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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미술의 향수] (5.끝) 빛과 색채의 화가 르누아르

    [현대미술의 향수] (5.끝) 빛과 색채의 화가 르누아르

    르누아르(1841∼1919)는 인간의 영원한 아름다움에 매달렸다. 밝은 태양을 사랑한 그의 화폭에 어두운 구석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굳이 해설이 없어도 된다. 아름다움을 느끼면 될 뿐, 미술사적 의미나 구구한 이론과는 거리가 멀다. 시공을 초월해 르누아르가 사랑받는 이유다. 그의 작품은 몰아치는 속도와 경쟁에 시달리는 우리가 편안히 쉴 수 있는 그늘이자 ‘오아시스’다. “나에게 그림은 적어도 사랑스러운 가치가 있어야 하고 즐거울 수 있어야 된다. 특히 아름다워야 한다. 세상에는 즐거울 수 있는 것이 너무나 많고 그런 즐거운 것들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르누아르는 평생 아름다움만을 추구했다. 어찌 세상이 아름다울 수만 있을까? 하지만 그의 그림에는 예쁜 여자 아이와 통통하게 살찐 풍만한 여인의 나체, 꽃과 나무 같은 아름다움의 상징이 말을 건넨다. ●작고 평화로운 마을에서 전시회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크렘스. 푸른 도나우 강이 시골 마을을 끼고 흐르고, 흐드러지게 널려 있는 포도밭에는 포도주 향기가 넘쳐나는 고장이다. 저 멀리 언덕바지에 고성과 수도원이 자리잡은 고즈넉한 분위기의 이곳은 백포도주 맛이 좋다. 농가의 주민들은 앞마당에 식탁을 몇개 차려놓고 손님들을 맞이한다. 자신이 빚은 포도주에 햄, 소시지 같은 요리로 지나가는 이들을 유혹한다. 농부의 땀이 배어든 오스트리아 가정식 요리다. 르누아르는 프랑스 출신이지만, 오스트리아의 이 작고 평화로운 마을에 자리한 쿤스할레 미술관에서 자신의 특별 전시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으면 무척 기뻐할 것이다. ‘르누아르와 인상파 화가의 여성’(4월2일∼7월31일)을 테마로 한 이 특별전에는 그의 작품 40점을 포함, 동시대에 활동한 인상파 화가 19명의 작품 120점이 전시되고 있다. 인구 2만∼3만명의 작은 마을이지만 주말에는 2000∼3000명이 몰릴 정도로 인기가 높다. 타이푼 벨진(49) 미술관장은 “빈으로 출장 온 세계 각국의 비즈니스맨들이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르누아르를 만나기 위해 즐겨 찾는다.”고 말했다. 르누아르의 사랑스럽고 따뜻한 작품 성격 때문인지 어린이들을 동반한 가족들이 눈에 많이 띈다. ●아름다운 것이 좋아 미술관 1층에는 19세기에 활동한 화가들의 그림이 걸려 있다. 르누아르의 그림과 당대의 다른 화가들의 작품을 비교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했다. “풍경화에선 한가롭게 노닐고 싶게 만드는 그림이 좋고, 여자 인물화에선 젖가슴이나 등을 손으로 만져 보고 싶게 만드는 그림이 좋다.” 르누아르의 이같은 생각을 담은 작품들은 2층 전시실에 펼쳐져 있다.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그림은 ‘책 읽는 가브리엘’(1906년). 빨간 앞치마를 두르고 책을 읽는 그녀의 진지한 표정을 보면 도무지 나쁜 짓을 할 수 없도록 하는 성경책을 넘기고 있는 것 같다. 르누아르가 가장 이상적인 여성으로 생각한 사람은 바로 자신의 아이들을 돌보던 유모 가브리엘. 그가 즐겨 그린 둥글둥글한 품새의 얼굴과 엉덩이를 가진 여인에서는 깊은 영혼의 향기가 풍기고 있다. ‘아기를 안은 알게리아인’(1882년)은 ‘빛’이라는 특성을 잘 활용한 전형적인 인상파 색채의 작품이다. 아기를 안은 여인의 옷을 보고 당시 사람들은 “옷도 아니다.”고 비웃었다. 심지어 “그림도 아니다.”라는 혹평을 받을 정도였다. 타이푼 벨진 미술관장은 “르누아르는 흰 옷에 파란색을 칠해 명암을 표현했는데 이는 당시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화법이었다.”며 “그늘진 곳을 검은색이나 회색으로 표현했던 당시 화풍에선 엄청난 ‘혁명’이었다.”고 말했다. 르누아르는 여성의 벗은 몸이나 목욕하는 모습을 많이 그렸다. 그에게 여성의 나체는 아름다움이 샘솟는 원천이었다. ●르누아르에게 여성은? 르누아르의 여성은 당대 다른 화가들과 사뭇 다르다. 많은 화가들이 여인을 그렸지만, 그처럼 포근하면서도 따뜻한 향기를 가진 여인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거리에 나앉은 채 젖을 물리고 있는 어두운 표정의 여인을 그린 페르난드 펠레츠의 ‘집없는 사람들’(1883년), 깨진 그릇과 빵조각이 흩어진 문가에 기대 앉은 한 노파가 등장하는 에드가 드가의 ‘로마의 구걸하는 여인’(1857년) 등을 보면 도무지 같은 시대 사람들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특히 이번 전시장에는 르누아르와 드가의 작품 세계가 나란히 전시, 확연히 비교되도록 했다.‘나는 춤추는 사람을 그리는 화가’라고 얘기한 것처럼, 드가는 발레리나를 많이 그렸다. 그의 발레리나는 아름다움의 상징이 아니다. 힘든 동작을 취하기 위해 힘들게 ‘노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펠레츠의 발레리나도 힘들고 무표정한 표정이다. 미술관 연구원으로 전시장 가이드를 맡은 미하일 폴츨(27)씨는 “르누아르는 기분을 좋게 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는 자세로 작업에 몰두했다.”고 말했다. ●마지막 10년은 손에 붕대 감고 작업 실제로 그가 그린 여자들은 모두 아름답고, 그가 그린 아이들은 모두 착한 아이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우울한 그림을 한번도 그려본 적이 없는 유일한 화가가 르누아르가 아닐까? 그러나 그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려운 환경에서 작품 활동을 했다. 그의 그림에서 가난과 고민스러운 날들의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 는 생애 마지막에 관절염으로 고생했다. 붓을 직접 들 수 없어 다른 사람이 마비된 손가락 사이에 붓을 고정시켜줘야만 했다. 그가 변함없이 아름다운 인간의 몸을 그리려고 한 것은 어찌보면 자신의 몸이 불편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르누아르는 관절염으로 고생하면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 말년 작품에서는 그의 육체적 고통이 절절하게 배어나온다.‘사람이 있는 카뉴슈메르의 풍경’(1916년)에는 손을 제대로 들 수 없어 높은 위치의 붓질을 하기 힘들어했고, 그 붓질마저 현저하게 힘이 빠진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아름다움이라는 화두는 끝내 놓지 않았다. 전시장에서 만난 헬가 킨스키(75)씨는 르누아르에 대한 사랑을 이렇게 표현했다.“르누아르의 그림은 밝고 따뜻해서 좋아요. 말년에 휠체어를 탈 정도로 건강이 나빴지만 삶의 즐거움을 표현했잖아요?” ■ 크렘스 쿤스할레 미술관 타이푼 벨진 관장 “일본을 두번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일본인들이 경쟁사회에서 힘든 일상생활을 해나가는 것을 봤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왜 우리가 르누아르를 좋아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점차 살기가 각박해질수록 우리는 아름다운 그림을 통해 평화와 안식을 얻고자 한다.” 타이푼 벨진(49) 크렘스 쿤스할레 미술관장은 르누아르가 꾸준하게 사랑받고 있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문화역사학 박사로 독일인인 그는 1년6개월 전부터 이곳 미술관의 최고책임자로 일하고 있다.2년의 준비 끝에 40여군데에서 그림을 빌리고 엄청난 예산을 투입한 이 전시회는 “이 작은 미술관에서 10년에 한번 할까 말까한 전시회”라고 자랑했다. 인상파 성격의 그림은. -르누아르는 ‘아기를 안은 알게리아인’에서 여자의 흰 옷에 파란색을 칠했다. 인상파 화가들은 아무리 흰 옷이라도 밝은 날 햇볕을 쬐게 되면 파랗게 보이는 것을 표현하고자 했다. 파란색으로 그늘을 그려 명암을 표시했다. 르누아르와 드가를 비교하면. -둘 다 목욕하는 여자의 모습을 그렸다. 드가는 여자를 목적물로 그렸다. 여자의 움직이는 순간을 포착하는데 마치 ‘아무도 보지 않는’ 순간처럼 느껴진다. 반면 르누아르는 아름답고 부드러운 선이 특징이다. 여자 모델은 마치 누군가가 자신을 그리고 있다는 의식 속에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여성을 아름답게만 본 것은 르누아르의 한계가 아닌지. -예술에는 어떤 이념이 없다. 그는 여성을 존중, 드가처럼 창녀를 그리지 않고 유모 등 자신의 주변에 있는 여성을 그렸고, 여자를 무시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르누아르가 갖는 차별성은. -기본적으로 부드러운 그림을 그렸다. 작품은 화가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변화를 갖는데, 피카소의 경우는 점점 더 각져 갔다. 여성의 모습도 딱딱하다. 하지만 르누아르는 처음부터 끝까지 둥글게 표현하고 있다. 최광숙기자 문화부 차장 bori@seoul.co.kr 협찬 Sharp Travel
  • [책꽂이]

    ●41년생 소년(문순태 지음, 랜덤하우스중앙 펴냄) ‘내 삶의 중심에는 굶주리고 나약한, 상처투성이 소년이 살고 있다. 소년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의 공포에 떨고 있다’.6·25전쟁 마지막 체험세대인 41년생 저자가 오래 벼르고 별러 떠나는 과거로의 여행길. 전쟁의 상처가 절망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9000원.●오메르타(마리오 푸조 지음, 이은정 옮김, 늘봄 펴냄) ‘대부’의 작가 마리오 푸조(1920∼1999)의 마피아 3부작 완결편. 미국 마피아 패밀리 돈 코를레오네가를 다룬 1969년작 ‘대부’는 전세계적으로 2100만부가 팔렸다.1996년 발표한 ‘마지막 대부’에 이어 생애 마지막 3년간 집필한 ‘오메르타’는 마피아 조직원들의 생리와 계율을 파헤친다.9800원.●알쏭달쏭 소녀백과사전(이기인 지음, 창비 펴냄) 2000년도 신춘문예 당선작 ‘ㅎ방직공장의 소녀들’로 등단한 시인의 첫 시집. 외설적이고 엽기적인 코드로 자본주의의 폭압적인 구조를 정조준하는 품새가 사뭇 도발적이면서 묘한 비애를 느끼게 한다.장석남 시인은 ‘쇠잔해가는 한 왕국을 들여다보는 매우 희귀한 발견이고 고백’이라고 평한다.6000원.●세상을 다 가진 남자(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 지음, 송병선 옮김, 문학수첩 펴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과테말라 작가의 청소년과 성인을 위한 동화.잠을 자는 동안 몸안의 자석이 작동해 금속을 끌어당기는 마술적 힘을 가진 남자가 온갖 금은보화를 끌어당겨 부자가 되지만 아들이 원하는 아보카도나무의 씨앗을 구하려다 아보카도 나무로 변해버린다는 환상적 이야기.8500원.●톨킨의 환상 서가(더글러스 앤더슨 엮음, 김정미 옮김, 황금가지 펴냄) ‘반지의 제왕’의 작가인 톨킨에게 영향을 준 19·20세기 환상문학을 가려뽑았다.스코틀랜드 작가 조지 맥도널드는 ‘호빗’에 영향을 주었고, 영국 작가 허거슨의 ‘새끼 고양이 뮤’에 등장하는 나무도깨비 삽화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엔트족의 모델이 됐다.1만 9000원.
  • 원작만화 느낌 그대로… 브루스 윌리스 ‘복수의 화신’ 役

