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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요르단 반세기만의 화해(특파원 수첩)

    ◎두정상 악수땐 남북한정상 얼굴 “오버랩” 『수세대에 걸친 적의와 피와 눈물,그리고 고통과 전쟁을 뒤로 하고 이제 유혈과 슬픔에 종지부를 찍기로 결의한다』 25일 요르단의 후세인국왕과 이스라엘의 라빈총리가 클린턴미대통령이 동석한 가운데 공동발표한 「워싱턴선언」의 첫 머리다. 지난 48년 건국한 이스라엘은 국경을 접하고있는 아랍국 요르단과 반목과 갈등의 역사를 거듭해왔으나 이날로 근 반세기에 걸친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대화해를 선언한것이다. 양국정상은 이날 상오10시 백악관의 로즈가든에서 화해의 악수를 교환했다.꼭 46년간의 교전상태로부터 처음으로 평화의 대로에 오른 것이다. 공동선언의 자리를 마련한 클린턴대통령이 먼저 연설을 했다.그는 『역사란 용감한 지도자들이 과거로부터 탈피하여 새로운 미래를 창조할때 비로소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등단한 후세인 요르단국왕은 『내 생애에 이같은 순간이 오리라고는 기대하지도 못했다』면서 감격해했고 라빈 이스라엘총리는 『후세인국왕과 본인의 악수는 양국국민이 더이상 서로를 적대시하지 않고 상대방에 맞서 무기를 들지 않을 것임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화답했다. 이날 「워싱턴선언」이 당장 발효되는 평화협정은 아닐지라도 수개월내에 정식협정으로 조인될수있는 중요내용을 폭넓게 담고있다. 이 선언은 향후 상대방의 안보에 부정적이거나 평화협상의지에서 벗어나는 어떤 행동도 하지 않을 것임을 다짐하고있다.또 전화·전선의 연결에서부터 국경의 개방,제3국인의 자유로운 양국 여행,양국 경찰의 범죄수사 공조체제등 구체적인 사항까지 명시하고있다. 이날 요르단­이스라엘 공동선언은 과거 이스라엘­이집트평화협정,작년 9월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해방기구 자치협정과 함께 중동평화정착의 새로운 이정표로 평가되고있다. 이들 중동평화의 틀이 모두 미국의 적극적인 주선아래 이뤄진것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후세인왕은 금년에만도 지난 1월과 6월 두차례에 걸쳐 미국을 방문,클린턴대통령을 만나 이스라엘과의 평화구축문제를 은밀히 논의했다. 미국은 지난 90년 걸프전때 이라크편을 든 요르단이지만 각종 경제원조및 9억5천만달러에 이르는 외채경감을 약속해주면서 이스라엘과의 평화를 유도했던 것이다. 67년 중동전쟁의 영웅인 라빈총리가 대아랍평화정책을 선도하고있고 18세에 왕위에 올라 지금까지 46년간 요르단을 통치해온 아랍권의 거물지도자 후세인왕이 이스라엘과 악수를 하고있다. 북한 김일성의 돌연한 죽음과 그를 승계한 김정일체제 등장의 와중에서 한때 눈앞에 다가왔던 남북정상회담은 아직 기약이 없다. 후세인왕과 라빈총리의 악수모습을 보고있지만 뇌리속에선 남북정상들의 모습이 그위에 오버랩된다.
  • 「김일성사상」 정관가 반응과 대응

