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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TX-C 노선 ‘안양시 인덕원 정차 재추진’ 놓고 연초부터 3개 지자체 첨예한 대립

    GTX-C 노선 ‘안양시 인덕원 정차 재추진’ 놓고 연초부터 3개 지자체 첨예한 대립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C 노선 ‘안양시 인덕원역 정차 재추진’을 놓고 연초부터 3개 지자체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경기도 안양시가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제외된 인덕원을 다시 정차역으로 추진하겠다고 지난해 11월 공식발표하면서 인근 지자체인 과천, 군포시와 갈등이 시작됐다. 6일 각 시에 따르면 지금까지 침묵을 지켜오던 군포시도 과천시에 이어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대희 군포시장은 지난 3일 “안양시의 인덕원역 신설 요구는 혼란 상황만 초래하고 GTX 사업의 의미가 없어진다”고 밝혔다. 반대 이유로 역간 거리 단축으로 열차 표정속도 저하와 사업비 증가 등 경제적 타당성 하락 예상을 들었다. 군포시는 인덕원역 추가 정차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원안대로 조속히 추진할 것을 요구하는 의견서를 국토교통부에 제출했다. 국토부는 지난해 GTX-C 노선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 안양시가 요청했던 인덕원역 추가 신설을 경제적인 이유로 배제하고 정부과천청사역과 금정역을 확정했다. 총 10개 정거장이 신설되는 C 노선은 역간 평균거리가 10km 안팎이다. 인덕원은 이 전역인 군포시 금정역과 역간 거리가 5.4km, 과천시 정부과천청사역과는 3km로 표정속도 110km에 맞추기 어려워 신설역 계획안에서 제외됐다. 군포시보다 먼저 반대 입장을 밝혔던 과천시 김종천 시장도 신년사에서 “GTX-C 노선 사업이 원안대로 신속히 추진되도록 국토부에 강력 요구했다”며 “사업 진행결과를 예의주시해 과천시에 불이익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11월 기자회견에서 김 시장은 “반쪽짜리 GTX C노선 인덕원역 신설에 반대한다”며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번 지자체 간 갈등을 제공한 안양시 최대호 시장은 신년사를 통해 “인덕원역 정차를 위해 모든 행정력을 집중하겠다”며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시는 앞으로 3개 전철노선이 지나게 될 인덕원을 수도권 교통의 핵심거점을 만들 계획이다. 최 시장은 지난해 11월 사전타당성 용역에 착수하면서 GTX-C노선 건설사업 기본계획에 인덕원 정차가 포함되도록 하겠다며 재추진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안양시는 5~6년 후 3개 노선이 지나게 될 인덕원역은 수도권 철도교통의 핵심 요충지로 부상하고 있어 GTX-C노선 정차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2024년 월곶~판교선, 2026년 인덕원~동탄 복선전철이 각각 개통 예정이며 두 노선 모두 4호선 인덕원역을 통과한다. GTX-C노선은 수원에서 경기 양주 덕정까지 74.2km에 이르는 광역급행철도다. 국토교통부는 약 4조 3000억 원을 투입. 오는 2021년 착공해 2027년 완공을 목표로 추진할 계획이다. 각 지자체의 이해관계에 따라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가운데 국토부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특파원 칼럼] 일본 언론의 ‘좌우로 정렬’ 기자회견/김태균 도쿄 특파원

    [특파원 칼럼] 일본 언론의 ‘좌우로 정렬’ 기자회견/김태균 도쿄 특파원

    일본에서는 내각관방장관 기자회견이 원칙적으로 매일 오전·오후 두 번씩 도쿄 총리관저에서 열린다. 관방 기자회견은 아베 신조 총리에 이어 내각의 사실상 ‘넘버2’인 스가 요시히데 장관으로부터 정부 정책이나 특정 사안에 대한 견해는 물론이고 크고 작은 의혹에 대해 해명을 들을 수 있는 중요한 소통 창구다. 국가 예산으로 치르는 정부 행사에서 아베 총리의 지역구 사람들을 특별대우했다고 해서 문제가 된 ‘벚꽃을 보는 모임’ 파문이 불거진 요즘 같은 때에는 기자들이 정부 측 주장이나 논리의 허점을 날카롭게 파고들어 추상같은 질문 공세를 퍼붓는 게 정상이다. 그래야 사건의 실체에 한발이라도 더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의혹 규명에 성역이란 있을 수 없으니 여기에는 보수언론이니 진보언론이니 하는 따위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그러나 요즘 관방 기자회견에서 그런 모습은 볼 수가 없다. 아사히신문 등 일부 매체만 ‘야당 몫’으로 배정이라도 받은 듯 몇몇 공격적인 질문을 던져 볼 뿐, 다른 언론사들은 정부 의혹이나 비리에 관한 한 회견장 자리만 지키고 있는 수준이다. 극우 성향 산케이신문 같은 곳은 그렇다 치더라도 일본 최고 발행부수의 요미우리신문이나 일본 최대 통신사인 교도통신 등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언론들이 과거 같았으면 정권의 존립이 흔들흔들했을 의혹의 전개 국면에서 제 역할을 포기 내지는 방기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불리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답변을 피하고자 한다”는 말을 녹음기처럼 반복하며 회견 자체를 무력화시키려는 스가 장관의 뻔뻔함과 노회함이 단단히 한몫을 한다. 최근에는 답변을 회피하는 차원을 넘어서 불편한 질문에 노골적인 불만을 표정과 말투로 드러내고 있다. 질문한 기자가 답변자의 신경질적인 기세에 숨이 눌려 마치 상사에게 혼이 난 부하 직원처럼 꼬리를 내리기도 한다. 기자회견이 이렇게까지 여야 국회 대정부 질문처럼 좌우로 분단돼 진행되는 것은 언론의 본령을 생각할 때 있을 수 없는 일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아베 정권의 오만함이 극에 달한 오늘날 이전에는 일본에서도 없었던 일이다. 권력자가 연루된 비리나 의혹에 대해서는 국민을 대표해 충직한 감시견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전통적 사명감이 나름 강했던 일본 언론이었다. 이는 보수 외길을 걸어온 요미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자민당 정권을 지지하더라도 아닌 것에는 아니라고 주장하는 뚝심 정도는 있었다. 체제 수호에 앞장서 온 보수언론의 상징으로 반세기 동안 정계의 막후 실력자로 군림해 온 현역 요미우리 회장 겸 주필 와타나베 쓰네오가 2006년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를 비판하며 대립각을 세웠던 일은 유명하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이런 현상이 이념 성향에 관계없이 일본 언론 전반에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의 보수화 흐름과 언론 환경의 급격한 변화 등이 맞물리면서 여론 추이에 순응하고 맞추려는 경향이 결과로서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언론, 너나 잘하세요’라는 핀잔을 각오하고 다른 나라 얘기를 하는 것은 야당이나 시민사회가 실질적인 존재감을 전혀 보여 주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언론이 입법·행정·사법과 어깨를 견주는 이른바 ‘제4부’로서 정권의 우경화 폭주에 일정수준 브레이크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에서다. ‘아베 1강’ 독주가 언론을 약화시키고, 그것이 민주주의의 위축을 심화시키며 아베 정권의 기반을 더욱 강고하게 만드는 악순환, 그것이 오늘 일본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windsea@seoul.co.kr
  • 전율의 브람스… 4년 만의 재회는 ‘선물’이었다

    전율의 브람스… 4년 만의 재회는 ‘선물’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세종문화회관과 서울시립교향악단이 함께하는 2020년 신년음악회에 오르는 클라라 주미 강입니다. 신년음악회에 함께할 수 있어 정말 기쁘고 반갑습니다.” 지난 4일 오후 5시 5분 3층 객석까지 관객으로 가득 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 공연 시작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공연장 직원이 아닌 연주자가 직접 안내방송을 하는 세종문화회관의 독특한 문화에 맞춰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33)이 활 대신 마이크를 먼저 잡았다. 이날 공연은 올해 한국 클래식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첫 공연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마에스트로 정명훈(67)과 세계 클래식 무대로 뻗어 나가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재회로 일찌감치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2006년부터 10년간 예술감독으로 재임하며 서울시향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정명훈은 2015년 12월 30일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지휘를 끝으로 서울시향을 떠났다. 2016년 8월 롯데콘서트홀 개관 공연 이후 3년 5개월 만에 다시 옛 단원들 앞에 섰다. 시작은 공연 외적인 문제로 깔끔하지 못했다. 전석 매진을 기록했으나 빈자리가 곳곳에 보였다.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진행된 보수단체 집회 탓에 인근 교통이 통제됐고, 지각 관객이 속출했다. 공연장 주변은 ‘태극기 부대’에 둘러싸였고, 일부 집회 참가자는 공연장 로비에서 욕설을 내뱉으며 소란을 피우기도 했다. 정명훈과 서울시향은 지연 관객을 배려해 예정된 시간보다 8분가량 늦게 첫 연주를 시작했다. 1부 무대에는 정명훈과 바이올린 협연자 클라라 주미 강이 함께 올랐다. 악단 맨 뒷줄에 자리한 팀파니의 울림에 이어 검은색 롱드레스를 입은 클라라 주미 강의 독주가 시작됐다. 독일 낭만주의 바이올린 협주곡 대표작으로 꼽히는 막스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이었다. 173㎝ 장신 연주자의 활 끝에서 빚어지는 소리는 힘이 넘쳤고, 서울시향과의 합도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클라라 주미 강은 무대를 완벽히 지배했고, 정명훈과 서울시향은 음을 낮춰 연주하며 협연자가 더욱 돋보이도록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2부는 정명훈과 서울시향 그리고 브람스의 시간이었다. 모두 검은색 정장으로 맞춰 입은 정명훈과 서울시향은 브람스 교향곡 1번 연주에 앞서 자리에서 일어나 객석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 악단을 배경으로 포디엄(지휘대) 위에서 두 팔을 벌린 정명훈은 “내가 있어야 할 곳에 다시 돌아왔다”고 말하는 듯했다. 단원들의 눈빛이 빛났고, 표정도 밝았다. 모두 4악장, 47분쯤 이어진 브람스 교향곡 1번 연주는 시간을 10년 전 ‘정명훈의 서울시향’ 시대로 되돌려 놨다. 세밀한 기교의 현악기 연주자들과 서정적 음색의 금관악기 연주자, 연주의 큰 틀을 잡아 주는 팀파니 등 타악기 연주자 등 악단 모두 정명훈의 손짓이 아닌 그의 숨결대로 악기를 다뤘다. 웅장하게 휘몰아친 4악장 피날레에서는 객석 곳곳에서 탄성과 함께 “브라보”가 쏟아졌다. 정명훈과 서울시향은 지휘자와 연주자가 가장 즐길 수 있고, 서울시향의 팬이라면 너무나도 익숙해서 더 흥겹게 들을 수 있는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제1번으로 새해 첫 축제를 화려하게 매듭지었다. 연주회는 아수라장인 광화문을 뚫고 공연장을 찾은 관객에게 보답하는 정명훈과 서울시향, 클라라 주미 강의 선물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산불 아닌 원자폭탄” 호주 분노한 시민, 총리에 손가락 욕

