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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58일(93 대전엑스포소식)

    ◎18개국 참가 국제영화제 9월5일 개막/자원봉사자 9천7백명 소양교육 끝내 ◎…「엑스포 93 국제영화제」가 9월 5일부터 19일까지 박람회장에서 열린다. 조직위가 주최하고 영화진흥공사가 주관하는 엑스포 국제영화제에는 프랑스·러시아·캐나다·모로코·일본등 18개국에서 출품한 극영화·다큐멘터리·만화영화등 30편의 작품이 선보인다. ○극영화 등 30편 상영 극영화 부문에서 우리나라가 「서편제」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92년 몬트리올 영화제 최우수제작자상)「화엄경」등 3편을 출품하고 러시아가 「사랑」(92년 칸영화제 수상작),스웨덴이 「천사들의 집」(92년 뤼벡영화제 금상),일본이 「머나먼 곳에 지는 황금 태양」(92년 아·태 영화제 감독·각본상)등 유명 영화제에서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화들이 출품된다. 그밖에 스위스의 「스위스 프로필」,프랑스의 「문어의 애정생활」,호주의 「밀림과 바다가 만나는 곳」,캐나다의 「나이아가라 폭포」등 다큐멘터리 영화와 중국의 「개점」등 만화영화가 소개된다. ○관람객 안내등 맡아 ◎…대전엑스포 조직위(위원장 오명)는 대전엑스포의 원활한 운영을 도울 자원봉사자 9천7백여명에 대한 소양교육을 남부권 자원봉사자대회를 끝으로 모두 마쳤다. 중부권(4월 29일)및 수도권(5월 22일)대회에 이어 5일 대전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열린 남부권 자원봉사자 대회에는 부산·대구·광주·전남·전북·경남·경북·제주등 8개 시도에서 선발된 자원봉사자 5백60명이 참가,관람객 안내요령과 근무방법·예절교육등 소양교육을 받고 박람회장도 견학했다. 소양교육을 받은 자원 봉사자들은 7월 중 직무교육과 현장적응 훈련을 받고 박람회 기간 중 관람객의 안내봉사 활동을 맡게 된다. ○「기념승차권」 발매 ◎…철도청은 5일부터 대전엑스포 개최를 기념하기 위한 「엑스포 93 기념 승차권」 발매를 시작했다. 총 2백65장이 발매되는 엑스포 기념 승차권 앞면에는 대전 엑스포 공식휘장과 마스코트 꿈돌이·꿈순이가 들어 있고 뒷면에는 꿈돌이와 함께 달리는 열차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새마을·무궁화·통일호 열차 이용객을 대상으로 서울역과 영등포역·부산역·대전역·강릉역등 전국 30개 주요 역에서 발매된다.
  • 건축가 엄덕문씨(이세기의 인물탐구:29)

    ◎자연이 담긴 한국적 건축문화 선도/「최상의 기능·최고의 미」 조화이룬 공간 추구/물욕없는 양심파… “대담·화기살린 구조” 정평/모두 격찬한 세종문화회관이 대표작… 데생·서악에도 빼어나 아름다운 푸른 자연을 경관으로 그 경관을 캔버스삼아 삶의 공간을 설계하는 예술가.괴테가 말한 것처럼 「단 한번도 살아보지 못할 건물을 낳기위해」원로건축가 엄덕문씨는 그때마다 모든 영혼,모든 마음,모든 정열을 그곳에 쏟아 붓는다. 하나의 건축이 지나치게 잘 꾸며졌다는 사실은 건축의 아름다움과는 전혀 별개일지 모른다.그것이 올바른 장소에 세워졌느냐,어떻게 쓰일 건물이냐에 따라 기능적인 특징을 질서정연하게 갖춰야만 비로소 최고의 미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둥근 초가지붕과 미닫이창,쪽마루와 굴뚝과 사립짝,싱싱한 소나무 숲속에 둘러싸인 삼칸두옥은 얼마나 표정이 풍부한가.여기에 에메랄드비색같은 하늘과 햇빛·한가로운 구름의 모습,바람에 흔들리는 풍경(풍경)소리조차 건축에 포함시킬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엄덕문 건축의 언어다.이를테면 온기와 화기,개성과 낭만,무한한 자연에의 추구가 엿보일 때만 건축은 인간의 삶을 담을 수 있는 완벽한 공간이 된다는 논리다. 그는 모름지기 우리 건축계의 원로이자 현대건축의 선두주자의 한 사람이면서도 좀처럼 자신의 치적이나 업적을 앞세우는 법이 없다.겸허하게 주변에 양보하고 남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일요화가회서 활동 다만 음악에 심취했던 일,화가 이마동 박광진씨등과 어울려 일요화가회에서 그림그리던 일만은 자랑스러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그는 어쩌면 성악가가 됐을지도 모른다.「토스카」에서의 「별은 빛나건만」,도니체티「사랑의 묘약」중에서 「남모를 눈물」의 라멘토소 탄식은 그의 많은 노래 중에서도 절창으로 손꼽히는 레퍼토리들이다. 그러나 완고한 엄친은 그를 노래부르지 못하게 했고 그림물감에 손대지 못하게 했다.생전에 서양화가 이마동씨는 그의 「대한민국에서 알아줘야 할 데생실력」을 못내 아까워했고 그는 부친이 돌아가시자 취미삼아 여기로 그림을 그렸을 뿐이다. 투시도를 그릴 때도 그는 절대로 자를 대는 법이 없다.지우개로 지우지도 않는다.자를 대면 선은 죽어버린다.그래서 그가 그려온 투시도는 한폭의 그림과도 같이 삶의 여러 모습과 잔잔한 시어를 오밀조밀 담고있다. 그는 뛰어난 예술적 감각,예술적 정서를 지닌 반면 영묘하거나 민첩한 재기가 번뜩이는 수재형과는 유형을 달리한다.언제나 넉넉하고 신중하고 건실하다.마치 큰날개로 범상하는 알바트로스처럼 천천히 크고 넓게 그리고 높고 길게 나는 편에 속한다. 그는 동경유학시절 미국의 세계적인 예술건축가 F L 라이트의 데이코쿠(제국)호텔을 보고 건축의 기능과 미의 조화에 일찍이 눈떠갔다.단순한 호텔건물이 아닌 호텔의 기능을 최상으로 살리면서 현대적 건축양식과 동양의 전통미를 절묘하게 절충한 점이 놀라웠다. ○라이트작품에 감동 더구나 「라이트작품집」에 실린 「카프만의 집」은 혼도직전의 감동과 함께 그가 걸어가야할 건축의 방향과 목적을 번개처럼 일깨워주었다. 폭포가 쏟아지는 천연바위 위에 지은 이 별장은 자연 그대로의 일부였으며 건축과 자연과의 대선율적 조화를 단적으로 성취시킨 걸작품이었기 때문이다.인간이 없는 자연,자연이 없는 인간은 상상할 수 없었고 인간이 바로 이 지구상의 주인임을 각성시킨 예였다. 건축에 관한한 더 이상의 망설임이란 있을 수 없었다.건축은 도시를 형성하는 그림이었고 교치와 아치의 거대한 조형세계였다.부친을 원망하며 못내 미련을 버릴 수 없었던 음악과 미술이 그곳에 도사려 있었다.좋아하는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작업에 그는 당연하게 취할듯이 빠져들어갔다. 작품을 보면 그사람의 인간됨을 알수 있듯이 그가 이뤄논 건물들은 한결같이 스케일이 방대하고 대담하고 헌칠한다. 세종로 한복판,사방 어디서 보아도 그 위풍당당한 세종문화회관의 호쾌한 선만도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궁궐의 열주를 변형시킨 8각기둥과 8m나 곡선이 뻗어나간 캔틸레버,만자창살로 처리된 벽면등은 「동양최대의 문화예술전당」이란 찬사에 걸맞게 진실하고도 견실한 구조기술과 「예술적 조형미 단연압권」으로 개관당시부터 신문방송의 대대적인 기대를 모았었다. 이른바 엄덕문의 「최상의 기능·최고의 미」를 실현시킨 「세종문화회관식 건축」의 탄생이었다. 그는 일상생활에서도 여유만만 작작유여하다.이기심이나 경쟁심이 없어 언제나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한다.6·25직후 불어닥칠 건설붐에 앞서 낙후된 건축기술을 향상시킨다는 차원에서 후배인 김중업씨를 프랑스에 유학시킨 일화는 건축계의 미담으로 남아있다. 모두들 가난하고 절박하게 어려웠던 부산피란시절,풍산산업 김영구사장이 그에게 「프랑스 유학」을 권유했을때 그는 「나대신 재능있는 후배」를 밀었고 김중업씨가 건축거장 르코르뷔지에의 연구소에 입문하게 된 동기는 이런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홍대에 건축과 창설 그는 하나의 프로젝트가 세워지면 의욕적인 동료들을 작업에 참가시켰고 동료중의 하나가 공금실수를 저질렀을때도 수년에 걸쳐 자신의 빚처럼 갚아나갔다.또 조각가 윤효중씨와 함께 홍대에 건축과를 창설,국전 미술부문에 「건축」을 포함시킨 공로자이기도 하다. 나이 40을 넘긴 지난 60년,그가 다닌 일본 조도전대공고는 전문대 교육수준이라면서 한양대 홍대 이대에 출강하는 교수신분으로 뒤늦게 한양대 건축과를 졸업,생생한 현장경력만으로 충분히 교수자격을 갖추고 있음에도 남들이 다밟는 절차에서 특혜자가 되긴 싫다고 굳이 대학과정을 졸업했다. 많은 건축가들,이를테면 건축원로 김희춘씨와 먼저 세상을 떠난 김수근·김중업씨 등이 그들의 집을 짓지 못한 것처럼 그도 지금까지 자신이 지은 집에서 살아본 적이라곤 없다.지금도 둔촌동의 한 빌라에서 5남매를 출가시키고 부인 고희용여사와 둘이 살면서 공용택지주변에 나무를 심고 가꾸는 것이 취미다. 한창 부흥부의 도움으로 국민주택을 지을때도 20평규모 50가구씩 50동의 배당을 받았으나 건축가의 양식으로 형편없이 허술한 집을 지을수 없다는 신념에서 2m 도로폭을 4m로,좀더 탄탄하고 실용적인 건축자재를 써서 30가구로 줄어든 바람에 업자들과 관계자들의 원망을 사기도 했다.돈과는 상관없이 양심에 어긋나는 일에는 끝까지 소신을 굽히지않아 그의 결벽과 청렴은 지금도 후배들의 존경을 받고있다.오죽하면 건축가 홍순오·송민구씨가 『엄덕문이가 화를 냈다면 그를 화나게한 사람은 틀림없이 나쁜 사람』이라고 단언할 정도다. 엄덕문씨는 서울 종로구 누하동에서 태어났다.부친 엄항주씨는 경남 충무,옛통영 나전(나전)칠기의 장인으로 이왕직의 교사였고 명공 김진갑 김봉명의 스승이기도 하다.성격이 유별나고 꼿꼿하기만 한 부친의 엄한 가정교육이 그의 인격과 성격을 형성해왔다고 할 수 있다.다만 부친의 추호도 용서함이 없는 단호함에 비해 그는 「성실·정직·효도」의 가훈아래서 부모말씀에 극진히 순종하고 반듯하게 처신하여 일제시대때는 동네에서 주는 효자상을 받기도 했다.그는 너무 단단하여 부러지기 쉬운 성격보다 만사를 부드럽게 포용하고 수용하는 편에 속한다. ○장인집안서 태어나 『해방된지 반세기를 바라보건만 우리 정서와 한국적 감각으로 이루어진 고유한 현대 한국건축문화를 창조하지 못한 것』이 못내 부끄러운 그는 이제 우리의 멋과 미를 현대건축에 접목시킨 「우리의 것」을 창출하는 것만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의자하나라도 인체구조에 알맞게 가장 편안한 기능을 살려야만 최고의 미라 할 수 있다.디자인만의 아름다움은 이미 아무런 의미도 아니다』 그는 최근 마포에 있는 도원빌딩에 홍역문의 이미지를 건물입구에 적용시키고 부분 부조와 떡살무늬 솥뚜껑과 만자창살을 적절하게 살린 한국적 현대건축을 시도한바 있다.그리고 미완성이긴 하지만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최고의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의지로 충주호수 관광설계에 임하고 있다. 라이트가 「카프만의 집」을 지은것은 69세,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을 완성한 것은 그가 작고하던 해인 92세,물론 나이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인생은 50부터나 60부터가 아닌,지금 무엇인가 자신의 일을 시작하고 있다면 그나이 나름대로 의미를 지닌것이 아니겠는가고 묻는다. 건축가로서 국전의 영예인 심사위원장을 거쳤고 대한민국문화예술상에서 건축으로는 처음 미술부문을 수상,오랜 파란끝에 예술성취를 이루는 모습은 체관으로 자연을 응시하는 청결과 정열,그나이 나름대로의 의미와 투철한 사명감이 담겨 보는이로 하여금 절로 경외가느껴지게 한다. ▷연보◁ ▲1919년 서울 출생 엄항주씨와 김수경여사의 3남4녀중 셋째(장남) ▲1943년 일본 조도전대학 공고건축과졸업 ▲1960년 한양대 공대 건축과졸업 ▲1946년부터 한양대 출강 ▲1954년 신건축 문화연구소 창설 ▲ 〃 대한민국 건축학회 이사 ▲1956년 홍대 건축과 창설(조각가 윤효중씨 등과) ▲1956∼69년 홍대 및 이대 미대 교수 ▲1956년 국전에 「건축」부문 참여 ▲1956∼80년 국전 추천작가·초대작가·국전 운영위원 ▲1960∼81년 국전 심사위원 ▲1964년부터 일본건축가협회 초청 한국대표참석이후 각종 국제회의 참가 ▲1970∼72년 한국 건축가협회 회장 ▲1970년 UIA(국제건축가연맹)회원 ▲ 〃 예총 상임이사 ▲1971년 서울특별시 행정 자문위원 ▲1977년 서울특별시 도시재개발 심사위원 ▲1980년 국전 심사위원장 ▲1988년 엄덕문 건축상 제정(매년 시행) ▲1990∼91년 대한민국 건축대전 운영위원장 ▲1992년 한국건축가협회 작가상 심사위원장 ▲현 재엄·이 건축연구소 회장·조도전 도문 건축회 회장·한국건축가 협회 명예이사 남서울 컨트리클럽하우스·리틀엔젤스 예술회관·세종문화회관·정부제2종합청사(과천)·롯데호텔(을지로입구)·롯데백화점·대한교육보험(교보빌딩)본사사옥및 전국 각 지사 빌딩·중소기업은행본점·단양 한국시멘트공장·남산외인주택·외인아파트·도원빌딩(마포)·충주호수일대 관광시설설계·이승만전대통령동상·민충정공·세종대왕·이율곡·다산·4·19학생의거기념탑 좌대및 구조물 일체 한국건축가협회 작품상·석탑산업훈장(세종문화회관설계공로)89 제21회 대한민국 문화예술상(미술부문)·초평건축상 수상
  • 대전엑스포 영화제 상영작 30편 선정

