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반지와 교장과 돈
K고교장 김예환(金禮桓)씨(47)와 Y여중 교장 백신숙(白信淑)씨(40) 부부가 8만$짜리(한화로 3천2백만원) 밀수「다이어」를 사들였다가 들통이 났다. 부부 모두 일류를 자랑하는 명문대학의 출신에다가 교육자요 저명한 종교인의 자손들. 이 믿을 수 없는 사건이 터지자 벌집을 쑤신듯 화제가 비등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김씨의 학교에서 일했던 전 K중고교 일부 직원들은『올것이 왔다』는 주장들. 김씨 부부가 돈을 번 이야기, 학교운영에 얽힌 이야기등 한창 시끄럽다. 왜 그럴까? 귀따가운 그「내막」의 소리를 들어본다.
젊어 너무 고생한 때문에 돈에 대한「콤플렉스」탓도
『그분이 워낙 젊어서 고생했기때문에 사실은 돈에 대한 어떤「콤플렉스」가 있었는지도 모르죠』
8월27일 정오께 K고교 서무과장 민우성씨의 말이다.
『교장선생부인이 오래전 15만원짜리「다이어」반지를 산일이 있는데 그걸 몇달만에 50만원을 받고 판 일이 있었답니다. 어느 사람치고 이런 엄청난 장사에 반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어요? 그게 조금씩 단계를 올리다보니 이번과 같은 결과가 됐답니다. 저도 전연 몰랐는데 어제(8월26일)구치소에 가서 교장선생님께 듣고 알게 됐어요』하며 혀를 차고 개탄한다.
김씨의 본적은 서울서대문(西大問)구 만리(萬里)동2가 231의 7호. 현주소는 같은 동네인 만리동2가 239의 7호로 되어있다. 소위 KS「마크」라는 K고교와 S법대를 졸업한 수재.
K고교 설립자인 그의 아버지를 따라 대학을 졸업하기 전부터 교직원으로 근무했다. K고교는 1974년6월24일 재단법인으로 인가났는데 그전까지는 감리교의 성경학교에 불과한 미인가 학원. 설립자 K씨가 성경학교를 인수하면서 각계의 찬조금을 기금으로 재단법인 인가를 얻어 냈다는 것이다. 이때만해도 김씨네 가족은 생활이 궁핍하여 남의집 셋방살이로 전전했다는 것. 더구나 6·25동란으로 석조 건물인 8개 교실이 완파되면서 수복후 이들 김씨 부자가 겪은 고생은 참담했다는 얘기다.
1959년 중학교 30학급 고등학교 18학급등으로 학급증설 인가를 받게 되면서 규모가 잡히고 3천명을 수용할수있다는 대강당까지 준공을 보았다. 60년 1월13일 중학교 주간 24학급, 야간 15학급, 고등학교 주간 15학급, 야간 12학급등 총 66학급 3천4백여명이라는「매머드」학교로 인가를 보면서 비대화했고, 이해 10월1일 설립자가 정년퇴직하자 아들인 김예환씨가 교장으로 취임했다.
『교장선생님은 가령 결재올리는 종이도 빈칸이 없게 아껴쓰게 하고, 빈칸이 있으면 절반으로 줄여 쓰게 했어요. 심지어 가정에서 사모님에게 절대로 월급을 송두리째 주시는 법이 없읍니다. 한꺼번에 주면 다 써버린다고 주급으로 2만원씩 쓰게할 정도로 근검·절약했어요』
민(閔)씨의 자랑이다.
그러나 이러한 김씨의 근검·절약은 그의 생활규모에 비해 도무지 납득할수 없는 의문을 자아내주기도 한다.
변소에도 전화·TV 놓고 교원 퇴직금 제대로 안줘
K학교 남쪽에 붙어있는 울창한 숲속의 저택이 교장사택. 대지가 줄잡아 3백평이상. 겉으로 보기에는 초라한 2층이지만 건물안에 들어가면 사정이 다르다.
『검사생활중에 그런 집은 처음 봤어요. 김씨를 잡고, 보석을 판 홍(洪)여인을 잡기위해 3일동안이나 그 집에서 잠복했죠. 방마다 아래윗층할것없이 TV와「에어콘」이 있어요. 전화도 물론 각방마다 있고 심지어 변소에도 TV와 전화가 있어요. 덕분에 시원한 휴가(?)를 즐긴셈이지만 그 호사스러움에 깜짝 놀랐어요. 그리고 묘한게 아래윗층 방마다 집밖으로 통하는 문이 달려 있어요. 어느 방에 있거나 즉시 집밖으로 나올수 있는 이상한 집이었읍니다』
서울지검 25호 김유후(金有厚)검사의 수사후일담이다. 저택의 그 호화스러움에 값하는 것이 또 있다. 김예환씨는 1개월이 멀다하고 자가용 승용차를 갈아치우는 별난 성격이라는 얘기. 지금은 최신형「비크」를 비롯, 3대의 자가용을 갖고 있다는 것. 이밖에도 그에게는 부산(釜山)근처의 별장과 제주(濟州)도의 별장을 비롯, 서울시 중(中)구명(明)동2가47의 청보(靑保)「빌딩」과 서대문 모처에도「빌딩」이 있고 경기(京畿)도 여주군 능서(陵西)면 매유리336 일대의 광대한 대지가 그의 소유로 알려졌다.
