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푸른역사
    2026-03-07
    검색기록 지우기
  • 비핵화
    2026-03-07
    검색기록 지우기
  • 토레스
    2026-03-07
    검색기록 지우기
  • 취임식
    2026-03-07
    검색기록 지우기
  • 지원군
    2026-03-0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75
  • 문학 속 서울공화국… 욕망으로 지은 도시

    문학 속 서울공화국… 욕망으로 지은 도시

    정부가 19일 발표한 3기 신도시 조성 계획은 ‘서울로의 접근성’에 방점이 찍혀 있다. 정부는 신도시에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를 새로 깔고 지하철을 연장하며 간선급행버스체계(BRT)를 신설해 “30분 내 서울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역설적이게도 이번 계획은 서울의 위상을 다시금 보여 준다. 서울 쏠림 현상을 막기 위한 유인책으로 서울에 가기 쉽다는 점을 강조하니 말이다.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은 ‘서울공화국’이다. 도대체 서울은 언제부터, 어떻게 이런 위상을 갖게 된 것일까.신간 ‘서울 탄생기’는 1960~70년대 서울의 변화상을 추적하며 해답을 내놓는다. 다만 이를 바라보는 도구가 문학작품인 점이 독특하다. 저자인 송은영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학술연구교수는 이호철 ‘서울은 만원이다’, 김승옥 ‘무진기행’, 최일남 ‘서울의 초상’, 최인훈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박태순 ‘정든 땅 언덕 위’, 박완서 ‘낙토의 아이들’,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등 작가 16명의 작품 110편으로 서울의 변화를 분석한다. 저자는 1960년대 초반 이후 경제성장과 도시개발이 본격화하면서 과거와의 ‘단절’과 ‘망각’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빠른 변화가 지금 서울을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우선 1960년대 초반은 혼란을 거쳐 현대 도시 서울을 형성한 법적·행정적 토대가 마련된 시기였다. ‘무진기행’에서 하인숙은 당시 젊은이들의 서울 열망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이호철의 ‘서울은 만원이다’에서 여주인공이 보여 주는 서울 생활은 혼란 그 자체다. 사기꾼이 득실거리고, 내 몸 하나 제대로 누일 곳도 없다.1962년 1월 도시계획법과 건축법에 이어 서울은 1966년 현대 도시로 나아간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1~1966년)의 효과가 슬슬 나타난 지점이기도 했다. 1965년 한·일회담 결과로 한국에 돈이 풀리며 경기가 살아났고, 같은 해 베트남 전투부대 파병과 건설사업 참여 등으로 서울은 고도성장의 기반을 마련한다. 이를 진두지휘한 이는 1966년 4월 부임한 ‘불도저’ 김현옥 서울시장이다. 군인 출신인 그는 서울을 현대 도시로 만들기 위해 도시개발을 무자비하게 밀어붙인다. ‘서울은 만원이다’는 그를 가리켜 ‘부산 거리를 의욕적으로 밀어버리고 계속 두 눈을 부릅뜨고 서울로 전임해 온 젊은 시장’으로 묘사한다. 그는 400여동의 시민아파트를 짓고, 봉천·신림·상계동 등지에 거대한 불량지구를 만든다. 판자촌을 쓸어버리려 서울 외곽 변두리 지역인 경기도 광주로 철거민을 강제 이주한다. 결과적으로 사대문 안에 머물러 있던 서울의 실질적 경계는 확장됐고, 현재 서울 전체의 모습도 이때쯤 형성된다. 그러나 이런 급작스런 도시 개발은 부작용을 부른다. 1970년 서울 마포구 와우아파트 붕괴사고, 1971년 광주 대단지 소요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사건에 관해 박태순은 ‘정든 땅 언덕 위’의 ‘외촌동’이라는 가상 마을에서 이를 구체적으로 묘사한다.김 시장은 물러났지만, 서울 개발은 강남으로 이어진다. 포화 상태에 이른 강북 인구를 분산시킬 신시가지인 강남은 전쟁이 나면 또다시 한강을 건너지 못하는 시민들이 생길까 하는 걱정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부동산 투기를 통해 개발자금과 정치자금 등을 마련해야 했던 권력층의 탐욕이 있었다. 특히나 1972년과 1973년은 강남과 강북을 가르는 중요한 지점이다. 1972년 4월 서울시가 강남을 발전시키고자 강북을 특정시설 제한구역으로 설정하며 강남은 뜨고 강북은 쇠락한다. 당시 서울시는 도심부 인구 분산계획의 일환으로 종로구와 중구 전역은 물론 용산구와 마포구의 기존 시가지 전역 등에 백화점, 도매시장, 공장 등 신규 시설을 불허했다. 이듬해에는 강남 지역을 개발촉진지구로 지정한다. 수많은 상업시설이 규제도 받지 않고 특별법 혜택으로 취득세, 재산세 등을 면제해 주는 강남으로 옮겨갔다. 와우아파트 사고 이후 침체했던 아파트 붐이 살아났고, 명문 고교들이 강남에 터를 잡으며 명실상부한 서울의 또 다른 중심으로 자리잡는다. 박완서의 ‘낙토의 아이들’에서는 강을 경계로 생겨나는 강남과 강북의 거리감을 탁월하게 짚어낸다. 1960~70년대 서울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결국 ‘욕망’이라 할 수 있다. 서울을 향한 사람들의 거대한 욕망은 수많은 부작용에도 불구, 지금의 서울을 만든 근원적인 힘이다. 서울은 주택, 교육, 취업, 여성의 권리 등 현재의 문제가 집약된 곳이자, 제대로 된 자기성찰 없이 근대화에 매진해 온 한국 현대사 현장 자체이기도 하다. 꿈틀거리는 욕망으로 가득한 서울에서 우리는 이렇게 또 하루를 살아간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홀대받았던 그 사건들… ‘한국사 밖의 한국사’

    홀대받았던 그 사건들… ‘한국사 밖의 한국사’

    한뼘 한국사/만인만색연구자네트워크 지음/푸른역사/296쪽/1만 5000원우리의 역사 교육은 국가와 민족 우선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경향을 갖는다. 그 범주 밖의 사람과 행동은 배제되거나 홀대받기 일쑤다. 책은 그 흐름과 달리 새로운 역사 쓰기를 강조하고 있다. 2015년 말 박근혜 정부가 밀어붙인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발한 신진연구자들 모임인 만인만색연구자네트워크의 첫 결실이다. 역사학을 전공한 박사과정·수료생 열세 명이 역사학 대중화 차원에서 기획해 처음으로 세상에 내놨다. ‘한국사 밖의 한국사’라는 부제가 암시하듯 글들은 모두 배제·홀대의 대상이었던 인물과 사건을 재평가한다. 낮은 곳에 위치했던 평범한 사람들, 주류 역사 서술에서 금기시됐던 이들, 같은 국민이었지만 잊혀져간 존재들이 역사의 정면에 새로운 얼굴로 부상한다.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역사 주인공’의 재배치다. 권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감내했던 불합리한 환경과 그 안에서 살아 냈던 삶의 방식들이 흥미롭게 풀어진다. 베트남전쟁 파병 군인의 계급별 경험 차이도 신선하다. 그동안 똑같이 여겨졌던 파병 군인들에 대한 인식을 바꿔 놓는다. 1925년 발생한 예천 형평사 공격사건에선 사회적 약자 사이의 갈등과 반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국가 안보를 강조했던 공장새마을운동과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순응과 저항 사이를 오간 유신시대 사람들의 삶 그 자체다. 역사의 경계에 서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새삼스럽다. 민족사에서 사라졌던 조선족의 조국관 형성 과정, 조선시대 세종의 4군6진 개척 과정에서 북으로 이주했던 조선인들에 대한 인상이 새롭게 각인된다. 글들은 결국 한쪽을 향해 모아진다. “역사 교과서는 역사학, 역사 교육, 국가와 시민의 관계를 모두 반영하는 그 시대의 산물입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김기중 기자의 책 골라주는 남자] 책의 첫인상은 표지라지만…못생겨도 그만입니다

    독서클럽 회원 로렌스는 올림픽을 주제로 한 얼토당토않은 소설을 씁니다. 그렇게 쓴 원고를 들고 경기 파주 출판단지로 향합니다. 어느 출판사도 원고를 받아주지 않자, 로렌스는 학교 선배가 대표로 있는 컴퓨터 전문 출판사에서 책을 냅니다. 내친김에 사진 보정프로그램 ‘포토샵’ 실력을 발휘해 표지를 직접 디자인합니다. 알록달록 무지갯빛 우주 배경에 커다란 눈 결정과 핵폭발 이미지를 조합한 그야말로 ‘골 때리는’ 표지의 ‘욕망의 동토(凍土)´를 냅니다. 이 책 표지를 본 독서클럽 운영자는 망연자실하며 속으로 외칩니다. ‘맙소사. 까치출판사 표지보다 심하잖아!’라고. 포털사이트 다음에 연재 중인 웹툰 ‘익명의 독서중독자들´ 9화 내용입니다. 작가는 미안했던지 웹툰 끝에 이렇게 썼네요. ‘우리는 까치출판사 책들을 사랑합니다.’ 웹툰을 보고 한참을 웃었습니다. 흔히 책 표지를 가리켜 책의 ‘얼굴’이라 부릅니다. 책을 접할 때 가장 먼저 보게 되는 표지가 책의 첫인상을 결정하기 때문이겠죠. 최근 표지는 예쁜 삽화를 넣는 게 유행입니다. 이번 주 신간 가운데 ‘퇴근길엔 카프카를’(민음사)은 지하철 내부에 서 있는 카프카의 모습을 재치있게 삽화로 담았습니다. ‘이런 줄도 모르고 엄마가 됐다’(생각의 힘)는 무인도에서 아기를 안은 채 땀을 흘리는 엄마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제목을 활용한 책도 눈에 띕니다. ‘한국사 한 걸음 더’(푸른역사)는 흰색의 제목을 굵직하게 넣고, 글자 중간에 그림을 알맞게 배치했습니다. 폴 맥어웬의 SF소설 ‘소용돌이에 다가가지 말 것’(허블)은 하늘에 있는 커다란 소용돌이를 그렸는데, 각종 사물은 물론 책 제목마저 구멍에 빨려가는 모습의 삽화가 인상적입니다. 매주 책을 고르며 멋들어진 표지를 보는 일은 재밌습니다. 얼굴만 보고 배우자를 고르지 않듯, 표지만 보고 책을 고르진 않습니다. 1977년 문을 연 뒤 굵직한 외국 유명 과학 서적을 꾸준히 내는 까치출판사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웹툰 댓글에 한 독자가 ‘가시성을 높이고자 제목을 크게 쓰고, 배경은 고대비의 원색계열로 배치하는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얼굴 좀 못생기면 어떻습니까. 내용 충실하면 그만이지. gjkim@seoul.co.kr
  • 무더위 날리는 조선 여성, 조선 무인, 조선 사람들 이야기

