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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깝고도 먼 이웃(한·일수교 30년)

    ◎수교 19년뒤에야 한국정상 “공식 방일”/66년 무역협정 서명… 경제협력 “물꼬”/빈번한 교류속 일 지도층 잇단 망언 65년 국교가 정상화된 이후 한일 양국간에는 모두 17차례의 정상간 왕래가 있었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첫 공식 방일이 추진된 것은 72년이다.박정희 대통령이 11월23일 공식 방일하기로 예정됐었으나,국내의 반일감정이 수그러들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취소됐다.박대통령은 18년에 이르는 재임기간동안 한번도 일본을 공식방문하지 않았다. 우리 대통령의 공식 방일이 성사된 것은 12년 뒤인 84년에 이르러서였다.이 해 9월6일 전두환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히로히토 국왕을 만났다.이후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도 90년과 94년 각각 일본을 방문했다. 수교전에도 대통령의 방일은 있었다.이승만 대통령은 48년과 50·53년 등 세차례 일본을 비공식 방문,요시다 총리 등과 면담하기도 했다.또 61년에는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이 케네디 대통령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하는 경로에 일본을 비공식 방문,이케다 총리와 면담을 가졌다. 우리나라에 처음 온 일본 총리는 사토 총리로 67년 6월30일 박정희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했다.공식방한한 첫 일본 총리는 나카소네 총리로 83년 1월11일 서울에 와 전두환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이후 88년 다케시타,91년 가이후,92년 미야자와,93년 호소카와 총리의 방한이 이어졌다. 비공식과 실무 방문을 포함하면,한국의 대통령은 모두 7차례 일본을 방문했으며,일본의 총리는 10차례 방한했다.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66년 3월 한일간의 무역협정이 서명,발표됨으로써 본격적인 경제 관계도 시작됐다. 이 해 9월 서울에서 처음으로 장기영 전부총리와 후지야마 일 경제기획청장관이 참석하는 한일경제각료 간담회가 열렸다.이후 양국간 경제교류는 80년대 말까지 크게 확대되어 왔으나,90년대초에 들어 무역·투자·기술협력 등의 분야에서 감소세를 보이다 최근 회복세를 찾고 있다. 그 과정에서 무역불균형 심화가 지속적으로 양국간 현안이 됐는데,65년 1억 달러였던 대일 무역적자는 80년대 후반에 50억 달러를 초과하기 시작했으며,92년에는 79억 달러를 기록했다. 경제 관계가 밀접해지면서 67년 정기 각료회의가 시작된 뒤,양국 외무장관 회담,고위외교정책협의회,한·일 어업공동위원회,문화교류실무자회의 등의 한·일 정부간의 정기회담으로 자리잡았다. 또 한일의원연맹과 한일친선협회,한일협력위원회,한일경제협회,한일협회,한일여성친선협회,한일문화교류기금 등의 민간 친선단체가 발족되기도 했다. 65년 1만명에 불과하던 양국간 인적교류는 지난해 2백70만명으로 늘어났다.일본이 거주하는 재일 한국인은 68만8천명이다.최근에는 재일교포와 일본인과의 결혼이 늘어나는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90년 통계에 따르면,재일교포의 총혼인건수 1만3천9백34건 가운데 동포간 혼인은 15.8%에 불과하며,일본여자와 결혼한 교포남성이 19.5%,일본남자와 결혼한 교포여성이 64.2%였다.일본에 귀한한 재일교포는 50년이래 17만명인 것으로 집계된다. 이러한 관계 발전의 한편에서는 일본측의 망언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일본의 고위각료급에서만도 해마다 일일이 기록할 수 없을 정도의 망언을 쏟아냈다.대표적인 것이 82년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과 그에 대한 86년 후지오 문부상의 망언으로 양국간의 외교문제로까지 비화됐다.정부는 이해 9월 예정된 한일 외무장관 회담을 연기하며 후지오의 망언에 엄중항의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또 올해 한일 국교정상화 30주년을 맞아서도 어김없이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 전 외상이 한일합방과 관련한 망언을 함으로써 양국간의 미래지향적인 관계 발전에 찬물을 끼얹었다. ◎도쿄의 평가와 과제/“국교정상화 한국발전에 크게 기여”/위안부 등 개인배상문제 불씨 잠복/재일동포3세 법적지위개선도 현안 한국과 일본은 22일로 한·일기본조약 서명 30주년을 맞는다. 국교가 정상화된 지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일본에는 한국에 대한 우월감이,한국은 일본에 대해 피해의식이 남아 있다.또 「김대중납치사건」 「문세광 사건」 망언파동 등으로 한일관계는 곡절도 많이 겪었다. 한일관계는 양국 정치에 있어 「늘 쉽게 구사할 수 있는 정략적 카드」로 악용당한 사례도 많이 있다. 하지만한일국교정상화가 냉전체제하에서 동아시아지역의 안정과 한국의 경제발전,일본의 이 지역에서의 영향력 행사를 위한 안정적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양국에 크게 공헌한 점이 있다는 데 대해 의견이 대체적으로 모아진다.특히 일본에서는 국교정상화가 한국에 보다 많은 플러스가 됐다고 말하는 학자,평론가들이 많다. 초대 주일대사를 지낸 김동조전외무장관은 한일국교정상화와 관련,『냉전구조하에서 정치적으로 아시아,넓게는 세계 평화에 기여했다』고 평가하면서 『한국으로서도 피폐해진 경제를 발전시키는데 조약체결로 얻은 자금이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도쿄신문 20일자). 일본으로부터의 자금이 한국경제 발전에 대해 도움이 됐다는 점에 대해서는 재일사학자 강재언교수도 높이 평가한다.하지만 강교수는 강조하는 점이 조금 다르다.그는 우선 일본으로부터 무상공여 3억달러 등 모두 8억달러의 자금은 식민지 피해에 따라 당연히 받을 몫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강교수는 또 『동남아시아의 다른 나라들도 배상을 받았지만 많은 나라에서 특권층을살찌운 반면 한국은 깨끗하게 경제건설에 활용됐다』고 말해 자금이 들어온 일본보다는 활용한 한국의 노력에 비중을 두었다. 그는 반면 「식민지지배 책임문제」 등이 분명하게 밝혀진 위에 국교정상화가 됐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돈이 급하고 일본은 과거를 반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 부분이 애매하게 처리된채 기본조약이 체결됨으로써 여러가지 문제들이 남게 됐다고 말한다.남은 문제들 가운데는 일본의 진정한 과거반성,한일기본조약의 해석,재일동포 3세이하의 법적 지위 문제,식민지배 피해자에 대한 개인적 배상 등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한·일기본조약 서명 이동원 전외무/“국력 길러 일 우월의식 극복을/과거에 매달려 역사흐름 놓치지 말길/패전 극복 일의 창조적 노력 본받을만 한·일기본조약을 서명한 이동원 전외무장관(현 국제학술원이사장)은 21일 국교정상화 30주년에 즈음한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과거에 너무 집착하지말고 일본과 대등한 관계를 유지할수 있는 국력을 키워야한다고 강조했다.다음은 인터뷰 내용. ­한·일기본조약을 서명한 당사자로서 30주년을 맞는 감회와 기본조약의 평가는 어떻습니까. ▲한·일 국교정상화회담은 거의 15년이라는 세월이 걸린 전후 세계사에서 가장 길었던 외교협상이었습니다.그만큼 양국간의 적대감과 갈등이 깊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약에 서명한 것은 역사의 흐름에 뒤떨어지지 않기위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냉전이라는 국제정세를 배경으로 식민지지배에 대한 청산을 분명히 하지않고 경제협력을 우선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만. ▲역사는 변화하는 것입니다.변화없이는 발전도 없습니다.한·일기본조약은 그 시대의 역사적 변화의 흐름을 활용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당시 미국의 지원하에 새로운 일본이 만들어지고 있었으며 한국도 새로 태어나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과거의 역사는 물론 잊어서는 안되지만 과거에만 머물러 있을수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본의 전후청산은 끝났다고 생각합니까. ▲어느정도 이루어졌다고 봅니다.그러나 중의원의 「전후50년국회결의」 채택과정에서 나타났듯이 과거잘못을 솔직히 인정하는 독일과 같은 자세가 부족합니다.일본은 국수주의적 환상에서 깨어나 이웃국가들과 함께 공존·번영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그러나 불행히도 아시아의 후진성을 이용,우월주의적인 입장을 견지하려는 움직임이 여전히 강합니다.공존의 시대에 배타주의적 우월의식을 고집한다면 일본의 미래는 어둡다고 봅니다.일본도 중국·한국·아세안등 아시아 이웃국가들의 역동적인 변화를 잘 인식하지않으면 안됩니다. ­국교정상화후에도 일본지도층의 망언이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그 배경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주변국가를 멸시하는 일본의 배타주의적 우월의식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일본인들의 의식속에는 아시아를 깔보는 경향이 강하게 배어있습니다.그러나 우리들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일본인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하도록 하는 창조적 노력과 국력배양을 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2차대전후 일본은 전쟁폐허의 암울한 상황이었습니다.일본은 그러나 미국에 머리숙이며 열심히 기술을 배우고 경제부흥을 위해 많은 땀을 흘렸습니다. 그들은 특히 선진기술을 그대로 모방하지않고 아주 작은 것이라도 「일본적인 알파」를 추가하려고 노력했습니다.그러한 「창조적」 노력이 오늘과 같은 경제대국을 이루는 원동력이 됐습니다.그러나 우리는 일본것을 그대로 모방하는데 그친 경우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 결과 일본에 대한 경제적 예속이 점점 깊어져왔습니다.작은 것이라도 「한국적 알파」를 추가하려는 창조정신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한국을 보는 일본의 시각이 변했다고 봅니까. ▲한국에 대한 일본의 시각이 많이 좋아진 것은 사실입니다.그러나 한국을 얕보는 본질적인 인식은 크게 변하지않은 것 같습니다. ­식민지지배를 배경으로 한 한·일간의 특수관계에서 이제는 보통의 이웃국가관계로 바뀌어야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만. ▲그렇습니다.과거가 미래를 구속하는 상황이 더이상 되풀이되어서는 안됩니다.광복 50주년이 됐습니다.일본에도 한국에도 식민지이후 세대가 중심이 되고 있기때문에 한국도 이제는 냉정한국제정치논리에 대비하여야합니다. ­앞으로의 한·일관계를 어떻게 전망합니까. ▲양국은 경제뿐만아니라 정치·문화등 각분야에서 더욱 밀접하고 복잡한 관계로 발전할 것입니다.그러나 한국은 반일감정을 극복하고 기술·정보등 경제분야의 발전을 통해 일본과의 격차를 줄여야합니다.물론 일본과는 경제규모에서 대등할수는 없습니다.그러나 질적인 대등함을 유지할수 있는 국력을 키워야합니다.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국력이 뒷받침되는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사할린 지진 형장/건물 곳곳 신음 아수라장 방불

    ◎악천후·장비부족… 구조대 발만 동동/의료진·약품 달려 구출부상자 방치 추운 날씨,짙은 안개로 인한 시계불량,장비및 의료품 부족 등으로 지진피해자 구조는 한마디로 최악의 상황이다.지진 발생 40시간이 지난 29일 하오 현재까지 무너진 건물더미 속에 묻힌 3천여명 가운데 구조대가 구출한 사람은 수백명에 불과.한 곳에서는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에 깔린 희생자가 팔만 밖으로 뻗쳐 힘들게 손을 흔들며 구원을 청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콘크리트 더미를 움직일 중장비 부족으로 아무 손도 쓰지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르는 모습을 보이기도. ○…힘들게 구조된 사람들은 인근 오하나 하바로프스크의 병원들로 후송되고 있지만 이곳의 의사들은 의료품 부족으로 적절한 치료 수단을 제공할 수 없다며 지원을 호소하기도.의사들은 제시간에 의약품들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어렵사리 구출된 사람들의 목숨을 다시 잃을 수도 있다면서 설령 목숨까지 잃지는 않는다 해도 팔·다리를 잘라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길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토로. ○…구출된 피해자들이 인근 병원으로 옮겨지는 것과는 달리 이미 사망한 사람들은 그대로 거리에 방치돼 있어 네프테고르스크의 거리는 무너진 건물더미 속 곳곳에서 들려오는 처참한 신음소리와 어디서나 눈에 띄는 시체들로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아수라장을 연출. ○…폐허가 된 건물더미 밑에 깔려 부르짖는 신음소리,하늘로 치솟는 화염과 함께 피어오르는 여러 줄기의 검은 연기,완전히 부서진 건물더미 앞에서 여성들이 슬피 우는 모습.일본의 NHK방송은 네프테고르스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같은 장면을 단독 보도하면서 쓰러진 건물 밑에 깔린 사람들을 구조하기 위해 기중기가 콘크리트 건물 덩어리를 들어올리는 모습을 방영.또 NHK는 짙은 안개로 헬리콥터와 수송기들이 이륙할 수가 없어 구조작업이 지체되고 있다고 보도. ○…지진으로 폐허가 되다시피 한 네프테고르스크 현장에는 구급식량과 텐트,유아용 식량,의복,의약품 등이 긴급 공수됐다.그러나 긴급구조활동은 현지의 열악한 도로사정과 대량의 짐을 운반할 수 있는 공항의 부족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한편 지진피해 복구작업을 총지휘하고 있는 올레그 쇼스코베츠 러시아 제1부총리는 피해복구를 위한 초기비용으로 3백억루블(약 46억원)을 긴급히 지원하도록 재무부에 요청했다고 발표. 이번 지진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은 네프테고르스크는 유전지대로 인명피해 만큼이나 환경파괴문제도 심각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사할린 석유가스회사인 사할린모르네프테가스사의 니콜라이 보리센코 사장은 사할린 오하에서 네프테고르스크까지 연결된 90㎞ 길이의 파이프라인 가운데서 15군데 이상이나 파손됐다며 이로 인한 환경오염 가능성을 우려.그는 또 지진피해 지역의 유전들도 모두 파괴됐다며 저유소에서 기름들이 유출되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고 전언.그러나 이에 대해 빅토르 구레비치 사할린부지사는 생태계에 재앙을 가져올 것이라는 징후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강력하게 부인.
  • 사할린 진도 7.5강진/“2천5백명 사망”

