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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 카에다 다음 타깃은 도쿄”

    알카에다가 아시아의 경제중심지를 공격할 계획이며 특히 일본 도쿄가 목표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26일 보도했다. 프랑스의 테러 조사 책임자 장 루이 브뤼기에르(62) 판사는 알카에다가 도쿄, 시드니, 싱가포르 등 아시아의 금융 거점에 투자자들의 자신감을 꺾기 위해 테러를 계획중이라고 밝혔다. 별명이 ‘보안관’인 브뤼기에르 판사는 지난 20년간 500여명의 테러리스트 체포를 지휘한 인물이다.1994년 알제리 테러집단이 여객기를 공중납치해 파리 에펠탑에 충돌시키려는 음모를 적발한 뒤, 여객기를 폭탄으로 사용하는 테러 위험을 경고했으며 이는 미국 뉴욕의 9·11테러로 현실화됐다. 팔레스타인 독립을 위해 수십건의 테러를 감행했던 악명높은 카를로스 자칼도 1994년 붙잡았다. 그는 아시아 지역이 알카에다의 공격대상지란 정보를 갖고 있으며, 특히 일본이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또 몇몇 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이슬람 테러리스트에 대한 경험이 적다고 지적했다. 아시아에 대한 공격은 아시아 경제 성장에 찬물을 끼얹고자 하는 것으로 알카에다에게 상징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브뤼기에르 판사는 “알 카에다 조직은 경제중심지를 공격하는 것으로 공격 전략을 짜고 있는데, 특히 일본에 대한 테러는 엄청난 효과를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시아 지역에는 테러 공격에 대한 대중의 자각이 부족해 정부가 테러를 막기 위해 법률을 제정하고 행동을 취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오카다 가쓰야 일본 민주당 대표도 25일 “일본에서 테러행위는 일어날 것인지의 여부가 아니라 언제 일어날지가 문제”라고 말했다.AFP통신은 아시아 각국이 테러 위험에 대비하고 있다고 26일 보도했다. 싱가포르는 무장 경찰이 지하철과 관광지를 순찰하고 있으며, 도쿄 역시 런던의 7·7테러 이후 보안을 강화했다. 시드니는 대중 교통 시스템에 경찰과 보안 인력을 강화하고, 대형 대피 계획도 마련했다. 한국 역시 오는 11월 부산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문에 테러 대상지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알루미늄은 ‘변신의 귀재’

    알루미늄은 ‘변신의 귀재’

    알루미늄은 금속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카멜레온 금속’이다. 일반적으로 불에 잘 타지 않아 불연재(不燃材)로 쓰이지만, 가루로 만들면 강력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뛰어난 연료가 된다. 또 물보다 가벼운 이른바 ‘스펀지 금속’으로 둔갑하기도 하며, 합금을 만들면 강철만큼 튼튼한 금속으로도 변한다. ●로켓이 내뿜는 연기의 정체는 알루미늄 일반 가정이나 음식점에서 고기를 구워먹을 때 흔히 불판 위에 알루미늄 포일을 올려놓지만 전혀 불이 붙지 않는다. 하지만 알루미늄을 분말 형태의 작은 입자로 만들어 녹는점(섭씨 600.1도) 가까이 가열하면 엄청나게 높은 열을 내면서 폭발성을 지니게 된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조인현 박사는 “모든 금속은 작은 입자가 되면 고온에서 산화(또는 연소)한다.”면서 “입자 크기가 작으면 작을수록 산화는 쉬워지는 반면 폭발성은 커진다.”고 설명했다. 알루미늄은 다른 금속에 비해 단위 무게당 발휘할 수 있는 에너지를 의미하는 비추력이 높다. 이같은 특성 때문에 알루미늄 분말은 우주왕복선이나 인공위성을 발사하는 데 쓰이는 로켓의 고체 연료로 활용되고 있다. 또 미세하게 가공된 알루미늄은 소이탄 등 많은 양의 열을 내는 폭탄에도 쓰인다. 특히 우주왕복선이 발사되는 광경을 지켜보면 로켓에서 엄청난 양의 하얀 구름이 내뿜어져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이 구름을 연료가 연소할 때 생기는 연기나 가스 정도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것은 로켓의 연료에 포함된 알루미늄 분말이 연소되면서 발생하는 알루미나라고 불리는 하얀색의 산화알루미늄 가루이다. 조 박사는 “로켓 연료에 알루미늄을 첨가하면 비추력이 10∼20% 정도 향상될 수 있다.”면서 “비추력이 높으면 적은 연료로 더 먼 거리를 갈 수 있어 효과적”이라고 덧붙였다. ●물보다 가벼운 ‘스펀지 금속’, 알루미늄 금속을 물에 넣으면 순식간에 가라앉는다. 물(비중 1.0)보다 무겁기 때문이다. 물보다 3배 가량 무거운 알루미늄(비중 2.7)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물에 뜨는 금속도 있다. 바로 스펀지 금속으로도 일컬어지는 ‘발포 알루미늄’이다. 한국기계연구원 김형욱 박사는 “발포 알루미늄 안에는 공기 방울이 가득 들어 있어 밀도가 낮아진다.”면서 “발포 알루미늄은 물 무게의 5분의 1에 불과하기 때문에 물에 뜰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발포 알루미늄을 만드는 원리는 식빵 제조와 비슷하다. 알루미늄 안에 달걀처럼 끈적끈적한 점증제를 넣어 점도를 높인 뒤 베이킹 파우더 역할을 하는 발포제를 넣는다. 발포제에서 수소가스가 나와 빵처럼 금속이 부풀어 오르면서 스펀지 같은 금속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발포 알루미늄은 가벼우면서도 발화성이 없고 충격과 진동, 소음을 잘 흡수한다. 이 때문에 발포 알루미늄은 지하철역이나 대형건물의 방음판, 자동차 범퍼 등에 활용된다. 특히 다 쓴 알루미늄 캔을 재활용해 스펀지 금속을 만들 경우 환경오염을 줄이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다. 알루미늄캔이 땅 속에서 분해되려면 500년 이상이 걸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 동안 사용되는 캔의 양은 약 6억개이며, 이 중 1억 2000만개가 알루미늄 캔이다. 또 알루미늄 캔을 재활용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는 원석에서 알루미늄을 얻는데 필요한 에너지의 26분의 1에 불과해 에너지 절약 효과도 크다. ●비행기·자동차 경량화의 열쇠, 알루미늄 합금 알루미늄 합금은 항공기와 자동차 제작에도 두루 활용되고 있다. 우선 비행기는 높은 고도에서 빠르게 날기 때문에 무엇보다 기체가 가벼워야 한다. 또 강성(외부에서 가해진 힘에 저항하는 정도)과 탄성(외부의 힘에 의해 변형된 물체가 원상태로 돌아가려는 성질)이 커야 하며, 피로 파괴(반복적인 힘이 작용했을 때 물체가 파괴되는 현상)에도 강해야 한다. 순수 알루미늄은 강성이 약하다. 그러나 알루미늄 합금인 두랄루민은 강철과 비슷한 강도에 비중은 강철의 3분의 1에 지나지 않아 비행기 재료로 적합하다. 게다가 가공이 쉬운 두랄루민 개량 합금이 잇따라 나오면서 비행기 제작기술의 발전을 이끌어 왔다. 또 자동차 차체를 만드는 데는 녹이 슬지 않도록 내산화성을 높인 알루미늄·마그네슘 합금 등이 이용될 수 있다. 현재 자동차 차체로 쓰이는 철강을 알루미늄 합금으로 대체할 경우 차량 무게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어 연비 향상과 배기가스 감소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김형욱 박사는 “차체에 들어가는 철강을 알루미늄 합금으로 모두 바꾸면 차량 무게를 50% 이상 줄일 수 있다.”면서 “가격이 비싼 게 흠이지만, 연비가 향상되는 만큼 차세대 자동차 재료로 활용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무샤라프 “칸박사 北에 원심분리기 줬다”

    |도쿄 연합|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이 파키스탄 ‘핵개발의 아버지´로 불리는 압둘 카디르 칸 박사가 “1990년대 초부터 북한에 (고농축 우라늄 제조에 사용되는) 원심분리기 본체와 관련부품, 설계도를 보냈다.”고 말했다고 교도통신이 24일 보도했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전날 대통령관저에서 교도통신과 단독회견을 갖고 이같이 밝혔다. 교도통신은 사실상의 핵무기 보유국인 파키스탄의 대통령이 칸 박사가 북한에 핵기술을 이전했다고 확언한 것은 처음이라고 전했다. 이어 이번 발언은 북한이 플루토늄뿐 아니라 그동안 일관되게 부인해 왔던 우라늄 농축에 의한 핵개발에도 큰 관심을 보였음을 뒷받침하는 것이어서 6자회담 향방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칸 박사가 제공했다는 원심분리기의 수량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선을 긋고 “북한이 핵폭탄을 제조했다고 해도 칸 박사는 우라늄농축 부분에만 관여한 것이고 나머지 기술은 (북한이) 파키스탄 이외로부터 얻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칸 박사가 우리에게 밝힌 것을 일본을 포함한 모든 관계국에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 [클릭이슈] ILO ‘부산총회 연기’ 통첩