    무더위 날리는 조선 여성, 조선 무인, 조선 사람들 이야기

    조선시대를 다룬 신간이 잇따라 출간돼 눈길을 끈다. 조선시대 여성, 조선시대 무인, 그리고 조선시대 특이한 이들을 다룬 책들이다. 조선의 풍속, 행정, 문화, 사람 이야기를 통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조선 시대상을 보여준다. 무더운 여름, 이들의 삶을 살펴보고 당시 시대에 관한 시야도 넓혀보는 것은 어떨까.30여 년간 한국 여성사 연구에 전념한 장병인 충남대 명예교수가 쓴 ‘조선 여성의 삶’(휴머니스트)은 조선시대 혼인, 이혼, 간통, 성폭행을 둘러싼 법과 풍속을 세세하게 살핀 책이다. 그동안 잘못 알려진 인식에 관해 자료로 이를 바로 잡는다. 예컨대 조선시대 이혼에 관해 일제강점기 한국학자 이능화는 ‘조선여속고’에서 “국법에 그 내용이 없다”면서 “사대부 집안 여성이 이혼하려면 왕에게 허락 받아야 한다”고 기술했다. 그러나 저자는 ‘대명률’과 ‘경국대전’ 항목을 들어 반박한다. 이에 따르면 합법적인 이혼을 가리키는 ‘이이’를 비롯해 혼인관계가 사실상 파기된 상황을 가리키는 ‘출처’, ‘기별’, ‘거처’ 등 용어가 사용됐다. 오늘날처럼 부부 합의로 이혼하는 사례를 비롯해 부부 의사와 관계없이 국가가 강제로 부부를 갈라서게 하는 ‘강제 이혼’이 있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저자는 또 조선시대 성폭행의 실상을 들여다보고자 가해자와 피해자의 출신 성분, 범죄 내용, 처벌 양상 등을 신분별로 조선 전·후기를 나눠 상세하게 분석한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일성록’과 재판기록인 ‘추관지’, ‘심리록’ 등을 근거로 113건의 관련 사건을 다룬다. 여기에 드러난 조선시대 강간 범죄의 양상이 생생하다. 저자는 이와 관련 “‘남존여비’ 통념이 형성된 배경에 서구중심주의적 사고, 그리고 아직도 불식되지 않은 식민사관이 자리 잡고 있다”고 주장한다. 가부장은 조선 사회에서만이 아니라 동서양을 막론한 모든 전근대사회에서 공통으로 나타난 현상이었으며,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고 식민사관과 결합하면서 잘못된 인식이 만연했다는 지적이 날카롭다.1600년부터 제도가 폐지된 1894년까지 무관을 뽑는 시험인 무과를 집중적으로 분석한 ‘조선 무인의 역사’(푸른역사)도 눈여겨볼 만하다. 임진왜란 이후 조정에서는 공로가 있는 백성을 위로하려고 이전과 달리 무과를 대규모로 시행했다. 무과에 서얼이나 노비까지 응시했고, 무과에 합격하더라도 무관이 될 수 없었다는 사실은 나름 알려졌다. 실제로 1609년부터 1894년 시행된 무과 가운데 254번의 무과를 치렀는데, 한 번에 100명이 넘는 합격자가 나오기도 했다. 이 중에서는 실제로 활을 쏘지 못하더라도 합격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그 의도 역시 순수하지만은 않았다. 저자는 그럼에도 왜 백성이 끊임없이 무과에 응시했는지에 의문을 던진다. 그리고 ‘실록’ ‘승정원일기’ ‘비변사등록’과 문·무과 합격자 명단을 가리키는 ‘방목’ 자료를 분석해 결론을 얻는다. 피지배층에게 조금씩 문호를 양보하며 체제불만이라는 충격을 흡수했다는 것이다. 저자인 재미학자 유진 Y. 박 펜실베이니아대 교수가 미국에서 2007년 낸 책에 추가 자료를 보완해 국내에 출간했다. 조사를 위해 조선시대 전체 무과급제자 5분의 1에 해당하는 3만 2327명의 무과 급제자를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연구했다. 방대한 자료로 촘촘히 분석한 책이라 가치 있다.안세현 강원대 한문교육과 교수가 낸 ‘傳, 불후로 남다’(한국고전번역원)는 조선 문인이 쓴 ‘전(傳)’ 가운데 교훈을 주거나 흥미있는 글을 뽑아 주제별로 엮은 책이다. ‘전’은 인물의 선행과 미덕을 담은 문체로, 지금으로 치면 ‘전기’에 해당한다. 조선 초반에는 모범이 되는 인물에 관한 전기가 많았으나, 후대로 갈수록 삶의 양상이 복잡해지면서 다양한 인간 군상을 다룬다. 책은 문인들이 글로 남긴 33인의 삶을 풀어내고, 저자가 해설을 붙였다. 이 가운데 우리가 예상치 못한 독특한 삶을 살았던 이들의 이야기는 자못 흥미롭다. 예컨대 전쟁 포로 조완벽은 정유재란 때 왜군에게 잡힌 뒤 포로가 돼 일본으로 끌려간다. 그곳에서 노비로 일하다 주인을 따라 지금의 베트남인 ‘안남국’을 가게 된다. 죽음을 무릅쓰고 간 그가 안남국으로 향하며 항해를 기록한 이야기라든가, 머리가 긴 안남국 사람들을 묘사하는 부분이 아주 흥미롭다. 그는 ‘긴 밧줄에 철추를 매달고 그 밑에 밥을 으깨 붙여서 바다 밑으로 내려 보냈는데, 더러는 곧장 3·4백발 정도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철추 아래 묻어 나오는 흙은 검거나 희었는데, 흙 색깔로 어느 지방인지 분별하였다’고 했다. 안남국 사람에 관해서는 ‘모두 머리를 풀어 늘어뜨리고 맨발로 다녔다. 겨울에도 봄처럼 따뜻해서 맨발로 다녀도 발에 상처가 나지 않았다’고 표현했다. 특히 ‘조선에서 왔다’고 하자 ‘이지봉을 아느냐’면서 안남국 사람이 이지봉의 시를 줄줄 외는 모습도 나온다. 책은 충신, 효자와 같은 전형적인 인물부터 여군자, 기인, 은둔자, 협객, 과학자, 예술가, 골동품 수집가, 귀화인, 득음한 가수, 침술의 대가를 비롯해 다양한 인물을 다룬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는 재미에 더위가 날아갈 듯 하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고양이 맘마(우오노메 산타 지음, 김진희 옮김, 애니북스 펴냄)일본 메이지 시대 미식을 좋아하는 고양이가 주인인 소설가와 함께 거리를 돌며 이 시대 식문화를 소개하는 내용의 만화다. 오뎅, 스시, 잔찬야키 등 전통 음식부터 카레라이스, 오믈렛 등 메이지 시대에 새롭게 탄생한 음식까지 두루 다룬다. 160쪽. 8500원.메뚜기와 꿀벌(제프 멀건 지음, 김승진 옮김, 세종서적 펴냄)사회 혁신 분야의 세계적 대가인 제프 멀건이 자본주의의 속성을 메뚜기와 꿀벌에 비유해 설명한다. 저자는 정보와 권력을 이용해 투기를 일삼는 약탈자를 비유한 메뚜기들이 보상을 받는 부작용을 지적하면서도 꿀벌로 비유되는 창조자 역시 보상을 받는 점을 꼽으며, 자본주의를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바라볼 것을 주문한다. 500쪽. 2만원.밤은 길고, 괴롭습니다(박연준 지음, 알마 펴냄)예술가에 대한 시인의 산문 시리즈인 ‘활자에 잠긴 시’의 네 번째 책. 박연준 시인이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의 일기, 편지 등에서 발견한 그녀의 사랑과 작품에 대한 감상을 시적인 언어로 풀어낸다. 프리다 칼로의 그림 중 10편을 선별해 시인의 개인적인 해석도 곁들였다. 212쪽. 1만 4000원.미속습유(박정양 지음, 한철호 옮김, 푸른역사 펴냄)1887년 초대 주미전권공사 박정양이 미국 현지에서 직접 보고 느낀 미국의 제도와 문물을 44개 항목에 걸쳐 정리한 보고서 형식의 견문기다. 통치구조, 교육제도, 복지시설 등을 다룬 저자의 시선 곳곳에서 부국강병을 위한 고찰이 드러난다. 236쪽. 1만 7500원.시베리안 나이트(박대일 지음, 미래터 펴냄)러시아 현지 여행사 사장이 생생한 시베리아 20년 체험담을 담았다. 저자가 겪은 다양한 에피소드뿐만 아니라 시베리아 한인들의 처절했던 삶의 발자취,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얽힌 재미있는 사연들도 함께 엿볼 수 있다. 여행사 사장답게 바이칼 호수에서 아름다운 지역을 뽑아 다양한 여행 정보를 전달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352쪽. 1만 8000원.
  • 위안부 할머니 ‘증거’로 절규하다

