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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단 자위권 추진…본색 드러내는 日

    집단 자위권 추진…본색 드러내는 日

    일본 의회가 원자력 기본법 개정을 통해 핵무장의 길을 연 데 이어 이번에는 총리 직속의 위원회가 집단적 자위권을 요구하고 나서 파문이 일고 있다. 5일 NHK방송에 따르면 일본의 중장기 비전을 검토해 온 정부 분과위원회는 이날 보고서를 통해 안전보장 면에서 “더욱 능동적인 평화주의를 견지해야 한다.”며 정부의 헌법 해석을 바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어 분과위는 “집단적 자위권에 관한 해석 등 기존 제도와 관행의 수정을 통해 안전보장 협력 수단의 확충을 도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을 포기하고, 국가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으며, 군대를 보유하지 않는다.’는 평화 헌법 9조에 따라 일본의 방위와 관계있는 타국이 공격받았을 때도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결국 이번 분과위의 제안은 현실적으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허용치 않는 평화 헌법의 개정과 같은 공식적인 경로를 거치지 않고, 우회로를 통해 이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일본은 지난해 12월 ‘무기 수출 3원칙’을 완화해 외국과의 무기 공동 개발 및 수출의 길을 튼 데 이어 지난 6월 법 개정을 통해 핵무장의 길을 열어 놓았으며 우주활동 관련법에서는 우주 활동의 ‘평화적 목적 한정’ 조항을 삭제했다. 앞서 자민당은 지난 4월 ‘일본의 재기를 위한 정책’ 공약을 발표하면서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바꾸고,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국가안전보장기본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핵무장과 미사일 발사, 중국의 패권 확대를 빌미로 오랜 염원인 평화헌법 개정과 재무장을 시도하고 있는 셈이다. 집단적 자위권은 총리 직속의 위원회가 장기적 비전 차원에서 제안한 것으로 당장 정책으로 채택될 가능성은 없지만, 차기 총선거 과정에서 보수·우경화 물결 속에 헌법 개정 문제와 맞물려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日 원전법 개정으로 核무장 여지 커져… 전쟁금지 ‘평화헌법’ 개정 쉽지 않을 것”

    “日 원전법 개정으로 核무장 여지 커져… 전쟁금지 ‘평화헌법’ 개정 쉽지 않을 것”

    일본 정치권이 원자력 기본법을 개정해 원자력의 군사적 이용과 핵무장의 길을 열려하자 세계평화 호소 7인 위원회가 “국익을 해치고, 화근을 남겼다.”는 내용의 긴급 호소문을 발표하며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1955년 일본내 진보 성향의 지식인들이 모여 출범한 ‘세계평화호소 7인 위원회’의 사무국장 고누마 미치지 게이오대학 명예교수(물리학)를 22일 만나 원자력 기본법 개정이 앞으로 일본에 미칠 영향에 대해 들어봤다. →일본 국회가 지난 20일 원자력규제위원회 설치법 부칙에서 ‘원자력 이용의 안전확보는 국가의 안전보장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항목을 추가했다. 어떤 의미가 있나. -원자력을 군사적으로 이용하는 건 있을 수 없다. 지금까지 일본이 원자력을 군사적으로 이용하지 않은 데는 원자력 기본법이 존재하고, 일본 여론이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원자력기본법 개정으로 이런 믿음이 흔들리게 됐다. 일본이 당장 핵무기를 만든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한국 등 주변국가들의 우려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안전보장’이라는 문구를 집어넣어 법적으로 핵무장의 근거를 마련했다는 의혹에 대한 생각은. -핵무장을 할 수 있다기보다는 핵무장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고 표현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 실질적인 (핵의) 군사이용의 길을 열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 위원회가 긴급 호소문을 발표한 것이다. →충분한 논의도 없이 관련법을 바꾼 것은 절차적으로 문제가 없나. -국회에서 충분한 토론을 거치지 않고 ‘안전보장’이라는 문구를 넣은 것은 절차적으로 큰 문제다. →후지무라 오사무 관방장관은 지난 21일 기자회견에서 핵무장 가능성을 전면 부인했는데. -후지무라 관방장관의 해명은 진심으로 들렸다. 하지만 후지무라 장관이 속한 민주당은 여당인데도 불구하고 현안에 대해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는 게 문제다. 이번 사안도 자민당 의원의 요구에 민주당이 별다른 이의 없이 동의해 준 것 아니냐. →일본은 앞서 지난해 12월말 ‘무기수출 3원칙’을 완화해 외국과의 무기 공동 개발과 수출의 길을 튼데 이어 우주활동 관련법에서 우주 활동의 ‘평화적 목적 한정’을 삭제했다.일본 사회가 보수 우경화로 치닫고 있다는 증거라는 지적이 많다. -일본 사회 전체가 그렇다기보다 정치권이 문제다. 이전에는 사회당이나 공산당 등에 진보적 의원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자민당과 공명당은 물론 민주당 내에도 보수적인 의원들이 많은 것 같다. 국회의원 성향만 따지면 우경화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지만 일본 전체가 우경화로 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차기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 등 보수당이 집권하면 전쟁과 군대 보유를 금지한 ‘평화헌법’으로 불리는 헌법 9조 개정도 추진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평화헌법 9조의 개정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일본 내에 평화를 지지하는 국민이 많고 한국·중국 등 주변 국가들의 비판이 거세 난관에 부딪칠 것이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日, 핵무장 길 텄다

    일본이 원자력 관련법에 ‘안전보장 목적’을 추가해 핵의 군사적 이용을 향한 길을 터놓았다. 21일 도쿄신문에 따르면 일본 국회는 전날 원자력기본법 부칙 12조에 원자력 이용 안전 확보에 국민의 생명과 건강 및 재산의 보호, 환경보전과 함께 ‘국가의 안전보장’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항목을 추가했다. 문제가 된 조항은 정부가 각료회의에서 결정한 법안에는 포함되지 않았다가 여야 협의 과정에서 야당인 자민당의 시오자키 야스히사 중의원 의원 등이 수정을 주도하면서 들어갔다. 원자력기본법 기본방침 변경은 34년 만이다. 개정된 부칙은 그러나 일본의 평화헌법과 비핵화 3원칙 등으로 인해 당분간 일본의 핵무장으로 이어지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평화헌법에 ‘전쟁과 무력행사 포기’를 규정하고 있으며 1968년 발표한 ‘핵무기를 제조하지 않고, 보유하지 않으며, 도입하지도 않는다.’는 비핵화 3원칙을 준수하고 있다. 후지무라 오사무 관방장관은 이날 “원자력 평화 이용과 비핵화 3원칙에는 변함이 없다. 정부는 법 개정이 군사 전용이라는 생각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최근 일본이 북한과 중국의 군사력 증대를 겨냥해 군사력을 강화하면서 주변 국가들이 긴장하고 있다. 일본은 지난해 12월 무기 수출을 원칙적으로 금지한 ‘무기수출 3원칙’을 완화해 외국과의 무기 공동 개발에 나섰고, 국회는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의 활동을 ‘평화 목적’으로 한정한 규정을 삭제한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설치법(우주기구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우주 활동의 군사적 이용을 가능케 했다. 2011년 9월 일본 내각부 보고에 따르면 현재 일본은 국내에 6.7t, 영국과 프랑스의 재처리 공장에 맡긴 23.3t 등 모두 30t의 플루토늄(핵무기 1만~1만 5000개 제조 가능 분량)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 내 반발도 커지고 있다. 일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인 유카와 히데키 등이 창설한 지식인 단체인 ‘세계평화 호소 7인 위원회’는 지난 19일 “실질적인 (핵의) 군사적 이용의 길을 열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다.”는 내용의 긴급 호소문을 발표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열린세상] 일본 3代의 걱정/장제국 동서대 총장

