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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지상의 평화/이성형 중남미 전문가 정치학

    [열린세상] 지상의 평화/이성형 중남미 전문가 정치학

    한사도가 목이 잘린 한 이교도를 밟고 서 있는 조각상이 눈에 들어온다. 스페인의 톨레도에 있는 대성당의 본당에서의 일이다. 아마도 산티아고, 곧 야고보 성인이리라. 산티아고는 스페인이 무어인들을 밀어내고 이베리아 반도를 재정복하는 과정에서 전사들이 수호성인으로 모셨다.‘산티아고 마타모로’, 즉 ‘무어인을 죽이는 성 야고보’는 스페인 가톨릭의 전투적 모습을 잘 보여준다. 스페인의 펠리페 2세는 대단히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종교개혁과 싸우는 가톨릭 세력의 최대 실력자였다. 기도의 응답이 이뤄져 산 로렌소 축일에 프랑스군을 대파하자, 마드리드 근교에 ‘엘 에스코리알’이란 궁전을 성인에게 봉헌했다. 장방형의 엘 에스코리알은 스페인 합스부르크 제국의 최전성기 건물이지만 곧 정교일치의 이상을 음울한 모습으로 증언한다. 궁정은 온통 종교화로 뒤덮인 수도원 건물처럼 치장했고, 지하에는 가문의 시체안치소까지 마련했다. 펠리페 2세는 늘 기도를 하면서 죽음을 묵상했고, 골방에 앉아서 제국의 곳곳에서 날아든 서류를 꼼꼼하게 읽었다. 엘 에스코리알은 곧 제국 쇠락의 징후를 표현한다. 무엇이든 뜨겁게 사랑하면 피를 흘리게 된다. 종교전쟁은 숭고한 이상이 빚은 참혹한 결과이다. 영국에서도 가톨릭과 신교도, 국교도와 비국교도가 처절하게 싸웠다. 프랑스에서는 성 바르톨로뮤 대학살 사건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신앙의 차이를 견디지 못했고, 마니교적 이분법으로 상대를 악마와 동일시했다. 처음에는 유대인이나 무어인들이 악마와 동일시되다가, 급기야 신교와 구교, 교파 간 싸움으로 변질되었다. 이단심문소는 이교도를 태워 죽였다. 홉스는 종교전쟁으로 얼룩진 17세기 영국에서의 삶을 ‘외롭고, 가난하고, 더럽고, 거칠며, 단명적’이라고 묘사했다. 그는 종교적 광기에서 영국 사회를 구하기 위해 인간 사회를 하나님의 나라와 분리시키는 획기적인 제안을 한다. 신적 계시에서 벗어난 인간 사회 그 자체가 분석의 대상이 된다. 그는 정치를 종교와 분리시키는 서구 민주주의의 ‘거대한 분리’를 ‘리바이어던(1651년)’에 기록하였다. 루소는 신앙을 ‘내면의 빛’으로 재정의하면서 합리적 신앙의 가능성을 열어 보였다.‘에밀’의 ‘사부아 보좌신부의 신앙고백’은 이렇게 기록한다.“어떤 특정한 종교라도 하느님을 유용하게 모시면 좋다고 믿는다.” 그 역시 종교적 광기, 신정정치, 성직자 제도에는 반대했지만, 홉스와 달리 종교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홉스와 루소 이래로 서구 사회는 이 ‘거대한 분리’를 점진적으로 내면화했다.‘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로 나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쉽지는 않았다. 때때로 분리의 경계는 무너지고 상호 침범하는 경우도 많았다. 신정정치의 기억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역사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 독일의 개신교도들은 가톨릭교도들보다 훨씬 강력하게 나치당을 지지했다. 당대의 저명한 신학자 프리드리히 고가르텐은 히틀러가 집권한 1933년에 이렇게 선언했다.“우리가 오늘 다시 한 번 국가를 완전히 주장할 수 있게 되었기에, 인간적으로 말해서 성서의 그리스도와 그 분의 지배를 선포할 수 있게 되었다.” 제국교회는 히틀러를 하느님의 도구로 이해했다. 교회가 광신적 인종주의와 민족주의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어떻게 유대인 학살극에 개신교도들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메시아적 신앙은 메시아적 정치를 호명한다. 하지만 메시아적 정치는 독일인들에게 ‘하느님의 평화’가 아닌 재난을, 유대인에게는 홀로코스트를 선사했다. 정교분리는 지난 500년간 역사를 통해 서구사회에 평화를 가져온 값진 성과물이다. 그래서 대부분 근대국가의 헌정질서 속에 포함됐다. 정교분리, 종교간, 교파간 관용과 대화의 문화가 없이는 세상의 평화란 쉬 오지 않는다. 이성형 중남미 전문가 정치학
  •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39)경남 함양군 휴천면 송대마을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39)경남 함양군 휴천면 송대마을

    지난 2월 ‘마을에서 건너 뵈는 산능선 모습이 마치 누워 있는 부처와 같다.’ 하여 ‘견불동’이 된 작은 마을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경남 함양군 휴천면 송대마을은 그 와불능선을 뒷산으로 둔 산중 깊은 마을이다. 엄천강 건너, 그리고 다시 도로 건너에 위치한 견불동보다 와불 형상이 훨씬 더 뚜렷한 덕에 ‘견불사’란 사찰도 들어서 있지만 본시 견불동에 있었다던 통일신라 때의 견불사와는 다르다. 점필재 김종직의 지리산 유람록 ‘유두류록’에는 ‘나 혼자 삼반석에 올라 지팡이에 기대섰노라니 향로봉, 미타봉이 모두 다리 밑에 있었다.’라고 표현돼 있다. 지금은 ‘상내봉’으로 일컫는 미타봉은 이 와불능선의 머리 부분으로 그 키가 해발 약 1200m이다. ●마을 뒷산엔 와불능선 오롯이 상내봉 부근엔 ‘망실공비 3인부대’로 불렸던 정순덕, 이홍이(희), 이은조가 군경의 추격을 피해 1962년까지 숨어 지낸 선녀굴이 있다. 이은조는 그해 선녀굴에서, 이홍이는 이듬해 산청에서 각각 사살당하고, 마지막 빨치산 정순덕은 같은 날 다리에 총상을 입고 생포 당한다. 여순사건부터 치자면 무려 15년이고, 한국전쟁이 끝난 후부터 쳐도 10년만이었다. 송대마을에서 3㎞쯤 떨어진 선녀굴에는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샘물이 있는 데다 좁은 입구와는 달리 안이 넓은 2중 동굴이어서 굴 내부에서조차 안이 잘 보이지 않아 빨치산의 은신처로 적당한 곳이었다고 한다. 근방에는 이와 비슷한 동굴이 5개나 더 있다. 함양군에서는 송대마을과 선녀굴을 중심으로 한 ‘지리산 공비토벌 루트’를 만들었지만 송대∼선녀굴∼어름터 등의 5㎞ 구간을 포함, 이 일대가 2017년 2월까지 출입통제 구간으로 묶여 산행은 할 수 없다. ‘지리산 엄천골’ 블로그를 운영 중인 김용규씨는 “그동안 송대마을이나 세동마을 사람들이 부처 형상의 산봉우리를 쉽게 감지하지 못했던 이유는 1950∼1970년대의 벌목과 산불 등으로 상내봉 주변에 나무가 많이 자라지 못해 그냥 밋밋한 바위 모습만 보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런저런 암자를 제한 송대마을 가구수는 대략 네 집. 여느 동네처럼 한국전쟁으로 마을이 불에 타 부득이 집을 떠났다 다시 돌아와 50년을 살았다는 한 할머니는 붉은 고추를 손보며 연신 한숨뿐이다.“힘든 건 말할 수가 없어. 지금도 힘이 드는데 그때는 말할 것도 없지. 너무너무 힘들게 살아.” 할머니네 벌통은 아니었지만 3년 전 인근 농가가 반달곰 피해를 입었고, 멧돼지 횡포로 농사 지을 생각은 진즉에 접었다. 주로 한봉과 산나물 채취로 생계를 잇는데, 100% 무공해여서 도시 사람들에게 택배로 보내주는 일이 많다고. 다만 택배 차량조차 오가기 꺼리는 곳이라 물건을 부치려면 직접 들고 마천까지 나가야 한다. 일흔이 넘은 그이가 쉬엄쉬엄 1시간, 아니 걷는 데만 왕복 2시간이 걸리는 먼 길이다. ●소나무·대나무 많아 ‘송대마을´ 소나무와 대나무가 많아 ‘송대’라는 이름이 붙은 이 마을은 선녀굴에서 발원한 선녀골 물을 식수로 사용하고 있다. 반세기 전 빨치산들이 은거하며 마셨을 이 물은 햇볕에 증발돼 비가 되어 다시 땅으로 내리기를 수없이 반복하며 이제는 지리산에 깃들인 이들에게 달고 깊은 맛을 제공하고 있다. ▶가는 길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과 동서울터미널, 부산과 대구 등에 함양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88고속도로 지리산IC에서 산내∼마천∼휴천 방면으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는 함양과 생초IC를 각각 이용한다.24번 국도에서 오도재를 넘어 마천∼휴천 방면으로 이동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후 견불사 이정표를 참조한다. 글 사진 황소영 자유기고가
  • [정윤수의 오버헤드킥] 주영, 먼저 ‘AS 모나코 전설’이 돼라

