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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현정 기자의 소리통] 끊어진 동맥, 개성공단

    [이현정 기자의 소리통] 끊어진 동맥, 개성공단

    2006년 5월 개성공단에서 만난 북한 근로자들의 표정은 싱그러웠다. 곱게 화장하고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넘긴 근로자들이 쉼 없이 재봉틀을 돌리고 그 사이를 남측 근로자가 바삐 오갔다.남한 말씨, 북한 말씨를 써도 손발이 척척 맞았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은 북한 근로자를 ‘우리 직원’이라고 불렀다. 평소 무슨 대화를 하는지 묻자 “별개 있나요. 자식 얘기해요”라고 답했다. 개성공단 사업장에는 남북이 아니라 그저 사람과 사람이 있었다. 개성공단을 두 번째로 찾았을 땐 개성공단 북한 근로자가 전원 철수하고 남측 근로자마저 손짐만 들고 쫓겨난 뒤였다. 근로자가 떠난 개성공단은 폐가 앞마당처럼 황량했다. 2013년 7월 남북은 ‘뇌사’ 상태에 빠진 개성공단을 되살리고자 공단에서 릴레이 실무회담을 했다.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당시 북측은 회담이 뜻대로 진행되지 않자 회담장 엘리베이터를 잡아 남측 관계자들의 발을 묶고선 남측 기자실로 와 재빨리 자기네 입장문을 읽었다. 말리는 남측 관계자를 향해 북측 대표는 “백수건달들”이라고 욕을 했고 몸싸움으로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그래도 개성공단은 돌아갔다. 위기가 아니었던 때보다 위기였던 때가 더 많았지만 남북은 끈질기게 기계를 돌렸다. 개성공단은 남북 근로자 5만여명의 생계가 걸린 일터였다. 남북 경제공동체의 출발점이자 사회문화공동체의 시험대였다. 경제적 상호협력이 남북 주민들의 동질성 회복에 기여해 남북 관계 개선을 가속할 것이란 게 개성공단 설계자의 구상이었고 실제로 개성공단은 그 역할을 일정 부분 해냈다. 북한은 개성공단을 위해 전방 부대를 뒤로 물렸고 비무장지대를 넘나드는 이 사업은 남북 군사적 긴장 완화에도 크게 기여했다. 그런 공단에 박근혜 정부는 2016년 2월 사망 선고를 내렸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개성공단 폐쇄가 결정됐다. 개성공단 산파 역할을 했던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당시 “박근혜 정부는 북한의 ‘돈줄’이 아니라 통일의 동맥을 끊었다”고 비판했다. 공단 폐쇄의 결정적 이유였던 ‘개성공단 자금의 대량살상무기 전용설’은 근거 없는 주장이었음이 최근 통일부 정책혁신위원회 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곡절 많았던 남북 관계는 2018년 무술년 다시 기회의 문 앞에 섰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평창동계올림픽에 대표단을 파견할 용의를 밝혔다. 우리 측에는 관계 개선 의지를 내비치고 미국에는 핵위협을 가했다는 점에서 한·미 동맹 이간 전술이란 평가도 나오지만 설령 그렇더라도 ‘전쟁과 대결’ 프레임을 ‘평화와 공존’으로 전환하려면 이 기회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개성공단 가동 재개는 아직 먼 얘기다. 북한의 핵 도발이 계속되고 있고 국제사회가 대북 제재 압박을 가하는 상황에서 한·미 동맹의 치명적 손상을 감수하고 가동 재개를 선택할 순 없는 일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개성공단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미국을 끊임없이 설득해 끊어진 동맥을 다시 잇길 바란다. 무술년의 마지막 해가 지기 전 개성공단 기계 소리를 다시 듣고 싶다. hjlee@seoul.co.kr
  • [2018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그림자 필경사 (이철주)

    [2018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그림자 필경사 (이철주)

