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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남경의 예술마을 기행] 흥이 있는 마을, 삶의 소리 엮다

    [김남경의 예술마을 기행] 흥이 있는 마을, 삶의 소리 엮다

    전남 진도의 소포마을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8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진도 읍내를 지나니 가로등 하나 없이 사위가 칠흑같이 컴컴하다. 자동차 불빛에 의지해 겨우 소포리 전통민속전수관에 도착했다. 북 장단 소리가 울려 퍼지는 전수관 안으로 들어서니 30여명의 동네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 다음날 국립남도국악원에서 열리는 공연에 오르기 위한 마지막 연습 시간이다. 예술단장이 연습장에 도착하지 않아 일단은 개별 연습들을 하고 있다. 눕거나 앉아서 쉬는 때에도 간간이 한마디씩 거든다. 김장 배추와 대파 또한 소포마을의 주요 작물이니 12월 초 이곳의 한낮은 등짝 한번 바닥에 붙이기 어려울 정도로 바쁘다. 피곤이 몰려들기도 하련만 낯선 이에게도 경계보다는 반갑게 손을 내민다. 평균 연령 60~70세 어머님들의 사투리가 정겹고 푸근하다. 곧 본격적인 연습이 시작됐다. 비스듬했던 어머님들이 느슨한 자세부터 바로 세운다. 언제 졸았나 싶게 소리를 내뱉는 어머님들의 목소리는 에너지가 가득하고 북채를 쥔 아버님들의 손길엔 힘이 실린다. 이내 전수관은 사람들이 뿜어내는 열기로 뜨거워진다. 진도 소포마을은 진도 읍내 서쪽 소포만을 끼고 있는 전형적인 농어촌 마을이다. 1980년대 진도대교가 생기기 전 목포~진도를 왕래하던 나루터가 있던 곳으로 인구가 1000여명에 이를 정도로 북적이던 때도 있었다. 지금은 인구 300명이 조금 넘는 고즈넉한 마을이다. 소포 검정쌀마을로 불릴 정도로 고소한 풍미가 가득한 검정쌀이 유명하다. 드넓게 펼쳐진 논밭 사이로 포구의 바닷물이 들어와 풍부한 해산물도 제공한다. 바다를 바로 지척에 둔 터라 바람은 제법 거세지만 포구에 내리꽂히는 햇살이 따스하다. 들판과 나지막한 산, 부드러운 포구의 풍경이 눈에 담을수록 아름답고 평화로운 고장이다. 마을 규모는 작지만 예술에 관한 DNA는 최강이다. 마을 인구의 20%인 주민 50여명이 소포민속예술단원으로 정식 활동하고 다른 주민들도 마을 행사 때면 스스럼없이 소리 무대에 어울릴 만큼 예술적인 흥과 끼를 타고났다. 부모가 흥얼거리는 노랫소리를 듣고 자란 아이들은 말을 익힐 무렵부터 자연스럽게 소리도 익혔다. 그렇게 익힌 소리는 커 가면서 갈고 닦인다. 기뻐도 슬퍼도 힘들어도 화가 나도 논밭에서든 집에서든 그 자리에서 소리를 풀어내며 감정을 나누고 추슬렀다. 이렇게 득도한 소리는 나이가 들수록 더욱 깊어졌다. 예술단 최고령자인 한람례(84) 할머니의 소리를 듣고 있으면 80여년의 삶이 그 소리에 담겨 있는 듯하다. 4~5분 짧은 순간이지만 할머니의 일생이 그 안에 있다. 그 덕에 소포마을에서 전해 내려오는 민속문화 세 가지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올라 있다. 걸군농악을 비롯해 아리랑, 강강술래가 주인공이다. 소포리 걸군농악은 거지 행세로 농악을 치며 적의 동태를 파악해 아군에게 알려 주었던 데서 기인한 민속문화다. 강강술래가 임진왜란 때 적에게 우리 군의 위용을 과장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했으니 소포마을의 예술은 개인뿐만 아니라 마을과 나라를 살린 예술이기도 하다. 이렇게 일상에서 체화된 예술의 저력을 바탕으로 소포민속예술단을 출범시킨 것이 10여년에 이른다. 각종 상도 받고 진도나 광주는 물론 서울에서 공연을 갖기도 했다. 바다 저쪽 독도까지 가서 강강술래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소포마을 예술단이 국립남도국악원 극장에 올리는 공연 제목은 ‘철야’다. 김병철 단장을 중심으로 예술단에서 소포마을의 전통 민속문화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짰다. 장례식장에서 마을 주민들이 모여 실제 북도 치고 소리도 하고 춤추며 왁자지껄 망자의 가는 길을 위로했던 소포의 전통문화를 하나의 이야기 속에 담았다. 40대 젊은 막내 이랑이 엄마의 북춤을 시작으로 최고령 한람례 할머니의 흥그레타령, 어머니들의 흥타령과 육자배기, 아재들의 병신춤과 상모돌리기 등이 걸쭉하게 이어진다. 걸군농악 북춤 전수자인 김내식 고수의 북춤은 소포마을에서만 볼 수 있는 고수의 예술이다. 아낙들이 모였다 흩어졌다 진을 짜며 부르는 강강술래는 때론 관람객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놀이 한마당이다. 상여를 메고 나가며 상여 소리가 극장을 가득 메운다. 인간의 희로애락이 소포마을 민속문화에 다 담겨 있다. 청년 때 밖에서 잠시 경험한 극단 생활을 바탕으로 예술단을 이끌고 있는 김병철 단장은 말한다. “공연 있다고 하면 어르신들이 알아서 모여요. 즐겁지 않으면 이렇게 못 혀요. 이게 행복이고 삶이지요. 어르신들이 계시는 동안 공연은 계속될 겁니다.” 현재 추진 중이라는 소포마을 어르신들의 서울 공연이 더욱 기다려진다. 글 사진 여행작가 enkaykim@naver.com ■여행수첩(지역번호 061) →가는 길:진도대교를 넘어 관광레저로, 진도대로, 쉬미항로를 거친다. 진도대교에서 25㎞, 자동차로 약 30분 소요된다. 소포마을에서는 현재 상설 공연 계획은 없지만 개별 문의에 따른 맞춤 공연을 제공한다. 원하면 공연에 저녁 식사나 숙박을 포함해 일정을 구성할 수 있다. 공연장 부근에 40여명의 숙박이 가능한 시설도 갖추고 있다. 김병철 단장 010-4626-4556. →함께 들러볼 곳:진도타워는 세계 3대 해전으로 꼽히는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 무대가 된 울돌목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다. 진도대교 옆 언덕에 있다. 운림산방은 예술의 섬 진도의 또 다른 면목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추사 김정희의 제자이자 한국 남화의 거목 소치 허련이 머무르며 작품을 남기고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다. 소포마을에서 차로 20분 남서쪽으로 향하면 진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낙조를 볼 수 있는 세방낙조 전망대도 함께 들러볼 수 있다. →맛집:진도대교 부근 통나무집(542-6464)은 꽃게장이 맛있는 곳이다. 작은 꽃게로 담은 간장 꽃게장이 신선하다. 진도 읍내 고향해장국(544-2896)은 아침 식사로 사골, 북어해장국을 먹을 수 있다. 음식 맛이 담백하다.
  • 쏟아지는 별빛…반짝이는 낭만…설레는 눈빛

    쏟아지는 별빛…반짝이는 낭만…설레는 눈빛

    곧 연말연시다. 가족, 연인들이 이를 기념할 장소를 물색하기 바쁜 때다. 이번 겨울엔 화사한 빛으로 장식된 테마파크를 찾는 건 어떨까. 여러 조형물과 나무 위에 경관 조명을 해 뒀는데, 제법 장관이다. 주로 수도권에 몰려 있어 오가기도 수월하고, 주변 볼거리도 풍성하다. ① 가평 쁘띠프랑스 ‘한국 속 작은 프랑스 마을’이라 불리는 경기 가평의 ‘쁘띠프랑스’는 ‘사진발’을 잘 받는 곳이다. 겨울철 불빛 축제를 열 때면 특히 그렇다. 어느 곳에서 어떤 앵글로 찍어도 근사한 작품이 된다. 마을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아담한 공간에 다양한 프랑스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여러 건축물과 조형물들이 오종종하게 모여 있는 곳이라고 보면 알기 쉽다. 밤에 아름다운 사진이 나오는 건 물론 조명 덕이다. 프랑스에서 공수해 온 전구와 발광다이오드(LED)를 이용해 프랑스 남부의 몽펠리에 거리를 재현했다. 그 덕에 프랑스 조명 특유의 포근하고 서정적인 느낌의 겨울밤 풍경을 펼쳐 낸다. 야외광장 조명등의 LED 램프는 전자 칩이 내장돼 있다. 음악이 나오면 자동으로 반응한다. 신나는 음악과 마리오네트 댄스에 맞춰 움직이는 LED 조명쇼를 함께 관람할 수 있다. 하이라이트는 단연 ‘어린왕자’ 조각상 주변이다. 파스텔톤 건물들과 조명이 어우러져 동화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수많은 내방객들이 빠짐없이 ‘인증샷’을 찍는 곳도 바로 여기다. ‘빛 터널’도 아름답다. 어린왕자가 살던 소행성을 본떠 만든 구조물에 30m의 긴 터널을 이어 만들었다. 형형색색의 불빛을 받으며 터널 안으로 들어가면 성탄절과 연말연시 분위기를 듬뿍 느낄 수 있다. 프랑스 알자스 지방의 전통 건축 양식에 따라 최근 지어진 ‘몽블랑 익스프레스‘에서는 몽블랑 산맥을 오가는 모형 기차와 다양한 모형 자동차들을 만날 수 있다. 쁘띠프랑스는 내년 2월 28일까지 제3회 어린왕자 별빛축제를 연다. 겨울밤에 낭만을 더하는 다채로운 공연이 펼쳐진다. 이 기간 오후 9시까지 문을 연다. 입장료는 어른 8000원이다. 북한강을 따라 쁘띠프랑스까지 가는 길은 나라 안에서 대표적인 드라이브 코스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이 길 주변에 여러 관광명소들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남이섬이 대표적이다. 관광 비수기로 꼽히는 겨울철에도 발 디딜 틈 없을 만큼 관광객이 몰린다. 특히 중국과 동남아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남이섬 위는 자라섬이다. 여름철 재즈 페스티벌로 이름난 곳. 새해 1월 1~31일에는 자라섬과 가평천 일대에서 겨울축제가 열린다. 송어 얼음낚시가 하이라이트다. 5000여명이 이용할 수 있는 초대형 낚시터가 조성된다. 송어가 주는 묵직하고 짜릿한 손맛 덕에 추위도 잊는다. 잡은 송어는 그 자리에서 회나 구이로 먹을 수 있다. 아침고요수목원의 ‘오색별빛정원전’도 기대되는 야경이다. 내년 3월 26일까지 열린다. ②포천 허브아일랜드 포천의 허브아일랜드에 들면 코가 먼저 반응한다. 허브 향기 때문이다. 겨울이 되면서 허브 식물들은 죄다 사그라들었지만 향기는 여전하다. 발원지는 작은 오두막 형태의 향기방이다. 로즈메리, 라벤더, 페퍼민트 등 온갖 종류의 허브향이 쏟아져 나온다. 허브아일랜드의 겨울밤은 수백만 개의 꼬마 전구가 밝힌다. 농원 전체의 나무를 LED등으로 장식하고 꽃 모양의 전구도 여러 그루 심었다. 규모로만 보자면 수도권의 여러 조경 정원 가운데 가장 크지 싶다. 다양한 빛깔의 불빛들이 허브 향과 어우러져 별천지처럼 느껴진다. 핵심은 ‘산타 마을’로 꾸며진 플라워가든이다. 라벤더 밭 전체를 오색 불빛으로 가득 채웠다. 곳곳에 산타클로스 조형물도 조성했다. 풍성한 성탄절 만찬 식탁과 사슴이 끄는 커다란 썰매도 설치했다. 이 같은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3월까지 이어진다. 산타 마을로 가는 길에 있는 실내 온실도 빼놓을 수 없다. 마다가스카르, 야래향 등 여러 종의 재스민이 만개했다. 실내 온도가 20~25도로 유지되는 덕에 5~7월에 피는 재스민을 한겨울에 볼 수 있다. 아로마 추출액 등 아기자기한 허브 소품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대부분 이곳에서 생산된 소품으로 가격도 비교적 저렴한 편이다. 허브아일랜드에서 열리고 있는 ‘불빛동화축제’는 새해 3월 31일까지 계속된다. 불빛은 오후 5시에 켜지기 시작해 밤 10시(금·토요일은 11시)까지 수목원을 환히 밝힌다. 어른 6000원, 청소년 4000원. 연계 관광지로는 ‘포천아트밸리’가 첫손 꼽힌다. 버려진 채석장이 문화와 예술 공간으로 재탄생한 곳이다. 야간에도 관람할 수 있다. 입구에서 모노레일을 타고 천주호를 지나는 동안 빼어난 야경이 펼쳐진다. 정상 부근의 천문과학관에서는 아름다운 별빛과 만날 수 있다. 1, 2층은 우주의 신비와 인간의 도전을 담은 전시실, 3층은 별자리 여행을 떠나는 천체투영실이다. 옥상에는 천체 망원경도 갖춰져 있다. 포천엔 수십만 년 전 용암이 흘러가며 만든 풍경들이 많다. 특히 검은 주상절리 형태의 협곡과 폭포가 많은데, 눈이 내리면 흑백의 강렬한 대비가 더욱 절경을 이룬다. 주상절리 폭포가 아름다운 비둘기낭, 한탄강과 영평천이 합류하는 강변에 병풍처럼 펼쳐진 베개용암, 철원과 경계를 이루는 대교천 협곡 등은 각각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③파주 벽초지문화수목원 벽초지문화수목원은 파주 쪽에서 제법 이름을 날리고 있는 테마 관광지다. 각종 교목과 관목, 초화류 등 1400여 종의 식물이 식재돼 있다. 주로 산자락에 터를 잡은 여느 수목원과 다르게 경사가 없는 평지에 인위적으로 조성됐다. 그 덕에 산책하듯 걷기 딱 좋다. 서울에서 멀지 않아 방송사 등의 촬영지로 자주 이용된다. 수목원 측은 ‘태양의 후예’ ‘별에서 온 그대’ 등 무려 100여 편의 드라마와 영화가 촬영됐다고 전했다. 정문을 나서면 ‘여왕의 정원’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다양한 꽃들이 피고 졌을 정원은 이제 빛의 공간으로 새 단장을 했다. 초등학교 운동장만 한 공간이 온통 꼬마전구들로 가득 찼다. ‘여왕의 정원’을 나서면 곧 ‘유럽정원’이다. 독일의 브란덴부르크 문을 연상시키는 정문을 지나면 가운데로 죽 뻗은 길 양옆으로 측백나무가 병풍처럼 서 있다. 가운데 큰길 주변엔 그리스 신화 속 인물들을 떠올리게 하는 유럽풍의 조각상들이 늘어서 있다. 3t에 달하는 돌이 수압으로 돌아가는 스핀스톤 분수대도 인상적이다. 벽초지수목원은 새해 3월 5일까지 ‘사랑이 내리는 빛의 정원’ 이벤트를 연다. 해가 지면 불이 켜지고 오후 10시에 꺼진다. 입장료는 어른 8000원(주말, 공휴일 기준), 중고생 6000원, 초등학생 5000원이다. 연계 관광지로 첫손 꼽히는 곳은 헤이리다. 현대식 건축물과 다양한 테마의 가게, 맛집들이 어우러져 도무지 지루할 틈이 없다. 임진각 평화누리는 이미 수도권 주민들에게 널리 알려진 여행지다. 다양한 국적의 관광객들도 제법 몰린다. ‘바람의 언덕’ ‘음악의 언덕’ 등에선 시원하고 상큼한 평화의 바람이 불어온다. 법원읍 동문리 일대에 율곡 유적지가 몰려 있다. 자운서원과 율곡의 가족묘, 율곡기념관 등이다. 자운서원은 1615년 율곡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지방 유림들에 의해 조성됐다. 2013년 국가 사적(제525호)으로 승격됐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오래된 나무들이 뿜어내는 묵은 향기는 꽤 짙다. 화석정은 이이가 자주 찾아 시상을 떠올렸다는 정자다. 율곡 유적지에서 9㎞ 정도 떨어져 있다. 화석정의 자랑은 탁월한 전망이다. 정자 앞에 서면 임진강과 DMZ 일대 풍경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임진강 옆 반구정(伴鷗亭)은 조선 세종 때의 명재상이었던 황희가 1449년 18년 동안 재임했던 영의정에서 물러난 뒤 갈매기(鷗)를 벗 삼아(伴) 여생을 보냈다는 곳이다. 빼어난 풍경 전망대로 맑은 날엔 멀리 북한 개성의 송악산까지 보인다고 한다. 글 사진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파리 패션계의 욕망이 폭로된다…‘더 모델’ 예고편