    [열린세상] 일본 3代의 걱정/장제국 동서대 총장

    10월 말 일본의 한 경제단체 초청을 받아 선상 특강을 하게 됐다. 부산 영도에 있는 국제크루즈선 터미널을 떠나 요코하마항에 입항하기까지 2박 3일을 선상에서 보내며 일본 경제계의 중견 간부들과 일본의 미래에 대해 열띤 토론을 했다. 크루즈선에 오르자 퇴직한 일본인 노부부들이 곱게 차려입고 노후를 여유 있고 멋지게 즐기고 있었다. 전후 폐허 속의 일본을 오늘의 선진국 일본으로 만든 주인공들이었다. 필자에게 주어진 특강 테마는 지금의 일본을 어떻게 보는가였다. 외국인의 눈에 비친 일본에 대해 이들이 궁금해하고 있다는 것을 강단에 서는 순간 느낄 수 있었다. 필자는 일본을 경제대국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 온 과거의 장점들이 지금은 오히려 장애물이 돼 버린 것 같다고 운을 뗐다. 첫째는 일본의 국가주의 연연을 들었다. 전후 일본은 국가 재건을 위해 국가가 앞장서서 경제 발전을 도모하는, 소위 ‘국가주의’를 내건 것이 주효했다. 우수한 인재들이 관료가 돼 정책을 입안하고, 경제계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수출 중심의 경제를 이끌어 온 것이다. 이러한 정책의 성공은 일본으로 하여금 세계 경제대국 반열에 이름을 올리게 했다. 문제는 이러한 국가주의가 선진국이 되고 난 지금에 와서도 지속되다 보니 정경유착으로 변질되게 되고, 그것이 시장경제를 왜곡하게 하는 주요 요인이 돼 버렸다고 지적했다. 두 번째로는 일본의 제조업 마인드 팽배를 꼽았다. 일본 경제 발전의 최대 공헌자는 역시 제조업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일본 제품이 없는 곳이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제조업의 발전은 세월이 흐르면서 사회 전체의 유연성과 창조성을 결핍시키고 제조업 마인드의 만연을 초래했다. 그 결과 지금 일본은 ‘매뉴얼 사회’라는 병에 걸려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마지막으로 지적한 것은 전후 일본의 국가 정체성에 관한 것이었다. 패전한 일본은 전쟁을 포기한 평화헌법을 받아들였고, 국가 안보는 미국에 맡기고 경제 발전에만 매진하겠다는 국가 철학을 내걸었다. 문제는 이러한 점이 경제대국이 된 지금에 와서도 일본이 국제무대에서 마땅히 누릴 수 있는 정치적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했다. 더구나 이웃 나라와의 역사 문제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과 중국이 일본의 ‘보통 국가화’를 용인할 리 만무하다고 강조했다. 수강생들은 자신들이 열심히 그 안에서 생활하는 사회 시스템 자체가 일본의 상대적 쇠퇴 요인이 되고 있다는 다소 ‘당돌한’ 지적에 적지 않게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특강을 마치고 점심 식사를 같이 하며 토론을 계속했다. 한 참석자는 “우리 다음 세대는 유복한 생활에 젖어 있다 보니 헝그리 정신이 부족한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사람은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특강에서 지적된 우리의 과거 모델을 그대로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없다는 데 있는 것 같다.”며 새로운 모델 제시의 필요성을 말했다. ‘지금 세대’의 ‘다음 세대’에 대한 고민과 걱정의 목소리였다.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옮겨 라운지에 앉아 끝없이 펼쳐지는 태평양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우리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던 옆 테이블의 한 노부부가 말을 걸어 왔다. 젊은 사람들이 직장에는 안 가고 이 배에는 웬일이냐는 식의 농담조 질문이었다. 경제대국 일본을 있게 한 ‘과거 세대’가 놀고 있는 듯한 ‘지금 세대’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로 들렸다. ‘과거 세대’가 ‘현재 세대’를 걱정하고, ‘현재 세대’가 ‘미래의 세대’를 걱정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엄청난 저력을 가진 나라다. 스마트 그리드를 비롯한 선진 기술이 넘쳐나는 곳도 일본이고, 오랫동안 축적한 일본 경제의 저변도 결코 만만하지 않다. 그러나 무엇보다 과거·현재·미래를 걱정하고 고민하고 ‘연결’하는 3세대가 있는 한 일본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대 간 ‘단절’이 깊어만 가는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는 과연 무엇일까 하고 생각에 잠기는 동안 배는 어느 새 목적지 요코하마항에 입항하고 있었다.
  • 강동균 강정마을회장 등 3명 구속

    제주 서귀포경찰서는 26일 해군기지 건설 사업 현장에서 업무를 방해한 혐의(업무방해)로 서귀포시 강정마을회 강동균(54) 회장 등 3명을 구속했다. 강씨와 마을주민 김모(54)씨는 업무방해, 시민운동가 김모(25)씨는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를 각각 받고 있다. 제주지법 김종석 판사는 “도주의 우려 등이 있다.”며 이들에 대한 영장을 발부했다. 이들의 변호를 맡은 강기탁 변호사는 “해군 측이 법원의 가처분신청 결정을 기다리겠다고 공언한 상황에서 공사를 강행, 공사 방해를 유도한 측면이 있다.”며 “구속적부심을 청구하겠다.”고 말했다. 강씨 등은 지난 24일 해군 측이 공사현장에서 대형 크레인의 가동을 위한 준비작업을 시작하자 이를 막는 과정에서 해군과 경찰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한편 ‘미국과 일본 제국주의의 아시아 침략과 지배에 반대하는 아시아공동행동(AWC)’에 참여한 일본 측 일부 인사가 제주 강정마을에서 열리는 포럼에 참석하려다가 이날 입국이 거부됐다. AWC는 1992년 일본 정부가 세계평화유지군(PKO)이란 명분으로 일본 자위대 파병을 결정하자 2차 대전의 전범 국가로서 군대를 창설하거나 해외 파병 등을 금지한 일본 평화헌법 9조를 위반한 것이라며 반대운동을 벌이면서 창설됐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 co.kr
  • “간 총리 퇴진 후 日 우경화 우려… 면밀히 살펴야”

    “간 총리 퇴진 후 日 우경화 우려… 면밀히 살펴야”

    강상중(61) 도쿄대 대학원 교수는 1998년 대한민국 국적의 재일동포로서 처음 일본 도쿄대 교수로 임용돼 화제를 뿌렸다. 강 교수는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 2주기 추도식이 열린 서울 동작구 현충원의 현충관 한편에 부인과 함께 있었다. 30여분간 선 채 각별한 마음으로 고인을 추도했다. 추도식 뒤 30여분간 함께 걸으며 그를 인터뷰했다. ●대학시절 모국 방문 ‘뿌리’ 깨달아 그의 이름은 나가노 데쓰오였다. 초등학교 4, 5학년 때 주변으로부터 한국 사람이 아닌가 하는 시선을 받고 뿌리에 대한 마음의 압박과 사회와의 부조화를 겪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말수가 적어졌다. 재일동포의 배경이 드러나는 역사 시간은 고통이었다. “왜 내 부모의 조국은 갈라져 싸우는가. 나는 어느 곳에도 귀속될 수 없는 역사의 쓰레기인가.”라며 고민했다. 와세다대 정경학부에 재학 중이던 1970년대 초. 어머니의 고향 경남 진해를 방문했을 때 ‘반(半)쪽바리’인 자신을 따뜻하게 맞아준 고향 사람들을 대한 후 “내 뿌리가 여기 있구나.” 하고 깨닫고는 이름을 강상중으로 바꿨다. 같은 대학 재일동포 학생이 자신의 하숙집 앞 신사에서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다 분신자살한 것을 본 뒤 “나의 조국, 나의 뿌리를 똑똑히 보자. 비극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다짐하게 됐다. 재일동포 차별은 대학 졸업 후에도 계속됐다. 독일 유학 후 대학 강사 자리를 얻기도 어려웠다. 글을 모르는 부모님이 “같은 일본인이라고 전쟁으로 내몰 때는 언제고 하루아침에 외국인이라고 지문날인을 하란 말인가.”라고 한 말이 가슴을 울렸다. 타국에서 숨죽이고 살아야 했던 부모님의 비통한 역사를 알리고, 그들의 목소리를 대신 전하는 것이 재일동포 2세로 사는 그의 숙제가 되었다. 세상 일에 대해 본격적으로 발언하기 시작했다. 갈라진 조국을 원망했다. 부끄러웠다. 그런데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은 “나에게, 재일동포들에게 새로운 가능성과 기대감을 주었다.”고 회상했다. 새로운 조국이 다가온 듯했다는 것. 남북정상회담을 이뤄낸 김 전 대통령에게 각별한 감정을 갖게 됐다. 그래서 김 전 대통령 퇴임 뒤 여러 차례 그를 면담했다. 내년 추도식에도 오겠다고 했다. 일본에 살고 있는 재일동포로서 조국에 대한 희망도 절절했다. 우선 남북 긴장 완화를 기원했다. 그는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포함해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남북 긴장이 완화됐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통일이 이뤄진다면 세계에 한민족의 위상을 높이는 일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한국 경제 외수 의존도 줄여야” 조국의 경제 체질 강화도 주문했다. 그는 “이번 위기 때 한국 증시의 하락 폭이 아시아 국가 가운데 가장 컸다. 걱정된다. 내수를 키워야 한다. 외수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 경제가 환율 변동에 지나치게 출렁거리는 체질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무엇보다 고용 안정도 중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일본의 우경화도 우려했다. “간 나오토 총리가 물러난 뒤 대연립정권이 탄생할 경우 평화헌법이 개정되는 시도가 있을 수 있다.”고 걱정했다. 대지진을 겪은 일본이 우경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 정국 변화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고 했다. 동아시아의 안전을 담보할 장치가 마련되는 게 그의 바람이다. 서울신문 애독자라는 그는 16일 서울에 와 이날 오후 일본으로 돌아갔다. 이춘규 선임기자 taein@seoul.co.kr
  • [글로벌 시대] 일본헌법 제9조의 의미와 개헌/고토 노부유키 홍익대 교양외국어학부 교수

