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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인사이트] ‘美·日 신밀월’ 개헌 교두보 확보… 아베의 폭주 힘 붙었다

    [글로벌 인사이트] ‘美·日 신밀월’ 개헌 교두보 확보… 아베의 폭주 힘 붙었다

    일본 집권 자민당이 헌법 개정 논의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자민당이 주도하는 일본 중의원 헌법심사회가 올해 정기국회에서의 헌법 개정을 논의하고자 지난 7일 첫 자유토론의 장을 마련, 개헌 분위기를 확산하고 있다. 헌법심사회는 개헌 항목과 내용을 압축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정부의 지지를 확인하는 등 미국 방문에서 개선장군처럼 돌아온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개헌을 위한 당초 계획을 초스피드로 밀어붙이기 시작한 셈이다. 아베 총리는 헌법 개정을 ‘필생의 과업’으로 삼고 있다. 현행 헌법에서 전쟁 및 무력 행사의 포기, 전력 보유 금지 등을 규정한 9조를 고쳐 군대를 보유하고, 무력 행사를 할 수 있는 군사적 보통국가로 거듭 태어나겠다는 것이다. 결국에는 전범국가, 패전국가의 굴레 등 ‘전후 체제’에서 벗어나 일본의 위상을 회복하겠다는 것이 그의 목표다. 경제대국 일본이 군사대국이 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현행 헌법에는 해석만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한계점과 모순이 많다”는 자민당의 지난 3일 헌법기념일 성명도 이 같은 입장을 담고 있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헌법 개정을 위한 논의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헌법심사회에서 자민당은 현행 헌법이 패전 직후 연합국총사령부(GHQ) 주도로 만들어져 점령군에 의한 ‘강요된 헌법임’을 주장하면서 일본인에 손에 의해 새로운 헌법이 만들어질 때가 됐음을 주장했다. 현행 헌법은 1946년 11월 3일 공포돼 이듬해 5월 3일부터 시행됐다. 요미우리신문은 이날 토론과 관련해 “자민당이 2017년 발의를 염두에 두고 개헌 논의를 가속화하려 하고 있다”고 평했다. 2017년은 일본 헌법이 시행된 지 70주년이 된다. 아베 총리는 지난 2월 12일 중의원 본회의 시정방침 연설 때 “개헌을 위한 국민적 논의를 확대하자”며 개헌 물꼬를 텄다. 올 9월 재선이 확실시되는 자민당 총재 선거를 마치고 내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개헌선을 확보한다. 그 다음 중의원 조기 해산 및 선거 등을 통해 국회에서 개헌을 위한 3분의2 선을 확보하겠다는 것이 그의 개헌 시나리오다. 자민당은 “시대 변화에 맞게 헌법도 바꿔야 한다. 독일도 개정을 여러 번 하지 않았냐”라는 논리를 폈다. 자민당은 평화 헌법 개정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있다. “환경권 및 인권, 긴급사태 조항 등을 먼저 논의해 고친 뒤 그 뒤 평화 헌법 조항인 9조를 개정하겠다”는 ‘2단계 개헌’이라는 단계적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평화 헌법 개정에 대한 반발과 반대를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환경권 조항 개정 등 여론의 거부감이 적은 분야에서 개헌 공감대와 분위기를 확산시키는 전략으로 접근하려 하고 있다. 그 뒤 헌법 9조 등 민감한 사안을 다루겠다는 전략이다. 후나다 하지메 자민당 헌법개정추진본부장이 7일 헌법심사회 토론에서 “긴급사태 조항, 환경권 등 세 가지를 우선 논의하자”고 각 당에 제의한 것도 그런 전략이 깔려 있다. 긴급사태 시 국회의원의 임기를 연장하고, 재정 건전화를 헌법상 의무 조항으로 신설하는 한편 환경권 및 인권에 대한 내용도 헌법에 규정하자고 공세를 폈다. 후나다 본부장은 “시대에 맞는 긍정적인 논의를 하고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이 국회의 책무”라며 개헌 당위성을 주장했다. 단계적인 접근법을 쓰는 것은 헌법 개정을 위해서는 중의원과 참의원 전체 의원의 3분의2 이상의 찬성을 이끌어 내야 하고, 반대 여론을 잠재우면서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그래야 국민투표에서 과반 이상의 찬성을 얻을 수 있다. 후루야 게이지 자민당 헌법개정추진본부장 대리가 지난 3일 도쿄에서 열린 한 집회에서 “모든 힘을 다해 여론을 계몽하고 헌법 개정에 관한 올바른 이해를 국민에게 확실히 심어 국민투표에 부쳤을 때 과반을 차지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아직 개헌에 대해 부정적인 국민을 조심스럽게 설득해 나가면서 개헌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앞서 아베 정부는 지난해 7월 각료회의를 통해 집단 자위권에 대한 헌법 해석을 변경시켰고, 지난 4월 미국과 18년 만의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개정을 이뤄 내는 등 헌법 개정을 위한 교두보를 확보했다. 헌법 해석과 시행 지침 등을 고쳐 평화헌법을 무력화하는 방향으로 한발 한발 나가고 있다. 헌법 해석의 변경으로 ‘전수방위’에서 벗어나 한반도 유사시는 물론 세계 각국의 분쟁에 군사적 개입의 근거를 마련했다. 그 전까지 일본 정부는 집단적 자위권을 헌법 9조에 따라 포기한다고 밝혀 왔다. 첫 관문인 국회를 넘어야 하는 아베 총리에게 구심점 없이 지리멸렬한 야권의 상황은 희망을 주고 있다. 대외적으로도 아베의 헌법 개정 구상은 순풍을 탔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패권을 향해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중국의 군사적 급부상은 일본의 보통국가화의 전략적 필요성과 명분을 주고 있다.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중국과의 영토 갈등은 일본에서 군사적 보통국가를 향한 목소리를 높이며 개헌 반대 의견을 조금씩 무력화하는 분위기다.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등에서 벌어지는 중국의 해양 진출 확대 등 군사적 영향력 증대, 동남아 국가들과 중국의 영토 분쟁 등은 일본의 교전권 부활과 군사활동 영역 확대 등 군사적 보통국가화의 중요한 명분이 되고 있다. 중국을 의식한 일본의 재무장과 교전권 확보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후원은 아베 총리의 행보에 절대적인 힘이 되고 있다. 핵과 미사일로 무장한 ‘북한의 위협’이란 것도 일본의 재무장 명분을 더하고 있다. 헌법 9조의 수정이 이뤄지면 일본 자위대는 군대로 바뀌고, 일본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명실상부한 군사대국의 길을 가게 된다. 일본의 군사적 행위를 묶어 놓았던 족쇄가 갈수록 느슨해지면서 동북아시아에서 중·일 간의 군비 경쟁과 군사적 대결 양상 및 긴장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전쟁 방지 정당” vs “군사력 가져야”

    일본 사회가 헌법 개정을 두고 양분됐다. 최근 현행 헌법 시행 68주년을 맞아 개헌을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이 ‘평화헌법’을 지키자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반면 아베 신조 총리의 지원을 받는 개헌론자들 역시 맞불 집회를 갖고 개헌을 위한 세력을 확대하고 있다. 개헌 반대론자들은 “현행 평화헌법에는 일본이 과거의 전쟁에서 배운 많은 것이 담겨 있다”며 “헌법에서 교전 행위, 해외 파병 등을 막는 것은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야당인 민주당도 “(지난해) 각의 결정에 의한 집단자위권 행사 용인은 입헌정치와 민주의의에 대한 도전이다. 아베 총리와 자민당의 ‘시험 개헌’을 인정할 수 없다”는 내용의 성명을 내놓았다. 반면 ‘아름다운 일본의 헌법을 만드는 국민의 모임’, ‘민간헌법임조’ 등은 “(일본은) 군사력을 지녀야 한다. 일본을 지키고 세계에 도움이 되고 싶다”며 “독립국에 어울리는 헌법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 민심이 쪼개진 것은 여론조사 결과로도 확인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과 TV도쿄 등이 최근 발표한 공동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44%는 ‘호헌’을, 42%는 ‘개헌’을 찬성했다. 호헌주의자 57%는 그 이유로 “평화주의가 변질될 우려”를 꼽았다. 그러나 찬반 여론의 차이가 크지 않다. 앞서 지난 1일 보도된 NHK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절반에 가까운 43%가 어느 한쪽을 선택할 수 없다고 답해 여론의 관망세가 개헌의 변수임을 보여 줬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평화헌법 개정 노리는 아베… 일본 국민은 회의적

    일본 국민은 ‘교전권 포기’ 등을 명시한 현재 헌법 개정에 회의적이며, 신중한 입장인 것으로 조사됐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개헌 분위기로 몰아가지만 국민은 개헌에 냉랭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여론조사 결과다. 니혼게이자이신문과 TV도쿄 등이 3일 헌법 기념일을 맞아 발표한 공동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44%가 “헌법은 현재대로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답했고, 개헌 찬성은 42%로 나타났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조사에서 ‘헌법 현행 유지’가 ‘개헌 찬성’보다 앞선 것은 2002년 조사 이후 처음이다. 현행 헌법을 유지하자는 응답자의 57%는 “(개헌으로) 평화주의가 변질될 것”을 가장 우려했다. 아사히신문이 지난 2일 공개한 여론조사에서도 ‘개헌 불필요’(48%) 응답이 ‘개헌 필요’(43%)보다 많았다. 교전권 포기 등을 규정한 헌법 9조 ‘평화헌법 조항’의 개정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63%가 “개정해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 아사히신문은 “헌법 개정이 쟁점이 된 1997년 이후 개헌 의견이 많았지만 지난해 아베 정부가 헌법 해석을 바꿔 집단 자위권을 허용한 뒤 개헌 반대 의견이 찬성을 넘어섰다”고 전했다. 아사히신문은 3일자 1면 머리기사로 아베 총리가 조기 개헌보다는 국민적 합의 형성 등 분위기를 조성하는 우회 전략을 쓰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한 일본 국민의 반응은 차갑다. 국민들은 “기존 법률에 충실하면 된다”고 밝히는 등 최근 자위대 역할 확대 등 아베 총리의 조치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요동치는 동북아] 아베의 질주 어디까지