    위안부 할머니 ‘증거’로 절규하다

    끌려가다, 버려지다, 우리 앞에 서다 1·2/서울대 인권센터 정진성 연구팀 집필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 기획/푸른역사/314~320쪽/각권 1만 5000원“열여섯이 되는 1940년 가을 어느 저녁이었다. 친구 집에서 놀다 돌아가는데 일본인 헌병, 조선인 헌병, 조선인 형사가 나를 불러 세웠다. 대구역에서 기차에 태워졌다. 꼬박 사흘간 달려 도착한 곳은 북만주 동안성이었다. ‘군폴’이라는 이름의 커다란 민가에 들어갔다. 스무 명 정도 되는 젊은 조선인 여성들이 있었다. 열네, 다섯 살 되는 사람도 있었다. 매일 20명에서 30명 정도 일본인 군인이 찾아왔다. 나는 매일매일 울었다. 그러나 울어도 울어도 남자들이 왔다.”(‘끌려가다, 버려지다, 우리 앞에 서다’ 본문 109쪽) 1924년 봄 대구에서 태어나 위안부로 끌려갔던 문옥주 할머니의 증언이다. ‘아버지가 길에 떨어진 보석을 줍는 꿈’을 꿔 이름이 ‘옥주’였던 귀한 딸은 영문도 모른 채 지옥을 경험해야만 했다. 문 할머니는 그렇게 북만주에서 1년을 지내고 외출 허가를 받아 가까스로 한국으로 도망쳤다. 1년 뒤 “일본군 식당에 일하러 가자”는 친구들을 따라 1942년 7월 마쓰모토라는 조선인 남자의 인솔을 받아 미얀마 랑군 만달레이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군인은 그와 친구들을 보고 불쌍하다는 듯 말했다. “너희들 속아서 왔구나. 불쌍하게도. 너희는 잘못 안 거야. 여기는 ‘삐야’(위안소)야.” 울다 지쳐 잠든 밤이 밝자 군인들이 늘어서기 시작했다. ‘다테(‘방패’의 일본어) 8400부대’에 소속된 그녀는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또다시 군인들을 상대해야 했다.‘끌려가다, 버려지다, 우리 앞에 서다’는 문 할머니와 같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16명의 이야기를 모은 사례집이다. 서울시가 2016년 시작한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 관리 사업’의 결과물이다. 책은 위안부 할머니를 ‘나’로 내세워 생생한 경험을 여과 없이 전하는 구술 생애 방식으로 서술했다. 피해자의 증언에 사진과 관련 자료를 덧붙여 고통스러운 경험을 구체화했다.서울대 인권센터 정진성(사회학과 교수) 연구팀은 지난해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과 태국, 영국을 방문해 ‘위안부’ 자료들에 대한 발굴 조사를 펼쳤다. 정 교수는 “자료가 있을 만한 곳을 사전에 조사하고 현지에서 타깃을 좁히는 방식으로 미·중 연합군 공문서, 포로 심문 자료, 기록 사진, 지도 등 300여건의 가치 있는 자료들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책에 수록된 노수복, 문옥주 할머니는 지금껏 ‘증언’만 존재했지만 이번 사례집을 통해 구체적인 증거들도 제시했다. 기존 증언집이 피해 상황을 설명하는 데 초점을 뒀다면, 이번 기록은 피해자들이 끌려가고 귀환하는 과정, 귀환 이후의 삶까지 담았다. 각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동·귀환 경로를 지도로 확정하면서 일본군이 운영한 위안소가 중국, 일본, 싱가포르, 미얀마 등 아시아·태평양 전 지역에 광범위하게 존재했다는 걸 확증했다.책은 정부에 피해 등록을 하지 않은(혹은 ‘하지 못한’) 피해 할머니들 이야기도 포함했다. 이들 가운데 작고한 피해자, 중국에 살면서 국적 회복을 포기했거나 국적 회복 중 작고한 피해자, 뒤늦게 피해를 드러내고 정부 등록 과정을 진행하다 작고한 이들도 수록했다. 배봉기, 홍강림, 하복향 할머니 사례다.고(故) 김학순 할머니에 이어 1991년 12월 정부에 두 번째로 위안부 피해 신고를 한 문 할머니는 “친구들은 위안부였음을 밝힌 나를 비난했다”며 “이를 계기로 친구를 잃었고, 또 친구를 얻었다”고 했다. 위안부였던 사실이 알려지며 주변의 손가락질을 받았지만, 미얀마에서 지내던 당시 저금했던 돈을 일본 정부에서 돌려받기 위한 소송을 하면서, 그리고 일본에 사죄와 배상 요구를 하면서 활동가들과 또 다른 피해자들을 만나 친구가 됐다. 문 할머니는 “위안부 일을 알면서도 친구로 있을 수 있는 사람이 정말 친구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1991년 8월 김학순 할머니가 국내 최초로 위안부 피해를 증언한 후 공식적으로 등록된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는 239명이다. 30일 안점순 할머니가 별세했다. 생존자는 29명이다. 지금이 바로 우리 앞에 서 있는 그들을 돌아볼 마지막 때임은 분명하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사람들은 몰랐다… 든든한 장남, 우리 오빠 ‘이상’

    사람들은 몰랐다… 든든한 장남, 우리 오빠 ‘이상’

    오빠 이상, 누이 옥희/정철훈 지음/푸른역사/348쪽/1만 8500원“‘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1936년에 발표된 소설 ‘날개’를 쓴 작가 이상(본명 김해경·1910~1937)은 자신의 사후 운명을 미리 짐작이라도 한 것일까. 이 소설의 유명한 첫 문장처럼 오늘날 그는 주로 ‘박제된’ 이미지로 기억된다. 여성 편력이 심한 탕아, 제멋대로 산 광기의 예술가, 천하의 난봉꾼…. 비운의 수식어가 곧잘 그의 이름 앞에 놓이는 까닭은 스물일곱에 스러진 그의 생애가 워낙 극적이었기 때문이다. 난해하고 실험적인 작품만큼 이상은 정말 괴짜였을까.시인이자 소설가인 정철훈 작가는 2015년 우연한 계기로 이상의 여동생 김옥희씨의 둘째 아들이자 이상의 조카인 문유성씨 부부를 만나면서 이상의 인간적인 체취를 좇는다. 특히 이상이 여동생 옥희에게 편지글 형식으로 쓴 산문 ‘동생 옥희 보아라-세상 오빠들도 보시오’와 옥희씨가 1962년, 1964년 각각 ‘현대문학’과 ‘신동아’에 쓴 회고기 ‘오빠 이상’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이상은 1936년 8월 가족들 몰래 연인과 함께 만주로 떠난 옥희에게 보내는 글에서 동생의 당돌함을 꾸짖기는커녕 앞날을 축복한다. “이왕 나갔다. 나갔으니 집의 일에 연연하지 말고 너희들의 부끄럽지 않은 성공을 향하여 전심을 써라. 패잔한 꼴이거든 그 벌판에서 개밥이 되더라도 다시 고토를 밟을 생각을 마라”라며 옥희의 결연한 의지를 독려하는가 하면 혹시나 여동생이 남겨진 가족에 대한 죄책감을 가질세라 “네가 나갔고 작은오빠가 나가고 또 내가 나가버린다면 늙으신 부모는 누가 지키느냐고? 염려 마라. 그것은 맏자식 된 내 일이니 내가 어떻게라도 하마”라며 안심시킨다.옥희씨 역시 천하의 탁객이요 탕아로 알려진 오빠를 삐딱하게 바라보는 세상에 변명한다. “곧 돈을 벌어서 어머니를 편안히 모시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던 큰오빠”이자 “권태로운 삶에 완구 없는 촌아들의 유희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신에게 빌던 오빠”는 “그 누구 못지않은 동양의 착실한 모럴리스트”였다고. 더불어 책은 문유성씨의 증언을 토대로 생전에 아들을 잘 챙겨주지 못한 데 대한 죄의식을 가지고 산 이상의 어머니 박세창 여사, 그리하여 옥희씨와 아들 문유성씨가 평소 이상에 대해 함구하고 살 수밖에 없었던 연유, 이상과 똑 닮은 옥희씨의 막내아들 문내성씨가 남긴 일기를 소개한다. 일간지 기자 출신의 저자는 문유성씨 부부의 증언과 더불어 ‘지주회시’에 등장하는 인물 오(吳)의 실제 주인공이자 보성고보 후배인 문종혁이 쓴 산문, 문학 친목단체인 ‘구인회’에서 함께 활동한 조용만의 회고기 등 실증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인간 김해경을 다시 꿰어 맞춘다.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며 “가문의 일족이었던 이상의 혈관을 흐르던 독을 해독하고 부디 평온을 가져다주길 염원했다”고 말한다. 이상의 본모습을 재조명하는 동시에 가족들이 보낸 질곡의 세월을 위로하는 글인 셈이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무력한 지식인과 당당한 기생의 사랑

