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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개혁](5.끝)대안언론 모색

    제도권 교육의 병폐가 대안(代案)학교의 등장을 초래했듯이제도권 언론의 문제점이 대안언론의 출현을 자극하고 있다.1990년대 이후 지역에서 뿌리내리기 시작한 지역신문이나 지난해 본격적으로 등장한 인터넷신문 등이 그 예라 할 만하다.“주류언론이 외면한 이슈나 사람들(계층)을 관심사로 다루는” 대안언론은 아직 태동기에 불과하나 빠른 속도로 제도권 언론의 벽을 넘고 있어 성공 여부가 주목된다. 대안언론을 “기존매체와 내용상 차별화를 도모하면서 한단계 진보한 매체”라고 정의할 때 국내 첫 사례는 61년 창간된 ‘민족일보’라 할 수 있다.민족일보는 창간 3개월만에기존 매체의 발행부수를 능가하는 기록을 세웠는데 성공요인은 정론을 표방한 진보적 보도태도였다.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산물로 태어난 한겨레는 우리 언론사에서 두번째 사례로 기록할 만하다.우선 ‘국민주’라는 세계 언론사상 초유의 소유구조 형태와 함께 한글전용·가로짜기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편집체제를 채택했다. 그러나 현재의 한겨레에 대해서는 비판 여론도 만만찮아 또다른 대안언론의 출현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앞서 예로 든 민족일보·한겨레가 모두 중앙지인데 비해 지역신문 가운데서 대안언론을 찾으려는 노력도 나왔다.최근한국언론재단이 출간한 ‘지역공동체와 저널리즘’에 따르면전국 각지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은 230여가지로 집계됐다. 이는 지방행정구역 253개와 비슷한 수치로 기초자치단체당한 가지 정도 지역신문이 발행되는 셈이다.이 지역신문들은대개 10명 내외의 인원으로 연 2억∼3억원 정도의 매출을 기록하는 영세기업이 대부분이다.이 가운데는 지역유지·토호세력에 의해 제작되는 신문도 적잖아 대안언론의 면모와는거리가 먼,부패언론의 전형으로 비난받기도 한다. 옥천신문 남해신문 홍성신문 당진시대 서귀포신문 등은 지역에 뿌리를 내린 채 정론보도,투명한 경영으로 제대로 된대안언론으로 평가받는다.남해신문의 경우 주민 10가구 가운데 3가구가 이 신문을 구독하며, 옥천신문은 군내에서 유력중앙지보다 발행부수가 많다. 최근 등장한 인터넷신문 역시 대안언론의 한 모델로 거론된다.우선 성역 없는 보도와 종래의 뉴스가치를 파괴했다는 점에서 그렇다.‘오마이뉴스’는 지난해 이정빈 외교통상부장관의 ‘여성비하발언’을 특종보도했는데 이는 이장관이 출입기자들과의 모임에서 한 발언이었다.그러나 기존 언론은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침묵했다가 ‘오마이뉴스’보도 후 받아쓰기도 했다. 임영호 부산대 신방과교수는 “대중성을 지향하는 대형신문은 보수적 입장을 취하기 쉽다”면서 “지금은 대안언론의모색이 시급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김삼웅 칼럼] 당쟁과 정쟁 그리고 민생

    일본인 시데하라 히로시가 대한제국 정부의 학정참여관으로 조선에와서 ‘조선정쟁지(朝鮮政爭志)’를 펴내고, 이책에서 당쟁을 조선정치의 특징이라고 규정한데 이어 호소이(細井肇)같은 자가 “조선인의혈액에는 특이한 검푸른 피가 섞여 있어서 당파싸움이 계속되었으며이는 결코 고칠 수 없는 것이다”란 극언을 한 것을 알고는 분노를삼키기 어려웠다. 일제 관학자들이 한국인을 업신여기면서 식민통치를 합리화하고자만든 궤변이고 억설로 치부했다. 이광수나 최남선이 이를 받아들여동족을 비하하는 글을 쓴 것을 읽고는 친일파들의 상투적 수법으로접어두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최근에 많이 바뀐다. 정녕 우리 민족은 당파심이 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다. 시데하라가 지적한 “조선시대의 정당들은 주의(主義)를 가지고 서로 존재하는 공당(公黨)이 아니라 이해관계에서 서로 배제하는 사당(私黨)”이란 모습이 요즘 상황과 겹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는 기호와 영남지방으로 갈려 싸우던 당쟁이 지금은 영남과호남으로 바뀌었다. 당시에는 그래도율곡과 우계(牛溪)사이에 벌어진 ‘율우논변(栗牛論辨)’이나 이황과 기대승의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그리고 이른바 ‘예송논쟁(禮訟論爭)’등이 있었다. 비록‘예송논쟁’이 효종의 계모 자의대비의 복상(服喪)문제를 둘러싸고3년복을 입느냐, 1년복을 입느냐 따위의 ‘하찮은’시비로 시작되었으나 논쟁의 대부분이 당시 최고의 담론이 화두가 되었다. 본질은 권력싸움이지만 명분은 학구적인 논쟁이었다. 적어도 요즘 우리 정쟁처럼 명분도 실익도 없는 ‘개판싸움’과는 달랐다. 경제회생의 ‘몸통’을 잡는 정치는 지금이나 조선시대나 다르지 않았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국토가 황폐하고 민심이 흉흉해졌다. 지각있는 지도층이라면 관민이 힘을 모아 국난극복과 민생을 위한 정치에 매진했어야 옳다. 그런데 아니었다. 선조가 죽자 영특한 세자 광해를 두고 두살배기영창을 후계로 삼으려고 정파간에 싸움이 붙고 결국 광해가 집권하여피바람이 불었다. 그 여파로 인조반정이 이루어지고 또 한차례 보복전이 나타났다. 민생은 뒷전이었다. 임진·병자양란으로 피폐해진 국토를 재건하고 백성을 돌보고자 ‘대동법(大同法)’이 마련되었지만 정쟁으로 100년 뒤에야 전면 실시되었다. 일부 학자들은 지역별로 실시하는 시험과정으로 평가하지만사실은 농민생활의 안정과 국가재정의 확충을 위한 세력과 양반지주의 입장과 기득권만을 보호하려는 세력과의 분쟁 때문이었다. 율곡이 당쟁을 없애려고 나섰지만 허사였다. 율곡은 사사건건 대립하는 동인과 서인을 양시론(兩是論)으로 화해시키고자 했다. 즉 “무왕(武王)과 백이숙제의 일은 둘다 옳고 춘추시대의 전쟁은 둘다 그르다”는 식이다. 무왕이 은나라 주왕(紂王)을 치려할 때 백이숙제는주왕이 도리에 어긋난다 하더라도 신하가 임금을 축출하는 것을 옳지않다고 거사를 말렸다. 그러나 무왕은 만류를 무릅쓰고 주왕 축출에성공했다. 이에 백이숙제는 주나라 곡식을 먹지 않겠다고 수양산에들어가 고사리만 먹다가 굶어 죽었다. 무왕과 백이숙제의 행위는 모두 옳다는 것이 율곡의 양시론이다. 오히려 반대세력이 율곡을 모함하고 나섰다. 젊었을 때의 입산(入山)을 두고 계모와 싸우고 가출하여 머리깎고 중이된 것은 불효이자 이단이란 것이다. 모친을 잃은 슬픔에 출가한 것이 ‘사상논쟁’의 배경이다. 당시 ‘불교도’의 낙인은 요즘 ‘용공좌경’처럼 치명적이었다. 영조는 어떻게 해서라도 당쟁을 없애보고자 노론의 영수 민진원과소론의 영수 이광자를 불러 두사람의 손을 맞잡고 화해를 종용했다. 그리고 노론을 한사람 기용하면 소론도 한사람 기용하는 식으로 탕평책을 적극 실현했다. 이런 인사방식을 ‘쌍거호대(雙擧互對)’라고했다. 이같은 영조의 노력도 당쟁을 뿌리뽑지 못했다. 조선사회는 쓸 만한 인재를 그냥 두지 않는 못된 병폐가 있었다. 조금 우수하다 싶으면 모함하여 쫓아냈다. 우암 송시열을 기호지방에서는 극존칭인 ‘송자(宋子)’라 높이고 영남지방에서는 ‘시열이’란개이름으로 불렀다. 최근 김대중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지역별로 평가가 다른 것도 비슷한 양상이다. 한달만에 국회가 정상화됐다. ‘설민심’의 실천이 국회에서 나타날것이다. 정쟁을 접고 경제살리기와 대미외교,남북문제에 힘을 모았으면 한다. 김삼웅 주필 kimsu@
  • 市·郡·區 비리 뿌리 뽑는다

