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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대통령 독일 방문] 메르켈 “韓 70년 분단… 통일 지원은 獨 의무”

    [박대통령 독일 방문] 메르켈 “韓 70년 분단… 통일 지원은 獨 의무”

    베를린 이스트사이드갤러리에서 27일 열린 ‘DMZ·그뤼네스반트 사진전’은 한국과 독일의 ‘경험 공유전’이었다. 이스트사이드갤러리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시내 중심부에 남아 있던 1.3㎞ 길이 장벽에 세계 21개국 작가 118명의 벽화를 설치한 야외 전시관으로, 분단의 상징인 한국의 비무장지대(DMZ)와 그뤼네스반트의 다양한 모습을 담았다. 이 사진전에서 한국인은 또 다른 아픔을 느껴야 했다. 부활절 등 1년에 두 차례 이뤄졌던 동·서독 간 왕래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본 박근혜 대통령은 “동·서독 간에는 이렇게 왕래라도 할 수 있었군요”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그러면서 “우리 DMZ도 언젠가 평화의 상징이 되는 장소로 바뀌도록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앞서 박 대통령은 요아힘 가우크 독일 대통령과의 오찬에서 “올해는 베를린 장벽 붕괴 25주년 되는 해인데, 70년 가까이 분단의 아픔을 안고 살아온 우리 국민에게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 과업을 달성한 독일은 부러움의 대상”이라는 말로 이 같은 아픔을 표현했다. 이런 처지가 안쓰러웠는지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공동기자회견에서 “수십년간 독일은 통일을 경험했고 아쉽게도 한반도는 분단 상황을 경험하고 있다. 독일은 40년 분단됐고 한국은 거의 70년간 분단 상태다. 그래서 한국에서 통일을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해 드리는 게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위로했다. 박 대통령이 만난 독일인들은 ‘조언’에 인색하지 않았고, 박 대통령은 일일이 이를 경청했다고 한다. 50년 전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독일을 찾았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시 독일의 정치인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국내 정치의 안정과 일본 등 주변 국가와의 협력에 대해 진지하게 조언했다. 데메지에르 전 동독 총리는 이날 “당시 동독인들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평화시위를 벌이며 통독 과정에 적극 참여했다. 남북한도 양쪽 시민의 자발적인 행동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한편 박 대통령은 이날 드레스덴으로 이동, 첫 일정으로 드레스덴 성모교회를 방문했다. 2차 대전 때 연합군의 드레스덴 공습으로 완전히 폐허가 됐다가 통일 후 2005년에 복원된 유적으로, 우리 문화재 복원의 귀감 사례로 선택됐다. 통일 후 북한 지역에 대한 문화유산 정책방향과 관련한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역시 ‘통일 행보’의 하나라 할 수 있다. 베를린·드레스덴(독일)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집회 자유를 달라” 우크라이나 반정부 시위 격화

    “집회 자유를 달라” 우크라이나 반정부 시위 격화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우크라이나 반정부 시위가 다시 거세지고 있다. 자칫 내전 상황으로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AFP, BBC 등 외신에 따르면 1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10만 군중 집회가 열렸다. 집회는 20일 아침까지 12시간 동안 계속됐고, 화염병과 섬광 수류탄이 난무하며 과격하게 진행됐다. 반정부 시위는 지난해 11월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러시아의 압력에 굴복해 유럽연합(EU)과 진행 중이던 협력 협상을 중단하면서 시작됐다. 여기에다 집권당이 집회를 엄격히 규제하는 법률을 날치기 통과시키자 시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개정된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시위대가 정부 건물의 출입을 차단하면 10년형을 받게 된다. 공공장소에 허가 없이 무대나 앰프, 텐트를 설치하기만 해도 최대 15일 동안 구류에 처해진다. 시위대는 마스크나 헬멧을 써도 안 되고 5대 이상의 차량을 동원하면 운전면허가 2년간 정지된다. 반 러시아 정서와 집회의 자유 요구가 동시에 분출되고 있는 것이다. 시위가 걷잡을 수 없게 되자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야권 지도자들과 정부 관료가 참여하는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협상하겠다고 했다. 20일 대통령을 만난 야당 ‘개혁을 위한 우크라이나 민주동맹’(UDAR) 당수 비탈리 클리치코는 “특위에 참여하겠다”면서도 “대통령이 하야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전직 권투 챔피언으로 인지도가 높은 클리치코는 “자칫 내전이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야권 내부의 속셈도 제각각이다. 클리치코는 조기 대선을 원하고 있지만, 극우민족주의 성향의 ‘스보보다’(자유당) 당수 올레그 탸그니복은 야권이 주도하는 권력기구 구성을 주장하고 있다. 클리치코는 평화시위를 주장하지만, 극우 세력은 과격 시위를 이끌고 있다. 이창구 기자 window2@seoul.co.kr
  • 억압을 용서로, 차별을 화합으로… 350년 인종분규 끝낸 ‘투사’

    억압을 용서로, 차별을 화합으로… 350년 인종분규 끝낸 ‘투사’

    1918년 7월 남아프리카공화국 트란스케이 움타타에서 템부족 족장의 아들로 태어난 넬슨 만델라는 권투와 달리기를 좋아하던 해맑은 소년이었다. 이 소년이 350여년 역사의 인종분규를 종식시킨 ‘투사’로 변모한 것은 1944년 아프리카민족회의(ANC)에 발을 담그면서부터다. 1940년 포트헤어대에서 법학을 전공하다 시위를 주도한 대가로 퇴학당한 그는 ANC 청년연맹을 창립했다. 투쟁의 대상은 남아공의 악명 높은 인종격리정책 ‘아파르트헤이트’였다. 백인과 흑인은 강제로 거주 지역이 분리됐고 결혼을 할 수도 없었다. 만델라는 1952년 대학 동창 올리버 탐보와 요하네스버그에 처음으로 흑인 법률회사를 차린 뒤 빈곤층을 도우며 다수 흑인들을 압제하는 소수 백인사회에 정면으로 맞서 나가기 시작했다. 비폭력 평화주의를 주창한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를 롤모델로 삼았던 만델라를 180도 바꿔 놓은 것은 1960년 3월 발생한 샤프필학살사건. 요하네스버그 인근 샤프필에서 반아파르트헤이트 시위에 나섰던 흑인 69명이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진 것이다. 평화시위운동의 엄혹한 한계를 체감한 만델라는 비폭력시위에서 무장투쟁으로 노선을 급선회했다. 체 게바라, 피델 카스트로, 마오쩌둥 등의 저서를 섭렵하며 전략을 모색한 그는 비밀군대 ‘움콘토 웨이즈웨’(민족의 창) 최고사령관으로 활동하다 경찰의 지명수배에 쫓기게 됐다. 1961년 남아공이 영연방에서 탈퇴하면서 국제사회는 본격적으로 아파르트헤이트 반대운동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1956년에 이어 1962년 다시 체포된 만델라는 46세이던 1964년 내란음모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막노동에 치이고 6개월간 방문객이 단 한 명만 허용되는 지독한 옥살이였다. 하지만 그는 교도소에서도 투사를 길러내는 등 투쟁을 계속해 나가며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수감자’가 됐다. 당시의 혹독한 경험에 대해 그는 “나는 절망에 굴복하지 않으려 했고 그럴 수도 없었다. 패배와 죽음의 길이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자유인으로 아프리카 땅을 두 발로 걸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했다. 이 같은 공로로 1979년 옥중에서 자와할렐네루상, 1981년 브루노 크라이스키 인권상, 1983년 유네스코의 시몬 볼리바 국제상을 잇달아 받은 만델라는 어느덧 세계인권운동의 상징적인 존재가 됐다. 결단을 내린 건 프레데리크 빌렘 데클레르크 전 대통령이었다. 1990년 옥살이 27년 6개월 만에 결국 만델라는 72세 노인으로 ‘자유의 몸’이 됐다. 1991년 ANC 의장으로 선출된 만델라는 실용주의 노선으로 선회, 데클레르크 백인정부와 협상을 벌여 350여년간의 인종분규 종식에 극적으로 합의했다. 이러한 공로로 두 사람은 1993년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다. 1994년 남아공 총선은 흑인들이 처음으로 한 표를 행사한 선거이자 만델라를 첫 흑인 대통령으로 만든 역사적인 선거였다. 1999년까지 재임하며 흑인과 백인의 평화로운 공존을 도모한 만델라는 세계 각국에서 ‘용서와 화합의 위대한 지도자’로 환영받았다. 그는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조용히 지난 인생을 반추하고 싶다”며 2004년 정계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세 차례 결혼한 그는 6명의 자녀와 20명의 손자를 뒀다. 저서로는 자유를 위한 투쟁 의지를 밝힌 ‘투쟁은 나의 인생’(1961)과 자서전 ‘자유를 향한 머나먼 여정’(1995) 등이 있다. 한편 만델라가 남긴 재산은 ‘남아공 최고의 브랜드’라고 할 수 있는 이름 값에 힘입어 1000만 파운드(약 172억 8000만원) 규모에 이른다고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이 이날 전했다. 생전에 그가 남긴 자서전 인세와 보유한 펀드 27개, 가족들의 만델라 브랜드 업체 운영 등에 따른 것이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김미경 기자 chaplin7@seoul.co.kr
  • “억류 그린피스 회원 석방하라” 유명인사들 줄줄이 압력