    “산불 아닌 원자폭탄” 호주 분노한 시민, 총리에 손가락 욕

    “이건 산불이 아닙니다. 원자폭탄입니다.” 호주 산불의 가장 큰 피해지역인 뉴사우스웨일즈주(NSW) 교통장관 앤드루 콘스탄스는 지난 4일 공영 ABC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호주 연방정부는 새해 축포를 쏘아올린 뒤에야 예비군 3000명을 강제소집하는 등 국가적 산불 비상 조치를 시행했다. 가족과 살 곳을 잃은 주민들은 국가 재난에 안일하게 대처한 스콧 모리슨 총리를 향해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가디언에 따르면 지난 2일 NSW 코바고를 방문한 모리슨 총리는 딸과 함께 살던 집을 잃은 엄마 조이 살루치 맥더모트(20)에게 악수를 청했다. 차가운 표정을 한 맥더모트는 손 내밀기를 거부했다. 그는 “지역 소방대에 더 많은 지원을 한다면 손을 잡아주겠다”면서 “여기 많은 사람이 집을 잃었고, 우린 악수 따위가 아니라 더 큰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총리는 하와이, 국방장관은 발리새해 불꽃놀이 강행 뒤 국가비상최초 예비군 3000명 동원 등 조치주민 “머저리 총리 환영 못해” 싸늘 호주 연방정부는 사상 유례없는 산불 속에서도 새해맞이 불꽃축제를 강행했다. 모리슨 총리는 지난 연말 미국 하와이에 휴가를 떠났다 비난을 받고 귀국했다. 린다 레이놀즈 국방장관은 크리스마스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보냈다고 5일 시인했다.그 동안 코바고에선 맹렬한 불길에 로버트 패트릭과 임신한 그의 아내 레니가 숨졌다. 분노한 마을 사람들의 욕설과 조롱에 총리는 황급히 자리를 떴다. 그의 차량 뒤에 대고 한 남성이 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들며 “널 환영하지 않아, 얼간이 자식아”라면서 “불꽃놀이를 하고도 키리빌리(총리 관저 소재지)는 불타지 않더라”라고 말했다. 시드니모닝헤럴드에 따르면 5일 호주 정부는 NSW, 빅토리아,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태즈메이니아 등 4개주 예비군 중 3000명을 강제소집했다. 전날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됐으며 연방정부의 직접 개입이 시작됐다. 왕립 호주 해군(HMAS) 최대 수륙양용함 애들레이드호도 시드니에서 출항해 소방 함대에 합류했다. 승무원 400명, 의료용품 300톤, 헬리콥터 등을 싣고 NSW와 빅토리아주 경계에 배치돼 구조 임무에 투입된다.정부는 쏟아지는 비판을 의식한 듯 이번 조치가 유례없는 수준이라고 홍보했다. 레이놀즈 장관은 “예비군이 재난구제에 동원된 것은 호주 역사상 처음”이라고 말했다. 앵거스 캠벨 국방군 총사령관은 “당신들의 국방군이 당신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산불은 이미 두 달 여간 호주를 완전히 복구할 수 없는 수준으로 불태웠다. 불에 탄 지역은 5만㎢인데 이는 2018년 8월부터 지난해 7월 브라질 아마존 열대우림 파괴 면적(9762㎢)의 5배가 넘는다. 사망자는 23명이고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동물은 5억마리 이상 죽었고, 일부는 멸종위기에 몰렸다. 농부들은 죽어가는 가축의 고통을 덜어줄 총알마저 떨어졌다고 호소했다.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인 말라쿠다도 잿더미가 됐다. 크리스 필드 스탠퍼드대 환경연구실장은 이번 산불에 맞설 방법을 묻는 AP통신의 질문에 “이 정도 강도의 불엔 맞설 수 없다. 불길은 해변에 닿을 때까지 모든 걸 태울 것”이라면서 “그냥 피해야 한다. 캠프파이어에 침을 뱉는 격”이라고 말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리뷰] 4년 만에 재회한 정마에와 서울시향이 만든 선물 같은 시간

    [리뷰] 4년 만에 재회한 정마에와 서울시향이 만든 선물 같은 시간

    “안녕하세요. 저는 세종문화회관과 서울시립교향악단이 함께하는 2020년 신년음악회에 오르는 클라라 주미 강입니다. 신년음악회에 함께할 수 있어 정말 기쁘고 반갑습니다.” 지난 4일 오후 5시 5분 3층 객석까지 관객으로 가득 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 공연 시작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공연장 직원이 아닌 연주자가 직접 안내방송을 하는 세종문화회관의 독특한 문화에 맞춰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33)이 활 대신 마이크를 먼저 잡았다. 이날 공연은 올해 한국 클래식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첫 공연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마에스트로 정명훈(67)과 세계 클래식 무대로 뻗어 나가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재회로 일찌감치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2006년부터 10년간 예술감독으로 재임하며 서울시향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정명훈은 2015년 12월 30일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지휘를 끝으로 이곳을 떠났다. 2016년 8월 롯데콘서트홀 개관 공연 이후 3년 5개월 만에 다시 옛 단원들 앞에 섰다. 시작은 공연 외적인 문제로 깔끔하지 못했다. 전석 매진을 기록했으나 빈자리가 곳곳에 보였다.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진행된 보수단체 집회 탓에 인근 교통이 통제됐고, 지각 관객이 속출했다. 공연장 주변은 ‘태극기 부대’에 둘러싸였고, 일부 집회 참가자는 공연장 로비에서 욕설을 내뱉으며 소란을 피우기도 했다. 정명훈과 서울시향은 지연 관객을 배려해 예정된 시간보다 8분가량 늦게 첫 연주를 시작했다. 1부 무대에는 정명훈과 바이올린 협연자 클라라 주미 강이 함께 올랐다. 악단 맨 뒷줄에 자리한 팀파니의 울림에 이어 검은색 롱드레스를 입은 클라라 주미 강의 독주가 시작됐다.독일 낭만주의 바이올린 협주곡 대표작으로 꼽히는 막스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이었다. 173㎝ 장신 연주자의 활 끝에서 빚어지는 소리는 힘이 넘쳤고, 서울시향과의 합도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클라라 주미 강은 무대를 완벽히 지배했고, 정명훈과 서울시향은 음을 낮춰 연주하며 협연자가 더욱 돋보이도록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2부는 정명훈과 서울시향 그리고 브람스의 시간이었다. 모두 검은색 정장으로 맞춰 입은 정명훈과 서울시향은 브람스 교향곡 1번 연주에 앞서 자리에서 일어나 객석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 악단을 배경으로 포디엄(지휘대) 위에서 두 팔을 벌린 정명훈은 “내가 있어야 할 곳에 다시 돌아왔다”고 말하는 듯했다. 단원들의 눈빛이 빛났고, 표정도 밝았다. 모두 4악장, 47분쯤 이어진 브람스 교향곡 1번 연주는 시간을 10년 전 ‘정명훈의 서울시향’ 시대로 되돌려 놨다. 세밀한 기교의 현악기 연주자들과 서정적 음색의 금관악기 연주자, 연주의 큰 틀을 잡아 주는 팀파니 등 타악기 연주자 등 악단 모두 정명훈의 손짓이 아닌 그의 숨결대로 악기를 다뤘다. 웅장하게 휘몰아친 4악장 피날레에서는 객석 곳곳에서 탄성과 함께 “브라보”가 쏟아졌다. 정명훈과 서울시향은 지휘자와 연주자가 가장 즐길 수 있고, 서울시향의 팬이라면 너무나도 익숙해서 더 흥겹게 들을 수 있는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제1번으로 새해 첫 축제를 화려하게 매듭지었다. 연주회는 아수라장인 광화문을 뚫고 공연장을 찾은 관객에게 보답하는 정명훈과 서울시향, 클라라 주미 강의 선물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미스터트롯’ 장민호 누구? #데뷔 22년차 가수 #어머니들의 BTS [종합]

    ‘미스터트롯’ 장민호 누구? #데뷔 22년차 가수 #어머니들의 BTS [종합]

    가수 장민호가 ‘미스터트롯’에 출연한 가운데 그의 이력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근 방송된 TV조선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미스터트롯’에서는 22년차 가수 장민호가 출연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장민호는 “가수 한 지 22년차”라며 “요즘 가장 바쁘고, 가장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무대에 앞서 장민호는 긴장감이 역력한 모습을 보여 시청자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다른 참가자가 무대를 꾸밀 때에도 장민호는 혼자 노래를 즐기지 못했다. 그러던 중 장민호는 갑작스레 무대를 이탈했고, 가사 검색을 위해 핸드폰을 사용하고 싶다고 제작진에게 부탁했다. 장민호는 자신의 차례가 다가올 때까지도 가사를 계속 복습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어 그는 경연곡으로 ‘봄날은 간다’를 불렀고, 심사위원단이 놀란 표정을 지은 채 방송이 끝났다. 그의 본무대는 다음 주로 예고되면서 궁금증이 더해졌다. 한편, 장민호는 1997년 그룹 유비스로 데뷔했지만 이후 무명시절이 길어졌다. 그룹 해체 이후 발라드 가수로 전향했던 그는 2011년 트로트 가수 장민호로 다시 데뷔했다. 현재 장민호는 전국의 다양한 행사를 다니며 노래하고 있다. 탄탄한 어머니 팬층 덕분에 행사장에는 어머니 팬들이 몰리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사진=TV조선 ‘미스터트롯’ 방송 캡처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브래드 피트, ‘기생충’ 송강호 만남에 열혈 팬 모드 [헐!리우드]

    브래드 피트, ‘기생충’ 송강호 만남에 열혈 팬 모드 [헐!리우드]

    할리우드 배우 브래드 피트가 배우 송강호를 향한 팬심을 드러냈다.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 미국 배급사 네온(NEON) 측은 3일(현지시각) 공식 트위터에 “송강호의 팬 브래드 피트가 송강호를 만났을 때”라는 글과 사진을 게재했다. 사진 속 브래드 피트는 송강호의 손을 양손으로 덥석 잡으며 영광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브래드 피트의 팬심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모습. 송강호는 활짝 웃으며 화답했다. 또한 ‘기생충’에 함께 출연한 배우 이정은과 이선균이 뒤에서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브래드 피트는 영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가을의 전설’, ‘세븐’, ‘오션스’ 시리즈, ‘트로이’, ‘미스터&미세스 스미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머니볼’ 등에 출연한 할리우드 대표 배우다. 그런 그가 송강호를 보며 존경에 가까운 팬심을 드러내 눈길을 끈다. 앞서 지난달 4일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앞둔 어워드 시즌을 여는 대표 시상식 중 하나인 미국영화연구소(American Film Institute, AFI)상에서 ‘기생충’은 2019 올해의 영화 (AFI Motion Pictures of the Year) 특별상에 이름을 올렸다. ‘기생충’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시작으로 해외 영화제에서 주목 받고 있다. 전미비평가협회에 이어 뉴욕비평가횝회가 선정하는 외국어영화상도 수상했다. 다음 달 9일 열리는 미국 최고의 영화 축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높은 관심을 받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도와줘”…호주 캥거루, 산불로 화상입고 사람에 도움 청해

    “도와줘”…호주 캥거루, 산불로 화상입고 사람에 도움 청해

    호주에서 최악의 산불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화마에 화상을 입고 소년에게 도움을 청하는 캥거루의 안타까운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영국 메트로 등 해외 언론의 3일 보도에 따르면 화재로 서식지가 파괴되면서 5억 마리에 가까운 동물이 죽고, 피해를 입는 주민들도 점차 늘고 있다. 이번에 공개된 사진은 뉴사우스웨일스 주에서 촬영된 것으로, 산불로 큰 화상을 입은 캥거루가 소년에게 다가가 도움을 청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담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당시 캥거루를 발견한 소년은 우선 캥거루 몸에 가득한 열기를 없애기 위해 물을 뿌려줬고, 타는 목을 축일 수 있도록 물그릇을 건넸다. 사진 속 소년이 화상을 입은 캥거루의 앞발을 살며시 잡아주자, 캥거루는 애처로운 표정으로 소년을 응시했다. 4개월 째 이어지고 있는 최악의 산불로 피해를 입은 동물은 사진 속 캥거루 뿐만이 아니다. 시드니 대학의 생태학자들에 따르면, 지난 9월 시작된 대형 산불로 4억 8000만 마리 이상의 포유류와 조류, 파충류가 사라졌다. 새해가 시작된 지 고작 사흘이 지났지만, 빅토리아와 뉴사우스웨일스, 사우스 코스트 등지에서 추가로 130건 이상의 산불이 발생하면서 희생된 동물의 수는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에는 불길로 끔찍하게 타버린 코알라 사체의 모습이 공개돼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사기도 했다. 특히 산불 피해가 심한 뉴사우스웨일스에서는 불과 4개월 새 코알라 8000마리가 목숨을 잃었다. 현지 전문가들은 야생 생물이 급감하면 멸종위기종이 기하 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미래에 심각한 우려가 제기된다고 지적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초콜릿’ 하지원, 세상에서 가장 슬픈 먹방 [SSEN리뷰]

