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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金대통령 “내년 봄 金위원장 答訪때 한단계 높은 합의 이룰것”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내년 봄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김 위원장이 서울에 오면 지난‘6·15 남북정상회담’ 합의보다 한 단계 높은 합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벨평화상 시상식 참석차 노르웨이를 방문중인 김 대통령은 11일저녁(이하 한국시간) 주 노르웨이 한국대사 주최 오찬에서 이같이 말하고 “내년에 미국에서 새 정부가 들어서면 미국에 가 우리의 대북정책에 대해 다시 확인하는 협상을 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김 대통령은 총리 집무실에서 옌스 스톨텐베르그 노르웨이 총리와 면담을 갖고 “북한과 공식 외교관계를 갖고 있는 노르웨이가 평양에 상주공관을 설치하는 것이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이끄는 데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이날 새벽 미국 CNN과의 생방송 특별인터뷰에서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기아에 시달리는 북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라며“한국과 국제사회가 북한 사람들의 목숨을 구해야 한다”고 북한에대한 국제사회의 식량 지원을 요청했다.오슬로 오풍연특파원 poongynn@
  • 金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BBC·CNN 특별회견

    [오슬로 오풍연특파원]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직후인 10일 오후(한국시간 11일 새벽) 오슬로 시청에서 미국 CNN과 특별인터뷰를 가졌다.이 인터뷰는 세계 각국에 생중계됐다.김대통령은 지난 9일에는 BBC월드와 인터뷰를 가졌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마틴 루터 킹 목사,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 등과 같은 반열에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소감은. 큰 영광이다.그 분들만큼 위대하지는 못하지만 인권,민주주의,평화를 위해 노력하겠다. ◆평양에 도착해 비행기에서 내릴 때 소감은. 무엇을 논의할지 합의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우리측에서 여러 차례 요청했으나 북측에서수용하지 않아 준비가 안된 상태여서 걱정이 됐다.김정일 위원장이나올지 전혀 몰랐는데 날 기다리고 있어 놀랐다. ◆어떤 함정이나 배반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나. 있었다.그러나 만나지 않는 것보다 만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북한은 한 사람이 모든것을 지시하는 체제다.따라서 김 위원장이 내 말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갔다.◆김 위원장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나. 우리는 9시간 동안 대화했다. 김 위원장은 상당히 머리가 좋고 남의 말을 들을 줄 안다.김 위원장은 개인적으로 연성적인 태도를 갖고 남한과 미국을 대하고 있다. ◆남한,북한,미국의 정당성,주권 등과 관련된 사안들을 논의하면서김 위원장이 어느 정도 납득했는가. 다시는 전쟁을 하지 말자고 했다.북한은 적화통일을 생각하지 않고,남한은 흡수통일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남북한간의 좋은 관계만으로는 불충분하기 때문에 미국과 북한간 관계도 중요하다고 했다.경제를 위해서는 미국과의 관계가 중요하다.북한에 이를 권고하자 긍정적 반응을 나타냈다. ◆평양에 도착하기 전 갖고 있던 의제에 통일이 있었나. 지금은 통일할 때가 아니다.지금 통일을 한다 해도 경제적으로 북한을 감당하지못한다.경제문제가 해결된다 해도 50년간 우리는 서로 적대시하고 불신하고 증오했다.그렇게까지 오래가 아니었던 동·서독도 갈등이 심하다.따라서 통일은 때가 아니다.우선 평화공존 및 평화적 교류와 협력이 필요할 때다.20∼30년 걸려도 서로가 안심할 때 통일하자는 의견에 김 위원장도 동의했다. ◆4∼5회 중요한 순간에 대화가 결렬됐다는데 위기가 온 것을 느끼지않았나. 북한의 연방제와 관련해 대화가 막힌 적이 있고,남한이 자주적이지 못하고 미국에 종속돼 있다고 주장할 때 상당히 어려웠다. 이때 ‘알다시피 나는 당신과 직접 협력해 평양에 왔지,미국의 지시를 받고 오지 않았다.따라서 남한은 자주적이다’라고 말하자 상대방도 이해했다. ◆이산가족 상봉 때 어떤 느낌을 가졌나.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마음속으로 ‘내가 마침내 문을 열기 시작했다.더 활짝 열리도록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poongynn@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오슬로 이모저모

    10일 밤(한국시간) 노벨평화상 시상식이 열린 오슬로 시내는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시상식 참석에 앞서 특별초청인사이자 오랜 지인(知人)인 토머스 포글리에타 이탈리아 주재 미국 대사와 조찬을 함께 했다. ■시상식장 노벨위원회는 김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상징하는 장식물을 참석자 자리 좌우측 앞부분과 연단 뒤편 4곳에 설치했다. 시상식장 앞면에는 주황색 오렌지 수천개와 장미,해바라기 등으로 만든 장식물을 설치했다.노벨위원회 관계자는 “김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상징하기 위해 여러 날을 고민해 만든 장식”이라고 설명했다. ■어린이 만남 김 대통령은 시상식에 앞서 시청 후문 광장에서 2,000명의 어린이들과 만났다.김 대통령은 어린이 대표인 마를렌 영(12·여·포르스그룬시 보르게 초등학교)으로부터 ‘평화의 횃불’을 건네받았으며,어린이들은 ‘어린이들을 구하세(Save The Children)’라는 노래를 합창했다. 이 행사는 국제아동구호단체인 'Save The Children'이 주최했다. 이 단체의 브라케 사무국장은 “김대통령은 평생 인권 신장을 위해 싸워 온 사람”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김 대통령은 합창이 끝난 뒤 어린이 대표로부터 감사장을 전달받고 “지금 여러분이 건네준 ‘평화의 횃불’을 받으면서 나는 이 횃불이야말로 온 세상의 사랑과 평화를 위한 희망의 상징이라고 생각했다”면서 “어린이 여러분 때문에 이 세상은 희망을 가질 수 있으며,여러분의 이 밝은 웃음 때문에 세상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밝게 빛날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왕 주최 오찬 김 대통령은 시상식 후 왕궁에서 열린 하랄드5세 국왕 주최 오찬에 참석했다.국왕 주최 오찬은 과거 시상식에서는 없었던 것으로,하랄드5세 국왕이 김 대통령을 위해 특별히 마련한 것이라고 김 대통령을 수행 중인 청와대 관계자가 전했다. ■외신 기자회견 김 대통령은 오후에는 오슬로 시청에서 생방송으로 진행된 CNN 토크쇼에 출연,노벨평화상 수상 소감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노력,앞으로의 과제 등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CNN의 메인 앵커인 조나단 맨의 사회로 1시간에 걸쳐 진행된 단독회견에는 1,000여명의방청객이 참석했다.CNN 회견은 ‘김 대통령 소개’‘한반도 평화의 진전’‘한국인들의 삶’‘김 대통령의 인생역정’‘끝나지 않은 책무’ 등 5부로 된 주제별 2분짜리 다큐멘터리를 상영한 뒤 김 대통령과의 일문일답을 내보내는 형식으로 구성됐다. 한편 김 대통령은 노르웨이 방문 첫날인 8일 오후 그랜드호텔에서 영국 BBC월드의 닉 고우잉 앵커와 단독회견을 가졌다.BBC는 회견내용을 10일 오후 1시30분(영국 현지시간)부터 28분간 방영한다. ■공식 연회 김 대통령은 회견이 끝난 뒤 노벨위원회가 주최하는 공식 연회에 참석했다.