    1. 눈먼 자의 윤리 때론 그림자가 더 많은 말을 건넨다. 긴장 가득 훈련된 표정을 지어도, 무시당하지 않으려 허리를 꼿꼿이 세워도, 불안은 그림자에 투영돼 존재를 누설한다. 가끔 속내를 들켜도, 환멸에 사로잡혀 생이 부대껴도 그림자는 결코 존재를 떠나지 않는다. 뒤틀리면 뒤틀린 대로, 어리석으면 어리석은 대로 한 생을 바쳐 따라다닌다. 삶과 함께 태어나 울고 웃고 몸부림치다 사라진다. 그러곤 어디에선가 누군가를 닮은 모습을 하곤 쓸쓸히 흘러다닌다. 생을 반복하고 따라하며 생이 이곳을 떠나도 홀로 남아 존재를 증거한다. 그림자의 이 헌신엔 쉽게 이름 붙일 수 없는 어떤 맹목이 있다.한편으로 그림자는 왕성한 식욕의 소유자다. 표정도, 색깔도, 음성도, 촉각도, 냄새도 모두 집어삼킨 채 존재의 맹점을 현상한다. 감각이 보증하는 확실성을 제거하고 정체불명의 검은 얼룩을 펼쳐 놓는다. 그림자는 시각 속의 동공이며 감각을 배반하는 충동이다. 그러니 그림자란 본디 외경의 대상인 것이다. 감각과 관념에 잘려 나간 세계가 역으로 이쪽을 바라볼 때, 맹목의 관계는 뒤집힌다. 그림자에 감염되어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은 기이한 갈증을 느끼며 한 생을 바쳐 따라다니는데 그들을 시인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들도 그림자와 함께 태어나 울고 웃고 몸부림치다 사라진다. 수억의 생들을 베끼고 반복하며 처연히 이해해 간다. 그림자의 맹목과 시인의 맹목. 어찌할 수 없음으로밖에는 풀이될 수 없는 이 눈멂은, 그러나 역설적으로 가장 진실한 이해의 방법이 된다. 불가해한 생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따라하며 존재의 자세를 닮아 버리는 것. 그 충분한 대가를 치르기 전까진 함부로 대상을 떠나지 못하는 무능이 그들이 가진 윤리이며 능력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한국 시가 과연 이 충분한 맹목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2000년대 이후 이어진 일련의 실험적 시들이 관습적 문법의 경계를 뒤흔들고 시의 외연을 확장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다만 그 의지와 선언이 너무 앞선 나머지 관념과 이론이 시를 대신 살아 버린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유행하는 철학적 담론을 잘 소화한 시가 좋은 시가 아니듯, 시와 비평이 근거로 삼은 담론의 윤리성이 시의 윤리와 덕목을 설명해 주는 것은 아니다. 말과 삶에 대한 치열한 응시와 질문. 좋은 시의 윤리와 덕목은 언제나 여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김소연의 시는 바로 이 점에서 시의 본연에 충실하고 있어 반갑고 소중하다. 무엇보다 우리는 위태로운 추락의 한 시절을 통과하는 중이다. 좁고 피폐한 삶을 지켜 내기 위해 일말의 어둠도 쫓아내기에 급급한 지금, 육박해 오는 생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는 당당한 목소리가 절실하다. 이 눈 맑은 시인은 삶의 도처에 엎어져 있는 상흔을 읽어 내고, 고통의 결과 깊이를 삶의 구체적 언어로 더듬으며 섬세히 응시한다. 그림자가 한 생을 바쳐 삶과 동행하듯, 그의 시 역시 수억의 생을 바쳐 그림자에 한없이 가까워진다. 세상의 모든 그림자들을 성실히 몸에 새겨 넣으며 깊고 단단해진다. 그림자란 본디 맹점이며, 어떤 확신도 불가능하게 하는 절대적 무지의 영역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림자를 보았다고, 보인다고, 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림자로부터 ‘시선’의 능력을 빼앗았기 때문이며, 닮았다는 이유로 전부 이해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속여 온 탓이다. 마음의 눈꺼풀은 그렇게 굳게 닫힌 채 존재가 퍼붓는 질문으로부터 안전하게 물러난다. 김소연의 시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한다. 그림자에게 외경을 되돌려 주고, 세련되고 아름다운 이론과 개념들이 생의 그림자가 될 수 없음을 몸소 증거한다. 김소연은 그림자의 시인이다. 그림자의 언어로, 그림자의 시선에 응답하며, 그림자가 남겨놓은 파문들을 뼛속 깊이 묻는다. 2. 그림자양식장 김소연의 시에서 그림자는 자아 내면의 복수적 형상으로 나타난다. 이를테면 그림자들의 양식장이라 부를 만한 공간에서, 시인은 말들을 먹이로 던져 주며 내면의 그림자들이 불러일으키는 파문을 응시하고 있다. 그림자의 차가운 비늘이 말에 닿아 번지고 마침내 말을 삼켜 버리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끊임없이 불화하는 내면에로 깊이 침잠한다. 차가운 환멸과 단호한 자기 부정은 김소연 시의 근본을 이루는데, 여기에는 뼈아픈 목도만이 있을 뿐 화해의 축이 부재한다. 타협 불가능한 절대적 자세로 삶의 피폐를 건넌다. 무참한 추락이 아무렇지도 않게 전시되는 이곳의 삶에 당당히 맞서 고통의 극한을 살아 낸다. 뜨거움과 차가움을 모두 통과한 그의 목소리는 가장 뜨거울 때조차 차가움을 예감하고, 가장 차가울 때조차 뜨거움을 끌어안는다. 이 현격한 열의 낙차가 일상의 무감각한 관성을 깨뜨리는 뇌관으로 작동한다. 사월은 차갑다/사월의 돌은 더 차갑다/사월의 돌을 손에 쥔 사람은 어째서 뜨거운가/그는 어째서 가까운가//마루 아래 요정이 산다고 믿은 적이 있다/잃어버린 세계는 거기서 잘살고 있다/이 사실만으로도 뜨거워질 수 있다//하나의 문장으로도 세계는 금이 간다/이곳은 차가우므로 더 유리하겠지 - 「열대어는 차갑다」 부분 (『아침』) 돌은 사월의 뜨거움을 기억하기에 더 차갑다.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워야 할 날들이기에, 그렇지 못한 현실을 더 비극적으로 비춘다. 화자는 마루 아래라는 가시성 바깥의 공간에 망각된 세상의 온기를 풀어놓고 있다. 현실과 ‘너머’의 세계가 빚어내는 처연한 온도차를 뜨거움으로 명명하는데, 그러므로 “이 사실만으로도 뜨거워질 수 있다”는 선언은 설익은 화해의 제스처로 읽혀선 안 된다. 세계에 금이 가는 이유는 이곳과 너머 사이의 아득한 거리 때문이지 희망과 열정 같은 추상적 개념 때문이 아니다. 불화를 불화로서 보존하되, 이들이 빚어내는 떨림과 파열을 섬세히 기록하는 것. 김소연 시의 이와 같은 분명한 자세는 화자가 실족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노출하는 장면에서 더 아프게 현상된다. 서로가 서로의 치부를 헛짚고 세계의 성감대를 헛짚은. 내리 빗나가던 선택들. 말하자면 기다림으로 독이 남는 자세. 시효를 넘긴 고독. 일종의 모독. 기다려온 우리는 치사량의 관성이 있을 뿐. 부패 직전의 끝물이다. - 「끝물 과일 사러」 부분 (『극』) 말의 파편들이 ‘끝’이라는 날카로운 선 앞에까지 밀려나 있다. 각 행의 끝엔 더 이상 남은 공간이 없다. 마침표조차 제대로 찍히려면 스스로가 끌어온 말들을 다시 과거로 밀어내야 한다. 미루고 미뤘던 삶의 초라한 진실이 단정하고 건조하게 한마디를 건넨다. “우리도 끝물이다.” 단단하게 요약된 이 사랑의 문장은 아프다. “치사량의 관성”으로 버텨온 관계의 맨얼굴, “끝물 과일”이 화자를 바라본다. 언어가 감정을 헛짚고, ‘사랑해’가 ‘미안해’를 대신하며 살을 찌워 갈 때, ‘끝’은 이렇게 언어의 은밀한 구석에 날카로운 뼈를 현상한다. 이럴 때 언어는 잔혹해진다. 한없이 위태로워 길들이지 않을 수 없는 짐승이 된다. 과녁에서 벗어난 말들의 사체가 한동안은 무심히도 쌓였을 것이다. 시인은 이 사랑의 폐허를 떠나는 중이다. 그러나 화자는 이를 “끝물은/아주/달아.”라는 감각적 긍정으로 전환해 낸다. 허위로, ‘헛짚음’으로 유지된 일상을 ‘끝물’에 비유하는 순간, “치사량의 관성”은 역으로 서로의 치부와 세계의 성감대를 더욱 선명하게 발설한다. 부재하는 여기를 정면으로 직시함으로써 몰락한 꿈의 순간들을 발굴해 낸다. 폐허엔 여전히 지독한 허기와 갈망이 어리겠지만 이를 부정하지 않고 생의 언어로 감각해 냄으로써 끝물은 버려야 할 것이 아니라, 도래해야 할 것으로 변모된다. 어떤 환상도 희망도 없이 뜨거움과 차가움을 반복하며 그의 문장은 단단하고 견고해진다. 그가 “차례차례 사랑이었던 것들과 한꺼번에/달디단 혼숙을 하는 것”(「달디단 꿈1」, 『극』)이 꿈이라며 부드럽게 말할 때에도 “이 조용한 숨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게/치욕스럽다”(「학살의 일부12」, 『극』)며 “중무장된 평화”(「학살의 일부1」, 『극』)가 학살이라 선언할 때처럼 단호하게 들리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그의 시는 끊임없이 스스로의 불화와 혼숙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한 사람은 나를 바로 보지 않는다/소파와 구별되지 않게 소파 속에 있거나/반쯤 열린 문틈 안에서 베개를 돋워 돌아눕는다//한 사람은 나를 보다가 나를 태운다/그 온도는 태양과 다름없고/내 운명은 종이와 마찬가지라/돋보기 같은/그의 눈빛에 나는 새까맣게 타들어간다/대체로 나는 그 앞에서 나는 재만 남는다//또 한사람/꿈을 보기 위해/눈꺼풀을 오려냈다는 이 사람/밤새 두 손을 소담히 오므려서/잠든 두 눈을 나는 덮어주곤 했다// (중략) //축하보다는 축복을 받고 싶은 시월 아침에/오만 잡병의 숙주가 된 육체/속옷 벗듯 벗어둔 채/마음끼리 살을 섞는다 - 「세 사람과 한집에 산다」 부분 (『눈물』) 화자는 텅 빈 폐허 같은 방 안에서 자신의 갈라진 그림자를 응시하고 있다. ‘나’에게는 두 명의 폭군이 있는데, 하나는 나를 지우고 다른 하나는 나를 재로 만든다. 비록 관계의 양상은 다르나 결과적으로 나를 비존재로 만들어 버린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리고 여기에 ‘또 한 사람’이 더해진다. ‘꿈을 보기 위해 눈꺼풀을 오려 냈다는 사람’은 나에게 어떤 힘도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유일하게 나를 존재로 만들어 준다. 화자는 눈꺼풀을 오려 낸 눈이 꿈에 잡아먹히지 않도록 잠든 눈을 가만히 덮어 준다. 이 시가 평범한 시였다면, 이 세 번째 사람에게 시의 전권을 부여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이 세 개의 그림자로부터 한발 물러나, 이 셋과의 공평하고도 평등한 혼숙을 명명한다. 물론 이는 화해라는 낭만적 해결과는 거리가 멀다. 세 개의 그림자와 나 사이엔 살을 섞어도 결코 화해될 수 없는 아득한 거리가 여전히 냉정하게 놓여 있기 때문이다. 김소연의 문장은 자신을 거쳐간 수많은 그림자들을 마음에 풀어 놓고 그들이 일으키는 파문들에 눈을 충분히 단련시킨 자만이 얻어 낼 수 있는 ‘말’들을 건져 올리고 있다. 이 위태롭고 어려운 일을 그는 차분하고도 안정된 걸음걸이로 해낸다. 굉장한 내공과 섬세한 마음의 섭생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지나간 마음에 눈을 빼앗겨서도 안 되고, 잊어서도 안 되며, 섣부른 성찰로 도망쳐서도 안 된다. 꼬이고 뒤틀린 존재들이 서로를 밀어내고 뒤엉키며 팽팽한 긴장을 잃지 않는 것. 어떤 불화도 해소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해결될 수 없으리라는 삶의 진실 앞에 스스로를 담담히 열어 놓는 것. 김소연의 시는 이 선명한 규율들을 가슴에 품은 채 치열하면서도 아름다운 보폭으로 사유의 어긋남과 욕망의 비틀림 사이를 뚜벅뚜벅 걸어 나간다. 3. 유실영(影)보호소 김소연 시의 한 축이 자아 내부에 도사리는 복수적 그림자들의 불화를 매개하고 내부의 균열과 긴장을 풀어 놓는 데 있다면, 다른 한 축은 타자의 삶에 깃든 그림자에 대한 섬세한 응시로 나타난다. 그의 시에서 그림자는 철학적이고 개념적인 사유로 환원되지 않는데, 이는 무엇보다 그의 시가 삶의 구체적 실상과 인간의 유한한 조건들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자는 새로운 삶을 위해 전시해 놓은 그럴듯한 기념물이 아니라, 매일의 몰락을 견뎌 온 숨겨 온 자세들이 어쩔 수 없이 노출되는 장소이다. 단단하게 고정시켜 놓은 표정들과는 달리 불가피하게 삶의 피폐가 누수되는 공간이며, 모두가 공평히 그런 누수 속에 강제되는 사건이다. 시인은 그렇게 누군가 흘려 버린 그림자들을 데리고 와 사라져 가는 존재들을 거두고 보호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상처의 내력을 짚어 보며 삶이 사라지고 난 이후에도 남아 이곳을 떠도는 그림자들을 위무한다. 그녀는/바다에서 용이 머리를 치키고 올라올 때와 같이/담배 연기를 코로 뿜는다 여의주처럼/담배를 물고 앉아서/성긴 이빨을 자꾸 드러낸다// (중략) /그 노파는 세상 사람들이 그어놓은 줄들을/그런 모양으로 무시하듯 질펀히 앉아서 살아왔다//노오란 양지는 노파를 점점 비켜간다/노파는 그저 햇볕 안에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햇볕이 얼굴의 반을 부시게 하더니/점점 비껴서/이제는 그늘 안에 노파를 가둔다 - 「학살의 일부 10-이빨이 성긴 노파」 부분 (『극』) 노파는 퇴락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자신감 넘치는 태연함 속에 있다. 어느 누구도 함부로 개입할 수 없는 추락의 상흔이 이빨이 성긴 노파의 얼굴에 현상된다. 자신감 넘치는 낡은 몸 안에, 아무도 관심 없던 폐허 몇 개쯤 담담히 갖고 있을 노파의 눈빛이 화자를 응시한다. 함부로 이해해선 안 될 외경이 노파의 그림자에 어린다. 김소연이 “그 얼굴은 얼굴 외에 또 다른 것들이 겹쳐 있었다”(「1937년생」, 『극』)고 말할 때나, “우리 뒤에 깔린 반듯한 비단길을 아무도 걷지 말거라/벼랑 끝 노을이 우리 이마에 새겨주는 불립문자를/아무도 읽지 말거라”(「당신의 저쪽 손과 나의 이 손이」, 『빛』)고 진술할 때, 그가 끌어올린 그림자엔 어찌할 수 없는 외경이 실려 있다. 그가 외경을 표하는 그늘들엔 어쩐지 피 냄새가 짙다. 그늘은 찬란한 빛에 의해서만 어둠을 풀어내고, 어둠이 풀려날 때마다 추락은 반복된다. 수없이 깨지고 터져도 결연히 몸을 털고 일어난 생들은 하나같이 여전히 뜨거운 어둠을 품는다. 그 어둠의 무게가 어깨와 허리를 휘게 만들고, 그림자는 삶을 견디는 그들의 자세를 닮아 버린다. 이승에서 삼십 년/육신을 빠르게 쓰고 저승으로 이사한 아들 사진을//팔십 년째/육신을 아껴 쓰고 계시는 아버지가/느리게 문갑 문을 열어 만지고 계신다// (중략) //계시는 사진 한 장과 없어진 사냥개 사이엔/벽지처럼 살고 있다/앞모습을 보아선 아니 될/가족의 녹슨 얼굴들이 - 「계시는 아버지」 부분 (『눈물』) 여기에는 경솔히 이해해선 안 될 그늘에 머물기 위해 추락의 깊이를 가늠해 보는 시간이 현상돼 있다. 자식의 죽음을 그대로 안고 살아가기엔 상처는 너무 깊고 치명적이다. 그래도 삶은 이어져야 하기에 멍이 곰팡이처럼 들어선 낡은 방에 벽지를 바른다. 벽지를 뜯어내고 나면 그 자리엔 함부로 보아선 안 될 타인의 맨 얼굴이 저마다의 자세로 들어앉아 있다. 행복한 시절의 낙서처럼, 녹슬어 가는 얼굴들을 마냥 덮어 둔 채 가족의 삶은 이어진다. 벽지에 얼룩진 가족의 그림자는 이따금 마음을 괴롭히다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을 것이다. 