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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 의회,세계 거점에 공관설치/나토 폭격 저지

    ◎세계 중화기 30% 철수/「보」 정부 영토탈환 공격 계속 【베오그라드 AFP 연합】 러시아 의회(국가두마)는 보스니아 세르비아계의 거점 팔레에 상설 공관을 설치했으며 세르비아계가 공정한 협상을 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대표단을 정기적으로 파견할 것이라고 세르게이 즐로토프 두마 연방문제및 지역정책위원회 위원장이 16일 밝혔다. SRNA통신은 그가 세르비아계 목표물에 대한 『나토 (북대서양조약기구)의 공습을 막고 지금까지의 폭격 피해에 대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8명의 대표단을 이끌고 팔레에 도착해 이같이 말했다고 전했다. 【사라예보 AFP 연합 특약】 나토가 세르비아계에 대해 사라에보 주변의 중화기를 철수시키라며 설정한 최후시한(18일 상오 5시·한국시간)을 앞두고 세르비아계의 중화기 약 3분의 1이 18일 자정까지 철수됐으며 유엔 관리들은 이같은 철수분은 나토의 시한을 3일 더 연장하기에 충분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해 즉각적인 나토의 공습재개는 피할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보스니아 회교정부군은 17일에도세르비아계에 대한 강력한 공격을 계속,세르비아계에 점령했던 보스니아 북부의 많은 영토들을 탈환했다.
  • 러,「나토와 군사합훈」 불참/세계 폭격 항의… 파병 거부

    ◎흑해서 미­이­희 등 8개국만 훈련 【바르나(불가리아)·모스크바 AP AFP 연합】 러시아는 나토(북대서양 조약기구)의 보스니아 세르비아계에 대한 폭격에 항의,나토의 「평화 동반자 계획」 합동군사훈련에 불참했다고 나토 관리들이 15일 밝혔다. 나토 남부유럽군사령관 마리오 안젤리 제독은 『러시아는 지난 9일부터 15일까지 불가리아 해상에서 실시되는 이번 훈련에 초청받았으나 마지막 순간에 불참을 통보해 왔다』고 말했다. 흐리스토 콘트로프 불가리아 해군사령관은 러시아가 이번 훈련에 프리깃 함정 1척과 군사고문단을 파견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재정적 곤란」을 구실로 참가를 거부했다고 전했다. 안젤리 제독은 러시아의 이번 훈련참가 거부로 인해 나토­러시아 관계가 손상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가 「평화동반자계획」의 완전한 파트너라고 전제하고 앞으로 실시되는 합동군사훈련에도 러시아를 초청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불가리아의 흑해 연안에서 실시된 이번 해상 합동훈련에는 미국,그리스,불가리아,이탈리아,네덜란드,터키,루마니아,우크라이나 등의 해군이 참여해 비상시 인도적 물품수송 호위,해상 봉쇄,민간인 후송 훈련 등이 실시됐다.
  • 러 “미와 합훈준비 중단”/세계폭격 항의… 훈련취소도 검토

    【모스크바 AFP 연합】 러시아 국방부는 나토군의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에 대한 폭격에 항의,오는 10월 미국 캔자스주에서 갖기로 예정된 미­러시아 합동 군사훈련의 준비작업을 중단시켰다고 인테르팍스통신이 15일 보도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육군참모차장 알렉산데르 소코로프 장군을 단장으로 한 러시아 군사대표단의 미국방문을 무기한 연기시켰다고 국방부 관리들이 밝혔다. 러시아 군사대표단은 오는 10월 16∼31일 캔자스 포트릴리지역에서 실시할 예정인 미­러시아 합동군사훈련계획을 마무리 짓기 위해 16일 미국으로 떠날 예정이었다. 관리들은 합동군사훈련이 취소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고 이 통신이 전했다.
  • 북한 수재 충격 이상이다(박화진 칼럼)

    천재지변이 인간역사의 방향을 뒤바꾸어놓는 경우는 흔히 있는 일이다.멀리는 공용의 소멸과 노아의 홍수등 전설적인 이야기에서부터 근세의 프랑스혁명등에 이르기까지 인류역사의 큰 변화는 흔히 자연의 조화내지 천재지변과 직간접의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프랑스 대혁명만해도 1783년 북구 아이슬란드 대지진 및 화산폭발의 천재지변이 몰고온 수년간의 기상이변과 흉년에 따른 기근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으로 흔히 지적된다.우리역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왕조의 영고성쇄와 각종 민란등에서 흔히 그것을 볼수 있다 새삼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북한이 최근 당했다는 천재지변의 폭우 및 홍수피해가 아무래도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북한 스스로 1백년만의 대홍수라고 발표하고 있다.현지실정을 조사한 유엔인도주의사무국 발표를 보면 지난 7월과 8월 3차례에 걸쳐 북한을 강타한 집중폭우와 홍수는 북한전역에 대한 천재지변적 융단폭격의 인상을 준다. 전국토의 75%가 피해를 입었으며 국민의 4분의 1인 5백20만의 이재민에 GNP 4분의 3규모인 1백50억달러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는 것이다.홍수가 아니더라도 2백만t이 부족했을 금년의 식량생산은 1백90만t 추가감수가 불가피해 전체소요량의 80%에 해당하는 3백90만t이 부족하게 된 형편이다.한국 일본 태국의 쌀지원을 받아도 3백만t이 부족하다.댐과 농지는 물론 가옥 상수도 창고 도로 학교등 가뜩이나 빈약한 사회간접자본시설의 유실도 엄청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믿어지지가 않을 정도다.사실이라면 북한의 국가적 존립자체가 어떻게 가능할지 그것이 걱정된다.유엔이 1천5백만달러의 긴급구호원조에 나선다지만 그야말로 긴급구호말고는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당장 금년 겨울 넘길 일부터 큰일이다.그렇지않아도 심각한 경제난의 북한이다.곧바로 복구를 시작한다해도 수년이 걸릴 타격이다.그러나 무슨 돈과 힘이 있어 그나마 원상복구인들 시작할수 있단 말인가. 지나친 속단이며 북한에 대한 모독일지 몰라도 유엔발표가 그대로라면 북한은 이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같다는 생각마저 든다.유엔의 구호나 임시변통같은 것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같기 때문이다.정부가 유엔 긴급구호동참과 함께 동서해안 2곳의 북한난민수용소 건립을 검토한다는 소식이 전혀 황당하게 들리지 않는다.기왕이면 중국과도 협조해서 한만국경에도 세울 필요가 있을 것같다.북한공산정권은 세계적 붕괴와중에서도 유일하게 운이 좋아 용케 살아남아있는 그러나 붕괴된 다른 공산독재정권들과 다를바 없는 평범한 폐쇄공산독재집단이다.성급한 판단일진 몰라도 이번 재난은 그 북한의 난민탈출사태와 숙명적 붕괴를 앞당기는 촉진제가 될 것으로 봐야할 것이다. 『북한의 근본적 해결책은 한국과의 과감한 교류협력뿐이다.지금은 체제동요를 걱정할 때가 아니다.결단을 내려야할 순간이다.북한공산독재는 50년으로 족하다.현체제는 더이상 존재할 이유도 자격도 없다.인민을 먹여살리지도 못하면서 누굴 위한 무의미한 우리식 사회주의고수냐.이번 폭우는 천재인 동시에 치산치수 잘못하고 소홀히한 공산체제의 인재다.모든것 청산하고 획기적인 발상전환으로 한국과의 자유민주체제통일에 나서라.그것만이 살 길이다.무고한 2천만 북한동포의 고통을 하루라도 빨리 덜어주고 21세기로 비약해야하는 한민족공동의 발전에 기여하는 길이다.그것은 오늘의 북한정권에 맡겨진 마지막 역사적·민족적 소임이다』 그런 하늘의 재촉소리가 들리는 것같다.
  • 나토공조 균열 조짐/스텔스기 동원 세계공습 싸고 이견

