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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시 “이라크 철군 학살참극 부른다”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미국이 한국전쟁에 개입하지 않았다면 수백만명의 한국인들은 지금 잔인하고 폭압적인 정권 아래에서 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미주리 주 캔자스시티에서 열린 미 해외참전용사회 연례모임에 참석한 자리에서였다. 이라크 조기 철군의 부당성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미국이 공산주의자들로부터 침략을 당한 한국을 구하기 위해 개입했을 때 좌우 양쪽 진영에서 많은 비판이 있었다. 이런 비판들이 미국의 한반도 방위 공약 포기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이용됐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부시 대통령은 특히 “만약 미국이 한국전에 개입하지 않고 전쟁 후에도 한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지 않았더라면 한국인 수백만명이 현재 잔인한 폭압정권 하에서 살고 있을 것이고, 옛 소련과 중국 공산주의자들은 ‘침략에는 성과가 있다.’는 교훈을 얻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시 대통령은 그러나 “한국은 지금 미국의 강력한 민주동맹이고, 한국군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등 격전지에서 미군과 협력하고 있다.”면서 “한국이 미국의 강력한 민주동맹이 되지 않았더라면 세계는 더 위험한 상황에 놓였을 것이고 덜 평화로웠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시는 이와 함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전문가와 정치권은 일본에 자유민주주의를 심는 것을 반대했으며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견했으나 오늘의 일본은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그는“일본도 미국의 굳건한 민주동맹”이라면서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 반대론자들은 한국과 일본의 오늘을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에서 미군이 철수하면 베트남과 캄보디아에서 벌어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수십만명이 학살당하는 참극이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dawn@seoul.co.kr
  • [열린세상] 연좌제의 망령을 경계하며…/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열린세상] 연좌제의 망령을 경계하며…/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연좌제란 어떤 사람이 특정 사건과 관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범인과 혈연적, 즉 유전적으로 관련이 있다하여 연대 책임을 묻는 봉건시대의 처벌 방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산주의 사상에 관련해서는 광범위하게 연좌제를 실시하여 선량한 사람들을 울리고 그들의 미래를 짓밟은 적이 많았다. 다행히도 민주화와 더불어 매카시즘적 반공주의가 그 세력을 잃으며 연좌제는 우리 사회에서 사라져 가는 듯했다. 그러나 최근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연좌제적 의식이 우리 시민들과 지도자들에게 아직도 뿌리 깊게 박혀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대통령 선거 때면 조상 문제가 단골 메뉴이다. 과거 어떤 대통령 후보들에 대해서는 “어머니가 한국인이 아니다.”,“출생지가 일본이다.” 등에 대한 소문이 돌았었다. 박근혜씨에 대해서는 ‘독재자의 딸’이라는 것 자체가 공격의 소재가 된다. 박근혜씨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폭압정치를 지지하거나 아버지의 후광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면 모를까, 그의 여식이라는 이유로 공격받는 것은 온당치 않은 일이다. 지난번 서울대 총장 선거 때는 한 후보의 할아버지에 대한 친일 논쟁이 있었다. 사실 여부를 떠나 문명국가에서 왜 이런 것들이 상대방의 흠집을 내는데 사용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얼마 전 버지니아 공대 총기 사건에 대한 우리의 태도도 연좌제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정신질환이 있는 교포 한 사람이 벌인 사건에 대해 대통령이 유감을 표시하고 언론도 뭔가 사과해야 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심지어 한국의 대미 수출에 대해 염려하는 예측까지 있었다. 한국계 이민자 한 사람이 벌인 사건에 대해 전 국민이 연대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은 우리가 마치 전체주의 사회에 사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최근 친일행위자들의 재산에 대한 환수조치 발표가 있었다. 좀 더 정확히 얘기하면 친일분자들이 나라를 팔아먹은 대가로 받은 토지를 환수하겠다는 것이다. 비록 60여년이란 세월이 지났지만 국가의 기강을 살리는 것은 물론, 독립 투쟁에 몸을 바친 의인들과 그 후손들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후세에 교훈이 되는 조치가 되리라 본다. 그러나 그 과정은 최소한의 상식을 지키며 진행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가 작성하고 있는 친일파 후손들에 대한 가계도가 공개될 때 어떤 결과가 있을지 감안하면 이에 대해 극도의 주의를 필요로 한다. 친일파 자손들은 그들의 조상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지금 나이가 40세인 시민이 그의 3대 할아버지쯤 되는 사람이 친일파였다는 사실 때문에 90여년이 지난 현재 사회적으로 지탄받거나 불이익을 당한다면 대한민국은 더 이상 근대국가가 아닐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민족정기를 중요시 여기는 모 국회의원의 아버지가 일제하에서 헌병이었다는 것이나 모 인사의 조상이 동학혁명의 원인제공자인 고부군수라는 사실이 이들을 비아냥대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된다. 좌우를 막론하고 상대방을 조상의 행적과 연루하여 공격하는 비열한 행위는 없어야 한다. 역사 바로잡기를 감정적으로 처리하면, 그 때 사용된 단죄의 칼날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고, 현재는 과거의 유령이 지배하게 될지 모른다. 대한민국에서는 조상이 누구든, 부모의 직업이 무엇이든, 집안이 아무리 가난하든, 본인이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나 사회의 최고 명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어야 한다. 시민들은 이런 나라를 사랑할 것이고,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몸을 바쳐 지킬 것이다. 연좌제적 사고방식은 정부나 제도가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온 시민이 선진 문화인이 되어 척결해야 할 원시적 씨족사회의 잔재이다. 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 [6월 항쟁 20주년 ‘그날의 함성’그 이후] (5) 교육 민주화 어디까지 왔나

