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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헤즈볼라 유혈 보복전

    ◎폭탄테러­로킷포 공격… 쌍방 20여명 사상 【마르자윤(레바논) 로이터 AP 연합】 이스라엘과 레바논·시리아의 평화회담을 진전시키기 위한 워런 크리스토퍼 미국 국무장관의 순방이 실패로 끝난데 이어 이스라엘과 친이란 회교저항세력 헤즈볼라 게릴라 사이에 보복전이 가열되면서 양측에 사상자를 내고 있다. 이스라엘 전투기들은 23일 남부 레바논의 헤즈볼라 게릴라 기지에 로켓포를 발사,2명의 레바논 경찰관이 사망했다고 현지 보안 소식통들이 밝혔다. 이 공습은 이날 헤즈볼라의 공격으로 이스라엘 군인 1명이 사망하고 8명이 부상한데 따른 보복 성격을 띤 것으로 이스라엘측 무장 헬리콥터가 레바논 경찰 지프에 포격을 가해 사망자가 발생했다. 한편 헤즈볼라 게릴라들은 이날 아침 성명을 발표,자신들의 공격으로 이스라엘군 3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하고 이는 지난 21일 베이루트에서 일어난 차량폭탄 테러로 4명이 숨지고 11명이 부상한데 따른 보복이라고 밝혔다.
  • 라이베리아 내전종식/평화협정 체결 합의

    【아크라 로이터 연합】 라이베리아의 군벌들과 민간 정치인들이 거의 5년간의 내전을 종식할 평화협정에 합의했다고 정부 관리들이 22일 말했다. 이틀동안 가나 수도 아크라에서 열린 평화회담에서 서명된 협정은 오는 12월28일 밤 12시를 기해 휴전에 들어가며 내년 11월14일 총선 실시를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고 이 관리들은 밝혔다. 지난 89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아이보리 코스트로부터 전직 공무원 찰스 테일러가 이끄는 반군들이 라이베리아로 침공한 이후 내란과 무정부상태에서 약 15만명의 주민들이 숨진 것으로 추산된다.
  • 체첸공,“대러 협상 수락”/부통령 회견

    ◎“반군 제외…러 특별위만 상대” 【그로즈니 AFP 연합】 체첸공화국 정부는 5일 러시아정부와의 협상에 응하기로 했다고 밝히고 그러나 모스크바측과의 협상이 체첸공화국의 독립을 보장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젤림칸 얀다르비예프 체첸공 부통령은 AFP통신과의 회견에서 『우리는 모스크바와의 협상을 수락한다』면서 그러나 『우리는 이미 독립국가이므로 독립에 관해 논의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체첸공 사태 해결을 위해 러시아가 설치한 특별위원회만을 협상대상으로 인정한다고 말했다. 앞서 체첸공은 4일 러시아와의 합병을 원하는 반군측과의 평화회담을 위한 러시아측 중재를 받아들일 의사를 밝혔으며 러시아 TV는 러시아 고위관리 세르게이 그리주노프의 말을 인용,양측이 협상에 들어가기로 했다고 보도했었다. 얀다르비예프부통령은 체첸공에 파견된 러시아측 특별위원과 회담을 갖는 데 동의했다면서 자신들은 『반군이 아닌 러시아와의 협상에만 관심이 있으며 또한 협상이라면 그것은 오직 우리의 독립에 관한 것일뿐』이라고 말했었다. 한편 반군은 임시위원회 성명을 통해 정부측과 평화회담에 임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발표했다. 러시아의 지원을 받고 있는 임시위원회의 이같은 입장표명은 러시아정부가 조하르 두다예프 체첸공대통령과 협상할 용의가 있다고 말한 뒤 나온 것이다. 한편 그로즈니 일원에는 러시아군의 체첸공에 대한 무력침공에 대비,우크라이나등 구소련공화국 출신 지원병력이 입국하고 있다.
  • 영­IRA 첫 공식회담/7일 벨파스트/북아일랜드 평화안 논의

    【런턴 로이터 AP 연합】 영국정부는 아일랜드공화군(IRA)의 정치조직인 신 페인당과 오는 7일 역사적인 첫 직접회담을 갖고 항구적인 북아일랜드 평화정착방안을 논의한다고 영국 정부와 신 페인당이 1일 각각 발표했다. 메이저총리 집무실의 대변인은 오는 7일 북아일랜드의 수도 벨파스트에서 예비회담을 갖자고 초청하는 내용의 전문을 팩시밀리를 통해 신 페인당에 보냈다고 밝혔다. 신 페인당도 영국 정부로부터 이같은 전문을 받았다고 확인하면서 전문내용을 당간부들에게 회람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회담은 IRA가 지난 9월1일을 기해 영구휴전을 선포하고 신교도 게릴라들도 이에 화답,10월 중순에 휴전을 발표하면서 북아일랜드의 평화실현 분위기가 무르익은데 힘입어 성사되는 것으로 영국정부와 IRA사이의 사상 첫 공식 대좌이다. 영국정부와 신 페인당은 이번 회담에 켄틴 토머스 북아일랜드부 차관과 당내 2인자인 마틴 맥기네스를 각각 수석대표로 참석시킬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7일부터 시작되는 첫 회담에서는 모든 정당들이 참여하는가운데 개최될 북아일랜드 평화회담의 신 페인당 참여조건이 중점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 타밀반군/야당 강경정책에 보복/스리랑카 대선후보 테러 안팎

