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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 불평등 이제 그만](8) ‘공룡’ 대형마트에 재래시장 ‘신음’

    [경제 불평등 이제 그만](8) ‘공룡’ 대형마트에 재래시장 ‘신음’

    지난 주말 오후 경기 광명시 광명네거리에 있는 광명시장. 골목을 따라 400여개의 가게가 다닥다닥 붙어 있지만 지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광명시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국에서 7번째 규모를 자랑하던 재래시장이다. 반면 6개월 전 시장 옆에 생긴 380평 규모의 할인매장(슈퍼슈퍼마켓:SSM)인 ‘이마트’ 안은 쇼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유통공룡’이 골목 상권을 완전히 장악, 재래시장이 고사하고 있는 현장이다. ●광명시장 점포수 600개서 400개로 급감 광명시장에서 아내와 함께 8년째 반찬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정모(45)씨는 “대형할인점 때문에 재래시장이 다 죽어간다.”고 한숨부터 내쉬었다. 정씨는 “‘이마트’가 들어오고 난 뒤 손님을 싹쓸이해가면서 매출이 40% 가까이 뚝 떨어졌다.”면서 “세 아이 등록금과 학원비를 제대로 낼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정씨 가게의 현재 월 매출은 150만원 수준. 이마트가 들어선 뒤 50만원 이상 줄면서 손익분기점을 맞추지 못하는 상황이다. 정씨는 “이마트에서 생활필수품과 과일, 야채 등 식료품까지 모두 취급하고 있어 갈수록 일반 소비자들이 재래시장을 외면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실제로 이마트가 입점하기 전 2억원을 넘던 광명시장 전체의 하루 매출도 1억 5000만원 이하로 40%나 곤두박질쳤다. 가게들이 잇따라 문을 닫으면서 600개에 이르던 점포도 400개로 급감했다. 더 큰 문제는 지금부터다. 정씨는 “주로 식료품을 팔던 대다수 점포들이 이마트와의 경쟁을 피해 저가 대중식당 등으로 바꾸면서 서로 ‘출혈 경쟁’을 해 다같이 죽어가고 있다.”면서 “상당수가 빚에 시달리고 있어 두세 달 안에 폐업 도미노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영세상인 보호를 위해 대형마트 규제에 나서기는커녕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핑계삼아 대기업의 이익을 보호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상가끼리 출혈경쟁→빚더미→폐업 ‘도미노´ 경기 성남시 중앙시장 골목에서 문구점을 운영하는 박모(47)씨는 요즘 잠이 안 온다. 가게 500m앞 옛 인하병원 자리에 지난해 말부터 건립 중인 주상복합건물에 대형마트 입점이 가시화되면서 폐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 상당수 이웃 가게 주인들은 “도산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앞다퉈 가게를 정리했다. 그러나 박씨는 폐업조차 여의치 않다. 그는 “당초 업종을 바꿔보려고도 했지만, 어느 업종이나 대형마트와의 경쟁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면서 “대형 마트 입점 소식에 가게를 임차하러 오는 사람도 없어 가뜩이나 사정이 안좋은 집주인이 ‘보증금을 내주기 힘든 형편’이라고 호소한다.”고 토로했다. 신근식 성남중앙시장연합회 부회장은 “올해 들어 시장 점포 25%가 폐업을 하고 떠난 상태”라면서 “대형마트는 재래시장 상인의 생계뿐 아니라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송두리째 빼앗아 간다.”고 말했다. ●동네 슈퍼마켓·문구점도 직격탄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서 30여평 규모의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54)씨도 대형 할인점의 기세에 눌려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씨 가게는 인근 홈플러스와 이마트 등 대형할인점과 불과 500∼600m 떨어진 곳에 있다. 김씨는 “외환위기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면서 “임대료를 내기 위해 빚도 여러번 냈고, 대학생 아들의 학자금 대출까지 받았다.”고 고개를 떨궜다. 서울 구로동 롯데마트 인근에서 문구점을 운영하는 이모(39)씨는 “우리 가게에서 마진을 감안해 500원 이하로 팔기 어려운 학용품을 할인점에서는 ‘초특가’ 판매로 400원대에 팔고 있어 경쟁이 안 된다.”고 울상을 지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공룡 마트’ 10년새 10배 급증 대형마트의 성공 뒤에는 소상인들의 눈물이 있다. 국내 재벌계 대형할인점은 지난 10년간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하에 ‘유통공룡’으로 급성장했다. 재래시장은 급격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대형할인점 96년 28곳서 작년 342곳으로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대형마트는 1996년 점포수가 급격히 늘어났다.96년 28곳에 불과하던 것이 2000년에 163곳,2006년에는 342곳으로 급증했다. 매출액도 2000년 10조 5000억원에서 2006년 25조 4000억원으로 급성장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대형마트 개점은 등록제로 돼 있어 건축법상 하자가 없으면 막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대형마트들의 수도권 집중과 상위 4곳의 과점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 대형마트의 48.3%인 160개가 서울·경기·인천에 몰려 있다. 매출액으로는 서울이 57%(13조 2000억원)에 이른다.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홈에버 등 대형마트 상위 4곳의 점포수는 245개로 전체의 71.6%. 이들의 매출은 17조 7000억원으로 75.3%다. ●재래시장 총매출 2004년 35조서 1년새 3조 급감 전국 재래시장은 2005년 1660곳이었다. 대형마트의 영향으로 최근 1년간 재래시장의 94%는 영업 상황이 악화됐다. 중소기업중앙회 조사 결과 2004년 35조 4000억원이던 재래시장 매출액은 1년새 2조 7000억원이나 감소했다. 이는 재래시장 약 137개에 해당하는 것으로, 같은 해 대형마트 매출액 증가분 2조원에 잠식된 것으로 추정된다. 점포당 하루 매출액도 1년새 4만 2000원 줄었다. 시장당 고객수도 하루 146명씩 감소했다. 대형마트 확산은 대형업체들의 주장과 달리 신규 고용 창출로 이어지지 않았다. 시장경영지원센터 조사에 따르면 2005년 새로 생긴 대형마트는 33개로 신규 고용자 수는 1만 8800명 늘었지만, 같은 기간 재래시장 종사자는 2만 6000명이 실직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대형마트들끼리의 가격인하 경쟁은 재래시장은 물론 중소유통업체도 위축시켜 유통산업 양극화를 초래하게 된다.”면서 “지역경제 침체로 인한 전반적인 경기침체와 지역간 불균형 발전의 요인도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상인들은 지역상권의 슬럼화를 가장 우려했다. 상가정보 제공업체 ‘상가114’가 지난달 상인 239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44.8%가 ‘재래시장이나 주택가 상권이 심각하게 슬럼화될 것’이라고 답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대형마트 규제·재래시장 자생력 확보 관건 상인들과 시민단체들은 대형마트에 대한 규제가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이마트와 롯데마트 등 8개 대형마트들은 추가 출점을 자제하기로 결의했다. 그러나 ‘미니 할인점’인 슈퍼슈퍼마켓은 계속 확장하고 있다. 전국시장상인연합회는 “일정 인구당 대형마트의 출점 제한 등 법적인 뒷받침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WTO 협정 위반’이라는 문제 제기에 대해 “국내자본과 외국자본간에 차별이 아닌 영세상인을 살리기 위해 대형마트를 규제하는 것은 문제될 게 없으며, 이는 선진국에서도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반박했다. 슈퍼마켓연합회는 “대형 마트가 포화상태여서 새 탈출구를 찾은 것이 슈퍼슈퍼마켓”이라면서 “도심 반경 수㎞ 이내 출점을 못하게 하거나 시간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에는 정형근·이원영·심상정 의원 등이 10여개의 대형마트 규제 및 중소상인 법안을 발의해놓고 있다. 이들 법안은 ▲대형마트 신설시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취급품목 제한 ▲영업시간·일수 제한 ▲중소유통업에 대한 간접적인 지원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전국시장상인연합회는 “대규모 점포 매장면적 기준을 3000㎡(900여평)에서 1000㎡(300여평)로 강화하는 한편 대형유통업체의 SSM(슈퍼슈퍼마켓) 진출에 대한 제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형마트에 밀려 신음하던 재래시장이 시설을 현대화하고 고객서비스를 강화하는 등 자발적 노력으로 다시 일어서고 있다. 전국시장상인연합회 관계자는 “재래시장의 위기는 편의시설 및 고객 서비스 의식의 부족, 소비자의 기호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 데도 원인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 중곡동 중곡제일골목시장은 최근 활기를 되찾았다. 시장 주변에 수년새 대형마트 세 곳이 들어서 시장의 존폐 위기를 걱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장 상인들은 돈을 모아 골목에 비와 햇볕을 막는 지붕을 씌웠다. 간판도 깔끔하게 정비했다. 주부팔씨름대회나 노래자랑, 대학생 댄스동아리 공연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열었다. 그러자 끊겼던 손님이 다시 찾아왔다. 예전보다 매출이 50% 이상 늘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NPB] 이승엽, 일주일만에 시즌 14호 홈런

