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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 핵연료공장 폭발/12만 주민 중독 위험/지난 12일 발생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소련 카자흐공화국에서 지난 12일 발생한 핵연료 처리공장 폭발사고로 약 12만명의 주민들이 유독성 가스에 중독됐을지도 모른다고 현지 환경보호 관계자가 29일 밝혔다. 카자흐 동부지역 환경보호위원회 리샤트 아다모프 위원장은 이 공장이 소재한 우스트 카메노고르스크시로부터의 전화인터뷰에서 『이 공장은 도심에 있는 폭탄』이라고 강조한 뒤 지난 27일 6만여명의 이 도시 주민들이 핵연료 처리공장의 폐쇄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고 말했다. 이 공장이 폭발사고를 일으키면서 유독성의 산화 베릴륨 가스를 대기중에 방출했는데 핵발전 및 우주항공산업에서 광범위하게 이용되는 금속성분인 베릴륨에 인간이 노출될 경우 호흡곤란 해소 각혈 등 폐의 부작용을 일으킬 위험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남북공존」으로 체제유지 모색(평양의 변화 이렇게 본다:4)

    ◎비현실적 「대남혁명」 보류,노선전환 꾀할 듯 최근 북한은 대남·대외 관계에서 전례없이 유연한 자세를 보여 북한은 정말 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북한은 남북고위급회담 예비회담에서,회담외적인 문제로 회담자체를 공전시켜오던 종래의 상투적인 태도를 바꿔 본회담 개최에 완전 합의를 하였다. 북한은 서울에서 개최된 1차 본회담에서 과거에는 보기드문 「진지하고 성실한 태도」를 보였고 2차 회담을 평양에서 개최할 것에도 합의했다. 그후 북한은 남한음악인들을 대거 초청하는 한편 북경에서는 남북공동 응원단 구성이 논의되었고,양측 선수들의 여느 때보다 다정한 소식들이 연일 들어오고 있다. 또 북한은 일본의 적극적인 대북한접근을 뜻밖에도 수용해버리는 대외전략 변화를 보였고,미국과의 정부간 접촉 촉진 등 대외관계의 모든 부문에서 유연성을 동시다발적으로 보였다. 폐쇄체제 속에서 제한된 변화만 해오던 북한이 동구를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의 급격한 변화와 함께 이러한 변화의 조짐을 한꺼번에 보이는 것은무슨 까닭인가. 한마디로 말해 그것은 소련·중국 등 북한의 전통적 우방의 동요에 따른 고립의 심화,내부경제의 핍박 등 국가적 난경을 타개하고 「하나의 조선」을 가시적으로 실증시켜,이른바 분단고정화를 추구하는 한·소 수교와 한국의 유엔단독가입 추진의 부당성을 나타내려는 종합적인 처방이라는 것이다. 북한의 그러한 태도가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한 일시적인 방편이라면 북한의 대외적인 상황이 바뀌면 또다시 굳어진 자세로 바뀔 것은 정해진 이치다. 우리의 관심사는 그것이 북한의 대남전략의 근본적인 변화로 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제한적인 북한의 태도 변화조짐에 그러한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한 일이며,그러한 판단을 내리기에는 아직 충분한 증거가 없다. 북한의 1인 독재 체제는 폐쇄사회의 기초와 대남혁명 완성이라는 과업을 가지고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북한을 개방함으로써 기존체제의 기초를 동요시키거나 대남혁명을 공공연하게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대남 적화전략도주변상황이 불리하게 변하면 어쩔 수 없이 일시 보류를 시키거나 크게 수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북한의 변화는 이미 오래 전부터 사회전반에 걸쳐 시작이 되었고,앞으로도 그러한 변화는 지속될 것이라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북한의 변화는 폐쇄사회의 특수한 성격상 급격한 변화를 수용할 수는 없으며,점진적인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이해될 수 있다. 북한에서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들 중 우리에게 관심있는 분야를 몇가지만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점진적인 개방을 통한 변화이다. 북한은 지금 폐쇄와 개방의 기로에 서있지만,개방을 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숙명적인 것이다. 체제와해의 위기를 최소한으로 피해가면서 서방국가들에 경제를 개방시켜,신속한 체제보강을 겨냥하는 것이다. 미·일을 비롯한 서방선진국가들로부터 자본과 기술을 끌어들여 침체된 경제(89년도 2.4% 성장)를 활성화시키지 않고서는 체제의 유지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한국의 성공적인 북방외교로 심화된 북한의 고립을 모면할 길도 없기 때문이다. 북한은 서울올림픽이 끝난 직후 88년 12월 연형묵 총리를 기용하면서 종래의 자력갱생을 앞세운 폐쇄적인 주체경제 스타일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제정책 주력방향을 제시하는가 하면 합영공업부 전자자동화공업위원회 및 도시경영부 등 새로운 경제부서를 증설하는 등의 변화를 보였던 것은 주목할 만한 것이다. 둘째는 북한주민들의 의식구조의 변화다. 세계적 추세인 개혁·개방·자유화·민주화의 영향이 북한사회에 점진적으로 침습됨에 따라 북한주민들이 인권회복과 민주화를 위한 독재권력에 항거하는 의식의 변화를 일으킬 가능성이 증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사노청 국제부위원장 김창영은 당의 지속적인 이데올로기 교육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을 비롯한 젊은 층의 당으로부터의 일탈현상은 점증되고 있다고 솔직하게 인정한 바 있고 로동신문(9월21일)은 「제국주의자들이 썩어빠진 부르주아문화와 생활양식을 퍼뜨려 새세대 청년들을 정신적 불구자로 만들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일본 산케이신문(2월15일)은 도쿄의 관계소식통을 인용,최근 평양시내에서 「민주화요구 데모」가 발생했다는 미확인보도가 나돌고 있다고 했으며 통일일보(3월13일)는 김일성 독재를 타도,「북」과 그에 추종하는 조총련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재일동포 사이에서 처음 표면화되었다고 했다. 이러한 상황은 북한의 중앙집권체제가 한번 흔들리게 되면 주민들의 조직적인 자유화·민주화운동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셋째 북한의 대남전략의 변화이다. 김일성이 생존하는 한 가까운 장래에 북한의 기존 대남전략이 획기적인 변화를 보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공산권의 본질적 변화 및 대한국수교,남북한 국력격차의 확대,한국의 민주화 발전을 통한 정치적 안정과 남북한 군사력의 균형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짐에 따라 북한은 남북평화공존 이외의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앞으로 대남 「인민민주주의혁명」의 기대를 포기하자마자 비현실적인 대남혁명노선을 일단 보류하고 남북공존으로 노선전환을 하게 될 전망이다. 김일성도 그동안남북공존에 반대했었으나 88년 신년사를 통해서 「남북한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고 했으며 9월8일 40주년 9·9절 행사 연설에서는 「통일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공존원칙을 따라야 한다」고 태도를 바꾼 바도 있다. 그러나 북한의 이러한 태도변화는 통일을 외면하고 체제유지를 위한 자기적응이기 때문에 결국 조국의 통일은 그만큼 지연되는 것이다. 한반도의 북쪽에 다른 체제가 공존하는 한 남북한간의 경쟁과 대결은 불가피하게 될 것이며 평화공존의 기초위에서 통일을 성취하는 일은 앞으로 우리 민족의 큰 과제가 될 것이다.〈유석렬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 외언내언