    파리 패션계의 욕망이 폭로된다…‘더 모델’ 예고편

    파리 패션계의 치열한 경쟁과 욕망을 적나라하게 담은 영화 ‘더 모델’ 예고편이 공개됐다. ‘더 모델’은 세계의 멋과 유행을 이끌어가는 파리 패션계의 치열한 경쟁과 음모, 화려한 욕망을 적나라하게 파헤친 작품이다. 공개된 예고편은 국제적인 모델이 되기 위해 파리에 도착하는 신인모델 ‘엠마’의 등장으로 시작한다. 그녀는 어렵게 패션모델로 데뷔하지만, 사진작가 ‘셰인’에게 프로근성이 부족하다고 질타받는다. 이후 도전적으로 바뀐 엠마는 셰인과 다시 한팀이 되어 승승장구한다. 셰인의 구애로 사랑에 빠진 엠마는 패션계 거물의 유혹을 받으며 혼란에 빠진다. 그런 그녀가 점점 팜므파탈로 변하는 모습은 파격적인 스토리를 예고하며 호기심을 자아낸다. 파리 패션계의 감춰진 이면을 발가벗기는 ‘더 모델’은 선댄스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매즈 매티슨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또 세계적인 모델 마리아 팜의 영화 데뷔작이자, 영국배우 에드 스크레인이 주연을 맡아 기대를 모은다. 영화 ‘더 모델’은 12월 중 개봉 예정이다. 청소년 관람불가 예정. 108분. 사진 영상=풍경소리 문성호 기자 sunho@seoul.co.kr
  • 파리 패션계의 욕망이 폭로된다…‘더 모델’ 예고편

    파리 패션계의 욕망이 폭로된다…‘더 모델’ 예고편

    파리 패션계의 치열한 경쟁과 욕망을 적나라하게 담은 영화 ‘더 모델’ 예고편이 공개됐다. ‘더 모델’은 세계의 멋과 유행을 이끌어가는 파리 패션계의 치열한 경쟁과 음모, 화려한 욕망을 적나라하게 파헤친 작품이다. 공개된 예고편은 국제적인 모델이 되기 위해 파리에 도착하는 신인모델 ‘엠마’의 등장으로 시작한다. 그녀는 어렵게 패션모델로 데뷔하지만, 사진작가 ‘셰인’에게 프로근성이 부족하다고 질타받는다. 이후 도전적으로 바뀐 엠마는 셰인과 다시 한팀이 되어 승승장구한다. 셰인의 구애로 사랑에 빠진 엠마는 패션계 거물의 유혹을 받으며 혼란에 빠진다. 그런 그녀가 점점 팜므파탈로 변하는 모습은 파격적인 스토리를 예고하며 호기심을 자아낸다. 파리 패션계의 감춰진 이면을 발가벗기는 ‘더 모델’은 선댄스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매즈 매티슨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또 세계적인 모델 마리아 팜의 영화 데뷔작이자, 영국배우 에드 스크레인이 주연을 맡아 기대를 모은다. 영화 ‘더 모델’은 12월 중 개봉 예정이다. 청소년 관람불가 예정. 108분. 사진 영상=풍경소리 문성호 기자 sunho@seoul.co.kr
  • 김주혁 이유영 열애설 인정 “홍상수 영화서 호흡 맞춘 뒤..”[공식입장 전문]

    김주혁 이유영 열애설 인정 “홍상수 영화서 호흡 맞춘 뒤..”[공식입장 전문]

    배우 김주혁 이유영의 열애설이 사실로 확인됐다. 13일 김주혁(45)의 소속사 나무엑터스와 이유영(28)의 소속사 풍경엔터테인먼트는 이날 오전 불거진 열애설을 공식 인정했다. 소속사 측은 “사실 확인을 하느라 공식 입장을 늦게 전달한 점에 대해 양해를 구한다. 김주혁 이유영 당사자에 확인한 결과 좋은 선후배로 지내다 2달 전 연인으로 발전했다”고 전했다. 김주혁 이유영은 지난 11월 10일 개봉한 홍상수 감독의 영화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에서 연인으로 호흡을 맞췄다. 두 사람은 영화 촬영 중 서로에게 호감을 느꼈고 촬영 후 자연스럽게 연인으로 발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주혁 측 공식입장 전문> 안녕하세요. 나무엑터스입니다. 오늘 오전 보도된 김주혁, 이유영 배우의 열애설 관련 공식 입장 보내드립니다. 먼저, 공식 보도자료가 늦어진 점 사과 드립니다. 정확한 사실 확인 후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 시간이 걸렸습니다. 양해 부탁 드립니다. 김주혁 배우와 이유영 배우가 영화계의 좋은 선후배 사이에서 최근 연인 사이로 발전했습니다. 본인 확인 결과, 열애를 시작한 지 두 달여 정도 됐으며, 예쁜 사랑을 이제 시작해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만남에 좋은 시선으로 봐주시고 응원해 주시길 진심으로 부탁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유영 측 공식입장 전문> 배우 김주혁 이유영 열애설 관련 공식 입장 보내드립니다. 우선, 공식 입장과 보도자료가 늦어진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오늘 아침까지 이유영 배우가 영화 ‘마리오네트’촬영이 있었고 휴식을 취하고 있어서 정확한 사실 확인이 늦어졌습니다. 뒤늦게 이유영 배우와 연락이 되었고 이제야 공식 입장을 밝힙니다.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길 양해 부탁드립니다. 김주혁 배우와 이유영 배우는 영화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촬영을 하며 인연을 맺었으며 그 후 영화계 좋은 선후배 사이로 지내다 최근 연인 사이로 발전했습니다. 이유영 배우 본인 확인 결과 열애를 시작한지 두 달여 정도 됐으며, 예쁜 사랑을 이제 시작해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아름답게 만날 수 있도록 응원해주시고 좋은 시선으로 봐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길섶에서] 시제(時祭)의 추억/박건승 논설위원

    겨울의 길목에서 만나는 어슴푸레한 기억이 있다. 낙엽 진 산야와 가을걷이 끝난 황량한 들판, 거기에 눈발 흩날리는 스산함까지 포개져 떠오르는 늦가을의 시제(時祭). 익숙하면서도 낯선 살풍경이랄까. 그 옛날 시젯날 날씨는 왜 그리 섬닷했던지. 지게에 제수음식 가득 짊어진 집안 형님·아저씨의 꽁무니를 따라 산속을 헤집으면서도 즐겁기만 했던 만추의 산행. 시루떡, 가래떡에 곶감, 돼지고기, 산적, 그리고 산골 아이에겐 평소 구경조차 힘들었을 바닷고기들…. 제상엔 무슨 음식이 그렇게 많이 올라와 있던지. 그런 제물에 장난꾸러기들은 눈을 못 떼고, 묘제 끝나면 인원수대로 나눈 음식을 책보에 싸 들고 왔던 추억. 해 질 녘 찬바람에 볼이 빨개져 와도 또래들과 장난질 궁리에 여념이 없던 하산길. 가슴 저리는 그리움이다. 지방에 사는 당질과 간만에 통화하다 요즘 시제 모시기의 어려움을 듣는다. 저승으로 떠나고 객지로 떠나고…. 시제 음식 장만할 이도, 시제 모실 이도 없다는 팍팍함. 고향을 떠나온 지 40년이 다 되도록 시제에 한번 참석 못한 나는? 나이 듦엔 어릴 제 회상 속에 사는가.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에 있을까. 박건승 논설위원 ksp@seoul.co.kr
  •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우두커니 알 수 없는 존재감, 공허함만 맴도네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우두커니 알 수 없는 존재감, 공허함만 맴도네

