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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라인만 대접 받는 세상 1930년 모던걸도 겪었네

    S라인만 대접 받는 세상 1930년 모던걸도 겪었네

    몸매가 ‘예쁜 여자’의 필수 요건으로 등장한 것은 대략 1930년대 전후다. 그때부터 오늘날 미인들의 필수 요건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S라인’이 주목받기 시작한다. 무엇이 이러한 변화를 낳았을까. ‘예쁜 여자 만들기’(이영아 지음, 푸른역사 펴냄)는 여성들이 시각 중심 문화에 빠진 남성들의 시선에 ‘노출’되면서 변화가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20세기 초 조선에는 사진, 삽화, 연극, 영화 등 시각 중심 문화가 태동한다. 길거리를 활보하는 신여성들의 의복도 예쁜 몸매의 중요성을 배가시켰다. 근대적 지식인들은 조선 시대 여성의 옷이 위생에 해롭다며 개선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긴 저고리는 길거리의 더러운 오물을 쓸고 다녀 호흡기 질환을 낳고, 가슴을 동여맨 치마는 흉부 압박을 심화시킨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여성들의 옷이 점차 몸매를 드러내는 쪽으로 바뀌고 미니스커트와 브래지어까지 등장한다. 옷이 바뀌자 여성들의 몸에 대한 인식도 달라져 S라인을 미의 표준으로 여기게 되었다. 심지어 1935년 10월에 발행된 잡지 ‘삼천리’에는 “최근에는 미용술이 굉장히 다방면으로 발달되어서 현대인이면 반드시 미용술에 의하여 자기가 가진 선천적 미에, 인공을 가한 후천적 미를 가공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모던’ 사회에 있어서 그 사교의 자격조차 갖추지 못한 감을 느끼게끔 된 현상이다.”란 문구까지 등장한다. 예뻐지기 위한 수단으로 미용 체조뿐 아니라 성형수술을 소개하는 글까지 등장한 것도 1930년대다. 쌍꺼풀 수술은 물론이고, 낮은 코를 높이는 융비술과 예쁜 다리를 위한 각선미 성형, 작은 가슴을 크게 하는 가슴 성형까지 거론됐다. 여성들은 이 같은 ‘미인 권하는 사회’에 포획되어 너도나도 ‘예쁜 여자’가 되어야 했다. 이처럼 운동과 성형수술을 하면서까지 목표로 삼은 이상적인 외모는 서양 백인 여성에 가까웠다. 쌍꺼풀진 눈, 높은 코, 늘씬한 각선미, 풍만하면서도 처지지 않은 가슴은 조선 여성들에게는 흔치 않은 모습이었다. 그런 점에서 저자인 이영아(35)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연구원은 근대 이후 우리나라에서 예뻐진다는 것은 일종의 ‘인종 개조’였다고 지적한다. 미모는 게다가 경제적 교환가치와 사회적 상징가치를 갖게 되면서 속된 말로 ‘예뻐야 잘 팔리게’ 됐다. 사회는 끊임없이 ‘미인’들을 필요로 했고, 심지어 범죄자마저도 미인이어야 했다. 1924년 여름 무식하고 못났다는 이유로 남편에게 쥐약을 먹여 살해한 김정필에게 쏟아진 사회적 관심은 그녀가 ‘미인’이었기 때문이다. KAL기 폭파범인 김현희가 사형을 모면할 수 있었던 것은 동정심을 유발하는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 덕도 있다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은다. 저자는 여성들 모두가 외모지상주의와 맞서 싸울 수 없다고 주장한다. 가진 것이라곤 자기 ‘몸뚱어리’ 하나밖에 없는 낮은 학력의 하층계급 여성 중엔 ‘예쁜 여자 되기’에 편승해야만 생계가 가능한 경우도 있음을, 예쁘거나 안 예쁜 여성들 사이의 분열이야말로 가부장제 질서가 의도하는 바라는 사실을 명심하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여성들이 할 일은 ‘예쁜 여자 권하는 사회’ 속에서 고통받는 여성들을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이다. 외모 때문에 여성들이 겪는 고통의 원인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 외부의 적 때문이라고 책은 일깨워준다. 1만 39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25년째 여의도 지킴이 장석영 한나라 고흥길 국회의원 보좌관

