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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평도 주민의 새해 맞이

    연평도 주민의 새해 맞이

    <“빨리 돌아가 굴 따야 하는데…” 김포 LH아파트 피란 김영길씨> 연평도 포격 이후 경기 김포에서 피란생활을 하고 있는 김영길(48)씨 가족은 시름 속에 새해를 맞았다. 지난달 19일 인천 찜질방에서 김포 LH아파트로 주거지를 옮겼지만 생활은 달라진 게 없다. “먹고사는 게 제일 큰 걱정이죠. 타지에서 새해를 맞는 게 좋을 일이 뭐가 있겠어요.” 매년 텔레비전으로 챙겨 보던 보신각 타종 행사도 올해는 생략했다. 떡국도 먹지 않았다. 이웃과 함께 떡국을 나눠 먹고, 아이들 손잡고 동네 어르신들 찾아 세배를 했던 지난해를 그리워하며 새해를 맞았다. 피란 생활이 길어질수록 김씨의 주름살도 깊어지고 있다. 연평도에는 언제 돌아갈 수 있는지, 보상은 어떻게 되는 건지 누구도 답변을 해주지 않아 답답할 뿐이다. 김씨는 “연평도 관련 뉴스가 나올까봐 매일 텔레비전 뉴스만 본다.”면서 “미래를 알 수 없으니 막막하기만 하다.”고 토로했다. 김씨의 유일한 희망은 두 자녀다. 찜질방에서 생활할 때 무척 우울해하던 아이들이 김포로 옮긴 뒤부터 차차 안정된 모습을 보여 그나마 위안이 된다. 김씨는 “어른들 눈치 보지 않고 신나게 놀 수 있어서인지 아이들의 표정은 밝아졌다.”면서 “형편이 넉넉지 않아 맛있는 걸 사줄 수 없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김씨는 요즘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 딱히 하는 일 없이 텔레비전을 보며 지내고 있는 김씨는 “연평도로 언제 돌아갈지 모르니 일자리가 가장 걱정”이라면서 “정부가 일자리를 마련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들도 분위기는 비슷하다. 새해를 맞았어도 차분하게 가라앉은 모습들이다. 김씨의 유일한 새해 소망은 연평도로 하루 빨리 돌아가는 것. 네식구의 가장인 김씨는 “유일하게 바라는 건 연평도 집으로 돌아가 두발 쭉 뻗고 잠 한번 자는 것”이라면서 “예전에 하던 굴·조개잡이도 하고, 뭐든 다 할 것이다. 돌아가서 일을 해 돈을 벌어야 처자식을 먹여 살릴 수 있다. 소원은 오직 그것뿐이다.”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민영·김소라기자 min@seoul.co.kr <“평화로운 섬 되게 해달라 기도” 섬 잔류 박미경씨> “새해에는 평온한 가운데 떠났던 주민들이 모두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제 아이들도 또래 친구들과 즐겁게 학교 다녔으면 좋겠고요.” 인천 옹진군 연평도 주민 박미경(42·여)씨는 2일 본지 기자와의 통화에서 한달 넘게 가슴 속에 묻어뒀던 작은 소망을 털어놨다. 그는 새해가 찾아왔지만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열지 않아 아이들에게 맛난 음식조차 장만해 주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도 전하는 말에서는 여유와 푸근함이 물씬 배어났다. 연평장로교회 목사인 남편과 두 아들 등 단란한 네 가족은 새해 첫날, 이웃 주민들이 가져다 준 굴로 음식을 만들고 떡국을 끓여 먹으며 한마음으로 “연평도가 앞으로 살기 좋은 섬이 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박씨는 “지난해에는 북한의 추가 포격이 있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는데 이제 큰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면서 “새 학기에는 둘째 아들의 건강이 좋아져 어린이집에 들어가고, 첫째도 초등학교에 입학해 학교 생활을 잘할 수 있다면 더 큰 바람이 없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몰아친 강추위와 폭설 때문에 지연된 마을 복구공사가 빨리 마무리되도록 정부가 힘을 더 실어달라고 부탁했다. 박씨에 따르면 연평도는 갈수록 굴 따는 주민들이 늘어나는 등 점차 활기를 되찾아가고 있다. 꽃게철은 지났지만 230여명의 주민이 섬으로 돌아오면서 깨진 창문을 갈아끼우고 대문을 고치는 등 복구작업도 한창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웃 분들이 ‘집에 돌아오니 편안하다’ ‘웬만하면 나가지 않고 살겠다’고 하셔서 마음은 편하다.”고 밝은 목소리로 전했다. 그는 정부와 정치인들에게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연평도를 만들어 달라.”는 바람을 전했다. 박씨는 “국가에서는 서해 5도를 요새화한다고 말하지만 거창한 것보다 주민들이 ‘이제 안심하고 살아도 되겠다’라고 하는 신뢰감부터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현용·최두희기자 dh0226@seoul.co.kr
  • 폭설·한파·연말연시… 숨고르는 주택시장

    폭설·한파·연말연시… 숨고르는 주택시장

    지난주 아파트값은 서울과 신도시를 중심으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폭설과 한파, 연말연시 등 계절적 요인으로 주택시장에 대한 관심이 줄었기 때문이다. 급매물이 거의 소진되면서 반등한 집값은 다시 소강 상태로 돌아서는 모양새다. 거래 움직임마저 끊겨 시장은 조용한 모습이다. 추운 날씨 속에 매매 문의마저 줄자 서울과 신도시는 일시적인 하락세로 돌아섰다. 반면 수도권은 매매가 상승이 이어졌다. 서울 강남지역에선 저가매물 위주로 거래가 이뤄졌다. 개포동 주공7단지가 500만원 안팎씩 올랐지만 나머지 지역에선 가격하락과 매물 회수가 이어졌다. 신도시는 평촌과 분당, 산본 등이 소폭 오름세를 나타낸 반면 중동 등은 가격이 내렸다. 평촌에선 실수요자 위주로 소형아파트 거래가 이뤄졌다. 수도권은 안양, 광명, 군포, 의왕, 안산, 용인 등에서 고르게 집값이 올랐다. 광명은 소하동 일대 아파트가 750만~1000만원가량 올랐다. 안양은 관양동 일대 중소형 아파트가 500만원 이상 올랐다. 군포에선 저가매물이 소진되면서 시세가 조금씩 상향됐다. 전세시장은 신학기 수요가 겹쳐 매물 부족이 심화됐지만 서울과 신도시에선 전셋값이 오히려 조금 내렸다. 급격한 오름세의 반작용인 셈이다. 수도권에선 용인, 안양, 의왕, 군포, 파주, 남양주, 수원, 구리 등의 전셋값이 모두 올랐다. 전세시장에선 수급 균형이 깨져 당분간 수요자들의 매물 확보 경쟁이 치열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시장의 거래 관망 분위기와 전세 품귀 현상이 연초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서울신문 2011 신춘문예-소설 당선작] 미치가 미치(이)고 싶은/차현지

