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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탄 떨어진 듯 쾅!”…횡성 빌라 가스폭발로 1명 숨지고 9명 다쳐(종합)

    “포탄 떨어진 듯 쾅!”…횡성 빌라 가스폭발로 1명 숨지고 9명 다쳐(종합)

    22일 강원 횡성군의 한 4층짜리 1층 빌라에서 가스폭발로 추정되는 불이 나 1명이 숨지고 9명이 다쳤다. 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29분쯤 횡성읍 읍하리 한 빌라 1층에서 폭발음과 함께 화재가 발생했다. 진화에 나선 대원들은 주민 10명을 구조한 뒤 11시 5분쯤 큰 불길을 잡았고, 곧이어 폭발이 시작된 1층 내부에서 숨진 A(74·여)씨를 발견했다. 구조한 10명 중 9명은 병원으로 옮겼다. 이들 중 8명은 양호하지만, 폭발 장소 위층에 살던 B(66·여)씨는 위독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인근 숙박업소에 있던 한 목격자는 “포탄이 떨어진 것처럼 건물이 흔들릴 정도로 ‘펑’ 하는 소리가 두세 차례 들렸다”며 “건물에 뭐가 날라와 충돌한 줄 알고 밖으로 나갔는데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시커먼 연기가 온 동네를 뒤덮었고 가스 냄새가 심하게 났다”며 “투숙객들이 ‘가스 냄새가 난다’고 연락이 많이 왔다”고 덧붙였다. 불은 1층과 2층 일부를 태우고 40여분만에 진화됐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폭발음이 있었다는 목격자 진술 등으로 미루어 1층 내부에서 가스 폭발이 일어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은 내일 오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과 함께 정밀 감식을 할 예정이다. 다. 횡성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천안함이 왜 北 소행인가” 아직도 묻는 그들을 향해

    “천안함이 왜 北 소행인가” 아직도 묻는 그들을 향해

    지난달 전역한 최원일(예비역 해군 대령) 전 천안함 함장이 지난 9일 자신의 블로그에 사진 1장을 공개했습니다. 2010년 3월 1200t급 초계함 천안함이 마지막으로 평택항에 정박해 있던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천안함 피격사건 당시 살아남은 승조원 58명 중 1명이었습니다. 46명은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희생됐습니다. 그는 “천안함을 둘러싼 온갖 억측과 허위 사실 유포가 1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지난해 3월 27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서해수호의 날’ 행사에서 고(故) 민평기 상사의 모친 윤청자씨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사람들이 누구 짓인지 모르겠다고 한다. 가슴이 무너진다. 대통령께서 늙은이의 한을 꼭 좀 풀어 달라”고 했습니다. 천안함 피격사건이 벌어진 지 11년, 3월 네 번째 금요일이 ‘서해수호의 날’로 지정된 지 5년이 지났습니다. 그렇지만 천안함 함장과 유족들은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고 합니다. 1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북한 소행’을 부인하는 온갖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대통령께서 늙은이의 한을 꼭 풀어 달라” 그래서 정부가 2011년 3월 발간한 ‘천안함 피격사건 백서’를 열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사건의 실체를 잘 모르는 분도 많을 겁니다. 그래서 무거운 기록을 간략하게라도 다시 옮겨 보려 합니다. 천안함 피격 5개월여 전인 2009년 11월 10일 오전 11시 27분. 북한의 상해급(150t) 경비정 ‘등산곶 383호’가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했습니다. 서해 2함대 사령부는 인근 꽃게어장을 순찰 중이던 참수리 고속정 4척을 긴급 발진시키고 경고방송을 했습니다. 하지만 북한 경비정은 무시하고 2.2㎞를 남하했습니다. 우리 고속정이 경고사격을 하자 북한 경비정은 돌연 37㎜와 25㎜ 포로 조준사격을 했습니다. 이에 우리 고속정은 20㎜ 벌컨포와 40㎜ 함포로 응사했고 2분 뒤 큰 손상을 입은 북한 경비정은 북쪽으로 퇴각했습니다. 당시 교전했던 참수리 325호는 제1차 연평해전 때 승리를 주도했던 함정으로, 이 해전은 ‘대청해전’으로 명명됐습니다. 군은 북한이 보복공격을 해 올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경계강화’를 지시했습니다. 그러나 특이활동이 발견되지 않자 2010년 2월 18일 경계강화가 해제됐습니다. 그 해 1월 북한군이 서해 NLL 인근의 해안포로 도발하자 상대적으로 북한 잠수함 공격에 대한 대비도 느슨해지게 됩니다.●사건 당일 北 잠수정 ‘미식별’ 정보 피격 사건 당일인 3월 26일. 2함대 사령부 정보실에는 합참으로부터 북한의 기지를 떠난 연어급 잠수정 여러 척의 위치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군은 대잠 경계태세를 강화하지 않았습니다. 백서는 “예전에도 이 같은 일이 수시로 있었기 때문에 통상적인 활동으로 판단해 평시 경계태세를 유지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천안함은 이날 오후 9시 22분쯤 백령도 연화리 서남방 2.5㎞ 해상에서 피격됐습니다. 큰 폭발음과 함께 함체가 두 동강 났고 함미가 불과 5분 만에 침몰됐습니다. 함수도 함체 격실에 기름과 해수가 유입되면서 오른쪽으로 90도 기울었습니다. 피격 당시 승조원 104명 가운데 야간당직자 29명이 함교 등에서 근무 중이었고 함장과 기관장 등 비근무자는 간편복 차림으로 각자 업무를 보거나 휴식하고 있었습니다. 생존자들은 “좌측 후미에서 1~2초간 ‘꽝! 꽝!’ 폭발음이 나고 정전이 되면서 몸이 30㎝~1m가량 붕 떴다가 오른쪽으로 떨어졌다”고 진술했습니다. 오후 11시 13분쯤 승조원 중 58명이 구조됐습니다. 함미는 4개의 밀폐된 공간으로 나눠져 있었지만 가장 큰 공간(40%)인 디젤기관실이 폭발과 동시에 급격히 침수돼 해저로 가라앉게 됩니다. 반면 함수는 7개의 공간으로 나눠져 더 큰 부력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정부는 5일 뒤 82명으로 구성된 ‘민군 합동조사단’을 구성했습니다. 그해 5월 15일 쌍끌이 저인망어선이 해저 정밀탐색을 하다 어뢰 추진동력장치인 ‘추진모터’와 ‘프로펠러’ 등을 수거했습니다. 한국, 미국, 영국 전문가들은 92일간의 조사 끝에 어뢰가 천안함 가스터빈실 아래 좌현 3m에 근접해 폭발했고 충격파와 버블 효과에 의해 함체가 절단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어뢰 폭발 충격파·버블효과로 선체 절단” 합조단은 그 근거로 손상된 함체가 아래에서 위쪽으로 분출하듯 꺾여 있는 모습을 제시했습니다. 특히 배의 왼쪽 부위의 손상과 외부 형상 변화가 컸습니다. 좌초할 때 생기는 배 아랫부분 찢김이나 프로펠러, 소나돔 손상은 없었습니다. 40㎜, 76㎜ 함포 포탄이 그대로 회수돼 탄약고 폭발이나 연료탱크 폭발 가능성도 없었습니다. 또 어뢰 폭발에 의한 수압 발생과 타격 형상이 명확해 ‘좌초설’, ‘피로파괴설’, ‘내부 폭발설’ 등 다른 가설은 힘을 잃게 됐습니다. 아울러 인양된 함체에서 HMX, RDX, TNT 등의 폭약 성분이 검출돼 고성능 폭약이 들어 있는 수정무기에 의해 피격돼 침몰했다는 점이 확인됐습니다. 북한이 사용한 무기는 고성능 폭약 250㎏을 넣은 길이 7.35m의 어뢰 ‘CHT-02D’였습니다. 쌍끌이 어선으로 수거한 어뢰 부품은 북한이 해외에 소개한 어뢰 설계도면과 일치했습니다. 그러자 북한은 직접 입장을 내 어뢰 부품에 쓰인 ‘1번’이라는 글자를 문제 삼았습니다. 북한은 “함선 공격에 250㎏ 정도의 폭약이 사용됐다면 어뢰 추진체의 온도는 적게는 325도, 높게는 1000도 이상으로 올라가 잉크가 완전히 타버린다”고 주장했습니다.●北 “펜으로 ‘1번’ 안 써” 발뺌하다 들통 심지어 “우리 군수공업 부문에서는 어떤 부속품이나 기재를 만들 때 필요한 숫자를 펜으로 쓰지 않고 새기고 있다”고 발뺌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반박할 수 없는 증거에 북한도 할 말을 잃게 됐습니다. 북한이 같은 해 11월 연평도 포격도발 당시 쏜 122㎜ 방사포 로켓 파편에서도 펜으로 쓴 ‘①’이라는 숫자가 확인됐기 때문입니다. 당시 정부가 확인한 핵심 증거들은 재판 등에서 여러 차례 인용됐고 지금까지 크게 변화된 것이 없습니다. 정부의 입장도 확고합니다. 하지만 수많은 증거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주장을 편드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왜곡·폄훼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날의 기록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김대영의 무기 인사이드] 군대 최악의 보직 중 하나 ‘KM67 90mm 무반동총’

    [김대영의 무기 인사이드] 군대 최악의 보직 중 하나 ‘KM67 90mm 무반동총’

    KM67 90mm 무반동총은 우리 육군과 해병대의 전차 잡는 대전차화기로 잘 알려져 있다. 도수운반 즉 사람 손으로 운반이 가능한 KM67은 무게가 17kg에 달한다. 이를 메거나 들고 행군해야 하기 때문에 81mm 박격포, 155mm 견인포, 장간교 조립과 함께 KM67 90mm 무반동총 주특기는 우리 군 최악(?)의 4대 보직으로 손꼽힌다. 무반동총은 원래 ‘포'(砲)로 분류되어야 했지만, 영문 이름이 라이플(Rifle) 즉 ‘총'(銃)으로 되어있다 보니 번역과정에서 무반동총이 되었고 이후 군에서 사용하는 공식용어가 되었다. 반면 북한군의 경우 무반동총을 비반충포(非反衝砲)라고 한다. 무반동총은 포탄을 발사할 때 생기는 가스압이 발사관 뒤쪽으로 뿜어져 나가 그 만큼 반동이 적은 무기라고 할 수 있다. M67 90mm 무반동총은 미국이 1950년 후반 3.5인치 로켓포와 57mm 무반동총의 단점을 보완하여 만든 대전차 화기로 베트남 전쟁 때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이러한 M67 90mm 무반동총은 1971년부터 미군이 우리 군에 공여하기 시작했으며, 이후 국산화를 거쳐 대량으로 보급되기 시작한다. 국산화된 M67은 한국을 뜻하는 'K(Korea)'가 붙여지면서 KM67로 불리게 된다. 당시 KM67은 대한중기 즉 오늘날 현대위아가 1983년까지 2천여 문을 만들어 납품한다. 하지만 1970년대 중반 국방과학연구소는 M67 90mm 무반동총급의 국산 대전차화기인 K-LAW 즉 한국형 대전차 로켓포를 개발하는데 성공한다. K-LAW는 RPG-7과 같이 재사용이 가능한 대전차 로켓포였다.하지만 이후 군이 작전요구성능을 1회용 대전차 로켓포로 변경했고 이에 따라 1980년부터 다시 개발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관통력 대비 중량과 크기가 너무 커서, 결국 양산에는 이르지 못하고 중단되게 된다. 육군과 해병대에 보급된 KM67은 대대급 대전차화기로 편제되었으며, 81mm 박격포 및 K4 고속유탄기관총과 함께 보병대대를 지원하는 중요 무기체계로 전해진다. 사거리는 대전차 고폭탄을 사용할 경우 점표적 즉 특정한 건물이나 장치를 목표로 하는 표적에는 400m로 알려지고 있으며, 고폭탄을 사용하는 지역표적의 경우 800m로 전해진다.대전차화기이지만 대전차고폭탄의 관통력은 305mm 정도로 구형전차는 어느 정도 상대가 가능하지만 최신 전차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정확도가 높다고 예비역들은 전하고 있다. 1975년까지 미군에서 사용되던 M67 90mm 무반동총은 이후 창고에 보관되어 오다가, 지난 2011년 아프가니스탄에 배치된 미 육군 제101 공수사단 소속 506연대 일부 병력이 사용하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어느덧 우리 군에 배치된 지 50년이 다되어가는 M67과 KM67은, 이를 대체할 한국형 대전차무기의 개발이 지연되면서 향후 상당기간 더 운용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김대영 군사평론가 kodefkim@naver.com
  • 불발탄을 낚시에 쓰려다 오폭으로 사망한 전 크메르루주 병사