    [김문이 만난사람] 25년째 여의도 지킴이 장석영 한나라 고흥길 국회의원 보좌관

    어떤 자리에서 누군가가 문득 물어본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거니?”라고. 그럴 때마다 똑 부러지는 대답이 나오기가 흔치 않다. 대개는 망설이거나 아니면 “그런대로 살지 뭐.”라는 식으로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 간혹 주위 어른이나 선배들이 ‘이렇게 저렇게 살라’고 조언해주기도 하겠지만 그것도 잠시뿐, 시간이 지나면 잊히는 경우가 다반사일 터. 한 여인의 생각은 달랐다. 신혼의 단꿈에 부풀어 있을 때였다. 그러니까 1990년 2월.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신부는 시아버지로부터 한통의 편지를 받았다. 신부는 얼른 봉투를 뜯었다. 편지에는 거두절미하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방법, 즉 9가지 삶의 실천덕목이 친필로 깨알같이 적혀 있었다. 그 내용은 이랬다. ▲타인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인간 ▲건실한 가정을 이끄는 인간 ▲가문과 사회의 명예를 빛내는 인간 ▲상사나 부모를 중히 여기는 인간 ▲시간을 아껴쓸 줄 아는 인간 ▲고향을 아끼는 인간 ▲저축을 생활화하는 인간 ▲학문을 중히 여기는 인간 ▲타인을 도울 줄 아는 인간 등이다. 여기서 다시 질문을 던져본다. 과연 이 여인은 편지를 읽고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얼핏 보면 웃어른이 아랫사람에게 ‘열심히 살라는 뻔한 내용이구나’ 하고 지나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치밀한 선거 준비·의정 살림살이 정평 장석영(45)씨. 직업은 국회의원 보좌관이다. 단순히 보좌관이 아니라 올해 25년째가 되는 ‘왕보좌관’이다. 장씨는 지난 1월 공무원으로는 받기 힘들다는 근정포장을 수상했다. 특히 국회 교섭단체 보좌진 가운데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자 여성이기에 더욱 빛났다. 이때의 공적내용을 잠깐 들여다보자. ‘우리나라 최초로 민의 수렴을 위한 지역구 관리를 전산화해 유권자 관리, ARS여론조사 등 전반적인 컴퓨터 운영을 했으며 정치자금 회계 실무, 각종 선거관리 등을 통해 매번 선거 때마다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뛰어난 업무능력을 인정받았고…. 또한 평소 근면성실한 성격으로 모든 업무에 책임감과 열정으로 솔선수범하고, 꾸준히 신임받는 보좌관으로 국회에 근무하면서 시부모를 모시고 슬하에 두 아들을 두어 화목한 가정은 물론, 뒤늦게 대학원 진학 등 직장과 사회에 타의 모범이 되었으므로’ 공적내용들을 천천히 살펴보면 앞서 언급한 9가지 실천덕목과 대부분 맞아떨어진다. 장씨가 시아버지한테서 편지를 받은 그날 이후부터 ‘9가지’를 삶의 금과옥조로 여기며 묵묵히 실행해 온 결과였다. 그럴 것이 그때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지갑 속에 시아버지의 편지 내용이 적힌 실천덕목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장씨는 1986년 9급 공무원으로 국회에 들어와 대선 5회, 총선 6회, 지방선거 5회, 보궐선거 2회 등 선거만 무려 18회를 치렀다. 그러는 동안 선거관리법과 정치자금법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전문가가 됐다. 국회 내에서는 물론 지역 선거관리 직원들조차도 장씨에게 관련법을 물어볼 정도로 인정을 받는다. 인터뷰 요청에 그는 “제가 뭘, 훌륭하신 분들도 많은데.”라고 하면서 한사코 거절한다. 4월 재보선 선거도 있고 하니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듣고 싶다고 했다. 지난달 28일 경기 성남시 서현동에 위치한 한나라당 고흥길 의원 사무실에서 만났다. 장씨는 지난 16대 총선 때부터 고흥길 의원과 인연을 맺고 있다. ●‘세풍’ 등 사건 땐 검찰 조사 고초 겪기도 빗자루를 들고 사무실을 청소하던 그에게 가장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어떤 연유로 국회에 발을 들여놓았을까. “그러니까 12대 국회 때였지요. 대학 교수님을 통해서 당시 정선호(육사17기) 의원님을 만나게 됐습니다. 정 의원님은 아웅산 폭파사건 때 희생당한 서상철 전 동자부장관의 여동생 남편이기도 했지요. 당시 정 의원님은 여의도연구소의 전신인 사회개발연구소에서 컴퓨터로 여론조사를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전자계산학과를 나와 IBM에서 근무하고 있었지요. 당시만 해도 국회에는 컴퓨터가 드물었고 또 컴퓨터를 다룰 줄 아는 사람도 거의 없다시피 했습니다. 정 의원님의 권유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국회에 들어가게 됐지요. 주위에서 반대도 많았습니다. 여자가 그 험한 정치판에 뛰어드느냐고 극구 말렸지요.” 장씨는 국회에 들어가자마자 역사적 사건과 간접적이나마 인연을 맺게 된다. 1987년 6월 노태우 민정당대표의 6·29선언에 결정적 역할을 한 여론조사 업무에도 참여했던 것이다. 이렇게 시작부터 일복이 터졌다. 당시 9급 공무원 월급은 16만원이었다.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와서 열심히 일하는 장씨의 모습을 보고 감동했던지 정 전 의원은 별도의 보너스를 지급해 주면서 장씨를 친딸처럼 여겼다. 이후 장씨는 1987년 대선을 치른 뒤 이듬해 13대 총선에서 밤낮 없이 정 전 의원의 일을 도왔다. 하지만 정 전 의원은 지역구(천안)에서 낙선했다. 모시던 국회의원이 떠날 판이어서 장씨도 준비를 했다. 하지만 당시 서상목 전 의원이 전국구로 국회에 입성했는데 선거운동을 치밀하게 준비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장씨에게 6급 비서직을 제안했다. 정 전 의원도 그렇게 하라고 권유했다. 이렇게 해서 장씨는 국회에 다시 눌러앉았고 서 전 의원과는 15대 국회까지 인연을 맺게 됐다. 그러던 1998년 이른바 ‘세풍(稅風)사건’이 터지면서 그해 12월 서 전 의원이 국회의원직을 내놓게 되자 장씨도 국회를 떠나게 된다(세풍사건은 1997년 15대 대통령 선거 당시, 이석희 국세청 차장 등이 현대 SK 대우 등 23개 대기업에서 166억 3000만원을 한나라당 대선자금으로 불법모금한 사건이다). 하지만 곧 고흥길 의원과 인연이 돼 국회로 다시 돌아왔다. 16대 국회 때 초선으로 국회에 입성한 고 의원 역시 성실한 장씨를 눈여겨봤다가 스카우트했던 것. 이후 17, 18대 총선에서 선거준비를 깔끔하게 처리해 고 의원이 3선하는 데 일등공신이 됐다. 선거 때마다 꼼꼼한 지역구 관리는 물론 정치자금법이나 선거법에 저촉되는 일을 절대 못하도록 원칙을 삼았고 이를 철저하게 지켰다. 고 의원은 이런 장씨에 대해 늘 고마워한다. 그래서 멀리서(천안) 출퇴근하는 장씨에게는 되도록 많은 편리를 봐준다. ●“일하는 국회의원 기준 정했으면…” “어떤 의원들은 정치자금법을 놓고 형무소 담장을 걷는 것 같다고 하지만 돈을 안 쓰도록 하는 지금의 정치자금법은 정말 좋은 제도입니다. 그 이전에는 선거를 치르고 나면 재산을 탕진하는 일이 비일비재했거든요. (본인이)돈을 안 쓰고 후원금으로도 얼마든지 4년을 보낼 수 있는데 몸이 고달프고 피곤하다고 돈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결국 거덜나게 됩니다. 대개 당원을 확보하기 위해 돈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 정해진 한도의 돈으로도 얼마든지 홍보를 할 수가 있습니다.” 장씨는 법 테두리 안에서 얼마든지 선거를 치를 수 있다고 재차 강조한다. 그는 또 “국회에 오래 있다 보니 일을 하는 국회의원과 그렇지 않은 국회의원들이 확연히 드러난다.”면서 “그럴 때마다 세비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것들도 어떤 기준을 정했으면 좋겠다.”고 부연했다. 그는 다음 달 27일 재보선 때에도 ‘왕보좌관’의 철학, 즉 정치자금법과 선거관리법 등을 준엄하게 지키도록 하겠다고 장씨는 강조한다. “그동안 25년 국회 보좌관으로 있으면서 ‘세풍’ ‘안풍’(安風) ‘썬앤문’ 등의 사건을 겪을 때마다 직·간접적으로 검찰의 조사를 받는 고초를 겪기도 했습니다.” 장씨는 서 전 의원 보좌관 시절에 결혼해 아들 둘을 낳았으며 장남이 올해 대학에 진학했다. 첫아이 때는 출산한 지 25일 만에 출근했고 둘째 아이 때는 대통령선거와 맞물려 20일 만에 출근했다. 그것도 새벽 6시에 나와 밤 12시 퇴근하기 일쑤였다. 그는 “이런저런 이유로 산후조리를 제대로 못 해서인지 몸이 어디엔가 이상이 생겼다고 늘 느끼지만 겁이 나서 병원에 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남편은 원래 대기업에 다녔는데 결혼할 때 나이 40이 되면 농사를 짓겠다고 약속하더군요. 남편은 그 약속대로 40세에 직장을 그만뒀고 현재 천안에서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아 지역 역사박물관에 나가기도 하지요.” 장씨는 19대 총선 때 고 의원을 4선 의원으로 반드시 당선시킨 뒤 정든 보좌관직을 그만둘 생각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에게 물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살 건가요.” 대답이 지체없이 돌아온다. “천안에서 남편과 함께 시부모를 모시며 농사일을 할 예정입니다. 매실과 배농사, 그리고 맛있는 농산물을 재배해 저렴한 가격에 많은 사람들이 먹을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편집위원 km@seoul.co.kr ■장석영 보좌관은 1986년 9급직 정선호 의원실에 ‘입사’…서상목의원실 거쳐 고의원과 3선 인연 1966년 충남 온양에서 2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984년 2월 평택 한광여고를 졸업한 뒤 안양공업전문대학(현 안양과학대)에 진학했다. 여기에서 전자계산학을 전공했으며 1986년 2월 졸업하자마자 컴퓨터 제조업체인 IBM에 입사했다. 그해 7월 회사를 그만두고 12대 국회 때 정선호 의원실에서 9급 공무원(현재는 4급)으로 새롭게 일을 시작했다. 이후 13·14·15대 국회 때 서상목 의원실(1988년 5월~1998년12월)에서 일했다. 서 전 의원이 세풍사건으로 도중 하차하자 장씨는 국회를 잠시 나왔다. 그러나 16대 국회 때 고흥길 의원의 요청으로 다시 국회에 들어갔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3선인 고 의원과 계속 인연을 맺고 있다. 현재 장씨는 한나라당 보좌진협의회 감사, 전현직 보좌진 모임인 ‘청파포럼’ 여성위원장 겸 감사를 맡고 있다. 주요 수상으로는 국회개원 54주년기념 국회사무총장표창(2002), 국회개원 61주년기념 국회의장표창(2009), 국회의장 공로패(2010) 등을 비롯해 지난 1월 근정포장을 수상했다. 현재 남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세무학을 공부 중(2학기)이다.
  • 카다피, 망상이냐 전략이냐