    [서울신문 2011 신춘문예-소설 당선작] 미치가 미치(이)고 싶은/차현지

    아저씨의 아내가 임신을 했다. 아이는 5개월짜리. 5개월 전에 아저씨의 정액이 아내의 질을 파고들어 거센 산성반응에도 끝끝내 굴복하지 않고 수정란을 착상시켰다. 5개월 전이라면 아저씨와 내가 종로 3가 나이스 모텔 205호에서 새벽 내내 서로의 배꼽 속에 손을 넣었던 때다. 나와 만나기 전날이거나 혹은 다음날에 아저씨는 아내와 같이 잠자리에 들었고 기계적인 성교를 했을 것이다. 아저씨의 아내는 궁색한 가짜 신음소리 내기에 바쁜 여자니까. 아저씨는 여자의 신음소리에 민감하다. 신음소리의 진위 여부를 따지는 것에 편집증 환자처럼 집착한다. 그런 아저씨가 나를 좋아하는 까닭은 단 하나. 나는 가짜 신음소리 따윈 내지 않는다. 오로지 진심. 나는 진짜에게만 연다. 그것이 성대든 밑구멍이든 간에. 오늘 만나. 삐리릭. 교실 한구석에서 체육복을 베개 삼아 누워 있던 나는 문자를 확인하고 곧장 가방을 싼다. 든 것도 없는 가방을 메고 나는 교실 밖으로 향한다. 교문을 빠져나오는 도중에 아저씨에게 한 번 더 문자가 온다. 우리가 만나는 시간과 장소가 적힌, 매우 절약적인 문자. 럭셔리 라운지 모텔 507호. 아홉 시. 아홉 시까지, 아홉 시간이나 남았다. 그날도 여지없이 바람이 불었다. 아저씨와 만나는 날은 어쩐지 모르게 세찬 바람이 분다. 한반도가 원래 이렇게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었나? 아저씨는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며 말했다. 그러게요. 치마 밑단이 바람에 너풀거렸다. 얘, 허벅지 다 보인다. 아저씨가 말했다. 알아요. 그냥 내버려 두는 거예요. 넌 참 미쳤구나. 그래서 이름이 미치인가 보구나. 아저씨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갔더니 장례를 다 마친 식구들이 둘러앉아 할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하나 둘씩 꺼내고 있었다. 넌 그새 또 어디 갔다 왔니. 그냥 잠깐. 나는 대충 둘러대고 방으로 들어갈 셈이었다. 그런데 할머니. 할머니가 안 보였다. 엄마, 할머니는? 하고 물어보려던 찰나, 내 방 문 틈새로 할머니의 굽은 등이 보였다. 굽은 등은 서서히 몸을 웅크리며 일정한 리듬에 맞춰 떨었다. 할머니는 울고 있었다. 나는 다음날도 아저씨를 만났다. 삼성동 명아장 모텔 313호. 시간은 오후 아홉 시. 나는 근처 화장실에서 교복 와이셔츠를 벗고 보라색 민무늬 원피스를 입었다. 바람이 찼다. 나는 여덟시 오십 오 분에 모텔에 도착했다. 내가 313호의 문을 열었을 때는 이미 아저씨가 다 벗은 몸으로 누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이. 아저씨가 인사했다. 방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쾌적한 향내가 풍겼다. 오히려 첫 번째 갔던 곳이 적당히 촌스러우면서 마음이 편했다. 옷을 못 벗겠어요. 내가 말했다. 아저씨는 보라색 민무늬 원피스를 아래에서부터 위로 벗겨냈다. 그리고는 내 몸 이곳저곳을 꾹꾹 누르듯이 만져댔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그냥 참았다. 나는 아저씨가 하라는 대로 몸을 열고 젖히고 오므리고 뒹굴었다. 두툼한 손가락처럼 두툼한 아저씨의 뱃살이 출렁거리며 내 피부에 닿았다. 남의 살을 맞대는 것이 기분이 나빴다. 아저씨의 거죽에 파묻혀 질식할 것 같았다. 물론 아저씨가 그렇게 뚱뚱하지는 않지만 그냥 남의 살결, 살 틈으로 새어나오는 냄새 같은 것이 어쩐지 두려웠다. 한 차례 사정이 끝나고 난 뒤에 아저씨는 모로 누워 담배를 피웠다. 그때까지 나는 아저씨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얘, 너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아저씨가 슬쩍 내게 말을 건넸다. 미치. 미치예요. 아아, 그래. 그래서 내가 너에게 미쳤다고 말을 했었지. 네에. 근데 전 미치진 않았어요. 그냥 미치일 뿐이에요. 음, 그래. 하지만 좀 특별한 이름이구나. 네에. 미카엘 같은 거랑 연관된 건 아니에요. 음, 그렇구나. 그렇다면 미치는 무슨 뜻이니? 미치는 그냥 미치인데요. 별 뜻은 없어요. 음, 그렇구나. 아저씨는 다시 담배에 불을 붙이고 대화를 끝내겠단 듯 자세를 고쳤다. 등 돌린 아저씨의 넓은 등짝이 우스워 보였다. 나는 아저씨의 담배를 빌려 등짝에 무어라 쓰고 싶었다. 등신이라고. 그때 아저씨 이름을 물어보면 좋았을 걸. 아직도 나는 아저씨 이름을 모른다. 장씨, 김씨, 윤씨, 최씨. 개중에 하나겠지. 여하튼 내가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성씨일 거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아저씨의 두툼한 손가락과, 출렁이는 뱃살, 수염자국이 난 얼굴피부뿐이다. 정수리 근처가 조금 휑한 거나 금이빨로 된 어금니가 하나 있다는 것, 배꼽부터 무성한 털이 하반신 전체를 뒤덮고 있다는 것과 생각보다 발이 아담한 것, 그리고 오른쪽 팔뚝에 개에 물린 자국 같은 게 있다는 것까지. 아저씨의 흉터는 곧 아저씨의 이름이었다. 아저씨와는 일주일에 두어 번 정도 만났다. 만나는 장소는 서울 전역. 아저씨는 최대한 겹치지 않도록 고심하여 장소를 물색하는 것 같았다. 한 번도 같은 동네, 같은 모텔을 반복해서 간 적이 없었다. 생각보다 서울은 넓었다. 구석구석 늘어선 골목과 로터리가 답답할 정도로 복잡했다. 위로 세우고 벙커를 만들고, 한정된 공간의 쪽수를 넓히거나 한 칸짜리 공간을 좁히거나 하는 식으로 자꾸만 넓어져 가는 서울. 뚝딱뚝딱 완공이 끝나면 어디에선가 증축이 시작되고, 어딘가가 매끈해지면 다시 어딘가가 더럽혀졌다. 더럽혀진 부분을 메우는 동안 또 어딘가가 파괴되고 무너져 갔다. 할아버지는 폭설이 내리던 날, 보도블록에서 미끄러져 죽었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 병원으로 후송된 지 십 칠 분 만에 사망선고를 받았다. 가족들은 오래 살다 가셨으니 여한 없으시리라 판단, 호상이라 여기며 잔칫집처럼 장례를 치렀다. 여기저기서 웃고 떠들고 화투 패를 돌리고 거나하게 취해 노래를 불러대고. 삼일 중 이따금씩 곡소리가 들렸으나 그것도 매우 형식적이었다. 하하호호 웃다가 누군가 곡소릴 내면 얼마간 따라 울어주고, 딸꾹질 멈추듯 뚝 그치면 다시 하하호호하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처음 보는 광경에 놀란 내가 밖으로 빠져나와 교복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낸 순간, 아버지가 홀연히 담배를 물며 밤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서울에서 보는 별은 참 폼이 안 나. 아빠는 소주가 담긴 종이컵을 조심스레 한 모금씩 마셨다. 아빠의 왼손에 달린 담배가 빨간 불씨를 태우며 양복바지를 위협했다. 그거 탈 거 같은데. 내가 말했지만 아빠는 듣지 못했다. 염병할 양반. 보도블록에서 고꾸라지기는. 아빠는 색색의 벽돌이 지그재그로 놓인 보도블록을 얼마간 쳐다보다가 가래침을 뱉었다. 카악, 퉤. 아직 녹지 않은 눈에 가닿은 가래침은 희부연 노란빛을 풍겼다. 아빠는 다 태우지도 않은 담배와 함께 종이컵을 집어 던졌다. 소주가 바닥을 치고 튀었다. 아빠는 불콰해진 얼굴을 하고 다시 식장 안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아저씨에게 문자를 넣었다. 아저씨 뭐해요. 그러나 답장은 오질 않았다. 실은 한 번도 먼저 연락해 본적이 없었다. 뭐하냐고. 역시 묵묵부답. 차라리 보내지 말 걸, 두 번씩이나 씹혔다. 쪽팔리게.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문자가 도착했다. 미친이구나. 오늘 만날까? 미친이라니, 내가 분명 미치지 않았다고 했을 텐데. 미친 아저씨. 나는 눈에 젖은 운동화 끈을 고쳐 매고 곧장 아저씨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내가 병원 앞에서 택시를 잡으려고 서성이는 동안 아빠는 병원 건물 귀퉁이 어딘가에서 토를 하고 있었다. 아빠는 대충 토하는 것을 마치고는 보도블록에 그대로 고꾸라졌다. 얼굴 표면이 토사물 범벅이었다. 아빠의 긴 속눈썹에 연주황색으로 변한 실파가 붙어 있었다. 더럽게시리. 나는 다시 대로변으로 눈길을 돌렸다. 택시는 쉽게 잡히지 않았고 나는 얼마간 더 병원 앞에 서 있어야 했다. 한쪽 손을 기계처럼 흔들면서 무심코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빠 말대로 별 몇 개가 우스운 크기로 떠 있었다. 저게 무슨 별이야. 그러는 사이에 택시가 잡혔다. 어디 가십니까? 하고 물어오는 택시 아저씨에게 별 보러요, 라고 말할 뻔했다.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삼일 내내 나는 아저씨를 만났다. 만나서 하는 일이라곤 섹스가 전부였고, 섹스가 끝나고 치르는 비릿하고 울적한 냄새들을 소멸시키는 일에 신경 쓰느라 내 가방 속에 구겨져 있을 교복 같은 건 생각하지 않았다. * 아저씨의 아내가 임신을 했다는 말을 듣고 나는 손가락으로 시트자락을 빙글빙글 말았다가 풀었다가를 반복하면서 어떻게 대꾸를 해야 될까 하는 생각보다는 어떻게 하면 아저씨에게서 아내 얘기를 그만 들을 수 있을까에 대해서 고민했다. 왜 애를 가졌어요? 내가 아저씨 배꼽에 손을 집어넣고 꼼지락거리며 물었다. 아저씨는 간지러웠는지 실실 웃으며 좌우로 몸을 배배 꼬았다. 내가 가진 건 아니고 아내가 가진 거지. 아저씨는 말했다. 그렇지만 아저씨 꺼가 필요하잖아요. 음, 그렇긴 하지만 뭐 그거랑 그거랑 같은 일로 봐서는 좀 그렇지. 그거랑 그거랑 원래 같은 거 아니에요? 그걸 해야지 그걸 할 수 있잖아요. 에이, 하지만 언제나 그걸 하려고 그거 하는 거 아니잖아. 아아, 하긴. 우리도 그거 하려고 그거 하는 거 아닌 것처럼요? 으응, 그래 맞아. 골치가 아픈 일이지, 그거는. 우리는 너무나 많은 그거를 사용했고, 나중에 가서는 굳이 그거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에서까지 그거 타령을 했다. 그러다가 대화의 종반부에서는 그거가 무엇을 뜻하는지, 어디에서부터 그거를 그거로 불렀는지, 그거가 그거가 아닌 다른 그거인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부랴부랴 대화를 마치고 다시 등을 돌려 누웠을 때, 아저씨의 등과 내 등이 맞닿았다. 나는 차갑고 아저씨는 뜨겁다. 섹스를 하고 나면 아저씨가 차가워지고 내가 뜨거워진다. 척추를 나란히 두고 우리는 열과 냉을 반복적으로 옮겼다. 열탕과 냉탕을 번갈아 가는 기분이었다. 아저씨도 참 후졌다. 내가 말했다. 아저씨의 등줄기가 움찔했다. 글쎄 내가 만든 게 아니고 아내가 만든 거라니까. 아저씨가 발로 내 종아리를 간질였다. 굳은살이며 티눈이 박인 피부 표면이 까끌까끌했다. 어떻게 하면 애를 낳을 생각을 해요? 너무 구려. 너무 너무 구려.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어떤 시대기는, 잘 먹고 잘사는 시대지. 너무 구려. 태어나는 일 자체가 구린 시대예요, 지금 이 시대는. 미치. 너는 너무 어린데, 너무 많은 걸 봤어. 그러니까 지금 이러고 있잖아요. 씨발. 나는 울먹였다. 아저씨가 발로 장난치는 것을 멈추었다. 다시 몸이 차가워지는 것 같았다. 