    ◎“주말의 충격”… 즉각 비상근무 돌입/사망원인·조문사절 배경 분석 분주/김 대통령 오찬중 보고에 “깜짝”/북의 군사동향 시시각각 체크/박 경호실장 회담전 사망 예감 들었다” 9일 낮 북한주석 김일성의 돌연한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정·관가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 비상조치와 더불어 앞으로의 대응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긴박하게 움직였다. ▷청와대◁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개최 보름을 앞두고 김일성의 돌연한 사망에 접한 청와대는 당혹감과 아쉬움이 교차. 김영삼대통령은 이날 긴급안전보장회의를 소집한 자리에서 『보름후면 남북정상이 함께 모여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의 장래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계획이었는데 아쉽게 됐다』고 솔직한 심정을 피력.김대통령은 『그러나 계속해서 한반도의 평화와 7천만의 안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역설해 남북대화의 빠른재개에 대한 희망을 피력. 김대통령이 이날 김의 사망소식을 접한 것은 본관 인왕실에서 있은 여성정책심의위원들과의 오찬장.김대통령은 12시2분쯤 김석우의전비서관의 메모를 통해 이를 보고받고는 『김일성이 죽었다고 한다』면서 놀란 표정으로 퇴장. 김대통령은 곧바로 옆방으로 들어가 전군에 비상경계령을 내리도록 조치하고 국가안전보장회의 소집을 지시. 김대통령은 12시10분쯤 뉴스를 듣고 황급히 청와대로 들어온 한승주외무·이병대국방장관,김덕안기부장,박관용비서실장,정종욱외교안보·주돈식공보수석과 대책회의를 갖고 국민들이 안심하도록 당부하고는 우리가 전쟁을 하는 일은 없을 것임을 북한에 확인시키는 「평화정책불변」을 강조. ○…이날 안전보장회의에서 김대통령은 『우리정부는 언제 어떤 사태가 일어나더라도 대응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춰왔다』면서 『국민들은 어떤 변화에도 동요 없이 생업에 전념해달라』고 거듭 당부. 이날 안보회의가 급거 소집되는 바람에 관계장관들은 대개가 회의가 임박해서야 청와대에 도착했고 정재석경제부총리는 김대통령이 입장,국민의례까지 끝내고서야 입장. 청와대에 10여분 일찍 도착한 관계장관들도 상황파악이 안돼 대기실에서 의견을 교환하기에 바빴는데 한승주외무장관은 이영덕국무총리가 『외국의 조문사절을 안받는게 굉장한 의미가 있는 것 같다』면서 판단을 구하자 『글쎄요』라고만 언급. 또 이양호합참의장은 이날 회의참석자들에게 군당국이 준비한 「김일성사망관련 군사대비」란 비밀문건을 배포. 주수석은 안전보장회의가 끝난뒤 통일부총리·외무·국방장관,안기부장의 분석적인 보고가 있었다고 발표했으나 그내용에 대해서는 함구. ○…청와대의 박상범경호실장은 얼마전 김대통령에게 『정상회담 전에 김일성이 죽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는 자신의 생각을 전했던 것으로 알려져 관심. 박실장은 꿈에 김일성이 죽는 모습이 자주 나타난다면서 김의 사망을 전망했었는데 관계자들은 박실장이 기공에 뛰어나고 오랜 경호전문가로 감각이 발달했다는 점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반응. ▷총리실◁ ○…이영덕국무총리는 상오 11시 조지호 중국 산동성장의 예방을 받은 뒤 북한의 중대발표 소식을 접하고 집무실에서 대기하다 TV를 통해 김일성의 사망소식을 들었다. 이총리는 곧바로 청와대에연락을 취한 뒤 이흥주비서실장과 김시형행정조정실장을 불러 김일성의 사망에 따른 부처별 긴급조치사항을 점검할 것을 지시. 이총리는 하오 1시30분쯤 집무실에서 간부들로부터 상황보고를 받은 뒤 국가안전보장회의 참석을 위해 청와대로 출발. 한편 황영하총무처장관은 하오 1시30분 전 공무원에 대한 비상대비령을 발동,비상시 즉시 연락이 가능한 체제를 유지하고 부득이한 사유로 근무지를 벗어날 때에도 미리 행선지를 알리도록 지시. ▷내무부◁ ○…내무부는 이날 하오 1시를 기해 전국경찰에 갑호비상근무령을 내리고 일선 행정기관장에게 정위치 근무를 지시하는등 긴급조치 마련에 발빠른 행보. 최형우장관은 이날 방한중인 중국 산동성 조지호성장 일행과 오찬을 함께 하던중 긴급호출을 받아 식사시간을 단축시킨채 긴급안전보장회의와 비상국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청와대로 총총걸음. 비상근무중인 본부 공직자들은 TV뉴스에 눈길을 모은채 김일성의 직접적인 사망원인과 북한의 동향,그리고 앞으로 북한체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등 관심이 집중.한 고위 관계자는 『유일체제의 김일성의 급작스런 사망으로 후계체제가 확립될 때까지 시간이 걸리거나 후계구도 불안정으로 우리에게도 시련이 닥칠 것에 대비해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국방부◁ ○…국방부는 평양방송을 통해 낮 12시쯤 김일성사망 사실이 밝혀지면서 급박하게 움직이기 시작. 국방부는 먼저 전군에 경계태세 강화조치를 내려 유사시에 대비하는 한편 전직원의 퇴근을 중단하고 이미 퇴근한 직원들도 이날 하오 3시까지 사무실에 복귀토록 조치.이와함께 비상시 위기조치반을 가동하기 위한 사전단계로 위기관리 초기대응반을 운용.국방부 정책기획관이 반장인 초기대응반은 정책·인사·동원·군수등 관련 부서 실무진으로 편성돼 미리 준비돼있는 위기상황 대비책을 점검하고 대책을 강구하는 임시 기동타격대(태스크 포스). 초기대응반은 이날 첫 회의에서 김정일의 권력승계가 원활히 이루어질 것인지를 예의주시하면서 상황에 맞춰 대책을 세워나가기로 일단 방침을 수립. 국방부는 또 조만간 차관보를 반장으로 하고 실무국장등을 위원으로 하는 위기조치반을 본격 가동할 예정. 한편 한미연합사는 이날 낮 12시30분 클라우치참모장등이 참석한 가운데 한미연합사 위기조치반을 따로 소집,북한의 정세를 면밀히 살펴보기로 결정. 국방부는 또 북한의 군사동향과 정세변동상황에 대한 정보를 그때그때 입수할 수 있도록 정보수단의 운용을 늘리는 방안을 주한미군측과 협의할 계획. ▷외무부◁ ○…김일성의 사망이 북한 내부는 물론 남북관계,동북아정세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내다보면서 미국·일본·중국·러시아등 주변 4강과 긴밀히 연락을 취해가며 사태를 예의주시. 한승주외무부장관은 김의 사망소식을 접한 직후 크리스토퍼 미국무장관과 제네바에 있는 북­미 3단계회담 미측 수석대표인 로버트 갈루치 국무차관보등과 전화통화를 갖고 향후 대책을 숙의. 한장관은 또 전기침중국외교부장과 고노 요헤이(하야양평)일본외무장관,안드레이 코지레프 러시아외무장관과도 가능한 빠른 시간안에 연락을 취해 김일성의 사망에 따른 국제공조체제를 구축할 방침. 외무부는 이날 한장관 주재로 열린 긴급 간부회의에서 외무부차원의 대책을 집중 논의하는 한편 사태의 중대성을 감안,박건우차관을 반장으로 관계 실국을 중심으로 비상대책반을 설치. 외무부는 아울러 김일성의 정확한 사망원인과 미·일·중·러시아등 주변 4강의 움직임등을 면밀히 체크해 보고하도록 재외공관에 긴급 지시. ▷통일원◁ ○…낮12시부터 송영대차관 주재로 긴급간부회의를 열고 다각적인 대응책을 논의. 이날 상오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에 참석하고 돌아온 이홍구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은 하오 1시15분쯤 「북한의 권력구조와 김주석의 사망에 따른 남북관계전망」이라는 긴급분석자료를 챙겨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에 참석. 통일원은 김일성의 사망이 자연사이냐 사고사이냐에 따라 앞으로의 북한정세가 판이하게 달라질 것이라고 판단,모든 채널을 통해 이를 확인하느라 각 사무실이 분주. 정보분석실은 김일성의 사망보도 이후 흘러나오는 북한뉴스를 시시각각으로 체크,상부에 보고하는등 남북정상회담준비를 위한 비상근무체제를 발전시킨 긴급근무체제에 돌입. ▷경제기획원◁ ○…한이헌경제기획원 차관은 9일 낮 긴급 경제부처 차관회의를 소집,남북 경제교류 등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고 이번 사태로 우리 경제가 흔들리지 않도록 만반의 조치를 강구해 줄 것을 당부. 기획원은 이미 남부관계의 변화 가능성을 여러 각도로 예상해 각 상황 별로 다각적인 시나리오을 마련해 놓은 상태.따라서 이를 재점검하는 외에 당장 대북관계와 관련한 별도의 대책은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 김일성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의 평화적인 대북 경제교류 방침에는 별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이나 북한의 새로운 권력체계가 안정될 때까지는 남북 경제교류는 사실상 중단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민자당◁ ○…국회본회의가 끝난 직후 김일성의 사망소식을 접한 민자당은 크게 놀라워하면서 즉각 긴급 고위당직자회를 소집하는 등 앞으로의 안보대책과 당의 대응방향을 수립하기 위해 긴박하게 움직였다. 국회일정을 마치고 청구동으로 귀가하던 김종필대표는 라디오를 통해 소식을 듣고 곧바로 하오3시 긴급 고위당직자회의를 소집하고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당3역외에 황명수국회국방위원장과 신상우정보위원장을 특별히 참석시키라고 지시.이날 긴급고위당직자회의에서는 한반도의 안보정세와 관련,행정부를 당차원에서 적극 뒷받침하는 방안과 대국민안보의식 고취방안 등이 집중 논의됐다. ▷민주당◁ ○…9일 민자당의 대법관 임명동의안 일방처리에 항의,본회의장을 퇴장한뒤 긴급의원총회를 열어 대책을 논의하다가 김일성의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서둘러 회의를 중단하고 사태파악에 착수. 이기택대표는 이날 의총도중 경주시 보선대책본부 현판식에 참석하기 위해 김포공항으로 가다 문희상비설실장의 긴급연락을 받고 즉시 국회로 돌아와 긴급최고위원회의 소집을 지시. 민주당은 회의에서 이영덕국무총리가 11일 본회의에 출석,정부가 수집한 모든 정보를 토대로 종합적인 상황을 보고해 줄 것을 요구하는 한편 신도시 장애물 활용 발언파문과 관련해 제출한 이병태국방부장관 해임건의안은 「국군의 비상태세 준비」를 위해 즉각 철회키로 결정. 민주당은 이와함께 당지도부를 비롯한 간부들을 전원 서울에서 대기하도록 하는 등 비상연락망을 구축,긴급사태에 대비.
  • 한­중­러의 남북통일 시각/고대 아시아연,국제학술대회 중계

    ◎「핵없는 한반도」 중요/당사자 결정 우선,주변선 지원/북 고립보단 국제사회로 유도 고려대 아시아문제연구소는 19일부터 이틀간 서울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4강의 교포학자 11명을 초청,「동북아 안보정세와 남북한 통일전망」을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했다.대회에 참가한 교포학자들은 한반도 주변4강이 평화적·점진적 남북통일을 위해 노력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는데 대체로 의견을 같이했다. 다음은 이번 학술대회의 통일분야 주제발표 요지. ▲이채진 미클레어몬트 매키나대교수(미국의 한반도 통일정책)=미국은 한반도가 독일식으로 단시일내에 평화적으로 흡수통일되기 보다는 장기간에 걸친 점진적 평화통일의 길을 밟게 되기를 원하고 있다.북한이 핵문제를 포함한 「기본적인 문제들」에 관해 협력한다면 미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대폭 개선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한반도 통일문제는 궁극적으로는 남북한 당사자들이 결정하는게 당연하지만 미국이 중재자 또는 보증인의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정치적의지만 있다면 한반도의 통일을 지원하는데 건설적인 공헌을 할수 있을 것이다. ▲김진기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소부소장(중국의 한반도정책과 남북한문제)=중국이 추구하는 한반도의 평화·안정유지는 남북한 긴장완화및 관계개선을 통한 평화정책이며 남북한의 균형발전을 통한 남북공동체의 형성이다.이를 위해서는 ▲한반도 비핵화 실현 ▲남북한 군축 실현 ▲남북평화공존을 위한 새로운 균형구축등 3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북한은 한국과 함께 유엔에 가입한 주권국가인 만큼 한반도주변의 대국들이 북한을 인정하지 않고 관계개선을 회피하며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키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두개의 제도,두개의 정부에 기초한 남북연합과 연방제는 대결과 충돌을 방지하고 남북이 다같이 수용할수 있는 합리적 방식으로 한반도 실정에 부합되는,그리고 특성을 지닌 평화통일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안몽필 일본대동문화대교수(일본 신정부의 정치적 성격과 한반도정책)=정권교체에도 불구,일본정부의 대외정책,특히 한반도정책에 기본적인 변화는 없다고 본다.일본의 한반도정책 기본은 한국과의 우호협력관계를 유지하고 강화하는데 노력하는 것이다.또 북한의 경제·정치적 안정은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긴장완화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일본의 국익에도 일치된다.그러나 일·북한 국교정상화는 북한 핵문제가 풀리지 않는한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다. 일본은 남북통일과정이 평화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주변국가들의 이해관계에 배치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자주적·평화적 통일이 구체화되면 일본은 물론 관계된 다른 나라들도 반대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막스 모스크바청년대교수(러시아의 개혁과 한반도의 평화민주적 통일전망)=서울에서 흡수통일에 관해 진행되는 논쟁을 볼때 흡수통일을 너무 걱정만 하는 것같다.물론 이러한 통일이 된다면 남북한 모두 어려운 상황과 조건이 될 것이다.그러나 누구도 어떤 방법으로 통일이 될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몇만명의 북한주민들이 거리로 나서서 통일을 요구하는 상황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오늘날 우리는 통일문제 연구에 여러가지 시나리오를 작성해야 한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어떠한 통일의 방식에도 독재적 전체주의와 민주제도는 서로 합쳐질 수 없다는 것이다.그래서 전체체제가 민주체제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평화통일의 가능성은 열릴수 있다는 것이다.
  • 예루살렘 시장선거 여후보 완패/중동평화협상 타격 우려