    “나의 모든 국민은 나를 사랑한다.” 국민을 상대로 희대의 살육전을 불사하고 있는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가 지난달 28일 미국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내놓은 말이다. 수많은 국민을 무자비하게 학살해 놓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국민’과 ‘사랑’을 입에 올리는 이 독재자를 보며 세계는 다시 한번 경악했다. 수전 라이스 유엔주재 미국대사는 “완전히 망상적인(delusional) 얘기”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국민을 학살하면서 외신을 향해 웃으며 얘기하는 모습은 카다피가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를 웅변한다.”고 지적했다. 카다피의 망상적 발언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으로도 향했다. 오바마를 “좋은 사람”이라고 하고는 “하지만 잘못된 정보를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카다피의 이런 이상 언행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홍진표 서울아산병원 정신과 교수는 “성공한 사람들 중 일부에서 나타나는 자기애성 성격장애(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자신에 대한 과장된 평가를 바탕으로 특권의식 아래 타인에게 착취적인 행동을 하는 병이다. 카다피의 경우 40년 넘게 독재하면서 생긴 자신에 대한 확신이 망상적 수준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자기애적 성향의 사람은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확실히 믿는다.”면서 “아마도 카다피는 국민의 50%가 죽어 나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분석도 있다. 카다피의 언행은 결코 망상이 아니라 고도의 계산에서 나온 생존전략이라는 것이다. 경찰대 범죄심리학과 표창원 교수는 “미국이 자신의 자산을 동결하고 군사작전에 나설 조짐을 보이자 카다피가 탈출구를 모색하는 차원에서 범죄를 부인하려는 것일 수 있다.”고 했다. 미국 방송과 인터뷰를 갖거나 오바마는 좋은 사람이라고 치켜세우는 것도 막다른 골목에서 미국에 타협을 타진하려는 충동적 제스처라는 것이다. 표 교수는 “카다피는 팬암기 폭파사건을 저지르는 등 서방에 맞서 살아남으려면 강해야 한다는 것을 학습했고, 이를 지금 자기 국민들에게 적용하고 있다.”고 그의 학살 심리를 분석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서울 유대근기자 carlos@seoul.co.kr
  • [리비아 내전] 소련탱크 달리고, 佛전투기 날고…리비아는 지금 세계 무기전시장

    [리비아 내전] 소련탱크 달리고, 佛전투기 날고…리비아는 지금 세계 무기전시장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 진영과 반정부군이 사용하는 무기들을 살펴보면 리비아가 전 세계의 무기 전시장이 된 듯한 느낌마저 든다. 굴곡 많은 현대사를 거쳐 온 리비아의 모순과 갈등이 이들이 손에 쥔 무기에 그대로 녹아 있다. 근대 이후 리비아군의 뿌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리비아에서 작전을 전개했던 영국군과 그 이후 리비아에 군사기지를 두었던 미국군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옛 소련과 수십년간 맺었던 긴밀한 군사협력의 유산은 지금도 개인화기인 AK47 소총부터 T72 탱크, 주요 전투기 등에 그대로 남아 있다. 카다피가 정권 안위를 위해 넘쳐 나는 오일머니로 각종 무기를 사들이면서 브라질, 체코슬로바키아,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유고슬라비아, 심지어 북한산 무기까지 리비아로 흘러들어 왔다. 미국산 치누크 수송헬기와 허큘리스 중형 수송기, 프랑스산 미라주 전투기, 벨기에산 FNF2000 돌격소총 등이 대표적이다. 리비아 지상무기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옛 소련 무기 계열이라고 할 수 있다. 카다피가 1969년 쿠데타로 왕정을 폐지하며 강력한 반미노선을 견지한 데 따른 결과였다. 런던에 본부를 둔 국제전략연구소(IISS)에 따르면 쿠데타 직후인 1970년부터 소련이 무너진 1991년까지 소련은 190억 달러나 되는 무기를 리비아에 판매했다. 1988년 로커비 민항기 폭파 사건으로 리비아가 유엔의 군사 제재를 받게 되면서 소련이 잃게 된 잠재적인 무기판매 수익만 해도 75억 달러나 될 정도다. 수많은 엘리트 장교들이 소련으로 유학갔다. 그 가운데 한명이 바로 시위대를 유혈진압해 악명을 떨친 카다피의 6남 카미스(33) 32여단 사령관이다. 정부군 일부가 이탈하면서 정부군이 보유하고 있던 무기가 속속 반정부군 손에 넘어가고 있다. 국경 밀무역을 통해 반입하는 무기도 상당한 수준이라는 외신 보도도 나온다. 초기에는 AK47 소총처럼 기본적인 소형 개인화기만 들고 있던 반정부군이 차츰 RPG7 대전차로켓포, PK 기관총, KPV 중기관총은 물론 리비아 공군의 폭격에 맞서기 위한 DShK 대공 중기관총 같은 중화기도 확보했다. 최근에는 BMP1 장갑차와 T72 탱크는 물론 대공미사일 같은 기계화 무기까지 손에 넣기 시작했다. 주전장인 지상전력에서는 정부군과 반정부군의 무장 수준이 갈수록 비등해지고 있지만 아직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 바로 공군 전투기를 이용한 폭격이다. 일부 대공화기로 감당하기에는 리비아 공군이 보유한 미그기와 수호이 계열 전투기들은 너무 강력하다. 하지만 전투기를 조종하는 군인들이 폭격 명령을 거부해 버리면 얘기는 달라진다. 리비아 공군 조종사 2명이 지난달 21일 폭격 명령을 거부하고 미라주 F1 전투기 두 대를 타고 몰타로 망명했다. 이틀 뒤에는 공군 조종사들이 벵가지 시내에 폭탄을 투하하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수호이22 전투기를 고의로 추락시키기도 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자살 폭탄 테러’ 놀이하는 아프간 아이들 충격

