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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위 공직자 검증기준 그때 그때 달라지는 ‘원칙의 박근혜’

    고위 공직자 검증기준 그때 그때 달라지는 ‘원칙의 박근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김용준 전 국무총리 후보자의 낙마 책임을 언론에 떠넘기려는 태도를 보여 논란이 일고 있다. 박 당선인은 31일 새누리당 소속 경남지역 의원들과 오찬을 하며 “그 시대의 관행들도 있었는데 40년 전의 일도 요즘 분위기로 재단하는 것 같다. 하마평에만 올라도 (언론이) 검증에 들어가 거꾸로 가족과 본인한테 피해가 간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전날에도 “인사청문회에서 죄인 취급하듯이 몰아붙이면 누가 후보자가 되려 하겠느냐. 청문회라는 것이 일할 능력에 맞춰져야 하는데 조금 잘못 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뜻으로 말했다고 한다. 김 전 후보자도 최근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을 통해 밝힌 사퇴 발표문에서 언론 검증의 문제점을 주장했고, 윤 대변인도 김 전 후보자와 관련한 각종 의혹 보도에 대해 “확실한 근거가 있는 기사가 아니라고, 그렇게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사청문회와 여론 검증이 후보자 본인과 가족의 신상을 털어 창피를 주는 무대로 변질됐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김 전 후보자의 두 아들이 어린 나이에 부동산 투기로 큰 재산을 갖게 됐고, 체중 미달과 통풍 등 석연찮은 이유로 군 면제를 받았다면 이에 대한 의혹 제기가 국민 시각에선 합당하다는 견해가 더 많다. 알 권리 차원에서도 당연한 문제제기라고 할 수 있다. 김 전 후보자는 전임 정권 때부터 낙마 원인의 ‘단골 메뉴’였던 부동산 투기와 병역 기피, 논문 표절, 위장 전입 중 두 가지에 해당됐다. 오히려 사전에 이를 알고도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 인사권자의 판단과 ‘그 시절엔 다 그랬지’라고 생각한 김 전 후보자의 의식이 국민 눈높이와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 사태의 본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박 당선인도 수차례 ‘국민의 눈높이’ 인사를 강조했다. 그가 이명박 정부의 잘못된 점으로 꼽은 것이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출신)으로 상징되는 인사 실패였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임명 철회 9명, 조기 경질 1명, 인사청문회 무산 6명, 청문경과보고서 불채택 3명 등 총 19명이 인사 논란에 휩싸였다. 박 당선인은 지난해 8월 23일 기자간담회에서 인사와 관련, “어떤 분이 일을 제일 잘할 수 있을까. 이 분은 국민 눈높이에서 어떨까 생각하면서 계속 찾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 대통령의 인선에서 고질적으로 나타난 도덕성 논란에 대해 “인사청문회에서 걸리고 그러잖나. 국민이 볼 때 아마 저만 한 인품과 경력이면 좋다, 이런 공감대는 (형성)돼야 하지 않겠나. (밀어붙이면) 절대 안 된다. 국민이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건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본다”고 밝혔다. 그랬던 박 당선인도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와 김 전 후보자 사태로 인사청문회 제도 자체에 부정적 시각을 내비치고 있다. 철통 보안을 위해 공식적인 ‘검증 시스템’을 활용하지 않으면서 역으로 인사청문회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지난해 8월 기자간담회 발언과 배치되는 태도다.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을 지낸 인명진 목사도 이날 라디오에서 “(박 당선인이) 시야를 넓히면 도덕적으로 존경받고 능력 있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면서 “주변에서만 사람을 찾다 보니 본인도 망신스러운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이동흡 청문회] 위장전입·투기 등에 총 12명 하차

    [이동흡 청문회] 위장전입·투기 등에 총 12명 하차

    2000년 인사청문회법 도입 이래 지난 12년간 국회 청문회 검증과정에서 낙마한 고위공직자는 모두 12명이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낙마 후보자 8명 중 6명이 부동산 투기로 시세차익을 얻거나 위장전입 의혹을 해명하지 못해 발목을 잡혔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첫 조각에 포함된 남주홍 통일부, 박은경 환경부, 이춘호 여성부 장관 후보자와 2010년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가 줄줄이 낙마했다. 2002년 장상·장대환 국무총리 후보자를 주저앉힌 것도 결과적으로는 부동산 투기 의혹이었다. 2009년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는 개인 스폰서와 위장전입 의혹을 제대로 해명하지 못해 하차했다.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의혹에 몇 가지 의혹이 겹쳐지면 예외 없이 고배를 마신 셈이다. 코드인사도 논란이 됐다. 2011년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 2006년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2003년 윤성식 감사원장 후보자 등이 코드인사 비판을 받고 사퇴했다. 2010년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는 박연차 케이트와 관련해 청문회에서 거짓말을 하다 대국민 사과까지 하고 물러났다. 인사청문회는 통과했지만 임명 직후 비위 사실이 드러나 물러난 고위공직자도 상당수다. 2006년 8월 김병준 교육부 총리가 논문표절로 취임 13일 만에 사퇴한 것을 비롯해 총 10명의 고위공직자가 임명 직후 한 달 이내 낙마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이동흡, 7차례 해외여행·출장 ‘긴급조치 헌소’ 고의방치 의혹

    이동흡, 7차례 해외여행·출장 ‘긴급조치 헌소’ 고의방치 의혹

    헌법재판소 재판관 시절 유신정권 긴급조치 1호 등의 헌법소원 사건 주심을 맡았던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이 사건의 평의와 선고를 미루고 7차례에 걸쳐 해외여행 및 출장을 다닌 것으로 확인됐다. 17일 민주통합당 서영교 의원에 따르면 이 후보자는 2011년 10월 13일 이 사건에 대한 헌재의 공개변론이 열린 뒤 2012년 9월 14일 퇴임할 때까지 한 달에 한 번꼴로 7차례 출국했고, 이 중 4번은 배우자와 동행했다. 절반 이상이 해외여행이었던 셈이다. 주심재판관의 잦은 외유로 긴급조치 헌법소원은 이 후보자가 퇴임할 때까지 헌법재판관들의 회의인 ‘평의’에도 부쳐지지 못했고 선고도 미뤄졌다. 서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의식, 헌법소원 처리를 미루기 위해 헌법재판관으로서의 직무를 유기하고 부인과 외유를 다닌 것이 아니냐”고 비판했다. 이 외에도 이 후보자는 헌법재판관 재직 시 9번의 국비 해외출장 중 5번을 배우자와 동행했다. 2009년 독일·체코 방문과 2010년 프랑스·스위스 방문은 당시 수행한 헌법재판소 연구관들이 각각 독일, 프랑스 일정만 마치고 귀국해 후보자와 배우자만의 가족여행이 됐다. 이 후보자의 가족 외유를 위해 계획에 없었던 체코, 스위스 방문이 추가 편성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논문 표절 의혹도 불거졌다. 민주당 최재천 의원은 이 후보자가 사법연수원 교수로 재직하던 1993년 ‘사법논집’에 게재한 ‘재판상 화해의 효력’이라는 논문이 이보다 앞서 나온 ‘개정판 민사소송법’(강현중 저, 박영사 출판)과 유사하다고 밝혔다. 목차와 글의 흐름이 상당부분 유사하고, 논문에서 연속된 각주 5개의 인용문서뿐만 아니라 설명 내용까지 그대로 베끼면서 마지막 각주의 순서만 살짝 바꿔 놓는 식으로 무단 도용했다는 것이다. 또 이 후보자가 자신의 저서라고 할 수 없는 사법연수원 교재 ‘헌법소송’을 마치 자신의 저서인 것처럼 허위로 경력을 기재한 사실도 추가로 확인했다. 2007년부터 2012년까지 매년 700만~800만원의 기부금을 내고도 인사청문특위의 기부내역 요구에는 고작 수십만원(1년에 최대 36만원)의 기부금 내역만 밝힌 점도 도마에 올랐다. 최 의원은 “이 후보자가 연말정산 소득공제를 받기 위해 허위로 영수증을 발급받아 제출했거나, 기부금 후원 대상을 밝히기 곤란하기 때문인 것은 아닌지 의혹이 든다”고 말했다. 1998년 대전지법 부장판사 재직 당시 법복을 입고 벗을 때 여직원을 시켰다는 내부 증언도 나왔다. 새누리당도 이 후보자를 둘러싼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 후보자 본인이 적극적으로 사실관계를 밝혀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회 인사청문특위 위원인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야당의 주장만으로 사실관계를 확정할 수는 없지만 가볍게 볼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며 “이 후보자가 묵묵부답으로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2012 신춘문예-시 당선작] 이끼의 시간/김준현

    [2012 신춘문예-시 당선작] 이끼의 시간/김준현

    우물 위로 귀 몇 개가 떠다닌다 검은 비닐봉지 속에 느린 허공이 담겨 있다 나는 내 빈 얼굴을 바라본다 눈을 감거나 뜨거나, 닫아놓은 창이다 녹슨 현악기의 뼈를 꺾어 왔다 우물이 입을 벌리고 벽에는 수염이 거뭇하다 사춘기라면 젖은 눈으로 기타의 냄새 나는 구멍을 더듬는, 장마철이다 손가락 몇 개로 높아지는 빗소리를 누른다 저 먼 곳에서 핏줄이 서는 그의 목젖, 거친 수염을 민다 드러나는 싹이여, 자라지 마라 벌레들이 털 많은 다리로 밤에서 새벽까지 더듬어 오른다 나는 잠든 그의 뒷주머니에 시린 손을 숨긴다 부드럽고 가장 어두운 비닐봉지 안에 차가운 달걀 몇 개를 담아 바람에 밀려가는 주소를 찾는다 귀들이 다 가라앉은 물에도 소름이 돋는 중이다 [당선소감] 더 정갈한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어릴 때, 저녁이면 부모님은 저와 동생에게 과일을 깎아 주셨습니다. 지켜보며, 사과껍질을 끊기지 않게 깎는 법을 배우고 싶었죠. 그러나 손놀림이 서툴렀던 저는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생각하면, 한 번도 긴 곡선의 껍질을 남긴 적이 없었던, 제 사과. 서툴렀던 건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병아리를 길렀던 적이 있었죠. 어쩌다 다리를 다친, 이름도 잊어버린 그 병아리 역시 제 서투른 사육의 증거였습니다. 베란다의 사과박스 속 홀로, 한 쪽 다리로 서 있던 병아리를 보며 저는 ‘쓸쓸’이라는 감정을 배웠습니다. 의무처럼, 저는 병아리의 배설물이 묻은 신문지를 갈아주었습니다. 오래된 신문지와 새 신문지의 날짜 사이 점점 간격이 벌어지던 어느 날, 병아리는 눈을 감고 있더군요. 방에서 홀로 쓰다가 그렇게 지칠 때면 저는 밝고 따뜻한 집으로 돌아갑니다. 늘 믿고 기다려주신 아버지, 어머니, 동생에게- 늘 사랑하고 고맙습니다. 문학을, 사람을 대하는 자세를 몸소 보여주시고, 늘 제 서투른 감각들을 짚어주시는 김문주 교수님. 감사합니다, 그 이상의 인사는 좋은 작품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더불어 영남대 국문과의 교수님들, 제가 지나온 모든 선생님들과 친구들, 특히 승협, 명재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정끝별 손택수 두 심사위원께는 더 정갈한 소리로 보답을 드리겠습니다. 오래 가라앉고자 합니다. ■약력 ▲ 1987년 포항 출생 ▲영남대 국문과 졸업▲ 현재 동대학원 국문과 재학 [심사평] ‘따로 없는 詩 쓰는 법’ 모험에 박수를 추사에 따르면, 묵죽을 그리는 데는 법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법이 따로 없는 것도 아니다. ‘따로 있는 법’을 성실히 참조하면서도 과감히 떨쳐버리고 어떻게 ‘따로 없는 법’을 찾아나설 것인가. 신춘문예 시 부문 심사는 모험을 향해 떠난 외롭고 고단한 열정들과의 뜨거운 만남의 자리였다. 꼼꼼하고 균형 잡힌 예심을 거쳐 올라온 총 20여명의 작품 중 최종심에 오른 것은 ‘새라는 가능성’, ‘고동의 길’, ‘만찬’, ‘이끼의 시간’ 등 모두 네 편이었다. 예리하게 벼린 언어 감각이 돋보이는 ‘새라는 가능성’은 높은 시적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기시감이 있었다. 새, 새장, 온도, 울음, 바람 등 선택된 오브제들과 그 엮음의 방식이 표절 시비로 이미 당선 취소된 바 있는 작품들과 유사해 또 다른 표절 시비를 몰고 올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 하에 가장 먼저 제외되었다. ‘만찬’은 “노을에도 마블링이 있다/ 칼이 허공의 날개처럼 살 사이를 휘젓는다”와 같은 감각적인 언술에 호소력이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과잉된 수사욕망을 절제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고동의 길’과 ‘이끼의 시간’이었다. ‘고동의 길’은 수많은 시 창작론의 정석이라고 해도 될 만큼 균형 잡힌 구조와 투박한 시어들을 장악해 들어가는 사유의 힘이 돌올했다. 반면에 미성년의 실존적 내면을 다룬 ‘이끼의 시간’은 우물, 검은 비밀봉지, 현악기(기타) 등으로 변주를 거듭하는 은유와 신경증적인 감각들로 이미지와 이미지, 의미와 의미 사이의 연결고리가 불안으로 술렁였다. 동봉한 작품들 또한 같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하지만 이 불안은 그 무엇도 결정되지 않는 혼돈 속에서 돋아나는 새로운 가능성의 감각과 열기로 꽉 차 있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완숙한 포도주의 맛과 아직 미숙하긴 하되 미래를 잠재한 떫은 포도주의 맛 사이에서 장고 끝에 심사위원들은 ‘따로 없는 법’을 찾아나선 자의 모험에 손을 들어주기로 하였다. 새로운 시인의 탄생에 매운 채찍과 응원을 함께 보낸다.
  • [2013 신춘문예-평론 당선작]언어의 감옥에서 글쓰기 : 한유주와 최제훈의 소설들/유인혁