    “억류 그린피스 회원 석방하라” 유명인사들 줄줄이 압력

    북극해 유전 개발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다 러시아 당국에 지난 9월 체포된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 회원의 억류 사태가 길어지자 석방을 위해 유명인들이 직접 나섰다.  2008년 ‘라비앙 로즈’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프랑스 여배우 마리옹 꼬띠아르는 15일(현지시간)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부근에서 열린 석방요구 집회에 참가, “황당하고 미친 짓”이라며 러시아 당국을 비난했다고 AFP 통신이 보도했다. 꼬띠아르는 그린피스 회원들과 함께 ‘가상 철장 ’안에 들어가 ‘나는 기후 방어자(I am a climate defender)’라는 팻말을 들고 시위했다.  ‘팝의 여왕’ 마돈나도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서 체포된 그린피스 회원들이 석방될 수 있도록 러시아 당국에 선처를 호소했다. 마돈나는 트위터에 “북극해에서 평화시위를 벌이던 30명이 러시아의 감옥에 갇혔다”면서 “그들을 집으로 보내달라”고 강조했다.  앞서 14일 인기그룹 비틀스의 멤버였던 폴 매카트니는 자신의 웹사이트에 올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에서 “오해가 풀려 시위를 하다 투옥된 사람들이 성탄절까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매카트니는 “러시아에서 사법부와 대통령의 권한이 분리돼 있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으나 이들이 가족과 함께할 수 있도록 대통령이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린피스 회원들은 지난 9월 중순 네덜란드 선적의 쇄빙선 ‘악틱 선라이즈’(Arctic Sunrise)호를 타고 북극해와 가까운 바렌츠해의 러시아 석유 시추 플랫폼 ‘프리라즈롬나야’ 부근에서 시위를 벌이며 플랫폼 진입을 시도하다 선박과 함께 러시아 국경수비대에 나포됐다. 선박에는 러시아인 4명을 포함해 19개국 출신 환경운동가 30명이 타고 있었다. 그린피스 회원들은 프리라즈롬나야 유전 개발이 심각한 해양오염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며 개발 중단을 요구하다 억류됐다.  러시아 측은 그린피스 회원들을 해적 혐의로 구속했다가 난동 혐의로 변경했지만, 각국의 석방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죽의 장막’ 中사회주의 그 ‘속살’ 사진에 담아

    ‘죽의 장막’ 中사회주의 그 ‘속살’ 사진에 담아

    스탈린 때문에 사회주의에 대한 희망의 불꽃이 사그라질 무렵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중국이었다. 희망은 실상을 실제보다 부풀리기 마련. 중국 사회주의는 과연 어떤가라는 문제가 관심사가 됐을 무렵, 서양사람 가운데 제일 먼저 중국에 들어가 사진을 찍어온 작가가 있다. 프랑스 사진작가 마크 리부(89)다. 그의 작품들이 ‘에펠탑의 페인트공’이라는 전시제목으로 8월 5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린다. ‘죽의 장막’을 헤치고 1957년 중국을 방문한 리부는 핵심 권력층과의 친분과 호의에 힘입어 다양한 사진을 남겼다. 지금은 문화예술의 거리로 탈바꿈됐으나 그 시절에는 빈민가에 불과했던 베이징의 류리창거리, 최고 권력자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자그마하고 차분한 마오쩌둥의 침실, 프랑스 유학파 출신으로 언제나 신중한 모습으로 서양인들이 크게 호감을 가졌던 저우런라이가 파안대소하는 모습 등이 인상적이다. 1957년은 중국에서 반우파운동, 그러니까 시들기 시작한 혁명의 열기를 되살리기 위한 마오쩌둥의 강공드라이브가 펼쳐지던 때다. 그 시절 중국 풍경이 세세하게 담겨 있다. 전시는 모두 6부로 구성됐는데 작가의 출세작 ‘에펠탑의 페인트공’(1953년), 베트남전 당시 반전평화시위의 기폭제가 됐던 ‘꽃을 든 여인’(1967년)은 특별히 제작된 대형작품으로 선보인다. 노년의 작가가 프린트 하나하나 꼼꼼히 챙겼다고 한다. 1만 2000원. (02)532-4407.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다섯 수레의 책을 읽은 견공…인간 탐욕·이중성을 말하다