    깊은 슬럼프에 빠져 웃음을 잃었던 ‘아시아 홈런킹’ 이승엽(31·요미우리)에게 20일 경기를 앞두고 모처럼 희소식이 들려왔다.24일 마감되는 일본프로야구 올스타 팬 투표 1루수 부문에서 중간 집계 결과 1주일 만에 1위를 탈환한 것. 이승엽은 1만 6052표로 2위 구리하라 겐타(히로시마)를 2678표 차로 따돌렸다. 팬들의 성원을 피부로 느낀 이승엽의 방망이가 화끈하게 불을 뿜었다. 이승엽은 도쿄돔에서 열린 일본프로야구 지바 롯데와의 인터리그 경기에서 전날에 이어 포수 아베 신노스케에게 4번 타자 자리를 넘기고 1루수 겸 6번 타자로 나왔다. 그러나 그는 팀이 1-3으로 뒤진 4회말 2사 2루에서 귀중한 동점 홈런을 터뜨렸다. 한 때 팀 메이트였던 롯데 우완 선발 와타나베 순스케의 5구째 시속 119㎞짜리 높은 직구를 그대로 잡아당겨 오른쪽 담장 너머로 날려 버린 것. 비거리는 약 115m. 이승엽의 타구가 무지개를 그리는 동안 하라 다쓰노리 요미우리 감독은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특히 일본 야구의 전설 가운데 한 명인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종신 명예 감독이 현장을 찾은 터라 이승엽의 대포는 더욱 의미가 있었다. 13일 오릭스전 이후 7일 만의 홈런. 안방에서는 지난달 30일 소프트뱅크전 이후 3주 만이다. 시즌 14호를 기록한 이승엽은 이로써 일본 무대 통산 100홈런에 1개를 남겨놓게 됐다. 이승엽은 2004년 14개,2005년 30개,2006년 41개의 홈런을 생산했다. 이승엽은 “직구였는데 오랜 만에 좋은 감촉을 느꼈다.(맞는 순간) 반응이 충분했다.”면서 “순스케와는 롯데 동기생인데 좋은 투수를 상대로 홈런을 뽑아 기쁘다.”고 말했다. 순스케는 “볼넷을 줘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치기 어려운 곳을 노렸지만 공이 가운데로 쏠렸다.”고 땅을 쳤다. 2회 첫 타석에서 좌익수 뜬 공,5회 삼진으로 물러난 이승엽은 팀이 5-4로 앞선 7회 무사 1·2루에서 보내기 번트를 시도했으나 공이 투수 쪽으로 치우치는 바람에 2루 주자 아베가 3루에서 아웃됐다. 이승엽은 후속 타자인 기무라 다쿠야의 좌중간 2타점 적시타로 홈을 밟았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집중타를 터뜨린 요미우리는 8-4로 이겨 인터리그 통산 롯데전 9연패 뒤 2연승을 달렸다. 이승엽은 타율 .259를 유지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프로야구] ‘이 빠진 호랑이’ 극약 처방

    프로야구 KIA가 18일 팀 분위기 쇄신을 위해 조범현 전 SK 감독을 배터리 코치로 전격 영입하는 등 코치진을 전면 개편했다. KIA는 또 박승호 1군 수석 코치와 이건열 타격 코치, 백인호 수비 코치, 김종윤 주루 코치, 이광우 투수 코치를 2군으로 보냈다.대신 차영화 2군 감독과 김종모, 구천서, 이강철 코치를 1군으로 승격시켰다. 현재 24승1무36패로 1위 두산에 10경기 차로 뒤져 꼴찌인 KIA로서는 이른 시일 내에 반전의 기회를 잡지 못할 경우 포스트시즌 진출이 물건너가기 때문에 배수진을 친 셈. 부진의 원인은 힘빠진 투타의 부조화로 분석된다. 팀 방어율과 팀 타율이 각 4.31과 .246으로 8개 구단 가운데 모두 7위다. 우선 에이스 김진우가 이달 초 뒤늦게 1군에 합류한 게 마운드 운용에 치명타를 안겼다. 타격에서도 장성호를 제외하곤 ‘믿을 맨’이 없다.백전노장 이종범도 빈타에 허덕이고 이용규, 김종국도 제몫을 못한다. 게다가 미국에서 돌아온 최희섭은 복귀 3경기 만에 부상으로 전력에서 제외됐다. 주전 포수 김상훈과 백업 송산의 무게감이 떨어지는 것도 약점. 따라서 포수 조련과 투수 리드에 정평이 난 조 전 감독의 합류는 큰 힘이 될 전망.앞서 위기 탈출을 위해 젊은 선수들을 대거 기용했던 KIA가 이번 코칭스태프 개편으로 팀 분위기를 쇄신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MLB] 벌랜더 첫 노히트 노런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파이어 볼러’ 저스틴 벌랜더(24·디트로이트)가 생애 첫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 벌랜더는 13일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코메리카파크에서 열린 밀워키와의 경기에 나와 9이닝 동안 볼넷만 4개를 내줬을 뿐 피안타 없이 삼진을 12개나 뽑아내며 노히트 노런을 이룩했다. 최고 시속 163㎞의 광속구와 폭포수 같은 커브에 밀워키 타자들은 속수무책이었다. 디트로이트는 벌랜더의 위대한 투구에 힘입어 4-0으로 이겼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마크 벌리에 이어 올시즌 두 번째. 벌랜더는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낀다. 야구 인생 최고의 순간”이라며 기뻐했다. 국내 고교야구에서도 이날 올해 두 번째 노히트 노런이 나왔다. 대구 상원고 김민석(19)이 무등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안산공고와의 1회전에 선발 등판,9이닝 동안 볼넷 2개에 안타를 한 개도 내주지 않고 삼진 6개를 솎아내며 상대 타선을 틀어막아 팀의 6-0 승리를 이끌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4번 복귀’ 승엽, 멀티히트

    ‘4번 복귀’ 승엽, 멀티히트

    이승엽(31·요미우리 자이언츠)이 사흘 만에 4번타자로 복귀,‘멀티히트’를 기록했다. 이승엽은 11일 도쿄돔에서 열린 일본프로야구 니혼햄 파이터스와의 인터리그 원정경기에 4번타자 겸 1루수로 선발 출장,3타수 2안타를 때렸다. 지난 9일과 10일 각각 6번과 5번으로 밀려났던 이승엽은 4번 타자를 대신했던 포수 아베 신노스케가 전날 경기 도중 발목 부상으로 빠지는 바람에 원래 자신의 타순을 되찾았다. 이승엽은 첫 타석인 1회 1사 1,2루에서 좌완 선발 다케다 마사루의 몸쪽 높은 직구를 휘둘러 타구가 내야 한 가운데에 떴지만 유격수와 3루수가 서로 미루다 놓치면서 1루를 밟았고, 안타로 기록되는 행운까지 따랐다. 3회 2사에서는 오가사와라 미치히로가 안타를 치고 나간 뒤 바깥쪽으로 빠지는 슬라이더를 노려 중전안타를 때린 뒤 오가사와라가 3루까지 간 틈을 타 2루까지 달렸다. 그러나 1회와 3회 모두 후속타가 터지지 않아 득점으로 연결되지 못한 게 아쉬웠다. 이승엽은 6회 몸쪽 공을 공략했지만 3루수 뜬 공에 그치며 물러났다. 시즌 타율은 종전 .260에서 .265로 조금 올라갔다. 요미우리는 팽팽한 투수전을 펼치다 8회말 대타 야노 겐지가 왼쪽 담장으로 솔로포를 넘겨 1-0으로 이겼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24) 서울에 중인은 얼마나 살았을까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24) 서울에 중인은 얼마나 살았을까

