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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만사태 대응 미흡”/노대통령 지적

    노태우 대통령은 25일 하오 이승윤 부총리 등 경제장관회의를 주재,페르시아만사태와 내년도 경제운용 방향을 보고받는 자리에서 『올해 추곡수매량과 수매가는 반드시 합리적인 수준에서 결정되도록 당정간에 협의를 긴밀히하라』고 지시했다. 노 대통령은 또 『내년에도 임금이 안정적인 수준에서 결정되고 평화로운 노사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우리 경제의 가장 중요한 당면과제중의 하나』라고 지적,관계장관들이 미리미리 적극적으로 대응하라고 아울러 지시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페르시아만사태로 대내외 경제환경이 급변하고 있고 각국이 이에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는 데 비해 우리의 대응노력은 아직 미흡하다』고 말하고 『정책조정을 늦추어 경제왜곡을 심화시키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강조했다.
  • 합의없는 총리회담/북,한국에 책임 전가

    【내외】 북한은 16일 제2차 남북고위급회담이 쌍방간 이렇다할 합의를 보지 못한 채 끝난 것에 대한 책임을 한국측에 전가했다. 북한은 이날 하오 8시50분 중앙방송 논평을 통해 이번 2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북한측이 내놓은 「불가침선언」이 『북과 남이 평화통일을 향해 나가는 데서 함께 준수해야 할 남북관계에 관한 새로운 규범을 밝힌 것이고 북침위협도,남침위협도 없는 평화로운 북남관계를 하게 하는 기초문건으로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이 선언에는 한국측이 제기하는 문제들도 충분히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강변했다.
  • 세르게이 로고프 박사/소 과학아카데미 미ㆍ가 연구소(특별기고)

    ◎“남ㆍ북한 군축이 통일의 첫걸음”/주변국 포함,신뢰구축에 주안 둬야/일의 잠재적 군사력도 제한 바람직 최근 한국을 방문중인 소련의 군축문제 전문가 세르게이 로고프 박사가 한반도를 비롯한 극동지역의 군축문제에 관해 본지에 특별 기고를 해왔다. 한반도를 둘러싼 극동지역에서의 급격한 냉전질서 청산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는 요즘 남북한 군축문제에 대해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현재 소련과학아카데미 산하 미국 및 캐나다연구소 군축연구부의 책임자로 일하고 있는 그의 기고문은 군축문제에 관해 인식의 지평을 넓혀 줄 뿐만 아니라 남북한 군축문제에 관한 소련측 입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다음은 그의 기고문의 전문이다. 냉전은 종식됐고 세계질서는 양극체제에서 다극체제로 변화하고 있다. 이 변화과정을 어떻게 관리하며,군사적 안정을 위협하지 않으면서 필요한 변화를 북돋울 것인가,이것이 이 시대의 주요한 과제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토나 바르샤바조약기구 같이 냉전시대에 만들어진 안보기구들은 새로운 상황에서 비효율적이다. 전지구적인 차원에서는 물론 지역적인 차원에서도 새로운 안보협력체제가 필요하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빚어진 페르시아만사태에서 보듯이 냉전질서가 무너진 지금 새로운 안보협력체제가 없이는 군사력으로 패권을 장악하려는 위험한 시도를 계속 경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반도를 비롯한 극동지역은 아직도 긴장이 계속되고 있는 가장 위험한 지역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독일이 통일된 현재 한반도는 냉전으로 분단된 유일한 국가가 됐다. 한반도의 군사력 집중은 유럽을 제외하고는 세계에서 가장 대규모이다. 유럽에서는 빈협정의 결과,군사적 대치상황이 멀지 않아 종식되지만 한반도에서는 군축협상이 시작되지도 않았다. 한반도에는 아직도 군비경쟁이 계속되고 있고 보다 정밀화된 신형무기들이 양측 모두에 의해 도입되고 있다. 상황은 한반도에 배치된 전략 핵무기에 의해 더욱 악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하에서 극동지역의 군비축소와 군사적 안정을 위한 조치들이 시급하다. 이러한 조치들은 한반도의 통일을 포함,평화로운 정치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미소간 군축회담과 나토­바르샤바조약기구간의 군축회담 경험은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안정을 촉진시키는 데 6가지 분야가 있음을 보여준다. 6가지 분야는 다음과 같다. ­병력 수ㆍ배치ㆍ군사조직 개편 등 상호 군사력 감축 ­무기생산 기술의 제한 및 군사예산 감축 등 경제적 기술적 제한 ­방어적 군사교리의 개발 그리고 이에 입각한 훈련 및 군사연습. ­군축조약 실현검증을 위한 방안 마련 ­군비통제를 항구화할 수 있는 제도 마련 ­군 조직 상호간의 연계강화 6가지 분야에서 마련된 방안들은 군축의 전통적 목표를 넘어서,미국과 소련으로 하여금 경쟁을 완화시키고 나아가 적대감으로부터 상호협력으로 두 나라의 관계를 변화시켰던 것이다. 한반도에서 이러한 방법들이 얼마나 적용될 수 있을 것인가. 사견으로는 한반도가 유럽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유럽 모델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잘못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군축의 몇가지 방법은 한반도에서 시도한다면 성공을거둘 수 있을 것이다. 군축이 정치과정을 대체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적 관계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 사견으로는 한반도문제의 평화적 해결은 반드시 실질적인 군축을 거쳐야 한다고 보여진다. 군축의 첫번째 단계로는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기습공격의 가능성을 줄이는 것이다. 이 목표를 위해서는 한반도의 군사력 감축,특히 비무장지대에 집중돼 있는 병력의 감축협상이 요구된다. 비무장지대는 정말로 비무장화 돼야 하며 이에 덧붙여 비무장지대의 인접지역에 공격용 무기 제한지역이 새로이 설정돼야 한다. 이외에 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한 조치들이 시급히 취해져야 한다. 한반도의 군축에는 이밖에 다음과 같은 방안이 포함될 수 있다.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 그리고 공격용 전투기와 탱크 등 공격용 무기의 제한. ­남북한 양측이 군사교리를 비공격적으로 바꾼다. ­국방예산의 동결,나아가서는 군비지출의 감축. ­군사정보와 계획의 교환을 위한 쌍무 위원회의 창설. ­군사훈련의 횟수와 범위 제한. ­위기방지센터의 창설. 한반도의 군축방안들은 극동지역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군축노력과 연계돼야 한다. 물론 여기에는 미국 소련 중국 일본이 포함돼야 한다. 극동지역 전체의 군축논력은 신뢰구축에 주안점을 두어야 하며 일정 시점에 이르러서는 지상군과 해군력 특히 미소 양국의 군사력 감축을 가져 올 것이다. 극동지역의 새로운 군축틀 속에는 일본의 군사적 잠재력에 대한 제한도 다뤄져야 할 것이다. 극동지역에서의 군축틀은 관련당사국들의 집중적인 협상으로서만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지만 공식적인 협상 이전에라도 공식협상에 대비하기 위해서 군축전문가 사이에 활발한 논의가 전개될 필요가 있다.
  • 자위대 해외파병 허용등 논의/일,헌법개정 임시국회 개원

    【도쿄 AFP 로이터 연합 특약】 전후 처음으로 군사요원의 해외파병을 허용하게 될 일련의 법률개정을 위해 일본의 임시국회가 12일 한달간의 일정으로 개원됐다.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일본총리는 이날 개원 연설을 통해 자위대의 해외파병에 관한 계획을 지지해줄 것을 촉구했다. 그는 『일본의 국제적인 역할은 일본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막중하다』고 전제한뒤 『일본은 세계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가이후 총리는 이어 『천연자원이 부족한 일본은 전쟁없는 평화로운 세계의 주요 수혜국』이라면서 국제적인 대 이라크 제재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로 자위대의 해외파병을 승인해줄 것을 촉구했다. 사회당 공산당 등 대부분의 야당들은 자위대의 해외파병을 반대하고 있으며 민사당은 찬성하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정부소식통을 인용,자민당과 정부의 긴밀한 협의끝에 마련된 11개 항의 법률개정안은 육군과 해군이 경화기를 보유하고 다국적군에 합류하는 것을 허용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편 와타나베 다이조일본 외무성 대변인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법안은 오는 15일이나 16일쯤 제출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야당의 반대를 무마시키기 위해 타협안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야당이 우세한 참의원의 2백53석 가운데 자민당은 1백10,민사당은 10석을 차지하고 있다.
  • 둥근 공… 흐르는 핏줄/이재근 논설위원(서울칼럼)

