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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벨평화상 中 류샤오보] 경제성장 그늘에 가린 ‘中 인권·민주화’ 지구촌 이슈로

    중국의 민주화 운동가 류샤오보(劉曉波·55)를 노벨상 위원회가 올해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한 것은 강력한 메시지와 의미를 담고 있다. 그것은 중국의 인권 보호와 민주화 확대를 촉구하면서 이를 위해 헌신한 중국의 민주화 운동가들에 대한 무한한 격려를 함축하고 있다. 고난에 맞서 인권 및 민주화 확대를 위해 싸워온 류샤오보 개인에 대한 격려이면서, 개인의 차원을 넘어선 중국 지식인들과 민주화 인사들 전체를 향한 격려를 담고 있다. ●中 민주화 운동가들에 무한한 격려 중국 정부가 투옥시킨 실정법 위반자, 수형인을 수상자로 선정한 것 자체가 상징적이며 ‘돌발적’이다. 중국의 치부를 건드린 것이지만 또 그만큼 지구촌 지성들의 바람을 실은 것이기도 하다. 이제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자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이 국가차원에서 인권과 민주화라는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에 보다 전향적인 자세를 가져 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류샤오보를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한 것은 국제사회가 경제 성장의 그늘 속에서 사그라져 가던 ‘중국의 인권과 민주화’라는 화두를 다시 지구촌의 과제로 점화시켰다는 점에서 무게를 갖는다. “중국 정부가 자국민들의 정치적 권리와 인권을 제약하고 있다.” “중국의 새로운 위상은 더 큰 책임을 요구한다.”는 비판을 이날 노벨상 위원회가 선정 성명에 담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국제사회 “中 인권운동 잊지 않겠다” 중국 국내적으로도 선정 의미는 가볍지 않다. 당장 어떤 효과와 반향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조금씩 그러나 지속적이고 확실하게 민주화 운동에 힘을 발휘하는 디딤돌로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의 젊은 세대에게 민주화와 인권의 의미를 심어주고 이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국제사회와 지구촌 지성들이 중국의 민주화 운동을 잊지 않고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는 점에서도 고무적이다. 중국 내 시민사회와 민권 의식이 형성되고 있는 시점에서 ‘중국 내 정치범’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정과 격려는 중국 내 민주화 운동의 불씨를 살리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말에 중국내 학자, 작가, 법률가 등 120여명이 류샤오보에게 노벨 평화상을 수여할 것을 요청하는 청원서를 작성해 인터넷에 올렸다는 사실에서도 움트는 중국 내 민주화 운동의 씨앗을 발견할 수 있다. 공산당의 일당 독재와 시장 경제의 동거를 유지해 온 중국 정부는 어떤 의미에서 1989년 톈안먼 사건 이후 가장 강력한 체제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 자국 반체제 인사에 대한 노벨 평화상 선정으로 ‘미뤄 놓고 싶은 과제’와 다시 정면승부를 해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노벨평화상 中반체제인사 류샤오보

    노벨평화상 中반체제인사 류샤오보

    노벨평화상 선정위원회는 7일(현지시간) 중국을 대표하는 인권운동가인 류샤오보(劉曉波·55)를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중국 안팎의 인권운동가들은 일제히 환호한 반면 수상자 발표 이전부터 대립각을 세웠던 중국 정부는 수상자 발표 직후 “죄인인 류샤오보에게 노벨평화상을 주는 것은 노벨상 취지에 배치되는 일이며 향후 중국과 노르웨이 관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위원회는 “류샤오보는 중국에서 기본적인 인권을 위해 오랫동안 비폭력적인 투쟁을 벌이면서 중국 인권 개선을 위한 광범위한 투쟁을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평화상 선정 이유를 밝혔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獨 “류샤오보 12월 노벨상 시상식 참석해야”

    노르웨이 노벨 위원회가 올해의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8일 류샤오보(劉曉波)를 호명하자 유럽 국가들은 중국의 민주화 인사에게 축하의 인사를 보냈다. 또 외신들도 “중국 내 대표적 반체제 인사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며 주요 뉴스로 다루는 등 큰 관심을 나타냈다. 독일 정부는 류샤오보의 수상 소식이 전해진 직후 발표한 논평을 통해 “그는 중국의 민주화와 인권 신장을 원하는 용감한 인물이고 민주화가 평화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힘들고 긴 여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고 항상 얘기했던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또 “중국 정부는 류샤오보가 오는 12월 노벨상 시상식 참여를 위해 노르웨이 오슬로에 방문할 수 있도록 당장 풀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복역 중인 중국 내 반체제 인사들의 구명을 위해 목소리를 높여 온 프랑스는 “노벨위원회의 이번 결정은 인권이 세계 어디에서나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라면서 중국 정부에 류샤오보의 석방을 거듭 촉구했다. 타이완의 주요 야당인 민주진보당(DPP) 역시 류샤오보의 수상 소식에 축하의 뜻을 전하며 중국 정부에 즉각적인 석방을 요구했다. 주요 외신들도 류샤오보의 수상 소식을 머리기사로 긴급 타전했다. AFP통신은 류샤오보를 “최근 수십년간 중국의 민주화와 인권 보호를 위해 가장 크게 목소리를 높였던 인물”이라고 소개하면서 1989년 톈안먼 시위에 참여한 경력 등을 상세하게 전했다. AP통신도 “도박사들이 가장 유력한 후보로 점쳤던 중국의 반체제 인사가 예상대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고 보도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中, 노르웨이 대사 불러 항의

    중국 공산당과 정부가 사면초가에 빠졌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을 비롯한 서방세계가 위안화 저평가를 ‘도둑질’로 표현하며 중국을 상대로 경제적 압박을 고조시키고 있는 가운데 8일 류샤오보(劉曉波)의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인권실태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실제 노벨위원회는 성명에서 “중국 정부가 자국민들의 정치적 권리와 인권을 제약하고 있다.”며 중국으로서는 뼈아픈 일격을 날렸다. 서방과 중국의 갈등을 심화시킬 새로운 요소로 등장할 전망이다. 중국은 당장 불편하면서도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중국 외교부는 평화상 발표 직후 주중 노르웨이 대사를 불러들여 강력 항의했다. 중국정부는 (노벨평화상 수상에 대한) 반대 입장과 항의의 뜻을 전달했다고 노르웨이 외교부는 전했다. 또 외교부는 수상자 발표 후 1시간30여분 만에 마자오쉬(馬朝旭) 대변인이 기자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홈페이지를 통해 “중국 법률을 위반한 죄인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한 것은 상의 취지에 배치되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답변은 예상대로였지만 그동안 노르웨이 측에 “양국 관계에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경고를 여러 차례 보냈음에도 수상을 강행한 것에 대한 불만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후진타오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가 최근 들어 부쩍 정치개혁과 시민권리 확대 등을 언급하고 있지만 중국에서 류샤오보 등이 주장하는 공산당 일당독재 폐지 등의 전면적인 민주화는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 중국은 오히려 반체제 인사들의 ‘08헌장’이 발표된 뒤부터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장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08헌장 발표 직후인 2009년 1월 자칭린(賈慶林)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은 “다당제와 삼권분립 등 서구의 잘못된 사상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방어선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에도 공산당 기관지인 광명일보가 “정치개혁은 인민이 주인인 사회주의 민주정치 개념 속에서 추진돼야 하며 삼권분립, 다당제 등 소수를 위한 자본주의 민주정치로 오도돼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일각에서는 반체제 인사들의 목소리와 국제적인 압력이 고조되는 등 외부환경으로 인해 점진적으로라도 민주화의 길에 들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물론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테두리 안에서다. 이와 관련, 후 주석은 “법에 의거해 민주선거, 민주적 결정, 민주관리, 민주감독을 실시해야 한다.”는 ‘4개 민주론’과 인민의 알권리, 참여권, 표현권, 감독권 보장 등 ‘4대 권리론’을 제시한 바 있다. 원 총리 역시 최근 CNN과의 인터뷰에서 ‘헌법과 법의 허용 테두리 내에서’라는 점을 강조한 뒤 “표현의 자유는 모든 국가에서 필수불가결한 국민들의 권리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공산당 간부 교육기관의 출판물을 통해서도 관료주의와 권력집중의 폐해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류샤오보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계기로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지도부의 대처 등에 대한 내부논쟁이 불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해 초 08헌장 관련자 등에 대한 처벌과 관련, 강경파와 온건파의 주장이 엇갈렸지만 결국 류샤오보에 대한 중형 처벌이 이뤄져 국제적 논란거리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노벨평화상 中 류샤오보] 공산당 독재 비판… 인권보장등 19가지 요구