    조선후기 전문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 중인들은 대부분 서울에 살았다. 지방에는 중인이 맡을 관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주민들의 신분은 호적에 가장 잘 나타나 있는데, 하버드대학의 와그너 교수가 1663년에 작성된 서울 북부 호적을 분석해 보니 양반 신분의 호주가 16.6%, 평민 신분의 호주가 30%, 노비 호주가 53.3%였다고 한다. 양반은 현(顯), 평민은 작(作), 노비는 천(賤)이라는 표시로 구분되어 있다. 평민 호주도 171호 가운데 67호가 비(婢), 즉 여종을 아내로 맞아 살고 있었다. 노비의 비율이 이렇게 많은 것은 양반이 많이 사는 서울이었기 때문이다. 중인은 워낙 적어 평민 속에 묻혀 있었다. ●중인들은 직업상 성안에 많이 살아 규장각에 ‘북부장호적(北部帳戶籍)’이란 책자가 소장되어 있다. 이 호적 첫 줄에는 ‘강희이년계묘식년북부장호적(康熙二年癸卯式年北部帳戶籍)’이라는 제명이 쓰여 있는데,‘3년마다 작성하는 관례에 따라 1663년에 작성한 서울 북부지역 호적’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북부는 사대문 안의 북부가 아니라 사대문 밖의 북부이다. 사대문 안은 동부, 서부, 남부, 북부, 중부의 5부로 나뉘어져 있었으며, 도성 밖 10리를 성저(城底)라고 했는데 이에 해당되는 북부 주민들이 이 호적에 실려 있다.16개 마을의 681호가 152장 분량으로 정리되었다. 망원정계(망원동) 141호, 연서계(역촌동) 96호, 합장리계(합정동) 89호, 성산리계(성산동) 57호, 여의도계(여의도동) 44호, 증산리계(증산동) 41호, 수색리계(수색동) 43호, 가좌동계(가좌동) 39호, 신사동계(신사동) 32호, 세교리계(서교동) 23호, 말흘산계(홍제동) 20호, 홍제원계(홍제동) 16호, 연희궁계(연희동) 16호, 양철리계(대조동) 11호, 아이고개계(아현동) 10호, 조지서계(홍제동) 3호 순의 크고 작은 마을이 섞여 있다. 조지서(造紙署)는 종이를 만드는 관청인데, 인왕산에서 창의문을 나서면 오른쪽에 있었다. 호수가 많다고 반드시 큰 마을은 아니다. 양반들이 사는 마을은 아무래도 집이 크기 때문에 호수가 적고, 노비들은 몰려 살다 보니 호수가 많아지기도 했다. 조선시대 평민들은 군역(軍役)을 지고 있었는데, 북부 평민의 군역은 보병(步兵) 3호, 마병(馬兵) 29호, 포수(砲手) 27호, 보인(保人) 7호, 한량 4호에 정병(正兵) 21호, 내금위(內禁衛) 등 12호, 무과 급제자인 출신(出身) 7호 등이 있었다. 군역 이외의 특수직역으로는 역리(驛吏) 38호, 어부 4호, 서리(書吏) 2호, 장인(匠人) 1호, 봉수군(烽燧軍) 1호가 있었다. 관직이나 품계 보유자로는 내시(內侍) 9호, 관직 보유자 20호, 품계 보유자 3호, 율학교수(律學敎授) 1호가 평민으로 분류되어 있다. 내시는 평민으로 분류되었지만 양반 색채가 짙으며, 모두 노비를 소유하고 있다. 와그너 교수는 서리와 어부의 아들도 모두 역리라고 밝혔는데, 서대문에서 홍제원을 거쳐 중국으로 가는 길목에 연서역(延曙驛)이 있었기 때문에 역리가 많았다. 이 마을은 지금도 역촌동(역마을)이라 불린다. 평민 가운데 서리 2호와 녹사 1호, 율학교수 1호가 중인 집안이다. 양반 출신의 처는 씨(氏), 평민 출신의 처는 조이(召史·이두식 표기), 노비 출신의 처는 비(婢)라 불리는데, 상류층 양반의 처는 대부분 씨로 표시되었지만 하류층 양반과 중인의 처는 씨, 조이, 비가 섞여 있어 중인이 양반과 평민 사이의 신분임이 드러난다. ‘북부장호적’만 가지고 서울의 중인 비율을 계산할 수는 없다. 한성부 북부는 성안에 9개방, 성밖에 3개방으로 나뉘어지는데, 이 자료에는 성밖 마을 호적만 남아 있다. 중인들은 직업상 관청이 많은 성안에 살기 때문에, 성밖 마을 자료만 가지고 전체 비율을 짐작할 수는 없다. 호적에는 4대조가 기록되기 때문에 중인들이 어느 집안과 혼인하여 전문직을 세습하는지 알아보기 좋다. 북부 호적에 나타난 중인의 직역으로는 율학교수, 산학훈도(算學訓導), 산학별제(算學別提), 역관(譯官)이라는 기술직과 녹사(錄事), 서리라는 행정직이 있다. ●수색에 살던 중인 율학교수 가족 수색리에 살던 율학교수 김익상(金益祥)은 전형적인 중인이다.‘용궁’이라는 본관부터 중인임을 나타내며, 외가인 오산 박씨도 역시 중인이다.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산학(算學) 훈도와 별제였다. 장인 송인남도 율학교수여서, 전문직끼리 혼인하는 습관을 보여준다. 중인 전문직을 선발하는 과거가 잡과인데, 역과, 의과, 음양과, 율과의 네 종류만 실시하였다. 격이 떨어지는 산학(算學)은 화원(畵員)같이 취재(取才)라는 시험으로 선발했다. 문과는 각도에서 1차시험을 치렀지만 율과는 서울에서만 실시하여 18명을 뽑았으며,2차시험인 복시에서 9명을 추려 선발했는데 형조(刑曹)에서 주관하였다. 문과같이 임금 앞에서 치르는 3차시험 전시(殿試)는 따로 없었다.‘대명률(大明律)’은 책을 보지 않고 돌아앉아 외었으며, 당률소의(唐律疏議)·무원록(無寃錄)·율학해이(律學解)·율학변의(律學辨疑)·경국대전(經國大典)을 펴놓고 읽게 하였다.‘무원록’은 글자 그대로 원통하게 죽은 사람이 없게 하기 위해 부검(剖檢)하는 방법을 기록한 책이고,‘경국대전’은 이전(吏典)·호전(戶典)·예전(禮典)·병전(兵典)·형전(刑典)·공전(工典)의 순으로 편집된 조선의 종합 법전이다. 율과 합격자에게는 예조인(禮曹印)이 찍힌 백패(白牌)를 주고,1등에게 종8품계,2등은 정9품계,3등은 종9품계를 주었다. 율관은 종6품까지만 오를 수 있었다. 형조에서는 법률·소송·노예 등에 관한 일을 맡아 보았는데, 율학청(律學廳)에서 법률을 가르치는 책임자가 바로 종6품 율학교수이다. 형조에서 중인으로는 가장 높은 관직이며, 그 아래 종7품의 율사(律士)와 정9품의 율학훈도를 두었다. 율과시험에 응시하려면 율학청에서 법률공부를 해야 했는데, 법률문서가 한문과 이두(吏讀)로 복잡하게 쓰여서 많은 공부를 해야 했다. 율학생의 정원은 형조에 40명을 비롯해 전국 부(府)·목(牧)·군(郡)·현(縣)에 배정되었으며, 검률(檢律 종9품)이 각 지방에 파견되어 법률 해석과 교육을 담당하였다. 망원정계에 살았던 녹사 고승길(高承吉)과 서리 김자순(金自順)·오영철(吳英鐵)은 행정직 중인인 경아전이다. 조선 초에는 과거에 응시할 실력이 없는 양반들이 행정 말단에 녹사로 서용되어 기한을 채우다가 지방 관직으로 나가는 경우가 있었는데,17세기 이후에는 양반에서 완전히 탈락하여 중인의 일자리가 되었다. 고승길의 증조부는 통정대부였지만 부친과 조부, 그리고 외조부까지 모두 충순위(忠順衛)나 충의위(忠義衛)라는 특수 군역을 지녔으니 말단 양반에서 탈락한 중인이다. 처 오씨도 씨(氏)로 표기되었으니 양반 출신이다. 서리는 녹사에 비해 격이 떨어지며 인원도 많다. 김자순과 오영철의 부·조부·증조·외조 가운데 서리가 없었으니, 세습직이 아니다. 김자순의 부친은 어부였는데, 조이(召史) 처에게서 낳은 아들은 천역인 역리(驛吏)가 되었다. 오영철이 사비(私婢) 처에게서 낳은 아들은 사노(私奴)가 되었으니, 재산을 축적하여 중인 신분으로 자리잡는 서리들과는 거리가 멀다. 천민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1903년 성안 3개 지역에 중인 호주 1명뿐 갑오개혁 이후에 호적제도가 바뀌자 1903년과 1906년 두 차례에 걸쳐 신호적 양식으로 조사한 호구표가 일본 교토대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2만 4000장 분량이다. 이 많은 분량을 모두 조사 분석할 수 없으므로, 조성윤 교수는 성안 3개 방(坊)과 성밖 3개 방을 선정해 분석하였다.240년 전의 호적과 크게 달라진 점은 갑오개혁으로 노비가 폐지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4조와 외조를 기록하는 법은 여전하였다. 조교수는 6개 방에 양반 호주 903명, 중인 호주 1명, 평민 호주 1390명, 근대직업을 가진 호주 98명이 살았다고 통계를 냈다. 성안 3개 방에 중인 호주가 1명뿐이라는 것은 뜻밖인데, 갑오개혁으로 정부조직이 달라져 근대직업으로 바뀌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조성윤 교수는 다른 자료를 통해 19세기 중인의 비중을 보여 주었다. 첫째는 ‘속대전’에서 서리 정원을 1400명 정도로 규정했는데 그 가족을 합치면 상당한 규모라는 점이다. 둘째는 1882년 임오군란에 파괴된 중인 부잣집만 해도 70여채였다는 점이다. 셋째는 1801년 서울에 거주한 천주교인이 양반 73명, 중인 75명, 평민 103명, 천민 27명이었으니 그 가운데 중인이 27%나 된다는 점이다. 물론 이 숫자들은 특수한 자료지만, 중인의 존재가 그만큼 특별하다는 증거는 될 것이다. 다음 호에는 중인들의 족보를 통해 전문직이 어떻게 세습되었는지 밝혀 보기로 한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프로야구] 양준혁, 9일은 일 낼까

