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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소리 명창 조상현(이세기의 인물탐구:106)

    ◎타고난 성음 거침없는 연기력 객석 압도/전통고수보다 「시대의 향」담긴 음악 주장/“국악을 대중가까이…” 매년 수십차례 공연 이 시대 걸출한 인물의 한사람인 명창 조상현.타고난 성음에 거칠 것 없는 연기력은 어느 무대에서나 흥청거림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그의 목은 묵직한 철성을 단전에서 끌어올리는 동편이나 감칠맛이 넘실대는 서편제와는 다르다.억세면서도 바닥이 고르게 다져진 우람장중한 힘과 정한이 배분된 강산제소리로 장시간 소리를 질러도 갈수록 목이 터서 유려한 가슴의 소리를 울리는 것이 특징이다. 훤칠한 체구에 두둑한 배짱,사나이다운 기백이 전신에 서린 조상현을 가르켜 일찍이 국악계의 대부이던 정권진은 「몇십년만에 한번씩 나오는 희한의 득음」으로 찬사한 바 있다. ○변화무쌍한 소리 구사 실제로 오음과 육률을 임의로 변화시키는 것은 물론 평성으로 하다가 위로 튀는 목이며 목청을 좌우로 헤쳐가며 힘차게 내는 걸쭉한 반 수리성은 중상성을 낼 때도 세성을 내지 않는다. 그는 지금도 혼자서 일인다역을 감당하는 「심청전」 「춘향전」 「수궁가」 완창에서 장(우조) 한(만조) 화(평조) 원(계면조)을 변화무쌍하게 구사하고 아니리 발림에 능란하다.그중에서도 향청의 창고직이,감관과 색사를 두루 잡아들이는 「춘향전」의 「어사출도」장면은 「만장의 폭포가 쏟아지듯 웅건장대한 자진몰이」로 현란하게 말을 엇붙이고 장단을 가지고 놀면서 시원한 통성으로 객석을 압도한다. 그가 즐겨 부르는 「심청전」중 맹인잔치에서 심봉사가 청이를 만나 눈뜨는 장면 역시 평계면에서 끓어오르는 격정을 토해내는 진계면으로 넘어가는 대목은 일품이 아닐 수 없다. 지난 90년5월 도쿄국립극장 대극장에서 열린 일본공연에서 히다치노미아(상융궁) 일왕자부처를 비롯,전현직 장관·중참의원 등 1천700여관객이 만장한 가운데 장중한 공연이 끝나자 10여분간의 뜨거운 박수갈채로 심봉사로 분한 그에게 환호를 보냈다. 그동안 겪어온 숱한 고초가 부녀상봉과 개안이라는 환희의 절정으로 치달으면서 장단은 중모리에서 빠른 자진모리로,창조도 애원성을 담아 관객이 눈물을 적시는슬픈 대목인데도 청승푸념이 범람하지 않는 영출한 기량에 일본신문은 한같이 「관객의 심금을 울린 명무대」로 호평하고 있다. 판소리 다섯마당중에서도 그가 특히 「심청전」에 애착을 갖는 것은 그가 살아온 지난날이 애통비절과 가난의 파란으로 점철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가 태어난 전남 보성군 결백면 오호리는 강산제의 원가인 회천면 금천리와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부친 조기원씨는 순천일대를 주름잡던 한량에다 광폭의 주란으로 그는 하루도 가정불화가 그치지 않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다.다행히 부친이 못 배운 것을 한하여 3남2녀중 막내인 그만은 유독 서당에 보내주었다.6살때부터 동몽선습에서 대학·소학을 배우고 율포중에도 진학했다.그러나 어릴 때부터 「강산제의 정한어린 노랫가락」을 들으면서 소리에 눈뜬 그는 협률사공연을 보고 「소리꾼」이 될 것을 결심,12살되던 해 인근의 유명한 정응민문하에 들어가 판소리를 배우게 되었다. 보성고를 졸업할 때까지 꼬박 7년을 하루 10시간이상 강산제소리인 춘향가·수궁가·심청가를섭렵했고 20세되던 해 광주로 나가 「적벽가」의 박봉술 명창을 사사,한때 우쭐거리는 마음으로 그는 「나를 당할 명창이 누구냐」는 식의 호기와 만모로 군복무중에는 군예대를 만들어 전방을 휩쓸고 광주의 극장을 누비는등 객기만만의 시절을 보낸 적도 있다. ○가난과 객기의 젊은시절 그러나 목포문화방송의 국악프로를 맡아 출연하던 무렵 그곳에 들른 박녹주명창이 『지방에 두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인재』란 이유로 그를 수양아들을 삼았고 그때부터 서울 종로구 운니동에 있던 명창의 자택에 머물면서 문밖출입이나 사람만나는 일이 허용되지 않는 참으로 가혹한 시련의 학습시기를 거쳤다.그리고 이제까지의 타성이던 떠는 소리(발성),입안소리(함성),비성과 횡성을 말끔하게 씻고 그는 비로소 명창서열에 들어섰다. 71년 국립창극단에 입단,잘 생기고 떡벌어진 젊은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만조와 평조,판소리장단을 두루 꿰뚫자 청중은 그를 환호해 마지않았고 73년 국립창극단 「수궁가」를 필두로 그가 주역으로 나오는 공연은 관객이 3층 복도에까지 차는 이변을 빚었었다.「TBC향연」에 나가면서 삼성 이병철회장의 눈에 띄어 각별한 사랑을 받는등 서울공연 4년만에 집을 마련하기도 했으나 이로 인해 가정이 파탄이 나는 불행을 겪기도 했다.자택은 양천구 목동아파트,부인 이숙정 여사와의 사이에 2남이 있다. ○80년대 장극무대 휩쓸어 옳은 말을 잘하고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탓에 82년 국악향상을 위한 국립창극단 오디션에 모순점과 부정이 개입됐다는 이유로 이에 앞장서 항의하다 자진사퇴해버렸고 그후 KBS창극단무대를 통해 「멀 있는 국악을 대중 가까이 끌어들인 개척자」를 자처하여 텔레비전 화면에 가장 자주 비치는 국악인의 한사람이 되었다. 사나이다운 광활한 성격에 비해 술·담배를 입에 대지 못하는 그는 국악의 대중화라는 이름 아래 모든 창극에서 주역을 휩쓸면서 86년 파리 퐁피두문화센터에서의 「조상현 춘향전완창」, 89년 예향 광주에 시립국극단을 창단,「심청전」 유고·헝가리순회와 「아리랑」 구소련순회 등 70여개국을 도는 화려한 소리의 여정을 펼쳐나갔다.매해 수십차례의 공연을 끊임없이 가지는 중에도 「전통판소리를 보존하고 유지하는 선이 아니라 당대의 향취와 후대를 동반할 수 있는 음악을 지키려는 것」이 그의 의지다. 중국 악서에 나오는 「음악을 들어보면 그 나라의 정치를 알 수 있고 춤을 보면 그 나라의 덕을 알 수 있다(문낙지정 관무지덕)」는 구절을 성취하려는 그는 요즘도 1주일중 사흘은 광주에서 보내고 주말에는 서울에 올라와 서울판소리보존연구회의 판소리강습, 3년전부터는 전국판소리명창대회를 직접 주관하는 등 한시도 쉬지 않는 완강한 젊음과 정열을 불태우고 있다. 판소리 옛예인의 단아단정하며 오로지 전통을 지켜나가는 소극적 이미지가 아닌,사나이의 호방과 웅장청원으로 새로운 판소리명창의 인상을 새긴 그는 지금 대광입신의 경지에서 거장다운 절창을 펼치면서 판소리무대의 「영원한 젊음」으로 우뚝 서 있다. □연보 ▲1939년 전남 보성출신 ▲51∼58년 율포중재학중 명창 정응민사사,보성고 졸업 ▲58∼60년 광주국악원서 박봉술 「적벽가」 사사 ▲60년부터 명창 박녹주문하사사 ▲71∼82년 국립창극단원,주역 ▲7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판소리후계자지정 ▲73∼75년 판소리보존연구회 사무국장,판소리의 전승보급 ▲74년 남원 전국명창대회 1등 ▲76년 전주대사습 전국대회 판소리부문 대통령상 ▲78년 한국국악협회 상무이사 ▲80년 「수궁가」 완창발표(국립극장대극장) ▲82년 판소리보존연구회 이사장 ▲83년 「수궁가」 완창발표(서울 문예진흥원대강당,부산 가톨릭센터) ▲84∼95년 전남대 국악강사 ▲86년 「춘향전」 완창발표(파리 퐁피두문화센터) ▲89년 광주시립국극단창단 ▲90∼현재 광주시립국극단 서울공연 「놀보전」(호암아트홀)을 비롯,창극 「아리랑」 구소련순회,「놀보전」 「심청전」 유고·헝가리순회 등 매해 수십회공연 ▲91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지정 ▲94년 전국판소리 명창대회 주관 〈현재〉 판소리보존연구회 이사장·광주시립국극단단장 〈수상〉 대한민국국악대상(82년) 한국방송60년 방송유공자문화포상 대통령상(87년) 무등문화상(89년)
  • 비디오작가 백남준(이세기의 인물탐구:96)