    ‘인권은 국가가 주는 것이 아닌 천부적인 가치다. 나라는 군주가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자유주의와 법치주의에 따라 운영돼야 한다.’(‘08헌장’ 중) 류샤오보는 중국의 민주화를 촉구하는 ‘08 헌장(Charter 08)’ 작성을 주도하면서 국제사회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08년 12월 세계인권선언 60주년을 맞아 발표된 08헌장은 중국 반체제 인사들의 민주화 선언문으로, 공산당 일당 독재를 비판하고 헌법 개정과 직접선거, 인권 및 집회·결사·언론·종교의 자유 보장 등 19가지 사항을 요구하는 내용으로 꾸며졌다. 류샤오보와 법학자 위하오청 등 중국의 대표적 반체제 지식인들이 체코슬로바키아 평화 혁명의 구심점이 된 ‘77헌장’을 본떠 만들었다. 지식인 303명의 참여로 시작해 전국으로 번진 서명운동은 8000명이 넘는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노벨평화상 中 류샤오보] 류샤오보 가시밭길 인생역정

    변호사 겸 작가인 류샤오보(劉曉波)는 중국 반체제 운동과 인권운동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류샤오보는 1955년 12월 지린(吉林)성 창춘(長春)에서 태어났다. 문화대혁명 당시 지식청년(知靑)이라는 이유로 건축공사장을 전전해야 했고, 1977년부터 1982년까지 지린대학 중문과에서 수학한 뒤 베이징사범대학에서 1988년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컬럼비아대학과 하와이대학,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등에서 방문학자로 지내며 해외 견문을 넓혔다. 류샤오보는 1980년대 중반부터 반체제 운동에 눈을 떴다. 중국 사상계의 ‘덩샤오핑’으로 불리던 철학자 리저허우(李澤厚)를 비판하는 글을 쓴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류샤오보가 쓴 글은 중국 문단에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가라말(黑馬)’이라는 필명을 얻었다. 1989년 6월4일 톈안먼(天安門) 사건이 발생하자 컬럼비아대에서 방문학자로 지내던 류샤오보는 곧바로 중국으로 돌아와 민주개혁을 요구하는 운동에 동참했다. 톈안먼 사태 발생 이틀 뒤인 6일 중국 공안에 ‘반혁명선전선동죄’로 체포된 류샤오보는 공직을 박탈당해 강단에서 쫓겨났다. 당시 류샤오보는 허우더젠(侯德建), 가오신(高新), 저우둬(周舵) 등과 함께 ‘톈안먼 4군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때부터 작가의 길로 들어선 그는 중국 민주화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다. 이와 동시에 그는 중국 공안의 집중 감시 대상이 됐다. 1995년 5월 베이징 교외에 1년 넘게 감금됐던 그는 1996년 10월에는 ‘사회질서교란죄’ 명목으로 법원에서 노동교화형을 선고받고 3년간 복역했다. 그럼에도 류샤오보는 필봉을 놓지 않은 채 작가 활동을 계속하면서 정부를 공격하고 중국 국민의 인권에 주목했다. 류샤오보의 영향력은 그가 2003년 8월 중국 펜클럽 회장을 맡게 되면서 배가됐다. 국제적인 연대가 형성된 것이다. 이 때문에 류샤오보는 중국 당국의 중점 감시 대상이 돼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가 되면 감금을 당하는가 하면 외출은 물론 전화까지 차단돼 사실상 외부로부터 격리되는 신세가 됐다. 류샤오보는 2007년 외국 매체에 쓴 글이 문제가 돼 잠시 중국 당국에 억류됐다가 2008년 세계인권의 날을 맞아 ‘08헌장’을 발표하기 이틀 전인 12월8일 체포됐다. 류샤오보는 6개월 넘게 변호사나 가족을 만나는 것조차 금지당한 채 구금 상태에서 조사를 받은 끝에 2009년 6월23일 국가 전복 선동 혐의로 구속됐다. 지난해 12월25일 베이징 제1중급인민법원에서 국가전복선동죄로 징역 11년형에 2년 정치권리 박탈형을 선고받았다. 지난 2월11일 베이징 고급법원은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했다. 류샤오보는 현재 랴오닝(遼寧)성 판진(盤錦)감옥에 갇혀 있다. 노벨평화상 이전에 미국과 홍콩의 단체들이 주는 각종 인권상을 여러 차례 수상한 바 있다. ‘선택의 비판-리저허우와의 대화’, ‘심미와 인간의 자유’, ‘알몸으로 하나님에게 ’, ‘중국당대정치와 중국 지식인’, ‘양심적으로 말하는 민족’, ‘미래의 자유중국은 민간에’, ‘ 단인독검-중국당대민족주의비판’ 등 여러 저서를 출간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사설] 노벨화학상 받는 日… 이공계 외면하는 한국

    18번째 일본인 노벨상 수상자가 탄생한 그제 일본열도는 흥분과 열광의 도가니였다. 일본 화학자 2명의 노벨 화학상 수상소식이 알려지자 방송의 뉴스 진행자가 환호성을 외쳤고, 신문은 호외를 발행했다. 정치적, 경제적 침체에 빠진 일본 국민에겐 모처럼의 희소식이었다. 일본이 수상소식에 들뜬 또 다른 이유는 노벨 문학상과 평화상 수상자 3명을 제외한 나머지 15명이 물리학, 화학, 의학 등 자연과학분야 수상자라는 점이다. 이 숫자는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스웨덴, 스위스에 이은 세계 7위에 해당한다. 기초과학 분야의 탄탄한 저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것이다. 이웃 일본의 흥분을 접하면서 부러움과 착잡함이 교차한다. 같은 날 국회 교육과학기술부 국감에서 공개된 우리 이공계의 암울한 현주소 때문이다. 자유선진당 이상민 의원의 분석에 따르면 최근 3년 동안 전국 이공계 대학생 5만 6000여명이 자퇴를 하거나, 비이공계로 옮겼다. ‘이공계 엑소더스’라고 할 만하다. 또 40개 중앙행정기관의 장·차관 68명 중 이공계 출신은 교과부 2차관과 소방방재청장 등 단 2명에 불과하다는 놀랄 만한 이공계 공무원 홀대 사실도 드러났다. 이런 실정이니 학생들이 이공계 공부를 계속 하겠는가. 과학기술은 한 나라를 먹여 살릴 미래의 먹거리다. 삼성전자 신화의 주역 중 한 명인 윤종용 한국공학교육인증원 이사장 같은 이는 “기술이 없으면 산업도 없고 경제와 사회발전도 요원하다.”라고 단언한다. 사실 ‘한강의 기적’은 역대 정권이 실행한 과학기술 우대정책의 산물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거꾸로 가고 있다. 이 정부 들어 과학전담부서가 없어지고 나서 과학기술분야는 방향타를 잃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무산위기에 놓인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사업이나 나로호 발사 실패가 대표적이다. 원자력 등 미래 핵심 과학기술분야의 인력부족 현상이 심각한데도 학생들이 등을 돌리는 원인을 알아야 한다. 이공계 진학자와 졸업자를 늘리려면 장학금을 크게 늘리거나, 등록금을 깎아주는 등의 유인책이 필요하다. 또 이공계 출신을 우대하는 다양한 지원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 ‘남아공 양심’ 투투주교 영국 국교회 공식은퇴