    [글로벌 시대] 일본헌법 제9조의 의미와 개헌/고토 노부유키 홍익대 교양외국어학부 교수

    ‘평화헌법’으로 알려진 일본헌법의 제9조가 한국 사회에 그리 알려져 있지 않다고 생각되어 먼저 이것을 한국어로 번역해 소개하고자 한다. 대한민국 헌법이 1948년에 제정, 공포된 이래 9회에 걸쳐 개헌되어 온 점에 비해서, 일본헌법은 1947년에 시행된 이래 현재까지 64년간 한 번도 개정되지 않았다. 일본헌법 제9조의 조문은 아래와 같다. <일본헌법 제9조 전쟁 포기> ①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하게 희구하며,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국권의 발동인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를 영구적으로 포기한다. ② 전항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육·해·공군 및 기타의 전력을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은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 몇 줄의 조항 덕분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은 정규군을 가지고 타국민의 피를 한 방울도 흘리게 하지 않았으며 지금까지 64년간 보낼 수 있었다. 이는 1945년 이전의 일본제국주의의 행동과 비교하면 180도 다른 대전환이며, 한국인들이 이 헌법 제9조의 가치를 인정하고 앞으로 일본이 이 헌법을 견지해 갈 수 있도록 이해해주었으면 싶다. 왜 이러한 말을 하는가 하면, 이 헌법 조문 자체가 일본 보수파의 정치가나 매스컴, 그리고 미국의 압력에 의해 개헌 위기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일본헌법, 특히 제9조를 둘러싸고 지금까지 여러 논의가 있었다. 일본헌법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을 점령한 연합군총사령부(GHQ)의 맥아더 지휘하에 제정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 보수세력은 일본헌법, 특히 제9조가 미국에 의해 강요당한 것이라며 반발해 왔다. 그러나 일본헌법은 전체적으로 정부에서 국민으로의 권력 이양을 표현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제9조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가해나 피해를 경험해 온 당시의 일본 국민들의 솔직한 의사표명이 되고 있다. 이렇게 고마운 헌법 제9조를 만들어 준 미국도 냉전이 시작되자 태도를 바꾸었으며, 일본의 재무장을 요구했다. 미국의 보수세력은 일본을 민주화하고 일본헌법에 제9조를 넣어 버린 점을 후회했을 것이다. 그 후 사실상 헌법 제9조에 저촉되는 입법이 행하여져, 상당히 무리가 있는 수사학적 헌법 해석에 의해 자위대가 창설되었고, 미·일 안보조약이 체결되어, ‘유엔PKO협력법’이 성립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의 군사력은 미국 보수세력과 결부된 일본의 보수세력 정치가들 vs 헌법 제9조를 방패 삼아 재무장에 반대하는 일본 국민이라는 구도로 다투어 왔다. 그러나 지금 현재 헌법 제9조에 대해서 조문 자체의 개헌이 시도되고 있다. ‘새헌법제정 의원동맹’이라는 개헌을 목적으로 하는 국회의원 연맹이 있다. 회장은 자민당 국회의원으로서 1982년부터 1987년까지 총리를 역임한 나카소네 야스히로다. 이 인물은 한국에서는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에 방한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상하게도 한국에서는 비교적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그러나 그는 일본에서 역사교육의 우경화를 진척시키고 8월 15일 야스쿠니 신사를 공식참배한 유일한 총리이다. 방위비 1% 테두리 철폐를 단행한 보수계 정치가의 대표다. 또한 나카소네는 1954년 일본에서 처음으로 원자력 예산을 국회에 제출하여 성립시킴과 동시에 A급 전범이었던 쇼리키 마쓰타로와 함께 정치계에 있어서 원전정책을 추진해 왔다. 역사교육의 우경화, 야스쿠니 신사 참배, 방위비 증액을 진행시켜 왔고 헌법 제9조에 대해서 개악을 꿈꾸는 인물인 동시에 일본의 원자력 정책 추진의 주축인물이었다. 이번 후쿠시마 원전사고에서 목격한 바와 같이 너무나 위험하고 에너지 효율이 최악이며, 핵폐기물 처리까지 계산하면 지나치게 비용이 많이 들어서 비경제적인 원자력 발전을 도대체 왜 추진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었나 하는 의문도 이와 같은 역사의 문맥에서 답을 얻을 것이다.
  • [고전 톡톡 다시 읽기] 미시마 유키오와 천황

    [고전 톡톡 다시 읽기] 미시마 유키오와 천황

    1970년 11월 25일 미시마 유키오는 자신의 사병대인 ‘방패의 모임’을 이끌고 일본 자위대 옥상을 점거한다. 그곳에서 그는 평화헌법 반대와 천황제 회귀에 대한 연설을 한다. 1000명이 넘는 자위대 군인들이 그의 연설에 비웃음으로 보답하자, 그는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그 자리에서 사무라이식 할복자살로 마흔 다섯 삶을 마감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사그라졌던 일본 극우파들의 불꽃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패전 이후, 발을 디밀 틈이 없었던 군국주의자들에게 미시마의 할복 사건은 그들을 하나로 뭉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군국주의자들은 미시마를 오해하고 있었다. 미시마가 처음 천황을 보았던 것은 초등학교 졸업식에서였다. 졸업식장의 맨 앞에 앉은 천황은 길고 긴 졸업 예식 중에 아무런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고 한다. 무력할 만큼 움직임이 없는 천황의 모습이 그 어떤 카리스마 있는 존재보다 훨씬 강하게 그의 머릿속에 각인된 것이다. 당시 미시마에게 천황은 확실히 비인격적이고 신성하며 절대적인 존재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러니 패전 이후 스스로가 신이 아니라고 자처했던 천황의 ‘인간선언’은 미시마뿐 아니라 일본국민에게 충격적이었던 것은 당연하다. 절대적 존재로서의 천황과 인간선언을 해버린 천황 사이의 모순 속에서 미시마는 자신이 소망하는 천황의 이미지를 발전시킨다. 미시마가 발전시킨 천황의 이미지는 훗날 전공투(1960년대 일본 학생운동단체)에 불려나간 도쿄대 강단에서 했던 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내 천황관은 소위 우익의 천황관과는 전혀 다릅니다.…내가 말하는 천황이란 통치하는 인간 천황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나는 폐하가 ‘만요슈’ 시대의 폐하와 같이 자유롭게 프리섹스를 하는 폐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인간 천황이라고 할 때에는 통치자로서의 천황, 권력 형태로서의 천황을 의미하고 있는 거죠. 나는 옛날의 신과 같은 천황이라는 하나의 흐름을 재현시키고 싶은 겁니다.” 미시마는 전 세계를 통치하고 지배하는 데 힘을 쏟는 군국주의적 천황과는 다른 천황을 꿈꾸었다. 미시마의 천황은 정치라는 인간적 상황에 침범당하지 않는 신성한 영역, 즉 삶과 괴리된 예술작품 같은 이미지로 제시되었던 것이다. 그의 할복자살이 예술과 삶을 하나로 연결해 보겠다는 시도로 읽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의 죽음은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극우파들에게 좋은 기회를 마련해준 것은 틀림없다. 미시마는 죽고 없으니 그는 이제 천황제에 대한 그의 가치관을 제대로 피력할 기회조차 없다. ‘금각사’에서 미조구치의 다짐처럼 사람은 역시 살고 봐야 한다.
  • [독일통일 20년-박건형 특파원 현지르포] 統獨 정치·외교 파워

    하나된 독일은 통일의 가장 큰 장점, 즉 몸집이 커지면 힘이 세진다는 단순한 진리를 고스란히 확인시켜주고 있다. 독일은 경제적으로는 통일 후유증을 겪었지만 정치·외교적으로는 강력한 주권국가의 위상을 누리고 있다. 2차 세계대전 패전국으로서의 ‘원죄’와 분단국의 비애에서 벗어나 정상적이고 떳떳한 강대국으로 변신했다. 2003년에 발발한 이라크전쟁에 미국은 독일의 참전을 여망했지만 독일은 끝내 외면했다. 서독이 미군의 후원에 힘입어 동독과 대치하던 시절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통일 이전 서독은 평화헌법에 의해 자국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국이 침략을 당한 경우에만 무력 대응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통일된 독일은 1999년 나토 동맹국도 아닌 유고 사태에 처음으로 전투병을 파견했다. 올해 5월 호르스트 쾰러 독일 대통령은 독일의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해외에서의 군사작전이 필요하다고 발언한 것이 논란이 돼 결국 사임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이른바 ‘함포(艦砲) 외교’를 운운하는 분위기 자체가 통일 이전에는 꿈도 못 꾸던 일이었다. 독일은 통일을 통해 유럽연합(E U) 결성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며 영향력을 키웠다. 동유럽 국가들의 EU 가입을 주선했고 러시아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동서 간 균형자’로서 영향력을 발휘했다. 기후변화 등 환경위기와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 해결에서도 국제적인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독일은 지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자리까지 주장하고 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한·일 100년 대기획] 기로에 선 일본의 미래-야마구치 지로 일본정치학회 이사장

