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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림성 이도강촌(압록강 2천리:4)

    ◎해발 1,260m… “하늘아래 첫 동네”/일제때 독립군 순병지… 9월말이면 눈발/해방후 조선족 70가구… 현재 1천명 거주 길림성 장백현 용강향 이도강촌은 하늘 아래 첫 동네다.그토록 외지고 높은 고원의 산골이어서 일찍부터 일제에 항거한 독립군의 활동무대였다.1915년에 이미 독립군 군비총단이 들어와 둔병을 마련하고 자리잡은 지역이다.또 1936년에는 항일연군 제2군 제6사가 홍두산에 밀영을 세우고 일본군과 만주군을 호되게 족쳐댔다. 일본도 이에 질세라 서둘러 경찰서와 토벌대,산림경찰대를 만들고 헌병대까지 주둔시켰다.그리고 장백진으로부터 이도강까지 길을 냈다.1945년 이후 이 길을 넓히고 손질했으나 길은 여전히 험로였다.일제가 항일연군을 토벌하기 위해 닦아놓은 길을 버스가 구불부불 기어갔다.장백진에서 고작 28㎞ 밖에 안되는 지척인데도 이도강촌까지 2시간이 실히 걸렸다. ○후천적 고산족으로 장백현에서 조선족이 가장 많이 사는데가 용강현으로 전체인구 2천6백27명 중에 1천88명이 조선족이다.비교적 낮은 지역이라는 해발 1천2백60m의 이강촌을 중심으로 해발 2천12m나 되는 홍두산자락 여러 골짜기에까지 조선족들이 흩어져 살고있다.그러고 보면 용강현 조선족들은 후천적으로 고산족이 된 셈이다.백두산 천지와는 90㎞가 떨어져 있으나 쾌청한 날씨에는 흰눈을 머리에 인 백두산이 망망한 숲 위로 아련히 떠올랐다. 그런 고산지대인지라 서리가 내리지 않는 무상기래야 1년에 90여일이 고작이다.장백현의 다른 저지대에 비해 철이 한달 이상 차이가 나기때문에 벌써 가을을 느꼈다.눈이 빨리 내리면 9월말께 첫눈이 온다고 했다.마침 점심 때가 되어 향장,당서기와 어울려 간부식당을 찾았다.시금치국 한 사발에 만두와 김치 한 접시가 나왔다.식당 일을 하는 원채봉아주머니가 애써 식단내용을 설명했다. 『그래도 향간부들의 식사는 괜찮은 편이꾸마.이 시금치도 현성에서 사왔디요.아무 집에나 들어가 봅소.이만큼 먹나….고산디대라 옥수수나 콩도 안됩꾸마.봅소,벌써 긴팔 옷을 입고들 있지 않슴둥』 여름이 아무리 빨리 간다한들 설마 했던 것은 오산이었다.그날 밤에 향장의 안내로 마을 터주격인 허용학(73)노인을 만나러 가는 길에 한기를 느꼈다.장백진 여관에 맡긴 짐보따리 속의 두꺼운 옷이 그리웠다.노인의 집에는 이미 군불을 지펴놓아 한기를 녹였다.꿈과 젊음을 고산지대 이도강촌에 묻어둔 노인의 얼굴에는 산골 밭뙈기 이랑 같은 주름이 가득했다. 노인의 본래 고향은 이도강촌에서 멀다 할 수 없는 함경남도 삼수군(현재 북한지명은 양강도 삼수군)자산면이다.세살 때 모친이 세상을 뜨자 부친이 두 형을 데리고 장백현을 들어가면서 본인은 갑산 누이집에 맡겼다.18살 나던 해에 형님이 와서 장백현으로 데리고 와서 곧 바로 남의 집 데릴사위로 주었다.석달을 살고 장인허락을 얻어 조선으로 돈벌러갔다가 징병에 끌려 일본 규슈로 갔는데,해방 석달 전의 일이었다. ○민요 「사냥 아리랑」 구전 『일본에 있을 때 미군 비행기 무서운 꼴 봤꾸마.매일 폭격을 해대서리 부상까지 입었지비.그날이 7월2일인데 미군 비행기 수십대가 가물가물 떠와서 폭탄을 내리 퍼부었다 이거우다.해방 이듬해 3월 일본에 온 함남 대표를 따라고향을 들렀다가 이리 다시 와서 붙박혀 사우다』 해방 후에만 해도 이도강촌에는 조선족 70가구가 살았다고 한다.한족은 2가구 뿐이었는데,지금은 2백가구 중에 절반이 한족이다.모두가 농사랍시고 짓지만 고산지대라 소출은 보잘 것이 없다.보리는 1무(2백평)에 1백근(60㎏),귀밀은 1백50근,밀은 작황이 썩 좋아야 3백근을 먹는다.그러나 감자는 잘되는 편이다.지금은 짐승이 덜 하지만 10여년전만 해도 멧돼지와 곰 등쌀에 애를 먹었다.7월부터 돼지가 감자밭에 덤벼들면 온통 요절을 내버렸다.귀밀과 밀밭은 곰이 압발로 이삭을 끌어안고 훑어먹기 시작하면 잠깐만에 거덜이 났다. 그래서 사냥감 짐승들이 많다.겨울이면 마을 장정들은 너나없이 사냥을 떠나 용강향에는 「사냥 아리랑」이 지금도 구전되고 있다.「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우리 낭군 영을 넘어 사냥 가네/낭군님 무사히 돌아오세요/대보름 달빛 아래 술을 듭시다」라는 민요가 그것이다.허용학노인의 백두산 겨울철 사냥 이야기는 간이 큰 사나이들의 모험담으로 들렸다. 『한번은 돼디(돼지)사냥을 갔는데 모리꾼들이 돼디간다고 소리를 티데우.돼디 여러마리가 곧추내려오는데 던댕판(전쟁판)에 당꾸(탱크)돌격하듯 달려왔지비.다섯마리 사냥개가 걸구(큰돼지)뒷 다리를 물고 늘어지자 속도가 늦어뎠디우다.그 때 최길환이가 꺾음대(화승촌)를 탕 놓았디우.앞 섰던 놈이 쓰러디니까 뒷 놈들은 샛길로 도망쳤으니 말이디 그냥 달려왔으면 다 황천객 됐을 거우다.거 안포수란 사냥꾼은 곰을 쏘았다가 선불을 맞아 끌안았디우.같이 간 다른 포수가 곰의 머리를 쏘아 떼 놓았는데,곰한테 할퀸 안포수 머리가죽이 벗겨뎠디…』 사냥을 갔던 사람들이 돌아오면 마을에는 잔치판이 벌어졌다.아낙네들은 국수를 누르고 남정네들은 잡아온 짐승을 삶았다.그리고 술을 마시면서 함지물에 바가지를 엎어놓고 장단을 맞추었다.중국 전역이 한 장기판이라고 하지만 이도강촌 산골마을은 문화대혁명을 수월하게 맞았다.다른 지역에서는 이른바 대식품이라는 풀뿌리 나무껍질을 먹었지만 이도강촌 사람들은 감자를 갈아 떡도 해먹고 분을 내어 국수도 눌러먹었다는 것이다.○아직도 인정만은 부자 그러다가 조사라도 나오면 겨로 음식을 해서 대접하고 조사 나온 간부들이 돌아가면 감자는 배불리 먹었다.그래서 아는 사람들은 이도강촌을 20세기의 별천지라고 불렀다.아직도 인정 만큼은 부자다.다만 농사만으로 돈 벌이가 시원치 않아 금전적으로 빈자나 각박한 문명세계와는 다른 삶을 살고있다.흠이라면 입쌀이 없다는 것뿐이다.밀 1근 80전,귀밀 30전,감자 30전에 팔아 1근에 2원하는 입쌀을 사먹기는 사실상 힘이 겨웠다. 그럼에도 교육열은 대단했다.조선족과 한족 아이들이 같이 다니던 한조연합학교가 있었는데 지난 1988년 조선족기숙제소학교 하나를 더 만들었다.기숙생들의 한달식비 90원 중에 20원을 기꺼이 물면서도 조선족기숙제소학교를 세웠던 것이다.
  • 1인당 저축액/50년간 4백63만배 증가/한은 통계

    ◎63전서 2백92만원으로 해방 이후 50년 동안 1인당 예금은행 저축액은 4백63만배 늘었다. 1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예금은행 저축액은 46년 말 1천2백만원에서 지난 5월 말에는 1백30조9천억원으로 1천91만배,대출금은 1천4백만원에서 1백43조3천억원으로 1천23만배 증가했다.1인당 예금액도 63전에서 2백92만원으로 4백63만배 늘었다. 비은행의 예금액은 집계가 시작된 지난 55년 말부터 지난 5월 말까지 3억원에서 3백35조3천억원으로 1백12만배,비은행의 대출금은 28억원에서 1백93조2천억원으로 6만9천배가 각각 늘었다.어음 교환규모도 46년의 3천2백만원에서 작년에는 5천7백81조8천억원으로 1억8천만배나 증가했다. 은행은 9개에서 33개로 3.7배,은행 점포수는 6백36개에서 6천3백80개로 10배가 각각 늘어 은행 점포당 인구는 3만8백61명에서 7천30명으로 77.2%가 줄었다.
  • 호남일대 의병 규합 항일무장투쟁/이달의 독립운동가/전수용 선생