    【예루살렘 AP 로이터 연합】 중동평화협정에 대한 국민투표의 성격이 짙은 이스라엘 지방자치단체장 1백58명을 뽑는 선거중 관심의 초점이 됐던 예루살렘시장 선거에서 28년째 재임중인 집권 노동당 후보가 리쿠드당 후보에게 완패함으로써 이츠하크 라빈 총리의 대팔레스타인 평화정책이 심대한 타격을 입게 됐다. 이스라엘 TV는 3일상오(한국시간) 투표를 마친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보건장관 출신인 리쿠드당의 에후드 올메르트 후보(48)가 56%를 득표,7차연임에 도전했던 82세 고령의 테디 콜레크 현시장(41%)을 15%포인트 차로 여유 있게 따돌리고 당선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 「45년의 갈등」 2분만에 “해소”/「이」­PLO평화협정 하던날

    ◎클린턴,“지금은 평화의 위대한 순간”/“성경·코란의 가치를 함께 인정”/3천여명 참석… 백여국에 중계/양측 국기게양·국가연주는 없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13일 백악관 남쪽 뜰에 임시로 설치된 가로 4.8m 세로 7.2m의 단상위에서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 PLO의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스라엘의 외무장관인 시몬 페레스와 PLO의 마무드 아바스 민족·국제문제국장(일명 아부 마젠)이 평화협정에 서명함으로써 30년 적대관계를 공식 청산. ○…이스라엘­PLO 평화협정조인식은 13일 상오11시15분(한국시간 14일 상오 0시15분) 클린턴 미국대통령이 아라파트 PLO의장과 라빈 이스라엘총리와 함께 백악관 남쪽 뜰앞에 마련된 식장의 단상에 섬으로써 시작됐다. 클린턴대통령은 특별히 초청된 3천여명의 하객들 앞에서 『오늘 우리는 역사의 위대한 순간을 맞고 있다』는 말로 연설을 시작. 클린턴대통령은 이어 중동평화정책을 위해 헌신했던 카터,부시 전임 대통령의 노고를 치하한후 『양측은 이제 과거의 적대감을 뒤로 하고 코란과 성경의 가치를 함께 인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클린턴대통령은 또 이­PLO평화협정이 성사되기까지 중재노력을 기울인 노르웨이의 홀스트총리의 공로에도 감사한다고 언급. 약 10여분간에 걸친 클린턴대통령의 연설은 『오늘은 여러분의 날이다.이제부터는 양측 어린이들의 미래에 반하는 일들을 해서는 안된다.앞으로는 여러분의 땅에 폭력이 찾아들지 않을 것』이라는 말로 끝냈다. ○…클린턴대통령을 사이에 두고 좌우로 나란히 자리한 라빈 이스라엘총리와 아라파트 PLO의장은 이날 클린턴대통령의 연설중 상반된 표정을 지어 대조적. 특히 클린턴대통령이 『전세계는 오늘 라빈총리와 페레스장관,아라파트의장에게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을때 라빈총리가 엄숙한 표정으로 다소 굳은 표정이었던데 비해 아라파트의장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여유를 과시. 서명식이 이뤄진 것은 11시43분(현지시간)부터 45분쯤까지 약 2분만에 끝났는데 45년의 갈등이 해소되는 순간치고는 너무나 짧은 것이었다. ○…이날 조인식행사중 최대 관심사였던 라빈총리와 아라파트의장간의 악수 성사여부는 「협상」없이 아라파트의장의 주도로 수월하게 이뤄졌다. 조인식이 끝난직후 아라파트의장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은채 먼저 손을 내밀었고 라빈총리는 이를 맞잡아 흔들었다. 이때 클린턴대통령은 두사람 사이에서 만면에 웃음을 지었다. ○…CNN을 비롯한 미 4대TV는 13일 백악관 뜰에서 열리는 중동평화협정 조인식을 일제히 생중계하는 등 지대한 관심을 표명. CNN의 경우 조인식 몇시간 전부터 주요 앵커들을 총동원해 백악관은 물론 튀니지 등에서 소식을 전했으며 CBS,NBC 및 ABC도 간판 앵커들이 대부분 백악관 현장에 나와 키신저를 차례로 인터뷰하는 등 치열하게 경쟁. ○…이날 미백악관에서 거행된 조인식에는 취재진을 포함한 이스라엘 대표단 90명과 팔레스타인 대표단을 제외하고도 3천여명의 각국 대표와 사절단등이 참석. 미의회의원 수백명,미국내 유태·아랍 지역사회의 지도급 인사,카터행정부에서 캠프 데이비드협정 조인을 위해 일했던 관리,부시행정부에서 마드리드 회담에 참여했던 관리등도 초대돼 역사적인 조인광경을 지켜봤다. 또 이날 조인식광경은 전 세계 1백여개국에 TV로 생중계돼 지구촌의 거의 모든 나라가 역사적인 조인식을 지켜본 셈. ○…이날 서명대로 쓰인 테이블은 지난 1869년 미국의 그란트대통령이 구입해 백악관 조약실에 보관해왔던 것으로 지난 79년 이스라엘과 이집트사이의 캠프 데이비드 협정,92년 미국과 구소련 사이의 협정에 각각 사용됐던 호두나무로 된 유물. ○…PLO는 이스라엘과의 역사적인 자치협정 체결을 기념,13일을 국경일로 선포.PLO는 12일 이스라엘 점령지에서 배포한 성명에서 『영웅은 바로 우리의 국민들이며 당신들이 새로운 팔레스타인의 날을 오게했다.이제 어둠은 걷히고 여러분의 국기가 사랑스런 팔레스타인 하늘 높이 자유롭게 휘날리고있다.이 모든 것은 여러분의 피와 희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역설.
  • 자위대 파병 국민적 합의도출 노력필요(해외사설)

    아프리카 모잠비크에서의 유엔평화유지 활동(PKO)을 위해 50여명의 자위대원이 수송조정부대로 파견된다.빠르면 5월말 현지에 들어가 각국 PKO요원의 도착과 물자반입을 지원하고 수송기관의 조정,수송수단 할당등의 임무를 맡는다. 자위대의 모잠비크파견은 걸프만에의 소해정파견,캄보디아에의 시설(공병)부대 파견에 이어 3번째의 해외파병이다.이번 아프리카 파견은 다른지역에도 조건만 갖추어지면 파견할 태세가 정비되어 있음을 의미한다.이는 일본의 PKO협력이 지역 확대라는 의미만이 아닌 질적변화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정부는 현지조사단의 보고에 근거,정전합의·분쟁당사자의 동의 중립성의 보장등 이른바 일본의 PKO파견 5원칙이 충족되었기 때문에 파견을 결정했다고 밝혔다.그러나 자위대의 해외파견은 국회등에서의 논의를 통해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이같은 관점에서 국회의 태만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자위대의 모잠비크파견으로 자위대의 해외에서의 행동반경이 크게 확대되게 되었다.그러나 정부는 일본의 평화정책으로서의 PKO파견과 관련,아시아주변국가의 국민감정도 충분히 배려하는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 외무성과 자민당내에서는 소말리아등의 지역분쟁에 기민하게 대응할수 없다는 이유등으로 PKO협력법의 참가조건을 완화시켜야 한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그렇게되면 무력행사를 동반한 평화집행부대구상등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일본의 PKO참가도 확대될 가능성이 없다고는 할수없다. 그러나 일본의 PKO협력은 비군사적 분야를 중심으로 참가하는 기본자세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모잠비크에 대해서도 선거감시와 인도적 지원을 위한 요원파견등을 포함한 종합적인 검토를 해야하는 것은 아닌가.특히 식량·물·교육·의료·보건위생·난민문제등 인도적 원조분야는 부흥원조의 일환으로 중요시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일본의 평화협력은 더욱이 자위대파견만으로 끝나는 것이라고는 할수 없다.일본은 자신의 특성을 살려 파견국의 경제부흥,개발을 위한 경제·기술원조를 중심으로 폭넓은 국제협력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모잠비크에 대한 평화협력에도이같은 고려는 필요하다.
  • 「캄」재건위 설치합의/일선 1억불 지원방침