    불발탄을 낚시에 쓰려다 오폭으로 사망한 전 크메르루주 병사

    캄보디아의 좌익 무장단체인 크메르루주의 전직 병사였던 60대 남성이 낚시에 쓰려고 불발탄을 만지다 폭사했다고 프놈펜 포스트가 8일 보도했다. 이 남성은 베트남 전쟁에서도 사용됐던 B40 로켓탄을 폭발물을 이용해 물고기를 낚는 폭파 낚시에 쓰기 위해 다루다가 실수로 폭발이 일어나 사망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사망자는 66세 남성으로 그동안 여러 차례 불발탄을 불법적으로 고쳐 폭파 낚시에 사용하는 것에 대한 경고를 들었다. 그는 주변에서 60㎜ 박격포탄과 B40 로켓탄을 주로 주워 폭파 낚시에 이용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사고 현장에서 경찰은 사망자의 시신이 강력한 폭발에 의해 세 부분으로 절단된 것을 발견했으며 각 부분은 10m씩 떨어져 있었다. 경찰은 사망자의 시신과 B40 로켓탄을 발견했고, 사고가 일어난 집 뒤편에서 60㎜ 박격포탄도 찾았다. 사고를 당한 60대 남성은 주로 집 뒤뜰에서 폭발물 분해 작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사망자 외 다른 가족이 다치지 않은 점이 그나마 이 비극에서 다행인 점”이라고 말했다. 2002년부터 폭발물 사고가 발생한 지역에서는 약 10명이 비슷한 사고로 사망했는데 주로 60㎜ 박격포탄이 사고의 원인이었다. 불발탄 오폭 피해자들은 망치 등의 도구를 이용해 포탄을 분해하거나 폭파 낚시에 사용하다 변을 당했다. 크메르루주가 마지막까지 저항한 곳으로 알려진 캄보디아 북부는 지뢰와 불발탄으로 오염된 곳이 많아 부상과 사망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이 지역은 원리주의 공산주의에 따라 많은 사람을 처형한 킬링필드를 일으킨, 공산주의 혁명가이자 크메르루주의 지도자였던 폴 포트가 사망한 곳이기도 하다. 폴 포트가 캄보디아를 지배했던 1975~1979년에는 150만명 이상의 사람이 기아와 대량학살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 1979~2020년에는 약 2만명의 캄보디아인들이 지뢰와 불발탄으로 목숨을 잃었으며 그 두 배 이상의 사람들이 불구가 됐다고 지난해 캄보디아 정부는 밝혔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지프가 제단’ 아군도 적군도 돌본 에밀 카폰 신부의 유해 70년 만에 확인

    ‘지프가 제단’ 아군도 적군도 돌본 에밀 카폰 신부의 유해 70년 만에 확인

    한국전쟁 때 군용 지프 위에 제단을 차려 미사를 집전했고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박애를 실천하다가 포로수용소에서 숨진 에밀 카폰 신부의 유해가 70년 만에 확인다. 미국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은 5일(현지시간) 캔자스주 출신의 군종 신부 카폰의 유해를 하와이주 호놀룰루의 국립태평양묘지의 신원 미상 장병(652구) 묘역에서 확인했다고 AFP 통신 등이 보도했다. 치과 기록과 유전자도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했다. 조카 레이는 한국전쟁이 끝난 뒤 삼촌의 시신을 거의 온전한 상태로 찾아 화장해 하와이에 안장했다는 얘기만 전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고 일간 워싱턴 포스트(WP)는 전했다. 레이는 묘역에 안장된 것이 1956년쯤이라고 기억하지만 확실치 않다고 덧붙였다. 어떻게 삼촌의 시신을 찾았는지도 알지 못한다고 했다. 존 휘틀리 육군장관 대행은 성명을 내 세상을 떠난 지 70년 만에 그의 유해를 확인했다며 “카폰 신부의 영웅적인 행동과 불굴의 정신은 용기와 사심 없는 봉사라는 우리 군의 가치를 나타내는 본보기”라고 밝혔다. 캔자스주 필슨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1940년 사제 서품을 받은 카폰 신부는 1950년 7월 군종 신부로 한국에 파견됐다. 그가 소속된 제1기병사단 제8기병연대 제3대대는 인천상륙작전 이후 원산까지 진격했지만, 같은 해 11월 한국전에 참전한 중공군의 포위 공격을 받았다. 얼마 안돼 철수 명령이 떨어졌지만, 카폰 신부는 중공군 포위를 뚫고 탈출할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고 전선에 남았다. 그는 통나무와 지푸라기로 참호를 만들어 부상병을 대피시켰고 이들을 헌신적으로 돌봤다. 중공군이 부상병을 사살하려 하자 목숨을 걸고 총구를 밀어내 부상병을 지켰고, 교전 중 다친 중공군 장교까지 돌봤다. 그는 지프 위에 담요를 덮어 제단을 만든 뒤 미사를 집전했고 고해성사를 받았다. 포탄이 빗발치는데도 주검들 사이에 숨어 마지막 숨을 내쉬는 병사들의 임종 기도를 올렸다. 결국 평안북도 벽동 수용소로 끌려간 카폰 신부는 그곳에서도 포로들을 위해 기도하고 봉사하는 삶을 실천했다. 거동이 불편한 부상병의 옷을 대신 빨았고,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병사들을 구해내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음식과 약을 적군의 저장고에서 훔쳐 동료들에게 나눠줬다. 자신보다 병사들을 돌보는데 헌신했던 그는 이질과 폐렴에 걸려 서른다섯 살이던 1951년 5월 23일 세상을 떴다. 전장에서 피어난 카폰 신부의 박애 정신은 살아남은 병사들의 증언을 통해 알려졌고, 1954년 책 ‘종군 신부 카폰 이야기’가 발간됐다. 캔자스주 위치토 가톨릭 교구는 카폰 신부를 성인으로 추대하는 운동을 펼쳤고, 1993년 로마 교황청은 성인으로 추앙하는 시성 절차의 첫 단계로 카폰 신부를 ‘하느님의 종’으로 선언했지만 웬일인지 시성에는 이르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인 2013년 4월 카폰 신부에게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추서해 조카 레이가 받았다. 레이는 “이런 날이 올지 상상도 못했다. 정말 믿기 힘들다. 삼촌과 함께 수용소에 있던 어르신 가운데 몇몇 분은 지금도 삼촌의 헌신을 기억하며 감사해 한다. 유해가 (고향인 캔자스주에) 돌아오면 장례식을 제대로 치를 생각인데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때문에 어찌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작 한국인들은 그의 생애를 모르다 1956년 신학생이었던 정진석 추기경이 ‘종군 신부 카폰’ 번역판을 내 알려졌다. ‘한국전의 예수’, ‘6·25 전쟁의 성인’이라는 별칭이 따라붙은 것은 물론이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김대영의 무기 인사이드] 北, 장사정포 도발 원점 찾아내는 ‘대포병탐지레이더-II’

    [김대영의 무기 인사이드] 北, 장사정포 도발 원점 찾아내는 ‘대포병탐지레이더-II’

    지난 2월 22일 방위사업청은 서욱 국방부 장관 주재로 제133회 방위사업추진위원회(이하 방추위)를 화상으로 개최하여 경항공모함(CVX), 한국형 구축함(KDX-II) 성능개량 사업, 대포병탐지레이더-Ⅲ 사업의 사업추진기본전략(안)을 심의 및 의결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대포병탐지레이더-Ⅲ 사업은 육군의 일부 사단에서 운용중인 TPQ-36 대포병탐지레이더를 대체하는 것으로 국내 연구개발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대포병탐지레이더란 상대방이 사격하는 각종 포탄의 탄도학적 궤도를 레이더로 탐지 및 분석해 역으로 발사지점을 정확히 알아내는 장비이다. 육군은 지난 1980년대 영국제 대포병탐지레이더를 시작으로 미제 TPQ-36도 소량 들여와 운용했다. 이후 1994년 3월 북한의 서울 불바다 발언 이후 북한의 장사정포 위협이 대두되면서, TPQ-36 10여대와 TPQ-37 5대를 들여오게 된다.여기에 더해 2009년부터 스웨덴 사브사의 아서-K 대포병탐지레이더 6대를 추가로 도입한다. 하지만 외산 대포병탐지레이더는 운용유지비용이 많이 들었고 우리 전장환경에 일부 부적합한 측면이 있었다. 이 때문에 국산 대포병탐지레이더 개발을 본격화한다. 그리고 2017년 드디어 국내기술로 국산 대포병탐지레이더를 개발하는데 성공한다. 최대 탐지거리가 60km 이상인 대포병탐지레이더-II는 LIG넥스원이 만들며 2018년 1,810억 원 규모의 양산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그렇다면 대포병탐지레이더-II는 어떻게 날아오는 적의 포탄을 탐지할까? 우선 장착된?AESA(Active Electronically Scanned Array) 즉 능동 전자주사식 위상배열레이더가 탐지구역의 지형을 따라 매초당 수 차례에 걸쳐 원통형 탐지 빔을 발사하여 일종의 탐지 벽을 설치한다. 탐지 빔에 물체가 탐지되면 레이더는 확인 빔을 발사하여 포탄인지 식별하게 된다. 확인 빔에 의해 포탄으로 판명되면 레이더는 연속적으로 추적 빔을 발사하여 포탄의 탄도를 계산하고, 컴퓨터는 추적된 포탄의 탄도를 계산해 적 포대의 위치를 모니터에 표기한다. 여기에 더해 포탄의 탄착지점예측도 가능하다. 2022년까지 양산될 국산 대포병탐지레이더-II는 수도권을 위협하는 북한의 장사정포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아군의 대화력전 수행체계의 핵심장비로 전방에 위치한 육군 군단 포병부대에 집중 전력화되고 있다.또한 과거 육군이 운용하던 외산 대포병탐지레이더에 비해 연속운용시간이 약 8시간에서 최대 18시간으로 늘어났다. 이밖에 국산화율이 95%에 달하여 신속하고 원활한 군수지원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대포병탐지레이더-II와 관련하여 LIG넥스원 관계자는 “대포병탐지레이더-II는 높은 성능과 가격경쟁력으로 해외에서도 높은 관심을 받고 있는 우수한 무기체계”라며 “성공적인 양산 및 전력화를 위해 일정과 품질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LIG넥스원은 ‘대포병탐지레이더-II’의 성공적인 개발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7년 12월 방위사업청 주관으로 진행된 ’국방 연구개발 장려금 수여식‘에서 ‘금상’을 수상한 바 있다. 김대영 군사평론가 kodefkim@naver.com
  •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다 그리지 못한 색채의 낙원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다 그리지 못한 색채의 낙원

