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폐허
    2026-06-18
    검색기록 지우기
  • 자질
    2026-06-1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576
  • 이란 원전 인근서 6.1강진… 최소 3명 사망

    이란 남부 부셰르에서 남동쪽으로 96㎞ 떨어진 지점에서 9일(현지시간) 규모 6.1의 강진이 발생해 최소 3명이 사망했다. 이란 정부는 인근 원자력발전소는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사상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AP통신과 이란 국영TV 등에 따르면 이날 이란의 유일한 원자력발전소가 위치한 부셰르에서 남동쪽으로 96㎞ 떨어진 카키 마을에 규모 6.1의 강진이 발생했으며 이어 규모 5.3과 4.4의 여진이 두 차례 이 지역과 인근을 강타했다. 이란 당국은 지진 피해 지역이 광범위해 사상자가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란 구조대와 헬기가 현재 지진 피해 지역에 급파돼 구조 활동을 벌이고 있다. 부셰르 원자력발전소는 진앙에서 약 70㎞ 떨어져 있다. 부셰르주 페레이둔 하산반드 주지사는 “원자력발전소에 어떠한 피해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카키 마을의 주민인 몬다니 호세이니는 “지진에 따른 공포로 주민들이 모두 거리로 나왔다”고 말했다. 목격자들은 이란과 페르시아만을 사이에 둔 바레인, 아랍에미리트연합, 카타르에서도 지진의 진동을 느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 7일에도 이 지역에서 약한 지진이 발생했다. 이란에서는 2003년 12월 26일 동남부 케르만주 고대유적 도시인 밤시를 폐허로 만든 규모 6.6의 강진으로 약 3만 1000명이 사망한 바 있다. 김미경 기자 chaplin7@seoul.co.kr
  • 환갑 맞은 SK그룹 ‘조용한 기념식’

    환갑 맞은 SK그룹 ‘조용한 기념식’

    수출 600억 달러, 고용 8만명의 재계 3위 기업. 8일 환갑을 맞는 SK그룹의 현재 위상이다. 섬유, 석유화학, 이동통신 등을 주력 사업으로 키워 국내 산업 성장의 한 축을 담당해 왔기에 성대한 ‘환갑잔치’가 당연시되지만 축하 분위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구속 중인 최태원 SK㈜ 회장과 최재원 SK㈜ 부회장의 항소심 첫 공판이 열리기 때문이다. SK그룹은 창립 60주년을 맞아 이날 오전 경기 용인 SK아카데미에서 조용한 기념식을 연다. 비공개 행사로, 오후 공판에 출석하는 최 부회장을 비롯해 김창근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구자영 SK이노베이션 부회장, 하성민 SK텔레콤 사장, 최신원 SKC 회장 등 고위 관계자와 원로들이 참석한다. SK의 역사는 창업주인 고 최종건 회장이 1953년 4월 8일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된 수원시 권선구 평동 4번지 일대를 매입해 선경직물을 세우고 16대의 직기를 돌리면서 시작됐다. 이후 최종현 회장이 1973년 선경석유를 설립한 뒤 대한석유공사를 인수해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 계열화를 완성했다. 1994년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을 4271억원에 인수해 그룹 사업의 3대축을 세웠다. 1976년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한 SK는 국내 성장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최태원 회장 주도로 글로벌 공략에 주력했다. 이에 따라 2004년 수출 100억 달러, 2005년 200억 달러를 돌파하고 지난해에는 수출 600억 달러를 넘어섰다. SK 관계자는 “한 갑자(甲子)를 돌았다는 것은 새로운 출발선에 선다는 것”이라며 “따로 또 같이 3.0의 성공적인 운영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는 SK그룹의 모습을 보여 주겠다”고 말했다. 김창근 의장은 창립 60주년에 맞춰 발간된 사사(社史)를 통해 “지난 60년은 국민의 의(衣)생활을 바꾸고 산업화시대 한강의 기적을 일궈 낸 에너지를 만들어 왔다”면서 “정보화 시대에는 정보기술(IT) 강국을 선도해 왔다”고 회고했다. 이어 “앞으로의 명제는 행복과 국제화에 있다”고 덧붙였다. 최 회장도 60년사 기념사에서 “SK의 도전·열정의 원천과 목적은 행복에 있다”며 “구성원 모두가 언제나 사회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기업시민으로서 해 나갈 역할을 찾기 위해 힘쓰자”고 당부했다. 한편 최 회장에 대한 항소심 첫 공판은 이날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 신화 속 ‘지옥으로 가는 문’ 실제장소 찾았다

    해외 고고학자가 터키에서 ‘지옥으로 가는 문’(The Gate of Hell)을 발견했다고 주장해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 디스커버리뉴스 등 해외 언론이 2일 보도했다. 이탈리아 살렌토대학의 고고학자 프란체스코 단드리아 교수에 따르면, 터키 남서부에서 발견한 이곳은 파무칼레, 고대명 히에라폴리스이며, 로마시대부터 극장과 신전, 사람들이 다 함께 목욕할 수 있는 온천 등이 발달했다. 현재의 파무칼레는 석회화단구(석회암 지역에서 물에 녹아있던 탄산칼슘이 침전하여 접시 모양의 지형이 계단 형태로 접하는 지형)로 유명하다. 단드리아 교수는 유명한 고대도시에서 이미 폐허가 된 지역을 찾았는데, 2년 여의 조사 끝에 이 폐허가 신화 속 ‘지옥으로 가는 문’의 실제 장소가 확실하다고 결론지었다. 그리스 역사학자인 스트라보(Strabo, 기원전 60~서기 24년)은 ‘지옥으로 가는 문’에 대해 “이곳은 안개와 증기로 가득 차 있어 간신히 앞을 볼 수 있다. 또한 어떤 동물도 죽음을 피해갈 수 없는데, 참새를 떨어뜨려보니 곧장 죽는 것을 목격했다.”고 기록한 바 있으며, 단드리아 교수는 스트라보가 묘사하는 곳이 히에라폴리스의 이 폐허라고 주장했다. 단드리아 교수는 “과거 이곳의 온천에서는 사람이나 동물에게 매우 해로운 성분을 포함한 증기가 뿜어져 나와서 생명체가 접근하기 매우 어려웠을 것”이라면서 “실제로 우리는 발굴 작업 중 동굴 입구에서 이산화탄소 등 탄소산화물 때문에 죽은 새의 사체를 여럿 발견했다.”고 전했다. 이어 “이곳에서 발견한 대리석 기둥에는 지하세계의 왕인 플로토와 코레(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젊은 여인의 상)를 상징하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으며, 이들에게 재물을 바치는 재단의 흔적 역시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프란체스코 단드리아 교수는 2011년 32년의 연구 끝에 예수님의 12제자 중 한명인 사도 빌립의 무덤을 파무칼레에서 찾았다고 밝혀 눈길을 끌기도 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현대차 노조 中·美·加 연수 12년째 진행… 올 770명 참가

    현대자동차 노조는 31일 올해 현대차 노조 해외연수 계획에 따라 1차로 노조원 35명이 이날 해외연수 출발을 했다고 밝혔다. 현대차 노조 올해 해외연수는 8박 9일간 일정으로 오는 6월 3일까지 모두 22차례에 걸쳐 진행되며 모두 770명이 참가한다. 대리 이하 모든 직원을 대상으로 노사가 5대5 비율로 대상자를 추천, 선발했다. 참가자들은 중국 베이징 현대, 미국 디트로이트 기술연구소, 캐나다 판매법인을 둘러보고 글로벌 자동차 시장 상황과 현대차 경쟁력의 현주소를 체험할 예정이다. 특히 해외연수 기간 미국 자동차산업의 중심에서 폐허가 된 디트로이트 시가지도 찾을 계획이다. 미시간대학에서 미국 빅3(GM·포드·크라이슬러) 노사관계 특강도 듣는다. 현대차 노조 해외연수는 단체협약에 따라 2002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12년째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산업폐기물 넘쳐나던 ‘쓰레기섬’의 대변신

