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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문화재 만정 이소희(이세기의 인물탐구:62)

    ◎맑고 구성진 목소리 “당대의 명창”/13세때 이화중선 소리에 매료… 송만갑 문화 입문/19세때 「춘향전 전집」 내고 72년 미 카네기홀 공연/“팔순기념무대 열어 사그라진 목소리 펼쳐 보이고파” 「천지 삼겨 사람이 나고,사람 삼겨 글만글저,뜻정자 이별별자 어이허여 내셨던고.뜻 정자를 내셨거든 이별 별자를 없었거나…’ 이는 「춘향가」중 「옥중장탄」이다. 「천지삼겨」는 정정렬 바디로 박녹주이후 만정 김소희만이 꿋꿋한 옛맛을 이어받고 있다. 널리 알려진대로 만정은 국악의 대가이자 우리가 세계에 자랑해 마지않는 인간문화재다. 만정을 둘러싼 찬사는 책한권을 꾸며도 넘칠 것이다. 이대교수이며 국악작곡가인 황병기는 그의 소리를 「가을밤 기러기소리」에 비유했고 음악평론가 서우석은 「낭랑하고 확실하게 뻗어나가는 절세의 명창」,소설가 박경수는 「민족의 한이 담긴 애원성의 절창」으로 표현하고 있다. 과연 만정은 그 음색이 맑고 차가우면서도 그 안에 이른 봄의 매화향기를 머금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더구나 그의 비절한 계면조는 억지 눈물을 강요하는 청승푸념과는 달리 안으로 한을 참아낸 고고한 유열이 깃들여있다. 이는 곧잘 강주 사마의 청삼을 눈물로 적신 「비파행」의 한구절에 비유되어 「옥반에다 크고 작은 구슬을 떨어뜨리듯」 「홀연 은병이 깨지며 물줄기 쏟아져내리듯」 애절한 사연이 굽이굽이 엮어지고 우조 또한 「철갑두른 기마병이 돌격하여 창칼을 부딪치듯」 웅장청원과 기염만장을 토해낸다. 1936년 일본 빅터레코드가 출반(서울음반 복각)한 「춘향전 전집」을 들어보면 열아홉살의 앳된 목이지만 또박또박한 발음이 청순하고 수줍은 느낌을 살려 그의 가락위에서 듣는 이의 흥취가 잦아들고 휘몰아친다. ○동·서편제 나눔은 무리 애원성의 진양조로 인해 만정은 서편제의 일인자로 손꼽히고 있지만 넉넉하면서도 화평한 평조와 경드름 설렁제를 두루 구사하여 어느 한 창제에 그를 못밖는 것은 무리가 아닐수 없다. 명인의 자질은 무엇보다 타고 난 소리와 홍진을 뛰어넘는 격조라면 이를 고루 갖춘 이가 아마도 만정일 것이다. 만정은 무대에서 관중을 압도하는 자태와 인물과 예인으로서의 조건에서 한치의 허점도 찾아볼 수 없다. 「노래를 하다보니 노래가 모두 시라 가사와 창을 올바로 알고 노래부르기 위해」 그는 등불을 돋워놓고 고전을 탐독하고 묵필을 가다듬어 묵정 그윽한 속에 노래의 진수를 아로새겨왔다. 여기에 가야금 거문고와 양금 살풀이춤이 뛰어나 그에게 가야금 가락을 닦아주던 김윤덕은 「만정은 창의 최고이지만 만약 가야금을 했다면 누구도 미치지 못할 명인이 되었을것」을 아쉬워했고 원로국악인 성경린은 「김소희의 춤은 소리보다 뛰어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의 판소리 더늠은 방정하고 단아하다.그리고 단순한 득음이 아닌 심득의 창성으로 관중을 사로잡아 지금까지 그가 공연한 판소리 무대는 흥청거리지 않은 것이 없었다. 공연이 있는 날은 자주 댕기들인 쪽진 머리에 옥비녀,옥색치마로 화사하게 단장하고 쥘부채 하나만으로 만마를 다스리고 천하를 호령한다. 수많은 공연중에서도 지난 84년 동아일보가 주최한 명인명창초대 공연은 그의 판소리의 위력이 얼마나대단한가를 한눈에 증명한 감동의 무대였다. 그날의 청중은 대학생에서 직장인,멀리 지방에서 올라온 촌로에 이르기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을 구름같이 메웠고 객석은 시종 박수와 추임새로 「국창」에 대한 예우를 지켰다. 만정 역시 칠순을 눈앞에 둔 나이와는 상관없이 정확한 발음에 적절한 극적표현 그리고 구성진 수리성과 질감이 풍부한 방울목으로 목을 굴려 공연이 진행되는 2시간을 정교하게 수놓아갔다. ○전 일본 순회공연 가져 특히 「춘향가」중 「오리정 이별」대목은 자진모리 장단을 엇박으로 바꾸면서 원박으로 되돌아가 중모리로 마무리짓는 상성의 극치를 보였다. 이 대목에 이르면 아무리 「소리는 타고나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의 소리목에 깃든 공력앞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런 공연은 그의 전성기인 60∼70년대에 미 카네기홀과 링컨센터에서의 기립박수를 꼽을수 있다. 또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초청한 전일본 순회 공연도 한국 국창의 긍지를 마음껏 과시한 역사적 무대의 하나다. 만정은 평소 겸허하고 따사로우나저속하고 부당한 천격을 용납하지 않는다.후학들이 실수로라도 경박한 언행을 저지르면 그 자리에서 엄히 나무라고 자세를 바로잡아준다.그러나 사소한 일에 연연하거나 사적인 인맥으로 사람을 평가하기보다 상대방이 지닌 기량과 미점을 적소에 둘줄 안다. 예를들어 국악계는 계보에 엄격한 편이지만 그는 자신이 키운 성창순을 정권진에게 보내 강산제를 이어받게 했고 신영희를 박초월에게 소개하는등 그 스승의 좋은 대목을 제대로 배울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2년전 동숭아트홀에서 외동딸인 박윤초가 판소리 독창을 열었을때는 딸에게 『너 비위도 좋다.그 소리를 가지고 어떻게 노래하느냐』고 나무라면서도 막상 공연날은 무대에 나와 『아직 미거하나 후진을 키운다는 뜻에서 격려해달라』고 부탁하기를 잊지 않았다.후계자 자리를 딸에게 물려주게 되느냐는 문제도 『제가 잘하면 물려줄 것이요 잘못하면 어쩔수 없다』고 냉정한 면을 지킨다. 만정은 이제 국악계의 어른으로서 국악이 발전되어지는 과정을 그 한가운데서 지켜보는 위치다.지난해 신병으로 협회이사장 자리를 물러나면서 『원래 이사장 자리라는 것은 국악실력보다는 단체를 잘 이끌고 운영할수 있는 실무자가 바람직하다』는 이유로 이성림을 추천했고 이사장 선출로 야기될 마찰을 미연에 방지하는 결단을 보였다. 만정의 어린시절은 모든 「끼」있는 예인의 삶이 그러하듯 모진 가난과 슬픔의 기록이 점철된다. 판소리의 태두인 동리 신재효를 배출한 고창 흥덕에서 출생,부모의 불화로 부친은 타관으로 떠돌고 모친마저 친정으로 가버리자 친척집에 얹혀서 고아처럼 자라났다. ○「천에 하나」 어려운 천재 광주여고보에 들어간 13살 되던해 당대 명창이던 이화중선의 공연을 보고 장래 「소리하는 사람」이 될것을 결심했고 동편제 소리의 대가인 송만갑문하에 입문한지 1년만에 남원명창대회에서 1등,송만갑은 미려청아한 소리를 지닌 어린 소녀를 향해 「천에 하나 나오기 어려운 천재」임을 인정하여 수업료도 받지않고 그의 모든 것을 전수시켰다. 이어서 정정렬에게 「춘향가」를 비롯,화순의 박동실에게 「수궁가」「적벽가」,김계문에게 향제가곡을 사사하고 이승환에게 거문고,강태홍 김윤덕에게 가야금등 금과옥조와도 같은 스승들을 거치면서 국악의 가시밭 길을 무난하게 헤쳐나갔다. 21살에 결혼하여 10년만에 부군을 잃고 3남매를 혼자서 키우면서 속창 속악의 천시속에서 서너명을 앉혀놓고 공연을 한적도 있고 조선창극단 시절에는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내용때문에 왜경에게 붙잡혀 유치장 신세를 진적도 있다. ○소희이름 이모가 지어 조선성악연구회에 드나들던 소녀시절 본명 김순옥을 버리고 이모인 김남수씨가 지어준 「소희」란 이름을 가졌다.아호 「만정」은 「날이 갈수록 잔잔히 이름을 날리라」는 뜻으로 사주를 보는 이가 지어준 것이다. 만정은 지난 25년간 살았던 종로구 화동 골목안의 한옥을 떠나 84년 삼청동 쪽에 위치한 소격동으로 이사하면서 비로소 연탄불갈기에서 벗어났다. 지금도 결혼하지 않은 아들(준석·46·상업)과 둘이 살면서 손님이 오면 손수 문을 따주고 제자를 가르치고 밥짓고 빨래한다. 그만큼 그의 생활은 궁핍이 펼날이 없이 조금이라도 여유가생기면 가난한 제자들을 데려다 가르쳤다.지금은 국악계의 중진이 된 김소연 안향련이 그들이고 영화 「서편제」로 스타가 된 오정해는 8년간 이집에 머물면서 그가 세운 서울국악예고를 나왔다. 찬연한 오늘은 참담한 어제가 있었기에 얻어진 결과일 것이다. 지난 1,2년 병치레로 쇠잔해졌을 망정 그에게선 여전히 「닦은 자의 비어있는듯 차있는(수자 여하이유실)」예술불멸만이 돋보인다. 그리고 모진 시간속에서도 국창의 기개를 잃지않아 『만약 그때까지 살수 있다면 팔순 기념무대에 서서 사그라지면 사그라진대로 나의 목을 숨김없이 펼쳐보이고 싶다』고도 말한다. 한 시대를 주름잡던 화려한 흔적을 감추고 이제 역사의 뒤안길에 서려는 예인의 모습에는 자신을 끝없이 탁마하며 살아온 정제된 아름다움만이 하나의 구둣점처럼 선명하게 찍혀있다. □연보 ▲1917년 전북 고창 출생,본명 김순옥 ▲1930년 흥덕공립보통학교 졸업 ▲1932년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2년 수료 ▲1929∼34년 송만갑에게 「심청가」「흥보가」사사 ▲1936년 일본 빅터 오케이레코드 전속,「춘향전전집」취입 ▲1948년 여성국악동우회 설립 ▲1954년 민속예술학원(서울국악예고 전신)설립 ▲1959년 국악30년 김소희 판소리첫번째 독창회(서울 원각사) ▲1962년 한국국악협회 이사장,파리국제민속예술제 참가이후 해마다 세계 각국순회 공연,신호열씨에게 서예사사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제5호 판소리 기능보유자),뉴욕 아시아학회 초청 미국공연 ▲1967년부터 국전서예부 연3회입선 ▲1969년 일본 요미우리신문주최 요미우리홀 공연,전일본지역 순회 ▲1972년 미국카네기홀서 김소희 판소리독창회,뮌헨올림픽 참가공연 ▲1973년 국민훈장 동백장 수상,「심청가전집」(5장)출반 ▲1977년 불우이웃을 위한 회갑공연(서울시민회관)「춘향전」완창 출반 ▲1979년 김소희 국악50년 기념공연(세종문회회관),고향 흥덕에「만정 김소희여사 국창기념비」건립 ▲1982년 제1회 한국국악대상 수상,첫민요 발표회(공간사랑),민요전집 출반(성음사),이대 한양대 출강 ▲1984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동아일보주최 「명창 김소희 판소리의 밤 대공연」(세종문화회관 대강당) ▲1988년 서울 올림픽폐막식 공연,「김소희 구음과 민요」출반(성음사) ▲1993년 국악협회 이사장,94「국악의 해」지정기념 국악제 총지휘 ▲1994년 제1회 방일영국악상 및 11월28일 수상기념공연
  • 한국 3연속 종합 2위/히로시마 아시아드 폐막