    [한·일 100년 대기획] 기로에 선 일본의 미래-야마구치 지로 일본정치학회 이사장

    1980년대 ‘일본의 시대’를 거쳐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일본은 1990년대 이후 거의 20년 동안 거품경제의 그늘에 갇혀 있다. 그동안 몰라보게 커진 중국 세력에 밀려 정치와 경제 대국의 지위마저 빼앗길 위기에 몰린 일본은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실제로 정치와 경제, 사회 등 여러 분야에서 이런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8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정치를 좌지우지하던 자민당의 독주시대가 끝나고 민주당 정권이 들어섰다. 경제도 거품이 걷히고 플러스 성장의 여명이 비치고 있지만 임금삭감과 소비침체 현상이 여전하다. 중산층이 무너져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기도 하다. 세기적인 전환기에 놓여 있는 일본의 미래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일본 정치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야마구치 지로 홋카이도대 교수를 통해 일본의 정치와 경제, 사회의 미래를 조망해 본다. 야마구치 교수는 민주당의 정책자문단으로 민주당의 주요 정책을 만드는 데 깊이 관여하고 있다. 인터뷰는 2일 도쿄 신바시의 도쿄다이치 호텔에서 이뤄졌다.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다. 이번 선거가 일본의 미래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 -간 나오토 총리가 취임한 뒤 민주당 정책이 크게 바뀌었다. 야당 때는 민주당이 내세운 공약이 많이 불완전했다. 하지만 민주당이 정권을 잡은 지난 9개월간 예산 편성 때 무엇이 불충분했는지 알게 됐다. 여당이 된 뒤 정책수준이 많이 높아졌다. 민주당 정권이 들어선 뒤 단행한 세제개혁을 높이 평가한다. 이런 달라진 모습은 일본의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선거에서 소비세 인상이 최대 쟁점이 될 전망이다. 그러나 간 총리가 소비세 10% 인상을 발표한 뒤 내각과 민주당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다.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선거를 치르면서 소비세 인상에 대한 논쟁을 많이 벌일 것이고, 야당으로부터 공격도 수없이 받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소비세 인상은 간 총리가 선제공격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내각과 민주당에 대한 지지율보다 국민을 위해 각오한 것이다. 선거에서 악재가 될지 모르겠지만 일본의 미래를 위한 진지한 자세다. →민주당은 화려한 매니페스토(정책공약)를 제시했다. 하지만 후텐마기지 이전 문제, 아동수당 지급을 위한 재원 부족 등의 문제로 하토야마 유키오 정권이 예상보다 빨리 물러나게 됐다. 민주당이 너무 이상에 치우친 정치를 실현하려는 것은 아닌가. -매니페스토가 이상적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하토야마 전 총리의 개인적인 성격으로 인해 정책목표를 실현하는 데 실패했다. 처음 정권을 잡아 시행착오로 겪은 것이다. 간 총리의 태도는 현실적인 것으로 느껴진다. →야마구치 교수는 민주당의 ‘생활제일’ 슬로건을 제창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일본에 생활제일 정치가 실현될 수 있다고 보나. -정치가 뜬 구름 잡기 식이 아닌 현실적인 생활제일을 실현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재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야당 때는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세제개혁을 통해 재원을 확보하고 조세를 높이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여권 내에서 이것을 리드할 사람이 많지 않다. 재무성도 호의적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 결국 지출에 대한 의료나 연금, 간호 등 사회보장에 대한 정책을 펴나가야 하는데 간 총리가 어떻게 헤쳐 나갈지 볼 것이다. →일본이 동북아 정세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천안함 사건 이후 동북아가 ‘신냉전시대’로 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동북아에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민주당이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자민당과 다른 길을 가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선 한·미·일의 공조가 현실적이다. →향후 미·일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나. 하토야마 정권은 결국 미국과의 관계 설정을 못해 물러난 것이 아닌가. -장기적인 테마다. 안보문제는 축소할 필요가 있다. 이 문제는 20년 정도 걸려야 해결된다고 생각해야 한다. 미국과의 문제는 당장 바꾸기는 힘들고 안될 것이다. 민주당은 외교 면에서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는 좋게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나갈 것이다. 이 점이 자민당과 다르다. 일·미 변화는 당분간 어렵고 민주당은 야당이었기 때문에 외교 문제에 대한 충분한 노하우도, 인재도 없어 하토야마 정권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일본 평화헌법을 개정하자는 움직임도 있다. 전쟁 포기를 명시한 헌법 9조가 핵심이다. -가까운 시일내 개헌은 있을 수 없다. 국민투표법이 시행됐지만 헌법을 바꾸려면 중의원, 참의원 의석 3분의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보수 신당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민주당 내에서도 대부분의 의원들이 이 부분에 관심이 없다. 경제, 사회 등 국내 문제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에 헌법 개정에 대한 관심을 둘 여력이 없다.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을 지나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장기 불황에 빠져 있다. 일본이 거품경제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인가. -2003년부터 2006년까지 경기회복의 기운이 있었다. 거품경제가 사라지는 시기로 기대를 모았다. 수출산업이 활기를 띠었다. 하지만 결국 국내총생산(GDP)이 하락하고, 노동법 완화 등을 통한 기업들의 이익에 문제가 생겼다. 그렇다고 GDP를 올려야 하고, 경제성장에 매진하는 게 꼭 필요한 것인지 회의가 든다. 고이즈미 정권 때 GDP는 올라갔지만 임금을 줄이고, 지방자치금을 삭감해 지금과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 →도요타 리콜 사태를 어떻게 보는가. 도요타 사태는 단순히 자동차 업체의 부품 결함 문제가 아니라 일본의 ‘모노쓰쿠리’(제조) 정신이 붕괴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원가절감 등의 이유로 기술부문을 해외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국내 현장에서 숙련된 노동자들이 갖고 있던 고품질을 유지하지 못해 문제가 생긴 것으로 본다. 대학교도 종신고용보다 비상근 교수들이 많아졌다. 이런 고용 문제가 도요타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발생하고 있다. →일본은 양극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1억 총중류’(總中流)가 깨지고 ‘워킹푸어’(Working Poor·근로 빈곤층)가 증가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분배 방법을 바꾸어야 한다. 노동법이 완화됐지만 일본 노동자의 3분의1이 정사원이 아니다. 충분한 임금을 주어야 하는데 민간기업이 반대하기 때문에 상당히 어렵다. 노동자가 주 40시간 일하고 최저 임금을 받을 경우 생활보호 대상자보다 적은 돈을 받는다. 노동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주택·의료·고용·노후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특히 주택을 적절한 가격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당장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예를 들어 13~14만엔의 최저 임금을 받는 부부가 맞벌이를 해서 아이들을 대학까지 보내려면 너무 힘들다. 일본에선 교육비가 너무 비싸다. 특히 젊은 부부의 경우 자녀를 보육원에 맡겨야 하는데 보육원 시설이 너무 열악하고 숫자도 너무 적다. →일본의 저출산, 고령화가 심화되고 있는데. -당장 뾰족한 묘안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젊은이들이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20~30년 전만 해도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만 하면 안정권에 들어갔다고 생각했다. 젊은이들을 정부가 지원해 줘야 한다. 그런데 해당 재원을 노인층으로부터 끌어내야 하는 탓에 상당히 어렵다. 60~70대들은 일본의 고도 성장기에서 일을 한 사람들로 연금과 퇴직금을 비교적 풍부하게(평균 매달 20~30만엔 수령) 받고 있다. 상속세를 크게 늘리고, 금융자산에도 과세를 해서 그러한 재원으로 젊은이들을 지원하는 게 빠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올해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전향적인 발표가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총리의 담화 등이 가능하다고 본다. 간 총리는 외교에 대해 잘 몰라 이 분야에 대해서는 센고쿠 요시토 관방장관에게 많이 의지한다. 센고쿠 장관은 동아시아 교류에 진력해 왔기 때문에 무엇이든 준비할 것으로 알고 있고, 한국 입장에서는 기대를 해도 좋다고 본다. →차기 100년을 향해 일본이 한국에 할 수 있는 일은. -일본 지도자가 불행했던 과거사에 대한 사죄를 한 다음에 21세기를 위한 동아시아시대를 만들어 나가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중학교 1학년부터는 주 1시간만이라도 한국어를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만 양국이 더 가깝게 될 수 있는 요인이 될 것이다. 지방 참정권은 우파의 반대가 너무 커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해결하기엔 엄청난 정치적인 부담을 안고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해결될 것으로 본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日언론 한일역사공동연구 떨떠름

    │도쿄 이종락특파원│일본 언론들은 24일 제2기 한·일 역사공동연구 결과가 발표된 것과 관련, 양국 간 역사 인식의 차이가 크다는 데 새삼 놀라면서도 향후 이해를 심화시키기 위한 장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보도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번 조사결과에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요미우리신문은 1면 기사에서 “한·일 양국 연구자들이 상대국의 교과서를 비판했다.”며 “역사인식의 차이가 교과서에도 반영돼 있다는 점이 선명하게 부각됐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사설에서 “지금까지는 일본의 교과서만이 도마 위에 오를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한국 측 교과서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루어졌다.”며 “한국의 교과서에 ‘일제’라는 용어가 언급되어 있지만 누구를 지명하는 것인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고, 천황의 칭호가 국왕으로 돼 있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마이니치신문은 이날 ‘대립을 넘어서는 노력을’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한국 교과서의 문제점으로 “‘일본인은 모두 악’으로 삼는 내셔널리즘을 극복할 수 없는 상황에 있다.”며 “일본 국민이 전쟁을 반성하고 평화헌법을 제정한 사실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 폐기와 관련해서는 최근 일본에서도 역할에 의문이 많았는데 한국 언론이 이번 연구의 성과라고 일제히 보도했다고 불쾌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이 신문은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한 논쟁을 지켜보노라면 안타깝기는 하지만 서로 솔직하게 의견을 맞댔다는 의미도 부정할 수 없다.”며 “앞으로 논의를 긍정적으로 진행할 방안을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아사히신문도 4면에 “한·일 양국이 서로 역사인식을 이해하는 어려움을 재차 부각시켰다.”며 향후 정부가 논점 선택에 대한 지침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극우 성향의 교과서를 만드는 출판사인 후소샤를 계열사로 거느린 산케이신문은 “한국 학자들이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을 집요하게 비판했다.”며 독도 문제도 다루지 않은 것을 불만스러워했다. jrlee@seoul.co.kr
  • [한·일 100년 대기획] 일본 패망과 한국전쟁