    FC서울의 박주영이 프랑스리그로 진출했다. 축구밖에 모르는 올해 23살의 청년이 명문 AS모나코에서 축구 인생의 제2막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그에게는 새로운 터닝포인트가 필요한 시점이었다.AS모나코가 아니라 그 어디라도 큰 무대라는 대전제만 성립된다면 해외로 나갔어야 했다.FC서울에서 더 많은 성적을 내야 할 의무도 있고 K-리그가 결코 허약한 것은 아님에도 그로서는 좀 더 강렬한 동기 부여가 필요했다. 탁월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오랜 침체를 겪었고 지난 베이징올림픽에서도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박주영이 꽤 오래 지속된 완만한 흐름을 지속하는 건 그리 효과적이지 않았다. 자신의 슬럼프가 소속팀과 대표팀을 오가는 단조로운 리듬과 만성적인 피로감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자칫 ‘날개 잃은 천재’가 될 수도 있었다. 박주영의 성정은 차분하고 관조적이다. 호들갑스런 말로 치장하거나 요란하게 행동을 반복하지 않는다. 그라운드에서는 자유롭게 비상하는 새의 날갯짓 같은 면모를 보여 주었고, 장외에서는 적당한 유머와 차분한 생활 패턴을 유지했다. 이러한 생활 태도는 낯선 땅 프랑스에 적응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미 성장기 때 브라질에서도 생활을 했던 그다. AS모나코는 티에리 앙리와 다비드 트레제게, 에마뉘엘 아데바요르 등을 배출한 전통의 명문이다. 공격 지향의 다채로운 팀 전술을 가진 팀이다. 고집스럽게 정형화된 틀을 유지하는 걸 사양하는 아름다운 스타일도 갖고 있다. 현재도 미국의 ‘축구 신동’인 19세의 프레디 아두가 뛰고 있고,191㎝의 장신 공격수 프레데릭 니마니가 주포로 활약하고 있다. 이 팀은 왼쪽 공격과 최전방 해결사 노릇까지 겸할 수 있는 폭넓은 경기력과 단 한 차례도 같은 동작을 반복하지 않는 스타일의 박주영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뛰어난 동료들과 함께 유려한 경기를 펼쳐나가는 장면은 생각만 해도 아름답다. 다만 한 가지가 걸린다.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주영은 “빅리그로 진출하기 위해 AS모나코를 교두보로 삼겠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 마음 깊은 곳엔 그런 욕망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지 언론이나 팬들에게는 결코 그런 말이나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지단과 앙리의 나라 프랑스 역시 축구로 해가 지고 해가 뜬다. 그런 곳에서 “내 꿈은 잉글랜드”라고 말하는 건 동료와 팬들에 대한 모욕이다.AS모나코는 박주영 축구의 제2막이 열리는 진정한 무대다. 거기에서 반드시 살아남고, 팀의 전설이 된다는 각오만이 박주영을 빅리그로 인도할 것이다.축구평론가 prague@naver.com
  • [9월 금융위기설 진단]MB노믹스 컨트롤 타워가 없다

    [9월 금융위기설 진단]MB노믹스 컨트롤 타워가 없다

    지난 6개월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 취약점으로 꼽혀 온 당·정·청 간 엇박자가 되풀이되고 있다. 한나라당과 정부, 정부와 청와대,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서로 다른 소리를 낸다. 좀처럼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의 주요 정책 방향은 갈지(之)자 행보를 거듭하고 있고, 갈수록 시장의 신뢰를 잃으면서 9월 위기설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청와대·정부 끝모를 핑퐁게임 2일 국무회의에서 나온 이 대통령의 재개발·재건축 발언은 현 정부의 엇박자, 갈지자 행보의 대표적 사례다. 청와대는 지난달 31일 청와대가 땅값 폭등 가능성을 들어 추가적인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이날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 대통령 앞에서 ‘일자리 창출’을 내세워 재개발 카드를 다시 뽑아들었다. 그러자 청와대가 부리나케 추가규제완화 가능성을 부인했고, 이튿날엔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이 “재건축단지의 소형주택 의무비율 조정을 검토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청와대와 정부의 핑퐁 속에 의연한 쪽은 오히려 시장이었다. 별다른 동요 없이 관망세를 이어갔다. 잦은 정책혼선에 익숙해진 때문으로 풀이된다. 쇠고기 촛불시위와 함께 꺼진 듯했던 한반도 대운하도 다시 불씨가 살아날 조짐이다.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이 2일 “요건이 조성되고 국민이 필요하다고 할 때 다시 할 수도 있다.”고 불을 지폈다. 이튿날 주식시장은 출렁였다. 관련주들이 단비를 만난 듯 일제히 상한가로 치솟았다. 정부와 한나라당이 밀고 당기기를 거듭한 법인세 인하폭과 시기도 여전한 쟁점이다. 지난 1일 당·정 회의를 통해 세제개편안을 확정했지만, 강만수 기재부 장관은 3일 국회 답변에서 “아직도 법인세가 높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지난 4월만 해도 양측은 반대 입장에 섰었다. 한나라당이 장애인 LPG 특소세 면제 등 10여개의 감세를 주장했지만 정부는 세수 부족을 들어 난색을 보였다. ●‘국가상징거리´ 조성도 엇박자 정책 혼선은 비경제 부문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연말 이전하는 기무사 터에 대한 활용 방안도 청와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엇박자를 내고 있다. 청와대는 지난달 초 기무사와 국군수도병원 자리를 경복궁 주차장과 공연장 등 복합문화관광시설로 탈바꿈시키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광부는 문화인들의 오랜 염원이라는 이유를 들어 미술관 건립을 꾸준히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광부가 오보라고 해명했으나 3일 기무사 터 현대미술관 건립 방안이 흘러나온 것도 이런 배경을 담고 있다. ●정책 번복이 ‘전술적 수정´? 강만수 기재부 장관은 2일 기자간담회에서 정부 정책이 오락가락한다는 지적에 “전술적인 수정은 당연한 것”이라는 반론을 폈다.“소총으로 싸우다 대포로 바꿨다고 해서 일관성이 없다고 지적할 수 있느냐.”고 반박했다. 그러나 용두사미가 돼 가는 공기업 선진화 계획처럼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행보를 ‘작전’이라 주장할 수는 없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11일 오전 강 장관이 “모두 33곳”이라고 했던 1차 선진화 대상 공기업이 오후 한나라당과의 협의 이후 41곳으로 늘어난 것을 전술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민영화 방식에 있어서도 당초 ‘포이즌 필’을 도입한다고 발표했다가 비판여론이 거세지자 번복하기도 했다. 이 같은 당·정·청 간 엇박자와 정책 혼선은 범정부 차원의 정책방향이 명확하지 않고, 눈 앞의 위기 타개에만 급급한 단기적 대응, 당·정·청 간 충분한 사전조율 부족 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평가된다.MB노믹스를 체계적으로 구현할 경제 리더십과 컨트롤 타워가 없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경희대 윤성이 교수(정치학)는 “당은 몰라도 정부와 청와대가 엇박자를 내는 것은 문제”라며 “경제 분야에 컨트롤타워가 없는 것이 직접적인 요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모든 걸 챙기는 리더십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며 “국무총리나 대통령실장에게 과감하게 권한을 분담시키고 정부가 이를 시스템으로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경실련 재벌개혁위원장인 홍종학 경원대 교수(경제학)는 “경제 상황이 어려워도 당은 물론 부처에서도 누구 하나 나서서 입바른 얘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부총리제를 두고 시스템을 보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대통령이 먼저 귀를 열고 다른 성향의 의견도 들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진경호 윤설영기자 jade@seoul.co.kr ■ 97년 외환위기·현재 경제수치 차이점-외환보유·기업 부채비율 ‘튼실’ 유사점-경상수지 적자 규모·환율 하락 과연 우리 경제는 10년 전과 비교해 어떤 상황일까.1997년과 현재의 각종 경제관련 수치 비교를 통해 위기 재발 가능성을 살펴본다. 결론부터 말하면 거시지표 구조로 볼 때 외환위기와 같은 극한 상황으로 치달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우선 외환보유액 규모와 단기 외채의 비중에서 많은 차이가 난다.97년 말 외환보유액은 204억달러로 단기 외채 638억달러의 3분의1 수준에 불과했다. 반면 지난달 말 외환보유액은 2431억달러로 외환위기 당시보다 12배나 불었으며, 단기 외채는 72% 수준인 1757억달러에 이른다. 대표적인 재무안정성 측정지표인 기업부채비율은 97년 말 242%에 비해 지난 3월 말 기준 92.5%로 크게 호전됐다. 다만 경상수지 적자 규모는 10년 전과 지금이 비슷하다.97년 말 82억달러 적자였고, 올해 1∼7월 누적 적자는 약 68억달러다.97년 12월 1962원까지 치솟았던 원·달러 환율은 올 초 900원대까지 하락했다가 최근엔 1100원대로 올랐다. 송태정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10년새 경제지표는 나아졌지만 개방화에 따라 대외적으로 영향을 받는 채널이 늘어나고 변동환율제도 도입돼 외부 충격에 더욱 취약해졌다.”고 지적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정치권·언론 위기설 풀무질 실체 검증 노력없이 오락가락 발언·과장보도 경쟁 한국경제는 과연 위기일까, 아닐까. 정치권과 언론이 한국경제의 ‘9월 위기설’을 지나치게 단편적,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한나라당은 지난 5월 촛불 시위 당시 한국경제의 위기론을 폈다가 이젠 적극 진화에 나서는 형국이다. 민주당은 위기가 아니라며 적극 방어하다가 태도를 바꿔 위기론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3일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지금 경상수지, 경기 선행지수 등 각종 중요 경제지표가 안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상황”이라며 위기가 아님을 적극 강조했다. 임태희 정책위의장도 이날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에서 “9월 위기설은 현실과 전혀 다른 이야기”라면서 “‘금융위기설’을 유포하면 우리나라 경제를 어렵게 할 우려가 있다.”며 진화에 진력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위기설 진원의 책임을 청와대와 한나라당에 돌렸다. 정세균 대표는 지난 1일 “경제위기를 최초로 말한 사람은 내 기억으로는 이명박 대통령”이라면서 “지금 언론을 통해 경제위기설이 다시 보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권이 정국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위기설을 유포하는 것 아니냐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 박병석 정책위의장도 이날 “이 대통령의 발언이 진심에서 나왔든, 촛불민심을 달래기 위해서 나왔든 경제의 위기설을 확산시키는 하나의 단초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언론도 논조에 따라 위기설에 대한 보도 경향이 나뉜다. 3일자 보도에서 위기설과 관련, 한겨레·경향신문 등 진보성향의 매체는 정부의 정책 실패를 공격하는 데 주력했다. 반면 보수 성향이 짙은 조선·중앙·동아일보 등은 정부의 늑장 대응을 질책하면서도 ‘위기설 확산’ 자체를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종합일간지들의 논조가 엇갈리는 반면 경제지는 시장 분위기를 충실히 전달하고 위기설 실체를 검증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등 대체로 객관적인 보도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다. 강아연 구동회기자 arete@seoul.co.kr
  • “첫날밤 신부처럼 긴장되고 떨려”

