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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파구 찾는 K드라마, J 손잡다

    돌파구 찾는 K드라마, J 손잡다

    위기에 처한 국내 드라마 업계가 해외에서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넷플릭스 등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을 중심으로 산업이 재편되면서 제작비 상승으로 국내 제작 편수가 급감했고 K드라마의 허브 역할을 하던 방송사들은 편성을 대폭 축소했다. 하지만 전 세계적인 흥행을 일군 K드라마의 저력을 해외 업계에서 주목하고 있다. 꾸준히 합작 러브콜을 보내는 일본이 대표적이다. ‘이태원 클라쓰’를 옮긴 TV 아사히의 ‘롯폰기 클라쓰’처럼 한국 드라마가 일본에서 리메이크된 사례는 꾸준히 있었으나 요즘 들어서는 한국 제작진이 주도권을 쥐고 합작에 참여하는 흐름이 생겨나고 있다. ●일본판 ‘내남결’ 방송에 한국판도 인기 최근 한일 동시 방송으로 눈길을 끌고 있는 ‘내 남편과 결혼해줘’ 일본판이 대표적인 사례다. 국내에서 큰 사랑을 받은 동명의 네이버 웹소설이 원작으로, 일본판은 지난달 27일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에서 공개된 직후 일본 1위를 차지했고 이달 6일부터 국내에서 tvN을 통해 방영되고 있다. 일본판 방영 이후 원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아마존 프라임에서 한국판 시청 순위도 급상승했다. 일본판은 ‘더 글로리’의 안길호 PD가 연출을 맡고 스튜디오드래곤과 CJ ENM이 기획했다. 각본은 일본 드라마 ‘1리터의 눈물’의 오오시마 사토미 작가가 쓰고 일본 인기 배우 사토 다케루, 고시바 후우카 등이 출연했다. 손자영 스튜디오드래곤 책임프로듀서는 “일본판은 깊은 감정에 집중하고 주인공의 운명을 인생 시나리오 형태로 보여 준다”면서 “한국과 일본 드라마의 장점을 섞어 독특하고 색다른 느낌을 만들어 냈다”고 설명했다. ●‘마물’ ‘하쓰코이 도그스’ 도 공동 제작 지난 4~6일 TV 아사히에서 방영된 ‘마물’은 국내 제작사 SLL과 TV 아사히가 공동 기획하고 제작한 작품이다.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의 진혁 PD와 다키 유스케, 니노미야 다카시 등 한일 크리에이터들이 참여했다. 일본 민영 방송사 TBS도 지난 1일부터 한일 합작 드라마 ‘하쓰코이 도그스’를 방영 중이다. 스튜디오드래곤과 TBS가 공동 기획한 이 작품은 비밀이 숨겨진 반려견을 둘러싸고 만나게 된 한국인 재벌 3세와 일본인 수의사, 변호사의 이야기를 그린 로맨스물이다. 한일 양국의 PD가 공동 연출하고 배우 나인우가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넷플릭스에서 공개 예정인 ‘소울메이트’도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를 만든 지티스트가 공동 제작하고 일본 소설가 출신 하시즈메 슌키가 각본과 연출을 맡은 한일 합작 드라마다. ●양국 협업 , 亞콘텐츠 성장 대안으로 이처럼 한일 합작 드라마가 급증한 것은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등을 통해 K드라마의 위상이 높아진 데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방송사가 주도권을 갖고 드라마를 편성해 좋은 콘텐츠에 대한 투자 및 협업 의지가 강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서는 국내 드라마의 넷플릭스 의존도를 낮추는 데 해외 협업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미디어 산업 평론가인 조영신 박사는 “우수한 제작 능력을 인정받는 한국이 아시아의 다양한 지식재산권(IP)을 세계적 명품 콘텐츠로 재탄생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며 “이러한 전략이 주효하다면 한국은 아시아발 글로벌 히트작을 창출하고 유통하는 허브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 중국인이 프랑스에서 프랑스어로 중국인의 삶을 말하다[소설리뷰]

    중국인이 프랑스에서 프랑스어로 중국인의 삶을 말하다[소설리뷰]

    중국인이었으나 프랑스로 왔다. 프랑스에서 프랑스어로 소설을 쓴다. 다만 그 내용은 중국인의 삶이다. 폭력적인 체제의 바깥에서 그 안에 있는 사람의 내밀한 이야기를 전한다. 그 이야기는 퍽 소름 끼치는 것이어서 체제 바깥에 있는 우리의 이해나 공감의 범위를 훨씬 뛰어넘는다. 서늘하고 적확하며 명료한 서술에 환상이 끼어들 틈은 없다. 그러나 그것을 도저히 우리와 같은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중국 출신 프랑스 소설가 겸 영화감독 다이 시지에(71)의 첫 소설집 ‘세 중국인의 삶’(문학동네) 이야기다. 시지에는 1954년 중국 푸젠성에서 태어났다. 문화대혁명 속에서 3년간 ‘재교육’을 받는 등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2000년 첫 장편소설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로 데뷔하며 문단의 이목을 끌었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가 칸 영화제에서 상영됐다. 이듬해에는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도 올랐다. 2003년 ‘D의 콤플렉스’로 페미나상을 받으며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작가가 됐다. ‘세 중국인의 삶’은 2011년 쓴 작품으로 시지에는 현재 프랑스에서 프랑스어로 글을 쓴다. 책 제목처럼 세 이야기가 묶였다. ‘호찌민’, ‘저수지의 보가트’, ‘산을 뚫는 갑옷’이다. 예전엔 풍요로운 곳이었으나 이제는 쓰레기장처럼 변한 귀도(貴島)에 사는 세 중국인에게 시선을 집중한다. 죽음, 삶 그리고 다시 죽음 “감시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아이는 북의 철판이 아니라 가죽을 두드려 ‘두부 왈츠’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감시인 하나가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을 휘파람으로 불었고 다른 감시인은 일지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처형 전날 9413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북을 연주함. 이전엔 고르바초프의 반점처럼 분홍색이었던 반점만이 이제는 불에 그슬린 듯 검은색으로 변해 죽음에 대한 공포를 드러냄.’”(‘호찌민’·53쪽) 조로증(早老症)을 앓는 탓에 열두 살임에도 일흔 살 노인처럼 보이는 소년의 이야기인 ‘호찌민’은 모순의 굴레에 갇힌 현대인에 대한 풍자처럼 읽힌다. 횡령죄로 수감 중인 당서기장을 대신할 인물로 낙점된 소년은 서기장의 인적 사항을 외우고 그 사람처럼 행동하는 법을 익힌다. 소년은 이것을 서커스단 무대에서 펼칠 연기쯤으로 생각하고 있다. 죽음의 날이 점점 소년을 향해 온다. 하지만 소년에게 그날은 그저 갈고닦은 실력을 무대 위에서 펼칠 날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야기의 끝에서 소년의 반점은 왜 검은색으로 변했을까.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은 희망에 찬 밝은 음악이다. 죽음과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다. 황동혁 감독의 ‘오징어게임’에서도 게임 참가자들이 아침에 일어날 때 이 음악이 흐른다. 인간의 삶은 결국 죽음으로 흐른다. 하지만 죽음이 엄습하기 직전까지, 우리는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먹고 마시고 행동한다. 삶과 죽음은 결국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할지 모른다. 죽음 직전에 흐르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그래서 역설이 아니다. 인생의 핵심을 지극히 깊이 꿰뚫고 있는 탁월한 통찰이다. 벗어날 수 없는 인생과 비극의 고리 “시신을 최신식 독일제 수술대에 눕힌 다음 마 박사는 메스를 쥐고 사형수의 배를 갈랐어. 콩팥의 위치를 확인하고는 메스로 콩팥을 적출해 씻었지. 창자의 일부가 배 밖으로 미끄러져 나와서 박사는 가위로 그걸 잘라냈어. 근데 갑자기 남자가 깨어나더니 수술대 위에 일어나 앉는 거야. 남자는 몹시 피곤한 기색이었어. 그는 의사를 쳐다보며 누구인지 확인하려 했어. 하지만 근시라 안경이 없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손을 더듬어 안경을 찾았는데, 그가 찾은 건 자기 창자뿐이었어.”(‘저수지의 보가트’·81쪽) 주인공의 아버지는 저수지 관리인으로 영화 ‘카사블랑카’의 주인공 보가트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닮았다. 그래서 ‘저수지의 보가트’다. 어느 날 어머니가 실종됐다. 어머니는 전자제품 재활용 공장의 노동자로 납중독 진단을 받았다. 길을 잃거나 새벽에 밖을 돌아다니는 증세가 점점 심해지더니 결국 어머니는 실종된다. 주인공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였다고 믿는다. 진실은 무엇일까. 전자제품 재활용 공장에서 납에 중독된 주인공 어머니의 삶을 생각한다. 노동은 살기 위한 것인데 어째서 그것이 병과 죽음으로 인간에게 되돌아오는가. 인생과 세계는 이런 역설로 가득하다. 어쩌면 이 문제는 한 인간의 삶 안에서 풀리는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개인은 거대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작은 수단이다. 끊임없이 개인을 죽음으로 몰아넣고는 종국에 가서 ‘당신이 아니어도 된다’며 매몰차게 내버린다. 문명과 역사의 발전은 개인을 이렇게 몰아세우지 않으려는 몸부림이기도 했는데, 그러나 아직도 이 세계 도처에는 그런 일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새끼를 지키고자 동그랗게 몸을 만 천산갑을 죽여서 기어코 요리로 만들겠다는 인간의 다부진 의지를 그리고 있는 마지막 작품 ‘산을 뚫는 갑옷’은 섬뜩하고 서늘하다. 소설은 이런 문장으로 끝난다. 벗어날 수 없는 비극의 고리에 갇힌 인간의 처연한 운명을 아프게 그리고 있다. “한 어머니가 아들을 광기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눈먼 점쟁이를 찾아갔다. 점쟁이는 아들에게 여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여인은 가난해서 매춘부를 살 수 없었고, 그리하여 자기가 직접 매춘부 역할을 해야 했다. 그녀는 아들과 성관계를 가졌다. 아들은 치료되었지만 이번에는 어머니가 광기에 빠져, 한때 아들을 가두어두던 참호에 사슬에 묶인 채 갇히게 되었다. 그때부터 여인은 완전한 침묵에 잠겼다.”(‘산을 뚫는 갑옷’·155쪽)
  • 쿨하게,아리게… ‘젊음’을 질주한다[OTT언박싱]

    쿨하게,아리게… ‘젊음’을 질주한다[OTT언박싱]

    90년대 일본 드라마 ‘롱 베케이션’버림받은 신부·음대 졸업생 동거버블경제 배경 유쾌한 매력 일품美 하이틴영화 ‘여름밤을 달려 봐’모범생 소녀와 비밀스러운 소년사랑·우정으로 아픔 이기며 성장인생을 계절에 비유하자면 청춘은 여름에 해당한다. 성공이라는 과실을 얻기 위해 열정과 노력을 쥐어 짜내는 시간이라는 점에서 빨리 끝났으면 하는 무더위처럼 느껴지지만, 동시에 꿈과 낭만, 패기가 넘치는 쪽빛보다 푸른 젊음을 과시하는 가장 찬란한 시기이기도 하다. 여름을 배경으로 한 예술작품 중에는 청량감 넘치는 청춘의 모습을 담는 경우가 즐비하다. 오늘 소개하는 두 편 역시 청춘과 계절을 잘 버무려 더위로 잃어버린 입맛을 살리는 맛깔난 매력을 지니고 있다. 먼저 소개할 시리즈는 1990년대 일본 드라마 열풍을 불러일으킨 ‘롱 베케이션’이다. 웨이브에서 관람할 수 있다. 버블 경제 당시 호황기였던 일본을 배경으로 한 만큼 트렌디하면서 유쾌한 분위기가 일품이다. 31세의 모델 미나미는 결혼식 날 신랑이 도망가는 최악의 상황을 겪게 된다. 그를 잡기 위해 찾아간 아파트에서 만난 건 24세의 음대 졸업생인 룸메이트 세나. 세나를 통해 결혼자금을 쥔 신랑이 완전히 도망쳤음을 알게 된 미나미는 기막힌 선택을 한다. 도망간 신랑을 기다리기 위해 세나의 동의 없는 동거를 택한 것이다. 어찌 보면 껄끄럽고 부끄러운 상황을 담은 이 작품이 유쾌한 매력을 뿜어낼 수 있는 비결은 트렌디하면서도 따뜻한 관계에 있다. 모델로서 끝자락에 파혼까지 겪은 미나미는 유머러스하면서도 쿨하게 자신의 상황을 풀어낸다. 이런 미나미로 인해 미래에 대한 불안을 지닌 소심한 세나는 용기를 얻는다. 동시에 세나의 연주는 미나미에게 큰 위안이 돼 준다. 이런 따뜻한 관계성을 기반으로 연상녀와 연하남의 로맨스, 갈등은 있지만 앙금은 남지 않는 쿨한 관계성, 서로의 꿈과 사랑을 응원하는 청춘 예찬가로 현대에도 회자되는 트렌디한 감각을 선보인다. 무엇보다 청춘의 힘든 시기를 긴 휴가라 지칭하며 언젠가 끝날 것이라 말하는 명대사는 시대를 뛰어넘는 위로를 선물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여름밤을 달려 봐’는 자전거를 타고 달리며 여름밤 열대야를 이겨 내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대학 진학을 앞둔 오든은 이혼한 어머니의 히스테리 증세, 모범생인 자신을 따돌리는 친구들로 인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삶의 전환을 위해 아버지가 있는 콜비를 찾은 오든은 한밤중이면 자전거를 타고 찾아오는 비밀스러운 소년 엘리를 만나게 된다. 콜비에서 펼쳐지는 청춘들의 이야기는 전형적이면서도 특별한 하이틴 장르의 에너지에 푹 빠지게 만든다. 내면에 아픔을 지닌 주인공들이 우정으로 이를 이겨 내는 모습은 아름답고도 아픈 청춘의 초상을 보여 준다. 친구의 죽음에 죄책감을 지닌 엘리와 부모의 이혼 후 눈치를 보며 살다 자신을 잃어버린 오든은 어머니의 양수와도 같은 콜비의 바다에서 회복과 재생을 경험한다. 흥미로운 점은 사랑과 우정의 질주가 펼쳐지는 순간이 밤에 이뤄진다는 점이다. 잠 못 드는 열대야와 같은 고민과 아픔을 함께 이겨 내는 오든과 엘리 그리고 친구들의 모습은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는 노래 제목을 떠올리게 만든다.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순간의 한 페이지를 열어 보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김준모 키노라이츠매거진 편집장
  • 與 인요한 혁신위 13명 중 7명 여성… MZ세대 6명 포진

    與 인요한 혁신위 13명 중 7명 여성… MZ세대 6명 포진

    국민의힘 혁신위원회가 지난 11일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후 보름 만인 26일에 인선을 마친 가운데 여성 위원을 절반 넘게 선발했고 2000년생 대학생 등 청년층을 대거 포진시켰다. 다만 다양성 구축과 달리 인물난 때문에 정치적 전문성은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국민의힘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의 뜻으로, 국민과 함께 혁신위원회’로 명명한 혁신위 인선안을 의결했다. 혁신위는 ‘푸른 눈의 한국인’이자 호남 출신인 인요한 혁신위원장을 포함해 13명으로 구성했다. 이 중 현역 의원으로는 서울 서초을 지역구의 재선 박성중 의원이 유일하게 합류했다. 전직 의원 중에는 김경진 서울 동대문을 당협위원장과 오신환 서울 광진을 당협위원장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 전현직 의원은 모두 서울이 지역구로, 강서구청장 보선 참패로 여권에 확산되는 ‘수도권 위기론’을 고려한 선발로 보인다. 이 밖에 정선화 동국대 WISE 캠퍼스 보건의료정보학과 겸임교수, 정해용 전 대구시 경제부시장, 이소희 변호사, 이젬마 경희대 국제대학 교수, 임장미 마이펫플러스 대표, 박소연 서울아산병원 소아치과 임상조교수, 최안나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 송희 전 대구 MBC 앵커, 2000년생인 박우진 경북대 농업생명과학대학 학생회장 등이 이름을 올렸다. 13명 중 여성이 7명이고, 80년대생 이하가 6명이다. 인 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인선 기준은 여성, 청년층 등을 고려했다”며 “향후 혁신위가 60일 동안 일하게 되는데 그동안 튼튼한 기초를 다지겠다”고 말했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연령·성별·지역을 고려한 인선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가 적지 않았지만 줄곧 당을 향해 쓴소리를 냈던 비주류 인사들의 합류가 불발된 데 대한 지적도 나왔다. 앞서 인 위원장은 천하람 전남 순천갑 당협위원장,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 등에게 합류를 제안했지만 이들의 고사로 성과는 없었다. 인 위원장은 ‘비윤(비윤석열)계 합류 불발’에 대한 지적에 “제가 쓴소리를 많이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혁신위가 국민의힘 지도부에 준하는 전권을 쥐고 총선 공천 룰 개정 등 전면적인 혁신안 마련에 성공할지도 여전히 미지수다. 당 지도부가 총선기획단·인재영입위원회 등 별도의 총선 기구 발족을 예고하면서 마찰이 빚어질 가능성이 제기됐다. 특히 당 지도부가 최근 국민공천배심원단 출범 시기를 선거일 90일 전으로 변경하는 등 공천 룰과 관련해 구체적인 논의를 나눈 사실이 알려지면서 혁신위에 전권을 준 게 맞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인 위원장은 공천 룰 개정을 단행할 것이냐는 취지의 질문에 “국민의힘이 바른 기초를 가지고 출발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줄 것”이라면서도 “공천까지 앞서나가지는 않는다”며 구체적인 답변은 피했다.
  • 與 ‘인요한 혁신위’ 인선 마무리…13명 중 7명 여성, 수도권 전현직 발탁

    與 ‘인요한 혁신위’ 인선 마무리…13명 중 7명 여성, 수도권 전현직 발탁

    국민의힘 혁신위원회가 지난 11일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후 보름 만인 26일에 인선을 마친 가운데, 절반 넘게 여성 위원을 선발했고 2000년생 대학생 등 청년층을 대거 포진시켰다. 다만, 다양성 구축과 달리 인물난 때문에 정치적 전문성은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국민의힘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의 뜻으로, 국민과 함께 혁신위원회’로 명명한 혁신위 인선안을 의결했다. 혁신위는 ‘푸른 눈의 한국인’이자 호남 출신인 인요한 혁신위원장을 포함해 13명으로 구성했다. 이중 현역 의원으로는 서울 서초을 지역구의 재선 박성중 의원이 유일하게 합류했다. 전직 의원 중에는 김경진 서울 동대문을 당협위원장과 오신환 서울 광진을 당협위원장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 전현직 의원은 모두 서울이 지역구로, 강서구청장 보선 참패로 여권에 확산되는 ‘수도권 위기론’을 고려한 선발로 보인다. 이외 정선화 동국대 WISE 캠퍼스 보건의료정보학과 겸임교수, 정해용 전 대구시 경제부시장, 이소희 변호사, 이젬마 경희대 국제대학 교수, 임장미 마이펫플러스 대표, 박소연 서울아산병원 소아치과 임상조교수, 최안나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 송희 전 대구 MBC 앵커, 2000년생인 박우진 경북대 농업생명과학대학 학생회장 등이 이름을 올렸다. 13명 중 여성이 7명이고, 80년대생 이하가 6명이다. 인 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인선 기준은 여성, 청년층 등을 고려했다”며 “향후 혁신위가 60일 동안 일하게 되는데 그동안 튼튼한 기초를 다지겠다”고 말했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연령·성별·지역을 고려한 인선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가 적지 않았지만, 줄곧 당을 향해 쓴소리를 냈던 비주류 인사들의 합류가 불발된 데 대한 지적도 나왔다. 앞서 인 위원장은 천하람 전남 순천갑 당협위원장,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 등에게 합류를 제안했지만 이들의 고사로 성과는 없었다. 인 위원장은 ‘비윤(비윤석열)계 합류 불발’에 대한 지적에 “제가 쓴소리를 많이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혁신위가 국민의힘 지도부에 준하는 전권을 쥐고 총선 공천룰 개정 등 전면적인 혁신안 마련에 성공할지도 여전히 미지수다. 당 지도부가 총선기획단·인재영입위원회 등 별도의 총선기구 발족을 예고하면서 마찰이 빚어질 가능성이 제기됐다. 특히 당 지도부가 최근 국민공천배심원단 출범 시기를 선거일 90일 전으로 변경하는 등 공천룰과 관련해 구체적인 논의를 나눈 사실이 알려지면서, 혁신위에게 전권을 준 게 맞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인 위원장은 공천룰 개정을 단행할 것이냐는 취지의 질문에 “국민의힘이 바른 기초를 가지고 출발할 수 있도록 만들어줄 것”이라면서도 “공천까지 앞서 나가지는 않는다”며 구체적인 답변은 피했다.
  • “아내 빼고 다 바꿔”… 與수술 칼 잡는다[뉴스 분석]

    “아내 빼고 다 바꿔”… 與수술 칼 잡는다[뉴스 분석]

