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표기
    2026-04-18
    검색기록 지우기
  • 교인
    2026-04-18
    검색기록 지우기
  • 박성준
    2026-04-18
    검색기록 지우기
  • 배려
    2026-04-18
    검색기록 지우기
  • 시계
    2026-04-1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3,848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LG家③-‘사업동지’ GS 허씨일가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LG家③-‘사업동지’ GS 허씨일가

    지난해 발표된 국내 100대 부호 명단에는 6명의 허씨가 포함됐다. 허창수(57) GS회장이 3160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허정수(55) GS네오텍 사장이 2530억원, 허광수(59)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이 1700억원, 허완구(69) 승산회장이 1510억원, 허남각(67) 삼양통상 회장·허진수(52) GS칼텍스 부사장이 각각 1390억원으로 뒤를 이었다. 한국에서 가장 돈이 많은 가문 가운데 하나인 김해 허씨 문중인 이들은 경남 진주의 만석꾼인 고 허만정씨 자손들이다. 허씨가는 지난 세월 재계에서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올해 LG에서 분리, 재계 7위 규모의 GS그룹을 출범시키며 재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GS그룹은 삼양통상, 승산, 코스모 등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친족 회사들을 계열로 편입시키며 무려 50여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지난 4월 공정거래위원회 발표기준 자산규모는 18조 7200억원으로 한화(16조 2200억원), 두산(9조 7300억원) 등 전통을 자랑하는 그룹들을 압도할 정도였다. ●허씨의 핵, 허준구 일가 수백년간 이어졌던 구씨와 허씨의 관계를 ‘인척’에서 동업관계로 바꾼 사람은 고 허준구 회장이다.1946년 초 고 구인회 LG 창업회장 장인(허만식씨)의 재종(6촌)인 고 허만정씨가 3남인 준구(작고)씨의 ‘경영수업’을 부탁하면서 사업자금을 내놓은 것이다. 구 회장은 귀족적인 용모의 일본 간토중학교(5년제) 출신 사돈을 반갑게 맞이했다고 한다. 당시 허만정씨가 내놓은 자금이 얼마인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허씨가는 이후에도 고향마을(경남 진주시 지수면 승내리)의 땅을 처분한 돈으로 계속 출자를 했다. 이른바 해방정국의 ‘벤처캐피털’인 셈인데 허씨의 투자는 59년 만에 18조원이 넘는 자산으로 돌아왔으니 ‘대박’이 터졌다고 볼 수 있다. 허준구 회장은 당시 가내수공업 수준을 면치 못하던 락희화학의 영업담당 이사로 발을 디뎠는데 당시 공장에서 고생하던 구자경 이사를 부산 시내로 불러내 술을 사 주며 ‘위로’하기도 했다. 구자경 명예회장은 “내가 ‘비어홀’이라는 곳을 처음 가 본 것은 준구씨 덕분”이라고 회고했다. 허 회장은 반도상사(현 LG상사)·금성사 상무를 거쳐 62년 금성사 부사장으로 승진했다.68년 반도상사 사장을 시작으로 71∼82년 금성전선(현 LS전선) 사장,84∼95년 금성전선 회장 등을 지내며 LG그룹의 버팀목이 됐다. 구인회 회장은 68년 그룹체제를 출범시키며 허 회장에게 초대 기획조정실장을 맡길 정도로 무한한 애정을 보였다.69년 락희화학이 민간기업 최초로 기업공개를 실시한 것도 당시 기조실장이었던 허 회장의 ‘숨은 공로’다. 77년 하루 480㎜의 폭우가 쏟아져 금성전선 안양공장이 2m 가까이 침수됐을 때 허 회장은 예비군복에 장화를 신고 물속을 헤치고 다니며 공장 복구를 진두지휘했다고 한다. 밤낮없이 꼬박 두달동안 계속된 복구작업끝에 안양공장은 주변 공장 중에서 가장 빨리 재가동에 들어갈 수 있었다. 2002년 7월29일 허 회장이 세상을 뜨자 구자경 명예회장, 구본무 회장 등 구씨들은 ‘5일장’ 내내 자리를 지키며 ‘사돈이자 동지’였던 허 회장의 타계를 안타까워했다. 허 회장은 구인회 회장의 첫째 동생인 고 구철회씨 장녀 위숙(77)씨와의 사이에서 5명(창수·정수·진수·명수·태수)의 아들을 뒀는데 모두 고려대 동문인 데다 대부분 해외유학파 출신이다. 특히 창수·정수·진수씨는 학과(경영학과)까지 똑같다. ●항상 공부하는 허창수 회장 장남인 허창수 회장은 그룹 회장을 맡으면서 지주회사인 GS홀딩스와 GS건설의 대표이사 회장을 맡고 있다. 경남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허 회장은 미국 세인트루이스대 경영대학원(MBA)을 마친 77년 그룹 기조실 인사과장으로 입사했다.79년 럭키금성상사 해외기획실 부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홍콩지사, 도쿄지사 등 해외근무를 오래하며 영어와 일어 실력을 쌓았다.88년 럭키금성상사 전무로 승진한 직후인 89년에는 LG화학 부사장을 지냈고 92년부터는 LG산전(현 LS산전) 부사장을 맡았다. 95년 구본무 회장이 3대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아버지가 맡고 있던 LG전선 회장을 이어받았고 2002년부터는 LG건설(현 GS건설)을 지휘하며 분가를 준비해왔다. 허 회장은 첨단제품과 해외정보에 관심이 많은데 지금도 월스트리트저널, 비즈니스위크 등 해외 경제전문지들을 빼놓지 않고 보고 있다.2002년 LG건설 회장을 맡으면서 ‘건설부흥’,‘주간 다이아몬드’ 등 일본의 경제잡지에 나온 일본 건설회사의 현황 기사를 번역해 임직원들에게 배포하기도 했다. 최근에도 ‘미국 건설산업 왜 강한가?’,‘영국 건설산업의 혁신전략과 성공사례’ 등을 필독서로 권유했다. 허 회장은 전형적인 ‘아침형 인간’으로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전날 읽은 책의 내용을 정리하고 헬스장에서 1시간 정도 조깅을 한다. 허 회장은 조깅, 등산 등으로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는데 운동량이 부족한 임직원들을 위해 ‘만보기’를 직접 사줄 정도로 자상한 면모도 갖고 있다. 골프는 80대 중반 실력이지만 라운딩을 자주 하는 편은 아니다. 주량은 양주 반병 가량으로 약하지는 않지만 맥주를 마시며 대화하는 것을 즐긴다고 한다. 늘 구본무 회장 한발 뒤에 섰던 허 회장은 소탈하고 겸손한 면모를 갖고 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GS타워에서 지하철 한 코스 떨어진 강남역 정도는 수행비서도 없이 걸어서 다닌다. 비서팀도 따로 없다. 탁월한 외국어 실력을 지닌 데다 젊은 직원들도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첨단기기들에 관심이 많은 허 회장의 향후 행보는 재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하다. 허 회장은 지난 3월 취임 기자회견에서 “당대에서는 LG와 겹치는 사업에 진출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지만 ‘슈퍼루키’ GS그룹의 펄펄 끓는 에너지가 어느 쪽에서 터져나올지 아무도 예측하기 어렵다. 허 회장은 고 이철승 전 상공부 차관의 딸인 부인 이주영(53)씨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뒀다. 아버지의 모교인 미국 세인트루이스대를 나온 아들 윤홍(26)씨는 지난 2002년 LG칼텍스정유(현 GS칼텍스)에 입사, 영업전략팀·경영분석팀 등을 거쳐 올 초 아버지가 회장으로 있는 GS건설 경영관리팀 대리로 입사했다. 구씨와 마찬가지로 허씨 역시 ‘장자승계’의 원칙을 따르고 있으므로 먼 훗날에는 윤홍씨가 허씨가의 대표로 그룹 회장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윤홍씨는 조만간 누나(윤영·29)가 공부중인 미국으로 다시 건너가 MBA 코스를 밟을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GS경영을 책임지는 동생들 허창수 회장의 첫째 동생 허정수(55)씨는 GS네오텍(전 LG기공) 지분 100%를 보유하며 사장을 맡고 있다. 고려대 경영학과 출신인 허 사장은 90년대 LG전자에서 상무로 일하다 96년 LG기공으로 자리를 옮겨 독립했다. 당시 LG는 처음으로 계열분리를 시도하면서 구씨와 허씨 한 명씩을 분가시키기로 했는데 구씨 쪽에서는 고 구정회씨 아들인 구형우씨가 부민상호저축은행을 갖고 독립했고 허씨쪽 대표로 허 회장이 LG기공을 맡았다. 교환기 설치 및 부가통신공사, 유무선 통신케이블 및 전송공사, 전기전력 및 산업 플랜트 공사, 정보통신 및 인터넷사업을 영위중인 GS네오텍은 지난해 수주 2700억원에 매출 2250억원, 당기순이익 123억원을 냈다. 최근에는 반도체,LCD 공장에 필수적인 ‘클린룸’ 사업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 부인 한영숙(51)씨와의 사이에 2남을 두고 있다. 장남 철홍(26)씨는 GS홀딩스 지분 1.26%를 갖고 있는데 ‘홍’자 돌림 3세 가운데 가장 많다. 허진수(52) GS칼텍스 부사장은 고려대 경영학과와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원을 마치고 주로 호남정유(현 GS칼텍스)에서 일했다.2000년에는 LG전자 중국지사 부사장을 거친 뒤 2001년부터 GS칼텍스 경영전략본부장·경영혁신본부장을 거쳐 지난해부터 생산본부장으로 일하고 있다.2003년에는 발전회사인 LG에너지 대표이사를 맡았지만 GS가 LG에서 분리되면서 자연스럽게 대표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LG는 LG에너지 지분을 GS에 매각하는 것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허 부사장은 부인 이영아(47)씨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두고 있다. 허명수(50) GS건설 부사장은 경복고와 고려대 전기공학과를 나와 LG전자 청소기공장장, 영국 뉴캐슬 법인장 등을 거쳐 2002년 허창수 회장과 함께 GS건설로 자리를 옮겼다. 재경본부장으로 회사의 살림을 책임지고 있다. 다른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운동에 남다른 소질을 보여 고려대 ‘역도부’에서 활동했다. 허 부사장은 노재현 전 국방부장관의 딸인 부인 노경선(45)씨와의 사이에 2남을 뒀다. 노 전 국방장관은 ‘12·12사태’때 국방장관으로 말 못할 고초를 겪은 뒤 한국종합화학공업 사장, 한국비료공업협회 회장, 한국자유총연맹 총재 등을 지냈다. 허태수(48) GS홈쇼핑 부사장은 중앙고와 고려대 법대를 거쳐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MBA 코스를 밟았다. 이후 콘티넨탈은행, 어빙은행 등 금융권 경력을 살려 88년 LG증권 국제조사팀 과장으로 입사했다. 이후 런던법인 상무보 등 2002년까지 LG증권에서 일하다 LG홈쇼핑 전략기획부문 상무로 자리를 옮겼고 2003년 말 경영지원총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허 부사장은 중국 현지 법인인 ‘충칭GS쇼핑’ 설립을 주도하는 등 중국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허 부사장은 바로 위 형인 허명수 부사장과 함께 골프실력이 재계에서 가장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싱글’ 수준을 넘어 ‘이븐’이나 ‘언더파’를 칠 정도로 프로 못지않다. 부인 이지원(43)씨는 이한동(71) 전 국무총리의 장녀. 한때 대권 후보로까지 나섰던 이 전 총리는 현재 법무법인 남명의 대표변호사를 맡고 있는데 아들 이용모(41)씨는 건국대 행정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장남가의 화려한 혼맥 고 허만정씨의 장남인 고 허정구 삼양통상 회장은 고 이병철 회장, 고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와 함께 삼성을 공동 창업했다. 보성전문 법학과 출신의 허 회장은 제일제당(현 CJ) 전무, 삼성물산 사장을 지낼 정도로 삼성 경영에 깊숙이 관여하다 57년 삼양통상을 설립, 독립했다. 야구공·글러브와 나이키 신발을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하는 삼양통상은 지난해 2121억원의 매출에 97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삼양통상은 또 수입담배, 골프용품, 윤활유 판매 등을 맡고 있는 삼양인터내셔널과 보헌개발, 경원건설 등 건설사를 계열사로 두고 있다. 허 회장은 권투협회장, 대한체육회장, 프로골프협회장, 골프장협회장, 아시아태평양아마골프회 회장 등 체육계와 남다른 인연을 쌓았는데 생전에 체육훈장 기린장을 받았다. 삼양통상은 허 회장이 99년 사망한 뒤 장남인 허남각(67) 회장이 이끌고 있다. 허 회장의 부인은 이화여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를 지낸 구자영(68)씨다. 허 회장은 보성고와 서울대 상대, 미국 시카고대 대학원을 마친 뒤 63년 삼양통상 시카고 지사장으로 경영에 뛰어들었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아시아태권도연맹회장을 지낼 정도로 스포츠와 인연이 깊다. 허 회장은 GS그룹의 주요 주주이자 ‘장손’ 자격으로 올 초 허창수 회장의 전남 여수 GS칼텍스 사업장 방문을 동행해 주목을 받았다. 허 회장의 장녀 정윤(34)씨는 정문원 전 강원산업 회장 아들 대호(37)씨와 결혼했고 아들 준홍(30)씨는 올해 GS칼텍스에 입사했다. 이로써 현대차 그룹 정몽구 회장의 장남인 정의선씨와 사돈으로 연결된다. 의선씨가 정문원 회장의 조카사위가 되기 때문이다. 장녀 허영자(65)씨는 벽산그룹 김희철(68)회장과 결혼, 김성식(38) 벽산 사장, 김찬식(36) 벽산 상무 등 3형제를 낳았다. 차남 허동수(62) GS칼텍스 회장은 보성고와 연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화학공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대표적인 ‘오너경영인’이다. 허 회장은 미국 셰브론 리서치사의 연구원을 거쳐 73년 호남정유(현 GS칼텍스)로 입사,33년째 ‘오일맨’의 길을 걷고 있다. 국내 최초로 휘발유에 브랜드(테크론)를 도입하는가 하면 전 세계 정유업계 최초로 ‘6시그마’를 도입해 혁신을 추구했다. 도시가스, 전력,LNG 등 사업다각화와 대규모 시설투자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허 회장은 지난 2000년 3월 국내 처음으로 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KBCSD)를 설립, 현재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아마 6단으로 바둑에 남다른 취미를 갖고 있는데 2001년부터 한국기원(총재 한화갑 민주당 대표) 이사장을 맡고 있다.GS칼텍스배 바둑대회를 신설해 바둑 활성화에도 기여했다. 젊은 시절에는 태권도 선수로도 활동했다. 김선집(86) 전 동양물산 회장의 장녀인 부인 김자경(60)씨와의 사이에 2남1녀를 뒀는데 막내딸 지영(25)씨는 이병무(64) 아세아시멘트 회장의 차남 인범(34)씨와 결혼했다. 3남 허광수(59)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은 경기고와 고려대 상대를 거쳐 미국 스탠퍼드대 대학원을 마쳤다. 삼양통상과 나이키의 합작사였던 한국나이키 대표이사를 맡기도 했다. 아시아태평양 골프연맹 부회장, 영국 로열앤드에인션트골프클럽 정회원으로 골프와 인연이 깊다. 허 회장은 사촌 동생(명수·태수)들에 못지않은 골프실력을 자랑한다. 고려대 아이스하키 대표선수로 활약할 정도로 ‘운동신경’이 남다르다. 부인은 고 김동조 전 외무부장관의 딸인 김영자(55)씨로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회장의 부인 김영명씨의 언니다. 