    당나라의 고승이었던 종심(조주고불)에게 어떤 사람이 물었다. 『선사 같은 분에게도 번뇌가 있습니까』 『있지』. 다시 묻는다. 『선사 같은 분도 지옥에 떨어지나요』 『맨먼저 떨어지지』. 『왜 그렇지요』 『내가 먼저 떨어지지 않으면 당신이 떨어졌을 때 곤란하니까』. ◆묻는 사람은 평소에 자비심이 모자랐다. 그에게 그 잘못을 가르치고자 함이었다. 남의 고통을 내 고통으로 알라고 하는. 나는 네가 지옥에 떨어질 것에 대비하여 내가 먼저 가 있겠다지 않느냐면서. 묻는 사람이 여기서 깨단을 한 것인지 못한 것인지는 모른다. 그거야 어쨌든 도의의 근본은 남의 슬픔과 남의 괴로움을 보면서 자신의 슬픔과 자신의 괴로움으로 삼는 마음자리라고 말하여진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사람들은 대체로 『남의 염병이 내고뿔만 못하다』고 여긴다. 그렇게 남의 아픔에는 무관심해진다. 그래서 화재를 당한 사람은 울고불고 허둥대건만 뒷짐지고 불구경을 한다. 『불난 데 풀무질한다』는 속담은 거기서 또 한걸음 더 나간 냉혹한들을 얘기하는 것. 남의 불행을 입에 올리면서 즐기는 축들이다. 지옥에서 조주고불에게 구원을 청해야 할 악덕들이다. ◆불난 데 풀무질한 경우까지는 아니라고 할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엊그제 휴일날 전국의 골프장에 1만여명이 몰려 골프를 즐겼다는 말은 듣기에 여간만 거북한 것이 아니다. 충주호ㆍ남한강에 낚시꾼 몰려들었다는 소식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골프장 드나드는 축은 이 나라 상류층ㆍ지도층이 대부분. 신문사ㆍ방송국에 의연금 내고 사진까지 실렸으니 내 할일 다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수재의 아픔이 가라앉을 때까지만이라도 정녕 참을 수는 없었던 것일까. 그 면면들을 한번 보고 싶어진다. ◆우리 사회의 병폐는 많다. 그중에 끼이는 것이 『내돈 내가 쓰는데…』 『누구 폐를 끼쳤나,내 처신 내 자유인데…』. 염치들을 잊고 있다. 땀 흘리는 수재민ㆍ군인ㆍ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없었을까. 고약한 후안들이다.
  • 우루과이라운드 농산물개방/한국등 수입국피해 참작해야

    ◎아태12국 합의/각국계획서 가트에 곧 제출/섬유부문수입규제는 10년내 철폐 【밴쿠버=정종석특파원】 한국을 비롯한 미국ㆍ일본ㆍ캐나다ㆍ호주ㆍ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6개국등 아ㆍ태지역경제협력회의(APEC)회원국 12개 국가들은 우루과이라운드협상에서 농산물시장개방을 계속 추진하되 한국과 같은 순식량수입 개발도상국의 어려움을 가능한한 참작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지난 11일(현지시간)부터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아시아ㆍ태평양지역 우루과이라운드관련 통상장관회의」(APEC/UR)는 12일 협상의 다수 분야에서 이같이 신축성있게 대응한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이틀간의 회의를 끝냈다. APEC회원국들은 UR협상종료시한인 오는 12월까지 기간이 얼마 남아있지 않기때문에 앞으로 각국의 힘들고 어려운 결단이 요구된다고 밝히고 포괄적ㆍ실질적인 협상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상호협력과 노력을 계속하기로 했다. 또한 역외국가에 대해서도 APEC국가들과 유사한 결의와 기여를 해줄 것을 촉구했다. 부문별로는 농산물분야에서 ▲오는 10월1일까지 각국의 국내보조ㆍ수입제한ㆍ수출보조에 대한 자료를,▲10월15일까지는 각국의 개방계획을 각각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사무국에 제출하기로 했다. 섬유부문의 경우 현재 다자간 섬유협정(MFA)에 따라 양자간 쿼타제에 의해 수입이 규제되고 있는 교역을 10년이내에 GATT로 통합,완전히 자유화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통합방법은 미국이 자국의 섬유총량쿼타 방식을 재검토한다는 입장을 밝힘에 따라 사실상 다수국이 지지하고 있는 현행 다자간 섬유협정상의 규제조치를 점진적으로 철폐해 나가기로 했다.
  • 유리공장 근로자 진폐증 첫 판명

    유리병 제조업체인 신아유리공업사(대표 김영호ㆍ서울 성수동2가 315의71) 배합부에서 13년동안 일해온 조병한씨(65)가 유리공장 종사자로서는 처음으로 진폐증환자로 판명되어 노동부로부터 요양승인을 얻어낸 사실이 8일 밝혀졌다. 또 이 회사 화부인 이계윤씨(50)도 지난달초 진폐증 및 폐암진단을 받고 폐절제수술을 받은 뒤 노동부에 요양신청을 낼 계획이다. 지금까지 노동부는 석탄 및 광업 등 8개 광업근로자에 대해서만 진폐보호 규정을 두어오다 92년부터는 연탄ㆍ시멘트공장,석제품가공,자기제조공장,석면공장,선박 및 자동차용접 등 7개 산업체에 대해서도 진폐보호규정을 적용해 해마다 특수검진을 실시토록할 방침이나 일반제조업체로 분류되어 있는 유리병공장에서 진폐증환자가 발생한 것은 특이한 일이다.
  • 강민창씨 무죄 관련 상고이유서 곧 제출/검찰

    검찰은 박종철군 고문치사은폐조작사건 등의 항소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강민창전치안본부장 등 4명에 대해 선고직후 상고한데 이어 이번주안에 법리 오해와 채증법칙위배를 이유로 대법원에 상고이유서를 제출하기로 했다.
  • 외언내언

    방사선피폭은 일상생활속에서도 이루어진다. 우주로부터 오는 자연방사선은 탄소 14의 형태로 햇볕을 받은 모든 음식물에 들어 있다. 그러니 체내로부터 방사선 피폭을 받게 된다. 흙과 암석에도 물론 방사선은 있다. 그리고 모든 생명의 필수적 원소인 칼륨은 그 일부가 방사선 동위체다. 방사선 그 자체인 라듐원소는 음료수에 들어 있고 이 라듐으로부터 나오는 라돈은 공기속에서 우리가 숨쉴 때마다 폐를 피폭한다. ◆때문에 누구나 연간 80밀리램의 방사선에 쬐고 있다고 말해진다. 그리고 X선 촬영등 의학적 조사량의 연평균치 91밀리램이 있다. 비행기를 탈때에는 더 강한 조사가 이루어진다고 알려져 있는데 미국횡단 비행중 2밀리램이 피폭된다는 조사가 나와 있다. 비행기 여행을 많이 하는 활동가들은 이 누적량만으로도 일상량에 버금한다. ◆적정허용량이 어느정도냐의 결론은 아직 없다. 그저 연간 최고 1백밀리램 정도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모두들 어디에 살거나 이 양만큼은 피폭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리마일사건이후 미국의 방사선연관 규제기관들은 이보다 10내지 25밀리램을 더 넘어서는 안된다는 최대 허용치를 국가적으로 규정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2000년 시점에서 방사선폐기물의 영향에 의한 사망자수가 3천명은 될 것이라는 추정도 미국은 해보고 있다. ◆안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만 우리에게서도 드디어 방사선피폭환자 사망기록이 나타났다. 방사선장비 사용중 실수에 노출된 환자로 장기간 치료를 받았으나 회복되지 못했다. 회복되기가 어려운 것은 알고 있는 일이나 방사선에 대한 안전도에 더 큰 관심을 갖게 하는 경종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우리처럼 각급 병원이나 연구실마저 방사선물질들을 특별한 조치없이 방치하는 풍습에서는 더욱 그렇다. 원자력발전소만이 아니라 이제는 우리도 방사성동위원소 취급기관이 6백33개나 되고 있다. 핵폐기물량도 늘고 있다. 잘 관리하지 않으면 새롭고 중대한 민원이 될 것이다.
  • 조선학토론회 폐막/재외학자 교류협 결성

    【오사카=강수웅특파원】 사상 최초로 남북학자들이 함께 모여 학술토론을 가진 제3차 조선학 국제학술토론회가 3일간의 일정을 모두 끝내고 폐막됐다. 5일 하오 2시 오사카 국제교류센터에서 거행된 폐막식에서 중국측 실행위원장 최응구 북경대교수는 폐회사를 통해 『다음 대회는 서울 또는 평양에서 열릴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해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폐막식이 끝난 뒤 하오 4시30분부터는 최ㆍ오교수와 모스크바대 미하일 박ㆍ하버드대 강희웅ㆍ토론토대학 백웅진교수등은 가칭 국제교류학회 결성을 제의,한국측과 북한측 대표들이 참석하지 않은 가운데 이 학회를 결성했다.
  • 파국 부른 세종대 사태 87일/「최종 시한」이후의 추이 전망

