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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감 후] 전쟁의 얼굴을 마주한다는 것/김소라 국제부 기자

    [마감 후] 전쟁의 얼굴을 마주한다는 것/김소라 국제부 기자

    마리우폴의 전장에서 아빠를 잃고 러시아가 점령한 도네츠크로 끌려간 14세 소녀 키라, 드니프르강을 건너다 실종된 지 한 달 만에 시신으로 돌아온 네 살 아들을 품에 안은 안나 야크노…. 전쟁의 비극을 아로새긴 얼굴과 이름들이 매일 트위터 타임라인을 가득 채운다. 누군가의 든든한 아버지와 어머니, 애지중지 키워 온 자식이었을 얼굴들. 소박한 행복을 꿈꾸며 일궈 온 삶이 총과 포탄에 짓밟혀 간다는 참담한 현실이 가슴을 짓누른다. 이 아픔을 절대 잊지 않으려는 우크라이나인들이 소셜미디어(SNS)에 꾹꾹 써 내려간 글들은 시시각각 변하는 전황도, 사상자 규모도 아닌 전쟁에 휩쓸려 간 사람 그 자체다. 마리우폴의 극장 잔해 아래 깔린 300명, 부차의 집단 묘지 속에 뒤엉킨 280명에게는 저마다 소중한 가족과 꿈이 있었으리라. 전쟁의 희생자들을 숫자가 아닌 사람으로 마주하는 상황은 외면하고 싶을 만큼 괴롭다. 이들이 유럽 대륙의 일원이자 백인이라는 이유로 국제사회의 동정을 받는다는 따가운 비판을 이해한다. 하지만 우리가 우크라이나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건 우리가 걸어온 고난의 역사가 겹쳐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양손이 결박된 채 총탄에 스러져 간 사람들은 우리 현대사에서 수없이 목격한 참상이다. 폐허 위에 집을 짓고 씨앗을 심으며 살아 내야 할 우크라이나인들의 고된 미래는 우리 부모 또는 조부모 세대의 눈물이 흩뿌려진 과거다. 러시아의 침공 후 우크라이나 인사들과 화상 인터뷰를 하는 경험이 낯설지 않다. 화상으로 만난 우크라이나의 저명한 인권변호사 올렉산드라 마트비추크는 러시아가 저지른 전쟁 범죄를 조목조목 비판하다가도 희생된 어린이들의 사연을 이야기하면서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꾹 누르려 애썼다. 어떤 표정으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 그저 우리 역시 전쟁을 경험했다고, 그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한마디 건넸다. 더 좋은 말이 떠오르지 않아 마음이 무거워졌던 찰나 들려온 “고맙다”는 대답은 도리어 나에게 위로가 됐다. 우리 국회는 세계에서 24번째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얼굴을 마주했다. 우리가 들려준 답변은 ‘무기 지원 불가’란 원칙의 반복이었다. 국제사회에서의 역할과 분단국의 안보 상황을 신중히 저울질하며 고심한 결론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강대국의 비인도적인 침공에 맞서 사투하는 전시 지도자의 눈앞에 우리 국회의 텅 빈 좌석이 펼쳐진 광경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통역하다 말고 울음을 터뜨린 우크라이나인 교수 앞에서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린 국회의원들의 행태를 일반적인 공감 능력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냉랭함과 무관심, 무성의가 우크라이나를 바라보는 한국의 얼굴로 국제사회에 비춰지지 않을까 부끄럽기만 하다. 우크라이나의 한 시민단체에 인터뷰를 요청하기 위해 보낸 이메일에 돌아온 답장은 뭉클함과 미안함을 동시에 안겼다. “끔찍한 전쟁을 겪은 뒤 성공한 나라로부터 이야기를 듣는 것은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우크라이나의 수많은 케이팝 팬들은 지금도 전 세계의 케이팝 팬들과 SNS로 소통하며 위로를 받는다. 이들은 케이팝 아이돌의 SNS에 잠시 등장했다가 사라진 ‘전쟁 반대’ 글귀 하나마저도 소중히 여긴다. 전쟁을 딛고 일어설 용기를 우리로부터 얻는 우크라이나인들을 마주하며 우리는 무슨 말을 건넬 수 있을까. 전쟁이 종식되고 평화가 찾아오더라도 이 질문을 외면해선 안 된다.
  • ‘러시아의 트롤링’ 기계적 인용 버젓이…언론이 가려 버린 ‘전쟁의 안개’ 속 진실[박상현의 테크/미디어/사회]

    ‘러시아의 트롤링’ 기계적 인용 버젓이…언론이 가려 버린 ‘전쟁의 안개’ 속 진실[박상현의 테크/미디어/사회]

    지난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제 6주를 넘겼지만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침공 직후만 해도 며칠이면 종료될 거라고 생각했던 이 전쟁은 기간만 길어진 게 아니라 그 영향 역시 세계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가는 중이다. 세계적인 곡창지대 중 하나인 나라와 석유·천연가스 시장의 큰손인 나라가 싸우면서 아랍과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식량 위기에 직면했고, 러시아의 돈줄을 막으려 대대적인 경제 제재에 나선 선진국들은 그 결과로 일어난 에너지 가격 폭등으로 고민 중이다. 우크라이나의 승리를 기원하는 사람들도 휘발유값이 오르면 자기 나라 정부를 탓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이번 전쟁은 과거 시리아나 조지아, 예멘에서 일어난 전쟁과 달리 세계 언론이 관심을 갖고 거의 중계를 하다시피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워낙 많은 기사와 정보가 쏟아지고 있어 그중에는 사실이 아닌 내용이 섞여 있고, 때로는 의도적으로 퍼뜨린 가짜뉴스도 버젓이 돌아다닌다. 이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소셜미디어 등장 이후 ‘가짜뉴스’라는 말이 보편화됐지만 원래 전쟁 중에 나오는 보도는 믿기 힘든 것들이 많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국가가 만들어 낸 가짜뉴스 우선 전쟁 당사국들은 자국 병사들의 사기 진작과 전쟁의 승리를 위해 유리한 정보만을 발표하거나, 유리한 정보가 없을 때는 이를 지어내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이는 국가가 만들어 내는 의도적 가짜뉴스에 해당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정부는 평상시에도 자신들에게 유리한 프로파간다를 끊임없이 생산한다. 적당히 할 경우 국정 홍보, 혹은 프레이밍(framing)이지만, 도를 넘을 경우 기만적인 가짜뉴스가 된다. 정권, 혹은 국가의 사활이 걸린 전쟁 중에 이런 활동이 크게 증가하는 건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전쟁 보도에서 진실을 찾기 힘든 또 하나의 이유는 소위 ‘전쟁의 안개’(the fog of war)라 불리는 전쟁 특유의 불확실성이다. 전쟁 얘기만 나오면 항상 인용되는 프로이센의 전략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이 표현(그는 단순히 ‘안개’라고 불렀다)은 “전쟁은 불확실성의 영역이며, 전쟁에서 수행되는 일의 대부분은 불확실성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한 정보 활동과 판단력이 요구된다”는 그의 주장에서 나왔다. 전쟁의 안개가 어떤 것인지는 2010년에 일어난 천안함 피격 사건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한국의 해군 초계함이 북한 잠수정의 어뢰에 피격돼 침몰한 이 사건은 3월 26일에 일어났지만 최종적이고 공식적으로 북한의 소행임이 확인된 것은 2개월 후의 일이다. 그사이 ‘암초에 부딪힌 결과’라거나 ‘금속피로로 인한 결과’(당시 해군참모총장과 이명박 대통령도 북한의 공격이 아닐 거라는 발언을 했다) 혹은 자작설까지 다양한 주장이 나왔다. 평시에 일어난 폭침 사건을 두고 온 나라가, 아니 국제조사단까지 참여해 조사한 결과가 나오는 데 두 달이 걸렸다면 같은 종류의 공격이 우크라이나 같은 넓은 땅 곳곳에서 매일, 그것도 6주 넘게 이어진다면? 이런 상황에서 진실을 찾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어려움을 잘 보여 주는 사례가 지난주 금요일에 일어난 크라마토르스크 기차역 공격이다. 크라마토르스크는 수도 키이우 공략에 실패한 러시아군이 병력을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으로 재배치하는 과정에서 양측이 양보할 수 없는 격전지가 될 것으로 지목된 도시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의 무차별 공격으로 폐허가 된 마리우폴이나 하르키우의 상황으로 보아 이 도시의 주민들도 위험하다고 판단해 대피하게 했는데, 이들이 이동하기 위해 모인 크라마토르스크역에 미사일 두 개가 떨어진 사건이다. 수천 명의 피란민이 열차를 기다리고 있던 중에 미사일이 떨어졌기 때문에 아이들을 포함한 50명 이상이 그 자리에서 사망했고, 수백 명이 부상을 입었다. 러시아가 전쟁이 시작된 이후 피란민을 포함한 민간인을 겨냥한 공격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여러 매체와 증언, 심지어 위성사진으로도 확인이 됐기 때문에 크라마토르스크 공격도 러시아군의 소행으로 추정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 사건을 보도하는 한국 주요 매체의 기사들을 보면 ‘러 “크라마토르스크 기차역 공격 안 해”’, ‘러, “…우크라이나군이 미사일 쏴”’ 같은 제목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런 기사들은 이것이 러시아가 하는 주장임을 명백하게 밝히고 있기 때문에 사건의 실체가 어떻게 밝혀지든 오보라고 할 수 없다. ●일방 전달된 러 주장 설득력에 실려 그런데 많은 매체가 받아 쓴 연합뉴스 기사에 들어가 보면 앞부분 텍스트의 75%가 러시아 국방부와 크렘린의 주장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뒷부분에 “러시아 공격했다”는 우크라이나의 주장이 짧게 소개됐지만, 이는 독자가 이 사건을 이미 들어서 알고 있고, 이후에도 계속 관련 기사를 읽는다는 것을 가정하는 일종의 후속 기사로, 한쪽의 발표를 그대로 전달만 하는 한국의 전형적인 단신 기사다. 그러나 사람들은 매체가 기대하는 것처럼 이런 사건을 꾸준히 팔로업하면서 살펴보지 않는다. 많은 독자들에게 뉴스는 본업이 아니고, 이 사건은 이 기사 하나만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그렇게 전달한 러시아 국방부의 주장이 꽤 설득력 있게 들린다는 사실이다. 우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모두 기차역에 떨어진 미사일이 ‘토치카U’라고 주장했고, 사진으로 미사일 몸통 잔해를 본 전문가들도 대부분 이에 동의한다. 그런데 연합뉴스가 전달한 크렘린의 주장에 따르면 러시아는 그 기차역을 공격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러시아군은 그런 종류의 미사일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토치카 미사일은 정확도가 떨어지는 구형 미사일로, 러시아는 이 미사일을 신형인 ‘이스칸데르’ 미사일로 꾸준히 교체해 왔다고 알려져 있고, 옛 소련으로부터 토치카 미사일을 받은 우크라이나가 이번 전쟁에서 이 미사일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 국방부의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 있게 들린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기사가 언급하지 않는 것은 러시아가 이번 전쟁에서 여전히 ‘토치카U’ 미사일을 사용하고 있음이 영상과 사진 기록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이는 두 나라가 아닌 제3자가 기록한 오픈소스에 등장하는 것들이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번 공격이 “우크라이나군 진지 방어를 위해 인간방패로 삼으려 한 주민들이 대규모로 도시를 떠나는 걸 무산시키려는” 목적으로 벌인 우크라이나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했지만, 우크라이나가 전쟁이 시작된 뒤 러시아 측에 피란민 통로를 보장해 달라는 협상을 꾸준히 진행해 왔고, 러시아가 이를 거부하다가 합의한 뒤에는 피란민을 공격했다는 건 이미 객관적으로 확인된 사실이다. 심지어 이런 피란민 공격과 학살은 그 순간이 기자의 카메라에 촬영돼 영상으로 공개되기도 했다. 민간인 공격에 대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도 (친러 반군 점령지인) 돈바스 민간인 거주 지역에 미사일을 쐈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전달하는 것은 크렘린의 마이크 역할을 하는 타스통신일 뿐 다른 매체들은 “러시아 측이 이 주장에 대한 근거를 보여 주지 않았다”며 확인을 거부했다. 심지어 로이터통신은 타스통신이 아무런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크렘린의 주장을 기사로 송신하는 일을 계속하자 자사의 콘텐츠 마켓에서 제외해 버리기도 했다. 러시아는 자국의 안보를 위해 전쟁을 벌였다면서 왜 이렇게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쏟아 놓을까? 카네기재단의 러시아 지역 연구원인 크리스토퍼 보르트는 크렘린이 누구나 뻔히 아는 거짓말을 하는 건 “그럼 어쩔 건데?”라는 힘의 과시인 동시에 경고라고 설명한다. 푸틴의 정적을 크렘린만 사용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독극물을 사용해 암살하고도 “우리가 한 게 아니다”라고 뻔뻔스럽게 말하는 것도 그 목적은 위협과 경고다. ●“어쩔 건데” 크렘린의 힘 과시 보르트가 제시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서방 세계를 상대로 하는 트롤링(trolling·온라인에서 관심 끌어 분노와 혼란을 일으키는 행동)이다. 자신들이 거짓말을 끊임없이 쏟아 놓으면 배경이나 사실 여부를 모르는, 혹은 ‘기계적 공평 보도’를 원칙으로 하는 언론이 가져다 인용하고, 자국 정부나 언론을 불신하는 사람들이 믿고 확산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한 팩트 체크에 따르면 임기 중에 3만 573개의 거짓말과 가짜뉴스(하루 평균 20회 이상)를 퍼뜨렸다는 트럼프도 같은 전략을 사용했다. 서구 언론은 트럼프 집권기를 거치며 “이 사람은 이 말을 하고, 저 사람은 저 말을 한다”는 20세기식 단순 인용 저널리즘은 더이상 공평한 보도가 아니며 더 많은 거짓말을 더 뻔뻔스럽게 쏟아내는 쪽에 이용당하는 일임을 깨닫고 반성했다. 언론이 해야 할 일이 더 많아진 셈이지만 그런 책임을 엄중하게 받아들이는 언론사만이 독자들의 신뢰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오터레터 발행인
  • 폐허 된 빌딩·튤립 안은 연인… 먹먹한 ‘우크라 염원’