    ◎17국의 과학·전통문화예술 등 소개 세계박람회 조직위와 영화진흥공사는 최근 엑스포영화제에서 상영할 세계 17개국의 극영화와 비극영화 30작품을 선정했다. 극영화는 온가족이 함께 볼수 있는 작품이나 생활과학영화,비극영화는 엑스포에 맞는 과학영화,또는 각국의 전통문화예술을 소개하는 영화및 애니메이션이다. 이가운데 극영화는 독일의 「불운의 탱고」,러시아의 「사랑」,벨기에의 「그리운 당신」,불가리아의 「천국을 향한 총알」,스웨덴의 「천사의 집」,알제리의 「새로운 빛」,일본의 「먼 석양」,중국의 「후궁들」,캐나다의 「낯선 사람들과 함께」,프랑스의 「어느 시골길」,핀란드의 「인생의 영욕」,헝가리의 「별자리의 싸움」등이다.우리나라 영화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서편제」,「화엄경」이 선정됐다. 다큐멘터리는 모로코의 「21세기를 향한 모로코」,스위스의 「스위스의 참모습」,스리랑카의 「호르탄 평원」과 「치트라세나」,오스트리아의 「세계속의 오스트리아」와 「유럽의 심장 오스트리아」,중국의 「스스로 일어서자」,캐나다의 「나이아가라 폭포」,프랑스의 「제네바」와 「문어의 생식」,호주의 「숲과 바다가 만날때」,우리나라의 「도편수」「한국의 시제」등이다.애니메이션은 중국의 「개점」,캐나다의 「폭포」등이다. 이들 영화는 9월5일부터 19일까지 보름동안 대전 세계박람회 전시장내 엑스포극장에서 무료상영된다.
  • 꽃놀이 여행없는 북한의 봄/거주지역 벗어난「명승지관광」생각도 못해

    ◎평양주민,그나마 대동강­대성산 찾아 “상춘” 진달래 개나리가 피어나는 봄이 되면 서울을 에워싼 모든 도로는 봄나들이를 나선 차량으로 주차장을 방불케하는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네 모습이지만 북녘동포들은 봄맞이를 어떻게 할까. 잘 알려졌듯이 북한은 거주·이전의 자유는 물론 여행의 자유를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기때문에 개개 주민이 거주 시·군을 벗어나 사사로운 여행을 즐기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때문에 평양등 대도시의 주민들은 공휴일같은 날 가까운 공원지대등을 찾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있다. 그중 평양주민들은 「혁명의 수도」에 사는 선택받은 특권층답게 그어느 지역보다 다양한 위락시설을 즐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들은 4월이면 그들의 최대명절이라는 김일성생일을 맞아 평양중심가에서 서남쪽으로 12㎞ 떨어진 곳에 위치한 김일성의 출생지,「만경대혁명사적지」를 참관하는가 하면 가족끼리 북동쪽으로 6㎞ 떨어진 대성산에 위치한 북한최대의 유원지 「대성산유원지」를 찾아 비록 허름한 도시락이나 함께 나누며 한때를 보낸다고 한다. 지난 71년 개장한 이 유원지는 총부지 2천여 정보에 관성열차등 어린이놀이시설과 그네터·씨름터·배구장·보트장·수영장등을 갖추고 있다.또 구내에는 고구려시대의 역사유물인 대성산성과 동물원및 식물원이 들어서 있는데 북한어린이들이 이곳에서 노는 사진이 북한의 선전책자에 종종 실리고 있다. 평양에는 또 「수도의 정원」으로 불리는 모란봉공원이 있어 평양시민들의 안식처가 되고있다.야외극장과 각종 유희시설을 갖춘 청년공원 아동공원 산림전시관 인공호수(6개)및 인공폭포등과 각종 유실수가 심어져있는 이공원에서는 결혼식을 마친 신랑·신부들이 친구들과 몰려와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평양에는 이밖에도 김일성출생지인 만경대인근에 북한의 대표적인 아동유희장인 만경대유희장이 82년 김일성의 70회생일을 기해 개장돼 운영중에 있는데 입장료는 10전,개별시설물이용시 별도요금을 내야한다.또 대동강과 보통강가에는 능라도유원지와 보통강유원지가 각각 조성돼 사사로운 용무로는 평양시를 한치도 벗어날수 없는 주민들의 갑갑증을 다소나마 달래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한파속 등산객참변 잇따라/설악·지리산 등 3곳

    ◎5명 탈진사망·4명 실종 갑작스런 추위가 몰아닥친 연휴 이틀동안 전국에서는 산을 오르던 등산객 3명이 추위속에 탈진해 숨지고 4명이 실종됐다. 【산청】 1일 상오7시쯤 경남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지리산중턱 칼바위계곡에서 등반에 나섰던 김수진씨(21·여·부산시 부산진구 당감4동 252의46)와 이수연씨(20·여·부산시 부산진구 당감4동 666의7)등 2명이 탈진,진주시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모두 숨졌다. 함께 등산에 나섰던 임성환씨(20)에 따르면 28일 상오 (주)화승에 근무하는 회사원인 일행 5명이 중산리를 출발,지리산 천왕봉을 오른뒤 하산하던중 숨진 김씨등이 길을 잃고 헤매다 동료인 문기상씨(28)등을 만나 칼바위계곡까지 하산했으나 피로와 추위로 김양등이 탈진했다는 것이다. 【속초=조한종기자】 1일 상오6시쯤 강원도 양양군 서면 대청봉에서 직장동료들과 함께 등반에 나섰던 김동식(25·여·서울 동대문구 청량리2가 195) 마은영(25·여·서울 중랑구 면목4동 699) 주일하(25·서울 노원구 상계동161) 허장범씨(31)등 4명이 실종됐다고함께 등반하던 이석주씨(29)가 경찰에 신고했다. 이들은 28일 상오7시쯤 (주)신한개발 회사동료 21명과 양양군 서면 오색리를 출발,설악폭포까지 등반한뒤 하산하려 했으나 마씨와 주씨등 2명이 대청봉까지 올라갔다 오겠다고 한뒤 소식이 끊겨 김씨와 허씨가 찾아나섰는데 이들마저 소식이 끊겼다. 경찰은 실종된 김씨등이 산장등에 대피해 있을 것으로 보고 이들을 찾고 있다. 28일 하오11시쯤에는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광덕3리 광덕산정상(해발 1천45m)에서 산악회원들과 등반에 나섰던 김광복씨(60·경기도 광명시 광명6동 372의2)가 추위속에서 탈진해 숨졌다. 김씨는 이날 상오11시쯤 산악회원 11명과 함께 겨울등산장구도 갖추지 않은채 산행을 떠났다 80㎝이상되는 눈과 영하11도이하의 추위속에서 이같은 변을 당했다. 【울진】 1일 상오3시쯤 경북 울진군 북면 덕구리 매봉산(해발9백99m)에서 포항제철 사원 이상훈씨(33·경북 영일군 이천면 구정동 제일아파트 105동 103호)등 남녀 4명이 산을 내려오다 길을 잃어 이씨와 박상순씨(24·여·포항시 해도2동 80의22)등 2명이 탈진해 숨지고 이득실(32·포항시 환호동 청우맨션 105동 201호),최효선씨(21·여·포항시 대신동 78의17)등 2명은 이날 하오1시쯤 하산해 경찰에 신고했다.
  • 국악인 양승희씨(이세기의 인물탐구:18)

