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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S 高大강연 끝내 무산

    김영삼(金泳三) 전대통령의 ‘고려대 강연’이 끝내 무산됐다.김 전대통령은 13일 오전 11시 고려대에서 ‘대통령학’을 주제로 특강할예정이었으나 총학생회를 중심으로 한 일부 학생들이 정문을 봉쇄하자 자정 이후에도 승용차에 대기한 채 학생들과 대치했다. 학생들은 ‘김영삼은 물러가라’,‘김영삼의 대통령학=한보부도+IMF구제금융’ 등의 구호가 담긴 피켓을 들고 흰색 마스크를 한 채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김 전대통령은 대변인격인 박종웅(朴鍾雄)의원을 통해 “나는 23일간 단식을 한 사람이다.내일이고 모레고 이자리에서 기다리겠다”고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김 전대통령은 이날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소식을 전해 듣고, “야당을 말살하고 불법선거를 자행한 독재자가 노벨평화상을 받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노벨상의 가치가 땅에 떨어졌다”고 말했다고 한나라당 박의원이 전했다. 오일만 전영우기자 oilman@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金대통령 관련 주요서적

    ▲준비된 대통령(상·하)=97년,실록극화,금파원,김 대통령 일대기 만화▲대중경제론=86년,김대중,청사 ▲행동하는 양심으로=87년,김대중,금문당,김대통령의 입장과 행동 연대기적 서술 ▲KIM DAE-JUNG=92년김병국,일월서각,김 대통령 영문판 일대기 ▲든든해요 김대중=98년김옥두 나남출판,97년 집권 드라마 ▲김대중 사건의 진상=87년,김대중씨납치사건진상조사위원회,삼민사 ▲나의 삶 나의 길=97년 김대중,산하,사진과 함께보는 김대중의 자전적 이야기 ▲김대중어록=87년,김충식편저,월출 ▲한국;민주주의의 드라마와 소망=92년,김대중,청도,러시아 외교대학원치학 박사 학위논문 ▲김대중 그는 누구인가=87년,김형문 편저,금문당,정치역정 기록 ▲신김대중 1993=92년,민족공동체연구소,정치이력 정치관 민주주의와 통일에 대한 정책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외신이 본 金대통령

    미국의 CNN과 일본의 NHK등 해외 주요 언론들은 13일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자 선정 소식을 긴급 주요뉴스로 다루고 김대통령의 정치역정을 자세하게 소개했다.일본의 요미우리(讀賣)신문은 이날저녁 “노벨 평화상에 김대중 한국 대통령”이라는 제하로 호외를 발행하기도 했다. 오슬로 현지의 평화상 발표 모습을 생중계한 CNN은 “아시아의 넬슨만델라로 불리는 김 대통령이 150명이나 되는 경쟁 후보자들을 물리치고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면서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그의 적극적인 노력이 높이 평가받았다”고 전했다. CNN은 또 “김 대통령이 98년 취임 이후 대북 관계개선을 주요 국정목표의 하나로 추진해왔고 결국 지난 6월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결실을 얻었다”면서 서울의 축하분위기를 생생하게 전했다.특히 평양을방문중인 마이클치노이 홍콩지국장을 연결,향후 ‘남북관계’진전에가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일본 언론들은 김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을 긴급 뉴스와 호외 등으로 일제히 보도했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이날 호외를 발행,신주쿠(新宿),긴자(銀座)등 도쿄 주요 거리에서 배포했다.고베(神戶) 신문 등 지방지도 호외를 발행했다. 교도 통신은 노벨 위원회의 발표와 동시에 김대통령의 노벨상 수상을 긴급 기사로 보도한 뒤 김대통령의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과 민주화 투쟁의 발자취 등을 소개하는 기사 등을 지방지 호외용으로 타전했다. NHK도 매 뉴스 시간에 김대통령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머리기사 등으로 자세히 보도하면서 “최근 한국내 보수파들의 저항에 직면해있던 김대통령이 이번 평화상 수상으로 자신의 통일정책을 가속화하는계기가 마련됐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영국은 BBC 방송과 일간지 가디언,인디펜던트,이브닝 스탠더드 등의인터넷판을 통해 김 대통령의 수상 소식을 긴급 외신으로 보도하고김대통령의 정치인생을 소개했다. AP통신은 “김대통령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민주주의를 위해목숨을 걸고 투쟁한 한국의 지도자”라고 소개하고 “한국인들이 김대통령의 노벨상 수상 소식에 기뻐하며 환호하고 있으며 이번 수상을계기로 한반도 평화 정착이 더욱 가속화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서울분위기를 전했다. AFP통신은 김 대통령의 출생에서부터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고난과역정을 별도의 기사로 소상히 다뤘다.특히 1973년 도쿄에서 중앙정보국에 의해 납치돼 대한해협에서 수장될 뻔한 사건과 전두환 정권으로부터 반란죄로 사형을 언도받은 것도 전했다.김 대통령이 숱한 암살기도와 망명의 위협 속에서도 살아남아 대통령이 됐으며 이후 한국의경제위기를 극복하면서 ‘햇볕정책’을 추진,한반도에서의 긴장완화를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DPA통신은 김 대통령이 ‘아시아의 만델라’라고 불리는 이유를 인권과 민주화를 위해 투쟁해 온 그의 경력 때문이라고 소개했다.이같은 노력으로 김 대통령은 오래 전부터 국·내외의 존경을 받아왔으며박정희와 전두환 두 군사정권의 희생자로서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었다고 밝혔다. 중국 신화통신도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 촉진에 기여한 노력들을 인정받아 올해 노벨평화상을 13일 수상했다”고 보도했다. 백문일기자 mip@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어떻게 선정하나