허 회장은 지난 2000년 외동딸 유정(31)씨를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아들 준오(31)씨와 결혼시켜 또 한번 화제를 뿌렸다. 삼양통상은 지난해 류근일(67) 전 조선일보 주필을 사외이사로 선임, 조선일보와 끈끈한 인연을 이어갔다. 허남각·동수·광수 3형제는 GS타워 인근에 ‘삼정빌딩’을 갖고 있는데 삼양통상 본사가 입주해 있다. 삼정은 3형제가 돈을 모아 세웠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3형제는 또 삼양통상 지분 17%,4.5%,3.1%를 나눠 갖고 있다. 허남각 회장의 아들 준홍(34)씨, 허동수 회장의 아들 세홍(36)·자홍(33)씨, 허광수 회장의 아들 서홍(28)씨도 각각 11%,1.7%,0.8%,1.7%를 갖고 있다. 삼양인터내셔널의 경우 준홍·세홍·자홍·서홍씨가 각각 37%,33%,11%,7.5%를 갖고 있어 사실상 2세들이 소유하고 있다. 차녀 허영숙(53)씨의 남편은 유명한 소설가인 윤후명(59·본명 윤상규) 한국문학원 원장이다. 윤씨는 연세대 철학과 재학중이던 6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현대문학상(여우사냥), 이상문학상(하얀배), 이수문학상(나비의 전설) 등을 수상했다. 연세대 강사와 추계예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한국소설대학 학장도 역임했다. ●LG의 창업공신 허학구·신구가 고 허만정씨는 8형제 가운데 허준구씨의 경영수업을 사돈에게 부탁했는데 이후 준구씨의 형인 고 허학구씨와 동생 허신구(76) GS리테일 명예회장도 LG경영에 뛰어들었다. 학구씨는 고향마을을 지키다 51년 플라스틱 사업 진출을 준비하던 락희화학에 들어갔다. 부산 범일동에 공장 부지를 마련하고 사업진출을 서두르던 구인회 LG 창업회장은 학구씨를 불러들여 아들 자경씨와 함께 공장업무를 맡겼다. 이후 각각 전무와 상무로 승진한 뒤에도 둘은 공장이 완공돼 빗, 칫솔 등을 생산하기 시작하자 군용 슬리핑백에서 잠을 자며 현장 노동자처럼 일했다고 한다. 구자경 명예회장은 당시 함께 고생한 학구씨와 그의 자형인 이연두씨 등 ‘지킴이 삼총사’가 일은 물론 술로도 호흡이 잘 맞았다고 회상했다. 학구씨는 6척 장신으로 경기고보 시절부터 농구선수로 이름을 날렸지만 부친(허만정)이 공부해야 한다며 진주고보로 전학을 시켰다. 하지만 진주고보에서도 농구를 시키려고 하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야 했다고 한다. 학구씨는 LG전선 부사장을 지내기도 했지만 1970년 구자경 회장이 2대 회장으로 취임하자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학구씨는 최필선(89)씨와의 사이에 1남3녀를 낳았는데 장남 전수(61)씨는 코스닥 등록기업인 새로닉스 회장을 맡고 있다. 새로닉스는 고 허학구 회장이 68년 설립한 ‘정화금속’이 이름을 바꾼 회사로 인쇄회로기판(PCB), 섬유강화플라스틱(FRP) 등을 생산하다 최근에는 LCD백라이트 부품인 도광판과 브라운관 전자총 부품 등 디스플레이 부품 사업으로 주력사업을 변경했다. 허 회장은 71년 미국 센트럴 미시간대를 졸업하고 74년 정화금속 총무이사로 입사, 아버지 사업을 이어받았다. 허신구 GS리테일 명예회장은 부산대 상대를 나와 해운회사인 ‘조선통운’에 근무하던 시절 사돈어른인 구인회 창업회장의 부름을 받고 락희화학의 서울사무소 일을 맡았다. 허 명예회장은 처음에는 장사 경험이 없다며 사돈의 제안을 거절했지만 “자네 뒷조사는 다했다. 그만하면 일 하겠더라.”며 서울행 기차표를 쥐어주는 사돈의 청을 뿌리칠 수 없었다고 한다. 허 명예회장은 이후 동남아 출장에서 ‘합성세제’ 아이디어를 얻어 럭키 ‘하이타이’를 탄생시키는 등 혁혁한 공을 세웠다. 금성사 사장, 럭키 사장, 그룹 부회장, 럭키석유화학 회장을 지내다 95년 구본무 회장 취임과 함께 일선에서 물러났다. 허 명예회장은 윤봉식(74)씨와 2남2녀를 뒀다. 장남 경수(48)씨는 코스닥 등록기업인 코스모화학 등을 주력으로 한 ‘코스모그룹’ 회장을 맡고 있다. 코스모그룹은 코스모정밀화학, 코스모앤컴퍼니, 코스모앤홀딩스, 코스모양행, 코스모아이넷, 코스모레저, 드림스포츠 등을 계열사로 거느리고 있다. 코스모화학은 코스모산업이 2003년 이산화티타늄 독점공급업체인 ‘한국지탄공업’을 인수하면서 이름을 바꾼 회사다. 허 회장은 LG전자에서 이사로 잠시 일하다 87년 코스모산업 설립과 함께 자리를 옮겼다. 동생인 허연수(44)씨는 GS리테일 상무로 삼촌인 허승조(55) 사장을 보필하고 있다. 보성고와 고려대 전기공학과를 거쳐 87년 LG에 입사한 허 상무는 LG상사 싱가포르법인장을 끝으로 상사를 떠나 2002년부터 LG유통(GS리테일)에서 일해 왔다. ●고향이름을 딴 승산가 허완구(69) 승산 회장은 미국 페이퍼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돌아와 잠시 LG에서 일했지만 69년 ‘대왕육운’이라는 물류회사를 차려 일찌감치 독립했다. 허 회장은 이미 LG에서 자리를 잡고 있던 형님들이 너무 많아 회사를 나왔다고 한다. 대왕육운은 이후 구씨와 허씨의 고향 이름을 따 승산으로 이름을 바꿨다. 허 회장은 한국올림픽위원회(KOC) 상임위원, 부위원장과 민속씨름협회장 등을 맡을 정도로 스포츠에도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아버지 허만정씨가 1925년에 설립한 진주여고(일신여고)에 100억원을 쾌척, 교사를 새로 짓는 등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96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장남 허용수(37) 승산 사장은 보성고와 미국 조지타운대를 마치고 뉴욕 및 홍콩 CS 퍼스트 보스턴 투자증권에서 일했다.98∼99년에는 국민은행 사외이사로도 활동했다. LG그룹의 육상 운송을 담당하는 승산은 허 사장이 58.55%, 여동생인 허인영(33) 승산레저 이사가 18.48%, 허완구 회장이 18.34%, 허 회장 부인 김영자(66)씨가 4.63%를 갖고 있다. 김영자씨는 ‘추일서정’,‘와사등’ 등으로 유명한 시인이자 사업가였던 고 김광균씨의 딸이다.‘매듭공예가’인 김은영(63) 녹미미술문화협회 이사장이 동생이다. LG는 친인척 소유의 회사에 물류업무를 맡기고 있는데 수출 관련 물류는 고 구정회씨 둘째 아들인 고 구자헌씨가 운영하던 범한종합물류가 담당한다. 범한여행을 자회사로 갖고 있는 범한물류는 구자헌씨의 미망인인 조금숙(55)씨가 54%, 아들 구본호씨가 46%의 지분을 갖고 있다. 승산은 물류회사인 에스엘에스·여수화물, 골프장·호텔사업을 하는 승산레저 등을 계열사로 갖고 있다. 국내보다 미국내 계열사인 철강회사 파웨스트스틸(Farwest Steel)의 규모가 훨씬 크다. 허 회장이 91년 인수한 파웨스트스틸은 지난해 2593억원의 매출에 183억원의 순이익을 거둬 모회사인 승산(매출 867억원, 순이익 183억원)보다 덩치가 크다. ●‘젊은 삼촌’ 3형제 허승효(61)씨는 조명전문업체인 알토 회장을 맡고 있는데 경남고와 경희대를 졸업하고 형님 회사인 정화금속 이사와 승산의 대표이사를 역임한 뒤 85년부터 알토를 이끌었다. 알토는 아셈타워 정상회의실과 인터컨티넨탈 호텔, 서울역사, 인천공항 여객터미널,GS타워 등의 조명시스템을 설계, 제작했다. 숭례문, 보신각, 비원, 동십자각 등 문화재 조명도 이 회사의 작품이다. 허 회장은 서울시 야간경관 개선 공로로 월드컵유공자, 모범시민상 등을 받았다. 그는 한국조명디자이너협의회 회장, 한국산업디자인협회 이사, 한국전기설비조명학회 이사 등을 맡을 정도로 조명분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지난해 매출 311억원, 순이익 20억원을 낸 알토는 허 회장이 36%, 아들 영수(36)·윤수(32)씨가 각각 15%, 동생인 허승표(59) 인텍웨이브 회장, 허승조(55) GS리테일 사장이 각각 3.8%의 지분을 갖고 있는 ‘가족기업’이다. 영수씨는 현재 GS리테일 과장으로 일하고 있다. 허승표(59) 인텍웨이브 회장은 기업인으로뿐만 아니라 ‘축구인’으로도 잘 알려진 인물. 보성고와 연세대 상대, 서울은행에서 축구선수로 활약했고 74년 한국인 최초로 영국 프로축구 3부 리그에서 뛰기도 했다. 허 회장은 78∼90년 형님 회사인 승산에서 근무한 뒤 90년 방송 프로그램 제작, 미디어 유통,CF편집 등을 담당하는 미디아트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미디아트는 허 회장과 부인 조희숙(56)씨, 딸 서정(29), 아들 준수(28)씨가 지분 100%를 갖고 있다. 허 회장은 2000년에는 이동통신용 전력 증폭기, 유무선 통신용 부품 및 이동통신용 중계기 등을 제조하는 ‘인텍웨이브’를 설립,IT업종으로 발을 넓혔다. 인텍웨이브는 LG전자 등을 주 거래처로 지난해 15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허 회장은 90∼92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을 지냈고 97년에는 축구협회장 선거에 나서기도 했다. 지난해에도 회장 선거 출마설이 나돌았지만 올 초 한국축구연구소 이사장을 맡는 선에서 정리했다. 축구계의 ‘야당’으로 불리는 연구소는 이용수, 신문선씨 등이 책임연구원을 맡고 있다. 허승조(55) GS리테일 사장은 서울고와 한양대 공업경영학과를 마치고 78년 럭키금성상사에 입사했다. 이후 패션본부장, 유통사업부문장, 마트부문장 등을 역임하다 2000년 LG백화점 사장으로 유통경영을 시작했다.2002년 LG백화점,LG상사 할인점 부문,LG유통이 LG유통으로 통합되자 초대 사장을 맡아 지금까지 이끌고 있다. 허 사장은 임직원들에게 늘 “단기적인 성과보다는 10년 뒤의 장기 비전을 갖고 대비하라.”고 주문하고 ‘페어플레이’를 강조한다고 한다. 허 사장은 지난해 말 세계적인 헬스·미용 전문기업인 ‘왓슨’과 합작으로 ‘GS왓슨스’를 설립, 지난 3월 홍익대에 1호점을 내고 지난 2월에는 코오롱마트를 인수하는 등 신규사업 진출에 공을 들이고 있다. 태광그룹 창업주 고 이임룡 회장의 장녀인 부인 이경훈(51)씨와 2녀를 두고 있다. 허 사장의 처가는 장상준 전 동국제강 회장, 양택식 전 서울시장, 한광호 한국베링거인겔하임 명예회장, 신선호(롯데 신격호 회장 셋째 동생) 일본 산사스식품 사장 등과 혼사를 맺었다. ukelvin@seoul.co.kr ■ 허씨의 남다른 축구사랑 GS그룹은 분리되면서 LG의 프로야구·프로축구·프로농구 등 스포츠 가운데 축구를 갖고 나왔다.‘안양LG’는 지난해 3월 ‘FC서울’로 이름을 바꿔 서울 입성에 성공한 뒤 거물 신인 박주영을 잡으면서 일약 명문구단으로 떠올랐다. FC서울의 눈부신 성장에는 허창수 회장 등 허씨 일가의 남다른 축구사랑이 밑거름이 됐다. 98년부터 LG축구단 구단주를 맡은 허 회장은 축구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데 해외출장 중에도 FC서울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인터넷을 통해 경기상황을 직접 확인할 정도다. 뿐만 아니라 경기를 녹화해 나중에라도 꼭 챙겨 본다고 한다. FC서울은 박주영의 고교(청구고)시절인 2002년부터 영입에 공을 들였다. 비록 박주영이 고려대 진학으로 진로를 정하면서 영입에 실패했지만 이후에도 끈질기게 박주영측과 고대를 설득, 마침내 대어를 품에 안는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허 회장이 모교인 고대에 7억원짜리 잔디구장을 기증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GS측은 “그런 사실은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허 회장 5형제가 모두 고대 출신일 정도로 고대와 깊은 인연이 어떤 식으로든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박주영의 유니폼에 광고를 하고 있는 GS건설은 박주영 신드롬으로 광고효과만 5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GS리테일이 실시한 ‘박주영 경기 보러 가자.’라는 이벤트에는 3만 6000여명이 응모하는 대성황을 이뤘다.GS는 지난 5월10일 열린 ‘GS출범 이벤트’ 추첨자로 박주영을 내세우는 등 박주영을 그룹의 ‘얼굴’로 십분 활용하고 있다. 허 회장의 삼촌으로 연세대, 서울은행, 영국 아스날에서 축구선수로 활약한 허승표 인텍웨이브 회장은 축구계의 대부로 통한다. 그는 97년 대한축구협회 회장직에 도전한 데 이어 올 초 한국축구연구소 이사장을 맡아 축구계 개혁에 힘쓰고 있는데 경쟁 상대인 정몽준 회장이 조카인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의 동서라는 점이 이채롭다. 사돈간의 ‘정리’도 축구에 대한 열정만큼은 막지 못한 것이다. 허씨들은 축구 외에도 아이스하키, 골프, 역도, 태권도 등 다양한 스포츠에 재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GS 관계자는 “허씨들이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데다 집안에 여유가 있어 일찍부터 스포츠를 접할 기회가 많았다.”고 말했다. 허씨 3세 남자들 가운데는 아마추어 수준 이상의 축구 실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고 여자들도 열성 축구팬이 많다. ukelvin@seoul.co.kr ■ 계열사의 핵심인맥 GS그룹은 숫자에 관한 감각이 탁월하다는 오너 허씨 일가에 이어 각 계열사 CEO도 재무통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다. 18조원이 넘는 그룹 자산을 관리, 운용하고 투자 포트폴리오를 짜야 하는 서경석(58) GS홀딩스 사장은 부산 출생으로 경남고를 졸업했다. 서울대법대 4학년이던 70년 행정고시 9회에 합격, 국세청 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재무부 세제국, 국세심판소 조정실장, 간접세과장, 소득세제과장, 조세정책과장, 상임심판관, 주 일본 대사관 재무관 등을 역임하고 91년 LG그룹 회장실 재경 상임고문으로 옮겼다. 서 사장은 공직에서 쌓은 재무 경력을 바탕으로 LG에서도 회장실 재무팀장, 전략개발사업단 운영본부장,LG투자신탁운용 사장,LG종금 사장, 극동도시가스 사장,LG투자증권 사장 등을 거쳤다. 허창수 회장이 서 사장을 GS그룹으로 영입한 것도 그의 회계·재무 능력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강말길(62) GS홈쇼핑 부회장 역시 재무통이다. 부산대 상대 출신으로 공인회계사이기도 한 강 부회장은 금성통신 재경본부장, 관리담당 이사를 거쳐 회장실의 관리담당 상무를 역임했다.89년 LG유통(GS리테일) 전무로 부임, 유통 전문가의 길로 들어섰고 95년 LG유통 대표이사로 취임한 지 3년만에 만년 적자이던 편의점 사업을 흑자로 돌려 놓은 뒤 지난해 LG홈쇼핑으로 옮겼다. 김갑렬(57) GS건설 사장은 허창수 회장의 경남고, 고려대 경영학과 동기동창으로 74년 LG화학 입사 후 LG상사 등을 거쳐 93년부터 96년까지 LG건설 재경 담당을 역임했다. 이후 LG구조조정본부 재무팀장과 LG화학 최고재무책임자(CFO)를 거치며 대표적 재무 전문가로 부상했다.2002년 허 회장과 함께 LG건설로 옮겨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김 사장은 취임 당시 “2010년까지 양과 질에서 국내 1위 건설회사로 만들겠다.”던 약속대로 2002년 3조 6000억원이던 수주액을 2003년 5조원, 지난해 6조원으로 키워냈고 올해 6조 50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완경(51) GS스포츠 대표이사 부사장도 선린상고와 고대 경영학과를 거쳐 79년 LG그룹 기획조정실에 입사한 이래 줄곧 재경업무를 담당해 왔다.LG투자증권 부사장으로 서경석 사장과 함께 ‘LG증권 전성시대’를 연 주인공으로 GS홀딩스 재무팀장을 겸임하고 있다. 심재혁(58) 한무개발 사장은 연세대 상대, 미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출신으로 LG그룹 홍보팀장을 거쳤다. 인터컨티넨탈을 국내 최고 수준 호텔로 키워내 재계의 대표적인 ‘홍보맨 CEO’로 꼽힌다. ukelvi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수질 더 악화…새만금 논란 재가열 될듯