그 애 낳으면 나 꼭 보게 해줘요. 음, 그래. 그럴 수 있다면 뭐, 그렇게 해보지. 아저씨는 말을 이으며 침대를 빠져나갔다. 어디가요? 똥 누러. 아저씬 왜 만날 그렇게 똥을 싸요? 모르겠어. 난 너만 보면 똥이 마려워. 아내 앞에서는요? 집이건 회사건 똥 싸는 일이 고역인데, 난 너만 보면 똥구멍이 빠져버릴 거 같아. 나는 킥킥대며 웃었다. 똥을 싸고 싶어 재빠르게 화장실로 가는 아저씨의 뒷모습이 사랑스러웠다. 나만 보면 똥이 마렵다는 아저씨. 나는 또 한번 아저씨에 관한 흉터를 진하게 새겼다. 똥냄새를 풍기며 침대로 돌아온 아저씨와 뒹굴다가 말고 문득 할머니 생각이 났다. 여든 여덟의 할아버지와 함께 육십 년을 살아온 할머니. 할머니는 일흔 일곱. 열한 살 연상의 남편을 마주 대하며 겪었을 무수한 고통을 유순한 고집과 무지한 강직함으로 이겨낸 할머니.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삼 년 전에 서울로 올라왔다. 평생 동안 밭을 일구고 소를 키우며 지냈던 고향을 저버린 것은 할머니의 류머티즘 관절염이 심해진 탓이었다. 밭을 안 일구면 되지 않냐, 그냥 일 안 하고 시골에 계속 계시면 안 되냐, 하고 심술을 툴툴 부린 내게 엄마는 꿀밤을 먹였다. 네가 시골에 가서 한 번도 살아보질 못해 이러는구나. 시골에 산다는 것 자체가 일이다. 일을 안 하고 살 수 있다는 개념 자체가 없는 곳이야. 등불이 없는 동굴 같은 곳이라고. 그렇지만 친하지도 않은 어른들과 함께 부대껴 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걱정 마. 따로 모실 거니까. 따로 사는 데엔 나보다 엄마 몫이 더 컸다. 아빠는 미적지근하게 그러지 뭐, 하며 우리 집 근처에 값이 싼 아파트를 골라 전세계약을 했다. 십육 평형 아파트는 지은 지 이십 년이 넘었다. 군데군데 갈라진 틈새며 월마다 꼬박꼬박 작동 점검을 하는 엘리베이터가 기괴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것 때문에라도 할머니 집에 잘 가지 않았다. 가끔 식용유나 세제 같은 걸 사들고 가는 아빠에게 거기 귀신 나올 것처럼 음산해, 라고 말하면 아빠는 내 콧잔등을 쿡 치면서 노인네들 잠자리 뒤숭숭하게 함부로 말 놀리지 말라고 대답했다. 그깟 귀신, 어차피 동년배들 아니겠어? 속으로 나는 생각했다. 할머니 집 전세계약이 얼마 안 있어 끝날 참이었다. 재계약 여부에 대해 곰곰이 따지고 있던 엄마는 되레 계약기간 전에 죽어버린 할아버지를 조금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또 조금 원망하기도 했다. 엄마는 짐들이 가득 들어찬 다용도실을 대충 비워내고 할머니가 덮을 이불을 마련했다. 할머니는 풀지 않은 짐짝처럼 더욱 몸을 웅크리며 집으로 들어왔다. 때때로 자정에 가까운 시간, 내가 비릿한 정액 냄새를 풍기며 집으로 들어오면 건넌방에 있던 할머니가 빠끔히 문을 열고 나를 들여다봤다. 내가 왜요? 라는 기색으로 노려보면 이내 주춤거리는가 싶게 눈을 피하다가는 언제 왔는지 모르게 다시금 내 쪽을 살폈다. 내가 한 번 더 뭘 봐요? 라는 표정으로 찌릿, 눈빛을 쏴주면 그제야 다 알겠다는 듯 체념한 얼굴로 방문을 닫았다. 기분 나빠. 내가 닫힌 방문 틈새로 들릴 만큼 크게 말했다. 그럼 방문 너머로 할머니가 쪼그라든 풍선처럼 한숨을 쉬는 것이 느껴졌다. 그럴 때마다 장례식장에서 보았던 별 몇 개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옹졸하게 쪼그라든 것이 언젠가는 점점 작게, 그보다 더 작게, 그래서 결코 보이지 않을 것처럼 아득해질 것만 같았던 별들. 마치 할머니의 쪼그라든 유방처럼. 너네 엄마니까 네가 알아서 해. 안방에서 언성 높이는 소리가 들렸다. 구질구질한 부부싸움이 또 시작됐다. 카악, 퉤. 아빠의 가래침 뱉는 소리가 들렸다. 이게 어디서 뱉어 진짜? 엄마가 이전보다 한 톤 높게 소릴 질렀다. 카악, 퉤. 카악, 퉤. 의식적으로 가래를 뱉다가 사래 걸린 아빠가 연신 밭은기침을 토했다. 조금 과장이다 싶게. 나는 방밖으로 나가볼까 하다가 귀찮아져서 그냥 침대에 누웠다. 모텔과는 다른 차원의 이불을 손끝으로 매만지다가 말고 할머니가 궁금해졌다. 엄마 아빠는 아무래도 버려진 짐짝처럼 놓인 할머니 따위는 신경 안 쓰는 것 같다. 미친 엄마 아빠. 나는 방문을 열고 건넌방에 있는 할머니를 살핀다. 방문이 미세하게 열려 있다. 아마도 할머니가 직접 살짝 문을 열어 놓았을 터. 문과 문턱이 아귀가 딱 맞게 붙어 있지 않고 약간 틈을 벌리고 있다. 그 미세한 틈처럼 할머니는 숨을 쉬고 있는지 몰랐다. 사방이 막힌 곳에서, 끝없이 유입되는 물세례에 허덕이듯이. 할머니 서럽겠다. 짝이 없으니 얼마나 비참하겠어. 네 아저씨는요? 아저씨의 귓불을 빨면서 내가 물었다. 그건 여자에게만 국한된 일이야. 남자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워. 아예 머릿속에 그런 게 없어. 이 사람 없으면 죽겠다 싶은 그런 게. 결혼 왜 했어요? 내가 묻자 아저씨는 뜸을 들였다. 글쎄, 돈을 모아야 하니까. 그리고 어쨌든 옆에 사람이 있어야 좋지 않겠어? 남자란 게 그래. 챙겨주고 입혀줄 사람이 꼭 필요하지. 좆나 후졌네, 남자들이란. 내가 말을 마치자 아저씨가 깔깔 웃었다. 뭐가 웃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기분이 나빴다. 미친 아저씨. 뭐 이런 게 다 있지? 덜 말린 해초처럼 무성한 아저씨의 풀숲을 헤치다 말고 나는 입을 뗐다. 입술에 빳빳한 음모가 달라붙었다. 에이, 좀더 해주지 그래. 아저씨가 눈을 감은 채 말했지만 나는 그냥 일어났다. 반투명한 유리 칸막이로 된 화장실로 들어가 온몸을 빡빡 문질러대며 샤워를 했다. 아저씨가 따라 들어왔다. 에이, 미치. 섭섭하게 왜 그래. 아저씨가 내 팔뚝에 묻은 거품을 닦으면서 품에 안으려 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샤워기를 아저씨 방향으로 틀었다. 뜨거운 물줄기가 아저씨 살갗에 닿았다. 앗 뜨거워. 아저씨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오늘은 안 할래요, 피곤해요. 저리 가요. 이제 만지지 마요. 아저씨는 몸에 묻은 물기를 털고 아쉬운 표정으로 나갔다. 내가 샤워를 마치자 아저씨는 침대에 걸터앉아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미치. 앞으로 삼주 정도 못 봐. 나는 왜냐고 물어보려다 그냥 말았다. 아내랑 여행을 갈지도 모르겠어. 아무래도 애 낳기 전에 좀 돌아다녀야 될 것 같아서. 애가 나오면 피곤해지잖아. 나는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매만지며 물기를 닦았다. 외국을 다녀올까 해. 연차랑 휴가 당겨쓰니까 삼주 정도 여유가 생기더군. 나는 대충 로션을 찍어 바르고 옷을 챙겨 입었다. 가방 속에 든 교복을 입을까 하다가 그냥 관두었다. 아내가 더블린에 가고 싶다네. 난 애초에 더블린이 어디 박혀 있는 덴지도 몰랐다니까. 그냥 동남아 일대나 둘러보고 올 것이지, 무슨. 대충 스타킹까지 신었다. 주머니를 쑤셔 담배를 찾았다. 아저씨가 담배를 건넸지만 무시했다. 삼주 뒤엔 웃으며 보자. 내가 널 좋아하는 건 명랑해서야. …… …… 삼주 동안 똥 못 싸서 어떡해요? 그러게. 그걸 생각 못 했네. 아저씨는 정말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했다. 그 모습에 어이가 없어 픽 웃었더니 아저씨가 갑자기 나를 들어 침대 중앙으로 눕혔다. 아직 화 안 풀렸거든요? 내가 말해도 묵묵부답. 아저씨가 좋아하는 보라색 원피스가 내 몸에서 멀어졌다, 부득이하게. 아저씨는 이전보다 더 맹렬하게 내 몸 이곳저곳을 들쑤셨다. 그때 처음으로, 진짜 신음소리라는 게 뭔지 알 것 같았다. 다음날 일어나보니 엉덩이에 푸른 멍이 흉터처럼 들어 있었다. 언제고 지워질 것이 빤한 흉터가. * 아저씨는 정말 삼주 넘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나는 오랜만에 학교엘 갔다. 책상에 엎드려 잘까 하다가 그냥 수업을 들었다. 의자에 등을 펴고 앉아 있었지만 역시 좀이 쑤셨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수업 종이 쳤다. 삼삼오오 모여 있던 애들이 자리로 가 책상을 정돈했다. 아직 선생이 오질 않았다. 틈을 타 가방을 몰래 들고 빠져 나왔다. 이제 어디든 갈 곳을 찾아야 했다.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데 갑자기 누가 말을 걸었다. 쎄미였다. 나도 데려가. 미친년. 귀찮게시리. 우리는 시내로 나가는 버스를 탔다. 어디 갈 건데? 몰라. 뭐야, 시시하게. 그럼 나 따라와. 그러든지. 우리는 번화가 로터리에서 내렸다. 쎄미는 지하철역으로 나를 데려가더니 역사 안 물품보관함에서 옷을 꺼냈다. 초록색 미니 원피스였다. 넌 갈아입을 거 없어? 나는 가방 안에 든 보라색 민무늬 원피스를 꺼내 보였다. 우리는 쌍방울자매처럼 원피스를 맞춰 입었다. 쎄미가 아이라이너와 립스틱을 주었다. 나는 어설프게 아이라인을 그리고 립스틱을 발랐다. 우리는 피시방으로 갔다. 모니터 한 대를 앞에 두고 나는 쎄미가 게임하는 걸 지켜보다가 졸았다. 얼마 안 있어 쎄미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이제 나가자. 시계를 보니 일곱 시였다. 번화가 로터리는 반짝이고 있었다. 온갖 조명 세례에 비둘기들은 나뭇가지 위로 종적을 감췄다. 보도블록은 연이어 뱉은 껌들과 담배꽁초로 넘쳐났다. 쎄미는 로터리 변방에 있는 건물로 나를 인도했다. 색이 누런 간판에 조명도 시원찮은 것이 딱 학생들이 숨어 술 마시기 좋은 곳이었다. 우리가 안으로 들어가자 짜리몽땅한 할머니가 의자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손짓으로 인사를 했다. 쎄미가 샐쭉이 웃어 보이며 익숙하게 소주 두 병과 부대찌개를 시켰다. 할머니는 그제야 태연히 일어서 부엌으로 들어갔다. 나는 가방 안에 있던 담배를 올려놓고 주변을 살폈다. 태반이 고등학생들처럼 보였다. 잘 하지도 못 하는 술을 마시며 저들끼리 신나게 놀고 있었다. 쎄미는 재떨이를 제 앞에 가져다 놓고 그새 담배를 두 대나 피웠다. 나도 라이터를 꺼내 담뱃불을 붙이려는데 어디선가 쎄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쎄미, 오랜만이다. 쎄미가 남자애 둘에게 알은 체를 하며 나를 쳐다봤다. 옳다구나, 같이 놀자는 소리로군.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키가 큰 자식이 쎄미의 옆자리로 가 앉았다. 뒤이어 눈썹이 숯덩이처럼 진한 남자애가 내 옆자리에 비집고 들어왔다. 그새 할머니가 전골냄비가 올라간 부르스타를 들고 와서는 퉁명스레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쎄미와 그 옆에 앉은 꺽다리가 계속해서 술잔을 기울였다. 취하려고 작정을 한 것 같았다. 나는 수저를 가지런히 정리하는 숯덩이 눈썹에게 인사를 하고는 다시 담배를 피웠다. 자박한 국물에 퐁당퐁당 빠져 있는 햄 조각과 두부, 콩나물과 양파. 찌개는 어쩐지 팔팔 끓여도 맛있을 것 같진 않았다. 앞에 두 사람이 기어이 취한 척을 하며 서로 부둥켜안을 때쯤 나는 수저를 들어 국물을 맛보았다. 그랬더니 옆의 숯덩이도 냄비에 제 수저를 꽂았다. 나는 맥주에 콜라와 소주를 조금씩 섞어 숯덩이에게 주었다. 숯덩이가 고마워하며 답례로 자신도 타주겠다고 했다. 각자 서로가 타준 폭탄주를 마셨다. 어쩐지 머리가 핑 도는 기분이었다. 