    【히로시마=특별취재단】 육상 1천6백m 계주에서 마지막 금메달을 추가한 한국이 종합 2위를 차지한 가운데 제12회 히로시마 아시아경기대회가 16일 열전 15일의 막을 내렸다. 「아시아인의 화합」을 내걸고 42개국 7천2백여명의 선수단이 참가한 이번대회는 이날 하오 메인스타디움에서 폐막식을 갖고 98년 방콕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다. 한국은 사상 최대규모,국가가 아닌 도시 주도의 첫 대회,중앙아시아 5개국의 합류 등 아시아드에 새 이정표를 세운 이번대회에서 홈팀 일본의 집요한 견제를 뿌리치고 금메달 63개,은메달 53개,동메달 63개로 금 59개,은 68개,동 80개의 일본을 제치고 3연속 종합2위를 달성,스포츠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굳건히 했다.중국은 예상대로 독주를 거듭한 끝에 금 1백37개,은 92개,동60개를 따내 종합 4연패를 이룩했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가 홈코스의 일본을 상대로 멋진 역전승을 거두며 또한번 세계정상의 마라토너로 성가를 떨쳤으며 여자배구와 남녀 농구,축구,유도와 배드민턴 등 주요종목의 한·일 맞대결에서 대부분 통쾌한 승리를 거둬 선수단 응원에 나선 재일동포와 원정응원단을 기쁘게 했다. 이날 폐회식은 육상과 축구,배구 결승전 등 10개종목의 마지막 경기를 치른 후 메인스타디움 빅아치에서 성대하게 베풀어졌다. 메달 경쟁을 벌여온 참가국 선수들은 석별의 정을 나누며 4년후의 재회를 약속했다. 폐회식에서 이번대회 MVP인 한국의 황영조에게 이상백컵이,중국올림픽위원회에 셰이크 파하드컵이 수여됐다.아마드 OCA의장이 폐회를 선언한뒤 OCA기가 방콕대표에게 넘겨지고 OCA찬가와 평화의 시가 어우러지는 가운데 성화가 사그라들면서 일본 육상자위대의 축포로 막을 내렸다. ◎3연속 종합 2위 쾌거/대표팀에 축하메시지/김 대통령 김영삼 대통령은 16일 히로시마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종합 2위를 이룩한 한국선수단에 축전을 보내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했다. 김대통령은 축전에서 『30억 아시아인의 축제인 이번 히로시마 아시아경기대회에서 탁월한 기량과 지칠줄 모르는 투혼을 발휘하여 대회 3연속 종합2위를 달성한 쾌거를 온 국민과 함께 축하하며 선수단 여러분의 노고를 치하한다』고 말했다.
  • 히로시마 아시안게임/KBS MBC SBS/공동방송단 운영

    ◎한국선수 활약상 생생히 전달/공동중계외 독자팀 조직,다양한 특집도 오는 10월2일부터 보름동안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제12회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각 방송사는 중계방송준비에 박차를 가하고있다. 이번 아시안게임은 지난 90년 북경 아시안게임에 이어 KBS·MBC·SBS 방송3사가 한국 공동방송단을 조직해 대회 전기간동안 우리나라선수들의 활약상을 국내 시청자들에게 생생히 전해준다. 현재 각 방송사에서는 50여명씩의 중계방송단을 차출해 1백50여명 규모의 풀방송단을 조직,각 방송사별로 종목을 나눠 맡았다.이에따라 개막일인 10월2일 낮 12시10분의 개막식과 10월16일 하오6시의 폐막식을 비롯해 한국팀이 벌이는 각 종목의 결승전등 주요경기들이 큰 시차없이 각 방송 채널을 통해 생중계된다. 하지만 일본의 주관 방송사인 NHK와 TBS가 15개 주요 종목만을 국제신호로 제작 공급하기때문에 생중계되는 종목은 한국 공동방송단이 독자적으로 현지 제작방송하는 레슬링을 포함,16개 종목으로 국한된다.이때문에 양궁·태권도등 우리가 관심을 갖는종목은 각 방송사가 현지에서 ENG카메라로 녹화해 국내로 공수해야한다.다소 시간이야 지체되지만 일본과 우리가 「지척간」이기때문에 시청자들이 큰 불만을 느낄 정도는 아니다. 이와함께 각 방송사는 공동방송과는 별도로 각 사별로 특색있는 기획취재등을 위해 방송사 개별팀도 파견하고있다. 현재 각 방송사의 중계방송계획을 살펴보면 MBC의 경우 공동방송단 요원이외에 독자팀도 운용해 매일 낮에는 3시간 30분∼5시간 30분동안 주로 생중계로,밤에는 자정부터 2시간동안 주요경기를 녹화해 방송한다.30일 하오에는 특집물 「히로시마 아시아드」도 내보낸다.MBC는 34개 종목의 경기일정을 휴대용 PC로 검색할 수있는 경기일정 컴퓨터 프로그램인 「학」(HAG=Hirosima Asian Games)시스템도 제작했다.또 42개 참가국의 각 종목 선수 정보를 자동으로 출력할 수 있는등 자막방송에 필요한 「스포티아 C.G」장비를 일본에서 직접 운용한다. KBS는 현재 공동방송단으로 부터 수신하는 경기를 줄 생방송을 중심으로 방송하며 「전국은 지금」 프로그램에 아시안게임 코너를 신설한다.낮에는 1·2TV가 각각 2시간30분∼5시간30분씩 생중계하며 심야에는 하이라이트를 1∼2시간씩 녹화방송한다.이밖에 라디오를 통해서도 수시로 아시안게임 소식을 전한다. SBS는 공동방송을 중계하는 이외에 경기중계 중간에 문화·정보·교양등 기획취재물을 삽입해 방송한다.또 10월2일 특집 「히로시마 리포트」를 특별편성하는 등 스포츠에 관련되거나 일본과 한국의 관련물등 기획특집물등을 준비하고 있다. 한편 각 방소사는 경기기간동안 저녁 정규방송시간대에도 한국팀의 주요경기를 수시로 긴급편성해 방송할 예정이다.
  • 「범민족대회」 이틀간 폭력사태/서울대서 어제 폐막