    [한·일 100년 대기획] 일본 패망과 한국전쟁

    2005년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정부 관료와 기업 경영자 등 100명을 상대로 전후 60년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였다. 응답자들은 전후 일본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경제사건 가운데 한국전쟁을 다섯 번째로 올려놨다. 전후 일본을 일으킨 것으로 평가받는 요시다 시게루(1878~1967) 전 일본 총리는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신이 내린 선물”이라면서 “이제 일본은 살았다. 하늘이 일본을 돕는다.”고 기뻐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외손자인 아소 다로 전 총리도 총무성장관 시절 영국 옥스퍼드 강연에서 “운좋게도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나 일본 경제 재건을 급속도로 진전시켰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닷지 불황서 도요타 구출하기도 혹자는 일본 사람들의 근면성이 전후 경제 부흥을 이끌었다고 평가한다. 평화헌법으로 인해 방위비 부담이 없었기 때문에 경제 발전에 주력할 수 있었다는 분석도 있다. 공산권에 대항하고 물자 부족시대에 세계를 지배하려는 미국의 전략이 빚은 결과라고 이야기하는 학자도 있다. 여러 가지 요소가 작용했겠지만 어찌됐든 한국전쟁이 일본 경제 부활에 기폭제가 됐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일본은 전후 주택과 산업시설의 상당부분이 파괴됐다. 일본이 세계 전쟁에 명함을 내민 것이 무기와 군수 물자를 지원할 수 있었던 재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판단한 미 군정 사령부는 재벌을 해체하기도 했다. 미 군정 방침이 일본 응징에서 일본 경제 자립으로 방향을 틀며 분위기가 달라졌다. 미국의 자금 원조를 받은 일본은 1947년 즈음부터 경제 회복에 시동을 걸었다. 특히 석탄, 전력, 해운 분야 등에 자본이 대량 공급됐다. 그런데 국채(복구채)가 크게 늘어난 탓에 심한 인플레이션을 겪게 됐다. 1949년 일본 정부의 요청으로 미국 디트로이트 은행장 조지프 닷지가 일본을 찾아 인플레이션 잡기에 나선다. 닷지는 긴축 재정을 펼쳤다. 부흥금융공사의 융자가 멈추고 채권 발행이 중지되자 인플레이션이 해소됐다. 그러자 이번에는 디플레이션이 발생해 도산과 실업이 잇따른다. 이른바 ‘닷지 불황’이었다. 1949년 6월 국철 분야에서 약 10만명, 전기·전철 분야에서 약 2만명이 해고됐다. 도시바 등 민간 기업에서도 대량 해고가 이어졌다. 1950년 3월 이케다 하야토 재무상은 군소업자들이 도산하고 자살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하기까지 했다. 이때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日경제학자 “마셜 플랜 효과에 필적” 미군의 거점 기지 격이었던 일본에서는 엄청난 수요가 발생했다. 미군은 한국전쟁을 위한 마대·석탄·트럭·포탄 등 군수물자를 일본에서 사다 썼다. 트럭이나 전차·함정의 수리, 기지 건설 및 정비 작업 등도 일본에 발주했다. 당시 도요타는 트럭·탱크로리·덤프 트럭·지프 등을 4679대나 주문 받아 공장 폐쇄 위기에서 벗어난 것은 물론, 세계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1950년부터 1953년까지 미국이 일본에서 쓴 돈은 최대 30억달러로 추산된다. 이로써 산업 전반에 신규 투자가 가능해진 일본은 1950년대 후반부터 세계 역사상 전례가 없는 고도 성장을 거듭하게 됐다. 일본 경제학자 요네자와 요시에의 분석에 따르면 1951년 12%였던 일본 경제 성장률은 한국전쟁이 없었다면 9.4% 또는 4.9%로 뚝 떨어진다. 1950년 6월23일 90.59엔이었던 닛케이 평균 주가가 1953년 7월 휴전 즈음 386.13엔으로 3년 동안 4배 이상 뛴 점도 한국전쟁의 일본 경제 기여도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 경제학자 나카무라 마사노리는 자신의 저서 ‘전후 일본사 1945~2005’에서 “1949년부터 이어진 닷지 불황에 신음하던 일본 경제에 한국전쟁은 단비와 같았다.”고 평가했다. 미국 정치경제학자 찰머스 존슨도 “일본에 있어 한국전쟁은 마셜 플랜에 필적하는 효과를 지녔다.”고 분석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한·일 100년 대기획] “이웃 없인 자기나라 없다… 15년전 담화는 역사적 사죄”

