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폭파
    2026-01-01
    검색기록 지우기
  • 모자
    2026-01-01
    검색기록 지우기
  • 우주
    2026-01-01
    검색기록 지우기
  • 쓰나미
    2026-01-01
    검색기록 지우기
  • 삼성SDI
    2026-01-0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822
  • 스리랑카 자살 폭탄테러/정부청사 폭파… 21명숨져/반군 소행 추정

    【콜롬보 AP 로이터 연합】 7일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의 한 정부청사에서 타밀 게릴라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최소한 21명이 사망하고 50여명이 부상했다고 현지 경찰이 밝혔다. 목격자들은 코코넛이 실린 손수레를 끌던 범인이 스리랑카 서부주 정부의 수실 프레마자얀타 수석장관의 집무실이 있는 청사 밖에서 검문을 받은 직후 손수레에 숨겨놓은 폭탄을 터뜨렸다고 말했다. 이번 폭탄테러를 자신들의 행위라고 주장하는 단체는 나타나지 않고 있으나 현지경찰과 관리들은 지난 6일 타밀족의 자치권 확대를 허용하되 반군단체인 타밀엘람해방호랑이(LTTE)를 협상대상에서 배제하는 내용의 평화안이 발표된데 불만을 품은 LTTE측의 소행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타국에서 부른 노래(두만강 7백리:23·끝)

    ◎민족의 한 서린 「선구자의 무대」/연변 원로 음악인 김종화씨,윤해영·조두남에 얽힌 이야기 들려줘/해란강변 말 달리던 선구자 간 곳 없고/일송정 그 자리엔 기념비만 외로이… 중국 동북3성.이른바 만주라고 불렀던 북지에는 민족의 한이 어디 못지않게 서려있다.그리고 그 한을 노래로 달랬던 사연도 숱하게 간직했다.오늘날까지도 민족이 널리 애창하는 애수 어린 가곡과 구슬픈 유행가들이 여기서 잉태되었다. 용정시 시가지에서 4㎞ 떨어진 비암산과 일송정,비암산에서 바라본 해란강은 유명한 가곡 「선구자」노랫말의 무대다.지금으로부터 58년전만해도 돌기둥에 흡사 청기와를 덮은 듯 싶은 두 아름드리나 되는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어 일송정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그 자리에 지금은 일송정 기념비와 정자가 들어섰다.또 근래에 정자로 올라가는 길에 「선구자탑」이 세워졌는데,무슨 영문인지 몰라도 곧 폭파되었다. ○노래유래 등 사라져 그 바람에 탑에 새겨두었던 「선구자」의 노랫말도,노래의 유래도 사라졌다.그러나 1990년 「선구자탑」을 세운다고 했을 때 꼬깃꼬깃 접어 간직했던 「선구자」노래와 작사자 윤해영,작곡자 조두남에 얽힌 사연을 증언한 분이 생존해 있다.1921년 화룡시 용문향 태생의 연변 원로음악인 김종화(74)선생이 그 분이다.연길시 흥안향에 사는 그를 찾았다.지금도 틈틈이 기타를 칠 정도로 아주 건강했다. 『1939년 이른 봄이었디요.부친과 함께 일곱식구를 거느리고 훈춘 양수를 떠나 흑룡강 목단강시에서 80여리 떨어진 신안진으로 이사를 한 것입네다.신안진은 60리 넓은 벌판이라 18개나 되는 큰 마을들이 자리잡은 반도시 반농촌이었댔는데,학교만 해도 10개에 병원도 3군데나 됐드랬디요.내가 꾸린 동양사진관 같은 사진관도 5개나 되고….벌판을 질러 흐르는 해랑강에 뗏목을 띄워 해림을 거쳐 목단강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었디요.그래서 여관이며 식당이 흥청대고 기생집들도 적잖았수다.그런데 신안진에는 음악을 좋아하는 의사 한 분이 안전병원이라는 병원을 경영하셨댔디요.기타연주와 작곡법을 배우던 나도 그 병원을 드나들던 사람중의하나였습네다』 그는 신안진에서 1942년 겨울 조두남을 먼저 만났다.자그마한 유랑극단에서 아코디언 주자였던 조두남의 첫 인상은 키가 커 보이고 깡마른 것이었다.「라 콤파르시타」와 「마리네라」를 연주하면서 정서전환점에 다다르면 으레 히죽 웃곤 했다.깡마른 체구에서 어떻게 저런 음악이 나오나,하는 찬탄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조두남의 왼손엔 붕대가 감겨있었다.할머니의 강권으로 일찍 고향 평양에서 장가를 들었던 조두남은 이참저참 집을 뛰쳐나왔던 것으로 김종화선생은 기억했다. 안전병원을 개업한 안의사댁은 음악을 한다는 사람들로 늘 붐볐다.조두남도 그 집에 묵었다.1943년 가을 목단강시 유랑극장에서 「동만총성 추기 민족예술전」을 열 때 신안진악단연주로 조두남 창작이 모두 무대에 올랐다.「한 사나이의 반평생」「농촌의 사시절」「고향생각」이 인기를 끌었다.그 무대에서 「고향생각」을 불렀던 남수억(74)은 지금 화룡시 팔가자진에 살고 있다. ○「용정의 노래」로 불러 김종화 선생이 윤해영을 만난 것은 1944년 봄의 일이다.조두남이 집에 찾아와 영안에서 갖는 신곡 발표공연에 나와 기타를 쳐달라는 부탁을 받고 영안에 갔다가 만났다.물론 조두남의 소개를 받았다.그 발표공연에서 오늘날 「선구자」로 더 널리 알려진 「용정의 노래」가 처음으로 발표되었다.이밖에도 윤해영 작사 조두남 작곡으로 된 「목단강의 노래」 「산」 「흥안령 마루에 서운이 핀다」등을 선보였다. 윤해영과의 첫 만남을 쉽게 떠올린 김종화 선생의 얼굴에는 연민의 그늘이 스쳐갔다.김종화선생의 말을 들으면 윤해영은 매우 불행한 삶을 산 것 같다. 『작사자 윤해영 선생은 조두남 선생 보다 두 세살 위이었디요.키는 작았지만 아주 친절합데다.학교에서 선생질을 하다가 영안 협화회에서 일을 보고 있다고 기랬어요.그날 신곡발표공연이 끝나고 윤해영 선생 집에서 소박한 술자리를 벌였디요.다가 「목단강의 노래」를 합창한 기억이 납네다』 그 「목단강의 노래」에는 윤해영이 인간적으로 겪었던 불행한 사연을 담았다는 것이 김종화 선생의 설명이다.윤해영의 집 술자리에서 「목단강의 노래」합창이끝나자 윤해영은 벽에 걸린 사진액자를 거두어 한 없이 흐느꼈다고 한다.아이를 안고 있는 윤해영의 부인 모습이 든 사진액자였는데 얼마전에 세상을 떠난 부인을 추모하기 위해 쓴 가사가 「목단강의 노래」라고 실토하더라는 것이다. 1945년 9월 윤해영은 신안진 대성백화점 김광호의 여동생을 후처로 맞았다.후처는 소학교 선생이었다.처가에 왔을 때 김종화선생을 불러 「해저문 마을」의 작곡을 부탁했다.김종화선생은 신문에 난 윤해영의 시 「동북인민 행진곡」에 곡을 붙여 발표한데 이어 1946년 7월 목단강시 서장안회관에서 같은 방법으로 윤해영 작사 「동북인민 자위송가」를 내놓았다.윤해영은 「동북인민 자위송가」발표 마지막 날 김종화선생을 찾아와 술을 마셨다.그 술자리에서 윤해영으로부터 후처가 결혼 일곱달만에 아이를 낳아 이혼했다는 것과 혼자 떠돌아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그 이후 윤해영이 떡국 장사를 했는지 어느 식당에서 보았다는 사람이 있다.그러나 김종화선생의 판단은 그가 북한으로 건너갔다는 것이다.왜냐하면 1949년 우연히 입수한 북한 노래집에서 윤해영 작사의 「분여받은 땅」인가 하는 노랫말을 보았기 때문이다.「장군님 주신 땅에 밭갈이 하세」등의 내용이 들어있는 북한정책 찬양노래라 했다.윤해영의 소식은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가사도 조금 달라져 김종화 선생의 이야기는 다시 조두남에게로 이어졌다.1944년 봄 신곡발표회 이후 평양 고향에 갔다가 그 해 겨울 신안진으로 다시 돌아온 조두남의 인생에는 새로운 변화가 있었다.그것은 조두남의 두번째 결혼이었다. 『첫번째 부인은 남편이 밖으로만 돌자 개가를 했더라고 기래요.그런데 새로 맞은 부인은 늘씬한 서울나기 여성이었디요.그때 조두남선생은 목단강시에서 극단을 조직하고 있던 관계로 태평양레코드 전속가수 서태림과 조두남선생이 손수 키우던 21살 짜리 손풍금수 안향락을 데리고 와 함께 만났댔습네다.날 더러도 극단에 가자는 것을 식구들 생계 때문에 사양했디요.기리고 나서 1945년에 조두남선생이 신안진에 와서 안전병원 안원장과 내가 사진을 찍은 것이 마지막이야요.한참 세월이 흐르고 나서 우연히 서울방송을 듣다가 「용정의 노래」가 나와 귀를 번쩍 떴디요.그런데 가사도 좀 바뀌고 곡목도 「선구자」로 바뀌었습데다.이 말을 다 한 것은 역사는 언젠가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생각에서 우다』
  • 「검찰 백년사」 타임캡슐에 수사기록 등 30만건 신청사 매설