    폐허 된 빌딩·튤립 안은 연인… 먹먹한 ‘우크라 염원’

    “우크라이나 격전지 키이우에서 일어난 어느 하루의 기록이 덤덤하게 카메라에 담겨 있습니다. 과하지도 않게, 덜하지도 않게, 그저 렌즈를 통해 바라본 그날 하루 키이우의 보고서여서 더 슬펐습니다.” 제주도는 지난 4일 개막한 전쟁의 아픔을 겪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하루를 기록한 사진전 ‘어느 하루의 기록’을 오는 17일까지 제주국제평화센터에서 연다고 11일 밝혔다. 이 사진전을 기획한 이승연 김택환미술관장은 지난 8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전시상황을 전시하는데 너무 일상적이고 너무나 덤덤한 사진들이어서 가슴이 미어졌다”며 이같이 말했다.어느 하루의 기록 사진전은 우크라이나 사진작가연맹 회원 올레나 쇼브코플리아스가 지난달 8일 하루 동안의 키이우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44점으로 이뤄졌다. 키이우에서는 전쟁 시작 한 달 만에 200명이 넘는 민간인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폭격에 벌집 쑤신 듯 폐허가 돼 버린 건물을 보여 주는 사진은 다른 사진들과 달리 제목을 달기조차 힘겨웠는지 ‘무제’라고 붙어 있어 관람객들에게 먹먹함을 준다. 지난 2월 24일 오전 4시 그날, 키이우가 폭격받았다는 전시표지판 앞을 지나가는 탱크, “아빠, 엄마 당신은 위대합니다”, “러시아 군인들은 멈추세요, 당신의 가족을 기억하세요”라는 메시지를 담은 전시상황판, 튤립을 안고 웃는 연인을 담은 사진 ‘전쟁, 봄, 사랑’ 등은 전쟁 속에서 핀 희망의 꽃이었다. 참혹한 도시보다는 봄을 기다리는 우크라이나의 염원이 담겨 있어 울림은 더 강했다. ‘복싱 영웅’으로 알려진 비탈리 클리치코 키이우 시장은 “우리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일어설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지난해 6월 제주와 프랑스 베르이 글로벌 평화도시 연대를 선언한 이후 이뤄지는 첫 공동사업이다. 도 관계자는 “사진작가는 얼마 전까지 키이우에 있다가 현재는 불가리아로 이동해 신변이 안전하다는 메시지를 이메일로 받았다”고 전했다. 키이우 사진들 왼편에는 임영호 제주 사진작가가 제주4·3을 화해와 상생의 정신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제주의 모습을 촬영한 11점도 전시하고 있다. 3월 18일 하루 동안 찍은 사진들이다. 알뜨르비행장, 송악산 진지동굴 등 전쟁의 상흔을 포착했다. 제주국제평화센터는 이번 전시회를 당초 17일에서 일주일 정도 더 연장 전시할 예정이다. 향후 제주도청 등에서의 전시도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러軍 포격에 파괴된 우크라 아파트…실종 아들 기다리는 노모

    러軍 포격에 파괴된 우크라 아파트…실종 아들 기다리는 노모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북서쪽으로 40㎞ 떨어진 위성도시 보로댠카. 러시아군의 포격을 받은 시내 아파트에서는 실종자 수색이 한창이라고 AFP통신이 9일(현지시간) 전했다. 근처에 사는 주민 안토니나 칼레트니크(65)는 폐허가 된 아파트 한쪽에 놓인 의자에 앉아 수색 작업을 지켜본다. 눈물 자국이 남은 그의 눈에는 잠을 못 잔 흔적이 역력하다. 5층짜리 이 건물 3층에는 그의 아들인 유리(43)가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에게 수색 작업은 한없이 느리게만 느껴질 뿐이다.그의 집은 러시아군의 포격을 간신히 피했다. 반면 아들이 살던 아파트는 러시아군의 침공이 시작되고 나서 불과 며칠 만인 지난 3월 1일 포격에 파괴됐다. 건물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다. 10개 동이던 이 아파트 단지는 불과 몇 분 만에 콘크리트와 뒤틀린 금속 더미로 변했다. 앉은 자리에서 두 손에 쥔 지팡이에 머리를 괴고 수색 작업을 바라보던 그는 “한밤중이었기에 아파트 안에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포격이 있던 그날 밤부터 아들과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쩌면 탈출했을지 아니면 다쳤을지 모른다. 잔해 밑에 갇혀 있을지도 모른다”며 “모르겠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잔해 더미에는 옷가지와 신발, 소파 쿠션, 책, 장난감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동물 모양의 봉제 인형도 간간이 보인다. 이 아파트 1층에 살던 주민 70대 여성 류보우 야레멘코는 포격이 있던 날 지하 대피소로 피신했다. 그는 “첫 번째 포격에 길 건너편 지하 대피소까지 뛰어갔다. 도중에 넘어져 갈비뼈를 다쳤다”며 “한 달 반 가까이 머물고 있다”고 밝혔다. 여전히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그는 “대피소에는 실종된 자녀를 기다리는 가족들이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침공 이전 약 1만 3000명이 살던 보로댠카의 대로는 2㎞ 이상 파괴됐다. 우크라이나군은 지난 3월 말 러시아군이 키이우 주변에서 철수하자 보로댠카를 탈환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보로댠카의 상황에 대해 민간인 학살이 일어난 인근 도시 부차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고 밝혔다. 이리나 베네딕토바 우크라이나 검찰총장도 지난 7일 무너진 아파트 2개동에서 지금까지 시신 26구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 전시상황을 전시하다… 우크라 사진 작가의 ‘어느 하루의 기록’