    [요동치는 동북아] 아베의 질주 어디까지

    ‘아베의 질주는 어디까지 갈까.’ 미국 방문을 계기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행보에 가속도가 붙게 됐다. 귀국 즉시 아베 총리는 안보 관련 법률 정비를 시작으로 숨 가쁜 일정을 앞두고 있다. 젊은 층에 우경화 교육을 위한 ‘교육 재생’, 종전 70주년 담화를 통한 과거사 입장 정리 등 ‘평화헌법’ 개헌과 최종 목표인 ‘전후체제 탈피’ 등을 향해 달려나갈 기세다. 아베 총리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일본 총리로서 사상 첫 미국 상·하 양원 합동연설 등을 통해 전후 70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미·일 동맹을 다지고 이를 전 세계에 과시했다. 자위대의 군사활동 범위·역할 확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조기 타결 의견접근 등 미국으로부터 아·태지역의 믿음직한 동반자란 ‘신임장’도 받아냈다. 오는 3일 귀국하는 아베 총리의 사실상 첫 업무는 안보 법률 정비다. 15일 각의(국무회의)에서 관련 내용을 확정해 국회에 제출한다. 6월 24일 끝나는 국회 회기도 8월까지 연장해 올여름에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워뒀다. 미·일 정상회담에 앞서 18년 만에 개정된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내용을 안보 관련 법률들에 담는 일이다. 이는 방어만을 위한 군사 활동으로 국한된 ‘전수방위’의 족쇄를 풀고, 아베 총리의 숙원인 ‘군사적 보통국가’로 향한 첫발을 내딛게 되는 셈이다. 아베 총리는 정상회담에서 국제 평화를 위한 ‘공헌’을 강조하면서 가이드라인 개정에 따른 후속 조치로 안보관련 법안의 8월 이전 개정을 약속했다.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 자민·공명 연립 정부는 이를 밀어붙일 태세다. 아베 구상대로 ‘국제평화지원법’과 ‘중요영향사태법’이 제·개정되면 자위대엔 지리적 제약과 활동범위가 풀린다. 전수방위를 기본으로 한 일본의 안보 정책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가이드라인과 안보관련 법률 개정, 방위력 증강 등으로 이어지는 아베 총리의 행보는 궁극적으로 평화헌법 개헌을 통해 ‘전후 체제의 굴레’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다. ‘군사적 보통국가’라는 아베 총리의 야심도 전후 체제의 탈피라는 큰 틀에서 진행되고 있다. ‘전범 국가’라는 낙인에서 벗어나 지난 70년간 일본을 구속한 여러 제약을 떨쳐버리겠다는 것으로, 이 같은 속내는 일찌감치 노출됐다. 아베 총리는 지난 2월 12일 중의원에서 내년 여름 참의원 선거 후 “개헌을 위한 국민적 논의를 확대하자”고 제안했다. 2017년 개헌을 사실상 발의한 셈이다. 아베 총리는 전후 체제의 탈피와 함께 ‘일본 재생’이란 기치를 흔들면서 “자랑스럽고 아름다운 역사와 전통”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행보에는 “일본이 왜 전범국가냐, 힘이 없어서 전쟁에서 졌을 뿐, 서구 국가들도 제국주의를 하지 않았느냐”는 인식이 깔려 있다. 침략전쟁에 대한 죄의식보다는 패전에 대한 억울함이 밑바닥에 있다. 아베 총리를 비롯한 일본 재생을 주장하는 쪽은 일본이 가해자라기보다는 피해자, 특히 원폭 피해자란 이미지에 집착한다. 과거 군국주의 만행과 죄악을 세탁하고 과거 미화와 ‘자부심 회복’을 강조하는 이런 행보는 ‘교육 재생’이란 이름으로 교과서 수정, 영토 주장 등 민족주의 감정에 호소하면서 저변 확대를 시도하고 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아베, 침략전쟁·위안부 언급 없이 ‘A급 전범’ 외할아버지 부각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미국 연방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에 침략전쟁에 대한 공식 사과는 끝내 없었다. 오히려 아베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가 ‘태평양전쟁 A급 전범’에서 미일동맹의 원조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29일(현지시간) 미국 연방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에서 아베 총리는 외조부인 기시 전 총리의 58년전 미 의회 연설을 인용하는 것으로 연설을 시작했다. 아베 총리는 “일본이 세계의 자유 국가와 협력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원칙과 이상을 확신하기 때문”이라는 기시 전 총리의 1957년 미 의회 연설 내용을 소개하고서, 그로부터 58년 뒤 손자인 자신이 같은 무대에 선 사실을 거론했다. 또 “돌아보건대 내가 진심으로 좋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본이 올바른 길을 택한 것”이라며 “그 길은 연설 앞부분에 소개한 조부의 말에 있었던 대로 미국과 동맹이 되어 서방세계의 일원이 되는 선택을 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기시 전 총리는 1941년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내각의 상공 대신을 맡았던 인물로 일본의 패전(1945년 8월)과 동시에 A급 전범 용의자로 복역하다 1948년에 석방됐다. 이후 반공 전선 구축을 중심에 둔 미국의 대일 정책 아래 1957년 총리로 화려하게 부활, 1960년 미·일 안전보장조약을 개정한 인물이다. 아베 총리는 외조부를 자신의 정신적 지주이자, 정치 멘토로 삼아온 것으로 잘 알려져있다. 이번 연설을 준비하면서도 1957년 6월20일 외조부의 미국 하원 연설을 반복해서 청취한 것으로 일본 언론에 보도됐다. 2차대전 전범 용의자 출신인 기시 전 총리를 미일 동맹의 상징적 존재로 거론한 것은 기시의 못다 이룬 ‘꿈’이자 아베 총리 최대의 정치 목표인 ‘전후체제(2차대전 패전국으로서 받아들인 평화헌법 체제) 탈피’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2차대전 전범 국가의 꼬리표를 떼고, 미일 동맹을 발판 삼아 ‘보통국가화’에 박차를 가하려는 아베 총리의 목표가 이번 연설에서 기시를 ‘부활’시킨 배경에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또 연설에서 아베 총리가 자신의 측근 정치인인 신도 요시타카(新藤義孝) 전 총무상의 외조부인 구리바야시 다다미치(栗林忠道.1891∼1945) 전 육군 대장을 거론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보인다. 미일의 적대를 넘어선 화해를 거론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이오지마(硫黃島) 수비대를 지휘하며 미군을 상대로 ‘옥쇄작전’을 펼친 구리바야시 전 육군대장을 언급한 것이다. 이 때, 이오지마 전투에 미국 해병대 대위로서 참전한 로렌스 스노든 예비역 중장과 구리바야시 전 대장의 손자인 신도 전 총무상이 청중석에서 상·하원 의원들의 뜨거운 박수 속에 악수하자 아베 총리는 “역사의 기적”이라고 말했다. 치밀하게 연출된 모양새였다. 이처럼 아베 총리가 과거 군국주의 일본의 중심에 서 있던 인사들을 미일 화해와 동맹의 상징적 존재로 거론한데는 과거 침략의 역사를 탈색시키려는 의도가 내포됐다는 지적도 제기될 전망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기획] 유사시엔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에?

    [기획] 유사시엔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에?

