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亞·유럽 이어 美 진출 나서는 이호철
문단활동 49년. 향수와 이산의 아픔, 그리고 분단문제를 필생의 화두로 여기며 살아온 이 시대의 작가 이호철(72)씨. 칠순을 넘기면서 더욱 왕성한 필력을 발휘하는 그가 요즘 국내외를 넘나들며 필명을 높이고 있다. 특히 여러 나라의 출판사와 각종 문학단체 등에서 ‘이호철 모시기’에 적극 나서 아직껏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한 우리 문단으로서는 매우 고무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많이 바빠졌습니다. 미국 시장도 얼마든지 도전해 볼 만 합니다. 현지 반응도 좋고요. 열심히 알려야지요.”
●‘남녘사람 북녘사람’ 이미 獨·中선 대서특필
이씨는 지난 7월 프랑크푸르트 등 독일 전역을 순회하며 작품 독회 및 TV출연 등의 행사를 가졌다. 현지에서 한국전쟁 참전 체험을 다룬 소설 ‘남녘사람 북녘사람’을 소개해 달라는 요청이 왔기 때문이다.
이때 독일 예나대학은 독일어로 번역된 ‘남녘사람 북녘사람’으로 이씨에게 ‘프리드리히 실러’ 메달을 수여하는 등 극진하게 예우했다. 이 메달은 유럽학술문화협력위원회가 1974년부터 국제 학술·예술 교류에 공로가 있는 국내외 저명인사에게 주는 공로패. 이씨는 한반도 분단에 따른 남북 민중의 고통과 그 과정에서 피어난 인간애를 탁월하게 형상화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에 앞선 지난 2월 중국 상하이에서 ‘남녘사람∼’의 출판기념회를 가졌을 때 예상 밖으로 중국 언론의 극찬을 받았다.‘문학보(文學報)’를 비롯해 19개 언론사 기자들이 취재경쟁을 벌이는 등 이씨의 작품세계를 앞다퉈 보도했다.
●美투어중 하버드·버클리大 등서 출판기념회
이런 그가 이제 유럽과 아시아 무대를 뛰어넘어 미국 무대를 노크한다. 그는 오는 26일 부인과 함께 뉴욕행 비행기를 탄다.‘남녘사람∼’의 영어판 ‘Southerners, Notherners’와 분단을 형상화한 단편 13편을 모은 영어판 소설집 ‘Panmunjom and Other Stories by Lee Ho-Chul’의 출간(이스트브리지 출판사)에 맞춰 ‘문학투어’에 나서는 것이다. 우리 소설이 미국에 본격 소개되기는 매우 드문 일이다. 그의 ‘미국투어’는 뉴욕을 시작으로,12월 중순까지 포틀랜드·시애틀·샌프란시스코·로스앤젤레스 등 5대도시에서 이어진다. 출판기념회는 하버드대와 버클리대, 그리고 워싱턴주립대 등지에서 계속된다.
이뿐만 아니다. 내년 4월에는 시카고·워싱턴·보스턴 등지에서도 출간기념 및 설명회를 가질 예정이다. 이는 현재 타진 중인 멕시코 등 중남미 6개국 진출의 중요한 교두보가 될 것으로 보인다. 멕시코 주요 언론은 이미 지난해 이씨의 작품을 대서특필할 정도로 관심을 보여왔다.
“주위에서 많은 도움이 있었지요. 경기도, 문예진흥원, 또 주변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미국 투어를 도와주더군요. 저 개인이 아닌 우리나라를 위해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 영어판 출간을 시작으로 그의 단편집 또한 독일어·스페인어·일본어·중국어판 등으로 잇따라 출간되며, 장편 ‘소시민’은 다음달 중 스페인어와 독일어판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그는 1955년 단편소설 ‘탈향’으로 등단했다. 이후 줄곧 분단과 통일을 주제로 작품에 몰두해 왔다. 그러다 지난해 가을 베를린 국제문학페스티벌에 초청 받은 것을 계기로 해외무대에서 각광을 받는 것. 이같은 해외반응은 노벨상 수상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라도 매우 바람직하다는 분석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폴란드에서는 정치인들에게, 중국에서는 지식인들에게 인기가 높다.”면서 “그 이유는 남북관계, 특히 해방 이후 1950년까지 북한의 실정, 또 인민군에서 국군포로로 넘어가는 과정 등에서 많은 감명을 받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내년에는 문학인생 50주년
‘남녘사람∼’은 1950년 7월,19세의 나이로 인민군 의용군에 징집됐다가 한달여 만에 울진지구 전투에서 남측에 포로로 잡히는 과정 등을 담은 자전적 소설.
“당시는 고교 2학년 이상은 무조건 인민군에 끌려가야 했습니다. 따발총을 지급받았으나 제대로 쏜 적이 한번도 없었지요.”
그는 아직도 북쪽에 사는 누이동생을 생각하면 가슴이 마구 저리다고 했다. 제3국을 통해 지금도 북쪽 소식을 가끔 접한다고 귀띔했다. 그나마 천만다행으로 3년 전 이산가족 방북 때 감격적인 상봉을 나누었다. 이후에는 ‘누이 얼굴’을 떠올리는 일이 부쩍 많아졌다고 한다.
지금의 남북 대치상황과 관련, 그는 “우즈베키스탄의 한국 화학공장에서는 북한 근로자 200명이 남한 기술자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면서 “이런 식으로 한솥밥을 먹는 일이 늘어나야 자연스럽게 통일이 이루어진다.”고 강조했다.
소설 쓰기는 강한 체력을 필요로 해 그는 등산과 요가 등으로 꾸준히 건강을 챙긴다.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난 그는 고등학생 때부터 열렬한 문학청년이었다.‘어느날 부산 부둣가에 떨어진 네청년’을 주인공으로 한 ‘탈향’은 24세 때의 작품으로 ‘문학예술’을 통해 데뷔했다. 지금까지 거의 매년 5∼6편의 중·단편을 발표하는 등 소설가 박완서·최일남씨 등과 함께 드문 ‘70대 현역’으로 후배 작가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3년 전 칠순기념 때 문학선집 7권과 통일칼럼집 1권을 내 그동안의 문학적 성과를 일차 정리했다. 내년에는 문학인생 50년을 맞는다.
김문기자 km@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