    다섯 수레의 책을 읽은 견공…인간 탐욕·이중성을 말하다

    2018년, 무술년 개띠를 몇 년 앞둔 2015년 충남 호구고을에서는 ‘개와 인간이 공존하는 세상’(줄여서 개인공세)을 주장하는 초개들이 등장한다. 초개란 인류를 구원하는 초인들이 홀연히 나타나듯이, 더운 여름날 한 그릇 보신탕으로 전락하는 개를 구원하고자 나타난 초월적인 개를 말한다. 초개는 인간의 언어를 읽고 쓰고, 인터넷을 사용할 줄도 안다. 똥개들의 무리를 이끌고 ‘학익진’과 진법을 펼친다. 특히 다섯 수레의 책을 읽은 초개 ‘혁명이’의 존재는 놀랍다. 개들이 평화시위 10여회를 해나가다 보면 인간들도 개들의 주장에 호응하고 동조해, 유토피아인 ‘개인공세’가 될 수 있다고 제갈공명 같은 초개 ‘빡사’는 강력히 주장한다. 초개를 중심으로 개들은 자신들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달라고 한다. 하지만 세상은 늘 그렇듯이 예상을 비켜가고, 뜻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1998년 등단해 이야기꾼의 면모를 보여 준 김종광이 써내려 간 이 같은 내용의 장편소설 ‘똥개 행진곡’(뿔 펴냄)은 막힘 없이 술술 읽힌다. 작가는 이 소설의 서술 시점을 미래인 2015년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하지만, 배경은 2000년대 한국의 사회·정치판을 꼭 닮아 있어 다양한 연상작용을 일으킨다. ●국가보안법을 닮은 ‘개 특별 관리법’ 돈 봉투와 각종 이권에 개입한 여권 실세 국회의원 신천수와 그의 내연남이자 국회 보좌관인 조왕렬, 사랑했지만 아기는 원하지 않는다며 낙태를 권유하는 농민과 그의 애인 조해해의 모습도 그렇다. 21살 해해에게 탐욕스러운 눈길을 보내는 중년의 유부남들도 ‘삼촌부대’라는 이름으로 10대 연예인들을 소비하는 중년의 비루한 남자들과 닮았다. 또한 도시 한복판에 나이트클럽을 비롯해 터키탕, 대딸방, 키스방, 마사지업소, 단란주점, 노래방 등 업태도 다양한 유흥업체들이 가득 들어 찬 빌딩, 탄핵에서 생환한 대통령, 개 소탕 실적을 조작하기 위해 돈을 주고 개를 사서 죽이는 경찰의 부조리, 국가보안법을 닮은 개 특별관리법 등은 헛웃음이 나온다. ●‘개티즌’·‘보티즌’·‘박티즌’의 이전투구 김 작가의 입담에 휩쓸려 무협지 읽는 듯한 재미로 휙휙 책장을 넘기다가, 손짓을 멈칫하게 만드는 대목이 있다. 인터넷에서 ‘개인공세’를 두고 찬반으로 나뉘어 여론이 들끓는 모습이다. 네티즌들은 ‘개티즌’(개를 사랑하는 네티즌)과 ‘보티즌’(보신탕을 먹자는 네티즌), ‘박티즌’(박쥐 같은 네티즌) 등으로 갈려 이전투구식 논쟁에 돌입한다. 어떤 네티즌은 개를 사랑하는데 ‘보티즌’에 가입하기도 하고, 보신탕을 먹자고 하면서 ‘개티즌’에 가입하기도 한다. 자신이 어디에 속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중구난방으로 떠들어 대는 것이다. 이 냄비 근성은 신천수가 미국 의회 핵심 실세와 찍은 포르노성 동영상이 유포되자 개들은 다 잊어버리고 다시 신천수를 옹호하는 자인 ‘무티즌’과 비난하는 자인 ‘애티즌’, 양쪽을 다 옹호하고 비난하는 자인 ‘박티즌’으로 나뉘어 치고받고 싸우면서 극대화된다. 김 작가의 소설에서 네티즌 여론은 늘 극단적으로 치닫는다. 열광했다가 한순간에 비난하기를 밥 먹듯 한다. 합리적·이성적으로 사고하지 않는 이런 막무가내 열정은 어찌 보면 파시즘이 자라날 수 있는 또 다른 토양에 불과하다. ●합리적 사고 하지 않는 막무가내 네티즌 요즘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의 비키니 시위를 둘러싼 논란은 ‘똥개 행진곡’의 네티즌을 연상하게 한다. 나꼼수가 발랄하게 보수적인 정치문화를 바꾸고 있다고 환호하던 사람들도, 비키니 시위에 대한 훌쩍 앞서나간 나꼼수의 발언에 불쾌해한다. 경쾌·발랄한 발언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타고 광범위하게 확산될 때 사람들은 짜릿함을 느끼겠지만, 그 짜릿함은 적절한 책임감을 동반해야 한다. 상황이 바뀌면, 한 방에 훅 갈 수도 있으니까. 1만 30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그리스 긴축법안 의회 통과… 총파업 이틀째 격렬 시위

    노동계의 48시간 총파업을 촉발시킨 그리스 정부의 추가 긴축법안이 20일(현지시간) 의회에서 승인됐다. 긴축안 표결을 앞두고 아테네 도심에서는 시위대 간의 충돌로 50대 건설노동자가 숨졌고 적어도 100명이 부상했다. 그리스 의회는 이날 밤 유로존과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제공하는 구제금융을 추가로 지원받으려고 마련한 긴축법안의 개별조항을 찬성 154표, 반대 144표로 가결했다. 앞서 의회는 전날 추가 긴축법안 총론을 찬성 154표, 반대 141표로 통과시켰다. 이로써 긴축법안에 대한 의회 승인이 최종 확정됐다. 이로써 국가 파산을 막는다는 명분 아래 공무원과 공공부문 종업원의 임금·연금 삭감, 세금 인상,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등의 조치가 이뤄지게 됐다. 그리스 정부는 이를 통해 내년 재정 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6.8% 규모인 147억 유로(약 23조원) 규모로 낮춘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그리스 긴축 이행을 점검하는 실사단은 긴축 재정 목표를 만족시키기엔 부족하지만 그리스가 1차 구제금융 6회분인 80억 유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추가 긴축조치에 항의한 총파업으로 그리스의 대중교통과 병원, 은행, 관공서, 학교 등은 이틀째 마비됐다. 국회의사당 밖 신타그마 광장에서는 공산당 노조원들과 무정부주의자로 보이는 청년들이 충돌해 1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날 충돌은 노조원과 시민 등 5만여명이 광장에서 긴축법안 승인에 항의하며 평화시위를 벌이던 도중 마스크를 쓴 청년 수백명이 시위대를 향해 화염병과 돌을 던지면서 일어났다. 공산당 측 노조원들은 국회의사당 주변에 경계선을 두르고 질서를 지킬 것을 요구했지만, 청년들은 오후 들어 본격적으로 노조원들을 폭행하며 난동을 부렸다. 그러자 공산당 노조원들이 이들에 맞서 투석전을 벌이면서 광장을 비롯한 아테네 중심가의 대로와 골목길에서는 폭력 사태가 난무했으며, 양쪽을 갈라놓기 위해 경찰이 쏜 최루탄 가스로 도심이 뒤덮였다. 현지 스카이TV는 청년 수십 명에게 집단 폭행당한 53세의 건설노동자가 구급차로 병원에 후송됐으나 심장발작으로 숨졌다고 전했다. AP는 시위대 72명과 경찰 32명이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수십명의 부상자들이 현장의 자원봉사 의료진으로부터 응급처치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경찰은 현장에서 폭력을 휘두른 혐의로 79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존경받는 1%’ 시장이 99% 평화시위 끌어냈다