    영욕의 검찰 1백년사가 타임캡슐에 담겨 후세에 전해진다. 대검찰청은 1일 근대사법 제도도입 1백주년과 대검청사 이전을 기념하기 위해 대형 사건·사고 등에 대한 검찰수사기록과 각종 자료 등 30여만건을 마이크로 필름에 담아 오는 4일 서울 서초동 신축 대검청사 별관 정원에 매설키로했다. 매장자료로는 우선 「검사」라는 용어가 첫 등장한 1895년 3월5일 공포된 대한민국법률 제1호인 「재판소구성법」 전문을 비롯 이철희·장영자사건,KAL기 폭파사건,구포열차 전복,서해훼리호 침몰,성수대교 붕괴,대구지하철 가스폭발,삼풍백화점 붕괴사건 등 일반 대형사건·사고의 수사기록이 선택됐다.
  • 미,우편폭탄 테러범 「킬고어」 지목

    ◎76년 교도소 탈출뒤 잠적한 폭탄전문가/FBI “수범 비슷” 잠정결론… 수사 활기 지난 17년동안 투명인간같은 우편폭탄 테러 활동으로 미국의 공권력을 비웃어 온 유너바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떠올랐다. 유너바머(Unabomber)란 주로 폭탄테러대상이 된 「대학」과 「항공산업」의 머릿글자를 따서 수사팀이 붙인 이름.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에 있는 미연방수사국(FBI)유너바머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지난 78년 이후 사제폭탄을 우편으로 발송,3명을 숨지게 하고 23명을 다치게 한 유너바머가 지난 76년 교도소를 탈주한 뒤 행방이 묘연해진 폭탄전문가 제임스 윌리엄 킬고어(48)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FBI에 따르면 킬고어는 70년대 중반 미전역을 떠들썩하게 한 신문재벌의 상속녀 페트리샤 허스트 납치사건을 주도한 자유공동전선(SLA)의 일원.허스트 사건으로 구속됐다가 78년 감옥에서 도망친 뒤 지금껏 행적이 오리무중인 폭발물 전문가이다.탈주시기와 첫 범행시기가 비슷하다는 점을 비롯,허스트 사건 당시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기존사회체제에 불만이 많은 이상주의자라는 점,그리고 폭탄발송에 사용한 나무상자나 목재폭탄 등과 관련있는 오리건주의 목재중개상 아들 출신이라는 점 등에서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것. FBI는 그동안 우편폭탄 발송지역이 주로 새크라멘토를 비롯한 캘리포니아북부지역이었다는 사실에 비춰 인근 오리건 출신인 킬고어가 미서부지역 일원에 은둔하고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78년 첫 폭파사건을 시작으로 올들어서는 지난 4월 새크라멘토의 목재회사 간부를 폭사시킨 것까지 16차례나 유너바머 관련 사건이 발생했지만 FBI는 정확치 않은 몽타주만을 갖고 있을 뿐 아무 단서를 찾지 못했다.지난 6월에는 LA국제공항에서 이륙하는 항공기를 폭파하겠다는 위협으로 미전역을 긴장시킨 바있다.
  • 스리랑카 장성 폭사/타밀반군서 매설한 지뢰터져