    ‘남아공 양심’ 투투주교 영국 국교회 공식은퇴

    ‘남아공의 양심’으로 불리는 데스몬드 투투(78) 케이프타운 명예 대주교가 79번째 생일을 맞은 7일(현지시간) 공적인 업무에서 공식 은퇴했다. 영국 BBC 방송은 이날 “투투 주교가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여생을 보내기 위해 은퇴를 결정했다.”고 전했다. 1931년 남아공 트란스발주(州) 클럭스도프 지역에서 태어난 투투 주교는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중 흑인을 차별하는 정부의 교육정책에 반대하며 교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1960년 성공회 성직자가 된 이후부터 94년 남아공 인종분리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가 폐지될 때까지 반대투쟁을 주도했다. 그 공로로 1984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86년에는 남아공의 영국 국교회(성공회) 최초로 흑인 대주교가 됐으며 에이즈, 결핵, 빈곤 등을 퇴치하기 위해 꾸준히 국제활동을 펼쳐 왔다.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과 함께 남아공을 대표하는 세계적 지도자로 손꼽힌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노벨의학상 英에드워즈 교수

    노벨의학상 英에드워즈 교수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체외수정(IVF) 기술을 개발, 시험관 아기 탄생을 가능하게 한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생리학자 로버트 G 에드워즈(85) 명예교수가 선정됐다. 스웨덴 카롤린스카 의대 노벨위원회는 4일 “전 세계 10% 이상의 부부를 포함,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 불임 치료의 길을 연 에드워즈 박사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에드워즈 교수에게는 1000만 스웨덴 크로네(약 16억 7000만원)의 상금이 수여되며 시상식은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오는 12월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다. 위원회는 에드워즈 박사의 중요한 발견들이 현재의 체외수정 기술로 이어져 새로운 의학 분야가 등장했으며, 현대 의학 발달에 이정표가 됐다고 평가했다. 위원회는 그가 1950년대부터 체외수정이 불임 치료에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비전을 가지고 연구한 끝에 ‘인간 난자 성숙 과정’ 등 수정의 중요 원리를 발견하고 1969년 마침내 시험관에서 인간의 정자와 난자를 수정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그의 노력으로 1978년 7월25일 세계 최초의 시험관 아기인 ‘루이스 브라운’이 탄생했고,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400만명 이상의 시험관 아기가 태어났다. 인류의 불임치료 역사상 최고의 쾌거 중 하나로 꼽히는 시험관 아기 시술은 에드워즈 박사와 고(故) 패트릭 스텝토 박사의 공동 연구로 가능해졌다. 스텝토 박사는 체외수정술의 근간을 이루는 ‘난자 채취’에 성공, 에드워즈 박사를 물심양면으로 도왔지만 19 88년 사망해 노벨상 후보에서 제외됐다. 현재 에드워즈 박사와 직접 교류하고 있는 김정훈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그는 살아 있는 생식의학의 전설”이라면서 “오늘날 많은 불임 부부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시험관 아기를 직접 탄생시켜 인류에 크게 공헌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에드워즈 박사는 이날 노벨위원회로부터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소식을 전달받았지만 노환으로 건강이 좋지 않아 아무런 공식 입장도 내놓지 못했다. 노벨위원회는 “불행히도 에드워즈 교수는 지금 건강 상태가 좋지 못하다. 하지만 그의 아내가 남편도 기뻐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한편 올해 노벨상 수상자는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물리학상(5일), 화학상(6일), 문학상(7일), 평화상(8일), 경제학상(11일) 순으로 발표된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음악으로 빈곤 청소년 30만명에 ‘희망의 빛’

    음악으로 빈곤 청소년 30만명에 ‘희망의 빛’

    음악을 통해 빈곤층 청소년을 밝은 세상으로 이끄는 예술 교육 프로그램 ‘엘 시스테마(El Sistema)’의 창시자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71·베네수엘라) 박사가 서울평화상을 받는다. 서울평화상위원회(위원장 이철승)는 27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엘 시스테마라는 사회적 시스템을 창안하고 운영에 헌신한 지휘자, 작곡가이자 경제학자인 아브레우 박사를 제10회 서울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총 대신 악기” 35년간 빈민층 사회개혁 이철승 위원장은 “국내 각계인사 14명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전 세계에서 추천된 4000여명의 전·현직 국가원수급 인사와 유명 정치인, 평화운동가와 인권 및 구호단체 등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객관적이고 엄정한 심사를 했다.”고 밝혔다. 1939년 트루히요에서 태어난 아브레우 박사는 수도 카라카스에 있는 호세 앙헬 라마스 고급음악학교에서 작곡과 피아노, 오르간 등을 배우고 조교수와 작곡가를 거쳐 지휘자로서도 명성을 얻었다. 그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석유경제학을 전공,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정부 경제관련 부서에서 주요 직책을 맡기도 했다. 아브레우 박사는 1975년 카라카스의 빈민가 차고에서 전과 5범의 소년을 포함한 11명의 청소년에게 사재를 털어 악기를 사주고 연주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등 음악교육을 시작했다. 이후 더 많은 빈민층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정부에 건의, 마침내 청소년 예술 교육 시스템인 엘 시스테마를 탄생시켰다. 엘 시스테마는 오케스트라가 이상적인 사회의 표본이며, 오케스트라 활동에 빠르게 적응하면 할수록 아이들에게 더 좋은 결과를 주게 된다는 아브레우 박사의 이상을 현실화한 사회운동이다. 그는 지난 35년간 30만명의 아이들에게 무상으로 악기를 나눠주고 질서와 책임의 가치를 익히게 해 청소년 자신은 물론, 가족과 이웃을 빈곤과 무질서에서 벗어나게 하는 사회 개혁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현재 102개 청년 오케스트라와 55개 유소년 오케스트라로 구성된 이 네트워크의 구성원은 10만여명에 이른다.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최연소 상임지휘자인 구스타보 두다멜 같은 국제적으로 유명한 음악가를 다수 배출하기도 했다. ‘총 대신 악기’라는 모토로 빈민층의 사회개혁에 나선 아브레우 박사는 독신이다. 그는 “나는 학생들을 책임지는 교사이다. 그 책임감은 성직자와 같은 절대적인 헌신을 필요로 한다.”며 결혼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새달 27일 시상식… 상금 20만달러 아브레우 박사는 서울평화상위원회를 통해 “빈곤층 청소년들에게 인생의 가치를 일깨워 주고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인정받은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소감을 전했다. 시상식은 다음 달 27일 서울에서 열린다. 상장과 상패, 20만달러의 상금이 수여된다. 격년제로 시상하는 서울평화상은 1990년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첫 수상자로 선정된 이후 2008년 수전 솔티 미국 디펜스포럼 회장까지 총 9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특히 ‘국경없는 의사회’(1996년)와 코피 아난(1998년) 전 유엔 사무총장, 무함마드 유누스(2006년) 박사는 서울평화상 수상 뒤 노벨평화상도 받았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정대세의 눈물’ 전세계 네티즌 울리다

    ‘정대세의 눈물’ 전세계 네티즌 울리다

    세계 각국에 흩어진 한인 유학생들이 함께 만든 노래와 동영상이 세계 평화에 대한 인터넷의 기여를 기념하는 동영상 콘테스트에서 전 세계 600여개의 경쟁작을 물리치고 우승했다.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세계적인 IT·인터넷 잡지 와이어드가 주최한 ‘평화를 위한 인터넷 콘테스트’에서 우승작으로 선정된 작품은 미국유학생모임(미유모·회장 김승환)이 주도해 만든 4분여 길이의 동영상 ‘인터넷:평화를 위한 최고의 도구’(www.youtube.com/watch?v=n_PUKL1ZgM0&feature=channel). 지난 6월 남아공월드컵 기간에 제작한 평화의 노래와 영상을 소재로 했으며, 미국의 한인 유학생들을 비롯해 한국의 대학생과 중국, 카타르 등에 흩어져 있는 한인 유학생들이 합심해 만들었다. 미유모의 김승환 회장은 “한국 국적으로 북한팀에서 뛰었던 정대세 선수가 국경과 이념을 넘어 동북아의 평화 메시지를 전할 적임자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동영상은 지난 남아공월드컵 때 북한 대표팀의 정대세 선수가 브라질과의 경기 전 하염없이 흘린 눈물을 계기로 동북아 평화와 안정을 기원하는 노래와 티셔츠 등을 만들어 배포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담았다. 이번 콘테스트는 인터넷이 올해 노벨평화상 후보로 선정된 것을 계기로 인터넷이 평화를 전하는 도구로 이용되고 있음을 가장 잘 표현한 동영상을 선발하기 위한 것이다. 지난 1월부터 8월 말까지 전 세계에서 제작된 동영상 600편 이상이 출품됐으며, 1400만명 이상의 시청자들이 감상한 뒤 이탈리아 영화감독 가브리엘 살바토레 등 저명 심사위원들의 심사를 통해 수상작이 최종 선정됐다. 미유모의 영상은 이번 수상 직후 유튜브의 메인 화면에 게재되면서 조회 수가 급증하는 등 세계 네티즌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연합뉴스
  • “빅3 국민검증 거쳐야 대선후보… 반총장 영입도 검토”