    오는 10월 부산에서 개최될 예정인 국제노동기구(ILO) 아·태총회가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ILO가 회의 연기 가능성을 거론하며 우리 정부에 최후통첩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23일 정병석 노동부 차관은 예정에 없는 브리핑을 통해 “ILO가 ‘조속한 시일 내에 노동계의 참여보장 등 정상적인 회의 개최를 위한 한국 정부의 조치가 취해지지 않을 경우 회의 연기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통보해왔다.”고 밝혔다. 의제(양질의 일자리 창출)까지 정해진 상황에서 회의를 열지 않을 수는 없고, 결국 부산 개최가 어려우면 개최지를 변경할 수밖에 없다.ILO의 공문은 지난 17일 스위스 제네바 한국대표부를 통해 공식 전달됐다.●비상걸린 정부 정부는 ILO가 ‘폭탄 제거’ 시한을 못박지는 않았지만 데드라인을 이달 말까지로 보고 있다. 장비·통역·서비스계약 등 회의준비를 위해서는 늦어도 8월 말까지 모든 불안 요인을 제거해야 한다.‘발등의 불’이 되자 정부도 비상이 걸렸다. 노동부는 정 차관을 단장으로 한 고위급 방문단을 구성, 이날 제네바 ILO본부에 파견했다. 방문단은 후안 소마비아 ILO 사무총장 및 고위급 당사자를 만나 정부의 입장을 전달키로 했다. 그러나 정 차관 일행이 준비한 카드에 대해 ‘약발’이 먹힐지 의문이다. 방문단은 부산 아·태총회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한국정부와 ILO가 공동으로 양 노총(한국노총, 민주노총)을 설득하는 방안을 내밀 계획이다. 정부는 이미 다양한 채널을 통해 노총과 접촉하고 있다. 이 채널에는 김대환 노동부장관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왜 급해졌나 정부는 양 노총 위원장이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아·태총회 불참과 개최지 변경요구를 한 지난 12일 이후에도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양 노총의 이런 강공을 사려깊지 못한 행위로 몰아세우고 총회 참가는 권리이자 의무라는 식으로 노동계를 압박했다. 그러나 ILO가 ‘노동계의 참여 보장’을 정상적인 회의 개최 조건으로 들고 나오자 상황이 급반전됐다. 노동부장관이 포함된 다양한 채널이 본격적으로 가동된 것도 이때부터다. 회의 연기에 따른 후폭풍도 크게 작용했다.ILO가 회의 연기 결정을 할 경우 국제사회에서의 국가 신뢰도 추락 등 문제가 복잡해진다. 이에 따른 책임 논쟁에서 노동계도 타격을 받겠지만 정부도 자유로울 수 없다. 이번 아·태총회에는 43개국에서 국가원수, 노동장관, 노사단체,NGO 관계자 등 600여명이 참석하기로 돼 있다. 이들의 비난이 정부에 집중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해법은 해결의 열쇠는 김 장관과 한국노총 이용득, 민주노총 이수호 위원장 등 3명의 노·정 수뇌부가 쥐고 있다. 양 노총이 국제적 망신을 자초하고 있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같이 죽자’며 극약처방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김 장관에 대한 반감이다. 노동계는 비정규직법안 논의, 전국보건의료노조에 대한 직권중재, 최저임금 결정, 아시아나항공 긴급조정 등 지난 4월부터 이달 초까지 진행된 일련의 과정을 노동탄압적이고 노동배제적인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이런 정부 정책에 맞서기 위해 아·태총회 불참을 선언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핵심 타깃은 김 장관이다. 노동계 한 관계자는 “양 노총(위원장)은 돌아오기 힘들 정도로 멀리 나갔다.”면서 “혼자서 복귀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런 만큼 노·정 수뇌부가 전격 회동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사태 해결을 위해 ‘(장관을 포함한)다양한 채널이 가동되고 있다.”는 이기권 노동부 홍보관리관의 발언이 주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용규기자 ykchoi@seoul.co.kr
  • [월드이슈] “30년전 교훈 잊었나” 美전역 반전물결

    [월드이슈] “30년전 교훈 잊었나” 美전역 반전물결

    30년 만에 미 대륙에 전쟁 반대 메아리가 울려퍼지고 있다. 이라크 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신디 시핸의 절규는 지난 17일 미국내 1600여곳에서의 동시다발 촛불시위로 번진 뒤 다음달 23,24일 미 전역과 유럽 각국에서의 대규모 동시 집회로 절정을 맞을 예정이다. 반전 여론의 확산은 급기야 내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정권의 패배를 위한 전주곡이란 분석까지 나오고 있어 향후 추이가 주목된다. ●70년대는 TV, 지금은 인터넷 신디 시핸의 1인 시위가 전국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 데는 국가의 부름을 받은 한 병사의 죽음,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어머니의 슬픔과 분노라는 감성적 코드, 대통령 휴가지에서 시위를 시작한 정치적 모멘트의 포착 등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안티워 닷컴, 무브온(moveon.org) 등 소위 민주당 외곽조직으로 널리 인식되는 반전 평화운동단체 웹사이트들의 조직적 결합이 주효했다. 이같은 열기에는 미디어 상업주의의 작용 흔적도 나타나지만 후세인 축출 이후 연일 늘어나는 미군 장병의 희생과, 구체적 철군 일정을 밝히지 않은 채 전쟁 목표와 명분을 그때 그때 바꾸는 부시 행정부의 ‘속보이는 태도’가 근본 원인이란 지적이다. 지난 8일 CNN과 갤럽의 여론조사 결과 미국 성인의 57%는 이라크 전쟁으로 테러의 위협에서 안전해지지 않았다고 답했는데 이는 지난 6월과 견줘 18%포인트나 오른 것이다.“이라크 파병은 잘못된 선택”이라는 응답도 54%로 “올바른 선택”(44%)을 크게 앞질렀다. 1970년대 징병의 공포에 시달리던 대학생 등이 대학을 근거지로 벌인 반전 시위와 오늘의 상황은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베트남전 때는 미국 중산층 가정을 파고든 텔레비전이 위력을 발휘하면서 미군 철수를 이끌어냈지만 이번에는 인터넷과 촛불시위라는 지극히 소박한 운동양식의 결합으로 전 세대의 공감을 사고 있다. 시핸을 지지하는 인터넷 모금에는 10달러씩 쌓여 하루 만에 2만 5000달러를 모으는 성과로 연결됐다. 평화운동가 앨런 보크는 안티워 닷컴 기고문에서 “시핸의 시위는 미디어 상업주의에 영합한 측면이 있지만 그만큼 국민 모두를 효과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요소를 다시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평화운동 진영은 가능한 한 빨리 미군을 귀국시켜야 한다는 단순하고도 분명한 메시지에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금이 발 뺄 때” 앤드루 바세비치 보스턴대학 교수는 최근 워싱턴포스트에 보낸 ‘이제 그만 끝내라´는 기고문에서 미군 지도부조차 이라크전은 승리하기 힘들 것이라고 보는 상황에서 미군이 이라크에 더 주둔한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질 리 없다며 이 전쟁이 “미션 임파서블”이 돼 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미군이 떠날 경우 오히려 이라크 지도자들의 단결 지향적 정치활동이 강화될 것이며 주변국들의 감시와 지원 노력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안심하고 발을 빼도 좋다고 주장했다. 하버드대학 린다 빌머스 교수는 10만명 정도의 미군이 2009년까지 이라크에 주둔할 필요성에 대비하고 있다는 미군 지도부에 대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5년 더 미군이 머무를 경우 총 전비는 1조 3000억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응수했다. 이럴 경우 미국의 가구당 부담은 1만 2300달러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부시 이라크전 수행의지 확고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여전히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을 자세다.22일에도 유타주 솔트레이크 시티에서 열린 해외 참전용사 전국대회에 참석,“미국인들은 이라크와 세계 곳곳에 퍼져있는 테러리스트들에 대비해 단결해 있어야 한다.”며 테러와의 전쟁을 세계 대전에 비유하기까지 했다. 90% 이상의 주민이 전쟁을 찬성할 정도로 보수적인 성향이 지배적인 유타주 시민 500여명은 그의 연설이 진행되는 동안 근처 파이어니어 공원에 집결, 반전 구호를 외쳤다. 그는 24일에도 아이다호주를 방문, 주 방위군들을 상대로 연설하는 등 연일 대국민 설득에 나설 것이지만 다시 불붙은 반전 여론을 잠재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이라크전, 베트남전 닮아간다” 미국의 베트남 전쟁은 크게 3단계로 나눌 수 있다.1단계는 미국의 역할을 군사원조, 경제원조, 특수부대 작전 등으로 한정하고 사이공 정권 지원을 통해 전쟁의 주도권을 잡았던 1969년 1월까지이며,2단계는 북베트남 세력이 주도권을 되찾아 격렬한 국지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평화가 모색되던 1974년 8월까지이며 3단계에선 미군 철수와 북베트남 정권에 의한 통일이 이루어졌다. 현재 미국 안팎에선 3000억달러 이상의 전비를 쏟아붓고 1800여명의 미군을 희생시키고 있는 이라크 전쟁이 베트남 전쟁의 1단계 말기나 2단계 초기와 매우 흡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진단이 잇따르고 있다. 미군은 이라크에서 저항세력과 산발적 교전을 거듭하며 이라크가 자체 치안능력을 갖도록 지원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 베트남전 참전 용사 출신인 척 헤이글(공화·네브래스카주) 상원의원은 “미군이 이라크에 머물면 머무를수록 이라크 전쟁은 더욱 더 베트남전 양상을 닮아갈 것”이라며 “더욱 명확한 철수 시간표를 짜야 한다.”며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008년 대선 예비주자이기도 한 그는 미군의 이라크 장기 주둔이 오히려 중동지역 안정을 해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어떤 기준으로든 지난 2년 반 동안 이라크에서 우리는 승리하지 않고 있다.”고 단언했다. 그가 언급한 2년 반이란 기간은 지난 2003년 5월 사담 후세인 정권을 축출함으로써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잡았던 때 이후 지금까지를 의미한다. 그러나 부시 정부는 ‘영예롭고도 경제적인’ 철수를 선택하지 않고 대신 이라크에 민주 정부를 수립한다는, 성취할 수 없는 목표를 내세움으로써 베트남전의 전철을 밟고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조지 앨런(버지니아주) 상원의원은 “북베트남 공산 정권과 달리 이라크 저항세력은 국민을 끌어들일 철학과 조직이 없다.”며 두 나라의 상황은 엄연히 다르다고 반박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英전역 새달 대규모 반전시위 테러이후 반전분위기 최고조 |파리 함혜리특파원| 런던 테러를 계기로 영국 내 반전 분위기가 팽배한 것과 달리 이라크전 초기 극심했던 프랑스와 독일 등 서유럽의 대표적인 반전 국가들에서는 최근 전반적으로 반전 분위기가 시들해지는 양상이다. 유럽연합(EU) 헌법 비준을 둘러싸고 좌파 내부의 논쟁에 불이 붙으면서 반전운동을 주도했던 개혁주의 좌파들이 과제의 1순위를 반전에서 유럽통합 저지로 바꿨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난 5월29일 치러진 프랑스 국민투표에서 압도적 표차로 유럽헌법을 부결시키는 등 유럽헌법에 ‘사망선고’를 내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미국의 가장 강력한 동맹국인 영국은 이라크전 개전 이후 지속적으로 반전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최근 유럽 반전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7월6∼8일 G8(선진 7개국+러시아) 정상회담을 앞두고 빈곤퇴치, 반전운동, 반세계화를 앞세운 시민단체 등 전세계 수만명의 시위대들은 회의가 열린 영국 스코틀랜드에 모여들어 한바탕 ‘축제 같은 시위’를 벌였다. 밥 겔도프가 기획한 ‘라이브 8’콘서트에는 10만∼20만명의 시위대가 참가했다. 영국의 반전분위기는 런던 테러를 계기로 최고조에 다다른 느낌이다.‘전쟁저지연합(Stop the War Coalition)’ 등 반전단체들은 영국인을 테러리스트들의 타깃으로 만든 토니 블레어 정부를 비난하며 블레어의 사퇴와 이라크에서의 신속한 철수를 주장하고 있다. 일부 반전단체들은 이라크전 개전을 밀어붙인 블레어 정부 정책에 대항하기 위해 정치세력화까지 꾀하고 있다. 노동당 블레어 정부의 정책에 환멸을 느낀 노동당 당원, 노동조합 활동가, 무슬림 공동체, 좌파조직 등을 아우르며 반전운동을 조직해 온 전쟁저지연합은 2004년 ‘리스펙트(RESPECT)’라는 명칭으로 정당 형태도 갖췄다.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다 노동당에서 쫓겨난 조지 갤러웨이 의원이 대중적 지도자로 활동 중이며 2004년 런던시장 후보로 출마했던 린지 저먼이 실질적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3월 이라크전 개전 2주년을 맞아 영국 전역에서 반전시위를 주도했던 전쟁저지연합은 런던테러 이후 반전 목소리를 더욱 높여 영국 각 도시에서 회원들을 중심으로 산발적인 반전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다음달 24일에는 전국적인 대규모 반전시위를 계획하고 있다.‘폭탄세례를 멈추고, 전쟁을 멈추고, 군인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라.’는 주장과 함께. lotus@seoul.co.kr
  • [급변하는 부동산시장] (상)세금 부작용 막으려면

