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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교개발, 주민 집단반발 조짐

    판교신도시 개발계획안 결정이 미뤄지자 지역내 주민들이조속개발을 요구하며 실력행사 등 집단 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재산권행사는 물론 부동산거래가 중지돼 빚더미에올라앉은 세대들이 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민들은 13일 판교개발추진위원회 명의의 성명을 통해“지난달까지 개발계획을 확정하겠다고 해놓고 당정이 경기도와 논쟁만 벌이다 또다시 결정을 미룬 것은 25년간 재산권행사를 제약받아온 주민들을 우롱하는 처사”라며 “조만간 대책회의를 거쳐 시위 등 실력행사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주민들은 “개발결정이 지연되면서 부동산 거래마저 뚝끊겼고 이로인해 대출금 등으로 부채를 안고 있는 일부 주민들은 토지와 건물 경매위기에 몰려 생존권마저 위협받고있다”고 덧붙였다. 추진위원회는 최근 자체조사 결과 판교 운중 하산운 백현삼평동 일대주민 전체 부채 규모가 550억원으로 가구당 평균 2,700만원의 빚을 지고 있다고 밝혔다. 낙생농협의 경우 대출금 상환기한을 넘겨 연체료가 부과되는 주민이 무려 100여명에이르고,이 가운데 2년 이상장기연체된 빚도 30여명에 3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농협은 악성채무자 5명에게 경매예고 통지서를 발송하는 등 경매를 통한 채권회수 절차에 들어갔다. 주민 김모씨(44·여·삼평동)는 “대부분이 시설재배 농민인 판교 원주민들의 경우 그동안 각종 규제로 재산권 행사가 어려워 생활비와 자녀교육비 명목으로 대출을 받지않은 집이 없다”면서 “고래싸움에 새우들만 살길이 막막해 지고 있다”고 말했다. 시 관계자는 “원주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위장전입자들만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며 “조속한 개발계획이 수립되지 않으면 판교일대는 수익을 노린 전입자와불법 건축물들로 폐허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
  • 영화감독들 TV서 ‘여름사냥’

    올 여름 방송가는 ‘썰렁’하다.경기 불황 탓인지 특수효과를 이용한 납량드마라를 경쟁적으로 만들었던 예년과는달리 특별한 여름 공포특집물이 없다. 유일하게 KBS2가 7월29일부터 매주 일요일 오후 10시40분4부작 납량특집 드라마 ‘도시괴담’을 방송할 예정이지만 이마저 외주 제작이다.‘도시괴담’은 영화감독들이 연출을 맡아 화제를 모은다. KBS가 기획하고 외주 프로덕션캐슬인더스카이가 제작하며 편당 1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될예정이다. 연출을 맡은 감독들은 ‘유리’‘리베라메’의 양윤호,‘물고기자리’의 김형태,‘가위’의 안병기,‘마요네즈’의윤인호 감독이다. 네 감독들이 받을 연출료는 일반 외주제작사 PD들이 한편당 받는 최고 1,500만원 선으로 알려졌다. ‘도시괴담’은 현대를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 공포물로세간에 널리 알려진 무서운 이야기를 영화적 기법과 특수효과 등을 이용,짜임새 있게 꾸밀 계획이다.양윤호 감독이연출할 제1화 ‘죽은 자의 노래’(가제)는 폐허가 된 지3년만에 다시 문을 연 녹음실에서 한 신인가수가 우연히원혼이 서려있는 CD를 발견하면서 으스스한 이야기가 시작된다.김형태 감독이 연출을 맡은 두번째 이야기 ‘어둠 속의 속삭임’(가제)은 의대 해부실에 출몰하는 원령들의 저주에 얽힌 이야기며,안병기 감독의 3화 ‘생령’(가제)은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자아인 ‘도플갱어’를 소재로 공포를 부른다.윤인호 감독이 맡은 마지막 편 ‘어둠의 집’(가제)은 귀신이 출물하는 산장을 상속받은 한 가족이 휴가 첫날밤을 공포 속에 보낸다는 내용이다. MBC와 SBS는 공포영화 특선을 준비했다.MBC는 7월 주말의명화로 ‘옥토퍼시’‘뷰투어킬’‘리빙 데이라이트’ ‘네버다이’등의 007시리즈를,8월에는 ‘스위치킬러’‘이벤트 허라이즌’‘프랑켄슈타인’‘드라큐라’등 대부분이미 방송을 탄 적이 있는 공포영화들을 틀 계획이다.SBS는 납량특선으로 15일 ‘텔미썸딩’,22일 ‘여고괴담2’,29일 ‘스크림3’를 내보낸다. 방송관계자는 “납량드라마를 특별히 만들더라도 들인 제작비만큼 시청률이 안 나오고 시청자들도 기존 편성을 깨고 여름특집이 끼어드는것을 예상보다 별로 달가워하지않는다”면서 썰렁한 여름 방송가를 분석했다. 윤창수기자 geo@
  • [대한칼럼] 통일 베트남 26년과 한국