    노벨 ‘평화상’은 노벨상 최고의 영예를 지닌 상답게 특별한 선정과정을 거친다. 스웨덴 한림원이 수여하는 다른 분야와 달리 평화상은 노르웨이 국회가 지명하는 5인위원회가 선정한다.노벨상 제정자인 알프레드 노벨의 유지에 따른 것.위원들은 전직 총리,의원,학자 등 노르웨이 국민들로부터 신망을 받는 최고 지성들로 구성된다.노르웨이 국회는 물론어느 기관,단체의 영향도 받지 않으며 독립적으로 기능한다. 첫단계는 후보자 추천.매해 2월1일까지 각국 인사들로부터 후보자를추천받아 심사에 들어간다.역대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비롯,각국의 현직 정부각료 및 의원,국제사법재판소 및 국제중재재판소 위원,국제의원연맹 의원,국제영구평화사무소 집행위원,각국 법학·정치학·사학·철학 교수 등이 후보를 추천할 수 있다. 1차 후보수는 통상적으로 100여명 안팎으로 유지돼왔다.명단이 추려지면 위원회 사무국장 및 지원요원 등이 위원회 도서관 등 곳곳에서이들에 대한 정보수집에 나선다.각국 언론 등에 탐문조사를 벌이기도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수집된 자료를 바탕으로 위원회는 회의를거듭해가며 후보수를 압축,최종 결정을 내린다.수상자는 10월 첫째주무렵 판가름나는 게 관례.일단 수상자가 정해지면 발표일까지 그 이름은 철저한 보안속에 위원들만 아는 비밀로 지켜진다.표결까지의 전과정이 비밀에 부쳐지는 이같은 엄격한 심사방식은 1901년 첫시상 이후 한세기를 이어온 전통과 함께 노벨상 권위를 지켜온 요소라 해도과언이 아니다.특히 평화상은 다른 분야에 비해 해당자가 없었던 해가 가장 많을 만큼 잡음 최소화를 위해 극히 까다로운 심사가 행해져왔다. 스웨덴인인 노벨이 평화상의 선정과 시상을 노르웨이에 위임한 까닭에 대해선 설이 분분하다.19세기 당시 스웨덴 주축의 연방에서 탈퇴하려던 노르웨이의 강력한 요구를 진무하려 했다는 설과 국제사회 화해를 위해 많은 일을 한 노르웨이 국회에 대한 존경의 표현이라는 설등이 있다. 손정숙기자 jssohn@
  • 박찬호 금의환향

    ‘코리아특급’ 박찬호(27·LA 다저스)가 13일 저녁 메이저리그 진출이후 최고 성적(18승)을 안고 김포공항을 통해 금의환향했다. 박찬호는 귀국 기자회견에서 “팀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해 아쉽긴 하지만 개인적으론 만족한다”면서 “내년 시즌에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또 박찬호는 “팬들의 따뜻한 환영을 받으니 마치 김대중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은 기분”이라며 “힘들 때는 팬들을 생각하고 다시 일어설수 있는 힘을 얻는다”고 덧붙였다. 숙소인 롯데호텔에 여장을 푼 박찬호는 오는 18일 공주 고향집을 찾은 뒤 20일부터 팬사인회와 어린이 이벤트행사 등으을어린이를 바쁜롯데호텔 소공점과 강남점에서 팬사인회를 시작으로 제1회 박찬호기초등학교야구대회, 소년소녀 가장과의 만남,장학금 전달식 등으로 2개월여 동안 국내에 머물며 바쁜 일정을 보내게 된다.
  • [사설] 한반도 평화 위한 세계의 축복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2000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노벨위원회는 “김 대통령이 한평생 한국의 민주화와 남북화해, 그리고 아시아의 인권을 위해 기여했다”고 수상 이유를 밝혔다. 김 대통령은 지난 40년 정치권력의 탄압과 ‘색깔론’음해를 무릅쓰고 민족 화해와 통일 방안 모색에 노력을 기울여왔다.그같은 노력이국제적으로 공인돼 노벨 평화상을 받게 된 것이다.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그 자신의 영광만 아니라 7,000만 겨레의 영광으로 남북이 다같이 기뻐할 일이 아닐 수 없다.노벨 평화상은 오늘날 한반도에서 조성되고 있는 평화에 대한 전세계의 축복이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꿈이 많은 사람입니다.우리나라를 정의로운 사회로 만들고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나라의 혜택이 고루 미치도록 하고싶었고, 통일을 이루어 7,000만 민족이 아시아 태평양 시대의 주역으로 함께 등장하도록 하고 싶었으며,한국이 세계의 당당한 선진국이되어 5,000년 역사의 결실을 이루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김 대통령이 1992년 12월 대통령 선거에 세번째 도전했다가 실패한뒤 처절한 심경으로 정계를 떠나 영국으로 건너가서 1993년 12월에쓴 회고록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에서 한 말이다.그러나 놀라운일이 아닌가.그는 통한(痛恨)속에 ‘과거형’으로 털어놓았던 자신의꿈을 지금 현재진행형으로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김 대통령이 한평생 자유와 민주와 정의를 위해 투쟁해온 정치 지도자라는 사실은 온 세계가 알고 있는 바다.‘고통받고 있는 사람에게도 나라의 혜택이 미치도록 하고 싶었다’는 꿈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과 함께 김 대통령이 국정지표로 내세운 ‘생산적 복지’속에 반영돼 있다. 통일을 향한 김 대통령의 열망은 또 어떠한가.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켜 ‘6·15공동선언’을 이끌어 냄으로써 지난 55년 동안불신과 적대로 일관하던 남북관계가 신뢰와 화해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노벨 평화상을 통해 전세계가 담보해준 한반도의 평화는 진전이있을 뿐 후퇴는 없을 것이다.우리가 전세계와 함께 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기뻐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끝이 좋으면 모든 게 좋다”고 한다.또 “향기로운 이름을 역사에남긴다(遺芳百世)”는 말도 있다.전남 무안군 외딴 섬 하의도에서 태어난 김 대통령은 ‘목포상고’졸업이 최종 학력임에도 초인적인 각고면려(刻苦勉勵)를 통해 한나라의 대통령이 되었고 세계적인 정치지도자로 공인 받고 있다.문자 그대로 향기로운 이름을 역사에 남긴것이다.그러나 오늘이 있기까지 김 대통령이 살아온 역정은 고난과시련,위해(危害)의 연속이었다. 살아있는 사람에게 가장 핍절(逼切)한 것은 신체적 위해다.1971년총선 당시 박정희(朴正熙)정권의 ‘교통사고 위장 살해 기도’,1973년 8월 일본 도쿄 한복판에서 벌어진 납치와 태평양상의 수장(水葬)미수,그리고 1980년 전두환(全斗煥)신군부에 의한 사형선고 등이 그렇다.그러나 하늘의 도우심과 국민의 지지로 목숨을 부지한 그는 거듭되는 투옥과 가택 연금,망명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뿐만 아니다.박정희정권 이래 역대 정권이 그를 표적삼아 집요하게 펼쳐온 ‘지역감정’공세는 또 어떠한가.그것은 이성적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어떤 것이다.오죽하면 “강원도 출신만 됐더라도 이미 대통령이 됐을텐데…”라는 한 유권자의 탄식에,김 대통령 자신이 하늘을 우러러한숨을 내 쉬었겠는가. 