    [2013 신춘문예-평론 당선작]언어의 감옥에서 글쓰기 : 한유주와 최제훈의 소설들/유인혁

    1 이야기의 끝, 혹은 끝없는 이야기 이집트의 영조(靈鳥) 피닉스는 수명이 다하면 헬리오폴리스에 있는 태양의 신전으로 날아가 스스로 불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타오르는 화염 속에서 피닉스는, 이윽고 새로운 생명을 얻어 다시 태어났다. 그래서 이 영조는 불사조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보르헤스는 불 속에서 파괴되며 재생하는 이 영원한 순환을 묘사한 적이 있다. ‘원형의 폐허들’의 주인공은 ‘불의 신전’에서 한 소년을 만들었다. 그는 꿈속에서 소년의 폐동맥과 심장, 뼈대, 눈꺼풀, 셀 수 없이 많은 머리카락 등을 눈으로 바라보는 것보다 생생하게 떠올렸다. 정교한 상상 속에서, 소년은 마침내 실체가 되어 현신했다. 그런데 이 창조자는 소년이 언젠가 자신이 환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챌 것이라 걱정했다. 불의 신전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비밀을 누설하는 것은 결국 불이 될 것이다. 환영은 불에 탈 리가 없으므로, 언젠가 소년은 불에 닿았을 때 자신의 비밀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고민으로 천일 하고도 하루 동안 노심초사하다가 불타는 신전으로 뛰어들었다. 이 기나긴 고민을 끝내줄 죽음을 기다리면서. 그러나 불타는 폐허 안에서, 그는 자신이 불에 타지 않음을, 그러니까 자신도 누군가의 환영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면 소년 또한 먼 훗날 환영을 만들 것이다. 이 과정은 영원히 반복 되리라…. 피닉스와 보르헤스의 환영은 모두 반복을 통해 영원을 성취한다. 그것은 끝없이 뻗어나가는 직선이 아니라, 영구히 되돌아오는 원환이다. 그러니까 끝이 무한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시작이 펼쳐진다는 뜻이 아니다. 이 이야기의 진정한 메시지는 바로 반복이다. 끝에 도달했을 때, 모든 것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끝과 무한(無限). 최근 소설쓰기 자체를 주제로 삼은 일련의 메타픽션 속에서 발견되는 문제는 참으로 이렇다. 한유주는 “내가 쓰고 싶었던 문장들은 모두, 오래전부터, 당신들에 의해 쓰였다. 나는 읽어본 적이 없는 문장들을 베끼고 또 베낀다”(한유주, ‘농담’,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문학과지성사, 2012, 30쪽)고 말한다. 이때 새로운 글쓰기는 불가능한 것으로 제시된다. 대홍수가 인간의 문명을 송두리째 박살낸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의 세계에서, 창작의 가능성은 이 세상과 함께 종말에 이른 것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한유주는 끈질기게 자신이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를 베끼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때 한유주는 자기 글쓰기의 한 조건으로 ‘이야기의 끝’을 상정하고 있다. 이미 “이야기는 오래전에 모두 매진되” (한유주, ‘죽음의 푸가’, “달로”, 문학과지성사, 2006, 48쪽)어서 그 어떤 처녀작도 새로 쓰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최제훈은 끝없는 이야기의 모델을 보여준다. 너무나 많은 것들이 “모두, 오래전부터, 당신들에 의해 쓰였다”는 사실은 오히려 충만한 자유를 제공한다. ‘괴물을 위한 변명’에서 “프랑켄슈타인”을, ‘퀴르발 남작의 성’에서는 흡혈귀 전설을, ‘셜록 홈스의 숨겨진 사건’에서는 셜록 홈스의 이야기를 솜씨 있게 패러디했던 그는 “일곱 개의 고양이 눈”에서 애거사 크리스티, 에도가와 란포, 오스카 와일드, 스티븐 킹, 로베르트 비네 등을 종횡무진 누빈다. 기성의 작품이 많으면 많을수록, 최제훈에게는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한유주에게 제약이었던 것이 그에게는 기회요,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최제훈은 바로 이러한 조건 아래서 “완성되는 순간 사라지고, 사라지는 순간 다시 시작되는 영원한 이야기” (최제훈,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자음과모음, 2011, 282쪽)를 상상했다. 2 플롯 없는 소설들 왜 차라리 ‘소설의 끝’이 아니라 ‘이야기의 끝’인가. 한유주와 최제훈의 소설에서 진실로 끝나버린 것은 바로 플롯이다. 바꿔 말해 시작과 끝을 유기적으로 형성하는 서사가 부재하고 있다. 한유주의 소설에서 내용이 짐작 가능한 이야기는 드물게 출현한다. 한유주의 소설은 대부분 그녀의 의식을 (불)투명하게 묘사하는 데 진력할 뿐이다. 무엇인가 사건이 일어났을 경우, 그 진위는 참으로 모호하다. ‘흑백사진사’에서 ‘아이’는 유괴당한 지 일주일 만에 목이 졸려 살해됐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 소설의 화자는 납치된 지 나흘 째 되는 날 풀려났고 중학생이 되어 사건을 회상하고 있다. 이 의도적인 교란은 화자의 모든 진술을 믿을 수 없는 것으로 만들고 있다. 이때 이야기는 진술들의 나열일 뿐이지 통일되고 연속적인 흐름을 형성하지 못한다. 심지어 한유주의 소설에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단위로서의 사건(event)도 없다. 그녀의 소설에서는 사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한유주는 어떤 행위를 묘사하거나 진술한 다음, 곧바로 그것을 부정한다. 누군가 담배를 피웠는데 “연기는 나지” 않고 “재는 떨어지지”(한유주, ‘재의 수요일’, “얼음의 책”, 문학과지성사, 2009, 208쪽) 않는다는 식이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소설 속의 내용이 사실 허구(虛構)라는 점을 계속해서 인식시킨다. 이것은 부정문이 거의 사용되지 않는 소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를테면 ‘허구0’에서 한유주 본인으로 짐작되는 화자는 현재진행형 시제의 문장을 활용하여 자신의 생각, 행동, 계획들을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허구0’이라는 제목은 이 모든 진술들이, 그러니까 가장 투명하게 작가의 머릿속을 베껴낸 이 문장들이 모두 거짓이라고 암시한다. ‘불가능한 동화’ 역시 같은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부정문, 혹은 명명(命名)을 통해 이루어졌던 일들이 이제 소설의 형식 자체를 통해 실천된다. 이 소설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우선 앞에서는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소녀의 테러리즘을 다룬다. 이 소녀는 반 급우들의 일기에 “나도 죽여보고 싶다”, “바늘 끝은 뾰족하다”, “불은 뜨겁다” 따위의 문장들을 몰래 적어 넣었다. 선생님은 이 테러의 진의를 알 수 없다. 그는 아이들에게 성을 내지만, 이것이 왜 나쁜 행동인지는 좀처럼 설명할 수 없다. 이 교실에는 “없어진 것도, 사라진 것도 없”으므로. 그저 “의미도 불분명하고 출처도 없는 문장들이 있을 뿐”이므로(한유주, ‘불가능한 동화’, “문학과 사회” 2011년 겨울호, 165쪽) 이것은 타인의 문장에 가해진 목적이 불분명한 테러인 것이다. ‘불가능한 동화’는 이렇듯 모호한 폭력을 가한 소녀를 중심으로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를 발아시킨다. 이름이 주어지지 않으므로 소녀의 정체는 미스터리이다. 그녀가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도 알 수 없다. 한편 소녀는 미아라는 급우가 자신의 범행을 알고 있을 것이라 의심하고 있다. 그래서 소녀는 미아를 살해하고 도망친다. 이제 우리는 미스터리의 해결(소녀는 누구인가)과 서스펜스의 지속(소녀는 잡힐 것인가)을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한유주는 어느 대학의 문예창작학과에서 글쓰기 강의를 하고 있는 한 여성을 조명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수업 도중 강의실 뒤편에서 한 여자아이를 발견하고 크게 놀란다. 그 아이는 바로 ‘소녀’. 자기 소설의 주인공이었다. 아이는 마치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괴물처럼 자신의 창조주를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왜 자신을 끔찍한 모습으로 창조했는지 따져 묻는다. 이제 한유주는 앞선 이야기가 모두 허구였음을 고백하고, 허구란 대체 무엇인지 설명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한유주 소설의 시그니처와 같은 부정문은 형식의 차원으로 확장된다. 그녀는 말한 다음, 바로 부정한다.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를 제시한 다음 그것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노라고 고백한다. 이것은 마치 만다라와 같은 작업이다. 형형색색의 모래를 뿌려 만들어지는 이 신성한 그림은, 완성과 동시에 물에 씻겨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한유주가 가지고 있는 언어에 대한 회의 때문에 생겨났다. 그녀는 언어가 현실을 재현할 수 있다는 믿음을 좀처럼 갖지 못한다. 이는 사전에 대한 불신 속에서 압축적으로 드러난다. ‘K에게’에서 사전은 “모두 다섯 권이었지만, 첫 번째 사전부터 마지막 사전까지 합친 두께가 손바닥 한 뼘을 넘지 않”는 “무성의한 생일 선물”에 불과하다. 그것은 “조야한 방식으로 선별된 하나의 작은 세계”를 펼쳐 놓고, “수수께끼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드러낼 뿐 아무런 해답도 내어놓지 않는”다. 그래서 한유주는 “백과사전이라는 이름은 틀린 것”이라고 진술한다(한유주, ‘K에게’, “얼음의 책”, 문학과 지성사, 2009, 72~73쪽). 사전이 결코 세계를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언어는 현실을 투명하게 재현할 수 없다. 플라톤이 말한 바와 같이 문학은 세계를 열등하게 모사한 것에 불과하므로, 우리는 문학에서 삶과 현실을 찾아서는 안 된다. 그래서 한유주는 자신의 글이 “아무것에도 봉사하지 않을 것이”(한유주, ‘허구0’, “얼음의 책”, 문학과 지성사, 2009, 19쪽)라고 선언한다. 언어는 그런 것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어는, 소설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한유주의 해답은 바로 메타픽션이다. 글쓰기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이다. 언어는 결코 현실을 적절히 재현할 수 없으므로 차라리 언어 자체를 재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유주에게 ‘이야기의 끝’이란 단순히 모든 이야기가 이미 쓰였다는 인식으로 요약되지 않는다. 그것은 이야기가 현실을 재현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시대가 이미 오래전에 끝났음을 의미한다. 이때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도대체 이야기를 쓸 수 있는지 의심하는 행위가 된다. 이러한 한유주 소설의 특징은 좀처럼 요약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오이디푸스왕’을 오이디푸스에게 일어난 몇몇 사건들을 중심으로 요약할 수 있다. 라이오스왕의 죽음, 이오카스테와의 결혼, 모호하면서도 분명한 신탁…. 하지만 한유주의 소설을 같은 방식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수고롭게 그러한 작업을 한다고 해도 그녀 소설의 특징은 하나도 전해지지 않을 것이다. 이야기를 요약할 수 없다는 것은, 최제훈 소설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는 최제훈이 한유주처럼 사건을 부정하기 때문이 아니다. 반대로 최제훈의 소설에서 사건은 너무 많이 일어난다. 다만 그것들은 좀처럼 결말을 향해 회수되지 않는다. 최제훈의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은 ‘장편소설’로 소개되고 있지만, 실은 ‘여섯번째 꿈’, ‘복수의 공식’, ‘π’, ‘일곱 개의 고양이 눈’ 네 편의 소설이 느슨하게 연결된 연작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다. ‘여섯번째 꿈’에 나오는 민규, 현숙, 세나, 연우, 영수, 태식 등의 인물들은 뒤의 세 작품 안에서 조금씩 설정과 역할을 달리하여 변주된다. 예를 들어 ‘여섯번째 꿈’의 연우와 ‘π’의 M은 동일인물로 보인다. 연우와 M은 모두 번역가인데, 자기가 번역을 맡은 소설에서 등장인물의 운명을 바꾼 일이 있다. 비중이 거의 없는 인물을 슬그머니 죽은 것으로 오역했던 것이다. 하지만 연우가 스페인어 번역가인 데 반하여 M은 일본어 소설을 번역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죽음을 맞는다. 연우가 눈이 오는 산장에 고립되어 수수께끼의 살인마에게 살해당했다면, M은 소설을 쓰다가 탈진해 쓰러졌다. “단 한 편의 완벽한 미스터리 소설”을 쓰려는 탐욕스러운 셰헤라자드에게 “안에서부터 파먹”혀 “거죽만 남”은 상태가 되었던 것이다(최제훈,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자음과모음, 2011, 258쪽). 한 편의 장편소설에서 인물이 복수(複數)의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사실 그런 것은 불가능하다. 소설은 인간의 삶을 재현한 것이고 어떠한 인간도 두 번 죽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죽음은 삶의 의미를 확정하는 사건이다. 발터 벤야민은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는데, “소설에 나타나는 인물들의 삶의 의미는 오로지 그들의 죽음에 의해서만 비로소 해명될 수 있다.”(발터 벤야민, 반성완 편역, ‘얘기꾼과 소설가’,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민음사, 1983, 185쪽). 많은 소설들이 등장인물의 죽음으로 끝난다는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적과 흑”은 줄리앙 소렐의 죽음으로 끝나며, “레미제라블”은 장 발장의 죽음으로 끝나고, “보바리 부인”은 엠마 보바리의 죽음으로 끝난다. 그들의 죽음이 삶과 소설의 의미를 확정짓는 것이다. 하지만 최제훈의 소설에서 인물들은 여러 겹의 삶을 살아가고, 복수의 죽음을 맞이한다. 그것은 삶이 아니라 차라리 연극이다. 예컨대 햄릿의 죽음은 연출가의 각색에 따라 매번 달라지지 않는가. 이러한 최제훈 소설의 특징은 그가 중심적으로 사용하는 기법에 의해 촉발되었다. 바로 패스티시다. 한유주 소설이 부정문의 특징을 형식적 차원에까지 확장한 결과라면, 최제훈은 패스티시의 가능성을 극단까지 활용하여 “일곱개의 고양이 눈”을 쓴다. 예를 들어 ‘여섯번째 꿈’은 애거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쥐덫’, 그리고 에도가와 란포의 ‘붉은 방‘을 인용하고 있다. ‘여섯번째 꿈’에서 민규, 현숙, 세나, 연우, 영수, 태식 등은 연쇄 살인범의 세계를 탐구하는 ‘실버 해머’라는 인터넷 동호회의 회원들이다. 이들은 어느 겨울 ‘악마’라는 별명을 가진 회장의 초대장을 받고 산장에 모였다. 그런데 정작 ‘악마’는 나타나지 않고, 회원들은 폭설로 고립된 산장에서 하나씩 하나씩 살해당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들 안에 ‘악마’가 숨어 있다고 의심하기 시작한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서는 판사, 사업가, 의사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열 명의 사람이 외딴섬에 모인다. 그들은 어느 사업가에게 초대 받았다. 그런데 ‘여섯번째 꿈’과 마찬가지로 초대장의 주인은 섬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열 개의 인디언 인형’의 노랫말에 맞추어 한 명씩 살해당하기 시작한다. 한편 ‘쥐덫’에서도 사람들은 밀실에 갇혀 있다. 이들은 ‘여섯번째 꿈’과 마찬가지로 폭설이 내리는 산장에 고립된 것이다. 그리고 에도가와 란포의 ‘붉은 방’에서 ‘붉은 방 클럽’은 ‘실버 해머’처럼 극단적이고 파격적인 취미에 빠진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때 ‘여섯번째 꿈’은 애거사 크리스티와 에도가와 란포의 소설을 인용하고, 수정하는 가운데 쓰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여섯번째 꿈’은, 그리고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은 인간의 삶이 아니라 다른 소설을 재현하는 글쓰기이다. 소설의 인물이 두 개의 죽음을 경험하는 이유는, 그들이 각각 다른 이야기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제훈의 소설에는 이야기만 있을 뿐 그 이야기가 재현하는 인간의 삶이 없다. 그런 것은 도무지 중요하지가 않다. 이야기가 인간을 설명하기 위해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인물들이 선택되는 것이다. 이때 소설에서 인간적 삶의 내용은 사라지고 주인공은 그저 한 기능으로 퇴락한다. 그러니까 “돈키호테”에서 이 우스꽝스러운 기사는 다만 “무관한 일화와 에피소드의 모음으로 떨어져 버릴지도 모르는 것에 통일을 주기 위해”(프레드릭 제임슨, 윤지관 옮김, “언어의 감옥”, 까치, 1977, 61쪽) 고안되었다는 식이 된다. 소설은 한 인간의 삶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이야기 재료들의 짜깁기가 되는 것이다. 3 전문가로서의 작가 그래서 패스티시의 소설은 반인간적이다. 소설 속의 인간에게 고유한 삶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패스티시는 소설 바깥의 인간에게서도 존엄성을 빼앗는다. 그러니까 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에게서 창조주의 권위를 앗아간다. ‘π’에서 M은 “단 한 편의 완벽한 미스터리 소설”을 쓰려고 한다. 그런데 그의 직업은 소설가가 아니라 번역가이다. 즉, 그는 타인의 언어를 거쳐야 비로소 무엇인가를 쓸 수 있는 존재이다. 이는 M이 결코 글쓰기의 주체가 아니라는 점을 암시한다. M은 어느 날 아름다운 여인을 만났다. 그녀는 밤마다 M에게 으스스한 이야기를 속삭인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M이 쓰고 있는 “단 한 편의 완벽한 미스터리 소설”이 된다. 그러니까 그녀는 M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셰헤라자드이자, M의 영감의 원천이 되는 뮤즈이기도 하다. 그런데 셰헤라자드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소설이 되기 위해서, M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 이는 맵시벌의 다큐멘터리에서 우의적인 방식으로 설명된다. 맵시벌은 거미의 몸에 알을 깐다. 세월이 흘러 다 자란 “유충은 쓸모없어진 거미의 몸을 뚫고 밖으로” 나간다.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기 위해 숙주의 목숨이 희생당하는 것이다. 그런데 M은 “맵시벌 다큐멘터리를 전에도 본 것 같았다”(최제훈,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자음과모음, 2011, 244쪽). 채널을 돌려도 화면에는 계속 맵시벌만 나타났다. 여기서 M은 사실 환상적인 방식으로 자신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다. 그의 배역은 다름 아닌 거미인데, 이야기가 완성되자 “안에서부터 파먹”혀 “거죽만 남”은 상태가 되었던 것이다. M의 운명은 롤랑 바르트가 ‘저자의 죽음’이라고 지칭했던 현상에 대한 알레고리이다. 바르트가 주장한 바, 근대적 글쓰기는 “수많은 문화의 온상에서 온 인용들의 짜임”(롤랑 바르트, ‘저자의 죽음’, “텍스트의 즐거움”, 동문선, 1997, 32쪽)이다. 이때 작가는 작품의 유일하고도 온전한 ‘아버지’가 아니다. 그는 마치 신이 인간을 창조하듯이 소설을 쓰지 않는다. 그는 다만 다른 소설을 베끼는 필경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저자의 죽음은 단지 M의 운명을 통해 우의적으로 표현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문학론은 실제 ‘π’의, 그리고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의 작법(作法)을 통해 실현된다. ‘π’는 그 자체로 “인용들의 짜임”이다. 우선 우리는 “천일야화‘의 이야기꾼인 셰헤라자드의 흔적을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독일 표현주의 영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의 영향을 감지하게 된다. ‘π’의 액자 속 주인공 하루는 어느 터널에 49일이나 갇혀 있었고, 결국 미쳐버렸다. 그는 이제 정신병원에 있다. 그리고 정신병원의 의사, 간호사, 동료 환자들을 상상 속에서 변형시키며 계속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이미 오래전에 로베르토 비네가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에서 한 것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프란시스는 박람회에서 칼리가리 박사의 상자를 보게 된다. 그 상자에는 체사레라는 몽유병 환자가 누워 있다. 체사레는 프란시스의 약혼녀인 제인의 죽음을 예언하는데, 칼리가리 박사는 이 예언을 실현시키기 위해 제인을 살해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이상의 이야기는 매우 기이하다. 비현실적이며 악몽을 닮아 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정신병원에 수감된 프란시스가 들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칼리가리 박사는 정신병원의 원장이며, 체사레는 병원의 직원이다. 제인은 프란시스와 마찬가지로 정신병을 앓는 환자였다. 프란시스는 자신의 망상 속에서 이들 인물을 변주하여 이야기를 자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이러한 아이디어는 이미 대중문화 안에서 여러 번 변주된 바 있다. 최근에는 리들리 스콧의 ‘토탈 리콜’(1990)이나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오픈 유어 아이즈’(1997),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2001), 마틴 스코세이지의 ‘셔터 아일랜드’(2010)에서 활용되었다. 요컨대 이미 널리 알려진 수법이라는 뜻이다. 그런 만큼 최제훈은 자신의 아이디어가 독창적이지 않다는 것을 넌지시 인정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단 한 편의 완벽한 미스터리 소설”을 쓰는 데 있어서 작가의 역할은 사실 보잘 것 없는 것이다. 작가는 이제 독창적인 트릭을 고안하지 않는다. 오히려 타인의 트릭에 의존한다. 다만 그 트릭을 끊임없이 변주한다.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을,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붉은 방’을…. 이때 최제훈은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의 창조자라 할 수는 없다. 