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포탄
    2026-06-1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241
  • 퓰리처상 수상 로이터 사진기자 아프간서 탈레반 취재 중 피살

    퓰리처상 수상 로이터 사진기자 아프간서 탈레반 취재 중 피살

    미국의 가장 권위 있는 보도상인 퓰리처상을 수상한 로이터 통신 소속 사진기자 대니시 시디퀴가 16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에서 피살됐다고 로이터 등이 보도했다. 아프간군에 따르면 시디퀴는 이날 파키스탄과 가까운 아프간 지역에서 정부군과 무장 반군 탈레반의 충돌을 취재하던 중 피살됐다. 아프간 특수부대가 남부 칸다하르주의 스픽볼닥에서 주요 지역을 다시 장악하기 위해 탈레반과 교전했는데, 이 과정에서 탈레반의 십자포화에 시디퀴와 아프간군 장교 1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디퀴는 2018년 미얀마 로힝야족의 난민 위기를 담은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로이터 사진팀 중 한 명이다. 2010년부터 로이터에서 일하며 아프간 전쟁, 로힝야족 사태, 홍콩 시위, 네팔 지진 현장 등을 누볐다. 그는 지난주 초부터 칸다하르주에서 아프간 특수부대와 함께 움직이며 전투 현장을 취재했는데 앞서 이날 오전 교전 소식을 전하며 자신의 팔이 포탄 파편으로 부상당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비극에 로이터의 마이클 프리덴버그 사장과 알렉산드라 갈로니 편집장은 성명으로 “우리는 지역 당국과 협조하면서 더 많은 정보를 시급히 찾고 있다”고 밝혔다. 또 시디퀴에 대해 “뛰어난 기자로 헌신적인 남편이자 아빠였고 많은 사랑을 받은 동료였다”며 애도했다.
  • ‘그 포탄’ 썼더니…연평도 해병대, 북한군 정확히 때렸다 [밀리터리 인사이드]

    ‘그 포탄’ 썼더니…연평도 해병대, 북한군 정확히 때렸다 [밀리터리 인사이드]

    적 진지 촬영 가능 ‘관측포탄’ 개발모의분석 해보니 적 50% 제압 도움바람 등 기상상황 영향 받는 것은 단점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2010년 11월 23일. 서해의 아름다운 섬 연평도는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았습니다. 북한군은 122㎜, 130㎜ 등 대구경 방사포탄(남한의 다연장 로켓) 170여발을 쐈고, 바다에 떨어진 것 외에 80여발이 해병대 부대와 민가를 타격했습니다. 당시 해병대 연평부대에는 K9 자주포 6문이 있었는데, 적의 공격으로 2문이 고장나 사격이 불가능했습니다. 사격통제장치 전자회로에 문제가 생긴 겁니다. 나머지 1문은 피격 직전 진행한 사격훈련 중 불발탄이 발생, 역시 반격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포탄이 떨어지고 불길이 치솟는 그 순간에도 해병대는 투혼을 발휘해 남은 3문으로 반격에 나섰습니다. 적탄이 떨어진 지 불과 13분 만이었습니다. 이어 사격통제장치를 수리한 1문도 가세했습니다.●北에 반격했지만…숨어버린 방사포 그런데 문제가 또 있었습니다. 연평도의 구형 대포병 레이더는 적의 공격 원점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레이더는 최초 북한의 무도 진지를 표적으로 설정, 해병대 K9 자주포는 무도에 50발의 포탄을 날렸습니다. 이후 적의 공격지점이 개머리 진지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30발을 쐈습니다. 북한군은 10여명이 사망하고 20여명이 부상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해병대 투혼으로 전투는 ‘연평도 포격전’으로 재평가됐습니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북한군 공격 원점을 정확히 타격하지 못한 것은 뼈아픈 실책이었습니다. 탄착점을 위성사진으로 분석한 결과 적의 방사포도 거의 피해를 입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북한군은 1차로 오후 2시 34분부터 46분까지 연평도를 향해 150여발을 쐈습니다. 이 가운데 60여발만이 섬에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3시 12분부터 29분까지 이어진 2차 공격 땐 20여발이 모두 연평도 안에 떨어졌습니다. 탄착점을 수정해 2차 공격을 했다는 뜻입니다. 적의 추가 공격을 무력화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안타까움이 남는 대목입니다.그런데 최근 포탄을 활용해 적 진지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들이 속속 등장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바로 ‘관측포탄’입니다. 해외에선 포탄 내부의 자탄에 GPS(위성항법장치) 센서를 넣어 정확한 탄착군을 확인하는 기술이 개발된 상태입니다. 우리 방위산업 기업 중에선 탄약 생산 전문기업인 풍산이 ‘카메라’가 내장된 포탄을 개발해 연구 중입니다. 과거 포병은 망원경을 이용해 탄착점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다 레이더가 개발돼 더 정밀한 분석이 가능해졌습니다. 관측포탄은 낙하산을 활용해 적의 모습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방식입니다. 적 진지 상황을 더 생생하게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이 포탄은 K9 자주포로 발사합니다. 적 진지 인근 상공에 쏘아올려진 포탄은 낙하하다 지상 2㎞ 지점에서 낙하산이 달린 자탄을 분리합니다. 표적상공 1.3㎞ 정도 지점에서 사진 촬영이 시작돼 사격지휘소로 정보를 보냅니다. 이 정보를 분석한 지휘부가 탄착점을 수정해 재사격하게 됩니다. 풍산 연구팀은 7년 넘게 이 기술을 개발해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올해는 조남석 국방대 교수와 해병대 관계자가 함께 참여한 가운데 연평도 포격전에 적용한 모의 관측 연구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연구결과는 긍정적이었습니다.공동 연구팀이 한국시뮬레이션학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바람 세기와 자탄 고도 등 조건을 달리해 1600회의 모의 사격을 실시한 결과 자탄은 평균 9분 이상 공중에 떠서 최대 40장의 사진을 전송한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다만 기상상황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점은 단점입니다. 바람세기에 따라 자탄 체공시간은 최대 2분 가량 감소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구팀은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로 시간을 되돌렸습니다. 당시는 겨울이었습니다. 서해의 기상 상황을 그대로 적용했습니다. 해병대 K9 자주포 수와 북한군 방사포 수를 모두 6문으로 설정했습니다. K9 자주포에서 관측포탄을 쏘자 1.3㎞ 상공에서 자탄 카메라의 촬영이 시작됐습니다. 곧바로 적 방사포 6문이 확인됐습니다. 고도 983m에선 방사포 인근에 떨어진 포탄 탄착점이 확인됐습니다. 이를 활용해 포병은 수정탄을 발사했습니다. 관측포탄이 고도 436m까지 내려오자 적의 방사포 3문이 파괴됐다는 사진 정보가 나왔습니다. 적 절반을 제압한 겁니다. 포병은 오차를 계산해 다시 수정탄을 발사했습니다.수십년간 군과 민간에서 축적한 방산 기술력으로 한국은 자주포뿐만 아니라 포탄 수출국으로도 우뚝 섰고 위상이 점차 높이지고 있습니다. 연구개발 예산과 범위도 계속 커지고 있습니다. 관측포탄 기술도 계속 고도화해 북한의 도발에 대비하는 용도는 물론, 해외 수출로도 이어질 수 있길 바랍니다.
  • ‘그 포탄’ 썼더니…연평도 해병대, 북한군 정확히 때렸다 [밀리터리 인사이드]

    ‘그 포탄’ 썼더니…연평도 해병대, 북한군 정확히 때렸다 [밀리터리 인사이드]