쎄미와 꺽다리는 팔짱은 물론 어깨동무며 심지어는 서로에게 입술까지 드밀며 야단이었다. 소주를 일곱 병쯤 마셨던가. 그 와중에도 쎄미가 자리를 뜰까봐 손을 꼭 부여잡으면서 집에 바래다주겠다는 꺽다리가 숯덩이에게 눈질을 보냈다. 무언의 암시 같은.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거행된 약속이 있었던 듯싶다. 쎄미는 비에 젖은 이불처럼 꺽다리의 팔뚝에 안긴 채 실려 나갔다. 이윽고 숯덩이와 나만 남았다. 숯덩이가 머리를 긁적이며 쭈뼛거렸다. 우리도 일어나지 뭐. 벌써 가게? 그럼 더 있으려고? 시간 별로 없어. 밤은 못 새. 숯덩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끔벅였다. 유치한 반응. 어디로 갈 건지는 정했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숯덩이. 아, 이래서 어린애들은 귀찮다. 다 정한 거 알고 있거든. 모텔로 갈 거 아니야? 일 치르곤 만나 해장할 거 아니었어? …… 그리곤 쎄미랑 나랑 누구 가슴이 더 컸는지 낄낄거리겠지, 뭐. 안 봐도 빤해. …… 빨리 계산하고 나와. 너구리굴처럼 피어오르는 담배연기 속을 헤집고 나와 건물 앞에서 숯덩이를 기다렸다. 숯덩이는 쭈뼛거리며 나왔지만 안절부절 갈피를 못 잡았다. 앞장 서. 내가 말했다. 그래도 돼? 어, 원래 이러려고 했잖아. 내가 인상을 쓰자 숯덩이가 이내 내 손을 잡았다. 손은 잡지 마. 숯덩이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냥 말자. 숯덩이가 말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가장 가까운 영화관에 들어갔다. 심야시간대에 하는 할리우드 영화를 보다가 잠시 졸았다. 조는 내내 숯덩이가 내 손목을 만지작거렸다. 박력 없기는. 영화를 다 보고 나와 숯덩이가 팝콘봉지를 쓰레기통에 버릴 쯤에 나는 숯덩이의 팔목을 거세게 붙잡고는 그를 이끌었다. 어디 가려고? 심심한데 그냥 DVD방이나 가든지. 우리는 영화관에서 가장 가까운 DVD방으로 들어섰다. 프런트에서 계산을 하는 숯덩이 몰래 아저씨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러나 숯덩이와 몸을 섞고 난 뒤에도 아저씨에게선 답문이 없었다. 정말이지 짜증나. 나는 검은 소파에 누워 말했다. 숯덩이가 휴지를 찾아 두리번거리다 말고 멈칫했다. 그리곤 내 쪽을 쳐다보며 눈을 흘긋거렸다. 화면에는 에메랄드빛 바닷물이 출렁거리는 게 비쳤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러닝타임이 긴 시리즈물을 선택한 것이 후회가 됐다. 숯덩이가 슬금슬금 내 옆에 드러누웠다. 너 이만 가봐. 싫은데. 그럼 걍 닥치고 가만히 있든지. 어차피 나도 뺑이 치는 거야. 오전 아르바이트하러 가야 되거든. 학교는 안 다니니? 너야말로 학교 다니는 년이 이러고 다니냐? 등신. 너만큼 구린 애 아니거든, 나. 웃기고 있네. 됐다. 그만 말해, 입만 아파. 딱 봐도 사이즈 나와. 나는 뭐 누나들이랑 안 놀아본 줄 아냐. 뭐라고? 나는 울컥 화가 났다. 나는 대충 윗옷을 걸쳐 입고 DVD방을 나왔다. 숯덩이는 자는 건지 자는 척을 하는 건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새벽 다섯 시였다. 거리는 아직 깜깜했다. 추위 탓인지 사람은 별로 없었다. 드문드문 건물 앞 계단에 누워 토사물을 흘리며 잠을 자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으나 거리는 한적했다. 나는 터벅터벅 지하철 역 안으로 들어갔다. 지하철은 아직 운행을 하지 않았다. 나는 내려진 셔터에 기대고 앉아 핸드폰을 꺼냈다. 어쩐지 발가벗은 느낌이 들었다. 숯덩이는 내 몸 이곳저곳을 꾹꾹 눌러주던 아저씨의 손길을 느낀 것일까. 내 몸에 남겨진 아저씨의 냄새를 맡은 것일까. 쪽팔리게, 정말 후지게 자꾸만 눈물이 비어져 나왔다. 아저씨를 만난 건 레코드 가게에서였다. 아담했지만 역사가 오래된 레코드 가게는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했다. 섹션별로 잘 나눠진 음반들은 가게 주인의 손을 거쳐 가지런히 정리되었고 새로운 주인에게로 입양됐다. 주인은 내가 오면 리패키지 앨범이나 베스트 앨범, 내가 모르는 희귀 앨범을 꺼내 들려주곤 했다. 그곳에서 나는 아저씨를 보았다. 존 레넌의 사망주기 30년을 맞아 아저씨는 비틀스의 앨범을 사러 왔다고 했다. 주인은 LP로 된 비틀스의 마지막 앨범을 꺼내주었다. 아저씨는 보물 다루듯 LP를 매만졌다. 그거 복사본 같은데. 내가 다가가 이 말을 전하기 전까지는. 아저씨는 내 쪽을 살피며 무슨 상관이냐는 듯 쳐다보았다. 제가 아는데요. 20년 전에 들어온 건 정식판 거의 없어요. 다 해적판이지. 그리고 진퉁이라 쳐도 몇 억 넘을 걸요? 그냥 작년에 나온 리마스터 앨범 사세요. 저 같으면 그거 안 사요. 내가 말을 마치자 아저씨는 피식 웃으며 LP를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계산을 마친 아저씨는 앨범을 구경하고 있는 내게 다가와 말했다. 이봐, 진퉁. 같이 나가지? 그리고 우리는 곧장 모텔로 향했다. 미치. 론리하츠클럽이란 밴드 아니? 비틀스 노래 제목이잖아요. 후추상사의 밴드. 물론 한국에 그 제목을 딴 인디밴드가 있단 건 알아요. 아니. 론리하츠클럽이란 밴드가 낸 책이 있어. 그 책에 수록된 단편들은 모두 비틀스의 노래 제목으로 이루어져 있지. 그 속에 든 여자주인공 이름도 역시 비틀스의 노래에서 따온 거야. 루시나 리타 같이. 그런데 정말 신기한 건 이 밴드가 남아프리카 출신들이란 거야. 그래서 번역본을 구하긴 힘들어. 그 튼실한 내용의 책은 읽은 사람들마다 모두 엄지를 치켜든다고 해. 더 신기한 건 뭔 줄 아니? 소속된 밴드 팀원이 단 한 명이란 거야. 뭐야. 나머지는 다 세션이에요? 그 밴드는 공연 안 해요? 응. 그 밴드는 단 한 번도 공연을 한 적이 없어. 그 밴드의 업적이라곤 책 낸 게 끝이야. 그게 뭐가 밴드예요. 그냥 작가지. 그러게. 하지만 그 사람이 우기면 밴드겠지. 마치 네 이름이 미치가 아닌데도, 네가 줄곧 미치라고 우기는 것처럼 말이야. * 아침 7시가 다 돼서야 집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열고 몰래 방 안으로 들어오려는데 어쩐지 고요했다. 방문을 열고 둘러보니 집엔 아무도 없었다. 꺼놨던 핸드폰의 전원을 켜니 아니나 다를까 엄마의 문자가 잔뜩 와 있었다. [미친년. 집에 들어오기만 해.], [네 방에 있는 CD 다 갖다 버리기로 결단 내렸다.], [평생 네 멋대로 하다가 죽어. 여한 없이 그렇게 살아라. 부럽다.], [엄마아빠 오늘 등산 가니까 네가 할머니 밥 좀 챙겨드려. 것까지 안 하면 넌 정말 죽는다.] 나는 할머니 방의 방문을 열어보았다. 할머니는 축 늘어진 미역처럼 장롱에 몸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기척도 못 느끼셨는지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내가 큰 소리로 두어 차례 할머니를 부르자 그제야 어깨를 움찔하는 할머니. 저 왔어요. 밥 드셔야죠. 할머니는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아차. 원피스를 교복으로 갈아입는다는 걸 깜빡했다. 생각해 보니 허접한 실력으로 그린 아이라인도 엄청 번져 있을 것이었다. 밥 챙겨드릴게요. 좀만 기다리세요, 하고 방문을 닫으려는데 할머니가 허공에 손짓하는 것이 보였다. 오라는 눈치인가 싶어 나는 대충 눈 밑에 번진 아이라인을 손으로 닦고 할머니 앞으로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니 할머니의 주름이 징그러울 정도로 많았다. 내 어깨보다 한 뼘은 더 작아 보이는 할머니의 어깨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았다. 할머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내 손을 잡았다. 할머니의 손은 사람의 피부라기엔 어색할 정도로 꺼끌꺼끌했다. 뭐 해드릴까요? 정적을 깨고자 몇 차례 여쭈어도 할머니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몇 달 전 백내장 수술을 한 할머니의 눈동자는 부옇게 흐려 보였다. 나는 질문하는 걸 포기했다. 할머니는 다시 장롱에 머리를 기대었다. 할머니는 조만간 부서질 박제나비 같았다. 할머니의 눈가와 손, 입술에 자글자글한 주름이 생각보다 더 깊었다. 할아버지와 함께 계실 때도 이렇게 주름이 많으셨나. 이곳에 와 있는 것이 가뭄처럼 답답하고 숨 가쁠 할머니. 할머니는 아침마다 이렇게 장롱에 머릴 기대고 무슨 생각을 하실까. 살아 있긴 한 걸까. 살아가고 있는 걸까, 살아지고 있는 것일까. 희정아. 할머니가 내 이름을 불렀다. 잘 지내야 된다. 단디 몸 챙기고. 매사 조심하고. 매사 감사하고. 알제. 어쩐 일인지 눈꺼풀이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방으로 돌아오니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도대체 왜 우는 걸까? 이해가 안 됐으나 눈물은 더 솟구쳤다. 접을 수 있다면 잠깐 시간을 접어놓고 싶다. 정말 구리고 후지다. 나는 집전화기로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가 받아도 상관없다. 어떻게든 끝을 내야 한다. 아저씨의 아내가 받는다면 나는 다 폭로할 것이다. 아저씨와 나는 비틀스를 공유한 사이라고요. 론리하츠클럽이란 밴드 아세요? 남아프리카에 있는 원맨밴드를 아시냐고요. 그런 것도 모르면서 임신은 왜 해요? 그렇게 안정적인 게 좋으면 차라리 소파랑 결혼을 하셨어야지. 아저씨는 그런 남자가 아니라고요. 신호가 계속 가는 동안 나는 쉴 새 없이 중얼거렸다. 아저씨가 받는다면 이제 아저씨와는 정말 끝이라고 말해야지. 아저씨의 똥배를 참아주는 것도 한계가 있어요, 라고. 아저씨도 똑같아. 부인 앞에선 똥도 못 눈다면서 여행은 왜 같이 가요? 왜 나한텐 아저씨 이름도 안 알려줘요? 치사하게 산다. 치사 빤쓰다, 정말…… 그리고 달칵. 수화기 너머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네, 한창길입니다. 아저씨 목소리다. 한창길이라는 이름은 어색하지만 이건 분명 아저씨의 목소리다. 내가 수없이 핥았던 목에서 나는 그 소리 맞다. 허나 나는 한창길이란 이름을 모른다. 그런 이름일랑 들어본 적도 없다. 말씀하세요, 누구시죠? 그러니까. 저는. 저는요, 아저씨. 저예요, 미치…… 그러나 나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나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곤 아저씨의 번호를 지웠다. 아마 얼마 안 있어 아저씨에게 연락이 올 것이다. 내게 시간과 장소를 문자로 보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저씨의 번호를 지웠다. 아뿔싸. 이렇게 깔끔할 수가. 잠을 자는 동안 모든 걸 지워야지. 아저씨의 배꼽이 따뜻했다는 것 정도만 남겨두고. 다른 건 다 열여덟이라는 전투의 군사기밀이라 생각하고 블랙박스에 가두어 사장시켜야지. 나는 보라색 원피스를 입은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이윽고 집전화가 요란스레 울리기 시작했다, 한참동안이나. 짜증나게. <끝〉
  • [서울신문 신년특집] 한국 패션 세계화의 원년 - 디자이너에게 묻다