    ◎네프테고르스크시 완전 폐허/러 통신 보도/러,즉각 재난지역 선포… 구조반 급파/우리동포 3만명 거주… 큰 피해 우려 【모스크바·유즈노사할린스크·런던 외신 종합】 28일 새벽(한국시간 27일 밤) 사할린섬 북부지역을 강타한 리히터 규모 7·5의 강진으로 최고 2천5백여명이 죽은 것으로 보인다고 이타르타스통신이 28일 이 지역 민방위본부 책임자의 말을 인용,보도했다. 타스통신은 이번 지진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할린 북부 네프테고르스크는 도시 전체가 완전히 폐허로 변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사할린 주정부 당국은 지진으로 19층의 건물 한채와 20개동의 아파트가 붕괴되면서 70명이 숨지고 2천명 이상이 무너진 건물더미에 깔려 있다고 밝혔었다. 한편 인테르팍스 통신도 비탈리 고밀레프스키 사할린 부지사의 말을 인용,총인구 3천5백여명의 네프테고르스크에서 즉각 구조된 사람은 5백여명에 불과하며 지진발생 지역이 한치 앞을 분간하기 힘든 짙은 안개로 덮여 구조작업이 사실상 불가능해 나머지 3천여명은 구조가 어려운 상태라고 전했다. 네프테고르스크를 탈출한 목격자들은 지진이 일어나면서 5층짜리 건물 16개동이 일제히 무너져 내렸으며 아파트 창문이 모조리 깨지고 벽에 금이 가면서 건물 전체가 무너졌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또 이날 지진으로 오하시와 네프테고르스크시 근처 모스칼보 마을 등 일부 지역의 통신이 두절됐다.한편 러시아 극동재해대책센터는 지진피해 지역을 즉시 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긴급구조반을 현지에 파견했으나 현지의 도로사정이 나빠 현장도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으며 하바로프스크와 모스크바에서도 구조팀이 급조돼 현지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날 지진은 지난 1월 일본 고베지역을 강타한 리히터 진도 7.2의 지진보다 더 강력한 것으로 진앙지는 오하시 북쪽 70㎞ 떨어진 엘리자베타곶 인근 바다속인 것으로 관측됐다. ◎총인구는 75만 사할린은 러시아에서 유일하게 사할린섬과 쿠릴열도 등 섬으로 구성된 행정구역으로 면적은 8만7천1백㎦이며 전체 인구는 75만여명.이 가운데 2,3세를 포함한 우리 동포는 3만5천2백여명(94년 통계)에 이른다. 우리 동포들은 현재 주도인 유주노 사할린스크를 비롯한 사할린 각 지역에 산재해 거주하고 있어 이번 지진으로 인한 피해가 적지 않을 것으로 우려된다. ◎김 대통령 위로전문 김영삼 대통령은 28일 하오 러시아 사할린지방 네프테고르스크시에서 발생한 지진참변과 관련,러시아 옐친대통령에게 위로전문을 보냈다.
  • 러시아 최악의 강진… 사할린 참사현장 이모저모

    ◎한밤 “대재앙” 도시전체가 생지옥/짙은 안개·날씨 차가워 구조 애로/주민들 깊은 잠… 대피못해 피해커/아파트 모두 붕괴… 주요 석유·가스관은 무시 ○세차례 지진 발생 ○…진도 7.5의 강진이 일어난 사할린섬 네프테고르스크지역에서는 초기 지진이후 두 차례의 지진이 잇따라 발생,주민들의 불안은 극에 달했다. 그동안 큰 사고가 없었던 이 지역 대부분의 주민들은 지진이 나자 놀란 마음으로 집에서 뛰쳐나와 거리를 헤매며 울부짖었다. 네프테고르스크 인근 오하시의 행정책임자인 나일 야루린씨는 AP통신과 가진 전화인터뷰에서 『이 지역에서 42년간 살아왔으나 이같은 강진은 처음』이라면서 『사람들이 한때 일제히 거리로 나와 어수선했으나 큰 혼란은 없었다』고 말했다. ○…사고 지역의 기온은 0도로 매우 쌀쌀해 집을 잃은 주민들을 더욱 어럽게 하고 있으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짙은 안개가 구조대원들의 구조활동을 방해해 이중고를 겪고 있다. 경찰도 처음 당하는 큰 지진에 적절한 대응 방안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경찰도 우왕좌왕 ○…마을 전체가 폐허로 변한 네프테고르스크는 아파트들이 대부분 조립식으로 지어진 것들이어서 특히 큰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또 지진발생 시간이 현지시간으로 새벽 1시5분으로 주민들이 모두 깊이 잠든 때여서 주민들이 대피할 수 없었던 것도 엄청난 피해를 부른 한 요인으로 여겨지고 있다. ○육해군 긴급 투입 ○…지진으로 큰 피해가 발생하자 러시아 육·해군들과 국경경비대들이 구조작전에 긴급 투입됐으며 특별항공기는 난민들을 사할린의 한 유스캠프와 오하시내 병원으로 대피시키느라 분주.이 유스캠프는 지난해 10월 쿠릴열도 지진사고 때도 난민촌으로 이용됐던 곳. ○…석유와 천연가스가 많은 사할린섬의 대지진으로 러시아 관가에서는 인명피해외에 또다른 걱정을 하였으나 불행중 다행으로 사할린에서 러시아 주요지역으로 가는 석유·가스 파이프라인에는 큰 피해가 없었다고. ○옐친 「애도」 표시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극동지역 행정부를 통해 사할린 지진 희생자들 유족에게 애도의 뜻을표시.옐친은 메시지에서 『네프테고르스크의 비극적인 소식을 듣고 매우 참담했다』고 말했다. ○…사건대책본부를 이끌고 있는 올레그 쇼스코베츠 제1부총리는 이날 지진에 대해 브리핑하는 가운데 지진발생 지역의 자연조건이나 사망추정 피해자 수로 볼 때 이번 지진은 러시아 사상 최악의 지진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이번 지진은 대재앙』이라며 『우리는 아직도 그 운명을 알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남아공 「선시티」(아프리카 기행:11)

    ◎밤이없는 「25시의 도시」… 세계 관광명소로/서구문명 태동기에 화려한 왕궁건설/화산으로 잿더미… 「잃어버린 도시」로 전락/91년 다시 개발… “옛영화 되찾기” 열정 불태워 선시티(Sun City)는 보푸타츠와나의 한 가운데 문명의 손길이 빗겨간 아름다운 아프리카의 자연을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선시티에는 이렇다할 경계선도 없고 밤의 적막도 없는 25시의 도시라 할 수 있다.매일 낮과 밤,고대 화산에서 용암이 분출하듯 아프리카의 정열을 분출하고 있는 도시중의 도시다.아주 옛날,한 두개의 돛을 단 배 이상의 해상교통 수단은 꿈도 꾸지 못했던 시절,서구 문명이 아직 태동기에 있을 때,아프리카 북부로부터 화려한 건축기술을 자랑하는 한 부족이 이곳에 내려와 자리를 잡았다. 화산의 분출구 주변에 자리를 잡은 이들은 이 지역을 「태양의 계곡(Valley of the Sun)」이라 이름붙이고 거대한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했다.땅은 비옥한데다 가뭄에 시달리는 아프리카의 한복판 답지않게 물도 풍부했다.더군다나 운좋게 금광을 발견하는데 성공하여 여기서 캐낸 금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그리고 그들을 이끌었던 용맹과 자비를 겸비한 훌륭한 왕이 거처할 웅장하고 아름다운 궁전도 지었다.그러나 애석하게도 이들의 영화는 오래가지 못했다.어느 날 갑자기 다시 시작된 화산활동은 이들이 쌓아올렸던 찬란한 왕궁과 문명을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들었다.주민들도 엄청난 파괴력 앞에서 뿔뿔이 흩어져 먼 곳으로 도망을 쳐야했다.잡초만이 무성한 옛 영화의 도시의 폐허모습으로 그렇게 버려졌었다. ○금캐내 부를 축적 1991년 문명인들에 의해 다시 햇빛을 보게 돈 「태양의 계곡」은 「선시티의 잃어버린 도시(Lost City at Sum City)」라는 이름으로 다시 개발되어 오늘 날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로 탈바꿈하였다.잃어버린 도시의 옛왕궁 터 옆에 자리잡은 「잃어버린 도시의 궁전(The Palace of the Lost City)」이라는 이름을 가진 호텔에 첫발을 들여놓았을 때 우리는 그 엄청난 규모와 호화로움에 한동안 할 말을 잊어버렸다.삭막한 사막 한 가운데 이런 도시가 들어서 있다니,호화의 극치를 이룬 이호텔은 오늘 날 전 세계에서 몰려오는 관광객들을 귀빈으로 접대하고 있다.이 호텔의 건물은 복원된 옛 왕궁과 함께 찬란했던 왕국의 영화를 되살려 주는 왕관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3백38개의 호화로운 객실과 대형 실외수영장,세계 각국의 일류요리를 맛볼 수 있는 다섯개의 식당,골프 코스,초대형 무도장이 갖추어져 있다. 팰리스호텔의 내부는 복원된 옛 왕궁의 모습으로 북아프리카의 문화적 유산이 많이 남아있다.그러한 문화유산을 그대로 본떠 지어서인지 수많은 아프리카의 맹수들과 짙푸른 식물들로 장식되었다.야자수 잎이 정교하게 조각된 벽장식의 라운지가 있는가 하면 여러가지 아프리카 야생동물의 머리부분을 하나하나 손으로 조각한 의자등받이 장식이 인상적인 식당도 자리잡았다.25m 높이의 망루에는 코끼리 상아와 야자수 잎을 야자줄기로 엮어 덮은 듯한 모양의 지붕이 있다.그리고 그 지붕 바로 아래에는 횃불을 태울 수 있는 등잔모양의 커다란 그릇이 보였다.밤이면 이 등잔에 켜진 횃불이 새벽까지 밝혀준다.아마도 옛날의 그 끔찍한 대지진이 있기 전에 이곳 왕궁에서도 이런 높은 망루에서 왕실의 경비병이 멀리서 오는 국빈의 도착을 알리거나 사냥감의 움직임을 관찰했을 듯하다. ○펠리스호텔… 큰 자랑 이 호텔에서 가장 인상깊은 예술품은 아마도 중앙 홀의 천장화일 것이다.25m 높이의 둥근 천장에 그려진 이 벽화는 마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직경이 16m에 달하고 중앙에는 천장이 있으며,모두 여섯부분으로 그림이 나뉘어져 있다.치타,얼룩말,원숭이,영양 등이 아프리카 밀림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이것을 완성하는 데 자그마치 5천시간이 걸렸다고 한다.천장 바로 아래 바닥에 깔린 30만개나 되는 대리석 조각 모자이크가 무척 아름다웠다.팰리스호텔 주변 숲의 넓이는 약 7만5천평으로 대략 22개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고 각 구역마다 다양한 나무들이 울창한 열대림을 이루었다.특히 만포기 이상의 야생란이 자라 그 운치는 더욱 대단했다. 옛 왕궁터 안에는 조개껍질을 엎어놓은 모양으로 생긴 파도의 계곡에 파도풀장이 있다.지진이있기전에 이 도시의 사람들이 수영을 즐기던 곳이었다.그러나 지진이 일어난 후로는 매90초마다 건헐온천이 솟아나와서 마치 바닷가에서 깨끗한 모래사장과 함께 해변의 파도가 밀려오는 듯한 효과를 낸다.이 간헐온천의 파도를 이용해 이곳에서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았다. 파도의 계곡을 지나면 시간의 다리(Bridge of Time)가 있다.이 다리는 옛 왕궁터와 대무도장을 연결해 주는데,다리 난간에는 표범과 코끼리의 석상이 세워져 있다.지각운동이 있을 때마다 다리 아래로부터 뜨겁고 하얀 연기가 솟아오르기도 하고 다리가 흔들리기도 한다. ○간혈온천 솟아올라 파도의 계곡을 내려다보고 있는 원숭이 분수광장(Monkey Spring Plaza)은 옛 도시에서 심각한 가뭄이 들었을 때 사람이 올라갈 수 없는 높은 나무에 올라가 나무열매를 따서 사람들이 가뭄을 견디도록 도와주었다는 원숭이들을 기리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네 마리의 원숭이는 각각 동서남북을 정면으로 향하고 앉아 있으며,그들이 앞으로 내뻗은 팔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는 목마른 인간에게 구원을 주는 듯 하다.지각운동 때문에 땅이 흔들릴 때면 원숭이들의 머리에 얹힌 커다란 그릇에서 물이 흘러 넘친다고 한다.
  • 곳곳에 시체더미… 지옥 방불/르완다 난민촌 학살 현장