    일본의 끔찍한 전쟁 범죄 사실은 부인한 채 홀로코스트 박물관과 알링턴 국립묘지를 찾는 위선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 정부가 그의 이번 방미 기간 중 그의 행보에 힘을 실어주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미래에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아베 총리의 이번 방미 기간 중 논의된 여러 가지 의제 가운데 가장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것은 27일 양국 외교·국방장관 회의(2+2회의)에서 합의된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안이었다. 합의문은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되어 있지만 이 한 장의 합의가 차후 아시아·태평양 지역, 특히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에 가져올 후폭풍은 가히 메가톤급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일 ‘新방위협력지침’...전범국 일본 ‘족쇄’ 풀어줘 이번에 개정된 미·일 방위협력지침은 냉전 시기 북해도 지역에서 소련의 군사적 위협에 시달리던 일본의 필요에 의해 책정된 정부 간 합의이다. 이 합의에는 일본이 타국의 공격을 받았을 때 미군과 자위대가 정보·작전·군수 등 분야에서 각각 어떻게 역할을 분담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는 정부 대 정부의 합의문으로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활용된다. 이 지침은 1978년 처음 만들어질 당시만 하더라도 철저하게 일본 영토와 영해, 영공 방위를 위한 내용만을 담고 있었다. 일본은 패전국이었기 때문에 헌법 제9조에 따라 정규군을 보유할 수 없었고, 자위대는 이름 그대로 자국의 치안과 영토 보호를 위해서만 무력을 사용할 수 있었는데, 미·일 방위협력지침은 자위대의 성격과 작전 영역을 명시함으로써 일본의 공세적 무기 획득과 군비증강을 '억제'하는 역할을 해 왔다. 일본은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가 방위청장관으로 재직하던 당시 제창한 ‘전수방위(專守防衛)’ 원칙을 오랫동안 고수해 오고 있었지만, 냉전 붕괴 이후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제1차 북핵위기로 홍역을 치른 이후인 1996년, 미·일 안보공동선언을 통해 미·일 방위협력지침에서 자위대의 역할 확대와 공세적 무기 확보 가능성을 열어두기 시작한 것이다. 자위대의 역할 확대를 위한 변화는 미국의 세력 약화와 중국의 부상, 극우 성향의 아베 신조 내각이 들어선 이후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면서 더욱 극명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본은 미국이 글로벌 금융위기와 정부 재정위기 등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위협론을 부채질했고, 미국은 서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억제하기 위해 일본을 잡아두고 있던 끈을 서서히 풀어주기 시작했다. 우선, 일본이 주장하는 ‘집단적 자위권’을 허용했다. 일반적으로 자위권이란 국가 주권과 이익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할 권리를 말하는데, ‘집단적 자위권’이란 지켜야 할 주권과 이익에 자국뿐만 아니라 동맹 또는 우방국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쉽게 말해 자신이 불량배에게 맞을 위기에 있으면 친구가 와서 함께 싸워주고, 반대로 친구가 불량배에게 당할 위기에 처하면 자신도 나서서 친구와 함께 불량배와 싸워 준다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과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 바르샤바조약기구(WTO) 등 집단안보체제, 또는 각국이 개별적으로 체결한 동맹 등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 같은 집단안보체제에 가입한 국가가 정상국가라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럴 자격이 없는 전쟁범죄국가일 경우에는 문제가 복잡해진다. 일본은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은 전쟁범죄국가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군대’를 보유할 수 없는 대신, 일본 영토와 영공, 영해에서 방어적 목적으로만 운용될 수 있는 최소한의 무력인 ‘자위대’만 가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본은 이른바 ‘평화헌법’이라 불리는 헌법 제9조에서 군대의 보유와 국가의 교전권 포기를 명문화하고 있다. 그러나 아베 정권은 집권 초기부터 이 헌법 개헌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으며, 국내외의 반대로 개헌이 어려워지자 헌법 해석 변경과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개념 도입을 통해 자위대를 교전권을 가진 정식 군대로 만들려 하고 있다. 교전권이란 국가 간 분쟁을 평화적인 수단으로 해결할 수 없을 때 적국과 전쟁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범위 내에서만 허용되는 교전권이지만,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기 위한 파트너 국가가 미국이라면 이론적으로 일본은 미국과 동맹을 맺거나 우방 관계에 있지 않은 거의 모든 국가와 전쟁을 할 수 있는 교전권을 손에 쥐게 된다.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 파병' 날개? 또한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를 파병할 수 있는 길도 열린다. 일본은 굳이 미·일 방위협력지침이 아니더라도 한반도 유사시 전쟁에 개입할 수 있는 명분은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한반도 유사시 주일미군이 작전에 투입될 경우, 이를 지원하기 위해 자위대가 나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반도 유사시 형식상 최고사령부가 되는 UN군사령부는 일본에 7개의 후방기지를 두고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기지들은 모두 미군과 자위대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기지다. 요코스카 해군기지는 미7함대와 해상자위대 제1호위대군이, 사세보 해군기지는 제7함대와 해상자위대 제2호위대군이 함께 쓰고 있고, 캠프 자마에는 주일미육군 제500군사정보여단과 지원부대가 일본판 특전사라 할 수 있는 중앙즉응집단사령부와 함께 입주해 있다. 제5공군사령부가 있는 요코타 공군기지는 항공자위대 방공지휘소가, 해군과 공군, 해병대가 사용하는 가데나 기지와 후텐마 기지, 화이트비치 기지 등에도 모두 자위대 지원부대가 함께 입주해 있거나 유사시 기지에 전개되는 전력의 작전을 지원한다. 어떤 형태로든지 한반도에서 미군의 군사작전에 자위대가 엮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번 방위협력지침 개정으로 인해 자위대는 날개를 달게 됐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 논리에 따라 한반도에서 작전하는 미군의 후방지원 수준을 넘어서, 필요에 따라 미군과 함께 북한에 대한 공세적 군사작전을 펼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앵무새처럼 “우리 동의없이 한반도전쟁 개입 못해” 우리 정부는 즉각 “일본의 사전요청과 우리의 동의 없이 자위대의 한반도 개입은 있을 수 없다”고 발표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개전 초기 북한은 한·미 연합군을 향해 대량의 미사일 공격을 가할 것이고, 새로 개정된 지침에 따라 자위대는 해상에서 이 미사일 요격을 시도할 의무가 있다. 미군의 작전을 후방에서 지원해야 하는 일본은 일본 인근 해역이나 괌 인근에서 들어오는 사전배치전단은 물론 미 본토와 하와이 등지에서 병력과 장비를 싣고 들어오는 미 수송선단에 대한 보호 작전도 ‘후방 지원’ 개념에서 수행해야 한다. 기동함대 등 선단 호위를 위한 해군력을 갖추지 못한 우리나라가 미 수송선단에 대한 호송 지원을 제공하지 못해 미 해군 수송선단이 한반도 해역 진입에 난색을 표하고, 연합사령부가 신속한 물자 하역을 요구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이를 위해 자위대가 한반도 영해에 들어올 수밖에 없다. 즉, 우리 정부는 평시에는 “우리 동의 없이 자위대가 한반도 전쟁에 개입할 수 없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전시가 되어 국가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빠진 상황이라면 명분 보다는 생존이 우선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을 묵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자위대의 해외 군사작전 허용은 곧 일본에 채워져 있던 전범국이라는 족쇄가 서서히 풀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일본의 족쇄를 풀어줌으로써 심각한 골칫거리인 북한과 잠재적 적국인 중국에 맞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손 안 대고 코 푸는’ 장밋빛 미래를 기대하겠지만, 상황은 그렇게 흘러갈 수 없을 것이다. -미일동맹 격상은 미국의 자충수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Edward H. Carr)는 “역사는 반복된다”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중국은 군웅할거(群雄割據)가 지속되다가 통일되고, 통일되어 전성기를 잠시 누리다가 부정부패와 반란, 외적의 침입 등으로 망하고 흥하고를 수 없이 반복했고, 우리나라 역시 비록 왕조 교체는 중국보다 적었다고는 하지만 위정자들의 권력다툼과 국론 분열과 국력 약화, 이 틈을 탄 외적의 침략, 침략을 물리친 뒤 잠시 평화를 누리다가 다시 권력다툼과 외침이 이어지는 같은 역사의 반복이었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 동아시아 역사의 변두리에 있었던 일본은 섬나라라는 특성상 정치적으로는 강력한 독립성을 유지했지만, 경제적·문화적으로는 한국과 중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며, 이들로부터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는데 국가적 역량을 기울여 왔다. 이들은 국가가 분열되어 혼란스러운 상황이거나 힘을 갖추지 못했을 때는 한국과 중국에 사신단을 보내 이른바 통신사로 불리는 사절단을 보내줄 것을 정중히 요청했지만, 힘이 있을 때는 수시로 한국과 중국을 침략하며 노략질을 일삼았다. 3세기 초 호족연합정권인 야마토 정권이 전국을 통일한 이후에는 정규군을 갖춰 가야, 백제와 결탁해 신라를 침략했고, 통일신라 시대에도 경상·전라·충청·경기 연안 일대에 수시로 해적선단을 보내 해안선을 약탈하거나 조운선, 무역선을 습격했다. 고려시대에는 한반도와 가까운 쓰시마섬에 거점을 마련하고, 한반도 해안에 대한 노략질을 일삼았고, 조선시기에는 15만 대병력으로 한반도 전역을 전쟁의 참화로 몰아넣기도 했다. 문제는 역사가 반복된다는 것과 과거 한반도를 침략하고 노략질을 일삼았던 가문이 현재 일본의 집권세력에 있다는 것이다. -한반도 노략질 일삼던 가문들이... 에도시대부터 일본 정계의 주류를 이루며 한반도와 대륙 침략을 주장했던 조슈번(長州藩) 세력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번주(藩主)인 모리 테루모토(毛利輝元)가 제7군(약 3만 명)을 이끌고 조선 전국토를 유린했던 자들이다. 이들은 메이지 유신을 주도하고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했던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나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배출했고, 이들 세력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에도 일본 정치계의 주류로 남아 아베 신조(安倍晋三)라는 인물을 배출하고 지금도 일본 군국주의 부활과 극우 민족주의 활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에도시대부터 동해와 남해, 난세이 제도 일대에서 가장 규모가 큰 해적 집단이었던 사쓰마번(薩摩藩) 역시 번주인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가 이끄는 제4군(약 1만5,000여 명)이 참전하여 경상도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칠전량 해전에서 조선수군을 전멸시켰으며, 노량해전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죽게 만든 자들이었다. 이들은 조슈번과 함께 메이지 유신을 주도하며 일본제국해군을 건설해 태평양전쟁을 일으켰고, 전후에도 일본 정계의 주류 정치세력으로 남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라는 극우 정치인을 배출하고 현재도 극우 민족주의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일본 정계를 주도하고 있는 이들 정치세력은 과거부터 내부 권력 투쟁을 이어오면서 일본 국내 상황이 정리되고 힘이 축적되면 반드시 한반도와 대륙을 상대로 침략전쟁을 일으켰던 자들이다. 특히 이들은 현재도 과거사 왜곡을 통해 한국과 중국을 열등 민족이자 타도 대상으로, 미국을 ‘핵무기'라는 비인도적인 무기를 일본인에게 사용한 가해자로 선전하고 있다. 현재 미일관계는 표면적으로는 역대 그 어느 시절보다 굳건하지만, 일본은 자신들의 힘이 어느 정도 갖춰지면 언제든지 이빨을 드러낼 것이다. 실제로 냉전 시기 ‘120% 한통속’이라는 미·일 밀월관계 속에서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까지 성장했던 일본은 경제력과 군사력이 어느 정도 갖춰지자 미국을 향해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을 외치기 시작했다. 일본은 자신들이 초강대국이 될 것이며, 미국이 첨단 무기를 자랑해도 일본의 전자부품 없이는 빈껍데기라며 초강대국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이에 미국은 ‘슈퍼 301조’라는 무역통상법 제301조, 즉, “미국의 눈 밖에 난 국가와는 무역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 결과로 일본은 치명타를 입게 되었는데 금융과 제조업의 거품이 순식간에 증발하면서 도쿄 증시는 3분의 1토막이 났고, 금융기업들이 연쇄적으로 문을 닫으면서 이른바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20년 전 경제력으로 미국에게 반기를 들었던 일본이 이제는 군사력 카드를 들고 나왔다. 중국 위협론과 자신들의 역할론을 들고 나오며 자위대라는 이름의 족쇄를 서서히 풀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일본은 원거리 공습이 가능한 고성능 전투기와 공중급유기, 항공모함과 대형 상륙함과 같은 공격무기를 손에 넣었고, 수천 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양인 약 47톤의 플루토늄까지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약 80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양인 640kg의 플루토늄을 IAEA에 신고하지 않고 은닉했다가 적발되는 등 미심쩍은 행동도 이어가고 있다. -마지막 관문 '핵무장'만 남은 셈 일본이 이처럼 공세적 군사력을 갖추고 대량의 플루토늄까지 보유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미국의 용인과 협력 덕분이었다. 경제력을 갖추고 있는 일본은 이제 보통군대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막강한 공격력을 갖춘 군대까지 보유했고, 군사강국이 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인 핵무장만을 남겨놓고 있다. 일본은 핵무기를 개발하기 위한 핵물질과 기반시설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고, 대륙간탄도미사일로 전용할 수 있는 고성능 위성 발사체까지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의지만 있다면 몇 주 이내에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갖출 수 있다. 핵확산금지조약(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 제10조 1항에 따르면, NPT 가입국은 NPT에 가입했더라도 국가 비상사태나 국가이익이 위협 받는 상황에서는 UN에 통보하고 NPT를 탈퇴할 수 있다. 즉, 센카쿠에서 중국의 위협, 북한의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빌미로 얼마든지 NPT를 탈퇴하고 핵개발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이 일본의 핵무장을 용인하는 순간 경제력·핵 능력으로 일본은 미국에 다시 "NO"라고 맞서려 할 것이며, 그때는 미국도 일본을 통제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요컨대 미국은 일본 우익의 속셈과 그 위험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중국이라는 맹수를 잡기 위해 반성하지 않는 전범국가를 풀어줄 준비를 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는 일본에 맞설 강력한 군사력이라도 있지만, 상황이 이렇게 돌아감에도 불구하고 큰 소리로 허세만 부리며 막대기라도 주워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 대한민국은 만에 하나라도 유사시에 무엇으로 대응할지 이제는 국민들이 나서서 위정자들에게 물어볼 때가 아닐까? 이일우 군사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美, 전범국의 ‘족쇄’를 풀어주다...한반도 앞날은?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美, 전범국의 ‘족쇄’를 풀어주다...한반도 앞날은?