    [서울신문 신년특집] 한국 패션 세계화의 원년 - 디자이너에게 묻다

    2010년은 ‘국민 디자이너’로 불리는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이 패션 디자인을 시작한 지 꼭 30년이 되는 해였다. 그는 우리나라가 외환위기에 허덕이던 1997년 처음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패션 전시회를 열었다. “파리에서의 첫 전시회 때 막 옷을 진열하고 있는데 북한 인공기가 걸려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깜짝 놀라 전시 주최 사무실로 가서 태극기로 바꿔달라고 했지요. 당시만 해도 우리로서는 조심스러운 때였으니까요.” 파리 반응에 고무되어 독일에서 연 전시회에서는 한창 옷을 주문하다가 갑자기 접고 나가는 구매업자도 있었다고 한다. 일본 디자이너로 착각했던 것이다. ●97년 사비 털어 해외전시… 이젠 정부지원 활발 그가 해외 진출을 할 때만 해도 디자이너가 사비를 털어 전시회와 패션쇼를 열었지만 최근에는 문화콘텐츠진흥원, 서울시청, 지식경제부 등에서 국가적 지원이 활발해졌다. “젊은 한국 디자이너들은 외국 디자이너와 같이 소통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인터넷으로 다 연결되니까요. 패션은 국력과도 긴밀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경제선진국에서 패션 문화 선진국으로 나아갈 때지요.”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김이 세상을 뜬 뒤 이상봉에게 붙여진 ‘국민 디자이너’란 칭호는 과분하다는 것이 그의 심정이다. 앙드레 김이 청문회를 통해 패션 철학이 널리 알려졌다면 이상봉은 2006년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으로 젊은이들에게도 친숙한 디자이너가 됐다. 방송을 통해 한글 서체 등 우리의 전통을 현대화해서 패션에 접목한 그의 노력이 널리 알려졌지만 사실 한글 디자인은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 디자인을 시작했을 무렵인 1986년 인터뷰를 보니 한국 패션을 서구 패션과 접목시키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더군요. 1985년에 발표한 패션 화보도 백의민족, 태극기 등을 주제로 한 사진이 많았습니다.” 30여년 전의 자료를 최근에 다시 들춰본 것은 곧 출간될 아트북 때문이다. 이는 그동안의 외국 활동 등을 정리한 책이다. ●한글 서체 등 전통 현대화… ‘패션한류’ 이끌어 2009년 초반에 이상봉은 미국 뉴욕 첼시에도 사무실을 열었다. 딸 이나나씨가 전시장을 운영 중이다. 뉴욕 진출로 비욘세, 레이디 가가, 리한나 등 세계적인 스타들이 그의 옷을 입고 공식석상에 섰다. 특히 비욘세와 함께 ‘데스티니스 차일드’의 멤버였던 가수 롤런드는 수만명이 운집한 유럽 콘서트와 미국 최고의 스포츠 이벤트인 슈퍼볼 공연에 이상봉의 옷을 입고 올랐다. 언제든 필요하면 와서 노래를 불러주겠다고 할 정도로 롤런드는 이상봉 옷의 마니아다. 피겨 스케이팅 선수 김연아는 이상봉과 함께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있다. 김연아는 지난해 10월 처음으로 외국에서 열린 로스앤젤레스 아이스쇼에 이상봉의 옷을 입고 은반 위를 수놓았다. 이상봉이 후배 디자이너들을 위해 대중에게 부탁하는 것은 적극적인 응원과 지지다. “요즘은 본인의 열정과 노력만 있다면 해외 진출에 어려운 점은 없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갖고 나가는 게 중요하지요. 하지만 전통을 현대화하는 노력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이기에 응원이 많이 필요합니다.” 오는 2월 뉴욕 패션위크 기간에 열리는 ‘컨셉 코리아Ⅲ’에는 젊은 디자이너들과 함께 참여한다. ‘컨셉 코리아’는 한국 패션의 세계화를 위해 문화체육관광부 등이 마련한 프로젝트다. 지난 9월에는 곽현주, 이주영, 이진윤이 뉴욕 패션위크에서 그룹 패션쇼를 열었다. 이번에는 한국 패션을 좀 더 깊이 있게 알리는 발표회 등을 준비하고 있다. ●“패션 해외진출은 장기적인 도전 과제” “행사 준비를 위해 만난 문화부의 한 공무원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패션의 해외 진출은 끈기를 갖고 지속적으로 해야지 한두번 만에 승부가 나지 않는다. 몇 년의 계획을 갖고 장기적으로 도전해야 한다’ 100% 공감합니다.” 공무원들의 패션에 대한 시각이 고리타분하다는 편견에 대해서도 이상봉은 열린 자세를 보였다. 그들이 패션 전문가가 아니므로 충돌이 있을 수 있는 것은 당연하며, 설득과 대화를 통해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봉이 내다보는 대한민국 패션의 미래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우리나라에서 인정받으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디자이너가 될 수 있습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국내 디자이너들의 해외 진출기 “꿈을 펼치기에 한국은 좁 았죠” “외국 유명매장에 내 옷 걸리길…” “사실 뭐 아시아에서 한국을 빼고 중국 디자이너나 필리핀 디자이너, 하다못해 태국 디자이너까지 뜨는 이 마당에 더 이상 자존심 상해서 안 되겠어요.”(다큐멘터리 ‘구호’ 중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성복 브랜드 ‘구호’를 만든 정구호(48) 제일모직 전무가 2010년 2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헥사 바이 구호’의 첫 패션쇼를 준비하면서 남긴 말이다. 한국 패션의 첫 해외 진출은 1966년 고(故) 앙드레 김이 프랑스 파리 에펠탑 앞에서 연 패션쇼로 기억된다. 1956년 패션쇼라는 것 자체를 우리나라에 처음 선보인 노라노(72)는 1979년 미국 뉴욕에 진출했다. 디자이너들이 해외로 진출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남성복 디자이너 우영미(51)는 1997년 파리 프레타포르테에서 패션 전시회를 열었다. 한국에서의 성공만으로 만족하기에는 야망이 컸다고 우씨는 밝혔다. 현재 우영미의 남성복이 판매되는 나라는 14개국에 이른다. 홍콩의 고급 백화점 하비 니콜스는 우영미의 매장과 옷을 전면에 내세워 백화점의 외관을 꾸밀 정도다. 2010년 1월에 발표된 유러피언 바이어스 리뷰(EUROPEAN BUYERS’ REVIEW)에서 우영미는 최고의 남성복 디자이너 순위 18위를 기록했다. 1위에 오른 디오르, 2위 돌체앤드가바나, 15위 구치, 17위 알렉산더 매퀸 등 세계적 디자이너와 비슷한 평가를 받은 것이다. 21살에 패션 디자인을 시작해 현재 ‘제너럴 아이디어’란 브랜드를 이끄는 최범석(33)은 2009년 1월 뉴욕에서 열린 트레이드쇼에 참가했으며 이듬해 2월에는 당당히 뉴욕패션위크에 진출한다. 최씨는 “국내에서는 패션쇼를 많이 열었고, 이제는 모든 게 세계적으로 움직이는 세상 아닌가. 나 역시 트렌드를 맞추고 싶었다. 힘들겠지만 계속 두드려 그 문을 열고 싶은 오기도 있었다.”라고 처음 해외 진출을 결심한 계기를 설명했다. 세계 패션의 중심인 뉴욕은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최씨가 미국 패션 잡지사를 돌며 인사를 다니는데 대부분 동성애자인 직원들은 그도 역시 동성애자라고 생각해 엄청난 추파를 던졌다고 한다. 심지어 한 잡지사에서는 최씨가 게이가 아니라고 밝히자 직원들이 다 나가버리기도 했단다. 2010년 2월 열린 ‘헥사 바이 구호’의 첫 뉴욕 패션쇼도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쇼 당일에 40년 만의 폭설이 내렸고, 옷 몇 점은 희귀동물보호 관련 규정으로 세관에 묶여 결국 찾지 못했다. 쇼의 중심이었던 톱 모델 프레야 베하는 무대에 오르기 직전에 갑자기 심각한 통증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처럼 우여곡절을 무릅쓰고 그들이 뉴욕, 파리와 같은 세계적인 패션쇼 무대에 서는 것은 “외국의 유명한 매장에 나의 옷이 걸리기를 바란다.”는 최범석의 말처럼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한때는 일본인이 세계 패션 무대를 휩쓸었지만 현재 외국 유명 패션학교에는 한국 유학생의 수가 더 많다. 한국 학생들은 졸업 패션쇼에서 굳이 동양미와 한국적 전통을 가미하지 않은 작품으로도 1위에 오른다. ‘한류’가 있기 전에 한국인의 드라마에 대한 열광적인 사랑이 있었듯 디자이너들이 공통으로 당부하는 것은 우리 패션에 대한 우리의 애정이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제2자유로 전면 개통 14일로 연기

    당초 31일로 예정돼 있던 제2자유로 전 구간 개통이 2주 연기됐다. 경기도 제2청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 파주사업단은 폭설과 강추위로 공사에 차질이 빚어져 개통식을 연기했다고 이날 밝혔다. 이에 따라 파주 교하신도시와 서울 상암을 연결하는 제2자유로 전 구간(22.7㎞)은 오는 14일 오후 2시부터 개통된다. 제2자유로는 교하신도시 택지개발과 고양 킨텍스 광역교통개선대책의 하나로 1조 4792억원을 들여 건설되는 왕복 6차선 자동차 전용도로로 2008년 1월 공사가 시작돼 지난 7월 소송으로 차질을 빚은 고양 강매IC~서울 구룡교차로 4.8㎞를 제외하고 부분 개통됐다. 개통 연기는 폭설과 강추위에 따른 공사 차질 때문이다. 강매IC~구룡교차로 4.8㎞ 구간 공정률은 86%로 14일 개통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제2자유로가 개통되면 교하신도시는 물론 일산신도시 주민이 자유로를 우회하지 않고도 서울과 인천공항으로 갈 수 있어 경기 서북부 교통여건이 크게 개선될 전망이다. 장충식기자 jjang@seoul.co.kr
  • 황해 나홍진 감독 “잔혹한 현실 에둘러 표현할 필요 있나”

    황해 나홍진 감독 “잔혹한 현실 에둘러 표현할 필요 있나”