    ‘우리는 더 이상 강요된 침묵에 머무를 수 없다는 결심에 이르렀다.´1986년 5월10일 동토(凍土)의 교육현장에 ‘교육민주화선언’이 울려퍼졌다. 군사독재 정권의 폭압 통치에 항거해 교육의 정치적 중립과 교사·학생의 교육권 보장을 부르짖는 목소리는 ‘참교육’을 향한 치열한 대장정을 예고하며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6월 항쟁 이후 그 움직임은 급속도로 커졌고, 마침내 87년 9월 ‘민주교육추진 전국교사협의회’가 결성된 데 이어 89년 5월28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참교육 쟁취라는 구호 아래 출범했다. 그로부터 20여년. 수많은 교사들이 교단에서 쫓겨나는 고통을 감내하며 이뤄낸 교육 민주화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최근 전교조에 대해 투쟁 일변도로 변했다거나 교사들의 이익단체로 변질됐다는 등의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합법화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시절과 대중 조직으로서 교육 운동을 펼치는 현재의 전교조는 교육 민주화와 관련해 어떻게 다르며 앞으로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당시 교육 민주화의 산증인들과 학교 현장에 있는 교사들로부터 교육민주화의 현주소와 향후 과제에 대해 들어봤다. ●군사주의 교육 잔재 여전 “교육 민주화라…,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제7대 위원장을 지낸 김귀식(73 전 서울시교육위원회 의장)씨는 고개를 저었다. 교육 부문에서도 상당한 민주화가 이뤄지기는 했지만 뿌리 깊은 고질병은 여전하다는 쓴소리였다.“군사정권 시대의 병영 문화 잔재가 아직도 학교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요즘에는 교육도 신자유주의에 오염돼 ‘1등만이 살길’이라고 가르치고 있어 문제가 더욱 심각합니다.” 1999년 1월 ‘교원노조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을 때 기자회견문을 읽어 내려갔던 그였다. 하지만 교육 민주화의 대표적인 성과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학교운영위원회(학운위)는 제도권 속에서 존재 이유를 상당부분 잃어버렸다. 그는 “학운위는 학교 민주화를 법제화한 엄청난 성과물로, 전교조가 그 도입 과정에서 큰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지금은 교장의 독선을 합리화하는 기구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사학법 재개정은 학생보다 유권자 보고 결정” 사립학교법에 대해서는 “한나라당에서 사립학교법을 재개정하자고 하는데, 학생 입장에서 내린 교육적 판단이 아니라 사학이라는 엄청난 유권자를 보고 내린 결정”이라면서 “아이들의 민주화 의식은 학교에서부터 길러지는데 아이들은 배제하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그에게는 ‘친정’이라고 할 수 있는 전교조에 대한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일부 보수 언론이 침소봉대해 마치 전교조가 정부의 정책 추진에 발목만 잡는 집단인 양 잘못된 편견을 조장해 왔다.”면서 “물론 전교조도 정치적 대응을 줄이고 교육현장에서 연구한 것들을 실천하는 데 더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사회변화에 한걸음 앞서 실천을 제9대 전교조위원장을 지낸 이수호(58)씨도 전교조의 역할을 강조했다. 전교조가 처음 교육 민주화를 이끌었듯 다시 변화에 앞장서야 한다는 지적이었다.“사회 변화에 비해 교원노조 운동 내용이나 방식이 적절하게 변화하지 못했습니다. 정책 반대에만 머물렀다는 비판을 겸허히 수용해 앞으로는 대안을 제시하고 한걸음 앞서 실천하는 운동을 해 나가야 합니다.” 사학법 재개정 움직임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그는 “사립학교가 자금은 정부 지원을 받으면서 실제 운영만 교장·이사장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면서 “보수세력이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소외지역 공부방 지원사업 추진 교육 민주화 1세대인 이들이 전교조 합법화 등 제도적인 발판을 마련한 것과 달리 2세대들은 교육 민주화를 위한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정치적인 투쟁보다는 학교 현장에서 다양한 대안과 대책을 실천하는 활동이다. 현 전교조 한만중 정책실장은 “앞으로 교육 양극화 때문에 소외받고 있는 농·어촌과 도시빈민 지역, 다문화 가정 학생들에게 교육복지 혜택을 늘리는 정책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면서 “다음달 초부터 전국지역공부방협의회와 공부방 지원사업도 펼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관료주의적 행정에 교육의 質 구멍” 지난 4월 어느날, 경기 A초등학교 김모(49) 교사가 한창 오전 수업을 하고 있을 때 교실 책상에 놓인 컴퓨터 모니터에서 신호음이 울렸다. 시교육청에서 보내온 공문이 팝업창으로 뜬 것이었다. “재학생 과거 병력을 파악하고자 하오니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김씨는 날짜를 보았다. 바로 다음날까지 하라는 것이었다. 벌써 처리를 미뤄둔 공문만 5개나 되는 터에 또다시 공문이라니…. 김씨는 숨이 막혀오는 것을 느꼈다. 현직에 있는 교사들은 이처럼 관료주의적이고 실적중심주의적인 교육행정으로는 진정한 학교 민주화를 꽃피우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교육과정 연구와 학생에 대한 관심은 뒷전인 채 학교는 점점 행정중심 사회로 변질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갖가지 불필요한 공문을 남발하는 교육 당국도 문제지만 교육청 기관 평가에서 점수를 높게 받기 위해서, 혹은 근무평정에서 더 나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 과다한 업무 처리를 마다하지 않는 교장·교감을 비롯한 교사 사회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경남 B초등학교 최모(57) 교사는 “학교는 국가교육과정이 우선돼야 함에도 실제적으로는 교장 명령이나 교육청의 시책 사업이 훨씬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런 과정에서 교육의 질 향상은 구멍이 뚫려버리고, 학생들에 대한 교육 기능이 점점 학원으로 밀려나가는 부작용이 생기고 있다.”고 개탄했다. 또 “학교장의 사상이나 관점이 학교 경영을 실제적으로 좌우하느니만큼 민주적 리더십을 강화하는 교장 연수 프로그램이 보강돼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 C초등학교 하모(47) 교사는 교사 성장 프로그램이 미미한 것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현재의 연수제도는 승진을 위한 수단으로서 존재할 뿐, 진정으로 전문성을 기르고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기능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교원 수급정책은 있지만, 교원 양성정책은 없다. 현재 교사는 노량진 고시학원에서 양성하는 것밖에 더 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 D고등학교 이모(32·여) 교사는 학교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등한시하는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씨는 “정년을 지키려는 기득권 교사들에 밀려 기간제 교사들은 재계약 불발, 정교사 임용 약속 불이행 등 갖가지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한다. 이들에 대한 제도 개선 없이 학교민주화를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고 말했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새모델 ‘대안학교’는 “2000년 전교생 28명으로 폐교 직전에 이른 남한산초등학교를 교사 4명이 주축이 돼 살려냈습니다. 이때부터 공교육 틀 안에서 이른바 대안학교의 정신을 실현해나가는 교육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18일 경기 광주시 중부면 번천초등학교 서길원(47·전 전교조경기지부 정책실장)교사는 ‘공교육 혁명’ 활동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현재 ‘작은학교 교육연대’와 ‘새로운 학교를 만드는 사람들(schooldesign21)’을 이끌고 있다. ‘새로운 학교’라는 모델은 2001년 경기 광주시 남한산초교를 시작으로 이를 벤치마킹하는 움직임이 일면서 2002년에는 충남 아산 거산초교,2003년에는 전북 완주 삼우초교,2004년에는 경북 상주 남부초교,2005년에는 부산 금성초교 등으로 빠르게 번져나갔다. 가장 큰 특징이라면 국가교육체제 내의 학교교육 틀을 가지고 대안교육을 모색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교육과정 내용은 일반 공립학교와 다르지 않되 활동의 면면은 보다 자유롭고 주체적이다. 예를 들어 남산초교 120여명의 전교생들은 여름과 가을에 일주일씩 열리는 계절학교에서 공예 등 문화체험활동, 예술활동 등을 펼친다. 다른 학교 역시 지역 대학생·문화예술인·귀농한 전문가 등이 자원봉사자로 방과후학교에 참여하는 등 지역사회와 연계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중학생 딸(12)과 초등학생 아들(9)을 대안학교에 보냈다는 전교조 참교육실장 진영호(48)씨도 “일반 학교는 입시위주 교육으로 아이들을 황폐하게 만드는 것 같아 주저없이 대안학교행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서길원 교사가 속한 작은학교 교육연대 모임은 앞으로 산촌유학·귀농모임과도 연대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서 교사는 “진정한 교육민주화는 소수자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학교 운동은 공동체성을 강화하는 교육민주화에 크게 이바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6월항쟁 계승사업회 다큐 제작

    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는 6월민주항쟁 20주년을 맞아 ‘다큐 6월항쟁’을 제작한다고 밝혔다.3권의 기록물과 1권의 사진집으로 꾸며질 ‘다큐 6월항쟁’은 6월 항쟁의 배경을 설명하는 제1장과 6월 항쟁의 발발 및 전개과정을 담은 제2장으로 구성될 예정이다.1987년 6월 당시 항쟁에 참여한 40여명이 필자로 참여한다. 전국 동시다발 투쟁을 이끈 지역 운동가들의 인터뷰도 이뤄질 예정이어서 관심을 끈다. 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 측은 “6월항쟁은 군사독재 폭압정치를 끝내고 민주주의의 씨앗을 뿌린 자랑스러운 역사”라며 “‘다큐 6월항쟁’은 소수 저명인사의 영웅사가 아닌 평범한 국민들의 승리라는 관점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밝혔다.
  • [문화마당] 지조에 대하여/김명인 시인·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