    “총칼을 들고 오면 적으로 싸우지만,악수하자고 손내밀면 서로 친구가 되지요”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트란 둑 루옹 국가주석은 지난 21일 집무실에서 필자를 포함한 한국 언론사 논설위원들과 만나 외세와의 항쟁에 이은 통일베트남의 남북 갈등 극복과 국가발전 과제를 얘기하는 가운데 이같이 말했다.근 100년간 프랑스와의 식민투쟁에 이어 20년에 걸친 월남전을 승리로 이끌어 통일을 성취한 지 26년이 된 지금,베트남의 지도자들이 강조하는 최대 화두는 ‘도이 모이’(쇄신)지속과 경제 건설이다. 수도 하노이에서 그리고 옛날 사이공인 호치민시의 전쟁기념관을 각각 찾았을 때 월남전 당시 참전했던 한국군에관련된 기록사진,이른바 ‘양민학살’에 관한 전시물이 있는지를 눈여겨 살펴봤다.그러나 한국군에 관한 단 한 장의 사진도 발견할 수 없었다.미군과 함께 참전한 한국군 부대명이 나열된 조그마한 도표 한 장만 있을 뿐이다.몇년전만 해도 ‘인간이기를 거부한 미 제국주의’ 군대의 잔혹행위와 함께 참전한 국군의 ‘활동상’도 전시돼 있었지만지금은 자취를 감췄다.베트남 정부는 이처럼 한국에 관한 문제는 세심한 데까지 신경을 쓰고 있다.그만큼 한국과의 교류·협력을 절실히 원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군의 참전 등 ‘과거사’문제에 대해 베트남 공산당과 정부의 정책 기조는 “과거는 제쳐두고 미래를 위해 협력한다”는 것이다.실제 1992년 한국과 수교한 이후 베트남의 고위인사들도 “과거 양국간에는 불행한 일이 있었으나 이는 양 국민의 뜻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말하고 있고 한국군이라고 부르는 대신 여러 문서에도 ‘박정희 용병군’이라고 표현함으로써 지금의 한국과는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호치민 시내 시장통을 돌아보다 우리나라 탤런트 차인표와 이영애가 다정한 모습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코팅된포스터가 진열대에 가득 쌓여있는 것을 보았다.베트남의젊은이들 사이에 한국 연예인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있는가 하면,베트남의 주요 방송국은 저녁 시간대에 한국드라마 ‘불꽃’을 방영하고 있다.이들이 한국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호치민 방송국의 팜 칵 사장은 “‘젓가락 사용’ 등 문화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상당한 유사성이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충분한 답변같지는 않았다. 한국이나 베트남은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외세의 침략을받았고 식민통치를 경험했으며 남북 분단의 아픔을 겪었다.베트남은 비록 ‘통일조국’을 이룩했지만 폐허의 땅에남은 것은 가난뿐이었다.이런 가운데 일본을 배우기는 너무 발전의 격차가 크고 대신 한국의 발전 모델을 원용하고 싶은 ‘염원’이 깔린 것이 아닌가 한다.내년이면 한·베트남 수교도 10주년을 맞는다.근년 들어 우리 업체들의 진출도 현저하게 늘어나고 있다.한국의 기술과 자본이 이곳의 풍부하고도 근면한 노동력과 결합할 여지는 아직도 많다. 애국심이 강한 베트남 국민들은 자존심이 매우 높다.호치민시 북서쪽 80㎞ 지점에 있는 ‘베트콩’의 지하 갱도 ‘구치터널’을 돌아보고는 미군의 가공할 현대무기들이 왜이곳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알 것만 같았다.작은체구의 베트남 사람만이 이동할 수 있는 땅굴이 총 연장 250㎞에 걸쳐 거미줄처럼 이어진 이터널은 5,000∼6,000명의 병사들이 장기적으로 게릴라전을 펼 수 있는 공간이었다.갱도 곳곳엔 작전회의,외과 수술,공동 취사까지 할 수있는 시설들이 갖춰져 있었다.아무리 융단폭격을 하고 화염방사기로 밀림을 태우고 고엽제로 초토화시켜도 이들의땅굴을 무력화시킬 수는 없게 돼 있었다.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는 미래를 향해 나가야 한다.베트남 국민의 가슴 속에 응어리져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한국군 증오’의 과거사가 양국 관계 발전에 걸림돌이 돼서는안된다.그러기 위해서는 베트남 국민들이 하노이 중심부에 있는 호치민옹의 묘소를 지금도 매일 수백·수천명이 참배하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이들의 독립정신과 민족자존심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협력을 심화해나가야 할 것이다. 이경형 논설위원 khlee@
  • [굄돌] 점령당하는 인사동

    인사동이 변하고 있다.일요일에 그곳을 나가본 사람이면누구나 느끼는 일이지만 이미 발 디딜 틈이 없는 인파로인하여 걷기가 어려울 지경이다.삽시간에 점령당한 인사동의 대중적 상업화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미 십여곳의 문화관련 골동상이나 갤러리가 문을 닫았고,대중적인 점포로 전업을 하였다.고아한 조선조 백자항아리 대신 동남아의 싸구려 장식품과 모조공예품들이 자리를잡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어렵게 지켜온 많은 화랑들의골목 앞에는 이미 노점상들이 격렬하게 생존권을 주장하고있다. “제발 그대로 놔두세요”라고 외쳐대는 뜻있는 주민들과이 거리를 사랑하는 예술인들의 목소리는 어제,오늘이 아니건만 솜사탕을 들고 호기심 넘치는 눈빛으로 인사동을찾는 청년들에게는 이상한 표정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도무지 대화가 안되는 상황에서 이미 엄청나게 집세는 올라만 가고 가게를 옮겨야만 하는 신세타령에,고미술과 현대미술을 사랑하는 예술인들과 애호가들은 점점 멀어져만 간다. 명동,신촌,대학로와는 달리 그래도 인사동은 우리의 손때묻은 고아한 정취가 남아있는 유일한 예술의 거리였다.수십년 간의 정성으로 이루어진 그곳의 모습이 무슨 깊은 사연인지는 모르지만 길 가운데 돌멩이까지 설치하면서 무채색 단장을 하여 완전히 분위기를 망쳐놓았다. 이제는 무국적적인 거리이자,그저 조금 희한한 것이 많은만남의 장소로 급속히 변해가는 인사동을 보면서 제발 그대로 놔둘 수 있는 여유와 사려가 있었어야 했다.치열한실험이 숨쉬는 작가들의 숱한 애환이 숨쉬는 그 거리,천상병의 시가 있고,변관식의 산수가 있으며,백남준의 현란한미학이 있었다.그래도 젓가락 장단이 간간이 흘러나오는풍류가 흘러나오는 초라한 그곳에서 우리는 고향을 맛보고,도시생활의 외로움을 잊었다. 로마의 콜로세움이나 그리스의 수많은 신전들이 왜 그렇게폐허처럼 서있는가. 역사의 소중함은 모조품으로 채워지는값싼 화려함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시공간의 민족의 역사와 숨결이 있기 때문이다. ▲최병식 미술평론가 경희대 교수
  • 시인 황동규·소설가 한수산 산문집 출간