    내주부터 기초자치단체에 대한 대대적인 암행감찰이 시작된다.특히이번 감찰에서 적발된 단체장에 대해서는 곧바로 검찰에 수사의뢰를할 방침이어서 파문도 예상된다. 행정자치부 고위 관계자는 1일 “자치단체장의 인사비리 등 잡음이끊이지 않아 감찰을 벌이기로 했다”며 “명백하게 드러난 사안이나고질적인 비리에 대해서는 일벌백계 차원에서 사정당국에 정식으로수사의뢰를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번 감찰은 오는 5일부터 2주간에 걸쳐 그동안 비리혐의로 구설수에 올랐던 자치단체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실시하게 된다. 행자부 복무감사관실에선 감찰 활동에 앞서 자치단체장에 대한 자료수집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몇몇 단체장에 대해서는 물증을 확보,이번 암행 감찰을 통해 확인 작업을 병행할 계획이다. 행자부의 대대적인 암행감찰은 지난해 12월에 이어 두달만에 다시실시하는 것으로 해당 자치단체를 긴장하게 하고 있다. 행자부는 또 지난 설때 15개 기초단체장의 공관에 잠복,암행 복무단속을 벌여 단체장들의 선물 수수현장을 적발하기도 했다. 행자부 관계자는 “민선자치 실시후 인사비리와 납품 비리 등 고질적인 병폐가 더 성행하고 있다”며 “이번 단속을 통해 드러난 문제점을 파악,제도보완에 역점을 둘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행자부는 2일 상황실에서 각계의 부패방지 전문가들이 참가한가운데 ‘지방공직비리 척결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한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지방자치제 실시후 문제가 되고 있는 인사,공사계약 등과 관련한 부패를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을 전문가들이 나와서 발표하며 행자부는 여기서 논의된 사항을 정책수립에 반영하게 된다. 홍성추기자 sch8@
  • [사설] 소액진료비 본인부담 논란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31일 올해 업무계획을 발표하면서 의료보험제도 개선방안과 관련,‘소액진료비 본인부담제’및 ‘의료저축제도’의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우리는 두 가지 안 가운데 어느 쪽을택하든 만성적자에 허덕이는 의료보험 재정을 안정시키는데는 어느정도 도움이 될 것으로 평가한다.본인부담제 실시로 소액 진료비 전부를 환자에게 물리면 가벼운 질병으로 병·의원을 필요 이상으로 찾는사람들은 크게 줄 것이다.또 보험료의 일부를 보험 가입자 개인의 별도 계좌에 적립,소액 진료비를 지급토록 하는 의료저축제도 또한 병·의원 이용 가수요(假需要)를 줄이는 데 도움될 것이다. 건강보험의 취지를 되새겨보면 더욱 그렇다.의료보험금 적립은 갑자기 중병에 걸려 생계까지 위협받는 경우에 대비한 공적부조의 성격이강하다. 이같은 적립금이 감기 기운만 있어도 병원을 들락거리는 의료기관 과잉이용의 부담금으로 쓰이고,결국엔 보험재정의 만성적자로연결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번 안은 현재로선 그야말로 ‘검토안’ 이상의 설득력을가질 수 없다고 본다.정책당국은 현행 의보제도의 투명화 방안부터먼저 제시했어야 한다.의보수가 적정화 방안과 더불어 과잉진료·과잉투약 방지,보험약가의 현실화·지역의보료 책정 합리화 등에 대한복안부터 제시한 뒤 이번 안을 내놓는 게 순서다.의약분업 실시 이후에도 특정 의약품 채택에 따른 리베이트 관행이 근절되지 않고,의료비 부당청구 등의 적폐가 여전한데도 보험제도 부실의 책임을 국민들에게만 지우는 듯한 정책 제시는 누가 보더라도 공감을 얻을 수 없다.이들 제도가 도입될 경우 병원을 자주 찾는 노인이나 어린이가 있는가정과 저소득 계층은 상당한 부담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가뜩이나 형편이 어려운데 의료비부담이 더 늘어 나게 되느냐”며 불만을 토로하는 것도 이같은 정서의 반영이다.선후를 가리는정책 제시를 당부한다.
  • 美국방장관 ‘럼스펠드 규칙’ 화제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69)이 30세라는 젊은 나이로 하원의원에 당선 된 이후 국방장관을 두번째 역임할 때까지 40여년동안 공인으로서 지켜왔던 생활신조가 공개돼 화제가 되고 있다.생활신조는 백악관에서의 행동규칙과 국방장관으로서의 자세,인생의 원칙 등으로구분돼 있다. ◆백악관에서의 처신 ▲대통령에게 욕을 퍼붓는다고 생각할 정도로자유롭게 말할 수 없으면 물러난다. ▲행정부의 참모들은 당신의 언행이 대통령의 것을 반영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잘못이 있다면 대통령에게 즉시 보고하고 빨리 수정해야 한다,▲주변을 ‘그들’과 ‘우리’로 편가르지 말 것. ▲“백악관이 원한다”는 식으로 애매모호하게 말하지 마라. ▲전임자나 후임자에 대해 악담을 하지 말 것.▲상사를 험담하지 말 것.다 나름대로 어려움이있으니까. ▲자신을 절대적으로 옳거나 없어서는 안될 인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비난받고 있지 않다면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신문의 1면에 나기를 원치않는 일이나 행동은 하지 말 것. ▲확신이 서기 전에는 행동에 나서지 말 것. ▲자신을 지나치게 노출시키지 말 것.▲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 시도해도 누군가는 불만을가질 것이다. ▲상·하원 의원들은 우연히 의원이 된 것이 아니다. ▲‘오프 더 레코드’(Off the record)는 없다. ◆국방장관으로서의 자세 ▲국방장관의 임무는 군대에 대한 문민적통제를 유지하는 것이다.▲국방부에서는 일반적인 관리기법이 통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 ▲국방부 인력을 감축할 때 문민통제를 보장하는 인력을 줄여서는 안된다. ▲공개적인 논쟁은 피해야 한다. ▲목표만 맞게 설정해주면 보좌관들이 전략을 짤 수 있다. ▲나폴레옹은 가장 위대한 장군을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승리자’라고 답했다. ▲워싱턴에서의 가장 중요한 2가지 규칙은 ‘은폐가 사건을 더악화시킨다’와 ‘그러나 누구도 이 원칙을 간과한다’는 것이다. ▲허약함은 도발을 초래한다. ◆인생의 좌우명 ▲인생에서 놓치기 쉬운 것은 정중함,정의,용기,평화다.▲열심히 일할수록 행운아가 된다.▲해결책이 없는 문제는 없다. ◆럼스펠드는 누구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인에게 안보불감증을 경고하고 힘에 의한 평화를 주창한 보수 강경론자.75∼77년 제럴드 포드 행정부에서 최연소 국방장관을 지냈으며 미국에 대한 탄도미사일 위협평가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할 때 북한·이란 등의 미사일 위협이 심각하다는 ‘럼스펠드 보고서’를 발표했다.98년에는 “탈냉전 세계에 맞게 국방정책을 재조정해 힘을 확보할 것”을 촉구했다. 62년 일리노이주 하원의원에 당선된 뒤 73년부터 2년 동안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주재 대사를 지냈다.77년 포드 행정부 관료 퇴임 뒤에도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때 중동특사로 활동했다. 부시 행정부의 국방장관으로 지명되기 전까지 민간기업의 임원을 거치면서 5,000만∼2억1,000만달러 상당의 부를 축적했지만 국방장관직을 수락하며 절반 가량인 2,200만∼9,900만달러를 과감히 포기해 화제가 되고 있다.그가 보유한 주식중 상당부분이 국방부와 거래하는기업이어서 공직자 윤리상 이를 손해를 감수하면서 처분해야하기 때문이다.클린턴 행정부 시절 공직자의 도덕성실추와 대비할 때 그의인물상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강충식기자 chungsik@
  • [김삼웅 칼럼] 설날, 큰 도적이야기

