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폭동
    2026-08-18
    검색기록 지우기
  • 역전
    2026-08-18
    검색기록 지우기
  • 대타
    2026-08-18
    검색기록 지우기
  • 소문
    2026-08-18
    검색기록 지우기
  • 독립
    2026-08-1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987
  • 북,미에 쌀 3천t 지원 요구/방미 이종혁

    ◎“식량난 심화땐 폭동 가능성” 【도쿄=강석진 특파원】 북한의 이종혁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은 미정부관리와의 비공식회담에서 식량부족에 따른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당장 3천t의 쌀을 긴급지원해줄 것을 요청했었다고 아사히(조일)신문이 8일 워싱턴발로 보도했다. 이부위원장은 특히 쌀추가지원이 없을 경우 『폭동이나 혁명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부위원장이 요청한 쌀 3천t은 북한이 필요로 하고 있는 긴급구호 쌀중 4백분의 1에 불과한 것으로 쌀 부족상황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신문은 풀이했다. 아사히신문은 이부위원장이 지난 1일 토머스 허바드 미국무부 부차관보와의 회담에서 전체 쌀 필요량으로 1백20만t,올 가을 수확때까지는 60만t,5∼6월을 견뎌내기 위해서는 20만t,그리고 『당장 필요한 양으로』 3천t이라는 숫자를 제시한 것으로 전했다.
  • 오늘 12·12,5·18사건 7차공판/내란목적 살인혐의 집중추궁

    12·12 및 5·18사건의 7차 공판이 6일 상오 10시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형사 합의 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다.〈관련기사 4면〉 이 날 공판에서는 검찰이 전두환·황영시·주영복·이희성·정호용피고인 등 5명을 상대로 5·18사건의 폭동,내란 및 내란목적 살인혐의에 대해 직접 신문한다. 검찰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과 관련,▲계엄군의 출동경위 ▲자위권 발동 ▲양민학살 ▲발포경위 등이 신군부가 집권하기 위한 일련의 사전 계획에 따라 이뤄졌다는 사실을 집중 추궁할 방침이다.〈박은호 기자〉
  • “홍콩반환후 폭동 예상”/중국국무원 내부 문서

    【홍콩 로이터 연합】 중국 지도부는 홍콩의 주권 회복 후 홍콩에서 폭동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홍콩의 중국전문 월간지 쟁명이 중국정부 내부문서를 인용,1일 보도했다. 중국국무원 홍콩·마카오판공실이 작성한 이 문서는 또 반환 후 과도기 동안 홍콩에 대한 외국의 투자가 20∼80% 하락할 수도 있으며 이 때문에 홍콩 전문인력들의 해외유출과 공무원들의 조기퇴직이 유발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 LA폭동 그후 4년/임춘웅 논설위원(서울칼럼)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로스앤젤레스시가는 마치 화덕을 엎어놓은 것 같았다.실제로는 불타지 않은 건물이 훨씬 더 많을 터지만 치솟는 불길의 위세와 검은 연기의 위장성으로 해서 그 광활한 도시가 마치 모두 불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LA 인종폭동이후 1년동안 LA 사람들,특히 이곳에 사는 우리교포들이 얼마나 큰 고통속에 살아왔는가를 외부사람들이 상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점점 나빠지는 경제,치유되기 보다는 깊어만가는 인종간의 갈등,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것들이 빚어놓은 좌절의 골이 의외로 깊다』 기자는 LA폭동이 터졌을때도,「LA 폭동1년」을 취재를 했었다.폭동으로 불타고 빼앗긴 폭동의 현장보다 폭동1년의 LA를 취재했을 때의 아픔이 더했던 기억이 생생하다.폭동의 현장에는 분노와 슬픔이 가득했어도 그날 이후의 비극에 대해서는 아무도 예측을 할 계제가 아니었다.그후 1년이 지난 LA에는 비록 살기는 없었어도 꿈을 잃은 좌절감으로 해서 모두가 주저앉아 있었다. 폭동의 여파가 1∼2년내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뼈아픈 인식이 교포들을 극도의 허탈감속으로 몰아넣고 있었다.당시 남가주대학이 실시한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조사에 응한 한국교민 폭동피해자 1천5백39명중 29%만이 재기에 희망을 걸고 있었을뿐 무려 49%가 더이상 장래가 없다고 믿고 있었다. 지난해말 LA에 사는 교포부부가 서울에 왔다.세탁업을 하는 이들부부는 지금 그곳에 사는 교포들이 얼마나 어렵게 사는가 하는 얘기들을 들려주고 나서,답답하기도해서 모처럼 서울에 왔더니 안오느니만 못하게 됐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왜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옛날에 함께살던 또래들의 성장한 모습과 흥청대는 서울생활이 자기들의 세계와 대조돼 박탈감만 더하게 됐다는 것이었다.부인은 이어 『서울은 돈과 시간이 넘치는 도시같다』는 촌평을 덧붙였다.LA에서의 어려움이 서울에와서 오히려 덧나는 아픔을 안고 그들은 떠나갔다. 지난 4월29일은 LA폭동 4주년이 되는 날이었다.때맞춰 신문들은 LA 교포상가들이 다시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는 뉴스를 전하고 있다.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코리아 타운이 서서히기지개를 펴고있다는 뉴스를 자세히 살펴보면 오뚝이처럼 일어선 사람의 이야기,각고의 노력끝에 재기에 성공한 예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봐서 교포경기의 전반적인 회복이라기 보다는 열심히 일하고 능력있는 사람들의 부분적인 성공사례일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미국경제가 전반적으로 성장세로 돌아섰고 교포들의 입지전적 성공사례들이 교포경기를 이끌어 갈 수도 있어서 다시 희망을 가질 여건은 조성돼가고 있는 것 같다.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특히 폭동의 진원지로 우리 한인들이 집중적인 피해를 입었던 사우스센트럴 지역의 한인들이 폭동후 그곳을 떠나지않고 흑인들과 새로운 관계를 모색해 가며 재기에 성공해가고 있다는 얘기는 자못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지난 65년 이 지역에서 거의 비슷한 흑인폭동이 일어났을때 당시 장사를 하던 유태인들은 모두 이곳을 버리고 떠나고 말았었다.유태인들이 버리고간 자리를 우리 교포들이 차고들어가 장사를 하다 92년 그런 재난을 당했던 것이다.떠날만큼 재산형성이 안돼있었던 측면도 있고 떠날곳이 없어 가지 못했던 일면도 없지않으나,그 처절한 폭동의 현장에 다시 동아리를 트는 한국인의 집념도 적지아니 힘이 됐을 것이다. 해외에 나가 사는 교포들도 여전히 한국인이다.우리가 그들의 희소식에 웃고 그들의 슬픈소식에 가슴을 저미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폭동 4년후의 LA소식은 참으로 우리를 기쁘게한다.
  • 「공소장 변경」 놓고 검찰­변호인 설전

    ◎변호인 “공소사실 모호하다” 답변거부/검찰선 “재판 고의지연 위한 전술” 반박 12·12 및 5·18사건의 6차공판에서 전두환피고인에 대한 검찰의 직접신문이 변호인단의 거센 공세로 무산됐다.앞으로의 재판이 순조롭지 않을 전망이다. 이날 하오 5시 재판이 속행되자마자 이양우 변호사는 『검찰의 석명서에는 비상계엄확대와 계엄군의 출동을 폭동·반란행위로 규정했음에도 이를 결정,공포한 최규하 정부도 반란정부인지의 여부와 내란목적살인죄의 범죄구성요건이 되는 피해자의 신원·장소·시간이 여전히 모호하다』고 반발했다. 그는 『공소사실이 석명되고 공소장이 변경될 때까지 답변을 거부하겠다』고 주장했다. 김영일 재판장은 『공소장은 합법적인 절차를 위장해 정권을 찬탈하려는 과정을 밝히려는 취지』라며 『사실심리를 하는 과정인데,먼저 판단을 구하는 것은 무리』라고 설득했다.검찰도 『판결의 범위에 속하는 부분에 대해 석명을 요청하는 것은 재판지연전술에 지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전상석 변호사는 『공소장을 변경하지 않으면 재판을 받지 않겠다』며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20여분동안 논란이 계속되자 재판장은 『공소사실이 다소 부족한 것을 문제삼아 재판을 못하겠다는 것은 지나친 것』이라며,노기띤 목소리로 『이런 분위기에서는 더 이상 재판을 못하겠다』며 폐정을 선언했다. 이에 앞서 하오 2시30분 6차공판이 시작될 때부터 검찰과 변호인단은 1시간여동안 설전을 벌였다.전상석 변호사는 성명서를 통해 『지난 22일 퇴정한 것은 검찰의 신문이 피고인의 도덕성 흠집내기와 명예훼손으로 일관되고 일부 방청객이 변호인단에 인신공격을 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석진강 변호사는 미국의 O J 심슨재판 및 일본의 옴진리교재판을 예로 들며 『일방적인 재판을 피하기 위해 TV로 생중계하자』고 요구했다. 재판장은 『변호인단이 퇴정에 대한 사과를 위해 개인적으로 방문했을 때 법정에서의 일이니 법정에서 해명하라고 했다』며 『사과가 명쾌하지 않아 유감』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공개재판은 규칙에 어긋나는 것이며,전직대통령 2명을 비롯해 국가고위직을지낸 피고인들의 재판을 공개하는 것은 우리의 정서와 법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반대했다. 하지만 변호인단은 검찰이 준비한 석명서를 제출하자 『공소사실이 명확하지 않다』고 또다시 트집을 잡았다. 이에 재판장은 공소장변경을 검찰에 요구했고 검찰은 『변경의 필요을 느끼지 않는다』면서도 『다음 재판기일 때까지 공소장을 일부라도 바꾸겠다』고 양보했다. 이같은 변호인단의 지연전술에 검찰은 『신속한 재판을 위해 1주일에 2차례의 재판을 하고 밤늦게까지도 재판을 계속하자』고 재판부에 건의했다. 이날 검찰과 변호인단·재판부 3자간의 논쟁은 그동안 계속되온 법리논쟁의 흐름과 같은 맥락이다.검찰의 직접신문과 변호인 반대신문을 앞두고 주도권을 잡아보려는 변호인단의 책략이기도 하다.〈박상렬 기자〉
  • 공판 이모저모/최후진술 피고인들 “송구…” 한목소리