    ‘원조 괴물’ 양준혁(삼성)이 사상 첫 2000안타 대기록 달성을 다음 기회로 미뤘다. 두산의 안경현은 5타수 4안타의 불방망이와 함께 연장전 끝내기안타로 역전승을 이끌었다. 두산은 8일 잠실에서 열린 프로야구 삼성과의 경기에서 연장 10회 2사 만루에서 터진 안경현의 끝내기안타에 힘입어 5-4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그의 끝내기안타만 벌써 시즌 6번째. 프로 6년차 백업 포수인 두산 채상병은 2-4로 끌려가던 4회말 데뷔 첫 홈런으로 추격의 발판을 만들었고, 안경현은 3-4로 뒤지던 7회말 동점 적시타를 날려 승부를 연장으로 몰고 갔다.또 2001년 두산 유니폼을 입은 김상현은 8회부터 3이닝을 삼진 3개를 솎아내고 3안타 1볼넷 무실점으로 막아 데뷔 첫 승의 기쁨을 누렸다. 대기록 달성에 안타 2개를 남겨 놓은 양준혁은 긴장한 탓인지 2타수 무안타(2볼넷)로 침묵했다.9경기 연속 안타를 날리며 상승세를 타던 양준혁도 대기록 앞에서는 몸이 굳어졌다. 청주에만 가면 약한 모습을 보이던 LG는 ‘청주 악연’을 끊어냈다. 시즌 첫 대포를 만루홈런으로 장식한 이종열 등의 홈런 4방을 묶어 한화를 12-9로 제압한 것. 이로써 LG는 청주 5연패에서 벗어났다. 반면 한화는 만원 관중 앞에서 대전·청주 경기를 합쳐 안방 6연패에 빠졌다. 먼저 3점을 뽑았다가 3회말 4점을 내줘 역전당한 LG는 4회초 1사 만루 기회에서 이종열이 한화 두 번째 투수 송진우를 상대로 홈런을 쳐 다시 승부를 뒤집었다. 하지만 4회말 실책 2개를 저지르며 무사 만루 위기를 자초한 끝에 7-7 동점을 허용했다.6회 최동수의 1점 홈런으로 다시 앞선 LG는 7회 권용관의 2점포 등으로 3점을 보태 한숨을 돌렸다. 광주에서는 투구 밸런스가 무너지며 시즌 개막을 2군에서 맞았던 KIA 에이스 김진우가 마침내 돌아왔지만 제구력이 흔들렸다.5이닝 동안 안타 5개를 내줬고, 볼넷 6개와 몸에 맞는 공 2개, 폭투 2개 등을 남발하며 6점(5자책점)을 내주고 패전투수가 됐다.KIA는 1-11로 뒤지던 9회말 6점을 뽑아냈으나 결국 SK에 7-11로 무릎을 꿇었다. 사직에선 현대와 롯데가 1-1로 팽팽하게 맞선 4회 비 때문에 30분 동안 경기가 중단됐다가 올시즌 처음으로 노게임이 선언됐다. 롯데는 노게임이 선언되자 ‘깜짝쇼’를 펼쳐 궂은 날씨에도 경기장을 찾은 1만 1000여 팬들을 즐겁게 했다. 내야수 손용석이 박정태 타격코치의 특이한 타격자세를 흉내낸 뒤 그라운드를 내달려 홈으로 들어오는 빗물 슬라이딩쇼를 연출한 것.김영중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진야곱→두산, 황건주→SK, 전태현→KIA

    현대를 제외한 프로야구 7개 구단은 마감시한인 5일 한국야구위원회(KBO)에 2008년 1차 신인을 지명, 통보했다. 두산은 좌완 투수 진야곱(18·성남고)을 지명했고,SK와 KIA는 우완 투수 황건주(18·동산고)와 전태현(18·군산상고)을 각각 낙점해 마운드를 보강했다. 반면 한화는 외야수 박상규(18·대전고)를, 롯데는 포수 장성우(17·경남고)를 지목했다. 현대는 연고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2003년 이후 4년째 내리 1차 지명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김영중기자 jeunesse@seoul.co.kr
  • 김해 내동중 야구부 소년체전 제패

    단 9명으로 구성된 경남 김해 내동중 야구부가 소년체전에서 우승을 일궈내는 기적을 일으켰다. 게다가 9명 가운데 부상 선수가 3명이나 됐다. 내동중은 29일 포항야구장에서 열린 대회 마지막날 남중부 결승전에서 대구 경북중을 20-9로 대파했다. 경북중 선수는 내동중의 2배인 17명. 이번 대회 4차례 등판,4승을 모두 챙긴 내동중 3학년 배준빈(15)은 타격에서도 눈부셨다. 이날 3회 2루타를 시작으로 4회 중전 안타,6회 3루타와 좌월 투런 홈런을 뿜어내며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한 것. 배준빈은 대회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 3학년 이지만(15)은 인대 파열,2학년 김승한(14)은 오른손 손가락 골절,3학년 박세준(15)은 손가락 뼈에 금이 가는 부상 등을 당해 대회 출전 자체가 기적이었다. 이지만은 대회를 2주 앞두고 깁스를 풀고 출전을 강행했다.9명을 채워야 대회에 나설 수 있기 때문. 원래 포수였던 김승한은 손가락 부상으로 중견수로 활약했다. 에이스 박세준은 손가락뼈에 금이 가자 선발을 배준빈에게 넘겼지만 배준빈이 지칠 때마다 틈틈이 마운드에 올라 힘을 보탰다. 내동중이 내년에도 소년체전에 모습을 드러낼지는 미지수.3학년 5명이 졸업하면 야구부원이 4명으로 줄기 때문이다. 두 달 전 신입 부원이 들어왔으나 앞으로 4명을 더 뽑아야 한다. 전병출 내동중 교감은 “후보를 뽑는 것은 꿈도 못꿀 일”이라면서 “9명을 채우기 위해 학부모들을 설득하느라 매년 피가 마른다.”고 말했다. 포항 연합뉴스
  • [병자호란 다시 읽기] (21) 심하전역과 인조반정 Ⅲ