    적 진지 촬영 가능 ‘관측포탄’ 개발모의분석 해보니 적 50% 제압 도움바람 등 기상상황 영향 받는 것은 단점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2010년 11월 23일. 서해의 아름다운 섬 연평도는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았습니다. 북한군은 122㎜, 130㎜ 등 대구경 방사포탄(남한의 다연장 로켓) 170여발을 쐈고, 바다에 떨어진 것 외에 80여발이 해병대 부대와 민가를 타격했습니다. 당시 해병대 연평부대에는 K9 자주포 6문이 있었는데, 적의 공격으로 2문이 고장나 사격이 불가능했습니다. 사격통제장치 전자회로에 문제가 생긴 겁니다. 나머지 1문은 피격 직전 진행한 사격훈련 중 불발탄이 발생, 역시 반격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포탄이 떨어지고 불길이 치솟는 그 순간에도 해병대는 투혼을 발휘해 남은 3문으로 반격에 나섰습니다. 적탄이 떨어진 지 불과 13분 만이었습니다. 이어 사격통제장치를 수리한 1문도 가세했습니다.●北에 반격했지만…숨어버린 방사포 그런데 문제가 또 있었습니다. 연평도의 구형 대포병 레이더는 적의 공격 원점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레이더는 최초 북한의 무도 진지를 표적으로 설정, 해병대 K9 자주포는 무도에 50발의 포탄을 날렸습니다. 이후 적의 공격지점이 개머리 진지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30발을 쐈습니다. 북한군은 10여명이 사망하고 20여명이 부상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해병대 투혼으로 전투는 ‘연평도 포격전’으로 재평가됐습니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북한군 공격 원점을 정확히 타격하지 못한 것은 뼈아픈 실책이었습니다. 탄착점을 위성사진으로 분석한 결과 적의 방사포도 거의 피해를 입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북한군은 1차로 오후 2시 34분부터 46분까지 연평도를 향해 150여발을 쐈습니다. 이 가운데 60여발만이 섬에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3시 12분부터 29분까지 이어진 2차 공격 땐 20여발이 모두 연평도 안에 떨어졌습니다. 탄착점을 수정해 2차 공격을 했다는 뜻입니다. 적의 추가 공격을 무력화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안타까움이 남는 대목입니다.그런데 최근 포탄을 활용해 적 진지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들이 속속 등장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바로 ‘관측포탄’입니다. 해외에선 포탄 내부의 자탄에 GPS(위성항법장치) 센서를 넣어 정확한 탄착군을 확인하는 기술이 개발된 상태입니다. 우리 방위산업 기업 중에선 탄약 생산 전문기업인 풍산이 ‘카메라’가 내장된 포탄을 개발해 연구 중입니다. 과거 포병은 망원경을 이용해 탄착점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다 레이더가 개발돼 더 정밀한 분석이 가능해졌습니다. 관측포탄은 낙하산을 활용해 적의 모습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방식입니다. 적 진지 상황을 더 생생하게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이 포탄은 K9 자주포로 발사합니다. 적 진지 인근 상공에 쏘아올려진 포탄은 낙하하다 지상 2㎞ 지점에서 낙하산이 달린 자탄을 분리합니다. 표적상공 1.3㎞ 정도 지점에서 사진 촬영이 시작돼 사격지휘소로 정보를 보냅니다. 이 정보를 분석한 지휘부가 탄착점을 수정해 재사격하게 됩니다. 풍산 연구팀은 7년 넘게 이 기술을 개발해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올해는 조남석 국방대 교수와 해병대 관계자가 함께 참여한 가운데 연평도 포격전에 적용한 모의 관측 연구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연구결과는 긍정적이었습니다.공동 연구팀이 한국시뮬레이션학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바람 세기와 자탄 고도 등 조건을 달리해 1600회의 모의 사격을 실시한 결과 자탄은 평균 9분 이상 공중에 떠서 최대 40장의 사진을 전송한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다만 기상상황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점은 단점입니다. 바람세기에 따라 자탄 체공시간은 최대 2분 가량 감소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구팀은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로 시간을 되돌렸습니다. 당시는 겨울이었습니다. 서해의 기상 상황을 그대로 적용했습니다. 해병대 K9 자주포 수와 북한군 방사포 수를 모두 6문으로 설정했습니다. K9 자주포에서 관측포탄을 쏘자 1.3㎞ 상공에서 자탄 카메라의 촬영이 시작됐습니다. 곧바로 적 방사포 6문이 확인됐습니다. 고도 983m에선 방사포 인근에 떨어진 포탄 탄착점이 확인됐습니다. 이를 활용해 포병은 수정탄을 발사했습니다. 관측포탄이 고도 436m까지 내려오자 적의 방사포 3문이 파괴됐다는 사진 정보가 나왔습니다. 적 절반을 제압한 겁니다. 포병은 오차를 계산해 다시 수정탄을 발사했습니다.수십년간 군과 민간에서 축적한 방산 기술력으로 한국은 자주포뿐만 아니라 포탄 수출국으로도 우뚝 섰고 위상이 점차 높이지고 있습니다. 연구개발 예산과 범위도 계속 커지고 있습니다. 관측포탄 기술도 계속 고도화해 북한의 도발에 대비하는 용도는 물론, 해외 수출로도 이어질 수 있길 바랍니다.
  •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인간의 부재-대량살상 시대의 미학/미술평론가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인간의 부재-대량살상 시대의 미학/미술평론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각국 정부는 포스터, 영화 같은 대중매체를 동원해 ‘위대한 투쟁’에 참여하라고 청년을 독려했다. 조국에 봉사한다는 사명감을 안고 전쟁에 나간 청년은 서부전선의 무시무시한 현실에 부딪혔다. 전선이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프랑스 북동쪽 베르? 지역에서는 300일 동안 전투가 계속됐다. 군인들은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극한적인 공포 속에서 집중포화가 끝나길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수류탄과 포탄, 독가스는 전쟁 선전물이 만들어 낸 기사도적 환상을 와르르 무너트렸다. 헤밍웨이가 ‘무기여 잘 있거라’에서 주인공 프레더릭 헨리를 통해 말하듯이 전쟁은 신성하지도 영광스럽지도 않았으며, 군인들은 죽은 후 ‘그냥 땅속에 파묻는 것만 빼면 시카고 도축장의 가축 수용소에 수용된 가축이나 다를 바 없었다.’ 제1차 세계대전은 당대의 지적 분위기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전쟁을 재현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발로통이 그린 전장은 기하학적으로 구조화돼 있다. 앞쪽에 언덕의 경사면이 보인다. 비가 내리는 것인지, 총탄이 빗발치는 것인지 무수한 빗금이 그어져 있다. 건너편 언덕에는 타다 만 나무들이 늘어서 있다. 두 언덕 사이에 포탄이 떨어져 희고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일고 있다. 그 위를 붉고 푸른 탐조등 광선이 이리저리 엇갈린다. 언덕 아래 들판은 벌건 화염에 휩싸여 있다. 이 그림은 전쟁을 전통적인 방식으로 다루지 않는다. 살이 찢기고 피가 튀는 싸움 장면도 없고, 영웅적인 군인도 비장한 주검도 등장하지 않는다. 전쟁이 일어나자 발로통은 자원 입대하려 했으나 나이가 많아 거부당했다. 1916년 전쟁 기록 예술가 부대가 조직됐고 그도 여기에 참여했다. 다음해 6월 베르? 전선을 방문한 화가는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이 전쟁을 기록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량살상 시대의 전쟁은 인간을 부정한다.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폭력 앞에 인간은 사라진다. 발로통은 전쟁의 냉혹함, 기계가 점령한 파괴의 풍경을 묘사하기 위해 등장한 지 얼마 안 된 큐비즘의 가능성을 시험했다. 직선과 커브, 몇 가지 원색의 단순함이 현대 전쟁이 초래한 비인간화를 여실히 보여 준다.
  • “이란 핵 결코 용납 못해” 바이든, 이스라엘과 밀착

    “이란 핵 결코 용납 못해” 바이든, 이스라엘과 밀착

    친(親)이란 성향의 이라크 및 시리아 민병대와 미국이 주도하는 연합군의 공습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AFP 통신은 28일(현지시간) 민병대가 동부 시리아 알오마르 유전의 미군 기지에 포탄 수발을 발사했으며, 미국이 주도하는 연합군은 이에 대한 반격으로 시리아 마야딘 마을에 대한 포탄 공격을 했다고 보도했다. AFP는 시리아인권관측소를 인용해 피해는 있었지만 사상자는 없다고 전했다. 이번 공격은 미국이 시리아 2곳, 이라크 1곳 등 이란의 지원을 받는 민병대에 대해 공습한 바로 이튿날 발생했다. 미 국방부는 민병대가 이라크에 있는 미군 기지와 인력에 드론 공격을 한 데 대한 보복 차원에서 공습했다고 밝혔지만, 이란과 이라크는 강하게 반발했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이란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복원 문제를 둘러싸고 이란과 어려운 협상을 진행 중인데, 이번 사태로 협의는 더욱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오는 8월 취임을 앞둔 대미 강경보수파 성향의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신임 이란 대통령과의 관계를 푸는 데도 시간이 걸릴 예정이다. 조 바이든미국 대통령은 이날 이스라엘과 더욱 밀착하며 이란 문제와 관련해 “이란은 내 재임 기간에 결코 핵무기를 갖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나프탈리 베네트 신임 총리와 곧 만나기를 고대한다며 “이스라엘에 대한 약속은 철통같다”고 말했다.
  • [기획] ‘수탈과 분단‘, 질곡의 역사 한눈에… 철원 ‘소이산’

    [기획] ‘수탈과 분단‘, 질곡의 역사 한눈에… 철원 ‘소이산’