    [급변하는 부동산시장] (상)세금 부작용 막으려면

    정부의 ‘8·31 부동산 종합대책’의 윤곽이 세제 강화와 거래 투명성 확보, 투기 수요 억제 등으로 그려졌다. 투기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획기적인 대책이 상당수 포함돼 정책의 방향은 잘 설정됐다. 그러나 조세 저항, 정상적인 거래 중단 등의 부작용도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급변하는 부동산 시장을 상·중·하 3회에 걸쳐 진단해본다. 부동산 종합대책 가운데 윤곽이 드러난 세금 대책이 그대로 적용되면 내년부터 부동산의 보유·거래·양도·증여·상속 등 모든 단계에서 엄청난 세금 인상을 감수해야 한다. 세금이 무서워 부동산을 사고팔지도 못하는 부작용과 세금 저항도 예상된다. ●세금이 오르는 원인은 ‘세금 폭탄’의 원인은 세율 자체가 상향 조정되거나 세금 부과 대상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또 없었던 세금이 새로 생기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가장 큰 원인은 실거래가 기반 구축에서 시작한다. 그동안 개인간 부동산 거래는 모두 거래가를 낮춰 신고했다고 보아도 된다. 법인간 거래도 상당부분 제값 신고가 이뤄지지 않았다. 아파트는 기준시가를 기준으로 신고하고, 일반 주택이나 토지는 공시지가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실거래가를 속여 신고하는 이중계약서 작성이 전면 금지된다. 부동산중개업자나 거래 당사자는 실제 사고판 가격을 신고하고 이를 근거로 취득·등록세와 양도소득세가 부과돼 세금이 껑충 뛰게 된다. 세금부과 기준도 실거래가와 거리가 멀었다. 재산세의 경우 과세표준액이 기준시가 또는 공시지가보다도 한참 낮았다. 별도로 재산세 부과 기준인 과표를 정해 세금을 매겼고 과표도 실거래가의 33∼35%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재산세 과표가 아파트는 기준시가를, 단독주택은 공시가격을 적용한다. 집값 상승여부와 관계없이 과표가 올라 가만히 앉아서 세금 벼락을 맞게 된다. 취득·등록세도 엄청나게 오를 전망이다. 예컨대 서울 마포 43평형 아파트를 올해 구입하면 기준시가(3억 5000만원)를 기준으로 취득·등록세(4%)를 내면 된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실거래가(5억 3000만원·8월 시세 기준)를 기준으로 세금을 내야 한다. 투기를 막고 거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라지만 무주택자가 집을 마련하거나 어쩔 수 없이 이사를 하는 실수요자도 무조건 2배 가까운 세금을 더 내야 하는 셈이다. 양도세도 마찬가지다. 올해는 매입·매각 가격을 모두 기준시가로 적용하지만 내년에 팔 때는 매입가는 기준시가에 오름폭만 더해 인정해 주고 매각 금액은 실거래가를 적용한다. 양도시기에 따라 양도차익이 엄청나게 차이나 세금 부담도 그만큼 증가한다. 강남구 대치동 46평형 아파트는 기준시가와 시세가 4억원 정도 차이 난다. 여기에 투기지역 등에서는 양도세율을 인상할 방침이어서 양도세 부담은 훨씬 커진다. ●부작용 줄이는 방안은 실거래가 기반 구축과 과표 현실화는 부동산 시장의 투명성 확보와 투기 거래 차단이 목적이다. 세금을 더 거둬들이기 위한 정책이 아니다.‘이익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원칙을 제대로 적용하고, 부동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사람에게 무거운 세금을 물리는 것은 올바른 정책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내놓은 대책은 실수요자와 투기 거래를 구분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적용하는 데 문제가 있다.1가구 1주택자가 보유하고 있는 주택의 보유세도 덩달아 올라간다. 어렵게 집 한 칸 마련하는 무주택자도 무거운 세금(취득·등록세)을 내야 한다. 소득이 늘어나지 않고 집값이 뛰지 않아도 세금은 올라간다. 이 때문에 실거래가 적용으로 인해 덩달아 올라가는 세금은 세율로 조정해야 한다. 세율을 건드리지 않고 실거래를 적용하면 세율 인상과 똑같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렵겠지만 투기 거래와 실수요자 거래를 떼어서 적용하는 섬세함도 요구된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세계역사이야기-현대편/수잔 와이즈 바우어 지음

    ‘지금, 세계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효과적으로 들려줄 수는 없을까 고민했다면 ‘세계역사이야기-현대편’(수잔 와이즈 바우어 지음, 꼬마이실 펴냄)을 눈여겨봐둠직하다.‘교양있는 우리 아이를 위한 세계역사 이야기’ 시리즈 마지막 편으로, 상·하 2권으로 나뉘어 묶였다. 책은 신문의 국제면을 장식하는 굵직굵직한 뉴스들에 대해 어린이들이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될 만큼 충실한 내용으로 채워졌다. 핵·테러·중동 문제 등 세계무대의 복잡한 역학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주요사건들의 배경을 이해하게 된다. 테러리스트들이 왜 지구촌 곳곳을 폭탄테러로 위협하고 있을까. 중동의 가자지구에서는 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총을 겨누고 있을까. 할아버지가 젊었을 적에 참가했다는 베트남 전쟁은 왜 일어났을까. 현대사를 움직인 세계적 인물들이 줄줄이 등장함은 물론이다. 초등고학년∼청소년. 상권 1만 5000원, 하권 1만 6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영화속 수능잡기] 웰컴투 동막골

