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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고] ‘호밀밭의 파수꾼’ 샐린저… ‘미국 민중사’ 하워드 진 상반된 삶을 살다 같은날 하늘로

    한 사람은 문학에서, 다른 한 사람은 역사학에서 일가를 이뤘다. 소설가는 30년 동안 인터뷰 한 번 하지 않는 은둔생활을 계속했고 역사학자는 평생 싸움꾼이란 소리를 마다하지 않고 현실에 참여했다. 정반대 삶을 살았지만 둘 다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고 자기 분야에서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그리고 이제 세 번째 공통점을 갖게 됐다. 60년 가까이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을 쓴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가 미 뉴햄프셔주 자택에서 27일(현지시간) 노환으로 별세했다. 91세. 같은 날 캘리포니아에선 ‘미국 민중사’를 통해 권력자에서 원주민과 흑인·여성으로 역사의 시선을 바꿔놓은 역사학자이자 미국을 대표하는 양심적 지식인 하워드 진 보스턴대 명예교수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87세. 비뚤어지고 반항적인 10대 홀든 콘필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성장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은 1951년 출간 이후 샐린저를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들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유명세에 부담을 느끼고 1965년 미국 잡지 뉴요커에 마지막 작품을 발표한 뒤 뉴햄프셔 시골 마을에서 평생 은둔생활을 했다. 1980년 이후로는 인터뷰 한 번 하지 않았다. 진 교수는 브루클린 부두 노동자로 노동운동에 참여했고 나치가 싫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기 조종사로 참전했다. 자신이 투하한 네이팜탄이 무고한 시민들까지 희생시켰다는 것을 안 뒤엔 평생 반전평화운동에 동참했다. 흑인민권운동에 참여했다가 해직 교수 신세가 되기도 했다. 그가 1980년 발표한 ‘미국 민중사’는 지난해 말 200만부를 돌파했을 정도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뉴욕에서 띄운 진주알 편지

    뉴욕에서 띄운 진주알 편지

    모국에 계신 독자 여러분께 미국에서 새해인사 드립니다. 올해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제가 살고 있는 뉴욕에서 여러분께 편지를 띄우려 합니다. 제 부족한 글을 읽어주실 독자 여러분께 먼저 감사의 큰절을 올립니다. 우리들 만남의 인연으로 인해 삶이 조금은 더 참되고 착하고 아름다워졌으면 하는 큰 원을 세워봅니다. 제가 앞으로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은 제가 경험한 ‘영혼을 드높이는 사람 사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아시아 여성 신학자로서 지난 20년간 세계 80여 나라를 다니며 배우게 된 진주알 같은 이야기들이지요. 여러분들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면서 세상살이 지치고 힘든 사람들 목에 걸어줄 진주 목걸이 하나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제 첫 편지는 새로운 미국을 열어가는 버락·미셸 오바마 대통령 부부에 관한 것입니다.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이 확정되던 밤, 제가 살고 있는 맨해튼에서는 큰 축제가 벌어졌습니다. 누가 계획한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각종 악기를 가지고 거리로 뛰쳐나와 함께 음악을 연주하면서 밤을 새워 노래하고 춤을 추었습니다. 노예의 후손들로 구박받으며 살아왔던 흑인들의 공동체에서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탄생한 것입니다. 아직도 인종차별 문제로 시달리고 있는 미국에서 자신들의 리더를 흑인으로 뽑았다는 것은 혁명적인 일이지요. 기쁨에 들떠 텔레비전 기자와 인터뷰하던 젊은 흑인 엄마의 목소리에서 미국 역사의 기운이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 아이가 ‘엄마, 나는 커서 뭐든지 다 될 수 있어요?’ 하고 물을 때 ‘그럼’ 하고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그걸 믿지 않았어요. 그러나 이젠 자신 있게 내 아이에게 말할 수 있어요. 너는 열심히 노력하면 무엇이든 다 될 수 있다고!” 울먹이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제 눈에도 눈물이 고였습니다. 그녀의 말 속에서 미국의 깊은 비극과 저력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오바마 부부가 백악관으로 들어가면서 미국이 많이 밝아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새로운 미국을 여는 희망의 상징이 되기 때문이지요. 아프리카 무슬림 전통의 케냐인 아버지와 기독교인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인도네시아에서도 어린 시절을 보냈던 버락 후세인 오바마는 그 존재 속에 이미 세상을 넓게 포용할 내공이 쌓여 있습니다. 지구의 많은 이웃이 그가 미국 대통령이 된 것을 기뻐합니다. 로마제국처럼 변해가며 전쟁을 부추기는 미국에 실망하고 분노하다가 좀 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려는 세계인의 희망에 발맞춰나갈 새로운 미국의 가능성을 그를 통해 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 가능성에 힘을 실어주려고 노벨 평화상도 세계 평화를 위한 예방주사처럼 그에게 주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저는 이런 정치적 이유보다 그가 다정한 남편, 자상한 아버지라서 더 좋습니다.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욕을 먹어가면서도 뉴욕에 와서 브로드웨이 쇼를 보며 아내와 데이트하는 남편, 바쁜 일정에도 딸들과의 휴가 약속을 지키는 아빠. 가족과의 약속을 잘 지키는 이 세심한 대통령이 보통 사람들이 원하는 평화도 잘 만들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버락 오바마를 볼 때마다 그가 ‘여자의 남자’라서 다른 대통령들과 다르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버지 없이 할머니와 어머니의 보살핌 속에 잘 자란 남자, 여신 같은 아내와 두 딸의 여성성에 둘러싸인 남자. 그가 연설을 마치고 아내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지배와 폭력의 가부장적 권위가 아니라 돌봄과 보살핌의 여성적 권위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는 떨림을 느낍니다. 저는 그 떨림에서 새로운 미국을 예감합니다. 그런데 사실 저를 더욱 감동시킨 사람은 미셸 오바마입니다. 미셸은 19세기 후반 6세의 나이에 475달러에 팔려가 15세에 백인 주인의 아이를 낳아야만 했던 멜비니아라는 흑인 노예의 후예이지요. 멜비니아의 5대손이 미셸입니다. 넉넉지 않은 흑인 가정에서 자라난 미셸은 프린스턴과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변호사가 됩니다. 그리고 버락 오바마의 직장상사로 있다 그와 결혼하여 미국 최초의 흑인 영부인이 됩니다. 흑인 노예 소녀의 자손이 백악관으로 들어가기까지 150여 년이 걸렸습니다. 이것이 미국의 슬픔이고 힘입니다. 미셸을 보십시오! 생명력으로 넘치지 않습니까? 건강하고 당당하며 지혜롭고 자연스러운 미셸, 아름다운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비하하거나 과시하거나 설명할 아무 필요도 못 느끼는 변형된 유전자의 새로운 흑인 여성입니다. 그녀의 슬픔을 뚫고 터져나오는 힘, 진흙탕에서 연꽃을 피워내는 그녀 조상들의 힘과 기도 덕분에 버락 오바마는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이 ‘뼈대 없는 나라’ 미국의 새것을 나게 하는 힘입니다. ‘제행무상’이라더니…. 이렇게 모든 것이 변하기 때문에 인생은 살아볼 만하고 역사는 기다려볼 만한가 봅니다. 밝아오는 새해 날마다 새로워지시기를 기원합니다. 현경 _ 기독교 여성 신학자이며 뉴욕 유니언 신학대학원의 종신교수로, 불교와 기독교의 대화, 생태여성신학, 종교와 평화운동 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세계 80여 나라를 다니면서 달라이 라마, 데스몬드 투투, 머레드 맥과이어와 같은 노벨 평화상 수상자들과 함께 종교 간 세계평화위원회의 자문으로 일한 여성·환경·평화 운동가이기도 합니다. 저서로 <결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 <미래에서 온 편지> 등이 있습니다. 글 현경 | 그림 정명화 2010년 1월
  • [한·일 100년 대기획] “큰 고통받은 위안부·강제징용 문제 반드시 털고 가야”

    [한·일 100년 대기획] “큰 고통받은 위안부·강제징용 문제 반드시 털고 가야”