    ‘초콜릿’ 하지원, 세상에서 가장 슬픈 먹방 [SSEN리뷰]

    “맛있게 만들어 주셨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드라마 ‘초콜릿’ 하지원이 세상에서 제일 슬픈 먹방을 선보이며, 다양한 감정을 표출한 ‘롤러코스터 열연’으로 시선을 강탈했다. 하지원은 지난 3일 방송한 JTBC 금토드라마 ‘초콜릿’ 11회에서 미각 잃은 요리사의 슬픔을 온 몸으로 표현하며 몰입도를 폭발시켰다. 이날 방송에서 문차영(하지원)은 버무린 김치 양념에서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자 크게 좌절했다. 뒤이어 다양한 음식을 파는 먹자골목에서 어떤 냄새도 못 맡는 자신의 모습에 참담함을 느꼈다. 실내포차 안으로 들어가 순대볶음과 닭발, 비빔국수 등 자극적인 음식들을 주문한 문차영은 음식을 먹고 싶어도 도저히 삼킬 수 없음에 서글픔을 드러냈다. 억지로 음식을 꾸역꾸역 밀어 넣다 체기가 돈 문차영은 자리를 떠난 뒤, 어느 때보다 힘든 표정을 지어 가슴을 울렸다. 이후 문차영은 초콜릿 가게로 향해 초콜릿을 베어 물며 맛을 음미했다. “초콜릿도 맛을 모르긴 마찬가지 아닌가?”라는 이준(장승조)의 질문에 문차영은 과거 백화점 붕괴 사고에서 초콜릿을 먹고 살아난 일화를 담담하게 고백한 것. “후각을 잃고 미각을 잃어도 이 초콜릿은 어떤 맛인지 알아요”라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자신에게 초콜릿을 내어주고 돌아가신 은인의 존재를 밝히며 이루 말할 수 없이 슬픈 눈빛을 드러내 몰입도를 끌어올렸다. 결국 요리사로서 쓸모가 없어졌다고 판단한 문차영은 이강에게 “주방을 그만 두려고요”라며 마지막 인사를 전한 터. 당황한 이강은 문차영에게 환자 마이클이 문의한 ‘수제비인데 수제비가 아닌 음식’만 만들고 나가달라고 부탁했고, 직후 두 사람의 ‘불편한 주방 생활’이 시작됐다. 완당과 감자옹심이를 만들던 문차영은 요리 내내 자신을 지켜보는 이강의 시선과 부자연스러운 행동에 “주방에서 좀 나가주세요!”라고 감정을 폭발시킨 것. 이에 이강이 밖으로 나가던 중 어린 시절 완도 동구 아저씨의 부고 소식이 전해졌고, 전화를 받은 이강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밖으로 향했다. 이때 이강이 술을 마셨음을 깨달은 문차영은 상황을 파악한 후 “완도까지 제가 대리해 드릴게요”라며 차에 올랐고, 여전히 굳어 있는 이강이 문차영을 바라보는 모습으로 극이 마무리됐다. 앞치마도 벗지 못한 채, 이강을 위해 발 벗고 나선 문차영의 매력이 극대화된 순간이었다. 하지원은 이날 방송을 통해 사랑스러운 인간미와 밀려오는 자괴감, 이강에게 폭발해버린 감정과 걱정스러운 마음까지 ‘극과 극’ 감정을 입체적으로 표현, 극을 주무르는 흡입력을 선사했다. 나아가 주방에서 펼쳐진 이강과의 ‘심쿵 모먼트’를 비롯해 완도에서의 새로운 서사를 예고하며, 다음 회에 대한 기대감을 끌어올렸다. 방송 후 시청자들은 “우리 차영이에게 ‘꽃길’은 언제 펼쳐지나요” “음식 맛도 못 보고 꺽꺽대는 모습에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이강과 단둘이 완도행!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벌써부터 설레네요” 등의 피드백을 이었다. ‘초콜릿’ 12회는 4일(오늘) 밤 10시 50분 JTBC에서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험난한 앞날 예고한 秋, 검찰간부 앞에서 ‘검찰개혁’ 8번 강조

    험난한 앞날 예고한 秋, 검찰간부 앞에서 ‘검찰개혁’ 8번 강조

    추 장관, 밝은 미소에도 긴장감 흐른 취임식 현장김오수 차관에 감사 전해“법무부 위상 되찾겠다”3일 오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법무부 장관 취임식장에 들어선 추미애 신임 장관의 표정에선 여유로움이 흘러 넘쳤다. 푸른색 정장을 입고 가슴 한 켠에 꽃을 달고 나타난 추 장관은 단상에 오르기 전부터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며 밝은 모습을 보였다. 조국 전 장관이 사퇴한 뒤 80일간 법무부를 이끈 김오수 차관은 추 장관 뒤에서 약간의 간격을 두고 걸어 들어왔다. 이후 마이크를 잡은 추 장관은 취임사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김 차관에 감사 인사를 건넸다. 추 장관은 정치인 출신답게 1000여명의 참석자들 앞에서 전혀 긴장하지 않은 듯 밝은 미소를 띠며 취임사를 읽어 내려갔다. 하지만 추 장관의 표정과 달리 취임사에는 전쟁에 나서는 장수의 심정을 드러낸 듯한 표현들이 자주 등장했다. 전날 임명장 수여식에서 “여러 번 찌르는 건 명의가 아니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통해 검찰을 긴장시킨 추 장관은 이날 취임사에서도 ‘검찰개혁’이란 표현을 8차례나 썼다. ‘서해맹산’의 정신으로 검찰개혁 소명을 완수하겠다고 한 조국 전 장관이 취임사에서 검찰개혁을 9차례 언급했는데, 추 장관도 취임식에 참석한 검찰 고위간부들 앞에서 검찰개혁을 수차례 강조한 것이다. 이날 취임식장에는 강남일 대검찰청 차장검사, 배성범 서울중앙지검장을 비롯해 윤석열 검찰총장의 핵심 참모들이 총출동했다. 추 장관은 실추된 법무부 위상을 바로 세우는 것이 ‘검찰의 제자리 찾기’를 위한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란 점을 분명히 밝혀둔다고 했다. 또 “법무부가 검찰개혁의 소관 부처로서 역사적인 개혁 완수를 위해 각별한 자세와 태도로 임해야 한다”며 험난한 앞날을 예고하기도 했다. 다만 “검찰을 개혁 대상으로만 치부하지 않고 개혁의 동반자로 삼겠다”고 하면서 일방적으로 검찰에 개혁의 칼을 휘두르지는 않을 것이란 입장도 내비쳤다. 추 장관은 검찰개혁을 강조하면서 ‘줄탁동시’란 표현도 썼다.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날 때 병아리와 어미 닭이 안팎에서 함께 쪼아야 한다는 뜻으로 법무부 뿐 아니라 검찰도 개혁을 위해 동참해 줄 것을 당부한 것이다. 추 장관은 취임사를 마무리하면서 “법무부와 그 소속 기관들은 조직의 개별적 이익이 아니라 주권자 국민에게 낮은 자세로 봉사하는 ‘공복의 자세’로 돌아와야 할 것”이라며 강도 높은 내부 쇄신 작업도 추진하겠다고 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최준용, 대장에 용종 3822개 발견→대장절제술 ‘현재 건강 상태는?’

    최준용, 대장에 용종 3822개 발견→대장절제술 ‘현재 건강 상태는?’

    ‘모던 패밀리’ 최준용의 아내 한아름씨가 ‘대장 절제술’을 한 아픔을 어렵게 털어놓는다. 3일 오후 11시 방송되는 MBN ‘모던 패밀리’ 45회에서는 ‘15세 연상연하’ 신혼 부부 최준용 한아름씨가 심각한 표정으로 병원을 찾는 모습이 그려져 시선을 집중시킨다. 두 사람은 지난 해 10월 결혼해 장위동 옥탑방에 신혼살림을 차린 4개월차 부부. 특히 초혼인 한아름씨가 최준용의 부모님, 최준용의 아들과 한 집에 모여 사는 모습이 ‘모던 패밀리’에서 처음 공개돼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한아름씨는 세련된 미모에 밝은 성격으로, 부족함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 남모를 아픔이 있다. 지난 2013년 대장에 용종이 무려 3822개가 발견돼 대장 절제술을 한 것. 연애 시절부터 이 사실을 안 최준용과 시댁 식구들은 한아름씨를 사랑으로 감싸 안아 진정한 가족애를 보여줬다. 대수술 후 오랜만에 병원을 방문한 두 부부는 현재 한아름의 건강 상태가 어떤지와 임신이 가능한지에 대해 전문의에게 상담한다. 이 과정에서 최준용, 한아름씨는 의사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접해, 착찹함을 감추지 못한다. 집에 돌아온 두 사람은 최준용의 어머니와 병원 다녀온 이야기를 나누고, 여기서 한아름씨는 그간 힘들었던 투병기와 “지금 너무나 행복해서, 나 내일 죽나 싶다”는 속내도 털어놓는다. 최준용의 어머니는 며느리의 고백에 “넌 행복 지각생이야. 이제부터 많이 행복해야 한다”고 다독인다. 최준용 역시 “당신을 좋아하게 된 게, 힘든 장애를 안고서도 긍정적으로 사는 성격 때문이었다”고 말한 뒤 “내가 한참 나이가 많지만 당신을 보살펴야 하니, 딱 1분만 더 살고 싶다”고 고백해 모두를 눈물짓게 한다. 드라마보다 감동적인 최준용 한아름 부부의 ‘찐’ 사랑 이야기는 이날 오후 11시 방송되는 ‘모던 패밀리’ 45회에서 공개된다. 이외에도 박해미 황성재 모자가 생애 처음으로 정신과 진료에 나선 사연이 공개된다. 한편, MBN ‘모던 패밀리’는 매주 금요일 오후 11시 방송된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이슈있슈] 교황의 ‘버럭’…진짜 문제는 느슨한 경호·무례한 신도

    [이슈있슈] 교황의 ‘버럭’…진짜 문제는 느슨한 경호·무례한 신도

    “고령의 교황 손 낚아채고 당긴 무례한 신도” 프란치스코 교황(83)이 자신의 손을 잡아당기고 놓지 않은 신도에게 ‘버럭’ 화를 낸 것에 대해 사과했다. 교황은 31일 밤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한 여성 신도가 자신의 손을 세게 잡아 당겨 몸이 기울자 찡그린 표정으로 여성의 손등을 두 번 내리치고 자리를 벗어났다. 이 모습은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퍼지며 화제가 됐고 교황은 “우리는 자주 인내심을 잃으며 그건 내게도 일어난다. 어제 있었던 나쁜 전례에 대해 사과한다”고 말했다. 새해 첫 미사에서도 “여성을 향한 모든 폭력은 여성에게서 태어난 신에 대한 모독”이라고 반성의 메시지를 냈다. 온화한 미소를 머금던 교황의 화난 얼굴은 생소했지만 충분히 그럴 만한 상황이었다는 여론이 다수였다. 문제의 여성이 고령의 교황 손을 낚아채 당긴 것은 위험했고 무례했다는 지적이다. AFP 등 외신과 유튜브 영상 댓글에는 “교황도 인간이며 순간적이고 본능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사과는 신도가 해야 마땅하다”라는 반응이 많았다. 여성의 국적을 두고도 설전이 이어지고 있다. 한 네티즌은 “중국 관광객들은 항상 무례하다”면서 “경호원들에게 저지당하기 전 해당 여성이 외친 말은 ‘만다린(중국어 방언의 한 형태)’으로 들린다”고 주장했다. 다른 네티즌은 교황이 과거 대만과 홍콩에 우호적 태도를 보여 온 것을 근거로 “중국계 극우주의자의 행동”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경호팀의 느슨한 대처를 지적하는 댓글도 있었다. 말 그대로 경호를 위해 존재하는 팀인데 교황이 스스로 손바닥을 때릴 때까지 개입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는 것이다. 한 경호전문가는 AFP통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교황이 아닌) 교황 경호팀이 사과할 일”이라고 강조했다.바티칸에서 교황 경호는 최우선 사항이다. 1981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암살 시도 사건이 일어난 이후 광장에 들어가려면 금속탐지기를 통과해야 한다. 교황 전용 방탄차량도 제작됐다. 그럼에도 일부 지나친 열성신자들로 몸살을 앓기도 한다. 2009년 성탄 전야 미사 전 한 여성은 교황을 껴안겠다며 바리케이드를 뛰어넘어 베네딕도 16세 교황의 옷자락을 잡아당겼고, 당시 82세였던 교황이 쓰러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교황은 다치지 않았지만 프랑스 추기경이 이 소동으로 다리가 골절됐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구속 피한 전광훈 “대한민국 살아있어…애국운동 문제 없다”