    옛날 옛적에 큰 도적이 살고 있었다.그 시절에 도둑·도적·대도(大盜)·의도(義盜)등 도(盜)자 돌림의 무리가 횡행하여 어느 것이 진짜도둑이고 가짜 도둑인지 헷갈리기 일쑤였다. 더 옛날에 도둑을 가르켜 양상군자(梁上君子)라고 했다는 고사도 있고 하니 우리도 점잖게 ‘도공(盜公)’이라 부르는 것이 어떨지. 아무튼 어느날 도공이 간덩이가 부어서인지 병부령에 들어가 금괴를몽땅 훔쳐냈다. 정확히 ‘훔쳐냈다’란 표현은 어폐가 있고,병부령나리들과 짜고 빼내온 것이다.의리가 대단한 이 도공은 훔친(빼낸)금품을 독식하지 않고 200여명의 식솔들에게 나눠주었다. 식솔 중에는 많고 적음의 차이는 있었지만 골고루 나눠주고 자신도한몫 단단히 챙겼다.눈먼 귀금속이라,또 은밀히 나눠준 것이라 액수의 차별에도 불구하고 군소리할 처지도 못되어 모두들 잘 먹어치웠다. 어디론가 큰 뭉텅이를 빼돌렸지만 시비하는 자가 없었다.어차피 ‘공짜’라고 생각했을 터이니까. 마침 그 시절은 씨족장을 뽑는 축제기간이라 훔쳐 분배받은 귀금속은 우매한 백성들매수하는 데 유용하게 쓰였다.당연히 부족회의는이 무리가 다수를 차지하게 되고 부족사회를 자기들 멋대로 주물렀다. 여러 해가 지난 후 수장이 바뀌면서 포도청 나리들도 바뀌게 되었다. 무슨 사건인가를 찾다가 병부령 금괴가 송두리째 없어진 것을 발견했다.구 부족집단에서 힘깨나 쓰던 씨족장 하나가 금괴를 꺼내다가식솔들에게 나눠 줬다는 것이다. 포도청 나리들은 그동안 자신들을 구박한 사원도 있는 데다 외적을막을 때 쓰고자 백성들이 낸 금붙이를 훔쳐다 나눠먹고도 시치미떼고오히려 큰소리치는 도공이 괘심해보였다.또 부족사회를 지켜야 한다는 공분도 어느 정도 발동하여 도공 체포에 나섰것다. 한데 이 도공이 보통 걸물인가.그리고 그가 속한 부족이 어디 보통혈족인가.이들은 재빨리 소도(蘇塗)를 만들고 도공은 이곳으로 숨었다.본래 소도는 천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성지였다.여기에 신단을 설치하고 방울과 북을 단 큰 나무를 세워 제사를 올렸는데, 죄인이 이곳으로 달아나도 잡아가지 못하던 신령한 장소였다. 그러다보니 걸핏하면 소도를만들고 크고 작은 도적이 이곳으로 숨어들었다.씨족장은 소도에 숨어도 잡아가지 못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온갖 도적이 씨족장이 되고자 혈투를 벌이고,씨족장이 되어서는식성을 가리지 않고 먹어 치우고 심지어 병부령 금괴까지 훔쳐 먹기에 이른 것이다. 고려 말엽 송도에 쇠붙이만 먹는 불가사리가 있었다지만 이들 도공들의 식성에는 당해내지 못했다.도공들은 쇠붙이뿐만 아니라 초식·육식 가리지 않고 집어삼킨다.식성 좋은 도공은 흙이나 모래땅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 시절에도 언간(言諫)이란 감투가 있어서 도공의 금괴 나눠 먹기와소도 도피를 두고 입씨름을 벌였다.산돼지 왈,포도청이 오래 전 일을 새삼스럽게 꺼낸 배경이 뭐냐.박쥐 왈,그 부족만 먹었느냐,다른부족 것도 밝혀라.세퍼드 왈,특정 부족을 말살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승냥이 왈,포도청을 믿을 수 없으니 새 포도대장을 뽑아서 수사를 맡기자는 등 상주보다 곡쟁이가 더 헷갈리게 소리치는 바람에 병부령금괴 횡령사건은 부족간의 싸움으로 번져갔다. 여기서 힘을 얻은 도공측 부족장은 마을을 돌면서 ‘언간’들이 토해낸 ‘논쟁’을 확산시키니 포도청은 이쪽저쪽 눈치 살피느라 빼든칼로 깃털만 몇개 뽑았다 붙였다 갈팡질팡이다.그런가 하면 문제의도공은 어느 틈에 의적이 되어 소도 근처를 오가며 추운 날에 몇푼훔치다가 감방에서 오들오들 떠는 잡도(雜盜)들을 향해 껄껄껄 웃으며 한마디 던지니 “억울하면 씨족장이 되어 소도에 들어오라!” 포도대장은 마침내 손을 드는가.병부령 금괴를 받아먹은 식솔들에무슨 죄가 있겠는가,못먹는 X이 바보지! 아무렴,세뱃돈 출처 밝히고받는 사람 봤느냐! 원흉 도공이야 붙잡을 맘이 굴뚝 같지만 국법이지엄한지라 소도에 숨었으니 난들 어찌 하겠는가,들리느니 한숨 소리로다. 이리하여 도공과 그 무리들은 체하지도 않고 오랫동안 잘 먹고 잘살았더란다.그후 소도에 들어가고자 온갖 대소도(大小盜)와 양상군자가 줄을 서고 도공들은 더욱 날뛰었다는 얘기다. ■김삼웅 주필kimsu@
  • 고교생이 지폐위조…전송 사진파일 활용

    지폐의 사진 파일을 e-메일로 받아 컬러프린터로 복사하는 지폐위조수법이 등장했다. 울산 중부경찰서는 25일 컴퓨터 스캐너로 복사한 1,000원짜리 지폐사진을 e-메일로 받은 뒤 컬러프린터로 70장을 복사해 이중 64장을시중에 유통시킨 정모군(17·울산 모고교 1년)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통화위조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또 정군과 함께 위조지폐를 사용한 친구 민모군(17·고교 2년) 등 3명을 통화위조 동행사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정군은 친구들과노점상, 슈퍼마켓 등에서 1만원짜리로 바꾸거나 오징어를 사는 등 지난 24일까지 모두 64장을 유통시킨 것으로 드러났다.유통된 위조지폐가운데 42장은 회수됐다. 울산 강원식기자 kws@
  • [편집위원 칼럼] 인문학의 위기 뒤집어보기

    인문학의 위기가 또다시 공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최근의 논의는 2001년도 서울대 박사과정 정시모집에서 정원미달이라는 사상초유의 사태를 빚으면서 불거졌다.역대 최저 경쟁률을 보인 이번 서울대박사과정 모집에서 인문대는 0.65대 1로 7개 단과대중 최하위의 미달사태를 기록했다. 이에앞서 지난 10월말에는 인문학자 200여명이 인문학의 위기 타개를 위해 대정부선언서 채택이라는 단체행동에 나서 주목됐다. 이들은 시장논리를 대학사회에까지 확산시킨 정책당국을 비판하며 인문학의 육성지원을 소리높이 외쳤다.서울대의 경우 최근 교수들이 사회대등과 함께 기초학문협의회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대책마련에 나선 상황이다. 이런 얘기를 들어보면 인문학은 정말 고사직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어떤 분야는 후진마저 끊길까 걱정된다.오죽하면 학술진흥재단에서 ‘학문보호종’까지 지정해 명맥을 유지토록 하고 있을까. 그러나 인문학 위기론에는 반론도 만만찮다.우선 인문학 위기론은‘강단(講壇)인문학’의 위기론에 불과하다는 시각이 있다.인문학 위기론이 일제히 터져나온 것은 교육부의 대학지원 정책인 ‘두뇌한국(BK)21’이 시작된 것과 때를 같이 한다.대학지원의 조건으로 모집단위의 광역화,즉 학부제 모집이 제시됨에 따라 시장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철학,문학,사학등 인문관련 학과들이 위축받게 된 것이다.튼튼했던 대학인문학과의 ‘밥그릇’이 흔들렸고 좀더 구체적으로는 해당학과 교수들의 ‘자리’가 위기에 처한 것일 뿐 ‘인문학’의 위기는 과장 또는 호도된 용어가 아니냐는 게 이들의 시각이다. 다음으로 우리가 인문학의 위기를 말할 때 어디까지가 그 대상학문이 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다.이를테면 우리 역사나 문화연구를 육성해야 한다는 데는 누구나 공감한다.하지만 어떤 어문학과의 경우,그 나라에 있는 자국어의 어문학과 학생보다 한국의 전공학생이 더많다면 그 구조는 ‘위기’를 겪어야 당연한 게 아니냐는 얘기다. 이러한 반론에도 불구하고 인문학의 위기론에는 곱씹어 봐야 할 대목이 있다.‘인문학이 죽어야 인문정신이 산다’는 역설적 명제 때문이다.사실 몇개 대학몇개 과가 존폐위기에 있다고 해서 우리 지성사가 금세 몰락할 일은 없다.오히려 학부제가 되면 학문간 장벽이 없어지고 창조적인 발상과 지적 접촉이 일어나 자유롭고 신선한 학풍의진작을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른다.대학의 울타리를 벗어나 독창적인저술활동을 펼치는 몇몇 ‘독립’ 인문학자들의 모습에서 미래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인문학의 죽음’이 곧 ‘인문정신’의 회생으로 연결될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그러기에는 최근 우리 사회의 인문정신의 피폐가 너무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이다.모두가 ‘돈 되는 일’과 ‘먹고 쓰는 일’이 최대 관심사일 뿐 인간 본연의 가치와 의미를 찾는 일은 안중에 없는 게 요즘의 세태다.세계를 강타한 신자유주의 물결은 모든 사회적 가치를 경쟁력과 속도와 물질로써 재단케 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심지어 문화분야에까지 정책 결정잣대에 경제성이도입됐다. 영화 ‘쉬리’ 한 편의 경제효과가 소나타 1만1,657대의 생산효과와맞먹는다며 영화진흥정책이 제시되는 상황에서는 인문학 종사자들마저‘인문정신’의 앞날에 물음표를 찍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최근 열린 한 문학심포지엄에서 나온 여러 작가들의 발언은한가닥 굳건한 희망을 갖게 한다.우리가 진정 걱정하고 북돋워 줘야할 것은 이런 마음들이 아닐까. “문학의 위기라는 말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단 한때라도 문학이위기 아닌 적이 있었던가.위기에서 하는 것이 바로 문학의 숙명이다. 스스로 배수진을 치고 하는 문학 그 자체가 나는 좋다”(이순원) “궁극적으로 문학은 교과서와 아카데미즘과 관제 캠페인의 외곽에서부활의 에너지를 얻게 될 것이다.불온하게,소리없이,주변에서,아무것도 주장하지 않고 고독하고 우아하게 버티면서”(김영하). [신연숙 위원] yshin@
  • [해외 항일전적지를 찾아서] (19.끝)일본 도쿄