    한반도의 남북한은 지금 불꽃튀는 설전이나 탁상공론으로서 접촉하기보다 살이 부딪히고 핏줄이 통하는 물리적 접촉으로서 대화하고 교류하는 듯하다. 평양에서 열렸고 곧 이어 서울에서 열릴 통일축구경기로서 그러하다. 북경 아시안게임이 분단 이후 최대의 남북접촉이라면 서울ㆍ평양간 통일축구는 민족분단 이후 최초 최대의 물리적 육체적 접촉이라 할 수 있다. 축구는 차고 배구는 때린다. 농구는 넣고 탁구는 치고 정구는 서비스한다. 모든 구기는 결코 혼자 할 수 없다. 상대와 더불어 말없이 대화하고 공하나에 마음을 실어 상호 교류한다. 그런데 지금 평양과 서울,서울과 평양간에는 불과 5백그램짜리 축구공 하나가 동포간에 끊어졌던 혈맥을 잇고 체온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공은 둥글다.모나지 않아 정지하지 않으며 항상 흐르며 율동한다. 구기게임이 갖는 묘미와 그 냉엄한 승부성을 얘기할 때 곧잘 그렇게들 표현한다. 구기중에도 특히 축구는 그 특유의 직절성과 의외성으로 해서 많은 사랑을 받는다. 공이 흐르며 정지하지 않음은 직절성이고그것의 둥글ㅁ은 의외성이다. 공을 구사하는 주체의 기량에 따라 자유자재한다. 축구는 그래서 옛날부터 우리의 국기처럼 여겨져 왔다. 남북 젊은이 대표들의 통일축구 교환경기를 보면서 남북문제 접근도 축구에서 배우며 축구처럼 해 나가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국기와 같은 축구교환경기는 잘만 하면 양쪽의 동포들을 텔레비전 앞에 집단으로 모이게 할 수 있다. 「통일독일」 이전 동독측이 서방이념이나 사회풍조(문화ㆍ유행)가 들어오는 것을 성공적으로 막아내지 못한 분야가 바로 텔레비전 방송이다. 당시 동독지역의 85%가 서독 텔레비전 방송 가청지역으로서 수백만 동독인들이 서독 제1TV의 분데스리가 축구경기를 시청했다. 그래서 매주 토요일 하오 6시에서 7시 사이에는 독일의 통일이 이뤄지고 있었다는 얘기가 널리 퍼졌던 것이다. 남북한 축구,아니 모든 경기가 그렇게 될 수도 있다. 판문점의 입씨름으로는 되지 않을 일들이 젊은이들의 「육체적 접촉」으로는 쉽게 해결될 수 있다. 지난 89년 10월 싱가포르에서 열렸던 로마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전에서도 그랬다. 그 이전 해외경기에서 맞닥뜨리면 민망스러울 정도로 표출됐던 상호 불신감과 적대감이 싱가포르에선 보이지 않았었다. 지난 여름 북경에서 열렸던 다이너스티컵 축구때도 그랬다. 과거 남북한 스포츠선수들이 해외에서 보였던 날카로운 시선과 대결의식,그리고 그보다 더한 불신감과 적개심은 사실 분단 그 자체의 비극보다 더 안타깝고 처절했다. 북한에서 발행되는 잡지에 「천리마」라는 게 있다. 지난 85년 7월호에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선수와 싸워 2대1로 이겨 우승한 주성철이라는 소년선수의 얘기가 실렸다. 그런데 이 선수의 코치는 1회전과 3회전에서 이겼다면 2회전에서도 이겨 3대0으로 완승을 거둘 수 있었다며 2대1의 스코어가 당 앞에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선수도 이를 수긍했다. 그들의 대남 불신감 내지 경쟁심의 깊이를 알려주는 얘기다. 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때이다. 사격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북한 선수에게 우승소감을 물었다. 그 선수는 서슴없이 『수령님의 명을 받들어 남조선과 미제들의 숨통을 겨누는 심정으로 쏘았다』고 했다. 소름끼치는 순간이었다. 남북한간 불신과 경쟁심은 이러했다. 그무렵 어느 사회통계에는 한국이 국제경기에서 꼭 이겨야 할 상대가 북한(44%),일본(31%),소련(14%),미국(8%),중국(3%)순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북한팀과 외국팀이 시합할 때 북한이 승리했으면 하는 희망은 51%였다. 통일은 쉽지 않다. 열망과 기대만으로 하루 아침에 이뤄질 수는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총과 폭력으로는 될 일도 안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평화적방법 이외 달리 없는 것이다. 지난 3일 베를린시 중심가 의사당앞 광장에서 역사적인 통독이 선언되던 날 세계는 경이와 찬탄의 눈초리로 이 광경을 지켜봤다. 그 통독제전의 맨 앞줄에서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서 있던 한 노인을 볼 수 있었다. 유명한 동방정책(OST POLITIK)으로 통독의 기틀을 마련했던 전 서독수상 빌리 브란트였다. 브란트에게는 처음부터 패전 독일의 분단자체가 「잘못된 일」이었다. 『분단된 독일의 부자연스러운 긴장상태는 인류평화를 위해 완화돼야 한다. 독일에 대항하여,또 독일을 제외하고 유럽은 건설될 수 없다』는게 그의 정치적 소신이었다. 그는 또 진보적 민족주의 신념의 평화주의자였다. 베를린 봉쇄 등 지역분쟁으로 삼엄한 동서냉전이 지속되던 53년 서베를린 시의회의장으로서 브란트는 연방의회에 출석하여 이렇게 연설했다. 『평화적 통일의 쟁취가 어떤 다른 외교적 업무나 계획에 우선해야 한다. 천팔백만 동독인들은 우리의 간섭이나 무관심에 상관없이 어떤 위험에서도 구출돼야 한다. 독일문제의 평화적 해결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독일문제에 협상이외에 다른 가능성은 없다. 자유롭고 평화로운 독일 통일을 위해 우리는 보다 적극적인 행동과 보다 선명한 목표설정을 통한 통일을 요구한다』 분단국 어느 한쪽의 정치지도자로서 이 이상의 통일절규는 달리 있을 수 없다. 브란트는 지금 행복한 노경에서 그 평화적 통일독일의 실체를 맞고 있는 것이다. 평양에서 솟구쳤고 서울에서 율동할 축구공 하나에 집중되는 7천만 동포들의 눈을 의식하며 우리는 지금 거세게 변하는 역사의 무대의 전면에 서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이제 한반도가 움직여야 할 차례인 것이다. 둥근 공이 흐르듯 민족도 둥글게 모이고 핏줄도 다시 이어져 흘러야 한다.
  • 북한대표단 서울도착 성명