    한완상 전 부총리와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는 서울신문과의 신년특집 인터뷰에서 “한·일 관계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 서로 알고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교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전 부총리는 정부 차원에서 청소년 교류를 적극 추진하기를 희망했다. 와다 명예교수는 일왕의 방한 문제에 대해 “방한한다면 방문 자체로 그쳐서는 안 되며 역사적이어야 한다.”면서 “고종황제와 명성황후, 순종의 묘에 참배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한 전 부총리는 일왕의 방안을 전제로 “100년 전 병탄의 부당성 등 일본의 잘못을 정중하고 솔직히 인정하고 사죄해야 한다.” 고 말했다. 다음은 대담 형식으로 구성한 두 원로의 인터뷰다. │도쿄 박홍기특파원·서울 홍지민·강병철기자│ →한국(일본)에게 일본(한국)은 무엇인가. 한완상 전 부총리 일본은 20세기 초부터 36년간 한국을 식민지로 삼아 억압·수탈·차별한 나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 데다 아시아에 속하면서도 서구 열강에 속해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나라다. 와다 하루키 명예교수 일본과 한국은 무척 깊은 역사적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일본은 한국을 침략, 식민지화했다. 반성해야만 하는 역사를 갖고 있다. 세계적인 흐름에 맞춰 봐도 한국은 일본에게 대단히 중요한 이웃 나라다. →지난 100년간 한·일 관계는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한 전 부총리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있었다. 1910년 한일병탄이 이뤄졌다. 늑약의 1조는 ‘통치권을 완전히 영구히 일본 황제에게 이양한다.’이다. 519년 조선 왕조가 끝나는 순간이다. 1936년 일본은 내선일체를 외쳤다. 창씨개명, 한글사용 금지 등도 강요했다. 문화와 민족혼마저 빼앗는 통치를 시도했다. 태평양전쟁에 패전한 일본은 승전국인 미국과 함께 한반도의 분단에 간접적인 책임이 있다. 전범국인 일본은 통일된 자유 국가로 남고, 식민지로 질곡의 세월을 겪어야 했던 한반도는 갈라져 있다. 100년을 되돌아보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이다. 와다 명예교수 단적인 예로 조선은 식민지였기에 일본에 저항하지 못하고 침략전쟁에 말려들었다. 일본이 한국에 저지른 가장 큰 죄다. 1945년 한국은 독립을 맞았지만 일본은 침략과 식민 지배에 사과하지 않았다. 역사 자체를 내동댕이쳤다. 때문에 일본은 그때의 역사를 잊고 살아오게 됐다. 1965년 한·일 기본조약을 맺었는데 그 당시에도 과거의 반성 없이 조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한국은 엄청난 노력을 통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일제 강점이 현재 한국인이나 일본인에게 미친 영향은. 한 전 부총리 한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정신적인 상처, 충격을 줬다. 씻기 힘든 수치심과 분노다. 백색(서구) 제국주의의 흐름을 타고 등장한 황색(아시아) 제국주의의 제물이 된 사실에 대한 울분과 함께 민족자주의식이 형성됐다. 해방됐을 때 ‘소련에 속지 말고, 미국을 믿지 말자. 일본이 일어난다. 조선은 조심해라.’라는 민담을 들었다. 백색·황색 제국주의자들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심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 일본을 향한 불신과 거부감이 한국인의 성격 속에 내면화된 것이다. 와다 명예교수 일본은 한국에 대한 병합(와다 명예교수의 표현대로)한 사실을 태평양전쟁이 끝난 뒤 잊으려 했고, 실제 잊어버렸다. 그런 탓에 일본 젊은이들은 일본이 한국을 지배했었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길 정도다. 반면 한국의 입장에서는 용서할 수도, 잊을 수도 없는 역사다. 상처를 준 사람은 상처를 받은 사람의 고통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또 지나쳐 버리고 싶어 한다. 한국을 병합했다는 사실 자체가 일본의 생활 속에서는 별로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일본인은 분명하게 한국인의 감정을 읽어야 한다. 한 전 부총리 너무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람에게 감정적인 대응을 자제하라는 건 정말 잔인한 일이다. 울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가장 큰 고통을 받은 두 부류가 위안부와 강제 노동자다. 합리적으로 털고 가야 한다. 경제적 보상 이전에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잘못했다는 것을 확실하게 시인 받아야 한다. 또 최소한의 경제적 보상도 있어야 한다. →한국과 일본 사이의 바람직한 미래는 가능한가. 한 전 부총리 가능하다. 19~20세기는 서세(西勢)의시대였다. 19세기는 팍스브리태니카 시대, 20세기는 팍스아메리카나 시대였다. 21세기는 동세(東勢)의 시대다. 동세의 기운을 정보기술(IT) 혁명이 활성화시키고 있다. 줄씨알(네티즌)이 국경을 초월하고 있다.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는 데다 연대 강화도 쉬워졌다. 동세의 기운이 솟구치고 있다. 21세기에 일본과 한국, 중국까지 평화의 중심세력으로 힘을 합칠 수만 있다면 글로벌 이슈, 즉 기후나 테러 등 어떤 문제에서든지 굉장한 발언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한·일간 평화 강화에 반하는 열악한 조건의 존재가 냉전벨트다. 한국 정부의 힘만으로 해체할 수 없다. 미국과 일본의 지원이 필요하다. 북한 경제에 대한 대국적인 지원은 한반도 냉전을 해체하는 출발점이다. 그렇게 되면 남·북, 북·일, 북·미 관계 정상화가 쉬워질 것이다. 한국, 미국, 일본 정부가 함께 한반도 냉전 체제를 확실히 깨 21세기에 세계에서 냉전체제가 종식됐다는 선언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와다 명예교수 미래를 생각하면 일본과 한국은 자국의 테두리만이 아니라 지역적인 공동 번영, 공생을 위해 협력해 나가야만 한다. 동아시아공동체 구축에서도 한국은 중심에 서서 추진자, 대안자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 일본도 성심성의껏 힘을 보태는 게 한·일의 미래지향적인 모습이 아닐까 싶다. 일본은 섬나라다. 한국은 반도국으로 대륙과 맞닿아 있는 만큼 지리적으로 핵심 역할을 할 수 있다. 중요한 위치에 있다. 과감하게 말하면 한국과의 협력 없이 일본의 미래는 없다. →국제 사회에서 한·일의 경쟁과 협력은 필연적이다. 한 전 부총리 정보기술(IT), 생명공학(BT), 문화 기술(CT) 분야는 일본과 격차가 없다. 서로 협력하며 경쟁할 수 있다. 협력 없는 경쟁은 금물이다. 21세기는 협력을 통한 경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과거처럼 서로 먹고 먹히던 때로 돌아갈 수 있다. 실제 엇비슷한 수준의 IT, 동물 복제 등에서 강한 BT, 특히 한류로 대변되는 CT는 일본에 자극을 줄 수 있다. 또 제조업, 조선, 자동차 분야 등도 한국이 도움을 줄 수 있는 단계에 올라섰다. 와다 명예교수 잘할 수 있는 분야는 서로 이끌고 격려해야 한다. 뒤처진 부분은 서로 배우면서 따라가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서로 돕고 협력하면서 앞으로 나가길 바란다. 달리 말해 모든 것은 한 가지 사안 속에 경쟁, 협력이라는 두 측면이 있다. 어떤 것은 경쟁, 어떤 것은 협력이라는 식으로 이분화할 게 아니다. 조화시키며 동시에 추진해 나가야 한다. 한국의 에너지는 일본을 압도하고 있다.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 한·일 양국의 국민들에게 바라고 싶은 것은. 와다 명예교수 과거 역사에 대해 반성하도록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에게 지속적으로 알렸으면 한다. 인내심을 갖고 말이다. 한국의 노력 덕에 일본에도 여러 변화가 가능했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흘린 땀에 비해 일본 전체적으로는 크게 변하지 않는 점도 알고 있다. 초조하기도 하고, 불만이 있는 줄도 잘 안다.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한국을 여러 면에서 좋아하는 사람들도 크게 늘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일본인은 과거의 역사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역사는 역사대로 놓아두고 미래로 나갈 수는 없다. 미래를 위해 더더욱 과거 문제를 인식하려고 힘써야 한다. 한 전 부총리 일본은 한반도에서 저지른 부당한 조치들을, 최소한 독일이 연합국에 보여줬던 수준으로 시인했으면 좋겠다. 독일 정부는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에 대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수시로 고개를 숙인다. 나치 전범에 대해서는 시효가 없다. 일본이 왜 못하는지 안타깝다. 일본 지식인들의 말처럼 늘 아시아를 넘어 서구를 좇는다면 적어도 독일 수준으로는 가야 한다. 불행한 역사는 청산해야 한다. 양국에는 이를 거부하는 세력이 있다. 한국 쪽에도 식민지는 한국을 근대화시킨 시기라고 긍정하는 일부 지식인·정치인들이 있다. 일본에도 이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우파들이 있다. 친일 세력과 일본의 보수적 민족주의 세력의 냉전적 연대와 연계를 어떻게 성숙하게 극복해 나갈 수 있는가가 중요한 과제다. 이런 것을 위해 한·일간 여러 차원에서 교류·협력이 필요하다. 와다 명예교수 1995년 무라야마 담화를 뛰어넘는 ‘하토야마 담화’가 발표되기를 희망한다. 무라야마 담화는 침략과 조선지배에 대해 사죄하고 반성하는 내용으로 발표됐다. 담화가 나온 이후 일본 국회에서는 논란이 일었다. 병합을 강제적인 것으로 볼 것인지, 대등한 입장에서 체결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다. 담화로부터 15년이 지났다. 적잖게 훼손됐다. 그러나 식민지화가 왜 일어나게 되었는가 등에 대한 역사연구는 꾸준히 진행됐다. 병합은 한민족의 의지와 상관없이 힘에 의해 강제됐다. 따라서 ‘하토야마 담화’에는 진정한 의미의 역사적 판단을 담아야 한다. 전향적이고 획기적인 결단이 필요하다. 병합 100년은 상징적으로 아주 좋은 계기다. →한·일 양국의 젊은이들이 바른 역사관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는. 한 전 부총리 젊은 세대는 조부모·부모 세대가 이룬 성취, 즉 독립운동, 민주화, 인권운동, 평화운동 등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관심을 가지는 주요 문제는 좋은 직장과 안정된 삶 등 개인 중심적인 복지다. 어느 나라나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지금은 인터넷 시대다. 분단의 아픔, 억울함에 대해 체계화되고 설득력 있는 지식을 인터넷에서 자유롭게 볼 수 있게 됐으면 한다. 젊은이들은 지식을 획득하는 속도나 양에서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런 걸 보면 인터넷 시대에 새로 깨우쳐 줄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와다 명예교수 젊은이들이 옛일에 대해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어느 사회에 있어서든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잊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태평양전쟁을 잊지 않도록 젊은 세대에게 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로운 사람들이 역사의 연구, 조사를 계속해야 한다. 역사란 건망증이 심하다. 방치해 두면 잊혀진다. 따라서 자국만이 아닌 넓은 범위에서 지역적 협력을 통해 건망증을 방지해야 한다. 한 전 부총리 일본 젊은이들은 조상들이 제국주의적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 10여년 전 중국 창춘(長春)에서 겪은 일인데 일본 청년이 위화관에서 인체실험인 마루타 전시를 보고 기절한 일이 있었다. 자기 조상들의 만행을 믿지 못해서다. 일본 교육이 문제다. 불과 할아버지 세대에 있었던 반인류 범죄인데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서대문 역사박물관에 있는 독립투사의 고문받는 모형을 보고도 충격을 받는다. 양국 청년들이 서로 불행했던 과거 역사를 정확하게 알고 서로 용서해 주는 두 민족 간의 정신적 트라우마(충격)를 극복하는 치유 과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한·일 청년들의 교류를 정부 차원에서 적극 추진했으면 한다. 비정부기구(NGO)나 종교단체도 앞장서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일왕을 한국에 초청하겠다고 했는데. 한 전 부총리 일왕 초청엔 두 가지 조건이 전제돼야 한다. 100년 전 병탄의 부당성 등 일본의 잘못을 정중하고 솔직히 인정하고 사죄해야 한다. 그래야 한·일, 북·일 관계 모두에 도움이 된다. 동아시아공동체에도 힘을 불어넣어 줄 수 있다. 일왕의 가계는 한민족의 조상에 닿는다. 종묘에서 경의를 표하고, 특히 100년 전 병탄과 105년 전 늑약 때 가졌던 고종황제, 명성황후, 순종의 아픔 등을 되새기고 참배했으면 한다. 대학생들과 자유로운 간담회를 갖는 것도 좋다.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일왕 초청은 전적으로 찬성한다. 와다 명예교수 천황은 일본 국민의 상징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전쟁이 끝날 당시 지금의 아키히토 천황은 초등학교 6학년이었는데 신춘 휘호로 평화를 염원하는 글자를 썼었다. 마음이 깃든 휘호라고 본다. 천황은 히로히토 전 천황이 방문할 수 없었던 중국도 찾았다.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를 방문했다. 한국을 방문하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단 한국 방문 자체에 그쳐서는 안 된다. 역사적이어야 한다. 고종황제와 명성황후, 순종의 묘에 참배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2010년에 실행된다면 매우 뜻깊을 것이다. 2010년은 100년이라는 역사 속에서 마지막 기회의 해다. →북한과 일본의 국교정상화 문제도 병탄 100년을 맞는 시점에서 중요한 문제다. 한 전 부총리 하토야마 정권이 동아시아공동체를 만들려면 대북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방북 의사가 있다고 했다. 북한 지도자와 허심탄회하게 한반도 안정과 평화를 위한 환경 조성에 앞장섰으면 한다.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한 하토야마 정권의 노력은 긴요하다. 역사적인 성취를 하려면 대북 관계를 전향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북한과 대화를 통해 두 나라 관계를 개선하면 불가피하게 거쳐야 할 부분이 식민지 청산문제다. 과감한 사죄와 적절한 보상조치를 해야 한다고 본다. 그렇게 되면 1965년 한·일 기본조약보다 훨씬 평가받는 북·일 기본조약이 나오고, 하토야마 정권이 주창하는 동아시아공동체가 구축될 것이다. 하토야마 정권은 동아시아의 비핵화도 강조해야 한다. 동아시아 비핵화와 한반도 비핵화는 함께 해야 할 과제다. 와다 명예교수 일본과 북한의 국교 정상화는 실현돼야 한다. 일본이 한국을 병합하고 100년이 된 이때 피해를 입은 국가의 반쪽과 아무것도 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커다란 문제다. 어떻게 해서든 국교를 정상화해야 하는 것이 옳다. 교섭을 통해 해결해 나가야 한다. 불행하게도 북한의 핵개발이 국제적인 이슈가 됐다. 그러나 국교 정상화를 절차적으로 본다면 북한의 핵포기와 국교 정상화 추진을 동시에 진행시켜야 한다. 병합 100년이라는 측면에서 절호의 타이밍이다. 일본은 국교 정상화를 한 뒤 과거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 경제협력을 약속할 수 있다. 경제 원조를 갑자기 추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국교정상화 뒤라면 자연스럽다. 그러면 남북대화에도 긍정적인 면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본다. 통일은 필연적인 것이며 머지않은 일이기도 하다. 중요한 전제는 모든 과정이 완전히 평화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전 부총리 북·일 관계에서 한국의 역할은 분명하다. 일본이 6자회담 밖에서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문제를 꺼낼 경우, 북한이 전향적으로 검토할 수 있도록 부드럽게 권고할 수 있다고 본다. 또 일본에 대해서도 납치문제가 한반도 평화 정착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6자회담에서 납치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새로운 채널을 가동할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한다. hkpark@seoul.co.kr ●한 前부총리는 1980년대 초까지 저항적 지식인의 대표적 인물이다. 제5공화국이 끝나도록 금서였던 저서 ‘민중과 지식인’은 운동권뿐만 아니라 대학생들의 필독서였다. 사회과학자이면서 교육, 정치, 종교계 등을 넘나들었다. 시민단체인 경실련에도 관여했다. 교수 시절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두 차례 해직과 복직을 거듭한 데다 수형 생활을 하기도 했다. 문민 정부와 국민의 정부 등 2대 정권에서 통일부총리, 교육부총리를 역임했다. 대한적십자사 총재와 한성대 등 3개 대학의 총장도 지냈다. 최근에는 언론, 논객, 시민과 대화한 내용을 묶으며 YS(김영삼 전 대통령)부터 MB(이명박 대통령)까지 돌아보는 대담집 ‘우아한 패배’를 출간했다. ●와다 하루키는 일본을 대표하는 진보학자이자 한반도 전문가다. 1960년 도쿄대 문학부를 졸업, 66년부터 도쿄대 강단에 섰다. 소련사와 북한 현대사가 전공이다. 1970~80년대 일본 지식인으로서 민주화 운동 때문에 투옥된 김대중·김지하씨 등의 구명운동에 앞장섰다. 1980년 김대중씨 사형 선고와 관련, 교수 신분으로 주일 한국대사관 앞에서 매일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조만간 러·일전쟁을 중심으로 1875~1904년의 역사를 다룬 저서를 상·하권으로 출판할 계획이다. 그는 “최근 틈나는 대로 대장금, 태왕사신기, 주몽 등 한국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혁명 1991’, ‘역사로서 사회주의’, ‘조선전쟁’ 등 30권 이상의 저서를 집필했다.
  • [책꽂이]