    [영화속 수능잡기] 웰컴투 동막골

    영화 ‘웰컴투 동막골’의 무대인 강원도 오지 동막골.‘누구네 돼지가 새끼를 뱄다더라, 누구네 엄마가 아랫배에 뭔가 단단한 게 잡힌다더라.’ 하는 소문은 밤새 천리를 가는 마을이지만, 동막골 사람들은 전쟁이 일어난 사실조차 모른다. 인터넷은 물론,TV와 라디오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외부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없으니 바깥 세상의 소식을 알 턱이 없다. 그들은 이념이 뭔지를 모른다. 아는 것이라고는 씨앗을 심으면 싹이 트고 잎이 나고 열매를 맺고 그 열매가 흙으로 돌아가 다시 싹을 틔운다는 순환의 진리뿐. 그곳에 6명의 군인이 찾아든다. 국군·인민군·미군은 서로를 경계하고 마을 사람들까지 위협해 보지만, 총을 들이대고 수류탄을 뽑아 들어도 마을 사람들은 두려움을 모른다. 이데올로기의 싸움이 얼마나 살벌한 것인지를 동막골 사람들은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의 순박함 앞에 오히려 총을 들이댄 이들이 민망해진다. 결국 행복하고 따듯한 동막골 사람들에게 점점 동화돼 가는 군인들은 함께 밭을 갈고, 멧돼지도 잡고, 강냉이도 튀겨 먹고, 풀썰매도 타면서 점점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간다. 그러나 평화와 즐거움도 잠시, 전쟁의 마수는 동막골까지 뻗친다. 이 평화스러운 마을을 전쟁의 불길에 놓아둘 수 없다. 드디어 연합군의 작전이 시작된다. 이 영화를 보고 이렇게 투덜대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일제 36년 동안 제국주의의 손길이 뻗치지 않은 곳이 없을 텐데, 강원도의 오지라 해도 원시의 풍속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었다는 영화의 설정 자체가 말도 안 돼. 우리나라가 브라질처럼 원시의 정글을 끼고 있다거나 티베트처럼 험악한 산악지형에 둘러싸여 있다면 몰라도, 손바닥만한 나라에 그런 마을이 어디 있어. 원수처럼 으르렁거리던 군인들이 몇 달 같이 지냈다고 해서 형제 이상의 우애를 과시한다거나, 목숨을 내걸고 마을의 평화를 지키겠다고 나서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인 설정 아니야. 옥수수 창고에 폭탄이 터졌다고 해서 하늘에서 팝콘이 함박눈처럼 내린다는 것도 우습지 않아. 현실도 아닌 것을 마치 현실처럼 보여주는 것은 사기야.’ 그렇다. 없는 것을 마치 있었던 것처럼 보여주니 영화는 사기다. 현실에 동막골은 없었다. 현실에 있었던 것은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의 비극이었다. 그러나 영화가 보여주는 동막골이라는 공간은 현재에 없는 공간이지만 앞으로 있어야 할 공간이다. 그곳은 분열과 대립과 갈등의 공간이 아니라 화해와 평화와 사랑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예술은 현실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현실에 없는 초월의 공간을 보여주기도 한다.1950년대 우리의 현실에 부족했던 것은 화해와 사랑이었다. 이념은 사람들의 표정을 굳게 했다. 이념의 인간에겐 웃음도 발랄함도 없었다. 동막골의 팬터지는 천진난만한 웃음과 화해와 사랑의 표정을 보여준다. 영화의 팬터지는 비현실적인 것이긴 하지만 우리의 역사가 무엇을 결여하고 있는가를 강력하게 고발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상상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예술이 보여주는 팬터지는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그것을 통해 우리의 현실이 무엇을 결여하고 있는지를 통찰해 보는 성찰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박광현 감독, 신하균·정재영·강혜정 주연,2005년작.
  • [독자의 소리] 여름철 차에 둔 휴대전화는 ‘폭탄’/정정주 (전남 담양군 무정면 539)

    무더운 여름철에 차량을 장시간 주차할 때는 반드시 휴대전화를 들고 이동하도록 하자. 휴대전화나 휴대전화 배터리 등을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차량에 오래 방치해 두면 실내 온도가 올라가면서 폭발해 화재가 발생할 위험도 있다고 한다. 폭발하지 않더라도 고열로 인해 배터리 수명이 단축되고 단말기 오작동이 발생할 우려도 작지 않다. 배터리는 기온이 섭씨 5∼35도일 때 기능을 제대로 발휘한다. 여름철 차량내 온도는 최고 80도까지 올라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차량용 충전기를 사용하는 경우에도 시동을 걸 때는 휴대전화를 충전기에서 빼 놓아야 한다. 시동을 걸면 갑자기 강한 전류가 흘러 휴대전화가 망가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1회용 라이터의 관리도 조심해야 한다. 차내 열기로 인해 폭발해 화재가 발생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차내에 방치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주차시는 지정한 곳에 주차해야 도난이나 방화를 예방할 수 있다는 점도 잊지 말자. 정정주 (전남 담양군 무정면 539)
  • 日 “유사시 韓·美에 앞서 北제압 능력검증”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정부는 18일부터 시작되는 중국과 러시아의 첫 합동군사훈련이 표면적인 발표와는 달리 한반도 유사시를 겨냥한 성격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17일 보도했다. 또 아사히신문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양국의 군사 협력 관계를 과시, 미국에 의한 일극지배를 견제하는 목적이 담겨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닛케이신문에 따르면 자위대의 한 간부는 “한반도 유사시 중국과 러시아군이 한·미 연합군에 앞서 북한을 제압할 능력이 있는지 여부가 이번 훈련에서 검증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근거로 훈련의 중심이 될 공정부대와 상륙부대 전개훈련은 한·미연합군의 북진을 억제하는 작전이 주축이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에서 볼 때 북한은 “한·미·일과 사이에 존재하는 완충지대”다. 두 나라는 이런 상황이 유지되기를 바라지만 만약 북한의 현 체제가 붕괴되는 사태가 일어날 경우 한국과 미국의 북진을 저지, 북한에 통제 가능한 새 정권을 수립할 시간을 벌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닛케이는 훈련이 끝난 후 러시아가 중거리폭격기 TU22M 백파이어 등의 신형무기를 중국에 넘겨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백파이어는 핵폭탄을 탑재할 수 있는 초음속 폭격기로 냉전시대에 일본과 유럽 국방당국이 두려워했던 항공기다.taein@seoul.co.kr
  • [우리는 맞수 CEO] (1)GM대우 닉 라일리 vs 르노삼성 제롬 스톨