    ◎대동창의단 조직… 일군과 70여차례 교전/31세에 붙잡혀 순국하자 부인도 따라 자결 『어차피 한번 죽고 마는 것이니 의병에 충실하다 죽어서 끝내 좋은 이름을 차지하는 것만 하겠느냐』 구한말 의병대장으로 활약한 해산 전수용 선생(1879년10월18일∼1910년7월18일)이 남긴 「진중일기」의 한 대목이다. 선생은 이 우국시에 표현된 그대로 31년 짧은 생애를 항일운동의 제단에 기꺼이 불사른 애국지사였다. 전북 임실 출신인 선생은 24세 때인 1903년 면암 최익현등 호남선비들이 개최한 시국강연회에 참석,이들의 우국충정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선생은 얼마뒤 최익현이 을사조약체결에 반대,조정에 창의토전소를 올리고 호남 유림을 규합해 창의의 기치를 높이 들자 궐기장소인 태인으로 찾아갔으나 진영이 빈약한 데 실망,일단 고향으로 되돌아왔다. 일본군과 맞서 싸우다 붙잡혀 대마도로 끌려가 순국한 최익현의 창의는 비록 실패로 끝맺음했지만 항일운동의 선봉으로서 국민 사이에 항일의식을 용솟음치게 하는 계기가 됐다. 선생은 최익현의 거사가 실패로 돌아간 뒤 곳곳에서 의병운동이 확산됨에 따라 1908년 전북 임실에서 결성된 창의동맹단에서 참모로 처음 의병활동을 시작했다. 창의동맹당은 진안과 임실을 중심으로 전주·장수·무주·남원·순창·구례·곡성등 호남 동부지역 9개군을 활동지역으로 삼고 있었다. 이들은 이 지역에서 경찰서·헌병분견소·수비대 등을 습격하고 일군 토벌대와 여러 차례 전투를 벌였다. 그러나 1908년3월 남원 사촌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패한데 이어 4월 진안과 임실의 경계인 대응전투에서 다시 참패,활동이 위축되자 선생은 다른 의병부대를 찾아나섰다. 선생은 광주에 머물던중 황국시위대 참위 출신인 정원집이 수십명의 병사와 함께 찾아와 의병대장을 맡을 것을 요청함에 따라 대동창의단을 조직하게 됐다. 『왜노는 우리나라 신민의 불구대천의 원수다.임진란의 화 또한 그렇거니와 을미 시국모는 물론이고 우리 종사를 망치고 인류를 모두 죽일 것이니 누가 앉아서 그들의 칼날에 죽음을 청할 것이오.힘써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자』 선생은 이같은 창의문을 통해 의병을 일으킨 동기를 공포하고 일군과의 전투에 돌입했다. 대한제국군 출신·유생·농민·포수등 5백여명으로 결성된 대동창의단은 1908년8월부터 10여개월동안 맹활약,일본군과 70여차례 교전을 벌였다. 선생은 부대를 1백∼1백50여명으로 쪼개 야간에 이동하면서 투쟁하는 게릴라식 전법을 도입했다. 이들은 일군 헌병분견소나 경찰서·수비대의 움직임을 은밀히 알아낸 뒤 매복했다가 기습하는 작전으로 여러 차례 성과를 올렸다.이들은 한때 호남 서남부지역을 완전장악할 정도로 세력을 떨쳤다. 선생은 이런 가운데 이웃 의병부대와 꾸준히 연락을 취해 서로 위기에 빠질 때 도움을 주고받았으며 1908년 겨울 호남의병연합체인 호남동의단이 발족하자 대장에 임명됐다. 호남의병의 정신적 지주로 떠오른 선생은 부대를 10개로 나눠 전남·북일대에서 일본군과 투쟁을 벌이면서 친일파 징계등의 일도 펼쳤다. 한편 일제는 끊이지 않는 의병활동을 봉쇄하기 위해 전국 시·읍·군·면에 산재한 성벽을 파괴,의병활동의 거점을 제거하는 작업을 벌였다. 또한 1만1천여명의 병력을 동원,대대적인 의병토벌작전을 펼치고 1909년에는 일본본토에서 2개 여단을 파견,의병토벌에 돌입했다. 마침내 대한제국의 의병해산령이 내려지자 선생은 1910년5월 세가 기울었음을 느끼고 부대장에서 물러나 시골로 몸을 숨기고 후일을 기다리기로 했다. 일제는 그러나 선생을 체포하기 위해 현상금을 내걸고 탐문에 나섰다. 선생은 남원 고래산에서 서당을 열고 어린이를 가르치던중 한 밀고자의 제보를 받고 달려온 일군에 붙잡혔다. 『서생이 무슨 일로 갑옷을 입었나.본래 세운 뜻이 틀려지니 한숨만 나오는구나』 일제에 붙잡히면서 이같은 우국시를 남긴 선생은 광주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교수형으로 순국했다.선생이 순국하자 부인 김해 김씨는 집에서 독약을 마시고 자결,선생의 절개와 부인의 지조는 충신열사의 사표로 의병활동사에서 길이 이름을 남기고 있다. 정부는 선생의 공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 외국관광객 집단추방/티베트,시위진압목적

    【북경 AFP 연합】 티베트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인 일객칙시에서 승려들의 시위위협을 선제진압하기 위해 진입한 경찰들이 외국인 관광객들을 집단 추방했다고 런던에 있는 티베트연구단체인 「티베트정보네트워크(TIN)」가 18일 밝혔다. TIN측은 지난주 티베트지방정부의 고위관료가 불교의 주요 축제행사문제로 마찰을 빚고있는 라마승들과의 회담을 위해 현지를 방문한 이후 타쉴훈포수도원의 승려들사이에 반체제움직임이 고조되고 있으며 이들은 중국정부의 판첸라마선정에 대한 개입에 대항해 시위를 벌이겠다고 위협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12일 상오에는 축제행사를 관람하기 위해 수도원의 방문이 허용됐던 30여명의 외국인 관광객들이 관리들에 의해 강제로 추방됐으며 폭동진압장비를 착용한 경찰 70∼90명이 무장트럭을 타고 수도원에 도착해 외국관광객들을 호텔로 강제소환한뒤 시내중심가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았다고 TIN측이 밝혔다.
  • 폭염의 폭포(외언내언)

    이상기상현상이 더 확대되고 있다.미국의 살인열파는 1주간 3백50명 이상의 인명피해를 냈으나 아직 끝나지 않고 있다.그렇다고 아무도 놀라지도 않는다.미국만 해도 80년,87년에 경험했던 일이다.지난해 1월에는 지금 「고온경보」를 내린 같은 지역에 혹한이 엄습했다.영하 47도에서 1백명 이상이 사망했다. 그런가 하면 유럽에는 홍수가 계속되고 있다.94년 호주의 가뭄은 또 사상 최대규모의 불바다를 만들었다.어느샌가 기상학자들은 이런 현상에 대해 「기후폭포현상」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언제 어디에 폭염·혹한·홍수·가뭄이 올지 예측하기 어려울뿐 아니라 이곳저곳 제한된 지역에 마치 폭포수가 쏟아지듯 이상기상이 덩어리지어 나타나고는 감쪽같이 사라지기 때문이다.우리도 지난해 폭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충분히 경험했다. 지구온난화가 일으키는 고온현상이 앞으로 어떤 일을 일으킬 것인가에 대한 연구를 미국환경보호청이 한 것이 있다.수자원을 얻기 위한 경쟁의 심화,지하수와 지표수 오염가능성의 증가,해충구제를 위한 살충제 사용의 증가,토양부식의 증가,야생동물 서식지의 손실등이 일어날 것인데 이 영향이 각각 추후 어떤 과제를 새롭게 제기할 것인지의 추정은 어렵다는 것이었다.이상기상현상의 지속은 이제 자연재난과 그 극복이라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세계차원에서 정치·경제적 갈등과제로 이어지리라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 유엔 세계기상기구(WMO)가 첫 세계기후회의를 제네바에서 개최한 것은 1979년.이때 회의참가자들은 농부·어부·사업가·엔지니어·의사들 그 누구에게서도 별 반응을 얻어내지 못했다.그러나 85년 세계기후계획 워크숍에는 29개 선진공업국의 최고 전문가들이 빠짐없이 모였다.불과 6년사이 이상기상은 빠르게 사람들을 깨우칠만큼 변한 것이다. 수십년 내 지구기온은 4.5도 이상 상승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그 전에 기후폭포 현상이나마 어떻게 견딜지 알 수 없다.
  • 농약범벅(외언내언)

    『수입밀은 쥐도 안먹는다』는 한 라디오방송의 좌담회내용을 몇해 전 달리는 찻속에서 들었을 때 막연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다.수입식품과 농약문제를 다룬 그 좌담프로에서 한 참석자는 『쥐가 자주 들락거리는 집뒤 헛간의 먹거리들을 살펴보니까 다른 것은 다 쥐가 먹은 흔적이 있지만 수입밀을 담아둔 함지박만은 건드린 자국도 없었다』고 했던 것이다. 그 참석자는 쥐와 같은 야생동물에겐 자신에게 해로운 음식물은 가려서 먹을 줄 아는 천부적 초능력이나 육감이 있는 것 같다고 덧붙이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바로 어제 어떤 시민의 모임이 미국의 수출농산물에 누군가가 액체농약을 폭포수처럼 쏟아붓는 비디오화면을 언론에 공개,국민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고 있다.수출용 밀을 비롯해 오렌지·체리 등에 살충제를 쏟아 「농약범벅」을 만드는 모습은 말 그대로 「몬도가네」다.어떤 경우에는 농약이 씻겨져 없어지지 않도록 코팅제를 첨가한다고 했다.이 정도니 쥐가 안 먹는 것도 무리가 전혀 아니란 생각이 확고해질 수밖에.그래서 만물의 영장인 인간으로서 서류보다야 못 할 수 없기 때문에 이 농약범벅의 미국산 농산물을 먹지 않아야겠다는 새 다짐을 하는 사람이 꽤나 많은 것같다.그렇지만 밀의 경우 자급률이 0.1%도 채 안되므로 빵·국수·과자 등 밀가루음식은 별도리 없이 밀 반농약 반의 수입밀로 만든 것을 계속 먹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왜 밀의 자급률이 그토록 바닥권으로 떨어졌던가.국내외 가격차가 너무 커서 수입해 먹는 것이 싸고 좋다는 경제성 위주의 단순논리가 주된 요인이다.발상과 정책의 대전환이 없으면 언젠가는 주곡인 쌀도 농약범벅의 수입품만을 먹게 될지 모를 일이다. 농약이 범벅된 농산물을 식탁에 올려놓지 않음은 물론 수입도 막을 종합안전대책을 서둘러 강구해야 하겠다.
  • 우유 체세포측정 표준용액 개발/농진청

