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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주인 된 배두나·공유 “‘고요의 바다’ 이후 환경 문제 다시 생각”

    우주인 된 배두나·공유 “‘고요의 바다’ 이후 환경 문제 다시 생각”

    “겨울엔 추우니까 씻기 전에 공기를 데우려고 뜨거운 물을 미리 틀어놨는데, ‘고요의 바다’를 찍은 뒤엔 습관처럼 물을 틀려다가도 잠가요.” (공유)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고요의 바다’는 달을 배경으로 하는 SF 드라마다. 지구의 물이 고갈된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는데, 기후 변화와 부족한 자원으로 인한 경쟁, 계급 문제, 연구 윤리 등 다양한 사회 문제를 8회에 걸쳐 담아낸다. 특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달에 있는 연구기지로 떠난 정예 대원 중 우주생물학자인 송지안과 탐사대장 한윤재는 극을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이다. 이들을 연기한 배우 배두나와 공유는 최근 화상으로 만난 자리에서 입을 모아 드라마를 통해 환경 문제에 대해 얘기할 수 있어 기뻤다고 전했다.배두나는 “실제 지구에 물이 없어진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많이 했다”며 “직접 나서서 ‘환경을 지키자’고 하는 건 잘 못하지만, 작품을 통해 하고싶은 얘기를 하는 건 너무 좋다”고 설명했다. 공유 역시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더 하게 됐다”며 물을 잠그는 습관과 관련해 “팬 한분도 저와 같은 경험을 했다고 하더라. ‘작품을 통해 이런 걸 느끼게 해줘서 고맙다’고 쓴 글이 정말 감동적이었다”고 전했다.작품은 한국에서 불모지나 다름없는 SF 장르라는 점에서 공개 전 큰 주목을 받았다. 여전히 인류에게 낯선 공간인 달, 그리고 가상의 연구기지인 ‘발해 기지’의 모습을 구현하기 위해 2700평 규모에 5개 스튜디오를 만들고 각종 시각효과(VFX)와 컴퓨터그래픽(CG)을 활용했다.공유는 “촬영용 우주복의 무게가 아무리 줄여도 최소 10㎏였다. 거기에 와이어까지 달고 액션 연기를 하는 게 육체적으로 힘들었다”면서도 “완성된 작품을 보니 예상했던 장면이 그대로 반영돼, 배우가 아닌 시청자 입장에서 만족스러웠다”고 말했다. 배두나는 “우주복 입을 때가 제일 신났다. 헬멧을 쓰고 산소통을 메는 순간 들뜨는 느낌이 들었다”며 “달의 중력이 지구의 6분의 1 수준이라 유영하는 느낌을 더 살리기 위해 저중력 테스트도 하고, 김설진 안무가의 지도에 따라 지구와 다른 여러 몸짓도 연구했다”고 했다.작품의 완성도는 높지만, 지나치게 극이 늘어지고 메시지가 모호하다는 점 등에서 혹평도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호불호가 갈린다는 지적에 대해 배두나는 “고요한 수면 아래에서 소용돌이가 치는 드라마이지 외부에서 파도치는 작품이 아니다”라고 생각을 밝혔다. 공유는 “비록 할리우드에 비하면 적은 예산이지만, 현실적으로 현명한 선택을 보여준 작품”이라며 “SF 장르는 관점이 너무 다양하기 때문에 호불호가 갈릴 건 예상했다. 다양한 관점도 관심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확실히 매듭지어지지 않은 결말에 대해서는 두사람 모두 “대원들이 지구로 가지 않고, 국제우주연구소에서 나머지 비밀을 풀어나갔으면 한다”면서도 시즌 2 제작에 대해서는 “제작진과 얘기해본 적이 없어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말했다.
  • 인간이 만들어낸 지옥…유독성 물질에 잠식된 루마니아 마을

    인간이 만들어낸 지옥…유독성 물질에 잠식된 루마니아 마을

    수십 년 동안 유독성 오수에 잠식되고 있는 루마니아의 한 마을 모습이 공개됐다. 폐허가 된 마을은 인간의 과도한 욕심이 만들어낸 지옥과도 같은 모습이다. 1970년대 당시 루마니아 북부 트란실바니아주(州) 게마나 마을 인근에서 대형 구리 광산이 발견됐다. 루마니아에서 가장 큰 광산으로서 연간 1만 1000t의 구리를 채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 이 광산은 당시 정부의 가장 큰 관심 대상이었다. 귀중한 광석에서 광물을 분리한 뒤 남은 찌꺼기를 버릴 곳이 필요했던 당국은 광산 인근에 있는 게마나 마을을 폐기물 매립지로 활용했다. 1970년대 후반, 해당 지역에 홍수 피해가 발생하면서 인근 계곡이 범람했다. 마을은 순식간에 광산과 매립지에서 흘러나온 유독성 물질에 오염된 호숫물과 계곡물로 가득찼다.광산 폐기물에는 비소, 카드뮴, 크롬, 납 등 다양한 중금속 성분이 녹아있으며, 빗물에 녹으면서 극심한 토양오염과 수질오염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8년까지만 해도 이 마을 주민 약 1000명은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삶의 터전에서 평범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지만, 광산업체의 개발이 시작된 뒤 일상은 완전히 사라졌다. 결국 주민들은 이주를 결정했지만, 정부는 충분한 보상을 하지 않았다. 주민들은 터전을 옮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보상금 정도만 손에 쥔 채, 유독성 물질로 뒤덮인 고향을 떠나야 했다.이후 마을은 말 그대로 지옥을 연상케 하는 모습으로 변해갔다. 현지 환경보호단체에 따르면 지난 수십 년간 마을의 수위는 연평균 0.9㎝씩 높아졌다. 마을 언덕 꼭대기에 있던 교회 건물도 잠기기 시작했고, 현재 첨탑만 간신히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치명적인 ‘중금속 녹은 물’이 마을을 완전히 집어삼키는 동안에도, 마을을 떠나지 못한 몇몇 주민들이 있다. 20명 남짓의 주민들은 정부의 불충분한 보상 등에 불만을 품고, 오수가 닿지 않은 높은 지대로 이사해 생활해 왔다. 그러나 수위가 꾸준히 상승하면서, 남은 주민들도 강제 이주를 피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2019년부터 해당 마을이 치명적인 오수에 잠기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온 사진작가 크리스찬 리포반(36)은 “비현실적인 호숫물 색깔처럼, 이 마을은 오수에 잠식된 유령 마을이다. 언덕을 둘러싸고 있는 물은 모두 붉은색을 띠고 있으며, 풀과 나무, 채소, 동물 그리고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독에 중독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시간에도 유독성 호수는 점차 더 커지고 있지만, 이곳에는 여전히 독이 섞인 물에 집이 잠식될 위협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덧붙였다.
  • [영상] 전도된 승용차에 갇힌 운전자 맨손 구조한 경찰관

    [영상] 전도된 승용차에 갇힌 운전자 맨손 구조한 경찰관

    승용차가 전도된 교통사고 현장에서 신속하게 인명구조 활동을 펼친 경찰관의 사연이 뒤늦게 알려졌다. 광주 동부경찰서 금남지구대 소속 박석홍(40) 경사와 정승민(29) 경장은 지난달 15일 오전 1시쯤 북구 중흥동 한 사거리에서 전도된 승용차를 발견했다. 야간 순찰 근무 중이던 두 사람은 즉시 순찰차를 세우고 현장으로 향했다. 전도된 차 내부에는 연기가 차 있었고, 운전자 A씨는 안전벨트를 풀지 못해 탈출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차 문이 열리지 않는 것을 확인한 박 경사는 곧바로 전도된 승용차 위로 올라가 삼단봉으로 조수석을 내리쳐 유리창을 깨뜨렸다.이어 그는 창문을 손으로 뜯어낸 뒤 몸을 숙여 A씨가 매고 있던 안전벨트를 풀었다. 박 경사는 A씨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며 상태를 확인하는 한편, A씨가 무사히 차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왔다. 이 과정에 박 경사는 유리 파편에 상처를 입기도 했다. 박 경사가 운전자를 구조하는 사이 119구조대가 도착했다. 사고 차 운전자 A씨는 다행히 부상 정도가 경미했다. 이날 사고는 교차로에 진입하던 A씨의 차와 또 다른 승용차가 충돌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박 경사는 서울신문과 통화에서 “운전자를 밖으로 끌어올리는 과정에 상처가 난 것 같다”며 “구조 당시에는 몰랐는데 손이 따끔거려서 보니까, 왼손 약지가 2~3센티미터가량 찢어져 있었다. 지금은 다 나았다”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어 그는 “저희 관할은 아니지만, 제가 그 자리에 있어서 조치했던 것뿐이다. 다른 분도 그 자리에 있었다면 누구나 그렇게 하셨을 것”이라며 “많은 관심 가져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감사하다. 앞으로 더 열심히 근무하겠다”고 덧붙였다.
  • 데이비드 보위 저작권 3000억원에…앞날 불투명한데 왜 베팅하는 걸까

    데이비드 보위 저작권 3000억원에…앞날 불투명한데 왜 베팅하는 걸까

    2016년 암으로 69년 생을 접은 영국 뮤지션 데이비드 보위가 생전에 발표한 ‘스페이스 오디티’, ‘체인지스’, ‘렛츠 댄스’ 등 400여곡의 저작권이 워너 뮤직 그룹(WMG)에 넘어갔다. 이번 매각이 특별한 것은 사망한 뮤지션 가운데 최고액일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미국 일간 뉴욕 타임스(NYT)는 3일(현지시간) 다국적 엔터테인먼트 기업인 WMG가 저작권 판매 자회사 워너 채플 뮤직(WCM)을 앞세워 보위의 유산 관리인과 저작권 매매 계약을 체결했다고 보도했다. 계약 액수와 기간 모두 공개하지 않았는데 미국 연예잡지 버라이어티는 2억 5000만 달러(약 2983억 원) 수준이라고 전했다. 앞서 밥 딜런과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각각 3억 달러(약 3580억원)와 5억 5000만 달러(약 6564억원)에 저작권을 매각했지만 이미 세상을 등진 뮤지션 중에선 그의 매각액이 최대일 것으로 추정된다. 보위 작품의 저작권이 어떤 형태로 얼마나 매각됐는지 소개하기 전에 궁금증부터 풀어야 할 것 같다. 영국 BBC는 지난 20년 동안 컴팩트디스크(CD) 판매가 현저히 줄고 음원 스트리밍이 이를 충분히 대체하지 못했으며, 음악산업의 미래가 어떨지 누구도 자신하지 못하는 이 시점에 이렇게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이 ‘유산’들을 거둬들이는 데 매달리는 이유가 의아하다고 지적했다. BBC의 미디어와 예술 전문기자 데이비드 실리토는 이름 있는 아티스트들은 꾸준히 스트리밍되며 ‘불황에도 끄덕없는(recession-proof)’ 것으로 여겨지며 새로운 레코드 레이블과 회사들이 시장에 신규 진입하고 있어 엔터테인먼트 회사는 수지 맞는 자산으로 여긴다고 분석했다. 더불어 음악산업이 과거보다 훨씬 다양한 수입원, 예를 들어 스트리밍, 광고, 영화, 비디오게임, 온라인 비디오 등으로 활로를 뚫을 수 있어 아티스트와 유산 관리인, 가족들에게 은행에 예치했을 때보다 훨씬 많은 이득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음악으로 돈을 만들어내는 골치 아픈 일은 전문가들에게 맡기는 게 낫다는 판단도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스포티파이에 매일 6만곡이 새로 추가되는데 그 중 한 곡을 히트시키는 일은 (보위처럼) 50년 동안 명성을 쌓아온 아티스트에게도 힘겨운 일이 될 것이며 이렇게 엔터테인먼트 업체에 넘기는 것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베팅이란 점이 입증됐다는 것이다. 보위는 1967년 데뷔 앨범 ‘데이비드 보위’ 이후 사망 직전 발표한 앨범 ‘블랙스타’까지 50년 가까이 록음악계에서 늘 첨단을 걸은 뮤지션으로 평가된다. 무엇보다 동료 가수들이 존경하고 좋아했던 뮤지션이었다. 폴 메카트니 경, 롤링 스톤스, 브라이언 이노, 마돈나 등이 그를 흠모했고, 그의 천재성을 찬양했다. 1970년대 초반 양성적인 매력을 도드라지게 연출한 글램록 시기를 거쳐 유럽의 일렉트로닉 음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베를린 3부작’을 발표했다. 1980년대에는 ‘렛츠 댄스’ 등 히트곡을 앞세워 팝계의 정점에 올랐지만, 돌연 솔로 활동을 중단하고 밴드를 결성하는 등 꾸준하게 변화를 추구했다. 그는 1990년대 이후에는 인더스트리얼 록과 드럼앤드베이스,테크노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했다. 음악 전문지 롤링스톤은 세계적으로 1억장이 넘는 음반을 판매한 그가 69세를 일기로 암 투병 끝에 사망하자 ‘역대 최고의 록스타’에 선정했다.이번에 WCM과 합의한 것에는 생전에 발표한 26장의 스튜디오 앨범들과 사후 발매한 스튜디오 앨범 ‘토이’, 여기에 자신이 이끈 록 슈퍼그룹 틴 머신의 스튜디오 앨범 두 장이 포함된다. 아울러 영화 사운드트랙 음반의 싱글들과 다른 프로젝트 작업들이 망라된다. 보위는 음악 인생 50년 동안 한 해 평균 두 곡의 싱글을 남겼으며 뮤직비디오만 51개를 남겼는데 WCM과의 계약은 1968~1999년으로 한정됐다. 늘 앞날을 내다봤던 보위는 1997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채권을 발행해 투자자들에게 향후 10년의 로열티 수입 중 일정액을 배당한 것으로도 유명했다. 미국의 거대 보험사 프루덴셜 파이낸셜이 5500만 달러에 이 채권을 사들여 연간 확정 이자율 7.9%를 보장했다. 영국 경제 전문지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그는 EMI 레이블과 1969~1990년 발매한 25장의 앨범 로열티를 채권으로 묶어 팔도록 허가를 받아냈다. 하지만 2004년 무디스는 보위의 채권이 “정크(쓰레기” 바로 윗 단계라고 평가했다. 보위는 전통적인 음악 시장이 쇠퇴할 것을 미리 내다봤는데 2002년 NYT 인터뷰를 통해 앞으로는 음악이 “수돗물이나 전기처럼 흐르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 [서울광장] 문재인 정부 청구서/진경호 수석논설위원

    [서울광장] 문재인 정부 청구서/진경호 수석논설위원

    세밑을 강타한 애덤 매케이 감독의 넷플릭스 영화 ‘돈룩업’(Don’t look up)은 눈뜬장님, 아니 눈먼 비장애인들 얘기다. 지구로 날아드는 혜성을 두고 천체물리학자 디캐프리오가 “우리 다 죽는다. 하늘 좀 보라”고 외치지만 선거에 정신 팔린 대통령은 표 계산에 바쁘고, 방송사는 디캐프리오의 심각한 얼굴에 채널 돌아갈까 전전긍긍이다. 거대 정보기술(IT) 기업 오너는 혜성에 담긴 30조원어치 광물에 눈이 꽂히고, 결국 혜성 폭파의 마지막 기회마저 날린다. 다가서서 보면 희극, 물러나서 보면 비극이지만 돌아서고 나면 호러물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가장 섬뜩한 주인공은 사실 따로 있다. ‘군중’이다. 위기보다 잇속이 먼저인 정치와 자본, 미디어 권력에 눈이 가려진 그들은 불타는 혜성이 제 머리로 날아오는 순간이 돼서야 하늘을 본다. 파멸이 다가오지만 정부를 믿어서든, 운을 믿어서든, 놀고 먹기에 바빠서든 그들은 외면했고, 죽음으로 대가를 치른다. 이들을 구하는 할리우드 영웅 따윈 없다. 3월 대선이 끝나고 5월이 되면 새 집권세력만 오지 않을 것이다. 지난 5년 차곡차곡 쌓아 둔 문재인 정부 청구서도 결박을 풀고 하나 둘 날아든다. 탈원전의 기치를 훼손할까 싶어 꽁꽁 묶어 두었던 전기요금, 가스요금 고지서는 맛보기가 되겠다. 부동산세 고지서들도 만반의 출격 채비를 갖췄다. 양도세를 늦추느니, 재산세를 낮추느니 하지만 선거용일 뿐 서울 아파트값이 5년간 배로 뛴 터에 세금 폭탄을 피할 도리는 없다. 나랏빚은 어떤가.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 정부 마지막 국가예산 400조원을 5년 새 600조원대로 50% 올려놓는 동안 국가부채 역시 하루에 3000억원씩 차곡차곡 쌓여 1000조원을 넘겼다. 이렇게 5년간 빚잔치를 벌이고는 다음 정부에선 빚 관리가 중요하다며 정부 재정지출을 억제하는 중기재정계획을 임기 마지막해 내놨다. 허리띠는 너희들이 조르라는 얘기다. 문 정부가 불린 나랏빚을 다음 정부와 우리 후대가 갚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아무 일도 하지 않아 발생한 청구서도 즐비하다. 탄핵 사태로 인해 중단된 4대 연금 개혁을 이 정부는 철저히 외면했다. 국민연금이 2055년이면 고갈된다는, 1990년생이 65세가 되면 연금을 한 푼도 못 받게 된다는 경고음이 숱하게 울렸지만 오불관언이었다.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 적자도 매년 늘어 올해는 4조원대, 내년엔 5조원대에 이를 전망이다. 모두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인구 절벽과 잠재성장률의 위기는 더 암울하다. “애 안 낳는 게 내 탓이냐”고 하겠으나, 취임하며 보란 듯 만든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딱 한 번 주재하고는 발을 끊은 문재인 대통령이 할 소리는 아니다. 소득주도성장론으로 날려 버린 일자리 문제는 노동시장 개혁 포기로 출구를 잃었다. 취임 때 집무실에 뒀다는 일자리 상황판은 5년 내내 소재 불명이다. 조국 사태가 촉발한 가치 훼손은 청구액을 가늠키 어렵다. 공정과 정의의 자리에 내 편과 네 편을 끼워 넣어 사회 신뢰를 무너뜨리고 불신과 대립의 갈등 비용을 한껏 높였다. 검찰정치 개혁이라는 구호는 정치검사 중용이라는 개악의 실체를 드러냈다. 더불어 권력 수사는 사라졌다. ‘우리 이니 하고 싶은 대로 다하라’고 친문 세력들은 성원했다. 그로부터 5년, 하고 싶은 건 웬만큼 다 한 듯하다. 그러나 해야 할 건 안 했다. 당장은 욕을 먹더라도 나라와 후대를 위해 해야 할 것들을 외면했다. 먹을 욕조차 다음 정부로 넘겼다. 지난달 참여연대 등 18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공약 분석에서 문 정부 4년 공약이행률은 17.5%에 그쳤다. 누가 바통을 이어받아도 지난 5년의 이 국정 지체를 욕 안 먹고 메울 재간은 없어 보인다. 문 대통령의 임기말 지지율이 대선 득표율 41.8%를 웃돈다. ‘돈룩업’만큼이나 섬뜩하다. 촛불혁명은 촛불잔치가 됐다.
  • 부산오페라하우스 땅 주인은? ...대법, 부산 중구 손들어줘 