    한 시대가 정신의 지표로 삼았던 말 중에 세대를 격(隔)하면서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낱말이 있다면 ‘지조(志操)’도 거기에 해당할 것이다. 지조는 꿋꿋한 신념에 따른 바른 처신을 뜻하는 말이니, 개인의 올곧은 마음가짐을 가리키기도 한다. 한때의 유행어가 대를 이어 생명을 유지하는 경우가 드물다지만, 지조란 그런 범주에도 넣을 수 없어, 말의 변천사로는 급격한 몰락이라 할 만하다. 삶의 환경이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탓일까. 이제는 누구도 한결같은 인내가 요구되는 지조 따위는 들먹이지 않게 되었다. 일찍이 시인 윤동주는 식민지 지식인으로서의 자신에 대한 성찰과 고통 받는 동족에 대한 울분을 노래했다.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또 다른 고향’) 시대가 어두울수록, 삶의 간난신고가 더해질수록 스스로를 일깨우는 일의 소중함을 설파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조지훈 시인은 지조를 내세운 장문의 논설로 무기력해진 시대의 지성을 질타하였다. 그 글(조지훈,‘지조론’ 참조)에 의하면 지조란 “순일(純一)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신념이요, 눈물겨운 정성이며, 냉철한 확집(確執)이요, 고귀한 투쟁”이라 규정된다. 그는 교양인의 위의(威儀)를 지키고, 국민을 교화시키기 위한 덕목으로 지조를 강조하고, 모름지기 지도자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먼저 지조의 강도(强度)를 살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독재의 폭압을 뿌리친 의기의 글인 그의 ‘지조론’이 발표된 것은 1960년 2월이니, 자유당에 의해 3·15 부정선거가 획책되던 그 무렵이었다. 그런데 어느 결에 우리 세대에 지조라는 말조차 사라져 버렸는가. 지조는 한때 선비의 표상이나 지도자의 자격쯤으로 여겨져 숭앙되었지만, 오늘날 어느 지성인도 지도자도 지조를 들먹이지 않는다. 아니 입에 올리기는커녕 바른 규범을 좇아 꿋꿋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가 드물다. 최소한도의 명분도 저버린 채, 이 당 저 당 철새처럼 떠다니며 변절과 배신을 마다않는 정치가들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원칙이나 원리에 엄정해야 할 학자들까지 표절과 사기로 연구의 순결을 지키려 들지 않으니, 이제 지조 따위는 개에게나 주어버린 것인가. 삼엄한 도덕적 기준이 요구되는 지조를 논한다는 것부터가 오늘에 와선 시세(時勢)를 거역하는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여겨질는지도 모르겠다. 자연인으로서의 본능고(本能苦)가 강조되고, 개인의 자유가 존중받는 시대에 초지일관하며 산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어려운 일일 수도 있겠다. 정신의 자존과 자긍을 위해서라지만 자학과도 같은 생활을 견뎌내려는 의지가 없고서는 지조는 지켜지지 않는다. 따라서 지조라는 말에서는 엄동을 견디고 꽃피우는 매운 매화향기 같은 상서로운 기운이 느껴진다. 지조를 지키는 일이 곤고하다는 것을 아는 까닭에 우리는 의지의 정절을 시험받으며 유지해가는 사람들을 존경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 우리가 바라는 지조란 이토록 삼엄한 기운이 감도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며 변절하지 말고 살아가자는 것이다. 특별히 우리는 우리의 지도자들이 한결같은 모습으로 스스로의 언행에 책임지려고 애쓰는 올곧은 사람이기를 바란다. 그런 사람이라면 믿고서 따르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마흔 해 저쪽 고등학교 시절에 나는 조지훈 선생의 ‘지조론’을 읽고서 큰 감동을 받았었다. 그 분이 재직하시는 대학교라서 비록 원하던 전공이 아니었어도 한번 다녀볼 결심을 했었다. 그리고 그 분을 닮은 시인이 되고 싶었다. 지난해 가을, 조지훈 선생이 봉직했던 교정에 그를 기려 시비가 세워졌다. 제자들의 오랜 흠모가 그 학교 출신도 아닌 선생의 시비를 그들의 교정에 세우게 한 것이다. 김명인 시인·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
  • [기고] 중용과 통합,임시정부에서 배우자/박유철 국가보훈처장