    전시상황을 전시하다… 우크라 사진 작가의 ‘어느 하루의 기록’

    “우크라이나 격전지 키이우에서 일어난 어느 하루의 기록을 덤덤하게 카메라에 담겨 있습니다. 과하지도 않게, 덜하지도 않게, 그저 렌즈를 통해 바라본 그날 하루 키이우의 보고서여서 더 슬펐습니다.”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받은 제주도가 전쟁의 아픔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 키이우의 하루를 기록한 사진전 ‘어느 하루의 기록’을 지난 4일부터 17일까지 제주국제평화센터에서 열어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사진전을 전시 기획을 담당한 이승연 김택환미술관 관장은 지난 8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전시상황을 전시하는데 오히려 너무 일상적이고 너무나 덤덤한 사진들이어서 가슴이 미어졌다”며 이같이 말했다. 우크라이나 사진작가연맹회원 올레나 쇼브코플리아스(Olena Shovkoplias·61)가 3월 8일 하루 동안 수도 키이우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날의 기록 44점. 특히 폭격에 벌집 쑤신 듯 폐허가 돼버린 건물을 보여주는 사진은 다른 사진들과 달리 제목을 달기 조차 힘겨워 ‘무제’라고 단 것을 알 수 있어 먹먹해진다. 지난 2월 24일 오전 4시 그날 키이우가 폭격받았다는 전시표지판 앞을 지나가는 탱크, “아빠, 엄마 당신은 위대합니다”, “러시아 군인들은 멈추세요, 당신의 가족을 기억하세요”라는 메시지를 담은 전시상황판, 고양이를 안고 대피하는 모습, 무방비한 키이우 철도역의 적십자 구호소에서 찍힌 노인의 눈가에 맺힌 눈물, 그리고 맨 마지막에 튤립을 안고 웃는 연인을 담은 마지막 사진 ‘전쟁, 봄, 사랑’은 전쟁 속에서 핀 희망의 꽃이었다. 참혹한 도시보다는 봄을 기다리는 우크라이나가 담겨 있어 울림은 더 강했다. 이번 전시는 지난해 6월 제주와 프랑스 베르뎅이 글로벌 평화도시 연대를 선언한 이후 이루어지는 첫 공동사업이다. 해외 전시장 선정 및 원본 데이터 지원은 프랑스 베르뎅 세계평화자유인권센터가 도맡았다. 도 문화체육대외협력국 평화대외협력과의 한 관계자는 “사진 작가는 얼마전까지 키이우시에 있다가 현재는 불가리아로 이동해 안전하다는 메시지를 이메일로 받았다”고 전했다. 전쟁 시작 한달 만에 200명이 넘는 민간인이 사망했다고 CNN이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보도했을 만큼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키이우. ‘복싱 영웅’으로 잘 알려진 비탈리 클리치코(Vitaliy Klitschko) 키이우 시장은 “우리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일어설 것입니다”며 이번 전시회에 메시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44점 전시 왼편에는 임영호 제주 사진작가가 제주4·3을 화해와 상생의 정신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제주 모습을 촬영한 11점도 전시하고 있다. 3월 18일 하루에 찍은 사진들이다. 평화를 염원하며 그 역시 어느 하루의 기록을 담은 것이다. 알뜨르비행장, 송악산 진지동굴 등 전쟁의 상흔을 포착했다. 제주국제평화센터는 이번 전시회는 당초 17일로 마무리할 예정이었지만 일주일 정도 더 연장 전시할 예정이다. 향후 제주도청 등 전시도 계획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안철수 “부동산값 폭등, 현 정부 잘못…당장 바로잡긴 힘들어”

    안철수 “부동산값 폭등, 현 정부 잘못…당장 바로잡긴 힘들어”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이 “부동산값 폭등과 세금 폭탄은 명백히 현 정부 잘못”이라면서도 “새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당장 바로잡기는 힘들다”고 밝혔다. 11일 안 위원장은 종로구 삼청동 인수위 사무실에서 제5차 전체회의를 열고 “정책을 바꾸더라도 그 효과가 나타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며 이같이 말했다. 안 위원장은 “부동산 세금도 공시지가, 실거래가 반등률을 떨어뜨리지 않는 한 세금을 획기적으로 낮추기는 어렵고,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주택 공급이 바로 늘어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국민들께서는 새 정부 탓이라고 생각하실 것”이라며 “이전 정부가 물려준 현재의 국정 상황이 어떤 상태인지 냉철하게 판단하고 국민들께 정확히 말씀드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안 위원장은 “설상가상으로 지금 국회 다수당(더불어민주당)이 하는 모습을 보면 새 정부의 발목을 잡는 것을 넘어 아예 출발도 못 하게 발목을 부러뜨리려고 벼르고 있다”며 “앞으로 최소 2년 동안 지속될 여소 야대 국회 환경은 새 정부의 정책 수단을 크게 제약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부동산, 코로나19 대책, 경제, 국가 재정 모두 사실상 우리는 폐허에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우리에게는 헌 집을 주면 새집을 지어줄 두꺼비도 없어 모두 우리의 힘만으로 뚫고 나가야 한다”고 전했다.
  • 차이코프스키 고향 폭격… 유적도 파괴한 러시아 [김유민의 돋보기]

    차이코프스키 고향 폭격… 유적도 파괴한 러시아 [김유민의 돋보기]

    러시아 문화를 상징하는 작곡가 차이코프스키의 고향이 러시아군에 의해 폐허가 됐다. 차이코프스키가 20대를 보낸 자택 역시 폭격을 맞았고, 이 지역 문화유적지는 큰 피해를 입었다. 9일(한국시간) 르몽드·BBC 등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러시아 국경에서 불과 30km 떨어진 우크라이나 북동부의 인구 2만 5000명의 트로스얀네츠는 가장 먼저 러시아 침공의 피해를 입었다. 33일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러시아군이 후퇴했지만 도시 곳곳은 차이코프스키 별장 등 문화 유적을 포함한 건물이 폐허가 됐고, 주민들은 잔해 속에서 음식과 물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 지역 주민들은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도시의 파괴와 러시아군의 약탈과 고문에 대해 알리고 있다. 러시아의 포격으로 18세기 신고전주의 양식의 궁전과 미술관, 역사 박물관, 차이코프스키 기념비와 별장도 피해를 입었다.트로스얀네츠의 유라이 보바 시장은 “러시아의 폭격으로 역사 박물관의 문이 부서지고 벽이 손상됐다. 다행히 러시아의 포격에도 1974년 지어진 라운드 야드(Round Yard)는 살아남았지만 파편으로 가득 차 있다”라고 말했다. 러시아 작곡가 차이코프스키의 아버지는 우크라이나 혈통이었고, 차이코프스키는 20대를 보낸 이 지역을 자신의 고향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차이코프스키는 트로스얀네츠에서 첫 번째 교향곡인 서곡 ‘폭풍’(1864)을 작곡했다. 러시아 군대는 몇 주 동안 이 도시를 점령한 후 떠났지만 도시 전역은 폐허가 됐고, 남은 건 ‘Z’ 표식이 그려진 러시아 군용차량과 사체 뿐이다. 이 지역 주민은 “모두가 도시를 청소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의 모든 것을 훔쳤고, 파괴했다. 러시아인들이 돌아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말했다.
  • [영상] 러軍 탱크의 무덤이 된 키이우 고속도로…줄줄이 박살

    [영상] 러軍 탱크의 무덤이 된 키이우 고속도로…줄줄이 박살

    러시아군이 철수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선 러시아군의 군사적 손실도 만만치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7일(이하 현지시간) 데일리메일은 가루가 된 러시아군 탱크와 군용 차량이 키이우 고속도로를 따라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고 보도했다. 6일 국제 군사분쟁을 전문으로 다루는 ‘블루사우론’은 러시아군이 떠난 키이우의 현재 모습을 공유했다. 하늘에서 본 키이우는 폐허로 변해 있었는데, 곳곳에서 우크라이나군 반격에 박살 난 러시아군 탱크가 제법 눈에 띄었다.특히 키이우와 다른 주요 도시를 잇는 E40 고속도로는 러시아군 탱크의 무덤이 돼 있었다. 블루사우론은 “키이우에서 러시아군 행렬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며 드론으로 촬영한 영상을 첨부했다. 동영상 속 러시아군 탱크와 보급 트럭 등 군용 차량은 줄줄이 가루가 되어 있었다. 이를 두고 데일리메일은 우크라이나군 전략이 성공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해석했다. 수적으로 우세한 러시아군을 몰아내기 위한 우크라이나군의 매복 공격이 효과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고 분석했다. 키이우에서 약 25㎞ 떨어진 모슈춘에서도 우크라이나군 공격으로 파괴되거나 러시아군이 버리고 간 탱크가 확인됐다. 모슈춘은 키이우 북서쪽 호스토멜 비행장 근처 최전선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국의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던 곳이다.지난달 25일 러시아 국방부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1351명이 전사하고 3825명이 다쳤다고 발표한 바 있다. 비슷한 시기 러시아군 전사자가 7000명~1만 5000명이라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1만 6000명이라던 우크라이나 정부 추산과 상당히 거리가 있었다. 러시아가 전사자를 축소한 게 아니냔 의혹이 제기된 이유다. 이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가 자국 전사자 시신 수습을 거부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러시아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군 공격을 받은 처지지만, 개나 고양이가 죽어도 이렇게 행동해선 안 된다”며 “그들은 동물이 아니다”라고 비난했다. 보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현재 최소 2000구의 러시아군 시신을 보관 중이다.
  • [포토] ‘호텔 우크라이나’ 종잇장…러軍 떠난 체르니히우 폐허 그 자체