    ◎전경·학생 충돌… 182명 부상/쇠파이프 휘두르며 투석/학생/헬기 5대서 최루액 살포/경찰 14,15일 이틀간 치러진 범민족대회에서 학생들이 대회를 저지하려는 경찰에게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투석전을 벌이는 등 남총련학생들의 최근 홍익대집회에 이어 폭력시위가 재연됐다. 학생들 및 재야단체들은 14일 서울대에서 제5차 범민족대회를 강행한데 이어 15일 보고대회와 폐막식을 가진뒤 일부 학생들이 가두진출을 시도,헬기를 동원해 해산에 나선 경찰과 한때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으나 하오 6시쯤 학생들 대부분이 학교를 빠져나가 이틀째 행사는 별다른 사고없이 끝났다. 이날 경찰은 교내에 병력을 투입하는데 따른 충돌사고를 줄이기 위해 이례적으로 경찰헬기 5대를 동원,공중에서 최루액 6천ℓ를 폐막식이 열릴 예정이던 서울대 본관 잔디광장에 살포해 불법집회 저지에 나섰다. 경찰이 교내 불법집회를 막기 위해 헬기를 동원한 것은 운동권 학생들의 불법 난동집회에 강력히 대응한다는 방침에 따른 것이며 86년 건국대사태이후 처음이다. 경찰은 앞으로 운동권들의 불법 난동시위에는 헬기 등을 동원해 공중진압을 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날 보고대회와 폐막식을 저지하기 위해 하오 1시20분부터 경찰헬기를 동원,대학본부앞 잔디광장 상공에서 최루액을 뿌리며 해산을 유도했으나 참가자들은 하오 2시쯤 약식으로 10분간 폐막식을 강행했다. 학생들은 경찰의 최루액 살포에 맞서 교내 소방호스를 끌어내 공중으로 물을 뿌리거나 헬기를 향해 돌을 던지는등 격렬하게 저항했다. 경찰은 이날 서울대 주변에 70개 중대 8천여명을 배치했으나 학생들의 격렬한 저항으로 빚어질 사고를 우려,경찰병력을 교내에 투입하지 않았다. 일부 학생들은 폐막식을 마치고 쇠파이프와 돌 등으로 무장하고 학교밖 진출을 시도,경찰과 대치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범민족대회 남측추진본부(범추본·상임본부장 신창균)는 폐막식에 앞서 기자회견을 갖고 ▲미북 3단계회담의 일괄타결 ▲남북정상회담의 조속한 개최 ▲연방제통일방안 수립 ▲민간통일운동에 대한 탄압중단 ▲국가보안법철폐 및 양심수석방 등을 촉구했다.범청학련남측본부도 이날 하오 3시 서울대에서 연방제 통일방안 등을 안건으로 총회를 열고 북측본부 및 해외본부 공동명의로 합의문과 투쟁결의문을 채택했다. 이에앞서 범추본 회원과 한총련소속 학생 1만5천여명(경찰추산)은 14일하오 경찰의 저지망을 뚫고 집결한 서울대에서 대회를 강행,이를 저지하기 위해 2차례 교내에 진입한 경찰과 밤새 공방을 벌였다.이과정에서 쇠파이프 등으로 무장한 학생과 경찰이 몸싸움을 벌여 학생 75명,경찰관 1백7명등 1백82명이 부상했으며 경찰 페퍼포그 차량 1대가 전복됐다. 경찰은 범추본이 대회를 강행하자 이날 하오 9시40분쯤 최루탄을 쏘며 45개중대 5천4백여명을 투입,쇠파이프와 돌 등으로 격렬히 저항하는 대회 참가자들을 교내로 분산시킨뒤 1시간만에 학교에서 철수했다. 경찰은 그러나 교내에 흩어져 있던 학생들이 하오 11시30분쯤 대학본부앞에 재집결,대회를 계속하자 15일 0시30분쯤 병력을 투입시키는 등 밤새 학생들과 대치했다. 경찰은 이틀간 시위과정에서 67명을 연행했다. ◎90년 베를린서 태동/당국 불법행사 규정 ▷범민족대회◁ 90년11월 독일 베를린에서 남북한과 해외인사 9명이 이른바 「3자회담」을 갖고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을 결성하면서 태동된 것으로 올해 다섯번째 치러진 행사다. 범민족대회를 주관하는 상설기구인 범민련은 당초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부위원장 윤기복을 본부장으로 하는 북측본부,재독교포인 작곡가 윤이상씨를 위원장으로 하는 해외본부,한국의 남측본부등 3개 소기구로 구성됐으며 한국을 제외한 북측과 해외본부는 91년1월 출범됐다.남측에서는 그러나 당국이 이 기구를 불법으로 규정짓는 바람에 상설화되지 못하고 처음 모습대로 여전히 「추진」상태에 머물고 있다. ◎폭력 주동자들 전원 구속수사/대검 지시 대검 공안부(최환검사장)는 15일 서울대 범민족대회장에서 있었던 「한총련」소속 대학생들의 난동시위와 관련,주동자를 모두 가려내 구속수사하라고 서울지검과 서울경찰청에 긴급 지시했다. ◎불법과격시위 관련/최내무 오늘 회견 최형우내무부장관은 16일 하오 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범민족대회강행 및 한총련 소속학생들의 일련의 불법과격시위와 관련,정부의 공식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8년만에 헬기동원 시위해산/2시간 23분동안 최루액 6t 뿌려/학생들,소방호스로 물뿌리며 저항 경찰이 대학내 불법집회 참가자들을 강제해산시키기 위해 이례적으로 헬기를 동원해 관심을 끌고있다. 경찰이 대학가 시위에 헬기를 동원한 것은 지난 86년 10월 학생 1백여명의 대량구속사태를 빚은 건국대 「애학투사건」이후 처음이다.그러나 경찰은 지난 89년 현대중공업 노사분규와 최근 금호타이어 노사분규 현장에 지휘통제용 헬기를 동원한 사례는 있다. 15일 하오 1시22분 범민족대회 폐막식이 열리고 있던 서울대 본관앞 잔디밭 상공에 경찰헬기 1대가 선회하면서 빨간색 최루액을 쏟아붓기 시작했다.이에 놀란 한총련소속 학생과 대회참가자들은 영문을 모른채 혼비백산,도망가기에 바빴다. 이어 4대의 헬기가 약3분 간격으로 하오 3시45분까지 모두 12차례에 걸쳐 최루액 6천ℓ(6t)를 살포했다.이 최루액은 물과 최루가스를 80대 1로혼합한뒤 여기에다 빨간색 물감을 넣은 것으로 최루냄새가 분말보다는 덜 독하나 성능은 비슷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경찰의 뜻하지않은 공중진압에 대해 놀랐던 학생들중 일부는 본관에 설치된 소방호스를 빼내 하늘을 향해 물대포를 쏘며 저항하기도 했다. 이날 동원된 헬기는 경찰청항공대 소속 15인승·7인승 헬기2대와 경남·경북·전남경찰청에서 지원한 5인승 헬기 3대등 모두 5대. 이날 헬기를 동원한 경찰은 『서울대의 경우 진입로가 워낙 비좁은데다 전날 두차례에 걸쳐 병력을 투입했으나 쇠파이프 1천5백개 등으로 무장한 학생들이 격렬히 저항하는 바람에 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며 『부상자의 수를 줄이고 시위대를 효과적으로 제압하기 위해 불가피했다』고 밝혔다.
  • 96 애틀랜타올림픽 마스코트/“「이지」로 불러주세요

    ◎올챙이 모양 「와티짓」 혹평받자 변경/15세소년 인성부여… 인형판매 갑절로 지난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폐막식때 첫선을 보였던 96년 아틀랜타올림픽 마스코트 「와티짓」이 최근 친근한 느낌을 주는 새로운 모델 「이지」(Izzy)로 바뀌었다. 영어의 『저게 뭐지?』를 압축해 만든 이름인 「와티짓」(Whatizit)은 물방울모양의 컴퓨터 합성그림으로 처음 선을 보였을 때 이상스럽다는 반응을 받았을뿐 별로 호평을 얻지 못했었다.「다리 달린 올챙이 같다」는 혹평이 대부분이었다. 아틀랜타올림픽 조직위는 급기야 완구상과 어린이들을 불러모아 의견을 청취하기에 이르렀다.그 결과 특히 대다수 어린이들 사이에서 마스코트의 모양을 바꾸고 마스코트에 인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에따라 올림픽조직위는 마스코트의 디자인을 약간 손질해 보다 사람체취를 풍기는 「이지」를 탄생시켰다. 가족과 친구도 있는 15살짜리 소년으로 인성화한 「이지」는 얼핏보면 「와티짓」과 거의 비슷한 모습이다. 「이지」의 미국내 데뷰는 대단히 성공적이어서 「이지」가 공표되자마자 마스코트 인형의 주문이 쇄도,과거 「와티짓」보다 2배이상의 판매량을 올리고 있다.
  • 화엄경/베를린영화제 특별상 수상/알프레드 바우어상