    국내에서 아주 멀리 무한대 지평선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얻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온통 산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지리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평지에서조차 초고층 빌딩과 아파트가 숲을 이루고 있어 이 거대한 문명(?)의 벽을 뚫고 저 멀리까지 내다볼 도리가 없다. 최근엔 미세먼지까지 극성을 부려 맑은 날씨가 아니면 이마저도 볼 수 없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다. - ‘소이산’ 정상 무한감동 쓰나미…웅장한 평강고원, DMZ 한눈에 무의식 속, 이런 기회에 대한 체념이 굳게 자리 잡아가던 어느 날 남북 분단의 아픔과 긴장감을 실감할 수 있는 접경지역, 강원 철원의 한 나지막한 산에 다다랐다. 거친 호흡과 함께 제법 가파른 산길 오르기를 20여분, 정상에 서는 순간 홀연히 맞이한 놀라움에 온통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 정도 높이에서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수십 리가 뻥 뚫린 평야의 경이롭고 장쾌한 광경은 퇴화하던 눈마저 번쩍 뜨이게 하는 기적을 일으켰다. 동시에 체화(體化)됐던 체념의 벽도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막 정상에 오른 찰나였지만 감정의 흐름은 마구 요동쳤다. 예기치 못한 신선한 충격에 온통 정신이 혼미하고 멍해지기를 잠깐, 이젠 무한 감동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그 순간이 지나 겨우 정신을 차리자 비로소 말문이 트이고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와~ 대단하다. 멋지다! 굉장하다!” 온갖 머리를 짜내 지금까지 살아오며 익히고 써왔던 모든 표현 중에 적절한 말을 찾아보려 애쓰지만 궁색하기 그지없다. 이런 대형 사고를 친 범인(?)은 민통선 바로 옆에 위치한 야트막하고 보잘 것 없는 ‘소이산’(362m) 이었다. 400m가 채 안되는, 이름조차 생경한 이곳 정상에서 바라본 드넓은 산야의 모습은 감동적이고 웅장했다. 거대한 대지와 무한의 하늘이 맞닿은 평강·철원고원의 경이로운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막힌게 하나 없어 사방 수십리가 탁 트인,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은 마치 만주 벌판에 온 듯한 착각에 빠트린다. 이런 감동의 맨 끝엔 ‘분단’이란 현실이 만들어 낸 오묘하고 복잡한 감정이 은연히 솟구친다. -사철 자연 옷 갈아입는 ‘멋쟁이’…열하분출 드넓은 용암대지 형성면적 600여㎢, 평균 해발 320m의 거대한 평강·철원평야 일대를 두루 조망할 수 있는 특별한 곳 소이산. 그 정상에서 바라본 드넓은 평야는 철따라 자연의 옷을 갈아입는 ‘최고 멋쟁이’였다. 봄철이면 가둬 놓은 논물이 반사돼 은빛 세계를 이루고, 모내기가 끝난 드넓은 평야는 푸른 물결 일렁이는 바다가 된다. 한여름 한껏 무성해진 벼는 가을 접어들어 알알이 영글은 나락으로 바뀌며 황금 물결 친다. 겨울철 눈이 내려 순백의 세상으로 변한 들판은 월동을 위해 찾아온 멸종 위기종 재두루미 등 철새들의 천국으로 변한다. 이런 감동을 주는 거대한 용암대지는 언제, 어떻게 탄생했을까? 수천만 년 전 북녘땅 평강, 세포군 두 지역에서 일어난 미약한 화산 중심분출(中心噴出)은 그 형성의 시작이다. 평강 오리산(458m)과 세포 검불랑 북동쪽 680봉이 바로 그 폭발의 중심지역이다. 이후 몇 차례에 걸쳐서 평강, 철원 지역 추가령 열곡(길게 갈라진 틈)에서 열하분출(裂罅噴出)이 이어졌다. 검붉은 용암은 낮은 곳으로 흐르고 흘러 수백리에 이르는 지역을 뒤덮고 서서히 식어 광활한 대지를 형성했다. 화산 중앙에서 솟구치는 폭발이 아닌 길게 갈라지 틈에서 나온 용암이 대지를 뒤덮은 것이다. 기존 하곡이 용암에 묻히면서 하계망(河系網) 혼란과 분수계(分水界)에 변화가 일어났다. 중심분출이 있었던 두 곳은 북한 안변 남대천 그리고 임진, 한탄, 북한강 분수계의 중심지역이 됐다. 아주 오랜 세월 내린 비와 눈은 낮은 곳을 찾아 흐르며 침식작용을 일으켰고 마침내 하계망을 재편했다. 이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임진, 한탄강의 멋진 주상절리다. 중심분출이 일어난 평강에서 철원 방향 평야지대 경사는 2~3° 정도로 점차 낮아지는 지세를 이뤘다. 이 복잡하고 긴 과정이 평강·철원고원이 형성된 지리, 지형학적 역사의 대략이다. -북녘땅 평강, 철의 삼각지대 격전지 한눈에 조망60여년간 일반인 출입이 통제됐던 소이산 정상에 서면 북녘땅 평강 오리산과 읍 소재지 중심에 있는 호암산(574m), 한탄강 분수령을 이루는 백암산(1110m), 낙타고지(565m) 등을 조망할 수 있다. 궁예가 새 도읍 진산으로 정했던 일명 김일성고지 고암산(780m)도 또렷하다. 소이산에서 평강읍까지 직선거리로 대략 20km, 평야 지대여서 맑은 날이면 지척에서 보듯 북녘땅을 관찰할 수 있다. 갈래야 갈 수 없는 미지의 땅 언젠가는 꼭 가야 할 우리의 또 하나의 소중한 영토다. 남녘땅 철원 지역에도 볼거리는 다양하다. 일제 때 축조한 산명호저수지, 경원선 단절로 폐역사가 된 철원·월정리역, 최북단에 있어 비무장지대를 코앞에서 볼 수 있는 평화전망대를 정상에서 살펴볼 수 있다. 한때 철원역은 금강산행 기차를 타려는 관광객들로 붐볐던 곳이다. 철원에서 장안사가 있는 내금강역까지 운행하던 금강산전기철도 시발역이었던 까닭이다. 1924년 일제 강점기 때 개통했으나 6.25전쟁 발발 이후 군사분계선이 설치되면서 운행 중단됐다.동족상잔 비극의 현장인 철의 삼각지대, 6.25전쟁 주요 격전지도 살펴볼 수 있다. 6.25전쟁 당시 피비린내 나는 격전지였던 백마고지가 정상 왼쪽에 선명하게 보인다. 중공군의 대공세에 의해 10여일간 지속된 전투는 30만발의 포탄을 퍼부었고 고지 주인은 무려 20번이 넘게 바뀔 만큼 치열했다. 이 전투에서 국군 3000여명, 중공군 1만 4000여명이 전사했다. 백마고지 동쪽 8km 지점엔 또다른 격전지 아이스크림 고지가 있다. 높이가 223m였으나 집중포격으로 표고가 3m나 깎여 나갈 정도로 전투가 치열했던 곳이다. -야생동물만 오가는 군사분계선‥무거운 정적만소이산 정상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비무장지대(DMZ)의 생생한 모습을 가까이서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다. 금단의 아픔을 지난 비무장지대는 울창한 숲으로 뒤덮혀 넓고, 긴 녹색 띠를 형성하고 있다. 드넓은 평야지대를 두 동강 낸 비무장지대에는 젊은 남북의 초병들이 총부리를 들이대고 대치하고 있는 비극의 현장이다. 한민족의 아픔과 생채기를 간직하고 있는 분단의 상징은 보는 이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민간인 출입이 금지된 비무장지대는 남북의 군사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완충지대로 오랫동안 야생 상태로 방치(?)돼 왔다. 덕분에 자연환경과 생태계가 완벽하게 보전되는 특혜(?)를 누려 생명의 공간이 됐다. 2700종이 넘는 야생동식물과 80여종의 멸종위기종이 서식하고 있다. 하천과 습지가 잘 발달한 이곳에는 이념과 사상으로부터 자유로운 야생동물들만이 먹잇감을 찾아 자유롭게 군사분계선을 오갈 수 있을 뿐이다.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일촉즉발 긴장감이 반세기가 훨씬 넘게 무겁게 흐르고 있다. 남북 경계초소(GP)에 내걸린 태극기와 인공기가 서로 마주보고 노려보는 듯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DMZ 내 철원성 전각 사라지고 군 시설이 대체정상에 서자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격언이 새삼 와닿는다. 역사, 지리, 인문학적 소양이 없다면 정상에서 바라본 전망은 그저 기념사진과 동영상을 찍기 위해 필요한 아름다운 풍경일 뿐이다. 비무장지대 한가운데 태봉국 군주인 궁예가 세웠다는 궁궐터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역사적 사실을 모른다며 말이다. 둘레가 무려 13km(내성 7.7km)에 달하는 태봉국 도성 철원성은 무성한 숲에 덮여 방치된 채 비무장지대에 남아있다. 스스로 미륵불이라 칭했던 궁예가 철원으로 천도하면서 당시 풍천원(현 홍원리)에 건설한 대규모 도성이다. 이처럼 평지에 쌓은 성은 발해나 중국에서나 볼 수 있다. 해방 당시 내성에는 궁궐터 포정전지와 국보 118호였던 석등이, 외성 남벽에 남대문지와 석탑, 귀부 등이 남아 있었으나 지금으로선 확인할 방법이 없다. 도성 위치는 절묘하게도 비무장지대 안에 있으며 그 중간을 군사분계선이 지난다. 일제 강점기에 건설한 경원선은 외성 한가운데를 남북으로 통과한다. 현재 철재 궤도는 모두 제거되고 제방만 남아 있다. 남북이 양분하고 있는 도성의 조사와 연구는 한민족 공통 과제다. 하나 남북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선 본격적인 발굴조사는 요원해 보인다. 궁궐 내 전각은 온데간데없이 모두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엔 군사시설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 안타까움만 더해진다. -질곡의 근현대사 지닌 철원‥일제 강점기, 6.25전쟁 아픔 간직민통선 내에는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일제 강점기와 해방 직후 지은 근대 건축물이 여럿 있다. 저수지 산명호 얼음을 저장했던 콘크리트 구조물 ‘얼음창고’, 수탈적 성격의 식민 금융기관인 ‘제2 금융조합’, 해방 직후 북한 통치하에 지역주민 노동력과 자금을 강제해 지어진 ‘노동당사’ 등 건축물과 터가 구 철원 시가지 민통선 안팎에 남아 있다.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한국전쟁) 당시 수탈과 만행의 현장이자 사라진 도시 철원의 자취를 보여주는 유적으로 전쟁의 상흔까지 남아 있어 역사적 의미가 크다. 점철된 질곡의 근현대사를 지닌 철원은 일제 강점기 경원선 개통과 근대적인 수리시설 축조로 교통·물류, 농업생산의 중심지로 급부상했다. 제대로 된 관개시설이 없던 철원평야는 알려진 바와 다르게 한탄강 수량 한계 때문에 척박했던 곳이다. 평강에 수리시설 ‘봉래호저수지’를 준공한 이후 비로소 땅이 비옥해져 농업 생산력이 한층 높아졌으나 일제의 수탈과 착취가 이어졌다. 1945년 해방을 맞았으나 철원은 북한에 편입되면서 주민에 대한 노동력 착취, 사상통제와 감시 등 고통은 계속됐다. 이후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구 철원은 휴전협정으로 땅이 두 동강 나는 아픔까지 겪는다. 오래전 이곳에서 터전을 일궈온 주민들은 고향을 등지고 뿔뿔이 흩어졌고 그 고통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글·사진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울릉군·의회 뿔났다”…울릉 인근 해역 포탄 사고에 강력 반발