    산업폐기물 넘쳐나던 ‘쓰레기섬’의 대변신

    해외 일류 작가의 일류 건축을 비싼 돈 들여 기필코 들여오고야 마는데, 그래서 지방자치단체장님과 사장님은 으쓱으쓱하시는데, 안타깝게도 평은 안 좋은 경우가 태반이다. 돈 들였으니 폼은 나는데, 수근거림은 잦아들지 않는다. 그래서 공공미술에 관심있다면, 이 책은 꼭 읽어볼 만하다. ‘예술의 섬 나오시마’(안도 다다오 등 지음, 박누리 옮김, 마로니에북스 펴냄)다. 나오시마는 일본 세토나이카이 - 일본의 가장 큰 섬 혼슈와 그 아래 2개 섬 사이의 내해 - 에 있는 작은 섬이다. 둘레 16㎞에 인구는 고작 3300명 수준이다. 바닷가를 따라 공업지대가 발달하다 보니 지독한 산업폐기물과 환경오염에 시달렸다. 한때 주민 수가 200명까지 줄어들기도 했다. 이걸 후쿠다케 소이치로 베네세그룹 회장이 뒤집었다. 건축가 안도 다다오를 끌어들여 1992년 미술관과 호텔을 결합시킨 베네세하우스를 열었다. 이어 1997년 섬마을 자체를 변화시키는 이에(家)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2004년 그 유명한 지추(地中)미술관을 열었다. 지추미술관이 서양미술의 정수라면, 동양미술의 정수는 무엇일까 고민하다 2010년 이우환미술관까지 열었다. 노력은 이웃 섬으로 번졌다. 20세기 초부터 폐허로 남아 있던 이누지마 섬의 구리제련소는 세이렌쇼미술관으로 바뀌었고, 16년 동안 산업폐기물 불법투기장이었던 테시마 섬에는 2010년 테시마미술관이 들어섰다. 사람들이 열광하자 2010년 7월 19일 이들 섬을 다 묶어 ‘세토우치 국제예술제’를 열었다. 그 과정을 후쿠다케 회장에서부터 참여한 예술가들까지 모두 글로 썼다. 여기서 잠깐. 업적에 목마른 사람들의 관심은 딱 하나다. 세토우치 예술제에 “105일 동안 95만명이 다녀갔다.” 벤치마킹에 나선다. 그런데 진짜 벤치마킹 대상은 “기업활동의 목적은 문화여야 하고, 경제는 문화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후쿠다케 회장의 ‘공익 자본주의’ 정신 아닐까. 얼마 전 건축계 노벨상이라는 프리츠커상을 일본인이 6번째로 수상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작가 건물이 요란뻑적지근하던가? 공공미술에서 중요한 건 돈, 장식, 껍데기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 그 태도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남들이 좋다는 거 애써 돈 들여 쫓아다니기보다 지금 우리 현실에 대한 감수성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이 해설을 붙였고, 부록에는 여행 정보도 실었다. 1만 8000원.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북한군 해상 훈련 망원경에 보이니 불안해 짐 싸놨어요

    북한군 해상 훈련 망원경에 보이니 불안해 짐 싸놨어요

    연평도는 지금 “좀 불안해도 어쩌겠어요. 먹고살려면 또 연평도로 들어가야죠.” 북한의 정전협정 및 불가침협약 백지화 선언으로 한반도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한 11일 오후, 인천과 연평도를 잇는 서해 뱃길은 오히려 폭풍전야처럼 잔잔했다. 연평도행 여객선 코리아나호에는 평소보다 2배가량 많은 270여명이 올라탔다. 전날 높은 파도 탓에 하루 한 차례 다니는 여객선이 운항을 하지 않아 섬으로 돌아오지 못했던 주민, 해병대원, 공무원, 취재진이 대부분이었다. 여객선이 출항 3시간여 만인 오후 2시 50분쯤 대연평도 당섬부두로 들어섰다. 섬에는 적막감과 긴장감이 휘감고 있었다. 인천행 여객선은 143명을 태운 채 섬을 빠져나갔다. 연평면사무소 관계자는 “아직 섬을 빠져나가려는 사람은 눈에 띄게 늘어나지 않았다”고 전했다. 주민들은 다음 달 1일 시작되는 꽃게 출어기를 앞두고 선박, 어구 등을 분주히 손질하거나 농어를 잡으러 어선 10척 가량이 출항하는 등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연평도 통합학교인 연평초·중·고교의 학생 136명과 교직원 45명도 이날 모두 등교해 정상 수업을 진행했다. 주민들은 “북한의 도발 엄포가 한두 번이냐”며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대연평도와 소연평도를 오가는 행정선 선장으로 20여년간 일한 주민 변모(66)씨는 “도발 때마다 매번 놀라면 어떻게 살겠느냐”면서 “2010년 연평도가 포격당한 뒤 연평부대가 인력, 무기를 확충했기 때문에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2년 전 북한의 포격 도발을 기억하며 불안해하는 주민들도 있었다. 어민 이모(45)씨는 “어르신 중에는 옷가지를 싸놓고 대피할 준비를 하고 계신 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방춘자(60·여)씨도 “북한이 또 남한의 섬을 공격할 수 있다는데 가까운 연평도가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지 않겠느냐”면서 “젊은이 중에는 이미 섬을 빠져나간 사람도 있다”고 덧붙였다. 키 리졸브 훈련 뒤를 걱정하는 주민도 있었다. 주민 장모(66)씨는 “한·미 합동군사훈련 동안은 오히려 안전하겠지만 오는 21일 훈련이 끝난 뒤 도발 가능성이 더 클 것 같다”면서 “여기서 망원경으로 보면 북한군이 해상 상륙훈련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고 불안해했다. 연평도에는 2년여 전 북한의 포격 상흔 일부가 여전히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연평종합운동장의 담벼락에는 포탄이 꽂혀 파인 자국이 그대로였고 포격 이후 폐허가 된 주변 산에는 여전히 나무가 자라지 않고 있다. 연평초·중·고교 주변 피폭 현장에는 지난해 11월 안보교육장이 건설됐다. 연평도에 주둔하는 해병대 연평부대는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잔뜩 긴장하며 대비하는 모습이었다. 군 관계자는 “연평부대의 휴가 병력 등에 귀대 명령을 내리지는 않았지만 대북 경계태세를 격상시킨 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주민은 “도대체 언제쯤이면 북한에 공격당할까 걱정하지 않고 평온한 일상생활에만 집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연평도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백령도는 지금 ->“오늘 아침에 등산을 다녀왔습니다. 북한의 도발이 두려우면 한가로이 산이나 다니겠습니까.” 11일 오후 우리나라 최북단 백령도에서 만난 문정희(48·여)씨는 “북한의 협박에 워낙 면역이 돼 동요하는 주민들은 많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김복남(54) 진촌어촌계장은 한 술 더 떠 “북한의 위협을 연례행사로 생각하고 평소처럼 생활하고 있다”며 “문제는 4월 말부터 까나리 조업에 들어가는데 어업이 통제돼 조업할 수 있을지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북한과의 위기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백령도를 찾지만 이런 유형의 대답이 오히려 익숙하다. 거리를 가 봐도 예전과 다름없다. 면사무소·수협 등이 자리 잡아 번화가에 해당되는 진촌4리에는 많지 않은 사람이지만 평상시와 같은 분위기가 감지됐다. 식당이나 잡화점 등은 모두 문을 열어 정상적으로 영업을 하고 있었다. 슈퍼에 가봐도 사재기하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 이곳에서 숙박업을 하는 전영자(56·여)씨는 “이곳은 중심가라고 해도 평소 사람이 이 정도밖에 안 된다”면서 “그런데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방송에서 ‘주민들이 불안해서 돌아다니지 않는다’고 보도하니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사람들”이라며 짜증을 냈다. 하지만 불안한 속내를 넌지시 드러내는 사람들도 있다. 강대석(64)씨는 “조금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일이 자꾸 반복되다 진짜 전쟁으로 치달을까 우려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불안의 만성화가 오히려 주민들의 일상적 평온을 가져왔다는 역설을 제기하기도 한다. 수십년 동안 서해 5도를 둘러싸고 각종 사건·사고가 되풀이되자 주민들이 위기에 무감각해져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어업과 농업, 관광 등에 의지해 살아가는 주민들의 사정이 예전만 못하자 주민 스스로 의식적으로 정치와 남북문제를 멀리한다는 시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면사무소 관계자는 “이곳에서 수년간 살아봤지만 주민의 심리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분명한 것은 백령도가 최북단 지역이라고 해서 ‘안보’를 접목시키려는 일반적인 시각은 잘못됐다”고 말했다. 정작 분주한 곳은 행정기관이다. 백령면사무소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3일 전부터 대피소 26곳을 개방하고 점검에 들어갔다. 민·관·군 별로 담당자를 정해 비상연락망을 갖추고 대피 유도 매뉴얼을 마련했다. 지난해 상반기 준공된 첨단 대피소에는 3일치 비상식량과 생필품 등이 갖춰져 있다. 주민들에게는 주말부터 3회에 걸쳐 “유사시 신속히 대피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라”는 방송을 내보냈다. 백령면 직원 김영구(40)씨는 “북한이 핵실험에다 전면전이니 하면서 떠들어대니 사실 주민보다 우리가 더 신경이 쓰인다”면서 “방송을 하면 불안감만 조성한다며 항의하는 주민들도 있어 난감하다”고 말했다. 백령도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잿더미 집’ 이틀째 삽질 해봤지만 한숨만…