    ◎61년 「마부」이후 처음 【베를린=황진선특파원】 한 소년의 구도행각을 통해 불교적 깨달음의 길을 그린 장선우감독의 「화엄경」이 22일 상오3시30분(한국시간) 베를린의 조 팔라스트에서 거행된 제44회 베를린영화제 폐막식에서 주요 8개상 가운데 하나인 알프레드 바우어상을 수상했다. 한국영화가 이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것은 지난 61년 「마부」의 특별상수상이후 처음이다.알프레드 바우어상은 독일 표현주의 기법의 영화를 정착시킨 촬영기사 알프레드 바우어를 기리기 위해 만든것으로 은곰상에 준하는 특별상이다. 대상인 황금곰상은 에이레 내전의 희생자들의 얘기를 담은 미국의 「아버지의 이름으로」에게 돌아갔다. 은곰상은 러시아의 「개의 해」,감독상은 「삼색‥하얀색」을 만든 폴란드의 크리지스토프 키슬로브스키 차지했다.
  • “미­북 3단계회담 성사돼도 수교협상엔 많은 난관”

    ◎크리스토퍼 미국무 【시애틀=특별취재반】 워런 크리스토퍼 미국무장관은 19일 북한이 국제핵사찰 수용및 남북대화 재개 조치를 취할 경우 미국은 북한과 광범위한 대화를 가질 것이라고 말하고 『그러나 대화와 수교사이에는 많은 단계가 있다』고 말해 미­북한 3단계 회담이 성사되더라도 수교협상 타결이 쉽지 않음을 시사했다. 아태경제협력체(APEC)각료회의 의장인 크리스토퍼 장관은 이날 APEC 각료회의 폐막식에 이어 가진 기자회견에서 『유엔제재조치와 북한과의 수교중 어떤 방향으로 나갈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이같이 답변했다. 그는 북한이 즉각적인 국제핵사찰 수용과 남북대화 재개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거듭 촉구하면서 『만약 이같은 2개 사항이 재빨리 성사되지 않을 경우 이는 협상의 실패를 의미하므로 미국은 유엔안보리에 회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엑스포시설 「과학교육의 장」 활용”/김 대통령 담화

    ◎2세국민들 꿈 키우게/1천4백만 관람엑스포 폐막 김영삼대통령은 8일 『정부는 대전엑스포의 시설과 공간을 국민의 과학화와 국제화를 위한 교육의 장으로 계속 가꾸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이날 대전엑스포 폐막에 즈음한 특별담화를 발표,『2세 국민들의 꿈을 키우는 과학공원을 꾸미고 시민을 위한 미래형 생활문화공간으로 조성할것』이라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우리는 88년 서울올림픽을 일회성 잔치로 끝냄으로써 국가발전의 기회로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면서 『대전엑스포에서 보여준 국민적 단합과 높은 과학기술 그리고 우수한 조직역량과 선진질서의식을 더욱 발전시켜 신한국 창조의 새로운 추진력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이어 『우리는 국제경쟁력을 높이고 세계와 미래로 나아가는 발판을 만들고 총체적인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변화와 개혁을 더욱 힘차게 추진해야 할것』이라고 말했다. ◎단일행사론 “최대” 93 대전엑스포가 7일 93일동안의 긴 일정을 마치고 폐막됐다.이날 하오5시30분 대전엑스포행사장 대공연장에서 열린 폐막식에는 황인성국무총리와 오명 조직위원장,테드 알란 국제박람회기구의장등 내외인사 6백여명을 비롯한 2천여명이 참석했다. 폐회식에서 황총리는 『대전엑스포는 현대 첨단과학과 전통기술이 어우러진 세계의 축제이자 우리국민의 기상과 자부심을 웅변해 준 보람의 한마당이었다』면서 『성공적으로 마친 이번 엑스포를 계기로 다같이 세계로,미래로 힘차게 뻗어나가자』며 폐회를 선언했다. 또 오위원장은 폐회사를 통해 『엑스포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93일동안 정성과 노력을 다해준 국내외 참가국의 관계자들과 국민여러분께 감사한다』고 말했다. 알란의장은 축사에서 『엑스포에서 생긴 우호와 국제협력분위기가 계속되기를 바란다』며 한국정부에 감사했다. 이날 폐막식은 대전엑스포 주제가 「그날은」이 합창되면서 태극기및 국제박람회기구기·대회기 강하,운영요원퍼레이드순으로 끝났다. 대전엑스포의 총 관람객수는 당초 목표 1천만명을 훨씬 웃돈 1천4백만5천8백8명으로 최종 집계돼국내 최대의 단일행사가 되었다.
  • 「서편제」 감독·여우주연상/상해영화제/임권택·오정해씨 영예

    【상해=황진선기자】 영화 「서편제」의 임권택감독과 주연여배우 오정해양이 제1회 상해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감독상과 최우수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세계적 규모의 첫 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가 주요부문 2개상을 동시에 수상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임감독은 이에 앞서 86년 베니스영화제,87년 몬트리올영화제,89년 모스크바영화제에서 각각 여우주연상을 획득한 「씨받이」「아다다」「아제아제 바라아제」를 연출,국제영화제에서만 4번째 수상작을 내 세계적인 감독으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한편 모두 5개 부문의 상이 수여된 이번 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은 대만의 「침묵의 산(감독 왕통)」에게,최우수남우주연상은 벨기에영화 「베인즈」의 장 디클레어에게,심사위원특별상은 홍콩영화 「케이지 맨(감독 장지량)」에게 각각 돌아갔다. 최우수작품상을 탄 「침묵의 산」은 일제치하 대만의 광산촌을 배경으로 광원과 그 가족들의 끈질긴 저항정신과 생명력을 그린 작품이다. 심사위원장인 중국의 시진감독은 14일 하오 상해대광명극장에서 폐막식을 겸해 수상작을 발표하면서 『서편제는 한국적이면서도 동양적인 정서를 뛰어나게 표현한 작품』이라고 격찬했다. 이번 상해영화제에는 31개국에서 모두 1백60개 작품이 출품돼 19개국 19개작품이 본선에 올랐었다. 이번 영화제의 심사위원은 ▲중국의 시진(위원장) ▲홍콩의 서극 ▲일본의 나기사 오시마 ▲브라질의 헥토르 바벤코 ▲미국의 올리버 스톤▲호주의 폴 콕스 ▲러시아의 카렌 샤카나자등 7명으로 구성됐다.
  • 총리상/「좀상날 억지다리 뺏기」/전국 민속예술경연 폐막

    【청주=이용원기자】 민속예술의 큰잔치 제34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가 8일 하오 충북 청주 종합운동장에서 막을 내렸다. 이번 대회의 대통령상은 충남의「결성농요」가 차지했으며 국무총리상은 강원도의 좀상날억지다리뺏기」가 받았다.이날 폐막식에는 이민섭문화체육부장관이 참석해 시상했다. 「결성농요」는 충남 홍성군 결성면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농사소리로 심사위원들로부터『농요의 다양성이 충분히 발휘된 높은 수준의 노래』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 문화체육부장관상에는 ▲경북 금릉빗내농악 ▲함남 토성관원놀이 ▲전남 대화들노래 ▲충북 동평들노래 ▲경남 거창삼베일소리가 뽑혔다. 이밖에 공로상은 ▲광주 광산들노래 ▲경기 왕곡동제 ▲부산 동래고무가,장려상은 ▲대구 서촌상여소리 ▲인천 두루메기떼뜨기잡이,입장상은 서울 만리현돌팔매놀이가 각각 받았다.개인연기상은 ▲대화들노래의 박균찬씨 ▲빗내농악의 손영만씨 ▲거창 삼베일소리의 송봉임씨에게 각각 돌아갔다.
  • 의회경비대 무장해제령/옐친/모스크바 병력 3천명 배치

    ◎보수파 정부건물 공격땐 사살명령 【모스크바=이기동특파원】 러시아 의회에 대해 해산포고령이 내려진 가운데 정국의 대세를 장악하고 있는 보리스 옐친대통령은 24일 의회경비대에 대해 무장해제를 지시한데 이어 모스크바일원에 진압병력을 속속 배치시키는 등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이에 맞서 보수파 의회측은 이날 이틀째 인민대표자회의를 속개,옐친의 헌정중단조치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했으나 예브게니 암바르추모프 외무위원장이 오히려 사퇴하는 등 균열조짐이 가속화되고 있다. 옐친 대통령은 이날 긴급명령을 통해 모스크바에서 무기가 사용되는 것을 막기위해 최고회의건물의 경비병들로부터 무기를 회수하라고 국방부와 내무부장관에 각각 지시했다. 이와관련,파벨 그라초프 국방장관은 이날 『통합군 총사령부 피습사건 이후 모스크바 시내에 3천여명의 병력을 배치했다』며 옐친의 의회해산령 이후 처음으로 병력의 배치사실을 시인했다. 빅토르 예린 내무장관도 『의회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병력을 증강하고 있으며 의회경비대에 대한 무장해제를 설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보수파측 국방장관의 한 측근은 『의회 경비대원들이 무기를 반납하지 않고 있다』고 밝히고 『그들은 의회건물의 방어를 위해 계속 무기를 보유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 무장해제를 놓고 양진영 사이에 충돌이 우려되고 있다. 옐친대통령은 그러나 이날 독립국가연합(CIS)지도자회의 폐막식 참석차 한 호텔에 도착,『누구도 의회건물에 대해 무력을 사용하고 있지 않으며 또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며 의회해산에 무력을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아나톨리 크라시코프 대통령대변인도 25일 상오 5시(현지시간)까지 경비병력이 철수하지 않을 경우 군병력으로 하여금 러시아의회건물을 공격하라는 명령은 내린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한편 정부건물에 대한 공격이 다시 발생할 경우 경고없이 사살할 것을 콘스탄틴 코베츠국방차관이 명령했다고 이타르­타스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 범민족대회 폐막/산발적 가두시위