    ◎신선도 가늠… 외제보다 품질 월등 우유의 신선도를 가늠하는 체세포수 측정기의 정확도를 측정하는 표준용액이 국내 처음으로 개발됐다. 농촌진흥청 수의과학 연구소의 박용호·정석찬 박사팀은 22일 「우유 체세포 측정 표준용액」을 실용화했다고 밝혔다. 원유로 만들어진 이 표준용액은 체세포 측정률이 97%로 외국제품(85%)에 비해 정확도가 뛰어나고 생산가격도 2백㎖당 2만원으로 수입품(20만원)보다 10배 가량 싸다.용액의 유효기간도 외국제품의 1∼2주보다 훨씬 긴 3개월 이상이나 된다. 체세포는 젓소의 유방조직에서 나오는 작은 세포단위.우유가 세균에 감염되면 체세포수는 늘어나는 속성을 지니고 있어 숫자가 적을수록 좋다.따라서 1등급 우유의 체세포수는 ㎖당 10만개 이하이다.이 체세포를 측정할 때는 현미경 검사법,형광물질 발현 검사법,레이저광선 측정법 등을 사용한다.측정 전 이들 측정기기의 정확도를 검사하기 위해 표준용액을 이용한다.
  • 폐합성섬유·가죽·고무/김포 매립지 반입 허용/환경부

    그동안 유해성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을 빚어온 폐합성수지·폐가죽·폐고무 등의 김포수도권매립지 반입이 10일부터 전면허용됐다. 환경부는 최근 총리실 주관으로 김포지역 주민대표와 폐합성수지등의 김포매립지 반입문제를 논의한 결과 하루 폐기물발생량 3백㎏미만인 9만여개의 소규모공장에 한해 이들 폐기물의 김포매립지 반입을 전면허용하기로 했다고 이날 밝혔다. 폐합성수지 등은 지난해 4월 개정된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일반폐기물로 분류돼 일반폐기물매립장인 김포매립지의 반입이 법적으로 가능한 상태나 김포지역 주민이 유해성문제를 제기해 지금까지 반입을 못해왔다. 이와 함께 환경부는 하루 3백㎏이상 배출하는 다량배출업소가 소량배출폐기물로 위장반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특별단속을 실시하는 한편 위반업체에 대해 강력히 처벌할 방침이다.
  • 북,미주 친북교포 협력체 추진/뉴욕·워싱턴 대표회의서 결성 합의

    ◎평통자문회의 보고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시도하고 있는 것과 병행해 북미 지역에서 친북교포들을 앞세워 연대협력체를 결성을 추진중인 것으로 30일 밝혀졌다. 최근 미주지역에서 통일문제토론회를 가진 바 있는 민주평통자문회의(사무총장 박상범)가 작성한 보고내용에 따르면 미주지역 친북단체들은 지난 연말 전국통일운동단체 대표회의를 뉴욕에서 가졌고 지난 3월 워싱턴에서 전국규모의 연대협력체를 결성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당국은 이에 앞서 지난 2월말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인 이종혁을 단장으로 한 방미단을 파견,미주지역의 교포동향과 친북단체들에 대한 조직점검을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통측은 『북한과 연고가 있는 북미지역 교포수는 약 24만명에 이르고 있다』면서 『특히 미주지역 교포중 방북자는 3천여명으로 추산되고 있다』고 말해 북한의 재미 한인교표사회에 대한 침투기도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음식과 수명(외언내언)

    식생활 욕구 5단계 설이 있다.생존단계­인식단계­선택단계를 거쳐 식도락단계­예술의 단계로 들어선다고 한다.또 생활수준 향상에 따라 식품선택 기준도 달라진다고 한다.우리는 얼마전까지 생존단계에서 허덕이고 있었기 때문에 식품선택 기준이 경제성 영양가 안전성 기호성 편의성 순서였다고 한다. 요즘 우리는 어느 틈에 인식단계도 지나고 선택단계에 들어서 편의성 기호성에 중점을 두고 식품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한다.한 인구 집단에서 식습관이 바뀌는 데는 30년이 걸린다지만 우리는 주기가 너무 빠른 것이 아닌가. 햄버거 치킨 피자 등 외국계 패스트 푸드 업체와 패밀리 레스토랑 업체들이 93년말 3백12개이던 점포수를 작년말 현재 6백42개로 1년사이 1백%이상 늘렸다고 한다.농촌경제연구원은 국민식생활 패턴이 선진국형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밝혔다.지난해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1백8.3㎏으로 93년도 1백10.2㎏ 보다 2㎏쯤 줄었다.올해는 1인당 1백5㎏선 소비를 예상하고 있다.이런 쌀소비 감소는 외국계 음식및 그 점포수 확대와 상관이 큰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세계에는 장수촌과 단명촌이 있고 그 원인은 식사와 관련이 큰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먹는 것이 수명을 좌우한다는 최근 연구예로 일본의 한 저명 역학자 연구서가 학계에서 인용되고 있다. 85년 당시 장수지역이던 중국 광주지역 주민들음식은 쌀과 천연단백질 음식을 소금기 없이 드는 자연식이었다.4년후 경제가 크게 발전하고 농민이 공장노동자가 되고 서양식에 염분을 다량 섭취하게 된후 혈압이 올라가고 순환기질환을 앓는 단명지역으로 바뀌고 말았다는 것이다. 요즘같이 어린이를 서양식 간편식에 맡겨두면 멀지않아 우리국민 모두가 서양같은 악성 심장병,혈관질환으로 내몰리게 된다는 경고를 유념해야 한다.
  • 깨끗한 사회구현(민주화에서 세계화로:7)

    ◎성역없는 사정… 「부패고리」 지속적 절단/동화은·슬롯머신비리 의원·고검장 구속/「율곡사업」 “메스”… 전총장포함 「별」 42개 “추락”/인천 「도세」 충격… 중하위직과 토착비호세력 발본 역점 슬롯머신수사가 막바지에 달한 93년5월 김영삼 대통령이 여성계지도자들을 위해 마련한 오찬석상의 분위기는 여느때와 달랐다. 특히 여성유권자에게는 부드러운 이미지의 대명사로 통하던 김 대통령이 『나는 어떤 특정사안 하나하나에 대해 얘기하지는 않지만 부정부패척결에는 성역이 있을 수 없다는 원칙을 감사원장과 법무부장관에게 특별지시했다.골수에 맺혀 있는 「한국병」 즉 부정부패를 척결하지 않고서는 「신한국」이 결코 이뤄질 수 없다』고 역설하자 좌중은 매우 숙연해졌다. ○한점 의혹도 없게 김 대통령은 같은 날 교정대상 수상자 접견자리에 배석한 김두희 당시 법무부장관에게도 『한점의 의혹도 남지 않도록 파헤치라』고 재차 지시했다. 대통령의 이같은 지시는 슬롯머신사건 및 동화은행 비자금수사와 관련,검찰내부에 비호세력이있어 수사가 축소·은폐되고 있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어서 관심을 증폭시켰다.그동안 사정의 최고기관임을 자임해온 검찰로서는 청천벽력이었다. 이 지시가 검찰내 비호세력 수사의 「전환점」이 돼 이건개전대전고검장의 구속 등 「성역 없는 사정」으로 이어졌다. 서울지검의 한 간부는 당시 긴박한 상황에 대해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과거다.다만 이 사건을 계기로 검찰이 깊은 반성과 함께 환골탈태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을 느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평소 정부정책에 대해 후한 점수를 주지 않기로 이름난 대한변협도 『군과 검찰 같은 권력집단의 「구각」을 깨는 일은 김 대통령만이 가능했다』고 평가한다. 고위공직자의 재산공개 역시 사정의 고삐를 죄는 데 불을 댕겼다.이 과정에서 사법부와 검찰의 수장격인 김덕주 전대법원장과 박종철 전검찰총장이 전격사퇴하기에 이르렀다. 법원의 한 고위관계자는 『공직자 재산공개는 깨끗한 정부를 구현하기 위한 제1보였다』고 말했다. 문민정부의 위력을 실감케 한 이들 사건은 공직사회의 「코페르니쿠스적 의식전환」을 요구한 셈이다. 또한 과거 군사정권의 총애를 받으며 성역중의 성역으로 꼽히던 군부도 사정의 도마위에 올라 국민의 「심판」을 달게 받았다. 군전력증강사업과 관련된 율곡비리사건으로 70여명에 이르는 군관계자가 군복을 벗었다.특히 해군과 공군의 진급인사와 관련된 상납비리는 군의 감춰진 치부를 만천하에 드러내면서 「별값」을 땅에 떨어뜨렸다. 이상훈·이종구 전국방장관과 김종호·김철우 전해군참모총장,정용후·한주석 전공군참모총장,조기엽 전해병대사령관 등 군 최고수뇌부의 양어깨를 장식하던 42개의 별이 이틀에 한개꼴로 떨어졌다. 조직폭력배의 서식처가 돼온 슬롯머신업소에 대한 수사도 궤도를 되찾아 슬롯머신업계의 「대부」 정덕진씨 형제 뒤에 숨어 있던 박철언 전의원,이전대 전고검장,엄삼탁 전안기부기조실장,천기호 전치안감 등 「비호세력」이 철퇴를 맞았다. ○제2사정 신호탄 그러나 지난해 9월 터져나온 인천북구청 세무비리사건은 그동안의 사정결과에 대해 다소 자만에 빠진 정부당국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이에 따라 사정의 무게축도 고위공직자 중심에서 중하위직으로 바뀌었다. 국민과 직접 접촉하는 중하위직 공직자의 고질적·구조적 부정부패가 아직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 있음이 증명되면서 「제2사정」의 신호탄이 오른 것이다. 정부의 강력한 사정으로 93년부터 2년동안 모두 8천2백5명의 부정부패사범이 적발돼 이 가운데 3천5백79명이 구속됐다.구속된 공무원만도 9백28명에 이르렀다. 93년2월 문민정부 출범 이후 「깨끗한 정부」를 표방해온 우리나라와 얼마전까지 「마니 풀리테(깨끗한 손)」로 전세계의 주목을 받던 이탈리아를 비교해보자. 김 대통령은 여전히 사정의 고삐를 죄고 있는데 반해 「마니 풀리테」를 시작한 줄리오 안드레오티 전총리을 비롯,부패척결을 집권공약으로 내세워 총리직에 오른 베룰루스코니 전총리 등 전직총리 3명이 거꾸로 사정의 대상이 돼 법정에 섰다.국민적 영웅으로 부상하던 사정의 견인차 피에트로 검사도 정치권의 외압에 의해 현직에서 물러났다. ○3천5백명 구속 지속적인 개혁을 위한 사정작업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탈리아의 사정활동이 주춤거리고 있는 것은 지도층의 도덕성 결핍과 부정부패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최고통치권자의 흠집 없는 도덕성과 강력한 부정부패척결의지가 여전히 개혁의 구심력이 되고 있다. 김영진 대검수사기획관은 『문민정부 출범 이후 고위층·사회지도층에 대한 사정작업이 성과를 얻은 틈을 타 지방토착세력을 중심으로 하는 중하위직 비리가 고개를 들고 있다』면서 『국민의 세금으로 봉급을 받는 국민의 공복임을 망각한 이 일부 중하위직 공직자의 구시대적 부정부패의식을 뿌리뽑는 데 올 한해 검찰의 모든 수사력을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세계화에로의 길을 가로막는 부패세력에 대한 「제2의 사정전쟁」은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주요 사정 수사 일지 93.5 상지학원비리 김문기 전의원 구속 93·4∼9 동화은행비자금 안영모 전동화은행장 〃 김종인 전의원 〃 이용만 전재무장관(해외도피중) 93·4∼5 군인사비리 김종호 전해참총장구속 조기엽 전해병대사령관〃 정용후 전공참총장〃 93·5 슬롯머신비리 정덕진 구속 이건개 전고검장〃 93·6∼94·11 포항제철관련 황경로 전포철회장 등 4명구속 박태준 전포철회장(불구속기소) 93·7 율곡사업비리 이종구 전국방장관 구속 이상훈 〃 한주석 전공참총장 〃 김철우 전해참총장 〃 김종휘 전외교안보수석(해외도피중) 93·11 한화그룹외화유출 김승연 회장구속 94·1 상무대공사대금횡령 조기현청우종합건설대표등 2명 구속 94·3 농협비리 한호선 회장 구속 94·3 상문고비리 상춘식 상문고교장 구속 박병용 전국립교육평가원장 〃 94·4 대전엑스포수뢰 이정재 등 12명 구속 94·8 한전사장수뢰 안병화 전사장 구속 94·10∼11 인천북구청,부천세무비리 65명 구속 94·12도로공사비리 전병식 전사장 구속
  • 모스크바 시민/“자본주의 맛” 햄버거 포로되다(세계의 사회면)