    수질 더 악화…새만금 논란 재가열 될듯

    정부가 극비리에 진행해 온 새만금 토지이용계획의 ‘얼개’가 드러났다. 아직 최종안이 선정되지는 않았지만 농업용지뿐 아니라 산업단지와 물류·관광·도시용지 등 쓰임새를 망라하고 있다는 점이 기본 뼈대다. 새만금 사업의 주무부처인 농림부가 주창해 온, 지금까지의 정부 입장과는 달라도 한참 다른 내용이어서 한동안 잠잠하던 ‘새만금 논란’이 다시 불거질 전망이다 ●토지이용계획 충격파 클 듯 그동안 항간에선 “겉으로는 ‘농지 전용’을 외치면서도 속셈은 다를 것”이란 추측이 주류였다. 정부 관계자도 “사실 공공연한 비밀이 아니었더냐.”고 반문할 정도다. 그럼에도 충격파는 만만찮을 것 같다. 특히 앞으로 공개될 토지이용계획 최종안의 농지 비율이 당초 정부발표보다 크게 떨어질 경우 ‘대국민 사기극’이란 도덕적 비난까지 치달을 소지도 없지 않다. 정부가 그동안 토지이용계획의 내용은 물론 진행과정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자물쇠를 채워 온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공개될 경우 난리가 날 것이 뻔해 보안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정부 관계자는 전했다. 그동안 국무조정실과 농림부, 해양수산부 등 각 부처는 국토연구원을 비롯한 5개 연구기관이 작성한 토지이용계획 시나리오 작성에 직접적으로 개입한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의견을 개진하면서 대안을 마련하는 데 사실상 관여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복합단지 조성 계획이 각 부처 산하기관인 연구수행기관만의 복안이 아니라는 얘기다. 토지이용계획 수립에 정통한 관계자는 “(대안 마련과 최종안 선정은)연구기관이 내놓고 있지만 소속 부처나 지자체의 입장을 대부분 반영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연구용역 올해 말로 다시 연기 가능성 이번 연구용역은 농림부와 해양수산부가 각 9억 8000만원씩의 비용을 대고 국무조정실은 500만원만 지불했다. 하지만 토지이용계획 대안 마련의 주도권은 정부 대표기관으로 지정된 국조실이 쥐고 있다. 정부부처간 이해관계가 엇갈릴 수 있는 연구라는 배경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장 큰 타격은 농림부에 돌아갈 전망이다. 새만금 항소심 소송에서의 파괴력 탓이다. 농림부는 새만금 1심 소송에서 패소한 뒤 지난 3월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한 항소이유서에서도 ‘농지 전용’이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1991년 농지조성과 용수개발을 목적으로 새만금 사업이 시행된 이래 지금까지 사업목적을 변경하거나 변경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한 바 없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연구용역과 관련해서도 “국토연구원을 통한 정부의 연구용역 추진 등은 어디까지나 장기간에 걸친 사업추진 과정에서 시대적 상황 변화에 맞는 여러 가지 토지활용방안을 탐색해 보기 위한 검토차원의 접근”이라고 평가절하할 정도다. 하지만 이같은 주장은 연구용역 과제의 성격에 비춰 보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정부는 이번 용역을 발주하면서 ▲제조업 위주의 산업단지 조성 ▲주거용도, 산업용도, 관광용도, 물류용도의 토지이용 대안 제시 등 복합산업·레저단지를 조성할 뜻을 밝히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도 지난 2003년 연구용역 발주 직후 “내부 개발계획은 용역 결과대로 추진할 것”이라고 언급, 무게를 실은 바 있다. 이에 따라 최종안이 어떻게 선정되느냐가 결정적 관건이 되겠지만 현재 마련된 시나리오가 그동안의 정부입장과 배치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재판의 향방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정부는 현재 최종안 선정 및 공청회 등을 통한 내용 공개 여부와 시기 등을 저울질하고 있는 중이다. 당초 연구용역은 지난해 12월 끝날 예정이었지만 1심 재판선고(2005년 2월) 일정 등을 감안해 올해 6월까지로 한 차례 연기됐다. 정부 관계자는 “항소심 재판에 영향을 준다는 마찬가지 이유로 연구용역이 올해 말로 다시 연기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귀띔했다. ●해수유통 가능성도 심도있게 검토 토지이용계획과 관련, 농지전용이 아닌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는 것과 함께 주목할 만한 대목은 두 가지가 더 있다. 우선 정부가 만경강 수역의 해수유통 가능성에 대해 기존보다 심도있는 검토에 나섰다는 점이다. 당초 용역기관들이 진행해 온 방안은 담수화를 전제로 두 가지 방안(만경수역 집중개발, 동진·만경수역 분산개발)을 논의한 반면 한시적 및 상시 해수유통은 각각 한 가지 방안이었다. 해수유통의 가능성에 대해 담수화보다 무게를 덜 실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난 3월 해수유통을 전제한 토지이용계획 방안이 두 가지 추가됨으로써 대안은 모두 6개로 늘어난 상태다. 이에 대한 속사정은 뚜렷하지 않다. 정부 관계자는 “당초 4개 시나리오를 상정해 시뮬레이션을 해 봤는데 수질 문제 등을 해결하지 못해 경우의 수를 늘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6가지 시나리오 중 일부는 수질문제나 경제성 분석 등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가 나오지 않은 게 사실”이라면서도 “2001년 발표한 정부의 환경대책이 완벽하게 실시된다면 수질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수질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새만금 사업의 지속여부를 제기할 최대 관건이 될 전망이다. 학계의 한 수질전문가는 “간척지를 논으로 만드는 것이 가장 수질오염을 작게 일으키고 그 다음에 밭-주거지역-상업지역-공업지역 등 순으로 작용한다.”면서 “복합산업·레저단지로 개발할 경우 수질 등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한 가지는 간척지에 대한 개발착수 시점이다. 정부는 동진수역에 대해선 내년 3월 방조제 완공 후 담수호 조성 및 농지 개발에 착수하고 만경수역은 수질개선 때까지 유보하되 2012년을 개발의 잠정 연도로 정해 왔는데, 이런 시점이 훨씬 앞당겨질 수 있다는 얘기다. 관계자는 “이번 토지이용계획은 만경수역 수질이 개선되면 2012년까지 굳이 기다릴 필요없이 담수화에 들어간다는 것”이라면서 “동진수역도 2011년까지 농지로 조성한 뒤 2012년부터 농지를 허물고 개발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산업단지 등 개발에 나설 수도 있다.”고 전했다. 박은호기자 unopark@seoul.co.kr
  • “노영심표 음악과 이해인 詩 만나요”