    [우리는 맞수 CEO] (1)GM대우 닉 라일리 vs 르노삼성 제롬 스톨

    라이벌은 늘 부담스럽지만 한편으로는 없어서도 안 될 존재다. 정도를 넘어서 ‘앙숙’관계로 악화되면 스스로의 경쟁력을 깎아먹지만 삼성전자와 LG전자처럼 수십년 라이벌 관계를 통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거듭난 사례도 적지 않다. 길게는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기업이 생길 정도로 성장한 우리 경제계에는 숱한 맞수가 존재한다. 맞수기업을 이끄는 최고경영자(CEO)들의 면면을 들여다보고 이들이 어떤 전략으로 처절한 생존경쟁을 이겨나가는지 짚어본다. 닉 라일리(56) GM대우자동차 사장은 2002년 초 한국에 건너온 뒤 2003년 10월 GM대우 출범 1주년을 맞아 ‘스타’가 됐다.TV CF에서 어눌한 억양으로 “더 좋은 회사로 발전하도록 도와주십시오.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부탁하던 이 벽안의 CEO는 GM대우를 ‘쓰러진 공룡’ GM의 희망으로 키워놓았다. 출범 첫해인 2002년 40만대에 불과했던 GM대우의 자동차 판매는 올해 100만대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골칫거리’였던 노사협상을 순탄하게 마무리지으면서 대우인천차 인수도 눈앞에 두게 됐다. 제롬 스톨(51) 르노삼성자동차 사장은 다음달이면 한국에 부임한 지 5년을 맞는다. 회사의 규모나 지명도는 라일리 사장에 비해 떨어진다. 하지만 스톨 사장은 사실상 가동이 중단된 삼성차를 2년만에 흑자로 전환시키며 르노삼성을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자동차 기업으로 바꿔놓았다.2000년 3.7%였던 르노삼성의 국내 승용차시장 점유율은 2001년 6.6%,2002년 9.5%,2003년 11%로 꾸준히 증가하다 지난해 9.3%로 내려앉았지만 올 상반기 13%로 치고 올라오며 처음 3위로 도약했다. ●“우리는 한국기업 사장”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출신의 라일리 사장은 마케팅에 밝은 편이고 프랑스 파리 그랑제콜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스톨 사장은 ‘재무통’이다. 게다가 태생적으로 영국인과 프랑스인은 기질이 다르다. 하지만 가장 열심히 한국과 한국문화를 이해하고 한국기업으로 뿌리내리는 데 앞장서온 것만큼은 한치의 양보없이 똑같다. 라일리 사장은 올 새해 첫날 아침을 이성재 노조위원장 등 노사대표와 강화도의 봉천산을 등반하면서 맞이했다. 돼지머리를 올려놓고 고사를 지냈고 막걸리로 화합을 다졌다. 그는 또 사내 축구대회때마다 선수로 뛰며 직원들과 땀을 흘린다. 너무 열심히 뛰다 다리에 골절상을 입은 적도 있다. 스톨 사장은 2000년 9월7일 부산공장에서 열린 르노삼성 출범식에서 예정에 없이 축구 결승전 시축을 했다. 줄다리기 결승전에도 직접 선수로 뛰었다. 삼성의 품을 떠나 생소한 외국기업 소속이 된 직원들의 불안감이 스톨 사장의 ‘깜짝쇼’에 적잖이 녹아 내렸다는 후문이다. 라일리 사장은 아직 한국어가 서툴지만 한글 발음을 영어로 적어 놓고 외울 정도로 노력하고 있다. 한국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폭탄주’도 불사하며 소년소녀 가장돕기, 독거노인 무료급식 등 다양한 사회봉사 활동과 뮤지컬 후원 등 문화마케팅도 열심이다. 좋아하는 한국음식은 조기다. 스톨 사장은 매주 두차례 한국어 ‘과외수업’을 받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 2월에도 ‘정월 대보름 행사’를 주최하는 등 민속문화에 관심이 많고 사무실 근처의 남대문시장 ‘갈치조림집’을 즐겨 찾는 등 한국음식에도 입맛을 붙였다. ●경영실적 엎치락 뒤치락 두 CEO의 경영성적은 엎치락뒤치락 형국이다. 수출은 GM대우가 압도적이지만 내수 시장만 놓고보면 피말리는 접전이다. GM대우는 올 상반기 50만 7901대(수출 45만 4463대)를 팔아 출범이후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반면 내수판매는 5만 3438대로 5만 5881대를 판매한 르노삼성에 약간 뒤졌다. 대신 르노삼성의 수출물량은 2096대에 불과했다. 수익성은 르노삼성이 앞서 있다. 르노삼성은 2003년 835억원에 이어 지난해에도 77억원 순이익을 냈다. 반면 GM대우는 같은 기간 2226억원,1728억원의 적자를 냈다.GM대우는 올해 흑자전환을 노리고 있다. GM이나 르노본사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것도 비슷하다. 루이 슈웨체르 전 르노그룹 회장은 지난 2002년에 이어 지난해 11월에도 방한, 향후 3년간 르노삼성에 6000억원을 추가 투자하겠다고 발표하며 스톨 사장의 어깨를 가볍게 했다. 카를로스 곤 회장도 올 11월쯤 방한할 예정이다. 릭 왜고너 GM 회장도 지난해 6월 방한,GM대우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를 약속했다. 그는 사장 시절이던 2003년 2월에도 한국을 방문, 라일리 사장에게 힘을 실어준 바 있다. 서로에 대해 “조심스럽다.”며 평가를 주저하는 두 CEO는 그동안 주로 소형(GM대우), 중형(르노삼성)으로 나뉘어 직접적인 충돌은 많지 않았지만 2007년이면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시장에서 정면대결을 벌여야 한다. 그때쯤이면 좀더 확실한 평가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닉 라일리 ▲1949년 영국생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졸업 ▲75년 영국 GM 입사 ▲87년 GM합작사 루톤IBC 총괄 부사장 ▲94년 GM유럽지사 품질부문 부사장 ▲2001년 GM유럽지사 판매·마케팅 부사장 ▲2002년 GM대우 초대 사장 ■ 제롬 스톨 ▲1954년 프랑스생 ▲파리 그랑제콜 경영학 전공 ▲80년 르노상용차 국제 재무본부 ▲87년 르노 재무총괄 담당 ▲88년 오토메이션(르노 자회사) 재정담당 이사 ▲95년 르노 구매본부 부사장 ▲2000년 르노삼성차 초대사장
  • “과거史 잘몰라… 대규모 행사에 당혹”

    “과거史 잘몰라… 대규모 행사에 당혹”

    온통 태극기 물결을 이룬 15일에도 서울 광화문 거리에 일본인은 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여행이나 관광을 하려고 한국을 찾아 온 일부 일본인들에게도 8·15의 의미는 우리만큼이나 진지하게 비쳐지는 듯했다. 그러나 대다수는 과거보다는 현재나 미래가 중요하지 않으냐며 큰 뜻을 두지 않으려 했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일본 젊은이들은 사실 한·일 과거사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지 않습니다.” 회사 동료 3명과 함께 한국에 처음 왔다는 야스요(22)는 “2박3일 동안 명동에서 쇼핑하는 것이 이번 여행의 주된 목적”이라고 했다. 20대 초반의 신세대인 이들에게 한국은 광복과 일제, 역사왜곡이라는 단어보다는 ‘한류’와 ‘욘사마(배용준)의 나라’가 먼저 다가오는 것 같았다. “욘사마는 물론이고, 곤상(권상우)도 알고 보아·세븐도 좋아해요. 덕분에 많은 일본 젊은이들은 한국을 친근하다고 느껴요.” 함께 여행 온 유미(23)가 자신있게 말했다. 이들에게 광복절 행사에 대한 느낌을 묻자 ‘두려움’과 ‘생소함’이 앞선다고 대답했다. 친구 마유미(23)도 “한국에 광복절 행사가 있다는 것은 일본을 떠나기 전부터 알았지만 이렇게 대규모인지는 몰랐다.”면서 “반일 감정에 해를 당하지 않을까 솔직히 무서운 생각도 들었지만 다행히 만나는 한국인들이 대부분 친절했다.”고 말했다. “한국에 자주 왔지만 일본의 식민통치나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 광복절 행사를 보고는 매우 놀랐다.” 한국을 6차례나 방문했다는 야마이치(52)는 서울시청 건물 전체를 덮고 있는 태극기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고가와 오메(40)도 “일본은 한국처럼 큰 행사를 연 적이 없는데 평소 광복절에도 이런가.”라고 되물었다. 나름의 역사적 시각도 보여줬다. 다시키 다카히로(23)는 “한국 사람들은 일본에서 독립한 날이라서 그런지 매우 기쁜 것 같다.”면서 “하지만 일본의 입장에서는 히로시마에 핵폭탄이 떨어진 뒤 패전을 선언한, 많은 사람이 고통받은 날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거리에서 만난 일본인 여행객들은 대부분 한류를 통해 익힌 배우나 음식 등에 대해서는 해박했지만 어두운 과거사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듯했다. 하지만 일본 식민통치와 전쟁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야마나시현에서 왔다는 20대 관광객은 “교과서에서 배우지는 못했지만 학창시절 선생님으로부터 일본이 역사적으로 큰 잘못을 했다는 것을 배웠다.”면서 “과거 식민통치와 전쟁에 대해 일본은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역사를 떠나서라도 전쟁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생각하면 오늘은 슬픈 날”이라고 덧붙였다. 가족과 함께 여름휴가차 한국을 찾은 오가사와라(55)는 “나 역시 전후세대지만 세대 사이에서 한·일간 벽이 차츰 무너져가고 있는 것을 볼 때 미래는 희망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3살인 아들은 한국 음식에 푹 빠져 있고 어머니는 한국영화 마니아”라면서 “우리같은 일반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우선 상대를 알고 배워가며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또 “스포츠와 문화 등 일반인들이 공유할 수 있는 부분들을 늘려갈 때 한·일간의 어두운 과거사 문제도 서서히 고리를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유영규 나길회기자 whoami@seoul.co.kr
  • [광복60 남북 화상상봉] “中1까까머리가 이렇게 늙다니…”

    [광복60 남북 화상상봉] “中1까까머리가 이렇게 늙다니…”