김 대통령은 베르게 위원장의 축사에 이은 답사에서 “바이킹 격언에 ‘나쁜 친구의 집은 가까이 있으나 멀리 있는 것 같고,진실한 친구의 집은 멀리 있으나 가까이 있는 것 같다’는 말이 있다”면서 “서울에서 오슬로까지 11시간이 넘는 비행시간이 걸렸지만 마치 이웃집을 방문하듯 편안한 마음 그지없다”며 친근감을 나타냈다. 한편 노벨위원회는 9일 밤(한국시간) 열린 리허설 도중 내년에 노벨평화상 시상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평화상 수상자 전원을 초청하겠다며 김 대통령에게 서면 초청장을 전달했다. ■오슬로 시내 표정 김 대통령이 숙소인 오슬로 시내 중심가의 그랜드호텔을 오갈 때 수천명의 시민들은 손을 흔들거나 박수로 환영했다.김 대통령은 일부 시민들과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시상식이 진행되는 동안 오슬로 서부역 앞 아메르브리케 광장에서는 수천명의 오슬로 시민들이 시청 앞과 칼 요한 거리,그랜드호텔까지 횃불행진을 벌였다. ■입양아 출신 기자 수상 기자회견장에는 한국 입양아 출신 여기자가 나와 눈길을 끌었다. 노르웨이 TV2 소속의 안네 바이데르 오센(27)은 한국말로 “김 대통령의 노벨상 수상을 축하합니다”라고 인사한 뒤 질문을 시작했다. 오센은 94년 김 대통령이 아·태평화재단 이사장때 두번째 노르웨이를 방문해 입양아들과 만났을 때 대학생으로 참석했다.오센은 지난해 서울에 와 취재를 하기도 했다.73년 서울에서 태어난 오센은 이듬해 노르웨이의 중산층 가정에 입양된 뒤 오슬로에서 대학을 졸업했다. 오슬로 오풍연특파원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국정쇄신 파급효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10일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것은 국민의 지도자,세계의 지도자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따라서 김 대통령의 노벨상 수상이 ‘국정 쇄신’에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것으로 봐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국민통합 에너지’로 작용할 수도있으며, 김 대통령의 인재등용 등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그러나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파급효과가 반영되지는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다만 국정쇄신 내용 하나하나에 미세하지만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노벨상 수상이 김 대통령에게 상당한 ‘여유’와함께 수상자에 걸맞은 ‘내치를 위한 정치력, 포용력’도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는 경제난국,각종 비리의혹과 인사편중 시비,개혁의 지연,대북정책 논란 등으로 인해 당정지도부에 대한 불신이 크다.이런 상황에서 노벨상 수상은 김 대통령이 ‘정권 안정’이나 ‘정권 재창출’이란 중압감에서 일정정도 벗어나는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김 대통령은 노벨상 수상을계기로 수상 연설과 각종 기자회견등을 통해 우리나라의 인권과 민주주의 발전상, 남북 화해협력의 진전상황을 전세계인에게 알렸다.‘내치’에 전념할 공간을 확보한 셈이다.이는 노벨상 수상이 국정쇄신 방향에 있어 야당과 보수 목소리들을 포용하고,좀더 아우르는 촉매제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노벨상 수상은 또 우리의 위상을 제고함으로써 무역,투자,관광,문화교류 등 실질적 국익 증진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귀국후 김 대통령이 한층 여유로운 입장에서 야당 지도자들및 전직대통령들과의 연쇄 접촉을 통해 이들의 의견을 충실히 반영할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노벨상 수상효과가 그동안 크게 감소,국정쇄신 구상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여권의 핵심관계자는 “대내적으론 노벨상 효과가 극히 미미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춘규기자 taein@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노벨위원회가 밝힌 수상 이유

    김대중 대통령은 동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기울인 평생의노력, 특히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노력으로 이 상을 수상하게됐습니다. 이제 막 시작된 것에 불과한 화해의 절차를 위해 상을 수여하는 것이 시기상조가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어 왔습니다.그에 대한 대답으로 김 대통령의 인권을 위한 그 동안의 노력이 최근 남북한 관계의진전과는 별도로 수상후보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북한과의 화해를 위한 강력한 김 대통령의 다짐 및 이행,특히 지난 1년 동안 이룩한 업적이 이번 수상에 새롭고 중요한 몫을더한 것도 역시 명백합니다. 평화상은 지금까지 이룩해 온 조처에 대해 수여되는 것입니다.그러나 노벨평화상의 역사에서 자주 보아 온 것처럼 올해도 역시 평화와화해를 위한 머나먼 길에 더욱 진척이 있기를 격려하는 뜻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는 넓은 범위에서 용기의 문제입니다.김 대통령은 고착화된 50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아마 세계에서 가장 중무장된 전선 너머로협조의 손길을 뻗으려는 의지를 지녀왔습니다.그의 의지는 개인적,정치적 용기이며 유감스럽게도 다른 분쟁지역에서는 너무 자주 결여되어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현재 김대중씨는 민주한국의 대통령입니다.김 대통령의 집권까지의노정은 멀고도 먼 길이었습니다.수십년 동안 그는 권위주의 독재체제와 승산이 없어 보이는 싸움을 했습니다. 가혹한 교도소 환경 속에서도 김대중씨는 삶을 바쳐서 해야 할 일을찾아내게 되었습니다. 불굴의 낙관적 태도를 가지고 그는 교도소 안에서 발견한 ‘즐거움’에 대해 썼습니다.동양과 서양의 모든 종류의서적 통독이 그것입니다.신학·정치학·경제학·역사 그리고 문학 서적들입니다.가족과의 짧은 면회시간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갖가지방해 시도가 있었음에도,그와 가장 가까웠던 인사들로부터 편지를 받고 답장을 쓸 수도 있었습니다.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원에서 꽃을 돌보는 일도 허용되었습니다. 김대중씨의 얘기는 몇몇 다른 평화상 수상자,특히 넬슨 만델라와 안드레이 사하로프의 경험과 공통되는 점이 많이 있습니다.상을 받지는않았지만 수상할 자격이 있었던 마하트마 간디의 그것과 함께 말입니다.김대중씨가 간직한 불굴의 정신은 국외자들에게 거의 초인적인 것처럼 보일지 모릅니다.이런 점에서 이번 수상은 보다 진지한 면이 있습니다. 김대중씨는 한국의 전면적인 개혁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햇볕정책’을 통해 북한과 적극적인 협조관계를 추진하고 있습니다.‘햇볕’이라는 말은 이솝우화에 나오는 햇볕과 바람이한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내기를 한 데서 따온 것입니다.‘햇볕정책’은 바람을 막지 않더라도 남북한이 공동의 이익을 서로 나누고 이를 강화함으로써 최소한 추위를 누그러뜨리자는 것입니다.김대중씨는남한이 북한을 합병하거나 흡수할 의도가 전혀 없음을 분명히 했습니다.시간이 걸리고 아주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목표는 통일입니다. 김대중씨가 현재 진행 중인 해빙과 화해의 주동자라는 점은 의심할여지가 없습니다.아마 그의 역할은 동서독 간의 관계 정상화에 아주중요한 동방정책 추진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빌리 브란트에 비교될수 있습니다.남북 이산가족 상봉장면은 전세계에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냉전의 빙하시대는 끝났습니다.