    그들의 글에는 번거로운 일상에서 건져올린 사유의 불꽃들이 촘촘히 박혀 있다.세상살이가 속되고 허망할수록 그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생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려는 여유가 녹아 있다.세상을 관조하되 동화되지 않고 인생을 향유하되허비하지 않는 견인불발의 철학이 담겼다.황동규(63) 그리고 한수산(55).시와 소설로 각각 일가를 이룬 이들이 자신의 본령에서 한 발 벗어나 산문집을 펴냈다.황동규는 문학동네에서 ‘젖은 손으로 돌아보라’와 ‘시가 태어나는 자리’를,한수산은 ‘내 삶을 떨리게 하는 것들’(해냄)과 ‘꿈꾸는 일에는 늦음이 없다’(이레)를 내놓았다. 언어와 힘겹게 싸워야 하는 시인의 숙명은 산문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황동규의 말대로 “산문은 느슨한 시가아니다.”거기엔 시 이상의 조밀함이 있다.‘젖은 손으로돌아보라’에 나오는 글들은 시인의 표현을 빌리면 “가볍고 떫고 맑은 맛”이 난다.그것은 세상의 무거움을 충분히짊어진 가벼움이며,세상과 쉽사리 몸을 섞지 않겠다는 결의가 담긴 떫음이요,세상의 탁함을 받아들여 오랜기간 걸러냄으로써 얻어진 맑음이다.길섶에 핀 달개비꽃에서도 삶의 경이를 발견하는 시인의 감성이 그대로 묻어나는 글들이다. ‘시가 태어나는 자리’는 데뷔작인 ‘시월’에서부터 ‘브롱스 가는 길’에 이르기까지 황동규 시사(詩史)의 분수령을 이루는 작품들을 다룬 시적 자서전이다.시와 삶의 동거현장을 엿볼 수 있다.그렇다고 단순한 자작시 해설서는아니다.‘극서정시’이론을 체계화한 바 있는 시인의 시에대한 생각들을 정리한 시론집이자 삶에 대한 성찰이 깃든에세이집이다. 한수산은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우리에게 다가오는가.그의 이전 산문집 ‘단순하게 조금 느리게’가 앞으로만 내달리는 현대인들에게 하나의 ‘쉼표’를 찍어 줬다면,‘내 삶을 떨리게 하는 것들’은 일상에 매몰돼 덤덤하게 살아가는이들에게 ‘떨림’이라는 소중한 순간을 안겨준다.작가는“우리의 삶을 흔들어 놓는 것은 큰 사건이 아니라 아주 작은 떨림”이라고 강조한다.떨림의 순간을 갖지 못하는 삶,도무지 감동할 줄 모르는 삶이란 얼마나 공허한 것인가.본문에는 서양화가 오수환의 그림이 곁들여 있어 넉넉한 ‘문풍지의 여유’를 더해준다. “아들아.북아프리카 사막의 한가운데서 이 글을 쓴다.별빛이 물든 손으로….”‘꿈꾸는 일에는 늦음이 없다’는 이렇게 시작한다.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쓴 삶과 문명에 대한 성찰의 기록이다.사막에서 길을 가르쳐주는 것은 햇빛과 별뿐.낮에는 햇빛이 만들어내는 그림자에 따라 동서남북을 분간하고 밤에는 별자리로 그것을 안다.그러나 도시의 젊은이들은 햇빛과 별을 느낄 수 없기에 길을 잃고 방황한다.작가는 “사막에도 길이 있는데 정작 잘 닦여진 아스팔트에는 길이 없다”고 말한다.“삶은 시간이라는 사막을 가는 것”이란 결론에 이른 작가는 당부한다.“아침을사는 사람이 되어 다오.그렇게 언제나 새롭게 시작하는 나날을 살아다오.이 세상 모든 일에 때늦음은 없다는 사실을기억해 다오.”(‘아침을 사는 사람이 되어라’) 작가는 때로 하느님의 장기판 같은 밤하늘의 별자리를 바라 보며 별들의 삶에 훈수를 두는가 하면 사막 양치기의 인생을 꿈꾸기도 한다. 사막에 새겨진 모래 무늬결처럼 아름다운 꿈이다.사막이라는 절대의 폐허 앞에서 작가가 발견한 삶의 통로는 다름아닌 ‘꿈’,바로 그것이다. 김종면기자 jmkim@
  • 교황, 골란고원 ‘역사적 방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시리아 방문 사흘째인 7일 지난 67년 이스라엘에 점령됐다가 74년 반환된 골란 고원의 퀴네이트라시를 방문,특별기도회를 여는 등 가톨릭과 이스람교간의 화해를 위한 여정을 계속했다. 교황은 아랍·이스라엘간 전쟁으로 폐허가 된 퀴네이트라시에 평화를 상징하는 올리브 나무를 심은 뒤 그리스 정교회 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했다. 앞서 6일 로마 가톨릭 역사상 처음으로 다마스쿠스 구시가지의 우마야드 이슬람 사원을 방문한 교황은 시리아의 이슬람 지도자들과 함께 사원에 머물며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유대교가 상호 협력해 평화와 상호 이해를 이루어 달라고호소했다. 오마야드 사원은 구약 세례자 성요한의 묘지 위에 세워진이슬람 사원으로 양 종교 모두의 성지라는 점에서 의미가깊은 곳이다.이슬람 교도 수천명의 환영을 받으며 우마야드사원에 들어간 교황은 이슬람 의식을 존중,신발을 벗은 채사원에 입장했으며 가톨릭 성호도 긋지 않았다. 교황은 “이슬람교도들과 기독교도들은 여러 시대에 걸쳐상대방을 공격했으나 이제우리는 전능하신 신의 용서를 청하고 상대방에게 용서를 구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세이크 아메드 카프타로 최고성직자는 “오늘 얼마나 행복한지상상치 못할 것”이라며 교황의 역사적인 이슬람 사원 방문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교황은 나흘간의 시리아 방문을 마치고 8일 지중해의 가톨릭 국가인 몰타를 방문,이번 순례 일정을 마무리한다. 다마스쿠스 AFP AP 외신종합
  • “경의선 타면, 고려 도읍지 개성이 있네”

    서울에서 경의선을 타면 1시간30분만에 닿을 수 있는 지척의 땅.태조 왕건이 고려의 도읍지로 삼은 역사의 고향,개성이 열리고 있다. 최근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김한길 문화관광부 장관이북한과 개성·금강산관광특구지정에 합의했다고 발표함에따라 개성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지난 55년 직할시로 승격된 개성은 1개시(개성시)와 3개군(개풍군·장풍군·판문군)으로 이뤄져 있다.서울에서 당일치기 관광코스로,학생들의 수학여행지로 각광받을 날이 멀지 않은 개성에 미리 가본다. 개성시 중심가에서 3.5㎞ 떨어진 개풍군 해선리 만수대에위치한 왕건왕릉은 대표적 유적지.94년 복원하면서 3단축조형식의 웅장한 무덤과 왕건 초상,후삼국 통일시기의 문인및 무인 석상이 서 있다. 개성시 북안동에 있는 북한 국보급34호 개성 남대문은 무지개문 축대위에 있는 단층 문루로 정면 3칸,측면 2칸의 합각지붕에 3포집이다.1391년 고려 공양왕 3년에 착공,1393년조선 태조 2년에 준공돼 고려말 건축기법이 담겨있다. 문루에는 북한 보물급 30호인 연복사종이걸려있다. 개성 문묘대성전은 선죽동에 있는 목조건물이다.고려 문종이 세운 대명궁의 별궁이었지만 뒤에 숭문관이 되었고 1089년 국자감을 이곳으로 옮긴 뒤 1310년 성균관이라 하였다. 개성 성균관은 서울 성균관과 같은 태학(太學)이 아니라 지방향교였던 점이 다르다. 송악산 남쪽 기슭에 자리잡은 만월대는 고려왕조의 왕궁터이다.중앙의 회경전을 중심으로 길이 약445m,너비 약 150m의 미니궁.왕이 거처하던 건덕전 등 여러 전루가 있었으며1361년 불탄후 폐허가 됐으며 주춧돌만 남아있다. 개성나성(開城羅城)은 개성직할시 외곽을 둘러싼 외성을말한다.북한 사적 제46호로 지정돼 있으며 고려 현종 20년인 1029년에 완공됐다.거란의 침입이 있은 뒤 강감찬 장군의 건의에 의해 축조됐으며 송악산 남쪽 사면과 남산을 둘러 시가지전체를 포위하고 있는 모습이다. 개성시내에서 북쪽으로 25㎞ 떨어진 곳에 자리잡은 높이 37m의 박연폭포의 장관은 조선 중기 유학자 서경덕,기생 황진이와 함께 송도삼절(松都三絶)로 꼽힌다. 이밖에 10∼13세기 고려벽화를볼 수 있는 수락암동벽화고분,태종 이방원이 정몽주를 살해한 선죽교,태조 왕건의 할머니 용녀가 팠다는 전설의 큰샘 대정(大井) 등이 유명하다. 노주석기자 joo@
  • [공직자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 나라 사랑-시대를 초월한 민족정신