    아버지를 만나고 돌아오겠다던 까까머리 중학생 아들이 주름이 깊게 팬 노인이 돼 아흔을 훨씬 넘긴 노모 앞에 나타나 큰 절을 올렸다.15일 광복 60돌을 맞아 처음으로 이루어진 남북 이산가족 화상 상봉으로 큰아들 현호남(72)씨와 셋째딸 산옥(66)씨를 만난 김경화(94·제주 남제주군 표선면) 할머니는 “죽은 줄만 알았던 자식들을 다시 만났다.”며 앞을 가리는 눈물 속에서도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자나깨나 5남매의 생사를 몰라 애태우던 지난 55년의 세월이 할머니의 머리 속을 잠시 스쳐갔다. 그 피붙이들이 지금 손도 잡을 수 없게 화면 안에 나타난 것이다. 늙은 아들의 얼굴을 화면으로 확인한 김 할머니는 “중학교 1학년 때 얼굴과 많이 달라 보인다.”며 마음아파했다. 어떻게 북한에 가서 살게 됐는지, 북한에서 가족은 어떻게 꾸렸는지, 엄마를 원망하진 않았는지, 할머니에게 그 길었던 질곡의 세월을 다 묻기에 시간은 너무도 짧았다. 안타까운 두시간이 지나고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자 할머니는 아들을 붙잡으려는 듯 손을 뻗어 화면 속 아들에게 기약없는 작별 인사를 하고는 눈물을 훔쳤다. 8남매를 둔 김 할머니가 5남매와 생이별을 한 것은 6·25전쟁이 터진 1950년 가을이었다. 표선면에 살았던 할머니는 호남씨를 포함해 5남매를 일본으로 보냈다. 할머니는 그때를 스산한 바람이 불던 늦가을로 기억한다. 먹고 살기 어려운 전쟁통에 밥이라도 배불리 먹이자는 생각에 남편(현경림)이 있는 일본으로 아이들을 잠시 보낸다고만 생각했다.8남매 모두 일본에서 낳아 길렀기 때문에 이것이 자식들과의 마지막일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제주도가 고향인 할머니는 1930년대에 먹고 살 길을 찾아 남편과 일본으로 건너갔다. 남편은 오사카 부근에 철근공장을 차렸고, 자식들을 낳아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지면서 일본은 생지옥이 돼버렸다. 남편은 홀로 남아 공장을 지키기로 하고 할머니와 8남매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할머니는 남의 집 허드렛일을 하며 생계를 꾸렸지만 8남매를 먹여 살리기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나이 어린 3남매는 자신이 데리고 있고 큰딸, 큰아들 등 5남매는 일본에 다시 보냈다.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던 호남씨 등 5남매는 밀항선을 타고 일본 땅을 다시 밟았다. 가끔 연락을 주고받으며 다시 만날 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55년 어느날, 남편의 죽음이 찾아왔다.5남매와의 연락도 그길로 끊겼다. 뽀얀 피부, 작은 얼굴,‘中’자 마크의 교복 모자를 쓴 아들이 당장이라도 달려올 것만 같아 자신도 모르게 문밖을 내다봤던 지난 55년이었다. 일본 교포들을 통해서 큰아들과 둘째딸, 셋째딸은 북한으로 갔고 첫째딸과 다섯째아들은 일본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큰아들이 살아있음을 확인한 것은 지난달. 제주도에 남았던 딸 명자(65)씨가 3년 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대한적십자사에 가족들의 생사를 물었고 호남씨와 산옥씨의 생존 사실을 확인했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광복60-한·일 국력 현주소] 日 GDP 7배·수출입 4배…선박·IT는 韓國 우위

    [광복60-한·일 국력 현주소] 日 GDP 7배·수출입 4배…선박·IT는 韓國 우위

    ■1. 경제력은‘잃어버린 10년’을 겪은 일본이지만 세계 무대에서의 평가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다. 실제 나타난 경제지표나 사회지표들도 그렇다. 한국이 일본을 앞선 부분은 선박과 정보기술(IT) 분야뿐이다. 인구 수는 우리나라가 4829만명으로 1억 2764만명인 일본의 절반을 밑돈다.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은 2004년 기준 4조 6734억달러로 한국(6801억달러)의 7배에 가깝다.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한국이 1만 2720달러로 일본(3만 4192달러)의 3분의1 수준이다. 외환보유액도 일본은 8435억 3700만달러로 우리나라(2049억 8600만달러)보다 4배 가까이 많다. 우리나라의 수출·수입이 크게 늘고 있지만 세계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일본에 뒤진다.2004년 우리나라의 수출·수입액은 각각 2538억 4500만달러,2244억 6300만달러로 세계 12위,13위다. 반면 일본은 수출·수입액 규모가 모두 세계 4위다. 세계경제포럼(WEF)과 스위스국제경영대학원(IMD)이 평가한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은 29위.IMD 평가에서는 일본(21)에 근접해 있으나 WEF 평가로는 일본(9)에 한참 뒤져 있다. 이는 국가신용등급에도 나타난다.S&P는 일본 신용등급을 위에서 4번째 등급인 AA-로 평가한 반면 우리는 이보다 2단계 더 낮은 A다. 그나마 최근 한 단계 올린 결과다. 무디스는 일본의 신용등급을 가장 높은 Aaa로 평가했고, 한국은 6단계나 낮은 A3다. 피치는 일본의 신용등급은 AA, 한국은 3단계 낮은 A로 평가했다. 산업별로도 여전히 주요 기간산업은 일본에 뒤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우리나라의 연간 자동차 생산량은 346만 9000대로 일본(1051만 2000대)의 3분의1 수준이다. 철강생산량(조강 기준)도 우리나라는 4750t으로 일본(1억 1270만t)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선박 건조량은 지난 2002년 일본을 추월한 뒤 계속 1위를 지키고 있다.2004년 선박 건조량은 831만 9000CG/T으로 전년보다 14.5% 증가했다. 이에 비해 일본은 17.1% 늘어나 격차가 좁혀지고 있다. 인구 100명당 인터넷 이용자 수나 이동전화가입자 수 등은 우리가 훨씬 앞선다. 삶의 질은 일본에 비해 훨씬 낮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1인당 보건지출액의 경우 한국은 577달러인 반면 일본은 2476달러로 한국의 4배 이상이다. 유엔이 평균수명, 교육수준 등 주요통계를 통해 인간개발성취 정도를 평가하는 인간개발지수는 한국이 28위, 일본이 9위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2. 군사력은광복 이후 한·일 양국은 군사력 측면에서 지속적인 신장세를 보여왔다. 1945년 패전(敗戰)으로 인해 군사력 측면에서 사실상 ‘잿더미’를 경험한 일본은 이미 군사 대국화(大國化)의 길로 들어섰다. 동족간 전쟁에 분단까지 겪은 한국도 군사력에서 적잖은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남북한이 군사적 대치 상황을 오랜 기간 지속해온 탓에 나름대로 군사력은 크게 확충됐다. 패전 이후 일본은 군은 물론 타국에 파괴적 피해를 주는 무기도 보유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여왔다.‘군대 아닌 군대’로도 불리는 자위대(自衛隊)의 이름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자위대의 활동 영역은 이미 전 세계로 확대됐고, 보유 전력도 중국 러시아 남북한 등 주변국 어느 나라에도 밀리지 않을 정도가 됐기 때문이다. 육상·해상·공중으로 나뉘어진 자위대의 병력은 지난해 말 현재 23만 9000명. 중국이나 러시아 한국 등 주변국보다 적다. 하지만 보유 장비 등 전력을 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해상 자위대는 한국이 단 한 척도 없는 이지스함을 4척이나 보유하고 있다. 이지스함은 건조 비용만 해도 1조 2000억원에 달하는 최신예 함정. 또 잠수함 16척 이외에 구축함과 순양함, 호위함 50여척을 갖고 있다. 항공 자위대 역시 공중전에 강한 최첨단의 F-15J 전투기는 200대가 넘는다. 이에 비해 한국은 일제시대 의병과 독립군, 광복군 등으로 활동하다가 광복 당시 ‘국방사령부’로 출범했으며, 정부 수립과 함께 국군으로 정식 발족했다. 정부 수립 당시 5개 여단 5만여명에 불과하던 남한의 병력은 현재 13개 군단,49개 사단에 68만여명으로 늘었다. 물론 북한의 경우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남한보다 훨씬 많은 117만명의 정규 병력을 보유하고 있다. 또 재래식 무기이긴 하지만 야포 8700여문, 전차 3700여대 등 만만찮은 육상 전력과 남한보다 우위로 평가받고 있는 해상 전력도 보유하고 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15일은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국권을 되찾은 지 1갑자(甲子)가 되는 제60주년 광복절이다.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이나 당시 독립을 쟁취한 한국은 이후 여러 분야에서 엄청난 변화를 겪어 왔다. 광복 60주년을 맞아 한·일 양국간 국력 변화의 추이를 군사력과 경제력 측면에서 조명해 본다. ■ 민족문제硏 조문기이사장의 ‘광복60년 直言’ 1945년 7월24일. 거물 친일파 박춘금 주최로 ‘아세아민족분격대회’가 열린 부민관(현 서울시의회 건물)에서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렸던 그다. 해방 뒤 남한 단독정부가 수립되려 하자 여기에 반대해 삼각산(현 북한산)에서 봉화를 올리고 폭탄을 터뜨리려 했던 이른바 ‘인민청년군 사건’의 주역이기도 하다. 이리저리 떠돌던 그는 한때 광복회 경기지부장을 맡았지만 90년대 초 민족문제연구소가 출범하자 미련없이 이 자리를 내던졌다. 함께 항일운동을 했던 동지들은 빠짐없이 독립유공자 명단에 올렸으면서도 자신의 이름은 끝내 올리지 않았다. 보다 못해 딸과 사위가 몰래 독립유공자로 등록했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민족문제연구소 조문기 이사장. 이런 그였기에 약속 장소인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사업회 사무실을 찾아가는 발길이 그리 가볍지만은 않았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날씨 때문만은 아니다.8·15를 앞두고 몇 마디 얻어 들을 양으로 찾아가 ‘아이고∼, 그러세요∼.’라고 맞장구치는 것으로 마무리하기엔 우리 같은 후대의 역할이 너무 부끄럽고 자괴스러워서다. 예전 사진으로 봤을 때보다 몸이 많이 축나 보였다. 그래도 힘주어 말할 때마다 눈빛이 형형하게 되살아 난다. 건강을 묻자 최근 다리에 이상이 와서 거동이 불편하다고 했다. 질문을 이어가려 하자 “급해?” 그런다. 숨 좀 돌리자는 뜻이다. 옆에 있던 기념사업회 차영조 상임이사와 셋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광복절 행사 때문에 청와대 등에서 초청을 받았는데 별로 내키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참석 안할 거냐고 물었더니 노한 목청의 대답이 돌아온다.“해방은 무슨 해방, 해방된 건 친일파 놈들이지. 일본 사람들 눈치나 보던 친일파나 일본 사람들한테서 해방된 거지. 해방이란 게 나라를 몽땅 들어다 친일파한테 바친 거요.” 예상대로다.“친일파들이 득세했다는 거, 사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아.‘반공’과 ‘친미’ 기치 아래에서 기생해 왔다는 것도 다 알아. 그런데 이들이 후계자를 양성해서 각계 요직에 다 앉혀 놨어. 그러니 어쩔 수가 없어. 지하에 계신 선열들이 대로하실 일이지.”손자뻘 되는 기자가 8·15의 의미에 대해 묻자 카랑한 목소리의 대답이 돌아왔다.“8·15라는 게, 그것 때문에 남북이 분단됐잖아요. 그런데 무얼 기념하고 무얼 경축해. 차라리 분단의 날로 정하고 그 날의 의미를 되살리고 각오를 다지도록 해야지.” 그가 광복절만 되면 차고 넘치는 태극기와 ‘경축’‘기념’ 따위의 문구를 피해 산사나 절에 들어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도 비판 대상이다.“독립운동을 했다는 사람이 더 어쭙잖아. 대통령이 불러주면 밥 한 끼 먹고 그걸 가문의 영광으로 여기는 게 말이 돼? 친일파 청산과 분단에 무관심한 사람들이 ‘민족국가’를 꿈꿨던 독립운동가일 수가 있느냐고?” 매섭게 내려치는 말투, 그러나 이내 누그러든다.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전부 어림잡아 200만명, 만주나 이런 곳에서 활동하신 분들이 최소한 70만명 정도야. 그런데 우리가 이제껏 유공자로 인정했다는 사람이 고작 1만명 정도야. 나머지는 다 잃어버린 거지. 이게 광복하고, 해방된 나라냐고.” 사무실을 빠져나올 때쯤 기온이 다소 내려앉았다. 시원할 만도 한데 등줄기로 땀이 더 흐른다. 후텁지근한 날씨 탓만은 아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조문기씨가 걸어온 길 ▲1926년 경기도 화성 출생 ▲일본강관주식회사 파업주도(42년) ▲부민관 폭파사건 주도(45년) ▲단정반대 시위로 투옥(48년) ▲이승만 암살 조작 사건으로 투옥(59년) ▲광복회 경기지부장(85년) ▲건국훈장 애국장 수상(90년) ▲민족문제연구소 2대 이사장 취임(99년)
  • 美대법관 지명자 반대광고 논란

