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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쿠르드족·터키군 무력충돌… 수십명 사망

    터키 의회가 쿠르드 반군 소탕을 위한 월경(越境) 작전을 승인한 지 나흘 만에 터키-이라크 국경 지대에서 쿠르드족의 습격과 터키군의 반격이 일어나는 등 대규모 무력 충돌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21일 외신들에 따르면 쿠르드노동자당(PKK) 소속 게릴라들은 이날 새벽 이라크 국경 인근 다글리차 마을 산악 지대에서 습격을 감행, 터키군 병사 16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했다고 터키군 소식통이 전했다. 아울러 이날 충돌로 10여명의 터키군이 실종됐으며 터키군도 PKK 근거지에 보복 포격을 실시,PKK 반군 23명이 숨졌다고 터키 군 소식통이 밝혔다. 레젭 타입 에르도안 터키 총리는 이날 오후 8시 군 고위 관계자와 각료들이 참석하는 긴급 대책 회의를 열었다. 터키 군은 습격을 당한 뒤 보복 조치로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 마을에 15발의 포격을 가했으며, 국경 인근에도 병력을 추가로 투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라크 군 관계자는 터키군이 이날 오전 7시(현지시간)께 터키와의 국경에서 30㎞ 가량 떨어진 아마디야 지역에 집중적인 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춘규기자 taein@seoul.co.kr
  • 친노 3인방 손·정 동시포격

    친노 3인방 손·정 동시포격

    대통합민주신당은 13일 대구 산격2동 컨벤션센터에서 세번째 정책 토론회를 가졌다.5차례로 예정된 릴레이 토론회가 중반을 넘어서면서 각 후보간의 공세는 크게 네가지의 패턴을 보이고 있다. ●손학규 경기도지사때 업적 직격탄 예비경선에서 초박빙의 1위를 한 손 후보를 겨냥한 경쟁 후보들의 공격 포인트가 달라졌다. 한나라당 전력을 문제삼는 정체성 논란에서 보건복지부장관·경기도지사 시절 업적과 대선 공약에 대한 비판으로 바뀌었다. 정동영 후보는 2차 토론회에서 “경기도지사 시절 축제 경비는 3배로 늘고 취업 지원비는 오히려 줄었다.”고 꼬집었다. 이해찬 후보는 2차 토론회에 이어 이날도 “영어마을은 관광지”라고 꼬집었고,“경기도 학교용지부담금이 9000억원 미납돼 있다. 교육 대통령 되겠다면서 학교용지부담은 왜 한푼도 안냈냐.”고 직격탄도 날렸다. ●‘정동영 개성공단도 과대포장´ 지적 경선 초반에는 손 후보에 대한 집중 포화가 주를 이뤘다면 중반으로 가면서 정 후보에 대한 친노(親盧) 주자의 비판 수위가 높아졌다.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에서 요직을 두루 거친 정 후보가 탈당 후 ‘비노(非盧)’ 주자로 평가받는 것에 대한 불만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개성공단과 같은 ‘공’은 챙기고 있다는 점도 친노 주자들을 자극하고 있다. 유 후보는 “개성공단을 혼자 한 것처럼 말하는 것은 과대광고”라고 깎아내렸다. 부드러운 이미지를 내세우는 한 후보의 공격 수위도 상당하다. 그는 첫 토론회에서 정 후보의 제2의 개성공단 건설 정책에 대해 “공약을 부풀린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어 이날 토론회에서는 그는 “뻥치는 후보 찍고 빵되지 말자라는 말이 있다.”면서 “교육 공약이 제 공약과 맥이 통하지만 예산은 공허하다.”고 날을 세웠다. ●노(盧)를 둘러싼 뚜렷한 대립구도 ‘반노(反盧)’로 확실히 입장 정리를 한 손 후보가 청와대와 각을 세우는 모습도 토론회 곳곳에서 포착됐다. 손 후보는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대선용이라면 사양하겠다.‘노땡큐’다.”라고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그는 통일·외교 분야 토론회에서 “나는 남북 회담은 임기가 하루가 남았어도 하라고 했다. 그럼에도 ‘노땡큐’라고 말한 것은 노 대통령이 더이상 대선에 관여하지 말라는 최강의 의사 표현”이라고 물러서지 않았다. 지난 11일 토론회에서는 ‘신정아-변양균 파문’을 언급,“(대통령이)깜도 안되는 얘기라고 강하게 부정했는데 그게 뒤집어졌다.”고 지적했다. ●유풍(柳風)? 제2의 홍준표? 톡톡 튀는 후보는 단연 유 후보다. 다른 후보들의 공약이 가진 허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한나라당 경선 당시 이명박·박근혜 후보에게 직공을 날리면서 토론회 흥행에 일조한 홍준표 의원을 연상시킨다. 토론회 마무리 발언에서 “선거인단에 가입해달라.1588-1219번이다.”라고 말하며 홍보에 열 올리는 후보들과 차별화를 꾀했다. 그가 ‘유풍(柳風)’을 일으킬 수 있을지 아니면 토론회의 감초 역할로 그친 ‘제2의 홍준표’가 될지 지켜보는 것도 통합민주당 토론회를 재미 있게 보는 방법이다. 대구 나길회 박창규기자 kkirina@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35) 명과 후금의 정세 Ⅲ

