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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서해 무력도발 용납안돼

    북한 경비정의 북방한계선(NLL) 침범으로 시작된 서해 대치상황이 끝내 남북 함정간의 포격전으로까지 번졌다.충격적이고 불행한 일이다.한반도 평화와 남북의 화해·협력을 위한 우리 국민과 국제사회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이번 사태가 어디까지 발전할 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사태의 책임이 전적으로 북한에 있다는 사실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포격전도 마찬가지다.북방한계선 침범을 저지하려는 우리해군 고속정에 북한 어뢰정이 먼저 공격을 해왔기 때문이다.대치상황에서 어느 한쪽의 선제공격에 상대방이 응사하는 것은 자위권차원에서 당연하고도 정당한 조치이다.서로가 상당한 피해를 입은 것은 유감이지만 더이상 확전되지않고 끝난 것이그래도 다행이라 해야겠다. 북한 경비정이 지난 7일부터 계속 북방한계선을 침범하면서 무력충돌의 위험은 고조됐었다.때문에 우리측은 여러차례 불행한 사태의 발생 가능성을 경고하며 북한의 자제를 바랐다.그러나 북한은 도발의 강도를 오히려 높이며우리측의 대응을 시험해보는듯 하다 마침내 선제공격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무력충돌은 피하면서 북한 경비정의 한계선 침범을 저지해온우리 군의 대응과 노력이 적절했다고 판단한다.그러나 북한의 선제공격은 우리의 인내를 넘는 도발행위이며 그에 대한 대응은 불가피했던 것으로 본다. 서해 도발을 계속하고있는 북한이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는 아직 정확히 알수 없다.그러나 지금까지 북한이 표면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주장은 북방한계선을 인정할 수 없으며 한계선 이남해역이 자기들의 영해라는 것이다.15일의 판문점 장성급회담에서도 북한은 같은 주장을 되풀이 했다.북한의 의도가북방한계선의 무력화에 있다면 그것은 힘이 아니라 대화로 해결해야할 문제이다.북방한계선에 이의가 있다면 협의할 길이 얼마든지 열려있다. 앞으로 서해 사태가 어떻게 발전하느냐는 북한의 태도에 달려있다.더이상사태의 확대는 남과 북 모두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그동안 우리는 지속적으로 북한을 포용하려 하고있다.국제사회의 협조와 지원도 구하고 있다. 모두가 남북의 화해·협력과 안정을 위해서다.북한은 북방한계선 침범을 즉각 중단하고 대화에 나서기를 거듭 촉구한다. 우리 정부도 냉철한 자세로 대처함과 아울러 이번 기회에 북한의 무력도발은 용납하지않는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아울러 어민들과금강산 관광객 보호에 만전을 기하고 또다른 도발의 가능성에도 철저히 대비해야 할 것이다.경제와 경제회복노력에 부담이 가지 않도록 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 [기고] 북한의 6·15도발