    미국의 한 낙태 옹호 단체가 존 로버츠 대법관 지명자의 상원 인준에 반대하는 캠페인 광고를 10일(현지시간)부터 내보내 논란이 되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가 11일 보도했다. ‘내럴 프로-초이스 아메리카’는 50만달러(5억원)를 들여 상원의 인준 투표를 3주 앞두고 30초짜리 광고를 폭스와 CNN을 통해 내보내고 다음 주부터 2주간은 메인주와 로드 아일랜드 지역 방송국을 통해 방영할 계획이다.이 광고는 1998년 1월 폭탄 공격을 받은 앨라배마주 버밍햄의 한 낙태 클리닉 직원이 휠체어에 앉아 있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어 로버츠 지명자가 1991년 검찰청 수석 차장으로 일할 때 서명해 법원에 제출한 보고서 사본을 비춘다. 이 보고서는 낙태 반대 진영의 공격을 막을 수 있도록 연방판사가 접근 금지명령을 내려달라는 낙태 지지진영의 청원에 반대 의견을 낸 것이었다. 광고는 이때 일을 들먹이며 ‘로버츠 지명자가 이런 보고서를 내 클리닉 폭탄 테러범을 결과적으로 도왔다.’고 비방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 ‘상원의원에게 전화해 반대표를 던지라고 하세요. 미국은 다른 미국인에게 해를 끼친 이들의 죄를 면책해준 이데올로그를 대법관에 임명할 이유가 없다.’는 자막으로 끝난다.그러나 다른 낙태 옹호단체들까지 이 광고는 잘못됐을 뿐 아니라 무리한 광고라고 보고 있다. 급기야 보수진영은 30만달러를 들여 11일부터 반박 광고를 내보낼 계획인데, ‘진보진영이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나요.’라고 묻는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씨줄날줄] 후폭풍/우득정 논설위원

    안기부 ‘X파일’사건은 삼성그룹 불법대선자금 전달의혹 공개가 도입부라면 ‘미림’팀의 도청 내용이 ‘상상을 초월할 폭발력을 지닌 핵폭탄’이라고 비유한 이건모 전 감찰실장의 발언과 274개 도청테이프 및 녹취록 압수가 전개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지난 5일 국민의 정부시절에도 불법감청이 지속됐다는 국가정보원의 발표는 사건의 반전국면쯤 될 것 같다. 이제 남은 것은 검찰이든 특검이든 수사를 통해 사법처리하고 테이프에 담긴 일부 내용을 공개하는 것이다. 하지만 핵폭발에서 폭발 및 지속순간은 각각 100만분의1초,200만분의1초에 불과하지만 후폭풍과 방사능으로 인한 2차 피해는 폭발에 비해 월등히 클 뿐 아니라 후유증도 오래 간다.‘산 자가 죽은 자를 부러워하는 세상’이라는 말이 고통의 크기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뉴턴의 ‘작용과 반작용’이라는 물리학적인 반비례 법칙으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다. 핵폭발 피해 반경에 든 사람들이 후폭풍을 두려워하는 이유다. 8년 전 우리 사회는 사상 초유의 외환위기 사태를 맞은 뒤 아직도 후폭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직장을 잃은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살아남은 사람조차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봄 정치권을 강타한 탄핵 후폭풍도 강도면에서 외환위기에 못지않다. 소수 집권층을 겨냥했던 거대 야당의 칼날은 자신들의 철옹성을 초토화시키는 핵폭탄이 돼 버렸다. 그럼에도 틈만 나면 자만이 고개를 치켜드는 것을 보면 권력이라는 독수(毒樹)의 유혹에서 벗어나기란 여간 힘들지 않은가 보다. 도청테이프 공작 당시 안기부와 국정원의 계선상에 있었던 인사들이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나는 몰랐다’‘나는 깨끗하다’는 식으로 들어줄 이 없는 허공을 향해 항변을 내뱉더니 김대중 전 대통령이라는 거대한 방패막이 뒤로 몸을 웅크리고 있다. 지금으로선 가장 안전한 도피처인지도 모른다. 그 모습이 이번 사건의 수사 결과를 예고하는 것 같기도 하다.‘9·11 테러’라는 초강력 폭풍에 이어 무수한 총탄이 난무했지만 빈 라덴은 잡지 못하고 무고한 민초들의 목숨만 거둬들였듯이. 그래서 잘못된 역사는 또다시 반복되는 것이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코드로 읽는책] 카운트다운 히로시마/스티븐 워커 지음

    ‘원자폭탄이 있으니 대규모 전쟁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 대가로 우리가 누릴 것은 무한정으로 연장된 평화 아닌 평화뿐이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2차대전이 종료된 후 두 달여쯤 지난 1945년 10월19일 조지 오웰은 ‘트리뷴’지 칼럼에 위와 같이 썼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지금, 오웰의 바람대로 아직 3차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폭의 수천배 위력을 지닌 핵폭탄에 둘러싸인 채 ‘평화 아닌 평화’ 속에 현대인은 숨죽이고 살고 있다. 8월6일은 일본인들이 영원히 잊지 못할 날이다.1945년 8월6일,2차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무렵 미국은 사상 처음으로 일본의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렸다. ‘카운트다운 히로시마’(스티븐 워커 지음, 권기대 옮김, 황금가지 펴냄)는 첫 원폭 실험에서 실제 투하까지 긴박했던 3주간의 과정을 담은 책이다. 저자 스티븐 워커는 작가이자 12년간 영국 BBC의 다큐멘터리 전문 프로듀서로 일했으며, 지난 2003년에는 히로시마 원폭 투하를 주제로 한 ‘히로시마:세계를 뒤흔든 그날’이란 작품으로 에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원자폭탄을 주제로 씌어진 책은 많았지만, 주로 원폭 개발 과정을 다룬 과학서이거나 일본측 시각에서 피폭자들의 참상을 다룬 책이 대부분이었다. 반면 이 책은 저자가 방대한 자료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원폭 실험 성공(1945.7.16)부터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8.6)되기까지 긴박했던 상황을 생생하게 재구성한 다큐멘터리다. 저자는 히로시마에 투하된 이 원자폭탄의 자취를 좇아 로스앨러모스를 비롯한 미국 전역과 히로시마를 비롯한 일본의 몇몇 도시들, 그리고 B29 폭격기 ‘에놀라 게이’가 원자폭탄 ‘리틀 보이’를 싣고 발진했던 서태평양 마리아나 제도의 작고 외딴 티니언 섬까지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당시 현장에 있었던 당사자들 가운데 생존자들을 인터뷰했다. 원자폭탄 제작을 책임진 그로브스와 오펜하이머, 스탈린을 따돌리고 실제 투하를 결정한 처칠과 트루먼, 요동치는 B29 안에서 원자폭탄을 조립한 폭격수 모리스 젭슨 소위, 그리고 히로시마 피폭자 중 살아남은 이들 등등. 수많은 생존자들의 체험담을 바탕으로 저자는 60년 전에 있었던 사상 최대의 ‘작전’을 생생하게 되살려내고 있다. 티니언 섬 509대대 병영은 이제 정글 속에 묻혀 잊혀지고 있다. 하지만 대원들은 지금까지도 매년 친목회를 갖는다고 한다. 이미 상당수가 사망해 몇명 남지 않았지만, 그들은 “지금 당시와 같은 상황에 다시 처하더라도 망설이지 않고 명령에 따를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저자는 전한다. 마치 ‘히로시마 원폭의 망령’이 언제라도 되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방증이라도 하듯이 말이다.1만 8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히로시마 원폭투하 60주년] 日 피폭생존자들의 증언