    부산오페라하우스 땅 주인은? ...대법, 부산 중구 손들어줘 

    부산북항 재개발지역 내 오페라하우스 부지가 부산 중구 관할로 최종 확정됐다. 부산 중구는 최근 대법원이 부산동구가 낸 ‘부산 북항 제2, 3부두 인근 공유수면 매립지 귀속 지방자치단체결정 취소’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렸다고 3일 밝혔다. 대법원이 중구의 손을 들어주면서 북항 주요 시설인 정보·통신(IT) 영상전시지구 2곳과 오페라하우스가 중구의 행정구역으로 포함됐다.앞서 행정안전부 중앙분쟁조정위원회가 북항 재개발지역 행정경계 조정안 기준을 중구가 요구한 영주고가도로로 결정한 것과 뜻을 함께한 것이다.줄다리기는 2017년부터 시작돼 5년간 이어졌다. 오페라하우스 등 관할을 두고 이들 두 기초자치단체는 자신들의 소유라며 한치 양보 없이 팽팽한 기 싸움을 벌였다. 북항 재개발에 따른 인구 증가와 세수 확보, 관광 등 지역 경제 활성화에 적지않은 도움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부산항만공사, 부산해양수산청 등 관계기관이 나섰지만, 실마리를 풀지 못했고, 결국 대법원까지 소송이 이어졌다. 최진봉 부산 중구청장은 “원도심의 숙원사업인 북항 1단계 재개발사업이 중구안대로 결정돼 기쁘다“며 ”동구와 함께 북항 재개발 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되도록 상생협력 하겠다“고 말했다.
  • “올해는 전면등교 대신 정상등교”…말 바꾼 교육부

    “올해는 전면등교 대신 정상등교”…말 바꾼 교육부

    코로나19 학생 확진자가 대폭 늘어나면서 많은 비판에 부딪혔던 교육부의 ‘전면등교’ 정책이 ‘정상등교’로 바뀐다. 전면등교를 고집하지 않고 방역 당국의 사회적 거리두기 수준에 맞춰 학교 밀집도 조정 등 탄력적인 학사 운영을 하겠다는 뜻이다. 교육부는 3일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코로나19 브리핑에서 “새 학기에 전면등교를 하겠다는 방침을 지금 단계에서 확정해 말하기 어렵다. 학사일정 역시 사회적 거리두기나 백신접종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2월 초쯤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전면등교는 획일적이고 전체 학생들이 무조건 등교를 한다는 의미가 있다. 이전 같이 등교를 하도록 돕고, 전면등교를 포함해 학교 내 활동도 정상으로 바꾸도록 하겠다는 의미로 전면등교에서 정상등교로 바꾸는 것을 현재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곧 발표하는 올해 신년계획에도 전면등교 대신 정상등교 정책으로 바뀌는 내용이 포함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전날 신년사에서 “올해 3월 새 학기에 정상적인 등교가 이뤄지고, 모든 학교 교육활동이 온전하게 회복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많이 우려하는 청소년 백신접종 중증 이상반응은 국가가 책임지는 자세로 더 세심하게 지원할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교육현장과 긴밀히 소통하고 의견을 경청해 정책 수용성을 높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반대 속에 발표했던 ‘전면등교’라는 대신 ‘정상등교’라는 단어를 써서 분명하게 선을 그은 것이다. 교육부는 지난해 11월 22일 전면등교를 시작했다가 학생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4주 만에 철회했다. 여기에 백신접종을 사실상 강제하는 청소년 방역패스(접종증명·음성확인) 강행으로 논란을 불렀다. 교육부는 애초 2월 시행하려던 12세 이상 청소년 ‘방역패스’(접종증명·음성확인제)를 한 달 미뤄 3월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1개월의 계도기간을 두기 때문에 사실상 4월부터 시행하는데 “확진자가 대폭 감소하면 철회할 수 있다”는 단서도 붙였다. 그럼에도 학원계는 이와 관련 유감을 표하고 전면 철회를 요구하는 상황이다. 방역패스를 3월부터 하려면 오는 24일까지 1차 접종을 완료해야 한다. 방학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백신접종률이 낮아질 확률이 높다. 교육부는 백신접종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홍보 활동에 힘을 쓸 계획이다. 교육부는 이날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코로나19 브리핑에서 “백신에 대한 오해를 풀고자 소통할 예정이다. 유 부총리도 온·오프라인 소통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홍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국내 코로나19 신규 확진자수가 감소세로 전환한 가운데, 전국 학교 대부분이 겨울 방학에 돌입하고 학생 백신 접종률이 올라가면서 학생 확진자수도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2일까지 나흘 동안 전국 유·초·중·고 학생 일평균 확진자는 487.3명이었다. 학생 확진자는 지난달 9∼15일 일평균 963.9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958.9명(2021년 12월 16∼22일), 770.9명(2021년 12월 23∼29일) 등으로 감소하고 있다. 12~17세 학생백신 2차 접종률은 1일 0시 기준으로 50.7%를 기록했다. 1차 접종률은 75.0%였다.
  • [2022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몸의 기억으로 ‘나 사는 곳’을 발견해가는 언어-신미나론/염선옥

