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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형제품” 가전사 판촉전(업계는 지금…)

    ◎“우리생활 맞게” 아이디어 백출/「김치냉장고」·「삶는 세탁기」에 「물걸레청소기」까지 「한국형 가전제품으로 승부를 건다」오는 7월부터 국내 유통시장의 개방 폭이 더 넓어짐에 따라 국내 가전업체들이 내수시장을 사수하기 위해 안간힘이다.국내에 진출할 수 있는 외국 유통업체의 기준은 현재 「점포수 10개 이하,매장면적 3백3평 미만」에서 하반기부터 「20개 이하,9백8평 미만」으로 완화된다.이렇게 되면 전문점 형태의 외국 유통업체들이 대거 상륙,내수시장에서 국산품과 외제품의 경쟁이 보다 뜨거워질 전망이다. 가전업체들은 국내시장에서 외제품을 물리치려면 신속한 사후서비스와 독특한 한국형 제품의 개발이 필수적이라는 판단 아래 2∼3년 전부터 한국형 제품의 개발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물걸레 청소기,뚝배기 전자레인지,가마솥 보온밥솥,삶는 세탁기에 이어 올들어 잇따라 선보인 김치냉장고,한국형 저소음청소기등이 이같은 노력의 결실이다. ○유통시장 개방 대응 금성사는 외제품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길은 기술개발과 생산성향상외에도 우리 생활과 기호에 맞는 가전제품의 개발이 절실하다고 보고 91년부터 한국형 가전개발에 노력을 기울여왔다.91년 말 온돌방과 마루문화에 맞는 「물걸레 청소기」를 한국형 1호로 내놓은 뒤 구수한 전통 밥맛을 살리는 「가마솥 보온밥솥」,찌개요리도 할 수 있는 「뚝배기 전자레인지」,움푹 팬 밥공기와 국그릇의 밥풀과 음식찌꺼기를 깨끗이 씻어주는 「한국형 식기세척기」를 개발했다. 올들어서도 지난 1월 경상대등 4개대학과 2년간의 산학연구 끝에 김장김치 특유의 맛을 사시사철 즐길 수 있다는 「김치독 냉장고」를 개발,시판에 나섰다. 김치독 냉장고는 땅속의 온도가 섭씨 5도 쯤인 소설과 대설 사이에 조상들이 땅을 파고 김장독을 묻은 데 착안,가장 맛있게 익고 장기간 보관되도록 숙성시간과 온도를 자동조절하는 퍼지제어 방식을 택했다.개인의 입맛에 따라 풋맛과 김장맛,익은 맛의 3단계 숙성코스를 적용하고 숙성시간도 16∼36시간으로 조절할 수 있게 했다. 김치 맛은 숙성온도에 따라 좌우되는데 주방이나 베란다처럼 온도가 일정치 않은 곳에서 김치를 익히면 김장김치 특유의 향이 없어지고 비타민C와 같은 영양소가 파괴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도 「실생활과 밀접한 가전개발」이라는 모토 아래 지난 90년 2월 압력솥 개발을 시작으로 「약탕기 채용 전자레인지」등 한국형 제품을 내놓고 있다.작년에는 흰옷을 즐겨입는 우리 습관에 착안,「삶는 세탁기」를,지난달에는 김치냉장고를 선보였다. 이 김치냉장고는 89년 서울대와 산학협동에 착수,개발한 제품이다.김치전용 냉장고와 김치 칸을 별도로 갖춘 분리형 김치냉장고등 두가지 개발품 가운데 우선 김치전용 냉장고부터 판매 중이다. ○소비자들 욕구 충족 삼성은 「김치를 오래오래,맛있게 저장하고 싶고 김치냄새가 배는 것을 싫어하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제품이라고 자랑한다.투도어로 돼있어 김치를 많이 담그는 가정은 위 아래 두칸을 모두 김치실로 쓸 수 있고 그렇지 않은 가정의 경우 위칸은 김치실,아래칸은 일반식품의 보관실로 쓸 수 있다. 삼성은 삶는 세탁기와 김치냉장고등 주요 한국형 제품에 대해서는 특허권까지 따 놓아 유통시장 개방에 따라 격화될 판매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대우전자 역시 「빨래를 두드려 삶아 빠는」 기능을 지닌 공기방울 세탁기로 돌풍을 일으킨데 이어 최근 우리 음식문화에 맞게 데치기,데우기,삶기등의 기능을 채택한 한국형 전자레인지를 내놓았다. 또 화면표시가 한글로 나오는 컬러TV,반찬선반등 한국인 식생활에 맞게 설계된 「셀프 냉장고」에 이어 기존 청소기보다 소음을 4분의 1로 줄이고 한국주부의 체형에 맞게 한손으로 쉽게 다룰 수 있는 저소음 진공청소기도 개발,판매중이다.
  • 최익현선생/다시 새기는 그 충절(이달의 독립운동가)

    ◎서울신문사·국가보훈처 공동선정/을사조약 체결되자 “항일의병” 횃불/74세 거유,“조약은 무효” 전북 태인에서 거병/대마도 유배뒤 순국… 전국적 배일투쟁 “점화”/“나라위해 생사초월” 무성서원연설 민족혼 일깨워 노옹의 항쟁은 열하루밖에 되지 않았다.그가 이끄는 의병의 병력과 무기도 보잘 것 없었고,정부측의 반응도 냉담했다.정부는 일제의 눈치를 보느라 오히려 해산명령을 내릴 정도였다. 면암 최익현­1906년 6월4일부터 14일까지의 「뜨거운 날들」은 선생의 이름과 함께 역사에 붉게 각인되어 있다. 그것은 한반도에 요원의 불꽃으로 번지게 한 의병항쟁의 불씨를,선생이 지폈다는 뜻만으로서가 아니다.선생은 「나라가 흥하는 것은 우리의 문화 우리의 마음을 잃지 않는데 있으며,인권도 중요하고 민권도 중요하지만 국권 없이는 모든 것을 잃는다」는 진리를 가르치며 이같은 독립정신을 온몸으로 실천한 민족주의자였기 때문이다. ○경기도 포천 출생 당대 유학의 거봉으로 74세나 된 선생이,국권회복을 부르짖고 구국창의의 깃발을 높이 든 것은 일관된 삶의 자세에서 비롯됐다. 1833년 경기도 포천군 가범리에서 출생한 면암은 일찍이 이항로 문하에서 「애국여부 우국여가」의 사상을 이어받고,그 이념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철저하였다. ▲1871년 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리자 그 부당함을 상소 ▲고종의 신임을 얻어 호조참판이 된 뒤,누적된 적폐를 바로 잡으려다 오히려 기득권층의 반발을 받아 제주도로 유배 ▲1876년 병자수호조약을 결사반대하며 지부소(도끼를 가지고 상소를 올리며 답을 기다리는 것)를 올렸다가 흑산도로 유배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고 단발령이 공표되자 청토역복의제소를 올려 항일운동을 전개 ▲1905년 소위 을사5조약이 체결되자 조약의 무효화와 박재순·이완용·이근택·이지용·권중현등 「오적」처단을 주장한 청토오적소를 올린 일등은 흐트러짐 없는 인간 최익현의 한 단면이다. 1906년 3월15일.선생은 가묘에 하직을 고하고 집안 사람들과 이별,집을 떠나기로 결심했다.상소만으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그러나 선생은 다시 한번 참담함을 맛보지않을 수 없었다.판서 이용원·김학진·참판 이성렬·이남규등에게 서신을 보내 「함께 국란에 대처할 것」을 바랐으나 한사람도 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 선생은 애제자 고석진의 소개로 「태인사람 임병찬」을 만나게 된다.임병찬은 임실군수까지 지내다가 왜인들의 정치를 마다하고 사퇴한 올곧은 선비였다. 『호남의 선비들이 장차 의병을 일으키려 하는데 모두 선생을 맹주로 생각하고 있으므로 그곳으로 가셔야 하겠습니다』 이후 두달 남짓동안 거의가 준비됐다.시골 포수들로부터 총칼이 모아지고,2백여명의 우국지사가 모여들었다. 6월4일.태인 무성서원에서 있은 선생의 강회는 항일의병의 역사적 분기점을 이룬 날로 기록된다. 『지금 왜적들이 국권을 농락하고 역신들은 죄악을 빚어내 오백년 종묘사직과 삼천리 강토가 이미 멸망지경에 이르렀다.나라를 위해 사생을 초월하면 성공 못할 염려는 없다.나와 함께 사생을 같이 하겠는가!』 불꽃에 민족혼을 일깨운 의병들은 이날 정읍에 무혈입성,총칼과 탄환을 거두고 군사를 모집했다.또한 일제에 16개 죄목을 들어 국권의 침략과 국제적 배신행위를 통렬하게 지적한 장문의 규탄서를 보내기도 하였다. 그후 정읍에서 흥덕으로,다시 순창 구암사에서 순창읍내로 행군하였을 때에는 의병의 수가 5백여명을 넘게 되었다.힘을 얻은 「면암의병」들은 파죽지세로 곡성을 거쳐 남원으로 밀고 들어 가려 했으나,순창으로 회군할 수밖에 없었다.남원 방비가 워낙 견고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의병은 8백여명으로 불어났다. 6월11일.광주관찰사 이도재가 사람을 보내 고종의 칙지를 전해왔다.선생은 큰 기대를 갖고 이를 펼쳐 보았으나 그 내용은 엉뚱하게도 『의병을 해산하라!』는 것이었다. 면암은 『이미 소장을 올려 의병을 일으키게 된 연유를 말씀 드렸으니,나의 진퇴는 관찰사의 직권으로 지휘할 바가 아니다』는 답장을 보냈다.그리고 다시 남원진입을 꾀했다. ○고종,의병 해산령 그러나 남원을 지키고 있는 부대가 왜군이 아니고 우리측 진위대임이 확인되었다. 진위대(경군)측은 『대감이 민병을 해산시키지 않으면 전진이 있을 뿐』이라는 통보를 세차례나 보내왔다.선생은 괴로워했다. 선생은 임병찬에게 『동포끼리 서로 박해하는 것은 원치 않으니 즉시 해산시키라』고 명령했다.쉽사리 흐트러지지 않던 의병들은 눈물을 머금고 해산되었다.선생 곁에 끝까지 남은 의병은 12명 뿐이었다. 6월14일.선생일행은 서울로 압송되었다.그리고 우리 사법부가 아닌 일제에 의해 재판을 받게 된다. 「대마도 감금 3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선생은 1907년 1월1일 단식 끝에 한많은 적지에서 숨을 거두었다. ○선비정신의 귀표 역사학자 박성수교수(정신문화연구원)는 면암의 항일운동과 관련,『선생은 1876년 개항 이후 줄곧 외침을 경고했으며 이에 맞서 나라를 구하는 길은 오로지 국론을 통일해 일치단결하는 것밖에 없다고 부르짖어 온 분이었다』며 『그러므로 선생이 70고령을 무릅쓰고 무기를 들었다는 소식은 단지 그것만으로도 여간 큰 충격이 아니었는데 외딴 섬 대마도에서 순국하셨다는 소식은 온 국민의 가슴에 칼을 꽂은거나 다름없는 슬픔과 분노를 안겨 주었다』고 평가했다. 선생의 항쟁 이후 호남을비롯한 전국 각지에서는 우후죽순처럼 의병들이 일어난 점만 보아도 당시 선생이 위대한 민족주의자로서,국민들의 정신적 지주였다는 점이 입증되는 셈이다. 선생은 순국직전 임병찬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죽음에 있어 마땅히 죽을 곳에서 죽으면 삶보다 부끄러울 것이 없다.나 이제 죽을 것이니 황상에게 올릴 마지막 소를 비밀히 간직하였다가 본국으로 돌아 가는 날 전해주길 바란다』 고국으로 돌아온 선생의 영구행렬 앞에는 「춘추대의 일월고충」이라는 깃발이 나부꼈다.
  • 서양화가 도문희씨(이세기의 인물탐구:13)