    연재를 시작하면서 다짐한 것이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모든 건물을 직접 가서 본 후 글을 쓰겠다는 것이었다. 사진도 가급적 직접 찍은 것을 사용하고자 했다. 이제 연재의 마지막 글을 쓰면서 그 원칙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접는다. 직접 보지 않은, 아니 그럴 수 없는 도시에 대한 글이기 때문이다. 사진 자료는 북한의 도시와 건축 연구에 있어 독보적인 존재인 재미 건축가 임동우 선생으로부터 받았다. 구글 어스와 네이버, 다음 지도 등으로 평양의 주요 거리 이름을 파악했고, 주로 서구인들이 유튜브에 올려놓은 관련 동영상을 통해 낯선 도시의 거리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또한 국토교통부가 만든 국가공간정보유통시스템인 브이월드(http://map.vworld.kr) 역시 평양에 대한 입체 건물 정보를 비교적 자세히 소개해 놓고 있어 큰 도움이 됐다. 즉 공개된 자료들을 가지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상당 부분 추측하며 쓰는 글이다. # 쉽게 가볼 수 없는 도시 ‘평양’ 개별 사례를 이야기하기 전에 사회주의 도시계획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토지와 자본이 원칙적으로 국가 소유이므로, 도시 내의 자원을 분배하는 도시계획이야말로 사회주의 이념의 기본을 잘 보여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이들은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도농 간의 격차를 줄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즉 대도시라는 개념 자체에 반대한다. 도시가 성장하면 사회적 격차가 커지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이를 억제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많은 수단을 동원한다. 자연스러운 성장 보다는 계획적인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다. 중국과 같은 예외가 있지만, 사회주의 계열 국가에 대체로 거대 도시가 많지 않은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어쩔 수 없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가장 대표적인 도시에 국한되고 그다음 도시들은 규모가 상당히 작아진다. 북한의 경우도 수도인 평양직할시의 인구는 325만명이지만, 두 번째 도시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함흥과 청진은 67만명에 불과하다. 또한 같은 이유에서 도농 간의 통합을 지향한다. 그래서 도시 안에도 의외로 경작지가 있다. 평양의 채소 공급지로 알려져 있는 대동강의 두루섬 같은 곳이 대표적인 예다. 또 다른 특징은 직주근접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중요한 개념이기 때문에 사회주의만의 독창적인 내용이라고 보기는 어려우나, 생산과 유통시설을 주거지역에 근접 배치해 노동자 계급의 복지를 증진시키려는 것이 목적이다. 북한 관련 동영상에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은 이러한 도시구조와도 관계가 있다. 대한민국으로 치면 아파트 단지 내에 공장과 매장이 들어서는 것 같은 상황인데, 이렇게 다양한 도시 기능이 복합된 주거 지역을 특별히 ‘마이크로 디스트릭’(micro district)이라는 명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1920년대에 처음 도입된 이 개념은 소련이 붕괴되면서 비판받기 시작해 지금은 유명무실한 상태다. 직주근접은 물론 자본주의 도시 이론에서도 중요한 개념으로 등장한다. 이처럼 자본주의 도시와 사회주의 도시가 서로 이론적 입장을 교환 혹은 공유하는 것은 일종의 사상적 역설이라고나 할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나오는, 푸리에 등이 꿈꿨던 이상적 공산사회의 도시건축적 장치인 아케이드가 오히려 자본주의가 심화되면서 더 발달했다는 지적 등을 언급할 수 있겠다. 평양의 경우 요즘은 오히려 체제의 선전을 위해 고층 건물들이 들어서는 추세지만 기본적으로는 중층의 획일적인 밀도로 도시의 대부분을 채우고 있다. 고밀도에 익숙한 자본주의 도시와 비교하면 길도 넓고 공원 등 녹지 등이 많이 확보돼 있어 마치 전원 도시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 역시 전쟁 시 폭격에 대비해 미리 도시의 각 지역을 이격시킨 것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 폭격기 조종사들이 ‘더이상 폭격할 목표물이 없다’며 그냥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평양은 완벽하게 파괴된 바 있다. 그 뼈저린 기억이 아직 남아 있어서 도시계획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체제의 선전과 홍보를 위한 대규모 가로와 광장, 그리고 각종 기념물들이 더해지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사회주의 도시, 그중에서도 특정 개인 및 집단을 우상화해 온 평양의 도시적 특징이 만들어진다. # 무지개떡 건축은 평양을 이해하는 하나의 단서 이런 배경에서 보면 평양에 사회주의판 무지개떡 건축이 상당히 많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다만 소비를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처럼 거리를 활기 있고 즐겁게 만드는 역할보다는 기본적인 삶의 조건들을 충족시켜 주는 정도의 성격이 더 강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전반적인 경제 수준, 특히 소비문화의 현격한 차이 또한 염두에 두고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유튜브의 관련 동영상들을 살펴보면 일부 지역에 이런 건물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분포돼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영상으로 확인한 범위 내에서 이야기하자면 대표적으로는 서울의 강북에 해당하는 서평양의 주요 간선도로인 영광거리(평양역과 평양대극장 사이)와 김일성광장을 관통하는 승리거리의 남단 부근에서 많이 발견된다. 다만 서울로 치면 강남에 해당하는 대동강 너머의 상대적 신개발지 동평양 지역의 동영상에서는 이렇다 할 무지개떡 건축의 존재를 볼 수 없었다. 물론 주로 관광객들이 검열을 받아 가며 찍어 올린 동영상임을 감안하고 봐야 할 것이다. 심지어 관광객들이 갈 수 없는 거리도 많다고 하니 평양이라는 도시 전체에 대한 이야기를 할 상황은 아니다. 특이한 것은 동영상에 등장하는 무지개떡 건물들이 대체로 오래돼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건물의 양식에서 유럽의 사회주의 건축의 영향이 읽히기도 한다. 한국전쟁 이후 북한의 재건에는 구소련을 포함한 동구권 국가들과 중국 인민지원군이 대거 참여했다. 사회주의 도시계획의 이념을 충실히 따르고 있었을 때는 이런 유형이 많이 지어졌지만 그 이후에는 점차로 사라진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할 뿐이다. 한국전쟁 당시 평양은 너무 심하게 파괴돼 다른 공산권 국가들은 아예 수도 이전을 권했으나 김일성의 의지, 그리고 젊은 건축가 김정희 등의 노력으로 1953년 그러니까 한국전쟁 종료를 전후해서 ‘평양 마스터플랜’의 발표와 함께 전후복구가 시작된 바 있다. 최근에는 대동강변의 미래과학자거리에 초고층 주상복합이 등장하는 등 북한이 국제도시로서 평양의 외형적 면모를 일신하는 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 몇 장의 사진을 소개한다. 전후 복구 과정에서 지어진 것으로 짐작되는, 동유럽 사회주의 건축의 분위기가 풍기는 사례부터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사례까지 비교적 다양하다. 지명이 보이는 사례의 경우 지도에서 확인해 보면 역시 평양 구도심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마 거의 전부가 서평양 중에서도 오래된 지역에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사진 1은 전혀 위치를 짐작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간판이 아예 없기 때문에 거리에 면한 저층부의 용도가 무엇인지도 파악되지 않는다. 다만 색채와 창을 내는 방식 등이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아 저층부에 비주거 기능이 들어가 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주거 부분은 발코니와 창틀에 화분이 놓여 있는 등 어느 정도 생활의 흔적과 온기가 느껴진다. 전체적인 분위기로 보아 비교적 오래된 건물로 짐작된다. 역시 창턱이 높고 게다가 입구에도 계단이 있어서 거리의 분위기를 밝게 하는 데는 전혀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사진 2는 ‘대동문’이라는 이름으로 보아 평양성 내성의 동문이면서 북한 국보 4호인 대동문 인근 지역에 있는 건물인 듯하다. 대동문이 인민대학습당과 만수대 회관 중간의 대동강변에 있으므로 이 역시 서평양의 구도심 지역이다. 식료품 상점으로서 일상생활을 위한 기초적인 먹거리 공급이 주목적이므로 거리의 분위기를 활기 있게 하는 데는 거의 기여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도시 같으면 창문의 높은 턱을 없애고 밖에서도 내부를 훤히 볼 수 있거나 사람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구조로 만들었을 것이다. 상층부는 주거 시설일 텐데 생활의 흔적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상가 부분은 타일로 비교적 깨끗하게 마감했다. 사진 3은 여러 가지 점에서 흥미롭다. 일단 건축 양식으로 보아 전후에 동구권 국가들이 직접 참여해 건설한 사례로 짐작된다. 서구 고전 건축에서 흔히 사용되는 저층부의 거친 석재 처리, 난간의 디테일, 그리고 외벽의 색채 등에서 그런 단서를 읽을 수 있다. 다만 실제 석재는 아니고 콘크리트에 도색을 한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점은 낚시도구라는 일종의 여가를 위한 도구를 파는 상점이라는 것이다(물론 대동강 등에서 생계형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으나 확인할 방법은 없다). 역시 밖에서 내부가 잘 보이지 않고 높은 창턱, 입구의 계단 등 또한 공통적이다. 에어컨 실외기를 무심하게 거리 쪽으로 설치하는 것은 유감스럽게도 남북한이 공통이다. 사진 4는 비교적 신시가지다. ‘창전’이라는 이름이 보이는 것으로 봐서 만수대 주변, 북한의 최고 부촌으로 알려진 창전거리 인근 지역으로 추측된다. 부착형 간판과 수직형 돌출 간판이 동시에 붙어 있는 것이 특이하다. 그러나 옷상점에서 기대하는 화려한 전시와 조명 등의 개념은 아예 찾아볼 수 없다. 역시 창턱이 높고 입구에는 계단이 있다. 보행자를 자연스럽게 유도하려는 노력이 특별히 보이지 않는다. 거리에 면해 있다고 해서 보행자 친화적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 주는 사례다. 디테일의 지원을 받지 않는 개념은 무의미하다. 사진 5는 5, 6층 내외의 중층 건물이다. ‘오탄’은 서울의 여의도에 해당하는 양각도 건너편의 대동강변 지역이다. 식료품 상점이지만 역시 내부가 잘 보이지 않고 높은 창턱과 입구의 계단 등도 예외 없는 공통점이다. 상층부 주거의 열린 창문을 통해 커튼, 일부 생활 집기 등이 엿보인다. 구매활동의 즐거움과는 거리가 먼 오직 실용적인 목적에만 충실한 디자인이다. 남북 관계가 최악의 상태인 지금 북한의 도시와 건축에 대한 관심은 단순 호기심이거나 혹은 공허함으로 다가올지 모른다. 그러나 언젠가 어떤 식으로든지 관계라는 것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그 시각은 당연히 전면적으로 수정돼야 한다. 여느 도시나 그렇듯이 수많은 층위가 복잡하게 얽혀 있을 평양이라는 도시를 이해하는 하나의 단서로 이 연재의 관점이 적절하다고 생각돼 제일 마지막 대상지로 삼게 됐다. 이것으로 부족한 글을 마친다.
  • 중국男, 여친 손목 묶고 PC방에서 게임하는 이유는?

    중국男, 여친 손목 묶고 PC방에서 게임하는 이유는?

    중국 PC방에서 찍힌 사진 한 장이 대륙의 누리꾼들을 들썩거리게 하고 있다. 사진의 진위 여부부터 시작해 남녀 혐오 문제 등 해묵은 논란까지 끄집어내게 하며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 됐다. 최근 중국 포털사이트 웨이보에 올라온 사진 속에서는 한 남자가 PC방에서 한창 게임(LOL)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이다. 문제는 그의 손목에 쇠사슬이 묶여 있고, 사슬의 또다른 한쪽 끝에는 한 여자의 손목에 묶여 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여자친구로 보이는 그 여자는 PC방 바닥에 이불을 깔고 덮고 누워 있었다. 우스꽝스럽고 기이한 풍경이지만 단순히 웃고 넘기는 수준을 넘어 논란으로 비화됐다. 이름과 나이 등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이 남자는 "게임을 하는 동안 여자친구가 바람이 나서 도망가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이렇게 붙들어놓았다"라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여자 역시 이 상황이 당연하다는 듯 얌전히 누워 있었고, PC방에 있던 다른 이들도 특별히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누리꾼들은 '일부러 설정한 장면일 뿐일 것'이라고 진짜가 아닐 것이라 말하는가하면, '중국 남자들의 찌질한 근성이 드러난 것'이라고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고, '여자 역시 노예나 되는 것처럼 저렇게 복종한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는 등 분분한 의견을 쏟아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명인·명물을 찾아서] 남녀노소 찾는 보강천… 증평 최고의 힐링공간

    [명인·명물을 찾아서] 남녀노소 찾는 보강천… 증평 최고의 힐링공간

    지난 6일 오후 3시 충북 증평군 증평읍 보강천. 제법 쌀쌀한 초겨울 날씨였지만 주민 수십여명이 나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다정해 보이는 한 노부부는 털모자와 마스크, 장갑 등으로 ‘완전무장’을 하고 산책로를 걷고 있고, 그라운드 골프장에서는 노인들의 즐거운 비명이 들려왔다. 한 할머니는 걷기운동을 잠시 중단하고 그네의자에 앉아 스마트폰을 잡고 수다를 떠느라 정신이 없고, 초등학생들은 자전거 도로에서 신나게 자전거를 달린다. 20대로 보이는 젊은이들은 야구장에서 투수와 포수 역할을 번갈아 하며 공 받기에 한창이다. 이날 산책을 나온 김모(85) 할머니는 “매일 이곳에 나와 1시간 이상 걷기와 스트레칭 등 운동을 하고 간다”며 “보강천은 많은 나무와 꽃들 덕에 공기까지 좋아 최고의 휴식처”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한때 애물단지였던 보강천이 최고의 힐링공간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각종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으며 증평군의 자랑거리도 되고 있다. 군은 2013년부터 보강천 미루나무 숲을 중심으로 보강천 명소화 사업을 벌이고 있다. 하나둘씩 시설을 확충하다 보니 이제는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다양한 볼거리와 시설들을 보유하고 있다. 축구장과 농구장, 족구장, 테니스장, 자전거 도로, 산책로, 간단한 운동기구 등에다 주민들을 위한 편의시설들이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파랑, 빨강, 노랑 등 각양각색의 바람개비와 정글모험 놀이터, 암벽오르기, 하늘다람쥐, 모래놀이터, 동물 캐릭터 조형물 등 나란히 있는 다양한 어린이 놀이시설은 작은 놀이공원을 방불하게 한다. 모래놀이터에 깔아 놓은 모래는 강원 고성군 공현진 해수욕장에서 가져왔다. 대부분 놀이터가 강모래를 쓰지만 홍성열 증평군수가 윤승근 고성군수와의 친분을 활용해 바닷모래를 무상으로 가져왔다. 바닷모래는 강모래보다 곱고 더 하얗다. 놀이시설 앞쪽에는 네덜란드의 상징인 높이 5m 크기의 풍차와 벽천분수 등이 아름다운 꽃들과 조화를 이루며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풍력발전에 활용되는 풍차는 녹색도시 증평을 상징하기 위해 설치됐다. 군은 녹색도시답게 보강천 시설 상당수의 전력을 태양광으로 해결하고 있다. 풍차 인근에는 책을 빌려볼 수 있는 컨테이너 2개 크기의 ‘김득신책방’이 자리잡고 있다. 1500여권의 도서를 보유한 김득신책방은 매일 오후에 문을 여는 열린도서관이다. 책을 빌려 미루나무 숲 벤치에서 읽은 뒤 반납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한달 평균 250여명이 이용한다. 증평을 대표하는 인물인 백곡 김득신(1604~1684)은 ‘독서왕’으로 불린다. 젊었을 때 머리가 나빠 공부를 그만두라는 주위의 권유를 받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백이전(伯夷傳)을 11만번이나 읽었을 만큼 다독하고 시를 공부해 노년에 당대 최고의 시인으로 추앙받았다. 김득신책방보다 더 좋은 책방 이름이 있을까. 미루나무 숲을 중심으로 한 보강천 일대는 야경도 일품이다. 미루나무 숲에 800개의 발광다이오드(LED) 장미를 심었다. 인근 증평대교와 장미대교 500m 구간에는 LED 조명 437개를 설치해 멋진 밤풍경을 연출한다. LED 장미는 해가 지면 자동으로 꽃에 불이 들어와 오후 11시 40분에 꺼진다. 보강천에는 문화예술의 거리도 있다. 군은 지난달 24일 이곳에서 조상기 시인의 ‘지금도 증평에 가면’ 시비 제막식을 가졌다. 이 시비는 증평 지명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지역균형발전사업 인센티브 사업비 1800만원을 들여 제작됐다. 크기는 가로 4.6m, 높이 2.5m다. 증평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담긴 이 시를 읽으면 애향심이 절로 난다. 증평군의 노력으로 아이에서 노인까지 모두가 찾을 수 있는 휴식공간으로 변모한 보강천은 각종 공모에 참여해 좋은 성적표를 받고 있다. 산림청의 도시 숲 공모에서 녹색도시 우수사례에 선정됐고 환경부의 그린시티로 지정됐다. 군이 2014년 국비 8억원을 지원받아 보강천에 조성한 자작나무 숲은 한국산림복지진흥원 나눔 숲 관리 전국 최우수로 뽑혔다. 조성진 군 산림공원사업소 공원녹지팀장은 “증평을 방문했다가 보강천을 둘러본 외지인들도 칭찬을 많이 한다”며 “내년에도 분수와 산책로 등을 추가로 확충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보강천은 각종 축제장소로도 활용되며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증평홍삼포크삼겹살 축제, 증평인삼골축제, 증평대보름제 등 지역을 대표하는 행사가 보강천변에서 열리고 있다. 지금은 보강천이 주민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지만 한때는 푸대접을 받는 천덕꾸러기였다. 1970년대 보강천에 미루나무 숲이 조성됐지만 시민들이 외면하면서 미루나무를 베어내자는 말까지 나왔다. 미루나무 숲은 한때 육군 37사단 예비군교육장으로 활용됐지만 보강천의 수질이 악화되고 인근 축사에서 발생하는 악취까지 겹쳐 찾는 이들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수질개선 사업과 명소화 사업이 진행되면서 이제는 복덩이가 됐다. 증평군은 행정구역이 1읍 1면이 전부인 내륙에서 가장 작은 ‘초미니 자치단체’다. 하지만 인구는 꾸준한 증가세를 보여 지난달 기준 3만 7264명이다. 면적이 7∼10배 큰 단양군(3만 484명)과 보은군(3만 4192명) 인구를 이미 추월했다. 군은 인구증가의 원인을 좋아지는 정주 여건으로 분석하고 있는데, 일등공신을 보강천 명소화로 꼽고 있다. 미루나무 숲이 보강천의 상징이 됐지만 사실 보강천에는 미루나무가 없다. 미루나무 숲을 구성하고 있는 103그루의 나무는 이태리포플러 99그루와 은사시나무 4그루다. 이태리포플러를 생김새가 비슷한 미루나무로 착각해 주민들이 미루나무 숲이라고 부른 것이다. 군은 한때 ‘이태리포플러 숲’으로 명칭을 바꾸는 것을 고민했지만 주민들이 수십년간 불러온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미루나무 숲의 열성팬들이 많다 보니 잘못된 이름을 시비 거는 사람은 없다. 군은 나무들을 위해 해마다 영양제 나무 주사와 비료 주기, 가지치기, 병해충 방제 등을 하고 있다. 후계목도 키우고 있다. 글 사진 증평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서울광장] 역사적 그날, 12·9/강동형 논설위원