    [병자호란 다시 읽기] (21) 심하전역과 인조반정 Ⅲ

    광해군이 명의 파병 요구를 거부하려 했던 것은, 폐모논의와 궁궐 건설 문제 등 내정(內政)의 현안들을 해결하는 것도 벅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명의 압력과 내부의 채근에 밀려 군대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1619년(광해군 11) 2월, 조선군은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들어갔다.1만 5000 가까운 병력이었다. 광해군의 정치적 운명을 결정했던 심하 전역(深河戰役)이 시작된 것이다. 중국사에서는 이 전역을 보통 사르후(薩爾滸) 전투라고 부른다. 명군과 후금군 주력 사이의 전투가 벌어졌던 전장(戰場)이 사르후 지역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전투에서 명군은 거의 궤멸될 정도로 참패했고 두 나라의 향후 운명도 확연히 갈렸다. 사르후 전투는 명청교체(明淸交替)의 분수령이었던 것이다. ●광해군, 강홍립을 발탁하다 광해군은 심하 전역의 향방에 대해 거의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었다. 그는, 명군이 동북(東北)의 오지인 허투알라(赫圖阿拉)까지 장거리 원정에 나서는 것의 위험성을 간파했다. 실제로 명군 가운데는 내륙 지역인 쓰촨(四川)에서 출발하여 산하이관(山海關)을 통과하고, 랴오양(遼陽)과 선양(瀋陽)을 거쳐 허투알라에 이르는 수천㎞의 거리를 행군해야 하는 병력도 있었다. 장거리 행군에 지친 명군이, 가만히 앉아 대비할 수 있는 후금군을 상대하기란 버거운 것일 수밖에 없었다. 광해군은 또한 명군 지휘부가 조선군을 몹시 닦달할 것이란 사실도 예측했다. 그가 조선 원정군의 도원수(都元帥)로 문관 출신의 강홍립(姜弘立)을 임명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강홍립은 어전통사(御前通事:왕의 직속 통역관)를 역임할 정도로 중국어 실력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명의 강요에 밀려 ‘내키지 않는’ 출병을 단행한 이상, 병력의 손실을 최소화하려면 적어도 명군 지휘부와 직접 대화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했다. 그래야만 작전권을 틀어쥔 그들에게 일방적으로 휘둘리지 않을 수 있었다. 광해군은, 출정하기 직전 강홍립에게 지침을 주었다.‘그대는 조선군의 정예 병력을 이끌고 있으니 명군 지휘부의 명령을 일방적으로 따르지 말고 신중하게 처신하여 패하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명군 지휘부는 조선군이 평안도에 머물 때부터 닦달을 시작했다. 총사령관이었던 경략(經略) 양호(楊鎬)는 강홍립에게 조선군 화포수(火砲手)부터 속히 도강(渡江)시키라고 요구했다. 조선군 부대 가운데 명군 지휘부가 가장 크게 탐냈던 병력이 바로 화기수였기 때문이다. 강홍립은 양호의 명령대로 화기수 5000명을 미리 들여보냈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명군의 우익남로군(右翼南路軍) 사령관인 유정(劉綎)의 휘하에 배속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광해군은 강홍립을 질책했다. 명군 지휘부의 명령을 일방적으로 따르지 말라는 자신의 지침을 어겼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광해군의 질책은 당연했다.3월4일, 유정 휘하의 명군이 후금군으로부터 기습을 받아 궤멸될 때 배속된 조선군도 대부분 전사하고 말았던 것이다. ●낯선 땅에서의 행군, 또 행군 평안도 창성(昌城)을 출발한 조선군 본진은 1619년 2월23일 압록강을 건넜다. 조선군은 좌영(左營), 우영(右營), 중영(中營) 등 3개 진영으로 구성되었다. 조선군 가운데는 항왜(降倭)들도 참전했다. 항왜는 임진왜란 당시 투항했던 일본군 출신의 병사들을 말한다. 그들은 조총을 잘 다루고, 검술에 뛰어났을 뿐 아니라 용맹함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 정예 병력이었다. 압록강을 건넌 후 허투알라에 이르는 조선군의 행군로에는 산악과 강이 널려 있었다. 날씨 또한 좋지 않았다. 양마전(亮馬佃)이란 곳에 도착했던 25일에는 눈이 내리고 강풍이 불어 날씨가 몹시 추웠다. 병졸 가운데 얼어죽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런데 무엇보다 문제는 군량 운반을 맡은 수송 부대가 본진을 제 때 따라오지 못하는 점이었다. 2월26일, 진자두(榛子頭)라는 곳에 이르러 강홍립은 유정을 만났다. 강홍립은 유정에게, 군량 운반이 제대로 안 되고 있는 사정을 설명하고, 조선군의 행군을 잠시 늦춰 달라고 요청했다. 유정은 거부했다.‘약속한 시간은 정해져 있고 군율은 지엄한 것이기에 허락할 수 없다.’고 했다. 조선군은 할 수 없이 계속 걸었다. 2월27일, 진자두에서 50리 정도 떨어진 배동갈령(拜東葛嶺) 부근에 도착했을 때 조선군 3영의 장졸들은 모두 휴대했던 군량이 떨어졌다. 보병들 가운데는 행군에 지쳐 정강이와 발 뒤꿈치에 유혈이 낭자한 병사들이 많았다. 계속 행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명군 ‘고문관’ 우승은(于承恩)이 달려왔다. 그는 강홍립에게 칼을 빼서 휘두르며 ‘조선군이 뒤처지면 자신의 목이 날아간다.’고 소리쳤다. 당시 명군 지휘부는 ‘조선군이 군량이 없는 것이 아니라 관망하려 하기 때문에 일부러 천천히 걷는 것’이라고 단정했다. 그래서 유격 교일기(喬一琦)와 우승은을 고문관 겸 감시자로 붙여 강홍립을 계속 몰아붙였다. 3월2일, 허기와 명군 지휘부의 채근에 시달린 끝에 조선군은 심하에 도착했다. 허투알라까지는 60리 정도 떨어져 있었다. 이곳에서 조선군과 명군은 약 600명의 후금군 기병과 조우한다. 적병은 높은 산 쪽에서 화살을 쏘아댔지만 조선군이 조총으로 응사하여 물리쳤다. 서울 포수 이성룡(李成龍)은 적장을 쏘아 맞혔고, 병사 한명생(韓明生)은 그의 목을 베어왔다. 조명연합군이 최초로 거둔 작은 승리였다.‘만주실록’에 보면 ‘토부(托保)와 에르나(額爾納)가 이끄는 병력이 유정에게 패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성룡이 사살한 장수는 둘 가운데 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강홍립의 투항 작은 승리의 기쁨도 잠시 뿐,3월3일 조선군은 다시 ‘굶주림과의 전투’를 치러야 했다. 강홍립은 병사들을 풀어 주변의 후금인 부락을 뒤져 숨겨진 양곡을 찾아냈다. 그것을 돌로 빻아 죽을 만들어 병사들에게 먹게 했다. 3월4일 아침, 조선군은 계속 행군하여 부차(富車)라는 곳에 도착했을 때 세 발의 대포 소리를 듣는다. 이윽고 교일기 등이 강홍립에게 달려와 유정이 이끄는 명군 본진이 궤멸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지난 밤, 무리하게 행군을 감행하다가 귀영가(貴盈哥)와 홍타이지, 아민(阿敏)이 이끄는 3만 후금군의 매복, 습격에 휘말린 것이었다. 명군의 궤멸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조선군도 후금군의 공격에 휘말렸다. 좌영과 우영이 먼저 후금군 철기(鐵騎)의 공격을 받았다. 조선군은 조총을 쏘며 저항했지만 두 번 째 탄환을 장전하기 전에 철기는 두 영을 유린했다. 선천(宣川) 군수 김응하(金應河), 운산(雲山) 군수 이계종(李繼宗), 영유(永柔) 현령 이유길(李有吉) 등이 전사하고 두 영은 무너졌다. 이민환(李民 )의 ‘책중일록(柵中日錄)’은 ‘강홍립이 거느리던 중영은 좌우영과 불과 1000보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았지만, 달려가 구원할 겨를도 없이 두 영이 무너졌다.’고 당시 상황을 적었다. 후금군 철기의 가공할 파괴력을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후금군의 포위 속에서 중영의 조선군 지휘부에서는 ‘마지막 결전을 치르자.’는 논의가 나왔지만 병사들 가운데는 아무도 움직이려는 자가 없었다. 눈앞에서 두 영이 무너지는 참상을 목도한 데다, 굶주림에 지친 병사들은 이미 전의를 잃었던 것이다. 싸울 의지가 없는 병사들을 거느리고 포위를 뚫을 수는 없었다. 이윽고 강홍립은 남은 병력을 이끌고 투항한다. 그런데 투항 상황에 대한 기록들은 서로 상당히 다르다.‘광해군일기’와 ‘책중일록’은, 강홍립이 진퇴양난의 처지에서 고민하고 있을 때 후금군이 먼저 통사를 보내와 항복을 종용했다고 적었다.‘만주실록’은, 후금군이 조선군 진영을 공격하려 할 때, 강홍립이 먼저 사람을 보내 항복을 제의했다고 적었다. 양자의 기록에는 분명 각각의 주관적 서술과 윤색이 가해졌을 것이다. 따라서 어느 쪽이 당시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적었는지를 명확히 알기는 어렵다. 하지만 강홍립이 남은 생령(生靈)들을 살리기 위해 항복을 선택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는 3월5일 허투알라로 들어가 누르하치에게 항복했다. 곧 이어 항복 소식이 서울로 날아들었다. 조야를 막론하고 사대부들은 ‘매국노’ 강홍립의 가족들을 수금하라고 아우성이었다. 광해군은 그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강홍립의 항복과 함께 그의 정치적 운명도 조락(凋落)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스포츠 라운지] 헐크 이만수의 고객감동 서비스

    [스포츠 라운지] 헐크 이만수의 고객감동 서비스

    “내 한 몸 망가져 한국야구가 살아난다면….” 프로야구 SK의 수석코치인 ‘헐크’ 이만수(49)는 현역 시절 못지않게 몸을 던지는 투혼(?)과 쇼맨십으로 화제를 뿌린다. 요즘은 ‘팬티 소동’을 일으켰다. 지난달 29일 문학에서 훈련 중 선수들 앞에서 “10경기 안에 문학구장이 만원이 되면 팬티만 입고 그라운드를 돌겠다.”고 선언했다.“팀이 1위인데도 수천명의 팬만 찾는 것은 너희들이 야구를 잘못했기 때문”이라며 호통치다 나온 농담성 발언이었다. 그러나 언론에 소개되면서 큰 반향을 얻었다. 팬티 선물을 건네는 팬들이 있는가 하면 구단 홈페이지에 ‘이만수 속옷 보러가기’운동이 벌어지는 등 문학을 찾는 팬들이 늘고 있다. ●문학구장 만원이면 야한 속옷 입고 뛰겠다 데드라인인 26일 KIA전에는 3만명 정원이 찰 것으로 예상된다.24일 현재 1만 7000장의 표가 예매됐다. 그는 “이왕 이렇게 된 것, 팬이 직접 만들어 보내준 야한 팬티를 입고 뛸 생각”이라고 털어놨다. 꾸준히 코치생활하면서 관리해온 몸매(?)에 자신있다고. 지난달 29일 LG전에 앞서 펼쳐진 공연에서는 긴 가발을 쓰고 춤을 추며 흥까지 돋웠다. 이런 소동에 가족들은 충격을 받았다. 그는 “내가 그런다고 이만수가 똥만수가 되느냐.”라며 간신히 설득했다고 한다. 반신반의하던 가족들은 10년 만에 찾은 22일 대구구장에서 아버지의 행동을 이해했다. 이 코치가 오페라 프리마돈나처럼 팬들에게 장미 세례를 받은 것. 큰아들 하종(24)씨는 눈물까지 흘렸다. 프로에서 팬의 중요성을 깨달은 순간이다. 그는 “야구가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로 자리잡은 것은 선수와 팬, 구단, 언론 네 박자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메이저리거들은 팬들에게 웃으며 다가가 함께 사진찍고 사인을 해주는 팬서비스에 최선을 다한다.”고 설명했다. 미국과 한국 야구의 가장 큰 차이점이 ‘프로의식 부족’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팬들에게 손 흔들고 다정하게 굴면 혼나는 시절이 있었으니까….”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이만수 코치의 기행과 SK가 내놓은 ‘스포테인먼트(스포츠+엔터테인먼트)’ 전략이 맞아떨어지며 문학은 이날 현재 지난해보다 25% 늘어난 17만 3046명이 찾았다. 팀이 1위를 달리는 점도 있지만 ‘이만수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내 꿈은 우리팀 우승과 한국야구 중흥 이만수는 야구가 낳은 최고의 스타 가운데 하나. 프로가 시작된 1982년부터 97년까지 삼성에서만 뛰며 통산 1449경기에 나와 타율 .296,252홈런,861타점을 기록했다.1984년에는 최초의 타격 3관왕을 이뤘고, 공격형 포수의 대명사였다. 그러나 삼성과 마찰을 빚으면서 은퇴식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98년 미국으로 연수를 떠났다. 말도 안 통하고, 음식도 안 맞는데다 ‘이만수가 누구냐.’는 냉대 속에 눈물 젖은 빵을 씹으면서 ‘인간 이만수’로 다시 태어났다. 그는 “한국에선 최고였기 때문에 경기가 안 풀리면 가족에게 짜증내고 막 대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화합하는 데 3년이 걸렸다.”고 회상했다. 낮은 곳에 있으면서 내 자신을 다시 돌아봤다. 나이 40줄에 새로 생긴 취미가 ‘가족여행’이다. ‘인간 이만수’는 2000년 한국인 최초로 미프로야구 불펜코치를 맡아 2005년 월드시리즈 우승에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한국에 돌아오기 전까지 코치를 맡았다. 한국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지 6개월. 이만수는 ‘헐크’처럼 변신했다. 현역 15년 동안 삼성의 푸른 유니폼만 입어 “내 몸에 푸른 피가 흐른다.”고 했지만 지금은 SK의 상징색인 붉은 피로 바꿨다. 그는 “김성근 감독과 함께 한 번도 한국시리즈 정상에 서지 못한 팀을 우승시키는 게 가장 큰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준비된 차세대 지도자다. 생김새와는 달리 대구상고 1학년 때부터 경기 기록을 꼬박꼬박 써오며 문제점을 분석했다. 올시즌 경기 기록도 벌써 A4용지 260쪽이 넘는다. 팬들은 스타 코치 이만수의 행보에 또다른 즐거움을 맛보고 있다. 글 사진 대구 김영중기자 jeunesse@seoul.co.kr ■ 프로필 ▲출생 1958년 9월9일 대구생 ▲학력 대구중-대구상고-한양대 ▲취미 가족여행, 일기쓰기 ▲가족 아내 이신화(49)씨와 두 아들 ▲경력 국가대표(1978∼81년) 프로야구 삼성(82∼97년) 미프로야구 클리블랜드(마이너리그 싱글A팀) 코치연수(98년) 시카고 화이트삭스 첫 한국인 불펜코치(2000∼06년)
  • “프로야구 3085경기 기록이 꿈이에요”