    [병자호란 다시 읽기] (35) 명과 후금의 정세 Ⅲ

    1626년(인조4, 천계6) 1월23일 누르하치는 영원성으로 들이닥쳤다. 그가 이끄는 병력은 20만이라는 설도 있고,13만이라는 설도 있다. 어쨌든 누르하치의 대병력이 나타나자 영원성의 전면에 머물던 명의 관민(官民)들은 경악했다. 대릉하(大凌河), 소릉하(小凌河), 행산(杏山), 탑산(塔山) 등지의 명군 지휘관들은 가옥과 곡식을 불태우고 도주했다. ●영원대첩(寧遠大捷)의 실상 누르하치는 영원성에 대한 공격에 앞서 자신이 데리고 온 한인(漢人) 포로를 풀어 성안으로 들여보냈다. 그를 통해 누르하치는 원숭환에게 항복할 것을 요구했다.“우리는 20만의 대군이다. 성은 분명히 함락될 것이다. 여러 관인들이 항복한다면 높은 관작을 주겠다.”고 했다. 원숭환의 회답은 간단했다.“그대는 무슨 까닭으로 갑자기 공격해 왔는가? 나는 성을 사수할 것이다.” 1월23일, 누르하치는 공격을 명령했다. 후금이 자랑하는 철기(鐵騎)의 돌격이 시작되었다. 방패를 손에 쥔 경보병(輕步兵)들을 비롯하여 후금군 병사들이 성을 향해 개미 떼처럼 몰려들었다.20만이라고 큰 소리치는 대병력이었다. 영원성의 원숭환 병력은 대략 1만 정도에 불과했다. 중과부적(衆寡不敵)이었다. 병력 수만 보면 승패는 이미 끝난 셈이었다. 성으로부터 홍이포의 포격이 시작되었다. 사격은 정확했다. 포탄은 벽력같은 굉음을 내며 돌격해 오는 누르하치 병사들의 대열 중간으로 떨어졌다.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성벽을 기어오르던 병사들도 쏟아지는 화살 앞에 나가 떨어졌다. 후금군의 사상자가 속출했다. 1월24일, 누르하치는 전차(電車)를 투입해 다시 총공격에 나섰다. 포격을 피하기 위해 참호를 파야 했지만 날은 춥고 땅은 꽁꽁 얼어 있었다. 다음날에도 후금군은 희생을 무릅쓰고 돌격을 계속했지만 성과가 없었다. 누르하치는 흥분했다. 그는 병사들의 선봉에 서서 전투를 독려했다. 홍이포의 포탄은 누르하치라고 해서 피해가지는 않았다. 굉음이 들리는가 싶더니 누르하치는 부상을 입고 쓰러졌다. 스물 다섯부터 전장을 주유했던 누르하치였다. 그동안 누르하치는 명군보다 몇 배나 많은 병력을 집중시키는 방식으로 연전연승했다. 거기에 철기의 기동력이 더해지면서 명의 오합지졸들은 후금군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1619년 사르후 전이 그러했고, 이후 줄곧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달랐다. 홍이포의 가공할 위력 앞에서는 후금군의 신속한 기동과 병력의 집중 전략이 통하지 않았다. 더욱이 원숭환은 그동안 상대했던 명군 지휘관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인물이었다. 그 스스로 영원성을 점찍어 성벽을 수축하고 군량을 비축해온 ‘준비된 지휘관’이었다. 그는 전투가 시작되기 전, 여러 장수들과 혈서를 써서 수성(守城)을 맹세했다. 원숭환의 탁월한 영도 아래 만계(滿桂), 조대수(祖大壽) 등 부하 장수들도 선방했다. 연이은 공격에도 함락되지 않자 누르하치는 병력을 거둬 심양으로 철수 길에 올랐다. 청실록에서는 유격(遊擊) 2명, 비어(備禦) 2명이 전사하고 500명의 병사들이 죽었다고 적었다. 영원성의 승리가 남긴 영향은 컸다. 이후 후금은 함부로 산해관을 넘보지 못했다.1641년(崇禎 14) 홍승주(洪承疇)가 송산과 행산전투에서 무너질 때까지 산해관 앞의 영원을 거쳐 금주(錦州)에 이르는 요새와 성채들은 후금의 서진(西進)을 차단했다. ●전투 부상 후유증으로 누르하치 사망 1626년 8월, 누르하치는 영원성에서 입은 부상의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윽고 후금의 버일러(貝勒)들은 홍타이지(皇太極)를 새로운 한(汗)으로 옹립했다. 그는 누르하치의 여덟번째 아들이었다. 우여곡절이 없지 않았지만 여덟 번째 아들이 최고 권력자로 즉위했다는 사실 자체가 명이나 조선의 눈으로 보면 이채로운 것이었다. 무조건 장자가 계승하는 관행으로 보면 말이다. 홍타이지(1592~1643)는 잘 알려진 것처럼 훗날 제위에 올라 태종(太宗)이 되고, 병자호란을 일으켜 인조에게서 치욕적인 항복을 이끌어냈던 인물이다. 그의 모친은 몽골족 여자였다. 누르하치가 1615년 황(黃), 홍(紅), 남(藍), 백(白) 등 사기(四旗)를 확대하여 팔기(八旗)를 창설했을 때, 스물 두 살의 홍타이지는 정백기(正白旗)를 관할하는 버일러가 되었다. 그는 이 무렵부터 다이샨(代善), 아민(阿敏), 망굴타이(莽古爾泰) 등 그의 형들과 더불어 ‘사대 버일러(四大貝勒)’로 불리면서 정무에 공동으로 참여했다. 홍타이지는 누르하치를 수행하여 전장을 누비면서 탁월한 전공(戰功)을 쌓았다. 특히 1619년 사르후 전투에서 그가 세운 전공은 혁혁하여 누르하치는 ‘내 아들 홍타이지는 사람들이 의지하기를 인체로 치면 마치 눈과 같은 존재’라고 찬양했다. 홍타이지는 무략(武略)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여진족의 지도자로서는 드물게 한문에도 능통했다. 홍타이지가 개인적으로 탁월한 인물이고, 추대에 의해 한으로 즉위했지만 즉위 직후 그의 위상은 보잘것이 없었다. 일견 만장일치에 의해 옹립이 이루어진 것처럼 보였지만 속사정은 달랐다. 즉위 직후 당장 그의 사촌형 아민이 삐딱하게 나왔다. 아민은, 홍타이지를 한으로 인정하지만 자신은 소속 기인(旗人)들을 이끌고 독립하겠다고 통보했다. 홍타이지는 긴장했다. 아민의 독립을 허락하면 나머지 각 기들도 전부 이탈하려 들 것이고, 그럴 경우 후금의 연맹 조직이 붕괴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즉위 직후 그는 아민을 설득하는 데 진땀을 흘려야 했다. ●권력강화를 위한 홍타이지의 노력 아민을 겨우 설득했지만 홍타이지의 앞길은 첩첩산중이었다. 누르하치 시대 만주족은 분권(分權), 합의제(合議制)에 기초한 전통적인 부족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누르하치의 권력이 강화될수록 각 버일러들은 자신의 권력이 왜소해지지 않을까 두려워했고, 당연히 누르하치를 견제하려 들었다. 부족제의 전통이 강한 상황에서 홍타이지는 더욱이 서열상 사대 버일러 가운데 맨 꼴찌였다. 나머지 버일러들이 누르하치의 후계자로서 막내인 홍타이지를 옹립한 것은 이유가 있었다. 한의 권력을 억제하고 전통적인 부족제 본래의 통치체제로 돌아가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즉위 직후 홍타이지는 백관들로부터 조하(朝賀)를 받을 때 세 명의 형들과 나란히 앉아 남면(南面)했고, 제례(祭禮)를 거행할 때도 그들과 동렬(同列)에 섰다. 그것은 사실상 공동 집정이었다. 홍타이지는 이름만 한일 뿐 실제 가지고 있는 권력 면에서는 세 명의 버일러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홍타이지는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나섰다. 그 과정에서 그는 한인(漢人)과 몽골인들에게 주목했다. 당시 후금 사회에는 많은 한인과 몽골인들이 있었다. 정복 과정에서 포로로 획득하거나 귀순해 온 사람들이었다. 누르하치는 한인들을 좋게 봐주지 않았다. 그들을 복속시키려고 위해 탄압을 일삼았다. 만주인들이 그들에게 약탈을 자행해도 그다지 문제삼지 않았다. 자연히 만주인들과 한인들 사이에 갈등이 불거졌다. 한인들은 침학을 피해 도망치는 것은 물론, 만주인 관인들을 암살하거나 우물에 독을 풀기도 했다. 무리를 지어 반란을 일으켰다. 홍타이지는 한인들을 안정시키기 위해 정책을 바꾸었다. 만주인 귀족이나 관원들이 한인들을 함부로 약탈하는 것을 금지했다. 한인과 만주인들을 분리시켰다. 한인들의 거주 지역에 만주인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한인 관리들을 시켜 그들을 통제하도록 했다. 능력 있는 한인들을 발탁하여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 중앙집권 체제를 구축하려 했다. 홍타이지의 포용정책에 힘입어 많은 한인들이 관직에 진출했다. 한인 관료들의 경륜과 지식을 활용할 수 있게 됨으로써 홍타이지의 권력은 강화되었다. 1627년 무렵, 홍타이지는 산해관을 향한 서진을 잠시 멈추고 내실을 다지기 위해 힘썼다. 동시에 배후의 위협을 제거하려고 시도했다. 그것은 조선에게 위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어떻게 지내십니까] 베트남에 5년 억류 이대용 前 주월공사