    ◎미,러 비난 무마위해 특사파견 【워싱턴·사라예보 AP 로이터 연합】 러시아가 최근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에 대한 나토(북대서양 조약기구)의 공습을 격렬히 비난하고 나선 가운데 미국은 스트로브 탈보트 국무부장관 등 고위관리 2명을 러시아와 세르비아 공화국에 파견,설득작업을 본격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나토 동맹국인 이탈리아가 미스텔스 전폭기의 보스니아 출격에 거부 입장을 보이고 프랑스마저 세르비아계에 대한 최근의 크루즈 미사일 공격에 우려를 표명하고 나서는 등 나토의 공조체제에 균열 조짐이 나타나고 있어 미국의 입지를 크게 약화시키고 있다. 마이클 매커리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탈보트 부장관이 나토의 세르비아계 폭격에 대한 러시아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12일이나 13일중 모스크바로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탈보트는 러시아측 입장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러시아와 고위급 접촉을 가질 것이라고 매커리 대변인은 덧붙였다. 이와 함께 리처드 홀브룩 국무차관보도 슬로보단 밀로세비치 세르비아 대통령과회담을 갖기 위해 13일 베오그라드에 도착했다.홀브룩 차관보는 또 14일 제네바에서 「접촉그룹」 관계자들과 회담한 뒤 자그레브를 방문,프란요 투즈만 크로아티아대통령과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나토가 13일 유엔의 「안전지대」를 포위중인 세르비아계 진지에 대해 또 다시 공습을 단행한 가운데 보스니아 회교정부군과 크로아티아계 동맹군은 세르비아계 영토 수백㎦를 장악했다고 유엔관리들이 밝혔다.
  • 나토,세계거점 3일째 폭격/5차례 공습…세계사령부 타격/팔레 인근

    【사라예보 AFP 로이터 연합】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에 대한 공습을 재개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전폭기들은 7일 상오(현지시간) 세르비아계의 거점인 사라예보동쪽의 팔레 인근 목표물을 3일째 집중 폭격한데 이어 이날 밤까지 공습을 계속할 것이라고 미 항모 루스벨트호의 함장인 윌리엄 팰론 제독이 밝혔다. 팰론 제독은 루스벨트호 선상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이날 아침 5차례에 걸친 출격이 있었으며 공습은 밤까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나토공습과 관련,구유고 연방의 공군사령관을 지낸 안톤 투스 크로아티아 장군은 이번 공습으로 세르비아계의 통합 방공시스템의 주요 부분이 완전 기능을 상실했으며 전반적인 지휘통제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투스 장군은 이번 공습으로 사라예보 인근 야호리나산에 위치한 세르비아계 방공사령부와 한피예사크의 군사령부가 전략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고 평가했다. 한편 샤를 미용 프랑스 국방장관은 지난 주 공습 중 피격된 전투기에서 낙하산을 타고 탈출한 프랑스 조종사 2명이 아직 보스니아 세르비아계에 붙잡히지 않았음을 강력히 시사했다.
  • 나토,세계 공습재개/중화기 철수 불이행 제재

    ◎사라예보 외곽 집중폭격 【사라예보·브뤼셀 로이터 AFP 연합】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전투기들은 5일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가 사라예보 주변에서 중화기를 철수하라는 유엔과 나토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음에 따라 사라예보 주변 세르비아계 목표물들에 대한 공습을 재개했다. 나폴리 주둔 나토 남부 사령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가 사라예보에 위협을 가하고 있는 군사장비들에 대한 유엔의 철수요구를 수용할 의사를 보이지 않았다는 유엔과 나토 군지도자들의 결론에 따라 공습 작전이 재개됐다』고 밝혔다. 나토의 한 관리는 이번 공습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으나 세르비아계가 4일 저녁 중화기들을 집결시켜 놓은 사라예보 외곽의 루카비차에 대해 집중적인 공습을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 유엔 관리는 유엔이 사라예보 주변 세르비아계 점령지에서 무기철수가 만족스럽게 이루어지지 않는한 나토는 사라예보 주변 세르비아계 목표물들에 대한 공격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사라예보에서는 지난달 30일 유엔이 세르비아계 중화기들을 사라예보 주변에서 철수시키기 위해 무력을 동원하기로 결정한 이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극적으로 펼쳐지는 공습장면들이 생생하게 목격됐다. 특히 이날 하오 1시(현지시간) 나토 전투기들이 사라예보 상공에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한 뒤 수분이 지나자 마자 사라예보 외곽에 있는 보스니아 진지부근에서는 시커먼 연기구름이 하늘로 치솟는가 하면 사라예보 남서쪽 15㎞ 지점에 있는 또다른 세르비아계 거점 팔레에서도 폭발음이 계속해서 들렸다.
  • 독일 전폭기 4대/전후 첫 전투참가

    【본 로이터 AP 연합】 독일 전폭기가 2차 세계대전 이래 처음으로 전투임무를 띠고 1일 보스니아 상공을 비행함으로써 「국토방위 이외의 어떤 군사활동에도 참가하지 않는다」는 독일의 전후 50년 금기가 깨졌다. 독일 국방부대변인은 이날 나토(북대서양 조약기구)의 요청에 따라 토네이도 전폭기가 보스니아 상공에 출격했으며 그러나 폭격은 하지 않고 정찰용 사진만 촬영하고 모두 이탈리아 피아첸차 기지로 무사귀환했다고 발표했다. 독일은 보스니아 내전에 대비,적의 레이더나 대공포를 추적,파괴시킬 수 있는 특수 전자장치가 장착된 「ECR 토네이도」 8대와 정찰용 토네이도 6대 등 모두 14대의 토네이도를 생산했는데 이번 출격에는 이 두 종류의 전폭기 4대가 출격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로써 독일은 2차대전 후 처음으로 유럽지역에서 전투행동을 했으며 특히 독일전폭기가 전투임무를 수행한 1일은 나치군이 1939년 탱크와 전투기를 앞세우고 폴란드를 침공한 2차대전 개전 56주년 기념일이어서 더욱 주목을 끌고 있다.
  • 나토,세계 공습­협상 병행/전폭기·「신속군」 3일째 맹공

    ◎미특사,분쟁국들 접촉 분주/“공격 계속땐 장기선 돌입”­세계 지도자 【사라예보·워싱턴 로이터 AP 연합】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전폭기들은 1일 새벽2시(현지시각)미국특사들이 옛 유고지역 분쟁당사국들을 오가며 평화중재노력을 계속하는 가운데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 목표물들에 대한 사흘째 공습을 감행했다. 유엔군대변인은 또 유엔 신속대응군이 지난달 30일에 이어 이날 아침 7시 두번째로 세르비아계 진지에 대해 포격을 가했다고 발표했다. 나토간부들은 이날 어떤 목표물들을 공격했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으나 익명을 요구한 한 소식통은 『사라예보부근의 세르비아계 탄약저장소들이 주요 목표』라고 말하고 『다른 지시가 있을 때까지 공습이 계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토는 사라예보에 대한 세르비아계의 포위가 풀리고 사라예보를 비롯한 유엔안전지대들을 위협하는 지역으로부터 모든 무기들이 철수되는 등 세르비아계로부터 더이상 전쟁을 수행할 의지와 수단을 완전히 제거할 때까지 폭격을 계속할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한편 나토의 대대적 공습이 계속되는 가운데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지도자 라도반 카라지치는 아카시 야스시(명석강)유엔특사에게 서한을 보내 세르비아계는 안전지대에 포격을 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토가 공격을 계속하면 장기전에 대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세계 중화기철수 시작 【브뤼셀 AFP 연합】 보스니아 세르비아계는 나토가 군사공격중단조건으로 요구한대로 사라예보주변으로부터 중화기를 철수하기 시작했다고 나토측이 1일 밝혔다. 나토 대변인은 이같은 내용의 보고를 접수했으나 그 진위를 조사중이라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첫번째 보고에 따르면 31일 밤과 1일 상오 단행된 공습은 성공적이었으며 출격한 항공기는 모두 무사히 기지로 귀환했다고 말했다.
  • 미,보스니아에 전투기 25대 증파/세계 재공습 강력 시사/나토

    ◎세계는 “중화기 철수” 유엔 요구 거부 【팔레·워싱턴 AP 연합】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전투기들이 31일 보스니아 세르비아계에 대한 2일째 작전을 전개,보스니아 상공을 비행하며 새로운 공습 목표물을 추적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방부는 전자전투기들을 추가로 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방부의 한 고위관리는 EC130 전투기 4대 등 25대의 공군 및 해군소속 전투기들이 옛 유고지역에 추가 배치될 준비가 끝나 현지로 출발했다고 말했다. 또한 나토 대변인 짐 미첼 대령은 31일 『우리의 사명은 계속될 것』이라고 밝히고 『어떤 지점이든 폭격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여 추가 공습의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했다. 【팔레(보스니아) 로이터 연합】 보스니아 세르비아계의 라트코 믈라디치 사령관은 30일 사라예보 주변에서 중화기를 철수시키라는 보스니아주둔 유엔군 사령관의 요청을 거부했다. 믈라디치 사령관은 이날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TV와의 회견에서 『팩시밀리 메시지로 이 문제에 대한 결정을 요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면서 『우리는계속 우리 진지에 남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발칸분쟁 협상권/세계,세공에 위임 【베오그라드 DPA 로이터 연합】 보스니아 세르비아계는 나토의 보복공습에도 불구하고 보스니아 사태 해결을 위한 미국의 제안을 수락할 용의가 있으며 세르비아에 협상 전권을 위임키로 합의했다고 30일 밝혔다. 라도마르 비코 세르비아 공보장관은 이날 국영TV를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보스니아 세르비아계는 29일 세르비아와 맺은 협정에 의거,세르비아에 협상의 책임을 넘기기로 했다면서 이를 위해 6명으로 구성되는 양국 합동협상대표단을 구성키로 했다고 밝혔다.
  • 길림성 이도강촌(압록강 2천리:4)