    서울시민들과 남녘동포들. 내외기자 여러분. 북남 고위급회담 북측 대표단은 평화와 통일에 대한 온겨레의 숙원을 하루빨리 풀어주려는 열의를 안고 이곳 서울에 도착하였습니다. 우리는 먼저 우리 대표단 일행을 혈육의 정으로 따뜻이 환영하여준 서울시민과 남녘동포들에게 사의를 표하면서 공화국 북반부 인민들이 보내는 뜨거운 인사를 전하는 바입니다. 그동안 우여곡절은 있었으나 마침내 고위급회담이 성사되어 북과 남의 당국자들이 평양과 서울을 오가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럽고 기쁜 일입니다. 판문점에서 서울까지는 자동차로 불과 1시간 남짓한 거리이지만 이 길을 오기까지에는 지난해 첫 예비접촉때로부터 많은 시간을 소비하면서 해와 달을 넘겨야 하였으며 어려운 길을 걸어야 하였습니다. 그러나 뜻이 크면 길도 열린다는 말과 같이 통일에 뜻을 둔 우리의 마음은 마침내 본회담으로 이어져 평양ㆍ서울에로의 길을 다시 열어 놓게 되었습니다. 이 길은 이젠 닫기지 말아야 하며 누구에게나 넓게 열려져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마음대로 오갈 수 있는 길이 되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다녀서는 안되는 그런 길이 되지말아야 합니다. 우리 대표단은 서울에 같은 민족으로서 화해하고 단합하기 위하여 왔습니다. 통일의 문을 함께 열어나가기 위하여 왔습니다. 북과 남은 이제 더 반목질시하고 대결해서도 안되며 남남처럼 계속 갈라진 분단의 반세기를 넘겨도 안됩니다. 우리는 다같이 손잡고 7천만겨레가 함께 복락할 자주적이며 평화로운 통일조국을 빨리 일떠세워야 합니다. 나라의 통일은 외세에 의존하여서 할 수 없고 북과 남 어느 일방의 노력이나 당국의 힘만으로도 할 수 없습니다. 조국통일은 통일의 주체인 온 겨레가 사상과 신앙의 차이,재산의 유무와 소속의 여하에 관계없이 서로 힘을 합치고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성취될 수 있습니다. 북과 남은 통일의 문을 하루빨리 활짝 열기 위하여 날로 격화되고 있는 정치ㆍ군사적 대결상태를 시급히 해소하고 화해와 단합을 도모하기 위한 사업을 적극 추진해 나가야 합니다. 이 중대한 임무가 바로 쌍방의 대표들에게 지워져 있습니다.북남 고위급회담 북측 대표단은 이번 제1차 회담에서 나라의 평화와 평화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전진적인 제안들을 내놓고 합의를 모색하기 위해 모든 성의와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함께 짧은 체류기간이지만 모처럼 서울을 방문한 기회에 정계와 사회각계의 지도적 인사들과도 서로 만나 의견을 나누게 되기를 희망하며 문익환목사와 림수경학생,문규현신부 등 통일을 부르다 령어의 몸이 된 방북인사들의 가족들과 친척을 방문하여 북녘동포들의 위문을 전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는 남녘의 동포들과 각계인사들,그리고 이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들이 북남 고위급회담이 나라의 평화와 평화통일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대화가 되도록 격려해주고 성원해주기를 기대하면서 우리를 이처럼 따뜻이 맞이해주고 환영해준 데 대하여 다시한번 깊은 사의를 표시하는 바입니다.
  • 대 이라크 「철군압력」가중 모색/부시ㆍ고르비,헬싱키서 왜 만나나

    ◎지역분쟁 해결방식에 관심쏠려/소,미에 군사행동 자제 요청할 듯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페르시아만 사태 논의를 위해 정상회담을 갖기로 결정한 것은 냉전종식후 새로운 세계질서의 목표가 초강국간 경쟁이 아니라 협조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것이다. 이라크는 소련의 오랜 우방이요 무기 고객이다. 그러나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이후 소련은 이를 규탄하는 국제여론에 가세,유엔의 대 이라크 경제제재조치를 지원해 왔다. 부시와 고르바초프의 오는 9일 헬싱키대좌는 이라크 고립화의 국제적 연대를 극적으로 과시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냉전종식후 첫 국제적 위기를 맞아 미소의 두 지도자가 소매를 걷어 붙이고 공동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초강국간 협조를 구체화하는 자리이다. 그건 냉전시대에 적수였던 미소간의 관계가 이젠 밀접하고 평화로운 관계로 발전했음을 뜻한다. 부시의 입장에서 볼때 이번 회담은 사담 후세인에게 대항하고 있는 나라가 미국 혼자가 아니라 온세계이며,후세인은 그의 침략을 눈 감아주는 일부국가의 변명뒤에 숨어있을 수가 없다는 아주 중요한 신호를 세계에 보내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번 헬싱키 정상회담을 가리켜 미국 관리들이 『페르시아만 사태 초에 제임스 베이커 미 국무장관과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소 외무장관이 후세인을 향해 공동 천명했던 철군요구를 증폭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라고 풀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부시는 또 이번 회담을 고르바초프와의 새로운 비공식 협조관계를 시험하는 기회로 보고 있다. 고르바초프의 경우 소련의 국제적 지위가 국내 경제난 때문에 손상되긴 했지만 세계문제해결에 여전히 중요한 요소로 남아 있다는 것을 소련 국민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이다. 지난해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냉전의 긴장이 완화된 후 초강국의 대결 축소가 남긴 공백에 어떠한 세계 질서가 들어설 것인가는 지구촌의 관심사였다. 이 새로운 환경에 대해 공통적으로 표시된 큰 두려움의 하나는 표면상 초강국들의 관심이 안으로 돌려지면서 새로운 지역분쟁이 타오를 것이라는 점이었다. 따라서 부시와 고르바초프가 이러한 지역 분쟁에 대해 초기부터 확고하게 대처하는 자세를 보여주고,또 그러한 압력을 통해 사태의 조기수습에 성공할 경우 헬싱키 회담은 탈냉전시대의 세계질서 확립에 도움을 줄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국제사회의 후세인 규탄에 동참했지만 사태 해결과 관련한 그의 접근법은 외교적 노력과 유엔의 역할을 강조하고 군사대결을 피하려는 것이었다. 그는 이번에 부시에게 소련의 안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 미국의 대 이라크 군사행동의 억제를 역설할 것으로 예상된다. 군사전문가들에 의하면 두 초강국 지도자간의 이번 대좌는 미국의 페르시아만 군사력증강과 관련하여 중요한 시점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미국이 이라크에 대한 군사행동을 취하는데 결정적으로 필요한 탱크와 대포의 수송이 내주엔 끝난다. 소련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는 2일 『파멸적인 전쟁을 피할 수 있는 기회는 50%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미국의 행동에 대해 거듭 엄중한 경고를 보냈다. 모스크바에서는 미국이 페르시아만에서 대규모 군사행동을 감행할 경우 최근의 동서관계 진전을 냉전시대의 원위치로 되돌릴 것이라는 인식이 늘어가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부시에게『만일 미국이 이라크의 쿠웨이트 점령을 종식시키기 위해 전면적인 군사행동을 할 경우 소련의 지지를 계산에 넣지 말라』고 경고할 것이다. 물론 고르바초프는 모스크바의 오랜 바그다드 커넥션을 이용한 위기해소책의 모색을 제의할 가능성도 있다. 지난주 고르바초프는 사태 해결방안에 언급,『군사력이 아닌 정치적 노력만이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특히 『아랍국가들의 정치적 역할을 많이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미소는 페르시아만 사태 외에도 정상간의 협의를 필요로 하는 의제를 많이 갖고 있다. 그중의 하나가 전략무기 감축조약이다. 부시와 고르바초프는 지난 5월30일∼6월3일 워싱턴 정상회담에서 이 조약의 체결을 공약했었으나 그후 협상은 진전을 이루지 못한채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하나의 의제는 아프가니스탄 내전 해결문제다. 미소는 지금 아프가니스탄에서 불개입 원칙 아래 신정부구성을 위한 선거실시를 추진중이다. 이밖에 유럽 재래식 군사력 감축협상과 최근 유엔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간에 합의된 캄보디아 내전 해결방안도 의제로 올려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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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김포군은 옛날의 김포현에 양천현·통진현을 병합하여 이루어진 고을. 지금은 양천·통진이 면이름으로서 남아 있다. ◆한강을 낀 이 고을은 예나 이제나 오곡백과 풍성한 곳. 『올해 벼농사는 풍작이로세/어촌에 밤등불이 깜박거리네/남강에 가을물도 줄었다 하니/농어도 게도 그물질할 만하겠지』. 조선조 초기의 학자 사가 서거정이 읊은 통진팔영 가운데 격안어화. 평화로웠던 시절의 풍요로운 가을풍경이 눈에 선해진다. 맞은편 뭍인 파주군 교하면쪽을 사이에 두고 뜬 고깃배의 불이 어둠을 사르며 깜박였던 것이겠지. 풍작인 쌀은 그 때도 기름기 잘잘 흐르는 것이었으리라. ◆무주의 구천동으로는 전국의 뱀이 모인다고 한다. 영광의 법성포로는 전국의 조기가 모여든다고도 하고. 뱀이나 조기가 스스로 모여드는 건 아니다. 그곳 뱀이나 조기가 유명하다 하니 사람들이 가지고 가는 것. 그래서 그 곳에서 난 것인양 「유명품」으로 둔갑시킨다. 그와 똑같이 김포로도 다른 고장의 쌀이 실려 나갔다. 서사가시대 이전부터 이름난 「김포쌀」로 둔갑시키기 위하여. 그렇게 해서 팔린 사이비 김포쌀이 7천여 가마라 한다. ◆밝혀진 것이 그렇지 사실은 더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주목해야 할 통탄스러운 사실은 그 「짓」을 「김포농협」이 했다는 것. 김포 농민을 위하는 짓이었을는지는 모르나 이건 누워 침뱉기 바로 그것이다. 명성높은 그 얼굴에 얼룩이 지는 것 아닌가. 신용과 신뢰를 간판삼아야 할 공공기관 농협의 짓이라는 데에 아연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믿음이란 거울의 유리와 같다고 「일기」의 아미엘은 말한다. 한번 금이 가면 원래대로 하나가 되지는 않기 때문. 그 신용의 실추와 「불신사회에의 일조」가 속인 짓보다 더 고약하고 큰 문제다. ◆소비자도 너무 김포쌀이네 경기미네 할 일만은 아니다. 생산량의 한계가 뻔한 것 아닌가. 다른 고장 쌀이라 하여 쌀이 아닌 것도 아니고. 명성만을 쫓는 소비풍조에도 성찰은 가해져야 옳다.
  • 외언내언