    ◎학생 반발→신입생 모집 정지→폐교 배제못해/“휴교령 불가피”강경론도… 「동경대 재판」될듯 세종대는 어디로 갈 것인가. 대량유급 사태의 최종시한인 10일 새벽 경찰의 공권력이 투입됐는데도 수업이 정상화되지 않고 있는 세종대에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제는 대량유급사태를 모면할 길이 거의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대량유급 사태가 확실시되는 것은 이날 등교한 2천여명의 학생들마저 거의 수업에 들어가지 않고 오히려 수업거부 주동학생들에 은근히 동조하고 있는데 따른것이다 또 그동안의 분규를 지켜본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학생이나 학교측 어느쪽 주장이 옳든 세종대에 대해 이제는 무언가 결단이 내려져야 한다』는 여론까지 일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에 따라 대량유급사태가 빚어질 경우 세종대는 수업거부 학생들의 극심한 반발→학교운영마비→91학년도 신입생모집정지의 수순을 밟아 사실상 폐교의 위기로 치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학생들 대부분이 이제 1학기의 법정최소수업일수인 14주를 채우지 못하게 돼 사실상유급이 확정된 셈이어서 문교당국이 그 어떤 특별조치를 내리지 않는 한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구제하기는 힘들게 됐다. 더구나 이날 공권력이 투입된데 대한 일반학생들의 인상이 좋지않아 사태의 해결을 더 어렵게 하지 않았는가 하는 견해도 대두하고 있다. 학생들의 반발은 이날 상오 정원식문교부장관이 사태수습책을 협의하기 위해 학교를 방문했을 때 승용차를 부수기까지 하는 난폭한 행동으로 나타났으며 학생들은 『문교부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학생들은 이번 사태가 「재학생 전원 유급」이라는 극한 상황에 몰리게 된 원인이 재단측과 학교 및 교수들의 무능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재단측은 주동학생들이 오영숙교수(52ㆍ영문과)의 「총장선임」을 지지하며 등록금 자체수납에 나섰을 때 등록기한을 11차례나 늦추면서 『학교측에 등록하지 않으면 제적시키겠다』고 위협했을 뿐 사태해결을 위한 대화에 소극적이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교수들도 제자들이 유급위기에 몰리고 폐교직전까지 이르는데도 중재역할을 맡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평이다. 그러나 사태가 여기에까지 이른 직접적인 원인이 학생들의 수업거부에 있는 것이 분명한 이상 수업이라는 본분을 망각하고 강경투쟁으로만 치달은 운동권 중심의 수업거부 주동학생들의 책임이 무엇보다 큰 것도 사실이다. 어떻든 이같은 상황이 이후에도 계속된다면 파행적으로 경찰의 경비속에 일부수업은 계속될지 모르지만 결국 대량 유급사태는 모면할 길이 없게 된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한 일이다. 문교부 일각에서는 학생들을 직접 강의실안까지 강제로 끌어다 앉힐 수 없는 바에야 일벌백계의 차원에서 재학생 전원 유급이 불가피한 휴교령을 내리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마저 나오고 있다. 이같은 강경론은 전후사정이 어떠하든간에 학생들이 수업을 받기를 거부한 이상 학생이기를 포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원칙론에서 출발하고 있다. 또 공권력의 보호아래서 8월말까지 1학기수업이 진행된다하더라도 현재상황으로는 수업률을 50%이상 넘기기가 힘들며 주동학생들과의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한 2학기 수업도 제대로 진행될 수 없다는 상황인식도 「휴교령」의 배경이 되고 있다. 지난해 5월의 서울교육대와 동의대사태때는 수업일수 부족직전 학생들 스스로가 다시 공부하겠다고 청원을 해 유급사태는 막았지만 이번 세종대사태는 그와 정반대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서울교육대도 당시 주동학생들이 학우들을 유급시킬 수 없다면서 등록금동결 등의 주장을 철회하고 휴교령의 해제를 요구했으며 동의대는 재학생 7천5백56명 가운데 93.4%인 7천2백47명이 「면학전념서약서」까지 썼었다. 이처럼 세종대는 서울교육대와 동의대와는 달리 68년 일본에서 있었던 동경대 사건과 비슷한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동경대사건은 의사법개정안에 반대하던 의학부 학생 17명이 징계된데 대해 의학부 학생들이 항의하면서 농성이 시작됐고 이것이 전체학생들의 수업거부사태로 확산됐다가 전원 유급이라는 비극을 불렀었다. 마침내는 신입생모집 중지조치가 내려지고 6개월이상 농성이 계속되다 69년1월 8천5백명의 경찰이 투입돼 겨우 진압됐으며그뒤 10년동안 학교가 황폐화되는 비극을 겪었다. 이번 세종대사태와 마찬가지로 학생들의 주장에 일리가 있었다고는 하나 학업에 전념해야 하는 학생의 본분을 망각하고 과격투쟁일변도로만 치달은 운동권중심의 학생운동이 빚은 엄청난 피해였다. 결국 지난 4월15일 학교측의 임시휴업조치 이후 공권력이 투입된 10일까지 87일동안 분규가 거듭돼온 세종대사태는 학원민주화란 명분을 내걸고 전교생의 유급위기로까지 몰고간 주동학생들의 대량징계와 함께 대량유급이 불가피한 상황이며 이는 또다른 분규의 불씨를 남겨 학교의 존폐에까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 외언내언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스코트 극지연구소」는 북극의 만년빙 두께가 지난 11년간에 평균 15%나 엷어졌다는 조사결과를 최근 발표한 적이 있다. 지구대기권의 탄산가스 축적과잉으로 조성되는 온실효과로 기온이 상승,기상이변이 속출하고 남·북극의 빙산이 녹아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해안도시들이 물에 잠기는가 하면 녹지가 사막화하는 현상도 확대되고 있다는 과학자들의 경고가 빈번한 요즈음이다. ◆지구대기권 탄산가스 과잉의 원인은 주로 인간의 과학문명 발달에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지구대기로 배출되는 탄산가스의 약 80%는 석유·석탄 등 화석연료의 연소에 따른 것이며 그 양은 연간 약 2백억t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인류멸망을 초래할지 모를 탄산가스 과잉축적 방지를 위해선 배출량을 줄이거나 배출된 것을 흡수하는 길뿐이다. 화학적 방법에 의한 회수기술 개발도 이미 착수되고 있으나 최선의 방법은 역시 자연의 섭리인 식물의 흡수작용을 확대시키는 것. ◆그러나 현실은 반대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형편이다. 개발이라는 이름의난벌과 산성비등으로 산림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세계 산소량의 20%를 공급한다는 남미 아마존 유역의 열대림은 이미 10%나 되는 60만㎢가 사라졌고 이대로 방치하면 15년내에 자취를 완전히 감추게 되어 지구의 「폐기능」에 중대한 차질이 빚어질 위기라는 것이다. ◆이러한 산림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는 원인의 하나가 정보화시대에 따른 인간의 종이사용 증대라는 것. 세계의 연간 종이 생산총량은 약 2억3천만t이며 그 원료로서 매년 46억그루의 나무가 지상으로부터 사라져간다는 것이다. 종이의 소비량이 그 나라 문화의 척도라는 말도 있지만 이젠 지구 환경오염의 척도라고 해야 할 사태가 전개되고 있는 셈이다. ◆한국과학기술원 윤한식·손태원박사팀의 천연펄프를 대신할 수 있는 인공합성펄프의 개발은 값싼 인공원료 종이 양산의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뿐 아니라 산림보호를 통한 지구환경 개선에도 크게 이바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한 연구업적이 아닐 수 없다. 두 분의 노고에 감사와 성원을 보낸다.
  • 재미작가 김은국씨의 「민족사적 6ㆍ25론」