    유대인 시인 사뮈엘 울먼은 ‘청춘’이라는 시에서 “사람은 나이를 먹는 것만으로 늙는 것이 아니라 이상을 잃었을 때 비로소 늙는 것”이라며 인간의 꿈과 정신의 가치를 찬미했다. 윤봉길 의사는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올리는 서신에서 “사람은 왜 사느냐? 이상을 이루기 위해서 산다. 이상은 무엇이냐? 목적의 성공자이다. 나의 부모를 버리고라도 이상의 꽃이 피고 목적의 열매가 맺기를 자신하여 길을 떠나간다는 결심을 하였다.”라고 썼다. 대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태울 수 있는 열정을 다짐한 것이다. 이상의 실현을 위한 노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에서도 찾을 수 있다.88년 전 일제의 혹독한 탄압 속에서도 선열들은 자주독립이라는 이상을 품고 불굴의 의지로 투혼을 불태운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우리 역사의 커다란 전환점이었던 1919년 3·1운동으로 표출된 온 겨레의 독립을 향한 여망을 모아 4월13일 중국 상하이에 세워졌다. 그 후 임시정부는 일제의 탄압을 받아 항저우, 창사, 충칭 등으로 청사를 수차례 이전해야 하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이런 모진 시련 속에서도 민족의 정신적 지주로서 일제 폭압에 신음하는 겨레의 가슴에 뜨거운 조국애를 심어 주었으며, 민족혼의 산실로서 대한인의 독립의지를 세계 만방에 떨쳤다. 또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이끌어 우리 민족의 자존의지와 긍지를 되살렸다. 나아가 일제강점 이후 끊임없이 전개돼온 무장투쟁의 맥을 이어 한국 광복군을 창설하고 다양한 항일활동을 통해 독립운동의 구심체 역할을 다해 왔다. 임시정부가 갖는 역사적 의의는 임정이 비록 망명지에 수립되었으나 우리나라 최초로 등장한 민주공화제로 대한민국 민주헌정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우리 헌법에도 잘 반영돼 있다. 또한 대외적으로는 27년이란 오랜 기간 독립운동을 전개한 것은 세계사에 전무후무한 일이었으며, 국제외교를 강화하여 열강세력이 1943년 카이로선언을 통해 우리나라의 독립을 보장하게 만드는 성과를 거뒀다. 이처럼 임시정부의 자주독립과 민주공화의 정신은 대한민국의 건국 정신으로 계승되어 민족적 자부심의 원천이 되고 있다. 또한 임시정부에서 표방한 민주, 정의, 독립정신은 6·25전쟁과 4·19혁명,5·18민주화운동 등 광복 후 우리 역사의 고비마다 국난 극복과 민주 발전을 위한 시대정신으로 표출되었다. 임시정부의 또 하나의 의의는 20여년간 통합을 추구하던 임정의 좌·우 양 세력이 마침내 결실을 보았다는 것이다.1942년 임시정부는 좌·우합작이자 통합정부를 이루었다. 독립이라는 최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좌·우세력이 정치적으로는 자유를, 경제적으로는 평등의 요소를 적절하게 조화시키고 이념적인 격차를 줄여 신의를 쌓아간 과정과 성과는 역사적 교훈이 된다. 우리가 과거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은 지난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 보다 밝은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서다. 오늘 우리가 88년 전 임시정부 수립을 기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임시정부 헌장에는 “남녀노소와 모든 종파가 일치단결하여 정의와 인도가 지배하는 나라를 세우자.”는 말이 있다. 이는 오늘날에도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이념적 갈등을 넘어 국민통합으로 이어가기 위해 필요한 덕목이다. 박유철 국가보훈처장
  • [김종면 기자의 책 안 세상 책 밖 풍경] 잃어버린 ‘시대정신’을 찾아서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진보 지식인 리영희(78)는 언젠가 “내 인세 수입이 제로가 되면 행복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자신의 글이 더 이상 읽히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라면 살 만한 세상이 아니겠냐는 얘기다. 모든 글쓰기를 접고 초야의 산림처럼 지내고 있는 그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뉴라이트재단에서 펴내는 계간 ‘시대정신’ 봄호가 강만길, 백낙청에 이어 리영희를 비판의 도마에 올렸다. 조성환 경기대 교수는 ‘우상파괴자의 도그마와 우상’이라는 글을 통해 리영희의 사상은 모순 그 자체라고 단정했다.“리영희의 우상파괴 사상은 온전한 것이 아니다. 대상에 따라 그 비춤 강도와 각도가 달랐다. 미국과 대한민국은 ‘계몽의 이성’으로 부정하고, 북한은 ‘인간적 사회주의’라는 주관적이고 낭만적인 기준을 적용해 관대해진다면 이는 이성도 아니요 진보도 아니다.” 조 교수의 지적대로 리영희의 사상이 시대착오적이고 일방적으로 전파된 것이라면 지성의 장(場)에서 엄정하게 재평가돼야 한다.‘리영희 신화’ 또한 파괴해야 할 우상인지 모른다. 그러나 일부 보수 지식인 집단과 언론의 접근방식은 문제가 없지 않다. 일단 ‘허위 지식인’으로 규정해 놓고 논의를 전개하는 ‘시대정신’식 접근은 설득력을 스스로 갉아먹는 것이다. 언론에서는 좌파 정부 10년째를 맞아 리씨가 평소 지론인 이중잣대론과 인간적 사회주의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고 다그치기도 한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간단히 ‘좌파’의 범주로 묶는 것이 과연 정당한 역사인식인가.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리영희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엔 탈역사적이고 탈맥락적인 사고방식이나 사유체계가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한다. 리영희의 저서 ‘전환시대의 논리’나 ‘우상과 이성’은 1970년대 의식화 교과서로 통했다. 유신의 폭압에 맞서는 쪽에서는 그를 ‘의식화의 은인’으로 추종했고, 병영국가체제를 수호하는 쪽에서는 그를 ‘의식화의 원흉’으로 매도했다. 하지만 그는 이제 더 이상 의식화의 주인공도, 이념의 투사도 아니다. 이른바 ‘사상의 은사’로서 빛과 그림자가 있을진대 그를 “진보의 탈을 쓰고 반지성과 허위의 논리를 펴나가는 허위 지식인”으로 일거에 내치는 것은 그야말로 반지성이요 몰지성이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친일의 후예가 큰소리치고 유신의 찌꺼기가 힘을 발휘한다. 도그마에 빠졌을지언정 그릇된 우상에 끊임없이 타격을 가해온 리영희의 삶은 그래도 건강하다. 불현듯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가 떠오른다.“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너는/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뉴라이트의 사상 이론지 ‘시대정신’은 1998년 이후 ‘전향’ 386그룹이 중심이 돼 발간하던 잡지 ‘시대정신’을 지난해 확대 재창간한 것이다. 새롭게 출발한 ‘시대정신’이 품격있는 이론지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보다 유연한 ‘복안(複眼)의 사고’가 필요하다. 독단은 또 다른 독단을 부를 뿐이다. jmkim@seoul.co.kr
  • “北 인권탄압 심각 南은 성매매 만연”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폭압정권이며, 남한은 불법 성매매가 만연해 있다고 미 국무부가 6일 연례 국가별 인권보고서에서 지적했다. 보고서는 비정부기구(NGO)보고와 언론보도, 탈북자 등의 면담기록을 인용해 “자의적 처형, 실종, 고문, 임의적 체포 및 감금, 정치범 수용소, 기본권 부인, 탈북자에 대한 가혹한 처벌 등 북한 정권의 인권 유린이 심각하다.”고 평가했다. 한국에 대해선 퇴폐 마사지 등 불법 성매매가 만연해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정부가 전반적으로 인권을 존중하고 있으나 가정폭력, 아동학대, 강간 등이 심각한 문제로 남아 있으며, 여성·장애인·소수 민족 등은 여전히 사회적 차별을 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2004년 성매매 특별법 제정으로 성구매자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긴 했지만 최근 중국·동남아 등지로 유행하고 있는 ‘섹스 관광’을 다룰 법은 미비하다고 지적했다.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열린세상] 대학 자율화의 선행 과제/김선영 서울대 생명공학부 분자유전학 교수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대학개혁이다.21세기에 국가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경제력이나 문화 수준 등 중요 지표들이 모두 지식기반 산업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대학은 그러한 산업을 기르는 토양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 대학들은 사실상 교육부의 통제 아래 있었기에 급변하는 시대 상황에 대처하기가 어려웠다. 학과의 신설, 입학 정원, 교수 채용 및 인사 등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안 될 만큼 광범위하게 시시콜콜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많은 대학의 업무를 교육부가 관리해 왔었는데, 다행히도 상당 부분은 2004년도에 구성된 대학자율추진위원회의의 결정에 따라 대학의 자율 권한 영역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입시에 관련된 사항들, 특히 본고사, 기여 입학, 고교등급제에 관해서 교육부와 대학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지금까지 대학 자율에 대한 논의는 주로 교육부가 대학을 얼마나 심하게 규제하고 있나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를 대학 자체의 운영 능력의 관점에서 봐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대학의 내부 상황을 들여다보면 대학의 자체 개혁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대학에서 학과가 신설될 때를 보면 교수들 간의 갈등으로 분과하여 나온 경우도 있고, 실제 분과가 필요한 경우에는 교수들의 감정적 반대로 안 되는 경우도 있고, 일부 대학에서는 입학생들을 현혹하기 위해 학과의 이름만 번드르르하게 바꾸는 경우도 있었다. 학과목 신설, 변경, 강의 평가도 만만치 않다. 인기 과목은 서로 하려 하고, 꼭 필요하지만 득이 별로 없다고 여겨지는 교양과목의 강의는 담당교수 구하기가 어렵다. 강의 평가를 하려고 하면 각종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논리로 반대하고, 강의를 부실하게 하는 교수를 교체하는 건 대통령 탄핵보다도 힘들다. 교수들에게 배정되는 공간이나 대학원생 수는 교수들의 재정 및 연구 능력과 관계없이 ‘공평’하게 나눠져야 한다. 교수 채용시의 여러 부작용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대학의 자율화 문제는 교육부가 규제의 고삐를 풀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학도 그만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대학의 자율 운영 능력에 회의를 갖게 하는 대표적인 사례는 총장 직선제이다. 과거 독재정권들의 폭압에 대한 반작용으로 시작했던 대학의 총장 및 학장 직선제는 이제 하루 빨리 중단해야 한다. 이는 고려대 사태에서 보였던 학내 분란을 막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대학 선진화에 반드시 필요한 전제 조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서울대학교의 경우 인문대나 자연대와 같이 그야말로 기초학문을 연구, 교육하는 대학에서부터 공대, 농대, 의대, 음대, 미대 등과 같이 전문 직업인이나 예술인을 양성하는 대학에 이르기까지 학문적 방법론이나 문화가 크게 다른 단과 대학이 무려 21개나 있다. 이들의 요구를 모두 만족시키고 총장이 되는 사람이 대학을 선진적으로 개혁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서울대가 선진화되려면 몇 개 단과대학이나 학과들을 통·폐합해야 할지 모른다. 종신 교수가 될 수 있는 확률을 70% 미만으로 낮추고 공무원 체질에 익숙한 직원들에게 혁신적인 인사 및 보상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그러나 직선제 총장 하에서 이에 대한 논의는 시작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교육부의 3불 정책은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없애거나 개선해야 하고 대학의 거의 모든 사안에 대해 자율권을 줘야 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대학은 높은 강도로 개혁을 이루고 선진적 운영기법을 도입해야만 한다. 그러지 않는 한 교육부는 여전히 ‘자기 이익 추구에만 급급한 우민(愚民)’들을 선도할 권리를 갖는다는 관료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선영 서울대 생명공학부 분자유전학 교수
  • [서울광장] ‘긴급조치’ 사과하는 판사가 없다/황진선 편집국 수석부국장