    “최선을 다했지만 내가 정확하게 기록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김태선(44) 기록위원이 17일 잠실 LG-SK전에서 1500경기 출장 기록을 작성했다. 김학효(1997년), 김재권(2002년), 윤병웅(2004년) 이후 네 번째.1991년 2월 KBO에 입사한 김 위원은 이듬해 8월25일 잠실 OB-태평양전에 공식 기록원으로 처음 투입된 지 15년 만이다. 그는 가장 아쉬운 순간으로 “1997년 5월23일 대전 한화-OB전에서 포수 강인권이 투 스트라이크 낫아웃 상태에서 공을 빠뜨려 타자를 출루시켜 정민철의 퍼펙트게임을 놓치게 한 것”을 꼽는다. 김 위원의 꿈은 3085경기 기록이다. 자신이 존경하는 야구선수 장훈씨의 안타 기록인 3085개에 애착이 있기 때문이다. 기록원은 정해진 정년이 없지만 장거리 이동과 3∼4시간 공에 집중해야 하는 직업 특성상 57세쯤 은퇴한다.김 위원은 꿈을 이루기 위해 눈 영양제를 복용하고 등산 등으로 꾸준히 건강을 관리한다.김영중기자 jeunesse@seoul.co.kr
  • [프로야구] 안지만 데뷔 첫 선발승…삼성, 한화 3-0 사냥

    [프로야구] 안지만 데뷔 첫 선발승…삼성, 한화 3-0 사냥

    삼성이 ‘류현진 징크스’을 떨치고 3연승의 휘파람을 불었다. 롯데는 2연승을 거두며 단독 2위로 올라섰다. 삼성은 17일 대전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화와의 경기에서 선발 안지만의 프로 무대 첫 선발승에 힘입어 3-0 승리를 거뒀다. 안지만은 5이닝 동안 삼진 3개를 곁들이며 4안타 1볼넷으로 한화 타선을 틀어막아 2002년 프로 데뷔 이후 6년 만이자 선발 등판 네 번째 만에 첫 승의 기쁨을 누렸다. 대구상고를 졸업하고 2002년 삼성 유니폼을 입은 안지만은 지난해까지 9승4패를 기록했지만 모두 구원승이었다. 반면 한화 류현진은 지난해 4월18일 이후 삼성전 연승 행진을 ‘5’에서 멈췄다.6이닝 동안 삼진을 6개나 솎아냈지만 8개의 안타를 얻어맞으며 3실점, 시즌 3패(4승)째를 기록했다. 삼성은 권혁에 이어 전날 선발 등판하려다 비로 경기가 취소되는 바람에 하루를 쉰 임창용까지 중간 계투로 내세우며 승리의 의지를 다졌다. 임창용은 기대에 부응하며 홀드를 기록했고, 마무리 오승환은 9세이브(2승1패)째를 챙겼다. 마산에서는 롯데가 선발 손민한의 호투와 강민호의 2점포를 앞세워 두산에게 4-2 역전승을 거두며 14일 만에 단독 2위로 올라섰다. 손민한은 7이닝 동안 안타 10개와 볼넷 4개를 맞았지만 산발에 그쳐 2실점만 내주고 시즌 4승(2패)째를 올렸다. 롯데 포수 강민호는 2회 말 1사1루에서 동점 홈런을 날린 데다 정확한 송구로 주자를 3명이나 잡아내 공수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KIA는 최희섭의 합류 이후 타선의 폭발력이 살아나기 시작한 ‘최희섭 효과’를 톡톡히 누리며 수원에서 현대를 4-3으로 제압,2연승을 질주했다.1회 초 이종범과 래리 서튼의 안타, 상대 실책을 묶어 대거 3점을 뽑아내는 집중력도 발휘했다. 이종범은 5회 초 시즌 마수걸이 홈런을 쏘아올리며 건재를 과시했다. 현대는 실책을 4개나 저지르며 자멸,3연패의 수렁에 빠졌다.LG는 잠실에서 선두 SK와 4시간5분 동안 혈전을 벌인 끝에 6-5 짜릿한 1점차 역전승을 거뒀다. 김영중 홍지민기자 jeunesse@seoul.co.kr
  • 은행들 중국 진출 ‘성큼 성큼’

    은행들 중국 진출 ‘성큼 성큼’

    중국 앞으로! 중국 본토를 향한 시중 은행들의 발걸음이 바빠지고 있다. 우리은행이 오는 2012년까지 중국 내 점포를 53개로 늘리고, 모두 현지 법인 아래로 흡수시키는 ‘승부수’를 띄운다. 신한·하나은행 등도 중국 현지법인 설립을 눈앞에 두고 있는 등 과거 소규모의 사무소·지점 영업에서 탈피, 현지화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자산 70억弗·영업수익 2억弗 목표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현재 3개 수준인 중국 내 점포를 2010년까지 30개,2012년까지 53개로 늘릴 예정이다. 우리은행 국제부 황록 부장은 “중국 현지법인인 우리은행중국유한공사를 연말까지 자본금 3억달러 규모로 설립한 뒤, 지점들을 현지법인 아래 두고 현지화 영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은행의 중국 내 점포는 베이징, 상하이, 선전 지점과 상하이 출장소 등 4개.7월 쑤저우 지점을 열고 내년 7개,2009년 9개,2010년 10개를 신설하는 등 점포수를 점차 확대할 예정이다. 우리은행은 대도시 위주로 점포를 집중 설립할 예정이다. 상하이 7곳, 베이징 6곳을 비롯해 ▲쑤저우 4곳 ▲선전, 톈진, 칭다오, 선양, 광저우 3곳 ▲난징 2곳 등이다. 지점장은 모두 현지인으로 채용하는 등 현지화 작업도 가속화한다. ●국내 기업·조선족·中 상류층 주 타깃 현지법인이 타깃으로 삼고 있는 수익원은 먼저 중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의 금융 수요다. 조선족 역시 주요 고객이다. 또한 중국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PB 금융과 우량기업 영업도 추진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2012년 현지법인이 자산 70억달러, 영업수익 2억 1000만달러 정도를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북한이 개방되면 동북 3성을 중심으로 금융 수요가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라면서 “현지 은행의 추가적인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유수의 글로벌 은행 못지않게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한·하나 등도 현지법인 설립 박차 다른 은행들 역시 중국 현지화를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상하이, 칭다오, 톈진 등에 지점을 두고 있는 신한은행은 올해 안에 베이징에 지사와 현지 법인인 신한은행중국유한공사를 세운 뒤, 주요 지역으로 네트워크를 확장한다. 2003년 중국 현지 은행인 칭다오국제은행을 인수한 하나은행은 베이징에 현지법인 하나은행중국유한공사를 세우고 2014년까지 톈진, 광저우, 난징, 웨이하이, 창춘 등에 모두 12개의 지점을 열 계획이다. 동북 3성의 현지은행 인수도 계속 추진한다. 국민은행도 지난 1월 시가총액 기준 세계 2위인 중국공상은행과 전략적 제휴를 맺은 데 이어 2월에는 한국에서 달러로 송금하면 중국에서 위안화로 출금하는 ‘위안화 바로송금 서비스’를 선보인 상태. 외환은행도 난징과 다롄 등에 추가로 지점과 출장소를 설치한다는 복안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세계 경제의 성장엔진인 중국의 금융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진출 대상”이라면서 “중국은 성장 한계에 부딪힌 국내 은행들에 수익 기반 다변화의 훌륭한 해답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NPB]승엽 5경기 침묵깨고 홈런성 2루타

    ‘아시아 홈런킹’ 이승엽(31·요미우리)이 시즌 11번째 ‘멀티 히트’를 작성하며 22타석(19타수) 무안타의 부진에서 벗어났다. 이승엽은 15일 요코하마에서 열린 일본프로야구 요코하마와의 경기에 1루수 겸 4번 타자로 선발 출장,5타수2안타를 기록했다. 0-0으로 맞선 2회 선두 타자로 나선 이승엽은 상대 선발 베테랑 구도 기미야스에게 중전 안타를 뽑아내며 5경기 연속 무안타의 침묵을 깨뜨렸다. 후속타가 터지지 않아 득점을 올리지 못했다.4회에도 선두 타자로 올라와 가운데 담장 상단을 맞히는 홈런성 2루타를 때렸다. 이승엽은 니오카 도모히로의 볼넷에 이어 아베 신노스케의 보내기번트로 3루에 진루했고, 기무라 다쿠야의 희생플라이로 선취 득점을 올렸다. 시즌 22득점째.5회와 7회에는 좌익수 뜬공과 삼진으로 물러났고,9회에는 내야땅볼로 아웃됐다. 시즌 타율은 .247로 약간 높아졌다. 요미우리는 5-0으로 승리하며 요코하마와 2경기차로 센트럴리그 1위를 지켰다. ‘적토마’ 이병규(33·주니치)는 2경기 연속 방망이가 침묵했다. 이병규는 이날 나고야돔에서 열린 야쿠르트전에 중견수 겸 7번 타자로 선발 출장했지만 3회 포수 뜬공,5회 내야땅볼로 돌아섰고,7회 무사 1·3루 결정적 기회에서 대타로 교체되는 수모를 겪었다. 팀은 4-0으로 이겼다. 김영중기자 jeunesse@seoul.co.kr
  • [NPB] 李·李 방망이 침묵