    ◎규격을 거부하는 첨단예술가/텔레비전 주사선 조작으로 비디오예술 “창시”/기존관념에 도전… 어떤 일에도 의미부여 안해/개관이래 외부 나간적 없는 뉴욕 휘트니비엔날레 93년 국내 유치도 멜빵 달린 바지에 두꺼운 신문뭉치를 옆구리에 끼고 뉴욕의 「남준 백」은 상오 11시께 아침식사를 하러 소호로 나온다.단골식당은 그의 스튜디오가 있는 스프링스트리트 코너바.아주 천천히 야채샐러드 한접시를 다 비우고 스테이크나 생선,롤빵을 더 시켜먹는다. 식사를 하는 동안에는 신문을 읽는다.뉴욕타임스,인터내셔널헤럴드튜리뷴,월스트리트저널을 샅샅이 읽고 한국신문도 훑어본다.임대료가 비싼 남의 스튜디오를 빌려 쓰기 때문에 주로 밤샘작업을 하는 편이고 취미는 낮잠과 산책.세계적인 명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겉모습은 언제나 천진무구하기만하다. 그러나 어눌한듯 하면서 거침없이 쏟아내는 말의 성찬은 상대방의 질문에 선문선답식으로 우회하거나 때로는 정곡을 찌르면서 그속에 해학과 사물에 대한 통찰이 숨겨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중에서도84년,34년만에 고국땅을 밟으면서 「예술은 사기」라고 한 말은 당시 우리의 지적분위기에서는 폭탄선언이었고 『왜 무엇을 근거로 예술이 사기인가』라는 논란과 함께 오랫동안 문화예술계에 혼란의 파장을 불러일으킨바 있다. 그가 비디오아트를 하게된 동기는 너무나 「간단」하다.기술잡지에서 본대로 텔레비전의 주사선만을 조작했는데도 『펑펑 새로운 그림이 쏟아져나왔다』는 것이고 『비디오무용만 해도 세상만사 아무거나 찍어서 이어붙이면 무용이 된다』고 대수롭지않게 말해버리기 때문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92년 8월,동숭동 문예극장 대극장에서 열린 무용가 김현자와의 퍼포먼스를 예로 들수 있다. 그날 그는 직접 무대에 나와 피아노에다 못을 박거나 피아노건반을 의미없이 튕겨보기도 하고 손가락을 허공중에 찔러보는 지루한 되풀이를 계속하고 있었고 김현자는 김현자대로 이와 상관없이 자신의 춤을 추어대고 있었다. ○“예술은 사기” 충격선언 동양철학을 하는 도올 김용옥은 이 공연을 보고 처음엔 『공연자체로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다른 범인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낀 천재이거나 범인이 느끼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천재』일꺼라고 비꼬았다.반대로 가야금명인이자 현대음악에도 조예가 깊은 황병기는 『우리가 얼마나 부질없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부자연스럽게 살고있는지를 너무도 강렬하게 반영해준 천재의 공연』이라고 호평해 마지않았다.그러나 『왜 공연을 한시간만에 끝냈느냐』는 질문에 백남준은 『그렇게 지루한걸 뭣하러 오래해, 빨리 끝내는게 좋지』 두사람의 엇갈린 비평을 일시에 일축했다. 그후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최한 대규모 회갑전을 본 도올은 『광대한 화폭이 끝없이 움직일뿐만 아니라 눈길이 닿는 순간마다 변화무쌍을 구사하는 그의 색채예술에 현혹되지 않을수 없었다』고 고백하게 되었다.『그는 무엇보다 정감이 가는 인간이며 해탈한 인간,그리고 그 인간이 훌륭하다』고 전제하고 「무위적 행동속에 유위」를 창조하는 백남준에게는 『참으로 광막한 지식의 세계가 엄존하고 있으며 관심의 초점이 맞닿는 곳마다 확고한 전거와 자기류의 해석을 가지고 있었다』고 감탄했다.실제로 그는 「한국의 역사는 물론 중국 노장과 주자학의 도덕적 엄격주의,명대사회의 개인주의와 시민정신을 표방한 양명학,삼국유사에 이르기까지 정확하고 디테일한 정보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그러나 막상 백남준은 「천재의 둘째」라면 서러워할 김용옥이 누구인가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고 오히려 머리를 빡빡 깎았다는 이유하나만으로 「절깐의 중놈취급」하여 도올이 그의 저서를 증정하자 『왜 스님이 한글로만 책을 썼느냐?한문 없는 거는 책두 아니다. 난 그런 책은 안본다』고 묵살한 웃지못할 에피소드를 남기고 있다. 일탈한듯 방심한 듯한 그의 움직임을 세세히 뜯어보면 서구사회에서 물든 개인주의와 합리주의,세속적 관심과 유행의 흐름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고 디컨스트럭션(비구조)과 디포메이션의 철학을 바탕으로 작품에서도 정통성과 엄숙성,현실에 대한 야유와 풍자,시니시즘과 현란미까지도 치밀한 계산에서 종횡무진 모자이크하고 있음을 간파할수 있다. ○6·25 나던해 도일 63년 독일 부퍼탈 파르나스화랑에서 열린 「존케이지에 대한 경의」만해도 단순히 케이지의 넥타이를 가위로 자른 행위예 불과한것 같지만 「넥타이는 맬 뿐만 아니라 자를수도 있으며 피아노는 연주뿐만 아니라 두둘겨 부술수도 있다」는 기존관념에 대한 과감한 도전과 파괴의 실천임은 말할것도 없다. 콩을 던지고 쉐이빙 크림을 바르고 자신의 웃통을 벗은채 「인간첼로」가 되는가 하면 바이올린을 강아지처럼 끌고 다니는 그의 뒷모습에선 틀에 박힌 모든 일상에서 훨훨 벗어나고 싶은 현대인의 묘한 아이러니와 비애감이 물씬 풍겨난다. 대표작의 하나인 「달은 가장 오래된 TV이다」도 마찬가지다.「초승달에서 그믐달까지 달의 차고 기우는 과정을 교교한 시적차원으로 창출한 반면 TV모니터와 대좌한 「TV부처」의 경우는 「동양적 사유와 첨단기술이 서로 깊이 조응하는 무시무종의 윤회」를 구사하면서 기계의 철학화와 종교화를 꾀하고 있다. 그가 한국에서 산것은 6·25가 나던해 일본에 건너가기 전까지 18년 뿐이다.태창방직 설립자인 백낙승씨와 조종희씨의 3남2녀중 막내,종로구 서린동에서 그가 어린시절 「가장 재미있게 가지고 놀던 장난감은 피아노」였고 경기중시절에는 마르크스주의자였으며 「분배의 정의없이는 의를 실현할수 없다」는 사상이 지금까지도 「남의 모방이나 티내는 예술을 거부」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오는 7월17일 독일의 다름슈타트 현대음악제 50주년 기념행사 오프닝콘서트등 전세계를 누비는 전시와 공연에 쫓기는 중에도 기업체로부터 의뢰받은 작품제작을 위해 1년에 한번은 서울에 오고 그때마다 「부자가 많은 서울」에 익숙지 못한 그는 호텔비가 저렴한 변두리쪽에 숙소를 정하고는 반드시 만날 사람들을 구별하기 위해 호텔프런트에 「암호」를 대게하는 여전한 장난기를 누리기도 한다. 알뜰하고 낭비가 전혀 없지만 지난 93년에는 1억원이 넘는 돈을 내놓아 개관이래 외부에 나가본 적이 없다는 뉴욕 휘트니비엔날레를 국내에 유치했고 지난해 광주비엔날레 정보예술전에는 세계적인 미술인등 컴퓨터천재 60여명을 초청,고국의 미술계발전을 위한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일본인 부인인 구보타 시게코(구보전성자)와는 77년 뉴욕에서 결혼,시게코도 비디오작가이지만 둘이는 서로의 작업을 존중하고 철저히 방해하지 않는다. ○부인도 비디오 작가 그에대해 확신할수 있는 것은 그는 규격화를 거부하는 첨단예술가,행위예술가로서 어떤 일에도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며 『모든 상식과 틀은 사람을 「바보」로 만들기 때문에 수시로 파괴되고 변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한다.프랑스의 미술평론가 장폴 파르지에는 그런 그를 향해 「피카소이후 20세기작가 중에서 유일하고도 진정한 새로운 구상형식의 창시자」로 단정짓고 도올역시 「그는 한국이 낳은 예술가이긴 하지만 한국예술가는 아니며 마르셀 뒤상 막스 에른스트 쉔베르크와 머스커닝햄,그가 친애해 마지않던 존케이지 조셉 보이스와 함께 세계적 예술가」로 정의를 내리는데 주저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누구의 어떤 형태의 표현에도 불구하고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는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은 「이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예술가」이며 더욱 확실한것은 예술가의 온상인 뉴욕하늘에 뜬 수많은 「별」들중에서도 특히 특별한 광채를 발하는 「아주 눈부신 존재」임에 틀림없다는 사실이다. □연보 ▲1932년 서울출생 ▲1956년 동경제대 졸업,독일 뮌헨대 쾰른콜로뉴대서 작곡수업 ▲1957년 프라이부르크 뮤직콘설바토리 입학,다름슈타트 강좌참가 ▲1960년 플럭서스결성 ▲1963년 독일 첫비디오 개인전 ▲1965∼77년 미국 첫개인전이후 유럽및 남미 전미국연속순회 ▲1978년 뒤셀도르프 국립미술대 초빙교수,파리·도쿄개인전 ▲1982년 뉴욕휘트니미술관주관 백남준 회고전,플럭서스 20주년기념전 ▲1984년 우주오페라 △1부작 「굿모닝 미스터 오웰」,도쿄·몬트리올개인전 ▲1986년 우주오페라 2부작 「바이바이 키플링」,체이스맨해튼소장전 ▲1988년 서울현대화랑 개인전,국립현대미술관에 「다다익선」설치.우주오페라 3부작 「손에 손잡고」발표 ▲1989년 서울현대화랑서 조세프 보이스를 위한 진오귀굿 추모공연 ▲1991년 스위스 독일 오스트리아 「백남준 대회고전」순회전시 ▲1992년 국립현대미술관백남준회갑기념전,「92 춤의 해를 위한 김현자와의 퍼포먼스」(서울문예회관) ▲1993년 대전엑스포 비디오아트쇼,뉴욕 휘트니비엔날레 서울유치 ▲1994년 밀라노 두오모성당광장 공연,파리 퐁피두센터공연 ▲1995년 광주비엔날레특별전,제네바 유엔창립 50주년기념행사참가,조선일보미술관·갤러리현대·박영덕화랑 개인전등 수백여회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기념전 〈수상〉 독일 캐피탈지 「세계의 톱미술가」5위(93∼95년),스웨덴 스톡호름 아트페어 「올해의 미술가」(95),93,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호암상예술상(95년)
  • 피카소 특별전 불 화단 달군다

    ◎유품 등 관련사진 390장 정부서 1백만프랑에 구입/99년께 뉴욕현대미술관서 첫선/일기장 여백 등에 남긴 데생작품 58점/5월6일까지 전시… 화풍변화 한눈에 올해 프랑스의 화단은 벌써부터 피카소에 대한 얘기로 떠들썩하다.피카소 특별전이 개최되거나 기획이 진행되고 있는 탓이다.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연초부터 파리시내 퐁피두센터 부근 피카소미술관에서는 오는 5월6일까지 일정으로 열리고 있는 피카소 데생특별전으로 피카소를 좋아하는 미술품애호가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그의 데생전은 특별전이라는 명칭이 반드시 필요할 정도로 특이한 의미를 갖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화가는 데생하는 법을 배워서는 안된다」고 말해온 사람이 다름아닌 파카소 자신이었다.하지만 실제로 그는 연필등을 사용할수 있는 모든 곳에 데생을 했던 대표적인 화가였다.이는 전시된 그의 데생화에서 그대로 드러난다.일기장·메모장·바르셀로나 한술집의 회계장부·즐겨읽던 책갈피등 그림을 그릴수 있는 여백만 있으면 그는 데생을 남겨 놓았다. 이렇게 해서그가 그린 데생화 가운데 58점이 이번 전시회에서 일반에 선보이고 있으며 일부는 미완성의 작품이다.피카소미술관의 브리지트 레알씨는 『피카소는 메모장등을 넣은 주머니 를 손에서 놓은 적이 없다』고 그의 왕성하고 성실한 활동상을 말했다. 때문에 이번 전시회는 「피카소의 주머니 아틀리에전」이라고 불리기도 한다.특히 「아비뇽의 처녀들」은 그의 열광적인 활동을 보여주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그가 두문불출하며서 「아비뇽의 처녀들」을 그리는데 골몰해 있을 때 그가 살던 집주변의 한 술집주인은 『피카소는 미쳐가고 있다』고 말했을 정도이다.게다가 이번 전시회는 1899년부터 1966년까지 68년동안 큐비즘,고전주의,리얼리즘등 피카소의 화풍변화를 단 58점의 데생화로 일목요연하게 알수있어 더욱 주목을 끌고 있다. 이와함께 프랑스정부는 최근 피카소와 관련된 사진 3백90장을 1백만프랑(1억5천만원)에 구입했다.피카소 자신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가족 및 측근인사,피카소의 조각품,아틀리에의 모습등 다양한 사진들로 피카소를 연구하는데 더없이 좋은 자료들로 평가받고 있다.정부가 이들 사진을 피카소의 유족중 유일한 생존자인 브라사이씨로부터 매입했다. 피카소는 생전에 「내가 피카소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다」고 말한바 있다.그는 자신의 작품을 팔기도 했지만 돈이 생기면 자신의 그림을 사모으는 데도 열중했다.그래서 유족들은 그가 지난 73년 사망한뒤 여러차례에 걸쳐 피카소의 작품들을 정부에 기증해 일반 시민들이 그의 작품을 감상할수 있도록 했다.이번에도 그와 유족들이 작품을 그대로 소장하고 있어 가능해진 일이다.프랑스정부에서 이번에 사진들을 사들일수 있었던 것도 유족인 브라시아씨가 일일이 유품들을 사진을 찍어 보관해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 겨울화단 수놓는 「프랑스 미술전」(미술화제)

    ◎「설치작가 8인전」…호암 갤러리서/경주 선재미술관,「오늘의 시각전」 프랑스 미술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2건의 전시회가 겨울 화단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삼성문화재단이 주최,호암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프랑스의 설치작가 8인전」(21일까지)과 경주의 선재미술관이 프랑스 퐁피두센터와 공동으로 마련한 「프랑스 미술­오늘의 시각전」(2월10일까지)이 그 전시들. 프랑스 현대미술은 오늘날 미국과 독일에 비해 다소 뒤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기도 하지만 여전히 세계 미술의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따라서 설치와 회화,입체작품을 두루 감상할 수 있는 이번 전시회들은 국내 젊은 미술인들에게 동시대의 첨단 흐름을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호암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프랑스의 설치작가 8인전」은 오늘날 세계 미술계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설치미술의 한 단면을 감상할 수 있는 자리. 경주의 「오늘의 시각전」은 「9개의 제안」이라는 부제아래 전통과 혁신을 넘나들며 다양한 작품을 펼쳐놓고 있어 겨울여행에 나선 가족단위 관객들로 성황을 이루고 있다.
  • 파리 파업으로 행사 잇달아 취소/불 「한국문학 포럼」 이모저모