    ◎변호인,다른 뇌물사건 형평성 들어 성토/안현태씨 유서작성사실 공개… 한때 술렁 29일 상오 열린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사건 3차공판에서는 안현태피고인 등 4명에게 구형이 내려졌다.이어 속개된 12·12 및 5·18사건의 6차공판에서는 검찰과 변호인단 사이에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계속됐다. ○…검찰의 구형을 받은 안피고인 등 4명은 재판장의 지시에 따라 피고인석에서 차례로 일어나 최후진술. 각각 『특별히 드릴 말씀은 없지만 재판부의 너그러운 판결을 기대한다』(안피고인),『누를 끼친 모든 분께 죄송하며 깊이 반성한다』(성용욱피고인),『물의를 일으켜 송구스럽다』(안무혁피고인),『경제전문가로 국가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기회를 달라』(사공일피고인)고 피력. ○…변호인단은 최후변론에서 뇌물죄의 법적용을 성토하거나 다른 뇌물사건과의 형평성을 거론하며 검찰을 성토. 이보환변호사는 『수뢰자가 받은 돈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으면 뇌물이 아니다』라며 『이는 형법교과서에 나와 있는 기초이론』이라고 지적. 정상학 변호사는 장학노전청와대 부속실장의 사법처리와 관련,『검찰이 당시 22억원을 떡값으로 처리했으니 안피고인이 받은 5천만원도 같이 적용해야 할 것』이라고 검찰수사를 맹공. ○…정변호사는 최후변론에서 『안피고인이 검찰 조사과정에서 유서를 작성했다』고 말해 법정이 술렁.정변호사는 『평소 강직하고 성실한 생활을 해온 안피고인이 검찰에서 조사받던 중 유서를 작성했다』며 『현재 검찰이 이 유서를 보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공개했다. 검찰은 전피고인이 구속된 직후인 지난해 12월5일 「대통령을 제대로 모시지 못해 이런 사태가 빚어져 죽고 싶다」는 심경을 피력한 3장분량의 유서와 부인 앞으로 보낸 유서 등 2가지를 서울 중구 쁘렝땅백화점에 있는 안피고인의 개인사무실에서 압수해 참고자료로 첨부했다는 것. ○…하오 5시부터 5·18사건에 대한 검찰 직접신문이 이어질 예정이었으나 변호인단이 「공소사실요건미비」를 주장하며 재판진행을 수용할 수 없다고 강력히 항의. 변호인단은 『검찰 공소장에는 「성명불상자」,「수많은 광주시민」 등 범죄행위를 특정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아 이 상태로는 재판을 받을 수 없다』는 등 20여분동안 재판연기를 거듭 요구.이들은 『간통죄사건에서도 언제,누가,어떻게 간통했다는 내용이 들어가야 하며 이 가운데 한 가지만 빠져도 법정에서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고 빗대며 힐난. 재판장은 『그같은 이유는 재판연기사유가 되지 못한다』고 설득했으나 변호인단이 주장을 굽히지 않자 『이런 분위기에서는 도저히 재판을 진행할 수 없다』며 화가 난 표정으로 폐정을 선언. ○…성피고인측의 손진곤 변호사는 최후변론에서 『정치자금을 뇌물로 보는 것은 우리 법률문화가 아직 미개성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증거』라며 자금성격을 정확히 규명해줄 것을 재판부에 당부했다.이어 『공소장을 그대로 베끼는 판결이 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간곡히 주문. ○…하오에 속개된 5·18사건 등 6차공판에서는 검찰이 제출한 석명서에 대해 변호인단이 『성의가 없다』고 공격,검찰과 변호인단 사이에 설전이 전개됐다. 김상희 부장검사는 석명서를 제출하면서 『검찰은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등의 조치를 큰 폭동으로,그외의 진압과정은 작은 폭동으로 보고 있다』며 『검찰은 공소장변경의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필요하다면 변호인들의 반대신문을 지켜본 뒤 결정하겠다』고 설명. 재판장인 김부장판사는 『변호인단의 주장은 어느 부분이 배경이고 어디까지가 내란·반란인지가 특정돼 있지 않다는 것이기 때문에 어렵더라도 변호인 반대신문에 들어가기 전까지 정정해주어야 변호인단이 변론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검찰의 성의를 촉구했다.〈박상렬·박은호 기자〉
  • 광주사태 당시 미 국무부­주한 대사관 통화내용