    1. 몸의 기억에 부여되는 리얼리티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결과물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어쩌면 예술이 끝자락에 도달해 있고 이제 “규정 불가능성”(하이데거)에 빠진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현대는 예술 과잉의 시대이자 ‘무(無)예술성’의 시대이기도 하다. 이는 헤겔이 비유한 것처럼, 이제는 예술이 인간의 비대해진 욕망을 더는 채워 줄 수 없다는 “예술의 종언”을 증명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우리가 쓰고 읽는 시 또한 예외가 아니다. 현대성과 서정성이 미학적으로 반목을 거듭하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 현상은 이분법적 폐쇄성이 낳은 관념적 산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시의 속성을 탈(脫)서정성에 두려는 해체적 사유는 끊임없이 지속되어 왔다. 현대성과 서정성은 대척적 개념이 아니라 수많은 접점을 만들어 가면서 새로운 시의 차원으로 수렴되어 가는 것이라는 앙투안 콩파뇽의 ‘현대적 전통’론은 여전히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신미나에게 ‘시’는 현대성과 서정성이 만나면서 발원하는 예술적 실체로서 그녀의 시는 현대인에게 예술의 존재를 아직도 따뜻하게 건네는 악수로 은유될 수 있을 것이다. C.S. 루이스는 ‘오독’(1961)이라는 비평집에서 현대는 삶과 예술이 혼동되며 시인과 대중이 서로 예술을 다르게 이해하는 시대라고 갈파한 바 있다. 또한 이성복은 ‘불화하는 말들’(2015)이라는 시론집에서 시인들에게 세상과 불화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그만큼 적지 않은 논자들이 현대시가 세계와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음을 강조한 것이다. 이렇게 예술과 세계가 불화하는 시대에 신미나는 점점 멀어져 가는 경험과 언어 사이의 거리를 좁히면서 그것을 통합하려고 한다. 본래 시가 노래와 춤이라는 몸의 기억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상실된 아우라(Aura)를 여전히 기억해야 할 미학적 흔적으로 보고 이를 재포착함으로써 삶과 분리된 예술을 통합하려는 것이다. 신미나의 시에서 우리는 현대인의 닫힌 기억들이 열린 기대 속에서 각인되는 과정을 경험한다. 그녀에게 몸의 기억은, 비록 하찮고 순간적으로 꺼질 미광(微光) 같은 것일지라도, 수없는 리얼리티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고리에 실 묶고 방문을 닫는 찰나 번쩍 세상이 온다 아가, 세상이 어찌 보이냐 할아버지 어린 나를 무등 태우고 뒤돌아서서 지붕 위로 어금니 던진다 까치가 어금니 물고 간 곡선으로 내 젖무덤은 부풀어 올라 백내장 걸린 할아버지 중얼거리시데 저 봐라, 상갓집에서 혼 빠진다 - ‘산 너머’ 전문 시의 화자는 어린 시절 이를 뽑던 기억, 할아버지 무등을 타던 기억을 떠올린다. “문고리에 실 묶고 방문을 닫는 찰나 번쩍 세상이 온다”는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 있는 감각을 부여한다. 할아버지가 무등 태우며 ‘헌니 줄게 새 이 다오’를 노래하던 순간은 온몸으로부터 분출되고 온몸으로 수렴되는 발화의 기억을 남긴다. 신미나의 시에 그려진 화자의 경험과 기억은 독자의 마음을 열어 주면서 무등 탔던 기억, 실에 묶어 이를 던졌던 기억, 미신과도 같이 헌 이를 주면 새 이를 물어다 준다고 노래했던 기억에 생생한 리얼리티를 부여한다. 이렇듯 몸의 기억에 리얼리티를 부여한 결과 그녀의 시는 많은 이들에게 오래된 정동적 연결망을 제공하게 된다. 신미나는 수많은 시편을 통해 “장판에 손톱으로 꾹 눌러놓은 자국 같은”(‘이마’) 기억, “어린 조약돌 몇 개 씻어 주머니에 넣고”(‘첫사랑’) 다니던 기억, “눈밭에 노란 오줌 구멍을 내”(‘연’)던 기억, “방바닥에 엎드려 글씨를” 쓰다 “공책 뒷장에 눌러쓴 자국이 점자처럼 새겨졌”던 기억(‘받아쓰기’), “생쌀을 씹는 버릇”(‘윤달’)의 기억을 소환한다. 이러한 섬세한 기억들이 귀환하는 방식은, 기록되지 못한 채 떠돌지라도, 시인으로 하여금 창의적 감각과 초월적 사유를 거느리게끔 해 준다. 이를 통해 시인은 현대인이 가진 몸의 기억을 순간적으로 각성시키면서 파편화된 체험을 끌어들이는 놀라운 통합의 힘을 발휘한다. 2. 신화와 샤먼적 요소 신미나는 개인적 경험뿐 아니라 공동체적 감각이 묻혀 있는 시대를 향하는 시인이다. 기억의 바닥에 있는 시대의 경험과 그것에 얽힌 삶의 파노라마를 펼쳐 보이려고 노력한다. 이는 개인의 정체성이 전체를 통해 얻어지는 질서의 틀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신미나의 기억은 할머니의 삶과 함께 빈번하게 드러나는데, 화자의 삶은 할머니에 의해 ‘명랑’을 되찾고 있으며 “오랜만에 찾아온 할머니가 장사치로 떠도는 게”(‘마고 2’) 싫을 정도로 화자의 고백에는 할머니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숨쉬고 있다. ‘마고 할멈’은 시인에게 삶이라는 매트릭스 안에서 죽음을 애도하며 견뎌 애써 살게끔 해 주는 상징이다. 기억 속의 할머니는 시인의 삶을 지탱하는 에너지이고, 시인은 자신의 경험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할머니의 삶과 기억을 끌어들여 샤먼적 요소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처럼 그녀의 시에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낡은 것으로 치부되기 쉬운 농경적 삶의 방식이 생생하게 보전되어 있다. 과학기술 사회에서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으로 묻혀 버린 옛것을 꺼내와 그것이 가져다준 진정한 메시지를 독자와 교환한다. 삶을 위로하던 공감 요소인 신화가 불려올 때 그녀의 시에서는 샤먼의 배치 과정이 필연적으로 중요하게 개입하게 된다. 사실 신미나의 시에는 무속 체험과 감각이 빈번하게 암시적으로 드러난다. 그녀는 첫 시집 ‘싱고, 라고 불렀다’(2014)와 제2시집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2021)에서 신화나 샤먼의 체험을 두루 끌어들이고 있다. 그녀에게 신화나 샤먼적 요소는 자신만의 고유한 경험과 기억의 산물이다. 신화와 샤먼적 요소는 “뜻 없이 반복되는 이야기”처럼 “먼 데서 음악 소리가 들”(‘어디 먼 데서 음악 소리가 들리고’)리는 기억에 담겨 있는데, 이는 “너무 많은 무늬를 몸에 새긴” 것 같아 끝없이 되풀이된다. 그것들은 자아를 지탱하는 배경과 같으며 이러한 사례는 그녀의 시 전체에 걸쳐 배치되어 있다. “지푸라기인형”(‘마고 2’, ‘백일몽’)과 “헝겊인형”(‘묘의 함’), “종이인형”(‘묘의 함’, ‘양옆으로 길게 늘어선 거울’)은 무(巫)와 관련을 두고 있으며, 탱화나 “천년을 물속에 살아야 사람으로 환생한다는 물가”(‘백일몽’) 이야기, “때리면 정신 든다는 무당 말”(‘불티’)에 “아비가 대나무 뿌리로 아들을 때”리는 주술성이라든가 “몸을 얻으려면 새 옷을 입어야”(‘홍합처럼 까맣게 다문 밤의 틈을 벌려라’) 하는 샤먼적 상상, 저승으로 떠나게 될 아기들이 가여워 제명과 맞바꿔 아기들을 살린다는 ‘마고’ 신화까지, 그녀는 수많은 샤먼적 요소를 활용하고 있다. 모든 것이 과학적 시선에 의해 지배되는 현대에 샤먼과 신화적 요소는 리얼리티를 감쇄시킬 수도 있을 법한데, 신미나의 시에서 그것들은 우리의 삶을 독특한 형태로 보존하는 역할을 한다. 그녀는 할머니와의 관계에서 겪은 기억을 중심으로 인문적 사유가 제거된 과학기술의 공허함과 허황된 논리를 비판하면서 그 빈 곳에 신화와 샤먼을 채워 넣는 것이다. 묘는 한 번도 태어나지 않은 아이 헝겊 인형이 대신 말을 한다 오색 종이로 만든 가마에 고깔모자를 쓰고 묘는 검정으로부터 왔다 묘의 주머니는 작고 이따금 탄내가 난다 주머니 속에는 타다 만 볍씨가 있다 묘의 상자 속에는 문방구에서 훔친 종이 인형이 있고 엄마를 삽으로 때리던 아버지가 있고 정글짐 꼭대기의 해가 타고 있다 - ‘묘의 함(函)’ 전문 ‘묘’는 “한 번도 태어나지 않은 아이”로서 “헝겊 인형이 대신 말을” 하고 “오색 종이로 만든 가마에 고깔모자를 쓰고 묘는 검정으로부터” 온 존재이다. 종이 가마에 고깔모자를 쓴 검정으로부터 태어난 ‘묘’는 제의를 치르는 무당 같은 신비스러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묘의 상자 안에는 “문방구에서 훔친 종이 인형이 있고 엄마를 삽으로 때리던 아버지가 있”다. 바로 이는 접신과 빙의된 샤먼의 모습이다. ‘종이 인형’을 한 묘의 상자 안에는 타인의 삶이 담겨 있는데 거기에는 “문방구에서 훔친 종이 인형”이 있고 “엄마를 삽으로 때리던 아버지”도 있다. 시인이 은유하는 것은 시대의 종말과 위기에 있지 않다. 다만 그녀는 시공을 초월하여 보편적이라고 믿어 왔던 인간의 존재방식에 균열을 낼 뿐이다. 기술 발전과 합리성이 채워 주지 못하는 소외와 불안을 ‘무속’ 모티프를 통해 진단하고 ‘해원’이라는 처방으로 나아가려 하는 것이다. 오랜만에 찾아온 할머니가 장사치로 떠도는 게 싫어서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화를 냈더니 이고 있던 채반을 내려놓고 갔다 채반 위에 팥 한 알 또렷이 남았다 다음날엔 보따리를 두고 갔다 매듭을 풀어보니 지푸라기 인형이 나왔다 겨드랑이에 손을 끼우고 일으켜 세워도 자꾸만 목이 꺾였다 배를 갈라보니 노란 것이 반짝 했다 금니였다 할머니의 등에 새긴 문신은 쟁기, 방패 귀갑 귀갑, 쟁기, 방패 마작처럼 패를 뒤집어 얼굴이 자도르르 돌아간다 쟁기, 방패, 귀갑 귀갑, 쟁기, 쟁기 눈, 코, 잎을 갈아 끼운다 높고 슬픈 노래를 물려주려고 잠들면 가만 코에 손가락을 대본다 할머니는 피가 너무 환해서 인간의 잠을 자지 못한다 - ‘마고 2’ 전문 장사치로 떠도는 할머니가 등장하자 화자는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화를 낸다. 이는 가난한 할머니의 고통이 새겨 넣은 상처를 마주하는 화자의 고통을 암시한다. 종종 가난으로 얼룩진 기억은 삭제되거나 묻히는데, 시인은 할머니의 기억을 아프게 되살려 고통과 가난을 마주하는 순간을 불러낸다. 할머니는 보따리를 두고 갔지만 그 매듭을 풀어 보니 지푸라기 인형이 그 안에서 나온다. 아무리 일으켜 세우려고 해도 자꾸 목이 꺾이기만 하는 인형의 배를 갈라 보니 노란 금니가 반짝이고 있다. 지푸라기 인형이라는 샤먼적 요소를 통해 할머니와 접신하는 경험은 신비롭다.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신화와 샤먼적 요소를 통해 추억으로 남은 것이다. 할머니에게 들었던 신화를 통해 다시 할머니를 만난 것이다. 할머니의 등장이 어린 손녀가 겪어 갈 미래에 대한 염려 때문이라는 전개는 신화의 이미지를 거느리는데 “배를 갈라보니” 노란 금니가 나온다는 신화는 작품에 이러한 환상성을 부여하고 있다. 붉은 구슬을 입에 물고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흰 천을 배로 가르며 할머니가 나왔 습니다 천수관음은 천개의 손으로 슬픔을 어루만진다는데 손이 천개면 세상의 눈물을 닦을 수 있습니까 뜨거워서 그래, 아가 어쩌다 네 마음에 명랑을 잃었니? 할머니는 천수(泉水)를 한 모금 머금고 내 입에 흘려 열을 식혀 주었습니다 봄에 난 콩 싹처럼 웃어보라, 해를 피하지 않는 해바라기처럼 용감해라, 물 만난 오리처럼 신나게 욕해보라, 비 온 뒤 제비처럼 까불어라, 분수처럼 솟구쳐라, 쪼개고 쑤시고 부러뜨려라, 톱날의 요철과 같이 벌떼처럼 화를 내라, 연기처럼 곧게 서라, 백합처럼 기도하고, 뛰고 달리고 돌아서서 안고 뱉고 찢고 발 굴러라 할머니는 겹겹의 모란 치마로 나를 폭 싸서 공중에 띄웠습니다 키질하듯이 위아래로 까부르니 몸이 아기만큼 작아져 배꼽이 간지럽고 이히히 웃음이 났습니다 할머니는 내가 말을 배우기 전 아기들만 아는 우스운 재미로 슬픔을 걷어가려 한 것인데 오랜만에 웃은 게 세상에 없는 일인 걸 알고 섭섭해서 눈을 감았습니다 - ‘탱화 3’ 전문 화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흰 천을 배로 가르며 할머니가 오셨다는 것은 시인에게 강림하는 샤먼적 순간을 선명하게 부각시킨다. “명랑을 잃은” 화자에게 할머니는 “천수(泉水)를 한 모금 머금고” 입에 흘려 열을 식혀 주었다. 이러한 발화를 통해 할머니의 존재는 화자에게 한 차원 더 명확해진다. 할머니는 “…웃어보라, …용감해라, …욕해보라, …까불어라, …솟구쳐라, …부러뜨려라, …화를 내라, …곧게 서라, …기도하고, 뛰고 달리고 돌아서서 안고 뱉고 찢고 발 굴러라”라고 위로하며 말을 배우기 전 아기들만 아는 재미로 슬픔을 걷어가려 했기 때문이다. 이런 할머니에 대해 화자는 “오랜만에 웃은 게 세상에 없는 일인 걸 알고 섭섭해서 눈을 감”는다. 화자에게 할머니는 ‘웃음을 주는’ 존재이며 삶에 원초적인 힘을 주는 정신적 동반자이다. 할머니의 상실을 지우고 할머니의 존재를 보존하는 방식은 기억에 의해 가능한 것인데, 시인은 신화적이고 샤먼적인 신비함을 그 안에 담음으로써 이러한 작업을 수행한다. 할머니와의 만남을 신비한 일로 확장해 가면서 신화적이고 샤먼적인 성격을 현실로 돌아오게 한 것이다. 3. 존재론적 근거로서의 기억을 통한 표준화에의 저항 할머니는 현존하지 않고 시인의 몽상과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 베냐민이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따르면, 신미나는 과거를 고정적 점으로 보지 않고 현재로부터 관찰하고 불러낸다. 할머니와의 관계에서 기억으로 새겨진 것은 언젠가 ‘있었던’ 실재일 뿐이다. 그러나 신미나는 세속적 질서 속에 할머니의 기억과 농촌 경험을 가져와 행복에 대한 표상을 과거로부터 형성한다. 화석으로 남은 시골이 따스한 공간이었다는 전언을 통해 도시가 가진 허상을 비판하고 지금까지 가졌던 삶의 불균형에 균열을 일으키는 것이다. 신미나는 이렇게 자신의 기억을 응시하면서, 데리다가 말하는 흔적(trace)을 만지는 일을 수행한다. 수레가 남긴 바퀴자국을 토대로 동물과 수레의 현전을 논할 수 없듯 그의 흔적은 ‘없다’를 말할 수 없는 심적 자국인 것이다. 그 점에서 ‘지켜보는 사람’을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의 첫 작품으로 배치한 것은 퍽 유의미하다. 본다는 것, 보았다는 것은 허상이 아닌 실상으로, 부재가 아닌 존재로 인정하는 일이며, 그 존재성은 사라지지 않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이는 ‘있는’ 것과 ‘있었던’ 것이 가지는 존재성의 기대를 동시에 내포한다. 한 알의 레몬이 테이블 위에 있다 오래전에 있었던 것처럼 금방 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한 알의 레몬이 눈앞에 있다 그것을 치우면 레몬은 과거형으로 존재한다 흰 테이블보 위에 레몬이 있다 눈을 감아도 레몬은 레몬 빛으로 남고 나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는다 진심으로 보인다 - ‘지켜보는 사람’ 부분 화자는 테이블에 놓인 “오래전에 있었던” 한 알의 레몬을 바라본다. 눈을 감아도 보이는 레몬은 비록 치워진다 해도 ‘과거형’이 될 뿐 비(非)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리했던 것은 눈을 감아도, 그것을 치우더라도, “레몬 빛으로” 남는 ‘사실’이 되고 “진심으로” 보이는 것이 된다. 존재의 가치는 시간이 증여한 것도 아니고 사회가 합의한 상징도 아니다. 그것은 개인이 경험하여 의미가 솟아나는 지점에서 생겨날 뿐이다. 그 세계에서 기호화되지 못한 것들은 “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들은 “그림자를 만”들고 조용히 남아 있게 된다. 이는 “쪼그리고 앉아”(‘단조’)서 보던 물에 불어나는 한 톨의 쌀알이 “찬 벽에 발을 대고 누”워서도 천장에 떠오르는 또렷함 같은 것이다. 기억은 ‘있었던’ 것의 부재를 또 하나의 존재로 인정하는 과정으로 도약한다. 동요 속에서 마구 튀어오르거나 우글거리는 기억의 운동성은 존재의 살아 있음을 말해 주는 증거가 된다. 시인이 쓸모없는 일로 여겨지는 기억에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기억 속에 오롯이 권역을 형성하고 우리의 인식과 감각에 등장하는 본연의 것들은 비록 외곽으로 밀려나 버렸다 해도 우리를 상실과 폐허 속에서도 살아가게 하는 존재론적인 근거이기 때문이다. 물론 때때로 기억은 자주 하찮고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기억이 물질적인 감각에 찍힌 낙인일 때 신미나의 시는 기억의 집적을 통해 그러한 규정을 벗어난다. 그의 기억은 일정한 시공간과 서사와 감각을 보유하고 있다. 그것은 생명의 고리를 이으면서 긍정적으로 순간순간을 끌고 나간다. 보들리야르는 현대를 가리켜 “현존하는 모든 시스템의 비만 상태”라고 지적하면서도 현대인은 기억과 상상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잊어버렸다고 말한다. 신미나의 시는 언어의 옷을 채 입지 못한 기억들로 가득 채워짐으로써, 시적 주체를 추동하는 공감의 발원지로 기능하게 한다. 새로운 것의 권위에 대해 역설한 콩파뇽은 기억을 유행과 현대적인 것에서 그리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니라고 말했는데, 이는 기억이 ‘새로움’에 대한 ‘낡음’이라는 모순관계의 짝패가 아니라 오히려 현대가 담아내지 못하는 ‘상상력’의 방식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공연한 일들”과 “쓸모없는 일들”이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신미나의 목소리는 기억의 세부를 포착하겠다는 의지이며, 그녀의 시는 폐기되는 세부에 대한 경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신미나는 주변에 널린 세부에 주목하면서, 삶은 지평이 아니라 오히려 세부의 집적임을 말한다. 이때 세부는 여러 차원의 경험으로 채워진 모래사장으로서, 우리는 그 속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는 다양한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공연한 것들, 쓸모없는 것들은 삶을 채워 주는 세부인 것이다. 그녀의 시는 새로움을 추구하는 방식과 불화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법칙 이외에 어떤 언설에도 동요하지 않고 자신이 지향하는 고유의 법칙을 유지한다. 이때 도시는 다름과 비뚜름 대신 바름을 동의반복적(同意反復的)으로 배열하고 배치하는 공간으로 등장한다. 유동하는 세계 어디를 가도 한가운데 자랑스럽게 같은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 바로 도시이기 때문이다. 네모반듯한 도로와 건물, 기호와 상징, 그 속에서 현대인은 한 방향으로 향하는 물고기 떼처럼 몰려간다. 모든 공간이 유사해지면서 모국어가 있어도 전 세계가 몇몇 우세어를 중심으로 통일되고 있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이 표준화와 평균화에 저항하는 신미나 시의 힘이다. 이상하지 않나요, 이런 고요는 몰려오던 해일이 눈앞에서 멈춘 듯한 누군가 세계의 안과 밖에 커다란 간유리를 끼워두었으므로 나의 폐는 부레가 될 수 없고 물고기는 눈을 깜빡일 수 없어요 빛에 일렁이는 물 그물이 나의 발을 얽을 뿐입니다 - ‘아쿠아리움’ 부분 물주름 없는 물결 귀를 떠난 소리 풀 없는 인공 정원 - ‘홍제천을 걸었다’ 부분 현대인의 행동 양식은 모든 면에서 어떤 인공적인 것의 제작 방식과 일치하는 양상을 보인다. 같은 것이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현대인은 동화되어 가고 있다. 노동하는 동물로 격하된 채 살아갈 뿐 거부와 배척이 두려워 ‘소수-되기’를 선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이 살아가는 도시는 개인에게 감동을 주는 일에 대하여 어떤 말도 하거나 듣지 않는다. 도시인다운 ‘다수-되기’(에티엔 발리바르)를 지향하게끔 할 뿐이다. 도시는 고유한 특성이 제거된 개인을 색인 속에 분류하고 저장한다. 그런 가운데 개인의 슬픔은 썩어 가거나 사라지게 된다. 도시인의 언어는 차가운 콘크리트 언저리에서 싹튼 불쾌하고 축축한 우울과 소외의 언어가 된다. 그런 언어로 표지된 도시인은 자신의 결여된 내면성을 드러낼 방식이 없게 된다. 이러한 세계에 대한 미학적 항의가 신미나의 시다. 4. ‘나 사는 곳’의 발견 과정으로서의 기억 혹자는 신미나의 시에서 농촌과 자연과 가난이 빚어낸 서정성을 읽어낸다. 그러나 우리는 더 확장된 의미로서 폭력의 시대에 소실되어 가는 ‘나 사는 곳’(오장환)을 훑는 작업을 읽어 낸다. 모국어의 소실과 전통의 소외와는 달리 매체와 일상을 메우는 것은 온통 서구 것이다. 케이팝(K-Pop)과 한류(Korean-Wave)도 서구 입맛에 맞춘 예능으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SNS의 시대, 24시간 운영되는 편의점, 하이브리드-스토어 등 과학기술의 발전은 콘택트 없이도 실시간 업무를 가능하게 했고, 신용카드라는 합의된 인증 방식의 결제를 통해 우리의 취향과 입맛은 모두 통제되고 있다. 이런 위험신호를 감지한 신미나는 ‘나 사는 곳’을 중심으로 우리의 것 속에서 새로움을 찾아내고 있다. 보들레르가 현대성을 현대인의 불안과 관련시켜 읽어 냈다면, 신미나는 현대성을 폭력과 상실로 읽어 낸다. 그녀가 읽은 현대라는 미달태(未達態)는 “누군가 세계의 안과 밖에 커다란 간유리를 끼워”(‘아쿠아리움’) 둔 것과도 같아 “폐는 부레가 될 수 없고 물고기는 눈을 깜빡일 수 없는” 상실의 세계일 따름이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머금고 “그만, 이라고 말해도 자꾸만 공을 물어 오는 착한 개처럼”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폭력인 것이다. 아쿠아리움에 가둔 물고기 세상처럼, 우리가 사는 곳은 동일한 풍경이 반복되어 나타나고 “풀 없는 인공 정원”(‘홍제천을 걸었다’)이 가득한 곳이 되고 말았다고 시인은 진단한다. 마당이 있는 저 집에서 살면 참 좋겠다 언덕 위에는 여자 대학교가 있고 배구공 튕기는 소리도 가끔 들리고 비빔국수 잘하는 냉면집도 있고 가을이면 키 큰 은행나무가 긍지처럼 타오르는 동네 문방구 평상에 한참을 앉아 있어도 핀잔주지 않는 할머니가 있고 옆에서 신문지 깔고 고구마순 껍질이나 같이 벗기고 싶고 해 지기 전에 수건을 걷어 오른팔에 얹고 옥상에서 내려갈 때 젖이 불은 개가 헐떡이며 걸어가는 것을 보는 집 보러 왔다가 그냥 간다 이가 썩어 구멍 난 데를 혀로 쓸며 돌아보는 사직동 - ‘지하철역에서 십오분 거리’ 전문 ‘고스트 타운’(베냐민)이 된 도시가 현대화의 필연적 산물이라면 시인이 바라는 도시는 어떤 곳일까? “풀 없는 인공 정원” 대신 “마당이 있는” 집이고 “문방구 평상에 앉아 있어도 핀잔주지 않는 할머니가” 있는 곳이다. 부품을 한데 모아둔 것처럼 젊은이들만 들어찬 도시가 아닌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공간이며, 아이들이 애용하는 문방구 평상이 있는 공간이다. 또 획일화되지 않은 무정형의 공간이며 비폭력적 공간이자 비상실의 장소이다. 빌딩과 벽이 없는 언덕 위에 여자대학교가 있는 곳이며 그곳에서 “배구공 튕기는 소리도 가끔 들리고” 비빔국수 잘하는 냉면집도 있어 맛볼 수 있는 “가을이면 키 큰 은행나무가 긍지처럼 타오르는 동네”인 것이다. 시인이 이러한 공간성을 가져오는 방식은 ‘우리 것’의 회복이자 ‘나 사는 곳’의 확인 과정인 셈이다. 첫 시집에서부터 발견되는 그의 시적 공간은 도시 미학적 공간과 거리가 이처럼 철저하게 멀어진다. 또한 신미나의 시는 흔적으로만 남은 우리말의 보고이다. 현대적인 것을 이루는 성좌를 완성할 때 세련된 시어의 반복과 나열이 필수라면 시인의 언어는 낡은 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현대적인 것으로 명명된 모든 상황에서 시인이 채우는 장판, 요, 밥물, 물금, 내천, 조약돌, 연밥, 무밭, 아욱잎 등 추억을 생생하게 되살리는 우리의 감각적 언어가 더 감각적이고 새로운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시인은 농도 짙은 외래어를 사용하기보다 ‘싱고’, ‘무이모아이…’ 같은 우리말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쏟아져 흐르는 외래어와 말줄임에 우리말은 몸살을 앓고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언어란 얼마나 나약하기만 한가? “나는 오리라 하였고 당신은 거위라” 하였으며, “나는 공복이라 하였고 당신은 기근”이라 부르며, “당신은 성북동이라 하였고 나는 종암동이라” 하였다는 등 언어는 불통을 잠재적으로 내재한다. 언어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 일치”(‘사랑의 순서’)하는지도 모른다. 신미나는 시가 소통되지 못하는 시대에 자신의 언어를 독자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도시의 방식인 고통의 언어 대신 모태의 언어를 내뱉는다. 모태의 언어는 관찰과 소통과 사색을 통해 유래된 ‘흙’의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자기를 더 많이 드러내고 표출하는 도시 방식 대신 듣고 보고 느끼는 ‘삼중(重)의 겹’을 택한 결실이다. 이때 시인은 도시 안에서 ‘보는 자’이자 ‘느끼고 듣는 자’가 된다. “휘파람을 불며 길을 나서”면 “리어카에 폐지를 실은 노인들”(‘입김’)도 볼 수 있고, “한 손으로 번쩍 아이를 들어올리는”, “얼굴만 아는 여자”(‘길음동’)도 만날 수 있다. 또 “신발을 꺾어 신고 앞서”(‘모란과 작약을 구별할 수 있나요?’)가는 이를 살펴볼 수도 있다. 화자가 바라보는 것은 무언가가 되지 못한 세부이며 삼중의 겹을 통해 시로 현상된 것들인 셈이다. 또한 그녀의 시는 우리로 하여금 “수건 안감의 아라베스크 무늬”를 보게 하고 “귀 기울여 듣게” 한다. 우리는 말하기를 유보하고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선행해야 비로소 삼중의 겹을 완성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 머리를 끄덕이게 하는 공감 과정이 그 안에 있다. 장마 지면 정미네 집으로 놀러 가고 싶다. 정미네 가서 밍크이불을 덮고 손톱이 노래지도록 귤을 까먹고 싶다 김치전을 부쳐 쟁반에 놓고 손으로 찢어 먹고 싶다 새로 온 교생은 뻐드렁니에 편애가 심하고 희정이는 한 뼘도 안 되는 치마를 입는다고 흉도 볼 것이다 말 없는 정미는 응 그래, 싱겁게 웃기만 할 것이다 나는 들여놓은 운동화가 젖는 줄도 모르고 집에 갈 생각도 않는다 빗물 튀는 마루 밑에서 강아지도 비린내를 풍기며 떨 것이다 불어난 흙탕물이 다리를 넘쳐나도 제비집처럼 아늑한 그 방, 먹성 좋은 정미는 엄마 제사 지내고 남은 산자며 약과를 내올 것이다 - ‘정미네’ 전문 “밍크이불”은 어느 집에나 있었고 우리는 그 “밍크이불을 덮고 손톱이 노래지도록 귤을” 까먹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김치전을 부쳐 쟁반에 놓고 손으로 찢어 먹고” 싶다고 느낀 경험과 교생의 편애에 대해 불만을 가졌던 기억, 예쁜 친구를 험담하던 기억이 시인의 머리에서 튀어나올 때까지 우리는 그저 기억 속에 둥둥 떠 있기만 했을 것이다. 신미나의 시는 우리에게 ‘스스로 주어짐으로 돌아감’(장뤼크 마리옹)을 선사한 기억의 주체인 셈이다. 또한 신미나의 기억은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뿐 아니라 더 거슬러 올라가 시대적 소멸의 흔적을 길어 올린다. 어머니가 들려주신 마고 이야기(‘마고 1·2’)를 소재로 삼는가 하면 할머니의 기억과 할머니와의 접신 과정을 ‘탱화’(‘탱화 1·2·3’)로 드러내기도 한다. 만약 시간의 의미를 긍정적으로 정의한다면 ‘새로움’의 추구라는 개념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신미나의 시에서 전통적 서정성을 읽어 낼 수 있다는 것이 새로움을 추구해야 하는 과제를 저버린 것의 증거가 될 수는 없다. 이는 시가 발견해야 하는가, 발명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일 뿐이다. 신미나의 시는 시간 개념을 긍정하며 발명보다 발견을 더 큰 화두로 삼는다. 이는 타인에게 물려받은 것을 거부하는 것이며 기호화되지 않은 세부의 것을 발견하려는 의지를 내포한다. 그리고 발견은 ‘나 사는 곳’을 살피는 몸짓이며 몸에 각인된 과거를 통한 시인의 존재 방식에 대한 근원적 모색을 뜻한다. 신미나는 언어적 한계를 무화(無化)하기보다 기억을 통해 자신이 실감하는 쪽을 그려 내고 있는 것이다. 기억을 되살려 시어를 택하고 그 속에서 실감을 표현하는, 들뢰즈식으로 ‘행동하는’ 시인인 셈이다. 단절과 폐허의 상황에서 그녀는 ‘벽’이 아닌 ‘문’을 택하고 단절이 아닌 소통을 지향한다. 선명한 기억이야말로 개인을 지탱하는 근원적 뿌리이며 개인의 감각과 사회의 전체성을 함께 붙드는 운동임을 그녀의 시는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 고픔과 아픔 외면하지 않는 시, 질문을 그치지 않는 시