    [서울광장] 역사적 그날, 12·9/강동형 논설위원

    2016년 12월 9일. 국회 본회의장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방청석에 자리를 잡았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은 차분하게 진행됐다. 소란을 피우는 의원들은 없었다. 친박 실세인 최경환 의원을 제외한 299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투표 결과 탄핵 찬성은 234표로 탄핵에 필요한 200표보다 월등히 많았다. 국회의장이 표결 결과를 발표하자 방청석에서 짧은 환호성이 있었지만 장내는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의원들이 표결을 진행하는 동안 국회 주변에서 탄핵 가결을 촉구하는 구호가 끊이지 않았다. 대통령 탄핵안 표결이 진행되는 역사적인 순간 국회는 기대 이상의 성숙한 모습을 연출했다. 12년 전인 2004년 3월 12일.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국회의장 단상을 점거한 채 의장의 의사 진행을 막고 있었다. 팽팽한 긴장감이 계속됐고 의장석을 점거한 여당 의원들이 국회 경위들에 의해 끌려 나갔다. 발버둥치고, 울부짖는 모습과 거친 숨소리, 환호와 박수 소리가 교차하는 모습이 생중계되면서 국민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가결됐다. 그러나 광화문에서는 탄핵을 반대하는 촛불이 하나둘씩 불을 밝히기 시작했고, 헌법재판소는 탄핵소추를 기각했다. 어제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는 순간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 유폐된 상태였다. 한달 반 동안 여섯 차례의 주말 촛불집회가 열렸고, 대통령은 세 번이나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그때마다 대통령은 국민의 요구와는 동떨어진 처방전을 내놓았다. 퇴진 일정을 밝히고 질서 있는 퇴진을 바라는 진심 어린 충고는 물거품이 됐다. 12년의 시차를 둔 탄핵 풍경이 달라도 너무나 다른 것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그 간극은 촛불의 의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12년 전 타오른 첫 번째 촛불은 정치적인 폭거로 탄핵당한 노 전 대통령을 살려야 한다는 염원을 담고 있었다. 반면 여섯 차례의 평화집회에서 타오른 촛불은 박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는 분노를 표출했다고 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국민의 눈에는 국정을 농단한 최순실씨와 공범으로 비치고 있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도 사과를 하지 않고 끝까지 고집을 부린 대가가 탄핵으로 부메랑이 됐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박 대통령이 12년 전과 같은 결과를 기대한다면 큰 착각이다. 헌재 결정 전이라도 현명한 판단을 하는 것이 국가와 국민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지금이라도 깨달았으면 한다. 대통령 탄핵은 헌법상 가장 강력한 정치 행위이고, 최후의 수단이다. 탄핵소추안이 발의되고 표결까지 간 것은 우리 헌정사에 불행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대통령 탄핵을 새 시대를 여는 기회로 삼는다면 역설적이지만 축복이 될 수도 있다. 탄핵 이후의 절차는 특검과 헌법재판소에 맡기고 정치권은 희망을 노래해야 한다. 탄핵의 역사적 의미를 완성하려면 과거의 역사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1960년 4월 혁명은 광장에서 시작됐지만 그 과실은 군사독재와 권위주의 정치가 챙겼다. 1987년 6월 항쟁도 광장에서 시작됐으나 그 과실 역시 특권층과 재벌의 몫이었지 국민의 몫은 아니었다. 2016년 촛불 혁명은 그 어떤 혁명과 비교해도 결코 가볍지가 않다. 촛불 혁명의 열매는 이제 국민의 몫으로 돌려야 한다. 금수저와 흙수저, 헬조선, 청년 실업과 노인 문제 등 우리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를 극복하는 것만이 그 과실을 국민에게 돌리는 지름길이다. 이를 거역하는 순간 촛불은 다시 타오를 것이다. 우리는 한 달여 동안 한번도 가 보지 못한 어두운 터널을 지나왔다. 실족하지 않고 올 수 있었던 것은 어둠 속에서 빛난 촛불이었다. 촛불의 힘으로 우리 앞에 놓인 과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야 한다. 헌법 개정 등 제도 개선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것은 새 시대에 걸맞은 지도자를 선출하는 일이다. 주권자인 국민은 잘났거나 못났거나 모두가 행복할 권리를 갖고 있다. 인간 세상은 원래 불평등하다고 당연히 여기는 지도자, 모든 사람이 행복한 나라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며 시도조차도 안 하는 정치인은 새로운 시대상과 어울리지 않는다. 대통령 탄핵이 국민의 역량을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시대의 전환점이 되길 소망한다. yunbin@seoul.co.kr
  • 베네수엘라 여성들, 국경까지 넘어 팔고 있는 이것은?

    베네수엘라 여성들, 국경까지 넘어 팔고 있는 이것은?

    경제난이 계속되고 있는 베네수엘라에서 1970년대 풍경이 재현되고 있다. 베네수엘라 여성들이 주변국에 머리카락을 내다팔고 있다고 현지 언론이 최근 보도했다. 머리카락을 자른 여성들은 받은 돈으로 의약품과 식량을 구입해 다시 국경을 넘는다. 머리카락 판매가 시작된 건 지난 9월부터다. 처음엔 한두 명이었지만 "머리카락을 팔면 돈이 된다"는 말이 돌면서 이제는 하루 수백 명이 머리카락을 팔기 위해 국경을 넘고 있다. 콜롬비아의 국경도시 라파라다에는 머리카락을 잘라 팔려는 베네수엘라 여성들이 넘친다. 라파라다는 베네수엘라-콜롬비아 국경을 넘으면 바로 나오는 콜롬비아의 첫 도시다. 길에 들어서 있는 7개 노상미용실엔 머리카락을 자르려는 여성들이 줄을 서고 있다. 이곳에서 머리카락을 잘라 파는 여성은 어림잡아 하루 평균 200명에 이른다. 현지 언론은 "머리카락을 잘라 팔려는 여성들이 늘어나자 아예 노상미용실과 연결해주는 중개인까지 등장했다"고 보도했다. 중개인들은 베네수엘라로 넘어가 머리카락을 팔겠다는 여성들을 모아 노상미용실에 소개해주고 수수료를 챙긴다. 국경을 넘은 여성들이 판 머리카락은 붙임머리를 할 때나 가발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베네수엘라 여성들이 머리카락을 잘라 팔고 받는 돈은 600페소, 미화 20달러(약 2만3200원) 정도다. 푼돈이지만 베네수엘라에선 최저임금을 웃도는 수준이다. 이렇게 받은 돈으로 베네수엘라 여성들은 식품이나 의약품을 사간다. 베네수엘라 여성 셀리나 곤살레스(45)는 최근 국경을 넘어 머리카락을 잘라 팔았다. 관절염이 있다는 그는 "돈도 없고, 돈이 있어도 베네수엘라에선 약을 구할 수 없다"며 "약을 사기 위해 머리카락을 팔았다"고 말했다. 곤살레스는 "최저임금 정도의 돈이라 오래 가진 않겠지만 당장 진통제를 살 수 있게 돼 마음이 놓인다"고 덧붙였다.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센트럴파크·트라이볼·G타워… 주말엔 송도 투어 가볼까