    ◎글라이스틴 대사 “군부 합법계통 무시… 곧 결정적 사태/몬조 부대사 “위컴사령관 서울귀환 늦추는게 좋겠다”/카터,전씨에 “최근 사태 우려… 정치일정 준수” 친서 80년 당시 주한미대사관과 국무부 한국대책반사이에 오간 비밀전문 요약.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미국대사 보고〉 ▷80년 3월12일◁ ▲가까운 장래에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이 최근 들어 한층 적어지고 있다.한국경제의 복잡성,한국외교의 미묘함,군부 직접통치에 대한 대다수 국민들의 반대 등을 군장교들도 깨닫기에 이르렀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정치 불참여에 대한 본인의 강한 언질에도 불구하고 직·간접적인 방법으로 정권을 잡을 날을 기다리고 있는 인상을 주고 있다.그러나 그가 중앙정보부까지 장악하거나 다음 선거를 조종하려고 시도할 경우엔 일반대중 뿐아니라 12·12때의 동지들로부터 반대에 직면할 수 있다.군부는 견제력없이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고 그 군부에서 전두환은 분명히 지켜봐야 할 인물이다.그러나 군부가 「나라를 이끌고 가고 있지」는 않다.전두환은 선거에서 아주 중대한 역할을 할 수 있겠지만 막후의 실력자로 만족할 수도 있다. ▲현 정부는 예전의 능률,규율,활력 등을 상실했지만 상당히 잘 움직이고 있다.최규하 대통령은 불행히도 무기력하고 조심성이 너무 지나치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하지만 최규하 정부는 생각보다 훨씬 단호하다. ▲내년초 선거를 앞두고 연말에 큰 정국혼란이 예상되는 가운데 최대통령은 아닐지라도 신현확 총리는 자신이 초당적 후보로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는 것을 그 타개책의 하나로 고려하는 것처럼 보인다. ▷5월17일◁ 제1신:▲17일 오전 청와대의 최광수 비서실장을 방문,최대통령은 다음 며칠을 이용해 아주 명확하게 정부가 할 수 있는 계엄 및 정치일정에 대한 양보를 해야한다고 강력 요청했다. ▲경찰이 이화여대에 들어와 학생들을 해산시키고 있다는 나쁜 소식이 막 들어왔다.곧 결정적인 사태에 봉착할 것으로 우려된다. 제2신:▲군부 지도부는 한국정부의 합법적 계통을 무시하고 학생 및 정계전반에 대한 참혹한 탄압에 들어갔다. ▲청와대에서 상당히 고무적인 대화를 나눈 1시간뒤 폭동진압경찰의 이화여대 진입을 미국인 목격자를 통해 알았으며 청와대,경찰,중앙정보부 등에 1시간동안 수소문한 끝에 캠퍼스난입건과 함께 전국비상계엄 확대조치도 알게 됐다. ▲우리는 이같은 결정에 대해 전혀 사전통고를 받지「않았다」.우리의 정보을 엉성하나마 종합하건대 이 결정은 이날 오전의 전군지휘관회의에서 내려진 것으로 보인다. ▲이 사태에 대한 우리의 본능적인 반응은 말할 것도 없이 부정적이다.그리고 좌절감을 느낀다.우리에겐 기정사실만이 내던져진 것이며 이로 보아 군부지도자들은 우리를 이런 식으로 대할 경우의 결과에 대해 전혀 무지하거나 전혀 상관하지 않고 있다. ▲유감스럽지만 지금 이 단계에선 우리의 영향력이 심각하게 제한되어 있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전두환 대통령 취임과 관련한 존 몬조 주한미부대사 보고〉 ▷8월14일◁ ▲다양한 채널의 보고에 따르면 8월16일 최규하 대통령이 하야하고 전두환이 21일쯤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해 대통령으로 선출된다는 정보가 확실하다.(이 과정에서) 사용되는 절차가 기술적으로 헌법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쿠데타로 규정지을 수는 없다. ▲미국이 한국문제에 대한 대응을 하는데 있어 고려해야할 사항은 첫째는 앞으로 상당기간 전을 상대해야 한다는 사실이고 다음은 미국이 전의 집권에 있어서 도구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전이 「합법적」으로 선출될 것이기 때문에 미국은 그를 대통령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최소한의 정상적 예우」(minimum normal courtesies)로 대하여야 할 것이다. ▲위컴 장군의 서울 귀환을 늦추도록 요청하는 것이 현명하리라 생각한다.만일 최대통령의 사임발표 이전에 그가 돌아온다면 마치 그가 (전의) 취임에 대한 미국의 최종적 축복과 승인을 갖고 오는 것으로 해석될수 있을 것이다. 〈카터 미대통령의 전 대통령당선자에 대한 첫친서〉 ▷8월27일◁ ▲본인은 한국에서의 최근 사태들이 우리를 대단히 어렵게 했다는 사실을 귀하가 알기를 바란다.우리는 최 전 대통령에 의해 약속됐던 빠른 시일내 신헌법의 국민투표 회부와 그 헌법에 따른 내년초까지의 대선 실시에 대한 귀하의 재확인에 주목한다. ▲본인은 귀하가 직면한 문제들의 어려움을 인식하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귀하가 국민적 지지를 받는 정치제도의 개발과 국민들에게 보다 큰 개인적 자유 부여를 통하여 정부의 안정을 지킬수 있는 신속하고도 가능한 행동을 취해줄 것을 촉구하는 바이다.〈워싱턴=라윤도·김재영 특파원〉
  • 이종찬 수사본부부장 일문일답

    ◎“변호인들 이 재판을 정치선전장화 기소유예뒤 재범 발견… 재수사 당연”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장인 이종찬 서울지검 3차장은 이 사건의 첫 공판이 진행중인 12일 하오 기자들과 만났다. 다음은 이본부장과의 일문일답. ­검찰이 공판진행 도중 법정이 아닌 제 3의 장소에서 검찰측 주장을 피력하며 변호인단의 주장을 반박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데. ▲변호인단이 모두진술의 기회를 빌려 검찰의 공소사실을 호도하고 책자로 만들어 장외에 배포하는데 대해 김상희부장검사가 법정에서 반론한 내용을 기자들이 잘못 알아 들었을까봐 내가 다시 설명하는 것 뿐이다. ­변호인단 주장에 검찰이 이전에 불기소 처분한 사건을 수사 재기한 목적이 의심스럽다고 주장하는데. ▲누차 얘기한 것처럼 검찰의 기본적인 입장은 12·12사건의 경우,그 사건만으로는 기소유예가 가능하지만 그 뒤 재범사실이 발견돼 어쩔 수 없었다. 5·18사건은 국회에서 법을 만들어 준 것 아니냐.국민들이 수사를 재기하라고 하는데….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5·18진압과정을 폭동의 일환으로 본 것도 변호인단이 강력하게 비난하는데. ▲진압이라는 것은 법적인 범위에서 이뤄져야 한다.피고인들이 개인적인 목적을 가지고 진압했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이다. ­변호인단의 주장과 검찰의 입장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변호인단은 이 수사가 정치적 배경에서 과거 정권의 정통성을 문제삼은 수사인 것처럼 말하지만 검찰은 「합법성」이라는 포장하에 이뤄진 위법행위를 기소한 것이다. 12·12사건 기소는 군의 일부 간부들이 사명을 저버리고 군권 찬탈을 감행한 불법행위를 소추한 것이다.5·18진압행위 또한 당시 진압행위 자체를 기소한 것이 아니라 시국상황을 악용해 헌법과 국민의 기본권을 유린한 행위를 소추한 것이다.변호인단의 주장은 한마디로 재판을 정치적으로 이끌어 가려는 것이다.
  • 인니 총선 1년앞… 민심 달래기 “부심”

    ◎빈부격차·환경오염 심각… 20% “반여” 공언/정부,각게 지도층 잇단 접촉… 표관리 분주 오는 97년 총선을 앞둔 인도네시아가 「민심 다독거리기」에 부심하고 있다.경제성장이 오히려 빈부의 격차만 확대하는 데다 중국 화교의 경제력 장악에 대한 박탈감,환경오염 문제등이 수하르토 대통령이 이끄는 집권 골카르당의 지지기반을 무너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유권자의 20%인 2천만명이 골카르당에 「표를 찍지 않겠다」고 공언할 만큼 민심이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다. 이에 당황한 인도네시아 정부는 민간 행정관료,사회 지도자들과 연쇄 회동을 갖는 한편 종교지도자들에게도 추파를 던지는등 「표 모으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수하르토 대통령도 올 신년연설에서 이례적으로 경제·사회적인 혼란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데 실패했다고 시인하기도 했다. 현재 인도네시아의 가장 큰 문제는 빈부의 격차가 날로 커지고 있다는 데 있다.대부분의 인도네시아인들은 경제구조가 20개 재벌 기업집단에 집중돼 성장의 탄력성을 잃고 있는 데다 경제정책의주요 목표계층이 1천4백만명의 증산층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탓에 빈부의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경제성장의 혜택을 비교적 적게 받은 농촌지역이 민심 이반의 주요 진앙지가 되고 있다.지난해 8월 자바섬 젬버지역 담배농가들의 폭동사건을 비롯,지난 6개월동안 끊임없이 크고 작은 소요사건이 발생한 것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수백명의 담배재배농민들은 지금까지 사유농들이 재배하던 국유지 2천㏊의 소유권을 국영농장에 넘겨줘야 한다는 지방정부의 결정에 불만을 품고 관공서 건물과 차량을 불태우며 시위를 벌였다. 급속한 경제발전에도 불구하고 실업은 여전히 증가한다는 점도 「민심 끌어들이기」의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더욱이 고학력 실업은 사회불안의 가장 큰 요소로 등장하고 있다.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작년의 구직자중 1.5%인 30만명만이 풀타임으로 고용되는데 그쳤으며,15∼25세 사이의 실업은 52%가 넘는 7백33만명으로 나타났다. 또 화교들의 경제력 장악도 민심을 악화시키고 있다.화교는 1억9천만명의 인도네시아 인구중 3%에 불과한 약 5백70만명.그러나 입장료가 7천5백루피(약 2천7백원)인 극장 영화관객의 60% 이상이 화교일 정도로 화교들이 인도네시아 경제권을 좌지우지하고 있다.이에 대한 인도네시아인들의 반감이 증폭돼 작년 6월 메단의 화상 폭행치사 사건,10월의 화교 소유의 백화점 테러사건등이 잇따라 발생했다. 환경오염 문제에 대한 농민들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무분별한 경제개발이 환경오염을 일으켜 농어민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 연내 점진적 개방 수용않으면 북한체제 머지않아 파탄