    ‘잿더미 집’ 이틀째 삽질 해봤지만 한숨만…

    11일 울산 울주군 언양읍 직동리 신화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시꺼멓게 변한 마을 뒷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불은 하루 전에 꺼졌지만, 잿더미에서 나는 메케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마을회관을 지나 야트막한 뒷산 쪽으로 조금 걸어가자 폭격을 맞은 듯한 김득렬(56)씨의 무너진 집이 나왔다. 토요일 오후 9시쯤 집으로 날아든 불길을 피해 체육복만 걸친 채 뛰쳐나왔다는 김씨는 지붕과 가재도구 모두 사라지고 앙상한 뼈대만 남은 곳에서 한숨을 쉬고 있었다. 삽으로 타다 남은 잿더미를 치워보지만, 역부족이다. 김씨는 “폭격 맞은 듯 내려앉은 집을 그냥 두지 못해 이틀째 나와서 잿더미에 몇 번 삽질을 해봤지만, 답이 없다”며 “사람의 손으로 도저히 치울 수가 없어 중장비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의 집에서 산자락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주인 조차 없는 폐허가 눈에 들어왔다. 지붕에 사용됐던 것으로 추정되는 양철판은 마구 구겨진 채 널브러져 있고, 뼈대만 남은 집은 손만 대도 무너질 것 같았다. 전쟁 때 포격을 맞은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가재도구에서도 타는 냄새가 남아 있다. 수십 년간 마을 뒷산을 지켰던 아름드리 소나무는 숯덩이로 변해 있었고, 잡목과 어린 나무는 형체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소방헬기가 뿌린 물은 잿더미와 섞여 질퍽했다. 산자락과 멀리 떨어져 있어도 피해는 마찬가지였다. 엄주현(59)씨의 집은 강한 바람을 타고 날아든 불씨에 안방과 창고 등을 모두 태웠다. 이번 산불로 집을 잃은 이재민은 울산 울주군 전체 26가구에 이른다. 현재 이재민들은 마을회관과 경로당 등에서 이틀째 생활하면서 지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산불은 ‘자연재해대책법’상 인적재난으로 분류돼 정부와 지자체의 피해 보상 지원을 받을 수 없다. 또 농촌마을이라 화재보험도 가입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강영복(62) 신화마을 이장은 “이번 산불이 신화마을(130가구 중 15가구 피해)에 가장 큰 피해를 입혔다”면서 “나이가 많은 주민은 다른 곳으로 이사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새로 집을 짓기도 힘든 형편인 만큼 정부가 지원을 해주든지, 아니면 싼 이자로 돈을 빌릴 수 있도록 도와주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축산농가의 피해는 더 심각한 상황이다. 신화마을에서 농로를 따라 800m가량 이동하자, 이하우(45)씨의 축산농가가 나왔다. 이씨가 키우던 350마리의 개 가운데 170마리만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이씨는 “간신히 목숨을 건진 개들도 연기를 많이 마셔 폐렴 등 후유증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면서 “대학생 아이들 뒷바라지와 생활비 마련도 걱정”이라고 말했다. 울주군의 중간 조사 결과, 이번 산불로 폐사한 닭, 개, 소, 염소 등 가축은 450마리에 이르고, 양봉도 150통이나 손해를 입었다. 자식처럼 기르던 가축을 잃은 축산농가는 생계가 막막하다. 소규모 사육으로 가축공제보험(국가 50%+농가 50%)에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와 울주군은 행정안전부의 특별교부금 5억원을 산림복구에 긴급 투입할 계획이다. 울주군은 이날 현장을 돌며 피해 규모를 조사하는 한편 긴급대책회의를 열어 이동식 주택 지원 등 피해 복구대책을 논의했다. 울주군 관계자는 “화재는 인적재난이라 정부와 지방비를 지원할 근거가 없고, 정부의 특별재난지역 지정도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다만, 산불을 낸 사람이 잡히면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는 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글 사진 울주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주말 영화]

    ■고스트 라이더(OBS 토요일 밤 11시 15분) 자니 블레이즈(니컬러스 케이지)는 세계 최고의 모터사이클 스턴트 챔피언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악마 메피스토펠레스(피터 폰타)에게 자신의 영혼을 팔아넘긴 자니는 밤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는 불멸의 영혼 사냥꾼 ‘고스트 라이더’로 변하게 된다. 악마의 요구대로 영혼을 빼앗아야 하는 운명과 정의감 사이에서 방황하던 자니는 첫사랑 록산(에바 멘데스)과 재회하고, 차마 자신의 비밀을 밝힐 수 없어 괴로워한다. 한편 4명의 타락천사 ‘데블 4’를 동원해 어두운 세상의 지배를 꿈꾸는 메피스토펠레스의 아들 블랙하트는 가장 큰 방해세력인 고스트 라이더와의 정면 승부를 위해 록산을 내세워 상상조차 할 수 없던 공격을 준비한다. ■피아니스트(EBS 토요일 밤 11시) 1939년 폴란드 바르샤바. 유명한 유대계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은 한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쇼팽의 야상곡을 연주한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의 불길이 한창 타올랐던 바로 그때, 스필만이 연주하던 라디오 방송국이 폭격을 당한다. 유대인 강제 거주지역인 게토에서 생활하던 스필만과 가족들은 나치 세력이 확장되자 죽음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싣게 된다. 기차로 향하는 행렬 속에서 평소 스필만의 능력에 호감을 가졌던 유대인 공안원이 그를 알아보고 제지한다. 가족을 죽음으로 내보내고 간신히 자기 목숨만을 구한 스필만. 몇몇 사람들의 도움으로 나치들의 눈을 피해 숨어다니며, 폭격으로 폐허가 된 어느 건물에 자신의 은신처를 만들게 된다. ■왕의 남자(EBS 일요일 밤 11시) 조선 연산군 시대. 남사당패의 광대 장생은 자신의 하나뿐인 친구이자 최고의 동료인 공길과 보다 큰 놀이판을 찾아 한양으로 올라온다. 타고난 재주와 카리스마로 놀이패 무리를 이끌게 된 장생은 공길과 함께 연산과 그의 애첩인 녹수를 풍자하는 놀이판을 벌여 한양의 명물이 된다. 공연은 대성공을 이루지만, 그들은 왕을 희롱한 죄로 의금부로 끌려간다. 의금부에서 문초에 시달리던 장생은 특유의 당당함을 발휘해 왕을 웃겨 보이겠다고 호언장담한다. 하지만 막상 왕 앞에서 공연하자 모든 광대들이 얼어붙는다. 장생 역시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왕을 웃기고자 갖은 노력을 하지만 왕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바로 그때 얌전하기만 한 공길이 기지를 발휘해 특유의 연기를 선보이자 왕은 못 참겠다는 듯이 크게 웃어버린다.
  • [DB를 열다] 1968년 나비작전으로 철거된 종삼 골목

    [DB를 열다] 1968년 나비작전으로 철거된 종삼 골목

    1968년 10월 5일, 속칭 ‘종삼’으로 불리던 서울 종로3가 일대 사창가가 30여년 만에 철거됐다. 종삼의 위치는 종로3가 로터리~돈화문~원남동 로터리~종로4가 로터리~종로3가 로터리를 연결하는 구역 안의 종로 3·4가, 낙원동, 묘동, 봉익동, 훈정동, 인의동, 와룡동, 권농동, 원남동 일대였다. 이날 윤락녀 72명이 마지막으로 보호소에 넘겨짐으로써 250여 가구, 1400여명에 이르던 사창가 여인들이 종삼을 완전히 떠났다. 땅값은 며칠 사이에 배나 뛰었지만, 살길이 막막해진 창녀들은 수용소로 가던 버스 안에서 유리창을 깨면서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사진은 윤락녀들이 떠난 후 촬영한 종삼 골목 풍경이다. 새벽 5시에 시작된 철거 작전의 이름은 ‘나비 작전’이었다. 나비란 윤락녀(꽃)를 찾는 남성들을 상징하는 말이었다. 사창가를 없애려면 윤락녀를 단속하는 것보다 유객들을 단속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데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나비에 이어서 꽃을 내쫓은 이 작전은 김현옥 시장의 작품이었다. 종삼을 자주 드나들었던 사람들은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진 소위 ‘먹물’들이었다. 그들 사이에서 종삼은 전쟁이 끝난 뒤 황폐한 사회분위기 속에서 허무감에 빠져 방황하던 영혼을 달래줄 안식처로 미화되었다. 생존한 한 원로 시인은 1950년대의 폐허에서는 명동의 술과 종삼의 여자만이 작가의 고향이었다고 적고 있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 [사설] 박근혜號 5년 뒤 국민행복港에 닻 내리려면