    이승엽(31·요미우리 자이언츠)은 5경기 연속 무안타, 이병규(33·주니치 드래건스)는 3경기 연속 안타가 좌절됐다. 이승엽은 13일 도쿄돔에서 벌어진 일본프로야구 주니치와의 홈경기에서 4번 타석에 들어섰으나 한 번도 1루를 밟지 못했다.1회 우익수 뜬공,4회 포수 파울플라이로 물러난 이승엽은 6회에는 상대 좌완 선발 야마모토 마사로부터 우측 폴을 약간 벗어나는 ‘파울 홈런’을 터뜨리기도 했으나 결국 1루 땅볼로 아웃됐다. 이승엽은 8일 한신전 5번째 타석부터 이날까지 19타석 무안타의 침체에 빠졌다. 중견수 겸 7번 타자로 출장한 이병규도 이날 4타수 무안타에 그쳤으나 상대 실책을 유도하며 득점에 이바지했다. 주니치는 3-3이던 8회 후쿠도메 고스케의 적시 2루타와 모리노 마사히코의 희생플라이로 2점을 도망간 뒤 9회 다니시게 모토노부의 솔로포로 쐐기를 박아 6-3으로 이겼다. 센트럴리그 홈런 1위 타이론 우즈는 2-1로 앞서던 6회 큼지막한 좌월 솔로 아치로 시즌 16번째 대포를 신고, 이승엽과의 격차를 8개로 벌렸다.김영중기자 jeunesse@seoul.co.kr
  • 김연아 “새로운 모습 기대하세요”

    “부족한 점을 보완해 한 단계 더 도약한 모습으로 돌아오겠습니다.” ‘피겨 요정’ 김연아(17·군포수리고)가 오는 9월 초까지 4개월간의 장기 전지훈련을 위해 9일 인천공항을 통해 캐나다 토론토로 떠났다. 어머니 박미희씨와 새 매니지먼트사인 IB스포츠 관계자가 함께했다. 시니어무대 데뷔 첫 시즌에 세계피겨선수권 동메달의 쾌거를 일궈낸 김연아는 출국 인터뷰에서 “지난 시즌에 좋은 성과를 올린 만큼 이번 시즌에는 한 단계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특히 “지난 시즌에는 허리부상으로 훈련량이 적었다.”면서 “이번에는 체력훈련 위주로 몸을 만드는 데 주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점프 성공률과 스핀, 스파이럴 연기에서 점수를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김연아는 그동안 사용했던 ‘록산느의 탱고’와 ‘종달새의 비상’ 등 서정적인 분위기를 털고 완전히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새 시즌을 준비한다. 브라이언 오셔 코치, 안무가인 데이비드 윌슨 코치와 함께 빠르고 경쾌한 분위기의 음악으로 바꿀 계획. 이번 전지훈련에서 허리 물리치료와 함께 하루 5∼6시간 이상 체력 및 빙판 훈련으로 구슬땀을 흘릴 예정인 김연아는 “기술적으로나 예술적으로 조화를 이룬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트리플악셀(공중 3회전반) 연마에 대해선 “완전한 몸 상태가 되기 전까지 시도할 생각이 없다. 현재로선 크게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정말 필요할 때 시작할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박기철의 플레이볼] 팀승리보다 개인기록이 우선?

    2007년 5월 프로 데뷔 6년차인 ‘강타자’군은 입단 이후 처음으로 이름에 어울리는 활약을 보여주고 있었다. 입단 이래 평균 타율 2할8푼대를 유지했고 한번은 3할에 턱걸이도 했지만 팬이나 구단에 깊은 인상을 심어준 적은 없었다.6년차에 접어든 올해 그는 슬슬 자유계약선수(FA)를 생각하기 시작했고, 오늘 확실한 인상을 새겨주기에 충분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었다. 첫 타석에서는 주자를 1루에 두고 좌월 시즌 두 번째 홈런을 쳤다. 두 번째 타석에서는 2사후 안타를 쳤고, 세 번째 타석에서는 2사2루에서 좌중간 외야를 꿰뚫는 2루타로 팀의 세 번째 득점이자 자신의 세 번째 타점을 올렸다. 그리고 8회말 2사. 팀이 3-0으로 이기고 있으니 3루타 하나면 내일 신문은 온통 사이클링 히트를 친 그의 이름으로 장식될 터였다. 그런데 초구를 끌어친 타구가 왼쪽 담장을 넘어가고 말았다. 그는 1루를 밟고 2루를 지나면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홈플레이트를 공과하면 3루타가 되므로 사이클링 히트로 기록되겠지.”.3루 코치도 묵인했다. 부담없이 홈플레이트를 지나쳐 더그아웃으로 들어와 동료들의 축하를 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상대가 공과에 대한 어필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사이클링 히트의 기록을 내주기 싫은 건 상대팀도 마찬가지. 그러나 상대 감독이 포수에게 어필을 지시한 덕에 홈런은 취소되고 강타자군의 소원대로 3루타가 됐다. 그러나 경기는 상대팀이 9회초 3득점해 연장전에 들어갔고, 결국 팀은 역전패했다. 이 경기에서 강타자군의 공과는 어떻게 매겨야 할까. 야구가 다른 어느 스포츠보다 기록이 중요한 건 분명하다. 하지만 팀 승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 기록은 대기록이라도 의미가 없다. 이런 분명한 명제를 가진 야구 기록이건만 자신의 기록을 위해 팀의 승리를 외면하는 경우는 불행하게도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는다. 아마추어든, 프로든 많은 사이클링 히트에는 자신의 기록을 위해 팀의 이익을 저버린 일이 여러 차례 있었다. 다른 기록 항목도 마찬가지다. 승리투수를 특정 선수에게 주려고 잘 던지는 선발 투수를 바꿔버리고, 평균자책점을 낮추기 위해 일부러 실책을 해 점수를 헌납한 사례도 있다.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일을 완전히 막기란 불가능하다. 프로 선수로서의 어마어마한 몸값은 충분한 동기가 된다. 그러나 그런 사례를 막기 위해 가능한 노력은 다해야 한다. 역전패를 당하지 않았다면 강타자군의 홈플레이트 공과에 팀이나 동료, 언론의 비난은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대기록이라도 팀의 승리보다 가치가 크지는 않다.4타수 4안타 4타점 2홈런이 사이클링 히트보다 못한가. 도대체 사이클링 히트가 뭔데.‘스포츠투아이’ 전무이사 cobb76@gmail.com
  • 美 핏빛 소동

    ‘밤비노의 저주’로 유명한 뉴욕 양키스-보스턴 레드삭스의 2004년 미국프로야구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 6차전.86년 만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위해 이 한판을 반드시 잡아야 했던 보스턴의 선발투수 커트 실링(사진 오른쪽·41)의 흰 양말에 밴 붉은 얼룩(동그라미 안)이 카메라에 잡혔다. 오른쪽 발목 힘줄이 끊어진 상태에서도 실링은 힘줄을 묶은 채 등판했다가 시나브로 흘러나온 피가 흥건히 양말을 적신 것. 그의 ‘핏빛 투혼’은 보스턴 선수들의 분발을 자극했고 팬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을 이끌어냈다. 먼저 내리 3경기를 내줬던 보스턴이 시리즈 전적 4-3의 대역전극을 펼치며 월드시리즈에 진출하는 원동력이 됐다.보스턴이 4전승으로 세인트루이스를 제압하고 월드시리즈를 제패한 것도 핏빛 양말과 결코 무관치 않다. 그런데 실링의 핏빛 투혼이 가짜였다는 주장이 제기돼 27일 프로야구계가 한바탕 뒤집혔다. 발단은 볼티모어 경기를 전담 중계하는 캐스터 개리 손이었다.그는 전날 볼티모어-보스턴전을 중계하던 도중 “(실링의 양말엔) 물감을 칠한 것”이란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그는 2004년 월드시리즈 6개월 뒤쯤 보스턴의 백업 포수 미라벨리가 ‘모든 게 PR(홍보)였다.’고 털어놓았다는 설명을 보탰다. 그러나 파장이 커지자 손은 전날 미라벨리가 농담한 것을 모르고 방송에 옮기게 된 것이라고 발뺌했다. 미라벨리는 “농담을 주고 받은 건 사실이지만 손은 내 말을 전적으로 오해했다. 실링의 양말에 묻은 게 피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얼마 전 남성잡지 ‘GQ’가 익명의 보스턴 선수의 말을 인용해 실링의 양말엔 케첩이 발라져 있었다고 보도했을 때, 실링은 자신의 블로그에 “말할 필요도 없이 내 발목에서 흘러나온 피였다. 다른 생각을 한다면 바보거나 우리의 승리 때문에 쓰라린 기억이 있는 사람들일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 함께 뛰었던 올랜도 카브레라(LA 에인절스)도 “트레이닝실에서 상처를 봉합하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 그를 감쌌다. 보스턴이 밤비노의 저주에서 풀려날 수 있도록 만든 실링의 양말은 세탁기 안에 들어갔고, 현재 뉴욕주 쿠퍼스 타운의 ‘명예의 전당’에 전시된 양말은 월드시리즈 2차전 때 신었던 것.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 사람] 700년 잠들었던 ‘고려사경’ 되살린 김경호씨