    ◎신선한 감각으로 원색의 미 묘사/변화에의 열정으로 새 조형방법창출 온힘/「정적질서」 보다 동적 유동세계 표출 돋보여/부친 도상봉화백 그늘벗어나 독자적 예술세계 추구 그림속의 꽃들은 모든 꽃이 활짝 피어 꽃바다를 이룬다.캔바스의 한정된 공간이 아닌 드넓은 벌판에 얼마든지 펼쳐진 채 꽃들은 꽃이 파리 바람에 흩날리듯 꽃향기 퍼뜨릴 듯 꽃마다 싱싱하게 살아 숨쉬고 있다. 화가 도문희의 회화세계는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유랑의 필치로 원근법과 사실적기법을 적절하게 원용하면서 큐비즘과 포비즘의 요소를 포함시킨 새로운 조형방법에 능란하게 반응하고 있다」는게 원로미술평론가 이경성씨의 말이다. 「언제나 신선한 속도감과 힘을 머금고 있는 그의 화면은 정적인 질서의 세계가 아닌 동적인 유동의 세계를 절제와 생략으로 탐구하면서 격동속에서 미의 원형을 찾아내고 있다고. 도문희씨는 과연 몸속으로부터의 열망과 열정이 끓어 넘치는 힘의 화가다. 그의 작품에서는 물론 그의 일상생활에서도 잠시도 한군데 오래 머물지 않는다.서울에 있는가하면 뉴욕에 샌프란시스코에 콜로라도나 산타모니카 라구나 비치에서 또는 괌도나 하와이의 빅아일랜드에서 화사하고도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그곳이 어디든지간에 그가 머물고 있는 곳에는 음악이 있고 음악의 흐름에 따른 경쾌하고 격렬한 사색적인 붓놀림이 그치지 않는다.자신의 예술의지와 방법을 위해 그는 자극적인 체험을 얻는데 시간을 낭비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다. 「한줄기 빛이 물체에 닿는 순간,그 빛은 물체위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것」이라고 말한 르노아르의 방법처럼 도문희는 꽃이면 꽃이라는 대상을 공간이동시키 듯이 생명감 그 자체로 자연스럽게 화면속에 옮겨놓고 있다.그래서 그의 꽃은 어느때는 무복을 입고 회전동작을 하는 발레리너처럼 생기발랄한 율동적터치로 음악에서의 비오렌토와 알레그리시모의 리듬감을 팔팔하게 되살리기도 한다. ○생명감 화면에 담아 그림을 그리지 않는 일상생활에서의 그는 될수록 그림과 연관시킨 일들 속에 참여하고 있다.그래서 공식적이거나 형식적인 행사자리보다연극이나 영화 한편 아르튀르 랭보의 「갈증의 희극」을 읽는 것이 그림에 대한 감동을 유발시켜준다고 생각한다. 음악이 없는 도문희란 도무지 상상하기 힘들다.클래식뮤직에서 디스코나 록뮤직,흘러간 닐다이아몬드나 젤리리에 이르기까지 그는 몸속의 세포 하나하나가 신들린 감흥에 물들여지기를 원한다. 아니면 그는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그랜드캐니언의 장엄한 황혼,달빛아래 사슴과 노루들이 뛰어노는 멕시코국경,크라이드강변의 성곽과 끝없이 불어오는 북풍 속에서 어디선가 「히드크리프!」를 부르는 캐서린의 목소리… 경탄과 감탄의 탄성이 절로 질러지는 눈부신 풍광을 찾아 또하나 새로운 여행계획을 세워야 한다. 초기에는 동양화에서의 삼원법과 같은 느낌으로 색채와 형태를 극대화시키면서 인물이나 꽃의 표현에서 몰골법을 사용하기도 했으나 이제는 그 대상이 무엇이든 극도의 기쁨과 즐거움으로 이를 승화시켜 감각화된 화면효과를 과시해 보이고 있다. 이런 심적충만을 위해 그는 시간과 정열을 아낌없이 투자해 왔다고 할 수 있다.그리고캔버스와의 오랜 대결끝에 빛이 공간속에 흐르듯 몸속에 정제돼 있던 예술에너지를 이끌어 조형언어를 구축해 나갔다. 도문희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최상의 환경에서 자랐다.나혜석의 불우하고 외로웠던 말년의 생애를 뺀다면 그의 화려함과 정열과 적극적이고도 진취적인 창조의식은 초기의 나혜석을 연상시키는 구석을 많이 지니고 있다. ○초기의 나혜석 연상 그의 부친은 우리나라 현대미술사에서 선도자의 한 사람이었던 바로 도상봉화백이다. 부친의 권유로 그림을 시작했으나 화가로서의 열망·야망이 꿈틀거리는 순간 그는 그림으로 향하는 두껍고 높은 벽을 스스로 힘차게 꿰뚫었다.물론 한사람의 여성으로서의 행복이 아닌 화가로서의 대성을 목표로 정하자 시련과 고통을 감수하는데 그는 주저가 없었던 것같다.고통없는 성취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도상봉화백의 그늘은 예상외로 넓고 컸다.동경미술학교 출신인 부친은 국전창설멤버에다 대한미협위원장 한국미협이사장 예총회장 문총최고위원 예술문화윤리위원 위원장 등등 화단의 중책을 두루거친 거봉으로 도문희는 언제나 「도상봉씨의 딸」로 불리워야했다.그는 부친의 이 후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화격도 특성도 다른 작품으로 이를 극복하고자 했으나 그 역시 쉽지 않았다. 혜화국민학교에 다닐 때는 발레리너를 꿈꾸면서 송범무용연구소에 넘나들다가 엄격한 부친의 반대에 부딪쳐 경기여고 때 그림을 시작했다.대학에 들어가기전에는 부친의 친한 친구이기도 한 김인승씨에게 그림을 사사,「화가지망」을 굳게 결심하고 정확한 데생,탄탄한 기본실력을 닦아 나갔다. 그때는 동아음악궁전이며 종로의 쎄시봉·르네상스음악실에서 하루종일 살다시피 했고 클래식판 수집광에다 블라맹크와 칸딘스키 루오에 심취했었다고 한다. 본래부터 화려하고 솔직한 성격이어서 그는 무슨일에든 쉽게 좌절하거나 좌절해도 실망하지않았다.결과가 안좋을땐 「좋은 경험」으로 돌릴만큼 낙천적인 편이다. 그에게 그림그리기를 권유한 부친은 막상 그에게 붓한번 바로잡아준적이 없었다.오히려 대학재학중 국전에 출품하기위해 열심히 그려논 그림위에다 가위표를 해논적이 있을 뿐이다.도문희는 국전에 출품하고 싶었다.자신의 작가적 재능과 자질을 인정받을수 있는 미술관문이었으나 부친이 심사위원·운영위원·고문등으로 연루되어있어 작품을 자유롭게 낼수없는것이 불편했다.3학년과 4학년때 부친몰래 가명으로 출품해서 연2회 입선했을때도 주변에서 「부친의 후광」으로 아는 것이 억울해서 아예 국전출품은 포기하고 말았다. 부친에게 영향을 받았다면 어릴때부터 아틀리에가 있는 분위기에서 아버니가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는 것뿐.오히려 동경여자미술학교 출신인 어머니 나상윤씨가 『나는 아버지때문에 그림을 포기했지만 너만이라도 나대신 열심히 하라』는 배려의 힘이 더 컸다고 할수있다. ○예술적 분이기서 성장 대학졸업후 대한미협과 이대출신그룹의 녹미회를 중심으로 그룹활동을 펼치면서 환상과 기억속의 사물들을 거칠고 대담한 야수파적인 축제분위기로 이끌어 화단의 주목을 한데 모았다. 그러나 기왕에 주어진 화가로서의 과정을 답습하는 형식에서 벗어난다는 차원에서 69년 첫번째 개인전을 연후 그는 미련없이 모든것을 떨쳐버리고 유럽으로 떠났다. 영국과 독일을 거쳐 스코틀랜드에 정착하여 그는 북구의 바다와 하늘의 변화표현에 현혹된 시기를 보냈다. 남청·담청·군청·감청·선록 보라와 옥색에 이르기까지 서로다른 수백가지 청색으로 출렁이는 바다와 천사의 날개 같은 구름의 흐름에 홀려 그는 마치 피카소의 청색시대를 연상케하는 청색조 시기를 이곳에서 거쳤다. 「시간따라 바람따라 하늘은 하늘대로 바다는 바다대로 단 한장면도 같은 색조,같은 표정을 보인적이 없었다」는 것과 「줄이엣의 푸른얼굴,로미오의 푸른눈매」머리카락과 머리에 장식한 액세사리까지도 굵고 짙은 푸른 선묘로 보여준것이 그시기의 작품들이다. 터질듯한 원색이 분방하게 펼쳐진 그 아름다움이 독특하여 독일의 벰버그 스코틀랜드 그린옥등 지방신문들은 「푸른 잎에 매달린 빗망울처럼 투명한 기쁨이 깃든 경관등으로 크게 취급한바 있다. 그의 부친이 딸의 그림을 칭찬한것은 77년 조선화랑 초대전때다. 그때 전시오프닝에 왔던 여러 화가 평론가들이 도문희 그림의 「축제분위기」를 호평하자 단지 한마디 『마치 이 세상이 천국임을 아는것같다』고 했었다.같은해 도상봉씨는 타계했고 도문희로서는 그때 그 말이 부친에게 들은 유일한 「촌평」이 된셈이다.서울에서는 지난 30년동안 끊임없는 우정의 교분을 갖고있던 선화랑의 김창실씨(화랑협이사장)와 진화랑의 유진씨의 초대전에 응하고 있다. 누구보다 도문희의 신선한 감각과 번뜩이는 젊음의 화면을 아끼는 김창실씨는 도문희의 「장미를 곧잘 「살아있는 보석」에 비유하고 「하탄과 하화가없는 그러나 화치의 극치」의 작가라고 말한다.화단의 대선배인 천경자씨는 「그의 식을줄 모르는 정열」도 정열이지만 무엇보다 「화가의 얼굴을 하고있는 화가」라는데 호감을 갖기도한다. 그는 여전히 무엇에 구애되지도 소속되지도 않는다.자신이 한일을 후회하지않는다.서울에 오면 이제는 다자란 딸과 아들과 친구처럼 어울려다닌다. 그는 화려한 치장을 즐기고 여러층의 사람들과 다양한 교분을 트고있지만 의외로 보수적이어서 안하는것 가리는것 투성이다.자유분망과는 상관없이 「맥주 한모금」등에는 남의 눈치를 보는 면이 있다. 뉴욕에서는 소호를 중심으로 일릭 드라곤루드 그레고리비치 조각가 스티븐 래등과 작품활동을 펼치고 그중 일릭 드라곤은 오는 5월 조선화랑 초대전을 주선해주기도 했다. 그는 지금 비로소 「화가의 길」을 걷게해준 부친께 감사하고 있다. 언제나 아무런 근심도 걱정도 없어보이는 그에게 누군가 『무엇이 그리 행복하냐』고 물었을때 그는 오히려 『슬픔과 아픔은 남에게 보이지 않는다』고 대답한 적이 있다. 축복받은듯 활짝 핀 그의 꽃들은 아마도 남이 모를 아픔과 시련을 딛고 피어난 것이기에 보는이에게 보는것만으로도 진한 감동의 빛을 전달해주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의 이 빛의 힘은 조금도 퇴색하는 기색없이 더욱 영롱하고 선명하게 그가 좋아하는 음악과 바람의 흐름에 실려 그의 화면속에서 기쁨의 빛으로 용해되고 있는것 같다. □연보 ▲1938년 서울 종로구 명륜동출생.서양화가 도상봉씨(77년 타계)와나상윤여사(87)의 1남 2녀중 막내 ▲57년 경기녀고졸업 ▲59·60년 국전입선 ▲61년 이화녀대 미대 서양화과졸업(김인승·이준·유경채·심형구사사) ▲80년 뉴욕 그래픽 버딘스 아카데미 ▲69∼72년 유럽체류(영국·옥일·스코틀랜드) 그린옥 아트갤러리·스코틀랜드 글래스코우 아트랠러리·렌프레쉬어 아트갤러리 등 개인전시 ▲73년 서울개인전(미술회관) ▲74년 아시아 련대작가전(일본 도쿄) ▲76년 세계여류미술전(인도네시아) ▲77년 서울 조선호텔 갤러리 초대개인전 ▲79년 진화랑초대 제4회 서울개인전 ▲80∼81년 미국체류(뉴욕맨해턴·버지니아 우드빌리지) 80년 비스비(Bisbe)전참가 ▲81∼84년 독일 프랑크푸르트·벰버그(Bemberg)풀다(Fulda)빌트프릭켄(Wildfricken)개인전 ▲87년 서울선화랑 초대「장미」개인전 ▲89년 〃 진화랑 초대 개인전 ▲91년 〃선화랑 초대 개인전 ▲91년 〃정화랑〃 〃 ▲92년 MBC후원 부산호텔 미술관·아천미술관초대전 ▲93년1월 LA 앤드루 셔(Andrew Shire)갤러리 초대전 ▲한국미협·녹미회 회원 ▲작업실 서울 용산구 이태원2동 ▲국립현대미술관 간 한국서양화대관(작품수록)
  • 21세기로 가는 길(정근모/과학평론)