    “노영심표 음악과 이해인 詩 만나요”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노영심(37)이 이해인 수녀와 함께 첫 시낭송 앨범을 낸다. 제목은 ‘해바라기 연가’. 이해인 수녀가 쓴 시에 그녀가 작곡·연주한 음악을 입혔다. 이 앨범은 28일 오후 8시 명동성당에서 ‘명동성당 문화축제’ 일환으로 열리는 ‘이해인 수녀의 시와 함께’ 시낭송회에서 대중에게 첫 선을 보인다. “평소 하고픈 작업이었는데, 이제야 하게 됐어요. 오랜 인연을 맺어온 수녀님이 올해로 60세를 맞으신 것을 기념해 작은 보탬이 되고 싶었죠. 영화 음악 만드는 심정으로 정성스레 준비했어요.” 노영심은 대중에게는 피아니스트나 작곡가보다는 아직도 가수로 더 친숙하다. 명동성당안 벤치에서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도 지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가수 노영심씨”라고 호칭하며 사인을 부탁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알아봐 주셔서 너무 감사하지만,‘가수’ 노영심은 맘에 들지 않는단다. “제 음악 진도를 따라오는 사람은 아마 100명 가운데 30명은 될까요?나머지 70명은 ‘예전에 부른 노래 좋았는데 지금은 뭐하세요?’라고 물어보시더라고요.(웃음)”사람에게 알려진 이미지가 자신의 발목을 잡을 때 더욱 피아노와 작곡이 절실했단다. 그녀는 방송을 떠나 있는 동안 쉼이 없었다.12년째 해마다 5월 17일이면 명동성당에서 ‘이야기 피아노’ 콘서트를 마련했다. 지난 17일에도 ‘마음 心’이란 타이틀로 연주회를 갖고 자신의 작곡한 음악과 평소 좋아했던 노래들을 연주했다. 별다른 의미는 없고 매년 그날 연주회를 갖기로 팬들과 약속했기 때문이란다. 영화음악 작곡에도 몰두했다. 영화 감독인 남편(한지승)의 영향이다. 여균동 감독의 단편 ‘외투’를 비롯해 ‘미인’‘꽃섬’‘그녀를 믿지 마세요’ ‘아홉살 인생’ 등의 영화음악 작업을 맡았다. 그녀는 남편 한 감독과 첫 ‘부부 공동 작업’도 계획하고 있다. 우선 영화가 아닌 드라마를 통해서다. 한 감독이 연출하는 16부작 TV 미니시리즈 ‘썸데이(가제·제작 옐로우 프로덕션)의 OST 작업에 참여할 계획이다. 그녀는 “둘이서 성공적인 한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서 그녀가 추구하는 ‘노영심표 음악’은 어떤 색깔일까. 그녀는 한마디로 “맑은 어두움”이라고 답한다.“뉴에이지 음악이지만, 저는 좀더 클래식 색채가 있어요. 사람들이 ‘톤이 맑다.’고 말씀들 하시죠.”‘어두움’은 ‘어둠속 작업’을 의미한단다. “전 작곡을 할 때 모든 빛을 차단하고 어둠속에서 선율을 짜내요. 특이하죠?(웃음)” 상대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선물’처럼 대중에게 음악을 선물하며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다는 그녀. 수많은 팬들이 그런 그녀의 ‘음악 선물’을 받고 환호하는 이유다. 글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사진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 [콘서트]

    ●‘라이브 어딕션 2005’ 실력으로 똘똘 뭉친 8개 밴드가 새달 3일부터 한 달 동안 심야 릴레이 콘서트를 연다. 정동극장이 올해로 6년째 마련한 ‘라이브 어딕션’(매주 금ㆍ토요일 오후 10시 30분)콘서트를 통해서다. 최근 ‘쇼킹 핑크 로즈’로 인기를 끌고 있는 퓨전 일렉트로니카 밴드 ‘W’가 첫 무대(3일)를 연다.4일에는 ‘스키다시 내인생’ 등으로 두터운 팬층을 확보한 이진원의 1인 프로젝트 포크록 밴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 찾아온다. 두번째 주에는 재즈밴드 ‘웨이브’와 12인조 애시드재즈밴드 ‘커먼드라운드’가, 세번째 주에는 ‘상상밴드’와 R&B 밴드 ‘지플라’가 무대에 오른다. 기타리스트 최일민과 김C가 보컬을 맡고 있는 ‘뜨거운 감자’는 마지막 주 무대를 달군다.(02)751-1500. ●전제덕 콘서트 시각장애 하모니카 연주자 전제덕이 새달 3일 오후 8시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 두번째 단독 콘서트를 연다. 이번 콘서트는 최고의 실력을 지닌 뮤지션들을 엄선해 무대에 올리는 ‘Well & Best’ 시리즈 1탄으로 마련됐다. 가수 BMK와 노영심이 특별 게스트로 출연해 각각 전제덕 음반의 수록곡인 ‘가을빛 저무는 날’과 ‘편지’ 등을 선보이며 무대를 빛낸다. 전제덕은 앨범 수록곡 이외에도 여러 팝ㆍ재즈곡을 자신만의 들숨과 날숨으로 빚어낸 아름다운 선율의 하모니로 선보인다.1588-7890. ●디 아이디어 오브 노스 내한 공연 호주 최고의 아카펠라 그룹 ‘디 아이디어 오브 노스(The Idea of North)’가 새달 1일(연세대 100주년 기념관)과 2일 오후 8시 광진구 나루아트센터에서 내한공연을 갖는다. 디 아이디어 오브 노스는 남녀 각 2명으로 구성된 혼성 그룹. 팝, 재즈, 솔, 가스펠, 라틴 등 다양한 레퍼토리를 그들만의 화음으로 편곡해 들려주는 이들은 이번 공연에서 스팅의 ‘프래질(Fragile)’, 랜디 뉴먼의 ‘웬 쉬 러브드 미(When She Loved Me)’등을 선보인다.(02)599-5743.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강혜정 “솔직·발칙한 연애 튀는 저랑 통했죠”

    강혜정 “솔직·발칙한 연애 튀는 저랑 통했죠”

    독특한 느낌의 친구다. 묘한 매력이랄까. 딱히 한가지로 규정할 수 없는, 여러가지 기운이 이 사람 안에 들어있다. 하긴 본인 스스로도 “내 안에는 많은 기분과 감정이 있지만, 극단적으로 말해 하나는 ‘자뻑’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학’”이라고 말한다. 그녀 말마따나 ‘자뻑’(자기도취)은 요즘 젊은층이 즐겨 쓰는 말 ‘오바질’로,‘자학’은 ‘겸손함’으로 비춰질 수도 있겠다. 강혜정(23). 영화 ‘올드보이’의 미도역으로 친숙한 그녀를 만났다. 배우로서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의 그녀가 궁금해 인터뷰를 했는데, 기대를 충족시켰다. 약간은 정리가 안된 듯 난해하게 느껴졌지만, 꾸밈없고 거침없는 말투에서 인터뷰용의 의례적인 답변에선 찾아보기 힘든 솔직담백함이 묻어났다. “그냥 끌리는 대로 골라요. 스크린에 비춰지는 제 모습이 ‘세다.’‘어렵다.’고 하시는데, 캐릭터보다는 작품이 지닌 색깔이 그래서 그런거죠.” 납중독자(나비), 친아버지와 근친상간(올드보이), 손가락이 잘리는 피아니스트(쓰리-몬스터)…. 그녀의 연기 궤적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어떻게 골라도 이런 비정상적인 캐릭터만 고를까?’라는 의문이 든다. 나름의 캐릭터 선택 기준이 있냐고 묻자,“작품을 먼저 보고, 캐릭터는 그 다음”이라고 잘라 말한다. 그리고는 곧바로 “이번엔 비교적 정상적이지 않냐?”며 되받는다. 요즘 영화 ‘남극일기’와 ‘웰컴투 동막골’에 겹치기 출연하는 등 주가가 급등하고 있는 그녀는 새달 10일 개봉하는 영화 ‘연애의 목적’으로 첫 주연을 맡았다. 극중 이름은 최 홍. 노골적으로 집적대는 연하의 고교 영어교사 이유림(박해일)의 ‘작업’에 골치를 썩다 결국 사랑하게 되는 미술 교생 역을 연기했다. 최 홍은 유림에게 “나랑 자고 싶어요?그러면 50만원만 내요.”라고 말하는 당돌한 캐릭터다. “여지껏 사랑 이야기에만 출연했다.”는 그녀에게 작품 선택 이유를 물었다.“연애 영화에 상투적으로 들어가는 남녀 간의 ‘친절함’(그녀는 이것이 있는 연애 영화를 보면 화가 난다고 했다.)이 보이지 않더라구요. 솔직하면서 본능적, 직설적이었죠. 그러면서도 진정성이 있었어요. 한마디로 이기적인 영화라서 좋았어요.” 작품속 연기에 대해 스스로 점수를 매겨달라고 물으니, 이내 “형편 없지요.”라며 겸손해 한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연기했고, 나 스스로 기특하고 만족스러웠다.”며 쑥스러운 표정과 함께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는 감초 역할없이 두 남녀 주인공만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작품. 그녀는 “시사회를 통해 완성된 영화를 봤는데,90% 이상 내가 나와 기분이 얼얼했다.”고 말했다. 고교 2학년때 SBS 드라마 ‘은실이’에서 은실이의 의붓 언니 역으로 출연했던 그녀는 이후 3년간 공백기를 가졌다. 그러다 스무살때 영화 데뷔작 ‘나비’를 찍으면서 “진짜 영화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했단다.“김호정(‘나비’의 주인공) 언니의 모습을 보고 ‘아 저 사람 진짜 배우구나, 저게 진짜 연기구나.’라는 느낌을 받게 됐죠. 굉장한 자극이었어요.” 욕심이 많은 건지, 아니면 지나치게 겸손한 것인지, 그녀는 아직도 ‘영화 배우’라는 말이 낯설단다.“영화 찍었다고 다 영화 배우는 아니에요. 제 자신이 인정할 때까지는 그래요.” 애인인 조승우에 대해 물었다. 이성이 아닌 선배 연기자로서 연기적인 도움을 주느냐고. 그녀는 “이번 작품을 찍으면서 상대역인 해일이 오빠랑만 연기 이야기를 했다.”면서 “나는 일(연기)을 사적인 공간으로 끌고 들어갈 용기가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연애란 “한없이 자유로운 것”이라고 말하는 그녀. 그러면 그녀만의 ‘연애의 목적’은 무엇일까.“연애에는 목적이 따로 있으면 안되죠. 서로 희로애락을 느끼며 성장해가는 ‘과정’ 자체가 연애의 의미인걸요.” 글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jawoolim@seoul.co.kr ●‘연애의 목적’은 어떤 영화 영화 ‘연애의 목적’(감독 한재림, 제작 싸이더스 픽쳐스)은 20대 남녀의 솔직담백한 연애담을 다룬 코믹멜로물. 남녀 주인공의 전라 연기 등 파격적인 베드신이 눈에 띄지만,“젖었어요?” “저 지금 섰단 말이에요.” “이런 말 해도 될지 모르지만, 우리 같이 자요.” “혹시 마약 하세요?”“5초만 넣고 있을게요.” 등 대사는 더 노골적이다. 여친이 있는 이유림(박해일)과 아픈 사랑의 상처로 남친과의 관계가 소원한 최홍(강혜정)은 한 학교에서 교사와 교생의 관계로 만난다. 이유림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수도 없이 “같이 자고 싶다.”며 홍에게 다가간다. 처음엔 ‘방어적’이던 홍. 서로간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가 반복되면서 그들은 어느새 ‘연애’에 진입하게 된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연애의 목적’이 생겨나면서 그들의 연애는 순탄치 않게 된다.18세 관람가.
  • [의회]‘아리수’ 역사성 누가 맞나

    [의회]‘아리수’ 역사성 누가 맞나

    서울시의 페트병 수돗물 브랜드인 ‘아리수’의 역사성을 둘러싸고 서울시와 서울시의회간의 논쟁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서울시의회(의장 임동규)는 25일 본관 3층 회의실에서 ‘광개토대왕 비문 역사왜곡 규명 포럼’을 개최했다. 여운건 한국우리민족사연구회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포럼은 현재 사용되고 있는 서울시의 페트병 수돗물 ‘아리수’와 관련된 역사성의 진위를 가리기 위한 것이다. ●김성구의원이 문제 제기 이번 포럼은 지난해 9월 서울시의회 김성구(한나라당 은평3)의원이 “아리수는 속임수라는 뜻의 순 우리말인데다 날조된 광개토대왕의 비문에서 도용된 것이다.”라고 주장하며 브랜드 철회를 요구한 이후 두번째다. 말하자면 페트병 수돗물 아리수에 대한 서울시와 서울시의회간의 2라운드 공방인 셈이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김 의원은 “이번 포럼을 통해 ‘아리수’의 의미를 제대로 알리고 위기에 있는 고구려사를 시민들에게 올바로 전달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포럼에는 정병인 서울시의회 운영위원장을 비롯해 이도상 역사학박사, 정윤훈 국어고전 연구원 학술위원장, 염범식 한국우리민족사 연구위원, 오재성 우리민족사 연구회 대표 등 10여명의 전문가들이 주제발표에 나섰다. 특히 강동민 한국민족문화연구원 이사장, 김정권 한민족정통사상사 연구소장, 마만주 한국계보학회장 등 사학계의 원로들도 토론자로 대거 참여한 데다 방청객도 100여명에 달해 ‘아리수의 역사논쟁’에 대한 높은 관심도를 보였다. ●‘아리수’의 의미는?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는 수돗물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물’ 홍보용으로 페트병 수돗물에 ‘아리수’라는 상표를 개발했다.‘아리수’ 상표는 공모를 통해 선정된 것이다. 지난해부터 서울시의 모든 행사 때나 수재민 구호 등에 무상 공급되는 등 여러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시는 물병에다 ‘아리수는 고구려시대 한강을 일컫는 말로 수돗물의 새 이름입니다.’라고 표기했다. 시의 이같은 조치에 대해 처음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서울시의회 김성구 의원이다. 김 의원은 지난해 9월 제151회 임시회 본회의 시정 질문을 통해 “아리수라는 상표는 역사왜곡의 우려가 있고 속임수라는 나쁜 뜻도 포함돼 상표로 부적절하다.”며 개명을 촉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서울시는 개명 요구에 대해 여러차례 반대의사를 표명하는 등 상표 수호(?)에 결연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서울시는 “‘아리’는 순수 우리말로 ‘물’이란 뜻이고, 옛 고구려 시대 한강의 이름으로 광개토대왕비문에도 기록돼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학계는 신중한 접근 요구 이날 포럼에서 주제발표자로 나선 정윤훈 국어고전연구원학술위원장은 “이 논쟁은 단순한 상표 이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역사적 문제, 민족자존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수 있으므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며 “아리수 페트병의 광고문구와 로고 선택은 재고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아리수에 대한 이설이 있을 뿐만 아니라 고어에 ‘아리’라는 말은 어떤 형태를 나타내는 말로 사용됐으니 수명(水名)으로는 부적절하다.”는 의견도 피력했다. 염범식 한국우리민족사연구회 연구원은 “1920년 조선어대사전에서는 ‘아리수’가 ‘한때 속이는 수단’으로 적고 있고 1947년의 ‘표준한글사전’은 ‘속임수’,1992년 ‘우리말 큰 사전’ 등에는 ‘옛 한강이름’으로 추가 표기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신채호 선생의 저서 ‘조선사연구초’에서는 압록강, 두만강, 한강, 낙동강 등 여러 강을 지칭하는 보통명사로 사용됐다.”며 “아리수는 특정한 강이 아니고 여러 강을 지칭한다.”고 주장했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들에게 물어봐]올여름 공포영화 트렌드