    이번에 자행된 북한의 서해침범 사건은 김정일이 작심하고 직접 지휘한 의도된 도발로 과거의 도발과는 달리 매우 조직적이고 장기적이다.이번 도발의목적은 무엇인가.한마디로 다목적으로 기획된 작전이다. 결론부터 요약하면 이제까지의 대화분위기로는 북한이 열세를 면하지 못하기 때문에 대화 분위기를 강경 대결 분위기로 바꾸기 위해 기도된 고차원의전략적 작전일 것이다.북한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핵무기와 장거리 유도탄을 개발해야만 할 입장에 있다.미국과 대화 분위기를 유지하다 보니 앞으로도제2,제3의 금창리 방문을 허용할 수 밖에 없다.미국의 북한 사찰을 허용하고서는 도저히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따라서 북한은 미국과 한국에 대한 분위기를 강경 분위기로 바꿀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또 하나의 목적은 북방한계선(NLL)을 무력화시키는 것일 수 있다.북방한계선은 한마디로 “해상의 휴전선”이다. 북방한계선에서 북한 해안까지는 거리가 불과 6km 이내이기 때문에 북한은해군기지를 북방한계선과 먼 북쪽으로 건설할 수 밖에 없었다.북한 해군의숨통을 조이는 이런 “해상 휴전선”이 북한에게 눈엣가시가 아닐 수 없다. 이 선을 무력화시키는 것은 북한의 커다란 염원이다.이렇게 중요한 현안이기 때문에 이번 침범 작전은 김정일이 직접 나서서 지휘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다른 의도는 차관급 회담을 무산시키든가 또는 응하더라도 이산가족 문제를 다루지 않고 이번 서해 사건을 다루도록 유도하기 위해서일 것 같다.이산가족 재회는 북한의 개방을 의미하고 개방은 김정일 체제에 독약을 의미하기때문에 북한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 문제를 회피해가야 할 입장에 있다. 또하나의 의도는 미국에 대한 불쾌감을 표시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페리가 이번에 북한에 가져갔던 보따리 속에는 북한이 바라는 것이 별로 없고 당장 양보하라는 것만 들어 있었다.양보해야 할 미사일과 핵무기는 당장 북한 손에서 빠져 나가는 것이지만 북한에게 주겠다는 것은 막연하고 미래지향적인것들 뿐이다.이것이 북한을 불쾌하게 했을 것이다. 6·15에 발생한 포격 사건은 지난 11일 남한 함정에 의해 실추된 위신을 추스르기 위해 감행된 기싸움 차원의 불상사로 본다.소위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지휘했다는 작전에서 북한군이 손해만 보고 멈춘다면 김정일의 체신이 말이 아니다.그래서 앞으로 북한은 그들의 체면을 회복하는 선에서 이 사태를마무리 지을 것 같다.한국군에 손상을 입히든지 아니면 사태를 위태로운 상태로 질질 끌어 미국으로부터 중재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릴 수 있다. 한가지 단언(?)할 수 있는 것은 북한이 이번 사태를 전면전으로 이끌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다.미국은 북한에게 5년 이상의 시간을 주려 하지 않는다.미국은 북한이 5년이내에 미국에 이르는 핵탄두를 가질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평화적인 협상으로 포기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따라서 미국이 생각하는 거의 유일한 길은 북한의 핵 및 미사일시설을 무력으로 공격하는 것이다.그러기 위해서는 명분이 필요하다. 그런데영리한 김정일이 스스로 미국에게 그런 명분을 제공할 리 없다. [池 萬 元 군사평론가]
  • 유엔 국제평화유지군-현황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코소보의 평화회복을 위해 나토 주도하의 국제평화유지군(KFOR) 배치를 결의함에 따라 유엔의 평화유지군 활동에 다시 관심이쏠리고 있다.지난 88년 노벨 평화상을 받기도 했던 유엔 평화유지군의 과거및 현재 활동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유엔 국제평화유지군은 현재 전세계 14개 곳에서 1만3,000여명이 활동 중이다. 이들은 아프리카,중동,발칸반도,서남아시아 등 국제사회 대표적 분쟁지역에서 무장군대,군경부터 민간 감시단까지 다양한 형태로 평화유지에 힘을 쏟고 있다. 이들의 구체적인 임무와 영향력 또한 하나같지 않다.휴전지역을 접수,무장해제,선거감시,경제재건 등 수렴청정에 진배없는 권력을 행사하는가 하면 정부의 경찰력을 조련하는 ‘사관학교’ 역에 그치기도 한다. UNMIBH(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평화유지군)와 UNMOP(크로아티아 평화유지군)은 평화유지군이 제2의 정부로 기능한 대표적 사례.옛 유고연방 내전 주체들이 95년 데이튼 평화협정을 체결함에 따라 각각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지역,크로아티아 지역에 분쟁재발 방지 및 긴장완화를 임무로 진주했다.특히 UNMIBH는 나토 가입국들이 다국적군 무장병력 대부분을 이뤘기 때문에 코소보사태가 터진 뒤 평화유지군 준거사례로 거론되기도 했다. UNTSO(유엔정전감시단)은 48년 유엔 평화유지군 창설 조직으로 중동에 투입돼 지금에 이른다.48년 휴전 및 49년 휴전협정 감시,67년 제2차 중동전 중재 등을 떠맡았다.이스라엘군의 레바논 철군 감시를 위한 UNIFIL(유엔레바논잠정군),이스라엘-시리아간 휴전 및 국경협정을 감독하는 UNDOF(유엔해방군) 등과 연대활동 중. 평화유지군은 때때로 파견국 정부의 강한 반발로 각종 위험을 무릅써야 했다.91년 걸프전 종전과 함께 이라크 봉쇄,양국간 국경침범 방지 등을 목적으로 구성된 UNIKOM(이라크-쿠웨이트 정전감시단)은 이라크 정부와 첨예한 신경전을 편 사례.UNICOM에 대해 이라크 정부가 유엔 종전안에 따른 대량살상무기 관련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단원들을 추방하자 미국이 공습에 나서기도했다. UNMOGIP(인도-파키스탄 군사감시단) 역시 파견지역 반발로 활동이 주춤해졌다.인도,파키스탄 독립 2년 뒤인 49년,양국간 카슈미르 지역 국경을 확정한‘카라치 협정’에 따라 그 이행 감시를 위해 투입됐다가 72년 카라치 협정이 개정되자 임무가 끝났다고 주장하는 인도 정부측에 의해 활동이 제약됐다. 이밖에 아프리카 지역에 ▲MINURCA(중앙아프리카 공화국 평화감시단)▲UNMOSIL(시에라 리온 내전감시단)▲MINURSO(서 사하라지역 분쟁감시단),미주에서 MIPONUH(아이티 경찰감시단;아이티 경찰 조련임무),아시아에서 UNMOT(타지키스탄 정전감시단),유럽에 ▲UNFICYP(키프러스 국제평화유지군)▲UNOMIG(그루지야 휴전감시단) 등이 있다. 손정숙기자 jssohn@- 완료된 평화유지군 활동 유엔은 지난 48년 평화유지활동을 처음 시작한 이래 51년간 유엔의 이름으로 총 49회의 국제 평화유지 활동에 참여,35차례 활동을 완료했다. 그간 111개국에서 75만명 이상의 군인,경찰 및 민간 봉사자가 파견돼 활동에 공헌했으며 1,581명(98년 8월말 현재)이 고귀한 목숨을 바쳤다. 이미 종료된 평화유지활동을 지역별로 보면 아프리카 13회,중·남 아메리카7회,아시아 6회,유럽과 중동 각각 5회다. 아프리카 대륙의 대표적인 유엔평화유지 활동으로 앙골라검증단(UNAVEM)을우선 들수 있다.UNAVEM은 앙골라 정부군과 반군인 앙골라완전독립 민족동맹(UNITA)간의 평화협정에 따른 쿠바군의 철군이행,민족화합,완전 정전 및 UNITA군의 무장해제 및 무기회수 등을 검증하기 위해 89년초부터 97년 6월말까지 3단계에 걸쳐 구성되었다.프랑스,헝가리,인도 등 31개국으로부터 283명의군감시단과 3,649명의 군병력,288명의 경찰이 파견됐다. 앙골라 정부군과 반군의 협정이행 지연 등을 이유로 유엔은 UNAVEM을 유엔앙골라관찰단(MONUA)으로 대체했으며 이 관찰단은 99년2월 활동을 종료했다. 유엔은 르완다의 정전협정 감시와 수도 키갈리의 치안유지 등의 감독을 위해 93년 10월부터 3년여 동안 르완다지원단(UNMIR)을 파견했으나 26명의 목숨을 잃는 비극을 맛보았다. 코스타리카,엘살바도르,과테말라,온두라스,니카라과 등 중미 5개국에서의유엔 활동은 대단히 성공적이었다.유엔 중앙아메리카관찰그룹(ONUCA)은 89년 말부터 3년 동안 1,000여명이 파견돼 인명피해 없이 이들 5개국 정부의 게릴라 지원중지와 게릴라해산 등을 감독했다.이와 함께 엘살바도르 정부군과반군간의 정전 감시와 아이티의 경찰제도 확립 및 경찰훈련을 위해서도 파견됐다. 다시 포격전이 터졌지만 카슈미르 지역에서는 2차 전쟁이 발발된 지난 65년유엔 인도-파키스탄관찰단(UNIPOM)이 파견돼 임무를 수행했다. 또 아프가니스탄,캄보디아 등지에도 나갔는데 특히 93년 말까지의 유엔 캄보디아 과도행정기구(UNTAC)는 캄보디아 재건에 큰 일을 해냈다.중동에서 이란과 이라크가 격돌하자 테헤란과 바그다드에 감시단을 파견,정전과 철군을 감시했다. 크로아티아 신뢰회복기구(UNCRO),유엔 민간관찰지원그룹(UNPSG),유엔보호군(UNPRFOR),유엔 예방배치군(UNPREDEF) 등의 이름으로 옛 유고연방 지역에 파견된 유엔군은 세르비아계 무장 민병대가 판을 치는 이 지역에서 민간인들에게 수호천사 역을 다했다.92년 2월부터 3년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크로아티아,신유고연방 및 마케도니아에 나갔던 3만9,0000명의 유엔군은 비행금지구역 감시,비무장지대 설정,인도적 구호 등의 활동을 벌이면서 167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박희준기자 pnb@
  • 나토, 코소보 5분할 5만명 주둔

    블라체 파리 AFP AP 연합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세르비아군 장성들은코소보 주둔 세르비아군 철수일정을 논의하기 위해 6일 오전 8시30분(한국시간 오후 3시30분) 2차 회담에 들어갔다. 1차 회담은 5일 오후 5시15분(한국시간 6일 오전 0시15분)아무런 합의 없이 끝났다. 양측은 코소보 국경부근 블라체에서 5시간여에 걸친 첫날 회담에서 코소보에 배치된 4만명 규모의 유고군 철수방안에 대해 집중 논의했으나 유고 대표단이 구체안을 제시하지 않아 진전을 보지 못했다. 나토는 세르비아군의 철수가 완료되면 코소보를 5개 지역으로 나누어 다국적군 5만명을 회원국별로 진주시키기로 했으며 이중 절반 가량은 이미 발칸반도에 주둔하고 있다. 회원국별로 배정된 다국적군은 영국이 가장 많은 1만3,000명이며 미국은 7,000명,독일과 프랑스 각각 6,000명,이탈리아 2,000명,스페인 1,200명,벨기에 1,100명,그리스 1,000명,캐나다와 노르웨이,폴란드 각각 800명이다. 러시아는 5,000~1만명의 평화유지군을 파견할 것으로 보이며 나토 비회원국인 핀란드(800명)와 루마니아(250명),우크라이나(200명) 등도 군사 파견을약속했다. 나토는 코소보 주둔 세르비아군이 나토와 유고간의 평화협정이 체결된 뒤 7일내에 철수를 완료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세르비아군은 5일 저녁 알바니아 북부 국경도시에 위치한 알바니아계난민촌에 포탄 10여발을 발사했다.이날 포격은 나토와 유고군간의 1차 회담이 시작된 지 수시간만에 발생했다.
  • 인도 “파키스탄과 회담 용의”