    【도쿄=이창순특파원】 유엔개발계획(UNDP)과 일본정부가 주최하는 「캄보디아 재건 각료회의」의 실무협의가 캄보디아 4개 정파와 32개 참가국 및 12개 기관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20일 도쿄에서 개최돼 상오 캄보디아 재건을 둘러싼 지원문제에 이어 하오 파리협정에 의한 평화정책 이행문제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일본정부는 상오 회의에서 캄보디아 재건을 위해 약 1억5천만달러의 신규 무상원조 방침을 22일 각료회의에서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참석자들은 특히 캄보디아 재건문제와 관련,각 국과 기관의 명확한 원조 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캄보디아재건 국제위원회(ICORC) 설치를 정식으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ICORC는 내년봄 총선거후에 발족될 전망이다.
  • 노 대통령 유엔연설의 함축(유엔코리아)

    ◎“세계평화 기여”… 우리외교 방향 제시/“회원국 자격” 국제문제 당당한 참여/한반도 통일 자주적 해결 방안 천명 노태우대통령의 이번 유엔참석및 총회기조연설은 국제무대에서의 한국의 새로운 위상을 과시하고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우선 형식면에서 한국의 유엔가입후 회원국 국가원수로서는 최초로 총회기조연설을 통해 제반 국제문제에 관해 입장을 밝히게 된다. 이는 그동안 양자관계를 중심으로 펼쳐져온 우리 외교가 유엔을 무대로 본격적인 다자외교시대에 진입했다는 것을 뜻한다. 노대통령은 지난 88년 10월 유엔총회에서도 연설했지만 그때는 유엔의 정식회원국이 아닌 옵서버국가의 대통령으로서 회원국들의 동의를 받아 「한반도문제」에 관한 한정된 의제범위내에서 견해를 밝힌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당당한 회원국 국가원수로서 특정의제에 국한됨이 없이 남북한문제 뿐만아니라 국제적인 관심사 전반에 걸쳐 우리의 입장을 천명한다는 점에서 3년전 연설에 비해 무게를 더하고 있다. 노대통령의 유엔연설은 이같은 형식면에서는 물론 실질적인 내용과 그 내용이 함축하는 한반도문제 해결의 방향이라든가 국제사회속의 한국이 지향하는 행로를 분명히 밝힌다는 면에서도 의의가 크다. 더욱이 미소양극의 냉전체제가 붕괴되고 소련에서 공산주의가 종언을 선언하는등 최근의 급격한 정세변화와 함께 걸프전 이후 세계질서유지의 축이 유엔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상황에서 이같이 우리의 남북통일 기조와 국제사회에의 기여등 우리의 역할을 천명하는 것은 더더욱 의미를 가중한다. 노대통령은 유엔연설을 통해 크게 보아 국제문제와 남북한문제에 관해 입장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국제문제에 관해서는 ▲냉전종식의 촉진,특히 소련의 개혁지원 ▲선·후진국간의 남북문제에 있어 한국의 적극적인 교량역할 ▲세계 분쟁지역의 평화적 해결촉구등이 될것으로 알려지고있다. 노대통령은 소련의 개혁지원은 곧바로 냉전의 종식지원이며 세계평화의 촉진이라는 차원에서 선진국들의 대소지원을 호소하고 중동등 세계 분쟁지역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할 것으로 전해지고있다. 또 지난 6월 29일 미샌프란시스코 스탠포드대에서도 연설했듯이 선후진국간의 남북문제에 관해 한국이 선진국과 개도국간의 중간국가로서 교량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할 것을 밝힐 예정이다. 지난 49년 한국의 유엔가입신청이 처음으로 제출된 이래 42년동안 늘 국제무대의 변방에서 「우리 문제」를 남에게 부탁만 해오던 처지에서 『소련을 도와야한다』 『남북문제 해결에 적극 기여하겠다』고 1백65개국을 향해 외치게 된것은 바로 「한국의 새로운 위상」을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남북한문제에 관해서도 우리의 통일정책기조를 확실히 천명하면서 「한반도문제의 자주적 해결」에 대한 자신감을 천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남북한 유엔가입은 통일을 위해 가는 불가피한 「중간단계」로서 상호 체제의 공존을 인정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는것이다. 노대통령이 강조할 한반도의 평화정책및 통일실현방안은 ▲휴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 ▲군사적 신뢰구축을 토대로한 실질적인 군비감축 ▲인적,물적교류의 확대로 요약될 수 있다. 이같은 방향제시는 남북한 관계의 새로운 제의가 아니라 기존의 우리 입장을 재정리한 것이다. 설사 유엔가입을 계기로 획기적인 대북제의를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을지는 모르나 남북한 문제는 기본적으로 민족자결에 의해,자주적으로 풀어나간다는 입장에서 추진해야하기 때문에 설령 그같은 복안이 있다해도 유엔무대를 이용하는 것은 적절치 못한 것이다. 또 지난 75년 30차총회를 마지막으로 한국문제의 유엔총회 불상정방침에 따라 남북한통일에 관한 우리의 입장이 15년간이나 유엔무대에서 공식홍보되지 않았기 때문에 차제에 우리의 포괄적인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노대통령의 이번 유엔참석은 총회 기조연설 뿐만 아니라 노·부시간의 한미정상회담을 비롯,한·말레이시아,한·뉴질랜드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열린다는 점에서도 그 의의는 증폭되고 있다. 노대통령과 부시대통령의 회담은 지난 7월 워싱턴회담에 이어 이번 뉴욕회담,그리고 오는 11월의 서울회담등으로 1년에 3차례나 이루어지게돼 회담 그 자체가 갖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그것은 한미관계가 그만큼 긴밀하다는 뜻이며 아울러 급변하는 한반도 및 동북아정세에 적극 대처하는 양국의 견고한 의지를 입증하는 것이다. 노·부시 뉴욕회담에서는 주로 국제무대에서의 양국협력문제가 중점 논의될 것으로 보이며 특히 북한의 핵사찰수용등 핵개발포기에 대한 강도높은 촉구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노대통령의 유엔연설및 일련의 정상회담은 유엔가입을 계기로 새롭게 부상된 한국의 위상에 걸맞게 대외정책과 통일기조를 당당하게 지구촌에 알리는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 틀림없다 하겠다.
  • 노 대통령,오늘 유엔 등정/24일 총회 연설

    ◎한반도 평화정책 포괄적 제시/23일 미­뉴질랜드 정상과 회담… 25일 멕시코로 노태우대통령은 제46차 유엔총회에 참석,회원국 국가원수로서 역사적인 기조연설을 하기 위해 20일 하오 부인 김옥숙여사와 함께 대한항공특별기편으로 서울공항을 출발,시애틀을 거쳐 뉴욕으로 향발한다. 노대통령은 오는 24일 상오(한국시간 24일 자정)유엔총회에서 「평화로운 하나의 세계공동체를 향하여」라는 제목으로 연설,남북한유엔가입에 따른 남북한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소련및 동구의 개혁등 냉전체제붕괴와 냉전의 종식 그리고 최근의 소련사태를 비롯,국제정세 전반과 관련한 우리 정부의 입장을 밝히며 국제사회에 있어 우리의 역할에 관한 소신을 천명할 예정이다. 노대통령은 특히 한반도평화정착및 남북한통일에 관한 우리의 포괄적인 정책기조를 밝히면서 휴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군사적 신뢰구축을 바탕으로 한 군비감축 등을 강조할것으로 알려졌다. 노대통령은 유엔연설에 앞서 23일 하오(한국시간 24일 상오)조지 부시미대통령과 한­미정상회담을 갖고 최근의 국제정세에 관해 의견을 교환하는 한편 한미유대관계를 더욱 공고히 다질 예정이다. 노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외에 23일 낮(한국시간 24일 상오)마하티르 말레이시아총리와 한­말레이시아정상회담을 갖고 이어 이날 하오(한국시간 24일 상오)에는 볼저 뉴질랜드총리와 한­뉴질랜드정상회담을 아울러 갖게 된다. 노대통령은 유엔총회 참석일정을 마치고 25일 멕시코를 국빈으로 방문,살리나스 멕시코대통령과 한­멕시코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경제협력강화방안을 중점 논의할 예정이다. 노대통령은 멕시코방문을 끝낸뒤 귀로에 하와이를 거쳐 10박11일간의 정상외교일정을 마무리,오는 30일 하오 서울공항에 도착,귀국한다. 노대통령의 유엔참석,멕시코방문일정및 공식수행원 명단은 다음과 같다. ▷일정◁ ◇20일=▲서울공항출발,시애틀 도착 ▲교민대표 초청오찬 ◇22일=▲뉴욕향발,도착 ▲교민초청리셉션 ◇23일=▲뉴욕타임스지회견 ▲한­말레이시아정상회담 ▲한­뉴질랜드정상회담 ▲한­미정상회담 ▲부시대통령주최 리셉션 ◇24일=▲유엔총회 기조연설 ▲유엔사무총장 면담및 기념품전달 ▲경축대표단 오찬 ▲총회 각국대표단초청 경축리셉션 ◇25일=▲멕시코향발,도착 ▲한­멕시코정상회담 ▲멕시코대통령주최 공식만찬 ▲멕시코시티시청방문 ◇26일=▲한­멕시코경협위 오찬연설 ▲교민대표초청만찬 ◇27일=▲하와이 교민초청리셉션 ◇28일=▲수행기자단과 간담회 ◇30일=▲서울공항착 ▷공식수행원◁ ▲이상옥외무장관 ▲이봉서상공장관(멕시코) ▲노창희주유엔대사내외(이복형주멕시코대사내외) ▲정해창대통령비서실장 ▲이현우경호실장 ▲김종인경제수석(멕시코) ▲정호근합참의장 ▲김진재 민자당총재비서실장 ▲손주환정무수석(유엔) ▲김종휘외교안보보좌관 ▲이수정공보수석 ▲이병기의전수석 ▲최규완대통령주치의 ▲장선섭외무부의전장 ▲문동석외무부국제기구조약국장 ▲번기문외무부미주국장(멕시코)
  • “「아랍전리품」나누자”…목청 높이는 EC(걸프전후의 새 기류:1)