    [★들에게 물어봐]올여름 공포영화 트렌드

    무더위를 한방에 날려버리는 데는 공포영화가 제격. 올해는 일찍 찾아온 더위만큼이나 호러물들도 서둘러 개봉돼 공포 영화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다. 특히 올 여름 극장가는 할리우드와 국산 영화 간의 한판 승부가 볼 만할 듯. 각각 일본 원작 등 고전을 ‘리메이크’하고,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물건을 ‘소재’로 한 호러물을 내세워 관객들의 시선을 잡아끌고 있다. ●할리우드,“구관이 명관” 할리우드산 공포물의 핵심 키워드는 ‘리메이크’. 최근 들어 창작 시나리오의 기근 현상이 심화되면서 고전을 현대적 느낌으로 재가공한 작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눈에 띄는 특징은 ‘동양의 신비감’을 무기로 할리우드를 급습하고 있는 ‘일본 바람’. 일본에서 흥행에 성공한 영화를 할리우드식으로 다시 만든 작품이 국내에서도 3편이나 선보인다. 26일과 새달 3일 개봉하는 ‘그루지’와 ‘링2’는 각각 일본 작품 ‘주온’과 ‘링2’를 미국식으로 ‘리모델링’한 작품.‘그루지’는 ‘주온’의 시미즈 다카시 감독이 연출을 맡고 스토리도 다를 게 없지만, 일본 냄새를 최대한 없앴다. 작품속 배경은 일본이지만 주요 등장인물들은 모두 할리우드 배우들이다. 다만 원작에서 모호하게 그려졌던 남편이 아내와 아이를 살해한 이유를 할리우드 식으로 간결하고 명쾌하게 제시했다. ‘링2’도 ‘링’ 시리즈를 연출했던 나카타 히데오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그러나 스토리만 차용했을 뿐 작품의 배경은 미국이고, 출연진도 제니퍼 코넬리 등 모두 할리우드 베우들이다. 교환 학생으로 일본으로 건너 온 미국인들이 원혼의 저주를 겪는다는 이야기다.8월 5일 개봉하는 ‘다크 워터’도 나카타 히데오 감독의 일본 영화 ‘검은 물밑에서’를 리메이크한 작품.‘뷰티플 마인드’의 제니퍼 코넬리가 주연을 맡았다. 지난 20일 개봉한 ‘하우스 오브 왁스’와 새달 23일 선보일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은 할리우드 공포 영화의 주류를 이뤄 온 ‘슬래셔 무비’의 원칙을 충실히 따르는 영화. 각각 53년과 74년작 동명 영화를 리메이크했다. 정신이상자가 등장해 스크린을 온통 피로 물들게 한다.7월1일 개봉하는 ‘아미티빌호러’도 79년 귀신들린 집 이야기를 다룬 원작을 다시 제작한 것. ●한국 영화,“낯익은 물건이 더 무서워” 폭염이 내리쬐기 시작하는 7월 초에는 한국 공포물들의 반격이 시작된다. 특징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발·신발 등 소품을 공포 소재로 삼았다는 점. ‘와니와 준하’의 김용균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김혜수·김성수가 주연한 ‘분홍신’은 분홍빛 구두가 공포를 만들어내는 주범. 분홍신이 이끄는 대로 춤을 추다가 발목을 잘리게 되는 소녀의 이야기인 안데르센 동화를 모티브로 삼았다. 인간의 숨은 욕망을 상징하는 분홍신을 신으면 발목이 잘리면서 죽게 된다는 이야기. 원신연 감독의 ‘가발’은 죽은 사람의 기억이 담긴 ‘가발’이 공포의 매개체다. 언니가 항암 치료로 머리가 모두 빠져버린 여동생에게 가발을 선물한 뒤 벌어지는 섬뜩한 사건이 스토리 전개의 중심축. 기존 한국 공포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머리카락이라는 새로운 ‘살인 도구’로 인해 밀려오는 오싹함이 한층 업그레이드된 공포감을 선사한다. 채민서와 유선이 자매로 출연한다. 이밖에 대표적인 학원 공포물인 ‘여고괴담’시리즈의 제4탄 ‘여고괴담4-목소리’(감독 최익환)는 ‘목소리’가 공포의 근원. 어느날 여고생이 의문의 죽음을 당한 뒤 그 목소리만 남아 학교를 떠돌게 되고, 그 목소리를 듣게 된 친구가 죽음의 비밀에 다가서면서 끔찍한 공포를 불러일으킨다는 내용. 신인 배우 차예련, 서지혜, 김옥빈이 출연한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 獨저항시인 볼프 비어만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 獨저항시인 볼프 비어만

    “여러분이 가는 길은 매우 힘들고 불편하고 비싼 길이 될 것이며, 여러분의 다리는 매우 아플 겁니다. 하지만 반드시 가야 하는 길입니다.” 삶 자체가 독일 분단의 구조적인 모순과 아픔, 통일의 과정을 축약한 대표적인 독일의 저항 시인 볼프 비어만(69). 그는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 사흘째인 25일 기자회견에 앞서, 기타를 치며 한국의 저항 시인 김민기의 ‘아침이슬’을 독일어로 불러 보였다. 그리고는 특유의 신랄한 어투로 “남한과 북한이 통일되면 동·서독의 경우 보다 더 큰 어려움이 뒤따를 것”이라면서도 “‘나 이제 가노라’라는 가사처럼 모두 손 잡고 그 길을 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분단된 옛 독일에서 험난한 인생역정을 경험했는데, 어떤 이유로 서독을 등지고 동독으로 가게 됐는가. -아버지는 파시즘에 대항해 지하운동을 하는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나머지 가족은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어머니만 남기고 모두 죽임을 당했다. 이후 어머니는 나를 ‘작은 공산당원’으로 키웠고,16살때 동독으로 향하게 됐다. 당시 국경에서 나와는 달리 많은 사람들이 서독으로 들어오고 있어 상당히 놀랐다. 동독에서는 어떤 활동을 했으며, 어떤 이유로 서독으로 추방당했나. -훔볼트 대학에서 경제학, 철학, 수학을 공부했다. 베를린 앙상블이라는 악단에서 연출가로 활동하면서 비판적인 내용의 연극을 무대에 올렸다. 이후 극단은 폐쇄됐고, 대신 체제에 대항하는 시와 노래를 쓰게 됐다. 그 시와 노래들이 수기와 녹음기를 통해 엄청난 속도로 전파되면서 유명세를 탔고, 결국 서독으로 강제 추방당했다. 동독에서의 대표적인 저항 노래는 어떤 노래인가. -‘아침 이슬’에 비견되는 노래로 제목은 ‘격려’다. 사람들은 이 노래의 첫번째 두 소절인 ‘이 모진 시대에 그대, 굳어지지 말라’라는 ‘언어유희’에 공감을 느꼈다. 시대적인 ‘경직성’을 언급하기 위한 노래였으며, 자유를 갈망하던 많은 양심수의 영혼을 채워주는 ‘빵’같은 역할을 했다. 통일을 열망하는 한국의 국민들과 작가들에게 조언이나 충고를 한다면. -충고 같은 것은 할 수 없다. 다른 민족의 경험으로부터 배울 것은 전혀 없다. 한국은 한국의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통일은 한국인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며, 실망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서로 싸우고, 통일을 외치던 사람을 욕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 길을 가야 한다. 다른 길은 없기 때문이다. ‘사전에 경고 받은 사람이 두배 이상 강해진다’는 프랑스 속담처럼, 내 경고를 듣고 한국 사람이 두배 이상 강해지기를 바란다. 1935년 옛 서독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그는 1965년 첫 시집 ‘철사줄 하프’를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이후 악보가 첨부된 7권의 시집을 내면서 동독의 대표 작가로 떠올랐고,1976년 서독으로 추방당하면서 반체제 작가로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졌다.2년 전부터 김민기와 인연을 맺어 왔으며 27일 오후 7시 서울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시·노래 콘서트 무대를 마련한다. 글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그 영화 어때?]새영화 ‘안녕, 형아’

    [그 영화 어때?]새영화 ‘안녕, 형아’

    27일 개봉하는 임태형 감독의 데뷔작 ‘안녕 형아’(제작 MK픽처스)는 감독이 상투성에서 벗어나려 애쓴 흔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난치병을 다룬 영화 치고 ‘병원 다큐멘터리’처럼 환자나 그 부모의 시선으로 바라본 최루 드라마가 아닌 것이 드물다. 하지만 이 영화는 뇌종양에 걸린 형과 엄마를 바라보는 철부지 동생의 눈높이를 시종일관 좇는다. 안타까운 점은 상투성을 피하기 위해 집어넣은 ‘타잔아저씨’와 ‘신비의 물’ 등 팬터지적 요소가 병마와 싸우는 현실속 고통·눈물과 저만치 떨어져 있어 ‘과유불급’을 느끼게 하는 것.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점을 고려할 땐 더욱 그렇다. 다만 TV 드라마 ‘완전한 사랑’ 등을 통해 눈에 익은 아역배우 박지빈의 인상적인 연기는 영화를 보는 충분한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영화의 미덕은 한 개인이 아닌 가족 구성원 모두의 ‘성장 드라마’라는데 있다. 어느날 열 두살짜리 큰 아들 ‘한별’(서대한)이 악성 뇌종양에 걸리면서 아홉 살 동생 ‘한이’(박지빈)와 엄마(배종옥)·아빠(박원상)등 한가족은 새로운 ‘성장’을 경험한다. 갑작스레 닥친 시련 앞에서 한이는 형과 또래의 다른 암투병 환자를 통해, 엄마는 한별이와 다른 환자의 부모의 시선을 통해 ‘나’라는 울타리를 넘어 타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성숙해 간다. 관객들은 영화 보는 중간중간 ‘손수건’을 꺼내들어야 할 것 같다. 특히 한별이 엄마가 소리가 새어 나갈세라 화장실 세면대에 얼굴을 담그고 시원스레 펑펑 우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대신 울음 소리를 내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영화속에는 ‘눈물’뿐 아니라 천진난만한 ‘동심’도 있다. 동생 한이가 인기 가수를 흉내내며 그동안 ‘괴롭힘의 대상’이었던 형을 보살피고, 또래 친구 환자 욱이(최우역)를 위로하기 위해 벌이는 재롱 연기는 관객들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자아내게 한다. 관객들도 동생 한이의 시선속으로 들어가 함께 한별이의 투병 생활에 동참하며 성숙해간다. 방송작가로 활동했던 김혜정씨의 2003년작 에세이집 ‘슬픔이 희망에게’가 원작. 김혜정씨의 친동생인 시나리오 작가 김은정씨가 조카의 투병생활을 지켜 보며 시나리오를 썼다. 관객들이 ‘손수건’과 ‘미소’ 사이에서 쉽사리 갈피를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면서 영화의 흡인력은 점점 떨어져 가는 것이 흠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상투적 신파에 매몰되지 않는 씩씩하고 건강한 영화임에는 틀림이 없다. 전체 관람가.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손호영 “美국적 버리고 입대할 것”

    손호영 “美국적 버리고 입대할 것”

    손호영이 ‘국적 포기’ 논란과 관련,“미국 국적을 버리고 귀화 절차를 밟아 한국 국적을 취득한 뒤 입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손호영은 23일 오후 보도자료를 통해 “오랫동안 고민을 했고 많은 분들께 조언을 구했다.”며 “받은 사랑과 성원에 보답하는 의미에서 이같이 결정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이런 일이 생기기 전에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좋지 않은 상황이 벌어진 뒤 결정을 내려 죄송하지만 이렇게 결정하는 게 팬들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 “그 동안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과 여유를 갖지 못했다.”며 “따끔한 질책을 잊지 않고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그는 “귀화 문제부터 입대까지의 모든 절차를 올해 안에 끝마치겠다.”며 “국민 여러분께 실망을 안겨드렸다면 사과드리고 앞으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국적포기 아니다”

    god 멤버인 손호영은 병역기피를 위한 국적 포기 의혹과 관련,“행정기관의 오류를 바로잡은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손호영은 21일 god 공식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며칠 동안 힘들고 속상했다.”며 지난 18일 자신의 새어머니 정모씨가 가족의 사생활을 공개하는 기자회견을 연 것과 관련, 심경을 밝혔다. 그는 “아버지와 친어머니가 모두 재미동포로 미국 시민권자였기에 1980년 미국 뉴저지에서 태어났고 시민권을 갖게 됐다.”며 “중학교 때 뒤늦게 내가 한국 국적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석달 전 누나가 취업 비자 문제로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갔다가 내가 법적으로 한국 국적을 가져서는 안되는 신분임에도 행정기관의 오류로 갖게 된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며 “법원에 정정신청을 해야 한다는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지시대로 따라 지난 4일 확인서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Doctor & Disease]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하규섭 박사