    도쿄시내를 동서로 가르는 지하철 유라쿠초센(有樂町線)의 중간지점에는 사쿠라다몬(櫻田門)이라는 역이 있다.이 역의 3번 출구는 경시청 입구로,4번 출구는 사쿠라다몬으로 나온다.황궁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사쿠라다몬에서 바라보면 왼쪽으로는 고색창연한 법무성 건물이,오른쪽으로는 멀리 일본 의회의사당 건물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바로 정면,불과 80m 정도의 거리에는 일본 치안의 총본산인경시청 건물이 위압적인 모습으로 우뚝 서 있다.기자가 이곳에 도착한 시각이 마침 점심시간이었다.초겨울의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인근 관공서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짝지어 사쿠라다몬을 지나 황거(皇居·황궁)앞 광장에서 조깅을 하고 있었다.일본사람들이길조(吉鳥)로 여기는 까마귀는 떼를 지어 날아다녔고,그 아래로 일본의 상징 일황이 거주하는 황거가 적막에 갇혀 있었다. 일제하 항일 독립투사들의 의열투쟁은 조선 땅이나 중국·러시아 등망명지는 물론 적지의 중심부인 일본 본토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1932년 1월8일.일황 히로히토(裕仁)는 도쿄시내 서북부에 위치한 요요기(代代木)연병장에서 신년 관병식을 마치고 황궁으로 되돌아오고 있었다.일황이 탄 마차가 황궁 입구의 사쿠라다몬에 다다를 무렵 난데없이 폭탄 하나가 날아들었다.폭탄은 일황이 탄 마차 뒷편에서 굉음을 내며 터졌다.순간 일장기를 든 기수와 근위병이 탄 말 두마리가거꾸러졌다.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폭탄의 위력은 일황에게까지 미치지는 못하였다.폭탄을 만든 김홍일(金弘壹·전 광복회장,작고)은 회고록에서 “군중과 일황의 거리가 100m 정도가 될 것을 고려하여 폭탄을 멀리 던지도록 가볍게 만들었다”고 했다.가볍게 만들다보니 상대적으로 위력이 약했던 것이다. 거사의 주인공인 이봉창(李奉昌·1900∼1932)의사는 의거후 현장에서 체포돼 그해 9월30일 도쿄 대심원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10월10일 이치가야(市谷)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백범 김구 선생이 이끈 한인애국단 소속인 이의사는 의거에 앞서 “물품(폭탄)을 1월8일 방매하겠다(터뜨리겠다)”는 내용의 전보를 백범에게 보내 거사일을 미리 알렸다.당일 이의사는 일황이 관병식을 마치고 경시청을 지나 사쿠라다몬을 통과하여 황궁으로 들어가는 것을 알고 경시청 정문 앞에서 일본인으로 가장해 기다리다가 거사를 성공시킨 것이다. 의거후 일본은 발칵 뒤집혔다.식민지 백성인 조선인이 도쿄 중심부,그것도 일본 치안의 총지휘부인 경시청 앞에서 일황이 탄 마차에 폭탄을 던진 ‘사건’은 충격적인 일이었다.일본은 이 사건을 ‘사쿠라다몬 사건’이라고 부른다. 이에 대해 최서면(崔書勉)국제한국연구원장은 “엄격히 말해서는 ‘경시청앞 사건’으로 부르는 것이 정확하나 ‘사쿠라다몬사건’역시일황과 관련된 표현이므로 크게 틀린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이의사의 의거현장인 경시청 정문 오른쪽에는 ‘경시청 창립 100주년 기념식수’라는 자그마한 기념표석이 서 있으나 이의사의 의거를 알리는기념물은 어디에도 없었다.일본 경찰로서야 ‘수치스런 기억’이겠지만 이는 또 하나의 역사은폐가 아닐까. 경시청 앞에서 사거리를 지나 황거를 에워싼 해자(垓子,궁성 주위에방어용으로 파놓은 연못)를 건너 사쿠라다몬으로 들어서면 황거의 분위기가 완연히 느껴진다.도쿄 시내 한가운데 위치하면서도 마치 외떤 섬과 같은 분위기가 든다.문 안으로 들어서면 거목과 잘 포장된 길이 황거로 안내한다.포도((鋪道)가 끝나는 지점에 작은 자갈이 깔린길이 나타나는데 넘실거리는 해자의 물결과 함께 황거가 모습을 드러낸다. 도쿄 시내 치요다(千代田)구에 위치한 이 궁성은 도쿠가와 이에야쓰(德川家康)의 손자인 3대 쇼군 이에미쓰(家光)시대에 만든 것으로 해자가 이중으로 조성돼 있다.황거의 면적은 총30만평 규모로,제122대왕인 메이지(明治)가 황거를 교토(京都)에서 옮겨온 뒤 도쿄성으로불린다.자갈밭 중간지점 쯤에는 이중으로 된 돌다리가 나타나는데 흔히 이를 니주바시(二重橋)라고 부른다.바로 황거를 연결하는 다리로,길이는 약 29m,폭은 약 7m정도다. 지방에서 도쿄 관광을 온듯한 일본인들이 니주바시를 배경으로 무리를 지어 기념사진을 찍곤 했다.기념사진 촬영용으로 만든 계단식 간이의자가 있었고 전담 사진사도 두 명이나 됐다.이곳에서 관광객들에게 사진을 찍어주는 다나카 아키코(田中明希子·22·국제관광사진주식회사 소속)씨는 “관광객이 니주바시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즐겨찍는다”고 말했다.사진값은 2장 1세트로 2,100엔(송료 별도)이라고했다. 니주바시 입구에는 3명이 경비를 서는데 근처까지 관광객의 접근이가능했다.회청색이 감도는 황거 건물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이었다.사진 몇장을 찍고는 다시 기념사진 찍는 곳으로 내려와,잠시짬을 내 쉬고 있는 다나카씨를 찾아갔다. 기자는 일제강점기때 이곳에서 발생한 ‘조선인 폭탄투척’사건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봉창의사의 사쿠라다몬사건은 물론 김지섭(金祉燮·1884∼1928)의사의 니주바시폭탄투척 사건도 전연 몰랐다.학교에서 그런 내용을 배우지 않았다고 했다.더러 한국인 관광객이 찾아와 기념사진을 찍곤하지만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은 아직 없었다고 했다. 1924년 1월5일 오후7시쯤 한 조선인이 니주바시에 던진 폭탄사건으로 일본은 소용돌이에 빠졌다.신(神)으로 받드는 일황의 궁성에 조선인이 폭탄을 들고 뛰어들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내무차관견책에 이어 경시총감·경무부장·국성 경비책임 경찰서장 등 치안책임자가 줄줄이 파면되었다. 의열단 소속 김의사는 1924년초 도쿄에서 일본총리를 비롯해 조선총독 등이 참석하는 제국의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이들을 폭살할목적으로 23년말 상하이 포동(浦東)부두에서 일본으로 향했다.그러나 제국의회가 갑자기 연기됐다는 소식을 접한 김의사는 계획을 변경,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인 일황 궁성을 폭파키로 결정하였다.그러나 접근이 불가능하자 날이 저물기를 기다렸다가 궁성 입구인 니주바시에폭탄을 던진 것이다. 아깝게도 김의사가 던진 폭탄은 불발이었다.타고온 배가 습기 많은화물선이어서 도쿄로 오는 동안 폭탄이 모두 젖어버린 탓이었다.김의사는 현장에서 체포돼 무기징역을 언도받고 복역중 고문 후유증으로1928년 2월20일 뇌일혈로 지바(千葉)형무소에서 순국했다. 76년전 김의사가 목숨을 내놓고 폭탄을 던진 니주바시 아래로 백조들이 무리를 지어 쌀쌀한 초겨울 날씨를 한가로이 즐기고 있었다. 도쿄 글 정운현기자 jwh59@. *연재를 마치며. 구한말 항일민족지 ‘대한매일신보’의 창간정신을 되살려 민족정론지로 거듭 태어난 ‘대한매일’이 금년 7월초부터 매주 수요일(일부화요일)자에 장기기획물로 연재한 ‘해외항일전적지를 찾아서’는 일제강점기하 선열들의 항일투쟁 현장을 관련자료와 현지 전문가들의도움을 받아,현장답사를 통해 생생히 복원한 점에서 평가할만 하다. 금년초 대한매일은 김삼웅 주필과 편집국 특집기획팀 소속 취재기자와 사진기자,외부전문가 등으로 특별취재반을 편성해 해외에 산재한항일유적지 실태를 파악한 뒤 구체적인 지역선정과 일정확정에 들어갔다.논의 끝에 최종 중국 러시아 미국 일본 등 4개국을 답사대상지로 선정했다. 무장투쟁 본거지인 중국의 동북3성을 첫 답사지로 결정했다.중국은지역이 광범위한데다 항일운동 주무대였다는 점에서 독립군이 무장투쟁을 벌인 동북3성과,임시정부·광복군의 활동무대인 관내지역을 2차로 나눠 답사했다.이어 미국 러시아 일본의 항일유적지 현장답사와취재 순으로 이어졌다. 이번 기획연재는 ‘청산리전투’등 항일투쟁사에서 찬란한 전과로 기록된 독립투쟁의 현장을 기자가 직접 답사하여 딱딱한 논문 형태가아닌,재미있고 현장감있는 신문기사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학계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그러면서도 관련자료와 현지 역사학자·주민 증언을 토대로 해 학술적 가치도 결코 적지 않다고 인정받았다. 특히 답사과정에서 보존가치가 크나 방치된 유적을 현장사진과 함께실감있게 보도함으로써 관계당국이 적극적으로 발굴·보존하는 방안을 마련토록 자극을 주었다.또 독자들에게는 선열의 위업을 현창하고애국심을 고취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음을 자부한다. 아울러 취재반은답사과정에서 북한 김일성주석이 소년시절 다닌,중국 길림시 소재 육문(毓文)중학을 남한 최초로 취재하였으며 박정희 전대통령의 만주군관학교 졸업 당시 사진을 발굴하는 등 과외의 성과도 거두었다.취재반은 이번 답사를 통해 취재·보도한 내용을 보완,내년초 이를 단행본으로 엮어 출간할 계획이다. 정운현기자
  • 건의합니다/ ‘규제 완화’가 집단민원 불러