    소는 2만년 전 동굴 벽화에도 나타날 만큼 인간과 친숙한 동물이다. 원시인들은 순조로운 사냥을 기원하며 생동감 넘치는 필치로 동물과 사냥 장면을 묘사했다. 동물은 경배 또는 경외의 대상이기도 했다. 고대 이집트인은 동물 머리를 한 신들을 모셨고, 그리스 신화에는 미노타우로스나 페가수스 같은 신비한 동물이 등장한다. 동양의 십이지신도 동물에 영이 깃들어 있다고 믿고 인간의 운세와 연결 지은 것이다. 마르크에게 동물은 인간 사회가 진보와 이성을 추구하느라 잃어버린 순수한 본성을 의미했다. 1911년 그는 칸딘스키를 만나 청기사파를 결성했다. 칸딘스키를 만나면서 마르크는 원색을 상징적으로 사용하고, 분할된 면을 내적인 역동성에 따라 배열하는 고유의 스타일에 도달했다. 이 무렵 마르크는 의욕적으로 작업했다. 그중에서 ‘노란 암소’는 가장 밝고 명랑한 그림이다. 갓 결혼해 행복에 젖어 있는 마르크의 심리 상태가 반영돼 있다. 노랑은 대지의 어두운 빨강과 대조되며 즐거움과 감각을 나타낸다. 파랑은 완고하고 남성적이며 정신적인 색이다. 계곡을 훌쩍 뛰어넘는 노란 암소의 유연한 곡선이 멀리 보이는 푸른 산의 각진 봉우리와 대조된다. 소의 얼굴은 웃는 것 같다. 마르크가 동물을 예찬하는 그림을 그리던 시절이 동물 학대와 대량살상이 행해지던 시기라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유럽에 동물원이 우후죽순 세워져 이국적 동물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생존을 위협받는 종이 늘어났다. 아프리카, 인도 등 식민지에서 백인들은 오락 삼아 사냥을 해댔고, 생리학 실험실에서는 동물을 산 채로 해부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 암살당한 사건이 전쟁의 신호탄이었다. 페르디난트 대공은 악명 높은 사냥 애호가로 수없이 많은 동물을 죽였는데, 이제 엄청난 인명을 죽일 참이었다. 마르크는 군에 자원 입대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그도 그것이 애국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전쟁의 실상은 비참했다. 1916년 3월 4일 마르크는 아내에게 기쁨 어린 편지를 썼다. “올해 안으로 집에 돌아가게 될 것 같소.” 그날 오후 포탄 파편이 서른여섯 살 예술가의 목숨을 앗아갔다. 미술평론가
  • 100만 배 더 강력…미 육군 새로운 레이저 무기 개발중

    100만 배 더 강력…미 육군 새로운 레이저 무기 개발중

    미 육군이 새로운 레이저 무기를 개발하고 있으며, 이는 지금까지 공개된 레이저 무기보다 100만 배 더 강력하다고 영국 과학전문 매체 뉴사이언티스트가 19일자로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대부분의 레이저 무기는 표적을 녹이거나 불이 붙을 때까지 연속해서 광선을 발사하지만, 미 육군의 플랫폼용 전술 초단 펄스 레이저(UPSL·Ultrashort Pulsed Laser) 무기체계는 짧은 펄스와 같은 폭풍파를 방출한다. 이는 현재 레이저 무기체계의 최대 150킬로와트(㎾)급 광선보다 100만 배 강력한 테라와트(TW)급 광선을 초당 200펨토초(fs·1000조 분의 1초)의 극히 짧은 시간 동안 조사하도록 설계됐다.미 육군 등 미군은 레이저 무기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는데 이런 무기는 적군의 무인항공기(드론)과 박격포탄 그리고 미사일을 멀리서도 인명 피해 없이 소멸하는데 사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특히 레이저 무기체계는 드론이나 미사일과 같이 작고 빠르게 움직이는 표적을 더 잘 맞춘다. 레이저 무기는 사람에게 가벼운 피부 자극부터 영구적 실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부상을 유발할 수 있지만, 전쟁을 억제하는 수단으로서는 그다지 실용적이지 않다. 현재 고에너지 레이저(HEL·High Energy Laser) 무기체계는 주로 ㎾급 출력을 지닌 지속파(CW) 레이저원으로 구성된다. 이런 무기체계는 표적을 태워 녹게 하거나 광학 센서를 무력화한다. 반면 UPSL의 목표는 미 육군 관련 플랫폼에서 사용할 수 있는 충분한 크기와 중량, 출력 그리고 견고성을 갖춘 UPSL 무기체계를 개발하는 것이다. UPSL 시제품은 초당 20~50펄스, 이는 LED 전구보다 약 10배 더 많은 20~50W의 펄스를 생성하며 극히 짧은 시간 동안 추가 폭풍파를 방출할 것이다. 이는 먼 거리로 확산하는 일반적인 레이저 무기체계와 달리 렌즈들을 사용해 강도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TW급 펄스 레이저의 순수한 강도는 대기 중에서 비선형 효과를 일으켜 자기 집속 필라멘트를 생성할 수 있다. 이런 필라멘트는 회절 없이 전파돼 기존 CW 레이저 무기체계를 선전할 때 난류가 광선 품질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관한 잠재적 해결책을 제시한다. 미 육군의 UPSL은 극히 짧은 시간에 드론의 외장을 순식간에 기화(증발)시켜 무력화할 수 있다. 이는 또 드론의 센서를 차단하고 강한 폭풍파를 생성하며 내부 전자장치에 위협적인 과부하를 줘 교란을 일으키는 기능적인 ‘전자기 펄스’(EMP) 역할도 할 것으로 여겨진다. 덕분에 UPSL 기술은 수많은 임무에서 특히 관심을 끌고 있다. 미 육군은 내년 8월까지 실제로 작동하는 UPSL 시제품을 제작해 시연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한편 미 해군도 지난해 5월 자체 개발한 레이저 무기체계 시연기(LWSD)를 가지고 해상의 드론을 격추해 이목을 끌었다. 출력 150㎾인 LWSD는 상륙강습합 USS 포틀랜드호에 장착돼 레이저 광선을 조사해 날아가는 드론에 불을 질러 격추시켰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내 딸 그림 안보냈지” 편의점 차량 돌진 30대女 실형

    “내 딸 그림 안보냈지” 편의점 차량 돌진 30대女 실형

    승용차로 편의점 들이받으며 난동‘딸 그림 누락’ 이유로 범행 저질러징역 2년 4개월·벌금 20만원 선고 지난해 경기 평택에서 승용차로 편의점을 들이받으며 난동을 부린 혐의로 기소된 30대 여성이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이 여성은 편의점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연 그림대회에 딸의 그림을 제출했으나, 해당 편의점주가 그림을 누락했다는 이유로 화가 나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수원지법 평택지원 형사3단독 설일영 판사는 특수상해, 특수재물손괴 등의 혐의로 기소된 A(39)씨에게 징역 2년 4개월과 벌금 20만원을 선고했다고 11일 밝혔다. 설 판사는 “이 사건 범행의 수단과 방법의 위험성이 매우 크고 피해자는 이 사건 이전에도 업무방해 범행 등으로 피고인에게 지속적으로 위협감을 받고 있었다”며 “피고인의 범행으로 피해자는 커다란 경제적 피해와 함께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는 등 피해의 정도가 매우 중하다”고 판단했다. 이어 “다만 피고인이 사실관계를 인정하며 반성하고 있는 점과 정신질환으로 인한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행에 이른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해 9월 15일 경기 평택시에서 제네시스 승용차를 끌고 편의점에 돌진해 점주 B씨에게 상해를 입히고, 차량에서 내려 손과 발로 B씨를 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로 인해 9800여만원 상당의 편의점 집기를 파손하고, 순찰차를 들이받아 360여만원의 피해를 입힌 혐의도 받았다. A씨의 범행을 촬영한 동영상들이 온라인상에서 관심을 끌면서 ‘평택 차량 편의점 돌진’ 사건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사건 당시 A씨가 편의점 안에서 차량을 앞뒤로 움직이며 난동을 부리자 경찰은 A씨에게 하차를 요구했으나 불응했고, 이후 경찰은 공포탄 1발을 발사한 뒤 차 문을 열고 A씨를 체포했다.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김대영의 무기 인사이드] ‘세계 최대 사거리’ 美 신형 자주포 ‘M1299 얼카’

    [김대영의 무기 인사이드] ‘세계 최대 사거리’ 美 신형 자주포 ‘M1299 얼카’

    M1299 얼카(ERCA)는 미 육군이 개발 중인 신형 자주포이다. 현재 미 육군이 운용중인 자주포는 M109A7로 지난 2013년부터 전력화되었다. 155mm 39구경장 화포를 장착한 M109A7 자주포의 최대 사거리는 RAP(Rocket Assisted Projectile) 즉 로켓보조추진탄을 발사할 경우 30km에 불과했다. 미 육군의 경우 30km가 넘는 표적에 대해서는 대구경 다연장 로켓포인 MLRS, 하이마스(HIMAS)를 사용하거나 아니면 AH-64 아파치 공격헬기 혹은 미 해공군의 항공지원을 요청한다. 하지만 미국의 가상적인 중국과 러시아가 A2/AD(Anti Access/Area Denial) 즉 반접근/지역거부 전략채택과 함께 방공망을 강화하면서, 향후 미군의 항공지원은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지난 2018년 미 육군은 반접근/지역거부 전략에 대항할 다영역작전을 본격화하면서 신형 장사정 자주포 개발에 나선다.2019년 미 육군은 M109A7 자주포를 생산하고 있는 BAE 시스템즈와 4500만 달러 한화로 약 502억 원의 계약을 맺고 얼카(ERCA: Extended Range Cannon Artillery) 즉 사거리연장화포 개발에 나선다. M109A7 자주포를 기반으로 개발 중인 얼카의 가장 큰 특징은 9m에 달하는 XM907로 명명된 155mm 58구경장 화포이다. 같은 구경의 52구경장 화포를 장착한 우리나라가 만든 K9 자주포의 포신 길이는 8m로 알려지고 있다. 즉 얼카는 K9자주포에 비해 포신이 1m 더 길다.이러한 신형 화포과 함께 얼카에는 신형 155mm 로켓보조추진탄이 적용될 예정이다. XM1113으로 알려진 신형포탄은 M109A7 자주포에서 사용할 경우 사거리가 40km에 달하며, 얼카에서 쏘면 70km에 육박한다. 하지만 사거리가 긴 로켓보조추진탄의 경우 정확도가 떨어지는 문제가 있다. 이 때문에 미 육군은 XM1113 신형포탄에 LR-PGK(Long Range-Precision Guidance Kit) 즉 장거리 정밀유도키트를 장착해 명중률을 대폭 향상시킬 예정이다.2024년 전력화 될 예정인 얼카는 분당 3발의 포탄을 발사하며 자동장전장치가 사용되면 10발로 늘어난다. 지난 2019년과 2020년에 진행된 시험사격에서 얼카에서 발사된 XM1113 신형포탄과 M982 엑스칼리버 유도포탄은 60여km 떨어진 목표지역에 떨어졌다. 그 결과 얼카는 현존하는 자주포 가운데 가장 긴 사거리를 기록하게 된다. 특히 2020년 시험사격에서 발사된 M982 엑스칼리버 유도포탄은 발사지점에서 65km 떨어진 폐차량을 정밀 타격했다. 이밖에 향후 램제트 기반의 사거리 연장탄이 개발되어 얼카에 적용되면 사거리가 100km가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김대영 군사평론가 kodefkim@naver.com
  • [서해 5도를 다시 보다 3] 국지전·불법조업·고립 “서해5도 사는 게 죄인가”

    [서해 5도를 다시 보다 3] 국지전·불법조업·고립 “서해5도 사는 게 죄인가”