    ◎베트남 감독 이문열씨 작품 영화화 제의 ○…우리 작가들이 참여해 파리를 비롯한 프랑스 전역에서 펼치고 있는 「레 벨 제트랑제」(아름다운 이방인들)행사가 중반을 넘어섰다. 지난주부터 파리를 덮친 파업태풍은 이 행사 최대의 악재로 작용,대중교통수단·전기·통신·가스·우편을 비롯해 파리의 공공부문 전체가 마비된 가운데 예정된 행사가 잇따라 취소돼 우리측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이날코」(INALCO·국립동양어대학)에서 계획됐던 행사가 이 학교 학생들의 동맹휴업으로 돌연 취소된데 이어 1일 지중해 연안도시 몽펠리에에서 갖기로 했던 작가와의 만남도 무산. 이는 이날 하오 1시에 출발하려던 파리발 비행기편이 공항관제탑 파업으로 예정보다 늦게 뜨는 바람에 신경림·이균영씨 등 참가작가들이 행사시간인 하오 6시30분에 댈 수 없었기 때문. 이에 따라 행사장인 시립도서관 앞에서 기다리던 수십명이 발길을 돌렸고 작가들은 행사를 주관한 이곳 문인협회 사람들과 예정보다 두어시간 늦은 저녁을 하며 아쉬움을 달래야했다. ○…프랑스 TV 독서프로그램 진행자로 저명한 문학평론가인 미셀 폴락은 우리 문학의 특성을 『한국인의 현실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밀착된 시각』이라고 정의. 지난 30일 퐁피두센터 행사에 사회자로 나선 그는 한·중·일 등 아시아 3국 문학을 비교하는 가운데 『중국문학은 작가 스스로의 검열,당국의 삭제등으로 현실을 가리고 있고 일본문학은 지나치게 개인의 내면문제에 집착하는데 반해 한국문학의 사실성은 힘과 자유를 느끼게 한다』고 평가. ○…작가 이문열씨가 칸느 영화제 대상을 받은 베트남의 티엔 반 룽 감독으로부터 자신의 작품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영화화 제의를 받아 화제. 이씨는 『티엔 반 룽 감독이 나의 작품을 인상깊게 읽고 있다며 스스로의 시각으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제의해 왔다』고 소개. 이씨의 작품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비롯,「시인」「금시조」등 7편이 이곳 악트 쉬드 출판사에서 불역돼 나와있다.
  • 한국 문학 알리기와 번역/손정숙 문화부기자(오늘의 눈)

    지하철 버스를 비롯한 대중교통수단 파업이 시민들의 발을 꽁꽁 묶어 놓고 있는 프랑스 파리.이곳 퐁피두 센터에서는 지난달 30일 하오 「이방인」소설가 세명이 파리지앵들과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작가 오정희,이문열,최인호씨가 「레 벨제트랑제(아름다운 이방인.이곳 정부의 외국인 작가 소개 프로그램이름)」의 하나인 「작가와의 만남」에 초빙되어 이곳을 찾은것. 문화를 사랑하는 파리지앵들은 진지한 눈빛으로 작가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였고 1백석 남짓한 조촐한 행사장엔 때때로 웃음이 터졌다.같은날 이날코(INALCO·국립동양어대학)에서 먼저 열리기로 했던 작가와의 만남이 파업으로 취소된 터라 시운을 탓하고 있던 우리측은 길게 한숨을 돌렸다.호의섞인 문답으로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즈음,한 현지인이 손을 들었다.이곳에서 번역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도 읽었으며 한국문학에 관심깊다는 그가 제기한 것은 번역문제.『한국문학 불역이 특정인에게만 지나치게 치중돼 있다,번역도 독창적인 해석행위인데 한사람에게 너무 기대면 균형잡힌 소개가 어렵지 않겠느냐』는 우려였다. 프랑스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곳은 동양어를 집중 교육하는 앞서의 이날코를 비롯,파리 7대학,보르도,르아브르,리옹대학등 몇군데가 있다.하지만 한국어 하나만으론 밥벌이가 되지 않아 학생들은 보통 두세가지를 복수전공한다.모랑주,비셰,기유모트등 이곳의 권위있는 한국어 학자들은 대개 고전이나 어학쪽에 편중해 있어 미묘한 뉘앙스를 전하는 현대문학 번역이 쉽질않다. 한국문학을 다른 문화권에 소개하는 번역 작업에는 한국인이 나서기 보다는 그 문화를 잘 아는 현지인이 훨씬 적격이다. 좋은 문학은 곧 좋은 문체로 된 문학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대통령조차 시를 왼다는 프랑스에 소개될때 문학의 문체를 결정하는 것은 원작이 아니라 번역이다. 그러나 우리 말을 외국어로 옮겨 전달해줄 번역자 양성은 제쳐둔채 노벨문학상을 말해온 게 우리의 현실이다.모처럼 소중한 한국문학행사가 펼쳐진 타국땅에서 제대로 된 번역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다가왔다.
  • 프랑스인들 한국문학에 높은 관심

    ◎불 국립도서센터 주관 「한국문학 포럼」 열려/최인훈씨 등 초청작가 13명 앞자리에/현지 출판인·문인들 “한국문학 본격소개 계기” 28일 하오(한국시간 29일 상오) 바스티유 오페라극장 올리비에 메시엥 홀에서 열린 「한국문학포럼」행사는 현지인들의 호기심과 관심속에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이날 행사장에는 전날 밤 이곳에 도착한 시인 고은 신경림 황동규씨,소설가 최인훈 김원일 박완서 오정희 윤흥길 이균영 이문열 조세희 최윤 한말숙씨 등 초청작가 13명이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것을 비롯,자문위원을 맡은 문학평론가 김윤식 김치수 이선영 윤지관씨,한국문학의 번역소개에 앞장서온 파트릭 모뤼스 성대 교수등의 모습도 보였다. 프랑스측에서는 한국문학출판에 앞장선 악트쉬드 출판사 우베르 니센 사장과 베르트랑피 편집장을 비롯해 문학전문지 마가린 리테레르 기자 시몬느 아루스,시인 알랭 제오프르라 등이 자리를 같이 했다. 행사를 주관한 프랑스 국립도서센터의 장 세바스티앙 듀피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서로 다른 문화들간의 진정한 대화와 만남을 도모하기 위해 마련된 문학포럼은 작품번역을 유도하고 독자층의 저변을 확대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면서 『아시아 대륙의 오랜 지혜로 성숙해 있고 고통과 해방의 역사를 극렬하게 체험한 한국문학의 대표적 문인들이 참석해준데 대해 감사를 표한다』고 말했다. 답사에 나선 장선섭 주불대사는 『한국문학포럼은 다채로운 행사를 통해 한국인과 프랑스인간의 이해를 높일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한국문학 소개를 맡은 모뤼스 교수는 한국문학이 특성을 「비극성,짧은 형식,역사지향』으로 요약했다. 초청대상 인터뷰,자작소설·시낭독 등으로 꾸민 비디오가 불어자막과 함께 1시간여 상영됐는데 이 비디오에서 황동규시인은 『작곡가가 되려고 화성학을 공부했다가 자신이 음치라는 사실을 알고 음악을 포기하는 대신 가장 인접한 장르인 시를 선택했다』고 밝혔다.소설가 한말숙씨는 남편인 가야금 연주자 황병기씨 못지 않은 솜씨의 가야금 연주를 들려주어 인기를 모았다. 지난 70년대 한국에서 생활했으며 한국문학의 열렬한팬이라고 밝힌 한 프랑스인 신부는 『한국문학 특유의 색채를 섬세하게 드러내기엔 미흡했지만 이번 행사가 프랑스에 한국문학이 적극 소개되는 디딤돌 역할을 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는 프랑스 문화성 산하 국립도서센터에서 외국문학의 실상을 국내에 소개하고 활발한 출판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펼치는 「외국문학포럼(레 벨레트랑제)」의 일환.지난 87년 브라질을 첫 대상으로 막을 열었으며 우리나라는 25번째 초청국가다. 우리문인들은 포럼기간 동안 파리시내 퐁피두 센터,국립도서센터,작가의 집,프랑스 펜클럽 등과 보르도,몽펠리에,엑상 프로방스,라로셀,에브레,페리줴,랭 등 지방도시 및 벨기에 브뤼셀을 돌며 토론회·시낭송회·작가와의 만남 등 총 25개 행사에 참여할 예정이다. 「한국문학의 독창성」「한국문학에서의 여성의 위치」「문학과 참여」「서울문화 19 95」등의 주제로 열릴 토론회에서는 아니 에르노,이자벨 라캉 등 우리 귀에 익은 프랑스 현대작가들도 참여,양국간 문화적 이해를 위한 열띤 토론을 펼칠 예정이다. 본행사개막에 맞춰 삼성문화재단 후원으로 퐁피두센터와 주불문화원에서 한국어린이 그림책 및 원화전시회가,파리 기메박물관에서 한국문학작품 원작영화 11편이 총 22회에 걸쳐 상영돼 행사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 일 구마모토아트폴리스「신치주거단지」(세계의명소/걸작건축감상:23)

    ◎도시민 주거 특성·자긍심 높인 “집합 주택”/40대 건축가 5명,5개 구역 나눠 “개성 설계”/단지마다 독창적 공간 창출… 문화도시로/호소가와 전 총리 지사시절 「지자체 특색」 살린 작품 지난 8월15일 조선총독부에서 중앙청으로 또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그 역할이 속절 없이 바뀌기를 거듭하던 한 건물의 첨두를 잘라 버리는 의식이 거행되었다.해방 50주년을 기념하여 일제의 잔재를 상징적으로나마 끊어버리자는 취지에서였다.그 전에도 옛 청와대 건물을 헐어내고 새로 지은 적이 있고,현 서울시청사도 곧 새로 짓는다고 한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재임기간 중에 무언가 잊혀지지 않을 만한 업적을 남겨놓으려 한다.그런데 이런 업적이 무형의 것이기보다는 실제로 가서 보고 만질 수 있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그래서 인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가들은 기념비적인 건물을 지어놓고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간다.인도의 타지마할,중국의 자금성,영국의 트라팔가 광장 등이 옛날의 예라면,프랑스 파리의 퐁피두 센터,미국 애틀랜타의 카터 도서관 등이 오늘의 예가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좋은 예보다는 실패한 경우가 더 많다.박정희 대통령 시대에는 전통건축양식을 본떠 지어졌으나 박대통령이 좋아하던 계란색으로 온통 뒤덮여 그 성격이 모호해져 버린 현충사 등의 기념건물이 있었다.전두환 대통령시대는 아직도 빗물이 몇십군데에서나 새고 있다는 천안 독립기념관이나 공사중단의 상태로 볼성 사납게 남아있는 평화의 댐을 남겨 놓았다.그리고 노태우 대통령 시대는 부실공사의 대명사처럼 되어버린 주택 200만호 등의 대역사를 남겨놓았다.마지막으로 김영삼 대통령은 과거와의 차별화에 주력하는 때문인지 짓기보다는 헐기에 더욱 관심을 쏟는 듯하다. ○“양보다 질” 높이 평가 이웃나라 일본은 조금 다르다.몇년전 일본 총리를 지냈던 호소카와(세천호희)는 구마모토현(웅본현)지사로 재직 중이던 1988년,구마모토 아트 폴리스(ArtPolis)라는 도시설계 및 환경설계운동을 추진했다.이것의 근본 취지는 지방자치제의 특색을 살린 도시·건축문화를 추구하자는 것이었다.지역 내의 모든 개발행위가 궁극적으로는 그 지역의 문화적 자산이 되기 때문에 환경설계나 건축행위의 결과는 양보다는 질의 측면에서 평가받아야 하고,이를 통해 미래의 세대에게 자랑스런 문화적 도시환경을 물려주자는 것이었다. 이러한 지자체 위주의 도시건축운동은 매우 독창적인 도시공간의 창출에 크게 기여하고 있으며,실제는 구마모토시가 국제적인 문화도시로서의 면모를 일신해가는 기폭제가 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대한주택공사의 연구원들이 현지를 방문하고 돌아와 제출한 보고서를 보면,『구마모토 아트 폴리스의 작품으로 선정된 집합주택은 도시민 주거특질의 향상이라는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목표의 달성뿐만 아니라 지역내 주민들의 자긍심 향상이라는 비가시적 정주성을 고양하는 사회정책적인 효과를 나타내기도 한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구마모토 아트 폴리스 작품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신치(신지)주거단지를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신치 단지는 전체 면적이 약4만여평으로 1960년대에 지어진 7백여 가구의 저소득층 주거단지를재개발하여 시영 영구임대 아파트를 건립한 것이다.1991년에 입주가 시작되어 1995년 현재 1천여가구 4천명의 입주가 거의 완료된 상태다. ○지형맞게 높낮이 살려 이 단지는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데 이것을 일본의 대표적 건축가인 아라타이소자키(기기 신)가 마스터플랜을 수립하면서 5개의 존으로 나누었으며 각각의 존을 일본의 40대 건축가 5명이 하나씩 나누어 나름대로의 개성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아파트 건물군을 설계하였다. 단지 서쪽 끝의 A단지는 2,3층 아파트 건물이 중정을 둘러싸고 서 있고 그 양쪽 외곽으로 5층 건물 2동이 길게 배치되어 있다.건물의 외벽은 어두운 색을 주조로 하여 차분한 느낌이 들게 했으며 외부공간은 단지 원래 지형에 맞추어 높낮이를 그대로 살려 넓은 계단을 놓고 그 사이에 잔디밭과 얕은 인공연못을 설치하였다.그래서인지 전체적으로 아주 평화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어 우리네 시끌벅적한 아파트 단지와는 아주 대조적이다.게다가 과감하게 1층 부분을 빈 공간으로 처리하여 보행자의통로로서 또한 뜨거운 여름날 그늘진 휴식처로 쓸 수 있도록 한 점은 본받을만 하다. 두번째로 개발된 B단지는 1백50m가 넘는 긴 아파트 건물 2동이 넓은 보행자 도로를 사이에 두고 세워져 있다.이 건물 역시 어두운 색을 썼고 높이도 5층에 지나지 않는다.이 단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중앙의 보행자 도로인데 아무런 조경시설물 없이 콘크리트 바닥에 가로등만이 있는 이른바 미니멀리즘(minimalism)에 입각한 설계다.나름대로 저소득층의 아파트 단지 관리비를 아끼자거나 혹은 건축가의 철학에 따라 자연과 대비되는 철저한 인공의 삶터를 창출하자는 의도에서 이렇게 해 놓았을 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네 정서로는 영 이해할 수가 없는 그런 장소가 되고 말았다.건축이 형태만을 위한 추상예술이냐 아니면 삶을 위한 도구인가를 따지는 건축계의 끊임 없는 논쟁은 바로 이런 곳에서 출발하는 것일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낙천적인 삶을 표현 건물 입구부분의 계단실은 건물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로 돌출되어 있는데 1층부의 콘크리트 상자와그 위의 철골구조는 마치 교도소의 입구 같은 느낌이 들어 이 B단지만큼은 실패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여기서 실제로 살고 있는 주민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구마모토 아트 폴리스 작품에서 산다는 자긍심이 앞설지 혹은 이렇게 비인간적인 장소에서 사는 것을 불만족스러워 할지 한번쯤 제대로 연구해 볼 일이다. C단지의 아파트 역시 길게 들어서 있는 건물인데 밝은 색과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창문과 베란다를 배치하여 지루하지 않은 입면을 가지고 있다.획일적인 입면에 비해 거기 들어가 사는 사람들의 제각기 다르며 또한 복잡다난한 삶을 그대로 담고 있다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어 흥미롭다. D단지의 아파트는 다분히 유희적이다.검정색과 밝은 원색을 자유분방하게 쓰고 옥외 계단은 제멋대로 갖다 붙여놓은 듯하다.여기서는 다양하고 낙천적인 삶의 모습이 느껴진다.저소득층을 위한 시영 영구임대 주택이 흔히 가질 수 있는 부정적 이미지를 떨쳐버리려는 건축가의 노력이 돋보이기는 하나,너무나 유희적인 분위기가 연출되어 그의 의도가 반감되어 버리고 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E단지의 아파트는 저소득층 중에서 최상위층을 대상으로 한 건물로서,1층 주호에는 독립된 정원을 가질 수 있는 배려를 해 놓았다.역시 밝은 색과 다양한 형태를 적절히 조합하여 낙천적이고도 고급스러운 삶의 모습을 담으려 하고 있다. 저소득층의 임대 아파트 개발에 일본 최고의 건축가들을 초청하여 밝고 낙천적인 이미지를 창출해내고 있는 작품을 만들어 낸 구마모토현의 호소카와 지사는 결국 일본 총리까지 지내게 된다.무슨 기념관이다 무슨 박물관이다 하는 곳에 자신의 족적을 남기기 보다는 이렇듯 주민의 실제적 삶에 이바지하는 일을 남기는 것에 가치를 둔 한 정치가의 탁월한 견해가 부럽다.
  • 불 국립도서센터 내부공사 시작