    【콜롬보 AFP 연합】 타밀 반군은 스리랑카 정부군의 공세로 3백명이상의 인명손실을 입은데 대한 보복으로 30일 정부군 동부지역사령관을 암살했다고 정부군 대변인이 밝혔다. 이 대변인은 이날 바티칼로아 해변지역을 통과하던 제3사단장 날린 안감마나 준장이 탄 랜드 로버차가 타밀 반군인 타밀엘람해방호랑이(LTTE)측에서 매설한 지뢰로 폭파돼 안감마나 준장이 그 자리서 숨지고 수행장교 수명을 포함한 13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 “정보혁명 없인 정치혁명 없다”/미국(세계화 외국에선)

    ◎백악관 인터넷 활성화/기업인·대학교수 명함에 전자우편 기호/청소년 범죄 등 부작용 극복이 핫이슈로 오는 96년의 미국 대선은 인터넷의 대결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주저하는 사람은 없다.공화당 지명전에 출사표를 던진 텍사스주의 필 그램 상원의원과 테네시주의 레머 알렉산더 전주지사는 벌써부터 자신들의 홍보용 사진·약력·득표기록·발언록은 물론 비디오화된 활동 및 음성들을 인터넷을 통해 유권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클린턴 대통령과 고어 부통령도 역시 인터넷의 「백악관코너」를 이용,정책 소개 및 국민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장은 물론 여론수렴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본격적인 선거전이 개시되면 하시라도 선거운동에 활용될 수 있다.깅리치 하원의장 같은 이도 풀뿌리 민주주의는 컴퓨터통신의 힘으로 달성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입법에 앞서 법안 내용을 통신망에 공개,유권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등 정보혁명이 가져올 정치혁명에 빠르게 대처해나가고 있다. 이같이 컴퓨터를 이용한 정보통신의 급속한 발달은 이른바 사이버 스페이스라는 무한대의 공간을 창조해내고 있어 정치 뿐 아니라 경제 사회 예술 교육등 모든 분야에서 정보통신을 필수의 수단으로 만들고 있다.도서관의 자료를 찾아보는 것은 물론 박물관의 명화도 감상할 수 있고 상품구입 등 거의 제한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정보를 접하는 것이 가능하다. 따라서 요즈음 미국인들의 명함에는 전화번호 옆에 자신의 전자우편(E­Mail) 기호를 적어놓은 사람들이 많다.기업인이나 교수나 연구원이나 대부분이 고유의 전자우편 기호를 배정받고 있으며 이를 통해 지리적 원근이나 시간적 제약을 뛰어넘어 새로운 사상과 접할 수 있고 또 자신의 견해도 밝힐 수 있는 것이다. 조직적으로 잘 짜여진 미국의 응급구난체계도 전적으로 컴퓨터통신에 의존하고 있다.각종 사고발생 정보를 신속하게 알림은 물론 자신의 구조체험 전파로 경험을 공유하고 새로운 장비소개 및 자격시험 안내등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한편 최근 일부 인터넷에 시험 게재되기 시작한 광고는 앞으로 인터넷 이용에 폭발적인 증가를 가져올 요인으로 분석되고있다.온라인 데이터베이스에 들어가기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길목에 광고가 본격화될 경우 그동안 이용자들에게 다소 부담이 돼오던 서비스요금 자체를 부과하지 않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정보통신의 발달은 그 발달속도 만큼이나 빠르게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오고 있다.오클라호마 연방청사 폭파사건 때와 같이 폭탄제조법을 인터넷을 통해 전파하는가 하면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을 해치는 외설적인 사이버포르노의 범람,전자도박의 횡행등 법규정이 일일이 따라가지 못할정도가 되고 있다.더욱이 이같은 문제의 법적 대응에 있어서는 표현의 자유문제와의 충돌로 위헌의 소지까지 제기되고 있어 상당히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 청정해역 최대한 살려내야(사설)

    전남 여천해상에서 태풍 「페이」로 좌초한 시 프린스호의 기름유출사고는 다도해 해상국립공원과 광양만 일대 양식장 모두를 죽음의 바다로 만들 수도 있는 가공할 해양오염사태다.문제의 심각성을 빠르게 인식하고 사후수습의 최선책을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오염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우선 기름분산처리제를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이 방법이 최선의 것인지는 검토가 필요하다.「유분산처리제」는 기름제거에는 효과가 있지만 그 자체가 독성이 강한 화학물질이므로 2차오염이라는 부작용이 더 많다고 판정돼 있다.뿐만아니라 기름의 30%에 해당되는 양을 살포해야 한다.이때문에 선진국들에서는 이미 사용을 억제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현 사태를 보다 과학적으로 파악하는 일부터 전문가팀을 필요로 한다.따라서 국제적 협력까지 구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기름방제해결」 전문가는 지금 상당히 의미있는 직종으로 성립돼 있다.외국의 전문가들을 통해 이 분야의 국제적 공조를 유도하고 조직하는 일은 현안문제를 가장 잘 해결하는 일일뿐 아니라 기술습득 기회도 된다. 우리에게도 물론 전문가들이 있을 터이다.그러나 93년 9월 광양만에서 일어났던 재5금동호 충돌사고에서 벙커C유 양이 불과 1천t에 불과했음에도 그 후유증을 실제로는 축소하지 못했었다.이번은 벙커C유만 1천4백t이 넘고 얼마나 쏟아져 나올지 모르는 원유가 8만t이나 된다.격자형 강철칸막이로 구분돼 있다고는 하나 어느 칸이 파손됐는지에 따라 사태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이를 어떻게 수습하느냐가 바로 세계적 경험이다. 그리고 사태수습 최우선 목표를 청정해역을 최대한 지키는 일에 두어야 할 것을 강조한다.67년 영국은 북해 해상에서 유조선 토리캐년호가 원유 10만t을 유출하는 대형사고에 처했을 때 항공기를 이용,선박을 폭파시키고 기름을 모두 태우는 방법을 선택했다.이는 대기오염 부담을 갖기는 하지만 오염면적을 줄이고 해양생태계를 보전할수 있었기 때문이다.방법의 선택부터 신중하고 침착하기를 바란다.
  • 「이」서 버스 자살폭탄테러/팔 회교과격파 소행 추정/텔아비브