    서해 5도는 1·2차 연평해전, 대청해전,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 등 국지전으로 인한 생명의 위협과 중국어선 불법조업으로 인한 생계의 문제, 외부와의 고립으로 인한 생활의 어려움이 있는 지역이다. 한국․북한․중국의 접경수역으로 해양자원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서해의 독도’로 ‘주민의 실효적 지배’를 통한 ‘해양주권과 안보의 정당성’을 확보한 곳이기도 하다. 대외적으로 서북도서는 DMZ, 한강하구와 함께 유엔군사령부 통제를 받고 있다. 5도서 주민들은 비무장지대 안에 민간인이 거주하는 대성동 마을처럼 남북 서해 접경수역 안에 있으나, 특별한 혜택 없이 안보규제를 받으며 살아왔다. 역사적으로 이곳은 지정학적 특성상 서해 연안 방비를 위한 군사적 요충지이자 한국과 중국을 잇는 해로의 요지다. 또한 바다의 수심이 얕고 조강에서 나온 모래와 플랑크톤으로 인해 어족자원이 풍부하다. 어민들은 평상시 어업을 기반으로 생활하고 있으면서 전쟁, 해적선 출몰 등 위기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군병으로서 또 하나의 의무를 지니고 살아왔다. 일제 강점기에는 선진 조업기술이 들어오면서 5도의 조업환경은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연평도 조기파시 때처럼 어선과 상선이 많을 때는 2000~3000척에 달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이익은 모두 일본인이 가져갔다. 연평도 ‘향리지’에 따르면 “그 당시의 어획고는 천문학적 수치로 연평어업협동조합의 일일 출납고가 한국은행의 출납보다 그 액수가 높았다”고 한다. 해방 후 미소 군사분계선 설정으로 서해 5도를 비롯한 옹진반도는 지금과 달리 남측에 속했다. 연평도의 경우 전쟁 당시 별다른 피폭도 발생하지 않았다. 향토지에 따르면 “6.25 동란 중 본도에 3발의 포탄이 떨어졌다. 호주비행기가 적지인줄 알고 떨어뜨린 포탄이었으며 월백추야 연대 대원 1명이 죽고, 박신국씨의 소 1마리가 죽었다. 이것이 전쟁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라고 한다. 오히려 북측 각지에서 내려온 3만여명의 피난민이 운집된 연평도는 일대 혼잡을 이뤘다. 식량과 식수 문제는 물론 모든 산이 오물로 뒤덮였고, 장질부사(장티푸스) 등 전염병이 돌아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기록도 있다.한국전쟁 이후 5도서 어민들에게 영향을 미친 결정적 사건은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 번째 유엔에 의한 정전협정이다. 국방부가 편찬한 ‘6.25 전쟁사 9’에 따르면 “거래 목적상 유엔군도... 옹진과 연안반도가 계속 공산군 측의 통제하에 놓이는 것에 동의해도 좋다”고 했다. ‘버려진 옹진반도’는 분쟁의 바다를 잉태했고 서해 북방한계선(NLL) 갈등으로 이어졌다. 어민들에게도 안보에 따른 규제의 족쇄가 채워졌다. 5도서 수역의 남북 경계의 문제는 9.19 군사합의서에도 드러났다. 서해평화수역 조성의 핵심은 ‘그 범위를 어디까지로 할 것인가?’이다. 합의서에 명시한 ‘북경계선’과 ‘남경계선’의 기준을 양측이 합의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 쟁점은 NLL과 북이 주장하는 경계선을 어떻게 풀 것이냐로 귀결된다. 해상경계선은 육지의 합의된 군사분계선과 달리 종전 또는 평화협정 체결 시 남북 간의 해상경계선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어민들은 9.19 군사합의에 따른 조업의 자유와 남북 평화공존을 희망하고 있다. 미래의 공동어로구역과 NLL까지 조업 확장보다는 현재 어장 범위(시간, 면적, 허가)에서의 규제 완화를 최우선으로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쟁점수역(NLL~북 경비계선)은 해양생태조사를 선행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해양생태보존수역으로 지정한 뒤 중국어선 길목 차단과 남북수산교역을 위한 해상파시, 남북수산업 고부가가치화를 위한 수산과학기술교류, 옹진반도 공동어로(양식) 등을 단계별로 추진하고, 남북 경협을 위한 어민들이 참여하는 ‘사회적평화기업’을 정부에 제시한 바 있다. 두 번째는 2000년에 체결한 한중어업협정이다. 협정문 제9조에서는 “잠정조치수역 북단에 위치한 일부수역, 과도수역 이남에 위치한 일부수역에 대해서는 별도의 합의가 없는 한 현행 어업활동을 유지하며 어업에 관한 자국의 법령을 타방체약당사자의 국민과 어선에 대해 적용하지 아니한다”고 명시했다. 사실상 주권을 강제로 행사할 수 없다. 때문에 정부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중국 외교적 대응 강화”, “해경의 단속 강화”, “처벌강화”등 세 가지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중국어선의 약탈과 불법은 일제강점기를 제외하고 조선시대 이전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조선 후기 청과 일본은 조약을 내세워 국내 어업 영역을 무법적으로 확장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어민들은 생존권을 위협받자 스스로 외세와 직접 충돌했다. 1884년 백령도에서 벌어진 ‘청국인 살상·강도 사건’은 외교 문제로 비화됐으나 결국 백령도 어민만 효수했고 관찰사도 유배했다. 조선의 왕은 백성을 죽임으로써 안위를 지켰다. 지난해 제정된 ‘어선안전조업법’에 대해 어민들이 강력히 규탄하며 시위를 한 적이 있다. 어민들을 군사 통제 대상이자 형사처벌 대상자로 인식하는 정부에 대한 분노였다. 역사적으로 지금까지 중국어선의 노략질에 재산권을 침탈당하는 것을 무력하게 보면서 살았다. 그럼에도 고향을 떠나지 않고 지금까지 가족의 생계와 생존을 위해 참고 견디며 살아왔다.힘없는 선대 어민은 생존을 위해 권력에 순응하고 눈치를 보며 사는 것 외에는 별도리가 없다고 여겼다. 국가 정책에 대해 불만을 나타내다가 자칫하면 간첩죄로 몰린다는 불안함에 쥐죽은 듯 살았다. 북한에 인접한 “서해 5도에 태어나거나 사는 게 죄라면 죄지” 하고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았다. 자식들에게는 “나중에 섬에 살지 말아라! 뭍으로 나가 대한민국 국민으로 떳떳하게 서 살아라!”고 말하면서 거친 풍랑을 해치며 바다로 몸을 던진 사람들이다. 세 번째는 2010년 연평도 포격이다. 당시 겁에 질린 1300여명의 주민이 터전을 버리고 어선 등을 타고 긴급히 섬을 떠났다. 한국전쟁 이후 첫 대규모 국민 피난이었다. 그리고 정부가 마련해준 그해 겨울 첫 거처는 찜질방이었다. 주민들은 집단 이주를 요구했다. 정부는 “NLL을 사수하려는 우리 국방․안보정책상으로도 주민들이 빠져 나오게 하는 지원 대책을 저희들이 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라며 피난 나온 지 한 달도 안되는 주민들을 다시 섬으로 들어가도록 종용했다. 창살 없는 감옥에 다시 밀어넣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긴 세월 서해 5도 어민들의 하루는 24시간이 아닌 12시간이었다. 안보를 이유로 47년 동안 여객선이나 어선 등의 야간 항행이 금지됐고, 조업의 자유와 이동권을 제약받으며 살아왔다. 어민들은 스스로 권리를 찾기 위해 해상시위, 중국 어선 나포, NLL 영해 헌법소원, 분단 후 최초 한강 뱃길 잇기, 해상 파시, 어장확장을 평화 깃발 게양 등 안보 민주화와 평화 경제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물때를 알고 적시에 바다로 나가야만 고기를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목숨을 담보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런 인내와 희생은 계속 이어져 왔다. 누군가는 이들이 사는 것만으로 애국하는 일이라고 한 적도 있다. 정부는 어민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야 한다. 그들이 현실적 의무를 다하듯, 정부도 의무를 다해야 한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역대 정권 모두 어민들에게 수많은 약속을 했다. 그들은 더 이상 새로운 약속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미 여러 번 한 약속에 부합하는 행동을 하라는 것이다. 어민들에게 평화는 생존이며 자유다. 이 목소리는 인권이자 또 다른 주권의 표현이다. 이들에게 희생의 굴레를 벗겨주고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누리는 기본권을 회복시켜야 한다. 동시에 정부는 서해 5도 평화수역의 가치를 알리는 메신저 역할을 해야 한다. 이는 서해평화 정책의 지속가능성 차원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정학적 특수성과 평화와 안보에 관한 메시지를 왜곡 없이 학생을 비롯한 국민에게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바르게 전달해야 한다. 한국전쟁 이후 군사정전협정에 ‘족쇄’ 한중어업협정 탓 주권 강제 행사 못해 중국 어선의 약탈·불법은 오래된 숙제 안보 이유로 47년간 야간항행도 금지 NLL 영해 헌법소원 등 목소리 내기도 정부서 기본권 회복 위한 행동 나서야 평화와 안보 모두 생존과 안전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분단으로 인한 이념 갈등이 오랫동안 이어지면서 정쟁 수단으로 의제화됐다. 대체로 진보정권은 평화를, 보수정권은 안보를 앞세우고 있다. 최근에 발생한 개성공단 연락사무소 폭발, 서해 공무원 피살 등 남북 갈등 발생 시 평화정책은 위기를 맞았다. 그럴 때마다 언론들이 찾는 곳은 연평도다. 남북 갈등은 다시 정쟁과 남남 갈등으로 이어지고 어김없이 국지전 발생이 높은 서해 5도가 이슈가 되는 게 현실이다. 만약 또다시 제2의 연평도 포격 같은 군사적 긴장 대결로 회귀한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군사적 안보냐? 평화적 안보냐? 등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선택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 평화와 안보를 진영 논리에 가두면 안된다. 동전의 양면처럼 보수도 평화를, 진보도 안보를 말해야 한다. 대북정책의 동력은 결국 국민의 상식과 지지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독도가 ‘영토 주권’의 상징이라면 서해 5도는 ‘안보의 성지’에서 ‘평화의 공존’으로 확장돼야 한다. 독도의 존재와 당위성은 국민과 남북 사이에 이견이 없다. 하지만 서해5도는 그렇지 않다. 지금이라도 초중고 교과서 기술, 국내외 평화의 섬 캠페인 등 다양한 제도와 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한다. 독도를 품고 있는 국민들 마음 속에 서해 5도 평화수역을 품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한반도의 허리인 횡측 접경 공간에 대한 통합적‧제도적 관리가 필요하다. 서해 NLL~한강하구~DMZ에 이르는 접경 비무장 지역을 정책공간 단위로 묶어서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이 지역은 현재 국방부, 행안부, 해수부, 통일부 등 부처별 개별법과 단위사업으로 관리하고 있다. 그리고 실질적인 출입 통제는 유엔군사령부가 하고 있다. 남북 상황에 따른 접경 공간별 안보규제와 교류 진흥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컨트롤 타워 설립과 일관된 정책을 유지해야 한다. 서해 5도 정책도 어민 등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의사결정의 거버넌스화를 제도적으로 마련해 정책의 정당성과 지속성을 확보해야 한다.
  • [서울광장] 국립중앙박물관, 석조 문화재 고향에 보내자/서동철 논설위원