    뉴델리 AFP 연합 아탈 비하리 바지파이 인도 총리는 29일 파키스탄측과회담을 가질 준비가 돼있다고 말하고 그러나 자국령 카슈미르로 침투한 회교 게릴라에 대한 공습을 중단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바지파이 총리는 야당 지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나와즈 샤리프 파키스탄총리가 공습을 중단하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해왔으나 이를 거부했다고 밝혔다. 그는 인도 정부가 긴장 해소를 위한 협상에 임할 것이라고 말하고 그러나협상을 위한 전제조건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지파이 총리의 이러한 발언은 파키스탄의 사르타지 아지즈 외무장관이 이번주 인도를 방문할 것이라고 발표한 가운데 나왔다. 인도군은 이날도 친 파키스탄 게릴라들이 점령한 자국령 카슈미르 산악 지대에 대한 공습을 계속했다.양국은 또 게릴라 거점으로 알려진 카르길 일대에서 포격전을 계속했다.
  • 코소보 평화회담 파리서 재개

    ┑파리 베오그라드 AP AFP 연합 ┑유고연방 코소보주 분쟁 해결을 위한 평화회담이 15일 파리에서 재개됐다. 유고정부와 코소보 알바니아계 대표단은 지난 달 6일부터 23일까지 파리 근교 랑부예에서 국제중재단이 제시한 평화협정안을 놓고 1차 협상을 벌였으나 협상 타결에 실패한 채 회담을 다시 열기로 합의했었다. 그러나 회담 재개를 앞두고 코소보에서는 세르비아계 보안군의 알바니아계에 대한 대대적 군사작전이 단행돼 알바니아계 주민들의 희생이 늘고 있으며 유고측 회담대표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병력의 코소보 주둔을 결코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혀 협상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회담재개 하루전인 14일 코소보주 클리나 부근에서 세르비아 보안군의 포격으로 알바니아계 무장조직인 코소보해방군(KLA)전사 4명이 사망했다고 알바니아계 공보센터가 밝혔다.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감시단은 전날에도 세르비아군의 포격으로 7명이사망하고 수십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협상재개를 이틀 앞둔 13일 유럽연합(EU) 15개국 외무장관들은 독일 엘트빌에서 회담을 갖고 코소보 분쟁 당사자들에게 3~4일간의 협상 기간을 주기로합의했다.
  • 이라크 反후세인시위 확산

    □암만 바그다드 AP AFP 연합□이라크 시아파 회교도 성직자 피살로 촉발된시아파 교도들의 항의 시위가 격렬해지자 이라크 보안군이 시위대에 발포,적어도 20명이 사망하고 수십명이 부상했다고 시아파 반체제 단체가 21일 밝혔다. 이슬람행동기구(OIA)는 시아파 회교도 거주지역인 사담시에서 수십만명이사담 후세인 대통령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으며 공화국 수비대가 시위대를 해산하는 과정에서 무차별 사격을 가해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수백명이 체포됐다고 말했다. 또 시아파 성지인 남부 나자프에서 시아파 주민과 보안군이 충돌했으며,남부나시리야 등지에서도 소요 사태가 계속되고 있다고 목격자들은 말했다. 시아파 단체인 이슬람혁명최고회의(SCIRI)는 바그다드 부근 사담,콰지미야,알키파 등지에서 전날 소요 사태가 발생했으며 이 지역에서만 약 250명이 체포됐다고 전했다. SCIRI는 시리아 다마스쿠스에서 발표한 성명에서 나시리야에서는 시아파 교도들이 정부청사와 집권 바트당사를 장악했으며 이에 대항해 정부군은 나시리야 일대를 포격했다고 밝혔다. 앞서 시아파 교도들은 지난 19일 나자프에서 시아파 최고 성직자 아야톨라모하마드 사덱 알-사드르와 그의 두 아들이 암살된 데 크게 반발,바그다드및 이라크남부에서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번 시아파 소요사태는 지난 91년 시아파 폭동이 유혈 진압된 이래 처음발생한 것이다. 이라크에서는 시아파 회교도가 2,200만 인구의 65%를 차지하고 있으나 상층부는 소수파인 수니파 회교도가 장악하고 있어 시아파에 대한 탄압이 감행돼 왔다. 이에 따라 미국과 영국은 이라크 남부 지역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해 시아파 주민들을 보호하고 있다.
  • 코소보 일촉즉발의 戰雲

    [퓨리슈티나 파리 AP DPA AFP 연합] 국제사회가 코소보 평화협상 타결을위해 협상시한을 23일로 연장한 가운데 유고연방 세르비아군이 코소보주 알바니아계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는등 또다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유고의 베타 통신은 21일 세르비아 병력이 코소보로 투입되고 있으며 세르비아 보안군이 코소보의 주요도로를 점거하고 차량에 대한 검문검색을 실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통신은 세르비아 소식통을 인용,20일 코소보에서 세르비아 보안군과 알바니아계 무장세력인 코소보해방군(KLA)간에 전투가 벌여졌으며 KLA측은 수바 레카와 오라호바치의 경찰서를 습격했다고 전했다. 알바니아계 공보센터는 세르비아군이 KLA 근거지인 포두예보에 대대적인 포격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프랑스 파리 근교 랑부예에서 열리고 있는 코소보 평화회담은 협상시한인 20일 정오까지 타결을 보지 못해 오는 23일 오후 3시(한국시간 오후 11시)로시한을 연장했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공습에 대한 우려로 코소보에서는 알바니아계 주민들의 탈출행렬이 시작됐으며 세르비아측도 유사시에 대비해 코소보에 병력을 증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토군은 현재 430여대의 전폭기가 출격대기중이고 1차로 80여발의 토마호크미사일을 세르비아영토로 발사할 준비를 갖추고있는 것으로 알려지고있다. 코소보 평화회담에서는 알바니아계가 자치안을 수용하는등 일부 진전이 있었으나 세르비아측이 나토지상군의 코소보 주둔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협상타결에 어려움을 겪고있는 것으로 전해지고있다.
  • 격침 北반잠수정 인양한다

