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문위원 칼럼] 언론의 ‘미로式 정치보도’
선거의 계절,국민은 괴롭다.정치가 뭐기에 선거 때만 되면 온 나라가 홍역을 치른다.출신지역이나 학교 때문에,그리고 지지하는 후보 때문에 온 국민이 동강이가 난다.
언론의 정치보도에서는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다.여당이 병역비리가 있다고 말하면 야당은 사실무근이라고 맞선다.검찰이 개입해도 끝이 없다.힘없는 국민을 수사할 때는 천하를 찌를 듯한 검찰이 정치를 만나면 맥을 못춘다.
현대의 4000억원 대북지원설도 마찬가지이다.야당은 지원했다고 주장하지만 여당은 하지 않았다고 말싸움하더니 이내 화제가 다른 데로 간다.지금도 국민들은 눈치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국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나간 돈이지만 관심은 사실여부에 몰려있다.
도청문제도 마찬가지이다.야당은 도청했다고 폭로하고 여당은 도청은 불가능하다고 맞선다.전문가들의 의견도 마찬가지며 언론보도는 국민들의 혼돈을 부채질한다.며칠 지나면 결론없이 또 마무리될 것이다.
올가을 국민을 불안케 한 이 사건으로 처벌을 받은 지도층은 아직 한명도 없다.하지만 국민들은 지지 후보가 다르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서로에게 마음의 총을 겨누고 있다.지난 6월 세계를 놀라게 했던 대한민국 붉은악마는 이렇게 갈기갈기 찢기고 있다.
언론이 병역비리,대북 4000억원 지원,도청의혹 등을 저널리즘의 원칙에 맞게 보도했다면 어떻게 됐을까.하다못해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이라고 사생결단식으로 진실을 추구하는 언론이 있었다면 이런 일이 반복될 수 있을까.불가능한 일이지만 신문이 4면으로 줄어들고 방송시간도 하루 1시간으로 줄어들었다면 이런 일이 반복될 수 있을까.
언론은 이들 의혹사건에 대해 중계보도를 한다.도청설을 폭로한 정치인의 말을 보도한 뒤,이를 반박하는 상대 정치인의 말을 싣고,다시 정부나 관련자의 해명을 싣고,이 과정에서 모순이 있으면 다시 분석하는 식이다.진상규명을 요구하다 시간이 지나면 다른 뉴스로 관심을 돌린다.국민들은 이 사건이 오늘은 해결됐나 하고 신문을 읽고 방송뉴스를 시청하지만 끝이 없다.
눈치 빠른 국민은 사건이 터질 때 일단 신문기사를 자세히 읽는다.결론없이 중계되는 지루한 사건의전개과정에 대한 보도는 제목만 보고 넘기고 무시한다.다행스럽게 최종 결론이 나면 자세히 읽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린다.고교생 자녀와 대화를 하는 데는 하루에 단 1분도 투자하지 않을 정도로 인색한 아버지(전체의 22%)들이면서도 ‘끝도 시작도 없는 미로’같은 정치보도가 결론을 내려주길 기대하면서 오늘도 열심히 신문을 읽고,방송뉴스를 시청한다.
지난여름 월드컵 때 한목소리로 ‘대~한 민국’을 외치던 붉은악마를 누가 서로 등지게 했을까.그 사이에 붉은악마였던 국민은 신문 방송의 정치뉴스를 주목한 것이 고작이다.바뀐 것은 월드컵 때 한목소리로 ‘대~한민국’을 외치던 정치인과 언론이 대신 특정 대통령 후보를 외치고 있을 뿐이다.
궤도를 어긋난 정치인,이에 대한 비정상적인 한국 언론의 정치보도는 국민을 절망케 한다.정치의 계절,결국 승자는 정치인으로,패자는 죄없는 다른 붉은악마에게 증오심을 품은 채 또 다른 5년을 살아가야 하는 국민으로 귀결되는 과정이 반복될 것이다.국민이 승자가 되는 정치,그리고 정치보도는 언제나 가능할까.
허행량 세종대 교수 매체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