    할리우드 터줏대감 브루스 윌리스와 로버트 로드리게스감독. 머릿속에서 대번 이미지의 틀이 그려지는 액션 히어로와, 스크린에서 무슨 일을 낼지 도무지 감잡기 힘든 ‘악동’ 감독. 아무래도 부조화한 만남 같은데, 이들이 작당하고 일을 냈다.30일 개봉하는 ‘씬 시티’(Sin City)에서 두 사람은 부조화의 편견을 뚫고 빚어내는 화음이 어떤 맛인지를 여보란듯 펼쳐보인다. ‘씬 시티’의 원작은 ‘그래픽 소설’이라 불리는 코믹스(만화) 장르를 개척한 프랭크 밀러의 동명만화.‘데어 데블’(2003년)의 원작을 맡기도 했던 그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공동감독으로도 참여했다. 제목에서 풍기듯 영화는 누아르를 연상시킬 만큼 어둡고 장렬한 액션 시퀀스가 인상적인 스릴러물. 범죄와 음모, 관능이 득시글거리는 도시 뒷골목을 누비는 아웃사이더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그들은 누아르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다크 히어로’(어둠의 영웅)의 이미지를 뒤집어썼다. 그 자신 만화원작의 열렬한 팬이었던 감독은 원작의 상상력을 최대한 다치게 하지 않고 스크린에 옮기는 데 주력했다. 이미 전세계적으로 두꺼운 원작의 마니아층을 만족시키려면 강도높은 자극장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을까. 흑백에 포인트 컬러를 넣는 방식의 독특한 화면부터 유별난 액션을 예고한다. 브루스 윌리스는 이번에도 오랜 ‘전공’인 형사 역이다. 은퇴를 하루 앞둔 나이 예순의 형사 하티건.11세 소녀를 인질범에게서 구출하는 마지막 임무를 혼자 수행하다 오히려 누명을 쓰고 수감된다. 소녀의 유괴범 로크는 다름아닌 막강파워로 도시를 주무르는 상원의원의 아들이었던 것. 브루스 윌리스를 SF애니메이션 속 영웅처럼 변신시킨 화면은 디스토피아적 음울한 화면에 쉼없이 인물 만화경을 풀어낸다. 별볼일 없는 자신을 하룻밤 따뜻이 품어준 여인 골디(제이미 킹)가 살해당하자 막무가내로 복수에 나서는 뒷골목의 ‘주먹’ 마브(미키 루크). 타락한 전직 형사로 양아치들을 몰고다니며 웨이트리스 애인 셜리(브리트니 머피)에게 주먹질이나 일삼는 재키 보이(베네치오 델 토로), 비열한 재키에게 총을 겨누는 셜리의 새 애인 드와이트(클라이브 오언). 줄줄이 나열되는 캐릭터들을 직렬 혹은 병렬로 정리하는 데 헷갈릴 관객도 있을 듯싶다. 복잡하게 사건들을 꼬아놓고 수수께끼를 풀어보라며 키득키득 장난을 거는 로드리게스 감독 스타일이 드러나는 설정이다. 딱히 기둥줄거리가 없어 보이는데, 복잡다단한 인물구도를 갖춘 영화가 요령껏 굴러가는 품새가 신통하다. 누명을 쓰고 8년을 감옥에서 썩고나온 하티건의 장렬한 복수와 어느새 19세가 된 낸시(제시카 알바)와의 사랑, 골디를 죽인 살인마 케빈(엘리야 우드)을 저돌적으로 공격하는 마브의 이야기는 묘하게 순애보의 낭만까지 뿜어낸다. ‘씬 시티’의 액션이 만화적 상상력의 결정체인 흔적은 이뿐이 아니다. 음모에 뒤덮인 창녀촌을 지키는 여전사같은 여인 게일(로자리오 도슨)이 있는가 하면, 사무라이 여전사(데본 아오키)가 ‘킬빌’의 우마 서먼과 닮은꼴로 귀신처럼 칼을 놀려댄다(실제로 ‘킬빌’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연출을 도왔다.). 아이디어가 많은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백화점식 스토리 나열로 끊임없이 감각을 자극할 뿐, 에피소드를 자연스럽게 한 두름에 꿰는 드라마의 힘은 아무래도 약하다. 요란한 시각장치가 아니었다면 관객들을 흥분시킬 대목이 과연 얼마나 됐을까 의심스러운 까닭이다. 만화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들어가 감쪽같이 가면을 쓰고 나온 듯한 스타들의 변신은 빼놓을 수 없는 감상포인트. 뽀빠이와 헐크를 뒤섞어 고대전사의 이미지를 덧칠한 듯한 미키 루크, 표정없는 사이코 살인마가 된 엘리야 우드의 캐릭터는 그 자체로 ‘이야깃감’이다.18세 관람가.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길섶에서] 자서전/우득정 논설위원

    10여년간 같은 아파트단지에서 살며 이따금 함께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던 60대 초엽의 여성계 인사 한분이 갑자기 술집으로 호출한다. 여전히 씩씩한 걸음으로 바람을 일으키며 생맥주집으로 들어서더니 앉기가 무섭게 “동생, 나 자서전 내기로 했어.”라고 선언하듯이 내뱉는다. 내 얼굴에 나타난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는 표정을 본 듯 “남은 30년을 위해 지나온 날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자식과 손자·손녀들에게도 좋은 유산이 될 것 같기도 하고…”라며 나중에 문장 손질을 해달라고 한다. 그러곤 자서전 집필을 결심하기까지 과정을 설명한다. 올해 초 현역에서 은퇴한 뒤 무언가 의미있는 일을 찾으려 했지만 머릿속에 소음만 무성할 뿐 줄거리 정리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마침내 인생 1막이 정리되지 않았으니 2막의 스토리가 제대로 전개될 리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위대한 사람만 자서전을 쓰라는 법이 있어? 내 삶에도 교훈될 만한 일이 많다고. 자손들에게 이보다 더 소중한 유산이 어디 있겠어.”말하는 품새가 말릴 단계는 지난 것 같다. 한편으론 ‘자손들을 위한 평범한 사람의 자서전’-흥미있는 발상 같기도 하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이사람] 아동출판 외길 33년만에 식물원 여는 나춘호 예림당 회장

    [이사람] 아동출판 외길 33년만에 식물원 여는 나춘호 예림당 회장

    도서출판 예림당 나춘호(63) 회장을 만나면 ‘계영배’(戒盈杯)가 생각난다. 계영배는 술을 3분의2 이상 따르면 밑으로 새어 나가도록 독특하게 만든 술잔. 가득차 넘치게 되면 건강도 해치고 남에게 실수도 하므로 경계하도록 고안된 잔이다. 나 회장은 결코 적지 않은 성공을 거두었으면서도 상대가 들어설 만한 여유가 있고, 안색이나 몸짓이 넘치지 않는 품새를 지니고 있다. 그래선지 그는 70년대 초 불모지였던 아동출판에 뛰어들어 상당한 부를 이루었음에도 ‘한눈’ 팔지 않고 33년째 아동출판 외길을 걸어 왔다. 돈이 되는 책이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일단 찍어내고 보는 요즘의 출판 풍토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 그가 경기도 여주에서 엄청난 규모의 식물원을 가꾸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 뒤늦게 본격적인 ‘외도’에 나선 것인가, 넘치지 않는, 항상 여백을 남겨 두었던 인생을 포기하고 그마저 외형과 높이의 경쟁에 뛰어든 것인가 하는 의혹을 품고서. ●‘식물원 인생’은 출판의 연장 여주군 산북면 상품리 산 30-1 해여림식물원. 삼면이 산자락에 둘러싸여 아늑하게 자리잡은 그의 식물원은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었다. 따사로운 햇볕이 가득한 식물원 구석구석엔 봄기운이 꿈틀거렸다. 나 회장과 함께 식물원 구석구석을 거닐며 두 시간에 걸쳐 나눈 이야기끝에 얻은 결론은 ‘식물원 인생’이 꼭 외도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식물원은 그에게 출판의 연장이요, 그 중심엔 여전히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아이들 책을 내면서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우리 책’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우리의 그림이 아닌 외국 복사본이 다였어요. 식물·동물 도감도 없었어요. 그래서 도감을 내려고 하는데 정작 콘텐츠인 식물을 모아놓은 ‘세트’, 즉 식물원이 없는 거예요. 일일이 산과 들을 뒤져 그릴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난감했지요. 우여곡절끝에 어린이 식물도감을 국내 처음으로 내긴 했지만, 그때부터 아이들 책을 위한 인프라의 필요성을 절감했습니다.” 그래도 남들이 손을 대지 않았던 어린이책을 꾸준히 낸 덕분에 그의 출판사업은 순조로운 편이었다. 출판사 외형이 커지고 돈도 많이 벌면서 일반 도서 출판의 유혹을 강하게 받았다. 하지만 나 회장은 어린이책 전문 출판인으로서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 ●어린이들 우리 꽃 잘 몰라 안타까워 아이들을 위한 출판을 시작했고, 아이들로 인해 돈을 벌었으니, 번 돈도 아이들을 위해 써야 한다는 마음을 굳힌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식물원이다. 그의 ‘사회환원 의식’은 상당히 깊고 강하다. 출판 초기부터 도서벽지 어린이들을 위한 도서 기증운동을 펼쳐오면서 100만권 이상의 책을 보냈다. 또 중국·러시아와 중앙아시아 등에 거주하는 한민족 아이들을 위해 꾸준히 책을 보내주고 있다. 또 식물원이든 출판사든, 그는 부동산째 자식에게 넘겨주지 않겠다는 뜻도 세웠다. 모두 그의 개인 재산이기에 앞서 사회의 재산, 즉 아이들의 재산이란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출판사는 큰아들 성훈(35)씨가 운영중이고, 둘째아들 도연(32)씨는 식물원 운영을 돕고 있다. 하지만 이들도 아버지의 뜻을 존중해 어디까지나 운영자, 경영인일 뿐 오너의 자리까지 고스란히 물려받지는 않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 이미 오래전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을 내면서 식물의 중요성을 절감한 그에게 식물원은 출판 33년 꿈의 결실이기도 하다. 입시경쟁과 취업 등 생존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점점 자연과 멀어지는 청소년들에게 자연친화적인 삶을 되찾아 주자는 것. 나 회장은 “30여년간 아이들 책을 내면서 우리 식물은 의외로 다양한데 어린이들의 식물에 대한 이해는 너무나 부족함을 느꼈다.”고 했다. 토끼풀꽃을 국화꽃으로 대답하는 예가 몇몇 어린이가 아닌 일반적 경향이라는 사실에 아연해지더라는 것이다. 책을 통한 지식 전달에 한계가 있다는 것도 절감했다. 이런 고민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아이들이 식물을, 자연을 직접 체험하면서 정서적 효과도 낼 수 있는 것, 바로 식물원 조성이었다. 4년간의 공사끝에 마무리를 앞둔 식물원은 오는 5월 말쯤 문을 열 예정. 나 회장이 기획한 식물원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한 마디로 처음부터 ‘기획된 식물원’이라는 점이 국내 다른 식물원과 다릅니다. 국내 모든 식물원은 조그맣게 시작해서 차츰 외형을 키우고 종류도 다양화하는 ‘진화된’ 식물원이거든요. 해여림식물원은 처음부터 국내 최대인 5만여평의 관람면적을 갖고 있고, 지하에 오수관과 배수관, 전기·수도장치, 스프링클러 등 완벽한 설비를 갖추었습니다.” 식물원이 자리한 곳은 일찍이 세종대왕릉 후보지로도 올랐다는 명당자리. 계곡과 습지가 많고 뒤로 산자락이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아늑함을 자랑한다. 오랫동안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아 다양한 수목과 초화류과 풍부하고, 중부고속도로 곤지암 IC에서 가까워 접근이 편리한 것도 고려되었다. 나 회장이 식물학자들과 함께 전국의 산과 들을 누비며 답사한 끝에 찾은 곳이다. 식물원을 구상하면서 매년 4∼5회씩 외국에 나가 유명식물원도 꼼꼼히 둘러보았다. 일본 오키나와와 독일 베를린에서 본 식물원이 가장 인상적이었고, 해여림식물원을 기획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진화된’ 식물원 아닌 ‘기획된’ 식물원 ‘해여림’이란 온종일 해가 머무르는 여주의 아름다운 숲이란 뜻.‘해’와 ‘여림’(麗林)을 합성해 나 회장이 지은 이름이다. 갖가지 자생식물들이 자라는 기획식물원, 자연생태 그대로의 환경을 재현해 4000여종의 식물을 갖춘 생태식물원, 다양한 테마에 따라 설계한 테마식물원이 해여림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 국내는 물론 외국의 목본류와 초화류까지 골고루 갖춰 명실상부한 종합식물원으로서 면모를 갖췄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관람로와 산책로 길이가 10㎞나 된다. 나 회장은 점차적으로 관람면적을 현재의 5만평에서 30만평까지 확대하고, 연구 및 레저기능까지 갖출 계획이다. “미래의 삶은 자연과의 거리를 얼마나 좁히느냐에 따라, 즉 얼마나 자연친화적 삶을 살 수 있느냐에 성공여부가 달려 있다고 봅니다. 식물원이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배움터로서 아이들이 행복한 미래를 설계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맨주먹으로 시작해 손꼽히는 출판인으로 성공한 나 회장이 얼마나 차별화된 식물원 원장으로 거듭날지 자못 기대가 크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백두대간 종주 이성부 시인, 시집 ‘작은 산이…‘ 출간