그러나 엄동설한(嚴冬雪寒)을 이겨내지 못하면 ‘인동초’가 아니다.김 대통령은 온갖 고난을 물리치고 마침내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뤄냈다.그리고는 ‘준비된 대통령’으로서 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있다.사실 이 두가지 과제는아무나 이뤄낼 수 있는 게 아니다. 김 대통령이 평생 자신을 박해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을 용서했을 때많은 국민들이 의아하게 생각했던 게 사실이다.김 대통령이 ‘용서와화해의 사람’임을 미처 몰랐기 때문이다.“‘나쁜 정치’는 용서 할수 없지만,‘나쁜 정치를 한 사람’은 용서할 수 있다”는 게 그의철학이다.“용서는 인간의 권리가 아니라 의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것이 ‘진정한 용서’라고 단언한다.김 대통령의 이번 노벨 평화상 수상을 계기로 남북관계는 물론여야, 지역간에도 화해와 협력의 따뜻한 바람이 힘차게 일었으면한다.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남북관계 전망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노벨상 수상으로 대북 포용정책이 더욱 탄력을 받고 진전되게 됐다.한반도 평화정착에 대한 포용정책의 기여와국제사회의 지지를 공식 확인,정책 수행을 위한 보다 좋은 조건을 확보한 셈이다. ◆대내외적 영향 우선 대내적으로 대북정책 수행의 입지 강화가 예상된다.대북정책 수행과 관련,김 대통령의 지도력 강화와 국민적 합의기반의 확대를 의미한다.국제사회의 지지확인을 통해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난과 비타협적인 태도의 해소도 기대된다. 자신감을 바탕으로 보다 적극적인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도출노력도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국회 남북관계 특위 등을 통해 여야가 충분히 상의하는 방식으로 대북정책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적으론 “남북평화·화해 흐름은 바꿀 수 없는, 또 바꾸어서도안되는 기조”임을 선언한 것과 다름없다.이같은 흐름은 북한의 국제사회 진출을 위한 분위기 조성과 각 국가들의 협조확대 도출에도 일조할 것이다. ◆대북정책 전망 이같은 상황속에서 정부의 대북정책은 기존 화해협력의 틀을 유지하면서 점진적으로 확대·강화돼 나갈 전망이다.‘평화유지’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화해 프로그램’의 이행단계로의 진입을 뜻한다.각 분야에 걸친 ‘포괄적 접근’도 더욱 속도를 낼전망이다. 특히 남북교류협력 확대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낡은 법과 제도적 장치를 비롯한 각종 관행 및 냉전적 사고의 틀을 벗겨나가는 작업도 우호적인 여론에 힘입어 보다 탄력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통일방안 추진 김 대통령의 지적대로 통일방안이나 주한미군 문제등 주요 남북현안에 대한 국민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작업이 진전될것임을 의미한다.집권 하반기 동안 ‘국가연합단계’란 통일의 집을짓기 위한 ‘지붕을 올리는 작업’이 큰 틀에서 가속화될 것임을 뜻한다. 또 6·15선언이후 4개월여동안의 남북협상과 신뢰확대를 바탕으로일회성 행사보다는 교류협력을 제도화하고 정례화할 수 있는 차원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도 예상된다.경제공동체 실현을 위한 각종합의 등 제도적 장치 마련을 비롯,민간차원의 경협 촉진도 예상된다.정부 한 당국자는 “당면 현안을 풀어나가는 한편 전체적인 측면에서바탕을 다지는 작업이 병행돼 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석우기자 swlee@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金대통령 수상 경력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상복도 많았다.대통령에 취임한 98년에는유엔 인권협회상을 수상했다.99년에는 미국의 노벨 평화상으로 불리는 필라델피아 자유메달 수상자로 선정됐다.자유의 메달은 역대 수상자 11명 가운제 넬슨 만델라 등 5명이 노벨 평화상을 받을 정도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이번 노벨 평화상 수상에 이르기까지의 좋은 징조였던 셈이다. 최근에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는 노르웨이에서 라프토 인권상을 받았다.시상식은 다음 달 5일 노르웨이 베르겐 라프토 재단에서 거행한다.그러나 김대통령은 직접가지 않고 간접적으로 메달과 상금을 받을예정이다. 이밖에 야당 시절 고비 때마다 외국에서 수여하는 권위있는 상을 받아 위기를 극복했다.김대통령은 81년 오스트리아에서 수여하는 브루노 케리스키 인권상을 받았다.내란음모죄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김대통령은 이 상을 받은 뒤 감형됐고,미국으로 망명하는 계기가 됐다.93년에는 미 애서가상,94년에는 미 뉴욕 유니온 신학대 유니온 메달을수여하기도 했다. 강동형기자 yunbin@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각계인사 반응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 각계 인사들은 ‘민족적 경사’라고 일제히 환영하면서 남북관계 발전에도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를 기대했다. ◆강만길(姜萬吉·67) 민화협 상임의장·고려대 명예교수=노벨평화상은 세계 평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하는 것이므로 김 대통령의 수상은 민족적인 경사다. 남북의 평화와 공존을 위한 노력을 전세계가 인정해준 것으로 봐야한다.현 정부가 있는 한 남북관계는 더 발전할 것이다. 남북간의 화해와 협력,평화를 위해 더욱 노력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것이다. ◆이기준(李基俊·61) 서울대 총장=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으로김 대통령과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이 올라간 만큼 세계화의 무한경쟁 격류 속에서 민족과 국가의 방향타를 잡아가는 국가수반으로 책무는 더 무거워지리라 본다. ◆정원식(鄭元植·72) 전 총리=김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은 대단히 축하받을 일이다.