    [어떻게 지내십니까] 베트남에 5년 억류 이대용 前 주월공사

    한국인 23명을 납치한 탈레반 세력의 인질극이 장기화하고 있다. 이미 2명이 희생된 가운데 여성 피랍자 일부가 가까스로 풀려났으나, 나머지 인질의 석방은 아직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온국민이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낭보가 들려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가운데 이대용(83) 전 주월공사를 만났다. 그는 월남 패망 후 공산 베트남 정권에 만 5년간 억류됐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제3국에서의 ‘최장기 인질’이었다. 그로부터 아프간 인질들을 구해 낼 묘책과 근황을 들어봤다. ●“그들도 탈레반이었다.” 월남이 사실상 패망한 1975년 4월30일. 이 주월 경제공사는 운명처럼 대사관 직원과 교민을 본국으로 안전 귀환시키는 철수 본부장직을 맡게 됐다. 김영관 당시 주베트남 대사 등 대부분의 공관원과 교민들이 이미 사이공을 떠난 뒤였다. 사이공 공항까지 북베트남군의 포격을 받는 위기일발 상황이었다. 한 명이라도 더 안전하게 귀국시키려 안간힘을 쓰다 베트남 정보공작특별경찰조직인 안녕내정국에 체포됐다. 그는 “생각해 보니 그들은 아프간에서 무고한 외국인들을 납치·감금하는 탈레반과 다름 없었다.”고 회상했다. 치화 형무소에 수감된 그에게 외교관의 치외법권을 규정한 빈협정은 한낱 휴지조각이었다.1평도 안되는 독방에서 10개월 동안 햇빛 한번 못 보고 지낼 때도 있었다. 체중이 78㎏에서 42㎏으로 줄어들 정도로 참기 어려운 고통에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 대목에서 이 전 공사는 “아프간 한인 인질들이 기습적으로 납치되는 바람에 충격이 클 것”이라면서 “국가가 구출할 것이라고 믿고 침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말 견디기 어려운 건 목숨을 담보로 끊임없이 강요하는 사상전향 요구였다. 그는 공산 베트남 측의 ‘가이따우’(인간개조) 공작에 꿋꿋이 버텼다.‘극한 상황에서 강요에 의한 거짓 전향은 무죄’임을 나중에야 알았다. 물론 이를 알았더라도 전향서를 쓰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납치세력들로부터 이슬람교로 개종 압박을 받고 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한인 피랍자들에게 이렇게 충고했다.“개종하는 척이라도 하며, 생명을 보전하는 게 우선”이라고. 이 전 공사와 서병호·안희완 두 영사가 억류되자 본국에서도 비상이 걸렸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중앙정보부와 외교 공관망을 총동원해 석방교섭을 펴도록 독려했다. 하지만 베트남과 외교관계가 단절된 데다 냉전하의 남북관계가 큰 걸림돌이 됐다. 북한 김일성 주석이 베트남 통일후 ‘남조선 해방´을 부르짖고 있는 가운데 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휘하는 노동당 제3호 청사가 북송 공작에 뛰어든 것이다. ●석방 교섭, 그때와 지금 78년 인도 뉴델리에서 남북한과 베트남간 비밀 3자회담이 열렸지만, 돌파구는 열리지 않았다. 북한이 이 전 공사 등의 북송을 최대치 목표로, 여의치 않으면 남한내 수감 간첩과의 교환을 추진하려 한 까닭이었다. 이 전 공사는 “탈레반이 피랍자와 탈레반 죄수들을 맞교환하려는 것과 너무 유사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당시 북측은 “중남미 테러세력들도 자국내 미 외교관들을 인질로 잡고 수감중인 도시게릴라들과 맞교환을 요구한다.”고 억지 사례를 들었다.“국제법의 보호를 받는 외교관과 간첩을 바꾸는 건 어불성설”이란 남측 주장에 대한 대응이었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영원한 적도, 우방도 없다.’는 금언과 함께 석방의 전기는 왔다. 베트남이 미제 및 소련제 무기 등 막강한 화력을 바탕으로 캄보디아를 침공하자 위협을 느낀 중국이 견제에 나서면서다. 중국과 입장을 같이한 북한도 베트남에 캄보디아 철수를 요구하며 틈이 벌어졌다. 이때 한국정부는 거상 아이젠버그를 활용해 석방교섭을 성공시켰다. 그는 베트남의 외자유치를 도우며 커미션을 챙기던 유대계 미국인이었다. 물론 이는 이 공사가 생지옥 같은 긴 수감생활을 견뎠기에 가능했다. 그 이면에는 끊임없이 비밀 루트를 개척해 억류 외교관들과 접촉선을 유지하려 한 한국정부의 노력도 주효했다. 부패한 베트남 관리들을 구워삶을 수 있었기에 가능했을 일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그는 탈레반과의 공식 접촉 못지않게 다양한 비공식 통로를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아프간뿐만 아니라) 파키스탄·사우디 등의 이슬람기구와 단체를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필요하다면 장사꾼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요즘 베트남에도 현지 공장이 있는 한 기업체의 이사로 있다.(주)선진의 장학재단 고문격으로 일선에선 한발 비켜나 있다. 그는 베트남식 개혁·개방 노선인 도이모이 정책과 관련,“86년 제6차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웬반린이 서기장으로 취임하면서 반세기 동안 외세 배격을 부르짖던 원로급들을 예우하면서 은퇴시킨 것은 사실상의 쿠데타”라고도 했다. 반면 북한의 개혁·개방에 대해선 얼마간 비관적 전망을 했다.“주체사상을 포기, 개혁·개방하면 체제가 무너질 판인데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북한의 웬반린’이 나올 수 있겠느냐는 반문이었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그는 누구인가 1925년 황해도 금천에서 태어난 이대용 전 주월 공사는 고향의 인민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하지만 김구 선생을 비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반동으로 몰리자 목숨을 걸고 월남했다. 이후 육사 7기로 임관한 뒤 한국전쟁을 맞아 몇 차례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 유엔군 참전으로 북진이 시작된 이후엔 압록강에 맨 먼저 손을 담근 제6사단 7연대 1중대장으로 활약했다. 63년 주베트남 대사관 무관으로 파견되면서 베트남과의 굴곡 많은 인연이 시작된다. 소장으로 예편한 그는 67년 베트남 대선서 미 육군지휘참모대학에서 함께 수학한 웬 반 티우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그 이듬해부터 주베트남 대사관 정무공사로 4년간 근무한 것이다.73년 다시 주베트남대사관 부공관장격인 경제공사로 부임해 베트남과의 질긴 인연을 확인했지만,75년 베트남이 공산화된 직후 체포돼 사이공의 치화형무소에서 5년간 옥고를 치렀다. 이 과정에서 베트남 특별경찰과 사이공의 북한대사관 정보원들에 의해 전향과 귀순을 강요받았으나 끝내 거부했다. 이때 나중에 ‘서울 불바다’ 발언으로 유명해진 박영수 전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부국장과도 악연을 맺었다. 박 전 부국장은 억류 중인 그에게 투항을 강요했던 북한 대사관의 정보원이었다. 80년 4월12일 베트남서 풀려난 이 전 공사는 화재보험협회 이사장과 생명보험협회 회장 등을 지냈다.99∼2003년 육사총동창회장과 명예회장을 역임했다.96년 한·베트남친선협회 회장을 맡아 베트남과 이어진 악연의 고리를 끊었다. ■즈엉 찐 특 前 주한 베트남 대사와의 인연 이대용 전 주월공사가 베트남 억류 후유증을 털어내고 있던 2002년 초 어느 날. 생지옥 같았던 수감생활의 악몽을 되살릴 일이 생겼다. 그를 치화 형무소로 밀어넣은 장본인 중의 한 명이 서울에 온다는 소식이었다. 그것도 주한 베트남 대사로. 즈엉 찐 특 제3대 주한 대사.1975년 월남 패망 당시 베트남의 특별경찰조직인 안녕내정국 요원으로서 이 공사를 신문했던 인물이었다. 이 전 공사는 한국말이 능통하고 얼굴이 유난히 하얀 그를 ‘튀기’라는 별명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이 전 공사는 걸핏하면 “총살하겠다.”고 위협하던 그를 떠올리며 몸서리쳤다.“만나면 죽이고 싶다.”는 게 당시의 솔직한 심경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특 대사가 이 전 공사가 회장을 역임했던 서울남서로타리클럽의 조찬특강 연사로 나오면서 극적인 재회를 하게 된다.27년 만에 만난 이 전 공사에게 특 대사는 “(신문을 받을 때)‘국제관계에 영원한 적도, 우방도 없다.’고 하셨는데, 참으로 선견지명이었다.”고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이미 한-베트남 관계가 북한-베트남 관계보다 더 밀접하게 됐으므로 원한을 누그러뜨리려는 공치사만은 아니었다. 이 전 공사도 “양국이 철천지 원수였던 당시 각자 자기 나라를 위해 충성했을 뿐, 개인적 원한은 없었던 게 아닌가.”라고 화답했다. 이후 두 사람은 평생지기처럼 지내며 서로를 돕는 사이가 되었다. 구본영 논설위원
  • 레바논군·민병대 교전 ‘내전’ 양상

    레바논군과 팔레스타인 민병대간의 교전이 내전 양상으로 확대되고 있다. 20일(이하 현지시간)에 이어 21일에도 레바논 북부 트리폴리에서는 시가전이 벌어지는 등 교전이 이어졌다. 레바논군은 탱크 등 중화기까지 동원해 대대적인 민병대 소탕 작전을 벌이고 있다. CNN방송 인터넷판은 20일에만 양측의 교전으로 레바논군 27명, 팔레스타인 민병대 15명 등 42명이 숨지고 39명이 부상했다고 전했다.BBC는 사망자가 50명이 넘는다고 전했다. 레바논군이 21일 팔레스타인 난민 4만명이 거주하는 나흐르 알 바리드 난민촌에 탱크 포격을 가해 최소 9명이 숨지는 참사도 발생했다. 이번 사건에 개입된 팔레스타인 민병대는 친시리아 계열의 파타당과 연계된 ‘파타 알 이슬람’으로 드러났다.레바논군과 팔레스타인 민병조직간의 충돌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함에 따라 팔레스타인 난민이 레바논의 정정불안을 가중시키는 세력으로 뜨고 있다. 트리폴리는 베이루트에서 북쪽으로 80㎞ 떨어진 지역으로 인근에 팔레스타인 난민촌이 있다. 레바논군이 은행강도 용의자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민병대와 충돌했다. 레바논 당국은 트리폴리 남동쪽 마을에서 전날 12만 5000달러의 현금 강탈 사건이 발생한 뒤 파타 알 이슬람의 소행으로 보고 검거 작전에 나섰다. 레바논에는 현재 12개의 팔레스타인 난민촌이 있으며 모두 35만명 이상이 거주하고 있다. 난민들은 자위 수단으로 민병대를 조직, 치안을 유지하고 있으며 난민촌은 사실상 치외법권지대로 존재하고 있다. 레바논군이 전체 팔레스타인 난민촌의 무장조직을 상대로 소탕 작전을 전개한다면 자칫 1970∼80년대의 레바논 내전이 재연될 가능성도 커지게 된다. 레바논 내부의 정파간 대립도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책꽂이]