    ●여성, 총 앞에 서다(신시아 코번 지음·김엘리 옮김, 삼인 펴냄) 전쟁과 폭력의 역사에서 필요한 것은 평화의 가치 전파다. 평화운동에 가장 부합하는 주체는 여성이다. 여성은 인류사에 얼룩진 숱한 전쟁의 가해자보다는 피해자 측에 서 있었고, 근본적으로 파괴보다는 생명의 탄생 역할을 맡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계급, 인종, 민족, 지역의 차이까지 뛰어넘은 집단적인 여성들의 저항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2만 5000원. ●고통과 환희의 순간들(프랑수아즈 사강 지음·최정수 옮김, 소담출판사 펴냄) ‘슬픔이여 안녕’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던 사강의 자전적 에세이다. 테네시 윌리엄스, 빌리 홀리데이, ‘시민 케인’의 영화감독 오손 웰스, 장 폴 사르트르 등 당대 내로라하는 문화예술계 동료들과의 만남, 우정 등을 차분하게 써내려 간다. 1만원. ●아뿔싸, 난 성공하고 말았다(김창남 엮음, 학이시습 펴냄) 학점, 자격증, 토익점수 등 이른바 스펙에 목매다는 이들은 대기업 입사, 승진 등을 성공이라 생각하기 십상이다. 이 책은 성공은 우리가 뒤로 미뤄 놓고 있는 ‘또 다른 얼굴’을 그대로 보여 준다.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 ‘언니네 이발관’의 이석원, ‘시사IN’ 기자 고재열 등 10명의 ‘또 다른 성공담’이 담겨 있다. 1만 2000원. ●미네르바의 생존경제학(박대성 지음, 미르북스 펴냄)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인터넷상에 올린 숱한 글로 ‘경제 대통령’이라는 호칭까지 얻은 저자가 내놓은 실사구시형 경제학 책이다. 필화 구속까지 당하며 한국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 민주주의의 위기 등의 문제를 온몸으로 역설했던 저자는 2010년 내수시장, 부동산, 주가, 환율 등 대한민국 경제에 대해 전반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1만 5000원. ●열두살에 수학천재가 된 아이들(송재환 이진호 지음, 브리즈 펴냄) 전국 상위 1% 수학영재원 아이들의 수학 정복 노하우가 담겨 있다. 책을 많이 읽어라, 공부하지 말고 즐겨라, 상상의 폭을 넓혀라 등 큰 틀의 접근법이 실려 있다. ‘교과서 중심으로 예습, 복습’이라는 조언에 식상한 이들을 위해 구체적인 노하우로서 선행학습의 요령, 오답노트 작성법 등을 소개한다. 1만 1000원.
  • ‘亞평화교육과 종교역할’ 세미나