세계는 ‘햇볕정책’이 한반도의 마지막 냉전 잔재를 녹이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 과정은 시작되었으며 오늘 상을 받는 김대중씨 보다더 많은 기여를 한 분은 없습니다.시인의 말처럼 “첫 번째 떨어지는물방울이 가장 용감하노라”. ◆ 김대중대통령 연보. ■1925년 전남 신안군 하의도에서 아버지 김운식(金雲植)씨와 어머니장수금(張守錦)여사의 4형제 중 차남으로 출생■1933년 하의도보통학교 입학,목포 북교초등학교로 전학해 수석 졸업■1939년 목포상업학교 입학■1945년 4월 차용애씨와 결혼해 홍일(弘一)·홍업(弘業) 두 아들 둠■1954년 목포에서 민의원선거에 출마해 낙선■1956년 10월 민주당 입당■1959년 6월 강원도 인제 재선거에서 낙선■1961년 5월14일 인제 보궐선거에서 당선됐으나 5·16 쿠데타로 수감■1962년 5월 이희호(李姬鎬)여사와 재혼■1963년 11월 목포에서 6대 국회의원에 당선■1967년 7대 의원 당선■1970년 9월 신민당 대통령후보 당선■1971년 5월 대통령선거에서 박정희(朴正熙)후보에게 패배■1973년 8월 도쿄에서 중앙정보부 공작원에게 피랍■1976년 3월 명동성당 ‘민주구국선언’으로 구속■1980년 5월 내란음모죄로 구속■1981년 1월 대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돼 사형 확정■1982년 12월 미국 망명■1985년 2월 귀국한 뒤 동교동 자택에 감금■1987년 12월 13대 대통령선거에서 낙선■1992년 12월 14대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한뒤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유학차 영국으로 향발■1993년 7월 귀국■1994년 1월 아·태평화재단 설립■1995년 7월 정계 복귀■1997년 12월 15대 대통령 당선■2000년 6월 평양에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2000년 12월10일 노벨평화상 수상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수상 회견

    노르웨이를 방문 중인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9일 밤(한국시간) 노벨위원회 주최 내외신 기자회견을 가졌다. 회견장에는 CNN 등 세계각국 기자 20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 다음은 일문일답.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과 공동 수상했으면 좋았다고 생각하는가. 같이 받았으면 참으로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위원장을 만나는 것과 노벨 평화상을 받는 두 가지 꿈이 실현됐다.다른 꿈이 더 있나. 노벨평화상은 받고나면 더 큰 사명이 부과된다는 점에서 올림픽 금메달과는 다르다.더욱 열심히 할 생각이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데 대해 북한에서 인사말을 보내온 게 있는가. 또 통일은 김대통령 생애에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간접적인축하의 말은 들었지만 공식적 축하는 없었다.일생을 통일을 위해 헌신했고 어려운 고비도 넘겼지만 임기 중 통일을 성취할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는다.그러나 통일이 이뤄질 것이라는 확신에는 변함이 없다. ■이산가족 상봉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가. 지난 6월 이후 두 차례에 걸쳐 400명이 왕래했다.그러나 이산가족은 2·3세대까지 포함하면모두 1,000만명 가량이 된다고 한다.그래서 먼저 생사를 확인하고 편지 왕래,면회소 설치 등을 통해 이른 시일 내에 이루어 나갈 생각이다. ■지구상에는 아직도 미얀마나 동티모르 같은 인권 사각지대가 있다. 노벨상 수상자로서 인권문제에 대한 견해를 말해 달라. 아웅산 수지여사와 미얀마 국민의 민주화 염원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되기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동티모르에서는 한국 군인들이 치안유지 등평화유지군의 활동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북한과 종교 교류를 지원할 생각은 있는가. 한국에는 종교들간의관계가 매우 좋다.예를 들어 가톨릭을 포함해 불교·민속종교 등 7대종교가 내가 귀국하면 노벨상 축하 미사를 서울의 대성당에서 드리기로 돼 있다.남북 종교간에는 충분히 교류가 되고 있지는 않으나 북의 종교계와 대화를 하고 있으며,남북한 종교간의 교류가 진전될 것으로 기대한다.중국 문제는 장쩌민(江澤民)주석을 만나 교황청의 관계개선 희망을 전했고,장주석에게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의사를말했다. 여기에 대해 중국측의 반응이 있었다. 교황청이 대만문제를해결하면 중국과 관계진전이 될 것으로 (나는)느끼고 있다.김정일 위원장에게도 교황의 방북의사를 전했고 의향을 물었다.내년에 오시라고 하라는 답변을 받았다.이런 중국 및 북한과의 접촉결과는 모두 교황청에 전달했다. ■한반도 평화조약을 위한 4자회담을 제의한 것으로 아는데 언제쯤평화협정이 체결될 것인지,2002년쯤이면 될 것으로 생각하나. 언제쯤이 될지는 확실히 답하기 어렵다.4자회담 제의에 대해 미·중은 상당히 긍정적으로 답하고 있다.북한에 이 문제를 제기하려고 한다. ■평화상 수상 이후 남북 관계가 어떻게 조정될 것으로 보는가. 이번에 노벨상을 받게 된 것은 인권뿐 아니라 남북정상회담이 가장 큰 이유였다.수상을 계기로 한반도 평화를 (전세계의)절대적이고 가장 큰이슈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오슬로 오풍연특파원 poongynn@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시상식 표정

    “옛날 옛적에 물 두 방울이 있었다네. 하나는 첫 방울이고 다른 것은 마지막 방울.첫 방울은 가장 용감했다네. 나는 마지막 방울이 되도록 꿈꿀 수 있었다네.만사를 뛰어넘어서 우리가 우리의 자유를 되찾는 그 방울이라네.그렇다면 누가 첫 방울이기를 바랐겠는가” 군나르 베르게 노벨위원회 위원장은 10일 밤(한국시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선포하면서 노르웨이 시인 군나르롤드크밤의 ‘마지막 한 방울’이라는 시를 인용했다.숱한 고난과 핍박을 견뎌낸 김 대통령이 평화상을 수상하게 됐음을 시구(詩句)로 비유한 것이다.오슬로시청 메인 홀에서 열린 이날 시상식에는 김 대통령의 가족 10명과 국내초청인사 42명,하랄드 5세 국왕,호콘 왕세자,옌스 스톨텐베르그 총리 등 노르웨이 최고위층 인사 대부분과 그루할렌 브룬트란트 WHO(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 등 1,100여명의 인사가자리를 메운 가운데 성대하게 거행됐다. 김 대통령은 오후 8시50분 오슬로시청에 도착,8분 뒤인 8시58분 팡파르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스톨셋 노벨위원회 부위원장의 안내를 받으며 시상식장에 입장했다.김 대통령이 입장하자 참석자들은 기립박수로 한국에서 온 인권지도자를 맞았다.이어 1분 뒤인 8시59분 하랄드5세 국왕과 소냐 왕비 등 왕족이 베르게 노벨위원회 위원장의 안내를 받으며 입장,방청객들과 함께 단상 맞은 편에 앉았다.부인 이희호(李姬鎬) 여사는 행사 시작 10분 전인 8시50분 시상식장에 도착,룬데스타드 노벨위원회 사무국장의 영접을 받았다. 베르게 위원장이 연단에 나와 김 대통령이 금년도 노벨평화상 수상자임을 선포하면서,업적,배경 등을 설명했다.그는 설명 끝무렵에 “시인의 말처럼 ‘첫번째 떨어지는 물방울이 가장 용감하노라’”라고김 대통령을 ‘첫번째 물방울’에 비유,선구자적 삶을 칭송했다. 그는 김 대통령이 넬슨 만델라 남아공 전 대통령,구 소련 저항지식인의상징인 안드레이 사하로프 박사와 닮은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베르게 위원장의 수상 이유 설명에 이어 세계적 소프라노 조수미씨가 아리디티의 ‘입맞춤(Il Bacio)’,그리그의 ‘이히 리베 디히’등 2곡을 노래했다.이어 김 대통령은 베르게 위원장으로부터 메달과디플로마(증서)를 받았고,조씨는 마지막으로 안정준의 ‘아리 아리랑’을 불렀다. 조씨의 축하노래가 끝나자 김 대통령은 베르게 위원장의 소개로 금색 노벨메달이 새겨진 파란색 연단으로 가서 수상연설을 했다.김 대통령은 미리 준비한 연설문을 한국어로 낭독했으며,연설은 노르웨이어와 영어로 동시통역됐다.미국 CNN을 통해 세계 각 국에 중계됐다. 김 대통령은 연설에서 “노르웨이는 인권과 평화의 성지이며,노벨평화상은 세계 모든 인류에게 평화를 위해 헌신하도록 격려하는 숭고한메시지”라면서 “우리 국민의 민주화와 남북 화해를 위한 노력을 아낌없이 지원해 준 세계의 모든 나라와 벗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답례했다.또 “노벨상은 영광인 동시에 무한 책임의 시작“이라며 일생을 바쳐 세계의 인권과 평화,한민족의 화해·협력을 위해 노력할 것을 맹세했다. 연설이 끝나자 참석자들은 기립박수를 보냈다.연설 전후 김 대통령은 모두 5차례의 힘찬 박수를 받았다.옅은 보라색 한복 차림의 이여사는 이정빈(李廷彬) 외교통상부 장관 등과 함께 맨 앞줄에서 김 대통령의 연설을 경청했다. 한편 김 대통령의 연설은 노벨위원회로부터 모든 권한을 위임받은일본 이와나미(岩波) 출판사가 번역해 발행할 예정이다. 오슬로 오풍연특파원