    [서울광장] 국립중앙박물관, 석조 문화재 고향에 보내자/서동철 논설위원

    원주 법천사터 지광국사현묘탑이 5년의 보존 처리 작업을 마치고 제자리로 돌아갈 준비를 마쳤다는 소식이 며칠 전 들렸다. 20년 전쯤 법천사터를 찾았을 때 주변은 모두 논밭이어서 도무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절터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절터 초입의 당간지주도 동네 한복판에 숨어 있듯 자리잡고 있어 찾기가 쉽지 않았다. 얼마 전 찾은 법천사터는 완전히 달라졌다. 체계적인 발굴조사로 옛 절터의 전모가 드러났고, 당간지주도 당당한 모습을 되찾았다. 다만 산기슭에 축대를 쌓아 조성한 부도권역만은 달라지지 않았다. 세련된 조각을 자랑하는 지광국사현묘탑비와 나란한 현묘탑 터의 빈자리는 을씨년스러웠다. 마침내 그 공백이 메워지는 것이다. 지광국사 해린(984∼1070)의 무덤이라 할 수 있는 현묘탑은 비운의 문화재다. 1912년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1915년 돌아온 뒤 경복궁 동문인 건춘문 앞에 세워 놓았는데, 6·25전쟁 중 포탄에 맞아 지붕돌 위쪽이 산산조각 났다. 부서진 탑을 1957년 보수하면서 지금의 국립고궁박물관 옆으로 옮겼고 보수 작업 끝에 11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남한강변에는 고려시대 대찰(大刹)의 옛터가 즐비하다. 경기 여주 고달사터와 강원 원주 법천사·거돈사·흥법사터, 충북 충주 청룡사터가 그렇다. 한결같이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대부분 불교국가 고려의 왕사(王師)나 국사(國師)가 은퇴하고 머무른 하산소(下山所)였다. 일대는 개경에서 제법 떨어져 있음에도 유사시에는 물길로 빠르게 오갈 수 있었다. 은퇴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고 싶은 ‘거물 스님’의 거처로 각광받았던 이유일 것이다. 편리한 남한강 수운은 역설적으로 이 일대 사찰의 석조 문화재가 일제강점기 집중적으로 수탈당하는 원인이 되었다. 법천사를 비롯해 앞서 거론한 사찰 가운데 청룡사를 제외한 다른 사찰은 하나같이 일제강점기 부도며 탑비를 빼앗겼다. 고달사터 쌍사자석등과 흥법사터 진공대사탑 및 석관, 거돈사터 원공국사승묘탑 등이 그것이다. 지광국사현묘탑의 귀향은 이 탑의 관리 주체인 문화재청의 결단 덕분이다. 문화재는 제자리에 있어야 가장 높은 진정성을 발휘한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실제로 원주시는 법천사터를 정비한 데 이어 지광국사현묘탑을 돌려받아 ‘완전체’가 되면 새로운 역사문화 관광지로 크게 각광받을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반면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관을 채우고 있는 남한강변의 다른 석조 문화재들은 언제 돌아갈지 기약이 없다. 법천사터에서 남쪽으로 멀지 않은 거돈사터는 2만 5000㎡ 남짓한 사역의 정비가 일찌감치 이루어졌다. 거돈사터에도 해동공자 최충이 비문을 지었다는 원공국사승묘탑비만 남아 있을 뿐 정작 승묘탑이 없는 것은 법천사와 닮은꼴이다. 원공국사승묘탑이 있던 자리에는 모조탑을 세워 놓았는데 기계자국 선명한 새하얀 탑이 폐사지 분위기와 어울릴 수는 없다. 흥법사터는 남한강 지류인 섬강변에 있다. 섬강은 법천사가 있는 흥원창 주변에서 남한강에 합류한다. 흥원창은 강원 서부에서 세금으로 걷은 곡식을 도성으로 실어 나르는 조창이다. 진공대사 충담이 머무른 흥법사터에는 고려 태조 왕건이 비문을 지었다는 진공대사 탑비가 역시 진공대사탑을 잃은 채 남아 있다. 이 밖에 남한강 하류인 양평 보리사터의 대경대사탑비와 상류인 제천 월광사터 원랑선사 탑비도 중앙박물관에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중앙박물관은 이들 석조 문화재를 제자리에 보내면 훼손이 염려된다고 한다. 하지만 원주시만 해도 지광국사현묘탑을 제자리에 보호각을 세워 보존하는 방안과 전시관을 새로 지어 내부에 탑과 탑비를 옮기는 방법을 놓고 고심하고 있을 만큼 지방자치단체의 의식 수준은 높아졌다. 무엇보다 ‘너무도 귀중한 문화유산인 만큼 훼손되어선 안 되니 돌려줄 수 없다’는 논리는 서구 박물관이 약탈 문화재의 반환 요구를 거절할 때 쓰는 어거지일 뿐이다. 중앙박물관은 남북 관계의 진전에 따라서는 조만간 로비를 장식하고 있는 개성 경천사터 십층석탑을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문제를 놓고 결단을 내려야 할 순간을 맞이할 수도 있다. 중앙박물관은 개성 남계원터 칠층석탑도 갖고 있으니 고민은 크다. ‘훼손 염려’ 논리로 붙잡고 있는 게 가능하겠는가. 석조 문화재를 과감하게 제자리에 보내는 능동적이고 선제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당장 어렵다면 처리 원칙이라도 마련해야 할 때다. sol@seoul.co.kr
  • 미래형 지휘소 차량 개발… 천막 대신 이동 차량에서 전투지휘

    미래형 지휘소 차량 개발… 천막 대신 이동 차량에서 전투지휘

    보병부대에서 기존 천막형 지휘소를 대채, 기동 중 전투지휘를 가능하게 하는 ‘차륜형 지휘소 차량’이 개발됐다. 방위사업청은 보병대대급 이상 전방 부대에서 실시간 전투 상황을 파악하고 기동 중에 지휘통제가 가능한 ‘차륜형 지휘소 차량’을 성공적으로 개발했다고 25일 밝혔다. 차륜형 지휘소 차량은 육군의 AI(인공지능) 기반 지상전투체계인 ‘타이거 4.0’을 구현하는 핵심 장비 중 하나다. 이 차량에 탑승한 지휘관은 ‘AI 참모’(지휘결심지원 AI) 도움을 받아 전장을 지휘한다. 그동안 군은 천막형 야전 지휘소를 운용해 설치와 해체에 과다한 시간이 소요됐다. 적군의 화기를 비롯해 포탄과 화생방 위협으로부터 방호를 할 수 없아 생존성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작전을 수행했다. 또한 전장환경 변화에 맞게 기동화된 전투부대를 근접하며, 네트워크 작전환경에서 효과적인 지휘통제를 위하여 전투지휘체계를 탑재한 이동형 지휘소 차량의 필요성도 대두됐다고 방사청은 설명했다. 차륜형 지휘소 차량은 적군의 화기와 화생방으로부터 방호가 가능한 장갑판과 양압 장치를 적용하여 생존성을 보장했다. 험로 주행이 가능한 전술 타이어를 장착하고 최신 지휘통제체계를 탑재해 기동성과 함께 지휘소 운용 능력을 향상했다. 차륜형 지휘소 차량은 2017년부터 현대로템 주관으로 연구개발에 착수해 군 요구조건을 모두 만족하고 이달 체계개발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부품 국산화율도 98%에 달한다. 방사청은 “양산시에는 후속 군수지원이 용이하고 국내 방위산업 부문에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방사청은 올해부터 차륜형 지휘소 차량 양산 준비에 착수해 내년 양산 계약을 체결할 계획이다. 조현기(육군 준장) 방사청 기동사업부장은 “미래 전장환경에서 네트워크 지휘통제가 가능한 차륜형 지휘소 차량 개발 성공으로 보병부대 지휘소의 기동성과 생존성이 크게 향상됐다”며 “기술 경쟁력도 충분히 확보해 해외 수출 등을 통한 방위산업 경쟁력 향상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서울광장] 그들은 왜 폭도가 됐나/김상연 논설위원

    [서울광장] 그들은 왜 폭도가 됐나/김상연 논설위원

    제이슨 크로 미국 민주당 연방하원의원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전장에서 산전수전을 겪은 참전용사 출신이다. 그는 지난 6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연방의회 의사당에 난입했을 때 의원으로서 현장에 있었다. 회의 도중 총격전이 벌어지려 하자 말쑥한 양복 차림의 크로 의원은 의자 밑으로 황급히 몸을 낮추고 대피했는데, 당시 사진을 보면 포탄이 빗발치는 참호 속을 포복하는 군인의 모습과 별로 다를 게 없었다. 그는 미국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수도 한복판의 의회 안에서 전쟁터와 같은 상황을 맞게 될 줄은 한 번도 상상치 못했다”고 털어놨다. 그런데 그런 상황은 CNN 역시 상상치 못했을 것이다. CNN은 1990년 걸프전쟁 때부터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거실 소파에 앉아 이역만리 중동의 전투를 실시간으로 영화처럼 볼 수 있게 해 주는 CNN의 보도는 시청자에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랬던 CNN이 몇십 년 뒤 자국 의사당 안에서 벌어진 난리를 마치 중동 전쟁처럼 생중계하게 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뉴스 전문 채널은 사회에 큰 변고가 없으면 시청률이 떨어지는 속성이 있다. 전쟁 뉴스가 시들해지면서 CNN은 후발 뉴스 채널인 폭스뉴스와 MSNBC에 밀려 고전하기 시작했다. 폭스뉴스는 보수색을 확실히 했고 MSNBC는 진보색을 뚜렷이 했다. 뚜렷한 이념적 지향이 없었던(원래는 이게 제대로 된 언론이다) CNN은 시청자들을 좌우의 강경 매체에 빼앗기고 위기에 처한 셈이 됐다. 그러자 CNN은 ‘중도’를 버리고 ‘진보’로 변신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급기야 2016년 대선 때 트럼프 공화당 후보 진영은 CNN이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노골적으로 편든다며 “CNN은 ‘클린턴 뉴스 네트워크’(Clinton News Network)의 약자”라고 비꼬았다. 이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 클린턴 국무장관이 폭스뉴스에 대해 “언론이 아니다”라고 비난했던 것을 연상시켰다. CNN은 트럼프 정권 내내 대통령과 충돌했고, 이번 대선을 전후해서도 트럼프에 비판적인 보도를 집중적으로 내보냈다. 그 덕분인지 지난해 대선(11월 3일) 직후 CNN의 시청률이 19년 만에 처음으로 폭스뉴스를 누르고 1위에 올랐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언론이 갈수록 좌우로 양분되는 추세는 한국도 다르지 않다. 어떤 신문은 1면부터 마지막면까지 비판인지 저주인지 모를 기사와 논평으로 도배하고, 이미 저주에 중독된 독자들은 정파성이 강한 보도일 수록 열광하며 ‘좋아요’ 세례를 퍼붓는다. 요즘엔 유튜브 같은 ‘유사 언론’까지 가세하면서 정파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여기엔 수지맞는 계산법이 숨어 있다. 대한민국 인구 5000여만 명 중 30%가 보수, 30%가 진보라고 할 때 10대 이하 미성년자를 빼고 계산해도 언론이 어느 한쪽 이념을 분명히 하면 1000만명 이상의 충성 구독자를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구독자 수는 돈과 직결돼 있다. 지난해 유튜버 슈퍼챗 후원금 순위에서 상위 5개 채널 중 4개가 정치 관련 유튜버였는데, 그들 모두 진영 논리가 선명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심지어 군대에 가지 않아 ‘국민 밉상’으로 찍힌 유승준(스티브 유)씨마저도 이런 ‘분열 비즈니스’에 눈을 뜬 듯하다. 유씨가 어떤 항변을 해도 꿈쩍 않던 여론이 최근 그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비판하는 영상을 올리자 지지자가 생기면서 후원 슈퍼챗이 쏟아진 것이다. 이런 분열의 참상들은 인공지능(AI)의 발달로 더욱 견고한 악순환의 고리를 완성했다. 영악한 알고리즘이 보고 싶은 뉴스만 보도록 온종일 안내하는 탓에 우리의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은 갈수록 단단해지고 있다. CNN 등 미국 언론은 의사당 난입 사태를 보도하면서 ‘어쩌다가 이 나라가 이렇게까지 망가졌나’ 하는 식의 한탄을 내놓고 있다. 그들은 원인을 트럼프 개인 한 명에게로만 돌린다. 그것은 언론의 책임을 외면하는 유체이탈 화법 같다. ‘의사당 난입 폭도’라는 괴물의 탄생에 트럼프는 방아쇠 역할만 했을 뿐이다. 그 뇌관을 차곡차곡 쌓은 것은 분열 비즈니스에 맛들인 언론과 유사 언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은 금리와 주가만 미국을 따라가는 게 아니다. 정치도 따라간다. 한국 언론이 지금이라도 분열 비즈니스와 결별하지 않는다면 우리 국회의원들이 의사당에서 양복 차림으로 포복하는 날이 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carlos@seoul.co.kr
  • 사람 팔처럼 자유롭게 움직이는 재난대응 특수목적기계 개발(영상)

    사람 팔처럼 자유롭게 움직이는 재난대응 특수목적기계 개발(영상)