그는 저자가 아니다. 자기 작품의 “유일하고 동일한 목소리”(롤랑 바르트, ‘저자의 죽음’, “텍스트의 즐거움”, 동문선, 1997, 28쪽)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타인의 언어와 아이디어를 활용하고 있으므로 자기 작품에 대해 독점적인 권리를 주장할 수 없을 것이다. 마치 돈키호테가 서로 다른 우스꽝스러운 사건에 통일을 부여하는 기능인 것처럼 그는 서로 다른 이야기의 묶음에 통일을 부여하는 기능이다. 이제 소설의 인물과 작가는 모두 하나의 기능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면 최제훈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아마 창조는 아닐 것이다. 다른 사람의 피조물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노동일까? 그는 문화산업의 많은 ‘크리에이터’(creator)들이 하고 있는 그런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니까 ‘불가사리’(1962)가 ‘고질라’(1956)를 참조하고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1968)이 ‘지상 최후의 사나이’(1964)를 차용하는 것과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는 다만 진귀한 구경거리(spectacle)를 생산하고 있는 것인가? 반쯤은 옳다. 그는 창조하기보다 생산한다. 그것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부품을 조립하여 완제품을 만드는 과정에 비유할만한 것이다. 아마 “안에서부터 파먹”혀 “거죽만 남”아버린 M의 모습은 초과노동에 시달리는 어느 현대 노동자의 비유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는 좀처럼 잠을 자지 못하지 않는가. 하지만 최제훈은 뒤샹이 예술가인 만큼은 예술가이다. 레디메이드를 활용하더라도 그것을 조합하는 방식은 자유에 맡겨진다. 아무리 풍부한 재료가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아무나 그것에 형식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뉴욕의 어느 배관공이 ‘샘’을 만들어낼 가능성은 정말이지 없다. 뒤샹 스스로 인정했듯이, “당신의 가능성은 나의 가능성과 같지 않은 것이다”(“Your chance is not the same as my chance.” (Calvin Tomkins, The Bride and the Bachelors: Five Masters of the Avant-Garde, Penguin, 1968, p.33)). 여기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것은 전문가(specialist)로서의 작가이다. 무엇인가 짜깁기를 하기 위해서는, 그 재료를 많이 구비해 두어야 한다. 그러니까 이야기의 재료가 많으면 많을수록 짜깁기의 예술은 풍성해질 수 있다. 이것은 규칙을 잘 알고 있는 사람만이 참가할 수 있는 게임이다. 그래서 최제훈은 자신의 생산물로부터 완전히 소외된 노동자로 볼 수 없다. 자기가 조작하는 이야기의 관습을 썩 훌륭하게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유주는 이러한 점을 좀처럼 편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 같다. 한유주는 ‘저자의 죽음’을 자신에게 주어진 문학적 조건으로 뼈아프게 인식하고 있다. 이미 “문장들은 모두, 오래전부터, 당신들에 의해 쓰였”기 때문에 심지어 미리 “읽어본 적이 없는 문장”들을 적을 때도 그것은 베끼기에 지나지 않는다. 한유주는 “모든 사물들은, 혹은 모든 사물화 된 문장들은, 일종의 자연사 박물관에 귀속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인식에 따르면 도서관의 어느 서가에 진열된 책들은 모두 일종의 “전시된 죽음들”이며, “검은 플라스틱판에, 흰 글씨로 이름을” 새겨 넣은 명패가 달린 박제이다(한유주, ‘자연사 박물관’,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문학과지성사, 2012, 87쪽). 한유주는 이러한 조건을 순순히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녀가 누구를 참조하고 있는지, 도대체 누구를 ‘베끼고’ 있는지 알아채기 어렵다. 물론 불가능하지는 않다. 예컨대 ‘허구0’이라는 제목은 “픽션들”이라고 하는 보르헤스의 단편집 표제를, 그리고 “얼음의 책”이라고 하는 표제는 ‘모래의 책’이라고 하는 보르헤스 단편의 제목을 떠올리게 만든다. 허구의 영점(零點)과 허구의 복수형은 분명한 대비를 형성한다. 거기에 만들어지자마자 모두 녹아 사라지는 얼음의 책과, 영원히 모래처럼 변화하며 두 번 다시 같은 페이지를 펼칠 수 없는 모래의 책은 모두 의미가 고정되지 않거나, 아예 사라지는 책을 상징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엄밀히 말해 추측에 지나지 않으며, 그녀는 주의 깊게도 단서를 남겨놓지 않았다. 이것은 한유주 스스로 어떤 작품을 베끼고 있다고 주장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한유주는 ‘자연사 박물관’,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 ‘인력이거나, 척력이거나’ 세 편의 작품을 통해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를 베끼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상의 작품들에서 발견되는 것은 오히려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와 달라지려 하는 한유주의 부단한 노력이다.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는 연극에 대해 논문을 쓰려는 한 사내가 어느 광인을 만난다는 이야기이다. 이 광인은 자신이 22년 전에 살해한 여성의 옷과 구두를 몸에 걸치고 있다. 한유주는 ‘자연사 박물관’에서 이 짤막한 이야기의 틈을 헤집고 억지로 자신의 언어를 밀어 넣는다. 한유주는 이 사내와 광인을 각각 트리스탄과 햄릿이라 명명하고, 그들의 조우에 복잡한 운명을 부여한다. 그런데 아마 한유주가 토마스 베른하르트라는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면,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이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의 흔적을 알아챘을 것이다. 이 두 소설의 공통점이란 시간을 물어보는 행위, 다리 위에서의 대화 등 몇몇 지점에서 눈치채기 어려운 방식으로만 나타난다. 아무리 주의 깊은 독자라도 이 정도의 단서로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그림자를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에서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흔적을 알아채는 것은 훨씬 어려워진다. 주인공 하령은 대재앙이 닥쳐 대륙의 절반이 물에 잠기고, 인구의 절반이 죽어버린 세계에서 소설을 쓰고 있다. 그녀는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를 베껴서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를 쓰려 한다. 하지만 그녀가 베끼려고 하는 소설은 책장에 없거나, 아니면 물에 젖어 글씨를 알아볼 수가 없다. 무엇인가 베끼는 것이 도무지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한유주,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문학과지성사, 2012, 189쪽). 하령은 무엇인가 참조할 때마다 “내가 기억하고 있던 결말과는 다른” 페이지들을 마주하게 된다(한유주,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문학과지성사, 2012, 203쪽). 그래서 하령의 베끼기는 계속해서 원작과 달라진다. 이것은 굉장히 수고로운 작업이다. 그녀는 끊임없이 이야기와 언어의 관습들을 익혀야 한다. 이미 모든 이야기들은 다른 사람에 의해 기록되었으므로, 잠깐의 방심은 ‘베끼기’로 이어질 것이다. 이것은 표절 시비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모든 멜로디를 검토하는 작곡가나, 신기술을 개발하기 전에 기존의 특허를 검토하는 기술자의 태도에 비견할 만한 것이다. 하지만 한유주는 이러한 자신의 노력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한유주는 담담하게 토로하고 있는데, “언어는 진화하지 않고, 문학은 진보하지 않”는다. 그저 베끼는 와중에 조금씩 변화할 뿐이다. 그것은 진화의 개념이 사라진 돌연변이와 같다. 대재앙 이후의 세계에서 호랑이는 아가미를 발달시켰다. 물에 잠긴 세계에 적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도 이것이 “진화인가 퇴화인가” 말할 수 없다(한유주,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문학과지성사, 2012, 201쪽). 한유주의 소설 역시 ‘자연사 박물관’에 박제된 모습과는 다른 형태로 제시된다. 그녀의 ‘베끼기’가 박제를 변형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작업이 문학을 ‘진보’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노력이 다만 돌연변이 하나를 만들어 내는 것에서 그친다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끝’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의 세계에서 새로운 글쓰기의 가능성은 인류와 함께 절멸했다. 이 ‘끝’에서 문학은, 그리고 글쓰기는 과거의 박제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찾아 헤맨다. 하지만 그런 것은 불가능하다. 이미 창조의 엿새는 오래전에 지나가 버렸으므로. 4 언어의 감옥에서 글쓰기 ‘이야기의 끝’이거나 ‘끝없는 이야기’이거나, 우리가 궁극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것은 ‘새로움’의 쇠퇴이다. 이제 작가는 매우 제한적인 방식으로 무엇인가를 만든다. 그는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없으며, 다만 기왕의 설계도를 다소 변형시키는 선에서 만족해야 한다. 흥미로운 것은 한유주와 최제훈의 작품이 새롭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자신이 타자의 언어를 베끼고 있음을 드러내지만, 그들의 작품은 전에 없이 독특하다. 우리는 아무렇게나 펼친 페이지에서도 한유주의 문체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부정문을 사용하는 방식은 참으로 고유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최제훈은 기성의 관습들을 짜깁기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은 마치 괴물처럼 낯설다. 이것은 개인의 창조성을 부정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예술가들이 역설적인 방식으로 창조적이라는 아이러니와 무관하지 않다. 존 케이지는 문자 그대로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음으로써 ‘4분33초’를 만들었으며, 앤디 워홀은 대중문화 속의 이미지를 조합해 자신의 작품을 만들었다. 여기서 예술가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거나, 적어도 새로운 것은 하나도 만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작업은 파천황의 것이며 예술의 경계를 도전적으로 확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움은 공허한 것이다. 마치 ‘4분33초’처럼 덧없는 것이다. 그것은 분명 예술의 경계를 허문다. 하지만 그 다음은? ‘4분33초’는 결코 녹음되거나 재연(再演)될 수 없다.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의미라 부를 수 있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앤디 워홀의 작업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워홀의 유명한 병뚜껑, 혹은 메릴린 먼로의 이미지를 바라보며 이것이 어째서 예술인지 질문하고, 대체 예술이란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바깥으로는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갈 수 없다. 이 새로움은 우리에게 아무런 말도 걸지 않는다. 프레드릭 제임슨은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의 공허함을 다음과 같이 간파했다. “앤디 워홀의 ‘다이아몬드 가루 신발’은 반 고흐의 신발이 가진 직접성을 전적으로 결여한 채 우리에게 말을 건다. 정말이지 나는 그것이 우리에게 실제로 어떤 말도 걸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프레드릭 제임슨, 강내희 옮김, ‘포스트모더니즘 ― 후기자본주의 문화논리’, 정정호·강내희 편, “포스트모더니즘론”, 문화과학사, 1989, 150쪽) 한유주와 최제훈의 소설은 분명 새롭다. 그들은 우리에게 소설이란 무엇인지, 소설쓰기란 무엇인지 질문한다. 하지만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소설은 “아무것에도 봉사하지 않”으며 어디에도 “사용되지 않”(한유주, ‘허구0’, “얼음의 책”, 문학과지성사, 2009, 19쪽)기 때문이다. 이때 한유주와 최제훈의 소설은 모든 책무로부터 자유롭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용한 형식이 된다. 즉, 자족적인 동시에 자기폐쇄적인 형식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한유주와 최제훈 소설의 공간들이 감옥을 닮았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자연사 박물관은 모든 생명들이 박제되어 진열된 공간이며,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에서 사람들은 온통 물에 잠겨버린 건물에서 고립되어 살아간다. ‘불가능한 동화’에서 선생님은 마치 취조실의 형사처럼 아이들을 겁주고 추궁한다. 최제훈을 살펴보면, M은 맵시벌의 둥지에 갇혔고, 하루는 동굴 속에 갇혔으며, 영수는 산장 안에 갇혔다. ‘일곱 개의 고양이 눈’에서 액자 속의 미미는 스토커에게 납치당해 갇혔고, 액자 바깥의 ‘나’는 망막박리에 걸려 눈이 먼 채 병실에 갇혔다. 모두가 갇혀 있다. 한유주와 최제훈의 소설은 메타픽션이며, 이들은 모두 알레고리 속의 인물이다. 이들을 가두고 있는 감옥은 사실 상징적인 방식으로 글쓰기 자체를 가두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이것은 바로 언어의 감옥이다. 한유주와 최제훈의 글쓰기가 언어의 감옥에 갇혀 있다고 말하는 이유는, 그들이 단지 타인의 언어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다. 마치 모든 발화가 랑그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소설 역시 글쓰기의 관습이나 전통 바깥으로 벗어날 수 없다. 모든 사람은 타인을 흉내 내며 말을 배운다. 소설이 그러지 않으리란 법이 어디에 있는가. 언어의 감옥에 갇혀 있다는 것은, 소설이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폐쇄적인 형식이 된다는 뜻이다. 이때 언어는 자기를 가리키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영원한 동어반복과 다름없다. 하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목적을 위해 말을 사용하는 것이며, 작가란 발언을 하는 사람(parleur)이다. 우리는 무엇인가 요구하기 위해, 혹은 불만을 토로하기 위해, 심지어 선전포고를 하기 위해 글을 쓴다(장 폴 사르트르, 정명환 옮김,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문학이란 무엇인가”, 민음사, 1998, 27쪽). 그러니까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세계를 향해 말하는 행위인 것이다. 그러나 소설의 책무가 다만 다른 소설에 관하여 말하는 것이 되었을 때, 글쓰기는 베끼기가 된다. 이때 독서란 소설 안에 존재하는 다른 소설의 흔적을 찾는 놀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말이라는 것을 그렇게 높이 평가할 수 없다!”(요한 볼프강 폰 괴테, 김수용 옮김, “파우스트” 1부, 책세상, 2006, 78쪽). 오직 언어로 이루어진 곳을 헤매는 것이 독서라면, 그것은 언어로 이루어진 테마파크를 유람하는 행위와 다름없다. 그렇다면 언어의 감옥에서 글을 쓰는 사람은 얼마나 지나야 그곳이 감옥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까. 그러니까 “폐쇄된 미로에 갇힌 사람은, 얼마나 헤매야 그 미로가 폐쇄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될까?”(최제훈,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자음과모음, 2011, 179쪽). 그리고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파우스트는 평생에 걸쳐 “철학도, 법학도, 의학도, 게다가 신학까지 열성을 다하여 연구”한 끝에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탄식했다. 그가 마술의 세계에 몸을 맡기기로 결심했던 것은, 정통한 지식들이 세계에 대해 조금도 알려주지 않는 “부질없는 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요한 볼프강 폰 괴테, 김수용 옮김, “파우스트” 1부, 책세상, 2006, 31~33쪽). 그가 악마와 계약하여 처녀를 희롱하고, 신화 속의 전쟁에 뛰어들고, 바다를 메우는 개간사업을 시작했던 것은 ‘태초에 말이 있었다’는 세계관을 거부하고 ‘태초에 행동이 있었다’고 선언한 후였다. 가장 열심히 말의 세계를 믿었던 자가, 행동의 세계로 뛰어들었던 것이다. 아마 파우스트와 같은 모험이 필요할 것이다. 파우스트가 자신의 서재를 벗어나 시공을 뒤집는 모험에 나섰던 것처럼, 한유주와 최제훈도 이야기의 끝, 혹은 끝없는 이야기라는 감옥을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이때 소설 역시 감옥에서 벗어나 자신의 존엄을 되찾을 것이다. ■당선소감 책은 끝없는 미로… 내 모든 단어 빚지고 있어 아직 더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은데 덜컥 당선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더듬더듬 잘 모르는 길을 걸어가야 한다. 문득 어지럽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 길은 앞이 명확했던 적이 없었다. 책을 한 권 읽으면, 세상은 그만큼 분명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두 권의 책을 숙제로 남겼다. 그러니까 이 길은 목적지가 분명한 대로가 아니라,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미로이다. 이 미로를 열심히 헤매고 싶다. 고마운 사람이 너무 많다. 사실 나는 그들이 전해준 것을 비로소 적었을 뿐이다. 나는 모든 단어들을 빚지고 있다. 그래서 당선의 영광을 돌리고 싶다는 말은 단순히 수사가 아니다. 우선 나는 박광현 선생님에게 글쓰기의 모든 것을 배웠다. 내가 지키고 있는 규칙들은 전부 선생님에게 받은 것이다. 황종연 선생님은 소설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보여주셨다. 한만수 선생님은 어떻게 학문이 정의로워질 수 있는지 알려주셨다. 그리고 김춘식 선생님께는 글쓰기의 즐거움을 배웠다. 더불어 오랫동안 함께 공부한 ‘책읽기의 즐거움’의 멤버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허병식 선생님, 복도훈 선생님, 서희원 선생님, 조형래 선배, 김민선, 박진솔, 임세화, 전호성, 한정현, 홍덕구 등 모두들 내게 큰 도움을 주었다. 나는 이들에게 동의하거나, 혹은 반박하면서 비로소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또한 내 글을 가장 먼저, 그리고 아마도 가장 즐겁게 읽어준 경연에게 감사한다. 너에게는 늘 고마운 마음뿐이다. 고집 센 아들의 선택을 지금까지 지지해주신 부모님께는 가장 큰 감사를 올린다. 마지막으로 많이 부족한 글에서 가능성을 보아주신 두 심사위원 선생님께 고개 숙여 인사드리고 싶다. ●약력 ▲1983년생 ▲ 2002년 동국대 국문과 입학 ▲동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심사평 균형적 함의 도출 … 평론가로서의 앞날 기대 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부문에 응모한 작품은 모두 17편이었다. 심사위원 두 사람은 이들 작품을 통독하고 그 가운데 최종 논의 대상으로 4편을 선정하였다. 그리고 다시 이를 정독한 후 장시간의 논의를 거쳐 당선작을 확정하였다. 심사기준으로는 응모 평론이 기본적으로 작품의 가치를 잘 부각시키고 이를 논리적으로 해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는가에 두었으며, 글의 전체적인 통일성과 비평적 견식을 담보할 수 있는 문장력도 면밀히 살펴보았다. 대체로 올해의 평론 응모작은 예년과 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있었으며, 그 성향에 있어서도 여전히 세부적 탐색과 분석에 치중하고 동시대 사회 속에서 해당 작품이 가진 의미를 구명하는 데는 소홀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평론이 단순하게 한 작품의 성과를 평가하고 판단하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을 배태하고 산출한 환경과 문학사적 친연성 등을 두루 고찰하고 있을 때 객관적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할 터이다. 마지막까지 논의의 대상이 된 4편의 평론 가운데 이은이의 ‘희미해져가는 인간다움에 대하여’는 유연한 상상력과 감각적인 문장이 뛰어났다. 하지만 보다 정치한 시각과 정론적 방식으로 대상 작품에 접근하는 것이 필요해 보였다. 정영의 ‘비린내, 혼종의 정체성에 저항하는 존재성’은 후각적 관점을 중심으로 작품을 규정하는 독창성이 참신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독창적 사유가 총괄적 해석력을 확보하는 데 미흡했고 비린내와 혼종성의 상관관계도, 좀 더 명료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이만영의 ‘유령의 서사, 열림의 정치’는 시종일관 무난하고 균형성 있는 관점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분석 대상이 된 두 작품의 저변을 보다 치열하게 드러내고 그 상관성에 대해서도 입체적 조명이 있었으면 하는 후감이 있었다. 당선작이 된 ‘언어의 감옥에서 글쓰기’는 한유주와 최제훈의 소설이 가진 문학적 함의를 비교적 정확하고 균형성 있게 도출하고 있으며, 이를 뒷받침하는 이론적 근거에 있어서도 폭넓은 공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는 또한 평론가로서의 앞날에 대한 기대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그리고 간발의 차이로 낙선한 분들께는 따뜻한 위로와 함께 다음 기회의 분발을 바라마지 않는다.
  • [씨줄날줄] 擧世皆濁/정기홍 논설위원