    [한·일 100년 대기획] “이웃 없인 자기나라 없다… 15년전 담화는 역사적 사죄”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 정부가 내세우는 공식적인 역사 인식의 준거는 1995년 8월15일 발표된 ‘무라야마 담화’다.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 이후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총리들은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한다.”고 선언했다. 한·일 관계를 가장 험악하게 만든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도 똑같은 말을 했다. 지난 연말 의사당 부근인 도쿄 지요다구의 한 호텔 라운지에서 만난, 담화의 주역인 무라야마 전 총리는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지는 않다.”며 안타까워했다. 무라야마 전 총리로부터 1시간40분 동안 한일병탄 100년의 의미 및 평가, 양국 관계의 미래, 담화의 의의, 남북한 문제 등을 들었다. →한일병탄 100년의 해를 맞았다. 지난 100년간의 한·일 관계를 어떻게 보는지. -지금보다 더 나은 한·일 관계로 발전해 나가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1945년 일본은 패전을 선언했고, 한국은 대한민국을 건국했다. 전후(戰後)에 입장이 180도 달라졌다. 1965년 한·일 기본조약이 체결돼 형식적으로는 식민지시대를 마무리 짓고 새로운 한·일 관계를 열었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렀다. 역사적 전환의 의미가 크다. →한국과 일본, 일본과 한국의 바람직한 관계는. -긴 역사 속에서, 또한 이웃 나라로서 식민 36년을 포함해 깊은 반성을 전제로 지금부터 긴밀히 협력하고 신뢰관계를 쌓아 나가야만 한다. 특히 중국을 비롯해 아시아 공동체를 확립해 나가야만 할 것이다. 다행히 김대중 대통령 당시 문화개방이 있었던 덕분에 서로 문화적인 체험이 가능하게 됐다. 친근감이나 신뢰감이 형성될 수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깊이있게 협조해야 한다. →한·일 관계의 미래 100년을 위해서는. -미래는 열려 있다. 20세기에는 다양한 형태의 전쟁이 반복됐지만 그런 전쟁은 더 이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21세기에 유럽연합(EU), 미국이 각각 나름의 공동체를 구성했듯 아시아도 대응 차원에서 아시아대로 협력해 나가야만 한다. 총리시절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방문했을 때 가장 인상 깊게 느낀 점은 더 이상 자기 나라만 잘 살면 되는 사회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웃나라 없이는 자기 나라도 없다. 한국이 좋아지면 일본이 좋아지고, 일본이 좋아지면 한국이 좋아진다는 관계를 확실히 인식해야만 한다. 물론 역사, 독도 문제 등 풀어야 할 난제가 아직도 많지만 완전한 인식의 일치까지는 되지 않더라도 서로 이해하려는 마음을 갖는 것은 가능하다고 본다. 노력이 필요하다. 신뢰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의 역사인식의 한 획을 그은 무라야마 담화의 메시지는. -일본은 한국의 식민지화, 만주사변, 태평양전쟁 등에 이르기까지 중국을 비롯해 아시아 국가들에게 큰 고통을 줬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솔직한 반성이자 사죄의 표명이다. 이 바탕 위에 한국, 중국 등 아시아 여러 나라들과 신뢰를 구축하고 서로 공생해 나아가자는 취지였다. 더 이상 절대로 과오를 반복하지 말고 세계평화에 기여하기 위한 역사관을 확실히 세우자는 의미에서 발표했다. →일본 정부의 공식적 입장인 담화의 준수에 대한 평가는. -현 하토야마 총리에 이르기까지 기본적으로 지켜지고 있다. 도중에 총리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다든지, 역사 교과서 문제 등의 사건도 일어났지만 기본 노선은 유지되고 있다. 다만 철저히 지켜지고 있지는 않다. 따라서 한국인들이 일본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담화를 둘러싼 일본 내의 비판적인 언동도 적지 않다. 지금도 무라야마 담화를 인정하지 않고, 옳지 않은 일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일본은 언론, 출판자유의 나라인 만큼 그것은 그것대로 인정해야 한다. 장기간에 걸쳐 해결해 나가야 할 일이라고 본다. 부정적인 의견은 일본 국민의 일부에 지나지 않고 대다수의 국민이 지지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 (8·30중의원) 선거를 보며 가장 기분이 좋았던 것은 일본 국민들이 자신의 힘으로 정권을 바꿀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한·일 관계에서도 긍정적인 면으로 작용할 것이다. →무라야마담화를 뛰어넘는 하토야마 총리의 새로운 담화의 필요성도 제기되는데. -와다 하루키(도쿄대 명예) 교수는 한일병합(무라야마 전 총리 표현) 100년을 맞아 이미 일본·한국, 일본·중국의 관계가 많이 바뀐 상태이므로 무라야마 담화에 새로운 비전을 더한 새 담화를 주장하고 있다. 좋은 의견이라고 본다. 하토야마 정권이 수용할지 모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뭐라고 의견을 제시할 수는 없다. 하토야마 총리를 취임 이후 만난 적도 없어서다. 덧붙인다면 한일병합조약은 역사적 배경으로 미뤄 ‘부당한 조약이다.’라는 사실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한일병탄 100년을 짚는 상황에서 북한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북한도 일본의 이웃나라다. 태평양전쟁이 끝난 지 65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일·북 간의 국교가 회복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부자연스럽다. 어떤 형태로든 국교는 정상화돼야 한다. 납치문제나 핵문제 등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현안들도 남아 있기는 하다. 다행히 6자회담이 있기 때문에 회담을 통해 해결해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 일본과 북한의 국교가 체결되면 한반도의 통일에도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이 성의를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 특히 병합100주년을 맞아 한국과 북한 간에도 변화가 있기를 바란다. →이명박 대통령이 일왕을 한국에 초청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는데. -한국인들이 흔쾌히 받아들인다면 병합100주년을 맞아 관계전환에 큰 의미를 지닐 것이다. 실현된다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정부간의 대화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한국 국민 모두가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국,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보내고 싶은 메시지는. -총리에서 물러난 뒤 김대중 대통령 재임당시 한국을 방문해 독립기념관을 찾았던 적이 있다. 한국인을 조그만 상자 안에 꿇어 앉히고 총으로 위협하는 모습의 밀랍인형들을 봤다. 일본군이 한국인들에게 저지른 잔인성을 그대로 보여줬다. 역사적 사실이므로 추호도 부정할 수가 없다. 또 보여줘야만 한다. 과거의 반성과 사죄가 필요한 이유라고 본다. 그러나 미래지향적이고 협력하는 자세를 갖는 것도 중요하다. 젊은이들은 서로 문화를 공유했으면 한다. 이웃나라, 형제와 같은 나라인 만큼 많은 문제들을 극복하고 이해해 나가길 희망한다. 양국의 발전을 위해, 미래를 위해서다. 친구로서 만나고 서로 인정하는 관계를 꼭 만들어 나갔으면 한다. 이와 함께 젊은이들이 평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갖기를 바란다. 글 사진 hkpark@seoul.co.kr ■ 무라야마 담화(1995년 8월15일) 요약 “전후 50주년이라는 길목에 이르러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면서 역사의 교훈을 배우고 미래를 바라다보며 인류사회의 평화와 번영의 길을 그르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머지않은 과거의 한 시기, 국가정책을 그르치고 전쟁의 길로 나아가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렸으며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 제국의 여러분들에게 커다란 손해와 고통을 줬다. 나는 미래에 잘못이 없도록 하기 위해 의심할 여지도 없는 이같은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한다. 또 이 역사로 인한 내외의 모든 희생자 여러분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바친다.” ■ 근황은 근황은 아침 6시 일어나 체조·걷기 가끔 한국 역사드라마 즐겨 두툼한 외투 차림에 중절모를 쓴 무라야마 전 총리는 평범한 노신사였다. 중절모를 벗고 앉았을 때에야 호텔 직원도 알아본 듯했다. 86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정정했다. 트레이드 마크인 눈을 덮을 정도의 짙은 눈썹은 여전했다. 인터뷰 내내 말투가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다. 건강의 비결은 “가난하게 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난하면 머리를 써야 하고, 손발을 써야 한다. 호사스러운 음식은 먹지 않지만 하루 세끼는 꼭 챙겨 먹는다.”고 덧붙였다. 또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1시간 정도 걷고, 체조를 하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차는 자전거다. 웬만한 거리는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며 웃었다. 가끔씩 한국의 역사드라마를 보고 있다. “때때로 강연을 다니지만 시민으로서 조용히 살고 있다.”면서 “그러나 평화헌법 제9조(전쟁 포기·군사력 보유금지)를 지키기 위해 가장 많은 힘을 쏟고 있다.”고 밝혔다. 고향인 규슈현 오이타에 생활하면서 한 달에 한두 차례 도쿄 요치야에 위치한 ‘일본·조선(북한) 국교촉진국민협회’에 들러 협회 사무국장인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를 만나고 있다. ●약력 ▲86세, 규슈 오이타 출생 ▲1946년 메이지대학 정치경제학과 졸업 ▲1972년 중의원 첫 당선(사회당)~이후 8선 ▲1993년 사회당 위원장 ▲1994년 6월~1996년 1월 제81대 총리 ▲1996년 사민당 당수 ▲2000년 정계 은퇴 ▲현 사민당 명예당수
  • [열린세상] 북한의 ‘선군헌법’ 대비책 마련해야/김영호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북한의 ‘선군헌법’ 대비책 마련해야/김영호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최근 공개된 북한의 새 헌법은 ‘선군헌법’(先軍憲法)으로 불러야 하겠다. 개정헌법에서는 공산주의를 삭제하고 ‘선군사상’을 주체사상과 함께 핵심적 이념으로 채택했다. 선군사상은 군부를 체제 유지의 근간으로 삼고 모든 자원을 핵과 미사일 개발을 포함하여 군사력 증강에 집중하겠다는 노선이다. 또한 ‘선군헌법’은 국방위원회를 중심으로 3대 세습을 추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으로 봐야 할 것이다. 북한의 새 헌법 채택 이후 전개될 상황에 우리가 너무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다. 새 헌법 채택 이후 북한은 국제사회의 제재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더욱 많은 핵무기를 보유하기 위해 매진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북한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도 가동하고 있다고 스스로 밝혔다. 파키스탄의 경우 2000개의 원심분리기로 연간 60㎏의 핵무기용 농축우라늄을 생산했다. 현재 북한은 파키스탄으로부터 원심분리기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정확한 숫자는 확인되지 않지만 북한이 200개의 원심분리기를 지난 5년간 지하에서 가동했다면 핵무기 하나를 충분히 만들 수 있는 30㎏가량의 농축우라늄을 확보했을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북한의 핵 보유가 기정사실화되면서 과연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하는 것만이 능사인지 국민의 안보불안감은 커져만 간다. 미국 핵우산이라는 ‘약속어음’에만 의존하지 말고 우리 스스로도 철저한 군사대비태세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국방예산을 둘러싸고 벌어진 국방부 내부의 논란은 국민을 실망시켰다.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제창한 ‘고효율 다기능’ 군대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국방비의 적정 수준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국방비는 국내총생산(GDP)을 기준으로 삼고 초당적으로 합의해 나가야 한다. 우리의 국방비는 최근 GDP의 2.7%라는 매우 낮은 수준에 계속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분단상태에서 북한의 핵 위협에 직면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정도 수준의 국방비를 쓰고 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미국은 GDP의 4%를 국방비로 편성하고 있다. ‘평화헌법’을 갖고 있는 일본은 GDP 1%를 국방비로 쓰지만 그 총액은 우리 국방비의 두 배에 달한다. 우리의 국방비는 GDP의 3.5%선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이 수준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지적한 대로 ‘비효율과 낭비의 낡은 관행’을 과감히 도려내고 철저한 국방개혁을 단행해야 할 것이다. 또한 ‘선군헌법’은 최근 더욱 악화되고 있는 북한 주민의 인권 상황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력을 피해 나가기 위해 ‘인권조항’을 신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선군노선을 고집할 경우 북한 주민의 인권 상황과 식량난은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급격히 증가하는 탈북자의 숫자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북한인권재단’의 설립을 시급히 추진해야 한다. 최근 이명박 정부가 북핵 문제를 일괄타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한 ‘그랜드바겐’ 구상에 북한 인권 문제를 제외한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선군헌법’ 채택 이후 북핵 문제는 장기화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북핵, 경제협력, 인권 문제를 삼위일체로 묶는 ‘한반도형 헬싱키 프로세스’를 국제공조 하에 추진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다. 과거 권위주의정권 하에서 채택된 ‘유신헌법’이 민주주의와 인권에 얼마나 부정적이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전체주의 국가 북한에서 채택된 ‘선군헌법’은 ‘유신헌법’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남북관계와 북한 주민의 인권 상황에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북한 내부의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북한의 새 헌법 채택 이후 전개될 상황에 대한 철저한 대비책을 마련해 나가야 할 때이다. 김영호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日, 천황제 유지 전략적 거래 있었다