    우리의 근현대사 100여년은 격변의 시기였으며,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우리사회를 주도하는 시대정신이 있었다.개화기자주적 근대화의 좌절로 인한 국권상실기에는 민족의 독립을 위한 선구자적 민족정신이 시대적 과업이었고,이 때 나타난 것이 의병정신과 독립정신이었다.그리고 6·25전쟁의 시기에는 공산주의로부터 국가를 지키려는 자유수호정신이 표출되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산업화와 국가재건을 추진하던 근대화시기에는 일사불란하게 목표를 달성하는 효율성과 진취적 개척정신이 중시되었으며 기술·기능중심의 산업화 마인드가강조되었다.80년대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민주와 인권정신이 살아 있었으며,90년대 이후 냉전이 종식되고 세계경제시대로 접어들면서 무한경쟁의 지식정보화시대를 맞고 있다. 이러한 시대정신은 과거와 상충되는 것이 아니며 모두 국난극복 정신이나 나라사랑하는 마음이 그 바탕을 이루고 있다.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발현된 이러한 시대정신이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경제적 성장과 풍요를 가능케한 원동력이었다. 그러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현재우리의 시대적 소명은 민족공동체의 삶을 복원하고,이를 통해 세계중심국가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냉전이 종식되고 국가간 무한경쟁의 상황에서 남북한간의 화해·협력과 민족역량의 결집은 시대적 대세이다.분열과 갈등에서 사회통합과 민족동질성을 회복하는 일이야말로 우리의절실한 과제이다. 앨빈 토플러(A.Toffler)는 농업사회,산업사회에 이은 지식정보화사회의 도래로 급격한 사회변화가 수반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후기산업사회는 자원기반경제에서 지식기반경제로,물질위주경제에서 정신위주경제로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다.새로운 패러다임은 단기적이고 물질적인 개발전략이아니라 지속가능하고 내실있는 발전전략의 모색이어야 하며,그것은 바로 건전한 국민정신을 형성하는 올바른 시대정신이 밑받침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시대정신의 바탕은 바로 민족사에 면면히 이어 온 국난극복정신과 공동체의식의 회복이라고 생각된다.민족발전의 동인(動因)으로서 독립정신과 자유수호정신 등 국난극복정신을 현재에 되살려 미래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책무가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세계주의는 민족주체성의부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수난과 이를 극복했던 노력의 역사,즉 도전과 응전의 역동성을 국가적 어려움에서 다시 발현시키기 위한 열린 이념이다. 역사는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끊임없는 대화이며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다.민족사에 흐르는 공동체의식이나 애국정신이 이 시대의 국민정신으로 자리잡을 때 부강하고 성숙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김유배 국가보훈처장
  • [기고] 言心이 지배하는 사회

    일찍이 언론인 천관우 선생은 한국의 신문이 연탄가스에 중독되었다고 진단한 바 있다.‘잠든 사이에 스며든 가스에 취하여 비명 한번 못 질러보고 어리둥절하고 있는 상태’로 비유했던 것이다.그러면서도 피닉스처럼 죽지 않고 반드시 살아날 것이라는 희망을 피력하였다.언론에 재갈을 물리기 시작하던 박정희 정권때 일이다. 선생의 예언처럼 드디어 신문이 오랜 의식 불명 상태에서깨어났다.선생의 기대만큼보다는 오래 걸렸지만 말이다.그런데 이게 정상으로 회복된 게 아니라 후유증이 몹시 심각하다. 마치 터미네이터나 에일리언처럼 괴력을 지닌 괴물로 둔갑해버렸다.선생은 언론인 자신들의 단결된 힘에 의해 깨어날 것이라고 했다.이게 문제였다.깨어나야 된다는 스스로의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시민혁명의 기운으로 갑자기 깨어나게된 것이다.그 후로 괴력이 붙기 시작하더니 어느덧 조폭을능가하는 난동자로 변해버린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과거의 기억을 깡그리 잊어버렸다는 사실이다.민족을 배신하고 친일을 했던 사실,독재정권에 부역하며 배를살찌웠던 사실,광주민중항쟁을 매도했던 사실 등을 말이다.오히려 항일투쟁을 했고,독재정권에 저항했고,민주화에기여했다고 큰소리를 친다.그리고 정부의 하는 일은 맹목적으로 비난하면서 그게 언론의 소임이라고 강변한다.이 난폭한 괴물을 방치하고서는 나라 일이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 그래서 신문개혁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희한한 것은 이 괴물이 제 옛 주인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그래서 이 괴물은 야당과 한 통속이 되어서이 나라 정치를 쥐락펴락하면서 민족의 장래를 벼랑 끝으로내몰고 있다.따라서 이 괴물을 정상으로 회복시키려는 어떤처방도 야당은 기를 쓰고 반대한다.지금 이대로가 좋은 것이다.괴물의 난동으로 사람들이 다치고 도시가 폐허가 되건 말건 그 주인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면 그만이고,괴물은 오로지 주인을 위해 충성을 다한다.그래야 저도 행세할 수 있기때문이다. 그런데 이 괴물은 이미 주인의 상투 끝에 올라 있다.“명백하게 정당성을 결여한 언론 탄압이므로 세무조사 중단을 요구한다.” 야당 총재의 국회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나온 발언의 한대목이다.국민 대다수가 언론사 세무조사를 지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단을 요구한다.대단한 배짱이 아닐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국민들이야 무슨 생각을 하고 있건 선거에임하는 정치인들에게 그건 아무런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소위 여론이란 것을 독과점하고 있는 세 신문의 도움만받으면 당선은 떼논 당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그래서민심(民心)은 중요하지 않다.언심(言心)만 얻으면 된다.민심이야 언심을 따르게 되어 있다. 불행하게도 이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부인할 수 없는 우리국민의 수준이다.민심이 확실하게 중심을 잡고 있으면 괴물은 더 이상 난동을 부리지 못한다. 괴물이 끊임없이 난동을부리는 것도,야당이 초법적 망언을 일삼는 것도 민심이 흩어져 있는 상태에서 우왕좌왕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와 언론이 3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다 우리들탓이다. 그러나 줏대없는 민심만 탓할 일도 아니다. 괴물이난동을 부린 게 언제부터인데 그동안 하세월을 방치해두고있다가 이제 와서처방전을 들이대느냐는 얘기다.과연 정부가 괴물을 붙들어 매놓고 성공적으로 수술을 할 수 있을까?그럴 힘과 의지가 있느냐 말이다.지금으로서는 회의적이다. 관영 매체들에 대한 개혁에는 미적지근하면서 영(令)이 서기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민심은 흐르는 것이다.줏대없이 보이다가도 확실한 비전을보여준다면 흩어져 있는 민심은 모일 것이다.관영 매체에 의지하려는 미련을 버리고,사회정의 차원에서 신문개혁의 의지를 확고하게 보여주며 실행에 옮긴다면 힘은 실리게 되어 있다.음모론 따위의 상투적인 수사에 주눅들 필요없다.정부는정부대로,시민단체는 시민단체대로 제각기 해야 할 일을 하는 것,그것만이 괴물을 정상으로 되돌려놓는 확실한 방법이다. 김동민 한일장신대교수·언론학
  • 냉전시대 그 암울한 초상