    중국사람들은 정초에 온가족이 모였을 때를 가장 행복하게 여기고 있으며 이러한 행복을 축하할 때 「전가복」이라는 말을 쓴다고 한다. 그런 뜻에서 중국사람들은 9월22일부터 10월7일까지 북경에서 열리는 제11회 아시아경기대회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38개 회원국이 모두 참가하는 「전가복의 대회」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들이 대회의 모토를 「아시아는 하나」로 정한 것도 그 때문이라는 것. ◆그런데 대회 개막이 임박하면서 평화로워야 할 스포츠제전에 암운이 끼어있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빚어진 중동사태다. OCA의장인 쿠웨이트의 셰이크 파드 알 사바가 피살돼 OCA의 지휘체계가 표류하고 있는 가운데 이라크의 실질적 참가여부와 이라크가 참가할 경우 반이라크 대열의 아시아국가들이 이라크에 항의,대회참가를 거부하거나 이라크와의 경기를 보이코트하는 사태가 야기되지 않을지 크게 우려되기 때문. 스포츠를 통한 적대감정은 국제경기에서 흔히 있어온 터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대회조직위원회에 22일자로 마감되는 최종 엔트리제출을 연기해줄 것을 요청한 사실은 특히 중동국가들의 움직임을 예측불허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시아경기대회 조직위원회는 22일 예정대로 천안문 광장에서 성화 점화및 봉송식을 가졌다. 천안문 광장은 1년여전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과 시민들의 목소리를 총과 탱크로 봉쇄한 「역사의 현장」. 그 사건으로 아시아경기대회의 북경 개최가 비난받기도 했다. 성화봉송식에는 강택민총서기·진희동시장 등이 참석,중국당국이 아시아대회에 쏟는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 또한 2000년 올림픽을 유치하려는 계획이 고위당국자들의 노력을 이번 대회에 집중시키고 있다고. ◆국제스포츠의 장을 정치의 논리가 지배해온 게 어디 한두차례인가. 80년,84년 올림픽과 86년 아시아경기대회만 봐도 알 수 있다. 아시아 스포츠인들은 그러한 구태를 북경대회를 통해 벗어던지려 하고 있다. 북경의 가을하늘은 푸르다. 먹구름이 걷힌 그 하늘아래서 아시아가 하나가 되어 펼치는 스포츠축제를 볼 수 있을는지.
  • 광복 45주년/통일,대화·교류이외 다른 길 없다(사설)

    다시 광복절을 맞는다. 감격과 통한이 표리를 이루는 광복 45주년이다. 돌이켜보면 45년전 우리 민족의 광복은 지상의 환희였다. 그러나 그것은 곧바로 국토의 단절과 민족분단으로 이어졌다. 또 다른 민족적 시련과 비극의 시작이었다. 그 오랜 역사를 통해 우리 민족이 국권을 상실하고 주권을 빼앗겼던 시기는 일제 36년 뿐이었다. 참으로 그것은 민족사의 오점이었다. 그 오욕의 흔적을 지우고 광복의 역사를 시작하려 할 즈음 민족분단은 다가온 것이다. 이런 우리에게 오늘은 무엇인가. 광복의 의미를 다시 살려 분단을 극복하는 오늘이어야 한다. 그 이외에 다른 길은 없다. ○민족화합의 경축일이 되려면 우리는 먼저 민족적 대결과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을 열어야 한다. 아니 파괴해도 좋다. 이 광복의 달에 판문점에서는 남과 북이 제각기 체제와 이념과 색깔을 달리해서 벌이는 집회가 빈번하다. 저쪽에서는 이른바 범민족대회의 백두산 출정식이 있었다고도 들린다. 이쪽에서는 북쪽으로의 행진을 가로막는 철조망을 절단하는 모습도 비쳐졌다. 그 뿐이었다. 남북간의 인적 교류를 통해 통일을 앞당기려는 「민족대교류」 기간인 데도 실질적인 교류는 아무 것도 이뤄지지 않았다. 남북이 오갈 수 있는 길목에 임시 세관과 환전소가 차려졌지만 세관을 통과할 선물보따리도 없고 동전한닢 바꾼 실적도 없다. 무엇보다 단 한사람 오고가지 못했다. 임진각 망배단 앞에 세운 망향우편함엔 이산가족들의 한맺힌 사연편지가 가득한데도 그것을 전해줄 우체부의 발길이 막혔다. 남북의 자유왕래야말로 민족문제 해결에 있어서 최우선의 중요과제이다. 통일은 해야한다. 반드시 이뤄야할 민족적 과업이다. 통일없이 우리 민족은 평화로울 수 없고 자유와 번영을 누릴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통일은 자유와 민주,평화의 이념아래 이룩돼야 한다. 남북한의 완전개방과 자유왕래야말로 그 통일에 이르는 지름길인 것이다. 쉬운 것부터 먼저 시작하는 것이다. 남북 양쪽 모두 정치적인 이기심이나 「선별」을 자처하는 개인 단체,그리고 「영합논리」를 앞세우는 극우,극좌의 행동으로 독점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통일이다. 8·15가 민족화합과 통일의 경축일이 되려면 민족성원 모두가 참으로 겸손하고 진지해야 하는 것이다.○통일추진의 과제와 미래상 광복 45년은 실은 우리민족에게 영광과 환희의 길이 아니라 기나긴 인고의 세월이었다. 민족간의 적대적 대결과 증오를 증폭시킨 기간이었고 시련의 연속이었다. 민족적 시련은 3년에 걸친 동족전쟁만은 아니었다. 우리는 20세기에 들어와 계속되는 내외적 격동기를 살아왔으며 어느 하루인들 편안한 생활을 누릴 수 없었다. 이제 이러한 시련을 극복하고 우리가 쌓아온 역량을 바탕으로 통일된 근대적 민족국가의 확립이라는 새로운 시대적 과제를 성취해야 하는 것이다. 그 목표에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우리 사회안에서 국민적 역량을 한데 모아 그것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내부적으로는 민주화 정착과정에서 의회주의와 법치주의가 확립돼야 하고 다원주의가 존중돼야 한다. 그러한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를 분명하게 실천하는 문제는 통일추진의 가장 근본적인 전제가 된다. 또한 오늘의 냉엄한국제관계속에서 민족이 자주적으로 통일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는 남북이 대화를 통하는 길밖에 없다. 일찍이 남과 북이 합의한 7·4 공동성명의 정신이 그것이었다. 대결하는 상대가 아니라 공존해야 할 한민족임을 천명한 7·7 특별선언이나 무조건 개방하고 왕래하자는 민족대교류 선언이 또한 그와 다르지 않다. 남북의 대화는 첫째 서로가 상대방의 실체를 인정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둘째 남북이 전쟁이 아닌 평화주의적 해결방식에 동의한다는 것이며,셋째 분단이 외세에 의해 강제되었음을 인식하면서 남북의 당사자가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데 묵시적으로 동의하는 자주성을 내포하는 것이다. ○광복의 날,다시 시작하는 마음 다시 강조하건대 광복의 의미를 되살리는 길은 통일 말고 달리 없다. 한반도 우리민족의 통일은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세계질서속의 마지막 동참자로서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화하고 교류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다시는 전쟁을 말아야 한다.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따위 비현실적이며 소모적인 대결의식과 민족분쟁을 지양하고 평화만을 추구해야 한다. 전쟁을 증오하고 평화를 인식하는 첫단계는 민족전쟁으로 인해 남북으로 갈라진 이산가족들이 재회하는 일이다. 남북이 대화하고 민족이 교류하며 그로서 다시 손잡고 화해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북한의 고립과 혼란을 바라지 않는다. 우리가 북한의 개방을 바라는 것은 그들 체제와 이념의 와해를 염두에 두는 것은 결코 아니다. 북한의 변화와 개방을 통해 남북대화와 교류에 대한 그들의 이해와 신뢰를 유도하고자 하는 충정에서인 것이다. 오늘의 우리 역사 현실이 혼돈과 좌절이 엇갈리는 고난의 시기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민족문제와 관련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광복 45주년을 기한 민족대교류나 또는 전민련이 발의하여 북한측이 주도해온 범민족대회가 모두 무위로 끝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또 한번 깊은 회의와 좌절감을 갖게 된다. 민족의 역량이 고작 이 정도여서는 안된다.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남과 북이 배타와 이기와 아집과 편견을 버리고 민족적 대의앞에 다시 서는 것이다. 지혜로운 자가 그에 더하여 자성의 목소리를 다듬을 때 역사는 그의 편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믿는다.
  • 「힘의 공백」틈탄 패권주의/임춘웅 국제부장(데스트 메모)