    정부가 규제개혁 차원에서 추진중인 행정규제 완화정책이 러브호텔난립 등 각종 민원발생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최근 전국적으로 여론의 비난을 받고 있는 러브호텔의 경우 종전 건축법으로는 규제가 가능했으나 정부가 행정규제 철폐를 내세워관련조항을 삭제함으로써 일선 자치단체들이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실제 기존 건축법에는 ‘자치단체장이 도시미관 주변환경 등에 비추어 건축물이 불합리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건축위원회의 심의를 거쳐건축허가를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규정이 있었으나 지난해 2월 폐지됐다. 김규택(金圭澤) 대구 수성구청장은 “기존 법규로는 주택가 인근 상업지역에서의 러브호텔 신축을 규제할 수 있었지만 관련 조항이 삭제돼 자치단체로서는 법적으로 대응할 방법이 없다”고 주장했다. 공중위생관리법도 숙박시설 설치와 관련,95년 허가제에서 신고제로바뀐 뒤 99년 2월에는 아예 자유업에 가까운 통보제로 완화됐다. 유흥주점도 마찬가지다.일단 건물용도가 위락시설이면 주민반대를이유로영업허가를 내주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이에 따라 대구 수성구는 건축법,공중위생법 등의 관련 법규를 주민생활권을 우선 보호하는 방향으로 다시 고치도록 국무조정실 규제개혁위원회에 건의하기로 했다. 수성구 관계자는 “서비스업의 자유로운 시장진입과 개인의 경제적자유권을 보장한다는 취지로 추진된 행정규제 철폐가 주민의 환경·교육권 침해와 주거환경의 질 저하라는 부작용을 빚고 있다”면서 “국가경쟁력 못지않게 주거·교육·환경권도 적절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
  • [기고] 이벤트성 상봉 이제 그만

    지난번 남북 각각 100명씩의 1차 이산가족 교환방문에 지원인원의한 사람으로 평양으로 들어가 꼭 50년 만에 누이동생을 만나고 돌아온 뒤 나에게는 알게 모르게 묘한 변화가 일어나 있었음을 스스로도일말의 놀라움 섞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걸 한 두마디로 털어 놓기는 매우매우 어렵거니와 가령 이런 식으로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남북관계를 두고 이렇게 짧은 글 하나를쓰는 경우에도 요즘 와서는 지난번 평양에서 50년 만에 만났던 그 누이동생의 얼굴부터 우선 눈 앞에 슬그머니 떠오르곤 하는 것이다.현북한체제 안에서 누이동생이 이런 내 글을 읽게 될 리는 만무하겠지만 설령 읽게 된다면? 이런 이 오빠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고 상정(想定)부터 하게 되는 것이다.뿐만 아니라 혹여 지금 내가 쓰는 이 글로 하여 북에 있는 누이동생이 곤혹스럽게 되는 것은 아닐까?라거나모종의 불이익을 당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등등등등. 사실 지난 50년간 휴전선 넘어 북한이라는 땅은 아주아주 먼 땅이어서 거기 남아 있는 친족들도 아예 마음 속 깊이깊이묻고만 살아 왔었는데,한데 별안간 남북간의 통로가 요만큼이나마 뚫리고 북에 남아있는 친족 상면도 가능해지면서 사(私)적으로 부딪쳐 있는 이런 국면들이야말로 6·15선언 이후 우리 남북관계가 새 패러다임으로 들어섰다고 하는 그 구체적인 실제 상황일 것이다. 이런 짧은 글 하나를 내놓는 경우에도 두 달여 전에 만났던 북의 누이동생부터 떠올리며 되도록 그 누이동생에게 폐가 안 되듯이,혹은지난번 방북 길에는 만나지 못했지만 네살 아래인 남동생이나 거기딸린 조카들 입장까지도 나름대로 헤아리며,더 나아가 현 북쪽 당국의 내 이런 글에 대한 반응 하나하나까지도 큰 품으로 싸안 듯이 대어들게 되는 이것,이런 마음 자세…. 대체 이게 무얼까. 사실은 이런 것이야말로 일단은 사람 사는 가장자연스러운 반응양태이지 싶어진다.그야,보기에 따라서는 나의 이런반응양태야말로 어느 한 구석 이미 북한의 볼모로 잡혀 있는 꼴이 될는지도 모른다.26년 전 국가보안법,반공법 위반 혐의로 1년 가까이구치소에 갇혀 있던 나 자신부터가 우선 그 점을 민감하게 곤혹스럽게 의식하게 된다. 요컨대 남북관계는 이렇게 급류를 타고 있는데 우리의 현실 여건이나 의식은 재래의 ‘틀’에 그냥저냥 갇혀 있다.이 어색한 괴리감!운신의 불편함! 하지만 새삼 딱부러지게 밝히거니와 나는 예나 지금이나 결코 공산주의자는 아니고,다만 이 땅에서 지난 50년 가까이 소설을 써온 사람으로서 모든 지혜와 정열을 쏟아부어 우리의 통일에 뜨겁게 동참을하고 싶은 것뿐이다.따라서 현 북한의 누이동생이나 남동생,조카들에게 신경을 쓴다고는 하지만 궁극적으로 내 문학까지 저버리면서 내문학적 양심에 배치(背馳)되면서까지 그쪽에 대해 신경을 쓰거나 동조할 생각은 없다.북의 누이동생도 이 오빠가 그렇게까지 되기를 원하지는 않을 것으로 진정으로 믿는다. 세상사 모든 일은 직접 닥쳐보고 나서야 알 일인 것이다.2년 전 98년에 9박10일간 북한을 다녀 올 때는 재북 가족 누구 하나 못 만났음에도,아아 북쪽 산천이며,몇 안되는 북한사람들이며,심지어는 공기알갱이까지도 싸목싸목 뭉클하게 가슴에 다가들었었다.그때 흘낏이나마 친했던 두어 사람은 저번 두번째 방북 길에도 다시 만나 극히 짧은 시간일망정 따뜻한 정분을 나누었다. 달포 전인가,일본의 총련계 동포들이 처음으로 입경했을 때도 적십자사 자문위원 자격으로 워커힐 만찬장에 동참했었는데 그 분위기는매우매우 오순도순하고 시종 따뜻하였다.어쩌다가 일본 땅에서 살게된 그냥저냥 자연인으로서의 70대,80대 노인들,이 사람들이 지난 50년간 몽매에도 잊지 못할 고향 땅으로 어찌하여 올 수가 없었는지,새삼 의아해질 뿐이었다.정작 만나 보면 한 사람 한 사람 이렇게도 따뜻하게 정이 가는 것을,싶어지던 것이었다. 어제 저녁 이산가족 교환방문으로 2차로 내려온 북쪽 손님들과의 만찬 자리에 같이 합석하여 절감한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저번 1차때의그 지나치게 극적인 분위기는 벌써 조금 가라 앉아 보였는데, 응당사람 사는 매사가 그렇긴 할 것이었다.같은 일이 거듭되면 어차피 평상의 감정으로 차츰 돌아오며 비로소 제대로 범연하게 터를 잡아가게될 것이었다. 한데 놀랍게도 같은 식탁의 바로 내 옆에 앉았던북한에서 내려온이산가족 60대 노인 한 분이 개구 일성 주절대는 것이 아닌가. “어서 서신 교환하고,면회소를 설치해설란에 해 가야지.이거야 원‥”. 이벤트성 행사로 한껏 통일 분위기가 고조된 속에서 그 이의 이 한마디는 그 이상 신선할 수가 없었다.나는 두 눈을 한껏 벌려 떴을 뿐이었다.남이나 북이나 사람이란 이렇게 똑같은 생각임을 새삼 확인한순간이었다. 이호철 소설가, 경원대 교수
  • 南北 ‘기업공동화폐’ 만든다