    박근혜 정부의 아침이 밝았다. 오늘 0시 군 통수권을 넘겨받으며 임기를 시작한 박근혜 대통령은 오전 11시 취임식과 함께 2018년 2월 24일까지 대한민국의 5년을 끌고 갈 첫발을 내딛는다. 65년 헌정사의 11번째 대통령이며, 첫 여성 군 통수권자인 그에게 국민이 부여한 소명은 실로 크고 무겁다. 무엇보다 온 국민이 내일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해야 한다. 일자리를 더 만들어 활력을 잃은 경제를 되살리고, 미래 성장동력을 키워야 한다. 계층과 지역, 이념, 세대의 간극을 좁혀야 한다. 핵을 앞세운 북한의 안보 위협으로부터 5000만 국민의 안녕을 지켜내는 것은 물론 한반도 평화 통일의 기반을 닦아야 한다. 법과 원칙을 바로 세워 사회 정의를 구현해야 한다. 가진 자와 힘 있는 자의 횡포로 인해 돈 없고 힘 없는 이들이 눈물 짓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저마다 꿈을 가질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이뤄낼 수 있다는 희망을 줘야 한다. 이를 위해 국민이 정부를 신뢰할 수 있도록 쌍방향 소통에 힘써야 한다. 그리고 이런 노력들을 하나하나 모아 국민 모두가 함께 웃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이를 ‘국민 모두가 행복한 나라’ ‘국민 행복, 희망의 새 시대’라 축약했고, 이를 실현하겠다고 다짐했다. 쌍방향 소통으로 국민동참 확대를 역대 대통령 가운데 국민 행복을 도외시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파나 시대상황에 따라 성장과 분배의 무게에 차이를 두긴 했으나, ‘국민 행복’은 모든 정부의 존재가치였다. 그럼에도 적어도 1987년 민주화 이후 지금까지 5개 정부를 거치는 동안 국민들의 행복 체감도는 진작되지 못했다. 국민총생산 세계 10위권인 한국인의 행복지수가 지난해 148개국 중 97위라는 미국 갤럽의 여론조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 국민 가운데 지금 행복하다고 말할 사람은 찾아보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외형적 경제성장이 국민 개개인의 행복 증진으로 이어지지 못한 결과다. 바깥에서는 식민 지배와 6·25전쟁의 폐허 위에서 1960년대 이후 본격화된 산업화로 일군 ‘한강의 기적’에 찬사를 보내고 있으나, 정작 국민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빠져 있고 저마다 적잖은 업적을 남긴 전임 대통령들은 하나같이 국민의 박수를 받지 못한 채 청와대를 떠났다. 출발선에 선 박 대통령은 전임들이 왜 쓸쓸하게 퇴장해야 했는지 깊이 성찰해야 한다. 새 정부 출범에 가슴 부풀었던 국민들이 왜 5년 뒤면 예외 없이 고개를 떨구고 탄식해야 했는지 숙고해야 한다. 출범을 앞두고 마련된 박근혜 정부의 5대 국정목표와 140개 국정과제는 큰 틀에서 앞머리에 열거한 시대적 요구를 두루 담아낸 것으로 보인다. 대선 때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경제 민주화가 명시되지 않았고, 막대한 복지 재원 계획이 여전히 구체화되지 않은 점 등 아쉬운 대목이 있지만 이는 향후 정책운영 과정을 통해 풀어나갈 과제일 것이다. 관건은 박근혜 정부가 국민행복이란 고지에 어떻게, 어떤 수단과 경로로 오를 것인가의 문제, 즉 박근혜 리더십이다. 지난해 대통령에 당선된 뒤 오늘 취임하기까지 67일간 대통령 당선인 신분으로 보여준 박 대통령의 리더십은 유감스럽게도 썩 좋은 평가를 얻지 못했다. 대탕평을 약속했던 새 정부 인사는 보안과 전문성을 강조한 나머지 사전검증의 부실 속에 지역과 계층의 안배가 이뤄지지 못했다. 야권과의 관계도 정부조직 개편 지연과 이에 따른 반쪽 출범이 말해주듯 결코 원만하지 않다. 전임들의 불통과 독주의 리더십이 어른거린다. 어머니 리더십으로 통합 힘써야 박근혜 1인에게 집중되는 집권세력 내 의사결정 구조부터 스스로 깨야 한다. 박 대통령이 다짐한 책임장관제만 해도 결코 말로 될 일이 아니다. 자신에게 스스럼없이 ‘노(No)!’라 말할 수 있는 소통의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대통령으로서 국정과제와 정책방향을 제시한 만큼 실질적인 인사권 부여 등을 통해 장관들 각자가 알아서 뛰도록 한 발 물러설 줄 알아야 한다. 청와대 비서실이 대통령의 이름으로 개입하고 딴죽을 거는 일도 없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권력 내부의 쌍방향 의사소통과 실천 구조가 사회 각 부문으로 퍼져 경제·사회·문화 각 영역이 스스로 자율과 창의를 발휘해 매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경제가 살고, 화해와 통합의 기운이 싹튼다. 박 대통령 앞에는 숱한 도전이 놓여 있다. 이 중 핵을 부둥켜안은 북한을 여하히 개혁·개방으로 견인하고, 대선 때 그를 거부한 48%의 국민을 잘 포용하느냐가 새 정부 성패의 열쇠일 것이다. 안으론 뜨거운 가슴이, 밖으론 차가운 머리가 요구된다. 산업화·민주화 세력의 진정한 화해와 지역·계층의 따뜻한 통합을 임기 초부터 열정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런 ‘어머니 리더십’으로 국가 에너지를 끌어올리고, 이를 통해 한민족의 공멸을 부를 북한의 ‘핵 불장난’을 포기시키고 한반도에 항구적 신뢰체제를 구축하는 길로 그들을 끌어내야 한다. 5년은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다. 이 안에 그 숱한 과제들 중 얼마만이라도 이뤄내 나라를 바꾸려면 그 출발점은 대통령 자신부터 바꿔 나가는 일일 것이다. 5년 뒤 국민 다수가 그래도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정부가 되기를 기원한다.
  • 구글어스에 잡힌 선명한 ‘남자 유령’ 진짜? 가짜?

    구글어스에 잡힌 선명한 ‘남자 유령’ 진짜? 가짜?

    영국의 한 여성이 구글 어스로 명확한 형태의 ‘남자 유령’을 포착했다고 주장해 눈길을 모으고 있다.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15일자 보도에 따르면, 글로스터셔주 남부 인근에 사는 피오나 포웰(38)은 과거 비행장으로 쓰였지만 현재는 폐허가 된 마을 부지에서 작고 어두운 형태를 발견했다. 집에 돌아와 곧장 구글어스를 이용해 해당 지역을 관찰했는데, 모자를 쓰고 농부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한 남성의 그림자가 오래 된 농장 건물 옆에 서 있었다. 이 ‘유령’이 등장한 지역은 1946년부터 유령이 자주 출몰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난 찰튼(Charlton)마을이다. 이곳은 17세기에 많은 농장과 집, 교회를 소유하고 있던 영주 소속의 토지였으며 그 후 비누 제조업에 종사한 크리스토퍼 토마스라는 이름의 남성 소유였지만, 토마스와 이 토지에 살던 사람들은 거대한 항공기 격납고 및 활주로 공사를 강행한 브리스톨항공기회사(이하 BAC·현재의 BAE Systems, 영국의 다국적 군수산업체)에 의해 거의 강제로 쫓겨나야 했다. 이후 BAC 측은 이곳의 농장과 흙을 모두 뒤엎고 격납고 확장 및 활주로 공사를 했지만 항공사의 야심찬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활주로만 덩그러니 남겨졌다. 동시에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BAC로부터 받기로 한 보상금을 받지 못하게 되자 억울한 마음을 품고 살아야 했다. 포웰은 “이곳에서 유령이 출몰한다는 이야기는 책이나 전언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다.”면서 “직접 목격하고 나니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확실히 유령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사람 모양의 그림자인 것만은 확실했다. 오래된 농장 옆에 서 있었고 모자를 쓰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한편 현재 이 부지는 소유주였던 BAC(현재의 BAE)가 한 대형 부동산건설업체에 팔았으며, 활주로가 철거되고 다시 예전의 찰든 마을이 세워질 것으로 알려졌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사상 초유 정전… 1억여 시청자·관중 ‘멘붕’