    [Doctor & Disease]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하규섭 박사

    “상태가 좋은 경우 2년이면 완치되는 게 조울병인데, 정부에서는 무관심하지, 의사는 우울증으로 진단하지, 가족들은 쉬쉬하며 병을 숨기거나 치료를 기피하지, 이렇게 병을 키워 ‘자살 왕국’이 된 것 아닙니까.” 의료계에서 ‘조울병 박사’로 통하는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하규섭(44) 박사. 그는 ‘이제 더는 숨기지 말고 진실을 말하자.’며 이렇게 역설했다.“치료가 필요한 조울병 환자가 전 국민의 3∼5%입니다. 대가족 구성원 중 1명은 환자라는 뜻인데, 이걸 ‘정신병’이라며 자꾸 쉬쉬하니까 낙인이 되는 겁니다. 모두 내놓고 치료받으면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죠.” 사태가 그렇게 심각한가. -심각하다. 조울병과 우울증에 대한 대책없이 자꾸 자살 예방하자고 떠들어 봐야 무슨 소용이 있나. 특히 조울병의 경우 우울증과 달리 사전 예고나 징후없이 치명적인 자살을 시도하는데, 이런 사람들에게 자살하지 말자는 말이 들리겠는가. 그게 정상인의 자살이 아니라 병에 끌려 죽는 건데…. 조울병은 어떤 질환인가. -학술적으로는 기분의 양극단, 즉 아주 좋은 상태(조증)와 아주 나쁜 상태(우울증)를 오간다고 해서 양극성 장애라고 하는데, 쉽게 말해 기분이 방방 뜨는 조증과 우울증이 교차하면서 나타나는 기분조절장애를 말한다. 그 병이 왜 문제가 되는가. -조울병의 우울증은 개별 질환인 우울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에 비정상적으로 들뜨는 조증이 더해져 정상적인 학교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할 수가 없게 된다. 이 병에 의한 자살도 문제다. 예컨대 조증 상태에서 앞뒤 안가리고 왕창 카드 긁었다가 못 견디니까 자살을 택하는 식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마니아(mania)’라는 말이 조증의 영어식 표기라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발병 원인은 무엇인가. -뇌의 신경전달물질인 노에피네프린, 세로토닌, 도파민 등이 감소하면 우울증, 증가하면 조증을 보인다. 당뇨병이 췌장 기능의 문제이듯 이 병은 뇌의 기분조절 회로에 고장이 생긴 병이다. 세간에 조울병 발병을 두고 ‘날궂이’라고도 말하는데 근거는 있나. -날궂이라는 표현이 좀 그렇지만 근거는 있다. 조울증 환자는 특히 호르몬 변화에 민감한데, 봄에 멜라토닌의 분비량이 줄면 조증을 보이다가 가을에 분비량이 늘면 우울로 돌아선다. 여성은 호르몬 양이 변하는 생리, 임신, 출산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유형도 따로 구분하나. -조울병 1·2형과 기분장애 3형으로 나누는데,1형은 정도가 심해 입원치료가 필요한 단계,2형은 기분변화의 폭이 1형보다 작아 우울증으로 오진하기 쉬운 단계,3형은 기분의 불안정이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단계이다. 유병률과 최근 발병추세는 어떤가. -가중되는 스트레스와 핵가족화에 따른 정서적 완충구조의 해체 등이 영향을 미쳐 전체 유병률이 3∼5%, 전국적으로는 100만∼200만명의 환자가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경향은, 이전보다 환자 수는 늘어난 반면 정도는 덜하다. 조기발견의 영향으로 보고 있다. 치료에 대해서 묻자 하 박사는 완치를 특히 강조했다.“이건 틀림없이 완치되는 병입니다. 치료 예후는 고혈압보다 낫습니다. 그러나 처음에 확실히 치료하지 않으면 자주 재발하는 게 문제지요. 재발할 때마다 뇌가 손상을 입는데, 환자는 증상이 조금만 좋아지면 치료 안 받으려고 하고, 의사들은 조울병을 자꾸 우울증으로 진단해 병을 키웁니다. 현재의 우울증 환자 절반이 조울병 환자라는 예측도 있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정확한 진단과 첫 시도로 치료를 끝내야 한다는 겁니다. 안 그러면 만성화되니까요.” 치료는 어떻게 하나. -조울병은 어떤 경우라도 환자 개인의 의지로는 치료되지 않으며, 리튬 등 기분조절제와 올란자핀 등 비전형 항정신병 약물, 항우울제 등을 적절하게 투여해야만 한다. 치료 효과와 현실적인 치료의 한계를 설명해 달라. -약물을 2∼3주 투여하면 증세가 호전되기 시작해 2∼3개월 후면 많이 좋아졌다고 느낄 수 있다. 계속 6∼9개월을 투여하면 다 나은 것 같은데 여기가 치료의 함정이다. 환자들이 이 상태에서 치료를 중단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대부분 재발해 몸이 망가지고 치료만 어렵게 한다. 하 박사에게 자가진단법에 대해 물었다.“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일주일이 넘도록, 그것도 온종일 좋기는 쉽지 않으며, 우울도 2주 이상 계속되기는 어려운데, 이처럼 주위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조증과 우울증이 반복된다면 조울병을 의심할 충분한 근거가 됩니다. 유의할 점은 우울증은 잘 드러나지만 조증은 면밀히 관찰하지 않으면 간과하기 쉽다는 점입니다. 이 때문에 오진도 많고요.” 하 박사는 특히 조울병을 보는 정부의 시각과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서구의 신뢰할 수 있는 자료에 따르면 사회적 부담이 가장 큰 질환은 우울증이고 조울병은 5위에 올라있는데, 정책입안자들은 이를 일부의 문제로 치부합니다. 보호자가 감추고, 정부는 모르는 척하는 사이 우리 가족들이 복구불능의 상태로 망가지고 있습니다. 자살 예방도 그렇습니다. 어떻게 조울병과 자살을 따로 떼어 말할 수 있습니까? 이제 모두가 진지해야 합니다. 누구나 이 병을 앓는 사람은 ‘나 지금 우울해서 치료가 필요해.’라거나 ‘걱정마. 치료받고 있어.’라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하고 그렇게 완치된 환자들이 사회적 불이익을 받지 않아야 합니다.” 그는 “우리나라 자살증가율 1위의 이면에는 이처럼 진실을 한사코 묻으려고만 하는 개인과 정부, 진지하지 못한 의사들이 있다.”며 “이제 정말 내놓고 얘기 좀 하자.”고 호소했다. ■ 하규섭 박사는 ▲서울대의대 및 대학원(박사)▲용인정신병원 정신과장▲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샌프란시스코의대 정신과 객원교수▲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전산화 인지기능검사실·우울증클리닉·조울병클리닉 담당교수▲현, 분당서울대병원 교수 겸 기획조정실장 및 전자의무기록개발팀장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노영심·조규찬 콘서트

    ●조규찬 단독콘서트 ‘기톨로지’ 싱어송라이터 조규찬이 21∼22일 오후 8시 연세대 100주년기념관에서 단독 콘서트 ‘기톨로지(Guitology)’를 연다. 기타(Guitar)와 학문(Logy)을 합성한 뜻의 타이틀을 내건 이번 콘서트는 8집 앨범을 기념해 마련한 것. 그동안 고집하던 R&B적인 성향을 최대한 배제하고, 기타를 통한 획기적인 사운드의 변화를 선보인다.‘Baby baby’ ‘아담과 이브는 사과를 깨물었다’ 등 기존 히트곡 외에,‘잠이 늘었어’ ‘Everytime’‘아마 너도’ 등 새 앨범 수록곡들로 꾸몄다.(02)749-1300. ●노영심 21일‘이야기 피아노’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노영심이 21일(오후 4시ㆍ8시)ㆍ22일(오후 6시) 이틀간 서울 대학로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에서 ‘노영심의 이야기 피아노 no.12 마음 心’을 개최한다. ‘이야기 피아노’는 올해로 12회째를 맞는 독특한 뉴에이지 피아노 콘서트. 올해는 ‘무언가(無言歌)’,‘마이 크리스마스 피아노’, 영화 ‘미인’ ‘꽃섬’‘아홉살 인생’ 등 OST, 그리고 ‘피아노 걸’ 등 자신이 발표했던 피아노 솔로곡 등을 연주한다.1544-1555.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두 10대와 살인마 처절한 사투

    두 10대와 살인마 처절한 사투

    공포 영화를 보러 가서 별 무서움을 느끼지 못할 때만큼 기분 찜찜한 일은 없다.20일 개봉하는 자움 세라 감독의 공포영화 ‘하우스 오브 왁스’(House of Wax)는 그런 우려를 접어도 좋을 만큼 충분히 무섭고 끔찍한 영화다. ‘강렬한 비트의 청춘 호러’를 표방한 이 영화는 빈센트 프라이스 주연의 1953년작 동명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 돌발 장면과 음향으로 등줄기를 오싹하게 만드는 심리적 공포물이 아니라, 머리·팔·다리가 처참하게 뜯겨져 나가고 피가 솟구쳐 범벅이 되는 할리우드의 전형적인 ‘슬래셔’ 무비의 원칙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6명의 10대가 숲속에서 야영을 하게 된다. 이들은 루이지애나에서 열리는 풋볼 개막경기를 보기 위해 주말 여행을 가던 중. 다음날 아침 자동차 팬벨트가 끊어진 것을 알게 된 이들은 근처 마을로 향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곳에서는 실제 사람은 없고 오직 사람들과 똑같은 모습을 한 정교한 밀랍인형들뿐이다. 이들은 밀랍인형들이 실제 사람처럼 보이는 충격적인 비밀을 알게 된다. 이후 흉칙한 얼굴을 마스크로 가린 살인마가 10대 일행을 차례차례 살해하면서 닉과 칼리만 남는다. 둘은 살인마와 처절한 사투를 벌인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스크린이 온통 피로 물들어 가면서 공포는 배가되지만, 스토리를 따라가는 재미는 줄어든다. 그저 ‘얼마나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되느냐.’에 영화 감상의 포인트를 두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러브 액추얼리’로 얼굴을 알린 알리샤 쿠스버트,TV 드라마 ‘도슨의 청춘일기’로 인기를 모은 채드 마이클 머레이 등 유망주들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대재벌 힐튼가의 상속녀이자 할리우드의 사고뭉치로 악명 높은 패리스 힐튼이 이 영화를 통해 데뷔했다.18세 이상 관람가.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박미경 “해보고 싶은 모든 장르 담아”

    박미경 “해보고 싶은 모든 장르 담아”

    “지난 20년간 선보였던 제 음악을 총 결산하는 의미의 앨범이에요. 그동안 해왔고, 또 해보고 싶었던 다양한 장르의 노래들을 모두 담았죠.” 새 앨범을 건네는 그녀의 손에는 힘찬 기운이, 표정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흘러나왔다. 가수 박미경(40). 그녀가 1년 6개월 만에 돌아왔다.7집 새 앨범 ‘미키 세븐(Micky Seven)’을 내고 활동을 시작한다. “쉬다니요. 지난해 4월까지 방송했고, 이후에도 새 앨범 곡을 모으고, 목소리도 가다듬고, 녹음 작업을 계속했죠.” 공백기간을 언급하며 ‘어떻게 쉬며 지냈냐.’고 묻자,“계속 음악 생활을 해왔다.”는 당당한 대답으로 기자를 머쓱하게 만든다. 새 앨범을 보면 우선 겉표지에 큼지막하게 박힌 ‘Micky’란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미키’는 박미경의 미국식 이름.“미국·중국·일본 등 외국 진출을 염두에 둔 거예요. 세계로 눈을 돌리고 새로운 도약을 하겠다는 제 의지의 표현이죠.” 앨범에는 최근 급변하는 가요계의 트렌드를 반영하듯 펑키, 유로스타일, 보사노바, 팝 발라드 등 다양한 장르가 담겨 있다. 하지만 이들 사이를 관통하는 것은 ‘복고풍’.“앨범 전체의 키워드는 ‘복고’예요.386세대에게는 ‘추억’을,20대 젊은이들에게는 ‘새로움’을 전해주자는 취지죠.” 타이틀 곡인 ‘섹시 레이디(Sexy Lady)’는 80년대 펑키스타일의 곡.‘Bad Boy’는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80년대 유행했던 ‘롤러 스케이트장’에서 흘러나오던 ‘런던 보이즈’ 음악 같은 유로스타일”의 노래다.‘재회’는 미디움 템포의 보사노바 풍이 흥겹다. 눈에 띄는 곡은 ‘사랑했어요’ 로 김현식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곡이다.“여지껏 이 명곡이 단 한번도 리메이크 된 적이 없더라고요. 믿겨지세요? 근데 사실이더라고요. 누가 채갈까봐 냉큼 불렀죠.(웃음)” 그녀는 “음악 스타일이 확 바뀌었다.”고 강조했다. 폭발적인 가창력을 소유한 그녀지만, 창법에 변화를 주기 위해 미국으로 날아가 발성 공부도 했단다.“무조건 내지르는 스타일이 아니라 가사를 충실히 전달하려고 노력했어요. 가볍게 툭툭 던지듯 노래하지만, 속으로는 무거운 짐을 진 듯자제하면서 불렀죠.” 지난 85년 서울예대 1학년때 ‘강변가요제’를 통해 ‘민들레 홀씨되어’로 데뷔한 그녀는 지난 20년 동안 ‘화요일에 비가 내리면’‘이유같지 않은 이유’‘이브의 경고’‘아담의 심리’ 등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하며 꾸준한 인기를 모았다. 비결이 뭘까.“포기 안 하는 거예요. 주위 환경, 경제적 문제 등에 휘둘리지 않고 굳은 심지로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내는 거죠.” 가수랍시고 노래가 아닌 다른 곳에 눈을 돌리는 여러 후배들을 언급하면서,“음악으로 끝장 봐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성공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박미경표 음악’을 한 마디로 정의해 달라고 물었다.“시원한 음악”이란다. 노래 전체의 느낌이 아니라 “가사로 대중의 가려운 곳을 제때 긁어주는 노래”라는 것.“그동안 대중의 마음을 대변하는 메시지를 노래에 담으려 노력했어요. 이번 타이틀곡 ‘섹시 레이디’도 ‘섹시함’을 추구하는 여성의 심리를 그리고 있죠.”데뷔 20년을 기념해 올 가을 출시할 베스트 앨범 준비도 진행하고 있다는 그녀는 이미 다음 8집 앨범 구상까지 마쳤다.“다음엔 ‘R&B 재즈’로 돌아올 거예요. 한국적인 색채에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멜로디와 가사를 입힐 거예요. 기대되죠?(웃음)” 그녀가 ‘가요계의 디바’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사진 강성남 기자 snk@seoul.co.kr
  • 마포 소각장 다이옥신 미검출