    올해 초 국내 영화 관계자들에게 기대작을 꼽아달라고 주문하면 어김없이 ‘황해’가 튀어 나왔다. 2008년 데뷔작 ‘추격자’로 관객 507만명을 동원하며 한국 스릴러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은 나홍진(36) 감독의 두 번째 작품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 지난 22일 마침내 뚜껑을 연 ‘황해’를 놓고 호평과 혹평이 엇갈린다. 이러한 가운데 ‘황해’는 개봉 5일 만에 관객 100만명을 돌파하는 등 뜀박질을 시작했다. 이번 주말 20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7일 서울 소공동 한 호텔에서 나 감독을 만났다. →100만명 돌파 소식에 일단 한시름 놨겠다. -그렇지 않다. 편집실에서 영화를 계속 보며 뿌듯한 지점, 아쉬운 지점을 짚어봤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으로 밀항한 구남이 살인 사건 뒤 경찰에게 쫓기는 2막 후반부가 가장 마음에 든다. →요즘 국내 스릴러가 불필요하게 잔인하다는 비판이 많다. ‘황해’도 같은 지적을 받는데. -잔인한 장면은 편집이나 관객의 상상을 유도하며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에두른 표현이 영화적으로는 옳지 않을 때가 있다. 청부 살인이 이뤄지는 순간은 잔혹하고 처참할 필요가 있었다. 살인귀의 존재를 증명할 필요도 있었다. →모든 장면장면에 디테일을 살리는 극사실주의가 돋보인다는 평이다. -배우가 놓여 있는 공간과 분위기를 생생하게 관객들에게 전달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다 보니 예기치 않게 대사 전달력이 떨어진다든가 카메라 초점이 나간다든가 화면이 어두워지는 부분이 나오기도 했다. →리얼리티를 추구하면서도 면가라는 존재는 비현실적이다. 관객들이 혼란스러워 하는 것 같다. -면가는 상황을 혼란스럽게 몰아가지만 영화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본질적으로 개입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일부러 비현실적으로 그리려고 했다. 관객들에게 면가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제공한 뒤 그런 모습이 과장일 수도 있겠다는 느낌을 준 채 빠져 나가려고 했는데 배우가 너무나 현실감 있게 연기를 해 괴물이 나온 것 같다. 김윤석 선배의 연기에 한 수 배우게 됐다. →‘추격자’와 닮은 꼴인 골목 추격전도 인상적이지만, 거대한 트럭이 넘어지는 차량 추격전이 압권이다. 가장 심혈을 기울였을 것 같은데. -하루 네 시간씩 일주일 정도 찍었는데 조건과 예산이 한정돼 조마조마한 마음에 힘이 들어간 것 같다. (차량 추격전보다) 배우들을 담아내는 장면이 더 어려워 외려 (이 부분에) 가장 공력을 들였다. →궁극적으로 영화를 통해 담아내려고 했던 이야기가 뭔가. 조선족이나 우리 사회의 어두운 현실인가. -조선족의 삶이나 우리 사회에 대한 은유들은 영화 곳곳에 넣었다. 표면적으로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인간은 누구나 다 똑같다는 것이다. 구남(하정우)과 태원(조성하)은 다른 캐릭터이면서도 같은 인물로 볼 수 있다. 살의를 느끼는 과정의 캐릭터가 구남이라면 살인 이후의 캐릭터는 태원인 셈이다. →모든 게 치정 때문이었다는 게 납득이 안 간다는 관객도 있는데. -방정식 같은 거다. ‘황해’에서는 치정을 예로 들었을 뿐, 다른 것을 대입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돈이다. 자유롭게 봐줬으면 한다. 영화의 완성은 관객이 해주는 것이다. 구남의 아내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엔딩 장면은 비현실적으로 구성했는데, 구남의 아내가 살아있기를 바라는 관객은 그게 현실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관객들에게는 구남의 환상으로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에 먹는 장면이 굉장히 많이 나온다. -먹는 장면이 ‘황해’를 시작한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추격자’ 촬영 전에 분식집에 갔다가 열 살쯤으로 보이는 아랍계 아이가 지저분한 작업복을 입고 덮밥을 먹고 있는 것을 봤다. 앞으로 움직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에너지가 필요하고 이렇게 보충하고 있다는 원초적인 느낌을 줬다. ‘추격자’가 끝난 뒤에도 그 이미지가 계속 남아 ‘황해’를 시작하게 됐다. →약 300일 동안 170회차 촬영을 했다. 도대체 필름을 어느 정도 사용했나. 비용이 불어나 제작자가 싫어했을 것 같다. 완벽함을 추구하기 때문인가. -필름을 어느 정도 사용했는지는 비밀이다. 하하하. 한 남자를 쫓아가는 영화라 그가 밟을 만한 땅이나 공간은 무조건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작업이 더뎠을 수도 있겠다. 촬영이 길어진 가장 큰 이유는 날씨 탓이다. 크랭크인(첫 촬영) 때 100년 만의 폭설이 내려 쉬고, 부산에 갔더니 보름 동안 비가 내려 또 쉬고, 이젠 됐다 싶더니 3~4월에도 눈이 내리고 그랬다. →데뷔작 ‘추격자’의 성공으로 이번 작업 때는 운신의 폭이 더 넓어졌을 것 같다. -일장일단이 있는 것 같다. 시나리오 쓸 때는 전작의 성공이 방해가 됐다. ‘추격자’가 이미 밟아 놓은 발자국을 피해 다니려고 애를 썼다. ‘추격자’ 때는 내 선택을 의심하는 배우나 스태프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의심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아니, 다른 생각이 있었더라도 말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덕분에 내가 스스로 의심해야 했다. →‘추격자’ 이후 스릴러 쏠림 현상이 두드러져 한국 영화의 다양성이 줄어들었다는 지적도 있는데. -최근 몇 년 동안 범죄들이 더 강력하고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 탓에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시선이 더 많이 간 때문이지 영화 한 편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인생의 영화’를 꼽자면. -그러한 작품은 너무너무 많아 한 편을 이야기하기가 어렵다. ‘황해’에 영감을 준 영화가 있다.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의 범죄스릴러 ‘프렌치 커넥션’(1971년)이다. 구체적인 장면보다 영화 전체의 거친 느낌이 좋았다. →하정우, 김윤석 등 ‘추격자’에 이어 함께한 배우와 스태프들이 많다. 다음 작품도 함께할 것인가. -‘황해’는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열정이 없었다면 완성이 불가능한 영화였다. 그들의 열정과 인내가 만들어낸 영화다. 크게 감사드린다. →‘추격자’ 때도 그렇고, 감독이 독선적이라 불화가 많았다는 소문도 있었는데.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루머에 신경쓰지 않는다. →차기작은 또 스릴러인가. -언젠가는 코미디를 해보고 싶지만 지금은 완전히 백지 상태다. 차기작을 고민해볼 수도 없을 만큼 진이 빠진 상태다. ‘황해’라는 제대로 된 임자를 만난 셈이다. 하하하. 글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中 발해만 기압골이 폭설 불렀다

    中 발해만 기압골이 폭설 불렀다

    지난 27일부터 30일까지 나흘간 연이어 서울 등 중부 지방에 쏟아진 폭설은 중국 동쪽의 발해만에 기압골이 깊게 형성돼 주로 겨울철 서해안 지방에 집중적으로 내리는 눈이 중부지방까지 영향을 미쳤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북극지방에 나타나는 이상고온 현상으로 회전속도가 떨어진 차가운 공기가 중저위도로 내려오면서 따뜻한 공기와 만나 눈을 뿌린 것도 영향을 미쳤다. 기상청은 30일 이번주 초부터 서울 등 중부지방에 이례적으로 많은 눈이 내린 현상에 대해 기압골의 영향과 북극의 이상고온이 영향을 미쳤다며 이같이 분석했다. 중부 폭설에 영향을 미친 발해만의 기압골은 주로 2월에 형성되는데 올해는 유독 이보다 빠른 12월에 발달돼 한반도를 통과하며 중부지방에 눈을 뿌렸다는 것이다. 김지영 기상청 기후예측과 연구원은 “보통 겨울철에는 시베리아 대륙에 중심을 둔 대륙고기압이 우리나라 쪽으로 크게 확장해 서해안 지방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보통인데 올해는 발해만에서 기압골이 깊게 형성되면서 중부지방에도 많은 눈이 내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한반도 서쪽으로는 대륙고기압이 확장해 있고 북동쪽에는 저기압이 형성돼 있어 그 사이에서 발생한 저기압성 순환이 영향을 미쳐 중부지방에 많은 눈을 뿌렸다. 전지구적 이상고온 현상이 중부 폭설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북극의 기온이 상승해 북극진동이 ‘음’을 기록하면서 공기의 회전속도가 느려졌고, 이로 인해 한기가 중저위도까지 내려오면서 이곳의 따뜻하고 습한 공기와 만나 눈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신기창 기상청 통보관은 “북쪽의 찬 공기와 중저위도의 따뜻하고 습한 공기가 만나면서 한파와 폭설을 유발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저위도에 위치한 동아시아, 유럽 지역에도 기록적 폭설이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기상청은 올해 마지막 날인 31일 전국이 세밑 한파로 꽁꽁 얼어붙겠다고 전망했다. 이날 서울지역 아침 최저기온 영하 12도를 비롯해 전국이 영하 15도에서 영하 2도의 분포를 보이겠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성남시 청사 부실 위험 아직도

    호화청사로 낙인 찍힌 경기 성남시 새청사의 부실시공 문제가 또다시 불거졌다. 지난해 나타난 문제점들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다. 30일 성남시와 민원인들에 따르면 지난 겨울 의회와 시청사 본관을 연결하는 9층 높이의 장식용 대형 철제봉에 폭설로 얼어붙은 얼음덩어리가 지상으로 떨어지면서 민원인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진 후 시행사와 시가 사후조치를 했으나 올겨울에도 같은 현상이 벌이지고 있다. 시공사는 건물 옥상에 분무기를 설치해 물을 뿌려 눈을 제거하고 있으나 분무기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해 시청 직원들이 일일이 이를 제거하느라 이른 아침부터 비상근무를 하고 있다. 지하 2층 주차장 누수현상도 일부 구간에서 다시 나타났다. 시멘트와 섞여 천장에서 떨어진 물은 자동차 유리와 보닛에 들러붙어 민원인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하자보수기간이 끝나지 않아 시공사와 수시로 보수관련 사항을 협의하고 있다.”며 “조경수의 경우 지난가을 상당수 교체했지만 생육상태를 보아가며 추가로 교체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30일밤 또 큰눈… 31일 세밑한파

    30일밤 또 큰눈… 31일 세밑한파

    29일 밤부터 서울 등 중부 지방을 중심으로 시작된 눈이 30일 오전 전국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보됐다. 폭설 피해와 함께 수도권 출근대란이 예상되면서 기상청과 서울시, 소방방재청이 긴박하게 움직였다. 기상청은 30일 전국이 대체로 흐리고 눈(강수확률 60~80%)이 내린 뒤 오전에 대부분 그치겠다고 29일 밝혔다. 충남 서해안과 전라도에 내리는 눈은 31일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은 30일 밤 12시까지 서울을 포함한 중부 지방과 전라도 등에 3~8㎝, 경기 내륙 및 충남 서해안과 전라남북도서해안 등에 많게는 10㎝ 이상 눈이 내릴 것으로 전망했다. 또 31일 아침최저기온이 서울 영하 10도, 춘천 영하 13도, 대구 영하 9도 등 한파가 또다시 찾아오면서 전국이 빙판길로 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방역공무원 ‘살처분 트라우마’ 호소

    구제역 가축 살 처분에 동원된 공무원들이 참혹한 현장에 대한 기억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는 등 우려됐던 후유증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방역·살처분 등 늘어나는 작업으로 3교대 근무를 강행하는 등 휴식 부족으로 피로가 쌓이면서 사고도 잇따랐다. 격리가 완벽히 이뤄지지 않아 구제역 확산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21일 소 살처분 현장에 투입된 경기 연천군 공무원 A씨는 참혹한 현장을 경험한 뒤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 가축을 매몰한 뒤 위장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한 마리, 한 마리 배를 갈라 묻는 것은 수의사도 꺼리는 작업인데, 여기에 경험 한번 없는 A씨가 투입된 것이다. A씨는 “소의 배를 가를 때마다 흐르는 피와 튀어나오는 내장 때문에 구역질이 났다.”면너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장면”이라고 고통을 호소했다. A씨는 결국 정신과를 찾았지만 해당 지자체는 “잘 모르는 일”이라고 회피했다. 지난 20일 연천 노곡리 돼지농장 살처분 현장에 투입된 B씨 역시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B씨는 삽과 몽둥이를 들고 돼지 2290마리를 구덩이로 몰아넣어 생매장시켰다. 큰 돼지는 비교적 잘 들어갔으나 새끼 돼지는 도망 다니는 탓에 자루에 3마리씩 집어넣은 뒤 이를 땅 구덩이에 내동댕이치는 작업이 이어졌다. 작은 동물 하나도 죽여본 경험이 없는 B씨가 처음 겪는 도살 작업에서 받은 느낌은 충격 그 자체였다. B씨는 “처음엔 불쌍한 생각에 조심스럽게 몰았는데 나중엔 너무 힘이 들고, 화도 나니까 미친 듯이 닥치는 대로 몽둥이로 때리며 돼지를 몰았다.”며 참혹했던 순간을 전했다. B씨는 “‘눈이 뒤집힌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소름 끼치게 실감했다.”면서 “이후 불면증과 우울증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가톨릭대학교 성빈센트병원 정신과 홍승철 교수는 “충격적인 현상을 목격한 뒤 겪는 악몽이나 수면 장애, 불안, 우울, 환청 등은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의 대표적 증상”이라며 “소나 돼지를 보면 참혹했던 장면이 반복되는 고통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러한 증상이 일시적이지 않고 지속될 경우 반드시 전문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업무 피로에 따른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방역 업무를 마치고도 반나절밖에 쉬지 못한 채 업무에 복귀해야 했기 때문이다. 경북 영양에서는 방역 초소에 근무하던 공무원이 초소 주변에 모래를 뿌리기 위해 1t 트럭을 운전하던 중 폭설로 얼어붙은 노면에 트럭이 미끄러져 뒤집히는 사고가 발생해 숨졌다. 안동에서는 밤샘 근무 후 쓰러져 숨졌고, 30대 여직원은 1주일가량 통제소 근무를 하다가 결국 뱃속의 아이를 잃고 말았다. 파주시에서는 방역 기계를 점검하던 공무원이 엔진벨트에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도 일어났다. 장충식기자 jjang@seoul.co.kr
  • [독자의 소리] 차 위의 눈 먼저 치우자/충남 논산경찰서 위종록