    ◎죽파의 가야금산조 득음 “외길 인생”/혹독한 수련 견디며 「명인」 향한 일념 불태워/뉴욕 독주회땐 “동양의 신의 경지” 격찬받아/세계 명대학에 한국학과설치 위한 모금연주 등 활동 활발 가볍게 튕기고 힘차게 엮는 줄은 가락마다 깊은 시름,희비가 엇갈려 가슴속에 묻어둔 사연을 한없이 풀어낸다.길어도 길어도 바닥이 보이지 않는 옥수 어느 때는 성긴 빗방울에 오동잎 스치듯,일렁이는 파도에 하늘이 소스라치듯 성난 폭우에 수면이 갈라지고 뇌성이 번뜩인다.활짝 핀 꽃송이가 삽시에 저버리는 아픔을 안으로 삭이는 절제미,청정과 청쾌가 선명한 양승희의 가야금 산조를 듣고있노라면 문득 연전에 돌아간 죽파의 운율이 되살아난다. 명인의 길에 오르기엔 젊고 눈부신 나이,화사하고 여린 용모,그러나 무대에서의 능란하고 당당한 연주솜씨는 당대 명인을 계승한 후계자다운 풍모다. 경건함 중에도 정한의 기개가 감돌고 줄을 타는 손끝에서 처절과 애련이 여울져 스승을 잃고 홀로서기까지의 고통과 시련이 얼마나 큰것인가를 절감케 한다. 양승희는 스승인 죽파 가야금산조 하나에 그의 전인생을 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산조 일인자를 꿈꾸며 오로지 이 한길을 위해 그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수많은 고초를 스스로 감내해왔다.자신이 걸어온 가시밭길을 새삼 돌이켜볼 여유는 없다.다만 그것이 지금보다 더 험난하고 가파르다해도 미동도 지체도 할 수 없는 위치다.두 아들의 어머니로서 아내와 며느리로서의 길 이전에 「죽파 가야금 산조의 가문」을 이어갈 공인이며 예인의 사명감이 있을 뿐이다. 죽파 김란초는 가야금 산조 창시자의 한사람인 김창조(1865∼1920)의 친손녀로 그는 조부의 산조에다 단몰이(세산조시)를 창작해넣어 독자적인 죽파류 가야금 산조를 성립,국내외에 1백여명이 넘는 제자를 두고있었으나 양승희를 후계자로 삼아 바로 이 산조를 계승시키고 있었다. 양승희는 스승으로서의 죽파의 삶을 전적으로 맡아 극진히 모셨을 뿐만 아니라 죽파의 모든것,예술혼과 예술성,인간의 도리와 예의범절에 이르기까지 스승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분신과도 같은 인연이다. ○곡해석·연주력 출중또 「뛰어난 곡해석과 연주력,끈질긴 노력과 집념,죽파가야금산조를 잇는데 최선을 다하는 지속적인 마음가짐은 누구에게도 비견될 수 없는 비범등이 후계자로 지목된 이유의 하나라는 것이 국립국악원 이승렬원장의 지적이다. 스승댁에 머물면서도 새벽에 눈뜨자 연습,장고에 맞춰 다시 한번,그리고 스승과 맞춰보고 학교에 다녀와서 한바탕 연습,단 한번도 스승을 거스르거나 거역하지 않았다. 「교수」보다는 「연주가」이기를 원하는 스승의 뜻을 받들어 국악의 세계무대 진출이라는 목표를 세워놓고 황병기 나인용 백병동등 국내작곡가들의 창작곡을 받아 초연으로 기량을 확대시켜 나가기도 했다.국악인으로서는 드물게 시립국악관현악단·시향·KBS교향악단과의 대연주회 협연,1년에 수십차례의 해외연주 활동등은 죽파로 하여금 어느 자리에서나 제자를 마음껏 자랑삼을 수 있게 해주었다.특히 85년 뉴욕 카네기 리사이틀 홀에서 가진 독주회 평과 사진이 실린 워싱턴 포스트지를 보고는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그때 미국의 저명 음악평론가인 마리온 자콥슨은 양승희의 가야금연주를 「볼쇼이 발레단의 프리마 발레리나의 솔로를 보는 듯한 황홀감」에 비유,「55분동안의 연주는 꼼짝없이 청중을 사로잡아 마치 동양의 선의 경지를 경험케 했다」고 쓰고 있다. 89년 79세의 나이로 스승이 몸져 눕게되자 양승희는 고려병원에 모시고는 꼬박 3개월을 그의 곁을 지키면서 스승의 어깨를 주물러 드리려면 「몸이부어 손가락자국이 깊이 남는다」고 안타까워 했고 이를 지켜본 국악계의 김소희씨며 박귀희씨는 『형님은 훌륭한 제자를 두셔서 돌아가셔도 여한이 없겠다』고 부러워 했었다. 같은해 9월17일 임종하기 직전에 죽파는 양승희부부를 불러 유산정리와 함께 자신의 장례를 부탁했다.스승의 유언이 아니더라도 양승희는 당연히 상주가 되어 장례기간의 상례지휘는 물론 삼우제와 사십구제,소상제와 대상제,91년에는 고인을 위한 추모음악회를 여는등 스승과 가까웠던 국악계의 원로들을 참여시킨 무대를 마련하여 「난죽같은 사제의 정」을 변함없이 확인시켜 주었다. 양승희는 본래는 서울에서 태어났다.그러나 국민학교 3학년때 정치를 하는 부친을 따라 집안이 모두 강원도 원주로 이사.피아노와 무용을 배우다가 한 미국선교사의 권유로 원주여고 2학년 되던해 가야금을 시작했다. 서울을 오가며 서울대 김정자교수에게 가야금을 사사,처음부터 가야금의 가락이 마음속에 파고들어 타고난듯 악기에 밀착되는 감이었다. 대학교 2학년인 70년 4월 역시 김정자교수의 소개로 사직동에 있는 죽파문하에 입문,그때부터 만19년간 단 하루도 빠짐없이 스승의 엄격한 가르침을 받게 되었다. ○고2때 가야금 시작 유난히 청각이 예민한 스승은 한올의 음정차이도 족집게로 집어내듯 가혹하게 교육시켰다.하루 6시간에서 7시간,어느때는 10시간을 해내야만 비로소 만족하는 듯 했다.마음에 들지않으면 노안에 광채를 번뜩이며 가차없이 바로잡아 주었다. 그러는 사이 오랫동안 교제해온 부군 노만균씨와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3년후인 76년에야 뒤늦게 결혼해야 했다. 「결혼하면 가야금을 포기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스승은 이를 못마땅히 여겼으나 「결혼후에도 가야금 계속은 물론 예술가의 길을 걷는데 적극 협조하겠다」는 시댁측의 다짐을 받고나서야 안심하는 빛이었다.혈육이 없던 그는 친딸같은 양승희에게 대대로 내려온 집안의 옥가락지를 물려주면서 「부디 가야금 가문의 대를 이어줄 것」을 두번 세번 당부해마지 않았다. 그러나 7년간의 혹독한 피나는 훈련과 수련에도 득음하지 못한 제자를 몹시 나무라는 눈빛에 양승희는 결혼 1년만에,낳은지 백일도 안된 아들을 시어머니(송재임여사)에게 맡기고 다시 스승의 문하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여자로서의 행복을 추구했다면 그는 그때 가야금을 포기할 수도 있었다.어린 자식을 떼어놔야 하는 마음은 문자 그대로 가슴을 칼로 도려내는 아픔이었다. 부군은 고대와 프랑스유학후 국립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근무,시댁은 훌륭한 가문과 가풍으로 양승희는 얼마든지 풍족한 환경에서 아마도 안락을 누릴 수도 있었다.그러나 남편과 시어머니가 죽파와의 약속을 상기시키면서 오히려 「예인의 경지」에 이르기 위한 박사과정까지 서둘러주었다. ○지난의 수련과정 겪어가야금은 악기를 다루거나 기교를 가르치는 교육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말과 마음으로 전하는 구전심수만이 참다운 예도였다.그해 6개월 다음해 다시 6개월,80년에는 9개월간이나 스승곁에서 성음을 얻기위한 피나는 훈련을 쌓아야 했다. 「학이 살포시 나무가지에 내려앉듯 햇빛 찬란한 해변에 잔물결 반짝이듯 용이 승천하는 힘찬 기운과 동시에 사방이 잠잠하여 침묵하듯 연주하라」는 것이 스승의 연주 지침이었다.차차 국악계의 원로들로부터 「죽파 전성기때의 소리가 난다」는 칭찬과 「매운 손끝에 만만찮은 도전적인 개척정신이 깃들어 있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그럴수록 그는 혼신의 힘으로 가야금에 매달렸다.이는 판소리에서의 폭포수같은 성음을 위한 폭포독공백일수련에 못지않은 지란의 과정이었다. 죽파의 총애와 편애로 동료들의 질시와 따돌림이 따랐으나 스승은 그때마다 「높이 나는 새는 눈에 띄는 법,어중간히 날면 백발백중 돌에 맞기 쉽지만 힘찬 비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게 된다」고 감싸주었다.그리고 자신이 지닌 모든 것을 물려주기 위해 그의 나이가 다했음을 애석하게 여겼다.커다란 회오리가 지나간듯 어쨌든 지난 세월속의 시련은 그에게 인간적인 성숙을 주었다. 그는 세계 각 유명대학에 한국학과 설치를 위한 기금모금 연주등 91년에 10여차례,지난해 20여차례,올해도 연초와 2월까지 유럽지역 순회와 터키연주등 연말까지 해외연주일정이 빡빡하게 짜여있다.물론 그에게 남겨진 가장 큰 과제는 죽파기념관을 세우는 일,전수생들을 위한 연주무대 마련,이에 앞서 스승의 이야기를 창극으로만들기 위해 극본과 음악을 작가와 작곡가에게 의뢰해놓고 있다.그리고 이 모든 진행은 시댁과 남편의 따뜻한 보살핌이 뒷받침이 되어주고 있다. 진양조에서 중몰이 중중몰이에서 자진몰이 휘몰이 단몰이 장단배열을 갖는 죽파산조를 한바탕 타고나면 인생살이 희로애락이 한낱 물거품이라던 스승의 말이 불현듯 새삼스럽다.원형리정,이제 사계의 순리처럼 자연스러운 산조가락의 하나하나가 그의 몸속에서 피가 되고 살이 되고 그 자신이 바로 가야금이 되어 그날이 언제일지는 모르나 마음으로 음조를 울리고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산조미의 극치에 이르고 싶은 것이 오직 절실한 그의 기원이다. □연보 ▲1948년 6월 서울출생,양주창씨(92년작고)와 박정옥여사의 2남4녀중 장녀 ▲58년 집안이 원주로 이사 ▲73년 서울대 음대 국락과졸업 ▲75년 서울대 대학원 졸업 ▲86년 성균관대 대학원 동양철학과(예술철학박사학위) ▲75년∼93년2월 서울대 국악과강사 ▲76∼80년 동덕여대·목원대·성심여사대강사,이대·중앙대출강,한국가야금연주단단장,중요무형문화재23호 김죽파류 가야금산조이수자,준인간문화재 죽파 김란초를 비롯,이창규 황병기 이재숙 김정자 사사 ▲71년 서울대 음대 정기연주회 「죽파류 가야금 산조」독주 데뷔 ▲75년 서울국립국악원주최 신인음악회협연(이성천지휘) ▲77년 가야금 독주회(국립극장소극장) ▲79년 가야금 독주회(세종문화회관)·제1회 유네스코주최 2인음악회(가야금 양승희,거문고 김선한) ▲80년 가야금 독주회(공간사랑)죽파류 55분 가야금 산조 ▲82년 KBS교향악단 정기연주회(지휘 발터 길레센) ▲83년 무형문화재 예술단 창단 1주년기념 특별연주 ▲85년 대한민국음악제 KBS교향악단 협연(지휘 홍연택) ▲85년 미뉴욕 카네기 리사이틀홀 독주,자유중국·일본 독주회 ▲86년 자유중국 NewAspect 초청 국제예술제 국제 고쟁 명가대회참가 ▲88년 가야금 독주회(국립국악원 국악당) ▲89년 서울시향 범세대연주회(세종문화회관) ▲89년 KBS국악대상 축하공연외 해외연주8회 ▲90년 백두산 제천대회,가야금독주회(예음홀)해외연주 7회 ▲91년 KBS 국악관현악단 정기연주 해외연주 10여회 ▲91년 고 죽파 김난초선생 추모음악회주관(국립영화제작소 영화제작)등 해외연주 20여회 ▲92년 미 조지워싱턴대 초청연주 ▲92년 대한민국음악제 연변 김진교수와 남북한 가야금 비교연주등 해외연주 20여회 ▲93년 우즈베크스탄 공화국대 한국학과 설립기금모금외 유럽지역 연주 황병기 작곡 「비단길」「영목」 「밤의소리」「남도소리」 관현악곡 「7현을 위한 새봄」편곡 「Amaging Grace」나인용작곡「가야금 협주곡 도약」「용」「영상」이강덕작곡 「가야금 협주곡Ⅴ」정윤주작곡 「황병기주제에 의한 가야금 콘체르토」백병동작곡 「환명」 제1회 KBS 국락대상,중요무형문화재 예술상 공로상,KBS FM 명인 CD 출반
  • 건축가 공일곤씨(이세기의 인물탐구:17)