  • [사설] 金대통령의 ‘평화 메시지’

    노벨 평화상 수상식 참석을 위해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를 방문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10일 낮 현지의 한 소년으로부터 ‘평화의 횃불’을 증정받았다.수상식 공식 행사의 한 순서였다.김대통령은 소년에게서 받은 그 횃불을 높이 치켜들었다.그 순간 김대통령의 가슴 속에 온갖 감회가 오고 갔을 것이다. 그는 교통사고를 가장한 살해 미수,납치·살해 위기,사형선고 등 다섯번씩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6년의 감옥생활,10년이 넘는 망명과연금의 고통을 딛고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됐다.민주주의와 인권,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40년 동안 줄기차게 쏟아온 노력이 마침내 전세계적으로 평가를 받고 있는 마당에 어찌 감회가 없었겠는가.김대통령이시상식 연설에서 “한국에서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민족의 통일을위해 기꺼이 희생한 수많은 동지들과 국민들을 생각할 때 오늘의 영광은 제가 차지할 것이 아니라 그분들에게 바쳐져야 마땅하다”고 말한 것도,그런 절절한 감회의 결정(結晶)일 것이다. 노벨위원회 베르게 위원장은 “김대중씨는 한국의 전면적인개혁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대통령에 당선됐으며 ‘햇볕정책’을 통해 북한과적극적인 협조관계를 추진하고 있다”면서 “한반도의 마지막 냉전적 잔재를 녹이는 과정에서 그보다 더 많은 기여를 한 분은 없다”고선정이유를 밝혔다. 김대통령의 정치적 지지자는 물론 반대자라 할지라도 위원회의 결정에 더이상 보탤 말이 없을 것이다.굳이 덧붙이자면 한국과 세계의 인권과 평화 그리고 우리민족의 화해와 협력을 위해 남은 인생을 헌신하겠다는 그의 굳건한 결의와 ‘평화의 메시지’에 다 함께 힘을 보태주자는 말밖에 더 있겠는가. 김대통령은 인권 존중과 사회정의 구현에 있어 민주주의가 지닌 힘을 강조하고,그가 국정철학으로 내세우고 있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과 ‘생산적 복지’를 설득력 있게 설명했다.국민들은 ‘한국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라는 현지의 ‘대서특필’을 감격 속에 받아들이면서도,한편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상황에 곤혹감을 느낄 것이다.세계적인 정치지도자의 발목을 계속 잡아서 무슨이득이 있는가, 여야할 것 없이 국민 모두가 깊이 자성해 볼 필요가있다고 본다. 김대통령은 “노벨 평화상은 수상이유에 대한 앞으로의 헌신이 의무로 발생한다”고 선언하고,그가 상을 받은 이유를 위해 헌신할 것을거듭 다짐했다.그러면서 그는 아웅산 수치 여사가 지도하는 미얀마의민주화 운동과 동 티모르의 독립에 대한 전인류차원의 관심과 지원을 역설했다.평화의 사람 김대중,그가 전하는 ‘평화의 메시지’는전세계에 큰 울림을 일으키고 있다.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수상 의미와 국제 평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크게 두가지 의미를 지닌다.하나는 세계 평화와 인권 신장을 향해 김 대통령이 걸어온 고난과 투쟁의 정치역정을 국제사회가 평가했다는 점이다.이는 개인 ‘김대중’에 대한 세계인들의 박수갈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큰 의미는 김 대통령과 한반도가 펼칠 앞날에서 찾을수 있다.즉,김 대통령의 평화상 수상이 한반도의 평화안정,이에 대한국제적 지원 확대로 이어지는 주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김 대통령도 9일 오슬로에서 가진 내외신 기자회견을 통해 이 점을분명히 했다.김 대통령은 “노벨상은 한번 받으면 끝인 올림픽 금메달과 달리 더 큰 부담이 주어진다”며 “한국과 세계의 인권,민주주의,그리고 평화를 위해서 더 한층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 대통령이 평화상을 수상하게 된 결정적 동기가 지난 6월 남북정상회담과 6·15 남북공동선언이라는 점은 한반도 평화를 바라는 세계인들의 기대를 읽게 한다.김 대통령 개인의 업적을 평가하는 차원을넘어 앞으로 남북한이 일궈낼 화해와 협력,평화의 새 시대를 염원하는 국제사회의 뜻이 담긴 것이다. 이는 북한으로 하여금 대외개방·대남(對南)화해 정책을 가속화하는압박요인으로도 작용할 전망이다. 남한과의 교류협력만이 국제사회의지원을 이끌어 낼 유일한 대안이라는 점을 각인시킴으로써 ‘남북화해시대’를 되돌릴 수 없는 역사의 흐름으로 굳히는 기본 토대를 구축하게 된 것이다. 김 대통령의 평화상 수상은 또 우리의 대외적 신인도를 높여 경제적으로도 적지 않은 효과를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김 대통령이 국내 일각의 비판여론을 무릅쓰고 직접 평화상 시상식에 참석한 것도 ‘KOREA’라는 브랜드,즉 한국의 대외적 이미지를 최대한 끌어올리겠다는판단이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경제계에서는 이번 수상을 통해 한국 기업의 광고효과는 물론 외국인들의 투자와 대북진출 확대에 적지 않은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오슬로 오풍연특파원 poongynn@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노벨상 상장·메달·상금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10일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면서 금메달과 디플로마(증서),900만크로네(한화 12억원 상당)의 상금을 함께 받았다. 지름 6.6㎝,무게 200g의 메달은 앞면에 노벨의 초상과 함께 그의 출생·사망연도가 라틴어로 새겨져 있다.뒷면에는 3명의 남자가 형제애에 기초해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모습과 함께 라틴어로 ‘Pro pace et fraternitate gentium(인류의 평화와 인류애를 위해)’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또 33㎝×20㎝ 크기의 디플로마는 신낭만주의 표현기법을 사용하는노르웨이 화가 엘링 라이탄이 제작한 것으로,한쪽 면은 그림으로 채우고 다른 면은 상 수여 사실을 명기해 예술작품처럼 보인다. 상금은 900만크로네로 역대 최고액이다.노벨기금 운용에 따라 매년달라지며,시상 첫해인 1901년 15만800크로네로 시작됐다.지금까지는지난해 790만크로네가 최고액이었다. 상금은 시상식 1주일 뒤 달러로 환산돼 김 대통령에게 송금된다.김대통령은 상금을 노벨상 취지에 맞게 사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오슬로 오풍연특파원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수상식 반응