    높은 수압에 견디기 위해 불활성기체인 헬륨을 최대 한도까지 체내에 흡입한 뒤 심해에 들어가 물체를 인양하는 ‘포화잠수법’이 해군 사상 처음으로 시도된다. 해군은 20일 지난해 12월18일 남해안에 침투하다 격침된 북한 잠수정을 발견,본격적인 인양작업을 준비중이라고 밝혔다.최초 격침 위치인 거제도 남방 100㎞ 지점에서 북서쪽으로 450m 떨어진 수심 150m 해저에서 발견된 반잠수정은 포격으로 선체 일부가 파손된 상태이다. 인양 작업은 먼저 구조함인 청해진함에서 심해잠수 구조정을 이용해 위치를 확인한 다음 수압에 견디는 캡슐형 특수장비에 전문 잠수사를 태워 바다 속에 내려보내 로프와 굵은 철사로 선체를 묶은 뒤 크레인으로 끌어올리게 된다. 이때 잠수사들은 캡슐형 특수장비 속에 꽉 채운 불활성기체인 헬륨을 호흡을 통해 체내로 흡수,15기압 상태에서 버틸 수 있게 된다.해군은 반잠수정을 완전히 인양하기까지 최대 4∼5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했다.金仁哲 ickim@
  • 美·英 3차 공습 임박/오늘 라마단 시작… 종료뒤 추가 공격

    ◎B1 포격기 첫 작전 투입/이라크 “25명 사망·75명 부상” 【워싱턴 崔哲昊 특파원】 미국과 영국의 대 이라크 3차 공습이 임박했다. 샌디 버거 미 백악관 안보보좌관과 조지 로버트슨 영국 국방장관은 18일 “목표를 성취할 때까지 공습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하고 이라크의 이슬람 금식월(月)인 라마단이 시작되는 19일 전에 3차공습을 할 것임을 확인했다. 또한 이날 익명을 요구한 미 국방부의 한 관리는 라마단이 끝난 후에도 공격이 계속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앞서 미 국무부는 쿠웨이트 주재 미대사관 직원과 가족 200명 등 걸프지역 주재 미국인들의 긴급 철수작전에 나섰다. 17일 새벽과 오후 두차례 공격에서 미국과 영국은 해상발사 크루즈 미사일과 항모 엔터프라이즈호에서 발진한 F­18 전폭기들을 동원,레이저 유도탄 등 미사일 5기로 이라크 국경지대를 공격했다. 특히 2차공격에서 미국은 300기의 이상의 크루즈 미사일을 발사했으며 최신예 B­1폭격기를 처음으로 작전에 투입했다. 샌디 버거 미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1·2차 폭격에서 이라크의 대량파괴 무기및 기타 군사목표물에 심각한 손상을 입혔다”고 평가했다. 이라크에서는 1·2차 공격으로 25명이 숨지고 75명이 부상했다고 우미드 메다트 무바라크 보건장관이 밝혔다.
  • 스티븐스 砲殺사건(다시 태어난 ‘대한매일’:17)

    ◎張仁煥·田明雲 의사 의거 추적/“국권회복 활동” 보도 한달뒤 1면톱 게재/“애국지사” 내외 알려 安重根 의사에 영향 1908년 3월23일 일본 통감부의 외교고문 스티븐스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張仁煥·田明雲 두 애국지사의 총에 피살된다. 총격은,‘일본의 한국 보호’가 한국인의 바람인듯 공공연히 떠들어댄 그의 망언에서 비롯됐다. 대한매일은 이 사건을 끊이지 않고,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당시의 열악한 통신체계에도 불구하고 이역만리에서 벌어진 의거를 대한 백성이 자세히 알게됐다. 미국측에 의해 ‘단순살인’쯤으로 치부될 뻔한 사건을 국권회복을 위한 애국의거로 자리매김,세계만방에 알린 것들은 순전히 대한매일의 공이었다. 스티븐스는 일본의 한국 지배가 정당함을 홍보하고 미국인의 반일감정을 무마하라는 지시를 받고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3월21일 기자회견을 가져 “일본이 한국을 보호국으로 삼아 한국에 유익한 바가 많다” “한국민은 일본의 보호정치를 환영한다”는 따위의 망언을 거듭했다. 대한매일에 ‘스티븐스 포살(砲殺)사건’이 처음 등장한 것은 3월25일자 뉴욕발 기사였다.‘한국 전 고문 須知分(수지분=스티븐스)씨가 일전에 桑港(상항=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였는데,24일(사실은 23일)에 그 여관 앞 마차에서 내릴 때 돌연히 사격하였는데,그 사격자는 상항에 체류하는 한국인이라. 수지분씨가 이 조난 전에 신문기자를 만나 일본의 대한정책을 찬양하되,미국이 필리핀에서 하듯 같은 형태의 귀중사업을 일본이 한국에서 시작한다고 말한 때문이라더라.’ 대한매일의 초기 보도는 전적으로 외신에 의존해야 했으므로 짤막짤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흐름을 보면 결코 이 사건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27일에는 ‘수지분이 큰 상처를 입지 않은 반면 부상한 한인(전명운)은 빈사 상태’이며 ‘저격 이유는 수지분이 휴대한 서류가 미국 대통령과 주미 일본대사에게 넘어가면 한국에 절망이 되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이어 28일에는 국내발로 ‘수지분이 죽어 통감부 관리 일동이 조전을 보냈다’는 부음기사를,29일과 31일에는 뉴욕발로 ‘병상의 한인은 점차 쾌유하며 수지분 사망 소식에 환희하였다’ ‘암살자(장인환)가 기소되었는데 그 변호사는 애국적 광란상태에서 무지각적으로 벌인 범죄라고 변호하였다’는 속보가 잇따랐다. 사건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외신만을 전하는 데 답답했을 대한매일은 드디어 4월17일자 1면 톱으로 상세한 내용을 보도한다. 미국에서 발행된 공동회의 호외를 긴급 입수한 것이다. ‘별보(別報)’라 이름 붙은 이 기사는 평상시와는 달리 ‘수지분 포살 상보’‘질문 수지분’‘전명운·장인환 양씨가 수지분을 포격’‘경고 첨(僉=모든)동포’ 등의 제목을 중간중간 큰 활자로 집어넣었다. 그 내용은, ‘수지분이가 23일 상오 華盛頓(화성돈=워싱턴)으로 향하려고 옥란시 정거장에 당도하며 애국지사 양씨는 뒤쫓아왔던지 일찌감치 대기중이라. 수지분이가 일본 영사와 동반하여 자동차에서 내려올 때 좌우 공격하여 연 3차 포성이 울리는 때에 수지분이가 총에 맞아 쓰러지니 경찰관리가 급히 모여들어 마차에 싣고 병원으로 가더라’는 것이었다. 이어진 ‘경고 첨동포’에서는 ‘우리가 양씨와 함께 죽을 지경에는 미달하였으나 그 애국열성이야 어찌 위로하지 못하리오. 한국독립도 이제 오늘부터요,한국자유도 오늘부터’라고 찬양한 뒤 ‘우리가 각각 주머니를 빌어 독립을 위하여 재판하기를 불가불 전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티븐스 포살 사건’ 보도는 대한매일이 거둔 또하나의 승리였다. 장인환·전명운 의사의 쾌거가 국내에 널리 알려지면서 이 사건은 1년7개월 후 安重根이 이토 히로부미를 응징하는 데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한편 일제는 이 보도를 대한매일 사장 배설을 고소하는 빌미로 삼았다.
  • 네타냐후 총리 “추가 공격”/이·레바논 긴장 고조