    [포토] ‘호텔 우크라이나’ 종잇장…러軍 떠난 체르니히우 폐허 그 자체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와 북부 체르니히우에서 모든 병력을 철수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미국 국방부 고위 당국자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익명의 미 국방부 고위 당국자는 6일(이하 현지시간) NYT에 “우리는 그들이 모두 나갔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이 당국자는 “이들 지역에 있던 러시아 병력이 현재 벨라루스와 러시아에서 재무장·재보급 중이며,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에 언제 다시 배치될지는 불분명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재 우크라이나 동부에 배치된 러시아군은 전술대대 30개로, 병력 약 3만 명 수준이라고 밝혔다.NYT에 따르면 서방 군사 전문가들은 러시아군의 인적·물적 손실, 낮은 사기 등을 고려할 때 철수한 부대가 곧바로 우크라이나 동부에 재배치되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러시아는 지난달 30일 키이우 등에 배치된 러시아군을 재편성해 우크라이나 동부에 전력을 집중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러시아군의 공습과 포격이 계속되면서 러시아의 계략일 수 있다는 의구심은 가시지 않았다. 이후 미 국방부는 키이우와 체르니히우에 배치됐던 러시아군 병력 20%가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는 분석을 내놓았으며, 이달 4일에는 병력 3분의 2가 철수했다고 평가했다.그러나 러시아군이 철수한 키이우와 키이우 북쪽으로 약 100㎞ 떨어진 도시 체르니히우는 이미 폐허가 됐다. 6일 외신 카메라에 잡힌 두 지역에선 이전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특히 체르니히우 랜드마크 ‘호텔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군 폭격에 종잇장처럼 구겨져 버렸다. 전쟁의 상흔이 드러난 체르니히우에서 주민들은 복구의 첫 삽을 떴다. 하지만 무너진 일상을 회복하기까진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 “살아있다!” 러軍 집중포격 속 기적 생존…우크라 여성 극적 구조

    “살아있다!” 러軍 집중포격 속 기적 생존…우크라 여성 극적 구조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 화력을 집중시킨 가운데, 러시아군 포격으로 무너진 집 잔해에서 우크라이나 여성 한 명이 극적으로 구조됐다. 6일(이하 현지시간) 우크라이나 국가비상대책본부(DSNS)는 러시아군 집중포화에 속에서 루한스크주 루비즈네시 주민 한 명이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다고 전했다. 러시아군은 하루 전 루한스크주 루비즈네시에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러시아군이 쏜 포탄은 민간인 주거지역에 떨어졌고, 주택 여러 채가 파괴됐다. 맹독성 질산 탱크가 폭격을 맞아 주황색 독구름이 치솟기도 했다.공습이 잠잠해진 틈을 타 구조에 나선 국가비상대책본부 구조대원들 눈앞에는 아비규환이 펼쳐졌다. 세르히 가이다이 루한스크 주지사는 “러시아군 공습으로 2명이 사망하고 5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포격으로 무너진 집에 깔린 사람 역시 여럿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이날 러시아군 포격으로 루비즈네시에서는 주민 7명이 붕괴한 건물 잔해에 깔렸다가 구조됐다. DSNS는 “여자가 살아있다!”는 말과 함께 기적적으로 생존한 주민 여성 사진을 공개했다. DSNS는 “러시아군은 한 시간 동안 공습을 계속하며 민간인 주거지역을 불태웠다. 폐허가 된 도시에서 우리는 주민을 구하기 위해 잔해를 해체했다. 파괴된 주택 한곳에서 살아있는 여성 한 명을 발견했다. 구조작업은 신속하고 전문적으로 수행됐다”고 설명했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여성은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철군한 러시아군은 현재 돈바스에 속하는 루한스크와 도네츠크, 하르키우에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세르히 하이다이 루한스크 지역 군사행정 위원장은 “러시아군 포격이 갈수록 거세지고 교전이 이어지고  있다. 루한스크주 루비즈네시에서는 사망한 민간인을 마당에 묻고 있다”고 말했다. 가이다이 주지사도 러시아가 군대를 재편한 후 루한스크를 포함한 돈바스 지역에 대한 새로운 공세를 준비하고 있다며 최대한 빨리 대피할 것을 촉구했다. 가이다이 주지사는 “러시아가 허락한다면 우리는 모든 주민을 데리고 나올 것이다. 러시아군이 (민간인 대피를 위한) 휴전을 항상 준수하지는 않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안전할 때, 버스와 기차가 있을 때 대피할 것을 모든 주민에게 간곡히 호소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러시아군이 아직은 우크라이나군의 방어선을 완전히 뚫지 못했으나 진격로의 모든 것을 파괴하고 있다며 대대적인 공세가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이와 관련해 이리나 베레슈크 우크라이나 부총리도 6일 돈바스에 속하는 루한스크와 도네츠크, 하르키우 지역 주민의 즉각적인 대피를 촉구했다.
  • 이젠 ‘民의 땅’… 상춘재·녹지원은 포토존, 내부 구경은 다음 기회에

    이젠 ‘民의 땅’… 상춘재·녹지원은 포토존, 내부 구경은 다음 기회에

    분수 지나 춘추관, 왼쪽엔 여민관 녹지원엔 170년 한국산 반송 감상관저 뒤뜰선 ‘석조여래좌상’ 구경 대통령 침실 등 건물은 추후 개방 ‘완전 개방’ 북악산 남측 등산 추천앞으로 한 달 뒤면 청와대 안에 아무렇게나 들어갈 수 있다. 윤석열 당선인이 대통령에 취임하는 다음달 10일 청와대 문이 국민에게 열리는 것이다. 미리 예약하거나 검문검색을 거칠 필요 없이 동네 공원처럼 청와대 경내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918년 전 청와대 터가 역사에 등장한 이래 그곳은 왕조, 일제, 미군정, 국가수반이 자리한 관(官)의 땅이었다. 앞으로는 국민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민(民)의 땅이 된다. 정부는 6일 임시 국무회의를 열고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을 위한 예비비 360억원 지출안을 의결했다.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5월 10일부터 청와대를 개방하겠다고 약속하고 인수위 홈페이지에 구체적인 계획을 적시했다. 그 계획에 따라 상상으로 청와대를 미리 방문해 본다. 5월 10일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 앞에서 버스를 타고 두 개 정류소를 지나 효자동에 내렸다. 청와대 밖 분수를 지나쳐 춘추관의 춘추문을 통해 경내로 들어섰다. 남녀노소, 외국인 모두 신분증을 보여 줄 필요가 없다. 청와대로 들어갈 수 있는 문 가운데 정문과 연풍문, 시화문을 지나 춘추문에 도착했다. 춘추문을 통해 왼쪽으로 들어서면 보이는 것이 대통령과 청와대 직원들이 업무를 보는 여민관이다. 여민1~3관까지 세 개 건물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여민 1관은 전날까지만 해도 대통령 집무실·비서실장실·정무수석실, 2관은 경제수석실·민정수석실, 3관은 홍보수석실 등이 있었다. 다만 청와대의 모든 건물 내부는 당분간 들어가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전날까지 문재인 대통령과 비서진이 사용했기에 자료와 설비가 아직 치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민관 뒤쪽으로 녹지원과 상춘재가 보인다. 넓은 잔디밭에서 아름드리나무와 각종 꽃나무가 손짓한다. 170년 된 한국산 반송(盤松)도 눈에 들어온다. 2013년 청와대는 ‘청와대 3대 나무’를 선정했는데, 그중 하나가 반송이다. 소반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듯한 모습이 특이하다. 대통령이 주요국 정상 등 특별한 손님을 대접할 때 이용하는 상춘재를 직접 보니 실감이 안 난다. 상춘재는 1983년 완공된 한옥 건물로, 200년 이상 된 춘양목을 사용했다.상춘재와 녹지원을 지나 10분 남짓 걸었을까. 역대 대통령들이 숙소로 썼던 관저에 도착했다. 한옥 건물 안에 있는 대통령의 침실, 주방, 식당 등을 무척 보고 싶었지만 당장은 들어가 볼 수 없어 아쉬웠다. 관저 뒤뜰에 보물로 지정된 석조여래좌상이 보인다. 경주에 있던 보물이 일제강점기 총독관저였던 이곳으로 옮겨 왔다고 한다. 1993~1994년 서해 페리호 침몰, 성수대교 붕괴 등 참사가 줄을 이었는데 기독교 신자인 김영삼 전 대통령이 불상을 치워 버렸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자 공개된 바 있다. 이어 본관에 도착했다. 노태우 대통령 당시인 1991년 완공된 건물로 왕궁건축기법을 사용했다. 15만장의 푸른 기와가 얹힌 팔작지붕 덕분에 웅장해 보인다. 100㎡(약 32.5평)에 달하는 대통령 집무실, 국무회의가 열리던 세종실, 연회장 용도의 인왕실 등은 추후 건물 내부가 공개되면 관람할 수 있다. 본관을 나와 서쪽으로 걸어가면 영빈관이 보인다. 1978년 지어진 현대식 건물로 18개의 돌기둥이 있는데, 그중 전면 네 개의 돌기둥은 바위를 통째로 깎아 이음새가 없다. 마지막으로 사랑채에서 기념품을 구경하면서 청와대 관람을 끝냈다. 이대로 청와대를 떠나기 아쉬운 시민들이 청와대 북쪽으로 이어진 북악산 남측면을 등산하는 모습이 보였다. 청와대 춘추관에서 백악정을 거쳐 숙정문, 서울성곽길을 통해 창의문 안내소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고려시대인 1104년 남경(서울)의 이궁(수도 밖 별궁)으로 역사에 처음 등장한 청와대 터는 조선 태조 4년(1395년) 경복궁이 창건되면서 궁궐의 후원으로 조성됐다. 임진왜란 후 폐허가 됐다가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며 이 자리에 경무대를 뒀는데, 인재를 등용하는 과거 시험장 기능을 했다. 조선총독부는 이곳에 건물을 지어 총독관사로 이용했고, 그 건물은 1945년 해방 후엔 미군정 사령관 관사로 쓰였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며 경무대라는 이름을 붙이고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사용하게 된 것이 대통령 집무실로서 청와대 역사의 시작이다. 이 전 대통령을 시작으로 윤보선·박정희·최규하·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까지 12명의 대통령이 사용했다. 전직 대통령들이 하나같이 불행한 말로를 겪었다는 점에서 청와대는 권력자들에게 선망하면서도 기피하는 곳이 됐다. 그래서 몇몇 대통령은 청와대 집무실 이전을 시도했지만, 경호와 대안 부재 등 한계 때문에 번번이 무산됐다. 그래서인지 윤 당선인은 아예 처음부터 청와대에는 단 하루도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고, 결국 그 약속을 관철하게 됐다. 이전 비용과 안보 공백, 시민 불편 등의 이유로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대한 여론은 현재로서는 썩 호의적이지 않다. 하지만 윤 당선인 쪽에서는 청계천 복원과 경부고속도로도 처음엔 반대가 많았지만 결국은 호평받았다며 막상 청와대가 개방되면 여론이 호전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반면 청와대는 단순히 권력자의 거처라는 의미를 넘어 대한민국의 상징물과 같다는 점에서 국민들이 상실감을 느낀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어느 쪽 견해가 맞는지는 결국 시간이 알려주겠지만, 어쨌든 이것도 대한민국의 운명이다. 918년의 역사도 하루아침에 바꿔 버리는 대한민국, 말 그대로 ‘다이내믹 코리아’다.
  • 5월 10일 청와대 문 열리면…신분증·예약·검문 없이 구경 [INTO]