    재난현장 투입용 양팔 로봇팔 달린 특수목적기계가 개발됐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하 생기원)은 조정산 박사 연구팀이 로봇기술과 건설기계 기술을 융합한 ‘재난대응 특수목적기계’를 개발했다고 20일 밝혔다. 소방관들의 안전을 도모하면서 어렵고 복잡한 구조 작업을 신속히 처리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양대, 한국전자기술연구원, 한국기계산업진흥회 등과 공동 개발한 이 장비는 4개의 무한궤도 하부모듈 위에 사람의 양팔 역할을 하는 6m 길이의 작업기 한 쌍이 달린 형태다. 장비에 탑승한 소방관은 웨어러블 조정 장치를 이용해 작업기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이를 활용해 최대 200kg에 달하는 대형 장애물을 옮길 수 있으며, 22mm 두께 철근을 절단하는 등 다양한 작업을 손쉽게 수행할 수 있다. 유압 방식으로 작동하는 로봇팔은 전기 모터 방식의 로봇팔보다 더 강력한 힘을 낼 수 있고, 사람 팔과 유사한 수준의 자유도를 구현해 작업성을 높였다. 왼손은 다양한 물체를 잡을 수 있도록 했으며, 오른손은 절단·파쇄·벌리기 작업이 가능하도록 개발됐다.연구팀은 지난해 12월 한국로봇융합연구원 재난안전센터에서 20종 이상의 재난대응 시나리오에 대한 현장 테스트를 통해 시제품 성능 검증을 마쳤다. 앞으로 소방서와 협력해 재난현장에 실전 배치될 수 있도록 유압시스템과 제어 기술을 고도화할 계획이다. 조정산 생기원 박사는 “사람 팔과 가장 근접한 형태의 로봇 관절 움직임을 구현해냈다”며 “무인 자동화가 필요한 건설·산업 현장, 대단위 재배가 이뤄지는 농업현장, 지뢰·포탄 등을 제거하는 국방현장 등 다양한 분야에 폭넓게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K1 전차, 美 허가 안하면 수출 못한다?…‘3대 조건’ 족쇄

    K1 전차, 美 허가 안하면 수출 못한다?…‘3대 조건’ 족쇄

    한국은 세계 11위 무기 수출국입니다. 수류탄, 지뢰 등 탄약류를 넘어 고성능 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한 결과 K2 전차, K9 자주포, FA50 경공격기 등 명품 무기가 잇따라 탄생했습니다.그러나 여전히 성능 좋은 외국산 무기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으며, 국산 무기를 낮춰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왜 우리는 국산 무기를 개발해야 할까. ‘K1 전차’가 그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10일 한국국방연구원이 발간하는 국방논단에 실린 ‘방산수출지원과 정부기관 간 약정’ 보고서에 따르면 1970년대 한국은 불안한 안보환경에 직면했습니다. 자체 전차 생산 능력을 갖춘 북한은 신형인 T62를 운용하고 있었습니다. 베트남 전쟁이 격화되자 한국에 주둔 중이었던 미 7사단이 철수하면서 주한미군 규모가 2만명이나 줄었습니다. 위기감을 느낀 정부는 ‘한국형 전차’ 개발에 나섰습니다. 국방부에 전차관리사업단을 신설하고 본격적인 기술 개발에 나섰지만, 당시 국내 기술력만으로는 신형 전차 개발이 불가능했다고 합니다. 아무런 생산기반도 없는데 갑자기 고성능 전차를 만들어야 했으니 정부도 골머리를 앓았을 겁니다. 그래서 미국의 크라이슬러 디펜스(1980년대 이후 제너럴 다이내믹스)가 설계한 ‘M1 에이브럼스 전차’를 바탕으로 한 국산 전차 개발사업이 진행됩니다. 1986년부터 실전 배치된 이 전차가 K1 전차입니다. 서울올림픽을 기념해 ‘88전차’로 불리기도 했습니다.●무기 개발 박차… 한국 세계 11위 무기수출국 1978년 7월 한미 양국은 역사적인 ‘한국형 전차’ 양해각서에 서명했습니다. 사업 목표는 한국형 전차 시제품 2대를 개발하는 것이었는데, 미국은 3가지 조건을 걸었습니다. 당시엔 이 조건들이 K1 계열 전차의 수출길을 막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서둘러 전차부터 개발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을 겁니다. 양해각서는 ‘K1 전차 및 그 계열전차를 수출하기 위해선 미국 정부의 승인이 필요하다’고 못 박았습니다. 미국에 대한 적성국가가 아니더라도 기술 유출 위험이 있거나, 자국 방위산업체들이 수출에 반대하면 해외 수출은 불가능해진다는 얘기입니다. 만약 어렵게 미국 동의를 얻더라도, 오랜 시간이 소요돼 협상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두 번째로 미 정부는 해외에 수출할 경우 완성전차 1대당 5만 달러의 로열티를 지불하도록 했습니다. 국방연구원 연구팀은 “K1 전차와 계열전차 구매에 관심을 가질 만한 동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의 개발도상국 입장에서는 가격이 특히 중요한 결정요소여서 로열티로 인한 가격 상승은 수출 경쟁력 약화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습니다. 실제로 가격 문제로 수출에 실패한 사례도 나왔습니다.●동남아·중동 등 가격 중요… 막판 무산도 우수한 3세대 전차로 인정받은 K1 전차는 1997년 말레이시아가 추진한 7억 3000만 달러 규모의 전차 도입사업 입찰에 참여하게 됩니다. 현대정공(현 현대로템)의 K1과 폴란드 부마르 와벤데의 PT91, 우크라이나 KMDB의 T84가 경쟁했습니다. 현대정공은 정글이 많은 말레이시아 지형에 맞게 전차를 개량했습니다. 51.1t인 중량을 47.9t으로 크게 줄이고 적재 포탄수는 47발에서 41발로 줄이는 대신 ‘레이저 거리측정기’와 ‘양압장치’(차량 내부 압력을 높여 화생방 공격을 방어하는 장치)를 장착한 최신 ‘K1M’을 내세웠습니다. 말레이시아 측이 호의적인 반응을 보여 계약이 성사되는 듯 했으나 막판에 폴란드의 PT91M에 밀려 수출이 좌절됐습니다. 연구팀은 “K1M의 탈락 원인은 성능보다는 가격 문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며 “이후 K1 전차 및 그 계열전차는 아직까지 수출된 적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또 다른 문제는 당시 양해각서의 효력이 영구적이라는 점입니다. 미국이 먼저 나서서 효력을 정지시킬 가능성은 ‘0%’일 겁니다. 결국 미국의 사전 동의와 로열티 지불이 계속 수출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개발한 지 시간이 많이 지나 K1 전차를 구식 전차라고 여기는 분도 있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군에서 1000대 이상 운용하고 있는 주력 전차입니다. 뿐만 아니라 105㎜ 강선포를 120㎜ 활강포로 강화한 K1A1·K1A2, 전후방 감시카메라, 실시간 전차 간 정보 공유, 디지털 전장관리체계 등 각종 전장시스템을 대폭 강화한 K1E1 등으로 계속 진화하고 있습니다. K2 전차 보급이 계속 확대되면 K1 전차는 개발도상국 등에 성능 좋은 중고전차로 수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미국과 협의해 양해각서 내용을 삭제하지 않는 한 수출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물론 이런 방식을 미국의 잘못으로 돌리기는 어렵습니다. 미국 입장에선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반드시 넣어야 할 항목이었는지 모릅니다.●K2 기술 이전 계약… 터키 강력한 경쟁자로 이런 사례는 K1 전차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연구팀은 “기존에 맺었던 무기개발·생산과 관련한 약정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관리해야 한다”며 “조율이 불가능하다면 문제가 되는 기술이나 부품의 국산화를 통해 문제의 소지를 미리 없애두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앞으로 유사한 사례가 나오지 않도록 약정 체결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약정을 체결할 때 가급적 개조·개량품은 한국이 지식재산권을 소유하도록 하고, 외국이 지식재산권을 갖게 됐다고 하더라도 유효기간을 명확히 설정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반대로 우리가 보유한 기술을 해외에 수출할 때도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2008년 K2 전차 기술 이전 계약을 맺고 터키가 개발한 ‘알타이 전차’는 이미 우리의 경쟁 상대가 됐습니다. 연구팀은 “지식재산권을 우리나라가 아닌 수입국이 가져간다면 경제적인 관점에서는 수출하자마자 강력한 수출 경쟁자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불안해서 못살겠다”...경기도내 사격장 이전 요구 봇물

    “불안해서 못살겠다”...경기도내 사격장 이전 요구 봇물

    최근 양평군에서 발생한 포탄 오발사고를 계기로 군사격장 이전을 요구하는 경기도내 자치단체와 주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8일 경기도에 따르면 도내 군 사격장은 78곳으로, 이중 포탄 사격훈련을 주로하는 대규모 사격장은 14곳에 달한다. 지역 별로는 연천군이 4곳으로 가장 많고 포천 3곳, 파주·야영군 각 2곳, 양주·여주시와 가평군이 각 1곳씩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격장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언제 포탄이 날아올지 몰라 불안속에서 지낼수 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달 19일 오전 10시10분쯤 육군 양평종합훈련장(용문산사격장)에서 대전차화기 사격훈련을 하던 중 보병용 중거리 유도무기 ‘현궁’ 1발이 표적지를 벗어나 1.5㎞ 거리의 옥천면 용천2리 마을 한복판 논에 떨어져 폭발했다. 현궁이 떨어진 곳 반경 50m이내에 민가 4~5채가 있었으나 당시 현장에 주민들이 없어 인명피해는 없었다. 포탄이 떨어진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 이모씨(79)는 “오래전부터 주민들이 사격장을 이전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으나 당국은 무대책으로 일관하고 있다”면서 “불안해서 못살겠다. 사격장을 당장 이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관련 정동균 경기 양평군수와 양평용문산사격장폐쇄 범군민 대책위원회는 성명을 내고 사격장을 즉각 폐쇄하라고 요구했다. 정 군수는 성명에서 “사격훈련 폭발음, 비산먼지, 진동, 오발탄의 두려움을 국가안보를 위해 힘겹게 감내해 왔으나 이젠 더 이상 참지 않겠다”며 “용문산사격장을 즉각 폐쇄하고 이전계획을 수립하라”고 촉구했다. 정 군수는 국방부가 요구사항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13만 양평군민의 생명 수호를 위해 무력 행사도 불사하겠다고 경고했다.양주시에서는 지난 5월19일 모 군부대가 107mm 박격포 훈련을 하던중 고포탄 한발이 목표지점을 벗어나 인근 야산에 떨어져 폭발하기도 했다. 포천시 주민들은“ 지난 3월과 7월 영평사격장 인근에서 실시된 군전차 이동으로 소음과 진동 공해에 시달리고 있다”며 경기도에 민원을 제기했다. 이에 포천시는 지난 7월 정세균 국무총리 방문때 영평사격장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의견을 전달하기도 했다. 포천시 관계자는 “군사격장 문제로 주민들이 70년 가까이 도비탄(장애물에 맞아 탄도가 바뀐 탄환)·유탄(빗나간 탄환) 사고와 소음 피해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자 경기도는 최근 국방부장관과 육군본부 정작 참모부장 앞으로 군사격장 안전사고 대책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경기도는 공문을 통해 “양평용문산사격장에서 지난 10여년간 사격훈련중 수차례 포탄 오발사고와 산불 발생으로 인근 주민들의 생명과 재판피해등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면서 “향후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실효적 안전관리 대책을 마련해 줄 것”을 촉구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부산 아파트 재건축 공사 현장서 녹슨 포탄 추정 물체 발견

    부산 아파트 재건축 공사 현장서 녹슨 포탄 추정 물체 발견

    1일 오후 2시 26분쯤 부산 남구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105㎜ 포탄으로 추정되는 물체가 발견됐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현장을 통제했다. 군 폭발물처리반은 탄의 종류를 확인한 뒤 회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관계자는 “골삭기 인부가 굴삭기로 땅을 파던 중 포탄으로 추정 되는 물체를 발견 ,신고했다”고 말했다. 부산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무장봉기 이끈 승려… 만세운동 주도 고교생… 일제 수탈 맞선 해녀들