    【예루살렘·키리야트·외신 종합】 이스라엘군이 레바논 게릴라 지도자를 암살하면서 야기된 이스라엘과 레바논 게릴라 조직간의 포격전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이스라엘이 추가 공격을 시사함으로써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25일 “이스라엘은 레바논내 테러리스트들과 기지에 대해 계속 공격을 가할 것”이라며 “레바논과 시리아 정부에도 테러행위에 함께 대처해 나갈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 간신 가득한 궁궐(秘錄 南柯夢:22)

    ◎대신들 아첨만… 큰 인물 없어 끌탕/러 함대 일에 패하자 관리들 월담도주/전 비서승 추천으로 거창유생 천거/대신들 “공연한 짓 벌인다” 정에 십자포화/난국타개 기대 걸었으나 일반론만 아뢰 1894년 일제는 우리나라에 동학란이 일어난 것을 기화로 청일전쟁을 도발하였는데 그때 일거에 한국을 집어삼키려 했으나 실패했다.그뒤 일제는 호시탐탐 침략 야욕을 불태워 오더니 청에 이은 제2의 가상적인 러시아와 담판을 벌였다. 담판에서 일제는 먼저 한반도 분단안을 제시하였다.일제가 제시한 분단안은 38도선 안이었고 러시아가 제시한 안은 39도선안이었으니 남의 나라 국토를 도마위에 올려놓고 제국주의국가들끼리 주인 몰래 어떻게 토막낼까 흥정을 했던 셈이다. 1902년 마침내 일제는 영국과 동맹을 맺어 영국의 지원을 받아 러일전쟁을 도발하였다.대한제국 황실(덕수궁)에서는 그런 음모가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을 뿐 아니라 전쟁발발에 대비도 않고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거기에다 궁안에는 나라 생각은 티끌만치도 하지 않는 간신배들로 가득차있었다.1904년 2월6일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궁안에 있던 대신들은 모두 도망치고 말았다.어떤 대신은 덕수궁의 수채구멍을 통해 도망쳤다. 갑진년(1904년)에 일본과 러시아가 인천항에서 포격전을 벌여 대포소리가 하늘을 찌르고 탄환이 비오듯 하니 러시아함대가 패하고 말았다.이때 궁안은 물론 장안의 사람이 모두 도망치고 구중궁궐이 텅빈 집이 되었다.의정대신 모씨는 몰래 궁중의 수채구멍으로 빠져 나갔고 그밖의 대소 입직관리(立直官吏)들은 궁성의 담을 넘어 도망쳐 나갔다. 얼마나 한심한 이야기인가.돌이켜 보면 1806년 병인양요 때 그러했고 1876년 강화도사건 때 그러했으니 1904년이라 해서 고위 관료들이 용감해졌을리 없다.심지어 1950년 6·25전쟁때도 고위관리들이 대통령을 모시고 서울시민을 버려둔채 남으로 도망쳤는데 지금이라고 해서 나라를 살리는데 앞장설 관리가 얼마나 있겠는가. 그렇다면 1904년 대한제국의 권부였던 덕수궁에는 어떠한 관리들이 고종을 보필하고 있었을까.생각해보면 참으로 한심한 사람들이 임금을 속이고 자리를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때를 당해 나(정환덕)는 엎드려 아뢰기를 “궁내참서(宮內參書) 이인순(李仁淳)은 평소 말하기를 우선일휘(羽扇一揮:부채를 한번 흔드는 모양)면 바다위에 뜬 군함도 산산조각 낸다고 했아옵고 영선사장(營繕司長) 최병주(崔炳柱)도 겨드랑에 몇 사람을 끼고 광화문을 뛰어 넘는다고 호언장담했아온즉 이같이 위급한 때에 한번 불러보시는 것이 어떠하옵니까” 하였다.이에 폐하께서 두 사람을 부르셨는데 가서 보니 벌써 도망가고 없었다. 러일전쟁은 을사조약의 치욕을 가져오는 직접적 계기가 되었기 때문에 나라가 문자 그대로 백척간두에 서있던 때다.이러한 때야말로 큰 인물이 필요했다.그러나 어디 큰 인물이 그리 흔했던가.모두가 사기꾼 뿐이었으니 임금님께 ‘이 사람이면 됩니다’ 하고 자신있게 천거할 인물이 없었다. 러일전쟁이 일어나기 전 일이었다.하루는 영남의 유학자 면우(傘宇) 곽종석(郭鍾錫 1849∼1919)을 추천하는 사람이 찾아 왔다. 전 비서원 비서승(秘書院 秘書丞)강봉조가 찾아와 말하기를 “지금 나라일이 날로 어려워져 가는데 내각대신이란 것들은 임금님께 아첨만 하고 간사스럽기가 이보다 심할 수 없습니다.그들의 뱃속에 경륜이 있다면 오로지 재물을 탐해 자기를 살찌게 하는 것 뿐이라 한 사람도 임금님께 충성하고 나라일을 걱정하는 마음이 없습니다.이래서야 어찌 나라가 보존될 수 있겠습니까.영감도 수수방관,황상의 눈치만 살피지 마시고 어진 인재를 추천해 은총에 보답하기 바랍니다. 원래 ‘교목세록의 신하’(喬木世綠之臣:대대로 卿宰相을 지낸 집안)와 ‘고량진미의 자손’(膏粱眞味之子孫:돈많은 사람의 자손)은 오로지 영화누리기에 급급하고 시국이 어찌 돌아가는지 알지 못합니다. 이들이야말로 재물을 탐하고 나라를 해치려 드는 탐재해국(貪財害國)하는 놈들이라서 세상을 구제할 인물이 날 수없습니다.그러니 천상 바위틈에 숨어지내는 재야인사들을 발탁해서 난국을 타개할 수 밖에 없는데 경상도 거창땅에 사는 곽종성(郭鍾錫)이란 자가 그런 사람입니다” 정환덕은 대답하기를 “오늘같은 난세에는 경천위지의 재(經天緯地之才:천지를 꾸려가는 인재)라 하더라도 역부족이라 하겠는데 시골에서 문학만 공부하는 일개 서생이 난국을 감당할수 있겠습니까.이 노인(곽재우)이 지난날 갑오경장(1894년)때 쓴 포고문을 읽어 보았는데 한낫 문구(文句:즉 글귀)일 뿐 나라에 유익할 것 같지 않았습니다”고 하였다. 그러나 강봉조가 굳이 천거하기를 요구하는지라 정환덕이 이를 못이겨 고종에게 곽종석을 천거했다. 황상께서 “누구인가” 물으시니 “곽종석입니다”고 하였다.그러자 “일본을 반대하는 사람인데 부르면 나와 일해 주겠는가” 하고 다시 물으시니 “대한의 신민으로 어찌 폐하의 명을 거역하겠습니까”고 아뢰었다. 이렇게 해서 곽종석이 영남에서 올라오게 됐는데 이때 고종이 영호남 인재를 고루 등용한다는 원칙을 새워 호남의 두 인물 기우만(奇宇萬)과 전우(田愚)를 천거하게 했다. “곽종석 한사람을 불러 등용할 것이 아니라 삼망(三望:세사람을 천거하여 하나를 고르는 것)이 옳다 하겠으니 호남에서 인망이 두터운 전우와 기우만을 적어 올려라” 하시었다. 그러나 조정대신들은 입을 모아 “어느 놈이 또 이러한 인물을 끌어내었는가” 하며 다들 욕하였다.심지어 황태자 순종은 정환덕에게 “너는 다시 곽종석에 대해 말하지 말라.조정의 대신들이 모두 너를 원망하고 있으니 모름지기 조심하고 조심하라”고 하셨다.그러나 이미 일은 벌어진 뒤라서 곽종석은 어명을 받들어 상경하게 되었다. 곽종석이 황공하여 서둘러 상경하였다.곽종석은 덕수궁 함녕전 동반침(東半寢)에 입대했는데 예가 끝난 뒤 황상께서 물으시기를 “경은 임진란때 의병장이었던 곽재우(郭再祐)의 몇대 손이 되는가”고 하시니 “11대 방조(傍祖)입니다”라고 대답했다.이에 황상께서 “오랫동안 경의 이름을 듣고 있으나 이제야 비로소 만나게 되니 다행이다” 하시면서 “지금 이 나라의 형세가 날로 악화되어 가고 있으니 어떻게 하면 국태민안(國泰民安)하여 승평의 날이 오겠는가”고 물으셨다. 이에 곽종석이 다시 아뢰기를 “폐하께서는 신의 허명(虛名)을 잘못 들으시고 이와같이 운하(雲霞:궁궐)에 오게 하셨으니 황공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신이 오랫동안 초야에 묻혀온 몸이라 아는 것이 없사오니 어찌 나라일을 논할 자격이 있다고 하겠습니까.그러나 감히 말씀드린다면 지금 나라 운명을 바야흐로 치세에서 난세로 들어서고 있사오니 폐하께서 어진 신하를 가까이 하시고 간신은 멀리 하시며(親賢遠奸) 마음을 밝게 가지시고 욕심을 삼가하시며(淸心寡慾) 위를 덜고 아랫것들에게는 이익을 더해 주시고(損上益下) 애민절용(愛民節用)하시면 나라의 근본이 튼튼해질 것입니다.엎드려 바라옵건데 지방에서는 간사하고 교활한 아전들의 횡포를 막으시고 착한 수령방백(守令方伯)을 임명하시고 중앙에서는 내각대신으로 하여금 각기의 소임을 다하게 하시고 폐하께서는 독서를 게을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런 일반론으로는 난국을 타개하기가 어려웠다.그러니 곽종석 기우만 전우는 물론 이밖의 어떤 거유(巨儒)가 나온다해도 이미 때가 늦어 나라를 구하기 어려웠다 할 것이다.도국병민,나라가 좀 먹히고 국민들이 병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 印·파 6일째 포격전/核전쟁 비화 우려