    ◎출근길 39명 사상 【예루살렘 로이터 AFP 연합】 텔 아비브 교외지역인 라마트 간에서 24일 아침 출근시간대인 8시45분쯤(현지시간) 자살폭탄테러로 보이는 버스 폭파사고가 발생해 7명이 숨지고 32명이 부상했다고 현지경찰이 밝혔다. 부상자들 가운데 3명은 상태가 위독해 사망자수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이며 경찰은 사망자들 중에 폭파범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 목격자는 군라디오와의 회견에서 이날 아침 사고버스가 국립 다이아몬드 거래소가 위치해 있는 야보틴스키­압스 힐렐가 교차로 부근을 지나던중 갑자기 폭발했다고 말했다. 폭파범은 버스의 한 가운데 서 있다가 폭탄을 터뜨려 버스와 함께 자폭한 것으로 보이는데 사고가 난 뒤 이슬람 무장단체인 하마스의 산하 조직원을 자처하는 한사람이 이스라엘 국영 라디오방송에 전화를 걸어 이번 사건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 과열 취재경쟁이 남긴것(오늘의 눈)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몰고올 대형사고나 사건현장에는 이를 취재하려는 기자들의 경쟁 또한 뜨겁게 달아오르게 마련이다.이번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현장도 예외는 아니었다.4백50명이 넘는 사망자,9백명을 훨씬 웃도는 부상자를 낸 대형사고인 만큼 많을 때는 1천명 가까운 취재진들이 몰려 북적댔다. 계속되는 불길·유독가스·그리고 추가 붕괴 우려등 곳곳에 위험이 상존해 있는 지하현장을 조금도 망설임없이 헤집고 다닌 것은 보다 생생한 현장을 독자들에게 알리기 위한 사투였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한 취재경쟁은 또다른 권리를 짓밟았다는 지적이다.지하 생존자들의 「살권리」가 그 것이다. 생존자에 대한 어거지 인터뷰,과열경쟁에서 비롯된 무리한 현장접근으로 인한 구조작업 지연등이 대표적인 예다.콘크리트 더미밑에 깔려 신음중인데 카메라를 들이대면서 질문을 하고,구조대원들이 들어갈 통로를 메우는 등 그야말로 난리였다.심지어 사고 초기에는 『기자들 때문에 구조가 어렵다』는 얘기까지 나돌 정도였다.그런 점에서 21일 충남 온양에서 한국언론연구원이 주최한 「삼풍참사와 언론보도」 세미나는 그 시사하는 바가 크다.특히 이 세미나에서 발표된 「외국의 재난보도와 대처방안」은 참혹성·충격성·선정성에 무게를 둔 우리의 취재관행에 대한 비판이었다.일본의 고베지진,미국의 오클라호마 폭파테러사건에서 언론이 보여준 「절제의 묘」는 언론계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자율적으로 결정된 것이었다고 한다.나아가 상황보도 보다는 냉정한 시각으로 사고원인,구조진행 과정등을 꼼꼼히 챙기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가.구조작업을 하다 버리기엔 아까운 물건이다 싶어 호주머니에 넣은 절도범 1∼2명을 놓고 마치 「절도왕국」인 것처럼 보도하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그렇지 않아도 「사고공화국」이란 오명을 뒤집어 쓴 판인데,여기에 「절도왕국」까지 덤으로 얹어준 셈이다. 이제 우리의 보도관행도 외국의 재난보도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시점인 것 같다.흥미위주,「한건주의」에서 벗어나 사고수습에 보탬이 되는,피해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그런 방향으로 나갔으면 싶다.
  • 박양/377시간 생존 국내 새기록

    ◎양창선씨보다 8시간 45분 더 버텨 기약도 없는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며 장장 15일하고도 17시간20분을 버텨낸 박승현(19)양의 생존시간은 국내 최고기록을 28년만에 경신한 것이다. 이제까지 국내 최고기록은 지난 67년 8월22일 충남 청양군 구봉광산 매몰사고 때 양창선(당시 37세)씨가 세운 15일 8시간35분.박양은 이 기록을 8시간 45분이나 뛰어 넘었다. 지난 11일 극적으로 구조된 유지환(18)양이 기록한 2백85시간30분보다는 무려 91시간 50분이나 더 길다. 특히 양씨는 매몰 당시 도시락 1개를 가지고 있었고 갱바닥에 고인 물을 마셨다.또 바깥과 전화통화로 공포를 이겨냈다는 점에서 완전 단절상태에 있던 박양의 기록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 지금까지 외국 사례를 보면 매몰사고 등으로 외부와 단절된 상태에서 생존한 시간은 아직 20일을 넘지 못하고 있다.기네스북에 따르면 매몰·붕괴 등 극한상황에서 가장 오랫동안 생존한 기록은 지난 79년 교통사고로 의식을 잃고 튕겨나가 외딴 곳에 방치되어 있다가 구조된 호주의 아드레아스 마하베츠(당시18세)군이 세운 18일. 미국의 오클라호마시티 연방건물 폭파사건 때는 14일만에 구조된 생존자가 있었고,일본 고베대지진 때는 64시간이 최고 기록이다.
  • “한국도 회교 과격파 테러대상국”/안기부 세미나

    ◎중동 테러분자 잠입 첩보 입수 국가안전기획부는 12일 국제범죄 퇴치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한 「국제범죄 세미나」에서 우리나라가 회교 과격세력 등으로 부터도 테러위협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안기부는 지난 2월 파키스탄에서 체포된 뉴욕 월드트레이드센터 폭파 혐의자 램지 아메드 유세프 소유의 컴퓨터 디스켓에 서울·대만·방콕을 경유하는 미국 항공기 폭파계획 내용이 수록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안기부 관계자는 『지난해 8월 국내에 중동 테러분자가 잠입,주한 외국인에게 테러를 하려하고 있다는 첩보가 입수된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안기부는 또 우리나라가 북한으로부터도 테러위협을 받고 있으며 국내 사교집단이 미국과 일본의 테러사건을 모방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이날 세미나에서는 검찰과 경찰등 관련부처가 국제범죄실태에 대해 발표했으며 경희대 김찬규 교수가 「외교적 신분을 이용한 국제범죄의 유형과 대책」,한국형사 정책연구원 조병인 위원이 「국제범죄조직의 불법자금 유입방지대책」이라는 제목으로 주제발표를 했다.
  • 러 여객기 폭파 위협/1백4명 탑승/희 공항 이륙직후 비상 착륙

    【아테네 로이터 연합】 승객 1백4명을 태운 러시아 아에로플로트항공 소속 투폴레프 154 여객기가 5일 아테네공항 이륙 직후 기내에 폭탄이 장치돼있다는 제보에 따라 그리스의 살로니카공항에 비상착륙했다. 승객 전원은 현지 경찰이 기내를 수색하는 동안 공항 터미널에 대피했다고 그리스주재 아에로플로트사의 이고르 카라조프 지점장이 밝혔다. 카라조프 지점장은 비행기가 이륙한지 몇분후 그리스 국영항공사인 올림픽 항공에 아에로플로트 여객기에 대한 폭탄위협 전화가 걸려왔다고 전했다.
  • 미군의 민간구난 조직/PC통신망 이용 민간 구난 총지휘