    “울릉군·의회 뿔났다”…울릉 인근 해역 포탄 사고에 강력 반발

    최근 경북 울릉 인근 해역에서 발생한 포탄 사고와 관련해 울릉군과 울릉군의회가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며 강하게 반발했다.“해군 동해함 시운전 중에 발생한 포탄 오발 사고는 2척의 여객선에 탄 국민 319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었던 상황”이라며 “사고 발생 구역은 정기 여객선이 운항하는 해상임에도 면밀한 확인 없이 포탄을 발사해 군민은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포탄이 떨어진 사동항 남서쪽 24㎞ 해상은 울릉주민이 평소 어업구역으로 이용하는 곳으로 사태 심각성이 더 크다”며 “이런데도 해군, 현대중공업 등 관계 당국은 진상조사와 대책 마련은 뒷전이고 책임소재 떠넘기기에 급급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확한 진상조사를 통해 위반자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여객선 운항 시간대 운항구역의 사격훈련 금지와 울릉도 해상 20마일 이내는 어업인 안전을 위해 전면적인 사격훈련을 금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와 함께 “울릉 남방 근해는 울릉도 여객선 주항로일 뿐만 아니라 울릉공항 시대의 여객기 항로여서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사격훈련구역 및 훈련 공역구역 이전을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공동 성명 발표에는 김병수 군수를 비롯해 군청 간부 공무원, 최경환 의장을 비롯한 군의원 등이 참석했다. 지난 1일 울릉 인근 동해에서 방위사업청이 동해함을 시운전하는 과정에서 시험 발사한 포탄 5발이 정기항로를 운항하던 여객선 주변에 떨어졌다. 방사청은 “함정이 사격 개시 전 레이더 화면을 근거리(약 15㎞)로 전환하면서 사격 구역 바깥에 있는 우리누리호 위치(약 18㎞ 거리)를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사격했다”고 설명했다. 김 군수는 “연간 50만 명이 이용하는 해상 항로에 일방적인 군사훈련 강행은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며 “관계 당국은 국민 안전과 생명이 최우선이란 원칙하에 울릉 근해 사격훈련 안전성을 철저히 검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울릉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사설] 여객선 지나가는데 함포 사격, 책임 가려 엄벌하라

    울릉도를 출발해 경북 포항으로 향하던 두 척의 정기여객선 주변에 네 발의 포탄이 떨어졌다는 보도에 국민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우리누리호와 썬라이즈호에 300명이 넘는 승객들이 타고 있었는데 이들 배 주변에 큰 물기둥이 치솟았다니 승객들이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렸을까 싶다. 울산 현대중공업이 해군의 의뢰를 받아 건조한 함정을 오는 10월 말 인도하는데, 시운전을 겸해 시험사격을 하는 과정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빚어졌다. 현대중공업은 해군 등에 미리 통보했다고 주장했다. 해군은 해상안전 종합정보시스템에 올려 놓고 여객선사와 포항지방 해양수산청에 공문을 보내지도 않았다. 두 여객선은 아무것도 모른 채 운항에 나섰으니 막대한 인명 피해가 빚어질 뻔했다. 뒤늦게 여객선들이 기존 항로를 항해한다는 사실을 파악한 함정은 배의 방향을 급히 돌려 포탄을 1㎞쯤 떨어진 곳에 떨어지도록 쐈다고 해명했지만, 그런 해명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여객선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시험포 사격은 포기했어야 했다. 무슨 배짱으로 포탄을 1㎞쯤 떨어진 곳에 떨어뜨릴 수 있다고 자신했는지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여객선사는 함정의 주장과 달리 첫 발이 배로부터 불과 100m 거리에 떨어졌다고 하지 않는가. 전방의 감시체계가 무너지는 등 수년 전부터 군의 기강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대로 떨어져 있다. 지난 4월 중순 처음 폭로됐던 부실 도시락과 급식 문제가 두 달 가까이 개선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는 점도 문제다. ‘여객선을 향한 함포사격 사건’은 현대중공업이나 해군 모두 국민의 안전에 무신경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국방부는 해양수산부와 합동 조사단을 꾸려 철저히 수사하고, 책임 소재를 엄중히 가려 다시는 이런 일이 빚어지지 않도록 엄벌해야 한다. 현대중공업도 책임을 비켜 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美 옐로스톤 회색곰들 화났다…돌진 사고 잇따라 발생