    “시위대 퇴거 문제에 대해 여자친구와 상의한 적이 있나.”(기자) “내 침실에서 월가 시위 관련 베갯머리 대화(pillow talk)는 없다.”(시장) 월가 시위대가 한달째 무단 점거 중인 주코티 공원 소유 회사 브룩필드의 임원진에는 공교롭게도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의 여자친구 다이애나 테일러가 포함돼 있다. 17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은 블룸버그가 여자친구로부터 시위대를 퇴거시켜 달라는 부탁을 받았는지 물었다. 이에 블룸버그는 베갯머리 송사는 없었다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지난 주말 주코티 공원의 상황을 보면 블룸버그의 대답이 어느 정도는 신뢰가 간다. 주코티 공원 청소를 명분으로 시위대를 퇴거시켜 달라는 브룩필드의 요청에 따라 14일 뉴욕시는 행동에 나섰으나 시위대가 강하게 반발하자 ‘미국경찰답지 않게’ 바로 단념했다. 앞서 지난 10일 블룸버그는 “시위대가 법만 지킨다면 주코티 공원에서의 시위를 무기한 허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월가 시위가 비교적 평화적으로 한달째 이어져오고 있는 데는 시위대의 비폭력 방침과 미국의 강력한 공권력 문화가 배경에 있지만, 법을 가급적 융통성 있게 운용하며 평화시위를 최대한 보장함으로써 시위대의 적대감을 누그러뜨리는 블룸버그의 ‘정치력’도 한몫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블룸버그는 지난 한달간 거의 매일 기자회견을 자청함으로써 시위를 자신의 틀 안으로 유인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때로는 심정적으로 동조하는 발언으로 시위대를 고무시키는가 하면, 때로는 신랄한 비판으로 시위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지난달 17일 월가 시위가 시작되자 블룸버그는 “우리는 (시위)장소를 제공할 수 있게 된 게 기쁘다.”고 밝혔다. “기쁘다.”라는 표현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이었지만 시위대 입장에서는 고무될 만한 발언이었다. 그러나 일부 시위대가 건물에 난입하는 등 다소 과격해지자 지난 7일 블룸버그는 “주코티 공원 주변 상인들은 시위대가 불편을 끼치는 행위에 분노하고 있다. 시위대가 몰아내려 하는 금융인들이 없다면 시 공무원이나 미화원에게 월급을 주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허를 찔린 시위대 중 일부는 “억만장자 시장이 결국은 1% 부자의 편을 든다.”고 반발했다. 그러나 연간 2억 달러 이상을 기부하고 시장 연봉은 1달러만 받는, ‘존경받는 1%’인 블룸버그에게 그런 비난은 어불성설이었고, 이즈음 시위대 사이에는 “비폭력 시위”라는 구호가 자리잡았다. 그러자 블룸버그는 10일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자신을 표현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시위대가 법을 준수하는 한 우리는 시위를 허용할 것”이라고 다시 시위대를 고무시켰다. 15일 타임스스퀘어에 수만명이 운집하면서 시위대가 어쩔 수 없이 도로를 불법 점유하게 됐음에도 경찰은 무리하게 해산하지 않는 융통성을 발휘했고, 시위대는 평화적으로 해산했다. 블룸버그는 17일 “나는 시위대의 말할 권리와 맨해튼 주민들의 조용히 살 권리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것”이라며 “우리는 하나의 시각만 허용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런던 심장부로 폭동 확산… 책임공방도 가열

    런던 심장부로 폭동 확산… 책임공방도 가열

    올림픽개최가 1년도 채 남지 않은 영국 런던 곳곳이 폭력과 약탈이 횡행하는 ‘전쟁터’로 돌변했다. 29세 흑인 남성 마크 두간이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하면서 6일 런던 북부 토트넘에서 촉발된 폭력시위와 약탈행위는 토트넘에서 5㎞가량 떨어진 엔필드와 인근 해크니, 월섬스토 등 런던의 전통적인 우범지역과 런던의 주요 관광명소인 옥스퍼드 서커스, 남부 브릭스턴까지 빠르게 번지고 있다. 이번 소요사태로 100명이 체포됐다고 BBC가 보도했다. 시위 진압 과정에서 경찰 35명이 다쳤다. 영국 경찰은 “런던 내 여러 자치구에서 소규모 폭력과 약탈, 소요사태 등 ‘모방 범죄’가 확산되고 있다.”면서 “이웃의 생계와 지역사회를 파괴하려는 것 말고는 아무 목적도 없는 생각 없는 범죄행위”라고 규탄했다. 브릭스턴에서는 청년 200여명이 대형 슈퍼마켓 등 상점의 물건을 약탈했고, 런던 심장부인 옥스퍼드 서커스에서도 50여명의 청년이 건물을 파손했다. 동북부의 월섬포레스트와 칭포드 마운트에서는 시위대를 체포하려던 경찰 3명이 차에 치여 부상을 입었다. 목격자들은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의 대공습으로 불타는 런던의 모습을 연상시킨다.”며 몸서리쳤다. 평화시위가 폭력사태로 얼룩지게 된 책임공방도 가열되고 있다. 토트넘 지역사회 지도자들은 6일 토트넘 경찰서 앞에서 두간의 사망과 관련해 경찰 간부와의 면담을 요구한 100여명의 시민들이 해 질 녘까지 면담이 성사되지 않으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미리 경고했다고 말했다. 당시 시위를 조직했던 한 남성은 “경찰이 대화를 거부한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면서 “이곳의 역사를 알고 있는데 어떻게 토트넘에서 또 경찰에 의해 한 남성이 살해될 수 있느냐.”고 성토했다. 1985년에도 토트넘에서는 경찰이 한 여성의 집에 난입해 여성이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폭동이 발생, 경찰이 시위대의 칼에 찔려 숨지는 비극이 일어났다. 일부 목격자들은 토트넘 시위 당시 16세 소녀가 경찰에 돌을 던지자 경찰이 소녀를 곤봉으로 구타하면서 폭동이 시작됐다고 증언했다. 폭동이 미리 조직된 것이라는 정황도 나오고 있다. 엔필드에 사는 라만이라는 엔지니어는 페이스북에서 “엔필드가 다음 공격 대상이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봤다고 말했다. 경찰이 주장하는 대로 두간이 먼저 경찰에게 총을 쐈는지에 대한 진실공방도 계속되고 있다. 에이드리언 한스톡 경찰 지휘관이 성명을 통해 두간의 죽음에 대해 “매우 후회한다.”고 밝힌 가운데 가디언은 지난 4일 두간이 총격을 받았을 당시 경찰 무전기에 박혔던 총알은 경찰이 쏜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때문에 경찰의 초기 발표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신장 사태는 조직적 테러 탓”

    “신장 사태는 조직적 테러 탓”

    “시위가 아니라 테러다.” 중국이 신장(新彊)위구르자치구 허톈(和田)에서 발생한 유혈사태에 대한 대대적인 선전전에 돌입했다. 이번 사태가 주민들의 평화시위를 유혈진압하면서 비롯됐다는 해외 위구르인 단체들과 서방언론들의 주장에 대한 본격적인 대응으로 풀이된다. 2009년 7월 우루무치 유혈시위 때에도 중국 정부는 국내외 분리주의 세력이 조직적으로 테러를 선동했다는 주장을 펼친 바 있다. 이번 사태를 처음 보도한 관영 신화통신은 20일 허톈시 공안과 당 관계자들을 인용해 이번 사태의 전모를 상세히 전하면서 “허톈시 공안파출소를 습격한 ‘폭도’ 14명을 사살하고, 4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통신은 살해된 인질 2명과 무장경찰 1명, 경찰 보조원 1명 등 4명 가운데 인질들은 여성과 10대 소녀였다고 덧붙였다. 통신은 ‘폭도’들이 위구르족인지는 직접 밝히지 않았지만 파출소 소장 등의 인터뷰를 통해 “파출소에 난입한 사람들은 20~40대의 남성들로 ‘알라는 유일하다’는 종교구호를 외쳤고, 허톈 지역의 말투를 쓰지 않았다.”며 이들이 외부의 위구르 분리주의 세력임을 은연 중 시사했다. ‘폭도’들의 잔혹성을 집중 강조하기도 했다. 파출소 소장 아부라이티는 “그들의 목적은 오로지 살인이었다.”며 “희생자들의 코와 귀가 칼로 무참하게 잘려나가 있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들의 인터뷰에 따르면 ‘폭도’들은 화염병과 돌, 칼만 소지했을 뿐이어서 과연 이들이 무장경찰의 강력한 화력에 대응할 생각이 있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남겼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화약고’ 신장자치구 계엄령… 20명 사상