    “와이프와 아이 빼고 다 바꿔야 한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 쇄신안으로 신설된 국민의힘 혁신위원회 위원장에 23일 인요한(64) 연세대 의과대학 교수가 임명됐다. ‘푸른 눈의 한국인’으로 알려진 인 신임 위원장은 4대가 한국에서 선교·의료 활동을 한 공로를 인정받은 ‘특별귀화 1호’다. 인 위원장은 이날 “다 바꾸겠다”며 혁신과 통합을 강조했고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전권을 주겠다”며 혁신위에 힘을 실었다. 다만 그간 많은 혁신위가 이른바 ‘정치 무덤’이라 불릴 정도로 실패를 거듭했다는 점에서 ‘인요한 혁신위’의 성공 여부는 진짜 ‘전권’을 쥐는지에 달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이날 오전 이만희 사무총장을, 오후 김 대표를 만난 인 위원장은 “한 단어로 정의하겠다. 통합을 추진하겠다. 최우선 원칙은 통합”이라며 “생각은 달라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는 통합”이라고 말했다. 신당 창당설이 도는 이준석 전 대표, 유승민 전 의원 등을 중심으로 ‘비윤(비윤석열)계에 대한 포용’을 염두에 둔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인 위원장은 총선 공천룰에 대해 “권한이 정확하게 어디까지인지 모르지만 국민의힘에 있는 많은 사람들도 내려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내려와서 듣고, 변하고, 희생할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며 “희생 없이는 변화가 (안 된다). 이건희 회장 말씀 중에 깊이 생각하는 게 ‘와이프하고 아이만 빼고 다 바꿔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 위원장이 ‘정치적 빚’이 없는 외부 인사인 만큼 제대로 된 쇄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지만 공천 문제 등 당내 갈등을 봉합하기엔 ‘정치적 역량’이 부족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한 재선 의원은 “정치권에서 닳은 뻔한 인선이 아니라서, 이분이면 최소한 우리 당이 혁신의 실마리를 마련할 수 있겠다는 기대가 있다”며 “다만 쇄신도 중요하지만 이 쇄신안을 과연 현실에 정착시킬 수 있을지는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천하람 전남순천갑 당협위원장은 한 라디오에서 “인 교수가 얼마 전에 김한길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장과 이런저런 대담을 했다”며 ‘용산 추천설’을 제기했다. 이와 관련,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이번 인선에 용산 대통령실과의 교감은 없었다”고 일축했다. 또 인 위원장에 대해 이미 신촌 세브란스병원이 있는 서울 서대문갑 출마설이 나온 바 있어 혁신위가 공천룰을 매만질 경우 공천 후보가 공천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불만이 나올 수 있다. 이에 대해 인 위원장은 “(총선 출마는) 다 내려놓은 거다. 이 일을 맡고 있는 동안에 다른 것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비상대책위원회가 아닌 혁신위로는 제대로 된 혁신이 어렵다는 우려도 나온다. 보궐선거 패배 원인이 당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실과 당정 관계에도 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혁신위에 전권 부여를 약속했지만 권한과 범위도 아직 모호하다. 우선 김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혁신위는 위원의 구성, 활동 범위, 안건과 활동 기한 등 제반 사항에 대해 전권을 가지고 자율적·독립적 판단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 위원장도 김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김 대표가 무서울 정도로 권한을 많이 부여해 줬다”며 “아주 거침없이 들어와서 방향을 찾을 수 있도록 진정으로 도와달라고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혁신위가 총선의 최대 뇌관인 공천룰까지 건드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앞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띄운 ‘김은경 혁신위’도 대의원제 폐지, 중진 공천 페널티 등 총선 공천과 관련한 혁신안을 내놓았지만 당내 균열만 불거졌을 뿐 수용되지 않았다. 당내에서는 2005년 한나라당의 ‘홍준표 혁신위’ 모델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홍준표 혁신위는 2007년 대선을 앞두고 경선룰 도입 및 당권과 대권 분리 등 당시 당대표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불리한 혁신안들을 내놓았는데도 결국 수용됐다. 한 초선 의원은 “역설적으로 당이 거부할 수밖에 없는 1호 혁신안을 제대로 내놓는 게 과제”라며 “그런 수준의 혁신안을 내놓을 수 있어야 성공하고 이를 받을 수 있어야 우리 당이 살 것”이라고 했다. 윤상현 의원은 한 방송에서 “혁신위가 수도권 위기의 본질과 관련해 진단하고 대책을 만드는 게 우선”이라고 했다.
  • 벌과 뛰노는 벅스랜드, 꼬마 파브르의 꿈 무럭무럭[권다현의 童行(동행)]

    벌과 뛰노는 벅스랜드, 꼬마 파브르의 꿈 무럭무럭[권다현의 童行(동행)]

    서울신문은 29일부터 3주에 한 번 ‘권다현의 동행’을 연재합니다. 가족 단위 여행이 급격히 늘고 있는 상황에서 교육과 여행을 겸할 수 있는 국내 여행지를 발굴해 보자는 취지의 코너입니다. 연재를 이어 갈 권다현 작가는 ‘아이여행 가이드북’ 시리즈 등의 저서를 낸 여행작가입니다. 여행업계에서 교육 여행 분야의 기대주로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앞으로 유익하면서도 볼거리가 풍성한 여행지를 발굴, 소개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남자아이 둘을 키우면서 공룡이나 로봇처럼 필수적으로 거쳐 가는 관심사가 있으니 바로 곤충이다. 개미나 메뚜기처럼 일상에서 흔하게 만나는 녀석들부터 어디서 보고 들었는지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 따위의 특징을 줄줄 외운다. 특히 장수풍뎅이를 직접 키우는 것은 남자아이들에게 로망처럼 여겨진다. 첫째는 무사히(?) 넘어갔으나, 둘째는 헤라클레스 장수풍뎅이를 키우고 싶다고 몇 달째 엄마를 조르는 중이다. 이처럼 아이들이 곤충에 관심을 집중할 때 수만 마리의 곤충을 직접 보고 만질 수 있는 경북 예천의 곤충생태원으로 떠나 보자. ‘미래 파브르’의 꿈이 여기서 반짝이게 될지 모를 일이다.예천곤충생태원으로 떠나기 전 홈페이지를 방문했더니 곤충연구소란 명칭이 눈에 들어온다. 언뜻 프랑스의 파브르 같은 곤충학자를 떠올렸는데, 주민들의 농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유용곤충을 연구·개발하는 곳이란다. 대표적으로 화분매개곤충인 머리뿔가위벌과 호박벌을 활용해 사과농가의 안정적인 결실확보와 품질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예천곤충생태원의 캐릭터도 이들을 모델로 만들어졌다. 최근에는 식용곤충에 대한 연구개발도 이뤄지고 있는데, 엄마들 사이에서 고단백 식품으로 유명한 밀웜(Mealworm)이 여기에 속한다. 몇 년 전에는 곤충요리를 맛볼 수 있는 식당도 운영했으나 현재는 관련 제품 판매만 이뤄진다. 연구시설은 일반인의 관람이 불가하지만, 곤충이 우리 생활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알 수 있어 아이는 물론 부모도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아이들의 로망 장수풍뎅이와의 만남 예천곤충생태원은 실내에 마련된 곤충생태체험관과 야외에 자리한 곤충생태원으로 나뉜다. 먼저 곤충생태체험관에 들어서니 나무 할아버지가 맞아준다. 동화책에서 본 것처럼 눈과 입이 달린 모습으로 “허허허, 어서 오렴!” 말까지 하니 제법 실감 난다. 입구에서 바로 보이는 3D영상관에서는 곤충이 주인공인 단편 애니메이션을 상영한다. 몇 년째 같은 작품이라 화질이 그리 만족스럽지 않지만, 아이들은 3D 전용안경을 끼고 영화관에 앉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모양이다.2층으로 올라가면 본격적인 관람이 시작된다. 곤충학습관에서는 곤충의 탄생부터 ‘곤충의 몸은 어떻게 나뉠까?’, ‘애벌레는 어떻게 숨을 쉴까?’ 같은 다양한 물음을 화석이나 표본, 미디어 등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화면에 그려진 곤충을 색칠한 뒤 전송 버튼을 누르면 아이들이 완성한 곤충이 스크린에서 움직이는 디지털 인터랙티브 체험공간도 있다. 곤충박사처럼 하얀 가운을 입고 연구실에서 사진촬영을 할 수 있는 포토존도 아이들에게 인기다. 이웃한 곤충생태관은 곤충이 살아가는 다양한 환경을 알려 준다. 숲이나 풀밭, 물속과 땅속, 그리고 과수원과 농지 생태계를 사실적으로 구성한 것은 물론 이곳에 사는 대표적인 곤충들을 실제로 관찰할 수 있다. 아이가 고대하던 장수풍뎅이와의 만남도 이뤄졌다. 큰집게벌레처럼 밤에 활동하는 곤충들은 암실을 따로 조성해 보다 흥미로운 관찰이 가능했다. 3층에는 곤충자원관이 자리한다. 앞서 소개한 머리뿔가위벌과 호박벌 같은 화분매개곤충을 비롯해 애완곤충, 바이오곤충, 식·약용곤충, 천적곤충 등 다채롭게 활용 가능한 곤충의 세계를 소개한다. 미디어를 이용해 장수풍뎅이 키우기를 체험하는 공간에서 한참이나 발을 떼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니, 잠깐이지만 반려곤충을 들여야 할까 고민에 빠졌다.●귀여운 모노레일 타고 간 곤충 놀이터 바로 그때 방사장을 탈출한 커다란 벌 한 마리 덕분에 아이들의 관심이 금세 옮겨 갔다. 서양뒤영벌로 불리는 이 벌은 활동량이 많고 성격이 온순해 온실작물 수정에 쓰인다고 한다. 이곳 전시실에는 벌방사장이 있어 아이들이 직접 벌을 만져 볼 수 있다. 서양뒤영벌 수컷은 침이 없기 때문에 이런 아찔한 체험이 가능하다. 어릴 때 벌에 쏘였던 경험이 있는 둘째는 끝내 용기를 내지 못했지만, 침이 없는 벌도 있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히 알게 됐다. 또 1층 로비에서 곤충 캐릭터가 등장하는 미디어 동굴을 지나면 멀티체험관으로 이어지는데, 여기엔 아이들의 다양한 신체활동을 이끌어 내는 디지털 인터랙티브 짐(Gym) 원더힐과 5세 이하 유아들을 위한 놀이방이 마련돼 있다. 2층에는 RFID 카드 리더기를 활용해 근육왕 쇠똥구리, 마라토너 제왕나비, 점프대장 거품벌레, 진딧물 사냥꾼 무당벌레, 흰점박이꽃무지 한약방, 개미대장의 부대 길찾기 등 곤충과 함께하는 흥미진진한 체험을 제공하는 벅스랜드가 기다린다. 이제 귀여운 모노레일을 타고 곤충생태원으로 나가 보자. 한두 번 꽤 가파른 코스를 지나 10여분 정도면 곤충테마놀이시설이 자리한 제1정거장에 하차한다. 널찍한 모래놀이터와 트램펄린, 미끄럼틀은 물론 초등학생들도 신나게 놀 수 있는 대형 놀이시설이 많아 모든 연령대의 아이들을 만족시킨다. 예천 깊은 산골의 맑은 공기를 마음껏 들이키며 뛸 수 있으니 엄마로서는 먼 길 달려온 보람이 있는 놀이터다.●흙더미서 유충 찾고 나비들과 산책 초록 잔디와 부드러운 흙길이 어우러진 정원에도 볼거리가 가득하다. 벌의 생태를 재미있는 게임으로 알아 보는 벌집테마원과 흙더미를 뒤지며 아이가 좋아하는 장수풍뎅이 유충을 찾아보는 곤충체험원, 하얀 나비 노란 나비와 함께 산책을 즐길 수 있는 나비관찰원 등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자리해 천천히 둘러보기 좋다. 끈끈이주걱과 파리지옥처럼 곤충을 잡아먹는 식충식물을 관찰할 수 있는 온실도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동굴 속에는 어떤 곤충이 살아가는지 알아 보는 동굴곤충나라는 실제 동굴처럼 꾸며진 전시공간이 깊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동굴이란 독특한 환경에 적응해 살아가고 있는 곤충들을 보면서 아이도 엄마도 새삼 생명의 신비로움을 느낀다. 자연 그대로의 수서곤충과 수서식물을 관찰할 수 있는 수변생태원은 푸른 가을 하늘과 어우러져 잠시 걸음을 쉬어 가게 한다. 언덕 꼭대기에는 황금빛 장수풍뎅이가 참나무에 매달린 모양의 전망대가 있어 곤충생태원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곤충생태원은 모노레일을 이용해 왕복 가능하며 걸어서도 관람 가능하다. 이용객이 많은 주말에는 긴 줄이 서는 모노레일을 먼저 타고 곤충생태원을 둘러본 후 곤충생태체험관으로 이동하는 게 효율적이다. 아빠랑 활 쏘는 놀이터, 꼬마 궁수의 눈빛 초롱초롱 활체험장엔 양궁·국궁 전문강사 재미와 교육 다 잡은 양수발전소 동글동글 ‘토끼간빵 ’용궁역 별미 용궁시장 순댓국밥·‘오불’ 맛봐야 예천에서는 아이들과 함께 활쏘기에 도전해 볼 수 있다. 예천문화사업단에서 활체험장을 운영하고 있어 국궁과 양궁 모두 체험 가능하다. 전통무예를 바탕으로 한 국궁은 조준기가 없어 처음 체험하는 아이들에겐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전문강사의 도움을 받아 한 발 한 발 시위를 당기다 보면 신라 화랑이라도 된 것처럼 아이들 눈빛이 진지해진다. 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손에 땀을 쥐고 봤던 양궁은 아이들에게도 친근할 뿐 아니라 조준기가 있어 비교적 다루기 쉽다. 손끝이 야무진 첫째는 한두 번 타깃 가운데를 맞히더니 몇 차례나 화살을 추가하는 등 활쏘기의 재미에 푹 빠졌다. 국궁과 양궁 외에도 어린아이들이 안전활과 안전화살을 이용해 활쏘기를 경험해 볼 수 있는 흡착활체험, 일반 화살촉이 아닌 스펀지로 된 화살로 공중에 떠 있는 공을 맞히는 호버볼 활체험, 스크린을 보면서 이동식 타깃을 맞히는 무빙타깃 활체험, 5대5 팀플레이로 색다른 재미를 느껴 볼 수 있는 활서바이벌체험까지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운영 중이다. 모두 사전에 전화로 예약하면 이용 가능하고 금액도 20발에 5000원 정도로 저렴하다. 양궁과 활서바이벌체험은 매일, 나머지 프로그램은 평일에만 운영된다.예천을 여행하면서 의외로 아이들이 알차게 놀았던 곳이 예천양수발전소 홍보관이다. 이름 그대로 예천양수발전소에서 운영하는 공간인데 에너지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사용되는지, 친환경 에너지가 왜 필요한지 등을 아이들이 알기 쉽게 설명한다. 무엇보다 터치스크린을 활용한 게임과 위치에너지를 이용한 공 쏘기, 에너지 관련 퀴즈 등 다양한 체험시설도 함께 자리해 흥미를 돋운다. 또 입구에서 나눠 주는 RFID 팔찌를 태그할 때마다 각각의 점수가 누적되면서 전광판에 실시간 순위가 공개된다. 덕분에 아이들은 더 많은 점수를 획득하기 위해 전시관을 열심히 누비며 신나게 뛰어놀았다. 전시관 뒤쪽 상부댐의 호젓한 풍광을 덤으로 감상할 수 있다. 이름부터 호기심을 자극하는 용궁역도 아이들과의 여행지로 추천한다. 용궁이란 이름을 들었을 때부터 “용왕님이 사는 기차역이에요?”, “거기 가면 토끼와 거북이도 만날 수 있어요?” 등 질문이 끊임없다. 행정구역상 예천군 용궁면에 자리해 용궁이란 이름이 붙었지만, 그 이름이 아깝지 않을 만큼 잘 꾸며진 간이역이다. 우선 기찻길에서 바라보면 이제 막 용궁에서 올라온 것처럼 기운이 넘치는 푸른 용이 반겨 준다. 전설에 따르면 근처 커다란 연못 아래 용궁으로 통하는 길이 있어 이처럼 푸른 용이 매일같이 드나들었다고 한다.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 같은 모습에 아이들은 신기한지 이리저리 살펴본다.기차역 안으로 들어서면 역무실 대신 베이커리카페가 눈과 코를 사로잡는다. 동글동글 토끼간빵이 맛있는 냄새를 풍기기 때문이다. 용궁 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별주부전’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으로, 앙증맞은 모양새는 토끼의 간을 상상한 결과다. 지역에서 나는 우리 밀과 간 건강을 지켜 줄 헛개나무 추출물을 넣어 만들었다고 하니 그 유쾌한 재치에 주머니를 열 수밖에 없다. 토끼간빵이라고 하니 먹기를 망설이던 아이들도 한 입 베어 물고 나서는 용왕님이 왜 토끼를 잡아 오라고 했는지 알겠다며 키득거린다. 용궁역 주변에선 4·9일마다 오일장이 열린다. 대형마트와 편의점에 익숙한 건 엄마도 마찬가지라 여행지에서 오일장을 만나면 더없이 반갑다. 어르신들이 정성스레 키워 낸 각종 농산물은 흥정이 필요 없을 만큼 담뿍하다. 용궁시장의 명물인 제유소도 걸음을 멈추게 한다. 방앗간과 달리 참기름과 들기름만을 뽑아내는 제유소는 켜켜이 내려앉은 시간만큼이나 고소한 향기로 가득하다.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참기름이 화학적 착유 방식을 사용하는 것과 달리 이곳에선 전통 그대로 깨를 볶은 후 물리적 압력을 가해 기름을 짠다. 덕분에 깻묵으로 불리는 찌꺼기에도 영양분이 많아 나오기가 무섭게 물고기 양식하는 이들이 가져간다고 한다. 아이들도 각종 음식을 통해 흔하게 먹는 참기름과 들기름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 수 있으니 꽤 흥미로운 모양이다. 용궁시장에 왔으면 꼭 맛봐야 할 음식도 있다. 바로 순댓국밥과 오징어불고기다. 순댓국밥이 뭐가 특별할까 싶지만 이곳에선 두툼한 돼지 막창을 이용해 순대를 만든다. 속도 푸짐하고 쫄깃함보다는 부드러운 식감이라 아이들이 먹기에도 좋다. 오징어를 각종 야채와 함께 매콤하게 볶아 낸 오징어불고기는 담백한 순댓국밥과 환상적인 호흡을 자랑한다. 용궁시장에는 10여개의 순댓국밥집이 성업 중이다. 그중에서도 용궁역 건너편에 자리한 박달식당은 맛도 맛이지만 입구에 걸린 ‘저는 애가 넷이나 있는 애국자입니다’라는 문구가 정겹다. 식당 휴무일은 아이들과 놀아 주는 날이라니 혹여 문이 닫혀 있더라도 기분이 상할 수 없다. 어린이 손님들을 위해 갓 구운 강냉이도 제공해 아이들과 넉넉한 한 끼를 즐기기에 제격이다. 여행작가
  • “텅 빈 그림책, 아이들은 오해 안 해요”

    “텅 빈 그림책, 아이들은 오해 안 해요”

    “독자 곁에서 오랜 시간 함께해 온 그림책들은 어떤 형태로든지 아이들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어린이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가장 단순하고 아름다운 세상의 정수가 그림책에 담겨 있죠.” 한국인 최초로 ‘그림책의 노벨상’ 격인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받은 이수지(48) 작가가 6일 말레이시아 푸트라자야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38회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IBBY) 국제총회 겸 시상식에서 전한 수상 소감에는 어린이들을 향한 애정이 가득했다. 이 작가의 수상 소감은 그의 그림책과 어린이 독자들처럼 순수하고 아름다웠다. 이 작가는 그림책을 “가장 보수적이면서 가장 혁신적인 매체”라고 했다. 과감히 선보인 그의 혁신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거울속으로’에선 책의 한가운데 제본선이 있는 접지 부분 다음 페이지를 하얗게 비웠고, ‘파도야 놀자’에선 아이의 몸을 반쪽만 그리기도 했다. 이 작가는 “‘혹시 인쇄 사고 아니냐’는 메일을 많이 받았다”며 웃었다.그럼에도 끊임없는 예술적 실험은 이어졌다. 작품이 아닌 작가에게 주는 안데르센상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이런 도전 정신이 꼽힌다. 이 작가는 “무수히 많은 흥미로운 실험을 그림책에서 시도할 수 있던 이유는 그림책이 그 누구보다도 가장 창조적이고 유희적인 독자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어린이들”이라고 말했다. 어른들이 그의 그림책을 오해할 때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스스로 질문하고 답했다. 이 작가는 “손끝과 발끝으로 짜릿하게 느껴지는 생의 기쁨을 아주 진지한 태도로, 온 마음을 다해, 가장 즐겁게 놀이하는 마음으로 그려 낸다. 이것이 이 아름다운 독자들에 대한 저의 감탄을 표현하는 최고의 방법”이라며 수상 소감을 마무리했다. 이번 총회에선 이 작가와 2020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 수상자인 백희나 작가의 작품이 전시돼 한국 그림책이 세계 아동청소년문학의 중심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한국을 대표해 최근 2년간 우수작(어너리스트)으로 출품된 김동성 작가의 ‘시골 쥐의 서울 구경’, 이현 작가의 ‘푸른 사자 와니니’, 김영진 번역가의 ‘아벨의 섬’ 등도 자리를 빛냈다.
  • [2022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되돌아오는 곰/함윤이