    ◎미 「독식」에 제동… 몫챙기기 공동전선/「팔」처리등 유럽식의 평화구도 주장 걸프전이 끝났다. 「유엔결의」와 「첨단병기」를 앞세운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이 신아랍 맹주를 자처해온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무릎을 꿇림으로써 이제 중동의 질서재편이 당면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걸프전은 또 탈냉전 선언이후 해빙무드를 구축해온 미소 관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등 세계 전반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걸프전후의 중동과 국제사회의 질서개편문제를 시리즈로 엮어본다. 걸프지역에 총성은 멎었지만 전후처리문제를 놓고 전승국들 사이에 치열한 각축전이 시작되고 있다. 걸프전을 주도해온 미국과 전후 중동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증대시키려는 유럽국가들사이의 지분경쟁이 특히 두드러지고 있다. 걸프전에 전투병력을 직접 투입하거나 군수품의 지원방법 등으로 참전한 유럽국가들은 승전국의 일원으로서 전리품으로 이 지역에서의 발언권 강화를 추구하고 있다. 이들은 또 아랍세계와의 오랜 역사적 관계등을 내세워 전후 중동문제에 대한 미국의 독주·독식 움직임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걸프전이 계속되는 동안 유럽국가들은 이라크에 대항하여 미국쪽에 서서 함께 싸웠으나 전후에는 미국을 적수로 삼고 있는 것이다. 유럽공동체(EC) 12개 회원국은 오는 4일 룩셈부르크에서 외무장관회담을 열어 걸프전 종전에 따른 중동문제를 중점논의할 계획이다. 중동문제와 관련한 EC의 기본입장은 워싱턴이 독자적으로 이 지역의 장래를 좌지우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EC국가들은 문화 및 지정학적으로 중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유럽의 이해는 미국의 그것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번 회의에서 집중토의될 「EC의 전후전략」은 이같은 기본정신을 바탕에 깔면서 중동문제 논의에 EC가 중요한 몫을 담당하는 것으로 짜여져 있다. EC의 순번제의장국인 룩셈부르크가 마련한 이 계획은 중동 평화정책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걸프지역의 새로운 안보구조를 구축하도록 EC국가들이 직접 참여하여 돕는다는 내용을 담고있다. 새로운 안보기구의모델로 제시된 것이 바로 「지중해 및 중동 안보협력회의」(CSCM­ME)이다. 이는 유럽안보협력회의(CSCE)를 본뜬 것으로 지중해에 면한 유럽 및 아프리카 국가들과 중동의 아랍국들이 모두 참여하는 안보기구이다. CSCE에는 미국이 역외국가이면서도 참여하고 있지만 CSCM­ME 계획은 미국의 참여가 배제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또 중동지역의 경제개발을 위해서는 EC가 동구 국가들을 돕기위해 설립된 동구 개발은행과 같은 중동개발 은행의 설립 등 EC차원의 독자적이며 종합적인 지원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EC국가들은 또한 중동의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이들 지역국가들에 대한 화생방 무기 등 대량살상용 무기의 판매나 제조기술지원을 통제해야하며 외교적으로는 이스라엘­아랍간의 분쟁이 종식되고 팔레스타인 문제가 우선 해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결방식은 미국의 의도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이같이 EC국가들이 긴밀한 협의아래 역외문제에 한몸짓으로 대처해 나가려는 움직임은 EC정치통합과관련한 공통외교 안보정책의 구현 또는 이들이 추구하고 있는 유럽의 탈미국화 노력과 맥을 같이하며 이러한 정신이 걸프전후의 처리에 그대로 연장 적용되고 있는 것으로 볼수있다. 물론 걸프사태 초기부터 유럽국가들이 한목소리를 낸것은 아니다. 영국이 미국의 태도를 가장 강력하게 지지해온데 비해 프랑스는 아랍세계와 미국의 눈치를 보아가며 마지 못해 끌려가는 식의 기회주의적인 자세를 유지해왔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전투병력의 파병을 거절했고 벨기에는 참전 프랑스군에 대한 군수지원 요청을 거절했다. 독일의 경우 지난 2월초 독일회사들이 이라크의 화학무기 제조를 도왔다는 사실이 알려져 비난의 소리가 높아지자 본정부는 한스 디트리히 겐셔 외무장관에게 돈가방을 들려 우선 이스라엘에 보냈고 이어 요르단 이집트 시리아 등지를 순방케 하는 미소작전을 펴기도 했다. 전후 중동문제에 대한 유럽국가들의 운신의 폭과 목소리의 크기는 그동안 보여온 그들의 처신에 의해 결정될 것이 확실하다. 전투병력을 참전시켜 사상자까지 낸 영국이나 프랑스는 미국에 대해 그리고 쿠웨이트나 사우디 등에 대해서는 보다 뚜렷한 목소리로 주장을 펼수 있겠으나 이라크나 이라크 편에 섰던 회교권 국가들에게는 상대적으로 떳떳치 못한 입장이 된게 사실이다. 이같은 결과를 예상하여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회교권 국가들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그동안 갖가지 유화제스처를 써왔으며 참전을 하고 있으면서도 독자노선을 고수하고 있다고 강조,프랑스가 이슬람이나 아랍에 대항하여 전투를 폈던 것은 이미 「과거지사」라고 그들을 다독거리기도 했다. EC의 다른 나라들은 보다더 신중한 자세를 보여왔었다. CSCM­ME의 창설을 공동제안하고 있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경우 지정학적으로도 중동이나 마그레브지역의 회교국가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오고 있어 이들의 의사에 반하는 행동을 하기는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되고 있으며 이번 걸프전의 와중에서도 인심을 덜 잃어 대 아랍관계에서 보다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같이 대부분의 EC국가들은 유엔 결의를 명분으로 하여대 이라크전에 참여했으면서도 아랍국가들과의 틈새는 그다지 크게 벌어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EC국가들이 공동으로 또는 개별적으로 경주하고 있는 전후 중동에서의 영향력 확대노력은 아랍국가들에 그런대로 설득력을 지닌 것으로 분석되고 있으며 그때문에 주전승국의 입장으로서 미국이 희망하고 있는대로의 일방적인 중동질서 재편움직임에 제동을 거는 요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 “소,경제특구 3곳 추가 설치/한국의 대소 경원 관계개선에 큰몫”

    ◎티타렌코 극동연구소장 회견 미하일 티타렌코 소련 과학원 극동연구소장은 23일 『최근 소련내에서 민족분규·경제혼란이 빚어지고 있으나 개방·개혁정책은 계속 추진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현재 나홋카 이외에도 3개 지역에 대한 경제특구 설치를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현확 삼성물산 회장 초청으로 22일 내한한 티타렌코 소장은 이날 신라호텔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하고 『소련에 대한 한국의 경제원조는 한소관계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소련은 이미 발표한 나홋카지역 이외에 사할린·하바로프스크·레닌그라드 일부지역 등 3개 지역에 대한 경제특구 설치를 내정해 놓고 있다고 밝히고 소련 경제는 하부구조의 취약점을 안고있어 이의 실현을 위한 서방선진국의 투자가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반도의 비핵지대화에 관한 질문에도 언급,『이는 동북아와 한반도의 평화정책을 위한 소련정부의 기본방침이기 때문에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고 현재 소련·미국·일본·중국 학자를 중심으로 협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소련내 민족분규·경제혼란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초래된 것이라고 진단하고 이같은 문제를 극복하는 데 2년정도가 소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자위대 파병은 평화위장한 폭거”/일본언론ㆍ법조계의 시각