    강추위와 함께 폭설이 몰아닥쳤다. 출근을 위해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자동차를 몰고 집을 나서는데 갑자기 차량 한 대가 휑하니 지나갔다. 그 순간 깜짝 놀랐다. 그러지 않아도 도로가 빙판이 되어 바짝 긴장하고 있는데 그 차량에서 떨어진 눈덩이가 사방으로 흩날리며 한동안 시야를 가려 하마터면 앞차를 들이받을 뻔했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이라면 종종 겪는 일이다. 불과 몇 십초면 지붕과 앞·뒷면 유리창에 쌓인 눈을 털어낼 수 있는데 뭐가 그리 바쁠까. 눈길에서는 수많은 돌발변수로 운전 경력과 상관없이 크고 작은 교통 사고가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한순간의 방심도 금물이다. 눈 오는 날엔 우리 모두 안전을 위해서 조금 더 시간적 여유를 갖고 우선 내 차에 쌓인 눈부터 치운 뒤 서행 운전하는 습관을 가졌으면 한다. 집 앞에 쌓인 눈은 이웃에게 불편을 주지만, 내 차 위에 쌓인 눈은 이웃의 안전을 위협한다. 충남 논산경찰서 위종록
  • [나눔을 실천하는 기업들] 대한생명

    [나눔을 실천하는 기업들] 대한생명

    대한생명의 사회공헌 활동은 2만 5000여명의 임직원과 재무설계사(FP)들이 함께한다. 대한생명 임직원 모두 연간 근무시간의 1%인 20시간 이상을 자원봉사 활동에 자발적으로 쏟아붓고 있다. 신입사원 교육 과정에도 반드시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기획해 보게 하는 프로그램을 넣는 것으로 유명하다. 결국 모든 사원이 입사와 동시에 사내 봉사단인 ‘사랑모아봉사단’의 일원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전국 140개 팀으로 구성된 봉사단은 장애인, 노인, 보육원 어린이 등 지역사회에서 소외된 단체와 1대1 자매결연해 매월 한 차례 이상 찾아가고 있다. 복지시설 환경 정리는 물론 장애인 사회적응 훈련, 어린이 문화체험 행사, 노인 치료 프로그램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한다. 전국적인 영업망을 지닌 대한생명은 지역 재난구호 사업에 특히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지역봉사팀 스스로 지역사회의 신뢰를 쌓기 위해 자체적으로 지침을 만들어 비상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가동하고 있다. 지난해 2월에는 극심한 겨울 가뭄으로 식수조차 구하기 힘든 태백지역에 가장 먼저 달려가 2ℓ짜리 생수 1만 2000병을 전달했다. 강원도 양양 산불, 영월 수해, 폭설 등 피해가 발생한 지역에도 자원봉사단을 급파해 구호품을 나눠주었다. 이런 활동은 사회공헌 홈페이지에서 월별, 분기별 활동계획서와 활동 결과 보고서로 체계적으로 관리된다. 봉사활동 평가 측정표도 마련해 봉사 상황을 수시로 체크한다. 농촌 일손돕기와 농촌 어르신 식사 대접, 독거노인 집수리 등 농촌 돕기에도 힘쓰고 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전세계가 폭설앓이… ‘노숙철’ 등 이색 풍경 속출

    이틀 전 내린 폭설로 서울 뿐 아니라 전 세계 곳곳이 ‘폭설앓이’ 중이다. 전동차 고장으로 출퇴근에 곤욕을 겪는 것은 기본이고, 일부 도시의 지하철은 ‘노숙철’로 변모해 색다른 느낌을 주고 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에 소개된 사진은 뉴욕의 JFK공항을 오가는 열차의 모습을 담고 있다. 수 백 명의 승객들은 꽁꽁 얼어붙은 뉴욕 지하철에서 교통이 다시 원활해지길 기다렸다. 하지만 마실 물이나 음식도 전혀 없이 불편한 좌석에서 밤을 지새우는 이들의 모습은 흡사 노숙자를 연상케 할 만큼 힘들어 보인다. 멕시코에서 휴가를 왔다가 공항에 발이 묶인 크리스토퍼 뮬런(42)은 “새벽 1시에 공항에 내렸지만 엄청난 눈 때문에 지하철과 택시를 이용할 수 없어 이런 신세가 됐다.”며 한탄을 감추지 못했다. 반대편의 중국도 폭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신장자치구 우루무치에는 지난 20일부터 100㎝가량의 눈이 내려 시민들의 불편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앞으로 3-4일 간 더 폭설이 이어질 것이라는 당국 기상청의 예보가 더해지면서 불안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현지에서는 이번 폭설이 신년맞이 대규모 행사 등에 차질을 주지 않을까 염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북반구 연말 雪亂 북극기온 상승 탓?

    미국 북동부 지역에 내린 60년 만의 ‘눈폭탄’이 뉴욕 등 주요 도시의 기능을 마비시켰다. 폭설 탓에 이 지역 교통이 마비돼 크리스마스 연휴를 마치고 출근하려던 많은 시민의 발이 묶였고 정전 등의 사고도 잇따랐다. 유럽에 이어 한국과 미국 등 북반구를 덮친 연말 폭설은 북극 기온 상승과 연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항공기 6000편 결항 등 항공 대란 뉴욕과 뉴저지 등 미 북동부 해안 지역에는 26일(현지시간)부터 강한 눈보라가 치기 시작해 27일 오전 기준으로 30~60㎝의 눈이 쌓였다. 미국 기상청은 이날 뉴욕 시에 내린 폭설이 1948년 이후 가장 심각한 수준으로 기상 관측사상 5번째로 많은 적설량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북동부 주요 도시가 ‘설국’(雪國)으로 변하면서 시민들은 이틀째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폭설로 공항 상당수가 폐쇄되고 26일과 27일 6000편 넘는 항공편이 결항해 이용객들이 공항에서 추위, 배고픔과 싸워야 했다. 도로와 철도 등 육상교통도 눈 속에 파묻히면서 교통대란이 일어났다. 특히 뉴욕은 27일 오전까지 지하철만 일부 운행됐을 뿐 통근 때 주로 이용하는 롱아일랜드 철도나 뉴저지 트랜싯, 메트로 노스 철도 등의 주요 철도가 멈춰섰다. 재정적자에 시달려온 뉴욕 시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강타한 눈폭풍 탓에 상당한 경제적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은 27일 시청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크리스마스 연휴 기간인 26~27일은 연중 최대 쇼핑 시즌이다. 그러나 폭설 때문에 실적이 저조했다.”면서 “이 때문에 시의 판매 세입 줄어들 것이고 재정의 어려움은 가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온 상승하면서 북극 찬 공기 남하해 미국 북동부에 머물던 눈폭풍은 27일 오전부터 대서양 연안을 타고 북상, 캐나다 남동부에 피해를 입히고 있다. 캐나다 뉴브런즈윅 주 대부분 지역에 강설 경보가 내렸고 같은 주 북동부에는 눈보라 경보가 발령됐다. 또 폭설에 따른 정전으로 인근 지역 주민 수만명이 피해를 봤다. 한편 유럽 대륙 역시 폭설에 따른 후폭풍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모스크바 남동부의 도모데도보 국제공항에서는 24시간 넘게 공항에 발이 묶인 공항 이용객이 출입국사무소를 찾아 거세게 항의했다. 파리의 센 강도 폭설로 수위가 높아져 27일 유람선 운행이 전면 중단했다. 기상 전문가들은 성탄 연휴를 전후해 북반구를 강타한 폭설과 한파가 서로 관련 있다고 분석했다. 북극의 기온이 상승하면서 찬 공기를 가둬두는 제트기류 소용돌이가 약해져 북극에 머물러야 하는 찬 공기가 남하하면서 미국과 유럽, 한국 등에 강추위와 폭설을 몰고 왔다는 것이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누드 브리핑] 부인과 공직생활하며 느낀 점 책으로

    “공무원은 삽질을 계속해야 합니다.” 서울시 C주무관은 28일 이렇게 말하며 빙긋 웃었다. 자치구에서 일하는 부인과 공직생활을 하며 느낀 것들을 담아 내년 초 ‘삽질하는 공무원들’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펴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눈비만 내리면 오세훈 시장은 물론 모든 직원들이 초비상”이라며 올해 초 폭설 때를 떠올렸다. C주무관은 원고에 폭설이 내린 지난 1월 9일을 예로 들며 “토요일이지만 아내는 지금도 출근해서 눈을 치우고 있다. 큰 도로는 거의 제설됐지만 이면도로와 인도 등엔 아직도 많이 쌓여 사람이 치워야 한다. 그 많은 눈을 장비가 아닌 사람이 치워야 하니 언론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원시적인 방법임엔 틀림없다.”라고 적었다. 다음 대목은 뼈아픈 경험이다. 그는 “겨울철 우리나라엔 북서계절풍이 분다고 한다. 서울 서쪽에 눈이 오면 눈구름이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일정 시간 후에 눈이 내린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이런 기상현상을 활용해 인천 강화, 경기 문산 등 서해안 5곳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고 모니터링하고 있다. 징후가 보이면 약 1시간 뒤 서울에 눈이 내리기 때문에 신속하게 상황근무에 들어가 눈이 내리자마자 제설을 해 왔다. 그런데 이번 폭설은 북풍을 탔다. 과거와 전혀 다른 패턴으로 눈이 쏟아진 탓에 준비할 겨를도 없는 불가항력 상황이었다.”고 되돌아봤다. C주무관은 “늑장 대응은 사실이다. 하지만 시민들을 위한 알찬 비판이어야 하고, 공직사회를 적절히 긴장시키기 위해서라도 알맞게 눈비가 내리고 뼈아픈 지적도 나와야 한다.”며 끝을 맺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29일밤 또 눈… 30일 ‘최악 출근길’ 우려

    29일밤 또 눈… 30일 ‘최악 출근길’ 우려

    기상청은 30일 서울과 수도권의 출근길이 이번 겨울 들어 가장 힘들 것으로 전망했다. 29일 밤부터 다시 시작된 눈이 30일 아침까지 이어지는 데다 기온도 영하 5도 밑으로 뚝 떨어져 빙판길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28일 아침까지 서울 등 수도권에 10㎝ 안팎의 폭설이 내렸지만 우려되던 교통대란은 피했다. 기상청은 29일 밤부터 30일 낮까지 서울을 포함한 중부지방에 3~8㎝ 눈이 더 올 것으로 28일 예보했다. 29일 서울 지역 기온은 최저 영하 9도, 최고 영하 1도이며 30일에도 최저 영하 6도, 최고 영하 3도라고 예보했다. 진기범 예보국장은 “30일 출근길은 얼어붙을 가능성이 높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28일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내린 눈은 오전 7시까지 서울 9.7㎝, 인천 7.1㎝, 동두천 11.6㎝, 문산 10.2㎝, 수원 6.0㎝, 이천 5.2㎝ 등의 적설량을 기록했다. 인왕산길, 북악산길, 개운산길, 당고개길, 감사원길 등이 한때 통제되기도 했다. 그러나 당초 우려됐던 교통대란을 피할 수 있었던 데에 대해 진 국장은 “시민들이 승용차를 두고 나온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설명했다. 서울 광화문과 시청 등지의 대중교통 이용객이 평소보다 10% 정도 늘었다는 경찰 통계가 나왔다. 서울시와 자치구는 눈이 내리기 전 주요 간선도로에 염화칼슘을 살포했고, 눈이 그치자 바로 제설작업에 돌입했다. 서울시는 이번 겨울 눈이 많이 온다는 예보에 따라 제설제 3만 5000t을 구입했다. 지난해보다 1.5배가량 늘어난 양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28일 아침까지 제설제 4500t을 사용했지만 비축 물량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정현용·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테러공포… 폭설·한파… ‘덜덜’ 떠는 크리스마스