    대선을 끝낸 세밑이 어수선하다. 지역 간의 갈등과 세대 간, 계층 간의 불신이 넘쳐난다. 삶이 어려운 서민에게 따뜻한 아랫목을 찾아주는 ‘희망의 릴레이’가 이어져도 성에 차지 않을 판인데 말이다.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거세개탁(擧世皆濁)을 선정했다. 온 세상이 탁해 지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바르지 않아 홀로 깨어 있기 힘들다는 뜻이다. 중국 초나라의 시인 굴원의 ‘어부사’(漁父辭)에 실린 고사성어다. 교수신문은 “혼탁한 한국 사회에서 위정자와 지식인의 자성을 요구한 것”이라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지식인들마저 정치판에 몰려 다니고 편법과 탈법이 판치는 세상을 빗댄 것이다. 대선 정국에 대한 함의(含意)로 읽힌다. 대선의 해에 선정된 세 번의 사자성어에는 정치의 혼탁함을 지적한 공통점이 있다. 16대 대선의 해인 2002년 이합집산(離合集散)은 헤어졌다가 모이는 것이 다반사인 정치판 생리에 대한 개탄이었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2003년엔 우왕좌왕(右往左往)을 선정해 정치·경제·외교에서 사뭇 혼선을 빚은 사회상을 비판했다. 2007년 대선 때의 자기기인(自欺欺人)은 집단적 도덕 불감증을 꼬집었다. 유명 정치인 등 사회 지도층 인사의 학력 위조와 논문 표절이 연일 이슈가 된 해였다. 교수신문이 사자성어를 발표해 온 것은 2001년부터. 첫해 오리무중(五里霧中)을 시작으로 12년간 빗나간 세태를 신랄하게 비꼬았다. 물론 한해를 되돌아보고 새해를 준비하는 밑거름도 됐다. 그런데 해가 갈수록 촌철살인의 맛을 잃어가고 있는 듯하다. 의도한 뜻을 깊숙한 곳에 숨기고 또 숨긴다. 2004년 당동벌이(黨同伐異)부터 지금까지 일별하면 그저 일반인의 우매함을 채찍질하려는 ‘그들만의’ 현학적 문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혹자는 이를 두고 “처음에는 사회 현상에 순수하게 접근했지만 다양한 변화상을 담아내기가 쉽지 않자 더 깊숙한 곳에서 찾아야 한다는 강박감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같은 한자문화권인 중국과 일본도 올해를 상징하는 한자를 선정했다. 중국은 꿈을 뜻하는 ‘몽’(夢)을, 일본은 쇠를 뜻하는 ‘금’(金)을 내세웠다. 양국 모두 런던올림픽 성적 등 밝은 면을 조명해 담아냈다. 희망의 메시지는 언제나 긍정의 힘을 낳는다. 내년 이맘땐 짧지만 보다 알기 쉽고 밝은 뜻의, 가슴에 와닿는 사자성어를 접할 수 있을까. 중국과 일본은 오래전부터 번잡한 한자성어를 버리고 간단한 외자를 선정해오고 있지 않은가.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사이비 국제저널에 논문… 알앤엘바이오 의도적 주가 띄우기 논란