    ‘아시아의 평화교육과 종교의 역할’ 국제세미나가 지난 9~10일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 개최됐다. 7대 종교 협력기구인 한국종교인평화회의 산하 종교평화국제사업단이 주관한 이 행사에는 세계 15개국의 평화운동가 및 교육가 20여명을 포함해 총 50여명의 전문가들이 모여 평화운동 활동 체험을 나누고, 아시아 지역 평화를 위해 종교의 할 일 등을 논의했다.
  • “가정·학교서 비폭력 문화 정착을”

    “가정·학교서 비폭력 문화 정착을”

    주제 라모스오르타 동티모르 대통령이 29일 이화여대 중강당에서 ‘우리 시대의 평화’를 주제로 특별 강연을 가졌다. 라모스오르타 대통령의 이번 특강은 이 학교 평화학연구소가 주관하고 교육부가 지원하는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뤄졌다. 라모스오르타 대통령은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식민통치와 대량학살을 국제사회에 고발하고 비폭력 평화운동을 통해 동티모르의 독립을 이끈 공로로 1996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그는 한반도의 현 상황에 대해 “북한의 핵개발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면서 “세계의 수많은 지식인들이 한반도 평화수립에 대해 논의하고 있지만 어떻게 해야 북한이 마음을 열 것인지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평화의 실현은 작은 곳에서부터 시작한다.”면서 “가정과 학교에서 비폭력 문화를 정착시킨다면 그 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평화를 확산시킬 수 있다.”며 평화학 지론을 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에 대해 “김 전 대통령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민주주의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신 분”이라고 평가하는 한편 “오바마 대통령은 전 세계인들에게 실현 가능한 평화에 대해 희망을 부여하고 국가와 인종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데 공헌했다.”고 말했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비폭력’ 간디도 못 받은 賞?

    ‘비폭력’ 간디도 못 받은 賞?

    고(故) 야세르 아라파트 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수상 당시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의장)은 받았지만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받지 못한 상이 있다. 바로 9일(현지시간) 발표를 앞둔 노벨평화상이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7일 노벨평화상을 받았어야 마땅한 역사상 인물들을 선정해 발표했다. 간디는 세계적인 비폭력 평화주의자답게 1937년과 47년, 48년 등 3차례 평화상 후보군에 올랐다. 하지만 그가 ‘독립운동을 한 정치 지도자’, ‘사후(死後)’라는 이해하지 못할 이유 등으로 상을 받지 못했다. 또 대부분이 유럽 출신인 백인 심사위원들의 지역·인종적 편견도 간디를 배제한 이유 중 하나라고 FP는 설명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 대통령의 부인인 엘리너 여사는 여성운동가이자 인권운동가로 명망이 높았다. 또 세계인권선언 제정에도 큰 공을 세운 인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그 역시 1947년, 1955년 평화상 후보에 올랐지만 상을 받지 못했다. 해리 트루먼 전 미 대통령은 “그가 상을 못 받으면 대체 누가 상을 받을 수 있느냐.”고 성토하기도 했다. 체코 민주화 운동인 벨벳혁명을 이끈 바츨라프 하벨 전 대통령도 유력한 후보였지만 상을 받지는 못했다. 그가 유력한 수상자로 떠올랐던 1991년에는 지역적 안배를 고려한 노벨위원회의 결정으로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 여사에게 상이 수여됐다. 중동평화를 위해 큰 역할을 한 팔레스타인 평화운동가 사리 누세이베가 아직도 상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1994년 평화상 때문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1994년 당시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시몬 페레스 외무장관,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의장이 오슬로 협정을 체결한 공로로 평화상을 공동 수상했지만, 그 뒤에도 중동의 갈등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노벨위원회는 중동지역 인사들에게 상을 주기를 주저하고 있다고 FP는 전했다. FP는 이 외에도 평화상을 받아야 했던 인물로 나이지리아의 환경운동가 켄 사로 위와와, 필리핀의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 중국의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劉曉波) 등을 꼽았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 “남북통일 위해선 전쟁 기억하는 일부터”

    “남북통일 위해선 전쟁 기억하는 일부터”

    6·25 휴전일(7월27일)을 미국 국가기념일로 지정하는 ‘한국전 참전용사 인정법’ 제정을 이끈 한나 김(26)씨가 11일 모교인 서울대(영문과)를 찾았다. 2005년 졸업한 뒤 4년 7개월여만의 모교 방문이다. ●4년7개월만에 모교 찾아 스승 만나 민간단체인 ‘리멤버 7·27’대표인 김씨는 미 하원의원 435명의 사무실을 돌며 법안제정의 필요성을 설득했고 그같은 노력의 결과로 지난 7월 미 상·하원의회에서 법안이 통과됐다. 국가보훈처의 한국전 참전 유엔초청행사 참석 등을 위해 지난달 방한한 그는 이날 재학시절 스승이었던 서울대 인문대학장 변창구(58) 교수를 찾아 담소를 나눴다. 변 교수는 “한나가 워낙 활발하고 성실해 큰일을 할 줄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해낼 줄은 몰랐다.”고 칭찬했다. 6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던 김씨는 고등학교를 1년 조기졸업하고 19살 되던 해인 2001년에 한국 유학길에 올랐다. 외교관이 꿈이었는데 책으로만 한국을 공부하는 건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울대에서 인문대 야구부 매니저를 맡는 등 동아리 활동에 열심이었던 김씨는 “우수한 한국 학생들과 생활한 것이 미국에서 활동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2005년 대학졸업 뒤 로스쿨 진학을 위해 다시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찾았다가 이듬해 1월 교통사고를 당해 생사의 기로에 서기도 했다. 그 일을 계기로 평소 생각만 했던 통일·평화운동을 실천하기로 한 그는 첫 행동으로 ‘한국전 참전용사 인정법’제정운동에 나섰다. 김씨는 “미국 젊은이들은 자국 군인 178만여명이 참전한 한국전쟁에 대해 거의 모른다.”면서 “통일을 위해서는 당시 참전국들간 화해가 필요하고 그러려면 전쟁을 기억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법안제정 배경을 설명했다. ●“한국서도 휴전기념일 지정되도록 노력” 스승인 변 교수는 “어리게만 봤던 제자가 훌쩍 커버렸다. 말 그대로 청출어람”이라고 격려했다. 한나 김은 “내년이면 한국전쟁이 환갑을 맞는 만큼 한국에서도 7월27일이 휴전기념일로 지정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글ㆍ사진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안중근 의거 中의 반일 애국주의 교과서”

    “안중근 의거 中의 반일 애국주의 교과서”