    고픔과 아픔 외면하지 않는 시, 질문을 그치지 않는 시

    올해도 많은 분들이 새봄을 향해 시를 보내 주셨다. 오랜 시간을 들여 차근차근 읽었다. 예년보다 더 오래 숙고했는데, 손에서 쉽사리 내려놓을 수 없는 작품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단단하게 짜인 세계를 횡단하며, 심사자들의 눈과 손이 시종 천천히 움직였다. ‘오픈’이 보여 준 감춤과 들킴의 미덕, ‘물과 풀과 건축의 시’에서 감지한 조용한 폭발, ‘비닐하우스’가 만들어 낸 미묘한 긴장, ‘온몸일으키기’가 일으킨 위트와 블랙 유머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같이 머리와 가슴을 두드리는 시편이었다. 당선작과 끝까지 경합한 ‘저기 저 작은 나라’ 외 네 편은 독특한 시적 세계관으로 심사자들의 고른 지지를 받았다. 자기만의 세계가 이미 상당 부분 구축돼 있어 앞으로 그 세계가 어디로 어떻게 뻗어 나갈지 궁금했다. 토씨 하나도 허투루 사용하지 않는 문장들은 묘한 리듬감을 자아내 읽을 때마다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열띤 토론 끝에 ‘반려울음’ 외 두 편을 당선작으로 뽑는다. 젊음은 젊은 상태, 혹은 젊은 기력을 가리킨다. 젊은 시가 있다면 그 상태를 잊거나 잃지 않고자 기력을 쏟아붓는 시일 것이다. ‘고픔’과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시, 질문을 그치지 않는 시일 것이다. 일상의 한 장면에서 지나간 시간을 길어 올리고 작금의 감정을 그 위에 내려놓는 시일 것이다. ‘반려울음’은 쓰면서 고파지는 시, 배가 뱃가죽과 배꼽을 소환하는 시, 마침내 쏟아버리면서 동시에 쏟아지는 시였다. “버썩거리는” 일상을 비집고 다른 존재를 향한 유일한 감정이 솟아오르며 빛나는 시였다. 울음을 껴안으면서 울음과 함께 살겠다고 다짐하는 시였다. 시 쓰는 데 있어 이른 시간과 늦은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를 쓰는 시간은 모두 제시간이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응모자 모두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 [2022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되돌아오는 곰/함윤이