    “빅3 국민검증 거쳐야 대선후보… 반총장 영입도 검토”

    박지원 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는 ‘제2의 전성기’를 맞은 것처럼 보였다. 김대중 정부 시절 ‘2인자’로 알려졌던 박 대표는 민주당이 7·28 재·보선에서 패배, 비대위 체제로 접어든 이후에는 사실상 당의 ‘1인자’ 역할을 하고 있다. 당의 간판급 정치인들이 총출동한 전당대회 관리와 각종 인사청문회 준비, 대여 협상 및 대 언론 창구 등의 업무가 모두 박 대표에게 쏠렸다. “혼자 너무 많은 것을 하려고 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박 대표는 때로는 ‘강력한 중립자’로서, 때로는 ‘노련한 협상가’로서 당 안팎의 공격과 비판을 막아내고 있다. 박 대표는 역대 정권의 2인자 가운데 유일하게 정치의 중심에 남아 있는 인물이다. 인터뷰는 10일 오후 1시30분부터 1시간30분 동안 국회 민주당 원내대표실에서 이도운 정치부장이 진행했다. 박 대표는 기대했던 대로 민주당 내부 문제는 물론, 여야 관계와 2012년 총선·대선 등 다양한 정치 현안에 대해 거침없이 답변했다. ■ 당의 진로 →민주당 전당대회 예비경선(컷오프)이 끝났다. 그 결과가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486(소장파) 후보 3명이 전원 컷오프를 통과한 것은 민주당에 깜짝 놀랄 정도의 희망이 아직 있다는 뜻이다. 과거 야당의 전당대회에서는 항상 ‘젊은 피’가 수혈돼 왔는데, 이번에는 그런 계기가 없었다. 다행히 3명이 본선에 올라 흥행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세균 전 대표, 손학규 전 대표, 정동영 상임고문 등 ‘빅3’ 중에 한 사람이 컷오프됐으면 더 흥행이 됐을 텐데 아쉽다. →‘빅3’ 중에 한 명이 대표가 될 가능성이 높은데, 누가 되느냐에 따라 민주당의 진로가 크게 달라질까. -우선 누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세 후보가 다 나왔기 때문에 전대 관심도는 높아졌다. 그런 면에서 국민적 지지가 여전한 추미애 의원이 컷오프된 게 굉장히 아쉽다. 세 분 중에 한 분이 대표가 될 확률이 높긴 하다. 서로 경쟁하고 충돌하며 당원과 국민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인정받으면 대선 후보가 되고, 못 받으면 탈락한다. 경쟁을 하고서도 적당한 사람이 없다면 외부 인사를 영입할 수 있는 틀이 마련돼야 한다. →민주당 지지율이 한나라당보다 낮은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민주당이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인물을 길러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에는 용꿈을 꾸는 사람들이 실제로 경쟁하고 움직이는데, 민주당은 그게 안 보이니 인적 빈곤에 대한 실망감이 생기고 있다. 그래서 나는 원내대표가 됐을 때 첫마디로 집단지도체제 도입을 주장했다. 다행히 집단지도체제가 됐기 때문에 이제 지도부 안에서 경쟁과 충돌이 이뤄지면 인물과 당의 지지도가 올라갈 것이다. 정당 지지도는 인물에 귀결된다. →민주당이 한나라당보다 나은 차별적인 경쟁력이 있나. -아무래도 우리 기반은 중산층과 서민이고, 복지 정책을 중심에 두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어젠다 선정은 잘하지만 실천은 안 된다. 요즘 친서민 정책을 들고 나왔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친기업 정책을 쓰지 않았나. 친서민 정책을 한다면서 실행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 가짜 친서민 정책이다. →서울신문이 최근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여론조사를 했더니 민주당 내 후보들은 지지율이 낮게 나왔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야당 후보로서도 높은 지지율이 나왔다. 반 총장 영입 가능성이 있나. -그럴 가능성도 있다. 유엔 사무총장 직을 잘하고 계신 분께 누가 될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모든 걸 다 생각해야 한다. →6·2 지방선거를 통해 송영길·이광재·안희정 등 젊은 정치인들이 부상했다. 그들이 2012년 대선을 이끌 수 있을까. -민주당은 국민과 당원의 힘으로 세대교체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송영길·안희정·이광재 시·도지사에게 2012년은 좀 빠르지 않을까? 유권자들이 광역단체장으로 당선시켰는데, 2년 만에 대권 나온다고 할 수는 없지 않나. 그분들이 밖에서 지도자로 잘 크고, 당내에선 ‘빅3’와 40대가 경쟁하면 국민들이 결정할 것이다. →대표께서 안희정 충남지사를 특별히 좋아한다는 얘기가 많다. 젊은 시·도지사들을 어떻게 평가하나. -안 지사가 잘 성장했으면 좋겠다. 안 지사는 문제점을 잘 꿰뚫어 보고, 정면 돌파를 할 줄 안다. 항상 도전한다. 이광재 강원지사는 지혜가 번뜩이고, 이슈 선점을 잘한다.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송영길 인천시장은 우리 당 정체성에 가장 맞는 사람이다. →한나라당에서는 김두관 경남지사를 잠재적 경쟁자로 평가하는 분위기가 있다. -김 지사는 현장 경험이 많고 결단력이나 추진력이 좋다. 민주당의 정신적 당원이다. →혼자 너무 많은 일을 한다는 비판도 있다. -나의 본업은 원내대표이고, 비대위 대표는 부업이다. 이제 며칠 안 남았다. 내가 열심히 하니까 처음에는 당 대표 하려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더라. 그러나 최대한 공정하게 일을 처리했고, 이젠 아무 잡음도 없다. 당 대표 할 생각 전혀 없고, 오직 민주당을 위해서만 일한다. 어떤 목적을 갖고 원가계산을 한다면 후배들을 다그칠 수는 없지 않겠나. ■ 정치 현안 →사정 정국 얘기가 나돌았는데, 우려가 되나. -사정당국이 요즘 민주당을 집중적으로 보는 것 같다. 우려하고, 주시한다. 그런데 자기들 눈에 든 들보는 못 본다. →이재오 특임장관이 개헌을 자주 얘기하고, 박 대표도 화답을 했다. 개헌의 불씨가 계속 이어질까. -이재오 장관은 많이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진정성이 없다면 내가 원내대표로 있는 동안은 협력할 수 없다. 개헌 논의를 할 수 있는 멍석이라도 깔아줘야 한다. 우선 여권이 4대강 문제에 대한 태도를 바꿔야 한다. 왜 국회 검증특위를 묵살하나. 홍수 기간만이라도 공사 중단하고 함께 논의해 보자는 것이다. 공사를 꼭 대통령 임기 내에 마칠 필요도 없다. →왜 4대강을 개헌과 연계하나. -여권이 원하는 것은 다 하고, 야권은 그냥 받아들이기만 하라는 것이냐. 개헌이 백년대계라면 왜 임기 초에 추진하지 않았나. 이제 와서 특정인의 대권 가도를 막고 권한을 축소하려 하면 안 된다. 야당에도 숨 쉴 공간을 줘야 한다. →세종시 문제가 2012년 총선이나 대선에서 다시 논란이 될까. -이미 끝난 문제다. 후보 때 수차례 약속하고 당선돼서 안 지키면 나라 꼴이 되겠나. →외교 현안이 산적한데, 외교통상부 장관의 공석이 우려스럽다. 야당이 협조할 사안은 없나. -청와대가 발표한 청문회 자가 검증표를 보니 후임을 선임하기가 꽤 힘들 것 같다. 자승자박이 될 것이다. 과거 청와대 있을 때 총리 후보 72명을 놓고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병역 기피 등의 잣대를 들이댔더니 71명이 탈락이었다. 우리는 지금 가장 유능한 외교부 장관이 필요하다. 지정학적으로 한국은 도랑에 든 소다. 이쪽(미국)에 있는 풀도 뜯어야 하고, 저쪽(중국)에 있는 풀도 먹어야 한다. 왜 한쪽만 자꾸 뜯으려 하는지 모르겠다. →강성종 의원 체포동의안 처리 과정에서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와 처음으로 갈등을 겪었다. 두 분의 신뢰 관계에는 변함이 없나. -나를 굉장히 옹졸하게 만드는 질문이다. 