    안중근 의사가 1909년 10월26일 하얼빈역에서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하얼빈 의거는 조선의 독립 의지와 일본의 침략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린 역사적 사건이었다. 올해 100주년을 맞아 안중근 의거가 한·중·일 등 국제사회에 미친 영향을 재조명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는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안중근 의거의 국제적 영향’을 주제로 학술심포지엄을 연다. 손염홍 건국대 교수가 미리 배포한 발표문 ‘안중근 의거와 중국의 반제 민주운동’에 따르면 안중근 의거 직후 중국 혁명파와 입헌파의 평가는 엇갈렸다. 그러나 5·4운동이 끝나고 신민주주의 혁명기에 들어가면서 안중근 의거는 반일 애국주의 교육의 상징으로 부상하고 교과서로 활용돼 다양한 방식으로 중국 혁명에 계속 영향을 미쳤다. 특히 박은식이 1914년에 발간한 ‘안중근’ 전기는 안중근 의거가 단순히 한국의 원수를 갚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동양의 평화를 위한 것임을 강조함으로써 한·중이 연대해 반제 항일운동을 전개할 수 있는 사상적 기초가 됐다고 손 교수는 분석했다. 안중근은 1907년 가을부터 1909년 10월까지 러시아 한인사회를 두차례 순방하며 동의회와 동의단지회를 결성하는 등 러시아지역 항일운동을 주도했다. 반병률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러시아에서의 안중근의 항일독립운동에 대한 재해석’에서 “안중근의 거사는 한인단체들이나 한민학교의 연설회, 연극 등의 행사에 단골 주제로 등장해 러시아 지역 한인들의 항일의식과 독립의지를 고취시켰다.”고 했다. 안중근 의거에 대해 일본 사회는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이규수 순천향대 교수는 “일본 언론계는 안중근에 대해 ‘미친 개’라는 표현을 주저하지 않았고, 안중근으로 상징되는 조선인의 저항에 대해서도 ‘괴물’ ‘마물’이라는 극단적인 멸시감을 유포했다.”면서 “이토 공을 죽인 한국을 멸망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언론의 비호를 받으면서 더욱 확산되었고, 이후 한국 강점을 주장하는 논리로 발전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안중근 의사의 업적에서 그가 주창한 ‘동양평화론’을 빼놓을 수 없다. 안중근은 뤼순 감옥에서 자서전을 탈고한 뒤 ‘동양평화론’ 집필을 시작했으나 끝맺지 못했다. ‘안중근 의거와 동양평화론의 현대사적 의의’를 주제로 발표하는 윤경로 한성대 교수는 ▲뤼순의 개방 ▲한·중·일 3국 평화회의 구상 ▲공동은행 설립 ▲공동 군단 설립, 교육 ▲상공업 발전 ▲로마 교황으로부터 3국 독립보장 등을 동양평화론의 핵심으로 요약했다. 윤 교수는 “오늘의 유럽공동체(EU)와 같은 아시아 경제공동체를 100년 전에 이미 구상했던 것은 참으로 놀라운 탁견이자 예지”라면서 “안중근 의거와 동양평화론은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를 위한 평화운동이며, 이 점이 안중근 의거의 현대사적 메시지”라고 말했다. 심포지엄에서는 이 외에 윤병석 인하대 명예교수가 ‘안중근 의거의 역사적 의의’에 대해 기조연설하고, 장석흥 국민대 교수가 ‘안중근 의거의 국제성과 그 영향’을 주제로 발표한다. 한시준 단국대 교수, 방광석 고려대 교수, 윤선자 전남대 교수 등이 토론자로 참여하고, 신용하 이화여대 석좌교수의 주도로 종합토론이 이어진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소크라테스·로젠버그 부부 등 부당한 세기의 재판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가 공연을 할 때 ‘히어스 투 유’라는 곡을 자주 들려준다. 1971년 이탈리아 출신 줄리아노 몬탈도 감독이 연출했고, 리카르도 쿠치올라가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던 영화 ‘사코와 반제티’에 쓰여진 노래다. 모리코네가 애절하면서도 무게감 있는 멜로디를 쓰고, 포크가수이자 인권운동가, 반전 평화운동가인 존 바에즈가 ‘죽음으로 승리를 거뒀다’는 비장한 노랫말을 썼다. 영화는 미국 최악의 사법 살인으로 꼽히는 재판의 피고인이었던 구두 직공 니콜라 사코와 생선 장수 바르톨로메오 반제티의 실화를 다뤘다. 이탈리아 이민자였던 이들은 강도살인 사건으로 기소됐고, 혐의를 부인했으나 재판은 유죄 분위기로 흘러갔다. 재판이 진행된 7년 동안 세계 곳곳에서 항의 데모와 소요 사태가 끊이지 않았다. 사코와 반제티는 결정적인 유죄 증거가 없었음에도 결국 1927년 8월23일 전기의자에 앉는다. 50년이 지난 1977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재판이 정당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하며 이들이 사형당한 날을 기념일로 선포한다. 그들이 실제로 유죄였을까, 무죄였을까는 지금도 논란이 있지만 국적과 정치적 견해에 대한 편견 속에서 재판이 진행됐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고 한다. 아서 슐레진저 하버드대 교수는 “사코와 반제티는 이민자였고, 가난했으며 무신론자에 양심적 병역거부자였고 무정부주의자였다는 점을 기억해야만 한다. 그들이 무슨 짓을 했든 미국인들은 무조건 유죄라고 생각했을 만한 바로 그런 종류의 사람들이었다.”고 말했다. 이런 일이 먼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다. 지난해 가을 사법부 60주년 기념식에서 이용훈 대법원장은 “권위주의 체제가 장기화되면서 법관이 올곧은 자세를 온전히 지키지 못해 국민의 기본권과 법치질서의 수호라는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한 경우가 있었고 그 결과 헌법의 기본적 가치나 절차적 정의에 맞지 않는 판결이 선고되기도 했다.”고 국민에게 사과하기도 했다. 인혁당 사건, 민청학련 사건 등 권위주의 시절에 유죄 판결됐던 많은 사건들이 재심을 통해 무죄로 뒤바뀌고 있는 게 우리의 요즘이다. 영국 출신의 변호사 브라이언 해리스는 ‘인저스티스’(이보경 옮김, 열대림 펴냄)를 통해 기원전 4세기 소크라테스 재판부터 20세기 원폭 기밀 간첩 로젠버그 부부 재판에 이르기까지 부당한 재판으로 인식되는 13가지의 대표적인 사례를 소개한다. ‘사코와 반제티’ 사건은 물론 무고한 사람이 유죄판결을 받거나, 유죄 판결에 적어도 합리적인 의혹이 존재하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세기의 정치범 재판’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저자는 “권력자가 자신을 위협하는 인물에게 가하는 행동이며, 불확실함과 도덕적 모호함이 넘치는 정치범 재판은 인간의 행동 방식을 관찰할 수 있는 흥미진진한 시험대”라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사회는 반대자를 어느 정도까지 용인해야 하는가. 사회 정의를 향한 불타는 신념이 테러를 정당화시킬 수 있는가. 자국 방어를 위해 무기를 든 사람에게 반역죄 혐의를 씌우는 것이 적절한 대응인가. 자국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 다른 나라의 압제자를 공격하는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는가. 2만 3000원.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셸, 환경운동가 죽음에 196억원 보상

    나이지리아 군부세력과 손잡고 반정부 환경 운동가 켄 사로 위아를 탄압, 사형에 이르게 했다는 혐의로 미국의 뉴욕 법정에 선 굴지의 다국적 석유 기업 로열더치셸이 유족 측에 1550만달러(약 196억원)를 보상하기로 합의했다.AFP통신에 따르면 원고의 변호사는 8일(현지시간) “오늘 원고는 로열더치셸의 반인도적 행위에 대해 합의에 도달했다. 셸의 보상에 대해 만족을 표한다.”고 밝혔다. 제3세계에서 벌어지는 다국적 석유 기업과 독재 정권의 결탁에 대한 기념비적 합의라는 평가다.1958년부터 니제르 델타에서 사업을 시작한 셸은 지금까지 나이지리아의 석유 자원을 독식해 왔지만 정작 나이지리아 인구의 70%는 매일 1달러로 연명할 정도로 빈곤을 면치 못했다. 무분별한 석유개발로 환경은 급속히 황폐화됐고 셸은 사니 아바차 전 군부정권과 결탁, 환경운동가 탄압 시위 등에 자금과 헬리콥터 등을 지원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특히 작가이자 평화운동가였던 사로 위아는 셸의 유전개발로 원주민 오고니족의 삶터가 파괴되는 현실을 고발하다 군부에 의해 1995년 사형당했고 셸은 ‘사법적 살인’에 공조했다는 비난에 직면, 결국 재판대에 올랐다.이번 합의로 셸과 사로 위아의 유족 간에 끈질기게 이어온 14년 간의 법적 공방은 마무리됐다. 셸의 탐사개발담당 최고경영자인 말콤 브린디드는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셸이 나이지리아의 반인도적 행위와 무관하다 할지라도 유족들을 비롯, 여러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서 “우리는 환경 문제로 고생한 오고니족의 미래에 초점을 맞추고 올바른 길을 걸어 가겠다.”고 밝혔다. 통신은 “셸이 인권탄압방조 혐의에 대한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이번 합의는 셸이 스스로를 변호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는 점을 방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원고인단의 마르코 사이먼 변호사는 “이번 소송 결과는 셸에 매우 중요한 이정표”라면서 “셸은 그들의 사업을 지원했던 군부 세력에 의해 누군가가 희생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의 일간 가디언은 “이번 보상 규모는 인권침해에 대한 기업의 보상으로는 최대 액수”라면서 “다국적기업들이 환경과 사회적 행동에 책임있는 행동을 할 것을 촉구하는 ‘진전’으로 해석된다.”고 전했다.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사람 사랑하는 터전은 가정”