    ◎맥도널드,러시아 진출 5주년/“일년낸내 장사진”… 7천3백만명 다녀가/루블화 받고 원료90% 현지조달로 “성공”/개점후 판매실적 세계지점 1위 고수 모스크바의 맥도널드 햄버거점이 지난 1월31일로 개점 5주년을 맞았다.내외국인을 막론하고 모스크바에서 활동하는 비즈니스맨들에게 맥도널드의 성공은 지금도 「신화」로 통한다.무엇보다 맥도널드의 등장은 모스크바 사람들이 막연하게나마 그려보던 화려한 서방생활의 한 단면이 실제상황으로 나타난 것이었다.번쩍이는 유리건물,밝은 실내,한껏 미소를 띠고 손님을 맞는 점원들…스러져가는 사회주의의 마지막 전환기에 신음하던 그들에게는 실로 꿈에서나 그리던 장면들이었다. 맥도널드 캐나다사가 모스크바시정부와 합작으로 모스크바점을 연 90년은 소련체제가 종말로 치닫던 시점이었다.유서깊은 푸슈킨광장을 마주보는 시내 최고 중심가였다.언론들은 연일 이「엄청난」뉴스에 매달렸고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용케 돈을 모아 자본주의의 「맛」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점포앞은 수백미터씩 장사진을 이뤘다.이런 장면이 5년 내내 계속된 것이다. 그러나 개점당시에는 얼마못가 문을 닫을 것이라는 비관 일색이었다.조지 코헨 사장은 5주년 기념식날 아침 푸슈킨광장 점포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그땐 모두들 정신나간 짓이라고 했다.그러나 5년 뒤인 지금을 보라』며 감개무량해했다.러시아인들이 무슨 돈이 있어 이것을 사먹을 것이며,원료공급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등 갖가지 우려 때문이었다.그러나 이날 맥도널드측이 밝힌 바로는 5년간 다녀간 고객수가 모두 7천3백만명.팔린 햄버거가 1천7백60만개,프렌치파이 3천3백만개,그외 밀크셰이크·소프트드링크등이 모두 비슷한 숫자로 팔렸다고 한다.모스크바점은 전세계 맥도널드점중에서 5년간 내리 고객수 1위,판매실적 1위를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성공 뒤에는 과감한 투자,뛰어난 경영전략이 숨어있다.외국 레스토랑들이 모두 달러를 고집할 때 이들은 과감히 루블로 손님을 받았다.그리고 원료공급원을 모두 현지에서 개발,현재는 90%이상을 이곳에서 조달한다.그리고 가장 신경 쓴 부분이 홍보.「자본주의자들의 돈벌이」에 대한 현지인들의 거부감을 없애기 위해 「장애어린이 재활기금」설립,공장을 식품연구소·대학등의 실습장으로 개방,현지고용원을 꾸준히 늘리는등 노력을 계속해왔다. 덕택에 점포수는 3개로 늘었고 조만간 2곳이 더 문을 열 예정이다.물론 실상을 말하자면 호스로 물빼가듯 러시아인들의 호주머니를 「털어가는」격이다.그러나 이곳 사람들은 오늘도 맥도널드를 사먹기 위해 긴 줄을 선다.
  • 화가 천경자/화려한 색조…꽃·뱀·여인집착(이세기의 인물탐구:68)