    [2022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되돌아오는 곰/함윤이

    화마는 나흘 만에 잡혔다. 두툼한 잿더미와 무너진 바위들만 남기고서. 녹원은 결심했다. 담배를 끊자. 한 번에 끊어 버리자. 대신 그는 종일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몇 시간 내내 산불 사진만 바라보자니 눈이 따끔거렸다. 사진 속 불길은 어쩔 수 없이 아름다웠다. 때로는 숨이 막힐 정도였다. 타오르는 가지들이 밤을 붉게 밝히고, 바위를 감싼 불꽃은 날개처럼 솟구쳤다. 녹원은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꼼꼼히 살폈다. 어떤 사진 앞에서는 입술을 깨물었다. 목줄에 묶인 채로 화마의 먹이가 된 개들, 산 위로 녹아내린 짐승들의 잿더미. 지난 나흘간 몇 장의 사진을 보았더라? 수십 장, 어쩌면 수백 장에 달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사진도 녹원이 찾는 것을 보여 주지 않았다. “그래서….” 녹원은 도시락통을 열면서 말했다. “주말에는 산에 다녀올까 해요.” 노아가 고개를 들고 그와 눈을 마주쳤다. 언제나 그랬듯, 탕비실에는 두 사람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읍내의 백반집에 갔을 터였다.                    어쩌다가 노아와 매일 점심을 먹게 되었더라. 잘 떠오르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 노아는 점심 도시락을 싸 들고 탕비실에 찾아왔다. 언젠가, 센터의 다른 직원들이 노아에게 슬그머니 질문하는 순간을 본 적이 있었다. 그들은 호기심에 가득 찬 목소리로 물었었다. 노아씨는 박 주사가 안 무서워요? 노아가 물었다. “전에 일하던 곳 가시는 거예요?” 녹원이 답했다. “네, 이래저래 신경이 쓰이네요. 그냥 한 번 직접 보고 올까 싶어요.” 노아가 양손을 만지작거렸다. 녹원은 그를 빤히 지켜보았다. 그날, 노아의 대답을 떠올리면 언제든 웃음이 나왔다. 질문을 받은 뒤, 노아는 양손을 한참이나 만지작거리다가 말했었다. 글쎄요. 녹원 주사님 요리를 엄청 잘하시는데… 맨날 나눠 주세요. 노아가 불쑥 말했다. “주사님, 저도 같이 가도 돼요? 주말에 가실 때요.” “산에요? 왜요?” “그냥… 마음이 쓰여서요.” 녹원이 웃었다. “아니, 누가 주말에 직장 상사를 만나요.” “아니, 그래두 그거랑 다른 게, 저희는 친하잖아요.” 노아는 그렇게 말하고서 고개를 떨어트렸다. 젓가락을 툭 내려놓는 손짓까지, 그 모든 모습이 어찌나 안쓰럽던지. 녹원은 빠르게 백기를 들었다. “아니, 가고 싶으면 같이 가요. 토요일 아침에 출발할 거예요.” 노아가 웃었다. 녹원 역시 웃어 버렸다. 그는 창밖을 보았다. 희뿌연 유리창 너머로 검게 번진 산맥이 펼쳐졌다. 새카맣게 그을린 산은 그림자처럼 보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붉거나 노란빛으로 번득거렸지. 지지 않는 태양처럼 사흘 내내 빛났다. 녹원은 그것을 보면서 내내 손톱을 물어뜯었다. 너덜너덜해진 손끝을 보며 생각했다. 무엇을 생각했냐면, 그러니까. 그것이 거기에 있을까? 그 산에서, 아직도 살고 있을까?            그해, 한 통의 전화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지리산에서 걸려온 전화는 사무소 곳곳을 돌아 우도근 과장의 손에 도착했다. 전화를 끊은 과장은 눈썹을 긁적이다가 입을 열었다. 곰이 왔다구 그러네요. 녹원은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을 멈췄다. 곰이요? 직원 중 하나가 물었다. 곰이요. 우도근이 덧붙였다. 아마 또 그 곰이겠죠. 사무실의 다른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녹원은 몇 분간 말없이 기다렸다. 곰이라는 게 무엇인지, 진짜 동물을 뜻하는지, 혹은 일종의 암호인지. 누구도 그에게 설명해 주지 않았다. 사무소 사람들 대부분이 녹원을 어려워했다. 그들은 녹원이 신입이라는 것을, 그가 대학을 갓 졸업했으며 이 사무소가 첫 직장이라는 사실을 잊은 양 굴었다. 낯선 상황은 아니었다. 녹원이 어느 집단에 녹아들기까지는 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람들은 대개 녹원을 불편해했다. 처음에는 그의 거대한 몸집에 압도당하고, 이후에는 그의 무표정이 난처하다고들 했다. 어쩔 수 없지. 녹원은 생각했다. 불편한 건 피차 마찬가지니까. 녹원이 손을 들자, 사무실의 눈길 모두가 그에게로 쏠렸다. 녹원은 모른 척 말했다. 과장님. 저는 곰이 뭔지 모르는데요. 아 맞네. 박 주임 들어오기 전에 생긴 일이구나. 잠깐 와 볼래요? 과장에게로 가려면 사무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야 했다. 통로 측 직원들이 어깨를 움츠리며 자신의 의자를 당겼다. 녹원은 그들 사이를 느리게 지나갔다. 우도근 과장이 빈 의자를 꺼내어 툭툭 두드렸다. 녹원은 의자에 앉았다. 과장은 사무소 내에서 녹원을 꺼리지 않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다. 지위 탓인지, 경력 덕인지, 혹은 한평생 산사람으로 살아왔기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그는 어떤 상황에서든 당황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모두 우도근은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체로 온화한 태도로 사람들을 대했다. 지위나 나이 상관없이 존댓말을 쓰고, 자잘한 실수는 웃으며 넘어갔다. 정말이지 괜찮은 상사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지. 녹원은 생각했다. 나는 왜 사람이 이토록 불편할까. 아니, 사실은, 불편하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우도근은 불편하고… 께름칙한 존재였다. 이 곰이 그 곰이에요. 과장이 컴퓨터를 가리켰다. 화면 중앙에서 어린 곰이 양팔을 벌리고 있었다. 가슴의 흰 반달을 환히 내보인 모습이었다. 과장이 말했다. 우리끼리는 도돌이라구 불러요. 녹원이 물었다. 도도리요? 우도근이 정정했다. 도돌이. 도돌이표 할 때 그 도돌이요. 그가 곰의 얼굴을 툭툭 두드렸다. 이 녀석이 말이에요. 매년 돌아오거든요. 아무리 내쫓아도 포기하질 않아요. 그래서 도돌이에요. 멈추지 않고 되돌아와서요.      노아는 반쯤 감긴 눈으로 차에 탔다. 어깨에 멘 가방 입구로 스테인리스 보온병이 비죽 나와 있었다. 그는 차가 출발했을 때부터 꾸벅거리며 졸다가, 고속도로에 진입할 무렵에는 푹 잠들었다. 녹원은 라디오 소리를 줄였다. 양쪽 창 너머로 산기슭이 형태를 드러냈다. 새카맣게 탄 자국이 군데군데 보였다. 녹원이 기사에서 찾아본 대로였다. 산은 파괴되고 소실되었다. 기사들은 특정한 단어들을 되풀이했다. 재앙, 재난, 상실. 평소에도 산불이 자주 나는 지역이었으나, 이번 피해는 유난히 참혹했다. 처음에는 누군가 버린 담배꽁초로부터 불씨가 솟아올랐다. 불씨는 때마침 불어온 강풍을 타고 날아올랐다. 마치 누군가 사주한 양, 화마는 적절한 환경 속에서 긴 날개를 펴고 날아올랐다. 현장의 직원들은 검은 재로 뒤덮인 마스크를 쓰고 인터뷰를 했다. 마스크를 벗으면 까만 코피가 쏟아져요. 그들은 쉰 목소리로 말했다. 매일매일 목이 아픕니다. 그들의 말은 녹원을 슬쩍 스치고 사라졌을 뿐이다. 녹원의 머릿속을 채우는 건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는 곰을 생각했다. 어쩔 수가 없었다. 곰에 대한 질문만 끊임없이 솟아올랐다. 괜찮을까? 살아 있을까? 산속에서, 이제는 폐허로 변한 그곳에서? 녹원은 흘끗 조수석을 보았다. 노아는 덜컹거리는 창에 이마를 댄 채 잠들어 있었다. 녹원은 뒷좌석의 목 베개를 찾으려다가 관두었다. 괜한 배려를 해 준답시고 잠을 깨우는 건 아닐까. 상사와 여행을 한다는 생각에 가득 긴장하여 잠들지 못한 건 또 아닐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손이 움츠러들고 말았다. 녹원은 한숨을 내쉬고서 속력을 올렸다. 여전히 이런 일들이 어려웠다. 어느 정도 친밀하다고 여기는 사람에게조차 무엇을 해 주는 게 좋을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노아는 톨게이트를 지날 즈음에 깨어났다. 부스스한 머리로 좌우를 살피고서 웅얼거렸다. “주사님. 커피 안 드셨죠. 드셔야 해요. 제가 직접 내렸는데. 맛있을 텐데.” 그는 보온병 뚜껑에 커피를 따라 건네고서는, 다시금 까무룩 잠들었다. 녹원은 홀로 웃다가 커피를 마셨다. 노아의 말이 맞았다. 커피는 맛있었다. 알맞게 따뜻하기도 했다.      공식적인 기록에 따르면 한국의 마지막 야생 반달곰은 설악산에서 죽었다. 천구백팔십삼년, 녹원이 태어난 해였다. 곰은 살해당했다. 웅담을 노린 밀렵꾼의 총알이 곰의 척추를 뚫었다. 곰은 총알이 박힌 몸으로 마등령 계곡까지 달아났다. 바위들 사이에 웅크려서 며칠을 울어댔다. 그의 죽음을 다룬 기사는 울음소리를 이렇게 묘사했다. 으엉, 으엉. 글자로 적힌 울음은 처절하기보다 우스꽝스러웠다. 으엉, 으엉. 짐승은 보름 가까이 앓다가 죽어 버렸다. 우도근은 말했다. 그 후로 이 산에는 곰이라고는 없었거든요. 그러나 사십여 년이 지난 후, 그러니까 녹원이 입사하기 삼 년쯤 전에, 곰 한 마리가 설악산에 나타났다. 아홉 살배기 암곰이었다. 백오십오 센티미터의 신장에 백 킬로그램, 날렵하다고 할 만한 덩치였다. 몇 해 전 지리산에 방사한 반달가슴곰 중 하나인 양 싶었다. 주말 등산회 사람들이 그를 처음 발견했다. 당시 암곰은 폭포를 어슬렁거리며 도토리를 줍고 있었다. 신고인은 새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곰이 도토리를 먹는다니까요. 곰이 원래 도토리를 먹어요? 사무소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지리산에 방생한 곰들이 다른 국립공원으로 넘어간 일은 몇 차례 있었다. 하지만 설악산이라니. 이 정도의 거리를 이동한 야생동물은 한 번도 없었다. 곧 남부보전센터에서 인력을 파견했다. 설악산 국립공원 쪽에서도 직원들을 내보냈다. 모두의 목적은 최대한 빠르게 곰을 생포하여 지리산으로 돌려보내는 것이었다. 당시 계장이던 우도근을 포함하여, 현장직 몇몇이 포획 조에 가담했다. 그들은 방패와 밧줄을 지고서 산을 올랐다. 암곰은 폭포에 있었다.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리자마자 후다닥 참나무에 올라가서 버텼다. 우도근은 다른 직원들과 함께 녹색 그물을 설치했다. 보전센터 직원이 마취총을 쐈다. 십여 분이 지나고, 정신을 잃은 곰이 그물 위로 떨어져 내렸다. 기절한 곰은 꽁꽁 묶인 채 지리산으로 돌아갔다. 그쯤에서 마무리가 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한 달이 지났을 때 암곰이 새끼를 남기고 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설악산에서 낳은 새끼인지, 설악산까지 데리고 온 새끼인지는 모르겠으나 야생에서 태어난 개체라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곰에게 어떤 발신기도 붙어 있지 않다는 뜻이었다. 새끼 곰은 폭포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홀로 남은 새끼를 잡는 일은 딱히 어렵지 않았다. 당시의 도돌이는 약 육십 센티미터 정도였다. 포획되는 순간에는 나무 뒤에 숨어 부들부들 떨고 있었더랬다. 촉촉한 코나 동그란 귀가 어찌나 귀엽던지, 현장에 나온 직원들 모두가 끙 소리를 냈더랬다. 붙잡힌 도돌이는 어미와 마찬가지로 헬리콥터를 타고 지리산으로 갔다. 현장에 간 직원들은 은은한 얼굴로 말했다. 그 녀석, 돌아가서 엄마랑 다시 만났겠지? 이것 참, 이산가족 상봉이네…. 그들 중 누구도, 그 곰이 귀환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낸 새끼 곰이 무수한 위험을 무릅쓰며 산맥을 넘어오다니. 우도근이 손가락을 튀겼다. 그런데 진짜로, 이 녀석이 돌아온 거예요. 이 년 만이었다. 이번에는 대피소의 직원이 먼저 곰의 흔적을 발견했다. 대피소 부근의 물푸레나무에 커다란 발톱 자국이 남아 있노라고 했다. 족제비나 오소리의 발톱 같지는 않다. 그보다 훨씬 거대하고 깊은 자국이다. 꼭 곰이 남긴 흔적처럼 보인다고. 무인카메라를 추적한 결과, 그의 말은 사실로 밝혀졌다. 다시금 보전센터의 직원들이 오고, 또 한 번 포획 조가 꾸려졌다. 우도근은 지난 포획에 참여한 경력을 인정받아 두 번째로 방패를 들었다. 곰은 나무 위 벌집을 습격하던 중에 붙잡혔다. 마취총에 맞아도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아서, 보전센터 직원들이 직접 나무에 올라가 몸을 밧줄로 묶어야 했다. 그들은 곰의 왼쪽 귀에서 조그만 기계를 하나 발견했다. 배터리가 닳은 발신기였다. 수의사는 말했다. 배터리를 교체하기 전에 서식지를 탈출한 모양이네요. 곧 그들은 몇 가지 사실을 더 알아냈다. 수의사는 곰이 세 살이 조금 안 된 암컷이며, 또한 두 해 전 이 산에서 퇴출당한 바로 그 새끼 곰이라는 사실까지 밝혀 주었다. 모두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얘가 그 곰이라고? 우리가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낸, 그 아기곰 말이야? 수의사가 말했다. 뭐, 이제 아기라고 부르긴 뭐하죠. 그의 말이 맞았다. 철창에 갇힌 짐승은 일 미터하고도 오십팔 센티미터였다. 몸무게는 백사십오 킬로그램, 울부짖는 모양새는 가히 맹수라고 부를 만했다. 곰이 또다시 지리산으로 돌아간 후에도, 다들 찜찜한 느낌을 걷어내지 못했다. 과장이 말했다. 물론, 그 느낌이 맞았죠. 일 년 만에 지리산에서 전화가 왔어요. 위치 추적을 했는데, KF-75가 그곳으로 돌아간 것 같다고요. ‘돌아갔다.’ 그쪽에서도 돌아갔다고 표현하더군요. 설악산의 직원들은 혀를 찼다. 독한 곰이다. 지독한 놈이야. 쑥덕거렸다. 곰 방사 계획 같은 거 대체 누가 짠 거냐? 낮은 목소리로 불만을 토했다. 심지어 그때는 한겨울이었다. 나뭇가지마다 흰 서리가 열매처럼 맺혀 있었다. 다른 반달곰들은 지리산 곳곳에 웅크려 동면을 취하고 있을 텐데. 단 한 마리의 곰만이 얼어붙은 산맥을 넘어 고향에 돌아왔다. 그때부터 직원들은 곰을 도돌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며칠간 추적이 이루어졌다. 곧 곰이 설악산에서 동면을 취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번에는 사무소에서도 차분하게 대응책을 마련했다. 어느덧 세 번째로 이곳에 방문한 보전센터의 직원들과 함께 동면포획을 준비했다. 산속의 굴 어딘가에 잠든 곰을 끌어내는 방법이었다. 녹원이 끼어들었다. 잠든 중에 끌어낸다고요? 네, 그래서 동면포획인 거죠. 무서운 방법이네요. 음, 사실은 그게 가장 평화로운 방법인데요. 곰의 입장에서는, 잠든 사이에 세상이 뒤바뀐 거잖아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요. 우도근이 턱을 괴고서 녹원을 바라보았다. 곰의 입장이라. 과장이 중얼거렸다. 곧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녹원은 그 미소를 해석할 수가 없었다. 우도근이 말했다. 박 주임은 곰이 불쌍한가 봐요. 나는 우리 직원들이 불쌍한데. 매년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짐승 하나 때문에. 안 그래요? 녹원은 허리를 꼿꼿이 폈다. 우도근의 앉은키는 그보다 훨씬 작았다. 백육십 센티미터를 아슬아슬하게 넘는 키에 가느다란 팔다리. 그와 비슷한 외양의 남자들은 대체로 녹원을 불편하게 여겼다. 경계한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들은 녹원의 몸을, 그의 크기 자체를 용납할 수 없는 듯했다. 과장은 한 번도 그런 기색을 내보인 적 없었다. 외려 그는 어린아이를 대하듯 녹원을 대하곤 했다. 이 대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과장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박녹원 주임님. 이번 포획 작전에 같이 가 볼래요? 녹원은 숨을 들이마셨다. 곧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예, 좋아요. 그럼 좋을 것 같습니다. 우도근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아, 좋다. 그럼 정해진 거지요? 이제 자리로 돌아가세요.      사무소는 녹원이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였다. 늙은 소나무 두 그루가 정문 양쪽에서 가지를 맞대고 있었다. 진입로 안쪽으로 목조 건물이 엿보였다. 여기까지는 화마의 여파가 미치지 않은 모양이었다. 녹원은 정문 건너편에 차를 세웠다. 막 깨어난 노아가 부스스한 머리를 정돈하고 있었다. 녹원은 한 차례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었다. “노아씨. 제가 왜 여기 왔는지 설명을 먼저 드려야겠는데요.” “아, 네, 네.” “그러니까…. 여기에 곰이 한 마리 있었거든요.”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우스꽝스러운 시작점이었다. 녹원은 가장 건조한 단어들을 사용하여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개체, 포획, 복원 프로젝트, 서식지, 정부 지침. 그런 단어들이 이 상황을 합리적으로 보이게 해 주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도돌이에 대한 이야기가 끝난 뒤, 차 안에는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노아는 찌푸린 얼굴로 양손을 만지작거렸다. 녹원은 내내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마침내 고개를 돌린 노아가 활짝 웃었다. 녹원은 물속에서 나온 사람인 양 참던 숨을 토해냈다. 노아는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사님. 진짜로 엄청난 사연이네요. 저라도 여기 왔을 거예요. 잘 오셨어요.” 녹원은 자신의 발끝을 내려다보았다. 양 뺨이 화끈거렸다. 곧 코끝까지 시큰거릴 듯했다. 녹원은 노아에게 양해를 구하고 차에서 내렸다. 문을 열자마자 서늘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스쳤다. 푸른 기를 머금은 하늘은 투명해 보였다. 녹원은 길을 건넜다. 사무소 정문 기둥에 기대고 서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가는 동안 시계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의 기억대로라면, 사무소의 점심시간이 끝나기까지 약 사십 분이 남아 있었다. 건너편에서 달칵, 소리가 트였다. 곧 우도근이 소리를 쳤다. - 아니, 뭐야. 박녹원 주임이 건 거예요? “네, 안녕하세요, 과장님. 제가 지금 사무소 앞에 와서요. 인사라도 드리려고 했어요.” 우도근이 정문으로 나오기까지는 채 십 분도 걸리지 않았다. 녹원은 금세 그를 알아보았다. 깡마른 몸집과 산양처럼 총총거리는 걸음걸이. 과장은 그대로였다. 시간이 그를 비껴간 듯 보였다. 머리가 더 벗어지지도, 주름이 늘어나지도 않았다. 우도근은 어설픈 인사치레로 시간을 잡아먹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곧바로 질문부터 던졌다. “아니, 진짜로, 뭐 때문에 왔어요?” “도돌이 말이에요. 무사한가요?” “에? 도도리?” “도, 돌, 이. 아시잖아요. 되돌아오는 곰이요.” 우도근이 아아― 길게 소리를 냈다. 탄식 같은 소리였다. 녹원은 지금껏 내내 연습한 얼굴, 가능한 한 아무런 표정도 드러내지 않는 얼굴로 버티고 섰다. 과장은 믿기지 않는다는 투로 물었다. “박 주임, 그거, 곰 때문에 온 거예요? 그거 물어보러?” “네. 맞습니다.” “세상에… 박 주임 대단하네요. 아니지, 지금은 주임이 아니지요? 뭐라고 불러야 하나.” “아무렇게나 부르세요, 보통 주사라고들 불러요.” “그래요. 박녹원 주사님. 얼마나 걱정이 됐으면 거기서 여기까지 왔어요. 한 시간은 걸릴 텐데. 굉장하네, 정말로 굉장하네요.” 녹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과장을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우도근이 한숨을 내쉬면서 웃었다. 눈에 익은 표정이었다. 그는 눈을 비비면서 말했다. “요새는 산불 뒤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어요. 재난안전과고 자원보전과고 할 거 없이 다들 난리거든요. 곰까지는 신경 쓸 시간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나도 몰라요. 얘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발신기는요? 센터 쪽에서 확인 들어가지 않았어요?” “발신기 그거.” 과장이 수염 자국조차 없는 턱을 어루만졌다. “어디 보자…, 그 얘기는 들은 것 같은데. 잠깐 기다려 봐요. 지금 몇 시죠?” “점심시간 끝나려면 아직 삼십 분 남았어요.” 과장이 허,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녹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한동안 서로를 마주 보았다. 마침내 우도근 쪽에서 손을 들었다. “좋아요. 알아봐 줄게요. 그것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는데.” “감사합니다.” “사무소 안에서 기다리고 있을래요?” “괜찮습니다. 친구가 기다리고 있어서요. 차 안에 있을게요.” “친구? 박 주임 친구요?” “네. 직장 동료 겸 친구요, 같이 왔어요.” 과장이 눈을 치켜떴다. 입은 헤 벌어졌다. 몇 초 지나지 않아서, 이상하리만치 환한 웃음이 그의 얼굴 곳곳으로 번져 나갔다. 녹원은 어찌할 바 모른 채 그의 얼굴을 지켜보았다. 이번에도 과장의 미소를 이해할 수 없었다. 우도근은 사뭇 밝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럼 금방 올 테니까 기다려요.” 녹원은 그의 뒷모습이 사무소 안쪽으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그가 완전히 사라진 후에야, 자신이 과장의 안부에 대해서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삼차 포획은 이른 새벽 중에 진행되었다, 직원들은 사무소 정문 앞에 모였다. 푸르스름한 새벽빛 속으로, 우도근의 이야기에 등장하던 사람들이 고스란히 나타났다. 수의사는 녹원이 상상한 것보다 훨씬 젊었다. 그와 함께 온 보전센터 직원들은 대부분 점잖은 인상으로, 말수가 적고 걸음이 빨랐다. 설악산에서도 꽤 많은 인원이 참가했다. 녹원과 우도근을 포함한 공원사무소의 직원들 외에도, 곰이 머무는 구역 근처의 분소 직원들 역시 합류했다. 보전센터 직원들은 여섯 다리가 달린 은색 안테나를 들고 왔다. 그것으로 곰을 찾아냈다고 했다. 곰은 탐방로로부터 머지않은 계곡을 배회하는 중이었다. 도돌이가 홀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바로 그 계곡이었다. 사람들은 장비지원조와 마취조, 추적조로 나뉘었다. 녹원은 장비지원조에 배치되었다. 곰을 붙잡아 데려오는 데 필요한 장비를 운반하는 역할이었다. 우도근은 추적조에서 움직이기로 했다. 우도근의 조가 선두에, 녹원의 조가 후미에 섰다. 행렬은 흔들다리를 건너고 금강문을 거쳐서 산길을 올랐다. 폭포로 가는 방향이었다. 그들은 곧 탐방로를 벗어나 숲 안쪽을 가로질렀다. 나무로 둘러싸인 공터에서 멈춰서 짐을 풀었다. 녹원은 가방을 내려놓고 장비를 하나씩 꺼냈다. 녹색 안전그물과 구조용 밧줄, 헬멧과 방패 등이 손에서 손을 타고 넘어갔다. 이제 마취조와 추적조가 공터 너머의 폭포로 가서, 곰을 데리고 올 것이라고 했다. 녹원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수풀 뒤에서 조끼를 걸치는 우도근이 보였다. 녹원은 그에게로 다가갔다. 우도근이 인사를 건넬 듯 한 손을 들어 올렸다. 녹원은 그 몸짓을 무시하고 다짜고짜 물었다. 곰이 여기에서 살 수는 없나요? 예? 뭐라고요? 곰 말이에요. 세 번이나 돌아왔잖아요. 여기가 자기 고향이라고 생각해서 그러는 건 아닐까요. 원하는 곳에 놓아주는 게 불가능한가 해서요. 침묵이 흘렀다. 과장이 천천히 헬멧을 썼다. 턱에 매는 끈을 고정한 뒤 녹원을 돌아보았다. 이번에는 웃음기조차 없는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박녹원 주임님. 네, 우도근 과장님. 저건 맹수예요. 말이 천연기념물이지, 사실은 유해조수라고요. 그리고 여기는 국립공원이에요. 매일 사람들이 오가는 산이요. 이해하겠어요? 녹원은 숨을 들이마셨다. 올라오는 말을 삼키려 했다. 그러나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녹원이 말했다. 저도 알아요. 그의 목소리가 나무들 사이로 울려 퍼졌다. 저도 안다고요. 과장님. 매일매일 사람들이 여기에 오잖아요. 자연이 좋다거나, 건강해지고 싶다거나, 취미 생활이라면서 산에 오르내리죠. 그런데 제 말씀은요, 과장님, 그건 그 사람들 선택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저 곰의 경우는 다르다고요. 쟤는 이 산이 필요해요. 그러니까 계속 되돌아오는 거겠죠. 여기에서 살아야 하니까. 여기서 살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그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녹원은 입을 다물었다. 턱이 떨리고 있었다. 등 뒤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눈길이 느껴졌다. 