    美 옐로스톤 회색곰들 화났다…돌진 사고 잇따라 발생

    미국의 한 국립공원에서 회색곰이 사람이나 차량을 향해 돌진을 시도하는 사고가 잇따라 일어났다. 1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USA 투데이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옐로스톤 국립공원 부지 도롯가에서 교통정리를 하던 공원 경비원을 향해 회색곰 한 마리가 돌진했다.당시 한 방문객이 촬영해 유튜브에 공개한 해당 영상에서 공원 경비원은 트럭 뒤에 숨어 자신에게 돌진하는 회색곰에게 공포탄을 쏘기 시작한다. 그러자 곰은 총소리에 놀랐는지 뒤돌아서서 숲 쪽으로 도망친다. 이번 사고는 로링 마운틴의 바로 남쪽과 노리스 게이서 분지의 북쪽에 있는 한 도로에서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작가 데비 딕슨은 해당 사고에 관한 정보를 국립공원 회색곰 관리인으로부터 얻어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시하며 유튜브 영상도 공유했다. 딕슨은 “이 모습은 방문객이 회색곰과 거리를 둬야 하는 이유”라면서 “방문객들이 공원 곳곳에서 먹이를 먹고 있는 곰에게 너무 가까이 접근해 상황을 악화시킨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국립공원 규정에 따르면, 방문객은 항상 곰과 최소 100야드(약 91m)의 거리를 유지해야 하며 사진을 찍기 위해 먹이를 주거나 접근하지 말아야 한다. 이에 대해 딕슨은 “이 수컷 곰은 온종일 한 암컷 곰을 따라다녔고 사람들이 이 곰의 길을 막았을 때 이날 동안에만 차량 약 6대를 향해 돌진한 것으로 보고됐다”면서 “암컷 곰이 길을 건너면 사람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수컷 곰 앞에 차를 세우는 바람에 재회를 막곤 했다”고 밝혔다. 같은 날, 공원 내 매머드 핫스프링스 인근 탐방로에서는 39세 남성이 혼자서 걷다가 회색곰에게 습격당해 중상을 입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 탐방객은 회색곰 두 마리와 우연히 마주쳤고 그중 한 마리에게 다리를 공격당해 중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다행히도 이 남성은 스스로 걸을 수 있어 탐방로를 빠져나와 구급차에 실려 현지 병원으로 이송됐다.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는 전날인 27일에도 한 여성이 회색곰에게 습격당할 뻔한 사고가 일어났다. 당시 다른 방문객의 카메라에 포착된 이 여성은 사진을 찍기 위해 새끼 곰 두 마리와 함께 있는 암컷 곰에게 계속해서 다가갔다. 이에 따라 공원 측은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이 여성을 찾기 위해 수소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는 실제로 2011년과 2015년에 회색곰의 습격으로 사망 사고가 일어난 바 있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함정 시험 발사 포탄4발 , 동해 여객선 주변에 ‘펑·펑·펑·펑’

    함정 시험 발사 포탄4발 , 동해 여객선 주변에 ‘펑·펑·펑·펑’

    울산 한 조선소가 동해에서 함정을 시운전하는 과정에서 시험 발사한 포탄(시험탄)이 경북 울릉에서 포항으로 운항하던 여객선 주변에 떨어져 대형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1일 포항지방해양수산청과 여객선사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 30분쯤 울릉 사동항에서 포항여객선터미널로 가던 우리누리호 주변 해상에 포탄이 떨어졌다. 우리누리호는 사동항에서 오후 2시 출발한 상태였다. 449명이 정원인 우리누리호에는 당시 관광객 등 166명이 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포탄은 처음에 여객선 약 100m 앞에 한 발 떨어진 뒤 배 측면에 다시 한 발 떨어졌다. 이어 약간 떨어진 곳에 두 발 추가로 떨어졌다. 우리누리호 바로 뒤에는 오후 2시 울릉 도동항에서 출발해 포항여객선터미널로 가던 썬라이즈호가 있었다. 우리누리호와 썬라이즈호는 해경이나 해군으로부터 사격 통보를 받지 못해 평소대로 항로를 운항하고 있었다. 다만 한 선박에서 ‘우리 함정 뒤로 지나가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만약 포탄이 여객선에 떨어졌다면 대형 인명 사고가 날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조사 결과 포탄을 발사한 선박은 조선소가 시운전하던 함정으로 확인됐다. 해당 조선소는 해군에 함정을 인도하기 전에 시운전과 시험 사격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선소 측은 “해군과 함께 적법한 절차에 따라 시운전과 사격을 진행했지만, 이번 시험으로 여객선 승객들에게 심려를 끼쳐드린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그러면서 “현재 정확한 경위에 대해 면밀히 파악 중이다”라면서 “지금까지 확인한 바로는 인근에 선박이 확인돼 안전거리를 확보한 뒤,함정의 대공사격 평가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선박 2척의 접근이 확인돼 항로 변경을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2척 중 1척이 항로 변경을 하지 않고 접근해 시운전 함정이 변침(방향 전환) 후 사격 안전거리를 확보하고 시험 사격을 했으며,시험탄은 여객선과 1㎞ 이상 거리에 떨어졌다”라고 덧붙였다. 포항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동해바다서 수장될 뻔”, 울릉∼포항 여객선 주변에 포탄 4발 떨어져

    “동해바다서 수장될 뻔”, 울릉∼포항 여객선 주변에 포탄 4발 떨어져

    경북 울릉에서 포항으로 운항하던 여객선 주변에 포탄이 잇따라 떨어져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1일 포항지방해양수산청과 여객선사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 30분쯤 울릉 사동항에서 포항여객선터미널로 가던 우리누리호 주변 해상에 포탄이 떨어졌다. 우리누리호는 사동항에서 오후 2시 출발한 상태였다. 포탄은 처음에 여객선 약 100m 앞에 한 발 떨어진 뒤 배 측면에 다시 한 발 떨어졌다. 이어 약간 떨어진 곳에 두 발이 추가로 떨어졌다. 이로 인해 주변에 해상에 큰 물보라가 일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폭발한 포탄은 해군에 인도를 앞둔 신형 호위함(FFG)에서 발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누리호 바로 뒤에는 오후 2시 울릉 도동항에서 출발해 포항여객선터미널로 가던 썬라이즈호가 있었다. 우리누리호와 썬라이즈호는 해경이나 해군으로부터 사격 통보를 받지 못해 평소대로 항로를 운항하고 있었다. 다만 한 배로부터 해당 함정 뒤로 지나가라는 통보만 받았을 뿐이었다. 만약 포탄이 여객선에 떨어졌다면 대형 인명 사고가 날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사격한 배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해경이나 해군 측은 해당 해역에서 사격한 일이 없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한 여객선사 관계자는 “해군에 인도되기 전인 함정에서 사격한 것 같다는 얘기를 들어서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항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김대영의 무기 인사이드] ‘세계최강 포병부대’로 손꼽히는 육군 제1포병여단

    [김대영의 무기 인사이드] ‘세계최강 포병부대’로 손꼽히는 육군 제1포병여단

    비호포병부대로 알려진 육군의 제1포병여단은 제1군단 직할부대이다. 군단포병 즉 군단 직할 포병으로, 유사시 ‘개성-문산 축선’을 방어하는 제1군단의 화력지원을 담당하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에 사령부를 둔 제1포병여단은 지난 1953년 2월 16일 제1군단 포병단으로 최초 창설되었다. 참고로 포병단은 보병사단이나 기계화 보병사단의 포병연대와 비슷한 규모를 가지고 있다. 1953년 11월 20일 제1군단 포병사령부 그리고 1982년에는 현재의 제1포병여단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부대마크는 제1군단 마크에 포병병과를 상징하는 화포와 장군전이 그려져 있다. ‘1’이라는 숫자가 의미하듯 제1포병여단은 육군 포병부대 가운데 ‘메이커부대’로 그 동안 가장 최신예 자주포가 우선적으로 배치되었다. 국산 자주포 K9이 최초 배치된 부대는 제1포병여단 예하부대였다.또한 K55 자주포의 개량형인 K55A1이 처음 배치된 부대 역시 제1포병여단 예하부대였다. 지금은 155mm 자주포가 제1포병여단의 주요장비지만, 과거에는 105mm 견인포부터 8인치 즉 203mm 자주포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구경의 화포를 가지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여단(旅團)하면 본부와 2개 이상의 단이나 대대로 구성된 편제부대를 뜻한다. 육군의 다른 포병여단의 경우 보통 4~5개의 야전포병대대로 구성되어 있다. 반면 제1포병여단은 다르다. 수개의 포병단이 있으며 예하에는 10여개의 야전포병대대가 있다. 포병단외에 여단 직할부대로 대포병 레이더를 가진 표적대대와 천무 그리고 대구경 다연장 로켓포인 MLRS 대대를 가지고 있다. 육군 준장이 지휘하는 여단급 부대이지만, 부대 규모만으로 보면 사단에 필적하는 크기를 자랑한다. 특히 육군 제5포병여단과 함께 세계에서 손꼽히는 화력을 자랑하는 부대로 알려져 있다. 미국 그리고 주변국인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일본도 이러한 크기의 포병부대를 가지고 있지 않다. 북한의 경우 과거 포병군단이 있었지만, 2020년 국방백서에 따르면 현재 1개 포병사단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다면 제1포병여단의 위력은 어느 정도일까? 일반적으로 155mm 자주포 혹은 견인포를 가진 야전포병대대는 화포 10여문이 배치되어 있다.제1포병여단은 10여개 야전포병대대를 보유한 부대로 100% 가동률을 전제로 유사시 250여 발의 155mm 포탄을 초탄 발사할 수 있다. 여기에 여단 직할부대의 천무와 MLRS가 가세하면 제1포병여단의 화력은 상상을 초월하게 된다. 이밖에 제1포병여단은 대화력전의 선봉부대로 알려져 있다. 대화력전이란 적의 화력지원수단과 이를 지휘 통제하는 모든 요소를 무력화시킴으로써 적의 화력지원 능력과 전투지속 능력 및 전의를 약화시키는 화력전투를 뜻한다. 김대영 군사평론가 kodefkim@naver.com
  • [포토] DMZ 화살머리고지서 발견된 ‘동굴형 진지’