    시인은 산을 오르고 또 올랐다. 거기에 시가 있기에. 산은 시를 품었고, 시인의 시도 산을 터지도록 품어안았다. 백두대간 종주에 나섰다는 소식을 뜨문뜨문 날려보내던 이성부(63) 시인이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여덟번째 시집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창비 펴냄)에는 시인이 꼬박 8년을 짬짬이 ‘토막 산행’하며 여투어온 84편의 시가 묶였다. 백두대간 산행길에 올라 흥분에 젖어 시집 ‘지리산’(2001년)을 낸 지 4년 만이다. “산에 들어가는 일은 한때나마 속진(俗塵)의 일과 단절시키고 단순화하고 고립되게 만든다.”며 산행에 극찬사를 쏟아붓는 시인. 몇 년 사이 사물을 시로 품어내는 품새는 너럭바위의 그것만큼이나 후덕해졌다. 또렷또렷한 의식으로 역사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시 정신은 곳곳에서 형형하다. 하지만 시인의 눈과 귀는 표나게 순해져, 이번 시집에는 자연의 섭리와 생의 이치로 고즈넉히 고개돌린 시편들이 줄줄이다. 숨가쁘게 산길을 오르는 일이나 사람살이가 결국엔 매한가지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다. 사위 캄캄한 어느 새벽이었던가. 시인은 무령고개(전북 장수군) 절개지에 털퍼덕 주저앉아 “지나쳐버리는 발걸음과/거기 오래 머물다 가는 발걸음도/어차피 모두 떠나가는 것은 매한가지/내리 쌓이는 눈에 묻혀/먼저 간 사람들 발자국 찾을 길 없고/우리도 그렇게 묻혀지거나 지워질 뿐”(‘내 고향으로도 뻗어가는 산줄기’)이라고 길게 탄식해 본다. 시로 한평생을 메워가는 시인 아니랄까봐 발 밑에 엎드린 숱한 길들을 시인의 도(道)로 종종 은유하기도 한다.“사십년 전에 읽은 시가 지금 너무 새로워/몸이 떨린다 산에 들어가는 것처럼/새로운 길은 다음 사람들이 그 길로/더 많이 다녀야 비로소 길이다/닳고 닳아도 사그라지는 법이 없다”(‘비로소 길’) 하더니 산이 건네는 말에 무방비로 오감을 내맡긴다. 그럴 수밖에.“오랜만에 짚어보는 지팡이 모가지 잡은/내 왼손을 거쳐/땅 기운이 내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알겠다”(‘나무 지팡이’)며 신묘한 산 기운에 부르르 몸을 떨고마는 것을…. 시에는 ‘내가 걷는 백두대간’이란 부제 뒤로 일일이 일련번호가 붙어 있다. 그 순서대로 진득하게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결에 독자도 백두대간 남한쪽 종착지 진부령의 너덜겅 어디쯤에 땀내 풍기며 앉아 있게 된다. 역사의 생채기를 쓸어주고 부조리에 절망하는 시인의 글쓰기는 아무래도 생래적이라고 해야겠다.‘옛적에 죽은 의병이 오늘 나에게 말한다’‘거창 땅을 내려다보다’‘무정한 총알이 내 복숭아뼈를 맞혔네’ 등 무고하게 스러진 옛 생명들을 되뇌이는 시들은 그가 밟아올랐던 산의 형상만큼이나 첩첩이다. 80편이 넘는 시글로도 할 말을 다 못했을까. 시집 끄트머리에 보탠 시인의 말이 13쪽이나 된다.‘태백산맥’이 ‘백두대간’으로 이름을 바꿔야만 하는 이유, 백두대간 종주에 나선 사연 등을 두루두루 짚었다. 이성부는 196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우리들의 양식’으로 등단했다.‘백제행’‘전야’‘야간산행’‘지리산’ 등의 시집이 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두 거장감독 ‘스릴러 대결’

    영화사에 결코 지워지지 않을 큰 발자국을 남긴 거장 감독의 스릴러물이 오는 11일 나란히 개봉한다.‘양들의 침묵’조너선 드미 감독은 ‘맨츄리안 켄디데이트’에서 정치 스릴러의 진수를 선사한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은 ‘스파이더’에서 정신분열자의 1인칭 시점을 좇는 심리 스릴러를 펼쳐 보인다. 독특한 문법의 이 스릴러들은 지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관객들에겐 최고의 선물이 될 듯하다. ●정치음모 좇는 스릴러 걸프전증후군, 기억조작, 정치음모 등 영화 ‘맨츄리안 켄디데이트’(The Manchurian Candidate)가 아우르는 소재는 광범위하다. 하지만 거대한 음모를 파헤치는 한 개인의 추적이라는 스릴러 형식을 기둥줄기 삼아, 다양한 소재로 가지를 쳐 나가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만만찮은 소재를 산만하지 않게 요리해 내는 영화는 애국주의로 포장된 정치적 야욕에 대한 비판이자, 과학으로 모든 것을 조작할 수 있다고 믿는 인간의 오만에 대한 경종이기도 하다. 학생들을 강당에 모아 놓고 애국심에 대해 연설하는 걸프전 참전용사 벤 마르코 소령(덴젤 워싱턴). 겉모습과 달리 그는 전쟁이 끝난 지 12년이 지나도록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마치 전쟁의 추악한 이면을 들추는 반전영화처럼 운을 떼는 영화는, 이내 권모술수가 판을 치는 정치판으로 무대를 옮긴다. 벤은 걸프전 당시 공을 세운 부하 레이먼드 쇼(리브 슈라이버)를 추천해 훈장을 받게 했고, 레이먼드는 이를 발판삼아 정치계에 입문한다. 레이먼드의 어머니이자 상원의원인 엘리노어(메릴 스트리프)는 “국민은 전쟁영웅을 원한다.”는 논리로 아들을 부통령 후보에 올린다. 권력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치판의 모습은 ‘왝 더 독’‘프라이머리 컬러스’류의 정치풍자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영화는 기억조작이라는 소재를 불러들이며 과학과 주체의 문제로까지 나아간다. 음모를 파헤치려는 자와 음모의 제공자가 모두 기억이 조작된 것이라면 누가 어떻게 이 사건을 파헤칠 수 있을까. 이성의 힘을 지닌 주인공이 난관을 헤쳐 나가는 보통의 스릴러와 달리, 지금까지 영화를 지탱해온 주체를 지우는 영화는 대신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전쟁, 정치, 과학이라는 다양한 문제를 돌아 인간으로 회귀하는 영화의 시선에는 비판의 칼날과 동시에 결코 세뇌될 수 없는 인간의 그 무엇에 대한 희망이 담겼다. 원작은 리처드 콘돈의 베스트셀러 소설.15세 관람가. ●머릿속 미로찾는 스릴러 허름한 차림의 한 남자가 기차에서 내린다. 무언가를 찾으며 중얼중얼 걸어가는 품새가 보통 사람과는 다르다. 도대체 이 남자는 누구고 그가 찾아간 곳은 어딜까. 영화 ‘스파이더’(Spider)는 정신분열증에 걸린 남자의 시선을 따라가기에, 초반부에는 무수한 의문부호만 남긴다. 남자의 정신세계는 안개처럼 뿌옇게 가리워져 있고, 관객은 그 안개를 하나 둘 걷으며 미로 속을 헤매게 된다. 하지만 그 여정에 동참하는 순간, 여러 갈래의 미로는 나름의 찬란한 빛으로 관객을 유혹한다. 주인공 남자인 스파이더(랄프 파인즈)가 오랜 세월을 정신병원에서 보내다가 지역사회로 돌아가기 위한 절차로 윌킨슨 부인이 운영하는 사회복귀시설에 들어온 것이라는 윤곽을 알게 될 즈음, 결코 한가지로 해석될 수 없는 흥미진진한 사건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거리를 거닐다가 30년전 자신이 살던 집 앞에서 과거와 맞닥뜨리는 스파이더. 스파이더의 머릿속 여행이기에 과거의 일들은 현실이 되어 그와 공존한다. 배관공인 아버지(가브리엘 번)와 조용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어린 스파이더는, 아버지가 자주 가는 술집에서 매춘부 윌킨슨과 마주친다. 가정적인 어머니에게 싫증을 느끼던 아버지는 매춘부와 바람이 나고 어머니를 죽인다. 하지만 모든 것은 상상의 산물이기 때문에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스파이더의 눈에는 복지시설의 윌킨슨 부인조차 매춘부의 얼굴로 보인다. 어쩌면 매춘부와 어머니도 동일 인물일지 모른다. 영화에서 무심코 흘려보낸 단서들이 하나둘 뇌리를 스치면서 다양한 해석의 갈래를 뻗게 한다. 어린 시절 각인된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심리 보고서이자, 부모의 섹슈얼리티 앞에서 양가적인 감정을 갖게 된다는 프로이트의 이론에 대한 탐색이기도 하다.‘잉글리시 페이션트’의 매력적인 배우 랄프 파인즈의 변신과, 정숙한 부인과 천박한 매춘부의 1인 2역을 연기한 미란다 리처드슨의 연기가 눈에 띈다.18세 관람가.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마니아] 뭔가에 푹~ 빠진 노인들