    “시집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가슴이 벌렁벌렁거렸습니다. 마치 첫날밤 보내는 신부처럼 긴장이 되기도 하고….” 등단 50주년을 기념해 시집 ‘허공’(창비)을 펴낸 고은(75) 시인은 1일 기자들과 만나 “등단 반세기가 지나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이제 막 시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1958년 현대문학에 ‘봄밤의 말씀’이 추천돼 등단한 시인은 시는 물론 소설, 산문, 평론 등 장르를 넘나드는 전방위적 글쓰기 작업을 벌여왔다. ●후반기 詩作도 질풍노도 될 것 표제시를 비롯해 ‘추억 하나’‘여생’‘응애응애’ 등 107편이 실린 이번 시집에는 시작활동 반세기를 정리하는 시점에서 시의 근원으로 돌아가려는 시인의 초심이 그대로 녹아 있다.“나의 미래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 예측할 순 없습니다. 그렇지만 나의 시작 활동은 이제 후반기를 맞았다고 할 수 있죠. 이 후반기가 아마도 내겐 또 다른 질풍노도의 시기가 될 것입니다.” 그 같은 맥락에서 시인은 허공과도 같은 시의 시원(始原)으로 되돌아가려는 재출발의 의지를 불태운다.“보게/저 지긋지긋한 시대의 거리 지나왔거든/보게/찬물 한모금 마시고 나서/보게/그대 오늘 막장떨이 장사 엔간히 손해보았거든/보게 백년 미만 도(道) 따위 통하지 말고/그냥 바라보게/거기 그 허공만한 데 어디 있을까보냐”(‘허공’ 중에서) 허공의 텅빈 충만, 그것은 정형화된 것은 죄다 거부하고 모든 것을 근원으로 되돌린다. 그리고 이내 백지처럼 하얀 공간에서 새 출발의 몸짓을 취한다. 시적 후반생을 시작한 시인의 다음 시집 제목은 사뭇 의미심장하다. 시인은 직접 ‘멧비둘기 울음소리를 들으면서’라는 이름을 붙였다.“여름에 많이 우는 멧비둘기 소리는 처음엔 너무 듣기 싫었어요. 소리가 탁하고 뭔가를 토해내는 것같아 찝찝했던 거지요. 그런데 여러번 들어 보니 나도 모르게 흠뻑 빠져들게 되더군요. 어머니의 소리 같기도 하고 할아버지가 남긴 뜻 같기도 하고…. 향토의 피가 녹아들어 있다고 할까요.” 멧비둘기가 울 때마다 글이 잘 써져 그냥 다음 시집 제목을 그렇게 정해버렸다는 것이다. ●그림에도 도전… 4일부터 전시회 시인은 시작활동 외에 그림 그리는 일에도 본격적으로 도전해 볼 참이다. 그 첫 무대가 바로 4일부터 서울 순화동 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에서 열리는 그림전 ‘동사를 그리다’다. 시인이 직접 그린 그림 35점과 글씨 19점이 출품된다.“그동안 화가 ‘천경자론’과 이중섭 평전 등을 써왔는데, 어느 순간 내 손으로 직접 그림을 그리고 싶어지더군요. 사실 어릴 때 나의 꿈은 화가였어요. 그림을 통해 모든 끼를 발산하고 싶었던 거지요. 지난 여름 그림의 포로가 돼 17일동안 정신없이 그린 것을 이번에 선보이는 것입니다.” 시인은 1986년 첫 출간한 한국문학 최대의 연작시집 ‘만인보’도 내년초 30권 분량으로 완간할 예정이다. 문필활동에 그림작업까지, 그 멈출 줄 모르는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느냐는 물음에 노(老)시인은 이렇게 답했다.“한마디로 ‘신명’이지요.”신명이 나면 나이는 그야말로 숫자에 불과한 것 아닌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US오픈 2008] 랭킹 126위 日 니시코리, 4위 페레르 꺾고 16강에

    세계 랭킹 126위에 불과한 니시코리 게이(19·일본)가 4위 다비드 페레르(스페인)를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US오픈 16강에 올랐다. 니시코리는 31일 미국 뉴욕 플러싱메도의 빌리 진 킹 내셔널테니스센터에서 벌어진 대회 남자 단식 3회전에서 페레르를 풀세트 접전 끝에 3-2로 제쳤다. 일본 남자 선수가 이 대회 단식 16강에 오른 건 ‘오픈시대’가 열린 1968년 이후 처음이다. 초반 두 세트를 내리 따낸 뒤 5세트까지 몰린 니시코리는 게임스코어 4-1로 앞서더니 다시 듀스를 허용해 경험 부족으로 다 잡은 대어를 놓치는 듯했다. 그러나 니시코리는 5-5에서 자신의 서브 게임을 지킨 뒤 페레르의 서브 게임마저 따내 3시간31분의 대접전을 승리로 장식했다. 2003년부터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테니스를 배운 유학파.2005년 세계적인 테니스학교 닉 볼레티에리 아카데미에서 기량을 쌓은 그는 지난 2월 덜레이비치에서 톱시드의 제임스 블레이크(미국)를 꺾고 일본 선수로는 16년 만에 첫 ATP 투어 단식 정상에 올라 일본 테니스계를 열광시켰다. 니시코리는 “아직 믿을 수가 없다. 내 생애 가장 큰 승리”라고 기뻐했다. 니시코리는 20세 신예 후안 마틴 델 포로(아르헨티나·17위)를 상대로 8강 티켓을 다툰다. 1위 라파엘 나달(스페인)은 빅토르 트로이츠키(세르비아·71위)를 3-0으로 가볍게 완파하고 16강에 안착했다. 비너스와 세레나 등 ‘흑진주’ 윌리엄스 자매(미국) 역시 각각 알료나 본다렌코(우크라이나·31위)와 스기야마 아이(일본·32위)를 2-0 똑같은 스코어로 제치고 여자 단식 4회전에 합류했다.16강에서도 또 나란히 이길 경우 둘은 8강에서 만나게 된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헌법재판소 창립 20돌] 위헌 결정 500건… 국민기본권 지킴이로

    [헌법재판소 창립 20돌] 위헌 결정 500건… 국민기본권 지킴이로

    헌법재판소(소장 이강국)가 1일로 창립 20주년을 맞는다. 헌재는 현대사의 질곡을 겪은 끝에 탄생했다.5·16 군사 쿠데타가 없었다면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로서, 헌재가 일찌감치 모습을 드러냈을 것이다.1960년 4월 첫 제정된 헌재법은 한달 만에 일어난 군사 쿠데타로 사장됐다. 비상설기구인 헌법위원회나 대법원이 위헌법률 심판 등을 맡기도 했으나 성과는 미미했다. 1987년 민주화 물결로 현행 헌법이 만들어지며 헌재 설치가 다시 추진됐고, 이듬해 9월1일 헌재법 공포로 마침내 헌재가 문을 열었다. 한편 헌재는 창립 20주년 기념으로 1∼4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세계헌법재판소장회의를 연다. 미국·영국·독일·일본·스페인·몽골 등 30개국과 베니스위원회·유럽헌법재판소회의 등 지역협의체 6곳이 참여해 헌법재판과 입법·행정·사법권,21세기 헌법재판의 새로운 도전 등을 논의한다. 한 교수는 헌법재판소에 대한 책을 쓰며 ‘그 순간 대한민국이 바뀌었다.’라는 제목을 달았다. 헌재의 역할을 함축적으로 드러낸 구절이다. 헌재는 그동안 1만 5663건의 사건을 심판해 500건에 대해 위헌 결정(헌법불합치·한정위헌·한정합헌 포함)을 내렸다. 그만큼 헌재는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1991년 언론의 강제사죄광고 위헌 결정 한 연예인이 1988년 언론사를 상대로 명예훼손으로 인한 손해배상과 사죄광고를 요구하며 소송을 냈다. 언론사는 “사죄광고는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1991년 4월 헌재는 “양심의 자유는 윤리적 판단에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 되는 내심적 자유는 물론, 국가권력에 의해 외부에 표명하도록 강제받지 않는 자유까지 포괄한다.”며 위헌 결정했다. 헌재는 1992년 1월 신체구속된 사람이 수사관 개입 없이 변호인과 자유롭게 접견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미결수용자의 변호인 접견에 교도관이 참여하도록 한 행형법이 위헌이라고 결정한 것. 이는 인신보호를 위한 무죄추정 원칙과 진술거부권 및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에 대해 직접적 효력을 명시적으로 인정한 첫 사례로, 국내 인권사에 중요한 이정표가 됐다. 한때 우리 영화계는 흥행보다 검열을 먼저 걱정해야 했다.1989년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오! 꿈의 나라’와 해직교사 문제를 다룬 ‘닫힌 교문을 열며’를 사전심의 없이 상영했다는 이유로 기소된 제작자들이 헌소를 냈다.1996년 10월 헌재는 “언론·출판의 자유에 대해서는 검열을 수단으로 한 제한은 허용되지 않는다.”며 영화계의 손을 들어줬다. ●1997년 동성동본 금혼법 불합치 결정 1997년 7월 헌재는 동성동본 혼인을 금지한 민법 조항에 대해 유림이 주장하는 유전학적 문제가 확인되지 않았음을 근거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앞서 한시적인 특례법으로 4만 4800여쌍의 동성동본 부부가 법률적인 부부가 되며 구제받았지만, 여전히 혼인 생활이나 자녀 교육에서 고통받는 동성동본 부부가 많았다. 헌재 결정으로 20만쌍의 동성동본 커플이 오랜 관습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1999년 12월 헌재는 공무원 공채시험 때 제대군인에게 과목별로 만점의 5∼3%를 가산토록 한 제도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여성과 신체장애를 가진 남성 등의 평등권과 공무담임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제대군인 가산점 제도는 폐지됐지만, 현재까지 정치적인 쟁점이 될 정도로 뜨거운 감자로 남아 있다. 2005년 2월 헌재는 호주제도에 대해 “혼인과 가족생활에서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규정한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며 6대3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유림단체의 반발과 여성단체의 환호가 엇갈리는 가운데 양성평등이 진일보하는 분기점이 됐다. 그 여파로 올 1월부터 호주제 대신 가족관계등록법이 시행됐다. ●2007년 재외국민 참정권 제한 불합치 결정 2007년 7월 헌재는 나라 밖 국민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는 결정을 내렸다. 선거권 또는 국민투표권을 행사할 때 주민등록 등 국내거주 요건을 요구해 대한민국 국적의 해외 영주권자가 참정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한 법률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이다. 헌재는 2004년 5월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여부를 판단하기도 했다. 헌재는 이를 기각함으로써 당시 사회 분열과 갈등을 봉합했지만, 결정문에서 재판관들이 개별의견을 표시하지 않아 비판을 받기도 했다. 국회는 여론에 힘입어 개별의견 공개대상 사건을 ‘탄핵심판을 포함한 모든 사건’으로 확대하도록 헌재법을 개정했다. 그러나 국회도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에서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재판관들의 부담을 늘렸다는 지적을 면치 못했다. 한편 올 1월부터 모든 고소 사건에 대해 관할 법원에 재정신청을 할 수 있도록 개정된 형사소송법이 시행되면서 헌재의 심판사건 접수 건수가 크게 줄었다. 재정신청을 거친 불기소처분에 대해서는 그 이전부터 헌법소원을 인정하지 않았다. 홍지민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사설] 북·미, 북핵 더 대화하고 절충해야