    [포토] DMZ 화살머리고지서 발견된 ‘동굴형 진지’

    국방부가 비무장지대(DMZ) 남측 화살머리고지를 비롯한 백마고지 일대에서 지난 4월부터 시작한 6·25 전사자 유해 발굴 작업 과정에서 유해 28점과 유품 9천859점이 나왔다고 1일 밝혔다. 특히 화살머리고지에서는 6·25전쟁 당시 구축한 것으로 추정된 ‘동굴형 진지’ 2곳이 발견됐다. 굴토식으로 만들어진 이 진지는 전투 때 적 포탄으로부터 보호받고자 구축됐다. 2021.6.1 국방부 제공
  • 경찰, 해외서 부품 수입해 총기류 제조·판매 한 일당 적발

    경찰, 해외서 부품 수입해 총기류 제조·판매 한 일당 적발

    해외서 총기 부품을 위장 수입해 소총 및 권총을 제조·판매한 일당 7명이 경찰에 적발됐다. 부산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는 총포화약류 관리법위반 혐의로 A(40대,남)씨를 구속 송치했다고 1일 밝혔다.또 B(30대)씨 등 5명은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하고 군인( 30대 부사관)은 군 경찰에 넘겼다.경찰에 적발된 이들은 군인과 민간인이 포함된 인터넷 카페 동호회 회원들이다. 이들은 미국에서 총기부품을 기계 부품 등으로 위장 수입해 모의 총기부품과 결합시켜 실제 총기와 동일한 기능을 갖춘 소총과 권총을 제조·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A씨 등이 사제 총기를 제작·판매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군사경찰, 관세청 등 유관기관과 공조수사를 벌였다. 경찰은 이들의 주거지와 사무실 등에서 직접 제작한 권총 5정, 소총 1정, 실탄 및 총기부품 등 총 138점의 총기류를 압수했다. 이들이 제조한 총기는 미국에서 총기 난사사건의 범행도구로 사용된 일명‘고스트 건’으로 불리는 총기로 격발실험 결과 실제 총기와 동일한 기능을 갖춘 것으로 확인됐다.고스트건은 조립세트로 제작한 총으로 총기번호가 없어 추적이 어렵고 폴리머 재질로 금속탐지가 불가능하다. 바이든 행정부의 총기규제 대상인것으로 알려졌다. A씨 등은 지난해 3월부터 미국 총기 사이트에서 구입한 총기부품을 위장수입했다. 인터넷 매체에 올라온 동영상을 보고 총기 부품을 조립해 소총과 권총 완제품을 만들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C씨 등 2명은 또 다른 동호회 회원 2명에게 자신들이 제작한 권총 을 각각 200~300만원에 판매했다. 또 군부대 인근에서 금속 탐지기로 유류된 실탄을 수집해 수입한 화약과 모형탄을 이용해 공포탄을 제조 후 사격 연습을 하기도 했다. 경찰은 세관 통관 에서 걸러지지 않는 총기부품 목록과 범행수법 등을 관세청에 통보했다. 경찰관계자는 “총기 제작·유통범죄는 대형 인명피해나 테러범죄 등에 악용될 수 있다”며 “총기류와 관련된 부품을 불법 수입하거나 이를 이용해 제작·유통하는 행위는 중대 범죄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부산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 [씨줄날줄] 아이언돔/임병선 논설위원

    [씨줄날줄] 아이언돔/임병선 논설위원

    이스라엘의 저고도 미사일 방어망인 아이언돔(Iron Domeㆍ히브리어 ‘키파트 바르젤’)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가자지구에서 쏜 로켓포를 90% 막아 냈다. 세계 어느 곳보다 인구가 밀집한 이스라엘 주거지구의 하늘을 강철 돔처럼 덮어 보호한다는 뜻이다. 요격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하마스는 자신들의 로켓보다 50배나 값이 비싼 요격미사일을 소진시킬 목적으로 계속 쏴댄단다. 이스라엘은 이집트나 이란 등 아랍국가보다 가까운 무장조직들의 로켓에 더 위협을 느꼈다. 1990년대 레바논에 기반을 둔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북부 인구 밀집 지역을 로켓으로 공격하면서였다. 2006년 이스라엘ㆍ레바논 전쟁 때 이스라엘 세 번째 도시인 하이파가 무참히 파괴됐고, 100만명 가까운 이스라엘 국민이 방공호에서 지냈다. 2000년부터 2008년까지 이집트와 연결된 터널을 통해 가자지구에 들여온 4000개의 로켓과 4000개의 박격포탄이 이스라엘 도시들에 떨어져 국민들을 공포에 몰아넣었다. 2004년 다니엘 골드 장군이 이스라엘방위군(IDF) 연구개발 부서를 맡아 정치권을 설득했다. 마침내 2007년 2월 아미르 페레츠 국방장관은 이스라엘 라파엘사와 이스라엘항공우주산업이 전천후 이동식 방공 시스템(CRAM)을 개발하도록 승인했다. 개발 자금은 2억 1000만 달러였는데 차츰 늘어나 미국도 2억 달러 이상 지원했다. 아이언돔은 4~70㎞를 날아가는 단거리 로켓포와 155㎜ 포탄, 이란과 북한에서 들여온 러시아제 다연장 로켓포 BM21을 차단하도록 설계됐다. 2011년 3월 27일 베르셰바 근처에서 처음 운용돼 다음달 7일 가자지구에서 발사된 BM21 로켓을 요격한 뒤 2014년 10월까지 1200개가 넘는 하마스 로켓을 무력화시켰다. 아이언돔은 이스라엘 테러 위협에 최적화된 시스템이다. 1980년 레이건 행정부의 스타워스 구상이 트럼프 시대에 위성들이 적의 미사일을 재빨리 탐지해 우주공간에서 요격한다는 것으로 발전됐다. 즉 아이언돔은 도시 공방전에 국한된 셈이다. 2015년 경북 성주에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기지가 들어설 때도 아이언돔을 대안으로 거론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힘을 얻지 못했다. 우리는 중·저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인 패트리엇(PAC3) 미사일을 사드와 연동하고 있어 굳이 저고도 방어망을 생각할 이유가 없었는데 북한이 방사포와 장사정포를 계속 늘려 기류가 바뀌고 있다. 국방부가 지난해 8월 “장사정포 위협으로부터 수도권과 핵심 시설을 방호할 수 있는 K아이언돔 개발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이다. bsnim@seoul.co.kr
  • BBC 아라빅 제작진 리포트하는 뒤에서 13층 주거용 건물 와르르