    통일의 미래를 전망하기에 앞서 탈분단시대를 바라보고 그보다 먼저냉전시대를 돌아보자.문예진흥원이 기획한 ‘선샤인(Sunshine)-남북을 비추는 세 가지 시선’전이 전하는 메시지다.26일부터 2박3일간남북이산가족 3차상봉이 예정된 가운데 5일부터 24일까지 서울 관훈동 인사미술공간에서 열리는 이 전시는 민감한 주제를 다뤘다는 점에서 일단 관심을 끈다. 초대작가는 박찬경,장영혜,솔룬 호아즈 등 3명.박찬경은 사진 슬라이드와 스틸사진 작품으로 ‘세트’를 만들어 내놓는다.슬라이드는 북한의 조선영화촬영소에 있는 서울거리 세트와 남한의 모의 시가지 전투훈련장 세트,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판문점 세트 등으로 구성됐다.스틸사진에는 전후 서울의 폐허화한 모습이 담겼다. 작가는 남북한 문화의 이질성과 동질성을 비교해본다는 취지에서 이작품을 만들었다.장영혜는 비디오 애니메이션 작업 ‘향수’를 통해교련복 등으로 상징되는 박정희 시대의 모습을 반추한다.또 호주작가솔룬 호아즈는 ‘서울일기’와 ‘평양일기’라는 다큐멘터리 작품으로 남북의 상이한 정치적 입장과 제도적 장치들을 파헤친다. 그러나 전시작의 상당수는 ‘미디어-시티 서울 2000’전 등을 통해이미 소개된 것들이어서 아쉬움을 남긴다. 최근 끝난 광화문갤러리의 ‘서울의 화두는 평양’전에 이어 열리는이번 전시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잡으려는 미술적 움직임” 정도의평가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02)7604-500. 김종면기자
  • 광주 ‘分院가마터’ 1,500평 발굴한다

    분원은 경기도 광주군 남종면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조선 영조28년(1752년)사옹원(司甕院)의 그릇을 굽는 분원(分院)이 설치됐던 것이 그대로 지명이 됐다.사옹원은 궁궐의 음식을 공급한 기관이다.조선 후기 백자의 명품은 대부분 이곳에서 구워졌다고 보면 된다.1883년 민영화한 뒤에도 도자기 생산지로 명맥을 이어왔다. 분원은 일제강점기 가마터에 소학교를 만드는 바람에 폐허가 됐다.지금도 분원초등학교 남서쪽 언덕에는 당시 불도저로 밀어부친 가마의흔적이 엄청난 양의 사금파리 더미로 남아 있다.갑발(匣鉢·구울 때재 등이 묻지 않도록 그릇에 덮어씌우는 용기)의 파편이 여기저기 눈에 뜨이는 것은 이곳이 최고급 그릇(갑번·匣燔)의 생산지였음을 알려준다. 이렇듯 중요한 역사 현장이면서도 버려지다시피 방치된 분원 가마터를 보존하려는 노력이 올들어 본격화하고 있다.광주군은 가마터 1,500여평을 발굴키로 하고 지난 26일 문화재위원회에 발굴허가를 신청했다.14억원의 예산도 이미 확보해 놓았다. 분원 왕실 가마터의 제모습 찾기 작업은 오는 8월10일부터 10월28일까지 경기도 이천시와 여주·광주군에서 열리는 ‘2001 세계 도자기엑스포’가 계기가 됐다.발굴을 곧 이벤트화하여 가장 미술적 가치가높은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은 조선백자의 ‘모태’가드러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7월쯤 발굴을 시작하여 엑스포의 폐막과 함께 작업을 마칠 수 있도록일정을 조정하고 있다. 현장에는 동선(動線)을 따라 관람객들이 가까이서 발굴상황을 지켜볼 수 있는 시설과 출토된 유물을 둘러보게끔임시 전시관도 만들기로 했다. 사실 분원 가마터가 그동안 방치된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과거 한강의 지류인 경안천에 접한 분원은 마포나루로 통하는 편리한 수운(水運)이 특별한 장점이었다.팔당호가 만들어지곤 수려한경관이 더해져 관광자원으로 뛰어난 상품성을 갖추었다. 무엇보다 일본인들은 조선백자에 엄청난 애착을 갖고 있다.지금도 일주일이면 일본에서 한두팀의 신문이나 방송 취재단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우리가 홍보하지 않아도 이미 국제적인 관광자원으로떠오른상태다. 분원은 그러나 국내에서는 ‘팔당호반에 있는 매운탕의 명소’쯤으로만 인상지워 있다.5월이면 ‘붕어찜 축제’가 열리지만 도자기 관련행사는 없다.분원에서 만든 백자 몇점과 가마터에서 주운 사금파리를모아놓은 수준인 ‘분원백자자료관’을 세운 것 정도가 유일한 관심이었다고 보면 된다. 분원 가마터를 어떻게 보존할지는 발굴이 모두 끝난 뒤 문화재위원회에서 결정한다. 이미 사적으로 지정됐으므로 “보존이 필요없다”는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만큼 하루라도 빨리 “분원을 어떻게 되살리느냐”를 진지하게 고민해야할시점이다.발굴 결과는 기다릴 필요도 없다는 얘기다. 광주(경기도)서동철기자 dcsuh@
  • 인도 지진 이모저모

    인도 대지진 사망자가 2만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되는 가운데 29일인도 군과 국제구조대가 필사적인 생존자 구출작업을 벌이고 있지만장비부족으로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지진 발생 후 사흘이 지남에 따라 생존자의 존재 가능성도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인도 정부는 이날까지 6,072명의 시체를 발굴했으며 1만4,000명 이상이부상했다고 발표했다. ■S.K.바트나가르 인도 국방부 대변인은 “4,700명의 병사와 40대의군 항공기,여러 척의 해군 함정이 구조작업에 동원되고 있으며,공군헬리콥터가 담요와 음식 등 공급물자를 구자라트주로 나르고 있다”고 말했다.야시완트 신하 인도 재무장관은 “복구에 엄청난 비용이들 것으로 추산된다”면서 “비용마련을 위해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ADB)에 각각 10억달러와 5억달러의 차관제공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부지시에서는 군인들이 18개월 된 아기를 구조하는데 성공했으며,부지시 남동쪽 50㎞에 있는 안자르의 폐허에서도 3살짜리 여자 어린이가 52시간만에 극적으로 구조됐다.무너진 건물더미에묻혀있던 신혼부부도 36시간만에 기적적으로 구조됐다고 인디언 익스프레스가 전했다.이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시라그와 피야리 파탈 부부는 지진이발생한 26일 아침 4층 건물에 있다 무너진 건물더미에 갇혀 이틀동안아무 것도 먹지 못한 채 죽음과 맞서 싸우다가 27일 극적으로 구조됐다.또 아마다바드에서는 스위스 구조대가 구조견을 이용해 지진 발생43시간만에 무너진 건물더미 속에서 35세의 여자와 14세 소년을 구조하는데 성공했다. ■부지시에서는 이번 지진으로 6,000여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한 초등학교에서는 어린이 400여명과 교사 50여명이 한꺼번에 매몰돼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아마다바드·부지(인도) 외신종합
  • [사설] 印度참변에 구호의 손길을