    줄기세포 분야의 벤처기업이 사이비 국제저널에 논문을 게재하고, 이를 홍보에 활용해 주가를 끌어올렸다는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학계에서는 논문조작이나 표절을 뛰어넘는 황당한 사건이라는 반응이다. 19일 알앤엘바이오에 따르면 지난 14일 “뇌성마비 소아 환자에게 성체 줄기세포를 시술해 치료 효과를 확인했고, 이를 국제학술지에 발표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언론에 배포했다. 해당 연구는 알앤엘 회장인 라정찬 박사가 교신저자를 맡았다. 생후 3년 7개월의 여자아이에게 자가 지방 줄기세포를 1억개씩 4회 투여한 결과 안면마비가 치료됐다는 내용이다. 이 자료는 뇌성마비에 대한 뚜렷한 치료방법이 아직까지 없다는 점 때문에 일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하지만 지난 17일부터 생물학 전공자들의 모임인 생물학연구정보센터(브릭)를 중심으로 의혹이 제기됐다. 논문이 게재된 ‘저널 오브 메디컬리서치’가 정상적인 저널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저널은 공인받은 국제저널을 모두 검색할 수 있는 미국립생물정보센터의 ‘펍메드’에서도 검색이 되지 않으며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은 물론 후보군(SCIE)에도 등재되지 않은 사실상 ‘유령저널’이다. 저널 측은 홈페이지에서 12월호를 ‘1호’라고 명시했지만 연속간행물 번호, 편집진 등에 대한 설명도 없다. 심지어 해당 호에는 라 박사의 논문 한 건만 게재됐다. 브릭의 한 관계자는 “이 저널의 출판사인 ‘밸리스 인터내셔널’은 과학저널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가짜 논문을 출판하는 것으로 학계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고 설명했다. 알앤엘 측은 보도자료와 함께 이 연구성과가 ‘국제성체줄기세포 학술대회’에서 발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학술대회는 라 박사가 참여하고 있는 베데스다생명재단 주최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침례교회에서 열렸다. 발표자와 주최자가 동일한 것이다. 라 박사와 함께 연구를 진행 중인 김윤배 충북대 교수는 “쥐를 이용한 뇌성마비 실험에서 효과를 거뒀고, 이를 알고 환자 어머니가 문의해 와 알앤엘에서 시술을 받을 수 있도록 주선해 줬다.”면서 “해당 저널은 일반적인 논문이 실리는 저널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알앤엘 측은 “권위 있는 저널보다는 빠른 발표를 위해 신생 저널을 선택한 것”이라며 “블랙리스트에 오른 저널 중에서도 나중에 학계의 인정을 받은 사례가 있다.”고 해명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발표가 주가 상승을 노린 홍보전략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보도자료 배포 전날 업계에 소문이 퍼지면서 알앤엘의 주가가 13%나 급등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라 박사는 이달 초 신주우선권을 행사, 자사주 174만주를 확보해 지분이 8.64%에서 10.42%로 늘었다. 학계의 한 관계자는 “라 박사는 지난해 노벨상 최종 후보에 선정됐다는 출처가 불분명한 소문으로 수혜를 받은 바 있다.”면서 “줄기세포 분야에서 명성을 얻고 있는 사람이 불량 저널을 선택한 것 자체가 의도성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알앤엘측은 주식 매입 부분에 대해 “라 박사가 우선주 매수권한을 행사해 지분이 늘었을 뿐 실제로 구입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영화리뷰] ‘더 스토리:세상에 숨겨진 사랑’