    ◎변화와 결미감있는 건물 설계/실내에까지 소용돌이모양의 곡선시도/60년대말이래 현대주택의 새 방향 제시/89년 중앙대 안성캠퍼스 도서관설계로 특별상 수상 「훌륭한 건축가와 그렇지못한 건축가는 어떻게 구별되어지는가.평범한 건축가는 작은 유혹에도 쉽게 넘어가지만 훌륭한 건축가는 어떤 유혹에도 결코 빠지지않는다」 오스트리아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말이다.「건축가 공일곤은 물론 후자에 속한다」이는 그를 아끼던 건축가 김수근씨의 말이다.그는 또 『공일곤은 건축가보다 예술가로 부르는 편이 그를 표현하는데 적절하다』고 했다.『시나 음락이 건축과 무관하지않은 차원에서라면 그의 건축작업은 시나 음악을 추구하는 과정과 조금도 다를바가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공일곤은 어떤 건축에서도 이미 주어진 룰이나 공식에 집착하지 않으려든다. 예를들어 방 둘 또는 방 셋과 부엌 국적불명(?)의 거실 욕실의 수평적 구성은 그에게는 단조롭고 지루하기만 하다.반드시 네모진 공간속에 모든 것이 일정하게 담겨야한다는 타성은 역시 배제돼야한다고 우긴다. 벌집(봉소)과도 같은 6각형의 연속,또는 달팽이같은 나선형의 외부를 내부에까지 끌어들여 음악에서의 변화화음과 쾌미감을 살리고 싶어한다.이른바 평면상에 있어서의 소용돌이모양 나선모양의 곡선시도는 얼마든지 가능하며 현관에 들어서면 둥그렇게 말려올라간 복도.복도끝에 설정된 방,원시동굴을 연상시키는 비밀스런 방속에서 인간은 자기만의 독립된 공간을 얼마든지 누릴 권리가 있다는 논리다. 아무리 기능이 뛰어나다해도 과학적인 해결방법만으로는 건축은 영원히 미완성으로 남을 뿐이다.또 반드시 값비싼 재질이 좋은 건축을 이루는것은 아니라고 말한다.그래서 그는 60년대말이래 국민주택건설안에 참여하면서도 벽돌의 천연성으로 「빚어만드는 건축」 「살고싶은 집」 「삶을 생각하게 하는 공간」을 시도하여 현대주택에서의 새 방향을 제시한바 있다. ○나의집을 짓는 자세로 그리고 그것이 어떤 건물이든 그는 반드시 「나의 집」을 짓는다는 자세로 이에 임하고 있다.그러나 그가 「내집」이라고 생각하는데서 온 착각은 걸핏하면 건축주나 집주인과 트러블을 만들기 십상이었다. 건축주의 개성과 의도하는 바를 받아들인다고 하면서도 그 기능이 위배되지않는한 건축가로서의 시각과 의지를 최대한 반영시키려는 그의 고집과 열정을 지켜본 김수근씨는 어느날 또다시 그에게 물었다. 『자네 유산받은거 있나』라고.어리둥절한채로 『그런것 없다』고 하자 『그렇다면 건축 집어치우게』했다. 처음에는 선배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했다.김수근씨로서는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않고 순수하게 「작품」을 만들고 싶어하는 후배의 모습에서 그 옛날 자신이 추구했던 이상과 희구를 되살렸다.그것을 깨닫기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실망과 시행착오와 아픔을 겪었던가.이제 공일곤도 건축주의 간섭을 받다보면 평생을 통해 자신의 작품은 한 작품도 남기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되었다.자신의 작품을 갖는다는 꿈은 영원한 꿈에 불과하게 될지도 모른다.그는 이로인해 한동안 건축설계에 대한 의욕상실에 빠지는듯 했다. 그러나 한 넝마주이로인해 건축가가 해야할 또하나의 몫이 무엇인가를 그는다시 깨달았다. 20년전 그의 사무실로 찾아온 한 노인이 자신이 평생동안 모은 돈이라면서 15평짜리 집을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시적감수성 배어있어 그는 집 한칸을 갖기위해 그 나이까지 헌종이와 헌 물건들을 주우러다닌 것이다.과연 인간의 꿈은 무엇인가.그는 오랜 꿈속에서 깨어나 이 세상에서 가장 보람있고 의미있는 값진 집을 지을수 있었다. 지나치게 자신의 작품(?)「에 집착한 나머지 인간의 꿈을 이루어주는 건축가로서의 또하나의 역할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지금도 그 집은 장위동에 있다. 그에게선 여전히 숨가쁘게 돌아가는 건축의 현장감,현대라는 현실감,첨단적이면서도 합리적으로 세련된 속도감 같은것은 찾아볼수 없다.다만 지난 89년 중앙대 안성캠퍼스 도서관 건축으로 제1회 건축가협회가 주는 특별상을 수상했을 때 심사위원장이던 서울대 이광로교수는 『그는 자신이 만들려는 건축의 모습과 내용에 몰두하는 동안에도 그가 목표로하는 것을 이루어가는 장인정신을 지니고 있었다.그리고 그의 건축은 인간의 모든 것이 담기는 삶의공간외에도 인간이기때문에 인간이 보다 존중돼야함을 건축의 품위로서 회복시켜주고 있다』고 경의를 표했다. 실제로 그가 설계한 수많은 주택과 아파트와 기업체 건물등을 보면 그것이 아무리 도시의 빌딩군속에 섞여있다해도 그가 광적으로 사랑해마지않는 음악에서의 시적·정적 감수성이 건물전체에 온화하게 배어있음을 쉽사리 발견할수 있다.네모진 것이 있으면 둥근것을 창출하고 둥근 캐노피(천개)와 굽어진 공간,굴곡과 원추 그리고 벽을 굴리거나 꺾기도 한다.이는 네모진 공간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려는 그의 끈질긴 일면이라 할수 있다. 브람스의 포스터앞에 선 앤서니 파킨스처럼 그는 언제보아도 뭔가 망설이는듯 나서지 않으려는 듯 언제나 소극적인 자세다.단지 음악이야기에서는 두 눈을 반짝거리면서 갑자기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건물 주변경관도 염두 그는 그것이 하이페츠의 연주인지 토스카니니의 지휘인지를 귀신처럼 가려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멘델스존의 할아버지는 유명한 철학자인 모제스 멘델스존,아버지는 은행가,어머니는피아니스트,그의 「핑갈의 동굴」은 바그너가 「일류 풍경화가로 극찬한 명곡」등 음악가와 음악에 얽힌 모든 에피소드를 백과사전처럼 꿰뚫고 있다. 그는 건축가로는 미국의 프랭크 로이드라이트를 존경한다.공간적인 유동성.대지의 수평선에 동화된듯한 피츠버그 폭포의 폴링워터(Fallingwater낙수장)는 그가 가장 좋아하고 부러워하는 작품의 하나다. 공일곤의 건축지망은 너무나 소박한 동기에서 출발된다. 그는 평북 벽동에서 자랐다.강계 바로옆 수풍댐과 가까운 그의 고향은 사방이 녹음으로 우거진 자연풍광으로 인해 어떤 명화에도 비길수없는 목가적 전원풍경을 이루고 있었다.담장도 없이 그대로 드넓은 벌판과 푸른 산자락,푸르고 드높은 하늘은 하나의 완벽하게 조화된 공간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작은 집을 지을때라 그는 그 건축물이 놓일 주변경관을 받드시 염두에 두는 버릇이 생겼다.모처럼 그의 작품성이 잘 표현된 것이 있다면 바로 중앙대 안성캠퍼스의 도서관이라 할 수 있다. 안성캠퍼스의 상징이 될수있는 모뉴먼트의 이미지를 심어달라는 건축주의 요구에따라 가장 원시적인 것이 좀더 강한 느낌을 준다는 점에 착안,사방 어디서 보아도 피라미드 초기의 마스타바(석실분묘)를 연상시키는 신선한 선을 구사해냈다. 그것은 마치 대서양의 거센 파도가 넘나드는 헤브리디스섬의 동굴을 멘델스존이 음악으로 그렸듯이 피라미드의 네모진 평면정점의 둥근 천창을 바라보노라면 그는 이를 건축으로 이룩하고 있음을 한눈에 알게한다. 이상해교수(성균관대)의 말대로 「작품에는 천재이나 세상돌아가는 일에 무신경」한 그는 과연 유행이나 형태의 유희추구에는 도무지 관심을 두지않는다.일상생활에서도 자녀들에게 자상한 아버지가 되지 못한다.20년전의 넥타이를 한결같이 매고있고 맞춤복따위는 절대로 입지않는 고지식한 성격탓에 지금까지 부인 정수자씨(50)가 의상실을 경영하면서 살림을 꾸리고 2남2녀를 공부시켰다.그리고 「나의 작품」의 집념에 매달린 부군을 위해 7년전에 이사해온 사당동집을 팔아 S부인 남편의 꿈을 이루게해줄 계획이다. 『그가 음악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음악을만든 사람의 주관과는 관계없이 그것을 자기방식대로 마음껏 즐길수 있기 때문』임을 부인은 너무도 깊이 이해하기도 한다. ○포기않는 끈질긴 집념 예술중에서 일반대중의 이상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 건축이라면 어쩌면 공일곤은 그가 아무리 부인한다해도 그 수많은 건축작업속에서 그 자신의 모습을 다양하게 시도해온 선택된 작가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시골의 촌부로 있으면서 부엉이가 드나드는 집을 지을 꿈이나 꾸면서 살것을 공연히 거대한 기계같은 도시에서 하나의 부속품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지,스스로가 생각해도 한심하기만 하다』고,이만하면 왜 김수근씨가 일찍이 「공일곤은 건축가보다는 시나 음악에 가까운 예술가로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했는지 이해할만하다. 그는 결국 그의 건축이 어떤 미술품이나 음악작품,한편의 명시 못지않게,아니면 그보다 더 높고 찬란한 차원에서 하나의 예술성으로 빛날수 있음을 믿고 이를 추구해가는 바로 그 예술가의 한사람인 것이다. □연보▲1937년1월 평북 벽동출생 공병순씨와 문석진여사(83)의 2남2녀중 차남 ▲6·25때 월남 ▲56연 서울고 졸업 ▲56연 대법원청사 및 공관 현상설계당선 ▲60연 서울대 공대 건축과 졸업 ▲60연 국회의사당 현상설계응모 ▲61∼69연 김수근 건축연구소 근무 ▲63연 자유센터 설계담당 ▲67연 정동 MBC(문화방송) 설계담당(6천5백평) ▲68연 여의도 개발참여 ▲69∼75년 중앙대 건축과 강사 ▲69∼현재 향 건축연구소 운영 ▲71연 천호동 맹인재활센터,남산KBS(국립중앙방송) 증축설계 ▲73연 남산 퍼시픽호텔,건풍제약,범양식품 대구·신탄진 코카콜라 공장,범양식품 포항,범양냉방 안양공장설계 ▲74∼80연 한은 마산·강릉·수원기숙사,모라도본사,중소기업은 부산·청주·마포·목포·영등포지점,신탁은 부산기숙사·체육관 종각지점,중앙대 안성캠퍼스교사·기숙사·학생식당·교수회관,새한전자주식회사 본사 ▲81∼90연 신탁은서울기숙사·체육관,한은 제주공관,제주·대구기숙사,방지거병원,새한미디어,효성그룹연수원,실내체육관,동양나일론,한국기술개발연수원 동양폴리에스터 연구소및 아파트 미리내수녀원,일진다이아몬드,한국카드콤본사,서울대 신소재 공동연구소 ▲91∼ 청암빌딩,덕산금속,동양폴리에스터 구미 사원아파트,새한미디어 충주교육장 등 그외 건물과 주택다수. 제1회 건축가협회 특별상 수상.
  • 빙벽등반 3명 숨져