    센트럴파크·트라이볼·G타워… 주말엔 송도 투어 가볼까

    ‘국내 첫 해수공원’ 센트럴파크, 축구장 56배… 보트·카약도 ‘스트리트 서킷’ 일반인도 레이스 펜타포트 록 행사 등 축제 즐비 커낼워크선 340개 식당 맛 여행 ‘사막 위의 기적’ 두바이와 닮은 도시, 기하학적 건축물들, 도심을 가로지르는 수상택시, CF와 드라마 촬영의 단골 장소, ‘삼둥이’와 ‘대박이’가 사는 동네. 인천 송도의 이미지는 국제도시답게 화려하고 세련됐다. 지금은 인천은 물론 수도권에서 가장 핫한 곳이지만 불과 13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허허벌판의 갯벌이었다. 신기루같이 펼쳐진 국제도시 송도는 지금도 여전히 간척이 진행 중이다. 해마다 모습을 달리하는 송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계획적이고 다이내믹한 도시라는 평가가 잘 어울린다. 아울러 속살을 들여다보면 부드러움과 산뜻함이 조화를 이뤄 다른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맛과 멋을 체감할 수 있다. 주말마다 외지에서 가족들과 연인들이 이곳에 상륙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송도의 백미인 센트럴파크는 송도 투어의 시작으로 통한다. 인천지하철 1호선 센트럴파크역 3번 출구로 나가면 뒤편으로 공원이 펼쳐진다. 크기부터 압도적이다. 462만㎡로 축구장 56배 크기이며 여의도공원 면적의 2배다. 센트럴파크는 이름처럼 뉴욕의 센트럴파크를 모티브로 조성됐다. 차이점이 있다면 송도의 센트럴파크를 관통하는 수로는 서해의 바다를 끌어온 국내 최초의 해수공원이란 점이다. 해수로의 길이는 1.8㎞나 되며 해수로를 둘러싼 산책로는 4㎞에 달한다. 물과 어우러지는 빌딩숲과 녹색 나무들을 바라보며 조깅과 산책하는 사람들로 언제나 가득하다. 지정된 장소에선 그늘막 텐트 설치가 허용돼 날씨가 좋으면 텐트촌이 형성되기도 한다. 특히 해수로 끝 선착장 이스트보트하우스에선 보트, 카약, 카누 등 수상 레저를 즐길 수 있다. 송도의 마천루를 올려다보며 연인과 노를 젓는 경험은 센트럴파크에서만 가능해 필수 코스로 꼽힌다. 반대편 웨스트보트하우스에서 운행하는 수상택시는 송도만의 자랑이다. 지금은 수상택시라는 본래 취지와는 달리 관람을 위한 유람선 성격이 강해져 편도가 아닌 왕복 운항한다. 주중에는 1시간, 주말에는 30분 단위로 오후 9시까지 운행하고 있다. 해가 저물면 센트럴파크 주변의 68층 동북아무역센터(NEAT)와 트라이볼(Tri Bowl)의 리드미컬한 불빛 쇼가 시작되고 송도의 야경을 배 안에서 관람할 수 있다. 홍콩의 심포니오브라이트를 연상케 할 정도다. 로맨틱한 야경 덕에 배를 통째로 빌려 선상에서 프러포즈하는 커플도 있다고 한다. 유엔국제기구 녹색기후기금(GCF)이 입주한 G타워는 그냥 지나치기엔 아쉽다. 29층 하늘정원과 33층 전망대가 무료로 개방돼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선 송도의 전체 건물과 센트럴파크, 인천대교, 서해까지 조망할 수 있다. 사실 G타워는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 주인공 김혜진(황정음)의 직장으로 등장하면서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당연히 외국이겠거니’ 했던 추측과 달리 송도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방문객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주중엔 중국인 관광객(유커)들을 태운 관광버스로 둘러싸여 한류 특수를 실감한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G타워에서 나와 3시 방면으로 5분 정도 걸으면 SF영화에서나 볼 법한 건축물이 나온다. 복합문화 공간인 트라이볼이다. 경제자유구역인 송도·청라·영종을 의미하는 ‘트리플’(triple)과 그릇을 뜻하는 ‘볼’(bowl)이 합쳐진 이름이다. 실제로 도자기로 빚은 그릇 세 개를 붙여 놓은 형상이다. 트라이볼은 콘서트, 공연, 전시회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특히 아래로 은은하게 깔린 수경(水鏡)과 그 사이로 놓인 길은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때문에 트라이볼은 멀리서 사진을 찍기 위해 방문하는 출사족들의 집결지로 통한다. 가장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트라이볼 바로 옆은 컴팩스마트시티다. 인천이란 도시를 자세히 알아보고 싶다면 방문할 것을 권유한다. 이곳은 우리나라 최초로 도시계획을 테마로 조성한 전시공간이다. 인천의 과거부터 현재, 그리고 미래를 그린 모습까지 모형으로 만나볼 수 있다. 무료라 아이들과 부담 없이 찾기 좋다. 송도엔 아직 개발이 안 된 부지가 많다. 넓은 부지를 활용해 사람들을 모아 한바탕 즐기기에 최적의 입지다. 이 때문에 송도는 축제로 통한다. 매년 여름엔 세계적인 록밴드들이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을 위해 송도로 모인다. 어느덧 10주년을 맞이한 펜타포트는 국내 최장수 록페스티벌이 됐다. 올여름에도 3일 동안 8만여명의 젊은이가 몰려 하늘을 찌를 듯한 열기를 뿜어 냈다. 영국 매거진 ‘타임아웃’은 인천 펜타포트를 ‘꼭 가야 할 페스티벌 50’에 선정하기도 했다. 뜨거운 록 열기가 물러가면 9월엔 맥주축제로 유명한 세계문화축제가 열린다. 세계 각지의 130여종 맥주를 야외에서 음악과 함께 즐길 수 있다. 이외에도 음악불꽃축제, 더케이페스티벌, 국제마라톤대회, 트라이애슬론, 요트축제 등 다양한 축제와 스포츠 이벤트들이 개최된다. 특히 스피드 마니아라면 송도의 ‘스트리트 서킷’을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레이싱 서킷하면 주로 영암이나 인제를 떠올리지만 송도에도 서킷이 있다. 스트리트 서킷에선 매년 모터 페스티벌과 경주가 개최되고 일반인들도 라이선스만 취득하면 직접 레이스를 펼칠 수 있다. 또한 서해에 접한 잭니클라우스(골프) 클럽을 감싸는 4차선 도로는 사이클 동호인들의 성지다. 밤이 되면 방파제 길을 따라 수십여대의 자전거 무리가 모여 질주하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렇게 멀리서도 송도를 찾아오는 건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호텔들이 있기에 가능하다. 취사 가능한 레지던스 호텔인 오크우드 프리미어 호텔을 비롯해 한옥 호텔 최초로 5성 등급을 받은 경원재 앰버서더호텔이 있다. 이외에도 쉐라톤, 오라카이, 홀리데이인, 센트럴파크호텔 등이 있어 선택의 폭이 넓다. 송도 투어의 방점은 단연 식도락 여행이다. 송도에는 개성 넘치는 레스토랑과 카페 등 이국적 음식점들이 즐비해 있다. 센트럴파크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커낼워크는 콘셉트부터 특이하다. 작은 수로를 사이에 두고 양옆으로 유럽식 저층 건물들이 봄, 여름, 가을, 겨울 테마로 늘어서 있다. 중앙 수로를 따라 걸으면 340개의 레스토랑과 카페거리, 쇼핑매장이 한눈에 펼쳐진다. 커낼워크는 방문객의 20%가 외국인이라 태국, 베트남,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음식부터 나폴리식 정통 화덕 피자까지 다양하게 맛볼 수 있다. 특히 수로 옆으로 빽빽하게 야외 테이블이 비치돼 있어 편하게 앉아 분위기를 만끽하며 커피를 마실 수 있다. 송도엔 정제된 분위기의 레스토랑 말고도 바다 도시답게 신선한 회와 해산물을 요리하는 식당들도 많다. 중부해양경비안전본부 뒤편은 일종의 먹자골목이다. 밤이 되면 송도에서 공부하는 대학생들로 붐벼 속된 말로 흥청망청, 좋게 말하면 낭만과 젊음이 새벽까지 이어지는 진풍경을 연출한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장수군 육십령 주변 215㏊ 영호남 화합 ‘힐링숲’ 조성

    전북 장수군과 경남 함양군이 만나는 백두대간 육십령(해발 734m)의 옛 고갯길이 ‘힐링숲’으로 복원된다. 8일 전북도에 따르면 백두대간 중심의 남서향인 장수군 명덕리 일대 육십령의 옛 고갯길 주변 215㏊에 명품 숲을 조성할 계획이다. 내년부터 5년간 총 86억원이 투입된다. 이곳에는 내년에는 ‘영호남 화합의 숲’을 만들 계획이다. 장수와 함양의 군화인 산철쭉과 철쭉을 심는 등 ‘육십령’을 의미하는 ‘철쭉 60만 그루’ 군락지와 ‘60리 주목나무’ 길을 조성한다. 2018년에는 ‘산과 바람이 어우러지는 숲’을 주제로 80㏊에 자작나무 등을 심어 힐링숲을 조성한다. 또 간선임도~산책로~마을 길을 연결하는 트레킹 순환코스를 개발한다. 숲속에서 명상과 사색을 통해 정서적 안정을 취하고 농촌의 풍경을 만끽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산복사나무, 고로쇠, 복자기 등 고유 수종으로 경관을 복원하고 영호남 주민의 소득 증대를 위해 아카시아, 밤나무, 헛개나무, 잣나무 등의 밀원수와 경제수를 심기로 했다. 대신 1970년대 인공 조림된 리기다소나무와 낙엽송은 연차적으로 베어내기로 했다. 육십령의 유래는 함양 감영과 장수 감영에서 이 고개까지의 거리가 각각 60리(24㎞)여서 이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이 내려온다. 또 이 고개를 넘으려면 크고 작은 60개의 고개를 넘어야 겨우 닿을 수 있어 그렇게 이름 지어졌다는 설이 있다. 이 고개에 산적들이 많아서 양쪽 산 아랫마을에서 며칠씩 묵어 가며 60명이 모이기를 기다렸다가 한꺼번에 올라 육십령이 됐다는 설도 전해진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촛불집회 더 환하게 밝힌 ‘숨은 공신’들

    촛불집회 더 환하게 밝힌 ‘숨은 공신’들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외치는 6차례의 촛불집회에서 주인공은 ‘국민’이다. 민주주의를 되찾겠다며 한목소리로 외쳤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평화 집회를 만들고 지켜 냈다. 그리고 그 뒤에서 국민의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조금 더 적극적으로 행동한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국민도 있다. 수화통역 봉사를 해 온 박미애씨, 촛불집회 안내 애플리케이션(앱)을 개발한 대학생 김건준씨, 경찰차벽을 꽃으로 덮은 일러스트레이터 이강훈씨가 그들이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수화 떼창’ 지휘자 - 수화통역 자원봉사 박미애씨 장애의 벽 넘어 하나 돼 감동 화장실 갈까봐 물도 안 마셔요 “5차 촛불집회(11월 26일) 때 수화통역을 하는 무대 바로 앞에 청각장애인들이 앉아 있었어요. 노래 가사를 수화로 전달하니 ‘수화 떼창’을 하기 시작했죠. 장애의 벽을 넘어 모두가 촛불의 일원이 됐다는 감동을 느꼈습니다.” 8일 만난 12년차 수화통역사 박미애(36·여)씨는 지난달 5일 열린 2차 촛불집회부터 매주 수화통역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그는 “1차 촛불집회(10월 26일)에 참석했는데 자막·수화 서비스가 전혀 없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주요 집회·시위에서 수화 통역 봉사를 해 봤던 터라 자신이 속한 시민단체 ‘장애인정보문화누리’ 동료들과 집회 주최 측(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에 봉사를 제의했다. “촛불집회는 주최 측의 프로그램을 따르는 게 아니라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 나갑니다. 예전에는 시민발언 중에 장애인 비하가 있어도 일일이 거를 수 없다는 분위기였는데 이제는 시민들이 바로 경고를 하고 나서죠.” 집회마다 3명의 수화통역사가 참여한다. 한 명은 무대에 올라 10~20분간 수화통역을 하고 다른 한 명은 카메라 모니터링을 한다. 다른 한 명은 손을 녹이며 다음 차례를 기다린다. “화장실에 가고 싶을까 봐 하루 종일 물도 안 마시고 참아요. 인파가 몰리면 무대에 진입할 수 없어 통상 2시간 전부터 대기하죠.” 그는 “장애인 참가자가 늘어나는 게 피부로 느껴지니 혹여나 통역에 대한 불만이 접수돼도 외려 즐겁다”며 “청각장애인이 수화로 발언을 하면 통역사가 음성으로 전달하는 ‘음성통역’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유로운 촛불집회 분위기에 장애인들도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습니다. 촛불집회로 시민의식이 한 단계 더 성장한 거죠.” ‘초보 촛불’ 안내자 - 집회 안내 앱 개발 김건준씨 화장실 찾는 시민들 불편 포착 미흡해도 행동하는 게 촛불정신 “사실 정치에 무관심한 대학생입니다. 하지만 난생처음 나선 촛불집회에서 세대와 계층을 떠나 수많은 사람이 한마음으로 자리를 지키는 모습을 봤습니다. 가슴이 먹먹했고 힘을 보태자 싶었죠. 할 수 있는 건 집회 초보자에게 안내서를 제공하는 거였구요.” 대학교에서 정보통신학을 전공하는 김건준(25)씨는 “저도 집회 초보자여서 집회에 익숙하지 않은 시민들의 불편을 포착할 수 있었던 것 같다”며 “앱 개발에 해박한 지식은 없지만, 미흡하면 미흡한 대로 행동을 하는 게 촛불의 정신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가 지난달 18일 공개한 모바일 앱 ‘촛불집회 안내도’는 현재까지 2만명 이상이 내려받았다. “지난달 12일 지인과 제3차 촛불집회에 참석했는데 화장실이 급한 거예요. 가까운 지하철역으로 달려갔죠. 그런데 저처럼 화장실을 못 찾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더군요. 나중에 서울시에서 개방 화장실 정보를 제공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앱으로 만들기로 했죠.” 전문지식이 없다 보니 초보자가 앱을 제작하는 프로그램으로 가장 간단한 형태를 만들었다. 하지만 반응은 뜨거웠다. 오히려 서울시에서 지난달 25일 “원래 화장실 49개를 개방하는데, 집회 기간 동안 210개로 늘렸으니 반영해 달라”며 연락을 해 왔다. 이후 국회의원들에게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직접 청원하는 온라인 사이트 ‘박근핵닷컴’이 화제가 되자 해당 홈페이지 개발자와 연락해 앱에서 바로 탄핵 청원을 할 수 있는 기능을 신설했다. “불평에서 멈추면 세상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불편함을 고민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듯 광장에 나온 촛불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거라 믿습니다.” ‘꽃벽 저항’ 예술가 - 꽃 스티커 제작 이강훈씨 하나의 저항 방식 제시한 것 자발적 시민들… 프로젝트 진화 “부모님과 온 어린아이들이 차벽에 제가 도안한 꽃스티커를 붙이는 모습이 가장 큰 보람이었죠. 지금은 의미를 모르겠지만, 평화로운 저항의 경험을 해 본 아이들이 자란 뒤에는 우리 사회가 어떤 형태의 벽에도 보다 유연하게 대처하는 곳이 될 겁니다.” 경찰 차벽을 꽃스티커로 장식하는 ‘차벽을 꽃벽으로’ 프로젝트를 제안한 일러스트레이터 이강훈(43)씨는 8일 “촛불집회의 힘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며 집회가 진화했다는 데 있다. 나도 하나의 저항 방식을 제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12일 3차 촛불집회에서 차벽을 사이에 두고 경찰과 시민들이 대치한 경복궁역 사거리의 풍경을 본 이씨는 ‘유리벽처럼 자연스레 우리를 가두고 있는 공권력에 문제를 제기하자’는 생각을 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평화적인 저항의 형태로 경찰차벽에 꽃 그림을 붙이면 어떨까”라고 글을 올렸다. 이 글을 본 클라우드 펀딩 업체 세븐픽쳐스 전희재 대표가 “진짜 실행해 보자”고 제안했다. 성금을 모금하고, 예술가들이 재능기부로 꽃의 도안을 디자인했다. 4차 촛불집회(11월 19일)에 이씨를 포함해 예술가 27명이 30가지의 꽃그림을 그렸고, 2만 9000장의 꽃스티커를 제작했다. 꽃스티커는 등장과 함께 큰 조명을 받았고, 5차 집회에 예술가는 82명, 꽃스티커는 9만 2000장으로 늘었다. 지난 3일 6차 촛불집회에는 5만장을 배포했다. 이씨는 “꽃스티커뿐 아니라 생화나 각종 풍자 스티커를 붙이는 등 프로젝트는 시민들에 의해 진화했다”고 설명했다. “예술의 힘은 수용자가 작품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형태로 뻗어 나가는 의외성에 있죠. 촛불집회도 시민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얹어 나간다는 점에서 그 동력이 예술의 힘과 맞닿아 있습니다.”
  • 신찬호, 전남 보물찾기 영상콘테스트 최우수상 수상