    ◎정부선 두번째 평화회담 무기한 연기/11년째 유혈충돌… 희생자 3만4천명 스리랑카 야당 대통령 후보 가미니 디사나야케에 대한 폭탄 암살사건은 그가 지난해 8월까지 17년동안 집권해온 민족통일당 후보로 다음달 9일 있을 선거에서 당선가능성이 매우 높았다는 점에서 충격을 더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타밀엘람해방호랑이(LTTE)의 소행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이들은 지난해 라나싱헤 프레마사다 전 스리랑카 대통령 살해사건과 91년 라지브 간디 전 인도총리에 대한 자살폭탄테러사건의 배후세력으로도 지목된 바 있다.스리랑카의 1천7백만명 인구중 18%로 소수민족인 타밀족가운데 최대반군세력인 타밀엘람해방호랑이는 다수족인 싱할리족의 차별에 반대,타밀족의 분리를 요구하며 스리랑카 북부와 동부를 거점으로 11년째 유혈투쟁을 벌이고 있다.지난 72년 이 단체가 결성된 뒤 지금까지 일어난 유혈충돌로 양측은 3만4천명 이상의 희생자를 냈다. 이들이 이번에 디사나야케를 타깃으로 삼은 것은 지난 87년 장관 재직당시 그가 타밀종족분쟁을 종식하기 위해 인도군을 배치하는 내용의 조약을 인도와 체결했던 전력이 있는데다 자신들에게 유화정책을 펴고 있는 쿠마라퉁가 현 총리와는 달리 「타밀반군들이 무력투쟁을 포기하지 않을 때까지는 협상을 할 수 없다」는 강경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그가 대통령에 당선됐을 경우 돌아올 타격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지난해 8월 총선에서 승리한 집권 인민동맹당은 휴전을 할 경우 반군들이 전열을 다시 정비할 시간을 얻는다고 반대하는 군부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내전종식을 최우선 정책목표로 삼고 평화분위기 정착을 내세웠었다. 실제로 지난 13,14일 반군 거점인 북부 자프나에서 열린 평화회담에서 양측은 경제문제를 중심으로 내전으로 파괴된 도로·항만·학교·병원 등의 복구를 광범위하게 논의했다.정부측은 첫번째 회담이 끝난 뒤 화해의 제스처로 18명의 타밀반군 포로를 석방했으며 반군측도 싱할리족 어부 9명을 석방,이에 화답했다. 그러나 결국 이번 사건으로 24일 여행자들의 안전통행 조항 등을 포함한 양측의 본격적인 휴전협상은 무기한 연기됐다.
  • “골란고원 철수” 원칙 합의/이­시리아/세부조건서 이견

    【베이루트 AFP 연합】 이스라엘은 시리아와의 협상에서 점령지 골란고원으로부터 전면철수하기로 원칙적으로 합의했으나 이에 따르는 조건문제가 여전히 걸림돌로 남아 있다고 레바논언론들이 17일 보도했다. 레바논언론은 지난주 워런 크리스토퍼 미국국무장관이 시리아와 이스라엘과 가진 평화회담결과에 대한 파루크 알 사라 시리아외무장관의 설명을 토대로 이같이 전했다.
  • 「납치사건」으로 중단/이­PLO 회담 재개

    【예루살렘 로이터 연합】 이스라엘은 16일 회교 과격파의 이스라엘군 병사 납치사건에 대한 항의표시로 중단했던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와의 평화회담을 재개하기로 결정했다. 이스라엘 각의는 이날 주례회의를 끝낸 뒤 성명을 발표하고 『이스라엘 정부는 지금까지 체결했던 협정에 근거하여 PLO 및 팔레스타인 자치기구와 협상을 계속하기로 결정했다』면서 팔레스타인 통치의 가자지구에 대한 폐쇄조치도 곧 해제하겠다고 밝혔다.
  • 예루살렘/총기난사 15명 사상/평화회담 주선 미 국무장관 숙소인근

    ◎「팔」 자치 반대 「하마스」 소행 【예루살렘 AFP AP 연합】 이스라엘 점령지역에서의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자치를 반대해온 무장세력들이 예루살렘 번화가에서 총기를 난사하고 수류탄을 던져 휴가나온 이스라엘 여군 등 2명이 사망하고 미국 외교관 1명을 포함,13명이 부상당했다고 이스라엘 경찰당국이 10일 밝혔다. 이스라엘 경찰당국에 따르면 9일 자정 조금 못미쳐 유흥가인 예루살렘 서부 유태인지역 나할라 시바 보행전용구역에서 팔레스타인인 2명이 보행인들을 향해 소총을 난사한뒤 수류탄을 던졌으며 이들 괴한은 부근에 있던 경찰과 총기를 소지하고 있던 행인들의 반격을 받아 현장에서 숨졌다는 것이다. 사건발생당시 인근 킹 데이비드 호텔 부근에는 이스라엘과 시리아간의 평화회담 주선을 목적으로 중동을 순방중인 워런 크리스토퍼 미국 국무장관 일행이 묵고 있었다. 사건 발생 직후 팔레스타인 자치를 반대해온 무장단체인 「하마스」는 한 국제통신사에 서한을 보내 지난 90년 10월8일 이스라엘 경찰들이 예루살렘 알 아크사 사원에서 팔레스타인인 17명에게 총격을 가한데 대한 보복으로 이번 사건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 노벨평화상/중동평화 4명 공동수상 유력/14일께 발표 예정