    중국의 ‘화약고’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가 또다시 폭발했다. 18일 주민들의 공안파출소 습격사건이 발생한 난장(南疆·남부 신장)지역 핵심도시 허톈(和田)에는 계엄령이 발효돼 병력이 대폭 증강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년 전 대규모 유혈사태가 벌어진 자치구 수도 우루무치는 베이장(北疆·북부 신장)에 속하지만 이곳에도 거리 곳곳에 무장경찰이 배치됐다고 현지 소식통이 19일 전했다. 현재까지도 사건의 정확한 진상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環球時報)는 현지 관계자의 말을 인용, “분리주의 세력의 계획된 테러”라고 보도했다. 폭발물과 화염병을 든 ‘폭도’들이 자신들을 ‘위구르 독립운동 세력’이라고 주장한 뒤 인질을 살해하고, 출동한 경찰과 대치하다 진압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외의 위구르인 단체들은 토지 강제수용에 항의하던 주민들의 평화적인 시위를 공안 당국이 무력진압하면서 이번 사건이 비롯됐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인터넷에는 “한족 여성 살해사건으로 붙잡힌 용의자들을 구출하기 위해 파출소를 습격한 것”이라는 글이 떴지만 확인되지는 않고 있다. 인질 2명을 포함한 4명과 복수의 ‘폭도’들이 숨졌다는 당국 발표와는 달리 해외 위구르단체들은 이번 시위과정에서 20여명이 희생됐다고 주장했다. 허톈은 변경도시 카스(喀什)와 함께 난장 지역의 대표도시로 전체 주민 180여만명 가운데 위구르족이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은 1949년 신장지역 무력 통합에 성공한 뒤 한족들을 대거 이주시켰지만 광활하고 삭막한 타클라마칸 사막 이남인 난장 지역은 한족들이 이주를 꺼려 여전히 위구르인들이 대부분이다. 위구르 독립운동을 표방하는 ‘동투르키스탄’의 국내 본거지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08년 이후의 충돌 또는 테러는 대부분 이 지역에서 발생했다. 지난 2009년 우루무치 유혈시위 때도 중국 중앙정부는 가장 먼저 난장 지역 상황 통제에 나서기도 했다. 난장 지역은 특히 북부 지역보다도 경제적으로 더 낙후돼 주민들의 불만이 고조돼 왔다. 중앙정부가 최근 카스 일대를 새로운 경제무역특구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도 이런 불만을 무마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이번 사태가 위구르인들의 집단시위로 확산될지는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중국 정부가 ‘요주의 지역’인 이곳에 이미 대규모 병력을 배치하고 있었던 데다 이번 사태 이후 계엄 상황에서 병력이 증강 배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재스민혁명 현장을 가다] 중동의 정세와 미래 국내외 전문가 진단

    [재스민혁명 현장을 가다] 중동의 정세와 미래 국내외 전문가 진단

    민주화 혁명 이후 중동은 어디로 흘러 갈까. 중동의 대내외 정치·외교 지형은 어떤 변화를 거칠 것인가. 서정민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와 걸프뉴스 비즈니스 에디터 사이푸르 라만을 통해 중동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했다. 서 교수는 이집트 카이로 아메리칸대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집트 전문가다. 라만 에디터는 걸프 지역의 대표적 영자신문인 걸프뉴스의 19년차 베테랑 기자다. ■ 서정민 외국어대 교수 “중동 지배했던 권위주의 깨져… 한국은 섬세한 외교 준비하라” →중동 민주화의 의의는. -그동안 권위주의에 도전하기 어려웠던 인식체계를 바꾸는 혁명이라는 성격을 주목해야 한다. 중동은 유목문화와 이슬람에 바탕을 둔 권위주의가 사회를 지배했다. 중동은 전통적으로 우물과 가축을 돌보기 위해 무력을 가진 아버지 같은 지도자를 존경하고 두려워했다. 이슬람교를 창시한 무함마드는 종교지도자이자 정치지도자였고, 국가체계와 권력기반을 유지하기 위한 많은 제도를 이슬람 종교에 삽입했는데 그것이 권위적 성격으로 이어졌다. 때문에 밑에서 올라오는 정권교체가 힘들었다. 올해 일련의 흐름은 전통적 인식체계를 깨버리는 역사적 전환점이라고 본다. →여전히 강력한 기득권층과 고질적인 부정부패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은데. -민주화 과정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민주화를 위해서는 문화 말고도 필요한 다른 요인이 많다. 정치의식도 필요하고 의회와 정당정치 등 정치제도도 성숙해야 한다. 어느 정도 경제성장도 필요하다. 당장은 이집트와 튀니지 모두 혼란과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과거처럼 무소불위는 아니더라도 신(新)권위주의체제가 들어설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장기적·점진적으로 의회 기능 강화, 정당정치 강화, 시민사회 발전, 정치의식 성숙 등이 이어질 것이다. →중동과 미국의 외교관계 변화는. -미국의 영향력이 점차 약화될 것이다. 시민혁명의 가장 중요한 영향은 다원화다. 과거에는 최고 권력자가 정치와 경제는 물론 교육정책까지 모든 것을 결정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다. 대표적인 예가 1978년 캠프 데이비드 협정이었다. 이집트 국민이 반발하고 21개 아랍 국가가 반대해도 대통령이 결정하면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과거처럼 밀실협상으로 최고권력자를 포섭해서 자기 이익을 관철시키고 현상유지하는 미국과 서방의 전략에 어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집트에선 이스라엘과 맺었던 평화조약이나 가스관 공급 문제도 공론화하기 시작했다. 대외정책조차도 사회적 토론의 대상이 된 것이다. →중동의 변화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중동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보다 오해하고 이상하게 보는 게 더 큰 문제다. 중동은 우리의 ‘밥줄’인데, 차려 놓은 밥을 쉰밥이라고 생각하면서 먹기는 또 잘 먹는 식이다. 중동에서 벌어들이는 돈은 좋다고 하면서 이슬람채권은 터부시한다. 중동은 ‘신의 땅’이기 이전에 ‘인간의 땅’이다. 중동 젊은이들은 하루 다섯 차례 기도를 하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좋은 일자리를 구할까 더 고민한다. 분신자살 동영상 하나가 중동 전체를 뒤집어놓는 시대에서 우리도 섬세한 외교가 절실하다. 작은 실수가 기업과 국익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 섬세한 외교와 진출을 하기 위해서는 뭘 알아야 한다. 한국도 국가 외교전략을 재정립해야 할 때가 됐다. ■ 라만 걸프뉴스 에디터 “미국·아랍권 독재자 밀약 끝나…실업문제 해결 국제지원 절실” →중동의 민주화혁명이 갖는 의미는. -정치적 지도자나 정당이 이끄는 혁명이 아니라 밑에서 올라오는, 시민이 시작한 혁명이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두 번째로 대부분의 국가에서 비폭력 평화시위를 했다.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혁명을 이끄는 주요 수단이 됐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민주화혁명의 원인은. -실업이 첫 번째 원인이다. 민주적 권리가 없다는 것이 두 번째다. 국가가 국민을 위해 충분한 예산을 쓰지 않았다.오랜 시간 불만이 누적돼 있었다. 그들은 권리를 찾길 바랐고 변화를 원했다. →향후 정세를 전망하면. -단기적으로는 각종 요구가 봇물을 이룰 것이다. 해결은 더딜 것이고 분노를 터트리는 일도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게 역사가 주는 교훈이다. 하루아침에 될 수가 없다. 정치 지도자들이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속도는 달라질 것이다. 특히 실업문제 해결이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지원이 절실하다. →리비아는 다른 국가와 양상이 다른데. -카다피는 국가지도자이면서도 특정 부족의 부족장으로서 부족 간 경쟁과 갈등을 유도해 통치에 활용해 왔다. 그것 때문에 일견 부족 간 갈등으로 비쳐지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독재에 저항하는 시민들과 독재자의 싸움이 기본성격이라고 본다. →민주혁명에 대한 미국의 태도가 논란이 됐는데.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과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을 포함해 그동안 거의 모든 중동 국가 지도자가 미국과 사이가 좋았다. 그들은 미국과의 좋은 관계를 이용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을 통제했다. 미국은 민주화혁명 시작 이후 중동전략을 재검토하는 데 시간이 걸렸지만 점차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민주주의와 자유를 지지하겠다고 천명한 것은 이것이 새로운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민주혁명이 이스라엘과 미국의 대중동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튀니지·리비아·예멘·시리아 등이 민주주의 체제를 이루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새로운 국가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이스라엘은 예전부터 아랍 국가들과 대립하면서 아랍권이 비민주 국가라는 걸 강조했다. 하지만 아랍권이 민주주의를 받아들이면 그들을 이웃으로 삼지 않을 명분이 사라진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스라엘은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이스라엘이 변할 가능성은. -이스라엘이 언제까지나 적들에 둘러싸여 살 수는 없다. 언젠가는 이웃을 친구로 받아들여야 한다. 팔레스타인은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 더 이상 이스라엘이 대화를 거부할 만한 핑곗거리가 없다. 두바이 강국진 순회특파원 betulo@seoul.co.kr
  • [서울Focus] 안전 G20 경찰 준비 어떻게