    ◎한민족,자의건 타의건 「자유로운 삶의 길」로/“살상ㆍ폐허ㆍ굶주림” 고정관념 벗어날때/개개인의 체험 역사적 맥락서 조망해야/반억압 선택은 바로 「인간해방의 길」/이제야 변혁하는 동구를 보니 큰 대가 치렀지만 값진 경험/서울신문 6ㆍ25 40주 특집 6ㆍ25니 8ㆍ15니 그러한 개인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어마어마한 뜻을 갖고 있는 역사적인 날이 찾아올 때마다 느끼는 것들 중의 하나이지만 우리는 참으로 쓸데없이 거창하고 모호한 말을 즐겨쓰는 민족이라는 것이다. 왜 그런지 궁금하기도 하다. 한문을 토대로 한 우리의 언어의 덕분인지 아니면 우리 민족에 개인적이든 공동체적이든 세상의 경험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심리적인 특이한 태도가 있어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흔히 겉잡을 수 없는 허황한 상투용어로 한마디하고 넘어가 버리는 버릇이 있다. 8ㆍ15가 오면 언제나 「과거 36년간 혹독한 일본 제국주의의 통치」로 시작하고 끝나고 6ㆍ25가 오면 으레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시작하여 「조국분단의 쓰라림」 등으로 끝난다. 상투용어란 것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써먹어 오다보니 누구나가 다 이해할 수 있는 말처럼 그럴듯하게 들리는 것이지만 따져 보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그러니까 한번쯤은 다른 사람들이 쓰는 상투용어를 빌려 쓰지 말고 자기의 말로써 인생의 경험을 이해하려고 애써 볼 만하다. 그렇지 않으면 무엇을 아는 것 같으면서도 모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요사이 한국에서 흔히 듣는 말이지만 「6ㆍ25를 모르는 세대」라는 표현이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대개는 「6ㆍ25를 모르는 세대」가 이렇고 저렇고 할때 풍기는 뜻은­그런 표현을 쓰고 사람들에게서 오는­그 세대가 좀 한심하다는 것이다. 그 세대가 한심한건 말건 그것은 둘째로 치고 우선 그러면 그 표현이 내포하는 즉 「6ㆍ25를 아는 세대」는 과연 6ㆍ25를 얼마나 어떻게 알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생기게 된다. ○인생과 역사의 결합 누가 시작한 진담­농담인지는 몰라도 어린애들(물론 6ㆍ25를 모르는)에게 6ㆍ25때 얼마다 먹을 것도 없고 고생했었던가 하는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그 애들이 「그럼 왜 라면이라도끓여먹지 않았냐」하더라고… 원 그런 어처구니 없는 한심한 것들이 어디 있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6ㆍ25를 아는 세대」가 6ㆍ25때는 먹을 것도 없고 입을 것도 없고 피란만 다녔다는 식으로 「고생」했다고 말을 시작하면 어린애들은 역시 그런 식으로 반문을 할 것이 뻔하다. 고생했다,굶었다,헐벗었었다,많이 죽었다,도시는 폐허가 됐었다,가족이 흐트러졌다­물론 6ㆍ25의 경험속에는 그런 것들이 다 들어간다. 6ㆍ25라는 것이 빚어낸 현상이며 결과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6ㆍ25를 참으로 설명해 주지도 않고 해줄 수도 없다. 경험이란 것은 왜 그 경험이 있게 되고 그 경험이 나에게 무엇을 주었는가를 알지 못하면 그 경험의 참 뜻을 이해할 수 없지 않을까. 그러니 한편으로는 「동족상잔의 비극」이라는 공동체가 쓰는 상투용어로,또 한편으로는 「고생했다」는 개인이 쓰는 역시 상투용어로만은 6ㆍ25와 같은 어마어마한 민족공동체적 개인적인 경험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6ㆍ25를 체험한 세대에게나 6ㆍ25를 모르는 세대에게나 마찬가지의 문제라고 본다. 이러한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역사관,그 역사관과 개인을 연결시켜주는 개인의 인생관­나는 이렇게 살고 싶다하는­가치관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할 때 나에게는 6ㆍ25는 「선택」의 경험이라고 여겨진다. 그 「선택」에는 두가지의 선택이 있었다고 본다. 하나는 개인적인 한가지 한가지의 「작은 선택」들이고 또하나는 커다란 역사적인,나아가서는 철학적인 「커다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커다란 역사적인 철학적인 「선택」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나중에 온 것이다. 우선 「작은」 선택들이 모이고 쌓이고 하다 좀더 철이 들고 배우고 사색하게 되면서 그 개인과 역사를 연결시켜 주는­인생관과 역사관의 결합을 보았다고 할 수 있다. 나는 고향이 이북이어서 8ㆍ15를 이북땅에서 맞았다. 그 덕분에 남한으로 넘어오기 전 3년여를 북한식 공산주의체제 밑의 생활을 경험하였다. 그러한 경험에 바탕을 둔 「작은 선택」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이 글에서는 내게 중요한몇개만을 들어보겠다. 첫째로 생각되는 것은 하나하나의 개인의 특이한 「작은 역사」를 무시하고 말살시키려는 주의와 사상을 거부하고 그것에 반항하는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공산당 권력체제가 주장하고 실행한 소위 계급투쟁으로 「소지주 계급」의 낙인이 찍힌 우리는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고향에서 추방을 당했다. 그때의 우리의 재산이란 한때 가난했던 조부모님이 일하고 저축하여 쌓았던 것이다.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을 바라고­본인들과 후손의­노력해온 그들의 구체적인 「작은 역사」는 「계급투쟁」이라는 추상적인 커다란 주의ㆍ사상으로부터 아무런 이해와 「용서」를 받지 못하였다. 그 경험은 개개인의 작은 역사를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가치관을 나에게 심어주었고 그것을 말살시키려는 주의ㆍ사상ㆍ정치체제에는 반항해야 한다는 정치관을 갖게 했다. 또한 그러한 소위 「계급투쟁」의 발단,심리적 원시점은 인간의 가장 천한 본능에 두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의 것을 탐내고 남을 시기하는 원시적인 본능을 부추겨서 『잘산다』 『못산다』의 개념과 정의를 오로지 물질적인 차원에만 두는 가엾은 인생의 가치관을 보았고 나는 그러지 않겠다는 「선택」을 했다. 나아가서는 그러한 추한 인간의 본능을 『그럴듯한』 정치이념과 주의로 장식하여 인간의 증오심을 정의감으로 가장시켜 그것을 이용하여 권력을 잡으려는 어떠한 사상에는 반항해야 한다는 「선택」을 했다. 목사이셨던 외조부께서 일본통치하에서도 억압을 당하시고 북한공산체제 밑에서도 억압을 당하시는 것을 경험하고 「나의 외조부님을 억압하는 자들」에게의 반항의 「선택」에서 시작하여 특정한 종교를 믿지 않는 입장이면서도 「종교의 자유」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 정치이념ㆍ주의사상은 반대해야 한다는 「선택」을 하였다. ○한국은 운좋은 나라 그렇게 하여 내가 6ㆍ25가 일어나기 얼마전 남한으로 넘어 왔을 때는 이미 수많은 작은 「선택」들이 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6ㆍ25가 왔을 때 그 전쟁은 나에게는 혹독하게 말한다면 죽느냐 사느냐의 선택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나」를 없애버리려는 권력에는 방항ㆍ대항해야 하는 선택밖에는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 대한민국이 더 좋아서 더 귀중해서 대한민국을 사수하기 위해서 참전한 것 같지는 않다. 또 「동족상잔의 비극」이니 어쩌니 하는 감상을 품고 전쟁을 겪은 것 같지도 않다. 