    ●레닌그라드의 성모 마리아(데브라 딘 지음, 송정은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 페트로 파블로프스키 요새가 바라다 보이는 네바강변에 줄지어 선 웅장한 에르미타주 미술관.1941년 나치의 침공으로 큰 위기를 맞았다. 독일군이 진격하자 미술관 직원들은 그림과 조각 등을 나무상자에 포장해 우랄 지방으로 보냈다. 잇단 포격 속에서도 미술관 직원들은 900일 동안 미술관에서 생활하며 문화재를 지켰다. 배가 고파 액자를 붙이는 풀인 아마인유를 끓여 젤리를 만들어 먹으면서도 그들은 미술관을 떠나지 않았다.2000여명의 직원 가운데 40여명이 이곳에서 굶어 죽었다. 나치 치하 900일 동안 에르미타주 미술관을 지킨 한 여성의 삶을 다룬 소설.1만원.●앙구스(오를란두 파에스 필료 지음, 송필환 등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신의 사명을 받은 스코틀랜드 앙구스 맥라클란 가문의 전사들이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 역사판타지.9세기 바이킹의 유럽 진출,11세기부터 수차례에 걸쳐 진행된 십자군 전쟁 등이 배경이다. 앙구스 가문의 시조 앙구스 1세의 탄생과 활약을 그린 1권 ‘위대한 신화의 출현’. 가문의 성검을 들고 십자군 전쟁에 참가한 앙구스 후손들의 영웅담을 그린 2권 ‘타오르는 붉은 십자가’가 번역돼 나왔다.2009년까지 7권으로 완간될 예정. 각권 1만원.●북비(하용준 지음, 글누림 펴냄) 조선시대 사도세자를 호위하던 무관 이석문을 주인공으로 한 대하역사소설.‘북비’(北扉)는 북쪽으로 난 여닫이 외문짝이라는 뜻. 경북 성주 한개마을에서 태어난 이석문의 생가는 ‘북비고택’으로 불린다. 영조의 정치적 비호 아래 있는 노론세력과 사도세자를 감싸고 있는 소론세력 등이 등장한다. 조선 전통의 심신수련법, 시골장터와 주막풍경, 말(馬)부리는 법, 군관들의 녹봉 수령과정, 궁녀 선발과정 등 시대상이 잘 반영돼 있다.15권 중 이번에 세권이 나왔다. 각권 9800원.●올리버 트위스트(찰스 디킨즈 지음, 윤혜준 옮김, 창비 펴냄)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의 장편소설. 영국 포츠머스에서 태어나 의회 출입기자를 거쳐 작가로 입문한 작가는 ‘피크윅 문서’ ‘니콜러스 니클비’ ‘막내 도릿’ 등의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주인공 올리버는 고아원을 탈출해 무작정 런던으로 향한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현실은 어둡고 차가운 뒷골목. 소매치기 무리에 흘러들어간 올리버는 도둑으로 몰리지만 누명을 벗고, 우연히 알게 된 신사의 호의로 보살핌을 받는다. 그러나 다시 소매치기 일당에게 납치를 당한다. 올리버의 모험과 역경, 뒷골목의 음모와 배신 이야기. 전2권 각권 8000원.●어느 멋진 순간(피터 메일 지음, 노지양 옮김, 꽃삽 펴냄) 와인을 소재로 한 본격 문학작품. 최고급 와인으로 꼽히는 ‘부티크 와인’ 시음회, 고전적 와인 양조법인 피자주 방식,9·10월 포도를 수확해 담근 방당주, 보르도산 적포도주 클라레, 와인저장고 캬브 등 흥미진진한 프랑스 와인의 세계가 펼쳐진다.1만원.
  • 盧 “임기 끝나도 언론개혁 계속”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8월말 한 모임에서 “참여정부 집권으로 사회 각 분야에서 특권이 없어졌지만 여전히 특권을 행사하는 집단이 남아 있다.”면서 “남을 한대 때려놓고선 ‘왜 때립니까.’ 항의하면 ‘어따 대고 대꾸야.’하는 데가 딱 한군데 있는데, 바로 우리나라의 ‘정치언론들’”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은 지난 8월27일 오후 청와대에서 가진 광주 전남지역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 회원 초청 다과회에서 일부 언론의 행태를 ‘정치언론’이라고 규정했다. 노 대통령은 “언론이 선진국 수준이 되도록 지금도 열심히 모색하고 있고, 또 임기 끝나고도 손놓지 않을 것”이라며 “마치 80년대 저항하던 시대에 하던 심정으로 하고 있는 것이 한가지 있다.”며 ‘정치언론’에 대한 개혁 의지를 표명했다.노 대통령은 또 “지난번 대선 때는 우리가 그 엄청난 포격에도 견뎌냈는데 제가 지금 그걸 다시 끌고 나가볼까 한다.”면서 “기회를 놓쳤는지 아니면 그때와 같은 동력과 영감이 없는지, 잘 못하고 있지만 지금 머리를 짜내고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을 하는 동안에도 ‘386 세대’와 ‘노사모’가 우리 사회에서 박해를 받고 있다.”면서 “우리가 힘이 없고 미디어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노 대통령은 386세대에 대해 “87년 6월 항쟁을 조직하고 싸우고 성공해낸 세대의 주류를 흔히들 386이라고 한다.”면서 “우리나라에서 교묘하게 국민들을 분열시켜 기득권을 유지해온 사람들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바로 ‘386’”이라고 평가했다.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유도탄 사령부 오늘 창설

    북한의 장사정포와 단거리미사일 위협에 대응할 유도탄사령부가 28일 중부지역에 정식 창설된다. 유도탄사령부는 적의 공격 움직임을 사전에 탐지, 적의 발사시설을 선제 타격하는 개념이다. 육군은 27일 “기존 유도탄 부대들을 통합해 적의 위협에 효율적으로 대응키 위해 유도탄사령부를 창설한다.”고 밝혔다. 합동참모본부의 지휘를 받게 되며, 소장급 장성이 사령관을 맡게 될 것으로 전해졌다. 유도탄사령부는 북한의 240㎜ 방사포(사정거리 60㎞)와 170㎜ 자주포(54㎞), 지대지(地對地)유도탄, 스커드미사일 등의 기지를 격파하기 위한 우리 군 포병의 핵심장비인 다연장로켓(MLRS)과 에이테킴스(ATACMS) 지대지 미사일 등의 포병전력을 총괄 지휘하게 된다. 유도탄사령부가 창설되면 1개 포병군단과 30여개의 포병여단으로 이뤄진 북한군에 비해 유사시 화력지원 능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육군의 대화력전 수행능력이 크게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북한의 170㎜ 자주포와 240㎜ 방사포 1000여문 가운데 수도권에 위협이 되는 300여문이 동시에 발사될 경우 1시간당 2만 5000여발이 떨어져 서울시 전체 면적의 3분의1가량이 피해를 입는다는 분석이 있다. 군당국은 동굴이나 지하시설에 은닉된 장사정포가 밖으로 나와 구체적인 포격 움직임을 드러내면 240㎜포는 6분 안에,170㎜포는 11분 안에 격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한편 공군은 이날 ‘철매-2’라는 이름의 중거리 지대공(地對空) 유도 미사일 개발에 본격 착수한다고 밝혔다. 방위사업청은 “지난 8년간 969억원을 들여 최근 철매-2의 핵심기술 개발에 성공했다.”며 “2011년까지 4985억원을 추가 투입해 완제품 개발을 완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항공기 격추용 미사일인 철매-2는 사양모델인 기존의 미국산 호크 미사일을 대체, 각 야전부대에 배치된다. 육군의 유도탄사령부가 지대지 미사일을 이용한 선제공격 개념인 반면, 철매-2는 지대공 미사일을 이용한 방어용 개념이다. 철매-2는 호크 미사일에 비해 수직발사 기술 등에서 더 향상된 성능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방사청은 설명했다. 중거리 지대공 유도 미사일은 지상에서 수직으로 발사된 후 다기능 레이더를 이용해 표적을 탐지·추적해 타격하는 것으로 사거리는 40㎞ 안팎이다. 우리 군은 현재 장거리 지대공 유도 미사일로 ‘나이키’를, 단거리는 ‘천마’ 등을 배치해 놓고 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유도탄사령부 10월께 창설