    5월 10일 청와대 문 열리면…신분증·예약·검문 없이 구경 [INTO]

    앞으로 한 달 뒤면 청와대 안에 아무렇게나 들어갈 수 있다. 윤석열 당선인이 대통령에 취임하는 다음달 10일 청와대 문이 국민에게 열리는 것이다. 미리 예약하거나 검문검색을 거칠 필요 없이 동네 공원처럼 청와대 경내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918년 전 청와대 터가 역사에 등장한 이래 그곳은 왕조, 일제, 미군정, 국가수반이 자리한 관(官)의 땅이었다. 앞으로는 국민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민(民)의 땅이 된다. 정부는 6일 임시 국무회의를 열고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을 위한 예비비 360억원 지출안을 의결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5월 10일부터 청와대를 개방하겠다고 약속하고 인수위 홈페이지에 구체적인 계획을 적시했다. 그 계획에 따라 상상으로 청와대를 미리 방문해 본다. 5월 10일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 앞에서 버스를 타고 두 개 정류소를 지나 효자동에 내렸다. 청와대 밖 분수를 지나쳐 춘추관의 춘추문을 통해 경내로 들어섰다. 남녀노소, 외국인 모두 신분증을 보여 줄 필요가 없다. 청와대로 들어갈 수 있는 문 가운데 정문과 연풍문, 시화문을 지나 춘추문에 도착했다. 춘추문을 통해 왼쪽으로 들어서면 보이는 것이 대통령과 청와대 직원들이 업무를 보는 여민관이다. 여민1~3관까지 세 개 건물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여민 1관은 전날까지만 해도 대통령 집무실·비서실장실·정무수석실, 2관은 경제수석실·민정수석실, 3관은 홍보수석실 등이 있었다. 다만 청와대의 모든 건물 내부는 당분간 들어가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전날까지 문재인 대통령과 비서진이 사용했기에 자료와 설비가 아직 치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민관 뒤쪽으로 녹지원과 상춘재가 보인다. 넓은 잔디밭에서 아름드리나무와 각종 꽃나무가 손짓한다. 170년 된 한국산 반송(盤松)도 눈에 들어온다. 2013년 청와대는 ‘청와대 3대 나무’를 선정했는데, 그중 하나가 반송이다. 소반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듯한 모습이 특이하다. 대통령이 주요국 정상 등 특별한 손님을 대접할 때 이용하는 상춘재를 직접 보니 실감이 안 난다. 상춘재는 1983년 완공된 한옥 건물로, 200년 이상 된 춘양목을 사용했다.상춘재와 녹지원을 지나 10분 남짓 걸었을까. 역대 대통령들이 숙소로 썼던 관저에 도착했다. 한옥 건물 안에 있는 대통령의 침실, 주방, 식당 등을 무척 보고 싶었지만 당장은 들어가 볼 수 없어 아쉬웠다. 관저 뒤뜰에 보물로 지정된 석조여래좌상이 보인다. 경주에 있던 보물이 일제강점기 총독관저였던 이곳으로 옮겨 왔다고 한다. 1993~1994년 서해 페리호 침몰, 성수대교 붕괴 등 참사가 줄을 이었는데 기독교 신자인 김영삼 전 대통령이 불상을 치워 버렸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자 공개된 바 있다. 이어 본관에 도착했다. 노태우 대통령 당시인 1991년 완공된 건물로 왕궁건축기법을 사용했다. 15만장의 푸른 기와가 얹힌 팔작지붕 덕분에 웅장해 보인다. 100㎡(약 32.5평)에 달하는 대통령 집무실, 국무회의가 열리던 세종실, 연회장 용도의 인왕실 등은 추후 건물 내부가 공개되면 관람할 수 있다. 본관을 나와 서쪽으로 걸어가면 영빈관이 보인다. 1978년 지어진 현대식 건물로 18개의 돌기둥이 있는데, 그중 전면 네 개의 돌기둥은 바위를 통째로 깎아 이음새가 없다. 마지막으로 사랑채에서 기념품을 구경하면서 청와대 관람을 끝냈다. 이대로 청와대를 떠나기 아쉬운 시민들이 청와대 북쪽으로 이어진 북악산 남측면을 등산하는 모습이 보였다. 청와대 춘추관에서 백악정을 거쳐 숙정문, 서울성곽길을 통해 창의문 안내소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고려시대인 1104년 남경(서울)의 이궁(수도 밖 별궁)으로 역사에 처음 등장한 청와대 터는 조선 태조 4년(1395년) 경복궁이 창건되면서 궁궐의 후원으로 조성됐다. 임진왜란 후 폐허가 됐다가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며 이 자리에 경무대를 뒀는데, 인재를 등용하는 과거 시험장 기능을 했다. 조선총독부는 이곳에 건물을 지어 총독관사로 이용했고, 그 건물은 1945년 해 방 후엔 미군정 사령관 관사로 쓰였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며 경무대라는 이름을 붙이고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사용하게 된 것이 대통령 집무실로서 청와대 역사의 시작이다. 이 전 대통령을 시작으로 윤보선·박정희·최규하·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까지 12명의 대통령이 사용했다. 전직 대통령들이 하나같이 불행한 말로를 겪었다는 점에서 청와대는 권력자들에게 선망하면서도 기피하는 곳이 됐다. 그래서 몇몇 대통령은 청와대 집무실 이전을 시도했지만, 경호와 대안 부재 등 한계 때문에 번번이 무산됐다. 그래서인지 윤 당선인은 아예 처음부터 청와대에는 단 하루도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고, 결국 그 약속을 관철하게 됐다. 이전 비용과 안보 공백, 시민 불편 등의 이유로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대한 여론은 현재로서는 썩 호의적이지 않다. 하지만 윤 당선인 쪽에서는 청계천 복원과 경부고속도로도 처음엔 반대가 많았지만 결국은 호평받았다며 막상 청와대가 개방되면 여론이 호전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반면 청와대는 단순히 권력자의 거처라는 의미를 넘어 대한민국의 상징물과 같다는 점에서 국민들이 상실감을 느낀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어느 쪽 견해가 맞는지는 결국 시간이 알려주겠지만, 어쨌든 이것도 대한민국의 운명이다. 918년의 역사도 하루아침에 바꿔 버리는 대한민국, 말 그대로 ‘다이내믹 코리아’다.
  • 5월 10일 청와대 문 열리면 신분증·예약·검문 없이 구경 [INTO]

    5월 10일 청와대 문 열리면 신분증·예약·검문 없이 구경 [INTO]