    「범민족대회 남측추진본부」(본부장 강희남목사)는 15일 하오 한양대 노천극장에서 「제4차 범민족대회」폐막식을 갖고 이틀간의 일정을 끝냈다. 이 대회에 참석했던 「한총련」소속 대학생 8천여명은 이날 서울역·명동·신촌로터리등 시내 곳곳에서 밤늦게까지 산발적인 가두시위를 벌였다.
  • 외교무대의 “탈격식”바람/양승현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아·태지역의 새로운 안보질서를 창출하기 위해 18개국 외무장관들이 참석,수많은 다자·쌍무간 회담을 갖는데도 그 모습이 매우 일상적이다.이른바 「6+7」·「6+1」회의로 불리는 회담들도 이상하리만치 격의없이 진행되고 있다.지금은 외교사적 위치를 가늠하기 힘들지만 이들 회의는 냉전종식후 아시아지역의 새로운 안보틀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중국·러시아가 처음 참가했고 멀지않아 캄보디아·라오스등도 참가할 게 확실시 돼 현지언론들은 역사적 의미부여에 서슴지않고 있다. 그런데도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에 가까운 변화를 느끼게 한다.하나는 국제사회의 불가측성이며 다른 하나는 실무적(business­like) 외교패턴이다.24일 한·러외무장관회담과 아세안 각료회의(AMM) 폐막식이 그 대표적 예이다. 한승주장관은 중앙의자에 앉았고 코지레프러시아외무장관은 그 양옆에 놓인 길다란 소파의 가장자리에 자리했다.비록 5∼6평 크기의 좁은 방이지만 중앙에 두개의 의자를 나란히 놓음직한데 그러지 않았다.『중앙의자 사이에 탁자를 놓을수 있는 공간이 없어서였다』고 관계자는 설명하고 있으나 새로운 변화임에 분명하다.AMM회의의 폐막식 모습은 법정의 재판관과 피고인석을 연상케 했다.아세안 6개국은 재판관처럼 테이블이 있는 높은 좌석에,중국·러시아등 초청국가는 단하의 「피고석」에 앉아 회의를 끝냈다. 한때 세계를 풍미하던 주은래나 그로미코외상의 모습을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NO」맨으로 불리던 은발의 그로미코외상이 소파 가장자리에 앉아 웃으며 자연스레 얘기할수 있었을까.상상조차 되지않는데도 오늘의 중국과 러시아 외무장관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렇게들 하고있다. 양자간의 대화도 정형이 없긴 마찬가지이다.25일 하오로 예정된 한·필리핀외무장관회담은 양국장관이 한 조가 되어 골프를 같이 친 것으로 끝내버렸다.크리스토퍼 미국무장관과의 회담도 역시 비슷한 모습으로 치러졌다.두사람은 이미 비공식만찬 때도 30분 가까이 현안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서로 필요에 따라 상황에 맞게 만나고 헤어진다.거추장스러운 의전이나 조정의 모습이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그리고 예전의 강국이 오늘도 강국이진 않다는 냉엄한 현실이다. 국제사회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발빠르게 변하고 있다.
  • 아태경제권 한국위상 제고/PBEC총회 이모저모

    ◎대만과 경협 새 활로… 북한불참 아쉬움 26일 폐막된 태평양경제협의회(PBEC) 서울총회는 현재 세계경제의 양대 조류라 할 수 있는 자유무역주의와 지역주의의 조화 가능성을 제시했다. 지역주의가 배타적 성격을 띨 경우 오히려 세계무역의 위축과 보호주의의 확산을 초래할 것이라는 데 참석자들이 의견을 같이 한 점이나,지역주의가 세계주의로 가는 중간단계로서의 기능을 다하기 위해 개방적 성격을 띠어야 한다는 합의는 세계 경제질서의 새로운 흐름으로 인식됐다. 민간기구의 행사임에도 각국 정상들과 통상관계 장관들이 참석해 경제인들과 함께 해외투자 유치,교역확대등을 위해 바쁜 활동을 펼친 것은 냉전 종식 이후의 달라진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다.특히 김영삼대통령은 정상포럼에서 새정부의 통상·외교정책을 자연스럽게 천명,아·태지역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였다. 주요 경제이슈에 관한 분과위원회와 브리핑회의를 통해 아·태지역의 공동 관심사를 논의하고,러시아와 중국의 투자환경·동남아국가연합(ASEAN)의 경제여건·중남미 국가의경제성장등을 확인한 것도 큰 성과였다. 이번 총회 기간중 우리기업들은 참가 회원국들과 활발히 접촉,구체적인 경협을 이끌어 냈으며,특히 수교단절 이후 서먹했던 대만이 대규모의 대표단을 파견함으로써 한·대만 경협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참여의사를 밝혔던 북한이 끝내 불참한 것과 비록 구속력은 없다 하더라도 쌀시장 개방을 포함한 식량교역의 자유화 문제가 공동성명으로 채택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나카소네 전일본총리는 총회 폐막식 기조연설을 통해 미·일의 무역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 삼각무역 방식을 제안,관심을 끌었다. 일본은 아시아 지역 국가로부터의 수입을 더욱 확대하고 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으로부터 수입을 확대,자연히 무역의 밸런스를 맞추어 나간다는 것이 나카소네 전수상의 구상.PBEC 국제부회장 밀턴 패어씨는 『효율적인 생산을 가져오는 다자간 통상원칙과 같은 맥락』이라며 공감을 표시.이번 회의 조직위원장인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도 『나카소네 전수상의 삼각무역은 세계의 교역규모를확대시키고 역조 시정에 큰 도움이 될것』이라며 동조. ○…태평양경제협의회(PBEC)구평회 국제회장은 26일 폐회사에서 『이번 총회는 지역주의와 세계주의의 상호관계와 양자의 조화 방안이 심도있게 논의된 자리였다』고 의의를 밝히며 『태평양 경제권이 세계경제의 중핵으로서 번영하기 위해 다같이 협력하자』고 제의. PBEC 사상 최대 규모로 치러진 서울 총회를 총괄한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이날 대규모 행사를 무난히 치러냈다고 자부. ○…「우리쌀 지키기 범국민 대책회의」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소속 회원 20여명은 이날 PBEC의 농산물 개방성명서 채택 움직임에 항의하는 피키팅 시위를 PBEC총회가 열리는 인터컨티넨탈 호텔 앞에서 상오 10시10분쯤부터 30여분 동안 전개. 이들은 「세계의 모든 소비자와 농민은 둔켈안에 반대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피케팅 시위를 벌이다 출동한 경찰과 한동안 몸싸움을 벌였다.
  • 춘천서 「연극 올림피아드」 열린다/7월23∼30일 ’93국제연극제

    ◎18개국 아마극단 참가/“연극통해 인종과 문화의 벽 허무는 자리로” 세계 각국의 아마추어 극단들이 대거 참가하는 「’93 춘천국제연극제」가 오는 7월23일부터 30일까지 8일동안 호반의 도시 춘천에서 열린다.춘천종합예술문화회관 개관과 때맞춰 열리는 「춘천국제연극제」는 국제아마추어연극연맹(IATA)한국본부와 춘천시가 공동 주최,춘천시민들의 문화행사로 준비되고 있다. 「연극 올림피아드」로도 불리는 국제연극제에는 미국·일본·스페인·독일·중국·러시아등 모두 18개국에서 각국을 대표하는 아마추어 극단들이 참가,「연극을 통한 인간의 이해와 협동」을 추구하게 된다.인종과 문화의 벽을 허무는 뜻깊은 자리에 한국대표로는 IATA주최 국제연극제에 다섯차례 참가경력이 있는 춘천의 극단 혼성이 참가한다. 24일 길놀이를 겸한 시가행진으로 시작되는 「춘천국제연극제」는 행사기간동안 매일 1천1백석규모의 대극장에서 4∼5차례 공연이 열리며 공연이외에 학술심포지엄과 즉흥극연기및 분장,한국탈춤 워크숍이 진행된다.공연들은 대부분 각국의 창작극으로 공연시간은 1시간내외.IATA한국본부는 폐막식날 참가국들 가운데에서 대상 1개팀과 우수상 2개팀등 단체상과 연기·연출·희곡상 수상자를 선정,시상할 계획이어서 축제분위기 못지않게 참가극단들 사이에 열띤 경쟁이 예상된다. 이번 국제연극제는 특히 직업을 따로 갖고 있으면서 시간을 쪼개 연극에 대한 열정을 쏟고 있는 세계 아마추어연극인들의 열기로 한여름 더위를 잊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극단혼성 대표이며 「’93 춘천국제연극제」의 유치에 공이 큰 박완서 집행위원장(51)은 『이번 국제연극제는 지방도시인 춘천을 예술도시로 만드는데 기여할 것입니다.또 외국극단들의 공연을 직접 접할 기회가 적은 지역주민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 지역문화예술의 발전에도 일조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박 집행위원장은 또 이번 연극제를 계기로 2년마다 8∼10개 극단이 참여하는 국제연극제를 춘천에서 열어 춘천을 「한국의 아비뇽」으로 만들겠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춘천국제연극제」의 상설개최가 실현될 경우 춘천은 매년 8월 세계의 인형극단이 참가하는 「춘천국제인형극제」와 「한국 마임페스티벌」등으로 명실상부한 「연극도시」로 자리잡을 것으로 전망된다. IATA는 19 52년 무대예술의 보급,각국의 아마추어 극단들간의 국제교류를 목적으로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서 설립된 국제적인 연극기구로 현재 68개국에 회원단체를 가지고 있다.덴마크 코펜하겐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매년 회원국들이 번갈아가며 국제연극제를 개최하고 있다.
  • “한­일 경제협력 강화”/민간경제위 폐막