    【이슬라마바드·뉴델리 AFP AP 연합】 인도와 파키스탄이 카슈미르 접경지대에서 4일까지 6일째 포격전을 계속했다. 인도군 간부들은 1,300㎞의 통제선(휴전선) 가운데 400㎞에서 전투를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30일 평화 정착을 위한 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시작된 이번 전투가 격렬해지면서 자칫 핵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락미나라얀 람다스 전 인도 해군참모총장(63)은 이날 양국은 핵전쟁 발발 가능성을 피하기 위해 진지한 대화를 벌여야만 한다고 촉구했다.
  • 印·파 국경분쟁 전면전 양상

    ◎카슈미르서 최악의 포격전… 90여명 사망 확인 【라호르(파키스탄) AFP 연합】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경분쟁이 전면전 양상으로 변하고 있다. 포격전이 5일째 계속되고 있는 카슈미르 지방에서 3일까지 확인된 사망자수는 인도 34명,파키스탄 56명 등 최소한 90명으로 집계됐다. 인도령(領) 카슈미르지역에서 탈출한 주민들은 지난 65년과 71년 두차례 발발했던 인도·파키스탄 전쟁 이후 최악의 포격전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인도의 한 고위 공군장교는 스리나가르에서 “우리는 전면 경계태세에 들어가 있으며 어떤 결과도 감수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도 “전면전이 일어날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한편 파키스탄의 나와즈 샤리프 총리는 “인도는 지금 남아시아 대륙에 두개의 핵무기 보유국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면서 “새로운 지위로 인해 두나라는 보다 책임있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샤리프 총리는 인도가 이번 충돌을 촉발시켰다고 비난하면서 포격전이 두 핵무기 보유국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스리랑카에선 파키스탄의 샤리프 총리와 인도의 아탈 베하리 바지파이 총리가 지난 5월의 핵실험이후 악화되고 있는 두나라의 긴장상태 해소를 위해 회담을 갖고 있으나 카슈미르에서의 충돌로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 印·파 평화협상 파국위기/카슈미르 국경서 포격전

    【이슬라마바드·뉴델리 AP AFP 연합】 인도 병력들이 28일 파키스탄이 통치하고 있는 카슈미르의 국경마을들에 포격을 가해 민간인 10명이 사망하고 15명이 부상했다고 파키스탄 관영소식통들이 밝혔다. 이로써 지난 22일부터 시작된 인도와 파키스탄 병력간의 포격전으로 인한 사망자수는 20명으로 늘어났다. 이들은 “인도군이 아무런 이유없이 무차별적으로 중포와 유도미사일,박격포 등을 동원,영토 분쟁지역인 캬슈미르의 인도­파키스탄 국경선 일대 판두와차코티 지역의 마을들을 4시간 동안 공격했다”고 말했다. 파키스탄 관영 APP통신은 “파키스탄군이 인도의 포격에 맞서 대응,인도군과 진지에 상당한 타격을 가했다”고 전했다. 한편 인도와 파키스탄간 평화협상이 카슈미르를 둘러싼 강경 입장 때문에 파국에 직면했다고 브라제시 미시라 인도 총리 보좌관이 이날 밝혔다. 양국 외무장관은 뉴델리와 이슬라마바드에서 수차례 만났으나 이 회담은 인도가 카슈미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별도의 실무단을 구성하자는 파키스탄측 요구를 거부함으로써교착상태에 빠졌다.
  • ‘공직사회 개혁’ 사이버 논쟁/행자부­지방공무원 20여일째 공방