    [서울광장] ‘긴급조치’ 사과하는 판사가 없다/황진선 편집국 수석부국장

    1970년대 중후반 학번의 대학 선후배가 모처럼 대폿집에 마주 앉았다. 이제 둘다 50대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다 긴급조치위반 사건 담당 판사의 명단이 공개된 데까지 이어졌다. 변호사인 선배는 못마땅해 했다. 하지만 운동권 출신 후배의 반론도 만만찮았다. “아다시피 유신헌법은 필요한 때에는 대통령이 긴급조치를 발할 수 있도록 했고, 사법심사의 대상도 되지 않는다고 규정했어. 긴급조치는 위헌여부를 다툴 수도 없게 되어 있었지. 그런데 이제와서 자연법이나 정의에 따라 재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판사들을 비판하고 명단을 공개하는 것은 잘못이지. 판사는 자연법이 아니라 실정법에 따라 재판할 수밖에 없잖아.” “인혁당 사건 정도는 아니지만 긴급조치로 수많은 사람이 억울하게 징역을 살았어요. 시위를 모의하고 주도하다 경찰에 쫓겨다니고, 제적을 당했지요. 긴급조치 위반 기소 사건만 589건이었요. 그런데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어요. 박정희 전대통령에게 모든 책임을 미루고 모두가 나몰라라 하는 게 말이 됩니까.” “그렇긴 하지만 악법도 법이란 말이 있잖아. 현재의 시각으로 당시 판사를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아. 이를 테면 앞으로 사형제가 폐지된다해서, 이전에 사형 선고를 내린 판사들을 공개하고 비판한다면 옳은 일이라고 할 수는 없잖아.” “사형제의 존폐는 민주적 입법 절차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잖아요. 긴급조치는 유신시대 폭압적인 정치 구조의 산물이에요. 지금 여야가 긴급조치 무효화 특별법 제정을 검토하고 있는데, 긴급조치가 인권을 무참하게 짓밟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지요.” “무고한 피해자에게 보상을 해주는 것에는 찬성이지. 그런데 선진국 일수록 법원의 권위를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 우리 사회의 최종 ‘해결사’인 법원과 판사를 망쳐놓으면 만인에 대해 만인이 투쟁하는 사회가 될 수 있어. 이건 법조계의 신뢰회복 노력과는 별개의 문제야.” “만약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판사들의 이름을 빼고 보고서를 만들었다면 국민들의 비판이 적지 않았을 거예요. 명예훼손이라거나 인적 청산을 하려한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지만 긴급조치 사건 관련자들이 당한 고통을 생각하면 그런 얘기 하기 어렵지요. 정략적으로 이용한다는 주장도 하던데 과거사 정리는 다음 정권으로 넘길 수 없는 문제지요.” “판사가 법정에 들어서면 방청객들이 모두 일어서지 않는가. 검사와 변호사도 법정에 들어서면서 법대(法臺)를 향해 인사를 한다네. 그건 판사 개인이 아니라 판사라는 직위, 법원을 존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네. 거듭 얘기하지만 사법부를 마구 흔들어 대선 안돼.” “사법부는 존중해야 하지요. 그러나 인혁당의 ‘사법살인’이나 긴급조치 사건의 판사들이 무고한 희생자들에게 겸손하게 ‘그때 정의의 이름으로 행동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자세가 필요하지요. 대법원이 ‘사법시스템이 짊어질 과오’라고 발표하기는 했지만 스스로 반성하는 분들이 없다는 게 안타까워요. 그래야 진실로 화해가 되고, 반면교사도 되지 않겠어요.” “글쎄, 판사들도 마음의 빚은 느끼고 있겠지…. 어찌됐든 사법부가 무너지면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라네.” 밤은 깊었고 취기는 올랐다. 두 사람은 어깨를 겯고 대폿집을 빠져나왔다. 황진선 편집국 수석부국장 jshwang@seoul.co.kr
  • [후세인사형 파문] 후세인 출생부터 사형까지

    [후세인사형 파문] 후세인 출생부터 사형까지

    전쟁광인가, 아랍 민중의 영웅인가. 세상을 떠난 세계 독재자들이 그러하듯 30일 사형이 집행된 사담 후세인도 이중적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하지만 복잡한 아랍 정세를 차치하더라도, 두자일 마을의 시아파 주민 학살을 비롯, 그의 손에 묻은 ‘피’의 양은 아랍권 패권을 손에 쥐려 한 냉혈 독재자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저항자’란 뜻을 지닌 사담은 1937년 4월28일 바그다드에서 북쪽으로 150㎞ 떨어진 티크리트시 외곽의 오우자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생후 8개월 만에 고아가 됐는데, 양부로부터 구타를 당하며 자랐다는 말이 있다. 그를 길렀다는 외삼촌이 구타를 일삼은 양부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외삼촌은 반(反) 영국 투쟁을 하던 군 장교였다. 18세 때 바그다드로 상경, 학생운동에 참여하다 1956년 바트당에 입당, 핵심분자로 성장한다. 그해 이라크 국왕 파이살 2세 제거를 노린 불발 쿠데타에 참여했고,3년 뒤 왕정붕괴 후 집권한 압델 카림 카셈 대통령 암살모의에도 개입했다가 시리아·이집트로 도피생활을 했다.1963년 바트당이 쿠데타로 집권한 뒤 그의 정치적 위상은 자리를 잡는 듯했으나,9개월 뒤 정권이 바뀌면서 1966년까지 수감되기도 했다. 1968년 쿠데타로 바트당이 재집권한 뒤 권력의 최정점을 향해 급속히 부상하던 후세인은 마침내 1979년 아메드 하산 알-바크르 대통령의 뒤를 이어 이라크 지도자의 자리에 섰다. 십자군 전쟁에서 기독교 연합세력을 물리치고 예루살렘을 탈환한 이슬람의 영웅 살라후딘의 이름을 따 자신의 고향 티크리트주 이름을 살라후딘주로 개명한 그는 1980년 9월 이란·이라크전을 일으켰다. 이 사이 후세인은 1983년 두자일 마을 주민 148명을 학살했고,1988년엔 쿠르드의 마을에 생화학가스를 살포,5000명을 사망케 했다. 8년 전쟁 이후 후세인은 미사일과 생화학무기, 핵 기술 등 군비증강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또 전쟁 부채를 벗기 위해 1990년 8월 쿠웨이트를 전격 침공했다. 유엔 안보리 제재를 받았고,1991년 1월 미군 주도의 걸프전에서 패퇴했다. 그러나 후세인은 폭압정치로 1995년 10월과 2002년 10월 대선에서 100%에 가까운 찬성표를 얻어 권력을 강화했다. 유엔의 경제제재와 미·영의 군사적 압박 속에서도 권력을 유지해온 후세인은 결국 9·11 테러 이후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의 ‘예방전쟁’ 명분속에 공격을 받고 몰락했다.2003년 12월 고향 티크리트의 한 농가 토굴에서 생포된 그는 지난 2004년 미군에서 이라크 임시정부로 인계돼 ‘두자일 마을 학살사건 주도’ 혐의로 이라크 특별재판부에 의해 기소됐다. 재판관과 그의 변호사 2명이 피살되는 우여곡절 끝에 결국 법원은 “총살형을 받겠다”고 말했던 후세인에게 교수형을 확정 선고했다.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토요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3:시스의 복수(캐치온 오후 10시) 많이 알려진 재미있는 영화 스타워즈.SF, 모험, 액션 등 흥미있는 요소들이 골고루 결합해 ‘킬링타임’ 용으로 그만이다. 1977년부터 시작돼 30년간 오리지널 3부작과 에피소드 3부작 등 6편에 달하는 스타워즈의 완결판. 전체 이야기의 중심인물인 청년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다스베이더로 탈바꿈하는 비밀이 비로소 풀린다. 전작들에 비해 볼거리 및 스케일도 화려해졌다. 그중에서도 초반부 공중전투 신, 화산에서 아나킨과 오비완이 벌이는 마지막 광선검 대결, 다스베이더가 등장하는 모습 등은 손꼽히는 장면.‘역시 조지 루카스’라는 찬사를 받기도 한 작품이다.2005년작 141분. ●라스트 캐슬(KBS2 밤 12시25분) 군 형무소에 수감된 장성과 강압적인 교도소장의 갈등을 그린 액션이자 휴먼 영화이다. 주인공인 로버트 레드퍼드의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카리스마가 잘 묻어나는 작품이기도 하다. 대통령의 명령을 어기고 무모한 작전을 펼친 대가로 무려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은 3성 장군 어윈(로버트 레드퍼드)이 일반죄수로 미국 최악의 군 형무소 트루먼에 이송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미국 군인들의 전설로 여겨질 만큼 화려한 경력을 가진 어윈이 호송되어 오던 날, 술렁이는 교도소만큼이나 교도소장인 윈터 대령(제임스 갠돌피니)도 불편한 심기를 감출 수가 없다. 어윈의 카리스마에 기가 눌린 윈터는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이 거슬린다. 급기야 동료 죄수들이 어윈의 당당함과 카리스마에 동화되어가면서 어원과 원터 사이에는 강한 신경전이 시작되며 갈등이 예고된다. 수많은 전쟁에서 산전수전을 겪은 베테랑 장군 어윈은 오합지졸인 군죄수들을 인솔, 폭압적인 교도소장을 상대로 치밀하고 용의주도한 ‘작전’을 펼친다. 교도소 안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실제 적과 전투를 준비하듯 치밀하고 긴박감이 넘친다. 로버트 레드퍼드가 연기한 어윈과 제임스 갠돌피니가 연기한 윈터는 최고가 되려고 안간힘을 쓰는 두 사나이들의 열연으로 볼 만하다.2001년작 126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경찰 “불법”… 무더기 징계 우려