    오는 11월 미 대통령 선거인단 투표까지 2개월여, 그리고 내년 1월 새 대통령 취임까지 4개월20여일 남았다. 그야말로 임기말에 처한 부시 대통령의 운신의 폭은 좁을 수밖에 없다. 곧 임기가 다하는 만큼 가시적인 성과를 내려 최대한의 재량권을 발휘할 수도 있겠지만, 역으로 정치적으로 위험부담이 있는 새로운 결정을 내리기는 더 어렵다고 본다.‘영변 핵시설의 불능화를 중단하고 원상복구를 고려할 것’이라는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엊그제 성명은 미국의 대선상황을 면밀하게 따져 보고, 이러저런 노림수를 담은 벼랑끝 전술로 평가된다. 북핵 6자회담이 5년간의 지난한 줄다리기 끝에 불능화 조치를 마무리해야 할 즈음에 북한이 모든 노력을 수포로 만들 수도 있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한 것은 유감이다. 북한은 핵신고 검증문제와 관련, 지난달 6자 수석대표 회담에서 검증을 받아들인다는 원칙에 동의한 바 있다. 따라서 북한이 판을 깨겠다는 심사가 아니라면, 검증 대상 및 방법 등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절충을 시도하는 게 다른 5개국에 대한 도리일 것이다. 관건은 미국의 대응인데 ‘북한이 먼저 의무를 이행해야 테러지원국 해제 약속을 지킨다.’는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향후 수주 동안 어떻게 일이 진행되는지 지켜볼 것이라며 유연한 입장을 보인 것은 다행이다. 과잉반응을 할 필요가 없으며, 행동대 행동 원칙에 따라 2단계 불능화조치가 조속히 마무리되고 에너지지원도 원만하게 이뤄지도록 관련국들과 긴밀히 협의하겠다는 우리 정부의 방향 설정도 적절하다. 북핵의 조속한 폐기가 최상의 목표이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을 경우 파국을 맞지 않도록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 또한 훌륭한 차선의 선택일 수 있기 때문이다.
  • [데스크시각] 광장에 촛불을 허(許)하라/박찬구 사회부 차장

    [데스크시각] 광장에 촛불을 허(許)하라/박찬구 사회부 차장

    ‘법(法)’과 ‘치(治)’는 물수(水)변이다. 물이 흘러가듯(去) 상식과 이치에 따라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이 ‘법’의 정신이라면, 물이 넘쳐 난리가 나지 않도록 자연의 섭리대로 다스리는 것이 ‘치’라고 할 수 있다.‘법치’는 맑고 투명한 ‘물의 흐름’처럼 무리없이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조율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로 점화된 촛불 민심에 현 정권은 ‘엄정한 법치’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검찰과 경찰이 영장과 색소 물대포로 상징되는 공권력으로 촛불을 발본색원하려 한다. 소비자 불매운동을 주장하는 네티즌을 끝내 구속하고, 정부의 정책에 이의를 제기하는 시민을 전경버스로 실어나르고 있다. 5∼6월의 광화문에서 물결치던 촛불이 ‘법치’의 역류에 부딪혀 주춤해진 형국이다. 각계각층의 다양한 삶의 방식과 시대변화를 고려한다면 과거 군사정권 시절처럼 아스팔트의 민심이 절대선이고, 공권력은 타도의 대상이라고 이분화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의 성숙한 이행을 위해서라도 법과 질서가 바로 서야 함은 자명한 일이다. 하지만 법과 질서를 확립하겠다며 민심의 물길을 강압적으로 차단하고 인위적으로 왜곡시키려는 것은, 번지수가 틀려도 한참 틀린 일이다. 시위대 검거에 ‘현상금’을 걸려 하고, 연행한 여성의 속옷탈의를 강제하며, 시위에 참가하지 않은 시민까지 마구잡이로 연행하는 것은 ‘5공(共)식 법치’와 영락없이 닮은 꼴이다. 대통령 부인의 사촌언니나 여당의 고위 인사가 연루된 비리사건은 무엇에 쫓기듯 서둘러 종결시키면서, 촛불 집회 관련 사안은 피해자 고소까지 종용하며 ‘있는 것, 없는 것’ 다 뒤지고 털어내는 것은 공평무사한 공권력이 아니다. 과거 군사정권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무소불위한 공권력의 활동 영역이 오프라인을 넘어 온라인과 네티즌으로까지 확산됐다는 점이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작동되어야 할 ‘법치’가 도리어 민심의 물길을 억누르고, 막아서는 이율배반의 현실이다. 그렇다고 현 정권이 촛불 민심을 ‘안티 MB’ 세력의 선동에 이끌린 군중심리 정도로 폄훼하고,‘이젠 해결됐다.’며 안도한다면, 그야말로 오산이고, 불행이다. 지금 단계에서 거리의 촛불이 지속하느냐, 소멸하느냐는 중요한 화두가 아닐지 모른다. 수십만명의 남녀노소가 며칠씩 광화문을 가득 메웠을 때 촛불은 이미 승리하고, 또 진화했다. 문제는 촛불에 대응하는 공권력의 일그러진 얼굴이다. 헌법이 보장한 시민의 기본권 정도는 최고 권력자의 말 한마디에 무시할 수 있다는, 그 무도한 사고방식이다. 그 과정에서 권력을 향한 검·경 수뇌부의 충성 경쟁이 끼어들고,‘공권력은 정권의 시녀’라는 철 지난 섬뜩함이 되살아난다면, 공권력은 스스로 그 권위를 잃게 될 것이다. 물은 자연의 이치에 따라 흐르지 못하면 정체되고 썩기 마련이다. 공권력이 ‘엄정한 법치’를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휘두르며 정당한 시민의 권리마저 억누른다면, 훗날 더 큰 봇물에 직면할지 모를 일이다. ‘흐르는 물’과 같은 법치의 본연을 권력은 되새겨야 한다. 촛불집회를 원천봉쇄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도심의 길목 곳곳에 포진한 시위진압부대가 자발적인 민심의 물길까지 막을 수는 없다.100차례가 넘는 집회에서 보듯 촛불은 끊임없이 재생하고 정화하는 생명력과 역동성을 지니고 있다. 누르면 더 튀는 게 민심의 속성이다. 제대로 된 사회라면 광장은 열고 물길은 살리는 게 마땅하다. 공권력은 집회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최소한으로 행사되어야 한다. 소통과 대화의 마당조차 거부하는 권력이 어떻게 시민들에게 정당성을 설득하고, 믿음을 줄 수 있겠는가. 박찬구 사회부 차장 ckpark@seoul.co.kr
  • [프로야구] 롯데 이대호 ‘올림픽 손맛’ 그대로

    베이징올림픽에서 명승부를 펼쳐 국민을 열광의 도가니에 빠뜨렸던 프로야구가 3주간의 휴식을 마치고 26일 후반기에 들어갔다. 롯데 이대호는 올림픽 홈런왕(3개)의 명성을 이어가며 2점 홈런으로 복귀 신고식을 화려하게 치렀다. 반면 대표팀을 이끌며 9전 전승 우승의 신화를 쓴 김경문 두산 감독은 연패를 끊지 못하고 9연패의 수모를 당했다. 롯데는 이날 대전에서 열린 한화전에서 카림 가르시아의 연타석 홈런과 이대호와 조성환의 2점 홈런 등 모두 4개의 대포로 폭격,11-4의 대승을 거뒀다. 휴식기 포함해 5연승을 달린 롯데는 한화에 3경기차로 따라붙어 4강 싸움은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가르시아는 1회 3점 홈런,4회 1점 홈런을 날리는 등 5타수 4안타 6타점을 기록, 그동안 손맛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한꺼번에 풀었다. 가르시아는 김태균(한화)과 홈런 공동 1위에 오르며 타점(87개) 단독 1위로 나섰다. 이대호는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하루도 쉬지 않고 출전하는 등 강행군했지만 한번 달구어진 방망이는 식을 줄 몰랐다.6-4로 앞선 8회 2점 홈런으로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롯데 선발 손민한은 6과3분의2이닝 동안 7안타 4실점했지만 타선 덕에 승리투수가 됐다. 시즌 9승(3패)째. SK는 문학에서 김재현의 역전 2루타에 힘입어 두산에 4-3 역전승을 거두고 올시즌 가장 먼저 60승(32패) 고지를 밟아 단독 1위 체제를 더욱 확고하게 다졌다.SK는 92경기 만에 60승을 찍어 1985년 삼성(89경기),1986년 삼성(90경기),2000년 현대(91경기)에 이어 역대 네 번째로 빠른 페이스를 보였다. 반면 두산은 9연패에 빠졌다. 김경문 감독이 경기 전 “쿠바, 일본보다 SK가 더 어렵다.”고 내다본 게 맞아떨어졌다. 삼성은 목동에서 메인스폰서 문제로 ‘우리’를 떼어낸 히어로즈를 5-2로 누르고 6연승했다.LG는 잠실에서 선발 크리스 옥스프링의 역투와 조인성의 8회 2점 홈런을 앞세워 KIA를 4-2로 제쳤다.김영중기자 jeunesse@seoul.co.kr
  • 골다공증 활성화 막는 단백질 발견