K중고교의 총건평 3천4백20평에 1백5개 교실, 이에 맞먹는 Y여중·상고와 W국민학교등 9개학교가 있으니까 그의 재산과 재단의 자산은 수억대를 헤아리고도 남음이 있다.
『돈과 재산에 대한 그의 집념은 거의 광적인 것입니다. 가령 교원에 대한 퇴직금이 그 예이지요. 그는 교원을 취직시킬때 묘한 각서를 받는데 그 내용은「학기도중에 사직하게되면 퇴직금을 절반만 지급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0년이상 근무하는 교원도 그만 두게될때는 공교롭게도 학기 도중을 택하게 합니다. 퇴직금을 반밖에 받을 수 없게 하고 그나마 아직까지 그걸 제대로 받아본 교원이 없는걸로 압니다.』
퇴직교사인 N씨의 말. N씨는 다시 잇는다.
『2년전 설립자가 죽자 동상을 교정에 세우게 됐죠. 이 동상기금으로 1학급당 5만원씩, 교사1인당 1만원씩 거두었읍니다. K학교「그룹」전체가 총1백30 학급이니까 5만원씩 거두었으면 6백50만원 됩니다. 그리고 1백30학급에 담임선생만 교직원수로 치면 1백30명에 1만원씩 거두어 1백30만원, 총합계 7백80만원이란 막대한 돈이 되죠. 요즘 동상 제작비가 그럴싸한 것은 3~4백만원쯤 되는 것으로 아는데 어떻습니까? 당장에 4~5백만원을 벌었겠죠. 이게 말썽이 나서 시교육위로부터 되돌려 주라는 행정지시를 받았어요.
그러나 하지도 않은「보충수업」을 했다고 하고선 그걸 선생들에게 지급한양 꾸미고 돈의 행방은 감감무소식이 됐죠. 이런 식으로 돈을 벌었어요. 워낙 법이론에 밝아 갖은 구실로 빠져 나갔죠』
법이론 밝아 구실 잘붙여 밀수품 아니란 각서 받고
전직 K고교 교사였던 U씨는 말했다.
『이런말은 우스운 얘기지만 그 학교를 그만두는 선생들이 교장의 갖은 비행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해서 돈을 받아낸 일이 있지요. 김모선생의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인데 그분은 생물담당으로 있었죠. 어느날 교장실 문을 벌컥 열었다가 차마 못볼 장면을 목격했어요. 이렇게 자기가 저지른 비행을 무마하고자 상당한 금품을 자진해서 협상조로 지불하면 그 선생들은 퇴직금을 받을 생각도 하지 않게 됩니다』
교장의 비행에 분개한 전직 M모교사는 교장의 비행을 낱낱이 적은 유인물을 만들어 뿌리려다가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는 것.
『제가 만든 유인물의 모든 사실을 교장은 낱낱이 시인하고, 용서를 빌었읍니다. 2년전 종로2가 어느 다방에서였죠. 나는 그가 준엄한 양심의 심판을 받고 돌아서서 참다운 교육자가 되기를 바랐읍니다. 이번에 만약 무혐의로 풀려 나온다든가하면 저는 다시 칼을 뽑아 이땅의 썩어빠진 교육계를 각성시키도록 하겠읍니다』
M씨의 강경한 발언이다.
『교장실 금고에서 밀수「다이어」가 쏟아진 것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읍니다. 그러나 교장님은 그걸 산 일은 없고 사모님이 피서갈때 보석을 저택에 두면 위험하다고 해서 금고에 보관 했던 것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김씨를 변호하던 서무과장 민씨는 끝으로 김씨가『죄없다』고 하며 다음과 같이 앞뒤가 맞지않는 말을 하기도했다.
『교장선생님이 밀수범 홍여인으로부터「다이어」를 살때「다이어반지는 절대로 밀수품이 아니며 문제가 생기면 책임진다」는 각석를 받아 놨답니다. 그 각서도 검찰에 압수당했는데요, 변호사들은 밀수품이 아니라는 각서를 받아놓았으니까 무죄로 풀려날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안심이 좀 되긴 합니다만…』
[선데이서울 71년 9월 5일호 제4권 35호 통권 제 15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