    BBC 아라빅 제작진 리포트하는 뒤에서 13층 주거용 건물 와르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무력 충돌이 닷새째 이어진 가운데 BBC 아라빅 제작진이 생중계하는 도중에 가자지구의 13층 주거용 건물이 이스라엘 공습에 무너지는 모습이 생생하게 잡혔다. 아드나 엘부르시 프로듀서가 양측의 무력 충돌 이틀째인 10일(이하 현지시간) 가자지구의 피해 상황을 저나던 도중 폭발음이 들렸고, 스튜디오의 앵커가 괜찮냐고 물어보면서 “안전을 고려해 생중계 연결을 끊어도 좋다”고 만류하는 와중에 알 슈르크 건물이 와르르 무너진다. BBC 아라빅은 이 내용을 묵혀뒀다가 12일 다시 방송했다. 아직까지도 이 건물이 붕괴됨으로써 얼마나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했는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이 동영상에는 왼쪽과 오른쪽 건물이 무너지는 모습까지만 나오는데 아래 최근 충돌이 격화된 여섯 가지 이유를 설명하는 동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가운뎃부분도 무너지고 만다. 14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통치하는 요르단강 서안에서도 대규모 반(反)이스라엘 시위가 벌어졌다. 예루살렘 포스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14일 요르단강 서안 전역에서 수천명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하마스에 대한 연대의 의미로 격렬한 시위에 나섰다. 요르단강 서안은 팔레스타인의 다른 무장 정파 파타가 장악한 곳이기도 하다. 시위대는 타이어를 불태우기도 하고, 화염병과 돌을 던지거나 흉기를 휘두르면서 이스라엘 군인들과 충돌했다. 이 과정에 최소 6명이 숨지고 100여명이 부상했다. 이스라엘군은 사망자들이 군인들에게 흉기를 휘두르려 하는 등 도발을 하다가 총격을 받고 숨졌다고 설명했다 북부 레바논 접경지대에서도 이스라엘 국경선 안에 들어와 불을 지르고 시위를 벌이던 남성이 이스라엘군의 발포로 사망했다. 이슬람 성지인 알아크사 사원에서 벌어진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 끝에 하마스의 로켓포 공격을 받고 보복 공습에 나선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의 하마스와 자국 내 아랍계 주민에 이어 요르단강 서안의 파타 봉기로 또 다른 전선을 맞게 됐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날 아침 성명을 통해 “하마스로부터 무거운 대가를 뽑아내겠다고 했다. 우리는 강력한 힘으로 그 일을 하고 있고 필요할 때까지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 12일 러시아 외무부를 통해 접수된 하마스 측의 휴전 제안을 거절했고, 이어 안보관계 장관회의는 가자지구에 대한 공세 강화를 승인했다.이에 따라 그동안 하마스의 로켓 공세에 맞서 전투기를 동원한 정밀 폭격으로 대응해 왔던 이스라엘은 전날 가자 접경지에서 지상군 기갑부대 등을 통한 포격전을 시작했다. 또 7000여명의 예비군을 동원해 후방 임무를 맡기는 한편, 현역 부대를 가자 전선에 집결시켜 본격적인 침투 작전에 대비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지상군이 가자지구를 공격한다는 애매한 메시지를 유포했고, 이를 침투작전으로 오해한 하마스가 지하에 숨겨둔 방어용 무기를 움직이면서 하마스의 지하 시설이 드러났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지하 시설을 확인한 이스라엘군은 전투기 160대를 동원해 하마스가 구축한 지하 터널 등 가자지구 북부의 150여개 목표물을 향해 40여분 동안 무려 450발의 미사일을 퍼부었다. 가자 접경에 배치된 병력도 500여발을 하마스 표적을 겨냥해 쏘았다.나흘 동안 2000여발의 로켓포탄을 이스라엘에 쏟아부은 하마스도 사거리가 긴 로켓포로 텔아비브 등 이스라엘 중부를 타격한 데 이어 폭발물이 탑재된 ‘자살 폭발 드론’을 전력에 추가했다. 이날도 새벽부터 지중해변 도시 아쉬도드, 남부 아슈켈론, 스데로트 등에 경보가 울렸다. 하마스 군사 조직 대변인은 “지상에서 급습을 계속한다면 이스라엘군에 가혹한 교훈을 주겠다”고 응전을 다짐했다. 가자지구 보건당국은 지금까지 122명의 사망자와 900여 명의 부상자가 나왔다고 밝혔다. 사망자 중에는 31명의 아동과 20명의 여성이 포함됐다. 이스라엘에서도 6세 소년을 비롯해 지금까지 8명이 목숨을 잃었다. 부상자는 200여명이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이집트가 휴전을 위한 외교적 조율을 시도하고 있으냐 양측은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아랍계 이스라엘인들과 유대인들의 유혈 충돌 및 소요사태도 급속하게 늘고 있다. 특히 텔아비브 남쪽의 로드(Lod)에서는 당국의 비상사태 선포와 대규모 경찰병력 배치에도 나흘째 주민들의 충돌이 이어졌다. 인근 자파에서도 이스라엘 군인이 아랍계 주민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해 입원했다. 이스라엘 정치에도 큰 파장을 일으켰다. ‘반(反)네타냐후 블록’으로 정파를 초월한 연정 구성 논의가 급거 중단됐다. 반네타냐후 블록의 중심인 중도·좌파 정당과 연정 논의를 진행해온 극우 정당 야미나의 나프탈리 베네트 대표가 전격적으로 협상 중단을 선언했다. 연정 논의에 참여했던 아랍계 정당도 하마스와 전투가 계속되는 한 연정에 참여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이에 따라 지난 3월 총선 이후 연정 구성에 실패하면서 재집권 실패로 향하던 네타냐후 총리에게 기사회생의 기회가 생길지 주목된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이-팔 충돌 닷새째…전투기 공습에 지상군까지 전면전 태세

    이-팔 충돌 닷새째…전투기 공습에 지상군까지 전면전 태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충돌이 닷새째 이어지는 가운데 양측 모두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히며 갈등은 더욱 격렬해지고 있다. 14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언론과 외신에 따르면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성명을 통해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로부터 무거운 대가를 뽑아내겠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강력한 힘으로 그 일을 하고 있고 필요할 때까지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 12일 러시아 외무부를 통해 접수된 하마스 측의 휴전 제안을 거절했고, 이어 안보관계 장관회의는 가자지구에 대한 공세 강화를 승인했다.이에 따라 그동안 하마스의 로켓 공세에 맞서 전투기를 동원한 정밀 폭격으로 대응해왔던 이스라엘은 전날 가자 접경지에서 지상군 기갑부대 등을 통한 포격전을 시작했다. 또 7000여 명의 예비군을 동원해 후방 임무를 맡기는 한편 현역 부대를 가자 전선에 집결시켜 본격적인 침투 작전에 대비하고 있다. 전날에는 동시 출격 전투기 수를 160대로 늘리고, 하마스가 구축한 지하 터널 등 가자지구 북부 150여개 목표물을 향해 40여분간 무려 450발의 미사일을 퍼부었다. 나흘간 2000여 발의 로켓포탄을 이스라엘에 쏜 하마스도 사거리가 긴 로켓포로 텔아비브 등 이스라엘 중부를 타격한 데 이어 폭발물이 탑재된 이른바 자살 폭발 드론을 전력에 추가하면서 대응하고 있다. 하마스 군사 조직 대변인은 “지상에서 계속 급습하면 이스라엘에 가혹한 교훈을 주겠다”고 했다. 가자지구 보건당국은 지금까지 115명의 사망자와 600여 명의 부상자가 나왔다고 밝혔다. 사망자 중에는 27명의 아동과 11명의 여성이 포함됐다. 이스라엘에서도 6세 소년을 비롯해 지금까지 7명이 목숨을 잃었다. 부상자는 200여 명이다. 아랍계 이스라엘인들과 유대인 간 유혈 충돌 및 소요사태도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다.무력 분쟁이 격화하자 미국 정부는 이들 지역에 대해 여행 자제 권고를 내렸다. 미국 델타항공과 아메리칸항공, 유나이티드항공 등 주요 항공사들도 이스라엘을 오가는 항공편을 속속 중단하고 있다. 이들 항공사는 ‘여행 연기’를 발령, 추가 수수료 없이 예약을 변경할 수 있도록 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김대영의 무기 인사이드] 러시아에서 온 특이한 육군의 보병전투장갑차 ‘BMP-3’

    [김대영의 무기 인사이드] 러시아에서 온 특이한 육군의 보병전투장갑차 ‘BMP-3’

    BMP-3는 과거 소련이 개발한 보병전투장갑차로 2000여대가 생산되었으며, 러시아와 우리나라를 포함해 10여개 국가가 운용 중이다. 보병전투장갑차란 보병의 수송을 목적으로 개발된 보병수송용장갑차와 달리 차 안에서 보병이 전투가 가능하고 화력과 방어력이 대폭 증대된 장갑차를 말한다. 지난 1987년부터 소련군에 배치된 BMP-3는 현존하는 보병전투장갑차 가운데 중무장을 자랑한다. 포탑에는 100mm 저압포, 30mm 기관포, 7.62mm 기관총이 장착되어 있으며 포 발사 대전차미사일도 운용한다. 레이저 유도방식의 9M117 바스띠온 대전차 미사일은 최대 사거리가 5km 이상으로 전해진다. 강력한 화력과 함께 기동성도 뛰어나다. 18.7톤의 무게를 갖는 BMP-3는 500마력의 디젤엔진을 장착해, 지상의 포장도로의 경우 최대 시속 72km로 주행할 수 있다. 특히 BMP-3의 수상에서의 기동성은 현존하는 보병전투장갑차 가운데 단연 최고로 꼽힌다. 워터제트 즉 물을 흡입해 분사하는 장비를 채용한 BMP-3는 강이나 바다에서 최대 시속 10km로 주행이 가능하다. 우리 해병대가 사용하는 상륙돌격장갑차에 비해 조금 느리지만 다른 보병전투장갑차들에 비하면 빠른 편이다. 하지만 단점도 존재한다. 화력과 기동성은 뛰어나지만 방호력이 떨어지고 보병들의 승하차가 불편하다는 문제가 있다. BMP-3의 전면장갑은 30mm 기관포탄을 막아낼 수 있지만 측면의 경우 7.62mm 철갑탄 정도만 방어가 가능하다. 일례로 우리 군의 평가에서도 BMP-3는 육군의 K200 장갑차 대비 기동력 및 화력은 우수하나 방호력은 소화기탄 수준에 불가하다고 언급되고 있다. 일반적인 장갑차와 달리 BMP-3는 차체 뒤에 엔진을 장착하고 포탑 아래 부분에 보병이 탑승한다. 최대 7명까지 탑승이 가능하지만 공간이 매우 좁고 특이한 차체로 인해 승차한 보병이 엔진룸 상부의 덮개를 열고 하차해야만 한다. 이 때문에 사고의 위험성도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BMP-3는 러시아 중부에 위치한 쿠르간 기계제작소에서 생산된다. 지난 1950년 만들어진 쿠르간 기계제작소는 세계 최초의 보병전투장갑차인 BMP-1과 후속 모델인 BMP-2도 생산했다. 1996년부터 2006년까지 불곰사업 즉 우리나라의 러시아 차관을 무기로 상환 받는 러시아제 무기도입 사업을 통해 육군에 70대의 BMP-3가 배치된다. K21 장갑차가 배치되기 전까지 아이러니하게도 러시아에서 온 BMP-3가 우리 육군의 실질적인 보병전투장갑차였다. 물론 국산 K200 장갑차도 한국형 보병전투장갑차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지만 전체적인 성능은 보병수송용장갑차에 가까웠다. 또한 육군의 BMP-3는 K21 장갑차 개발에 많은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대영 군사평론가 kodefkim@naver.com
  • 발명가 꿈꿨던 소년, 교회법 권위자로