    [2022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되돌아오는 곰/함윤이

    화마는 나흘 만에 잡혔다. 두툼한 잿더미와 무너진 바위들만 남기고서. 녹원은 결심했다. 담배를 끊자. 한 번에 끊어 버리자. 대신 그는 종일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몇 시간 내내 산불 사진만 바라보자니 눈이 따끔거렸다. 사진 속 불길은 어쩔 수 없이 아름다웠다. 때로는 숨이 막힐 정도였다. 타오르는 가지들이 밤을 붉게 밝히고, 바위를 감싼 불꽃은 날개처럼 솟구쳤다. 녹원은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꼼꼼히 살폈다. 어떤 사진 앞에서는 입술을 깨물었다. 목줄에 묶인 채로 화마의 먹이가 된 개들, 산 위로 녹아내린 짐승들의 잿더미. 지난 나흘간 몇 장의 사진을 보았더라? 수십 장, 어쩌면 수백 장에 달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사진도 녹원이 찾는 것을 보여 주지 않았다. “그래서….” 녹원은 도시락통을 열면서 말했다. “주말에는 산에 다녀올까 해요.” 노아가 고개를 들고 그와 눈을 마주쳤다. 언제나 그랬듯, 탕비실에는 두 사람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읍내의 백반집에 갔을 터였다.                    어쩌다가 노아와 매일 점심을 먹게 되었더라. 잘 떠오르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 노아는 점심 도시락을 싸 들고 탕비실에 찾아왔다. 언젠가, 센터의 다른 직원들이 노아에게 슬그머니 질문하는 순간을 본 적이 있었다. 그들은 호기심에 가득 찬 목소리로 물었었다. 노아씨는 박 주사가 안 무서워요? 노아가 물었다. “전에 일하던 곳 가시는 거예요?” 녹원이 답했다. “네, 이래저래 신경이 쓰이네요. 그냥 한 번 직접 보고 올까 싶어요.” 노아가 양손을 만지작거렸다. 녹원은 그를 빤히 지켜보았다. 그날, 노아의 대답을 떠올리면 언제든 웃음이 나왔다. 질문을 받은 뒤, 노아는 양손을 한참이나 만지작거리다가 말했었다. 글쎄요. 녹원 주사님 요리를 엄청 잘하시는데… 맨날 나눠 주세요. 노아가 불쑥 말했다. “주사님, 저도 같이 가도 돼요? 주말에 가실 때요.” “산에요? 왜요?” “그냥… 마음이 쓰여서요.” 녹원이 웃었다. “아니, 누가 주말에 직장 상사를 만나요.” “아니, 그래두 그거랑 다른 게, 저희는 친하잖아요.” 노아는 그렇게 말하고서 고개를 떨어트렸다. 젓가락을 툭 내려놓는 손짓까지, 그 모든 모습이 어찌나 안쓰럽던지. 녹원은 빠르게 백기를 들었다. “아니, 가고 싶으면 같이 가요. 토요일 아침에 출발할 거예요.” 노아가 웃었다. 녹원 역시 웃어 버렸다. 그는 창밖을 보았다. 희뿌연 유리창 너머로 검게 번진 산맥이 펼쳐졌다. 새카맣게 그을린 산은 그림자처럼 보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붉거나 노란빛으로 번득거렸지. 지지 않는 태양처럼 사흘 내내 빛났다. 녹원은 그것을 보면서 내내 손톱을 물어뜯었다. 너덜너덜해진 손끝을 보며 생각했다. 무엇을 생각했냐면, 그러니까. 그것이 거기에 있을까? 그 산에서, 아직도 살고 있을까?            그해, 한 통의 전화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지리산에서 걸려온 전화는 사무소 곳곳을 돌아 우도근 과장의 손에 도착했다. 전화를 끊은 과장은 눈썹을 긁적이다가 입을 열었다. 곰이 왔다구 그러네요. 녹원은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을 멈췄다. 곰이요? 직원 중 하나가 물었다. 곰이요. 우도근이 덧붙였다. 아마 또 그 곰이겠죠. 사무실의 다른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녹원은 몇 분간 말없이 기다렸다. 곰이라는 게 무엇인지, 진짜 동물을 뜻하는지, 혹은 일종의 암호인지. 누구도 그에게 설명해 주지 않았다. 사무소 사람들 대부분이 녹원을 어려워했다. 그들은 녹원이 신입이라는 것을, 그가 대학을 갓 졸업했으며 이 사무소가 첫 직장이라는 사실을 잊은 양 굴었다. 낯선 상황은 아니었다. 녹원이 어느 집단에 녹아들기까지는 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람들은 대개 녹원을 불편해했다. 처음에는 그의 거대한 몸집에 압도당하고, 이후에는 그의 무표정이 난처하다고들 했다. 어쩔 수 없지. 녹원은 생각했다. 불편한 건 피차 마찬가지니까. 녹원이 손을 들자, 사무실의 눈길 모두가 그에게로 쏠렸다. 녹원은 모른 척 말했다. 과장님. 저는 곰이 뭔지 모르는데요. 아 맞네. 박 주임 들어오기 전에 생긴 일이구나. 잠깐 와 볼래요? 과장에게로 가려면 사무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야 했다. 통로 측 직원들이 어깨를 움츠리며 자신의 의자를 당겼다. 녹원은 그들 사이를 느리게 지나갔다. 우도근 과장이 빈 의자를 꺼내어 툭툭 두드렸다. 녹원은 의자에 앉았다. 과장은 사무소 내에서 녹원을 꺼리지 않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다. 지위 탓인지, 경력 덕인지, 혹은 한평생 산사람으로 살아왔기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그는 어떤 상황에서든 당황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모두 우도근은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체로 온화한 태도로 사람들을 대했다. 지위나 나이 상관없이 존댓말을 쓰고, 자잘한 실수는 웃으며 넘어갔다. 정말이지 괜찮은 상사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지. 녹원은 생각했다. 나는 왜 사람이 이토록 불편할까. 아니, 사실은, 불편하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우도근은 불편하고… 께름칙한 존재였다. 이 곰이 그 곰이에요. 과장이 컴퓨터를 가리켰다. 화면 중앙에서 어린 곰이 양팔을 벌리고 있었다. 가슴의 흰 반달을 환히 내보인 모습이었다. 과장이 말했다. 우리끼리는 도돌이라구 불러요. 녹원이 물었다. 도도리요? 우도근이 정정했다. 도돌이. 도돌이표 할 때 그 도돌이요. 그가 곰의 얼굴을 툭툭 두드렸다. 이 녀석이 말이에요. 매년 돌아오거든요. 아무리 내쫓아도 포기하질 않아요. 그래서 도돌이에요. 멈추지 않고 되돌아와서요.      노아는 반쯤 감긴 눈으로 차에 탔다. 어깨에 멘 가방 입구로 스테인리스 보온병이 비죽 나와 있었다. 그는 차가 출발했을 때부터 꾸벅거리며 졸다가, 고속도로에 진입할 무렵에는 푹 잠들었다. 녹원은 라디오 소리를 줄였다. 양쪽 창 너머로 산기슭이 형태를 드러냈다. 새카맣게 탄 자국이 군데군데 보였다. 녹원이 기사에서 찾아본 대로였다. 산은 파괴되고 소실되었다. 기사들은 특정한 단어들을 되풀이했다. 재앙, 재난, 상실. 평소에도 산불이 자주 나는 지역이었으나, 이번 피해는 유난히 참혹했다. 처음에는 누군가 버린 담배꽁초로부터 불씨가 솟아올랐다. 불씨는 때마침 불어온 강풍을 타고 날아올랐다. 마치 누군가 사주한 양, 화마는 적절한 환경 속에서 긴 날개를 펴고 날아올랐다. 현장의 직원들은 검은 재로 뒤덮인 마스크를 쓰고 인터뷰를 했다. 마스크를 벗으면 까만 코피가 쏟아져요. 그들은 쉰 목소리로 말했다. 매일매일 목이 아픕니다. 그들의 말은 녹원을 슬쩍 스치고 사라졌을 뿐이다. 녹원의 머릿속을 채우는 건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는 곰을 생각했다. 어쩔 수가 없었다. 곰에 대한 질문만 끊임없이 솟아올랐다. 괜찮을까? 살아 있을까? 산속에서, 이제는 폐허로 변한 그곳에서? 녹원은 흘끗 조수석을 보았다. 노아는 덜컹거리는 창에 이마를 댄 채 잠들어 있었다. 녹원은 뒷좌석의 목 베개를 찾으려다가 관두었다. 괜한 배려를 해 준답시고 잠을 깨우는 건 아닐까. 상사와 여행을 한다는 생각에 가득 긴장하여 잠들지 못한 건 또 아닐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손이 움츠러들고 말았다. 녹원은 한숨을 내쉬고서 속력을 올렸다. 여전히 이런 일들이 어려웠다. 어느 정도 친밀하다고 여기는 사람에게조차 무엇을 해 주는 게 좋을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노아는 톨게이트를 지날 즈음에 깨어났다. 부스스한 머리로 좌우를 살피고서 웅얼거렸다. “주사님. 커피 안 드셨죠. 드셔야 해요. 제가 직접 내렸는데. 맛있을 텐데.” 그는 보온병 뚜껑에 커피를 따라 건네고서는, 다시금 까무룩 잠들었다. 녹원은 홀로 웃다가 커피를 마셨다. 노아의 말이 맞았다. 커피는 맛있었다. 알맞게 따뜻하기도 했다.      공식적인 기록에 따르면 한국의 마지막 야생 반달곰은 설악산에서 죽었다. 천구백팔십삼년, 녹원이 태어난 해였다. 곰은 살해당했다. 웅담을 노린 밀렵꾼의 총알이 곰의 척추를 뚫었다. 곰은 총알이 박힌 몸으로 마등령 계곡까지 달아났다. 바위들 사이에 웅크려서 며칠을 울어댔다. 그의 죽음을 다룬 기사는 울음소리를 이렇게 묘사했다. 으엉, 으엉. 글자로 적힌 울음은 처절하기보다 우스꽝스러웠다. 으엉, 으엉. 짐승은 보름 가까이 앓다가 죽어 버렸다. 우도근은 말했다. 그 후로 이 산에는 곰이라고는 없었거든요. 그러나 사십여 년이 지난 후, 그러니까 녹원이 입사하기 삼 년쯤 전에, 곰 한 마리가 설악산에 나타났다. 아홉 살배기 암곰이었다. 백오십오 센티미터의 신장에 백 킬로그램, 날렵하다고 할 만한 덩치였다. 몇 해 전 지리산에 방사한 반달가슴곰 중 하나인 양 싶었다. 주말 등산회 사람들이 그를 처음 발견했다. 당시 암곰은 폭포를 어슬렁거리며 도토리를 줍고 있었다. 신고인은 새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곰이 도토리를 먹는다니까요. 곰이 원래 도토리를 먹어요? 사무소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지리산에 방생한 곰들이 다른 국립공원으로 넘어간 일은 몇 차례 있었다. 하지만 설악산이라니. 이 정도의 거리를 이동한 야생동물은 한 번도 없었다. 곧 남부보전센터에서 인력을 파견했다. 설악산 국립공원 쪽에서도 직원들을 내보냈다. 모두의 목적은 최대한 빠르게 곰을 생포하여 지리산으로 돌려보내는 것이었다. 당시 계장이던 우도근을 포함하여, 현장직 몇몇이 포획 조에 가담했다. 그들은 방패와 밧줄을 지고서 산을 올랐다. 암곰은 폭포에 있었다.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리자마자 후다닥 참나무에 올라가서 버텼다. 우도근은 다른 직원들과 함께 녹색 그물을 설치했다. 보전센터 직원이 마취총을 쐈다. 십여 분이 지나고, 정신을 잃은 곰이 그물 위로 떨어져 내렸다. 기절한 곰은 꽁꽁 묶인 채 지리산으로 돌아갔다. 그쯤에서 마무리가 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한 달이 지났을 때 암곰이 새끼를 남기고 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설악산에서 낳은 새끼인지, 설악산까지 데리고 온 새끼인지는 모르겠으나 야생에서 태어난 개체라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곰에게 어떤 발신기도 붙어 있지 않다는 뜻이었다. 새끼 곰은 폭포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홀로 남은 새끼를 잡는 일은 딱히 어렵지 않았다. 당시의 도돌이는 약 육십 센티미터 정도였다. 포획되는 순간에는 나무 뒤에 숨어 부들부들 떨고 있었더랬다. 촉촉한 코나 동그란 귀가 어찌나 귀엽던지, 현장에 나온 직원들 모두가 끙 소리를 냈더랬다. 붙잡힌 도돌이는 어미와 마찬가지로 헬리콥터를 타고 지리산으로 갔다. 현장에 간 직원들은 은은한 얼굴로 말했다. 그 녀석, 돌아가서 엄마랑 다시 만났겠지? 이것 참, 이산가족 상봉이네…. 그들 중 누구도, 그 곰이 귀환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낸 새끼 곰이 무수한 위험을 무릅쓰며 산맥을 넘어오다니. 우도근이 손가락을 튀겼다. 그런데 진짜로, 이 녀석이 돌아온 거예요. 이 년 만이었다. 이번에는 대피소의 직원이 먼저 곰의 흔적을 발견했다. 대피소 부근의 물푸레나무에 커다란 발톱 자국이 남아 있노라고 했다. 족제비나 오소리의 발톱 같지는 않다. 그보다 훨씬 거대하고 깊은 자국이다. 꼭 곰이 남긴 흔적처럼 보인다고. 무인카메라를 추적한 결과, 그의 말은 사실로 밝혀졌다. 다시금 보전센터의 직원들이 오고, 또 한 번 포획 조가 꾸려졌다. 우도근은 지난 포획에 참여한 경력을 인정받아 두 번째로 방패를 들었다. 곰은 나무 위 벌집을 습격하던 중에 붙잡혔다. 마취총에 맞아도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아서, 보전센터 직원들이 직접 나무에 올라가 몸을 밧줄로 묶어야 했다. 그들은 곰의 왼쪽 귀에서 조그만 기계를 하나 발견했다. 배터리가 닳은 발신기였다. 수의사는 말했다. 배터리를 교체하기 전에 서식지를 탈출한 모양이네요. 곧 그들은 몇 가지 사실을 더 알아냈다. 수의사는 곰이 세 살이 조금 안 된 암컷이며, 또한 두 해 전 이 산에서 퇴출당한 바로 그 새끼 곰이라는 사실까지 밝혀 주었다. 모두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얘가 그 곰이라고? 우리가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낸, 그 아기곰 말이야? 수의사가 말했다. 뭐, 이제 아기라고 부르긴 뭐하죠. 그의 말이 맞았다. 철창에 갇힌 짐승은 일 미터하고도 오십팔 센티미터였다. 몸무게는 백사십오 킬로그램, 울부짖는 모양새는 가히 맹수라고 부를 만했다. 곰이 또다시 지리산으로 돌아간 후에도, 다들 찜찜한 느낌을 걷어내지 못했다. 과장이 말했다. 물론, 그 느낌이 맞았죠. 일 년 만에 지리산에서 전화가 왔어요. 위치 추적을 했는데, KF-75가 그곳으로 돌아간 것 같다고요. ‘돌아갔다.’ 그쪽에서도 돌아갔다고 표현하더군요. 설악산의 직원들은 혀를 찼다. 독한 곰이다. 지독한 놈이야. 쑥덕거렸다. 곰 방사 계획 같은 거 대체 누가 짠 거냐? 낮은 목소리로 불만을 토했다. 심지어 그때는 한겨울이었다. 나뭇가지마다 흰 서리가 열매처럼 맺혀 있었다. 다른 반달곰들은 지리산 곳곳에 웅크려 동면을 취하고 있을 텐데. 단 한 마리의 곰만이 얼어붙은 산맥을 넘어 고향에 돌아왔다. 그때부터 직원들은 곰을 도돌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며칠간 추적이 이루어졌다. 곧 곰이 설악산에서 동면을 취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번에는 사무소에서도 차분하게 대응책을 마련했다. 어느덧 세 번째로 이곳에 방문한 보전센터의 직원들과 함께 동면포획을 준비했다. 산속의 굴 어딘가에 잠든 곰을 끌어내는 방법이었다. 녹원이 끼어들었다. 잠든 중에 끌어낸다고요? 네, 그래서 동면포획인 거죠. 무서운 방법이네요. 음, 사실은 그게 가장 평화로운 방법인데요. 곰의 입장에서는, 잠든 사이에 세상이 뒤바뀐 거잖아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요. 우도근이 턱을 괴고서 녹원을 바라보았다. 곰의 입장이라. 과장이 중얼거렸다. 곧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녹원은 그 미소를 해석할 수가 없었다. 우도근이 말했다. 박 주임은 곰이 불쌍한가 봐요. 나는 우리 직원들이 불쌍한데. 매년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짐승 하나 때문에. 안 그래요? 녹원은 허리를 꼿꼿이 폈다. 우도근의 앉은키는 그보다 훨씬 작았다. 백육십 센티미터를 아슬아슬하게 넘는 키에 가느다란 팔다리. 그와 비슷한 외양의 남자들은 대체로 녹원을 불편하게 여겼다. 경계한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들은 녹원의 몸을, 그의 크기 자체를 용납할 수 없는 듯했다. 과장은 한 번도 그런 기색을 내보인 적 없었다. 외려 그는 어린아이를 대하듯 녹원을 대하곤 했다. 이 대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과장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박녹원 주임님. 이번 포획 작전에 같이 가 볼래요? 녹원은 숨을 들이마셨다. 곧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예, 좋아요. 그럼 좋을 것 같습니다. 우도근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아, 좋다. 그럼 정해진 거지요? 이제 자리로 돌아가세요.      사무소는 녹원이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였다. 늙은 소나무 두 그루가 정문 양쪽에서 가지를 맞대고 있었다. 진입로 안쪽으로 목조 건물이 엿보였다. 여기까지는 화마의 여파가 미치지 않은 모양이었다. 녹원은 정문 건너편에 차를 세웠다. 막 깨어난 노아가 부스스한 머리를 정돈하고 있었다. 녹원은 한 차례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었다. “노아씨. 제가 왜 여기 왔는지 설명을 먼저 드려야겠는데요.” “아, 네, 네.” “그러니까…. 여기에 곰이 한 마리 있었거든요.”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우스꽝스러운 시작점이었다. 녹원은 가장 건조한 단어들을 사용하여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개체, 포획, 복원 프로젝트, 서식지, 정부 지침. 그런 단어들이 이 상황을 합리적으로 보이게 해 주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도돌이에 대한 이야기가 끝난 뒤, 차 안에는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노아는 찌푸린 얼굴로 양손을 만지작거렸다. 녹원은 내내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마침내 고개를 돌린 노아가 활짝 웃었다. 녹원은 물속에서 나온 사람인 양 참던 숨을 토해냈다. 노아는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사님. 진짜로 엄청난 사연이네요. 저라도 여기 왔을 거예요. 잘 오셨어요.” 녹원은 자신의 발끝을 내려다보았다. 양 뺨이 화끈거렸다. 곧 코끝까지 시큰거릴 듯했다. 녹원은 노아에게 양해를 구하고 차에서 내렸다. 문을 열자마자 서늘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스쳤다. 푸른 기를 머금은 하늘은 투명해 보였다. 녹원은 길을 건넜다. 사무소 정문 기둥에 기대고 서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가는 동안 시계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의 기억대로라면, 사무소의 점심시간이 끝나기까지 약 사십 분이 남아 있었다. 건너편에서 달칵, 소리가 트였다. 곧 우도근이 소리를 쳤다. - 아니, 뭐야. 박녹원 주임이 건 거예요? “네, 안녕하세요, 과장님. 제가 지금 사무소 앞에 와서요. 인사라도 드리려고 했어요.” 우도근이 정문으로 나오기까지는 채 십 분도 걸리지 않았다. 녹원은 금세 그를 알아보았다. 깡마른 몸집과 산양처럼 총총거리는 걸음걸이. 과장은 그대로였다. 시간이 그를 비껴간 듯 보였다. 머리가 더 벗어지지도, 주름이 늘어나지도 않았다. 우도근은 어설픈 인사치레로 시간을 잡아먹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곧바로 질문부터 던졌다. “아니, 진짜로, 뭐 때문에 왔어요?” “도돌이 말이에요. 무사한가요?” “에? 도도리?” “도, 돌, 이. 아시잖아요. 되돌아오는 곰이요.” 우도근이 아아― 길게 소리를 냈다. 탄식 같은 소리였다. 녹원은 지금껏 내내 연습한 얼굴, 가능한 한 아무런 표정도 드러내지 않는 얼굴로 버티고 섰다. 과장은 믿기지 않는다는 투로 물었다. “박 주임, 그거, 곰 때문에 온 거예요? 그거 물어보러?” “네. 맞습니다.” “세상에… 박 주임 대단하네요. 아니지, 지금은 주임이 아니지요? 뭐라고 불러야 하나.” “아무렇게나 부르세요, 보통 주사라고들 불러요.” “그래요. 박녹원 주사님. 얼마나 걱정이 됐으면 거기서 여기까지 왔어요. 한 시간은 걸릴 텐데. 굉장하네, 정말로 굉장하네요.” 녹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과장을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우도근이 한숨을 내쉬면서 웃었다. 눈에 익은 표정이었다. 그는 눈을 비비면서 말했다. “요새는 산불 뒤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어요. 재난안전과고 자원보전과고 할 거 없이 다들 난리거든요. 곰까지는 신경 쓸 시간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나도 몰라요. 얘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발신기는요? 센터 쪽에서 확인 들어가지 않았어요?” “발신기 그거.” 과장이 수염 자국조차 없는 턱을 어루만졌다. “어디 보자…, 그 얘기는 들은 것 같은데. 잠깐 기다려 봐요. 지금 몇 시죠?” “점심시간 끝나려면 아직 삼십 분 남았어요.” 과장이 허,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녹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한동안 서로를 마주 보았다. 마침내 우도근 쪽에서 손을 들었다. “좋아요. 알아봐 줄게요. 그것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는데.” “감사합니다.” “사무소 안에서 기다리고 있을래요?” “괜찮습니다. 친구가 기다리고 있어서요. 차 안에 있을게요.” “친구? 박 주임 친구요?” “네. 직장 동료 겸 친구요, 같이 왔어요.” 과장이 눈을 치켜떴다. 입은 헤 벌어졌다. 몇 초 지나지 않아서, 이상하리만치 환한 웃음이 그의 얼굴 곳곳으로 번져 나갔다. 녹원은 어찌할 바 모른 채 그의 얼굴을 지켜보았다. 이번에도 과장의 미소를 이해할 수 없었다. 우도근은 사뭇 밝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럼 금방 올 테니까 기다려요.” 녹원은 그의 뒷모습이 사무소 안쪽으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그가 완전히 사라진 후에야, 자신이 과장의 안부에 대해서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삼차 포획은 이른 새벽 중에 진행되었다, 직원들은 사무소 정문 앞에 모였다. 푸르스름한 새벽빛 속으로, 우도근의 이야기에 등장하던 사람들이 고스란히 나타났다. 수의사는 녹원이 상상한 것보다 훨씬 젊었다. 그와 함께 온 보전센터 직원들은 대부분 점잖은 인상으로, 말수가 적고 걸음이 빨랐다. 설악산에서도 꽤 많은 인원이 참가했다. 녹원과 우도근을 포함한 공원사무소의 직원들 외에도, 곰이 머무는 구역 근처의 분소 직원들 역시 합류했다. 보전센터 직원들은 여섯 다리가 달린 은색 안테나를 들고 왔다. 그것으로 곰을 찾아냈다고 했다. 곰은 탐방로로부터 머지않은 계곡을 배회하는 중이었다. 도돌이가 홀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바로 그 계곡이었다. 사람들은 장비지원조와 마취조, 추적조로 나뉘었다. 녹원은 장비지원조에 배치되었다. 곰을 붙잡아 데려오는 데 필요한 장비를 운반하는 역할이었다. 우도근은 추적조에서 움직이기로 했다. 우도근의 조가 선두에, 녹원의 조가 후미에 섰다. 행렬은 흔들다리를 건너고 금강문을 거쳐서 산길을 올랐다. 폭포로 가는 방향이었다. 그들은 곧 탐방로를 벗어나 숲 안쪽을 가로질렀다. 나무로 둘러싸인 공터에서 멈춰서 짐을 풀었다. 녹원은 가방을 내려놓고 장비를 하나씩 꺼냈다. 녹색 안전그물과 구조용 밧줄, 헬멧과 방패 등이 손에서 손을 타고 넘어갔다. 이제 마취조와 추적조가 공터 너머의 폭포로 가서, 곰을 데리고 올 것이라고 했다. 녹원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수풀 뒤에서 조끼를 걸치는 우도근이 보였다. 녹원은 그에게로 다가갔다. 우도근이 인사를 건넬 듯 한 손을 들어 올렸다. 녹원은 그 몸짓을 무시하고 다짜고짜 물었다. 곰이 여기에서 살 수는 없나요? 예? 뭐라고요? 곰 말이에요. 세 번이나 돌아왔잖아요. 여기가 자기 고향이라고 생각해서 그러는 건 아닐까요. 원하는 곳에 놓아주는 게 불가능한가 해서요. 침묵이 흘렀다. 과장이 천천히 헬멧을 썼다. 턱에 매는 끈을 고정한 뒤 녹원을 돌아보았다. 이번에는 웃음기조차 없는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박녹원 주임님. 네, 우도근 과장님. 저건 맹수예요. 말이 천연기념물이지, 사실은 유해조수라고요. 그리고 여기는 국립공원이에요. 매일 사람들이 오가는 산이요. 이해하겠어요? 녹원은 숨을 들이마셨다. 올라오는 말을 삼키려 했다. 그러나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녹원이 말했다. 저도 알아요. 그의 목소리가 나무들 사이로 울려 퍼졌다. 저도 안다고요. 과장님. 매일매일 사람들이 여기에 오잖아요. 자연이 좋다거나, 건강해지고 싶다거나, 취미 생활이라면서 산에 오르내리죠. 그런데 제 말씀은요, 과장님, 그건 그 사람들 선택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저 곰의 경우는 다르다고요. 쟤는 이 산이 필요해요. 그러니까 계속 되돌아오는 거겠죠. 여기에서 살아야 하니까. 여기서 살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그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녹원은 입을 다물었다. 턱이 떨리고 있었다. 등 뒤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눈길이 느껴졌다. 