    ◎이/라빈­페레스/팔/아라파트­압바스 균형맞춰 오는 14일 발표예정인 94년 노벨평화상이 중동평화정착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예상속에 10일부터 올해 노벨상 발표가 시작된다.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의장,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외무장관이 6개 노벨상중 가장 권위있는 평화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중동평화회담이 열릴 당시 노르웨이 중재자의 한 사람인 테르제 로에드 나르센씨는 오슬로위원회가 사상 처음으로 평화상 수상자를 4명으로 선정,균형의 묘를 이뤄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는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의장과 워싱턴 평화회담을 조인한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집행위원회 위원인 마흐메트 아바스(일명 아부 마젠)와 함께 라빈총리와 페레스외무장관 모두에 대해 평화상을 수상할 것을 제안했다. 한편 스톡홀름의 카롤린스카연구소는 10일 의학상 수상자 발표를 시작으로 경제학상 11일,화학상 12일,그리고 14일 평화상 수상자를 발표할 예정이다.
  • 아일랜드 총리­신페인 당수 첫회담/북 아일랜드 평화협정 촉구

    ◎영선 회담 거부 【더블린·벨파스트 AP AFP 연합】 앨버트 레이놀즈 아일랜드공화국 총리와 아일랜드공화군(IRA)정치조직인 신 페인당의 게리 애덤스당수는 6일 역사적인 첫 회담을 갖고 평화유지를 다짐하는 한편 북아일랜드 문제에 관한 항구적 협정을 촉구했다. 레이놀즈총리와 애덤스당수는 IRA가 휴전을 선포한지 6일만인 이날 더블린에서 가진 회담을 마친 뒤 공동성명을 통해 『우리는 이제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전제하면서 『우리의 정치문제를 해결하는데 민주적·평화적 방법을 사용할 것을 전폭적으로,또 절대적으로 확약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우리의 목표는 우리 모두의 다짐을 요구하는 공정하고도 항구적인 합의라는 점을 재천명한다』고 밝히면서 이를 위한 장치로서 회의개최를 제의했다. 아일랜드공화국과 영국은 IRA가 폭력을 포기할 때까지 신 페인당과의 회담 불가입장을 취해 왔으나 최근 IRA가 휴전을 선언하자 아일랜드는 이를 평화회담 개최의 계기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영국은 IRA의 휴전조치가 영구적인 것임을 확인할 때까지 신 페인당과 회담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 아일랜드 총리/신페인당수와 회담

    ◎영,“영구휴전 약속없이 시기상조” 반발 【더블린·벨파스트 로이터 AFP 연합】 알버트 레이놀즈 아일랜드공화국 총리가 6일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의 정치조직인 신페인당의 게리 애덤스 당수와 역사적인 회담을 개최해 IRA의 휴전선언과 이에 따르는 평화전망 등에 대해 논의한다고 아일랜드정부 소식통들이 밝혔다. 사상 처음으로 열리는 레이놀즈 총리와 애덤스 당수의 회담을 계기로 IRA의 일방적 휴전선언에 대한 영국과 아일랜드공화국간의 입장 차이가 더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아일랜드공화국과 영국은 IRA가 폭력을 포기할 때까지 신페인당과의 회담 불가입장을 취해왔으나 최근 IRA가 휴전을 선언하자 아일랜드는 이를 평화회담 개최의 계기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영국은 IRA의 휴전조치가 영구적인 것임을 확인할 때까지 신페인당과 회담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 스리랑카 카밀반도 정부평화회담 수락

    【콜롬보 AP 연합】 타밀주반군인 타밀엘람해방호랑이(LTTE) 사령관은 조건없는 평화협상 개최를 요구한 스리랑카 사회당 정부의 제의를 수락했다고 이 군사단체 사령관의 한 보좌관이 3일 밝혔다. 반군 지도자인 벨루필라이 프라바카란은 보좌관이 대독한 성명을 통해 『우리는 휴전과 조건없는 평화회담에 임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발표했다. 스리랑카 정부의 한 각료는 이에따라 평화회담이 앞으로 『수주일내 아니면 수개월내』에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정전협정」 평화협정 대체/중,북주장 반대

    ◎전외교부장,방북 북대표단에 밝혀 【북경=이석우특파원】 중국은 남북한의 정전협정이 여전히 유효하며 해당국들은 이를 준수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정전협정을 휴전협정으로 대체하기 위해선 한반도의 평화정착이 우선돼야 한다며 정전협정을 휴전협정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북한측의 주장에 분명한 반대의 뜻을 표했다. 전기침 중국외교부부장겸 부총리는 1일 중국을 방문중인 송호경 북한외교부부부장을 만나 이같이 밝혔다고 신화사통신이 전했다. 남북한사이의 정전회담을 평화회담으로 대체해야 된다는 북한의 주장에 대해 중국이 공식적인 입장을 표현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며 남북문제에 대해 북한측주장에 공개적으로 반대의사를 표시한것도 이례적인 일이어서 주목된다. 북경의 조어대 국빈관에서 이루어진 이날 회담에서 전기침부장은 그러나 북한과 미국사이의 회담은 멀지않아 성과를 얻게될 것이라고 낙관하면서 북한과 미국간의 회담이 계속 발전해나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또 전부장은 송호경부부장에게 『북한 국민들은 김정일동지를 지도자로한 노동당을 중심으로 김일성주석의 뜻을 이어나갈 것을 확신한다』며 김정일 체제의 사실상 안정을 간접적으로 시사했다.
  • “갈망하던 평화가…” 축제 분위기/IRA휴전발표 이모저모