    [마니아] 뭔가에 푹~ 빠진 노인들

    서울 종로구 경운동에 있는 서울노인복지센터에는 하루평균 3000명 이상의 노인들이 찾는다. 이곳에 오는 어르신은 대부분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만으로 즐거워한다. 하지만 최근 좀더 특별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인생을 즐기려는 분들이 크게 늘어가고 있다. 센터에서도 이같은 어르신들을 위해 강사를 초빙하거나 장소를 마련하는 등 지원에 여념이 없다. 한글배우기, 컴퓨터, 전통춤, 탁구·배드민턴 등 운동에 이르기까지 분야도 다양하다. 동아리에 든 노인들에게는 주말도 따로 없다. 지난 26일 토요일 오전, 서울노인복지센터를 찾아 동아리 활동에 ‘푹 빠진’어르신들을 만났다. 어르신들은 “우리도 마니아”라고 입을 모았다. ●한글동아리 ‘해바라기’ “배우면 배울수록 어려운 것이 한글같아. 받침은 왜 이리도 많은지, 그냥 소리나는 대로 하나로 쓰면 안 되나.” 머리를 긁적이며 지청구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영락없이 한글을 배우는 초등학생 모습이다. 토요일 오전 9시 30분부터 시작한 ‘해바라기’동아리의 한글배우기가 11시가 넘도록 진행되고 있었다.‘해바라기’는 한글을 익히지 못한 노인들이 모여 한글을 공부하는 동아리다. 서울노인복지센터는 다른 지역의 노인센터보다 남성비율이 월등히 높아 대부분의 동아리도 할아버지들 위주로 꾸리고 있다. 하지만 ‘해바라기’만큼은 할머니들이 꽉 잡고 있다. 사실 이같은 현상은 여자들을 교육시키지 않았던 구시대의 악습이 낳은 결과지만 ‘해바라기’에 모인 할머니들은 “그 딴거 따져 뭐해.”라며 오로지 공부에만 열중한다. 선생님은 센터에 나오는 노인 가운데 고등학교 교감 출신인 장인석(67) 할아버지가 맡고 있다. 일종의 자원봉사다. “현직에 있을 때도 어린 학생들이 질문을 별로 하지 않아서 안타까웠는데 우리 어르신들도 마찬가진 것 같아. 질문도 하지 않으면서 어렵다고 하소연만 해.(웃음)” 장 할아버지는 “나이들어 공부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데 수업시간 빼먹지 않고 숙제 꼬박꼬박 해오는 것을 보면 대견하다.”고 ‘할머니 학생’들을 자랑하기도 했다. ‘해바라기’는 교실에서 공부하는 동아리이기 때문에 동아리 회장이 아닌 반장이 있다. 반장인 박의저지(75) 할머니는 “수업시작할 때 ‘차렷, 선생님께 경례.’라고 외치는 것이 가장 재밌다.”고 말한다. “학교를 제대로 못 다녀서 그런가봐요. 이렇게라도 그 한(恨)을 푸는 거지 뭐.” 박 할머니는 ‘해바라기’에 가입한 지 벌써 1년이 넘고 있어 선배축에 낀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교재를 알려주거나 ‘개근’하도록 독려하는 일도 모두 박 할머니 몫이다. 수업에 두번째 나왔다는 이강임(63) 할머니는 “후배가 선배의 말을 잘 들어야죠. 안 그럼 혼나지.”라고 웃으며 말하기도 했다. 항상 앞자리에 앉아서 수업에 열중하는 장연화(70) 할머니는 집 근처에 노인센터가 있는데도 굳이 이곳을 고집한다. “의리를 저버릴 수가 없잖아. 그리고 이곳에 친구들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이고 또 배우던 것도 끝까지 마무리지어야지.”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서울노인복지센터는 서울노인복지센터는 지난 2001년 4월1일 개관해 햇수로 5년째를 맞고 있는 국내 최대규모의 ‘실버센터’다. 서울 종로구 경운동 옛 통계청연수원 건물에 들어선 서울노인복지센터는 인근 탑골공원 성역화 사업에 따라 이곳을 떠나야 하는 노인들을 위해 마련됐다. 노인복지센터는 또 노인들이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곳에 머물지 않고 노인들에게 자원봉사나 재취업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센터는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하루 평균 3000명 이상의 노인이 이용하고 있다. 센터는 노인들의 다양한 여가활동을 위해 대형 스크린과 노래방 시설을 갖춘 영화관람실을 운영하고 있다. 또 샤워실과 이·미용실, 인터넷 등 컴퓨터 교육을 실시하는 컴퓨터교실, 수지침을 교육하는 한방교실 등이 열린다. 모든 시설 이용이 무료다. 50명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는 체력단련실에는 러닝머신과 자전거운동기, 마사지의자를 설치했다. 노인들이 스스로 건강상태를 체크한다. 이와 함께 건물 옥상에는 투명 가림막을 설치하고 인조 잔디를 깔아 넓고 트인 공간을 확보했다. 노인들끼리 모여 조직한 동아리 활동도 활발하다.2001년 8월에 취임한 지완 스님이 현재 관장을 맡고 있다. 문의 (02)739-9501~3.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장수춤 동아리 ‘장수한량무’ 서울노인복지센터에는 ‘장수춤’마니아 할아버지, 할머니가 많다.‘장수춤’은 서울대 체력과학노화연구소에서 개발한 노화방지 춤이다. 주말 이른 오전인데도 2층에서 가장 큰 강당에는 30여명의 어르신들이 사뿐사뿐, 하늘하늘 춤을 추고 있었다. 모두 ‘장수한량무’동아리 회원들이다. “손끝이 돌아가는 품새가 멋지지 않나요. 우리 동아리는 장수춤에 관한 한 전국 제일이라고 자부해요.” 동아리 회장을 맡고 있는 김순호(74) 할아버지는 “각종 경연대회에 나가서 좋은 성적도 거뒀고 또 여기저기 노인센터에서 공연요청도 들어온다.”면서 동아리 자랑부터 했다. 김 할아버지는 “한·일 월드컵이 있던 해에 잘 뛰는 젊은 선수들을 보면서 나도 몸을 멋지게 움직여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면서 “나이가 많으니까 구기(球技)보다는 센터에서 하는 장수춤을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언뜻 봐도 춤 동작들이 다양하고 몇몇 동작들은 어려워 보였지만 열을 지어 연습에 몰두하고 있는 노인분들은 틀리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완벽하게 소화해내고 있었다.‘장수한량무’에서 85세로 최고령인 황의선 할아버지도 ‘70대 젊은이’ 못지 않게 춤사위가 구성지다. “나이들수록 머리를 쓰고 몸을 움직여야 해. 그런 점에서 볼 때 장수춤이 최고야.” 센터에서 동아리활동 지원을 담당하는 사회복지사 김현미(25)씨는 “‘장수한량무’는 어르신들 사이에서 인기있는 동아리”라고 귀띔했다. “지금은 연습이기 때문에 어르신들이 모두 평상복 차림이지만 정식으로 공연할 때는 도포, 갓 등을 갖추게 돼요. 그러면 춤이 더 멋있어 보이죠. 아무래도 다른 어르신들도 그런 모습을 부러워하시는 것 같아요.”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컴퓨터 동아리 ‘P&P’ ‘컴도사’를 꿈꾸는 어르신들이 모여있는 컴퓨터동아리 ‘P&P’의 교실 분위기는 다른 곳에 비해 사뭇 진지하다. 그도 그럴 것이 칠판에 적혀 있는 내용들이 죄다 영어고, 용어들도 어려워서 선생님 말씀을 한 번만 놓치면 그 날 수업은 공치기 때문이다. ‘P&P’는 people(사람)과 peace(평화)의 앞글자를 따서 만든 이름이다. 컴퓨터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에게 평화로움을 전하자는 거창한 의미를 갖고 만들었다. ‘P&P’활동을 오래한 어르신들은 젊은 사람도 어려워하는 홈페이지도 척척 만들어 낸다.‘P&P’에서는 백발이 희끗희끗한 할아버지들이 ‘홈피’ ‘카페’ ‘싸이월드’ 등 젊은이들이 쓰는 단어를 편하게 사용하는 이채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P&P’에서 서해용(72)·김분이(70) 부부 어르신이 선생님 역할을 하고 있다. 김 할머니는 “나이든 어르신들도 컴퓨터에 관심이 많다.”면서 “하지만 쉽게 포기하는 경향이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호기심때문에 접근하지만 너무 어렵기 때문에 고비를 넘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하고 만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단 고비만 넘기면 ‘홈페이지’정도는 거뜬하다. 동아리 회장을 맡고 있는 황인준(68) 할아버지는 인터넷 다음에 ‘계수나무’라는 카페까지 개설해 운영할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 “요새는 저작권 때문에 카페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게 할 수 없는 게 제일 큰 불만이야. 그렇다고 법을 어길 수도 없고….” 황 할아버지는 컴퓨터만 있으면 하루 종일 심심하지 않다는 컴퓨터 마니아다. 조금 더 열심히 공부해 컴퓨터 관련 자격증을 따려는 목표도 세워 놓았다. “나이 먹어서도 뭔가 한가지에 열중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야. 그게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고. 그런 의미에서 노인들은 모두 한 분야에서는 마니아가 되는 것이 좋아.”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生生인터뷰] 클래식음악계 신데렐라 손열음

    [生生인터뷰] 클래식음악계 신데렐라 손열음

    지난 28일 저녁. 서울 광화문 금호아트홀은 어린 피아니스트의 에너지로 녹아날 듯했다. 이날 제1회 금호음악인상을 받은 손열음(18·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4년)의 기념 독주회 객석에는 빈자리 하나 없었다. 공연기획 담당자는 “공연 직전까지 문의전화가 쏟아져 연장공연이라도 해야 할 판”이라며 손열음의 인기를 확인해 줬다. ●필요할 때마다 후원 손길… 금호음악인상 수상 국내 클래식 음악계에 오랜만에 샛별 하나가 떴다. 지난해 10월 세계적 지휘자 로린 마젤이 이끄는 뉴욕필하모닉과 당당히 협연했던 손열음. 거장과의 호흡 맞추기에 기가 꺾이기는커녕 오히려 무대 분위기를 주도해 혀를 내두르게 했던 주인공이다. 요즘 ‘신동’이라는 별칭을 이름보다 더 많이 듣는 그는 피아니스트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애제자로도 소문나 있다. “인복이 참 많아요. 선생님(김대진)을 만난 것도, 금호그룹의 후원을 받게 된 것도. 누군가의 도움이 아쉽다 싶으면 그때마다 거짓말처럼 후원의 손길을 만났거든요. 소문처럼 대단한 실력도 아닌데, 쏟아지는 주위의 시선이 부담스럽기도 해요.” ●세살때 피아노 시작, 중학교때까지 평범한 생활 “올해로 피아노를 친 지 15년이 됐다.”며 웃는 품새가 어른스럽다. 어느 자리에서건 기 죽지 않고 똑 부러지는 당당함은 어디서 나올까. 피아니스트로 ‘키워진’ 것이 아니라 그저 자연스레 피아노를 치면서 자라난 여유 덕분일까. 평범한 부모 밑에서 세살 때 동네(강원도 원주) 학원에서 “남들처럼” 피아노를 만났다. 원주에서 중학교까지도 영어·수학 열심히 배우는 평범한 학교를 다녔다. 피아노 솜씨가 얼마나 뛰어났으면 원주 땅을 넘어 소문이 퍼졌을까. 부천필 지휘자인 임헌정씨의 눈에 띄었고, 뒤늦게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사 과정에 수석합격했다. “곡을 받아들이고 악보를 읽어내는 속도만큼은 남들보다 빠른 것 같다.”고 남의 말하듯 자평한다. 하지만 어쩌면 타고났다. 납작납작 둥근 특이한 손가락 끝모양은 그가 피아노를 칠 운명임을 말해 주는 것 같다. 일본의 원로 피아니스트 미키모토 스미코가 손열음의 손 생김새를 극찬한 적도 있었다. 상 복도 어지간히 누렸다. 지난 1997년 러시아 영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2위,2000년 독일 에틀링겐 콩쿠르 1위를 차지했다. 결정적으로 클래식계의 주목을 받은 건 2002년 이탈리아 비오티 콩쿠르에서 최연소 1위를 차지한 ‘사건’. 해외무대에서 먼저 스타가 된 셈이다. ●“원주 가족과 만날 주말되면 설레요” 손열음은 무대에서 내려서면 하나 특별할 것 없는 여드름쟁이 열여덟살 소녀다. 피아니스트로 살기 힘들지 않느냐고 했더니 “친구들은 대학 갈 준비하느라 더 바쁘지 않냐?”고 오히려 되묻는다. 서초동의 작은 오피스텔에서 혼자 자취하는 그에게 가장 큰 낙은 주말이면 가족들을 만나러 원주행 버스에 오르는 순간.“콩쿠르에 입상할 때는 덤덤해도 주말이면 설렌다.”며 씩 웃는다. 인생의 목표로 삼는 모델은 없는지 물어 봤다. 돌아온 대답은 ‘겁 없는’ 손열음답다.“그런 건 없어요. 누구처럼 돼야지 생각해본 적은 없고 그때그때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만 늘 가져요. 그런 연주자로 살고 싶어요. 현란한 테크닉을 자랑하기보다는 느낌으로 음악을 전해줄 수 있는….” 올해도 공연일정은 꽉 차 있다.5월 부산시향·일본 NHK교향악단 내한공연·도쿄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협연,6월 도쿄 미키모토홀 연주,8월 대전시향 협연,9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초청연주 등이 예정돼 있다. 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사진 남상인기자 sanginn@seoul.co.kr
  • [뒷골목 맛세상]해넘이 섬 강화도