    ◎해발 1,260m… “하늘아래 첫 동네”/일제때 독립군 순병지… 9월말이면 눈발/해방후 조선족 70가구… 현재 1천명 거주 길림성 장백현 용강향 이도강촌은 하늘 아래 첫 동네다.그토록 외지고 높은 고원의 산골이어서 일찍부터 일제에 항거한 독립군의 활동무대였다.1915년에 이미 독립군 군비총단이 들어와 둔병을 마련하고 자리잡은 지역이다.또 1936년에는 항일연군 제2군 제6사가 홍두산에 밀영을 세우고 일본군과 만주군을 호되게 족쳐댔다. 일본도 이에 질세라 서둘러 경찰서와 토벌대,산림경찰대를 만들고 헌병대까지 주둔시켰다.그리고 장백진으로부터 이도강까지 길을 냈다.1945년 이후 이 길을 넓히고 손질했으나 길은 여전히 험로였다.일제가 항일연군을 토벌하기 위해 닦아놓은 길을 버스가 구불부불 기어갔다.장백진에서 고작 28㎞ 밖에 안되는 지척인데도 이도강촌까지 2시간이 실히 걸렸다. ○후천적 고산족으로 장백현에서 조선족이 가장 많이 사는데가 용강현으로 전체인구 2천6백27명 중에 1천88명이 조선족이다.비교적 낮은 지역이라는 해발 1천2백60m의 이강촌을 중심으로 해발 2천12m나 되는 홍두산자락 여러 골짜기에까지 조선족들이 흩어져 살고있다.그러고 보면 용강현 조선족들은 후천적으로 고산족이 된 셈이다.백두산 천지와는 90㎞가 떨어져 있으나 쾌청한 날씨에는 흰눈을 머리에 인 백두산이 망망한 숲 위로 아련히 떠올랐다. 그런 고산지대인지라 서리가 내리지 않는 무상기래야 1년에 90여일이 고작이다.장백현의 다른 저지대에 비해 철이 한달 이상 차이가 나기때문에 벌써 가을을 느꼈다.눈이 빨리 내리면 9월말께 첫눈이 온다고 했다.마침 점심 때가 되어 향장,당서기와 어울려 간부식당을 찾았다.시금치국 한 사발에 만두와 김치 한 접시가 나왔다.식당 일을 하는 원채봉아주머니가 애써 식단내용을 설명했다. 『그래도 향간부들의 식사는 괜찮은 편이꾸마.이 시금치도 현성에서 사왔디요.아무 집에나 들어가 봅소.이만큼 먹나….고산디대라 옥수수나 콩도 안됩꾸마.봅소,벌써 긴팔 옷을 입고들 있지 않슴둥』 여름이 아무리 빨리 간다한들 설마 했던 것은 오산이었다.그날 밤에 향장의 안내로 마을 터주격인 허용학(73)노인을 만나러 가는 길에 한기를 느꼈다.장백진 여관에 맡긴 짐보따리 속의 두꺼운 옷이 그리웠다.노인의 집에는 이미 군불을 지펴놓아 한기를 녹였다.꿈과 젊음을 고산지대 이도강촌에 묻어둔 노인의 얼굴에는 산골 밭뙈기 이랑 같은 주름이 가득했다. 노인의 본래 고향은 이도강촌에서 멀다 할 수 없는 함경남도 삼수군(현재 북한지명은 양강도 삼수군)자산면이다.세살 때 모친이 세상을 뜨자 부친이 두 형을 데리고 장백현을 들어가면서 본인은 갑산 누이집에 맡겼다.18살 나던 해에 형님이 와서 장백현으로 데리고 와서 곧 바로 남의 집 데릴사위로 주었다.석달을 살고 장인허락을 얻어 조선으로 돈벌러갔다가 징병에 끌려 일본 규슈로 갔는데,해방 석달 전의 일이었다. ○민요 「사냥 아리랑」 구전 『일본에 있을 때 미군 비행기 무서운 꼴 봤꾸마.매일 폭격을 해대서리 부상까지 입었지비.그날이 7월2일인데 미군 비행기 수십대가 가물가물 떠와서 폭탄을 내리 퍼부었다 이거우다.해방 이듬해 3월 일본에 온 함남 대표를 따라고향을 들렀다가 이리 다시 와서 붙박혀 사우다』 해방 후에만 해도 이도강촌에는 조선족 70가구가 살았다고 한다.한족은 2가구 뿐이었는데,지금은 2백가구 중에 절반이 한족이다.모두가 농사랍시고 짓지만 고산지대라 소출은 보잘 것이 없다.보리는 1무(2백평)에 1백근(60㎏),귀밀은 1백50근,밀은 작황이 썩 좋아야 3백근을 먹는다.그러나 감자는 잘되는 편이다.지금은 짐승이 덜 하지만 10여년전만 해도 멧돼지와 곰 등쌀에 애를 먹었다.7월부터 돼지가 감자밭에 덤벼들면 온통 요절을 내버렸다.귀밀과 밀밭은 곰이 압발로 이삭을 끌어안고 훑어먹기 시작하면 잠깐만에 거덜이 났다. 그래서 사냥감 짐승들이 많다.겨울이면 마을 장정들은 너나없이 사냥을 떠나 용강향에는 「사냥 아리랑」이 지금도 구전되고 있다.「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우리 낭군 영을 넘어 사냥 가네/낭군님 무사히 돌아오세요/대보름 달빛 아래 술을 듭시다」라는 민요가 그것이다.허용학노인의 백두산 겨울철 사냥 이야기는 간이 큰 사나이들의 모험담으로 들렸다. 『한번은 돼디(돼지)사냥을 갔는데 모리꾼들이 돼디간다고 소리를 티데우.돼디 여러마리가 곧추내려오는데 던댕판(전쟁판)에 당꾸(탱크)돌격하듯 달려왔지비.다섯마리 사냥개가 걸구(큰돼지)뒷 다리를 물고 늘어지자 속도가 늦어뎠디우다.그 때 최길환이가 꺾음대(화승촌)를 탕 놓았디우.앞 섰던 놈이 쓰러디니까 뒷 놈들은 샛길로 도망쳤으니 말이디 그냥 달려왔으면 다 황천객 됐을 거우다.거 안포수란 사냥꾼은 곰을 쏘았다가 선불을 맞아 끌안았디우.같이 간 다른 포수가 곰의 머리를 쏘아 떼 놓았는데,곰한테 할퀸 안포수 머리가죽이 벗겨뎠디…』 사냥을 갔던 사람들이 돌아오면 마을에는 잔치판이 벌어졌다.아낙네들은 국수를 누르고 남정네들은 잡아온 짐승을 삶았다.그리고 술을 마시면서 함지물에 바가지를 엎어놓고 장단을 맞추었다.중국 전역이 한 장기판이라고 하지만 이도강촌 산골마을은 문화대혁명을 수월하게 맞았다.다른 지역에서는 이른바 대식품이라는 풀뿌리 나무껍질을 먹었지만 이도강촌 사람들은 감자를 갈아 떡도 해먹고 분을 내어 국수도 눌러먹었다는 것이다.○아직도 인정만은 부자 그러다가 조사라도 나오면 겨로 음식을 해서 대접하고 조사 나온 간부들이 돌아가면 감자는 배불리 먹었다.그래서 아는 사람들은 이도강촌을 20세기의 별천지라고 불렀다.아직도 인정 만큼은 부자다.다만 농사만으로 돈 벌이가 시원치 않아 금전적으로 빈자나 각박한 문명세계와는 다른 삶을 살고있다.흠이라면 입쌀이 없다는 것뿐이다.밀 1근 80전,귀밀 30전,감자 30전에 팔아 1근에 2원하는 입쌀을 사먹기는 사실상 힘이 겨웠다. 그럼에도 교육열은 대단했다.조선족과 한족 아이들이 같이 다니던 한조연합학교가 있었는데 지난 1988년 조선족기숙제소학교 하나를 더 만들었다.기숙생들의 한달식비 90원 중에 20원을 기꺼이 물면서도 조선족기숙제소학교를 세웠던 것이다.
  • 나토,세계에 최대규모 공습/창설 46년만에