    ◎수류탄에 사지잘린 어린이 시체도/후투족,“투지족 정부군 계획적 살육” ○…대학살이 벌어진 르완다의 키베호난민촌 현장에는 24시간이 지난 23일에도 시체들이 폐허속에 널려있어 글자 그대로 지옥을 방불. 키베호 난민촌을 방문한 유엔 및 원조팀 관계자들은 5천구 이상의 시체를 발견했으며 사진 기자들은 이를 『지옥의 광경』이라고 묘사. 밟혀죽은 수많은 시체들 속에 웅크린 채 숨진 여성들,폭탄에 머리가 터진 남자들,수류탄에 의해 사지가 잘린 어린이들의 시체가 널려 있었다. ○…르완다애국군(RPA)과 유엔군은 이날 하루 종일 시체 매장 작업을 계속했으나 하오가 되자 매장되지 못한 시체가 2천여구에 이르렀으며 살아남은 난민 수천명은 12㎞ 떨어진 부타르로 피란을 계속. 구호요원들은 르완다군이 학살후 서둘러 시체를 구덩이와 무덤에 쓸어넣어 『치워버렸기 때문』에 정확한 사망자 수를 파악할 수 없다고 말하고 호주의료팀과 잠비아군이 집계한 것만 해도 4천50구가 넘는다는 것. ○…인근 자이르에 망명중인 르완다 후투족들은 투치족중심의 르완다정부가키베호 난민학살을 계획적으로 주도했다고 주장. 이들은 성명을 통해 이번 사태의 책임이 폴 카감 국방장관과 자크 비호자가라 재건및 난민담당 장관에게 있다며 이번 사태는 『용의주도하게 계획된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수아라고만 알려진 25세의 한 부상자는 『RPA가 우리에게 난민촌을 떠나라고 내몰더니 언덕에서 우리에게 총격을 가했다』고 증언. 그러나 학살과 관련,파스퇴르 비지문구 르완다대통령은 유엔군의 추청치 8천여명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고 사망자수는 3백명에 불과하다고 상반된 주장. ○…국경없는 의사회(MSF)는 이날 성명을 통해 『(총격 후) 생존자들이 RPA에 의해 난민촌 밖으로 내몰려 현재 20㎞ 떨어진 부타르로 끌려가고 있다』고 밝히고 이들중 수십명이 땡볕에서 물도 식량도 얻지 못해 도중에서 지쳐 쓰러졌다고 말했다. 이 단체는 또 『많은 난민들이 지방 주민들에 의해 구타당했다』고 증언하고 RPA가 부상자 후송을 방해해 40명만이 22일밤 부타르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고 비난. ○…학살극이 빚어진 난민촌은 23일 사격이 중지됐으나 혼란은 계속되고 있다고 유엔 대변인이 밝혔다. 이 대변인은 샤하랴 칸 유엔특사가 키갈리에서 전화로 이날 상오부터 키베호에는 사격이 중지됐으나 여전히 혼란상태가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음을 전달.칸 특사는 르완다당국이 키베호사태 이후 다른 난민촌 3곳도 폐쇄했다고 전언.
  • 지구촌 테러/오클라호마 현장/“탁아소 어린이 40여명 사망·실종”

    ◎불길·연기·비명·사이렌… 전쟁터 방불/사고건물 5백명 근무… 사상자 늘듯 ○…오클라호마시티 로빈슨가 59층짜리 알프레드 머레이 연방건물은 19일 아침의 차량 폭탄테러로 건물외벽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불길과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는 등 사라예보나 베이루트 같은 전쟁터를 방불케했으며 사고 현장 주변에는 시신들이 보도에 널려있고 건물에 깔린 부상자들의 비명으로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상태. 이 건물에는 미 연방 기밀국·마약단속국 및 주류·담배·화기국 등 연방기관 및 2층에 업무보러온 시민과 근무자들을 위한 탁아소 등이 들어 있었는데 사고시간이 근무시작 시간이라 희생자가 더 많았다. ○…이번 폭발은 55㎞쯤 떨어진 곳에서도 진동을 느낄수 있었으며 또 유리파편들이 6블록이나 떨어진 곳까지 날아가는 등 매우 강력한 것이어서 사상자가 속출했는데,오클라호마시 구급대 한 관계자는 80여구의 시체가 폭발사고 현장으로부터 10블록 떨어진 한 시체안치소로 옮겨졌다는 말을 들었다고 주장했으나 확인되지는 않은 상태. ○…오클라호마대학 보건과학센터의 카운슬러 댄 넬슨은 희생자들의 신원을 모두 파악하려면 며칠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 그러나 그는 빠르면 20일 상오(현지시간)쯤 긍정적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런 전망. 사건 당시 건물에는 약 5백명이 정상 근무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날밤까지 신원이 확인된 사람은 2백50명에 불과. ○…오클라호마 시티 연방기구 건물 폭발현장의 구조대원들은 20일 소형 카메라와 음향탐지기를 휴대한채 온종일 폐허더미를 뒤졌으며 경찰은 범행의 단서를 찾는데 주력하고 있다. 구조대원들은 희생자수가 2백명선까지 늘어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구조대원들은 대형 조명이 건물잔해와 복잡하게 얽힌 전선을 비추는 가운데 철야 작업을 계속했다. 또 이날 상오에는 애리조나 피닉스에서 온 56인 도시구조대가 구조작업에 가세,광학 카메라와 음향탐지기 등 최신장비를 가동했다. 경찰은 사건현장 주변에 노란색 차단선을 설치하고 가로 4블록,세로 10블록 정도의 주변지역을 봉쇄했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20일 오클라호마시티 연방기구 사무실 빌딩 폭탄테러사건에 관련된 용의자들을 신문중이라는 보도를 부인했다. FBI의 한 대변인은 로이터통신과의 회견에서 『현재로선 어떤 언급도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언제 성명을 발표할 수 있을지도 밝히지 않았다. ○…이 건물 2층에 있는 탁아소는 전체가 완전히 없어진채 참사중의 참사로 기록되고 있는데 이 안에 있던 1세에서 7세까지의 어린이 40명중 10여명은 시체로 발견됐으며 나머지는 실종된 상태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곳은 건물 정면 2층에 위치해 폭발차량의 충격을 직격으로 받았는데 아동병원의 한 대변인은 『2층 탁아소에서는 17명의 어린이들이 사망했다』고 말했다. 또 이들과 같이 있던 생후 1년미만의 남녀 아기 2명은 기적적으로 상처하나 입지 않아 주목받았으나 다른 2명의 어린아이는 형체를 알수 없을 정도로 불에 탄채 발견돼 참상을 대변. 건물앞쪽에는 이곳에서 날아간 어린이들의 장난감과 놀이감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보는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이 사건 이후 다른 지역의연방기관에도 폭탄테러 협박 전화가 잇따라 보스턴·네브래스카·오리건·델라웨어 등의 연방건물 입주자들이 피신하는 소동을 벌이기도.소개한 기관중에는 보스턴 연방건물 옆에 위치한 보스턴시청도 포함돼 있으며 워싱턴의 법무부 및 국회의사당,뉴욕소재 경찰본부 등 주요 연방건물에 대한 보안이 대폭 강화됐다. ○…이번 사건으로 증권가인 월 스트리트에서는 폭탄탐색장비 제조업체인 테르메딕스의 주가가 19일 8.8%나 치솟아 눈길.
  • 타임스 스케어 봄맞이 새단장(브로드웨이 “새바람”:12)

    ◎더 깨끗하게/더 밝게/더 안전하게/줄리아니 시장 「마피아­매춘 전쟁」 이은 야심작/극장가 개·보수­광고탑 정비­섹스숍 제거 한창/길거리도 말끔히… “「뉴욕의 심장」 명성 되찾자” 올봄 브로드웨이 타임스 스퀘어 일대에는 「더 깨끗하게,더 밝게,더 안전하게(cleaner,brighter,safer)」라고 쓰인 분홍색 깃발들이 산뜻하게 내걸렸다. 이는 브로드웨이를 중심으로한 아메리카스(식스스)애버뉴,세븐스 애버뉴,에잇스 애버뉴와 남쪽으로 42스트리트에서 북쪽으로 53스트리트에까지 이르는 시어터 디스트릭트(극장지구)라고도 불리는 이 지역의 정화를 위해 맨해튼 보로(구청보다 조금 큰 행정단위)가 뉴욕시의 당면 목표들을 그대로 반영해 내세운 모토다. 이에따라 광고탑과 가로를 정비하고 극장 건물들을 손보는등 브로드웨이는 겨울동안의 먼지를 떨어내고 새단장에 어느때보다 바삐 움직이고 있다. ○건강한 도시 만들기 뉴욕시를 건강한 도시로 만들기 위해 마피아와의 전쟁,매춘과의 전쟁등을 선포하고 나선 루돌프 줄리아니시장의 시정화계획의첫출발지로 타임스 스퀘어가 선정된 것은 여러가지 상징적 의미가 크다. 현대판 「세계의 십자로」라고도 불리는 이 지역은 브로드웨이의 중심에 위치,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으로 가장 많은 세수를 올려주는 맨해튼의 심장이자 뉴욕의 심장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현재 이 지역 정화계획은 세가지 방향에서 추진되고 있다.첫째는 이 일대에 독버섯처럼 번져나가고 있는 섹스숍의 제거,둘째는 폐허화한 옛극장들의 보수및 재개관,셋째는 광고탑등 가로정비다. 특히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퇴락한채 방치돼 있는 42스트리트 구간의 재건이다.타임스 스퀘어의 남쪽 경계로 그 아래의 패션가와 극장가를 구분짓는 42스트리트는 원래 맨해튼을 동서로 가르는 수백개의 스트리트중 가장 중심이 되는 맨해튼의 상징적 거리였다. 동쪽끝 유엔본부에서 시작,크라이슬러빌딩,그랜드 센트럴역,뉴욕시립도서관,브라이언트공원,포트 오소리티 버스터미널,서쪽끝으로 허드슨강에 연해서는 맨해튼 일주 유람선인 서클라인 터미널에 이르기까지 명소들이즐비하고 중간중간에는 뉴암스테르담극장을 비롯한 각종 소극장들이 위치,맨해튼 최고의 번화가를 자랑했다. 80년5월에는 브로드웨이 사람들의 사랑과 애환을 주제로 한 뮤지컬 「42스트리트」가 공연돼 3천5백회 공연으로 80년대 최장기 뮤지컬로 기록될 정도로 뉴요커들에게 42스트리트의 향수는 짙다. 그러나 70년대부터 타임스 스퀘어에 연한 42스트리트가 퇴락하기 시작,오늘날 브로드웨이와 만나는 동서 한블록씩은 흉측하게 버려진 빈 건물들,그 사이사이로 핍쇼,라이브쇼,섹스비디오숍등이 자리잡고 있어 뉴욕 최대의 섹스산업 중심지가 됐다.지난해 1백77개로 집계된 뉴욕시 전체의 섹스숍중 42스트리트를 중심으로 한 타임스 스퀘어 일대에만 극장수보다 많은 43개가 몰려 있을 정도다.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뉴욕 타임스지 본사(43스트리트) 바로 코앞에도 7∼8m 도로 맞은편으로 3개의 대형 섹스숍이 성업중이다. ○섹스숍 모두 1백77개 이 섹스숍들이 84년에는 1백31개 였던 것이 10년동안 46개나 증가할 정도로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자 줄리아니시장은 지난해말 학교나 공공장소에서 1백50m이내 설립금지 및 이전촉진,신규허가 유보등을 골자로 한 규제안을 시의회에 제출,승인을 얻었으며 대대적인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타임스 스퀘어 번영회의 그레첸 딕스트라회장(여)은 『시당국의 적극적 개입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건물주들의 자발적인 협조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면서 임대료 현황을 설명했다.현재 이 지역 임대료는 일반사무실은 1평방피트(1평=35평방피트)당 40∼50달러 수준이지만 섹스숍의 경우는 90∼1백25달러까지로 두배 이상이 되기 때문에 건물주들에게는 매력있는 업종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한편 42스트리트의 폐허가 된 극장들에 대한 재개관 및 기존 극장들에 대한 개보수작업도 활발해지고 있다.월트 디즈니사가 브로드웨이 진출의 전초기지 마련을 위해 3천만달러의 예산을 들여 96년9월 재개관을 목표로 대대적인 개수작업을 벌이고 있는 뉴암스테르담극장은 이 지역 재개발의 상징적 모델이 되고 있다. 19 03년 뮤지컬극장으로 개관된 정교한 아르누보양식의대표적 건물인 이 극장은 한때 브로드웨이의 대표적 극장 구실을 해왔으나 재정난으로 영화상영관으로 바뀌었다가 82년부터는 아예 문을 닫아버려 흉물처럼 돼 있었다.디즈니사는 이 극장을 디즈니 전용극장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또한 뉴암스테르담극장 맞은편의 빅토리극장도 아동극장으로의 재개관을 목표로 개수작업에 들어갔으며 영국의 튜소(Tussaud)그룹도 타임스 스퀘어 1번지 건물에 런던에 있는 마담 튜소와 유사한 밀랍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이밖에 타임 워너사,MTV사등도 42스트리트의 폐관된 극장들을 매입,공연장 또는 오피스빌딩으로 재활용할 계획들을 세워놓고 있다. 42스트리트개발 프로젝트사의 레베카 로버트슨대표(여)는 『시와 주정부 당국에서도 극장 개보수에 대한 융자혜택등 적극적인 장려책을 세워놓고 있어 이 거리의 분위기는 전연 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앞으로 42스트리트가 새롭게 단장되고 새로운 거리문화가 마련되기 시작하면 섹스숍들은 자연히 떠나게 될 것』이라고 낙관적인 견해를 보였다. ○총기사고 전광판 없애 또한 이 지역에서는 특히 타임스 스퀘어 주변 건물들을 모두 뒤덮고 있다시피한 각종 광고탑들에 대한 정비작업도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다.색상이 화려해진 것은 물론 커다란 커피잔에서 실제로 항상 하얀 김이 솟아오르는 광고등 광고자체가 하나의 작품인 것들도 많다.그 가운데 타임스 스퀘어 어디서나 잘보이는 위치에 있어 눈에 가장 잘띄던 「총기사고 사망자 시계」(Death Clock)가 최근에 없어졌다. 전광판으로 돼 있어 미국의 총기수와 금년들어 오늘까지 총기사고 사망자 누계의 두가지 수치를 밤낮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지난해 미국전역에서 4만2백30명이 총기사고로 사망,교통사고 사망자수에 육박할 정도로 총기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시민들의 주의환기를 위해 시당국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에 이 시계를 설치해왔다. 그러나 최근 대대적인 정비작업을 하면서 관광객들에게 불안감을 조장하고 시민들에게도 혐오감을 준다는 이유로 철거했다는 설명이다.이 사망자 시계가 있던 자리에 뮤지컬 광고판이 들어섰다.「진정한 노력없이 사업에서 성공하는 법」.최근 리처드 로저스극장에서 개막된 61년도 리바이벌 작품이다.불로소득은 시공을 초월하는 인류공통의 바람인지 30여년의 시차에도 불구하고 이 뮤지컬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만원이다.
  • 베트남의 산업화지원(사설)