그런 그림자의 앞모습을 요구하는 것은 폭력이며 불경이다. “엄마가 갑자기 보이지 않을 때에/아기들이나 지을 법한 표정”(「뒤척이지 말아줘」, 『눈물』)을 훔쳐보았다고 타인에 대해 이해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타인에 대한 이해는 그러한 표정을 숨기고 있을 얼굴을 그림자를 통해서 바라볼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한 번 슬쩍 보고 건네는 동정이 아니라, 그림자를 평생 가슴에 품은 채 그림자가 건네는 추락의 내력을 오래도록 살아볼 때만 허락되는 일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시들이 쓰여진다. 살 수 없는 장소에서도 살 수 있게 된 사람이 있었다/ (중략) //그 창문으로 나는 지금 바깥을 내다본다/이토록 난해한 지형을 가장 쉽게 이해한 사람이/가장 오래 서 있었을 자리에 서서// (중략) /할 줄 아는 말이 거의 없는 낯선 땅에서/내가 느낄 수 있는 건 잠깐의 반가움과/오랜 두려움뿐이다//두려움에 집중하다 보면/지배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지배하고 싶었던 사람이/실은 자신의 피폐를 통역하려 했다는 것을/파리처럼 기웃거리는 낙관을 내쫓으면서/나는 알게 된다 - 「여행자」 부분 (『아침』) 화자는 지금 수십, 수백 년 전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토록 난해한 지형”을 바라보던 누군가의 그늘에 머물러 있다. 누구에게도 발설한 적 없는 그늘을 지키기 위해 어떤 삶은 희망이 불가능한 곳으로 자신을 조용히 밀어 넣기도 했을 것이다. 상처를 애써 부정하지 않아도 되는 저녁을 위해 황무지뿐인 창밖을 오래 바라봐야만 했으리라. 화자는 낙관을 하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품지 않아도 충분히 잘살 수 있다는 마음으로 피폐한 문장들을 건져 올리고 있다. 타인의 전생이 한꺼번에 이곳의 삶으로 현상돼 번지고 부대끼는 일. 화자가 매개하고 있는 이 순간은 스스로를 보호하고 있던 “파리처럼 기웃거리는 낙관”을 포기했을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나를 보호하던 관념들을 내려놓은 채 타인의 그늘을 만져 보는 일은 그 이전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한다. 시인이 “기웃거리던 햇볕이 방 한쪽을 백색으로 오려 낼 때//길게 누워 다음 생애에 발끝을 댄다/고무줄만 밟아도 죽었다고 했던 어린 날처럼”(「먼지가 보이는 아침」, 『아침』)이라고 말할 때, 다음 생이란 희망적이고 추상적인 미래의 어느 때를 의미하지 않는다. 타자의 그림자를 밟는 일이란 이미 하나의 생이 끝나고 다른 생이 시작되는 경이로운 순간을 매개하기 때문이다. 김소연의 시는 하나의 그림자에 담긴 무게를 섬세히 읽어 내고 그 무게가 역으로 자아의 무게를 읽어 내는 경계의 순간들을 포착한다. 그의 시를 버림받은 그림자들의 보호소라고 할 때, 화자는 그림자들을 관리하는 주체도 아니고 동정을 베푸는 관광객도 아니다. 그의 시는 하나의 그림자가 다른 그림자를 관통하는 사건의 매개이며, 타인의 그림자로부터 또 하나의 생을 물려받는 상속의 증거이다. 그림자를 이해하며 그림자에 감염되어 스스로 또 하나의 그림자가 되어 간다. 길 잃은 그림자들은 그렇게 다음 생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4. 아포리아인형극 김소연의 시에서 그림자는 배우이고 관객이며, 공기이고 침묵이다. 그림자들에 잠재된 생의 근원적 형상을 발굴하고 혼을 불어넣는다. 잡힐 듯 잡히지 않던 생의 어둠들에 이름을 붙이고, 그들과 연극을 시작한다. 때로는 독백으로, 때로는 방백으로, 그림자인형들 사이에 무형의 그림자가 스미고 번진다. 연극은 비교적 순조롭게 시작된다. 하지만 말이 리듬을 타면 탈수록 그림자는 연출자의 의도를 넘어서 스스로 움직이고 발화하기 시작한다. 오려낸 눈동자의 텅 빈 어둠으로 삶이 역류하기 시작한다. 말에 자기를 꿰뚫리고 거꾸로 그림자에 응시당할 때, ‘이곳’은 어떤 강제성에 내몰린다. 자신에게 찾아온 이 낯선 질문들에 발가벗겨진 채 노출되는 것이다.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몸에 둘렀던 기호와 기표들의 강고함은 물거품이 되어 녹아 버린다. *현재까지 발간된 김소연의 시집은 『극에 달하다』(1996),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2006), 『눈물이라는 뼈』(2009), 『수학자의 아침』(2013)까지 총 네 권이다. 인용할 경우 면수는 생략하고 각각 『극』, 『빛』, 『눈물』, 『아침』으로 표기한다. 세상 모든 것들의 표정은 지워지고/자세만이 남아 있다//이따금 나는 무지막지한 덩치가 되고/이따금 나는 여러 갈래로 흩어지기도 한다//그의 충고를 따르자면/너무 빛 쪽으로 가 있었기 때문이다/여러 개의 불빛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다// (중략) //그림자 없는 생애를 살아가기 위해/지독하게 환해져야 하는/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 - 「빛의 모퉁이에서」 부분 (『빛』) 그림자 없는 삶을 위해 끌어다 쓴 빛의 피곤이 필연적으로 ‘밤’을 끌어당길 수밖에 없다는 정확한 진술은 이러한 말과 그림자의 본질에 닿아 있다. 단적으로 말해 그림자 없는 삶이란 불가능하다. 가능하다면 그것은 유령의 삶일 것이다. 그림자는 사물의 물성을 증거하면서, 동시에 그 물성을 지워 버린다. 그림자 없는 물성이 불가능하다는 말은 그만큼 물성이라 믿어 왔던 존재의 본질이 허약하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림자를 통해서만 사물의 사물됨을 알 수 있고, 말을 통해서만 자신의 자신됨을 실감할 수 있다. 그림자 없는 물성이 유령의 것이라면, 말을 부여받지 못한 내면 역시 비존재로 내몰린다. 그러나 어떤 그림자로도 어떤 말로도 존재의 본질은 포착되지 못한다. 오히려 그림자와 말은 환영 혹은 오류가 되어 존재의 본질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뿐이다. 그림자가 지닌 이 이중성. 존재의 물성을 실감하게 하면서 오히려 그 실감을 내파해 버리는 모호성에 삶과 말이 지닌 진실이 깃들어 있다. 그러니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림자를 수도 없이 베끼며, 그림자들 사이에서 진동하고 있는 어떤 목소리들에 귀 기울이는 일뿐이다. 밤마다/그녀였던 당신이었던/수많은 아이들이 찾아와요/거친 바람처럼 문을 흔들며 칭얼대요/하나같이 눈은 퉁퉁 부었고 손끝은 차고/고개는 숙였어요// (중략) //지낼 만한 노곤함과/돌아갈 만한 차비를 두 손에 움켜쥐고/칭얼대고 칭얼대다 사라지죠//들어줍니다 두 귀를 여행 가방처럼 활짝 열고서/쓰다듬지요 두 손을 세계지도처럼 판판히 펼쳐서 위로합니다 긴 밤을 꼬박 앉아서// (중략) //번번이 한 아이가 남아 있어요/벽에 걸어둔 시커먼 외투처럼 등 뒤에서/이 아이, 자기가 엄마라고 우깁니다// (중략) /누워서 그녀는 자기 젖을 빨아요/그러면 그녀는 잠이 오지요 - 「그녀의 생몰 연도를 기록하는 밤」 부분 (『눈물』) 김소연의 시에서 그림자는 햇볕이 내리쬐는 한낮보다도 밤의 시간에 더 스스로의 본질에 가까워진다. 낮이 강제하는 빛의 윤곽으로부터 풀려남으로써 그림자는 비로소 ‘경계’의 영역에 서기 때문이다. 그녀였던 당신이었던 수많은 그림자들은 태양의 폭정이 사라지고 난 뒤에야 이미 반쯤은 사라지고 투명해진 모습으로 찾아와 말을 건넨다. ‘그녀’가 그 수많은 그림자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곤 젖을 물리며 그림자들의 해갈될 수 없는 결여에 응답하는 것뿐이다. 이 고된 노동. 그림자들을 위무하기 위해 역시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그녀’가 스스로의 젖을 빨 수밖에 없다는 운명론적 진술은 삶의 피폐성을 요약한 아포리아에 가까워진다. 그의 시에 잔혹동화와 같은 모티프들이 자주 동원되는 까닭 역시 동화가 압축해 내고 있는 생의 근원적 형식 때문이다. 그가 변용한 동화들 속에서 캐릭터는 오직 ‘자세’만으로 요약되는데, 무수히 많은 말들로 흘려보내도 끝끝내 남아 되돌아오는 ‘그림자’의 맹목적 갈망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 준다. 암늑대가 숲속에서 바람을 간호하는 밤이었대. 바람은 상처가 아물자, 숲을 떠나 마을로 내려갔대. 암늑대가 텅 빈 두 손을 호호 불며, 우듬지에 앉은 지빠귀를 올려다보는 밤이었대. 섭생을 위해서 살생을 해야만 하는 운명에 처한 늑대 이야기에, 한 아이는 밑줄을 긋고 있었대. 바람은 그 지붕 위를 저벅저벅 밟고 다녔대. 암늑대는 노란 지빠귀를 올려다보고, 노란 지빠귀는 늑대를 내려다보았대. 둘은 눈을 떼지 않고 서로를 쳐다보았대. 그래서 겨울밤은 감옥이 되기 시작한 거래. - 「눈물이라는 뼈」 부분 (『눈물』) 아이의 성장통을 비유하고 있을 이 시는 어떤 노래의 전승을 기록하고 있다. 새하얀 벽 위로 그림자들이 생을 공연한다. 섭생을 위해 지빠귀를 노리는 암늑대의 자세는 낮고 단단하다. 단 한 번의 도약으로 먹잇감을 낚아채기 위해 거추장스러운 마음은 모두 잘라낸 채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늑대의 눈빛에 어리는 검은 허공의 시간. 그 시간이 서서히 늑대를 물들여 간다. 암늑대를 내려다보는 지빠귀 역시 흔들림 없이 다가올 운명 앞에 눈감지 않는다. 공포에 몸을 맡겨 둔 채 자신도 그 시간의 일부가 되어 간다. 그리고 이들의 비극을 슬퍼하며 눈물 흘리는 바람과 아이가 있다. 이들이 빛과 어둠 사이에서 얽히고설키며 삶을 요약해내는 동안, 그 단단한 함축을 받아 먹고 돌들이 자란다. 하나의 비극이 있었음을,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생의 굴레에 의연하게 걸어 들어가 견뎌낸 그늘이 있음을 증거하고 제의한다. 김소연의 시는 그림자로 펼쳐 낸 한 편의 아포리아 인형극이다. 이 연극에는 무수히 많은 그림자들이 등장하지만, 주인공은 부재한다. 주인공이라 일컬을 수 있다면 아마도 그건 생 자체일 것이다. ‘삶’이 그려 내는 다양한 스펙트럼과 다변성 속에서도 결코 인간을 놓아 주지 않는 묵직한 생의 중력을 그의 시가 잘 포착해 내는 건 그림자야말로 생의 본질임을 잊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림자는 원상의 형상을 얼마든지 왜곡도 하고 때론 숨어 버리기도 하지만 결코 달아나지 않는다. 원상 내부의 상처와 질곡에 악착같이 달려들어 생의 모서리를 현상해 낸다. 삶을 자유롭게 하겠다는 무수한 그림자 기표들이 망각하고 있는 것은 그림자란 본디 원상의 것도 아니며, 원상과 무관한 것도 될 수 없다는 사실에 있다. 그림자란 한 편의 활시위와 같다. 원상의 중력과 그 중력을 넘어서려는 두 힘이 팽팽하게 긴장하며 휘어질 때, 그림자는 필연적으로 생의 근원에 가까워진다. 김소연의 문장이 지닌 안정된 흡인력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한다. 5. 판화적 글쓰기 인간이 맹점의 존재를 잘 느끼지 못하는 건 맹점에 의한 시야의 어둠을 다른 눈의 시각을 통해 메우기 때문이다. 언어의 눈, 그림자의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빛을 가득 채워 존재가 현현하는 곳을 봉쇄할 때, 우리의 삶은 점점 더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감정과 생각이 어긋나고, 말과 빛이 허용하는 사유만이 폭거하는 메마른 불모지로 변모한다. 동일성의 사유에 항거하는 최근의 숱한 철학적 사유들이 그 윤리적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삶의 언어를 구원해 내지 못하는 건 이들 이론과 이미지의 현란함이 맹점의 파쇄가 아닌, ‘보완’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삶의 언어로 충분히 구체화되지 못한, 자신의 손과 발로 직접 일구어 내지 못한 이미지의 언어들은 스스로가 올바른 대체시각이며, 이 강렬한 빛으로 맹점과 어둠을 몰아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 또한 뒤틀린 자만이며 확장된 동일성이다. 그러나 맹점은 우리 삶의 조건이며, 그 종착지이기도 하다. 인간의 조건은 부정되거나 개선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직시하고 함께 살아가야 할, 세계와 인간 사이에 놓인 고유한 매개 방식이다. 그림자가 아무런 음성도 없이 지상에 잠시 내려앉은 검은 입으로 말을 건넬 때, 이를 가장 섬세하게 들어줄 수 있는 방법은 어둠을 어둠인 채로 내버려 두는 일이다. 시선의 한구석에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어둠을 받아들이고, 그 어둠과 대화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어쩌면 인간은 영원히 이 조건을 벗어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렇다하여도 그림자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은 유령처럼 태어나고, 그 절망적인 시도를 되풀이하며 말의 어긋남 속에서 더 진실한 말 하나를 길어 올린다. 이는 시인의 숙명이며, 시의 본질이기도 하다. 이를 김소연의 시적 방법론을 빌려 말하자면 판화적 글쓰기라고 명명해 볼 수도 있겠다. 이 성실하고도 마음 따뜻한 그림자 필경사는 그림자에 각인된 어둠의 지문을 숨죽여 더듬으며 그 굴곡과 깊이를 음화로 찍어 낸다. 어둠의 언어로, 어둠을 끌어안은 채, 어둠 속에서야 비로소 보이는 삶의 근원적 자세들을 현상해 낸다. 안전한 거리에서 시각의 윤곽을 따 옮기는 것이 아니라, 삶의 언어로 어둠에 밀착해 어둠을 살아 내면서 몸으로 찍어 내는 것이다. 그의 판화적 글쓰기에서 그림자는 언제나 모상(模像)이 아닌 원상(原象)일 수밖에 없는데, 시선의 권력을 그림자에게 돌려줌으로써 주체가 만들어 낸 일련의 위계상을 단번에 해체해 버리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시가 지향하는 바와 전략이 너무도 명확한 만큼 쉽게 ‘코드’로 환원될 수 있다는 약점으로 비춰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의 시는 ‘코드’로 읽히지 않는다. 그림자를 통해서 ‘무언가’를 말하려 하기보다는, 언제나 그림자 ‘속’에서 그림자 자체를 경험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의 시는 구체적인 삶의 시공간을 결코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 삶의 실경이 굳건하게 뿌리박고 있는 시적 공간에서 그림자의 우화로 그림자의 눈빛에 노출되도록 만들 뿐이다. 태양에 흑점이 많을 때는, 역설적으로 태양의 활동이 가장 ‘극에 달했을’ 상태라고 한다. 내부의 격렬한 균열과 폭풍이 열의 흐름을 방해하여 상대적으로 어둡고 온도가 낮은 부분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라고. 어쩌면 그림자에 대해서도 그와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그림자들은 가장 격렬한 생을 통과한 내상들이며, 그 내상이 건네는 말의 뒤틀린 방식이라고. 김소연의 시는 현실 너머의 추상적 피안이 아니라, 뜨거움과 차가움을 절실히 통과한 이후의 ‘이곳’을 그림자의 형상을 통해 추적해 낸다. 삶을 가장 치열하게 마주한 자의 뜨거움으로 그늘이 품은 울음을 읽어 내고 위무한다. 그러므로 그의 시를 일컬어 이렇게 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생의 흑점들로 이루어진 점자들이며, 생의 근원적 자세를 찍어 낸 판화들이라고.
  • [그 책속 이미지] 집, 삶을 담는 그릇… 그를 꼭 빼닮은 인생