    日, 천황제 유지 전략적 거래 있었다

    1945년 8월15일 정오, 일왕 히로히토의 항복 선언이 라디오 전파를 타고 일본 전역에 퍼져나갔다. 2차 세계대전이 일본의 패망으로 종결되는 순간이었다. 침략전쟁에 대한 법적·윤리적 책임자로서 ‘천황’ 히로히토가 전범 재판정에 설 수도 있는 위기가 닥친 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역사는 그렇게 전개되지 않았다. 1947년 5월 시행된 신헌법(평화헌법) 아래서 히로히토는 민주주의와 평화의 상징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일본을 패하게 한 미국은 오키나와에 거대한 군사 기지를 건설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맥아더의 점령정책에 필요했던 히로히토 ‘히로히토와 맥아더’(권혁태 옮김, 개마고원 펴냄)의 저자 도요시타 나라히코 일본 간사이가쿠인대 법학부 교수는 이 의문에 대한 열쇠를 점령군 최고 사령관이었던 맥아더와 히로히토의 관계에서 찾는다. 물론 이는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맥아더로 대변되는 미국과 천황제를 사수하려는 히로히토간의 ‘전략적 거래’ 관계이다.히로히토와 맥아더는 1945년 9월27일 첫 번째 회담을 시작으로 1951년 4월 맥아더가 해임될 때까지 총 11차례 회담을 가졌다. 그리고 뒤이어 부임한 리지웨이와도 7차례에 걸쳐 회담했다. 저자는 회담에 관한 수많은 자료를 통해 히로히토가 전쟁의 책임을 회피하고자 변명했던 것처럼 입헌군주제 하의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이중외교’를 구사하는 능동적인 정치 주체였다는 점을 드러낸다. 저자에 따르면 히로히토와 측근들은 전쟁의 모든 책임을 도조 히데키를 비롯한 군부에 떠넘겨 도쿄재판의 위기를 모면할 계획을 세웠다. 패전 처리 과정에서 나타난 히로히토의 권위를 점령정책에 이용하려던 맥아더는 본국에 히로히토를 기소하지 않도록 설득했다. 1차 회담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히로히토와 맥아더가 이같이 노선을 조정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그러나 ‘맥아더 회고록’에는 당시 회담에서 히로히토가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말해 맥아더가 크게 감동을 받은 것으로 기술돼 있고, 이 ‘미담’은 일본 전후 사회에 널리 유포돼 천황의 권위를 더욱 굳건하게 했다. 맥아더는 또한 일본 점령에 대한 연합국 최고 결정기관인 극동위원회가 설치되기 전에 서둘러 헌법 개정을 ‘강제’함으로써 천황제가 폐지될 가능성을 차단했다. 이런 전후 사정들은 히로히토가 왜 맥아더와의 마지막 11차 회담에서 도쿄재판에 대해 감사의 뜻을 밝혔는지, 그리고 ‘천황’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왜 중지하게 됐는지에 대한 배경에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일본 전후사의 ‘금기’ 본격 다뤄 히로히토가 천황제 사수를 위해 고도의 정치력을 발휘한 두번째 사례는 오키나와 미군 기지이다. 공산주의를 천황제의 최대 위협으로 간주한 히로히토는 신헌법으로 ‘상징천황’이 된 후에도 ‘극동의 스위스론’을 주장한 맥아더를 따돌리고 직접 미국과 접촉을 통해 불평등한 미·일안보조약을 음지에서 실현시켰다고 저자는 분석했다. 이 책은 일본 전후사 연구에서 금기시돼 온 ‘천황’을 전면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저자는 전쟁 책임은 물론 전후 책임을 둘러싼 히로히토에 대한 연구가 ‘공백’으로 남아 있는 한 전후 일본사를 충분히 서술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전후 일본이 걸어온 길을 인식해야만이 일본이 동북아시아라는 지역 차원에서 새롭게 안정보장의 틀을 만들어나가는 역사적 책임에 응답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1만 60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中·日 군비확장 ‘소리없는 전쟁’

    中·日 군비확장 ‘소리없는 전쟁’

    │도쿄 박홍기특파원│“중국과 일본은 이미 소리없는 군비확장 경쟁에 들어가 있다.” 영국의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는 8일 발간한 ‘일본의 재무장’이라는 연구보고서를 통해 중·일 사이에 펼쳐지는 군비 증강의 현실을 지적했다. 보고서는 크리스토퍼 휴즈 영국 워위크대(국제정치·일본 문제)교수가 썼다. IISS는 지난 1958년 설립된 영국의 민간전략연구기관이다. 휴즈 교수는 “일본은 지속적으로 군비를 늘리는 중국과 대등하게 되기 위해 군사력의 증강을 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일본은 해상자위대를 인도양과 소말리아 해역에 파견, 세계의 해양안전보장에서 보다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 평가했다. 해상자위대는 2001년 11월부터 인도양에 나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개되는 ‘테러와의 전쟁’에 참가한 다국적군의 함대에 연료를 지원하고 있다. 보고서는 “일본 자위대의 적극적인 활동은 국제 테러나 해적 대책, 해상수송로 방위뿐만 아니라 아프간이나 아프리카 등지에서 영향력을 키우는 중국에 맞서려는 의도도 포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 역시 세계 안보 분야에서 자국의 위치를 넓히려는 일본에 강한 경계감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일본의 재무장에 따라 “중·일간의 경쟁은 한층 심화될 우려가 있다.”고 내다봤다. 즉 군비를 증강하는 중국을 겨냥한 일본의 재무장은 다시 중국을 자극하는 악순환 구조를 낳고 있다는 논리다. 휴즈 교수는 보고서에서 “일본은 자국의 재무장이 미국과의 동맹 강화와 함께 세계 안보에서의 역할 제고라는 효과를 거둘 수 있겠지만 이웃 나라들과의 관계에 미칠 영향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불안정한 긴장의 요인이 되지 않도록 신중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보고서는 이밖에 일본의 방위비, 군수산업, 평화헌법 개정 움직임, 미·일 동맹 및 핵무기 문제 등의 내용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중국의 지난해 군사비 지출은 스웨덴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에 비해 10% 늘어난 849억달러(약 106조원) 규모이다. 미국의 6070억 달러에 이어 세계 2위 군사비 지출국으로 부상했다. 일본의 군사비는 463억달러로 7위를 기록했다. SIPRI 측은 “세계 군수산업은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 개발도상국의 국방예산 증가에 힘입어 경제위기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다.” 면서 “중국의 군사비 지출은 경제성장과 함께 군사대국이 되려는 열의와 맞물려 있다.”고 설명했다. hkpark@seoul.co.kr
  • 日 우파 또 핵무장 주장

    │도쿄 박홍기특파원│나카가와 쇼이치(55) 일본 전 재무상이 19일 일본의 핵무장을 또 제기하고 나섰다. 앞서 사카모토 고지(65) 자민당 조직본부장도 지난 7일 “일본도 핵을 보유하겠다는 위협 정도는 해야 한다.”며 핵 보유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일본의 정치권 일각에서는 핵무기의 첫 피해국임을 내세우면서도 기회만 되면 ‘핵무장론’을 꺼내드는 게 현실이다. 나카가와는 19일 홋카이도 오비히로시에서 열린 한 모임에서 북한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의장성명에 강하게 반발, 핵개발 재개를 선언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순전히 군사적으로 말하면 핵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은 핵이라는 것이 세계의 상식”이라며 핵 논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나카가와는 아베 신조 정권에서 자민당 정책조정회장을 역임하던 2006년 10월 북한의 핵실험과 관련, “헌법에도 핵 보유는 금지돼 있지 않다.”며 핵무장에 대한 논란을 일으켰던 장본인이다. 현재 일본은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한 ‘평화헌법’과 함께 1968년 1월 발표한 ‘핵무기의 제조, 보유, 도입도 하지 않는다.’는 비핵화 3원칙을 갖고 있다. 나카가와는 모임에서 북한은 일본의 전역을 사정으로 둔 중거리 탄도미사일 ‘노동’을 다수 보유한 데다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는 소형 핵폭탄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들은 예고없이 언제든 공격해 올 태세에 한발짝 더 다가섰다. 대항 조치를 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군비 확장의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다만 “핵무장 논의와 핵을 보유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논리도 폈다. hkpark@seoul.co.kr
  • [北 로켓발사 이후] 北 로켓 1발이 동북아 ‘창 vs 방패’ 경쟁 불렀다