이번 수상은 남북관계를 화해 무드로 이끈 공로를 인정받은 것으로 향후 남북관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기대된다. 수상을 계기로 남북관계의 화해 무드는 더욱 굳어질 것으로 본다. ◆김창국(金昌國·60) 대한변호사협회장=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온 국민이 기뻐 할 일이다.50년간 진전이없던 남북의 벽을 허물고 새천년 평화의 장을 연 대통령의 역사적 업적이 평가를 받은 것 같다.김 대통령이 세계평화에도 기여하기를 바란다. ◆김동완(金東完·56)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노벨평화상은 온갖역경을 딛고 일어선 대통령과 우리 민족에게 주는 영광이다. 분단의고통을 치유하는 큰 약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노벨평화상을 받기까지특별히 개인이 받은 고통과 우리 민족이 받은 수난이 있었음을 잘 알기에 이번 수상이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일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종훈(65) 중앙대 총장=일본에서는 벌써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이9명이나 되는데 우리나라가 이제서야 노벨상을 받는 것이 조금 늦은감은 없지 않다.이제 우리 민족도 노벨상 수상국가라는 자긍심을 갖게 돼 자랑스럽다.김 대통령이 인권과 민주화를 위해 평생 살아온 분이라는 점에서 이번 수상은 그 결실이라고 본다. ◆이석연(李石淵·46) 경실련 사무총장=이번 수상은 남북관계에서 정부가 북한에 끌려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떨쳐버리고 국내 정국 현안에 대해서도 포용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갖는 계기가될 것으로 본다.대북관계에서도 국내 보수세력들이 우려하는 점까지포용하면서 북한문제에 보다 여유롭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다만독선에 빠지거나 국내 정치에 정략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면 곤란하며아무리 노벨상을 받더라도 내치에 실패한 지도자는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이상훈(李相薰·67) 재향군인회장=김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것은 반만년 우리 민족사에 큰 획을 긋는 쾌거이며,이번 수상을계기로 이 땅에 진정한 자유와 평화가 정착되기를 기원한다.하지만아직도 북의 군사력 증강이 지속되고 있으므로 군사적 긴장완화 조치가 있을 때까지 안보태세에 한치의 허점도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단병호(段炳浩·51)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노벨상 수상은개인의 영광이전에 민주주의와 통일을 향한 국민의 투쟁과 희생의결과로 본다.노벨상 수상이 사회발전에 좋은 영향을 끼쳐 국민의 기본권 보장과 민주주의 발전,빈부격차 해소 등에 큰 진전이 있어야 한다. 노벨상 수상자가 이끄는 국민의 정부에서 구속·수배 노동자 문제등 인권유린과 민권탄압이 더 이상 계속돼선 안된다. ◆김봉우(金奉雨·51) 민족문제연구소장=남북관계의 평화적 해결 노력은 어떤 관점에서 봐도 잘한 일이지만 대일관계나 내치 문제는 실책이 더러 눈에 띈다. 일본의 전후 사과와 배상문제 등을 당당하게 대응했으면 한다. 조태성 윤창수기자 window2@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금융계 반응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극복할 과제가 많은 우리 경제 전반에 활력소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다.경제전문가들은평화상 수상이 경제 지표를 직접 호전시킬 수는 없겠지만 무형의 반사이익을 불러올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은행은 “대외신인도가 높아져 투자대상으로서의 우리나라의 매력을 높일 것”이라고 전망했다.한은은 “국가위험도가 줄어들어 국제 금융시장에서 우리나라 기업 및 금융기관들이 유리한 조건으로 자금을 차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주택은행 김정태(金正泰)행장은 “최근의 금융시장 침체를 반전시킬호재”라고 말했다. 대우경제연구소 신후식(申厚植)연구원은 “대통령이 경제운영에도자신감을 갖게 돼 구조조정 속도가 빨라지고 금융시장이 안정되는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한양대 경제학과 나성린(羅城麟)교수는 “대통령이 경제문제에 전념하게 됨에 따라 다소 미진했던 경제 현안이 빨리 풀릴 것”이라고 예측했다.리젠트증권 김경신(金鏡信)이사는 “대외적으로 국가 신인도를 한단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너무 큰 기대는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한경제학자는 “이번 수상으로 심리적 부담을 안게 돼 대북지원이나 남북경협을 추진하면서 서두르거나 지나치게 우리 쪽만 과중한 경제적비용을 지는 일이 생겨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리젠트증권 김이사는 “고유가와 미국 경기불안 등 대외적인 초대형악재들이 버티고 있어 당장에 활력을 불어 넣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안미현기자 hyun@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국내 정국에 미칠 영향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정치권에도 큰 파장을일으킬 전망이다.대북정책에 대한 여권의 입지가 넓어짐은 물론이다. 문제는 이같은 상황변화가 궁극적으로 정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냐에 있다. 곧바로 나타날 정국의 변화는 정치권내 보수세력의 위축이다.그동안대북(對北) 속도조절론을 내세워 여권을 견제해 온 한나라당과 이회창(李會昌) 총재는 새로운 정책기조를 모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정통보수세력을 자임하는 자민련 역시 비판의 강도와 방향에 변화를 줘야 하는 상황이다.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높은 지지여론을 감안,이들 보수세력들은 일단 정부의 대북정책에 보조를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여권은 넓어진 입지를 국민화합과 국론통일의 발판으로 적극활용할 것으로 분석된다.