    ◎90년대는 두뇌기능연구 시대/꿈이 아닌 인공지능 개발… 과학자들의 관심을 인간이 갖고 있는 기능 중 가장 신비롭고 놀라운 것이 두뇌가 갖고 있는 기능이다.돌이 갓 지난 갓난아이가 한가지 두가지 배워가는 것을 보면 배우는 기능이 얼마나 신통한가 하고 감탄한다.비록 마음껏 언어로 표현은 못하지만 부모를 알아보고 자기의 행동이 어른들에게 용납이 되는지 안되는지를 판단하는 것을 보면 어린아이들의 두뇌들이 갖고 있는 판단력에도 놀랄때가 많다.성장과정에 있는 유아들의 언행이나 심리발달의 오묘하면서도 기특한 점들을 관찰하면 인간두뇌기능의 진수의 일면을 볼수 있다.이러한 순수한 상태에서의 두뇌기능의 발달을 연구하면 바로 인간두뇌연구의 첩경을 발견한다는 발달심리 학자들의 접근방법에 크게 호응이 간다. 인간의 사물 인식력,새로운 지식의 이해력과 관찰한 사항들의 기억 또는 주어진 여건을 통한 추리력 등은 인류문명의 오랜 역사속에서 중요한 연구과제로 취급되어 왔다고 할 수 있겠다.최근에 이르러 두뇌기능과 지능체제에 대한연구에 급격한 진전이 일어나고 있고 복잡한 생태계 현상의 이해가 필요해져 인간의 행동분석이라든지 삶의 질을 제고해야겠다는 의욕이 증진됨에 따라 21세기를 향한 핵심 분야로서 두뇌기능 연구가 각광을 받고 있다. ○최근 연구성과 급진전 두뇌기능 연구는 신경생리학적 연구,발달심리학적연구 및 분자생물학적 연구 등으로 연구의 접근방법을 대별할 수 있다.신경생리학적 연구는 금세기 중반에 호지킨(Hodgkin)과 헉슬리(Huxley)가 신경망의 전기적인 모형을 제시한 이후 전자공학의 발전과 연계되어 빠른속도로 계량화되면서 응용과학의 참신한 분야로 발전하고 있다.1980년대 홉필드 망(HopfieldNet)과 「역전파」(BackPropagation)이론이 제시된 후로는 형상인식이나 최적화 과정에 연구결과의 실제응용까지 가능해져 두뇌기능연구가 첨단기술개발과 직결되고 있는 것이다.지능체계의 물리학적및 공학적인 이해를 토대로 인간의 학습방법이나 복합적인 판단과정이 조직화됨으로써 인공지능개발이 결코 꿈의 일이 아님을 실증하고 있는 것이다. 발달심리학적인 두뇌기능의 연구는 다른 방법론보다 훨씬 역사도 깊고 내용도 풍부하다.최근에는 이 분야에서도 인지과학적인 방법론의 도입과 더불어 전산학 등의 공학분야가 접속됨으로써 직관적인 접근 방법보다도 훨씬 강력한 종합분석이 시도되고 있다.발달심리학의 연구결과들은 인간 두뇌기능의 포괄적인 발달과정을 해명해내었고 이러한 거시적인 연구들을 통하여 두뇌기능과 지능체계의 이해를 위한 기본적인 바탕이 이루어졌다 하겠다. 90년대에 들어와서는 두뇌기능연구에 더욱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두뇌기능연구가 근본적인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거시적인 연구가 미시화되고 있으며 두뇌기능의 발달과 쇠퇴,건강함과 병듦을 분자수준에서 연구하여 놀랄만한 연구결과를 얻고 있다는 것이다.이제는 두뇌기능을 세포수준 또는 분자수준에서 관찰,분석하고 있으며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분자생물학의 직접적인 기여가 이러한 추세를 선도하고 있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3가지 접근방법 대별 예를 들어 방사능동위원소의 추적기술을 이용하여 정상두뇌의 활동양상과 비정상 두뇌조직의 반응양상을 비교하여 두뇌기능의 주요인자의 인식은 물론 비정상두뇌조직의 치료 또는 교정방법도 강구해볼 수 있는 것이다.이러한 연구방법은 1960년대에 Mo­99 동위원소의 붕괴로 생성된 To­99m 방사능동위원소를 인공적으로 생산함으로써 활발해지고 있다.오늘날 방사능동위원소 추적기술에는 85% 이상이 반감기가 짧은(6시간)To­99m 동위원소를 활용하고 있으며 이를 이용하여 각종의 근육이나 조직에의 비정상증세를 감지할 수 있게 되었다.특히 70년대부터 개발되어온 토모그래피(Tomography)는 컴퓨터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급속한 발달을 이루었다.두뇌와 같이 3차원적인 조직에 있어서는 컴퓨터 토모그래피를 방사능동위원소추적기술과 접속시킴으로써 장족의 발전이 가능했던 것이다.80년대에 들어서면서 수학적 모델을 개량함으로써 세밀한 영상조합이 가능해져 분자수준의 두뇌기능연구가 훨씬 용이해졌다.최근에는 단일 광전자 발진을 이용하는 토모그래피와 양전자발진 토모그래피기술의 개발로 수개 분자들에 의한 생체조직변화의 측정이 가능해졌다.이에 따라 지금까지 불가능하였던 인지기능의 이장,정신질환 및 정신착란증세 등에서도 정확한 진단과 치료방법의 발견이 가능해지고 있는 것이다. ○응용 가능성 무한대 두뇌기능의 연구는 이러한 신경생리학적,발달심리학적 및 분자생물학적 방법론들에 의한 획기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볼 때 아직은 초보상태에 있다고 보아야 하겠다.심리학자 의학자 물리학자 화학자 약학자 전자공학자 전산학자 수학자 원자력공학자들이 두뇌 기능및 지능체계연구의 과학적인 가치뿐만 아니라 실제 응용상의 높은 가능성 때문에 이 분야로 모여들고 있다.90년대를 두뇌기능연구의 세대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러한 고조된 관심과 하루하루 급속히 발전하는 연구내용 때문이다.21세기에 선진국으로 발전하려는 우리나라의 경우 능력있는 많은 과학기술자들이 두뇌기능연구분야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 희곡작가 박조열씨(이세기의 인물탐구:12)