    ◎평통 자문회의 잠정결론 벼랑끝 상황의 북한체제가 멀지않아 붕괴할 것인가,한고비를 넘기고 다시 살아날 것인가. 식량난을 비롯해 북한이 처한 대내외 입지가 최악의 상황에 빠져들고 있는 징후가 잇따라 포착되고 있다.하지만 정작 북한체제의 존속가능성에 대해서는 북한전문가들의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대통령 자문기구인 민주평통자문회의(사무총장 박상범)는 6일 정부 및 민간 북한전문가들의 견해를 집대성해 이에 대한 1차적 해답을 제시했다.평통은 「북한체제 위기론의 평가와 분석」이라는 보고를 통해 김정일체제가 단기적으로 당장 붕괴하지는 않겠지만 개혁·개방을 계속 외면한다면 체제존립의 결정적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 이 보고서는 90년대 들어 5년 연속으로 마이너스성장을 기록하면서 94,95년의 산업가동률이 30% 수준을 밑돌고 있다고 지적했다.또 귀순자가 93년 8명,94년 52명,95년 40명,96년 2월 현재 12명 등으로 증가일로에 있는데다,탈북 도미노현상이 북한내의 고위 기득권층에까지 확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때문에 북한경제가 외부의 획기적 지원이나 김정일정권이 실용주의 라인으로 전환하지 않을 경우 멀지않아 회생불능의 파탄에 직면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북한정권이 이같은 내부 불안상황에 대한 통제력을 어느 시점에서 살실할 경우 엄청난 급변사태를 맞을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이 때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로는 우선 최고지도자(김정일)에 대한 저격사건 발생이나 그의 급격한 건강악화나 우발사고 및 친위쿠데타 및 이에 따른 내란사태가 제기 됐다.나아가 ▲지역적으로 동시다발적인 식량폭동현상 빈발 ▲대규모 탈북사태 ▲체제위기 극복 불가능에 따른 제한적이고 충동적인 대남 무력도발 감행 가능성도 예견됐다. 그러나 북한당국은 현재 김정일정권의 누수현상과 정치적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극히 대증요법적인 대응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이를테면 탈북기도자,체제비난자등에 대해 공개재판과 처형등을 자행하고 국경수비를 강화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라디오·카세트테이프등 반입물품에 대한 통제,해외출장자 가족에 대한 사상교육 강화,해외주재 당정간부들의 소환등도 마찬가지다. 이는 장기적으로 예상되는 북한 체제위기에 대한 근본처방이 아님은 물론이다.따라서 북한체제는 김정일 후계구도가 공식화될 것으로 보이는 올해 안에 점진적이나마 개혁·개방을 수용할 것이냐,완전한 자생력 상실을 뜻하는 「홀로서기」를 계속할 것이냐에 대한 선택을 강요받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 “5·18때 20사단 광주투입 한·미 협의 사안 아니었다”

    ◎국방부 반론 제기 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20사단을 광주에 투입한 것이 한미협의에 따른 것이라는 최근의 일부 미국 언론보도에 대해 20사단의 투입은 「승인」이 필요한 사안이 아니었다는 국방부의 반론이 제기됐다. 군의 한 고위장성은 4일 『한미연합사 작전통제부대의 이동은 한미 협의하에 이루어지므로 당시 비 작전통제부대였던 20사단은 당초부터 협의대상에서 빠져있었다』면서 『20사단의 광주투입에 대해 위컴 전 주한미군사령관이 찬성하거나 반대할 권한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존 위컴 전사령관은 최근 『80년 당시 한국군 고위관계자들이 한미연합사를 방문,폭동통제를 위한 훈련목적이라며 20사단의 이동승인을 요청했다』면서 『합법적인 절차로 이뤄진 한국측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고 해명했었다. 미국의 일간지인 「저널 오브 코머스」지도 최근 『미국정부가 80년 당시 한국군 투입계획을 승인했고 백악관의 한 회의에서 직접 군사개입하는 방안도 논의됐었다』고 보도했다. 80년 당시 20사단(사단장 박준병)이 광주에투입된 것이 한미협의에 따른 것이라면 진압과정에서의 발포책임에 미국의 관련여부가 재론될 소지가 있기 때문에 이같은 군 고위장성의 주장은 미국의 개입이 없었다는 미 국무부의 주장과 일치되는 것으로 주목되고 있다.
  • “소요­폭동발생때 계엄 선포”/중,「폭동방지법안」 채택

    ◎등 사망 앞두고 혼란 대비 【북경 로이터 연합】 강택민 중국공산당 총서기겸 국가주석은 사회적인 소요나 폭동 등 국가의 단합을 위협하는 사태가 발생시 계엄령을 선포하는 내용의 폭동방지법안에 2일 서명했다. 관영 신화통신은 오는 5일 열리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상무위원회가 앞서 통과시킨 이 법안이 사회적인 대혼란이나 폭동 또는 심각한 소요사태 등이 발생하거나 일반적인 조치가 질서유지와 생명 및 재산의 보호에 부적절하다고 판단될때 계엄을 선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법안은 89년 6월의 천안문사태 당시보다 유연한 방법에 의한 계엄 선포가 가능하도록 현행 법안의 허술한 내용을 보완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고지도자 등소평(91)의 사망시 대중소요가 발생할 것을 우려하는 공산당지도부는 등 생전에 상기 법안이 통과되도록 노력해왔으며 법안에 따르면 소요 등의 상황 발생시 인민해방군이나 준군사조직인 인민무장경찰이 진압을 맡게 된다.
  • “미,광주 군투입에 부정적 태도”/미 국방부 백서형식 성명서주장

    ◎한국특수근은 미 승인없이 작전통제 가능/위컴 “20사단 어디로 이동하는지 몰랐다” 80년 광주민주화 운동 때 미국은 과연 어느정도의 역할을 했을까. 미 통상전문지 저널 오브 커머스지가 27일(이하 미국시간) 80년 5월8일자 미국무부와 국방정보국(DIA)의 비밀문건을 보도한 이후 국무부나 당사자였던 윌리엄 글라이스틴 전 주한미대사의 해명성 발언이 이어지면서 당시 미국 역할이 새롭게 관심을 모으고 있다. 커머스지는 『미정부는 한국군부의 무력투입 비상계획을 지지했었다』고 보도,미국이 광주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고 강조했다.이에 대해 미국무부는 지난 89년 작성돼 한국에 전달됐던 「10·26에서 전두환씨 취임까지」라는 제목이 붙은 백서 형식의 성명을 예로 들어 『미국은 이용당했다』고 주장했다.글라이스틴 전대사 역시 논평을 통해 『커머스지의 보도는 사실이지만 단편적인 것으로 인용이 본래의 뉘앙스에서 벗어나 있다』고 지적하고 『미국은 (신군부에) 매우 강하게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었다』고 밝혔다. 미국역할 부분이 이같이논쟁거리로 대두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은 미국이 특전사의 광주 투입을 미리 알았는지,20사단 투입을 언제 알았으며 부대투입을 승인했는지 등의 문제에 대한 설명이 서로 다른데서 비롯되고 있다. 이와 관련,커머스지는 ▲미국은 광주에 대한 비상계획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글라이스틴 전대사를 통해 신군부에 전달했고 ▲80년5월22일 백악관 회의에서 미국이 직접 무력개입하는 방안도 논의됐으며 ▲같은날 20사단의 광주 추가투입을 승인했고 ▲비상계획에 공수부대 투입이 포함돼있음을 사전에 미국이 알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미국무부는 이 성명에서 ▲미국은 16일 한국군이 연합사에 20사단 60연대 등을 작전통제권에서 철수하겠다고 통보해왔고 ▲한국군은 연합사의 작전통제를 받는 부대를 통고만으로 해제시키는 권리를 갖고 있으며 연합사령관은 이 통고에 대해 찬성이나 반대를 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미국은 80년 5월19일 광주미문화원장이 대사관에 걸어온 전화로 최초의 단편적 정보를 입수,민간 및 군사경로를 통해 (한국정부가) 군사력의 지나친 사용에 대한 사과나 유감의 뜻을 표할 것을 종용했으며 ▲특전사부대들이 광주로 이동된 것을 몰랐고 ▲글라이스틴대사가 미국이 20사단의 이동을 승인했다고 말했으나 한국정부는 작통권을 가진 부대에 대해 미국의 견해와 관계없이 부대를 이동시킬 수 있으며 ▲광주에서 라디오방송으로 『미국측이 특전사부대의 광주투입을 승인했다』고 보도하고 있음을 알고 이를 취소할 것을 한국정부에 정식요구했으나 무시됐다고 조목조목 밝혔다. 글라이스틴 전대사는 『89년의 성명이 매우 정확한 문건』이라면서 『향후 1∼2년안에 갖고 있는 자료를 토대로 책을 써 정확한 실상을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존 위컴 전 연합사령관은 『한국군측이 폭동통제를 위한 훈련용이라며 합법적으로 20사단의 이동을 요청해 이동을 승인했으나 이 부대가 어느 곳으로 가는지 알지 못했다』면서 특수군은 한국측이 미측에 알리거나 승인받을 필요없이 국내안보 목적에 쓸 수 있다고 말했다.그는 또 승인을 해주면서도 『대포등 중무기는 북한쪽으로 그대로 놓아둔다는 조건으로 승인했다』고 강조했다.
  • 김대통령 방문앞두고 살펴본 경협전망(거대시장 인도가 부른다:상)