과장은 자신의 이마를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아이고…. 거의 탄식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그는 녹원이 건네준 가방 안에서 보호구를 하나씩 끄집어냈다. 그는 팔꿈치와 무릎 위로 보호구를 주섬주섬 끼우며 말했다. 우리 박녹원 주임님은 말이야. 여기에 오면 안 되는 사람이었네요. 녹원은 그를 쳐다보았다. 질문들이 입안을 맴돌았다. 여기란 어디이며, 대체 무엇이 안 되는 거냐고, 여기가 아니면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물론, 녹원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우도근은 낡은 지프를 타고 되돌아왔다. 도돌이가 사라진 지점까지 직접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직원들에게 미리 얘기해 놓았다고도 덧붙였다. 과장은 왜인지 들뜬 듯 보였다. 예상치 못한 제안이었다. 그러나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과장이 따라나서 준다면, 훨씬 간편히 산을 돌아다닐 수 있을 터였다. 노아와 녹원은 우도근의 지프 뒷좌석에 올라탔다. 과장이 몸을 돌려서 노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이, 반갑습니다. 박녹원씨 직장 동료라면서요.” “네.” 노아가 그와 악수하며 답했다. “네, 동료 겸 친구예요.” 우도근이 빙긋 웃더니, 다시 앞으로 돌아앉았다. 차가 출발하고 나서, 녹원은 우도근의 말을 다시금 곱씹었다. 박녹원씨라니. 생경한 호칭이었다. 우도근 과장이 자신을 그렇게 부른 적은 단 한 번밖에 없었다. 아주 오래전, 저 산속에서. 우도근의 지프는 금세 산중도로로 들어섰다. 오른쪽으로는 까맣게 탄 산맥이, 왼쪽으로는 잿빛 강이 이어졌다. 검은 산에서부터 흩날린 잿가루가 차창에 달라붙었다. 지프는 강의 굽이를 따라서 모퉁이를 돌았다. 국립공원의 시작점을 알리는 아치형 입구와 함께, 강변을 따라 선 갖가지 가게들이 나타났다. 잿빛 먼지에 휩싸인 편의점과 식당, 분사무소와 등산로로 향하는 흔들다리. 우도근은 다리 앞에 차를 멈춰 세웠다. 차창을 내리고 강 건너편을 가리켰다. “저쪽이에요.” 녹원과 노아는 창밖으로 목을 뺐다. 강 건너로 접근금지 테이프를 친 약수터가 보였다. 폭포 방향으로 입산하는 사람들이라면 필수적으로 거치는 구간이었다. 몇 해 전 녹원이 삼차 포획 행렬에 낀 채로 지나갔던 지점이기도 했다. 우도근이 약수터 위쪽을 가리켰다. “저쪽 산허리에서 발신기를 발견했어요. 아주 훼손되었다던데. 억지로 뜯어 버렸나 봐요.” “그 외 흔적은 못 찾았고요?” “네, 사체 같은 건 전혀 없었고….” 과장이 룸미러로 녹원의 얼굴을 흘긋 보았다. 그가 시동을 끄면서 말했다. “산에 다녀오고 싶으면, 지금 다녀와요. 나는 여기에서 기다릴 테니까.” 녹원은 머뭇거렸다. 적잖이 혼란스러웠다. 자신이 지금껏 우도근을 오해했던 것일까? 지금 그의 앞에 있는 과장은 친절하고 온화한 남자였다. 녹원의 기억 속에서 보여 주던 적대적인 태도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허탈한 웃음이나 경시하던 눈길 역시 보이지 않았다. 그는 마치… 아군처럼 보였다. 녹원은 차에서 내렸다. 노아가 그를 뒤따라왔다. 그들은 다리를 건너고 약수터를 지났다. 숲은 고요했다. 산으로 향하는 계단의 난간은 새까맣게 그을린 상태였다. 바삭하게 타오른 나무들은 식물보다는 불꽃의 잔재처럼 보였다. 보이는 곳마다 회색 재가 휘날렸다. 새들이 지저귀지 않고 잎사귀도 흔들리지 않았다. 도돌이를 처음 만난 날과는 모든 게 달랐다.         추적조와 마취조는 숲 너머로 떠났다. 장비지원조는 공터에서 짐을 가지고 대기하기로 했다. 녹원은 무릎을 끌어안고 앉은 채, 숲속을 바라보았다. 물푸레나무와 박달나무, 피나무, 소나무, 벚나무. 여름의 샛노란 볕뉘가 나뭇가지 사이를 환히 비췄다. 곧 낯선 소리가 그 풍경을 뒤흔들었다. 쿵. 높은 곳에서 묵직한 것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바위에 기댄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새들이 날아오르고 잎사귀들이 흔들렸다. 산 전체가 몸을 털어내는 듯했다.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아득하게 번져 왔다. 얼마 후, 그들이 나무 그늘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행진이라도 하듯 한 줄로 선 채 숲을 가로질렀다. 수의사와 과장이 선두에 서 있었다. 그 뒤로 들것을 붙든 남자들이 내려왔다. 녹원은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그는 들것 안쪽을 바라보았다. 거기에 짐승이 있었다. 포로처럼 눈과 입, 팔다리를 묶인 채. 녹원이 지고 온 밧줄이 곰의 몸을 엑스자로 붙잡고 있었다. 수의사의 목에 둘렀던 파란 천은 곰의 눈을 가리는 데 쓰였다. 벌어진 입 사이로 붉은 혀가 늘어져서 달랑거렸다. 녹원은 행진을 쫓는 아이처럼 곰을 따라서 걸었다. 필사적으로 들것을 쫓아가며 곰을 보았다. 그의 귀에 새로 부착된 발신기를, 어깨와 가슴을 가로지르는 흰 반달을, 마른 땅처럼 갈라진 발바닥을 보았다. 남자들은 공터 정중앙에 들것을 내려놓았다. 다른 사람들도 보호구를 주섬주섬 벗었다. 녹원은 장비들을 챙기는 일도 잊고, 내내 곰만 바라보았다. 바로 옆에 다가온 사람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한번 만져 봐요. 녹원은 놀라서 옆을 돌아보았다. 우도근 과장이었다. 그가 부드러운 얼굴로 곰을 가리켰다. 쓰다듬어 보라니까요.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있겠어요. 머뭇거림은 오래가지 않았다. 녹원은 곰의 배 위에 손을 얹었다. 검은 털은 까슬까슬하고 서늘했다. 피부는 몹시 단단했다. 녹원과는 전연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진 털과 살, 그 안에서 흐르는 피가 손바닥 아래에서 두근거렸다. 녹원은 눈을 깜빡였다. 곰의 치욕과 자존심, 곰의 마음에 대하여 생각했다. 끊임없이 돌아온다는 뜻의 이름도 곱씹었다. 짐승이 꿈틀거린 순간에도, 그는 손을 떼지 않았다. 나중에 과장과 수의사를 비롯한 몇 사람이 물어보았다. 왜 손을 떼지 않았어요? 왜 달아나지 않았습니까? 녹원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 순간 느꼈던 소속감을 묘사할 방법이 없었다. 그토록 아늑하고 달콤한 마음은 처음이었다. 극복해 낼 수도 없으며,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곰은 소리를 질렀다. 으엉, 소리 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밧줄의 매듭을 제대로 고정하지 않았던 모양인지, 곰은 순식간에 들것에서 벗어났다. 그는 녹원이 보았던 사진처럼 양팔을 벌리고, 가슴의 흰 반달을 환히 드러낸 채로 일어나 섰다. 도돌이는 잠시 휘청거리다가 녹원을 끌어안았다. 끌어안았다―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같은 표현을 썼다. 끌어안았다. 곰이 그를 끌어안았다고. 녹원은 등 뒤의 바위로 쓰러졌다. 그 순간이 녹원의 목숨을 구했다. 곰의 무게는 녹원의 몸을 지나 바위 아래로까지 분산되었다. 만약 선 채로 힘겨루기를 했거나, 땅바닥에 곧바로 쓰러졌다면, 녹원의 뼈는 모조리 부서지고 말았을 것이다. 녹원은 그 접촉을 기억했다. 그날의 다른 어떤 때보다 더욱 선명히 기억했다. 늑골을 짓누르는 냄새와 촉감. 곰은 녹원보다 머리 하나 정도가 작았다. 그런데도 어찌나 무거운지, 꿈쩍도 할 수 없었다. 녹원은 이후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다. 도돌이는 저를 끌어안지 않았어요. 걔는 저한테 기대어 있었죠. 수의사도 그의 말에 증언을 보태 주었다. 곰이 박녹원씨를 고목이나 바위, 혹은 어떤 기둥처럼 생각한 것 같습니다. 살기 위해서, 박녹원씨에게 매달린 거죠. 파란 천이 흘러내리며 초점을 잃은 눈이 드러났다. 입가에서 흰 거품이 끓었다. 남자들이 곰을 끌어냈다. 녹원은 바위벽에 기댄 채로 주저앉았다. 흐릿한 사람들이 소리쳤다. 괜찮아요? 숨 쉴 수 있어요? 녹원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괜찮지 않았다. 정말이지 그렇지가 않았다. 호흡할 때마다 갈비뼈가 조각나듯 아팠다. 결국에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곰으로부터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기사에서 읽은 기묘한 울음소리가 여전히 귓가를 채우고 있었다. 정말로 으엉, 으엉, 하고 우는구나. 녹원은 생각했다. 정말로 울어버리듯이 우는구나. 바로 앞에서는, 누군가 그를 부르고 있었다. 녹원씨. 박녹원씨. 녹원은 고개를 돌렸다. 우도근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그는 몇 해는 더 늙어버린 양, 쉰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여기에서 일하면 안 돼요. 사람들과 섞여 살아야 해. 과장은 몇 번이나 말했다. 박녹원씨. 산에서 내려가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요.              “날이 늦었으니, 우리 집에서 자고들 가요.” 우도근은 주장했다. 녹원과 노아가 연거푸 손사래를 쳤는데도, 절대로 굽히지 않았다. 그의 집은 산기슭 끝자락에 있었다. 녹원과 노아는 빨간 지프를 따라서 시멘트 언덕 위를 올라갔다. 새하얀 돌벽에 노란 지붕을 올린 집이 나타났다. 옅은 녹색 잔디를 깐 마당에는 흔들 그네와 스프링클러, 평상이 놓여 있었다. 집의 뒤뜰은 산사면과 바로 맞닿았다. 천만다행으로 이쪽 능선까지는 불길이 오지 않아서 피해를 면했노라고 했다. 녹원은 자신의 트럭에서 내려와 주위를 살폈다. 우도근의 집은 언덕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었다. 언덕 앞뒤로 보이는 것은 산과 강뿐이었다. 주위에 놓인 문명의 흔적이라고는 녹슨 가로등 하나가 전부였다. 우도근이 노란 현관문을 두드리면서 소리쳤다. “란이. 나 왔어.” 녹원은 어깨를 움츠렸다. 우도근에게 부인이 있다는 사실은 들은 적 있었다. 직접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심지어 우도근이 부인을 부르는 광경을 보다니. 란이, 라고 부르다니. 그가 누군가를 저토록 친근하게 부르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곰을 부를 때만 제외하면. 저녁 시간은 한없이 평화롭게 흘러갔다. 그들은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셨다. 란은 냉장고에서 맥주를 한 아름 꺼내 녹원의 품에 안겨 주었다. 별구경하다가 자세요. 란은 오래전부터 녹원을 알아온 양 친근한 어투로 말했다. 마당 평상이 별구경하기 딱 좋거든요. 맥주 곁들이면 그만 한 휴가도 없어요. 막상 부부는 평상 휴가에 동참하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아홉 시만 되어도 눈꺼풀이 감겨서, 먼저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도근은 평상에 담요를 깔아 주었다. 조카에게나 건넬 법한 목소리로 말하기도 했다. “재밌게 놀고 푹 자요. 알겠지요?” 마당에는 녹원과 노아만 남았다. 두 사람은 평상에 나란히 앉았다. 다리를 죽 편 채 맥주를 홀짝거렸다. 산에서 내려온 찬 공기가 살갗을 서늘하게 적셨다. 부부의 말대로, 마당에서 보는 별은 몹시 선명했다. 허공에 멈춘 불씨처럼 반짝거렸다. 녹원은 언덕 너머에서 흐르는 강을 내려다보았다. 두 갈래로 나뉜 물길이 다시 한 길로 합쳐지는 지점까지 살폈다. 강 뒤편의 산은 부드러운 어둠에 잠겨 있었다. 녹원이 불쑥 말했다. “천 킬로미터예요.” 노아가 고개를 돌렸다. “뭐라고 하셨어요?” “곰이 이동한 거리 말이에요. 한 번에 삼백사십사 킬로미터, 세 번 돌아오면 천백삼십이 킬로미터 정도 돼요. 서울에서 도쿄까지가 그 정도 거리래요.” 노아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서 말했다. “지독한 곰이네요.” 녹원은 동의했다. 정말이지 지독한 곰이었다. 세 번째 귀환 이후, 이 독한 곰은 제법 유명해졌다. ‘되돌아오는 곰.’ 그런 유의 머리기사와 함께. 도돌이라는 이름 역시 앙증맞게 실렸다. 설악산 측은 이 사건을 일종의 기회로 삼았다. 설악산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의 시작점을 ‘되돌아오는 곰’으로 삼자. 마침내 도돌이는 설악산으로 방사되었다. 몇 가지 복잡한 행정적인 절차를 거쳐서, 사무소 내부에도 곰의 위치를 주기적으로 추적하는 절차가 투입되었다. 반응은 썩 괜찮았다. 이토록 강력한 의지를 가진 곰이 번번이 돌아오던 고향. 한 기자는 도돌이를 천구백팔십삼년에 죽은 곰의 환생인 양 묘사하기도 했다. 수십 년의 한이 이제야 풀렸노라고. 녹원이 말했다. “어릴 때 제 별명이 웅녀였거든요.” 노아가 그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잠시 후에 그가 말했다. “웃어도 돼요?” 녹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노아가 웃는 사이에,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열세 살쯤 때 이미 키가 백칠십을 넘었어요. 그때 짝꿍이 되게 웃기던 애였거든요. 저를 맨날 웅녀라고 불렀는데, 그게 못내 좋았어요. 그전에는 한 번도 별명을 가져본 적이 없었거든요…. 이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요.” 녹원은 설악산에서 마지막으로 살던 곰의 최후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국의 마지막 야생 곰, 그가 태어나던 바로 그해 엉엉 울어버리다가 죽은 짐승. 녹원은 곰이 죽은 날짜도 찾아보았다. 곰은 칠월 말일, 녹원이 태어나기 바로 전날에 죽었다. 그 숫자 간의 관계를 깨달은 순간, 녹원의 머릿속으로 괴상한 생각 하나가 스치고 지나갔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누구에게도 이것에 대해 말한 적 없었다. 가뜩이나 자신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들었다가는 어떻게 반응할지 뻔했다. 녹원은 천천히 말했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나야말로, 그 곰에게서 돌아온 것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이번에 노아는 웃지 않았다. 녹원은 말을 이었다. 그 생각은 오래도록 그를 옭아맸다고. 누구나 이상한 믿음 하나 정도는 있잖아요, 그런 말로 뭉뚱그리기에는 지나치게 묵직한 믿음이었다. 자신이 그 죽음으로부터 돌아온 존재라면, 왜 이토록 사람들이 어려운지 설명할 수 있을 듯했다. 사람에게 죽은 짐승은, 사람으로 태어난다 해도 역시나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가 바로 그런 경우는 아닐까.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생각에서 마음을 떼어낼 수 없었다. 꼭 사랑에 빠진 것처럼. “그래서요. 도돌이와 나 사이에도 무언가 이어져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녹원은 고개를 들었다. 노아는 끌어안은 무릎에 턱을 괸 채로 잠들어 있었다. 녹원은 평상에 깐 담요를 펼쳐 노아의 어깨에 덮어 주었다. 고개를 드니 보름달이 떠 있었다. 희고 선명한 달이었다. 두 갈래의 강 위로 두 개의 달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밤 동물의 눈동자처럼 보였다. 녹원은 일어서서 기지개를 켰다. 양팔을 죽 펼친 순간, 그대로 멈춰 섰다. 그는 빳빳이 굳은 채로 귀를 기울였다. 눈앞으로는 밤의 어둠을 타고 흐르는 산의 능선만 보였다.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등 뒤 어딘가에서, 아마도 뒤뜰에서, 무언가 부스럭거리고 있었다. 곧이어 낮게 숨 쉬는 소리가 울렸다. 녹원은 그 숨소리를 알고 있었다. 분명히 귀에 익었다. 다시 한번 비닐이 흔들렸다. 얇은 막이 찢어졌다. 그것이 그르렁거렸다. 나는 알아. 녹원은 생각했다. 나는 이 소리를 알고 있어. 녹원은 천천히 손을 내렸다. 발뒤꿈치를 들고 돌아섰다. 주택은 엷은 가로등 불빛에 잠겨 있었다. 소리는 조금 더 뒤에서, 가로등 너머에서 들려왔다. 녹원은 천천히 걸었다. 가로등을 지나서 집의 뒤쪽으로 갔다. 뒤뜰에는 지붕을 씌운 분리수거함과 차고가 있었다. 차고의 비상등은 활짝 켜져 있었다. 안쪽의 빨간 지프가 선명히 보였다. 그 옆의 분리수거함을 뒤적거리는 물체 역시도 뚜렷하게 보였다. 녹원은 멈춰 서서 그 물체를 보았다. 검고 큼직한 뒷모습. 몇 해 전보다는 살이 좀 빠진 것 같았다. 곰은 비닐봉지를 뒤지고 있었다. 검은 발이 노란색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움켜쥐었다. 비닐들이 흔들리고 찢어지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녹원은 입술을 깨물었다. 목이 메었다. 이름을 부르고 싶었다. 마음은 한 차례 솟구치더니, 도무지 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녹원은 집의 그늘에 몸을 숨긴 채 곰의 움직임을 훑었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니 부석거리는 털이라거나 바싹 야윈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얘.” 녹원이 말했다. “도돌아.” 곰은 고개를 돌렸다. 천천히. 응답하듯이. 자신이 어떻게 불리는지를 알고 있다는 듯이. 녹원은 한 발짝 다가섰다. 다음 걸음은 좀더 가볍게 옮겼다. 누군가 그의 어깨를 붙잡지 않았더라면 계속 걸어갔을 터였다. 손은 녹원을 꽉 쥐고 뒤로 당겼다. 녹원은 뒤돌아보았다. 노아가 거기 있었다. 비상등의 빛에 새하얗게 질린 채, 녹원을 붙들고 속삭였다. “움직이면 안 돼요. 주사님, 움직이지 마세요.” 녹원도 무엇인가 말하려 했다. 괜찮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는 이미 한 번 이 곰을 만난 적 있다. 그때도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곰은 놀랍도록 명민한 동물이라 몇 해 동안 사람을 기억한다. 그러나 어떤 말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곰은 구부정하게 서서 멀뚱히 그들을 보고 있었다. 흰자가 슬며시 드러난 눈은 사람의 것보다 둥글고 검었다. 그 눈동자에서는 어떤 생각도 읽어 낼 수 없었다. 들이마시고 내쉬는 숨결, 그것들로부터 추측할 수 있는 감정 또한 없었다. 곰은 그와 전혀 다른 구역에, 다른 세계에 있었다. 그가 자신의 이름에 반응했다니. 우스운 생각이었다. 그들 간에는 무엇도 교차하는 것이 없었다. 녹원은 그제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녹원이 속삭였다. “노아씨. 뒤로 가요. 등 돌리지 말고, 뒷걸음질로요.” 노아는 그의 말을 따랐다. 그들은 기묘한 춤을 추듯, 일정한 리듬에 따라 뒷걸음질을 쳤다. 곰은 그들을 빤히 지켜볼 뿐이었다. 자신의 트럭 옆으로 다가갔을 무렵, 녹원은 주머니에서 차 열쇠를 꺼냈다. 그것을 차의 앞문에 대고 몇 차례 내리쳤다. 열쇠와 문이 맞부딪치며, 금속이 깨지는 소리가 공기를 울렸다. 곰이 숨을 들이마셨다. 가슴팍에 모으고 있던 앞발을 바닥에 내딛더니 그대로 등을 돌려 달아났다. 산속으로, 그리하여 어둠 너머로 녹아내렸다.        그들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곰이 뜯어둔 비닐들을 바라보면서. 창문 안쪽에서는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도근 아니면 란이 깨어난 모양이었다. 녹원은 잽싸게 몸을 돌렸다. 노아는 여전히 하얗게 질려 있었다. 녹원은 그의 팔을 붙들었다. “노아 씨. 여기에서 다른 거 본 거로 해요. 아무거나 좋아요. 고양이나 멧돼지, 살쾡이. 뭐 그런 게 내려왔다고 그래요. 곰을 봤다고는 하지 마요.” “왜요? 주사님. 방금 보셨잖아요. 곰이에요. 맹수라고요. 제대로 말씀드려야 해요.” 녹원은 숨을 들이마셨다.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던 눈 한 쌍, 그 눈길이 불에 덴 자국처럼 머릿속에 새겨졌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몇 해 동안 그를 옭아매던 감정들이 이제야 제대로 된 언어로 자리를 잡았다. 곰은 사람과 다르다. 곰은 사람이 아니다. 곰은 사람보다 나은 존재다. 앞뜰에서는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녹원이 낮게 속삭였다. “노아씨. 나는요. 늘 곰에게 산을 주고 싶었어요. 아주 통째로 줘 버리고 싶어요. 원래대로 돌려놓고 싶다고요. 그게 맞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해하겠어요?” 노아가 자신의 팔을 붙든 손을 붙잡아 내렸다. 그는 오래전에 과장이 짓던 표정을 하고 있었다. 곧 울음을 터뜨릴 듯 일그러진 얼굴, 여전히 그 이유를 알아낼 수 없었다. “주사님. 저는 이해가 안 돼요. 우리가 산을 줄 수 있나요? 우린 애초에 산을 가진 적도 없잖아요. 다들 그걸 알아요. 그래서 여기 계신 분들이 저 곰을 찾으려고 하는 거잖아요. 찾아서 보호하고, 같이 살려고요. 다들 그걸 위해서 애쓰는 거잖아요.” 노아의 등 뒤로 우도근이 보였다. 그가 집의 벽을 따라 돌아와 가로등 아래 섰다. 그가 부스스한 머리를 정돈하며 물었다. “뭐 깨지는 소리가 나던데, 무슨 일 있어요?” 노아가 녹원을 올려다보았다. 녹원도 노아를 내려다보았다. 노아씨. 박녹원 주사가 안 무서워? 직원들의 질문이 녹원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어쩔 수 없었다. 녹원이 말했다. “노아씨, 먼저 들어가세요. 저도 곧 갈게요.” 노아가 눈을 깜빡거렸다. 무엇인가 말하려는 듯 입을 벌리더니, 이내 포기한 듯 몸을 돌렸다. 우도근은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노아를 흘끗 보고서, 녹원에게 다가왔다. 녹원은 당황하지 않고 말했다. 차 안에서 무엇인가 찾다가 열쇠를 떨어트렸고, 차 문에 부딪힌 열쇠가 요란한 소리를 냈다고. “죄송해요, 주무시는 걸 깨웠네요.” 우도근은 괜찮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녹원은 계속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우도근도 집안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과장의 눈길이 뜯어진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가 닿는 순간, 녹원이 입을 열었다. “과장님. 여기 족제비 같은 게 있던데요.” 우도근이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족제비요?” 녹원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열쇠를 찾다가 뒤뜰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었다고. 다가가니 족제비인지 오소리인지가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는 중이었다고. 꽤 굶주려 보였다는 말도 덧붙였다. 과장은 분리수거함으로 다가가 핸드폰 플래시를 켰다. 봉투를 이리저리 비쳐 보더니 혀를 찼다. “아이고, 이걸 하루 늦게 내놨더니…험하게도 물어뜯어 놨네.” “안에 들여놓으시는 게 나을 거 같아요.” 녹원은 너덜너덜한 봉지를 들어 우도근에게 건넸다. 옛 과장이 그것을 받으며 빙그레 웃었다. “시골은 시골이지요?” 박녹원도 마주 웃었다. 지금은 이 정도의 대응이야, 충분히 해낼 수 있었다.        녹원은 방으로 돌아왔다. 벽을 향해 누웠다. 그의 옆에 누운 노아가 뒤척거렸다. 그는 녹원 쪽으로 몸을 돌렸다가, 반대로 돌아눕고, 깊은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그의 망설임이 애틋한 동시에 힘겹게 다가왔다. 녹원은 반대쪽으로 돌아누워 눈을 감았다. 노아가 움직임을 멈췄다. 녹원은 벽에 드리워진 그늘을 물끄러미 지긋이 보았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등 뒤로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울렸다. 노아가 결국 피로에 항복한 모양이었다. 녹원은 몸을 돌려 정면으로 누웠다. 유리창으로 스민 달빛이 천장을 부드럽게 밝혔다. 녹원은 눈을 깜빡거렸다. 그는 불타는 산을 생각했다. 잿빛 산, 폐허처럼 모두 불타버린 산, 잿더미로 뒤덮여 일견 늪처럼 보이기도 하는 산이다. 곰이 그 위를 달리고 있다. 사람이 아니라 짐승처럼, 두 발이 아니라 네 발로. 그는 산맥을 지나가는 바람처럼 빠르다. 성체로 자라난 곰들은 사십에서 육십 킬로미터의 속력을 낸다. 그는 타고난 사냥꾼이며 끈기의 화신이다. 바삐 위치를 바꾸는 앞발과 뒷발 너머로 회색 구름이 퍼져 나갈 것이다. 곰은 바위를 뛰어넘고, 나무를 오르고, 강을 건넌다. 어떤 방해도 없이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간다. 누구도 그를 쏘지 않는다. 잠든 채로 끌려 나오지도 않는다. 그는 어디든지, 원하는 만큼 간다. 산은 모두 곰의 것이다. 그는 자유롭다. 녹원은 가슴에 양손을 올렸다. 마치 포로처럼.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윽고, 만족스러운 미소가 그의 얼굴로 번져 나갔다.
  • “목숨 다할 때까지 싸운 조선군”…선교사가 본 정발은 용맹했다