    ◎독창적 화풍… 한색깔 고르려 수십번씩 검토/91년 「미인도사건」뒤 잠적… 심한 우울증 앓아/묵화 능한 어머니 곁에서 그림 시작… 글솜씨도 뛰어나 천경자 「깊은 우물속에 깔린 신비한 보라색과도 같은 「한」과 「찬란한 절대 고독」의 이미지,꽃과 뱀과 여인과 화려한 파스텔조의 환상적인 색조라면 누구라도 쉽게 화가 천경자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의 화면은 날이 갈수록 청청하여 영혼과 빛과 눈부신 색채의 향연을 변함없이 변주하고 있다.그림 외에 글솜씨로도 유명한 그는 수필집 「한」의 경우 「한이 한없이 나간다」는 말을 유행시킬 정도였고 70년대 남태평양 풍물전을 비롯한 해외스케치전은 관람객이 줄을 짓는 이변을 낳았다.어쨌든 한 시대를 풍미한 예술가중에서 대중적인 인기스타가 아닌 이상 글과 그림으로 이처럼 폭넓게 회자된 인물은 드물다고 할 수 있다. 지난 91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움직이는 미술관」이 전시한 그의 「미인도 모사품사건」이후 그는 한때 화단에서 모습을 감춰버렸다.당시 이 작품의 진위여부를 놓고 『내그림이 아니라』는 작가의 주장과 『작가의 그림이 틀림없다』는 미술계와의 팽팽한 대립속에서 작가를 믿지 못하는 세태에 심한 환멸을 느낀 나머지 그는 오랫동안 심적 타격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듯했다. ○대인관계 비사교적 그의 성품은 그가 좋아하는 미모사만큼이나 민감하다.작은 바람소리 하나에도 무심하지 않아 옳지 않은 것을 동조하거나 싫은 것을 적당히 수용하는 법이 없다.대인관계도 다양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로서는 전혀 비사교적일 뿐만 아니라 사람을 가리고 낯가림이 심한 편이다.그림도 그렇다.색깔을 쓸 때도 발색을 억제하는 반대색을 쓰기 위해 연보라·남보라·황토에서 녹청을 동원하고 그것이 이 그림에서 얼마만큼 확실한 효과를 나타내는가를 까다롭게 따진 다음 이를 선택한다.그러고 나서도 멀리서,가까이서 수십번씩 견주어보고 3∼4개월이 지나 썩 괜찮다는 결론이 나올 때 비로소 화폭 앞을 떠난다. 이른바 동양적인 정조를 바탕으로 하는 그의 작품에서의 조형적 특징은 「천경자풍의 인물을 전형화」하는 데 결정적 성공을 거둔 점이다.평론가 심항섭은 동양화의 인습에서 벗어나 섬세한 감각과 신선한 착상력을 지닌 그의 그림에 대해 『화가로서의 최종적인 꿈인 자기만의 화풍을 선명히 세웠고 색채선택과 배치에도 그만의 확고한 독창성을 성취하고 있다』고 단적으로 평한다.즉 「새로운 조형적 가치실현」과 「개별적 형식의 완결」이라는 어려운 등식을 동시에 갖추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초기에는 주로 뱀(사)의 무리에서 느낀 감흥을 사실적인 기법으로 표현했고 특히 부산 피란시절에 발표한 서른다섯마리의 뒤엉킨 뱀의 「생태」는 풍경과 정물에 집착하던 화단에 커다란 충격의 논란을 던졌다.이후 초현실적인 시적 이미지들이 화면을 지배하면서 그는 자전적 요소를 띤 모티브로 아네모네·라일락·팬지·아스파라거스 같은 요요한 이향이 가득한 꽃무리 속에 화사하게 떠오른 여인의 희구를 그려내고 있다. 그의 운명은 그가 항상 예감한대로 줄기차게 쏟아져내리는 폭포수와 같진 않았다.세차게 흘러내리다가 어느 대목에선가 브레이크가 걸리듯 곤두박질치는 아픔과 정면으로 마주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는 마치 파란을 자초하는 것처럼 비치기도 했다.따라서 한이 많고 고독하다고 하지만 그의 한은 그가 스스로 선택한 한이며 고독 또한 그러하다. 어릴 때는 연극배우를 꿈꾸기도 하고 노랑·파랑·분홍색등 밀랍냄새가 코를 찌르는 오사마(왕양)크레용과 미쓰보시수채화물감을 으깨고 주무르면서 묵화·서도에 능한 어머니 박운아여사 곁에서 그는 하루종일 그림그리기를 지루해 하지 않았다. ○여동생 죽음에 충격 광주농고 졸업후 군청에 다니던 부친(천성욱씨)은 딸이 의과대학에 가기를 원했으나 그의 심성과 감성을 이해한 어머니가 패물과 논을 팔아 마련해준 여비로 어렵게 도쿄유학길에 올랐다. 그러나 3년만에 돌아오자 집안은 몰락했고 그의 결혼실패에 이어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의 죽음,그 불운의 소용돌이에 말려 시련을 견디고 있을 때 부친마저 세상을 떠나는 불상사가 겹쳤다.언젠가 그는 「낙인」이란 수필에서 「나의 인간성에 배어 있는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적요한 낙인은 바로 부친의 불행과 이 여동생의 죽음 때문에 박힌 슬픔의 표적」임을 밝힌 적이 있다. 화가의 일생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젊은 시절에는 가정과 인간에의 정이 스민 화면에 「고통과 황홀감을 공존」시켜왔고 자녀가 모두 출가하고 평생의 반려이던 어머니마저 85년 타계후 가정도 혈육도 떨쳐버린 상황에서 그는 「꽃도 피고 가족도 많던 시절에는 생기찬 리듬감이 화면에 넘쳤으나」 이제는 대양에 뜬 섬처럼 오로지 홀로 남아 「화가」로 존재하는 자신을 다시한번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설령 찬란한 미래가 또 있다 하더라도 그는 「비오지 않은 가문 봄날,움트려고 파닥거리는 라일락나무 같은 과거에 더 깊은 애착과 미련을 갖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자녀는 2남2녀. 모사품사건이후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으나 『글은 쓰지 않아도 살 수 있지만 그림을 그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는 빛과 색채의 순례자로서 그는 정밀(정밀)한 시적 정취와 아름다움을 넘어선 승화된 고독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9년전부터 살고 있는 압구정동 한양아파트의 모든 방은 그가 그린 그림만이 가득,그속에서 지난 4년간 예술원 회의에 나간 외에 올 11월1일부터 한달간 호암미술관이 초대한 화력 50년전과 80년이후 15년만의 개인전을 위한 작업에만 온통 매달려 있다.회고전 성격을 띤 이 전시에는 그가 직접 소장하고 있는 42년 선전 입선작들과 부산시절의 「생태」,최근작인 「우수의 티나」 「누가 울어」시리즈등 평생의 화업이 한눈에 펼쳐진다. 거의 하루종일 화폭 앞에 대좌한 채 이제로부터 몸속에 침잠한 예술적 기운을 한점 미련없이 출산시키는 순간이다.그 외엔 영화광이던 젊은 시절을 되살려 공포영화·공상영화를 보거나 겐자브로의 소설을 읽는다.여전히 걸어다니는 화폭처럼 화려한 옷차림을 즐기고 아침시간에 커피 한모금,지난해부터 술은 하지 않는다. ○화사한 옷차림 즐겨 그는 특유의 호남사투리로 아무리 괴롭고 슬픈 것을 말할 때도 웃고 또 별로 슬프지 않은 일도 그가 한을 담아 말하면 왠지 콧날이 시큰해지는 순수한 감동과 감상을 잃지 않는 점이 특징이다.그러나 나이에 따라 슬픔이나불행은 역시 세월의 금사망속에 망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버리고 관유온자한 자세로 자신에게 얼마나 더 충실할 수 있는가를 때때로 자문하기를 잊지 않는다. 그의 삶은 그대로 예술에 집결하고 귀결하고 있으며 그의 그림들은 「서정적인 분위기」와 「서정시적인」 내용을 함축하면서 작품 하나하나가 「천경자사」라는 하나의 커다란 물줄기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남과 다르다.그리고 지금 「고독으로 미채(미채)된 삼림속에 그가 꿈꾸는 예술의 전당을 짓기 위해」 화폭이라는 그만의 광산에서 그는 진짜 보석을 캐내고 있는 것이다. 사치하리만큼 눈부신 색채의 범람으로 그의 화면은 한층 탁마된 다이아몬드를 구사하고 어느때는 투명한 루비며 사파이어가 그림의 창안에서 언뜻언뜻 상서로운 광채를 발한다.인물의 눈이라든가 중요한 부분에 미점으로 사용하는 금분조차도 단순히 호사스러운 치장이 아닌 것이 세상사로부터 절연된 듯한 순화된 감정과 표정은 그 자체가 그대로 「극미의 정수」이기 때문이다. □연보 ▲1924년 전남 고흥 출생 ▲1941년광주욱고녀 졸업 ▲1944년 도쿄녀미전졸업, 일본문전 무감사작가 소한천청·부산금성사사.재학중 일본문전·청금회전 입선,조전(선전)「조부상」(23회)「노부」(24회)연입선 ▲1946년 첫개인전(광주여고 강당) ▲1949년 서울개인전(동화백화점화랑) ▲1949∼52년 조선대 교수 ▲1952∼74년 홍익대 교수 ▲1953년 부산 개인전 ▲1954∼74년 홍대교수 ▲1955년 대한미협전서 「정」으로 대통령상 수상,백양회 창립멤버 ▲1960∼81년 국전 초대작가및 추천작가 심사위원 심사위부위원장 운영위원역임,국전 초대출품 ▲1963년 도쿄개인전(서촌화랑) ▲1965년 도쿄개인전(이토화랑) ▲1967년 말레이시아 초대전 ▲1969년 프랑스 파리 아카데미 고에즈 연수,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사모아 타이티 첫스케치 여행,상파울루 비엔날레 출품 ▲1970년 남태평양 풍물전 ▲1973년 현대화랑 초대전 ▲1974년 아프리카 풍물전 ▲1977년 한국현대동양화 유럽순회전 ▲1978∼현재 대한민국 예술원 정회원,이후 예술원 회원전 출품 ▲1979년 인도 중남미 풍물전 ▲1980년 개인전(현대화랑) ▲1981년 하와이등 미주지역스케치 ▲1990∼94년 권옥연 변종화 윤중식과 4인전(이목화랑),멕시코여행 오월문예상(65년) 서울시문화상(71년) 3·1문화상(75년) 예술원상(79년) 은관문화훈장(83년) 수필집 「언덕위의 양옥집」「여인소묘」「유성이 가는곳」「한」「자유로운 여자」「쫑쫑」「캔맥주 한잔의 유희」「사랑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어라」,자서전 「내 슬픈전설의 49페이지」,기행문 「천경자 남태평양에 가다」「아프리카 기행화문집」 등
  • 지휘자 원경수(이세기의 인물탐구:66)