    ◎신 페인당수 “역사적인날” 자찬/신교도들 “차리리 죽음을” 울상 ○…북아일랜드공화국군(IRA)의 휴전선언에 대한 반응은 환영과 불신,반신반의 등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IRA의 정치조직인 신 페인당의 게리 애담스당수의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나 로저 스코트 영국노동당대변인의 『하나의 큰 진전』이라는 논평은 이날의 휴전선언을 매우 긍정적으로 받아들임을 보여주고 있다.또 아일랜드교회를 이끄는 로빈 이엄스박사의 『폭력의 종식 및 삶에 대한 위협의 종식은 당연히 환영받을 만한 것이다.왜냐하면 이들은 애초부터 매우 부도덕적인 것이기 때문』이라는 논평도 휴전에 대한 부푼 기대를 보여준다. 그러나 IRA의 테러에 가족을 잃은 희생자들은 IRA의 휴전선언을 시큰둥하게 보고 있다.경관이었던 아들을 IRA의 테러로 잃은 마거릿 굿맨여인은 『그들이 무슨 말을 한다해도 IRA의 살인행위는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그이외에 그들은 달리 할일이 없을 것』이라고 강한 불신을 나타냈다. 한편 북아일랜드동맹당지도자 존 올더다이스는 『말이아니라 행동으로 IRA가 평가될 것이다.모든 사람은 앞으로의 사태진전을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신중한 태도를 보이기도. ○…IRA(아일랜드공화군)가 휴전을 발표한 31일 벨파스트에선 기쁨의 환호를 터뜨리는 카톨릭교도들과 믿을 수 없다는 시큰둥한 표정의 신교도들 간의 반응에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이날 휴전이 발표되자 신 페인을 상징하는 녹색·백색 2색기와 아이랜드국기를 탄 긴 자동차행렬이 벨파스트시내를 행진하며 경적을 울려대는가 하면 기쁨에 찬 카톨릭교도들이 신 페인 본부앞에 몰려들어 서로 인사하고 박수치며 축제분위기를 빚었다. 한 할머니는 눈물이 글썽글썽한 눈을 하고서도 춤추고 박수치면서 『이렇게 기쁠 수가 없다.오랫동안 평화를 갈망해 왔는데 이제 평화를 기대해도 좋게 됐다』고 말했다. 또다른 한 사람은 『이제 공은 신교도들에게 넘어갔다』며 신교도측이 폭력적인 대응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신교도들 사이에는 이날의 휴전발표를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반응들이 다수를 차지했다. 한 남자는 『눈으로 보아야만 IRA의 휴전을 믿을 수 있다』고 말했으며 또다른 한사람은 『이번에는 IRA가 거짓말을 안했기를 바란다』고 IRA에 대한 불신감을 표시. 한편 신교도들의 무장조직인 얼스터자유전사(UFF)측은 『모든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에게 죽음이 내리기를… 우리는 통일된 아일랜드에 살기보다는 기꺼이 죽음을 택하겠다』는 반응을 보였으며 얼스터지원병(UVF)도 『전투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벨파스트내 카톨릭교도들과 신교도간의 상반된 반응은 평화정착이 결코 쉽지 않음을 예고해준다고도 할 수 있다. ○…존 메이저 영국 총리는 『IRA의 성명에 고무됐다』고 밝혔으나 『우리는 이 성명이 진정으로 폭력의 포기를 의미하는 지 알고 싶다』고 단서를 달았다.영국정부도 일단 IRA의 성명을 환영하면서 IRA의 성명에 대한 답변에 앞서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아일랜드정부는 『이런 중대한 결정은 아일랜드 국민이 오랜 시간동안 바라던 평화에 대한 열망에 부응하는 것』이라고 환영하면서 『국내외 동포가한뜻으로 이번 성명을 환영할 것』이라고 논평했다. ○…IRA(아일랜드공화군)의 정치조직인 신 페인의 지도자 게리 애덤스는 31일 영국에 대해 이날 발표된 IRA의 휴전선언에 따라 ▲아일랜드의 민족주의자 수감자들을 석방하고 ▲북아일랜드로부터 영국군을 철수시킬 것을 촉구했다. ◎IRA는 어떤 단체인가/영국군 치안담당에 항의… 69년 결정/「피의 일요일」 계기로 본격 무장투쟁 북아일랜드의 종교·민족분쟁의 뿌리는 1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 가지만 북아일랜드 가톨릭계의 저항이 본격화된 1969년에 IRA는 탄생했다. 북아일랜드의 다수를 차지했던 브리티시계 신교도들이 지방정부의 요직과 의회의 다수를 차지하자 이들의 차별대우에 불만을 품은 토착 아이리시계 가톨릭교도들은 69년7월부터 10월까지 거세게 저항운동을 벌였다. 가톨릭교도들은 17세기 영국 「제임스」2세의 가톨릭군을 패배시킨 신교도의 기념일 전후를 기해 유혈폭동을 일으켰으며 영국군의 북아일랜드 치안담당에 항의해 무장단체를 결성했는데 이 조직이 바로IRA다. IRA는 71년 여름과 가을의 무력충돌을 신호탄으로 본격적인 테러를 감행한다.72년 1월30일에는 런던데리에서 가톨릭계 시민 13명이 영국군에 의해 사살된 「피의 일요일」이라 부르는 참사가 벌어져 이들의 저항은 더욱 거세지게 됐으며 같은해 7월 폭탄테러를 일으키자 영국정부는 2만명 이상의 군대를 집결하고 지방정부의 의회기능을 중지시켰다. 75년 2월에 IRA와 영정부사이에 무기한 정전협정이 체결되고 5월에는 제헌의회의 총선거가 실시됐으나 양파에 의한 권력배분에 신교도측 강경파가 반대,76년 3월 의회는 해산되고 그후 영국정부의 직접통치가 계속되고 있다.79년 8월에는 영국의 국민적 영웅인 마운트배튼 백작이 암살되고 영군부대의 병력 15명이 매복공격으로 사망했다. 이어 81년 5월에는 IRA대원 보비 샌스와 프란시스 휴스가 수감중인 IRA소속 게릴라들을 정치범으로 대우해줄 것을 요구하며 옥중단식투쟁 끝에 잇따라 사망하자 북아일랜드 수도 벨파스트 등지에서 구교주민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IRA는 영국정부나 신교도들에 대한 공격말고도 실제로 영경찰이 해왔던 북아일랜드 지역의 치안을 떠맡았다.그러나 이들의 처벌형식이 무릎이나 팔꿈치등 신체일부에 총을 쏘는 등 너무나 잔인해 가톨릭계들로부터도 많은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80년대 중반이후 영·아일랜드 정부간에는 북아일랜드 문제를 놓고 협상이 조심스레 전개됐다.85년 마거릿 대처 영국총리와 개릿 피츠제럴드 아일랜드총리가 북아일랜드사태에 관해 아일랜드의 발언권을 인정하는 협정을 체결하고 이 문제와 관련해 정례적 회담을 시작했다.그러나 이는 북아일랜드내 신교계들이 협정을 반대하고 나서 실효는 거두지 못했다. 91,92년 아일랜드정부와 북아일랜드정당이 런던에서 신 페인당을 배제한 채 다자간회담을 개최했으나 92년 11월 협정을 내지 못하고 무산됐다가 93년 영국과 아일랜드간의 논의가 다시 활발해져 영·IRA간 비밀접촉이 진행됐다.존 메이저 영국총리와 앨버트 레이놀즈 아일랜드총리는 평화협정의 개요를 정하고 IRA의 영구휴전 대가로 신 페인당에 평화회담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내용의「다우닝가선언」에 서명했다.협상은 올들어 더욱 활발해져 아일랜드와 영국이 지난 20년에 제정된 아일랜드 독립당시 북아일랜드를 제외시켰던 「아일랜드 정부법」의 개정을 시사했으며 영국도 이 법이 시의적절하지 않다는 점을 인정한 가운데 IRA의 정치조직 신페인당이 휴전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IRA휴전 발표문 요지 ▲현상황의 발전 가능성을 인정하면서 민주적 평화발전을 앞당기기 위해 IRA는 8월31일 자정부터 휴전을 선포한다.이번 휴전은 군사작전을 완전히 중지하는 것으로 IRA의 모든 부대는 군사작전을 중지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우리의 투쟁에 힘입어 민주적 입지를 위해 노력한 민족주의자들은 그동안 많은 업적과 진전을 이루어 왔다. ▲우리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어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고 있으며 또한 영국정부의 발표가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해결책으로 제시되지도 않았음을 주지하고 있다. ▲해결방안은 단지 총괄적인 협상결과로서 찾을 수 있다.여타 당사자들 특히 영국정부는 그들의 책임을 인정할 의무를 갖고있다. ▲이같은 풍토조성에 크게 일조코저 하는 우리의 염원에 따라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이번의 새로운 상황에 결의와 인내로 접근하기를 촉구한다.
  • 이라크,「이」에 평화제의/양국 사무소개설 희망… 대미 접촉도