    ◎페만 호재삼아 군사대국화 속셈/국민적 합의 도출ㆍ주변국 설득등이 급선무 헌법의 해석을 변경해 가면서까지 자위대를 중동에 파병하겠다는 일본 정부방침에 대해 헌법학 전공인 고바야시 나오키(소림직수) 교수(전수대)는 이렇게 말한다. 『정부가 종래의 헌법해석을 대폭 전환시켰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록해 놓을 필요가 있다. 일본 자위대의 유엔군 참가문제와 관련,「집단적 자위권」의 행사와 「집단안전보장」을 구별한다고 말하지만 그 실태가 어떻게 다른가. 언어의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국시로 여겨온 평화주의를 말을 바꿈으로써 근저로부터 붕괴시켜버리는 이번 사태는 허용할 수 없는 폭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유엔은 아직 발전도상에 있으며 전 인류의 의사를 대표할만한 존재로는 되어 있지 않다. 유엔이 어느국가의 국익에도 좌우되지 않는 존재가 되지 않는한,집단안전보장이란 추상용어일 뿐이다. 이를 무시하고 자위대를 유엔군에 참가시키는 것은 실태와 명목의 의도적인 혼동이다. 일본은 평화헌법의 원점으로 돌아와 특정의국익에 대해서가 아니라 전 인류에의 공헌을 생각해야 한다』 언론계에서의 비판도 신랄하다. 마이니치(매일)신문은 『패전을 「종전」이라는 말로 속이며 과거의 역사에 겸허하지 못했던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은 서독의 경우와 비교해 볼때 너무 큰 차이가 난다』고지적하고 『과거 역사에 대한 냉철한 반성과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실에의 통찰없이 전후의 평화정책을 안이하게 변경하려는 자세를 아시아 근린제국의 국민들은 어떻게 볼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일본정부가 15일 느닷없이 내놓은 헌법해석의 변경방침은 이처럼 각계에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장차 유엔군이 창설될 경우 예컨대 무력을 행사하는 경우라하더라도 자위대가 참가하는 것은 현행 헌법의 범위내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이 일본정부의 신해석의 견해이다. 유엔헌장 7장 42조에는 『안보리는 비군사적인 조치로만은 불충분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국제평화 및 안전유지 또는 회복에 필요한 공군ㆍ해군 나아가 육군의 행동을 취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것이 일본정부가 신해석의 근거로 삼는 「집단적 안전보장」이다. 이처럼 낯선 개념을 구차스럽게 도입한 이유를 일본정부 관계자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발상은 동서 냉전구조시대의 유물이다. 지금은 그것으로 대응할 수 없다』 일본은 왜 이처럼 헌법해석을 변경해 가면서까지 파병을 서두르는가. 국제정세의 급격한 변화로 유엔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데다 경제대국 일본으로서의 어떤 형태로든 군사적 협력을 요청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정부ㆍ자민당 관계자들은 설명한다. 또 이 기회에 자위대의 유엔군 참가에의 길을 열어둠으로써 캄보디아평화후 설치가 예상되는 유엔군에 아시아의 리더로서 참가하겠다는 속셈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엔군에의 자위대참가가 평화주의를 표방한 헌법 전문 및 무력행사의 포기를 규정한 제9조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설명만으로 일본국민,나아가 아시아 근린제국을 설득할 수 있는가라는 중요한 문제가 남는다. 헌법해석의 변경은 결정적인 국책변경이다. 여기에는 국민적 합의와 주변 제국의 납득이 필요하다. 일본의 헌법은 인류에 피해를 끼친 침략전쟁에서 패전한 결과 반성의 의미에서 나온 「선언」이다. 이것을 견강부회의 졸속구상으로 자의적으로 변경하는 것은 역사의 두려움을 망각한 처사라고 관계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 미ㆍ일의 대북한 관계개선(사설)

    미국과 북한,일본과 북한의 관계개선노력이 완만하면서도 빠르게 진전되고 있는 듯하다. 미국은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북경에서 북한과 11차례 접촉을 가진 바 있다. 이같은 빈번한 접촉을 놓고 한 미고위관리는 『현재는 분명 순조로운 시기』라고 전했다. 미국이 북한과의 관계개선에서 내세우고 있는 몇가지 요구사항 가운데 미군유해송환ㆍ테러포기 등에 진전이 있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테러문제와 관련해서는 최근 2년동안 북한에 의한 테러적 행동이 보이지 않았다는 캐스턴시거 전국무차관보의 증언이 뒷받침하고 있다. 일본과 북한의 관계 역시 최근 일사회당의 북한방문을 게기로 진전되는 인상을 주고 있다. 북한은 사회당 대표들과의 접촉에서 일ㆍ북한 관계개선의 최대장애물인 민하사문제와 후지산마루사건은 별개의 숙제라며 「식민지시대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했고 일본측도 유연한 입장을 나타내 관계개선을 서두르는 듯한 자세를 보였다. 한편 미국으로서는 대북한관계개선문제에 있어서는 남북관계발전에 중점을 두어 북한으로 하여금한반도 평화정책에 기여토록 권고하면서 북한의 개방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는 듯하다. 이 점에 관해서는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러나 일본으로서는 한반도문제 영향력에 있어서 미ㆍ중ㆍ소와 같은 비중과 입장을 견지하기 위해 대북한 관계개선조치를 서두르는 듯한 인상이 없지 않다. 북한의 입장도 미묘하다. 그들의 대미ㆍ대일 관계개선을 위한 비교적 빠른 움직임에는 한국의 대소ㆍ대중국 관계개선이 압력요인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한계에 이른 경제난을 타개해 보려는 계산도 작용할 것이다. 우리로서는 북한의 대미ㆍ대일 관계개선 움직임과 그 진전상황에 대해 결코 부정적인 시각을 갖지 않는다. 우리 정부는 북한이 폐쇄와 고립을 벗어나 국제무대에 나서기를 기대하며 또 우방들에게도 영향력을 행사해주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우방국들의 대북한접촉이 한반도의 평화정착에 기여하고 북한을 국제적 고립으로부터 탈피시킬 수 있다면 그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렇다고 북한에 대한 「외교적 개방」이 무조건 모두다 풀어주는 결과를 가져와서는 안된다. 특히 미ㆍ북한 관계개선에 있어서는 미측의 최우선조건이 눅한측의 핵안전협정 체결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때가 되면」 연락사무소 개설도 고려한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한반도 안정과 관련하여 북한 핵문제는 먼저 해결돼야 하는 것이다. 또한 북한은 우리쪽의 제의를 모두 거부ㆍ외면하면서 오히려 한반도문제를 어렵게 하고 있는 듯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북한으로서는 대미ㆍ대일본 관계개선에 앞서 우선 한반도문제 당사국 해결원칙에 따라 진지한 자세로 대화에 나서야 할 것으로 본다.
  • 「한국전 기원과 성격」… 「6ㆍ25」 40돌 국제학술회의