    북한의 장사정포와 단거리 미사일 위협에 대응할 우리 육군의 유도탄사령부가 늦어도 오는 10월에는 창설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16일 “군 구조개혁에 따라 새로 만들기로 했던 육군 유도탄사령부가 9∼10월 사이 중부지역에 창설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유도탄사령부는 적의 미사일을 공중에서 요격하는 미사일방어체제(MD) 개념은 아니고, 적의 공격 움직임을 사전에 신속하게 탐지해 선제공격으로 발사 자체를 무력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유도탄사령부가 창설되면 우리 군은 동굴이나 지하시설에 은닉된 북한의 장사정포가 밖으로 나와 구체적인 포격 움직임을 드러낼 경우 240㎜포는 6분 이내,170㎜포는 11분 이내에 격파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유도탄사령부는 북한의 방사포와 자주포, 지대지 유도탄, 스커드미사일 등의 위협을 겨냥해 우리 군 포병의 핵심장비인 다연장로켓(MLRS)과 에이테킴스(ATACMS) 전술 지대지 미사일, 자주포 등의 포병전력을 총괄 지휘하게 된다. 앞으로 확보될 중·고고도 무인항공기(UAV) 일부도 정밀한 화력지원 능력 확보 차원에서 유도탄사령부에 배치된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헤즈볼라 치열한 포격전

    샬리트(19) 상병의 납치로 촉발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세가 주변국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스라엘 군은 12일 남부 레바논 접경 지대에서 시아파 민병조직인 헤즈볼라 대원들과 치열한 교전을 벌였다. 이날 싸움은 이스라엘 군이 남부 레바논 접경 지역 마을을 포격하고, 헤즈볼라가 로켓을 동원해 보복공격에 나서면서 시작됐다. 헤즈볼라는 교전 과정에서 이스라엘 병사 2명을 납치했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감옥에 수감된 팔레스타인 재소자들을 석방시키기 위해 납치 사건을 벌였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 군은 헤즈볼라가 카추샤 로켓 수십 발을 북부 이스라엘 쪽에 발사하자 레바논 남부 접경지역으로 항공기와 탱크를 투입해 보복공격에 나섰다. 이스라엘 군은 특히 2000년 남부 레바논에서 철수한 이후 처음으로 레바논 영토로 들어가 지상작전을 펼쳤다. 가자지구에서는 이스라엘군이 하마스 지도자 집에 공습을 가해 어린이 7명을 포함해 팔레스타인인이 최소 14명 숨졌다고 AFP 통신이 보도했다. 알자지라방송은 이스라엘 군이 가자 공격에 화학 작용제나 방사성 물질이 포함된 신형 무기를 사용한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바셈 나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보건장관은 “이스라엘 군의 공격으로 사망한 사람들을 보면 숯처럼 까맣게 타 있거나 시신이 많이 훼손돼 있다.”면서 미군과 무기체계를 공유하는 이스라엘 군이 보통 재래식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의심했다.앞서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는 11일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에 납치된 길라드 샬리트 상병과 이스라엘 감옥에 수감돼 있는 팔레스타인 재소자들을 교환 석방하자는 하마스의 요구를 일축하고 가자지구에 대한 추가 공세를 승인했다.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이軍, 팔 민간인 사살

    이스라엘이 자국 병사의 납치에 개입한 모든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에 대한 전면 공격을 선언,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이 4일 오전 6시(현지시간)로 제시한 협상 시한마저 끝나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군사적 긴장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 이스라엘 에후드 올메르트 총리는 이날 “납치된 병사의 석방과 관련해 어떤 협상도 하지 않을 것이며 모든 테러 세력을 공격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이스라엘 외무부는 “조건 없이 석방할 경우 가자에서의 군사작전을 종료할 수 있다.”고 밝혔었다. AP통신은 올메르트 총리가 가자 지구에 대한 공격 지속 명령을 내렸다고 전했다. CNN은 “집권 하마스 정부의 가지 하마드 대변인은 이스라엘 병사와 팔레스타인 수감자의 맞교환을 촉구했다.”고 전했다. 하마드 대변인은 “현재 정부가 석방 협상에 전혀 관여하지 않고 있다.”면서도 “1만여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이스라엘 교도소에 수감된 것은 비극”이라고 표현했다. 지난달 25일 길라드 샬리트(19) 상병을 납치한 ’이슬람군대‘ 등 3개 무장단체는 3일 언론사에 성명을 보내 샬리트 석방조건으로 억류 중인 팔레스타인 수감자 수천명을 석방하라는 ‘최후 통첩’을 보냈다. 이스라엘군은 공습과 포격을 가하며 ‘무조건 석방’을 압박하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서안지구 제닌에서 매복공격용 폭발장치를 설치하던 팔레스타인인 1명을 사살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지상군이 지난달 말 가자지구에 진입한 이후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사살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망한 팔레스타인인은 20세로 함께 있던 다른 2명도 보안군의 총격으로 부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슬람 군대’의 아부 알 무사나 대변인은 이날 “협상은 끝났다. 샬리트 상병의 생존 정보는 더 이상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중동평화 노력 또 물거품 되나

    중동평화 노력 또 물거품 되나

    28일 새벽(현지시간) 탱크를 앞세운 이스라엘군 수천명이 팔레스타인자치정부가 관할하는 가자지구에 전격 진입했다. 이번 군사작전은 지난 25일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에 이스라엘군 길라드 샬리트 상병이 납치된 지 사흘 만에 이뤄졌다. 이스라엘 지상군이 가자지구에 진입한 것은 지난해 8월 이 지역의 유대인 정착촌을 폐쇄하고 군병력과 민간인을 철수시킨 뒤 처음이다. 외교적 해결을 주문해온 국제사회는 이번 사건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면전으로 비화돼 중동평화를 위한 그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올메르트 총리 ‘제한된 작전’ 승인” AFP통신은 이스라엘군이 이날 새벽 가자 남부접경에 인접한 케렘샬롬을 출발, 팔레스타인자치지역 내로 진입했다고 보도했다. 작전에는 각각 2개의 보병연대와 기갑대대가 동원된 것으로 관측된다. AP통신은 팔레스타인 목격자의 말을 인용,“탱크부대의 포격지원을 받으며 진입한 이스라엘 군인들이 라파 시가지 동쪽 2개 지점에서 진지를 구축했다.”고 전했다. 지상군 진입은 이스라엘 전투기가 가자지구 내 교량 3곳과 발전소 1곳을 폭격한 지 수시간만에 이뤄졌다. 폭격으로 가자지구 북부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 전력공급이 중단되고, 남북간 교통소통이 사실상 끊겼다. 익명의 이스라엘군 관계자는 AP통신과 인터뷰에서 “에후드 올메르트 총리가 ‘제한된 작전’을 승인했다.”면서 “이것은 ‘테러의 기반’을 파괴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납치범 “민간인 억류자 살해하겠다” 앞서 하마스측 협상단은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자 “이스라엘의 정통성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합의문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정치적 타협이 아니라 샬리트 상병의 석방”이라고 일축했다. 납치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팔레스타인 무장분파 대중저항위원회(PRC)는 이스라엘군의 공격이 시작된 직후 “최근 요르단강 서안에서 또 다른 유대인 정착민을 납치했다.”며 “(군 진입에 대한 보복으로)이들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했다. PRC는 지난 25일 다른 2개 무장분파 조직원들과 함께 가자지구 분리장벽 밑으로 터널을 파고 잠입한 뒤 이스라엘군 초소를 공격, 병사 2명을 살해하고 샬리트 상병을 납치했다. 이스라엘군은 샬리트 상병이 억류된 장소를 이미 파악했다며 납치조직을 압박했다.AFP통신은 그러나 “과거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에 납치된 이스라엘군 9명이 모두 죽었다.”며 샬리트 상병의 생환 가능성을 낮게 봤다. ●국제사회 ‘외교적 해결’ 압박 이스라엘군의 군사작전은 아랍과 서방세계가 평화적 해결을 위한 외교 노력을 강화하는 가운데 이뤄졌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27일 이스라엘에 “우선 외교적 해결책을 찾으라.”고 권고했다. 프랑스·바티칸도 팔레스타인자치정부 측에 납치된 병사의 송환을 위해 노력할 것을 촉구했다. 반면 아랍연맹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을 막기 위해 유엔이 개입해야 한다며 안보리 소집을 요구했다. 한편 이집트 관리들은 이스라엘 침공시 팔레스타인 난민의 유입을 억제하기 위해 2500명의 추가병력을 가자지구와의 접경지역에 배치했다고 밝혔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부드러운 저음의 가수 안다성 [1]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부드러운 저음의 가수 안다성 [1]