    ◎유럽서 비밀접촉 【예루살렘 AP 연합】 이라크는 지난달 유럽의 모처에서 비밀리에 열린 이스라엘과의 고위급회담에서 평화적 제안을 했다고 예디오스 아로노스지가 5일 보도했다. 이라크정부는 또 이스라엘과의 협상을 통해 미국과의 접촉을 희망했으며 4년간계속되고 있는 유엔 경제제재조치 해제를 대가로 쿠웨이트의 영토문제에 관한 지금까지의 모든 요구사항들을 포기할 수 있음을 제안했다고 이 신문은 익명의 정부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이라크의 최고위 국방부 관리와 이스라엘 고위관리 사이의 이번 비밀회담이 지난달 18일 이스라엘과 요르단간의 역사적인 평화회담 직전에 열렸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이번 회담에서 이라크측이 제안한 것은 중동평화무드에의 동참과 이스라엘·요르단간 회담 환영,이스라엘에 대한 석유판매및 양국간 외교적이익을 위한 사무소 개설등이다.
  • 이,시리아에 비밀정상회담 제의/사우디방송 보도

    ◎라빈,아사드와 직접접촉 타진/“레바논과 공동대표단 구성” 시사/시리아 【니코시아 AFP 연합】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총리는 28일 하페즈 알 아사드 시리아대통령에게 미국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직접비밀회담」을 갖자고 제의했다. 라빈총리는 『아사드 시리아대통령이 이스라엘과 직접적인 비밀회담을 미국의데니 로스 중동특사가 참석한 가운데서 개최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키프러스에서 청취된 사우디 국영 중동방송국(MBC·런던소재)이 보도했다. 【베이루트 로이터 연합】 시리아는 이스라엘과의 평화회담을 위해 레바논과 공동대표단을 구성할 용의가 있음을 미국측에 밝혔다고 레바논외무부 소식통들이 29일 밝혔다. 이 소식통들은 하페즈 알 아사드 시리아대통령이 지난주 다마스쿠스에서 워런 크리스토퍼 미국무장관과 만났을 때 이같은 입장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아사드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대이스라엘 평화회담에 시리아와 레바논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강조했다고 이 소식통들은 전했다.
  • 이­아랍 분쟁종식 “힘찬 발걸음”/이스라엘­요르단 정상회담 전망