    골다공증 활성화 막는 단백질 발견

    국내 연구진이 체내에서 골다공증 발생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파골(破骨)세포의 활성을 조절하는 새로운 단백질의 작용 원리를 밝혀냈다. 단백질 발현 조절을 통해 골다공증을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으로 평가된다. 서울대 치과대 김홍희·장은주 교수팀은 24일 영궁의 의학저널 ‘네이처 메디신(Nature Medicine)’ 최신호에 게재된 논문을 통해 세포 내 에너지 대사에 관여하는 효소인 CK-B 단백질이 파골세포의 활성을 조절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규명했다고 밝혔다. 파골세포는 뼈의 파괴를 일으키는 세포로, 파골세포가 증가하면 골밀도가 감소해 골다공증을 유발한다. 또 류머티즘 관절염이나 치주염에서도 파골세포 형성이 증가하면서 파괴되는 뼈가 많아진다. 연구진은 파골세포가 형성될 때 CK-B 단백질이 증가하면서 파골세포가 만들어지는 것을 돕는 것은 물론 파골세포 형성에 필요한 다른 효소들(Rho-A,V-ATPase)의 활성도 유지시킨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연구진이 쥐의 유전자를 조작해 CK-B 단백질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하자 파골세포의 활성이 떨어져 골다공증 같은 뼈의 손실이 잘 나타나지 않았으며 CK-B를 억제하는 것만으로도 뼈의 파괴를 상당부분 막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50세 이상 여성의 절반 가량에서 발생하는 골다공증은 노령화가 진행되면서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현재 널리 사용되는 골다공증 치료제들은 위장장애 등 일부 부작용은 물론 복용상의 불편함으로 새로운 치료제 개발이 시급한 상황이다. 김 교수는 “이번 연구는 파골세포의 활성화 CK-B 단백질 사이의 관련성을 밝힌 첫 사례”라며 “CK-B 활성을 억제하는 방법으로 골다공증을 비롯한 뼈 관련 질환의 치료제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Beijing 2008] 美 남자농구 8년만에 정상 탈환

    미국 남자농구가 자신들의 별명처럼 ‘리딤(redeem·되찾는다.)’에 성공했다. 미국(세계랭킹 1위)은 24일 베이징 올림픽농구경기장에서 열린 농구 결승에서 스페인(세계 3위)을 118-107로 꺾고 8년 만에 정상을 탈환했다.2002세계선수권 6위에서 시작돼 아테네올림픽(3위),2006세계선수권(3위)까지 계속된 미국팀의 악몽이 비로소 끝난 것. 쉽지 않은 경기였다. 결승전 이전까지 20∼49점차로 상대를 ‘데리고 놀았던’ 미국은 모처럼 적수를 만났다. 스페인은 ‘열일곱 샛별’ 리키 루비오(6점) 등을 앞세워 가드진에서 활발하게 움직였고, 루디 페르난데스(22점)의 3점포도 불을 뿜었다. 파우(21점)-마크(11점) 가솔 형제도 골밑에서 힘을 낸 덕분에 줄곧 10점 이내에서 미국을 추격했다. 승부는 4쿼터 초 요동쳤다. 종료 8분여를 앞두고 가솔의 앨리웁 덩크와 페르난데스의 3점포로 스페인이 89-93까지 따라붙었다. 하지만 위기에서 슈퍼스타의 진가가 드러났다. 부진하던 코비 브라이언트(20점)의 득점을 신호로 드웨인 웨이드(27점)의 3점포와 드와이트 하워드의 골밑슛으로 미국은 98-89까지 달아났다. 스페인도 페르난데스의 3점포로 추격의 불씨를 댕겼지만, 곧바로 브라이언트가 3점슛으로 불을 껐다.101-92. 스페인은 종료 3분여를 남기고 99-104까지 젖먹던 힘을 내봤지만, 브라이언트가 또 한번 3점포를 뿜어낸 동시에 파울까지 얻어 4점플레이를 완성했다. 브라이언트는 ‘더 이상 반항하지 마라.’는 듯 왼손을 입에 갖다대는 포즈를 취했다.108-99, 승부는 거기에서 끝났다. 한편 전날 여자농구 결승에선 미국이 호주에 92-65, 대승을 거뒀다. 애틀랜타대회 이후 4연패.베이징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70년 전 빼앗긴 피카소 그림 돌려줘” 소송

    “70년 전 빼앗긴 피카소 그림 돌려줘” 소송

    “우리 집 그림을 돌려 달라” 파블로 피카소의 초기 그림 두 점이 소유권을 놓고 법적 분쟁에 휘말렸다. 2차 세계대전 중 나치정권의 유대인 탄압 정책에 의해 피카소 그림의 소유권을 빼앗긴 유대인 후손이 “집안의 작품을 되찾겠다.”며 법정 소송을 한 것. 소송을 한 주인공은 독일의 유명한 유대인 은행가였던 폴 본 멘델스존의 후손 율리우스 스코프. 그는 “나치에 의해 피카소 작품의 소유권을 잃었다.”며 “이 그림이 전쟁의 마지막 포로” 라고 주장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그림은 프랑스 인상파 르누아르의 작품과 같은 제목의 1900년 작(作) ‘물랭 드 라 갈레트’와 검정‧회색과 갈색만 사용한 1906년 작 ‘말 끄는 소년’이다. ‘물랭 드 라 갈레트’는 구겐하임 미술관이, ‘말 끄는 소년은’ 뉴욕 현대 미술관이 각각 소장하고 있다. 그러나 박물관 측 변호사는 “이 그림을 합법적으로 소유한 것”이라며 “이 그림의 정당한 주인은 그들(박물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영국 텔레그래프 등 해외 언론은 “올 가을쯤 이 소유권 분쟁의 결말이 드러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진= ‘물랭 드 라 갈레트’(위)와 ’말 끄는 소년’ (텔레그래프, 뉴욕현대미술관) 서울신문 나우뉴스 김지아 기자 skybabe8@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잠자던 사자 이승엽, 부활포로 日격침

    명불허전이었다.‘라이언 킹’이 이승엽이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보여줬다.그것도 세계가 주목하는 올림픽 무대에서 숙적 일본을 상대로.그는 자신에게 찾아온 절체절명의 기회를 놓치지 않은 일본전의 영웅이었다. 국가대표 4번타자 이승엽은 베이징올림픽 본선에서 극심한 타격부진으로 네티즌들 사이에서 ‘이승엽 퇴출론’까지 불거질 만큼 깊은 슬럼프에 빠져있었다. 실제로 이승엽은 본선 7경기에서 22타수 3안타 2타점 타율 0.136의 극심한 부진을 겪고 있었다.삼진을 6개나 당하며 이름값을 하지 못했다. 이에 네티즌들은 이승엽이 4번타자의 중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고 지적하며 타순에서 제외하라고까지 요구했었다.심지어는 은퇴하라는 말까지도 들렸다. 이승엽은 22일 베이징 우커쑹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일본과의 준결승에서도 4번타자로 나섰다.하지만 8회까지 이승엽은 ‘알맹이 없는’ 스윙만 하며 세번의 타석중 삼진을 2개나 당했었다.이때까지만 해도 네티즌들은 이승엽을 계속 출장시킨 김경문 감독을 비난하며,이승엽을 타순에서 제외시킬 것을 요구하느라 아우성이었다. 하지만,이승엽을 비난하던 팬들은 이내 말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이승엽이 8회말 2-2 동점인 상황에서 우측 담장을 넘기는 통쾌한 역전 2점 홈런을 쳐낸 것. 이승엽은 이 홈런으로 선행주자 이용규를 불러들이며,자신까지 홈플레이트를 밟았다.그간 부진을 깨끗이 날려버림과 동시에,절대적인 승부처에서 가치있는 한방을 터뜨린 것이다. 그동안 타격이 부진했다고는 하지만 그의 ‘킬러 본능’마저 사그라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승엽은 올림픽 무대 거의 모든 경기에서 부진했어도,꼭 필요할 때마다 한방씩 터뜨릴 줄 아는 해결사였다.지난 17일 중국과의 경기 승부치기 상황에서 끝내기 안타를 친 것도 이승엽이었다.일본과 준결승전에서 터뜨린 홈런도 결승타가 됐다.이 홈런으로 기세를 탄 한국은 8회에만 4점을 뽑으며 6-2로 역전에 성공해 승리를 거머쥐었다. 한편 이날 경기에 대해 네티즌들은 “이승엽 해낼 줄 알았다.끝까지 믿었다.”,“영원한 라이벌,일본의 콧대를 꺾어줘서 고맙다.”며 라이언 킹의 부활을 축하했다.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 야구, 네덜란드에 콜드게임…7연승