    냉전체제가 붕괴되기 시작했을때 세계는 온통 핑크빛으로 물드는 듯했다. 냉전체제는 군사적 대결체제였고 경직된 이념적 대결체제였으며 두 초강대국간의 패권주의에 바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부의 사려깊은 학자들은 냉전체제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을때 국제경찰이 없는 세계를 우려했었다. 반세기 동안이나 질서를 유지해온 거대한 힘이 사라진 세계의 질서가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까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력충돌 가능성 상존 이번 이라크의 쿠웨이트 무력 침공은 이들의 우려가 얼마나 현실적이며 심각한가를 보여주는 실례라 할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이라크의 군사적 폭력은 냉전체제가 채 와해되기도 전에 일어났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아직은 모색되고 관망돼야할 시점에서도 폭력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완전 장악하는데는 불과 5시간여가 소요됐을 뿐이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2일 아침 이라크의 폭력행위를 비난하고 이라크군의 즉각적인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그러나 지금 이시간 유엔결의안에 따라 이라크군이 즉각 철수하리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피해당사자인 쿠웨이트가 가입돼 있는 GCC(페르시아만 협력협의회)는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있는 엄연한 안보기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GCC가 이라크의 무력침공앞에 어떤 군사적 행동을 취했다는 증거가 없다. 중동의 대국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아랍 에미리트(UAE) 오만 카타르 등 6개국이 가입하고 있는 GCC는 이번 사태에 성명하나 발표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어떤 실질적 역할을 할 것 같지 않다. 1주여전 이라크가 군사행동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을때 지중해의 6함대를 동원,UAE와 예정에도 없던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등 대이라크 무력시위를 주도했던 미국은 막상 일이 터지자 속수무책이었다. 항공모함 인디펜던스호가 페르시아만으로 항진 중이고 군사적 제재가능성이 전혀 배제된 것은 아니지만 미국이 군사개입을 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어떻게 보면 미국은군사개입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하게 돼 있다는 것이 불개입 논거의 배경을 이루고 있다. 전쟁은 이미 끝나 버렸고 1백만이나 되는 막강한 이라크군과 정면 대결을 벌일 수단을 미국은 현실적으로 갖고 있지 못한 것이다. ○성급한 이상론은 금물 부시 미국 대통령은 2일 『현재로서는 미국이 군사적 개입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히고 이라크군이 쿠웨이트를 스스로 떠날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공동의 노력을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어떻게 공동의 노력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합당한 아이디어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미국내 이라크자산의 동결,이라크와의 통상거래 중단 정도가 고작이다. 현재로서는 소련의 역할에나 기대해 보는 것이 그나마 현실적인 듯싶다. 다행히도 소련은 정부 대변인을 통해 『소련 정부는 이라크군의 즉각적이고 조건 없는 철수가 페르시아만의 긴장을 종식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안으로 확신한다』는 성명을 내놓고 있다. 이라크에 무기지원을 해온 소련은 군사적 리버레이지를 갖고 있는 나라다. 「역사의 종언」을 썼던 프란시스 후쿠야마(미국 RAND연구소 선임연구원)는 마르크스­레니니즘이 완전한 패배로 끝난 역사는 지루하고 평화로운 문화적 사회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전세계가 평화롭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러나 그 평화는 모든 인류가 행복하게 되었기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질서,새로운 과학,새로운 경제적 필요가 인류를 평화롭게 지낼수 밖에 없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예언은 아나톨 프랑스의 작가다운 감상이었다. 동서화해시대가 열리며 한껏 부풀었던 후쿠야마의 「문화사회」,아나톨 프랑스의 「신천지」는 과연 도래할 것인가. 이라크사태는 불행히도 핑크빛 미래사회가 결코 가까이 있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념이 소멸해도 인간의 갈등은 영원히 남으리라는 것은 이념의 대결이 없었던 먼먼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벌써부터 또다른 파시즘이 운위되고 새로운 권위주의의 대두를 내다보는 사람들이 있다. 사담 후세인 같은 엉뚱한 「시저」가 나타나지 말란 법도 없는 것이다. 화려한 미래사회는 그 기반을도덕과 윤리에 두고 있다는 데 취약점이 있다. 도덕과 윤리는 역사를 움직이는 위대한 힘이지만 파괴자가 나타나면 언제나 무너지고 마는 약점이 있다. ○멀고먼 세계평화의 길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야할 미래사회의 안정된 질서를 보다 적극적으로 찾아야할 필요성을 이번 사태를 통해 절감한다. 그것은 어려운 작업일테지만 대단히 화급한 일인지도 모른다. 또다른 쿠웨이트가 나타나지 않기 위해서다. 어떤 경우도 역사를 냉전시대로 되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또 그렇게 되지도 않기 때문에 새 질서를 찾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하지 않으면 안될 작업이다.
  • 외언내언