    ◎양국 관계정상화 집념… 협정 맺을듯/경제협력­반유태감정 완화 큰 진전 이스라엘과 요르단이 25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정상회담에서 지난 48년 이스라엘 건국이래 계속돼온 양국간 전쟁상태의 종식을 공식 선언하고 평화협정에 서명할 것으로 보여 중동전역에 본격적인 평화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특히 이번 두 나라 정상회담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최근 가자지구에서 발생한 유혈사태에도 불구하고 가자지구 자치에 관한 새로운 협상을 시작한 것과 더불어 아랍권과 이스라엘간의 평화노력을 가시화하는 촉진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과 요르단은 비록 공식적으로는 전쟁상태에 있었다고 해도 최초의 중동전이 있었던 48년 이래 다른 아랍국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은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이후 몇차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양국은 91년 마드리드에서 열린 중동평화회담에서부터 적극적인 관계정상화 노력을 나타내기 시작했다.요르단은 이 회담에 다른 아랍국가들과 함께 참석,40여년간 지지부진해온 이스라엘과의 평화회담을공식적으로 시작했으며 그 결과 지난해 9월 양국간 평화정착을 위한 기본원칙 선언에 조인했다. 이스라엘과 요르단이 이처럼 빠른 속도로 관계개선에 합의한데는 무엇보다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지난 20일 이스라엘 고위관리로는 사상 처음으로 요르단을 공식방문한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외무장관은 홍해연안 관광지인 이스라엘의 엘리아트와 요르단 아바카간 도로개통 및 외국인에 대한 국경개방 등 관광진흥 방안과 요르단 계곡개발 등에 합의,경제현안 해결에 진전을 보였다. 요르단 역시 모로코,튀니지,카타르,오만 등이 이미 경제적·정치적인 이유 등으로 대이스라엘 적대감을 버리고 이스라엘과 협력관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스라엘과의 관계개선을 적극 추진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할 수 있다.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총리와의 정상회담에 나서는 요르단의 후세인국왕이 『평화협정이 조인에는 수개월이 걸릴지도 모르지만 결코 협상일정을 지연시키지는 않을 것』이라며 대이스라엘 관계개선에 강한 의지를 나타낸데서도 이같은요르단의 입장을 엿볼수 있다. 페레스의 요르단방문은 두나라 사이에 가려졌던 장막을 걷어냈다는 의미 외에도 이스라엘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이스라엘의 동쪽 국경과 접하고 있어 수세대에 걸쳐 이스라엘인들에게 아랍권의 배타적 반이스라엘 감정을 대표하는 전초로 여겨져온 요르단과의 관계개선으로 이스라엘은 이제 아랍권전체의 반이스라엘 감정을 완화시킬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과 요르단이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40여년간 지리하게 끌어온 중동평화문제는 지난 2월 헤브론사원 학살사건 이후 교착상태에 빠진채 이스라엘군의 골란고원 철수방안을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는 시리아·이스라엘 협상을 제외하면 막바지 해결국면으로 접어들게 된 셈이 됐다.
  • 공산독재자 장례식 어떻게 치러졌나

    ◎천안문광장 1백만인파… 외국조문단 “사절”/모택동/안치순간 소전역 5분간 묵도/레닌/조포30발… 애도군중 압사소동/스탈린/“화형” 유언 불구 유리관에 보존/호지명 20세기 들어 전체주의 국가의 장기집권자들은 흔히 사망시까지 권력을 쥐고 있다가 국민의 애도 속에 장례식이 치러지곤 했다.스탈린·브레즈네프·모택동·티토·호지명등이 그러했다. 그러나 사후의 평가는 장례식 만큼 화려하지는 않다.스탈린과 브레즈네프는 사후에 집권 당시의 잘못에 대해 준엄한 역사의 심판대에 내몰리기도 했다.아직도 적절한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모택동과 호지명 뿐이다. 이들 가운데 그 장례식이 연기된 경우는 없었다. ▷레닌◁ 1924년 1월21일 사망했으나 발표는 22일 상오 6시.모스크바 중심가의 노조회관에 안치된 그의 시신에 마지막 경의를 표하려는 조문객이 혹한에도 불구하고 90만명이 넘었다.장례식은 27일.붉은 광장의 모솔레움에 방부 처리돼 안치되는 순간 5분동안 소련 전역에서 묵도가 이뤄졌다.그의 장례식은 그 뒤 소련 지도자는물론 중국등 공산권 지도자의 사망시 장례식의 전범이 돼 왔다. ▷스탈린◁ 1953년 3월 5일 사망했다.사체는 레닌 때와 마찬가지로 노조회관에 안치됐다.사망 2개월 전까지 공포정치를 거듭해 왔으나 모스크바의 중심부는 애도하는 군중들로 큰 혼잡을 이뤄 사망자가 나오기까지 했다. 9일 사체는 정치국원인 베리아·말렌코프·바실리·몰로토프·불가닌·카가노비치 등에 의해 모솔레움으로 운구돼 레닌의 옆에 안치됐다.이 때 5분동안 모든 소비에트연방 각공화국의 수도등에서 각각 30발의 조포가 발사됐다. 스탈린의 유해는 레닌과 마찬가지로 방부처리돼 살아 있을 당시의 잠자는 모습에 가깝게 재현됐으나 소련의 관영 매체에서 그의 이름은 한 달이 지나자 거의 언급되지 않게 됐으며 56년 20차 공산당대회에서 격하의 대상으로 내려 앉고 말았다. ▷브레즈네프◁ 18년동안 소련을 통치한 브레즈네프는 82년11월10일 상오 8시30분 사망했으나 하루가 지난 11일 상오 11시 발표됐다.안치장소는 역시 노조회관.15일 그의 장례식에는 32개국 국가원수와 15개국의 총리,14개국의 외상,4개국의 왕세자등이 참석했다. 검은 양복의 정장차림으로 꾸며진 그의 유해는 사망발표 2시간만에 당서기장으로 선출된 안드로포프와 티호노프·체르넨코·그로미코등에 의해 운구된 뒤 포차에 실려 모솔레움으로 옮겨져 레닌의 뒤에 안치됐다.관 뒤에는 가족이 따르고 그 뒤에는 소련군 장성들이 브레즈네프의 초상화와 훈장을 들고 천천히 따라갔다.하관시에는 조포가 발사되고 차량과 선박은 경적을 울려 애도를 표했으나 스탈린 때보다는 차분한 분위기. ▷모택동◁ 76년 9월9일 파킨슨씨병으로 사망.그의 장례식은 18일 하오 천안문 광장에서 치러졌다.아침에 사망했으나 발표는 하오 늦은 시간.북경주재 외교관의 조문은 허용됐으나 외국의 조문사절단은 사절. 장례식에서 광장은 물론 장안대로까지 가득 채운 1백만명의 조문객은 50렬로 앉아 화국봉총리의 연설을 들었다.행사를 주도한 화총리와 당제2부주석 왕홍문등은 얼마안가 제거됐다. 모의 사체는 인민대회당에 안치된 뒤 새로 건립된 모택동기념관으로 이장됐으며 유리관속에 방부처리된 채 잠자는 모습으로 남아있다. ▷티토◁ 2차대전 뒤 다인종국가인 유고슬라비아를 통치해 온 티토는 독자 노선과 비동맹운동등 활발한 외교를 벌이다 80년 5월4일 사거.티토의 장례식에는 소련의 브레즈네프서기장,미국의 먼데일부통령등 동서양진영의 35개국 국가원수와 8개국 부통령,50여개국의 정당지도자 7개국 국왕등이 참석했으며 대규모 연쇄정상회담이 벌어져 국제외교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장례식은 8일 사체가 안치됐던 의사당에서 거행.유해는 베오그라드 구시가지 남쪽끝의 티토기념관안에 묻혔다. ▷호지명◁ 파리평화회담 하루전인 69년 9월3일 상오 심장마비로 사망.그는 자신의 사체를 화장하라는 유언을 남겼으나 다른 공산국 지도자처럼 거대한 기념관안에 방부처리돼 안치됐다.그는 사후를 대비한 후계체제를 준비해 놓지는 않았지만 베트남공산당은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후계구도를 무리없이 완성시켰다.
  • 중동에 「평화분위기」 고조/이­요르단·이­팔회담 개막