    ◎전투기 60여대 출격… 3차례 맹폭/세계 “공습 나토기 2대 격추”/EU 감사원 등 12명 사망설 【사라예보·브뤼셀 외신 종합】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는 사라예보에 대한 포격으로 37명의 민간인 사망자를 낸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에 대해 30일 새벽(이하현지시간)부터 하오까지 3차례에 걸쳐 나토사상 최대 규모의 공습을 단행했다고 나토 소식통들이 밝혔다. 나토 전투기들의 이날 공습으로 사라예보 지역의 세르비아계 점령지에서 유럽연합(EU) 감시단원 5명등 모두 12명이 사망했다고 세르비아계 통신 SRNA가 비공식 소식통을 인용,보도했다. 특히 이날 공습에는 영국등 5개국과 아드리아해상의 미 항모 데어도어 루즈벨트호등에서 발진한 F­15E,F­18D,F­16 등 60여대의 전투기들이 대거 참가함으로써 40개월을 끌어온 보스니아 내전기간을 포함,지난 1949년 나토 창설 이래 지금까지 단행된 폭격 가운데 최대 규모의 공습으로 평가되고 있다. 나토와 유엔 관계자들은 이번 나토 공습으로 세르비아계 목표물들이 「괴멸적인」 피해를 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날 공습에 참가한 나토 전투기 2대가 세르비아계의 방공포에 의해 격추됐다고 세르비아계 라디오 방송이 주장했으나 나토의 공식확인은 아직 없다. 이날 2차 공습후 4시간뒤 단행된 3차 나토 공격에서 목표물들이 정확히 피격됐는지는 즉각 알려지지 않았으나 앞서의 1·2차 폭격은 보스니아 서부의 모스타르시,동부 고라주데,북부 투즐라 등 보스니아 전역의 세르비아계 방공미사일기지와 통신시설,레이다 기지,탄약소,군수공장,지휘소등에 집중된 것으로 전해졌다. 나토는 추가공습을 위해 현재 이탈리아와 프랑스,독일,그리스,영국 및 아드리아해상의 항공모함등에 모두 1백76대의 전폭기와 요격기,정찰기등을 대기시켜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위협 제거때까지 공습 계속”/유엔대변인 밝혀 【사라예보·런던 AFP 로이터 연합】 유엔은 보스니아 세르비아계의 사라예보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제거될 때까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유엔군의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진지에 대한 군사 작전을 계속할 것이라고 유엔 대변인이 30일 밝혔다. 알렉산더 이반코 유엔 대변인은 이날 나토의 사라예보 외곽과 보스니아 중부 및동부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진지에 대한 대규모 공습이 있은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베르나르 장비에 유엔보호군(UNPROFOR) 사령관이 이같은 서방측의 의지를 라트코 믈라디치 보스니아 세르비아계군 사령관에게 통보했다고 전했다. ◎나토선 격추 부인 【나폴리 로이터 연합】 나토는 30일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 진지에 대한 대규모 공습에 참가한 전투기 중 격추되거나 파손된 공군기는 없다고 나토 남부 사령부 대변인이 밝혔다. ◎미 특사­세공 대통령/공습직후 긴급회담 【베오그라드 로이터 연합】 빌 클린턴 미 대통령 특사인 리처드 홀브룩 미국무부차관보는 30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에 대한 대규모 공습이 시작된 후 슬로보단 밀로세비치 세르비아대통령과 긴급회담을 가졌다. ◎나토 대공습 왜 하나/“「보」 내전 끝내자” 세계 초토화/미­영 등 합동작전… 3∼4일 더 공격 30일 새벽 단행된 나토의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점령지역에 대한 공습과신속대응군의 포격은 유례없이 큰 규모였다. 지난 28일 사라예보 중심가를 강타한 세르비아계의 포격으로 37명이 사망한 사건에 대응해 벌어진 이번 나토의 공습은 40개월동안의 보스니아 내전중 꼭 11번째이다.그동안 나토의 공습은 세르비아계의 군사적 공격에 대한 보복용으로 위협을 가하는 수준이었던데 반해 이날 공습은 나토가 밝히고 있듯이 「보복」 차원이라기 보다는 「억제책」의 성격이 짙다. 그동안 보스니아내전에서 군사적 우위를 보였던 세르비아계가 크로아티아에 크로아티아내 점령지를 다시 빼앗기는 등 위축됐고 나토의 보복 공습위협에 밀려 유화 자세를 보이는 틈을 타 세르비아계를 확실히 약화시키고 분명한 양보를 얻어내겠다는 나토의 밀어붙이기 식 공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나토의 공습이 앞으로도 3일 정도,나토의 목적이 완전히 이행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추측으로도 뒷받침된다.또 이번 공습으로 어떻게든 보스니아 내전의 종결이 앞당겨질 것이라는 관측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이번 공습이 이처럼 신속하고 대규모로 이루어진데는 모처럼 강대국들의 의견이 일치할 수 있었던 것이 한몫을 했다.18개월만에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세르비아의 공격에 대해 미·영·프랑스·독일·러시아 등 5개국 접촉그룹은 물론,국제사회가 한목소리로 세르비아계를 비난하며 군사조치 지지를 선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또 그동안 보스니아 사태를 놓고 위상과 그 역할에 대해 회의를 불러 일으켰던 나토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중요한 시험대로 여긴 영향도 컸다. 이처럼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진 나토의 공습은 첫번째 목표를 방공시설에 두었으며 방공시설이 파괴되면 걸프전 때와 마찬가지로 세르비아계의 다른 지상목표물들에 대해서도 3∼4일간 공격하는 일이 쉽게 진행될 것이라고 CNN은 보도했다. 나토는 이날 3차공습을 끝낸 뒤 공습 결과에 대해 상당한 자신감을 드러냈다.지난 공습 때 번번이 세르비아계가 유엔군을 인간방패로 삼아 더이상의 공격을 할 수 없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유엔군이 미리 고립되거나 공격이 쉬운 지역들에서 철수,인질로 잡힐가능성을 근원적으로 없애 유엔과 동맹국 사령관들이 쉽게 작전을 세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지도자들은 공습 직전 보스니아 영토를 51대 49로 분할하는 미국측 평화안을 환영하고 평화협정 체결 준비가 돼있다고 선언했다.이에 대해 서방측은 군사행동을 피하기 위한 세르비아계의 술책이라고 일축하고 있으나 이번 공습의 여파로 세르비아계가 평화안을 수용할 시기를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한강 인도교 폭파(새로 쓰는 한국현대사:33)