    “하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데 그 터전은 가정입니다.” 문선명 통일교 총재가 처음으로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다. 1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자서전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김영사 펴냄) 출판기념회 자리에서 그는 “애천, 애인, 가정의 평화를 통해 세계평화를 이룩해야 한다.”며 기자들에게 출간소감을 밝혔다. 나이 90이었지만 행사장에서 만난 문 총재는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하객들을 맞이했다. 이번 자서전은 올해 90수를 맞아 기념해 낸 것. 그간 통일교 관련 교리서적들을 출판한 적은 많았지만 자서전은 처음이다. “나는 평생을 평화를 위한 일에 몸 바쳐 왔습니다. 평화라는 말만 떠올리면 지금도 목이 메어 눈물이 쏟아집니다.” 자서전 본문 구절처럼 이번에는 사상, 교리 등 문제는 접어두고 평화운동을 위해 살아온 자신의 삶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만을 담았다. 통일교 한 관계자는 자서전을 완성한 문 총재가 “이건 내 삶의 84%밖에 이야기하지 못했고 아직 16%가 더 남았다.”고 감상평을 했다고 전했다. 김병찬 아나운서의 진행으로 이어진 이날 행사에는 라힘 후세이노브 아제르바이잔 전 총리, 닐 부시( 조지 W 부시 전 미대통령의 둘째동생) 미 촛불재단 회장 등 세계 곳곳에서 찾아온 하객 3500여명이 참석했다. 출판행사에는 이상주 전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의 소감발표를 비롯, 각계 대표의 축사가 이어졌다. 이 전 장관은 축사에서 “평화를 위해 평생을 살아온 문 총재의 생생한 기록을 책으로 만나볼 수 있게 돼 영광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고통의 공유와 연대만이 폭력 끊는다

    고통의 공유와 연대만이 폭력 끊는다

    존 레넌은 ‘이매진’에서 누굴 죽이거나 죽을 이유가 없는 세상을, 모든 사람이 평화스럽게 사는 세상을 상상해 보라고 권한다. 노력만 하면 쉬운 일이라고도 귀띔한다. 이 노래는 40년 가까이 국적, 인종, 종교, 세대를 뛰어넘어 많은 사람들이 부르고 음미하는 불후의 명곡이 됐지만 사람들의 상상력이 부족한 탓인지, 노력하지 않았던 탓인지 여전히 크고 작은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일본 정치학자이자 릿쿄대학 법학부 교수인 다케나카 치하루는 ‘왜 세계는 전쟁을 멈추지 않는가?’(갈라파고스 펴냄)를 통해 다시 상상해 보라고 권한다. 그는 일본 지식인 사회의 대표적인 반전주의자이자 평화운동가다. 그는 먼저 양극화를 이야기한다. 오늘날 세계는 ‘안전하고 풍요로운 세계’와 ‘위험하고 가난한 세계’로 심각한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 사회 내에서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갈등 양상도 넓은 범위의 전쟁이다. 양쪽의 충돌이 빚은 전쟁은 무관심과 망각에 의해 심화된다. 악의 축이 돼버린 이슬람 세계는 새뮤얼 헌팅턴이 이론적 편견을 제공하고 미국 등 강대국이 자국의 이익에 따라 변절을 거듭했기 때문에 나온 결과일 뿐이다. 관심은 어떻게 전쟁 또는 폭력을 다스릴 수 있는가에 쏠린다. 방법은 세 가지다. 첫째는 강한 폭력을 써서 폭력을 없애는 방법이다. 미국이 자주 써먹는다. 단기간 효율성이 있을 수 있지만 저자는 “연쇄적인 폭력의 고리를 만드는 등 독으로 독을 제압하려다 대량의 독을 유포시킬 위험이 있다.”고 선을 긋는다. 두 번째로 최소한의 폭력으로 폭력을 줄이는 방법이 있다. 직접적인 무력 충돌을 일시적으로 중단시키고 평화를 강제하는 유엔의 평화유지 활동을 떠올리면 되겠다. 이 방법도 외려 현지의 긴장감을 높일 수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모두 강한 자만이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다. 저자가 강력하게 추천하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릴지라도 비폭력의 힘을 이용해 평화를 만들어가는 방법이다. 그는 “이상주의자의 허황된 생각일 뿐이라며 무시당할지 모른다.”면서도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을 혁신시켜 위험하고 가난한 세계를 안전하고 풍요로운 세계로 바꿀 희망을 포기 하지 않았다.”며 마하트마 간디가 펼친 비폭력 운동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인간 사회가 자멸할 수 있는데 왜 전쟁을 멈추지 않는가? 왜 폭력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답은 간단하다. 폭력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 힘이 폭력을 통제하려는 힘보다 강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폭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힘을 강화하면 보다 사이 좋게 세계를 만들 수 있다. 고통의 공유와 연대가 핵심이자 열쇠다. 이같은 일을 누가 할 수 있을까? 정치가나 전문가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선택으로 책임져야 하며 우리 스스로에게 평화의 비전을 만드는 힘이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간디의 손자 라지모한의 글이 인용된다. “지금만큼 비폭력의 가치를 절실히 느낀 적이 없다. 빈부, 종교, 민족 등의 이유로 서로 갈라져 대립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대화와 화해라는 다리를 놓자. 테러로 아버지를 잃은 뉴욕의 어린이와 전쟁으로 발을 잃은 아프가니스탄 어린이가 서로 마음이 통하느냐 여부에 인류의 미래가 달려 있다.” 1만 1000원.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간디 유품 소장자 “보건 정책과 맞바꾸자”

    마하트마 간디의 유품을 경매에 내놓은 개인 소장자가 인도 정부에 물품과 인도의 국민 보건 정책을 맞바꾸자고 제의했지만 인도 정부가 이를 거절했다고 AFP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인도 정부는 경매 참여를 포함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 ‘국부(國父)’의 유품을 되찾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간디 소장품에 대한 경매는 예정대로 열릴 것으로 보인다. 5일(현지시간) 타임스 오브 인디아 인터넷판과 AFP 등에 따르면 미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는 평화운동가이자 다큐멘터리 제작자인 제임스 오티스는 경매를 하루 앞둔 4일 뉴욕 주재 인도 총영사에 ‘간디 유품 소장자가 인도 정부에 보내는 제안’이라는 제목의 서한을 전달했다. 오티스는 이 서한을 통해 “예산 배정 우선순위를 국방에서 국민보건으로 변경하면 유품 경매를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AFP와 인터뷰에서 경매 철회와 함께 소장품을 정부에 기증할 뜻도 전했다. 오티스는 간디 유품을 활용해 ‘비폭력 저항운동’ 정신을 전파하는 교육 행사를 실시하자는 제안도 덧붙였다. 오티스가 소장하고 있는 간디 유품은 둥근테 안경과 회중시계, 가죽샌들 등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인도 정부는 이를 주권 침해로 받아들이며 즉각 반발했다. 일개 개인의 주장과 일국의 예산문제를 동등한 위치에 놓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날 한때 오티스는 정부가 제안을 받아들여 경매를 취소한다고 밝혔지만 결국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외무부의 아난드 샤르마 차관은 “간디도 이런 합의에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인도인의 주권을 대표해 특정 부분에 대한 예산의 재분배 문제에 관한 한 합의는 이뤄질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앞서 문화부 장관은 “인도 정부는 간디 유물을 되찾기 위해 경매 참여를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면서 “다른 노력이 허사로 끝날 경우에 대비, 만모한 싱 총리는 정부가 경매에 참여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고 덧붙였다. 경매 관계자는 유품이 2만~3만달러에 거래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실제 낙찰가는 이보다 높을 것으로 보인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 ‘독일 통일 설계사’ 호르스트 텔칙 ‘긴장의 한반도’ 해법