    일본의 끔찍한 전쟁 범죄 사실은 부인한 채 홀로코스트 박물관과 알링턴 국립묘지를 찾는 위선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 정부가 그의 이번 방미 기간 중 그의 행보에 힘을 실어주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미래에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아베 총리의 이번 방미 기간 중 논의된 여러 가지 의제 가운데 가장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것은 27일 양국 외교·국방장관 회의(2+2회의)에서 합의된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안이었다. 합의문은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되어 있지만 이 한 장의 합의가 차후 아시아·태평양 지역, 특히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에 가져올 후폭풍은 가히 메가톤급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일 방위협력지침 합의 이번에 개정된 미·일 방위협력지침은 냉전 시기 북해도 지역에서 소련의 군사적 위협에 시달리던 일본의 필요에 의해 책정된 정부 간 합의이다. 이 합의에는 일본이 타국의 공격을 받았을 때 미군과 자위대가 정보·작전·군수 등 분야에서 각각 어떻게 역할을 분담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는 정부 대 정부의 합의문으로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활용된다. 이 지침은 1978년 처음 만들어질 당시만 하더라도 철저하게 일본 영토와 영해, 영공 방위를 위한 내용만을 담고 있었다. 일본은 패전국이었기 때문에 헌법 제9조에 따라 정규군을 보유할 수 없었고, 자위대는 이름 그대로 자국의 치안과 영토 보호를 위해서만 무력을 사용할 수 있었는데, 미·일 방위협력지침은 자위대의 성격과 작전 영역을 명시함으로써 일본의 공세적 무기 획득과 군비증강을 '억제'하는 역할을 해 왔다. 일본은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가 방위청장관으로 재직하던 당시 제창한 ‘전수방위(專守防衛)’ 원칙을 오랫동안 고수해 오고 있었지만, 냉전 붕괴 이후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제1차 북핵위기로 홍역을 치른 이후인 1996년, 미·일 안보공동선언을 통해 미·일 방위협력지침에서 자위대의 역할 확대와 공세적 무기 확보 가능성을 열어두기 시작한 것이다. 자위대의 역할 확대를 위한 변화는 미국의 세력 약화와 중국의 부상, 극우 성향의 아베 신조 내각이 들어선 이후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면서 더욱 극명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본은 미국이 글로벌 금융위기와 정부 재정위기 등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위협론을 부채질했고, 미국은 서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억제하기 위해 일본을 잡아두고 있던 끈을 서서히 풀어주기 시작했다. 우선, 일본이 주장하는 ‘집단적 자위권’을 허용했다. 일반적으로 자위권이란 국가 주권과 이익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할 권리를 말하는데, ‘집단적 자위권’이란 지켜야 할 주권과 이익에 자국뿐만 아니라 동맹 또는 우방국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쉽게 말해 자신이 불량배에게 맞을 위기에 있으면 친구가 와서 함께 싸워주고, 반대로 친구가 불량배에게 당할 위기에 처하면 자신도 나서서 친구와 함께 불량배와 싸워 준다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과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 바르샤바조약기구(WTO) 등 집단안보체제, 또는 각국이 개별적으로 체결한 동맹 등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 같은 집단안보체제에 가입한 국가가 정상국가라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럴 자격이 없는 전쟁범죄국가일 경우에는 문제가 복잡해진다. 일본은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은 전쟁범죄국가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군대’를 보유할 수 없는 대신, 일본 영토와 영공, 영해에서 방어적 목적으로만 운용될 수 있는 최소한의 무력인 ‘자위대’만 가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본은 이른바 ‘평화헌법’이라 불리는 헌법 제9조에서 군대의 보유와 국가의 교전권 포기를 명문화하고 있다. 그러나 아베 정권은 집권 초기부터 이 헌법 개헌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으며, 국내외의 반대로 개헌이 어려워지자 헌법 해석 변경과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개념 도입을 통해 자위대를 교전권을 가진 정식 군대로 만들려 하고 있다. 교전권이란 국가 간 분쟁을 평화적인 수단으로 해결할 수 없을 때 적국과 전쟁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범위 내에서만 허용되는 교전권이지만,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기 위한 파트너 국가가 미국이라면 이론적으로 일본은 미국과 동맹을 맺거나 우방 관계에 있지 않은 거의 모든 국가와 전쟁을 할 수 있는 교전권을 손에 쥐게 된다.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 파병' 날개? 또한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를 파병할 수 있는 길도 열린다. 일본은 굳이 미·일 방위협력지침이 아니더라도 한반도 유사시 전쟁에 개입할 수 있는 명분은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한반도 유사시 주일미군이 작전에 투입될 경우, 이를 지원하기 위해 자위대가 나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반도 유사시 형식상 최고사령부가 되는 UN군사령부는 일본에 7개의 후방기지를 두고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기지들은 모두 미군과 자위대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기지다. 요코스카 해군기지는 미7함대와 해상자위대 제1호위대군이, 사세보 해군기지는 제7함대와 해상자위대 제2호위대군이 함께 쓰고 있고, 캠프 자마에는 주일미육군 제500군사정보여단과 지원부대가 일본판 특전사라 할 수 있는 중앙즉응집단사령부와 함께 입주해 있다. 제5공군사령부가 있는 요코타 공군기지는 항공자위대 방공지휘소가, 해군과 공군, 해병대가 사용하는 가데나 기지와 후텐마 기지, 화이트비치 기지 등에도 모두 자위대 지원부대가 함께 입주해 있거나 유사시 기지에 전개되는 전력의 작전을 지원한다. 어떤 형태로든지 한반도에서 미군의 군사작전에 자위대가 엮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번 방위협력지침 개정으로 인해 자위대는 날개를 달게 됐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 논리에 따라 한반도에서 작전하는 미군의 후방지원 수준을 넘어서, 필요에 따라 미군과 함께 북한에 대한 공세적 군사작전을 펼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앵무새처럼 “우리 동의없이 한반도전쟁 개입 못해” 우리 정부는 즉각 “일본의 사전요청과 우리의 동의 없이 자위대의 한반도 개입은 있을 수 없다”고 발표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개전 초기 북한은 한·미 연합군을 향해 대량의 미사일 공격을 가할 것이고, 새로 개정된 지침에 따라 자위대는 해상에서 이 미사일 요격을 시도할 의무가 있다. 미군의 작전을 후방에서 지원해야 하는 일본은 일본 인근 해역이나 괌 인근에서 들어오는 사전배치전단은 물론 미 본토와 하와이 등지에서 병력과 장비를 싣고 들어오는 미 수송선단에 대한 보호 작전도 ‘후방 지원’ 개념에서 수행해야 한다. 기동함대 등 선단 호위를 위한 해군력을 갖추지 못한 우리나라가 미 수송선단에 대한 호송 지원을 제공하지 못해 미 해군 수송선단이 한반도 해역 진입에 난색을 표하고, 연합사령부가 신속한 물자 하역을 요구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이를 위해 자위대가 한반도 영해에 들어올 수밖에 없다. 즉, 우리 정부는 평시에는 “우리 동의 없이 자위대가 한반도 전쟁에 개입할 수 없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전시가 되어 국가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빠진 상황이라면 명분 보다는 생존이 우선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을 묵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자위대의 해외 군사작전 허용은 곧 일본에 채워져 있던 전범국이라는 족쇄가 서서히 풀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일본의 족쇄를 풀어줌으로써 심각한 골칫거리인 북한과 잠재적 적국인 중국에 맞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손 안 대고 코 푸는’ 장밋빛 미래를 기대하겠지만, 상황은 그렇게 흘러갈 수 없을 것이다. -미일동맹 격상은 미국의 자충수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Edward H. Carr)는 “역사는 반복된다”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중국은 군웅할거(群雄割據)가 지속되다가 통일되고, 통일되어 전성기를 잠시 누리다가 부정부패와 반란, 외적의 침입 등으로 망하고 흥하고를 수 없이 반복했고, 우리나라 역시 비록 왕조 교체는 중국보다 적었다고는 하지만 위정자들의 권력다툼과 국론 분열과 국력 약화, 이 틈을 탄 외적의 침략, 침략을 물리친 뒤 잠시 평화를 누리다가 다시 권력다툼과 외침이 이어지는 같은 역사의 반복이었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 동아시아 역사의 변두리에 있었던 일본은 섬나라라는 특성상 정치적으로는 강력한 독립성을 유지했지만, 경제적·문화적으로는 한국과 중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며, 이들로부터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는데 국가적 역량을 기울여 왔다. 이들은 국가가 분열되어 혼란스러운 상황이거나 힘을 갖추지 못했을 때는 한국과 중국에 사신단을 보내 이른바 통신사로 불리는 사절단을 보내줄 것을 정중히 요청했지만, 힘이 있을 때는 수시로 한국과 중국을 침략하며 노략질을 일삼았다. 3세기 초 호족연합정권인 야마토 정권이 전국을 통일한 이후에는 정규군을 갖춰 가야, 백제와 결탁해 신라를 침략했고, 통일신라 시대에도 경상·전라·충청·경기 연안 일대에 수시로 해적선단을 보내 해안선을 약탈하거나 조운선, 무역선을 습격했다. 고려시대에는 한반도와 가까운 쓰시마섬에 거점을 마련하고, 한반도 해안에 대한 노략질을 일삼았고, 조선시기에는 15만 대병력으로 한반도 전역을 전쟁의 참화로 몰아넣기도 했다. 문제는 역사가 반복된다는 것과 과거 한반도를 침략하고 노략질을 일삼았던 가문이 현재 일본의 집권세력에 있다는 것이다. -한반도 노략질 일삼던 가문들이... 에도시대부터 일본 정계의 주류를 이루며 한반도와 대륙 침략을 주장했던 조슈번(長州藩) 세력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번주(藩主)인 모리 테루모토(毛利輝元)가 제7군(약 3만 명)을 이끌고 조선 전국토를 유린했던 자들이다. 이들은 메이지 유신을 주도하고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했던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나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배출했고, 이들 세력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에도 일본 정치계의 주류로 남아 아베 신조(安倍晋三)라는 인물을 배출하고 지금도 일본 군국주의 부활과 극우 민족주의 활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에도시대부터 동해와 남해, 난세이 제도 일대에서 가장 규모가 큰 해적 집단이었던 사쓰마번(薩摩藩) 역시 번주인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가 이끄는 제4군(약 1만5,000여 명)이 참전하여 경상도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칠전량 해전에서 조선수군을 전멸시켰으며, 노량해전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죽게 만든 자들이었다. 이들은 조슈번과 함께 메이지 유신을 주도하며 일본제국해군을 건설해 태평양전쟁을 일으켰고, 전후에도 일본 정계의 주류 정치세력으로 남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라는 극우 정치인을 배출하고 현재도 극우 민족주의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일본 정계를 주도하고 있는 이들 정치세력은 과거부터 내부 권력 투쟁을 이어오면서 일본 국내 상황이 정리되고 힘이 축적되면 반드시 한반도와 대륙을 상대로 침략전쟁을 일으켰던 자들이다. 특히 이들은 현재도 과거사 왜곡을 통해 한국과 중국을 열등 민족이자 타도 대상으로, 미국을 ‘핵무기'라는 비인도적인 무기를 일본인에게 사용한 가해자로 선전하고 있다. 현재 미일관계는 표면적으로는 역대 그 어느 시절보다 굳건하지만, 일본은 자신들의 힘이 어느 정도 갖춰지면 언제든지 이빨을 드러낼 것이다. 실제로 냉전 시기 ‘120% 한통속’이라는 미·일 밀월관계 속에서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까지 성장했던 일본은 경제력과 군사력이 어느 정도 갖춰지자 미국을 향해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을 외치기 시작했다. 일본은 자신들이 초강대국이 될 것이며, 미국이 첨단 무기를 자랑해도 일본의 전자부품 없이는 빈껍데기라며 초강대국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이에 미국은 ‘슈퍼 301조’라는 무역통상법 제301조, 즉, “미국의 눈 밖에 난 국가와는 무역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 결과로 일본은 치명타를 입게 되었는데 금융과 제조업의 거품이 순식간에 증발하면서 도쿄 증시는 3분의 1토막이 났고, 금융기업들이 연쇄적으로 문을 닫으면서 이른바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20년 전 경제력으로 미국에게 반기를 들었던 일본이 이제는 군사력 카드를 들고 나왔다. 중국 위협론과 자신들의 역할론을 들고 나오며 자위대라는 이름의 족쇄를 서서히 풀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일본은 원거리 공습이 가능한 고성능 전투기와 공중급유기, 항공모함과 대형 상륙함과 같은 공격무기를 손에 넣었고, 수천 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양인 약 47톤의 플루토늄까지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약 80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양인 640kg의 플루토늄을 IAEA에 신고하지 않고 은닉했다가 적발되는 등 미심쩍은 행동도 이어가고 있다. -마지막 관문 '핵무장'만 남은 셈 일본이 이처럼 공세적 군사력을 갖추고 대량의 플루토늄까지 보유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미국의 용인과 협력 덕분이었다. 경제력을 갖추고 있는 일본은 이제 보통군대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막강한 공격력을 갖춘 군대까지 보유했고, 군사강국이 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인 핵무장만을 남겨놓고 있다. 일본은 핵무기를 개발하기 위한 핵물질과 기반시설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고, 대륙간탄도미사일로 전용할 수 있는 고성능 위성 발사체까지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의지만 있다면 몇 주 이내에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갖출 수 있다. 핵확산금지조약(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 제10조 1항에 따르면, NPT 가입국은 NPT에 가입했더라도 국가 비상사태나 국가이익이 위협 받는 상황에서는 UN에 통보하고 NPT를 탈퇴할 수 있다. 즉, 센카쿠에서 중국의 위협, 북한의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빌미로 얼마든지 NPT를 탈퇴하고 핵개발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이 일본의 핵무장을 용인하는 순간 경제력·핵 능력으로 일본은 미국에 다시 "NO"라고 맞서려 할 것이며, 그때는 미국도 일본을 통제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요컨대 미국은 일본 우익의 속셈과 그 위험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중국이라는 맹수를 잡기 위해 반성하지 않는 전범국가를 풀어줄 준비를 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는 일본에 맞설 강력한 군사력이라도 있지만, 상황이 이렇게 돌아감에도 불구하고 큰 소리로 허세만 부리며 막대기라도 주워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 대한민국은 만에 하나라도 유사시에 무엇으로 대응할지 이제는 국민들이 나서서 위정자들에게 물어볼 때가 아닐까? 이일우 군사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자위대 지구 어디서든 작전, 우리 입장 구체적으로 반영되지 않아 “대체 왜?”