    “세계 정상들이 안전하게 제시간에 회의장에 도착하도록 철저한 준비를 다하자.” 경찰이 오는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본격적인 경호·경비 태세에 돌입했다. 경찰은 올 1월 ‘경찰청 G20 기획팀’을 구성해 차근차근 준비해 왔다. 사실 경찰이 가장 신경을 쓰는 분야는 교통이다. 정상들의 숙소가 서울시내 10여곳에 분산된 데다 교통체증으로 악명 높은 서울 강남 지역의 러시아워를 뚫어야 하기 때문. 경찰청 관계자는 “시민 불편을 최소화하면서 효과적으로 교통을 통제하는 방안을 마련하려 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애초 정상들의 전체 이동 구간에 전용차로 설치를 검토했지만 정상들의 숙소가 서울 곳곳에 나눠져 있어 이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때문에 경찰은 전용차로 대신에 행사장 주변 3, 4곳에 거점을 정하고, 거점부터 행사장까지만 전용차로를 운영하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G20기간 중 교통량을 줄이기 위해 5부제 등을 강제적으로 실시하기보다는 시민들의 대중교통 이용 등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시위도 걱정거리다. G20회의에 반대하는 일부가 과격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례로 지난 6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때도 평화적인 반대시위에 일부 과격시위대가 합류, 경찰차를 불태우고 가게 유리창을 깨뜨리는 등 사고가 발생했다. 때문에 경찰은 G20 정상회의 기간 중 행사장과 떨어진 곳에 평화시위구역을 만들어 집회나 시위를 벌일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또 불법·폭력시위 가담자는 현장에서 검거하고 증거수집을 통해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방침이다.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 법무부 등과 함께 상습 과격 시위꾼의 명단을 확보해 이들의 입국을 막는 것도 검토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엄청난 책임과 부담이 있지만 우리 경찰의 역량을 세계에 알리고, 국격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보면 좋은 기회”라면서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데 경찰이 버팀목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이란시위 검거자 특별법정 세운다

    대선 결과 무효화를 주장하며 열흘 이상 계속된 이란 시위가 정부의 강경 진압 조치로 소강국면으로 돌아섰다. 로이터통신은 23일(현지시간) 이란 정부가 시위현장에 바시지 민병대와 최정예 혁명수비대까지 동원하자 시위가 급속히 위축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시위대는 광장과 거리에 집결하는 대신 포스터를 내걸고 옥상에서 구호를 외치거나 차량 전조등을 켜는 등 소극적인 방법으로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다.●국영TV “서방언론 영향으로 사태촉발”이란 정부는 강경 진압뿐만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도 시위대를 압박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등 외신에 따르면 정부 당국은 선거 무효화를 주장하다 검거된 시위자들의 재판을 전담하는 특별법정을 열기로 했다. 로이터통신은 “이슬람 공화국 탄생 이래 발생한 최악의 폭동에 대해 법정이 교훈을 가르쳐 줄 것”이라는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란 정부는 이란 국영TV 등의 매체를 통해 이번 시위사태가 VOA와 BBC 등 미국과 영국 언론의 영향을 받은 결과라고 주장하는 선전활동도 펴나가기로 했다. 또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이번 대선과 관련해 준법을 강조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어떤 비용을 치르더라도 압박에 굴하지 않을 것”이라며 기존 입장에서 물러날 생각이 없음을 재확인했다.시위 위축의 또 다른 배경으로는 선거 후폭풍의 구심체였던 개혁파 미르 호세인 무사비 전 총리의 소극적 역할론이 지적되기도 한다. 순교자가 될 준비가 돼 있다며 총파업 등 대대적인 시위를 촉구했던 무사비가 최근 민병대의 발포로 시위자들이 목숨을 잃고 있는 상황에서, 민병대를 ‘형제’로 표현하며 평화시위를 요구하자 지지자들이 방향을 잃고 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일관된 시위방향을 제시하지 못하는 무사비의 행보가 개혁파 내부마저 온건파와 급진파로 분열시키고 있다는 시각이 많다.●시위 희생자 대규모 추모집회 예고표면적 시위양상은 소강국면으로 접어들었으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란 헌법수호위원회가 재선거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는 가운데 무사비 전 총리 측은 부정선거와 관련한 3쪽짜리 보고서를 공개하며 독립적인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을 재차 촉구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선거관리위 위원들은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 지지자로 구성됐다. 참관 투표 용지는 이례적으로 투표 당일, 그것도 일련번호도 없이 인쇄됐으며 유효 투표용지임을 표시하는 도장도 개표소 숫자보다 많다. 투표 전 각 후보측 참관인이 없는 상태에서 투표함이 봉인됐다. 이같은 정황을 종합하면 아마디네자드를 찍은 투표 용지가 처음부터 투표함에 들어 있었을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또 여러 투표소에서 참관인 없이 투표가 진행됐고 참관인 입장을 불허한 개표소도 있었다. 또 대선 후보였던 메흐디 카루디 전 의회의장도 25일 시위 희생자들을 위한 대규모 추모집회를 열겠다고 밝혔다.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월드이슈] EU ‘압박’ 美 ‘신중’… 입장 엇갈리는 서방