    ◎미테랑 집권2기 마지막 사업… 98년 준공/센 강변 30㏊에 70억프랑 들여 건설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이 역점사업으로 건립을 추진했던 국립도서센터가 서서히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지난 3월 건축 공사를 끝낸데 이어 본격적인 내부시설 작업에 들어가 그 속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 국립도서센터는 미테랑 대통령이 집권2기 사업중 마지막 사업으로 설립을 결정,세계 최대의 전문 도서관으로 세운다는 계획아래 지난 90년 착공했다. 지난 5월 정권이 바뀐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새정부도 국립 도서센터 건립을 지속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지난 90년 미테랑 정부는 철도회사가 소유하고 있던 파리 13구 톨비악 센강변의 부지(30㏊)를 사들여 이가운데 도서관 자체에 7.5㏊나 되는 부지를 할당했다.지금까지 들어간 예산만도 50억프랑의 건축비에다 컴퓨터등 시설비용으로 20억프랑을 추가해 총 70억프랑(한화 약 1조2천6백억원)에 달한다. 프랑스 정부는 이 지역을 도서센터를 중심으로한 복합 문화·휴식단지로 조성한다는 계획아래 도서관 건물 4동을1㏊의 숲으로 둘러싸이게 지어 녹지대속의 도서관 인상을 짙게 드리우게 했다.도서관 자체는 열람실과 아틀리에,냉난방시설 및 기자재실등 3개 영역별로 나뉘어 있는데 그 구조가 철저히 전문 연구자들을 위해 설계됐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우선 열람실의 경우 1천4백석의 일반 열람석과 1천9백석의 전문 열람실로 구분되는데 국립도서관의 전문 열람석이 4백석에 불과한 점을 볼 때 전문 연구자들의 공간이 엄청나게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열람실은 일반 열람실이 부분 개가식으로 운영되는 반면 전문 열람실은 소장고 4동의 서적을 자동 운반하는 컨베이어 시스템이 가동돼 이용자가 앉은 자리에서 열람할 수 있도록 편리하게 돼있다.장서는 기존 국립도서관이 보유한 1천4백만권중 80% 가까운 1천1백만권을 이곳으로 이전해 보관하게 되며 현재의 국립도서관이 연도별로 장서를 보관하던 것을 전문 도서관이라는 기능에 맞춰 주제별로 분류해 보관하게 된다. 프랑스 문화성은 이 국립도서관을 유료로 운영하는 것과 함께 책 대출도 하지 않을 방침이다.이는 퐁피두센터 도서관을 무료 운영한 결과 이용자가 너무 많아 부작용이 컸다는 사실을 감안해 내린 결정이란게 도서센터측의 설명이다. 미테랑 대통령은 역대 그 어느 프랑스 대통령보다도 문화시설에 대한 투자를 강조했다.『훌륭한 건축물을 가진 국민만이 위대한 국민』이라고 말했던 미테랑은 국립 도서센터를 그 가시적인 공간으로 삼았다.오는 98년 준공까지는 앞으로 3년.프랑스가 자랑하는 퐁피두센터와 함께 센 강변의 새 명물로 등장할 도서센터가 파리시민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설지 궁금하다.
  • 프랑스(세계화 외국에선)

    ◎총예산의 1% 문화사업비 지출/121국 160곳에 「문화원」 운영/지자체마다 수준 높은 예술행사/메세나 활동에 1천여 기업참여 프랑스주재 한국문화원은 최근에 놀라운 일을 겪었다.퐁피두센터로부터 한국영화필름을 구해달라는 부탁을 받았기 때문이다. 퐁피두센터는 단순한 자문정도가 아니라 영화 5편을 지정했고 그중의 하나가 지난 61년 제작된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였다.한국인의 기억에서조차 희미한 작품을 프랑스인이 어떻게 알고 요구해오는지에 기가 질릴 지경이라는 것이다. 프랑스가 한국영화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은 퐁피두센터가 발간한 「한국영화」란 책자 때문이다.이 책은 일제하의 나운규시대에서부터 최근의 서편제까지 한국영화의 작품과 내용 및 주연배우 등을 거의 수록하고 있는 한국영화사다. 이 책은 미국 등 세계각국에서 구해갈 정도로 가장 잘 정리돼 있다는 것이다.「문화강국」 프랑스의 힘은 그들의 문화 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영화등 문화까지 파악하려는 노력에서 나온다. 프랑스는 세계최대의 문화수출국이자 수입국이다.외국의 이국적인 문화수입비용은 물론 자국의 문화수출비용까지 정부가 부담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수입은 문화부가 담당하고 수출은 외무부가 맡는 식으로 역할분담이 돼 있다.돈을 들여가면서까지 외국문화와 예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은 결국 장점만을 취해 프랑스문화를 살찌우려는 의도에서다. 이렇게 확대재생산되는 프랑스문화를 외국에 알리는 업무를 맡은 곳은 외무부 문화·과학·기술총국.외무부내에서 가장 큰 규모로 1년에 50억프랑(약7천5백억원)의 많은 예산을 쓰고 있다. 전세계 1백21개국 1백60곳에 나가 있는 프랑스문화원도 총국 소속이다.세계의 거의 모든 주요도시를 커버하는 셈이다.문화사업을 위해 프랑스가 쓰는 연간 예산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문화사업비를 전체예산의 0.78%에서 1%수준으로 늘리겠다고 공약했다.94년 국가예산이 1조4천억프랑(약2백21조원)인 점을 감안하면 문화예산은 앞으로 약 20조원정도로 늘어날 전망이다. 프랑스 전국의 크고 작은 지방자치단체가 개최하는 수준높은 예술행사도 프랑스의 문화대중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프랑스 전국에서는 전시회·음악회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세계문화중심지의 명성을 위한 지원은 중앙및 지방정부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민간기업차원에서도 활발하다.기업의 민간예술활동지원사업은 「메세나」활용을 통해 이루어진다. 카르티에 같은 고급디자인업체는 상설전시장을 마련해 유명화가의 작품을 전시한다.기업이미지제고와 장기적인 경영전략을 위해서다. 이런 메세나활동에 1천여 기업이 참여하고 있고 메세나비용만도 한해 13억프랑(약2천억원)을 웃돈다.메세나활동을 효과적으로 진행하기 위한 기획중개업체도 1백여개에 이른다. 이를테면 문화와 경제의 문경유착이 철저히 이뤄지고 있다.예술인은 창작활동을 하고,정부는 예술활동여건을 만들어주며,기업은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3위일체가 프랑스문화의 힘이다.
  • 현대 추상조각 선구자 브랑쿠지 회고전 파리서 성황

    ◎불 퐁피두센터·미 필라델피아 미술관 공동기획/75년 독 전시회이후 20년만에 “해외나들이”/출세작 「입맞춤」 등 유작 300여점 한자리에 현대 추상조각의 선구자 콘스탄틴 브랑쿠지(18 76∼19 57)의 회고전이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퐁피두센터와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의 공동기획으로 지난4월14일부터 시작된 이 전시회에는 하루 평균 5천여명의 관람객이 쇄도하고 있다.미술사적 중요성에 비해 작가 생전 대중적인 관심을 끌지 못했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루마니아 태생인 브랑쿠지는 28세에 프랑스로 건너가 로댕미술관에서 한달간 작품수업을 쌓았으나 「큰 나무밑에선 아무 것도 자랄 수가 없다」는 명언을 남기고 떠났다.이후 독창적인 조형기법을 창출해내 양감보다는 기하학적인 모양을 강조했다.인간 본래의 심성에 파고드는 단순하면서도 추상적인 형태를 추구했으며 19 60년대 미니멀리즘과 앙상한 뼈대만 남기는 것을 특징으로하는 현대조각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브랑쿠지는 돌·나무·플라스틱 등 손상되기쉬운 재료를 즐겨 사용하고 작품형태도 위태로운 구성을 주로 택한만큼 전시회 개최가 극히 드물었다.이번 전시회도 지난 75년 독일전시회 이후 20년만에 열리는 것이다. 「브랑쿠지 재평가」를 주제로 그의 사후 프랑스에서 처음 마련된 이 회고전은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그의 유작중 조각 1백점,드로잉 38점,사진 55점등 모두 3백여점을 한자리에 모아 주제별·제작 연도별로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브랑쿠지가 파리 생활을 시작할 무렵의 황금조각 「기도하는 사람」과 출세작이랄 수 있는 「입맞춤」,형태상의 단순성을 강조한 「잠자는 뮤즈」등 그의 대표작들이 망라됐고 그를 현대추상조각의 선구자로 만들어준 기하학적 형태의 추상조각 「공간의 새」등 대리석 새시리즈조각 대부분이 나와 있다.또한 루마니아 전통건물의 지붕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끝없는 기둥」이나 아프리카 토속조각의 영향이 엿보이는 「낯선 식물」「왕중왕」등 목조건물도 눈에 띈다.브랑쿠지가 숨을 거두며 퐁피두센터에 기증했던 작품들과 필라델피아 미술관을 비롯한 미국의 5개미술관,루마니아 미술관등의 소장품들이다. 퐁피두센터측은 대부분 깨지거나 파손되기 쉬운 브랑쿠지 작품들을 진동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작품마다 콘크리트 바닥을 만들어 전시할 뿐만 아니라 동시 입장객수를 6백명이하로 제한할 정도로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브랑쿠지 회고전은 오는 8월21일 퐁피두센터에서의 전시일정이 끝나고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으로 옮겨진다.
  • 9월 광주비엔날레/세계 젊은 작가의 실험정신 만난다