    ◎이외무/“6개월내 요르단과 평화협정 낙관” 【예루살렘·가자지구 로이터 AFP 연합】 팔레스타인 자치체제 출범이후 가자지구에서 발생한 최악의 유혈충돌사태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과 요르단은 17일 양국간 최초의 평화회담 성사를 가로막아온 마지막 장애들을 제거하는데 성공함에 따라 18일 예정대로 회담에 들어간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대표들은 18일 카이로에서 재회동,아직 이스라엘 치하에 있는 요르단강 서안에 대한 팔레스타인의 제한적인 자치실시 문제를 협의할 예정이어서 중동평화정착 기대가 그 어느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또 이스라엘과 요르단 실무대표들은 홍해북부 와디 아랍사막에서 열리는 쌍무회담기간을 이틀로 연장하고 회담 참석자수를 11명으로 최종 확정했다고 요르단 대표단의 마르완 알­모아케르 대변인이 밝혔다. 한편 워런 크리스토퍼미 국무장관은 이스라엘·요르단 회담을 측면 지원하고 이스라엘과 시리아간 회담의 장애들을 제거,양국을 협상테이블로 유도하기 위한 셔틀외교에 나선다. 【예루살렘 AFP연합】 48년 제1차 중동전 후 46년만에 최초로 평화회담을 가진 이스라엘과 요르단은 향후 6개월 이내에 양국 사이에 평화협정을 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18일 회담에 참석한 양국 관계자들이 밝혔다. 요시 베일린 이스라엘 외무차관은 『평화회담에 난제가 많지만 우리는 수개월내에 합의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그는 이날 국영 라디오방송을 통해 『이스라엘과 요르단 사이에는 우리가 현재 시리아정부와 갈등을 빚고 있는 골란고원을 둘러싼 국경문제같은 장애물이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
  • 첫 대좌서 통일까지 인고의 20년(동서독정상회담의 교훈:상)