    【춘천=조한종기자】 15일 상오11시쯤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 토왕성폭포에서 산악회원들과 빙벽등반 훈련을 하던 백중완씨(39·공무원·서울 중랑구 면목동 185의98)가 얼음을 찍던 피켈이 빠지면서 30m아래 절벽으로 떨어져 숨졌다. 이에앞서 14일 하오4시30분쯤에는 같은 곳에서 빙벽등반을 하던 서울 백산산악회원 동정길씨(26·상업·서울 구로구 대림동 1101의40)가 높이 60m의 빙벽에서 안전고리가 빠지면서 떨어져 숨지고 함께 빙벽을 오르던 나종수씨(28·설계사·경기도 광명시 하안동 광명아파트 903동 702호)등 2명이 중상을 입었다. 또 14일 상오10시30분쯤에는 춘천군 남산면 구곡폭포에서 빙벽을 오르던 최강연씨(25·회사원·서울 노원구 공릉동 441의65)가 폭포 위쪽에서 떨어지는 얼음덩어리에 맞아 숨졌다.
  • 서양화가 도문희씨(이세기의 인물탐구:13)

    ◎신선한 감각으로 원색의 미 묘사/변화에의 열정으로 새 조형방법창출 온힘/「정적질서」 보다 동적 유동세계 표출 돋보여/부친 도상봉화백 그늘벗어나 독자적 예술세계 추구 그림속의 꽃들은 모든 꽃이 활짝 피어 꽃바다를 이룬다.캔바스의 한정된 공간이 아닌 드넓은 벌판에 얼마든지 펼쳐진 채 꽃들은 꽃이 파리 바람에 흩날리듯 꽃향기 퍼뜨릴 듯 꽃마다 싱싱하게 살아 숨쉬고 있다. 화가 도문희의 회화세계는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유랑의 필치로 원근법과 사실적기법을 적절하게 원용하면서 큐비즘과 포비즘의 요소를 포함시킨 새로운 조형방법에 능란하게 반응하고 있다」는게 원로미술평론가 이경성씨의 말이다. 「언제나 신선한 속도감과 힘을 머금고 있는 그의 화면은 정적인 질서의 세계가 아닌 동적인 유동의 세계를 절제와 생략으로 탐구하면서 격동속에서 미의 원형을 찾아내고 있다고. 도문희씨는 과연 몸속으로부터의 열망과 열정이 끓어 넘치는 힘의 화가다. 그의 작품에서는 물론 그의 일상생활에서도 잠시도 한군데 오래 머물지 않는다.서울에 있는가하면 뉴욕에 샌프란시스코에 콜로라도나 산타모니카 라구나 비치에서 또는 괌도나 하와이의 빅아일랜드에서 화사하고도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그곳이 어디든지간에 그가 머물고 있는 곳에는 음악이 있고 음악의 흐름에 따른 경쾌하고 격렬한 사색적인 붓놀림이 그치지 않는다.자신의 예술의지와 방법을 위해 그는 자극적인 체험을 얻는데 시간을 낭비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다. 「한줄기 빛이 물체에 닿는 순간,그 빛은 물체위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것」이라고 말한 르노아르의 방법처럼 도문희는 꽃이면 꽃이라는 대상을 공간이동시키 듯이 생명감 그 자체로 자연스럽게 화면속에 옮겨놓고 있다.그래서 그의 꽃은 어느때는 무복을 입고 회전동작을 하는 발레리너처럼 생기발랄한 율동적터치로 음악에서의 비오렌토와 알레그리시모의 리듬감을 팔팔하게 되살리기도 한다. ○생명감 화면에 담아 그림을 그리지 않는 일상생활에서의 그는 될수록 그림과 연관시킨 일들 속에 참여하고 있다.그래서 공식적이거나 형식적인 행사자리보다연극이나 영화 한편 아르튀르 랭보의 「갈증의 희극」을 읽는 것이 그림에 대한 감동을 유발시켜준다고 생각한다. 음악이 없는 도문희란 도무지 상상하기 힘들다.클래식뮤직에서 디스코나 록뮤직,흘러간 닐다이아몬드나 젤리리에 이르기까지 그는 몸속의 세포 하나하나가 신들린 감흥에 물들여지기를 원한다. 아니면 그는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그랜드캐니언의 장엄한 황혼,달빛아래 사슴과 노루들이 뛰어노는 멕시코국경,크라이드강변의 성곽과 끝없이 불어오는 북풍 속에서 어디선가 「히드크리프!」를 부르는 캐서린의 목소리… 경탄과 감탄의 탄성이 절로 질러지는 눈부신 풍광을 찾아 또하나 새로운 여행계획을 세워야 한다. 초기에는 동양화에서의 삼원법과 같은 느낌으로 색채와 형태를 극대화시키면서 인물이나 꽃의 표현에서 몰골법을 사용하기도 했으나 이제는 그 대상이 무엇이든 극도의 기쁨과 즐거움으로 이를 승화시켜 감각화된 화면효과를 과시해 보이고 있다. 이런 심적충만을 위해 그는 시간과 정열을 아낌없이 투자해 왔다고 할 수 있다.그리고캔버스와의 오랜 대결끝에 빛이 공간속에 흐르듯 몸속에 정제돼 있던 예술에너지를 이끌어 조형언어를 구축해 나갔다. 도문희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최상의 환경에서 자랐다.나혜석의 불우하고 외로웠던 말년의 생애를 뺀다면 그의 화려함과 정열과 적극적이고도 진취적인 창조의식은 초기의 나혜석을 연상시키는 구석을 많이 지니고 있다. ○초기의 나혜석 연상 그의 부친은 우리나라 현대미술사에서 선도자의 한 사람이었던 바로 도상봉화백이다. 부친의 권유로 그림을 시작했으나 화가로서의 열망·야망이 꿈틀거리는 순간 그는 그림으로 향하는 두껍고 높은 벽을 스스로 힘차게 꿰뚫었다.물론 한사람의 여성으로서의 행복이 아닌 화가로서의 대성을 목표로 정하자 시련과 고통을 감수하는데 그는 주저가 없었던 것같다.고통없는 성취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도상봉화백의 그늘은 예상외로 넓고 컸다.동경미술학교 출신인 부친은 국전창설멤버에다 대한미협위원장 한국미협이사장 예총회장 문총최고위원 예술문화윤리위원 위원장 등등 화단의 중책을 두루거친 거봉으로 도문희는 언제나 「도상봉씨의 딸」로 불리워야했다.그는 부친의 이 후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화격도 특성도 다른 작품으로 이를 극복하고자 했으나 그 역시 쉽지 않았다. 혜화국민학교에 다닐 때는 발레리너를 꿈꾸면서 송범무용연구소에 넘나들다가 엄격한 부친의 반대에 부딪쳐 경기여고 때 그림을 시작했다.대학에 들어가기전에는 부친의 친한 친구이기도 한 김인승씨에게 그림을 사사,「화가지망」을 굳게 결심하고 정확한 데생,탄탄한 기본실력을 닦아 나갔다. 그때는 동아음악궁전이며 종로의 쎄시봉·르네상스음악실에서 하루종일 살다시피 했고 클래식판 수집광에다 블라맹크와 칸딘스키 루오에 심취했었다고 한다. 본래부터 화려하고 솔직한 성격이어서 그는 무슨일에든 쉽게 좌절하거나 좌절해도 실망하지않았다.결과가 안좋을땐 「좋은 경험」으로 돌릴만큼 낙천적인 편이다. 그에게 그림그리기를 권유한 부친은 막상 그에게 붓한번 바로잡아준적이 없었다.오히려 대학재학중 국전에 출품하기위해 열심히 그려논 그림위에다 가위표를 해논적이 있을 뿐이다.도문희는 국전에 출품하고 싶었다.자신의 작가적 재능과 자질을 인정받을수 있는 미술관문이었으나 부친이 심사위원·운영위원·고문등으로 연루되어있어 작품을 자유롭게 낼수없는것이 불편했다.3학년과 4학년때 부친몰래 가명으로 출품해서 연2회 입선했을때도 주변에서 「부친의 후광」으로 아는 것이 억울해서 아예 국전출품은 포기하고 말았다. 부친에게 영향을 받았다면 어릴때부터 아틀리에가 있는 분위기에서 아버니가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는 것뿐.오히려 동경여자미술학교 출신인 어머니 나상윤씨가 『나는 아버지때문에 그림을 포기했지만 너만이라도 나대신 열심히 하라』는 배려의 힘이 더 컸다고 할수있다. ○예술적 분이기서 성장 대학졸업후 대한미협과 이대출신그룹의 녹미회를 중심으로 그룹활동을 펼치면서 환상과 기억속의 사물들을 거칠고 대담한 야수파적인 축제분위기로 이끌어 화단의 주목을 한데 모았다. 그러나 기왕에 주어진 화가로서의 과정을 답습하는 형식에서 벗어난다는 차원에서 69년 첫번째 개인전을 연후 그는 미련없이 모든것을 떨쳐버리고 유럽으로 떠났다. 영국과 독일을 거쳐 스코틀랜드에 정착하여 그는 북구의 바다와 하늘의 변화표현에 현혹된 시기를 보냈다. 남청·담청·군청·감청·선록 보라와 옥색에 이르기까지 서로다른 수백가지 청색으로 출렁이는 바다와 천사의 날개 같은 구름의 흐름에 홀려 그는 마치 피카소의 청색시대를 연상케하는 청색조 시기를 이곳에서 거쳤다. 「시간따라 바람따라 하늘은 하늘대로 바다는 바다대로 단 한장면도 같은 색조,같은 표정을 보인적이 없었다」는 것과 「줄이엣의 푸른얼굴,로미오의 푸른눈매」머리카락과 머리에 장식한 액세사리까지도 굵고 짙은 푸른 선묘로 보여준것이 그시기의 작품들이다. 터질듯한 원색이 분방하게 펼쳐진 그 아름다움이 독특하여 독일의 벰버그 스코틀랜드 그린옥등 지방신문들은 「푸른 잎에 매달린 빗망울처럼 투명한 기쁨이 깃든 경관등으로 크게 취급한바 있다. 그의 부친이 딸의 그림을 칭찬한것은 77년 조선화랑 초대전때다. 그때 전시오프닝에 왔던 여러 화가 평론가들이 도문희 그림의 「축제분위기」를 호평하자 단지 한마디 『마치 이 세상이 천국임을 아는것같다』고 했었다.같은해 도상봉씨는 타계했고 도문희로서는 그때 그 말이 부친에게 들은 유일한 「촌평」이 된셈이다.서울에서는 지난 30년동안 끊임없는 우정의 교분을 갖고있던 선화랑의 김창실씨(화랑협이사장)와 진화랑의 유진씨의 초대전에 응하고 있다. 누구보다 도문희의 신선한 감각과 번뜩이는 젊음의 화면을 아끼는 김창실씨는 도문희의 「장미를 곧잘 「살아있는 보석」에 비유하고 「하탄과 하화가없는 그러나 화치의 극치」의 작가라고 말한다.화단의 대선배인 천경자씨는 「그의 식을줄 모르는 정열」도 정열이지만 무엇보다 「화가의 얼굴을 하고있는 화가」라는데 호감을 갖기도한다. 그는 여전히 무엇에 구애되지도 소속되지도 않는다.자신이 한일을 후회하지않는다.서울에 오면 이제는 다자란 딸과 아들과 친구처럼 어울려다닌다. 그는 화려한 치장을 즐기고 여러층의 사람들과 다양한 교분을 트고있지만 의외로 보수적이어서 안하는것 가리는것 투성이다.자유분망과는 상관없이 「맥주 한모금」등에는 남의 눈치를 보는 면이 있다. 뉴욕에서는 소호를 중심으로 일릭 드라곤루드 그레고리비치 조각가 스티븐 래등과 작품활동을 펼치고 그중 일릭 드라곤은 오는 5월 조선화랑 초대전을 주선해주기도 했다. 그는 지금 비로소 「화가의 길」을 걷게해준 부친께 감사하고 있다. 언제나 아무런 근심도 걱정도 없어보이는 그에게 누군가 『무엇이 그리 행복하냐』고 물었을때 그는 오히려 『슬픔과 아픔은 남에게 보이지 않는다』고 대답한 적이 있다. 축복받은듯 활짝 핀 그의 꽃들은 아마도 남이 모를 아픔과 시련을 딛고 피어난 것이기에 보는이에게 보는것만으로도 진한 감동의 빛을 전달해주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의 이 빛의 힘은 조금도 퇴색하는 기색없이 더욱 영롱하고 선명하게 그가 좋아하는 음악과 바람의 흐름에 실려 그의 화면속에서 기쁨의 빛으로 용해되고 있는것 같다. □연보 ▲1938년 서울 종로구 명륜동출생.서양화가 도상봉씨(77년 타계)와나상윤여사(87)의 1남 2녀중 막내 ▲57년 경기녀고졸업 ▲59·60년 국전입선 ▲61년 이화녀대 미대 서양화과졸업(김인승·이준·유경채·심형구사사) ▲80년 뉴욕 그래픽 버딘스 아카데미 ▲69∼72년 유럽체류(영국·옥일·스코틀랜드) 그린옥 아트갤러리·스코틀랜드 글래스코우 아트랠러리·렌프레쉬어 아트갤러리 등 개인전시 ▲73년 서울개인전(미술회관) ▲74년 아시아 련대작가전(일본 도쿄) ▲76년 세계여류미술전(인도네시아) ▲77년 서울 조선호텔 갤러리 초대개인전 ▲79년 진화랑초대 제4회 서울개인전 ▲80∼81년 미국체류(뉴욕맨해턴·버지니아 우드빌리지) 80년 비스비(Bisbe)전참가 ▲81∼84년 독일 프랑크푸르트·벰버그(Bemberg)풀다(Fulda)빌트프릭켄(Wildfricken)개인전 ▲87년 서울선화랑 초대「장미」개인전 ▲89년 〃 진화랑 초대 개인전 ▲91년 〃선화랑 초대 개인전 ▲91년 〃정화랑〃 〃 ▲92년 MBC후원 부산호텔 미술관·아천미술관초대전 ▲93년1월 LA 앤드루 셔(Andrew Shire)갤러리 초대전 ▲한국미협·녹미회 회원 ▲작업실 서울 용산구 이태원2동 ▲국립현대미술관 간 한국서양화대관(작품수록)
  • 강원 스키장 6만인파/휴일 설악산에 2만명 북적