    ◎국제전 참여 작가 대부분 주목받는 30∼40대/각국의 예술조류·작품경향 한눈에 파악될듯 오는 9월20일부터 11월20일까지 광주 중외공원 문화벨트에서 열리는 제1회 광주비엔날레는 전세계 젊은 작가들의 자유분방한 사고와 다양한 실험정신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전망이다. 광주비엔날레 조직위원회(위원장 임영방)가 지난 25일 제2차 커미셔너회의(광주광역시 상황실)에서 선정·발표한 비엔날레 국제전 참가작가의 대부분이 각국에서 주목받고 있는 30∼40대 작가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 이번 비엔날레에 참여할 작가는 51개국 96명.이중 30대가 절반을 넘는 56%(49명),40대가 31%(30명)나 돼 각 지역의 새로운 예술조류를 보여주는 다양한 작품들을 출품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경계를 넘어」라는 주제 아래 선보일 작품들도 평면이나 입체보다 실험성이 강한 설치와 비디오·테크노아트,설치의 성격을 띤 사진 등 새로운 장르가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이는 세계 화단의 흐름을 반영하는 것으로 광주비엔날레가 국제 미술계의 주목을 끄는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비엔날레 참여작가 중에는 94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참여작가인 중국의 팡리 준,올해 휘트니비엔날레에 초대된 미국의 여류 설치작가 리르크리트 티라바니자,포토리얼리즘의 선두주자인 미국의 척 클로즈,조각에서 설치로 전환한 그리스의 조지 라파스 등 지명도 높은 작가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그러나 독일서 최근 각광받고 있는 조형예술가 카르스텐 횔러와 같이 작품성에 비해 아직 국제무대에 알려지지 않은 신진 작가들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미래미술의 흐름을 제시해 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횔러는 전시장 내에서 거위알을 부화시킨 뒤 2개월간 모형 헬리콥터로 나는 교육을 시켜 전시회 폐막과 함께 날려 보낸다는 독특한 작품을 구상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비엔날레 전시기획실장 이용우(고려대 교수)씨는 『젊은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새로운 조류가 창조해 가는 과정을 볼 수 있을 것』이라면서 『올해에는 베니스비엔날레 청년작가전인 아페르토전시회(35세 미만)가 열리지 않아 광주비엔날레가 그공백을 메우는 중요한 전시회로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서유럽지역 커미셔너 장 드 루아지씨는 『미래 화단을 이끌어갈 젊은 작가들이 대거 참여하는 광주비엔날레는 침체된 세계화단에 신선한 자극이 될 것』이라며 『참여작가들도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데 상당히 고무돼 있다』고 전했다. 이번 비엔날레의 작가선정은 ▲아시아(한국 제외)8개국=오광수(오광수·한국미술평론가협회장) ▲서유럽=장 드 루아지(퐁피두미술관 큐레이터) ▲동유럽=안다 로텐버그(바르샤바 국립현대미술관장) ▲미주=캐시 할브레이히(미네아폴리스 워커아트센터관장) ▲중동·아프리카=클라이브 애덤스(영국 테이트갤러리 전시자문위원) ▲남미=성완경(성완경·인하대교수) ▲한국·오세아니아=유홍준(영남대교수)씨 등이 맡았다.
  • 세번째 대권 도전끝 엘리제궁 입성/시라크 불 대통령 당선자의 역정

    ◎7선의원­총리 2회 “경력 화려”/35세 정계 입문… 친화력 돋보여 자크 시라크 대통령당선자(65)는 7전8기한 오뚝이였다.미테랑 대통령에게 두번씩이나 내리 맛본 좌절을 딛고 일어나 세번만에 대통령궁인 엘리제궁을 차지했다. 그는 영재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프랑스에서 보기 드문 정치인이다.영재만이 입학하는 국립행정학교(ENA)를 졸업했을 정도로 똑똑하면서도 결코 영특함을 내세운 적이 없다.항상 쾌활하고 소탈한 성격으로 솔직한 대화를 함으로써 누구든 친근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힘」을 갖고 있다. 바로 그 힘이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원동력인 것으로 정계에서는 평가한다.친근감의 이면에는 1백87㎝의 훤칠한 키와 당당한 풍모에서 풍기는 「만만치 않음」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지도자로서의 자질도 갖추고 있다. 그의 정치경력은 어느 정치인도 따를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ENA출신 가운데서도 극소수 상위성적자만이 갈 수 있는 감사원에 들어간 뒤 35살때 정계에 입문해 파리에서 내리 7선을 했다. 74년 농업장관으로입각한 지 얼마되지 않아 퐁피두 대통령이 사망하자 지스카르 대통령때부터 76년까지 2년동안 총리직을 지냈다.86년 미테랑 대통령때 총리직을 지낸 경력을 포함하면 총리직만 두번을 지냈다. 78년부터 18년째 파리시장직을 맡고 있고 74년부터 우파정당인 공화당연합(RPR)을 만들어 지난해 당수직을 알렝 쥐페 외무장관에게 넘겨줄 때까지 21년동안 당을 지켜왔다. 시라크 당선자는 하루 4∼5시간 수면을 취하면서 모자라는 잠은 승용차로 이동하는 도중 20분정도씩 보충할 정도로 하루 24시간을 쪼개 사용하는 부지런함을 가지고 있다.골프는 전혀 하지 않고 파리시청내에서 조깅을 하거나 체육관 운동을 하는 것이 유일한 건강유지방법이다. 재산은 부모의 고향인 코레즈지방과 파리시내에 주택 한채씩을 소유하고 있는등 7백만프랑(한화 약10억원)이 넘는 것으로 등록돼 있다.취미로는 프랑스인답게 목수일을 비롯해 집안의 자질구레한 수리등을 좋아하고 요리를 잘한다. 슬하에 두 딸을 두고 있으며 맏딸 로랑스는 출가해 평범한 가정주부이고 둘째딸 클로드는 시라크 개인사무실에서 아버지의 홍보업무를 맡고 있다. ◎현역 지방의회 의장… 대학때 시라크 만나/엘리제궁 새안주인 베르나데트는 누구 엘리제궁의 새 안주인 베르나데트 시라크 여사(62) 역시 여성정치인.시라크 당선자의 고향 남부 코레즈지방의 지방의원으로 지방의회의장과 부시장직을 맡고 있다. 묵묵히 집안일을 챙기면서도 시라크 당선자의 정치를 도와 1차투표 때는 코레즈에서 시라크의 지지표가 65%나 나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내성적이고 신중한 성격이라고 밝히면서 『퍼스트 레이디로서 상징적 역할만을 할 것』이라고 강조.파리의 명문집안 출신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성장한 그녀는 영재코스인 파리정치대학을 다녔으며 한 도서관에서 시라크 당선자와 처음 만났다. 파리시 병원재단회장·파리시청예술진흥협회장 등을 맡아 사회활동을 해왔다.고고학에 조예가 깊으며 취미는 모형동물수집.
  • 백남준/광주비엔날레 특별전/비디오·레이저·홀로그램·컴퓨터 동원

    ◎첨단과학­예술 접목 “테크노 아트쇼”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씨가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 비엔날레인 제1회 광주비엔날레(9월20일∼11월20일·광주 중외공원)의 특별전으로 마련된 「정보예술전」(Info Art)에서 획기적인 멀티비디오쇼를 펼친다. 백씨는 미국 IBM미술관 관장을 지낸 신디아 굿맨과 공동 디렉터를 맡아 비디오,TV,영화,레이저,컴퓨터,홀로그램 등 각종 미디어가 총동원된 테크노 아트의 세계를 선보인다.과학문명과 예술의 접목을 통해 예술의 첨단형식을 검증해본다는 취지에서 마련될 이 전시회에는 백씨 자신은 물론 백씨의 부인 구보다 시게코와 폴 개린,야마모토 게이코 등 한국과 일본·미국·프랑스 등 10개국의 비디오아트 작가 20여명이 참가한다. 이 전시회에는 특히 테크노 아트의 산실인 미국 뉴욕현대미술관·IBM미술관,독일 칼스루헤미술관,프랑스 퐁피두센터,이탈리아 밀라노 현대미술관,일본 쓰쿠바대학,캐나다 토론토현대미술관 등이 자료를 제공할 예정이어서 테크노아트의 최신 동향을 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백씨는 이번 전시회에서 「경계를 넘어」라는 광주비엔날레 주제에 걸맞게 동양과 서양,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며 고인돌과 비디오와의 만남을 시도하는 또 하나의 이색 작업도 계획중이다. 한편 특별전의 일환인 「예술과 역사」전도 관심을 끄는 행사중 하나.8억원의 예산이 책정된 이 전시회는 프랑스혁명,스페인혁명,남미학생운동,세계2차대전,남미농민운동 등 세계의 주요 사건과 광주 5.18 민중항쟁등 한국의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회화·조각 등의 작품 40여점을 선보인다.이 가운데는 6·25전쟁을 소재로 한 피카소의 「한국의 학살」외에 고야의 「5월3일」,다비드의 「마라의 죽음」 등 문제작과 조시 시걸,키퍼,한스 하케,바젤리츠 등 유명 생존작가의 작품도 상당수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 불 퐁피두 문화센터(걸작건축감상:14)