김 원내대표가 합의를 지키지 않아 사과했고, 나는 아무 얘기도 안 했다. 우리는 당당하게 임했다. 앞으로 잘해야지, 이미 끝난 문제를 더 얘기할 필요는 없다. →4대강, 세종시, 친서민, 공정사회 등 최근의 정치이슈는 모두 여당이 이끌어가고 있다. 야당은 이슈를 선점할 능력을 상실한 것인가. -여권은 저작권료도 내지 않고 우리 것을 잘 갖다 쓴다. 친서민 정책, 공정한 사회는 우리가 먼저 추진한 것이다. 여권은 친서민 정책을 한다면서 총부채상환비율 규제를 풀었다. 보금자리 주택은 어떻게 됐나. 물가, 청년 일자리 창출 문제에 개선된 게 있나. 자기 자식들은 특채로 뽑으면서 개천에서 용 나는 세상 만들겠다고 하면 누가 믿겠나. ■ 정부 평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가장 큰 불만은 무엇인가. -대북정책이다. 경제는 무너져도 살릴 수 있지만 남북문제는 한 번 무너지면 죽는다. 남북문제는 곧 경제이기도 하다. 왜 거꾸로 가려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이 대통령 임기 중에 남북정상회담이 가능하다고 보나. -꼭 했으면 좋겠다. 올해가 기회다. 우리(노무현 정부)가 임기 말에 해서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나. →대북특사를 보낸다면 누가 적절할까. -대북특사는 이명박(MB) 대통령의 ‘육성’을 그대로 전달할 사람이 가야 한다. 박근혜 전 대표가 간다고 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MB의 말이라고 믿겠나. 이재오 특임장관이나 임태희 대통령실장이 가는 게 좋다. 누가 봐도 대통령과 운명공동체로서 남은 임기를 같이할 사람이 가야 한다. 우리의 경험과 지혜가 필요하다면 100%로 돕겠다. →이명박 대통령 정책 중에 잘하는 것이 있다면. -선뜻 안 떠오른다. →현 정부에서 임무를 잘 수행한 장관은 누구인가. -전재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잘 했다. 복지정책에 확실한 철학을 가지고 있고, 야당과도 열심히 소통했다.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도, 비록 야당이 4대강 사업에 반대하지만 열심히 설명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운이 좋은 것 같다. 어쨌든 그분이 들어가서 경제가 좋아졌다. 윤 장관 총리설이 있는데, 그러면 재정부 장관 할 사람이 없을 것 같다. →임태희 실장, 정진석 정무수석 등 청와대 3기 참모진은 야당과 소통을 잘하고 있나. -이전보다는 노력하는 것 같다. 소통이 잘 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전화는 한다. ■ 차기 대선 →2012년 대선의 승부를 가를 이슈는 무엇일까. -남북문제, 복지, 경제 3가지다. →민주당이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얼마나 크다고 보나. -지방선거에서 가능성을 봤다. 우리가 얼마나 혼을 바쳐서 국민 속에 뛰어들어가느냐에 따라 가능성이 열린다. →총선과 대선에서 박 대표의 역할은. -집권을 위해 몸을 던지겠다. 나의 소명은 김대중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끝났다. 다시 문화부 장관을 하겠나. 아니면 도로공사사장을 하겠나. →한나라당에서는 역시 박근혜 전 대표가 가장 강적이라고 보는가. -그건 예수님도 모른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대표가 9년10개월 동안 1위를 달리다 두 번이나 떨어졌다. 이인제 의원도 민주당에서 4년6개월 1위 후보였는데 막판에 후보가 되지 못했다. →한나라당 예비 후보로 누굴 주목하나. -많다. 박근혜 전 대표는 물론이고 김문수 경기지사, 정몽준 전 대표, 오세훈 서울시장, 원희룡·남경필 의원 등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재오 특임장관도 나올 것으로 본다. 이 장관이 나오면 조용하지 않을 것이다. →이재오 장관에게 90도 인사를 받으며 어떤 느낌 받았나. -호의로 받았다. 선거 때부터 그렇게 해왔으니까 하는 거겠지. 그러나 머리를 바짝 숙이면서 속으로는 모든 생각을 할 것이다. 그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는 국민에게 물어봐야 하겠지. →민주당의 2012년 총선 공천은 누가 하나. -새 규정에 따라 이번에 선출될 대표는 대선 1년 전에 사퇴해야 한다. 그러니 차차기 대표가 할 것이다. 그런데 차기 대표가 대권을 포기하면 대표를 2년간 하게 된다. 그가 공천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 →대선에서 야권 대통합이 가능한가. -대통합을 하면 이기고, 안 하면 진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선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작품인가. 아니면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쟁취한 것인가. -두 분이 합작한 게 아니겠나. 그러나 그 비율이 어떨지는 내 입으로 얘기할 수 없다. 노 대통령측 분들 생각도 또 있을 테니…. ■ 나의 고백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아닌 정치인 박지원으로 독립할 생각이 없나. -독립하고 싶다고 해서 독립이 되겠나. 지금 내가 비대위 대표와 원내대표를 맡고 있지만, 그것은 김 전 대통령의 뜻을 계승하는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국민의 정부가 잘한 것 5가지를 꼽는다면. -당시 우리는 5년간 세계적 특종 5개를 제공했다. 첫째가 외환위기 극복, 둘째가 남북정상회담, 세번째가 월드컵 신화, 네번째 정보기술(IT) 강국, 마지막이 노벨평화상이다. 4대 연금 확대, 기초생활보장제 실시 등 우리나라에서 복지 정책이 처음으로 실행된 것도 큰 성과다. →대북송금 문제로 투옥됐었는데, 아직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원망하나. -전에는 많이 원망했다. 지금은 우리(민주당)의 대통령인데 어떻게 원망할 수 있겠나. 노 전 대통령께서도 나에게 ‘이제 끝내자’고 하셨다 →언론인들과 친분이 두터운 정치인이다. 언론관은 무엇인가. -정치인과 언론은 서로 긴장하고 활용하는 관계다. 우리가 국민여론을 살필 때 언론이라는 매체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 언론에 최선을 다해서 나를 설명하고, 최대한 언론이 제공하는 정보를 습득할 뿐이다. 나는 언론인이 전화하면 99% 받거나 콜백을 한다. 요즘 의원들 가운데 기자들의 전화를 안 받는 분들도 계신데, 그런 분들은 서비스 정신이 없는 것이다. →건강은 어떻게 유지하나. -밤 12시 전에 집에 들어가면 1시간 정도 자전거를 탄다. 요즘은 너무 바빠서 운동을 못한다. 아직도 내가 파워가 있는 줄 알고 밤 늦게 찾아오는 이가 많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전에 둘이 화해했다고 했는데, 진정 화해한 것인가. -난 안 했다고 본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맘대로 혼자 말씀하시고, 나중에는 곧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난하지 않았나. 김대중 전 대통령 자서전에도 화해 분위기는 없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늘 사람을 보내 ‘내가 외환위기를 초래한 게 아니라고 DJ가 공식적으로 말해달라’고 부탁했는데, 그럼 누가 환란의 주인공인가. 세상 살면서 다 화해하고 살면 예수님이나 부처님이지. 화해를 하려면 상대방을 인정하고 이해한 뒤 더 이상 말(비난)을 안 해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언제 김영삼 전 대통령을 비난한 적 있나. 정리 이창구·강주리기자 window2@seoul.co.kr
  • ‘오류 파문’ IPCC 개혁 압박