    이란 반정부 시위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이 갈수록 세지고 있다. 주권국의 내정에 간섭하지 말라는 이란의 주장에 서방 국가들은 보편적 인권과 민주주의를 내세우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서방 국가들이 이란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미묘한 온도차가 표출되고 있다. 유럽은 이란과 외교적 충돌도 서슴지 않고 있다. 유럽연합(EU) 의장국인 체코는 22일 자국 이란 대사를 소환, 평화시위에 대한 경찰의 강경진압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고 AP통신 등이 이날 보도했다. 또 체코는 다른 EU 회원국에도 각국 주재 이란 대사에게 항의할 것을 주문했다. 반면 미국 정부의 이란 비판은 유럽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시위 초기 이후로 아예 이란 문제를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칼럼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자유주의 외교가 딜레마에 빠졌다고 전했다. 미국이 이렇게 이란 문제에 거리를 두는 이유는 단지 이란 내 반미감정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 아니다. 전통적으로 미국의 자유주의 진영은 보수정권과 달리 자국 외 문제에 대한 개입을 자제했다. 하지만 이번 이란 시위를 앞에 두고 오바마로서는 이상과 현실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처지에 이르렀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 이란 무사비 前총리 평화시위 촉구

    이란 대선 결과 발표 이후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비판여론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가운데 선거에서 패배한 미르 호세인 무사비 전 총리가 17일(현지시간) 평화시위를 촉구하면서 선거 후폭풍이 새 국면을 맞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무사비 전 총리가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당국의 대응으로 시위에 나선 많은 이들이 다치거나 순교하고 있다.”며 “순교자 유족에 연대감을 표하기 위해 사원에 함께 모이거나 평화적인 시위를 진행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이로써 며칠째 격렬하게 진행돼온 시위가 다소 진정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앞서 16일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도 ‘부분 재검표’에 찬성하면서 사태수습에 들어갔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당선을 “신의 축복”이라고 선언했던 이란 신정체제의 최고결정자가 유혈사태까지 발생하자 양보안을 내민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선 시위 물결이 이스파한, 라슈트, 타브리즈 등 전국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시위 나흘째였던 16일에는 테헤란 도심에서 무사비 후보 지지자들과 아마디네자드 지지자들간의 ‘맞불시위’도 빚어졌다.이란 헌법수호위원회도 이날 “재개표할 준비가 됐다.”고 밝혔으나 무사비 후보측은 “시위를 교란시키려는 술책”이라고 거부하며 재선거를 요구했다. 아바살리 카드호다이 헌법수호위원회 대변인은 국영TV를 통해 “재검표 뒤 집계가 달라질 수도 있지만 선거 무효 요구는 수용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CNN은 위원회가 대선에서 패한 후보 3명을 만나 재개표를 원하는 지역을 물어 봤다고 보도했다.이에 대한 관측은 부정적이다. 리처드 달튼 전 이란 주재 영국대사는 “선거에 대한 조사작업은 매우 제한적이다. 과거에도 이런 문제로 조사가 실시됐지만 결국 흐지부지됐다.”고 말했다. 2005년 대선 때도 제한적 재검표가 실시됐지만 비공개로 이뤄진 데다 조사결과도 발표되지 않았다.현 상황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위기감을 느낀 하메네이는 이날 시위대를 해산시키며 “몇몇 사람들이 이슬람 시스템의 결속과 이란의 통합을 저해하고 있다.”며 국가의 편에 서줄 것을 촉구했다. 이처럼 시위대뿐 아니라 종교계 내부와 하세미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 같은 유력 정치인들까지 하메네이와 헌법수호위원회, 엘리트 지도층을 압박하고 있다고 영국 가디언이 보도했다. 재개표 자체도 이들에겐 딜레마다. 부정행위가 저질러진 것으로 결론나면 그간 구축해온 이란공화국의 이미지에 오점을 남길 수 있고 이를 부정한다 해도 신정정치에 대한 불신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시위 결과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는 소요사태가 이란의 체제변화까진 이끌어 내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성 앤드루스대의 알리 안사리 교수는 “(정부의) 미온적 조치가 반대파를 만족시키지 못할 경우 선거 무효로 끝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그럴 경우 유혈사태는 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시위가 고조되면 이란 혁명수비대 등 군병력 투입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 AP통신은 무사비 후보가 본격 야당세력으로 성장할 가능성은 있으나 그 자신이 1979년 ‘이란혁명의 산물’이자 ‘제도권 인물’이기 때문에 급격한 체제변화는 초래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대규모 시위가 정점에 달하면 무사비와 정부간의 막후 교섭으로 해법이 도출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유혈 참극된 아마존 反개발 시위

    유혈 참극된 아마존 反개발 시위

    아마존 열대우림이 피로 얼룩지고 있다. 페루 아마존 지역의 원유·가스 개발을 둘러싸고 지난 4월 초부터 촉발된 원주민들의 시위가 최근 격화되면서 어린이 3명을 포함, 시위대 30명이 숨지고 155명이 다쳤으며 경찰도 22명이 사망했다고 AP통신이 7일 보도했다. 6일 아마조나스주 이마시타에서는 시위대가 국영 석유회사 페트로페루에 경찰 38명을 억류했다. 보안군이 이를 탈환하는 과정에서 경찰 9명이 숨졌다. 앞서 5일 새벽에는 바구아 지역의 ‘악마의 커브’에서 5000여명의 시위대가 주요 도로를 점거, 경찰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원주민 22명과 경찰 8명이 사망했다. 이번 사태는 1980~90년대 좌파 무장단체 ‘빛나는 길’의 게릴라전 이후 최악의 유혈사태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참극이 빚어지자 페루에서는 내각 개편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수도 리마의 엘리트 계층과 지역 빈민들 간의 갈등도 깊어지며 알란 가르시아 페루 대통령에게 최대 악재로 떠올랐다. 가르시아 대통령은 시위를 “파괴분자들의 반민주주의 테러”라 규정하고, 이들이 아마존으로부터의 가스, 원유 유입과 의약품, 음식 수송도 막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시위 지도자인 알베르토 피아조는 “우리는 돌과 활로만 무장했기 때문에 경찰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 정부는 평화시위자들을 집단학살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지난해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가르시아 대통령은 아마존 열대우림에 다국적 에너지기업들이 자유롭게 원유, 가스, 광산업, 농업 투자를 할 수 있게 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아마존 지역에서 벌채와 바이오연료 개발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설계 중이다. 그러나 현지 원주민들은 천연자원에 대한 통제권을 잃을까 두려워하고 있다. 6개주에 거주하는 아마존 인디언 3만명이 피해를 입게 됐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법안 철폐를 외치며 지난 4월9일부터 산발적으로 주요도로와 송유관 등을 막고 시위를 벌여 왔다. 또 현 정부가 외국기업들과 계약하기에 앞서 원주민들과 충분한 협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다. 미 듀크대의 지난해 연구에 따르면 페루 우림지역 72%(64개 지역 중 59개 지역)가 원유·가스 개발 계약 등에 묶인 ‘원정투자’ 대상이다. 사태가 악화되자 페루 정부는 지난 5월 4개 정글주에 ‘60일간의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의회는 원주민 지역사회가 반대하는 법안을 철회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가르시아 대통령은 “중요자원 지역 대부분은 이미 보호되고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벌써부터 국내에서는 가르시아 대통령의 실책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의 ‘공격적인 개발 논리’에도 불구, 국내 빈곤율은 아직도 37%에 달한다. 정부가 자유시장과 외국투자 유치에 열을 올리지만 이는 대부분 도심지역의 엘리트에 혜택을 주는 것일 뿐 빈곤층 구제는 외면했다는 지적이다. 지난 4일 의회에서 열릴 예정이던 공개토론도 정부 측의 일방적인 저지로 무산돼 원주민들의 반발은 갈수록 거세질 전망이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석유메이저 로열더치셸 美 법정에