    ◎연극계에 신풍일으킨 “지적작가”/발표하는 작품마다 주옥편·문제작·수작 일색/특유의 표현력으로 주제부각… 관객들 매료/「오장군의 발톱」으로 백상예술상대상·희곡상 수상 박조열이란 이름은 몰라도 희곡 「오장군의 발톱」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이 희곡은 74년당시 예륜의 「공연불가」판정으로 연극계를 떠들썩하게 했고 88년 해금되어 문예극장대극장 무대에 올려졌을때 「역시 박조열 희곡」 찬탄을 금치못하게 했다. 탄탄한 극적 구성과 그 소재의 특이성,해학적이라 할 작가특유의 언어 표현의 탄력성은 여전한 저력을 과시했다. 그의 작가적 자존심은 연극의 어디에서도 잔재주를 부리거나 관객에게 아부하지 않는다.진지하게 대상에 정면 대결하면서 작품이 의도하는 바를 연극속에 용해시켜 설득력있게 관객의 심금을 움직이게 하고있다.어떤 소재를 어떤 시각으로 다루던 극의 테마를 작품 전편에 도도하게 깔고있으면서도 지성의 감성을 잃지않는 것도 대단하다.감상과 정조에 탐닉한 나머지 작품의 객관성을 파괴하는 일도 없다.일정하게 거리를 두고 무대를 바라보면서 한정된 공간속에서 빚어지는 여러종류의 갈등을 저나름대로의 시각으로 판단하게 한다.그는 연극의 격조뿐아니라 이를 감상하는 관객을 그만큼 존중해주는 작가다. 연극계데뷔 28년만인 91년,첫희곡집 「오장군의 발톱」을 펴냈을때 평소 그를 총애해 마지않던 연극계의 원로 여석기씨는 그의 희곡집출간을 「기특하다」고 표현했었다.「기특하다」는 표현을 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첫째는 지독하리만큼 「과작」인 그가 과연 「책한권」이 될만한 분량의 희곡작품을 썼느냐는 것이다.두번째는 「남달리 깐깐하고 결벽성이 강한 그가 자작품을 모아 한권의 책으로 엮어 세상에 선보이겠는가」하는 평소의 그의 사람됨과 성품을 꿰뚫어 알고있는 입장에서의 소견이다. 어쩌면 수년후로 미루거나 또는 영영 이루지 못했을 이 창작희곡집은 그를 아끼는 후배들의 권유와 강요에 못이긴 소산인 셈이다. ○30년간 쓴 희곡 9편뿐 박조열은 연극계에 몸담은지 30년동안 단 9편의 희곡을 썼을 뿐이다. 단9편의 희곡만으로 그는 연극계의두드러진 존재가 되었고 그의 희곡은 어떤 누구의 작품보다 많이 연극무대에 올려졌다.이는 뛰어난 작품성과 글에 대한 완벽주의,확고한 주관의 작가정신 때문임을 새삼스럽게 거론할 필요는 없다.세속적인 것에 대한 일체의 거부,불의와 뻔뻔스러움을 용납치않는 단호한 의지는 희곡을 쓰지않는 동안의 여러 글에서 이미 확인된 바 있다. 그 좋은 예로 그의 대표작이자 문제작인 「오장군의 발톱」을 들수있다. 「오장군­」은 문예진흥원이 주는 첫번째 창작희곡지원작가로 선정되어 쓴 작품이다. 성은 「오」이고 이름은 「장군」인 이 땅의 무식하고 가난하고 순수한 심성을 지닌 한 농부와 군대에 간 아들 걱정으로 잠못이루는 따뜻하고 다감한 이땅의 모든 어머니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뚜렷한 명분없이 단지 주인공이 「소총병」이며 「반전」과 관련된 대목이 삽입됐다는 이유만으로 이 연극은 연습도중 발이 묶여 긴 어둠속에 사장됐었다. 공연이 좌절됐다는 실망도 실망이지만 이에 충격받은 작가는 이때부터 창작의욕을 잃고 붓을꺾다시피 긴 칩거에 들어갔다. 그 이전까지는 그의 희곡이 무대에 올려질 때마다 관객의 호응과 평자들의 주목을 받아 그때마다 「정신세계가 풍요로운 지적 작가」로 지적되곤 했다. 데뷔희곡인 「관광지대」는 당시의 국시인 「유엔을 통한 남북통일 정책을 위반」했고 「미국 대표를 냉소적으로 묘사」한 부분이 논란되면서 대학극의 단골 레퍼토리가 되는등 젊은 연극도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다. 또 작가로 하여금 「희곡의 재미」를 체험케하여 극작을 평생의 직업으로 삼게된 계기가 되게했다. 다음작품인 「토끼와 포수」는 달리 설명을 하지않아도 이미 너무나 잘 알려진 작품의 하나다.이 연극은 「우리 연극계에 일대 신풍을 일으킨 무대」로 평가받았다. 속도감있게 전개되는 극진행과 대사와 대사의 숨막힐 듯한 불꽃대결,연극만의 특권인 대사해학과 동작변화의 반전시도는 관객의 시선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이 연극은 김정옥연출로 극단 민중극장이 초연하여 동아연극상대상·연기상·극본상을 휩쓸었고 지금도 각 극단들이,그리고 지방극단·대학극에서 다투어 무대에 올리고 있다. 이렇게 발표하는 작품마다 「주옥편­문제작­수작」일색이었다.그중에서도 「목이 긴 두사람의 대화」는 이른바 우리연극에서의 반연극·불조이극의 시범이라 할수있는 극작법이 특징이다. 통일문제가 극도로 터부시되던 시절,그 벽을 뚫기위한 방법으로 동문서답식의 모호성과 추상성을 의도적으로 구사하여 작품이 말하려는 진의를 맨끝장면에서 관객이 깨닫게하는 은유법으로 극을 만들어나갔다.이 연극을 통해 관객들은 흥미롭고도 자극적인 새로운 관극경험을 할수 있었다. ○흥미롭고도 자극적 「오장군­」의 「공연불가」방침에 못지않게 그를 분노케한 것은 오장군에 대한 연극계의 비겁한(?)침묵이었다.그것이 부당한 판정임을 알면서도 누구하나 부당함을 말하려하지 않았다. 생계수단으로 방송극에 손대는 동안에도 그는 그에게서 「연극」을 빼앗아간 분노가 앙금처럼 가슴에 남아 이를 회복하겠다는 일념에 불탔다.정신적으로 왕성하던 시기에 혼신의 힘을 쏟아 희곡에 손댔고 얼마든지 샘물처럼 글이 쏟아져 나오는 시기에,누군가 그를 가로 막아버린 것이다.창작의 샘물줄기를 잔혹하게 절단시켜버린 것이다.그는 비수같은 노여움을 죽이고 오로지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드디어 86년 연극협이 처음 설치한 극작분과위 초대위원장에 추대되자 먼저 「규제 작품」들을 구제하는데 총대를 메기로 결심했다. 「남북문제」 「통일문제」에 대한 규제의 한계가 불투명하고 기껏 「단어 한자」에 신경을 곤두세우려는 그 법자체가 설득력이 없고 무의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래서 첫번째 시도로 그해 「한국연극」(4월호)에 「표현에 대한 한계장황과 개선책」공개서한을 발표했다. 글 자체는 부드러웠으나 「공연법자체가 헌법에 위반되는 법률」임을 전제,「공연윤에서 윤리적으로 잘못된 부분들을 가시적인 잣대로 규제하려들기보다 이를 오히려 자정기능에 맡기라」고 은근히 꼬집었다. 이를 기화로 신문·방송과 각분야전문지들은 일제히 「표현의 자유」를 다투어 보도하는등 이를 다각적이고도 집중적으로 조명하기에 이르렀다.그는 제11회 서울연극제 심포지엄에서도 『표현의 자유란 무엇인가를 적극적으로 생각하자』고 역설,이어서 「한국연극」 「공간」 「예술과 비평」지 등에 같은 논조의 글을 발표,일본연극전문지 「신극」에도 이후 4년간 한국연극계 동향에대한 평문을 기고하여 일반과 전문기관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당위성과 인식을 일깨우는데 앞장섰다.그는 표현의 자유를 부르짖기 위해 일본 동경대 교수인 오쿠다이라 야스히로(오평강홍)의 「표현의 자유」(전3권)등의 저서를 구입하여 밤새도록 세밀분석으로 독파한 것으로 알려지고있다. ○1·4후퇴때 월남 88년 비로소 긴 어둠에 갇혔던 「오장군­」이 「햇빛」을 보게 되었다.그리고 극단 미추의 손진책 연출로 어렵게 막올린 「오장군­」 공연은 그의 가슴속의 울분을 속시원히 씻어줬을 뿐만아니라 전례없는 대호평으로 그해 백상예술상대상의 영광을 안겨주었다.그는 연극계에 돌아왔다.그처럼 아끼고 사랑해온 연극계 중심부에서 이제는 리더의 위치로 우뚝 서게 되었다. 박조열은 함남함주에서지주의 외아들로 출생,문학하는 친척이 집안에 있어 쉽사리 문학적 분위기에 빠져 들어갔다.도스토예프스키와 안톤 체호프,버나드 쇼와 몰리에르에 심취하여 그때까지는 막연히 소설가를 꿈꿨을뿐 극작가가 되리라곤 상상치 못했었다. 고향에서 중학교 교사로 있다가 「지주신분」을 숨긴 것이 드러나 산간오지로 좌천되면서 월남을 결심,1·4후퇴때 흥남부두에서 남쪽으로 가는 LST에 승선했고 묵호항 정착후 육군에 지원,12년간의 군복무시절의 삽화를 정리한 것이 연극 「오장군­」이다. 험준한 산악 최전방 소대원으로 근무하던 51년,허약체질인 그가 고된 산중의 강행군을 견디다못해 「자결」을 결심하려던 순간,어디선가 그를 황급히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는 「자결한 아들의 소식」을 듣게될 어머니의 한을 생각하면서 어려운 고비를 넘긴 과거를 간직하고있다. 그때 산중의 목소리는 「생사조차 알길없는 당신의 외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가이없는 정념이 천리길 첩첩산을 넘고 휴전선 지뢰밭을 넘어」그에게 와닿는 순간이었음을 그는 생생하게 기억하고있다. 그는 남편을 존경하고 믿는 부인 최선분여사(58)와 공부잘하는 외아들(현섭씨·31·서울대 대학원 박사과정)과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있으면서도 「어머니 그리운 마음」에 밤새도록 술 마시며 눈물지을 때가 잦다고 말한다.그리고 고향을 등진지 40년이 지난 오늘도 어제일처럼 손에 잡히고 눈에 밟히는 두고온 산하,고향의 얼굴들이 잊힐리야 없다.따라서 남북통일문제는 그의 희곡속에서 일관되게 흐르는 커다란 기둥줄기가 될수밖에 없음을 이해할 만하다. 그는 요즘 15년만에 국립극장 가을공연 위촉작품과 태평양국제연극제를 위한 새 희곡 집필에 들어가 있다.그의 손으로 찾은 「표현의 자유」이후 주제를 마음껏 펼칠수 있는 최초의 작품이 될것이다.작가의 사명감과 투철한 작가정신,깐깐하고 곧고 불의와 세속을 거부하는 그의 작품세계는 연극의 자존심을 돌이켜 아마도 또하나 우리에게 「자랑스러움」을 안겨줄 것으로 기대된다. □연보 ▲1930년10월 함남 함주군 하조양면 지주인 박승훈씨와 최한익여사의 1남4녀중 장남 ▲47년함남중학(구 함남고보)졸업 ▲49년 중등교원 자격시험합격(문학),원산공업학교교사­마전리중 전근 ▲50년 흥남철수때 월남,육군지원입대이후 12년간 군복무 ▲63년 육군예편,드라마센터 연극아카데미 연구과정(극작수업),단막희곡 「관광지대」(단막희곡 28인선 수록) ▲64년 장막희곡 「토끼와 포수」극단 민중극장 초연 ▲65년 희곡 「소식」극단 민중극당 초연 ▲66년 단막희곡 「목이 긴 두 사람의 대화」극단「탈」초연 ▲67년 단막희곡 「불임증 부부」(저승에서 만난 부부)극단 「탈」초연 ▲70년 희곡 「흰둥이의 방문」 ▲74년 희곡 「오장군의 발톱」예륜 「공연불가」판정 ▲75년 여석기씨와 함께 한국극작워크숍 창설 ▲76년 희곡 「가면과 진실」(문예진흥원 창작희곡지원작가),희곡 「조만식은 아직도 살아있는가」 ▲79년 한국최초의 FM 음악드라마 「음락가의 소상」(11개월 집필) ▲80년 독립투쟁과 사상분열사를 다룬 장편다큐멘터리 「땅의 아들들」(10개월 집필) ▲83년 일본연극계 견문 ▲86년 한국연극협회 극작분과위원회 초대위원장 ▲88년 「오장군의 발톱」해금(극단 미추 초연) ▲89년 ITI(국제연극협회)헬싱키총회 참석 ▲92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산하 세계문학 연구소 심포지엄에서 「한국연극계의 글라스노스치」강연,일본마에바시(전교)예술제 심포지엄서 「한국의 현대연극」강연,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태평양국제연극제 극단 미추의 「오장군의 발톱」공연참관 ▲88∼현재 숭의여전 문창과 출강 동아연극상 대상(희곡상),제8회 대한민국 방송대상,백상예술상 대상(희곡상) 「오장군의 발톱」「총독 돌아오다」「한국현대단막극선」
  • 올해 유통업체 최대화제/대형의류업체 연쇄부도