과장은 자신의 이마를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아이고…. 거의 탄식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그는 녹원이 건네준 가방 안에서 보호구를 하나씩 끄집어냈다. 그는 팔꿈치와 무릎 위로 보호구를 주섬주섬 끼우며 말했다. 우리 박녹원 주임님은 말이야. 여기에 오면 안 되는 사람이었네요. 녹원은 그를 쳐다보았다. 질문들이 입안을 맴돌았다. 여기란 어디이며, 대체 무엇이 안 되는 거냐고, 여기가 아니면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물론, 녹원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우도근은 낡은 지프를 타고 되돌아왔다. 도돌이가 사라진 지점까지 직접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직원들에게 미리 얘기해 놓았다고도 덧붙였다. 과장은 왜인지 들뜬 듯 보였다. 예상치 못한 제안이었다. 그러나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과장이 따라나서 준다면, 훨씬 간편히 산을 돌아다닐 수 있을 터였다. 노아와 녹원은 우도근의 지프 뒷좌석에 올라탔다. 과장이 몸을 돌려서 노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이, 반갑습니다. 박녹원씨 직장 동료라면서요.” “네.” 노아가 그와 악수하며 답했다. “네, 동료 겸 친구예요.” 우도근이 빙긋 웃더니, 다시 앞으로 돌아앉았다. 차가 출발하고 나서, 녹원은 우도근의 말을 다시금 곱씹었다. 박녹원씨라니. 생경한 호칭이었다. 우도근 과장이 자신을 그렇게 부른 적은 단 한 번밖에 없었다. 아주 오래전, 저 산속에서. 우도근의 지프는 금세 산중도로로 들어섰다. 오른쪽으로는 까맣게 탄 산맥이, 왼쪽으로는 잿빛 강이 이어졌다. 검은 산에서부터 흩날린 잿가루가 차창에 달라붙었다. 지프는 강의 굽이를 따라서 모퉁이를 돌았다. 국립공원의 시작점을 알리는 아치형 입구와 함께, 강변을 따라 선 갖가지 가게들이 나타났다. 잿빛 먼지에 휩싸인 편의점과 식당, 분사무소와 등산로로 향하는 흔들다리. 우도근은 다리 앞에 차를 멈춰 세웠다. 차창을 내리고 강 건너편을 가리켰다. “저쪽이에요.” 녹원과 노아는 창밖으로 목을 뺐다. 강 건너로 접근금지 테이프를 친 약수터가 보였다. 폭포 방향으로 입산하는 사람들이라면 필수적으로 거치는 구간이었다. 몇 해 전 녹원이 삼차 포획 행렬에 낀 채로 지나갔던 지점이기도 했다. 우도근이 약수터 위쪽을 가리켰다. “저쪽 산허리에서 발신기를 발견했어요. 아주 훼손되었다던데. 억지로 뜯어 버렸나 봐요.” “그 외 흔적은 못 찾았고요?” “네, 사체 같은 건 전혀 없었고….” 과장이 룸미러로 녹원의 얼굴을 흘긋 보았다. 그가 시동을 끄면서 말했다. “산에 다녀오고 싶으면, 지금 다녀와요. 나는 여기에서 기다릴 테니까.” 녹원은 머뭇거렸다. 적잖이 혼란스러웠다. 자신이 지금껏 우도근을 오해했던 것일까? 지금 그의 앞에 있는 과장은 친절하고 온화한 남자였다. 녹원의 기억 속에서 보여 주던 적대적인 태도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허탈한 웃음이나 경시하던 눈길 역시 보이지 않았다. 그는 마치… 아군처럼 보였다. 녹원은 차에서 내렸다. 노아가 그를 뒤따라왔다. 그들은 다리를 건너고 약수터를 지났다. 숲은 고요했다. 산으로 향하는 계단의 난간은 새까맣게 그을린 상태였다. 바삭하게 타오른 나무들은 식물보다는 불꽃의 잔재처럼 보였다. 보이는 곳마다 회색 재가 휘날렸다. 새들이 지저귀지 않고 잎사귀도 흔들리지 않았다. 도돌이를 처음 만난 날과는 모든 게 달랐다.         추적조와 마취조는 숲 너머로 떠났다. 장비지원조는 공터에서 짐을 가지고 대기하기로 했다. 녹원은 무릎을 끌어안고 앉은 채, 숲속을 바라보았다. 물푸레나무와 박달나무, 피나무, 소나무, 벚나무. 여름의 샛노란 볕뉘가 나뭇가지 사이를 환히 비췄다. 곧 낯선 소리가 그 풍경을 뒤흔들었다. 쿵. 높은 곳에서 묵직한 것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바위에 기댄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새들이 날아오르고 잎사귀들이 흔들렸다. 산 전체가 몸을 털어내는 듯했다.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아득하게 번져 왔다. 얼마 후, 그들이 나무 그늘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행진이라도 하듯 한 줄로 선 채 숲을 가로질렀다. 수의사와 과장이 선두에 서 있었다. 그 뒤로 들것을 붙든 남자들이 내려왔다. 녹원은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그는 들것 안쪽을 바라보았다. 거기에 짐승이 있었다. 포로처럼 눈과 입, 팔다리를 묶인 채. 녹원이 지고 온 밧줄이 곰의 몸을 엑스자로 붙잡고 있었다. 수의사의 목에 둘렀던 파란 천은 곰의 눈을 가리는 데 쓰였다. 벌어진 입 사이로 붉은 혀가 늘어져서 달랑거렸다. 녹원은 행진을 쫓는 아이처럼 곰을 따라서 걸었다. 필사적으로 들것을 쫓아가며 곰을 보았다. 그의 귀에 새로 부착된 발신기를, 어깨와 가슴을 가로지르는 흰 반달을, 마른 땅처럼 갈라진 발바닥을 보았다. 남자들은 공터 정중앙에 들것을 내려놓았다. 다른 사람들도 보호구를 주섬주섬 벗었다. 녹원은 장비들을 챙기는 일도 잊고, 내내 곰만 바라보았다. 바로 옆에 다가온 사람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한번 만져 봐요. 녹원은 놀라서 옆을 돌아보았다. 우도근 과장이었다. 그가 부드러운 얼굴로 곰을 가리켰다. 쓰다듬어 보라니까요.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있겠어요. 머뭇거림은 오래가지 않았다. 녹원은 곰의 배 위에 손을 얹었다. 검은 털은 까슬까슬하고 서늘했다. 피부는 몹시 단단했다. 녹원과는 전연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진 털과 살, 그 안에서 흐르는 피가 손바닥 아래에서 두근거렸다. 녹원은 눈을 깜빡였다. 곰의 치욕과 자존심, 곰의 마음에 대하여 생각했다. 끊임없이 돌아온다는 뜻의 이름도 곱씹었다. 짐승이 꿈틀거린 순간에도, 그는 손을 떼지 않았다. 나중에 과장과 수의사를 비롯한 몇 사람이 물어보았다. 왜 손을 떼지 않았어요? 왜 달아나지 않았습니까? 녹원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 순간 느꼈던 소속감을 묘사할 방법이 없었다. 그토록 아늑하고 달콤한 마음은 처음이었다. 극복해 낼 수도 없으며,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곰은 소리를 질렀다. 으엉, 소리 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밧줄의 매듭을 제대로 고정하지 않았던 모양인지, 곰은 순식간에 들것에서 벗어났다. 그는 녹원이 보았던 사진처럼 양팔을 벌리고, 가슴의 흰 반달을 환히 드러낸 채로 일어나 섰다. 도돌이는 잠시 휘청거리다가 녹원을 끌어안았다. 끌어안았다―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같은 표현을 썼다. 끌어안았다. 곰이 그를 끌어안았다고. 녹원은 등 뒤의 바위로 쓰러졌다. 그 순간이 녹원의 목숨을 구했다. 곰의 무게는 녹원의 몸을 지나 바위 아래로까지 분산되었다. 만약 선 채로 힘겨루기를 했거나, 땅바닥에 곧바로 쓰러졌다면, 녹원의 뼈는 모조리 부서지고 말았을 것이다. 녹원은 그 접촉을 기억했다. 그날의 다른 어떤 때보다 더욱 선명히 기억했다. 늑골을 짓누르는 냄새와 촉감. 곰은 녹원보다 머리 하나 정도가 작았다. 그런데도 어찌나 무거운지, 꿈쩍도 할 수 없었다. 녹원은 이후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다. 도돌이는 저를 끌어안지 않았어요. 걔는 저한테 기대어 있었죠. 수의사도 그의 말에 증언을 보태 주었다. 곰이 박녹원씨를 고목이나 바위, 혹은 어떤 기둥처럼 생각한 것 같습니다. 살기 위해서, 박녹원씨에게 매달린 거죠. 파란 천이 흘러내리며 초점을 잃은 눈이 드러났다. 입가에서 흰 거품이 끓었다. 남자들이 곰을 끌어냈다. 녹원은 바위벽에 기댄 채로 주저앉았다. 흐릿한 사람들이 소리쳤다. 괜찮아요? 숨 쉴 수 있어요? 녹원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괜찮지 않았다. 정말이지 그렇지가 않았다. 호흡할 때마다 갈비뼈가 조각나듯 아팠다. 결국에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곰으로부터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기사에서 읽은 기묘한 울음소리가 여전히 귓가를 채우고 있었다. 정말로 으엉, 으엉, 하고 우는구나. 녹원은 생각했다. 정말로 울어버리듯이 우는구나. 바로 앞에서는, 누군가 그를 부르고 있었다. 녹원씨. 박녹원씨. 녹원은 고개를 돌렸다. 우도근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그는 몇 해는 더 늙어버린 양, 쉰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여기에서 일하면 안 돼요. 사람들과 섞여 살아야 해. 과장은 몇 번이나 말했다. 박녹원씨. 산에서 내려가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요.              “날이 늦었으니, 우리 집에서 자고들 가요.” 우도근은 주장했다. 녹원과 노아가 연거푸 손사래를 쳤는데도, 절대로 굽히지 않았다. 그의 집은 산기슭 끝자락에 있었다. 녹원과 노아는 빨간 지프를 따라서 시멘트 언덕 위를 올라갔다. 새하얀 돌벽에 노란 지붕을 올린 집이 나타났다. 옅은 녹색 잔디를 깐 마당에는 흔들 그네와 스프링클러, 평상이 놓여 있었다. 집의 뒤뜰은 산사면과 바로 맞닿았다. 천만다행으로 이쪽 능선까지는 불길이 오지 않아서 피해를 면했노라고 했다. 녹원은 자신의 트럭에서 내려와 주위를 살폈다. 우도근의 집은 언덕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었다. 언덕 앞뒤로 보이는 것은 산과 강뿐이었다. 주위에 놓인 문명의 흔적이라고는 녹슨 가로등 하나가 전부였다. 우도근이 노란 현관문을 두드리면서 소리쳤다. “란이. 나 왔어.” 녹원은 어깨를 움츠렸다. 우도근에게 부인이 있다는 사실은 들은 적 있었다. 직접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심지어 우도근이 부인을 부르는 광경을 보다니. 란이, 라고 부르다니. 그가 누군가를 저토록 친근하게 부르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곰을 부를 때만 제외하면. 저녁 시간은 한없이 평화롭게 흘러갔다. 그들은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셨다. 란은 냉장고에서 맥주를 한 아름 꺼내 녹원의 품에 안겨 주었다. 별구경하다가 자세요. 란은 오래전부터 녹원을 알아온 양 친근한 어투로 말했다. 마당 평상이 별구경하기 딱 좋거든요. 맥주 곁들이면 그만 한 휴가도 없어요. 막상 부부는 평상 휴가에 동참하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아홉 시만 되어도 눈꺼풀이 감겨서, 먼저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도근은 평상에 담요를 깔아 주었다. 조카에게나 건넬 법한 목소리로 말하기도 했다. “재밌게 놀고 푹 자요. 알겠지요?” 마당에는 녹원과 노아만 남았다. 두 사람은 평상에 나란히 앉았다. 다리를 죽 편 채 맥주를 홀짝거렸다. 산에서 내려온 찬 공기가 살갗을 서늘하게 적셨다. 부부의 말대로, 마당에서 보는 별은 몹시 선명했다. 허공에 멈춘 불씨처럼 반짝거렸다. 녹원은 언덕 너머에서 흐르는 강을 내려다보았다. 두 갈래로 나뉜 물길이 다시 한 길로 합쳐지는 지점까지 살폈다. 강 뒤편의 산은 부드러운 어둠에 잠겨 있었다. 녹원이 불쑥 말했다. “천 킬로미터예요.” 노아가 고개를 돌렸다. “뭐라고 하셨어요?” “곰이 이동한 거리 말이에요. 한 번에 삼백사십사 킬로미터, 세 번 돌아오면 천백삼십이 킬로미터 정도 돼요. 서울에서 도쿄까지가 그 정도 거리래요.” 노아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서 말했다. “지독한 곰이네요.” 녹원은 동의했다. 정말이지 지독한 곰이었다. 세 번째 귀환 이후, 이 독한 곰은 제법 유명해졌다. ‘되돌아오는 곰.’ 그런 유의 머리기사와 함께. 도돌이라는 이름 역시 앙증맞게 실렸다. 설악산 측은 이 사건을 일종의 기회로 삼았다. 설악산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의 시작점을 ‘되돌아오는 곰’으로 삼자. 마침내 도돌이는 설악산으로 방사되었다. 몇 가지 복잡한 행정적인 절차를 거쳐서, 사무소 내부에도 곰의 위치를 주기적으로 추적하는 절차가 투입되었다. 반응은 썩 괜찮았다. 이토록 강력한 의지를 가진 곰이 번번이 돌아오던 고향. 한 기자는 도돌이를 천구백팔십삼년에 죽은 곰의 환생인 양 묘사하기도 했다. 수십 년의 한이 이제야 풀렸노라고. 녹원이 말했다. “어릴 때 제 별명이 웅녀였거든요.” 노아가 그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잠시 후에 그가 말했다. “웃어도 돼요?” 녹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노아가 웃는 사이에,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열세 살쯤 때 이미 키가 백칠십을 넘었어요. 그때 짝꿍이 되게 웃기던 애였거든요. 저를 맨날 웅녀라고 불렀는데, 그게 못내 좋았어요. 그전에는 한 번도 별명을 가져본 적이 없었거든요…. 이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요.” 녹원은 설악산에서 마지막으로 살던 곰의 최후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국의 마지막 야생 곰, 그가 태어나던 바로 그해 엉엉 울어버리다가 죽은 짐승. 녹원은 곰이 죽은 날짜도 찾아보았다. 곰은 칠월 말일, 녹원이 태어나기 바로 전날에 죽었다. 그 숫자 간의 관계를 깨달은 순간, 녹원의 머릿속으로 괴상한 생각 하나가 스치고 지나갔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누구에게도 이것에 대해 말한 적 없었다. 가뜩이나 자신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들었다가는 어떻게 반응할지 뻔했다. 녹원은 천천히 말했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나야말로, 그 곰에게서 돌아온 것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이번에 노아는 웃지 않았다. 녹원은 말을 이었다. 그 생각은 오래도록 그를 옭아맸다고. 누구나 이상한 믿음 하나 정도는 있잖아요, 그런 말로 뭉뚱그리기에는 지나치게 묵직한 믿음이었다. 자신이 그 죽음으로부터 돌아온 존재라면, 왜 이토록 사람들이 어려운지 설명할 수 있을 듯했다. 사람에게 죽은 짐승은, 사람으로 태어난다 해도 역시나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가 바로 그런 경우는 아닐까.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생각에서 마음을 떼어낼 수 없었다. 꼭 사랑에 빠진 것처럼. “그래서요. 도돌이와 나 사이에도 무언가 이어져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녹원은 고개를 들었다. 노아는 끌어안은 무릎에 턱을 괸 채로 잠들어 있었다. 녹원은 평상에 깐 담요를 펼쳐 노아의 어깨에 덮어 주었다. 고개를 드니 보름달이 떠 있었다. 희고 선명한 달이었다. 두 갈래의 강 위로 두 개의 달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밤 동물의 눈동자처럼 보였다. 녹원은 일어서서 기지개를 켰다. 양팔을 죽 펼친 순간, 그대로 멈춰 섰다. 그는 빳빳이 굳은 채로 귀를 기울였다. 눈앞으로는 밤의 어둠을 타고 흐르는 산의 능선만 보였다.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등 뒤 어딘가에서, 아마도 뒤뜰에서, 무언가 부스럭거리고 있었다. 곧이어 낮게 숨 쉬는 소리가 울렸다. 녹원은 그 숨소리를 알고 있었다. 분명히 귀에 익었다. 다시 한번 비닐이 흔들렸다. 얇은 막이 찢어졌다. 그것이 그르렁거렸다. 나는 알아. 녹원은 생각했다. 나는 이 소리를 알고 있어. 녹원은 천천히 손을 내렸다. 발뒤꿈치를 들고 돌아섰다. 주택은 엷은 가로등 불빛에 잠겨 있었다. 소리는 조금 더 뒤에서, 가로등 너머에서 들려왔다. 녹원은 천천히 걸었다. 가로등을 지나서 집의 뒤쪽으로 갔다. 뒤뜰에는 지붕을 씌운 분리수거함과 차고가 있었다. 차고의 비상등은 활짝 켜져 있었다. 안쪽의 빨간 지프가 선명히 보였다. 그 옆의 분리수거함을 뒤적거리는 물체 역시도 뚜렷하게 보였다. 녹원은 멈춰 서서 그 물체를 보았다. 검고 큼직한 뒷모습. 몇 해 전보다는 살이 좀 빠진 것 같았다. 곰은 비닐봉지를 뒤지고 있었다. 검은 발이 노란색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움켜쥐었다. 비닐들이 흔들리고 찢어지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녹원은 입술을 깨물었다. 목이 메었다. 이름을 부르고 싶었다. 마음은 한 차례 솟구치더니, 도무지 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녹원은 집의 그늘에 몸을 숨긴 채 곰의 움직임을 훑었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니 부석거리는 털이라거나 바싹 야윈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얘.” 녹원이 말했다. “도돌아.” 곰은 고개를 돌렸다. 천천히. 응답하듯이. 자신이 어떻게 불리는지를 알고 있다는 듯이. 녹원은 한 발짝 다가섰다. 다음 걸음은 좀더 가볍게 옮겼다. 누군가 그의 어깨를 붙잡지 않았더라면 계속 걸어갔을 터였다. 손은 녹원을 꽉 쥐고 뒤로 당겼다. 녹원은 뒤돌아보았다. 노아가 거기 있었다. 비상등의 빛에 새하얗게 질린 채, 녹원을 붙들고 속삭였다. “움직이면 안 돼요. 주사님, 움직이지 마세요.” 녹원도 무엇인가 말하려 했다. 괜찮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는 이미 한 번 이 곰을 만난 적 있다. 그때도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곰은 놀랍도록 명민한 동물이라 몇 해 동안 사람을 기억한다. 그러나 어떤 말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곰은 구부정하게 서서 멀뚱히 그들을 보고 있었다. 흰자가 슬며시 드러난 눈은 사람의 것보다 둥글고 검었다. 그 눈동자에서는 어떤 생각도 읽어 낼 수 없었다. 들이마시고 내쉬는 숨결, 그것들로부터 추측할 수 있는 감정 또한 없었다. 곰은 그와 전혀 다른 구역에, 다른 세계에 있었다. 그가 자신의 이름에 반응했다니. 우스운 생각이었다. 그들 간에는 무엇도 교차하는 것이 없었다. 녹원은 그제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녹원이 속삭였다. “노아씨. 뒤로 가요. 등 돌리지 말고, 뒷걸음질로요.” 노아는 그의 말을 따랐다. 그들은 기묘한 춤을 추듯, 일정한 리듬에 따라 뒷걸음질을 쳤다. 곰은 그들을 빤히 지켜볼 뿐이었다. 자신의 트럭 옆으로 다가갔을 무렵, 녹원은 주머니에서 차 열쇠를 꺼냈다. 그것을 차의 앞문에 대고 몇 차례 내리쳤다. 열쇠와 문이 맞부딪치며, 금속이 깨지는 소리가 공기를 울렸다. 곰이 숨을 들이마셨다. 가슴팍에 모으고 있던 앞발을 바닥에 내딛더니 그대로 등을 돌려 달아났다. 산속으로, 그리하여 어둠 너머로 녹아내렸다.        그들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곰이 뜯어둔 비닐들을 바라보면서. 창문 안쪽에서는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도근 아니면 란이 깨어난 모양이었다. 녹원은 잽싸게 몸을 돌렸다. 노아는 여전히 하얗게 질려 있었다. 녹원은 그의 팔을 붙들었다. “노아 씨. 여기에서 다른 거 본 거로 해요. 아무거나 좋아요. 고양이나 멧돼지, 살쾡이. 뭐 그런 게 내려왔다고 그래요. 곰을 봤다고는 하지 마요.” “왜요? 주사님. 방금 보셨잖아요. 곰이에요. 맹수라고요. 제대로 말씀드려야 해요.” 녹원은 숨을 들이마셨다.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던 눈 한 쌍, 그 눈길이 불에 덴 자국처럼 머릿속에 새겨졌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몇 해 동안 그를 옭아매던 감정들이 이제야 제대로 된 언어로 자리를 잡았다. 곰은 사람과 다르다. 곰은 사람이 아니다. 곰은 사람보다 나은 존재다. 앞뜰에서는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녹원이 낮게 속삭였다. “노아씨. 나는요. 늘 곰에게 산을 주고 싶었어요. 아주 통째로 줘 버리고 싶어요. 원래대로 돌려놓고 싶다고요. 그게 맞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해하겠어요?” 노아가 자신의 팔을 붙든 손을 붙잡아 내렸다. 그는 오래전에 과장이 짓던 표정을 하고 있었다. 곧 울음을 터뜨릴 듯 일그러진 얼굴, 여전히 그 이유를 알아낼 수 없었다. “주사님. 저는 이해가 안 돼요. 우리가 산을 줄 수 있나요? 우린 애초에 산을 가진 적도 없잖아요. 다들 그걸 알아요. 그래서 여기 계신 분들이 저 곰을 찾으려고 하는 거잖아요. 찾아서 보호하고, 같이 살려고요. 다들 그걸 위해서 애쓰는 거잖아요.” 노아의 등 뒤로 우도근이 보였다. 그가 집의 벽을 따라 돌아와 가로등 아래 섰다. 그가 부스스한 머리를 정돈하며 물었다. “뭐 깨지는 소리가 나던데, 무슨 일 있어요?” 노아가 녹원을 올려다보았다. 녹원도 노아를 내려다보았다. 노아씨. 박녹원 주사가 안 무서워? 직원들의 질문이 녹원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어쩔 수 없었다. 녹원이 말했다. “노아씨, 먼저 들어가세요. 저도 곧 갈게요.” 노아가 눈을 깜빡거렸다. 무엇인가 말하려는 듯 입을 벌리더니, 이내 포기한 듯 몸을 돌렸다. 우도근은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노아를 흘끗 보고서, 녹원에게 다가왔다. 녹원은 당황하지 않고 말했다. 차 안에서 무엇인가 찾다가 열쇠를 떨어트렸고, 차 문에 부딪힌 열쇠가 요란한 소리를 냈다고. “죄송해요, 주무시는 걸 깨웠네요.” 우도근은 괜찮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녹원은 계속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우도근도 집안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과장의 눈길이 뜯어진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가 닿는 순간, 녹원이 입을 열었다. “과장님. 여기 족제비 같은 게 있던데요.” 우도근이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족제비요?” 녹원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열쇠를 찾다가 뒤뜰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었다고. 다가가니 족제비인지 오소리인지가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는 중이었다고. 꽤 굶주려 보였다는 말도 덧붙였다. 과장은 분리수거함으로 다가가 핸드폰 플래시를 켰다. 봉투를 이리저리 비쳐 보더니 혀를 찼다. “아이고, 이걸 하루 늦게 내놨더니…험하게도 물어뜯어 놨네.” “안에 들여놓으시는 게 나을 거 같아요.” 녹원은 너덜너덜한 봉지를 들어 우도근에게 건넸다. 옛 과장이 그것을 받으며 빙그레 웃었다. “시골은 시골이지요?” 박녹원도 마주 웃었다. 지금은 이 정도의 대응이야, 충분히 해낼 수 있었다.        녹원은 방으로 돌아왔다. 벽을 향해 누웠다. 그의 옆에 누운 노아가 뒤척거렸다. 그는 녹원 쪽으로 몸을 돌렸다가, 반대로 돌아눕고, 깊은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그의 망설임이 애틋한 동시에 힘겹게 다가왔다. 녹원은 반대쪽으로 돌아누워 눈을 감았다. 노아가 움직임을 멈췄다. 녹원은 벽에 드리워진 그늘을 물끄러미 지긋이 보았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등 뒤로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울렸다. 노아가 결국 피로에 항복한 모양이었다. 녹원은 몸을 돌려 정면으로 누웠다. 유리창으로 스민 달빛이 천장을 부드럽게 밝혔다. 녹원은 눈을 깜빡거렸다. 그는 불타는 산을 생각했다. 잿빛 산, 폐허처럼 모두 불타버린 산, 잿더미로 뒤덮여 일견 늪처럼 보이기도 하는 산이다. 곰이 그 위를 달리고 있다. 사람이 아니라 짐승처럼, 두 발이 아니라 네 발로. 그는 산맥을 지나가는 바람처럼 빠르다. 성체로 자라난 곰들은 사십에서 육십 킬로미터의 속력을 낸다. 그는 타고난 사냥꾼이며 끈기의 화신이다. 바삐 위치를 바꾸는 앞발과 뒷발 너머로 회색 구름이 퍼져 나갈 것이다. 곰은 바위를 뛰어넘고, 나무를 오르고, 강을 건넌다. 어떤 방해도 없이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간다. 누구도 그를 쏘지 않는다. 잠든 채로 끌려 나오지도 않는다. 그는 어디든지, 원하는 만큼 간다. 산은 모두 곰의 것이다. 그는 자유롭다. 녹원은 가슴에 양손을 올렸다. 마치 포로처럼.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윽고, 만족스러운 미소가 그의 얼굴로 번져 나갔다.
  • [신가영의 장호원 이야기] 사람만 어른인 동물세상/화가