    ◎「임진강교 폭파 실패」뒤 서둘러 준비 지시/미 참전으로 예정보다 하루 늦춰 결행 19 50년 6월25일 일요일에 발발한 한국전쟁은 다음날 26일 월요일에 벌써 수도 서울을 혼란에 몰아넣었다.대한민국 정부와 국회는 26일 밤 각각 긴급 국무회의와 긴급국회를 열어 27일 새벽 수원으로의 천도를 결정할 만큼 전선은 긴박하게 돌아갔다.그리고나서 28일 상오2시30분쯤 한강 인도교와 철교를 폭파해버렸다.한강다리를 폭파한 시간에 T33 소련제 탱크를 앞세운 북한 공산군은 아직 수도 서울의 중심부 밖에 있었다. ○개전 다음날 검토 착수 한강 다리 폭파계획은 전쟁 다음날 26일 상오부터 이미 검토되었다.전황이 매우 불리해지면서 육군참모총장 채병덕은 공병감 최창식 대령을 불러들여 한강다리 폭파에 대한 여러 질문을 던졌다.이는 적의 진로를 차단하기 위해 임진강 다리 폭파를 시도했다 실패한 과오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공병감은 공병학교 폭파교관 황원회 이창복 중위에게 폭파준비를 서둘러 지시했다.당초 폭파시각은 27일 하오4시로 결정되었다. 이같은 결정은 육군본부가 시흥으로의 철수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그러나 이날 하오2시 맥아더 장군으로부터 미군개입 가능성과 극동미군의 전방지휘소(ADCOM)가 한국에 설치될 것이라는 전문이 날아들었다.육군참모총장 채병덕은 이 소식을 미군사고문단(KAMAG)단장대리 W H 라이트로부터 전해들었다.그래서 시흥으로 나앉았던 육군본부를 다시 용산으로 복귀시켰다.이에따라 한강다리는 결국 하루늦게 폭파되었다.이시영 부통령 일행은 폭파직전 한강을 마지막으로 건넜다. 이승만 대통령은 27일 상오2시 특별열차편으로 한강를 건너 대전으로 내려갔다.그런데 이날 한강다리가 폭파되기 30분전에 이승만 대통령의 방송이 전파를 탔다.그 내용은 『미국의 적극적인 군사원조가 있을 것이니 국민은 총궐기해 반란분자들을 퇴치하자』는 것이었는데,사실은 사전에 준비한 녹음방송이었다.한강다리의 폭파는 결국 수도 서울을 사수하던 국군장병 4만4천명을 낙오병으로 만들었다. ○국군 4만4천명 낙오 북한 공산군이 서울시내 중심부에 들어온 시각이 28일 하오3시쯤이었으니까 다리 폭파를 6∼8시간 정도 늦추어도 큰 무리가 없었을 것이라는 비판이 뒷날 나왔다.이런 이유로 해서 공병감 최창식 대령은 군사재판을 통해 처형되었다.그러나 폭파를 명령한 육국 참모총장 채병덕은 7월27일 하동전선의 180고지에서 북한군의 기습을 받고 전사했다.한강 다리가 끊겨나간 이후 육군 5개 혼성사단이 노량진 본동을 중심으로 모여 한강 방어선을 구축했다.서울에서 퇴각한 이들 부대는 명목상 사단편제였지 사실은 연대규모에 지나지 않았다. 한국전쟁이 개전한 시각에 한국의 우방 미국의 대통령 트루먼 대통령은 미조리주 인디펜던스 자기 사저에 머물고 있었다.그는 당장 워싱턴으로 돌아오고 싶은 충동을 느꼈으나 국무장관의 충고를 받아들여 다음날 백악관에 도착했다.미국은 국제연합(UN)이 「평화에 대한 침략적 행위」로 규정지어 주기를 바라면서 경거망동한 행동을 하지않는 전략을 취했다.그리고 미국무성은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즉각개최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무렵 소련은 중화인민공화국(중공)대신대만의 자유중국이 중국을 대표하는 회원국으로 총회 안보이사회 의석을 차지하도록 결정한데 항의하여 유엔을 보이콧하고 있는 중이었다.소련이 불참한 안보이사회는 즉각적인 전투중지와 38선 이북 원위치로의 철수를 요구하는데 결의했다.이와 더불어 유엔 회원국은 이 결의의 집행을 위해 한국에 원조를 제공하고 북한에 대한 원조 자제를 요청하는 안도 결의안에 포함시켰다. 미 트루먼 대통령은 북한 공산군이 서울 근교에 접근하던 6월27일(워싱턴 시간) 미공군과 해군에 한국정부를 엄호지원하는 명령을 내렸다.이날 유엔 안보이사회는 소련이 여전히 불참한 가운데 「무력침략을 격퇴시키고 평화와 안전을 회복시키는데 필요한 원조를 한국에 제공」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다음날 28일 서울은 침략자의 손에 들어갔다.트루먼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한국에서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유엔의 경찰행위를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개전 5일째가 되고 서울이 공산권 수중에 완전히 넘어간 다음날인 6월29일에는 맥아더장군이 자신의 전용기 바타안호를타고 동경에서 수원으로 비행해왔다.바타안호가 착륙하는동안 간이 활주로 한쪽 끝을 북한의 소련제 야크기가 공격했다.맥아더는 사태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꼈다.한편 임시수도 대전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이 적의 항공기로부터 요격을 피하기 위해 계곡을 따라 저공비행으로 수원에 와 닿았다.이들이 서울대 농과대학 캠퍼스에서 만나는 동안에 적의 전투기는 계속 기총소사를 해댔다. ○“미 해군 해안선 봉쇄” 맥아더는 모든 준비가 갖추어지는대로 한국을 지원하겠다고 이승만 대통령에게 약속했다.트루먼은 6월30일 일본에 기지를 둔 미공군이 북한의 군사시설에 대한 폭격을 승인했다.이와함께 한반도의 전 해안선을 해군이 봉쇄하도록 명령하고 맥아더 장군으로 하여금 한국에서 상당한 지상군 지원부대를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이에따라 찰스 스미드 중령이 이끄는 미 지상군 선발대가 일본 사세보를 떠나 부산을 거쳐 7월5일 평택에 도착했다.그러나 이 미군부대는 한국군의 한강 방위선을 무너뜨리고 계속 남하하는 북한군 탱크앞에 속수무책이었다.이런 상황속에 UN안보이사회는 7월7일 한국을 지원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는 회원국은 그 군대를 미국이 지명하는 사령관 휘하에 둘 것을 권고했다. 그 다음날 트루먼 대통령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을 주한유엔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기에 이른다.개전후 뼈아픈 11일간이 지나가는 동안 유엔과 미국은 한국전쟁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그리고 16개국에 이르는 회원국이 한국을 지원하기로 한 결의를 행동으로 옮겼다.특히 미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아시아의 지상전에 주동적 참전국이 된 것이다. 미국의 참전은 전선 주변에 위험한 그림자를 깔기 시작했다.그 위험은 한국군과 미군을 포함한 유엔군이 공산군 점령지역의 허리인 인천을 상륙한데 이어 낙동강 전선을 뚫고 북한 깊숙이 들어갔을 때 현실로 다가왔다.1950년 가을이 저문 10월19일 저녁 중공군이 압록강을 건넜던 것이다.중공군의 한국전쟁 개입은 전쟁양상을 또 한번 바꾸어 놓았다. ◎미 「국가정보평가서」/“소,「한국전 중 개입땐 대전 확산」 예측”/“유엔군 내분 조장… 전력약화 기대/필요땐 중에 소 의용군 지원 태세” 1950년 한국전쟁에 중공군이 개입했을때 소련은 한국전쟁의 세계대전 비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그와같은 사태발전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당시 미국은 평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미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에서 입수한 「국가정보평가서­11」(NIE­11)에 따르면 소련의 통치자들이 중공의 한국전 개입을 지시 혹은 재가하면서 세계대전으로 확산될 위험성을 인지했다고 미국은 평가하고 있었다.NIE­11은 그러나 소련이 중공군 개입과 동시에 세계대전에 돌입할 것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NIE­11은 또 소련이 세계대전 발발여부와 상관없이 미국과 중공간의 전면전에 거는 기대가 크다고 적고 있다.▲우선 미국과 연합군대를 다른 전장으로 유인해 병력을 소멸시킬 수 있고 ▲미국과 그 동맹국간 알력을 조성할 뿐만 아니라 ▲한국에의 침공으로 유엔의 단결력을 좌절시킬 수 있다는 것이 소련의 판단으로 추정했다. 이에따라 소련은 중공에 대해 적절한 물자와 기술인력,심지어는 의용군까지 제공해 한국에서의 중공군 작전을 지원할 것으로 판단했다.특히 유엔군의 공중공격으로부터 피하기 위해 중국내 거점 방위가 필요하다면 비행기와 대공포를 훈련된 요원도 함께 제공할 것으로 내다보았다.또 중국영토에 대한 미군(유엔)의 대규모 작전이 있을 경우 중·소조약에 근거해 중공에 대한 소련의 공개적 군사지원이 따를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NIE­11은 이어 사태추이를 볼때 중국 공산당의 개입목적은 유엔이 한국에서 발붙일 수 없도록 하는데 있다고 덧붙였다.NIE­11은 미 중앙정보부가 1950년 12월5일 국무성 및 육·해·공군의 정보관계자들을 참여시켜 작성한 1급 비밀문서다.
  • “이라크,핵탄제조 시도/걸프전 직전… 미기 폭격으로 불발”