    서울시는 18일 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발을 사왔던 마포 자원회수시설(쓰레기 소각장)의 배출가스에서 다이옥신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송득범 시 건설안전본부 시설국장은 “산업기술시험원에 의뢰, 지난달 18일부터 지난 6일까지 3차례 마포 자원회수시설 굴뚝 배출가스의 다이옥신류 농도를 측정, 분석한 결과 3번 모두 0.00ng/㎥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이는 다이옥신이 전혀 없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통상 다이옥신 농도 측정시 소수점 이하 셋째 자리부터는 미미한 수치로 보고 표기하지 않는다. 시는 이런 측정 결과에 대해 “다이옥신의 국내 법정 기준치 0.1ng/㎥을 훨씬 밑도는 것으로 기존 소각장들의 100분의1 수준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마포 자원회수시설은 지난 1월19일부터 시운전되며 매일 마포·용산·중구 3개구에서 반입된 쓰레기 500t가량씩을 처리해 왔으며 이 기간 산업기술시험원 입회하에 성능시험을 한 결과 다이옥신뿐 아니라 중금속 24개 항목에서 모두 합격했다. 이에 대해 마포 쓰레기소각장 건설 반대 비상대책위원회 김종호 위원장은 “주민이 입회한 것도 아니고 어떻게 측정했는지도 모르는 일방적인 결과는 인정할 수 없다.”면서 “현재 소각로 건설로 인한 주민들의 건강권 침해 문제 등에 대해 소송을 진행하고 있으며 계속 반대운동을 벌여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시는 다음달 1일부터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의 쓰레기를 마포 자원회수시설로 반입하는 등 1일 최대 처리용량(750t)에서 남는 부분을 다른 지역에서 받아 처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9) 1923년 일본인들의 정감록 처형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9) 1923년 일본인들의 정감록 처형

    ‘대일본제국의 애국적 지식인’ 호소이 하지메(細井肇). 호소이 하지메란 일본인이 있었다. 그는 한일합병(1910년)을 전후해 ‘동경아사히신문’과 ‘한일전보통신사’ 기자로 다년간 한국에 체류했다. 갓 일본제국의 식민지로 편입된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호소이는 흥미를 느꼈고 나름대로 많은 ‘연구’도 했다. 그런 호소이에게 1919년의 기미독립운동은 전혀 뜻밖의 사태였다. 무지렁이로 보였던 한국인들이 수백만 명씩이나 길거리로 뛰쳐나와 독립을 요구할 줄 그는 미처 몰랐다. 한낱 정치군인에 지나지 않는 조선총독이 그걸 짐작 못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당당한 한국전문가 호소이 자신도 사태를 전혀 예견하지 못했다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독립만세운동이 좌절되자 한국엔 예언서 ‘정감록’이 더욱 인기를 끌었다. 대한독립이 박두했다는 둥, 신천지가 열릴 거라는 둥 갖가지 소문과 예언이 한반도를 뒤덮을 지경이었다. 특히 1921년부터는 계룡산을 중심으로 숱한 신흥종교단체들이 등장해 위세를 떨쳤다. 겉으론 종교를 표방했지만 은연중 독립을 향한 열망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런 사정을 파악한 조선총독부는 정감록 비상이 걸렸다. 1922년 겨울, 호소이는 비공식적인 통로를 통해 조선총독부의 부탁을 받았다. 예언서 정감록을 죽이라는 것이었다. 동경의 자택 서재에 틀어박혀 호소이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한반도는 우리 대일본제국에 무엇인가. 제국의 용맹스러운 장졸(將卒)들이 목숨 바쳐 강적 청나라도, 러시아도 연달아 무찌른 다음 어렵게 얻어낸 제국의 새 영토가 아닌가. 저 버러지 같은 한국 놈들은 천황폐하의 신민이 된 영광을 모른다. 놈들은 감히 독립을 바라고 있다. 훈련된 군대도 총칼도 없이 맨주먹으로 일어서려는 무지막지한 저들의 맨주먹을 쇠뭉치로 둔갑시키는 것은 독립에 대한 부질없는 열망이다. 거기 불 붙이는 부싯돌이 바로 정감록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슨 수를 써서든 정감록을 처단할 것이다. 나 호소이로 말하면 천황폐하의 뜻에 언제나 기꺼이 순종하고 순수한 대일본제국 신민의 고귀한 혈통에 무한한 자긍심을 느끼는 위대한 제국의 충량한 신민이 아닌가. 우리 대일본제국으로 말하면 단일하고 순수한 혈통이 천만대를 두고 이어져온 아름다운 나라. 그에 비할 때 이른바 저 한국 놈들은 어떤가. 놈들은 우선 생리학적으로 열등하다. 혈액만 하더라도 한국 놈들의 피는 ‘거무칙칙하고 더럽다.’ 그렇기 때문에 이조 500년 동안 피비린내 나는 당쟁이 일어나 수많은 인명이 살상됐지만 나라꼴은 늘 엉망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한국 놈들은 유전인자 자체가 불순하고 열등하다. 따라서 놈들에게 밝은 미래란 있을 수가 없다. 오직 천황폐하의 자애로운 품속에 있을 때만 그들은 행복을 바랄 수 있다. 이런 점들을 나는 이미 두 권의 저서에서 명확히 입증했다.‘조선문화사론(朝鮮文化史論)’과 ‘조선 문제의 근본적 해결(朝鮮問題の根本的解決)’이 그것이다. 한국에 대한 나의 전문적인 연구는 대일본제국의 영광을 위해 바쳐질 것이다. 실용성이 없는 학문은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 대일본제국의 발전을 위해, 무지하고 악랄한 한국 놈들의 순화를 위해 나의 저술은 두고두고 쓰일 만한 것이다. 탁상공론으로 걸핏하면 양심을 들먹이는 비겁하고 위선적인 놈들이 있어 훗날 나 호소이를 대일본제국의 어용학자(御用學者)라고 불러도 좋다. 제국의 영예를 위한 나의 일편단심은 그럴수록 더욱 밝게 드러날 것이다. ●정감록을 죽이는 묘책 호소이는 묘안을 찾기 위해 좀더 생각했다.‘도무지 정감록이란 무슨 책이냐. 조선시대 위정자들도 몹시 두려워했던 책이 아니냐. 위정자들은 정감록을 소지하거나 퍼뜨리는 일체의 행위를 범법 행위로 간주했다. 그런데 혹독한 금압 조치에도 불구하고 정감록은 널리 퍼져나갔다. 지금 반도의 덜떨어진 한국 놈들이 감히 독립을 바라는 것도 다 그놈의 정감록 때문이다.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다면 차라리 공개하라. 그렇다, 금단의 예언서 정감록을 죽이는 방법은 공개하는 것이다. 그러면 정감록은 신비함을 잃게 된다. 신비성을 잃어버린 정감록이라면 이미 반쯤은 죽은 거나 다름없다. 또 하나. 기왕에 공개할 바엔 정감록의 정본(正本)을 만드는 거다. 바로 이 호소이가 대일본제국의 정치적 이익에 봉사할 정감록의 정본을 결정한단 말이다. 총독부에서 수집해 놓은 정감록의 이본들을 자세히 살펴 그 가운데서도 정치적 선동성이 별로 없는 텍스트를 골라 공개하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그 텍스트에 살짝 손을 댈 수도 있다. 아주 심하게 손을 대면 조작했다는 소리를 듣는다. 영악하고 의심 많은 한국 놈들을 상대로 하는 일인 만큼 더욱 주도면밀해야 한다. 나는 정감록을 순화시킬 뿐이다. 이것은 변조나 개작이 아니다. 나는 대일본제국과 천황폐하를 위해, 한반도와 한국 놈들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정감록을 편집하는 것이다. 정말이지 잊지 말아야 될 일이 또 있다. 이렇게 교묘한 수단을 부려 김을 빼놓더라도 한국 놈들은 순화된 나의 정감록을 다시 개악하거나 제멋대로 해석할 우려가 있다. 놈들은 워낙 피가 더럽기 때문에 제멋대로니까. 그들의 망령된 행위를 막기 위해 내가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없을까. 그래, 예방주사를 놓자! 정감록은 이래서 진짜 믿을 것이 못 된다. 이런 식으로 계몽적인 비평을 잔뜩 써 가지고 독자 놈들의 배를 채우는 것이다. 정감록의 대가 호소이가 만든 정감록 정본의 맨 앞에 실린 비판을 읽게 하자. ●동경판 정감록에 대한 불만 대일본제국의 충량한 신민 호소이는 이미 수집된 정감록 이본들을 널따란 책상 위에 펼쳐놓고 수술을 시작했다. 일제는 이미 오래 전에 광개토대왕비문까지도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변조했다. 정본이 따로 존재할 리도 없던 정감록을 개작하는 것쯤이야 호소이에겐 식은 죽 먹기였다. 그의 솜씨와 애국심은 참으로 대단해 불과 몇 달 만에 ‘정감록비결 집록’이란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한국인들에겐 억압의 상징인 일본의 수도 도쿄에서 정감록을 죽이기 위한 음모가 결실을 맺은 날은 1923년 2월15일이었다. 이것이 사상 최초의 정감록 인쇄본이다. 도쿄판 정감록은 인기가 대단했다. 초판으로 몇 부를 찍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출간된 지 약 보름 만에 제3판을 제작할 정도였다. 도쿄판은 아마 일본에서도 상당히 팔렸겠지만 주로는 ‘식민지 조선’에서 소비됐을 것이 뻔한 이치였다. 호소이가 바란 것도 바로 그 점이었다. 도쿄에서 만든 정감록으로 한국의 정감록 세계를 평정한다는 목표는 어쩌면 단시일 내에 달성될 듯도 하였다. 도쿄서 들어온 정감록이 잘 팔려 나가자 한국의 출판계도 들썩이기 시작했다. 정감록을 찍어내면 돈이 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일각에선 호소이의 민족성 비판에 강한 불만이 제기되었다. 내놓고 맞싸울 형편은 안 되었지만 정감록까지도 ‘그 잘난’ 일본인의 손으로 다듬어진 책을 봐야 되는가 하는 강력한 반발이 없지 않았다. 동경판의 뚜껑을 열어본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경악했다. 호소이는 무지한 한국 사람을 계몽한답시고 무려 50쪽이나 되는 정감록 비평을 썼다. 정감록의 허구를 낱낱이 파헤치고 나아가 한국 사람의 타고난 ‘야만성’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그 논지는 대개 이런 식이었다. 한국인들은 태초부터 불합리한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련한 한국 민족의 정신적 미성숙은 그들이 정감록과 같은 미신에 맹목적으로 빠져 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증명된다. 이렇게 유치하고 야만적인 성격이 한국민족의 본성이다. 국제적으로 저열한 한국의 민족성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한반도의 역사 및 지리적 조건이 빚어놓은 결과다. 당시 유행하던 지리적 결정론을 빌려 호소이는 ‘미개한’ 한국인을 질타했다. 귀신을 숭배하고 점치기를 좋아하는 풍습은 당시 일본사회에서 더욱 성행했다. 그러나 일본민족의 위대성을 맹신한 호소이의 눈에는 그런 현상이 들어올 리가 없었다. ‘야만적’인 한국인까지도 호소이는 마음속 깊이 사랑했던 것일까. 그는 하루바삐 정감록 신앙에서 한국인을 구출하여야만 된다고 믿었다. 합리적이고 발달된 현대 일본사회의 참된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 한국인은 정감록 신앙을 포기해야 된다. 이것이 호소이의 변(辯)이었다. 그러나 1923년 동경판 정감록을 간행한 진짜 목적은 다른 데 있었다. 대일본제국의 번영을 위해 정감록이라는 정치적 폭탄에서 뇌관(雷管)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동경판이 제3판에 돌입한 지 보름 정도 지난 1923년 3월19일 김용주가 편찬한 정감록이 독자들에게 선을 보였다. 편찬에 나선 김용주는 호소이와는 전혀 다른 태도였다. 그는 정감록의 내용에 대해 아무런 비평도 보태지 않았다. 딱히 정감록을 옹호하지는 않았으나 이것은 호소이에 대한 무언의 항변이었다. 굳이 김용주가 정감록을 신앙하였다거나, 민족주의자였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가 정감록에 대해 아무런 비평을 가하지 않은 데는 호소이의 지나친 악평에 대한 반발심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밖에도 김용주에게는 정감록을 비판하지 말아야 할 두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첫째, 당시 많은 한국인들은 정감록의 내용을 틀림없는 예언으로 믿고 있었다. 식민지의 힘없는 지식인에 불과했던 김용주로서는 대중의 그러한 열망에 굳이 찬물을 끼얹을 이유가 없었다. 설사 그가 남다른 애국심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하더라도 대한독립이 된다고 믿고 있는 동포들의 기대심리를 비난할 필요는 없었다. 둘째, 단순히 책을 많이 팔기 위해서라도 잠재적인 독자들의 희망을 꺾어서는 안 됐다. 김용주의 편집 태도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호소이에 대한 반감을 비롯해, 독립에 대한 기대와 상업적 목적이 골고루 다 작용했을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김용주는 정감록의 신빙성에 대하여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또 하나의 정감록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것은 한성판이라 불릴 만했다. 한성판엔 매우 흥미로운 점이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동경판과 공통되는 부분도 상당하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이 적지 않았다. 두 판본이 내용 면에서 차이를 보이게 된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매사를 곧이곧대로 순진하게 받아들이는 입장에선 민간에 퍼져 있던 허다한 비결 가운데 어느 것은 호소이만, 또 다른 것은 김용주만 수집해서 자연히 그렇게 됐다고 할 것이다. 실제 정감록은 수백 년 동안 필사본으로 암암리에 전파되었기 때문에 각자의 수집본이 서로 다를 수가 있다. 그렇다면 동경판과 한성판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비결들은 어떻게 된 것인가. 그야 물론 좀 더 널리 퍼져 있던 유명한 예언서로 보아야 옳을 것이다. 전국 어디에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 누구나 손쉽게 수중에 넣을 수 있는 그런 대표적인 예언서 말이다. 나는 이런 입장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동경판을 편집한 호소이가 매우 국수주의적이었단 점을 다시 한 번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수집된 정감록을 모두 출판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았다. 일본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것, 달리 말해 진인출현이나 대한독립의 메시지가 약한 ‘순화된’ 비결만을 선별적으로 알리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었다. 그는 ‘고약한’ 내용의 예언까지 인쇄에 부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김용주는 달랐다. 그는 도쿄본의 상당수를 답습하면서도 도쿄본에 실리지 못한 다른 비결들을 많이 포함시켰다. 김용주는 호소이가 정감록의 정본을 만들려고 한 의도를 정확히 꿰뚫어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도쿄판이 정감록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했다. 진짜 정감록은 훨씬 더 위험한, 폭발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을 암시하고자 했다. 그러나 가장 ‘위험한’ 정감록을 출간하지는 못했다. 총독부의 검열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결국 호소이의 뜻대로 되다 당연히 김용주의 정감록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것은 조선총독부의 의도와 배치된다. 일본인들이 보기에 김용주의 한성본이 딱히 위험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눈에 거슬리는 점이 없지 않아 조만간 도태되어야만 될 책이었다. 1937년 중·일전쟁이 터지자 식민지 한국의 정세는 한결 경색됐다. 이른바 전시총동원체제가 작동돼 비상시국이었다. 엄격한 사상통제와 감시가 일상화되는 가운데 정감록에 대한 통제도 한 단계 더 나갔다. 그 무렵 새로운 정감록이 나왔다. 현병주의 ‘비난정감록진본’이었다. 마침 경성에서 나왔기 때문에 이를테면 경성본이라 부를 만하다. 그런데 해명돼야 할 문제가 있는 책자였다. 우선 표면상 출간연도가 미상이란 점이 문제다. 책의 간행지를 ‘경성(京城)’이라고 표기해 놓은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식민지시기 서울에서 나온 것은 틀림없다. 경성본이 나온 시기를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내기 위해 나는 본문의 표기법을 자세히 분석했다. 문장의 구조와 맞춤법이 현대의 격식에 가깝다. 그런 이유로 나는 경성본의 간행시기를 1930년대 중반 이후로 확신한다. 경성본은 내용면에서도 앞서 간행된 한성본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경성본은 정감록이 사실무근의 허망한 책자라는 논설을 싣고 있다. 편자 현병주는 정감록의 가치에 대해 직접적인 판단을 보류한 김용주와는 달랐다. 하지만 현병주가 단순히 일본인 국수주의자 호소이를 추종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그는 정감록의 허구성을 비판하였을 뿐 문제의 궁극적인 원인을 한국인의 저열한 민족성에서 찾지는 않았다. 또 하나 언급하고 싶은 점은 현병주가 비결의 내용 중에서 자신이 동의하지 못하는 대목에 대해 일일이 비판을 가했다는 점이다. 예컨대 비결의 본문에 길지(吉地)에 피난을 가더라도 피난 시기에 따라 생명을 건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는 부분이 있다. 현병주는 바로 그 구절의 끝에 괄호를 치고는 “생명을 건지는 땅 중에도 종종 생명을 건지지 못하는 곳이 있다.”고 비꼬는 투로 주석을 붙였다. 이와 같이 조목조목 정감록의 내용을 비판함으로써 현병주는 정감록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려 했다. 호소이의 정감록 말살 의도는 현병주에 이르러 더욱 공교해졌다. 나는 현병주가 친일파였는지 여부를 알지 못한다. 다만 정감록에 대한 총체적 불신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정감록을 출간했다는 점에서 현병주는 호소이의 완벽한 후배다. 현병주는 좀더 중요한 점에 있어서도 호소이의 전통을 계승했다. 나는 지금 경성본에 실린 비결의 내용을 문제로 삼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해 호소이는 35종의 선별된 비결을 공개했다. 김용주는 그보다 16종이 더 많은 51종을 간행했다. 그런데 경성본에는 25종만 실려 있다. 현병주는 호소이의 동경본과 김용주의 한성본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비결로 한정했다. 결과적으로 말해 그는 호소이가 간행한 비결의 일부만이 정감록의 정본이라는 인식을 심는 데 기여했다. 호소이가 공개한 35개의 비결 가운데 25종은 광복 이후 간행된 여러 정감록에도 빠짐없이 등장한다.20세기 후반부터 한국사회에서 정감록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호소이의 비결을 정본으로 대접하게 됐다. 그렇게 된 줄이나 제대로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푸른역사연구소 소장)
  • 영화 ‘남극일기’의 송강호