    ◎「신세계」부설 유통산업연,10대뉴스 선정/내수부진·수출침체 후유증/새 백화점 증가·편의점 급증도 포함 올해의 유통업계 최대 뉴스는 「폴로」「베네통」등으로 유명한 신한 인터내셔널과 논노,김창숙부티크등 대형의류업체들의 연쇄부도사태가 꼽혔다. 신세계백화점 부설 유통산업연구소는 그밖에 백화점 신규출점 및 사업다각화 활기,CVS의 급속한 양적 팽창등 92년도 국내유통업계 10대뉴스를 최근 다음과 같이 선정 발표했다. ▲대형의류업계 잇단 부도=지난 1월 신한인터내셔널의 부도를 시작으로 대표적인 국내패션의류업체들이 내수부진·수출침체에 따른 자금압박·무리한 사업확장의 후유증으로 잇따라 부도. ▲외국유통업체의 대한투자증가=유통시장2단계 개방후 외국유통업체들은 기조 제휴관계에서 합작투자등 자본참여,로열티사업,가맹점사업,전문점개설등 직·간접 진출이 급속한 증가세(1년간 40건 5천7백만달러). ▲백화점 신규출점 및 사업다각화활기=올한해 10개업체가 13개점포개점 유통업계사상 최고의 출점러시기록.또 현대백화점의 호텔업진출,미도파의 외식업·슈퍼사업등 다각화도 활발. ▲CVS(편의점)급속한 양적팽창=90년말 48개,91년말 3백10개에서 92년말 8백여개로 점포수 비약적으로 확산. ▲재래시장신장률저조=경기침체,현대적 시설을 갖춘 편의점 대중화,소비자들의 구매패턴 변화등으로 재래시장 침체. ▲소비자지향 마케팅의 확산=소비자 중역제·청년임원회의·남성모니터제도등 첨단서비스 경쟁과 상품개발측면에서 고객만족경영 본격화. ▲유통업계규제법안 지속 및 추가. ▲환경보호운동 및 그린마케팅. ▲유통전문서적 발간 활성화. ▲활발한 국제교류.
  • 유통시장 3단계 개방/상공부

    내년 7월부터 외국유통업체의 국내 허용점포수가 크게 늘어나고 매장면적도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상공부는 16일 외국유통업체의 국내점포수를 업체당 현행 10개에서 20개로 확대하고 매장면적은 1천㎡(3백3평)에서 3천㎡(9백9평)까지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제3단계 유통시장 개방계획안을 마련,관계부처간 협의를 거쳐 확정키로 했다.또 유통시장 전면개방은 96년이후로 늦추기로 방침을 세운것으로 알려졌다.
  • 사승기씨 영등포 수도사업소 봉천가압장 근무(이런자리 저런일)

    ◎“수도계량기 동파 줄였으면”/한결같이 사소한 부주의가 원인/엄동엔 계량기통속 전구 켜놔야 겨울을 맞는 사승기씨(서울시 영등포수도사업소 봉천통합가압장)의 마음은 스산하다.올 겨울은 어느때보다 유난히 추울 것이라는 일기예보 때문이다.시민들에게 수돗물이 원활하게 공급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그에게 맞겨진 임무인만큼 겨울철 수도계량기의 동파는 여간 골치아픈 일이 아니다. 『수도관이나 계량기의 동파로 인한 돈과 시간의 낭비,그리고 마음고생이 얼마입니까』 사씨는 시민들이 조금만 주의를 하면 예방할 수 있는 일을 당하고 나서야 발을 동동구르는 현장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고 그때마다 안타까움을 저버릴 수가 없었다. 현장 작업원으로서 그는 수도관이나 계량기의 동파로 한해에 어느 정도의 재정적 손실이 초래되는지는 알길이 없다.그러나 없어도 될 손해,줄일 수 있는 피해가 생기는 작업현장에 나갈때마다 느끼는 점은 한결 같이 조그마한 부주의가 원인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곤 한다. 『신형 수도계량기통은 보온장치가 그런대로 잘되어 있으나 다시 한번 살펴보고 계량기가 지면에서 깊은 곳은 헌옷가지등으로 덮어 주고 낮은 곳은 보온덮개로 싸고 비닐 종이로 감아 주어야 합니다』 그가 말하는 「동파예방법」들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그러나 이같이 쉽고 간단한 예방대책조차 일반 시민들이 지나치고 있는 현실이 그로서는 심히 못마땅한 것이다. 『아파트의 계량기밑으로 찬공기가 유입되는 통로는 반드시 차단하고 영하7도 이하의 기온이 이틀 이상 계속될 때 또는 며칠씩 집을 비울 때는 계량기 통안에 30W의 전구를 켜 두어야 하며 외벽속에 수도관이 묻혀있어 동파위험이 있을 때는 수돗물을 조금씩 흘려야하며 계량기가 동파되었을 때는 온수사용을 중지하여 보일러의 온수부족을 방지하고 얼었을 때는 미지근한 물을 붓고…』 그가 얘기하는 한가지 한가지 모두가 살림의 지혜들이다. 지난 몇년 동안 같이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다면 더 바랄나위가 없겠으나 날씨가 춥더라도 시민들의 사전대비로 수도사업소직원들이 한가한 겨울나기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엄동예보를 대하는 사씨의 최대 희망이다.
  • 외설의 잣대/김희수 청주대교수 문학평론가(굄돌)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는 성을 적군 저격용으로 썼다는 이야기가 있다.소련군이 체코에 침공해 왔을 때 그 소련군에 대항해 싸울 방도를 생각한 체코 아가씨들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자기네 국기를 단 깃대를 들고 돌아다녔다는 것이다.그것은 「수년간 저속한 금욕생활을 해야 했던 러시아군들에 대한 성적 저격행위」라고 작가는 적고 있다.체코아가씨들이 아름다운 미니스커트를 적군에 대한 저항용 무기로 썼다는 의식있는 위트가 독자들을 즐겁게 한다. 소설이냐 외설이냐로 시비가 되고 있는 마광수교수의 「즐거운 사라」는 적군에 대한 저격용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성윤리 저격용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우리 전통사회의 아름다운 여인들은 「정든 님 오셨는데 인사를 못해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빵끗」하였다.이처럼 수줍어 입만 빵끗하던 이 땅의 여인들이 어느새 「즐거운 사라」로까지 변모하였다. 「즐거운 사라」가 책방에서 동이 나고 읽지 못한 사람들이 구하지 못해 안달이라니 안쓰럽기도 하고 딱하기도 하다.필자는 이 작품을 읽지 못해 애타는 독자들을 위해 여기에 그 풍경 한 부분만 소개한다. 나는 흔히들 여성이 지켜야 할 최후의 보루요 지고지존(지고지존)의 미덕이라고 얘기하는 「순결한 여성」의 허울을 빨리 벗어버리고 싶었다. ……나를 아무 부담감없이 공짜로 「따먹어달라」고 부탁했을 때,기철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지」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어정쩡한 「처녀막 파열의식」이 어떨결에 치러졌고 나는 비로소 홀가분한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즐거운 사라」P43) 흔히 예술작품이 혁명적인 불길처럼 독자들을 크게 자극하고 주도해 온 예술사의 실례를 생각해 볼 때 「즐거운 사라」는 분명 「순결한 여성」을 저격하는 마지막 포수가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그는 이처럼 성도덕만 저격한 아니라 「공짜로 따먹어 달라」고 부탁… 운운한 문장처리같은 것은 예술과 소설 그 자체까지를 저격한 셈이다. 인간의 성지라할 성을 따먹고 따주고 한다는 표현은 예술과 소설 미학을 학살하는 문장이다.이럴 경우 정작 고발할 주체는 예술과 소설 그 자체일 것이다.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이 외설판정으로 크게 곤욕을 치렀지만 그 작품속에는 성애장면이 두드러진 경우에도 여성(창녀)에 대한 연민의 정과 인간애가 짙게 깔려 혐오감을 주지 않는다.우리나라의 작품들 속에도 흔히 성묘사가 나타나지만 그것이 작품 구도상의 필연성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을 때 그것은 외설이 아니라 사실성으로 정당화된다.
  • 사치품 수입가조작 20개사 적발/공정거래위