    ◎완벽한 화음 연출… 타고난 예술가/탁월한 재능… 악보속 숨겨진 작고고가 의도 읽어내/미·영·러·독무대 활약… 작년 서울시향 맡아“새바람”/부친 반대하자 음악위해 가출… 미·오스트리아서 지휘공부 위대한 지휘자의 한 사람인 카를 뵘은 『지휘자란 손의 움직임 보다는 내면적인 접촉으로 철학적 사상과 정신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토스카니니처럼「악보에 적힌 것을 그대로 소리로」옮기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푸르트벵글러처럼「악보뒤에 숨겨져 있는 음표」를 세밀하게 파헤치는 거장도 있다.어쨌든 지휘자가 지적인 음악의 전달자가 되기 위해서는 음악뿐만 아니라 인생과 예술전반에 걸쳐 해박한 지식과 철학적 사고를 고루 갖추지 않으면 안된다.그런 의미에서 지휘자 원경수는 지휘자의 가장 바람직한 조건중에서 한치의 흠도 찾아볼 수 없는 완벽주의자에 틀림없다. 한번 들으면 악보를 줄줄이 외우는 비상한 두뇌의 소유자인 그는 전문가 뺨치는 편곡실력에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직접 다루고 어떤 악기군이 작곡자가 의도한 악보대로 음악을 연주하지 못하면 이를 귀신같이 잡아내는 예민한 귀를 가지고 있다.첼리스트였던 토스카니니가 암보로 지휘하는 것은 지독한 근시였기 때문이지만 원경수는 악보속에 숨겨져 있는 번뜩이는 예술성을 끄집어내어 재창조의 기적을 만들어낸다.뿐만 아니라 콧대 높은 세계적인 연주자일지라도 원경수 예술의 질서속에 그의 소리를 몰아넣음으로써 오케스트라 단원이나 청중 모두를 일시에 침묵시키고야 만다. ○세상물정엔 어두워 원경수는 한마디로 음악의 화신과 같은 존재다.그와 오랫동안 많은 연주를 해냈고 또 그를 경원대 음대 대우교수로 초청한 피아니스트 신수정은『그의 일생은 음악이 바로 종교』라고 단적으로 단정해버린다.평소의 그는 마치 어린 소년과도 같이 천진무구하다.이해타산도 모르고 세상물정에도 어둡다.그러나 음악에 관한한 어떤가.그 자신이 어릴때부터 그래왔던것 처럼 음악에서만은 만능이며 천부적 재능의 소유자다.기라성같은 세계 정상급과의 협연에서도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작곡가의 의도를 이해시키기 위해열의에 찬 정열을 식히지 않는다.그래서 처음 그를 만난 사람은 피곤할 수 밖에 없게 된다.그러나 그를 만남으로써 음악이 향상되고 있음을 스스로 실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또 투철한 실험정신으로 좀더 새로운것,실험적인 것에 도전하기를 주저치 않는다.그의 특징은 행사적인 타성에서 벗어나 그때마다 새롭고 경이로운 것을 지향하는 타입이다.초연 작품을 즐겨 선택하는 것도 그런 이유의 하나다.윤이상에 대한 탁월한 해석과 영국 에든버러대 배리쿠퍼교수가 찾아낸 베토벤 10번 1악장,에네스코의 루마니안 랩소디 2번,그리고 모차르트의 새교향곡 a단조(K16a)초연등은 우리 음악사에 길이 남을 만한 감동적인 명연주들이다. 미국 스탁톤 심포니 음악감독이자 지휘자였던 그가 지난해 서울시경 상임 지휘자로 취임했을때 정재동이후 키를 잃고 방황하던 시향에 뭔가 범상치 않은 바람이 불 것같은 예감에 음악계는 긴장과 생기가 감돌았다.그리고 그의 시향은 지난 1년간 어느때보다 활기차고 싱싱한 전열을 가다듬었다.과연 그의 송년음악회는 해마다연주되던 베토벤 9를 과감하게 버리고 「전원」과 「운명」으로 「평화롭고 엄숙하게」 막을 내렸다. 원경수는 서울 종로구 내자동에서 태어났다.당시 화신백화점 전무로 있던 원대참씨와 김계복여사의 3남매중 장남으로 어릴때부터 피아노를 쳤고 한번 들은 곡은 오선지에 채보하거나 피아노로 방금 옮겨 칠만큼 섬세예민한 음감을 타고났다.부친은 상당히 현대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인텔리임에도 아들의 음악만은 완강히 말렸다.만약 음악을 계속할 경우 부자의 연을 끊겠다고 말했다.그도 『굶어죽더라도 음악을 포기할수 없다』고 선언하고 집을 나와버렸다.그때가 경복고를 졸업하던 47년이었다. ○레코드 한장들고 낭와 그런 결심을 하게된데는 성장과정에서 그가 자기자신에게 해온 하나의 질문이 있었기 때문이다.끝없이 소리내며 돌아가는 시계의 초침을 바라보면서 「나는 장래 무엇이 될것인가.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게 될것인가」를 자문했고 그리고 무엇이 되든지간에 「주말이나 월급날을 기다리는 틀에 박힌 인생은 절대로 만들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메뉴인이 연주한 레코드 한장만을 달랑 들고 집을 나온 그는 장래 하이페츠나 오이스트라흐를 능가하는 연주자가 될것을 꿈꾸며 혼자서 독학한 실력으로 서울대 음대에 진학했고 부산 피란시절에는 이화여대 임시강당에서 바이올린 독주회,이를 인연으로 후에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가 된 김영욱의 바이올린 레슨을 맡아 종로구 운니동에 있는 김영욱의 집에 기식한 시기도 있다.그후 선배 지휘자인 임원식씨의 소개로 김생려씨가 지휘하는 고려교향악단에 들어가 브람스 베토벤 모차르트 뵈탕의 솔리스트로 활약하다가 54년 한국을 방문했던 신시내티 교향악단의 도어 잔슨의 눈에 띄어 미국으로 유학하기에 이른다. 그가 지휘자의 길을 걷게 된것은 미국 신시내티 뮤직콘설바토리와 인디애나대 졸업후 빈의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에서 지휘를 전공,61년 디아길레프 러시아 발레단 지휘자였던 피엘 몽퇴가 주관한 행커크 서머스쿨에 참여하면서부터다.피엘 몽퇴의 제자의 대열에 서게된 그는 뉴올리언스 교향악단 부지휘자를 거쳐 67년 10월 미국 캘리포니아 중심지역인 스탁톤에서 40년 역사의 스탁톤 오케스트라를 지휘,다음날「스탁톤 저널」은 『이 오케스트라는 일찍이 이처럼 훌륭한 연주를 한적이 없다.특히 피아니시모의 처리는 섬세한 연주의 심벌이었다』고 대서특필했다.그날 강당을 가득 메운 청중은 기립박수로 앙코르를 외쳤고 그는 60여명의 후보자 가운데 당당히 새지휘자로 발탁되었다. 런던 로열 페스티벌홀에서 영국의 세계적인 교향악단인 런던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지휘로 국제무대에 오른 그는 76년 베를린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빈의 저명한 퉁퀸스틀러(음악가협회)오케스트라를 지휘.당시 빈 아카데미에 유학하고 있던 시향의 김영목씨 편지에 따르면「그의 연주 티켓은 며칠전에 매진됐으며 동양에서 오는 한 지휘자에 대한 이곳 음악애호가들의 관심은 대단하다」고 전한 적이 있다.「베토벤과 모차르트는 빈 사람들의 긍지와 자존심 자체」였으나 그의 연주는 「그들의 자존심을 완전히 만족시켰다」고. 퉁퀸스틀러 오케스트라 연주에 앞서 그해 서울시향에서 베토벤 교향곡7번과 모차르트 아이네 클라이네 나하트 무지크를 연주했을때 음악평론가 이성삼은 『원경수의 지휘로 매너리즘에서 탈피하지 못하던 서울시향은 오랜만에 융합된 화음과 투명한 톤으로 생기에 찬 발랄한 연주를 들려주었다』고 호평했다.이는 그의 국제적 성공을 예고하는 팡파르가 되었다. ○그림솜씨도 뛰어나 아마추어를 능가하는 그림솜씨 또한 유명하다.전람회를 열만큼은 아니지만 흑석동에 있는 그의 집에는 그가 그린 추상계열의 작품들이 벽면마다 장식되어있다.이 그림취미는 그가 지휘할때마다 눈앞에 떠오르는 색채의 멜로디를 그대로 캔버스에 옮긴 것이다.베토벤이 마치 구름처럼 또는 폭포수처럼 곡조의 환상을 이루는 화면속의 장엄미사는 문자 그대로 장관이 아닐수 없다.패션디자이너인 부인 서혜자여사와의 사이엔 알리사(27·재미 변호사)와 저스틴(26·MIT박사학위중)남매, 현재 서울엔 부인과 둘이 살고 있고 건축가 원정수씨가 실제다. 강한 추진력과 한치의 오차도 없는 정교하고 날카로운 지휘,그의 피아니시모는 그 누구의 것보다도 작고 청려하며 그의 포르티시모는 웅대하고 장쾌하다.어느 한군데도 흠잡을 수 없이 유연하고 세련된 흐름이 원경수 예술의 진수일 것이다. 봄과 함께 시작되는 서울시향의 교향곡축제는 그가 편애해 마지않는 말러 심포니로 시작된다.「말러를 가장 말러답게」로 평가되는 바로 그 말러다.말러 자신이 말한대로 「초원의 꽃이 천국의 속삭임을 전달하는」 환상적인 묘사풍은 「음악은 너무 흘러넘치지 않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한눈에 보여주게 될것같다.언젠가 런던 익스프레스지가 『마에스트로 원과 함께 악보뒤에 숨겨져 있는 음표를 파헤쳐 함께 즐긴다』고 지적한 것처럼 한 예술가의 인생의 경륜과 예술혼이 깃든 지휘는 수준높은 청중의 자존심을 완벽하게 만족시켜줄 것에 틀림없다. □연보 ▲1929년 서울출생 ▲1945년부터 바이올린 독학 ▲1952년 서울대 음대졸업 ▲1952∼54년 고려교향악단 단원 ▲1954∼61년 메인주 행커크서머스쿨 피엘몽퇴,심포니 오브더 에어의 월터 핸더슨에게 지휘법 사사 ▲1957∼65년 인디애나주립대 작곡·바이올린·지휘전공,신시내티 뮤직콘설바토리 도어 잔슨에게 지휘및 바이올린전공,신시내티심포니 필리핀 마닐라심포니 인디애나주립대 교향악단 지휘 ▲1963년 중서부지역 바이올린 독주순회,뉴올리언스 교향악단 부지휘자 ▲1965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지휘전공 ▲1967∼94년 모데스토 심포니,스탁톤 심포니 음악감독겸 상임 지휘자 ▲1970∼72년 서울시향 음악감독겸 상임 지휘자 ▲1970∼78년 캘리포니아 스탁톤뮤직콘설바토리및 패시픽유니버시티 강의 ▲1976년 런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지휘(런던 로열 페스티벌홀) ▲1975∼89년 빈 퉁퀸스틀러(음악가협회)오케스트라 지휘 ▲1976·80년 베를린 라디오 오케스트라 지휘 ▲1978년 런던 필 지휘(런던 화이어 버드홀) ▲1981년 베를린 괴테 인스티튜트 수학 ▲1982·87·89년 에이레 국립 오케스트라와 칠레 아르헨티나 연주 ▲1984년 서울시향과 미순회 연주 ▲1985년 런던 필 지휘(런던 바비컨센터),KBS교향악단 상임 지휘자 ▲1986년 빈 서머뮤직 페스티벌.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바비컨)▲1988·89년 체코슬로바키아국립 라디오 오케스트라,렉싱턴 필하모닉오케스트라,베를린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 ▲1992년 경원대 대우교수 ▲1994년 뉴모스코 스테이트 필하모니 지휘(차이코프스키홀),스탁톤 심포니 명예 지휘자및 서울시향 상임 지휘자
  • “「뿌리지키기」 열망 뜨겁습니다”/일본서 맞는 「한핏줄」의 감회