    ◎사고발생 신속히 알려 헌혈자 등 모집/헬기­의료기관 등 분야별 정보도 안내 미국민들의 비상시 구난작업에는 컴퓨터가 큰몫을 한다.컴퓨터의 E­메일(전자우편) 통신을 통해 사고발생을 신속히 알림은 물론 구난조직에 대한 소개 및 구난사례 등을 상세히 소개하는 각종 구난정보 방인 「공공안전(Public Safer)센터」는 민간차원에서 미전역을 커버하는 구난작업의 사령탑역을 하고 있다. 미국의 가장 보편적인 컴퓨터통신망의 하나인 아메리칸 온라인(AOL)을 통해 「비상」(emergency)이라는 단어로 호출하면 열리게 되는 이 방은 지리적 시간적 제약이 없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공공안전센터를 통해 가장 광범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기관은 시카고에 위치한 구난연구 전문기관인 「비상대응조사연구소」(ERRI).이 연구소는 컴퓨터망을 통해 전국각지 구난작업 종사자들의 구조 사례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개선점을 다시 그들에게 전달해주며 체계적 구난 교육,구난장비의 소개·연구 등 정부기관인 연방재난관리청(FEMA)과 보완관계를 이루고 있다. 실제로 지난 4월19일 오클라호마시티에서 연방청사 폭파사고가 발생했을 때 이 연구소측은 그 사실을 즉시 컴퓨터의 공공안전센터를 통해 알리고 또한 건물붕괴시 구난 요령을 띄워 구조작업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더우기 사고 직전인 4월1일에는 미전역의 60여개 대형구난기관들을 화재 및 붕괴 구난·응급의료 지원·헬기 및 수송 지원 등 전문분야별로 분류해 연락처를 명기한 리스트를 작성,컴퓨터에 띄움으로써 사고시에 유용하게 활용됐다. 공공안전센터 방은 다시 공지사항·재난관리·응급의료·화재구조·특별사례 등 5개의 방으로 나뉘고 또다시 세부적으로 갈라지며 특히 각 방에는 자료실(라이브러리)이 있어 일선의 구조요원들이 E­메일로 보내온 실감나는 현장의 사례들을 모아 누구든 열람케 하고 있다. 특히 이 센터는 구난 작업에 관심을 갖고 구체적으로 교육을 받으려는 희망자들에게 훌륭한 길잡이 노릇을 해 구난 인구의 저변 확대에도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재난구조 교육이나 응급의료 교육 등 질문자가 희망하는 분야를 배울 수있도록 거주지에서 가장 가까운 교육기관을 안내해주고 교육과정의 커리큘럼까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또한 사고발생시 자원봉사 희망자 혹은 헌혈 희망자들에게 어디로 가서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지를 정확하게 가이드 해주기도 한다.
  • 도쿄지하철역 화장실서 독가스­폭파장치 발견

    【도쿄 연합】 도쿄지하철 독가스테러사건의 범인으로 옴 진리교 교주가 구속되고 옴 진리교에 대한 해산 청구소송이 제기된 가운데 옴교의 범행으로 보이는 청산가리 독가스 테러미수사건이 또다시 일어났다. 4일 하오 6시 15분쯤 도쿄 증권거래소 등 증권회사가 몰려있는 중앙구 니혼바시(일본교) 가야바초 지하철역 화장실에서 시안나트륨 9백g과 희석 황산 1.5㎏ 및 시한폭탄 장치가 비닐주머니 안에 싸여 발견됐다. 청산가스 독가스 발생장치가 발견된 시간은 회사원들의 퇴근시간으로 지하철은 매우 번잡했으나 시한장치가 작동되기 전에 발견된데다 지하철역 당국이 방송을 통해 시민들을 긴급 대피시켜 인명피해는 전혀 없었다.
  • 7월의 문화인물 이육사 선생

    ◎「청포도」 「광야」 등 항일시 30여편 남겨/25년 의열단 가담… 43년 북경서 옥사 문화체육부는 시인이며 독립운동가였던 이육사(본명 원록.1904∼1944)선생을 7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했다. 육사선생은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예안 보문의숙에서 수학한후 1926년 북경으로 건너갔다.북경사관학교와 북경대학에서 공부하는 동안 노신,호적,서지마등 중국 작가들과 친교를 나눈것으로 알려졌고 1930년 조선일보에 시『말』을 발표,문단에 데뷔했다. 1935년『신조선』에 『춘수삼제』『황혼』등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대표작『황혼』『청포도』『절정』『광야』『꽃』을 비롯해 30여편의 시를 남겼다.유저로는 『육사시집』『광야에서 부르리라』『이육사선집』등이 있다.선생의 작품경향은 저항주의 실향의식과 비애,초인의지,조국광복에 대한 염원등으로 대별된다. 시작과 함께 항일운동에도 적극가담,1925년 의열단에 가입한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1927년)과 광주학생운동(1929년),대구 격문사건(1930년)에 연루돼 17차례나 옥고를 치렀고 1943년중국에서 귀국직후 일본 경찰에 붙잡혀 북경으로 압송,40세의 나이로 북경감옥에서 숨졌다.〈김성호 기자〉
  • 애­수단 전면전 위기고조/무바라크 보복 다짐… 애군 국경이동

    【카이로 로이터 AFP 연합】 이집트와 수단 양국이 다같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한 국경지대에서 이집트군의 심상치않은 이동이 있었다고 수단측이 주장하고 있는 가운데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대통령은 29일 자신에 대한 암살미수 사건에 수단이 관련한데 대한 보복을 다짐함으로써 양국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카이로의 한 스타디움에서 1만여 군중에게 『수단의 선량한 국민이 범죄집단의 통치를 받고 있으며 우리는 이들에게 행동을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바라크 대통령의 이같은 보복 다짐을 뒷받침하여,대통령 경호대장 마그디 하타타 장군은 『이집트를 국내외 적들로부터 수호할 것임을 전체 이집트군인들의 이름으로 서약한다』고 말하고 무바라크 대통령 암살시도는 이집트의 안보와 안정을 교란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카이로의 한 서방전문가는 이집트가 수단 회교도정권에 대한 무력시위로서 수단내 과격파 회교도 훈련소를 폭파하는 방안을 택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수단의회의 안보국방위원장 모하마드 압달라오웨이다 소장은 의회에서 양측이 앞서 무력충돌을 일으킨 홍해연안의 할라이브 국경지대에서 29일 이집트군 보병·기계화부대,공수부대 및 국경수비대의 이동이 탐지되었다고 전하고 수단군은 『영토보전을 위해 필요한 모든 안보 및 방위조치를 취했다』고 밝혔으나 구체적 언급은 하지 않았다.
  • 5층부터 “와르르” 순식간에 “생지옥”(삼풍백화점 붕괴/사고상보)