    ◎“예술은 즉흥적” 가건물처럼 축조/철제 구조물이 외벽 형성… 내부엔 기둥 없애/대형벽 1시간내 이동… 건물 해체·조립 가능/설계안 71개국서 6백81점 응모… 총공사비 1억불 파리 퐁피두센터 『언제 완공되는가?』 파리의 조르주 퐁피두 예술문화센터를 처음 찾는 이가 하는 말이다. 『벌써 보수공사를 해야만 하는가?』 두번째 방문에서 하는 말이다. 『?!』 다음부터는 입빠른 질문을 삼간다.조심스럽게 건물을 살필 뿐이다.혼란과 당혹은 미완성이거나 보수공사중인 느낌의 외관에서 유래한다.건물을 둘러싼 철제구조물은 가설공사용 비계로,정면 공중에 떠 있는 투명 튜브 에스컬레이터도 가설계단으로 오해받는다.마치 조립과 해체가 쉬운 곡마단의 가설극장인듯 「가설건물」을 이룬다.건축가의 의도도 예술무대가 갖는 가설성,즉흥성에 착안하여 이를 건물의 기본구상으로 삼은 것이니 만큼 관광객들의 즉흥적인 질문은 정곡을 찌른 평이랄 수 있다. 외벽과 지붕의 거대한 파이프라인과 환기탑은 정유공장 제분공장을 연상하게도 한다.공장의 외관이란 제조공정을 시각화한 결과라는 점에서 예술문화공장을 자처하는 이 센터의 본연의 임무와도 통한다.투명한 유리벽,노출된 뼈대와 내장기관(동선과 설비공간),거대동물의 관절과 같은 기둥과 트러스보는 자연사박물관의 조립복원된 화석공룡군이 주는 구조미와 통한다. ○문예진흥 담당기관 퐁피두센터는 예술문화진흥을 담당하는 공공기관으로 1975년 퐁피두대통령에 의해 세워졌는데 실은 1960년대말 앙드레 말로가 제기했던 「위대한 프랑스의 문화적 재창조」에서 유래한다.국립현대미술관,산업미술센터,국립정보도서관,음악음향연구소의 4개 전문영역으로 구성되며 모두 이 건물에 있다.「보부르」란 애칭으로도 불리는 이 건물은 기관이 발족되기 전인 1971년에 벌써 설계안이 공모되어 총공사비 1억달러를 들여 1977년에 완공되었다. 『퐁피두센터를 설계하면서 우리들이 원했던 것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를 만드는 것이었다.이곳은 문화의 중심지이지만 문화를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냥 드나들 수 있고 여러가지 활동이 진행되는 장소가되는 것을 바랐다』 퐁피두센터를 설계한 리처드 로저스는 이렇게 설계구상을 밝힌바 있다. 건물이 자리한 곳은 파리의 전형적 17세기 석조건물지구이며,터의 절반은 광장으로 할애되었다.야외극장 겸 광장은 건물을 향한 내리경사로 방향성과 친절한 초대의 인상을 풍기면서 에스컬레이터와 현관으로 안내한다.철과 유리의 가설무대같은 건물은 획일에 가까운 주변 고전건물군과 극적인 대조를 이루는데 설계자는 그렇다 치고 이를 뽑은 심사위원들의 안목과 배짱이 더 돋보이는 부분이다.1만㎡에 달하는 지상5층 지하4층에는 4개 전문영역 공간외에도 각종 편의시설이 있고 옥상층의 전망대,레스토랑,실험극장,간이전시장은 밤늦게까지 개방되어 항상 활력을 뿜는다.맑은날 광장 모퉁이에서는 차력사와 마술사의 연기를 보며 쉽사리 이탈리아영화 「길」의 주인공 잠파노와 젤소미나의 세계로 빠지게 된다.차력사의 거리무대부터 세계 최고수준의 음향실험실까지 포용하는 이곳은 중첩이 많을수록 더 많은 흥미와 대중의 참여가 가능하다는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건물설계안은 현상공모에 참가한 71개국 6백81개 계획안 중에서 뽑은 것이다.건축가와 미술관 실무자로 구성된 국제심사위원회는 렌조 피아노­리처드 로저스­아럽(이탈리아,영국,덴마크계)의 협동안을 당선작으로 지명하였다. 정부당국은 설계와 시공의 질을 위하여 설계감리(설계대로 시공되는가를 확인하는 임무),건설에서의 자금운용과 공기에 대한 전권을 건축가에게 부여하는 특별계약을 체결하였다.자금은 12%,공기는 2개월의 여유만을 허락하였는데 준공시에 이 모두는 지켜졌고 이후 설계시스템 개정의 계기로 작용하였다. ○독서 조립 주철 생산 설계는 「변화의 수용」과 「가능성의 확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이를 위하여 ①내부에서 기둥과 고정벽을 제거하였고 ②계단과 설비공간을 변두리에 조립하였고 ③가동칸막이시스템을 채택하였다.이렇게 하여 변화는 평면만이 아닌 입면과 단면에서도 가능하였다.사무실칸막이는 수분만에,미술관의 대형벽은 1시간에,방화벽은 하루만에 모터로 이동시킬 수 있다.정면 모습도 쉽게 바꿀 수 있으며,심지어는 건물전체를 해체했다가 다시 조립하는 것도 가능하다.더 복잡미묘한 가능성은 음악음향연구소에 적용되었다.지하에 배치된 스튜디오 겸 콘서트홀은 부피와 음향조건을 변경하여 각종 실험을 할 수 있다. 건물은 건축이외의 분야에서도 큰 아이디어를 얻고 있다.뼈대는 19세기 게르버식교량에서 힌트를 얻었는데,산업혁명기의 주철구조 현수교량이 현대의 최신건물에 활용된 것이다.부재의 표준화,철재량의 경감,물량의 적기생산 등을 위해서는 조선과 항공산업에서의 경험을 빌렸다.5년으로 제한된 공사기간에 맞추는데는 조립식구조가 절대적 도움을 주었으며,공정은 지하와 지상에서 동시에 착수되었다. 조립용 주철은 독일의 크루프공장(1차세계대전시 독일의 거포 제작사)에 의뢰함으로써 프랑스 국내에 큰 논쟁도 일으켰고 특별허가를 내주었던 퐁피두대통령도 난처한 지경에 이르기까지 했었다.공장에서의 시험조립,수송,현장도착과 곧 이어 행해지는 조립은 거창한 의식이었다.심야에 초대형 트러스(길이 45m,높이 3m,무게 67t)는 트럭 2대가 양끝을 받들고 수송하는데 대륙간 탄도미사일의 운반과 맞먹는 작전이었다.지붕과 동축입면에 노출된 설비용 배관은 요란한 형태와 색채를 갖는데,보수 증설 등 「가능성의 확대」원칙과 프랑스 표준색채규정을 따른 결과이다.공기를 다루는 공기조화용 덕트파이프는 푸른색이다!(동일한 원리로 물과 전기는 각기 초록과 노랑이다) ○하루 2만여명 찾아 신기술개발은 그러나 파리소방당국의 까다로운 규정을 충족시키는 데서는 기대이하이었고 많은 에너지를 소진하게 하였다.트러스는 둔중해 보이는데 그것은 2시간 내화를 위해 철구조를 두껍게 단열피복하고 알루미늄 캐스팅을 덧씌운 때문이다.더 복잡한 것은 동축입면이다.전면이 스플링클러 소화시설이 된 것은 물론,모든 기계설비 장치는 소요기능에 따라 반시간,1시간,3시간별 내화등급처리가 되어야 했다.건물은 법제,기술,정치,경제 상황과 유리될 수는 없으며,설계는 이 제약조건을 흡수하고 긍정적 요소로 변환시켜야 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어색하게 여겨지는 부분이다. 매일 2만5천명 이상이 이곳을 찾는 데당초 계획보다 2만명 초과한 것이며,루브르박물관과 에펠탑 방문자를 합한 것보다 많다.방문자 폭증에 따른 시설조정은 당초부터 건물에 부여된 「가능성의 확보」때문에 아주 쉬운 일이었다.준공 10여년만에 영화관이 지하에 신설되었고 화장실캡슐이 주변에 더 끼워졌는데 조립식으로 간단히 해결되었다.출입구는 13개에서 2개로 줄이고 대기줄을 길게 하였다.장차 필요하다면 공중에스컬레이터도 쉽게 끼워질 수 있다.관리요원도 2배로 늘어나 사무실은 인근 건물로 이사해 나갈 것이다.이러한 것은 예기했거나 아니거나간에 건물 「보부르」가 사람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첫 반응이며,변화와 불확정성이 강한 현대에 있어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다.
  • 한지/“수명1천년”…가장좋은 지공예품 소재(한국문화 세계의길:8)

    ◎인형·판화용지·옷감으로 이미 세계적 호평/양산체제 갖추고 「비닐대체 연구」 뒤따라야 「지천년 마오백년」(지천년 마오백년).「종이는 1천년,헝겊은 오백년」이란 뜻으로 우리 한지의 긴 수명을 강조할때 흔히 쓰는 말이다.불국사 석가탑에서 나온 무구정광다라니경(국보126호)이 종이수명 1천3백여년을 누리고 있고 신라때의 대방광불화엄경(국보196호 호암미술관 소장)의 지수가 올해 1천2백41세이고 보면 이 말이 허튼 소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닥종이를 원료로 한 우리 한지의 우수성은 비단 그 수명에서 뿐만 아니라 질에 있어서도 예부터 호평을 받아왔다.일본 서지학자 야기는 『신라의 백추지(한지)는 다른 어떤 종이와도 비교할 수 없을만큼 훌륭한 종이로 중국에서까지도 천하제일이라고 하여 소중히 여겼다』고 기록했다.고려지,즉 한지는 최상품의 주요 조공품이었고 17세기 중국의 기술서 「천공개물」은 『조선의 백추지는 어떻게 만드는지 모르겠다』며 감탄하고 있다. ○옛부터 천하제일 명성 오늘의 한지도 세계적 명성을 지니고 있다.재독작가 김영희씨가 오래전부터 유럽에서 우리 고유의 닥종이 인형과 한지작업을 통해 인기를 누리고 있고 파리에서 활동중인 패션디자이너 이미금씨는 한지를 이용한 의상을 선보여 현지인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최근엔 파리의 화랑가에서 한지가 미술작가들의 인기소재로 등장하고 있기도 하다.한국국제교류재단이 한국문화를 해외에 본격적으로 소개하기 위해 최근 펴낸 「KOREAN CULTURAL HERITAGE」(한국의 문화유산)시리즈 첫권도 한지를 우수한 문화품목으로 실었다.지난해 5월 손주환 당시 재단이사장이 기획,출간해 세계 1백36개국의 도서관등 관련기관에 무료배포할 이 학술시리즈 첫권에서는 한지의 특징과 제작과정,이용분야를 알기 쉽게 정리해 소개하고 있다. 한편 재독작가 김영희씨의 닥종이인형은 정제가 덜된 거친 한지인 닥종이를 이용한 손작업을 통해 한국인과 한국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전달하는 작품.지난 81년 서독 뮌헨서의 첫 해외전시회이후 독일전역과 스위스,네덜란드,프랑스의 민간·정부초청 전시회를 꾸준히 가져오며 현지 언론과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또 이미금씨는 지난해 4월 파리근교 소나무회 전시장에서 전통 한복의 선과 색감을 서양의상에 응용한 한지패션쇼를 열어 패션의 새 영역을 열었다는 평을 얻었다. ○일서 인쇄지 이용 계획 그러나 세계시장을 대상으로 한 한지의 상품화는 아직 부진한 형편이다.미술전문서적 출판사인 API가 조선시대 민화를 한지에 판화로 찍어낸 판본민화를 세계시장에 내놓은게 그나마 한지 상품화의 한 예일 정도이다.지난 93년 전통 닥종이를 서른세겹 겹친 「구아리랑」이란 판화지의 실용특허를 받아낸 API는 지금까지 모두 34종의 판본민화를 개발해냈다.지난해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박람회에 판본민화를 선보여 큰 호응을 얻었던 API는 이 판본민화를 본격적으로 세계시장에 내놓기 위해 영국,오스트렐리아등지에서 시장조사중이다. ○보석함·장롱 제조 가능 현재 세계시장에서는 종이를 이용한 각국의 고유상품들이 활발히 유통되고 있어 우리도 전통 한지를 이용한 문화상품의 세계화를 위해 적극적인 노력이 시급한 실정이다.멕시코의 경우고유의 종이에 인디언 문양을 넣은 복제품을 각국 백화점에 내놓아 여행객들의 기호품으로 자리잡게 했고 가까운 일본만하더라도 한지원료를 가공해 다양한 상품을 만들어 팔고 있어 한지의 종주국인 우리의 체면을 깎고 있다.특히 일본의 경우 수명이 긴 한지를 도서등 인쇄용 재료로 이용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어 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이 시급한 실정이다. 국내에서는 편지지,편지봉투,포장지,부채,가구등 한지 특유의 질감과 빛깔을 살린 상품들이 다양하게 유통되고 있는데 이들 상품의 세계화를 모색해볼 만하다.또한 상품화는 되지 않았지만 작품단계에 머물러 있는 오색한지공예나 지승공예도 세계화할 수 있는 문화상품이다.한지를 덧붙여 색채를 넣는 오색한지공예의 경우 내구성에 특유의 자연스런 색채감과 질감까지 갖추고 있어 상품화가 될 경우 외국인들에게 큰 인기를 얻을 수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특히 한지를 꼬아 만드는 지승공예의 경우 보석함,장롱등 가구형태로 만들어낼 수 있다.지공예의 장점은 단단함인데 한지에 식물성기름을발라 만든 갑옷은 화살도 뚫지 못할 정도여서 조선시대 한지는 갑옷,화살통,비옷,우산등에 쓰여졌다. 한지의 이같은 특성에 착안,과학기술처는 지난해 10월부터 공장시설을 통한 우수 한지의 대량생산을 위해 과학적으로 한지 분석작업을 벌이고 있으며 통상산업부는 최근 김치·도자기등과 함께 한지를 수출용 전통상품 유망 14개 품목에 포함시켜 집중육성하기로 했다. ○산업화 적극 지원해야 그러나 전문가들은 한지를 세계적 문화상품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보다 과학적인 연구와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임영주 전통공예관 관장은 『한지를 전문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연구소와 한지공단을 정부차원에서 설립해야 한다』고 말했다.서양의 종이가 1백년을 견디지 못하고 훼손되는데 비해 한지의 수명은 1천년 이상이고 또 비닐등을 대체해 쓸 경우 공해요인을 없앨 수 있는 장점이 있는만큼 과학적 응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상기호 오색한지공예연구회장은 『현재 개인적 작업단계에 머물러 있는 지공예나 지승공예작가들이 조직적으로 산업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경우 한지의 문화상품화와 세계시장 진출은 쉽게 이루어 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통한지 어떻게 만드나/닥풀·섬유소에 풀어 종이액 걸러내/닥나무 속껍질 가려 양잿물에 삶아 한지의 특장은 무엇보다도 직접 손으로 만들어가는 제작과정의 정성에서 나온다.베어낸 닥나무를 다발로 묶어 가마솥에 세워 놓고 가마니로 둘러싼 뒤 물을 붓고 불을 때서 삶는다.겉껍질이 벗겨질 정도로 삶아지면 꺼내서 껍질을 벗겨 말린다.건조된 껍질을 물에 불려 발로 밟은 뒤 하얀 내피부분만 가려낸다.이 내피를 양잿물 섞인 끓는 물 속에서 3시간 이상 삶아 물을 짜낸다.여기에 닥풀뿌리를 으깨서 짜낸 닥풀과 섬유화된 재료를 넣고 잘 저어서 고루 풀리게 한 다음 발에 종이액을 걸러서 떠낸다.이런 과정을 거쳐 흰 빛의 통기성 강하고 질긴 한지가 나오는 것이다. 현재 이런 공정을 거쳐 한지를 만들어내는 공방은 전국에 걸쳐 1백여개.전주한지나 원주한지 등 수공업공장 형태의 한지제작사는 손꼽을 정도이고 대부분이 영세성을면치 못한 채 근근히 맥을 잇고 있는 형편이다.한지 전문 기술인들이 점차 줄어 들어 제대로 된 한지를 만드는 공방이 사라지고 있는 추세여서 보존 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재불 패션디자이너 이미금씨 소견/질감좋고 색상고와 외국인 선호/“한지상품 상설전시관 아쉽다” 『각국의 백화점 전시장 등 대중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 한지와 함께 한지로 만든 상품을 상설 전시해야합니다』 재불 패션디자이너 이미금씨(35)는 우수한 한지를 세계시장에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을 안타까워했다. 『지난해 파리근교의 소나무회 전시장에서 한지 의상전시회를 했을 때 외국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좋아서 저 자신도 놀랐습니다.전시가 끝나고 나서 의류업계와 컬렉터들로부터 상품화 제휴가 몰려들어 곤혹스러울 정도였으니까요』 덕성여대 섬유과를 졸업하고 현재 파리 8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이씨는 파리장식의상미술학교 재학 중이던 85년부터 퐁피두센터에서 한지를 이용한 의상을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그는 한지가 외국인들의 눈을 끄는 이유를자연적인 소재와 색채를 주로 이용하게 된 패션계의 최근 추세 말고도 한지가 갖고있는 고유의 장점 때문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세계 각국의 종이를 모두 소재로 써봤는데 닥종이를 이용한 한지 만큼 자연스런 멋을 내는 소재를 보지 못했어요.한지는 견고하고 자체의 질감이 좋을 뿐만 아니라 염색할 때 나타나는 색상이 정확하고 산뜻해 외국의 작가들도 아주 좋아해요』 서울에 올 때마다 인사동 골목을 뒤져 각종 닥종이를 구입해간다는 이씨는 파리의 화랑과 외국작가로부터 한지 구입요령을 알려달라는 주문을 적지않게 받는다고 밝혔다. 종이작업 작가들의 전시회로 매년 파리에서 열리는 세계판화미술제(SAGA)에는 종이를 판매하는 회사들도 함께 참여하는 만큼 정부 지원으로 한지를 상설 전시하는 공간을 마련한다면 그 파급효과가 기대 이상으로 클 것이라는 귀띔도 했다.
  • 유럽의 새모색/「카리스마」보다「융합의 리더」찾는다(신지도자론:3)