우선 「나」라는 하나의 인간의 「자신」이 살아 남아야겠다는 것 뿐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개인의 개성,특이한 작은 역사,개인의 존엄성­이러한 것들이 보존되고 살아 남아야겠다는 신념과 행동의 선택에서 이윽고 자유에의 「선택」이 있게 됐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한 인생관 가치관이 그 당시에는 지극히 구체적인 것이었으면서도 이념적으로는 뚜렷한 것은 아니었다고 하겠지만 그것이 훗날에 「나」라는 하나의 개인과 그 개인의 경험을 역사와 연결시켜주는 역사관을 찾았을 때 6ㆍ25를 비롯한 지난날의 경험을 좀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나는 인간의 역사를 이렇게 생각한다. 즉 인간의 역사는 「해방」으로의 과정이라고 본다. 자연의 공포와 횡포로부터의해방,질병으로부터의 해방,굶주림으로부터의 해방,무식으로부터의 해방,인간이 타인에게 행하는 무자비한 잔인으로부터의 해방­끝없이 많은 인간해방이 필요하고 하나하나씩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말하자면 「자유」로의 행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참혹한 인간역사의 사실이 증명하듯 그것은 하루이틀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꾸준한 해방의 과정은 조금씩이나마 인간의 자유의 범주를 넓히고 차원을 높여가고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믿는다면 그러한 역사관을 「선택」해야 한다. 개개의 구체적인 경험과 그 경험을 바탕으로하여 여러 작은 「선택」을 해온 나로서는 그러한 역사관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만 그럴 수 있었다는 것을 지극히 행복하게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6ㆍ25란 나에게는 하나하나의 개인이 나름대로의 해방을 찾고 자유를 찾아야 한다는 인생관과 역사관을 얻게 해준 경험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흔히 진담­농담으로 말하듯이 대한민국은 참으로 운이 좋은 나라라고 생각한다(그렇게 말할수 있는 나도 운이 좋은 사람이 되겠지만). 6ㆍ25는 대한민국에도 역시 하나의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한 전환기라고 할 수 있다. ○싫건 좋건 이끌린 삶 강대국간의 냉전이니,국제정세의 배경이니,국토의 분단이니­「동족상잔의 비극」이니­그런 것들을 지금 이 자리에서 생각할 필요는 없다. 다만 6ㆍ25라는 역사적 사건과 경험은 한국으로 하여금 되돌릴 수 없는 그야말로 역사적인 선택을 하도록 했다. 그 「선택」으로 한국은 공산주의 체제가 아닌 자유주주의체제 쪽으로,공산주의의 국가통제경제가 아닌 자유시장경제체제 쪽으로,그 당시에 싫건 좋건 알건 모르건 이끌려 간 것이다. 그리하여 온갖 우여곡절을 거치면서도 싫건 좋건 알건 모르건 간에 개개인의 역사가 존중되고 개개인의 나름대로의 자유가 존중될 수 있는,앞서 말한 인간해방의 역사관의 과정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우습게 볼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반드시 한국이라는 사회공동체가 의식적으로 또한 고의적으로 그러한 역사의 길을 기꺼이 선택했다는 말은 아니다.한국이 운이 좋은 나라라는 말이 그래서 나오게 된다. 6ㆍ25를 전후한 국제정세와 6ㆍ25라는 처참한 경험을 겪고 살아남은 한국은 어쩌다 싫건 좋건 그러한 길을 선택하게 됐고 그리하여 오늘의 한국을 이루게 된 것이다. 그러한 선택을 한 이상 한국은 어쩔 수 없이라도 한걸음 한걸음 인간해방의 역사의 대열에 끼여 따라가게 돼있다. 지난 몇년동안 한국에서 일어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인 변화와 발전을 생각해 보면 짐작이 가리라 생각한다. 커다란 인간역사라는 것은 하나하나의 개인은 물론 국가사회라는 공동체도 예측할 수 없는 현상과 결과를 빚어내는 버릇이 있다. 6ㆍ25라는 역사는 어쩌면 한국사회가 자진해서 이룬 것이 아닌 하나의 선택을 한국사회에 강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 선택이 나 자신의 선택과 어울리는 것이기에 지극히 흡족하게 느낀다. 그러기에 나는 역사적으로 볼 때 한국이라는 사회공동체는 6ㆍ25를 겪었기 때문에,또 6ㆍ25를 계기로 하여 전세기적인 인간가치관과 인간통치관에서 탈피하여 전진적인 인간해방의 역사적 흐름에 함께 낄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나의 생각을 기다랗게 설명할 필요는 없다. 동독을 비롯하여 폴란드ㆍ헝가리ㆍ체코ㆍ루마니아 심지어는 불가리아 등­동구 여러나라에서 일어난 역사적 변화를 생각만 해보면 된다. 그들의 역사야말로 인간해방의 역사이다. 40여년간의 공산주의 독재체제 밑에서 억압당해 왔던 하나하나의 인간들을 해방하고 자유를 이루어준 역사의 흐름이 파도를 친 것이다. 불평ㆍ불만이 많고 걸핏하면 「한」이 어쩌고 하는 우리는 동구의 그들에 비하면­나아가서 소련의 일반 시민들과도 비하면­참으로 운이 좋은 사람들이다. 6ㆍ25라는 참혹한 경험이 있었지만 그 경험이 헛되지 않게 해준 그 「선택」 덕분에 우리는 인간해방의 역사의 대열에서 그들보다 훨씬 앞서 있게 된 것이다. 동구의 그들 뿐인가. 소련의 사정을 살펴보며 리투아니아ㆍ에스토니아ㆍ라트비아 국민들의 자유독립에의 「선택」을 생각해 본다. 우크라이나의,그루지야의,아르메니아의,아제르바이잔의 모든 개인들의 자유독립으로의 「선택」을 생각해 본다.2차대전이후의 세계역사를 소위 냉전의 역사라고 한다. 하지만 따져보면 그 냉전의 역사는 실은 자유와 억압의 대결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선택하고 자유시장경제 제도를 선택한 진영은 꾸준히 인간의 자유의 범주를 넓히고 차원을 높이면서 인간을 억압하고 불안하게 만들고 인간을 조롱하는 것들에서부터의 인간해방을 이루어왔다고 본다. 그것을 인정 안하다면 동구공산권의 붕괴와 동구 사람들의 자유의 「선택」을 인정하지 않고 이해하려하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인간가치관의 대결 이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는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즉 2차대전후부터의 이른바 냉전은 결국은 정치이념의 대결이었고 인간의 가치관의 대결이었다고 본다. 인간의 「자유와 개방」을 위주로 하는 이념과 절대적인 정치권력 체제속에서의 「인간통치」에 전념하는 이념과의 대결이 아니었던가. 6ㆍ25에 참전하면서 「동족상잔의 비극」이니 하는 감상을 품고 있지 않았었다고 나는 앞서 말한 바 있다. 어떻게 보면 냉혹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6ㆍ25전쟁이 내게는 단순히 부족간의 영토싸움이라든가 조국통일이라는 미명아래에서의 권력다툼이라든가 그러한 전세기적인 단순한 전쟁이 아니었었기에 그랬었는지도 모른다. 그 전쟁은 2차대전때 이미 시작되고 그 후에 냉전으로 계속된 이념의 대결이 터져나온 전쟁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싫건 좋건 틀렸건 옳건간에 사람은 각자각자 나름대로의 작은 역사를 창조하고 자유와 개방을 이루고 인간해방을 이룰 수 있도록 풀어주고 돌봐주어야 한다는 가치관과 이념과 역사관을 「선택」했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6ㆍ25의 그날이 돌아올 때마다 「동족상잔의 비극」이라는 상투용어로 그 경험을 「설명」해 버리려는 것을 싫어한다. 그 전쟁이 그것뿐이었다면 그야말로 전세기적인 관념으로 그 전쟁의 경험을 소화하려는 것이 된다. 그 보다는 「나는」 「우리는」 그러한 참혹한 역사적 경험으로 인하여 「이러한 선택」을 하였노라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김은국 □32년 함남 함흥출생.□황해도 황주,중국 만주에서 성장. □48년 평양 제2중(평양고보)재학중 월남. □50년 서울대 상대 경제학과 중퇴(6ㆍ25발발로). □51∼54년 육군장교복무. □55년 도미,미들버리대(정치학 및 역사철학전공),존스 홉킨스대(영문학 전공),아이오와대 대학원,하버드대 대학원 졸업. □64년 6ㆍ25를 배경으로 한 소설 「순교자」를 하버드대 대학원 졸업논문 대신 발표,세계적 명성얻음. □이후 「심판자」 「잃어버린 이름」 「잃어버린 영혼」 등 발표. □미국 매사추세츠 주립대,시라쿠스대,캘리포니아 주립대교수 서울대 교환교수 역임. □현 매사추세츠 소재 「트랜스 리트 에이전시」 (국제저작권대행회사)대표.
  • 쓰레기 불법폐기 처리업체 수사