    [신가영의 장호원 이야기] 사람만 어른인 동물세상/화가

    가을이 그랬던가. 구름을 날려버린 청량한 하늘이 마냥 계속될 듯하더니 장맛비 같은 된비가 험상궂게 내리치고는 다시 푸른 하늘이다. 적막은 비 그치면서 깨지고 풀벌레 소리 높아지고 동네 개들 짖어대기 시작한다. 주인이 기척을 보이면 좋아라 짖어대고 배고프면 짖어대고 낯선 이가 지나가면 유난스레 더욱 짖어대어 조용히 기다리는 우리 집 개보다 더 신경 쓰게 하는 마을 강아지들. 시골에 내려오면 하고픈 일 중 하나가 마음껏 개를 풀어놓고 키우는 것, 그리고 함께 시골길을 산책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사건과 사고의 연속이었다. 이웃집 할머니께서 늘 마주하던 개에 물리는 큰 사고가 있었고, 이웃집에서 키우는 닭들이 한꺼번에 죽임을 당하는 일이 생겨 충격을 주었다. 또 강아지와 고양이를 해치는 사고들도 연속이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개 등이 짧은 끈으로 묶여 살아야 하는 걸 무지하고 동물들에 대한 냉혹한 인식이라고 단순 치부할 수만은 없게 되었다.바람과 달리 동물들을 키우며 커지는 건 두려움이다. 많은 동물과 함께하며 더 많은 죽음을 접하게 되고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 잔혹함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무감하게 바라보는 풍경 속에 나를 제외시킨 시선이란 왜곡될 수밖에 없다. 어쩌면 드러난 잔혹함이란 더 단순한 일일지도 모를 일이다. 사마귀를 잡아와 노는 고양이, 울타리 안에 들어온 쥐를 사냥하는 개, 날벌레 둘둘 감아 먹이로 만드는 거미, 공중을 선회하는 수리들. 새들이 괜히 우짖을까. 유기견들이 늘어나고 들개가 되어 위협적인 대상이 되어 버린 그 모든 배경에 뒷짐 지고 서성이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사람만 어른이 되는 세상이다.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사람이 사는 세상 속에서 보호 대상이 되고 관리 대상이 되고 기피 대상이 되는 그들. 그들에게 허용되지 않는 것은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어른이라는 역할일 것이다. 그러기에 사람이 책임져야 할 것이 적지 않다. 울타리 안에서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바람이 한여름 뭉개구름처럼 모이다가 가을하늘 구름처럼 변해간다. 많다고 할 수도 없지만 적지 않은 동물과 함께 살아가며 스스로 내가 어른인지 묻는다. 외면할 수 없는 그들 속에서 투영되는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 암세포엔 독…‘생선 오메가3’가 종양 죽이는 모습 확인 (연구)

    암세포엔 독…‘생선 오메가3’가 종양 죽이는 모습 확인 (연구)

    등푸른생선에는 오메가3 지방산이라는 몸에 좋은 지방이 들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를 꾸준히 먹으면 암이나 생활 습관병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만성 염증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런데 새로운 연구에서는 이런 오메가3 지방산이 종양의 암세포를 죽이는 모습이 확인됐다. 지방이라는 말을 건강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불포화지방산인 오메가3 지방산과 같이 몸에 좋은 지방도 존재한다. 아마씨유에 함유된 알파리놀렌산이나 등푸른생선에 든 도코사헥사엔산(DHA), 에이코사펜타엔산(EPA) 등은 대표적인 오메가3 지방산에 해당한다. 이런 지방산은 뇌의 기능과 시력에 좋은 영향을 주는 것 외에 항염증 작용이 있다는 점도 확인되고 있다. 벨기에 루뱅가톨릭대 연구진은 오메가3 지방산의 위와 같은 효과와 함께 새롭게 종양의 발달을 저해하는 메커니즘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종양학 전문가인 올리비에 페론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2016년 환경이 산성으로 변하는 산증(acidosis)이 일어난 종양에서는 증식을 위한 에너지가 포도당에서 지방질로 대체된다는 점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후 연구에서 이들 연구자는 어떤 종류의 지방산은 종양을 활성화하지만, 또 어떤 지방산은 종양을 죽이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보통 산성 상태인 종양에서 에너지원이 되는 지방산은 ‘지방구’(지방 방울)라는 구조 속에 저장된다. 지방구는 지방산을 산화로부터 보호하지만 DHA 등이 너무 많으면 구조 내에 지방산을 담을 수 없게 돼 산화가 발생한다. 그리고 이 산화 상태가 지나치게 되면 세포 사멸의 형태인 페로토시스(ferroptosis)라는 현상이 생긴다는 것이다. 일련의 현상에 대해 연구진은 지방구의 대사를 저해함으로써 페로토시스가 증가하는 것도 확인했다.연구진이 공개한 사진은 실제로 수행한 실험의 모습이다. DHA가 투여된 종양은 10일째(JOUR 10)쯤부터 형체를 무너뜨리기 시작해 13일째(JOUR 13)쯤에는 붕괴를 일으킨다. 함께 공개된 영상으로부터도 붕괴하는 모습까지 확인할 수 있다. 또 연구진은 쥐 실험을 시행해 DHA가 풍부한 먹이를 섭취한 쥐가 일반적인 먹이를 섭취한 쥐보다 종양의 성장 속도가 현저히 떨어진 결과를 확인했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DHA는 하루에 최저 250㎎을 섭취하도록 권장하지만, 지금까지의 연구에서 사람들은 DHA를 평균적으로 하루에 50~100㎎밖에 섭취하지 않는다”면서 “이는 권장하는 최소 섭취량에 훨씬 미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세한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셀 메타볼리즘’(Cell Metabolism) 최신호(6월 11일자)에 실렸다. 사진=루뱅가톨릭대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옛 도심 교육·문화·상업 특화 개발… 백운광장, 광주 핫플레이스로”

    “옛 도심 교육·문화·상업 특화 개발… 백운광장, 광주 핫플레이스로”

    도시재생 뉴딜사업 통해 역내 균형 발전정부 지원 ‘근린생활형’ 등 4개 사업 진행송암산단은 ‘경제기반형’ 재생 사업 준비 사통팔달 백운광장 리빌딩 879억원 투입푸른길 브릿지·로컬푸드매장 유치 계획대촌동 일대 에너지 밸리 조성도 순항 중택지개발 분쟁·노점상 갈등 해결 큰 성과광주 남구는 백운광장을 중심으로 국도 1호선(목포~신의주)과 이어지는 남쪽 관문이다. 인구 21만 3000여명, 면적 61㎢이다. 국도 1호선을 따라 나주혁신도시까지는 차량으로 10분 남짓 거리이다. 남구와 나주혁신도시 사이에 있는 대촌동 일대엔 ‘에너지 밸리’ 조성이 한창이다. 이곳은 최근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된 도시첨단국가산업단지 및 지방산업단지가 들어섰다. 이들 산업단지에 첨단 에너지 관련 기업이 잇따라 들어설 경우 전통적인 도시근교농업지구가 친환경에너지 복합산업단지로 탈바꿈, 지역경제를 이끌 것으로 전망된다. 남구는 근대역사문화 유산이 산재한 양림동 등 옛 도심과 봉선·효천지구 등 신도심 재개발도 빠르게 진행 중이다.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교육 문화 중심지로 재단장한다는 복안이다. 김병내 남구청장을 24일 만나 구정 현안 전반에 대해 들어 봤다.-옛 도심 재생사업에 역점을 두는데. “과거에는 아파트 재개발 등 도시의 양적 성장을 중요시했다. 외곽지역에 신도시가 생기면서 구도심은 인구가 줄고, 공·폐가가 증가하는 등 공동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로 인해 신구도심 간 양극화도 극에 달했다. 양림·백운·사직동 등 대표 구도심은 각종 문화유산이 산재한다. 특히 양림동은 개화기 때 기독교 선교사 등이 집단으로 거주했고, 이들이 남긴 교회, 학교, 병원 등 근대문화 유산이 널려 있다. 이런 특성을 살려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도심 핫플레이스’로 새롭게 꾸미고 있다. 봉선동 등 신도시는 업무와 상업·교육 중심지로 키워 나간다. 거점별 특화 개발로 역내 균형발전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앞당기겠다.” ●거점별 맞춤형 개발… 지역경제도 활성화 -정부의 도시재생 뉴딜사업 유치에 총력을 다하는 이유는. “남구의 재정자립도는 13%도 안 된다. 국시비 지원 없이 자체 개발 사업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 정부 공모사업에 ‘올인’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민선 7기 들어 정부의 도시뉴딜사업 5개 유형 가운데 4개를 따냈다. 5개 유형별로는 ▲우리동네 살리기형 ▲주거지 지원형 ▲근린생활형 ▲중심시가지형 ▲경제기반형 등이다. 방림2동은 우리동네 살리기형, 백운동은 중심시가지형, 양림동은 근린생활형, 사직동은 주거지 지원형 사업 지역이다. 전국에서 도시재생 분야 4가지 사업을 추진 중인 자치단체는 우리구와 충북 청주 2곳뿐이다. 도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나머지 경제기반형 공모사업에 500억원 규모의 송암산업단지 재생 사업을 준비 중이다. 이곳은 노후된 산업단지 39만 4000㎡와 주거지역 등 55만㎡ 규모이다. 인근 광주CGI센터를 기반으로 문화콘텐츠와 정보통신기술(ICT) 융복합문화 산업단지로 탈바꿈한다. 하반기쯤 응모해 선정되면 ‘도시재생 뉴딜 그랜드슬램’을 달성한다. 정부 주도의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모두 진행하는 유일한 지방자치단체가 된다.”●백운광장 앞 공중 보행로 ‘도시 명물’ 만들 것 -백운광장의 리빌딩 사업이 주목받는다. “백운광장은 5개의 대로가 교차하는 교통 흐름의 중심축이다. 지난해 말 31년 동안 유지된 백운고가도로가 철거되면서 사통팔달 뻥 뚫렸다. 시각적·공간적으로도 주변의 건물과 가로수 등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고가철거로 동쪽의 무등산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 일대 도시재생사업은 1995년 남구청 개청 이후 최대 규모로 진행하는 프로젝트이다. 사업비만 879억원에 달한다. 정부 공모사업 3번째 도전 끝에 손에 쥐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 중흥기를 누렸던 백운광장 주변의 ‘옛 영화’를 되찾기 위해 시작했다. 현재 철거된 고가도로를 대신하는 지하차도와 광주 도시철도 2호선 공사가 동시에 진행 중이다. 이곳을 광주의 핫플레이스로 만들기 위해 머리를 짜내고 있다.” -백운광장이 어떻게 변할지 관심이 집중된다. “우선 백운광장 앞에서 단절된 푸른길 공원을 잇기 위해 보행자 중심의 공중 보행로가 건립된다. 58억원을 들여 길이 207m, 폭 4~8m 규모로 조성된다. 공중 보행로는 백운광장 남쪽에 있는 남구청사 2층과 직결된다. 예술적 설계를 적용해 또 다른 도시 명물로 만든다. 더불어 남구청사 외벽을 이용해 가로 40m, 세로 27m 크기의 미디어 파사드 사업도 준비한다. 레이저 빔프로젝터로 프러포즈하거나, 가족에게 영상 편지를 띄우는 방식이다. 또 남구청 맞은편 광남목재~남광주 농협 구간의 푸른길공원 산책로를 따라 아트 컨테이너 40~50개가량을 배치해 ‘스트리트 푸드존’으로 만든다. 주차 편의를 위해 차량 141대 규모의 공영 주차장도 건립한다. 로컬푸드 직매장 2호점도 유치해 주야간 활기찬 광장으로 만들 계획이다.” -에너지밸리 조성사업이 순항 중이다. “국가산업단지인 도시첨단산업단지는 조성이 끝나 기업 입주가 시작됐다. 이웃한 지방산업단지 조성사업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이들 산업단지는 에너지 분야 특화 집적화 단지이다. 국가산업단지에는 한국전기연구원 광주분원을 비롯해 한국기초과학연구원 등이 입주했다. 에너지 관련 대기업들도 입주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 지방산업단지에도 첨단 에너지 기업 등 수십여개의 업체가 입주 계약을 마쳤다. 특히 지난해 이곳이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되면서 기업 유치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외국인 투자기업의 경우 관세와 취득세, 재산세 등 국세 및 지방세를 감면받고, 개발사업 시행자도 세제 혜택을 받는다.” -남북 교류협력 사업에 관심을 두고 있다. “기초자치단체가 남북교류사업을 주도하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남북 교류와 평화 정착에 작은 씨앗을 뿌린다는 생각으로 접근한다.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지방자치단체는 독자적으로 남북 교류협력 사업을 할 수 없었다. 남북교류협력법이 발목을 잡아서다. 문재인 정부에서 법을 개정해 지난 3월부터 시행됐다. 그 이후 전국 38개 지방자치단체장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남북교류협력 포럼’을 만들었다. 당시 열린 창립총회에서 초대 사무총장으로 추대됐다. 맡은 직무에 최선을 다할 각오다.”●분적산 편백숲 의자 등 각종 편의시설 설치 -‘분적산 더 푸른 누리길 사업’ 반응이 뜨겁다. “더 푸른 누리길 조성은 지역 주민들 모두가 건강한 여가생활을 누렸으면 하는 바람에서 시작했다. 분적산은 편백숲 힐링 트레킹 코스가 으뜸이다. 접근성이 뛰어나 이용객이 늘고 있다. 10억원을 들여 진월 택지지구에서 분적산 편백숲에 이르는 2㎞ 구간에 치유의 숲길과 휴식용 의자 등 각종 편의시설을 구축했다. 비 오는 날에도 이용할 수 있게 미끄럼 방지 보행매트도 설치했다. 편백나무에서 내뿜는 피톤치드를 흠뻑 마실 수 있고, 새 소리와 고즈넉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어 힐링 장소로 제격이다.” -집단분쟁 등 갈등 해소에도 힘쓰는데. “취임 초기 효천지구와 용산지구 택지개발 문제로 주민들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 간 집단분쟁이 10여건 있었다. 마을 진입로가 사라지고, 분진과 소음 등으로 불편한 상황이 발생해 갈등이 커졌다. 주민과 LH가 조금씩 양보해 문제를 해결하도록 중재했다. 지난해 문을 연 푸른길 공원 토요장터도 갈등 해소를 통한 상생의 사례로 꼽힌다. 이곳은 주민들의 쉼터이자 운동 공간으로, 왕래가 잦은 곳이다. 불법 노점상이 활개쳤고, 푸른길 공원 인근 가게 점주와의 마찰이 심했다. 노점 상인들과 가게 업주들의 생존권, 주민 불편 등 3자 간 복잡하게 얽힌 갈등을 풀어냈다. 소통은 믿음에서 비롯된다. 믿음이 쌓이면 어떤 문제라도 풀 수 있다.” -백운광장 교통 대책은. “공사 구간마다 시뮬레이션해 신호체계를 만들고, 우회도로 개설을 요청해 놨다. 무엇보다도 주민들의 이해와 양보가 필요하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트럼프 누르면 집사가 다이어트 코크 내오는 버튼, 바이든 치워

    트럼프 누르면 집사가 다이어트 코크 내오는 버튼, 바이든 치워

    미국 백악관의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에서 앤드루 잭슨 7대 대통령의 초상화가 치워진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졌다. 대신 노동·인권을 상징하는 인물들의 흉상과 초상화로 집무실이 채워졌다. 일명 ‘결단의 책상’ 뒤편에 전시했던 군부 깃발을 치우고 대신 성조기와 가족 사진을 놓았다. 바닥의 양탄자도 민주당을 상징하는 파란색으로 바뀌었다. 이뿐만 아니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쓰던 물건 하나를 조 바이든 대통령이 치워버렸는데 정말 희한한 물건이라고 허프 포스트가 지난 21일(이하 현지시간) 전했다. 바로 다이어트 코크 버튼이다. 붉은색 버튼을 누르면 전담 집사가 음료를 컵에 담아 오라고 만들었다. 하루에 12잔을 마실 정도로 다이어트 코크를 좋아했던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아예 전담 주문 버튼을 만든 것이다. 그는 2012년 트위터에다 코카콜라 제품은 “쓰레기”라고 깎아내렸다. 2017년 줄리 페이스 AP 통신 기자는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이 버튼을 보여주며 누를 때마다 “은빛 쟁반 위에 다이어트 코크 한 잔이” 자신에게 대령된다고 자랑했다. 그런데 타임스 라디오 정치부의 선임기자 톰 뉴턴 던은 취임식 다음날 트럼프와 바이든 집무실을 비교한 결과 이 버튼이 치워진 사실을 확인했다고 했다. 그 역시 2019년 트럼프를 인터뷰했을 때 이 버튼을 봤다고 했다. 사람들은 정말 반신반의했다. 기가 막힌다는 반응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대통령의 권력을 그토록 하찮은 일에 낭비했다는 개탄이다. 로버트 에반스는 “(오벌 오피스를 단장하는 정도의) 이런 변화를 위해 우리가 투표한 것은 아니다. 여러분이 2024년 나를 대통령으로 뽑아주면 국민 모두의 집에 다이어트 코크 버튼을 달아주겠다. 여러분이 원하건 원치 않건 시간마다 한 번씩 집사가 나타나 여러분 손에 다이어트 코크를 쥐어줄 것이다. 이 나라를 아스파탐에 빠뜨릴 것”이라고 이죽댔다. 샤우나란 사람은 “바이든 대통령이 버튼을 없애지 말고 아무 때나 누르면 트럼프 가문 사람이 불려나와 구슬픈 트럼본 소리를 내도록 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누리꾼 shoopdahoop25는 “가족끼리도 농으로도 이런 버튼을 얘기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꾸짖었다. 한 누리꾼은 “오늘 아침 마러라고(트럼프 전 대통령이 거주하는 플로리다주 리조트)에서 들려온 호령, XXX 다이어트 코크 좀 갖고 오라니까”라고 비아냥거렸다. 제프 그린필드는 트럼프가 바이든에게 메모를 남겼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지난 19일 “트럼프가 책상에 남겨놓은 메모-조에게, 붉은 버튼은 빅맥과 프라이, 노랑 버튼은 다이어트 코크, 푸른 버튼은 폭스 채널, 검정 버튼은 핵미사일, 아니 어쩌면 검정이 빅맥이고, 붉은 버튼이 핵일지도”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잭슨 전 대통령(1767~1845)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취임 초기 자신과 동일시하며 치켜세운 인물이다. 군인 출신으로 독립전쟁 당시 영웅으로 칭송받았지만 흑인 노예를 둔 농장주였고, 재임 당시 아메리카 원주민에 가혹한 정책을 펼쳤다는 점에서 인권 운동가들 사이에선 재평가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스트란 평가를 받는 점도 트럼프 대통령과 비슷하다는 지적이 많다. 바이든 대통령은 잭슨 전 대통령의 초상화를 떼어낸 자리에 정치인이자 과학자인 벤저민 프랭클린(1706~1790년)의 초상화를 걸었다. 과학에 대한 관심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일간 워싱턴 포스트(WP)는 해석했다. 신문은 “그동안 새로 당선된 대통령들은 그들이 어떤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지 추구하는 바를 반영해 집무실을 새로 꾸며 왔다”면서 “바이든 대통령 집무실에는 역사적 인물들이 유독 많다”고 평가했다.대통령이 법안 등을 서명하는 ‘결단의 책상’ 뒤편엔노동·인권 운동가 세자르 차베스(1927~1993년)의 흉상을 새로 들여놓았다. 또 아프리카계 시민권 운동가 로자 파크스(1913~2005년), 프랭클린 루스벨트(1882~1945년) 전 대통령의 부인이며 인권 운동가인 엘리노어 루스벨트(1884~1962년) 흉상도 설치했다. 집무실 벽난로 옆에는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1929~1968년)의 흉상이 놓였다. 책상 맞은편에는 루스벨트 전 대통령의 초상화가 걸렸다. 민주당 출신인 루스벨트 전 대통령은 경제 대공황 속에서 취임했으나 뉴딜 정책을 통해 미국을 재건한 대통령으로 평가받는다. 바이든 대통령이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제적 타격을 극복해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며 재정 확대와 큰 정부라는 위기 돌파 전략에서도 두 사람은 일맥상통한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이자 정치적으로 서로 대립했던 토머스 제퍼슨(1743~1826년) 전 대통령과 알렉산더 해밀턴(1755~1804년) 전 재무장관의 초상화가 함께 걸려 화합의 정신도 드러냈다. 대통령 측 관계자는 “공화국 안에서 표출되는 의견 차이가 민주주의에 얼마나 필수적인지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제주, 애도/윤치규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제주, 애도/윤치규