    ‘자살 폭탄 테러’ 놀이하는 아프간 아이들 충격

    ‘폭탄 테러’라는 끔찍한 만행을 미화하는 동영상이 공개돼 논란을 사고 있다. 1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 메일은 “탈레반의 ‘자살 폭탄 테러’ 공격을 재연하는 아프가니스탄 아이들의 모습이 담긴 충격적인 영상이 공개됐다.”고 전했다. 공개된 영상에서 파슈툰족 아이들은 1분 20여 초 동안 자살폭탄 테러 공격을 흉내 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폭파범’ 역할로 보이는 한 소년은 검은 옷을 입고 있으며 임무 수행을 위해 여러 동료와 이별 포옹을 한다. 이어 그 소년은 자신을 막아서는 하얀 옷을 입은 소년들에게 다가간다. 이윽고 소년들은 함께 모래를 던지며 폭탄이 폭발하는 상황을 재연하고, 다른 소년들이 죽은 채 하고 있는 아이들을 확인하기 위해 몰려든다. 이 영상은 파키스탄 서북 와지리스탄의 아산 마수드라는 남성이 페이스북에 공개하면서 알려졌다. 그는 “이 영상이 아프가니스탄 코스트 지역에서 촬영됐으며 친구가 휴대전화로 보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제아동자선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의 살마 자파는 “끔찍하다. 아이들은 자신들에 대한 비난보다 폭파범에게 매혹됐다.” 면서 “지금 폭력을 미화시킨다면 나중에 생활 일부가 될 수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사진=유튜브 서울신문 나우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탱크 도로 점령·무차별 발포… 생명에 위협 느꼈다”

    리비아 사태가 격화하면서 정부의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외교통상부와 국토해양부 등 관계부처는 27일 리비아에 진출한 13개 건설업체 대표들과 긴급회의를 개최, 사실상 모든 교민이 철수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아직 잔류 인원이 있는 건설업체들도 철수 계획을 단계적으로 세우고 있다.”면서 “모든 국민이 철수한 뒤 주리비아 대사관 폐쇄가 논의될 것”이라고 전했다. 정부는 리비아 여행경보를 현재 3단계(여행제한)에서 4단계(여행금지)로 상향 조정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외교부에 따르면 이날까지 리비아에 잔류한 한국 교민과 근로자 수는 509명이다. 지난 22일 ‘엑소더스’가 본격화하면서 1400여명의 한국인 가운데 60% 이상이 탈출에 성공한 셈이다. 하지만 정부는 최단거리로 교민을 탈출시킬 수 있는 이집트항공의 여객기를 빌리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만명에 달하는 리비아 내 이집트인들의 탈출이 더뎌지는 가운데 이집트 국적 항공사가 마냥 외국인에게 전세기를 내줄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인 60% 탈출 성공 앞서 이날 오전 6시 55분쯤(현지시간) 시르테 지역에서 교민과 근로자 60명을 태운 이집트 항공 전세기는 카이로 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대한항공 특별기인 KE 9928편도 235명의 한국인을 태우고 트리폴리에서 이륙, 지난 26일 밤 인천공항에 착륙했다. 탑승객인 근로자 권용우씨는 “정부군과 반정부군의 탱크가 도로 위를 다니고 기관총도 무자비하게 발포되고 있다.”며 “시신도 6구나 목격했다.”고 말했다. 현지 사업가인 김승훈씨도 “아내, 딸과 함께 옷가지만 챙겨 비행기에 올랐다.”면서 “사흘 전 흑인들이 갑자기 쇠파이프로 창과 문을 부수며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고 회상했다. 김씨에 따르면 트리폴리 공항은 수만명의 내·외국인이 몰려들면서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일부 외신보도 과장” 교민들은 “비행기로 출국하기 전 공항에서 최소 여덟 차례 검문을 받았다.”고 입을 모았다. 근로자인 정상식씨도 “마무라에서 트리폴리까지 가는 길에 네 차례 검문을 받고 휴대전화 유심 카드와 카메라 메모리 카드 등을 모두 압수당했다.”고 전했다. 일부는 검문 과정에서 아래 속옷까지 벗겨졌다. 벵가지 동쪽 200㎞ 떨어진 굽바에서 주택공사를 하다 육로로 이집트로 탈출한 현대엠코의 전시호 소장은 “카다피 측의 흑인 용병 60명이 굽바의 라브락 공항을 장악하려고 왔다가 반정부 세력과 사나흘간 교전을 벌여 45명이 죽고 15명이 체포됐다는 소식도 들었다.”고 전했다. 벵가지의 대우건설 발전소에 머물다 탈출한 이국진 현대건설 차장은 “매일 밤 발전소로 쳐들어오는 현지인들과 대치 상황이 벌어지고, 카다피가 가동 중인 발전소를 폭격하거나 군함을 파견할 것이란 소문도 나돌고 있다.”고 전했다. 이 차장은 “벵가지의 경찰본청 앞에는 탱크 2대가 폭파돼 있는 등 시내 곳곳에 불에 탄 탱크 여러 대가 눈에 띄었고, 관공서와 경찰서는 전소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우건설 관계자는 “외신보도와 현지 상황은 큰 차이가 난다.”면서도 “우선 한국인 직원 58명과 외국인 근로자 328명을 남기고 모두 철수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미경·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조국 리비아 구해주세요…카다피여 국민들 내버려두라”