    서울지검 서부지청 하종철검사는 20일 서울 중랑구 상봉동 동양환경(대표 채만식)을 비롯한 14개 산업폐기물처리업체에 대해 일제수사에 나섰다. 검찰수사는 이들 업체가 경기ㆍ충남 등 쓰레기 매립장이 없는 지방에서 산업폐기물을 수거해 서울 마포구 성산동 난지도 쓰레기 처분장에 몰래 버려왔다는 서울시의 고발에 따른 것이다. 이들은 지난달 관련업자들로부터 사례금을 받고 폐가죽ㆍ폐고무ㆍ기름찌꺼기ㆍ폐유 등 서울지역 밖의 산업폐기물을 5∼50t씩 들여다 난지도 쓰레기장에 마구 버린혐의를 받고 있다.
  • 인력난에 몸살앓는 태백탄전지대 긴급점검(지역경제)

    ◎사양길 탄광촌 “광원이 모자란다”/“힘든일 싫다” 썰물처럼 빠져나가/잇단 폐광에도 3천여명 모자라/사무ㆍ경비직에 “채탄부로 일해주오”호소/하루 고작 2교대 근무… 올 석탄생산량 크게 줄 듯 태백탄전지대가 전례없는 인력난에 몸살을 앓고 있다. 광업소마다 사람을 구하지 못해 아우성이다. 태백탄전지대는 지난 87년 석탄산업 합리화계획이 발표된데 이어 지난해 1차적으로 탄광 정리가 시작되자 『이곳은 이제 끝났다』는 절망의 소리가 이곳 저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영세하거나 부실한 탄광들이 정부의 방침에 따라 속속 폐광조치를 강구하자 한때 호황을 누렸던 탄전지대는 폐허처럼 변모해 가고 있는 것이다. 광원들이 떠나버린 텅빈 사택과 잡초 우거진 사택촌 모습이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이에 따라 탄광업에 종사하지 않는 현지주민들까지 함께 실의에 빠져 생활의욕을 잃고 있는 실정이다. ○「동료지키기」운동까지 지난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태백탄전 지대에는 4만3천여명의 광원들이 현직에 몸담고 있어 탄전지대의 경기가 흥청거렸다. 그러나 지난 한햇동안 강원도내에서만 74개 탄광이 석탄산업합리화 방안에 따라 폐광조치되고 7천8백76명의 광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그러나 이같은 시기에 탄전지대는 개광이래 최악의 인력난을 맞아 모처럼 재탄생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태백시 연화동 한보광업소 이광석 관리이사(48)는 『광원을 모집하기 위한 독려반만으로는 어림도 없어 9백여명 되는 전체 종업원을 구인 선전요원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무직 광원들은 물론 관리직 광원들에 이르기까지 출퇴근 시간에 만나기만 하면 『사람 좀 데리고 왔느냐』고 묻는 것이 인사처럼 됐다. 이 광업소에서 8년째 채탄ㆍ굴진부 등으로 일해 오고 있다는 이순영씨(43ㆍ1단지 9동306호)는 『회사가 우리들에게 통사정을 하기에 앞서 종업원 스스로가 동료 끌어오기 운동을 벌이고 있지만 쉽지 않다』며 『지금은 인근 광업소들도 하나같이 우리와 똑같은 실정이기 때문에 오히려 내 옆에 있는 동료 지키기 운동을 추진하고 있는 입장』이라면서 광원부족으로 인한 애로점을 털어놓았다. 이같은 사정은 국내 굴지탄광으로 손꼽히는 석공 장성광업소도 마찬가지이다. 장성광업소는 올해들어 광원구하기가 어려워 무연탄 생산에 큰 차질을 빚게 되자 종업원들의 연고지나 기타 안면이 있는 동료 친인척들을 대상으로 서신형의 특수 유인물을 만들어 회신용 엽서까지 동봉,서신보내기 운동을 계속 추진해오고 있으나 그 결과가 시원치 않다. 국영으로 최고의 기계화 채탄시설을 자랑하는 장성광업소가 사택제공 및 복지혜택,최고수준의 급료ㆍ상여금 등 각종 혜택을 열거ㆍ설명한 유인물을 살포하다시피 하고 있는 데도 효과가 기대 이하인 것이다. ○1명 데려오면 10만원 장성광업소는 심지어 최초 입사희망자에 한하여 광원수련원에서 3개월간 수습기간을 마쳐야 입사를 할 수 있던 종전의 규칙을 변경,1개월로 단축을 시키고 경력광원의 경우 종전 채용연령이 45세이던 것을 50세로 5년이나 더 연장시켜 광원확보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또 갱내 노무직 광원들의 보호를 위해 사무직이나 기타 갱외직 광원들로 하여금 주1회입갱을 시켜 지하수관리 등을 도와 채탄부들과의 호흡을 같이하게 한다든가 경비원 또는 공무계통에 근무하는 광원들에게 채탄부로 직종을 변경할 수 있도록 설득을 하기도 한다. 연간 20만t 이상의 무연탄을 생산하는 황지ㆍ한성ㆍ함태광업소 등도 광원부족 현상은 다를바 없다. 황지광업소는 올해 무연탄 생산을 크게 줄일 수 밖에 없게 됐다. 지난해 까지만 해도 연간 31만t의 무연탄을 생산하던 것이 올해 들어 월 최고 1만4천t,평균 1만2천t씩을 캐고 있는 실정이어서 지금같은 상태대로라면 연말까지 21만t을 생산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황지광업소 총무부장 김형목씨(54)는 『채탄부가 부족해 갱도별로 하루 3교대에서 2교대로 줄여 작업을 하고 있다』며 인력난의 심각성을 호소했다. 황지광업소 유창갱의 경우 하루 갑ㆍ을 반으로 나누어 작업을 하고 병반 8시간은 휴무상태라는 설명이다. 태백시 소도동의 함태광업소도 평소 생산성이 시원치 않은 광업소내 지갱과 고목갱에 대한 작업을 오래전부터 중단,인력을 한쪽으로 집중시켜 채탄작업을 실시하고 있다. 이 광업소의 노무과장 박영우씨(44)는 『광원부족 현상이야 현재 우리 뿐만이 아니라 전국의 모든 탄광이 하나같이 똑같은 실정이어서 죽는 소리를 해봐야 별로 신통한 묘책이 없겠지만 앞으로 대책을 위해서는 정부차원에서 특별 대안을 마련해 줘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탄광업계가 구인작전을 펴고 있는 1차 대상자는 지난해 폐광과 함께 실직을 한 7천4백여명의 전직 광원들. 폐광전 일하던 탄광에서 재해를 입었더라도 사지를 움직여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만 되면 무조건 구인 대상이 된다. 광업소마다 광원 1명을 알선,또는 스카우트하는데 최하 3만원에서 최고 10만원의 활동비까지 지불하고 있다. 황지 광업소의 권건씨(49)는 『며칠전 일손을 하나라도 더 보태기 위해 과거 광원경력이 있는 사람을 만나 고기안주에 술까지 사주며 설득을 했지만 허사로 끝나고 말았다』며 씁쓰레한 표정을 지었다. 지난해에 실직을 한 광원들이라해서 지금 입장으로는 7천여명 모두가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일부는 탄광생활을 정리한채 고향이나 기타 연고지로 떠나고 일부는 전직을 했거나 또는 아예 광원생활을 포기한 상태라 구인 대상자는 3천여명 미만에 불과하다. 이들 전직광부들이 어쩌다 재취업을 희망할 경우 이들에 대한 신체검사비는 물론 광업소에서 부담을 하고 X레이상으로 허리라든가 기타부위에 다소 이상이 발견된다 해도 활동만 가능하면 「합격」시키는게 통례화 되었다. ○“정부서 대책 세워야” 그나마 약간의 신체적 결함이 있다고 이의를 제기할 경우 다른 광업소에서 재빠르게 스카우트하기 때문에 광업소 실무진이나 업주들은 전전긍긍하고 있는 실정이다. 탄광을 일단 떠난 광부들은 『탄광 아니라도 하루 일당 3만원씩 받고 쉬엄쉬엄 잡역일을 하면서도 일을 할 곳이 많은데 무엇 때문에 다시 갱속으로 들어가 고생을 하느냐』며 항변조로 말하기를 서슴지 않아 스카우트에 나선 사람들은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한다. 광원부족현상이 심화됨에 따라 올해 태백탄전지대 각 광업소들은 당초 무연탄생산 계획량에 비하여 최하 5%가량의 감량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태백상공회의소 사무국장 전인식씨(58)는 『아직도 국내 연탄을 이용한 연료소비는 연간 60%를 차지하고 있어 무연탄 생산을 계속 할 수 밖에 없다』며 『전반적으로 광업소마다 평균 10%선의 광원부족 현상을 보여 이에 따른 대책을 정부에서 조속히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춘천=정호성기자〉
  • 부패한 사회는 선진사회 못된다(사설)