    “목숨 다할 때까지 싸운 조선군”…선교사가 본 정발은 용맹했다

    임진왜란이라는 미증유의 국난을 극복하는 데 있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존재는 우리가 다 아는 것처럼 결정적이다. 하지만 이 엄청난 국가적 변란에서 벗어나기까지는 전국 곳곳에서 목숨을 바쳐 싸운 수많은 사람들의 역할이 있었다. 갈수록 잊혀져 가는 임진왜란의 또 다른 주인공들을 기억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이순신과 권율, 그리고 언제나 논란의 복판에 있는 원균은 다루지 않는다. 순절했으되 이름을 남기지 못한 민초에 대한 추모의 마음 또한 담고자 한다. 임진왜란이 시작된 부산에서 영웅들의 흔적을 찾아나서는 여행은 지하철을 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부산역에서 오늘의 주인공 정발(1553~1592) 장군을 만나려면 지하철 1호선을 이용해 노포 방향으로 한 정거장만 가면 된다. 걸어가도 10분이면 초량시장을 막 지난 초량교차로 광장에서 장군의 동상과 마주하게 된다. ‘나를 따르라’는 듯 오른팔을 치켜올린 동상의 정발 장군은 왜군에게 맞서 부산진 수성(守城)에 나선 군사를 독려하는 모습이다.왜란의 첫 번째 교전인 부산진 전투에 대한 오해는 ‘조선왕조실록’이 부추긴 것이나 다름없다. 선조실록 1592년 4월 13일자는 ‘적선이 바다를 덮어 오니 부산 첨사 정발은 마침 절영도에서 사냥을 하다가, 조공하러 오는 왜라 여겨 대비하지 않았는데 미처 진(鎭)에 돌아오기도 전에 적이 이미 성에 올랐다. 정발은 난병(亂兵) 중에 전사했다’고 적었다. 절영도는 오늘날의 영도다. 위기가 닥쳐왔는데도 한가하게 놀러 나갔다가 어이없이 죽었다는 투다. 당시 일본에서 포교활동을 하던 예수회의 포르투갈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1532~1597)가 ‘일본사’에 서술한 부산진 전투의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아우구스티노(왜장 고니시 유키나가의 가톨릭 세례명)는 성 안에 있는 장수에게 목숨을 살려줄 테니 항복하라는 전갈을 보냈다. 하지만 성 안의 병사들은 비웃으면서, 먼저 조선 국왕에게 사람을 보내 그렇게 해도 되는지 물어볼 테니 기다리라고 거짓으로 답했다.’ 조선군은 시간을 벌면서 전투준비를 하고 있었다. 프로이스의 기록은 이어진다. ‘조선군은 매우 용감하고 과감하게 저항했으며 전투는 3시간 가까이 지속됐다. 해자에는 모두 마름쇠가 부설됐거나 사람의 키 정도로 물이 차 있었기 때문에 일본군은 수없이 많은 마름쇠에 발이 찔리지 않도록 해자 위에 널판을 놓아 건넜다.…중략… 훌륭한 장수와 국왕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히 높은 조선군 거의 모두는 목숨이 다할 때까지 싸웠고, 오직 소수만이 살아남아 포로가 되었다. 조선군 중 가장 먼저 전사한 이는 그들의 총대장이었다.’ 선조수정실록에서는 분위기가 조금 바뀐다. 선조실록 내용에 대한 성찰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선조실록은 광해군 시대, 선조수정실록은 인조 반정 이후 편찬된 것이다. ‘정발은 절영도에 사냥하러 갔다가 급히 돌아와 성에 들어갔는데 전선은 구멍을 뚫어 가라앉히고 군사와 백성들을 모두 거느리고 성가퀴를 지켰다. 이튿날 새벽 적이 성을 백 겹으로 에워싸고 서쪽 성 밖 높은 곳에 올라 포를 비 오듯 쏘아댔다. 정발이 서문을 지키면서 한참 동안 대항하여 싸웠는데 적의 무리 중 화살에 맞아 죽은 자가 매우 많았다. 정발이 화살이 다 떨어져 적의 탄환에 전사하자 성이 마침내 함락되었다.’정발은 무능하고 게으른 장수일 수 없다. 위원군수이던 정발은 1589년(선조 22) 비변사가 무인을 불차채용(不次採用)할 때 추천을 받았다. 서열과 관계없이 능력 있는 장수를 발탁하는 인사 제도다. 함께 추천된 정읍현감 이순신은 1591년 전라좌수사에 올랐고 정발도 못지않게 고속승진해 부산진수군첨절제사에 임명된 것이 왜란이 발발한 바로 그해 초다. 정발이 왜군 침입의 위기의식을 못 느끼고 있었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선조실록에는 ‘임진년 3월 부산 첨사 정발이 급하게 보고했는데 대마도주 평의지의 배가 포구에 와 정박하고 첨사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에 길을 빌린다는 따위의 말이 있었다. 그 글을 물리치고 이들이 변경에서 머물러 기다리는 것을 허가하지 않았더니, 평의지는 절영도에 배를 대었다가 며칠 만에 앙심을 품고 떠났다’는 대목이 있다. 임진왜란 일어나기 불과 한 달 전에 일어난 일이다. 부산진과 동래부를 지키려 목숨을 걸었던 조선군의 분투는 명나라가 ‘조선이 왜국과 담합해 우리를 치려는 것 아니냐’고 의심했을 때 오해를 풀어주는 수단이 됐다. 정발은 1594년 병조판서에 추증됐지만, 의로운 죽음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다 1597년 통신사행이 상당한 변화를 만든다. 명나라 사신 양방형·심유경과 일본에 통신사로 다녀온 황신(1560~1617)의 전언 때문이다. 부산진성 전투에 참가했던 왜군 장수 야나가와 시게노부는 “우리는 부산에서 크게 기세가 꺾일 수밖에 없었다”고 조선군의 필사적인 저항을 높이 평가했고, 정발의 첩 애향이 순절한 것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정발은 1686년(숙종 12)이 되어서야 충장공이라는 시호를 받았다.정발 동상이 있는 초량역에서 다시 지하철을 타고 부산진역 다음 좌천역에서 내리면 정공단이 있다. 정공단은 부산을 대표하는 가구거리인 좌천동의 좁은 골목으로 언덕길을 조금만 오르면 나타난다. 정발 장군이 수성군을 지휘하다 숨을 거둔 부산진성 서문 터라고 한다. 정공단은 1766년(영조 42) 부산진첨사 이광국이 세운 것이다. 정공단은 정발 장군을 비롯해 그의 막료 이정헌, 첩 애향, 노비 용월과 이름 없는 수군 순절자들을 배향하고 있다. 앞서 1761년(영조 37)에는 경상좌수사 박재하가 ‘충장공정발전망비’(忠壯公鄭撥戰亡碑)를 영가대에 세웠다. 충장공 정발의 순국을 추념하는 비석이라고 할 수 있다. 전망비는 지금 정공단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총병력은 최소 16만명 이상이었다. 부산진성을 공격한 고니시 유키나가의 선봉대는 1만 8700명이었다. 반면 부산진성의 조선군은 500~600명이었으니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정발에게는 ‘어떻게 죽느냐’가 중요했을 것이다. 우리는 왜란의 비극을 겪은 원인을 ‘방비 없이 당한 조선의 총체적 무능’에서 찾는다. 개인적으로는 ‘위기의식도 적지 않았고 대비도 했지만 국력은 미치지 못했고, 대비가 충실했어도 100년의 전국시대를 거친 왜군의 전투력은 감당하기 어려웠다’는 것이 실상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조선군도 이후 전투 경험을 쌓으며 반격에 나설 수 있었다. 왜군에 대한 정보가 없었던 것은 치명타였다. 조정은 일본이 섬나라인 만큼 수군이 강하고 육전에 약할 것이라고 거꾸로 생각했다. 수군에게 해전을 포기하고 육지에 올라와 전투에 임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도 이 때문이다. 경상좌수영 소속인 정발 휘하 부산진수군이 위기상황에 해전(海戰)이 아니라 절영도에서 사냥을 겸한 육전(陸戰) 훈련을 하고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오히려 ‘수륙(水陸)의 전투와 수비 중 어느 하나도 없애서는 안 된다’며 수군을 지킨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매우 예외적이었다. 당시 부산진성 앞에는 군선의 정박지가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부터 야금야금 간척이 이루어져 지금은 바다가 꽤 멀다. 부산진성은 왜란 직전 성벽을 높여 쌓고 해자도 깊게 팠지만 왜군의 공격능력에는 결과적으로 미치지 못했다. 왜군이 애써 점령한 부산진성을 버려 두고 뒷산에 증산성, 해안에 보조성(자성·子城)을 새로 쌓은 것도 이 정도의 성곽으로는 방어가 가능하지 않다고 봤기 때문이다. 조선은 그만큼 전쟁 경험이 없었다. 조선은 왜란 이후 자성 일부를 활용해 새로운 부산진 첨절제사영을 구축했다. 새 부산진성은 좌천역에서 걸어가도 되지만 지하철 1호선 범일역에서 내리면 좀더 가깝다. 이곳에서는 일본식 성 특유의 경사진 성벽을 만날 수 있다. 가파른 성벽 위에는 부산진성의 진남루가 세워졌다. 수군기지로 썼지만 이곳에도 포구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전선의 정박지를 조성하느라 준설한 흙을 쌓아올리고 지었던 누각 영가대도 사라졌다. 지금 조선통신사역사관 옆에 보이는 영가대는 최근 재현한 것이다. 지금 부산에서는 임진왜란의 상처인 자성대라는 이름 대신 부산진성으로 부르자는 시민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정발 장군의 시신은 찾지 못했다. 무덤은 고향인 경기 연천군 미산면 백산리에 있다. 옷가지로 의관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우암 송시열의 묘갈명을 새긴 비석을 비롯한 석물은 6·25전쟁 와중에 모두 사라졌다. 지금 보이는 석물들은 1982년에 다시 세운 것이다.
  • 범띠★ 기대해… 올해 시상대는 내가 예약해

    범띠★ 기대해… 올해 시상대는 내가 예약해

    2022년 임인년(壬寅年) 검은 호랑이의 해가 밝았다. 한창나이인 만 24세(1998년생) 스포츠 선수들은 전성기를 열어가고 있고, 유종의 미를 꿈꾸는 만 36세(1986년생) 선수들은 베테랑의 관록으로 아직 살아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프로야구에서는 지난해 타율 0.360으로 아버지 이종범(52)과 함께 세계 최초로 부자(父子) 타격왕에 오른 이정후(24·키움 히어로즈)가 호랑이띠를 대표하는 스타다. 벌써 프로 6년 차지만 여전히 성장세가 계속되고 있어 올해도 활약이 기대된다. 지난해 평균 시속 152㎞의 빠른 공을 무기로 30세이브를 거둔 고우석(24·LG 트윈스)은 “좋은 공을 시즌 끝날 때까지 유지하면서 던지는 게 목표”라고 올해 활약을 예고했다. 이승헌(24·롯데 자이언츠), 박치국(24·두산 베어스)도 호랑이의 해에 발톱을 드러낼 선수로 주목받는다. 키움에서 KT 위즈로 옮긴 박병호(36)를 비롯해 오재일(36), 이원석(36·이상 삼성 라이온즈)도 지난해 못 이룬 우승을 꿈꾼다. 두산 좌완 역대 최다 101승의 주인공 유희관(36) 역시 두산 프랜차이즈 역대 최다인 109승을 넘는 게 목표다.축구에서는 지난해 K리그1 영플레이어상을 수상한 설영우(24·울산 현대)가 번번이 2인자에 그친 울산의 한을 풀지 주목된다. 여기에 지난 시즌 막판 한국으로 복귀한 이승우(24·수원 FC)도 안정된 환경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관심이 쏠린다. 수원이 K리그1 복귀 첫해부터 5위를 차지한 만큼 이승우가 맹활약한다면 더 높은 순위를 꿈꿀 수 있다.농구에서는 국가대표 센터 박지수(24·청주 KB)가 “검은 호랑이는 바로 나의 해”라고 할 정도로 자신감이 넘친다. 이번 시즌 팀도 압도적인 1위고 박지수도 각종 지표에서 개인 1위를 달린다. 남자 농구에선 이제 막 프로에 데뷔한 정호영(24·원주 DB), 김준환(24·수원 KT)이 최근 경기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며 이름을 알릴 준비를 마쳤다.배구에서는 베테랑 신영석(36·한국전력)이 이번 시즌 올스타 팬투표에서 남자부 1위에 오르며 존재감을 뽐냈다. 신영석은 블로킹 전체 2위로 녹슬지 않은 실력을 뽐내고 있다. 현대캐피탈에서는 젊은 피 허수봉(24)과 베테랑 문성민(36) 두 호랑이의 조합이 만만치 않다.쇼트트랙 최민정(24·성남시청)은 다음달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서 금빛 질주를 꿈꾼다. 평창올림픽 여자 1500m와 계주 금메달리스트인 최민정은 이번에도 개인전과 단체전에 출전해 메달 사냥에 나선다. 최민정은 “평창 땐 처음 올림픽에 출전했던 거라 긴장도 많이 했고 어려운 부분도 있었는데 베이징은 두 번째니까 경험을 살려서 경기에 임하면 도움이 될 것 같다”면서 “준비는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기겠다”고 각오를 밝혔다.바둑계에서는 지난해 말 여자기성전과 여자국수전을 제패한 오유진(24) 9단과 난설헌배 초대 우승자인 조승아(24) 5단이 호랑이의 해를 맞아 포효할 준비를 마쳤다.
  • 보수·진보 모두 “방역 현행 유지·강화”… 20대만 완화 목소리

    보수·진보 모두 “방역 현행 유지·강화”… 20대만 완화 목소리

    정부가 코로나19 재확산으로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와 방역패스 방침을 시행 중인 가운데 국민 10명 중 6명은 현 방침을 유지하거나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신문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지난달 27~28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8명을 상대로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 포인트, 중앙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사회적 거리두기와 방역패스 제도를 ‘현행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은 32.3%,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은 32.4%로 집계됐다. 사회적 거리두기 수준을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은 32.4%에 그쳤다. 정부는 지난달 31일 사적 모임 인원을 4명으로 제한하고 식당·카페의 영업시간을 오후 9시로 제한, 대형마트 등 다중이용시설에서는 방역패스를 의무화하는 등의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 지침을 2주간 더 연장하기로 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강화를 두고는 20대를 제외한 다른 연령대에서 모두 현행 유지·강화 의견이 많았다. 20대에서는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49.8%로 현행 유지·강화(49.5%) 의견보다 근소하게 높았다. 반면 30대(51.9%), 40대(74.7%), 50대(71.2%), 60대 이상(70.0%)에서는 모두 현행 유지·강화 의견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직업별로 살펴봐도 젊은층이 대거 포진한 학생들에게서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44.5%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는 영업시간 제한 등 강화된 거리두기 방침 영향이 크게 미치는 자영업자가 39.7%로 뒤를 이었다. 반대로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은 장년·노년층이 다수 포함됐을 가능성이 큰 은퇴·무직·기타 응답자(46.5%)에게서 가장 많았다. 기능노무·서비스직 종사자도 35.7%로 강화 의견을 많이 냈다. 현행 유지 의견이 가장 많이 나온 직군은 가정주부(36.0%)였다. 지지정당별 의견을 살펴보면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은 국민의힘 지지자(42.5%), 국민의당 지지자(29.8%) 순으로 많이 나타났다. 현행 유지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지지자(42.6%)에게서, 강화 의견은 정의당 지지자(49.5%)에게서 가장 많이 나왔다. 정치 성향에서는 보수와 진보층 모두 현행 유지·강화 의견이 더 많았다. 보수층은 완화(41.3%)보다 현행 유지·강화(59.6%) 의견이 더 많았다. 진보층 역시 완화(24.2%)보다 현행 유지(39.5%)와 강화(34.9%) 필요성에 의견을 많이 냈다. 대선후보 지지자별로 보면 현행 유지를 원한 응답자들은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 지지자(40.2%)가 가장 많았다. 강화 의견을 낸 응답자들은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39.3%)에게 가장 많이 쏠렸다. 완화 의견을 낸 응답자 가운데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 지지자(42.7%)가 가장 많았는데, 이는 ‘방역패스 적용 영업장에는 시간 제한을 풀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해 온 안 후보의 입장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지지자들은 완화 38.7%, 강화 29.7% 등으로 의견이 분산된 것으로 집계됐다. 지역별로는 관광 수익이 지역경제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제주에서 완화하자는 의견이 44.0%로 가장 우세했다. 호남에서는 강화하자는 의견이 37.6%로 가장 많았고, 부산·울산·경남에서는 현행 거리두기 지침 유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39.3%로 가장 많이 나타났다.
  • 폭행 당해도 말 못하는 경찰관…“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해”

    폭행 당해도 말 못하는 경찰관…“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해”

    지난해 공무집행방해 사건 중 약 80%가 경찰관을 대상으로 한 사건일 만큼 경찰관이 직무수행 중 폭행을 당하는 일이 많은 가운데, 이런 피해를 사소한 일 또는 현장 대응을 잘못해서 발생한 일로 치부하는 조직 문화 탓에 경찰관이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2일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 학술지 ‘치안정책연구’에 실린 논문 ‘경찰공무원의 폭력피해 과정과 영향에 관한 연구’는 현장 업무 중 폭력 피해를 경험한 수도권·충남 지역 경찰관 11명(여성 3명, 남성 8명)을 지난해 7월 심층면접해 주취자 등의 폭행이 피해 경찰관에게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공무집행방해 사건 7001건 중 경찰관을 대상으로 한 사건(5825건)이 차지하는 비율은 83.2%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경찰통계연보를 보면 최근 5년(2016~2020년) 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검거된 피의자는 한 해 평균 1만 2488명이다. 이 중 약 60%가 주취자다. 이 논문을 쓴 이재영 세한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폭력 피해를 경험한 경찰관들은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경찰관 대응의 미숙함을 탓하거나 사소한 일로 치부하는 조직 분위기로 조직에 대한 신뢰가 저하됐다고 답변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는 ‘피해자로서의 경찰’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은 (경찰) 조직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지구대에서 일하는 30대 A경장은 “경찰 조직 내에서는 공무집행 중 폭행 피해를 여러 번 당한 직원을 문제가 있는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일부 직원은 해당 직원이 다혈질이고 일부러 상대방을 자극해 피해를 당한 것이라고 말한다. 일선에서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에게 격려의 말이 아닌 비난의 말과 부정적인 시선을 보낼 때면 ‘우리 조직은 나를 지켜주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다른 경찰서 소속 30대 B경장은 “공무집행방해 피해를 당하고 (경찰서) 형사과에 가서 조사를 받을 때, 가해자가 있는 상황에서 (담당 형사로부터) ‘별일 아니다. 도끼가 날이 다 죽어 있어서 이걸로는 풀도 못 벤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경찰관들은 또 폭행을 당한 이후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지만 이에 대한 치료나 상담은 제대로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30대 C경장은 “주취자에게서 들은 욕설 및 당시 상황이 쉬는 날 문득 생각나서 우울하고 화가 난 적도 많고, 남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지 못하는 고립감도 생겼다”고 말했다. 지구대 소속 40대 D경위는 “(주취자한테) 정강이를 맞은 것은 크게 문제될 일이 없었고, (주취자가) 이로 (저를) 문 것은 다행히도 깊이가 깊지 않아 제 돈으로 치료를 받았다”면서도 “주변 시민들이 보고 있는 상황에서 주취자에게 아무것도 못하고 폭행을 당했다는 게 창피하고, 제 자신이 한없이 낮아지는 생각이 들어 며칠 동안 업무 끝나고 술을 마시며 잊었을 정도”라고 전했다. 가해자의 민원 제기와 합의 요구로 인한 업무상 스트레스, 공무집행방해 범죄에 대한 처벌이 무겁지 않은 점, 가해자의 역고소 우려 등도 경찰관이 폭행·협박 등의 피해사실을 드러내지 못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법원의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1심 법원이 처리한 공무집행방해 사건 8121건 중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된 사건(4028건) 비율은 절반에 가까운 49.6%다. 벌금형이 선고된 사건(2553건)이 31.4%로 그 다음으로 많았다. A경장은 “공무집행방해 사건은 지구대·파출소에서의 서류 작성 외에 경찰서 형사과에 가서 피해자 진술을 하는 시간을 계산하면 3~4시간이 소요된다. 그 시간에 다른 동료들이 112신고 출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직원들은 공무집행방해 사건 처리를 탐탁지 않아 한다”고 말했다.특히 여성 경찰관들은 우리 사회의 성차별 때문에 이중고를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교수는 “여성 경찰관들은 직무 수행 중 폭력 피해를 당할 경우 사회적으로 여성 경찰관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 형성이나 부정적인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호소하고 있다”면서 “또 동료 사이에서도 성별 탓이라는 비판에 시달리는 이중고를 호소했다”고 설명했다.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20대 E순경은 “가해자에게 얼굴을 맞을 때 놀랐지만 일이 커질까봐 더 덤덤한 척하려 노력했다”면서 “피해자 기입란에 제 이름을 넣고 서류를 작성하고 있는데 옆에서 ‘여직원이 맞아서 말 나오는 거 아닌지 모르겠나’라며 스쳐지나가는 말을 했다. 죄를 지은 것 같고 움츠러들게 됐다”고 말했다. 지구대 소속 20대 F순경은 “한번은 근무하다가 폭력적인 주취자를 마주하여 잘 설득시켜서 귀가하도록 조치한 후 순찰차에 탔는데 (같이 출동한) 경위님으로부터 ‘여경과 같은 순찰차를 타는 것이 부담이다’라는 말을 들었다”면서 “‘내가 만약 공무집행방해 피해를 당하면 다른 사람들이나 네티즌들이 나를 비롯한 여성 경찰관을 얼마나 욕할까’라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던 것 같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면접 내용을 토대로 △주취 상태에서 상습적으로 공무집행을 방해하는 사람에 대한 처벌 강화 △폭력 피해 경찰관에 대한 2차 피해 지원제도 개선 등을 제안했다. 이 교수는 “경찰공무원이 직무 수행 중 정신적·심리적 피해의 심각성을 인지하여 조직 내·외부 전문가에 의한 상담과 치료가 가능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경찰관이 직무 수행 중 입게 되는 피해를 가볍게 여기거나 무능력이 원인이라며 오히려 질타하는 등 피해자를 가해자 취급하는 조직 문화를 쇄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이런 조직 문화는 궁극적으로 경찰의 소극적 대응, 사기 상실, 조직으로부터의 이탈 원인이 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 범 내려온다… 검은 호랑이의 해 주인공은 ‘나야 나’