    [히로시마 원폭투하 60주년] 日 피폭생존자들의 증언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지옥과 같은 경험을 알리고 싶습니다.” 폭염에도 불구하고 상처를 가리기 위해 목이 긴 정장을 입은 가야시게 준코(66)는 히바쿠샤(원자폭탄 생존자)다.1945년 8월6일 오전 8시15분 비행기가 떴고, 굉장한 폭발이 있었다.6일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된지 꼭 60년이 되는 날이다. 정신이 들어 눈을 떠보니 같은 방에 있던 언니는 폭발 때문에 집 안쪽으로 날아갔고, 곳곳에 시체 무덤이 쌓여 있었다. 히바쿠샤라는 이유만으로 그녀도 같은 일본인들로부터 심한 차별을 받았다. 가까운 친척이나 심지어 배우자에게도 원폭 피해자란 사실을 알리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가야시게는 다른 히바쿠샤처럼 침묵하지 않았다. 학생들에게 원폭 경험을 알리는 강연을 다니고, 박물관에서 평화 자원봉사자로 일한다. “전쟁을 경험한 사람들은 전쟁이 사라져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제 경험을 들려주는 것입니다.” 차별을 두려워한 히바쿠샤들의 침묵 때문에 아직 세상 사람들이 원자 폭탄의 참상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한다는 게 가야시게의 생각이다. 히바쿠샤들의 평균 나이도 72살로 암 발병률은 앞으로 점점 더 높아질 전망이다. 미토야 도루(89)는 세 명의 자식 가운데 두 명이 뇌암에 걸려 한 명이 사망했다. 미토야 본인도 위암 수술을 받았다.27만여명으로 추산되는 히바쿠샤들은 미토야와 비슷한 경험을 겪었다. 히로시마 대학의 가미야 겐시교수는 “암에 걸리는 원폭 피해자의 숫자는 계속 늘어나 2020년쯤 가장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BBC방송을 통해 밝혔다. 전쟁 이후 미국은 폭탄 피해자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했다. 동시에 과학자들은 인체가 방사능에 노출됐을 때의 결과를 연구, 전세계 핵관련 종사자들에게 안전한 피폭 지침을 제시했다. 매년 6일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기념식에서는 일본 총리가 기념연설을 한 뒤 히바쿠샤 대표와 악수하는 것이 전통이었다. 하지만 정부가 히바쿠샤들의 건강을 염려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이 전통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이후 사라졌다. 히로시마 평화 박물관의 방문자 숫자도 매년 줄고 있다. 가야시게는 “이라크에서 폭탄을 맞은 아이들을 볼 때마다 모든 무기 사용이 중단될 때까지 나의 경험을 알려야 한다고 다짐한다.”고 말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히로시마 원폭투하 60주년] 日 “엄청난 희생” 美 “도청후 투하 결정”

    |도쿄 이춘규특파원·서울 임병선기자|히로시마(廣島)에 원자폭탄 ‘리틀 보이’가 투하되자마자 한 순간에 7만 1000명이 목숨을 잃고 피폭 후유증에 시달리다 죽은 사람만 5년 동안 12만 9000여명에 이르렀다. 당시 35만명이던 히로시마 인구의 절반이 사라진, 인류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대재앙이었다. 그러나 이 참사는 3개월 전 독일의 항복에도 불구하고 태평양전쟁에 매달리던 일본 군국주의 세력의 투항을 이끌어내 결과적으로 많은 인명을 구해냈다는 역설을 낳았다. 피폭 60주년을 맞는 일본의 표정은 당시 군부가 항복을 준비 중이었는데 미국의 무리수로 엄청난 인명이 희생됐다는 점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일부 언론은 미국의 역사 교육에서 원폭의 위험이 작게 취급되고 있다고 볼멘소리까지 낸다. 미국 보수 진영을 대변하는 주간 위클리 스탠더드 최신호(8일자)는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이 도청된 일본군의 무전 교신 내용을 보고받은 결과, 일본 군부가 항복 의사가 없음을 확인하고 원폭 투하를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1960년대 수정주의 역사학자들은 일본은 이미 희망을 잃은 재앙적 상황이었으며, 일본 지도자들도 그해 여름부터 항복을 준비 중이었고, 일본 외교관들의 통신을 도청한 결과 미국 지도자들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원폭 투하 결정이 무리한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942년 중반부터 각국 외교관이나 일본 군대 등의 통신 내용을 도청한 전문 조직 ‘울트라’가 트루먼 대통령에게 올린 보고서의 내용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고 잡지는 전했다.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미국과 종전에 이를 것이라는 점을 암시한 내용은 3∼4건에 불과했으며 13건 이상은 끝까지 결사 항전한다는 내용이었다. 울트라팀은 특히 미국이 그 해 11월 규슈(九州)를 시작으로 본토 공격에 나설 것이라는 ‘올림픽 작전’의 핵심을 일본 군부가 간파하고 대비책을 세우고 있는 점을 파악, 바짝 긴장했다. 이런 도청 결과와 일본 침공작전의 노출에 따라 트루먼 대통령은 원폭 투하로 더 많은 인명의 희생을 막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잡지는 덧붙였다. 이같은 내용을 기고한 2차 세계대전 전문 역사학자인 리처드 프랭크는 “일본이 항복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수정주의자들의 가설은 모두 틀렸다.”고 강조했다. taein@seoul.co.kr
  • ‘살아있는 神’ 일왕의 베일 벗긴다

    ‘살아있는 神’ 일왕의 베일 벗긴다

    개명한 21세기에 ‘신(神)’을, 그것도 ‘현인’으로 존재하는 신을 믿는 사람들이 있을까. 그런데 있다. 국가의 구심점,‘현인신’(顯人神·아라히토카미) ‘천황´을 떠받드는 일본인들이다. MBC가 광복 60주년을 맞아 ‘천황´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든 5부작 다큐멘터리 ‘‘천황´의 나라 일본’을 준비했다.7일 1부 ‘텐노, 살아있는 신화’,8일에는 2·3부 ‘사쿠라로 지다’와 ‘신을 만든 사람들’,14일에는 4부 ‘충성과 반역’,21일에는 5부 ‘제국의 유산’이 전파를 탄다. 방영시간이 밤 11시∼12시대여서 아쉽다. 사실 ‘‘천황´’이라는 존재 자체가 대단한 것은 아니다. 아키히토 ‘천황´이 실토했듯 일본 ‘천황´가가 백제 무령왕의 방계 일족이라는 점은 이런 저런 자료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를 근거로 일본을 사실상 백제 계열의 국가로 보는 학자들도 많다. 게다가 장군들이 통치하는 막부시대가 시작되면서 일본 ‘천황´은 아무런 권력없이 은거하고 있는 상태가 됐다.MBC가 조명하는 대목은 메이지유신 전까지만 해도 이름조차 없던 ‘천황´이 어떻게 만세일계의 절대권력자이자 일본의 상징으로 떠올랐는가이다. 1부에서는 많은 일본 전문가들이 토로하는,“‘천황´과 황실 얘기만 나오면 일본인들과의 대화는 더 이상 진전이 안된다.”는 현상을 다룬다.‘천황´과 황실에 대한 믿음은 그야말로 무모함 그 자체다.2부는 2차대전 당시 ‘인간폭탄 부대’였던 카이텐, 오오카 부대원들을 다루면서 어떻게 꽃다운 젊은이들이 ‘텐노헤이카 반자이’를 외치며 죽어가야 했는지를 묻는다.3부는 근대화 과정에서 ‘천황´이 부각되는 과정을 다뤘고,4부는 ‘천황´제를 둘러싼 극우세력들의 테러와 협박,5부는 미·일동맹 아래 대국화를 꿈꾸는 일본이 ‘천황´을 어떻게 다시 이용하려 드는가를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쏠쏠하게 건진 것들도 많다.‘천황´과 황실에 대한 보도지침을 뜻하는 기쿠 터부,2차대전 당시 일본 본토에서 미국에 결사항전하기 위해 지은 마쓰시로 대본영의 모습, 얼마전 논란이 일었던 ‘천황´의 사이판 방문 이모저모, 일본국 헌법개정을 둘러싼 논란 등이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겼다. 그러나 이런 사실관계를 다룬다 해도 일본인이 변할까. 제작발표회장에 참석한 한 일본 기자는 “일본인들도 잘 모르는 얘기”라고 했다지만 ‘믿음’은 사실관계와 다른 차원의 문제기 때문이다.‘천황´제에 이의를 제기하던 메이지 당시 민권운동,20세기 초 공산주의,60∼70년대 적군파, 이들 모두가 실패한 이유기도 하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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