    【경주=함혜리기자】 한국과 일본의 민간 경제인들은 16일 두 나라 경제의 공동발전과 협력증진을 위해 한국 중소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기로 했다.또 두나라 재계는 무역불균형 해소와 일본의 대한 기술이전을 위해 기술제휴 알선사업을 추진키로 하고 대일투자유치 및 기술협력촉진단을 파견하는등 7개항에 합의했다. 두나라의 재계인사 2백80명이 참석한 가운데 15·16일 경주 현대호텔에서 열린 제25회 한·일민간합동경제위원회는 폐막식에 앞서 이같은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 김정일,수령역할 본격대행(오늘의 북한)

    ◎연일 언론통해 「통치자 이미지 심기」 주력/「준전시선포」·「핵금조약탈퇴」 직접명령/인간애 지닌 지도자 부각 “치켜세우기” 강화/「민중의 어버이」 칭호 “후계구도 마무리” 시사 「위대한 수령」 김일성의 후계자 김정일이 권력승계를 굳히기 위한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그는 최근 북한통치영역 전반에 걸쳐 실권을 행사하며 최고통수권자인 김일성이 독점해온 수령의 역할을 본격적으로 대행하고 있다. 김정일은 지난 2월 북한이 당면한 최대정책결정 사항이었던 팀스피리트훈련에 대응한 「준전시상태」명령을 직접 하달했으며 3월에는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선언을 결정했다.이같은 결정은 모두가 김일성주석의 권한에 해당하는 것들이었는데 북한의 선전매체들은 이러한 결정이 김일성이 아닌 김정일에 의해 이뤄졌음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이는 김정일이 비록 제2인자의 위치에 있으나 실질적 위상은 초법적 권한을 행사하는 최고통치권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반영하는 대목이다. 이중 김정일이 북한권력의최고수위에서 통치자로 군림하고 있음을 뚜렷하게 실증하는 것은 북한언론들의 최근 보도태도이다.최근 북한의 신문·방송들은 김부자에 대한 동정과 찬양논조를 하루도 빠짐없이 연일 소개하고 있으나 보도빈도수에 있어 김정일의 동향및 찬양논조는 김일성을 훨씬 앞지르고 있다.보도비중이나 초점도 김정일쪽에 더 많은 무게가 실려있다.특히 북한전역을 일촉즉발의 전시상태로 휩싸이게 했던 「준전시상태」명령하달을 전후한 북한언론들의 보도는 김정일을 유일무이한 영도자로 부각시키는데 돋보였던 대목이었다. 지난 3월 한달동안 북한방송들은 연일 「전당·전군·전민」의 일사불란한 임전태세가 김정일에 대한 일심단결의 충성심으로 발휘되고 있음을 선전하면서 그의 위기관리능력과 통치력을 높이 찬양하고 나섰다.북한방송들은 또 김정일에 김일성과 똑같은 「민족의 어버이」「자애로운 스승」이라는 동격수사호칭을 쓰면서 그의 통치방식에 대한 선전을 반복했다. 북한이 지난해까지 내세웠던 김정일의 통치방식은 「통이 크고 대담하다」는 점을 강조한 「광폭정치」로 묘사했다.그러나 올해들어서는 김정일을 「뜨거운 인간애를 지닌 인민의 지도자」임을 부각시키는 「인덕정치」방식에 대한 선전에 주력하고있다. 올들어 부쩍 늘어난 김정일의 감사문전달을 통한 충성캠페인도 바로 인덕정치 선전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3월 한달동안만도 북한각지에서 40여 차례이상 김정일감사문 전달모임이 열렸다. 이와 유사한 형태로 김정일의 명의로 전달되는 결혼상·환갑상·10갑상등의 소식도 최근 북한언론들에 잇달아 발표되면서 김정일의 은덕에 대한 충성보답이 요구되고 있다. 북한은 또 이인모노인의 방북조치도 김정일의 인도적 배려에 의해 실현됐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북한은 이같은 인덕정치의 선전을 통해 김정일과 인민간의 거리를 좁히면서 그의 통치적 위상이 인민의 가슴속에 자리잡도록 유도하고 있다. 북한은 동시에 김정일의 지도자적 역량을 부각시키기위해 김정일명의의 각종 담화·교시관철모임을 진행,김의 통치철학을 해설·전파하고있다.김정일은 또 지난 2월 사로청 제8차대회 개·폐막식과 경축야회에 참석한 것을 비롯,군후방일꾼대회 참석자면담·송도원국제소년단 야영소시찰등 공식석상에도 자주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김정일의 이같은 일련의 통치행보는 김정일시대가 본격화되고 있음을 반영하는데 그는 지난 80년 10월 6차당대회에서 김일성의 후계자에 공식 지명된후 상당부분 실질적인 통치권을 행사해 왔음에도 아직 공식적인 국가지도자 선출과정만은 거치지 못하고있다. 그가 현재 갖고있는 국가권력의 지위는 당정치국 상무위원을 비롯,당비서·당중앙 군사위원·국방위 제1부위원장 그리고 인민군총사령관외 원수계급이 있다.이같은 지위는 그가 김일성다음의 명실상부한 제2인자의 위치에 있음을 실증하는 것이다. 따라서 81세의 고령에 이른 김일성이 최근 정치일선에서 점차 비켜서며 상징적인 수령으로 추대되고 있음에 비춰 오는 7일 열리는 최고인민회의 제9기5차회의에서 김정일의 국가권력지위 부여에 대한 어떤 중대한 결정이 내려질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현재 북한권력의 핵은 김일성이 갖고있는 「당총비서」와 「국가주석」직. 김정일이 이 두개의 지위를 언제 넘겨받는가가 초점인데 이중 국가주석직이 보다 빠른 시일내에 김정일에 인계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또 김정일의 통치행보에 최근 가속도가 붙고있음을 감안할때 김의 대권승계시기가 의외로 빨리 올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 김일성 권력이양 마무리 단계/사로청 서한 등서 징후 관측

    ◎새달 방중아들에 「수반」예우 요청/김정일,통일문제마저 장악 김정일의 권력승계가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김일성은 22일 사로청폐막식에 보낸 서한을 통해 『김정일을 중심으로 일심단결,당의 영도를 충성으로 받들어 나갈 것』을 촉구했다.김일성은 또 김정일두리로 뭉치는 것은 『혁명의 요구이며 복잡한 정세속에서도 사회주의 위업의 고수·완성과 통일위업을 보장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이같은 김일성의 언급은 정권기관의 채널을 통하지 않고 본인이 직접한 것이란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김일성­김정일 부자간의 권력세습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는 시사가 나온 것은 비단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북한에서 김정일이 김일성의 후계자로 부상한 시점은 그가 비서국의 조직및 선전선동담당 비서로 선출된 73년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그뒤 김정일은 74년2월 당중앙위 제5기8차 전원회의서 당중앙위 정치위원선출을 통해 후계자로서의 지위를 확실하게 굳힌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김정일은 전설속의 인물인양 대중 앞에 일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김정일이 공개석상에 정체를 드러낸건 80년10월 제6차당대회서 정치국상무위원,비서국 비서,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면서였다. 관측통들은 북한이 지난 16일 김정일 51회생일행사의 초점을 그를 중심으로 한 일심단결에 맞춘 것도 「권력세습의 시간표」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특히 북한이 김정일의 생일을 전후해 그동안 김일성의 전유물처럼 인식돼왔던 통일문제도 김정일이 주도하고 있다고 밝히고 나선 것은 그의 권력승계가 완료됐음을 분명히 밝히는 대목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김정일의 권력세습과 관련,과연 김일성이 갖고 있는 당총비서·당군사위원회위원장·국가주석의 지위중 어느 것부터 넘겨 받을 것인가도 관심사다.최근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일본경제)신문은 이와 관련지어 세가지 경우를 제시,관심을 끈 바 있다.이 신문은 그 가운데 김정일이 주석자리를 물려받지 않고 실질적으로 권력을 이양받아 행사하는 시나리오에 70%의 가능성을 부여했다. 북한전문가들은 김정일이 현재 95%정도 권력을 장악한 것으로 보고 있다.이같은 정황으로 미뤄 김정일이 주석취임등 정상적인 자리교체를 통하지 않고 현재의 위치에서 권력을 이양받아 실질적 권한을 행사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는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 것으로 볼수 있다. 특히 이같은 관측은 3월초 방중을 앞둔 김정일에 대해 『정부수반에 준하는』선으로 예우해줄 것을 중국정부에 요청한 북한측의 움직임에 의해 그 실현 가능성이 더욱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중국정부의 한 관리는 22일 북한측이 김정일비서가 아직 공식적으로는 권력을 승계하지는 않았지만 그에게 정부수반에 준하는 의전행사를 베풀어줄 것을 요청해왔다고 밝혔다. 김일성부자의 권력세습작업이 20여년에 걸쳐 추진돼왔음에 비춰볼 때 지금 그 「시점」이 갖는 의미는 대단한게 못된다.오히려 관심은 김정일의 권력세습이 과연 성공할 것이냐에 모아지고 있다.김정일이 김일성에 비해 카리스마적 영도력이 크게 뒤져 권력유지가 그리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특히 최근들어 심각한 경제난 등으로 북한주민들의 반발이 극에 달해 있는데다 김정일에 대한 군부및 당정 엘리트 집단들의 반발 역시 만만찮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는 러시아과학아카데미의 북한문제 전문가인 나타샤 바자노프박사의 분석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즉 『많은 북한관리들이 개인숭배를 시대착오적인 구태로 간주,사회적 변혁을 원하고 있는데다 또다시 김정일이 신격화되는 사회에서 살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바로 그것이다.
  • 한국무용가 최현씨(이세기의 인물탐구:14)