    ◎유엔 「무기해체특위장」 공개 【유엔본부 로이터 연합】 이라크는 지난 91년 걸프전이 발발하기 불과 수개월전에 첫 핵폭탄을 제조하는 「특별계획」을 추진했으나 관련시설이 미공군기들의 폭격을 받는 바람에 무위에 그쳤다고 「유엔 이라크대량파괴무기해체특위」 롤프 에케우스 위원장이 26일 공개했다. 에케우스 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지난 90년 8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당시 이라크측의 「특별무기개발계획」은 생각보다 훨씬 위험한 것이었다면서 이라크는 91년 4월까지 첫 원폭실험을 실시한다는 「특별계획」을 수립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라크의 그같은 특별계획은 91년 1월 걸프전이 발발,미공군기들의 공습으로 큰 타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에케우스 위원장은 또 이라크의 생물학 무기개발계획은 원폭개발계획보다 더 많은 진전을 이룩,지난 90년 11월 유엔 안보리가 미국에 대해 대 이라크 공격을 승인하자 이라크측은 1백99개의 폭탄 탄두에 탄저균과 이보다 훨씬 치명적인 보툴리누스균을 장착시키는 등 강경 대응했다고 말했다. ◎핵무기 개발 핵심물질/이라크,IAEA 인도 【빈·유엔본부 로이터 연합】 이라크는 최근 국제원자력기구(IAEA)측에 핵무기 개발과정에서 핵심부품 제조에 사용될 수 있는 물질들을 전달했다고 IAEA와 빈의 외교소식통들이 25일 밝혔다. IAEA의 한 소식통은 이라크 정부관리들이 그들이 이라크의 핵무기 계획에 포함됐다고 주장한 수량 미상의 금속부품들을 IAEA에 양도했다고 밝혔다.
  • “핵실험 영구금지” 미 결정은 옳다/레너드 스펙터(지구촌 칼럼)

    ◎NPT체제 강화로 북한 핵위협 등 효과적 억제 8월15일,영국·미국,그리고 많은 동아시아 국가들은 일본의 2차세계대전 패배 50주년을 기념했다.일본의 패배는 일본의 야만적인 점령과 일반인 및 전쟁포로에 대한 비인간적인 처우에도 종지부를 찍었다. 이보다 앞서 8월6일과 9일은 각각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50주년이었다.이 폭격은 일본의 패배를 앞당겼을 수도 있었지만 이 사건을 기리는 「축하」가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대신에 이 두 도시 파괴 50주년은 핵전쟁의 철저한 파괴력에 대해 국제사회가 냉철한 반성의 기회를 갖도록 하면서 「추념」되었다. 과거에 초점이 맞춰진 이 사건들은 오늘날 핵무기 문제의 계속적인 심각성을 상기시킴으로써 주목된 것이다.자크 시라크 프랑스대통령은 프랑스가 남태평양에서 핵실험을 재개한다고 선언했으며 중국은 올들어 두번째의 핵실험을 실시했다. 다행스럽게 핵무기의 역할이 앞으로 국제문제로서 다소 약화될 전망이 이번달 내비춰졌다.핵실험 재개에 대한 비난에 못이겨 시라크대통령은 96년 핵실험의 영구금지를 약속했으며 중국정부도 비슷한 약속을 내놓았다. 거기에 빌 클린턴 대통령은 이미 영구핵실험 금지 방침을 밝혔고 또 일시적 실험중지 약속을 지켜온 미국이 소규모 폭발실험마저 위법대상으로 포함시키는 금지안을 지지한다고 천명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그러나 소규모라도 실험실시는 전지구적 실험금지의 뜻을 해칠 수 있다고 염려해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같은 올 8월의 일련의 이벤트들은 다양하면서 상충되기도 하는 메시지를 한국에 전달했을 것이다. 첫째 많은 한국인들이 일본에 대한 원폭투하를 다시없이 좋은 일로 여긴다는 사실은 별로 놀랄 일이 아니다.어떤 이에겐 이것은 수십년 일제 압제에 대한 징벌이었다.더 나아가 이 원폭투하 덕분에 한국이 주권국가로서 존재할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오늘날 다수 학자들은 당시 일본이 평화로 돌아선 것은 소련군의 참전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있으나 원폭투하는 일본의 항복을 가속시켰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폐허가 될 무렵에 이미 소련군은 한반도의 북쪽을 점령해가고 있었다.일본의 항복이 조금 더 늦춰졌다면 소련은 한반도 전역을 욕심냈을 수 있었다. 이와 반대로 모든 한국인은 전쟁의 참화를 겪어야 하는 민간인들의 고통을 다시금 떠올렸을는지도 모른다.남·북한간의 전쟁으로 인한 파괴는 핵무기로 인한 것은 아니지만 참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핵실험 금지 또한 한국에게 복잡한 문제와 다시 대면케 한다.오늘날 북한으로부터의 도전은 아주 새로운 차원을 갖는데 평양이 하나 혹은 둘의 핵 장치를 위한 물질을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미·북한간 기본합의는 이 위협을 제거하는 청사진을 제공하고 있으며 현재는 비록 절름거리기는 하지만 목표를 향해 진전을 계속하고 있다. 미국의 핵우산이 중무장한 북한의 공격을 저지하는 주요 방책이었던 냉전시대 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진정 당시 미 핵무기의 한국 존재는 동맹국 방어에 대한 미국의 굳은 의지를 과시하는 상징이었다.그러나 오늘날의 세계에서는 북한의 핵위협을 억제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은 핵확산금지 체제를 비롯한 외교적 방편이다. 미국의 모든 종류의 핵실험에 대한 금지 방침은 현재의 세계적 핵확산금지 체제를 강화할 것이다.더구나 핵실험 금지는 그자체로 지구적 핵억제 체제에서 중요한 새 요인이 된다.이 억제체제가 더 광범위해지고 더 상세해질수록 핵확산금지의 규범을 강화할 것이며 이 규범에 거슬려가려는 국가는 한층 고립될 것이다.북한은 이미 이같은 고립을 두려워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지난 91년 미국 핵무기가 한국에서 철수된 이후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의지는 외부적으로 덜 분명해졌다.그리고 몇몇 미 국방관계자들은 미국의 핵실험금지 정책이 확고해지면 지금도 보일락 말락하는 미국의 핵억지력이 외부에 거의 나타나지 않게 될 것이라고 걱정한다. 이런 시각에서 본 핵실험금지의 영향은 그러나 미시적인 것이다.미국은 이제까지 어느 국가보다 많은 핵실험을 실시했으며 기술적으로 가장 앞선 핵능력을 보유하고 있다.핵실험 계속여부와는 상관없이 어떤 적성국이 미국의 비축 핵무기 성능이 크게 나빠질것이란 판단을 바탕으로 군사적 계획을 세운다고 가정하는 건 억지에 가깝다. 결국 핵실험금지는 북한이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보증을 보는 시각에다 별다른 영향을 끼친다고 할 수 없다.반대로 핵실험금지는 북한의 핵도전을 종식시킬 국제사회의 외교적 노력을 강화시킬 것이다. 올 8월에 발신된 핵 신호는 혼선돼 불분명할 수 있으나 하나의 메시지만은 단연코 뚜렷하다:히로시마와 나가사키사태가 되풀이되어선 안된다.한반도와 세계의 핵확산금지에 관한 미국의 노력은 올바른 길을 걷고 있다.
  • 러 전투기 체첸군 공습/4개지역서 격전 재개

    【그로즈니(러시아) AFP 연합】 러시아 전투기들이 17일 그로즈니에서 남서쪽으로 약 60㎞ 떨어진 로슈니 추의 체첸군지역을 공습했다고 현장을 목격한 한 기자가 전했다. 라디오 리버티의 한 기자는 자신이 하오1시30분(현지시간) 러시아 전투기 여러대가 로슈니를 폭격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러시아 국방부 대변인은 이번 공습이 체첸군이 러시아병력을 공격한 후 실시됐다고 밝혔다. 한편 체첸공화국 코자크메드 야리카노프 협상대표는 체첸공화국 서부 얀디·바무트·스타리 아코이·탄기 추지역에서도 교전이 벌여졌다고 말했다.
  • 장백진과 혜산시(압록강 2천리:2)