    도 무오이 베트남 공산당서기장이 11일 방한한다. 6박7일간의 그의 방한일정은 공장시찰,기업인접견등 철저한 「비즈니스출장」성격을 띠고 있다.따라서 그의 이번 방한은 한국과 베트남간 경제협력관계강화에 일대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그러나 무오이서기장은 베트남의 정치적 최고실력자란 점에서 정치적 의미도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한국과 베트남은 92년12월,17년만에 외교관계를 정상화함으로써 양국간의 「불행했던 과거」를 정치적으로 극복한 셈이긴 하지만 두나라 관계가 그것으로 다 청산된 것은 아닐 것이다.그런 점에서 무오이서기장의 방한이 두나라 관계발전에 경제적으로만이 아니라 정치·외교적으로도 공헌하게 되길 바란다. 두나라가 하루빨리 과거를 극복하고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야 할 필요성은 일찍부터 제기돼 왔다.무엇보다 두나라는 경제적으로 「상호 보완적」관계를 갖고 있다.베트남은 풍부한 자연자원과 양질의 저임노동력을 확보하고 있으며 우리는 베트남이 필요로 하는 자본과 기술,앞선 경영기법을 가지고있다.뿐만아니라 베트남은 상당한 석유매장량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무엇보다 베트남은 국가를 산업화하려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한국은 베트남과 같이 전쟁의 폐허에서 공업화를 이룩해낸 값진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그런 측면에서 두나라 사이에는 이념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협력의 여지가 얼마든지 있다.양국이 잘만하면 모범적인 「남남 협력」관계를 만들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두나라는 이런 상호 보완적 여건때문에 수교 2년여만에 이미 상당수준의 경제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 관계는 앞으로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무오이서기장의 방한을 환영하면서 그의 방한이 양국관계를 한단계 높여주는 결과가 되기를 기대한다.
  • 익산 미륵사 출토 기와인물상(한국인의 얼굴:23)

    ◎용의 눈에 도드라진 눈자위/볼·턱에 구름무늬… 이상향 상징 고대사회에서 종교는 정치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었다.그래서 정치는 때로 민중의 종교적 심성과 영합했다.또 종교는 통치이념으로도 작용하여 삼국시대 가람들은 국가경영 차원에서 창건되었다. 오늘날 폐허로 남은 전북 익산군 금마면 기양리 미륵사는 그러한 백제의 대가람이었다.지금은 절반쯤 허물어진 석탑 1기와 철당간이 남아 있을 뿐 백제 최대의 가람모습은 오간데가 없다.그러나 지난 1980년부터 정부가 문화재연구소를 통해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미륵사 본래의 실체에 어느정도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미륵사의 옛 명성을 뒷받침하는 유물도 6천여점이 쏟아져 나왔다. 이들 유물 가운데는 인물상기와가 3점이나 있다.그 하나가 인물상·수막새기와다.현재 부여문화재연구소가 소장한 이 기와는 머리와 귀가 달린 부분은 떨어져나갔다.하지만 눈,코,입과 귀 한쪽은 살아있는 터라 얼굴 전체윤곽은 알아볼만하다.인물상의 본래 기능인 벽사를 고려하면 무서워야할텐데 무서운 구석을찾아보기 힘들다.이는 경주(신라) 영묘사 출토 인물상 기와와 공통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미륵사 인물상 기와의 얼굴은 사실적 표현이라기보다는 추상적이다.눈의 생김새를 안상이라고 한다.이 인물상 기와 얼굴에 나타난 눈을 그 안상에 적용해 보면 용의 눈(용안)을 닮았다.눈 가장자리와 눈자위를 모두 도드라지게 새겼다.이를 그림의 형상(도상)을 빌려 설명하면 귀신을 쫓아버린다는 용목무늬(용목문)다.무늬를 통해 벽사기능을 부여하고 막상 무서움을 드러내지 않은 얼굴,거기에는 백제의 은유가 깃들어있는 것이다. 이 인물상에는 수염이 나 있다.수염 몇가닥을 표현하고 볼과 턱 사이에 구름무늬를 넣었다.구름은 불가에서 상서로운 사물(상운)의 의미를 지니지만,도가에서 더욱 중요시하는 사물의 하나다.도교적 관념의 구름은 안개와 더불어 이상향을 상징한다. 그러고 보면 수염이 난 기와의 인물상은 선계의 신선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절집에 웬 신선인가,하는 의문도 앞설 수 있으나 이 시기가 되면 백제불교는 도교와 습합했을 가능성도 없지않다.지난 1993년 12월 충남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된 사비시대 유물 금동용봉봉래산향로는 이를 뒷받침한다.이 향로에는 도교적 요소가 가득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인물상기와가 나온 미륵사는 백제 무왕(재위 AD600∼640년)이 창건한 가람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왕이 왕비와 함께 사자사 행차길에 용화산 아래 못가에 이르자 미륵삼존불이 나타났다고 한다.왕비의 간청을 받아들여 연못을 메우고 절을 지었는데 그 절이 미륵사라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미륵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미륵불은 미래에 중생들 곁으로 내려올 유토피아적 희망의 부처다.왕은 민중이 갈망하는 미륵하생 신앙에 영합,이 절을 지었는지 모른다.그리고 이상향을 추구하는 도교사상이 미륵신앙과 맞물려 돌아갔을 것이다.
  • 3월1일 철거 선포에 부쳐/김도현 문화체육부 차관(특별기고)

    ◎“옛 총독부청사여,사라짐으로 증언하라”/막혔던 역사,눌렸던 민족 정기 살아 웅비하리니… 구 조선총독부 청사여,마침내 너는 헐린다. 우리 겨레를 말살하기 위해 세워졌고 그 안에서 온갖 흉모와 폭압이 계획되고 집행되었던 너는,우리 겨레가 다시 빛을 찾은지 50년만에 독립의 함성이 지축을 울린 기념일에 퇴장을 선고 받고 해방의 날에 꼭대기를 걷어내는 것으로 시작하여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네가 자취를 감춘 그 자리에는 옛 궁궐이 모습을 다시 갖추고 우리는 참으로 오랜만에 광화문을 통해 겨레의 정궁이었던 근정전을 볼 수 있게 된다. 저 북한산 북악 그리고 경복궁을 거친 맑은 바람은 더는 흉물에 막히고 휘어지지 않고 세종로로 서울로 한반도로 시원스레 내려올 수 있게 된다. 구 총독부 청사여,너도 나름대로 크기와 쓸모와 내세울 만한 겉모양을 갖추었고 한동안 요긴하게 정부청사와 박물관으로 쓰이기도 했기에 그리고 너무나 중요한 목에 버티고 있었기에 서울의 모습으로 새겨져 있었지만 그래서 이제 임종에 즈음하여 마지막 사랑을 받음직도 하련만,유감스럽게도 너를 위해 울어줄 수 없구나.네가 미워서가 아니고 너의 값어치를 일부러 깎아내려서도 아니고,나아가 네속에서 이루어졌던 갖은 흉책과 그것을 꾸미고 저질렀던 그 사람들을 마냥 지금껏 증오해서도 아니다. 네가 서 있는 그 자리는 이나라의 서울이 비롯되는 얼굴이며 그래서 이 나라가 열리는 머리이며,네가 가로 막은 것은 정부와 백성,이 나라 역사의 흐름이었던 것이다.너는 실로 비대하고 견고한 몸집으로 이 나라 역사를 단절하고 민족을 절멸시키는 자리에서 역할을 했던 것이다.잘못 앉았던 자리를 비워주고 안 했어야 할 일을 영원히 맡아야 한다는 피할 수 없는 업보를 받는 것이다. 혹 너의 없어짐을 잘 모르고 가여워 하거나,너의 모습을 또 다른 저의를 가지고 간직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너를 짓고 광화문을 헐어 낼 때 그 어처구니 없는 일을 한 같은 나라 사람으로 동양의 아름다움을 아꼈던 이가 쓴 글의 일절을 다시 읽어 주고 싶다. 『가령 지금 조선이 발흥하고 일본이 쇠약하여 마침내 조선에 합병됨으로써궁성이 폐허가 되고 대신 그 자리에 서양식의 일본 총독부 건물이 세워지고 저 푸른 해자너머 멀리 보이던 희벽의 에도성(강호성)이 헐리는 광경을 상상해 주기 바란다』 (야나기 무네요시 1922년 잃어지려는 한 조선 건축을 위해서) 너를 그곳에 둔채 겨레의 치욕을 새기고 뒷날에 가르침을 두자는 소리도 없지 않으나,네가 가로막고 있는 그 자리가 이 나라의 5백년 정궁의 숨통인 것을 바로 그 궁앞에서 너의 등을 본다면 누구나 숨이 막히면서 깨달을 것이다.또 너를 보면서 아직도 용서할 수 없는 향수를 느낀다거나 끔찍한 앞날의 망상을 펴는 무리도 없지 않다고 한다. 그동안 나라 형편도 너를 없앨 만큼 넉넉지 못했다.극도의 나쁜 정치행위로 태어난 너 였기에 고도의 좋은 정치적 결단을 새 정부가 내린 것을 오히려 너는 반겨해야 할 것이다.이것은 역설이 아니다.네가 그 자리에서 많은 옳은 이들로부터 저주를 받고 악한 무리를 새로운 역사적 범죄로 유혹하기 보다는 깨끗하게 사라져서 막히고 가려졌던 아름다운 우리나라 서울 옛 정궁을 만천하에드러나게 하는 것은 오히려 복받을 일이다. 사라지는 식민지 총독부와 되살아나는 민족의 정궁은 세계와 역사 앞에 우렁차게 증언할 것이다.다른 나라와 겨레를 빼앗고 누르고 죽이는 일은 오래갈 수 없으며,이 모든 나쁜 일들이 쫓겨난 자리에 아름답고 밝고 시원한 옳고 좋은 일이 온다는 것은 꼭 반드시 이루어지는 역사의 철칙이다.
  • 새로운 정치를 향한 새출발/세계화 민자당/김영삼 총재 연설 전문