    ◎인터뷰/아지트 쿠마르 인 투자진흥청장/인프라 투자땐 수익률 16% 보장”/김 대통령 방인 양국경협 촉진시킬 것/한국기업 대단히 우수… 적극 진출 기대/“신청서 승인까지 일괄처리” 투자센터 설립 검토/서울신문 동남아기획취재팀 현장리포트 인도가 한국의 투자손길을 기다리고 있다.9억3천만 인구의 잠재 소비계층과 철광석 등 막대한 부존자원,핵과 소프트웨어 분야의 첨단기술력을 겸비한 거대시장으로 중국과 동남아시아에 이어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미개척지이다.특히 오는 24일로 예정된 김영삼대통령의 역사적인 인도방문은 한·인도 교류를 본격화시키는 것은 물론 제3세계로의 외교지평을 확대할 것으로 기대된다.서울신문은 김대통령의 방문을 앞두고 한·인도 경제협력관계의 현황과 전망을 3회에 걸쳐 싣는다. 아지트 쿠마르 인도투자진흥청장(54·차관)은 김영삼 대통령의 역사적인 인도 방문이 한국과 인도의 경제교류는 물론 외교지평을 크게 확대할 것으로 기대했다.쿠마르 청장은 펀잡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지난 64년 공직에 몸담은후 줄곧 경제분야 일을 해왔다. ­「무디즈」「스탠다드 푸어즈」등 국제적인 컨설팅 회사들은 인도가 21세기에 경제대국으로 부상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잠재력이 크다는 말로 풀이된다.과연 인도는 매력있는 시장인가. ▲그렇다.9억3천만 인구가 매력포인트다.국제적인 유명상품을 구매할수 있는 소득층이 2백만가구나 된다.유사상품 구매가 가능한 중산층(1인당 GDP 8백달러)만도 2억이상으로 추산된다.이같은 소비시장 규모는 나라시마 라오 총리정부의 자유화 경제정책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노동력의 질도 우수하다.한국이 투자해서 손해볼 게 없다. ­투자가 유망한 분야는 어떤 것이 있나. ▲인프라(사회기간시설)다.발전,도로,항만 등은 자본부족으로 개발이 지연돼 왔다.이 부문에 투자하면 인도정부가 16%의 투자수익률을 보장해 주고 5년간 소득세를 면제해준다.특히 발전은 가장 시급한 분야다.전력이 없으면 산업발전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현대중공업이 참여하고 있지만 더 많은 한국기업이 나서기를 바란다.현재의 전력생산 능력은 경제성장과 국민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 ­한국이 투자하기에 적합한 분야를 구체적으로 소개해 달라. ▲우리는 투자유치 우선 분야 10개를 정해놓고 있다.발전 및 정유,화학,통신,서비스,금속,전기설비,식품가공,수송,관광 및 섬유다.어디다 투자해도 이득을 챙길수 있다고 자평한다. ­지난해 한국의 대인도 투자현황과 한국기업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 ▲지난 한해동안 한국은 기술협력과 자본협력 등 총 60건에 31억4천1백만 루피를 투자했다.국가별로 보면 30위권이다.한국은 자동차,전자,중공업 등 거의 전 분야에 걸쳐 고루 투자하고 있다.한국기업은 대단히 우수해 배울게 많지만 적극적인 투자가 아쉽다. ­일부 외국기업들은 인도내의 절차가 까다롭다며 투자를 하고 싶어도 못한다고 불평한다.이에 대한 견해는. ▲지난 91년이후 개방정책을 펴 왔지만 여전히 관료적인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투자승인 절차가 복잡해 외국의 비즈니스맨들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개선하려고 노력하고 있다.투자신청부터 승인결정까지를 일괄처리해 주는 투자센터설립을 검토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인도투자시 주의사항은 무엇인가. ▲우선 인내심을 가져달라.인도의 체제는 서구와 다르다.통신과 교통이 낙후돼 있고 문화도 다르다.중앙정부는 서류문제만 취급한다.투자시 현지 정부와 협력하는 게 필요하다.현지에 컨설턴트를 두는 것도 안전판이다.인도인들은 개발에 따른 대기,물 오염 등 환경오염 때문에 외국업체에 대해 반감을 갖는 경우가 많다.이에 적절히 대처하기 위해선 현지사정을 잘아는 파트너의 역할이 꼭 필요하다. ­인도 정부가 가장 중시하는 경제정책은 뭔가. ▲말할 것도 없이 자유화다.그간의 성과를 보면 앞으로 정책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91년 신경제정책 시행전 국내총생산(GDP)성장률이 0.9%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6.2%로 껑충 뛰었다.인플레도 평균 10%이상에서 절반수준인 5%로 떨어졌다.외국인 투자도 6천8백만달러에서 지난해 13억달러로 증가했고 올해엔 20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다.앞으로도 경제정책의 기조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인도인민당(BJP)등 일부 정당은 현정부의 경제정책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심화시켰다며 4월로 예정된 총선의 호재로 이용하고 있다.혹시 차기 정부가 경제정책을 변경시킬 가능성은 없는가. ▲인도는 너무 멀리가면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이 나의 답변이다.우리 경제는 개방을 통해 자본수혈을 받지 못하면 성장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이미 공산당을 포함한 다수의 정당이 자유화를 지지하고 있다.따라서 정부성격과 무관하게 자유화는 진행될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이 오는 24일 사상 처음으로 인도를 방문할 예정이다.김대통령의 인도방문에 대해 인도 정부는 어떤 평가를 하고 있나. ▲김대통령의 방문은 한·인도 경제협력을 더욱 촉진할 것이다.중동과 동남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배후기지로서의 상징적인 의미도 갖는다.또 이번 방문으로 경제외적 교류도 강화될 것이다.인도는 제3세계 리더로서 국제무대에서 한국 입장을 지지하는 쪽에 서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인도 정치·경제·사회·문화 현황/핵·국방·컴퓨터 SW/세계 최첨단 기술력 보유/1인당 GDP 3백불… 공용어 18종/분배 불균형심각… 절대빈곤층 10%/광물자원 풍부… 영국식민통치 경험 인도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백달러지만 제3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후진국은 아니다.사회기간시설은 낡았지만 갖추어져 있고 핵·국방 및 컴퓨터·소프트웨어분야에서는 세계 최첨단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소득이 낮은 것은 분배의 불균형이 심하기 때문이다.9억3천만명중 연간 2천달러 이상의 소득층이 5천9백만가구(2억5천만명)나 되며 연간 9천달러 이상의 가구수도 2백10만(1천만명)에 이른다.때문에 유명 브랜드 인지도가 높다.반면 하루 1달러로 연명하는 절대빈곤층도 인구의 10%인 9천만명선이다. 그런데도 혁명이나 폭동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내세를 중시하는 힌두교의 힘이 크게 작용한다.힌두교는 인도인의 83%가 믿는 대중 종교다.다음 11%는 이슬람교를 믿고 나머지는 자이나교나 시크교도다.평균수명은 55세. 민족은 드라비다,인도­아리안,몽골 등 다민족으로 구성돼 있고 언어 또한 다양하다.정부 공식어는 힌두어.공용어는 18종이지만 상용어는 영어다.문자해독률은 52%에 불과하다. 그러나 인도의 지적수준은 대단히 높다.특히 핵 컴퓨터 분야가 그렇다.대부분 해외유학파로 구성된 기술자들은 주문한 다음날 실용이 가능한 소프트웨어를 생산한다.지난해 소프트웨어 수출은 약 50억달러에 이르렀다.중심지는 방갈로르 전자공단. 철광석 등 광물자원도 풍부하다.철광석 매장량은 1백19억t으로 세계 1위이고 알루미늄의 재료인 보크사이트는 27억t으로 전세계의 8%다.광물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7% 정도다. 곡물생산도 세계적이다.쌀은 2위,밀3위,차와 원당은 각각 1위.어자원도 많아 7천5백㎞의 해안선과 2백만㎦의 경제수역에서는 다랑어,멸치,병어 등 어류생산량이 수백만t이나 된다.어패류 생산량만 4백만t에 이른다. 정치적으로는 불행해 45년 독립때까지 2백년간 영국의 식민통치를 받았다.독립이후 네루가문이 자립경제를 표방,사회주의로 경도됐고 경제는 빛을 잃었다.국가형태는 대통령제를 가미한 내각책임제.나라시마 라오 총리는 91년 취임했다.라오의 집권 국민회의(Ⅰ)는 5백44석의 하원중 2백60석을 차지,비교적 안정적으로 정권을 유지해왔다.오는 7월 하원임기가 끝나 현재는 총선정국에 돌입했다.
  • “내부통제 약화 반증”/미·일·중의 반응