    “돌멩이 하나 던진 적 없는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제발 내 조국 리비아를 구해 주십시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리비아 제재안 표결을 하루 앞둔 지난 25일(현지시간) 한 외교관이 15개국 대표 앞에 섰다. 그는 다름 아닌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오랜 친구이자 최측근인 모하메드 샬람 유엔 주재 리비아 대사였다. 그는 “단호하고 대담한 결의안을 기대한다.”며 호소한 뒤 카다피를 향해 “나의 형제 카다피여, 이제 리비아 국민들을 내버려두라.”고 촉구했다. 샬람 대사는 그동안 이브라힘 다바시 유엔 주재 리비아 부대사를 전면에 내세운 채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역시 ‘카다피 충성파’에 속하지만 유혈 진압 소식에 “카다피는 미친 사람”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던 다바시와는 달리, 그는 어린 시절부터 동고동락해 온 친구에게 차마 직접 손가락질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날 샬람 대사는 참았던 분노를 터뜨리기라도 하듯 격정적인 목소리로 안보리 회의장을 가득 채웠다. 단상을 내려옴과 동시에 마음의 짐도 내려놓은 듯한 그는 자신이 연설하는 동안 눈물을 보였던 다바시 부대사와 말없이 포옹했다. 가장 먼저 카다피에게 등을 돌렸던 관료는 압델 에후니 아랍연맹 주재 리비아 대사다. 그는 “카다피 정권은 이제 역사 속 쓰레기”라고 거침없이 카다피를 비판했다. 이어 중국 주재 대사관의 고위 외교관인 후세인 엘메스라티는 “무솔리니와 히틀러의 정부를 대표하는 이 자리에서 물러난다.”며 사임 의사를 밝혔다. 또 ‘피의 금요일’을 맞은 25일 사임 의사를 밝힌 압둘 라흐만 알 압바르 리비아 검찰총장은 “정의와 법의 원칙을 믿었지만 현 상황은 정반대로 폭력이 대화와 민주주의를 대신하고 있다.”며 카다피를 향해 분노를 표출했다. 또 26일 사임 발표를 한 이브라힘 엠도레드 포르투갈 주재 리비아 대사도 카다피 정권을 “불의한 파쇼 폭군 정권”이라 규정하며 물러난 뒤 ‘혁명’에 가담해 자신의 모든 경험과 능력을 보태겠다고 약속했다. 카다피 정권의 핵심 세력을 이뤘던 이들은 연일 ‘폭탄 발언’을 이어 나갔다. 무스타파 압델 잘릴 전 법무장관은 “카다피는 시위가 일어나기 전부터 용병들을 고용했다.”면서 “이들에게 리비아 시민권을 주기로 결정까지 된 상황”이라고 폭로했다. 특히 1988년 270명이 사망한 미국 팬암기 폭파 사건은 카다피가 직접 지시한 것이라고 밝히면서 파문을 일으켰다. 유네스 알 아비디 전 내무장관은 최근 카다피 암살을 선동하기까지 했다. 나길회·유대근기자 kkirina@seoul.co.kr
  • ‘부시 휴~’ 자택 폭파시도 사우디 청년체포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테러 위험에서 간신히 벗어났다. 미 법무부는 24일(현지시간) 미 연방수사국(FBI)이 부시 전 대통령의 텍사스 자택과 원자력발전소, 댐 등을 폭파하려 한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20세 청년 칼리드 알리 알다와사리를 체포했다고 밝혔다. 알다와사리는 2008년 미국에 입국, 최근까지 텍사스의 사우스 플레인스 칼리지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FBI가 그의 자택을 압수 수색한 결과 그는 미국에 공부하러 오기 수년 전부터 이미 테러 계획을 세워 놓고 있었고, 부시 전 대통령의 자택을 ‘폭군의 집’이라 부르며 폭발물을 넣은 인형으로 공격할 계획을 짰다. 또 폭발물을 설치한 유모차를 이용해 캘리포니아 주와 콜로라도 주의 댐 12곳, 원자력발전소 등을 날리려 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석유시설 폭파” 카다피 자해위협에 원유생산 속속 중단

    “석유시설 폭파” 카다피 자해위협에 원유생산 속속 중단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보안군에 석유시설을 파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자해극’이 실제로 벌어질 가능성에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3일(현지시간) 외신들에 따르면 아직까지는 리비아 내 석유시설에 대해 공격 행위가 이뤄졌다는 소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사면초가에 놓인 카다피가 마지막 발악을 시도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감에 세계가 긴장하고 있다. 발단은 전직 미국 중앙정보국(CIA) 출신 중동문제 전문가 로버트 베어가 22일 미국 시사주간 타임에 기고한 글에서 카다피 원수가 보안군에 석유시설 파괴를 시작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주장하면서 비롯됐다. 그는 카다피 정권 내부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들에게 들었다면서 이는 카다피가 자신에게 반대하는 부족들에게 ‘나를 따르지 않으면 혼란을 겪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리비아에서 유전은 대부분 동부 내륙인 시르테 지역과 서부 연안에 집중돼 있다. 카다피가 자해극을 벌일 경우 가장 유력한 목표물이 될 수 있는 원유 정제시설과 저장 시설은 트리폴리 주변에 하나씩 있는 것을 빼고는 모두 동부에 집중돼 있다. 공교롭게도 카다피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대 세력이 강한 지역에 상당수 석유시설이 밀집해 있는 셈이다. 최근 원유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카다피를 위협했던 알주와야 부족 지역도 대표적인 유전 지역이다. 직접 공격이 아니더라도 격화하는 리비아 상황 때문에 리비아에 진출해 있는 주요 석유회사들이 원유 생산을 중단하는 것도 국제사회에 큰 타격이다. 트리폴리 앞바다에는 적잖은 유전과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다. 엑손모빌, BP, 가스프롬, 토탈 등 유전 탐사를 하고 있는 전 세계 주요 석유회사들이 시위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이미 22일자로 원유 터미널이 폐쇄되는 등 원유 수출이 차질을 빚고 있다. AFP통신에 따르면 독일 최대 석유회사인 빈터스할은 안전을 이유로 8개 유전에서의 석유 생산을 중단했다. 스페인 최대 석유회사인 레스폴도 리비아에서의 석유 생산을 유예한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리비아에서 하루 평균 5만 5000 배럴을 생산하던 프랑스 기업 토탈도 이날 석유 생산을 일부 중단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카다피 “석유생산시설 폭파” 지시

    카다피 “석유생산시설 폭파” 지시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가 퇴진 요구를 거부한 데 이어 자국 내 주요 석유생산시설을 폭파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내전을 공식화하는 것이자 리비아를 극도의 혼란상태로 몰아넣어 위기 국면을 벗어나려는 뜻으로, 리비아 사태의 장기화 가능성이 점쳐진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22일(현지시간) 내부 소식통을 인용, “카다피가 (반대 진영 부족장들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석유 관련 시설들을 파괴하라고 보안군에 명령했다.”면서 “보안군이 일부 송유관을 폭파하고, 지중해를 지나 유럽으로 가는 원유 수송을 중단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는 서방과 반정부 시위를 일으킨 부족들에 경고의 메시지를 주기 위한 것이라고 타임은 덧붙였다. 카다피는 이날 국영 TV로 생중계된 대국민연설에서 “내 조상의 땅에서 순교자로 죽을 것”이라면서 “마지막 피 한 방울이 남을 때까지 싸우겠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리비아 내각의 두 번째 서열인 아부델 파타흐 유네스 내무장관은 이날 사임을 공식 발표하고 반정부 시위대에 합류한다고 선언했으나 이후 벵가지에서 납치됐다. 니콜라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에 리비아와의 경제교류 중단과 제재를 촉구했다. 페루는 리비아 시위사태 이후 처음으로 리비아와의 외교 단절을 선언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카다피 “지중해 석유시설 폭파하라” 지시

    연이은 하야시위에 막다른 골목에 몰린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송유관을 파괴하라는 극단적인 명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최근호에서 리비아 사태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카다피가 지중해 지역으로 향하는 송유관을 폭파시켜 석유 수출을 막으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보도했다. 이 관계자는 “카다피의 지시에 따라 곧 보안군이 석유 생산시설에 대한 고의적인 파괴를 시행할 것”이라면서 “지중해로 가는 통로가 우선 차단대상부터 차단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는 또 카다피가 리비아 감옥에 수용된 수백 명의 이슬람 극진 주의자들을 석방해 반정부 시위자들을 처단하도록 지시한 것 같다고 전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보령~안면도 해저터널·연도교 4월 착공

