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테러 5주기 끝나지 않은 악몽] (3) 세계로 번진 테러 공포
|파리 이종수특파원|‘9·11테러’는 대서양 건너 유럽에도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9·11테러 5주기를 앞두고 프랑스의 주요 방송사들은 잇따라 관련 특집 프로그램을 방영했거나 다룰 예정이다.
국영방송인 FR3는 8일(현지시간) ‘9·18:고소장(11-Septembre:le dossier d’accusation)’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바니나 캔번이 제작한 이 다큐멘터리는 테러 생존자와 유족, 그리고 그들의 변호사 2명이 4년 동안 조사한 9·11테러 사건의 전말과 부시 행정부의 미흡한 사후 대처 등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같은 국영방송 FR2도 지난 4일 저녁 영국 다큐멘터리 제작자 리처드 데일의 ‘9·11테러 5년’을 방송했다. 연출가의 상상에 바탕한 허구적 요소와 생존자 및 유족들의 증언을 섞은 다큐픽션 형식의 프로그램은 생존자들의 ‘가장 긴 하루’를 미시적으로 다루면서 9·11테러의 참상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언론의 이런 관심은 9·11테러가 지난 5년 동안 미국만의 불행에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 영국, 스페인, 독일 등 유럽 주요 국가들에서 ‘포스트 9·11테러’라고 불릴 만한 대형 참사가 잇따라 발생했다. 이런 테러 위협은 최근까지 이어지면서 불안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유럽이 제2의 표적?
유럽에서 대표적 친미 국가로 통하는 영국은 테러범들에게 미국 못지않은 주요 표적이다.
황금 휴가철인 지난달 10일 미국행 여객기 여러 대를 한꺼번에 폭파시키려던 대규모 테러 음모 사건이 적발됐다. 사건 직후 존 리드 내무장관은 당시 “전대미문의 참사를 부를 만한 음모”라며 사상 최고의 경보령을 발동했다. 이 사건으로 이슬람계 영국인 20명이 조사를 받았고, 그 가운데 14명이 살인 음모 및 테러 준비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영국은 지난해 7월7일에도 큰 참사를 겪었다. 런던 시내 지하철과 버스에서 자살폭탄 테러가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52명이 죽고 700여명이 부상했다.
독일의 8월도 테러 공포감으로 얼룩졌다. 검찰은 지난달 18일 도르트문트와 코블렌츠의 열차 안에 숨겨진 폭탄 가방 2개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당국은 용의자를 공개 수배한 뒤 레바논 출신 유학생 등 3명을 체포했다.
‘유럽판 9·11’의 상징은 2004년 3월11일 스페인 대참사. 수도 마드리드 일원 통근열차 선로에서 연쇄적으로 폭발사고가 발생하면서 출근하던 시민 191명이 숨지고 1500여명이 부상했다.
●대책 마련 부심… 부작용 속출도
유럽 국가들은 지속적인 테러 위협에 맞서 테러방지법 제정을 비롯해 공항 검색 강화, 개인 정보 데이터베이스 구축 등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특히 지난달 16일에는 런던에서 영국·프랑스·독일·핀란드 내무장관 등이 모여 유럽연합 차원의 테러방지계획 마련에 합의했다. 계획안은 유럽연합 소속 국가들의 항공여행객 자료 교환과 액체폭발물의 검색 강화를 골자로 한다. 특히 35만유로(4억 3750여만원)의 예산을 들여 여행객들의 지문 채취와 홍채 검사를 실시하는 방안도 검토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테러 방지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이슬람인들이 테러 용의자로 오인되는 등 과도한 인권 침해 여부를 놓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는 등 이레저래 ‘9·11’의 후폭풍은 거세지고 있다.
영국은 뜨거운 논란 끝에 지난 4월부터 테러 선전 간행물 보급 등을 금지하는 새 테러방지법을 시행했다. 또 경찰이 테러 용의자를 기소하지 않은 상태에서 구금할 수 있는 기간도 14일에서 두 배로 늘렸다. 아울러 생체 정보가 수록된 전자신분증을 도입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독일도 관련 법을 강화했다. 올해 만료되는 테러방지법의 시한을 5년 늘렸고, 정보기관이 용의자의 은행과 자동차 등록자료를 쉽게 열람할 수 있도록 했다.
프랑스도 지난달 영국 테러 음모 발각 직후 여행객 안전 방안을 한층 강화하기로 했다.
특히 미국과 영국, 이스라엘로 향하는 모든 항공기를 수색할 수 있는 ‘적색 경보령’까지 발동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영장 없이 테러 용의자를 구금할 수 있는 기간을 4일에서 6일로 늘렸다. 첫 3일 동안은 변호사 접근마저 금지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전화와 인터넷 자료에 대한 수사기관의 접근권도 확대했다.
이밖에 스페인은 테러 용의자 구금기한을 최대 13일까지, 이탈리아는 지난해 12시간에서 24시간으로 늘렸다. 이탈리아는 변호사가 없는 상태에서 경찰의 신문을 허용하도록 법안을 강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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