    가수 비욘세가 등장한 하프타임쇼의 열기가 지나쳤을까. 제47회 슈퍼볼에서 사상 초유의 정전 사태로 경기가 35분 가까이 중단됐다. 지난해(1억 1000만명)보다 더 많은 시청자가 몰릴 것으로 기대된 세계 최대 스포츠 축제가 한창 달아오른 순간 경기장 절반이 그렇게나 오래 어둠에 잠겨 있었던 것은 창피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다. 사고는 볼티모어가 샌프란시스코에 28-6으로 앞선 3쿼터 종료 13분 22초 전에 일어났다. 슈퍼돔 지붕 조명의 절반이 들어오지 않았고 기자석 인터넷도 불통됐다. 전광판마저 나가 버렸다. 선수들은 경기가 재개될 때까지 일부 조명이 들어온 밝은 곳에서 스트레칭을 했으며 3년 만에 중계권을 가져온 CBS는 갑작스러운 사태에 광고를 반복적으로 내보내야 했다. 미국프로풋볼리그(NFL)는 “정전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는 짧은 성명만 내보냈다. NFL은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폐허가 됐던 뉴올리언스에서 슈퍼볼을 개최해 이 지역에 4억 3400만 달러(약 4752억원)의 경제적 효과를 가져다주려고 했다. 경기가 열린 슈퍼돔은 8년 전 이재민을 수용했던 장소라 재앙의 이미지가 겹쳐졌다. 팬들은 비욘세의 하프타임쇼 무대에 엄청난 전기 부하가 걸린 게 원인이 아니냐며 갑론을박했다. 비욘세는 과거 자신과 함께했던 ‘데스티니스 차일드’ 멤버들과 ‘싱글 레이디스’ ‘인디펜던트 우먼’ 등의 히트곡을 열창해 7만 6000여 관중을 사로잡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2기 취임식 때 국가를 립싱크로 불러 도마에 올랐던 그는 이날 라이브 공연을 펼쳐 논란을 불식시켰다. CBS는 30초짜리 광고 단가를 400만 달러(43억 8000만원)로 책정했는데 가수 싸이가 한국인 최초로 슈퍼볼 광고에 등장해 국제적 위상을 과시했다. 경기가 재개된 직후 파라마운트 팜스의 ‘원더풀 피스타치오’ 광고가 전파를 탔다. 이번 슈퍼볼 TV광고 중에선 영화 ‘아이언맨’을 연출한 존 파브로가 만든 삼성전자의 2분짜리 갤럭시 광고 ‘더 빅 피치’와 기아자동차의 2014 소렌토 등 국내 기업 광고가 미국인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강동삼 기자 kangtong@seoul.co.kr
  • [데스크 시각] 시진핑, 아베신조, 박근혜… ‘3각 방정식’/박홍환 국제부장

    [데스크 시각] 시진핑, 아베신조, 박근혜… ‘3각 방정식’/박홍환 국제부장

    박근혜(61) 대통령 당선인이 25일 대한민국의 제18대 대통령에 공식 취임하면 동북아시아 핵심 3국인 한국, 일본, 중국의 최고지도자 교체가 마무리된다. 앞서 아베 신조(59) 일본 총리는 지난해 12월 말 취임했고, 시진핑(習近平·60) 중국 공산당 총서기는 아베 총리보다 한 달여 먼저 권력서열 1위의 자리에 올랐다. 이처럼 한·중·일 3국의 최고지도자가 동시에 교체되는 중대한 시기에 북한 최고지도자인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장거리 로켓 발사와 3차 핵실험이라는 ‘모험’에 나섰다. 3국의 새 최고지도자들로서는 첫번째 ‘도전’인 셈이다. 박 당선인을 비롯한 3인의 ‘해법’이 주목되는 이유다. 시 총서기와 아베 총리, 그리고 박 당선인에게는 여러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박 당선인, 시 총서기, 아베 총리 순으로 한 살 터울인 이들 3인은 모두 전후세대 정치인이다. 폐허 속에서 국가의 새로운 기틀을 세우던 시기에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친이나 조부 등의 후광이 있다는 점도 닮은꼴이다. 박 당선인과 시 총서기는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혹독한 세월’을 외롭게 견뎌내야 했던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박 당선인, 아베 총리, 시 총서기가 모두 1990년대에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박 당선인은 1998년 제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권에 입문했고, 아베 총리는 그보다 5년 앞서 1993년 정계에 뛰어들었다. 시 총서기가 중국 동부 연안의 물산이 풍부한 푸젠(福建)성 성도 푸저우(福州)시의 공산당 최고책임자가 된 것은 1990년이다. 냉전이 종식되고 세상이 요동치던 시기다. 당시 그들이 어떤 이상을 품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동년배로서 비슷한 환경에서 같은 시대를 경험하면서 성장해 왔다는 사실이다. ‘공통분모’만 제대로 찾아낸다면 상호협력의 길은 열려 있는 셈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현재로선 ‘3인4각’은 어려워 보인다. 시 총서기와 아베 총리는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로 이미 어긋난 상태이다. 아베 총리와 박 당선인 사이에도 과거사 문제라는 ‘장벽’이 가로막고 있다. 박 당선인과 시 총서기의 우호적인 기류가 계속된다는 보장도 없다. 한·중 관계는 북한 ‘변수’만 등장하면 흐려지곤 했다. 시 총서기와 아베 총리가 내세우는 국정 구호도 박 당선인으로선 우려할 만하다. 시 총서기는 ‘중화민족의 부흥’ ‘강국의 꿈’을 얘기한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총선에서 ‘일본을 되찾자’고 부르짖으며 과거 영광을 재현하겠다고 약속해 압승했다. 그대로 된다면 대한민국은 ‘강력한 중국’과 ‘재무장한 일본’ 사이에 놓일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좀 더 비약해 말하면 조선 말의 상황과 다르지 않게 될 수도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시 총서기나 아베 총리 모두 박 당선인과의 협력을 바라고 있다는 점이다. 특사를 보내고, 과거의 친서까지 공개하며 ‘구애’하고 있다. 그만큼 동북아시아 세력경쟁에서 한국의 역할이 막중하다는 방증이다. 강대국 사이에 끼인 약소국의 설움은 충분히 경험했다. 선택을 잘못하면 진짜 조선 말과 같은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박 당선인에게는 민족의 명운을 좌우할 엄청난 책무가 맡겨져 있는 셈이다. 박 당선인은 5년 임기 내내 그걸 잊지 말아야 한다. stinger@seoul.co.kr
  • [명사가 걸어온 길] 3. 한국 경제의 산증인, 박승 前 한국은행 총재(상)

    [명사가 걸어온 길] 3. 한국 경제의 산증인, 박승 前 한국은행 총재(상)