    [北 로켓발사 이후] 北 로켓 1발이 동북아 ‘창 vs 방패’ 경쟁 불렀다

    동북아시아의 창(미사일)과 방패(방어시스템)를 강화하는 군비 경쟁이 격화될 조짐이다. 중국이 이번 북한의 로켓 발사로 인해 적지 않은 불안감에 빠지게 됐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미·일 3국의 이지스함이 대거 동해상에 전개하고 정찰위성과 조기경보기 등 최첨단 요격·경보 시스템이 가동됐다. 동북아에서 북한 미사일을 겨냥한 방어(MD) 시스템이 중국의 미사일 전력이 무력화되는 과정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남북한뿐 아니라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 등이 연쇄적으로 동북아 군비 경쟁을 가속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북한이 지난 5일 발사한 로켓의 사거리는 지난 1998년 ‘대포동 1호’보다 두배 이상 길어진 것으로 판정되고 있다. 핵탄두 소형화와 탄두 능력의 증대는 동북아 안보 지형의 격변을 의미한다. 당장 우리 정부는 북 미사일 방어를 위한 최신형 요격 미사일 패트리엇-3(PAC-3)의 도입 검토에 들어갔다. 이상희 국방장관은 5일 “한국의 지형적 여건을 고려해 레이더를 구비하고 하층방어 체계인 PAC-3의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군은 작전 종심이 짧은 한반도 지형상 저고도 미사일 공격에 대한 방어에 주력하고 있다. 한승수 총리는 6일 남·북간 미사일 능력 불균형 현상과 관련해 “이 시점에서 (우리 미사일 주권이) 제약받는 게 옳은 것인지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현 한·미 미사일지침의 개정 필요성을 언급했다. 일본은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할 때마다 군비 강화의 호재로 삼았다. 일본은 북한의 대포동 1호 발사 후 미사일방어(MD) 시스템의 조기 구축에 나섰다. 2006년 북한의 대포동 2호 발사와 11월 핵실험 직후인 2007년 1월 방위청을 방위성으로 격상시키고 첨단 무기의 전력화에 적극 나섰다. 일본은 2008년 1월부터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요격이 가능한 SM-3가 탑재된 이지스함 1척을 배치했고 현재 총 3척을 전력화했다. 내년까지 전국 10여개 기지에 PAC-3를 추가 배치하고 2010년까지 미국과 공동미사일방어사령부를 설치할 예정이다. 북한 미사일의 사거리가 증대되고 공격 정밀도가 개량될수록 일본은 억지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일본은 SM-3와 PAC-3의 추가 도입과 기존 4기의 정찰위성에 이어 탄도탄를 탐지하는 조기경계위성 도입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화헌법을 개정한 군사대국화 여론도 들끓고 있다. 일본의 군비 확충은 중국과 러시아를 자극한다. 중국은 현재 사정거리 7000㎞가 넘는 대륙간탄도탄(ICBM) DF-31과 사정거리 1만 1270㎞에 달하는 DF-31A, 잠수함 장착 ICBM JL-2의 개발을 진행 중이다. 미·일 MD 시스템을 무력화할 수 있는 다탄두 전략미사일 개발에도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러시아는 노후한 재래식 전략미사일을 폐기하고 2007년부터 신형 유도장치를 갖춘 대륙간탄도탄 TOPOL-M의 실전배치를 시작해 20 15년까지 모두 9개연대의 ICBM 미사일을 배치한다. 중국과 러시아의 창(미사일)은 미·일의 MD 전력의 증대에 정비례하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중국 입장에서는 북한을 겨냥한 것처럼 보이는 미·일 MD시스템이 실제로는 자국을 겨냥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을 것”이라며 “중국은 자국의 미사일 전력이 무력화될 것을 우려하는 동시에 미·일 MD 체계를 뚫기 위한 미사일 개발에 질주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 역시 그동안 미사일 방어에 등한시한 측면이 커 이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다른기사 보러가기] “임원도 노조원도 아닌 김부장 괴로워” ‘제2 대학입시’ 편입학 실태 마우스·술잔 든 대학생 두손 이젠 책을 들게 하라 장자연 자살 한달, 경찰 “말 못한다” 답변만 30차례 불황기 인재의 조건 ‘판매력’ “한푼 두푼 모아…” 적금의 부활
  • [시론] 오바마시대 우리의 동북아 안보전략/유찬열 국제정치 덕성여대 교수

    [시론] 오바마시대 우리의 동북아 안보전략/유찬열 국제정치 덕성여대 교수

    2009년 1월20일 오바마 행정부는 커다란 희망을 갖고 출범했지만, 오늘날 미국은 대내외적으로 많은 어려움에 처해 있다. 국가 부채는 10조달러를 상회하고, 국내 경제 침체는 9000억달러 이상의 정부자금 지원을 필요로 하며, 미국이 주도하던 국제금융 질서는 위기에 봉착했다. 외교, 군사적으로도 미국은 세계 곳곳에서 도전에 직면해 있다. 그것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사태, 이란 핵개발, 국제 테러리즘, 핵 및 미사일 확산을 포함한다. 보다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과제는 중국 및 러시아, 그리고 이슬람권과의 관계설정 문제다. 이러한 전선에서의 끝없는 불안정과 확연한 경제 침체는 오바마 행정부의 동북아 역내 정치개입 역량을 상당 수준에서 제한한다. 북한의 핵무장 해제는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일지도 모른다. 오늘날의 북한은 핵무장과 중국, 러시아의 지원을 토대로 매우 대담한 정책을 펴고 있다. 핵을 포기하지 않은 채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추구하면서 대남 강경정책을 구사하는 북한과 ‘비핵·개방·3000’과 더불어 ‘상생·공영’정책을 주장하는 한국이 앞으로 한반도 통일의 주도권을 놓고 대결이 불가피할지 모른다. 미국 쇠퇴의 분위기 속에서 중국은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상하이협력조직, 아세안 참여, 러시아·중동·아프리카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 및 협력은 외교력의 상징이다. 군사력은 힘의 투사를 추구하고, 경제력은 에너지 소비 추세와 세계 2위의 국내 총생산 그리고 세계 1위의 외환 보유고로 대표된다. 한편, 중국의 부상과 북한의 핵무장을 우려하는 일본은 고이즈미 총리 이후 ‘보통국가’로의 전환을 고려해 왔고, 그 과정에서 평화헌법의 개정과 핵무기 보유 등을 논의해 왔다. 일본은 1990년대에는 구소련 붕괴로 인한 안보 공백을 메우기보다는 신중상주의적 경제에 더 관심을 보였는데, 이제는 서서히 정책을 전환하는 것으로 보인다. 영국·프랑스에 버금가는 해·공군력을 보유하고 4.5조달러에 이르는 경제규모의 일본이 본격적으로 무장하기 시작하면 동북아의 안보 지형은 크게 변할 것이다. 경제력 신장을 토대로 국제사회에서의 재도약을 추구하는 러시아 역시 북한에 대한 경제협력 제공과 6자회담에서의 역할, 그리고 호전되는 중·러 관계 등을 토대로 동북아 안보무대로 재진입을 노릴 것이다. 한국도 이제 더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오늘날 한국에 필요한 것은 주변 국가들로부터의 위협을 억지하고 국익을 증대시킬 수 있는 외교력과 군사력, 또 그 밑받침이 되는 경제력을 키우는 것이다. 지난 10년간의 한·미 간 갈등은 너무 소모적이고 근시안적이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반미 정서,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주한 미군 기지의 평택 이전, 주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제한이 그렇게 한국의 안보 이익을 증대시켰는지는 의문이다. 무조건적 대북 지원 역시 마찬가지이다. 햇볕 정책과 평화번영 정책을 통해 정치적 관계 개선, 사회문화 교류가 있었지만, 그것들은 제도화되기보다는 북한의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와해될 수 있는 취약한 것이었다. 또 그것은 원래 취지인 북한을 개혁·개방시키지 못했고, 무엇보다 북한의 핵개발을 막지 못했다. 이제 한국의 외교 안보팀은 현실주의적 시각을 토대로 국제무대에서 활약하고, 북한에 대한 강력한 억지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필요에 따라 전술적 차원의 협력을 구사하는 성숙한 정책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유찬열 국제정치 덕성여대 교수
  • 日 사회·역사교과서 또 왜곡하나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에서 고교의 사회·역사교과서 내용 가운데 이른바 ‘자학사관’을 삭제하려는 움직임이 거세다.애국심과 도덕심의 고취를 골격으로 2006년 12월 개정된 교육기본법의 취지에 따라 2012년부터 새학습지도요령이 적용되는 고교 교과서 내용도 수정돼야 한다는 논리다. 15일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보수 성향의 자민당 에토 세이치, 요시이에 히로유키 의원은 지난달 하순 새 교육기본법에 근거한 교과서의 검정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문부과학성 등 관련 부처에 제출했다. 지난달 25일 현재 연대 서명한 의원은 자민당 197명, 민주당 19명 등 모두 228명이다. 의원들은 탄원서에서 “사회 교과서는 중국에서 일어난 난징사건 등 근현대사에만 주목하는 등 시대에 따라 치우친 기술이 눈에 띈다.”면서 “현행 검정 기준은 제기능을 못하는 만큼 새로운 기준을 마련, 점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신들의 입장에서 불리한 ‘편향 기술’을 바로잡겠다는 의도다. 때문에 자칫 ‘역사 왜곡’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보수·극우의 시각에서 문제의 내용으로 제기된 교과서는 적지 않다. 시미즈서원에서 출판한 고교의 정치경제 교과서 ‘제1편 현대의 정치’ 표지에는 ‘현행 헌법을 지키려는 시민단체 9조의 모임’의 강연회 사진을 미국 링컨 대통령의 연설 그림과 같이 실고 있다. 내용에는 “일본에서도 200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오에 겐자부로 등 9명이 ‘9조의 모임’을 결성, 평화 헌법의 의미를 호소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일본 헌법은 9조에 전쟁포기와 군사력 보유금지를 규정해 ‘평화헌법’으로 불린다. 헌법 개정을 요구하는 보수·극우 측은 “‘9조의 모임’ 즉, 특정단체를 교과서에 실은 것에는 의문이 있다.”고 주장했다. 도쿄서적의 일본사에 나오는 ‘쇼와(昭和·히로히토 일왕의 연호)의 종막(終幕)’이라는 글에서 “아시아 제국의 매스컴은 쇼와 천황의 전쟁 책임과 ‘하다만 사죄’, 그리고 일본 안의 이상한 자숙이 국수주의 대두의 계기가 되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표명하고 있다.”라는 대목도 문제를 삼고 있다.한국과 중국의 보도를 인용, 히로히토 일왕의 사망에 따른 자숙 분위기를 국수주의로 몰아붙이는 것은 억지라는 반발이다.hk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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