    무력한 지식인과 당당한 기생의 사랑

    화중선을 찾아서/김진송 지음/푸른역사/432쪽/1만 7900원1923년 ‘시사평론’에 실린 기생 화중선의 글 ‘기생생활이 신성하다면 신성합니다’가 식민지 조선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다. 화중선은 글에서 “남성을 성적 노리개로 삼아 남성 중심 사회를 무너뜨리려 한다”며 위선적이고 차별적인 당대 지식인들에게 일갈한다. 한국 근현대 문화를 연구해 온 저자는 이 글을 화두로 삼아 식자층이면서도 할 일이 없는 ‘나’와 기생 화홍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를 엮는다. 소설 속 화자 ‘나’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당대 지식인 사회의 풍경과 기생의 문화적·사회적 의미도 생생하게 전해져 역사교양서로도 읽힌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식민 굴욕 겪은 조선인, 무의식에 남은 ‘불안’

    식민 굴욕 겪은 조선인, 무의식에 남은 ‘불안’

    식민지 트라우마/유선영 지음/푸른역사/388쪽/2만원 조선 사람들은 식민지라는 공동체에서 치욕스러운 역사를 경험한 ‘레 미제라블’(비참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일제와 서구 열강에 의한 굴욕이 일상화되면서 자존감, 인격이 훼손되는 것은 물론 정체성을 부정당하는 끔찍한 시간을 견뎌야 했다. 식민 지배 경험이 아니었다면 겪지 않았을 정신의 상흔은 민족과 역사의 심연에 켜켜이 쌓여만 갔다. 과연 식민지 경험이 조선인들에게, 현재 한국 사회에 남긴 상처는 얼마나 깊은 것일까.신간 ‘식민지 트라우마’는 식민 지배를 정치적 억압, 경제적 착취, 사회적 불의의 역사가 아닌 민족이 겪은 ‘감정’들로 이루어진 역사로 바라본다. 장기간 모욕과 폭력에 노출된 조선인들은 논리가 결여된 복합적인 감정에 사로잡혔다. 일본의 근대성을 접한 뒤 일본인을 경외하게 된 조선인들은 어쩔 수 없는 힘의 차이를 자각하면서 스스로 약자, 야만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만다. 그리하여 근대성은 과거, 전통, 역사를 부정하고 파괴하면서까지 힘써 도달해야 하는 맹목적인 목표가 되기에 이른다. 자기 주도권을 상실하고 모욕감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이민족을 향해 분노와 공격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일본인이 조선인을 개돼지처럼 여기듯 조선인들은 중국인을 업신여기고 홀대했던 것이다. 이처럼 비교를 통해 우위를 확인하는 나르시시즘은 조선인들이 살아가는 힘이었기 때문이다. 또 그들은 양복을 입고 영화를 보고 영자신문을 주머니에 꽂는 등 서양 문물을 숭배하며 자기 존재를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근대성에 대한 트라우마는 결국 근대성의 성취를 통해서만이 치유될 수 있었던 현실적 한계 탓이다. 저자는 각종 신문과 잡지, 책 등의 자료에서 얻은 구체적인 사례를 수집해 식민지 당시의 다양한 풍경을 꼼꼼히 그려낸다. 저자는 그간 우리가 미처 몰랐던 식민사회 조선인의 생생한 민낯을 바라보는 일은 현재를 직면하기 위한 통과의례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은 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난 후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빠른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성취했지만 여전히 알 수 없는 불안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인종차별과 식민주의에 맞선 사상가인 프란츠 파농이 식민지의 민족문화를 복원하는 것이야말로 완전한 탈식민화라고 했듯이 저자는 식민지민의 피부 밑에 서린 감정을 온전히 파악해야 한국 사회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뉴스 전에 책이 있었다] 로드킬, 야생동물의 숙명 아니다

    [뉴스 전에 책이 있었다] 로드킬, 야생동물의 숙명 아니다

    최악의 가뭄은 사람뿐 아니라 야생동물들에게도 큰 시련이다. 먹이가 없어 인가로 내려왔던 야생동물들이 이번에는 가뭄에 마실 물이 없는 고초를 겪고 있다.문제는 인가로 내려왔던 동물들이 고스란히 삶터로 돌아가지는 못한다는 사실이다. 오가며 로드킬을 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최근 경남 창원에서 멸종위기동물 1급인 수달이 잇달아 로드킬에 희생되었다.그런가 하면 야생생물보호법에 따라 포획이 금지된 두꺼비들이 난개발로 인해 곳곳에서 서식지를 잃고 로드킬당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얼마 전까지 논이었던 곳에서 편안했던 두꺼비들이 갑자기 들어선 거대한 건물 숲에서 갈 곳을 잃어버리고 길가에서 죽어가고 있다. 사실 난개발로 인한 동물들의 피해는 어제오늘의 문제만은 아니다. 조선시대에도 난개발이 줄을 이었고, 동물들은 그때마다 피해를 입었다. 한국교원대 김동진 교수의 ‘조선의 생태환경사’(푸른역사)는 생태환경의 변화가 촉진한 조선의 시대상을 조명하면서, 갖가지 동물들의 수난사도 제법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조선 건국과 함께 가장 큰 화를 입은 것은 호랑이다. “백성은 하늘이었고, 백성이 하늘로 삼는 것은 먹을거리”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중농정책을 추진한 조선은 농지를 늘리는 일에 많은 공을 들였다. 대개의 황무지와 산림천택(山林川澤)은 논밭으로 변했다. 산림이 논밭으로 변하자 호랑이는 안방을 잃어버렸고, 결국 민가로 내려와 가축을 잡아먹는 등 민초들의 삶에 피해를 주었다. 조선이 건국 초기부터 포호정책(捕虎政策)을 실행한 이유인데, 죽어서 남긴 가죽이 고가에 팔리자 무분별한 사냥도 횡행했다. 그렇게 서서히 한반도의 호랑이는 절멸의 길을 걷게 되었다.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인 호랑이가 이 정도라면, 여타 동물들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세조 때부터 성종 무렵까지 한번에 1000여 마리를 사냥할 수 있었던 꽃사슴은 17세기 이후 거의 사라졌다. 말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말은 군사적 필요와 교통수단 확보를 위해 대개 국가에서 관리했는데, 1만∼10만 마리로 늘고 줄기를 반복했다. 일제강점기에도 최소 3만에서 최고 8만 마리를 유지했지만, 이후 교통수단의 발달과 농기계 등의 도입으로 개체 수가 확연히 감소했다. 조선시대 중농정책이 모든 동물을 죽음의 길로 내몬 것은 아니다. 노동력을 제공한 소는 15세기 초 2만∼3만 마리에 불과했는데, 18세기 후반에는 무려 100만 마리 이상으로 늘어났다. 늘어났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역시 인간의 탐욕이 원인이었다. 산림천택 중 천택, 즉 내와 못 주변도 농지로 만드는, 이른바 ‘무너미’ 땅 개간이 역효과를 낳았다. 습한 토양 조건에서 각종 해충이 생겨나면서 동물과 인간에게 전염병을 옮겼던 것이다. 실록에 따르면 숙종 33년에 함경도에서만 홍역으로 “1만 수천 명”이 죽었다.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면 사람이나 동물이나 죽는 것은 정해진 일이다.조선시대나 우리가 사는 21세기나 인간의 탐욕은 언제나 변함이 없다. 어쩌면 우리는 과학기술의 발달 덕에 더 큰 욕망을 맛보고 있을 뿐, 21세기보다 훨씬 궁핍했던 조선시대 사람들의 욕망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인간은 욕망을 통해 한사코 제 주머니 채우는 일에만 관심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전국 도처에서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로드킬이 동물의 숙명이라고 말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라는 착각은 함께 살아가야 할 수많은 생명을 지금도 로드킬로 내몰고 있다. 장동석 출판평론가
  • ‘시험에 목숨 거는 사회’ 과연 공정한가