    ◎콘크리트 더미속 “살려달라” 절규/지하 식품매장 최소백여명 매몰 참으로 어쩌구니 없는 대형 인재가 또다시 서울 한복판에서 터졌다.29일 하오 5시50분쯤 서울 서초구 서초4동 1685 삼풍백화점 쇼핑센터가 갑자기 무너져 내려 외벽만이 덩그라니 남은 채 폐허화됐다. 건물이 무너져 내린지 1시간이 지났는 데도 콘크리트 더미 아래에서는 『살려달라』는 부상자들의 비명소리가 새어나와 생지옥을 방불케 했으며 건물이 붕괴된 순간 콘트리트가 주저앉으면서 생긴 먼지가 하늘을 뒤덮었다.이날 사고는 백화점 손님들이 가장 많은 저녁 시간대에 일어나 인명 피해가 더욱 컸다. ▷사고순간◁ 백화점 5층 일식집 「식도락」 종업원 이병호(20)씨는 『5층 식당 주방에서 조리를 하고 있던 중 30여m쯤 떨어진 한식집 「춘원」에서 「우르르」하는 소리가 나면서 사람들이 대피해 북쪽 비상 계단을 통해 급히 내려오는 순간 「꽝」하는 굉음과 함께 5층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어 『황급하게 건물 밖으로 대피해 건물을 바라보는 순간 또 다시「꽝」하는 소리와 함께 건물 중앙 부분이 순식간에 붕괴됐다』고 전했다. 또 시민 박경규씨는 『백화점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먼지가 일어나면서 공중에서 「우르릉」하는 소리가 들려 급히 빠져나오자 마치 남산 외인아파트가 폭파공법에 의해 붕괴될 당시와 마찬가지로 5층 건물이 엄청난 먼지를 내면서 차례로 무너져 내렸다』전했다. 택시기사 박명수씨는 『삼풍아파트로 진입하려고 중앙차선에 대기해 있던 순간 「꽝」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건물 잔해물들이 쏟아져 내려 분진이 휘날려 앞이 안보일 정도였으며 백화점 고객들이 피투성이로 건물 밖으로 뛰쳐 나오고 있었고 승용차가 뒤집혀 있는 등 아수라장이었다』고 전했다. ▷사고현장◁ 붕괴되면서 생긴 먼지가 5분여동안 계속 솟아 올랐고 이어 현장 주변에 심한 가스 냄새가 나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백화점 안에서는 『살려달라』는 여자들의 비명소리가 새어나왔다. 사고 현장은 마치 폭격을 맞은 듯 지하 3층까지 내려앉아 지반이 20∼30m까지 파헤쳐진채 건물 잔해 속에서 부상자들의 비명소리로아비규환을 이루었다. 무너져 내린 건물은 1백m에 이르고 지하 20m 깊이로 파진 지하구덩이 속에 콘크리트 잔해와 철근 구조물이 수북하게 쌓인채 콘크리트 더미 속에서는 연기가 계속 피어 오르고 곳곳에서 불꽃이 보여 폭격 현장을 방불케 했다. 또 백화점 앞 도로와 반지름 50m 주변에는 옷과 가방,모자 등이 널려져 있었으며 백화점 뒤편 삼풍아파트의 유리창도 수십장 깨져 붕괴 당시의 충격이 엄청났음을 보여줬다. 남아있는 스포츠동도 쇼핑센터 붕괴사고의 여파로 심한 균열이 생겨 2차 붕괴의 위험마저 있으며 이때문에 구조대원들이 철거 작업을 벌이고 있다. ▷구조 및 피해◁ 삼풍백화점의 종업원이 5백여명이고 쇼핑객이 1천명이상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데다 워낙 급작스러운 사고여서 대피를 하지 못한 사람이 많아 사상자는 1천여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특히 A동 지하 1층은 식품 매장,2∼3층은 지하 주차장이어서 매몰된 사람이 최소한 50여명이 넘을 것이라고 종업원들은 전했다. 이날 하오 10시시까지 파악된 피해자만도 20명이 사망하고 6백67명이 부상한 것으로 집계됐으며 부상자들은 강남 성모병원을 비롯,25개 병원에 분산돼 치료를 받고 있다. 또 이날 사고로 서울 반포전화국의 일반전화 등 6백26회선이 불통됐으며 백화점 주변지역에는 친척이나 친지의 안부를 묻는 전화가 폭주해 2시간 30분동안 극심한 통화체증 현상이 빚어졌다. ▷수습 및 구조◁ 사고가 나자 서울시와 경찰 및 소방본부는 전직원 비상령을 내리고 소방차 1백여대와 구급차 30여대,구조대원 3백여명,수방사 헌병단 1개대대,소방 헬기와 경찰 헬기 10여대를 긴급 출동시켜 구조작업을 벌였다. 특히 최병렬 서울시장은 서울시 상황실에 80여명으로 사고대책본부를 가동시키는 한편 현장 지휘소에 직접 나가 사고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사고현장에는 차량과 인파가 몰려든 데다 연기가 계속 올라와 구조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당국은 또 삼풍백화점과 1백여m쯤 떨어진 삼호가든아파트 A동과 C동도 연쇄 붕괴의 위험이 있다고 판단,이 아파트에 사는 1백50가구를 긴급 대피시켰다. 경찰도 견인차·대형 기중기·굴삭기·덤프차·산소절단기 등을 동원,콘트리트 제거 작업을 벌이고 있으며 밤샘 구조작업을 위해 조명 차량 6대를 설치했다. 보건복지부도 129 응급환자정보센터를 통해 각급 병의원에 구급차 출동과 응급환자 진료 태세를 갖추는 한편 중앙 및 남부 혈액원 등에 삼풍백화점 인근 병원에 예비혈액을 지원하라고 시달했다. ◎B동건물 연쇄붕괴 “위험”/인근 아파트주민 긴장… 대피 소동도 5층짜리 쌍둥이 건물 2개동으로 이뤄져 있는 삼풍백화점의 A동 건물이 붕괴되면서 위태롭게 서있는 중간 연결구조물과 B동 건물도 연쇄적으로 무너질 위험이 높다는 위기감이 백화점 인접 주민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이같은 우려는 붕괴된채 처참하게 일그러진 백화점의 중간 출구부분이 비스듬하게 기울어져 위태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다 이번 사고가 시공사인 삼풍건설산업측의 부실공사로 인한 것이라는 사고원인분석이 나오면서 더욱 증폭되고 있다. 특히 붕괴되지 않은 B동건물과 삼풍아파트단지가 불과 몇m를 두고 맞닿아 있어 지상5층건물이또 다시 무너질 경우 인근 아파트에 미칠 피해는 불가피하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또 무너지지 않은 B동 건물의 균열부분이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는데다 무너져 내린 A동 건물의 잔해 아래 깔려 있는 사람들을 구해내기 위해 대형크레인을 동원,건물벽면을 마구 허물고 있어 자칫 제2·제3의 붕괴를 부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백화점의 한 관계자는 건물이 붕괴되기전 이미 옥상벽면에 30㎝ 크기의 균열이 생겼으므로 붕괴후 인명구조작업으로 인한 충격이 가해질 경우 또 다른 붕괴의 위험이 높다고 지적했다. 도시가스공사 기술지도부의 한 관계자도 『건물이 무너지기전에 백화점 안전관리팀이 가스밸브를 모두 잠가 놓았다고는 하나 비스듬히 기울어진 연결건물이 재차 무너진다면 가스폭발로 인한 2차붕괴의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때문에 2천3백여가구가 밀집해 있는 백화점 인접 삼풍아파트주민들 가운데 일부 주민들은 아예 집에서 귀중품 등을 챙겨 나와 친·인척집으로 대피하거나 주변 여관이나 호텔을 예약하는 소동도 빚었다.
  • LA에 항공기테러 공포/“6일내 폭파” 괴편지 언론사 배달