보다 여유있는 자세로 야권과 충분한 대화를통한 대북정책을 추진하리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대북정책을 둘러싼 난기류가 정치권 전반의 해빙으로 이어질것으로 보기는 힘들다.정권을 다툴 대선이 2년 앞으로 다가서 있기때문이다.까닭에 내부적으로는 보다 복잡하고 치열한 경쟁관계를 낳을공산이 크다. 야권은 남북관계에서 좁아진 입지를 경제문제에서 회복하려 할 것이분명하다. 대북정책에 대해서도 사회내 보수세력을 의식,부분적으로보다 강도 높은 공세를 취할 전망이다.관심은 이 과정에서 일어날지도 모를 야권의 세력판도 변화다. 민주산악회 재건과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 답방반대 서명운동을전개하면서 정치활동 재개를 추진하고 있는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이 하나의 변수가 될 듯하다. 김 대통령의 맞은 편에 섬으로써 정치적 기반을 마련하려는 김 전대통령의 구상이 어떤 변화를 모색할지,한나라당 이 총재와는 어떤 관계를 설정할지가 주목되는 대목이다. 진경호기자 jade@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시민·시민단체 반응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새천년 첫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자국민들은 “민족의 큰 경사”라며 환호했다.시민들은 노벨평화상 수상이 남북 화해와 통일을 앞당기는 밑거름이 되길 바랐으며,경제가호전되도록 내치에도 더욱 신경써주길 주문했다. 13일 오후 6시 김 대통령의 수상 소식이 TV 속보로 방송되자 서울역과 강남고속버스터미널 등 대합실과 광화문,남대문,강남 네거리 등서울시내 곳곳에서는 많은 시민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TV나 뉴스속보판을 지켜보며 낭보를 반겼다. 한화그룹은 공식 발표가 나온 직후 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축하하기 위해 15분여 동안 서울 남산 교육과학연구원(옛 어린이회관) 앞에서 1,000여발의 폭죽을 터뜨려 가을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최근 북한에 있는 오빠의 생존을 확인하고 상봉을 애타게 기다리는서옥희(徐玉熙·57·서울 도봉구 방학동)씨는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났을때 만큼 감격적”이라면서 “노벨평화상 수상을 계기로 경제가 빨리 호전되도록 내치에도 더욱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구 산격초등학교 교사 최석민(崔碩珉·33)씨는 “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것은 물론,우리나라에 대한 자긍심을 한층 고취시키는 산교육이 됐다”면서 “학생들에게 21세기 세계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더 큰 일꾼이 돼 주도록 당부하겠다”고 말했다. 연세대 식품공학과 3학년 오승현(吳承鉉·25)씨는 “우리나라의 대외 이미지도 평화로운 나라로 바뀌게 돼 경제에도 도움을 줄 것”이라면서 “이번 수상이 다른 분야에서도 노벨상을 받게 되는 계기가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시민단체들도 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남북 화해와 통일을 향한 밑거름이 되길 바랐다. 경실련 통일협회 차승렬(車承烈) 부장은 “세계가 우리 민족의 통일에 대한 염원과 노력을 인정해 준 것이며 우리나라가 동북아와 세계평화에 일정 부분 책임지는 나라로 거듭 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인권운동사랑방,앰네스티 한국본부 등 73개 인권단체로 구성된 인권공대위 조영임(趙英壬·여) 간사는 “노벨평화상은 우리의인권이 개선됐음을 입증하는 것”이라면서 “대통령은 여기에 안주하지 말고인권법 제정,국가보안법 개폐 등 인권문제 해결에 더욱 노력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환경운동연합은 성명을 통해 “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냉전을 극복하고 평화와 화해,공존의 토대를 마련한 점 등이 감안된 것 같다”면서 “수상이 자연과 인류의 평화 및 공존을 실현하기 위한 출발점이 되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실향민촌인 강원도 속초시 청호동 아바이마을 주민들은 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 이산가족 상봉기회가 더욱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며 환영했다. 전국종합·이창구 이송하 안동환기자 window2@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朴晙瑩 청와대대변인 문답

    박준영(朴晙瑩) 청와대 대변인은 노벨평화상 발표 40여분만인 13일저녁 6시43분쯤 기자들에게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수상 소감을 전한 뒤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가졌다. ◆평화상 수상이 향후 국정운영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는가. 국정운영과 평화상 수상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대통령께서는 그동안우리 경제가 어려웠을 때 만난을 무릅쓰고 극복을 위해 노력하셨고이 땅에 민주주의와 인권이 더 확산되도록 노력하셨다.그리고 지금우리나라는 아직도 경제를 건전하게,안전하게 정착시켜야 할 문제가남아 있다.대통령이 노벨상을 수상하신 것은 국가적으로,개인적으로영광이지만 국정운영과는 관계가 없고 묵묵히,담담하게 국정을 수행해나갈 것이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직접 소감을 밝히거나 기자회견을 할 계획이 있는가. 적절한 시기에 말씀하실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노벨상 발표 순간 대통령의 표정은 어떠했나. 담담한 표정이셨다.대통령께서는 TV를 통해 수상결과를 아시게 됐다.대통령께서는 오늘 일과를 끝내시고 바로 관저에 도착하셔서 이희호(李姬鎬) 여사님과 함께 TV를 시청하셨다. ◆노벨상 위원회로부터 사전에 통보가 있었나. 전혀 없었다. ◆김대통령은 노벨상 발표후 누구와 무슨 말을 나눴나. 이여사님과 간단한 말씀을 나누시고 바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로부터 축하전화를 받으셨다.그리고 이한동(李漢東) 총리와 청와대 비서실장 및 수석비서관들,경호실장,국정에 관여하신 분 중 축하하는 인사들이 관저에 가 축하인사를 드렸다. ◆상금은 어떻게 사용할 계획인가. 아직 아무런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나중에 밝히겠다. 김상연기자 carlos@