    서울 한남대교로부터 고속도로를 들어서는 길목,남산에서 퇴계로로 넘어가는 순환도로 갈림길 같은 데 가늘고 야트막한 노란 말뚝들이 박힌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진입을 잘못해서 사고가 날 위험이 있는 길목을 분간해주는 말뚝이다. 전에 함정단속을 하던 길목이다. 이런데 숨어서 뇌물을 거두는 부정경관 모습이 TV카메라에 잡혀 공무원 비리가 만천하에 노출되었고,그 장면을 일본의 TV가 내보내는 바람에 우리는 국제적으로 우세를 당했다. 그러나 그렇게 망측한 우세를 했건만 고쳐진 것은 말뚝 몇개 박은 것 뿐이고 각계각곳에 흩어져 있는 「함정」들은 여전히 입을 벌리고 상한 냄새로 쉬파리를 모으고 있는 모양이다. 폐수배출업소에게 폐수시험 성적표를 조작해주고 돈을 받거나,오염폐수의 방류를 눈감아 주고 돈을 받은 관계공무원이 무더기로 적발된 것은 그같은 반증이다. 건당 가격이 정해져 있고,적발된 공무원이 무더기인 것을 보면 이런 일은 오랫동안에 걸쳐 저질러져온 해묵은 비리인 것 같다. 아마도 그쪽 세계에서는 알려진 비밀처럼 공공연한 부조리였을지도 모른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것 보다도 더 어처구니 없는 꼴이다. 나라의 녹을 먹고 사는 번듯한 공인들이 곳곳에서 이렇게 썩어가고 있다는 일이 새삼스럽게 우리를 심란하게 만든다. 공해를 감시하는 일은 우리의 집단적인 삶을 지키는 파수꾼의 역할이다. 폐수성적표 한장을 조작할 때마다 시민을 조금씨 살해해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장기간,아마도 선후임이 계승해가며 자행해왔다는 일이 끔찍하다. 그 도덕적 불감증세가 전체공무원의 일반적 현상이라는 심증을 지울 수가 없다. 서너달전에 홍콩에 있는 사소한 매체 하나가 「남한사회의 뇌물분위기 성행」을 보도해서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 적이 있었다. 그 인용이 오래전의 묵은 잡지를 빌려온 것이어서 우리는 그걸 항의했고 해당신문은 『한국에 이제는 부정부패가 없다니 기쁜 일』이라고 다소 빈정거리는 해명을 하며 즐기기도 했다. 아마도 그 신문과 당사자는 최근에 잇따라 드러나고 있는 한국사회의 뇌물에 의한 부패상을 보고 지금쯤 회심의 미소를 지을지도 모른다. 국제적인 개방사회에 전면노출되어 있는 우리는 치부가 자랑스런 모습보다 훨씬 빠르고 과대포장된 채 번져나가는 위치에 서있다. 공무원이 부패해서 뇌물이 성행하는 사회는 선진된 사회가 될 수 없다. 증명서와 허가서가 뇌물로 거래되고 불법과 반칙이 돈으로 수습될 수 있는 사회는 품질이 우수한 사회의 대열에 끼일 수가 없다. 못살고 망해가는 나라는 반드시 공무원의 비리가 성한다. 일본이나 홍콩같은 이웃이 우리 사회의 약점을 국제사회에 확산시키고 싶어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부정부패를 없애는 일은 국운을 걸고 성취하지 않으면 안될 일이다. 제도속에 공무원을 오염시킬 함정의 소지가 내재되어 있다면 인위적으로라도 그 가능성부터 봉쇄하는 일이 중요하다. 노랗고 가느다란 쇠막대기 몇개로도 유혹의 함정을 뽑을 수 있듯이 근원부터 청소를 하는 일이 시급하다. 호시탐탐 공무원의 타락을 유도하는 업자들에 대한 단속도 가혹하게 해야 한다. 그들은 결정적인 공범자들이다. 부정공무원의 소탕에 우리 사회의 질과격이 달려있음을 심각하게 깨달아야 한다.
  • 노대통령 방일 2박3일간 결산

    ◎21세기 지향 「동반협력의 가교」 놓다/교포문제ㆍ경협 등 현안 가시적 성과/북방정책ㆍ대북한 관계에 공동보조/일의 후속조치 심도따라 「통석」의미 퇴색될 수도 노태우대통령의 2박3일간에 걸친 방일은 다소 시각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한일간의 과거문제를 매듭짓고 새로운 동반자 관계발전의 토대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성공적으로 평가된다. 이번 방일기간중 두차례의 정상회담과 일왕의 사과발언,노대통령의 일 국회연설 등은 한일 양국간에 그동안 관계발전의 걸림돌이 되어왔던 과거문제를 상당수준 해소했고 재일한국인 법적 지위,과학기술협력,무역불균형 개선,양국 국민의 교류확대 등 실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과거사과와 관련,일본측은 일왕ㆍ일총리ㆍ중의원의장 등이 일종의 역할분담 형식으로 파상적인 사과발언을 함으로써 사과와 반성의 심도를 깊게 했다. 『일본에 의해 초래된 불행,한국민이 겪었던 고통,통석한 마음』(아키히토 일왕) 『한반도의 국민들이 일본의 행위로 인해 견디기 어려운 고통과 슬픔을 겪었다. 겸허한 반성,솔직한 사과』(가이후 도시키 일총리) 『우리나라가 귀국과 귀국민에 대해 다대한 폐를 끼친것,참으로 유감,진지한 반성,우호와 신뢰관계 구축에 최선』(사쿠라우치 요시오 중의원의장)등은 각기 일본의 상징,일정부의 최고책임자,일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행한 사과로서 이뤄진 것이다. 노대통령도 『일본 국내의 헌법상 제약과 정치ㆍ외교적 한계속에 일왕의 사죄를 받아낸 것은 과거사에 대한 양국의 인식차이를 해소한 것』이라고 평가,일측의 사과를 일단 수용했다. 그러나 일왕의 「통석의 염」 발언대목과 관련,우리 정부가 「뼈저리게 뉘우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데 대해 국내 일부에서는 쉽게 납득을 하지 않고 있어 일측 사과를 국민적 합의로 수용하기에는 거리가 있는 것 같다. 재일한국인 법적지위문제와 관련,3세에 관한 양국간의 기존합의(지문날인 배제ㆍ외국인등록증 대체수단 강구ㆍ재입국기간 연장ㆍ강제퇴거사유 한정)가 1ㆍ2세에게도 적용될 수 있도록 촉구한 데 대해 일측은 적극 검토를 다짐했으나 그 실현여부를 예단하기는 어렵다. 적어도 과거문제와 관련해서 일본으로부터 받아낸 사과는 이번 방일의 핵심적 성과를 이루고 있으나 앞으로 법적지위문제 등에 있어 일본측이 「말따로 행동따로」식의 자세로 나온다면 성과의 퇴색은 물론 한국민의 대일 불신의 골은 다시 메울 수 없이 깊어질 것이다. 둘째,양국간 실질적인 협력분야의 성과로서 이는 두차례의 정상회담 결과를 토대로 한 외무ㆍ과기처ㆍ상공ㆍ법무장관 등 수행각료들과 일본측 관계장관들과의 개별회담으로 구체화되었다. 무역불균형 시정문제와 관련,일본이 대규모 구매사절단을 한국에 파견키로 하고 무역마찰 사전방지를 위한 민관합동정책기구를 신설하며 보다 근본적인 시정을 도모하기 위한 「한일간 산업구조 조정촉진위」를 설치키로 한 것은 지금까지 막연했던 「무역의 확대균형」이란 외교적 수사와는 그 의미를 크게 달리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또 중소기업 자동화기술 협력과 함께 일 정부가 일 민간기업에 대해 대한 첨단산업 기술이전을 촉진토록 최대한의 영향력을 발휘키로 약속한 것도 종전의 「민간차원의 논의사항」이라며 한마디로 자르던 태도와는 크게 변화된 것이다. 이와같은 구체적인 실질협력 성과는 결국 과거청산을 바탕으로 하여 양국관계가 미래지향적으로 새롭게 발전되어 가야 한다는 양국 정상과 정부의 인식이 일치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국제협력분야에서의 동반자관계 강화를 성과로 꼽을 수 있다. 21세기의 아태시대 개막이 예견되고 있는 가운데 EC(유럽공동체)의 통합,미국 캐나다 멕시코의 자유무역지대 형성등 경제적 블록화추세가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동아시아 경제권의 지위강화를 위해 우선 인접한 한일 양국간의 동반자적 협력관계가 요청되고 있다. 또 우리의 북방정책 추진과 일본의 대북한 관계개선에 있어 상호 긴밀한 협의를 갖기로 합의한 점도 한반도및 동북아정세에 대한 공동대응의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이 가운데 특히 일본이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함에 있어 ▲남북대화 재개 ▲핵안전협정에의 가입을 선결전제조건으로 해야 한다는 우리측의 요청에 수긍한 것은 이같은 공동대응의 일환으로 생각된다. 노대통령의 이번 방일성과의 중ㆍ장기적 평가는 일본측이 앞으로 어떻게 「반성ㆍ사과」에 상응한 협력을 실천해 주느냐와 연계되어 있다. 노대통령은 방일 마지막날 아키히토 일왕의 방한을 초청했으나 이는 의례적인 성격으로 보이며 일왕의 방한이 구체화되는 과정은 일측의 각종 「후속조치」의 강도와의 상관관계속에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 김태촌은 정말 폐암환자인가/검찰 허위진단 여부 수사 배경