    26일 발생한 인도 구자라트주(州)와 파키스탄 국경 지방의 지진으로사망자가 1만5,000명을 넘어섰다.폐허가 된 도시들의 건물 잔해에서연일 사체가 발굴되고 있다.이번 지진은 리히터 규모 6.9∼7.9라고한다.강도(强度)로는 이보다 큰 것도 많았지만,이번에 피해가 큰 것은 진앙지 가까이 여러 도시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도 정부는 구조 작업에 전력을 다하고 있으나 인력과 장비,구호품등이 부족해 어려움에 처해 있다.병원에서는 시설과 의료진이 모자라 시신 처리조차 제때 하지 못하고 있으며 부상자들이 1,000여명씩병원 밖에서 치료를 기다려야 한다.의약품이 달리는 것은 물론이고수많은 난민들이 식량난을 겪고 있다.지구촌의 인도주의적인 구호의손길이 시급하다.다행히 국제사회가 따뜻한 인류애를 나타내고 있다. 우리 정부는 1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했으며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애도 전문을 보냈다. 미국이 100만 달러와 구호품을 지원키로 했고유럽연합과 여러 회원국이 구호금과 함께 구조대를 보내기로 했다. 올해 1월 들어서 세계는 두번째의 대규모 지진을 맞았다.13일 과테말라에서 리히터 규모 7.6의 지진이 있은 지 두 주일도 안돼 이번에는 인도쪽에서 발생했다.그런가 하면,일본의 후지산이 작년 가을부터저주파 지진이 급증하는 현상을 보이자 이 산을 관할하는 야마나시(山梨)현이 최근 대피훈련까지 했다.근년 지구의 지각(地殼)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다는 징후가 포착되고 있으며 세계 각지에서 지진 발생우려가 높아지고 있다.우리나라도 안전지대는 아니라니 방심할 수 없다. 이번 지진의 막대한 피해를 보면서 자연의 이변에 인간이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가를 새삼스레 느끼게 된다.지진 예측 기술의 부단한 연구와 방재대책 수립이 긴요함은 말할 것도 없다.그리고 급한 것은 재해 국가에 대한 전 지구적 인도주의 정신의 발로다.지금 인도가 이를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 인도 강진 이모저모/ 곳곳 주민 몰살 ‘죽음의 땅’

    [뉴델리 외신종합]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인도 부지시는 도시 전체가완전히 폐허로 변해 ‘죽음과 파괴’만 남았다.주민 모두가 한사람도 빠짐없이 몰살된 마을도 여러 곳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살아남은 사람들은 잃어버린 가족을 찾아 파괴된 건물더미들을 파헤치고있으나 생존자를 찾아낼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이들은들어갈 집은 물론 식수와 식량도 없이 전기마저 끊긴 폐허에서 애처롭게 구호의 손길만 기다리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의 구호 손길이 지진 피해를 당한인도에 이어지고 있다. 또 세계 각국 구조대와 인도 당국의 처절한구조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각국 정상들의 애도 서한도 잇따랐다. 미국은 27일 인도에 100만달러의 긴급 구호자금을 지원하는 한편 음식,담요,식수통 등 구호물자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EU위원회도인도와 파키스탄 당국에 300만유로를 지원하고 재난 구호 전문가팀을 파견하기로 합의했다.영국 정부는 이와 별도로 450만달러의 구호자금과 69명의 구조대를 지원했다. 러시아도59명으로 이뤄진 의료진 및 수색·발굴 지원단을 파견했으며,독일 정부는 100만유로와 함께 전자 수색장비와 탐색 카메라를 갖춘 27명의 특별구조대를 보냈다.99년 수천명이 사망한 지진 피해를입은 타이완도 64명의 구조대와 수색견을 지원할 계획이며,지진에 취약한 일본 역시 13명의 의료단을 파견했다. ■지진 피해에 대한 각국 정상들의 애도 전문도 잇따랐다.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로마노 프로디 EU 집행위원장도 애도 전문을 보냈다.또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지진으로 인한 희생에 ‘깊은 슬픔’의 뜻을 전했다. ■이번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구자라트주 부지 인근 외곽지역의좁은 길에서 노래를 부르며 대열을 이루고 걸어가던 학생 400명과 교사 50명이 집단 매몰됐을 것이라는 추측이 제기돼 안타까움을 더하고있다. 인도 집권당 BJP 관계자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생매장됐을것이라면서 조속한 구조작업을 촉구했다. ■이번 지진의 진앙지인 부지시 주민 수천명은 파손된 건물의 추가붕괴나 여진을 우려해 승용차를 이용하거나 도보로 이 지역을 빠져나갔다. 실제로 28일 새벽에는 리히터 규모 5.9∼6.0의 여진이 발생,부지시와 구자라트주 주민들이 놀라 깨어나 집 밖으로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으며 노숙을 하던 수많은 이재민들은 공포 속에 휩싸였다.일부주민들은 여진으로 인한 추가 건물 붕괴를 우려해 길거리에서 잠을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생존자를 구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점차 희박해지면서 당국의 무대책과 무능에 대한 비난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주민들은 구자라트주가 지진 다발지역인데도 당국이 지난 수년 동안부실 건물에 대한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으며,지진 발생 뒤에도 희생자를 최소화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피해가 더 컸다고 지적했다. ■인도 강진의 원인은 이른바 ‘판구조론’에서 말하는 ‘지각 충돌’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수천만년 전 인도를 이루는 소(小)대륙은아시아와 떨어진 별도의 ‘판’을 이루고 있었으며,이 두 개의 판이충돌하면서 생긴 여파가 지속되면서 지진이 발생한다는 것.지질학자들은 인도 대륙이 약 4,000만년 전 아시아 대륙과 충돌하면서 융기된부분이 ‘세계의 지붕’인 히말라야산맥을 형성했으며,히말라야 북부에서 시작된 충돌의 여파는 러시아 극동,중앙아시아 아랄해,태평양연안까지 미치고 있다고 설명한다.
  • [대한칼럼] ‘나무를 심은 사람’