    ◎미­김정일에 도전징후 없어/일­폭동으로 연결은 안 될듯/중­최근 일련의 사태에 촉각 ○…미국무부의 고위관리들은 14일 북한 김정일전동거녀의 망명설,평양시내에서의 총격 및 북한기관원의 망명 등 최근의 북한동향에 관해 『언론보도만 봤을 뿐 아는 정보가 아무 것도 없다』며 논평을 회피했다. 한편 국무부 고위관리는 이날 북한정세와 관련한 배경설명회에서 망명설과 총격전에 관한 언급은 회피한 채 현재 북한의 정치체제는 비교적 안정돼 있으며 곧 붕괴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 담당자는 그 근거로 북한정권의 지도부가 정상적으로 가동하고 있으며 김정일에 대한 도전도 없는 것으로 보이며 군도 이례적인 움직임이 탐지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언론들은 북한 평양에서 일어난 국가경비대원의 총격사건을 일제히 주요기사로 취급하면서 북한사회가 내부불만의 증대로 통제가 약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 신문은 이어 중국이 북한 김정일정권에 대해 위화감을 갖고 있어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거리를 두고 있다고 보도했으나 북한전문가 다케사타 히데시(무정수사) 방위청방위연구실장은 「시점」란을 통해 이번 사건에도 불구하고 폭동 등 급격한 움직임은 생각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중국언론매체들은 15일에도 김정일의 동거녀 성혜림의 모스크바 잠적소식이나 평양 러시아 무역대표부의 무장괴한침입사건에 대해 일체 보도하지 않고 있다. 또 중국외교부의 심국방 대변인은 이날 정례 내외신기자설명회에서 북한노동당 중앙위원의 중국망명설에 대한 질문에 『근거없는 것이고 그런 일은 없다』고 답변했다. 한편 중국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성혜림의 망명설 등 일련의 북한과 관련해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중국정부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은 김정일을 중심으로 안정된 정치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느 것이 중국정부의 일관된 평가라고 밝혔다.
  • “미의 대북 원조 한국 충고 따라야”(해외사설)

    지난 수개월간 우리에게 알려진 북한의 경제난은 분명 심각한 수준이다.주민 다수가 기아선상에서 허덕이고 있다고 한다.궁지에 몰린 주민들이 폭동을 일으킬 지경에 이르면 북한당국이 주민들의 불만을 돌리기 위해 휴전선 일대에서 위기를 조성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의 도발이 있을 경우 복잡한 국내문제에 시달리고 있는 남한이 이에 어떤 과민대응을 할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위기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신문 기자가 중국·북한 국경등에서 취재한 내용으로는 북한의 식량사정은 실제로 심각한 것같다.옛날 한국인들이 겪었던 보릿고개의 식량난이 이 스탈린주의 국가를 강타할 조짐이 나타나고 있었다.지난 수개월 북한전역을 휩쓴 식량난은 많은 주민을 기아선상으로 몰아넣을 위험을 안고있다.북한당국은 그간 1개월 이상동안 국제적인 원조를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그런데 지난주 저의가 의심되는 결정을 발표했다.군장성들의 입장을 빌려 서방에 대한 식량원조 요청을 취소한 것이다.이것이 일시적인 원조중단을 뜻하는 것이었을까.조만간외부세계에 식량원조요구를 다시 할 것인가. 이런 의문에 해답이 될 몇가지 사항을 고려해보자.첫째 주민의 복지문제가 북한정권 담당자들의 주요관심사가 아니라는 점이다.국민의 복지를 생각한다면 옛동구권들처럼 북한도 개혁에 나서야한다.대신 그들은 개혁과 담을 쌓고 루마니아 차우셰스쿠정권의 전철을 밟고있다. 이런 마당에 서방에 식량원조를 청하는 행위는 걸맞지 않다고 판단해 뒤늦게나마 이를 철회한 것이다.식량원조요청을 철회한 두번째 이유로는 이들이 소정의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임을 들수있다. 그 목적이란 남한과 미국,일본과의 관계를 이간시키는 것이다.미국이 한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북한에 대한 식량원조를 결행하겠다고 발표한지 6일 뒤 북한은 미국의 도움에 대해 공개적으로 감사의 뜻을 전달했다.북한의 이런 행위는 남한을 염두에 둔 것으로밖에 해석할수 없다.그동안 북한은 미국을 3만7천명의 주한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는 최대의 적으로 간주해왔기 때문이다.뿐만아니라 일본에 대해서도 남한의 입장과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대북한정책을 수행한다며 추켜세웠다. 그리고 나서 바로 이튿날 북한은 외부세계에 대한 식량원조요청 철회를 발표했다.박길연 유엔주재 북한대사는 의례적으로 북한군부의 영향을 거론하며 이 결정이 군에 의해 내려졌다고 밝혔다. 미·일이 이 원조를 북한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 행사의 빌미로 삼고있다고 판단한 군장성들의 입장 때문이라는게 철회사유였다.군부의 영향력을 공개시인한 것은 김정일의 정권장악에 문제가 있음을 뜻한다. 김정일은 김일성이 죽은지 1년 반이 더 지났는데도 아직 주석직과 당총서기직을 공식승계하지 않고있다. 최근에 공개되는 사진들을 보면 그는 공개석상에 등장하는 횟수가 극히 적을뿐 아니라 모습을 보일 때도 군장성들에 의해 포위되다시피 둘러싸인채이다. 군부가 김의 일거수일투족을 면밀히 감시한다는 분석도 있다.그러나 정통한 북한분석가들은 현재 김과 군부가 공생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보고있다.김은 최근 혁명원로세대인 국방상 최광을 포함한 2명의 항일빨치산 원로장성을 진급시켰다.군의 원로들은 김이 갖지 못한 군사적 경험을 가진 반면 김은 이들이 갖지못한 권력의 정통성이 있다. 아직은 어느 한쪽도 다른 편을 밀어낼만큼 권력을 확고히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권령이양기의 미묘한 어려움에 처한 북한의 집단지도부는 자기들의 경제운용방식이 문제가 있음을 깨달아야한다.아울러 우리는 북한의 의도가 어디에 있건 2백만 달러를 지원키로 한 미국의 결정에 잘못이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이것은 순수히 인도적인 차원에서 생각해봐도 당연한 결정이다. 비록 정권은 부도덕할지언정 그밑의 굶주리는 주민들까지 외면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하지만 이 경우에도 미국은 정책에 일관성을 유지해야한다.그것은 바로 동맹국인 남한정부의 충고에 항상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 문명 등지고 원시생활 한다지만(박갑천 칼럼)

    네오러다이트(Neo­Luddite)운동이 미국 메인주등에서 빨리 널리 번져나고 있다한다.첨단문명을 거부하면서 원시생활을 하는 움직임이다.러다이트는 19세기초 실업자를 만드는건 기계라면서 기계파괴폭동을 이끌어낸 전설적 영국노동자.이같은 반문명행태가 늘어나는 건 『기술진보로 인간이 얽매이고 있다』(42%)는 미국에서의 한 조사결과와도 무관하진 않을 듯싶다. 그들은 진흙과 통나무로 집을 짓는다.문명의 이기를 쓰지 않는다.이런 얘기는 지금부터 1백50년전 매서추세츠주 콩코드의 월든호숫가 도린곁에 통나무집을 짓고 대자연과 벗하여산 헨리 D 소로를 떠올리게 한다.미국사람들이 돈,돈하면서 『모기다리에서 피빼는』 현실에 대한 반발이었다.그 체험기가「월든­숲속의 생활」이다.변화하는 자연의 얼굴을 위없이 그려내고 있는 이작품은 문명사회를 뼈아프게 고발하며 비판한다.이걸 읽은 예이츠가 이니스프리섬에서 소로와 똑같은 생활을 하려했다는 말도 전한다. 러다이트와 같은 기계문명에의 반발은 「장자」(천지편)에도 보여 흥미롭다.러다이트시대에서 따지자면 원시시대 같은데 말이다.­공자의 제자 자공이 여행하다가 야채밭 가꾸는 노인을 만나는 얘기이다.노인은 땅을 파서 물이 나는 곳까지 물통을 들고 내려가 퍼와서 밭에 물을 준다.자공은 그에게 물 퍼올리는 기계 무자위를 가르쳐준다.하건만 노인은 고개를 젓는다.『교묘한 기계를 지닌자는 교지를 짜내어 훌륭한 일을 한다.훌륭한 일을 하는자는 어떤 일을 꾀한다.그런 사람에게는 순수한 혼이 갖추어지지 않는다.그리되면 인간의 영묘한 본성이 안정되지 않고 비근거린다』.이게 이유였다. 인위를 멀리하며 자연에 좇으려는 생각­예나 이제나 있는 사람 마음인 듯하다.사람들은 거기서 올바른 삶의 모습을 찾으려한다.그래서 가령 도연명의 「귀거래사」에서도 네오러다이트는 느껴지는것.벼슬버리고 고향으로 가는 노래의 시작이 『지금까지는 고귀한 정신을 육신의 노예로 만들어왔도다(기자이심위형역)』가 아닌가.월든숲속으로 가던 소로의 마음도 그것이었으리라. 하지만 문명의 맛을 아는 현대인이 끝까지 문명을 등지기도 어려운것아닐는지. 또 생각과 실제생활은 다른 법이기도 하다.「채근담」이 그런 오사바사한 사람마음을 헤아려놓았다.『산림에 숨어삶을 즐겁다 하지말라.그말이 아직도 산림의 참맛을 못 깨달았다는 뜻이다.명리얘기를 듣기싫다 하지말라.그말이 아직도 명리의 미련을 못다잊은 까닭이다』
  • 중,홍콩 주둔군 편성 완료/육군본대는 한국전 참전 부대