    한국은행 총재, 건설부 장관 등을 지낸 박승 중앙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여전히 젊다. 공정 사회에 대한 갈망이 그 누구보다 강하다. 이메일·전자파일 등 정보기술기기를 다루는 데도 능숙하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도 여전히 많아 천문학과 사진을 배우고 싶어한다. 그의 회고록 ‘하늘을 보고 별을 보고’는 이 같은 소망을 담은 책 제목이다. 1936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난 박 교수의 집은 가난했다. 소작농이었지만 아버지는 한글 초서 개발에 매진한 학자였다. 아버지가 농촌에서 농사에 전념하지 않는 “반거충이”다 보니 어머니가 농사일을 전담했다. 아버지는 박 교수의 모교인 백석초등학교 설립을 주도했다. 아버지의 한글 초서연구 결과인 ‘한글씨’는 독립기념관에 보존돼 있다. 소년… 수업료 못 내 시험도 못 봐 하루에 14㎞를 걷고, 기차를 타고 이리공업중고등학교를 다녔지만 수업료를 제때 내지는 못했다. 중간·기말고사 때는 교문 앞에서 수업료 납부 여부를 체크해 수업료를 낸 사람만 시험을 볼 수 있게 했다. “내가 공부를 못해서 성적이 나쁜 것은 내 잘못이지만 수업료를 못내 시험을 못 봐서 성적이 나쁜 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고민했지요. 이때의 고민이 나를 성숙시켰습니다.” 지난달 초 태국으로 출국하기 전 서울신문기자와 만난 박 교수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층 간 유동성을 보장하는 것이 교육이기 때문에 교육은 빈부와 관계없이 사회가 공동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은 그때 경험이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기차 통학을 같이한 사람들은 10여명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박 교수보다 나이가 1∼2살 많았던 6명은 공산군 점령하에 청년대로 차출됐다. 수복이 되고 난 뒤에 그들은 빨치산이 돼 경찰서 습격사건을 벌이다 죽었다. 2명은 국군, 1명은 인민의용군으로 나가 전사했다. 박 교수는 “나는 나이가 어려서 살아 남았으니 이 또한 운명”이라면서도 “한국전쟁은 동족끼리 서로 죽인 가장 더러운 전쟁”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매일 일기를 썼다. 일기장은 갈색 종이를 사서 직접 만들어 썼다. 그중 일부는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 “일기가 내 일생의 성장에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 그의 평가다. 일기에는 그날그날 일어난 일도 썼지만 느끼고 반성해야 할 일도 담았다. 그래서 일기는 매일매일 뉘우치고 기도하는 장소였다. “어려울 때 용기를 주고 잘나갈 때는 겸손을 줬다”며 “어려운 환경 속에서 내가 나름대로 성장할 수 있는 데는 일기의 힘이 컸다”고 회고했다. 박 교수는 지금도 간략하게 그날의 일과를 기록한다. 어머니… 베틀북, 개똥 옆에 떨어진 감 박 교수가 어렸을 때 그의 집안에 감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가난한 집안에 먹을 것도 귀했던 시절인지라 그는 일어나면 감나무 밑으로 뛰어가 떨어진 감을 주워 먹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 맛있게 생긴 감이 개똥 바로 옆에 떨어졌다. ‘맛있게 보이기는 한데 먹자니 찜찜하고 그렇다고 버리자니 아깝고….’ 이런 고민 끝에 그는 감을 어머니에게 줬다. “이렇게 좋은 감은 너가 먹어라”는 어머니 말씀에 자초지종을 얘기했더니 어머니는 파안대소하더란다.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내가 부모를 나처럼 모신 것이 아니고 개똥 옆에 떨어진 감처럼 대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부모가 돌아가신 뒤 더욱 그 느낌이 강했다. 지금도 그의 서재에는 어머니가 쓰던 유품을 모아놓은 궤짝이 있다. 서재 곳곳에는 작은 유품들도 놓여 있다. 사진 촬영을 위해 각종 기념품이 있는 서가에서 물건을 하나 들어달라는 사진기자의 부탁에 그는 망설임 없이 베틀북을 들었다. 어머니가 길쌈할 때 쓰던 도구다. 어머니가 짠 베를 염색한 뒤 그걸 교복으로 만들어 입고 다녔단다. 박 교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해군사관학교에 진학했다. 어려서부터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경제학을 공부하기를 원했지만 가난하기에 공부할 수 없는 처지였다. 해사를 고른 이유는 학비가 없어도 공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당시 병약한 부모와 나이 어린 여동생이 농사를 지어야 하는 문제로 이어졌다. 결국 가족회의를 거쳐 1년간 농사를 짓고 공부하면서 서울대 상대 진학시험을 보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대학생… 한 손엔 책, 한 손엔 농기구 1년 뒤인 1955년 서울 상대로 시험보러 가던 길에 대한 기억이 지금도 뚜렷하다. 서울 역전과 남대문 일대는 전쟁으로 여전히 폐허 상태였다. 종로 네거리를 지날 때 눈에 띈 간판은 곰탕집, 복덕방 등이었다. “곰탕집은 곰고기를 파는 곳, 복덕방은 무슨 떡집”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그의 점심은 어머니가 싸준 찐 고구마 다섯 개였다. 합격은 했지만 공부만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다. 결국 평소에는 농사를 짓고 시험 볼 때만 학교에 나타나는 학생이 되었다. 서울에 머무는 동안은 고모집 신세를 졌다. 농사를 지으러 내려갈 때는 도서관에서 10여권의 책을 빌려가고, 학교에 있을 때는 친구의 공책을 보면서 경제학을 배웠다. 그래도 대학 4학년 때 동아일보에 매주 실렸던 대학생 논단에 환율, 농촌 개발 등 경제 현안에 대해 3차례나 칼럼을 썼다. 주경야독이었지만 실력은 뒤지지 않았던 것이다. 어느 날은 집에 내려갈 차비가 없었다. 김제까지 걸어갈 수도 없고. 이런저런 궁리 끝에 서울역에서 개찰을 담당하는 사람을 찾아가서 사정 이야기를 했다. 개찰 담당 직원인 김진성씨는 그를 여객 전무한테 데려가서 설명을 하고 인계했다. 그 뒤로 여객 전무의 도움을 받아 몇 번 기차를 타고 왔다. 박 교수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그분을 찾으러 서울역에 갔으나 행방을 찾지 못해 아직도 감사의 말씀을 전하지 못하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한국은행… 새 인생을 열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경제학을 배웠고 이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싶었다. 그러려면 교수가 돼야 하고 유학이 필요했다. 가정 형편상 유학을 갈 수 없었던 박 교수는 공부를 계속할 수 있는 곳으로 한국은행을 선택했다. 1961년 한국은행 입행으로 박 교수는 안정과 도약의 기회를 얻었다고 했다. “한은에 들어오면서 직장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공부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게 됐지요.” 한은에 합격한 기쁨에 일기장에 ‘쾌재!’라는 단어를 세 번이나 썼다. 한은에서 국민소득추계의 정확성을 높인 공로를 인정받아 1967년 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던 1968년 박 교수는 중앙정보부에 끌려갔다. 당시 서봉균 재무부 장관을 초청해 환율을 크게 올려야 한다는 정책 건의를 했는데 이것이 다음 날 아침 동아일보 1면에 환율이 큰 폭으로 오르는 것처럼 보도가 됐다. 발설자를 찾기 위해 한은 부총재를 포함해 10여명이 끌려들어가 심문을 당했다. 그러나 발설자는 나오지 않았다. 결국 자료를 만들고 보고한 박 교수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발설한 셈이 된다고 해서 그가 징계를 받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그러나 나중에 발설자가 드러나면서 한은 내부에서는 그에게 뭔가 보상을 해줘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러던 1970년 한은에 해외 학술연수제도가 생기면서 박 교수에게 기회가 주어졌다. 당시 36세였다. 2년 동안 석사를 취득하는 조건이었으나 그는 박사까지 따기로 마음먹었다. “내 인생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라고 생각한 박 교수는 “전쟁하듯이” 공부를 했다. 보통 박사학위 취득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부분은 논문 작성이다. 박 교수는 한은 조사부에서 근무한 경력을 살려 ‘노동력 과잉 경제에 있어서 외국자본의 경제개발 효과’라는 논문을 썼다. 논문 작성에 걸린 시간은 6개월. 하지만 이 같은 방법을 다른 사람에게는 권하지는 않는다. 박 교수는 “그건 나처럼 시간이 한정된 사람이 어쩔 수 없이 하는 선택”이라며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고 깊이 있는 공부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경제학 교수… 나의 꿈, 나의 길 경제학 박사가 돼 한국은행에 복귀하니 두 군데에서 일자리 요청이 왔다. 대통령 경제수석실에서 같이 일하자는 제안과 경제기획원이 제안한 사우디아라비아 경제개발자문단이었다. 우리나라와 반대 조건인 나라가 궁금했던 박 교수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선택했다. 한국에 어머니와 세 자녀가 남고, 사우디아라비아에 아내와 두 자녀가 동행하는 이산가족 신세가 1년간 계속됐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돌아온 뒤 한은에 잠시 머물다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가 됐다. 평생의 꿈을 이룬 것이다. “꿈을 실현했으니 굿판의 무당처럼” 신나게 가르쳤다. 대학 교수로 일한 시간은 총 26년. 학기가 끝날 때마다 학생들의 평가를 받았다. 지금은 보편화돼 있지만 30여년 전에는 낯선 시도를 한 것이다. 시험 채점도 조교에게 맡기지 않고 두번씩 직접 점검해서 점수를 매겼다. 신문에 글을 쓰고 방송에 나가 강연하는 활동도 열심히 했다. 서울신문 비상임 논설위원으로 1977년부터 3년간 경제 관련 사설을 쓰기도 했다. 당시는 유신 말기라 정치나 사회 쪽 사설은 쓰기가 어려웠다. 경제로 관심이 쏠리면서 매주 4∼5회 사설을 썼다. 박 교수는 ‘서울신문 100년사’에 “신문 사설을 쓰기 전에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실감하지 못했다”며 “내가 쓴 사설에 정부, 기업, 경제단체들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고 그 중요성을 점차 깨달았고 이 때문에 큰 보람과 함께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고 적었다. 1986년에는 한은 금융통화위원으로 임명돼 활동했다. 당시 금통위원은 비상임이라 매주 목요일에만 한은으로 출근했다. <하편에 계속> 전경하 기자 lark3@seoul.co.kr ■박승 前 한은 총재는 1936년 전북 김제 출생 1942~1948년 김제 백석초등학교 1948~1954년 이리공업중고등학교 1955~61년 서울대 상과대학 경제학과 1961~1976년 한국은행 조사부 근무 1972~1974년 미국 뉴욕주립대 경제학 석사 및 박사 1974~1975년 사우디아라비아 경제개발자문단장 1976년 9월~2001년 2월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1977~1979년 서울신문 논설위원 1986년 1월~1988년 2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1988년 2~12월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 1988년 12월~1989년 7월 건설부 장관 1993~1996년 주택공사 이사장 1997~1998년 교통개발연구원 이사장 2001년 2월~2002년 3월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장 2001년 3월~ 중앙대 명예교수 2002년 4월~2006년 3월 한국은행 총재
  • 해골이 150구…가장 큰 ‘인신공양’ 증거 발견