    앞으로 한 달 뒤면 청와대 안에 아무렇게나 들어갈 수 있다. 윤석열 당선인이 대통령에 취임하는 다음달 10일 청와대 문이 국민에게 열리는 것이다. 미리 예약하거나 검문검색을 거칠 필요 없이 동네 공원처럼 청와대 경내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918년 전 청와대 터가 역사에 등장한 이래 그곳은 왕조, 일제, 미군정, 국가수반이 자리한 관(官)의 땅이었다. 앞으로는 국민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민(民)의 땅이 된다. 정부는 6일 임시 국무회의를 열고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을 위한 예비비 360억원 지출안을 의결했다.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5월 10일부터 청와대를 개방하겠다고 약속하고 인수위 홈페이지에 구체적인 계획을 적시했다. 그 계획에 따라 상상으로 청와대를 미리 방문해 본다.5월 10일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 앞에서 버스를 타고 두 개 정류소를 지나 효자동에 내렸다. 청와대 밖 분수를 지나쳐 춘추관의 춘추문을 통해 경내로 들어섰다. 남녀노소, 외국인 모두 신분증을 보여 줄 필요가 없다. 청와대로 들어갈 수 있는 문 가운데 정문과 연풍문, 시화문을 지나 춘추문에 도착했다. 춘추문을 통해 왼쪽으로 들어서면 보이는 것이 대통령과 청와대 직원들이 업무를 보는 여민관이다. 여민1~3관까지 세 개 건물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여민 1관은 전날까지만 해도 대통령 집무실·비서실장실·정무수석실, 2관은 경제수석실·민정수석실, 3관은 홍보수석실 등이 있었다. 다만 청와대의 모든 건물 내부는 당분간 들어가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전날까지 문재인 대통령과 비서진이 사용했기에 자료와 설비가 아직 치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민관 뒤쪽으로 녹지원과 상춘재가 보인다. 넓은 잔디밭에서 아름드리나무와 각종 꽃나무가 손짓한다. 170년 된 한국산 반송(盤松)도 눈에 들어온다. 2013년 청와대는 ‘청와대 3대 나무’를 선정했는데, 그중 하나가 반송이다. 소반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듯한 모습이 특이하다. 대통령이 주요국 정상 등 특별한 손님을 대접할 때 이용하는 상춘재를 직접 보니 실감이 안 난다. 상춘재는 1983년 완공된 한옥 건물로, 200년 이상 된 춘양목을 사용했다.상춘재와 녹지원을 지나 10분 남짓 걸었을까. 역대 대통령들이 숙소로 썼던 관저에 도착했다. 한옥 건물 안에 있는 대통령의 침실, 주방, 식당 등을 무척 보고 싶었지만 당장은 들어가 볼 수 없어 아쉬웠다. 관저 뒤뜰에 보물로 지정된 석조여래좌상이 보인다. 경주에 있던 보물이 일제강점기 총독관저였던 이곳으로 옮겨 왔다고 한다. 1993~1994년 서해 페리호 침몰, 성수대교 붕괴 등 참사가 줄을 이었는데 기독교 신자인 김영삼 전 대통령이 불상을 치워 버렸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자 공개된 바 있다. 이어 본관에 도착했다. 노태우 대통령 당시인 1991년 완공된 건물로 왕궁건축기법을 사용했다. 15만장의 푸른 기와가 얹힌 팔작지붕 덕분에 웅장해 보인다. 100㎡(약 32.5평)에 달하는 대통령 집무실, 국무회의가 열리던 세종실, 연회장 용도의 인왕실 등은 추후 건물 내부가 공개되면 관람할 수 있다. 본관을 나와 서쪽으로 걸어가면 영빈관이 보인다. 1978년 지어진 현대식 건물로 18개의 돌기둥이 있는데, 그중 전면 네 개의 돌기둥은 바위를 통째로 깎아 이음새가 없다. 마지막으로 사랑채에서 기념품을 구경하면서 청와대 관람을 끝냈다. 이대로 청와대를 떠나기 아쉬운 시민들이 청와대 북쪽으로 이어진 북악산 남측면을 등산하는 모습이 보였다. 청와대 춘추관에서 백악정을 거쳐 숙정문, 서울성곽길을 통해 창의문 안내소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고려시대인 1104년 남경(서울)의 이궁(수도 밖 별궁)으로 역사에 처음 등장한 청와대 터는 조선 태조 4년(1395년) 경복궁이 창건되면서 궁궐의 후원으로 조성됐다. 임진왜란 후 폐허가 됐다가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며 이 자리에 경무대를 뒀는데, 인재를 등용하는 과거 시험장 기능을 했다. 조선총독부는 이곳에 건물을 지어 총독관사로 이용했고, 그 건물은 1945년 해 방 후엔 미군정 사령관 관사로 쓰였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며 경무대라는 이름을 붙이고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사용하게 된 것이 대통령 집무실로서 청와대 역사의 시작이다. 이 전 대통령을 시작으로 윤보선·박정희·최규하·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까지 12명의 대통령이 사용했다. 전직 대통령들이 하나같이 불행한 말로를 겪었다는 점에서 청와대는 권력자들에게 선망하면서도 기피하는 곳이 됐다. 그래서 몇몇 대통령은 청와대 집무실 이전을 시도했지만, 경호와 대안 부재 등 한계 때문에 번번이 무산됐다. 그래서인지 윤 당선인은 아예 처음부터 청와대에는 단 하루도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고, 결국 그 약속을 관철하게 됐다. 이전 비용과 안보 공백, 시민 불편 등의 이유로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대한 여론은 현재로서는 썩 호의적이지 않다. 하지만 윤 당선인 쪽에서는 청계천 복원과 경부고속도로도 처음엔 반대가 많았지만 결국은 호평받았다며 막상 청와대가 개방되면 여론이 호전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반면 청와대는 단순히 권력자의 거처라는 의미를 넘어 대한민국의 상징물과 같다는 점에서 국민들이 상실감을 느낀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어느 쪽 견해가 맞는지는 결국 시간이 알려주겠지만, 어쨌든 이것도 대한민국의 운명이다. 918년의 역사도 하루아침에 바꿔 버리는 대한민국, 말 그대로 ‘다이내믹 코리아’다.
  • [영상]우크라이나 인권변호사 “부차가 충격과 공포라면 마리우폴은 지옥”

    [영상]우크라이나 인권변호사 “부차가 충격과 공포라면 마리우폴은 지옥”

    “부차의 사진이 공포와 충격이라면, 마리우폴에서는 어떤 지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우크라이나의 저명한 인권 변호사 올렉산드라 마트비추크(38)는 러시아군이 물러난 수도 키이우의 조용한 밤을 지새며 몸서리쳤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부차 학살’의 참상을 하나씩 써 내려갔다. “러시아군이 가정집에 본부를 설치해 한 방에서는 민간인들을 고문하고 다른 방에서는 총을 쐈다. 한 농부는 아들이 백혈병을 앓고 있어 때리지 말라고 애원했지만 러시아군이 아들의 몸을 내려쳤다고 증언했다.”시민단체 ‘시민자유센터’를 이끄는 시민운동가이기도 한 그는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 이후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전쟁 범죄를 조사하고 기록하는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2014년 러시아의 돈바스 침공 후 이 지역에서 러시아군이 저지른 민간인 처형과 고문, 성폭력 등을 국제사회에 고발한 그는 2016년 유럽안보협력기구(OSCE)가 수여하는 ‘민주주의 수호자상’을 받았다.러시아군이 퇴각한 뒤 부차에서 드러난 전쟁 범죄의 참상은 그가 돈바스 지역에서 목격한 것들과 놀랍도록 닮았다. 지난달 29일부터 ‘부차 학살’이 알려진 지난 3일까지 서울신문과 화상 및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인터뷰한 그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저항을 멈추게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단 있는 어조로 러시아를 조목조목 비판하던 그도 전쟁의 참상을 전하는 순간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지 못했다. “민간인을 겨냥한 전쟁 범죄, 러시아에게는 전쟁의 주요 수단” 러시아의 침공 후 그는 수백 명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러시아군이 남긴 전쟁범죄의 조각들을 모으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은 법률 지식과 경험이 부족하지만 폐허가 된 도시를 샅샅이 뒤져 러시아군에 의해 희생된 민간인들을 기록하고 파괴된 학교와 주거지, 병원 등을 찾아다니고 있다. 그는 “러시아에 전쟁범죄는 전쟁의 수단”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들은 인권 운동가, 언론인, 종교 지도자, 자원봉사자 같은 사람들을 목표로 삼습니다. 평화적으로 저항할 수 있는 사람들을 물리적으로 제거하는 것이죠.”그는 4주 넘게 러시아군에 포위된 마리우폴의 비극을 우려하고 있다. 마리우폴에서는 물과 식량, 의약품 등 모든 물자가 바닥난 채 남아 있는 주민 약 13만명이 생사의 기로에 놓여 있다. 인도주의적 통로를 연다는 양국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군의 도발로 실제 대피가 수차례 무산됐다. 그는 “국제인도법은 전쟁 중에 민간인들이 위험한 지역에서 벗어나도록 인도주의 통로를 열도록 규정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러시아는 침공 후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에 수미 지역에서 출발하는 단 하나의 인도주의 통로만 동의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러시아는 ‘인도주의 통로’를 빌미로 마리우폴을 비롯해 점령지의 주민들을 자국 영토로 강제 이주시켰다. 출입국 기록이 없는 탓에 정확한 규모를 파악할 수 없지만 우크라이나 정부는 어린이 2000여명 등 4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들이 ‘우크라이나의 신나치주의자들로부터 해방됐다’는 선전전을 펼치고 있다. 그는 “강제 추방된 주민들에게는 ‘남아서 죽느냐, 러시아로 가느냐’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었다”면서 “문서(여권 및 출입국 기록)도 없이 러시아로 끌려간 이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는 건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4주 동안 고통받은 주민들을 자신들의 선전에 이용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8년 전 바이든 만나 “무기를 달라” 호소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쟁범죄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ICC) 법정에 서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면서 당장의 전쟁범죄를 막기 위한 국제사회의 지원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유로마이단 혁명’ 이후인 2014년 4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당시 부통령 자격으로 키이우를 방문해 시민단체 대표들과 만났다. 그는 이날 바이든 대통령과 독대해 짧은 대화를 할 기회를 얻었다. “우크라이나를 위해 미국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고 묻는 바이든 대통령에게 그는 “우리에게 무기를 달라”고 호소했고 바이든은 그와 마주 서서 두 손을 굳게 잡아보였다.“이제 미국 뿐 아니라 서방의 모든 지도자들에게 ‘당신들의 능동적인 지지가 필요하다’고 외치고 싶습니다.” 그는 전투기와 방공 시스템, 더욱 강력한 경제 제재를 요청했다. 그리고 유엔(UN) 등 국제 기구들을 향해 “제네바와 빈, 브뤼셀이 아닌 키이우, 하르키우, 마리우폴에서 우리와 함께 해달라”고 호소했다. “우리는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 싸울 준비가 돼 있습니다. 지금 각 나라가, 국제기구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 역사는 평가할 것입니다.”
  • 강간·구타 장려하는 러 ‘데도브시나’ 관습, 민간인 학살 낳았다