    정부의 법외공무원노조 사무실 폐쇄에 항의하는 전국공무원노동조합과 민주노총 경남본부의 ‘전국공무원노동자 결의대회’가 9일 창원 용지공원에서 3000여명(경찰추산)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으나 별다른 충돌은 없었다. 하지만 공무원이 이 집회에 참가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한 경찰은 채증자료를 바탕으로 지도부와 주동자, 단순 참가자로 분류해 처벌한다는 방침이어서 무더기 징계 사태가 우려된다. 집회 참석자들은 이날 “정부의 폭압적 탄압에 맞서 민주 노조를 사수하고 불법 인사를 단행한 김태호 경남도지사와 노조 탄압에 앞장서는 이용섭 행정자치부 장관을 규탄한다.”면서 “전공노와 민주노총은 힘을 합쳐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결의했다. 권승복 전공노 위원장은 “정부의 전공노 사무실 폐쇄 조치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사수할 것”이라면서 “전국 공무원 노조 조직을 총 동원해 행자부 장관의 퇴진 운동을 강력하게 벌여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경남경찰청은 이날 주요 길목에서 15개 시·군의 공무원 360여명과 이들이 타고 온 90여대의 차량을 차단, 귀가시켰다고 밝혔다.창원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女談餘談] 386 의원에 보내는 한 선배의 고언/구혜영 정치부 기자

    오랫동안 재야운동에 몸 담았던 한 50대 선배가 “요즘 가슴이 먹먹하다.”며 ‘서글픈’ 심경을 전했다. 저문 강이 내려다 보이는 9월 초가을, 서울 마포의 한 커피숍에서 선배는 간간이 눈물마저 보였다. 개혁 세력이 이처럼 통째로 거부당한 적이 없다는 것이 ‘슬픔’의 실체였다. 저 엄혹했던 80년대를 지나치면서 마른 빵으로 끼니를 때우던, 칠흑 같이 어두운 시절을 말할 때도 “이렇게 좋은 날이 빨리 올 줄은 몰랐다.”며 환하게 웃던 선배였다. 지금은 아침에 눈뜨면 “오늘 하루도 얼마나 슬프게 살아야 하나.”는 생각부터 든다고 한다. 연이은 선거 패배와 바닥까지 내던져진 지지율. 초로의 선배는 개혁세력의 현주소를 하나하나 짚어내려 갔다. “그래, 집적된 실패도 있지. 앞선 정부가 주문만 해놓고 계산서는 모두 참여정부에 던져진 탓도 있을 거야. 옳은 길도 많아. 자기 팔 잘라가며 정경유착 고리끊고 폭압적인 권위도 무장해제시켰지.” “근데 국민이 뭘 원하는지 알아야 할 거 아니야. 빵 달라는데 도덕 교과서 주고, 살기 힘든데 공자 같은 소리만 하고, 사려깊지 못한 말로 오장육부나 뒤틀어 놓는데 어떻게 마음이 가겠냐고. 쫓기는 수배자 손에 돈 쥐어주고, 안방 내주며 ‘386’이라는 이름을 쥐어준 그 국민들 생각하면 젊은 정치인들, 적어도 골프장 안 가면 안 되나.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땅에서 큰 차 굴리며, 하루종일 허비하고 골프 치는 거, 그거는 말이야,‘나는 민주화의 세례만 받았다.’는 항변이나 마찬가지야. 그 시간이면, 오징어가 흉작기라는데 동해안 가서 배도 타고, 허리 굽혀 벼베기도 하면서 막걸리 한잔 마실 수 있잖아. 이 정도라도 해야 구정치와 다르게 상큼한 정치한다고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도리를 못하는 거야, 도리를….” 선배는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단다. 건강하라는 당부와 함께 “최악의 정치는 형벌로 백성 다스리는 거고 좀 덜 나쁜 정치는 물질적 이익으로 유인하는 거야. 마음으로 다스릴 줄 알아야지.”라는 말이 던져졌다. 사마천의 ‘사기’에만 나오는 경구가 아니길 바라는 선배의 심경이 가슴을 흔들었다. 구혜영 정치부 기자 koohy@seoul.co.kr
  • [Book Review] 표현 자유의 역사/로버트 하그리브스 지음