    구속 피한 전광훈 “대한민국 살아있어…애국운동 문제 없다”

    불법·폭력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 위기에 놓였던 전광훈 목사(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가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아직 대한민국은 살아있다는 걸 느꼈다”며 “애국운동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법 송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2일, 검찰이 청구한 전 목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송 부장판사는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나 구속의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문재인 하야 범국민투쟁본부(범투본) 총괄대표인 전 목사는 지난해 개천절 광화문에서 열린 보수 집회에서 불법·폭력 행위를 주도한 혐의를 받는다. 전 목사 등은 집회 전 ‘순국결사대’라는 이름의 조직을 만들어 청와대 진입을 준비하는 등 불법 행위를 사전에 계획하고 주도했다고 경찰은 보고 있다. 실제 당시 집회에서 탈북민 단체 등 40여명은 청와대로 행진하면서 이를 막는 경찰관을 폭행해 현행범으로 체포되기도 했다.그러나 송 부장판사는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집회의 양상과 진행 상황에서 전 목사가 구체적으로 불법 폭력행위를 지시하고 관여한 정도, 수사 경과 및 증거 수집 정도를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서울 종로경찰서 유치장에서 구속영장 처리 결과를 기다렸던 전 목사는 이날 밤 11시쯤 지지자들의 환호 속에 밝은 표정으로 경찰서를 빠져 나왔다. 그는 자신의 혐의와 관련 “폭력이 아니라 탈북자 단체와 경찰의 몸싸움이 있었다”며 자신은 관여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기부금품법 위반 등 다른 혐의로 수사를 받는 것에 대해 “예배 시간에 헌금하는 게 무슨 모금법 위반인가”라며 반문했다. 경찰은 전 목사가 지방자치단체에 신고하지 않고 후원금을 모집한 뒤 약 6200만원을 청와대 근처 집 2채를 월세로 빌리는데 쓴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전 목사는 앞으로 집회를 계속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그 책속 이미지] 스스로 괴롭히지만 결국 구원에 이르는 예술

    [그 책속 이미지] 스스로 괴롭히지만 결국 구원에 이르는 예술

    꼬마 인간들이 사는 집을 부숴 버린 거대 인간이 묻는다. “보여 줘. 어떻게 하면 우릴 구할 수 있는지.” 굳건한 표정으로 거대 인간을 바라보는 꼬마 인간들은 어떤 답을 내놓을까. ‘와이 아트’는 짧은 이야기를 통해 예술의 의미를 설명한 어른용 그림책이다. 9명의 예술가는 갑자기 닥쳐 온 거대한 손의 공격에서 도망치고, 숨었던 곳에서 꼬마 인간들이 사는 작은 박스를 발견한다. 그곳에 자기와 똑같은 꼬마 인간을 만들어 놓더니, 심술이라도 난 양 그들을 위기로 몰아넣는다. 예술은 무엇이고, 예술가는 어떤 사람들인지 생각해 보라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다. 짧은 이야기에 담긴 철학의 울림이 크다. 2018년 이그나츠 어워드 그래픽 노블상 수상작.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고강도 개혁 요구·인사 태풍 전망에… 檢 폭풍전야

    고강도 개혁 요구·인사 태풍 전망에… 檢 폭풍전야

    여권 비판에도 흔들리지 않겠다는 의지 신년회서 마주친 尹·秋 대화는 안 나눠검찰은 그야말로 ‘폭풍전야’다.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오전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임명하면서 강도 높은 개혁을 주문했고, 당장 다음주 초 핵심 간부들에 대한 인사가 단행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검찰 내부엔 긴장감이 역력하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이날 신년 다짐회에서 “어떤 사사로운 이해 관계도, 당장의 유불리도 따지지 않고 오로지 국민만 바라보며 바른 길을 가야 한다”면서 “사회 곳곳에 숨어 있는 불공정에 대응하는 것은 헌법의 핵심 가치를 지켜 내는 것이고, 국민이 검찰에 맡긴 책무를 완수하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검찰 수사를 향한 비판이 거세지만 흔들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재차 다진 것으로 풀이된다. 윤 총장은 고강도 검찰 개혁을 예상한 듯 “올해도 검찰 안팎의 여건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검찰총장으로서 여러분의 정당한 소신을 끝까지 지켜 드릴 것”이라며 검찰 구성원들에 대한 격려도 빼놓지 않았다. 추 장관이 곧바로 대대적인 인사를 단행할 것으로 예고되는 데다 특히 윤 총장의 ‘손발’부터 자를 수 있다는 전망이 뒤따르면서 검찰 내부도 뒤숭숭한 분위기다. 이를 의식한 듯 검찰 관계자는 “인사와 관련해 들은 내용이 전혀 없고 아직은 가정적인 상황일 뿐”이라면서도 “인사는 법적인 틀 안에서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검찰청법은 법무부 장관이 검사 보직 인사 때 검찰총장의 의견을 청취하도록 명시돼 있다. 다만 추 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검찰총장의 의견을 듣는 것이지 협의하는 게 아니다”라고 선을 긋기도 했다. 윤 총장은 이날 추 장관에게 검찰 인사에 대한 의견을 밝힐 것인지, 정부 신년회에서 이야기를 나눴는지 등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정부 신년회에서 추 장관과 마주쳤지만 별다른 대화는 하지 않았다. 윤 총장은 대검 신년회에서도 준비한 신년사만 낭독한 뒤 자신을 촬영한 사진기자들에게 다가가 “사진을 예쁘게 찍어 달라”는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산불 탓에…기르던 소 직접 쏴죽인 호주 농장주의 눈물 

    산불 탓에…기르던 소 직접 쏴죽인 호주 농장주의 눈물 

    호주 남동부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의 피해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는 가운데, 기르던 소를 직접 죽여야만 했던 한 농장주의 사연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새해 첫날, 뉴사우스웨일스주 남쪽 해안 쿨라골라이트 마을 농부 스티브 쉬프턴은 수의사와 함께 자신의 농장을 방문했다. 불에 탄 농장은 사방이 까맣게 그을렸고, 화마를 피하지 못한 소의 사체가 곳곳에 나뒹굴고 있었다.수의사와 함께 화상 정도를 체크하며 소의 회생 가능성을 살폈으나 살릴만한 소는 없었고, 농장주는 결국 자신이 기르던 소 20여 마리를 직접 총으로 쏴 죽였다. 농장주는 안락사를 시킬 수도 없을 만큼 급박한 상황 속에 소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직접 총을 쏜 것으로 보인다. 수의사와 동료 농장주의 위로에도 참담한 표정으로 황폐해진 농장에 서 있는 그의 모습에서 호주 산불의 심각성이 그대로 드러난다.지난 10월부터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와 퀸즐랜드 일대 약 5만㎢를 잿더미로 만든 산불은 이제 빅토리아까지 내려오는 모양새다. 지난달 31일에는 빅토리아 깁스랜드까지 산불이 번지면서 긴급 대피 명령이 떨어졌다. 그러나 온통 붉은색으로 변한 하늘 아래 탈출구가 막힌 4000여 명은 바다로 대피해 배와 군용헬기로 탈출을 모색하고 있다. 인명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1일(현지시간)에는 불길 속 자동차에서 2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달 30일과 31일에는 화염 토네이도에 소방차가 전복되면서 의용대원 1명이 숨지고, 불길 속에서 집을 지키려던 아버지와 아들이 목숨을 잃었다. 10월부터 지금까지 산불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최소 17명이며, 실종자도 18명에 달한다. 현지언론은 앞으로 인명피해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을 했다.재산 피해도 상당하다. 최근 호주 남동부 해안가를 따라 번진 산불로 200여 가구가 파괴됐다. 11월부터 합치면 1천여 채의 가옥이 소실됐다. 아직 산불이 미치지 않은 지역에서도 주민들이 사재기하며 동요하는 모습이다. 뉴사우스웨일스주 남쪽 해안의 작은 마을인 밀튼에선 주민들이 무엇이라도 사기 위해 슈퍼마켓에 몇 시간씩 줄을 섰다. 산불이 덮친 베이트먼스 베이에서 3개월짜리 아이를 안고 탈출했다는 한 여성은 가게에서 한 사람당 구매 물품 개수를 제한하고 있으며, 전기가 나가 신용카드로는 계산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생태계 역시 초토화됐다. 코알라 서식지는 최대 30%가 불에 탔으며, 개체 수가 급감하면서 호주 코알라는 더이상 새끼를 낳을 수 없는 ‘기능적 멸종’ 위기에 빠졌다. 코알라 외에도 야생 페럿과 캥거루 등 다양한 야생동물이 서식지를 잃었으며, 불을 피해 주택가로 내려온 캥거루가 여럿 목격됐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서울포토] 환한 표정으로 이야기 나누는 이낙연-추미애

    [서울포토] 환한 표정으로 이야기 나누는 이낙연-추미애

    2일 서울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2020년 정부시무식에서 이낙연 총리가 추미애 법무장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김희철♥모모 열애’ 나연 발언 재조명 “난 알고 있어”[종합]

    ‘김희철♥모모 열애’ 나연 발언 재조명 “난 알고 있어”[종합]

    그룹 슈퍼주니어의 김희철과 그룹 트와이스의 모모가 열애를 인정했다. 슈퍼주니어 소속사 레이블SJ와 트와이스 소속사 JYP엔터테인먼트는 2일 “두 사람은 평소 친한 연예계 선후배 사이로 지내다 최근 서로에게 호감을 갖고 만나는 사이가 됐다”고 밝혔다. 앞서 이날 한 매체는 “김희철과 모모가 2년째 열애 중”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김희철은 1983년생, 모모는 1996년생으로 두 사람은 13살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공식 연인이 됐다. 두 사람은 2019년 8월에도 열애설에 휩싸였으나 “친한 선후배일 뿐”이라며 이를 부인했다. 하지만 5개월 만에 제기된 두 번째 열애설을 인정하면서 2020년 새해 첫 공식커플이 됐다. 김희철, 모모는 SBS ‘꽃놀이패’, MBC 에브리원 ‘주간 아이돌’, JTBC ‘아는 형님’ 등의 예능에서 만나 남다른 케미를 보여줬다. 김희철은 트와이스 데뷔 때부터 모모의 팬이라고 밝히며 공개적으로 호감을 드러내왔다. 이에 화답해 모모는 김희철, 민경훈의 ‘나비잠’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기도 했다. 두 사람이 열애를 인정하며 ‘아는 형님’에 트와이스가 출연했을 당시 나연이 했던 말도 재조명 받고 있다. ‘희철’로 2행시 짓기에 나선 나연은 “희철아 나는 알고 있어. 사실 모모는..”이라고 말했고 김희철은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와 함께 ‘너 설마?’라는 자막이 삽입됐다. 나연은 “철부지”라고 2행시를 마무리 지었다. 김희철은 지난 2005년 슈퍼주니어로 데뷔해 가수 활동은 물론 예능인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모모는 지난 2015년 그룹 트와이스로 데뷔해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2020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악몽을 거쳐야 태어나는 것들 -강성은의 시