    무장봉기 이끈 승려… 만세운동 주도 고교생… 일제 수탈 맞선 해녀들

    제주도는 역사적으로 몽골이나 왜구의 지배와 침략을 받았던 지역으로 외부 세력에 대항하며 독자적으로 존립하려는 의지가 강했다. 일제의 입장에서 제주는 군사적 요충지였고 풍부한 어족자원을 가진 주요 약탈 지역이었다. 한일병합으로 일제의 수탈이 격심해지자 항거하는 주민들의 움직임이 어느 지역보다 거세게 일었던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유배를 온 유학자들이나 개화파들은 제주도민들의 학문과 사상에 큰 영향을 끼쳤고 이는 항일·독립운동으로 이어졌다. 제주 지역에서는 광복 때까지 크고 작은 항일운동이 잇따라 일어났는데 그중에서 3대 항일운동으로 일컬어지는 법정사 항일운동, 조천만세운동, 제주해녀 항일운동의 현장을 찾아보았다. ●1914년부터 김연일 주지 “일본인 축출” 설법 법정사 항일운동 발상지인 제주도 서귀포 옛 법정사 터는 해발 680m나 되는 한라산 중턱에 있었다. 물이 마른 계곡을 건너 비탈길을 한참 올라가니 어두컴컴한 산속에 일제가 불태워 버린 절터가 나타났다. 집 한 채 크기도 안 되는 작은 터에는 무너져 내린 벽체의 흔적인 돌무더기만 나뒹굴고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제주도에서도 항일·독립운동이 줄기차게 벌어졌다. 그중에서도 3·1운동보다 다섯 달 앞서 일어난 법정사 항일운동은 승려들이 주도하고 주민 700여명이 참여한 제주 최대의 항일운동이었다. 법정사 주지 김연일은 1914년 무렵부터 일본의 국권 침탈이 부당하며 일본인을 제주도에서 쫓아내야 한다고 설법을 통해 주장하고 있었다. 김연일은 조직적으로 항일운동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거사 6개월 전부터 곤봉과 화승총을 마련하는 등 치밀하게 준비했다. 1918년 9월 말 정구용은 “면장과 이장은 장정을 모아 10월 7일 오전 4시 하원리에 집합하고 8일에는 제주향을 습격해 일본 관리를 체포하자”는 격문을 붙였다. 총지휘자 김연일을 필두로 좌대장, 우대장, 선봉대장, 중군대장, 후군대장 등의 의병과 비슷한 군사 조직 체계를 갖추었다.김연일은 1871년 경북 영일군 동해면 도구리에서 태어나 출가한 뒤 경북 경주 기림사의 승려로 있었다. 같은 절에 있던 승려 방동화와의 인연으로 제주도로 와서 1914년쯤 법정사 주지가 됐다. 김연일은 처음부터 독립운동을 할 목적을 갖고 제주도로 왔다고 한다. 왜 하필 제주도까지 와서 독립운동을 했느냐는 의문에 유족들은 “우리나라 모습에서 제주도가 닻이라서 거기서부터 들어 올려야 독립 바람이 육지까지 분다고 (김연일이) 말했다”고 설명한다. 김연일은 조상의 묘까지 제주도로 옮겼다. 이를 이용해 군자금과 물자를 갖고 제주도에 드나들었다고 한다. 드디어 거사 당일인 7일 새벽 법정사 마당에서 출정식이 열렸다. 김연일은 “일본인을 쫓아내어 원래의 한국 시대를 회복하자”고 선언했다. 선봉대장 강창규와 좌대장 방동화, 우대장 강민수, 모사 장임호와 박주석 등의 지휘에 따라 승려와 신도 등 34명은 깃발을 흔들며 마을로 내려갔다. 미리 참여를 독려하고 격문을 붙여 놓아 참여자는 순식간에 700여명에 이르렀다. 도순·하원·월평·영남·대포·상예리 등 서귀포의 거의 모든 마을 사람들이 뒤를 따르며 일제를 몰아내자고 소리 높여 외쳤다. 중문리에 도착한 군중은 전선을 자른 뒤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일본인 일행을 구타하기도 했다. 이어 현재 중문파출소 자리에 있던 경찰 주재소로 가서 몽둥이로 기물을 부수고 문서를 불태운 다음 건물을 소각했다. 오전 11시쯤 일경의 기마 순사대가 총으로 무장하고 공격해 왔다. 함성을 지르던 군중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일경들은 법정사로 올라가 절을 불태웠다. 법정사 항일운동으로 모두 66명이 검거됐고 김연일이 1심에서 10년형을 받는 등 46명이 형을 선고받았는데 감형과 가출옥으로 실제 수감 기간은 줄어들었다. 김연일은 3년 3개월, 강창규는 6년가량 옥살이를 했다. 박주석, 강수오, 강춘근 등 5명은 고문 후유증과 가혹한 감옥생활로 옥사했다. 특히 강춘근은 재판을 받기 전에 사망했다. 고문사로 추정되지만 자세한 정황은 남아 있지 않다. 김연일은 출옥 후 고향 영일로 돌아가 항일활동과 독립운동을 계속했고 다시 붙잡혀 투옥되기도 했다. 정부는 법정사 항일운동 주도자 가운데 32명을 독립유공자로 포상했다. 김연일은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 강창규는 200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日 주도자 모두 연행, 거사 계획 미리 파악한 듯 제주시의 동쪽에 있는 조천은 일제강점기에는 육지에서 사람과 물건이 활발하게 오가던 제법 큰 항구였다. 조천은 신촌·함덕·신흥 등의 인근 지역뿐만 아니라 제주시와 서귀포로 파급된 제주도 만세운동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제주항일기념관과 삼일독립운동기념탑 등이 들어선 조천만세동산(미밋동산)이 조성돼 있다. 평일인 지난달 17일 찾은 조천읍내는 인적이 드문 조용한 어촌 마을이었다. 마침 애국선열추모탑 앞에서는 임시정부가 1939년 법정기념일로 정한 제81회 순국선열의 날 기념식 및 제18회 제주 지역 애국선열 합동추모식이 제주도 독립운동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고 있었다. 조천만세운동은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 4학년생이던 김장환이 독립선언서를 숨기고 들어오며 시작됐다. 아버지 김시학은 일본 유학파로 1차 세계대전 중에 사회 각계각층 1만명의 연서를 받아 독립청원서를 제출한 인물이다. 김장환은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문 낭독을 지켜보며 만세운동에 참가했다. 보름 후인 16일 조천에 내려온 김장환은 숙부 김시범과 당숙 김시은에게 서울의 3·1운동 소식을 들려주고 독립선언서를 전달했다.이튿날 김시범, 김시은, 김장환은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결의했다. 이어 김용찬, 김형배, 고재륜, 황진식 등 14명의 동지를 모았다. 이들은 대형 태극기 4본과 소형 태극기 300여장을 만들어 만세운동을 준비했다. 김시범 등은 거사일을 제주도에서 명망이 높았던 유학자인 맏형 김시우의 소상(小祥·첫 기일)인 3월 21일로 잡았다. 21일 아침 8시쯤. 미모치에 14인 동지를 비롯, 조천 주민들과 이웃 마을인 함덕·신촌·신흥 등지의 주민과 서당 생도 등 200여명이 모여들었다. 미모치는 오름의 이름으로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이었다. 한라산 정기가 마을 동쪽 끝으로 흘러 우뚝 솟은 성소(聖所)로 전해지던 곳이었다. 대형 태극기가 미모치 정상에 꽂히고 ‘독립만세’라고 쓰인 깃발이 나부꼈다. 김시범은 독립선언서를 20여분 동안 낭독했다. 낭독을 마친 김시범은 “조선을 제국의 속박에서 벗어나 독립시키기 위해 한국독립만세를 부르고 행진하라”고 소리쳤다. 김용찬도 “일본 제국의 굴레에서 벗어나 독립하도록 한국독립만세를 고창하고 마을 안을 행진하자”고 외쳤다. 이어 김장환이 ‘대한독립만세’라고 선창하자 군중도 따라 외쳤다. 어떤 이는 창호지에 ‘한국독립만세’라는 혈서도 썼다. 시위대는 일제의 본거지인 제주성으로 행진했다. 조천은 제주성의 동쪽 약 12㎞ 지점에 있었기 때문에 2~3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었다. 도중에 신촌·삼양·화북·건입마을을 거치면 참가자가 더 늘어날 수 있었다. 주민들이 합세하면서 500~600명이 된 시위대는 조천오일장터를 거쳐 비석거리에 도착해 ‘한국독립만세’를 크게 외치고는 계속 행진해 신촌리에 다다랐다. 일경은 급히 제주경찰서에 증원을 요청했고 오후 늦게 무장한 순사 30여명이 도착해 시위대와 맞부딪쳤다. 일경은 공포탄을 쏘고 소총 개머리판으로 무차별로 타격하며 시위를 진압하려 했다. 그 과정에서 3명이 다쳤고 김시범, 김시은, 김용찬, 김장환 등 13명이 연행됐다. 이들이 모두 주모자였음을 볼 때 일경은 거사 계획을 미리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시위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튿날 조천오일장터에서 김필원, 백응선, 박두규 등이 중심이 돼 200여명이 붙잡힌 사람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신촌리를 향해 2차 만세시위를 벌였다. 여기서 박두규와 김필원이 체포됐다. 시위 소식은 함덕리까지 전해져 다음날에는 조천과 함덕 양쪽에서 3차 시위가 벌어졌다. 이문천·백응선·김연배 등이 계속해서 시위를 주도했다. 이문천은 조천오일장터에서 주민들과 함께 시위를 벌이다 100여명을 이끌고 오일장이 열리던 함덕리로 이동했다. 함덕리에 이르자 시위대는 800여명으로 늘어났다. 이날은 부녀자와 어린아이들까지 참여했다. ●김장환은 월북했다는 이유로 국가 서훈 없어 시위 확산에 두려움을 느낀 일경은 시위대를 무력으로 강제 해산시키고 이문천과 백응선 등 8명을 체포했다. 또 신흥리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귀동이라는 여성이 “대한독립만세, 같이 죽자 만만세”라는 구호를 외치자 제주경찰서로 연행했다. 여성까지 무차별로 체포한 데 대해 도민들이 격앙하자 부담을 느낀 일제 경찰은 사흘 뒤 여성을 석방했다. 3월 24일 4차 만세운동은 최대 규모의 시위였다. 이날은 조천오일장날이었는데 상인과 장을 보러 온 부녀자들까지 약 1500명이 시위에 참여했다. 투석전까지 벌어지는 등 시위가 격렬해지자 일경은 발포해 시위대를 해산시키고 김연배 등 4명을 체포했다. 일경은 군 병력까지 불러들여 시위가 다른 지역으로 번지는 것을 막으려 했다. 네 차례의 시위에서 주도자 14명은 모두 검거됐다. 이들을 포함해 기소된 사람은 모두 29명이었고 24명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1919년 5월 김시은, 김시범, 김장환 등 주도자 14명은 징역 6개월에서 1년을 받았다. 그보다 옥고와 고문에 따른 희생이 컸다. 백응선은 고문과 옥고로 1920년 3월 순국했다. 김연배도 혹독한 고문의 후유증과 옥고로 가출옥했지만 1923년 11월 27세의 일기로 순국했다. 김시은과 김시범은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김장환에 대한 서훈 기록은 없다. 월북했다는 이유다. 백응선과 김연배는 대통령표창을 받았을 뿐이다.●일제 해녀 요구 들어준다고 해놓고 약속 어겨 “배움 없는 우리 해녀 가는 곳마다/ 저놈들의 착취기관 설치해 놓고/ 우리들의 피와 땀을 착취해 간다/ 가이없는 우리 해녀 어디로 갈까” 제주시 구좌읍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탑 옆 해녀 노래비에 쓰인 마지막 절이다. 제주 우도 출신 독립운동가 강관순이 지은 노래다. 제주 해녀 투쟁은 연인원 1만 7000여명이 참여하고 238차례의 시위가 벌어진, 국내 최대 규모의 여성항일운동으로 평가받는다. 제주 해녀들의 항일운동을 기념해 구좌읍 하도리에 기념탑을 세우고 공원을 조성해 놓았다. 오후 늦은 시간에 찾은 공원에는 운동 삼아 왔다갔다하는 여성만 보일 뿐 참배객은 아무도 없었다. 일제의 수탈에 제주도 해녀들도 예외가 되지 못했다. 이렇다 할 산업이 없는 제주에서는 해녀들의 채취 활동이 일제로서는 독보적인 수입원이었다. 1920년대 중반 일제는 해녀들의 권익 보호를 명분으로 만든 제주해녀어업조합을 어용화했고 해녀들이 힘들게 거둔 해산물을 헐값에 매입하는 등 횡포를 부렸다. 입거 수수료와 세금도 과다 징수했다. 1931년 6월 해녀들은 공동 투쟁에 나서기로 했다. 12월에는 관제조합 반대, 수확물에 대한 가격 재평가 등의 요구 조건과 투쟁 방침을 정하고 대표를 선출했다. 이듬해 1월 7일 세화리 장날에 해녀 300여명이 1차 시위에 나섰다. 시위대가 구좌면사무소에 이르자 면사무소 측이 요구를 들어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일제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마침 신임 제주도사 다쿠치 데이키가 1월 12일 세화장날 시찰에 나선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장날 세화리 장터에 해녀들이 모여들었다. 구좌면 하도리·세화리·종달리·연평리와 정의면의 오조리·시흥리 등 6개 마을 해녀들이었다. 손에는 호미와 비창(전복 따는 도구)을 들었다. 해녀들은 다쿠치가 탄 차량을 에워쌌고 다쿠치는 굴복한 척하며 요구 조건을 5일 안에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거짓 약속이었음은 금세 드러났다. 일제는 제주 지역 청년운동가들을 배후세력으로 규정했다. 약속을 지키기는커녕 23일부터 하도리 오문규, 종달리 한향택과 한원택, 세화리 문도배와 문도후 등을 각종 죄목을 붙여 검거하기 시작했다. 24일에는 이에 격분한 해녀 1500여명이 세화주재소로 몰려들었고 일경은 무장경관을 출동시켜 해녀 34명을 포함한 50여명을 체포했다. 27일에는 종달리 해녀 100여명이 붙잡힌 사람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지만 진압당하고 말았다. 주동자로 찍힌 해녀 부춘화, 김옥련, 부덕량은 6개월 동안 옥살이를 했다. 이들 말고도 일제에 검거돼 고초를 겪은 해녀가 100여명에 이르렀다. 세 명의 해녀는 항일운동을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을 받았다.논설고문 sonsj@seoul.co.kr
  • 주호영 “文, 연평도 포격 10주기에 휴가 가놓곤 메시지 하나 없다”(종합)