    ◎절제된 몸짓… “여백의 미” 표현 일품/고고한 기품 넘치는 타고난 재능의 예인/김해랑문하서 승무·태평무 등 두루 이수/완벽주의적 성격… 대선배와의 불화 “천추의 한”으로 갓쓰고 도포입고 부채들고 최현이 무대에 나타나면 이도령이 광한루에 나선듯 화사하고 눈부시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헌칠하고 단정한 매무새,운신의 폭이 조용하면서도 민첩하다.삭풍이 이는 한겨울에도 그의 분위기에는 오월 단오같은 싱그러운 신록이 묻어있다. 부채끝으로 오작교(오작교)를 가리키고 부채를 펴서 얼굴을 가리면 그때마다 한양의 풍류와 선비의 기품이 동시에 엇갈린다. 무용계에서 「푸르름을 몰고다니는 예인」으로 불리는 것처럼 그는 20대 미장부의 멋과 미를 변치않는다.나이와는 상관없이 언제나 젊고 기개에 넘쳐있다.언제 어디서나 누구앞에서나 당당하다. 우선 그의 춤솜씨부터가 그렇다.타고난 재능과 기량으로 그는 빠르고 느린 어떤 곡조에도 절묘한 춤의 경지를 보여준다. 정중동이 절제된 그의 「승무」나 「살풀이」등 그의 춤의 매력은 그 움직임마다에 여백의 미를 살리는데 있다.뿌리치고 내뻗는 손짓하나에도 선과 배경을 치밀하게 계산하여 마치 한폭의 수채화를 그리고 있는듯 하다.힘이 들어가지 않은,몸속으로부터의 흥취가 절로 살아나 어느땐 멈추고 어느땐 다시 흐른다.그리고 조각처럼 푸르고 흰 얼굴에는 한과 슬픔을 자제한 인고가 담겨있다. 그는 춤뿐아니라 춤과 관련된 영화와 연극,창극과 뮤지컬을 두루 섭력한 예술가다. ○춤관련 영화·연극 출연 완벽주의자인만큼 한가지를 알아도 끝까지 파고들어 전문가 못지않은 실력을 쌓고있다.대강대강 그럭저럭은 그에게는 통하지 않는다.사람을 사귀어도 한번 사귄 사람은 절대로 놓지않는다. 이렇게 흑백이 분명하기때문에 무용계에서의 그의 위치는 자칫 외롭기 십상일수가 있다.그러나 서로서로 인맥·학맥,제자 스승으로 얽히고 설킨 속에서 그가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할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타고난 재능,탁월한 춤솜씨 하나뿐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춤추는 사람이 춤잘추는데야 누가 뭐라하겠는가.위로는 막강한 선배들이 기라성처럼 좌정하고 이리저리 끈이 닿는 무용풍토에서 최현자신은 그런 자부심과 오기 하나만으로 고고하게 버티어왔다 할수 있다. 그가 춤으로 무용계에 어필하기 시작한 것은 65년 그가 안무·출연한 무용극 「초라니」에서다.조택원이후 송범 김진걸 이매방으로 이어지는 남자무용수중 수려한 춤과 미모마저 갖춘 그의 출현은 무대에서 단연 돋보이는 존재였다. 51년이후 한때 영화에 심취하여 조미령 김승호 허장강 등 당대 스타들과 영화 「춘향전」「시집가는날」등에서 주연,이후 그가 안무·출연한 무용극 「춘향전」「마의태자」「황진이」등은 노련미 넘치는 춤기교와 함께 영화에서 닦은 연기솜씨로 관객을 사로잡았던 작품들이다. 특히 그의 대표작인 「비상」은 그 자신이 끊임없이 추어왔고 지금도 무용인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의 하나다. 소매가 긴 백삼에 상투관 차림,부채 하나만으로 무대를 누비는 이 「비상」은 희로애락의 일상사를 살고있으나 저 하늘을 향한 끝없는 의지,꿈을 잃지않으려는 인간의 끈질긴 열망이 춤속에 담겨져 「마음을 비운 춤」「생의 환희와 승리를 득도의 경지로 이끈 춤」「아무도 비상을 최현만큼 출수 없다는 경계선을 확실하게 그을수 있다」고 시인이며 무용평론가인 김영태가 쓴적이 있다. 영화·연극 못지않게 그의 음악취미또한 광적이다. 76년 호암 이병철회장의 도움으로 독립문쪽에 무용연구소를 개설하고 최현무용단을 창단했을때 그의 연구소는 무용연구소라기보다는 마치 음악연구소처럼 사방벽이 온통 오리지널 디스크로 둘러싸여 있었다.그의 오디오 취미는 「마니아」급으로 오디오전문지들은 걸핏하면 드보르자크에서 수재천에 이르는 그의 음악취미·오디오기기들을 탐방취재하고 있다.이 방면에서는 특히 김영태와 의기투합하여 두사람은 충무로에서 용산전자상가를 곧잘 기웃거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음악취미도 “광적” 최현은 마산에서 성장했지만 본래 부산사람이다.본명은 최윤찬,후에 영화계에 데뷔하면서 최현이란 예명을 가졌다. 16세때 전국가요경연대회에서 특상한 것을 계기로 「천재소년가수」가 되어 지평선 가극단을 쫓아 마산에 정착,마산의부호이자 한량으로 소문난 김해낭문하에 입문하여 그곳에서 궁중무에서 승무·살풀이·태평무·탈춤·기방무를 고루 이수했다. 그러나 스승이 초기엔 장작이나 패게하고 집안청소를 하게 할뿐 도무지 춤을 가르쳐주지 않아 그때도 당돌했던 그는 『왜 춤을 가르쳐주지 않느냐』고 스승에게 항의하곤 했다. 『예술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닫는 것이다.네가 보고 느끼고 깨달아라』그는 머리속에 꽉 찼던 안개가 걷힌 듯 스승의 이 말을 단번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그때부터 춤이 몸속에서 피돌기처럼 돌고 흥이 기운처럼 솟구치기를 기다렸다.스승은 그제서야 그에게 춤 한자락씩을 지도해나갔다. 예술의 겸손을 엄숙하게 익히고도 인격수양이 덜 됐거나 춤을 잘 춘다는 주변의 칭찬에 우쭐한 나머지 지금까지도 가슴에 남아 잊히지 않을 큰 「잘못」을 하나 저지른 적이 있다. 58년 서울 명동 시공관에서 스승 김해랑 안무로 「독무」를 출때였다. 당시 명고수인 지영희씨가 장단,그의 부인인 성금련씨가 가야금을 연주,진양조에서 중머리 중중머리로 넘어가는 대목에서 지영희씨가 그만 잦은몰이 장단을 잘못친 것이다. 박자와 호흡,시간조절에 의해 손의 움직임을 감을 수도 펼수도 있는 그로서는 리듬이 맞지않아 크게 당황했고 무대는 막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물불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지영희씨에게 덤벼들었다. 『무대는 생명입니다.단 한번의 실수도 있어선 안돼요.관객에게 손가락질 받으면 나는 이것으로 끝납니다』 지영희씨는 『최선생 내가 정말 잘못했네.큰 실수였다』고 백배사죄했으나 그로서는 이를 용납할 수 없었다.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망발.당대의 명인이자 대선배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자신의 방만함을 후회했다고 탄식한다. 이제 그는 참다운 예술가가 되고 싶다.밖에서 안을 들여다 보고 진지하게 나를 점검하여 「몸짓」하나 「소리」하나에도 자연의 질서가 깃든 지혜와 노의 경지에 이르고 싶다.그리고 내 춤속에 관객을 끌어들여 나의 한과 정취와 풍류의 빛,내가 살아온 춤의 굽이굽이를 함께 향유하고 싶다고 말한다. 최현의 많은 이야기중에서 그가 54세때 27세 연하의 신부를 맞아들인 이야기는 빼놓을 수 없는 화제중 하나다. ○54세때 27세 신부 맞아 84년 12월,일밖에 모르던 까다로운 성품의 최현이 갑자기 결혼을 발표,더구나 신부는 서울예고를 졸업,그가 지도위원으로 있던 국립무용단 단원이라고 해서 주변의 놀라움은 한층 컸다. 신부인 원필녀씨는 나이보다 깊고 의젓한 성품으로 춤추는 스승을 멀리서 지켜보면서 혼자서 그를 사모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두사람의 결혼은 올해로 만 9년.제자로서 스승으로서 아내로서 남편으로서 결혼초기때의 사랑과 정성과 존경을 변함없이 나누고 있다. 최현씨는 그동안 부인을 한성대와 이대대학원에 다니게 했고 지금은 한성대에 출강.『내가 아프면 밤새 내 머리맡에 앉아 나를 지켜준다』고 자랑한다. 지난해 6월엔 제1회 원필녀개인무용발표회를 주선해 주었다.그리고 그가 사랑해마지않던 그의 춤 「비상」을 부인에게 추게 했다. 그는 88올림픽 폐막식때는 10만군중과 수천명의 출연자들에게 청사초롱 「안녕!」을 추게 하여 방대한 스케일로 각계의 시선을 모았었다.지난해엔 청소년예술제에 「파란풍선」에 이은 「비단안개」를 안무,서울예고 무용단을 이끌고 일본 도쿄 무장야시민문화회관에서 「시집가는날」을 공연,올해는 문예진흥원 창작지원기금을 받아 그의 개인발표회를 준비중이다.작품은 정철의 「사미인곡」. 차범석극본·최종원음악의 이 작품은 그의 춤 60평생을 정리한 집대성의 일환으로 그의 특기인 「춤에서의 여백의 미」를 유장하게 전승시킨다는 집념을 담고 있다. 그는 아무리 춤을 잘추어도 훈련된 춤,숙련된 춤은 단호하게 부정한다.긴 세월 스스로 깨달아 마음속에서 몸속에서 자연스러운 율동으로 우러나오는 극미(극미)에 이르러야 한다고 주장한다.그리고 손가락 마디마디가 기를 축적시키면서 이를 어느 한순간 우주의 무한한 공간속에 힘차게 내뿜는다.장삼자락을 낙화로 흩날리며 탄식의 숨결을 하공에 흩뜨려놓듯,그래서 그의 춤의 한끝은 결국 끝없는 비상임을 그는 알고 있다. □연보 ▲1929년12월 부산 영도 출생.최재용씨와 이말념씨의 2남5녀중 장남 ▲1946년 마산으로 이사 ▲1953년 마산상고졸업 ▲1959년 서울대 사대 체육과 졸업 ▲1988∼1990년 중앙대 사회개발대학원 예술학과 수학 ▲1946∼1953년 마산 김해랑 무용연구소 입문 전통무용 유형과 기법사사 ▲1953년∼ 오광대일인자 장재봉,민속춤의 김숙자씨등에게 승무·살풀이·태평무·탈춤·기방무 등 이수 ▲1955년 최윤찬무용연구소 개설 ▲1961∼1962년 서울대 음대 무용강사 ▲1965∼1985년 서울예고 강사 ▲1967∼1974년 서울대 사대 체육과강사 ▲1976년 최현 무용단 창단 ▲1980∼1981년 중앙대 예대 무용과 강사 ▲1981∼1985년 서울예전 무용과 주임교수 ▲1982년 최현 무용연구실 개설,한국무용협회이사,한국문화예술단체 총연합회(예총)이사,문공부 문화재 전문위원,국립무용단지도위원,한국무용협 부이사장,대한민국 무용제 심사위원 문예진흥원 지원기금 심사위원역임 (영화)「삼천리의 꽃다발」 「시집가는날」 「춘향전」 「불멸의 성좌」 (무용·안무출연)무용극 「초라니」 「춘향전」 「시집가는날」 「마의태자」 「황진이」국립창극 「심청가」 「강릉매화전」 「광대가」 「변강쇠타령」 「시집가는날」 「대춘향전」 「허생전」 「심청」 「서동가」 「이춘풍전」 「놀부전」 「소태산」 「아리랑」 ▲1970년 일본 EXPO70 한국의날 안무·출연 ▲1971년 국립무용단 유럽지역 10개국 순회공연 안무·출연 ▲1975년 국립무용단 일본 10개도시 순회공연 안무·출연 ▲1978년 세종문화회관 개관예술제 「녹」 「비상」안무·출연 ▲1980년 국립무용단 동남아 9개국 순회공연 안무·출연 ▲1982년 시립무용단 「한국 명무전」에 「비상」출연 ▲1985년 호암아트홀 개관 초청공연 「헌화가」안무·출연 ▲1987년 88서울예술단 창단공연 「새불」구성·안무 ▲1988년 서울올림픽 개·폐회식 안무총괄 「안녕」 ▲1990년 국제문화협 주최 일본 지역 공연 창극 「심청전」안무 ▲〃 동아일보창간70주년기념 모스크바지역등 5개국 순회공연 창극 「아리랑」안무·출연 ▲1991년 국립극장주최 청소년예술제 「파란풍선」안무 ▲1992년 국립극장주최 「비단 안개」안무 ▲〃 서울시립무용단 무용극 「춘향전」객원안무 ▲현재 문화부 문화재 보호협회 「한국의집」예술총감독,서울예고 무용과장 서울올림픽 안무총괄 공로 대통령 표창
  • 무용(결산 ’92문화계/각분야 큰일의 주역들:1)