    여야는 10일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대해 일제히 성명과 논평을 내고 환영과 축하의 뜻을 표시했다.특히 한나라당과 자민련은 수상식 전 출국 재고를 요구하는 듯한 입장을 보였던 것과 비교되는 반응을 보였다. 민주당은 박병석(朴炳錫)대변인의 성명을 통해 “김대통령의 수상은민주주의와 인권·평화를 위해 헌신해온 김대통령에 대한 평가일 뿐아니라, 이를 위해 함께 싸워 온 우리나라와 국민에게 보내는 전 세계인의 경의의 표시”라고 해석하면서 “수상을 계기로 우리 당은 안으로는 개혁을 완수하고 밖으로는 민족의 화해와 평화,세계의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데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한나라당은 대변인 공식 논평을 통해 환영의 뜻을 표시했다.권철현(權哲賢)대변인은 “수상을 축하해 마지 않는다”면서 “김대통령이세계가 박수를 보낸 수상식장에서의 마음가짐 그대로,국민들이 박수를 보낼 수 있는 ‘오슬로 국정쇄신 구상’을 갖고 귀국하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자민련 변웅전(邊雄田)대변인도 성명을 내고 “이번 수상은전 생애를 통해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한반도 평화를 위해 기울여 온 노력을 국제사회가 인정한 것이기에 더욱 빛난다”면서 “이를 계기로 김대통령이 산적한 내치 및 남북문제도 빛나는 결실을 거두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김상연기자 carlos@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시상식 초청인사 소감

    10일 오슬로시청에서 열린 노벨평화상 시상식에 참석한 국내 인사들은 한결같이 “조국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느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 다음은 초청인사들의 소감. ■이문영(경기대 석좌교수)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상 수상은 한국을포함한 동양 정치문화에서 하나의 돌연변이다.대통령과 함께 4년 4개월 동안 옥고를 치른 나로서는 보람을 느끼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김대통령이 노벨상을 받기까지 그동안 많은 고생을 한 국민에게 그몫을 돌려주는 일이기도 하다. ■김민하(민주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 수석부의장)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대통령으로서 더욱 민주주의와 인권,평화통일을 위해 정진하기 바란다.아울러 국내의 현안문제(정치·경제·사회 등)가 수준 높고 획기적으로 발전 개혁되도록 특단의 조치들을 강구하기 바란다.우리도다시 한번 자신과 주위를 재점검해서 국가도약과 민족발전의 계기로삼아야 한다. ■박정기(고 박종철군 부친)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그러나 국가보안법이 그대로 남아 있고,인권법이 아직까지 제정되지 않고 있는현실은 노벨평화상의 의미를 어색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지적하지않을 수 없다.이런 문제는 조속히 해결돼야 한다. ■지명관(한림대 교수) 김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이 곳에 살고 있는 우리 교포들의 키가 2m 정도로 갑자기 커진 것 같다.수상 순간 희열의 눈물이 어렸다.동시에 많은 회한과 슬픔이 되살아났다.김대통령의 심경도 그럴 것이다. ■김태동(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장) 김대통령이 독재자의 핍박을 받으면서 민주주의와 인권수호에 공을 세웠다면,이제 21세기 통일과업은 그가 놓은 초석 위에서 모든 국민이 참여하고 화합하면서 평화롭게 완수해야 할 것이다.이를 위해 우리나라는 앞으로 많은 수의 ‘인물 김대중’을 필요로 할 것이다. ■최장집(고려대 교수) 김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한국사의 큰전환점을 상징하는 뜻 깊은 사건이라고 본다.이번 수상은 나를 포함한 지식인들로 하여금 탈냉전시대의 한반도에 맞는 사상이나 철학에대한 탐구를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을 열었다고 생각한다. ■안병철(세종성당 신부) 김대통령의 노벨상 수상은 한 개인의 집요하고도 끈기있는 노력과 만난을 이겨낸 용기있는 삶이 국제적으로 공인받는 자리이자 한국 땅에서의 민주주의 승리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김대통령의 신앙적 삶이 구체화된 모습을 공인받는 자리에 함께할수 있어 큰 영광이다. ■최진경(공주대 특수교육과 3년) 시상식장에 들어서는 순간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참으로 자랑스럽게 느껴졌다.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잊지 않도록 겨레와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부터 찾아최선을 다해 열심히 할 것을 다짐했다.전공에 맞게 앞으로 장애인들을 위한 삶을 사는 데 더욱 노력하는 것이 이런 귀중한 기회를 준 데대한 보답일 것이다. ■이우경(연세대 의대 2년) 우리도 노벨상을 받게 된 나라인 만큼 국민 모두가 단합하고 노력해 의식과 생활태도의 선진화를 이루어야 한다.노르웨이 현지 TV와 신문이 연일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호텔이나건물 등에 대형 태극기가 펄럭이는 것을 보니 가슴이 뜨거워졌다. ■김선영(부산과학고 3년) 평범한 고교생으로서 노벨상 수상의 역사적 현장을 직접 본 것은 꿈 같은 일이다.앞으로 노벨물리학상에 도전할 수 있도록 우리나라 과학발전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돼야겠다고다짐했다. ■강복기(홍성교도소 보안과장) 시상식에 초청된 감회야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모든 영광을 민주화와 인권신장에 앞장서 온 국민들과 나누고 싶다. 오슬로 오풍연특파원
  • 김대중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北 당국·언론들 ‘침묵’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대해 북한은 지난 10월13일 선정 발표 때와 마찬가지로 수상식이 거행된 10일에도 어떠한공식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북한 당국이 공개적인 축하인사를 보내지 않은 것은 물론,언론들도평화상 수상 자체를 보도하지 않았다. 북측이 김대통령의 평화상 수상 사실을 외면하는 것은 어떤 측면에선 자연스럽다.‘자본주의 진영의 잔치’에 ‘사회주의 북한’이 장단을 맞출 이유가 없다는 해석이 그것이다. 특히 ‘남북정상회담은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주도로 이뤄진것’이라고 주민들에게 선전해온 북한이고 보면,김대통령의 단독 수상 사실을 반기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북측이 평화상 수상을 반가워하지 않는 것은 아닌 것같다.김대통령은 지난 9일 밤(한국시간) 오슬로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측으로부터 공식적 축하는 없었지만,간접적 축하의 말은 들었다”고밝혔다.북측이 “우리 동족이 받아 기쁘다”는 말을 전해 왔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언론보도는 없었지만,일부 북한 인사가 김대통령의평화상 수상 사실을 알고 있음이 감지되기도 했다.지난달 30일 2차 이산가족 상봉단의 일원으로 서울에 왔던 북한측 이산가족과 관계자들은김대통령의 노벨상 수상사실을 남측 가족들이 얘기하자 “알고 있다”면서 “우리 장군님은 더 큰 상을 타셨다”고 말했다. 이석우기자 swlee@