    ◎「시한부인생」 판정 불구 “왕성한 활동”/룸살롱 잦은 출입… 주치의와도 마셔/의사는 “잘라낸 폐ㆍ치료기록 모두 보관” 반박 21일 구속수감된 「서방파」 두목 김태촌씨(42)는 지난 15년 동안 국내주먹세계의 최강자로 군림해 왔다. 김씨는 지난해 1월 폐암으로 진단받아 형집행정지처분으로 청송교도소에서 출감한뒤에도 신앙생활과 각종 사회활동을 하는 것처럼 위장하며 범죄행각을 일삼아 오다 그동안의 행적을 추적해온 검찰에 마침내 꼬리를 붙잡혔다. 김씨는 86년7월 인천 뉴송도호텔 황익수사장을 습격했다가 징역5년에 보호감호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폐암증세를 보여 지난해 1월 형집행정지처분으로 2년3개월만에 출감했으나 출감한뒤 1년4개월만에 다시 쇠고랑을 찼다. 검찰은 김씨가 석방된지 두달뒤인 지난해 3월 폭력조직 「번개파」두목 박종석씨등 20여명와 함께 불우이웃을 돕는 자선단체를 가장한 「신우회」라는 조직을 만들고 6월에는 경기도 파주군 오산리 기도원에서 금식기도와 간증활동을 하는것처럼 행동하며 폭력배 5백여명을 모아 기도회를 여는 등 세력을 넓혀왔다고 밝혔다. 검찰은 김씨가 폐암 수술을 받고 시한부 생명을 살고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고 수사를 펴고 있다. 검찰은 김씨가 지난해 교도소에서 출감하지 직전 세브란스병원에서 폐절제 수술을 받기는 했으나 건강한 사람과 같이 룸살롱을 자주 드나들며 술을 즐겨 마셔왔고 병원관계자들을 제주도로 초청,술자리를 마련하는등 향응을 베푼 점 등으로 미루어 허위진단이었을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보고있다. 이에대해 김씨의 수술을 담당했던 세브란스병원 부설 연세암센터 김병수원장은 『김씨는 지난해 1월 수술당시 암세포가 폐정맥과 심낭까지 침투돼 극히 악화된 상태였으며 현재는 치료를 잘받아 30%의 완치가능성이 있다』고 밝히고 『절제한 김씨의 폐와 치료기록들을 모두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가 폭력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지난 74년으로 「번개파」두목 박종석씨의 소개에 따라 광주변두리 지역을 근거지로 하고 있던 「서방파」에 들어가면서 였다. 그는 다음해 광주의 「OB파」와 「번개파」등을 동원해 서울로 원정,「신상사파」를 꺽어면서 일약 주먹계의 최강자로 떠올랐다. 그 이듬해인 76년 3월에는 광주시내 중심가에서 「OB파」두목 오종철씨를 불구로 만드는 편싸움 끝에 광주의 폭력계를 완전 장악하게 됐다. 김씨는 정치폭력에도 가담,같은해 신민당 전당대회장에서 조직원 1백50여명과 함께 각목등을 휘두르고 수배됐다가 자수,징역6월을 복역했다. 김씨는 또 77년 4월에는 조양은씨가 두목인 「양은파」와 대결 조씨의 부하들을 폭행,난자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징역2년 형을 받고 복역했으며 80년에는 사회악일제소탕에 걸려 보통군법회의 검찰부에 의해 5년6개월을 복역하는등 지금까지 모두 14년을 교도소에서 보냈다.
  • 포도밭 폐원 보상비 50% 우선 지급

    농림수산부는 포도주 수입개방에 따라 양조용 포도밭을 폐원시킨 농가에 지급할 폐원보상비중 50%를 우선 지급키로 했다. 26일 농림수산부에 따르면 양조용 포도에 대한 폐원보상비는 농어촌발전기금법의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이 제정되는 대로 올 하반기부터 지급될 예정이었으나 폐원농가의 조기지급 희망을 받아들여 보상비 총 소요액 89억원중 45억원을 우선 지급키로 하고 농어촌지역개발기금을 전용하여 각 시도에 긴급배정했다. 폐원보상비를 받고자 하는 농가는 이 자금이 현재 관할지역 단위농협에 배정되어 있으므로 관할지역 읍면장의 폐원확인서를 발부받아 단위농협에 보상비를 신청하면 보상비의 50%를 지급받을 수 있다.
  • “비ㆍ일등 해외주둔 해군시설/미,34곳 폐쇄를 검토”

    ◎미 의원 의회청문회서 밝혀 【워싱턴 AFP 연합】 미해군은 일본과 필리핀 주둔 미해군시설을 포함한 34개 해외 미군시설을 폐쇄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25일 미의회에 배포된 한 자료에서 밝혀졌다. 폐쇄를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진 해외주둔 군사시설의 명단은 이날 열린 의회 청문회에서 패트리셔 슈뢰더 민주당 의원이 밝힌 것인데 스탠리 아서 해군중장도 이명단이 해군 관리들이 작성,폐쇄 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시안임을 확인했다. 또한 해군 대변인은 아직 최종결정이 내려진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검토작업은 7∼8월께 마무리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폐쇄를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진 미국의 군사시설 주둔 지역은 일본ㆍ필리핀ㆍ스페인ㆍ버뮤다ㆍ영국ㆍ서독ㆍ이탈리아ㆍ괌ㆍ과테말라 등지이다.
  • 화학무기 80∼90% 감축합의/미ㆍ소,제네바군축협상 공동성명

    ◎신경가스등 비축 상한 5천t으로/5월 양국 정상회담때 정식조인 【제네바 UPI 연합 특약】 제네바에서 화학무기 감축협상을 진행중인 미국과 소련대표단은 25일 신경가스를 비롯한 화학무기의 대폭감축을 위한 기본사항에 합의했다. 양측은 이날 공동성명을 발표,『오는 5월 미소정상회담에서 화학무기감축조약이 정식으로 조인될 것』이라고 밝혔다. 공동성명에 따르면 미소 양국은 화학무기의 비축상한선을 각각 5천t으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소련은 현재 보유중인 화학무기 5만t중 90%에 해당되는 4만5천t을 폐기하며 미국은 보유중인 2만5천t의 80%인 2만t을 폐기하게 된다고 미측 협상대표일원인 스테판 리더거가 밝혔다. 폐기량으로 보면 소련은 미국보다 2배가량의 화학무기를 폐기하게 된다. 공동성명은 5월16일부터 19일까지 모스크바에서 열릴 미소외무장관회담에서 최종 의견조정을 거친 다음 5월말로 예정된 양국정상회담에서 폐기협정이 정식 조인될 수 있을 것으로 밝히고 있다. 현재 미측은 구형 화학무기를 폐기하는 대신 신형무기 배치 상한선을 5백t으로 하자고 요구하는 반면 소련은 이에 반대하고 있어 최종의견조정을 남겨 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외언내언

     소련과 북한,북한과 소련은 요즘 40여년간의 동맹관계에도 불구하고 서로 심기가 편치 않다. 모스크바방송이 최근 그들의 저명한 사학자의 증언을 빌려 6.25가 북한의 기습남침에 의한 것임을 거듭 밝힌것도 그런 불편한 심기의 한 표현일 것이다. ◆소련은 최근 연이어서 방송 신문 잡지등 언론매체를 통해 김일성의 해방전 정체를 소련군 대위로 규정해주거나 6.25 남침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도 지지 않는다. 그들은 지금 북한에서는 최대 명절로 돼 있는 김일성의 생일(4월 15일)잔치에 북한 또는 평양에 거주하는 소련인을 한사람도 초청하지 않았다. 그들을 조만간 추방하리라는 소문도 나돈다. ◆곰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소련의 고집도 대단하다. 모스크바 당국은 북한의 주소대사 손성필이 부임한지 50일이 넘도록 신임장을 제정받지 않고 있다. 대사는 주재국에 신임장을 제정함으로써 공식활동이 시작되는 외교관례에 비추어 이는 손에 대한 신임유보뿐 아니라 북한에 대한 신임유보가 되는 셈이다. 페레스트로이카 소련과 폐쇄 북한간의 냉랭한 입상을 보는듯 하다. ◆고르바초프 페레스트로이카의 배경을 굳이 요약한다면 「필요」와 「이익」이다. 이념이나 체제에 얽매여 창의력과 성취력을 잃은 현재 그 상태로 둔다면 소련은 21세기에 들어서서는 미국과 함께 세계를 주도 할 수 없으리라는 절대절명의 위기감의 소산이라고 해도 좋다. 그런 역사적 인식이 시대적 추세를 타고 소련의 개방과 변혁,사회주의 동구권의 민주화 개혁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북한이 이에 반기를 드는 것이다. ◆사실 북한에 관한한 소련만큼 잘 알고 있는 나라도 없다. 김을 밀어 북한 정권을 창출했고 그의 말을 따라 남침에 동조하고 군사적으로도 지원했다. 소련은 김에게 있어 영원한 은인인 것이다. 그런 그가 종주국의 세계 전략인 페레스트로이카에 따르지 않고 빗나가고 있다. 괘씸죄에 해당하는 것이다. 소련의 대북한 압력은 그러니까 김일성 길들이기 또는 끌어내기 작전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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