    『처자식을 가진 자는 운명의 손에 인질로 넘어간 자이다』. 베이컨의 「수필집」에 실려 있는 「결혼과 독신생활」의 허두이다. 사회를 위한 위대한 공적은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자녀를 두지 않은 사람에게서 나왔다고 이 글은 이어나간다. ◆그렇다 하여 결혼하고 자녀를 둔 사람에게서 「위대한 공적」이 안나온 것은 아니다. 「운명의 손에 인질로 넘어가지 않은 사람」쪽이 예외일 뿐 사람들은 대체로 결혼을 하여 가정을 갖는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생활형태. 그 가운데서 때로는 기쁨을 맛보고 때로는 괴로움과 슬픔도 맛보다가 이승을 하직한다. 평화로운 가정과 사회적인 성취를 함께 누리는 것만큼 복된 인생도 없다 할 것이다. ◆지난 연초에 행해진 한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근로자 가운데 내집 소유자는 40.2%. 절반이 못되는 셈이다. 그런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한 다른 조사에 의하면 54%가 『집보다 차를 사겠다』고 대답하고 있다. 그 첫째 이유가 『가족여행등 레저용으로』. 설사 셋방살이를 하더라도 가족끼리 우선 즐기면서 살아가겠다는 뜻이드러난다. 경제기획원이 발표한 「도시 근로자 가계 수지동향」에서 외식비가 주식비를 앞지르는 것으로 나타나는 현상도 생각의 맥락은 같다. ◆가족끼리의 외식이 많아진 것은 육감으로도 전달된다. 일요일의 점심 때나 저녁 때 웬만한 음식점에 가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 그 광경을 보면서는 「소학」에 나오는 강주의 진씨 집안을 떠올려 보게도 된다. 그 집안 식구는 7백여명. 식사 때는 모두 한데 모여 장유의 질서에 맞추어 먹었다고 한다. 우리의 외식 풍토는 젊은 부모ㆍ자녀의 2대가 대부분. 조부모까지 함께 하는 3대의 외식풍경도 보게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가족단란을 위해 외식하는 것을 나무랄 수야 없겠다. 그러나 그것은 「가끔」이라야 뜻이 있는 것. 주부의 게으름이 선도하는 외식이어서는 안되겠다. 아무튼 외식비가 주식비를 앞지르는 것은 좋은 현상 같아 뵈지 않는다.
  • 소 당대회 보­혁 공방전 치열

    ◎공산당 없는 개혁은 희망 없어 리가초프/개방 성공ㆍ동구권 불간섭 강조 셰바르드나제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소련 공산당내의 강경 보수파 지도자중 한사람인 예고르 리가초프가 3일 개혁정책이 수행된 지난 5년간은 「분별없는 급진주의」의 시기였다고 전제,간접적으로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비난한데 대해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외무장관은 소련의 대서방 문호개방과 동구공산국들의 체제붕괴를 막기위한 개입을 거부한 사실의 정당성을 강력히 개진함으로써 보혁간의 맹렬한 공방전을 벌였다. 정통파 마르크스 레닌주의자인 리가초프는 이날 당대회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이같이 말하고 이어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보좌관인 알렉산데르 야코블레프를 겨냥,『일부 인사들이 공산당의 지지여부와는 상관없이 페레스트로이카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면서 『나는 당의 지원없는 페레스트로이카는 희망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며 당은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고수할 것으로 믿고 있다』고 밝혔다. 공산당 정치국원인 그는 4천7백여명의 당대표들에게 행한 연설에서 『페레스트로이카가 실시된 지난 5년 동안 야기된 분별없는 급진주의와 즉흥주의로 인해 우리가 얻은 것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리가초프는 고르바초프 개혁 가운데 두가지 중요한 내용인 공장의 사적소유권 보장과 토지의 사적소유를 향한 움직임이 반사회주의적인 것이라고 비난했다. 셰바르드나제장관은 대외개방에 따른 국방비절감 가능성에 언급,『신사고정책에 따른 평화로 우리는 향후 5년동안 4천억달러를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구국들과 관련,셰바르드나제는 『우리는 동구국들에서 전개된 사태가 설사 우리의 이해와 상충된다 하더라도 개입을 고려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이들 국가에서 급진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비극적인 사태가 발생했을지 모른다』고 강조했다.
  • 북한에 조속 개방 촉구/노대통령 귀국 인사

    ◎새 시대 흐름 순응,통일의 길 열때/남북 정상회담 수락 거듭 강조/한반도 냉전 종식 미ㆍ소도 바라/「한소합의」 후속조치 실무팀 구성/기상 기자간담 노태우대통령은 미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역사적인 한소 정상회담과 워싱턴에서의 한미 정상회담을 마치고 8일 저녁 특별기편으로 귀국했다. 노대통령은 이날 서울공항 환영행사에서 가진 귀국인사를 통해 『부시 미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과의 회담을 통해 더 나은 세계와 우리나라의 더 밝은 앞날에 대한 믿음을 갖고 귀국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하고 『이제 한반도에서 냉전의 시대를 종식시킬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천명했다. 노대통령은 『한소 양국간의 협력관계 발전은 한반도에 전쟁의 위협을 줄이고 안정과 평화를 굳힐 것』이라고 말하고 『북한의 경직된 폐쇄노선은 이제 한계를 맞았으며 북한도 새로운 시대의 이 도도한 흐름에 순응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노대통령은 『북한은 폐쇄노선으로부터 하루빨리 개방으로 나와 우리와 함께 남북간의 화해와 통일의 길을 열어가야 한다』고 강조하고 『북한의 김일성주석은 우리의 거듭된 남북 정상회담 제의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거듭 촉구했다. 노대통령은 특히 『미국과 소련은 이제 한반도문제의 자주적 해결과 한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요청하고 있다』고 전제,강대국이 우리의 통일에 장애가 되었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노대통령은 이어 『우리들 다음세대가 전쟁의 위험이 없는 평화로운 나라,통일된 나라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귀국한다』고 말하고 『동서독일의 통일이 현실이 되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통일도 이 세기안에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공항 환영행사에는 박준규국회의장ㆍ이일규대법원장ㆍ강영훈국무총리 등 3부요인과 민자당의 김영삼대표최고위원,김종필ㆍ박태준최고위원,국무위원,주한외교사절 등 1천2백여명이 참석했다. 노대통령은 9일 상오 3부요인과 민자당의 3최고위원을 청와대로 초청,조찬을 함께 하면서 한소및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고 향후 대책에 관해 의견을 교환한다. 노대통령은 이어 11일 청와대에서 임시국무회의를 주재,정상외교의 후속조치를 논의할 예정이다.
  • 지일이 극일/송복 연세대교수(세평)