    그러니까 빙의가 될 거라고 했다. 무당이 바다에 빠져 죽은 넋을 건져 올릴 거라고. 정확히는 무당이 아니라 심방이었다. 제주도에서는 무당을 심방이라고 불렀다. 처음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당연히 농담인 줄 알았다. 내가 아는 양 차장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굿을 한다니. 그것도 아는 사람도 아니고 억울하게 죽은 귀신을 위해 제사를 올린다니.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나로서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제주도의 밤이 푸른 이유는 어둠 속에 귀신이 섞여서 그런 거야.” 바다 위에는 아주 작은 불빛도 떠 있지 않았다. 양 차장의 말과 정반대로 하늘은 어두웠고 바다는 그것보다 더 어두웠다. 아득히 먼 곳에서 파도만 끊임없이 밀려왔다. 파도는 내 발밑에서 잠시 반짝이다가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그 지루한 반복을 지켜보면서 돌아갈 핑계를 찾았다. 억울하게 죽은 귀신보다 지금 내 처지가 더 분하고 답답했다. 도대체 난 무엇을 바라고 제주도까지 내려온 걸까? 양 차장이 이렇게 변해버린 줄 알았다면 아마 내려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따가 상주 역할 좀 맡아줄 수 있어?” “제가 그런 걸 어떻게 해요.” “왜 못해? 현충원에서 대표로 묵념하는 거랑 똑같은 거야.” 아무리 그래도 그런 일은 꺼림칙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위해 상주를 맡으라니. 부모님이 멀쩡히 살아계신데 그런 역할을 맡아도 되는 건가? 만약 그게 예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해도 그런 경험은 전혀 해보고 싶지 않았다. 상주는 심방이 칼을 들고 춤을 출 때 그 앞에서 미안하다고 흐느끼며 대신 매를 맞아야 했다. 양 차장은 별거 아닌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딱히 그런 일을 자처해서 겪어보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냥 한 번 해봐. 시늉만 해보는 거야.” “진짜 싫어요. 아무리 차장님 부탁이라고 해도 이건 아닌 것 같아요.” 남서쪽으로 내려오는 해안선을 따라 승합차 한 대가 전조등을 켜고 다가왔다. 승합차는 우리가 서 있는 곳을 지나 동쪽으로 향하다 문 닫은 어촌계 앞에서 차를 돌려 해변 뒤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시동이 켜진 상태로 문이 열렸고 차 안에서 네 사람이 내렸다. 셋은 남자였고 한 명은 여자였다. 그들은 모두 한복 위에 두툼한 패딩점퍼를 걸치고 있었다. 어깨에 저마다 북과 장구, 징 같은 악기를 하나씩 짊어지고 서로 짝을 이뤄 무거운 상자를 옮겼다. 그들은 해변에 짐을 내려놓고 눈짓으로 인사했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크기가 가장 큰 현무암 바위 앞에 모였다. 서로 손을 붙잡고 기도하듯 눈을 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래사장 위에 멍석이 깔리고 천막이 세워졌다. 멍석은 전통방식으로 짚을 엮어서 만든 것이었지만 천막은 철제 캐노피였다. 천막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네 귀퉁이 위에 큼지막한 돌멩이를 올려놓고 고정끈을 단단하게 묶었다. 누가 지시하지 않아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준비하는 모습이 다들 전문가처럼 보였다. 천막 안에는 여섯 칸짜리 병풍을 펼쳤다. 그 앞에 직사각형 밥상을 놓고 놋으로 된 제기 위에 청귤과 보리빵, 고기산적을 올렸다. 작은 반상 위로 소주도 한 병 보였다. 여자는 소주를 노란색 주전자에 붓고 빈 병은 멍석 바깥쪽에 두었다. 그사이 남자들은 바지 끝단을 걷어붙이고 바다로 향했다. 현무암 바위에 오색 줄을 두르는데 뒷부분이 물에 조금 잠겨 있었다. 그들은 발이 젖어도 신경 쓰지 않고 줄을 동여맸다. 오색 줄은 어느 한 곳도 느슨하거나 처진 곳 없이 단단하게 묶였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여자가 승합차로 돌아가 심방을 모셔왔다. 심방은 연세가 아주 많은 할머니였다. 흰색 고깔을 머리에 쓰고 붉은색 도복을 입고 있었다. 바람이 불어 겉옷 밑단으로 삐져나온 도복이 부산하게 펄럭였다. 머리에 쓴 고깔이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 같았다. 심방은 느리고 우아하게 한 걸음씩 바닷바람을 뚫고 걸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발을 내딛는 모습이 묘한 경외감을 주었다. * 휴가도 아닌데 주말에 일부러 제주도까지 내려온 이유는 양 차장을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정기 인사를 앞두고 본부장이 새로 설립된 인도네시아 현지 법인의 총괄 책임자로 양 차장을 추천했다. 본부장은 나를 따로 불러 양 차장의 의중을 알아보라고 시켰다. 전화로도 충분히 물을 수 있었던 일을 주말에 직접 찾아오기까지 한 이유는 나 또한 누구보다 양 차장의 복귀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양 차장은 마땅히 돌아와야 하는 사람이었다. 과수원 한가운데 귤 창고를 개조해 놓은 카페에서 양 차장을 만났다. 볕이 좋은 테라스에 앉아 청귤 라떼를 마시며 그동안의 안부를 물었다. 남편과 아들의 장례식 이후로 일 년 반 만이었다. 그래도 표정이 전보다 한결 나아졌다고 생각했다. 대화 중에 농담도 자주 섞었고 먼저 웃음을 보일 때도 있었다. 이제 어느 정도는 괜찮아진 사람처럼 보였다. 정말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그렇게 보일 수는 있게 된 것 같았다. “다시 돌아오셔야죠. 이렇게 한가로운 곳에서 경력 다 썩히기는 아깝잖아요.” “제주도는 안 바쁜 줄 아니? 여기도 정신없어. 오히려 그때보다 시간이 더 부족해.” “여기는 안 어울려요. 화려하게 복귀하셔야죠. 그 덕에 저도 승진 좀 하고요.” 일부러 추켜세워주려고 한 말이 아니라 양 차장의 경력은 은행 내에서도 독보적이었다. 영업점 경험은 기본이고 본부에서도 핵심 부서로 손꼽히는 자본시장부 출신이었다. 대리 때는 글로벌 인재로 선발되어 아이비리그에서 경영학 석사과정을 수료했고, 과장 때는 은행장의 비밀 장부라고 불리는 도쿄지점의 첫 여성 책임자로 발령받기도 했다. 이런 사람을 초임지 때 사수로 만난 건 내게 정말 큰 행운이었다. 실제로 아무 연줄도 없었던 내가 자본시장부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양 차장의 추천 덕분이었다. “차장님 안 계시니까 저 완전 찬밥 됐어요. 승진도 벌써 몇 번째 밀리는지 몰라요.” “나 없어도 잘하잖아. 승진은 때가 되면 하게 될 거야.” “부사수를 끝까지 책임지셔야죠. 자꾸 이러시면 제가 제주도 따라옵니다.” 가족을 잃은 직후 양 차장은 은행을 그만두려고 했다. 그때도 설득하기 위해 제주도까지 내려온 사람은 나였다. 인사부가 먼저 고향에서 근무할 수 있게 배려해주었다. 전례 없는 특혜지만 그만큼 사고가 비극적이었다. 교통사고로 남편과 이제 막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들을 모두 잃었다. 한라산을 가로지르는 1139번 국도의 좁은 커브 길과 군데군데 얼어붙은 빙판, 그리고 중앙선을 침범한 트럭은 두 사람의 생명뿐만 아니라 양 차장의 미래까지도 한순간에 앗아갔다. “나 지금은 여기에서 꼭 해야 할 일이 있어. 나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야.” “어머니 따라서 귤 농사라도 이어받아요?” “그런 건 아니고. 궁금하면 너도 같이 가볼래?” 양 차장이 가방에서 팸플릿을 꺼냈다. 만장굴에 대한 안내 책자였다. 유네스코 삼관왕이라느니, 세계 7대 자연경관이라는 수식어가 큼지막하게 붙어 있었다. 접혀 있는 종이를 펼치니까 그 안에 동굴 속 사진이 여러 장 실려 있었다. 주석에는 이 동굴이 수십만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서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규모의 화산 동굴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게 다 뭐냐고 묻자 수줍게 치아를 내보이며 미소를 지었다. 고향을 잃은 사람에게 고향을 다시 돌려주는 사업이라고 설명했는데 그게 정확히 어떤 일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런 일을 하면 마음이 좀 나아져요?” “그게 무슨 말이야?” “이런 게 좀 도움이 되시냐고요.” “너는 어떻게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니?” 양 차장이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노려봤다. 말해 놓고 보니 마음이 뜨끔했다. 미안하다고 사과하려다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양 차장은 잘못했다는 말을 싫어했다. 그때 당시 신입이었던 내가 어떤 실수를 저지르면 고개를 숙이거나 반성하지 말고 어떻게 조치할 것인지 방안부터 제시하라고 다그쳤었다. 최선을 다했다고 변명하거나 죄송하다면서 울먹거리는 것은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노력했어도 결과가 좋지 못하면 책임을 질 뿐이다. 책임에는 후회와 반성이 필요하지 않다. 죄송하다는 말은 자기 연민일 뿐 상황을 개선하지 않는다. 내 기억 속의 양 차장은 그런 말을 단호하게 내뱉는 사람이었다. “차장님 혹시 예전에 저한테 자주 했던 말 기억하세요?” “어떤 말? 너한테 맨날 그만두라고 했던 거밖에 기억 안 나는데.” “은행원답지 않게 너무 사연에 연연한다면서요. 특히 신용평가표 작성할 때마다 그랬잖아요. 은행원은 모든 것을 숫자로 말하고, 숫자에는 구구절절한 서사가 없다.” 지점에서 처음 업무를 배울 때 내가 가장 어려웠던 것은 취급자 의견을 작성하는 일이었다. 대출을 해줘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단계인데 이상하게 반려되거나 보류되는 경우가 많았다. 신입이 올린 평가여서 더 까다롭게 보기도 했겠지만, 그보다 핵심적인 이유는 내가 그 의견을 어떻게 작성해야 하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승인권자가 궁금해하는 건 차주가 어떤 곤란한 사정으로 어디에 쓰려고 돈을 빌리는지가 아니었다. 오직 담보와 소득, 매출액과 순수 자본 비율 등을 고려해 얼마나 보장받을 수 있는지, 어떻게 회수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양 차장은 내게 서류를 검토할 때는 숫자만 정확히 산출하면 다른 것을 고민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고객마다 털어놓는 복잡하고 어려운 사정은 계산식 어디에도 들어가지 않는다고.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매출액과 영업이익처럼 계량화할 수 있는 수치뿐이라고. 숫자가 나쁘면 대출은 진행될 수 없었다. 반대로 숫자가 좋으면 필요하지 않더라도 대출을 적극적으로 권유해야 했다. 반기별로 할당되는 이익 목표를 채우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 기업이 아니라 돈을 갚을 수 있는 기업에 더 강하게 대출을 밀어줘야 했다. 그렇게 사정이 어려운 업체는 조금씩 제도권 밖으로 밀려나고 여건이 되는 업체는 기존의 대출을 유지하기 위해 쓸데없는 대출을 추가로 끌어안았다. 한번은 그런 방식에 의문을 품은 적이 있었다. 정말로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대출이 나갈 수 없고, 돈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에게 억지로 대출을 밀어 넣는 일에 대해서. 당장 거래처에 문제가 생겨 대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소기업 사장에게 고금리의 제2금융권을 소개해 일정 비율 원금을 변제시킨다거나, 여유 자금이 생겨 대출을 갚겠다는 사람을 내부 평가 기간에 맞춰 억지로 미루게 하는 일은 정상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양 차장은 그런 걸 정상이라고 말했다. 정말 조금도 망설이거나 주저하지 않고 그렇게 말했다. 은행이 자선단체는 아니잖아? 그 답은 간단하면서도 명료했다. 영리법인의 선과 정의는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확신에 차 있던 사람이 이제는 제주도에서 이런 짓을 벌이고 있었다. 자카르타마저 포기한 채로. 아무리 사람이 쉽게 변한다고 해도 이건 너무 무책임할 정도로 변해 버린 것 같아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 굿당에 도착한 심방이 멍석 위에 고무신을 벗어 앞코를 뒤집어 놓았다. 옷매무새를 천천히 매만지며 비뚤어진 고깔부터 버선까지 다시 한번 점검했다. 덧신을 신고 멍석 위에서 채비를 갖추자 여자가 흰색 술을 가져왔다. 가닥이 풍성하고 끝이 구불구불한 술이었다. 심방은 술 안에 손가락을 넣어 위에서 아래로 몇 번 쓸어내렸다. 꼬여 있던 술이 한 올씩 풀리자 신기하게도 바람이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심방은 노란 주발에 쌀을 가득 담았다. 놋그릇 안에 흰 쌀을 붓고 무명으로 감쌌다. 쌀이 쏟아지지 않게 끈으로 단단하게 묶고 그 밑에 머리빗 하나와 소주병을 같이 얽어맸다. 무명천 밑에 매달린 머리빗과 소주병이 부딪치면서 달그락 소리가 났다. 주변이 적막한 탓인지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남자 중 한 명이 그걸 들고 바다로 향했다. 물에 잠긴 바위를 지나 더는 들어갈 수 없는 깊은 곳까지 걸었다. 달그락 소리는 무명천에 감싼 주발을 물속에 던져버리고 나서야 사라졌다. 바람이 그치자 파도의 기세도 한결 약해졌다. 여자가 소반을 들고 굿당에서 나왔다. 심방이 정해준 장소에 소반을 내려놓는데 제기 위에 있던 청귤 몇 개가 백사장 위에 떨어졌다. 여자는 그걸 주워 소매로 닦아 내게 하나 건넸다. 양 차장이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두 손으로 받기는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쥐고만 있었다. 청귤은 전체적으로 녹색이었고 군데군데 노란 빛을 띠었다. 껍질은 무르지 않아 아직 단단했다. 양 차장이 내 손바닥에 놓인 것 중에 알이 작은 것 하나를 집어 향을 맡았다. “이촌역 지점에 있었을 때 모셨던 지점장님 기억나?” “저랑은 악연이에요. 그분이 고과를 긁어놔서 지금도 승진을 못 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퇴직해서 그런지 얼굴이 좋아졌더라. 청귤청도 두 상자나 사 갔어.” 이촌역 지점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청귤 향이 떠올랐다. 양 차장의 어머니가 직접 담근 청귤청이 지점장실뿐만 아니라 창구에도 하나씩 놓였다. 청귤차라는 게 별것도 아닌데 고객에게 반응이 좋았다. 상담할 때면 새콤달콤한 향의 정체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 덕분에 고객에게 청귤차 한 잔을 내오는 건 이촌역 지점만의 특별한 서비스로 자리 잡았다. 달콤한 차는 금리나 신용처럼 민감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씁쓸한 커피나 떫은 차를 대접할 때보다 더 대화가 잘 풀렸다. 설명 듣는 시간이 길어져도 불만이 적었다. 가끔은 어떤 상품에 가입해야 청귤청을 사은품으로 얻을 수 있는지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인기가 좋았던 청귤차가 지점에서 사라진 건 지점장과 양 차장이 언쟁을 한 이후부터였다. 두 사람이 다투게 된 원인은 내가 거절한 어떤 대출 때문이었다. 지점장은 자신의 친구라며 손님 한 명을 내게 소개해주었다. 직접 만나기도 전에 서류부터 건네는 게 처음부터 예감이 좋지 않았다. 그 고객이 신청한 대출은 서민구제금융 대출이었다. 재직만 확인된다면 신용등급을 따지지 않는 상품이었다. 취급하기에 그렇게 까다롭지는 않았다. 만약 돈을 갚지 못한다고 해도 국가기관에서 대신 갚는 담보 특약이 있어 부담이 적은 대출이었다. 다만 문제는 그 고객이 직장을 다니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내가 알아차려 버린 것이었다. 지점장이 준 서류는 위조된 것이었다. 자신이 아는 업체 사장에게 부탁해 용역회사에서 청소직으로 근무하는 것처럼 꾸몄다. 건강보험료까지 정식으로 내고 있어 서류만으로는 문제가 될 게 없었다. 내가 그게 위조라는 사실을 아예 몰랐다면 전혀 꺼릴 게 없었다. 하지만 이미 알아버린 이상 그대로 진행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그 고객이 폐암 4기이며, 이미 너무 많은 종류의 항암제를 써서 더는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치료밖에 남지 않은 상태라고 해도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지점장님은 곧 퇴직하니까 상관없었던 거예요.” 재직 문제로 대출이 어렵다고 보고하자 지점장이 나를 따로 불러냈다. 그러면서 유연하게 처리할 방법이 없냐고 은근히 압박을 넣었다. 외부에서 감사가 나오더라도 서민구제금융은 그렇게까지 엄격하게 따져보지 않는다면서 다시 한번 판단해보라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서류에 도장을 찍고 처리하면 모든 것이 내 책임이 될 것 같았다. 이대로는 진행할 수 없어 사수였던 양 차장에게 도움을 청했다. 양 차장은 길길이 날뛰며 곧바로 지점장에게 따졌다. 지점장은 한 걸음 물러서며 내 자율에 맡긴 거라며 선을 그었다. 그 말은 결국 내게 양 차장을 따를지 자신을 따를지 결정하라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지점장이 나를 거칠게 몰아세웠다면 오히려 마음이 편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능숙한 사람이었다. 지점장은 그 동기가 외환위기 때 어쩔 수 없이 그만둔 사람이고, 그가 그만두지 않았다면 어쩌면 자신이 그렇게 됐을 수도 있었다며 속사정을 털어놨다. 그러면서 내게 그런 걸 상상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제비뽑기처럼 누군가는 잘리고 누군가는 살아남았던 시대를. 아무 잘못도 없이 운이 조금 나쁘다고 해서 그 사람이 평생 어떤 수모와 고통을 감내해야 했는지. 그런 말을 듣는 내내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딱히 대답할 수 있는 말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사정은 분명히 안타까웠지만 아무리 따져봐도 나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일 같았다. * 멍석 위에 앉은 남자들이 악기를 집었다.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예행연습을 시작했다. 북채를 쥔 고수가 북을 두드리자 장고수가 장단을 더하며 합을 맞췄다. 징수는 징을 한 번 쳤다. 크고 웅장한 징소리가 먼바다까지 닿아 사라지면 다시 징을 쳤다. 심방은 징 소리에 맞춰 사방으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렸다. 장고수의 박자가 조금 빨라지자 심방이 천천히 춤사위를 시작했다. 버선발을 높게 세우고 두 팔을 하늘로 뻗었다가 무릎을 굽히면서 다시 땅 밑으로 늘어뜨렸다. 제자리에서 낮게 뛰기도 하고 절을 하듯 허리를 굽히기도 했다. 춤사위는 아주 느렸다가 갑자기 속도가 붙었다. 횟수가 반복될수록 동작이 조금씩 격해지고 빨라졌다. 북과 장구의 박자도 그에 맞춰 더 급해졌다. 어둠 속에서 흰색 술은 선명하게 빛났다. 밤바다 앞에서 흰색 궤적을 그리며 허공 위에 흔들렸다. 징수가 채를 한 번 휘두르면 하늘로 치솟았고, 고수가 매화점을 두드리면 땅으로 떨어졌다. 그 잔상은 구천을 떠도는 도깨비불 같다가도 업을 풀고 승천하는 혼령처럼 보이기도 했다. 누군가를 부르면서도 내쫓는 것 같았고, 원망하면서도 그리워하는 것 같았다. 한참 동안 그 자국을 두 눈으로 좇다 보니 나도 모르게 넋이 나갈 것 같았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주변에 사람이 늘어나 있었다. 뭔가에 홀린 것 같아 서둘러 돌아보는데 어쩐지 낯이 익었다. 자세히 보니 낮에 양 차장을 따라 만장굴에 갔을 때 만났던 사람들이었다. 한낮이었지만 만장굴 내부는 굉장히 어두웠다. 입구에서 계단을 내려갈 때만 해도 땅속으로 들어간다는 걸 실감하지 못할 정도였다. 동굴이니까 어두운 게 당연하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어두운 줄은 몰랐다. 바닥에 설치된 조명은 박쥐 때문에 밝기를 제한하고 있었다. 굴의 내부는 좁고 어두워 천장에 매달린 종유석 같은 걸 조금만 구경하려고 해도 금방 뒷사람이 다가왔다. 바닥은 또 울퉁불퉁해서 자주 돌부리에 걸렸고 천장에서 떨어진 물이 군데군데 고여 신경 써서 걷지 않으면 미끄러질 수도 있었다. 양 차장이 인솔한 단체는 오사카 지역의 이쿠노구에서 온 재일 교포 상인회였다. 조센이치바라고 불리는 시장의 정식 명칭은 미유키모리 쇼오텡가였지만 일본에서는 코리아타운이나 조선 시장 같은 속칭으로 더 유명하다고 했다. 내가 처음 들어본다고 하자 일행 중 비교적 한국말이 유창한 어떤 노인이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킨테츠선의 츠루하시역과 이마자토역 사이에 작은 강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면 조센이치바가 나온다고. 과거에 제주에서 일본으로 떠난 사람 대부분이 그 일대에서 자리를 잡았다고. 양 차장은 만장굴에서 가장 인기가 좋다는 거북바위 앞에서 일행을 모았다. 그곳에서 마이크를 켜고 거북바위와 해안동굴에 대한 설명을 잠깐 들려주었다. 노인과 함께 어깨를 맞대고 양 차장의 해설을 들었다. 바위는 위에서 내려다보면 그 모습이 제주도와 닮아 있었다. 가운데 볼록한 부분은 한라산이 솟은 것 같았고, 전체적인 윤곽도 해안선과 비슷했다. 바위의 아래쪽에는 유선이 아직 남아 있었다. 동굴 벽면에 그려진 것과 거의 같은 높이였다. 아마도 천장에 붙어 있던 암석이 떨어졌을 때 그만큼의 수위로 용암이 흐른 것 같았다. 용암에 잠긴 부분은 모두 쓸려갔지만, 윗부분만큼은 섬처럼 남은 것이다. “화산 동굴은 용암의 겉과 속이 식는 속도가 달라서 생깁니다. 겉은 식어서 단단하게 굳지만 속은 여전히 뜨거운 상태로 계속 흘러 이렇게 텅 비는 거예요.” 설명을 다 듣고 동굴 속을 걷는데 생각보다 길이 일찍 끝나버렸다. 조류에 휩쓸리듯 고개를 숙이고 바닥을 더듬거리며 앞으로 걷다 보니 어느 순간 공간이 넓어지고 조명이 환한 곳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곳에는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도 있고 비상 전화기 같은 것도 설치되어 있었다. 우리는 무너진 천장에서 용암이 쏟아져 내려 생긴 근사한 돌기둥 앞에서 줄지어 사진을 찍었다. 그제야 뒷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겨우 유선과 종유석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는데 우습게도 그곳이 반환점이었다. 반환점에서 노인은 눈을 감고 벽에 귀를 가져다 댄 채로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용암 벽 너머로 무언가가 들리는 것처럼 두 손으로 귀를 모았다. 그의 표정은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었다. 손주들이 포켓몬스터와 던전 같은 단어를 내뱉으며 신나게 뛰어노는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었다. 그는 한참이나 벽 안쪽의 소리를 들었다. 점자를 읽듯 조금씩 색이 다르고 층이 나누어진 선명한 가로줄을 하나하나 손으로 짚었다. 그는 그 벽 너머에 어렸을 때 들었던 소리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고 했다. 그가 기억하는 것은 대낮의 호루라기 소리나 새벽녘의 군화 소리, 누군가가 끌려가며 질렀던 비명. 고막을 찢는 일방적인 사격 소리 같은 것들이었다. 기억이 청각으로만 남은 이유는 그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누군가가 눈을 가려주었기 때문이었다. 노인은 그때 자신의 두 눈을 덮어주었던 주름진 손바닥에 대해 회상했다. 노인을 지켜준 손은 여러 명의 것이었다. 해변에서는 아버지였고 방안에서는 어머니였다. 마을이 불탔을 때는 삼촌이 되었다가 밀항선에 숨을 때는 이웃집 아저씨가 되기도 했다. 그는 산지항에서 무역선 배 밑창에 몸을 싣고 일본으로 오기 전까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게 너무 후회된다면서 벽에서 귀를 떼지 못하고 오랫동안 흐느꼈다. 관람이 다 끝나고 양 차장은 그들에게 기념품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탁자 위에 장식용으로 두는 돌하르방이었다. 돌하르방은 겨울 모자를 눌러쓰고 양손을 가슴과 배 위에 올려놓았다. 돌하르방의 모습은 어쩐지 지점장의 친구였던 그 고객과 닮은 것처럼 보였다. 그 고객은 항암 치료 부작용으로 빠진 머리털을 가리려고 모자를 썼다. 스테로이드와 호르몬 약의 부작용으로 눈과 코가 부어올랐고 얼굴에는 검버섯이 가득했다. 그와 마주 앉은 것은 아주 잠깐뿐이었지만 그 인상은 오래도록 내 기억 속에 남았다. 눈을 감으면 지금도 얼마든지 떠올릴 수 있었다. * 본격적으로 굿판이 시작됐다. 구경하는 사람은 서로 대화도 나누지 않고 진지하게 제사를 지켜봤다. 낮에 본 노인은 맨발로 천막 안에 들어가 있었다. 나머지는 자리가 부족해 모래 위에 그대로 서 있었다. 나이가 어린 아이들은 하나같이 부모 뒤에 몸을 숨겼다. 처음 보는 낯선 풍경에 겁을 먹은 것 같았다. 붉은 도복에 흰 고깔을 쓴 심방이 무서운지 실눈을 뜨거나 아예 눈을 감아버린 아이도 있었다. 어떤 아이는 돌하르방을 손에 꽉 쥐고 있었다. 낮에 들은 설명 때문인 것 같았다. 양 차장은 마을마다 돌하르방을 세우는 목적이 복을 기원하는 게 아니라 화를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심방의 옆에서 시중을 들던 여자가 직사각형의 종이를 조심스럽게 들고 왔다. 중간에 가짜 돈이 매달려 있고 위쪽이 삼각형으로 접혀 있는 종이였다. 여자는 그 종이를 심방의 등 뒤에 붙였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심방의 걸음걸이와 표정이 바뀌었다. 심방은 주위에 모인 모든 사람을 데리고 바다로 나가 짚으로 만든 인형을 내려놓았다. 파도는 작게 들이쳐 인형의 밑을 적셨다가 빠져나갔다. 인형에 수의를 입히고 염포로 단단하게 묶었다. 두꺼운 상자를 펼쳐 상여를 만들고 그 위에 인형을 시체처럼 올렸다. “인형에 염을 하고 나면 굿당 가운데 잠깐 앉아 있어 줘.” “저는 진짜 못하겠어요. 솔직히 이게 다 뭐 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어요.” “나 대신한다고 생각해. 나도 그런 적 있었잖아.” 최후의 일격처럼 긴 파도가 뭍 안쪽으로 깊이 밀려들어 왔다. 파도는 양 차장의 운동화를 덮치고 용왕상까지 닿았다. 파도에 두 발이 다 젖었는데도 양 차장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운동화와 양말을 벗어 멍석 귀퉁이에 올려놓고 맨발로 모래를 밟고 섰다. 발이 시릴 텐데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심방이 염포의 끝을 넉넉하게 잡고 내게 건넸다. 그걸로 상여를 굿당까지 끌고 오라는 것 같았다. 당황해서 멀뚱히 있자 양 차장이 등을 떠밀었다. 왜 내가 이런 일까지 맡아야 하는지 혼란스럽고 이상했다. 시키는 대로 일단 상여를 억지로 끌고 와 굿당 앞에 놓았다. 신발을 벗어 멍석 중앙에 앉아 무릎을 꿇었다. 그 사이 무아지경에 빠진 심방의 무용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무악은 요란해졌고 주변에 모인 사람들은 곡을 시작했다. 곡소리와 북소리가 절정에 닫자 심방은 도포 자락을 펄럭이며 제자리에서 뛰어올랐다. 한순간에 춤이 멈추고 심방이 내 앞에 우뚝 섰다. 흰색 술을 바닥에 내려놓고 댓가지를 꺾어 만든 기다란 회초리 묶음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그걸로 내 등을 내리쳤다. 댓가지가 얇아서 아프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한 대 두 대 맞을 때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이유로 매를 맞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자 그곳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모두 조용히 흐느끼고 있었다. 지점장이 지시했던 대출은 결국 불가 판정을 내렸다. 내게는 지점장보다는 양 차장에게 잘 보이는 게 중요했다. 지점장은 의외로 순순히 받아들였다. 다만 그를 한 번이라도 직접 만나보고 다시 결정하라고 부탁했다. 그 고객이 직접 찾아온다고 해서 위조된 서류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건 내 입으로 직접 거절의 뜻을 전하라는 의도였다. 자신이 맡기 싫은 역할을 내게 떠넘기는 짓이었다. 지점으로 찾아온 그 고객은 행색이 지나치게 초라했다. 오랫동안 고생한 사람에게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비굴함이 몸 전체에 배어 있었다. 그는 나를 계장님이라고 깍듯이 호칭했다. 의례적으로 묻는 말에도 변명하듯 눈치를 보며 둘러댔다. 차라리 선배라고 거들먹거리는 부류였다면 거절하기가 더 나았을 텐데. 이상하게도 대출이 어렵다는 말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양 차장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 자리에서 그를 칼같이 잘라내지 못했다. 그에게 대출이 거절되었다고 말한 사람은 양 차장이었다. 내가 우물쭈물하자 양 차장이 도와주려고 다가왔다. 양 차장은 그에게 친절하게 웃으며 자리를 옮겨 달라고 부탁했다. 그 고객은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겨우 단 한 칸 옆으로 옮기는 것뿐이었지만 그를 비추고 있던 어떤 불빛 같은 게 꺼지는 것 같았다. 그는 내게 곤란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다고 한 번 더 사과했다. 창구에 앉아 그가 떠난 의자를 바라보면서 대화를 엿들었다. 대출이 안 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 듣는 동안 그는 계속 기침을 쏟았다. 입안이 바짝 말랐는지 마른 혀를 계속 다시는데도 양 차장은 능숙하게 키보드만 두드렸다. 그 일이 있고 난 뒤로 지점에서 청귤청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지점장이 자신의 집무실에 있던 것을 치우게 하자 창구에 놓였던 것도 자연스럽게 버려졌다. 그 외에는 딱히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지점장과의 신경전도 끝났고 우려했던 인사 보복 같은 것도 전혀 없었다. 다만 나는 며칠 동안 악몽에 시달렸다. 아무도 없는 지점에 나와 그 고객이 단둘이 마주 앉아 있는 꿈이었다. 그 꿈은 지금도 가끔 꿀 때가 있었다. 꿈속에서 그 고객은 날 원망하지 않았다. 그저 내 앞에 앉아 기침을 쏟을 뿐이었다. 나 역시도 딱히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몇 번을 곱씹어도 그날의 결정은 옳은 일이었다. 다만 후회하는 것은 그때 내가 따뜻한 차 한 잔을 내오지 못한 것이었다. 야윈 목에서 쏟아지는 메마른 기침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에게 청귤차 한 잔을 권하지 않았다. 아무리 잘못한 게 없더라도 그 정도는 할 수 있었을 텐데. “설운 어멍아 이런 변고가 어디 있수광. 구름 질로 바람 질로 고향산천 온 줄 모릅니까. 한 달을 그물고 두 달을 그물어도 경해도 원망하고 있수광. 이승에서 못한 것 저승에서 허쿠다. 잘들 삽서 하다하다 걱정말앙 잡들삽서. 살암시민 살암십서.” 심방이 백안을 뜨고 귀신에 씐 것처럼 여러 목소리를 냈다. 노인처럼 한탄하다가 아기처럼 울었고 남자처럼 화를 내다가 여자처럼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그 앞에서 나는 고개를 숙이고 죄인처럼 엎드려 있었다. 양 차장은 두 손을 맞잡고 기도하듯 무언가를 빌었다. 나는 시킨 대로 고맙수다 라고 말하며 심방에게 절을 해봤다. 고맙수다, 고맙수다. 기계적으로 말을 반복할 뿐인데도 내가 진짜 상주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심방은 매질을 멈추고 제풀에 꺾인 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멀리 바다를 바라봤다. 밤하늘은 여전히 별도 없이 캄캄했지만, 바다에 가까워질수록 그 밑이 아주 조금은 푸른 듯 보였다.
  • 93건 살인 고백해 60건 확인된 사무엘 리틀 감옥에서 눈 감아