    1. 별일, 없습니까? 강성은을 줄곧 예의주시하던 독자라면, 그녀가 ‘별일 없습니다 이따금 눈이 내리고요’(현대문학, 2018)에서 보여 준 세계가 결코 낯설게 다가오지 않았을 것이다. 안개가 도시를 뒤덮어 이윽고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이야기(‘눈 속에 안개가 가득해서’). 여기에는 비록 논리적 인과가 생략되어 있지만, 그동안의 그녀의 작품 세계를 떠올려 보자면 이러한 결말은 거의 필연으로 다가온다. 그러니 일단 그 결말에 대한 이야기는 접어 두도록 하자. 타인의 죽음을 노래하던 세헤라자데의 이야기보다 무서운 것은, 그녀의 ‘별일 없습니다’라는 말에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강성은의 세계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녀는 현실의 비틀림을 시적 언어로 치환하여 구조적 폭력과 그 속에 놓인 주체를 치밀하게 조망한다. 그 세계는 희생자의 관점에서 추상된 세계이기에, 폭력을 경험해 보지 못한 자의 눈에는 이해할 수 없는 타자의 영역으로 남는다. 세계는 악몽이며, 깰 수 없는 꿈이라는 인식 속에서 강성은은 극복이나 초월을 말하지 않으며 단지 악몽을 더듬어갈 뿐이다. 그간 강성은이라는 시인이 평단과 독자 양쪽 모두의 주목을 받았음에도 그녀의 세계 전체를 관통하는 해석이 부재했던 것은 타자의 세계와 응전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기묘한 매력이 있음을 동시에 암시해 준다. 이 낯선 세계와 마주하기 위해 이런 질문을 던져 보자. 별일 없다고 말하는 당신은 누구입니까? 우리에게는 보다 대담한 시도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가령 악몽을 이해하기 위해 또 다른 ‘악몽’을 나란히 세워 보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그 자리에 스즈키 고지 원작의 영화 ‘링’1)을 놓아보자. 악몽에 일상을 겹쳐 놓음으로써 ‘이것은 악몽이다’라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악몽에 또 다른 악몽을 겹쳐 놓음으로써 강성은 시의 깊이에 초점을 맞춰 보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그 세계가 가진 디테일과 그로부터 펼쳐지는 어떤 파국의 매혹에 대해, 그리고 그 파국이 가질 수 있는 어떤 심층적 의미에 대해 깊게 응시할 수 있을 것이다. 2. 죽음을 상연하는 세헤라자데의 서커스 -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창비, 2009)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에서 시인은 ‘세헤라자데’의 입을 통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옛날 이야기 들려줄까 악몽처럼 가볍고 공기처럼 무겁고 움켜잡으면 모래처럼 빠져나가버리는 이야기’. 그러나 여기에서 이야기는 아직 비어 있다. 드러나는 것은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뿐이다. 마치 본 사람 중에 살아남은 이가 없어 아무도 그 내용을 모르는 ‘링’2)의 비디오처럼. 옛날 이야기 들려줄까 악몽처럼 가볍고 공기처럼 무겁고 움켜잡으면 모래처럼 빠져나가버리는 이야기 조용한 비명 같은 이야기 천년 동안 짠 레이스처럼 거미줄처럼 툭 끊어져 바람에 날아가 버릴 것 같은 이야기 지난밤에 본 영화 같고 어제 꿈에서 본 장면 같고 어제 낮에 걸었던 바람 부는 길 같은 흔해빠진 낯선 이야기 (…) 당신이 마지막으로 했던 이야기 매일 당신이 하는 이야기 내가 죽을 때까지 죽은 당신이 매일 하는 그 이야기 끝이 없는 이야기 흔들리는 구름처럼 불안하고 물고기의 피처럼 뜨겁고 애인의 수염처럼 아름답고 귀를 막아도 들리는 이야기 (…) 어젯밤에 내가 들려준 이야기인 줄도 모르고 내일 밤 내가 당신 귀에 속삭일 이야기인 줄도 모르고 - ‘세헤라자데’ 중에서 천일야화 속 등장인물인 그녀는 죽음을 피하기 위해 이야기를 이어 가는 인물이다. 예컨대 그녀는 왕이 계속해서 이야기를 듣도록 매혹해야 하는 숙명에 빠져 있다. 그러나 위의 시에서 소재가 되는 ‘이야기’는 일반적인 성격에서의 매혹과는 다른 결로 표현되어 있다. 그 이야기는 ‘무겁고’, ‘툭 끊어’질 것 같고, ‘비릿하고’ ‘개 같’다. 심지어 화자는 그것을 ‘흔해빠진 낯선 이야기’라고 말한다. 혼란에 빠진 듯 두서없이 말하는 시에서 내용이 아닌 목적에 맞춰 질문을 던져 보자. 그녀는 이런 설명으로 어떻게, 어떤 청자를 매혹하려는 걸까? 보편적 매혹과 구별되는 설명이 매혹으로 작용하는 경우에 대해 떠올려 보자. ‘링’의 첫 대목은 여고생의 통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녀는 저주받은 비디오에 대해 상대에게 집요하게 묻는다. ‘보면 죽게 되는 비디오’라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야기에 빠져든다. 이 기묘하고 혼란스러운 장면이 영화의 시작을 장식하는 것처럼, ‘세헤라자데’가 시집의 첫 작품으로 배치될 때 환기시키는 것은 위험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한 매혹이다. 그렇다면 ‘세헤라자데’는 누구로부터 죽음을 연기하려는 것일까?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시집에서 ‘죽음’이 특정한 사건이 아닌, 세계에 만연해 있는 일상으로 묘사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나’는 남편에 의해 살해당하기도 하며(‘서커스 천막 안에서’), 자줏빛 스카프와 같은 사물에 의해 살해당하기도 하며(‘누가 그레텔 부인을 죽였나’), 때로는 바람이 몰아쳐 내장을 쏟아내며 죽기도(‘새벽 두시의 변기’) 한다. 그 외에도 무수하게 변주되는 죽음의 양상 속에서, 죽음은 특별한 인과가 아니라 세계의 이상성을 보여 주는 한 표지(標識)가 된다. 여기에 덧붙여 화자가 죽음을 ‘신의 집에서 벌어지는 서커스’(‘잠의 형제’)라고 말한다는 점에 주목해 보자. 죽음은 슬픔, 그리움, 안타까움과 같은 감정을 동반하는 사건이 아니라 신의 유희를 위해 상연되는 그 무엇이다. 이 시적 세계에서 인물은 신의 유희를 위한 희생양의 위치에 놓여 있는 셈이다. 이러한 희생양의 위치는 공포영화 속 인물의 위치와 같다. 공포영화에서 인물이 죽는 것은 살인마에 의해서인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는 관객의 긴장과 응시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다시 말해, 영화에서 인물의 삶과 죽음은 오직 내적 서사에만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을 염두에 둔 상태로 전개된다. 영화 ‘링’의 결말 부분에서 인물의 죽음은 직접적인 묘사를 통해 스크린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눈을 통해 우회적으로 전달된다. 눈은 1차적으로 내적 맥락인 사다코의 저주를 표상하지만 이는 동시에 외적 맥락인 관객의 응시 또한 형상화한다. 이어지는 엔딩에서 여주인공 아사가와는 다른 이에게 저주의 비디오를 전달하러 떠난다. 자신의 죽음을 연기(延期)하기 위해 다른 이를 희생양으로 만드는 것이다.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에서 ‘세헤라자데’ 또한 마찬가지로 이해될 수 있다. 예컨대 자신의 죽음을 연기하기 위해 타인의 죽음을 계속해서 상연하는 서커스라고 말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시집에서의 수많은 죽음은 화자의 죽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상연을 위해 화자가 뒤집어쓴 인물들의 죽음이다. 다시 말해 화자는 죽음을 연기(延期)하기 위해 신 앞에서 계속 죽음을 연기(演技)해야 하는 저주받은 자이고, 그것이 시집에서 표상되는 세헤라자데의 본질이다. 그렇기에 화자는 ‘구두 위에 구두를 또 신’고, 종국에는 ‘구두 속에서 나오지도 않’게 된다.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는 세헤라자데의 저주받은 삶을 표상하는 문장인 셈이다. 동일한 맥락에서 신체 절단과 같은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와 서커스에 연관될 수 있는 이미지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작품 외적으로는 시인의 개성적인 상상력이면서, 작품 내적으로는 신의 눈을 홀리는, 화자가 계속 존재하기 위한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시의 그로테스크함은 통각의 언어이면서, 화자의 세계를 지탱하고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정신분석학적 의미에서의 증상3)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가 그로테스크한 발화를 다룰 때, 그것을 단순히 희생자의 광기 어린 토로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가끔 그녀의 감은 눈꺼풀 속 검고 깊은 구멍 속에서 하얀 꽃잎들이 흩어져내렸네’(‘나무가 되는 법’)라거나 ‘나는 나를 벗겨내기 시작했다 점들은, 살점들은, 몸에서 떨어져나가는 순간 선명하게 붉은 점이 되었다’(‘태양의 반대편’)라고 말할 때, 이는 화자의 광기를 증언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탱하고 유지하려는 절박한 시도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때에 나타나는 난해성은 해석에 저항하는 관성적 구성물로서 증상의 필연적 산물이다. 결국 증상들로부터 예증되는 이 그로테스크한 절박함이야말로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를 통해 강성은이 펼쳐 보인 시적 세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Komm, s廓r Tod) - ‘단지 조금 이상한’ (문학과지성사, 2013)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를 통해 강성은은 저주받은 세헤라자데의 몸을 빌려 독자적인 시적 세계와 그 속에서의 증상적인 발화를 보여 주었다. 그녀의 첫 시집은 이렇듯 죽음을 연기(延期)하기 위해 죽음을 연기(演技)하는 분투였다. 이는 두 번째 시집 ‘단지 조금 이상한’ 에도 이어지는 것으로서, 여기에도 강성은은 자신의 시가 본질적으로 하나의 연기(演技)이자 제스처라는 방식을 줄곧 유지한다. 가령 ‘외계로부터의 답신’에서 화자는, 어떤 날은 내가 읽은 페이지마다 독이 묻어 있고 내 머리털 사이로 예쁜 독버섯이 자라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하지 나는 죽지 않고 어떤 날은 미치도록 사랑에 빠져든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여자가 되어 그런데 이상하지 나는 병들어가고 - ‘외계로부터의 답신’ 중에서 라고 말하며 삶과 연기의 간극을 드러낸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두 가지 효과가 발생하면서 이 시집이 전작의 연장선상에 있지 않음을 드러낸다. 첫째로 자신의 삶이 하나의 연기임을 완전히 선언했다는 점이다. 전작에서 화자는 ‘구두’라는 표현을 통해 자신의 삶이 수많은 배역의 연기임을 드러냈지만, 이 같은 대비를 전경화하지는 않았다(전작에서 화자는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는 점에 유의하자). 두 번째는 연기와 삶 사이의 틈을 무대화한다는 점이다. 그 틈은 ‘단지 조금 이상한’ 것으로, ‘아직 이름이 없고 증상도 없는/어떤 생각에 빠져 있을 땐 멈춰 있다가/정신을 차리고 보면 다시 생동’한다. ‘단지 조금 이상한 병/잠처럼’(‘단지 조금 이상한’) 좀처럼 알아차릴 수 없으며 드러나지 않지만, 해소될 수도 없는 틈. 