    신찬호, 전남 보물찾기 영상콘테스트 최우수상 수상

    전남도 보물찾기 영상콘테스트 공모전에서 신찬호(54·순천 모아치과)씨의 ‘시가 있는 풍경 운주사 천불천탑’이 최우수상을 받았다. 전남도는 8일 2016 전남도 보물찾기 영상콘테스트 공모전 심사 결과 최우수상 1명, 우수상 3명, 장려 6명, 입선 10명 등에 대한 입상 작품을 발표했다. 최우수 작품은 많은 시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운주사의 천불천탑의 아름다운 모습을 영상과 시로 표현해 최고상의 영예를 안았다. 입상 작품들은 앞으로 전남도를 홍보하는 자료로 활용된다. 영상콘테스트는 전남 지역의 맑고 깨끗한 자연환경과 문화관광을 알리기위해 도가 주관해 매년 열린다. 신씨는 2011년에도 순천만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아하 순천만’으로 최우수상을 차지했다. 2013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와 순천만국가정원을 알리는 영상 작품을 홍보하기 위해 수개월간 자원봉사 활동하면서 뛰어난 작품들을 제작해 순천시에 기증하기도 했다. 순천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땅끝, 희망 시작… 언제나 36.5℃

    땅끝, 희망 시작… 언제나 36.5℃

    북위 34도 17분 38초. 섬을 제외하고 한반도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곳. 전남 해남의 땅끝마을 안내판에 적힌 글귀다. 뭍은 여기서 끝나지만 희망은 비로소 시작된다. 어느덧 한 해의 끝자락. 남루했던 한 해를 남김없이 털어 내고 순백의 도화지 같은 새해를 맞으려는 이들이 땅끝마을을 찾는 건 바로 그 때문일 터다. ●모노레일 타고 사자봉에 올라 온몸으로 맞는 새로운 시작 땅끝마을을 찾는 이들은 대개 서정적인 해넘이 풍경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땅의 끝이라는 지리적 상징성 속에서 한 해의 모든 시름을 부여안고 가라앉는 해를 보는 느낌이 각별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땅끝마을은 사실 해돋이 장면이 더 힘차고 아름답다. 겨울철엔 마을 왼쪽의 백일도와 흑일도 사이에서 해가 뜬다. 방울토마토를 닮은 해가 너른 바다와 크고 작은 섬들을 붉게 물들이는 장면은 서정적이면서도 장쾌하다. 맴섬 일출도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맴섬은 땅끝마을 표지석 바로 앞에 있는 갯바위다. 일 년에 단 두 차례, 2월과 10월 중순에 맴섬 사이로 해가 떠오른다. 이 장면을 담기 위해 전국의 사진가들이 몰린다. 새해엔 이 모습을 보기 어렵다. 하지만 뭐, 꼭 맴섬 일출이라야 맛이랴. 바닷가에 서서 온몸으로 새 시작을 맞으시라. 외려 그게 낫다. 포구 뒤는 사자봉이다. 정상에 세워진 횃불 모양의 전망대가 이채롭다. 높이 400여m의 사자봉까지는 모노레일이 운행되고 있다. 바다를 굽어보며 수월하게 오를 수 있다. 전망대 주변에 땅끝탑과 희망의 샘, 산책로 등이 조성돼 있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따라 땅끝조각공원 등 명소 즐비 땅끝마을 주변의 적요한 해안가를 돌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송지면 엄남리 해안에서 땅끝마을을 거쳐 사구리 해안까지 가는 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 중 하나다. 드라이브 코스 주변에 송호해변, 땅끝관광지, 땅끝해양자연사박물관, 사구미해변, 땅끝조각공원 등 명소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땅끝조각공원에 서면 땅끝마을과 주변 풍경이 한눈에 담긴다. 바다를 향해 돌출한 ‘땅의 끝’과 보길도 등 주변 섬들이 그림처럼 어우러진다. 땅끝조각공원에는 26점의 조각 작품이 전시돼 있다. 해남의 산천과 남도의 풍광을 새긴 작품들을 찬찬히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아울러 송호해변은 울창한 솔숲, 사구미해변은 1.5㎞에 이르는 모래사장이 아름답다. ●이순신 장군과 ‘女스파이’ 어란의 구구절절한 전설 깃들어 해남 여정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어란 여인’ 이야기다. 명량해전의 틈바구니에서 이순신 장군과 ‘여성 스파이’ 어란, 그리고 그의 연인이었던 왜군 장수가 얽히고설켜 영화 같은 이야기를 펼쳐 낸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전설’ 수준의 이야기로 평가절하되기도 한다. 어란 여인 이야기는 사실 정사가 아니다. 조선왕조실록 선조편에 관련 내용이 비치고,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도 이를 뒷받침한다고 보여지는 대목이 등장한다는 것이 전부다. 이순신 장군과 명량해전의 눈부신 전공을 폄훼하려는 의도가 있는 이야기라며 불온한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게다가 일본인 손에 의해 전해진 이야기란 점은 이 같은 부정적 인식에 불쏘시개로 작용하고 있다. 이야기의 얼개를 되짚어 올라가다 보면 꼭 두 개의 시점으로 제작된 영화를 보는 듯하다. 첫 장면은 해남의 일본인 사와무라 하치만다로에서 시작된다. 일제강점기 순사였던 그의 귀에 어느 날 어란 여인 이야기가 흘러 들어간다. 평소 해남 땅에 뼈를 묻고 싶다고 말했던 그가 일본으로 돌아간 뒤 유고집이 나오는데, 바로 여기에 그동안 채집했던 어란 여인 이야기가 담긴다. 이게 2006년 해남의 박승룡옹에게 전해졌고, 비로소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두 번째 장면은 전쟁터에서 시작된다. 정유재란 때 어란진에 주둔하던 왜장 간 마사가게(菅正陰)는 어느 날 자신의 연인이었던 어란에게 출병 기일을 발설한다. 어란 여인은 이를 이순신 장군에게 전하고, 이는 명량해전을 대승으로 이끄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어란 여인은 ‘해남의 논개’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하지만 어란 여인은 명량해전 이튿날 여낭터에서 몸을 던져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자신의 연인이 울돌목 해전에서 전사한 것을 비관해서다. 자신의 첩보 덕에 조선은 누란의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정작 자신과 연인은 죽음으로 연을 끊어야 했다. 이러구러 여낭터에서 떠밀려 온 어란 여인의 시신은 한 어부가 거둬 어란마을 끝자락의 바닷가에 묻는다. 그 자리엔 그의 영혼을 위로하는 석등롱(石燈籠)이 세워진다. 어란 여인과 관련해 찾아볼 만한 장소는 두 곳이다. 그가 몸을 던진 여낭터와 그의 시신을 수습하고 석등롱을 세운 어란마을이다. 여낭터는 어란마을 건너편의 바위벼랑 중턱에 있다. 어란항 초입에 ‘여낭터 가는 길’이라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국문 아래쪽엔 일본어도 병기돼 있다. 여낭터엔 ‘어란의 여인상’과 표지비가 조성돼 있다. 동굴 형태의 자연석 아래 세워진 어란상은 뜻밖에 작달막하다. 일부에서 ‘미녀 스파이’ 운운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이미지다. 기념비 앞면엔 투신 날짜가 적혀 있다. 1597년 9월 17일. 명량대첩 하루 뒤다. 기념비 양옆엔 모두 네 명의 일본인 이름이 적혀 있다. 고니시 유이치로 형제는 어란상과 표지비 조성 비용을 댄 이들이다. 일제강점기에 해남에서 태어난 이들의 부친은 어란리 심상소학교 교장을 지냈고, 외조부는 어란리에 최초로 김 양식을 도입한 인물이라고 한다. 여낭터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눈부시다. 청잣빛의 모티브가 됐다는 영롱한 바다, 어란 바다 위를 가득 메운 양식 어구들, 그 너머로 남도의 뭍과 섬들이 어우러져 있다.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 흘러가는 어선이 아니었다면 그림으로 착각할 만한 풍경이다. ●거대한 인공 호수엔 30여종 겨울 철새의 ‘화려의 군무’ 해남에는 거대한 인공 호수가 세 곳 있다. 모두 겨울철 탐조 여행으로 이름난 호수다. 영암과 경계를 이룬 영암호는 세 호수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해마다 30여종의 겨울 철새가 찾는 철새 도래지이기도 하다. 특히 가창오리가 많이 찾는다. 11월부터 도래하기 시작해 12월쯤 최대 개체수를 이룬다. 올해도 30만여 마리가 찾아와 군무를 펼치고 있다. 이웃한 금호호엔 목재데크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탁 트인 호수 주변을 걷는 맛이 각별하다. 고천암호는 국내 최대 규모의 갈대밭이 있는 곳이다. 호수와 간척지 등을 합친 둘레가 14㎞에 달한다. 차를 타고 다니며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윤두서 고택도 둘러볼 만하다. 조선의 선비화가 공재 윤두서가 기거했던 고택이다. 조선 후기의 건축양식이 살아 있는 건물로 1670년 지어져 1811년에 중수된 것으로 추정된다. 건립 당시엔 48칸 규모였으나 문간채와 사랑채는 사라지고 현재 안채와 곳간, 헛간, 사당 등이 남아 있다. 글 사진 해남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 (지역번호 061) →가는 길 : 여낭터 찾기가 쉽지 않다. 땅끝마을에서 77번 국도를 타고 송지면사무소 앞 네거리까지 간 뒤 어란항 방면으로 좌회전한다. 어란항 초입에 세워진 이정표를 보고 우회전해 마을로 들어간 뒤 두 번의 갈림길에서 모두 좌회전해 곧장 간다. 야트막한 언덕을 넘고 나면 제주~해남 간 전력변환소가 나온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30m 정도 걸으면 작은 묘가 나오고, 그 옆으로 난 소로를 따라 20분 정도 걸으면 여낭터다. 어란마을 석등롱은 어란항 뒤편의 골목길을 따라 끝까지 간 뒤 민가 건물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면 나온다. 해남관광안내소 532-1330. →맛집 : 해남 읍내 천일식당(536-4001)은 떡갈비와 한정식으로 이름났다. 계절 별미로는 삼치회가 꼽힌다. 햇김에 흰 밥과 묵은 김치, 삼치 선어 등을 올려 먹는다. 이학식당(532-0203) 등이 알려졌다. 땅끝마을 쪽에서는 땅끝바다횟집(534-6422), 본동기사식당(535-2437) 등이 맛집으로 입소문 났다. →잘 곳 : 땅끝비치(534-1002)는 한국관광공사에서 지정한 굿스테이 업소다. 땅끝마을 언덕에 있다. 유선장여관(534-2959)은 각종 여행서와 언론 매체 등에 오르내리며 명소 반열에 오른 숙소다. 영화 ‘서편제’ 촬영지이기도 하다.
  • [新국토기행] 눈꽃에 숨은 장성의 푸름