  • “인권·평화 위해 여생 바칠 것”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한국 및 동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을 위한 노력과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증진시킨 공로로 새천년첫번째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김 대통령은 10일 오후 9시(한국시간)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 시청메인 홀에서 하랄드5세 국왕과 각 국 외교사절,국내외 초청인사 등 1,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된 시상식에서 군나르 베르게 노벨위원장으로 부터 노벨평화상 디플로마(증서)와 메달,900만 크로네(한화12억원 상당)의 상금을 받았다. 이날 노벨평화상 시상식은 지난 6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에 이어,김대통령이 만들어 낸 또 한 편의 위대한 드라마였다.김 대통령은 시상식을 통해 자신은 물론 우리나라의 위상을 세계 무대에 드높였다. 김 대통령은 수상연설에서 “노벨평화상은 세계 모든 인류에게 평화를 위해 헌신하도록 격려하는 숭고한 메시지”라며 “나머지 인생을바쳐 한국과 세계의 인권과 평화,우리 민족의 화해 협력을 위해 노력할 것을 맹세한다”고 밝혔다. 김 대통령은 이어 “(나에게) 노벨평화상을 준 이유 중의하나는 남북 정상회담과 그 이후에 전개되고 있는 남북 화해협력 과정에 대한평가라고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은 예상했던 대로 참으로 힘든 과정이었다”면서 “나와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은 민족의 안전과 화해협력을 염원하는 입장에서 결국 상당한 수준의 합의를 도출해 내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시상식 말미에 노르웨이의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 바라트 두에와 한국 출신의 비올라 연주가 정순미씨 부부가 ‘파사 카글리아(불꽃같은열정)’를 연주했다. 또 김 대통령이 베르게 노벨위원회 위원장으로메달과 증서를 받는 전후에 소프라노 조수미씨가 ‘입맞춤' ‘이히 리베 디히’ ‘아리 아리랑’ 등 3곡의 축하노래를 불렀다. 앞서 김 대통령은 이날 노르웨이 ‘어린이 2,000명과의 만남’ 행사에 참석해 ‘평화의 횃불’에 점화한 뒤 “어린이는 우리 인류의 희망이자 미래”라는 평화의 메시지를 낭독했다.이어 하랄드5세 국왕초청 오찬과 노벨위원회 초청 공식 연회에 잇따라 참석,한반도 평화에 대한 노르웨이의 지지와 성원에 사의를 표했다.이날 오슬로 시민수천명은 김 대통령의 수상을 축하하는 횃불행진을 벌였으며,연도에도 수천명의 시민들이 나와 태극기와 노르웨이 국기를 흔들며 김 대통령을 환영했다.김 대통령은 이날 오후 수상을 기념해 미국 CNN과 1시간에 걸친 특별인터뷰를 가졌으며,이 장면은 특집 다큐멘터리와 함께 세계 각 국에 생중계됐다. 오슬로 오풍연특파원 poongynn@
  • 김대중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연설 전문

    국왕 폐하,왕세자와 공주 등 왕실가족 여러분,노르웨이 노벨위원회위원 여러분,그리고 내외 귀빈과 신사 숙녀 여러분. 노르웨이는 인권과 평화의 성지입니다.노벨평화상은 세계 모든 인류에게 평화를 위해 헌신하도록 격려하는 숭고한 메시지입니다.저에게 오늘 내려주신 영예에 대해서 다시 없는 영광으로 생각하고 감사를 드립니다.그러나 저는 한국에서 민주주의와 인권,그리고 민족의 통일을 위해 기꺼이 희생한 수 많은 동지들과 국민들을 생각할 때 오늘의 영광은 제가 차지할 것이 아니라 그 분들에게 바쳐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 국민의 민주화와 남북 화해를 위한 노력을 아낌없이 지원해 주신 세계의 모든 나라와 벗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 노벨평화상을 저에게 주신 이유 중의 하나는 지난 6월에 있었던 남북 정상회담과 그 이후에 전개되고 있는 남북 화해·협력 과정에 대한 평가라고 알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노벨위원회가 긍정적으로 평가해 준 최근의 남북관계에 대해 몇 말씀 드리겠습니다.저는 지난 6월에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북한에 갈 때 여러 가지 걱정이 많았지만 오직 민족의 화해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일념으로 출발했던 것입니다. 회담이 잘 된다는 보장도 없었습니다.남북은 반세기 동안 분단된 가운데 3년에 걸친 전쟁을 치렀으며 휴전선의 철책을 사이에 놓고 불신과 증오로 50년을 살아 왔습니다. 이러한 남북관계를 평화와 협력의 방향으로 돌리기 위해 저는 98년 2월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햇볕정책을 일관되게 주장했습니다.그것은 첫째, 북에 의한 적화통일을 용납하지 않는다.둘째,남에 의한 북한의 흡수통일도 결코 기도하지 않는다. 셋째, 남북은 오로지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평화적으로 교류·협력하자는 것이었습니다.완전한 통일에 이르기까지는 얼마가 걸리더라도 서로 안심하고 하나가 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었습니다. 북한은 처음에는 우리 햇볕정책을 북한을 전복시키려는 음모로 여기고 강하게 반발했습니다.그러나 우리의 일관되고 성의있는 자세와 노르웨이를 비롯한 전세계 모든 나라의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는 마침내 북한의 태도를 바꾸게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남북 정상회담은 예상했던 대로 참으로 힘든 협상이었습니다.그러나 우리 두 사람은 민족의 안전과 화해·협력을 염원하는 입장에서 결국 상당한 수준의 합의를 도출해 내는 데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첫째,우리는 조국의 통일을 자주적이고 평화적으로 이룩하자,또 통일을 서두르지 말고 우선 남과 북이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평화적으로 교류 협력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자는 데 합의했습니다. 둘째,종래 남북 간에 현격한 차이가 있었던 통일방안에 대해서도 상당한 합의점을 도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북한은 우리가 주장한 통일의 전 단계인 ‘1민족 2체제 2독립정부’의 ‘남북연합제’에 대해 ‘낮은 단계의 연방제’라는 형태로 접근해 왔습니다.분단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통일에의 제도적 접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셋째,한반도에 미군이 계속 주둔해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안전을 유지하도록 하자는 데에도 합의했습니다. 북한은 지난 50년 동안 남한에서의 미군 철수를 최대 쟁점으로 주장했습니다.저는 김정일 위원장에게 강조했습니다.“미·일·중·러의 4강에 둘러싸여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특수한 지정학적인 위치에 있는 우리로서는 미군의 한반도 주둔은 필수불가결하다.미군은 현재뿐 아니라 통일 후에도 필요하다.유럽을 보라.당초 ‘나토’의 창설과 미군의 주둔은 소련과 동구 공산권의 침략을 막는 것이 목적이었다.그러나 공산권이 멸망한 지금도 ‘나토’와 미군이 있지 않느냐. 유럽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그 존재가 계속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 김정일 위원장은 뜻밖에도 종래의 주장을 접고 적극적인 찬성의 뜻을 나타냈는데,이는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참으로 뜻 깊은 결단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우리는 이산가족이 만나는 데 합의했으며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원만하게 실천에 옮겨지고 있습니다.경제협력에 대해서도 합의를 했습니다.이미 투자보장,이중과세방지 등 4개의 협정을체결하는 합의서에 서명했습니다.우리는 그 동안 북한에 대해 인도적 차원에서 비료 30만t과 식량 50만t을 지원했습니다.그리고 사회·문화 교류에 대해서도 합의해 스포츠,문화예술,관광 교류 등이 점차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또한 남북 간 긴장 완화와 평화 정착을 논의하기 위한 남북 국방장관회담이 열려 ‘다시는 전쟁을 하지 말자’는 데 합의했습니다.남북간의 분단된 철도와 도로를 다시 연결하기 위해 양쪽 군이 협력하는 데에도 합의했습니다. 한편 저는 남북관계의 개선만으로는 한반도에서 평화와 협력을 완벽하게 성공시킬 수 없다는 판단 아래,북한이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나아가 일본과 다른 서방국가들과도 관계를 개선할 것을 적극 권유했습니다.