    [뒷골목 맛세상]해넘이 섬 강화도

    한 해가 저문다. 한 해가 저문다고 해서 서녘 하늘에 곱게 지피는 노을이야 여느 때와 하등 다를 바가 없겠지만, 그러나 한 해가 저무는 무렵의 노을을 바라보는 이의 마음만은 어쩔 수 없이 만감이 겹쳐 노을 못잖은 붉은 색감으로 켜켜이 타오를 터이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는 감회도 감회려니와, 어쩐지 허송으로 보낸 것 같은 후회와 안타까움에 겹쳐 자칫 가슴을 에는 한 가닥 회한도 없을 수 없으리라. 아아, 나는 왜 그렇게밖에 못했을까. 조금만 더 정신을 차렸더라면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텐데. 어차피 나는 그 정도밖에는 안되는 것일까. 나는 왜 좀 더 마음을 비우지 못했을까. ●자성과 다짐의 나들이 코스로 제격 한 해를 보내고 다가올 새해를 기다리는 순간에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을 가다듬어 자성(自省)의 기회로 삼는 정경은 얼핏 보기에 참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자성이 지나쳐 자칫 회한이며 자학에까지 이른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일이 아니라 자신에게 더욱 힘든 짐을 지우는 일이 되고 만다. 만일 그대에게 자성이 지나쳐 힘든 조짐이 보인다면, 그대는 과감히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 해넘이 여행길에 나서자. 이왕 한 해가 저무는 무렵이니, 가까운 서해안이라도 찾아 수평선에 펼쳐지는 낙조를 바라보면서 새로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서울에서 가장 쉽게 갈 수 있는 서해안으로는 역시 강화도가 제격일 터이다. 신촌로터리 어름에 있는 강화행 버스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타면 불과 한 시간 남짓밖에 걸리지 않는다. 아득한 옛 시절에야 서울에서 강화까지의 나들이가 걷고 배를 타는 일정으로 꼬박 이틀이 걸렸다는 사실이 얼핏 상상이 가지 않지만, 어쨌든 한 시간 거리에 섬이 있고 해넘이의 해안이 있다는 것은 서울에 사는 이들의 행운이지 않으랴. 강화읍에서 군내버스를 타고, 외포리에서 다시 석모도행 배를 갈아탄 다음에 보문사를 찾아가자. 보문사에서 바라보는 낙조는 예부터 강화 8경으로 꼽히는 명승(名勝)이지만, 특히 보문사의 눈썹바위에 있는 높이 7미터의 거대한 마애석불좌상 앞에서 내려다보는 서해의 낙조는 더 이상 언설이 필요 없는 장관이다. 강화도의 해넘이 장소로는 구태여 석모도며 보문사를 고집하지 않아도 된다. 강화도의 서쪽 해안선 일대에 널린 돈대를 위시하여 어디를 가든지 뛰어난 해넘이 장소가 아닌 곳이 없다. 또한 경관이 그럴 듯한 장소에는 이미 횟집이며 카페, 민박집, 그리고 요즘 들어 부쩍 유행하는 펜션들이 눈에 질리도록 저마다 입간판에 뛰어난 해넘이를 내세우고 있다. 황금빛 노을, 노을이 내리는 아름다운 집, 노을과 함께, 추억 속으로, 뱃고동, 추억여행…. 그러나 이왕 석모도까지 찾아온 길이라면 역시 보문사의 마애석불좌상 앞이다. 아름드리 고목의 가지 사이로 저녁 해가 기운다. 이윽고 저녁 해가 그대의 눈길 아래로 떨어지고 그렇게 가없는 하늘은 물론 잔잔한 겨울바다마저 붉게 물들이며 노을이 지피는 순간, 그대의 힘든 몸뚱어리 또한 서서히 노을 속에 함께 지피는 것을 깨닫게 되리라. 어디 그대의 몸뚱어리뿐이랴. 그대의 몸뚱어리가 노을로 지피는 동안에 마음속의 회한이며 자학 따위도 함께 지펴, 마침내 그대를 새털처럼 가볍게 하리라. 그렇듯 새털처럼 가벼워진 그대가 무심코 눈썹바위에 서 있는 거대한 부처님을 돌아보면, 부처님 또한 노을 속에 함께 지피면서 그대를 향해 빙긋이 웃어보일지도 모른다. ●‘강화 8경’으로 꼽히는 보문사 낙조 불교에서는 세상에 하고많은 욕심 중에서도 가장 더럽고 끔찍한 욕심을 무엇인가 이루고자 하는 공부에 대한 욕심으로 규정하고 지극히 경계해 마지않는다. 자칫 공부란 것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현재의 나를 인정하지 못한 채, 좀더 밝고 아름다운 무엇으로 나를 바꾸려 한다면, 바로 그런 공부야말로 얼마든지 더럽고 끔찍한 욕심으로 꾸짖어 마땅하다는 식이다. 대저 공부란 무엇인가. 바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나를 제대로 바라보는 것이 공부가 아닌가. 그렇듯 ‘지금 이 자리’가 아닌 다른 자리에 서 있는 제자가 부처에 대해 물었을 때, 운문(雲門)선사는 서슴없이 대답한다.“똥막대기다!” 그렇다. 지금 이 자리가 아닌 다른 자리에 있는 무엇인가를 찾으면, 부처 또한 똥막대기인 것이다. 역시 ‘지금 이 자리’가 아닌 다른 자리에 서 있는 제자가 부처에 대해 물었을 때, 백장(百丈)선사는 아예 호통을 친다.“이놈아, 어찌하여 소를 타고서도 소를 찾느냐?” 지난해를 돌아보는 자성에는 무언가 ‘지금 이 자리’에 서있는 자신을 혐오하거나 기피하여 좀더 밝고 아름다운 다른 자리로 자신을 옮겨가려는 어리석은 불제자들의 공부 욕심이 없지 않을 터이다. 지금 이 자리에 없는 것이 어찌 다른 자리라고 생길 것인가. 어쩌면 진정한 자성이란, 바로 ‘지금 이 자리’의 자신을 인정하고, 나아가 ‘지금 이 자리’의 힘들고 무거운 자신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눈길일지도 모른다. 비록 간단없는 회한과 자학이 자신을 피폐(疲弊)하게 하더라도, 바로 그런 피폐마저 너그럽게 껴안을 일이다. 그렇듯 자신과의 화해를 이루면, 비단 저녁노을이 지피지 않더라도 그대는 분명히 새털처럼 가벼워지리라. 새털처럼 가벼워진 그대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건 막히는 일이 무엇이랴. 어디에서 무엇을 하건 그대는 언제나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자, 그대가 새털처럼 가벼워져서 돌아오는 길이다. 그대가 어디에 가서 무엇을 먹고 마시든지 맛있지 않은 음식이 있으랴. 그러나 그대가 혼자가 아니고 소중한 이와 함께라면 여행길의 한 끼 음식이라도 결코 소홀할 수는 없다. ●한자리서 50년 훌쩍… 고향냄새 물씬 먼저 강화읍의 중앙시장 안에 있는 ‘우리옥’(032-932-2427)을 권하고 싶다. 중앙시장에서 찬거리골목으로 30여m 안으로 들어가면 골목 안에 있는 듯 없는 듯 숨어 있는 평범한 백반집인데, 그러나 상차림을 보면 대뜸 머리가 좌우로 갸웃거려진다. 넉넉한 콩비지 한 대접, 조갯살을 넣은 미역국, 강화도순무김치, 꽁치조림, 고추장아찌, 숙주나물, 감자조림, 시금치, 고사리, 멸치볶음, 표고버섯볶음, 조개젓, 배추김치 등 갖은 반찬에다가, 장작을 때서 지은 강화쌀밥이 먹음직스럽게 김을 피워올리고 있다. 그런 풍성한 상차림인데 값은 고작 4000원이다. 소중한 이와 함께 한 그대가 어쩐지 4000원짜리 백반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면 거기에 3000원짜리 대구찌개를 더해도 좋다. 아니면 계절에 따라 병어회나 병어찜, 생굴, 불고기 등에서 하나를 안줏감으로 추가하여 강화도 특산인 인삼막걸리를 즐길 수도 있다. 추가되는 안줏감들은 각기 9000원에서 1만원을 넘지 않는다. 그대가 이제 막 수저를 드는데, 와락, 알 수 없는 친근감이 들어 다시 한번 상차림을 살펴보면, 자칫 오랜 만에 고향에 돌아와 늙은 어머니가 차려주는 밥상 앞에 앉아 있는 것 같은 순간적인 착각에 빠져든다. 실제로 주인 되는 방영숙씨는 힘들고 지쳐서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라면 누구든지 자식처럼 껴안아줄 것만 같은 넉넉하고 수더분한 고향 어머니의 인상이다. 거기에 더하여 납작한 한옥집의 대문부터 비롯하여 주방이며 방에 이르기까지 어쩐지 낡은 손때가 묻어나는 집안의 만만한 분위기마저도 주인 되는 이와 함께 정감을 더한다. 원래 우리옥은 방영숙씨의 고모 되는 방숙자 할머니가 1953년에 현재의 자리에 문을 열었으니 한 자리에서 50년을 훌쩍 넘긴 셈이다. 방영숙씨가 연로한 고모를 대신한 것도 벌써 20여년이니 2대에 걸친 음식이며 집에서 어찌 고향냄새가 아니 나랴. ●공해 없는 저수지서 건진 월척만 조리 만일 그대가 미식가라고 자처한다면, 별미로 강화도의 붕어찜을 빠뜨릴 수 없을 터이다. 강화읍에서 교동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송해면의 숭뢰저수지에는 ‘돌기와집’(032-934-5482)이라는 붕어찜 전문식당이 있다. 야트막한 야산 아래 숲으로 담장을 이룬 듯 아늑한 옛 한옥이 산수화 한 폭처럼 고풍스러운데, 주인 되는 구옥순씨 또한 종갓집 며느리처럼 단아한 품새에 말씨마저도 도란도란 음전하여서 한 잔 술이 없이도 저절로 풍류의 마음이 일어날 듯싶다. 강화도라면 대부분이 얼핏 생선이며 조개 같은 해물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강화도는 뜻밖에도 농경지가 넓은 곳이어서 1980년대만 해도 전체 면적의 거의 절반이 농경지에다가 농가도 전체 가구의 70%를 차지하여서 농업이 중심 산업을 이루었다. 그런 만큼 여기저기 유명한 저수지가 많은데, 눈치 빠른 낚시꾼들은 바다낚시가 아니라 바로 민물낚시를 위해 거리가 멀다 않고 강화도로 몰려든다. 원래 민물고기는 저수지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인데, 낚시꾼들 사이에서 강화도의 민물고기가 맛에 있어서 으뜸으로 소문이 난 탓이다. 하기는 이렇다 할 공장이 드문 강화도에서는 여러 저수지마다 고기 맛을 헤칠 수질오염이며 공해 따위는 존재하지 않을 터이다. 돌기와집의 붕어찜은 무엇보다도 숭뢰저수지의 맛 좋은 참붕어 중에서도 월척붕어만을 재료로 하여,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조리법으로 요리해낸다. 다른 곳에서 하는 대부분의 붕어찜이 20,30분 만에 조림해 내는 데 비해 여기서는 2시간 이상을 조림해 내는 식이다, 그리하여 다른 곳의 붕어찜은 우선 가시며 뼈를 고르느라 수고로운데, 이곳은 머리에서 꼬리까지 가시며 뼈를 고를 수고가 없이 통째로 먹을 수가 있다. 자칫 어느 것이 살이고 어느 것이 뼈며 가시인지 전혀 분간이 가지 않게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아드는데, 뼈와 살이 함께 어우러지는 고소하면서도 깊은 맛은 과연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일품이다. 얼핏 생각하기로는 2시간 이상 붕어찜을 조리다 보면 형체는 물론 맛까지도 변질될 것 같은데, 붕어 자체의 모양이 전혀 손상되지 않을 뿐더러 맛 또한 붕어의 고유한 향취가 제대로 살아있다. 어쩌면 주인 되는 이의 정성이 아니면 그런 식의 요리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바로 그런 정성에 돌기와집만의 비법이 숨겨진 것인지도. 붕어찜은 대중소에 따라 3만원,2만 5000원,2만원으로 나누어지는데, 각기 붕어의 크기가 아니라 마릿수에 따라 4마리,3마리 2마리로 값이 다르다. 이밖에도 메기매운탕, 민물새우튀김, 추어탕이 있다. 돌기와집은 찾아가기가 약간 까탈스러운 편인데도 불구하고 한번만 맛을 들이면 단골이 된 손님들이 서울이며 인천 각지에서 할아버지에서부터 어린 손자까지 일가족이 동행하여 거리가 멀다하지 않고 찾아온다. ■ 제철 맞은 생선회 푸짐 그대가 회를 좋아하는 이라면 석모도에서 나오는 길에 외포리 선착장의 젓갈시장 옆에 있는, 얼핏 포장마차처럼 보이는 가건물을 놓치지 말일이다. 기실 강화도 일대의 해안선마다 한 집 걸러 한 집으로 죄다 횟집 아니면, 카페나 모텔이나 펜션이나 민박집들이어서 눈에 차일 지경이다. 그런 마당에 구태여 어느 횟집을 골라 권할 수 없지만, 그러나 나의 취향으로는 젓갈시장 옆의 포장마차식 가건물을 지나칠 수가 없다. 거기에는 값싼 횟집들이 서넛 사이좋게 함께 들어있는데,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가장 안쪽에 있어서 바다가 내다보이는 ‘풍년소라6호’(032-933-9223)라는 약간 엉뚱한 이름의 횟집을 권하고 싶다. 벌써 10년 전부터 이곳에서 횟집을 해왔다는 30대 후반의 박미경씨가 주인인데, 우선 싱글벙글 잘 웃는 이여서 횟감을 고르기 전부터 그만 기분이 좋아진다. 요즈음 같은 겨울에는 숭어가 제철인데,1㎏에 2만 5000원이다. 어른 둘에 어린아이들이 딸린 네 명 한 가족이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양인데, 매운탕과 함께 밴댕이회며 멍게가 무료로 나온다. 이밖에도 삼식이가 역시 제철인데, 값은 숭어와 같다. 여기에 우럭, 광어, 노래미, 농어 등이 있고, 해삼이며 왕새우, 키조개, 개불 등 취향에 따른 갖가지 해물들이 여느 고급 횟집 못잖게 고루 준비되어 있다.
  • 31일 개봉 ‘투 터프 가이즈’

    스페인판 ‘록스탁 앤드 투 스모킹 배럴즈’. 하지만 2%가 부족하다.31일 개봉하는 ‘투 터프 가이즈’(Two Tough Guys)는 한 사건을 두고 여러 인물들이 얽히면서 일이 복잡하게 꼬인다는 점에서는 ‘록스탁‘ 이후에 등장한 다양한 할리우드 코믹 액션의 품새를 빼다박았지만, 속도감이나 사건 해결의 폭발력은 한 수 아래다. 그래도 이야기의 아이디어는 재미있는 편이다. 독창적이진 않지만 다양한 인물들이 충돌하며 빚는 재미가 쏠쏠하다. 단지 그 아이디어를 뒷받침해줄 만한 자본과 연출력이 한참 못 미친다는 인상을 준다. 약간 어설픈 할리우드의 아류 같은 느낌. 중년을 훌쩍 넘긴 삼류 킬러인 파코(안토니오 레시네스)는 로드리고에게 진 빚을 갚지 못해 말썽꾼인 그의 조카 알렉스(조르디 빌체스)를 떠맡게 된다. 그러던 파코에게 억만장자의 상속녀인 아라미스(로사 마리아 사르다)를 납치해달라는 사건이 들어오고, 알렉스가 술집에서 눈이 맞은 여종업원 타티아나(엘레나 아나야)를 막무가내로 데려오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셋이서 납치를 도모한다. 온갖 사고를 치는 알렉스 통에 간신히 납치에 성공하지만, 갈수록 일은 꼬인다. 양파 껍질을 벗기듯 하나 둘씩 드러나는 인간의 이중성은 이야기의 가지를 뻗는 토양이다. 바보 청년과 한물 간 킬러의 활약기도 나름대로 통쾌한 희열을 선사할 듯 싶다. 스페인의 새로운 별 후안 마르티네스 감독 연출.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길섶에서] 을지로 벤처/김영만 논설실장