    보령~안면도 해저터널·연도교 4월 착공

    2018년 말 완공 예정인 충남 보령~안면도 간 해저터널 및 연도교 건설공사가 오는 4월 대장정에 들어간다. 대전지방국토관리청은 오는 4월 보령시 대천항과 태안군 안면도 영목항을 잇는 해저터널 및 연도교(총 14.1㎞) 건설공사 현장사무실 개소식을 갖고 본격적으로 공사에 착수한다고 15일 밝혔다. 해저터널과 연도교로 이뤄진다. 1공구 8㎞ 중 대천항~원산도 간 6927m는 해저터널로, 2공구 6.1㎞ 중 원산도~영목항 간 1750m는 해상교량으로 건설돼 국도 77호선을 잇게 된다. 모두 왕복 4차로다. 해저터널은 해저면 60m 아래를 폭파 방식으로 뚫는다. 수심 30m까지 합치면 해수면에서는 90m 밑으로 길이 생기는 셈이다. 이름은 ‘보령터널’(가칭)로 지어졌다. 해저로 뚫리는 터널로는 국내에서 가장 길고, 세계적으로는 5위다. 일본 혼슈~홋카이도 간 해저터널은 54㎞, 영국~프랑스 간 해저터널은 50㎞다. 원산도~영목항 간 연도교는 주탑 2개를 올리고 케이블로 지탱하는 사장교 형태로 건설된다. 잠정적으로 ‘솔빛대교’라는 이름을 붙였다. 해저터널은 현대건설 컨소시엄, 사장교는 코오롱 컨소시엄이 각각 맡았다. 공사비는 총 5400억원. 국토관리청은 당초 대천항과 원산도 사이에 인공섬을 만들어 해저터널을 건설할 계획이었으나 천수만의 빠른 물흐름을 막고, 대형 선박의 운항 장애와 사고 위험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 일자 철회했다. 이 길이 완공되면 대천해수욕장에서 안면도 꽃지해수욕장까지 거리가 77㎞에서 30㎞로 단축되고, 시간도 1시간 이상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해저터널과 사장교 자체도 최고의 관광자원이 돼 충남 서해안과 안면도 일대 지역 발전을 크게 앞당길 것으로 기대된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44년 전 북파작전 털어놓은 까닭은

    44년 전 북파작전 털어놓은 까닭은

    44년이나 지난 북파 작전의 전공(戰功)을 왜 털어놓았을까. 11일 오후 7시 30분 케이블채널 서울신문STV를 통해 방영되는 ‘TV 쏙 서울신문’에서는 자유선진당 이진삼(74) 의원에게 북파 작전을 털어놓게 된 속내를 들어본다. 육군사관학교 15기로 육군 참모총장을 지낸 이 의원이 1967년 9월 황해도 개풍군에 침투해 35명의 북한군 병사를 살해한 사실을 밝힌 것이 뒤늦게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다. 이 의원이 지난달 24일 국회 국방위 간담회에서 “(내가) 이북에 들어가 보복 작전한 것을 알고 있느냐.”고 김관진 국방부 장관에게 질문했으며, 김 장관으로부터 “알고 있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보도됐다. 하지만 그는 10일 오후 진행된 인터뷰에서 “많은 이들이 내가 공개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아니다. 난 보안을 중시하는 군인”이라면서 2008년 10월 8일 기무사령부가 국정감사 자료를 준비하면서 7~8년 전 기밀이 해제된 북파 보복 작전 내용이 포함돼 일부 국방위원들이 열람한 바 있다고 소개했다. 다른 경로로 알려진 내용을 언급했을 뿐이며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도발 이후 국민들의 안보의식을 높이고 느슨해진 군의 기강을 끌어올리기 위해 선배의 경험담을 상세히 밝히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의원은 1967년 9월 육군 대위로 방첩부대에 복무하면서, 남파됐다 전향한 무장공비 3명과 팀을 이뤄 북한군 복장으로 변장한 채 서부전선의 군사분계선을 넘어 개풍군에 침투해 13명의 인민군을 사살했다. 작전명 ‘필승 공작’으로 알려진 이 작전은 북한군이 미군 GP를 폭파한 것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이뤄졌다. 당시 이 의원 등은 개풍군에 침투해 지뢰를 묻고 있던 북한군을 기습, 15명을 사살했다. 이후 2차 침투에서 정찰 업무를 수행하고, 같은 해 10월 3차 침투 때에는 북한군 20명을 추가 사살했다. 다른 차원에서 1968년 1월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습격을 불러들인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TV 쏙 서울신문’은 이 밖에 ‘독일에서 인정받은 국내 조준경 업체’ ‘무상복지 논쟁 안팎’ ‘늘어난 장애인 채용’ ‘대학 기숙사의 변신’ ‘이집트 시위 겉과 속’ ‘숭례문 소실 3년’ 등을 방영한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1967년 北 세번 침투해 북한군 33명 사살”

    “1967년 北 세번 침투해 북한군 33명 사살”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자유선진당 이진삼 의원이 북파 작전에 가담해 33명의 북한군을 살해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 의원은 지난달 24일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국회 국방위 간담회에서 자신이 “이북에 들어가 보복 작전한 것을 알고 있느냐.”고 김 장관에게 질문했으며, 김 장관으로부터 “알고 있다.”는 대답을 들었다. 이 같은 사실은 그동안 비밀로 묶여 있다 최근 해제되면서 기무사령부가 일부 국방위원에게 공개하면서 밝혀졌다. 이 의원은 1967년 9월 육군 대위로 방첩부대에 복무하면서 남파됐다 전향한 무장공비 3명을 이끌고 서부전선의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 황해도 개풍군에 침투해 13명의 인민군을 사살했다. 작전명 ‘필승공작’으로 알려진 이 작전은 북한군이 미군 GP를 폭파한 것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이뤄졌다. 당시 이 의원 등은 개풍군에 침투해 지뢰를 묻고 있던 북한군을 기습했다. 이후 이 의원 등은 2차 침투에서 정찰 업무를 수행하고, 3차 침투 때에는 북한군 20명을 추가 사살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이스라엘 연결 이집트 가스 터미널 폭발

    이집트 시나이 반도에 있는 천연가스 수송터미널에서 5일 오전 대형 폭발 사고가 발생해 이스라엘과 요르단에 대한 가스공급이 차질을 빚게 됐다. 이집트 국영방송은 이날 긴급 뉴스를 통해 “괴한들이 시위 사태로 인한 이집트의 치안불안 상황을 이용해 가스관을 폭파했다”면서 “이는 테러범의 소행”이라고 보도했다. 폭발이 일어난 곳은 이스라엘 남부 국경에 인접한 도시 엘-아리쉬 인근이며, 이번 사고는 터미널에서 70㎞ 떨어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도 화염과 검은 연기가 목격될 정도로 거대했으나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고 이집트 당국은 밝혔다. 시나이 반도의 압델 왈하브 마부크 주지사는 현지 나일TV와의 인터뷰에서 사고 직후 이스라엘과 요르단으로 통하는 가스 수송관의 밸브를 잠그고 진화작업을 벌여 이날 정오가 되기 전에 불길을 잡았다고 밝혔다. 정확한 폭발 사고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가스 터미널에서 파견 근무하는 이스라엘인 직원들은 소형 폭발장치가 설치돼 폭발이 일어났다고 말했다고 AP 통신이 전했다. 세계에서 18번째로 많은 천연가스를 보유한 이집트에는 62조㎥ 규모의 가스가 매장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집트 정부는 2005년 자국 내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이스라엘에 15년간 매년 17억㎥의 천연가스를 판매하기로 합의하고 2008년 초부터 엘-아리쉬와 이스라엘의 아쉬켈론을 연결하는 100㎞ 길이의 파이프 라인을 통해 천연가스를 공급하고 있다. 이집트는 1979년 아랍 국가 중 최초로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체결했지만, 이스라엘에 대한 이집트 국민의 대체적인 정서는 아직도 적대적이어서 그간 정부의 가스 공급 정책을 비난해 왔다. 이집트 야권과 언론도 정부가 이스라엘에 제공하는 천연가스의 가격이 현 시세보다 40% 이상 낮게 책정됐다면서 계약을 취소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왔으며 일부에서는 양국 간 가스공급 계약의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연합뉴스
  • 장군님의 ‘알통구보’