    ‘구(舊) 내무부팀’과 ‘지방공무원 연합팀’사이에 ‘사이버 포격전’이 한창이다. 장소는 행정자치부 인터넷 홈페이지의 ‘열린 마당’(www.mogaha.go.kr). 한 지방공무원이 최근 ‘행자부의 두 얼굴’(본지 6월2일자 23면 보도)이라는 글을 통해 “행자부 직원들이 고압적이고 무사안일에 젖어 있다”고 비난한 게 단초가 됐다. 이 글을 바탕으로 선제 포문을 연 것은 ‘Soph’라는 이름의 지방공무원.“공무원 조직에 시장원리를 도입,(이렇게)경쟁력 없는 공무원들은 즉각 퇴출시켜야 한다”고 성토했다. 곧바로 행자부 자치운영과 李모 사무관이 대응에 나섰다.“직원 2명이 업무를 맡다보니 친절하지 못할 때가 있다”고 해명한 뒤 “그렇다고 모든 과거 내무부 출신 직원들을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반박했다. 이어 ‘Philo’라는 지방공무원은 “지난해 대선 때 대부분 후보들이 내무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건 것만 봐도 내무부가 경직되고 시대에 뒤떨어진 관료집단임을 알수 있다”고 끼어들었다. 이런 식으로 주고 받은 논쟁이 22일까지 모두22건.조회 수는 무려 8,000여회에 달한다. “행자부측이 장황하게 변명을 늘어 놓는데 거부감이 생긴다.옛날 내무부 출신의 엘리트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지방공무원 李모씨) “단편적인 지식이나 막연한 선입관으로 한 조직을 무자비하게 매도할 때 그 조직에 모든 정열을 바쳐온 사람들은 말할 수 없는 비애를 느낀다.정확한 논거 없이 자극적인 언어를 동원한 비난은 언어폭력이나 언어유희에 지나지 않는다”(행자부 金모 사무관)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劉恩淑 사무관(43·여)은 “공무원들 사이에 이렇게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진 것은 처음”이라면서 “많은 공무원들이 참여해 다양한 주제를 다룰 수 있도록 토론의 장을 신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지구촌 분쟁지역 점검

    지구촌이 뒤숭숭하다.엘니뇨가 몰고온 기상이변으로 곳곳에서 인류가 끔찍한 시련을 격었다.아시아는 엎친데 덮친 겪으로 경제위기까지 맞고 있다. 그러나 인류를 가장 안타깝게 하는 것은 전쟁.유럽의 발칸반도에서는 ‘인종 청소’라는 대학살이 또다시 시작될 것 같다는 소식이 전해진다.아프리카에서는 한달째 무모하게 죽고 죽이는 국경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아시아도 조용하지가 않다. 카슈미르를 중심으로 반세기 이상 국경분쟁을 겪고있는 인도와 파키스탄은 핵실험을 강행해 인류를 전율케 했다.어느새 전쟁을 하기 시작했거나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도는 세계의 분쟁지역을 긴급진단해 본다. ◎코소보 세르비아측 알바니아계 탄압 배경/민족성지서 이민족 판치다니…/세르비아 전성기유적 코소보에 오롯이/주민 90% 알바니아계 자치 누리며 생활/현정부 자치권 박탈하자 독립 외치며 투쟁/서방,인종청소 우려 ‘공습 불사’ 개입 태세 유럽의 발칸반도를 흔히 ‘화약고’라고 한다.발칸반도의 신(新)유고연방세르비아공화국 코소보주에서 포연이 피어 오른다.끝이 보이지 않는 게 더 큰 문제다. 발칸반도를 자칫 전쟁으로 몰아 넣을 수도 있는 ‘코소보 사태’는 세르비아군이 자국민이면서 종족이 다른 코소보주 주민들을 유혈 탄압하면서 비롯됐다.코소보주는 세르비아 공화국 땅이면서도 주민은 엉뚱하게 90%가 알바니아계.코소보 사람들은 종족이 다른 까닭에 세르비아로부터 분리,독립하고 싶어 한다.코소보해방군(UCK)이라는 무장단체까지 만들었다. 세르비아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분리주의자들을 색출한다는 이유로 즉각 군사행동을 폈다.알바니아계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라면 무차별 포격한다.3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5만명 이상이 집을 버리고 이웃 알바니아 등으로 피난을 갔다.세르비아가 알바니아계를 없애거나 코소보에서 모두 쫓아내려 한다고 우려한다. ▷배경 및 발단◁ 본질은 민족 갈등이다.유고에서는 세르비아계,알바니아계,몬테네그로계 등이 얽혀 산다.전체는 1,100만명 정도.알바니아계는 200만명 정도로 코소보에 몰려 산다.코소보의 90%가 알바니아계.세르비아계로 둘러싸인 알바니아계‘인종의 섬’같은 형국이다. 코소보의 고난이 시작된 것은 9년전인 89년.밀로셰비치 대통령은 티토정권이 들어선 2차 세계대전이후 인정해온 코소보의 자치권을 박탈했다.코소보는 91년 급기야 독립을 선언하고 나선다.세르비아는 바로 옆의 알바니아가 사주했고 물심 양면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세르비아 사람들에게 코소보는 결코 내줄 수 없는 땅이다.정신적 고향이 자성지이다.세르비아의 전성기인 14세기 스테판두산 왕국 시절의 유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실제 1차 세계대전 때까지만 해도 세르비아계가 차지하고 있었다.전쟁이 끝나며 바로 옆에 있는 알바니아 사람들이 대거 몰려와 오늘에 이르렀다. 미국을 포함한 서방국가들이 세르비아가 코소보에서 ‘인종 청소’를 감행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세르비아는 95년 7월까지 3년이나 계속됐던 이른바 보스니아사태에서 ‘인종 청소’을 감행해 세계의 지탄을 받았다.유고연방에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가 독립을 선포하자 세르비아는 즉각 응징에나섰다.보스니아사람들을 아예 없애버리기로 하고 무차별 학살을 자행했었다. ▷사태 전망과 해결◁ 세르비아는 보스니아 때와 마찬가지로 무차별 보복을 할 것이다.그러나 보스니아 사태와는 사안이 사뭇 다르다.코소보 뒤에는 알바니아라는 나라가 있다.벌써 5만여명이 알바니아로 국경을 넘었다.알바니아를 근거지 삼아 장기적인 무력항쟁태세를 갖춘다면 세르비아는 알바니아를 공격하려 들 것이다.전쟁으로 번지기 십상이다. 사태의 심각성은 즉각 감지됐다.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즉각 세르비아에 물리력을 자제할 것을 경고하며 무력시위에 나섰다.알바니아에는 전투기를 치키로 했다.여차하면 폭격을 감행할 참이다.세르비아와 알바니아에 함께국경을 대고 있는 마케도니아에는 지상병력을 파견키로 했다. 그러나 무력시위나 결의안 만으로 이번 코소보 사태가 풀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상대가 아예 없어져 주기를 바라면서 벌이는 싸움이다.보스니아 사태에서도 그랬듯 다국적 평화유지군이 개입해야 발칸의 화약고가 잠잠해질 것같다. ◎印·파 카슈미르 분쟁 뿌리와 현주소/종교갈등이 핵경쟁까지 불러/주민 60%가 이슬람교도/47년 독립때 ‘파’ 귀속 희망/힌두교도 嶺主 인도에 양도/‘파’ 즉각반발 3차례 전쟁/협정이후 양국 분할 통치/모두 완전한 지배는 못해 인도와 파키스탄이 영유권 싸움을 하고 있는 카슈미르 지역이 세계의 눈길을 끌고 있다. 두나라가 지구촌의 우려와 비난을 무릅쓰고 핵실험을 강행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이 곳 때문이었다.세차례나 싸웠지만 승부가 나지 않았다.상대를 압도할 무기가 필요했고 앞다투어 핵무기 개발에 진력해왔다. 카슈미르는 인도와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과 중국 등이 국경을 함께 맞대고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때문에 두나라간에 치열한 영유권 다툼을 가져왔고 남아시아의 화약고가 됐다.22만여㎢의 면적에 500만여명이 살고 있다.인구의 60% 이상이 이슬람교를 믿고 있다. 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종교적 차이로 서로 다른 나라가 된 인도와 파키스탄.카슈미르는 어느 나라의 영토도 아니었다.주민들은 당연히 종교가 같은 파키스탄으로 편입될 것을 기대했다.그러나 힌두교도인 영주(領主)가 인도에서 원조를 받았다는 명분을 내세워 통치권을 인도에 넘겼다. 파키스탄이 즉각 반발하며 전쟁이 벌어졌다.유엔이 중재에 나섰고 어느 쪽에 편입되기를 원하는지에 대해 국민투표를 실시했다.서로 다른 의견이 팽팽히 맞섰고 결과적으로 분열만 조장했다.그리고 65년과 71년 또 두번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세번째 전쟁이후에는 협정을 맺었다.카슈미르를 두개로 쪼개 북부의 아자드 카슈미르는 파키스탄이,남부의 잠무 카슈미르는 인도가 통치하도록 했다.어느 나라도 완전한 통치권을 행사하지 못해 지금도 분쟁의 불씨를 안고 있다. ◎에티오피아­에리트레아 무력충돌 원인과 전망/독립당시 국경선 획정이 불씨/이웃사촌이 앙숙 사이로… 평화적 해결 불투명 아프리카 북동쪽에서 한달 가까이 총성이 그치지 않고 있다.국경선을 둘러싸고 에티오피아와 이웃 에리트레아가 전면전을 방불케 하는 국경분쟁을 치르고 있다. 이번분쟁은 지난달초 에리트레아가 잃어버린 땅을 되찾겠다고 국경을 넘어 에티오피아를 공격하면서 본격화했다.에티오피아의 반격과 함께 두 나라는 전투기까지 동원,수도와 주요 도시들을 서로 폭격했다.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의 국민소득은 각각 400달러와 570달러.모두 95년도 기준치이지만 요즘이라고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근래엔 심한 가뭄마저 들어 더욱 먹고살기가 어렵게 됐다.싸울 형편도 못되는 두 나라가 곧 전면전에 돌입할 태세다. ▷발단과 배경◁ 직접적인 원인은 국경분쟁이다.에리트레아가 에티오피아 서북부에 위치한 티그레주의 바다메를 침공해 점령한 것은 지난달 12일이었다. ‘내 땅은 내가 차지한다’는 생각에서였다. 하루아침에 ‘내 땅’을 빼앗긴 에티오피아도 발끈했다 두나라의 응어리는 62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에리트레아는 2차대전이 끝나면서 50여년만에 이탈리아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났다.그러나 독립국가는 되지 못했다.국력이 월등했던 에티오피아가 흡수 통합해 버렸다.에티오피아와는 천년도 넘게 같은 생활권으로 살아왔던 터.에리트레아는 즉각 해방전선을 조직해 무력항쟁을 벌인다.그리고 31년만인 93년 마침내 신생 독립국으로 탄생했다. 그러나 국경선이 문제였다.이번 분쟁의 빌미가 된 티그레주 일부가 에티오피아 땅으로 되어 있었다.에리트레아는 이탈리아의 식민지에서 벗어날 당시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며 자국 영토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지금까지 에티오피아에 편입되어 있었다. 모호한 국경선이 늘 분쟁의 불씨로 남아 있었지만 지난해까지만 해도 두 나라는 우호적이었다.한나라나 다름없이 화폐도 같이 쓰던 이들이 틀어지게 된 것은 지난해 11월.에리트레아가 에티오피아 통화 ‘비르’를 버리고 ‘나크파’라는 화폐를 만들었다. 에티오피아는 에리트레아가 괘씸했다.예전과 달리 교역을 하면서 미국 달러로 결제해 줄 것을 요구했다.에티오피아에게 전적으로 의존해온 에리트레아는 당장 큰 타격을 입었다.에티오피아의 국민총생산액은 250억달러에 이르지만 에리트레아는 20억달러.두나라 국민감정에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잠재되었던 국경분쟁이 자연스레 불거졌다. 미국과 르완다,리비아 등이 앞다퉈 분쟁의 중재에 나섰다.두 나라에게 93년 이후 지켜져 왔던 국경선으로 각자 군대를 철수시키고 협상을 갖도록 촉구하는 평화안을 제시했다.그러나 감정이 절정에 다다른 두나라가 영토분쟁을 평화적으로 매듭지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두 나라 비교◁ 에티오피아 면적은 112만8,000㎢로 한반도의 5.5배쯤 된다.인구는 6,000만명.이탈리아의 침략을 물리치고 독립을 유지했던 나라로 한국전쟁 때 우리를 돕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적 안정을 찾지 못한 채 지금까지 극빈국에 머물고 있다. 반면 에리트레아는 국토의 크기를 비롯해 전체인구와 국민총생산액 등 국력이 에티오피아의 10분의 1 수준.종족과 언어가 9개에 이르고 이슬람교에서 기독교까지 종교도 복잡한 것은 두나가 모두 똑같다.
  • 에티오피아·에리트레아 전투 재개/국경서 치열한 포격전