    [新국토기행] 눈꽃에 숨은 장성의 푸름

    서울에서 내려오면 가장 먼저 만나는 전남의 관문인 장성군은 호남의 중심이다. 전북과는 경계를 이루고 광주시와 접해 있고 사통팔달 도로가 연결돼 있어 어느 곳에서나 쉽게 찾아갈 수 있다. 예로부터 장성은 ‘산이 둘러 있고 물이 굽이쳐 스스로 하늘을 이뤘다’고 표현하듯 자연이 만들어 낸 빼어난 경관과 수려한 풍광이 으뜸인 고장이다. 호남에서 유일하게 문묘에 배향된 하서 김인후 선생을 기리는 필암서원을 비롯해 고산서원, 봉암서원 등 유서 깊은 문화자원이 곳곳에 남아 있는 문향의 고장으로 알려졌다. 소설 홍길동이 실제 살았다는 아치곡, 동학농민군이 싸웠던 황룡전적지 등이 고스란히 전해온다. 장성은 최근에는 ‘옐로시티’라는 새 이름으로 불린다. 옐로시티는 사계절 내내 노란색 꽃과 나무가 가득하고 물과 인간이 공존하는 자연친화적 도시를 의미하는 것으로, 장성이 꿈꾸는 미래다. 밝은 노란빛 이미지를 느낄 수 있는 예술적 감성이 가득한, 사계절 활력과 매력이 넘치는 고장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자연의 멋과 문화 그리고 노란색의 감성이 가득한 팔색매력 장성은 찾을수록 푹 빠지는 색다른 매력을 느끼게 한다. 인구는 4만 7000여명이다. >>볼거리 ●피톤치드향 가득한 치유의 숲 축령산 편백림 전북 고창과 경계를 이룬 축령산에는 40~50년생 편백나무와 삼나무 등 사시사철 푸른 상록수림대가 1150㏊에 걸쳐 울창하게 펼쳐져 있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나무들이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내고 건강한 나뭇잎에서 뿜어 나오는 피톤치드는 특유의 향을 풍기며 산을 찾은 이들에게 청량한 기분을 선물한다. 축령산은 전국 최대의 조림 성공지로도 유명하다. 춘원 임종국 선생이 한국전쟁 뒤 폐허가 된 벌거숭이 산에 30년간 사재를 털어 묘목을 심고 물을 주고 가꾸며 편백림을 직접 일궜다. 촘촘히 뿌리 내린 편백나무마다 산을 사랑했던 그의 열정이 느껴진다. 산을 오르다 보면 중턱에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한 조림 공적비가 세워져 있다. 잠시 쉬면서 임 선생 평생에 걸쳐 보여 준 헌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도 좋다. 삼림욕을 즐기기 가장 좋은 곳인 축령산은 2014년 사단법인 생명의 숲 국민운동으로부터 ‘22세기를 위해 보존해야 할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축령산에는 널찍한 임도가 곳곳으로 뻗어 있어 가벼운 산책이 가능하다. 안내도를 따라 오솔길로 들어서면 더욱 진한 피톤치드향이 온몸을 감싸며 상쾌한 기분을 선사하고 곧게 뻗은 나무들로 편백림이 만들어 내는 이국적 정취에 흠뻑 빠지기도 한다. 천천히 걸으며 삼림욕을 즐기는 데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취향에 따라 숲속에 조성된 데크에 누워 독서나 명상을 즐길 수도 있다. 축령산의 매력을 더 깊게 느껴 보고 싶으면 산림청 ‘장성편백 치유의 숲’에서 운영하는 ‘산림치유프로그램’에 참여하면 된다. 특히 청소년, 환우, 임산부 등을 위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고 숲 해설가가 함께해 더욱 알차게 숲의 속살을 체험할 수 있다. ●천년의 역사가 숨쉬는 백양사 백암산을 뒤로하고 가인봉과 백학봉 사이 골짜기에 자리잡은 백양사는 백제 무왕 때 세워졌다고 전해지는 명찰로 애기단풍과 비자나무 숲, 고불매 등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장성의 대표 관광지다. 백양사에는 보물인 소요대사부도를 비롯한 극락보전, 대웅전, 사천왕문, 청류암, 관음전 등의 국가 문화재들이 가득하다. 담장에 기대어 있는 고불매와 비자나무 숲과 같은 천연기념물도 볼 수 있다. 이곳은 사계절 내내 멋진 풍경을 만들어 내지만 특히 가을에는 색이 고운 애기단풍이 사찰과 백암산을 물들이기 시작하면 백양사는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단풍객들과 추억을 만들려는 연인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백양사로 향하는 길에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백학봉을 배경 삼아 맑은 연못에 비치는 쌍계루와 붉은 단풍이다. 수정처럼 맑은 물이 가을의 풍경을 그대로 담아내고 가을 햇살이 더해지면 환상적인 풍경이 연출돼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최고의 단풍 사진 촬영지로 손꼽는다. 백양사를 품은 백암산은 많은 등산객들이 찾는 명산 중 하나로 사계절 사랑받는다. 특히 전남대수련원에서 오르는 등산길 중간에는 장성 8경 중 하나인 입암산성 일부가 온전히 보존돼 있어 역사의 발자취도 느껴볼 수 있다. 입암산성은 삼국시대부터 전라도를 지키려는 군사 목적으로 쌓은 성으로 계곡능선을 따라 3.2㎞의 성이 남아 있다. 정연하게 쌓은 성벽이 무너지지 않고 많이 남아 있는 데다 남·북쪽 두문의 흔적까지 있어 웅장했던 성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피와 땀으로 나라를 지키려던 조상들의 숨결이 들리는 듯한 매우 유서 깊은 호국유적지다. 지금은 그 형태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성곽과 윤진의 순의비가 있고, 가을 억새는 장관을 이룬다. ●호수를 품은 숲길, 장성호 호반길 장성호의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더위를 씻어 주는 기분 좋은 숲길이다. 호수를 배경으로 울창한 숲이 이어지는 장성호 호반길은 자연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입소문 난 트레킹 명소다. 장성읍내와 넉넉한 들녘 풍경을 바라보며 걸을 수 있는 고즈넉한 숲길로부터 시작되는 호반길은 댐이 만들어지기 오래전, 마을주민들이 오갔던 길이다. 한동안 사람의 발자취가 사라졌지만 최근 자연 그대로의 경치를 간직한 아름다운 길로 다시 주목받는다. 지금은 장성군이 호수를 중심으로 명품 둘레길을 만들기 위해 곳곳에 끊겨 있는 길을 나무 데크로 잇고 쉼터를 만들어 걷기 좋은 길로 다듬고 있다. 숲길 군데군데 쉼터도 만들었다. 모두 호수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이다. 힘든 길은 아니지만, 잠깐잠깐 멈춰 서서 풍광을 내려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정적을 깨며 호수를 가르는 보트의 자태도 멋스럽다. 장성호 건설로 대를 이어 살아온 고향을 등져야 했던 이들을 위한 수몰문화관이 있어 장성호의 과거도 잠깐 엿볼 수 있다. 또 한국 영화계의 거장이라고 인정받는 임권택 감독의 영화세계를 만날 수 있는 임권택 시네마테크도 이곳에 있다. 시와 글, 그림과 어록을 주제로 갖가지 조각 작품이 세워진 조각공원도 있어 예술을 즐기며 송골송골 맺힌 땀을 식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 홍길동 테마파크 홍길동의 고장으로도 유명한 장성 황룡면 아곡마을에 ‘홍길동 테마파크’가 넓게 조성돼 있다. 테마파크는 홍길동 생가를 비롯해 산채, 전시장, 야영장 등이 있어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홍길동 생가는 자리를 옮겨 원형대로 복원했고 전시관에는 출토된 유물과 홍길동 관련 자료인 영상물, 연구논문, 문학작품 등이 함께 전시돼 있다. 또한 테마파크 곳곳에 아기자기한 조형물과 예쁜 쉼터, 꽃밭이 꾸며져 있고 광장에는 분수대가 있어 한여름 어린아이들의 단골 놀이터가 되기도 한다. 어린이들에게 가장 큰 인기를 얻고 있는 ‘4D 영상관’은 장성군이 제작한 홍길동 애니메이션 ‘홍길동2084’와 ‘Let’s go 활빈당’을 상시 상영하고 있어 어린이들로 북적인다. 이 밖에도 풋살경기장같이 가볍게 몸을 풀고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넓은 공간이 많아 가족단위 관광객들에게 더욱 큰 사랑을 받는다. 많은 이들이 홍길동 테마파크를 찾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캠핑장이다. 테마파크에 있는 야영장은 텐트를 설치할 수 있는 나무데크가 25개 조성돼 있고 주변에 취사장, 샤워장, 화장실, 매점 등 다양한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최적의 캠핑장으로 손꼽힌다. 기본적인 캠핑시설은 저렴한 가격에 대여가 가능하고 바로 옆에도 오토캠핑장이 있어 개성에 따라 선택해 즐길 수 있다. 바로 옆에는 이 마을에서 태어난 박수량 선생의 청백리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청백당’이라는 한옥펜션이 지어져 고즈넉한 하룻밤을 보내기에도 좋은 곳으로 한번쯤 가족과 함께 머무르기 좋다. ●영화계 거장의 작품 조명한 임권택 시네마테크 장성호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장성이 낳은 영화계 거장인 임권택 감독의 삶과 작품세계를 조명하고 업적을 기리기 위한 ‘임권택 시네마테크’가 들어서 있다. 2014년 개관한 이곳은 상영관과 전시관, 영화 관련 연구 및 커뮤니티를 위한 공간이 있다. 2018년까지는 무료로 개방할 예정이다. 시네마테크가 있는 문화예술공원은 넓게 펼쳐진 장성호를 배경으로 103점의 시·서·화 어록을 새긴 멋진 조각작품이 설치돼 관광객들이 공원을 거닐며 문학적 재미를 느끼도록 해 준다. ●오솔길의 낭만 찾는 캠핑족들의 천국, 남창계곡 입암산 남쪽에 있는 남창계곡은 은선동, 자하동 등 여섯 갈래로 이뤄져 길이가 십여리에 이른다. 계곡마다 크고 작은 폭포와 기암괴석이 늘어서 있는 모습은 마치 선계에 들어선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온갖 새소리가 그치지 않는 울창한 수목과 산천어의 작은 움직임까지 들여다보이는 수정처럼 맑은 계곡물과 계곡을 따라 지루하지 않게 이어지는 오솔길은 남창계곡이 자랑하는 가장 빼어난 멋이다. 여름철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대표적인 피서지로 인기가 높고 최근에는 맑은 공기를 마시며 캠핑을 즐기려는 레저족의 발길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먹거리 ●단풍나무 수액으로 만든 흑두부 단풍나무 수액으로 만든 전통 손두부가 별미로 꼽힌다. 두부가 들어간 버섯전골과 단풍두부묵 등을 즐길 수 있고, 청국장도 맛이 좋아 백양사를 찾는 이들이 즐겨 찾는다. ●여름엔 꿩 샤부샤부, 겨울엔 꿩 떡국 꿩은 예로부터 기력을 증강시키고 소화기능을 돕고 간 기능을 원활하게 하고 피부의 염증을 제거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심이나 등심 같은 부위는 적당한 두께로 썰어 샤부샤부와 육회, 탕수육, 떡국 등으로 먹는다. 여름에는 샤부샤부, 겨울에는 떡국을 즐겨 먹는다. ●얼었다 녹았다 반복해 달달한 장성 곶감 맛이 달기로 유명하다. 품종은 주로 대봉이며 감나무들의 수령이 높아 열매가 크고, 육질이 단단하다. 자연 바람으로 말리는 이곳 곶감은 다른 지역과 달리 빛깔이 그리 곱지 않다. 늦가을부터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해 당도가 높다. 특히 절반만 말린 반건시가 부드러워 인기를 끌고 있다. ●자양 강장의 아이콘 메기찜·메기매운탕 강에서 갓 잡은 메기에 온갖 채소를 넣고 끊인 메기매운탕은 향긋하고 비린내도 나지 않아 식욕을 돋워 주는 음식이다. 자연산 메기에 각종 양념으로 맛을 낸 메기찜은 담백하고 향긋해 맛을 아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메기찜은 담백하고 칼칼하며 매콤한 맛은 물론 자양 강장의 효과까지 뛰어나다. ●축령산 경치와 함께 즐기는 한방약오리 축령산 자락에서는 황귀, 녹각, 예덕나무 등 각종 약재를 넣어 끓여 낸 한방약오리를 맛볼 수 있다. 축령산 계곡물에 발을 담글 수 있어 더운 여름날 피서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깔끔하게 나오는 신선한 나물 등 담백한 밑반찬과 함께 오리백숙과 닭백숙, 떡갈비까지 기호대로 골라 먹을 수 있다. 장성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사설] 재벌 총수들의 전경련 탈퇴 언급에 주목한다

    나라 밖에서 보자면 아주 진기했을 풍경이 어제 국회에서 펼쳐졌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기업 총수 9명이 청문회 증언대에 한꺼번에 나란히 앉았다. 지구촌 경제의 한 축을 움직이는 거대 기업의 수장들이 정권의 비위를 맞추느라 뒷돈을 바쳤는지를 놓고 온종일 추궁당했다. 권력과 재벌이 낳은 후진적 짬짜미 의혹을 대체 우리는 언제쯤에나 벗어날 수 있을지 답답한 마음이다. 어제 대기업 총수들의 청문회장 무더기 증인 출석은 28년 만이었다. 1988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일해재단 모금 청문회 때에도 재벌들은 “이런 관행을 반드시 근절하겠다”고 입을 모아 약속했다.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었는데도 답변은 달라진 게 없었다. 미르·K스포츠 재단에 출연한 자금 성격을 추궁하는 질문에 총수들의 대답은 한목소리였다. 청와대의 출연 요청은 거절하기 어려웠다며 강제성은 일부 시인하면서도 사업 특혜나 총수 사면 등 대가성 거래를 했다는 의혹은 부인했다. 검찰 조사에서도 밝혀지지 못한 대가성 여부가 청문회에서 새삼 가려질 것을 기대하기는 애당초 어려웠다. 그래도 “기업 입장에서는 정부 정책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라는 총수들의 해명에 국민의 회의는 더 깊어진다. 28년 전 5공 청문회에 출석했던 재벌 총수들의 아들이 이번에도 무려 6명이었다. 정경유착의 검은 고리가 여전히 공고하게 대물림된 현실이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대기업들로서는 억울한 부분도 있을 수 있다. 살아 있는 최고 권력이 독대한 자리에서 이런저런 취지로 금전적 지원을 요청했다면 거절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청문회에서 “독대 당시에는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다”는 옹색한 해명까지 했다. 백번 접어 대가성 없는 기부였다고 한들 재벌들이 순전히 피해자라고 생각할 국민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촛불 집회에 나온 수많은 시민은 “재벌도 공범”이라는 손팻말을 들고 다닌다. 세무조사나 검찰 수사 등 기업 현안들을 권력과의 뒷거래로 무마하려 한 흔적이 줄줄이 드러난 마당이다. 기업들이 빌미를 주지 않았다면 권력 실세들의 ‘삥 뜯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밀실 독대로 정권의 비위를 맞춘 의혹에만도 국민 분노가 어느 때보다 거세다. 촛불 민심은 박 대통령의 퇴진과 함께 그룹 총수들의 구속을 외치고 있을 정도다. 권력 입맛이나 맞추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를 해체하라는 성난 목소리가 지금처럼 높았던 적도 없다. 삼성, SK, LG 등 간판 재벌들이 청문회에서 전경련 탈퇴 의사를 밝혔다. 민심을 이길 수 있는 공룡은 세상에 없다. 재벌과 권력의 야합 의혹은 이번 청문회로 기필코 마침표가 찍혀야 한다. 대기업들이 화급을 다퉈 그야말로 환골탈태 의지를 보여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백만 촛불이 ‘재벌 개혁’을 외치는 것은 시간문제다.
  • [길섶에서] 엘리베이터 안 풍경/임창용 논설위원