    우리에게 일본은 어떤 나라인가. 도대체 우리와 일본은 어떤 관계인가. 서로 주고 받는 호혜관계인가,주기만 하고 받기만 하는 일방적 봉사관계인가. 역사를 돌아 보면 마치 우리는 일본을 위해서 존재하는 나라처럼 되어있다. 그들이 미개한 때는 우리의 문화를 그들에게 전파해서 깨우쳐주는 구실이나 하는 나라로,그것도 모자라면 대륙의 문물을 그들에게 전해주는 다리구실까지 해주는 나라로,또 그것도 모자라면 우리 연안을 무인지경으로 노략질하던 왜구들의 약탈장소나 돼주는 나라로­. 그러나 이 정도는 고려때까지이고,조선조에 들어서면 아예 그 구실과 역할의 양태로 달라지고 내용도 달라진다. ○미래 장담할 수 있는가 자기들끼리 분열해 싸움을 일삼다 통일이 되니 이젠 그 통일된 힘의 시험장소로,혹은 통일된 제 세력들의 내부압력을 바깥으로 분출시키는 외부발산장소로 우리를 초토화시킨 것이 바로 임진왜란이다. 어떤 이들은 네덜란드 중간상인들과 무역하던 사카이지방 조총상인들의 안팔린 조총소화장소로 우리를 이용한 것이 임진왜란이라는 주장도 펴고 있다. 17세기이후 평화로웠던 얼마간의 시기도 있었지만 일본은 내내 위협의 적이 됐고,마침내 19세기 중엽을 넘어서면 후발 일본 자본주의를 보다 빨리 발전시키고 완성시키는 구실을 하는 장소로 바뀐다. 그들의 야욕을 충족키 위해 청일전쟁을 벌일 때는 그 전쟁의 싸움터로 그들 나라가 아닌 우리가 돼 주었고,잇따라 일어난 노일전쟁에서 우리는 그들 승전의 주배후지가 됐다. 드디어는 식민지까지 돼서,뿐만 아니라 대륙침탈의 병참기지까지 돼서,무소불위로 그들이 하고 싶은대로 해도 되는 가장 악랄한 수탈의 대상자가 돼 주었다. 45년 원자탄을 맞고 참담한 패배자로 무조건 손을 들었을 때는 이제야말로 그 잔인 무극의 나라가 최후의 비명을 지르고 물러가나 했더니,난데없이 6ㆍ25가 터져서 그들 부흥의 기틀을 만들어 주었다. 물러간 지 5년도 채 못돼,우리가 우리를 죽이는 상잔을 벌이면서까지 전쟁의 폐허에서 몸부림치는 그들을 구해주는 것이 됐다. 가장 잔인했던 적을,그것도 치가 떨리도록 증오했던 적을 1백만명이상의 사상자를내면서까지 구해준 것이 우리의 6ㆍ25였다고 한다면 6ㆍ25야말로 일본을 살리기 위해서 우리가 우리를 죽인 전쟁이다. 일본에 대해선 우리야말로 살신성인의 나라다. 역사상 그 어느 나라가 자기를 죽이면서까지 원수를 구해준 나라가 있던가. 오늘날은 어떤가. 우리는 매년 40억달러이상의 적자를 내면서까지 일본의 물건을 사주는 나라가 돼있다. 세계에서 가장 부한 나라가 된 그 일본의 부를 증가시키기 위해,우리 기업가가 밤낮없이 뛰고 있고,우리 노동자가 살을 에이면서까지 불철주야 일하고 있는 격이 돼있다. ○우리 힘으로 청산해야 도대체 우리는 일본에 어떤 나라인가. 우리 역사는 일본을 지키기 위해서,일본을 살찌우기 위해서,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져 있는 나라인가. 우리는 단호히 아니라고 대다할 수 있는가. 우리는 절대로 그렇지 않았다고 우리의 역사를 다시 고쳐 쓸 수 있는가. 그러나 그 일본은 언제나 기껏해야 「통석의 염」에 불과하다. 그들의 사고를 속에는 호혜의 염이란 있을 수 없고,호혜의 염이 있을 수 없는한 「통석」아닌 「통한의 염」은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 마음이 일어날 수 없는 그들을 보고 우리의 한을 달래는 말을 받아 낸다고 해서 그 내실이 바뀔 리 없고,그 내실이 바뀔 리 없는 한 그 일본을 위해 존재해온 것이나 다름없는 우리의 과거역사가 미래에도 그 구실로 지속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그 누구도 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아니 더할나위 없이 요구되는 것은 그 과거의 역사를 우리가 우리 힘으로 청산하는 것이다. 통석의 염이든 통한의 염이든 뼛속에 깊이 간직하면서 과거는 과거로 보내는 것이다. 이제 그것을 다시 거론해서 이렇게 반성해라 저렇게 사죄하라 한다고 해서 우리의 미래에 보탬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일본을 볼 때마다,그리고 일본을 생각할 때마다 이제 더이상 이제 더이상 일본을 위해 존재하는 역사를 만들지 않겠다는 극일의 앙다짐이 있어야 한다. 일본은 명명백백 자진해서 우리에게 도움을 줄 나라가 아니다. 일본은 명명백백 과거역사의 패턴을 패턴 그대로 지속시키려는 나라다. 지속시키려 하는 그만큼 그 일본이 우리를 위해서 우리 교포들의 지위를 바로 잡아 줄 리 없고,우리를 위해서 그 과거 역사와는 다른 패턴을 가지라고 기술을 순순히 이전해줄 리도 없을 뿐아니라,더더구나 우리 부에 한 푼이라도 도움이 되는 무역역조를 스스로 나서 시정해줄 리 없는 것이다. 오로지 우리가 해야 할 따름이다. 우리가 주체가 되고 우리가 주도를 해서 우리가 다시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가 일본을 알고 일본을 배워야 한다. 오래전 그 일본이 우리를 배워서 우리를 좌지우지 했듯이 거꾸로 우리가 일본을 배워야 그 일본을 극복할 수 있다. 그 다른 무엇보다 일본인들의 「나라사랑 마음」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역사시대이후 대소 전쟁을 수도 없이 치르면서도 이상하게도 나라사랑 마음을 내면화 시키지 못했다. 뼈에도 안 박히고 살에도 안 박히는,입발림만의 나라사랑만 무성해 있다. 더구나 중상층의 경우 자기의 재산을 지키는 것이 나라사랑이라는 것은 너무나 「완벽히」 잊고 있다. 대일 무역역조를 시키는 사람들이 우리 국민 가운데 도대체 누구인가.수입개방이야 피할 수 없어 한다해도 그 물건을 안 사쓰는 양식과 양심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나라사랑 마음이 있다면 그 양식 그 양심이 어디로 갈 것인가. 자기 상품이 질이 낮다해도 남의 것을 안 사쓰는 정신,그래서 내수용 수입을 한푼이라도 줄이는 생활자세 그것이 일본인들의 나라사랑 마음이며 그것이 오늘의 대국 일본을 만든 장본이다. ○「나라사랑」 본받을만 일본은 미국처럼 통이 있는 나라가 아니다. 그 통이 큰 미국도 불리하니 우리에게 개방하라고 수없이 압력하지 않던가. 정신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그리고 심적으로 일본은 대국이 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그러나 작은 기술로 오직 나라사랑하는 일념으로 오늘의 대국이 됐다. 자기를 돕지 않는 자는 하늘도 돌아보지 않는다. 자기가 자기를 일으키지 않는데 어느 하느님이 자기를 일으켜 줄 것인가.
  • 정치ㆍ경제안정이 통일의 지름길/슈미트 전서독수상「전경련특강」내용

    ◎「동ㆍ서독통합」은 한반도에 교훈/동구변화 북한에도 파급 기대 전직수반회의참석차 내한한 헬무트 슈미트 전서독수상이 25일 상오 신라호텔에서 전경련 주최로 국제정치전망에 대해 특별 강연을 했다. 30년전에 한국에 와 보고 이번이 두번째이다. 나는 그사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음을 보았다. 여자들이 이런 모임에 참석할 수 있다는 것도 산업발전과 함께 커다란 변화라 할 수 있다. 국제적으로도 최근 2∼3년 사이에 중요하면서도 흥미있는 변화가 있었다. 특히 소련이 대내외적으로 방향을 선회하면서 동구뿐만 아니라 한국ㆍ일본 등 전 아시아에 걸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동구에서는 평화로운 혁명이 발생했고 이제 다원사회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소련은 동구의 변화에 군사적으로 개입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이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고르바초프는 분명 전임자들과는 다르다. 동독의 가장 큰 변화는 오는 7월초면 서독정부와 기술ㆍ경제 및 화폐의 통합을 이룬다는 사실이다. 이는 사실상 서독으로의 흡수라고 볼 수 있다. 냉전은 이제 끝이 났다고 할 수 있다. 군비축소가 압력때문이 아니라 자발적 의사에 의해 계속될 전망이다. 재래식무기에 관해서는 다소 지연될 전망이지만 전략무기제한은 지속될 것이다. 다른 큰 어려움은 소련의 국내문제와 고르바초프의 입지에 있다. 지난 25년의 어느 시절보다도 소련내 물자의 공급이 부족하고 시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언론자유덕택에 불만이 자유롭게 토로되고 있다는 측면도 있으나 사실상 북경보다 더 어려운 실정으로 보인다. 따라서 대중의 지지가 떨어진 상태에서 3개월후 3년후의 고르바초프를 예측하기는 어렵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아프간침공 같은 사태는 다시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남북한관계에서 중요한 점은 북한에도 변화의 바람이 있는 듯 하다는 것이다. 또 남한의 능력이 북한에 비해 월등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동ㆍ서독관계에서도 동독의 경제적 어려움을 도와줄 능력이 서독에 있었다는 것이 중요한 요인이었다. 이와 함께 한번도 대화의 노력을 포기한 적이 없었다는 면도 중요하다. 수십억마르크의예산을 들여 고속도로를 만들어주었고 양심적 인사를 석방하는 대가로 수백만 마르크를 지불했다. 이에 비해 한국은 아직 정치적ㆍ경제적ㆍ심리적으로 통일에 대한 준비가 덜 돼 있는 듯하다. 풍선속에 선전물을 넣어 날리는식의 비생산적ㆍ비효율적 방법은 지양돼야 한다. 유럽의 변화는 여타지역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92년까지 「유럽요새」가 완결된다는 우려도 있지만 실제로 57년이래 계속돼 온 통합노력은 92년이후에도 계속될 것이다. 12년전 지스카르 데스텡(당시 프랑스대통령)과 함께 EMS(유럽통화제도)를 만들때 고정환율제도가 채택되어 있어 어려웠던 점에 비하면 큰 진전이라 하겠으나 유럽의 11개 중앙은행이 하나로 통합되지 않는한 실질적인 유럽통합이라고 볼 수 없다. 새 유럽이 보호주의를 추구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지만 유럽은 무역에 관한한 일본보다 자유로웠고 앞으로도 개방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농산물이 예외이기는 하지만 한국이 이탈리아에 쌀을 수출하려고 기도하지 않는한 이는 큰 영향을 주지못할 것이다.권력은 총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미래세계에서는 권력이 경제력에서부터 나오고 다른 나라를 도우려는 의지에서 나온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 도덕공황이 사회위기의 근원이다/윤남중 새순교회 담임목사(서울시론)