    서울 지하철 2호선 을지로 입구역에서 시청앞 광장 방향 가는 계단.20대 후반의 청년이 지하철서 내려 구름처럼 밀려오는 출근길 시민들을 보고 어울리지 않는 소리를 질러댄다.“새벽 다섯시에 만든 웰빙 김밥 있습니다. 샌드위치 있습니다.”앞에 놓인 박스안에 김밥이랑 샌드위치가 들었나 보다. 착해 보여 더 어수룩하다. 청년이 그 자리에 나타난 게 닷새쯤 됐다. 암만 생각해도 장사가 될 자리는 아닐 성싶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오는 곳 한가운데 자리잡아 사고 싶어도 어지간해서는 김밥 달라고 할 형편이 못된다. 게다가 지하도만 벗어나면 널려 있는 게 아침 거른 직장인을 위한 샌드위치 포장마차들이다. 김밥, 샌드위치를 외치는 소리품새도 영 아니다. 하나도 안 팔리면 다음날은 안 나오겠지 했는데 올 들어 가장 춥다는 월요일 아침에도 자리를 지키고 있어 의외다. 백번쯤 취직시험에 낙방하고 저렇게 나왔을까 하는 것은 지레짐작이고. 재료값은 나오니까 오늘도 나왔으리라 믿고 싶지만 여전히 자신은 없다. 듣기 좋으라고 쓴 ‘벤처 성공담’따라하느라 재료값만 날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 아닌가. 오늘 아침 출근길에는 김밥이라도 한줄 사면서 물어볼 생각이다. 김영만 논설실장 youngman@seoul.co.kr
  • ‘여선생 vs 여제자‘의 웃기는 염정아

    ‘여선생 vs 여제자‘의 웃기는 염정아

    섬뜩한 계모(‘장화, 홍련’)부터 도발적인 사기꾼(‘범죄의 재구성’)까지, 차가운 표면 안에 매혹과 열정을 숨긴 요부의 이미지로 뒤늦게 스크린에서 광채를 내뿜은 배우 염정아(32)가 코믹 연기에 도전하겠다고 했을 때는 걱정부터 앞섰다. 괜히 어설프게 망가져서 지금까지 힘들게 쌓아온 자신만의 색채에 먹물을 확 뿌리는 건 아닌지. 하지만 영화 ‘여선생 vs 여제자’(제작 좋은영화·17일 개봉)를 보는 내내 기자는 눈이 휘둥그레졌다.‘염정아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 #“내 몸엔 코미디의 피가 흐른다니까요. 호호.” 물 만난 고기처럼 화면 안에서 자유자재로 뛰노는 품새는 ‘인상적’이라는 한마디로 규정지을 게 아니었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능청을 떨며 귀엽게 웃는 모습은 지금까지 보아왔던 그녀에 대한 고정관념을 단번에 뛰어넘는 힘을 가졌다.“보여지는 제 모습은 차갑지만요. 여선생의 모습들은 연기가 아니라 생활의 일부라니까요.” 시원시원한 말투로 친한 언니처럼 재잘재잘 말하는 모습이 영화속 여선생을 닮긴 닮았다. 그래도 카메라 앞에서 180도 달라져야 하는 코믹 연기에 도전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처음엔 웃겨야 한다는 게 부담스러웠어요. 그런데 주변에선 ‘너 하던대로만 하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게다가 시나리오가 그녀의 마음을 끌었다.“여자가 혼자 끌어가는 영화가 드물잖아요. 코미디인데 탄탄한 드라마가 있는 것도 좋았고요. 또 장규성 감독의 전작인 ‘선생 김봉두’를 무지 좋아하거든요.” 사실 코믹 연기지만 그녀는 결코 망가지지 않았다. 망가졌다기보단 자연스럽게 그 배역에 녹아들었다는 말이 맞다.“좋아서 ‘앗싸라비아’를 외치는 장면이랑 뜀틀을 넘다가 날아가는 장면을 제외하고는 ‘오버’한 건 없어요. 일관된 감정선을 유지하면서 드라마에 충실하려고 노력했죠.” 그녀가 맡은 미옥은 갓 부임한 미술선생 상춘(이지훈)에게 ‘필’이 꽂혀 갖은 주책을 다 떠는 노처녀 교사. 그녀는 ‘푼수 덩이’노처녀를 그대로 표현해내기 위해 메이크업도 거의 하지 않았다.“영화 보다가 몇 장면에선 ‘어∼, 심각한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주름이 너무 흉하진 않았나요?” ‘괜찮다.’라고 말하자 “미모로 승부하는 것도 아니어서 별로 신경은 안 쓴다.”는 그녀. 오랜 연륜에서 건져올린 자신감이었다. #“노처녀여∼ 표정 정말 리얼하지 않나요?” 촬영지인 여수에서 3개월동안 먹고 자면서 촬영하다 보니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영화속 미옥처럼 변하더라는 그녀.‘미스코리아 출신 배우’라는 꼬리표는 온데간데 없고, 정말 철딱서니 없는 노처녀 미옥만 남았다.“감독님이 요즘 절 볼 때마다 ‘왜 이렇게 예뻐졌어?’그런다니까요.” 그래도 영화속 처절한 노처녀의 몸부림이 싫지는 않았을까.“‘노처녀여∼’하고 미남이가 시를 읊을 때 제 표정 못 보셨어요? 실제로 슬프고 절절했기 때문에 나온 표정이에요. 모든 노처녀들이 그 때 나하고 똑같은 표정을 지었을 걸요.” 영화속에서 한 미술선생을 두고 티격태격하는 여제자 미남(이세영)은 실제론 미옥과 닮은꼴. 자주 비교가 될 수밖에 없는 상대역이다.“나보다 어리고 예쁘고 미래도 밝고… 정말 부럽더라.”는 그녀는 “촬영 내내 신경 쓰이긴 했지만 이성으로 늘 자제하면서 예뻐했다.”며 솔직 담백한 대답으로 웃음을 끌어냈다. #“늦다뇨? 이제라도 배우로 인정받아 다행이에요.” 그녀는 이번 코믹 연기를 대단한 도전이나 연기 변신으로 생각진 않는다.“영화를 보고 난 뒤 좀 더 친근한 느낌으로 다가왔으면”하는 바람 정도가 있을 뿐.“더 늦기전에 이렇게 돼서 다행”이라는 그녀의 막 피어오른 연기인생에서 아마도 이번 연기는 거쳐가는 한 단계에 불과할 것이다. 하고 싶은 연기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으니, 코미디 연기는 이 작품으로 만족하고 싶단다. 그럼 가장 하고 싶은 역할은 뭘까.“‘화양연화’같은 스타일이 있는 멜로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요. 누구도 못 말리는 지독한 사랑에 빠진 여자도 돼봤으면 싶고요.” 그래도 어떤 한 장르에 자신을 한정시킬 생각은 없다. 이제야 훨훨 날아오를 날개를 단 그녀에게 연기란 넓게 펼쳐진 벌판처럼 끝없이 이어질 테니까.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사진 이종원기자 jongwon@seoul.co.kr ■ 아직 배우는 배우… 91년 미스코리아로 연예계에 데뷔한 뒤 10여년. 그동안 TV나 영화에서 사람들은 염정아의 얼굴을 ‘그냥’봐왔다. 그러다 지난해 영화 ‘장화, 홍련’으로 염정아는 단번에 도약했다. 하지만 사실 ‘단번에’란 표현은 그녀에겐 억울하다. 단지 운이 없었을 뿐 10여년동안 한결같이 자신의 연기를 갈고 닦았으니까.“늘 감성훈련을 해요. 생활 속의 모든 표정들을 연기라고 생각하면서 관찰하고요.” 10년이 지나도 연기를 못하는 사람은 늘 못한다며 자신의 연기력이 연륜에서만 나온 건 아니라고 강조했다. 예쁘게 보이려하기보다는 캐릭터에 완전히 빠지는 것도 그녀만의 매력.“10년넘게 봐 오셨을 텐데 굳이 예쁜 척할 필요가 없잖아요.” 이 모든 게 쌓여서인지 올해 초 ‘범죄의 재구성’으로 연타석 홈런을 날리며 흥행의 짜릿한 맛을 봤다.“‘범죄의 재구성’은 정말 놓치기 싫은 작품이었어요. 역할은 작았지만 도발적이고 도도해보이는게 정말 강렬했거든요.” 배역의 크기보다는 좋은 작품에서 하고 싶은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는 염정아. 그래서 “그런 역을 어디서 해보겠느냐.”며 ‘쓰리, 몬스터’의 흡혈귀로도 선뜻 출연했단다. 이어 ‘여선생 vs 여제자’에서도 코믹과 진정성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가뿐히 성공시킨 그녀. 앞으로 선택할 작품, 캐릭터가 계속 궁금해지는 이유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길섶에서] 진돗개/심재억 문화부차장

    인기로야 단연 진돗개였다.갓 태어나 꼼질꼼질 마당을 누비는 진돗개 강아지는 비슷한 덩치의 토끼 새끼 두세마리쯤 줘야 바꿔치기가 됐다.그 정도면 닭도 솜털 벗은 중닭 한마리는 내놔야 거간이 됐다.어디서 보았는지 곁에 쪼그려 앉은 바람잡이의 흥정 붙이는 품새도 재밌었다.“달구새끼 저거 한달만 키우면 뿡뿡 알 잘 낳는다.” 예전 시골에서는 고만고만한 또래들,이런 물물교환으로 강아지도 얻고,토끼도 구해 키우곤 했다.귓바퀴가 뾰족하게 선 탓에 ‘똥개’를 그냥 진돗개라고 했지만,꼬마들 시장에서는 그게 통했다.누가 딴죽이라도 걸라치면 “야,너 진돗개 쥐잡는 거 볼래?”한마디로 여지없이 기를 죽이곤 했다. 진돗개가 키우고 싶었던 석이.몰래 형의 지리부도를 북북 찢어 왼종일 딱지를 쉰개나 만들었다.강아지 두배쯤 되는 토끼 한마리에 빳빳한 새 딱지 쉰개를 얹어주면 진돗개 새끼를 얻을 수 있어서였다.겨우 진돗개 새끼를 얻었지만 대가는 만만치 않았다.지리부도 건이 들통나 ‘대가리가 자갈밭이 되도록’ 형에게 쥐어터진 석이,강아지를 보듬고 투덜거렸다.“공부도 못하면서 지리부도는 뭐하게.진돗개 바꾸는 게 백배 낫지.” 심재억 문화부차장 jeshim@seoul.co.kr
  • [이주일의 어린이책]뽐내는 걸음으로/현덕 글

    까까머리에 고무신을 신은 아이가 무슨 기쁜 일이 있는지 얼굴 가득 흐뭇한 표정으로 길을 간다. 그런데 여느 아이처럼 깡총거리는 걸음이 아니라 뒷짐을 지고 느릿느릿 걷는 품새가 영락없는 어른 흉내다.반짝반짝 빛나는 새 동전 한닢을 손에 쥔 똘똘이다.큰 길 장난감 가게에 장난감을 사러 가면서 동네 친구들 보란 듯 아주 뽐내는 걸음이다. 세대를 초월한 동심의 세계를 압축적으로 그린 월북 작가 현덕의 ‘뽐내는 걸음으로’는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의 입가에도 미소를 짓게 하는 즐거운 글이다. 반짝이는 동전 한닢만 있어도 세상이 온통 내 것처럼 가슴이 부풀어 오르고,누구에게라도 뽐내고 싶은 마음이야 옛날 어린이나 요즘 어린이나 별반 다를까.나 혼자만 동전을 갖고 있지 않아도 상관없다.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똘똘이를 쫓아오던 기동이는 장난감 가게앞에서 자신도 동전을 꺼내들며 이렇게 말한다.“으응,너 장난감 사러 왔구나.나두 장난감 사러 왔는데.” 똘똘이는 이제 자기만 제일인 양 뽐낼 수 없게 됐지만 그래도 좋다.둘은 이제 똑같이 뽐내는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면 되니까.단순한 사건과 반복되는 문장 안에 인간의 본성을 예리하게 녹이는 힘은 40여편에 이르는 ‘노마’연작 동화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즐거움이다.초등 저학년용.80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80년대 추억속으로/’와이키키 브라더스’ 스크린서 무대로