    ◎정치부패·타락공천·금권선거 영원히 추방/정치가 더이상 비난과 냉소의 대상돼선 안돼/세계화로 선진과 통일의 신한국 창조해 내야/1백년전의 「실패한 역사」 되풀이 말라 우리는 지금 우리 정치사에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습니다. 광복 반세기라는 민족사의 고비에서,선진과 통일의 신한국을 창조하는 주역으로 새롭게 출발하기 위해 여러분과 나는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이땅에 문민민주주의를 실현하고,변화와 개혁을 주도한 우리 당이 이제 「세계화」를 위한 「새로운 정치」의 기치를 높이 들었습니다. 오늘의 이 역사적인 전당대회가 있기까지 전국의 당원 동지 여러분이 보여주신 열과 성에 뜨거운 치하를 보냅니다. 나는 이 자리를 빌어 나를 민주자유당의 총재로 다시 선출해 주신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사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우리 당의 앞날에 애정어린 기대와 따뜻한 성원을 보내주시는 국민 여러분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21세기의 문턱에서 오늘의 세계는 근원적인 변혁을 하고 있습니다. 「정보화」,「세계화」의 물결속에서 새로운문명이 태동하고 있습니다. WTO체제 출범으로 무한경쟁의 시대가 우리 앞에 다가왔습니다. 세계를 상대로 겨루어 오직 일류만이 살아남는 무서운 현실이 닥쳐온 것 입니다. 세계속에서 경쟁하고 세계와 더불어 협력하는 것은 이미 역사의 큰 흐름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대응하여 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개척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입니다. 나라마다 개혁의 몸부림을 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우리는 1백년전 우리 겨레가 실패한 역사를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역사의 대세를 따라 우리도 뛰어야 합니다. 올해로 우리는 광복 50주년을 맞습니다. 이 뜻깊은 시점에서 우리는 지난 반세기를 돌아보고 새로운 반세기로 전진해야 합니다. 지난 50년간 우리는 가난의 유산과 전쟁의 폐허 위에서 오늘의 번영을 일구어 냈습니다. 분단의 제약으로 파란 많은 헌정사가 이어졌지만 끝내 문민민주주의를 꽃피웠습니다.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이룸으로써 나라의 기둥을 굳건히 세웠습니다. 이제는 「세계화」로 민족의 기나긴 소망을 실현할 때 입니다. 선진과 통일의 신한국,「21세기 일류국가」를 창조하고 세계의 중심으로 당당히 나아갈 때 입니다. 지난 2년간 우리는 「변화와 개혁」을 통해 세계화의 든든한 바탕을 마련했습니다. 문민민주주의가 가져온 정치적 안정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에는 민주주의의 활력과 창의가 넘치고 있습니다. 날로 커가는 우리의 경제력 또한 세계 10위권 수준으로 올라섰습니다. 1백년전과는 달리 우리는 자신과 용기를 가지고 세계로 나아가고 있는 것 입니다. ▷새로운 정치◁ 지금 나라의 모든 부문이 세계화를 위한 개혁으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정부를 비롯한 공공부문 전체가 혁명적인 수술을 단행하고 있습니다. 기업도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정치가 달라져야 합니다. 그동안 정당과 정치인에게 쏟아졌던 국민들의 따가운 비판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의 정치가 더 이상 국민의 비난과 냉소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정치인도 국제경쟁을 하는 시대입니다. 「정치의 세계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우리의 정치가 세계수준으로 뛰어오르고 세계화를 앞서 이끄는 주역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 「새로운 정치」가 펼쳐져야 합니다. 「새로운 정치」는 「깨끗한 정치」입니다. 정치부패,타락공천,금권선거라는 말은 이제 우리 곁에서 영원히 사라져야 합니다. 지난 2년간 공직자 재산공개를 시작으로 「깨끗한 정치」를 위한 개혁이 추진되어 왔습니다. 정당법,정치자금법,통합선거법 등 정치개혁에 필요한 입법조치들도 단행되었습니다. 이제는 온 국민이 열망하는 도덕의 정치,청렴의 정치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합니다. 다가오는 지방선거를 어떠한 대가와 희생이 있더라도 깨끗하고 공명한 선거로 치루어 선거혁명을 반드시 이룩할 것 입니다. 「새로운 정치」는 국민을 하나로 모으는 정치입니다. 국민을 지역과 계층으로,세대와 이념으로 나누어 반목케 하는 것은 낡은 정치입니다. 특히 지역을 볼모로 삼아 국민을 분열케하는 정치는 결코 되풀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도,통일염원을 실현하기 위해서도 국민이 하나되게 하는 크고멋진 정치가 나올 때 입니다. 「새로운 정치」는 대의민주주의의 원칙 아래 국리민복에 헌신하는 정치입니다. 민주적 절차를 존중하며 오직 대화와 타협으로 국민을 대변해야 합니다. 정치의 본령은 권력의 추구가 아니라 나라와 국민에 봉사함에 있습니다. 불필요한 정쟁으로 민생을 소홀히 하고 국익을 저버리는 무책임한 정치는 사라져야 합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대안을 제시하고 정책으로 겨루는 정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새로운 정치」는 미래지향의 정치입니다. 과거에 매달리어 분열하고 소모할 것이 아니라 화합속에 미래로 함께 전진해야 합니다. 그것이 경쟁력있는 정치입니다. 역사의 흐름을 미리 내다보고 나라와 민족의 앞날을 앞장서 개척해 나가는 비전과 통찰력있는 정치가 펼쳐져야 할 때입니다. 이제 「새로운 정치」는 역사의 소명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정치」를 선도해야 할 사명은 우리 당에 있습니다. ▷당의 세계화◁ 우리당은 이제 「세계화」의 새로운 과업을 앞에 놓고 있습니다. 「당의 세계화」로 「새로운 정치」를 선도해야 합니다. 세계 속에서 선진국들의 정당과 당당히 겨루며 새로운 시대를 주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 당은 변화와 개혁의 산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겉만이 아니라 속까지도 철저하게 달라져야 합니다. 당헌과 정강정책을 새로이 하고 기구와 진용을 개편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자세와 각오,인식과 발상… 그 모든 것에 일대 전환을 이룹시다. 이와 아울러 우리 당은 안정의 구심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가 세계로 미래로 힘차게 나아가는데 있어서는 나라의 안정이 튼튼하게 뒷받침해 주어야 합니다. 세계화는 개혁과 안정의 두 바퀴로 전진하는 수레와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개혁과 안정을 함께 이끌 우리 당은 무엇보다 진정한 「국민정당」으로 뿌리내려야 합니다. 정당은 정치인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진실로 국민의 동반자가 되어,국민과 고락을 같이하는 정당이 되어야 합니다. 국민의 품 속에서 커 나가는 정당이 되어야 합니다.국민의 꿈과 희망은 물론 고통과 좌절까지도 함께하는 정당이 됩시다.둘째로,「민주정당」의 수범을 보여야 합니다.당내 민주주의를 확고히 정착시키는 것은 우리 당의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입니다. 우리는 모든 공직후보와 주요 당직의 자유경선을 목표로 하여,경선제도를 확대해 나갈 것입니다.아울러 당 운영에 참여의 폭을 크게 넓혀 당에 활력이 넘치게 할 것입니다.나아가,당원 전체가 당을 이끄는 시대를 열어 우리당에 신바람이 일게 합시다. 셋째로,「정책정당」의 면모를 더욱 드높여야 합니다.우리 당은 국민에게 보다 나은 정책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생산적 역할을 다할 것입니다. 특히 우리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중산층의 안정을 도모하고 중산층을 확충하는 정책개발에 진력할 것입니다.그리하여 우리 당이 국민에게 봉사하고 나라를 키우는데 있어 세계에서 으뜸가는 정당이 되게 합시다. 넷째로,「차세대 정당」으로 변모해야 합니다.「세계화」는 원대한 비전과 탁월한 역량을 갖춘 새로운 인물을 필요로 합니다.우리 당은 차세대 지도자를 양성하는 미래지향적 정당으로 발전되어야 합니다.우리는 각계의 전문가들과 21세기의 주역들에게 문호를 확짝 개방할 것입니다.우리 당을 유능하고 참신한 차세대 지도자들이 마음껏 성장할 수 있는 요람으로 만듭시다. 다섯째로,「통일주도 정당」이 되어야 합니다.광복 50주년이 되는 올해는 분단 5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민족사의 뜻깊은 시점을 맞아 이제 남과 북은 반세기에 걸쳐 반목과 대결로 얼룩진 분단시대를 청산해야 합니다.화해와 협력으로 평화통일의 새 시대를 열어나가야 합니다.우리 당은 이제 겨레의 소망인 민족통일을 주도하는 중추세력으로 그 소명을 다해야 합니다.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통일을 앞장서서 대비해 나가는 선도세력이 되어야 합니다.우리 모두 분단 반세기가 되는 올해를 「통일시대의 원년」으로 만들어 나갑시다. ▷희망의 정치◁ 우리는 집권당으로서 헌정사상 처음으로 스스로 변화하고 개혁하는 용단을 내렸습니다.오늘 우리가 채택한 세계화선언은 그러한 우리 당의 개혁의지를 담은 것입니다.우리는 「희망의 정치」,「가능성의 정치」를 향해 새출발을 하고 있습니다.우리 앞에는만만치 않은 도전도 있을 것입니다.역경이 우리의 의지를 시험할 것입니다.그러나 우리가 용기와 자신감을 가질 때,그 어떤 시련도 우리를 굴복시키지 못할 것입니다.우리가 굳건한 신념과 동지애로 뭉칠 때,그 어떤 고난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 시대를 함께 열었듯이 이 순간부터 세계화를 위해 우리 모두 하나가 됩시다.나는 동지 여러분을 믿습니다.우리 당에 한없는 신뢰를 보냅니다.이제,우리의 전도는 양양합니다.우리에게는 국민의 사랑과 신뢰가 있습니다. 높은 도덕성과 강한 실천력이 있습니다.국민의 여망과 역사의 소망 앞에 충실한 우리가 「세로운 정치」를 실현할 것입니다.우리에게 남은 것은 전진이요,우리가 얻을 것은 오직 승리 뿐입니다.이미 출정을 알리는 우렁찬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민족사의 제단에 우리 모두 피와 땀과 눈물을 기꺼이 바칩시다. 총재인 나부터 역사와 국민이 부여한 소임을 다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칠 것입니다.우리,온 국민과 함께 저 넓은 세계로,저 밝은 미래로 힘차게 달려 나갑시다.이 땅에 평화와 번영,선진과 통일의 신천지를 열어 놓읍시다. 「21세기 일류국가」신한국을 기어이 창조해 냅시다.그리하여 우리 당이 「민족사에 신기원을 연 위대한 정당」으로 길이 빛나게 합시다.
  • 불교거점도시 쿠차(서역 문화기행:9)

    ◎시원1백여채는 흙담만 남아/3세기 서역정치의 중심… 7백년간 영화/쿠차강 벼랑에 석굴 여러개 산재… 베제크리크 천불동 흡사 카슈가르에서 쿠차까지 사막 7백50㎞.새벽부터 오밤중까지 장장 15시간을 덜커덩거려도 지루하지 않았던 것은 그만한 까닭이 있었다. 천산남로가 천산산맥과 타클라마칸사막이란 장관들을 좌우에 놓고 그를 줄곧 볼 수 있는 데다 서역 역사의 중심을 이제사 찾아가는 길이어서 였다. 쿠차의 옛 이름으로 구자 굴지 고차등이 있지만 모두 쿠차라는 위구르말을 다르게 표기했을 뿐이다.서한때만해도 겨우 36국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는데 동한때 반초(반초·33∼103)가 서역을 확장하던 기원 91년엔 「서역도호부」를 두어 서역정치의 중심으로 부상,당나라때 「안서도호부」로 지속되었다. 쿠차는 기원3세기부터 11세기까지 서역에서 불교의 거점으로 가장 그 꽃을 피웠던 곳으로 스바시(소파십)에 두군데의 자오후리사원외에도 키질(극자이)석굴을 비롯하여 쿠무토라(고목토랍),키질가하등 세군데의 천불동이 있다.무엇보다 당나라의고승 현장이 인도에서 귀국할 때 여기서 두달을 머물면서 쿠차의 융성한 불교와 음악을 그의 「대당서역기」에 대서특필한 바 있었다. ○혜초,한달 걸려 통과 필자가 쿠차를 특별히 동경했던 연유는 따로 있었다.신라의 혜초가 인도로부터 장안으로 돌아갈 때,바로 카슈가르에서 쿠차로 뚫린 이 코스를 장장 한달이나 걸어서 당시 정치·군사의 중심지였던 쿠차를 그의 「왕오천축국전」에 기록하였고,고구려 출신의 명장인 고선지(?∼755)는 당 천보(742∼755)연간에 서역방위 총사령격인 「안서도호」를 지내며 천하를 호령했었기 때문이다. 그뿐이랴! 서역의 악기,특히 쿠차를 대표하는 갈고는 꼭 우리나라의 장구를 닮았기에 똑같은 흥을 느꼈고,또 최근 필자는 돈황의 막고굴보다 한세기 앞서 착굴되었던 키질천불동의 벽화를 정리하여 일련번호를 엮었던(1946∼47)최초의 키질 전문가가 우리의 재중동포 한낙연(?∼1947)씨임을 발견했기에 그렇다. 쿠차의 가을은 상쾌했었다.길에는 온통 코스모스였고 호마와 노새가 끄는 마차가 한가로웠다.멀리 해발 2천m가넘을 법한 뻘건 암벽의 촐타크(확이달격)산,그리고 보다 멀리 만년설의 하얀 천산산맥이 둘렀건만 시가는 넓고 사람들도 훤칠했다. 옛날 「양서」의 「제이전」에 쿠차의 외성은 장안성에 견줄만하고 가옥은 장려하다고 기록되었다.그 외성을 찾으려 필자는 맨 처음 쿠차의 옛 성곽을 찾았다. 쿠차의 간선도로 서쪽에는 인민공원,그 건너편 7m 높이에 5m 폭의 토성,그 허무러진 폐허가 보였다.그 밑으로 작은 개울,개울옆으로 쿠차 고성을 알리는 안내판이 서 있었다.그 토성은 40m 간격으로 넓은 장벽을 세운 채 옛날의 궁궐을 휘감았는데 자그마치 7∼8㎞에 달한다고 했다.그 안에서 출토된 기와나 벽돌의 무늬와 크기는 장안 대명궁에서 발굴된 그것들과 비슷했다는 르포를 본 일이 있었다. ○40m간격으로 토성 이곳이 한때 쿠차국 국왕의 궁궐임은 물론 당나라때 「안서도호부」의 주둔지였으니 1천2백50년전 우리 고선지장군이 호령하던 곳에 필자가 서 있는 셈이었다. 「산 깊숙한 곳에,하나의 강을 사이에 두고 2개의 가람이 있었다.둘 모두 자오후리라 이름했지만 위치에 따라 동·서로 불렸다.…서문밖 좌우에는 높이 90여자의 불상이 서 있고,절은 백여채요 승려가 5천여명…사람들은 공덕을 다투어 쌓고,…불상의 장엄은 사람의 공력을 뛰어넘었네라.…」 위의 글은 현장의 「대당서역기」에서 자오후리사원에 관한 기록을 발췌한 것이다.비록 자오후리의 확실한 명칭과 위치를 밝힌 바 없지만 그 내용으로 보아 오늘의 스바시(소파십)에 있는 자오후리사원을 지칭함에는 의심할 바가 없다. 필자는 쿠차 고성에서 북쪽으로 23㎞ 지점에 있는 자오후리를 찾았다.쿠차 시가를 벗어나 일로 정북을 향하여 지프를 몰았다.쿠차강의 긴 다리를 건너자 촐타크산이 화염산처럼 우뚝 서 있었다.화염산의 머리가 타원형으로 다소곳한데 비해서 촐타크산은 들쭉날쭉한 적갈색 바위.위구르말로 「촐」이 「황량」을 뜻한다는 데 실상은 더 했다.더구나 촐타크의 아래로 뿌연 산등성이와 모랫벌,그 가운데로 쿠차강,강바닥의 하상조차 뿌옇게 말라 비틀어진 채 였으나 붉은 산등성이는 몹시 환상적이었다. 현장의 기록대로 「산깊숙한 곳」이요,「하나의 강을 사이에 두고 두개의 가람이 있었 지만」,높이 90여자의 불상은 물론 백여채의 사원 건물들은 모두 풍화중인 흙담들로 침묵만 흘렀다. 필자는 서쪽 언덕에 있는 자오후리사원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산기슭을 오르다가 문득 건너 동쪽 사원의 최북단에 절반쯤 무너진 탑신을 보았다.그쪽으로 건너가기까지 족히 반시간은 걸렸다. 그 탑의 중턱에 올라 동서 양쪽의 자오후리사원을 굽어보는 감격은 무너질듯한 그것이었다.자오후리 사원의 강역이 7천㎦.그러니까 투루판에서 보았던 교하 고성이나 고창 고성보다 넓었다.교하나 고창이 다목적용 성곽이었음에 비추어 자오후리의 성곽은 오직 사원용이었으며 그 범위은 서역 최대의 것이었다. 비록 그 연대를 확정할 순 없지만 1978년5월에 출토된 위진·남북조와 당대의 철·동·도기와 벽화·전폐·간찰등으로 미루어 멀리는 위진시대요,늦게는 당말연대까지 적어도 7백년의 영화를 누렸던 불교 사원도시였음이 틀림 없다. 서역의 역사가 위대한 것은 인류가 황량하고 척박한 자연과 고투하는 데 있을 뿐 아니라 생명을 잃어버린 흙과 모래를 빚어 인류의 문화를 창조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마침 석양이었다.그 사양속에 자오후리 사원 유적지는 자욱한 언덕들.동쪽 사원은 산의 비탈따라 전개되었고 서쪽 사원은 사원의 본당이나 강원·승방등이 밀집된 모양이다.그래도 높이 10m의 담들은 동서에 널려 있다.서쪽의 본당으로 보이는 입구쪽 토담은 봉화대에 상당할만큼 중후했고,그 둘레도 어림잡아 3백m는 넘을만했다. ○흙·모래로 문화창조 안내자가 필자를 서쪽 사원 북단으로 인도했다.거기서 놀란 것은 쿠차강을 굽어보는 벼랑에 여러개의 석굴이 뚫렸는데 그 위치나 구조가 투루판의 베제크리크천불등을 방불케한 때문이었다.다만 규모가 작을 뿐이었다.석굴에서 내려오는데 길 바닥에 방사선 모양의 파란 덩굴에 수박잎모양의 큼직한 잎새들이 싱싱하게 자라서 적어도 한평쯤의 땅을 휘덮고 있었다.들수박이라했다.서역의 사막만을 방황하는 나그네에겐 또 한가지 기쁨이 아닐 수 없었다. 쿠차로 돌아오는 도중,필자는 「키질가하토탑」을 굳이 찾기로 했다.쿠차 북쪽 12㎞지점에 있는 이곳을 찾기위해 쿠차에서 자오후리사원 중간쯤 도로에서 서쪽으로 돌아 작은 구릉을 한참동안 달렸다.그 왼쪽엔 염수계곡으로 수만년전 지구의 조륙운동으로 말미암아 벽해가 상전된 지질 변화로 만들어 진 곳이다. 염수계곡위로 우뚝 솟은 15m의 토탑.사막에서 자라는 풀인 소소초같은 것을 배합한 판축법으로 세운 흙탑인데 적어도 2천년을 견딘 이 탑의 툭불거져나온 위치와 상단의 망루적인 구조로 보아 봉화대로 단정하기에 어렵지 않았다. 키질가하토탑에서 동쪽을 조망하면 불과 2㎞ 전방에 송송 구멍이 뚫린 벌집처럼 또 하나의 천불동이 보였다.이름하여 「키질가하천불동」.거기도 46개나 되는 석굴이 모여 촌락을 이루었는데 대체로 당대에 개착된 것으로 키질천불동보다 늦은 연대라했다. 서쪽으로 40㎞ 지점엔 또 하나의 천불동이 있다.이름하여「쿠무토라천불동」으로 그 휘하에 72개의 석굴을 거느리고 있다한다.필자는 키질가하토탑아래 우두커니 서서 성큼 다가오는 황혼에 쫓겨 지프에올랐다.어디를 보아도 천불동,누가 버린 땅이라하랴! 『선생! 제가 어릴적만해도 쿠차의 왕자가 어디쯤 살고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위구르족 기사의 말이었다.정녕 그들 나름의 왕국이 청말까지도 실재했을지 모른다.
  • 위기탈출 능력/성기호 성결교 신학대학 총장(굄돌)