    ‘바닷가에서’ ‘사랑이 메아리칠 때’가 그렇듯 부드러운 저음, 고즈넉한 시를 읊조리는 듯한 분위기의 노래로 먼저 떠올려지는 가수 안다성씨.‘안다성’은 본인 스스로 지은 예명이다. 세계적인 성악가 마리안 앤더슨의 이름에서 착안한 것으로 대중으로부터 부드럽게 불려지고 싶어 ‘앤더슨’과 비슷한 발음,‘안다성’이라 이름지었다. 본명 안영길(安泳吉).31년, 충북 제천 태생. 지금까지 몇 차례 만나오면서 그에게는 늘 변함없는 것 한 가지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약속장소에 항상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다는 점과 늘 흐트러짐 없는 차림새였다는 사실이다. “우리 옛날 가수들은 항상 먼저 와 기다리고 있지 않으면 괜스레 불안하지, 허허….” 그는 말한다.“우리나라 초창기 연극배우 이종철씨 알지? 그 냥반(양반) 꽤나 엄했어요. 분장한 채 대기실 밖에라도 나갈라치면 가차 없이 귀싸대기야. 어떻게 연예인이 무대에 서야 할 얼굴을 함부로 내보이느냐고….” 분장한 얼굴을 함부로 남에게 드러내 보이는 것을 금기시 여기고 살았듯 그 이면에는 일상에서조차 맨 얼굴을 그대로 내보이며 ‘책’잡히고 ‘흉’잡힐 일을 되도록 삼가려 함도 그가 연예인으로 살아오는 동안 몸에 밴 것들이리라. 처음 그가 무대와 연을 맺은 것은 51년, 당시 전쟁으로 인해 임시로 청주에 내려와 있던 ‘신흥대학교(현 경희대)’ 영문학과에 재학 중이었을 때였다. 전쟁은 예외 없이 누구에게나 많은 희생을 강요했다. 그 역시 휴학계를 내고 군예대에 지원했다. 그러고는 군예대 지원의 대가로 받은 쌀 두가마니를 집에 메어다 놓고 그는 홀로 군예대로 향했다. 송달협, 고대원, 유춘산 등의 가수들을 비롯해 7인조 악단과 무용수들, 쇼 단원을 모두 합쳐 봤자 고작 25명이 전부였던 ‘1102 야전공병단’ 소속 군예대는 동부전선 강릉 부근에 배치해 있었다. 군용트럭으로 100여 리 길을 두 시간, 혹은 그 이상씩 달려 이동하는 도중에 포격 세례를 받기도 수차례였고 비포장도로의 흙먼지를 뒤집어 쓰며 천신만고 끝에 공연장에 도착하면 도랑물로 흙투성이만을 겨우 털어낸 채 이내 웃음 띤 모습으로 무대에 나서곤 했다. 예고 없는 무차별 폭격은 공연장에도 예외일 수 없어 공연은 수시로 중단되었다. 말 그대로 목숨을 건 공연이었다. 이 전장에서 그는 2년 9개월 동안 무려 100여 차례의 공연을 치렀다. 목숨을 건 사투의 시간에도 일순간이나마 노래가 공포나 두려움으로부터 얼마나 사람들에게 큰 위안이 되어주는가 하는 사실이 생생하게 현실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직접적인 이때의 경험이 그의 오랜 가수생활 동안 노래에 대한 ‘신념’으로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 쉽사리 짐작되어졌다. 그가 본격적인 가수의 길로 접어들게 된 때는 9·28 수복 이후 서울로 복귀한 대학 3학년 때인 55년. 친구 생일자리에 초대받아 간 곳이 당시 종로의 ‘여정카바레’. 사교춤이 한창 유행하던 무렵 이곳은 풀 멤버 밴드가 있던 일류 카바레로 명성만큼이나 무대 또한 근사했다. 물론 그가 이전에 섰던 야전무대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이때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친구들이 그를 무대로 끌고 올라간 것이다. 이 돌발사태를 제지하던 웨이터와 친구들 간에 실랑이가 벌어지고 이윽고 몸싸움까지 벌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와중에도 무대에 오르자 그는 버릇처럼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노래를 시작했다.‘서울야곡’. 야전무대에서 즐겨 부르던 가수 현인의 노래. 노래가 시작되자 아수라장이던 장내가 일순간 잠잠해졌다. 순간 그는 더욱 긴장했다. 그러나 이내 악기들이 하나 둘씩 자신의 노래를 따라오고 있음을 느꼈다. 그렇게 삼절까지 노래를 마쳤다. 무대에서 내려오자 의외로 악단장이 다가와 명함을 내밀었다. 그리고는 방송국 전속가수 시험에 응시할 것을 제의해왔다. 명함에는 ‘중앙방송국 경음악단장 손석우’라고 적혀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당시 대학생 신분에서 대중가요 가수는 썩 매력적이지 않았죠. 하나 방송국의 전속가수 시험제도라는 것이 묘하게 도전의식을 자극하더군요.” 결국 그는 이듬 해, 노래와 악보 테스트를 거쳐 권혜경 등과 함께 전속가수로 발탁된다. 그리고 몇 달 뒤 비로소 첫 취입할 노래의 악보를 건네받는다. 이 노래가 바로 우리나라 연속방송극 주제가 제1호인 ‘청실홍실’이다. 그는 악보를 훑어내려 가면서 난감해졌다. 노래가 지극히 짧고 단순해 감정을 이입할 부분이 도무지 없는 것이었다. 고민 끝에 그는 작곡자 손석우씨를 찾았다.“선생님, 이 노래는 어떻게 불러야 합니까?” 이에 작곡가 손석우씨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명료했다.“그냥 쉽게 불러요, 동요 부르듯….” (계속) sachilo@empal.com
  • [06일 TV 하이라이트]

    ●인사이드 월드(YTN 오전 10시25분) 영국군의 탱크 사격장은 단순히 탱크의 포격 훈련을 위한 장소로 활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야생 동식물의 낙원으로서 보다 훌륭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관리한다. 국가의 안전을 위해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도, 멸종 위기의 야생 동식물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하는 군인들을 현장에서 만나본다.   ●미디어 바로보기(EBS 오후 8시20분) 5·31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이 시점에서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평가와 함께 대안을 마련해 본다. 이와 관련, 앞으로 지자체와 언론보도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알아본다. 성북동 길상사에서 일 년 반 동안 300여 장의 산사 사진을 찍은 이종승 기자. 길상사의 사진을 통해 산사의 풍경을 들여다본다.   ●사랑과 야망(SBS 오후 9시45분) 갑자기 홍조를 불러들인 어머니는 선희의 다리를 고치고 싶다고 한다. 큰 돈이 드는 일이지만 다리를 고치고 싶었던 선희는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에 눈물을 흘린다. 어느 날, 미자는 태준에게 말도 없이 어머니를 뵈러 집으로 가는데 미자가 왔다는 말에 당장 나가라는 어머니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고향은 지금(MBC 오전 7시10분) 대나무 이슬을 머금고 자란 작설차. 푸르스름한 차의 새순이 이제 막 고개를 내밀고 있는 모습이 아름다운 전남 순천으로 떠나본다. 문어, 가자미 등과 60여명의 해녀들이 직접 건져 올린 미역, 해삼, 멍게 등 싱싱한 자연산 해산물과 만선의 꿈으로 넘실거리는 강원도 고성, 그중에서도 저도어장으로 가본다.   ●소문난 칠공주(KBS2 오후 7시55분) 미칠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현장에 도착한 양팔은 미칠을 보자마자 미칠의 머리채를 휘어 잡아 집으로 끌고 온다. 한편, 덕칠과 송국의 관계에 미심쩍은 느낌을 받게 된 수한은 송국과 함께 술을 마시며 덕칠에 대한 송국의 의중을 떠보고, 술이 오른 송국은 수한의 유도 질문에 실언을 하고 마는데….   ●TV쇼 진품명품(KBS1 오전 11시) 납작하게 생긴 특이한 형태가 그 용도를 더욱 궁금케 하는 도자기의 가치를 알아본다. 한복의 우아한 자태를 완성시키는 노리개. 고급스러움이 느껴지는 옥 장식과 다채로운 색상이 그 가치를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커다란 밀화에서 옛 여인의 품위가 그대로 느껴지는 이 노리개의 진가를 알아본다.
  • [서울의 문화재] (7) 번사창