    국제적인 지구온난화 대응을 선도해온 공로로 지난 2007년 노벨평화상까지 받았던 유엔 산하 ‘기후변화 정부간회의(IPCC)’가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에 따라 다음달 부산에서 열리는 총회에서 IPCC 개혁과 지구온난화 대응을 둘러싼 논쟁이 재연될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기후 게이트’로 불리는 IPCC 기후변화보고서 오류 파문이 지난해 말 불거진 이후 유엔 의뢰로 5개월에 걸쳐 IPCC를 조사해온 국제아카데미위원회는 30일(현지시간) 지도체계 개혁과 ‘이해충돌’ 감시 강화, 보고서 발간 시 엄격한 근거자료 확인 등 개혁 조치를 담은 보고서를 발표했다고 AP·AFP 통신 등이 보도했다. 보고서는 이 밖에도 현재 무보수 비상임인 의장직 상설화와 전문성 강화, 임기단축 필요성도 거론했다. 특히 고위직에 대해 “이해충돌을 막기 위한 강력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대목은 현 라젠드라 파차우리 IPCC 의장이 탄소거래업계와 유착돼 있다는 의혹을 받는 상황에서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해충돌이란 공익과 공직자의 사익이 충돌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에 대해 파차우리 의장은 불쾌한 심경을 내비쳤다. 그는 “IPCC에 대한 이데올로기 공격”을 비난하면서 제5차 보고서 집필도 관장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면서 자신의 거취는 IPCC 회원국들이 결정할 문제이며 IPCC 개혁 문제도 부산 총회에서 논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IPCC는 2007년 4차보고서에서 기후변화 영향이 이미 현실화됐다고 발표해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높인 공로를 인정받아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과 함께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기후변화정상회의 직전 ‘원하는 결론을 내기 위해 데이터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특히 문제가 된 ‘히말라야 만년설이 2035년까지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은 결국 잡지 기사에 근거를 둔 것으로 확인되면서 IPCC 보고서에 대한 신뢰성이 크게 훼손됐다. IPCC는 일부 내용에 오류가 있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기후변화에 대한 핵심 결론은 여전히 타당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보고서와 관련, IPCC 보고서 오류와 개혁문제와는 별개로 지구온난화 대응 방침에 변화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남북·북미관계 많은 변화 있을 것”

    “남북·북미관계 많은 변화 있을 것”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평소 한반도 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어 전문가다운 식견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는 반드시 평화적인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만큼 방북이 성사된 이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카터 전 대통령이 북한에 억류된 아이잘론 말리 곰즈를 석방키 위해 방북 길에 오르기까지 결정적인 중재자로 활약한 박한식 조지아대(UGA) 교수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최대한 말을 아꼈다. 박 교수는 지금까지 북한을 50여 차례나 방문한 소문난 ‘북한통’. 카터 전 대통령이 조지아 주지사를 지내던 1970년대 초반부터 그와 인연을 맺어왔을 정도로 신뢰관계가 각별하다. 지난 1994년 6월 1차 북핵위기 당시 카터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회담했을 때도 사전 정지작업을 맡았다. 그동안 남북 및 북미 관계 개선을 위해 활약해온 박 교수는 한반도 정세가 천안함 사태로 대치국면으로 치닫자 6월 말 카터 전 대통령에게 한반도 평화를 위해 중재자로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교수는 지난달 3일부터 8일까지 평양을 방문, 북한 측 인사들을 만나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문제를 협의하고 돌아왔다. 이후 북한 측은 뉴욕 유엔대표부 채널을 통해 카터 전 대통령을 초청하겠다는 뜻을 애틀랜타의 카터센터에 전달해 왔고, 카터센터는 백악관 및 국무부와 관련문제를 협의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박 교수는 한반도 평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3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모교인 애틀랜타의 모어하우스 대학이 주는 ‘간디, 킹, 이케다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워싱턴 김균미특파원 kmkim@seoul.co.kr
  • [씨줄날줄]카터 특사/최광숙 논설위원

    “우리 후손들이 평화롭게 살기를 원하지 않느냐?” 카드의 문구를 읽으면서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 베긴 이스라엘 총리의 마음은 흔들렸다. 캠프데이비드에서 머문 지 10일. 그들은 다음날이면 아무런 성과없이 이곳을 떠나야 했다. 미국에서 머문 마지막 밤에 전달된 카터 미 대통령의 카드 한 장은 서로 으르렁대던 그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였다. 중동에 긴장과 전운이 감돌던 1978년. 카터 대통령은 중동평화를 모색하기 위해 이들을 대통령 별장으로 초대했던 것이다. 오직 자전거 두 대만이 놓여진 지루한 환경으로 이들을 내몰고, 카터 대통령은 결렬 직전의 중동평화협정을 이렇게 성사시켰다고 한다. 땅콩장수, 노벨평화상 수상자, 해비탯 운동가….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팔십 가까운 평생 동안 그는 대통령을 지낸 이로서는 드물게 남들이 가지 않은 새로운 길을 열어 보였다. 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하게 세상을 바꾸는 그의 스타일을 우린 일찌감치 캠프데이비드 평화회담의 카드 한 장에서 알아봤어야 했다. 날카로운 카리스마도 없이 오로지 ‘진심(眞心)’이 최고의 협상력이었고, 이런 사람을 움직이는 힘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라는 것을. 그는 이런 외교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경제정책 등에 실패하면서 무능한 대통령, 인기 없는 대통령으로 몰락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퇴임후 새롭게 부활한다. 조지아주의 작은 고향 마을의 땅콩 농장주로 되돌아 갔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았다. 편안한 노후를 마다하고 세계 평화의 전도사로 나선 것이다. ‘카터재단’을 만들어 인권보호와 질병·기아 퇴치 활동 등을 했고, 세계 분쟁지역 현장을 찾아 평화의 메신저로 뛰어다녔다. 자연 노벨평화상은 그의 몫이 됐다. 클린턴 전 대통령을 비롯, 노무현 전 대통령 등 전 세계의 많은 퇴임 대통령들에게는 재단을 만들어 의미있는 활동을 하도록 ‘영감’을 줬다. 쉬지 않고 전세계에서 할일을 찾아 다니는 그가 어제 북한에 억류 중인 미국인 곰즈의 석방을 위해 방북길에 올랐다. 제1차 북핵위기 당시인 1994년 미 대통령 특사로 방북한 데 이어 두번째 북한행이다. 그때 김일성을 만나 남북정상회담을 주선한 바 있기에 이번에도 그의 귀환 보따리에 관심이 쏠린다. 미국은 개인자격의 방북이라며 애써 의미 부여를 경계하지만 북·미대화 및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중재자의 역할을 할 것인지가 궁금해 진다. 그가 이번에 김정일을 만난다면 어떤 카드 한 장을 내밀까?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세상의 경계 거부하고 오로지 사랑을 실천한 그녀의 삶을 돌아본다