    【춘천=정호성기자】 휴일인 10일 강원도내 용평스키장에는 3만여명,고성 알프스 스키장에는 2만5천여명의 스키어가 몰려 원색의 옷차림으로 설원을 누볐다. 국립공원 설악산에는 2만여명의 관광객이 모여들었는데 동남아 지역에서 온 관광객 2백여명은 난생 처음 보는 설악의 설경에 탄성을 지르기도 했다. 이날 설악의 최고봉인 대청봉(해발 1천7백8m)에 오른 등산객은 5백여명에 이르렀으며 높이 4백여m로 국내 최대규모의 빙벽을 이룬 토왕성폭포에는 3백여명의 전문 알피니스트가 몰려들어 빙벽타기를 즐기기도 했다. 이밖에 강릉 경포대와 양양 낙산사 일대등 해변에는 연인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춘천근교 강촌유원지 등에는 대학입시를 끝낸 자녀를 동반한 가족단위의 많은 행락인파가 붐볐다.
  • 중기 사장 또 자살/3억 부도… 북한강상류 투신

    【춘천】 5일하오 1시40분쯤 강원도 춘천군 서면 덕두원3리 등선폭포앞 북한강 상류의 깊이 2.5m되는 물속에 서울 칠성전공 대표 홍순강씨(56·서울 은평구 갈현동 404의21)가 빠져 숨져 있는 것을 경찰이 인양했다. 경찰은 이날 이 마을의 신모씨(48·상업)가 유람선 위에 남자용 양복상의 및 외투와 구두가 가지런히 놓인채 사람이 없어 투신자살자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신고해 오자 잠수부를 동원,주변을 수색하던중 물속에 빠져 숨져 있는 홍씨의 익사체를 건져냈다. 소형승용차 시트에 들어가는 스프링을 생산해 납품해온 홍씨는 최근 사업자금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어 오다 구랍 30일 2천여만원의 부도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들은 『구랍 29일 아침 출근한다며 집을 나선후 아무런 연락도 없이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홍씨의 양복상의 주머니에서 『가족들을 두고 먼저 가서 미안하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된 점 등으로 미뤄 부도가 난 것을 비관,자살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인을 조사중이다.
  • 등산로 1백15곳 폐쇄/오늘부터/산불예방위해 한달간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산불예방특별기간인 15일부터 12월15일까지 한달동안 전국16개 국립공원 2백12개 등산로 가운데 산불발생의 위험이 높은 지리산 노고단∼천왕봉 구간등 1백15개등산로의 입산을 통제키로했다. □통제되는 1백15개등산로 지리산 령∼빗기재,달궁∼정령계곡,달궁∼반야봉∼광산골,달궁∼반야봉∼봉산골,덕동∼세걸산 등 27곳 계롱산 관음봉∼천황봉,상신∼삼불봉 한려해상 두산계곡∼금산정상 설악산 비선대∼마등령∼백담대피소,비선대∼희문각∼대청봉,오색∼설악폭포∼대청봉,백담대피소∼봉정암∼대청봉 속리산 세심정∼비로대피소∼상고암∼천황봉,세심정∼상환암∼천황봉,입석대∼천황봉 등 8곳 내장산 야영장∼서래봉,사슴목장∼서래봉,야영장∼빗재,이주암계곡∼소죽음재,입암어구∼새재 등 15곳 가야산 홍제암∼진대밭골∼두리봉,홍제암∼관음폭포∼깃대봉,치인리∼삼정∼깃대봉 등 8곳 덕유산 인월담∼칠봉산∼향적봉 등 4곳 오대산 적멸보궁∼비로봉∼북대 등 4곳 주왕산 제3폭포∼금은광이∼너구동등 7곳 치악산 황골∼입석사∼비로봉,국향시∼향로봉∼비로봉 등 5곳 월악산 미특리∼하늘재∼포암산 등 5곳 북한산 범골∼백인굴,회룡사∼백인굴∼안골능선,다락원∼심원사능선,삼성암뒤∼칼바위능선,넓적바위∼17휴식처∼칼바위능선∼재계골,자은사∼칼바위능선,보광사뒤∼진달래능선삼거리,내원사입구∼칼바위능선∼냉골약수터 소백산 갈래골∼도솔봉∼죽령,어의곡∼비로봉등 9곳 월출산 교동리∼천황봉,춘양리∼천황봉 등 4곳 변산반도 내소사∼회양골∼변산기도원,보안우동∼굴바위∼화양골
  • 평북 백령대굴은 「지하금강」(북한 이모저모)

    ◎5㎞길이 14개굴에 폭포까지 “절경”/형제탑·비룡담 등 신비한 석순 즐비 ○…평북 구장군 대풍리에 있는 길이 5㎞의 「백령대굴」은 북한의 「지하금강」으로 불릴만큼 아름다운 절경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고 평양신문 최근호가 소개했다. 「백령대굴」은 원굴과 거기에서 갈라진 미로굴,산해굴을 비롯한 14개의 크고 작은 굴로 이루어져 있는데 원굴은 총연장 9백50m로 내부로 들어갈수록 백색 또는 남황색의 반투명체인 종유석과 석순들이 특이한 모양으로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이 굴에는 맘모스를 연상케 하는 「맘모스동」,두 그루의 석순이 5m 높이로 대리석 기둥처럼 서있는 「형제탑」이 있으며 비룡담에서 떨어지는 폭포와 샘물이 있는 동굴인 「모험동」이 있다. 또한 길이가 72m나 되는 넓은 구역인 「명사십리」,폭포모양의 종유석이 있는 「폭포동」,장정에 등불같이 종유석이 달리고 밑에는 아이들이 계단에 앉아 노는 것 같은 신비로운 모양과 그밖에 「삼태자」석순,「만탑동」,「포도동」등으로 불리는 절경들이 연이어 나타난다. ◎「한복 잘 입는 법」 등 소개/「옷차림」화첩 최근 출간 ○…북한은 최근 주민들의 옷차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현대적이면서도 사회주의 생활양식에 맞는 옷치장」을 유도하기 위해 「옷차림」이란 제목의 화첩을 출간한 것으로 조총련기관지 조선신보가 최근 보도했다. 정무원 경공업위원회 산하 피복연구소에서 출간한 이 화첩에는 한복을 계절과 때,장소(예:결혼식,무도회,명절)에 맞게 『우아하고 고상하면서도 현대적으로 맞춰 입는 방법』들과 남녀별,노소별로 「나뉜돗」(투피스) 「달린옷」(원피스) 「간이옷」(간편복) 등을 입는 방법들이 다양하게 소개돼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또한 이 화첩은 다양한 옷차림 소개와 함께 개개인이 모두 옷을 지어 입을 수 있도록 기본적인 의상의 경우 「설계도안」(재단본)까지 수록했는데 특히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통일거리에 「낙랑식당」/대형 대중식사실 개업 ○…북한은 평양시내 신시가지로 조성중인 통일거리(구 낙랑거리)에 주민들의 생활편의를 돕기위해 「낙랑식당」을 개업했다고 평양신문 최근호가 보도했다. 대동강 북쪽 평천구역에서 「충성의 다리」를 건너 통일거리와 만나는 교차지점 왼쪽 충성1동에 자리잡은 「낙랑식당」은 2층 건물로 1층 정문에 들어서면 수·소화물 보관소가 있고 그 옆으로 2개의 대중식사실이 마련되어 있다고 이 신문은 소개했다. 왼쪽에는 금강산을 화폭에 담아 벽화로 장식한 64석짜리 방이 있고 오른쪽에는 각종 장신구로 치장한 1백42석의 비교적 큰 방이 있다. 메뉴로는 국수 빵 떡 만두국밥 고기국밥 상밥등의 요리와 청량음료등이 구비되어 있는데 1층에서는 주로 국수 빵 떡류를 서비스하고 나머지는 2층에서 취급한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 설악산 등반남여 계곡으로 추락(조약돌)