    [서울의 문화재] (7) 번사창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부지에 기와 건축물이 하나 서 있다. 이 건물이 우리나라 최초의 신식 병기 공장이었던 번사창(飜沙廠)이다. 거푸집에 금속용액을 부어 주조(鑄造)한 용기에 화약을 넣어 폭발시킬 때 천하가 진동하는 소리가 나고 빛은 대낮처럼 밝다는 뜻이다. 구한말 신식 병기 공장…. 포탄 등을 제조하는 곳이다. 지난 21일 번사창을 찾았다. 따뜻한 봄날이었기 때문일까. 번사창은 참 편한 느낌을 주었다. 주변에 있는 연수원의 현대식 건물에서 느낄 수 없는 평온함이 있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번사창 앞 뜰에서 쉬고 있는 직원들도 아마 이 기와 건물이 주는 편안함에 다른 곳을 두고 번사창 앞에 모여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외국인들도 이 기와 건물을 보면 같은 느낌을 받을까?, 아니면 한국사람이어서 좋아하는 걸까.’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강화도조약으로 불안해진 조선 조정 안내판을 읽어보니 번사창은 개화파가 갑신정변을 일으켰던 1884년 지어졌다. 그렇다면 일본에 최초로 문호를 개방한 1876년 강화도조약을 맺고 8년 뒤이다. 분명히 고종황제는 강화도조약을 맺게끔 한 운요호 사건으로 신식무기 도입을 서둘려야만 한다는 걸 느꼈을 것이다. 1875년 강화도에서 조선은 한반도 연안을 측량하는 일본 선박을 먼저 공격했고, 일본은 신식대포를 앞세운 운요호로 강화도에 포격을 가했다. 그리고 불평등 조약이 맺어졌고, 번사창이 만들어졌다. 1984년 전까진 이 건물은 삼청동 무기고로 불렸다. 원래는 단순한 무기 창고 건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1982년 서울시 유형문화재 51호로 지정된 뒤 비가 새는 등 건축물이 심하게 훼손되자 보수공사를 하다 대들보에서 다량의 상량문을 발견했다. 상량문은 준공할 때 건물 준공 시기와 용도 등을 적은 글이다. 이 때 이 건물이 무기 창고가 아닌 병기 생산 공장이었던 사실이 밝혀졌다. 하지만 기록에 따르면 실제로는 신식무기를 만들지 못했다고 한다. 1881년 영선사 김윤식과 유학생 38명은 중국 톈진에 있는 신식무기 공장에서 기술을 배워 번사창에서 이를 만들려고 했지만 워낙 실력이 안 돼 결국 무기를 수입하고 여기서는 고장난 무기를 고치기만 했다고 한다. ●청인들이 건물 지은 셈 또한 이 건물도 사실은 우리 기술로 지은 게 아니라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청나라 공인들이 다수 와서 도와주었다고 한다. 무기공장은 화재 가능성이 있어 목조로 만들 수 없고 벽돌로만 지어야 했다. 하지만 벽돌 건물을 지을 기술도 없었던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의 힘이 얼마나 허약했는지가 이 건물과 관련된 여러 사실에서 나타난다. 문득 ‘번사창 안에 아직도 무기 비슷한 것이라도 있을까.’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문은 닫혀 있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났기 때문에 잠금쇠가 녹슬고 훼손돼 강한 바람이 불면 건물 옆에 있는 문이 열리곤 한단다. 이날도 강한 바람이 불었고 문이 열렸다. 안은 ‘텅’ 비어 있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너무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건물 관리를 맡고 있는 신준수 한국금융연수원 관리부장은 “한여름에도 아주 시원하다.”고 말했다. 번사창은 단층이지만 높이는 보통 건물 3층 높이다. 지붕 위에 또 지붕이 있고 그곳에 창문이 달려 있다. 더운 공기는 위로 올라가고 찬 공기는 밑으로 내려오기 마련. 상승한 더운 공기는 창 밖으로 계속 나가고 건물 안은 시원하다. 이런 면에서 번창사는 건축사적 의미가 있다. 성균관대 윤인섭 건축학과 교수는 “환풍을 위해 지붕을 2중 삼각형으로 만들고 창문을 단 건물 가운데 남아 있는 건물은 번사창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또한 번사창은 조적조 공법으로 만든 구조물이다. 독립문도 같은 방식으로 지어졌다. 조적조란 돌이나 벽돌을 쌓아 벽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번사창은 짙은 회색 벽돌로 짓고 그 위에 기와를 얹었다. 즉, 전통양식에서 서양식인 벽돌 건물로 가는 과도기적 과정이 있는 것이다. 출입문과 창문은 모두 철제이고 14개의 창문엔 모두 쇠창살이 있다. 당시 내부 보호에 힘쓴 흔적이다. 번사창에서 나올 때 갑자기 일본이 독도 근해에 해양조사선을 보내려 하고 정부가 이에 무력으로 대응할 계획이라는 기사가 떠올랐다. 운요호 사건과 흡사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글 사진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해외여행 위험지역 미리 체크 하세요

    해외여행 위험지역 미리 체크 하세요

    외교통상부는 연간 1300만명에 달하는 우리 국민들의 해외여행 안전을 위해 130여개국에서 수집된 정보 즉, 정정불안, 치안상태, 테러위험 등을 토대로 4단계의 여행경보를 내놓고 있다.48개국 60개 지역이 해당된다. 용태영기자 피랍사건을 계기로 눈여겨볼 대목이다. 가장 높은 수준의 조치는 4단계인 ‘여행금지’구역. 전쟁 상태나 마찬가지인 이라크가 유일하다. 지난 2004년 6월 김선일씨 납치·살해사건 이후 금지지역으로 됐다. 입국이 금지되고 입국했다고 하더라도 즉시 대피하고 철수해야 한다. 다음은 3단계인 ‘여행제한’구역. 반군과 동맹연합군의 포격전이 계속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다. 그러나 법적으로 국민들의 여행을 제재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 문제다. 지난 1월 아프간의 최대 위험지역의 하나인 칸다하르에서 국내 종교단체의 예술·문화행사가 열렸다.10대 청소년들까지 참가한 이 행사가 끝날 때까지 우리 대사관 관계자들은 가슴을 졸였다고 한다. 물론 극구 만류했다. 여행의 필요성을 신중하게 검토하라는 취지의 2단계 ‘여행주의’지역의 경우도 당장은 아니라 할지라도 강력사건이나 내란이 일어날 수 있는 전 단계에 있는 곳이다. 현재 19개국 40지역에 이르고,‘신변 안전에 조심하라.’는 1단계 ‘여행유의’국가는 35개국 19지역이다. 여행을 하려는 국가나 지역의 안전 여부와 주의 사항은 외교부홈페이지(www.0404.go.kr)에서 자세히 알 수 있다.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돌아온 승부사 … 5·31에 명운 달렸다