  • KBS’열린음악회’ 金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특별생방송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발맞춰 KBS는 일요스페셜 ‘노벨평화상 100년,20세기 희망의 증언’과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기념 열린 음악회-평화의 대합창’을 긴급 편성해 방송한다. 먼저 ‘…희망과 증언’(오후 8시)은 노벨평화상이 갖는 의미를 집중 조명한 다큐멘터리다.20세기는 물질 문명이 급속도로 발전한 과학과 기술의 시대였다.인간의 삶의 질이 급속히 높아졌지만 동시에 두차례의 세계대전 등 전쟁과 폭력으로 많은 인명이 희생된 세기이기도하다. 때문에 물리,화학,문학 등 7개 분야 노벨상 가운데에서도 평화상은 가장 의미있는 상으로 평가되고 있다.더욱이 김 대통령의 수상은 20세기의 잘못된 역사를 청산한 새 천년의 첫 노벨평화상 수상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 1901년 첫 노벨평화상 수상자는 국제 적십자사를 창설한 앙리 뒤낭이었다.반전·평화운동을 펼친 안드레이 사하로프 박사,동서 냉전 대결구도를 청산하는 데 공로를 세운 빌리 브란트 총리 등의 행적을 통해 전쟁과 대결을 청산하기 위한 인류의 노력을조명한다.또 테레사수녀,슈바이처 박사,국경없는 의사회의 활동을 통해 생명의 존엄성을지키려는 인간의 의지를 알아본다. 1980년대 이후에는 아웅산 수지,달라이 라마 등 제3세계에서도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나오고 있어 이 상의 의미를 더욱 높여주고 있다.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전운에 쌓여있는 시점에서 ‘인류의 평화’의참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평화의 대합창’은 녹화방송으로 진행됐던 ‘열린음악회’를 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기념해 20분 늘려 80분 동안 특별 생방송한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홀에서 이날 오후 5시 40분부터 진행될 이번 공연에는 이미자,조영남,인순이,양희은,송창식 등 매머드급 가수들이 총출연한다.이외에도 성악가 김동규,4인조 여성그룹 핑클,5명의개그맨으로 구성된 그룹 틴틴파이브 등이 출연해 ‘열린음악회’를온 국민이 즐길 수 있는 축하무대로 만들 예정이다. 이 프로그램의 백미는 ‘축하 사인판’이다.제작진은 서울역 광장,대학로 마로니에 공원,광화문 사거리 등 3곳에 축하 사인판을 마련해국민들이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적을 수 있는 장을 마련한다는 복안이다.생방송 도중 현장을 연결,국민들의 반응을 듣고 노래공연도 펼칠 계획이다.이외에도 프로그램 중간에 KBS1의 대하사극 ‘태조 왕건’에 출연하는 서인석,김영철,최수종,염정아 등 6명의 출연진이 나와 연예인 대표로 축하노래를 함께 부른다.제작진은 현재 박찬호와 시드니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들을 대상으로 출연을 섭외중이다.방청을 원하는 사람은 TV하단에 자막으로 나가는 전화번호로 신청을 하면 된다.(02)761-1671∼2. 전경하 장택동기자 lark3@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숫자로 본 역대 노벨상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13일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벨평화상수상자로 선정돼 그동안 한국인들이 느껴온 ‘갈증’을 씻었지만 아시아인의 수상은 여전히 ‘하늘의 별따기’다. 지금까지 노벨상을 받은 아시아인은 김대통령을 포함해 23명. 1901년 노벨상 제정이후 모두 670여명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역대 수상자 가운데 미국이 242명으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영국 90명 ▲독일 70명 ▲프랑스 48명 ▲스웨덴 30명 ▲스위스 20명 ▲러시아(구 소련) 17명의 순으로 나타났다.반면 아시아인은 전체의 3%를 겨우 넘는 수준. 아시아 국가 가운데는 일본이 9명이고 ▲인도 4명 ▲중국 3명 ▲동티모르 2명 등으로 나타났으며 베트남 티벳 미얀마 파키스탄이 1명씩노벨상을 안았다. 아시아인 수상자 중 평화상과 물리학상이 각각 7명으로 가장 많았고이어 문학상 4명,화학상 2명,의학상과 경제학상 1명 순이었다. 아시아인으로 처음 노벨상을 받은 이는 1913년 문학상을 받은 인도의시성(詩聖) 타고르였다.하지만 타고르의 수상에는 인도를 식민통치했던영국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 순수한 아시아인수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지적도 있다. 이들 두 사람을 제외하면 지난 49년 물리학상을 받은 일본의 유카와히데키(湯川秀樹)가 최초의 아시아인 수상자로 기록될만 하다. 노벨상 중에서도 꽃이라 할 수 있는 평화상의 첫 수상자로는 73년 레둑토 월맹 총리가 헨리 키신저 미국 국무장관과 함께 선정됐으나 수상을 거부해 이듬해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일본 총리가 대신 영광을 차지했다. 임병선기자 bsnim@
  • [한반도를 평화 중심지로](1)수상 배경과 의미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제79대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그것은 단순히 개인적,혹은 국민적 ‘영광’에 그치지 않고 다방면에걸쳐 ‘변화’를 가져올 단초이다.수상 이유로 조명해 본 김 대통령의 사상과 국정철학,비전 등을 시리즈로 살펴본다.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 99년 7월 ‘미국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라델피아 자유메달을 수상했다.이에 앞서 98년에는 유엔 인권협회가 수여하는 인권상을 받았다.모두 평화의 기초가 되는 민주주의와 인권신장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서다.국제사회에서 김 대통령은 실제로 민주주의와 인권신장의 지도자로 인정받고 있다. ◆인권 신장 올 노벨평화상은 김 대통령에 대한 국제사회 평가의 완결판이다.민주주의와 인권 신장 위에 20세기 마지막 냉전지대인 한반도에 평화 기운을 움트게 한 공로다.