    ◎스탈린,49년 3월 김일성 만나 “남침”확정 한국전쟁연구회(회장 김철범)가 주최하고 통일원이 후원한 한국전쟁 40주년기념 국제학술회의가 14일 서울 힐튼호텔에서 열렸다. 「한국전쟁과 한반도의 평화 정착」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회의에서는 한국전쟁의 기원과 미소가 한국전쟁에 미친 영향 등이 집중 토의됐다. 이중에서 한국전쟁은 미소의 갈등으로 빚어진 특수한 내전이면서도 국제전의 양상을 띠었다고 주장하는 존 메릴 미국무성연구관의 논문 「한국전쟁의 기원 대답없는 질문」과 소련이 서유럽에 대한 미국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북한을 사주 한국전쟁을 도발했다는 윌리엄 스투웨크 미조지아대교수의 논문 「소련과 한국전쟁의 기원」을 소개한다. ◎6ㆍ25의 기원/윌리엄 스투웨크 미 조지아대교수/크렘린,미ㆍ서구 밀착 저지 겨냥/극동에 긴장 조성… 미 경제난 유도 속셈도 한국전쟁은 주모자인 북한과 주요 군사물자 제공자이자 군사고문단 및 병력의 결정적인 공급자였던 소련,그리고 중국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일어났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일반적인 정보다. 그러나 하필 이 시기에 소련이 이같은 모험을 추진할 것을 결정했느냐의 의문이 남는다. 당시 소련은 팽팽한 긴장속에 미국의 핵무기와 잠재된 기동력에 눌려 극도로 취약한 상황에 있었기 때문이다. 소련은 49년 가을 마샬플랜의 시행,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결성,서독정부의 출범,미의회의 대서유럽군사원조결의 등 일련의 사태로 미루어 볼때 미국의 관심이 서유럽에 집중됐다고 판단,미국과 서유럽 동맹국들의 단결을 막아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당시 국내외 문제의 최종결정권자였던 스탈린은 대외정책에 관한한 공개토론을 허용했다. 49년에서 50년에 걸쳐 프라우다지는 몰로토프,스슬로프와 같은 온건관료층의 견해를 주로 반영했고 이즈베스티야지는 말렌코프,베리야와 같은 강경군국주의자들을 지지했다. 강경파들은 미국경제가 점차 퇴조하고 있으므로 소련이 서유럽에 압력을 가중한다면 미국은 곧 해외원조를 포기하고 서유럽에서 물러날 것으로 믿었다. 반면 온건파들은 서유럽에서의 미국의 영향력 강화와 경제적으로 유리한 여건을 강조,소련의 압력이 오히려 서방국가를 결속시켰으므로 긴장상태를 완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스탈린은 온건파의 주장을 받아들여 서유럽에서는 평화정책을 쓰는 대신 극동지역으로 관심을 돌려 팽팽한 긴장상태를 유지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이같은 결정의 배경에는 국제긴장상태 조성을 통해 ▲국내에서 권력을 유지하고 ▲소련주변 위성국들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며 ▲유럽에 대한 미국의 관심을 분산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스탈린은 소련의 정책전환에 따라 미국이 아시아 문제에 휘말리게 되면 미국의 경제적 위기가 촉진되고 상대적으로 중국이 소련에 의존하게 되리라는 계산도 했음직하다. 이에 따라 스탈린은 가장 위험성이 높은 북한의 남침 등 여러조치들을 아시아 지역에서 잇따라 시행했다. 그러나 스탈린은 남한으로부터 미국이 멀어져 가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이같은 모험을 할 수 있었다. 49년 한햇동안 미국은 남한주둔 미군을 모두 철수시켰으며 미 국무장관 딘 애치슨은 50년 1월12일 연설을 통해 미국의 태평양 방위체계에서 남한을 제외시켰음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어 1월 중순에는 미하원에서 남한에 대한 경제원조안이 거부됐다. 스탈린은 이같은 상황이라면 남한이 위기에 처하더라도 미국동맹국들의 집단적인 개입은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스탈린과 김일성은 49년 3월 김의 모스크바 방문시 북한의 침공을 논의했을 것이다. 스탈린은 마지막 남아 있던 미군이 철수하게 되니 침공계획을 세우라고 격려했을 것이다. 그러나 스탈린은 북한 김일성과 군사원조 합의안에는 서명했지만 상호안전보장 조약의 체결은 피했다. ◎6ㆍ25의 성격/존 메릴 미 국무성연구관/초강국갈등서 비롯된 「특수내전」/이해 엇갈린 미ㆍ소ㆍ중의 대리전 양상도 지녀 김일성이 살아있는 한 북한은 결코 그들이 전쟁을 시작했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 그렇게 하는 것은 폐쇄체제의 영웅적인 자화상을 훼손하고 평양 당국으로 하여금 1백50만명에 달하는 한국인의 목숨을 앗아간 전쟁을 일으켰다는 죄를 스스로 인정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일성에 대한 영웅적인자화상은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갖고 지속해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앞으로 수년동안 평양에서 열리는 반미투쟁월의 경축행사를 계속 지켜보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누가 먼저 전쟁을 일으켰는가에 관해 북한사람들이 형식주의에 의존한다는 것은 그들이 전쟁을 시작했다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어느 정도 죄책감을 느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자신의 입장을 아주 자신있게 변호하지도 않는다. 평양 당국은 전쟁초기의 며칠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상세한 설명을 결코 출판물을 통해서 밝히지 않고 있다. 또 한국전쟁에 관한 학술토의에 참가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조선인민공화국에서 발간한 한국전쟁사를 유심히 살펴본 비판적인 독자라면 북한이 먼저 전쟁을 일으켰다는 것을 인정하는 모호한 표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도 평양을 격하하거나 40년전의 엄청난 사건에 대해 그들을 비난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사람들은 이러한 역사적인 짐에 얽매여서는 안된다. 특히 그들이 남한과의 신뢰를 구축하고 통일이라는 공동목표를 공유하려면 이러한 태도는 더욱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알 수 있듯이 남한도 나름대로의 짐을 지고 있다는 얘기다. 바로 이 대목에서 시작한 문제,즉 한국전쟁은 침략인가 아니면 민족해방전쟁인가에 대한 해답은 두가지 모두 해당된다고 간단하게 말할 수 있다. 북한 사람들은 그것을 두고 「조전해방전쟁」이라고 부른다. 강제적으로 가로놓여진 경계선이 존재하고 있는 동안 1950년에 국토의 분단을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발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또 그것을 영구적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도 드물었을 것이다. 수단과 기회가 주어졌더라면 이승만대통령도 김일성이 남한으로 쳐 들어왔던 것처럼 북진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전쟁이 국제전인가 아니면 내전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여기에서도 해답은 양자가 모두 해당된다는 것이다. 한국의 분단은 일본으로 부터의 해방과 마찬가지로 미국과 소련에서 비롯된 것이다. 초강대국의 불간섭과 그에 따른 한국에서의 경쟁적인 양체제의창출은 한국내의 좌익과 우익간 투쟁의 국내적인 측면을 강화했다. 이제 소련이 미묘하게 표명하고 있듯이 한국전쟁은 그 이후 미국과 중국의 개입(현재 우리가 조심스럽게 표명되고 있는 것을 듣고 있듯이 소련의 개입도 있었다)에 따라 국제화의 성격도 띤 것으로 볼 수 있다. 오늘날은 냉전의 종식과 함께 두개의 한국이 상호 경쟁하는 국내적 성격이 다시 중요성을 더하고 있다.
  • 한반도 평화·통일의 새 이정표(사설)