    가끔 그럴 때가 있다.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옛 유행가 한 소절에 마음을 빼앗겨 순식간에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떠나는 경험.서울뮤지컬컴퍼니가 제작하는 뮤지컬 ‘와이키키 브라더스’(연출 이원종)는 1980년대 초반 학창 시절을 보낸 이들이라면 누구나 아련하게 떠올릴 향수 짙은 가요와 팝송들로 추억여행에 빠져들게 하는 작품이다. ●1막에선 20년전 가요와 팝송이 주류 설 연휴와 함께 몰아닥친 한파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24일 오전 서울 연희동의 서울뮤지컬컴퍼니 연습실.문을 열기도 전에 강렬한 비트의 음악소리가 먼저 귀를 두드린다.밖은 추위로 꽁꽁 얼어 붙었는데 연습실 안은 뜨거운 열기로 달아 올라 있었다. “어때,기타소리가 끝내주지 않냐.”(성우)“내가 그걸 어떻게 해,발표회가 열흘밖에 안 남았는데 쉽게 할 수 있는 걸로 해.”(강수)“야,베이스의 생명은 폼이야.G코드의 떨림,긴머리 휘날리면서 빠져드는 연주,폭발적인 사운드.”(정석) 충주고 밴드부 ‘충고보이스’의 세 멤버가 고교 연합 발표회에서 선보일 연주곡을 두고티격태격하는 장면.그런데 새로 산 기타를 자랑스럽게 품에 안은 성우를 빼고,강수는 드럼 대신 세수대야를,정석은 베이스기타 대용으로 빨래판을 들고 있다.마음은 ‘레드제플린’‘딥 퍼플’인데 몸은 ‘송골매’에도 못 미치는 그들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온다. 이들을 연기하는 배우는 윤영석(성우),추상록(강수),주원성(정석).연주하는 품새가 그럴듯하다 했더니 고교 밴드부에서 활약했던 경험을 자랑스레 털어놓는다.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서 ‘유령’으로 열연했던 윤영석은 고3때 성악을 하기 전까지 통기타 가수가 꿈이었고,주원성은 작곡가 최호섭 하광훈 등과 밴드를 결성해 기타 연주를 했었단다.추상록도 축제때 단골로 불려다니던 밴드부였고,97년에는 앨범을 발표해 가요순위에 오른 적이 있다고 했다. ●꿈 많던 고딩, 세월 흘러 떠돌이 밴드로 섬세한 감성을 지닌 성우,단순하고 우직한 성격의 강수,그리고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며 살 줄 아는 정석.개성은 달라도 음악에 대한 꿈과 열정 하나로 뭉쳤던 이들은 20년이 흘러 지방 밤무대를 떠도는 삼류밴드의 인생을 살게 된다.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무대로 옮긴 이 뮤지컬에서 원작과 가장 차이나는 부분은 ‘충주보이스’에 대적하는 여고생 밴드 ‘버진 블레이드’의 등장.인희(김선영),길주(김영주),영자(박준면)는 파워풀한 연주와 가창력으로 ‘충주보이스’의 시선을 사로잡지만 결국 트럭 야채장수와 라디오 진행자,보험설계사로 평범한 인생을 살아간다. 고교 시절을 그린 1막에선 송골매의 ‘어쩌다 마주친 그대’, 로커스트의 ‘하늘색 꿈', 김수철의 ‘나도야 간다’,그룹 퀸의 ‘위 윌 락 유’ 등 80년대 유행했던 가요와 팝송이 주류를 이룬다.야간업소에서 일하는 현재의 모습을 보여주는 2막에선 ‘상하이 트위스트’‘잘못된 만남’에서부터 ‘챔피언’까지 다양한 음악으로 역동적인 무대를 선사할 예정이다.성우와 인희의 애틋한 감정을 다룬 듀엣곡 ‘내 마음속의 그대’ 등 3곡의 창작곡도 삽입된다. 주원성은 “386세대에겐 향수를,젊은 세대에겐 ‘저런 노래도 있었구나.’하는 신선함을 줄 수 있는 공연이 될 것”이라고 자랑했다.윤영석은 “현실의 삶에 치여서 사라진 어릴 적 꿈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프리뷰 기간 티켓 30~50% 할인 서울뮤지컬컴퍼니 김용현 대표는 “수입 뮤지컬의 홍수속에서 우리 이야기를 우리 노래에 담은 창작뮤지컬을 만들고 싶었다.”면서 “공연장 로비를 80년대 교실 풍경으로 꾸며 관객의 향수를 자극할 계획”이라고 말했다.뮤지컬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오는 30일부터 3월14일까지 뮤지컬전용극장 팝콘하우스에서 공연된다.2주간의 프리뷰 기간(2월13일까지)에는 티켓값이 30∼50%할인된다.(02)3141-1345. ●'와이키키 브라더스' 어떤 영화 임순례 감독이 2001년 발표한 영화.‘비틀스’를 꿈꾸던 고교시절의 밴드가 지방 나이트클럽 밤무대 밴드로 궁상맞게 살아가는 현실을 쓸쓸하면서도,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내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서울 낙원동에서 수안보 관광호텔까지 실제 밤무대 밴드들을 만나 인터뷰한 결과를 토대로 주인공들의 캐릭터와 스토리를 만들었다.성우역의 이얼을 비롯해 오지혜,박원상,류승범등 연기자들의 뛰어난 앙상블과 송골매의 ‘세상만사’,옥슨80의 ‘불놀이야’ 등 향수를 자극하는 가요들로 독특한 정서를 자아냈다.트럭 야채장사를 하던 인희가 성우를 만난 뒤 가수의 꿈을 되살려 심수봉의 ‘사랑밖엔 난 몰라’를 부르는 마지막 장면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이순녀기자 coral@
  • 이종격투기 동호회 투혼 / 꺾기~ 던지기~ 조르기~

    “라이트,라이트,발차기.” “퍽,퍽,퍼억∼.” “잽,잽,발차기.” “퍽,퍽,퍼억∼.” “자∼ 좋아요.다시 하세요.” 지난 25일 밤 8시쯤 서울 은평구 신사2동 이종 격투기 체육관인 정심관.40평 남짓한 체육관은 이종 격투기 동호회인 ‘투혼’의 회원 10여명이 홍영규 관장의 지도로 이종 격투기 기술을 익히며 내뿜는 기합 소리와 샌드백 치는 소리로 뜨겁게 달아올랐다.2인1조로 샌드백을 치며 킥복싱을 연습하거나,꺾기·조르기 등을 하며 유술(柔術)을 연마하느라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됐지만 이들의 얼굴에는 오히려 짜릿한 희열감이 배어 있었다. ●“남자들과 맞붙어도 자신있어요” “윗몸 일으키기 200∼300회 정도는 거뜬히 할 정도로 몸이 튼튼해졌습니다.몸에 군살이 빠지고 탄탄한 근육으로 다져져 살빼기 효과가 뛰어나죠.게다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승부욕이 생겼습니다.” 지난 2000년부터 몸의 유연성을 기르기 위해 이종 격투기에 입문한 노수진(22·여·애니메이터)씨는 “일반 호신술의 경우 여자가 열심히 수련을 해도 실제 완력이 센 남자들과 맞닥뜨리면 당해낼 수가 없다.”며 “하지만 이종 격투기는 킥복싱 등 실전을 방불케 하는 각종 무술 등을 익히는 덕분에 이제는 남자들과 맞붙어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자랑한다. 험난한 세상 속에서 가장으로서 가정을 지키기 위해 이달 초 시작했다는 ‘왕초보’ 정형곤(30·굿모닝신한증권 주임)씨도 “품새 등에 너무 치우쳐 상황이 벌어지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다른 격투기와는 달리 이종 격투기는 실제로 상대를 제압하는 실전 무술”이라며 “퇴근 후 샌드백을 신나게 두드리고 나면 나도 모르게 낮에 쌓였던 스트레스가 말끔히 사라진다.”고 말한다. ●10대부터 50대까지 남녀노소 불문 이종 격투기를 즐기는 사람은 전국적으로 5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이들은 인터넷 동호회나 정심관 등 이종 격투기 체육관 등을 통해 활동을 하고 있다.대표적인 동호회 중 하나가 ‘투혼’.회원은 120여명이며,1주일에 2∼3회씩 나와 운동을 한다.연령은 10∼50대로 다양하지만 박진감이 넘치고 다이내믹한 운동인만큼 20∼30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하고 싶은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게 즐겁습니다.하루 1시간30분 동안 몸 근육을 모두 사용하는 전신 운동인 유술과 킥복싱을 연습하기 때문에 운동량이 많아 군살이 많이 빠지고 체력은 눈에 띄게 좋아졌습니다.” 대학 시절 3년 동안 킥복싱을 배웠을 정도로 격투기에 관심이 많았다는 김범준(33·딜로이트 컨설팅 부문 매니저)씨는 “TV에서 방영되는 피 튀기는 이종 격투기 시합을 보고 끔찍하고 무섭게 생각하는데,그것은 시합일 뿐”이라며 “일반인들은 주로 꺾기나 조르는 기술을 구사하는 유술로 스파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그다지 위험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친구 오빠의 권유로 시작한 우경원(31·여·대한주택공사 사원)씨는 “여러가지 종목을 함께 연습하다 보니 싫증이 나지 않고,어렵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샌드백을 신나게 두들기고 나면 오히려 상쾌한 기분이 들어 기분 전환이 되는 운동”이라며 “여자들의 경우 여자들끼리 대련이나 스파링을 하기 때문에 힘든 점은 없다.”고 거들었다. ●승부욕 생기고 자신감도 찾고 이들이 이종 격투기를 즐기는 이유는 간단하다.무엇보다 일상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고 건강을 챙기며,살빼기 효과도 있기 때문이다.방송을 보고 재미있을 것 같아 시작한 김기태(33·CF감독)씨는 “몸과 몸이 부딪치면서 끈끈함이 묻어나는 등 격렬한 남성 운동이어서 좋아한다.”며 “이종 격투기를 시작한 이후 승부욕이 생기고 자신감도 회복한 점이 큰 자산”이라고 활짝 웃으며 너스레를 떤다. 저혈압이어서 땀을 많이 흘리는 운동을 해야 한다는 의사의 권유로 지난해 11월 입문한 이지은(28·여·명지전문대 교직원)씨는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 근육통·결림 현상이 있었는데,이종 격투기를 한 이후 말끔히 없어졌다.”며 “특히 여성들이 상대를 쉽게 제압할 수 있는 호신술로는 안성맞춤”이라고 덧붙였다. “상대방에게 걸거나 걸리는 이종 격투기의 기술은 매우 과학적입니다.관절 꺾기 기술 하나만 배워도 다른 여러가지 기술에 응용할 수 있어 재미가 새록새록 쌓이죠.” 운동하는 것을 좋아해 입문한 김도현(23·작곡가)씨는 “이종 격투기를 하기 전에는 밤낮이 뒤바뀌는 불규칙한 생활로 허리와 어깨에 무리가 와 뻣뻣해지는 경우가 많았으나 요즘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잔병치레도 없어졌다.”고 말한다. 글 김규환기자 khkim@ 사진 강성남기자 snk@ ■이종격투기의 모든 것 이종(異種) 격투기는 어떤 무술을 사용해도 무방하기 때문에 사실상 룰이 없는 무규칙 무술 경기이다.단지 눈 찌르기·깨물기·박치기 등 야비하고 목숨을 빼앗는 행위를 금하는 최소한의 룰만 있을 뿐이다.일명 ‘발리투도’라고도 불리는 이종 격투기는 90여년 전 브라질에서 탄생했다.일본 유술(柔術·유도의 전신)의 달인인 마에다 미쓰오가 브라질로 건너가 실전 유술로 다듬어 그레이시 집안에 전수하면서 창시됐다.상대방의 관절을 꺾어 제압하는 기술이 주요 테크닉인 만큼 작고 약한 사람이라도 강하고 힘센 사람을 쉽게 제압할 수 있다.가공할 만한 위력을 지닌 유술에다 손과 발,팔꿈치,무릎 등을 이용하는 킥복싱 등이 결합되면서 최고의 실전 격투기로 급부상했다. 이종 격투기가본격적으로 세계 무대에 등장한 것은 1993년 미국에서 UFC(무규칙 격투기 대회)가 열리면서부터.브라질의 호이스 그레이시가 자신의 가문에 전해오는 그레이시 유술을 익혀 세계 무술계를 평정했다. 특히 그의 이복 형제인 힉슨 그레이시는 다소 왜소한 체격을 지녔지만 유술의 특유한 기술을 바탕으로 세계 최고의 무술인들과 겨뤄 450전 전승이라는 금자탑을 세웠다. 국내에서는 지난 4월 장충체육관에서 처음으로 이종 격투기 대회가 열리면서 본격적으로 소개됐다.앞서 지난해부터 케이블 TV와 위성방송,KBS스카이 등이 일본과 미국에서 열리는 K-1,프라이드 FC,킹 오브 더 케이지 등의 이종 격투기 시합을 중계방송하면서 인터넷 동호회가 우후죽순처럼 생겼다.다음 카페(cafe.daum.net)에는 이종 격투기 동호회 사이트가 100개 이상 개설됐다.이 가운데 ‘이종 격투기’와 ‘쌈박질’ 등은 회원수가 각각 16만명,11만명을 넘는다. 김규환기자
  • 도락산 /도도한 고사목 낙락장송 우거진 바위산을 찾아가다