    ◎2·3세 「한국적」 유지 세계사 유례없어 광복이후 어언 반세기가 된다.일본에서 생활하면서 정신적으로는 잊을수 없는 조국과 일본과의 틈바구니에서 살아온 「마지널 맨(경계인)」으로서의 반세기라고나 할까. ○1세대 5%만 생존 일본에 사는 우리동포사회는 그동안 크게 탈바꿈했다.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것은 한국에서 출생한 제1세가 해마다 줄어들고(아마 5%정도)일본에서 출생한 세대가 주류를 이룸에 따라 동포사회가 「일본화」되는 날이 그리 멀지 않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해외동포는 총5백여만명으로 알고 있다.동포수의 순위는 중국·미국·일본·옛소련이 될 것이다.그중 재일동포는 68만명이며 광복전에 일본에온 제1세와 그 자손이 58만명이다.최근에 일본에 온 한국인을 「뉴 커머(NewComer」라 한다면 광복전에 일본에 온 한국인과 그 자손을 「올드 커머(OldComer)」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와 같이 올드 커머의 제1세가 거의 없어지고 제2·3·4…세가 「한국」또는 「조선」국적을 가지고 외국인으로서 생활한다는 것은 해외동포가 사는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유일한 예가 아닌가 생각한다. 금년은 한일 국교가 정상화된지 30주년이기도 하다.그 당시 일본정부는 물론 한국정부도 3·4세들은 점차 일본화될 것으로 예측했을 것이다.사실 한국대표가 그런 언질을 준 일도 있다. 최근의 인구통계를 보면 올드 커머의 인구수가 해마다 줄어들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귀화자가 인구증가율을 웃돌고 있기 때문이다.귀화해서 일본국적을 얻으면 적어도 법적·제도적 민족차별은 없어진다.일본에서 출생한 젊은 세대들은 귀화해서 일본인과 동일한 권리를 취득할 것인가,아니면 불평등이 있더라도 민족적 입장을 고수해서 살 것인가,그 갈림길에서 흔들리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물론 일본사회의 민족적 차별과 멸시속에서 자기의 희망과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귀화할 경우 아쉬움은 남는다.하지만 후대들이 그런 설움에서 해방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심정 또한 당연하다. ○「민족대학」 수강 열기 그러나 차별속에서 오히려 자기의 뿌리를 생각하게 되고 민족적 아이덴터티(주체의식)을 되찾아서 살아야 하겠다는 의지도 끈질기다. 그러한 의지는 지난 1993년 1월부터 지난해 연말까지 오사카(대판)를 효시로 도쿄(동경) 요코하마(횡빈)·나고야(명고옥)교토(경도) 히로시마(광도) 후쿠오카(복강)에서 한국 민단주체로 개설된 「민족대학」강좌에서 나타나고 있다. 『「민족대학」강사는 재일한국인의 학자와 전문가가 중심이었다.매주 토요일에 열린 강좌는 한국역사·조국에 대한 기초지식·한국과 일본과의 관계사·재일한국인의 역사를 비롯,생활에 필요한 법적지위 및 세금대책에 이르기까지 모두 12과목이었다. ○10대∼80대까지 참여 나는 오사카에서 제1회 강좌가 시작되기 전에 수강생이 50명 내지 1백명이 모이면 성공한 편이 아닌가 생각했다.그러나 실제 뚜껑을 열고 보니 당초의 모집예정인원 2백명을 훨씬 넘는 3백60여명이 참가하여 강의실은 열기로 가득찼다. 다른 도시에서도 모집예정인원을 웃도는 대성황을 이루었다. 40·50대를 중심으로 10대후반에서 80대까지 남녀노소를 망라한 수강생들의 열기어린 눈초리에 나는정말 눈시울이 뜨거웠다. 이 글 첫머리에 재일한국인을 「마지널 맨」이라 불렀지만 재일동포들은 일본 생활속에서 완벽한 한국인은 되지 못하더라도 조금이라도 한국인에 접근하려는 의지가 대단하다는 것을 「민족대학」강좌를 통해 배웠다. 나는 이 글에서 감히 「재일교포」란 용어를 피하고 「재일동포」라 했다.「교」자를 풀이하면 「붙어 살고」즉 남의 집에 붙어서 산다든가,타향 혹은 타국에 임시로 붙어서 산다는 뜻이 된다. 『재일동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올드커머는 일본에서 영주권을 가지고 사는 한국인이다.따라서 「교포」란 용어는 그들의 생활실태에 어긋나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내가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일본에서 자란 젊은 세대들이 자기 뿌리를 찾는다고 고향을 방문했을때 한국말을 못한다고 면박을 당해서 실망했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리고 있는 점이다. ○한글 몰라도 애정을 그들은 일본에서 한국말은 몰라도 살수 있지만 일본말을 모르고서는 하루도 살 수 없다.일상생활에서 필요없는 말을 다만 민족적 자각에서 터득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일이 아니다. 가령 한국말을 모른다 하더라도 자기의 뿌리를 찾겠다는 그 심정을 찬양해준다면 얼마나 조국과 고향을 피부로 느끼게 되고 오히려 모국어를 비롯해서 자기조국을 더 잘 알기 위한 용기를 얻을 수 있겠는가. 과장된 표현을 한다면 일본에서 출생한 젊은 세대들이 대를 이어서 민족적인 입장을 고수해서 산다는 것은 세계사적인 실험이라 생각한다.그러기에 나는 앞으로도 그들의 삶을 따뜻하게 지켜보고 싶다.
  • 상장사 유상증자 전면 자율화/새해부터/「물량조절제」폐지

    ◎기업공개 요건도 크게 완화/증권관련 규제 17건 완화/재무부 내년 1월부터 금융기관을 제외한 모든 상장기업은 재무상태가 일정 요건을 갖추면 자유롭게 유상증자를 할 수 있도록 유상증자 물량조절 제도가 폐지된다.유상증자 및 기업공개 요건도 완화된다. 증권사의 부동산 취득,점포 신설,배당,무상증자 등 내부경영에 관한 제한도 풀린다.빠르면 내년 상반기부터 외국 증권사의 국내지점에 내국인의 해외증권투자 중개업무가 허용된다. 재무부는 21일 증권관련 규제 17건을 완화하는 내용의 「증권업무 자율화 방안」을 마련,증권관리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내년 1월3일(법개정 사항은 내년 초 임시국회 이후)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내년부터 외환 및 자본 자유화로 자본의 국내외 이동이 빈번해질 것에 대비,국내 자본시장을 육성하고 증권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직·간접적인 각종 시장 규제를 사실상 전면 해제하는 것이다. 주요 내용은­. ◇상장사의 유상증자 전면 자율화=상장사협의회의 유상증자 물량조절 제도를 폐지한다.따라서 6백98개 상장사 가운데 금융기관 92개를 제외한 6백6개사는 요건만 맞으면 유상증자를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된다.지금은 중소기업과 제조업의 상장사만 물량조절을 받지 않는다. ◇유상증자 요건 완화=납입자본 이익률 및 경상이익률 5% 이상,전년도에 배당 실시 등의 기준을 삭제,전년도에 당기순이익이 있는 상장회사는 유상증자를 할 수 있다.건당 증자 한도도 2천억원(납입액 기준)에서 3천억원으로 커진다. ◇기업공개 요건 완화=전년도의 납입자본 이익률이 5대 시중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최저이율 이상이고 최근 3년간의 납입자본 이익률 합계가 30% 이상이면 된다.지금은 전년도의 이익률은 정기예금 최고이율의 1.5배 이상,그 전 2년간은 최고이율 이상이어야 한다. ◇증권사 임직원의 주식 매매=현재는 증권저축과 우리사주·국민주·공모주만 청약할 수 있으나,앞으로는 우리사주 조합원간의 매매,실권주의 취득및 처분,주식연계 증권의 주식전환 및 처분도 할 수 있다. ◇증권사의 부동산 취득 한도=자기자본 대비 부동산 취득비율이 자기자본 6백억원까지는50%,초과분은 20%에서 앞으로 자기자본 1천억원까지는 50%,초과분은 30%로 늘린다. ◇기타=증권사의 점포수가 20개 이상이면 연간 2개,20개 미만이면 연간 4개까지 점포를 신설할 수 있다.주주에 대한 배당한도를 당기순이익의 40%에서 1백%로 늘린다. 만기 5년 이상인 장기채권의 지급보증을 허용한다.해외 부동산구입,외국 법인에 대한 출자,해외 유가증권투자 등 증권사의 외화자산 투자한도가 자기자본의 20%에서 30%로 늘어난다. 24개 국내 증권사에만 허용된 내국인의 해외증권투자 중개업무가 외국 증권사의 국내 지점에도 허용된다.증권사의 부동산 및 외화자산 투자한도의 확대로 재무상태가 악화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고정자산의 소유한도를 자기자본의 70%로 제한한다.
  • 유통업체/「가격파괴」 경쟁 확산/한국은행 「가격인하… 현황」 분석

    ◎아웃렛 등 할인전문점들 속속 개점/유통시장 개방땐 더욱 가속화될듯 유통업체가 주도하는 가격인하 경쟁인 「가격파괴」 현상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특히 오는 96년 유통시장 개방과 함께 외국의 유명 유통업체들이 전문할인점 형태로 국내에 진출할 경우 유통업 부문에서의 가격인하 경쟁은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25일 한국은행이 내놓은 「최근의 가격인하 경쟁­배경과 현황」이라는 자료에 따르면 작년 11월 신세계백화점이 서울 창동에 디스카운트 스토어인 E마트를 개점,시중가격보다 20∼30% 싼 값에 물품을 판매하기 시작한 데 이어 회원제 창고형 도소매업체인 프라이스클럽·아웃렛·대중 양판점 등 신종 할인전문 유통업체들이 잇달아 생겨나고 있다. 이들 유통업체들의 판매가격은 시중가격보다 20∼50% 정도 싸다. ▲셀프 서비스로 판매사원을 최대한 줄이고 ▲광고를 지양하며 ▲창고형 점포 등으로 매장설치 비용을 줄이는 한편 ▲조기발주·전량 매수 전략으로 판매원가와 유통마진을 최소화 하기 때문이다. 신종 유통업의 선두주자격인 디스카운트 스토어는 일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생활용품을 30% 정도 싸게 파는 창고형 점포이다.회원제 창고형 도소매업은 회원에 가입한 소비자들에게만 30∼50% 싸게 파는 할인판매점이다.아웃렛은 유명 브랜드 제품의 재고정리를 위한 초 염가 판매점으로 시중 가격보다 50% 이상 싸다.카테고리 킬러는 가전·의류 등 단일 제품만 20∼30% 싼 가격에 대량으로 판매하는 유통업이며,홈센터는 주택보수 관련 자재와 도구만 30% 정도 할인 가격에 파는 점포이다.슈퍼센터는 디스카운트 스토어에 야채·과일·정육부문을 추가한,디스카운트 스토어와 슈퍼마켓의 결합형이다.대중 양판점은 일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양질의 중저가 생필품을 대량 구비하여 판매하는 점포이다. 미국의 경우 80년대 불황을 겪으면서 급성장,현재 유통업계를 주도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디스카운트 스토어인 「월 마트」의 경우 작년 매출액 6백37억달러,점포수가 1천9백53개나 된다. 일본은 92년 이후 불황과 엔고로 인한 판매부진과 값싼 수입품에 대응하는 방편으로 유통업체들의가격인하 경쟁에 제조업체들도 가세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신종 할인점이 생겨나고 있다.대형 슈퍼마켓 체인인 「다이에」의 경우 2백20엔인 맥주는 1백50엔,1백10엔인 콜라는 40엔에 판매하는 등 시중 가격보다 30∼50% 싼 값에 물품을 판매하고 있다. 한은은 대도시의 부 도심권과 중소도시를 중심으로 신종 할인 판매점이 급속도로 확산될 것으로 보이나 할인판매 전용 상품개발에 소홀히 할 경우 수입상품의 점유비율이 높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이강남 조사 2부장은 『제조업 부문의 경우 임금·금융비용·환율 등을 감안할 때 당분간 가격인하 경쟁은 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수입개방화가 급진전되면 저가의 수입품에 맞서기 위해 가격인하 경쟁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내다 봤다.
  • 신종할인점 하이퍼렛 등장/새달 서울중앙병원에 1호점 개점