화자는 그 틈을 어렴풋이 감지하며 그것의 윤곽을 그려 나간다. 이처럼 연기와 화자 사이의 틈이 무대화되는 지점에서 화자는 존재론적 물음에 직면한다. 예를 들어 ‘올란도’에서 화자는 과거를 돌아보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아는 사람들 모두가 죽었다 몇 세기에 걸쳐 꿈을 꾸었다 수많은 계절들의 반복과 변주 수많은 사람들의 반복과 변주 어제와 내일의 경계가 사라져도 이 꿈은 사라지지 않아 죽기 위해 절벽에서 몸을 던지면 다음 생이 시작된다 너는 누구지? 너는 누구야? 밤이 저 오랜 질문을 던지고 슬그머니 얼굴을 바꾸면 다음 날이 시작된다 너는 누구지? 너는 누구야? 몇 세기에 걸쳐 떨어져 내리는 낙엽들 나의 노래들이 켜켜이 쌓여간다 나의 얼굴들이 켜켜이 쌓여간다 이 오랜 꿈이 끝나고 나 자신이 희고 빛나는 밤이 될 때 이것이 어떤 잠이었는지 알게 되리 - ‘올란도’ 전문 타자의 몸을 빌려 그로테스크한 죽음을 상연하던 것에 대해 이제 화자는 그것을 하나의 ‘꿈’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꿈은 깨지 않는 꿈이고 사라지지 않는 꿈이다. 그 꿈속에서, 화자는 자신의 실체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에 직면한다. ‘너는 누구지? 너는 누구야?’ 그러나 화자는 대답할 수 없다. 무수히 반복되는 삶 속에서 ‘나’란 ‘켜켜이 쌓여’가는 반복과 변주라는 사후적 형식으로만 파악될 뿐이다. 그렇기에 질문은 존재론적 해답을 향해 나아가지만 결국에는 빗나가며 실패한다. 화자는 그 빗나감과 실패를 통해 자신의 존재에 대한 희미한 윤곽선만을 그려본다. 그 대답을 ‘나 자신이 희고 빛나는 밤이 될 때/이것이 어떤 잠이었는지 알게 되리’라며 사후의 순간에 은유할 뿐이다. 이때 ‘죽음’이라는 기표는 이전과 다른 의미로 조직된다. 이전 시집에서 그것이 신의 유희를 위해 상연되는 것이었다면, 이제 죽음은 필연적으로 찾아오게 될 시간, 화자가 ‘밤’이 되는 순간으로 재전유된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떤 변화를 의미할까? ‘링’의 마지막 장면에서 보이는 아사가와의 표정을 상기해 보자. 이 장면에서 아사가와는 우연히 저주받은 비디오를 봐 버린 아들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매개물이 되어 자신의 부모에게 저주를 전염시키러 떠나고 있다. 여기에서 아사가와는 슬픔에 찬 눈과는 대조적으로 약간의 웃음을 입가에 머금고 있다. 먼저 확실한 것은 그 표정이 저주에 사로잡혀 공포에 떨던 표정도,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 초조해하던 표정도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이 표정은 한결 평온해 보인다. 이 지점에서 ‘링’을 구성하는 두 개의 쇼트 형식4)은 완전히 겹쳐지고 영화는 끝이 나는데, 이는 아사가와가 저주로 인한 삶의 비틀림을 자기 삶의 기반으로 받아들였음을 의미한다. ‘단지 조금 이상한’의 화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그녀는 죽음을 피하기 위해 더이상 시달리지 않는다. 앞서 ‘올란도’를 통해 보았듯이 화자는 죽음을 필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전 시집에 비해 연과 행의 나눔이 정갈해지는 변화 또한 이 같은 요소로부터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예컨대 아사가와가 저주를 자신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임으로써 공포와 불안으로부터 벗어났듯이, ‘단지 조금 이상한’의 화자 또한 죽음을 언젠가 찾아올 필연적 사건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말하기 방식의 변화를 불러왔다고 말이다. 이 같은 태도는 ‘기일(忌日)’과 ‘불 꺼진 방’, 그리고 ‘구빈원’의 세 편의 구도를 통해 다른 형태로 구체화되는 것이기도 하다. 앞선 두 편의 시는 동일한 장면에 대한 서로 다른 위치에서의 관점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기일(忌日)’에서는 화자가 집 밖의 쓰레기장을 바라보며 거기에 버려지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반면 ‘불 꺼진 방’에서 화자는 내다 버려진 ‘죽음’의 입장에서 주변을 바라본다. 서로 다른 위치에서의 두 관점은 그 내용에서 두 입장의 차이를 드러내는데, 이러한 차이는 ‘구빈원’이라는 작품을 통해 변증법적 종합에 이른다. 그러나 이러한 종합은 통상적 정·반·합의 구도와는 다르다. 이 시에서 화자는 ‘실은 모두가 버려지고 있다/너무 먼 곳에 버려져 잊었을 뿐이다/이 행성이 우주의 거대한 쓰레기장이라는 걸/우리는 모른다/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하며 화자의 가장 비참한 형상(죽어 버려진 모습)을 자신의 인식론적 밑바탕으로 삼는 모습을 보여 준다. 마치 ‘링’의 아사가와가 저주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고자 발버둥치는 것이 아니라 저주를 자기 삶의 변화된 기반으로 인정하고 그로부터 나아가듯이 말이다. 4. 커져가는 소음 속에서 자라나는 것 - ‘Lo-fi’ (문학과지성사, 2018) 그러나 세계는 여전하고, 화자는 여전히 ‘살아 있는 듯 잠자는 듯했지만/엄마 오늘밤 우리의 악몽은/태어나지도 깨어나지도 않는 영원한 불길함입니다’(‘양수 속에서’, 시집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중)라고 표현했던 세계에 있다. 단지 자신의 죽음을 필연적인 것으로, 그것을 인식의 기반으로 삼음으로써 화자의 관점만이 변화했을 뿐이다. 이러한 변화는 화자의 시각장을 재조직한다.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것이 그의 눈에 포착되면서, 시는 새로운 국면으로 흘러간다. 이 지점에서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요소가 생활감 있는 유령들의 출몰일 것이다. k는 죽은 후에도 가끔 산책을 한다 p는 죽은 후에도 가끔 시를 쓰고 담배를 핀다 r은 술을 마시고 꿈도 꾼다 어제는 오래전 죽은 친구를 만나 강에서 수영을 했는데 죽었다는 사실을 잊었다 b는 살아 있는 사람인 척 온종일 카페에 앉아 있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옆 테이블에서 떠드는 사람들도 살아 있는 척하느라 그런 것 같았다 도시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누가 죽은 사람인지 산 사람인지 구별하기 어려웠다 - ‘계면’ 중에서 인용된 작품 전반부에서 죽은 이들은 생전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종종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정도로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이어 간다. 이 가운데 화자는 도시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 ‘누가 죽은 사람인지 산 사람인지 구별하기 어려웠다’고 말한다. 이러한 독백 이후로 화자는 산 사람들의 삶을 나열한다. 그들(z, w, n)은 늘 죽음을 염두에 두고 죽음에 사로잡힌 채 살아가고 있다. 물론 강성은의 시에서 죽은 이의 출몰은 늘 있어 왔다. 그러나 이전 시집에서 죽은 자들은 악령이었거나 자신이 죽은 줄 모르는 모습이었던 반면 여기서 포착되는 죽은 자들은 보다 생활감 있는 이미지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그리고 스스로가 죽었음을 알면서도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아래는 시의 후반부다.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면 죽음이 무슨 소용인가요 가수는 노래하고 입을 다물지 못하고 죽고 죽고 죽어도 다시 살아나 노래하고 s는 어제 쓴 일기를 반복해 써 내려가고 c는 읽을 수 없는 글자들을 매일 베껴 적는다 불행한 일들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불운한 날들이 빛처럼 쏟아져 내려도 도시가 잠기도록 비가 내려도 - ‘계면’ 중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도망가지도 않’는다면, 죽음과 살아 있음의 차이는 경미해진다. 시에서 죽은 인물들과 산 인물들의 이미지가 대비가 아닌 나열의 방식으로 나타나듯이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면/죽음이 무슨 소용인가요’라고 화자가 독백할 때, 여기의 행간에는 앞선 산 자와 죽은 자의 비교로 인해 ‘삶이 죽음보다 더 죽은 것 같다면’이라는 문구가 새겨지고, 죽음과 삶의 의미는 변화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산 자는 알 수 없는,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문구이다. 물론 이것은 불온한 인식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이 세계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축으로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Lo-fi’는 이런 불온한 인식이 거듭 쌓여가는 모양을 취하고 있다. ‘그 여자는/살아 있을 땐 죽은 여자 같더니/죽고 나선 산 여자처럼’(‘Ghost’), ‘공동묘지와 아파트가 구분되지 않고/살아 있다는 것과 죽어 있다는 것이 구분되지 않는’(‘0℃’)과 같은 독백들, 혹은 ‘오늘 죽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고/오늘 산 자는 영원히 살지 않고//결코 다시 죽지 않으리’(‘안티고네’)와 같은 발화에서, 그 불온한 인식은 임계점을 향해 가는 힘처럼 시집에 거듭 축적되어 간다. 여기에 더불어 ‘이상하게도 그가 삶을 포기하고 나면/죽음을 기다리고 있으면/모든 것이 달라지는 것이다’(‘카프카의 잠’)라는 독백은 그러한 힘이 어떤 예기치 못한 결과를 발생시킬 것을 암시하는 것처럼 다가온다. 여기서 잠시 ‘링’으로 돌아가 보자. ‘링0’5)에서는 기괴한 일들이 벌어질 때마다 저음질의 소음이 영화를 메운다. 이는 공포영화 특유의 클리셰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주인공인 사다코의 스트레스와 사건의 상관관계를 알려주는 표지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저음질의 소음은 일종의 시그널로, 현재의 장면 속 어딘가에서 포착할 수 없는 일이 준비되고 있으며 그것이 곧 현실로 분출될 것임을 암시한다. 이 소리는 영화의 시작 부분에서는 가장 작은 크기로 들리다가, 사다코가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 영화의 절정 부분에서 최대치에 이르게 되며, 이는 저주를 통한 살해의 시발점이 된다. 어쩌면 ‘Lo-fi’ 또한 이러한 공포물의 구조와 유사한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지 않을까. 예컨대, 시집이 계속될수록 쌓여가는 불온한 힘이 저음질(Lo-fi)의 소음과 같은 형태로 점차 커져가고 있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시집에서 이처럼 커져가는 소음은 무엇을 암시하는 것일까? 현실의 밑에 차곡차곡 쌓인 어떤 것이 이윽고 분출되리라는, 절정이 곧 다가오리라는 암시인 것일까? 그것은 화자의 파멸인가, 아니면 세계의 파열인가? 