    돌아온 승부사 … 5·31에 명운 달렸다

    ‘정동영 체제’가 출범했다. 열린우리당 ‘2·18 전당대회’는 ‘대주주 정동영(DY)’의 실세 당의장으로서의 화려한 컴백 무대가 됐다. 창당 이후 최악의 지지율 등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지방선거 정국을 돌파할 ‘간판’으로 정 의장을 선택한 것이다. ●지방권력 심판론으로 정국돌파 정동영 체제의 최대 당면 과제는 ‘지방선거 승리’다. 선거 성적표에 따라 정 의장 본인의 대선구도 탈락은 물론 당의 존립마저 어려운 상황으로 몰리게 된다. 대의원들의 정 의장 ‘간택’ 배경엔 초대 의장으로서 17대 총선 승리의 주역,‘승부사 정동영’에 대한 기대가 담겨 있다. 이 때문에 지난 1년 6개월간의 ‘과도체제’에서 벗어나 실세 체제로 당운용의 근본적 변화가 불가피하다. 당의 새 지도체제는 ‘지방선거 관리체제’로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신 몽골기병론’을 내세운 정 의장은 누적된 당의 무기력을 극복하기 위해 ‘속도전’을 현장 정치에 접목할 것으로 보인다. 정 의장이 취임 첫 행보로 한나라당의 본거지인 ‘대구행’을 선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 의장은 19일 대구에서 “10년간 권력을 독점하며 온갖 폐해를 일삼은 지방권력을 심판해야 한다.”고 포문을 열었다. 정 의장은 향후 ‘박근혜-이명박-뉴라이트’ 등 ‘3각 수구연대’ 가능성에 공격 포인트를 맞추면서 한나라당 지방선거의 간판으로 나설 박 대표를 집중 포격할 것 같다. 이런 의미에서 지방선거 선대본부장에는 이번 전대에서 차순위 득표한 김근태(GT) 최고위원이 유력하다. 경선을 거치면서 DY-GT 간의 골도 깊게 패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당체제 정비 차원에서도 두 사람이 당의장-선대위원장의 역할 분담으로 당을 살려야 한다는 공감대가 강하다. ●개혁·평화·미래 3각 연대 전대에서 2,3위를 차지한 ‘김근태-김두관 동맹’의 위력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정 의장 체제의 독주를 절대 간과하지 않겠다는 것이 ‘김-김 동맹군’의 확고한 의지다. 이 때문에 향후 당직 개편에서 ‘초계파 체제’가 출범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사무총장, 대변인 등 핵심 당직을 놓고 계파간 균형을 유지하며, 정 의장의 세력권을 넓혀 가는 ‘2인 3각의 구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정 의장은 당선 직후 민주개혁·평화·미래 세력을 아우르는 ‘3각 대연대’를 천명했다.2명의 지명직 최고위원에 서울시장 유력 후보인 강금실 전 법무장관 등 상징적 인물 영입에 총력전을 펼칠 전망이다. 고건 전 총리와의 ‘선택적 연대’로 수도권과 호남에서의 지지율 1위 탈환을 모색한다는 전략이다. 정 의장은 19일 오후 고 전 총리와 전화통화를 갖고 1주일 내에 만나 지방선거 문제 등을 논의키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의장의 제안에 고 전 총리가 화답하는 형식이었다고 한다. 정 의장은 전·현직 장관급 인사, 대기업 CEO,NGO 지도자 등의 명망가 영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외에도 지방선거 공약을 ‘매개체’로 유기적인 당·정·청 관계 복원에 우선 순위를 놓을 것으로 보인다. 오일만기자 oilman@seoul.co.kr
  • 이·팔 무력충돌 진정 조짐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의 자살폭탄 공격과 이스라엘의 보복 공습으로 최악으로 치닫던 대치 국면에 한가닥 숨통이 트이게 됐다.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은 30일 이스라엘에 대한 로켓 공격을 중단하기로 합의했으며, 이스라엘도 보복 공습을 멈추기로 했다고 AP통신이 팔레스타인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팔레스타인 내무부 관리들은 이슬람 지하드 등 무장단체들이 로켓공격을 중단하기로 합의한 상태라며 이날 중 공식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슬람 지하드 관계자는 지난 2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간에 합의된 비공식 휴전을 지킬 것이라면서도 “이스라엘이 휴전 합의를 먼저 깨면 보복 공격할 권리를 행사할 것”이라는 종전 입장을 확인했다. 이슬람 지하드는 소속 지도자를 이스라엘군이 표적 살해한 데 대한 보복으로 지난 26일 이스라엘에 자폭 공격을 가해 5명이 희생됐고,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연일 공습해 민간인 희생이 속출하고 있다. 30일 오전에도 이스라엘 군은 무장세력의 근거지로 의심되는 가자지구 북부에 포격을 가했지만 인명피해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마무드 아바스 자치정부 수반의 수석 보좌관인 나빌 아부 르데네흐는 미국의 중재로 이뤄진 이스라엘과의 접촉에서 무장세력의 로켓공격 중단을 계기로 최근의 대치 상황을 종식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카이로 연합뉴스
  • “서걱서걱” 억새꽃 축제

    가을 억새와 함께하는 산행코스로 수도권에서 가장 유명한 포천 명성산에서 ‘억새꽃축제’가 8∼9일 이틀 동안 열린다.명성산 등반대회와 함께 인근 산정호수 일대에서는 경기민요 등 전통민속공연, 팝과 재즈 연주 등의 프로그램도 이어진다.8일 오후 8시에는 김세환·신형원·유익종 등이 출연하는 ‘7080콘서트’가 열리고,9일 같은 시간에 억새 달집 태우기 등 이벤트도 열린다. 명성산 주능선 동쪽으로 펼쳐지는 억새 군락은 한국전 당시 포격전으로 울창한 나무가 사라지고 난 자리에 무성하게 생겨났다.정상에 오르면 철원평야와 평야를 가로지르는 한탄강의 유려한 물굽이도 감상할 수 있다.포천 한만교기자mghann@seoul.co.kr
  • [열린세상] 입시제도 개혁,발상의 전환을/이성형 이화여대 교수

    통합형 논술고사를 둘러싼 한바탕의 포격전이 한강을 사이에 두고 있었다. 그렇지, 한국에서 입시는 전쟁처럼 치러지니 포격전이라 해도 무방하리라. 우수한 학생을 변별력 있게 뽑자는 대학의 주장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학당국은 이런 문제제기가 한 대학의 제도변화로 끝나지 않고, 기러기 대형으로 뒤따를 다른 대학들, 나아가 초등·중등 학생들까지도 그 여파의 희생자가 되리라는 점도 고려했어야 했다. 입시를 둘러싼 한국 사회의 경쟁은 이미 한계수위를 넘어섰다. 공교육의 위기에 따른 엄청난 사교육비의 부담은 경제적으로도 서민들의 생활을 옥죄고 있다. 밤 11시까지 입시학원을 전전하면서 파김치가 되어 들어오는 아이들을 바라보면 참으로 기성세대로서 죄지은 듯한 느낌도 받는다. 한 사람이 쓸 에너지는 평생 한정되어 있을 터인데, 어린 시절부터 이렇게 낭비해도 되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한 사람의 장래도 그렇고, 그것의 합인 나라의 장래도 그렇게 밝지만은 않으리란 생각까지 든다. 인구과밀의 우리 사회는 다른 나라에 비해 기회구조가 대단히 제한되어 있다. 그러니 경쟁은 필연적이고, 과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전히 남는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경쟁을 조직하느냐 하는 점일 것이다. 입시제도는 강의 상류에서 경쟁을 격화시켜 하류로 내려 보내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이 걷게 될 인생의 코스는 대학입학과 더불어 대체로 정해진다. 이제 하류의 시작점인 대학교부터 갑자기 과소경쟁의 사회로 이행한다. 선진국 대학생들에 비해 덜 공부해도 큰 문제없이 졸업하고, 적당한 곳에 취업을 한다. 이때부터 한국의 엘리트들은 적당하게 경쟁하고 적당하게 즐긴다. 학자들도 조로(早老) 증후군에 빠져있다.40∼50대에 왕성한 학문 활동을 할 나이이건만, 문제작이나 뛰어난 업적은 선진국들의 학자에 비해 정말 초라하다. 하류에서의 경쟁구조 디자인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연전에 타계한 프랑스의 석학 피에르 부르디외는 ‘국가귀족’이란 책에서 프랑스 학계, 정치·행정, 업계를 장악하고 있는 ‘그랑제콜’(grands ecoles) 시스템을 통렬하게 비판한 바 있다. 위계화되고 서열화된 프랑스 입시제도와 교육제도는 극소수의 특권적인 ‘국가귀족’을 생산할 뿐이지 진정 경쟁력 있는 인력구조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보았다. 프랑스의 고등교육 제도야말로 프랑스 혁명의 이념(평등)을 완벽하게 배신한 제도일 것이다. 그는 대신 미국처럼 매년 학과별 랭킹이 변화하는 경쟁구조로 프랑스 대학교들을 개조할 것을 제안하였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입시제도의 변화보다는 대학교들과 엘리트들이 각성을 해서 하류에서의 경쟁을 재조직해야만 한다. 일류 대학이라면 먼저 대학생들의 수면시간을 대입수험생의 수준으로 줄도록 공부의 양을 늘려야 한다. 양질의 교육이 제공되어야만 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학내에는 공부 스트레스 때문에 상담치료를 받아야 하는 학생들이 득실대야 하고, 시험기간 중에는 스트레스 때문에 떼를 지어 스트리킹하는 학생들도 나올 정도가 되어야만 한다. 일류 대학의 교육이 그렇게 변한다면, 고등학생들도 자신의 능력에 맞는 대학을 선택할 것이고, 사회성원 대다수는 ‘일류’ 대학들을 진정 인정해 줄 것이다. 당연히 대학교 교수와 연구자 사회의 경쟁도 그만큼 치열해질 것이다. 지난 40년간 수없이 입시 제도를 뜯어고쳤지만, 과열경쟁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제야말로 발상의 전환을 할 때가 아닌가. 더 이상 입시 제도를 뒤흔들지 말자. 차라리 대학교육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켜 중·고교 교육을 정상화시키는 방안도 생각해보자. 오히려 미래의 한국을 위한다면 우수한 학생들을 경쟁이 가능한 다수의 대학교에 흩어 하류에서 치열한 경쟁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재조직해야만 한다. 대학교들 사이의 치열한 경쟁이 조직된다면 상류에서의 경쟁도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아갈 것이다. 한국 사회와 미래를 위협하는 것은 대학교 입학 이후의 생태계이다. 서열화된 대학교 체제에서 만들어진 학생들이나 엘리트들의 과소경쟁과, 그로 인한 사회 전체의 경쟁력 저하가 문제인 것이다. 이성형 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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