    세상의 경계 거부하고 오로지 사랑을 실천한 그녀의 삶을 돌아본다

    테레사 수녀(1910~1997)는 알바니아계 부모 사이에서 마케도니아(옛 유고연방) 스코페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주된 활동무대는 인도 콜카타였다. 생전 국적 등에 대한 논란이 일 때마다 스스로 밝혔듯, 그는 “신앙으로는 가톨릭 수녀이며, 소명으로는 온 세상에 속하며, 마음은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했던” 이였다. 인종, 민족, 국가, 이념 등 세속의 모든 경계짓기를 거부한 채 오로지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만 골몰했다. ●교황청 기념미사 등 각국서 행사 오는 26일 그의 탄생 100주년을 앞두고 세계 곳곳에서 각종 학술행사, 전시회 등이 잇달아 열린다. 국내에서도 그의 일대기와 삶의 흔적, 기도문, 대화록 등을 담은 책들이 나와 헌신적인 삶을 돌아보게 한다. 테레사 수녀가 50여년 동안 이끌었던 인도 콜카타 ‘사랑의 선교회’ 본부에서 기념미사가 거행되고, 이탈리아 로마교황청에서는 기념미사가 봉헌된다.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필리핀 등에서도 그의 삶을 재조명하는 각종 전시회와 학술행사가 열린다. 미국, 오스트리아, 유럽 일부 국가는 기념우표와 기념주화 등도 발행할 예정이다. 수녀의 고향 마케도니아와 핏줄을 나눈 알바니아, 크로아티아 등 동유럽에서도 사진전 등 다채로운 행사가 준비되고 있다. ●‘어둠속 믿음’ 등 일대기 펴내 국내에서는 일대기를 다룬 책들이 우선 눈에 띈다. ‘마더 데레사-어둠 속 믿음’(바오로딸 펴냄)은 테레사 수녀의 탄생부터 시복(諡福·성자 전 단계인 복자로 인정하는 가톨릭 절차)까지 일대기를 담고 있다. 그에 대한 비판까지 모두 다루고 있어 더욱 눈길을 끈다. 성녀로 보이지만 실은 자신의 믿음에 대한 번민을 계속했던 인간적인 모습은 물론, “그의 활동이 가톨릭 선교를 목적으로 한 것이었을 뿐, 독재자와 사기꾼에게 저항하지 않았다. 매스컴이 만들어낸 이미지이자 신화일 뿐 ”이라고 폄하한 시선 등까지도 포함했다. ‘마더 테레사의 하느님께 아름다운 일’(시그마북스 펴냄)은 테레사 수녀의 초기 활동과 육성 등 생생한 모습을 접할 수 있게 해 그에 대한 추억을 더욱 애틋하게 한다. ‘우리의 어머니, 마더 데레사’(민음인 펴냄)는 테레사 수녀의 구체적이고 생생한 에피소드가 담긴 전기다. 테레사 수녀의 고해성사 신부이자 통역으로 일했던 레오 마스부르크 신부가 썼기에 더욱 구체적이다. 눈에 보이는 화장실마다 꼭 청소하던 모습, 사진 한 장 찍을 때마다 지옥불에서 한 사람씩 영혼을 구해 달라며 기도하던 모습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다. ●고해성사 신부가 쓴 전기도 출간 또한 테레사 수녀가 직접 쓴 에세이집 ‘마더 데레사의 아름다운 선물’(샘터 펴냄)은 한정판으로 다시 나왔다. 수녀 이해인이 1997년 번역해서 더욱 화제였다. 1979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테레사 수녀는 1980년에는 인도의 최고 시민훈장인 바라트 라트나, 1985년 미국 최고 시민상인 자유의 메달, 1996년에는 미국 명예시민권을 받았다. 1981년과 1988년에는 한국을 찾아 사랑의 선교회 활동을 점검하기도 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태평양 비극의 씨앗 심은 루스벨트 항해

    태평양 비극의 씨앗 심은 루스벨트 항해

    고종 “우리는 미국을 형님과 같은 나라라고 생각하오.” 1882년 고종은 첫 서방 수교국으로 미국을 선택했다. 그는 풍전등화에 놓인 조국의 운명을 구원하기 위한 방편으로 미 국무부에 이 같은 말을 여러 차례 직접 건넸다. 1905년 9월19일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 대통령의 딸인 앨리스가 ‘임페리얼 크루즈’의 일원으로 서울을 찾았을 때도 황제 전용 열차, 황실 가마를 제공하는 등 깍듯하게 국빈의 예우를 다했다. 그러나 이때는 일본과 미국이 한국과 필리핀을 식민지로 맞바꾼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체결된 지 두 달 가까이 된 시점이었다. 고종은 절박하고 비장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루스벨트 “일본이 반드시 대한제국을 지배했으면 좋겠소.” 루스벨트 대통령은 미국의 26대 대통령이었다. 러·일 전쟁에 종지부를 찍은 포츠머스 강화조약을 체결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총지휘자였다. 그가 고문과 민간인 학살 등을 통한 약소국가 강점을 정당하다고 여긴 전쟁광 제국주의자이자 백인우월주의자였다는 사실 또한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침략적 제국주의는 일본의 아시아 지배 야욕을 부추겼고 한국의 비극을 넘어 궁극적으로 2차 세계대전까지 이어지는 지구적 비극을 낳게 했다. 우리 역사 속 통절한 비극의 한 장면이다. 당시 한국은 국제 정세에 철저히 무지했고, 제국주의적 침략 야욕의 실체를 깨닫지 못했기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미국과 일본의 밀약, 그리고 포츠머스 강화조약 두 달 뒤 1905년 11월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늑약이 체결됐고, 1910년 일본은 한국을 강제로 병합했다. 그리고 꼬박 100년이 흘렀다. ‘임페리얼 크루즈’(제임스 브래들리 지음, 송정애 옮김, 프리뷰 펴냄)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있기 직전 미국이 취했던 비밀외교와 식민지 침략에 대한 정밀한 보고서다. 부제는 ‘대한제국 침탈 비밀외교 100일의 기록’이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의 비극적 역사 관계만 담긴 것은 아니다. 미국이 쿠바, 필리핀, 하와이 등을 침략하며 저지른 잔인한 학살, 그리고 그 과정 속에 루스벨트가 행한 역할, 그 결과로 잉태된 비극의 씨앗들을 상세하게 기록해 나가고 있다. 훗날 루스벨트를 이어 27대 미 대통령이 되는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미 육군 장관을 단장으로 한 아시아 순방 외교사절단 80여명이 1905년 7월5일 샌프란시스코 항을 출발한 뒤 하와이, 일본, 필리핀, 중국, 한국을 거치는 여정을 담아냈다. 루스벨트는 이 순방단에 뉴스메이커인 천방지축 딸 앨리스를 태워 언론과 대중의 말초적 관심만을 유도하며 미국의 식민지 확대라는 비밀 임무를 감췄다. 그리고 순방단은 미국이 필리핀을 강점하는 과정에서 수십만명의 민간인을 학살하고, 선교사를 앞세워 하와이왕국을 강탈했으며, 조(朝)·미(美) 수호통상조약을 저버리고 일본의 침략과 강점을 용인하는 등 비밀 임무를 차곡차곡 수행했다. 역사는 똑같은 모습으로 반복되는 것은 아니다. 오직 역사에서 교훈을 배우지 못하는 이들에게만 칼 마르크스의 얘기처럼 ‘한 번은 비극(tragedy)으로, 한 번은 희극(farce)으로’ 반복될 뿐이다. 한국은 100년 전과는 확연히 다르게 폭넓은 외교관계를 구축하고 있고 다양한 이해관계, 힘의 균형이 다원화된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최근 일련의 외교 관계 움직임을 보면 100년 전과 크게 다를 바 없이 미국만 쳐다보는 우를 반복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낳게 한다. 최근 드라마, 소설 등을 통해 ‘한국의 은인이자 의인’으로 이미지화된 제중원 의사 호러스 알렌 공사가 사실은 루스벨트의 제국주의적 야욕의 구도 안에 존재하는 인물이라는 내용도 책 속에 공개된다. 알렌 공사가 거의 대부분의 국책사업을 독점하고, 한국을 강점, 탄압한 일본을 지지하는 편지, 문서를 보내는 등의 활동을 했음을 감안하면 놀라울 것도 없다. 다만 이토록 당연한 역사적 사실조차 우리는 미화에 급급할 뿐이고 진실은 미국인이 쓴 책에서 봐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1만 68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우주의 무기화는 미래의 재앙이다