    프랑스 작가 장 지오노의 아름다운 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을 다시 읽는다. 프로방스 지방 산악지대를 ‘나’는 걸어간다.1913년이다.사흘째 되는 날 도착한 곳은 “보기에도 참혹한 폐허”였다.벌집 같아 보이는낡은 집들,허물어진 교회가 간신히 옛 모습을 이야기할 뿐,사람의 자취는 사라진 지 오랜 듯싶다.물을 찾아 헤매다가 다시 걷기 시작한지 다섯시간만에 50대 중반의 양치기를 만난다.뜨거운 햇살과 거센바람이 모든 것을 집어 삼킬 듯한 곳,아무런 희망도 가질 수 없는 곳에 살고 있는 단 한 사람이다. 엘제아르 부피에라는 이름의 그는 쇠막대기를 지팡이 삼아 산을 오르내리며 그 지팡이로 땅에 구멍을 파고 도토리를 심는다.지난 3년간 10만개를 심었으나 2만개만 싹을 틔웠고 그중 절반인 1만그루가 살아 남았다.“30년 후에는 1만 그루의 떡갈나무가 훌륭하게 자라 있겠군요”하고 내가 말하자 그는 조용히 대답한다.“혹시 신께서 나를더 살게 해 주신다면,그 사이 계속 나무를 심을 수 있다면 지금의 1만 그루는 큰 바다 가운데 한 방울의 물에지나지 않을 것이오” 다음해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5년만에 전쟁터에서 돌아 온 나는 다시 그곳을 찾는다.무수한 죽음을 목격한 탓에 그가 죽었을지도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살아서 계속 나무를 심고 있었다.떡갈나무는 내 키를 훨씬 넘게 자랐고 너도밤나무와 자작나무까지 싱싱하게자라고 있었다.1945년,그가 87세 때까지 묵묵히 나무를 심는 모습을나는 계속 지켜 보았다.그렇게 그가 일군 숲은 ‘ 큰 바다’가 돼 사나운 바람을 잠재우고 시냇물을 흐르게 하고,온갖 새와 짐승과 사람이 깃들어 사는 낙원으로 변한다.그가 워낙 말없이 그 일을 해냈기때문에 세상은 그 숲이 저절로 이루어진 것으로 안다. 이 소설을 다시 읽는 것은 지금 우리 사회가,엘제아르 부피에가 나무를 심기전의 황무지처럼 황폐해져 가고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민주당 의원의 자민련 이적으로 지난 연말부터 얼어붙기 시작한 정치권은 거의 동파(凍破)지경이다.대통령의 연두기자회견도,야당총재의 회견도 이 얼음장을 녹이지 못했다.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의 안기부 예산횡령사건으로 정치는 마비됐다.철저한 수사를 통해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할 엄연한 범법행위가 정쟁의 대상이 돼여야가 서로 상대를 비난하고 있을 뿐이다. 연초부터 최근까지 계속된 폭설과 혹한에 드러난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모습도 절망적이다.불가항력의 천재(天災)라고는 하지만 허술한 인프라와 복지부동의 행정은 인재(人災)를 덧붙였다.더욱 가슴 아픈 것은 영혼마저 찌든듯 각박해진 우리 자신을 확인한 것이다.자기 집앞 눈도 치우지 않은 채 구청에 항의전화를 하고,월동장구도 갖추지않은 채 경찰의 교통통제를 무시하며 먼저 가려던 얌체족들로 인해,수많은 사람들이 빙판길에 넘어져 골절상을 입고 대관령을 비롯한 전국의 도로들이 마비됐다.대한매일 뉴스넷의 여론조사에서 네티즌의 75%가 “한국에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대답한 것은 충격적이지만 우리 사회의 황폐함을 드러낸 것인 듯싶다. 물론 엘제아르 부피에 같은 사람이 우리 주위에도 있다.마을 사람들이 숯을 구우며 숲을 파괴하고,서로 으르렁거리며 티격태격 싸우면서,분별 없는 야심과 경쟁심만 가득 품고,어떻게 해서라도 그 땅을 빠져나가려고 했던 곳에 홀로 남아 황무지를 낙원으로 바꾸는 기적 같은 일을 해 낸 그 사람처럼,묵묵히 자기 일을 성실하게 해내면서 우리사회를 지키는 사람들도 많다. 참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보통사람들이다.그들이 좌절하지 않고 계속 ‘희망의 나무’를 심어가기 바란다. 남의 탓 만 하고 자기 잘못은 되돌아 보지 않는 사람,자기 눈에 박힌 대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의 티끌만 찾아 내는 사람들도 ‘나무를 심은 사람’을 읽고 엘제아르 부피에를 닮아가면 좋겠다. [임영숙 논설위원실장]ysi@
  • [굄돌] 올바른 자녀교육

    이케하라 마모루(池原衛)라는 일본인은 26년 동안 한국에서 생활하며 느낀 점을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한국인 비판’이라는책으로 펴낸 바 있다.이 책에서 그는 한국인의 자녀교육은 ‘망나니로 키우는 가정교육’이라고 매우 통렬한 비판을 가하였다.외국인이우리의 약점을 지적했기 때문에 씁쓸한 생각도 들었지만 수긍이 가는대목이 많다. 우리는 식당,기차,목욕탕 등 공공장소에서 함부로 떠들고 버릇없이행동하는 아이들,그리고 이를 말리지 않고 방관하거나 오히려 대견해하는 부모들을 심심치않게 볼 수 있다. 주변에서 너무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라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경향까지 생기게 되었다.우리의비뚤어진 자녀교육, 잘못된 가정교육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우려의 소리조차 한가롭게 들린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부모가 말과 행동을 일치시켜 정직,친절,청결,책임,예절,단합 등을 자녀교육의 덕목으로 설정하고 가정에서 이것들을철저하게 가르치고 있다.이러한 일본인 특유의 자녀교육은 매사를 철저하고 빈틈없이 처리하는 책임감, 개인보다는 사회와 국가를 중시하는 단합정신,친절과 애교가 넘치는 예절 등이 기업정신으로까지 승화되어 전쟁의 폐허에서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우리나라 가정에서 자녀교육은 어머니의 몫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아버지는 “교육문제는 애들 엄마가 알아서 하겠지”하며 아예 신경을 쓰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자녀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엄마의 탓으로 돌리기 일쑤다.아버지들은 직장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또 집안 일은 여자의 일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자녀교육을 등한히 한다. 우리의 자녀교육이 잘못된 데는 아버지의 무관심이 큰 몫을 했다고본다.자녀교육에 관하여 이 시대의 아버지들은 온고지신(溫故知新)을실천해야 한다.즉,‘엄부자모(嚴父慈母)’라는 우리의 전통적인 가정교육 정신을 되살려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가정교육의 중심에서 당당한 권위를 지키고,어머니는 따스하고 섬세한 보살핌으로 아이들의 심성과 덕성을 키워 나가야 한다. 동시에 무엇보다도 자녀들을 바르게 키우기 위해서는 부모가매사에모범을 보여야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하겠다. 염홍철 대전산업대 총장
  • 길섶에서/ ‘죽은 놈은 나다’