    93건 살인 고백해 60건 확인된 사무엘 리틀 감옥에서 눈 감아

    미국 역사상 최악의 연쇄살인범으로 꼽히는 사무엘 리틀(80)이 결국 죗값을 다 치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교정당국은 리틀이 30일(이하 현지시간) 새벽 캘리포니아주의 한 병원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AP 통신이 전했다. 공식 사인은 부검 결과 공표될 예정인데 특별히 미심쩍은 정황이 없어 당뇨병과 심장병 등으로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은 것으로 추정된다. 세기의 살인마로 꼽히는 리틀은 지난 2014년 3명의 여성을 살해한 혐의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그 뒤 드러났다. 지난 2018년 5월 자신이 살해한 피해자가 무려 93명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털어놓은 것이다. 텍사스주 레인저 요원 제임스 홀랜드가 그를 찾아왔는데 거의 700시간 동안 인터뷰를 진행하며 자신이 살해한 여성들의 얼굴 초상화를 그려 보였다. 연도와 장소, 그가 훼손한 신체 부위 등을 기억해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가 이토록 수십년 전의 범행을 집요하게 털어놓은 것은 어이없게도 자신을 다른 교도소로 옮겨달라는 청을 교정당국이 거절했으니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달라는 것이었다. 복서 출신이었던 그는 아귀 쥐는 힘이 엄청 세 대부분의 여성들을 목졸라 살해했다. 그의 진술에 따르면 지난 1970년부터 2005년까지 캘리포니아주 남부와 플로리다주, 텍사스주 휴스턴,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테네시, 켄터키, 네바다, 아칸소 등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마약중독자나 매춘 여성, 밑바닥 하층민 등 신원을 추적하기 힘들거나 가족이나 친인척이 포기한 90명 이상을 살해했다. 그의 진술을 토대로 수사를 벌인 연방수사국(FBI)은 실제로 60건 가까이가 그의 소행이었다고 확인했다. 홀랜드는 그와 함께 피자나 간식을 먹으며 스포츠에 대한 관심으로 그의 입을 열었다. 홀랜드는 천재지만 소시오패스였다고 리틀을 돌아봤다. 그림을 그려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사건 현장을 마치 사진촬영하듯 정확히 묘사했다. 1984년 마이애미 스트립클럽 바깥에서 만난 25세 희생자를 짧은 금발, 푸른 눈동자, 히피 차림 등으로 정확히 지목한 일이 대표적이다. 반면 정작 자신의 인생에 대해선 입을 다물었다. 오하이오주 로레인에서 할머니 손에 자랐으며 한 차례 결혼했다는 사실은 털어놓았는데 자녀가 있었는지는 끝내 밝히지 않았다. 두 차례 더 여자와 오랜 관계를 가졌다. 여자의 목만 보면 살해 욕구가 치솟아 사랑하는 이를 죽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아내와 여자친구의 목을 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지난해 CBS ‘60분’ 인터뷰를 통해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해낸 다른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난 세상에 하나뿐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영예가 아니라 하나의 저주”라고 털어놓았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시 제목도 집 이름도 ‘필경’… 원고지에 농사짓는 심훈의 삶 오롯이

    시 제목도 집 이름도 ‘필경’… 원고지에 농사짓는 심훈의 삶 오롯이

    심훈은 1930년에 ‘필경’(筆耕)이라는 제목의 시를 발표했다. 당시 일제에 짓밟혔던 조선인들의 마음을, 원고지에 붓으로 논밭을 일구는 것으로 말하고자 했다. 이는 후에 심훈이 충남 당진으로 낙향해 지은 집 ‘필경사’의 당호가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제 치하의 농민들의 현실을 필경하듯 지은 소설 ‘상록수’를 창작한다. 그는 어찌하여 시도 집도 모두 ‘필경’이라 칭했던 것일까. 게다가 또 무슨 이유로 당대의 인기 소설가이자 시인, 연극과 영화배우이면서 감독이고 시나리오 작가였으며 경성방송국의 아나운서이자 프로듀서, 신문사의 기자이기도 했던 팔방미남이 농촌 계몽 소설인 ‘상록수’를 썼던 것인가. 그 이유를 찾아 충남 당진에 있는 심훈의 필경사로 가 보았다.1901년 경기 시흥군 신북면 흑석리(현 서울 동작구 흑석동)에서 태어난 심훈의 본명은 심대섭이다. 1926년에 동아일보에 연재를 시작하면서 필명인 ‘훈’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흔히 수재들만 입학한다는 경성고등보통학교에 들어갔지만 3·1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투옥됐다. 학교에선 퇴학을 당하고, 법원에선 6개월형을 선고받았지만 이미 그 당시 복역한 지 8개월이 지난 뒤였다. 출소 후 중국으로 건너가 연극과 영화를 공부했고 이때 단재 신채호, 석오 이동녕 등과 교류하며 조선의 독립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조선에 돌아와 최초의 영화소설을 썼고, 영화 ‘장한몽’의 이수일 역으로 출연해 큰 인기를 얻었다. 그 기세를 이어 영화감독으로도 활동했지만 심훈이 제작한 영화가 식민지의 현실을 그렸다는 이유로 상영이 금지됐다. 이후에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기자로 근무하면서 시와 신문 연재소설을 쓰며 영화로 미처 다 말하지 못한 울분을 토해 냈는데 이 역시도 일제에 의해 연재 중단 조치를 당하게 된다. 다시 식민지 조선의 처지를 암시했다는 이유였다. 연이어 1930년 3·1운동을 기념하고자 쓴 시 ‘그날이 오면’을 완성해 시집으로 출간하려던 계획 역시도 출간금지에 처하면서 무산됐다. 이때 출간하지 못한 시집은 심훈의 사후 13년이 지나서야 세상에 나왔다. 시집 ‘그날이 오면’의 이야기다.“삼십이면 선(立)다는데 나는 배밀이도 하지 못합니다. 부질없는 번뇌로, 마음의 방황으로, 머리 둘 곳을 모르다가 고개를 쳐드니, 어느덧 내 몸이 사십의 마루터기 위에 섰습니다. 걸어온 길바닥에 발자국 하나도 남기지 못한 채 나이만 들었으니 하염없게 생명이 좀썰린 생각을 할 때마다, 몸서리를 치는 자아를 발견합니다. 그러나 앞으로 제법 걸음마를 타게 되는 날까지의 내 정감의 파동은, 이따위 변변치 못한 기록으로 나타나지는 않으리라고 스스로 믿고 기다립니다.”(시집 ‘그날이 오면’의 머리말 중에서) 3·1운동 이듬해 경성방송국 문예담당 기자로도 입사했지만 사상 문제로 퇴직한 심훈은 아버지와 친척 일가붙이들이 살고 있던 충남 당진으로 낙향한다. 장조카인 심재영의 집에서 2년여간 기거하면서 필경사의 터를 닦고 집을 짓는다. 이후 필경사에서 쓴 소설 ‘상록수’가 1935년 동아일보사의 ‘창간 15주년 기념 장편소설 특별공모’에 당선돼 그해 9월 10일부터 1936년 2월 15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하면서 소설가 심훈은 큰 인기를 얻기 시작한다.●언제나 푸르른 나무의 눈, 계몽 소설 ‘상록수’는 당진 부곡리에서 심재영이 벌이고 있던 야학운동과 공동경작회 활동을 토대로 경기도 반월면에서 농촌계몽운동을 벌이다 요절한 최용신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다. 소설 속에서 심재영은 박동혁으로, 최용신은 채영신으로 등장했다. 소설은 심훈이 조선일보 기자로 재직하던 시절에 사측에서 벌인 문자보급운동을 소설의 첫머리에 두고 시작한다. 일제가 추진한 민족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한글 교육이 금지되고 우리 민족에 대한 수탈이 강화되기 시작하던 그때, 농촌의 삶은 피폐하기 이를 데 없었다. 심훈은 이 소설을 통해 현실을 고발하고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자 했다. 소설은 채영신과 박동혁, 두 주인공이 만나 사랑을 하고 함께 계몽운동을 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 중에서 박동혁과 채영신의 러브 라인만 심훈의 상상이고 그 외의 모든 정황들은 그 당시 농촌의 현실을 그대로 그려 넣어 리얼리즘 소설이라는 평을 듣는다.“아는 것이 힘 배워야 산다.”(소설 ‘상록수’ 중에서) 심훈은 이렇게 빼앗긴 나라의 선각자이자 지식인으로서 할 수 있는 최대치의 힘을 불어넣어 농촌계몽소설을 썼고, 사람들이 앞다투어 읽기 시작했다. 소설이 연재되는 동안 동아일보의 판매 부수가 늘었고, 신문을 구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가판대에 줄을 서서 기다렸다는 이야기는 소설가 심훈의 인기와 계몽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방증한다. 심훈은 동아일보 공모전에서 받은 상금을 상록학원에 기증해 더 많은 사람들의 교육에 힘을 썼다. 1936년 상록수의 단행본 작업을 위해 서울에 올라온 뒤 장티푸스에 걸려 서른다섯 해 짧은 생을 마친다.●손기정의 베를린올림픽 금메달과 호외 당진에서 잠시 상경했던 심훈은 때마침 손기정의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 소식을 전하는 신문의 호외를 접하게 된다. 너무도 감격에 겨웠던 나머지 시 “오오, 조선의 남아여!”를 호외의 뒤쪽에 썼는데 그것이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됐다. 그 작품은 당진의 심훈기념관에 손기정의 우승 사진과 함께 전시돼 있다. “오오, 나는 외치고 싶다! 마이크를 쥐고/ 전 세계의 인류를 향해서 외치고 싶다!/ 인제도 인제도 너희들은 우리를 약한 족속이라고 부를 터이냐!”(시 ‘오오, 조선의 남아여!’ 중에서)●바다 옆에 놓인 심훈기념관 심훈이 일생 동안 부르짖었던 민족정신과 독립운동의 가치 그리고 농촌계몽운동의 산실인 당진의 필경사 주변으로는 심재영 고택과 심훈기념관이 위치해 있다. ‘그날이 오면’ 기념비와 심훈의 동상도 오롯하게 서 있는 곳이다. 심훈의 생전에는 필경사 바로 앞까지 바다였으나 간척사업으로 인해 개간된 이후로는 바다가 조금 멀어졌다고 한다. 필경사의 창은 바다를 향해 나 있는데, 그 안에 심훈이 썼던 책상이 보존돼 있다가 훼손이 심해지자 기념관 내부로 책상을 옮겼다.한때 교회로 이용되기도 했던 필경사는 유족들과 심훈의 뜻을 기리는 사람들의 의지가 모여 다시 본연의 필경사로 돌아왔다. 서른다섯 해를 살다간 그의 사후에 서른여섯 해의 두 배가 훌쩍 넘도록 이렇게 사람들의 발걸음을 모으고, 널리 회자되는 것은 그의 다양한 활동만을 이름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가 지녔던 민족성에 대한 고취, 식민지 지식인으로서의 고뇌, 농촌계몽운동과 후학 양성에 힘썼던 일들과 그의 시와 소설이 만난 자리의 깊은 울림이 아닐까. 상록학원은 현재 상록초등학교가 돼 여전히 꿈과 희망을 노래하는 이들의 배움터로 남아 있다. 이것이야말로 상록수이자 심훈 정신의 발현이 아닐까. 한 글자씩 배운 글로 모두가 입을 모아 읽는 ‘그날이 오면’과 ‘상록수’ 그리고 심훈.바닷가 옆 필경사의 자리는 심훈만의 터가 아니라 누구의 말이든 한 글자씩 정성스럽게 받아 적는 모든 손길들이 주인인 곳이다. 누구든 와서 무엇이든 깨우치고 가는 자리, 그리하여 다시 이 자리는 이파리가 푸른 나무 밑에 앉아 어쩌면 아직도 오지 않은 ‘그날’을 헤아리며 하늘의 뜻을 받아 적는 자리인 당진 심훈기념관이다. 소설가 이은선
  • 바이든, ‘푸른 벽’ 세우고 ‘붉은지역 침투’해 이겼다