    해골이 150구…가장 큰 ‘인신공양’ 증거 발견

    멕시코에서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인신공양’(人身供養) 증거가 발견돼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인신공양은 사람의 몸을 신적 존재에게 제물로 바치는 행위나 풍습을 의미한다. 최근 미국 조지아 주립대 고고학 박사 크리스토퍼 모어하트 연구팀은 멕시코 시티 인근에서 무려 150구의 해골을 발굴하는데 성공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이 해골은 서기 600~850년 사이 당시 중미 전역(Meso-America)에 세력을 떨친 ‘테오티우아칸’(Teotihuacan)왕국에서 신에게 올린 제물로 추정된다. 실제로 ‘신들의 도시’라 불리는 테오티우아칸은 거대한 ‘태양 피라미드’ 등 여러 유적을 남겼으며 이곳에서 신에게 인간을 바치는 인신공양 의식이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번성했던 테오티우아칸은 7세기경 폐허가 되고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며 미스터리 도시로 남아 후대에 전해진 연구 자료는 극히 적다. 모어하트 박사는 “테오티우아칸의 수도시설을 구글어스를 통해 조사하던 중 이 유골들을 발견했다.” 면서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인신공양 증거”라고 밝혔다. 이어 “제물로 쓰인 인간은 대부분 남자였다.” 면서 “함께 발굴된 유물로 보아 풍년을 목적으로 신에게 비는 의식을 치른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연구결과는 이달 내 관련 저널(Latin American Antiquity)에 발표될 예정이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글로벌 시대] 우리는 대한민국입니다/이명신 월드비전 동해종합사회복지관장

    [글로벌 시대] 우리는 대한민국입니다/이명신 월드비전 동해종합사회복지관장

    언제부턴가 내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이름 ‘대한민국’. 분명 어릴 적에는 “왜 이렇게 가난하고 힘없는 나라에 태어나 고생하는가”라며 불평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구호·개발 NGO(비정부기구) 사업을 하기 위해 세계 곳곳을 다닐 때 제일 먼저 일본인이냐, 아니라고 하면 중국인이냐 묻던 시절이 있었다. 심지어 한국인이라고 하면 한국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었다. 불과 10년 전쯤 일이다. 그런데 이제는 어느 곳을 가든지 한국인이라고 하면 친밀감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렇게 국제사회에서 달라진 한국의 위상을 체감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게 되었다. 세계 경제력 규모가 10위 안팎,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3000달러를 넘어섰고 2011년 인간개발지수(HDI)는 15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도 2010년에 가입했다.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입장이 전환된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일제하에서 해방된 지 68년, 6·25 동족상잔을 겪으면서 나라가 초토화된 지 63년이 지났다. 그리고 세계지도에서 찾기도 쉽지 않은 작은 대한민국은 아직 반으로 나뉘어 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은 초고속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이는 세계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우리 스스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 누구도 대한민국을 무시할 수 없다. 우리 스스로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대한민국 국민인 것을 무시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지금도 전 세계에는 나라를 잃었거나, 분쟁 등으로 생활의 터전을 잃고 떠돌아다니는 난민들이 아시아를 비롯 6개 대륙에 3392만명(2011년 기준)이나 된다. 이 중에서 아예 나라가 없는 무국적자는 340만명에 이르고 있다. 저개발국가에서 구호·개발사업을 하다 보면 가장 비참한 것이 난민들이다. 왜냐하면 돌아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100여년 전 우리나라도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끔찍한 고통을 당했는가? 아직도 일제 치하 고통의 흔적이 우리 안에 무겁게 자리하고 있다. 지진이나 전쟁, 기근이나 한파, 쓰나미 등으로 폐허가 되어도 살아만 있으면 된다. 당장은 많은 어려움이 직면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국가가 나서고, 세계가 나서서 고통을 분담하기 때문이다. 참 다행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나라가 있다. 대한민국. 이름만 불러보아도 가슴이 벅차온다. 대한민국이 나의 조국이라는 것,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이 고맙고 자랑스럽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렇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되기까지 주변 많은 나라의 관심과 지원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우리 부모 세대와 선배 세대의 험난한 과정을 헤쳐 오는 지혜와 희생이 있었지만 우리만의 힘으로 이곳까지 오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이제는 사랑의 빚을 갚자. 고마움을 아는 나라, 세상의 고난과 아픔에 동참하는 나라 대한민국. 많은 저개발국가가 대한민국을 바라보고 있다. 희망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은 잿더미에서 일어난 유일한 나라니까. 이제 우리는 세계 속으로 들어가 어려움과 절망 가운데 있는 이웃들에게 꿈과 소망을 나누고 전해야 할 때다. 우리는 대한민국이니까.
  • 6명이나 희생된 대가가 고작 주차장입니까

    6명이나 희생된 대가가 고작 주차장입니까

    서울시 한강로2가 224-1번지. 지하철 4호선 신용산역 2번 출입구에서 150m 정도 떨어진 이곳에는 4년 전만 해도 낡은 누런색 4층짜리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5만 3066㎡에 이르는 이 일대가 용산 재개발 4구역으로 지정되기 전까지만 해도 건물 1층에는 남일당이란 상호의 금은방이 있었다. 위로는 사무실, 의원, 탁구장, 호프집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2009년 1월 20일 통틀 무렵 이 건물은 시뻘건 불길에 휩싸였다. 옥상 망루에서 농성을 벌이던 철거민 40여명은 경찰 특공대원 10여명이 컨테이너박스를 타고 4층 건물 옥상으로 올라오자 화염병을 던지며 저항했다. 경찰 진압 40분 만에 망루에 불길이 치솟았고 이내 옥상 전체로 번졌다. 결국 철거민 5명은 이날 검은 주검으로 내려왔다. 진압에 나섰던 경찰 특공대원 1명도 숨졌다. TV 뉴스 화면으로 생중계되며 국민의 마음을 시커멓게 태워버린 사건, 바로 ‘용산 참사’였다. 용산 참사 4주기를 앞둔 17일, 옛 남일당 건물 일대를 다시 찾았다. 42층짜리 주상복합 건물 5동이 들어설 예정이라던 용산 재개발 4구역은 현재 42층은커녕 1층짜리 건물도 지어지지 못한 상태다. 재개발이 중단돼 주차장과 공터로 변해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용산 참사 유가족들이 “이럴 거면 왜 성급하게 철거부터 했느냐”, “경찰이 사람 목숨 6명을 앗아가며 강제진압을 한 이유가 고작 주차장 하나 만들려고 그런 것이냐”며 울분을 토하는 이유다. 텅빈 공터 주변에는 2m 높이의 철제 펜스가 둘러처져 있었다. 펜스에는 용산 참사를 규탄하는 시민단체들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안쪽에는 각목과 녹슨 철근 등 건축자재 잔해와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고 나머지 공간은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었다. 주차관리인 오모(60)씨는 “지난해 7월부터 재건축 조합에 위임받아 운영 중”이라고 했다. 주차장 인근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모(50)씨는 용산 재개발 4구역에 대해 “도심 속 페허”라고 표현했다. 김씨는 “주차장을 볼 때마다 속이 터진다”면서 “철거 예정이던 건물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다 밀려나 결국 은행에서 2억원을 대출받아 인근으로 이주해 장사를 이어가고 있다. 한 달에 대출이자만 200만원을 내야 해 너무 힘들다”고 했다. “가장 속상한 건 근처에서 고깃집을 15년간 운영하던 칠순의 어르신이 살고 싶다고, 대화하고 싶다고 남일당 망루에 올라갔다 돌아가신 거야. 재개발이 결정된 뒤 아무런 대책 없이 철거부터 무리하게 추진하더니 결국….” 갑자기 감정이 복받친 김씨가 말끝을 흐린다. 남일당 부지에서 용산 참사로 남편 양회성(당시 56세)씨를 잃은 김영덕(58)씨는 “지금까지도 재개발이 이뤄지지 않을 거였다면 왜 그렇게 세입자들을 몰아세웠는지 모르겠다”면서 “주차장 운영도 용역 깡패들이 하는 것으로 안다. 현장을 볼 때마다 화가 난다”며 가슴을 쳤다. 고층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설 자리에 왜 폐허 같은 주차장이 만들어진 걸까. 철거민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세운 용산 4구역 재개발 사업이 현재 전면 중단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공사비 증액과 일반분양 수익 감소에 따른 추가 분담금 문제로 조합과 시공사인 삼성물산 컨소시엄 간 계약이 2011년 8월 해지됐다. 이후 조합에서 새로운 시공사 계약을 위해 재입찰 공고를 냈지만, 금융 위기와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현재까지 성사시키지 못했다. 유족들은 한목소리로 차기 정부에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고 나섰다. 당시 49세로 숨진 윤용헌씨의 아내 유영숙(52)씨는 “박근혜 당선인이 진정한 국민대통합을 말하려면 용산 참사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김석기 전 경찰청장은 국회의원에 출마하기 위해 사과하는 시늉만 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17일 오전 종로구 삼청동 인수위 앞에서 1인 시위에 나선 고 이성수(당시 51세)씨의 부인 권명숙(51)씨도 “바로 앞에서 외치는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지 않는 당선인의 정부에는 기대할 게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정은 기자 kimje@seoul.co.kr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16일 TV 하이라이트]