냉전체제에 의해 유린된 인권과좌절을 거듭한 민주주의를 소중히 가꾸고,크게 꽃을 피울 토양을 생명의 위협을 느껴가면서 마련한 때문이다. 노벨위원회도 수상 이유에서 이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실제 김 대통령은여러차례의 사면·복권을 통해 사형수를 감형하고이른바 ‘양심수’와 국가보안법 관련 수감자도 석방했다. 지난 9월초에는 남파간첩 등 사상범인 비전향 장기수 72명을 그들의 희망대로북송하기도 했다. ◆민주주의 실천 김 대통령은 취임한 뒤에도 국내는 물론 아시아지역의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을 위해 끝없이 헌신해 왔다. 김 대통령은 임기중 달성할 5대 국정지표 가운데 첫 목표로 민주주의와 인권신장을 꼽았다.국내의 비판 속에서도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국정을 운영하려는 노력을 계속했고,또 자신을 탄압했던 군사정권 지도자들을 용서함으로써 ‘역사와의 화해’를 시도했다.또 기회 있을때마다 아시아의 민주주의 확산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왔다. 유엔 밀레니엄 정상회의 등 국제회의에서 연금중인 미얀마 아웅산 수지여사의 자유로운 활동을 위해 앞장섰고,한·일 정상회담 때도 미얀마 정부가 연금중인 수지 여사와 대화에 나서도록 한·일 두나라가 공동으로 촉구한다는 합의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특히 김 대통령이 재야인사였던 시절,리콴유 전싱가포르 총리 사이에 벌어진 ‘아시아의 민주주의 가치’ 논쟁은 김 대통령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역설적으로 반증하는 유명한 일화로 꼽힌다.민주주의는 지역·인종·피부색과 관계없는 보편적 가치로,아시아에도 민주주의에 대한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는 논지를 폈었다. ◆대북 햇볕정책 “이제 한반도에 냉전이 종식되리라는 희망을 가질수 있게 됐다”는 게 노벨상위원회가 햇볕정책에 대해 내린 최종 평가다.남북정상회담이 그 기폭제가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있다.그러나 햇볕정책은 탄탄대로만을 걸어온 것은 아니다.취임 이후 동해 잠수정 침투사건-서해교전-금강산 관광객 억류사건 등으로 숱한 좌초위기를 맞았다.금강산 관광객 억류사건으로 여론이 서서히 비판적 시각으로 들끓기 시작했고,남북차관급 회담이 결렬되는 등 난관에 봉착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 대통령은 늘상 얘기한 대로 ‘인내심을 갖고’ 햇볕정책을 추진,지난 6월 분단 55년만에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이는 한반도 냉전체제 해체의 물꼬를 트는 동력으로 작용,북한 조명록(趙明祿) 차수의 방미로 이어졌고,급기야 북한과 미국이 적대관계를 청산하는 데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 북한과 일본의 관계개선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는 등 한반도 새로운 질서가 태동중인 것이다. 양승현기자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후보추천의 역사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14번의 도전끝에 얻은영광이다.그의 후보 추천은 인생 역정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처음으로 노벨평화상 후보에 이름이 오른 것은 87년.빌리 브란트 당시 독일 총리의 지시로 사민당 의원들 및 김대통령과 친분이 있던 외국교수들이 독재정권에 맞서 한국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한 공로를 인정,후보로 추천한 것이 인연이 됐다.이 해에는 수상 가능성도 있었다.김 대통령도 “87년 대선 때 야권후보 단일화를 위해 후보를 김영삼(金泳三)씨에게 양보했다면 수상했을지도 모른다”고 회고했을 정도다.그뒤 김 대통령은 한해도 빼놓지 않고 노벨상 후보로 추천됐지만평화상과는 인연이 없는 듯했다. 92년 14대 대통련선거에 낙선한 뒤 정계은퇴를 했을 때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그러나 그해 평화상을 공동 수상한 넬슨 만델라 당시 아프리카 민족회의(ANC) 의장과 클라크 남아공대통령 등 쟁쟁한 후보들에게 밀렸다.이들 공동수상자와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이 때까지만해도 후보 추천 사유는 독재정권에 맞서 싸운 한국 민주주의 신장.그러나 김 대통령이 아태재단 이사장으로 일하던 95년부터는 당시 국내 야당의원들이 추천작업에 가담했다.외국인과 국내 정치권 인사들을 양축으로 한 추천서가 노벨위원회에 보내지기 시작했다.후보추천 이유도 아시아 국가간 관계증진 및 인권신장이 추가됐다. 노력도 따랐다.전년도 평화상 후보 추천자들은 자동적으로 다음 해에도 심사대상에 오르는 것이 관례지만 “매년 달라진 상황을 심사위원들에게 확인시켜야 한다”는 이유로 아태재단이나 남궁진(南宮鎭)현 청와대 정무수석,민주당 권노갑(權魯甲)·한화갑(韓和甲)최고위원등 동교계 핵심인사들이 추천작업을 주도했다. 98년 대통령에 취임한 뒤 ‘햇볕 정책’을 추진하면서 노벨상 추천이유에 금강산 관광 등을 포함,‘남북관계 증진’이 새로운 항목으로추가됐다. 99년에는 남궁 수석의 주도로 의원 107명으로부터 서명을받은 추천서를 보냈다.이에따라 여권 일각에서는 수상에 상당한 기대를 걸기도 했다. 결국 87년부터 시작한 김대통령의 평화상 도전기는 한국의 민주화아시아 국가간 관계증진,인권문제로 연결되면서,남북관계 증진 등으로 13전(顚)14기(起)를 이루며 대단원을 마감했다. 강동형기자 yunbin@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역대 수상자들