    출근할 때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탔는데 한두 번 본 듯한 30대 여성이 “안녕하셨어요?” 하고 인사를 건넨다. 순간 당황해 “아, 네~” 하고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고 말았다. 한데 여성의 아들인 듯한 네댓 살배기 아이까지 “안녕하세요” 하고 고개를 꾸벅 숙이는 게 아닌가. 그제야 제대로 답례를 했다. “참 씩씩하네. 인사도 잘하고.” 집 엘리베이터를 타면 어색할 때가 많다. 누군가 함께 있을 때 그렇다. 분명히 우리 집 라인의 주민인 듯한데 먼저 아는 척하기가 쉽지 않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휴대전화나 게시물에 시선을 두고 있다. 그러다 문이 열리면 쌩하고 제 갈 길을 간다. 마치 긴 시간을 견디기 어려웠다는 듯이. 아파트살이 25년째지만, 이런 풍경은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그 모자(母子)와의 조우 같은 흐뭇한 정경은 행운으로 여겨질 정도로 드물다. 이웃사촌이라는데, 십수년 한 건물에 살면서도 그렇게 데면데면할 수가 없다. 그러니 윗집 아이가 뛰어논다고 올라가 주먹다짐하는 사람까지 생기는 게 아닐까. 엘리베이터에서 인사만 반갑게 나눠도 층간소음 다툼이 크게 줄 것 같다. 오늘 먼저 인사하는 용기를 내 볼까. 임창용 논설위원 sdragon@seoul.co.kr
  • [新전원일기] 혹독한 겨울 · 꽃피는 봄 · 영그는 여름 · 달콤한 가을

    [新전원일기] 혹독한 겨울 · 꽃피는 봄 · 영그는 여름 · 달콤한 가을

    다른 계절은 모르겠지만, 가을은 분명 그 절정이 있다. 곧 떨어질 잎들이 가장 선명하게 물든 날, 그런 날이 가을의 절정이 아닐까. 충북 괴산의 사과 농장인 ‘가을농원’으로 내려가던 날, 거리의 은행잎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자동차로 세 시간을 달려 도착한 괴산 설운산은 이미 겨울이었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들로 산은 황량했다. 아직까지 마른 잎을 달고 있는 낙엽송 군락만 황토빛으로 보였다. 사과향이 밀려 나온다. 사과 농원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한 것은 창고 안에 가득한 사과 향기였다. 나무에 아직 사과가 매달려 있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며칠 전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다는 기상 예보에 모두 따 버렸다고 한다. 창고 앞 비탈진 땅에 사과나무들이 늘어서 있다. 그 가지에 사과가 매달려 있는 풍경은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 서울서 전파상하다가 귀농… 첫해 매출 2400만원 손홍철(57)·박종임(54) 부부가 아무런 연고도 없는 설운산 자락에 자리를 잡은 것은 1997년 4월이다. 괴산에 내려오기 전에는 서울에서 전자 제품을 수리하거나 에어컨을 설치해 주는 전파상을 운영했다. 부부가 함께 가게에 매달려야 했다. 아직 어렸던 두 아이를 어린이집에, 유치원에 하루 종일 맡겨야 했다. 시골에 내려가서 살면 애들에게 더 신경을 쓸 수 있고,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귀농을 결심했다고 한다. “처음 3년 동안 너무 힘들어서 몇 번이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려고 했어요. 과수원 땅이 운동장처럼 딱딱해서 큰비가 오면 빗물에 나무들이 쓰러졌어요. 그 무거운 나무들을 둘이서 세웠어요. 그땐 주위에 사람들이 없어서 오로지 둘이서 그 일을 해야 했어요. 어느 날 비를 맞으며 나무를 세우는데 나무가 무거워 잘 세워지지 않는 거예요. 나는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남편이 좀더 힘을 써 보라고 소리치더군요. 그때 제가 이렇게 말했어요. 차라리 나를 사과나무 밑에 묻으라고. 지금은 웃으며 얘기하지만 그때 정말 힘들었죠.” 사과 농사가 이렇게 힘든 줄 알았으면 시작하지 않았을 거라고 한다. 1년쯤 지나자 서울에서 가지고 왔던 돈도 떨어졌고, 첫해 매출은 2400만원에 불과했다. 할 수 없이 남편 손씨는 여름 동안 서울로 전자대리점 일을 하러 다녔다. 3년간 그렇게 살았다. 자연 속에서 아이들을 키우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도 이상에 불과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쉴 틈이 없었다. 오로지 농사일에만 매달려야 했다.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으리라는 것도 꿈이었다. 아침밥만 겨우 먹여서 학교에 보내 놓으면 언제 돌아왔는지도 몰랐고, 간식 한번 제때 챙겨 준 적도 없을 만큼 바빴다. 서울에 살 때는 그나마 일요일이면 약수터라도 같이 가곤 했는데, 그야말로 이상과 현실의 간극은 너무 컸다. 수확한 사과를 파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첫해엔 예전에 살았던 서울 대치동에 가지고 가서 아는 사람들에게 팔았다. 그것도 부담스러워 이듬해에는 서울 가락동 시장으로 갔다. 품질이 좋아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높은 가격에 낙찰받은 것은 농사꾼으로서 큰 보람이었다. 하지만 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눈 내리는 고속도로에서 위험천만한 일을 겪은 후로 가까운 충북 청주로 판로를 바꿨다. 그때 포기하고 다시 서울로 갔다면 오늘의 ‘가을농원’은 없었을 것이다. 힘들면 힘들수록 포기할 수 없는 힘이 생겼다고 한다. # 사과나무에 미친 남편 “어느 날 남편이 그러더라구요. 이대로 못 떠나겠다고. 떠나더라도 사과 농사를 성공해 놓고 떠나야겠다고. 그때부터 남편은 사과나무에 미쳤어요. 농촌진흥청으로, 농업기술센터로 교육을 받으러 전국을 돌아다녔어요. 오로지 사과나무에만 신경 썼어요. 그래서 제가 나무꾼이라고 별명을 붙여 줬어요. 사과나무에 미친 사람이라고. 선녀와 나무꾼이 된 거죠.” 1999년 농림부(현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전국의 109개 농가를 선정해 홈페이지를 만들어 주는 사업에 뽑혔다. 한국농림수산정보센터에서 농가의 홈페이지를 만들어 주고 관리·교육시켜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아내 박씨는 수원으로 컴퓨터 교육을 받으러 다녔다. 농업인은 홈페이지가 뭔지도 모를 때였는데 홈페이지를 구축해 주고 관리해 주는 프로그램 덕분에 인터넷을 통한 판매가 가능해졌다. 부부가 사과 농사에 몰두하는 동안 두 아들이 가장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큰아들은 도시로 가고 싶다고 해서 서울로 중학교를 보냈다. 어린 나이에 혼자 자취를 하며 학교를 다닌 것이다. 농사일을 하면서 떨어져 사는 큰아들까지 신경 써야 했다. 아내 박씨는 버스를 네 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먼 길을 오르내리며 뒷바라지를 했다. 그야말로 눈물로 보낸 세월이었다. “EBS 한국기행 촬영을 할 때, 둘째 아들에게 피디님이 물었어요. 엄마 아빠를 사과에 비유하면 어떤 사과라고 하고 싶냐고. 아들이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우리 엄마 아빠는 감히 사과에 비유할 수 없다고. 그 말을 듣는데 눈물이 나오더라구요.” ‘가을농원’은 초생재배를 한다. 풀을 뽑지 않고 가꾸는 초생재배는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아서 제초 노력을 경감시킬 뿐만 아니라 토양 침식을 방지하고, 지력을 증진시키는 농법이다. 극처방에만 소량의 비료를 사용하고, 퇴비를 만들어 쓴다. 쌀겨나 전지목을 파쇄해 발효시킨 것을 퇴비로 사용한다. 부부가 친환경 농사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있었다. “초등학생이었던 둘째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물고기가 다 죽어 있는 것을 봤나 봐요. 누가 쓰고 남은 농약을 개울에 버려서 물고기가 죽은 거죠. 아들에게 그 광경이 굉장히 충격적이었는지 아들이 울먹거리더라구요. 아들의 말이 심각하게 들렸어요. 그때부터 환경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어요. 풀을 기르고, 제초제를 쓰지 않는 친환경 농사를 짓기 위해 자연농업학교에 가서 교육도 받았어요.” # 하얀 미생물꽃이 피어나는 가을농원 땅을 다시 살리려는 농부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해가 갈수록 땅이 달라졌다. 빗물이 스며들 틈도 없었던 딱딱하던 땅이 푹신해졌다. 비가 오면 흙이 씻겨 내려가 나무들이 쓰러졌는데 이제 땅이 빗물을 흡수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미생물이 살아 있는 땅은 하얀 ‘미생물꽃’으로 뒤덮였다. 나무들도 젊어졌다. 베어 버리는 게 나을 것 같았던 나무들이 점점 싱싱해져 탐스러운 사과가 열렸다. 사과 농사는 일 년 내내 손이 간다. 가을 수확이 끝나면 퇴비를 준다. 퇴비의 양분은 겨울 동안 눈과 함께 땅으로 스며든다. 잎이 다 떨어지고 나면 본격적으로 가지치기에 들어간다. 가지치기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사과가 얼마나 달릴지 결정이 되므로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가 없다고 한다. 가지치기는 3월까지 계속된다. 4월엔 꽃눈 따기, 5월엔 액화 따기가 이어진다. 그리고 정화가 꽃을 피우면 열매 솎기, 다음엔 중심화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 꽃을 다 따내는 2차 적과(열매솎기)를 한다. 여름 내내 풀베기와 방제 작업. 그러다 가을이 되면 잎 따기, 반사필름 깔기, 알 돌리기. 그 모든 과정을 거쳐야 사과를 수확할 수 있다. 수확이 끝나면 판매하는 일과 다시 퇴비 주는 일이 기다리고 있다. 사과 하나에 일 년의 수고로움이 담겨 있다. # 소비자 모두가 가을농원 가족 가을농원의 연간 매출은 1억 5000만~2억원 정도다. 판매의 90%는 인터넷 직거래로 이뤄지고, 나머지는 친환경 매장으로 나간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해 주는 택배를 통한 직거래는 여러 가지 좋은 점이 많다. 소비자는 싱싱한 농산물을 좀더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고, 생산자는 판로에 대한 걱정을 덜 수 있다. 무엇보다 생산자는 소비자의 반응을 직접 들을 수 있어 좋다고 한다. 아내 박씨는 가을농원의 소비자들을 ‘가을농원 가족’이라고 불렀다. “우리 가족이 먹을 거라고 생각하고 농사를 지어요. 돈만 생각하면 농사는 힘들어요. 먹거리는 생명과 직결된 문제니까 중요하죠. 농업은 단순히 경제적 가치로만 따질 수 없어요. 이제 사과가 참 예뻐요. 봄에 뾰족하게 꽃눈이 나오고, 그 꽃눈이 커서 꽃이 되고, 가을이면 영글어 사과가 주렁주렁 달린 걸 보면 꽃보다 예뻐요. 그걸 가을농원 가족들과 나눠 먹는다고 생각하면 보람 있고 기쁘죠.” 가을농원에서는 귀농이나 귀촌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해 주고, 때로는 실습의 기회도 주고 있다. 사과가 영글면 사과 따기 체험을 하러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든다. 직장인 워크숍 프로그램으로, 혹은 친구들 친목 모임에서 참가 신청을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체험 학습을 올 때는 감회가 남다르다고 한다. “자연 속에서는 지혜를 배울 수 있어요. 저도 어릴 때 아버지가 농사짓는 걸 보면서 은연 중 감성을 키우고 삶의 지혜를 배웠던 것 같아요. 논둑길을 걷고, 소꼴 베는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사람을 키우는 일은 그 가치를 측정할 수 없는 귀한 일이죠. 마당에서 보물찾기도 하고, 게임도 하고, 농원에 올라가서 사과 따기 체험도 하는 아이들을 보면 가끔 우리 애들 생각이 나요. 정작 우리 애들에게는 못해 줬는데 싶어서 미안한 마음이 들죠.” 꽃을 유난히 좋아하는 아내 박씨는 서울에 살 때도 아이를 업고 꽃꽂이를 배우러 다녔다고 한다. 괴산에 내려와서는 밤에 청주대까지 오가며 꽃차 만드는 법을 배웠다. 분꽃, 맨드라미, 국화, 산동백 등을 손질해 닦고 말려서 꽃차를 만든다. 가톨릭농민회 회원으로서,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 리포터로서 대외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살아야 할 세상이기에 그들에게 좀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어서 뭔가 하고 싶다고 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이미 어둑했다. 일기예보대로 이슬비가 내렸다. 비 때문에 흐려진 도로 위 뿌옇고 흐릿한 불빛 때문인지 긴 이야기의 터널을 이제 막 빠져나온 것 같았다. 사과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사과 농사를 시작했는데 지금은 사과가 너무 예쁘다던 농부의 말이 생각났다. 우연히 만났다가 뭔지 모르고 시작된, 그러나 주어진 고난을 참고 보듬을 줄 알았던 한 편의 사랑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았다. 해피엔딩으로 끝난 그 사랑 이야기가 창고에 가득했던 사과 향기처럼 달콤했다. 그리고 왠지 좀 아련했다. ■글쓴이 소설가 강진 2007년 ‘현대문학’을 통해 단편소설 ‘건조주의보’로 등단. 소설집 ‘너는, 나의 꽃’, ‘피크’(공저), ‘캣캣캣’(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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