    [그 책속 이미지] 집, 삶을 담는 그릇… 그를 꼭 빼닮은 인생

    집이 사람이다/한윤정 글/박기호 사진/인물과사상사/364쪽/1만 7000원자신만의 집을 짓기 위해 백지에 설계도를 그리던 아버지를 추억하는 한윤정씨는 집을 사유해 온 철학자가 아닐까. 작가와 예술가들의 소우주 같은 집을 엿보며 탐구한 그는 마침내 집에 대해 통달한 것 같기도 하다. “마음이 강한 사람은 모든 곳이 집이라고 하고/깨달은 사람은 어느 곳도 집이 아니라고 한다/집은 각자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집에서 길어올린 깊은 성찰을 풀어낸다. 집을 ‘삶을 담는 그릇’에 비유하는 저자가 꼽는 ‘좋은 집’들은 사진작가 박기호의 아름다운 작품을 통해 그 자체가 작품이 된다. 그리고 그 집을 꼭 빼닮은 인생 이야기도 덤으로 건넨다. 사진은 충남 논산시 대둔산 기슭의 폐가를 접착제 하나 쓰지 않고 2년 6개월간 물에 갠 흙과 지푸라기로 되살려 낸 환경운동가 차준엽의 토담집. 그는 지난 10월 대지의 자궁 같던 그 안식처에서 귀천(歸天)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거래소 폐쇄 검토’ 카드 꺼낸 정부… 가상화폐 시세 급락

    ‘거래소 폐쇄 검토’ 카드 꺼낸 정부… 가상화폐 시세 급락

    가상화폐 ‘거래 실명제’ 실시 불건전 거래소 시장에서 퇴출 1인당 거래한도 설정도 검토 가상화폐 범죄 법정최고형 구형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거래는 시중은행에서 개설한 실명계좌로만 할 수 있다. 가상화폐 거래소를 전면 폐쇄하는 특별법 제정 논의 등 가상화폐 투기 근절을 위한 다양한 방안이 추진된다. 불건전 거래소에 대해선 지급결제 서비스를 중단해 시장에서 퇴출시키고, 1인당 거래 한도를 설정하는 방안도 검토된다. 가상화폐 거래소의 가상계좌 신규 발급은 28일 정부 발표 직후 바로 중단됐다.정부는 이날 홍남기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가상화폐 관계부처 차관 회의를 열고, 가상화폐 거래실명제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실명확인이 된 거래자의 은행 계좌와 가상화폐 거래소의 같은 은행 계좌 간에만 입출금이 허용되는 것이다. 가상화폐 거래소의 가상계좌 신규 발급은 정부 발표 직후 곧바로 중단됐다. 기존 가상계좌 이용 회원은 실명계좌로 이전하는 작업이 진행된다. ●정부 “묻지마 투기 더 방치 못해” 홍 실장은 “아파트 관리비나 학교 등록금, 범칙금 등의 효율적 납부를 위해 이용되는 가상계좌가 가상통화 매매계정으로 방만하게 활용돼 투기를 확산하고 금융거래 투명성을 저해하고 있다”며 “‘묻지마식 투기’가 기승을 부리는 비이성적 상황을 더는 방치할 수 없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이날 회의에서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처음으로 공식 건의했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등 다른 부처도 거래소 폐쇄 가능성을 열어 놓은 채 대응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홍 실장은 “요건 미달 거래소만 폐쇄인가, 전체 거래소 폐쇄인가”라는 질문에 “두 가지 다 포함된 것으로 생각하며,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답했다. 전면 폐쇄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정부는 또 지난 13일 발표한 가상화폐 긴급대책을 따르지 않은 거래소에 대해선 금융사의 지급결제 서비스를 중단토록 하는 등 사실상 퇴출에 나섰다. 당시 정부는 거래소의 거래자 본인 확인 강화와 미성년자 및 외국인 거래 금지 등의 규범을 제시했다. 또 가상화폐 관련 범죄는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하고 법정 최고형을 구형키로 했다. 포털 등을 통한 가상화폐 광고도 규제된다. 가상화폐 관련 주요 단속대상은 ▲다단계 사기·유사수신 ▲채굴빙자 사기 ▲환치기 등 외국환거래법 위반 ▲자금세탁 등 범죄수익 은닉 ▲거래소 불법행위 등이다. ●발표 직후 비트코인 300만원 추락 금융위도 이날 김용범 부위원장 주재로 금융권 점검회의를 열고, 은행권이 정부 조치를 조속히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가상계좌가 막힌 가상화폐 거래소가 일반법인 계좌를 이용할 수 있다며 금융정보분석원과 금융감독원에 감시를 요청했다. 실명확인 시스템이 구축되면 1인당 거래 한도를 설정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김 부위원장은 “불법자금에 대한 ‘문지기’ 역할을 하는 은행권이 사전에 충분한 검토 없이 가상통화 거래소에 앞다퉈 가상계좌를 제공한 것은 자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거래소 폐쇄까지 언급하자 이날 주요 가상화폐 가격은 급락했다. 국내 최대 거래소 빗썸에서 비트코인은 2100만원대에서 정부 발표 직후 1800만원대로 떨어졌다. 이더리움과 비트코인캐시, 라이트코인 등도 10% 이상 하락했다. 업계에선 정부가 지나친 규제로 세계적 추세에 역행한다는 불만도 나왔다. 김진화 블록체인협회 준비위원회 공동대표는 “칼은 칼자루에 꽂혔을 때 위협적인데 성급하게 휘두른다는 생각이 든다”며 “국민 사이에선 쇄국정책이라는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국토교통부에는 부동산 거래 수단으로 비트코인을 사용할 수 있느냐는 민원인 질의가 들어왔다. 국토부는 내부검토를 통해 “화폐가 아닌 만큼 불가능하다”는 방침을 정했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정부,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 검토

    정부,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 검토

    정부가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검토한다고 밝혔다.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은 2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어 가상화폐 관련 부처 차관회의 결과를 발표했다. 홍 실장은 “가상화폐는 법정화폐가 아니고, 큰 폭의 가격 변동·투자사기·거래소 해킹 우려를 수차례 경고했음에도 상당수 가상화폐 국내 시세가 해외보다 지나치게 높고, 묻지마식 투기까지 기승을 부려 더는 방치할 수 없다는 게 정부 입장”이라고 밝혔다. 법무부는 이날 회의에서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처음으로 공식 건의했다. 정부는 폐쇄의견을 포함해 모든 가능한 수단을 열어 놓고 대응방안을 검토해 나가기로 했다. 정부는 ▲가상화폐 거래 실명제 ▲가상화폐 관련 범죄 집중단속과 엄정처벌 ▲가상화폐 온라인 광고 등 규제 강화를 특별대책의 큰 틀로 내놓았다. 앞으로 가상화폐 거래 시 가상계좌 활용을 금지하고, 본인임이 확인된 거래자의 은행 계좌와 가상화폐 거래소의 동일은행 계좌 간에만 입출금을 허용하는 ‘실명확인 입출금계정서비스’를 시행한다. 가상화폐 거래소에 대한 은행의 자금세탁방지 의무도 더 강화한다. 수사당국은 ‘2018년 가상통화 관련 범죄 집중단속 계획’을 수립해 추진하고, 시세조종 등 불법행위시 원칙적으로 구속수사하고 법정최고형을 구형하기로 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포털 등을 통한 가상화폐 온라인 광고에 대해 사업자의 자율정화 활동으로 무차별적인 광고가 나가지 않도록 할 계획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비트코인 하루 새 20% 급등락

    가상화폐(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이 하루 사이 20%가량 급락했다가 급등하며 주말 새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24일 빗썸에 따르면 비트코인의 가격은 한동안 2000만원대를 유지하다가 지난 22일 오전 10시 10분부터 내렸다 올랐다를 반복하다가 오후 11시 20분 1605만원까지 떨어졌다. 22일 고점인 오전 7시 30분 2085만원에 견줘 16시간 만에 23.0%나 급락한 것이다. 다른 가상화폐도 줄줄이 급락했다. 이날 고점 대비로 이더리움은 29.4%, 비트코인 캐시는 41.2%나 떨어졌다. 이는 가상화폐의 하나인 라이트코인을 만든 찰리 리가 최근 보유하고 있던 가상화폐를 내다 팔아 가상화폐가 약세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가상화폐 시장이 과열된 데 따른 반응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비트코인의 가격은 24일 오후 5시 기준 1만 4400달러(약 1555만원) 선에서 거래 중이다. 비트코인이 22일 급락한 이후 저점 매수세가 들어왔다가 다시 반등하니까 매물이 나오는 일이 반복되는 것으로 보인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이주열 “가상화폐 열풍, 비이성적 과열”