    ◎최고 5.8배 판매가책정 폭리/60만원대 식탁 3백50만원 시판/캠브리지멤버스등 시정령·경고처분 외제의류를 비롯,넥타이 핸드백 골프채 컬러TV 식탁 등 호화사치품을 수입하는 업체들이 판매가격을 수입가격의 최고 5·8배까지 높이 책정,시판해오면서 이같은 폭리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수입가격을 실제보다 부풀려 표시했다가 무더기로 적발됐다. 특히 이들 수입업체중 일부는 제품의 수입가격을 실제보다 최고 3·6배까지 부풀려 소비자들의 눈을 속여온 것으로 밝혀졌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9일 일부 수입업체들이 폭리사실을 숨기기 위해 수입가격을 과다하게 표시하고 있다는 정보에 따라 서울시내 주요 백화점과 수입전문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외제상품들의 수입가격을 조사한 결과 총 61개 수입업체중 33%인 20개업체가 수입가격을 10% 이상 과다하게 표시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또 10% 미만으로 수입가격을 조작한 업체들까지 포함하면 거의 대부분의 수입업체들이 수입가격을 실제보다 부풀리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공정거래위는 이와 관련,▲캠브리지멤버스 ▲마스타즈통상 ▲필립스산업코리어 ▲지에프티코리아 ▲유로통상 등 5개업체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리고 매출규모가 10억원 미만인 태평실업 등 15개업체에 대해서는 경고처분을 내렸다. 국세청도 폭리부분에 대한 세금을 추징하기 위해 조사를 하기로 했다. 공정거래위 조사에 따르면 이들 업체중 태평실업은 마호가니 천연목으로 된 서빙테이블을 60만6천7백70원에 수입하고도 2백18만7천5백원에 수입한 것처럼 표시,소비자들에게 수입가격의 6배에 가까운 3백50만원에 판매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또 캠브리지멤버스는 외제점퍼를 11만1천1백40원에 수입한뒤 3.4배인 38만원에 팔면서 폭리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13만3천원에 수입한 것으로 수입가격을 표시했다. 마스타즈통상은 던롭골프채를 69만7천9백80원에 수입하고도 1백35만원에 수입한 것처럼 허위표시했고 파워빌트골프채는 67만8천1백60원에 수입,3.2배인 2백20만원에 팔아왔다. 이밖에 수입품의 가격을 허위로 표시했다가 적발된 업체와 취급상품은 다음과같다. ▲동산인터내셔날=가디건 ▲신화코리아=재킷·스커트 ▲우디가구=엘포수입침대 ▲두레유통=진열장·TV스탠드·소파 ▲에우루한국지점=가디건 ▲킹가구=책상·식탁·화장대 ▲장미인테리어=마르코니식탁·화장대 ▲동성무역=스키 ▲우폰=구찌시계 ▲호성상사=골프채 ▲룻쏘=핸드백 ▲벤아트=니트웨어 ▲장인방=옷장 ▲(주)THS8티셔츠.
  • 남대문 안경상가/안경테값 최고 40% 저렴(전문상가)

    ◎주로 도매상… 2백개 점포 한곳에 남대문시장의 물건값이 싸다는 것은 알뜰소비자라면 누구나 익히 아는 사실이다.대개는 새벽에 열리는 의류시장을 떠올리지만 그에 못지않게 유명한 품목이 안경이다.본래 국내 유통물량의 절반이상이 거래되는 도매상가로 시작됐지만 최근에는 소문을 듣고 몰려드는 일반인들의 발걸음도 부쩍 늘어났다. 그래서인지 『예전보다 점포수는 훨씬 더 많아진 반면에 도매만 전문으로 하는 업체수는 줄어들었다』는 이곳 터줏대감들의 설명이다.점포수가 늘어나면서 안경도매상가의 범위도 크게 확대됐다.그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점포수도 많은 지역이 외환은행(구아리랑호텔)건너편의 남대문시장입구부터 시장중심부까지 이어지는 백m정도 거리의 주변 상가들이다. 이곳에는 개업한지 20년이 넘은 신화사를 비롯해 1백개이상의 안경점들이 밀집해있다.이밖에도 남대문시장 건너편의 국제화재보험빌딩 옆에 있는 고려안경도매상가에 2∼30개의 점포가 몰려있고 서울역쪽 청송빌딩2층과 남대문극장 뒤편의 나성안경도매상가에도 몇곳씩산재해 있다. 이렇듯 남대문시장 주변에만 2백개 가까운 안경점들이 집중해 있는 만큼 취급하는 품목이 다양하고 값도 저렴하다.고급수입테의 경우 7만∼14만원선이고 국산테는 2만∼6만원이면 구입이 가능하다.시내 중심가의 일부 안경점에서 유명외국브랜드 수입테들이 15만∼30만원에 거래되는 것을 감안하면 적어도 30∼40%가량은 싼편이다.수입테 전문점들은 시장입구에서 50m가량 아래쪽에 위치한 남대문상가 건물내 1층과 지하에 30여개가 모여있다. 남대문상가에 입주해 있다 최근 점포를 확장해 나왔다는 연세안경의 박진우씨는 『수입 안경테의 경우 독일과 프랑스등의 유럽지역에서 들여온 물건을 선호하는 손님들이 많다』고 한다.그러나 『최근에는 유럽의 유명브랜드와 계약을 맺은 일본업체들이 생산한 안경테들이 국내 수입물량의 80∼90%를 차지하고 있는데다 국산 안경테의 품질도 이에못지 않은 만큼 구태여 값비싼 수입테를 살필요가 없다』고 충고한다. 안경테의 재질로는 크게 티타늄,니켈,스테인리스,하이니켈등을 소재로 한 금속테와 카본,에폭시등의 뿔테로 나뉜다. 브랜드별로 가격에 큰차이가 나는 티타늄테의 경우 이곳에서는 7만∼12만원정도 한다.그보다 값싼 것을 찾는다면 하이니켈테(2만∼4만원)나 스테인리스테(1만∼3만원)를 선택해도 무난하다.
  • 김포 쓰레기반입 오늘 재개/하루 앞당겨… 15일 추가반입 재론

    ◎정부­대책위 합의 【김포=김학준기자】 경기도 김포군 검단면 주민들의 반대로 진통을 겪어온 김포수도권매립지에의 서울쓰레기반입이 4일부터 시작된다. 환경처·서울시·인천시등 정부관계자와 수도권매립지대책위(위원장 추인섭·68)위원들은 3일 하오 수도권매립지운영관리조합 사무실에서 제11차 실무협의회담을 열어 서울쓰레기는 4일부터,인천쓰레기는 6일부터 쓰레기위생처리가 가능한 11t 압축차에 한해 반입시키기로 합의했다. 양측은 또 오는 15일 예정된 환경영향평가 중간결과를 지켜본뒤 일반덤프트럭의 추가반입 여부를 재론키로 했다. 이와함께 양측은 쓰레기반입시간을 서울쓰레기는 하오7시에서 다음날 상오5시까지,인천쓰레기는 상오7시에서 하오3시까지로 각각 분리 조정했다. 이날 양측의 잠정결정으로 서울·인천쓰레기 반입을 둘러싼 정부·주민간의 분규가 일단 타결됐으나 11t 압축차가 서울시의 경우 전체 1천1백대의 쓰레기차량 가운데 1백59대,인천시는 전체 80대 가운데 11대에 불과하다.
  • 서울쓰레기 5일부터 반입/김포 11t/압축차만 통행 허용

    ◎주민대표위,「취락지역 지정」 수용 【김포=김학준기자】 오는 5일부터 서울시의 쓰레기가 김포수도권매립지애서 처리된다. 김포수도권매립지 주민들은 2일「대책위(위원장 추인섭·68)」를 열어 5일부터 쓰레기 위생처리가 가능한 11t 압축차에 한해 매립지 출입을 허용하기로 했다. 주민들은 이날 상오10시30분 경기도 김포군 검단면 검단농협 회의실에서 열린 주민설명회에서 정부측이 제시한 「검단면 일대 취락지역 지정」제의를 받아들여 이같이 결정했다. 이날 설명회에서 김의재서울시청소사업본부장은 정부측을 대표해 『주민들과의 합의가 완전히 이루어질 때까지 쓰레기반입을 유보키로 결정했다』고 통보했다. 정부측은 이와함께 현재 수도권정비계획법상 제한정비권역으로 묶여 있는 검단면 일대를 취락지역으로 지정해 아파트·상가·소규모공장및 각종 편의시설들이 들어설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주민들은 설명회가 끝난뒤 「대책위」를 연 결과 정부측 제의를 받아들여 5일부터 쓰레기반입을 허용키로 했으며 3일 상오10시 정부측과 실무협의회를 열어 수용방침을 통보키로 결정했다. 「대책위」는 그러나 쓰레기반입차량을 위생처리가 가능한 11t 압축차로 제한할 것을 요구하기로 했다. 현재 서울시가 보유한 청소차량 1천1백대 가운데 압축차는 1백59대이다.
  • 서울쓰레기 오늘부터 김포반입/주민들 “실력저지” 결의로 마찰 우려

    【김포=김학준기자】 경기도 김포군 검단면일대 김포수도권매립지 인근주민들이 2일 하오8시로 예정된 서울시 쓰레기반입에 맞춰 쓰레기반입을 저지하겠다고 나서 지난5월에 이어 또한차례의 충돌이 예상된다. 이 일대 주민들은 1일 ▲현재 반입되고 있는 경기도쓰레기의 위생처리가 잘 되지 않고 있고 ▲당국의 주민들에 대한 피해보상이 미흡하다면서 환경영향평가결과가 나오는 내년 3월까지 서울시 쓰레기반입을 저지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주민들은 특히 수도권정비계획법상 제한정비권역으로 묶여 낙후돼 있는 검단면일대를 개발유보권역으로 변경시켜 줄 것을 정부측에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에대해 정부측은 ▲현재 여건으로 쓰레기위생처리에 최선을 다하고 있고 ▲주민요구사항은 대다수 수용했으며 수도권정비계획법 완화문제는 수도권전체의 권역체계붕괴가 우려돼 받아들일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정부측은 이와함께 권역조정대신 검단면내 50가구이상 마을을 취락지역으로 지정,아파트와 60평이하의 공장이 들어설수 있도록 하겠다는 대안을 제시하고 2일 상오10시30분 이에대한 주민설명회를 개최,주민들을 설득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수도권매립지대책위(위원장 추인섭·68)측은 『설령 정부방침을 대책위가 1차적으로 받아들인다 해도 주민간의 합의점 도출과정을 거쳐 이것을 토대로 정부측과 협상을 벌일 방침』이라고 밝혀 서울 쓰레기 반입시점인 2일 하오8시까지 타결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김포쓰레기반입사태가 파국으로 치달을 경우 난지도매립장이 지난 10월말로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러 하루 2만여t이나 발생하는 서울쓰레기는 물론 경기도·인천 쓰레기도 심각한 처리난을 겪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 한편 정부관계자와 주민대표는 그동안 김포쓰레기반입문제로 10여차례에 걸쳐 실무협의를 가졌으나 아무런 합의점을 찾지 못했었다.
  • 김형직 우상화(신고/김일성자서전연구:7)