    영화 ‘남극일기’의 송강호

    그가 출연한 영화가 빛나는 이유는 스크린 위로 ‘배우’송강호가 아닌 배우 ‘송강호’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주어진 캐릭터에 녹아들기보다는 캐릭터를 자신만의 연기 스타일로 흡수해 버리는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어리버리한 조직 두목(넘버3), 어눌하고 소심한 은행원(반칙왕), 인정과 의리를 지닌 북한군(공동경비구역 JSA), 촌스럽지만 우직한 시골형사(살인의 추억) 등 그의 연기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송강호표 영화’란 새로운 장르에 맞닥뜨리게 된다. 19일 개봉하는 영화 ‘남극일기’(감독 임필성, 주연 송강호·유지태)에서도 마지막 장면까지 그의 잔상을 진하게 느낄 수 있다. 남극을 배경으로 탐험대원들이 겪는 미스터리와 공포를 다룬 이 작품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탐험대 대장 최도형. 동료 대원들이 의문의 사고로 하나둘씩 숨지는 상황속에서도 정복욕에 사로잡혀 광기어린, 전혀 딴 사람이 돼 간다. 최근 서울 삼성동 메가박스에서 열린 기자시사회에서 그를 만났다. “다른 영화와 달리 기댈 곳이 없었어요. 배우들과 합숙을 하며 따로 대본 연습을 하고 수없이 토론도 했죠.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었고, 매우 색다르고 난이도 높은 작업이었어요.”다양한 장면 연출이 불가능한 남극이 배경인데다 고작 6명의 인물이 2시간 동안 관객을 집중시켜야 하기 때문에 연기의 밀도감을 높이는 데 주력했단다. “어렵게 촬영한 이번 영화가 배우 송강호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 것인가?”라고 묻자, 표정이 조금 굳어진다. 전작 ‘효자동 이발사’에서 보여준 기대 이하의 흥행 결과가 아직 머릿속에 남아있는 걸까.“잘 될 때도 있고, 잘 안될 때도 있는 것 아닌가요? 전 ‘관객들이 어떻게 볼까?’하고 우려하지 않아요. 부족하지만 항상 매 작품 최선을 다하려 노력하죠.” ‘남극일기’는 ‘빙우’같은 멜로물이나,‘K2’·‘버티칼 리미트’ 같은 산악 액션영화와 궤를 달리한다.‘도달불능점’에 도달하기 위한 인간의 욕망과 심리를 그리고 있다. 때문에 “예술성에 너무 치중한 것 아니냐?”는 질문이 튀어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안전한 흥행공식을 따르지 않았다고 해서 대중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역으로 생각하면 그것이 바로 대중성이죠. 관객은 늘 새로운 자극과 감동을 얻기 위해 극장을 찾거든요.” ‘살인의 추억’이나 ‘올드보이’도 안전한 공식을 따른 영화는 아니지 않으냐며 자신감을 내비친다. 그는 지나친 탐욕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점점 피폐해져가는 최도형 역을 ‘튀지는 않지만, 무리없이’ 표현해 냈다. 조금 꼬집자면 전작들에서와 달리 남극이란 거대한 배경과 밋밋한 이야기 전개 속에 그의 존재가 묻혀 보인다는 것. 하지만 그는 “정답을 갖고 연기하지 않았다.”고 잘라 말한다. “그가 왜 미쳐가는지 미리 답안을 보고 연기하지 않았어요. 보시는 분들이 나름대로의 시선으로 해석하시는 게 정답이죠.” 촬영하면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뉴질랜드 현지 촬영 전체가 어려웠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촬영 난이도보다는 겨울이다 보니까 금방 해가 지더라고요. 당일 예정된 분량을 다 소화해야 촬영 스케줄이 어긋나지 않는데, 시간이 부족해 굉장히 애를 먹었어요. 연기하는데 굉장한 스트레스가 됐죠.” 영화속에서처럼 출연 배우들 사이의 ‘맏형’으로서 촬영장에서 감독 못지않게 대들보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송강호. 동료 조연 배우들의 연기 노력에도 관심을 가져 달라고 당부한다.“차가운 영화지만 뜨겁게 볼 수 있는 영화예요. 많은 분들이 오셔서 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사진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제작기간 6년·제작비100억원 대작 영화 ‘남극일기’속 송강호는 ‘살인의 추억’이나 ‘효자동 이발사’에서 보여준 모습과 달리 눈빛부터 다르다.‘퀭한’표정과 조금은 야윈 모습. 그는 광기어린 주인공의 모습을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해 촬영에 들어가기에 앞서 다이어트를 해 8㎏을 감량했다. 수염도 길렀다.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야위어 가는 캐릭터를 연기해야 했기 때문. 그는 “남극이라는 극한의 땅이 또 하나의 캐릭터로 살아나는 것이 이 영화의 매력”이라면서 “배우 자신도 극한의 상황에 도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남극일기’는 다른 영화와 달리 힘든 촬영 여정을 겪었다.6년여의 제작 기간과 100억원 가까운 제작비가 들어간 이 영화는 지난 99년 시나리오 집필과 함께 시작됐다. 지난 2003년 주인공 송강호와 유지태가 캐스팅됐고, 이들은 이후 4개월 동안 두 차례에 걸쳐 체력 및 탐험 체험 훈련을 받았다. 이후 2개월여의 뉴질랜드 현지 로케. 전체 분량의 70%가량이 뉴질랜드 스노 팜, 마운틴 가비 등 설원에서 촬영됐다. 변덕스러운 날씨와 현지 적응 관계로 촬영 일정이 지연되면서 임필성 감독은 스트레스성 당뇨까지 걸렸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눈에 띄네~ 이 얼굴]남극일기 ‘유지태’

    [눈에 띄네~ 이 얼굴]남극일기 ‘유지태’

    유지태(29)는 부족한 듯 자신을 낮추면서도 나름의 당당함이 느껴지는 배우다.‘2% 부족함’에서 풍기는 사람 냄새에 관객들이 지지를 보내는 것은 당연. 이같은 매력을 지닌 그에게 ‘도전’이라는 단어는 꽤나 잘 어울린다. 영화와 연극 출연은 물론 단편영화의 연출까지, 여지껏 그의 행보에는 또래 배우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세계가 있다. 특히 ‘봄날은 간다’‘남자는 여자의 미래다’‘올드보이’ 등에서 보듯 그는 기존 이미지를 차근차근 깨나가는 선구안을 발휘해 왔다. 이런 그의 매력은 19일 개봉하는 ‘남극일기’에서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영화를 보고나면 유지태의 얼굴과 목소리가 오래도록 잔상으로 남는다. 그가 맡은 역할은 동료들의 사랑과 걱정을 동시에 받는 막내 대원 김민재역. 영화의 관찰자인 인물이다. 송강호의 카리스마가 거대한 남극 화면과 밋밋한 줄거리 속에 묻혀 고전하는 동안, 그는 ‘올드보이’의 이미지와 또 다른 정선된 캐릭터로 영화를 소리없이 이끌어나간다. ‘남극일기’가 송강호의 열연으로 빛이 났다면, 그 절반은 유지태의 조력 때문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듯. “연기에 대한 탐험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하는 유지태. 다음 ‘연기 탐험’을 통해 어떤 캐릭터를 만들어낼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특색없는 지원서 척보면 안다”

    취업 희망자들은 입사지원서를 낼 때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 취업전문업체 사람인(www.saramin.co.kr)은 18일 기업체 인사담당자 10명 가운데 6명이 타회사 이름이 적힌 지원서를 받아본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인사담당자 171명을 상대로 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의 59.1%가 다른 회사의 이름이 적힌 지원서를 받아봤다고 대답한 것이다. 한 번 작성한 지원서를 여러 회사에 무차별적으로 뿌리는 구직자가 그 만큼 많다는 얘기인 셈이다. 이들 인사담당자의 45.5%는 다른 회사 이름을 적어 낸 응시자를 ‘무조건 불합격 처리한다.’고 대답했다. 또 인사담당자의 대부분이 비록 회사 이름이 제대로 표기됐다 하더라도 무차별적으로 뿌려진 지원서인지 아닌지 구별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62.4%가 ‘쉽게 구별된다.’고 말했고,36.3%가 ‘자세히 보면 구별된다.’고 대답했다. 사람인 관계자는 “차별성 없는 지원서로는 서류전형에서 좋은 결과를 낼 수 없다.”면서 “지원하는 회사의 특성에 맞춰 성의있게 지원서를 작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