    주호영 “文, 연평도 포격 10주기에 휴가 가놓곤 메시지 하나 없다”(종합)

    “3년 연속 6·25 기념식 당일 행사 불참에천안함·연평도 전사자 기리는‘서해수호 날’ 행사도 계속 불참”주호영, 전날 ‘남북경협’ 주문한 이인영에도“연평도 北도발을 ‘분단 탓’으로 희석 의심”野 “종전선언 허상만 좇아…또 농락당할 것”北 연평도 포격에 집 불타고 국민 4명 사망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4일 연평도 포격 10주기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하루 연차 휴가를 내면서 아무런 메시지도 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전날인 23일 올해 첫 휴가를 사용했다. 국민의힘은 여권이 연평도 포격 10주기를 일부러 외면했다고 비난했다. “文, 중요 행사마다 6·25 전사자 의도적 빠뜨려 국민 불안·불신” 주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취임 후 3년 연속으로 6·25 기념식 당일 행사에 불참했고, 현충일 기념사에서도 6·25와 북한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으며, 천안함과 연평도 전사자를 기리는 서해수호의 날 행사에도 계속 불참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세월이 흐르니까 국민 기억에서 희미해지고, 정부도 애써 이런 날을 무시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께서 3년 연속 중요한 행사마다 6·25 전사자들을 의도적으로 빠뜨리는 것 때문에 많은 국민이 불안해하고 불신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10년 전 북한의 도발로 4명의 희생자가 나온 연평도 포격에 대해 종전선언 등을 거듭 언급한 문 대통령이 북한을 의식해 언급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는 비판으로 해석된다. 실제 북한은 2010년 11월 23일 서해 북단 연평도를 향해 170발이 넘는 포탄을 퍼부었다. 1953년 휴전 이후 민간인을 상대로 한 북한의 첫 군사 도발이었다. 당시 우리 국민의 집이 불타고 해병대 장병 2명과 민간인 2명 등 모두 4명이 목숨을 잃고 3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포탄에 맞아 화염에 휩싸인 집과 그 집이 흔들릴 정도로 울렸던 폭발음을 기억하는 연평도 주민들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 겪었던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있다.연평도 주민 150명, 포격 1년 뒤에도불안·불면증 등 외상 후 스트레스 2016년에도 49명 트라우마 등 고위험군 상당수 연평도 주민들이 북한 포격 사태 이후 장기간 심리치료를 받았다. 인천 한 병원이 포격 사태 1년 뒤 연평도 주민들을 대상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PTSD) 검사를 한 결과 대상자 150명 가운데 상당수가 높은 스트레스 수치를 보였다. 당시 1년이 지난 시점까지도 일부 연평도 주민들은 신경안정제를 복용했고, 보일러나 냉장고의 작은 소음에도 놀라 잠에서 깨는 등 불안과 불면증을 호소했다. 2016년에도 옹진군보건소가 연평도 주민 206명을 대상으로 정신건강 검사를 한 결과 49명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나 우울증 등을 앓는 고위험군에 속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교롭게도 연평도 포격 10주기에 이뤄진 문 대통령의 휴가에 대해 청와대 안팎에서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 최근 외교 강행군 일정을 고려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野 “文, 휴가에 연평도 포격엔 그 흔한 SNS 입장도 안내더니 美 의원엔 축전” 배준영 대변인은 서면 논평을 통해 “정권의 외면은 상처를 치유하고 비극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손 놓겠다는 무언의 선언인가”라고 말했다. 그는 “총탄에 유명을 달리한 애국자들을 외면하는 한 대한민국을 나라다운 나라라고 할 수 없을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는 응답하라”고 촉구했다. 서울 송파병 당협위원장인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페이스북 글에서 “연평도 사태 10주기에 국가안보의 최고 책임자인 문 대통령은 휴가를 내고 그 흔한 SNS 입장도 내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그는 “문 대통령이 미국 친한파 하원의원의 재선에는 축전을 보냈다”며 “집안 제삿날에 이웃집 잔치 놀러가는 격이다. 참 개념 없는 대통령”이라고 비난했다.“이인영, 기업 총수에 남북경협 역할 주문비핵 평화 어떤 조치도 없는데 부적절” 주 원내대표는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연평도 포격 사건에 있어서 북한의 잘못을 문제 삼지 않는 듯한 국회 토론회 발언도 정조준했다. 주 원내대표는 이 장관이 전날 국회 토론회에서 연평도 포격 10주기를 언급하며 ‘분단의 가슴 아픈 현실’이라고 말한 것과 관련해서는 “북한의 도발을 분단 탓이라는 중립적 용어를 써서 희석하려는 의도 자체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이종배 정책위의장은 “이인영 장관이 어제 기업 총수들을 만나 대북 제재 완화 가능성을 언급하며 남북경협 역할을 주문했다”면서 “북한 비핵화 문제 등 한반도 평화를 위한 어떤 조치도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뜬금없고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비판했다.이인영, 재계 만나 “남북경협 중요”“북 관광 등 호혜적 경협사업 추진” 전날 이인영 장관은 2018년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당시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방북했던 기업인 등 삼성·SK·LG·현대차그룹 등 4대 그룹을 비롯한 재계 관계자들과 만나 남북 경제협력 등 향후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정부와 기업의 역할을 주문했다. 이 장관은 이날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재계 인사들과의 오찬간담회에서 “남북 경협의 문제는 먼 미래의 문제보다는 예상보다 좀 더 빠르게 시작될 가능성도 전혀 없는 게 아니다”라면서 “우리로서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 앞서 북한을 남북 간 협력의 장으로 나올 수 있도록 만드는 전략적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장관은 또 “큰 정세로의 변환기에 정부와 기업이 역할 분담을 통해 남북경협의 시간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거듭 신호를 보냈다. 이 장관은 북한 지역 개별관광과 철도·도로 연결사업, 개성공단 재개 등을 언급하면서 “그동안의 과제를 착실하게 준비하고 아주 작지만 호혜적인 경협 사업들을 발굴·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남북 경협 비전을 마련하기 위해 정부와 기업 간의 만남을 정례화하자는 제안도 내놨다.이인영 “폭파된 남북연락사무소 재개가 ‘평화의 시간’ 시작 신호탄” “서울·평양에 연락소·무역대표부 설치 소망” 앞서 이 장관은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남북연락·협의기구의 발전적 재개 방안 모색’ 토론회의 개회사에서는 “남북의 상시적 연락선의 복구는 ‘평화의 시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장관은 지난 6월 북한이 대북전단 살포를 문제 삼으며 170억원의 혈세가 들어간 개성공단 내 연락사무소 청사를 일방적으로 폭파한 일에 대해선 “북의 행동은 평화로 가는 우리 국민의 기대와 열망을 정면으로 배반한 아주 잘못된 행위였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어떠한 시련과 어려움이 있더라도 남북관계를 평화 번영의 미래로 만들기 위해 우리는 다시 또 나아가야 한다”면서 “쉽진 않겠지만 무너진 연락사무소를 적대의 역사에 남겨두지 않고, 더 큰 평화로 다시 세워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장관은 한발 더 나아가 “서울·평양 대표부를 비롯해 개성, 신의주, 나진, 선봉지역에 연락소와 무역대표부 설치도 소망해본다”라고 말했다.野 “안보상황 하나도 나아진 게 없다”“연락사무소 폭파·국민 총살에도 잠잠” 야권은 이러한 정부 행보에 대해 연평도 포격 10주기를 맞아 순직 장병과 희생자들에게 애도를 표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대북관을 정면 비판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비대위 회의에서 “연평도 도발은 휴전협정 이래 우리 영토와 국민 대상으로 대규모 군사 공격을 감행한 대표적 사례”라며 정부를 향해 “안보에 구멍이 뚫리면,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는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라”고 했다. 비대위원들은 이날 회의에 앞서 희생자에 대한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김은혜 대변인은 논평에서 “1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안보 상황은 그때보다 나아진 게 없다”며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형체도 없이 폭파하고, 우리 국민을 총살하고 불태워도 이 정부는 잠잠하다”고 비판했다. 김 대변인은 “정부가 종전선언이란 허상만 좇고 있다. 북한이 만만한 남한을 향해 언제 다시 우리의 영토와 국민을 농락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고 덧붙였다.안철수 “北, 연평도 포격 당시나 지금도제대로 된 사과 없이 우리 탓으로 돌려” 安 “김정은 전통문에 감읍, 이게 정상 국가냐”유승민 “文, 김정은 앞에 서면 한없이 작아져”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연평도 포격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북한은 제대로 된 사과나 유감 표명 없이 모든 것을 우리 탓으로 돌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안 대표는 “이 정권 사람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전통문 한 장에 감읍하고, 우리 국민에게 월북 프레임을 뒤집어씌웠다”며 “이러한 태도가 정상적 국가가 취할 자세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유승민 전 의원은 이날 대전 현충원에서 열린 연평도 포격 10주기 추모식을 찾았다. 유 전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북한에 당당하게 사과를 요구해달라’는 고(故) 서정우 하사 어머니의 외침에 국군 통수권자로서 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유 전 의원은 이날 “10년 전의 북한과 지금의 북한은 조금도 변한 게 없고, 변한 건 우리 대한민국”이라면서 “김정은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문 대통령과 국방부, 민주당…변한 건 이들이다. 10년전 북한의 포탄에 산화한 두 해병용사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는 건 살아남은 우리들 몫이다”라고 강조했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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