    장군님의 ‘알통구보’

    “준비됐습니까”, “악!” 1일 오전 경남 진해 해군특수전여단(UDT) 훈련장. 매의 눈을 가진 조교의 호령에 계급을 알 수 없는 단단한 모습의 사나이들이 오리발 수영에 앞서 맨손체조를 시작했다. 체조라지만 구령과 동작은 얼차려에 가깝다. 영하의 기온에도 불구하고 온몸에서 하얀 김이 서려 올라온다. 소말리아 해적을 제압하고 우리 선원을 구출해 유명세를 타고 있는 해군 특수전여단(UDT)의 장병 100여명이 혹한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대테러훈련을 실시했다. 이날 훈련에는 역대 특수전여단장을 지낸 해군 군수사령관 윤재갑 소장과 해군본부 정보화기획실장 방금철 준장, 9전단장 김판규 준장 등 장성 3명도 참가했다. 계급과 상관없이 전투 능력을 최대한 끌어 올리는 것이 전투부대 육성의 목표라는 취지에서다. 장군들은 이날 100여명의 특수전요원과 함께 ‘알통구보’와 ‘1000m 오리발 수영’ 등 혹한기 훈련을 소화했다. 훈련은 체조와 구보, 수영, 레펠, 폭발물 처리 시연, 대테러 사격, 해상침투 등으로 진행됐다. 해상침투 훈련은 특공작전팀이 적지에 침투해 항공기에 의한 폭격을 유도하거나 저격수에 의한 직접 타격, 폭발물 설치 등 실전과 유사하게 실시됐다. 또 고무보트에 탑승한 대원들이 순차적으로 해안으로 침투한 다음 기동대형을 갖춰 은거지로 이동해 핵심 목표물을 타격하고 폭파하는 방식으로 훈련이 진행됐다. 훈련에 참가한 김판규 준장은 “아덴만의 신화를 이뤄낸 UDT 대원들이 정말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軍 작전 앞서 부산항서 똑같은 선박 찾아 수차례 ‘실전연습’

    軍 작전 앞서 부산항서 똑같은 선박 찾아 수차례 ‘실전연습’

    “이번 작전의 완벽한 성공 뒤엔 수많은 이들의 노고가 있었다.” 군 고위 관계자는 23일 ‘아덴만 여명’ 작전 성공은 청해부대 외에도 민·군 협동을 통해 이뤄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군 특수전여단(UDT) 수중폭파팀 대원 등으로 구성된 최영함의 검문검색대는 삼호주얼리호가 피랍되자마자 구출작전을 위한 연구에 돌입했다. 작전은 속도가 생명인 만큼 1만t이 넘는 삼호주얼리호의 내부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수백번의 훈련으로 대테러 작전이 몸에 배어 있지만 선박 구조가 복잡해 작전 동선이 명확하게 준비되지 않을 경우, 작전 실패의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작전을 지휘한 합동참모본부, 해군 작전사령부와 최영함 지휘부는 선박 내부 구조를 알아낼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이때 뜻밖의 정보가 입수됐다. 삼호주얼리호와 똑같은 선체를 가진 선박이 부산항에 있다는 정보였다. 해군은 즉시 UDT 단장과 전문가들을 부산항으로 파견했다. 이들은 배 선체를 면밀히 분석한 뒤 관련 영상자료를 만들어 최영함으로 전송했다. 덕분에 현지 요원들이 배 안을 손금 보듯 인지한 상태에서 작전이 시작됐다. 합참은 지난 18일 1차 진입작전 때 해적들과의 교전으로 안병주 소령과 김원인 상사, 강준 하사가 부상당하자 다음 날 국내에 있던 UDT 대원 2명을 현지로 급파했다. 최영함에서 특수전을 수행할 수 있는 대원은 모두 30명이다. 이들은 10명씩 3개조로 구성되는데 팀마다 담당한 임무가 달라 부상으로 손실된 3명은 큰 공백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급파된 2명의 대원들은 20일 오만 무스카트항에 도착했지만 수천㎞나 떨어진 최영함으로 이동할 수 없었다. 이렇게 되자 검문검색팀은 9명씩 3개팀으로 재구성해 작전에 돌입했다. 이번 작전이 끝난 뒤 부상이 경미한 강 하사는 다시 최영함으로 복귀하기를 희망해 다시 검문검색대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며, 급파된 UDT 대원 2명도 안 소령과 김 상사의 자리를 채울 예정이다. 석해균 선장의 빛나는 기지는 연일 화제다. 18일 잠시 삼호주얼리호가 정선했던 이유도 석 선장이 기관장과 함께 엔진 윤활유 등에 물을 타 기관이 정지하도록 했기 때문인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하지만 석 선장은 작전 당시 총상에 골절상까지 입고 만신창이 상태로 구출됐다. 함께 구출된 갑판장은 “해적들이 우리 군의 진입 작전이 시작되자 흥분한 상태에서 석 선장을 찾아 총격을 가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고위 관계자는 “해적 가운데 두목으로 보이는 과격파가 모포를 덮고 숨어 있던 선원들을 일일이 확인해 석 선장을 찾아낸 뒤 4발의 총격을 가했다고 갑판장이 진술했다.”고 전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18일 1차 교전 → 3일간 끈질긴 추격 ‘아덴만 여명’ 완료