    2006년 8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우주의 군사적 활용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국가 우주정책을 인가했다. 우주에 대한 미국의 지배력을 침범하거나 국제조약에 의해 미국의 활동을 제한하려는 어떤 시도도 반대한다는 사실을 공격적으로 선언한 것. 미국의 이러한 움직임은 국제사회에서 위성공격용 무기의 개발과 사용을 허가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우주가 새로운 전장(戰場)으로 돌변한다면 우주가 있고 인공위성이 있는 덕분에 누리는 일상생활의 편리함들이 사라진다. 출퇴근 시간에 스마트폰으로 통화를 할 수 없고, 밤새 지구 반대편에서 펼쳐진 스포츠 경기를 보지 못한다. 우주 전쟁이 일으킬 최악의 상황은 인류 종말에까지 다다를 수 있는 핵 전쟁의 방아쇠가 당겨지는 것이다. 인류의 우주개발 역사를 되돌아보고 우주의 무기화가 초래할 재앙을 경고하는 책이 나왔다. ‘하늘 전쟁’(김홍래 옮김, 알마 펴냄)이다. 호주 출신 의사이자 반핵운동가로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던 헬렌 캘디컷과 미국 워싱턴의 싱크탱크 ‘국제정책센터’ 선임 연구원 크레이그 아이젠드래스가 함께 지었다. 저자들은 완벽한 미사일 방어체제 구축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명백한데도 방위산업체, 군납 업체 등의 로비 단체들이 별들의 전쟁을 주도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특히 부시 정부가 미사일 방어체제 개발의 주요 표적으로 북한과 이란을 거론했으나, 실상은 중국일 가능성이 높다는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저자들은 우주 평화를 위해서 “우리의 대표들이 우리를 대표해야지, 보잉이나 록히드 마틴, 혹은 그들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군수기업들을 대표하지 말라고 반드시 요구해야 한다. 우리는 열성과 정성을 다해 우주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 외교적 수단과 다국적 서약을 실현하는 데 헌신하는 후보들을 지원해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다행히 지난 6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부시 정부의 일방주의적 우주 노선이 막을 내렸다고 선언했다. 우주에서 적대적인 경쟁을 하지 않고 우주 공간에서 평화적인 협력을 늘려가는 게 목표라고 했던 것. 그러나 마냥 마음을 놓을 수는 없을 것 같다. 후진타오 중국 주석은 2005년 중국이 우주를 평화적으로 사용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지난해 11월 쉬치량 중국 공군사령관은 “우주를 장악하는 나라가 전략적인 군사적 우위를 점할 것”이라면서 “중국 공군은 우주에서의 작전 능력을 개발하는 것을 임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해 달라진 분위기를 시사했다. 1만 2000원.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노벨평화상 받은 남아공 투투 대주교 10월 은퇴 선언

    노벨평화상 받은 남아공 투투 대주교 10월 은퇴 선언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이제는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할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조금 더 조용하게 살기를 원한다.” 1980년대 악명 높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정책(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 싸워 온 노벨평화상 수상자 데즈먼드 투투 대주교가 22일(현지시간)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79세 생일인 10월7일을 은퇴 시점으로 못 박으면서 “집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며 책을 읽고 기도를 하고 사색을 하며 품위 있게 늙어 가는 대신 너무 많은 시간을 공항과 호텔에서 보냈다.”고 은퇴 배경을 설명했다. 또 “이제 조금 느긋해질 때가 왔다. 사랑하는 아내와 오후에 차를 마시고 크리켓을 관람하고 손자손녀들을 만나기 위해 여행을 다닐 때”라고 말했다. 그는 부인 레아와 1955년 결혼했으며 4명의 자녀를 뒀다. 1931년 출생한 투투 대주교는 흑인으로는 최초로 성공회(영국국교회) 대주교가 됐고 남아공 백인 정권의 인종차별에 맞서 싸우며 비폭력 평화운동에 헌신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84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과거사 청산을 위해 구성된 진실화해위원회 의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에이즈, 동성애 혐오, 빈곤 등에 맞서 싸운 인권운동가로서도 세계적인 존경을 받았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데스크 시각] MB정부의 업적이 아닌 것은/이도운 정치부장

    [데스크 시각] MB정부의 업적이 아닌 것은/이도운 정치부장

    오는 2028년 실시될 대학 입학 수능시험에 출제될 만한 가상의 문제다. Q. 다음 중 김영삼 정부의 업적이 아닌 것은? 1. 군사정권 시대를 종식하고 문민 통치 확립 2. 군내 사조직 혁파 3. 고위 공직자 재산 공개 제도화 4. 금융실명제 실시 5. 4대 지방선거 실시로 본격적인 지방자치 시대 개막 6.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7. 대통령 재임시 기업으로부터의 정치자금 수수 중단 8. 군(율곡감사)과 정보기관(평화의 댐 감사)의 누적된 비리 특별감사 정답은 6번이 될 것이다. 1996년 선진국 클럽인 OECD에 가입한 것이 국가적 자부심을 높이기는 했지만, 금융시장이 급속히 개방되면서 결국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를 가져왔다는 평가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8년 김영삼(YS) 정부가 물러난 뒤 한 세대가 지난 시점에도 여전히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한 업적들이 적지 않아 보인다. 고위공직자 재산 공개나 금융실명제 실시, 대통령 재임 중 정치자금 수수 중단은 깨끗한 정치, 투명한 사회로 가는 토대를 닦았다. 이번에는 2033년 실시될 대입 수능시험에 출제될 법한 가상의 문제를 풀어보자. Q. 다음 중 김대중 정부의 업적이 아닌 것은? 1. 헌정사상 최초의 평화적 여야 정권 교체 2. IMF 위기 극복 3. 햇볕정책 4. 노벨 평화상 수상 5. 정보통신기술(IT)산업 육성 6. 건강보험 실행 및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을 통한 복지 정책 확립 7. 한류 문화 육성 8. 한·일 월드컵 성공적 개최 난이도가 조금 높아졌지만 정답은 3번이 될 가능성이 크다. 햇볕정책은 DJ의 임기가 끝나고 30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여전히 논란이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남북관계 개선을 최고의 정책목표로 삼는 바람에 다른 분야의 희생과 왜곡이 많았다는 외교·통일·안보 당국자들의 증언을 지금도 계속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 다른 문항을 보면 DJ 정부도 많은 업적을 쌓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특히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통한 복지정책 수립은 이어지는 정부들의 서민정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시간 여행의 액셀러레이터를 조금 더 밟아 2043년의 대입 수능시험 가상 문제로 가보자. Q. 다음중 이명박 정부의 업적이 아닌 것은? 1. 녹색성장 정책을 통한 그린 비즈니스 활성화 2. 원자력 발전소 수출 3. G20 정상회의 유치 4. 4대강 사업 아직은 쉽게 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다만, 국제사회로부터도 인정받고 있는 녹색성장이나 원전 수출은 부인할 수 없는 성과다. G20 정상회의의 경우 이미 한국이 개최했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및 아시아유럽회의(ASEM) 정상회의와는 얼마나 차별화된 의미를 30년 뒤까지 던져줄지는 미지수다. 특히 궁금한 것은 4대강 사업이 현 정부의 임기가 끝나고 30년이 지난 뒤에 어떤 평가를 받을까 하는 점이다. 이 대통령의 임기가 반환점을 도는 현 시점에서 볼 때는 YS 정부나 DJ 정부보다 눈에 띄는 업적이 많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물론 이명박(MB) 정부의 임기가 반이나 남았기 때문에 더 많은 업적의 항목이 추가될 수도 있다. 청와대와 한나라당 개편에 이어 정부도 이달 말쯤 새 진용을 갖추게 된다. 남은 임기 2년 반 동안 고려해야 할 사안들이 많겠지만, 30년 뒤에 MB 정부의 업적이 어떻게 평가받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진지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daw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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