    이주열 “가상화폐 열풍, 비이성적 과열”

    ‘골디락스’ 경제상황 예의주시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의 가격 폭등 현상에 대해 ‘비이성적 과열’이라는 우려를 나타냈다. 이는 1990년대 후반 닷컴 주가 폭등 당시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썼던 표현이다. 이 총재는 지난 20일 출입기자 송년 간담회에서 “가상화폐는 법정 화폐로 보기 곤란하며 투기적 모습을 보이는데, 세계 모든 중앙은행이 모여서 얘기할 때마다 우려한다”면서 “최근 전 세계적인 가상화폐 열풍을 보면서 금융완화 기조가 장기간 이어지며 비이성적 과열도 일부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을 한다”고 밝혔다. 이어 “한은은 중앙은행 차원에서 가상화폐가 본격 확산한다면 통화정책과 통화파급 경로, 지급결제 시스템, 금융안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초점을 맞춰 연구는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내년에 저출산·고령화, 가계부채 등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와 함께 ‘골디락스’로 대표되는 글로벌 경제 상황에 대해서도 관심을 표명했다. 골디락스는 성장세가 확대되지만 물가 상승 압력이 크지 않은 상태로, 금융시장에서는 이를 반영해 주요국 주가는 사상 최고치로 올라가고 장기금리는 낮은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이 총재는 “가뜩이나 커진 금융 불균형이 더욱 쌓이고 위험자산 선호 경향이 장기간 지속된다면 어떤 형태로 조정이 이루어질지, 영향이 어떠할지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또 올해 뜻깊었던 일로 한·중 통화스와프 만기 연장을, 가장 값진 성과로는 캐나다와의 통화스와프 신규 체결을 각각 꼽았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 보이스피싱 범인들 사기금액을 비트코인으로 현금화

    보이스피싱 범인들 사기금액을 비트코인으로 현금화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으로 8억원의 피해를 보는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들은 이 8억원을 비트코인으로 바꿔 달아나 비트코인이 범죄에 악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어 우려되고 있다.2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A씨는 본인 명의로 대포통장이 만들어져 범죄에 이용되고 있다는 전화를 서울중앙지검 검사로부터 받았다. 검사를 사칭한 이 보이스피싱 일당은 A씨에게 조사가 끝날 때까지 계좌의 돈을 보관해주겠다고 하고 이 말에 속은 A씨는 사기범이 알려준 계좌 4곳으로 8억원을 보냈다. 8억원 가운데 은행에 개설된 대포통장 3개로 5억원이 송금됐고 나머지 3억원은 가상화폐 거래소와 연계된 가상계좌로 보냈다. 가상화폐 거래소는 회원명과 가상계좌로의 송금인이 일치해야 하기 때문에 사기범은 A씨에게 거래소 회원명으로 송금인 이름을 바꿔 돈을 보내라고 했고,A씨는 그대로 했다. 이렇게 해서 들어온 8억원으로 사기범은 비트코인을 산 뒤 사들인 비트코인을 전자지갑에 담아 현금화해 달아났다. 금감원 관계자는 “8억원 피해는 1인 기준으로 최대 규모”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최대 피해 규모는 지난 6월에 발생한 3억원이다. 금감원은 최근 가상화폐가 보이스피싱 피해금 인출에 악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어 거래소와 협력해 소비자 보호 대책을 강구 중이라고 밝혔다. 금감원 관계자는 “가상화폐는 금융거래로 인정되지 않고 거래소도 비금융 사기업인 만큼 금융당국의 직접적인 개입이 어렵다”며 “수사기관이나 금감원 직원이라는 전화를 받은 경우 당황하지 말고 전화를 끊고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뛰는 위폐 위에 나는 감별… 지갑 속 만원도 꼼짝마”

    “뛰는 위폐 위에 나는 감별… 지갑 속 만원도 꼼짝마”

    “미국이 ‘슈퍼노트’에 대항하고자 1996년 100달러권 화폐의 도안을 바꿨지만, 그 후 6개월 만에 똑같이 모방한 위조지폐가 등장했습니다. 2006년판 신종 초정밀 슈퍼노트도 최근 발견됐죠. 아무리 보안요소를 강화해도 새로운 위폐는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겁니다. 진화하는 슈퍼노트를 따라잡으려면 위폐 분석에 대한 투자와 세계 금융시장 전체의 공동대응이 필수적입니다.” 최근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에도 보고되지 않은 세계 최초 ‘2006년판 슈퍼노트’가 국내에서 적발돼 화제가 됐다. 이호중(48) KEB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장이 20일 이것을 발견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지폐에 손때가 꽤 묻어 있는 것으로 보아 10년 이상 유통됐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너무 정교해서 그동안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확인된 오류를 대조해 보면 전 세계 각국에서 신종 슈퍼노트가 추가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달 초 이 센터장이 하나은행에서 발견한 2006년판 신종 슈퍼노트 한 장은 국가정보원의 분석을 거쳐 미국 국토안보부 산하 비밀검찰국으로 전달됐다. 이 센터장은 민관을 아우르는 경력을 가진 국내 최고 ‘위폐 감별사’이다. 1995년 한국외환은행에 입행해 외화수출입 업무 등을 담당하다가 2001년 국가정보원으로 옮겨 위폐분석 담당관으로 근무했다. 2013년 다시 하나은행으로 돌아와 국내 최대 규모인 위변조대응센터를 이끌고 있다. 이날 센터를 방문하니 17명의 위폐분석 전문가들이 흰 가운 차림으로 외화와 한국 지폐를 분석하고 있었다. 은행으로 들어오는 모든 지폐는 이곳에서 위·변조 여부를 확인한다. 1단계로 고성능 위폐 감별기에 모든 돈을 넣고 훼손됐거나 위조가 의심되는 것들을 걸러 낸다. 위폐로 의심되면 2단계 확대경을 통해 정밀 감식한다. 마지막으로 최첨단 영상분석기로 자외선·적외선 반응이나 인쇄 방법의 차이를 분석한다. 고성능 감별기와 영상분석기는 2억~3억원대로 고가의 기기들이다. 영업점에 있는 작은 감별기는 보통 100만원 선이다. 하나은행은 2014년 위변조대응센터를 새로 조성해 초기 시설 투자로 약 15억원을 투입했다.이 센터장은 은행권에서 위폐 대응에 대한 투자가 미미한 점을 아쉬워했다. “다른 은행에는 위변조대응센터가 따로 없어 우리나라 전체에 위폐가 어느 정도 들어오는지도 정확히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금융시장에 위폐라는 바이러스가 과도하게 섞이면 사고가 날 수밖에 없고 이는 은행 존망과도 연결되는 중요한 문제이죠.” 만약 ‘위폐를 수출하는 은행’으로 찍힌다면 해외 금융시장에서 거래가 끊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센터장은 “센터에서 매일 달러 등 외화를 전수조사해 깨끗한 돈은 다시 국내 영업점으로 유통하기 때문에 연간 14억원 정도 비용 절감 효과를 본다”면서 “다른 시중은행도 어느 정도 시설에 투자한다면 장점이 더 클 것”이라고 덧붙였다. 센터는 하루에 50만~100만장에 달하는 지폐를 조사한다. 그 중 매일 2~3장의 위폐가 적발된다. 이 센터장은 “우리나라 돈 1만 원권은 매일 꼭 한 장씩 위폐가 나온다”면서 “가정용 컬러프린터로 제작해 숨은 그림도 없는 조악한 위폐라도 보통 사람들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하물며 여행 갈 때 가끔 보는 외국 돈은 말할 것도 없다.이 센터장은 “‘내가 지닌 돈이 슈퍼노트일 수도 있다’는 경각심을 항상 가져야 한다”면서 “특히 겨울방학 여행 시즌일 때 환전은 되도록 은행에서 하고 여행 가는 나라의 최고액권은 가져가지 않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이 센터장은 위폐로 의심되는 돈이 있으면 기억해야 할 3단계를 제시했다. ‘빛에 비춰 보기’를 통해 지폐 여백에 숨은 그림을 확인하고 ‘만져 보기’로 오톨도톨한 인쇄가 느껴지는지 찾고 ‘기울여 보기’로 잉크의 색깔이 변하는 부분을 들여다보라는 것이다. 이 과정만 거쳐도 슈퍼노트 등 초정밀 위폐가 아닌 일반 위폐들은 걸러낼 수 있다고 한다. 하나은행 직원이 센터에 발령받으려면 6개월 과정의 ‘위조지폐 감정 고급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이 센터장은 “보통 은행에서 화폐를 다루면 낮게 보는 인식이 많았는데 이제 하나은행에서는 직원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본점 부서 ‘톱5’에 꼽힐 정도”라면서 “자본시장에 건강한 혈액과 같은 화폐를 공급하고 신뢰를 보증하는 파수꾼이라는 자부심으로 일한다”며 웃었다. “지폐는 단순한 돈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작품입니다. 판화를 제작하는 데 엄청난 노력이 들고 보안요소도 계속 발전하고 있거든요. 어떤 사람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각종 디지털 페이가 보편화해 화폐가 사라질 것이라고 하죠. 하지만, 신권으로 바뀐 이후 최근 10여년간 우리나라 돈의 시중 유통량은 26조원에서 100조원 규모로 늘었습니다. 왜일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사람들이 화폐를 소유하고 직접 쓰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결코 지폐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이호중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장은 -1995년~2001년 한국외환은행 외화수출입·외국환규정 업무 담당 -2001년~2013년 국가정보원 금융범죄·위폐분석 담당관 -2004년~2012년 한국은행 위조방지실무위원회 상임위원 -2005년~2010년 한국조폐공사 위조방지기술위원회 상임위원 -2013년~현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장
  • 가수 박정운 “가상화폐 다단계 불법 모르고 흥 돋우는 역할”

    가수 박정운 “가상화폐 다단계 불법 모르고 흥 돋우는 역할”