    [영화리뷰] ‘더 스토리:세상에 숨겨진 사랑’

    무명작가 로리(브래들리 쿠퍼)는 번번이 출판사에서 퇴짜를 맞는다. 부모도 슬슬 로리가 소설가의 꿈을 접기를 바란다. 그즈음 프랑스로 신혼여행을 떠난 로리는 파리 뒷골목 골동품 판매점에서 낡은 가방을 발견한다. 뉴욕으로 돌아와 가방을 열어본 로리는 넋을 잃고 만다. 제2차 세계대전 말 파리를 배경으로 한 짧지만, 강렬한 러브스토리가 담긴 원고를 발견한 것. 양심의 가책은 잠시뿐. 로리가 고스란히 베낀 소설 ‘창가의 눈물’은 불티나게 팔리고, 그는 단박에 저명인사가 된다. 하지만, 꿈같은 날을 보내던 로리 앞에 60여 년 전 원고를 잃어버린 노인(제러미 아이언스)이 나타난다. 그 순간 카메라는 클레이(데니스 퀘이드)란 베스트셀러 작가의 낭독회로 이동한다. 클레이가 읽을 새 소설은 다름 아닌 로리와 노인의 이야기였다. 브라이언 크러그만과 리 스턴탈 감독의 데뷔작 ‘더 스토리:세상에 숨겨진 사랑’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잃어버린 원고에 대한 유명한 일화에서 비롯됐다. 1922년 스위스 로잔에 취재를 갔던 헤밍웨이는 아내에게 파리 집에 있는 작품 초고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헤밍웨이를 만나러 가던 중, 파리 리옹역에서 실수로 초고들이 든 가방을 잃어버린다. 두 감독은 ‘만약, 훗날 누군가 헤밍웨이의 원고를 줍게 된다면?’이란 가설을 토대로 11년전 시나리오를 썼다고 한다. 2012년 뉴욕의 로리와 아내 도라(조 샐다나), 1944년 파리의 노인과 아내, 2012년 클레이와 그를 흠모하는 소설가 지망생 다니엘라(올리비아 와일드) 등 세 커플의 강렬한 이야기가 이른바 액자구성으로 펼쳐진다. 독특한 구성방식과 표절이란 소재를 끌어들인 덕에 영화는 중반까지 흡인력을 잃지 않는다. 하지만, 뒤늦게 양심의 가책을 느낀 로리가 표절작가란 사실을 커밍아웃하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영화는 힘을 잃어간다. 출판사 편집장은 로리에게 적당히 돈으로 노인을 입막음하고 넘어가라고 압력을 가한다. 표절을 당한 노인은 로리가 평생 마음의 짐을 지고 가는 게 더 큰 복수라고 여긴다. 운이 좋은 건지 몇주뒤 노인은 숨지고 만다. 눈치가 조금 빠른 관객이라면 결말까지 보지 않고도 클레이가 로리와 노인의 이야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낭독회에서 묘한 분위기를 풍기며 접근한 다니엘라에게 클레이가 “우리는 가끔 가짜를 보고도 감동한다.”고 털어놓는 건 결정적인 힌트다. 뒷심이 부족한 영화를 끝까지 보게 하는 건 브래들리 쿠퍼, 제러미 아이언스, 데니스 퀘이드 등 노련한 배우들의 몫이다. 600만 달러짜리 저예산영화가 이 정도 캐스팅을 끌어낼 수 있었던 건 명배우 아이언스의 캐스팅 소식이 전해지면서 다른 배우들이 동참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북미에선 지난 9월 개봉했다. 개봉 첫주 박스오피스 4위에 오르면서 북미에서만 1149만 달러의 흥행수익을 거둬 두 배 장사를 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시민단체 ‘반시모’ “국가청렴위를 독립해 강화시키는 개헌 먼저하라”

    시민단체 ‘반시모’ “국가청렴위를 독립해 강화시키는 개헌 먼저하라”

     경실련 1세대가 중심이 된 시민단체 ‘반성하는 시니어모임’은 28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클럽에서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 논의에 앞서 부패 척결을 위해 독립적인 국가청렴위원회를 회복·강화시키는 개헌이 앞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청렴위는 이명박 정부 들어 고충처리위원회, 행정심판위원회와 함께 국가권익위원회로 통폐합됐으며 대통령 직속기관에서 총리실 산하기구로 위상이 낮아졌다.  반시모는 ”18대 대통령 선거를 맞아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 군불이 피워지고 있다.”면서 “5년 단임제에서도 권력의 비리가 끊이지 않는데 4년 중임제가 되면 후반부 4년 임기때는 권력의 비리가 만연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반시모는 따라서 “국가청렴위가 감사원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로 격상이 거론되는 대검 중수부, 국가권익위에 흡수된 청렴위의 기능을 합쳐 만든 헌법적 기구로 거듭나 공직자의 부정·비리·부패를 척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국가청렴위원장과 위원은 대통령이 아닌 국회에서 선출하고 임기도 헌법으로 보장해 대통령을 포함한 친인척, 측근의 비리·부패까지 한점의 의혹없이 척결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청렴위의 수사에 따른 비리 공직자 사법 처리에 대해선 대통령의 사면권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부동산 투기와 세금 탈루, 위장 전입, 병역비리, 논문 표절 등 5개 사항을 국가청렴위가 검증해 공직자 임용 제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해익 간사는 “부패인식지수가 한 단계 개선되면 GDP(국내총생산)의 잠재 성장률이 1% 올라간다는 연구가 있으며, 국제투명성기구(TI)는 이명박 정부 초기에 ‘친비즈니스 정책’이 두드러지면서 한국의 부패인식지수가 악화일로에 있다고 경고했다.”면서 “ ‘잘 살아보세’ 보다는 ‘바로 살아보세’로 국혼(國魂)을 바꾸는 ‘바보’운동 긴요하다.”고 설명했다.  반시모에는 공직자로 나서지 않고 극단주의에 빠지지 않은 경실련 1세대와 균형을 갖춘 각계의 60대 이상 시니어 등 23명이 참여하고 있다.  참여인사(무순)는 다음과 같다.  ▲ 김윤환(전 고려대 교수, 전 경실련 공동대표) ▲ 김성수(전 성공회대 총장, 우리마을 원장) ▲ 박종규(KSS해운고문, 초대 바른경제동인회 이사장) ▲장만기(인간개발연구원 회장) ▲ 정영일(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 이재윤(중앙대 명예교수, 경실련 중소기업위원장) ▲ 손봉호(서울대 명예교수, 전 경실련 공동대표) ▲이해익(리즈경영컨설팅 대표, 전 경실련 초대기업평가위원장) ▲이천표(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김일수(고려대 명예교수, 전 경실련 상집위원장) ▲ 이필상(전 고려대 총장, 전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장) ▲ 윤경로(전 한성대 총장, 전 경실련 중앙의장) ▲ 한정곤(전 경주대 총장) ▲ 문택곤(공인회계사, 전 한국공인회계사회 연구교육 상근부회장) ▲ 유현(변호사, 전 국가인권위 상임위원) ▲ 나영헌(전 동부그룹 임원) ▲ 권정의(전 중소기업진흥공단 경영실장) ▲ 김재년(코리아 에어텍 대표) ▲ 이현구(까사미아 대표) ▲ 권용우(성신여대 교수, 전 경실련 도시개혁센터 대표) ▲ 이진순(숭실대 교수, 전 KDI원장) ▲ 김광윤(아주대 교수, 전 경실련 다국적기업평가위원장) ▲ 김광한(서울마케팅리서치 대표, 전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 ▲ 권영준(경희대 교수, 전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 박윤종(안세회계법인 대표) ▲ 전병화(바른경제동인회 사무국장, 전 경실련 기업연구실장)  정기홍기자 hong@seoul.co.kr
  • 또 줄기세포 논문 표절?

    줄기세포 분야의 권위자로 꼽히는 국립대 의대 교수가 논문 데이터를 중복 사용해 유력 저널에 게재한 뒤 철회한 것으로 드러났다. 강수경·강경선 서울대 수의대 교수 등 핵심 인사들이 논문조작 의혹으로 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또다시 터져 나온 줄기세포 학계의 악재다. 23일 과학계에 따르면 정진섭 부산대 의대 교수는 지난 5월 국제저널 ‘분자와 세포 생물화학’ 1월호 온라인판에 게재된 자신의 논문을 철회했다. 저널 측은 “다른 논문에 쓰인 데이터(그림)를 중복 사용했다며 철회를 요청해 왔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한국줄기세포학회 이사로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로 국제저널 ‘스템 셀’ 편집자로 활동하는 등 석학으로 평가받는다. 문제가 된 논문은 인체조직을 형성하는 마이크로RNA-598 유전자에 대한 연구 결과를 담고 있으며 정 교수가 지난해 9월 국제저널 ‘줄기세포 발생’에 게재한 논문에 사용된 것과 동일한 사진이 다시 사용됐다. 서울대의 한 교수는 “같은 연구팀의 논문이라도 동일한 사진이 다른 논문에 인용조차 없이 실리는 것은 명백한 중복 게재이자 표절”이라며 “두 논문의 연구진이 정 교수를 제외하면 모두 다르다는 점에서 실수가 아닌 의도적일 행위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첫 논문이 저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판단, 다른 논문에 자료를 사용한 것은 사실”이라며 “두 번째 논문이 나온 뒤에야 첫 번째 논문이 게재된 것을 알고 철회했다.”고 해명했다. 논문을 저널에 투고한 뒤 게재 여부가 확정되기 전에 다른 저널에 중복 투고하는 것은 학계의 금기사항이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서울시장 후보 ‘양보’…대선 단일화 교착에 또 ‘양보 정치’