    ◎“발전적 EU건설” 외교력을 제일 덕목으로/불/좌파 개혁실패에 민의 우파 선호/독/화학적 민족통합·경제성장 기대/영/강력개혁 대처 영국병 치유 업적 21세기의 유럽국가들은 전반적으로 민족주의 성향이 강해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프랑스의 한 국제문제연구소는 『민족주의 강화로 21세기가 반드시 장미빛으로 전개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으며 미국의 석학 새뮤얼 헌팅턴은 『앞으로 민족문화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민족과 문화에 대한 비전이 미래 지도자의 중요한 덕목의 하나로 떠오를 것이라는 얘기다. 그와 함께 현재 경제적 통합의 중간지점까지 진전된 유럽연합의 앞날을 위해서는 주변 국가들과의 협조 관계를 부드럽게 유지해 나갈 수 있는 자질도 요구된다고 보고 있다. 선택은 국민에게 달렸다.시대 변화에 따라 국민이 원하는 국가지도자상은 늘 바뀌어 왔다.유럽 여러나라 지도자들의 진퇴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프랑스 국민은 지난 58년 드 골장군을 막강한 권한까지 주면서 대통령으로 택했다.그러나 11년 뒤에는 그에게 심한 거부반응을 보여 대통령직을 그만두게 했다.프랑스는 2차 대전이 끝난뒤 정치·사회적인 불안이 계속되는 데다 당시 식민지 알제리에 주둔하던 군부의 쿠데타조짐까지 겹친 위기상황을 맞자 초야에 묻혀 있던 드 골장군을 불렀다.국민들은 대통령에게 외교·국방·내치에 방대한 권한을 부여하는 5공화국 헌법을 통과시켜주면서 프랑스의 영광을 재현해주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드 골대통령은 카리스마적인 국가경영으로 전반적인 안정기를 이룩하지만 60년대말 새로운 지도자를 요구하는 바람이 불어닥친다.국제적으로는 미국의 월남전 참전에 대한 젊은층의 반전 목소리가 높게 일고 있었고 국내적으로 2.7%라는 당시로서는 높은 실업문제와 학교시설 개선문제 해결등이 요구됐다. 이런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조르주 퐁피두,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이 등장해 경제적 안정을 이루지만 변화에 대한 국민적 욕구를 충족시키지는 못했던 것같다.81년 선거에서 예상을 뒤엎고 프랑수아 미테랑의 사회당 정권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미테랑 대통령에게 가히 혁명적인 개혁을 기대했다.사회당 정권의 출범에 겁을 먹은 일부 부유층은 해외로 도피했을 정도였다.하지만 이상적인 사회주의 정책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 점차 퇴색했고 실패한 경제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경고」는 두번의 좌우 동거정부에서 나타난다. 프랑스는 오는 5월 대통령선거에서 21세기 지도자를 선출할 예정인데 그동안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자크 들로르 전유럽연합 집행위원장과 에두아르 발라뒤르 총리의 인기가 높았다.이들은 정치인 출신이 아닌 행정관료에다 경제전문가라는 특징을 갖고 있어 프랑스의 미래 지도자상을 읽을수 있게 한다. 사회당 집권 14년에 대한 염증에다 사회당 후보로 유력시되던 들로르위원장의 불출마 선언으로 국민의 선택은 우파로 결정될 것 같다.새로운 지도자의 자질로는 3백만명을 넘어선 실업자 문제 해결책,유럽통합(EU) 비전,외교력의 균형이 새롭게 요구되고 있다. 프랑스가 비교적 폭넓은 지도자의 변화를 추구했던데 비해 이웃나라 독일은 경제및 통일지도자를 한결같이 요구해왔다고 할수 있다.아데나워 총리(재임 49∼63년)은 패전국이던 서독에 완전한 주권을 회복케 하는 강력한 지도자로 적합했고 에르하르트 총리(63∼66년)는 경제부흥을 위한 경제전문가로 등장했다. 경제적인 기적을 이룬 독일국민들이 통일이라는 정치적인 기적을 만들어내기 위해 선택한 지도자는 빌리 브란트(66∼74년),헬무트 슈미트(74∼82년),헬무트 콜총리(82년∼)등으로 이어진다.특히 89년 역사적인 통일을 이룬 콜 총리의 신속한 상황판단과 기민성은 새시대의 지도자 덕목으로 지적된다. 콜 총리는 85년 옛소련의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등장해 신데탕트시대를 맞이하자 이를 적극 활용해 89년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방독초청으로 2차대전의 남은 숙제를 해결한다.나아가 그는 동서독과 4대전승국간 회담을 통해 독일통일의 열매를 거둔다. 콜 총리는 지난해 10월 선거에서 국민으로부터 거듭 지지를 받아 16년동안 최장수 총리를 할 수 있게 됐지만 국민이 요구하는 그의 활약상은 분명 바뀌고 있다.이제는 통일이후 문제해결과 화학적인 통합,경제성장을해야 한다는 쪽이다. 종전이후 영국에 나타난 현상은 국영기업의 비효율성,저조한 생산력,전국을 마비시킬 수 있는 호전적인 노동조합등 이른바 영국병의 만연이었다.대영제국의 광영은 커녕 유럽내 2류국가로 전락할 상황에서 국민이 요구한 것은 강력한 지도력이었다. 그래서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여사가 79년 등장해 국영기업을 민영화하고 노조의 파업에 강력히 대응하는등 개혁조치를 취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한다.대처 총리가 11년만에 다우닝가를 내준 것은 주민세 추진같은 비타협적인 강경함에 국민들이 반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존 메이저 총리는 합의를 중시하는 온건정책을 펴면서 북아일랜드와의 휴전같은 내치문제로 눈을 돌려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 이제 유럽은 카리스마에 의한 강력한 지도력을 지닌 지도자들이 아닌 합의와 조화를 추구하는 지도자들의 시대가 되고 있다. 결국,지도자란 시대의 요구가 무엇인지를 읽고 목표를 설정하며 국민적 합의를 끌어내 그 목표를 달성케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있다.
  • 최초의 영화사/불파테 설립 98돌 기념전/파리 퐁피두 센터서 내년

    3월까지 열려/초기 영사기 등 3천점 전시/희귀영화 3백편 상영… 불 영화사 한눈에 세계에서 가장 먼저 영화를 산업화한 인물은 프랑스인 샤를 파테다.파테는 꼭 1백년전인 1894년 파리 근교 뱅센 숲근처의 전시장에서 미국의 에디슨이 만든 축음기를 처음 보고 당시 7백프랑에 구입한다. 파테는 다음해 런던에서 영사기를 산지 1년만인 1896년 동생과 함께 파리의 리슐리에 거리에 영화제작사인 파테회사를 차리고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98년동안의 프랑스 영화뿐 아니라 세계 영화산업의 역사가 그때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프랑스 언론들이 파테 개인을 영화계의 「최초의 황제」라고 부르기에 서슴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이런 파테 영화전시회가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지난달말부터 시작해 내년3월6일까지 열리고 있다. 퐁피두센터의 중앙에 자리잡은 전시장에는 이 회사의 상징인 수탉 로고와 함께 초기단계부터 2차대전때까지의 영화제작 기구 3천점이 전시돼 있다.이곳에서 볼 수 있는 희귀영화만도 3백편. ○백년전 축음기 선봬 무성영화시대초기에 실물 대신 그림을 그린뒤 돋보기로 확대해 촬영하던 당시의 기구와 모습들이 전시장 입구에 자리잡고 있다.더 들어가다 보면 목소리를 전해주던 1백년전의 축음기 10여종도 그 역사를 뽐내고 있다. 전시장내의 특별관에는 1912년 가정에서 볼 수 있도록 개발된 미니 영사기로 가로30㎝,세로 20㎝의 작은 화면에는 3분짜리 단편 희극영화를 볼 수 있다.텔레비전이나 비디오의 시초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던 셈이다. 프랑스 최초의 장편영화인 「달갑지 않은 사건들」(1908년)이나 영화예술의 정상으로 꼽히던 「귀즈공작의 암살」(1909년)등의 영화선전 포스터는 시대별로 전시돼 있다.「늑대와 함께 춤을」이나 「연인」,「마르고 왕비」등 최근의 포스터도 함께 나붙어 있어 포스터만 보고 있더라도 프랑스 영화사를 알수 있다. 파테가 자랑하는 것은 뉴스영화인 파테 주르날.한국의 대한뉴스에 해당하는 파테 주르날은 오래전 극장에서 사라졌지만 1908년부터의 프랑스 사회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한다.무엇보다 파테는 뉴스영화를 만들기 위해 아시아지역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국에 처음으로 카메라기자를 포함한 특파원을 내보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1백주년 기념전도 전시장 한쪽에서는 1910년대 뉴욕·모스크바·빈·런던·캘커타·싱가포르·도쿄등에 지사를 설립하면서 만든 계약서도 나란히 자리잡고 있어 당시 파테의 위력을 실감 할 수 있다.파테는 1차,2차대전을 겪으면서 황혼기에 접어들어 이탈리아인의 손에 넘어가기도 하는등 그동안 명맥만 겨우 유지해왔다. 그러나 파테는 지난8월 프랑스 재력가인 제롬 세이두씨가 인수한뒤 대규모 투자를 하는등 새로운 변신을 꾀하고 있다.2년뒤의 1백주년을 맞아 과거의 영광을 되살린다는 부흥운동을 펼치고 있다.
  • 파리/아름다운 도시(아랍서 지중해까지:24·끝)