    ‘시험에 목숨 거는 사회’ 과연 공정한가

    시험국민의 탄생/이경숙 지음/푸른역사/452쪽/2만 5000원한국인은 평생 시험에 웃고 울며 살아간다. 각급 학교 입학과 취업, 승진 등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을 시험에 매달려 사는 게 현실이다. 어떤 이는 시험에 성공해 부와 명성을 누리는가 하면 시험에 실패해 어둡고 불안정한 삶을 잇는 이들도 숱하다. 운명을 크게 좌우하는 그 시험이란 도구는 꼭 필요할까, 없어선 안 되는 것인가. 시험을 보는 일반 시각은 두 부류로 엇갈린다. ‘신분 상승의 합법적 사다리’라며 옹호하는 쪽과 ‘인간 능력을 기억력이나 시험 치는 기술로 평가할 수 없다’는 부정적 입장의 대치가 엄연하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은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적격자를 선발하는 가장 공정한 수단으로 여겨 끊임없이 시험에 빠져든다. ‘시험국민의 탄생’은 시험을 통해 한국 사회를 들여다보고 있어 흥미롭다. 교육철학과 사학을 전공한 저자가 방대한 자료와 10여년간의 연구 결과를 담아 세밀하게 훑어 낸 ‘시험 한국’의 민낯이 생생하다. 고려시대 과거제부터 사법시험 폐지까지 1000년이 넘는 ‘시험의 한국사’를 보면 ‘시험 과잉’의 나라라는 평가가 실감난다. 고려 광종 때 과거시험 도입 이후 조선은 과거시험을 정착시켜 수험 문화를 꽃피웠다. 영어 시험의 예는 아주 대표적인 경쟁의 단편이다. 1894년 갑오개혁을 계기로 일본식 교육과 선발제도가 도입됐고 외국어 능력이 중요하게 여겨졌다. 1920년대 경성제대 예과 입시에서 영어시험을 치른 이후 교원양성시험, 고등고시, 언론사 공채에서도 영어가 필수 과목으로 등장했다. 일제시대 이미 이 땅에서 외국어 능력은 출세의 통로이자 국민을 서열화하는 도구로 자리잡은 셈이다. 해방이 되고 난 뒤에도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시험에 목을 매며 살아오고 있다.‘시험 한국사’를 세밀하게 훑어 낸 저자가 시험에 대해 내리는 점수는 아주 박하다. 평등성 문제와 힘의 불균형이 부정론의 큰 이유다. 국가시험이 확실한 출세 관문이었지만 평등하지 않았음에 주목한다. 여성과 장애인, 시위 경력자처럼 사회경제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이들이 자주 시험에서 배제돼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 부분에서 의·치예과나 법학과처럼 인기 있는 학과 입학생을 추첨으로 배정하는 네덜란드 사례가 눈에 띈다. 저자가 심각하게 파고든 점은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와 결합한 서열화의 문제다. 점수나 총점, 석차, 등급처럼 시험과 관련된 다양한 수치는 사람을 쉽게 서열화하는 편의주의로 쏠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서열과 결합한 능력주의는 개인 노력에 따른 성취를 강조할 뿐 공정성을 위한 국가와 사회의 역할을 외면한다고 저자는 꼬집는다. 우리 주변에서 시험의 폐해를 찾아보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재수는 필수’, ‘시험 사생아’, ‘고시 낭인’이란 말과 그에 얽힌 불편한 실상이 넘쳐난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과 관련된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사례도 회자된다. 공무원시험 준비생(공시생) 25만명의 사회적 비용이 17조원이나 된다는 한 기업연구소의 발표도 새삼스럽지 않다. 한국인은 왜 그렇게 시험에 목을 매고 살아갈까. 저자는 시험공부가 곧 학습인 사회에서 시험은 교육을 대체하는 역할을 해 왔다고 말한다. 시험 없는 사회를 살아 보지 않았던 한국인들은 시험 없이는 공부하는 법도, 사람을 뽑는 방법도 찾지 못한 상황에서 시험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그 과정에서 시험이 국가기관에 의해 손쉬운 통제 장치로 이용된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인공지능 시대 새로운 사회를 구상할 시점에 시험은 해법이 될 수 없다.” 시험 자체의 공정성 담보도 쉽지 않고 시험이 사회의 공정성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저자는 더 많은 권력을 가진 이들일수록 성과주의를 내세우며 평가 무풍지대에서 권력을 즐긴다고 꼬집는다. 그러면서 “이제 시험 없이도 모두가 스스로 성찰하고 함께 제안하고 토론하며 혁신하는 사회를 얘기해 보자”고 매듭짓는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미켈란젤로의 소네트

    [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미켈란젤로의 소네트

    푸른역사아카데미의 미술사 강의를 준비하다 그의 소네트를 보았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미술가인 미켈란젤로(1475~1564)는 조각가이자 화가이고 건축가이며, 300편이 넘는 시를 쓴 시인이었다. 어떤 평론가는 미켈란젤로를 16세기 이탈리아의 가장 뛰어난 시인이라 칭송하기도 하지만, 글쎄. 내가 이탈리아 시에 정통하지 않아 그의 견해에 동조할 수는 없지만, 미켈란젤로가 말년에 썼다는 소네트는 내 가슴을 두드렸다. 내 기나긴 인생의 여정은 폭풍 치는 바다를 지나, 금방 부서질 것 같은 배에 의지해, 지난날의 모든 행적을 기록한 장부를 건네야 하는, 모든 사람이 거쳐 가는 항구에 도달했다네. 예술을 우상으로 섬기고 나의 왕으로 모신, 저 모호하고 거대하며, 열렬했던 환상은 착각에 지나지 않았네. 나를 유혹하고 괴롭혔던 욕망도 헛것이었네. 옛날에는 그토록 달콤했던 사랑의 꿈들, 지금은 어떻게 변했나, 두 개의 죽음이 내게 다가오네. 하나의 죽음은 확실하고, 또 다른 죽음이 나를 놀라게 하네. 어떤 그림이나 조각도 나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네. 이제 나의 영혼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껴안기 위해 팔을 벌린 성스러운 사랑을 향해 간다네. The course of my long life hath reached at last, In fragile bark o’er a tempestuous sea, The common harbor, where must rendered be Account of all the actions of the past. The impassioned phantasy, that, vague and vast, Made art an idol and a king to me, Was an illusion, and but vanity Were the desires that lured me and harassed. The dreams of love, that were so sweet of yore, What are they now, when two deaths may be mine, One sure, and one forecasting its alarms? Painting and sculpture satisfy no more The soul now turning to the Love Divine, That oped, to embrace us, on the cross its arms.조르조 바사리가 쓴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가전’에 나오는 소네트인데, 존경하는 이근배 선생의 번역도 훌륭하지만 내가 감히 번역해 보았다. 한국에서 최초로 바사리의 전기를 (이탈리아어판을 우리말로) 번역해 책으로 펴낸 분은 전문 번역가도, 미술인도 아닌 의사였다. 의과대 교수였던 이근배 선생의 20년에 걸친 노고와 예술 사랑에 이 자리를 빌려 경의를 표하고 싶다. 이근배 선생 같은 분이 진짜 영웅이다. 이근배 선생 같은 분이 더 나타나야 한국의 문화가 살고 나라가 산다. 이탈리아어를 몰라서, 미국의 시인 롱펠로의 영역을 다시 한국어로 옮기는 중역이라 좀 부끄럽다. 성실한 시인 롱펠로의 번역을 믿는 수밖에. 두 번째 행은 그냥 약한 배가 아니라 ‘금방 부서질 것 같은’ 돛단배라고 해야 더 의미가 산다. 당대의 이탈리아인들에게 ‘성스러운 사람’이라 불리던 그 대단한 미켈란젤로의 인생도 ‘금방 부서질 것 같은 배’였다니. 살아서 온갖 영예를 누리고, 죽으며 어마어마한 재산을 남기고(나 같은 사람은 천년을 일해도 못 모을 돈이라고 어느 이탈리아 교수가 말했다) 교황 율리우스 2세에 맞서 싸우기까지 했던 위대한 예술가도 나이는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세 번째와 네 번째 행이 번역하기 까다롭다. 지난날의 모든 행적을 기록한 장부를 건네야 하는 항구. “여기를 통과하려면 그들 자신의 과거 행동, 악덕과 탐욕에 대한 설명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뜻이렸다. 이근배 선생은 “선과 악을 영원히 심판받으려고 사람 다 모여드는 항구에 닿았네”(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가전, 탐구당, 1379쪽)라고 의역하셨다. 예술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던 사람이 노년을 맞아 예술을 버리는 심정이 담담하고 절절하게 표현된 시를 보며, 시스티나 예배당의 벽에 그려진 ‘최후의 심판’이 떠올랐다. 균형과 조화라는 르네상스의 이념을 버리고, 뒤틀린 인체로 가득한 화면에서 내가 읽은 건 불안과 두려움이었다.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위기를 맞은 유럽의 기독교 세계. 미켈란젤로는 신앙심이 두터운 가톨릭 신자였다. 사춘기에 메디치의 예술교육을 받은 그는 메디치를 둘러싼 인문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아 “아름다움을 통해 신에게 도달한다”는 신플라톤주의(Neo-Platonic)를 신봉했다. 이상적인 인체의 아름다움을 조각해 신에 이르려 했던 그의 욕망은 종교개혁의 회오리를 지나며 흔들린다. 흔들리는 자신이 두려웠기에, 그는 신앙심을 고백하는 그토록 많은 소네트를 써야 했다. 시를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을 게다. 결혼도 하지 않고, 자식도 없고,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과 추종자들에 둘러싸여 그는 행복했을까. 젊은 날에 자신을 사로잡았던 예술이라는 위대한 환상을 걷어차고, 십자가에 의지하는 그의 모습은 그가 죽기 며칠 전에 조각한 ‘론다니니 피에타’를 닮았다. “예술은 착각이었네. 욕망도 헛것이었네.” 또 다른 시에서 지난날을 회고하며 그는 이렇게 한탄한다. “아- 내 자신에게만 오로지 속했던 날은 하루도 없었네.” 정말일까? 미켈란젤로가 남긴 조각과 그림과 건물들은 그의 것이 아니었나. 그의 엄살을 나는 좀 귀엽게 봐주련다. 예술은 원래 과장이다. 자신의 과거를 송두리째 처절하게 반성하는, 인간적인 참으로 인간적인 그의 태도야말로 르네상스적인 것이다.
  • [책꽂이]

    [책꽂이]