    ◎의식잃고 산속에… 5일만에 구조 ○…등산을 하다가 계곡으로 떨어져 의식을 잃었던 남녀가 5일만에 구조됐다.지난 4일 하오3시쯤 강원도 인제군 북면 한계3리 설악산 국립공원내 소승폭포에서 이곳에 등산왔던 이상돈씨(57·상업·서울시 관악구 신림동)와 이민선씨(45·여·경기도 안산시 본5동)등 2명이 폭포밑 계곡으로 떨어져 의식을 잃고 쓰러져있다가 5일만인 9일 새벽 이민선씨가 먼저 의식을 회복,산아래로 내려와 한계령경비초소에 연락해 출동한 구조반에 의해 이상돈씨도 상오 10시25분쯤 구조됐다. 이들은 4일 상오6시쯤 설악산에서 우연히 만나 인제군 북면 장수대를 떠나 한계령 정상쪽으로 함께 등산을 하다가 소승폭포에 이르러 이상돈씨가 받을 헛디뎌 8m아래 계곡땅바닥으로 떨어지자 이를 구하려고 급히 뛰어내리던 이민선씨도 추락,의식을 잃었다는 것이다.그러나 5일만인 9일 이민선씨가 먼저 의식을 찾아 구조를 요청해 모두 목숨을 건졌다. 연락을 받은 인제경찰서와 산악구조대등의 구조반 16명은 즉시 현장에 출동,그때까지 의식을 잃고 있던 이상돈씨를 구조해 인제종합병원으로 옮겼다.
  • 철분 과잉섭취/심장마비 위험성 높다

    ◎핀란드 살로넨교수 미 심장의학전문지 기고논문서 밝혀/저밀도 지방 단백질의 산화 촉진/심장동맥 좁혀 혈액 흐름을 방해/“주기적 헌혈이 최선의 예방”… 피임약 복용도 삼가야 음식물 섭취를 통해 몸안에 축적된 과잉 철분은 흡연 다음으로 심장마비를 일으키는 치명적인 요인이 된다는 충격적인 연구결과가 최근 발표됐다. 핀란드 쿠오피오대 역학자 주카 살로넨박사팀이 근착 미국심장병협회 전문학술지 서큐레이숀지에 발표한 「철분과 인간심장」에 관한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음식물 섭취로 몸안에 쌓여있는 상당량의 철분은 갑자기 심장마비를 유발시키는 시한폭탄처럼 위험요인이 된다고 경고했다. 살로넨박사팀은 동부핀란드에 거주하는 42∼60세의 장년층 1천9백명을 대상으로 단백질내에 함유된 철분량(페린)을 5년동안 추적,조사했다. 놀랍게도 이 조사결과는 조사자의 절반인 51%가 심장마비로 고통을 받고 죽음의 위험에 놓여있을뿐 아니라 심장마비를 앓고있는 사람들은 정상인의 혈액 1ℓ당 2백마이크로그램(㎍)보다 훨씬 많은 철분량을 함유하고 있었다. 특히 체내의 철분함량이 상당히 높은 사람은 정상적인 철분을 가진 사람보다 2배이상 심장마비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주목되는 사실은 체내에 과다한 철분과 저밀도지방단백질(LDL)을 가진 사람은 정상인에 비해 4배정도 심장마비에 걸릴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세계 의학계는 체내의 많은 철분 축적이 심장마비의 유발을 촉진시키고 낮은량의 철분은 심장마비 예방에 탁월한 효과를 줄수있다고 추정해왔다. 살로넨박사는 철분이 체내에서 저밀도 지방단백질(LDL)과 산소간에 화학적 반응을 촉진시키는 상승작용을 함으로써 심장병의 위험을 가중시키는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결국 이 화학적 반응은 심장동맥의 벽을 좁히고 피의 흐름을 폭포수처럼 분출시켜 응고된 혈전은 혈액순환을 억제하고 심장마비를 일으키게 된다.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혈액내 철분은 불안정한 발생기의 산소분자가 유리기를 형성,심장마비 발생후 심근에 큰 손상을 줌과 동시에 암·당뇨병·관절염 및 노화현상을 일으키는 요인으로 추정된다. 일반적으로 여성들이 복용하는 먹는 피임약은 심장병의 유발을 촉진하고 해열제인 아스피린과 생선기름은 심장병을 예방하는 약이작용을 가지고 있다.또 소나 양고기에는 풍부한 철분이 들어있기때문에 심장병 발병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된다. 체내에 4g정도 들어있는 철분은 혈액을 만드는 중요한 영양소가 된다.미국식량의약국(FDA)은 성인 한사람이 1일섭취하는 철분 권장량을 18㎎으로 규정하고있다. 자연식품중에서 철분이 많이 들어있는 식품으로는 소간을 비롯,파래·효모·카레가루·톳·강조개·참깨·콩·감자·갈비·솔잎 등을 들수있고 가공식품으로 건포도·피넛버터·크림·햄버거·스파게티·치즈피자 등을 손꼽을 수 있다. 혈액내에 철분함량이 많은 사람은 심장마비 예방을 위해 주기적으로 헌혈하는 것이 가장 좋은 예방법이 될 수 있다.또한 쇠고기·닭고기·돼지고기·오리고기·생선의 과다한 섭취를 피하고 싱싱한 채소와 과일 및 콩식품을 많이 먹는 것이 좋다. 아무튼 심장마비의 위험이 있는 사람은 지방질 섭취를 최소한으로 줄이되곡류·채소·과일을 매일 듬뿍 섭취하면 이 병을 자연적으로 예방할 수 있다.
  • 초가을 계룡산 발길마다 절경

    ◎천왕봉 일출/동학사 계곡/은선폭포 운무/갑사의 단풍/남매탑 명월/온갖 사연 간직… 팔경엔 절로 탄성/갑사∼팔각정∼삼불봉∼남매탑∼동학사코스 장관/유성온천 가까워 가족산행 적격 영산으로 이름높은 계룡산은 산세와 계곡이 아름다워 연중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전시와 충남 공주·논산군에 걸쳐있는 계룡산은 예로부터 묘향·구월·금강·지리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오악중의 하나로 꼽히는 명산.조선조초 예언서 정감록의 왕도입지설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산모양이 마치 여의주를 다루는 쌍룡이 닭벼슬을 쓴것 같다하여 「계룡」이라 이름지어졌다고 전혀진다. 최고봉인 천왕봉(8백45m)을 중심으로 쌀개봉(8백28m),연천봉(7백40m),문필봉(7백96m),삼불봉(7백50m),수정봉등이 연꽃잎 처럼 펼쳐져 있고 관음봉 향적봉 임금봉 신선봉등 20여개의 산봉우리들이 장엄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그중에서도 천왕봉의 일출,동학사계곡의 신록,은선폭포의 운무,남매탑의 명월,갑사의 단풍등은 너무 아름다워 「계룡8경」으로 불리고 있다. 계룡산을 오르는데는 크게 갑사와 동학사코스로 나뉜다.이 두 사찰 사이에는 숱한 사연에 곡절도 많아 굽이마다 역사를 남기고 계곡마다 전설을 품은 신비의 계룡이 수석마냥 누워있다. 갑사와 동학사를 잇는 가장 쉬운 등산로는 남매탑과 금잔디고개를 경유하는 코스이며 동학사에서 은선폭포를 지나거나 갑사에서 연천봉을 거쳐 쌀개 능선을 넘는 것도 일품이다.아니면 쌀개릉에서 관음봉을 넘어 계룡산의 백미인 자연성릉을 돌아 삼불봉에 오른후 동학사나 갑사로 내려서는 것도 장관이다. 그러나 계룡8경을 보다 많이 보기위해서는 공주군 계룡면 갑사에서 산행을 시작,등운암∼팔각정∼삼불봉∼남매탑을 지나 동학사로 내려오는 코스가 가장 이상적이라는 것이 등산애호가들의 설명이다.이 길은 동학사에서 출발하는 코스가 가파르고 험한데 비해 3시간 정도면 산행을 모두 마칠수 있는 장점도 있다. 갑사는 고구려 고승 아도화상이 창건한 고찰로 경내에는 철당간지주·동종·월인석보·부도등 4점의 보물과 사명·서산대사의 영정을 모신 표충원이 있다. 계룡산동쪽 기슭에 있는 동학사 역시 신라 성덕왕 23년 회의화상이 창건하여 고려때 도선국사가 중건한 삼한의 고찰로 삼은각과 비구니들을 위한 전문사원으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동학사와 갑사주변에는 여관과 민박도 많다.동학사 아래 여관촌에 내려오면 유성행 버스가 항상 대기하고 있다.유성온천은 교통이 좋을 뿐만 아니라 각종시설도 잘돼 있는 편이어서 가족휴양지로 그만이다. 대전에서 동학사까지는 시내버스가 다니고 공주에서 갑사로 가려면 30∼4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시외버스를 이용하면 된다.동학사쪽에는 주차장도 완비되어 주말 승용차이용에 불편함이 없다.
  • 평양여성회담 마지막날 이모저모

    ◎우리대표,이인모씨 딸 리현옥 만나 ○금강산 2시간 관광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평양토론회에 참석한 남·북한 및 일본여성 대표단 일행은 3일 아침 6시30분께 숙소인 고려호텔을 출발,평양∼원산간 고속도로 편으로 낮 12시30분께 강원도 고성군 소재 금강산호텔에 도착.이어 등산장비를 갖춘 대표단 일행은 외금강 입구에서 구룡연 지역입구까지 승용차로 들어가 2시간여동안 외금강의 구룡폭포와 팔담을 등산.이번 남측 대표단의 금강산 관광은 지난해 IPU대표단에 이어 공식적으로는 두번째 방문. ○…일본측 시미즈 스미코대표는 『나는 금강산이 세번째이지만 남측 여성들이 금강산을 찾는 감회는 각별할 것』이라면서 『금강산은 자연이 훼손되지 않고 남아 있어 더 아름답다』고 소감을 피력. ○…시중호휴게소는 동해안 해변 백사장위에 위치.뒤쪽에 있는 호수는 감탕목욕(개흙을 몸에 바르는 것)으로 유명한 곳.이 목욕은 관절염,신경통에 효험이 있으며 특히 수술후유증은 너덧번의 목욕으로 풀어진다는 것. ○아버지 장수 기원 ○…우리측 이효재대표는 금강산으로 가는 도중 미전향 북측 종군기자 출신 이인모씨의 딸인 리현옥(개선고등중 부교장)씨가 북측대표단에 끼어 있는 것을 알고 일부러 찾아가 잠시 대화를 나누기도.이대표는 『북측에서 알려주지 않아 오늘 인편으로 배달된 우리 신문을 보고 알았다』면서 『오래오래 살아 아버님을 만나라고 했다』고 전언. ○65도짜리 술 2원 ○…대표단 일행은 금강산으로 오는 도중 신평·시중호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신평휴게소 앞에는 대동강지류인 남강에 댐을 쌓아 만든 인공호가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물안개가 피어 오르는 가운데 물가에 수양버드나무가 늘어져 꿈같은 분위기.신평휴게소에서는 고장 명물인 산구렁이로 담근 알코올도수 65도의 술을 한잔에 2원씩 판매해 관심을 모으기도. ○각종 구호간판 즐비 ○…대표단을 태운 버스는 원산,통천을 거쳐 해안도로를 타고 질주.거리에는 청색·분홍색·흰색 타일을 붙인 5층 정도의 아파트가 많이 눈에 띄었으며 들판이나 거리에는 각종 구호가 쓰인 간판들이 즐비.
  • 노송·맑은 물 어우러져 자연미 극치/동해시 무릉계곡