    남북한은 남북 기업간 거래대금으로만 사용하는 별도의 결제전용 통화를 만들기로 합의했다. 평양에서 열리고 있는 제2차 남북경협 실무접촉 사흘째인 10일 남북한은 남북교역에만 사용하기 위해 청산결제수단으로 새로운 화폐를만들기로 합의했다. 남북한은 또 4개 합의서 문안중 11일 이중과세방지와 청산결제 2개분야에 가서명할 방침이다.투자보장과 상사분쟁조정은 내국민대우 문제와 남북분쟁조정위원회내 판정부 위원 3명중 1명의 선임방법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해 진통을 겪었다. 남측 이근경(李根京)수석대표는 “합의에 근접한 2개 분야에 대해서만 11일 오전 가서명을 하고 나머지 2개 분야는 3차 실무접촉으로 넘겨질 수도 있다”고 밝혔다. 남측 대표단은 이와 함께 평양 시내 개선동의 식량창고를 방문해 북측에 차관형식으로 제공한 식량 분배의 투명성을 확인하기 위한 실사작업도 벌였다.이 수석대표는 “청산결제 합의서에 결제수단으로 달러화 외에 다른 통화도 사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결제전용 통화는 남북간 거래를 청산결제하는 수단으로 남북 무역에만 적용되는 특별 지불수단이다. 이 수석대표는 “유럽에서 사용되는 유로화가 여기에 해당되며 청산결제 전용 화폐가 다른 나라에서도 사용된 적이 있다”고 말했다.독일의 경우 동서독간에 VE라는 화폐를 사용한 적이 있다. 이 수석대표는 “북한측이 제시한 식량분배 상황문서를 검토한 결과 식량이 비교적 투명하게 분배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평양 공동취재단 박정현기자 jhpark@
  • 방송사간 약속은 ‘부도수표’인가

    방송사간 약속은 ‘부도수표’이다.그리고 약속이 깨지면 서로를 흠집내기에 급급하다.방송가의 이런 병폐가 MBC의 미국 프로야구 독점계약을 둘러싸고 다시 드러나 시청자의 눈살을 찌푸려지게 하고 있다. KBS 이규창 스포츠국장은 9일 공식성명서를 내고 “MBC가 국내 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3,200만 달러(약 384억원)라는 외화를 내고 메이저리그 독점중계권을 계약한 것은 무모한 일”이라고 비난했다.이어 KBS는 “방송 3사가 합의한 시행세칙에는 메이저리그 및일본 프로야구 리그도 포함돼 있다”면서 “지난 97년 합동방송대상인 월드컵 축구 지역예선전을 단독 방송하는 잘못을 저지른 MBC가 이번에도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것은 ‘합동방송세칙’을 백지화시키겠다는 의도”라고 지적했다. 지난 98년 3월 합의된 합동방송시행세칙은 올림픽,월드컵 등 주요경기에 대해 방송사간 과당경쟁을 막기 위해 공동협상,순차중계를 약속한 것이다.여기에는 한국선수들이 진출한 미국 메이저리그,일본 프로야구,LPGA 골프 경기 등이 포함돼 있다.이합의를 어길 경우 2년간합동중계에 참여시키지 않는다는 제재조항도 있다. 방송사간에 논란이 되고 있는 중계권료와 관련,MBC측은 “MLBI와의계약조건상 구체적인 계약금액은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이다. 스포츠 중계권을 둘러싼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지난 99년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중계를 둘러싸고 SBS와 KBS·MBC 사이에 한바탕 신경전이 벌어졌다.2002년 월드컵 예선전 중계권료를 놓고 SBS와 MBC·KBS가 벌인 싸움도 만만치 않다.SBS는 월드컵 유럽예선과 남미예선전 중계권을 단독계약했고 KBS·MBC는 이와 별도로 스웨덴 경기를 포함한 19게임을 공동계약했다.예선전 중계권을 둘러싼 방송사간 싸움은 본선중계권 협상에 악영향을 미쳐 본선 중계권료를 인상시킬 수도 있다는 점에서 문제점이 크다.지상파 방송3사는 가끔 ‘합의’를 내놓는다.그러나 그 합의가 제대로 지켜진 것은 극히 드물다.예컨대 방송사들은 외환위기 이후 스타급 탤런트의 드라마 출연료를 한회당 300만원으로 상한선을 정했다.그러나 야외수당 철야수당 등을통해서 300만원 이상을 주고 있는 것이 현 실정이다.방송3사가 가장최근 합의한 사항은 선정적인 TV프로그램의 지양.이 역시 지켜지고있지 않다. 전경하기자 lark3@
  • 폐기물 반환 예치금제도/ 폐기물, 생산자가 책임지고 처리 유도

    *개선방안. 오는 2003년부터 생산·수입업자가 폐기물 처리비용을 정부에 미리맡기고 처리한 양만큼 돈을 받아가는 폐기물반환예치금제도가 없어진다.대신 생산·수입업자가 폐기물을 일정 비율 이상 처리하지 못했을 경우 사후에 처리비용을 물리는 사후부과금제도가 시행된다.생산·수입업자가 폐기물을 책임지고 회수·처리하는 제도가 도입되면 폐기물 수거 및 재활용이 지금보다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환경부는 현재 재활용이 가능한 품목에 대해서는 폐기물반환예치금제도,재활용이 어려운 품목에 대해서는 재활용에 드는 비용을 생산·수입업자에게 물리는 재활용부담금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환경부는 사후부과금제도 도입에 앞서 폐기물반환예치금 대상 품목도 6종,12품목에서 7종,16품목으로 확대하고,생산·수입업자가 폐기물 1개(또는 ℓ나 ㎏)를 처리하는 비용도 상향 조정할 방침이다.현재 폐기물반환예치금 대상 품목은 종이팩,금속캔,유리병,PET병,수은전지,산화은전지,타이어,윤활유,TV,세탁기,에어컨,냉장고 등 12개.앞으로 살충제 용기,화장품용기,형광등,리튬전지 및 니켈·카드뮴 등 4개 품목이 추가될 예정이다. 환경부는 또 예치금 반환율도 상향 조정함으로써 업자들의 회수·처리를 촉진할 방침이다.생산·수입업자들은 현재 폐기물을 회수·처리한 뒤 환경부로부터 반환받는 예치금 액수가 너무 적은 탓에 폐기물반환예치금제도를 외면하고 있다. 현재 반환금은 실제 처리비용의 30%가 채 안되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업자가 250㎖ 짜리 우유팩 1개를 회수·처리할 경우 실제로 드는 돈은 4.02원인 데 반해 환경부로부터 돌려받는 돈은 0.3원(7.47%)에 지나지 않는다.폐기물을 많이 회수·처리하면 할수록 업자들이 더 손해를 보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반환된 예치금은 품목별로 평균 43.6%에 머물렀다. 나머지는 정부의 환경예산특별회계에 귀속됐다. 환경부는 또 제품 생산·수입업자 또는 포장재 생산업자에게 회수·처리 책임을 지우는 생산자재활용책임제도도 2003년부터 도입한다. 생산자재활용책임제도란 생산·수입업자가 분리 수거한 폐기물을 스스로 처리하거나 업종별 재활용사업공제조합에 맡겨 재활용하도록 하는 것을 가리킨다.환경부가 생산·수입업자에게 책임을 지우려는 이유는 생산자가 제품의 설계·생산단계부터 환경친화적 소재를 선택하고 디자인이나 포장 개선 등을 통해 폐기물 발생량을 원천적으로 줄이며,자체 판매망을 갖고 있어 폐기물을 가장 잘 회수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이 제도는 현재 독일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일부 나라에서 시행 중이다. 문호영기자 alibaba@. *가전3사 폐기물 회수·처리 협약체결. 환경부는 2003년 사후부과금제도 시행에 앞서 업종별 생산업자 단체들과 자발적 협약을 맺어 사후부과금제도를 먼저 시행할 방침이다.생산·수입업자 스스로 폐기물을 일정 비율 이상 처리하기로 환경부와약속을 맺은 뒤 그 약속을 실천하면 폐기물반환예치금의 예치 의무를면제하는 것이다. 현재 자발적 협약이 체결된 사업자는 가전 3사.삼성·LG·대우전자는 내년부터 자기들이 생산한 제품의 포장재나 다 쓰고 난 제품을 스스로 회수·처리하기로 지난 6월1일 환경부와 협약을맺었다.또 지난 9월27일 회수·재활용센터 운영과 폐기물반환예치금 면제 신청 등을 대행할 한국전자산업환경협회를 발족시켰다.가전 3사는 난지도 매립지에 있는 자원재생공사의 폐가전제품처리공장을 인수,충남 아산에있는 기존의 공동 폐가전제품처리공장과 함께 본격 가동할 계획이다. 하지만 가전 3사의 이같은 계획은 한국전자산업진흥협회 설립 허가권을 둘러싼 환경부와 산업자원부 간의 이견 때문에 늦어지고 있다. 환경부는 또 10월 중 형광등 제조업체와도 협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6개 국내 업체로 구성된 한국형광등재활용협회는 지난 6월12일 환경부로부터 설립 허가를 받았다. 이 협회는 내년부터 폐기물반환예치금을 면제받는 대신 스스로 폐형광등 회수·처리에 나서게 됐다. 문호영기자. *폐기물 반환 예치금 품목 확대 논란. 환경부가 노트북PC·휴대폰 등에 들어가는 리튬이온전지를 폐기물반환예치금 대상 품목에 포함시키려는 데 대해 삼성SDI·LG화학 등 생산업체들이 반발하고 있다.업체들은 많은 돈을 들여 리튬이온전지를국산화했는데 환경부가 이를 격려하기는 커녕 오히려 괴롭히려 한다고 비난하고 있다. 매립해도 아무런 해가 없는데도,근거없이 환경에 해롭다며 규제하려한다고 주장하고 있다.산업자원부도 리튬이온전지를 회수·처리하는나라가 한 곳도 없다며 업체들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환경부가 리튬이온전지를 폐기물반환예치금 대상 품목에 포함시키려는 이유는 리튬이온전지가 폭발성은 없지만,구리·니켈 등 중금속을포함하고 있을 뿐 아니라,전지 내부의 유기 전해액을 매립할 경우 토양 오염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 또 전지 1개에 3.5g 들어 있는 코발트 성분은 유해성은 없지만 희귀금속인데다 회수가치가 전지 1개당 116원이나 된다.이에 따라 환경부는 업체들이 리튬이온전지를 1개 생산할 때 환경부에 맡겨야 하는 폐기물반환예치금을 116원으로 정할 방침이다. 환경부는 외국에서는 리튬이온전지를 회수해 재활용하지 않는다는산업자원부 주장에 대해,오스트리아는 품목의 구분없이 모든 전지류를 재활용하도록 하고 있으며,재활용하지 않을 경우 유통을 금지시키고 있다고밝히고 있다. 일본도 생산업체에 재활용 의무를 지우지 않고 있으나,소니(SONY)사는 직접 회수해 재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환경부는 다만 실제 회수·처리비용이 1개당 500원 가량 들기 때문에 예치금 116원을 돌려받더라도 나머지 384원이 업체의 부담으로 돌아가는 것은 인정하고 있다.이에 따라 가전 3사처럼 폐기되는 리튬이온전지 전량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비율 이상을 처리하면 예치금을 면제해 주는 자발적 협약을 맺을 것을 권하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리튬이온전지는 국내 생산량이 미미해 대부분을수입하고 있기 때문에 예치금이 부과되는 전지는 주로 외국산”이라면서 “리튬이온전지를 폐기물반환예치금 대상 품목에 포함시킬 경우국내산이 외국산보다 가격경쟁력에서 우위에 서는 효과도 기대할 수있다”고 말했다. 문호영기자
  • 야산 빈집서 결박 燒死體