    ‘독일 통일 설계사’ 호르스트 텔칙 ‘긴장의 한반도’ 해법

    “(남북)통일은 갑자기 올 것이다. 보다 적극적이고 공세적으로 북한에 대해 경제협력과 인도적 지원, 민간교류 등 긴장완화 방안을 제시하고 주변국가들과의 협력을 통해 충돌 위기를 넘어서야 한다. 후계자가 정해지지 않은 독재국가처럼 불안정한 것도 없다.”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의 국가안보수석을 8년 동안 지내면서 독일 통일을 이끌어내 ‘통일의 설계사’로 불려온 호르스트 텔칙 박사는 통일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말고 그 체제 안에 사는 국민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3일 한·독 미디어 대학원대학교(KGIT) 초대 총장에 취임하기 위해 서울에 온 텔칙 박사를 서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에 있는 KGIT 사무실에서 만나 남북한 긴장 완화 및 관계 개선 방안에 대해 들어봤다. 그는 23년 동안 콜 전 총리를 외교·안보분야에서 보좌했다. 그 뒤 BMW 국제담당 사장, 미국 보잉사 독일 회장 등을 지냈다. →북한이 군사적 전면 대결을 강조하고 남측과 맺었던 모든 평화조치의 무효를 선언하는 등 긴장을 높이고 있다. 긴장 국면을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독재국가와 민주국가 사이의 관계 발전은 매우 어렵다. 성과도 있지만 좋지 않은 결과가 다반사다. 국내 정치적 비판도 감수해야 한다. 옛 서독에서도 그랬다. 민주국가 측은 상대방에 더 많은 것을 줘야 하는 부담도 있다. 그런 상황 속에서라도 목표를 잃어선 안 된다. 상대방 쪽에서 ‘주먹’을 날리더라도 전진해야 한다. 상대방의 체제 속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춰서 움직여야 한다. →지난 1일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대화에 나오도록 다시 촉구했다. -대통령의 화해 제스처는 바람직하다. 중국 등 주변국가들이 충돌 위기 극복과 긴장완화를 위해 더 팔을 걷어붙이고 돕도록 이끌어야 한다. 누가 긴장의 책임이 있는지 분명히 할 수 있도록 긴장완화의 분위기를 주도하라. 통일 뒤 한반도가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지 않을 것임을 이해시키고 다자 안보체제 구상 같은 것도 내놓으면서 주변국을 안심시키고 협조를 이끌어내야 한다. 한반도 통일의 열쇠를 쥔 중국과도 긴밀한 관계를 가져야 한다. 러시아, 일본 등 다른 6자회담 참가국들의 협력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강경 태도로 긴장을 조성하는 북한을 어떻게 누그러뜨려야 할까. -1983년으로 기억한다. 옛 소련이 동독 등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했다. 서독의 평화운동가 등 수십만명은 서독 정부와 미국이 이에 맞서 서독에 미사일을 배치하려는 데 격렬하게 반대했다. 서독 정부는 80% 가까운 반대 여론을 넘어서 배치를 강행했다. 강력한 대응에 옛 소련도 미사일 감축협상을 시작했고 그 해 선거에서 집권당도 승리했다. 확고한 목표와 일관된 정책으로 나오면 국민도 설득할 수 있고 상대방도 억제할 수 있다. 미국과의 동맹,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기반으로 한 안보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긴장완화 노력을 펼친 것도 주효했다. →옛 서독은 어떻게 긴장을 누그러뜨리고 통일 기반을 닦았나. -장벽으로 막혀 있던 동·서독 주민간에 동질감을 회복시키고 공동체를 복원시키는 데 주력했다. 동독지역 국민들에 대한 경제지원, 여행 및 방문절차 간소화 등 교류와 접촉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들을 기울였다. 한국은 북한의 경제적 재건과 교육 지원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통일은 갑작스럽게 다가오기 때문에 대비가 어렵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5년이나 10년이 지나야 통일이 될 것으로 봤는데 통일에 1년도 걸리지 않았다. 통일과정에서 공무원과 각계 전문가들을 동독에 많이 보내 경제복구 사업을 돕도록 했다. →북한이 내부결속을 위해 긴장을 이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북한은 심각한 문제를 겪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 회복됐다고 하지만 쇠약해지고 있고 여유를 부릴 시간도 없다. 독재자의 건강은 국가 존속 자체와도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후계자 문제를 제도적으로 처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후계자 논의가 나오는 것은 어려운 시기에 직면했음을 의미한다. →통독 과정에서 문제점이 있었다면. -통일 뒤 동독 주민들의 봉급 수준을 갑작스럽게 서독수준으로 올렸다. 그 때문에 동독회사의 경쟁력이 약화돼 상당수 망해버렸다. 생산성은 4분의1밖에 안 되는데 임금이 같다면 어떻게 버텨내겠나. 통독 직후 당분간 이동의 자유를 제한했어야 했다. 동·서독 화폐간 환율을 1대1로 똑같이 한 것도 부작용을 가져왔다. 세금을 올리지 않고 서독경제가 통일작업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쉽게 대응한 것도 과도한 재정부담을 줬다. 서독 법제와 시스템을 그대로 이식한 것도 실수였다. 동독에 더 많은 자율성과 선택 공간을 줘서 한동안은 자체 시스템과 제도로서 스스로 통제하게 했더라면 통일 후유증을 훨씬 더 줄였을 것이다. 동독 자체적인 행정기반을 바탕으로 적응 시간을 더 줬어야 했다. 성급한 일치화가 부작용을 키웠다. →KGIT의 특징과 향후 계획은. -산업예술, 정보통신기술, 생물공학 등 세 분야에서 산학협력과 현장 경험을 강조한다. 2년반 코스 중 1년은 독일에서 공부한다. 독일대학연합회(KDU)와 복수학위 제도를 운용해 KGIT를 수료하면 독일 파트너 대학의 석사학위도 받을 수 있다. 포츠담 바벨스베르크 영상예술대학. 취리히 조형미술대학, 함부르크대학, 뮌헨공대 등도 더 포함시킬 계획이다. 한국과 독일이 보유한 기술 노하우를 이 고등교육기관을 기반으로 공동으로 발전시키자는 것이 설립 취지다. 영어로 수업이 진행되기 때문에 졸업생들은 외국기업이나 해외 근무에 강점을 갖는다. 한 학년이 100명이지만 올해는 60명을 전원 장학생으로 뽑았다. 4일 개교하는 KGIT 한·독 산학협력의 전형으로 발전시키려고 한다. 학교는 서울시와 공동으로 설립된 공익법인으로 운영된다. 글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사진 이호정기자 hojeong@seoul.co.kr
  • “오바마의 승리, 유색인종 희망의 근거”

    “오바마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는 사실은 미국에서 인종장벽의 극복이 가능하다는 신호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미국 사회의 중추가 될 젊은 세대 유색인종들에게 오바마는 중요한 역할모델로, 희망의 근거가 될 것이다. 만약 2000년 대선처럼 승리를 도둑맞았다면, 아프리카계 미국인(흑인)은 격분했을 것이고 오바마 지지자들의 시위로 거리가 뒤덮였을 것이다.” 국제적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평화운동가인 조지프 거슨 미국친우봉사회(American Friends Service Committee) 뉴잉글랜드 지역 공동대표는 5일 서울신문과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번 미국 대선의 의미와 전망, 새 정권의 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는 “이번 대선은 미국 역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광범위한 영향을 인종문제에 미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만약 오바마가 낙선했다면 미국이 여전히 아메리카 원주민 인종청소와 흑인노예 수입이라는 인종주의 굴레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증거가 됐을 것”이라면서 “나는 자신의 인종주의를 드러내기 부끄러워하는 백인 유권자들이 여론조사원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고 오바마의 지지율도 여론조사 결과만큼 높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에 시달렸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미국친우봉사회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민간인 피해자들을 도우려는 양심적 전쟁거부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퀘이커 교단이 설립한 단체다.1947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미국과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남미, 중동, 유엔에서 경제정의, 평화, 비무장화, 사회정의, 청소년 문제 등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개신교의 한 교파인 퀘이커는 1647년 영국인 조지 폭스가 창시했으며 꾸준히 인디언과의 우호, 흑인노예제도 반대, 양심적 병역거부 등을 주장해 왔다. 한국의 대표적인 퀘이커 교도로는 함석헌이 있다. 거슨 대표는 “100만명이 넘는 미국인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스캔들의 여파로 집을 잃었고, 수십만명은 일자리를 잃었다.”면서 “새 정부에 가장 시급한 과제는 경제 위기 극복”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오바마는 지금보다 훨씬 강한 사회경제적 욕구에 직면하게 되겠지만 부시 정권이 초래한 막대한 재정적자가 새 정권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미국 국민들의 기대 수준을 신속하게 낮추지 않는다면 오바마는 세계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과 국내 경제 안보문제 등에서 영광스러운 옛 시절을 되찾아야 한다는 기대를 받게 될 것”이라면서 “오바마가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때 인종주의에 기반한 우익세력의 표적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세계무대에서 미국의 힘이 쇠퇴하는 것은 필연적”이라면서 “오바마는 국민들에게 분명하게 세계무대에서 미국의 위상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고 지금과 다른 형태의 안보환경을 누리는 것이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것이며, 이를 위해 경제와 외교, 안보에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말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그런 변화에는 막대한 재정적자 해소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연방예산의 절반이나 차지하는 국방예산을 대폭 삭감해야 하는 것도 포함된다.”고 덧붙였다. 거슨 대표는 동아시아 정책과 관련해서는 앞으로 오바마 정부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일 군사동맹을 더 견고하게 확대해야 할 것”이라면서 “앞으로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할 중국 주도 아시아 경제블록 혹은 통화블록 출현을 저지할 것을 요구한 2007년 아미티지·나이 보고서가 차근차근 현실이 되는 걸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강의석은 ‘미디어의 노예’vs’이상주의자?’