    지민의 탄생(김종영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정치와 정책 관련 지식들을 만들고 적용하는 과정에서 시민의 참여 폭을 넓히는 ‘지식민주주의’와 정치 엘리트, 지식 엘리트의 부당한 동맹에 맞서 싸우는 똑똑한 시민 ‘지민’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440쪽. 2만원. 살아남지 못한 자들의 책 읽기(박숙자 지음, 푸른역사 펴냄) 해방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 문학과 현실 속 청년 4명의 책 읽기에 주목한 독서문화사. 최인훈 소설 ‘광장’의 준, 김승옥 소설 ‘환상수첩’의 정우, 작가 전혜린, 전태일이 주인공이다. 260쪽. 1만 4900원. 풍자화로 보는 세계사 1898(석화정 지음, 지식산업사 펴냄) 미국과 일본, 독일이 새로운 제국으로 급부상한 지각변동의 해였던 1898년에 등장한 정치 풍자화 200점을 통해 당대의 시대적 맥락을 짚는다. 336쪽. 2만원. 생활예술(강윤주·심보선 외 지음, 살림 펴냄) 인간에게는 기본적으로 자신이 영위하는 생활 속에서부터 예술적 본능을 꽃피우고자 하는 의식이 잠재돼 있다. 이처럼 역사가 깊고 중요한 생활예술의 이론을 집대성하고 실천을 검토한 이론서이자 지침서. 432쪽. 2만원. 보이지 않는 영향력(조나 버거 지음, 김보미 옮김, 문학동네 펴냄)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하고 싶어 하는 동시에 특별해지길 원한다. 익숙함과 새로움 사이의 갈등, 남들과 적당한 차이를 유지하며 행동하는 것이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분석했다. 328쪽. 1만 6500원. 김정은체제 왜 붕괴되지 않는가(리 소테쓰 지음, 이동주 옮김, 레드우드 펴냄) 일본의 사회학자이자 북한 연구학자가 쓴 김정일 전기. 세습왕조 시스템을 구축한 김정일의 일대기를 통해 현 김정은 체제의 실상을 분석한다. 384쪽. 1만 6000원.
  • 오늘의 번영을 지속하는 법… 조선시대 생태환경서 답을 찾다

    오늘의 번영을 지속하는 법… 조선시대 생태환경서 답을 찾다

    조선의 생태환경사/김동진 지음/푸른역사/364쪽/2만원기후변화, 종 다양성의 감소, 바이러스 변이 등은 과학기술이 선사한 오늘의 번영을 나와 내 자손들이 함께 누리지 못할 수도 있는 위기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런 점에서 지속가능성은 우리 시대 최고의 화두다. 새 책 ‘조선의 생태환경사’는 지속가능성의 답을 조선시대 생태환경 연구에서 찾고 있다. 미래 문제의 답은 과거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저자가 주목하는 건 15~19세기 조선시대다. 한반도의 생태환경과 한국인의 삶이 크게 바뀐 시기다. 저자는 조선시대 사람들의 여러 활동으로 인해 이전까지의 생태환경이 급속한 변화를 겪었고 당대인들 또한 그렇게 변화된 생태환경에 영향을 받아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됐다고 판단하고 있다. 저자는 이를 야생동물, 가축, 농지, 산림, 미생물, 전염병 등 우리를 둘러싼 생태환경 전반을 아우르며 살피고 있다. 예부터 한반도는 범과 표범의 땅이었다. 최상위 포식자였던 범과 표범은 조선 건국 이후 17세기 초까지 적어도 매년 1000마리 이상 잡힐 정도로 개체수가 많았다. 이는 이들을 먹여 살리는 피식자가 많았다는 뜻도 된다. 구석기 이래 한반도의 주거지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짐승의 뼈는 사슴이다. 사람에게뿐 아니라 맹수들에게도 사슴은 가장 흔하고 중요한 먹잇감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15~19세기 무렵, 포식자와 피식자를 불문하고 야생동물이 번성에서 절멸로 전환되는 격변을 겪는다. 그리고 이를 되짚어 올라가면 뜻밖에 목화가 여러 원인 가운데 하나로 등장한다. 고려 말 문익점이 들여온 목화는 조선의 복식 문화뿐 아니라 한반도의 농업 환경과 경제 시스템을 바꾸고 조선의 외교력까지 극대화하면서 동아시아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기능성에 보존성까지 뛰어난 면포는 빠른 속도로 부의 축적 수단으로 자리잡았다. 면포는 조선에 부를 안겨 줬고, 여진과 왜구를 제어할 수 있는 외교력의 원천이 됐다. 면포 수요의 증가는 곧 목화 재배 확대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는 한반도 생태환경의 연쇄적 변화를 이끌었다. 산림지대 중 목화를 재배할 수 있는 곳은 급속히 밭으로 바뀌었고, 화전 개발을 촉진했다. 이로 인해 산림에서 살아가던 야생동물들은 서식처를 잃고 개체수마저 급감하는 비운을 맞게 된다. 그리고 이는 연달아 최상위 포식자의 절멸을 불러왔다. 책은 이처럼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핵심 요인들이 유기적으로 작용하고 변화하는 양상을 구조적으로 해명하고 있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그러나 나는 살았고, 헛되이 살지 않았다(필립 나시프 지음, 이주영 옮김, 라이프맵 펴냄) 안톤 체호프 등 78명의 역사적 인물들이 죽음을 앞두고 남긴 마지막 말들을 통해 인생을 반추한다. 228쪽. 1만 5000원. 음식의 역습(마이크 애덤스 지음, 김아림 옮김, 루아크 펴냄) 미국 텍사스에 식품과학수사연구소를 설립한 저자가 다양한 식품에 함유된 중금속과 유해 물질, 식품 첨가물들의 유해성을 세세하게 실었다. 536쪽. 1만 7000원. 커넥터(안병익 지음, 영림카디널 펴냄) 컴퓨터공학 박사이자 사회연결망과 O2O(온·오프라인 연계) 서비스 전문가인 저자가 세상을 지배하는 힘으로 지목한 ‘연결’이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파헤쳤다. 392쪽. 1만 3000원. 인에비터블(케빈 켈리 지음, 청림출판 펴냄) 미국의 과학·기술·문화 잡지 ‘와이어드’의 공동 창간자인 저자가 향후 30년간의 변화상을 예측한 책.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등이 결합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12가지 변화상을 제시한다. 460쪽 내외. 1만 8000원. 세대 간 연대와 갈등의 풍경(최유석 지음, 한울아카데미 펴냄) 한국 사회를 세대 중심으로 바라본 심층 보고서. 세대 갈등이 세대 연대로 나아가는 과정을 그리며 저성장 고령화 시대에 세대의 골을 메울 방법을 탐구한다. 288쪽. 2만 6000원. 세렝게티 법칙(션 캐럴 지음, 조은영 옮김, 곰출판 펴냄) 이야기꾼 생물학자로 통하는 저자가 바이러스에서 코끼리까지 지구 생태계를 가로지르는 하나의 보편적 법칙을 찾아 나선다. 352쪽. 1만 8000원.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것들(김승호 지음, 권아리 그림, 스노우폭스북스 펴냄) 가난한 이민자에서 개인자산 4000억원대의 슈퍼리치가 된 저자가 깨달은 행복과 부의 비밀을 담았다. 384쪽. 1만 5800원. 독일사 깊이 읽기(고유경 지음, 푸른역사 펴냄) 루터가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한 바르트부르크성, 프로이센 궁전이 남아 있는 포츠담, 유럽 유일의 분단도시였던 베를린 등 독일의 역사와 정체성을 상징하는 9곳을 소개한다. 332쪽. 1만 8000원.
  • [책꽂이]

    [책꽂이]

    국보 역사로 읽고 보다(도재기 지음, 이야기가있는집 펴냄) 우리 역사의 보물이자 지식창고인 국보 328건을 역사의 흐름에 따라 톺아본 책. 400컷의 이미지로 생생하게 펼쳐낸다. 640쪽. 2만 7800원. 포퓰리스트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조남규 지음, 페르소나 펴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기질과 정책 지향, 백악관과 의회의 역학을 주시하며 우리에게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정리했다. 280쪽. 1만 5500원. 미토콘드리아의 기적(김자영 지음, 청년정신 펴냄) 암 전문의인 저자가 세포의 에너지 발전소인 미토콘드리아가 어떻게 건강과 질병을 지배하는지 풀어냈다 202쪽. 1만 4000원. 연애,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겁니다(우시쿠보 메구미 지음, 서라미 옮김, 중앙북스 펴냄) 취업 빙하기, 3포세대 증가, 저출산 심화, 1인 가구 빈곤율 상승 등 저성장 시대에 연애를 포기한 일본 청춘들에 대한 심층 보고서. 248쪽. 1만 3500원. 영국사 깊이 읽기(이영석 지음, 푸른역사 펴냄) 근대 영국을 사회사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세계사의 시각에서 영국의 근대화를 재조명하며 제국의 형성과 변모를 고찰하고 있다. 396쪽. 2만원. 인간관계, 심리학이 필요해(이소라 지음, 그리고책 펴냄) 아는 만큼 보이는 인간관계, 지금 당신의 인간관계를 들여다볼 심리학적 분석이 궁금하다면. 304쪽. 1만 2000원.
  • “한일합의로 위안부 문제 끝내선 안 돼”

    “한일합의로 위안부 문제 끝내선 안 돼”