    ◎각국 외교관 철수행렬 【아디스아바바 AP AFP 연합】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의 국경분쟁은 9일 각국 외교관들의 철수행렬 속에 양측이 국경지대에서 치열한 포격전을 전개함에 따라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양국 군대는 이날 에리트레아 수도 아스마라 동남쪽 약 80㎞ 지점의 에티오피아 북부 국경도시 잘라 안사바 부근에서 대포와 박격포를 동원,포격전을 전개했으며 서로가 잘라 안사바를 점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에리트레아는 에티오피아 영내로 진격한 자국군이 잘라 안사바 남쪽 산악지대를 지나 에티오피아 영내 15㎞ 지점까지 진격했다고 주장했다. 멜레스 제나위 에티오피아 총리는 평화적 국경분쟁 해결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에리트레아와의 전쟁은 확대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 나토,‘코소보’ 무력개입 검토/서방 소식통

    ◎6개국 접촉그룹 12일 긴급회동 【런던·유엔본부 AFP 연합】 영국과 미국,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악화되고 있는 유고연방의 코소보분쟁에 무력개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유엔본부의 서방소식통들이 6일 밝혔다. 소식통들은 나토군의 무력 사용 허용문제를 논의할 회의가 며칠내에 유엔본부에서 열릴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이 검토될 것이라며 나토군의 코소보파견 가능성을 강력 시사했다. 한편 옛 유고지역 분쟁 해결을 위한 6개국 접촉그룹(미국,영국,프랑스,이탈리아,독일,러시아)은 오는 12일 런던에서 긴급 회동을 갖고 코보소 사태를 논의한다. 코소보사태는 세르비아공화국이 지난달 29일부터 코소보주 서부 알바니아계 마을을 포격하면서 악화되어 왔다.이번에만 알바니아계 주민 52명이 사망하고 200여명이 실종된 것으로 알려졌다. 세르비아공화국은 자치주인 코소보에서 전체 인구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알바니아계의 분립 독립요구를 분쇄하기 위해 지난 3개월동안 무력 공세를 펴왔고 과정에서 300여명이 사망하고 수만명의 주민이 인근 국가로 피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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