    18일 1차 교전 → 3일간 끈질긴 추격 ‘아덴만 여명’ 완료

    지난 15일 낮 12시 40분(한국시간).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을 출발, 스리랑카로 향하던 삼호해운 소속 삼호주얼리호가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됐다. 오만과 인도 사이의 인도양 북부 아라비아해 입구에서다. 오후 피랍 소식을 확인한 정부는 긴박하게 움직였다. 외교통상부·국방부 등 관련 부처 긴급회의가 소집됐다. 정부 인사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불과 두달 전 106억원의 몸값을 주고 풀려난 삼호드림호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소말리아 해적이 한국을 ‘봉’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며 “이번 기회에 정신이 번쩍 들도록 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밤 소말리아 아덴만 해역에 파견돼 있던 청해부대 최영함이 은밀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16일 0시 30분 에티오피아 지부티항에서 군수물자 등을 싣기 위해 정박 중이던 최영함은 긴급 출동해 18일 오전 4시 피랍 해역인 아라비아해 입구에 도착했다. 이미 정부는 해적 등 테러 세력과의 협상이 없다는 방침을 세운 뒤였다. 이 무렵 국내에 있던 해군 특수전여단(UDT) 수중폭파팀 정예요원들이 삼호주얼리호와 똑같은 선체를 갖고 있는 선박을 찾아내 내부를 샅샅이 확인했다. 최영함의 동료들이 구출작전을 개시한 뒤 머뭇거림 없이 해적을 진압할 수 있도록 움직이는 동선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현장에선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18일 오후 8시 최영함이 삼호주얼리호 인근 2해리(약 3.6㎞) 지점에서 작전 시기를 저울질하던 중 몽골 선박이 나타났다. 삼호주얼리호에서 갑자기 작은 보트가 내려졌다. 5해리 떨어진 몽골 선박을 또다시 피랍하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10여명의 해적들이 양측으로 분리된 틈을 타 링스헬기와 고속단정을 출동시켰다. 몽골 선박을 위기에서 구조하고 삼호주얼리호도 구출하는 작전이다. 링스헬기는 작은 보트에 탑승한 해적에게 경고 및 위협 사격을 가했고, 총격을 받은 해적 수명은 바다에 빠져 실종됐다. 이때 UDT 대원들이 탑승한 고속단정은 삼호주얼리호로 근접해 승선하려 했지만 배에 남아 있던 해적들의 총격을 받고 후퇴했다. 이 과정에서 장병 3명이 총상과 파편상을 입고 오만의 한 대학병원으로 후송돼 치료를 받았다. 최영함과 삼호주얼리호 사이의 긴장감은 더욱 팽팽해졌다. 하루 뒤인 19일 오전 3시 25분에는 삼호주얼리호로부터 13㎞ 떨어진 지점에서 미상의 선박이 접근해 긴장감은 극에 달했다. 해적 모선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던 청해부대는 UDT 팀을 보내 검색을 실시하고 승선자들을 최영함으로 이동시켰다. 하지만 다음날 이란 국적의 선박인 것으로 확인되면서 훈방 조치했다. 이날 오전 10시 20분 연합 해군사령부(CTF151)에 속한 오만 함정 1척이 작전에 참여했다. 청해부대는 삼호주얼리호가 소말리아 영해로 들어가기 전에 작전을 끝내기 위해 추격하기 시작했다. 최영함은 20일에서 21일을 넘어 100해리 이상을 추적하면서 투항권유와 경고사격을 지속적으로 했다. 해적들을 지치게 만들기 위한 심리전의 일환이었다. 21일 오전 9시 58분(현지시간 오전 4시 58분) 구출 작전에 돌입했다.고속단정으로 삼호주얼리호에 진입한 특수전 요원들은 총격전 끝에 오후 3시쯤 13명의 해적 가운데 8명을 사살하고 5명을 생포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소말리아 해적 소탕한 ‘UDT/SEAL’ 은 어떤 부대?

    소말리아 해적 소탕한 ‘UDT/SEAL’ 은 어떤 부대?

    해군 청해부대가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삼호 주얼리호’ 선원을 구출하는데 성공하면서 해적 소탕에 활약한 대원들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합동참모본부는 21일 오후, 청해부대에 소속된 해군 특수전여단 대원들이 삼호 주얼리호에 침투, 해적들을 소탕하고 인질들을 구출하는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합참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해적 8명을 사살하고 5명을 생포했으며 우리측 대원들의 피해는 없었다. 붙잡혔던 삼호 주얼리호의 승조원 21명도 모두 구출됐다. 해적들을 소탕하고 승조원들을 구출한 대원들은 해군 특수전 여단 소속으로, 흔히 ‘UDT/SEAL’이라 불린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은 다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고도로 훈련된 요원들이다. UDT는 ‘수중폭파대’(Underwater Demolition Team)의 약자로 상륙작전시 사전에 미리 침투해 해변에 설치된 각종 수중 장애물을 폭파하는 임무를 수행함을 뜻한다. 뒤에 붙은 SEAL도 바다와 하늘, 땅(Sea, Air and Land)을 뜻하는 약자로 육해공을 가리지 않고 각종 특수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지난 3월 북한의 어뢰공격으로 가라앉은 ‘천안함’(PCC-772)의 실종자 탐색임무 중에 순직한 故 한주호 준위 역시 해군 UDT/SEAL 소속으로, 그 역시 청해부대 1진으로 파견됐었다. 무엇보다 특수전여단 대원들은 선박을 이용한 테러나 이번과 같은 납치사건에도 투입될 수 있도록 훈련을 받아 대테러부대 목록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선박내부는 사람이 손을 뻗을 수도 없을 만큼 비좁은 통로와 복잡한 구조 탓에 전투는 커녕 움직임조차 제한된다. 게다가 끊임없이 요동치는 바다 때문에 일반인들은 가만히 서 있기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런 환경에서도 여러 대원이 팀을 이뤄 신속하게 움직이고 정확한 사격을 한다는 것은 이들의 훈련량이나 능력을 대변해준다. 이러한 능력을 바탕으로 청해부대에는 해적들을 검문, 검색할 특수전여단 대원들이 함께 파견되고 있으며, 이들이 이번 삼호 주얼리호 구출에 선봉을 맡아 작전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한편 해군 특수전여단은 지난 1955년 미 해군의 UDT과정을 수료한 장교 7명이 1기 교육생 25명을 훈련시키면서 처음 창설됐다. 당시 1기 지원자는 300여 명이었으나 교육을 수료한 인원은 25명 뿐이었을 만큼 훈련이 혹독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1968년에는 폭발물처리반(EOD)가 창설됐으며, 76년에는 특수전(SEAL)임무도 추가됐다. 지금과 같은 여단급 규모를 갖춘 것은 지난 2000년 1월 1일이다. 사진 = 대테러훈련 중인 특수전여단 대원(자료화면) 서울신문 M&M 최영진 군사전문기자 zerojin2@seoul.co.kr
  • 멀쩡했던 도로가 폭발…中거대구멍 미스터리

    한낮 중국 도심의 한 도로가 갑자기 폭발해 지반이 내려앉는 황당한 사고가 발생했다. 중국 시나닷컴에 따르면 지난 16일 오후 4시(현지시간)께 저장성 루이안시 도심에서 멀쩡한 도로가 폭발해 한가운데 폭 10m구멍이 생기는 사고가 발생, 당국이 원인 파악에 나섰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사고 당시 큰 굉음과 함께 지반이 무너졌으며, 마침 지나던 버스가 구멍에 빠졌고 폭파지점 근처 빌딩이 흔들리거나 일부 창문이 깨지는 등 큰 혼란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버스 운전자와 일대를 지나던 7세 사내아이가 다쳐 병원에 실려 간 것으로 전해졌다. 다행히 버스에 승객이 없었기 때문에 폭파사고가 대형 인명피해로 이어지진 않았다. 일부 주민들은 이 사고를 두고 중국의 여러 지방에서 발생한 싱크홀 현상으로 추측해 불안해했으나 조사 당국은 “도로 밑에 파묻혀 있는 오물 정화처리 탱크가 폭발을 일으킨 거 같다.”고 설명했다. 매장량의 기준치 이상이 몰리면서 가연성 오물이 폭발을 일으켰다는 것. 실제로 목격자들이 “사고 몇시간 전부터 일대 맨홀에서 연기가 흘러나왔으며 코를 찌르는 냄새가 났다.”고 증언하고 있어 정화탱크 폭발설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하지만 중국 언론매체들은 여전히 정확한 사고 원인은 규명되지 않았으며 구체적인 사고원인과 책임소재를 파악하기 위해서 당국이 일대를 통제하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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