    20∼30대 남자가 인적이 드문 야산 빈집에서 결박상태로 불에 타 숨진 채로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31일 경기 평택경찰서에 따르면 30일 밤 9시10분쯤 평택시 장안동 118의 1 빈집에서 화재를 진압중이던 송탄소방서 정기웅 소방교(38)가 집안에서 손과 발이 전선으로 묶인 채 불에 타 숨진 남자를 발견,경찰에 신고했다. 정소방교는 “화재현장에서 100m 가량 떨어진 성광양로원으로부터야산의 폐가에서 불이 났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불을 끄던 중 방안에 키 170㎝의 20∼30대 남자가 숨진 채 엎드려 있었다”고 말했다.발견 당시 숨진 남자는 나체 상태로 심하게 불에 탄채 목과 손목·발목이 전선에 묶여 있었으며,신발과 옷 등 유류품은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사체가 결박된 채 불에 탄 점으로 미뤄 원한이나 보복과 관련된 방화 살인으로 보고 숨진 남자의 신원확인에 나서는 한편,인근주민들을 상대로 탐문수사를 벌이고 있다. 평택 김병철기자 kbchul@
  • “日, 對北경제협력 韓·日방식 제의”

    [도쿄 연합] 일본정부가 베이징(北京)에서 30일부터 개최되는 제 11차 북일국교정상화교섭에서 국교정상화에 따른 대북경제협력의 개요와 관련,65년 한일국교정상화의 경우를 예로 삼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는 방침을 굳혔다고 요미우리(讀賣)신문이 29일 보도했다. 일본측은 회담에서 ▲경제협력은 ‘무상 3억 달러,유상 2억 달러’▲무상경제협력은 금전이 아닌 생산물과 서비스 ▲유상경제협력은 연리 3.5%,상환기간 20년 정도 등의 한일경제협력 방식을 설명하고 북한측의 반응을 탐색할 계획이다. 일본정부는 납치문제 등을 포함한 교섭이 타결될 경우 이같은 자금을 현재의 화폐가치로 환산해 경제협력을 추진하겠다는 의향을 내비칠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정부는 이미 한일방식의 경제협력을 현재의 가치로 환산하는 작업에 착수했으며 무상과 유상의 비율에 대해서도 ‘3대 2’로 고정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북한은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과거의 청산’ 문제와 관련,‘보상 배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본측은 ‘보상 배상’은절대로인정할 수 없다며 의견대립을 보이고 있다.
  • “리더여, 원칙과 중용의 덕을 갖춰라”

    최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최고경영자(CEO)는 예수’라는 내용의 책이 화제가 된 가운데 엘리자베스 1세로부터 위기관리의 리더십을 배우자는 지혜 경영을 강조하는 책이 나와 관심을 모으고 있다.‘패튼리더십’의 저자로 잘 알려진 앨런 액슬로드가 쓴 ‘위대한 CEO 엘리자베스 1세’(남경태 옮김,위즈덤하우스 펴냄).뉴욕타임스가 지난 1,000년간 최고지도자로 선정한 영국 엘리자베스 1세의 ‘실용적’ 국가경영으로부터 뽑아낸 136가지의 교훈이 실렸다. 화폐가치의 하락,극심한 인플레이션,종교분쟁으로 인한 내분,대국 에스파냐와 프랑스의 위협….16세기 초반의 영국은 누가 봐도 파산직전에 놓인 유럽의 후진국이었다.그러나 이러한 최악의 위기상황 속에서 로마 이후 최대의 세계제국이 탄생했다.그것을 가능케 한 인물이 바로 엘리자베스 1세(1533∼1603)였다.저자는 반역죄로 몰려 어머니 앤 볼린처럼 런던탑에서 처형될 위기에 처해있던 시절부터 1558년 튜더왕조 5대왕에 올라 에스파냐 무적함대를 물리치고 번영을 이루기까지의 엘리자베스 1세의 시련과 영광을 리더십 항목별로 묶어 정리했다. ‘급진적인 변화를 조심하라’ 엘리자베스 1세는 왕위에 오르면서 자기 자신이 신교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신교도를 핍박해 ‘피의 메리(Bloody Mary)’라는 별명을 얻은 메리 1세의 체제와 당장 결별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복수는 복수를 낳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는 메리 1세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던 사람들을 빼고는유능한 신하들을 그대로 유임시켜 백성들의 불안을 잠재웠다. ‘자신의 이미지를 스스로 창조하지 않으면 남들이 대신 만들어준다’ 당시 영국 국민들은 자신들의 왕이 또 다시 여자인 것에 경악을금치 못했다.이들을 사로잡기 위해 엘리자베스 1세는 성모 마리아를연상케 하는 ‘처녀여왕(Virgin Queen)’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종교개혁 이후 성모 마리아는 예배의 중요 대상에서 빠졌고,여전히 구교 예배절차에 익숙하던 백성들의 마음 속에는 커다란 공백이 있다는 점을 포착한 것이다. ‘규칙을 변경하거나 철폐할 때를 알아라’ 엘리자베스 1세는 해적선장 프랜시스 드레이크와 함께 계속되는 프랑스와 에스파냐의 위협에맞서 영국이 갖고 있는 조건을 최대한 활용,레버리지 원리를 이용한전략을 성공적으로 구사했다.즉 전면전을 피하고 사략질로 적의 공급로를 무력화시킨 것이다.이것은 당시의 정세를 명철하게 판단한 독창적인 발상으로 평가된다. 엘리자베스 1세는 무엇보다 원칙을 중시하고 중용을 꾀했던 계몽군주였다.동시에 때로는 거짓약속 등 술수에도 능했던 마키아벨리형 군주이기도 했다.어쨌든 여성이 공직에 오르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던 시절,국왕이 돼 쓰러져가는 나라를 대제국으로 일으켜 세운 점은 영원히 기억될 만하다.특히 광속의 변화 속에서 나날의 위기를 경영해야하는 현대의 리더들에게 엘리자베스 1세가 던지는 교훈은 각별한 데가 있다. 김종면기자 jmkim@
  • 삼척 도계 폐광주민 집단행동 움직임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주민들이 술렁이고 있다.석탄공사 도계광업소 중앙갱 폐쇄와 함께 구조조정이 임박했기 때문이다.이 때문에 폐광에 따른 지역 공동화를 우려하는 주민들이 집단 자구책 움직임을 보여 제2의 태백사태마저 우려되고 있다. 10일 도계역 광장에서는 1만여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주민 궐기대회와 도의원,시의원,관변 단체 임직원의 집단 삭발식과 사표 제출도 이어질 전망이다. 정부의 도계광업소 중앙갱 연내 폐쇄 백지화가 추진되지 않으면 결사대를 조직해 영동선 철도나 38번 국도를 점거할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민주노총 관계자 등이 현지를 찾아 중앙갱 폐쇄 백지화에 앞장서기로 하면서 심각한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이같은 위기 의식은 정부에서 구조조정을 내세워 오는 2002년까지계획된 석공 도계광업소 중앙갱(연 10만t 생산) 폐쇄를 올 연말까지시기를 앞당겨 강행하겠다고 최근 발표하면서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주민들은 석탄산업 합리화 조치(89년) 이후 도계읍의 인구가 기존의 절반 수준인 1만7,000여명으로 줄었는데또다시 지역 최대 탄전인석공 중앙갱을 폐쇄하면 당장 289명의 광원들이 일 자리를 잃게 되고 도계읍 자체의 존폐가 위협받게 된다는 것이다. 삼척 조한종기자 bell21@
  • 韓銀 연구보고서 “북한 화폐가치 과소평가 됐다”