    ◎두차례회담 의견 대립… 합의도출 실패/“천리길도 한걸음부터” 실무접촉 계속 1970년 3월19일 빌리 브란트 서독총리와 빌리 슈토프 동독총리가 동독의 작은 도시 에르푸르트에서 만났다.독일 분단 25년만의 첫 동서독 정상회담이었다.이 만남 뒤 20년이 지난 1990년에야 독일은 통일되었다.이 첫 정상회담이 기존 양독관계를 획기적으로 바꾼 것은 없다.회담의 성과로 내세울 만한 것은 별로 없었다.만남 그 자체가 큰 사건이었다.두 정상의 직접대화는 상호 이해에 큰 도움을 주었으며 그후 양독관계 진전의 디딤돌이 되고 밑거름이 되었다. 동방정책을 들고 나온 브란트가 1969년 총리가 되면서 동독에 관계정상화 협상을 제의하자 동독이 정상회담을 맞제의했다.정상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이 네차례 열렸다.실무회의에서는 회담 장소 선정이 난제였다.서독은 동베를린을 주장했고 브란트 총리가 베를린 장벽을 통과하여 회담 장소에 가는 방식을 원했다.동독은 이것의 상징적 의미를 반길 수 없었다.서독은 마침내 동독이 제3의 장소로 내놓은 에르푸르트를 받아들였다. 두 정상은 베를린 서남쪽 2백30㎞의 에르푸르트에서 만나 하룻동안 세차례의 회담을 가졌으나 기본적인 입장 차이를 줄일 수 없었다.회담 결과에 대해서 양측 모두 불만이었다.동독은 서독이 외교적 승인을 해주도록 요구했고 서독은 전독대표권의 포기를 밝히면서도 동독 승인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브란트 서독 총리는 회담을 마치고 돌아가 다음날 결과를 하원에 보고했다.그는 동서독이 가까운 장래에 근본문제에 합의할 희망은 없다고 단언했다. 같은 날 동독의 실권자인 발터 울브리히트 공산당수는 동서독 정상회담이 『유용한 것이었지만 서독이 동독을 승인할 용의가 없었기 때문에 실망적이었다』고 말했다. 두 정상은 두달 뒤인 70년 5월 21일 서독의 카셀에서 다음 회담을 가지는데 합의했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이것이 첫 정상회담의 거의 유일한 성과였다.두번째 만남도 첫번째와 마찬가지로 분위기는 경색했고 양측의 주장도 평행선이어서 아무런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다음 회담 약속도 공동성명도 없이 두 정상은 헤어졌다. 그러나양측은 두 정상의 직접 대면으로 입장 차이를 좀더 명확히 이해하게 되었다.그로부터 10여년간 정상회담은 열리지 않았으나 실무 접촉이 꾸준히 계속됨으로써 양독관계는 점진적인 발전을 보게 되었다. 카셀 회담 6개월후인 11월부터 연쇄 실무접촉이 이루어져 서독과 서베를린간의 통과협정,동서독 교통협정 등의 체결로 국민생활과 직결된 문제들을 해결하였다.큰 매듭인 동서독 기본조약 체결이 실현된 것은 첫 정상회담후 2년만인 72년 12월이었다. 80년대로 넘어와 슈미트­호네커 회담(81년),콜­호네커 회담(87년)등 여러 차례 정상회담이 있었다.그 이전의 정상회담과 마찬가지로 모두 당장은 감격스럽거나 놀랄 만한 결과를 내놓지는 않았다.오히려 눈에 띄지 않는 실무자선의 접촉으로 현실적인 문제들이 차근차근 해결되었다. 우리는 동서독의 경우보다 훨씬 첨예한 대립상태에 있었으므로 남북한 정상의 첫 만남 역시 훨씬 극적인 사건이 된다.예상외의 실질적 성과도 나올 수 있다.그러나 미리 지나친 기대를 하거나 사후에 실망을 할 필요는 없다.첫만남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의미가 있다.동서독 정상회담의 교훈이 바로 그것이라 할 수 있다. ◎「6차례 정상회담」 의전 전례/초기 환영식­의장대 사열 생략 “의식 최소화”/87년 「4차」부터 헬기 사용… 양국국가 첫 연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의전문제가 회담의 의제만큼이나 주요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이는 국가의 상징과도 같은 상대지도자에 대한 대우가 대외적으로 미칠 파급효과가 큰데다 상대국민들의 위신,심리적 영향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유럽평화에 획을 그었던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이나 1814년의 빈회의,1919년 파리평화회담 등에서도 관련국들은 자신들의 위신과 직결된 의전상의 문제로 회담의 대부분을 허비할 정도로 의전문제를 중요시했었다.남북한의 경우 정상회담 전례가 없어 의전문제로 신경전을 펼 전망이지만 분단의 특수성에 비춰 상당부분 동·서독의 경우를 준용할 것으로 관측된다. 동·서독은 모두 6차례 정상회담을 가졌는데 70년3월 「최소한의 의전」으로 동독에어푸르트회담을 성사시킨 이래 점차 상호의전을 확대해 나갔다. 빌리 브란트 서독총리와 빌리 슈토프 동독총리간의 첫 동·서독 정상회담은 환영식,의장대 사열,예포발사,모터사이클의 경호 등이 생략된 최소한의 의전형태를 띠었다.공식연회도 없었으며 음식도 초청자측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했다.그러나 숙소,회담장 주변거리,회담테이블,차량에는 양국국기가 게양되거나 배치됐고 도착시 영접은 총리가 직접하는 방식을 택했다.또 브란트총리는 동독외무장관의 안내로 부헨발트의 유대인집단수용소 기념관을 방문,헌화하기도 했다.이같은 의전전례는 2개월뒤 서독의 카셀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도 큰 변화가 없었다.다만 서독의 관례대로 1차 정상회담과는 달리 회담장주변거리와 회담테이블에는 양국국기를 배치하지 않았다. 81년 동베를린 근교에서의 3차 정상회담에서는 동·서독간 교류가 빈번해짐에 따라 의전에서도 많은 진전이 이뤄졌다.경호원과 비공식수행원의 수가 크게 늘었고 왕복교통수단으로 특별열차대신 항공기왕래시대가 열렸으며 기상영접이 도입된 외에 이동시 국빈대우의 상징인 사이드카 13대도 동원됐다.초청만찬이 베풀어진 것은 물론 선호·기피음식을 상대방에게 미리 통보하기도 했으며 상대의 협조로 직통전화가 가설돼 활용됐다.이때부터는 또 총리주치의를 처음으로 대동하기 시작했고 행사장범위가 확대,슈미트수상은 미술관과 시장,교회등을 방문하기도 했다.또 외무성 의전장을 단장으로 10명의 선발대가 상호파견되기도 했다. 87년 본회담에서는 지역내이동에서 헬리콥터가 사용됐고 동·서독 국가가 처음으로 연주됐으며 의장대사열도 이때 처음으로 이뤄졌다.4차례 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변한 것이 없다면 주최측이 모든 비용을 댄다는 것과 영부인을 대동하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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