    30년간 올곧은 저널리스트로 살아온 기자에게 치욕을 주는 건 ‘팩트’를 왜곡하는 기자라는 일방적인 중상 비방일 게다. 게다가 그 공격이 자신뿐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에 대한 살해 예고로 이어진다면 그런 참혹한 협박에 자신이 쓴 기사의 ‘진실’을 부인해야 할까. 이는 우에무라 다카시(58) 전 아사히 신문기자의 얘기다. 그는 1991년 8월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보도한 언론인이다. 아베 신조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가 쓴 기사가 별안간 날조 기사로 둔갑하고 공격이 쏟아졌다. 이른바 일본 우익들의 ‘우에무라 공격’ 현상이다. 2014년 그가 대학교수로 부임하기로 했던 고베쇼인여자학원대와 오쿠세이학원대는 ‘학교를 폭파하겠다’는 협박에 굴복해 그의 임용을 취소했다. 인터넷과 블로그에는 그의 딸의 사진과 실명 아래 섬뜩한 내용을 담은 글들이 꼬리를 물었다. 그가 쓴 ‘나는 날조 기자가 아니다’(푸른역사)는 바로 25년 전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보도를 지키기 위해 우익들과 벌인 투쟁을 담은 책이다. 일본어판 제목이 ‘진실’인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가톨릭대 초빙교수로 한국에 머물고 있는 우에무라는 26일 한국어판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지난해 12월 박근혜 정부와 일본 아베 정부가 맺은 양국 위안부 합의부터 강하게 비판했다. “10억엔을 내고 위안부 문제를 더이상 거론하지 말라는 게 조건입니다. 이 합의가 한국과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위안부 문제는 끝난 문제로 하자는 겁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재일조선인 차별과 인권 문제를 주로 다뤄 온 아사히신문 사회부 기자 우에무라는 1991년 8월 10일 서울의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사무실에서 테이프에 녹음돼 있던 김 할머니의 증언을 듣고 첫 위안부 기사를 내보냈다. 사흘 뒤 김 할머니가 기자회견을 열어 피해 사실을 공개적으로 증언하면서 마침내 우에무라의 특종은 역사 앞에 일본군 위안부의 민낯을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결국 일본 정부는 1993년 8월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까지 발표했다. 최근 우에무라에 대한 공격은 일본 내 역사수정주의 세력들의 반격이다. 위안부 문제를 날조로 만들려는 시도다. 그는 책에서 우익들의 날조 주장에 대해 조목조목 반론을 제기하고 고통스러운 협박과 폭력의 기억을 담담히 진술한다. 우에무라 교수는 “내 개인 문제가 아니라 용기를 내어 증언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 대한 명예훼손이자 진실을 보도하려는 언론에 대한 압박”이라며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그는 매주 도쿄와 삿포로에서 진행 중인 명예훼손 소송을 위해 양국을 바쁘게 오가고 있다. 지난달 초에는 그의 딸이 자신에게 인신공격을 가한 중년 남성과의 재판에서 첫 배상 판결을 받아 내 그에게 큰 용기를 줬다. 우에무라 교수가 가톨릭대에서 맡은 강의 이름은 ‘동아시아 평화와 문화’다. 그는 “정말 소망하는 건 일본과 한국의 젊은 세대들이 우호 관계를 맺도록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역사속 승자와 패자를 가른 결정적 한마디(김봉국 지음, 시그니처 펴냄) 읽으면서 지혜를 얻고, 쓰면서 힘을 얻는 70개의 결정적 한마디를 모아 동양 고전의 통찰을 제공한다. 364쪽. 1만 7000원. 이주하는 인간, 호모 미그란스(조일준 지음, 푸른역사 펴냄) 인류의 이주 역사와 현재에 대한 기록이다. 이주를 통해 인간 삶의 궤적과 현장을 입체적으로 들여다보며 난민 문제에도 주목한다. 448쪽. 2만 1900원. 마음쓸기(리샤오쿤 글·그림, 허유영 옮김, 흐름출판 펴냄) 동자승의 일상을 그린 선화(禪畵) 58폭에 촌철살인의 선시(禪詩)를 묶은 대만의 수묵화가 리샤오쿤의 시화집. 152쪽. 1만 3000원. 골든타임(노환규 글·그림, 한겨레출판 펴냄) 대한의사협회장을 지낸 저자가 전하는 의료 현장의 긴박한 순간들을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희망을 찾는다. 218쪽. 1만 3500원. 여자생존 가이드북(피터 그레이슨 지음, 이은주 옮김, 들녘 펴냄) 딸을 위해 부끄러운 과거까지 밝히며 세상의 모든 위험과 대처 가능한 정보를 조목조목 담은 한 딸바보 아빠의 삶의 조언. 420쪽. 1만 4000원. 병원에 가기 싫어요!(안나 카살리스 글, 마르코 캄파넬라 그림, 이현경 옮김, 키득키득 펴냄) 전 세계 23개국에서 읽히는 생활습관 동화 시리즈.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는 또또는 무사히 치료를 받을 수 있을까. 32쪽. 1만 1000원.
  •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소설 속 배경, 충정로 야마토 아파트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소설 속 배경, 충정로 야마토 아파트