    자위대 지구 어디서든 작전, 우리 입장 구체적으로 반영되지 않아 “대체 왜?”

    자위대 지구 어디서든 작전 자위대 지구 어디서든 작전, 우리 입장 구체적으로 반영되지 않아 “대체 왜?”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 주변지역에서 집단자위권을 행사할 경우 한국의 주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내용이 미·일 새 방위지침에 반영됐다. 그러나 이는 한국의 사전 동의를 반드시 구해야 한다는 우리 정부의 입장이 명시적으로 반영되지 않은 채 포괄적이고 추상적으로 표현됐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27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뉴욕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서 존 케리 미 국무장관,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 나카타니 겐 일본 방위상이 참석한 가운데 외교·국방장관 연석회의(2+2)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새로운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을 확정했다. 미·일 양국은 새 지침의 ‘일본 이외의 국가에 대한 무력 공격 대처 행동’ 항목(D 항목)에서 “미 일 양국이 각각 미국 또는 제3국에 대한 무력 공격에 대처하기 위해 주권의 충분한 존중을 포함한 국제법 및 각자의 헌법 및 국내법에 따라 무력행사를 따른 행동을 취해나간다”고 밝혔다. 이는 한·미·일 3국이 지난 17일 ‘3자 안보토의’(DTT) 직후 발표한 공동보도문에서 “제3국의 주권을 존중하는 것을 포함해 국제법을 준수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는데 동의했다”고 밝힌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당시 우리 국방부 측은 미·일 새 방위협력지침에 보다 구체화된 내용이 반영될 것이라고 밝혔으나, 새 지침에도 공동보도문과 같이 포괄적이고 일반화된 내용이 들어갔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국방부 고위당국자는 기자들과 만나 “미국이 아니라 일본과 긴밀한 관련이 있는 제3국이 공격을 받거나 그같은 공격이 일본의 안보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는 경우에도 일본이 대응할 수 있게 된다”면서 “그러나 새 지침은 일본 평화헌법과 완전히 일치하고 국제법에 충실히 따르며 역내 제3국에 대한 주권을 충분히 존중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당국자는 이어 “새 지침에 따른 미·일 방위협력이 역내 전체는 물론 한반도의 안보와 안정에 기여할 것으로 믿는다”면서 “역내 비상사태에 대한 우리의 노력을 지원하는 일본의 능력이 증강된다는 것은 그만큼 한반도 정세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주일 미군은 한반도 유사시 한반도로 들어가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지침은 1997년 한 차례 개정된 방위협력지침을 18년 만에 재개정한 것으로, 미군에 대한 일본 자위대의 후방지원을 대폭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특히 기존 지침은 미·일 방위협력의 지리적 범위를 최대 한반도와 대만 해협을 아우르는 ‘일본 주변’으로 제한했지만, 새로운 지침은 이 같은 지리적 제약을 철폐해 자위대가 전 세계를 활동 무대로 미군과 연합작전을 벌이고 중국에 대한 억지력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미·일 양국은 이 지침에서 ▲평소의 협력 ▲일본의 평화와 안전에 대한 잠재적 위협에 대한 대응(중요영향 사태) ▲일본에 대한 무력 공격 사태에 대한 대처 행동 ▲집단 자위권 행사를 전제로 일본 이외의 국가를 겨냥한 무력 공격에 대한 행동 ▲일본에서 발생하는 대규모 재해에서의 협력 등 5개 분야에 걸친 미군과 자위대의 협력을 규정하고 있다. 양국은 특히 일본의 평화와 안전에 중요한 영향을 주는 사태를 지리적으로 규정할 수 없다는 점을 지침에 적시하고, 평시부터 긴급사태에 이르기까지 ‘이음새 없는’ 형태로 일본의 평화와 안전을 확보하는 조치를 취해나간다고 밝혔다. 양국은 또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중국과의 충돌 가능성에 대비해 ‘도서(섬) 방위’를 명기했다. 지침은 “자위대는 도서도 포함한 육상 공격을 저지하고 배제하기 위한 작전을 주체적으로 실시하고 필요가 생겼을 경우 섬 탈환 작전을 실시하며 미군은 자위대를 지원한다”고 적시했다. 양국은 이와 함께 미국을 표적으로 하는 탄도 미사일을 일본 자위대가 요격하는 내용이 지침에 명기됐다. 특히 미군과 자위대는 탄도미사일 대처 능력의 종합적인 향상을 꾀하며 탄도미사일 발사를 조기에 탐지하기 위해 실시간으로 정보를 교환하기로 했다. 양국은 집단자위권 행사 시 자위대가 미군의 자산(무기)을 보호하거나 수색, 구난, 기뢰제거, 강제선박 검사, 후방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양국은 미국이 세계적으로 관여한 국제분쟁에서 자위대가 평화유지 활동, 인도적 지원, 재해구호, 해양 안전보장, 해적퇴치, 기뢰 제거, 대량살상무기 비확산 차단, 대테러 활동 등의 후방지원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제3국과의 방위협력이나 다자안전보장 방위협력을 추진하기로 했다. 우주와 사이버 공간에서의 협력도 새로운 협력 분야로 포함됐다. 양국은 각종사태 발생 시 미일이 대응방안을 협의하는 ‘조정기구’를 언제든지 설치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했다. 지침은 “양국 정부는 새로운 동맹조정 메커니즘을 설치해 평상시부터 긴급사태까지 모든 단계에서 미군과 자위대의 활동과 관련한 정책과 운용 면의 조정을 강화하고 정보 공유에 이바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미·일 방위협력지침은 일본 자위대와 미군의 협력 및 역할분담을 규정한 문서로서 1978년 옛 소련의 침공에 대비해 작성됐으며 1997년 한반도 유사상황을 가정해 한 차례 개정된 바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밀리터리 인사이드] 한국 vs 일본 군사력…우위 논란의 진실은?

    [밀리터리 인사이드] 한국 vs 일본 군사력…우위 논란의 진실은?

    세계 군사력 순위 1위는?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주저없이 ‘미국’을 꼽을 겁니다. 한 해에 자국 국방 분야에 쏟아붓는 돈이 올해 기준 577조원에 달하고, 우주 개발과 관련한 예산까지 합하면 1000조원을 넘어 우스갯소리로 ‘천조국’(千兆國)으로 부르는 사람도 있지요.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과연 어디에 위치해 있을까요. 병력과 첨단 장비, 구식 무기의 차이까지 감안하면 결과를 쉽게 내놓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전세계 언론에서 공신력이 있다고 보는 ‘글로벌 파이어 파워’(GFP)를 인용하도록 하겠습니다. GFP는 2003년부터 매년 100여개의 지표를 이용해 군사력 순위를 발표합니다. 언론과 군사 매니아들은 연초부터 GFP 순위 변화에 주목하는데요. 우리나라는 과연 일본과 독일, 이스라엘 등 군사강국과 비교했을 때 우위를 점할 수 있을까요. 꼼꼼하게 따져보겠습니다. 다만 이 데이터는 GFP에서 자체적으로 추산한 것으로, 각 국가 군용 장비의 수는 실제 보유 숫자와 명확하게 일치하지 않을 수 있으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또 GFP는 핵무기를 전력에서 제외했습니다. ●미국, 누구도 넘보지 못할 세계 최강 군사력 먼저 미국과 우리나라의 비교입니다. GFP에 따르면 미국은 인적 자원으로 인구 3억 2000만명, 정규군 140만명, 예비군 110만명이 있습니다. 항공기는 헬기 6196대, 공격용 헬기 920대, 폭격기 등 거점 공격기 2797대, 공중전을 주로 담당하는 전투기 2207대, 수송기 5366대로 총 1만 3892대라는 어마어마한 양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중에는 F-22, F-35 등 첨단 무기가 포함돼 있어 공군력은 누구도 넘보지 못할 세계 최강의 수준에 올라 있습니다. 지상전 무기로는 전차 8848대, 장갑차 4만 1062대에다 로켓을 무서운 속도로 쏘는 다연장 로켓포가 1331대입니다. 여기에 항공모함 20척, 잠수함 72척, 호위함 10척, 구축함 62척 등 473척의 막강한 해군력을 자랑합니다. 물론 항공모함을 제외하더라도 전략 핵잠수함, 이지스함을 가장 많이 보유해 전세계 분쟁지역에 즉각적인 화력지원이 가능합니다. 우리나라는 인구 4900만명, 정규군 62만명, 예비군 290만명으로 인구 대비 병력 수는 막강한 수준입니다. 또 헬기 668대, 공격용 헬기 77대, 거점 공격기 399대, 전투기 399대, 수송기 342대 등 1412대의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전차 2381대, 장갑차 2660대, 다연장 로켓포 214대로 지상전 장비도 무시하지 못할 수준입니다. 함정은 총 166척으로 잠수함 13척, 호위함 11척, 구축함 12척 등이 있습니다. 항공기 중에는 F-4, F-5 등 노후 기종이 다수 포함돼 있지만 F-35 도입을 앞두고 있고 차기 전투기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어서 기대가 됩니다. GFP는 한국을 군사력 순위 7위에 올려놨습니다. ●일본, 공군·해상 전력 특화…만만하게 봐선 안된다 여러분이 궁금해 하는 나라 중 하나로 일본은 어떨까요. 일본은 2차 세계대전 패전 뒤 만든 평화헌법 때문에 ‘자위대’(自衛隊)라는 애매한 이름의 군사 조직을 보유하고 있는데요. 24만 7173명의 정규군과 5만 7900명의 예비군은 다소 초라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24만여명(한국 16만여명)이 모두 부사관과 장교로 구성돼 있어 유사시 100만명의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이밖에 741대의 헬기와 122대의 공격용 헬기, 각각 289대의 거점 공격기와 전투기를 보유해 우리나라와 비교해도 적지 않은 수준입니다. 전차는 678대로 다소 적지만 장갑차는 2850대로 더 많습니다. 일본 전력의 핵심은 공군과 더불어 해상 전력인데요. 특히 2013년 취역한 경항공모함인 ‘이즈모’가 최근 실전 배치됐죠. 이외에도 ‘효가’, ‘이세’ 등 항공모항급 호위함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또 잠수함 16대, 이지스함을 포함한 구축함 43대, 최신 조기경보기 13대를 보유해 해군 전력은 사실상 우리를 앞섭니다. 병력 열세로 GFP 군사력 순위는 9위이지만, 이미 5세대 전투기 시제품을 내놓을 정도로 차세대 전투기 개발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고, 한 해 우리보다 많은 45조원의 국방예산을 지출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GFP 군사력 순위 11위인 이스라엘입니다. 인구는 782만명으로 우리나라의 6분의 1 수준이지만 정규군이 16만명이나 됩니다. 예비군은 63만명입니다. 또 항공전력은 우리나라보다 다소 열세이지만 전차 수는 4170대로 세계 최상위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장갑차는 1만대나 됩니다. 남녀 모두 군 생활을 해야 하는 전국민 징병제 국가로, 육군에 특화된 전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지리적 특성상 해군 전력은 전무하지만, 지상전은 실전 경험이 있는 장병이 다수인데다 국방예산이 우리의 절반인 18조원에 달합니다. 1~4차 중동전과 다양한 전차전 경험을 바탕으로 대전차로켓을 방어하는 ‘반응장갑’(전차의 갑옷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기술과 각종 기갑장비 생산 기술, 미사일 요격 시스템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여 무기 수출 강국으로도 잘 알려져 있죠. ●북한이 ‘군사강국’이라는 명성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북한은 36위입니다. 이 부분은 논쟁의 여지가 있는데요. 거점 공격기 516대, 전투기 458대 등 항공전력 940대에 전차 4200대, 장갑차 4100대로 재래식 무기 숫자로만 보면 우리나라를 압도합니다. 정규군 69만명, 예비군 450만명으로 인적 자원도 어마어마하죠. 함정도 잠수함만 70척에 달합니다. 하지만 한 해 국방예산이 8조원에 불과하고, 전쟁 필수품인 각종 유류와 탄약 등 군수 지원 능력이 열악하죠. 심지어 최신 전투기라고 해봤자 1985년 도입한 초기 4세대 전투기 Mig-29로, 우리의 공군전력과 비교하면 열세라는 것이 대체적인 군 전문가들의 시각입니다. 그나마 항공유와 훈련 부족으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앞에서조차 장난감 전투기로 모의 훈련을 보여주는 촌극을 보이기도 했죠. 전차도 2.5세대로 분류되는 재래식 T-72, 2세대인 T-62 전차를 주력 전차로 보유하고 있어 물량만 많을 뿐 열영상장비, 레이저 조준기 등을 갖춘 우리 3세대 전차 K-1(K-1A1) 전차와 정면 승부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일부 논란이 있지만 1991년 이라크전에서 K-1 전차의 모태인 미국의 M1 에이브람스 전차에 T-72 전차 대부분이 녹아내리다시피한 사실만 돌이켜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죠. 우리와 군사력이 비슷한 나라를 볼까요. 독일은 8위입니다. 정규군 18만명, 예비군 14만 5000명입니다. 장갑차가 5869대로 많을 뿐 전차는 408대, 거점 공격기 192대, 전투기 105대, 잠수함 4대 등으로 숫자로만 보면 다소 미흡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독일은 2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전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우수한 기갑장비 핵심기술(엔진·주포·장갑 등)을 갖게 됐고, 항공기는 대부분 최신 항공기이며 공중급유기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주요 무기 수출국이기도 하죠. 통일 이후 같은 패전국인 일본과는 반대로 군비를 크게 축소했지만, 여전히 우리보다 많은 한 해 42조원을 예산으로 씁니다. 프랑스도 정규군과 예비군이 각각 20만명이지만 독일과 마찬가지로 42조원의 막대한 예산을 사용하는 군사 강국입니다. 특히 항공모함 4척, 핵잠수함을 포함한 잠수함 10척, 호위함 21척을 보유하고 있고, 자체 생산한 ‘라팔’ 등 첨단 항공기를 운용해 우리보다 한 단계 높은 6위에 랭크됐습니다. 요즘 가장 ‘핫한’ 국가는 역시 중국입니다. 풍부한 인적 자원을 바탕으로 정규군 230만명, 예비군 230만명에 전투기와 거점공격기를 합해 2000대가 넘습니다. 전차는 9150대, 다연장 로켓포 1770대로 육군 전력도 놀라운 수준입니다. 노후 장비를 감안하더라도 미국과 더불어 지상전 최강자로 불릴만 합니다. 2012년 항공모함 랴오닝함을 취역했고, 자체 개발한 5세대 전투기 ‘젠-20’을 군에 배치하는 등 최신 무기도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늘려가고 있는데요. 한 해 국방예산이 155조원에 달합니다. 반대로 여전히 군사강국이지만 국가 부도 위기를 겨우 넘긴 러시아는 이제 미국을 따라잡을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입니다. 현재 전차 1만 5000대, 잠수함 55대, 전투기와 거점 공격기 2000대를 보유해 군사력은 미국에 뒤지지 않지만 한 해 예산이 64조원으로 중국에도 못 미칩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1)“힘들어 죽겠다”는 예비군 훈련장…무슨 일이? (2)군통령들의 꿈의 무대 ‘걸그룹 대첩’ (3)대한민국 육·해·공군 무기의 세계 (4)‘로보캅2’에 등장한 국산총 아시나요 (5)한국 vs 일본 군사력 우위 논쟁…진실은?
  • 朴대통령의 반격… “日 과거사 진정성 보여라”