    갑자기 닭이 먹이를 안먹고,쥐떼가 몰려나오고,가축들이 안정을 잃고 소란스러워지는 모습을 보고 위기가 닥쳐오는 것을 예보하는 기술이 중국에서 발달했다고 한다.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미처 깨닫기 전에 미물의 짐승들이 다가오는 자연의 재난,지진을 감지하는 것이다.사람의 위기탈출 능력이 짐승들만 못하다는 이야기다. 각종의 계측 기술에 세계 제일이라고 자랑하는 일본,환태평양 지진대에 속해 있기 때문에 언제 지진이 올지 모르는 상태에서 전문가들의 감지활동이 쉬지 않았고 전국민을 어려서부터 교육함은 물론 만일의 사태에 잘 대비해온 일본이지만 관동대지진 이후 50년만의 대참사라는 큰 지진이 예고도 없이 발생했다.새벽녘에 고요히 잠든 고베시를 강타한 지진은 수많은 인명피해와 막대한 재산의 손실을 가져왔다.지진 전문가들과 지질학자들이 지적하는 바는 지표 7백㎞이하에까지 이르는 지구 단층의 이동을 미리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지진의 예측불가능성을 말하고 있다. 성경은 장차 지구의 3분의 1이 지진으로 폐허가 되고 인구의 3분의 1이 목숨을 잃을 것을 예고하고 있다.지진을 대비하거나 여기에서 벗어날 준비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언제 지진을 만나도 당황하거나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아가는 내면적인 준비다.죽는 것은 사람에게 공통이지만 죽음 이후에 있을 심판을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엄청난 자연재해 앞에서 무력한 인간의 실존을 한탄하거나 다가오는 위기에서 벗어날 길 없음을 걱정하기에 앞서 진정한 위기탈출의 방법을 모색해야 하겠다.그것은 심판주이신 하느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설 수 있는 양심과 신앙의 준비다.지금이라도 흐트러진 삶의 자세를 바로잡고 다가오는 위기를 직면하는 지혜와 용기를 갖추어야 하겠다.
  • 「폐허」속 교민 “추위막을 속옷 좀…”

    ◎재일민단의 지진피해 동포 구호 현장/청년단원 60여명 트럭 7대 동원/식사·의류 나눠주며 동족애 교감 21일 새벽 6시.고베(신호)의 새벽은 지진과 죽음의 공포로 여전히 무거운 분위기속에 싸여있었다.민단건물 5층강당.구호활동을 하는 민단청년단원들이 새우잠에서 깼다.부시시한 눈을 비비며 물도 나오지 않는 세면장으로 간 그들은 구호물자로 들어온 물이 아까워 서로 눈치를 보며 세수를 했다. 10대에서 30대까지의 「효고(병고)현 대지진피해자구원 한인청년회」 정예요원 60여명은 라면 한개씩을 급히 먹고 민단건물 현관에 집합했다.총사령탑 곽경칙(31·자영업·고베시)씨로 부터 이날 할 일들을 전달받기 위해서였다.봉사자 대부분이 그렇지만 곽씨는 집이 전소된 피해자이면서도 봉사에 뛰어든 사람이다.부모와 아내를 오카야마의 친척집에 피신시켜 놓고…. 각지에서 도착한 구호물자를 7대의 차량에 모두 나눠 실은 시각이 상오 8시30분쯤.지진피해가 가장 심한 고베시 나가타구의 민단 서부지부로 가는 팀은 모두 32명.이들은 4t·2t트럭 등 4대에 모두 분승했다. 행인을 대상으로 취사를 지원하는 반원10명은 시찰반 차량을 따라 미리 출발했다.서부지부로 향하는 동안 팀장인 이정무씨는 확성기로 『필요한 물품이 있습니다.언제든지 오십시오』라고 외쳐댔다.한국인 집중피해지역인 스가하라(관원)시장앞에 차량이 멈췄다.사람들이 많이 몰려있었고 대형 포클레인·기중기 몇대가 와있었다. 무너져내린 건물을 철거하며 깔려있는 시신을 찾고있다는 것이었다. 상황파악반장 김유씨와 사진반 박달호씨가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한국인이 아니라는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다시 차에 올랐다.목적지까지 몇번을 이런식이었다. 도중에 「재일동포구호단」이란 차량옆의 플래카드를 본 교포들이 차를 세웠다.그러나 구호차량을 세운 쪽은 일본인이 많았다.하오 2시쯤 하즈이케 소학교앞.한 30대 교포 아주머니가 차를 세웠다.『먹을 것은 많은데 혹시 속옷이 없느냐』고 묻자 물품배급반의 한옥미씨가 필요한 수량만큼 내줬다. 목적지까지 평소 40­50분거리가 6시간 이상 걸렸다.골목골목을 누볐고 대부분의 국도가 도로사정과 붐비는 차량들로 마비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서부지부에 도착한 시간이 하오 4시 20분쯤.일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지부에 들어온 「물품요청신고」에 따라 배급반이 수용소를 찾아 나갔다.그러는 동안 서부지부 앞에서는 행인을 대상으로 취사반원들이 라면과 주먹밥을 내놓았다.구호를 받은 사람들이 봉사원들의 손을 꽉 붙잡고 놓을 생각을 하지않았다.이들의 하루 피곤이 싹 가시는 순간이었다.그러나 폐허화된 비극의 현장은 처참했다. ▷교민 사망자 추가명단◁ ◇고베(신호)시 △임조길(69) △임스기에(51) △김석수(72) △임광휘(68) △남태칙(64) △김로토메(81) △윤등용 △이태원
  • 도심 빌딩·아파트 순식간에 “와르르”/가상 시나리오/서울 대지진

    ◎낮12시 진도6/한강교량·청계고가 잇따라 붕괴/제방 무너져 산강범람 침수사태/하오1시 진도7/지하철 폭삭… 도시가스 연쇄폭발/갈라진 지반틈 사람·한량들 매몰/밤되자 암흑속 추위·공포에 떨어 우리 서울은 지진에 어느 정도 안전한가.많은 전문가들은 이번 일본 간사이(관서)지방을 강타한 대지진이 서울에서 발생했을 경우,지금까지 우리가 겪었던 어떠한 재난과도 비교할 수 없는 처절한 결과를 상상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이들의 이같은 주장은 우리의 대형 건축구조물 거의 모두가 내진설계가 제대로 돼있지 않다는데 근거하고 있다.일본 간사이지방을 강타한 대지진을 계기로 우리도 대비한다는 차원에서 서울에서 대지진이 발생했을 것을 가상한 시나리오를 엮어본다.이 시나리오는 한양대 김소구 교수,한국자원연구소 전명순 박사 등 전문가들과 김치운 상수도사업본부장,최재범 도시계획국장,박영호 민방위국장 등 서울시 관계자들의 의견을 참고로 구성했다.이는 어디까지나 가정된 상황이다. ○○년 ○월○○일 낮 12시.강진이 불행하게도 평화로운 우리의 서울을 강타했다.진앙지가 경기도 광주로 추정되는 진도 6의 수직형 강진이 한강변을 따라 엄습한데 이어 1시간의 여진끝에 진도 7의 가공할 파괴력의 대지진이 도심쪽을 맹타한 것이다. 경부선 새마을 열차가 방금 통과한 한강철교가 폭음과 함께 엿가락처럼 휘어진채 중간중간이 끊어지면서 시퍼런 한강 물속으로 잠겼다.한강철교에 이웃한 동작대교와 마포대교 등 강남·북을 잇는 대형 교량들 역시 잇따라 붕괴되면서 성난 물속으로 빠져들었다. ○사망·실종 40만명 이 순간 온 시민이 온갖 정성을 들여 모처럼 잘 가꾸어 놓은 한강시민공원 제방 곳곳은 힘없이 무너졌고 모래와 자갈을 동반한 강물은 물기둥을 이루며 무너진 둑 사이로 쏟아져 내려 한강변 주택가 곳곳은 순식간에 물바다로 변했다. 같은 시각 도심 한복판.동서를 연결하는 거대한 청계고가도로 역시 기둥이 뿌리째 뽑히면서 차도 상판이 순식간에 청계천 바닥으로 떨어졌다.교각과 상판은 10여m 아래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면서 이웃한 크고 작은 건물과 질주하는 차량들을 무차별로 덮쳐 생지옥을 방불케 했다. 잠시후인 하오 1시쯤.이보다 더 강력한 진도 7의 대지진이 또다시 도심 한복판을 때렸다.핵폭탄과 같은 위력의 두번째 지진은 고귀한 인명은 물론 주위의 크고 작은 빌딩·터널·교량·아파트 등을 닥치는대로 파괴했다.대통령에 의해 비상사태가 선포되어 인명구조를 위해 민방위·예비군은 물론 군병력이 동원됐다. 이 시각 서울시청 지하 상황실.시장이 대단히 심각한 표정으로 민방위국 교통국 하수국 소방본부 등 관련실·국으로부터 피해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는다. 『모든 한강교량의 통행금지.송수관로 파괴.도시구조물의 절반 파괴.단전·단수·통신 불통.가스공급 중단.화재발생 다수.지하철 운행중단 등…』 서울시의 피해상황 집계는 실로 엄청났다.무엇보다 인명피해가 가장 컸다.사망 10여만명,실종 30여만명,부상자 50여만명,이재민 1백여만명 등으로 우리가 일찍이 겪지 못했던 숫자다.이뿐만 아니다.한강교량 20개 1만8천9백86m 가운데 절반이 넘는 13개가 끊어지거나 파손됐다.터널 16곳 9천5백14m,고가차도 57곳2만2천여m,지하철 총연장 2백16·5㎞,아파트 50여만가구 가운데 절반가량이 피해를 입었다. ○곳곳 화염 휩싸여 이 시간 여의도 63빌딩.전망대를 향해 숨가쁘게 올가가던 엘리베이터가 모두 가장 가까운 층에 멈췄다.진도 4이상의 지진이 발생하면 자동으로 멈추도록 설계됐기 때문이다.엘리베이터 창문 너머로 강남·북에 우뚝 선 거의 모든 고층 아파트가 무너지고 도로 곳곳은 힘없이 갈라지고 내려앉았다.방금전에 폭삭 주저앉은 청계천 고가도로가 복개천이 갈라지면서 개천 아래로 추락했다.그뒤를 이어 승용차·버스 등 각종 차량들이 휴지처럼 찌그러진채 깊게 팬 웅덩이속으로 빠졌고 생지옥에서 뛰쳐나오는 사람들로 아수라장이다. 종로와 을지로 일대를 지나는 지하철 1·2호선과 이웃 빌딩들도 중심을 잃고 흔들리다가 그대로 폭삭 내려앉았다.이 일대의 고층빌딩은 무너져 내리면서 이웃한 저층 건물을 덮쳐 곳곳에서 신음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도시가스의 연쇄 폭발로 도심지 곳곳은 시뻘건 불기둥이 하늘로 치솟고 그불은 통신구의 광케이불로옮겨붙어 주민들의 기본생활인 가스와 통신은 완전히 끊겼다.점심을 먹고 회사로 들어가던 직장인들,쇼핑을 나온 시민들은 진동이 없는 곳으로 파도처럼 움직이다 갈라진 땅속으로 빨려들어가거나 붕괴되는 콘크리트 더미에 파묻혔다. ○콘크리트속 아우성 도심지 곳곳의 빌딩 역시 화염에 휩싸였다.소방차가 사이렌을 울리면서 달려가지만 워낙 불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불길을 잡는데 역부족이었다. 밤이 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강남과 강북을 연결해주는 지하보급품기지가 없는데다 모든 육로의 수송수단이 끊겨 서울은 생필품공급이 중단됐다.전기와 가스공급마저 끊긴 탓으로 시민들은 추위와 암흑속에 떨었다. 순식간에 우리의 서울은 폐허로 변했다.그러나 그 다음날 여명과 함께 생필품 보급이 시작되고 구조 및 복구작업이 본격화됐다. ◎“모든 건출물 내진설계 해야”/암반층 넓어 지진 일어나면 저층가옥 더 위험/지진공학 교수들 법규강화 요구 우리나라도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므로 내진과 관련한 국내법규를 강화해야 한다는주장이 제기됐다. 20일 대한건축학회 소속 지진공학교수들은 지난 88년 제정된 건축법시행령과 그 규칙은 6층이상,또는 연면적 10만㎡이상의 건축물만 내진설계대상으로 정했으나 실제 지진이 발생하면 고층건물보다 저층가옥이 위험하다며 내진설계대상을 모든 지상건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학기술원 이동근 교수는 『우리나라처럼 암반이 많은 지질에서는 저층건물의 위험도가 고층건물보다 훨씬 높다』고 말했다.그는 『89년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서 지진이 났을 때 고층건물은 피해가 없었으나 저층구조물은 대부분 파괴됐고 지난해 일본 동북지방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도 주로 저층구조물의 피해가 컸다』고 설명했다. 정란 단국대교수도 『지난 85년 멕시코시티에 지진이 났을 때 미국인이 내진설계기준에 맞춰 지은 고층호텔과 미국대사관 등은 전혀 파괴되지 않았으나 그렇지 않은 건축물은 완전히 무너졌다』며 『지진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는 국내 저층건물도 위험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지난 88년 법을 처음 만들 때는 건설업체의 부담을 이유로 내진설계의 적용대상을 제한했지만 이제는 구조물의 안전도를 높이기 위해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재고해야할 우리의 건물방재계획/최재필 명지대교수·건축학(특별기고)