    국군의 날 퍼레이드에 알몸으로 뛰어들었다 현행범으로 체포된 강의석(22)씨를 두고 ‘스포트라이트 받기에 혈안이 된 미디어의 노예’라거나 ‘진정한 민주주의의 시민’‘이상주의자’라는 네티즌들의 논란이 들끓고 있다. 강의석씨의 미니홈피에 따르면 그는 이번 알몸 퍼포먼스를 치밀하게 준비했으며 언론사에 보도요청서를 보내고,촬영팀도 모집했다. 총 쿠키도 직접 만들어 구웠고 ‘누드 발레 퍼포먼스’라 이름 붙인 누드 시위를 위해 안무 동작까지 미리 연습했다.수서경찰서와 강남경찰서에 옥외집회 신고를 해 경찰서에서는 접수까지 마친 상태였다.강씨 역시 “집회 신고가 안 될 줄 알았는데 됐다.”고 밝혔다. 누드 퍼포먼스는 2명,춤은 16명이 함께하기로 했다고 강씨는 밝혔으나 실질적인 알몸 시위자는 강씨 혼자였다. 강씨는 이번 누드 시위로 경찰서에 연행될 것을 사전에 예상하고 “아마 누드 퍼포먼스를 진행하는 저와 다른 친구 한 명은 감옥에서 2개월 정도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그 동안도 게시글과 방명록에 답할 수 없을 거에요.저에 대한 관심은 군대 없애기 운동으로,저에 대한 비난은 제게로만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라고 글을 미리 남겼다. 강씨의 미니홈피 방명록에는 수천개의 글이 올라왔는데 대부분의 네티즌들은 그의 알몸 시위를 비난했다. 노성영씨는 “위안부 할머니분들을 보고 우리나라 군대가 강했으면 그런일이 있었을까 생각해서 바로 군입대 했다.전쟁나면 강의석씨 가족은 누가 지킵니까.군대해체 하면 북한도 해체할 것이다란 강의석씨 생각은 참 순진하네요.제가 보기엔 강의석씨는 남들에게 관심받고 싶어하는 애정결핍같네요.”라고 진심어린 충고를 남겼다. 서울법대 학생회장이었던 차태진씨는 강씨가 ‘태환아 너도 군대가’란 글로 논란을 일으키자 “강씨는 군대를 없애자는 평화운동을 벌이기 이전에 자신의 폭력성부터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김영준씨는 “세상의 편견 현실의 무자비함과 싸우는 모습이 정말 존경스럽네요.앞으로도 꺽이지 않는 의지로 멋진 모습 많이 보여주세요.”라고 강씨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인터넷서울신문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탈북난민 참상 알린 ‘北인권운동 대모’

    탈북자 인권 문제 개선과 서사하라 난민 지위 향상에 앞장선 수전 솔티(49) 미국 디펜스포럼 회장이 서울평화상을 받는다. 서울평화상심사위원회(위원장 이철승)은 3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최종 심사위원회를 열고 인권운동가 솔티 회장을 제9회 서울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이철승 위원장은 “탄압받는 인권에 대해 무한한 애정뿐만 아니라 정치적 의도로 북한의 인권을 무시할 때 탈북 난민의 참상을 알리고 그들의 자유주의적 행동에 용기를 불어 넣어 새로운 삶을 모색하게 한 솔티 여사의 행동은 근래에 보기 드문 용기 있는 행동이다.”며 수상 이유를 설명했다. 심사위원회는 국내 각계 인사 15명으로 구성됐으며 전 세계로부터 추천된 전·현직 국가 원수급 인사와 유명 정치인, 경제계, 학계, 평화운동가, 인권 및 구호 단체 등을 놓고 심의했다.1996년 북한 인권 개선에 나선 솔티 회장은 1999년 4월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동아시아 및 태평양 소위원회에서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대한 청문회가 처음 열리는 데 기여했다. 미 상원 법사위원회, 하원 국제종교자유위원회에서 중국 내 탈북 난민의 고통 등 북한 인권 실태를 증언, 국제적으로 주목받았다. 시상식은 다음달 7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리며 수상자에게는 상장과 상패 그리고 상금 20만달러가 수여된다. 김영중기자 jeunesse@seoul.co.kr
  • [부고] 중동 평화의 사도 나탄

    [부고] 중동 평화의 사도 나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평화협정을 이끈 중동 ‘평화의 사도’ 아비 나탄이 27일(현지시간) 사망했다.81세. 28일 AP통신에 따르면 1997년 첫 심장발작을 일으킨 뒤 건강이 계속 나빠진 그는 나흘 전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이실로프 병원에 입원했다.98년엔 심장발작 후유증으로 목소리를 잃었다. 그는 66년 개인 경비행기 ‘살롬1호’를 몰고 당시 이스라엘 적성국 이집트로 날아가 분쟁을 끝내자며 1인 평화운동에 들어갔다.89년과 93년 최악의 관계였던 PLO 지도자 야세르 아라파트 의장을 만났다는 이유로 2차례 투옥됐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이스라엘과 PLO는 93년 9월 마침내 평화협정을 맺었다. 이란에서 태어난 그는 영국 공군에서 전투기 조종사로 근무한 뒤,48년 건국한 신생 이스라엘로 둥지를 옮겼다.60년대 초 이스라엘 사교계에서 인기가 높은 식당을 경영하다가 평화운동에 뛰어들어 세계 분쟁·재해 지역에서 구호활동을 벌였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평생 가꾸고 다듬어 온 내 사유의 총화”

    “평생 가꾸고 다듬어 온 내 사유의 총화”

    5년째 전국을 돌며 생명평화 탁발순례를 이어오고 있는 전 실상사주지 도법(59) 스님이 ‘그물코 인생 그물코 사랑’(불광출판사)을 펴냈다. 생명평화의 삶을 화두로 살아온 스님이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해답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방황한 끝에 세상에 자신있게 내놓은 결정체. “진리의 사랑 길에서 꽃 한 송이를 주웠다. 그 꽃의 이름은 그물코 인생, 그물코 사랑이다. 한 인간이 존재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안고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출가 후 일관된 길을 걸어오면서 가꾸고 다듬어온 내 사유의 총화이다.” 자신을 낮추는 겸손과 흔들리지 않는 소신으로 해서 ‘대쪽 스님’으로 불리는 도법 스님이 서문에서 ‘내 사유의 총화’라고 당당하게 밝혔듯 이 책은 ‘구도자 도법’ ‘인간 도법’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생명평화의 세계관과 철학, 생명평화경, 생명평화 수행체계, 대중들과의 대화로 나뉘지만 변함없이 관통하는 사상이자 정신은 역시 인드라망처럼 얽혀진 존재의 ‘관계’인 그물코다. 모든 생명이 연관을 맺어 그물코처럼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며 세계를 하나로 묶는 큰 원칙인 대동소이와 생명평화에 관심을 가질 것을 끊임없이 외친다. “사람들이 ‘대동’은 못 보고 ‘소이’에만 매달리니 갈등과 다툼이 생기죠. 종교가 할 역할은 ‘대동’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생명평화운동입니다.” 그래서인지 스님은 책에서 생명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실천지침으로 ‘생명평화경’을 제시했고 이 ‘생명평화경’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수행법으로 만든 ‘생명평화 100대 서원 절 명상’을 직접 녹음한 CD와 함께 소개하고 있다. ‘생명평화경’은 불교를 비롯해 인류사에서 가꿔졌던 모든 세계관을 함축한 것. 불교의 화엄사상부터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예수의 말씀,‘사람이 하늘이다.’라는 천도교의 가르침까지 담겼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그리스도의 헌신적인 마음가짐에서 ‘법화경’ 속 보살상과 일치하는 대승보살의 실천가를 봅니다.‘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 한 예수님과 ‘동체대비의 삶을 살라.’고 한 부처님,‘사람을 하늘로 인정하고 존중하라.’고 한 천도교엔 모두 생명 평화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2004년 3월1일 지리산 노고단에서 출발해 지금까지 2만 5000여리를 걸으며 각계각층의 대중들과 대화를 나눠온 도법 스님. 다음달 4일부터 100일간 서울지역 순례를 한 뒤 12월 중순쯤 탁발순례를 마무리하는 스님은 이렇게 말한다. “남은 일이 있다면 붓다, 예수, 간디의 안목과 마음을 담은 그물코 인생, 그물코 사랑 즉 생명평화의 삶을 온전히 내 삶이 되게 하고 친구의 삶, 이웃의 삶, 세상의 삶이 되게 하는 일일 터이다. 할 수 있는 한 그 길에 전력할 뿐 그 밖의 다른 일이 또다시 있지 않을 것이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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