    ■환경스페셜(KBS1 밤 10시) 막대한 물 낭비와 거대한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되어온 똥은 버려지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프로그램은 ‘버림’에 대한 두 가지 이야기를 통해 자연을 파괴하고 소비하는 삶을 반성하고 생태순환적인 삶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또한 도심에서 퇴비 변기를 사용하고 있는 네 가족의 야심찬 도전기가 펼쳐진다. ■수목드라마 전우치(KBS2 밤 10시) 맵지의 일로 임금 이거(안용준)는 전우치(차태현)를 오해하고, 강림(이희준)은 가짜를 내세워 점점 더 강하게 전우치를 궁지로 내몬다. 이에 홍무연(유이)과 이혜령(백진희) 등은 전우치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발 벗고 나선다. 그러나 전우치는 강림의 계략으로 또다시 함정에 빠지고 마는데…. ■다큐멘터리 생존 1부(MBC 밤 8시 50분) 미국 알래스카주에 살고 있는 이누피아트들은 생존하기 위해서는 북극곰과도 싸워야 한다. 알래스카에는 인간만큼이나 오랫동안 살아온 생명체가 바로 북극곰이다. 제작진은 북극곰의 다양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고래를 잡는 날은 북극곰들에게도 일 년에 딱 한번 주어지는 포식할 수 있는 기회인데…. ■꾸러기 탐구생활(SBS 오후 4시 30분) 겨울철 대표 스포츠로 손꼽히는 스키. 우리나라의 전통스키를 직접 타보고 전통스키의 역사를 탐구한다. 2018년 대한민국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린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머나먼 평창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걸까. 평창에서 올림픽이 열리는 이유에 대해 알아보고, 동계올림픽 준비로 바쁜 평창으로 떠난다. ■극한직업(EBS 밤 10시 45분) 국내 유일 냉동 어종의 하역 작업이 이뤄지는 부산 감천항 부두에 3500t 규모의 대형 선박이 들어오자 참치 하역사들의 손이 분주해진다. 영하 60도를 견디기 위해 그들은 특별히 제작한 방한화를 신고 눈을 제외하고 얼굴 전체를 가린 마스크로 가려야 한다. 이들은 다음날도 계속되는 작업으로 쉴 틈이 없다. ■HD 다큐월드(OBS 오후 6시 10분) 남는 음식을 대량으로 버리면서 동시에 노숙자들이 넘쳐나는 일본의 양면성을 살펴본다. 이를 통해 지금은 폐허로 남은 쿤칸지마 섬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해 본다. 또한 계절을 잊게 한 케냐의 꽃 재배 농장의 환경오염 실태를 고발하고, 불법 컴퓨터 처리 현장에서 무방비로 노출된 중국의 노동자들을 만나본다.
  • 김용 세계銀 총재 “朴 정부와 긴밀한 협력 기대”

    김용 세계은행 총재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하면 세계은행과 계속 긴밀하게 협력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의사당 옆 뉴지엄에서 한미경제연구소(KEI) 주최로 열린 미주 ‘한인의 날’ 기념행사에 참석한 김 총재는 “박 당선인은 고난에서 벗어나 훌륭한 지도자가 됐고 그가 이끌 대한민국의 미래를 매우 긍정적으로 전망한다”며 “조만간 (박 당선인이) 미국을 방문해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7월 취임 이후 한국을 두 차례 방문한 김 총재는 “한국이 폐허를 딛고 성공하는 과정에서 배운 개발 경험과 교훈을 세계 여러 곳과 공유할 필요가 있다”며 “싸이의 ‘강남 스타일’ 사례에서 보듯이 문화까지 수출할 정도로 발전한 한국은 여러 나라의 모범 사례”라고 강조했다. 세계은행의 북한 지원 방안과 관련, 김 총재는 북한이 회원국이 아니어서 지원하려면 먼저 회원국으로 가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부친이 17세 때 여섯 형제·자매를 두고 떠나온 북한에 대해 “개인적으로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매우 중압감을 느끼지만 정치적 환경은 매우 복잡하다”면서 “세계은행이 개입하려면 이 부분이 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세계은행은 보건·교육·사회보장 등의 분야에서 언제라도 북한을 도울 준비가 돼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한인의 날 기념행사는 최영진 주미 대사와 미국을 방문 중인 여야 국회의원, 제임스 줌월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 도널드 만줄로 신임 KEI 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이슈&이슈] “역사 재조명·전시 축제 등 3개 분야 8개 사업 추진중”

    [이슈&이슈] “역사 재조명·전시 축제 등 3개 분야 8개 사업 추진중”

    “부산직할시 승격 50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박맹언(59) 부산직할시50년기념사업 추진위원장은 13일 “올해는 부산의 지난 50년을 돌이켜 보고 부산가치의 계승과 발전을 통해 미래 100년을 준비하는 뜻깊은 해”라며 ”이를 기념하기 위한 학술행사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음은 박맹원 추진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어떤 행사들이 준비돼 있나. -부산발전 중심 가치 발견사업 등 3개 분야 8개 사업을 추진한다. 현재 계획 중인 기념사업은 과거 50년의 부산발전 과정 및 역사를 재조명하는 사업과 부산의 성장발전에 동력이 된 중심 가치를 발견해 선언하는 사업, 과거와 현재를 잇는 전시 축제 사업, 미래도약 100년 비전과 대안을 제시하는 사업 등 다양하게 추진하며 시민들과 함께하도록 꾸미고 있다. 부산스토리를 담은 창작 뮤지컬을 제작해 부산의 대표 브랜드 공연 상품으로 개발할 방침이다. →부산은 어떤 도시인가. -부산은 우리 오랜 역사에서 외세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파수꾼 역할뿐만 아니라 외국 문화를 받아들이는 관문이었다. 또한 해방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귀국선을 타고 온 동포와 피란민의 안식처로서 우리나라 현대사의 어머니와 같은 따뜻한 품 안이었다. 전쟁의 폐허에서 국가 경제를 일으킨 수산과 공업의 전초기지로서 부산에서 출발한 산업화가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루는 초석이 됐다. 과거 원조를 받던 도시에서 지금은 원조를 주는 도시로 발전했다. →추진위 역할은. -위원회에서는 기념사업을 주관하고 행사의 주최로서 사업추진 방향 결정과 운영 등 기념사업에 관여한다. 기념사업이 성공적으로 개최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특히 부산이 미래라는 시간에 당당히 맞서는 도전 정신과 세계라는 더 넓은 공간을 마음껏 누빌 수 있도록 시민들에게 자긍심을 주는 데 전력을 다할 방침이다. →앞으로 부산이 나아갈 방향은. -새 정부 출범 함께 급변하는 환경에 대응할 발전 전략을 가다듬어 해양수도 부산의 가치를 세계에 펼쳐 나가야 한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