    ◎비상통로 직선화 등 대비책 시급 성수대교 붕괴와 아현동 가스폭발 등의 사고로 온 나라가 떠들썩 하더니,이번에는 이웃나라 일본에서 강도 7.2의 지진이 발생해서 고베라는 항구도시 하나가 거의 폐허로 변해버렸다.눈부신 과학기술의 발달로 1백년전에 비해 엄청나게 살기 좋아진 우리네 삶,이제 곧 다가올 눈부신 21세기의 꿈을 비웃기라도 하듯,텔레비전 화면에는 끊어진 다리,무너진 건물의 모습이 쉴틈없이 비춰진다.이것들이 아프리카의 어느 미개발국가도 아닌 소위 선진국이라는 일본이나 동아시아의 신흥공업국 한국의 모습이다. 우리나라의 사고가 인재였던데 비해 일본의 사건은 사람의 힘으로는 막을 수가 없었던 천재이니 비슷한 시기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재앙을 입었더라도 일본사람들이 그래도 좀덜 창피할 것이다.그런데 피해는 일본쪽이 몇백배 더 크게 나타났다.그래서 사람보다는 하늘이 더 무섭다던가. 건축을 전공으로하는 사람으로서 폭삭 주저앉은 건물,불타는 거리를 보는 필자의 심정은 보통 사람보다 더 착잡하다.인간이 온갖 지혜를다 동원해 땅위에 이룩해 놓은 구조물들이 자연의 힘앞에서 한줌의 재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건축은 한마디로 중력과 땅의 합작품이다.건물은 그 자체의 무게(중력)로 인해 계속 밑으로(지구 중심으로)내려가려 하는데 그래도 땅이 굳건하게 받쳐준다.중력과 땅이 절묘한 평형을 이루기 때문에 건물은 원래 만들어진 모양대로,원래 위치에서 아무런 동요없이 서 있을 수가 있는 것이다.이 점 달동네 판잣집이건 여의도 63빌딩이건 마찬가지다. 우리는 땅이란 으레 나와 내 집을 든든히 받쳐주는 존재로 쉽게 믿어버리고,전혀 불안해 하지 않는다.하늘이 무너져 내리지 않듯,땅도 발 밑으로 꺼져버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그런데 지진이 일어나면 이러한 믿음이 송두리째 뒤집혀 버린다.그토록 딱딱하던 땅이 갑자기 물렁물렁해져 버린다.그러니 건물이 주저앉고,다리나 철길이 흐느적거리며 무너진다. 사람은 땅의 굳건함과 같은 기본 전제가 깨어지고 사방의 벽들이,주위의 가구들이 저마다 멋대로 춤을 추기 시작하면 매우 당황하게 된다.이때 평소에는 아주침착하던 사람들 조차도 제정신을 잃고 우왕좌왕하게 된다.이런 현상을 「패닉」이라고 하는데,이렇게 되면 의식이나 이성이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기 보다는 비이성적 행동이 앞서게 된다. 실제로 땅이 흔들리는등 지진이 지속되는 시간은 길어야 1∼2분 정도이다.물론 이 기간동안에는 아무일도 할수가 없다.단지 최대한 빨리 가스밸브를 잠그고 식탁이나 책상밑에 들어가 떨어져 내리는 천장이나 가재도구로부터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것이 상책이다. 일본이나 미국에서 행해진 연구들에 의하면 일단 지진의 시작시점에서 종료시점까지의 짧은 시간동안에는 사람들이 상당히 이성적으로 행동한다고 한다.그런데 막상 지진이 끝난 직후부터 패닉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 문제이다.건물의 구조가 취약해졌기 때문에 곧 무너져 내리거나 도시가스관이 파열되어 곧 불이 붙을 터라 빨리 건물에서 벗어나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야 하는데도 사람들은 망연자실,그 자리에 앉아 있거나 주위의 하찮은 물건들… 떨어진 액자나 넘어진 의자등…을 줍는등의 비이성적 행동을하게된다고 한다.그러니 인명피해가 배가될 수밖에 없다. 이런 패닉현상은 지진 뿐만 아니라 화재시에도 마찬가지로 일어난다.자연의 파괴력앞에 무능해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이다.우리는 지진에 대비하여 건축이나 토목구조물의 안전성을 충분히 구현해 놓아야 하기도 하지만,이러한 비상시에 건물내부에 있던 사람들이 패닉한 가운데도 동물적 본능만을 가지고 재빨리 대피할수 있는 배려를 충분히 해놓는 것도 중요하다.비상구로 가는 통로를 가능한한 직선으로 만들어 놓고,비상구 안내판을 눈에 잘 띄게 설치해 놓는 등의 일을 말하는데,이런 배려를 하는 것을 건물방재계획이라고 일컫는다. 우리나라도 지진에 안전할수 없다는 것도 문제지만 성수대교 사건에서 보듯 언제 어디서 황당한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현실에서 우리나라 건축계의 건물방재계획분야 수준을 생각해 볼때 차라리 아찔하기만 한 것은 필자만의 우려는 아닐 성싶다.
  • 백화점들,직원 총동원 생필품 배급/복구 3일째/일지진 현장

    ◎매몰된 94살노인 53시간만에 구출/영안실 태부족… 사찰에도 시신 안치 ▷의연한 직무수행◁ ○…사망·실종자가 4천명을 넘어선 대형지진에도 불구하고 지진지역에 사는 많은 회사원들이 걸어서까지도 회사에 출근,직무를 수행한 것으로 나타나 감동을 주고 있다. 한큐전철의 야마자와부부장은 지진직후 집을 출발,3시간 걸려 오사카에 있는 회사에 도착.18일까지도 회사에서 철야하면서 동료승무원들의 안부를 확인하고 철로 안전상태를 점검.열차의 운행업무를 점검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미쓰이부동산 기토과장은 아파트가 흔들리면서 식기와 조명기구등이 전부 떨어져 박살났지만 집안을 우선 정돈한 뒤 부근의 회사동료 두명과 함께 자전거로 25㎞정도 떨어진 오사카의 회사로 3시간 걸려 출근.회사가 관리하는 아파트의 피해상황등을 확인하는 등 바쁘게 지내고 있다. ▷생존자 구출◁ ○…지진발생 3일째를 맞아 필사적인 구조작업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19일 무너진 가옥등에서 잇달아 생존자가 구출돼 지켜보고 있던 주민들에게뜨거운 감동을 선사. 48시간정도가 한계라고 통상 말해지고 있으나 생존 희망을 버리지 않은 끈질긴 수색 구출 작업끝에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 것. 19일 상오 11시쯤에는 효고현 아사야시에서는 53시간만에 94세 노인이 구출되기도.니시노미야시에서는 80세의 노인 두명이 잇달아 구출됐다. 한편 고베시에서는 중국인으로 보이는 임사태씨(46)가 56시간만에 구조됐으나 안고 있던 여섯살난 아들은 이미 숨진 채여서 지켜보던 이들을 안타깝게 하기도. ○…고베시내의 건물더미속에 묻혀있다가 21시간만에 구출된 70세의 한 노인은 18일 함께 갖혀있던 아내가 부르는 노래 덕분에 고통의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그녀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힘을 줘야겠다는 생각에서 「고추잠자리」라는 동요를 불렀다고. ○…일본전역에서 차출된 경찰과 자위대 요원 6천여명은 19일에도 구조활동을 계속.그러나 파괴된 사회간접시설과 중장비 부족,때때로 계속되는 여진이 구조활동을 어렵게 하고 있다.방위청에는 자위대의 늑장구조활동을 비난하는 전화가 쇄도. ▷생활주변◁ ○…출입금지나 교통정체로 차량접근이 어렵자 대형유통업체들은 수백명의 직원을 동원,생필품을 손에 들고 전달하도록 하는 등 필사적인 노력.지진지역 상점들의 가격인상행위가 우려됐으나 기우로 판명됐고,재해지역주민들은 사재기는 커녕 적은 물건도 서로 나눠쓰고 일부는 공동 취사하는 등 자발적인 협력자세를 보이고 있다.폐허가 된 시가지를 뒤로 한채 도보로,또는 자전거,자동차를 타고 시외로 나가는 고베시민이 상당수에 이르며 일부는 붕대를 감은 채 절뚝거려 전쟁난민들을 방불케하고 있다.부상자들로 초만원인 고베시내의 병원들은 식료품,전기,식수,의료장비 부족으로 수술도 하기 어려운 형편.병원 영안실만으로는 부족해 불교사찰까지 안치장소로 쓰고 있는 실정. ○…고베 시내 곳곳에서는 가스누출에따른 경보음이 하루종일 짜증스럽게 울리고 있고 가스폭발 위험성도 고조.스마구의 주민 7만여명은 19일 인근 공장탱크에서 가스가 새어나와 다른 곳으로 소개됐고,이날 아침 고베시내 중심부의 상가지역에서 가스폭발과 함께 일어난 불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산,인근 소형건물 20채와 백화점으로 순식간에 옮겨붙었다. ▷기타◁ ○…지진 피해가 엄청난데도 일본인들의 반응은 의외로 침착하고 냉담해 빈국까지 포함된 외국정부들의 원조제안및 위로 메시지와는 대조적.텔레비전방송들이 스모대회 중계를 취소하고 구조상황을 생중계하는 등 현장에 많은 인원과 장비를 투입하고 있지만 성금모금운동 같은 동정적 반응은 거의 없다.자동차 제조업체들이 『행복한 것은 좋은거야』라는 등 경망스러운 텔레비전 광고를 중단한다고 발표해 「자제 분위기」를 조성하는 정도가 고작.도쿄의 한 구조관계요원은 『일본인들이 「정부와 당국이 사태를 처리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도쿄의 백화점에서는 지진이 일어난 후 소화기를 비롯,건빵 헬멧 방재두건 등 방재상품들이 불티나게 팔려 재고가 바닥이 난 상태. ○…일본정부는 19일 지진 희생자 중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가족이 사망했을 경우 5백만엔(약 4천만원)을,그외 다른 가족들이 숨졌을 경우에는 2백50만엔(약 2천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하며 부상가족 부양자들에 대해서도 2백50만엔을 각각 지급할 것이라고 발표했다.이번 피해지역이 1946년 이후 큰 지진이 없었던데다 다른 어느 지역보다 위험성이 낮아 지진피해 보상책임에 가입한 세대는 효고현 3%,오사카현 4.9% 등 일본평균 지진보험가입률 7.2%에 비해 극히 적은 상태라고 업계 소식통들이 밝혔다.이번 지진으로 피해지역의 상당수 제조업체의 생산활동이 마비됐다.
  • 매캐한 잿더미속 「평화고무」 간판만…/“지진 시름” 일 교민사회