    강간·구타 장려하는 러 ‘데도브시나’ 관습, 민간인 학살 낳았다

    러시아군이 휩쓸고 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 인근 도시 부차에서 집단 매장된 민간인 시신이 대거 발견된 가운데 이런 잔인한 학살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전형적인 전쟁 방식이라고 CNN이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특히 강간과 구타 등을 부추기는 러시아식 ‘데도브시나(dedovshchina)’ 군사문화가 부차 민간인 학살 등의 한 배경이라고 지적했다. 아녜스 칼라마르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은 “러시아는 과거 군사 개입(우크라이나, 시리아, 체첸 본국에서의 군사 작전) 때마다 국제인도법을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더럽혔다”면서 “러시아군이 무차별적인 공격을 가하고 금지된 무기를 사용하며 때로는 고의적으로 민간인과 민간물자를 겨냥한 것이며 이는 전쟁 범죄”라고 강조했다.실제 1999년 제2차 체첸전쟁 당시 러시아는 체첸 수도 그로즈니를 초기부터 손에 넣으려고 했지만 실패로 돌아가자 무자비한 공격을 퍼부었다. 그로즈니는 도시 전체가 폐허로 변했고 주민 수천명이 희생됐다. 우크라이나 침공 훨씬 이전부터 러시아 군대는 잔인한 문화로 유명했다고 CNN은 전했다. 러시아는 계약병과 징집병이 함께하는 ‘하이브리드 인력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일명 징모혼합제다. 이는 짧게 의무복무만 마치고 전역하는 병사와, ‘계약’을 맺고 전문 분야에서 여러 해 또는 장기복무를 하는 병사를 구분해 징집하는 병역제도다.러시아 정부는 이 시스템을 통해 군대를 전문화하는 데 진전을 보였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러시아 군대는 여전히 고위 징집병이 젊은 징집병을 구타하거나 심지어 강간하도록 부추기는 악명 높은 전통인 ‘데도브시나’ 관습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몇 주 동안 러시아는 과거 러시아 항공기가 시리아 학교와 병원을 목표로 삼았던 것처럼 민간 기반 시설을 타격했다. 우크라이나 인권 옴부즈만 류드밀라 데니소바는 최근 러시아가 전쟁 포로와 관련한 제네바 협약을 위반했다고 말했다. 데니소바는 석방된 우크라이나 병사들의 말을 인용해 “러시아 군인들이 우크라이나 포로들을 비인간적으로 대우했다”면서 “포로들은 들판, 구덩이, 차고에 구금됐고 러시아 군인들은 포로들을 구타하며 귀 옆에 총을 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 “민간인 학살은 러시아 전형적 수법”…체첸전쟁 전례 있었다

    “민간인 학살은 러시아 전형적 수법”…체첸전쟁 전례 있었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 도시 부차에서 러시아군의 민간인 집단 살해 정황이 드러난 가운데, 러시아가 전쟁 시 궁지를 타개하기 위한 전형적인 수법으로 민간인 학살을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3일(현지시간) “민간인 학살은 러시아가 전쟁 계획이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등장하는 전형적인 수법”이라고 보도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러시아는 1999년 제2차 체첸전쟁 당시 초기부터 체첸 수도 그로즈니를 장악하려 했다. 하지만 이것이 실패로 돌아가자 무자비한 공격을 퍼붓는 전략을 사용했다. 이로 인해 그로즈니는 도시 전체가 폐허로 변했고 주민 수천명이 희생됐다. 2003년 유엔은 그로즈니를 ‘지구상 제일 파괴된 도시’로 지정했다. 바샤르 알아사드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개입한 시리아 내전에서도 비슷한 전례가 확인됐다. 러시아는 2016년 반군 거점이던 알레포의 주거지역을 공격하는 데 화학무기까지 동원하면서 포위를 이어갔고 그 결과 반군 소탕 작전에 성공했다.우크라이나에서도 비슷한 수법이 확인된다. 러시아군은 체르니히우, 마리우폴, 하르키우 등지에서 주거지역뿐 아니라 병원, 학교, 대피소 등 핵심 인프라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했다. 민간 목표물까지 공격한 러시아군은 통신을 비롯한 전기, 가스, 식수 등 생활 기반이 되는 것을 전부 차단시켰고, 안에 남겨진 우크라이나 주민들은 고립되기도 했다. 가디언은 “러시아가 무자비한 공격으로 도시를 초토화하면 공포 때문에 저항 의지가 무너지리라는 판단이 깔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러시아군이 부차에 있던 민간인들을 향해 보이는 대로 무차별 사격을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3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부차 주민인 안토니나 포마잔코는 러시아군이 부차에 처음 진격한 날인 2월 27일 오전 그의 딸 테티아나 포마잔코(56)가 러시아군에 의해 살해됐다고 주장했다. 살해된 테티아나의 동창인 스비틀라나 무니크는 “러시아군은 보이는 사람을 모조리 쐈다”며 “테티아나의 어머니가 집에 있는데도 가스관을 향해 총을 쐈다”고 말했다. 이날 AP통신은 부차의 한 도로에서 손이 뒤로 묶인 채 숨진 남성의 시신과 민간인 다수가 포함된 여러 시신을 집단 매장하는 사진을 보도했다. AP 통신 기자들은 키이우 북서쪽의 작은 도시 부차에서 근접 살해된 것으로 보이는 민간인 복장의 시신 최소 9구가 발견됐으며 그중 두 명의 시신은 손의 뒤로 묶여 있었다고 전했다. 부차에서는 민간인 시신 410구가 수습됐고, 집단 매장지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러시아 국방부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부차에서의 러시아군 범죄를 입증하려고 공개한 모든 사진과 영상은 또 다른 도발”이라면서 “공개된 영상은 서방 언론을 위해 우크라이나 정부가 연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 “키이우, 21세기 지옥”… 러 떠난 폐허에 시신 즐비(종합)

    “키이우, 21세기 지옥”… 러 떠난 폐허에 시신 즐비(종합)

    러시아군이 물러가고 우크라이나군이 다시 장악한 수도 키이우(키예프) 북부 외곽 지역에서 지옥을 방불케 하는 전쟁의 참상이 드러나고 있다. 3일(현지시간)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보좌관은 자신의 트위터에 “키이우 지역. 21세기 지옥. 손이 묶인 채 처형된 남자들과 여자들의 시신”이라며 “나치즘의 가장 끔찍한 범죄가 다시 유럽에. 이것은 러시아에 의해 의도적으로 자행됐다”고 적었다. 포돌랴크 보좌관이 트위터에 함께 올린 사진 4장의 사진에는 흙더미에 반쯤 묻혀 있는 사망자들, 길 한복판에 쓰러져 있는 사망자들의 모습 등이 담겼다. 그는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금수 조치를 취하고 항구를 폐쇄해 달라. 살인을 멈춰라”라고 덧붙였다.외신은 러시아군이 점령했다 철수한 키이우 북부 지역의 참혹한 상황을 전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키이우 북서쪽 외곽 도시 부차의 한 거리에서만 민간인 복장을 한 시신 20여구가 발견됐으며, 일부 시신은 두 손이 결박돼 있었다고 했다. 아나톨리 페도루크 부차 시장은 러시아군이 민간인들을 처형했다고 로이터통신에 전했다. 그는 “처형된 사람들의 시신이 여전히 거리에 있다”며 “그들의 손은 등 뒤로 묶여 있고, 머리 뒤쪽에 총을 맞았다”고 말했다.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을 막기 위해 어린아이들을 ‘인간 방패’로 썼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현지 주민들이 러시아군의 이동 경로를 우크라이나군에 알려주지 못하도록 아이들을 인질로 붙잡아 차량 앞에 태웠다는 주장을 전했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도 트위터에 “부차에서의 대학살은 계획적이었다”며 “러시아인들은 가능한 한 많은 우크라이나인을 제거하려 했다”고 적었다.이 같은 참상은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 등지로 화력을 모으기 위해 키이우 북부 지역에서 병력을 철수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한나 말야르 우크라이나 국방부 차관은 전날 페이스북을 통해 “부차, 이르핀, 호스토멜 등 키이우 지역 전체가 침입자로부터 해방됐다”며 수도 인근 지역을 우크라이나군이 다시 탈환했다고 알렸다. 한편 유럽연합(EU)과 영국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추가 제재를 예고하고,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전쟁범죄 조사를 촉구했다.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이날 트위터에 ‘부차 대학살’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올린 글에서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를 예고하는 한편 우크라이나를 위한 추가 지원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셸 의장은 또한 현재 EU는 러시아의 전쟁범죄 증거를 확보해 ICC에 제출할 수 있도록 우크라이나 정부를 돕고 있다고 했다. 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장관도 이날 성명에서 러시아군이 무고한 민간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한 것은 전쟁범죄에 해당한다고 지적하면서 ICC의 조사 필요성을 강조했다.
  • [속보] 13만 추가 징집 선언 푸틴… 젤렌스키 “죽음이 닥쳤다” 경고