    2000억원대 가상화폐 다단계 사기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채굴기 운영을 대행한 미국업체 임직원과 최상위 투자자들을 무더기로 재판에 넘겼다. 이 중에는 가수 박정운(55)씨도 포함됐다.인천지검 외사부(부장 최호영)는 사기 및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채굴기 운영 대행 미국업체 ‘마이닝맥스’의 계열사 임직원 7명과 최상위 투자자 11명을 구속기소 했다고 20일 밝혔다. 이들은 지난해 9월부터 올해 10월까지 가상화폐 ‘이더리움’을 생성할 수 있는 채굴기에 투자하면 많은 수익금을 가상화폐로 돌려주겠다고 속여 투자자 1만8000여 명으로부터 2700억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이더리움은 비트코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시가총액이 큰 가상화폐다. 가상화폐를 새로 얻으려면 수학 문제 등 어려운 수식을 풀어야 한다. 이더리움 채굴기는 이 암호를 풀어주는 고성능 컴퓨터 기계다. 마이닝맥스는 피라미드식으로 투자자를 모집한 뒤 하위 투자자를 유치한 상위 투자자에게 추천수당과 채굴수당 등을 지급했다. 투자자들은 구매한 채굴기 수에 따라 7개 등급으로 나눠 불렸다. 이번에 재판에 넘겨진 이들은 ‘4스타’와 ‘5스타’로 다단계 피라미드의 꼭짓점에 있던 최상위급 투자자들이다. 최상위 투자자들은 1년간 1인당 최소 1억원에서 최대 40억원의 수당을 받아 챙겼다. 수당과 별도로 실적 우수자는 벤츠 등 외제차, 고급 시계, 순금 목걸이 등도 받았다. 가수 박씨는 홍보대행 회사의 대표를 맡아 올해 8∼10월 8차례 회사 자금 4억5000여만원을 빼돌려 생활비 등으로 쓴 혐의 등을 받았다. 박씨는 검찰 조사에서 “마이닝맥스가 전산을 조작한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고 불법 다단계 사기인 줄도 몰랐다”며 “행사장에서 후배 가수들을 불러 흥을 돋우는 역할만 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닝맥스는 피해자들로부터 받은 2700억원 중 750억원만 채굴기를 사는 데 쓰고 나머지 돈은 계열사 설립자금이나 투자자를 끌어온 최상위 투자자들에게 수당으로 줬다. 1000억원가량은 마이닝맥스 임원진이 해외에서 보유한 것으로 검찰은 추정했다. 그러나 투자자 수만큼 제대로 가상화폐를 채굴할 수 없게 되면서 수익금 지급이 지연됐고, 급기야 하위 투자자의 투자금으로 상위 투자자에게 수익금을 주며 돌려막기를 하다가 회장과 부회장은 해외로 도피했다. 마이닝맥스는 자금관리회사 3개, 전산관리회사 3개, 고객관리회사 2개, 채굴기 설치·운영회사 2개, 홍보대행 회사 1개 등 모두 11개의 계열사를 보유했다. 이들 계열사 가운데 전산관리회사들은 실제로 가상화폐가 채굴되는 것처럼 조작할 수 있는 전산 프로그램을 개발해 피해 투자자들을 속였다. 마이닝맥스는 한국뿐 아니라 미국·중국 등 전 세계 54개국에서 유사한 수법으로 투자자들을 모집했다. 올해 6월 미국 하와이와 11월 라스베이거스 등지에서 대규모 워크숍을 열기도 했다. 검찰은 나라별 피해자 수가 한국 1만4000여명, 미국 2600여명, 중국 600여명, 일본 등 700여명으로 각각 추산했다. 한국인 피해자 상당수는 가상화폐로 안정적인 수익을 얻으려고 투자했다가 사기를 당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30대의 한 남성은 결혼 자금으로 모은 2500만원으로 채굴기 10대를 샀다가 아무런 수익도 거두지 못했고, 60대 전직 교사는 30년간 교직 생활을 하고 받은 퇴직금 중 5000만원을 투자했다가 모두 날리기도 했다. 검찰은 미국과 캐나다 등지로 도주한 미국 국적의 한국인 회장 A(55)씨 등 마이닝맥스 임원과 계열사 사장 등 7명에 대해 체포 영장을 발부받아 인터폴을 통해 적색수배를 내렸다. 또 회장 수행비서 등 4명을 조사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수익률 왕’ 이더리움

    ‘수익률 왕’ 이더리움

    올 들어 몸값이 가장 많이 오른 가상화폐(암호화폐)는 비트코인과 함께 양대 산맥인 이더리움이다. 이더리움은 올 들어 80배 올랐다. 가상화폐가 기술적으로 발전하고 있지만, ‘지지자’들이 상용화되지 않은 기술로 ‘거품’을 만들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19일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에 따르면 ‘대장’ 비트코인이 연초 대비 17.2배 오를 때 이더리움은 약 80배 뛰었다. 라이트코인, 대시도 각각 16.1배, 12.7배 상승했다. 정부가 가상통화 규제를 본격화한 이후인 지난 13일 상장된 이오스도 93.6%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19일 오후 3시 현재 이더리움은 1코인당 97만 8500원에, 비트코인은 2217만 7000원에 거래됐다. 비트코인이 최초의 가상화폐라면 이더리움은 최초의 블록체인(공공거래장부) 플랫폼에 가깝다. 2015년 러시아 이민자 출신 캐나다인 비탈릭 부테린이 창시했다. 거래나 결제 등 화폐 기능에 한정된 비트코인과 달리 투표나 가상화폐공개(ICO)를 진행할 수 있다. 이더리움은 관련 서비스가 많을수록 수요가 많아진다. 이더리움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개발된 게임 ‘크립토키티’를 이용하면 대가로 이더리움을 지불하는 식이다. 무한정 채굴이 가능하지만, 채굴 속도는 제한돼 공급 탄력성도 낮은 편이다. 비트코인보다 처리 속도가 약 4배 빠른 라이트코인은 미국 게임 업체 ‘스팀’에서 사용할 수 있어 관심이 높아졌다. 비트코인은 계좌번호만 알면 거래를 조회할 수 있지만, 대시는 익명성이 더 높고 속도도 빠르다. 박녹선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지금 가상화폐들의 가격 상승세는 처리 속도 등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관련 생태계를 이뤘는가가 앞으로 관건”이라고 전망했다. 빗썸 관계자는 “개별 가상화폐를 충분히 이해하고 여유자금으로만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권익위서 행정심판 기능 분리 추진”

    “권익위서 행정심판 기능 분리 추진”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중앙행정심판위원회를 분리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권익위는 2008년 국민고충처리위원회와 국가청렴위원회, 국무총리 행정심판위원회 등 세 기능이 합쳐져 만들어졌는데, 행정심판 기능을 떼어 내고 고충처리와 반부패·청렴 기능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박은정 권익위원장은 19일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기자단과 오찬 간담회를 열고 “권익위 중심으로 반부패·청렴을 강화하는 게 새 정부 기조이며, 권익위에 반부패·청렴 컨트롤타워를 재설계하는 쪽으로 결론 났다”고 밝혔다. 이어 “부패방지법에 의하면 부패를 공직부패로 좁게 정의하는데, 세계적 추세는 민간부패도 상당히 중점적으로 다뤄야 하는 요구도 있다”며 “이런 기조에서 본다면 행정심판 기능은 권익위와 함께하긴 어렵지 않겠나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시점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청탁금지법이 허용하는 농축산물 선물 상한액 10만원 상향과 관련해 농림축산식품부의 ‘착한 선물 스티커’ 구상에 대해선 부정적 입장을 내비쳤다. 농식품부는 앞서 농수산물이 재료·원료의 50%를 초과한 가공품을 확인할 수 있도록 제품에 ‘착한 선물 스티커’를 부착하겠다고 발표했다. 박 위원장은 “‘착한 선물’이라는 것은 어폐가 있다. 이것은 착한 선물이니 괜찮아, 마음대로 받아도 된다고 하면 부패를 조장할 측면이 있지 않나 싶다”며 우려를 내비쳤다. 여론에 밀려 청탁금지법 시행령을 개정했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박 위원장은 “다양한 방면으로 여론 수렴을 했다”면서 “여론 수렴 과정에서 권익위가 당연히 총리, 대통령의 뜻과 의지를 반영해 정부부처 간 의견을 조율해서 최종 결론을 냈다”고 말했다. 또 “청탁금지법 개정을 전체적으로 보면 이 법의 본질을 강화하는 방향도 들어 있다”며 “후퇴했다고 읽는 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국과수 “신생아 4명 사망 세균 감염탓? 납득 어려워”…엇갈린 소견

    국과수 “신생아 4명 사망 세균 감염탓? 납득 어려워”…엇갈린 소견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이대목동병원에서 사망한 신생아 4명의 시신을 18일 부검해 복부의 가스팽창은 확인했지만 질병관리본부가 밝힌 세균감염에 따른 동시 사망 추정 가능성에 대해서 “의료인으로서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내놨다. 국과수는 “육안 관찰만으로는 사망 원인을 특정할 수 없다”는 1차 소견을 밝혀 한달 뒤로 예상되는 최종 발표까지 사망 원인을 지켜봐야할 것으로 보인다.앞서 질병관리본부는 숨진 신생아 4명 중 3명의 혈액배양검사를 한 결과 ‘그람음성균’에 해당되는 세균 감염이 의심되는 상황이 확인됐다고 이날 밝힌 바 있다. 국과수는 이날 오후 부검이 끝난 뒤 부검장소였던 서울 양천구 신월동 서울과학수사연구소에서 브리핑을 열어 “신생아는 조직 현미경 검사 및 각종 검사 결과 등을 종합해야 사인을 규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과수는 이날 이봉우 중앙법의학센터장 등 법의관 5명을 투입해 신생아 4명에 대한 부검을 진행했다. 법의관들은 이날 숨진 환아들의 장기를 육안으로 검사한 뒤 감염질환 가능성 점검과 조직현미경 검사를 위해 소·대장 내용물, 흉강체액 등 여러 종류의 인체 검사물을 채취했다. 채취한 검체는 질병관리본부로 보낼 예정이다. 국과수는 또 “모든 아기에게서 소·대장의 가스팽창 소견이 육안으로 관찰된다”면서도 “장염 등의 정밀한 진단은 조직현미경 검사, 검사물에 대한 정밀감정을 추가로 진행 후 판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양경무 서울연구소 법의조사과장은 “장에 가스가 차는 경우는 아이들이 저산소증에 빠져 산소 공급이 안 되거나 미숙아가 우유를 제대로 먹지 못해 장내 세균 수 변화가 있는 경우 등 매우 다양하다”며 “장 팽창 자체만으로 특정 질환을 이야기하기는 어려운 상태”라고 설명했다. 국과수는 환아들이 짧은 시간 동안 연이어 사망한 원인을 특정 감염균으로 규정하는 시각에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양 과장은 “감염은 함께 될 수 있지만 사람마다 면역 상태나 몸 상태가 달라 동시 사망 원인을 감염균으로 보는 것은 의료인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며 “의무기록 등을 살펴 가면서 감염체 외에 아이들의 수액 세트, 투약한 약물 등을 분석하고 검사하는 단계적 절차가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질병관리본부는 혈액배양검사를 바탕으로 ‘그람음성균’ 감염을 사망원인을 추정했는데 전문가들은 면역력이 떨어진 신생아에게 폐렴과 요로 감염 등 2차 감염을 일으킬 수 있어 신생아의 사망에 치명적이라고 진단했다. 실제 2012년 국내 연구팀이 서울, 경기 지역의 6개 유명 대학병원 로비에서 세균 오염도를 측정한 결과 그람음성균이 전체 76개 시료 중 84.2%인 64개가 검출됐다. 전문가들은 과거 국내 산후조리원에 입원한 신생아들이 집단 폐렴 증상을 보여 사망위험을 초래했고 일부는 세균 감염으로 미숙아의 폐가 기흉처럼 급작스럽게 터져 숨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전했다.그러나 국과수는 사망 원인을 다양하게 분석해보겠다는 계획이다. 양 과장은 환아들이 완전 정맥영양 치료 도중 약물 과다투여 등으로 사망했을 확률을 두고는 “어떤 것이든 병원에서 쓰는 약물은 그런 치명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며 “(그런 점을) 고려해서 조사하고 결론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국과수는 현장에서 수거된 수액과 주사기 세트를 정밀 감정해 투약과 관련한 병원 측 과실이 있는지도 확인할 계획이다. 양 과장은 “80∼90분 내에 한꺼번에 심폐소생술을 했는데 소생술을 한다는 것은 사망이 임박했다는 뜻”이라며 “사망 예측이 있었다면 소아 담당이 유족에게 설명했을 텐데 유족은 그런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런 점에서 환아들의 상태가 급속히 악화했을 것이라고 양 과장은 추정했다. 국과수는 “부검에서 채취한 검사물과 현장 역학조사 검체들에 대한 질본의 분석 결과를 종합하고,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수거된 약품 감정과 오염 여부 검사도 진행할 것”이라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현장 재조사 등을 포함해 철저히 원인을 규명하겠다“고 덧붙였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살 가망 없는 태아 낳으려는 산모…눈물겨운 결정