    고대 로마시대에 주피터 신전의 계단 꼭대기에서 ‘나는 기독교인이다.’라고 외친 사람은 바로 체포돼 사자밥이 되었다. 그로부터 1500년 후 같은 장소에서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다.’라고 외쳤던 사람 역시 체포돼 화형대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한 시대의 이단은 종종 다음시대에는 폭압적인 정통성으로 둔갑해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던 것이다. 페리클레스 시대로부터 2500년이 흐르는 동안 서구사회는 사실 관용보다는 권위와 억압 쪽에 더 가까웠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서구 역사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역사, 바꿔 말하면 표현의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표현 자유의 역사’(로버트 하그리브스 지음, 오승훈 옮김, 시아출판사 펴냄)는 고대 그리스시대부터 인터넷시대에 이르기까지 서구 2500년 역사를 거슬러 ‘말할 자유’의 족적을 짚어본 책이다. 이 책의 원제 ‘첫번째 자유(The First Freedom)’는 표현의 자유가 곧 다른 모든 기본권의 전제조건임을 말해준다. 영국에서 20여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한 저자는 표현의 자유를 위해 시대조류에 맞선 자유인들의 치열한 삶의 여정을 생동감 있게 엮어내고 있다. 책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불경죄를 저질렀다는 혐의로 고발당했지만, 어떠한 법 조항도 인용되지 않았다. 그가 재판에 회부된 이유는 오로지 그의 가르침과 믿음이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것. 진정한 의미에서 이 재판은 소크라테스의 언론 자유의 권리에 대한 시험이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언론자유에 관한 한 전 세기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공헌을 했다고 평가받는 이가 영국의 언론인이자 정치인이었던 존 윌크스이다. 그는 1762년 런던에서 ‘노스 브리튼’이란 신문을 창간하고, 창간호 첫 줄에 ‘출판의 자유는 영국인에게 생득권(生得權)이다. 그리고 이 나라에서 자유의 가장 견고한 보루로 간주된다.”고 선언한다. 이후 그는 국왕을 모욕했다는 글을 게재했다는 이유로 오랜 법적투쟁을 벌이는 등 권력자들에 대한 수많은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이같은 그의 삶은 그 자체가 말할 자유의 질곡을 써내려간 ‘육필원고’로 후세에 전한다. 18세기 중후반 미국과 영국 프랑스를 떠돌았던 토머스 페인은 ‘언론 자유를 위한 순교자’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1774년 영국에서 미국 필라델피아로 이주한 그는 식민지의 독립 선언을 요구한 소책자 ‘상식’을 펴내 미국독립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프랑스혁명 즈음 영국에 돌아온 그는 전제정치와 귀족정치를 비판한 ‘인간의 권리’란 책을 내 법정에서 법익피박탈자 선고를 받았다. 때문에 프랑스에 망명했으나 기독교를 비판한 책 ‘이성의 시대’로 인해 다시 미국으로 추방되는 운명을 맞는다. 하지만 그는 독립된 미국에서조차도 ‘건국의 아버지’ 신전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하는 수모를 겪는다. 책은 이밖에도 로마시대 성인과 순교자들, 콘스탄티누스의 개종, 루터의 종교개혁, 종교재판 법정에 선 갈릴레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등 종교와 출판, 언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할말을 다하기 위해 싸웠던’ 인물들의 삶을 생생히 그려내고 있다. 그렇다면 서구적 민주주의가 전세계적으로 보급된 오늘날엔 표현의 자유가 온전히 보호되고 있을까? 저자는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 9·11과 이라크 전쟁에서 보듯 현대 시민사회가 지닌 가치가 얼마나 쉽게 야만성에 의해 뒤집어질 수 있는지 명백해졌기 때문이다. 다원주의 사회에서 세뇌나 강요를 통해 반대자들을 배제하려는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는 어떠한 이유에서든 용납되어선 안되며,‘반대할 자유’는 어떠한 법에 의해서도 제한되어선 안된다고 저자는 거듭 강조한다.2만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책꽂이]

    ●황금섬의 비밀(홍윤서 지음, 지식더미 펴냄) 대한민국과 일본이 독도를 놓고 벌이는 무력충돌을 그린 가상소설. 일본의 극우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독도를 점령당한 대한민국이 미국과 일본을 상대로 고군분투 끝에 독도를 탈환하게 된다는 내용이다.1권 ‘백악관을 도청하다’,2권 ‘일본이 항복하다’. 미 육군 호크미사일과정을 졸업한 저자는 소설 ‘UEO파일’ 등을 낸 밀리터리 픽션작가. 각권 1만원. ●목근통신(김소운 지음, 아롬미디어 펴냄) ‘삼오당잡필’‘물 한 그릇의 행복’ 등의 에세이집으로 유명한 저자가 1951년에 쓴 서간체 수필집. 일본인의 모멸과 학대에 대한 민족적 항의가 담겼다.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 땅을 ‘구린내 나는 나라’로 표현한 ‘선데이 마이니치’의 기사에 대한 분노에서 씌어졌다.‘설국’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개로 ‘주오고론’지에 번역·소개돼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작품.1973년 삼성문화문고에서 발행된 판본을 재발간했다.9500원. ●거장과 마르가리타(미하일 불가코프 지음, 박형규 옮김, 문예출판사 펴냄) 권력의 폭압에 굴하지 않는 예술정신을 그린 환상적 사실주의 소설.20세기초 모스크바가 무대다. 거장이라 불리는 작가와 그 애인 마르가리타, 모스크바를 파괴하려는 검은 마술의 악마 볼란드, 거장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본디오 빌라도가 주요 인물이다. 환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가운데 구소련에 대한 비판을 녹여냈다. 전2권, 각권 9500원. ●문학적 현실의 전개(구중서 지음, 창비 펴냄) 1963년 ‘신사조’에 ‘역사를 사는 작가의 책임’을 발표하며 비평활동을 시작한 저자의 자선 평론집. 연암 박지원과 국초 이인직의 소설세계를 비교한 ‘중흥과 타락의 문학’, 이상국 도종환 김기택 정양 등의 시세계를 다룬 ‘사회적 상상력의 회복을 위하여’ 등 20여편의 글이 실렸다. 저자는 일관되게 ‘작가의 역사적 지성’과 ‘현실의식을 바탕으로 한 문학적 가치창조’라는 비평척도를 유지해 왔다.2만 3000원. ●원행(오세영 지음, 예담 펴냄) 조선 왕 정조는 스스로 높이 떠서 온 천하를 훤히 비치는 달이 되고자 했다. 그는 군주란 신하와 백성을 이끄는 스승이 돼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정조는 1800년 49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고, 개혁의 꽃도 지고 말았다. 책은 1795년 조선 정조 19년의 수원화성 행차 ‘을묘원행’을 소재로 한 역사추리소설. 천도를 주장하는 개혁파와 한양 잔류를 주장하는 수구파가 대립하는 가운데 병조판서 심환지, 병조참지 정약용의 갈등을 주축으로 당시의 시대상황을 풀어냈다.9800원.
  • 이 사람을 기억하십니까?

    |베이징 이지운특파원| 지난 1989년 중국 톈안먼(天安門) 민주화시위 당시 맨몸으로 탱크를 막아서 민주화항쟁의 상징으로 떠올랐던 왕웨이린(王維林)의 생사와 행적이 확인됐다. 톈안먼사건 17주기를 맞아 홍콩 명보(明報)는 4일 왕웨이린이 당시 중국 당국의 체포망을 피해 타이완으로 피신, 현재 타이완 남부에서 타이베이 고궁(故宮) 박물관 고문으로 일하고 있다고 전했다. 왕웨이린은 지난 89년 6월5일 맨몸으로 톈안먼 광장에 진주해 들어오던 탱크 4대를 막아선 사진으로 항쟁의 상징적 인물로 떠올랐으나 이후 종적을 감춰 생사가 불분명했다. 이 사진을 전재한 전세계 언론은 폭압에 맞선 그의 용기를 찬양하며 그에게 20세기의 위대한 영웅이라는 칭호를 붙여주기도 했다. 후난(湖南)성 창사(長沙)에서 중국의 대표적 고분인 마왕퇴(馬王堆) 고고학발굴단 단장으로 일했던 왕웨이린은 당시 톈안먼 광장에서 민주화 시위가 벌어지자 다른 노동자들과 함께 상경해 탱크를 막아서게 됐다는 것이다. 왕은 그 다음날 동료들의 도움으로 베이징을 떠났고 이후 다른 곳에서 3년 7개월 동안 몸을 숨겼다. 왕웨이린이라는 이름도 발굴단으로 일하던 시기에 사용했던 가명. 홍콩을 거쳐 타이완으로 건너간 그는 그곳에서 결혼까지 했으며 현재 건강이 그다지 좋지 않지만 자신의 처지를 공개함으로써 당시 외쳤던 민주와 자유의 이상을 중국 인민들에게 전하고 싶다는 뜻을 피력하기도 했다. 한편 당시 학생운동 막후 지도자로 시위의 주역이었던 왕단(王丹)은 톈안먼 사태 17주년을 맞아 “톈안먼 시위의 기억들이 희미해져 가고 있지만 언젠가는 톈안먼 민주항쟁의 의미가 재평가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말했다.jj@seoul.co.kr
  • [儒林속 한자이야기] (120) 燎原(요원)