    【북경 연합】 중국은 내년 7월1일 홍콩특별행정구에 주둔할 육·해·공군의 인민해방군 편성을 완료,광동성 심천에서 정식발족했으며 그중 육군본대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부대인 것으로 28일 알려졌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군소식통의 말을 인용,한국전에 참전한 부대는 지난 1927년 모택동의 주도로 발생한 추수폭동과정에서 창설된 「홍군(인민해방군 전신) 제21연대」이며,49년의 중국정권 수립후 나영환·쑤위·탕정·양득지를 포함해 1백여명의 장성을 배출한 부대로서 한국전쟁과 기타 군사작전에 참가해 빛나는 공훈을 세웠다고 보도했다.
  • 정치범 11개 수용소에 20만명 복역/북한 탈출 3인 일문일답

    ◎“96년안에 무력통일 된다”… 군사훈련 강화/작년 10월 노란부대 쌀 배급… “남한산” 수군 ­귀순동기는. ▲이순옥=나는 함북 온성군 상업관리소 간부물자공급소 책임자였고 남편 최정학(56)은 온성남자고등중학교 교장이었다.85년 10월쯤 옷감구입을 위해 중국에 다녀온뒤 온성군 안전부장 김병준이 아들 혼수용 양복을 상납하라고 요구,불응하자 「국가재산 탐오죄」라는 누명을 씌워 13년형을 받고 평남 개천교화소에 수감됐다.6년간 갖은 고초를 겪다 출소한 뒤 충성으로 섬겨온 중앙당에 억울함을 호소했더니 오히려 재수감하겠다고 협박하고 남편과 김일성종합대학에 다니던 아들마저 모두 쫓겨나 그 동안의 믿음이 사라져 죽더라도 외아들인 동철이만은 자유롭고 보람된 곳에서 살게 하고 싶어 탈출을 결심했다. ▲최동철=평소 전자공학에 관심이 많아 몰래 들은 남한방송을 통해 경제가 발전되고 자유로운 남한사회를 동경하게 됐으며 김일성대학의 학생들 수준이 너무 형편없어 실망을 하고 있던중 어머니의 누명으로 강제 퇴학당했다. ­아편 재배실태는. ▲최동철=91년부터 담배농장의 부업토지의 아편재배 현장에서 근무했다.북한은 「도라지(양귀비)를 심어 생활필수품을 자체적으로 해결하라」는 김일성의 지시에 따라 전국적으로 아편농장을 운영,외화벌이에 나섰다.안전원들의 철저한 감시속에 대규모로 재배되며 주로 홍콩·일본 등지에 밀반출되거나 중국교포들과 생필품을 직접 바꾸는 밀매가 성행하고 있다고 들었으며 재배중인 아편을 몰래 뜯어 당간부에게 뇌물로 바치거나 몇몇이 모여 몰래 피우기도 한다.최근에는 중독자도 크게 늘었다고 들었다. ­당간부의 부패실태는 어떤가. ▲이순옥·최동철=어려운 식량사정에도 불구하고 당간부는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어 최근 빈부차가 더욱 극심해 졌다.고위간부인 1호간부는 한달에 육류4㎏·기름 3㎏·담배 30갑이 지급된다. 몰수당한 우리재산이 중앙당에 귀속되지 않고 컬러TV는 형을 내린 재판장이,냉장고는 검사가,자전거는 도안전원이,외투는 감찰간부가 중간에서 차지한 것에서 부패의 실상을 알았다.「당일꾼은 당당하게먹고,안전원은 안전하게 먹고,보위원은 보이지 않게 먹는다」는 말이 널리 퍼져 있다. ­정치범 수용소에 있는 정치범의 숫자 등 실태는. ▲최동철=함남·북지역에만 11개의 정치범 수용소가 있었다.한 관리소에 2만여명이 수용된 것으로 미루어 20여만명이 있는 것 같았다. ­북한 교도소내의 인권실태는. ▲이순옥=인간 이하의 처참한 생활이다.개천 여자교화소의 경우,수용능력은 6백명정도이나 80년대 중반이후 사회범죄가 크게 늘어나 1천8백∼2천여명까지 수용하고 있었다.나는 수용소에서의 고문으로 이 4개가 부러졌고 수용생활 중 입이 돌아가고 허리와 다리 통증이 심해 거동도 할 수 없었으나 치료를 받지 못했다. ­북한군의 갱도적응훈련이란. ▲최광혁=지난해 12월 두차례 실시했다.많은 용도의 갱도 가운데 남한으로 통하는 것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1개 군단의 2개 연대가 합동으로 갱도공사를 하는 것을 보았고 전쟁준비와 관련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핵·화학무기를 직접 본 적이 있는가. ▲최광혁=핵무기를 직접 본적은 없지만 남한에 핵무기가 많으니 우리도 핵개발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많이 들었다.특히 간부들은 지구를 깨뜨릴 수 있는 무기가 있으니 신심을 가지라는 말을 많이 한다. ­북한의 식량난은. ▲최광혁=지난해 10·11월 평소와는 달리 노란부대의 쌀이 1차분 들어와 남한쌀이란 수군거림이 있었다.휴가를 가도 직접 얼굴을 보이기 전에는 배급을 주지 않는다.이대로 가면 곧 폭동 등 변화가 예상되는 분위기다. ­북한군의 사기,특히 김정일 체제이후의 상황은. ▲최광혁=최근 식량난과 보급품부족으로 하사관들의 사기가 낮다.하루 식량배급량이 8백g이지만 수송도중 간부들의 편취로 6백50g정도밖에 안되고 부식도 시래기국·미역국·염장무 3쪽정도가 고작이다. 지휘관들은 『96년에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이제는 무력통일이다』라며 훈련을 강화하고 작년 11월에는 『조국통일 시기가 다가오고 있으니 무기관리를 잘하라』는 말도 들었다. ­김일성 종합대학의 입학자격과 생활상은. ▲최동철=출신성분이 좋은 중앙당 간부의 자식들은 공부를 잘 못해도 입학하고 학교생활에 별 문제가 없다.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의 실력은 너무 낮다.27살에 입학하는 제대군인의 경우 수학과 영어 기초가 모자라 예비반을 만들어 가르친다.정치사상에 대한 교육이 많고 모내기와 건설사업,행사에 동원되는 일이 너무 많아 전공을 공부할 시간이 별로 없다. ◎이순옥씨,북 교화소 실상 폭로/“신생아 태어나면 즉시 살해·암장”/우는 여죄수는 7일간 독방에 수감/물고문에 화로 고문… 억지 자백 강요/수형자 거의 영양실조… 흙까지 먹어 25일 귀순자 3인의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정치범과 일반죄수들은 인간 이하의 처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순옥씨는 우리로 치면 구치소인 함북 청진 농포집결소와 교도소인 평남 개천 사회안전부 제1교화소에서 자신이 6년 2개월동안 겪은 참상을 폭로했다. 이씨는 지난 86년 10월 농포집결소에 수감돼 1년여동안 지내면서 벽돌을 굽는 뜨거운 노속에 갇혀 극심한 호흡곤란 속에 화상을 입는 등 악랄한 고문을 받았다. 또 ▲담요를 온 몸에 씌우고 집단구타한 뒤 실신하면 짐승처럼 질질 끌고가서 물을 뿌리는 고문 ▲형틀 의자에 묶어놓고 채찍을 휘두르는 고문 ▲감옥 창살에 양손·발을 묶고 고무호스로 손가락을 때리며 발로 차고 몽둥이로 구타하는 고문이 되풀이됐다. 그래도 말을 안듣자 주전자로 물을 강제로 먹인 뒤 실신하면 배위에 판자를 올려놓고 밟아서 먹은 물을 토하게 하고 의식이 회복되면 재차 반복하기도 했다. 3백㎏짜리 벽돌을 4명이 들것으로 나르게 시키고 제대로 못 움직이면 무차별 구타하거나 잠을 안재우며 공포·억압적 분위기에서 억지 자백을 강요하는 것도 견디기 힘들었다. 혹한에 알몸으로 1∼2시간 무릎을 꿇도록 해 동상에 걸렸고 남자들 앞에서 알몸이 된 채 채찍질을 당할 때는 여자로서의 수치심 때문에 차라리 죽고싶었다고도 말했다. 하루 3백g의 소금국으로 연명하거나 「감식처분」이라는 명목으로 2∼3일 동안 굶기는 일도 흔했다. 87년 11월 개천교화소로 옮겨져 겪은 일은 더 참혹했다. 이 교화소에서는 임신 7∼8개월이 된 여죄수는 위생원이 주사를 놓아 사산시키고 아이가 살아 태어나면 목졸라 죽이는 만행이 저질러졌다. 시체는 인근 야산에 암매장됐으며 이 과정에서 임산부가 울면 「당에 대한 반감」이라며 7일동안 독방에 수감됐다. 생활고가 가중되면서 특히 가정주부 수감자들이 급격히 늘어 20명을 수용하는 한 감방에 70∼80명씩 수용돼 겨울에는 한 이불을 10여명씩 덮고 「다른 사람의 발을 안고」 자야 했다.작업복 한 벌,죄수복 한 벌로 10년정도를 버텨야해 옷감이 절어 살이 베어질 정도였다. 작업에 필요하거나 질문에 대답하는 것 말고는 말을 할 수 없고 화장실 용무도 단체로 감시하에 봐야했다. 이러한 참혹함 때문에 대부분 척추뼈가 굽어 곱사등이가 되고 다리가 「문어처럼」 휘어지는 등 성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일부 수용자는 극심한 영양실조 때문에 외부작업을 할 때는 진흙을 파먹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이씨는 『북한에서는 수용소를 「땅위의 지옥」이라고 부른다』고 전하고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살아나왔는지 모르겠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 전씨 등 내란죄 기소­수사검사 문답