    중남미 4개국 순방 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마지막 방문국인 브라질에서 “일본이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올바른 역사 인식을 기초로 진정성 있는 행동을 보여 주고 지역사회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수행해 나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브라질 현지 언론인 ‘에스타두 지 상파울루’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히고 “한국 정부는 일본이 평화헌법의 정신을 지키면서 지역의 평화 안정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일관된 입장을 가지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국제사회 모두가 공감하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의 이 같은 언급은 지난 22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중·일 정상회담을 하는 등 관계 개선에 나서는 상황에서 일본의 진정성 있는 행동을 거듭 촉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박 대통령은 동북아 문제에 대한 중국의 역할과 관련, “한·중 양국은 전략적 협력 동반자이자 경제협력의 파트너로서 북한 비핵화,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이라는 공동 목표를 가지고 협력해 오고 있다”며 “한·중 관계 발전은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와 안정, 평화 통일 기반을 조성하는 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브라질리아(브라질)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1965년 한·일 ‘독도 밀약설’의 숨겨진 진실

    1965년 한·일 ‘독도 밀약설’의 숨겨진 진실

    일본과의 역사를 둘러싼 갈등은 광복 70년을 맞아 더욱 첨예해지고 있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중요함은 단순한 민족적 감성이나 학술적 접근 때문만이 아니다. 최근 아베 신조 총리의 신사참배, ‘다케시마의 날’ 행사, 일본 중학교 역사교과서의 독도의 일본 영토 명문화, 평화헌법 수정을 통한 침략적 군사력 강화 흐름, 나아가 미국과 일본, 한국이 묶여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구축 움직임 등에서 보여지듯 역사에 대한 치열한 접근은 곧바로 현재 외교안보, 경제 영토 문제 등으로 직결되는 탓이다. 특히 독도를 둘러싼 일본과의 갈등은 쉬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50년 전인 1965년,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어두운 과거를 뒤로 하고 정식으로 국교를 맺을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독도 밀약설’이 있다. 1965년 당시 두 나라가 꽉 막힌 한·일회담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독도를 둘러싸고 은밀한 약속을 했다는 게 요지다. 핵심은 한·일 두 나라가 각자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한국이 실효 지배하는 현 상태를 그대로 둔다는 내용이다. 물론 이를 뒷받침할 증거는 없다. 양국의 공식 입장은 밀약은 없다는 것이다. KBS 1TV는 21일 밤 10시 시사기획 창 ‘광복 70주년 특집-독도 밀약설을 취재하다’를 방송한다. 취재진은 국민대 일본학연구소와 함께 한·일협정 외교문서 10만쪽 등 두 나라 정부 문서를 대상으로 독도 밀약설의 근거를 정밀 추적했다. 그 결과 밀약설을 강하게 뒷받침할 구체적 자료를 처음으로 확인했다. 독도 막후 교섭의 전말을 생생하게 전하고, 독도 막후 교섭이 현재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지 함께 짚어 본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日 “미·일 가이드라인 활동시 한국 주권 존중”

    日 “미·일 가이드라인 활동시 한국 주권 존중”

    일본은 향후 개정될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을 통해 안보 활동을 하더라도 한국의 주권을 존중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또 가능한 한 빠른 시기에 한·일 국방장관 회담을 열자는 제의도 했다. 한·일 양국은 14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5년 5개월여 만에 안보정책협의회를 갖고 일본의 집단적자위권 행사 등에 대한 양측의 입장을 교환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양국 간 군수협력에 대한 논의는 일본에서 제기하지 않았다”며 “이 문제에 대해 결론을 내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말했다. 앞서 백승주 국방부 차관도 최근 외신과 만나 “새로운 협정 체결 의향은 없다”면서 군수지원협정 체결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정부에서는 이날 이상덕 외교부 동북아 국장이 수석대표로, 박철균 국방부 국제정책차장이 차석대표로 나섰으며 일본에서는 이하라 준이치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이 수석대표, 스즈키 아쓰오 방위성 방위정책국 차장이 차석대표로 참석했다. 한·일 양국 간 외교·국방 라인이 2+2 형태로 참여하는 안보정책협의회는 1997년 양국 외교장관 합의에 따라 1998년 1차 회의가 개최됐다. 한·일 양국은 과거사 갈등이 고조되면서 2009년 12월 제9차 회의를 마지막으로 안보협의회 개최를 중단했다. 특히 이번 회의에서는 이달 29일 행해지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미국 상·하원 연설을 앞두고 27일쯤 발표될 것으로 보이는 미·일 가이드라인 개정에 대한 일본 측 설명이 있었다. 정부는 일본 측에 가이드라인이 투명성 유지와 함께 평화헌법의 정신을 견지하면서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고 과거 역사로부터 기인하는 주변국의 의구심과 우려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집단적자위권 행사의 경우 한국의 사전동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점도 상기시켰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다음달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시아안전보장회의(샹그릴라 대화)를 계기로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나카타니 겐 방위상 간의 한·일 국방장관 회의 개최를 희망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지방선거 완승’ 아베 장기집권 탄탄대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12일 치러진 지방선거 승리로 권력 기반을 더욱 단단하게 다졌다. 13일 NHK 등에 따르면 이날 개표가 끝난 가나가와, 미에, 나라 등 10개 광역지자체(도도부현·都道府縣) 단체장 선거에서 자민당과 연립여당인 공명당은 후보자 전원을 당선시키는 전승을 거뒀다. 41개 광역의회 선거에서도 자민당은 2284석 가운데 절반이 넘는 50.5%인 1153석을 따내며 오사카부를 제외한 40개 의회에서 제1당 자리를 차지했다. 40개 의회 가운데 반수 이상의 의석을 확보한 곳은 24곳으로 집계됐다. 자민당이 광역의회 의석의 과반을 획득하기는 1991년 선거 이후 24년 만이다. 자민당의 연립 파트너인 공명당도 광역의회 후보 169명 전원을 당선시켰다. 자민·공명 연립여당은 2012년 12월 아베 정권 출범 이후 참의원 선거(2013년 7월), 중의원 선거(2014년 12월)를 포함한 전국 단위 ‘선거불패’의 기세를 이어 가면서 내년 여름 참의원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됐다. 이번 선거 승리로 아베 총리는 올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재선할 가능성이 확실하게 됐다. 또 정권 운영의 주도권을 강화하게 되는 등 집단자위권 행사를 위한 안보법제 정비와 8월 전후 70주년 담화, 평화헌법 개정, 원전 재가동 등 현안에서도 보수·우익 색채를 더욱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게 됐다. 아베 총리는 3년 임기의 총재 선거에서 재선하면 5년 넘는 장기 집권이 가능하게 된다. 오사카 지역에서 ‘평화헌법’의 개정을 주장해 온 극우성향의 유신당과 그 산하 지역 정당인 오사카유신회도 70석(예전 62석)을 차지해 제1당 위치를 확보하는 선전을 보이며 아베의 우경화 행보에 힘을 보태게 됐다. 반면 민주당은 41개 광역의회 선거에서 의석이 2284석 가운데 264석(종전 276석)으로 11% 줄었고, 공산당은 75석에서 111석으로 약진했다. 제1야당인 민주당은 범야당의 지원 속에 홋카이도와 오이타현 지사 선거에서 공세를 펼쳤지만 역부족이었다. ‘아베노믹스’의 성과가 지방에까지 미치지 못했다고 소리 높이며 여당을 몰아붙였지만 대안 정당의 면모를 부각시키지 못했던 탓으로 분석됐다. 이번 광역지자체장 선거 투표율은 역대 최저인 47.14%로 집계됐다. 4년 주기의 지방선거는 12일과 26일 두 차례로 나눠 치러진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격동의 한·일 70년] “위안부 문제 해결이 관건… 정상회담 통한 연대로 극복해야”