이러한 맥락에서 화자가 ‘섣달 그믐’에서 말하고 있는 한 점에 유의해볼 필요가 있다. ‘밖에선 종말처럼 어두운 눈이 내리고 있고/나는 이제 잠에서 깨버릴 것 같’다고. 이때의 ‘잠’은 이전 시집의 ‘올란도’에서와 유사한 의미로 들린다. 그때에 화자가 ‘나 자신이 희고 빛나는 밤이 될 때/이것이 어떤 잠이었는지 알게 되리’라고 했던 점을 상기하자면, 이는 곧 화자가 ‘밤’이 될 시간이 도래하고 있음을 예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때까지의 시집들을 경유하여 살펴보자면 그 ‘밤’이 이성의 빛이 도래하기 이전의 암흑의 시간으로서의 ‘밤’이 아닌 것은 분명할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헤겔적 의미에서의 ‘세계의 밤’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를 탈구시키는 근원적 혼돈이자 세계를 가능하게 하는 잉여인 동시에 그것의 결핍을 드러내는 틈으로서의 ‘밤’. 그것은 주체의 출현을 암시하는 강력한 은유이다. 그러므로 ‘섣달 그믐’의 시점에서 ‘올란도’를 돌이켜본다면, 이는 다음과 같이 재의미화된다. 그녀가 온다. 모든 것을 멈추게 하는 그녀가. 그때 이 모든 잠의 의미를 우리는 알게 되리라. 5. 악몽을 거쳐야 태어나는 것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안개가 도시를 뒤덮어 이윽고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이야기(‘눈 속에 안개가 가득해서’)로. 처음에는 국소 범위였던 안개가 점차 도시를 가득 메워가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사라지기 시작한다. B시에서 일어나는 공포스러운 상황을 TV를 통해 지켜보던 M시의 사람들은 이윽고 그것을 촬영하던 리포터가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며 공포에 휩싸인다. 이제 안개는 B시를 넘어 확산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확산의 이미지는 ‘별일 없습니다 이따금 눈이 내리고요’ 에서 다양한 이미지를 통해 반복된다. ‘꿈에서 배를 가르자/흰 솜뭉치가 끝없이 나왔다’(‘소설(小雪)’), ‘불행의 구렁텅이에 차오르는 빛 하나로/서로의 손과 발을 묶고’(‘첫아이’), ‘그가 가방을 열고 모래를 꺼낸다 가방에서 모래가 끝도 없이 나온다’(‘손님’), ‘그의 주위로 쇄기풀이 무성하게 돋아나고 있었다 풀은 무섭게 자라 기관실을 뒤덮고 곧 모든 객차를 넘실거리며 물결칠 것’(‘객차’) 등등. 이 같은 이미지들 가운데 ‘객차’의 ‘풀’에 좀 더 주의를 기울여보자. 기차 안에서 벌어지는 공황을 소재로 하고 있는 이 작품에서, 풀은 모든 것을 잠식하는 공포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그럼에도 기차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계속해서 달린다. 이러한 상황에 이어 재난상황은 확산과 그로 인해 퍼져가는 공포감을 보다 직접적인 형태로 제시한다. 재난이 벌어졌다고 끔찍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런 재난은 처음이라고 우리들의 육체와 영혼에 심각한 손상을 가져다줄 것이며 이후로는 결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방송을 하던 남자가 갑자기 울먹이기 시작했다 (중략)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며 재앙을 계속될 것이라고 1분 후 다음 재난 방송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이제껏 본 적 없는 더욱 경악할 만한 재난이라고 덧붙였다 나는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나 커피를 끓였다 일요일 오후였다 - ‘재난 방송’ 중에서 화자는 재난 방송을 본다. 냉정한 태도를 유지해야 하는 리포터마저도 그것을 잊게 만들 정도로 사태는 심각해져간다. ‘이후로는 결코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표현은 재난 규모가 미증유의 것임을 짐작게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화자의 태도이다. 화자는 방송을 바라보다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나 커피를’ 끓이며 일요일 오후의 일상을 준비한다. 마치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인 것처럼. 왜 화자는 재난 앞에서 평온한 것일까?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자면, 왜 화자는 ‘별일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일까? 여기서 잠시 ‘링’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보자. 사다코의 원한을 해결했으니 이제 저주를 피할 수 있다고 확신한 류지는 자신의 방에서 밀린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의 방에 놓여 있던 TV가 갑작스레 켜지며, 예의 저주받은 비디오가 재생된다. 경악한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던 류지를 향해 사다코는 우물에서 기어 나와 점차 다가오기 시작한다. 마침내 사다코가 TV에서 빠져나와 현실에 나타났을 때, 류지는 경악에 찬 표정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통상적 해석을 따르자면,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죽음이 현실화되는 재앙의 순간이다. 그러나 관점을 달리해서 보자면, 이것은 류지에게는 재난이지만 사다코에게는 출생의 순간이 아닐까.6) 마찬가지의 구도를 이 시집에 적용해보자. 세계에 몰아친 재난은 화자가 출생하기 위한 조건인 것은 아닐까? 계속해서 축적되어온 불온한 힘이 마침내 이야기의 틀을 넘어 현실로 넘쳐흐르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이와 더불어 ‘링’에서 거듭해서 나타나는 자라나는 머리칼의 이미지를 생각해보자. 점차 자라나며 외부를 향해 확산되는 머리카락은 섬뜩한 무엇이면서, 사다코가 점차 비디오를 넘어 현실로 틈입해 들어오고 있음을 예시하는 이미지이다. 마찬가지로 강성은이 이 시집을 통해 반복해서 제시하고 있는 확산의 이미지들 역시 서서히 증식되는 불길함의 이미지이면서 주체의 출현을 알리는 내러티브인 것은 아닐까? 그것은 세계의 입장에서는 악몽이지만 화자에게는 출생의 사건이다. 그리고 그 출생은 모든 의미가 혼란에 빠지는 시간이며 주체가 세계를 잠식하는 사건이다. 이 시집에서 안개의 확산을 거대한 재앙으로 표현한 것은 이 미증유의 사태에 대한 서사화이며, 지젝의 표현을 빌리자면 구체적 보편성으로서의 주체가 추상적 보편성으로서의 세계를 잠식하는 과정이다. 강성은의 시세계는 이 지점을 통해 재의미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악몽이었으되, 주체가 출현하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악몽이었다고 말이다. 오직 그 악몽으로부터, 그것을 자기 삶의 기반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주체가 출현하기 위한 조건이다. 서서히 고조되는 불온한 분위기에서 스스로의 출생을 예감하고 마침내 세계를 잠식한다는 점에서, 강성은의 시적 주체의 탄생은 세계를 정지시키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로부터 다음의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 것이다. 모두 네 권의 시집을 거쳐 비로소 태어난 이 시적 주체는 과연 누구이며 무엇인가? 조심스럽게 추측해보자면, 여기에는 그간 강성은이 여성 화자를 강조해왔다는 사실이 덧붙여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구체적인 여성과 거리가 멀다. 강성은의 여성 주체는 구조적 폭력의 희생자에서, 궁극적으로는 세계 전체에 대한 부정항으로 출현한다. 억압된 것의 귀환 혹은 여성 주체의 직립. 그녀는 더 이상 악몽에 시달리는 희생자가 아니다. 그녀는 이제 자신을 위협하던 세계를 위협하는 공포다. 아사가와에서 사다코로의 기묘한 이행, 이것이 강성은의 궤적이며, 악몽을 거쳐야 태어나는 어떤 것이다. 1) 여기에서는 ‘링’의 시리즈 가운데 ‘링’(나카타 히데호, 1998)과 ‘링0-버스데이’(쓰루타 노리오, 2000)를 주요 텍스트로 삼고 있다. 이하 글에서는 ‘링’과 ‘링0’로 표기하도록 하겠다. 2) ‘링’의 주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방송국 기자 아사가와 레이코는 보면 일주일 후 죽게 된다는 어떤 비디오에 대한 학생들 사이의 소문을 취재하던 중 조카 도모코의 사망 소식을 듣는다. 도모코와 같은 날 죽은 세 명의 학생들이 같은 비디오를 봤다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은 아사가와는 그 비디오를 찾아나선다. 결국 아사가와도 그 비디오를 보게 되는데 그는 죽음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고자 노력한다. 그 방법은 다른 사람에게 비디오를 보여주는 것이다. 3) 지젝은 라캉이 말하는 증상을 이렇게 정의한다. “그것은 특수하고 병리적인 기표적 형성물로 해석과 소통에 저항하는 관성적인 오점이면서 사회적 유대의 네트워크 속에 포함될 수 없는 얼룩이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그러한 네트워크를 가능하게 만드는 실정적 조건이라는 점에서 이중적인 의미를 가진다.” 슬라보예 지젝, 이수련 역,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 새물결, 2013, 132쪽 참조. 4) 영화 ‘링’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전개된다. 둘은 숏의 형식을 통해 구별된다. 현재는 시간과 날짜가 표기되며, 컬러 화면으로 구성된다. 반면 과거는 인물의 회상적 발언이 표지의 역할을 하며 흑백 화면으로 구성된다. 이 둘이 뒤섞이는 것은 영화에서 딱 두 번 나타난다. 하나는 저주의 장본인인 사다코가 TV화면으로부터 빠져나오는 장면이고, 두 번째는 위에 예시된 아사가와의 장면이다. 사다코의 경우 흑백의 화면에서 컬러의 세계로 빠져나와 클로즈업되는 반면, 아사가와는 컬러의 세계로부터 흑백의 화면으로 넘어가며 롱숏으로 처리된다는 점에서 대조적이다. 5) ‘링0-버스데이’는 저주의 비디오가 태어나게 된 계기인 사다코의 삶과 죽음을 다루고 있다. 사다코는 어머니의 자살 이후 극단에 소속되어 연기자로 살아간다. 그러나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영적인 능력이 의지와 상관없이 발현되면서 극단은 공포에 휩싸인다. 계속되는 불길한 현상과 단원들의 죽음에 패닉에 빠진 단원들은 사다코에게 집단 린치를 가해 살해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사다코가 귀신이 되어 저주가 구체적인 형태로, 그리고 지울 수 없는 얼룩으로 세상에 남게 되는 계기가 된다. 6) 이 장면에서 사다코가 좁디좁은 TV 브라운관으로부터 고통스레 기어 나와 천천히 두 다리로 선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머리부터 빠져나와 두 팔을 뻗는 사다코의 모습은 자궁으로부터 빠져나오는 태아의 모습과 유사성을 지니고 있으며, 고통스레 두 다리로 직립을 시도하는 모습은 인간의 성장 과정을 그로테스크한 상상력으로 빚어낸 것처럼 느껴진다.
  • [2020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발이 도마가