    범 내려온다… 검은 호랑이의 해 주인공은 ‘나야 나’

    2022년 임인년(壬寅年) 검은 호랑이의 해가 밝았다. 한창나이인 만 24세(1998년생) 스포츠 선수들은 전성기를 열어가고 있고, 유종의 미를 꿈꾸는 만 36세(1986년생) 선수들은 베테랑의 관록으로 아직 살아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프로야구에서는 지난해 타율 0.360으로 아버지 이종범(52)과 함께 세계 최초로 부자(父子) 타격왕에 오른 이정후(24·키움 히어로즈)가 호랑이띠를 대표하는 스타다. 벌써 프로 6년 차지만 여전히 성장세가 계속되고 있어 올해도 활약이 기대된다. 지난해 평균 시속 152㎞의 빠른 공을 무기로 30세이브를 거둔 고우석(24·LG 트윈스)은 “좋은 공을 시즌 끝날 때까지 유지하면서 던지는 게 목표”라고 올해 활약을 예고했다. 이승헌(24·롯데 자이언츠), 박치국(24·두산 베어스)도 호랑이의 해에 발톱을 드러낼 선수로 주목받는다. 키움에서 KT 위즈로 옮긴 박병호(36)를 비롯해 오재일(36), 이원석(36·이상 삼성 라이온즈)도 지난해 못 이룬 우승을 꿈꾼다. 두산 좌완 역대 최다 101승의 주인공 유희관(36) 역시 두산 프랜차이즈 역대 최다인 109승을 넘는 게 목표다. 축구에서는 지난해 K리그1 영플레이어상을 수상한 설영우(24·울산 현대)가 번번이 2인자에 그친 울산의 한을 풀지 주목된다. 여기에 지난 시즌 막판 한국으로 복귀한 이승우(24·수원 FC)도 안정된 환경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관심이 쏠린다. 수원이 K리그1 복귀 첫해부터 5위를 차지한 만큼 이승우가 맹활약한다면 더 높은 순위를 꿈꿀 수 있다.농구에서는 국가대표 센터 박지수(24·청주 KB)가 “검은 호랑이는 바로 나의 해”라고 할 정도로 자신감이 넘친다. 이번 시즌 팀도 압도적인 1위고 박지수도 각종 지표에서 개인 1위를 달린다. 남자 농구에선 이제 막 프로에 데뷔한 정호영(24·원주 DB), 김준환(24·수원 KT)이 최근 경기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며 이름을 알릴 준비를 마쳤다. 배구에서는 베테랑 신영석(36·한국전력)이 이번 시즌 올스타 팬투표에서 남자부 1위에 오르며 존재감을 뽐냈다. 신영석은 블로킹 전체 2위로 녹슬지 않은 실력을 뽐내고 있다. 현대캐피탈에서는 젊은 피 허수봉(24)과 베테랑 문성민(36) 두 호랑이의 조합이 만만치 않다. 쇼트트랙 최민정(24·성남시청)은 다음달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서 금빛 질주를 꿈꾼다. 평창올림픽 여자 1500m와 계주 금메달리스트인 최민정은 이번에도 개인전과 단체전에 출전해 메달 사냥에 나선다. 최민정은 “평창 땐 처음 올림픽에 출전했던 거라 긴장도 많이 했고 어려운 부분도 있었는데 베이징은 두 번째니까 경험을 살려서 경기에 임하면 도움이 될 것 같다”면서 “준비는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기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바둑계에서는 지난해 말 여자기성전과 여자국수전을 제패한 오유진(24) 9단과 난설헌배 초대 우승자인 조승아(24) 5단이 호랑이의 해를 맞아 포효할 준비를 마쳤다.
  • [여기는 중국] 생후 5일 신생아, 엄동설한에 쇼핑백에 담겨 버려져

    [여기는 중국] 생후 5일 신생아, 엄동설한에 쇼핑백에 담겨 버려져

    태어난 지 불과 5일 만에 친부모에게 버려진 영아가 발견돼 구조됐다. 영하의 날씨에 아이가 발견된 장소는 주민들이 거주하는 주택가 인근의 숲속이었다. 발견 장소에는 분유세 통과 출생 일자가 적힌 한 장의 종이가 남아있었다.  중국 시안시에 거주하는 여성 주 모 씨는 현지 온라인 영상 공유 플랫폼에 “얼마 전 주택가 인근 숲속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 풀숲을 겨우 헤치고 안쪽으로 들어가자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것으로 보이는 아이가 울고 있었다”면서 이 소식을 전했다.  영하의 겨울 날씨에 숲속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들릴 리 없다고 여겼던 그는 남편에게 “근처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고 했으나 남편 역시 그에게 “이렇게 추운 날 누가 아이를 밖에 내놓겠느냐. 잘못 들은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주 씨와 남편이 몇 발자국 걸음을 옮기는 동안에도 숲속에서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영아의 울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이때부터 주 씨는 남편과 함께 숲속 안쪽의 울창한 풀들을 헤치고 들어가며 아기 울음소리가 나는 곳을 찾기 시작했다. 이들은 울음소리를 따라가 숲속 깊숙한 곳에 방치된 영아를 발견, 조심스럽게 울고 있던 아이를 들어 안고 달래주기 시작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주 씨는 당시 상황을 회상하면서 “아기의 곁에는 뜯지 않은 분유 3통과 생년월일, 아기의 체중 등 간단한 정보를 적은 쪽지가 같이 발견됐다”면서 “남편과 함께 일단 울고 있던 아이를 안아서 달랜 뒤 인근 주민위원회에 전화를 걸어 후속 조치를 요청했다”고 했다. 이 여성이 직접 촬영해 공개한 영상 속에는 얇고 비좁은 쇼핑백 속에 낡은 담요를 덮고 있는 아이가 놓여진 모습이 그대로 담겼다. 이 아기의 작은 얼굴은 찬 공기에 한동안 노출된 듯 추위에 새파할게 얼어있었는데, 주 씨는 이 아이를 안고 한동안 울음이 그칠 때까지 달래주는 모습이었다.  주 씨가 발견한 아이는 인근 아동전문병원으로 이송돼 건강 검진을 마친 상태이며 특별한 질환이 없는 건강한 상태로 알려졌다.  주 씨는 사건을 전하면서 “아이 울음소리를 듣고 숲속 안쪽으로 걸어 들어갈 때도 설마 누군가 아이를 버렸을 것이라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면서 “일단 버려진 아이가 태어난 지 불과 5일 된 어린 아이라는 점이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나도 집에 유치원생 딸 아이가 있는데 아이를 버리는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한편, 이번 사건은 온라인을 통해 일파만파 공유되면서 누리꾼들은 아이를 버린 친부모를 찾아서 무거운 처벌을 가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한 누리꾼은 “주 씨가 촬영한 영상을 우연히 봤는데 새해 첫날 아침부터 마음이 몹시 무거워졌다”면서 “마땅히 키울 환경이 아니라면 아이를 낳지 말아야 한다. 무작정 낳고 보자는 무책임한 행위는 법적으로 무거운 처벌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아이를 버린 부모는 숲속 외진 곳에 영하의 날씨에 아이를 내려 놓고도 아이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을까”라면서 "부디 좋은 양부모를 만나서 좋은 교육을 받으며 지금의 아픔을 잊고 살아가길 바란다”고 전했다. 
  • 김경수 옥중 편지 “민주주의 진전시킬 시민의 힘 필요한 해”

    김경수 옥중 편지 “민주주의 진전시킬 시민의 힘 필요한 해”

    드루킹 댓글 여론조작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의 새해 인사가 공개됐다. 1일 김 전 지사의 부인 김정순씨는 김 전 지사의 페이스북을 통해 “지난 여름, 한참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에 여러분 곁을 떠난 이후 이런저런 소식을 전해드리지 못해 늘 죄송한 마음이었다”며 “새해를 맞이하며 남편이 보내온 새해 인사편지를 올린다”고 전했다. 이어 “그동안에도 잊지 않고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 인사 드린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해당 글과 함께 김 전 지사가 쓴 편지를 공개했다. 김 전 지사는 “지난해는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며 “아직도 크고 작은 어려움 속에 우리 모두 새해 새 아침을 맞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늘 추운 겨울의 한가운데서 새해를 맞게 된다. 맑고 차가운 정신으로 새해 새 아침을 맞으라는 뜻이라고 한다”며 “올해는 그렇게 ‘깨어있는 시민들의 힘’이 소중한 한 해가 되리라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22년 올해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짓는 대단히 중요한 해다. 그 미래를 결정하는 힘은 ‘시민’에게 있다”며 “선거의 승패를 뛰어넘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한 단계 진전시키는 ‘깨어있는 시민의 힘’이 꼭 필요한 해”라고 적었다. 김 전 지사는 “우리보다 앞서간 나라들은 (경제 양극화 등) 문제들을 사회적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나가고 있다”며 “그 중심에 ‘정치’가 있다. 그리고 정치가 제 역할을 하게 만드는 것이 ‘깨어있는 시민의 힘’”이라고 덧붙였다.
  • [여기는 중국] 훔친 개 데려와 학대해 두개골 파열…그런데 무죄?

    [여기는 중국] 훔친 개 데려와 학대해 두개골 파열…그런데 무죄?

    중국의 한 남성이 애완견에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른 뒤 엘리베이터에 태워 방치한 사건이 발생했다.  중국 청두시에 거주하는 20대 남성 주 모 씨는 무게 25kg 상당의 대형견 시베리안 허스키를 폭행해 두개골 파열과 왼쪽 안구 실명 등에 이르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가해자로 지목된 주 씨는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이유로 반려견을 향해 무자비한 폭행을 휘둘렀는데, 이후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부상으로 피를 흘리던 피해 반려견을 태운 뒤 곧장 1층 버튼을 눌러 방치한 것이 확인됐다.  이 사건은 현장에 버려진 반려견을 발견한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의 신고로 외부에 알려졌다.  사건이 발생한 아파트 관리소 관계자는 “cctv 영상 속 가해 남성 주 씨가 방치한 애완견이 학대 피해로 이빨의 상당수가 빠진 상태였으며, 부상으로 머리 전체가 피투성이었다”면서 “하지만 영상 속 주 씨는 부상으로 피를 흘리고 있는 애완견을 엘리베이터에 방치하면서 어떠한 죄책감도 보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관할 공안국은 문제의 남성이 담긴 cctv를 확보해 수사한 끝에 20대 남성 주 씨를 적발했다. 하지만 문제는 중국 현행법상 동물보호법이 없는 탓에 가해자로 특정된 주 씨를 붙잡고도 별다른 처벌 없이 풀어줘야 하는 위기에 있었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은 그가 폭력을 행사한 애완견이 가해자 주 씨의 소유가 아닌 그가 얼마 전 거리에 묶여 있던 연 모 씨의 반려견을 몰래 데려와 폭행했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사실상 주 씨가 일면식 없던 이웃 주민의 반려견을 훔쳐 달아난 뒤 그것으로도 모자라 무자비한 폭행을 휘둘렀던 것.  관할 공안국과 사법부는 무려 16개월에 걸친 지난한 법적 다툼 끝에 최근 피의자 주 씨의 무자비한 행각에 대해 절도죄로 징역 3개월, 벌금 3000위안을 부과키로 했다고 밝혔다.  특히 재판부는 주 씨가 사건이 공론화된 이후에도 줄곧 변명으로 일관하는 등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실형 선고 이유를 밝혔다. 실제로 피의자 주 씨는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일 때에도 연 씨의 반려견을 훔친 것이 아니라 단지 ‘품에 안아서 데리고 갔을 뿐’이라는 해괴한 주장을 이어왔다.  또, 그는 재판부가 제공한 최종 변론에서도 “사건 전날 밤새도록 술을 마셔서 머리가 텅 빈 상태였다”면서 “어떤 흉기로 폭행을 가했는지 여부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는 등의 변명으로 일관했다.  한편, 이번 재판 결과가 공개된 직후 피해 반려견주 연 씨는 “예상했던 것보다 높은 수준의 실형이 선고돼 안심이다”면서도 “다만, 민사상의 손해 배상 부분과 관련해서는 주 씨를 추가로 고소할 계획이다”고 했다.
  • 김종인·이준석 오찬 회동 ‘빈손’…李 “입장 변화 없어”

    김종인·이준석 오찬 회동 ‘빈손’…李 “입장 변화 없어”

    김종인 “당 대표로 대선 승리 역할 할 것”“李, 선거운동 열심히 하면 된다”이준석 “특별히 제안한 것 없다”김종인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과 이준석 대표가 31일 오찬 회동을 했지만, 구체적인 결론을 내지 못하고 기존 입장만 재확인했다. 김 위원장과 이 대표는 이날 마포의 한 식당에서 1시간 30분가량 오찬을 함께했다. 김 위원장은 회동 후 기자들과 만나 ‘이 대표 선대위 복귀를 설득했느냐’는 질문에 “이 대표가 선대위에 돌아오고 안 돌아오고는 별로 의미가 없다”며 “이 대표는 당 대표니까, 당 대표로서 대선을 승리로 이끌어야 할 책무가 있다. 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 대표가 당 대표로서 어떤 구체적인 역할을 할 것인지’ 묻는 말에는 “선거운동을 열심히 하면 되는거지 다른 게 뭐가 있나”라고 했다. 이 대표도 회동이 끝난 뒤 취재진에게 “특기할 만한 입장 변화는 없고, 김 위원장과 상황 공유 정도 했다”며 “김 위원장을 너무 자주 뵙기 때문에 특별히 제안한 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선대위 해체 요구 입장에 변함이 없느냐는 질문에는 “저는 뭐 제가 (선대위직을) 사퇴한 이후로 일관되게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에, 선대위의 변화를 포함해 이길 수 있는 방향으로 변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게 제 복귀의 전제 조건도 아닐 뿐더러 조건부로도 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윤 후보와 만날 생각은 없나’라는 질문에는 “없다”고 했다. 이번 회동에서 양 측이 입장만 재확인함에 따라 당 내홍 봉합은 돌파구를 만들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전날 저녁 라디오에 출연해서도 선대위 해체를 강하게 요구했다. 그는 ‘매머드 선대위’에 대해 “매머드가 지금 정상이 아니다.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며 “매머드는 틀렸고, 이제 말을 새로 뽑아오든지 아니면 ‘개 썰매’를 끌고 오든지 다른 걸 타고 다녀야 한다”고 직격했다. 또 이 대표는 ‘윤핵관(윤 후보 핵심 관계자)’에 대한 조치가 미흡했다며 “‘윤핵관이 없다’는 후보의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윤 후보는 전날 대구시당 기자간담회에서 “선거를 두 달 남기고 쇄신하라는 것은 선거를 포기하라는 악의적인 공세라 본다”고 언급해 이 대표의 요구를 사실상 일축했다. 당내에서는 이 대표가 윤 후보를 공격하는데 대한 피로감이 누적되고 있어 어떤 방식으로든 갈등을 풀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 정영애 여가부 장관 “일터에서의 성평등 촉진… 젠더폭력 대응 강화”

    정영애 여가부 장관 “일터에서의 성평등 촉진… 젠더폭력 대응 강화”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은 31일 “공공기관·상장법인 성별 임금격차 정보 공개 등을 통해 현실을 정확히 진단하고, 일터에서의 성평등을 촉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또한 복잡·다양화되고 있는 젠더폭력에 대해서도 철저히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정 장관은 이날 발표한 신년사에서 코로나19로 인해 “사회·경제적인 양극화가 가속화되고 세대 간, 성별 간 인식 격차는 심각하게 확대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 중 노동시장 내 성별 격차가 가장 큰 편에 속하는 한국의 현실을 언급했다. 이어 “이는 그 자체로 해소해야 할 성평등 과제이자, 심각한 저출산 문제를 풀어갈 실마리”라며 “출산, 육아로 차별받지 않는 사회라야만 미래 일자리 걱정 없이 아이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심각성이 더욱 대두되고 있는 젠더폭력에 대해서도 단호한 의지를 밝혔다. 정 장관은 “공공부문 성희롱·성폭력 사건에 대한 시정명령권 신설을 검토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갖추고, 젠더 폭력 통계 기반을 구축함으로써 정책을 짜임새 있게 추진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돌봄 문제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정 장관은 “코로나19는 돌봄이 무너지면, 우리의 일상도 흔들린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며 “여가부는 아이돌봄서비스 정부 지원 확대와 더불어 이웃 간 돌봄 공간인 공동육아나눔터 등을 확충함으로써 자녀 돌봄 부담을 완화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 관한 청사진도 밝혔다. 그는 “지난해 발표한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을 바탕으로 현실에 존재하는 다양한 가족들이 일상에서 차별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새해에는 한부모가족 근로·사업 소득의 30%를 공제해 아동 양육비 지원대상을 확대하고, 한 부모가 자립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밝혔다. 청소년 정책과 관련해서는 “위기청소년을 조기에 발견해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지원 시스템을 통합하고, 여성 청소년의 건강권 보장을 위해 생리용품 지원대상도 확대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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