    ◎장백진에 조선족 2∼4세대 1만3천명/다리하나 건너 혜산시,북한철도 종착점/“못가는 고향땅”… 가슴엔 증오의 그리움만 일제치하에 우리민족이 무리지어 건넜다가 8·15 감격속에 다시 우르르 몰려 고국땅으로 넘어갔던 국경의 강.백두산기슭 장백조선족자치현 탑산에서 내려다본 국경의 강 압록수는 올해 8월 아침에도 유유했다.그러나 역사는 의구한 산하와는 달리 운명이 바뀌어 강건너 고국은 분단된 지 50년이 되었다. 그 강건너 지척에다 고국을 두고 중국에 눌러앉은 조선족은 백두산 아래 장백현에도 보금자리를 이루었다.장백조선족자치현이라는 행정구역상의 명칭처럼 장백현에는 조선족이 많이 산다.최근 통계에 따르면 장백현의 조선족 이주민 후손들은 1만3천1백명으로 전체인구의 17.1%를 차지하고 있다.조선족이 가장 많이 살았던 1929년에는 4천2백57가구 2만4천3백49명이나 되었다. ○전체 인구의 17% 차지 장백진 조선족에게 고향을 물어보면 모두가 고국의 고향을 댄다.이주민 1세들이야 모두 세상을 떠났지만,2세는 물론 4세들 까지도 고향을 그리는 마음은 대단했다.그러나 강건너 북한 땅에 고향을 둔 사람은 여권이나 통행증이 없어서 못 가고,한국에 고향이 있는 사람은 혈육이 없거나 연령제한으로 선뜻 귀향길이 열리지 않고 있다.이래저래 애만 태우는 조선족은 고향이 원수 같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장백진에 사는 이태원(80·강원도 회양군 태생)노인은 갈래도 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증오 섞인 말로 표현했다. 『누군들 고향 떠나기가 소원이겠수.등 따뜻하고 배 고프지 않으면 안 떠났을 거우다.그래도 고향은 핏줄 같아서 가보고 싶을 때가 많수다.나이들면 새록새록 더 생각이 나디만 맘대로 갈 수가 없다우다.어려서 떠나서리 잊을 만한 나이도 되았는데….어떻게 고쳐 맘먹으면 가지도 못하는 고향이 고향이가 하고 단념할 때도 있수다.그런데 그 맘이 오래가지 않으니 어찌하갔수.그놈의 고향이 뭔디…』 이태원노인은 13살 나던 정월 열엿새날 고향을 떠난 것으로 정확히 기억했다.헐벗고 굶주려도 고향과 선산을 지키겠노라던 아버지도 더 버티지 못하고 짐을 꾸렸다.만주를 목적지로 하고 떠났지만 함흥에 이르러 생각이 달라졌다.조선땅을 떠나기가 싫었을 뿐 아니라 신흥군 발전소공사장에 가면 돈을 번다는 말을 듣고 발길을 돌렸다.신흥군 장진에 막상 들어갔더니 발전소 일이라는 것이 도수로터널공사여서 하루에도 수십명씩이 죽어나온다는 것이었다. 그 말에 정신이 퍼뜩 들어 삼수 개원을 찾아나섰다.그런데 길에서 일곱식구가 개원에 들어갔다가 다 죽고 혼자 살아온다는 사람을 만났다.거기도 살곳이 못된다 싶어 결국은 조선땅을 떠나기로 하고 6식구가 혜산을 거쳐 장백현으로 들어와 눌러앉았다.조선족이면 그만한 사연은 다 가지고 있다.그럼에도 지지리도 못 살아 버리고 온 고향을 그리워하는 까닭은 동물적 귀소본능에서일까. ○한족도 망향탑 세워 탑산에는 망향봉이라고 이름한 산봉우리가 있다.그리로 발길을 옮겨보았다.조선족이 그런 이름을 붙여놓은 것이 아닌가 했지만 사실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한족이 모이는 곳이라 했다.웬 한족의 실향인가 하겠지만,장백현에는 하북성이나 산동성 사람들이 많다.그들은 중양절이면 망향봉에 올라 서남쪽을 향해 꿇어앉아 절을 올리며 고향과 혈육에 대한 그리움을 달랜다는 것이다. 이 망향봉에는 비석 하나가 서 있다.거기에 「그제날 고향이 그리워 눈물 짓더니 오늘은 고향을 바라보며 환히 웃네」라는 한시가 보였다.「고향을 바라보며 환히 웃는다」는 한족의 그 마음과 우리 조선족의 마음은 사뭇 달랐다.조선족의 심사를 읊조리라면 「고향을 바라보며 눈물 짓는다」라고 했을 것이다.손을 뻗으면 닿을듯 가까운 강건너 혜산시도 마음대로 갈 수 없는 처지고 보면 조선족의 망향의 한은 뼈에 사무치고 있다. 혜산시는 지난 1954년 함경북도와 함경남도 일부를 합해 신설한 양강도의 중심 도시다.삼수와 갑산을 이웃한 이 국경도시의 인구는 약 22만명이라고 한다.이른바 백두산청년선(길주∼혜산간),삼지연선(혜산∼삼지연간),북부내륙선(혜산∼운봉간)등의 철도 시발점이자 종착점이기도 하다.특히 삼지연선은 백두산의 그림자가 수면 위에 일렁이는 삼지연이웃에 닿는 철길인데,삼지연 일대는 북한이 자랑하는 혁명 사적지라고한다. 혜산시는 조선전쟁(한국전쟁)때 운명이 바뀔뻔했다.장백진의 노인들은 19 50년11월께 혜산에 들어왔던 미군들을 먼 발치로 보았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노인들 뿐아니라 50대들도 강건너에 온 미군들을 기억해냈다. ○미군기 폭격도 받아 그리고 나서 며칠이 지난 뒤에 미군들은 없어졌으나 장백진 사람들은 혜산쪽을 향해 곤두박질하면서 폭격을 해대고 다시 치솟는 미군 비행기 꼬리를 전쟁 내내 목격했다.장백진 조선족 중에는 연변조선족처럼 조선의용군 자격으로 전쟁에 참전한 사람들도 더러 있다. 어떻든 조선전쟁을 피부로 느꼈을 만큼 혜산과 장백진은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둔 이웃이다.장백진 사람들은 모진 사람 곁에 있다 벼락 맞는 꼴로 전쟁을 간접적으로 치른 셈이다.돌 팔매질은 아니나 혜산의 돌이 장백현으로 날아올 때도 있다.지난 1971년 혜산시에서 도로공사를 하느라고 터뜨린 다이너마이트가 폭파하면서 돌멩이가 압록강을 넘어 장백현 마록구로 날아들었다.이 때에 호옥방이란 중국사람이 돌에 맞아 불구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와는반대로 지난 1977년 4월25일 장백현 마록구 도로공사 현장에서 폭파작업을 할때 날아간 돌이 강을 넘어 혜산시 청동고등중학교 학생 김경옥양을 때렸다.그 학생은 아예 생명을 빼앗겨 버렸다.이러한 사건이 일어나면 가해자 쪽에서 으레 위문대표단을 피해자 쪽에 보냈다.그러나 어디까지나 압록강은 국경이어서 사사로운 도강은 어림없는 일이다. 이 팔월 무더운 날에 옛 함경도 땅 양강도 냉면 한 그릇을 맛보는 것도 좋으련만 생각으로 그쳐야했다.함께 동행한 서울신문 김명국기자도 함경도 냉면 이야기를 했더니 침을 삼켰다.김기자는 아마도 통일이 되어야 함경도 냉면을 제바닥에서 맛볼 수 있을 것이다.서글픈 감회가 들었다.
  • 원폭 제1목표는 고쿠라시/나가사키 투하는 제2선택

    ◎미 국방부 문서 비화/NYT 보도/B29 3회 비행… 구름덮여 공격지점 변경/첫 플루토늄 원폭 세례… 「우라늄탄」 능가 구름이 한 도시의 운명을 갈라놓았다.2차대전 당시 일본 규슈의 고쿠라시가 구름낀 날씨 덕에 원폭투하 세례를 받지 않고 대신 나가사키가 2차 원폭투하 대상지가 됐기 때문이다.뉴욕타임즈가 나가사키 원폭투하일(9일)을 맞아 보도한 내용을 요약한다.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된지 3일 후인 1945년 8월9일 상오 10시30분.미국의 B29 폭격기 「복스 카」(흑맥주 차)는 고쿠라에 원폭을 투하하기 위해 세차례나 고쿠라 상공을 선회했으나 조종사 커미트 비핸은 구름이 깔려 지상의 목표물을 눈으로 식별할 수 없었다.비핸은 고쿠라 상공에서 목표물인 거대한 군수공장을 눈으로 식별할 수 있을 때에만 원폭을 투하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었다.고쿠라 상공을 비행할 때 포격기의 폭탄적재실은 원폭투하를 위해 열려 있었고 조종석의 계기들은 투하준비 완료 상태를 알리고 있었다.비핸은 원폭의 섬광에서 눈을 보호하기 위해 특수보안경도 쓰고 있는상태였다.그는 군수공장 옆을 흐르는 강과 고쿠라의 건물들을 구름 사이로 볼 수 있었으나 군수공장단지 자체는 구름에 가려 있었다.비핸은 할 수 없이 고쿠라를 포기하고 제2의 원폭투하 대상지인 나가사키를 향했다.나가사키 상공에도 부분적으로 구름이 깔려 있었으나 많지는 않았다.결국 세계 최초의 플루토늄 원폭은 나가사키에 내려졌고 10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은 히로시마에 투하된 우라늄 원폭보다 위력이 훨씬 강했다. 고쿠라에는 일본 서부에서 가장 큰 군수공장이 있었으며 이곳에서 일본의 미사일,항공기 등 일본군의 무기들이 생산되고 있었다.이 도시에서는 또 화학무기가 비밀리에 제조되고 있기도 했다.비밀해제된 미 국방부 1급 군사기밀문서에 따르면 미국은 고쿠라에서 화학무기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1945년 7월2일 이미 알고 있었다.
  • 「히로시마 원폭」 50돌… 2저서의 엇갈린 시각(쟁점)

