스가 다니는 청주까지 간 뒤 직행버스로 속리산까지 갈 수도 있다. 삼년산성을 먼저 보겠다면 당진영덕 고속도로 보은 나들목으로 나오는 게 빠르다. 삼년산성은 보은군청에서 1㎞ 떨어진 곳에 있다. →맛집 : 속리산 입구에 산채비빔밥 등을 내는 집들이 즐비하다. 용궁식당(542-9288)은 오징어볶음과 매운 닭발볶음이 맛있다. 김천식당(543-1413)은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순대전골 맛집이다. 국보식당(543-6369)도 순대를 잘한다. 대추왕순대찜으로 이름났다. →잘 곳 : 숲에서 잠들고 싶다면 충북알프스자연휴양림(543-1472), 말티재자연휴양림(543-6282)이 좋다. 속리산 입구에 레이크힐스 호텔 속리산(542-5281), 힐파크(543-3650) 등 숙소들이 밀집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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