    바이든, ‘푸른 벽’ 세우고 ‘붉은지역 침투’해 이겼다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의 미 대선 승리는 한편의 역전 드라마였다. 결과적으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초반 승리를 바탕으로 ‘승리 선언’을 한뒤 바이든 후보가 추격해 역전하는 소위 ‘레드 미라지’(붉은 신기루) 현상이 일어날 거라는 세간의 예상대이 맞았다. 하지만 개표 초반 러스트벨트에서 격차가 두 자릿수까지 벌어지면서 사실상 패배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을 정도로 손에 땀을 쥐게 했다. 특히 공화당의 텃밭이었던 애리조나주와 조지아주가 각각 24년, 28년만에 바이든 후보를 택하며 승부가 결정되기까지 닷새 넘는 시간이 걸렸다. 다만 향후 소송전이 남아 있어 완전한 결과를 받기까지는 예상보다 긴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 ●개표 초반 플로리다부터 휩쓸던 트럼프, 푸른벽에 막혀 전날 개표 초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파죽시세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를 구한 건 결국 위스콘신·미시간·펜실베이니아주 등 소위 ‘푸른 벽’(blue wall)이었다. 2016년 트럼프 대통령에게 승리를 빼앗기기 전까지 민주당의 텃밭으로 불렸던 곳이다. 개표 첫날인 3일(현지시간) 밤 북부 러스트벨트 3개주(위스콘신·미시간·펜실베니아)는 모두 10%포인트 이상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앞섰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우세한 시골지역에서 먼저 개표를 빠르게 진행하면서 격차는 더욱 커졌다. 사전투표(우편·현장조기투표)가 워낙 많았기 때문에, 도심 지역은 개표가 늦을 수밖에 없었다. 선거에 앞서 많은 전문가들이 이 지역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초반에 이기다 역전되는 ‘레드 미라지’(붉은 신기루) 현상을 예상했지만, 이런 판단이 틀렸다는 때이른 판단이 나올 정도의 큰 격차였다. 이날 심야회견에서 바이든 후보는 “시간이 걸려도 우리가 이긴다”고 주장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승리 선언’을 했다. 하지만 4일 새벽 바이든 후보는 위스콘신을 시작으로 아침에 미시간마저 역전했고, 다시는 우위를 내주지 않았다. 펜실베이니아에서 추격 속도는 좀 늦었지만 결국 1%포인트 안으로 격차를 줄인 뒤 역전했다.트럼프 대통령이 제조업 부활과 일자리 확대를 공약으로 2016년 이겼던 러스트벨트의 탈환은 한 가지 원인으로 설명하기 힘들다. 우편투표로 청년 및 유색인종의 참여가 늘었고, 제조업 노조를 집중공략한 바이든 캠프의 전략도 주효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폴리티코는 “이들은 흑인 인구가 많은 지역이기 때문에 흑인시위를 지지한 바이든 후보가 표를 더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인근 미네소타주에서 벌어진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촉발된 흑인시위가 위스콘신의 제이컵 블레이크 사건으로 이어진 탓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공화당의 뼈를 때린 애리조나, 위스콘신 그리고 네브래스카 러스트벨트의 푸른 벽이 부활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북진을 막았다면, 바이든 후보 입장에서 애리조나주와 조지아주는 소위 적진을 빼앗아 승리를 안은 곳이다. 아직 개표가 완료되지 않았지만 근소한 차이로 앞서고 있다. 일부 미 언론은 애리조나의 경우 이미 바이든 승리 지역으로 선언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당일 밤 보수성향의 폭스뉴스가 애리조나를 바이든 후보의 승리로 분류하자 노발대발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지난 72년간 민주당은 애리조나에서 1996년에만 한 번 이겼을 정도로 보수성향이 강했다. 피닉스·투손 등 애리조나의 주요 도시가 커지고 일자리가 늘면서 진보색이 강한 인근 캘리포니아에서 청년들이 유입된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매케인 효과’도 언급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숨진 존 매케인 전 공화당 상원의원과 앙숙으로 지내며 독설을 서슴지 않았는데, 매케인은 생전 ‘애리조나의 아들’로 불릴 만큼 지역구에서 두터운 지지를 받던 인물이었다. 바이든 후보는 개표가 진행되면서 공화당의 안방으로 불리는 네브래스카에서도 1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했다. 선거분석기관 ‘538’이 미국 내에서 가장 보수적인 지역으로 꼽았던 곳이다. 이곳과 메인주는 승자에게 선거인단 전체를 몰아주는 구조가 아니다. 주 전체 투표에서 이긴 후보에게 2명을, 하원 선거구 승자에게 1명을 배정한다. 바이든 후보는 이곳의 최대도시인 오마하가 속한 2선거구에서 승리했으며 작지 않은 이변으로 평가됐다. 워싱턴 이경주 특파원 kdlrudwn@seoul.co.kr
  • 롤러코스터 타다 서버린 美 개표 ‘기약없는 분열’

    롤러코스터 타다 서버린 美 개표 ‘기약없는 분열’

    바이든 러스트벨트 역전으로 백악관 눈앞공화당 지역 애리조나·조지아 등도 앞서남은 초경합주 5곳 속도보다 정확성 택해트럼프 소송전에 대비하는 포석도 있는듯우편투표의 중복투표 검사 등도 시간 걸려조지아 등 0.5%포인트 내 격차면 재검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의 미 대선 역전은 한편의 드라마였다. 결과적으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초반 승리를 바탕으로 ‘승리 선언’을 한뒤 바이든 후보가 추격해 역전하는 소위 ‘레드 미라지’(붉은 신기루) 현상이 일어날 거라는 세간의 예상대로 였다. 하지만 개표 초반 러스트벨트에서 격차가 두 자릿수까지 벌어지면서 사실상 패배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을 정도로 손에 땀을 쥐게 했다. 특히 공화당의 텃밭이었던 애리조나주와 조지아주에서 각각 24년, 28년만에 바이든 후보의 승리도 예상된다. 하지만 롤러코스터와 같은 승부 후 종착점에 다가서자 개표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다. 여러 주에서 초접전을 벌이면서 재검표도 예상된다. 또 트럼프 대통령의 불복 선언과 함께 소송전에 나서면서 백악관의 주인을 가리는데 긴 시간이 걸릴 가능성도 있다. 미국 상회의 분열과 혼란이 더욱 깊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개표 초반 플로리다부터 휩쓸던 트럼프, 푸른벽에 막혀 전날 개표 초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파죽시세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는 위스콘신·미시간주 등 소위 ‘푸른 벽’(blue wall)을 부활시키며 반격의 기회를 잡았다. 2016년 트럼프 대통령에게 승리를 빼앗기기 전까지 민주당의 텃밭으로 불렸던 곳이다. 개표 첫날인 3일(현지시간) 밤 북부 러스트벨트 3개주(위스콘신·미시간·펜실베니아)는 모두 10%포인트 이상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앞섰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우세한 시골지역에서 먼저 개표를 빠르게 진행하면서 격차는 더욱 커졌다. 선거에 앞서 많은 전문가들이 이 지역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초반에 이기다 역전되는 ‘레드 미라지’(붉은 신기루) 현상을 예상했지만, 이런 전망이 틀린 것 아니냐는 때이른 판단이 나올 정도의 큰 격차였다. 하지만 4일 새벽 바이든 후보는 위스콘신을 시작으로 아침에 미시간마저 역전했고, 다시는 우위를 내주지 않았다. 펜실베이니아에서 추격 속도는 매우 늦었지만 결국 0.4%포인트로 역전에 성공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조업 부활과 일자리 확대를 공약으로 2016년에 예상외의 승리를 거뒀던 러스트벨트의 탈환을 한 가지 원인으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우편투표로 청년 및 유색인종의 참여가 늘었고, 제조업 노조를 집중공략한 바이든 캠프의 전략도 주효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폴리티코는 “흑인 인구가 많은 지역이기 때문에 흑인시위를 지지한 바이든 후보가 표를 더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렇게 볼때 인근 미네소타주에서 벌어진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촉발된 흑인시위가 위스콘신의 제이컵 블레이크 사건으로 이어지며 흑인 표심을 규합했을 가능성이 있다.●트럼프의 뼈를 때린 애리조나, 위스콘신 그리고 네브래스카 바이든 후보가 보수성향으로 분류되는 애리조나주와 조지아주에서 승리를 확정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가장 아픈 부분이 될 수 있다. 뉴욕타임스도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당일 밤 보수성향의 폭스뉴스가 애리조나를 바이든 후보의 승리로 분류하자 노발대발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지난 72년간 민주당은 애리조나에서 1996년에만 한 번 이겼을 정도로 보수성향이 강했다. 피닉스·투손 등 애리조나의 주요 도시가 커지고 일자리가 늘면서 진보색이 강한 인근 캘리포니아에서 청년들이 유입된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매케인 효과’도 언급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숨진 존 매케인 전 공화당 상원의원과 앙숙으로 지내며 독설을 서슴지 않았는데, 매케인은 생전 ‘애리조나의 아들’로 불릴 만큼 지역구에서 두터운 지지를 받던 인물이었다. 바이든 후보는 공화당의 안방으로 불리는 네브래스카에서도 1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했다. 선거분석기관 ‘538’이 미국 내 가장 보수적인 지역으로 꼽았던 곳이다. 이곳과 메인주는 승자에게 선거인단 전체를 몰아주는 구조가 아니다. 주 전체 투표에서 이긴 후보에게 2명을, 하원 선거구 승자에게 1명을 배정한다. 바이든 후보는 이곳의 최대도시인 오마하가 속한 2선거구에서 승리했으며 작지 않은 이변으로 평가됐다.●바이든 9부 능선, 하지만 초접전으로 주법상 재개표 불가피한 곳도 승부를 가를 곳은 이제 5개 주로 좁혀졌다. 6일(현지시간) 현재 승부가 아직 미정인 곳은 네바다, 펜실베이니아, 노스캐롤라이나, 조지아 등 4개 주다. 언론사 일부는 바이든 후보의 승리를 선언했고 다른 곳들은 경합주로 둔 애리조나도 아직은 변수다. 바이든 후보의 승리로 끝났지만, 큰 폭의 리드를 헌납하고 역전당한 트럼프 캠프가 각종 소송을 제기하고 있는 위스콘신과 미시간도 소송 변수가 있다. 이중 가장 선거인단 수가 많은 펜실베이니아(20명)는 오는 10일까지 잠정투표에 대한 유효성 검증을 한다. 유권자 명부에 없는 미국 시민이 투표소에 와서 일단 투표를 한 뒤 추후 선관위가 유효성을 판단하는 과정이다. 또 우편투표를 6일까지 접수했기 때문에 바이든 후보가 불과 0.4%포인트 차이로 이기는 상황에서 승리 선언은 힘들다. 게다가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펜실베이니아는 주법상 양측 후보의 격차가 0.5%포인트 미만이면 자동으로 재검표를 해야 한다. 재검표 시한은 오는 24일까지다. 조지아주 역시 해외 부재자투표와 잠정투표가 모두 개표되지 않았다. 이곳 역시 바이든 후보가 트럼프 대통령을 불과 0.1%포인트(약 4000표) 앞서고 있다. 조지아 주법은 득표율 격차가 0.5%포인트 미만이면 재검표를 요구할 수 있다. 위스콘신은 1%포인트 미만이면 재검표를 요청할 수 있고 바이든 후보는 이번 대선에서 0.8%포인트로 이겼다. 트럼프 캠프는 이미 재검표를 요구했다. 반면 애리조나는 양측의 격차가 0.1%포인트 보다 적을 때만 재검표를 한다. 줄곳 격차가 0.7~1.0%포인트 가량 나고 있어 의무적인 재검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미시간은 양측이 2000표 이하라면 자동으로 재검표를 실시한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바이든 후보는 10만표 이상으로 이겼다.●종착점 오자 갑자기 느려진 개표 속도 선거 당일 플로리다가 속도감 있게 개표해 트럼프 대통령의 손을 들어 준 것과 반대로 사흘째인 5일부터 개표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다. 속도보다는 정확성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각종 소송전을 대비하는 포석도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또 1억명 이상 참여한 우편투표는 대면투표보다 개표 속도가 늦다. 에런 포드 네바다주 검찰청장은 지역방송인 KTNV에 “유권자 모두가 사전 우편투표 용지를 받았고 우편투표는 중복 투표를 확인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며 “투표 부정을 막기 위해 서명 검증, 바코드 스캔 등 확인 절차가 많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네바나는 11월 10일까지 노스캐롤라이나와 펜실베이니아는 각각 11월 12일, 11월 6일까지 선거당일 전 소인이 찍힌 우편투표를 계속 받는다. 마지막 한 표까지 개표를 완료하는데 시간이 더 든다. 트럼프 대통령의 소송은 선거 결과를 뒤집기는 힘들다는 분석이 대체적이다. 하지만 사회 혼란을 부추기고 승자 도출 시기를 늦추는 효과는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아직까지 트럼프 캠프의 소송은 대체적으로 기각되는 분위기지만, 향후 수많은 소송은 제기될 예정이다. 최악은 우편투표의 신뢰성에 금이 가고 투표 결과에 대한 불복 소송으로 이어지면서 특정 주에서 선거인단이 확정되지 않는 상황이다. 12월 14일 대통령 선거인단 투표까지 소송이 안 끝나면 특정 주는 당선인을 확정하지 못할 수 있고 이런 곳은 각 주법에 따라 선거인단을 정하게 된다. 통상 주정부와 의회가 관여하는데 양측의 정치색이 다르다면 충돌은 불가피하다. 선거인단이 결정되지 않거나 선거인단에 대한 합법성이 문제가 되는 주가 나온다면 소위 매직넘버인 270표를 얻는 후보가 도출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면 하원이 대통령을, 상원이 부통령을 각각 선출한다. 하원은 의원 모두가 투표하는 게 아니라 각 주마다 다수당이 1표씩를 갖게 된다. 이런 독특한 셈법 때문에 민주당이 하원의원 숫자가 많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이 유리해질 수 있다. 워싱턴 이경주 특파원 kdlrudwn@seoul.co.kr
  • [조영학의 번역과 반역] ‘꽃며느리밥풀’에 대한 보고서

    [조영학의 번역과 반역] ‘꽃며느리밥풀’에 대한 보고서

    한국 야생화에 재미있는 이름이 많다. 열매가 갈고리처럼 달라붙어서 ‘도둑놈의갈고리’, 지린내가 나니까 ‘쥐오줌풀’, 열매가 개의 성기를 닮았다고 ‘개불알풀’…. 그 밖에 ‘광릉요강꽃’, ‘도둑놈의지팡이’, ‘개털이슬’, ‘족도리풀’들도 특이한 모양이나 특성을 따라 이름을 붙인 경우다. 사연을 담은 이름도 적지 않다. 사위질빵은 사위를 향한 장모의 사랑이 담뿍 담겨 있다. 사위가 처가에 와서 나무를 하러 가는데 너무 많이 지면 힘들다며 장모가 이 덩굴식물로 질빵을 만들어 주었다. 사위질빵은 쉽게 끊어지는 특성이 있다. 아름다운 미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며느리밑씻개는 잎과 줄기에 작고 딱딱한 가시가 촘촘히 나 있는 풀이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미워해서, 볼일을 본 뒤 휴지 대신 밑을 닦으라고 이 풀을 내주었단다. 이름만으로도 며느리에 대한 증오가 배어나오는 듯하다. 이현세의 만화, ‘며느리밥풀꽃에 대한 보고서’에 등장하는 꽃도 며느리밑씻개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옛날에 며느리가 밥이 잘 됐나 보려고 밥풀 몇 알을 입에 넣다가 시어머니한테 들켰다.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밥을 훔쳐 먹는다며 때려 죽였는데 그 후 며느리 무덤가에 밥풀을 닮은 꽃이 피었다. 실제로 꽃을 보면 피처럼 붉은 꽃잎 한가운데 밥풀 무늬 두 개가 선명하다. 유형은 비슷하건만, 사위질빵은 장모의 사랑을, 며느리밑씻개 등은 시어머니의 서슬 푸른 증오를 담고 있다. 백년손님 사위는 씨암탉까지 잡아 고이 모시고, 며느리는 몸종 정도로 여기던 풍습을 꽃 이름에서까지 확인하는 듯해 늘 씁쓸한 기분이다. 얼마 전 태백산에서 기생꽃을 보았다. 기생꽃은 멸종위기 2급의 희귀식물이다. 이 꽃 역시 모양 때문에 이름을 얻었는데, 희고 고운 꽃이 기생의 고운 얼굴이나 장신구를 닮았다는 것이다. 나는 귀한 꽃을 만난 기쁨에 SNS에 꽃 사진을 올리고 이름까지 달아 주었다. 얼마 후 한 여성이 댓글을 달았는데 창피하게도 난 그 댓글을 읽고 나서야 기생꽃이라는 이름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름 성차별이나 여성비하 언어에 민감한 편이라 여겼건만 나 역시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당시의 댓글은 “꽃 이름에 꼭 이렇게 여성비하 개념이 들어가야 할까요?”였다. 꽃 이름 갖고 웬 호들갑이냐 할지 몰라도, 호칭은 부르거나 불리는 대상의 존재를 규정하므로 모든 차별의 기본이라 할 수 있다. 며느리가 남편 식구들을 서방님, 도련님이라고 부르는 게 온당치 않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노예제 시대에 흑인들을 학대하고 죽이고 강간하고 매매하는 게 가능했던 이유도, 노예를 사람이 아니라 가축으로 분류했기 때문이라 들었다. 꽃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기 위해서라지만 그 이름이 “잔치나 술자리에서 노래나 춤, 풍류로 남성의 흥을 돋우는 일이 직업인 여성”을 뜻한다면 여성 입장에서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며느리밑씻개의 어원은 일본 이름 “마마코노시리누구아”에서 비롯했다. 마마코는 의붓자식이란 뜻이고 시리누구아는 밑씻개를 뜻한다. 일본에서 왜 “의붓자식”이 미움의 대상인지 모르겠으나, 그걸 우리말화하면서 작명자가 굳이 며느리로 바꾸었다면 그 “남자”가 평소 여성을 어떤 존재로 여겼는지 짐작할 만하다. 우리 삶 속에는 여전히 며느리밥풀꽃, 며느리밑씻개 같은 차별의 언어들이 차고도 넘친다. 낙엽을 화냥기에 비유하고 ‘인어상 찌찌’ 운운하는 글을 쓰거나 읽고도 아무렇지 않고 심지어 박수갈채를 보내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기생꽃과 마찬가지로, 여성의 아름다움을 칭송했는데 무슨 문제냐는 투다.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는 퍼포먼스가 유행인가 보다. 거대담론에 대한 문제제기도 좋지만 내 주변에, 내 생활에, 내 의식ㆍ무의식 속에 남아있는 차별의 잔재도 한번쯤 돌아볼 일이다. 그런데 이현세는 며느리밥풀꽃이라는 이름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을까. 그 꽃의 정확한 이름은 꽃며느리밥풀이다.
  • 승려의 발걸음처럼 고요한

    승려의 발걸음처럼 고요한

    중국과 베트남, 미얀마, 캄보디아, 태국으로 둘러싸인 인도차이나반도의 내륙 국가 라오스. 국토 75%가 푸른 숲으로 덮여 있고, 인구 95%가 불교를 믿는 불교국가다. 바다를 면하지는 않았지만 메콩강이 남북을 관통해 흐르며 사시사철 쌀과 생선, 열대과일을 생산해 낸다. 14세기 란상 왕국의 수도였던 루앙프라방은 비엔티안으로 천도한 이후 평화로운 고도(古都)로 남았다. 시골 버스터미널 같은 국제공항에서 빠져나오면 공항보다도 작은 루앙프라방 시내가 나온다. 유난히 서양인 여행자가 많고, TV프로그램 덕분에 한국인도 급격히 늘었다. 젊은 배낭여행자들은 태국 치앙마이나 치앙라이, 베트남 하노이에서부터 열두 시간 넘게 달려 이곳까지 온다. 지갑 사정이 넉넉하지 않더라도 한 달 살기가 가능하다는 이유가 클 것이다. 프랑스 식민지 시대가 남긴 콜로니얼양식의 건축물 사이로 황금빛 지붕을 인 사원이 드러난다. 두 문화가 혼합된 독특한 풍경 덕분에 루앙프라방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1995)돼 있다. 프랑스 영향으로 빵 맛도 훌륭하다. 노천시장은 두 얼굴을 가졌다. 아침엔 갖가지 과일과 채소, 생선을 늘어놓고 현지인의 발길을 붙든다. 밤이면 소수 부족들이 직접 만든 수공예 제품을 들고 나와 여행자의 지갑을 얄팍하게 한다. 뭐니 뭐니 해도 루앙프라방의 풍경을 만들어 내는 것은 황금빛 사원과 오렌지색 장삼을 걸친 승려들, 그리고 탁발식이다. 새벽 5시, 눈곱을 겨우 떼고 거리로 나가 대나무를 엮은 밥통(팁카오)에 찹쌀밥을 담아 시주하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앉았다. 밥을 한 줌 집어 수백 미터 이어지는 승려들의 바구니에 재빨리 집어넣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손이 마음처럼 빨리 움직이지 않아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게 공덕을 쌓는 기회라면 더욱 정진해야겠다 싶어 정신을 다잡았다. 앞에 선 노승부터 뒤쪽 동자승까지 지나가면 의식이 끝난다. 승려들은 그저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음식이 넘치면 아이들이나 여행자에게도 초콜릿이나 사탕 같은 것을 한 움큼 쥐어준다. 지나가는 개도 운이 좋으면 하루치 음식을 넉넉히 얻어먹는다.루앙프라방에는 사원만 80개이고, 승려는 1000명이 넘는다. ‘왓’이 붙은 건축물은 모두 사원이다. 루앙프라방 이름 자체가 ‘신성한 황금 불상의 도시’라는 뜻이다. 흉내에 가깝지만 루앙프라방에서 탁발식을 직접 해보면 종교 의식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108배를 반복하다 보면 무심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는 스님의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좋다와 나쁘다, 옳다와 그르다처럼 마음을 둘로 나누지 않게 된다는 뜻이었다. 믿거나 말거나 하는 마음으로, 사실은 건강에 좋다는 말에 혹해 108배를 열심히 해본 적이 있다. 종교를 믿기에 의식을 행하는 게 아니라, 의식을 반복하다 보니 믿음의 싹이 튼다는 걸 조금 깨달았다. 매일 새벽, 고요하게 이뤄지던 탁발식이 루앙프라방이라는 나무를 단단히 붙들어 맨 뿌리가 아닐까 싶다. 김진 칼럼니스트·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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