    지난주의 미동 아파트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1969년 미동 아파트가 지어지기 전, 이 자리에는 1940년에 지어진 또 다른 아파트가 있었다. 건축역사학자인 김정동 교수의 ‘문학 속 우리 도시 기행 2’(2005·푸른역사)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 아파트의 이름은 경성대화숙(京城大和塾·게이조야마토주쿠)이다. 일제강점기 교원 및 사상범의 교화 단체로서 1941년 1월에 만들어진 또 다른 경성대화숙과 우연인지 필연인지 한자까지 이름이 같다. 3층 목조의 이 경성대화숙이 있던 자리는 충정로의 당시 이름이던 죽첨정, 즉 다케조에초 3가 8번지였다. 원래는 식산은행의 독신자 아파트였다고 한다. 그런데 월북 문학가인 김남천(1911~1953)의 소설 ‘경영’(문장·1940.10)과 그 후편이라고 할 수 있는 ‘맥’(춘추·1941.2)이 바로 이 아파트를 공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이유로 인해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 한국 최초의 소설을 꼽을 때 이 두 소설의 이름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소설 속의 이름은 ‘야마토 아파트’다.  소설 속의 묘사가 실재했던 건물을 얼마나 정확히 그리고 있는지는 물론 알 수 없다. 건물의 외형과 관련해서도 전해 오는 자료가 없는 듯하다. 한국보다 아파트 역사가 오래된 일본의 몇몇 사례 등을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특히 관동 대지진 후 주택 공급을 목적으로 설립된 재단법인 동윤회(同潤會·도준카이)가 건립한 1920~30년대의 아파트들이 참고할 만하다. 그러나 김남천 자신이 1947년 월북하기 전까지 경성대화숙 323호에 묵고 있었고, 소설 속의 여주인공 최무경 또한 야마토 아파트 323호에 거처가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 허구와 실제 간의 간극은 그리 크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가정하에 두 편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러 문구에 기초해 이 아파트를 ‘복원’해 보면 다음과 같다. #61가구 입주한 복도형·임대용 3층 아파트  야마토 아파트는 죽첨정, 즉 다케조에초에 있는 3층 건물이다. 복도형 아파트고 승강기는 없다. 임대용 아파트이며 호텔은 아니어서 ‘한두 달 계실 손님에겐 방을 거절하라는’ 규칙이 있다. 아파트 주인은 여기에 살지 않으며 잠깐 와서 ‘장부나 검사해 보고는’ 다시 나간다. 독신자용 방이 36개, 두 칸의 가족용 방이 25개 있어서 총 61가구에 ‘일백이삼십 명’ 정도의 사람이 살고 있다. 방세와 별도로 난방비, 전등료, 급수료 등을 받는다. ‘특약’, 즉 장기 계약해서 쓰는 택시와 용달 서비스가 있다.  1층에는 출입구 옆에 사무실, 구내식당, 공동 목욕탕, 당구장 등이 있다. 원래 목욕탕 옆에 이발소가 있었으나 길 맞은편에 원래 있던 이발소와 경쟁이 되지 않아 문을 닫았다. 사무실에는 직원인 최무경과 관리인인 강 영감의 책상이 있다. 금고가 있어서 지폐나 ‘소절수’(수표) 등을 보관한다. 강 영감이 수시로 ‘보일러 칸으로 내려가는’ 것으로 보아 반지하, 혹은 지하에 보일러실이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구내식당에서는 산짱이라는 어린 소년이 주문을 받는다. 시멘트 바닥에 입식 테이블들이 놓여 있다. 라이스모논 카레, 하야시, 가케우동, 돔부리와 차 등을 서빙한다.  최무경의 방인 323호는 독신자를 위한 방으로 남향이다. 입구에는 신장과 천장 조명을 켜고 끄는 스위치가 있다. 방 안에는 서가, 침대와 침대 머리맡의 전기스탠드, 작은 탁자, 응접세트와 사무 탁자, 양복장, 기타 화병과 화분 등이 있다. 물이 나오는 취사장이 있고 최무경은 가스를 이용해 차를 끓인다. 냉방에 대한 언급은 없고 난방은 스팀을 이용한다. 침대와 취사장 부근은 모두 두꺼운 커튼을 쳐서 가려 놓았다.  거주자들을 위한 폐쇄적인 시설이기는 했으나 단순 주거 기능만이 아닌 상업 기능 또한 한 지붕 아래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이런 점에서 허구와 실제 사이에 걸쳐져 있는 건물이기는 하지만 야마토 아파트는 무지개떡 건축의 사례라고 판단된다. 심지어 최무경은 소설이 진행되면서 이 아파트에서 살기 시작한다. 직주근접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집이 근처인 강 영감도 점심 ‘벤또’를 가지러 아침에 잠깐 집에 다녀올 뿐 ‘대개 언제나 이 아파트에서 잠자리를 갖는다’. 최무경은 이런 이유로 해서 퇴근 이후에도 업무를 위해 잠깐씩 사무실에 내려와야 하는 등 약간 묘한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밥도 구내식당에서 자주 먹는다. 이처럼 여주인공의 집과 직장이 같은 건물 안에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약간의 긴장감이 이 소설을 읽는 재미의 하나다.  #혼자가 된 여자, 자신의 삶 위해 이주한 아파트 여주인공 최무경은 야마토 아파트의 사무원이다. 그는 화동의 한옥에서 청상과부이자 독실한 크리스천인 어머니와 함께 산다. 자기 직장인 야마토 아파트에도 방을 하나 두고 있는데, 옥살이 중인 좌파 지식인 애인 오시형이 조만간 보석으로 풀려날 경우를 대비해 얻어 둔 것이다. 당초 계획은 그와 결혼을 하는 것이었으나 양가의 반대가 있었다. 다행히 자기 어머니는 겨우 설득을 했으나 평양이 고향인 오시형 쪽에서는 지역 유지 집안과의 혼사설이 돈다. 오시형은 결국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그간 사상의 변화가 생겨 전향했고 아버지를 따라 평양으로 돌아가고 만다. 한편 최무경의 어머니는 숨겨 놓았던 애인과 재혼한다. 결국 혼자가 된 최무경은 앞으로는 자신을 위한 삶을 살겠다고 결심하며 얻어 놓았던 야마토 아파트로 입주한다. 여기까지가 ‘경영’의 줄거리다. 그 후편인 ‘맥’은 줄거리상으로는 단순하지만 사상적으로는 복잡하다. 최무경의 옆방으로 대학에서 영문학을 강의했던 이관형이라는 사람이 논문을 쓰겠다는 핑계로 들어온다. 두 사람은 일종의 지적인 대화 상대가 된다. 최무경은 헤어진 자기 애인의 사상적 변화를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철학 공부를 하던 참이었다. 그리고 철학과 사상에 대한 대화를 이관형과 나누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다원론에 입각한 오시형의 천황주의와 이관형의 허무주의가 대비된다. 마지막으로 오시형의 공판장에서 새로운 여인의 출현을 목격한 최무경은 그와의 관계가 완전히 끝났음을 깨닫고 망연자실해진다.  김남천의 이 소설들은 ‘전향문학’의 대표적인 사례로 다루어진다. 오시형처럼 그 자신도 전향의 경력을 갖고 있었고 그로 인한 문학 작업의 공백을 체험했다. 그가 자신의 가장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이 두 소설의 배경으로 아파트, 그것도 당시 기준으로 매우 현대적인 최고급의 아파트를 무대로 삼은 것은 주목할 만하다. 전향의 경험을 갖고 있으나 결국 좌파 지식인으로 남았고, 그 결과 월북해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 전선까지 내려왔던 작가의 소설치고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묘사에 과격성이 거의 없다. 일본인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는 것도 특이하다. 그리고 등장하는 한국인들은 모두 상당한 근대적 인간들이다. 일제강점기판 무지개떡 건축인 야마토 아파트는 마치 조선이라는 식민지의 바다 위에 떠 있는 별천지 같은 배라고나 할까. 그 안에서 최무경이 나누는 대화들도 당시 대부분 사람의 현실과는 무관하다. 최무경은 ‘음악회라면 하찮은 학생들의 연주회라도 빠지지 않고 쫓아다니던’ 사람이며, 그와 오시형, 허무주의자 이관형 모두에게 사상이란 삶의 체험이 아닌 관념에 의해 선택되는 것이었다. 아마도 작가는 이런 부유하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역사의 무게가 짓누르고 있는 구도심의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배경으로 담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들에게는 허구와 실제 사이의 공간이 필요했고, 아파트가 바로 그 해답이었다. 반경 400m 내 들어선 금화장·경성대화숙·개명·성요셉· 미동 아파트 허구건 실제건 충정로 일대는 한국 근현대 아파트의 실험장이었다. 그 시작은 물론 1930년의 충정 아파트, 당시 도요다 아파트였다. 아파트는 아니지만 소위 ‘문화주택’ 단지였던 금화장 주택지도 1920~30년에 지금의 경기대 뒤편인 금화산 일대에 자리잡았다. 그 후 1940년에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 경성대화숙이 들어섰고, 1959년에는 지금의 현대 아파트 자리에 6층의 개명 아파트가 자리잡는다. 경성대화숙이 헐리고 그 자리에 미동 아파트가 들어선 것이 1969년이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 약현성당 인근의 성요셉 아파트(1971), 마지막으로 1972년에 서소문 아파트가 세워졌다. 이 모두가 충정 아파트를 기점으로 반경 400m도 안 되는, 걸어서 10분이면 갈 수 있는 지역에서 일어났다. 이 지역에 이렇게 많은 새로운 주택과 아파트들이 들어섰던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역시 도심에서 가깝다는 지역적 특징을 이야기할 수 있다. 특히 일제강점기에는 전차로 상징되는 편리한 교통이 그 열쇠였다. 최무경은 전차를 타고 애인 오시형이 수감 중인 현저동 서대문형무소와 어머니와 살고 있는 집이 위치한 화동, 근사한 식당이 있는 본정(명동) 등 서울시내 안팎을 부지런히 돌아다닌다. 한편 전차는 도시적 감성을 자극하는 요소로 등장하기도 한다. ‘맞은편 캄캄한 언덕의 주택지에는 불빛이 빤짝거린다. 하늘에도 까만 호라이즌 위에 뿌려 놓은 듯한 별들. 마포로 가는 작은 전차가 레일을 째면서 언덕을 기어 올라가는 것이 굽어보인다. 산뜻한 밤공기에 낯을 쏘이면서 천천히 가슴의 동계를 세어 본다.’ 여기 등장하는 전차는 서대문~마포 간을 운행하는 것이었다. 시발점인 서대문역은 현재 적십자병원이 있는 경교 인근이었다. 김구 선생이 머물던 경교장의 그 경교다. 경교장은 경성대화숙보다는 조금 이른 1938년에 지어졌고 원래 이름은 죽첨장이었다. 죽첨정과는 죽첨, 즉 갑신정변 당시 일본 공사 다케조에의 이름을 공유한다. 1936년에 제작된 대경성정도(大京城精圖)를 보면 최무경이 야마토 아파트에서 나와 전차를 탔을 역 또한 죽첨정역이었다. 야마토 아파트에서는 걸어서 1, 2분도 안 걸릴 정도로 가까운 위치였다. 그 바로 다음 역이 전차 시발점인 서대문역이었다. 구도심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교외도 아닌, 참으로 절묘한 위치가 지금의 충정로 인근 지역이었던 것이다. (* 경성대화숙이 있었던 것으로 전하는 다케조에초 3가 8번지를 충정로 3가 8번지로 검색하면 미동 아파트가 아닌 다른 위치로 나온다. 한편 김정동 교수는 경성대화숙, 그리고 그 자리에 지어지는 다른 건물을 본 기억이 있으며 그것이 미동 아파트인 것으로 짐작한다고 적고 있다. 주소와 관련된 기록들이 어디에선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 ‘제국의 위안부’를 낱낱이 비판하다

    ‘제국의 위안부’를 낱낱이 비판하다

    누구를 위한 ‘화해’ 인가/정영환 지음/임경화 옮김/푸른역사/280쪽/1만 5000원 제목만 보고는 선뜻 책의 얼개를 파악하기 어렵다. 책이 작심하고 비판하려는 저서의 일본어판 제목을 봐야 좀더 명확해진다. ‘망각을 위한 ‘화해’:<제국의 위안부>와 일본의 책임’이 제목이다. 이쯤 되면 새 책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가 뭘 말하려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박유하 세종대 교수가 2013년 펴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여러 사회단체들의 공분을 산 책 ‘제국의 위안부: 식민지 지배와 기억의 투쟁’의 한국어판과 일본어판 모두를 싸잡아 비판하겠다는 것이다. 재일교포 3세인 저자의 기본적인 입장은 ‘제국의 위안부’가 결함투성이의 저서라는 것이다. 모든 연구자가 주장을 펼 때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논증 절차가 결여됐고, 사료의 오독과 증언의 자의적 해석 등에 의해 도출된 억측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제3의 목소리’ 운운하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새로운 해결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포장했지만 실상은 옛 ‘병사들의 목소리’를 복권시키려는 시도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일본의 역사수정주의를 비판하는 척하면서 외려 일본군의 책임을 개개의 병사나 업자들에게 전가해 일본 국가의 책임을 극소화하려 했다는 점도 문제라고 했다. 이처럼 아무리 들여다봐도 인식조차 할 수 없는 교묘한 레토릭을 저자는 잘도 파헤쳐 산산조각 낸다. 저자는 또 “‘제국의 위안부’ 한국어판과 일본어판 사이에는 무시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고 했다. 같은 사람이 쓰고 직접 일본어 번역까지 했다는 데도 그렇다. 예를 들면 일본어판에서는 한국어판과 달리 “전후 일본의 역사는 사죄·보상을 해온 역사”라는 점이 강조돼 있다. 또 일본이 과거의 식민지화에 대한 반성을 표명하는 것이 “세계사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했던 한국어판의 기술은 일본어판에서 “일본의 ‘식민지 지배 사죄’는 실제로는 제국이었던 나라들 중에 가장 구체적이었다”는 상찬으로 바뀌었다. 일본의 사죄와 보상을 ‘모르고 기억하지 않은’ 한국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서술됐다는 것이다. 저자의 결론은 간명하다. 그는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가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조선인 위안부로서 목소리를 낸 여성들의 목소리에 오로지 귀를 기울이는 것’(일본어판 10쪽)이 아니라 일본 사회가 어떠한 자기 이미지를 바라는지를 찾아 그것에 합치되는 위안부론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쉽게 말해 일본인들의 입맛에 맞춘 책이란 뜻이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