    儒林(586)에는 ‘燎原’(화톳불 료/들판 원)이 나오는데,‘燎原之火’(요원지화)의 준말이다.燎原之火는 원래 ‘무서운 기세로 타고 있는 들판의 불길’을 뜻하였으나 오늘날은 ‘오랫동안 억눌린 勢力(세력)이나 主張(주장)이 걷잡을 수 없게 퍼져나가는 狀態(상태)’를 말한다. ‘燎’자는 불 위에 엮어 세운 나무와 흩어지는 불티의 象形(상형)으로 ‘화톳불’ ‘불을 놓다.’의 뜻을 나타냈다.用例(용례)에는 ‘薪燎(신료:땔감),燎亂(요란:흩어져 어지러움),燎衣(요의:옷을 불에 쬐어 말림) 등이 있다. ‘原’은 벼랑 밑에서 솟기 시작한 샘의 뜻에서 ‘근원’의 뜻을 나타냈다.原産地(원산지:본디 생산된 땅),原始(원시:시작하는 처음, 처음 시작된 그대로 있어 발달하지 아니한 상태),原則(원칙:어떤 행동이나 이론 따위에서 일관되게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규칙이나 법칙. 다른 여러 명제가 도출되는 기본 논제),抗原(항원:생체 속에 침입하여 항체를 형성하게 하는 단백성 물질) 등에 쓰인다. 書經(서경)의 盤庚篇(반경편)에 나오는 말이다. 중국 殷(은)나라의 盤庚(반경)은 황하의 홍수 피해에서 벗어나기 위해 首都(수도)를 경(耿)에서 은(殷)으로 옮기려고 하자 반대 輿論(여론)이 들끓었다.雪上加霜(설상가상)으로 일부 반대론자들은 流言蜚語(유언비어)를 퍼뜨리며 수도 이전을 반대하였다. 이에 반경은 유언비어를 捏造(날조)하여 流布(유포)하는 사람은 地位高下(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벌할 것을 闡明(천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너희들이 나에게 알리지도 않고서 뜬소문을 퍼뜨려 백성들이 공포와 혼란에 빠져 있다. 유언비어가 번지는 것은 마치 넓은 벌판에 화톳불을 붙여 놓은 것과 같아 너희들 가까이 접근해 와도 끌 수 없을 것이다. 이는 곧 너희 스스로 조성한 불안일 뿐, 내 잘못은 없다.” 우리나라는 오래된 義兵(의병)의 歷史(역사)와 특유한 義兵精神(의병정신)으로 외침에 처할 때마다 決死抗戰(결사항전)을 마다하지 않았다. 의병의 역사에서 가장 현저한 활동을 보여준 때는 壬辰倭亂(임진왜란)과 丙子胡亂(병자호란),朝鮮(조선) 末期(말기)의 의병이었다. 특히 壬辰倭亂(임진왜란)에는 전국에서 신분이나 계급에 관계없이 義兵(의병)이 蹶起(궐기)하였다. 乙巳勒約(을사늑약)으로 우리의 外交權(외교권)을 침탈한 日帝(일제)는 강제로 韓日合邦(한일합방) 조약을 체결하여 植民(식민) 統治(통치)를 시작하였다. 폭압적인 武斷統治(무단통치)가 거세질수록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憤怒(분노)와 抵抗(저항) 또한 高潮(고조)되었다. 高宗(고종)의 因山日(인산일)인 1919년 3월1일, 민족대표 33인의 主導(주도)로 서울을 비롯한 各地(각지)에서 獨立宣言式(독립선언식)을 거행하였다. 독립선언식은 만세시위 운동으로 이어졌다.1907년 2월 중순 大邱(대구)에서는 일본에서 도입한 借款(차관) 1300만원을 갚자는 國債報償運動(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되었다. 신분과 지위를 초월하여 담배를 끊어 저축한 돈, 장롱 속의 佩物(패물)까지 快擲(쾌척)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았다.2개월 남짓 기간 동안 補償金(보상금)을 義捐(의연)한 사람의 수가 4만을 넘었고 모금액도 230만원을 상회했다. 김석제 경기도군포의왕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레이건 “안 만나주면 난 폭발”

    “안 만나주면 난 폭발해버릴 거요.” 도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취임하기 3년 전 낸시 여사에게 띄운 편지의 한 구절이다. 린든 존슨 전 대통령은 상원의원 시절, 만난 지 몇주 안된 ‘버드 양’에게 “이 아침, 난 야망에 불타고 힘에 넘쳐 그대와 광적인 사랑에 빠져들고 싶소.”라고 노골적인 연서(戀書)를 띄웠다. 세계인에겐 결단에 찬 얼굴을 드러냈던 미국 대통령들은 사랑을 얻기 위해 ‘찐득이’가 되곤 했다고 USA투데이가 12일(현지시간) 전했다. 권력에 상처받고 정적들에게 공격당하는 순간에도 사랑 때문에 번뇌한 대통령들의 면모를 확인케 하는 책이 화제를 낳고 있다고 이 신문은 덧붙였다. 의회 역사 연구가인 제라드 가왈트가 의회도서관, 친척들, 대통령 도서관 등이 보관하던 대통령 23인의 편지 84통과 전보 5000여통을 분석해 쓴 ‘내 사랑 대통령, 대통령과 부인의 편지’가 화제의 책이다. 대학을 갓 졸업한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결혼하기 5일 전 앨리스 리를 길거리에서 붙들어 세운 채 “당신을 손대는 일은 신성모독으로 여길 만큼 당신을 숭배합니다.”라고 말해 결혼을 승낙받았다. 또 독립선언문 초고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됐다.’고 썼던 존 애덤스는 얼마나 귀찮게 쫓아다녔던지 약혼녀 애비게일로부터 다음과 같은 편지를 받았다.“남정네들의 성이 원천적으로 폭압적이라는 건 진실이에요. 그러나 분별력 있는 남성이라면 성의 노예로만 우리를 취급하려는 관습에 맞서 싸워야 하지 않겠어요.” 가왈트는 “대통령 부부들은 백악관에 들어가기 훨씬 전부터 아내가 남편의 경력에 매우 중요한 존재가 됐으며 또 의지가 강한 여성들이 많은 데 놀랐다.”고 털어놓았다. 예컨대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부인 엘리노어의 백악관 식단이 엉망이라고 지적했다가 아침 식사 때 달걀을 두 개에서 한 개로 삭감당하는 보복을 당했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교육부 논술 가이드라인은 대학을 유치원 취급하는것”

    “논술시험에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내려보내는 곳은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잘 알지도 못하면서 간섭하는 것은 억압이고 폭압이다.” 지난 30일 발표된 대입 논술 가이드라인에 대해 서울대를 비롯한 교수사회가 반발하고 있다. 서울대의 본고사형 논술고사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마련된 가이드라인이 한동안 잠잠했던 대학과 정부간 학생선발 자율권 갈등을 재연시킬지 주목된다. 31일 오후 ‘대학의 자율화는 진전되고 있는가’를 주제로 서울대에서 열린 서울대 교수협의회 주최 심포지엄에 참석한 교수들은 ‘폭압’‘압제’‘시대착오’ 등 원색적인 표현을 써가며 정부정책을 비난했다. 논술 가이드라인을 수용한다는 대학당국의 공식 입장과 달리 교수들의 불편한 심기가 여과없이 표출됐다. 김광웅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주제발표에서 “논술 가이드라인 제시는 이미 성인이 되고 환갑을 넘긴 대학을 유치원생으로 취급하는 일”이라고 비유하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간섭하는 것은 억압이고 폭압”이라고 성토했다. 그는 “공공성이 강조되는 기관에도 프라이버시(사적인 영역)라는 것이 있다.”면서 “대학의 이성적인 탐구와 학문에 관한 것은 정부가 간섭하지 말아야 하며 만일 간섭을 한다면 이는 시대착오적인 것”이라고 했다. 강명구 서울대 교수도 “전문가들이 조용히 해결해야 할 교육정책 문제가 일반행정직 공무원에 의해 입안되고 결정되는 것은 교육의 정치화에 따른 부작용”이라고 비난했다. 김준석기자 herme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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