    ◎한소 정상회담의 시대사적 의미 오늘날 국제사회에 있어서의 동북아,그 속의 한반도의 존재와 의미는 무엇인가. 전후 냉전구조를 청산하는 역사적·시대적 조류에서 한반도는 어제까지만 해도 뒤처져 있었다. 그러나 이제 한반도를 중심으로 동북아시아도 급속한 변화의 흐름속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세계 최후의 냉전지대이자 마지막 화약고로 지목되던 한반도의 해빙을 위해 한국·미국·소련이 팔을 걷어 붙이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역사와 시대의 흐름을 바꾸는 주역은 한반도와 지리적으로 육속하는 두 나라의 지도자,한국의 노태우대통령과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의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아닐 수 없다. ○두 정상 만남 자체가 「수교」 한소정상의 만남은 북한의 개방화와 남북한의 평화공존을 겨냥한 우리 북방외교의 일대 결실이다. 여기에는 물론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외교를 이데올로기에서 분리한 이른바 「신사고 외교」에 힘입은 바 크다 할 것이다. 한국과 한반도문제 유관국인 소련과의 관계개선은 따라서 우리의 북방외교와 고르바초프 페레스트로이카가 시대적 추세의 접점에서 만난 단계적 과실이라 할 수 있다. 만남 그 자체만으로도 한반도 분단사상 최대의 정치적 사건이라 할 수 있고 실질적인 수교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노대통령이 지적했듯이 두 정상간에 원칙적인 이견은 없었을 것이다. 설혹 이견이 있었다 하더라도 만남 그 자체가 「정상화의 시작」이라고 할 때 그것이 함축하는 의미는 막중한 것이다. 한반도 분단이 동서대결과 냉전시대를 대표하는 역사적 산물임에 비추어 볼 때 한소 정상회담과 그 만남의 상징성은 동시에 냉전시대를 청산하는 세계사적 흐름의 뚜렷한 새 이정표임에 틀림없다고 본다. 그동안 우리쪽의 북방정책과 소련의 대한정책 사이에는 분명한 시차가 있었던 것을 부인할 필요는 없다. 정확히 말해 한국이 「정식수교」를 서두른 반면 모스크바측은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평양측과의 「균형」을 고려하여 경제협력 이상의 정치적 교류를 주저하는 태도를 보여온 것도 사실이다. 노·고르바초프 정상회담은 두 나라 사이의 그같은 입장및 접근자세의 차이와 방법론을 일거에 뛰어넘는 국제외교적 묘미와 새 전례를 세계에 보여준 것이다. 냉전체제의 종식과 세계적인 화해및 군축추세에 있어서도 미소는 여전히 세계질서의 두 주축임에 틀림없다. 두 정상의 만남과 한소간 거리단축이 미 부시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정상회담에 연이어 성사됐다는 점에서도 한반도적 한계를 초월하는 세계사적 의미가 부각되고도 남는다. ○냉전체제의 마지막 해소 40여년전 한반도 전쟁의 열화와 그 이후의 분쟁은 오랜 고통과 시련끝에 사라지려 하고 있다. 또 반드시 그렇게 돼야 한다. 그 오랜 분쟁의 시작은 전쟁이었다. 또 전쟁의 결과는 분단상태의 고착이었다. 국가와 민족,체제와 이념,사회와 문화의 분단이 한반도를 세계사의 엑스트라로 남게 했다. 한국과 소련 두 나라의 정상은 이제 그것을 청산하고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시대사적 문제해결의 관문에 들어선 것이다. 노대통령은 고르바초프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마치고 제일 먼저 북한의 개방과 변화를 국제여론앞에서 정중하게 촉구했다. 사실 역사적인측면에서건 현실적인 관점에서건 한반도 문제해결의 유관국은 크게 보면 수없이 많다. 그러나 대표적으로는 미·소와 중국·일본이 될 것이다. 그래도 역시 한반도 문제해결의 궁극적인 귀착점인 평화정착과 통일의 당사자는 결국 남북한 이외에 다른 나라가 될 수 없다.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통일은 또한 어디까지나 반전쟁적·평화적이어야 한다. 남북한은 그동안 부분적인 대화와 교류를 통해서도 아직까지 뚜렷한 긴장완화를 조성하지 못했다. 정치와 체제,이념적으로 대립했고 군사적으로 첨예하게 대결했다. 지금부터 그러한 대립과 대결양상은 종식돼야 한다. 노대통령은 한반도 문제해결과 관련하여 한국측이 절대로 군사적 우위에 서지 않겠다고 했다. 우리는 긴장완화와 평화정책,통일지향에 있어 전쟁적 해결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에 호응해야 한다. 생각하면 40년전 동족전쟁의 시발은 무엇이었던가. 북한측의 사회주의 혁명전략이었다. 북한은 지금부터라도 단일민족의 긍지와 사명감을 되살려 한반도가 전후 냉전체제의 마지막 「해결자」로 되는 한몫을 담당해야 한다. ○넘어야 할 절차,거쳐야 할 과정 이제 어떤 여건변화나 전제조건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한국·소련 관계발전에 있어서의 「대전환」은 가능성이 아닌 현실의 상황이 돼 있다. 그러나 바로 이 시점에서 우리는 한소 관계가 앞으로 지향할 바 실질적인 절차와 거쳐야 할 과정이 적잖이 남아있음에 유의하고자 한다. 또한 우리는 그에앞서 소련이 직면하고 있는 대내적인 현실여건에 대해서도 깊은 인식을 갖고자 하는 것이다. 지금 소련의 경제사정은 어려운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외부의 경제적 지원을 절대 필요로 하고 있음도 우리는 알고 있다. 따라서 한소간 경제교류 내지 협력관계의 개선발전에 있어서 우리는 그러한 정세분석과 현실인식에 입각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고르바초프대통령의 대동북아 기본정책이 대단히 치밀하고 원대한 계획에서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에도 주목한다. 그는 이미 86년엔 블라디보스토크연설을 통해서,이어 88년에는 크라스노야르스크연설을 빌려 소련이 지향할 바 세계전략과 대아시아정책을 천명한 바 있다. 그가 추진하는 페레스트로이카와 그라스노스트가 근본적으로는 「강대국 소련」을 유지하기 위한 그들 국가정책과 세계전략의 소산임을 우리는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다. 반면 우리 북방정책은 그 단계적 결실에 비추어 매우 일천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한소관계의 「정상화」가 주권국가 외교주체로서의 우리에게 주는 보상이 크면 클수록 경우에 따른 실패가 주는 대가도 적잖으리라는 점을 추찰해 보는 일도 중요하다. 우리 나름의 전략과 원려로서 실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나가야할 것이다.
  • 한ㆍ소 급속접근에 “찬물 끼얹기”/북한의 갑작스런 군축제의 저변

    ◎군사대치 강조,정상회담 격하 겨냥/“한반도 정세변화땐 주도권” 속셈도 한ㆍ소 정상 회담개최가 발표된 직후인 지난 1일 북한이 남북한병력을 3단계에 걸쳐 10만명이하로 감축하자는 내용의 군축안을 내놓아 주목을 끌고 있다. 북한의 이번 제안은 그들이 지난 87년 7월에 제의한 이른바 「다국적 군축협상안」,그리고 88년 11월의 「포괄적 군축안」과 별차이가 없는 것으로 그 내용자체는 큰 의미가 없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북한이 한ㆍ소 정상회담의 성사로 곤경에 빠진 상황에서 군축협상을 다시 제기했다는 점과 함께 그동안 강조해왔던 미ㆍ북한간 직접교섭 또는 남북한ㆍ미국 등 3자 교섭주장의 강도를 다소 누그려뜨렸다는 것이 주목할 만한 부분이라고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이번 제의가 1차적으로는 남북간에 아직 군사적 긴장과 대치가 상존하고 있음을 부각,한ㆍ소 정상회담의 분위기를 희석시키려는 데 그목적이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한ㆍ소 정상회담에서는 반드시 동북아 평화정책문제가 논의될 것이며 이에대한 원칙적인 합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측은 우리가 소련측과 직접 대좌해 한반도 평화문제를 논의하기 이전 군축제의를 함으로써 자신들도 평화정착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과시하고 싶었던 것으로도 관측된다. 나아가 한ㆍ소 정상회담이후 전개될 수 있는 남북한 긴장완화를 위한 남북대화가 군축문제에 초점이 모아지도록 노리고 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즉 고르바초프가 부시 미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동북아에서도 유럽과 같은 군축노력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듯이 동북아에서의 군축무드가 한ㆍ소 정상회담을 계기로 가속화되리란 전망아래 그 주도권을 잡아보자는 포석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북한측의 이러한 기도가 뜻대로 실현되리라는 분석은 그다지 많지 않다. 미소간 또 유럽지역에서의 군축은 상호 평화를 향한 충분한 신뢰구축이 이뤄진 뒤 점진적으로 진행되어온 것이다. 남북한의 경우는 군사대치 상황이 세계 어느 지역보다도 그 긴장도가 높다. 이에따라 「선신뢰구축 후군비통제」라는 우리 정부의 입장이 보다 설득력을 지니며 노태우대통령도 고르바초프에게 이 점을 충분히 설명할 것으로 보여진다. 한ㆍ소 정상회담 성사로 남북관계에 있어서 일단 주도권을 확보한 우리측이 무조건 군축협상쪽으로 남북대화를 몰아가려는 북한의 의도를 알고 있는 이상 거기에 휘말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한ㆍ소 정상회담의 결과에 따라 우리측의 입장이 보다 유연해질 수 있으며 그것이 북한측의 이번 군축제의와 어우러져 한반도상황이 급격히 변화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한ㆍ소 정상회담을 통해 소련측이 확실한 한반도 평화보장을 해온다면 우리측은 자신감을 가지고 군축협상에 보다 높은 비중을 두는 쪽으로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북한측이 이번에 내놓은 군축안중 「3자회담이전에라도 남북이 협상할 수 있다」고 남북한 직접교섭의사를 비친 것도 북한측이 한소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대화에 적극 응하지 않을까 하는 전망을 낳게 하는 부분이다. 북한은 최근 미군유해송환등을 위해 미국측과 접촉해본 결과 미국이 북한주장대로 3자회담에 응할 의사가 전혀 없음을 확인한 데다 소련까지 우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남북 당사자간의 대화를 촉구하는 상황에서 더이상 3자회담이나 미ㆍ북한 협상에 매달리기 어려워졌다는 분석이다. 북한이 한소 정상회담직전 군축제의를 했다는 사실만으로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성실한 대화에 응하겠다는 자세변환이 있는 것이라고 받아들이기에는 이른 느낌이다. 북한이 이번 군축제의를 한소 정상회담에 따른 세불리를 다소나마 만회해 보려는 몸부림의 일환으로했다면 남북한 긴장완화에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번의 한소 정상회담은 북한측에 어떤 방향으로든 변화를 촉구하는 계기가 될 것이며 이에따라 남북한간 신뢰에 바탕을 둔 실질적 군축협상이 조심스럽게 시작될 수 있다는 기대로 나오고 있다.
  • 통상마찰ㆍ노사문제 당력 집중/민정,90년대 10대 과제 선정

    민정당은 4일 정치권의 최대 현안이었던 5공청산 문제가 일단 매듭지어짐에 따라 앞으로는 민주개혁의 지속적인 실천과 경제난국의 타개및 복지정책의 실현등 국리민복에 정책의 역점을 두기로 하고 그 일환으로 90년대에 추진할 10대 과제를 선정,이를 적극 추진해나가기로 했다. 민정당이 선정한 10대 과제는 ▲지자제 실시등 민주개혁의 지속적 실천 ▲산업평화정책을 통한 경제활성화 ▲민생치안의 확립 ▲환경오염 대책 ▲근로자및 영세민을 위한 주택건설 ▲생산성 향상을 위한 기술혁신 ▲대도시 교통난 해소 ▲농어촌발전종합대책 추진 ▲교육혁신및 민족문화 창달 ▲통일기반 조성을 위한 지속적인 북방정책의 추진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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