    북한의 화폐가치가 과대평가된 게 아니라 과소평가돼 있다는 주장이나왔다. 한국은행은 8일 ‘2개국 평가법에 의한 북한 ‘원’의 구매력 평가’라는 연구보고서에서 이같이 밝혔다.보고서는 북한 주민들이 국영상점을 이용할 때 돈과 함께 ‘구매권’을 내야하는 반면 암시장에서는 ‘구매권’을 쓰지 않기 때문에 구매권의 유무에 따라 구매력이크게 달라진다고 지적했다.즉,구매권이 없으면 훨씬 높은 가격에 상품을 사야 하는 것이다. 보고서는 구매권이 있는 북한 ‘원’은 남한의 2,110.2∼5,319.2원에 해당되며 북한의 농민시장 가격을 근거로 산출한 구매권 없는 ‘원’은 남한 돈 27.9원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이어 구매권 있는 북한 ‘원’은 구매력을 근거로 보았을 때 1달러에 0. 36∼0.70 북한 ‘원’ 정도이기 때문에 북한의 무역환율(1달러당 2.2원)이나 공식환율(1달러당 1원)은 과소평가돼 있다고 주장했다.또 구매권 없는 북한 ‘원’도 1달러에 50.1원이 적정한 것으로 나타나 나진·선봉지역 환율(달러당 200원)이나 암시장 환율(달러당 150∼230원)은 과소평가돼 있다고 지적했다. 안미현기자 hyun@
  • [대한시론] 한국 매카시스트의 소갈머리

    남북분단 이래 친일파에게 면죄부를 안겨준 사이비 ‘반공주의’는한국판 매카시즘으로 모습을 갖추어 이 사회를 지배해 왔다.1991년소비에트 체제의 해체로 냉전시대가 끝나고 1998년 우리에게는 반세기 만에 정권 교체가 있었지만 한국의 매카시즘은 여전히 위세를 떨치며 건재하다.과거와 달라진 것은 매카시스트가 정권에 기생하는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지만 일제시대 이래 친일 기득권세력으로부터 이승만 정권과 군사정권을 거치며 군림해온 기득권층은 아직도 우리 사회의 실세다.독재정권하에서 특혜로 뿌리를 내려 도사리고 있는 재벌과 일부 관료및 사회 각계 요직에 박혀있는 구세력 인사들의 힘은 여전히 막강하다.한국의 매카시스트들은 바로 그들의 이해를 대변하여 정부의 개혁을 물어뜯고 훼방놓고 있다.여기서 기막힌 일은 한국의 매카시즘은 1950년대의 미국의 그것처럼 일시적인 열병이 아니라 거의 만성화된제도적 힘을 지닌 극우의 횡포란 점이다. 6·15 남북공동선언으로 남북교류가 활발해지자 매카시스트의 도전은 아주 감정적이고상궤를 훨씬 벗어나기 시작했다.이미 그들은 정권교체가 이룩되자 미칠 지경이 돼서 정권에 흠집 내기를 “DJ정부는 좌경세력의 광란시대”(정모 의원의 말)라고 악을 써댔다.법률상식으로 봐도 비방의 한도를 훨씬 넘은 명예훼손이고 모략중상이다. 우리사회에서 빨갱이로 낙인찍히면 그것은 ‘사회적 사형선고’이다.매카시즘의 횡포가 바로 그러한 낙인찍어 ‘폐인 만들기’였다.그런데 지금도 그러한 수법을 버젓이 쓰며 정권에게까지 도전한다.정권이 문제삼으면 그것 자체를 이용하겠다는 심보와 함께 현 정권이 과거의 군사정권처럼 탄압의 칼을 함부로 휘두르지 않으리라는 치밀한 계산하에서 하는 물어뜯기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매카시스트가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인가?우선 그들은 남북교류 자체가 용공행위로서 못마땅하다.결국 북에 대한 군사적 대결의 강경노선을 고수해야 한다는 것이다.그렇지만 그러한 군비경쟁은 남북이 함께 자멸에 이르는 길이다.이미 1953년 정전협정 당시에 무력통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확인됐다.다음에 그들은부패기득권 구조를 유지하려는 것이다. 기득권 유지에 위협을 준다고 생각되는 재벌개혁이나 정경유착의 부패구조 청산을 중단하고 군사정권시대같은 개발독재 체제로의 회귀와 복고를 꿈꾸고 있다.그래서 현 정권이 빨리 끝나길 바라고 심지어는 앞당겨 끝내고 싶어 안달이다. 그렇지만 재벌개혁을 비롯해 전반의 민주화가 없이는 우리는 몰락한다.나라나 겨레가 몰락한다.매카시스트가 대변하는 것은 재벌의 시장독점과 특혜대출,노사분쟁의 관권에 의한 치안대책적 제압 억제,대북긴장 고조 속에서 기득권 유지,구조의 안정 정착이다.그렇지만 그러한 개발독재의 효용성은 이미 시효가 끝났다.매카시스트와 그에 동조하는 사이비 지식인의 집념은 완강하다.특히 매카시즘의 법률적 발판 기능을 해온 국가보안법의 개폐가 마치 안보를 망가뜨리는 듯이 허풍을 떤다.우리나라가 국가보안법 없이는 하루도 지탱 못하는 형편없이 허약한 나라라는 논리를 태연히 내세우고 있다. 한국의 매카시스트가 조작해온 몇가지 신화를 보면 그 정체를 쉽게엿볼 수 있다.영국의 외무부 관리였고 역사가인 E.H.카를 공산주의자라고 법정에서 감정의견을 내놓아 세상을 웃겼다.정경유착과 경제파탄의 장본인을 근대화의 공로자로 뻔뻔스럽게 내세워 코웃음을 치게하고 있다.미국 비판과 미국과의 거래 논리 관철을 반미이고 용공이라고 매도하고 있다. 이런 무지와 독단은 국익에 적합한 것도 아니고 자유민주주의의 옹호도 아니다.21세기 세계화와 정보 기술혁명의 시대에는 그야말로 사고의 일대 전환이 있어야 한다.그런데 국제관계나 정치·사회 인식에 대한 기본상식도 결여한 채 구시대의 독단을 진리로 착각해 고집을부려 웃음거리가 되고 나라일을 그르치는 것은 보기에 딱하다.더구나 책임있는 지위에 있었거나,있는 사람이 그러니 더욱 안됐다. 분단 이래 매카시스트가 정권에 기생하며 위세를 떨쳐왔으나 정권교체로 사정이 달라졌다.그들은 버려진 고아의 심정으로 위기의식에 사로잡혀 현 정권을 심정적으로 거부한다.국민이 선택한 정권교체를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그래서 기존 법제의 테두리까지도 넘어서며 악을 써댄다.그렇지만무법의 자유는 자유가 아니다.국민의 무지에 편승해 이리떼가 온다는 소동놀이로 정치조작을 하는 작태도 끝장내야만 하는 시점에 이른 것이다. 한 상 범 동국대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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