    야권 후보 단일화 여론조사 협상 완료의 사실상 마지노선인 23일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는 ‘초치기’ 협상전을 벌이며 출구를 마련하려 안간힘을 썼다. 안 후보는 전날 후보 간 회동에서조차 한 치의 진전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협상팀이 만나 봤자 진전을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후보 대리인 간 회동도 제안했다. 문 후보 측이 이를 수용해 낮 12시부터 회동이 진행됐지만 문 후보 측의 중재안과 안 후보 측의 절충안 사이에서 끝내 접점을 찾지 못하고 4시간 만에 종료됐다. 안 후보는 캠프에 머물며 보고를 받은 뒤 5시간의 고심 끝에 사퇴를 결심했다. 사퇴를 선언하며 지지자들에게 문 후보를 도와 달라고 말했지만 “새 정치의 꿈이 잠시 미뤄졌다.”는 말에는 민주당을 향한 원망과 섭섭함이 그대로 묻어났다.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안 후보가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 후보에게 ‘조건 없는 양보’를 한 뒤 후원자로 나섰을 때 그의 양보는 정치에서의 퇴진이 아니라 ‘안철수식’ 정치의 첫걸음이었다. 그로부터 13개월 뒤 대선 후보 단일화 국면에서 문 후보에 대한 또 한번의 양보는 그의 표현대로 정권 교체를 위해 “새 정치의 꿈을 잠시 미룬” 일보 후퇴였다. 서울시장 선거 이후까지만 해도 안 후보는 자신의 행보가 대선 행보로 비칠까 봐 박 시장의 선거운동을 지원할지 여부를 놓고 고심할 정도로 정치에 발을 들여놓는 것을 머뭇거렸다. 그럼에도 양보와 응원, 재산 기부 등 기성 정치를 뒤집는 행보로 정치권에 실망한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고 당장 그해 12월부터 신당 창당, 4·11 총선 강남 출마설이 나돌기 시작했다. 안 후보가 “전혀 그럴 생각도 없고 조금도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지만 4·11 총선이 가까워지면서 그의 영향력을 기대하는 정치권의 러브콜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안 후보는 “정치를 하더라도 진영 논리에 빠지지 않겠다.”며 출마설을 일축했다. 4·11 총선 이후 긴 침묵을 지키던 안 후보는 5월 30일 부산대 실내체육관에서 ‘특강 정치’를 재개했다. 자신의 고향인 부산에서 진행된 이 강연은 대선 행보의 신호탄이 됐다. 그는 같은 달 고(故) 김근태 전 민주당 상임고문의 비서관으로 정계에 입문한 유민영 전 청와대 춘추관장을 개인 공보담당으로 선임하는 등 대선 행보를 시작하기 전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이후 안철수재단을 공식 출범시키고 네트워크형 대선 조직을 띄우고 자전 에세이 ‘안철수의 생각’을 출간한 뒤 9월 19일 출마를 선언하며 대선 무대로 뛰어올랐다. 그의 대선 행보에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만 있었던 건 아니다. 안랩의 신주 인수권부 사채(BW) 저가 발행 논란, 국민은행·포스코 사외이사 논란, 본인과 배우자의 다운계약서 논란, 논문 표절 논란까지 끊임없는 도덕성 시비에 휩싸였고 상처를 입었다. 그러면서도 지역별로는 호남과 수도권, 세대별로는 20~30대의 폭발적인 지지를 얻으며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대항마’로 입지를 구축했다. 하지만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로 안 후보는 협상을 잠정 중단했고 수세에 몰리는 듯했던 문 후보가 이해찬 민주당 당 대표 퇴진 카드로 역공에 나서면서 안 후보의 견고했던 지지율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협상은 재개됐지만 아름다운 단일화가 물 건너가고 단일화 여론조사 규칙을 둘러싼 양측의 지루한 싸움 끝에 구태 정치의 모습이 재연되자 결국 안 후보는 백의종군을 선택했다. 출마를 선언한 지 65일 만이었다. 이현정기자 hjlee@seoul.co.kr
  • 서울대 “안철수 논문 표절 아니다”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의 논문표절 의혹에 대해 서울대가 표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로써 안 후보의 논문을 둘러싼 표절 논란은 일단락될 전망이다.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는 16일 표절 및 중복 등 의혹이 제기된 안 후보의 석·박사 논문 등 5편에 대한 예비조사 결과 문제의 소지가 없는 것으로 판단, 본조사의 필요성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다만 1993년 안 후보가 공동저자로 참여한 논문은 다른 학회지에 발표된 동일 교신저자의 영문 초록과 유사해 부분 표절로 판단되지만 주된 책임은 안 후보가 아닌 제1저자와 교신저자에게 있다고 밝혔다. 특히 박사학위 논문(1991)에서 ‘볼츠만 공식’을 인용 표시 없이 사용한 것에 대해 성노현 서울대 연구처장은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공식을 기재한 것으로 연구윤리를 위반한 것이라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안 후보 측은 “당연한 결과”라고 밝혔다. 안 후보 캠프의 유민영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내고 “사리에 맞는 판단”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명희진기자 mhj46@seoul.co.kr
  • “장르 4개 섞어 독자에 새로운 소설 시도”

    “장르 4개 섞어 독자에 새로운 소설 시도”

    “가상현실에서만 표현되는 ‘게임 폐인’들의 영웅적 행위가 현실 세계에서도 구현될 날을 기다린다.” 소설 ‘영원한 제국’의 작가 이인화(46·이화여대 교수)가 펴낸 새 장편소설 ‘지옥설계도’는 그가 지난 8년 동안 최소 하루 3시간 이상 게임을 하는 헤비유저로 살면서 느꼈던 것을 소설의 형식으로 쓸어담은 것이다. 그는 오른쪽 집게손가락을 1초에 16번 움직이다가 이 손가락과 연결된 팔꿈치 관절이 파열돼 고통을 당하기도 하고, 온라인 게임을 함께 하던 대원 32명이 온몸에 화살을 맞으며 죽어가면서도 자신을 살리려고 노력할 때는 그들의 전우애와 형제애로 인해 컴퓨터 앞에서 눈물을 철철 흘리기도 했단다. 13일 서울 정동의 한 식당에서 열린 새 소설 출판 간담회는 소설 자체보다 게임과 가상현실에 대한 이야기가 넘쳐났다. 또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이인화가 직접 만든 컴퓨터 프로그램 ‘스토리 헬퍼’에도 관심이 쏠렸다. 이인화는 “PC가 이미 올드미디어가 돼 버릴 만큼 빨리 변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소설을 읽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독자가 예상할 수 있는 결론을 피해가고자 애썼다.”고 했다. 그는 “JK 롤링은 해리포터를 쓰기 전에 국가가 2년 동안 생활비를 지원했다. 반면 한국의 소설가나 시나리오 작가들은 그런 혜택을 볼 수 없는 상황이다. 물론 최근 예술인복지법이 통과되긴 했다. 그래서 정보기술(IT) 강국답게 프로그램을 통해 작품을 쓸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한 것”이라고 말했다. 205개의 스토리 모티브와 3만 4000개의 모티브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한 스토리 헬퍼는 작가에게 그가 쓰려는 스토리의 얼개를 넣으면 기존의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통해 등장했던 스토리와 얼마나 유사성이 있는지를 알려준다. 또한 어떤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지도 보여 준다. 최근 영화 ‘광해’가 영화 ‘데이브’를 표절했다는 시비가 일고 있는데 스토리 헬퍼로 돌려보면 약 75%가 비슷하지만, 영화 ‘아바타’가 영화 ‘늑대와 춤을’과 87%나 비슷한 것을 감안하면 ‘아주 양반스러운 것’이라고 했다. 모티브나 스토리 전개의 유사성이 문제가 아니라 작가가 햄릿과 같은 불멸의 창조적인 캐릭터를 형상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특히 게임업체가 게임을 만들어 놓으면 1개월 만에 게임에 스토리를 입혀야 하는 열악한 작업환경의 게임 시나리오 작가나 애니메이션 작가들이 이 스토리 헬퍼 프로그램을 잘 활용하길 바란다고 했다. 소설로 돌아가면 ‘지옥설계도’는 보통보다 10배 이상의 지능을 가진 강화인간과 범국가적 조직을 배후로 둔 살인사건의 추적 과정을 그린다. 스릴러와 추리, 판타지, SF 등 네 가지 장르를 섞어 독자들이 그동안 읽어 보지 못했을 ‘완전히 새로운 전개’를 시도했다고 했다. 이인화는 “이전까지 19편의 소설을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면서 썼는데, 이번에는 아주 희열을 느끼면서 썼다.”고 했다. 작가는 세계 곳곳의 ‘동생’들과 게임을 하면서 “우리만 잘살고 우리만 대통령 잘 뽑으면 되는 게 아니라 지구의 아픔이 나의 아픔임을 깨닫게 됐다.”고 했다. 소설에 이어 이 소설을 확장한 게임은 내년 1월 출시된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수시 계열별 구술면접 대비 요령

    수시 계열별 구술면접 대비 요령

    수시모집의 면접 전형 준비에 매진해야 할 수험생들이 적지 않다. 이미 수능 직후인 10일 건국대·고려대·서울시립대 등을 시작으로 대학별 수시모집 구술면접이 시작됐고, 12월 초까지 연이어 빡빡한 일정이 예고돼 있다. 11~16일 수시 2차 원서를 접수하는 대학도 많다. 면접고사의 경우 단계별 전형에서 대학별로 최소 20%에서 최대 100%까지 반영하는 만큼 남은 기간 지원 대학의 면접 유형과 주요 평가요소 등을 꼼꼼히 파악해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인문계열 심층면접은 주어진 제시문을 읽고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주로 전공과 관련한 고교 교과 지식의 이해도와 해당 전공을 수학하는 데 필요한 자질을 평가하므로 면접 전 해당 전공과 연관된 고등학교 교과서 내용을 익혀 두는 것이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국어국문학과를 지원한 학생에게는 고등학교 국어 또는 문학 교과서에 나오는 작품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해석을 요구하는 식이다. 한 가지 중요한 점은 대부분의 대학에서 제시하는 영어지문이 단순히 독해 능력을 평가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면접관들은 지원자의 영어실력을 평가하려는 것이 아니라 해당 지문에 대한 이해도와 논리 관계를 얼마나 파악했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본다. 따라서 논리 관계를 파악해 자신의 의견을 곁들여 설명하는 연습을 해 두는 것이 좋다. 답변할 때는 결론부터 간단하게 제시하고, 그에 따른 이유나 근거를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자연계 심층면접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수학 및 과학과 관련된 기본 개념과 원리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필수다. 교과 과정을 활용해 해결하는 문제들이 주로 제시되므로 대학별·전공별 기출문제를 통해 풀이과정을 완전히 익히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자연계열 지원자가 유의해야 할 점은 구술면접에서 주어진 문제에 답을 구하지 못했다고 해서 바로 탈락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심층면접에서는 수학과 과학적 지식을 얼마나 알고 있느냐보다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과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을 주로 평가하므로 답을 구하지 못했다고 해서 쉽게 포기하면 안 된다. 또 수학 문제풀이 과정에서 과학적 개념과 원리를 물어보거나, 과학 문제풀이 과정에서 수학적 개념과 원리를 물어볼 수도 있으므로 평소 영역을 통합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훈련을 지속적으로 해 두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지원 계열에 상관없이 모든 지원자는 면접 전 자신이 제출한 자기소개서 등 서류를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최근 자기 소개서와 교사 추천서 등의 표절, 대필 여부에 대한 대학들의 검증이 강화된 만큼 면접 과정에서 사실이 확인되지 않는다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대입 자소서 5%만 비슷해도 표절 조사