    발명가 꿈꿨던 소년, 교회법 권위자로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을 지낸 정진석 추기경이 27일 선종했다. 90세. 서울대교구 관계자는 이날 “정 추기경께서 오늘 오후 10시 15분 노환으로 서울성모병원에서 선종하셨다”고 밝혔다. 정 추기경은 지난 2월 21일 서울성모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다. 정 추기경은 노환에 따른 대동맥 출혈로 수술 소견을 받았으나 주변에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다며 수술과 연명치료를 받지 않았다. 2006년 ‘사후 각막기증’ 등을 약속하는 장기기증에 서명했다. 고인은 1931년 12월 2일(호적상 7일) 서울 중구 수표동의 독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태어난 지 나흘만인 6일 ‘니콜라오’라는 세례명으로 유아세례를 받았다. 어린이 도서관에서 과학자들의 위인전을 읽으며 발명가의 꿈을 키우던 고인은 1950년 4월 서울대 화학공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6·25전쟁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피신처에 떨어진 포탄은 눈앞에서 친척 동생의 목숨을 앗아갔다. 지옥 같은 현실 앞에서 과학자의 꿈은 멀어져갔다. 국민방위군으로 징집됐던 그는 미군 군종 신부의 책장에서 ‘성녀 마리아 고레티’ 책을 읽게 됐고, 사제의 길을 갈 것을 결심했다. 결국 1954년 가톨릭대 신학부에 입학했다.고인은 1961년 3월 사제품을 받았다. 1968년 이탈리아 로마 우르바노 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교회법 석사학위를 받았고, 만 39세 때인 1970년에는 청주교구장으로 임명되면서 국내 최연소 주교로 서품됐다. 이후 28년간 청주교구장을 지내며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등을 지냈다. 1998년 서울대교구장이었던 고 김수환 추기경이 교황청에 사직서를 내자 그가 후임 교구장으로 선택됐다. 1998년부터 2012년까지 14년간 서울대교구장과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임했다. 서울교구장에 임명된 뒤로 신부들의 투표로 교구 지구장을 선출토록 해 지구 중심의 사목 체제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가 줄기세포 연구로 영웅시되던 2005년 6월, 그는 사제들에게 보낸 강론 자료에서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일종의 살인과도 같은 인간 배아 파괴를 전제로 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명백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가톨릭계 생명운동의 대표자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그는 2006년 2월 교황 베네딕토 16세로부터 추기경으로 임명됐다. 한국에서는 고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두 번째 추기경이었다. 교황청이 한국 천주교의 위상을 인정한 것이지만 정 추기경은 자신을 높이지 않았다. 사목 표어도 주교 서품을 받으며 정했던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을 그대로 쓰기로 했다. 하지만 그는 2010년 이명박 정부의 ‘4대 강 사업’ 관련 발언으로 설화에 휩싸이기도 했다. 당시 기자간담회에서 4대 강 사업을 찬성하는 듯한 발언으로 내부적으로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정 추기경은 자타공인 ‘교회법 전문가’로 꼽힌다. 가톨릭교회는 1983년 새 교회법전을 펴냈는데, 당시 청주교구장이던 정 추기경이 교회법전 번역위원장을 맡아 동료 사제들과 한국어판 번역 작업에 나섰다. 1989년 라틴어-한국어 대역판 교회법전을 내놓으며 결실을 봤다. 그는 교회법전, 교회법 해설서 15권을 포함해 50권이 넘는 저서와 역서를 펴냈다. 고인은 죽음이 다가오는 상황에서도 세상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행복을 염원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대변인 허영엽 신부는 이날 “최근 정 추기경님을 찾아뵈었을 때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행복하게 사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전했다. 서울대교구장으로 치러지는 정 추기경 장례는 주교좌성당인 명동대성당에서 5일장으로 거행될 예정이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행복하세요” 정진석 추기경 마지막 인사

    “행복하세요” 정진석 추기경 마지막 인사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을 지낸 정진석 추기경이 27일 선종했다. 90세. 서울대교구 관계자는 이날 “정 추기경께서 오늘 오후 10시 15분 노환으로 서울성모병원에서 선종하셨다”고 밝혔다. 정 추기경은 지난 2월 21일 서울성모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다. 정 추기경은 노환에 따른 대동맥 출혈로 수술 소견을 받았으나 주변에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다며 수술과 연명치료를 받지 않았다. 2006년 ‘사후 각막기증’ 등을 약속하는 장기기증에 서명했다. 고인은 1931년 12월 2일(호적상 7일) 서울 중구 수표동의 독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태어난 지 나흘만인 6일 ‘니콜라오’라는 세례명으로 유아세례를 받았다. 어린이 도서관에서 과학자들의 위인전을 읽으며 발명가의 꿈을 키우던 고인은 1950년 4월 서울대 화학공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6·25전쟁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피신처에 떨어진 포탄은 눈앞에서 친척 동생의 목숨을 앗아갔다. 지옥 같은 현실 앞에서 과학자의 꿈은 멀어져갔다. 국민방위군으로 징집됐던 그는 미군 군종 신부의 책장에서 ‘성녀 마리아 고레티’ 책을 읽게 됐고, 사제의 길을 갈 것을 결심했다. 결국 1954년 가톨릭대 신학부에 입학했다. 고인은 1961년 3월 사제품을 받았다. 1968년 이탈리아 로마 우르바노 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교회법 석사학위를 받았고, 만 39세 때인 1970년에는 청주교구장으로 임명되면서 국내 최연소 주교로 서품됐다. 이후 28년간 청주교구장을 지내며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등을 지냈다.1998년 서울대교구장이었던 고 김수환 추기경이 교황청에 사직서를 내자 그가 후임 교구장으로 선택됐다. 1998년부터 2012년까지 14년간 서울대교구장과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임했다. 서울교구장에 임명된 뒤로 신부들의 투표로 교구 지구장을 선출토록 해 지구 중심의 사목 체제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가 줄기세포 연구로 영웅시되던 2005년 6월, 그는 사제들에게 보낸 강론 자료에서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일종의 살인과도 같은 인간 배아 파괴를 전제로 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명백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가톨릭계 생명운동의 대표자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그는 2006년 2월 교황 베네딕토 16세로부터 추기경으로 임명됐다. 한국에서는 고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두 번째 추기경이었다. 교황청이 한국 천주교의 위상을 인정한 것이지만 정 추기경은 자신을 높이지 않았다. 사목 표어도 주교 서품을 받으며 정했던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을 그대로 쓰기로 했다. 하지만 그는 2010년 이명박 정부의 ‘4대 강 사업’ 관련 발언으로 설화에 휩싸이기도 했다. 당시 기자간담회에서 4대 강 사업을 찬성하는 듯한 발언으로 내부적으로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정 추기경은 자타공인 ‘교회법 전문가’로 꼽힌다. 가톨릭교회는 1983년 새 교회법전을 펴냈는데, 당시 청주교구장이던 정 추기경이 교회법전 번역위원장을 맡아 동료 사제들과 한국어판 번역 작업에 나섰다. 1989년 라틴어-한국어 대역판 교회법전을 내놓으며 결실을 봤다. 그는 교회법전, 교회법 해설서 15권을 포함해 50권이 넘는 저서와 역서를 펴냈다. 고인은 죽음이 다가오는 상황에서도 세상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행복을 염원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대변인 허영엽 신부는 이날 “최근 정 추기경님을 찾아뵈었을 때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행복하게 사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전했다. 서울대교구장으로 치러지는 정 추기경 장례는 주교좌성당인 명동대성당에서 5일장으로 거행될 예정이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