그리고 서울로 돌아와서 ‘클린턴’대통령,‘모리’총리등 미·일 양국의 정상에게도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권고했습니다. 또한 저는 지난 10월에 서울에서 열렸던 제3차 ASEM 정상회의에서 유럽의 우방국가들에게도 북한과 관계 개선을 하도록 권고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지금북·미 관계와 유럽·북한 관계는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습니다.이러한 일들은 한반도의 평화에 결정적인 영향과 진전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존경하는 귀빈 여러분. 제가 민주화를 위해서 수십 년 동안 투쟁할 때 언제나 부딪힌 반론이 있었습니다.그것은 아시아에서는 서구식 민주주의가 적합하지 않으며 그러한 뿌리가 없다는 주장이었습니다.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아시아에는 오히려 서구보다 훨씬 더 이전에 인권사상이 있었고,민주주의와 상통한 사상의 뿌리가 있었습니다.‘백성을 하늘로 삼는다.’‘사람이 즉 하늘이다.’‘사람 섬기는 것을 하늘 섬기듯 하라. ’이런 것은 중국이나 한국 등지에서 근 3,000년 전부터 정치의 가장 근본요체로 주장되어 온 원리였습니다. 또한 2,5000년 전에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에서는 ‘이 세상에서 내 자신의 인권이 제일 중요하다’는 교리가 강조되었습니다. 이러한 인권사상과 더불어 민주주의와 상통되는 사상과 제도도 많이 있었습니다. 공자의 후계자인 맹자는 ‘임금은 하늘의 아들이다.하늘이 백성에게 선정을 펴도록 그 아들을 내려보낸 것이다.그런데 만일 임금이 선정을 하지 않고 백성을 억압한다면 백성은 하늘을 대신해 들고일어나 임금을 쫓아낼 권리가 있다’고 했습니다.이것은 존 로크가 그의 사회계약론에서 설파한 국민주권사상보다 2,000년이나 앞선 것입니다. 중국과 한국에서는 이미 기원 전에 봉건제도가 타파되고 군현제도가 실시되었습니다. 공무원을 시험에 의해서 뽑는 제도는 1,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이와 병행해서 임금을 포함한 고관들의 권력 남용을 감시하는 강력한 사정제도도 존재했습니다.이와 같이 민주주의에 대한 풍부한 사상과 제도의 뿌리가 있었던 것입니다.다만 아시아에서는 대의적 민주제도의 기구는 만들어 내지 못했습니다.그것은 서구사회의 독창적인 것으로서 인류의 역사에 크게 기여한 훌륭한 업적이라고 할 것입니다. 서구의 민주제도는 민주적 뿌리가 있는 아시아에서 이를 채택할 때 아시아에서도 훌륭하게 기능하고 있는 것입니다.한국·일본·필리핀·인도네시아·태국·인도·방글라데시·네팔·스리랑카 등 수 많은 사례들이 있습니다.동티모르에서 주민들이 민병대의 혹독한 학살과 탄압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가지고 독립을 지지하는 투표에 참가했습니다.지금 미얀마에서 아웅산 수지 여사가 고난의 투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아웅산 수지 여사는 미얀마 국민과 민심의 폭 넓은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저는 언젠가 미얀마에 민주주의가 반드시 회복되고 국민에 의한 대의정치가 다시 부활하는 날이 오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민주주의는 인간의 존엄성을 구현하는 절대적인 가치인 동시에 경제발전과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민주주의가 없는 곳에 올바른 시장경제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또한 시장경제가 없으면 경쟁력 있는 경제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민주주의적 기반이 없는 국가경제는 사상누각일 뿐이라고 확신했습니다.그래서 98년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과 함께 ‘생산적 복지’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지난 2년 반 동안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그리고 생산적 복지의 병행 실천이라는 국정철학 아래 국민의 민주적 권리를 적극 보장하고 있습니다.금융·기업·공공·노동 부문의 4대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습니다.복지의 중점을 저소득층을 포함한 모든 국민의 인력 개발에 둠으로써 이제 상당한 성과를 올리고 있습니다. 한국의 개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이러한 개혁을 조속히 마무리함으로써 전통산업과 정보산업,생물산업을 삼위일체로 발전시켜 세계 일류경제를 실현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21세기는 지식정보화시대로서 부(富)가 급속히 성장하는 시대입니다.동시에 정보화시대는 부의 편차가 심화되어 빈부격차가 급격히 확대되는 시대이기도 합니다.국내 뿐만 아니라 국가 간의 빈부격차도 커져 갑니다.이것은 인권과 평화를 위협하는 또 하나의 심각한 현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우리는 21세기에 있어서도 계속해서 인권의 탄압과 무력의 사용을 적극 반대해야 합니다.아울러 정보화에서 오는 새로운 현상인 소외계층과 개발도상국의 정보격차를 해소함으로써 인권과 평화를 저해하는 장애요인을 제거해야 합니다. 존경하는 국왕 폐하,그리고 신사 숙녀 여러분. 마지막으로 제 개인에 대해서 잠시 말씀드릴 것을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저는 독재자들에 의해서 일생에 다섯 번에 걸쳐서 죽을 고비를 겪어야 했습니다.6년의 감옥살이를 했고,40년을 연금과 망명과 감시 속에서 살았습니다. 제가 이러한 시련을 이겨내는 데에는 우리 국민과 세계의 민주인사들의 성원의 힘이 컸다는 것은 이미 말씀 드렸습니다.동시에 제 개인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첫째,저는 하느님이 언제나 저와 함께 계신다는 믿음 속에 살아 오고 있으며,저는 이를 실제로 체험했습니다.1973년 8월 일본 동경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을 당시 저는 한국 군사정부의 정보기관에 의해 납치되었습니다.전 세계가 이 긴급뉴스에 경악했었습니다.한국의 정보기관원들은 저를 일본 해안에 정박해 있던 그들의 공작선으로 끌고 가서 전신을 결박하고 눈과 입을 막았습니다.그리고 저를 바다에 던져 수장하려 했던 것입니다.그때 저의 머리 속에 예수님이 선명하게 나타나셨습니다.저는 예수님을 붙잡고 살려 줄 것을 호소했습니다.바로 그 순간 저를 구원하는 비행기가 와서 저는 죽음의 찰나에서 구출되었던 것입니다. 또 하나,저는 역사에 대한 믿음으로 죽음의 위협을 이겨 왔습니다.1980년 군사정권에 의해서 사형 언도를 받고 감옥에서 6개월 동안 그집행을 기다리고 있을 때 저는 죽음의 공포에 떨 때가 자주 있었습니다.그러나 이를 극복하고 마음의 안정을 얻는 데는 ‘정의필승’이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저의 확신이 크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모든 나라 모든 시대에 있어서, 국민과 세상을 위해 정의롭게 살고 헌신한 사람은 비록 당대에는 성공하지 못하고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하더라도 역사 속에서 반드시 승자가 된다는 것을 저는 수 많은 역사적 사실 속에서 보았습니다.그러나 불의한 승자들은 비록 당대에는 성공을 하더라도 후세 역사의 준엄한 심판 속에서 부끄러운 패자가 되고 말았다는 것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거기에는 예외가 없었습니다. 국왕 폐하,그리고 귀빈 여러분. 노벨상은 영광인 동시에무한한 책임의 시작입니다. 저는 역사상의 위대한 승자들이 가르치고 알프레도 노벨 경(卿)이 우리에게 바라는대로 나머지 인생을 바쳐 한국과 세계의 인권과 평화,그리고 우리 민족의 화해·협력을 위해 노력할 것임을 맹세합니다.여러분과 세계 모든 민주인사들의 성원과 편달을 바라마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대통령 “귀국후 국정개혁 단행”