    【워싱턴 UPI 연합】 로스앤젤레스국제공항을 떠나는 한 항공기를 6일안에 폭파하겠다는 괴서한이 최근 한 언론사에 전달됨에 따라 미연방항공국이 28일 항공편과 탑승객에게 경계강화를 당부하고 나서는 등 LA지역에 항공기테러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UNABOMBER」로 알려진 이 괴한은 지난 78년부터 정보책임자와 첨단기술연구원들을 대상으로 소포폭탄공격을 감행,3명을 살해하고 28명을 다치게 했으며,지금까지 미연방수사국(FBI)의 추적을 교묘히 따돌려왔다.
  • 폭탄·무기 소지 “폭파” 위협/일 여객기 납치 이모저모

    ◎“옴교보복 일수도…” 일 열도 공포/“얼음송곳 위협” 기장 첫 타전/F15기 긴급배치… 비상 대비/아사하라 부인 납치범에 투항 호소 ○…죽음의 독가스테러 사건으로 세계를 놀라게했던 옴진리교의 공포가 21일 다시 일본열도를 강타했다. 도쿄지하철 독가스 테러사건의 공포가 채 가시기도 전에 이날 옴교 신도로 알려진 범인에 의한 전일호(ANA)여객기 납치사건이 다시 발생, 옴진리교에 대한 일본국민들의 비난과 증오가 증폭되고 있다. ○…비행기 납치사건이 일어나자 일본자위대는 하코다테 공항에 화학방호부대를 긴급대기태세에 들어가도록 하고 상공에는 항공자위대의 F15 전투기와 F전투지원기를 각각 2대씩 포진시켜 긴장된 초계 태세에 들어갔다. 삿포로에 진주하고 있는 육상자위대도 화학방호부대원 약30명에 대한 출동령을 발동. ○…범인은 얼음깨는 송곳만으로 여객기를 납치했으며 항공관계자들은 범인이 어떻게 얼음송곳을 지니고 비행기를 탈수 있었는지에 대해 큰 의문을 제기. 일본 당국은 일본항공(JAL)기 요도호사건 드어을 계기로공항에 금속탐지기를 비치해 승객의 몸을 철저히 뒤지고 있기 때문에 금속성 칼이나 총기류는 유대가 사실상 불가능 하도록 되어 있다. ○…일정부는 가능한 모든 방책을 강구해 승객들의 안전구출에 최선을 다하는 한편으로 법질서유지를 위해 범인의 요구에는 단호한 입장으로 대처할 방침. 일정부는 특히 75년 적군파사건 당시의 비난등을 계기로 78년 후쿠다(복전)내각 당시 마련된 「항공기 공중납치에 대한 대처방침」에 입각,아사하라 쇼코(마원창황)옴교 교주의 석방요구 등에 단호히 대처해 나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뒤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는 노나카 히로무 자치상(국가공안위원장)과 경찰청장관, 이가라시 고조 관방장관등을 불럴 긴급 대책회의를 주재. ○…범인이 스스로 옴 진리교 신도라며 「고바야시 사부로」라고 밝힌데 대해 ANA측은 그같은 사람이 탑승했음을 확인했으나 옴교측은 짚이는 곳이 없다며 현재 그런 신도가 있는지를 조사중이라고 발표. ○…아사하라 쇼코 옴진리교주의 아내이자 옴진리교주의 대행자 역할을 하고 있는 마쓰모토 토모코는 21일 여객기 납치범들에게 투항하라고 호소. ○…밤이 깊어지자 공항에는 불안한 긴장감이 감돌았으며 대치상황이 계속되면서 일부 승객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고 조종사가 보고.또 단체관광객 안내원으로 기내에 억류돼 있는 여행사 관계자들이 이날 휴대전화로 회사에 연락해온 내용에 따르면 승객들은 눈가리개와 마스크를 한 채 전원 자리에 앉아 있으며 손을 결박당한 상태라는 것.그러나 ANA측은 여행사 안내원들의 이같은 보고에 대해 신빙성이 떨어지는 얘기라며 의문을 제기.납치여객기의 창문은 대부분 가려져 있고 기내 등도 일부 꺼져있으나 에어컨 작동을 위해 보조엔진은 가동. ○…일본당국은 기장을 통해 여객기 납치범과 계속 교섭하고 있으나 당국의 선 인질석방요구와 범인의 연료급유 및 도쿄 회항 요구가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태.ANA에 따르면 범인은 조종석에 들어가 기장을 통해 요구사항을 전달했으며 당국 역시 기장을 통해 범인과 직접 교섭,승객 석방 및 환자 발생시 병원 후송 등을 요구했으나 범인은 이를 거부.일본정부도 연료급유를 허락할 수 없다고 거부. ○…승객 가운데는 유아 등 어린이 7명과 60세 이상의 고령자가 95명이나 포함돼있다고 ANA측이 발표.이 가운데 최고령자는 92세인 것으로 확인됐는데 당국은 저녁시간이 되자 3백70여명분의 오니기리(주먹밥)와 음료수 등을 준비했으나 납치범이 거부. ○…납치된 여객기에 타고있는 한 여승무원은 NHK TV에 전화를 걸어 『납치범들이 폭탄과 다른 무기들을 갖고있다』고 말했다면서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납치범들의 협박메세지를 전달.범인은 특히 이날밤 10시35분 6번째 전화를 NHK방송국에 걸어 얼음 송곳은 밖에서 비행기 안으로 갖고 들어온 것이 아니라면서 자신은 옴교 신도라고 말한적도,이름을 댄 사실도 없다고 강력히 부인. ◎납치기장과 교신 내용 ▲12시3분=2층 객실에서 남자가 얼음송곳으로 위협하고 있다.옴 신자인 것 같다. ▲12시30분=범인의 요구다.활주로에서 연로를 보급하라.객실 유리창의 빛 가리개를 모두 내려라. ▲12시33분=기장이 승객들에게 공중납치사건 발생을 밝혔다.승객들에게는 기내방송으로 12시40분 하코다테에 도착한다고 말했다. ▲12시47분=(범인으로부터) 활주로에 누구도 접근시키지 말라는 요구다. ▲12시55분=기체에 접근하고 있는 사람 수를 확인해달라. ▲12시59분=범인은 연료보급을 빨리 하라며 신경질을 부리고 있는 것 같다. ▲1시18분=(범인이) 연료보급을 하지 않으면 플라스틱 폭탄 시한장치를 풀겠다고 말하고 있다.
  • 장진홍 의사(이달의 독립운동가)