    ◎물고기 노니는 센강… 곳곳 공원·분수/거리엔 샹송 대신 팝송물결… 값싼 관광상품 판쳐 아쉬움 파리라는 도시의 패션을 말할때 내게는 우선 창이 떠오른다.파리의 창은 참 아름답다.「고대 그리스나 로마시대에 사는 것은 이것으로 충분하다.그 낡은 세계에 질린다」라고 시인 아폴리네르가 말했다고 하던가.거리도 다리도 건물도 모두 돌로 된 파리에 철제로 된 에펠탑이 처음 세워졌을때 파리 시민들의 놀라움을 상상할 수 있을 것 같다.에펠탑은 센강과 함께 파리의 영원한 상징이리라. 파리 어느 곳에서도 그 에펠탑과 센강을 창을 통해 내다 볼 수 있을 것 같다.그것은 에펠탑이나 센강이 그 형상으로서가 아니라 어떤 영원 불변함에 대한 희구가 의식화 된 것으로,파리 사람들은 그것을 자신의 삶 속에 받아들여 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이다.마치 사물을 슬쩍 바라보고 그리는 인상주의 화법으로서가 아니라 사물의 더 영원한 측면을 그리려는 입체주의와 같은 방식으로 바라본다고 할까. 여하튼 모든 창 위로 센강이 흐르고 에펠탑이 서있는 영상을 이방인인 나는 수없이 보았다. ○채석장 자리 공원조성 창이 면적으로 뚫려있지 않고 어떤 심성으로 혹은 인생에 대한 체험으로 뚫려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그렇게 느끼게하는 이 도시에 대해 나는 여러번 감사하였다. 공원 또한 몹시 아름답다. 파리는 무엇이든 없어지는 장소는 공원으로 만든다고 한다.시테 기숙사 앞에 있는 몽수리공원은 채석장이 폐쇄될때 만들어졌다고 한다.공원에는 훌륭하게 살다간 사람들의 동상이 서있고,나무와 잔디,꽃밭,호수,호수위에 백조나 물오리 그리고 공원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가하면 거리 곳곳에는 회전목마와 조각공원과 광장이 있다. 라데팡스 광장에는 미로의 대형조각을 위시하여 40여개의 조각이 놓여있고,풍피두센터앞 스트라빈스키의 조각분수 광장에는 고철이나 페품등을 이용해서 전기로 움직이게 해놓은 조각물이 매우 원색적으로 천진함과 환상적인 감을 자아내며 놓여있다. 지하철을 잘못 탄 탓으로 헤매여 겨우 찾아간 퐁피두 센터에서,이미 지쳐버려 그림을 볼 힘은 없을것 같기에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근처를 어슬렁거리던 중 발견한 이 조각 분수가 얼마나 기쁨을 주고 유년의 기억 속으로 끌어들이던지. 이런 도시 곳곳에 있는 창,공원,조각분수,회전목마 같은 것들이 도시생활의 질과 격을 한층 높여주고 있는것 같다. ○상하수도 시설 완벽 파리는 달걀모양의 형태를 하고있고 서울의 반밖에 안되는 크기이며 동과 서,양쪽에 커다란 불로뉴 숲과 벵센느 숲이 있어 도시의 공기를 그런대로 신선하게 유지시켜주고 있다고 한다.또 「장발장」이라는 영화에서 보았듯이 상하수도 시설이 아주 잘되어 있는 것도 파리의 도시패션에 든든한 밑받침을 하고 있는것 같다. 겉으로 보아서는 물이 맑아 보이지 않는 센강에도 그 속에 커다란 고기들이 싱싱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백년이 넘은 지하철은 굳건하고,지하철의 질서 역시 잘 지켜지고 있다.에스커레이터를 탈 때 사람들은 오른 쪽으로 붙어 서는데 그것은 빨리 걸어서 올라가려고 하는 사람들을 위한 질서라고 한다.버스표와 지하철 표가 같은 것도 시민들에 대한 정부의 세심한 배려로 느껴진다. 밤이 깊을수록 불야성인 거리에 여자 혼자 다녀도 안전하다고 하며 실제로 한번도 위협을 느껴보지 못했다.지하철 앞에 젊은 순경이 서있다가 기타를 들고 나가려는 거리의 악사를 제지하는 모습을 꼭 한번 보았다. 또한 시각환경을 지배하는 광고들을 지하철이나 공고판에서 볼 수 있는데 여행사 광고가 가장 눈에 뜨이고 백화점 광고도 많이 붙어있다.다양한 문화프로그램도 여기저기 붙어있다.그러나 무수한 그것들이 시끄럽지 않게 보여지는 것은 그 내용이 고도의 미감과 어떤 설득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밤부터 시작하여 새벽까지 세계각국의 광고만을 상영해주는 장소도 있다고 한다.밤새워 그런 필름을 돌릴때 파리란 정말 재미있는 곳이었다. 파리시민들은 TV로 많이 배운다는 얘기를 들었다. TV에 문화,사회 관련 프로가 많고 최고 인기장수 프로가 문학,출판 관련의 대담프로라는 것 또한 파리라는 도시패션에 집어넣고 싶다. 패션이라 하면 우리는 흔히 사람들의 옷차림을 떠올릴 것이다.그리고 옷차림에는 유행이 있고 그 유행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것을 입는 일반 시민들이 있을 것이다. ○서양문화 깊게 물들어 크리스티앙 디오르,이브 생 로랑,샤넬등의 그 세계적인 상표가 다 파리의 것이기에 아주 화려하고 앞서가는 어떤 분위기를 기대할 것이다.그러나 내가 본 파리에는 그런 것들이 있는 곳은 어느 다른 동네인가 싶게 특기할만하게 없었다.상점의 진열이나 사람들의 옷차림,표정이 세련되었다는 정도 밖에는­. 아주 개성있는 문턱을 넘어설때 소름이 돋으며 이 안에 뭔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갖게하는 상점을 의외에도 파리에서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내 눈이 발견 못해서인가,어디서나 관광객을 의식하여 만들어 내놓은 상품들과 마주 대하게 되었고,그런 물건들에서는 진정한 무엇과 만날 수 없다는 아쉬움이 일었다. 샹젤리제거리나 생 미셀거리,오페라거리,또 새로운 상점가로 등장했다는 퐁피두 센터 근처 포럼 레알지구의 거대한 쇼핑센터 역시 마찬가지였으며 백화점 역시 그러했다. ○이젠 뉴욕패션에 밀려 포럼 레알지구의 쇼핑센터에서는 스피커를 통해「스위트 캐롤라인」이 은은히 들려왔다. 베르사유의 한 카페 앞에 있는 회전목마에서는 「우든 핫」에 맞추어 목마가 돌아갔다.맥도널드에서도 팝송이 흘렀고 몽마르트르 카페의 피아니스트도 팝송을 연주했다.우리가 듣고 싶어하는 샹송은 그어디에서도 쉽게 들을 수 없었다.그러고 보면 파리에도 알게 모르게 아메리카의 문화가 깊이 스며든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우리 일행이 마지막으로 올라간 몽마르트르 언덕에는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거리의 화가들이 그림을 팔고 초상화를 그려주고 있었다.몇번 보는 사이 그들의 일상이 되어버린 삶을 잠깐 엿본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는데 그들은 오늘도 내일도 그곳에서 그림을 그려서 팔고 관광객들에게 초상화 그리기를 권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뭐 어떤가,누구의 삶인들 별다른가하고 생각해버리면 그만이겠으나 왠지 그 느낌이 조금 서글펐다.한 일행은 그들의 그런 모습이 삶에 대해 까탈을 부리지 않고 수용하는 너그러운 자세라고 말하였지만. 서울로 돌아오기 위해 찰스 드골 공항으로 가는 차안에서 확 트인 하늘 위에 커다란 포물선으로 무기재가 걸려있는 것을 보았다. 비행기의 내 옆 좌석에 앉은 여학생은 2년간 파리에서 패션 공부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나는 그 여학생에게서 몇가지 얻어들을 수 있었다. 패션도 이미 그중심이 뉴욕으로 넘어가 있다,우리나라의 디자이너는 이신우와 이영희 등이 파리에 알려져 있으며 그녀가 보기에 이영희씨쪽이 밀고 나아갈 옷의 방향이 더 열려있는것 같다,같이 공부한 파리장들은 주로 옷을 벼룩시장에서 아주 싼값에 사입는데 무슨 옷이든 잘 소화하여 개성있게 입는다. 그녀는 또 말했다.자신은 돌아가면 이영희씨 밑에서 공부해보고 싶은데 받아들여질지 모르겠다고. 공항으로 오는 길에 무지개를 보았느냐고 나는 물었다. 그리고 정말로 그 밑에서 꼭 공부하고 싶다면 어떻게든 해보라고,될꺼라고,공부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무지개도 보지 않았느냐고. 이렇게 말하며 나는 낡은 것들에 질린다는 아폴리네르의 말을 떠올렸고,이제 오고있는 새로운 것들의 방향은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 이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기공

    ◎아시아선 일이어 두번째…내년 4월 준공/동양문화의 정수표현… 베니스 명물될 듯 베니스 비엔날레의 한국관 기공식이 8일 하오 5시30분(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니스 자르디니공원에서 열렸다. 한국의 현대미술사에 한 획을 긋는 이 자리에는 이민섭 문화체육부장관과 이기주 주이탈리아대사,도미니코 훼시첼라 이탈리아 문화성장관,마시모 카치아리 베니스시장,한국관설계자 김석철씨등이 참석해 기공식 테이프를 끊고 첫삽을 떴다. 이장관은 이어 올리베티전시장에 마련된 한국관의 설계도와 조감도건립모형을 돌아보고 『한국관의 개괄적인 형태와 예술적 의미를 이탈리아를 포함한 국제미술계에 홍보할 것』을 관계관들에게 지시했다. 이민섭 장관은 이보다 앞서 베니스 시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베니스의 한국관이 양국간의 문화교류와 변함없는 우호 증진의 상징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관의 건축양식은 기존의 24개 선진국 전시관들이 서양건축 일변도의 고전적인 건축임에 비해 동양문화의 정수를 표현한 순수한 현대건축이어서 전시관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관광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 기존의 전시관들이 비엔날레 전시기간 이외에는 거의 활용을 하지못하고 있으나 한국관은 냉난방시설과 3개의 상설 전시실을 갖추고 있어 연중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설계자 김석철씨는 『현대 건축의 특징은 민주적 공간이기 때문에 한국관의 전시공간에 되도록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열린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파리의 퐁피두센터처럼 한국관이 베니스의 명물이 되도록 설계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것. 베니스 비엔날레는 1895년 제1회 개최이후 내년이면 1백년이 되는 역사와 전통을 가진 권위있는 국제전람회로 지난 1백년간의 현대미술의 흐름을 주도해온 최초의 국제미술전이다. 한국관은 내년 4월 준공될 예정이다.한국관의 건립으로 내년 베니스 비엔날레에는 한국작가들이 셋방살이 신세에서 벗어나 당당히 세계 선진국화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그동안 한국은 이탈리아 전시관의 일부를 빌려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가해 왔다.베니스 비엔날레에 국가관을 운영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대부분이며 아시아에서는 일본만 이 대열에 끼어 있었다. ◎기공식 참석 이민섭 장관/“한국의 예술혼 세계에 알릴 전당될것/남북한 참여 통일조국의 전시장 기대”(인터뷰) 『내년도 베니스 비엔날레의 주제는 「동과 서의 만남입니다.한국관의 특징은 동양과 서양의 정신과 현재와 미래를 상징하는 독특한 건물이어서 내년 행사의 중심관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이민섭문화체육부장관은 9일 상오(한국시간) 베니스시청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장관은 이어 『마시모 카치아리 베니스시장은 한국관준공을 계기로 한국의 기업들이 베니스에 투자를 해서 유럽시장을 목표로 한 상품을 생산하기를 권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관은 2층으로 된 배 모양으로 바다를 향해 진수하는 모습이다. 이장관은 한국관의 공간이 베니스를 찾는 연 3백여만명의 관광객들에게 국력을 홍보할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 2년뒤에는 남북문화교류에 따라 북한의 작품도 전시될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앞으로는 남북한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통일조국의 미술전시장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장관은 마지막으로 『한국관에 전시될 우리의 예술작품들은 이곳을 통해서 유럽대륙은 물론 남·북아메리카와 아시아까지 우리의 혼과 예술을 전해줄 것』이라며 『더욱이 내년 「미술의 해」를 맞아 우리미술의 수준을 한단계 앞당기는 계기가 되기를 빈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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