    ◎청옥산·두타산 사이로 암반 14㎞ 뻗쳐/3단으로 된 용추폭포 절경중의 절경/명필 양사언 등 선인들,비경예찬 각자남겨 고려 충렬왕때 정치가이자 학자인 동안거사 이승휴가 절경에 반해 정3품 벼슬도 마다하고 은거했다는 강원도 동해시 무릉계곡­. 높이 1천4백3m의 청옥산과 1천3백53m의 두타산이 합작해 빚어낸 무릉계곡은 이름그대로 수백년도 넘어보이는 낙락장송과 흰 반석위를 흐르는 맑은 물이 한데 어우러져 자연미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특히 다이나마이트를 터뜨려도 깨지지 않을듯해 보이는 암반에 뿌리를 내리고 우뚝 선 노송을 보고 섰노라면 자연의 경이로움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게다가 바위를 타고 쏟아지는 은빛 폭포수는 한층 높이 올라간 파란 하늘에 반사되어 비경을 더욱 아름답게 수놓고 있다. 문간봉 남쪽 절벽아래 깊숙이 숨어있는 용추폭포는 무릉계곡 내 숱한 명승중에서도 단연 백미로 꼽힌다.상단 중단 하단으로 연결되어 일명 「삼단폭포」라고도 불리는 이 용추폭포는 주위의 뛰어난 경관과 조화를 이뤄 실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이 폭포의 높이는 상단과 중단이 각각 20여m이고 하단이 10여m.장엄한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서 선녀탕을 연출한 이 폭포는 1백여m아래 60여m높이의 쌍폭포로 이어져 암벽에 늘어선 단풍나무들과 함께 오는 가을 또한차례 단풍축제를 요란스럽게 펼칠 전망이다. 무릉계곡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는 선인들이 무릉반석위에 남긴 성명각자에서도 잘 엿볼수 있다.조선조 선조때 강릉부사를 지냈던 명필 양사언은 무릉반석 위에 두타산의 절경을 예찬하는 초서각자를 남겨 신력에 가까운 그의 달필을 보여주고 있다.속세를 떠나 무릉반석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명승을 찬미하던 선인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반석은 광장과도 같아 수백명이 한꺼번에 앉아 즐길수도 있다.본래는 평평한 모습이었으나 1920년쯤 지각변동으로 균열이 생겨 지금처럼 층계를 이루며 기울어졌다고 한다.지금은 자연훼손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곳을 찾은 시인 묵객들의 성명각자가 여기저기 남아있다. 무릉계곡은 길이가 14㎞나 된다.동해시청에서 무릉계곡 입구까지는 19.1㎞이고 도중에 용산서원과 쌍용시멘트공장 앞을 지나게 된다.입구에서 정상까지는 산이 높고 산세가 험한만큼 아무리 최단코스라 하더라도 5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등산객들이 흔히 택하는 삼화사∼문간재∼연칠성령∼청옥산∼두타산∼산성터∼삼화사 코스의 경우 19.6㎞로 9시간30분가량이 소요된다.또 삼화사∼두타산성∼두타산∼박달령∼용추폭포∼삼화사코스는 16.5㎞로 8시간가량이 걸리며 삼화사∼문간재∼연칠성령∼청옥산∼박달령∼용추폭포∼삼화사 등정은 17.6㎞에 7시간40분가량이 소요된다. 동해시에서 무릉계곡까지 직행버스와 시내버스가 다닌다.무릉계곡입구까지 차량 진입이 가능하며 주차장도 마련되어 있다. 계곡입구에는 30여채의 식당과 민박집이 있어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고 산에 오르면 등산이 훨씬 쉬워진다.
  • 산과 나/노영희 시인(굄돌)

    큰 산자락에서 자라서 그런지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줄곧 산을 찾는 것을 취미로 삼고 있다.울화가 치밀 때나 적적할 때나 마음속이 복잡할 때나 뭔가가 그리울 때는 언제나 산을 오른다.산이 날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아 간단한 옷차림으로 북한산을 찾아 나선다.일요일마다 이 코스 저 코스로 바꿔가며 산중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것을 좋아한다. 혼자 다닐 때도 많고 일행과 같이 다니기도 한다.이번 산행은 승가사쪽 코스를 선택했다.더운철이라 홀가분하게 혼자 나섰다.산중에 드니 산 냄새가 났다.푸근했다.배낭을 내려놓고 폭포밑 바위에 앉아 발을 찬 물에 담그고 1시간 이상을 가만히 있었다.온갖 세상사가 다 떠오르고 지나갔다. 인간의 마음이 맑은 물과 같이 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장애물은 돌아가고 날카로운 것은 안아주고 낮은 곳으로만 흘러가고 부드럽고 모양이 없고 깨끗하기만 한 물의 성질을 닮을 수만 있다면 한이 없겠다. 산에는 또 이쁜 잔 꽃들이 이름도 없이 널려 있었다.자랑도 하지 않고 시샘도 하지 않고 다투지도 않고무심하게 향기와 빛깔을 드러내고 있었다.더 사랑받으려고 더 얻으려고 더 가지려고 하지도 않았다.그냥 존재했다.그냥 숲속의 꽃으로 자기 몫을 다하고 있었다.헛되게 권력과 이름과 재산에 집착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잔 꽃에서 배우라」는 속엣말이 저절로 나올려고 했다. 산은 나를 쉴새없이 가르친다.또 나무들은 어떤가.나무들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한다.따스한 햇살과 물과 기름진 흙을 똑같이 나눠 먹는다.서로 기댄다.온갖 저항을 다 이겨낸다.그리고 푸르름과 그늘과 바람과 음악과 땔감을 인간들에게 선사한다. 산은 나의 어머니며 종교이며 연인이다.그 너그러움,그 함묵,그 깊이,그 아름다움에 앞으로도 계속 기댈 참이다.산에서 내려오는 날 밤에 「너」라는 제목으로 나는 짧은 시 한 편을 썼다.『산 넘어 산/그리움 넘어 그리움/바람 넘어 바람』
  • “정말 잘 싸웠다” 뜨거운 환영

    ◎바르셀로나올림픽 출전선수단 개선하던날/월계관 쓴 황영조선수에 갈채/공항∼서울시청 꽃길 퍼레이드 자랑스런 올림픽 영웅들이 개선하던 날 온 국민은 뜨거운 가슴으로 영웅들을 맞았다. 12일 하오 금메달 12개 등 모두 29개의 메달을 따낸 바르셀로나올림픽 한국선수단이 돌아오는 모습을 지켜본 국민들은 『정말 잘 싸웠다』는 격려의 말로 선수들을 열렬히 환영했다. 국민들은 특히 사격의 여갑순선수가 이번 올림픽 첫 금메달을 딴데 이어 마라톤의 황영조선수가 마지막 금메달을 획득한 일등 극적인 승리의 장면들을 떠올리며 선수 모두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이날 아침부터 내리던 비도 그치고 하오엔 햇살이 비치자 김포공항 환영행사장으로부터 시청앞 환영대회장에 이르는 연도에 환영나온 시민들은 『하늘도 개선영웅들을 환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공항환영◁ 하오3시58분쯤 김포공항에 도착한 선수단은 간단한 입국수속을 마친뒤 배드민턴 남자복식에서 금메달을 딴 박주봉선수(28)를 기수로 차례로 신청사 입국장으로 들어와 공항귀빈 주차장에 마련된 환영식장에서 이진삼체육청소년부장관·이문석총무처장관·김종렬대한올림픽위원회위원장·대한체육회관계자·가족친지 등으로부터 군악대의 개선행진곡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환영화환을 받았다. 특히 황영조선수(22)는 대한항공에서 손기정옹(80)의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제패를 기리기 위해 특별제작한 진짜 월계수로 만든 월계관(월계관)을 머리에 쓰고 나와 가족·시민들로부터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이날 환영식장에는 박정기육상·박용성유도·장진호사격연맹·정몽구양궁·허창범역도·안청수핸드볼협회장 등 금메달을 딴 경기단체장들이 대거 참석했다. ▷개선행진◁ 공항환영행사를 마친 선수단은 하오4시40분쯤 34대의 무개차와 대형버스 6대에 나눠타고 공항로∼여의도광장∼서소문로를 거쳐 시청앞까지 카퍼레이드를 벌였다. 경찰 사이카의 안내를 받으며 1호차에는 김성집단장·박주봉선수,2호차엔 윤덕주부단장 이종택총감독이 탑승했으며 가장 인기를 끈 마라톤의 황영조선수와 정봉수감독이 4호차에 탔다. 선수단이 지나는 연도엔 많은 시민들이 나와 손을 흔들어 선수들을 환영했으며 등촌동 인공폭포,마포 가든호텔앞,서소문 등에서는 한양공고·염광여상·성덕여상·동광상고밴드 등이 나와 「손에 손잡고」등 올림픽관련 노래를 연주해 환영분위기를 고조시켰고 서소문로를 지날때엔 양쪽 빌딩들에서 종이꽃가루가 뿌려져 환영분위기가 절정을 이뤘다. ▷환영대회◁ 하오5시40분쯤 선수단이 서울시청앞 광장에 도착하자 정원식국무총리와 이상배서울시장·김찬회서울시의회의장 등이 참석한 시민환영대회가 열렸다. 정총리는 인사말을 통해 『이번 대회에서 한국선수들의 선전은 우리민족의 저력을 다시한번 확인하고 자긍심을 높여준 쾌거였다』고 치하하고 『오늘의 감격을 새로운 단합과 전진의 힘으로 승화시켜 세계로 뻗어나가는 영광스런 조국을 이룩하는 원동력으로 삼자』고 말했다. 이서울시장도 『바르셀로나의 첫 금메달에서 마지막 금메달까지 국민 모두가 하나가 되었다』면서 『이번 쾌거가 불쏘시개가 되어 온겨레의 마음에 「하면된다」는 저력을 점화·확산시키자』고말했다. 이날 공항에 나온 김성철씨(31·회사원)는 『밤잠을 설쳐가며 우리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보면서도 피곤한줄 몰랐다』면서 『특히 마라톤의 황영조와 여자유도 김미정선수가 금메달을 딸 때는 한편의 감동적인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고 당시를 회상하며 감격해 했다. 시민환영대회를 마친 선수단은 다시 무개차와 버스를 타고 남산3호터널∼반포대교∼88올림픽대로를 거쳐 올림픽제2체육관에 도착,합동기자회견과 해단식·환영연을 가졌다. ▷회견·환영연◁ 올림픽 제2체육관 간이기자회견장에서 김단장을 비롯,임원과 메달획득 선수 등은 종합7위를 차지한 감회등을 밝힌 뒤 해단식을 가졌다. 이체육청소년부장관은 해단식 축사에서 『세계 1백72개국 1만5천여명의 우수한 선수들이 참가한 이번 올림픽에서 우리가 거둔 성과는 우리나라가 국제스포츠무대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김성집선수단장은 답사에서 『그동안 국민들이 보내준 뜨거운 성원에 깊이 감사드린다』면서 『바르셀로나 하늘에 태극기가 올라갈 때마다 우리 민족의 힘찬 위상을 세계에 떨친 감격적인 모습을 모든 국민과 더불어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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