    살 가망 없는 태아 낳으려는 산모…눈물겨운 결정

    태아가 세상에 나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숨질 수밖에 없음을 알면서도 끝까지 아이를 출산하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은 여성의 사연이 알려졌다. 메트로 등 영국 현지 언론의 17일 보도에 따르면 세 아이의 엄마인 헤일리 마틴(30)은 넷째 아이를 임신한 지 20주가 지났을 무렵, 태아가 희귀한 유전질환에 걸려 출산 후에도 살기 힘들다는 의료진의 진단을 들었다. 의료진은 유전적 결함으로 태아에게 신장이 없는 ‘양쪽 신장무발생증’인데다, 양수의 양이 부족해 폐가 기형인 상태인 것으로 파악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출산 후에도 생존이 어렵다는 것이 의료진의 판단이었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산모와 가족은 수술을 통해 태아를 산모의 몸 밖으로 꺼낸 뒤 장례식을 치르지만, 마틴 부부의 선택은 달랐다. 부부는 태아가 최대한 오랫동안 뱃속에서 머물게 한 뒤, 제왕절개를 통해 세상에 나온 아기의 장기를 필요한 사람들에게 기증하기로 한 것. 헤일리 마틴은 “뱃속 아이에게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아이가 이미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어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면서 어려운 결심을 하게 된 배경을 밝혔다. 물론 이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부부는 쉽지 않은 길을 걸었다. 길거리에서 출산을 앞둔 임신부를 볼 때마다, 넷째 아이와 함께 할 수 없는 미래를 슬퍼하며 눈물을 흘려야 했다. 하지만 부부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려 노력했고, 결국 태아의 건강한 장기를 이식하기 위해 임신상태를 계속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의료진은 아이가 태어나면 심장과 간세포, 췌장 등을 이식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마틴은 “아이가 뱃속에 있는 동안 만큼은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 내 아이는 세상에 나온 뒤 누군가의 몸 안에서 계속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마틴의 출산 예정일은 내년 1월 25일이지만, 다음 주 앞당겨 제왕수술을 진행할 예정이다. 의료진은 수술 직후 아이가 숨지지 않는다면, 단 몇 분 만이라도 마틴 부부가 아이를 안아볼 수 있는 시간을 줄 예정이라고 전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괴사성 장염, 인공호흡 중 질환, 패혈증 쇼크

    뇌출혈·혈관 손상·색전증 등 치료 과정서 나타날 수 있어 “단시간 내 잇따른 사망 이례적” 신생아 중환자실에 입원한 미숙아들은 모든 장기가 불안정하다. 조그마한 원인에도 급격하게 몸 상태가 안 좋아져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비교적 건강 상태가 양호하더라도 짧은 시간 내에 생명이 위중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물론 서울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치료받던 미숙아 4명이 단시간 내에 잇따라 숨진 건 이례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전문가들은 치료 중 미숙아가 숨지는 주요 요인을 대략 3가지로 꼽는다. 우선 미숙아에게 잦은 ‘괴사성 장염’이다. 괴사성 장염은 인공적으로 영양분을 공급하는 과정에서 미성숙한 아이의 장 점막에 무리가 오면서 천공이 생기는 질환이다. 장 점막이 이물질을 견디지 못하고, 점막 일부가 쓸려 나와 장에 구멍이 생기는 것이다. 실제로 사망한 미숙아 4명 중 2명은 괴사성 장염 증세를 보였다. 아울러 폐가 약한 상태에서 인공호흡을 하다가 폐렴 등의 질환이 생겼을 수 있다. 대개 치료 후 회복되지만, 폐가 기흉처럼 급작스럽게 터져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또 미숙아 특성상 면역기능이 떨어진 상태에서 특정 균이나 바이러스 감염으로 발생하는 패혈증 쇼크를 추정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대목동병원은 이런 감염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다. 앞으로 혈액배양검사 등을 거쳐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밖에 미숙아의 뇌실 내 출혈 또는 두개골 내 출혈, 혈관 손상, 색전증, 혈전증 등도 미숙아 치료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사망 원인으로 꼽힌다. 또 인큐베이터 결함이나 지난 15일 로타바이러스로 사망한 미숙아와 관련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명재 상계백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17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미숙아들은 장기 자체가 불완전하고, 면역 기능이 미약하다 보니 다양한 원인으로 몸 상태가 급격하게 안 좋아질 수 있다”며 “혈액 검사와 국과수의 부검 결과가 나와 봐야 정확한 사인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유족 사이에서는 병원 측 과실을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 부분 역시 역학조사 결과 등이 나와 봐야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미숙아 수는 2015년 신생아의 6.9%인 3만 408명이다. 최근 치료기술 향상으로 1.5㎏ 미만 미숙아의 생존율은 2007년 83.2%에서 2015년 87.9%로 높아졌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이대목동병원 미숙아 사망원인은? 폐렴, 감염, 괴사성 장염 가능성

    이대목동병원 미숙아 사망원인은? 폐렴, 감염, 괴사성 장염 가능성

    서울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치료받던 미숙아 4명이 동시다발적으로 숨지면서 이들의 사인이 무엇인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의료계에서도 미숙아 4명이 한 병원에서 치료중 잇따라 숨진 것은 초유의 일이라고 보고 있다. 일반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사인 예측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임신 37주 미만 출생아를 조산아, 이른둥이, 미숙아라고 부르는데 미숙아가 태어나면 신생아 중환자실이라고 불리는 집중치료실로 옮겨져 치료한다. 국내 대형 대학병원의 경우 미숙아 등 신생아를 30~50명까지 치료할 수 있는 병상을 갖추고 있다. 이번에 사고가 발생한 이대 목동병원은 16개 병상을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생아 집중치료실에서는 인큐베이터 1개에 1명의 아이를 두고 맥박, 호흡, 산소포화도를 점검하고 미숙아의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한편 수액과 영양분을 공급한다. 전문가들은 치료 중 미숙아가 숨지는 주요 원인을 대략 3가지로 꼽는다. 우선 폐가 미성숙한 상태에서 인공호흡을 하는 과정 중에 폐렴이 발생했을 가능성이다. 폐렴은 대개 치료후 회복되지만 갑자기 기흉이 생겨 폐가 터져 사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미숙아의 특성상 면역기능이 떨어져 있기 때문에 특정 균이나 바이러스의 감염으로 패혈증 쇼크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대목동병원은 이런 감염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는 만큼 혈액배양검사를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의심되는 사망원인은 괴사성 장염이다. 괴사성 장염은 호스를 통해 인공적으로 영양분을 공급하는 과정에서 미성숙한 영아의 장 점막에 무리가 오면서 천공이 생기는 것이다. 괴사성 장염은 미숙아들에게 급성 복막염이나 패혈증을 유발시키기도 한다. 이 밖에도 미숙아의 뇌실 내 출혈, 두개골 내 출혈, 혈관손상, 색전증, 혈전증도 미숙아 치료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사망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한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미숙아 사망은 급성인 경우가 많고 여러 가지 원인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났을 수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4명이 4시간도 안 돼 한꺼번에 숨진 것은 일반적이지 않은 만큼 경찰 부검결과가 나와야 정확한 사인을 추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족들 중에서도 병원측 과실을 주장하고 있으나 이 부분 역시 역학조사와 부검결과가 나와봐야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비트코인 폭등에 세계 중앙은행들 “가상화폐는 투기” 경고

    비트코인 폭등에 세계 중앙은행들 “가상화폐는 투기” 경고

    비트코인 가격 폭등에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가상화폐는 화폐가 아니라고 경고했다.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13일(이하 현지시간) 비트코인에 대해 “법정 화폐가 아닌 매우 투기적인 자산이며, 안정적인 가치 저장 수단이 아니다”라고 경고했다. 옐런 의장은 또 “현재까지 비트코인은 지급결제 시장에서 아주 작은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며 비트코인의 금융시장 내 비중 확대 가능성을 낮게 봤다. 입 메르셰 유럽중앙은행(ECB) 이사 역시 지난달 30일 ECB, 이탈리아은행이 공동으로 주최한 콘퍼런스에서 “가상화폐는 돈이 아니다”라며 “유럽인들은 민간 가상화폐에 매달리지 말고 더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소액결제 시장을 형성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스티븐 폴로즈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는 14일 “가상화폐를 사는 것은 투자라기보다는 도박에 가깝다”고 좀 더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 폴로즈 총재는 “가상화폐는 신뢰할만한 가치 저장 기능을 갖추고 있지 않아 화폐로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필립 로 호주중앙은행장은 13일 시드니에서 열린 지불관련 회의에서 “현재 이들 화폐(가상화폐)에 빠져드는 것은 효율적이고 편리한 전자지불 이용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투기열풍으로 더 느껴진다. 비트코인으로 지불하는 것은 각자가 알아서 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의 대가는 엄청날 것”이라고 말했다. 화폐의 기본 특성 중 하나는 가치 안정성인데, 가격이 수시로 널뛰는 가상화폐는 가치 안정성을 보장할 수 없어 화폐로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 또한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국제결제은행(BIS)의 예를 보더라도 가상화폐를 화폐로 보기 어렵다. 상품으로 보기 때문에 거기에 맞는 규제를 할 것이지, 화폐 차원의 규제는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커버스토리] 실물 없이 사이버 거래만… 미래 화폐 대체 여부는 불투명

    가상화폐는 컴퓨터 등에 정보 형태로 남아 실물 없이 사이버상으로만 거래되는 전자화폐의 일종으로, 암호를 사용하여 새로운 코인을 생성하거나 거래를 안전하게 진행할 수 있다고 해서 ‘암호화폐’라고 부르기도 한다. 가상화폐(암호화폐)는 2009년 사토시 나카모토가 개발한 ‘비트코인’이 대표적이고, 현재는 다양한 가상화폐들이 나와 있다. 화폐는 각국의 중앙은행 등이 발행 권한을 가져 중앙집중적이지만, 가상화폐는 네크워크형으로 분산돼 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 등 각국에서 엄청난 양의 통화를 찍어내기 시작하자, 이후 각국의 법정화폐가 과연 가치가 있을 것인가 하는 불신을 배경으로 탄생했다. 가상‘화폐’라고 부르지만, 과연 화폐로서 기능할 것인가 논란은 지속하고 있다. 한국 금융당국은 “화폐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의장도 지난 14일 “비트코인이 결제 시스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작고 가치 저장 수단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필립 로 호주 중앙은행장도 지난 13일 비트코인이 전통적 화폐를 대체하지 못한다고 전망했다. 일부에서는 지불 수단이 아니라 가격 폭등을 염두에 두고 모아두고 있다. 대표적인 가상화폐 비트코인은 1코인에 1만 8000달러를 넘고, 한국에서는 2500만원까지 치솟았기 때문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가상화폐는 다수의 참여자들이 장부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내세운다. 해커가 많은 참여자들을 해킹하기는 어려워 도난이나 분실에서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사이버상으로 거래돼 거래 비용도 대폭 줄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꼭 그렇지 않다. 거래의 비밀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마약 거래나 도박, 비자금 조성을 위한 돈세탁에 악용될 수 있다. 미국 뉴욕의 27세 여성은 비트코인으로 돈세탁을 해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에 후원금을 보낸 혐의로 14일 기소됐다. 가상화폐 거래로 수익을 얻어도 과세가 어려운 점도 문제다. 가상화폐는 해킹이 어렵다지만, 거래의 중심이 되는 거래소는 해킹에 취약하다. 가상화폐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화폐가 될지, 금과 같은 희귀한 상품이 될지, 또는 버블로 사라진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이 될지 알 수 없다. 또 제도권 안에 존재할지, 지하경제의 수단으로만 남을지도 예단하기 어렵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커버스토리] 복제코인의 습격, 두 동강 난 신뢰