    ◎대구 조선은행 폭파 “미완의 거사”/일제만행 철저히 조사… 국제사회 고발시도/동경경시청 테러 모색중 붙잡혀 순국자살 『육체는 죽는다해도 영혼은 한국의 독립과 일본제국주의 타도를 위해 지하에 가서라도 싸우겠다』 창려 장진홍 의사(1896년 6월6일∼1930년 6월5일)가 일제에 의해 사형이 확정된뒤 대구 옥중에서 일제총독에게 보낸 서한문의 한 대목이다. 의사는 35년의 짧은 생애를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바쳐 싸운 독립투사였다. 경북 칠곡 출신인 의사는 19세때인 1914년 조선보병대에 입교,2년동안 군사지식을 배우고는 제대해 곧바로 독립운동단체인 광복단에 가입했다. 국내에서 일경의 감시가 심해지자 의사는 1918년 만주 봉천(심양)을 거쳐 연해주로 건너가 광복단 동료들과 함께 한인 청년 80여명을 규합,군사훈련을 실시했다. 그러나 일본군의 시베리아출병으로 훈련이 어렵게 되자 다시 귀국,국내에서 3·1독립만세운동을 맞았다. 의사는 일제가 독립만세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제암리 학살사건등을 저지르자 일제의 만행을 철저히 조사,국제사회에 고발코자 전재산을 정리해 한국인 피해조사작업을 펼쳤다. 서적행상으로 가장해 전국곳곳을 돌아다니며 일제의 학살·방화·고문사실등을 기록한 「조사문」을 작성,인천함대에 근무중인 친구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이후 의사는 국내 독립운동이 미약해지자 전국을 돌아다니며 일제에게 타격을 가할 기회를 기다렸다. 마침내 1927년 4월 의사는 동료의 소개로 한국의 독립에 우호적인 일본인 폭약전문가 굴절무삼낭을 만날 수 있었다. 의사는 굴절로부터 폭탄제조법을 배웠으며 만주와 국내에서 다이너마이트·뇌관등을 구입했다. 의사는 이어 1927년 8월 시험적으로 제조한 2개의 폭탄을 칠곡 산중에서 터뜨리는 폭파시험을 가졌다. 폭파위력을 확인한 의사는 혼자 거사하기로 결심하고 폭탄투척장소를 경북도청·경찰부·조선은행 대구지점·대구 부호가등 5곳으로 선정하는등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의사는 거사를 위해 다시 6개의 폭탄을 제조,1927년 10월18일 거사에 나섰다. 이날 상오 9시쯤 자전거에 폭탄을 싣고 대구시내 덕흥여관으로찾아온 선생은 『길전상점 점원인데 이 여관에서 며칠간 묵게 됐다』고 신분을 위장하고 투숙했다. 선생은 이어 상오 11시30분쯤 폭탄을 4개의 벌꿀상자속에 넣어 싼뒤 여관점원에게 『이웃 조선은행 대구지점에 이 선물상자를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점원은 대구지점의 한 일본인 은행원에게 이 상자를 전달했으나 이 은행직원이 폭탄폭발 직전 상자를 열어보는 바람에 폭탄임이 들통났다. 은행원들은 서둘러 폭탄 도화선을 자르고 다른 3개는 길옆으로 내다놓았다. 그러나 11시50분쯤 길옆의 폭탄 3개가 폭발,신고를 받고 쫓아온 일경등 5명이 중상을 입었으며 은행창문 70여장이 부서졌다. 이 거사로 대구시내는 심한 혼란상태에 빠졌고 일경은 총비상이 걸렸다. 의사는 미리 여관을 나와 선산군의 한 동지집으로 피신해있었다. 일경은 범인을 찾을 수 없자 전에 독립운동을 벌였던 이정기등 8명을 검거,고문으로 거짓조서를 받아 공판에 회부했다.민족저항시인 육사 이원록 선생(건국훈장 애국장)도 이 때 사건에 연루돼 무고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의사는 이어 1928년 다시 영천경찰서등에 폭탄을 투척하는 계획을 세웠으나 일경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아예 일본땅에서 거사를 할 생각으로 일본에 건너갔다. 일본에서 11개월동안 이곳저곳 폭탄투척장소를 물색하던 의사는 동경 일제 중의원과 경시청을 가장 좋은 곳으로 선정하고 거사후 일본을 탈출할 계획까지 치밀하게 짰다. 그러나 일제는 의사에게 이미 혐의를 두고 검거작전을 비밀리에 진행중이었다. 일제는 거사를 며칠 남겨둔 1928년 2월13일 의사가 묵고있던 대판시내 안경점을 급습,의사를 체포했다. 체포된뒤 대구로 압송된 의사는 일경의 심문과정에서 『조선은행 폭탄사건은 혼자 한 일』이라고 강조하고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자 『대한독립만세』를 외쳐 동포들의 가슴을 뜨겁게 울렸다 의사는 사형이 확정되자 자결순국했다. 정부는 의사의 공을 기려 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