    [격동의 한·일 70년] “위안부 문제 해결이 관건… 정상회담 통한 연대로 극복해야”

    서울신문은 올해 1월 2일부터 ‘격동의 한·일 70주년’ 관련 시리즈를 9회에 걸쳐 연재했다. 시리즈 마지막으로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와 이원덕 국민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등 일본 전문가들과 함께 바람직한 한·일 관계에 대한 방향을 모색했다. 지난 13일 서울신문 편집국에서 이뤄진 좌담회는 정치부 이제훈 기자의 사회로 진행됐다. →한·일 간 현주소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양:한·일 관계가 상당한 위기라는 말이 나온다. 하나는 국제공조화 측면에서 한·일 관계가 상호 간의 전략적 가치를 발견하기 힘든 지점에 와 있다고 본다. 미·일 동맹을 중시하는 일본의 입장과 한·중 관계 심화 속에서 한·미 관계를 강조하는 한국의 입장이 애매모호한 상태로 외교적인 위기 상태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한·일 간 위안부 문제가 가장 크며 이 문제가 국제쟁점화되면서 다시 한·일 관계를 악화시키는 악순환 구조에 와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 정부가 미국과 유럽, 유엔에 가서 일본의 부도덕성을 고발하는 등 구조적인 긴장과 위기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복합골절’이라고 본다. -이:한·일 관계 50년사에서 최악의 상황에 와 있다고 많이 얘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1970년대 김대중 납치 사건, 문세광의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이 있을 때와 비교하면 그렇게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특히 일본의 혐한론이 대두되는 상황이고 한국은 한국대로 일본 무시론, 경시론 등 이런 것들이 새로운 풍조로 등장하고 있다. 최고 지도자의 소통이 부재된 가운데 여러 가지 오해와 불신이 정부 레벨에서뿐만 아니라 국민 수준에서 확산되고 있다. 일본은 일본대로 약간 전도된 피해 의식을 한국에 대해 느끼고 있다. 한국이 거듭된 사죄를 반복적으로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즉 한반도 전략론의 부재가 오늘날 한·일 관계의 현주소다. →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보는지. -양:위안부 문제가 쟁점화돼 있다. 한·일 간의 최대 문제고 이 문제가 풀리지 않는 한 진전은 없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자 할머니들이다. 정대협이라는 강력한 조직이 있다. 현재 문제는 위안부 건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의 타협이 부재한 상태에서 양국 정부가 최대의 현안으로 삼으면서 이 문제가 결과적으로 악화됐다. 일본 정부가 고노 담화를 수정한다든지 하는 것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피해자에게 사과하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한국 정부가 골대를 옮긴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일본에서는 “도대체 어디까지 사과해야 하냐”고 말하는데. -이:일본 측에서 보면 그런 면이 있다. 한·일 관계가 전체고 역사 문제가 부분이고 여러 가지 이슈 중 하나가 위안부 문제다. 역사 문제가 한·일 관계 전체를 포섭하는 비대칭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다. 국익이나 전략적인 입장에서 볼 때도 대단히 이 문제를 잘못 다루고 있다고 본다. 개념 정리가 모호한 상태에서 일본에 공을 던지고 선제적 조치가 전제되지 않으면 해결이 없다는 논리로 접근한다. -양:입법 조치를 통해, 즉 특별법을 만들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있다. 하지만 일본은 위안부 배상에 대해서는 현재 고려치 않고 있다. 일본 국회에서 과감하게 특별법을 만들어 전쟁 범죄를 인정하고 사죄하면 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렵다. 아베 내각에서 특별법을 만든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위안부 문제 때문에 독도 문제가 가려져 있는데. -이:독도 문제는 근본적으로 양국 간의 기본 입장이 충돌하고 있기 때문에 단기적인 처방은 없다. 아베 정부 들어서 영토 인식이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마찰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가 실효지배를 하고 있기 때문에 현상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본의 행태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대국적 견지에서 관리해 나가야 한다. →우리가 독도 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양:과거 이명박 전 대통령이 독도에 대해 집착을 보였다. 결과적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사과 발언 이후 일본에서 한국을 지지하던 매체나 기반이 상실됐다. →원폭 피해자 2, 3세 문제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국내 지원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있는데. -양:지난 2월 국회에 원폭 피해자 보상과 관련한 법이 상정된 상태다. 일본은 1965년에 피해보상권을 다 인정했다고 얘기하면서 어떻게든 피해 보상을 하지 않으려고 회피했다. 한국 정부는 원폭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못 하고 있다. 원폭 피해자 1, 2세보다 3, 4세에 대한 피해 보상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이:원폭 피해자는 매우 작은 쟁점이고 피해자들도 일본 정부와 시민단체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는 경우도 있다. 한·일 간의 핵심 이슈는 아니다. 더 큰 이슈를 꼽으라면 강제 징용 문제에 따른 대법원 판결이다. →일본 기업이 우려를 표시하고 있는데 대법원 판결에 따른 압류 등의 조치가 이뤄진다면 어떻게 봐야 하나. -이:대법원은 그 이유가 일본의 식민지배가 불법이라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최고재판소는 대일 역사 청산과 관련해 이미 1965년 피해보상 문제가 해결됐다는 관점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 정부가 일본 해당 기업에 대해 몰수나 강제 집행을 하는 것인데 그것이 가져올 파장은 엄청나다. 외교부 당국자들이 고민하는 것을 볼 때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줄 돈이 1억원이라고 하면 30조원 정도의 예산이 필요한 것으로 나온다. 이것을 한국 정부가 지불해야 할 것인지, 일본 측에서 해야 할지 문제가 된다. 이럴 경우 외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넘어선다. -양:한국은 2005년 민관공동위원회에서 강제징용에 대해 상당 부분 해결됐다고 얘기했다가 2012년 한국 대법원에서 일본이 불법 점거했던 것이기 때문에 일본의 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일본이 한국이 골대를 바꾼다고 얘기하는 것은 바로 2012년에 2005년과 달라졌기 때문이다. 한국의 약점이라면 약점이다. 독일 같은 경우 기업이 재단을 만들어 계속 배상을 하고 있다. 포스코 같은 곳에서 돈을 내고, 일본 기업도 돈을 내서 재단을 만들어 보상하는 방법도 있다. →악재들만 있는데 문화재 반환 부분도 폭탄 중 하나인가. -이:한·일 관계의 최대 문제는 인식론에서 불균형에 있다고 생각한다. 대일 외교의 균형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 양국 간에 폭탄은 언제든지 있었다. 마치 한·일 관계는 이런 폭탄들만 보이는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한·일 관계에서 무역, 인적왕래, 경제, 문화 또 문화교류의 미담도 있다. 그러나 한·일 관계의 관심이 온통 악재 쪽으로 가 있는 것이 문제의 근원이라고 본다. 한·일 관계를 개선하는 것은 균형점으로 돌아오는 것이 시작이다. -양:문화재 문제는 쓰시마섬 불상 문제, 일본의 반한 감정이 이슈인 것 같지만 사실 잘 해온 것도 있다. 몽유도원도를 세 번 빌려서 전시한 적도 있고 의궤도 반환받은 바 있다. 문화재 반환을 쟁점으로 하고 하나씩 풀어 나가는 것이 좋다고 본다. 조선왕실의궤를 반환받은 것은 한·일 간 밝은 뉴스 중 하나다. 위안부 문제만 쟁점화하지 말고 위안부 문제를 보완할 수 있는 한·일 관계 해결의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재 반환이 좋은 사례가 될 것으로 본다. →8월로 예상되는 아베 담화를 어떻게 보나. 대일 외교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나. -이:단기적인 해법은 정상회담이 가장 효과적이다. 한·일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한 방을 찾으라면 정상회담이다. 정상회담을 통해 신뢰가 구축돼야 이 문제를 풀어 갈 수 있다. 정상회담을 통해 공동기구를 구성하고 양국 전문가가 모여서 합리적인 해법을 찾는 방식으로 가는 게 합당하다고 본다. 올해 중반까지 정상회담이 없다면 한·일 간 기회를 찾기가 어렵다. 일본 역대 정권 중 아베 정권은 가장 극단적인 정치적 DNA를 가지고 있다. 일본 국민과 정권을 분리하고 다른 생각을 가진 세력과 국경을 넘는 연대를 통해 한·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양:향후 한·일 관계를 비관적으로 보면 장기적으로 악화될 수 있다. 중국의 부상으로 한국은 중국과 협력할 수밖에 없고 일본은 중국을 견제할 수밖에 없는 관계다. 이런 구조가 당분간 갈등의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본다. 동북아 구조상 일본 헌법 9조가 노벨평화상 후보로 오르는 것도 중요하다. 평화헌법을 그냥 두는 것이 한·일 양국은 물론 한반도 평화로 가는 기재이기 때문이다. 정리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셔먼 對 메르켈/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셔먼 對 메르켈/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요즘 부쩍 과거사와 관련한 아베 신조 일본 정부의 역사의식을 겨눈 발언이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다. ‘과거사 빨리 정리하고, 북핵 같은 현안에 치중하자’(웬디 셔먼 미 국무부 차관), ‘독일은 과거와 정면으로 마주했다’(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8월의 아베 담화가 미래지향적이길 기대한다’(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일본의 사죄 아직도 충분하지 않다’(오에 겐자부로)…. 국제적 거물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던진 말의 파장이 만만치 않다. 특히 셔먼 차관과 메르켈 총리의 언사는 대비되는 시각과 반향 탓에 뒤끝이 시끌벅적하다. 이들의 말을 다시 곱씹어 보자. 셔먼은 과거사 문제의 해결과 화해가 안 되는 책임이 한·중·일 모두에 있다고 했다. 여기에 ‘정치 지도자가 과거의 적을 비난해 값싼 박수를 받는’ 식의 표현이 자극적이다. 지난 1월 방한 때 ‘위안부 동원 강제성을 인정하고 일본의 아시아 침략·식민지배에 사죄한 고노·무라야마 담화가 견지되기를 바란다’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반면에 일본 심장부에서 ‘과거사 정리가 화해를 위한 전제’라며 아베 총리에게 전범국가의 진정한 반성을 촉구한 메르켈은 ‘존경의 아이콘’으로 등극한 느낌이다. 셔먼 차관의 말에 ‘우리 편인 줄 알았는데 뒤통수 맞았다’는 반응이 쏟아졌다면 메르켈 총리의 발언에는 ‘속이 시원하다’는 평이 압도적이다. 말의 전후 사정은 뒤로 물린 채 일단 ‘내 편 네 편’ 식의 보편적인 점수 매기기가 월등히 앞선다. 과거사 해결 방식을 향한 한국민의 입장이야 대동소이할 것이다. 가해자 일본의 책임 인정과 반성, 그 후 더 나아가서 보상이다. 셔먼 미 국무부 차관이나 메르켈 독일 총리의 언사는 당연히 그 국민적 감정을 거스르거나 보듬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를 되돌아보자. 좋게 만들었건 나쁘게 만들었건 한반도의 운명을 갈랐던 주체들이 뭘 책임졌는가. 주어진 굴레를 짊어지고 해결한 건 늘 우리였다. 한마디에 웃고 우는 어린애 같은 단세포적 반응을 이젠 치우자는 말이다. ‘말의 성찬’에 우왕좌왕 쏠리기보다 현실을 직시하는 게 우선이다. ‘독일 정부에 들어보니 일본 정부더러 어떻게 하라는 건 아니었다고 하더라.’ 메르켈 총리의 과거사 관련 발언에 일본 정부를 대변하는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낸 이 공식 논평이 압권이지 않은가. 하기야 그 강변은 새삼스럽지 않다. 문제의 발언을 한 메르켈 총리의 방일 하루 전 집권 자민당이 창당 60주년을 기념해 올해 주요 활동 목표로 설정한 게 바로 ‘평화헌법’ 개정과 야스쿠니 신사 참배이다. 누가 뭐래도 ‘군사 대국화’ 구상을 밀어붙이겠다는 심산이 빤해 보인다. 일본이 8월 발표할 예정인 전후 70년 담화에 ‘통절한 반성’이니 ‘마음으로부터의 사죄’ 같은 표현이 담길지 모른다는 기대가 있다고 한다. 물론 기대되는 일이다. 하지만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입에 발린 말은 상처를 더 깊이 곪게 만들 뿐이다. ‘혹시’와 ‘역시’의 되풀이 대신 눈을 부릅떠 현실을 지켜보자. 미 국무부 홈페이지 지도에 ‘리앙쿠르암’(독도의 서양식 표기)이 왜 사라졌다가 불쑥 나타났는지 그 이유부터 정색하고 따지자는 말이다. kimus@seoul.co.kr
  • “폭력적 천황·남성 중심 문화가 전쟁 지지하고 위안부 부정해”