    [2020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발이 도마가

    엄마는 내가 좀 특별한 아이래요. 내가 뭘 잘 하든 못하든, 그건 내가 특별하기 때문이라고 말하죠. 오빠는 내가 좀 이상한 아이래요. 내가 뭘 잘하든 못하든, 진짜 이상하다고 혀를 차요. 엄마가 다른 사람 보고 혀 차는 건 나쁜 버릇이랬는데. 난 글을 잘 못 읽어요. 초등학교 2학년이지만, 친구들과 좀 다르거든요. 잘 못 읽고, 잘 쓰지도 못해요. 아직 내 이름을 쓰는 것도 어려워요. 1학년 때는 받아쓰기를 빵점만 받았는데, 엄마는 그래도 항상 잘했다고 칭찬해 줬어요. 어차피 선생님이 불러 주는 건 받아 쓸 수 없으니, 나는 글자 대신 그림을 그렸어요. 가끔은 생각나는 글자를 한 글자씩 마음대로 쓰기도 하고요. 엄마는 빨간 줄이 주욱주욱 그어진 받아쓰기 공책을 한참씩 들여다보며 맞는 글자를 찾았어요. “와, ‘가’ 자에 ‘ㄱ’을 이번엔 거꾸로 쓰지 않고 아주 예쁘게 잘 썼네!” 한 줄에 한 글자씩만 똑바로 쓴 글자가 있어도, 엄마는 백점만큼 잘한 거라고 칭찬해 줬어요. 빵점을 맞아도 방실방실 웃는 나와 엄마를 보면서 오빠는 옆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혀를 찼죠. “무슨 초등학생이 글자를 모르냐고?” 아, 혹시 우리 오빠처럼 오해할까봐 다시 말하는 건데요, 전 글자를 못 읽는 게 아니라 글을 못 읽는 거예요. 물론 얼마 전까지는 글자도 잘 못 읽었지만. 오빠는 자꾸 그게 그거라고 하는데, 그건 분명히 다르거든요. 자꾸 헷갈리는 표정인 걸 보니 우리 오빠처럼 이해를 잘 못하시는군요? 그러니까 저는 ‘가’를 읽을 수 있고 어렵지만 ‘방’도 읽을 수 있어요, 이제. 하지만 아직 ‘가’하고 ‘방’이 붙으면 머릿속에서 글자들이 막 춤을 추며 날아다녀요. 글자만 보고는 무슨 뜻인지 이해가 잘 안 돼요. 하지만 괜찮아요. 언어치료 선생님이 한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된 것처럼 언젠가 두 글자가 만나도, 세 글자가 만나도 잘 읽게 되는 시간이 올 거라고 했어요. 학교에서도 난 좀 특별해요. 선생님과 친구들이 날 아주 많이 도와준다는 걸 알고 있어요.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칠판에 글을 열심히 쓰고 난 후에도 꼭 나와 눈을 맞추고 다시 한번 읽어 주세요. 내가 잘 모르겠다고 눈을 깜빡거리고 있으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다시 읽어 주세요. 그건, 선생님과 나 사이의 신호 같은 거예요. 내가 고개를 끄덕일 때까지 선생님은 몇 번이고 다시 읽어주시죠. 어떨 땐 다른 친구가 일어나서 읽어 주기도 해요. 내가 고개를 끄덕일 때까지 지훈이, 예슬이, 선우, 지은이. 계속 계속 읽어 주죠. 받아쓰기를 한 후에도 선생님은 내 공책에는 빨간 줄 대신 색연필로 그림을 그려주세요. 어차피 내 마음대로 쓴 글자지만 선생님은 정답을 찾는 게 중요한 게 아니랬어요. 그래서 내 받아쓰기 공책은 1학년 때처럼 빨간 비가 오는 공책이 아니라, 노란색 애벌레가 점점 자라 허물을 벗고 예쁜 분홍나비가 되어 가는 그림이 예쁘게 그려져 있죠. 그런데요, 우리 선생님은 글자도 예쁘게 잘 쓰고, 예쁜 목소리로 동화 구연도 잘하시고 다 잘 하시는데, 나보다 애벌레는 못 그리는 것 같아요. 처음 선생님의 애벌레 그림을 보고는 우리 오빠가 휴지 위에 뱉어 놓은 껌인 줄 알았다니까요. 어느 날 점심시간이 끝나갈 때쯤,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김민철이 우리 교실에 들어왔어요. 김민철은 1학년 때부터 친구들을 자꾸 괴롭히던 아이예요. 엄마에게 일렀더니, 엄마는 “민철이가 너무 심하게 굴면 선생님이나 엄마에게 다시 한번 자세히 이야기해 줘. 하지만 민철이가 친구들과 더 친해지고 싶어서 그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 엄마는.” 하고 말했었죠. 민철이는 우리 교실을 한 바퀴 쓱 둘러보고는 내 앞에 앉은 예슬이 책상 앞으로 다가왔어요. “야, 너 아까 문방구에서 콜라볼 사더라. 나 한 줄만 줘.” “안 돼. 이거 이따 방과 후 수업 전에 애들이랑 나눠 먹기로 했단 말이야.” “참나, 어차피 나눠 먹을 거니까 나도 좀 달라고. 너 아침에 문방구에서 불량식품 사왔다고 니네 선생님한테 다 이른다.” 예슬이는 민철이를 째려보며 가방에서 콜라볼을 꺼냈어요. “이걸 어떻게 나눠 달라는 거야?” “가위로 반 잘라 주면 되겠네.” “한 줄만 달라며?” “마음이 바뀌었어.” 예슬이는 화가 났는지 곧 울음이 터질 것같이 빨간 얼굴이 되었어요. 예슬이가 울게 생겼는데 내가 어떻게 나서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그리고 콜라볼은 예슬이가 방과 후 수업 가기 전에 나에게도 나눠 주기로 했던 거란 말이에요. “야, 김민철. 너 왜 예슬이 괴롭혀?” “니가 뭔데 그래.” “친구 거 뺏는 건 나쁜 거잖아.” 점점 주변으로 아이들이 모여들었어요. 웅성웅성 우리 반 친구들이 한 마디씩 거들기 시작했어요. “무슨 일이야?” “김예슬 울어? 왜 울어?” “김민철, 너 왜 김예슬 울려?” “왜 남의 반에 와서 난리래?” 김민철의 얼굴도 점점 빨개지기 시작했어요. 그러더니 김민철이 나를 툭 밀며 말했어요. “야, 너 장애인이라며?” “뭐라고?” “우리 형이 그러는데, 너 글자 못 읽는 장애인이랬거든? 뭐라 그랬지? 나, 난, 뭐라고 했는데.” 당황스럽고 속상한 마음에 내 눈에도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어요. 우리 오빠가 울면 지는 거라고 그랬는데, 울면 안 되는데…. 나는 꾹 참으며 김민철에게 소리쳤어요. “장애인이 뭐 어때서? 그래서 뭐 어쩌라고!” 예슬이도 벌떡 일어나서 김민철에게 따지며 소리쳤어요. “너 진짜 못됐구나!” 곁에 있던 친구들도 화난 목소리로 김민철에게 한마디씩 했어요. “야, 김민철! 우리 엄마가 친구한테 못되게 굴면 다시 다 자기한테 돌아온다고 했어.” “야, 박하민 장애인 아니거든!” “맞아, 글자 좀 못 읽는 거 가지고! 그건 배우면 되는 거지!” “우리 아빠가 사람은 다 똑같은 거라고 했거든. 막 다른 사람 차별하고 무시하고 그러면 안 된다고.” 그 순간 나는 참고 참던 울음이 터져 나왔어요. 그건 김민철이 미워서가 아니라, 장애인이라는 말을 들은 게 속상해서가 아니라, 내 편이 되어 준 친구들이 고마워서 터져 나온 울음이었어요. 김민철은 당황한 표정을 하고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어요. “아니, 우리 형이 그랬다고. 내가 그런 게 아니라.” 나는 아예 책상에 엎드려 울어 버렸고, 김민철이 언제 어떻게 가버렸는지는 모르겠어요. 5교시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나는 내 방에 들어가 그림을 그리고 있었어요.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기분이 점점 좋아지거든요. 난 힘들고 속상한 일은 금방 잊어요. 그건 오빠도 인정한 나의 특별한 점이에요. 그런데 학교에서 방과 후 수업을 마치고 온 오빠가 집으로 들어오며 시끄럽게 내 이름을 불러댔어요. “박하민! 박하민! 엄마, 박하민 어디 있어요?” 소란스럽게 내 방 문을 연 오빠는 나를 다그쳐 물었어요. “야, 김민철이 몇 반이야? 오늘 너 괴롭혔다며?” “어, 어떻게 알았어?” “방과 후 시간에 다 들었어.” 오빠의 방과 후 수업은 줄넘기 수업이었으니, 아, 지훈이가 오빠에게 다 얘기했나 봐요. 그리고 오빠는 다시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를 다 전했죠. “우리 하민이가 많이 속상했겠네.” “괜찮아요. 우리 반 친구들이 다 내 편이 돼서 김민철한테 막 뭐라고 해줬어요.” “우리 하민이 곁에 좋은 친구들이 많아서 감사한 일이네.” 엄마가 날 보고 웃어주자 오빠가 투덜댔어요. “엄마, 그냥 그렇게 넘어갈 게 아니라, 내일 가서 혼내줘야 한다니까요. 김민철 몇 반이냐고?” “아, 오빠는 참견하지 말라고. 무슨 5학년이 2학년하고 싸우려고 하냐고.” 나는 오빠가 정말 김민철을 찾아가서 혼내줄까봐 걱정이 됐어요. 다음날 나는 학교에 가자마자 지훈이에게 가서 다짐을 받았어요. “야, 오늘 우리 오빠가 너한테 김민철 몇 반이냐고 물으면 절대 알려주면 안 돼! 알겠지?” “왜?” “우리 오빠가 김민철 혼내주러 간다고 했단 말이야. 절대 안 돼! 알겠지?” “진짜? 하랑이 형이 김민철 혼내준대? 우와, 형 멋지다!” “멋지긴 뭐가 멋져? 5학년이 2학년하고 싸우는 게 말이 되냐고! 알겠지? 절대 알려주면 안 돼!” 난 오빠가 2학년 교실을 뒤지고 다닐까 봐 하루종일 걱정이 돼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김민철 때문에 좀 속상했던 건 사실이지만, 그건 벌써 어제 일인걸요. 그리고 5학년이 2학년을 불러서 시비를 거는 건 너무 치사한 일이잖아요. 오전 수업이 끝나고 점심을 먹은 난 도서관이 있는 4층으로 올라가려고 교실을 나섰어요. 그런데 오빠가 2학년 교실이 모여 있는 2층 복도를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나는 깜짝 놀랐지만 오빠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뒤로 살살 걸어가다가 김민철네 반으로 냅다 들어갔어요! “김민철, 도망가!” 하지만 교실엔 김민철이 없었어요. “야, 아직 김민철 급식 먹으러 갔다가 안 왔어!” 아, 괜히 큰 소리로 김민철을 부르는 바람에 옆 반 교실을 지나던 오빠가 내 목소리를 듣고 달려왔어요. “김민철이 어디 있다고?” 나는 숨이 차도록 달려서 급식실로 가다가 1층 복도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는 김민철을 만났어요. “야! 김민철! 우리 오빠가 너 잡으러 쫓아오고 있어! 빨리 도망쳐!” “뭐라고?” “빨리 도망가라고!” 나는 김민철의 팔을 붙잡고 급식실 안 쪽, 선생님들이 아직 식사 중인 식탁 옆으로 뛰어갔어요. “박하민, 멈춰! 급식실에선 위험하니까 절대 뛰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 선생님에게 잡힌 나는 숨을 몰아쉬며 뒤를 돌아봤어요. 오빠가 급식실 입구에서 우리를 못마땅하게 쳐다보고 있었어요. “후! 하! 그러니까요, 선생님. 뛰면 안 되는 건 아는데, 안 뛸 수가 없어서….” 내가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김민철네 담임선생님도 김민철을 보고 큰 소리로 말했어요. “아이고, 우리 민철이가 같이 뛰었구나! 아까도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뛰다가 혼난 걸 그새 잊으시고?” 우리는 담임선생님을 따라 우리 교실로 와서는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교실 뒤 사물함 앞에 가만히 서 있어야 했어요. “자, 가만히 서서 급식실에서 뛰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반성하고 있어.” 선생님은 교실 앞 선생님 책상으로 가서 수업 준비를 하셨어요. “박하민, 너 때문이잖아!” “야, 그래도 이게 나을걸. 우리 오빠한테 잡히는 것보다. 우리 오빠가 너 잡으면 가만 안 둔댔단 말이야!” 김민철이 입을 꾹 다물었어요. “야, 김민철. 오늘 5학년도 5교시 하는 날인 거 알지? 너 이따가 학교 끝나면 무조건 집까지 뛰어가라. 문방구 같은 데 들렀다가 우리 오빠랑 마주치지 말고. 알겠냐?” 김민철은 한숨을 푹 쉬며 물었어요. “야, 니네 오빠가 날 언제까지 잡으러 다닐까?” “글쎄. 그건 잘 모르겠지만, 우리 오빠도 바쁜 사람이고, 뭐 나한테 그렇게 관심이 많지는 않으니까 며칠 있으면 잊어버리지 않을까?” “니네 오빠 힘 세?” “우리 오빠 여섯 살 때부터 태권도 다녔거든.” 김민철의 한숨 소리가 더 커졌어요. “그리고, 혹시라도 니네 형한테 우리 오빠 얘기하면 안 된다. 5학년들끼리 싸우면 엄청 무섭댔어.” “야, 나도 그 정도 눈치는 있거든!” “누가 반성하랬더니 시끄럽게 떠들지?” 투닥거리는 우리 소리를 들으셨는지, 선생님이 주의를 주셨어요. 우리는 동시에 입을 꾹 다물고 바짝 서 있었죠. 점심시간이 끝나기 5분 전 예비종이 울렸어요. “자, 민철이는 너희 교실로 가서 수업 준비해. 하민이도 자리로 들어와 앉고.” 나는 교실로 돌아가는 김민철을 쳐다보며 입을 삐죽거렸어요. “잘 가라.” 내 인사를 듣고는 잠시 머뭇머뭇 대던 김민철이 조용히 소근거렸어요. “박하민, 미안해. 어젠 내가 좀 나빴어. 그리고 사실, 나도 아직 받침 두 개 달린 글자는 잘 몰라.” “야, 나는 그거랑은 좀 다르다니까.” “어쨌든 미안한 건 미안하다고.” 김민철은 자기 할 말만 후다닥 하고는 자기 교실로 쪼르르 가버렸어요. 참, 나. 나는 피식 웃음이 났어요. 난 그거랑 좀 다른데. 하지만 상관없어요. 지금 중요한 건, 오늘은 5학년도 5교시 수업까지 한다는 거니까. 나는 서둘러 종합장을 꺼내 크게 글자를 썼어요. 우리 오빠가 김민철을 찾기 전에 내가 이 쪽지를 김민철에게 먼저 전해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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