    앞으로 대입 입학사정관 전형에서 다른 사람의 글과 5% 이상 같은 자기소개서(자소서)를 제출하면 표절 여부 조사 대상이 된다. 표절 또는 다른 사람이 대신 써 주는 행위, 허위사실이 적발되면 입학이 취소될 수도 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는 현재 전국 98개 대학에서 활용하고 있는 ‘유사도 검색 시스템’을 활용해 표절, 대필 가능성을 조사하고 그 결과에 따라 입학에 불이익을 주는 내용을 담은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고 11일 밝혔다. 유사도 검색 시스템은 수험생들의 지원서류를 비교해 같은 단어나 문장이 반복되는 정도, 행의 배열 등을 검사해 비슷한 정도를 수치로 나타내는 프로그램이다. 가이드라인은 올해 정시전형부터 시행된다. 가이드라인은 각 대학이 자소서와 교사추천서를 받은 뒤 유사도 검색 시스템을 통해 나온 수치를 레드(위험)·옐로(의심)·블루(유의) 등 3단계로 구분하도록 했다. 자소서의 경우 유사도가 30% 이상이면 레드, 5~30%는 옐로, 5% 미만은 블루로 분류된다. 교사추천서는 50% 이상의 유사도를 보이면 레드, 20~50%는 옐로, 20% 미만은 블루다. 심각한 표절·대필·허위사실 기재가 적발되면 입학한 이후라도 입학 취소를 할 수 있다. 대교협은 또 유사도가 50%를 넘는 교사추천서에 대해서는 해당 교사를 블랙리스트에 올려 대학끼리 공유하고 향후 해당 교사의 추천서를 감점하는 등 불이익을 주기로 했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서울시립대, 前서울시 고위간부 박사논문 표절·대필 조사

    서울시립대가 전직 서울시 고위간부가 쓴 박사 논문에 대해 표절·대필 여부를 조사 중인 것으로 7일 드러났다. 시립대는 서울시를 거쳐 자치구 부구청장을 지낸 P(53)씨의 박사 논문에 대한 표절·대필 의혹이 제기돼 예비조사를 마쳤으며 본조사를 벌이기로 결정했다고 지난 6일 밝혔다. 시립대는 앞으로 관련 분야 전문가 등 6인 이상으로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조사를 벌인 뒤 1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총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P씨는 A구 부구청장으로 재직하던 2009년 ‘고령화 사회에서 노인정보화 교육의 효과 분석-서울특별시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사회복지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이 논문은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보고서를 비롯해 다른 사람의 석사 학위 논문 서너 편을 인용표시 없이 표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진국의 노인정보화’ 부분이 대표적이다. 이 논문은 73쪽부터 82쪽까지 미국과 영국, 일본 세 나라의 노인정보화 교육 현황을 소개하면서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보고서에서 쉼표 몇 개 정도만 빼고 거의 그대로 베꼈다. 이와 관련, P씨는 서울신문과의 전화에서 표절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삼성이 표절 안했다’ 재공지하라…英법원, 애플에 최후통첩

    영국 법원이 애플을 상대로 “삼성이 애플 디자인을 베끼지 않았다.”고 다시 공지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결정을 따르지 않으면 팀 쿡 최고경영자(CEO) 등 애플 임직원 17명이 감옥에 가거나 벌금을 납부할 수 있고, 자산이 압류될 수도 있다고 최후 통첩을 날렸다. 1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항소법원은 애플이 지난달 25일 영국 자사 사이트에 게재한 공고문을 24시간 안(2일 오전 11시)에 내리고 불성실한 공고문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는 수정 및 보완 문구를 48시간 안(3일 오전 11시)에 올리라고 명령했다. 또 새로 수정된 문구는 다음 달 14일까지 계속 노출시켜야 한다고 지시했다. 앞서 내려졌던 1개월 명령보다 2주 늘어난 것이다. 영국 항소법원은 “애플이 이 판결을 어기면 팀 쿡 CEO, 조너선 아이브 하드웨어 디자인·소프트웨어 총괄 수석부사장,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 등 이사회 등기 임원들이 감옥에 가거나, 벌금을 내거나 자산을 압수당할 수 있다.”고 엄중히 경고했다. 이에 따라 애플은 이날 파이낸셜타임스 등 영국 언론에 “삼성전자의 갤럭시탭 10.1, 갤럭시탭 8.9, 갤럭시탭 7.7 등은 애플의 디자인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수정된 공지문을 다시 게재했다. 애플은 이전 공고문에서 ‘삼성이 애플 디자인을 베끼지 않았다.’고 언급하면서 의도적으로 삼성이 패소한 독일·미국에서의 특허 소송 사례를 포함시키는 등의 꼼수(?)를 부려 법원의 철퇴를 맞았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사고] 2013 서울신문 신춘문예 공모

    불합리한 시대의 아픔을 꿰뚫는 통찰력으로, 이 시대의 아픔을 치유할 품이 넉넉한 신인작가를 찾습니다. 상처를 품고 살아온 세월을 일깨워줄 지성과 좌절을 희망으로 되돌리는 반전 있는 글쓰기가 절실한 시대입니다. 첫새벽을 기다리는 별빛조차 없는 깜깜한 밤에는 뜨거운 가슴의 문학이 더 필요하고 역할도 커집니다. 소설가 한강(1994년·‘붉은 닻’), 하성란(1996년·‘풀’), 백가흠(2001년·‘광어’)…. 이제 당신 차례입니다. 새해 첫날 붉은 태양처럼 환하게 지면을 밝혀줄 ‘희망의 작가’를 모십니다. 도전하십시오!! ■모집 부문 및 상금 ●단편소설(80장 안팎) 500만원 ●시(3편 이상) 300만원 ●시조(3편 이상) 200만원 ●희곡(90장 안팎) 250만원 ●문학평론(70장 안팎) 250만원 ●동화(30장 안팎) 150만원 ※장수는 200자 원고지 기준 신춘문예 12월 10일 마감합니다 ●마감 2012년 12월 10일 월요일 (당일 도착 우편물까지 유효) ●보내실 곳 100-745 서울 중구 태평로1가 25 서울신문사 10층 문화부 신춘문예 담당자 앞 ●당선작 발표 2013년 1월 1일자 서울신문 지면 ●응모 요령 -응모작은 기존에 어떤 형태로든 발표되지 않은 순수 창작물이어야 합니다. 같은 원고를 타사 신춘문예에 중복 투고하거나 표절로 인정될 경우 당선을 취소합니다. -컴퓨터, 워드프로세서로 작성한 원고는 반드시 A4용지로 출력해 우송하십시오. 팩스나 이메일 원고는 받지 않습니다. -겉봉투에 ‘신춘문예 응모작 ○○ 부문’이라고 붉은 글씨로 쓰고, 원고 끝에 이름(필명인 경우는 본명), 주소, 연락처(집·직장 전화, 휴대전화)를 적어주십시오. -응모작은 반환하지 않습니다. ●문의 서울신문 문화부 (02)2000-9192∼6
  • 서울대 ‘안철수 논문표절 의혹’ 조사 나설까

    서울대 ‘안철수 논문표절 의혹’ 조사 나설까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의 논문 표절 의혹에 대해 서울대가 자체 조사에 착수할지 주목된다. 서울대는 오는 31일 연구진실성위원회를 열어 표절 및 중복 등 의혹이 제기된 안 후보의 논문들을 검토하고 조사 착수 여부를 결정한다고 28일 밝혔다. 검토 대상은 안 후보의 1991년 서울대 의대 박사 논문과 1993년 안 후보가 공동저자로 참여한 학술 논문 등 4편이다.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는 학내 연구 수행자의 표절, 위·변조 등의 부정 행위와 공저자 누락 등에 대한 조사 착수 여부 등을 검토하는 기구다. 연구 윤리 위반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거쳐 결론을 낸다. 지난 23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서울대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 민병주 의원이 “안 후보의 논문 표절 의혹에 대해 서울대가 자체 조사 뒤 이달 말까지 결과를 발표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서울대 이준식 연구부총장은 “시간이 촉박하니 다음 달 말까지 노력해 보겠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실제 조사가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서울대 연구처 관계자는 “안 후보의 논문에 문제가 없다고 보는 의견이 상당수여서 실제 조사가 이뤄지긴 어려울 것”이라면서 “의대 자체에서도 이미 검토를 마쳐 안 후보의 논문이 문제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명희진기자 mhj46@seoul.co.kr
  • [생명의 窓] 도고일장 마고일장/손흥도 원불교 교무

    [생명의 窓] 도고일장 마고일장/손흥도 원불교 교무

    올해는 유난히 큰 태풍이 많았었다. 내가 근무하는 대학에서는 지난 태풍에 100그루가 넘는 아름드리 큰 나무가 세찬 바람에 시달리다가 뿌리째 뽑히며 힘없이 넘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유심히 관찰해 보니 넘어진 나무들은 주로 옮겨 심은 적이 있는 큰 나무들이었고, 오히려 작은 나무들은 가지만 일부 꺾였을 뿐 뿌리째 뽑히지는 않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에서도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며, 꽃이 아름답고 열매가 풍성하다.’하였다. 작은 잔디나 들풀에 비해 큰 나무일수록 뿌리가 깊지 못하면 거친 비바람에 흔들릴지니 어찌 홀로 당당하겠는가. 태풍이 지나간 후 뿌리째 뽑혀 쓰러지고 만 거목들을 나무로만 보고 있는 것은 우리가 세상을 부분만 보고 안주하며 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도고일장 마고일장(道高一丈 魔高一丈)이라는 말이 있다. 도가 한 길 커 나가면 마도 한 길 커 나간다는 말이다. 공부나 사업을 하는 데 실력이나 지위가 높아지면 그에 상응하는 마군이도 한 길 커 간다는 말이다. 수행자들의 경구이다. 공부나 사업 간에 나타나는 일체의 경계와 나를 시험하는 마군이를 나를 채찍하고 격려해 주는 스승이요, 벗으로 삼을지언정 마가 없기를 바랄 수 없음이라. 단지 그 경계를 감당할 힘이 적음을 걱정하여 내면의 힘을 갖추어 가는 데 일단정성을 다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다. 의학이 발달하고 의사와 의료비가 증가하고 있는데도 병은 늘어만 가고, 각종 첨단의학에서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한다 해도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신종 바이러스가 출현하여 인류의 건강을 위협한다. 몇 년 전 출현하였던 신종플루야 면역기능 강화를 필요로 하는 일과성의 병이겠지만, 근래 들어 늘어가는 각종 성인병들 중 치매와 암 또한 과학문명의 발달과 함께 정신을 과도하게 많이 쓰고 먹거리가 풍요로워진 현대사회에서 우리에게 질병을 통해 중도와 중용의 도를 일러주는 대자연의 큰 언어이다. 얼마 전 국가대표 선수로서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까지 획득하여 전 국민에게 큰 박수를 받았던 한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면서 학위논문 표절이 문제가 되어 수난을 겪은 일이 있다. 성취욕을 앞세운 과욕 때문에 한순간 그의 일생 명예에 크게 먹칠을 자초한 결과를 보면서, ‘우리 청소년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하는 생각에 이 시대를 함께한 사람으로서 아쉬움을 떨칠 수가 없었다. 지도층에 있는 사람에게 사회적 의무로서의 책임감과 도덕성을 중시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새롭게 조명 받는 요즘, 어느 분야에나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먼저 그 신분에 상응하는 의무와 책임이 뒤따름을 알고 각자의 본분에 충실하고 작은 것부터 성실하게 실행해 가는 성숙한 선진사회 모습을 기대한다. 이때 그 지도자가 나라를 이끄는 최고 책임자라면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원불교 교조이신 소태산 대종사는 ‘지도인으로서 준비할 요법’으로 지도받는 사람 이상의 지식을 가질 것, 지도받는 사람에게 신용을 잃지 말 것, 지도받는 사람에게 사리를 취하지 말 것, 일을 당할 때마다 지행을 대조할 것을 원불교 ‘정전 최초법어’에 밝혀 주었다. ‘주역’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천지만물 자연현상의 원리를 설명한 것으로, 주역의 64괘는 사람이 살아가는 64가지의 길을 말한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데에는 크게 64가지의 길이 있다는 것이다. 그중 15번째 괘이름은 ‘겸’(謙)괘이다. 겸괘는 겸손을 뜻하는 것으로, 주역은 ‘겸한 즉 일체 재앙이 없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14번째 괘의 이름이 대유(大有)이니, 정신·육신·물질 간에 크게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안으로 겸손해야만 재앙이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니 이 얼마나 극절한 가르침인가. 크게 가진 사람은 가득 채우면 오히려 넘친다. 스스로 낮추어도 사람들은 그를 더욱 우러러보며, 스스로 감추어도 그 덕은 더욱 빛난다. 오늘도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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