    사상 첫 금메달을 향해 순항하고 있는 한국 올림픽 야구대표팀이 네덜란드를 상대로 한 수 위의 기량을 선보이며 본선 풀리그를 전승으로 마무리했다. 20일 베이징 우커쑹 스포츠센터 야구장에서 열린 경기에서 한국은 선발 장원삼의 완벽투와 투런홈런을 친 이대호의 맹타에 힘입어 네덜란드에 10-0 콜드게임으로 여유있게 승리했다. 한국은 1회초 이대호의 홈런포로 기세를 올렸다.부진한 이승엽을 대신해 4번 타자로 나선 이대호는 2사 1루에서 상대 선발의 초구를 통타,큼지막한 중월 2점 홈런을 기록했다.이대호는 본선 3호 홈런으로 홈런 순위 선두에 나섰다. 기선제압에 성공한 한국은 남은 4강전을 대비해 체력을 비축하려는 듯 빠른 경기 진행을 보였다.장원삼의 호투로 네덜란드 타선을 완벽하게 제압하는 한편 빠른 공격으로 이닝 진행 시간을 줄였다. 한국은 5회초 선두타자로 나선 이택근의 솔로 홈런으로 1점을 추가 뒤 2사 만루의 기회에서 김현수와 이대호의 연속 안타를 묶어 6-0으로 멀찌감치 달아났다. 6회초에도 상대 수비 실책으로 맞은 무사 주자 2·3루 상황에서 이택근의 희생 플라이와 강민호의 1타점 적시타로 2점을 획득,8-0으로 점수 차를 더 벌렸다. 8회초 이용규의 희생플라이와 김현수의 적시타로 10-0,콜드게임 요건을 확보한 한국은 8회말 들어 장원삼의 침착한 마무리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선발로 나선 장원삼은 8이닝동안 단 4개의 안타를 허용하며 무실점·7삼진을 기록,완봉승으로 팀승리를 이끌었다.또 한국 타선은 장단 16안타를 몰아치며 네덜란드 투수진을 초토화시켰다.특히 이대호는 1회 2점 홈런을 포함, 3타점을 기록하며 홈런 및 장타율 부문 선두에 올랐다.이용규 역시 이날 경기에서 5타수 4안타를 치며 2번타자 몫을 톡톡히 해냈다. 이날 승리로 한국은 본선 풀리그 상대 7개 국가에게 모두 이기며 7승을 기록,조 1위로 4강에 진출하게 됐다.한국은 같은 날 오후 7시에 벌어질 일본-미국전의 패자와 22일 준결승에서 맞붙는다. 한편 유력한 우승후보로 조 2위에 오른 쿠바는 이날 중국을 17-1 콜드게임으로 격파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85) 남한산성의 나날들(Ⅳ)

    [병자호란 다시 읽기] (85) 남한산성의 나날들(Ⅳ)

    조선이 청군 진영에 보낸 국서에서 처음으로 ‘관온인성황제(寬溫仁聖皇帝)’라는 호칭을 쓰고, 과거의 ‘잘못’을 사과했지만 청군 진영에서는 회답이 없었다. 조선 조정은 초조해졌다.‘황제’로 인정하고 ‘잘못’을 사과하면 화친이 쉬이 이루어질 것으로 알았던 예상이 빗나갔기 때문이다. 청군의 입장에서는 바로 답장을 해 줄 필요가 없었다. 더욱이 조선의 국서 내용이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었다.‘황제’로 불렀으되 심복(心服)하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시간은 청군 편이었다. ●그 많던 닭들은 어디로 갔을까? 청측의 회답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1637년 1월6일, 강원도관찰사 조정호(趙廷虎)와 함경도관찰사 민성휘(閔聖徽)가 올린 장계가 들어왔다. 조정호 휘하의 군병이 용진(龍津)에 머물며 대오를 수습하고 있다는 것, 함경도의 병력이 김화(金化)에 도착하여 산성을 구원할 채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 내용이었다.1월7일에는 도원수 김자점, 황해병사 이석달(李碩達), 전라감사 이시방(李時昉)이 보낸 장계도 도착했다. 하지만 모두 ‘남한산성을 구원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내용만 있을 뿐 언제, 어떻게 산성 쪽으로 진군해 온다는 내용은 빠져 있었다. 1월8일, 답답해진 인조는 영의정 김류 등을 불렀다. 인조는 신료들에게 비변사에서 마련한 대책이 있느냐고 물었다. 신료들은 할 말이 없었다. 김류가 나섰다.“밤낮으로 생각해 보아도 뾰족한 대책이 없습니다. 그저 바깥의 구원을 기다릴 뿐입니다.” 김류는 그러면서 적진에 사람을 다시 보내 회답을 독촉하자고 건의했다. 별로 새로울 것이 없는 신료들의 이야기에 인조도 할 말이 없었다.“병졸들을 위로하고 어루만져 성을 굳게 지키는 것이 급선무일 뿐이다.”라고 말했지만 도무지 힘이 실리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병사들을 위로하고 어루만지는 것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식량을 비롯한 물자들은 하루하루 떨어져 가고 있었다.‘병자록(丙子錄)’‘양구기사(陽九記事)’ 등 당시의 상황을 기록하고 있는 자료들을 보면 예외 없이 ‘닭다리’ 관련 이야기가 나온다.“이때 전하께서도 침구가 없어 옷을 벗지 않고 주무셨다. 밥상에도 반찬으로 다만 닭다리 하나를 놓았다. 전하께서 전교하시기를,‘처음에 들어왔을 때에는 새벽에 뭇 닭의 울음소리가 들렸는데, 지금은 그 소리가 전혀 없고 어쩌다 겨우 있다. 그것은 필시 나에게 닭을 바쳤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닭고기를 쓰지 말도록 하라.” 인조의 수라상에 올라가는 반찬이 닭다리 하나뿐인 처지에서 어느 겨를에, 또 무엇으로 장졸들을 어루만질 것인가? ●참혹한 소식들 산성 안에서는 추위와 물자의 고갈을 걱정하고 있었던 데 비해 산성 바깥의 백성들은 청군의 칼날을 피하기 위해 악전고투하고 있었다. 청군의 포위망을 뚫고 들어와 바깥소식을 전했던 사람들의 증언 내용은 참혹했다. 적진에는 포로로 잡힌 부녀자들이 무수히 많고, 적진 바깥에는 어린 아이들의 시신이 수도 없이 버려져 있다는 것이다. 병자년 연말 이후 몽골병을 비롯한 청군의 겁략(劫掠)이 본격화되면서부터 나타난 참상이었다. 당시 청군은 서울 주변에서 포로를 획득하는 데 열중했다. 그 와중에 성인 남자들에 비해 기동력이 떨어지는 부녀자와 아이들 상당수가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청군은 특히 젊은 여자들을 사로잡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다시 서술하겠지만, 인조에게 항복을 받고 심양으로 귀환했던 청군 지휘부 내부에서 나중에 문제가 되었던 것이 ‘조선 여성 포로’와 관련된 사안이었다. 청군의 대소 지휘관들 사이에서, 조선에서 포로로 잡아 끌고 온 젊은 여성들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뺏고 빼앗기는 갈등이 벌어지고 있었다. 젊은 부녀자를 데려가려는 그들에게, 여자에게 딸린 아이는 거추장스러운 존재였다. 어미는 진중으로 끌고 들어가고 아이는 죽이거나 바깥에다 유기하는 참혹한 상황은 이런 배경에서 비롯되었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식이 아무리 참혹해도 포위된 산성에서 조정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적과 결전을 벌일 능력도, 화친을 이룰 전망도 불투명한 처지가 되자 신료들은 다른 곳에서 돌파구를 찾아보려고 시도했다.1월8일, 예조는 온조왕(溫祚王)에 대한 제사를 다시 지내자고 청했다. 이미 한 번 지냈지만 정성이 부족했다며 중신을 보내 성의를 다하여 온조왕에게 가호(加護)를 빌자고 청했다. 예조는 또한 원종(元宗·인조의 生父 定遠君)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숭은전(崇恩殿)에도 신료를 보내 제사를 지내자고 했다. 인조는 숭은전에서 올리는 제사는 자신이 직접 주관하겠다고 나섰다. 포위된 성에서의 곤경이 길어지자 이러저런 이상한 행동을 벌이는 자들도 나타났다. 어영별장(御營別將) 김언림(金彦琳)이 보인 행태가 대표적이었다. 그는 1월9일 밤, 청군 진영을 습격하여 적의 수급(首級)을 베어오겠다며 성을 내려갔다. 이튿날 새벽, 그는 수급 두 개를 들고 의기양양하게 돌아왔다. 인조는 그가 세운 공을 가상히 여겨 면주(綿紬) 세 필을 상으로 내렸다. 그런데 그가 들고 온 수급 하나가 이상했다. 수급의 살은 얼어 있었고, 피를 흘린 흔적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더욱이 수급의 모양이 청군의 머리처럼 보이지 않았다. 모두 의아해하고 있는데 출신(出身) 권촉(權促)이 수급 앞에서 통곡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형 권위(權偉)의 수급이라는 것이었다. 권위는 며칠 전 북문 부근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전사했는데, 당시까지 시신을 찾지 못한 상황이었다. 권촉은 형의 수급을 자신이 모셔 갈 수 있게 해달라고 애걸했다. 주변의 장졸들은 경악했다. 김언림은 청군의 수급이 아니라 조선군 시신에서 목을 베어 왔던 것이다. 조정에서는 김언림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놓고 논란을 벌이다가 결국 ‘효시경중(梟示警衆·목을 베어 매달아 군사들을 경계함)’하기로 결정했다. 이렇다 할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성안의 장졸들에게는 여전히 용맹함이 강조되고 있던 분위기에서 빚어진 참혹한 ‘해프닝’이었다. ●다시 ‘재조지은’을 강조하다 1월 초 남한산성의 동문(東門) 부근으로 진출하여 탐색전을 벌이던 청군은 1월11일까지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농성 중인 조선 조정의 의도와 예상되는 향후 동향을 분석하는 한편 강화도에 대한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청군은 1월11일부터 산성 주변에 대한 압박을 다시 강화하기 시작했다. 헌릉(獻陵)과 탄천 일대에 있던 병력 가운데 1만여명을 차출하여 수원과 용인, 여주와 이천 방면으로 각각 다시 배치했다. 근왕병이 남한산성으로 접근하는 것을 더 확실하게 차단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동시에 산성의 북문과 서문 앞에 병력을 증강 배치했다. 상황은 더 엄혹해졌다 1월12일, 최명길 등이 국서를 들고 다시 청군 진영으로 갔다. 앞서 전달한 국서에 대한 회답이 없던 상황을 타개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다시 써서 들고 간 국서의 내용 또한 공순했다.‘소방은 바다 구석에 위치하여 오직 시서(詩書)만 일삼았지 전쟁은 몰랐습니다. 약국이 강국에 복종하고 소국이 대국을 섬기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데 어찌 감히 대국과 맞서겠습니까? 잘못을 용서하고 스스로 새롭게 될 수 있도록 허락하신다면 대국을 받들고 자손 대대로 잊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머리를 숙였다. 문제는 명과 관련된 사항을 언급한 부분이었다.‘일찍이 임진년의 환란으로 소방이 곧 망할 뻔했을 때 명의 신종황제(神宗皇帝)께서 천하의 군사를 동원하여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소방의 백성들은 그 은혜를 깊이 새겨 차마 명나라를 저버릴 수 없습니다.’조선은 ‘명이 재조지은(再造之恩)을 베풀었듯이 청도 그렇게 해 달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청은 이미 ‘명=천하’라는 인식을 팽개쳐 버린 지 오래였다. 어렵사리 고쳐 쓴 국서 속에 담긴 ‘재조지은’을 해석하는 문제를 놓고 조선과 청은 새로운 실랑이를 벌이기 시작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21세기 新다빈치 프로젝트-통섭을 말하다] ‘1+1=∞’ 새코드 이해는 학문간 벽 허물기부터