    최초의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에 투하된지 6일로 만 50년이 된 가운데 원폭투하를 당시 상황아래 최선의 대안이었다는 입장인 「암호명 낙하」(Code Name Downfall,노먼 폴마르·토마스 앨런 공저)와 아시아에서 소련 공산주의의 예봉을 꺾기 위한 미국의 무모한 선수치기였다는 수정주의적 반대 견해의 「원폭을 사용하기로 한 결정」(The Decision To Use Bomb,가르 앨퍼로비츠 저) 등 두권의 책이 미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이들의 요점을 소개한다. ◎긍정론/「암호명 낙하」/폴마르­앨런 공저/“미군희생 막기위한 최선의 대안”/트루먼 “소련군 가세해도 일에 쇼크 못줘” 판단 트루먼 대통령은 19 45년6월17일 일기에다 『대일 전략을 결정해야만 한다.일본 본토를 공격할 것인가,폭탄을 떨어뜨리고 봉쇄할 것인가』라고 썼다.여기서 폭탄은 당시 일본 도시들을 황폐화한 중단없는 미군기 공습을 지칭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트루먼은 암호명 S1의 원자탄에 대해 곧 결정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다음날 이 결정에 대한 도움을 얻고자 그는 최고위 군사정책 관계자들을 불러 45년11월1일로 임시 날짜가 잡혀진 일본 직접공략 계획안을 들었다.트루먼 대통령이 무엇보다 알고 싶었던 항목중의 하나는 공격감행시 예상되는 미군 전사자와 부상자 규모였다. 조지 마셜 육군참모총장은 태평양전쟁을 마무리할 이 상륙공격은 예정대로 11월에 감행하지 않으면 6개월을 더 기다려야 한다면서 피를 흘리지 않고 전쟁을 이길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트루먼이 대통령에 취임하기 12일 전인 그해 4월1일 개시된 오키나와전투는 3개월 사이에 미군 전사자 7천6백명을 기록했으며 3만2천명에 가까운 부상자가 생겨 10만명의 투입전력중 사상률이 39%를 넘었다. 일본상륙의 첫 공략에는 총 34만명의 육군·해병대 병력이 동원될 계획이었다.트루먼은 합참에게 상륙 공격의 구체적 작전안을 수립하라고 지시했다.그리고 한달 후 7월중순에 원자폭탄 실험이 성공했다. 미국은 일본 암호전문의 체계를 해독한 덕분에 일본지도층중 일부가 협상은 원하고 있으나 항복까지는 생각하지 않고 있음을 알게 됐다.원폭투하냐 상륙 공략이냐의 선택을 미루고 단순봉쇄와 도시공습만으로 항복을 이끌어 낸다는 방안도 생각해 보았지만 하루에도 몇십명씩 죽어가는 이 전쟁을 트루먼 대통령은 오래 끌고 싶지 않았다. 트루먼은 소련이 곧 대일전에 참여한다는 것을 알았으나 일본도 소련이 지난 3개월간 극동군을 정비·증강했음을 파악하고 있어 쇼크효과는 별로 크지 않으리라 생각됐다.원자탄을 실제 사용하기 전에 이 폭탄의 위력을 일본에게 보여줘 항복을 유도하자는 몇몇 미국 과학자들의 제안은 일본에게 이용당할 많은 약점을 안고 있었다. 원폭투하 없이도 미국은 이겼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수만∼수십만명의 미군과 수백만명의 일본인이 목숨을 잃어야 했을 것이다.트루먼 대통령의 원폭사용 결정은 전쟁을 종식시켰으며 이들 미군과 일본인들의 목숨을 건졌다. ◎부정론/「원폭 사용 결정」/가르 앨퍼로비츠 저/“소련 견제하려 무리한 선수치기”/45년 여름 일본은 이미 궁지에 몰린 상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장군은 헨리 스팀슨 당시 전쟁장관으로부터 원자탄이 곧 일본에 사용될 것이란 말을 듣고 의기소침해짐을 느꼈다고 뒷날 회고했다.아이젠하워는 이 계획에 대해 『일본은 이미 패배했으며 인명을 구하기 위해 원폭을 사용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의견을 트루먼 대통령에게 말했는데 그말로는 성이 안차 퉁명스럽게 『이 무시무시한 것으로 그들을 칠 필요는 없다』고 내뱉었다. 많은 역사학자들이 현재 아이젠하워와 같은 생각이다.19 45년 여름에는 궁지에 몰린 일본 형편이 뚜렷해졌다.미해군이 일본해상을 통제했으며 식량,원자재,석유 공급이 끊겼다.미공군은 일본의 제공권을 장악하고 도시들을 조직적으로 파괴해가고 있었다. 독일이 5월8일 항복해 미국과 영국은 히틀러를 쳐부쉈던 힘을 독일에 비해 뒤처지는 타켓에다 집중할 수 있었다.게다가 소련의 대군이 일본 끝내기에 가세할 예정이었다.분명 시간 문제였다.일본 암호를 해독한 미국은 7월13일 일본천황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 직접 개입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종전 조건은 미국이 완전 무조건 항복만은 요구하지 않는 것이었다. 가장 큰 문제가 일왕을 어떻게 할 것인가로서 스팀슨 전쟁장관과 조셉 그루 국무장관대행은 천황이 영국왕과 같은 실권없는 지위만이라도 유지할 수 있다면 전투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이 될 것이라고 트루먼에게 조언했다. 소련군 8월 공격의 쇼크에다 천황 지위 보장이 얹어지면 항복은 거의 기정사실이라는 조언도 있었다.또 미국엔 시간이 많았다.일본본토에 대한 전면침입은 46년 봄에나 시작될 것이고 규슈 상륙일도 11월이었다.러시아의 8월 공격이 종전을 가져오지 않는다면 그때 원폭을 사용할 수도 있었다. 많은 비밀문건이 공개되면서 바이어니스 장관은 원폭이 소련에게 큰 인상을 남기기를,또 아시아에 공산주의의 영향을 초래함 없이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음이 드러났다.여러 과학자들에게 원폭이 있으면 소련을 좀더 쉽게 다룰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곤 했다.오래전부터 소련은 8월8일 부로 대일전에 나설 계획이었다.히로시마는 8월6일,나가사키는 8월9일 폭격당했다. 최근 공개된 당시의 1급비밀 문서는 하나같이 「소련군이 공격에 나서면 일본은 거의 틀림없이 항복할것」이라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 크로아,세계수도 크닌 포격/독립국 건설 저지

    ◎보스니아정부군과 협공/세계,공습나서 【크닌(크로아티아) AP 연합】 크로아티아 정부군은 31일 크로아티아 세르비아계 거점지역인 크닌시 외곽에 포격을 가하는 한편,영토탈환을 위한 전쟁선포를 위협하는 등 세르비아계에 대한 적극 공세에 나섰다. 보스니아에 있는 약 1만명의 크로아티아 정부군과 보스니아 크로아티아계는 크로아티아 국경지대에 위치한 크닌을 향해 북쪽과 서쪽으로 진군해가고 있다. 또 크로아티아 정부군은 이날 상오부터 하오 늦게까지 세르비아계 「수도」인 크닌 외곽 3∼3.5㎞지역내에 집중 포격을 가했다. 【자그레브 로이터 DPA 연합】 크로아티아내 세르비아계가 1일 전투기 3대를 동원,지난주 크로아티아 정부군이 대규모 공세를 펼친 끝에 차지했던 진지들을 폭격했다고 자그레브 소재 유엔사령부 관리들이 밝혔다. 이날 세르비아계의 주요 공격 목표는 보스니아와의 접경지역에 위치한 크라이나지역 스트르미차시내 진지들이었다고 이들은 덧붙였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사항은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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