    ◎새 전기 「세기와 더불어」 허동찬씨의 분석/“105인 사건의 일원” 선각자로 미화/신민회와 조선국민회 고의적 “혼합”/“안창호 등 독립지사 지도했다” 강변 북한에서 진행되는 역사날조는 다른 인물이 아니라 김일성 자신이 「솔선수범」한다.우리는 이 점에 날카로운 비판정신을 가져야 한다. 김일성은 자기의 부친 김형직을 「민족주의운동을 공산주의운동에로 방향전환시키는 투쟁」을 한 인물로 둔갑시켰는데 이것 뿐 아니라 「3·1운동 이전의 모든 민족주의운동을 지도한 최고의 지도자」로 만드는데도 온갖 힘을 다하였다. 그는 1983년 6월30일부터 3일간 페루·아메리카인민혁명동맹대표단과 만나서 담화를 한 일이 있었다.그런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실려 있는 것이다. 『나의 아버지는 우리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선구자의 한사람이었습니다. 1917년 가을에 유명한 「105인사건」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우리나라에서 민족해방투쟁을 하던 사람들이 1백5명이나 한꺼번에 일제경찰에 체포된 사건이었습니다.일제경찰에 체포된 사람들의 대부분은 조선국민회의 성원들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반일민족해방운동에서 파벌싸움을 하여서는 나라의 독립을 이룩할 수 없으며 오직 인민대중을 묶어 세워가지고 그들의 힘에 의지하여 싸워야 나라의 독립을 이룩할 수 있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김일성은 지금 김형직이 「인민대중을 묶어 세우라」 「무산민중을 조직해라」라고 주장했다고 하고 있다.그러나 필자가 전에 언급한 1919년 10월의 대한국민회 규칙초안을 보면 그 회원의 항목에는 「단지 여자는 중등교육 또는 5연이상 종교의 교습이 있음을 요함」이라는 조목이 있다. 식민지시대 여성에게 중등교육 수료자격을 요구할 정도의 고급한 인텔리집단이 국민회였다.그러한 국민회에 있는 김형직을 김일성은 「무산민중」을 조선국민회에 묶어세우는 「선각자」로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김형직이 「105인사건」의 한사람이었다는 주장이다. 105인사건이란 1917년이 아니라 1911∼12년에 일어났고 조선국민회가 아니라 신민회의 회원들이 일제에 체포된 사건이다. 1910년 평북 선천에서 안명근이 사내(데라우치)총독을 암살하는 의거를 계획하다가 발각되자 일제경찰은 이것을 계기로 애국자들을 체포할 계획을 세웠다.일제는 신민회가 총독 암살을 준비하고 있다는 구실을 내세워 당시의 혁혁한 지사들인 유동설·윤치호·양기탁·이승훈·이동휘등 6백여명을 검거하였다. 총독부의 명석(아카시)경무총감이 그들을 고문하여 그중 1백5인을 기소,투옥하였다.이 사건으로 신민회는 큰 타격을 입고 해체되었다. 신민회란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된 후인 1906년 외국에서 귀국한 안창호가 결성한 비밀결사였다.김일성은 이 신민회를 고의적으로 조선국민회와 혼합시키고는 「조선국민회의 조직자」 김형직을 이 105인사건으로 「체포투옥」하게 하고있는 것이다. 김일성은 이 조작으로 안창호등 기라성 같은 독립운동가들을 전부 김형직이 지도하였다는 신화를 만들었다.이것은 식민지시대의 신민회·국민회를 통틀어 민족주의자로서는 김형직이 제일이라는 우상화작업인 것이다. 그러나 김형직은 민족주의자이기는 하였지만 별로 두드러진 업적은 없는 인물이다.그 예로 북한이 김형직의 최대업적으로 선전하는 관전현홍통구(홍통구)회의를 들어보자. 이 회의에 대한 북한의 주장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회의가 주로 조선국민회(대한국민회)의 회원이 참가하여 이룩됐다는 점이다. 3·1운동이 일어나자 식민지 조선에서 도만한 애국지사와 열혈청년들 5백60여명은 1919년 음력 3월15일 만주 유하현 삼원포 서구 대화사에서 회집하여 대한독립단을 형성하였다. 이 독립단에 입단한 지방조직의 하나로 평양숭실학교에 근거를 둔 국민회 인사들이 있었다.그 중심인물은 오능조,고진한,황보덕삼,허영진 등이었는데 이 중 황보덕삼과 허영진은 1919년 12월에 평양에서 체포되었다. 그런데 기독교장로파의 조사(목사,장로 다음가는 성직)였던 오능조(당시 31세)는 체포를 면하게 되어 만주로 달려가 관전현 홍통구의 대한독립청년단 안병찬 아래에서 서기를 하고 있다가 1920년 5월에 안병찬과 같이 체포되었다. 이 대한독립청년단에는 회고록에 나오는 오동진도 생계부장으로 있었다. 따라서 만약 홍통구회의가 있었고 그것이 국민회 성원이 주로 참가한 것이었더라면 적어도 평양의 오능조가 홍통구에 가 거기에서 대한독립단이나 대한독립청년단의 인사를 알게 된 이후라야 가능하다. 오능조는 1919년 12월이후에 홍통구로 갔다.북한에서는 「홍통구회의」가 1919년 8월에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1920년 전반기라야 그러한 「회의」의 개최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관전현 홍통구회의」라는 회의는 문헌기록에는 보이지 않아 객관적으로는 누가 참가했는지도 알 수가 없다.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전혀 없었다고 보기도 어렵다.만주의 관전현지방은 주로 평안도의 독립지사들이 모이고 있었으므로 독립단이나 청년단에 망라된 인물의 연줄을 타서 평양의 국민회원들이 거기에 갔을 가능성도 없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1919년 음력 3월에 조직된 대한독립단의 성원은 의병령수,유림수뇌,보약사대표,향약계대표,농무계대표,포수단대표들이었다.또 대한독립청년단의 총재 안병찬도,서기 오능조도 좌익계 인물은 아니었다. 따라서 이런 지방에 가령 김형직이 갔다 하더라도 오능조 등이 주최하는 비좌익계모임에 1920년 전반기에 참가해서 돌아올 수 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민족주의운동을 공산주의운동으로 방향전환」시키는 말을 김형직이 할 여건도 없었다. 관전현 홍통구회의 개최라는 김형직의 「업적」은 물론 회의개최 당일 그가 냈다는 방향전환방침도 역사적현실과는 전혀 맞지 않는 허황한 창작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①「주체사상을 구현하기 위한 조선인민의 투쟁에 대하여」김일성저작선집9 1987년 당간 149면 ②현대사총평25 544면 ③대한계년사 732면 ④대한독립사 김승학편 1965년 한국독립사편찬위원회편 325면 ⑤현대사총평28 15면 ⑥한국독립사 334면 ⑦같은책 325면
  • 치료 어려운 아토피성 피부염/광화학적 요법으로 큰 효과

    ◎일 오가와교수,처방결과 연세대서 발표 최근 피부과분야에서 자외선과 소랄렌을 이용한 광선요법이 새롭게 각광을 받고있는 가운데 치료가 어려운 아토피성피부염에도 광화학요법이 매우 좋은 효과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사실은 지난 25일 연세대의대 주최로 열린 「해관기념 학술강연회」의 특강자로 내한한 일본 순천당대학교 피부과주임 히데오키 오가와교수가 발표한 논문에서 밝혀졌다. 오가와교수에 따르면 입원환자 48명과 외래환자 66명등 모두 1백44명의 아토피성피부염환자에게 광화학적요법을 시행한 결과,입원환자의 94%,외래환자의 80%에서 피부병변이 호전되었고 그뒤 입원환자의 50%,외래환자의 25%가 완치되었다는 것. 치료방법은 광화합물질인 소랄렌과 자외선투사를 병행하는 것으로,먼저 환자의 온몸에 0.3%의 8­X메톡신 소랄렌을 바른 다음 자외선을 인체최소광독성용량의 절반으로 쬐어주고 임상효과가 나타날때까지 용량을 늘려주는 방법을 사용했다. 입원환자에게는 이 치료방법을 매일,외래환자에게는 주1회 적용했으며 외래환자의 경우는 부신피질호르몬을 부분적으로 사용했다. 오가와교수는 『이같은 광화학적요법은 아토피성피부염환자 발병부위의 활성화된 세포수를 감소시켜 면역억제를 일으킬뿐만 아니라 각질층의 장벽기능을 회복시켜 주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아토피성피부염은 생후 2∼3개월때 부터 선천적으로 전신에 걸쳐 발생하는 피부질환으로,가려움이 심하고 긁으면 그 부위가 코끼리피부처럼 되어 더욱 더 가려워지는 것이 특징. 아직까지 정확한 병원인이나 치료방법은 개발되지 않고 있지만 면역학적 이상이나 피부점막의 불완전한 기능 때문에 발병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치료에는 주로 부신피질호르몬제가 이용되고 있다. 하지만 부신피질호르몬제를 오랫동안 사용할 경우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어 최근에는 광화학적치료법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는 추세. 국내 각대학 피부과팀에서는 지난 80년대중반부터 광화학적요법을 도입해 건선환자나 백반증환자를 대상으로 84%이상의 치료효과를 거두고 있다.
  • 철분 과잉섭취/심장마비 위험성 높다