    ◎슈퍼­E마트 중간형태/현대백화점,차별화로 매출 극대화 최근 국내백화점들이 미국의 「K마트」와 같은 할인점(DS)개설 열기에 휩싸인 가운데 새로운 「가격파괴」를 내세운 유통업체가 등장한다. 오는 11월 중순 현대백화점이 서울 중앙병원 지하1층에 개장하는 「하이퍼렛」이 그것이다.상품가격과 구성 및 매장면적에서 기존의 슈퍼마켓과 「E­마트」(신세계백화점)등 할인점의 중간쯤 되는 형태이다.할인율은 슈퍼의 10%보다 높고 E­마트의 30∼40%보다 낮은 20%선이며 면적도 1천평이상인 할인점보다 훨씬 작은 2백평이다. 「하이퍼렛」의 강점은 신속한 점포수증설 및 품목의 차별화.내년까지 분당신도시의 2호점 등 10개,2001년까지 1백개의 점포를 열어 매출을 극대화할 계획이다. 현대백화점은 할인점의 경우 1천∼2천평의 점포와 2백대가 넘는 주차장이 필수적이고 이를 10개이상 확보해야 손익을 맞출 수 있으나 우리 현실에서는 이런 조건을 갖추기 어렵다며 하이퍼렛과 같은 중간규모의 유통형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주위환경에 따라 품목을대폭적으로 달리 하는 것이 특징이다.중앙병원의 1호점의 경우 야채나 고기,생선 등은 아예 없애고 병원의 여건에 맞춰 환자들이 많이 찾는 과일과 쥬스를 개발하며 분당점의 경우 주부들을 겨냥,의류와 주방용품 및 가공식품 위주로 한다.같은 계열사가 아파트를 지을 경우 가장 먼저 점포를 확보할 계획이다. 현대백화점의 최동주부장은 『지금 할인점들이 인기를 모으고 있으나 우리의 유통구조상 메이커들로부터 지속적으로 상품을 공급받거나 대형점포를 확보하기 어려워 「반짝 호황」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며 『건설업체를 지닌 선경유통이나 청구백화점 등도 하이퍼렛의 성공여부에 따라 시장진출을 고려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 세탁기 판매전쟁 다시 “후끈”/금성·삼성·대우·동양 신제품 잇달아

    ◎작년 「엉킴」 대결서 「세탁력」으로 승부 연간 1조원(약 1백60만대)이 넘는 세탁기의 판매경쟁이 1년만에 다시 달아오른다. 금성사 삼성전자 대우전자 등 가전 3사와 후발 업체인 동양매직 등 4개사는 최근 신제품을 경쟁적으로 내놓으며,세탁기 전쟁 제 2라운드를 선언했다.지난 연말에는 동양이 「엉킴 문제」를 해결했다며 제 1라운드를 촉발했었다. 각 사마다 신제품의 세탁력이 최고라는 점을 강조한다.쟁점이 1년만에 「엉킴」에서 세탁력으로 바뀐 셈이다.저마다 대리점 별 실연회를 갖고 있으며 무이자 할부 판매로 값을 깎아주기도 한다.대부분이 용량 8㎏ 이상의 대형이라는 점도 공통이다. 신제품은 금성사의 「위상제어 카오스」,삼성전자의 「폭포수류 신바람」,대우전자의 「월드워셔」,동양매직의 「폭포봉 V모델」이다. 금성사는 세탁물의 종류와 오염에 따라 세탁날개의 회전속도와 시간을 자동 조절,적절한 물살을 만들어 실크 란제리 등 고급 의류도 깨끗이 빨 수 있다고 주장한다.그동안 면 종류에만 머물던 대상을 넓혔다는 것이다. 세탁조 위에서 물이 자동 급수되는 「샤워 헹굼방식」을 적용,빨래에 남아있는 땟물과 잔류 세제를 깨끗하게 씻어준다고 설명한다.고객평가단 1백명을 선발,고객 모니터 요원과 함께 판촉에 활용하며 이 달 말까지 9개월 무이자 할부판매 중이다. 삼성전자는 세탁조 바닥의 날개를 강력하게 회전시켜 물을 세탁조 위로 끌어올려,물살의 힘으로 세탁하므로 세탁력이 좋다고 주장한다.시작부터 세제가 녹기 때문에 다른 제품보다 세탁력이 우수하고,특히 큰 빨래에 좋다는 설명이다.이 달 말까지의 12개월 무이자 할부판매 기간을 연장할 것을 검토 중이다. 대우전자는 회전력이 강화된 모터로 강력한 회전이 가능해,기존 제품인 「공기방울 세탁기 Z」에 비해 세탁기능을 10% 이상 높였다고 자랑한다.공기방울의 두드리는 효과에 빨래판의 비벼주는 효과까지 있어 세탁기능이 향상됐다는 것이다. 양복도 세탁할 수 있고,같은 급(10㎏)의 모델 중 가장 크기가 작다고 선전한다.한국능률협회의 조사에서 소비자의 만족도가 가장 높았다는 점도 강조한다. 동양매직은 옷감의 양과 질에 따라 세탁봉의 회전을 조절하는 기능이 있으며,물이 위에서 「계속」 떨어지기 때문에 세탁력이 최고라고 주장한다.세탁조의 위와 아래에 2중 탈수안전 장치를 마련,탈수 때 세탁물이 쏠리면서 생기는 소음과 진동을 줄인 것도 특징이다. 동양의 판촉이 가장 공격적이다.주요 도시의 대리점 별로 경쟁사의 제품 성능을 비교하는 실연회를 갖기로 했다.금성 삼성 대우 등 가전 3사가 대리점 별로 「자사」 제품의 우수성만 강조하는 데 비해 매우 적극적이다. 1위를 고수하려는 금성사와,정상에 도전하는 삼성전자와 대우전자,착실히 점유율을 높이는 동양매직의 경쟁은 성수기인 가을을 맞아 본격화되고 있다.
  • 프라이스 클럽/E­마트/하루 2억원이상 매출

    ◎가격파괴 할인점 확산 기세/고객들 비상한 관심속 매일 1만여명 찾아/회원 연내 10만돌파 전망… 제품 다양하지 못한게 흠 가격파괴 열풍이 미국을 비롯한 각국의 유통업계를 뒤흔드는 속에 신세계가 서울 양평동에 첫개점한 회원제 창고형 도매상가 프라이스클럽의 매출액이 보름만에 41억원에 달했고 하루 1만명의 고객이 몰리는 등으로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는 신세계가 연말까지 예상한 매출목표액 1백50억원의 4분의 1이 넘는 것이다.또한 3만원의 회비를 내는 카드회원의 신청도 쇄도해 연내에 1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프라이스클럽은 그야말로 창고처럼 아무 시설도 없이 넓은 매장에 선반 가득 물건만 쌓여있을 뿐 누구하나 옆에서 물품구입을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 우리 정서상으로 보면 대단히 낯선 모습이지만 시중보다 엄청나게 싼 가격이 소비자를 불러모아 주변 유통업체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프라이스 클럽에서는 시중 백화점에서 8만∼9만원인 게스 청바지가 2만5천∼3만원선이며 9천6백원인 24롤짜리 두루마리 화장지가 6천5백원,밸런타인 양주가 2만9천원,테일러 메이드 스틸 아연 골프채세트가 1백만원 안팎으로 시중가의 절반이하이다.프라이스 클럽은 유통 마진이 7∼8%로 박리다매가 목표.이 때문에 곳곳에서 비용줄이기 노력이 시도되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제조업체로부터 물건을 싸게 구입해야 하는 것이다. 제조업체에 따라서 다른 유통업체와의 마찰을 고려,납품을 거절하기도해 다양한 제품을 보며 비교 구매하는데 한계를 느낄 수도 있다.일부 제조업체는 일단 유통업계에 불고 있는 가격파괴 현상을 외면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제품의 크기를 묶음포장과 대형화로 차별화,납품하기도 한다.그결과 대한펄프는 12롤짜리 화장지를 24롤로,제일제당과 럭키는 세제 및 조미료를 기존의 2,4킬로 포장에서 7킬로로 늘렸는가 하면 삼호물산은 6개들이 통조림 박스를 별도 개발하기도 했다.실제로 이곳에서는 크레파스도 서너개씩 묶어 팔고 2킬로짜리 참치캔이 있는가하면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대형용량이 주종을 이룬다. 이런 분위기는 신세계가 순 한국형할인점으로 개발,점포수를 늘려가고 있는 E­마트도 마찬가지.현재 창동과 일산의 아파트 밀집지역에 있는 E­마트도 하루 평균 1억6천∼2억1천만원의 높은 매출을 올리며 주변 상가들의 물가를 낮추는데 한몫하고 있다.이곳은 회원제도 아니고 프라이스 클럽보다는 낱개가 많고 포장단위도 적지만 일반 점포들 보다는 가격이 크게싸 날로 인기이다. 이에따라 신세계는 내년에 인천에 E­마트 3호점을 개점하고 5년내로는 20개점을 열 계획이며 프라이스클럽도 2천년까지 전국 주요도시에 10개점 정도를 계획중인 것으로 알려졌다.할인 판매점은 신세계외에 그랜드·현대·한양유통 등의 다른 유통업계들도 형태는 조금씩 다르나 「저가작전」을 공통으로 추진 중이어서 멀잖아 우리나라도 할인점 대중화시대가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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