    테러공포… 폭설·한파… ‘덜덜’ 떠는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를 맞아 세계 곳곳에 또다시 테러 비상이 걸렸다. 유럽에선 폭설과 한파로 여행객들의 발이 묶이는 등 고통을 겪어야 했다. ●美 “항공사들 보온병 등 음료수 용기 주의” 미국 국토안보부는 24일(현지시간) 항공사들에 대해 보온병 같은 단열 처리된 음료수 용기를 이용한 테러 가능성이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미 연방 교통안전청(TSA) 스털링 페인 대변인은 “테러범들이 사용할 수 있는 잠재적 수법 중에는 단열 처리된 음료수 용기 내에 폭발물을 숨겨서 반입하는 것도 포함돼 있다.”면서 “이번 연휴기간에 보온병과 같은 음료수 용기에 대한 추가적인 보안검색을 실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지난 23일 이탈리아 로마에 주재한 스위스와 칠레 대사관에서 소포 폭탄이 터지면서 이를 개봉하던 대사관 직원 2명이 큰 부상을 입었다. 이탈리아 검찰이 즉각 수사에 착수한 가운데 반정부 단체인 무정부주의연맹(IAF)이 이번 테러가 자신들의 소행임을 주장하고 나서 추가 테러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고 현장 주변에서 발견된 IAF의 성명에는 “우리의 주장을 앞으로 말과 행동으로 전달하려 한다. (이탈리아 정부의) 통치 시스템을 파괴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IAF “로마 소포테러 우리 소행”… 뭄바이 테러징후 로베르토 마로니 이탈리아 내무장관은 “IAF는 대단히 폭력적인 조직이며, 스페인과 그리스에도 이들과 관계가 깊은 무정부 조직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이탈리아 외무부도 잇단 소포 폭탄 테러를 “개탄스러운 폭력 행위”라고 비난하는 내용의 긴급성명을 발표했다. 이날 인도 최대 도시 뭄바이에서도 테러 징후가 감지돼 경찰 당국이 추적에 나섰다. 뭄바이 경찰은 파키스탄 무장단체 라슈카르 에 토이바(LeT) 요원 4명이 연말연시 휴가를 노린 테러를 계획하고 뭄바이에 잠입한 정황을 포착했다고 CNN이 보도했다. LeT는 지난 2008년 11월 한꺼번에 188명을 숨지게 한 뭄바이 동시다발 테러의 배후로 알려진, 파키스탄에 근거지를 둔 무장 테러단체다. ●佛 샤를드골공항 붕괴 우려 2000여명 대피 유럽 곳곳에선 폭설과 한파로 주요 공항에서 항공기 이착륙이 지연되거나 취소되는 사태가 잇따랐다. 프랑스 샤를 드골 국제공항에선 눈이 너무 많이 쌓이자 건물붕괴에 대비해 2000여명을 긴급 대피시키는 소동이 일어났다. 독일 뒤셀도르프 공항은 폭설로 65편의 항공기 운항이 취소됐다. 아일랜드 더블린 공항은 이틀째 항공기 이착륙이 중단되다시피 했다. 영국 잉글랜드 버밍엄공항과 스코틀랜드 애버딘·에든버러 공항에서도 지연과 취소가 이어졌다. 벨기에에선 제설작업이 불가능할 정도로 폭설이 내려 차량 통행이 한때 전면 중단되기도 했다. 황수정·강국진기자 sjh@seoul.co.kr
  • [현장 행정] 금천 U통합센터 ‘일석이조’

    [현장 행정] 금천 U통합센터 ‘일석이조’

    “어! 저 아주머니 쓰레기 무단 투기하려는 것 같은데? 독산2동 3번 카메라 띄워봐.” “아주머니, 그곳에 쓰레기를 버리시면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281대 24시간 통합 모니터링 23일 오전 11시 금천구청 지하 1층에 마련된 신개념 방범대 ‘U통합운영센터’ 모니터에 쓰레기를 무단 투기하려는 아주머니 모습이 포착됐다. 이를 발견한 센터 요원이 곧장 경고 방송을 내보낸다. 흠칫 놀란 아주머니는 방송이 흘러나온 폐쇄회로(CC)TV를 바라보다가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쓰레기를 주워담아 자리를 떴다. 센터는 단순히 방범용 CCTV를 통한 안전관리시스템이 아니다. 방범, 불법 주정차 단속, 그린파킹, 쓰레기 무단투기 단속, 스쿨존, 재난재해·제설, 장애인, 자전거, 공원관리 등 9개 분야에 걸쳐 기능별·부서별로 흩어졌던 281대의 CCTV를 한 곳으로 통합한 것이다. 이전까지 CCTV는 부서별 업무 특성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설치·운영돼 활용도가 낮았고 부서 간 영상정보도 공유되지 않았다. 이런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는 통합 플랫폼을 설정하고 CCTV통합관리시스템을 개발해 난제를 해결하는 한편 관리 일원화로 비용 절감 효과까지 봤다. 경찰 4명과 공무원 3명, 공익근무요원 11명 등 18명이 주·야간 4조 4교대 근무로 24시간 통합 모니터링을 수행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센터에는 모든 카메라의 위치좌표를 입력한 지리정보시스템(GIS)이 가동돼 상황발생 시 46인치 LCD화면 21개로 사고지역 주소, 건물 이름, 주요 지형지물 등을 손쉽게 검색할 수 있다는 점이다. 평상시에는 기능별로 운영되다가 범죄와 같은 긴급상황이나 재해 발생 시 해당 지역 상황관제용으로 활용된다. ●긴급상황 땐 상황 관제용 활용 야간에는 모든 CCTV가 방범용으로 전환돼 곳곳을 모니터링하게 된다. 범죄로 의심되는 곳을 찾아내면 인근 4대의 CCTV 카메라를 동시에 띄워 상황을 면밀히 체크한다. 현장조치가 필요하면 경찰이 인근 지구대에 112지령으로 즉각 연락한다. 출퇴근 시간에는 교통상황 모니터링에 치중하고, 특히 아동범죄 발생 가능성이 높은 초등학생 하교시간에는 스쿨존 CCTV를 집중 감시한다. 폭설이 내리면 골목마다 상황을 확인하며 제설작업을 지휘할 수 있다. 차성수 구청장은 “U통합운영센터는 긴급상황 발생 시 실시간 정보수집과 정확한 상황분석 등 신속한 대응으로 긴급 상황에 놓인 주민들에게 지킴이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이라고 말했다. 글 사진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폭설·무관심에 꽁꽁… 佛 노숙인 추운 겨울

    ‘유럽의 부국’ 프랑스의 노숙인들은 올해 유독 추운 겨울을 나야 할 듯하다. 기록적인 강추위와 폭설이 유럽을 덮친 데다 프랑스 정부가 매년 늘어가는 노숙인을 골칫거리로만 바라볼 뿐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 부인 카를라 브루니 여사가 노숙인과 격 없이 대화해 지난해 세밑을 달궜던 아름다운 이야기는 올해에는 찾아보기 어려울 것 같다. 21일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프랑스의 노숙 인구는 최근 들어 크게 늘었다. 올해 파리에만 4000여명의 노숙인이 길거리를 채운 것을 비롯해 14만 6000여명의 집 없는 사람이 프랑스 전역에서 풍찬노숙 중이다. 이는 역사상 가장 많은 규모로 2008년 경제 한파의 영향 때문이다. 프랑스 인권단체들은 길거리에 나앉는 국민이 급증하는데도 정부가 별다른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특히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대권주자였던 2006년 “2년 뒤 프랑스의 길바닥에서 잠을 자는 사람은 사라질 것이고 추위에 떨며 얼어 죽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했던 약속을 기억하는 사람의 분노는 더욱 크다. 사르코지 정부는 집권 이후 국민이 누릴 수 있는 법적 주거권의 수준을 교육권이나 건강권 정도로 높이는 법안을 만들었으나 적극적인 집행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인권단체 ‘돈키호테의 아이들’ 대표 아우구스틴 레그란드는 “정부는 전국에 10만명이 머물 수 있는 노숙인 쉼터가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14만명이 넘는 노숙인이 길거리에서 추위와 싸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더구나 일부 극빈층의 문제로만 여겨졌던 노숙 문제가 최근 사회에 폭넓게 퍼지면서 더 심각한 문제가 됐다. 지난 3년간의 경제위기 동안 프랑스의 집값은 천정부지로 올라 파리의 아파트 평균 가격이 3.3㎡(1평)당 3516만원까지 치솟았다. 우아하게만 보였던 ‘파리지앵’ 10명 중 6명 이상이 조만간 길거리로 내몰릴까 봐 걱정하는 것도 더 이상 이상한 일이 아니다. 프랑스 인권단체 회원들은 최근 노숙인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끌려고 파리 센 강변에 100여개의 붉은 텐트를 치고 노숙 투쟁을 벌였다. 그러나 정부는 ‘미관상의 이유’ 등으로 이내 텐트를 철거했다. 레그란드 대표는 “크리스마스 때 잠깐 퍼지는 동정론은 노숙인의 마음에 상처만 남긴다.”면서 정부가 시민의 법적 주거권 보장을 위한 노력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유럽 폭설 ‘크리스마스 항공대란’

    유럽 전역이 폭설과 한파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등 주요 도시의 공항들이 눈에 파묻혀 항공 운항을 중단했고, 성탄절 연휴를 앞둔 여행객들은 며칠째 공항에 갇혀 있다고 20일 CNN방송이 전했다. 교통 두절로 팝스타 레이디 가가의 파리 공연이 연기되는 등 각종 공연과 축구 경기 등도 무더기로 차질을 빚고 있다. 폭설은 앞으로도 며칠간 이어질 전망이어서 크리스마스가 지나서야 항공 운항이 정상화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유럽 최대 규모의 런던 히스로 국제공항은 지난 18일(현지시간) 15㎝가량의 눈이 쌓여 항공기 이착륙이 전면 금지된 데 이어 이튿날에도 거의 모든 도착 및 출발 항공편이 취소됐다. 이 때문에 성탄 휴가를 맞아 히스로 공항을 이용하려던 수십만명이 한꺼번에 발이 묶이게 됐다고 공항 측은 추산했다. 히스로 공항에는 오도 가도 못하는 수천명의 여행객들이 밤새 추위에 떨며 짐가방에 기대 잠을 청하는 등 난민촌을 방불케 했다. 항공 전문가인 존 스트릭랜드는 영국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항공 대란은 크리스마스 이후까지 계속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유럽 3대 공항의 하나인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도 계속되는 폭설로 지난 16일 밤부터 운항 취소와 지연 운항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 19일 하루에만 전체 1300여편 가운데 500여편이 뜨지 못했다. 이날 파리 샤를 드골 공항도 전체 이착륙 항공편의 약 40%가 결항됐다. 영국 등으로 향하던 여객기들이 급히 회항하면서 벨기에 브뤼셀 공항은 난장판이 됐다. 벨기에 입국 비자가 없는 승객 수백명이 환승자들이 대기하는 보안 구역에서 추위에 떨며 밤을 새웠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유럽 대륙을 오가는 유로스타 등 육상 교통까지 막히면서 주요 행사들도 줄줄이 취소됐다. 지난 19일 파리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레이디 가가의 콘서트는 무대 장치와 소품을 실은 차량이 움직이지 못해 21일로 연기됐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첼시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기를 비롯해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프랑스, 네덜란드 등에서 열릴 예정이던 축구 경기들도 잇따라 취소됐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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