    ◎핀란드 살로넨교수 미 심장의학전문지 기고논문서 밝혀/저밀도 지방 단백질의 산화 촉진/심장동맥 좁혀 혈액 흐름을 방해/“주기적 헌혈이 최선의 예방”… 피임약 복용도 삼가야 음식물 섭취를 통해 몸안에 축적된 과잉 철분은 흡연 다음으로 심장마비를 일으키는 치명적인 요인이 된다는 충격적인 연구결과가 최근 발표됐다. 핀란드 쿠오피오대 역학자 주카 살로넨박사팀이 근착 미국심장병협회 전문학술지 서큐레이숀지에 발표한 「철분과 인간심장」에 관한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음식물 섭취로 몸안에 쌓여있는 상당량의 철분은 갑자기 심장마비를 유발시키는 시한폭탄처럼 위험요인이 된다고 경고했다. 살로넨박사팀은 동부핀란드에 거주하는 42∼60세의 장년층 1천9백명을 대상으로 단백질내에 함유된 철분량(페린)을 5년동안 추적,조사했다. 놀랍게도 이 조사결과는 조사자의 절반인 51%가 심장마비로 고통을 받고 죽음의 위험에 놓여있을뿐 아니라 심장마비를 앓고있는 사람들은 정상인의 혈액 1ℓ당 2백마이크로그램(㎍)보다 훨씬 많은 철분량을 함유하고 있었다. 특히 체내의 철분함량이 상당히 높은 사람은 정상적인 철분을 가진 사람보다 2배이상 심장마비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주목되는 사실은 체내에 과다한 철분과 저밀도지방단백질(LDL)을 가진 사람은 정상인에 비해 4배정도 심장마비에 걸릴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세계 의학계는 체내의 많은 철분 축적이 심장마비의 유발을 촉진시키고 낮은량의 철분은 심장마비 예방에 탁월한 효과를 줄수있다고 추정해왔다. 살로넨박사는 철분이 체내에서 저밀도 지방단백질(LDL)과 산소간에 화학적 반응을 촉진시키는 상승작용을 함으로써 심장병의 위험을 가중시키는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결국 이 화학적 반응은 심장동맥의 벽을 좁히고 피의 흐름을 폭포수처럼 분출시켜 응고된 혈전은 혈액순환을 억제하고 심장마비를 일으키게 된다.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혈액내 철분은 불안정한 발생기의 산소분자가 유리기를 형성,심장마비 발생후 심근에 큰 손상을 줌과 동시에 암·당뇨병·관절염 및 노화현상을 일으키는 요인으로 추정된다. 일반적으로 여성들이 복용하는 먹는 피임약은 심장병의 유발을 촉진하고 해열제인 아스피린과 생선기름은 심장병을 예방하는 약이작용을 가지고 있다.또 소나 양고기에는 풍부한 철분이 들어있기때문에 심장병 발병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된다. 체내에 4g정도 들어있는 철분은 혈액을 만드는 중요한 영양소가 된다.미국식량의약국(FDA)은 성인 한사람이 1일섭취하는 철분 권장량을 18㎎으로 규정하고있다. 자연식품중에서 철분이 많이 들어있는 식품으로는 소간을 비롯,파래·효모·카레가루·톳·강조개·참깨·콩·감자·갈비·솔잎 등을 들수있고 가공식품으로 건포도·피넛버터·크림·햄버거·스파게티·치즈피자 등을 손꼽을 수 있다. 혈액내에 철분함량이 많은 사람은 심장마비 예방을 위해 주기적으로 헌혈하는 것이 가장 좋은 예방법이 될 수 있다.또한 쇠고기·닭고기·돼지고기·오리고기·생선의 과다한 섭취를 피하고 싱싱한 채소와 과일 및 콩식품을 많이 먹는 것이 좋다. 아무튼 심장마비의 위험이 있는 사람은 지방질 섭취를 최소한으로 줄이되곡류·채소·과일을 매일 듬뿍 섭취하면 이 병을 자연적으로 예방할 수 있다.
  • 현대 미포조선 전면 파업/임금협상 결렬/한국중공업도 부분 돌입

    【울산=이용호기자】 현대그룹 계열사인 현대미포수리조선소 노조가 올 임금협상 결렬에 따라 21일 하오2시부터 전면 파업에 들어갔다. 이회사 노사양측은 지난 5월부터 50여차례의 임금협상을 벌였으나 노조측이 임금 9만7천9백81원(기본급의 19·5%)인상을 요구한 반면 회사측이 총액기준 5%(기본급과 근속수당포함 3만3천5백원)인상안을 제시,합의점을 찾지못했다. 이에따라 노조측은 이날 상오 2천여명의 노조원들이 참가한 가운데 쟁의행위 돌입 여부를 묻는 찬반투표를 실시,참가조합원 82·9%의 찬성으로 쟁의행위돌입을 결정했다. ◎사측,직장폐쇄 겨고 【창원】 창원공단내 한국중공업(대표 안천학·57)이 노조(위원장 손석형·36)와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결렬로 일부 조업이 중단되는 등 파업위기를 맞고 있다. 이 회사 노조는 지난 17일 상오10시 사내 「민주광장」에서 조합원 2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파업전진대회」를 가진데 이어 18일 기계공장노조원 3백여명이 조업을 중단하고 21일 상오10시부터는 주조·단조·제관공장 등 3개공장 1천여명의 조합원이 부분 파업을 벌였다. 한편 노조측은 현재로서는 더이상 협상을 기대할 수 없어 전면 파업도 불사하겠다는 강경자세를 보이고 있는 반면 회사측도 현재 노조측의 요구는 받아들이기가 불가능하다며 노조측이 전면파업에 돌입할 경우 직장을 페쇄하겠다며 맞서고 있다. ◎현중 노조위장 사의 회사측과의 임금·단체협상과 관련해 조합원 총회에서 부결된 회사측안에 직권 조인,조합원들로부터 불신임 시비를 불러일으켰던 현대중공업 이원건 노조위원장(40)이 21일 하오 노조 운영위원회에 위원장직 사퇴서를 냈다.
  • 노송·맑은 물 어우러져 자연미 극치/동해시 무릉계곡

    ◎청옥산·두타산 사이로 암반 14㎞ 뻗쳐/3단으로 된 용추폭포 절경중의 절경/명필 양사언 등 선인들,비경예찬 각자남겨 고려 충렬왕때 정치가이자 학자인 동안거사 이승휴가 절경에 반해 정3품 벼슬도 마다하고 은거했다는 강원도 동해시 무릉계곡­. 높이 1천4백3m의 청옥산과 1천3백53m의 두타산이 합작해 빚어낸 무릉계곡은 이름그대로 수백년도 넘어보이는 낙락장송과 흰 반석위를 흐르는 맑은 물이 한데 어우러져 자연미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특히 다이나마이트를 터뜨려도 깨지지 않을듯해 보이는 암반에 뿌리를 내리고 우뚝 선 노송을 보고 섰노라면 자연의 경이로움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게다가 바위를 타고 쏟아지는 은빛 폭포수는 한층 높이 올라간 파란 하늘에 반사되어 비경을 더욱 아름답게 수놓고 있다. 문간봉 남쪽 절벽아래 깊숙이 숨어있는 용추폭포는 무릉계곡 내 숱한 명승중에서도 단연 백미로 꼽힌다.상단 중단 하단으로 연결되어 일명 「삼단폭포」라고도 불리는 이 용추폭포는 주위의 뛰어난 경관과 조화를 이뤄 실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이 폭포의 높이는 상단과 중단이 각각 20여m이고 하단이 10여m.장엄한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서 선녀탕을 연출한 이 폭포는 1백여m아래 60여m높이의 쌍폭포로 이어져 암벽에 늘어선 단풍나무들과 함께 오는 가을 또한차례 단풍축제를 요란스럽게 펼칠 전망이다. 무릉계곡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는 선인들이 무릉반석위에 남긴 성명각자에서도 잘 엿볼수 있다.조선조 선조때 강릉부사를 지냈던 명필 양사언은 무릉반석 위에 두타산의 절경을 예찬하는 초서각자를 남겨 신력에 가까운 그의 달필을 보여주고 있다.속세를 떠나 무릉반석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명승을 찬미하던 선인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반석은 광장과도 같아 수백명이 한꺼번에 앉아 즐길수도 있다.본래는 평평한 모습이었으나 1920년쯤 지각변동으로 균열이 생겨 지금처럼 층계를 이루며 기울어졌다고 한다.지금은 자연훼손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곳을 찾은 시인 묵객들의 성명각자가 여기저기 남아있다. 무릉계곡은 길이가 14㎞나 된다.동해시청에서 무릉계곡 입구까지는 19.1㎞이고 도중에 용산서원과 쌍용시멘트공장 앞을 지나게 된다.입구에서 정상까지는 산이 높고 산세가 험한만큼 아무리 최단코스라 하더라도 5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등산객들이 흔히 택하는 삼화사∼문간재∼연칠성령∼청옥산∼두타산∼산성터∼삼화사 코스의 경우 19.6㎞로 9시간30분가량이 소요된다.또 삼화사∼두타산성∼두타산∼박달령∼용추폭포∼삼화사코스는 16.5㎞로 8시간가량이 걸리며 삼화사∼문간재∼연칠성령∼청옥산∼박달령∼용추폭포∼삼화사 등정은 17.6㎞에 7시간40분가량이 소요된다. 동해시에서 무릉계곡까지 직행버스와 시내버스가 다닌다.무릉계곡입구까지 차량 진입이 가능하며 주차장도 마련되어 있다. 계곡입구에는 30여채의 식당과 민박집이 있어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고 산에 오르면 등산이 훨씬 쉬워진다.
  • 650억대 코카인 밀수/국내 최대/비 선원 23명 구속

    ◎부산지검,국내 연계조직 추적 【울산=이용호기자】 울산항을 통해 6백억원대의 마약을 밀수하려던 바하마 선적 화물선의 필리핀 선장과 선원등 23명이 무더기로 울산세관에 적발됐다. 울산세관은 13일 울산시 동구 남포동 (주)현대미포수리조선소에서 마약인 코카인 13㎏(시가 약6백50억원)을 선박 취수구 안쪽 천장에 숨겨 들어오려던 바하마 선적 치키타 로마호(9천t급)선장 보티스타 리카르도씨(57)와 마타라몬씨(37)등 필리핀 선원 22명을 검거,밀수혐의로 부산지검 울산지청에 구속 송치했다. 울산세관에 따르면 지난 10일 하오10시30분쯤 선박을 수리하기 위한 사전점검차 울산세관 제4감시초소 관할 보세구역내에 대기중인 치키타 로마호를 임검하던중 선박 취수구 안쪽 천장에 숨겨진 가로 80㎝,세로 20㎝의 철제상자 10개에 담긴 코카인 13㎏을 적발했다는 것이다. 한편 부산지검 울산지청과 울산세관은 최근들어 자취를 감춘 코카인 밀수가 다시 활기를 띠면서 비교적 감시가 소홀한 항만으로 마약이 밀수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이들과 연계한 국내 마약판매조직을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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