    세계적인 석유업체 로열더치셸이 나이지리아 환경운동가의 ‘사법적 살인’에 연루된 혐의로 27일 뉴욕 법정에 선다. 이번 판결은 다국적 석유회사가 수십년간 저개발국가의 부패·독재정권과 유착해 내전을 지원하고 인권 탄압과 환경파괴를 저지른 데 대한 경종을 울릴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셸은 사니 아바차 전 군부정권을 도와 1995년 환경운동가 켄 사로 위아 등 9명의 원주민운동가들을 사형에 이르게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고 영국 인디펜던트가 26일 보도했다. 성공한 작가이자 기업가였던 위아는 나이지리아 남부 니제르 델타지역이 셸의 석유생산으로 황폐해지자 환경파괴를 비난하다 95년 11월 처형당했다. 이후 셸은 시위의 폭풍에 직면했다. 존 메이어 전 영국 총리는 이 사형을 “사법적 살인”이라고 비난했다. 위아는 죽기 전 “나는 셸이 델타에서 벌인 생태계 전쟁 범죄가 곧 정당한 처벌을 받을 거라 믿는다.”고 경고했다. 위아의 예언은 실현됐다. 그의 아들과 형, 군정의 희생자 유가족들이 셸을 상대로 뉴욕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원고 측은 “정부가 사형과 신문을 직접 행했지만 셸이 군부에 돈과 무기, 인력을 지원하며 이런 학대를 선동, 조장하고 계획했다.”고 주장했다. 원고 측은 또 셸이 정부와 공모해 수십만 오고니 부족의 평화시위를 폭력 진압했다고 탄원했다. 이에 대해 셸은 “증거들이 우리가 이 비극에 책임이 없음을 밝혀줄 것”이라고 반박했다. 1958년부터 니제르 델타에서 사업을 시작한 셸은 지금까지 360억배럴의 원유를 생산하는 등 아프리카 최대 산유국 나이지리아의 에너지자원을 독식해왔다. 석유 수익은 매일 수백만달러에 달했지만 나이지리아인 70%는 매일 1달러로 연명했다. 이 때문에 석유는 아프리카의 ‘자원의 저주’라 불렸다. 지난주 오데인 아주모고비아 나이지리아 석유장관은 매장량의 반이 고갈됐다고 밝혔다. 평화시위가 이뤄졌던 니제르 델타는 이제 니제르델타해방운동(ME ND) 등 석유이권을 주장하는 무장 민병대에 자리를 내주며 전장으로 변했다. 재판이 시작되면서 이번달 정부에서 출범시킨 폭동진압군이 이 지역을 집중 공격할 것으로 보여 주민들은 또다시 두려움에 떨게 됐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中 난징서 대학생 수천명·경찰 충돌

    │베이징 박홍환특파원│중국 장쑤(江蘇)성 성도 난징(南京)에서 수천명의 대학생들이 시위를 벌이다가 경찰과 충돌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1989년 6·4 톈안먼(天安門) 사태 20주년을 2주일여 앞두고 벌어진 대학생들의 집단 시위에 중국 공안당국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지난 18일 밤 난징 항공항천대학(航空航天大學) 장닝(强寧) 캠퍼스의 대학생 수천여명이 공무원의 동료학생 구타에 항의하며 학교 부근 대로를 점거한 채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학생들은 ‘비폭력, 비협조’ ‘소외계층을 도와 화합사회를 건설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밤 늦게까지 연좌농성 등을 벌이다가 출동한 공안(경찰)과 충돌했다. 특히 평화시위에도 불구하고 학생 3명이 연행되자 공안과 직접 충돌했으며, 이 과정에서 공안 차량들도 파손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시위는 학교 부근에서 노점을 차려놓고 장사하던 이 대학 학생들이 단속 공무원에게 물품을 빼앗기고 일부 여학생들이 구타를 당한 데 항의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인터넷과 문자 메시지 등을 통해 관련 소식이 동료 학생들에게 급속히 전파됐고, 순식간에 수천명의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주변의 시민들까지 합세해 한 때 1만명이 넘는 군중이 부근 도로를 가득 메운 것으로 전해졌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등 홍콩 언론들은 홍콩에 기반을 둔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정보센터 소식통을 인용, 20일 이 같은 내용을 일제히 보도했다. 중국 인터넷에도 ‘남항대학 구타사건’ ‘남항사건’ 등의 항목으로 관련 내용과 사진이 급속히 전파되고 있다. 대학생 시위는 다음날 새벽 1시까지 이어졌으며, 30명 정도의 학생들이 부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앞서 지난 7일에도 저장(浙江)성 성도인 항저우(杭州)에서 대학생 수백명이 동료가 사망한 교통사고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바 있다. 한편 중국이 동영상 공유사이트인 유튜브(You Tube)에 이어 최근 검색 사이트인 구글의 블로그 서비스(Blogger.com)까지 차단했다고 홍콩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이날 보도했다. stinger@seoul.co.kr
  • [독자의 소리] 달라진 ‘닭장차’ 평화시위 계기되길

    지난달 말 전국 농민대회 등을 참관하면서 소위 ‘닭장차’로 불려오던 경찰버스에 부착된 철망이 제거된 사실을 알게 됐다.산뜻하게 달라진 모습의 경찰버스를 보게 되었다.경찰에서는 11월말부터 전국의 경찰버스에 부착된 철망을 제거했다고 한다. 철망은 1980년대 초부터 화염병과 투석 등 과격,폭력시위로부터 버스를 보호하기 위해 부착되었으나 폐쇄적인 이미지로 일반 시민들에게 거부감을 주고 도심 미관을 저해한다는 일부 비판을 받아왔다.특히 아직 성숙되지 않은 집회시위 문화의 상징처럼 여겨져 왔었다. 이제 경찰이 먼저 철망을 제거하고 노후된 버스와 촛불시위로 훼손된 버스는 산뜻한 색상으로 도색함으로써 시민들에게 더욱 밝고 따뜻한 모습으로 다가서게 됐다.이에 따라 집회시위 문화도 예전처럼 불법·폭력 시위에서 탈피하여 국민들의 신뢰를 얻고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변화되기를 기대한다. 또한 법을 집행하는 경찰 등에서는 평화적 준법시위는 적극적으로 보장,보호·지원하되 불법·폭력 시위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대처해야 할 것이다. 파주시 교하읍 동패리 윤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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