    [커버스토리] 복제코인의 습격, 두 동강 난 신뢰

    블록체인협회 준비위원회에 참여한 빗썸, 코빗, 코인원 등 14개 가상화폐 거래소는 15일 “가상화폐(암호화폐) 시장의 과열을 해소하기 위해 당분간 모든 신규 코인 상장을 유보한다”고 공동으로 발표했다. 증권시장에 빗대면, 신규 기업 공개 상장(IPO)을 중단하는 것이다.가상화폐 거래소들이 이런 결정을 한 배경에는 뒤에는 비트코인 플래티넘(BTP)을 둘러싼 ‘스캠(속임수) 코인 논쟁’이 있다. 새로운 가상화폐는 크게 가상화폐공개(ICO)와 하드포크(업그레이드를 위한 체인 분리)로 탄생한다. 하드포크란 포크로 콕 집어 코인을 복사하는 작업을 가리킨다. 하드포크로 코인 1개를 2개로 늘릴 수 있다. 그런데 비트코인에서 분할하는 하드포크로 생성된다고 알려졌던 BTP가 지난 10일 한국 고등학생의 거짓말로 드러난 것이다. 이 사기 행각이 발각되기 직전, 한국에서는 BTP를 호재로 본 투자자들이 몰려 비트코인 가격이 무려 2500만원까지 치솟았다. 거의 한 달 만에 1500만원이 올랐다. ‘버블’ 논쟁이 확산됐다. 사기 행각은 허무하게 밝혀졌다. 지난 9일 돌연 하드포크 작업을 연기한 다음날 공식 트위터에 “그러게 누가 비트코인 사랬냐 숏 개꿀띠(공매도로 수익을 올렸다)”라며 투자자들을 조롱하는 한국어 멘션이 느닷없이 올라온 것이다. 사기 의혹으로 투자자들의 분노가 커지자, 팀원 중 한 명인 고등학생 A군은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했고, 지난 14일에는 관련한 공식 홈페이지 도메인을 판다고 공지해 투자자들을 아연실색게 했다. 이런 탓에 정부의 가상화폐 규제 발표 등으로 비트코인 가격이 1000만원(40%)이 급락해 1400만원이 되기도 했다. BTP 하드포크는 한국 시장에서 왜 이렇게 큰 파장을 낳았을까. 상당수 투자자는 하드포크로 비트코인 가치가 올라간다고 믿었다. 비트코인 하드포크를 일종의 배당으로 파악한 것이다. 이는 가상화폐는 발행량이 정해져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 점과 일견 모순된다. 비트코인의 발행량은 2100만 개로 확정돼 있는데, 하드포크로 2100만개의 비트코인캐시(BCH)가 추가되면 화폐량은 2배가 된다. 박녹선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투자자들이 하드포크를 하면 주는 코인을 배당처럼 봤다”며 “코인을 더 준다고 호재로 보는 건 위험하다”고 말했다. 하드포크가 실시될 때면, 새 코인을 받고자 투자자가 몰려 비트코인 가격은 오른다. 비트코인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새 화폐는 물론 비트코인 가격 상승에 따른 자산 가치 상승까지 누릴 수 있었다. 미국에서도 8월 1일 코인당 294.6달러로 시작한 BCH는 탄생한 지 3달 만에 초기 가격의 10배에 가까운 2477.65 달러를 찍었다. ‘배당 코인’을 받고자 하드포크 기간에 이 거래소, 저 거래소를 옮겨다니는 얌체족도 생겨났다. 가상화폐 거래소들이 언제 비트코인을 보유한 사람들에게 지급할지 결정하는 ‘스냅샷’을 동시에 찍지 않기 때문이다. 거래소들의 BCH 스냅샷 시기가 다른 점을 이용해 일부 투자자들은 메뚜기 뜀 뛰듯 거래소를 옮기며 중복해서 BCH를 받았다. 대형 이벤트인 ‘배당 시즌’이 끝나면 비트코인을 팔아 차익을 챙긴 뒤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모든 가상화폐)으로 옮겨가는 전략도 투자자들 사이에 널리 알려졌다. 고등학생 BTP 사기 사건은 국내외 가상화폐 시장에 큰 충격을 줬다. 잘못된 정보로 투자한 피해액도 적지 않았지만, 가상화폐에 대한 신뢰가 깨진 것이다. 그동안 ICO를 한다며 투자 자금을 가로채는 사기는 널리 알려졌지만, 하드포크를 악용한 사기는 이번이 처음이다.보통 가상화폐가 사기인지 확인하려면 개발자들이 공개한 소스코드를 확인하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일반 투자자들이 이를 확인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BTP팀 사기도 지난 10일 트위터 ‘자수’로 드러났을 뿐이다. 가상화폐 거래소들이 투자자 보호에 소홀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많은 거래소가 검증 없이 BTP를 지급하겠다는 공지를 띄웠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연말에 잇따를 하드포킹으로 인한 투자자들의 추가 피해를 걱정했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대 교수는 “사설 거래소에서 규모 키우는 방식이라 공시제를 운영할 기반이 미흡하다”면서 “문제는 포킹(분리)이 앞으로도 많다”고 경고했다. 내년 초까지 진행된다고 알려진 비트코인 하드포크만 5가지 종류이다. 바로 라이트닝비트코인, 비트코인 GOD, 비트코인실버(BTCS), 비트코인우라늄(BUM), 비트코인캐시플러스(BCP)다. 문제는 5가지 가상화폐 모두 정확한 개발자와 대표자는 알려지지 않았다. 주로 중국과 홍콩에서 이뤄진다는 소문들이 돌 뿐이고, 일정과, 채굴 방식, 총공급량, 블록 사이즈 정도만 공개됐다. 박 연구원은 “비트코인은 아이러니하게도 주도 세력이 없어 ‘비트코인 복사’를 뜨는 하드포크가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더리움은 창시자인 비탈릭 부테린(러시아)이 영향력을 행사한다. 반면 베일에 싸인 비트코인의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는 활동하지 않아 구심점이 없다. 채굴업체들이 비트코인의 문제를 지적하며 하드포크 등으로 새로운 가상화폐인 코인을 들고 나오는 이유다. 시장 참여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 코인들은 사라지겠지만, 현재 시장은 안갯속이다. 거품은 때때로 투자자들의 판단력을 때때로 흐리게 한다. ‘거품의 역사학자’ 찰스 킨들버거는 “친구가 부자가 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큼 사람들의 판단력을 흐리는 일이 없다”고 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과도 맞닿아 있다. 가상화폐 투자 광풍이 불지만, 제도권 금융에서 가상화폐를 분석하는 보고서가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특히 금융당국이 “가상화폐는 화폐가 아니다”라고 못을 박았기 때문에 더욱 제도권에서 호의적으로 대응하기는 어렵다. 결국, 투자자들은 트위터나 커뮤니티를 ‘눈팅’하며 정보를 추적할 것이다. 위험에 대한 경고에도 투자한다면, 일단 의심하고 주의하는 게 최선이다. 홍 교수는 “비트코인 서버가 쪼개야(포킹) 할 정도로 과부하가 걸렸는지, 개발 주체가 불분명하지 않는지를 확인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하드포크 진행자가 비트코인 개발자라면 그나마 덜 의심스럽다는 뜻이다. 블록체인협의회 소속 14개 가상화폐 거래소가 “투자자들이 신뢰할 때까지 신규 상장을 유보한다”고 했지만, 참여업체가 14개사뿐이라 투자자 보호가 얼마나 이루어질 확실치는 않다. 게다가 국내에서 가장 여러 가지 가상화폐를 거래하는 업비트처럼 자율규제안에 동참하지 않은 업체도 없지 않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中 서민식당도 모바일 결제 척척, 깜짝 놀란 文… 술렁이는 IT업계

    中 서민식당도 모바일 결제 척척, 깜짝 놀란 文… 술렁이는 IT업계

    “중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평범한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모바일 결제를 하더군요. 기분이 묘했어요. 불과 5년 전만 해도 중국의 정보기술(IT) 환경을 부러워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게임 개발자인 김모(33)씨는 15일 “대통령은 친서민 외교 행보였겠지만 업계 종사자 눈에는 우리보다 한발 앞서 있는 중국 IT 환경을 체험한 것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대통령 일행은 전날 베이징의 동네 식당에서 꽈배기 같은 유탸오(油?)와 콩물 음료인 더우장(豆漿)을 먹고 스마트폰으로 밥값을 결제했다. 밥값은 1인당 28위안(약 4600원)이었다. ●中 정부 집중투자… IT 혁신 부러워 일반인들은 무심코 지나쳤던 이 풍경이 IT업계에서는 내내 화제였다. 거지도 알리페이나 위쳇페이로 적선을 받는다거나, 노점상에서 현금을 건넸더니 되레 모바일 결제를 요구하더라는 현지 경험담도 쏟아졌다. 결론은 ‘중국 정부의 집중투자와 네거티브 규제(안 되는 것 빼고 모두 허용)가 만들어 낸 혁신과 IT 저변이 부럽다’는 것이었다. 중국 시장조사업체 아이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모바일 결제 규모는 60조 위안(약 1경원)으로 미국의 50배에 이른다. 2011년(1000억 위안, 약 16조 5000억원)과 비교해도 5년 새 60배로 커졌다. 위조화폐가 많고 신용카드 보급률이 낮은 것도 모바일 페이 확산의 원인이지만 무엇보다 ‘무현금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중국 정부의 의지와 지원이 주효했다는 게 중론이다. 지난 6월 마윈 알리바바그룹 회장은 우한(武?)시에서 ‘무현금 도시’를 선언했다. 이곳에서는 교통비, 병원비, 공과금 등을 모두 스마트폰으로 결제한다. 모바일 결제 시스템을 기반으로 지난 11월 11일 광군제(光棍節·솔로들의 날) 때는 하루 만에 1682억 위안(약 28조원)어치의 판매고를 올리기도 했다. 중국 정부는 2025년까지 해마다 4000억 위안(약 66조원)을 과학 부문에 투입한다. 중국에서 근무했던 한 벤처업체 직원은 “중국은 스타트업(신생기업)이 클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전략’을 구사한다”면서 “우리는 얼마 전 카풀 서비스 스타트업인 카풀앱풀러스가 경찰에 고발당한 데서 보듯 크기도 전에 규제로 제지당한다”고 아쉬워했다. ●낡은 규제가 발목… 국내 시장 뺏길까 걱정 게임업계 관계자도 “중국 업체가 한국 게임을 베낀다고 소송을 내지만 반대로 쉽게 모방할 정도로 발전한 기술력이 두렵다”면서 “지금은 오히려 국내 시장을 (중국에) 언제 뺏길까 걱정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IT기업의 한 임원은 “글로벌 전쟁터에서 규제는 곧 다른 나라 기업을 우대하는 역차별로 이어진다”며 “‘민간의 상상력을 낡은 규제와 관행이 발목 잡아서는 안 된다’는 문 대통령의 말을 공무원들이 새겨들었으면 한다”고 뼈 있는 말을 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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