    여야 영수회담의 결렬로 소한(小寒) 한파가 더욱 춥다.불투명한 정국은 끝이 안 보인다.남북한관계도 남쪽의 경제난국으로 속도조절이불가피할 것 같다.분단의 얼음벽이 아직도 깨지지 않은 가운데 남남갈등도 만만찮다.남이야 어찌됐든 나만 잘 되면 된다는 집단 이기주의도 주변에 똬리를 틀고 있다.1957년에 펴낸 안장현의 첫 시집,‘어안도(魚眼圖)’가운데 ‘6·25의 폐허’를 단 3행으로 농축한 ‘전쟁’이라는 매우 짧은 시가 있다. “겨누는 것은 분명히 적이라는데 적이 아니라 나다/ 포탄은 터져날아 갔는데 적의 심장을 뚫었다는데/ 죽은 놈도 자빠진 놈도 그것은나다” 계간지 ‘한글문학’을 40여년간 고집스럽게 펴내온 안장현은 올해73세로 부산대 국문과 교수를 역임했다.그는 시를 쓸 때면 온몸이 긴장되고 끙끙댄다고 술회한다. 여든 야든,남이든 북이든 ‘주적(主敵)’을 헐뜯고 때리고 거꾸러뜨리려고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거꾸러진 것은 주적이 아니라 바로나였다는 사실을 이 시는 깨우쳐 주고 있다. 이경형 수석논설위원
  • [각료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 / 역사의 진보

    영국의 역사학자 E.H.카(1892∼1982)는 역사를 두 가지 실체로 구분한다.역사의 진보 하나는 사건 그 자체요,다른 하나는 사건의 기록이다. 역사를 어떤 눈으로 보든 한가지 분명한 것은 역사라는 이름의 강은 마르지도 끊기지도 않는,기나 긴 과정의 연속이라는 사실이다.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끊임없는 역사의 사슬로 연결되어 있다.역사의 연결성을 강조하는 카의 말이다. 역사를 어떻게 정의하든 우리가 희구하는 역사는 진보하는 역사이다.진보하는 역사는 일어나는 역사이고,뻗어나는 역사이다.그것은 필연적으로 변화를 동반한다.그리고 진보적인 변화는 가치있는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이런 점에서 역사의 진보는 가치 있는 변화의 연속을의미하는 것이다. 어떤 변화가 가치 있는 변화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은 간단하지 않다.사람에 따라,시대에 따라,그리고 나라에 따라 가치판단이 다르기 때문이다.하나의 변화를 놓고지배계층과 민중,엘리트와 대중,보수와 진보의 시각이 다를 것이다. 카는 말한다.어떤 집단에게는 몰락의 시대로 보이는 것이다른 집단에게는 새로운 진보와 시작으로 보이는 일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가장 역설적인 점은 제국주의자들은 인간의 인간에 대한 정복을 진보로 보았다는 사실이다.자연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역사에서도 강한 종족이 약한 종족을 정복하고 교화시키는 것이 진화의 역사이고,진보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제국주의는 서구 문명의 강제 수출이었지만 제국주의자들은 이를 문명의 진보로 미화시켰다.버나드 쇼는 ‘만일 동양인들이 자기 나라에 평화적 통상과 문명 생활을 촉진할 여건을 조성할 능력이 없다면,그 여건을 조성해주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을 계기로 제정 러시아가 붕괴하고 공산체제가 들어선 것은 큰 변화였다. 그러나 지금의 시점에서 그것을 가치 있는 변화로 보는 사람은 러시아에서도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소비에트 체제의 붕괴는 분명히사회주의의 장례식인 동시에 새로운 진보의 시작을 의미한다. 로마의 멸망은 로마인에게는 분명 가치 없는 변화였을 것이다.그러나 로마의 폐허 속에서 중세 문명이 꽃필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것은 명백히 가치 있는 변화이다. 이런 의미에서 가치 있는 변화란 어떤 형태로든 역사의 진보에 기여하는 변화를 말하며,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점은 지금 우리는 이런 변화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관계가 극적으로 바뀌면서 민족사의 여명이새로이 밝아오고 있지 않은가. 金浩鎭 노동부장관
  • 세브란스병원 후두암환자 발성발표회 잔잔한 감동

    “사랑한다는 말은 많이 하고 술과 담배는 제발 줄이세요” 정복기(鄭福基·61·경기도 안양시 안양동)씨는 19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안·이비인후과병동 지하 1층 청파회의실에서 열린 음성재활교실 2학기 종강식에서 금속성이 섞인 목소리로 이같이호소했다. 종강식에는 과도한 흡연 등으로 후두암에 걸려 후두 절제수술과 함께 정상적으로 발성할 능력을 상실한 환자 5명이 식도(食道)를 이용한 발성 성공사례를 발표,잔잔한 감동을 자아냈다. 지난해 9월 수술을 받은 김영용(金榮龍·56·서울 강남구 개포동)씨는 “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며 흘러간 대중가요 ‘황성 옛터’ 가사를 읊조린 뒤 “이젠 비관하지 말고 우리보다 못한 장애인들도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꿋꿋하게 살아가자”고 말해 박수를 끌어냈다.환자들은 짧게는 6개월,길게는 3년여 동안 초등학교 1학년 국어교과서에 나오는 ‘바둑아 바둑아’‘순이야 놀자’ 등의 단어들을 반복해 읽으면서 발성훈련을 했다.이들은 수술 당시 목 아래에 낸 구멍을 통해 정상인의100분의 1도 안되는 양의 공기를 들이마신 뒤 복압(腹壓)을 이용,공기가 식도를 거쳐 후두가 있던 부위를 진동시키는 방법으로 목소리를 낸다. 수술 후 벙어리가 됐다는 소외감에 시달려온 이들은 훈련 과정에서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참기 어려워 비지땀을 흘리는 등 숱한 어려움을 헤쳐왔다. 국내에서는 유일한 발성연구모임인 연성회(延聲會)가마련한 이 자리에는 김광문(金光文) 이비인후과장을 비롯한 의료진과 간호사,환자 보호자 등 30여명이 참석했다.국내 발성재활의 선구자로 불리는 변군헌(邊君憲·80) 회장은 발성법을 익히기 위해 90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후적자회(喉摘者會)에서 교재를 들여온 뒤 97년처음으로 모임을 만들었다. 송한수기자 onekor@
  • 대한매일을 읽고/ ‘해외 항일 유적지‘ 민족정신 확립에 보탬

    대한매일 12월6일자 6면에 실린 [해외 항일 유적지를 찾아서…]를 읽고 머나먼 이국 땅에서까지 조국독립의 의지를 꺾지 않은 채 투쟁한독립투사들의 강인한 민족혼과 조국사랑을 보았다. 내선일체를 앞세운 일본의 무자비한 탄압과 악랄한 식민정책에도 굴하지 않고 민족적 근간을 유지하며 광복의 날을 맞기까지에는,외지에서도 항일운동에 힘쓰면서 조국 동포에게 민족정신을 일깨워준 항일독립군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우리에게 크나큰 자랑이 되는 이런 항일유적들이 무관심 속에서 그냥폐허로 변해버린다는 사실은 큰 안타까움이 아닐 수 없다. 역사 고찰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선 민족정체성 확립은 기대하기 어렵고,나라가 영속적으로 발전하는 데도 적지않은 지장을 주리라 생각한다. 이런 항일운동 전적지를 찾아 그들의 숭고한 뜻을 되새기는 일이야말로 민족정신 확립에 큰 보탬이 될 것이다. 자유언론 정신으로 과거 항일운동 선봉에 선 민족정론지 대한매일의기획의도가 돋보이는 연재물이 아닌가 생각된다. 유재범[대전 중구 부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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