    [21세기 新다빈치 프로젝트-통섭을 말하다] ‘1+1=∞’ 새코드 이해는 학문간 벽 허물기부터

    ‘통섭(統攝)’은 왜 필요한가. 통섭을 둘러싼 많은 논의들에 문제점은 없을까. 통섭이 안정적으로 한국 사회에 도입되기 위해서는 어떤 접근법이 필요하고, 무엇을 조심해야 할까. 서울신문은 6회에 걸친 ‘21세기 신(新)다빈치 프로젝트-통섭을 말하다’를 마감하며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대표하는 석학들의 대담을 마련했다.‘인간을 공부하는 동물’로 스스로를 칭하는 경희대 영어학부 도정일 명예교수(책읽는사회만들기 국민운동 대표)와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기술인’으로 꼽힌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가 거침없는 생각을 쏟아냈다. 서강대 철학과 엄정식 명예교수가 사회를 맡아 대담을 진행했다. 두 교수는 ‘통섭’이 더 이상 스쳐 지나가는 유행이 아닌 중요한 사회적 과제라는데 동의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함께 노력해 학과간의 벽을 허무는 단계에서부터 천천히 접근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1 통섭은 왜 화두로 떠올랐나 엄정식 교수 대학 사회와 언론 등 곳곳에서 통섭이 화제다. 일각에서는 유행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지만 학문적 필요성이나 학문 구분의 발전 방향을 놓고 볼 때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분명하다. 오랫동안 통섭에 대해 고민해 오신 도 교수께서 왜 한국 사회에서 통섭이 화두가 됐는지를 진단해 달라. 도정일 교수 학문을 하기 위해서는 연구영역의 독자성뿐 아니라 유사하거나 연관이 있는 분야간에 대화가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분과(分科) 현상이 오랫동안 진행되다 보니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한 단절현상이 당연시되고 있다. 학문발전은 물론이고 사회발전이나 정책개발 및 시행 과정에서 단절현상은 매우 좋지 않다. 이런 반성에서 통섭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새로운 것을 요구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덕환 교수 통섭을 처음 주창한 에드워드 윌슨의 본거지인 미국보다 한국에서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는 절실한 필요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학문간의 분과는 이제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장벽의 정도가 아니라 서로를 비하하고 폄하하는 일도 다반사로 이뤄지고 있다. 자연과학에서는 인문사회학 무용론이 나오고, 인문사회학에서는 거꾸로 자연과학 무용론이 나온다. 급속히 발전한 한국사회의 문제를 과학기술의 책임인 것처럼 몰아가는 분위기도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문사회 분야와의 교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다행히 과학계 내부에서는 현실적인 필요성에 의해 융합연구가 확대되는 추세다. 이를 인문사회까지 연결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엄 교수 통섭에 관한 논의와 시도는 20세기 초부터 상당히 활발하게 있어 왔다. 물리학을 중심으로 학문을 통합하려는 움직임도 있었고, 철학계에서도 논리실증주의자들이 보편언어를 찾고자 했다. 윌슨은 이 시도를 생물학으로 옮겨 좀 더 발전시킨 것으로 봐야 한다. 중요한 것은 통섭이 수입학문이라는 점이다. 기술은 그냥 수입하면 되지만 학문은 배경과 사연이 더 중요하다. 지적·문화적 풍토를 수입하지 않으면 나중에 또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좋은 담이 좋은 이웃을 만든다’가 통섭에 적용되면 좋을 것 같다. 담이 낮으면 도둑이 생기고, 담이 높으면 이웃간에 커뮤니케이션이 안된다. 이 같은 마음가짐으로 접근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이 교수 통섭이 지향해야 할 목표는 통섭학이라는 별도의 학문이 아니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이다. 어느 한 가지 학문이 모든 것을 흡수할 수 있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곤란하다. 물리학이나 생물학 등에서 비롯된 자연과학의 객관적인 방법론이 모든 분야에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다만 이 방법론을 모든 분야에 적용해 보려는 시도 자체는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새로운 시도이니만큼 어려움도 있고, 기존 영역에서의 부정적인 비판도 있다. 그러나 자연과학의 객관화된 시각을 인문학에서 활용하는 것은 분명히 기초적인 통섭의 단계가 될 것으로 본다. 거꾸로 자연과학에서 인문학적인 상상력과 주관성을 도입하려는 시도도 활발해지고 있다. 도 교수 문제는 통섭이 ‘이렇게 하자.’고 정해 놓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통섭이 정말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 언어를 연구하는 사람 입장에서 말하자면 유전학, 진화론, 진화심리학 등의 학문도 언어 연구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통섭을 궁극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가에 대한 관건은 기준을 어떻게 세우느냐는 것이다. 즉 연구대상을 새로 발견하고 확장할 수 있는가, 대상에 대한 통찰을 더욱 과학적이고 인문학적으로 깊이있게 할 수 있는가 등이 중요한 문제가 된다. 이같은 실제적이고 학문적인 이득의 유무가 통섭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정당성을 결정해 줄 것이다. 이 교수 100% 동감한다. 학문의 발전을 위한 통섭은 근원적인 이유가 있는가를 짚어봐야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더욱 낮은 수준의 통섭을 생각해야 한다. 지금의 학생들과 교수들은 모두 분화된 학문에 익숙해져 있다. 상당히 혼란스러운 일이다. 인문사회 관련 교양을 들을 때는 자연과학의 부정적인 인식을 듣고, 자연과학을 들을 때는 인문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듣는다. 학문이 아닌 단지 골고루 아는 낮은 차원에서의 통섭도 필요하다는 얘기다. 2 통섭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얻을 것인가 엄 교수 두 가지를 합치다 보면 아무래도 어느 한쪽이 더 힘을 발휘하게 마련이다. 특히 강자는 식민지적으로 취합하려는 경향이 있다. 인문학의 경우 과학과 통합되면서 과연 ‘학문’으로 존립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있다.‘제우스의 불칼’이나 ‘이카루스의 날개’와 같은 신화는 이미 아무도 믿지 않는다. 과학기술이 인문학의 근거인 상상을 앞서가고 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마찬가지로 천문학자들의 방식대로만 별을 보면 알퐁스 도데, 생텍쥐베리, 윤동주의 별은 볼 수 없다. 통섭의 시도에서 염려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학문의 영역이 가만히 있어도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학문 분야가 떼를 써서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철학의 경우 현재는 수세기 전의 철학과 달리 ‘철학사’적인 측면만 남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철학을 논하기 위해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인지하고 있었던 공간, 시간, 죽음 등의 개념은 과학기술의 등장으로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자연과학이 철학이라는 학문의 근간을 흔들었다고도 할 수 있다. 도 교수 어느 한쪽으로의 일방적인 통섭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인문학이 과학을 이해하고, 과학이 인문학을 이해할 때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다. 인문학과 과학이 통섭하자고 해서 함부로 합칠 수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예술을 포함한 인문학과 과학은 엄연히 시각이 다르고, 분야가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르다는 전제 위에서 시작해야 한다. 과학은 일단 자연현상에 대한 보편적인 진실을 추구한다.‘도정일은 세포로 되어 있다.’는 말은 사실이지만 나라는 인간에 대해 아무 것도 설명하지 못한다.‘세계는 입자로 구성돼 있고, 우주를 지배하는 힘은 네 가지 밖에 없다.’는 말도 분명히 사실이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담아낼 수 없다. 이 교수 통섭과 비슷하지만 좀 다른 개념인 융합의 경우 공학 분야에서는 상당히 오랜기간 모색돼 왔다. 로봇공학을 하는 사람은 심리학, 미학, 전자공학, 기계공학을 모두 시도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로봇공학은 수많은 학문들과 연관을 맺으며 발전해 왔고, 영역이 넓어지는 만큼 발전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주목할 부분은 융합의 결과는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분화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물론 융합 과정에서 사멸하는 분야도 있다. 도 교수 학문융합, 통섭은 인문학이든 자연과학이든 간에 전혀 몰랐던 탐구의 영역을 생산해낼 수 있다. 오늘날 많은 인문학 분야가 ‘진화론’으로 대표되는 생물학적 발견을 참조하지 않고서는 진행이 되지 않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것을 두고 생물학이 모든 학문을 점령하는 제국주의 운운하는 것은 옳지 않은 말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한국사회가 갖고 있는 지나친 분화의 결과가 교육에도 반영돼 있다는 점이다. 통합적 감성이나 세계관을 가질 기회도 없이 기능적인 전문인이 되고 다문화적인 세계관을 가질 수 없는 파편적 인간으로 성장하고 있다. 인문학이 변해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대학의 교양교육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인문학이다. 인문학이 통섭적 사고를 가져야 교육이 변하고 사회가 변할 수 있다. 3 통섭의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엄 교수 통섭이 본격화되면서 용어에 대한 논란도 있다. 통섭이나 ‘컨실리언스(Consilience)’라는 말을 쓴 윌슨의 성향 때문인지 환원주의나 제국주의적인 느낌을 갖기도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문진이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했는데, 통섭을 궁극적인 목적이 아닌 방법의 하나 정도로 취급하고 싶었다.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나루터 가는 길을 함께 찾아가는 것이다. 나루터까지 함께 쉽게 간다면 자신들의 목표들도 좀 더 쉽게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통섭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모두 공감하지만 방법론과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다양하지 않을까. 요즘 대학가에서는 통섭학과, 통섭대학원을 만든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 교수 통섭에서 방법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연과학에서 탐구의 문제는 끊임없이 변해 왔다.19세기 말 한국에 처음으로 서양의 자연과학이 도입됐는데, 지금까지 계속 새로운 방법이 등장하고 있다. 심지어 자연과학에서도 확실한 것은 없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방법에 초점을 맞춰서 통섭을 얘기한다면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시각을 공유하는 식으로 접근한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통섭이나 융합과 관련된 문제 가운데 하나가 ‘획일화’다. 여러 단계의 통섭이 있을 수 있는데 단 하나의 기준만 세우고 ‘여기서부터 통섭’이라고 한다면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통섭학과나 통섭대학원을 만든다는 얘기들이 있는데 통섭의 첫 단계를 시각과 인식의 공유라고 본다면 하나로 합치는 것이 아니라 합쳐서 여러 개가 다시 나와야 한다. 도 교수 통섭학과나 통섭대학원은 희극적이다. 통섭학과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학문과 학문사이의 결합이나 통합은 필요하고, 가능하겠지만 통섭을 전문적으로 다룬다는 것은 통섭의 기본 정신과 전혀 맞지 않는 사고방식이다. 가장 자율과 객관적이 강조되는 문학에도 통합적 접근이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하루 아침에 된 것이 아니다. 문학비평에 정신분석과 언어학이 들어오는 데만 40∼50년이 걸렸다. 필요한 일이라면 누가 억지로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서 진행되게 마련이다. 다만, 활발한 논의를 통해 진행한다면 좀 더 효과적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엄 교수 통섭을 논의하면서 기대하는 바가 크다. 많은 것을 시도하고 말할수록 얻는 것도 많겠지만, 비난이나 비판도 있을 수 있다. 언제나 자기 반성은 중요하다. 그것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점을 더 빨리 파악할 수 있고, 궤도를 수정할 수도 있도록 해준다. 가능하다면 모두 함께 모여 논의하고 격려한다면 분명히 통섭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정리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엄정식 교수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 미국 미시간 주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한국아메리카학회 회장, 철학연구회 회장, 한국 철학회장을 지냈다. 서강대 재직 시절 ‘행복한 철학자’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고전철학부터 과학철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강의를 진행했다. 특히 과학철학 강의를 통해 과학기술과 현대인의 행복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 것으로 유명하다. 저서로 철학 입문서로 유명한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비롯해 ‘지혜의 윤리학’‘확실성의 추구’‘분석과 신비’‘자아와 자유’ 등이 있다. ■이덕환 교수 서강대학교 화학과, 과학커뮤니케이션 협동과정 교수. 비선형 분광학, 양자화학, 과학커뮤니케이션을 전공했고 미 코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구와 대외활동 모두에서 주목받는 흔치 않은 과학자로 2006년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기술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분야를 가리지 않는 폭넓은 과학지식으로 사회 교육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확실성의 종말’‘먹거리의 역사’‘거의 모든 것의 역사’ 등 베스트셀러 과학서적을 번역했다. ■도정일 교수 문학평론가. 경희대학교 영어학부 명예교수. 대한민국 전역에 세워진 ‘기적의 도서관’을 기획하고 감독한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 상임대표다. 잡지 편집장, 동양통신 외신부장을 거쳐 미국으로 유학,1983년부터 경희대학교에서 비평이론 강의를 시작했고 이론교육에 힘을 쏟았다. 특히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와 4년 동안 만나 나눈 논쟁을 담은 책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대담’은 한국 사회 최초의 본격적인 통섭담론으로 평가받고 있다.
  • 러시아軍, 그루지야서 철수 시작