    새천년 첫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1901년 첫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앙리 뒤낭(적십자사 창립),그리고 20세기마지막 수상자 ‘국경없는 의사회’등 역대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은지난 한세기 인류평화를 위해 공헌한 얼굴들이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수상 이유는 한국전쟁이후 이어져온 남북한 대결 종식과 화해.분쟁지역의 평화적 해결에 대한 공로로 주어진평화상은 양쪽지도자에게 공동으로 수여된 것이 보통이지만 한쪽 지도자만이 단독수상한 예도 있었다. 역사적인 브란트-슈토프 회담을 성사시키고 동·서독 통일과 동유럽데탕트의 물꼬를 터 71년 수상한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는 김대통령처럼 단독수상자다. 79년 수상자인 ‘빈자의 어머니’테레사 수녀의 경우는 인류를 향한박애 정신을 실천한 예다.인도와 전세계에 ‘사랑의 선교회’등을 설립,한평생을 고아와 나환자를 위해 살았다.비폭력 평화주의자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89년)와 인권·독립운동가 동티모르의 벨로주교(96년)등 압제에 저항한 독립운동가에게도 노벨평화상의 영광은 돌아갔다. 개인뿐만 아니라 단체도 평화의 사도가 되는 영예를 누렸다.77년 국제사면위원회,88년 유엔평화유지군,99년 국경없는 의사회등이 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의 이후 삶이 상처럼 평화롭거나 만인의추앙을 받는 것만은 아니었다. 폴란드 자유노조 지도자로 대통령까지 지냈으나 최근 고독한 야권인사가 돼버린 레흐 바웬사(83년 수상),러시아 국민들로부터 러시아 추락의 ‘주범’이란 비난을 받으며 강연활동과 해외 언론 출연 등으로생활비를 벌고 있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구소련 대통령(90년 〃)에게있어 노벨상 수상은 옛추억을 되새기는 것외엔 아무런 의미가 없을듯하다. 결코 화해할 수 없을 듯한 중동평화를 위해 노력,수상 당시 갈채를받았던 중동지도자들의 경우 비참한 최후를 맞기도 했다.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78년 〃)과 이스라엘의 라빈총리(94년 〃)의 경우국내 강경파들에 의해 암살당했다.그러나 역대 수상자들의 노벨평화상 수상 이후 삶이 어떠했든지 간에 그들이 역사를 움직였고 인류평화에 기여했음은 분명한 일이다. 이동미기자 eyes@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자 선정발표문 전문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김대중(金大中) 한국 대통령이 일반적으로는한국과 동아시아에서의 민주주의와 인권, 특별히 지적하자면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 노력한 점을 인정해 2000년 노벨 평화상을 그에게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에서 수십년간 독재통치가 계속되는 동안 여러차례 생명의 위협을 받고 오랜 기간 국외생활을 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조국의 민주주의를 위한 지도적인 대변자로 점차 부상했다. 1997년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으로 한국은 세계 민주국가의 대열에결정적으로 합류했다.김대중은 대통령으로서 민주적인 정부를 강화하고 한국 내부의 화해를 촉진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동아시아의 지도적인 보편적 인권의 수호자로서 김대중 대통령은 강력한 도덕적 힘으로 아시아에서 인권을 제한하려는 시도에 맞서왔다. 그는 또 미얀마의 민주주의와 동티모르에서의 탄압 반대를 위해서도상당히 노력했다. ‘햇볕정책’을 통해 김대통령은 남북한간의 50년 이상된 전쟁과 적대감 극복을 추진했다.김대통령의 북한 방문은 두국가간의 긴장완화과정의 촉진제가 됐다. 이제 한국에서도 냉전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생겨났다. 김대통령은 한국과 특히 일본 등 이웃국가와의 화해를 위해서도 노력했다.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한반도 화해 진전과 재통일을 위한 북한과 다른 국가 지도자들의 기여에 대해서도 감사의 뜻을 밝히고자 한다. 2000년 10월13일 오슬로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李姬鎬여사 내조

    한국의 첫 노벨상 수상자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부인 이희호(李姬鎬)여사.이여사는 지난 38년 동안 영광과 절망의 순간순간을 김대통령과 함께 해온 평생 내조자이면서 동지였다. 1922년 서울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이여사는 이화여고와 서울대사범대를 졸업하고 당시로서는 드물게 램버스대,스카렛대 등 미국 유학까지 한 신세대 엘리트 여성이었다.귀국후 YWCA총무로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던 중 국회의원 선거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시고 첫 부인과사별한 채 전셋방에서 어려운 생활을 하던 김대통령과 운명적인‘만남’을 했다.주위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대통령의 신념과 관용,멋에 이끌려 “내가 도와야 할 사람”이라는 믿음으로 결혼을 결심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62년 이여사와 재혼한 이후 재선,3선 의원으로 성장한 김대통령은 71년 신민당 대선후보로 선출돼 거물정치인의 반열에 올라섰으나 고(故)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의 정적이 되면서 납치-망명-투옥-연금으로이어지는 형극의 길을 걷게된다.당연히 이여사의 삶도 암울한 시련의늪으로빠져든다.이여사는 유신의 어두운 장막이 드리워진 72년부터김대통령이 신군부에 의해 사형언도를 받은 뒤 미국 망명길에 오르던82년까지의 기간을 ‘외롭고도 잊혀진 곳에 있었던 세월’로 기억하고 있다. 김대통령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모진 고초를 받고 있다는 전언을접하고,이여사는 몸서리치는 불면의 밤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여사는 주저앉아 있을 수 없었다.김대통령이 옥고를 치르는 동안 자식들에게 엄친(嚴親)노릇도 해야 했고,감옥에 간 동지들의뒷바라지와 남은 가족들을 보살펴야 했기 때문이다.남편이 옥중에 있을 때는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편지를 보냈다. 이여사는 김대통령이 95년 정계에 복귀한 이후에는 측근들이 감히진언하지 못하는 얘기들을 귀띔해 줬고,영부인이 된 뒤에도 신문을자세히 읽고 김대통령에게 민심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그 뿐만 아니라 여성과 장애자 등 이 사회의 차별받는 사람들에게 각별한관심과 사랑을 바쳐왔다.이여사의 이런 노력이 김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결실을 맺게 됐다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말했다. 이도운기자 da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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