    [김문기자가 만난 사람] 700년 잠들었던 ‘고려사경’ 되살린 김경호씨

    사경(寫經)을 아시나요? 시계바늘을 잠시 고려시대로 돌려본다. 왕족과 귀족들은 하루 일과 중 사경원(寫經院)에서 불경을 베껴쓰는 일(寫經)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먹물이 아닌, 금·은가루를 사용했다. 이를 통해 공덕과 불심의 깊이를 스스로 가늠했음은 물론이다. 충렬왕 이후가 절정기였다. 원나라측은 고려의 사경기술을 거듭 요청했고 고려는 1회 100여명씩 수차례에 걸쳐 파견, 그 위상을 드높였다. 중국에서 들어온 사경 기술이 역수출된 셈. 아마 고려가 원나라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유일하게 큰소리 뻥뻥 치며, 콧대를 꺾은 대목이 아닐까. 전생이 있다면 아마 고려시대의 사경승(寫經僧)이었을 것이다. 꿈 속에서 고려 사경원의 각 처소를 돌면서 관리·감독을 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김경호(46) 한국사경연구회 회장. 조선시대 이후 쇠퇴한 고려사경 재현의 길을 30년째 고독하게 걷고 있다. 마치 서산대사가 눈 내린 들판을 밟고 걸어갈 때(踏雪野中去)처럼 사경 발걸음에 잠시라도 어지러이 하지 않았다(不須胡亂行). 또 지금 걷는 발자국(今日我行蹟)이 뒤따라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되듯(遂作後人程)이 말이다. ●새달 28일 중국서 사경전시회 그 결과, 이제는 사경이 하나의 어엿한 예술장르로 꽃을 피우고 있다. 다음달 28일부터 31일까지 중국 산둥(山東)의 성도 지난(濟南)에서 한국사경연구회 회원 20명과 함께 사경전시회를 갖는다. 이는 중국땅에서 원-고려 이후 700년만에 고려사경이 재현된다는 점에서 사뭇 의미가 크다. 이와 함께 중국의 4대 명찰 중 하나인 영암사에서 최초의 사경법회까지 연다. 특히 오는 7월24일부터 9월9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한·중·일 사경 특별전이 처음 개최되는데 여기에서 김씨의 수준높은 사경작업 과정을 동영상으로 담아 선보인다. 아울러 9월 전주에서 열리는 세계 서예비엔날레에 특별초청을 받아놓은 상태. 지난 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사무실에서 김씨를 만났다.“이제야 사경의 중요성을 알아주는 것 같다.”며 탄식이 섞인 긴 한숨을 내뱉었다. 그동안 개인전만 11차례나 열면서 사경의 가치를 알려온 외로운 노력이 비로소 결실을 맺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사경이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역시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 인쇄물인 ‘직지심체요절’을 탄생시킨 연원입니다. 사경이 지닌 전법, 그 기능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세계 최고품이 개발된 것이지요.” 또한 “(사경이)고려시대에는 가장 뛰어난 예술작품으로 승화됐다.”고 전제한 뒤,“고려 왕조 500년 동안 금자대장경과 은자대장경, 그리고 목판대장경을 포함해 무려 열번의 대장경을 사성했을 정도로 고려왕조는 가히 사경왕조였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청자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것. 고려시대의 미술을 깊이 있게 연구한 미술사학자들도 사경과 청자를 고려의 대표적 예술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억불정책으로 빛을 잃었고, 현대에 와서는 그 예술성이 사실상 거의 사라지다시피했다는 것. 김씨는 이같은 고려사경을 재현하기 위해 두팔을 걷어붙였다. 언론매체와 방송 등을 통해 사경의 중요성을 수없이 역설했다.‘사경의 기법’ ‘사경서체’ ‘또다른 수행-사경’ 등을 주제로 책을 펴내는 한편, 문화센터와 대학사회교육원 등에서 십수년간 강의도 했다. 연세대 사회교육원에서 1999년 사경 지도자 과정을 신설했을 때 김씨가 최초의 지도교수가 됐다. 또한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교육원·포교원 등에서 사경수행법 연구 및 조사집필 자문위원을 맡기도 했다. 특히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개인전과 단체전 등 모두 40여 차례의 전시를 통해 고려사경의 우수성을 국내외에 꾸준히 알렸다. “사경이 일반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불과 20여년 전입니다. 지금은 사경인구가 많이 늘어 150만명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장충식 교수님의 역할이 정말 컸습니다. 제가 은사로 모셨는데, 그분의 격려가 없었다면 도중하차했을 겁니다.2005년 은사님이 돌아가실 때 백아절현(伯牙絶絃)의 심정으로 사경을 그만두려고 했거든요.” 불교미술사학자로 이름을 떨쳤던 고 장충식 교수는 생전에 김씨의 사경작품을 보고 “고려시대의 그것보다 훨씬 정교하다.”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또 한글 궁서체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꽃뜰 이미경 선생은 “한글 궁체를 발전시키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했으며, 문화재위원과 여러 미술사학자들로부터 “인간문화재의 경지를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수만권 문헌 뒤지며 고려사경 직접 조사 그의 사경기법에는 몇가지 독창적인데가 있다.▲최대한 권위있는 원전을 5종 이상 대조하고 자구에 맞게 한글번역을 하며 ▲가급적 녹교를 끓여 사흘 이상 쓰지 않으며, 사경지를 포수처리하고 ▲금니와 은니를 3회 이상 정제하는 등 100%의 순도를 유지한다. 특히 모든 과정을 문헌에 근거, 제작하기 위해 슬라이드만 수만장에 이를 만큼 고려사경을 직접 조사하고 연구해왔다. 이같은 원칙을 바탕으로 머리카락보다 가는 선묘를 구사(1㎜ 공간에 5개 이상의 금선을 그음)할 만큼 사경의 정교함을 한 차원 높였다. 아울러 2005년 ‘사경수행법’을 집필할 때까지 종단에서조차 정리되지 않았던 사경수행의 방법을 체계화한 것도 그의 업적이다. 그가 사경과 인연을 맺은 것은 네살때. 붓을 잡고 부친에게서 획과 결구를 배우기 시작하면서였다. 초등학교 졸업 후에는 중학 진학도 미룬 채 홀로 서예공부에 빠졌다. 중학교를 1년 늦게 진학한 그는 이후 각종 전국 학생서예대회에 출전, 최우수·우수상 등 대부분의 상을 휩쓸었다. 고교시절에는 사경에 빠져 세번이나 부모 몰래 출가하기도 했다. 대흥사에서 행자생활을 하던 중에 가족들에게 붙잡혀왔고, 두륜산에서는 토굴에서 지내기도 했다. “사경은 서예의 영역을 뛰어넘는 전문성을 가지고 있지요. 일본의 경우 사경인구가 600만명에 이르고 전승도 잘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자문화권에서는 우리나라 사경이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합니다.”그는 또 “사경은 서예와 회화, 공예적인 요소를 함께 지닌 종합예술”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그는 프랑스 파리에서의 ‘동·서양의 사경 만남전’을 추진 중이다. 이때 우리의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명실공히 인정받겠다며 매일 12시간씩 사경에 몰두한다.“아들과 딸도 애비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전국 서예대회에서 1,2위를 다툰다.”고 귀띔했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62년 김제 출생 ▲76년 중학때 묵서로 사경 독학 ▲82년 남성고 졸업 ▲86년 전북대 국문과 졸업 ▲97년 제1회 불경사경대회 대상수상(조계종 총무원 주최) ▲99∼2006년 연세대 사회교육원 서예·사경 지도자과정 지도교수 ▲04년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졸업(석사) ▲현재 한국사경연구회 회장 #전시 금산사 창건 1400주년 기념초대전(98년) 등 40여회. #주요 저서 학의 울음(96년), 외길 김경호 사경집(02년), 신라백지 묵서 ‘대방광불화엄경’의 연구(04년), 수행법연구(사경 책임집필·05년), 한국의 사경(06년). ■ 사경(寫經)이란? 사경의 사(寫)는 베끼다, 옮겨놓다 등이며, 경(經)은 ‘법, 이치, 성인이 지은 책’이라는 뜻을 지녔다. 본래 ‘경’은 ‘수트라’로 ‘실(線)’이라는 뜻으로 꽃에 비유할 수 있는 중요하고 짤막한 금언(金言)이나 격언을 모은 것에서 기원한다. 화엄경 보현행원품에는 ‘사경이 병과 고뇌와 악업을 씻어주고 큰 죄도 용서할 것’이라고 적고 있다. 불가에서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 고귀한 말씀을 사경을 통해 접하고 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중국에서 불교가 전래될 때 함께 건너온 사경은 원래 불교 경전만 옮겨 쓰는 행위였으나 최근에는 성경, 꾸란 등 타 종교의 경전으로 대상이 넓어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경은 경주 나원리 5층석탑에서 사리장엄구와 함께 출토된 무구정광대다라니편(8세기초)으로 전해졌으나 사성기(寫成記)가 없어 사성연대가 명확한 호암미술관 소장 국보 제196호 ‘신라백진묵서 화엄경 제2축’이 현존 최고(最古)의 사경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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