    ◎박일규 「춤의 해」 기획실장/8만관객 동원,「야외 이벤트」 가장 보람/지방무용 발전·신인발굴 기회도 제공/무용계 내부불화 끝내 해결못해 아쉬워 1993년이 저문다.민주화의 길목에서 문화예술계도 변화를 겪은 한해였다.그것은 새바람이라 할 수 있는 문화예술의 자율성 회복으로도 요약된다.그래서 다양한 목소리와 함께 갖가지 형태의 몸짓이 펼쳐졌다.그 문화예술계가 올해 끌어안아야 했던 큰 일의 주역들을 만나 보기로 했다. 『봄 상설야외무대,여름 야외이벤트등을 통해 무영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을 조금이라도 이끌어 낸 것이 「춤의 해」가장 큰 성과입니다. 「춤의 해」기획추진실장으로 지난 한해를 가장 분주하게 뛰어온 박일규씨(40·서울에전교수).13억원의 전체예산과 10여개의 그코작은 행사들로 이루어진 이번 「춤의 해」행사가 단지 집안잔치로만 끝나지 않은 것 같다고 자평한다. 9월 부산에서 열린 제1회 전국무용제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낙후돼있던 지방무용계에 활기를 불어넣었다.그리고 10월 「젊은 춤꾼의 가을잔치」는 그동안중견에 가려있던 재능있는 신인들을 발굴해내는 귀중한 기회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보람을 느낀 행사는 전국 37개해변과 휴양지에서 7∼8월 43일동안 8만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던 「여름 야외이벤트」였습니다.무용을 처음 보고도 감동하던 사람들을 보고서 「무용의 대중화」에 대한 가능성과 확신을 얻게 됐죠』 상반기 「춤의 해」사업지분을 두고 파란이 끊이지 않던 무용계 내분사태도 겪었다.「여름야외이벤트」는 이로 인한 행사의 지지부진,문화부의 예산승인유보 등으로 난항을 겪던 「춤의 해」집행위측에는 사태를 반전시킨 호재로 작용하기도 했다.언론과 관객들의 호응으로 「춤의 해」행사들이 비로소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이어 문화부도 그동안 미루어오던 10억원의 예산집행을 허가했고 때마침 기업은행이 춤의해 운영지원금으로 3억원을 희사하는 경사마저 겹쳤다.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된다면 다시 시작해보고 싶습니다.무엇보다 올초 무용계내부의 불화가 끝내 해결되지 못한 점이 가장 아쉬운 점이라고 할까요』 「춤의해」처음과 끝을 지켜온 일등공신인 그는 물론 한해를 보내는데 아쉬움도 크다고 했다. 연초 「춤의 해」 운영위원회가 조직되면서 운영위원과 홍보분과위원장을 맡게 된 그는 사실 그때만해도 전체무용계를 대표해 「춤의 해」행사를 치러낼 만큼 비중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나 무용계의 고질적인 내분과 편가르기로 조직에 균열이 생기고 조흥동,육완순 공동대표가 사퇴하는 바람에 「춤의 해」가 공중분해될 위기에 놓이게 되면서 중심인물로 떠올려졌다. 『엉겁결에 기획추진실장이란 중책을 맡게 됐습니다.자신의 능력에 대한 회의도 생기고 다른 무용가들의 질책,비난도 사실상 두렵기도 했어요.그러나 내가 이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 「춤의 해」가 가동될 수 있다면 기꺼이 참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이제 무용계도 이같은 큰 행사를 치러냄으로써 한결 성숙해졌다는 생각이듭니다』.22일부터 30일까지 예정된 「춤의 해」 폐막식 행사를 무사히 치러내는 것이 그의 올해 마지막 임무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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