    ●충북 단양으로 떠나는 가을산행 ‘바위와 소나무,그리고 고사목’.만약 도락산의 멋을 3가지만 꼽으라면 이렇게 대답해야 할 것 같다.기교에 빠지지 않은 석수장이가 깎아놓은 듯한 암릉,바위틈에 흘러든 씨앗이 싹을 틔워 수백년간 자라며 바위를 뚫고 올라온 소나무들,수명을 다했으나 그 고고한 자태를 잃지 않은 고사목들.조선의 유학자 우암 송시열은 ‘깨달음을 얻는 데는 길이 있어야 하고,거기엔 필수적으로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는 뜻에서 ‘道樂山’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도락산 산행길은 우암의 깊은 뜻이 담긴 이같은 이름이 결코 허명(虛名)이 아님을 깨닫는 짧은 여정이라고 할 만하다. 웬만한 큰 산은 단풍 구경객들로 북적거리는 이때,한적하면서도 그 빼어난 멋이 가을 산행지로 부족함이 없는 충북 단양의 도락산을 찾았다. 도락산은 해발 964m로 제법 높지만 산행 기점인 상선암 휴게소가 해발 280m에 있어 실제 산행길은 그리 길지 않다.하지만 거친 암릉길이 계속되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은 코스.바위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등산화착용은 필수다. 몇가지 코스가 있지만 상선암 휴게소에서 출발해 상선암(암자)∼제봉∼형봉∼신선봉을 거쳐 정상에 오른 뒤 형봉까지 내려와 길을 바꿔 채운봉,검봉,시민골을 지나 상선암 휴게소로 내려오는 코스가 일반적이다.거꾸로 시민골을 지나 올라가 형봉,제봉을 거쳐 내려와도 된다.또 정상을 기준으로 상선암 반대편의 광덕암,또는 정상 북쪽의 궁터골로 이어지는 코스도 있다. 산자락 아래에 자리잡은 상선암 옆으로 난 등산로에 들어섰다.가파르게 이어지는 거친 길을 오르다보니 10여분도 안돼 숨이 헐떡거린다.30여분 정도 가파른 흙길이 이어지다가 이후부터는 암릉길이다. ●발 아래 절경에 힘든 줄도 모르고 암릉길은 거칠다.하지만 잠깐잠깐 바위에 걸터앉아 이마의 땀방울을 씻어내고,발 아래 펼쳐진 연봉들을 감상하다보면 크게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철계단이나 손잡이 등이 곳곳에 설치돼 있어 초등학교 4학년 이상이면 부모들과 함께 오를 만하다. 기암을 자랑하는 대부분의 산들이 뾰족하고 다양한 모양을 내세운다면,도락산의 바위들은 대체로 둥글고 넉넉한 품새를 지니고 있다.수십척 키의 바위가 앞을 가로막아 갈 길이 끊겼다 싶으면 어김없이 바위 다른 한쪽 편은 편편한 경사를 이루며 산행객들에게 길을 내준다. 도락산의 바위들은 소나무 또는 고사목과 어우러짐으로써 그 진면목을 드러낸다.바위 틈을 뚫고 나와 자란 수많은 소나무들.마치 바위굴에서 기어나오다가 굳어버린 구렁이처럼 소나무들은 구부러진 채 머리를 세우고 있다. 커다란 소나무가 수백년동안 바위틈을 비집고 자라는 동안,단단한 바위들은 갈라지며 자리를 내준다.어떤 바위는 뿌리의 힘에 못이겨 살점을 떼낸 것처럼 바위 주변에 낙석이 수북하다.흙 한줌 찾기 어려운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는 강인한 생명력,끝내 바위를 쪼개면서까지 자리를 잡고 자라는 은근과 끈기의 힘 앞에서 부박한 인간은 그저 초라해질 따름이다. 도락산 암릉길 주변엔 마치 큼직큼직한 분재를 전시해놓은 듯한 고사목(枯死木)들이 산행객들의 넋을 뺀다.고사목들은 이파리만 없을 뿐 대부분 바위에 뿌리를 박고,그 형태를 온전히 갖추고있다. ●바위틈 소나무앞 한없이 초라한 나 다가가서 손으로 만져보니 거친 껍질은 이미 떨어져 나가 없고,속살은 수십,수백년간 비바람을 견디며 굳어져 반들반들 윤기가 난다.수백년간 바위 속에서 고통을 감내한 뒤 죽어서까지 고고한 자태를 잃지 않는 모습에서 가히 신선의 기운이 느껴진다. 1시간 이상 올라가면서부터 815봉,제봉과 형봉이 차례로 이어진다.작은 봉우리에 이르렀다 싶으면 앞에 또다른 바위 봉우리가 앞을 가로막기를 서너번 반복한 끝에 다다른 곳이 신선봉.도락산에서 가장 전망이 뛰어난 곳이다. 100여명은 족히 앉아 쉴 만한 너럭바위 아래로 수많은 능선과 봉우리들이 펼쳐져 있다.남쪽으로 월악,금수산이,동쪽은 황정산·수리봉이,북쪽으로는 덕절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신선봉 너럭바위의 한 편에 직경 1m 정도의 웅덩이가 파여 있다.한동안 비 온 기억이 없는데도 웅덩이엔 물이 반쯤 차 있다.이 웅덩이는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하는데,숫처녀가 물을 퍼낼 경우 금방 소나기가 쏟아져 물을 채운다는 전설이 전해내려온다.신선봉에서 정상까지는 15분 정도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하지만 정상 자체는 그럴듯한 바위도,운치 있는 소나무도 별로 없이 그저 평범하다.밋밋하게 자란 소나무들에 가려 전망도 시원치 않은데,누군가 조망을 확보하기 위해 주변의 소나무들을 모두 허리 높이로 잘라낸게 오히려 분위기만 을씨년스럽게 만들었다. ●사인암 청정한 운치… 신선도 안 부러워 길을 되짚어 내려오다가 형봉에서 채운봉쪽으로 길을 꺾었다.채운봉,검봉을 넘어서 하산하는 길은 높낮이가 더 심하다.이곳에선 능선 오른쪽으로 보이는 형봉 쪽의 바위 산자락이 볼 만하다.마침 서산에 걸린 해에 반사돼 수많은 바위들이 반짝이는 통에 눈이 부시다. 산행시간은 5시간 정도면 넉넉하다.도락산에 왔다가 지나칠 수 없는게 있으니,바로 단양8경중 도락산이 품고 있는 4경,즉 상·중·하선암 및 사인암이다.상·중·하선암은 도락산을 끼고 흐르는 선암계곡을 따라 차례로 자리잡고 있다.청정계곡을 가득 채운 너럭바위들이 볼 만하다.계곡을 따라 차를 몰고가다가 표지판을 보고 차를 세우고 쉽게 접근할 수 있다.사인암은 도락산 남동쪽 끝자락 아래 맑은 계곡 위로 우뚝 솟은 기암절벽이다.사인암 옆에 자리잡은 암자 뒷문을 통해 내려가 절벽 밑의 반석 위에 앉으면 시원하고 청정한 운치가 신선 부러울게 없다. 단양 글·사진 임창용기자 sdargon@ 식후경 상금교를 건너 도락산 등산로 입구로 올라가다 보면 토종닭 백숙이나 손두부 음식을 내는 집들이 죽 늘어서 있다.그중 중간쯤에 있는 손두부 전문집 ‘약수터가든’(043-421-5300)의 음식 맛이 좋은 편이다. 인근 마을에서 나는 콩을 도락산 계곡의 약수에 불려 갈아 만든 두부맛이 담백하다.두부를 먹기 좋게 썰어 양념간장 또는 볶은 김치를 얹어 먹는데(사진),두부전골로 식사를 시켜놓고 기다리는 동안 두 명이 한 두 접시는 금방 해치울 만큼 생두부 맛이 뛰어나다. 몇 가지 야채와 양념을 넣어 끓이는 두부전골은 얼큰하면서 시원한 맛이 특징.입에 넣자마자 부드럽게 넘어가는 두부 맛이 일품이다.생두부 1접시 4000원,두부전골 1인분 5000원. 토종닭 백숙은 등산로 초입의‘선암가든민박’(043-422-1447)이 잘하기로 소문나 있다.한 마리 2만 5000∼2만 8000원.3∼4명이 먹을 만하다. 가이드 ●가는 길 중앙고속도로 단양IC에서 빠지자 마자 우회전해 5번 국도를 타고 1㎞쯤 가면 네거리가 나온다.이곳에서 사인암 이정표를 따라 좌회전해 계속 직진하면 오른쪽으로 사인암으로 빠지는 길이 나온다.사인암을 지나 왼쪽으로 선암계곡을 끼고 올라가면 중선암이 나오고,상선암 못미쳐 왼쪽으로 난 상금교를 건너면 도락산 입구다.단양IC에서 15분쯤 걸린다. 대중교통은 동서울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거나,청량리역에서 열차를 이용하면 된다.단양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하루 10여회 운행되는 벌천리행 시내버스를 타면 상선암 휴게소 앞에서 내릴 수 있다.단양읍에서 택시를 타면 미터요금으로 1만 5000원 정도 나오므로,일행이 여럿이면 이용해볼 만하다.단양시외버스터미널(043-422-2239),시내버스터미널(043-422-2866),단양역(043-422-7788). ●숙박 도락산 인근 가산리에 ‘구름다리 휴게소’(043-422-1451),사인암 앞에 ‘느티나무휴게소’(043-422-0337) 등 민박집이 많이 있다. 좀더 운치있는 곳을 원한다면 도락산 입구에서 차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대강면 올산리의 ‘소백산 관광목장’(043-422-9270)에서 묵어보자.소백산과 월악산 중간 해발 850m에 자리잡은 이곳엔 소떼들과 함께 하는 산책로가 있다.콘도식 통나무 방갈로(5인1실,8만원)와 여관(2인1실 3만원)에서 묵을 수 있다. ●제2 단양팔경 널리 알려진 단양팔경 못지 않은 절경을 갖추고 있는 제2 단양팔경 구경길에도 나서 보자. 팔경중 영춘면 북쪽 남한강가에 깎아지른 듯 병풍을 두르고 있는 ‘북벽’,30척 높이의 대석 위에 70척 높이의 바위 일곱개가 세워져 있는 대흥사 절터 위 원통골의 ‘칠성암’,비단에 수를 놓은 것 같다하여 퇴계 이황 선생이 이름을 지었다는 ‘금수산’,소백산에서 발원한 벽계수가 죽령 계곡을 돌아 떨어지는 ‘죽령폭포’의 경치가 특히 뛰어나다.단양관광안내소(043-422-1146).
  • 애덤 킹 女태권도대회 홍보대사에

    두다리 없는 한국계 미국 입양아 애덤 킹(한국명 오인호·10)이 제 2회 코리아·경주 국제여자태권도오픈대회 명예홍보대사에 위촉된다. 27일 대회 조직위에 따르면 애덤 킹이 28일부터 4박5일 일정으로 방한,경주로 와 홍보대사 위촉식을 갖고 태권도 품새와 격파시범을 보인다. 애덤 킹은 최근 미국에서 태권 노란띠를 딴 것으로 전해졌다.
  • 외국대학에 태권도학과 첫 개설/美 브리지포트대 김용범 교수 “한국문화 전파 창구역할 기대”

    해외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미국 대학에 전통의 한국무술을 가르치는 ‘태권도학과’가 생긴다. 미국 태권도 대표팀 코치로 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에 참가 중인 코네티컷주 브리지포트대 김용범(사진·40) 태권도학과 교수는 “다음달 말 코네티컷주 교육국의 인가가 날 것으로 보여 내년 가을학기부터 태권도학과가 정식으로 문을 열 것”이라고 밝혔다.국내에는 용인대와 경희대 등 몇몇 학교에 태권도학과가 있지만 해외 대학에 개설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7년여의 노력 끝에 결실을 이룬 태권도학과는 4년간(8학기) 총 140학점(학기당 17∼20학점)을 이수해야 하며 실기와 이론을 병행하게 된다.전공 과목으로 ▲태권도 역사 ▲도장경영론 ▲지도법 ▲품새론 ▲겨루기론 ▲심판법 ▲시범론 등이 개설된다.선택과목으로는 ▲한국어 ▲명상법 ▲교육학개론 등이 포함될 예정이다. 또 유도와 쿵푸,태껸 등 다른 무술 교육도 병행하고,재학생들로 ‘태권도팀’을 구성해 미국에서 개최되는 각종 대회에 출전시킬 계획이라고 김 교수는 전했다. 김 교수는 경희대 태권도학과 1회 졸업생으로 지난 1991년 미국으로 유학,96년부터 브리지포트대 시간강사 겸 겸임교수로 일해오다 대학 특성화 차원에서 태권도학과 설립이 추진되면서 최근 이 학과 교수로 정식 발령받았다. 김 교수는 “매년 30∼40명을 선발하고 졸업생에게는 사범 자격증과 4단 단증도 줄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이어 “미국 사회에서 단순한 격투기로 저평가된 태권도가 정식 학문으로 인정받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며 “태권도학과는 한국 문화를 미국인들에게 전파하는 매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 박지연기자 anne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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