    ◎신발공장·철공소 수백곳 폐회로/거의 영세업체… 하루벌이 교민 큰 걱정/민단 옷·식량 제공… “동포애 한가락 위안” 효고현 지진발생 3일째인 19일 낮.교포공장과 주택이 밀집해 있는 고베시 나가타구 오가이도로는 폭격을 맞은듯 폐허더미로 변해 있었다.벽돌더미와 전신주등이 지진으로 쓰러지면서 골목길들을 막고 있었다. 상가주택가 한쪽편에서는 경찰과 군인 10여명이 모여 있었다.대형 크레인과 굴착기를 동원,무너져 내린 지붕위에서 뭔가 구조작업을 하고 있었다.지진 3일째인 이날까지도 아직 흙더미에서 깔려 신음하고 있는 사람을 찾는다는 것이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그의 운명에 맡기기로 하고 다음 발길을 재촉했다.스가하라(관원)시장을 통과했다.이 시장은 연기속에 불길이 3일째 계속해서 솟고 있었다.연기가 사라진 쪽으로는 『가족의 시신이라도 찾는다』며 몇몇 젊은이들이 시장 이곳 저곳을 바삐 오갔다.한국인 공장의 상징과도 같은 「평화고무」에 다다랐다.화학공장이 많아서인지 매캐한 냄새가 구역질을 일으켰다. 「평화고무」라고 쓴 큰 간판이 무너진 지붕위에 걸쳐있었다.평화고무는 30년전 우리 교포가 세운 신발공장으로 이국땅에서 받은 차별의 한과 내일을 위한 꿈이 어우러져 있는 곳이다.4층건물로 모두 16개사가 입주한 평화고무.한국인의 피와 땀으로 깃든 한국인의 터전이 하루아침에 재로 변한 것이다.대부분 종업원이 10∼20명 안팎이었다.영세 신발공업주들은 그러나 『경영하는 사람도 그렇지만 하루벌어 하루먹는 근로자들이 더 걱정이다』면서 한숨을 지었다. 「평화고무」에 세든 박주영씨(55·삼지제화대표)는 『나만 해도 피해액이 1억엔이상 될 것이다.하지만 이 공장에 모든 생계를 건 우리 근로자들의 생활은 정말 캄캄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주변 5백여개의 군소 신발공장 가운데 80%인 4백여개의 공장이 전파됐다』고 말하고 『일본 케미컬 슈스의 80%를 생산하는 이곳의 공장피해만도 1천억내지 2천억엔에 달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평화고무」와 비숫한 「고쿠에이철공소」「다이큐우가공소」도 사정은 비슷했다.모두 한국인 땀이 밴 한국인의 생활터전이라는 점에서.교포 김상복씨(65·신발가공업)는 『각 공장등이 현재상태로 재개되려면 15년이 걸릴 것』이라며 『중국인과 한창 경쟁하는 시점에서 지진이라는 또하나의 적을 맞았다』고 하소연 했다. 가와니시(천서)도로를 빠져 큰길인 오미치(대도)길을 건넜다.아스팔트가 2백여m 가량 엿가락처럼 휘어진 채 푹 꺼져 있었다.교포가 많이 수용돼 있다는 가구라(신락)소학교를 찾았다.강당·복도·는 물론 들어선 로비에도 「피난민」이 가득했다.5백여명의 수용자가운데 30%가 한국인이라는 설명이었다.입구 정문에는 수용자명단과 함께 사람을 찾는 광고문도 보였다. 우리말이 서툰 김마사코(70)란 할머니는 『세간살이 하나라도 더 꺼내려다 노인들이 많이 죽었다』고 말했다. 오미치 길옆 한 블록을 건너 하스이케(연지)마을.재일대한기독교 고베교회가 눈에 들어왔다.이곳은 별다른 피해가 없어 한 관계자는 『피해 교포를 돕기 위해 모금활동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다시 한 블록을 건너 고베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유도대회가 열렸다는 현립 문화체육관을찾았다.로비에서부터 「수용소」였다.이곳 저곳에서는 노인들의 신음소리가 들렸다.대부분이 지진 충격을 벗어나지 못한듯 얼빠진 모습이었다. 체육관을 빠져 나오며 시야에 들어온 것은 마쓰노(송야)지역의 불에 타버린 목조2층주택들.바로 이곳은 월세 1만엔 안팎의 우리 근로자의 안식처였으나 모두 사라져버렸다. 시모야마테 민단건물로 향하는 동안 민단 구호물자를 싣고 어디론지 가고 있는 소형 마이크로버스가 눈에 들어왔다.본격적인 교포구호활동이 시작된 것이다.오사카 관서은행은 19일 6백만엔의 성금을 민단에 기부했다.관서제조협회,재일동포대한기독교회등 각종 단체와 교포들도 모포·옷·비상식량·의약품등을 민단으로 보냈다.대지진의 폐허 속에서도 동포애가 비극의 슬픔을 조금은 달래는 듯 했다. ▷신원확인 교포 사망자◁ ◇고베(신호)시 ▲김현수(72)▲진옥려(73)▲심일춘(32)▲최수광(20)▲진강작(71)▲장경자(40)▲박정옥(77)▲박열기(63)▲김효구(61)▲남관자(41)▲고수정(68)▲박영호(72)▲김무부(55)▲김상권(81)▲김순자(39)▲박영치(70∼75)▲신순이(연령불명) ◇니시노미야(서궁)시 ▲한동래(70)▲김일수(67)▲박용령(23)▲김천수(42)▲임숙혜(66)▲임정부(64)▲오행강(연령미상) ◇아시야(호옥)시 ▲김두오(75) ◇효고(병고)현 ▲이일평(연령미상) ◇이단시 ▲박금자(47)▲장순갑(70·서궁시)▲김군자(59·장전구)▲김성기(8·〃)▲안화대(33·〃)▲김향일(36·〃)▲고태윤(70·〃)▲김선주(60·〃)▲남홍(63·명석시)▲박옥용(44·장전구)▲박윤생(64·〃)▲정외선(56·〃)▲김서거(81·〃)▲현양순(67·〃)▲정우연(56·〃)▲이학선(83·〃)▲박열재(50·탄구)▲여양일(53·이기시) ◎교포기업 피해 1천억∼2천억엔/민단,전국 지부·지회에 생필품 지원 지시/효고현 피해규모·구호 현황 이번 효고현의 최대 피해지역인 고베시의 우리 교민은 모두 8만4천여명(외무부집계).이 가운데 한국국적으로 재외 국민등록을 마친 사람이 4만1천3백명.나머지는 조총련계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19일 현재 고베시 민단본부가 밝힌 인명 피해는 사망이 23명.그러나 효고현 경찰측은 이날 까지 사망한 한국인의 수가 19일 상오 현재 15명이라고 공식 집계하고 있다. 지진피해가 가장 컸던 고베시 나가타구의 우리교포는 1만여명인데 바로 이들 가운데 사망자는 적어도 50명에 이를 것으로 민단 관계자들은 밝히고 있다.교포들의 피해는 나가타구에 집중돼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어 이들 교포들의 피해액을 집계해보면 교포들의 전체 피해액을 추정할 수 있을 것으로 민단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나가타구에는 평화고무(대표 강순찬)·국영고무(대표 남창웅)·대구라버(대표 김해수)등 우리교포 기업들이 약 5백여개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대부분은 고무·화학계통의 기업.고무·화학계통으로서는 전일본을 통틀어 약 80%의 생산량을 맡고 있다.나가타시의 공업생산량은 효고현 전체의 60%로 일본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바로 이 지역의 교포대부분은 고무·화학계통의 영세기업을 운영하고 있거나 한국인이 경영하는 이 기업들에 취업하고 있다. 효고현의 한국인 기업관계자들에 따르면 현재 비공식집계로 교포의 전체 기업피해액만 1천­2천억엔이 이를 것으로 밝히고 있다. 이같은 엄청난 피해에도 불구,지진이 발생한 지 사흘째인 19일 아직 이렇다할 복구에는 엄두도 못내고 있다.효고현 당국의 복구가 대부분 전기·전화등 공공시설의 회복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또 일본 당국도 복구를 위해 최선은 다하고 있으나 피해지역이 광범위한데다 통신·교통수단이 두절돼 이렇다할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시 관계자들은 『복구보다도 현재 실종된 인명을 구조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까지 밝히고 있다.따라서 당분간 전기·통신·가스등 공공기반시설의 복구외에는 개별적인 복구착수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현재 민단측은 18일부터 일본 전국 각지부·지회를 통해 구호활동지시를 내려놓고 있다.19일 현재까지 고베시의 시방(서번)지부와 와카야마(화가산)현지방본부에서 생수·라면·손전등·모포 두 트럭분을 보내와 교포들이 수용돼 있는 각 수용소별로 구호활동에 여념이 없는 상황이다.구호품의 수집이나 배분에 있어서도 곳곳에서 교통소통에 애를 먹고 있어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있는 상황이다.
  • 지진 참사/일 시민·언론 침착 대응/잿더미 고베시 현장르포

    ◎아수라장속 구급속 출동땐 길 비쳐줘/차분히 보도… 이재민 질서의식 돋보여 【고베=유민특파원】 지각변동과 화마가 휩쓸고 지나간 고베시에는 인간들이 애써 세워올렸던 건조물들의 앙상한 잔해와 잿더미만이 남았다.선진국 일본의 6대도시이자 미항이었던 어제의 모습은 간데 없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삶의 터전을 다시 일으켜세우려는 「미미한」 인간들의 복구작업이 시작됐다. 불바다가 남기고 간 자리는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폐허 그 자체다.시내 건물들은 대부분 폭삭 무너지거나,볼링 핀처럼 포개져있거나,아니면 악몽에서 깨어난 시민들을 향해 위로라도 하듯 피사의 사탑처럼 인사를 한다.최고의 번화가였던 쇼핑거리도 건물잔해와 깨진 진열장 유리들로 난장판이다.도로 곳곳에는 무너져내린 콘크리트더미와 도로표지판기둥 등이 어지럽게 널려있고 도로 자체가 흉칙하게 입을 벌린 곳도 여기저기 눈에 띈다. 지진에 이어 발생한 가스폭발로 고베시내 1백여곳에서 일제히 기승을 부렸던 불기둥이 더이상 옮겨붙을 곳이 없는지 지진발생 만하루가지난 18일 아침부터 사그라들기 시작하면서 구조및 복구작업은 본격화됐다.가스냄새는 아직도 코를 찌른다.임시대피소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뒤 날이 밝자마자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고 가재도구를 챙기려고 집을 찾아나선 시민들의 표정은 다소 겁에 질려있기는 하지만,그래도 가족과 재산을 하루아침에 날려버리고 자신의 목숨마저 간신히 구한 엄청난 현실에 비춰볼 때 의외로 냉정해 보인다.지진피해에 익숙해 있어서인지,아니면 감정을 자제하는 국민성때문인지.좌우간 시종일관 침착한 태도가 인상적이다.TV들도 호들갑을 떨지않고 차분하게 보도했다. 피해가 컸던 나가타(장전)구의 스가하라(관원)시장에는 아직도 불씨에서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아침부터 상인들이 나와 쓸만한 물건들을 한쪽으로 옮겨쌓아놓는 등 자신의 상점을 챙겼다. 변변한 가재도구마저 챙기지 못한채 쌀쌀한 날씨속에 대피소에서 춥게 밤을 지샌 시민들은 담요와 식량등 구호품이 신속하고 충분하게 지원되지 않은데 대해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급수,식량배급소 앞에서 장사진을 이루며 차분하게 순서를 기다리는 모습이었다.도시락,빵,라면등을 나눠주는 나가타구청에서 식량을 배급받은 한 20대여인은 『아기를 안고 한시간반동안이나 기다렸는데 겨우 빵 한조각을 받았다』며 정부의 지원확충을 호소했다.긴급 식수공급차량앞에 줄지어선 시민들의 손에는 양동이뿐 아니라 냄비,생수병,밥그릇 등이 각양각색으로 쥐어져있어 다급했던 대피순간을 상기시킨다.일본전신전화회사(NTT)가 가설한 임시전화도 친척들에게 안부를 전하는 시민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편의점과 주유소도 폭주하는 이용시민들로 정신이 없어 보인다.단전·단수 복구작업이 늦어지고 구호품 전달이 지연돼 끼니를 잇는 생활 자체가 힘겹다. 그래도 약탈행위는 찾아볼 수 없다.강력한 여진이 또 있으리라는 예측때문에 건물로 돌아가기가 겁나는 모양인지 자동차안에서 쉬거나,한적한 공원같은 야외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그 주변에 둘러서서 담요를 뒤집어쓴 채 불을 쬐며 몸을 녹이는 일부 시민들의 모습도 보인다. 숨을 멈춘 거대한 공룡처럼 쓰러져있는,오사카와 고베를 잇는 한신(판신)고속도로 고가부분에서는 포크레인이 상판위에 방치된 차량들을 끌어내리는 구조작업을 벌인다.그 옆의 국도2호는 양방향 1개차선씩만 통행이 허용된 가운데 이른 아침부터 고베시를 빠져나가는 차량과,가족들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진입하는 차량들이 늘어서서 좀처럼 움직이지를 않는다.평소보다 10배가까이 느린 시간당 2∼3㎞ 이상 속도가 나지 않는다.식량과 의약품을 실은 구호차량 수송도 덩달아 더뎌진다.앰뷸런스와 소방차등 응급차들이 사이렌을 울리면,저마다 갈길이 바쁜 승용차들이 어김없이 차를 한켠으로 비켜주는 모습속에서 일본인의 철저한 시민의식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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