    “폭력적 천황·남성 중심 문화가 전쟁 지지하고 위안부 부정해”

    “일본 내에서도 위안부에 대한 비판이 있습니다. 아베 총리와 달리 국민들의 사죄 의식은 강합니다. 국가가 진심으로 사죄하고 배상해야 합니다.”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노작가는 단호하면서도 분명하게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강조했다. 1994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일본 현대문학의 거장 오에 겐자부로(80)는 13일 오전 서울 마포구 동교동 한 찻집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백발이 성성한 얼굴로, 목 위 마지막 단추까지 꼭 잠근 모습으로 들어섰다. 외모에서 드러나는 고지식함은 양심적인 지식인으로서의 단호함을 한껏 드러내고 있다. 그는 사실적 고백을 담은 장편소설 ‘익사’의 국내 출간에 즈음해 방한했다. 오에는 이와 함께 일본 우익정권을 떠받치는 천황·남성 중심 사고를 정면 비판했다. 소설이 담고 있는 문제의식과 맞닿는 부분이다. 그는 일본의 우경화에 우려를 지속적으로 표시해 왔고, 일본의 평화헌법 9조를 지키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는 “일본의 천황·남성 중심 폭력적 사고방식은 여성 차별에서 기인한다. 근대 이후에도 줄곧 이어져 왔고, 지금도 여성들은 폭력에 노출돼 있다. 위안부를 부정하는 건 여성을 경시하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최근 극단적인 우경화 경향을 보이는 일본 정권에 대한 날 선 비판도 이어졌다. “위안부는 존재했다. 식민지 여성들을 동원했고, 범죄적인 수단도 동반됐다. 위안부는 전체주의 일본이 군인을 위한 여성의 역할을 담당하도록 한 존재다. 일본은 이 문제를 사죄해야 한다. 일본 역사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한 구조를 만든 일본의 후진성을 인정해야 한다. 앞으로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국민 의식 구조도 바꿔야 한다.” 2009년 일본에서 출간된 ‘익사’는 작가의 분신(소설의 주인공)의 입을 빌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소설 속 아버지는 우익 사상가나 군인보다 더 우익적이며 전통적인 천황 중심의 전체주의 국가사상에 빠져 있는 인물이다. 또 다른 주요 등장인물인 여성 ‘우나이코’는 큰아버지에게 강제로 강간당해 임신한다. 일본 우익정권을 정면 비판하는 상징적인 설정이다. 일본에서 ‘익사’가 우익정권에 대한 불경 소설로 분류되는 이유다. 지난해 발표한 ‘만년양식집’(晩年樣式集)이 그의 마지막 소설이다. 그의 부인과 여동생이 중심 화자로 등장하는 자전적 소설로, 이 작품 역시 문학동네에서 내년 국내에 번역 출간할 예정이다. 그는 “‘히로시마 노트’, ‘오키나와 노트’와 함께 나의 여성관이 잘 표현된 소설이다. 앞으론 보다 명쾌하고 명료한 문장의 에세이를 쓰려 한다. 여러 집회에서 일본의 평화 문제와 생활 문제 등을 발언한 내용을 중심으로 소설적 색채가 강한 에세이를 1~2권 정도 더 쓸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오에 겐자부로 “日, 충분히 사죄안했다”

    오에 겐자부로 “日, 충분히 사죄안했다”

    “일본은 아직 한반도를 비롯한 아시아에 저지른 막대한 범죄를 충분히 사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과거를 부정하고 새로운 시대를 만든다는 건 또다시 잘못을 되풀이하는 일입니다.” 199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일본 현대문학의 거장이자 일본의 대표적인 양심적 지식인으로 꼽히는 오에 겐자부로(80)가 12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오에는 이날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백양콘서트홀에서 열린 ‘연세대·김대중 세계미래포럼’에서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는 당시 일본이 얼마만큼 무서운 범죄를 저질렀는지 상상도 못 한다”면서 “전후 일본인들의 반성과 고민을 모두 뒤집고 새로운 시대를 만들겠다는 사람(아베 총리를 지칭)을 일본인 과반이 지지하고 있다”고 우경화된 일본 사회의 현주소를 꼬집었다. 그는 이어 “전쟁에 대해 깊은 반성을 제대로 하고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 나가야겠다는 생각이야말로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 할 유산”이라면서 “일본의 정치, 사회, 문화가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에는 많은 일본의 양심적인 지식인들과 함께 일본 평화헌법 9조를 지키는 활동을 벌여 나가면서 일본의 과거사 반성 등을 촉구해 왔다. 특히 과거사 부정과 우경화, 헌법 개정 등을 추진하는 아베 총리에 대해 신랄한 비판의 목소리를 제기하고 있다. 오에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인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의 간곡한 강연 요청을 받아 이번 포럼에 참석했다고 밝혔다. 2008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마르티 아티사리(78) 전 핀란드 대통령은 ‘세계 평화의 오늘과 미래’를 주제로 열린 이날 포럼에서 “어떤 사회든 깊은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지속 가능한 평화를 이룰 수 없다”면서 “더 공정한 수익 분배가 이뤄지는 사회에서는 사람들 간 신뢰가 깊어진다”고 강조했다. 또 “이 세상에 해결할 수 없는 분쟁은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10일 ROTC중앙회 강연회에서 “통일준비위원회 내에 흡수통일준비팀이 있다”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져 물의를 빚은 정종욱 통준위 부위원장은 이날 기조연설에서 “우리 정부는 남북한 어느 일방에 의한 흡수통일이 아닌 평화통일을 지향한다”고 밝혔다. 정 부위원장은 “통준위 활동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용어 선택이 적절치 못해 잘못 보도된 것을 유감으로 생각한다”면서 “위원회 내에 흡수통일준비팀은 존재하지 않고 흡수통일을 전제로 연구하는 팀도 없다”고 못 박았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아베 듣고 있을까…日양심들의 외침] 日애니 거장의 일침 “주변국 원한 직시를”

    [아베 듣고 있을까…日양심들의 외침] 日애니 거장의 일침 “주변국 원한 직시를”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인 미야자키 하야오(74) 감독이 일본이 제국주의 시대에 일으킨 문제를 거론하며 해결을 촉구했다. 미야자키 감독은 지난 16일 TBS라디오 인터뷰에서 “일본은 제국주의를 흉내 내면서 결과적으로 300만명의 사망자를 낸 전쟁을 했고, 원자폭탄이 두 번이나 떨어지는 일을 당했다. 주변국의 원한은 없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닛칸스포츠가 보도했다. 미야자키 감독은 이런 역사를 “지금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꼽으면서 “법적으로 해결해도 감정이 풀리지 않고 남아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든 해야 한다”며 민족과 종교가 얽히고설킨 중동 일대의 상황에 비교하면 일본이 안고 있는 역사 문제는 매우 알기 쉬운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야자키 감독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며 일본이 헌법을 수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세계적인 무질서는 이제부터 더욱 많아질 것이다. 나는 아베 총리가 말하는 것이 너무 단순하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면서 “이럴 때 평화헌법이 도움이 된다. 헌법을 지켜야 한다. 조금 저쪽으로 가고 싶어도 가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미야자키 감독의 이 같은 발언은 일본의 과거 정치 지도자들이 식민지 정책을 추진하고 침략전쟁을 일으킴으로써 자국민과 이웃 국가들에 큰 고통을 줬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법적 해결’이나 감정이 풀리지 않은 문제 등을 거론한 것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이 법적으로 완전히 해결됐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에 대한 비판으로 풀이된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정치인 멍에 내려놓고 떠난다” 이부영 정계 은퇴

    “정치인 멍에 내려놓고 떠난다” 이부영 정계 은퇴

    새정치민주연합 이부영(73) 전 의원이 11일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이 전 의원은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치인의 멍에를 내려놓고 떠난다”면서 “좀 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었으련만 능력과 식견이 모자라 여기서 그쳐야 하겠다”고 말했다. 이 전 의원은 이날 당에 탈당계도 제출했다. 그는 “2·8 전당대회를 성공리에 끝내고 단결과 도약을 위해 새롭게 전진하는 문재인 대표를 비롯한 당원 동지 여러분에게도 행운과 승리가 함께해 주기를 온 정성을 다해 빌겠다”면서 “정치를 떠나더라도 이 나라가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사는 사회가 되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태겠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해직 기자 출신인 이 전 의원은 1990년 3당 합당 이후 ‘꼬마민주당’에 합류해 14·15대 총선에서 서울 강동갑에 당선됐다. 1997년 조순·이회창 연대 이후 한나라당 후보로 16대 의원이 돼 부총재를 지냈다. 2003년 7월 탈당해 열린우리당에 합류, 의장을 지냈다. 17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 2005년 장묘법 개정 운동을 통해 수목장 대중화에 기여했고, 동북아평화연대를 이끌며 2010년 러시아 연해주 우스리스크에 고려인문화센터 건립을 지원했다. 지난해부터는 한·일협정재협상국민행동 대표로 ‘일본 평화헌법 9조(침략 금지 조항) 노벨상 추천 운동’을 이끌고 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정치인 멍에 내려놓고 떠난다” 이부영 정계 은퇴

    “정치인 멍에 내려놓고 떠난다” 이부영 정계 은퇴

    새정치민주연합 이부영(73) 전 의원이 11일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이 전 의원은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치인의 멍에를 내려놓고 떠난다”면서 “좀 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었으련만 능력과 식견이 모자라 여기서 그쳐야 하겠다”고 말했다. 이 전 의원은 이날 당에 탈당계도 제출했다. 그는 “2·8 전당대회를 성공리에 끝내고 단결과 도약을 위해 새롭게 전진하는 문재인 대표를 비롯한 당원 동지 여러분에게도 행운과 승리가 함께해 주기를 온 정성을 다해 빌겠다”면서 “정치를 떠나더라도 이 나라가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사는 사회가 되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태겠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해직 기자 출신인 이 전 의원은 1990년 3당 합당 이후 ‘꼬마민주당’에 합류해 14·15대 총선에서 서울 강동갑에 당선됐다. 1997년 조순·이회창 연대 이후 한나라당 후보로 16대 의원이 돼 부총재를 지냈다. 2003년 7월 탈당해 열린우리당에 합류, 의장을 지냈다. 17대 낙선한 뒤 2005년 장묘법 개정 운동을 통해 수목장 대중화에 기여했고, 동북아평화연대를 이끌며 2010년 러시아 연해주 우스리스크에 고려인문화센터 건립을 지원했다. 지난해부터는 한·일협정재협상국민행동 대표로 ‘일본 평화헌법 9조(침략 금지 조항) 노벨상 추천 운동’을 이끌고 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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