    ◎“「자위권」 선언직후 진압군에 실탄 지급”/“황영시씨 「탱크진압·헬기 위협사격」 지시/전씨 등 내란상황 계엄해제날까지 지속” 23일 5·17 및 5·18사건 관련자들을 기소한 서울지검 특별수사본부의 김상희부장검사는 기자들과의 문답을 통해 수사경위와 성과 등에 대해 설명했다. ­전두환씨 등 4명에 대해 내란목적살인을 적용한 것은 이들이 광주에서 발포명령을 내렸음을 스스로 인정했기 때문인가. ▲이들이 치밀한 사전계획에 따라 발포명령을 내렸다고는 볼 수 없다.그 누구도 발포명령을 명시적으로 한 사람은 없다.그러나 이희성계엄사령관이 TV연설을 통해 『자위권 보유를 천명한다』고 한 뒤 곧바로 계엄군에게 실탄을 지급했다.이와 함께 시위대에 대한 3회이상 경고,사전 위협사격실시,생명보호를 위한 하반신 조준 등 자위권행사요건의 준수여부에 대해 누구도 확인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는 내란목적살인의 「미필적 발동」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공소장에 따르면 명백한 지휘체계 이원화가 이루어졌다고 보긴 어려운데. ▲이원화여부를 한마디로 말하면 「없다」고 해야한다.이계엄사령관으로부터 광주지역 정웅30사단장 등에 이르는 정식 라인에 전·정호용씨 등이 중간에서 끼어들었기 때문에 사실상의 이원화는 있었지만 뚜렷한 이원화 체계는 없었다. ­불법진퇴,지휘관 계엄지역수소이탈 등의 혐의는 전·노태우씨에게만 적용됐는데. ▲이들의 혐의는 국무회의 병력동원과 김영삼씨 가택연금 등 두가지 범죄사실에서 발견했다.다른 사람들도 이같은 혐의는 인정되나 대통령재임기간동안 공소시효가 정지되기 때문에 전·노씨에게만 적용했다. ­내란목적살인에 황영시씨가 포함된 이유는. ▲당시 참모차장으로서 내란을 목적으로 한 시국수습방안 논의에 참여했으며 탱크진압을 지시했고 헬기기총위협사격을 전교사에 요청했다가 거절당하는 등 광주 강경진압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이들의 명령을 받고 실제 발포를 했던 군인들은. ▲계엄군은 명령을 받아 진압에 나섰던 생명 있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따라서 계엄군 전체를 공범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또 단순살인은 공소시효도 지났다. ­구속과 불구속의 차이는 무엇인가. ▲주도적 역할 및 적극적인 행동 여부 등이 판단의 기준이 됐는데 차규헌씨 등 불구속자들은 관여정도가 다른 피고인들보다 떨어진다고 판단했고 이희성씨는 고령이 감안됐다.이외에 개전의 정과 범행후 정상 등이 참작됐다. ­전씨가 80년 9월 대통령에 취임해 사실상 내란의 목적을 완성했으면 이 때가 공소시효 출발점이 되는 것 아닌가. ▲전씨 등은 대통령 취임후에도 자신들의 위치에 대해 크게 불안을 느끼고 계엄을 해제했을 경우의 위험에 대해 꾸준한 논의를 벌여왔다.따라서 계엄을 다음해 1월에서야 해제한 것이므로 이때까지는 내란상황이 계속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번 수사때와 비교해 이번에 새로 드러난 사실은 무엇인가. ▲비상계엄해제시점까지가 신군부 폭동의 종료시점이라고 봤으므로 지난번 소홀했던 부분을 많이 보완할 수 있었다.초법적 비상기구를 설치하기 위해 대통령령으로 「국보위설치령」을 발동한 것을 비롯해 국무회의장에 병력을 배치하고 전화선을 끊어버려 분위기를 조성한 사실등이 새로 밝혀졌다.또 K공작과 시국수습방안은 물론,언론통폐합·국가보위입법회의 등의 실체도 이번에 드러났다. ­광주현지조사의 성과는. ▲수사가 다 끝나지 않아 말하기는 어렵다. □「12·12」 「5·18」 재수사 일지 ▲95년 11월24일=김영삼대통령,5·18특별법 제정 및 관련자 의법처리 지시. ▲11월29일=정동년씨 등 고소·고발인들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취하서 제출. ▲11월30일=검찰,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 발족. ▲12월1일=검찰 전두환씨 출두통보. ▲12월2일=전씨,대국민성명 발표직후 합천행.전씨에 대한 군형법상 반란수괴 등 혐의로 사전구속영장 발부. ▲12월3일=전씨 안양교도소에 전격구속수감,1차 방문조사. ▲12월5일=유학성국방부 군수차관보 소환. ▲12월7일=정승화육참총장 등 소환. ▲12월9일=허삼수보안사인사처장 등 소환. ▲12월10일=권정달보안사정보처장,황영시1군단장,정도영보안사보안처장,허화평보안사비서실장 등 소환. ▲12월12일=최규하전대통령 1차 방문조사 시도.장세동수경사30경비단장,정승화육참총장 등 소환. ▲12월16일=신현확국무총리,김진기육본헌병감 소환. ▲12월17일=장태완수경사령관 등 소환. ▲12월20일=전씨 경찰병원에 이감. ▲12월21일=전·노씨 반란수괴 등 혐의로 구속기소. ▲12월27일=광주현장조사단 구성. ▲12월28일=검찰,사공일·이상연·안무혁씨 등 39명 출국금지. ▲96년 1월9일=정호용특전사령관,소준렬전남북계엄분소장 소환. ▲1월10일=허문도중앙정보부비서실장,유학성국방부군수차관보,주영복국방장관,박영수통일주체국민회의사무총장 소환. ▲1월17일=장세동·황영시·최세창·유학성·이학봉씨 반란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로 구속영장청구.전씨측,서울지법에 위헌제청신청. ▲1월18일=서울지법(당직판사 김문관) 전씨측 위헌제청 인용,장세동·최세창씨 영장기각. 황영시·유학성·이학봉씨 영장발부. 전씨측.5·18 재수사 헌법소원. ▲1월22일=노씨측,5·18 재수사 헌법소원. 헌재,「5·18특별법 위헌심판사건 및 5·18 재수사 헌법소원」 심리착수.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