    러시아군이 18일(현지시간) 그루지야 영토에서 철수를 시작했다. 그러나 완전 철수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귀환 장소 역시 그루지야 국경 인근으로 알려졌다. 언제든지 그루지야 영토로 재진입할 수 있다는 얘기다.AP통신은 이날 러시아군 철군 소식을 전하면서 “철군을 둘러싼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갈등의 불씨는 곳곳에 있다. 그루지야는 영토 통합 및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 의지를 꺾지 않고 있다. 또 러시아와 그루지야는 포로교환 여부를 둘러싼 진실 공방도 벌이고 있다. 휴전 협정은 이뤄졌지만 전쟁 같은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아나톨리 노고비친 러시아군 부참모장은 이날 “평화합의안에 따라 러시아 장갑차가 남오세티야 수도 츠힌발리에서 빠져나와 러시아 영토로 향하고 있다.”고 철군을 공식 발표했다. 철군 여부로 양국이 신경전을 벌였던 전략 요충지 고리시(市)에서도 철수를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전날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도 “18일부터 러시아군이 그루지야에서 남오세티야와 국경지대로 철군할 것”이라고 밝혔었다. 그러나 그루지야 측은 여전히 러시아군의 철군 발표를 신뢰하지 않았다. 카카 로마이아 그루지야 국가안보위원회 의장은 “아직 러시아군이 철군을 시작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다.”며 러시아측의 철군 주장을 부인했다. 실제 철군이 이뤄졌다 해도 문제는 산적해 있다. 사카슈빌리 그루지야 대통령은 이날 TV연설에서 “어떤 방법으로든 반드시 나토에 가입할 것”이라면서 러시아를 또다시 자극했다.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 시민권자들에 대한 적대 행위는 바로 박살낼 것”이라고 즉시 응전했다. 철군 문제와 함께 포로교환을 둘러싼 진실공방도 계속되고 있다. 러시아측은 “국제법에 따라 양국이 낮 12시(현지시간)에 포로 교환을 하기로 했는데 그루지야 측이 일방적으로 협상을 중단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그루지야측은 “그런 협상을 해 본 적도 없다.”고 협상 자체를 부인했다.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사설] 시위문화 더 퇴행해선 안된다

    지난 주말 심야의 서울 도심이 폭력 시위와 이를 진압하려는 경찰의 색소 물대포로 얼룩졌다. 광복절인 지난 15일 100회째 촛불시위를 기점으로 시위자 수는 눈에 띄게 줄고 있으나 시위 양상은 더 거칠어지고 있다. 과격 시위와 초강경 진압이란 악순환이 고착되지 않도록 양식있는 시민들이 팔을 걷어붙일 때다. 얼마 전 쇠구슬을 장전한 새총과 염산병이 등장하더니 엊그제 서울 명동성당 앞 시위에선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투석전이 재연됐다. 일부 시위꾼들이 보도블록을 깨 만든 1300여개의 돌을 경찰을 향해 던진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큰 불상사라도 생길까봐 걱정스러울 정도다. 시위자들이 전공을 세우기 위한 사냥감이라도 되는 양 경찰이 토끼몰이식 진압에 나서는 것도 우려스럽긴 매한가지다. 색소 물대포를 뿌려댄 뒤 무차별 연행하는 것은 문제라는 얘기다. 이러다 보니 사복경찰이 다른 사복체포조를 연행할 뻔한 해프닝까지 벌어진 게 아닌가. 시위꾼들의 폭력도, 경찰의 마구잡이 진압 방식도 도를 이미 넘어선 형국이다. 4개월째 지속된 촛불시위의 불꽃은 갈수록 사위어 가는 형국이다. 이는 촛불의 ‘순정’은 이미 정부에 충분히 전달되고 상당부분 반영됐기 때문일 게다. 미국산 쇠고기수입에 따른 국민의 건강권에 대한 우려가 추가협상으로 상당부분 해소됐다는 뜻이다. 까닭에 백번 양보해 아직 촛불을 들 이유가 남아 있다는 주장을 인정하더라도 이제 시위는 평화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도로를 점거해 다수 시민의 통행이나 생업을 방해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물론 시위문화를 업그레이드할 책임은 경찰에게도 있다. 경찰은 강경 진압은 다시 극렬한 시위를 낳을 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공권력을 철저히 절제해 합법적으로 행사할 때 불법시위는 오히려 여론으로부터 외면받게 될 것이다.
  • [토요영화]아파트

    [토요영화]아파트

    ●아파트(KBS2 여름 특선영화 밤 1시35분) ‘평화로운 일상의 공간인 아파트가 두려운 공포의 근원지로 변한다면?’ 안병기 감독의 영화 ‘아파트’는 친숙한 안식처인 아파트를 섬뜩한 공포의 소재로 탈바꿈시킨 작품이다. 친밀한 일상이 공포로 탈바꿈했을 때 느껴지는 두려움은 피부에 와닿는 경험이기에 공포감은 더욱 강렬할 수밖에 없다. 화려하지만 차가운 벽으로 둘러싸인 고층 아파트에서 홀로 살아가는 세진(고소영)은 매일 밤 이상한 현상을 목격한다. 정확히 밤 9시56분이 되면 건너편 아파트의 불이 일시에 꺼지면서 의문의 죽음이 이어지는 것. 불이 꺼진 집에서 사망자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챈 세진. 그녀는 더이상의 희생을 막기 위해 이를 주민들에게 알리지만, 오히려 범인으로 의심받으며 궁지로 내몰린다. 인터넷 만화가 강풀의 인기만화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결국 슬픈 원혼의 이야기다. 세상에 잊혀진 채 쓸쓸히 죽어간 한 여자가 처절했던 소외의 공포를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호소한다는 줄거리다. ‘폰’‘분신사바’ 등으로 ‘K호러’(한국공포)의 대표주자로 인정받은 안병기 감독은 도시 현대인들의 대표적 생활공간인 아파트를 매개로 사회적 무관심과 그로 인한 단절을 에둘러 은유했다. 또 늦은 밤 혼자 타게 되는 엘리베이터, 인적이 드문 비상계단, 불 꺼진 적막한 복도 등 익숙한 공간을 긴장과 공포의 오브제로 적극 동원했다. 이 영화에는 피로 흥건한 화면이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원혼의 이미지 자체로 관객을 경악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감독은 무의식적인 공포보다 원혼을 통해 소외와 단절이라는 사회적 메시지를 세련된 화면과 매끈한 드라마를 통해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 2006년 여름 개봉된 이 작품은 영화 ‘이중간첩’ 이후 4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고소영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았다. 감독은 깎아놓은 듯한 고소영의 뚜렷한 이목구비를 차분하되 강렬한 톤의 공포영화 소재로 십분 활용했다. 하지만 고소영은 기존의 세련되고 차가운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해 ‘호러퀸’으로 거듭나는 데는 한계를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상영시간 90분.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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