    [오슬로 오풍연특파원]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부인 이희호(李姬鎬)여사는 2000년 노벨평화상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8일 밤 오슬로에도착,나흘간의 노르웨이 방문 일정에 들어갔다.앞서 김대통령은 오전 서울공항 출국인사에서 “국정의 중요 사항은 밖에서도 차질없이챙기겠다”면서 “귀국(14일) 후 국민 여러분이 바라는 국정 개혁을단행하겠다”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노벨평화상 수상의 영광은 내 개인의 몫이 아니라 지난 40년 동안 민주주의와 인권,남북 화해·협력의 새 시대를 열기 위해 변함없이 동참하고 성원해준 국민 여러분 모두의 몫”이라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10일 노벨상 수상연설과 노벨위원회 주최 기자회견을통해 우리나라의 인권과 민주주의 발전상,남북 화해·협력의 진전 상황을 전 세계인들에게 알릴 것”이라며 “ 대한민국의 이미지와 대외신인도를 높이는 귀중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poongynn@
  • 金대통령·金正日위원장‘NGO 평화상’공동 수상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한반도 평화를 증진한 공로로 비정부기구(NGO)가 주는 국제평화상을 공동 수상한다. 세계 최대의 국제분쟁 NGO인 ‘서치 포 커먼 그라운드(Search for Common Ground)’는 7일 지난 6월 남북정상회담과 남북이산가족 상봉등으로 반세기 동안의 냉전을 종식하고 한반도 평화정착에 돌파구를마련한 김대통령과 김위원장을 올해의 국제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 기구는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북한을 방문할 수 있었던 계기도 김대통령과 김위원장의 노력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김위원장이 그동안 주로 동구권 국가 등에서 명예교수나 명예박사등을 받은 적은 있으나 서방 진영에서 처음으로 상을 받는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시상식은 오는 14일 워싱턴 주재 핀란드 대사관에서 열리며,김대통령과 김위원장을 대신해 양성철(梁性喆) 주미 한국 대사와 이형철(李亨哲)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대사가 수상한다. 지난 1982년 설립된 이 기구는 현재 175명의 직원과 수천명의 회원이 9개 국가에 지부를 두고 국가 및 민족간 분쟁 예방과 화합을 추구하고 있다.
  • 韓和甲 최고위원 귀국 안팎

    민주당 한화갑(韓和甲)최고위원은 8일 ‘권노갑(權魯甲)최고위원 2선 후퇴론’의 배후자로 지목된 것에 불쾌감을 표시했다.한 최고위원은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김대중(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축하 행사에 참석한 뒤 이날 귀국했다. 한 최고위원은 ‘2선 후퇴론’의 배후로 거론된 데 대해 “‘말이아니면 하지 말고,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고 했다”며 일축했다.권최고위원과의 회동 계획을 묻자 “그런 것을 생각해보지 않았다”며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그러나 정동영(鄭東泳)최고위원의 주장에 대해서는 “정치인은 누구든지 소신을 말할 수 있으며,민주당 당원이자 최고위원으로서 당을위해 충정을 얘기한 것”이라고 두둔했다.‘2선 후퇴론’에 관해서는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정치인의 기본 자세이지만 어떻게 반응할지는 각자 판단에 달린 것”이라고 권 최고위원을 겨냥한 듯한 발언을 했다.한 최고위원은 ‘일본에 있을 때(6일) 김 대통령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느냐’는 질문에 “박지원(朴智元)전 문화관광부장관으로부터 ‘당의단합을 위해 먼저 이니셔티브를 취했으면 좋겠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공개했다.한편 박 전 장관은 같은날 권최고위원도 만나 “어른다운 포용력으로 사태를 풀어야 한다”는 건의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종락기자
  • 김대통령 노벨상 기념우표 발행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기념하는 우표가 나왔다. 우정사업본부(본부장 李敎鎔)는 김 대통령의 노벨상 수상을 기념하기 위해 기념우표·소형 시트 각 1종과 우표첩을 발행한다고 8일 밝혔다.시상식이 10일(한국시간)로 일요일이어서 하루 앞당겨 전국 우체국에서 살 수 있다.우표는 400만장,소형 시트는 50만장으로 모두 170원짜리다.기념우표첩은 오는 27일 4만부가 발행되며 7,000원에 판매된다.우표전지 1장(우표 20장),소형시트 1장,초일(FDC:First Day Cover)봉투 1장이 들어있다. 박대출기자 dcpark@
  • [사설] 집권여당 內紛 안된다

    민주당 권노갑(權魯甲)최고위원의 ‘2선 후퇴론’을 싸고 당내 파워게임 양상까지 보이던 집권여당내 분란은 당총재인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자제 당부에 이어 7일 최고위원회가 당의 단합을 강조함으로써 다소 진정기미를 보이고 있어 다행이다.그러나 ‘후퇴론’을 제기했던 정동영(鄭東泳)최고위원이 “충정에서 한 말”이라며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당의 전면 쇄신’ 등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있는 데다 중앙당 전·현직 부위원장들이 정 최고위원을 회의장에까지 찾아와 거세게 항의하는 등 파문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어 우려된다. 최근 난국 타개를 위한 국정쇄신의 필요성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는가운데 공론화된 이번 ‘후퇴론’은 당내 언로의 활성화나 여권의 새로운 국정운영 틀의 모색 차원에서 볼 때 긍정적인 측면이 없는 것은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파문이 비록 당을 아끼는 충정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지라도 당내 세력간의 향후 대권과 관련한 권력투쟁의 양상으로 국민의 눈에 비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 나라 전체가 경제난 속에 허덕이는데 집권여당이 내부 혼란상을 보인다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다.현 시점에서 정치권이 가장 먼저해야 할 일은 국회에서 새해 예산안을 심의,처리하고 각종 민생·개혁 법안을 입법하는 것이다.비록 원내 소수당이지만 국정을 책임진여당으로서 여기에 전념해야 한다.예산 심의에 정기국회의 회기도 모자라 임시국회까지 소집하기로 한 마당에 당내 돌출 변수로 국민을불안케 해서는 안된다.국정쇄신을 위한 여당의 내부적 정리는 국회를끝낸 뒤에, 그리고 김대통령이 국가적 영예인 노벨평화상을 받고 귀국한 뒤에 난상토론을 해서라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일에는 선후(先後)가 있고 완급(緩急)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동안 당 안팎에서는 집권여당의 국정운영 능력이 미흡하고 정국주도권을 야당에 빼앗기고 있다는 지적이 자주 제기되었다.또 당이시스템에 의해서가 아니라 특정 인사들을 중심으로 한 인치(人治)에의해 움직인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이같은 문제가 당내 회의체를통해 제기되고 토의되는 것 자체는 정당 민주주의의 활성화나 당론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한다는 점에서 ‘독(毒)이 아니라 보약(補藥)’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논란은 특정인 배제를 겨냥한 듯한 ‘후퇴론’에 ‘음모론’으로 맞불을 놓는 등 당내 실력자간 혹은 소그룹간 권력 쟁탈전 양상으로 비쳐 집권당 스스로가 해당(害黨)행위를 한 셈이 됐다. 민주당의 지도부와 소속 국회의원들은 국정운영 후반기에 치러야 할마지막 ‘개혁의 결전’을 위해 다시 한번 흐트러진 전열을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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