    [속보] 13만 추가 징집 선언 푸틴… 젤렌스키 “죽음이 닥쳤다” 경고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 외곽의 안토노프 공항에서 갑자기 철수한 것으로 확인돼 러시아군의 키이우 철수설이 커지고 있다고 CNN·NYT가 보도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텔레그램에 게시한 연설 영상을 통해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북부에서 느리지만 눈에 띠는 방식으로 철군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에 의해 쫓겨나는 경우도 있지만, 자발적인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NYT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북부 지역에서의 군사 작전을 줄일 것이라고 발표한 지 사흘 만에 러시아군이 키이우와 체르니히우에서 철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안토노프 공항은 키이우에서 북서쪽으로 28㎞ 떨어진 호스토멜에 있는 공항으로,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침공 첫날인 2월 24일 이곳을 점령한 뒤 진지를 구축하고 주둔하며 치열한 공방전을 벌여왔다. 젤렌스키는 “(러시아군이 점거했던) 북부 지역엔 여전히 많은 위험 요소가 남겨져 있다. 주택과 각종 장비를 약탈하고, 우크라이나인 시신을 거리에 그대로 남겨놓고 떠나는 것이 현실”이라며 “이 지역으로 돌아올 예정인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여전히 매우 조심해야 하고, 예전과 같은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는 것은 여전히 불가능한 것이 엄연한 상황이다. 폐허를 정리하고, 러시아군이 더이상 이 지역을 침범하지 못할 것이란 확신이 들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 북부 지역에서 물러난 러시아군이 북동부 제2도시 하르키우(하리코프)와 동부 돈바스 지역에 집결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젤렌스키는 “더 강력한 타격을 준비 중”이라고 항전의 의지를 다졌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 정부가 1일부터 13만명이 넘는 신병 징집을 시작했다는 점에 우려를 표했다. 전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3만4500명의 신규 징병을 명령하는 법령에 서명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 시민들을 향해 “더 많은 젊은이들에게 확연한 죽음이 닥쳤다. 더이상 여기(우크라이나)서 죽을 사람은 필요 없다. 당신의 자식들이 악당이 되지 않도록 군대에 보내지 말고 구원하라”고 강조했다.러시아군, 안토노프 공항 떠나 CNN은 미 국방부의 한 관리가 지난달 31일 러시아군이 그동안 점령하고 있던 안토노프 공항을 떠난 것으로 믿고 있다고 밝혔으며 이는 미국 민간 위성업체 맥사 테크놀로지가 같은 날 촬영한 인공위성 사진에서 확인됐다고 전했다. 이전에 촬영된 인공위성 사진에서는 키이우 서쪽에 배치됐던 군 차량과 포병 진지 주위에 러시아군이 흙으로 방호벽을 건설한 장면이 포착됐으나 31일 촬영된 사진에는 방호벽만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우크라이나군은 최근 수일 간 개전 이후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키이우 동쪽과 서쪽의 10여개 도시를 장악했다고 주장했다. 군사 분석가들은 하지만 키이우 포위를 시도해온 러시아군이 손실을 보고 인근 지역에서 철수한 것이 러시아의 전쟁 수행 축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러시아군이 수 주일째 하르키우 남동쪽의 중요 도시인 이지움을 점령하려고 공격을 퍼붓고 있다며 이곳이 점령되면 북쪽의 러시아군이 동부 돈바스(도네츠크·루한스크) 군이 연결돼 북동부의 우크라이나군이 고립될 것이라고 말했다.
  • “아빠는 어디에?”…사진 한장에 담긴 우크라 소년의 참담한 현실

    “아빠는 어디에?”…사진 한장에 담긴 우크라 소년의 참담한 현실

    불과 3살의 우크라이나 소년이 러시아군의 전방위적인 폭격에 부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받는 모습이 사진으로 공개돼 안타까움을 주고있다. 지난 30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등 외신은 현재 우크라이나 남동부 자포리자의 한 어린이 병동에서 치료 중인 소년의 모습을 사진과 함께 보도했다. '디마'(3)라는 이름으로만 알려진 이 소년은 최근 항구도시 마리우폴에서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부상을 입었으나 다행히 약 200㎞ 떨어진 이곳으로 후송돼 치료를 받고있다. 수많은 어린이들이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었으나 그나마 천만다행으로 살아남아 치료를 받고있는 것. 소년은 정신이 들자마자 가장 먼저 "아빠는 어디에 있냐?"고 물으며 울먹였다.보도에 따르면 소년의 아빠 역시 부상을 입었으며 현재는 같은 병원의 다른 병실에서 치료 중이다. 마취과 의사인 올레나 프레바키나는 "지금 우리 병원에 세 어린이들이 치료 중이며 모두 폭격 과정에서 부상을 입었다"면서 "그나마 이곳까지 와서 집중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밝혔다. 현재 러시아군에 포위된 마리우폴 시는 도시 전체가 초토화 됐을 만큼 러시아군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있다. 마리우폴 시당국에 따르면 최근까지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인한 사망자만 무려 5000여 명, 이중 어린이는 210명에 달한다.참담한 마리우폴의 모습은 멀리 위성으로도 촬영됐는데 평화롭던 도시는 그야말로 폐허 그 자체다. 특히 수많은 마리우폴 시민들이 몸을 피했던 드라마 극장이 완전히 파괴된 것이 보이는데 해외 언론들은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시민 300명이 이곳에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파괴된 극장 앞에는 여전히 흰색 페인트로 씌여진 ‘어린이’(дети)라는 단어가 보여 안타까움을 더 한다. 인구 40만 명의 평화롭던 항구도시였던 마리우폴이 죽음의 공간이 된 것은 이곳이 우크라이나 남부의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이중 약 30만 명의 마리우폴 시민들이 피란을 떠났지만 여전히 10만 여 명은 약도 물도 먹을 것도 없는 도시에 갇혀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 [지구를 보다] 러, 이래도 발뺌?…우크라 ‘강제 이주’ 현장, 위성 포착

    [지구를 보다] 러, 이래도 발뺌?…우크라 ‘강제 이주’ 현장, 위성 포착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한 달이 훌쩍 넘은 가운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민간인들을 러시아로 강제 이주시키기 위한 임시 수용소의 모습이 지구 밖에서 포착됐다. 미국 위성 통신 업체 맥사 테크놀로지는 지난 22일 촬영한 러시아 베니멘 캠프의 위성 사진을 공개했다. 마리우폴 동쪽 베지멘에 있는 해당 캠프는 우크라이나 피란만 약 5000명을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본래 해당 캠프는 러시아가 인도적 대피 명목으로 만든 임시 수용소인데, 우크라이나 정부 측은 러시아가 이곳을 피란민들의 강제 이주를 위한 거점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 우크라이나 정부 관계자는 “베니멘 캠프는 ‘여과 캠프’다. 우크라이나 민간인이 이 캠프를 거쳐 러시아의 먼 곳으로 강제 이주하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체첸 전쟁 당시 수천 명의 체첸인인 러시아가 만든 임시 수용소에서 잔인하게 심문받다 실종됐던 모습과 겹쳐진다”고 말했다.맥사 테크놀로지가 공개한 또 다른 위성사진에서는 길게 늘어선 버스를 볼 수 있다. 우크라이나 측은 해당 버스가 캠프에 있던 사람들을 러시아로 강제 이주시키기 위해 동원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리우폴 난민인 한 여성은 영국 BBC와 한 인터뷰에서 “다른 사람들과 벙커에 숨어 있을 때, 러시아군이 안전을 위해 그곳을 떠나라고 했다. 러시아 검문소까지 4㎞ 정도를 걸었고, 그곳에서 더 동쪽으로 이동해 (친러 반군 세력인)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의 지역까지 도달했다”고 말했다. 이어 “DPR이 장악한 지역에 도착한 후에는 DPR에 남을지, 러시아로 갈지 결정해야 했다. 우리 모두 강제로 끌려왔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안전을 위해 임시 수용소를 떠났지만, 결국 우크라이나 피란민에게 남은 선택지는 친러 반군 지역 또는 러시아, 둘 뿐이었다는 뜻이다. "어린이 포함 우크라 민간인 최대 4만명, 러시아로 강제 이주" 마리우폴 부시장도 같은 주장을 내놓았다. 세르히 오를로프 부시장은 최근 영국 언론 더 선과 한 인터뷰에서 “푸틴의 러시아 군대가 마리우폴의 벙커와 은신처로 돌진했으며, 러시아군은 어린이를 포함해 이 지역 주민 2만~4만 명을 러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고 전했다. 또 “마리우폴에서 끌려간 사람들은 강제노동에 동원되고 있다. 그들은 살아남으려면 러시아를 위해 일해야 한다. 이는 명백한 전쟁 범죄”라면서 “러시아는 마리우폴에서 민간인을 납치한 뒤 노동에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은 여권을 압류하고 노동 수용소로 보낸다”고 덧붙였다.매트 모리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대변인은 BBC와 한 인터뷰에서 “국제인도법에 따라 원하는 사람들이 언제든 떠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하지만, 강제로 떠나게 해서는 안 된다”면서 “양측이 인도적 대피 통로 사용에 동의해야 하며, 사람들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폐허가 된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에는 약 16만 명의 주민이 아직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인도주의적 통로를 통해 남은 주민들을 대피시키려는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러시아군의 반복적인 폭격으로 무산됐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강제 이주' 주장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다. 한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29일 제5차 평화협상을 진행했다. 이번 협상에서 우크라이나는 새 안보 보장 체제 구성 전제하에 중립국 채택을 고려하겠다고 밝혔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일부 지역에서 군사활동을 대폭 줄이겠다는 뜻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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