    ◎각계지도층의 각성없으면 파탄 초래 북한을 테러밀수를 포함한 「밀수왕국」이라고 비난하는 우리 대한민국이 「교통사고의 왕국」에 「범죄왕국」이라는 오명으로 불리고 있으니 참으로 기가막히는 일이다. 어느날 모 신문 사회면의 9가지 기사중 폭력 범죄와 부도덕 범죄가 7가지나 보도되었다. 날이 갈수록 잔인해지는 청소년들의 성폭행,대낮에 가정집을 13번이나 털다 잡힌 떼강도들,부모를 구타하는 파렴치범,자녀를 목졸라 죽이는 비정한 부모,뇌를 다쳐 수술을 받으려는 환자를 거절하여 죽게 한 비정한 병원,우편 집배원이 우편물을 고물상에 파지로 팔거나 불태워버리는 비행 등등. 정말 한심하고 답답하다. 이젠 대낮에나 밤중에 평화로이 거리를 산책하기 두려운 사회상이 되어 버렸다. 각 교회마다 밤 예배와,새벽과 금요심야기도회 집회율이 현저하게 떨어졌다고 목사들이 이구동성으로 탄식하고 있다. 무서워서 못 다니겠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왜 그리고 언제부터 비정하고 광포해 졌는지 모를 일이다. 우리 민족은 해방 후 고난과 역경을 잘 참아왔고 그 혼란의 와중에서도 아름다운 인정과 예절바른 동방예의지국의 긍지를 잘 지켰던 것이다. 점령군으로서 우리나라에 왔던 미국인들을 맞다 보면 「아주 유순한 양같은 민족」이라고 칭찬하는 것을 들었다. ○「범죄왕국」오명 기막혀 그러나 70년대의 급속한 경제 성장으로 배가 부르고 생활에 여유가 생기고 삶을 즐기게 되자 물질만능의 유물주의 사상이 우리 삶에 스며들고 빈부의 격차가 심화되자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간의 갈등이 적대관계처럼 되어 버리고 말았다. 이러한 대중속에 흐르고 있는 심리는 사회적 질병같은 허무주의 사상이다. 이 허무주의는 어느 철학자가 설명한 대로 인생과 세계가 허무하다는 감정이 생활과 심리와 윤리를 지배하고 있는 「기분적 허무주의」와 행동의 가치기준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실천적 허무주의」와 모든 사회질서를 부정하는 「정치적 허무주의」가 사회 밑바닥에 깔려 있다. 이 「허무주의」는 부정의 정신이요 반역의 정신이다. 현재의 일체의 기준ㆍ가치ㆍ질서ㆍ권위에 대해 「아니다」고 부정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지금 경제위기라고 말하지만 실은 경제위기가 아니라 정신적 도덕부재에서 온 위기이다. 경제공황이 아니라 도덕공황이다. 경제적 자원결핍이 아니라 정신적 영적 각성의 결여에 있다. 미국의 경제공황때는 그래도 교회와 교육계에 도덕적 각성이 있었고 교회가 그 사회에 방향을 제시하므로 잘 이끌어 갔다. 그런데 오늘날은 종교마저 물량주의적인 유신론적 유물주의에 빠져 허무주의 사상에 부채질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 도덕적 정신적 무정부 상태에서 오는 폭력과 비리는 신뢰받지 못하는 지도자들에 대한 도전이라고 보아야 한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이다. 지극히 평범한 이 진리를 무시하기 때문에 흙탕물이 된 아랫물에서 마음대로 광란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될대로 되라는 허무주의 사상에서 나온 열매이다. 이와 같은 사회의 질병이 치료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의 앞날은 참으로 암담하다. 어떻게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없을까? 장관들을 갈면 되는 줄 알지만 그 사람들이 옷만 갈아 입고 나온들 아무 쓸 데가 없다. 정책변경을 수십번 했으나 그것이 그 사람들에 의해 나온 것이니 마찬가지다. 구약성서 열왕기서에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북왕국 이스라엘에는 여호람이라는 왕이 12년간이나 악정을 하는 중 엘리사라는 선지자가 여리고성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하루는 백성들이 엘리사에게 와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의 터는 아름답지만 물이 좋지 못하므로 모든 토산물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고 있으니 도와달라』고 요청하자 엘리사가 말하기를 새 그릇에 소금을 가져 오라고 하여 물 근원으로 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 던지면서 말하기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 인하여 다시는 죽음이나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짐이 없을 지니라』하셨느니라 하니 그 물이 고쳐져서 오늘까지 이르렀다는 이야기다(열왕기하 2장19∼22절). 믿든 안 믿든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좋은 교훈을 준다. ○근본문제 처방은 뒷전 토산물이 떨어지고 물을 마시는 가축이 죽어갈 때 청정제와 같은 소금을 물 근원에 던져 근본적인 문제를 치료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것임을 선포한 것이다. 그러므로 첫째 우리나라 상층부의 지도자들이 치료받아야 땅에 떨어진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사회에 팽배한 불신 풍조다. 지금은 어떤 말을 해도 믿지 않으려 한다. 이 불신 풍조는 지도자들의 언행이­이 언행이 곧 정책이기도 하지만­진실해야 한다. 지도자들의 입에서 『절대 그런 일이 없다. 사실무근이다. 그런 표현이 아니었다』는 말로 부인했다가 하루 아침에 그 취소된 말 그대로 밀고 나가고 있으니 불신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둘째로 이 사회에 좀더 평화롭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부드러운 말은 통치기구에서부터 보여 주어야 한다. 집안싸움은 신뢰와 존경을 받을 수 없다. 본래 질서가 있고 우애있는 가정은 싸움이 없는 법이다. 아무리 가난해도 예의범절이 있기 때문에 웬만한 문제가 일어나도 곧 잠잠해지는 법이다. 그러나 부모들이 싸움이 잦은 가정은 그 집 아이들도 잘 싸우고 부모들이 욕을 잘하면 자녀들도 욕쟁이가 된다. 그리고 가정 분위기가 산만하면 자녀들이 안정되지 못하고 결국 가출까지하게 된다. 교회도 목사가 호전적이면 교인도 호전적이 되고 목사와 장로들이 싸우면 교인들도 싸우게 된다. 한 나라도 예외일 수 없다. 여소야대의 정치판도에서 싸움이 쉴 날이 없었다. 3당합당후로 여대야소가 되었으니 싸우지 않고 나라 일이 잘 되겠지 하는 기대를 걸었으나 이제 집안싸움으로 국민들의 신뢰를 잃어 버렸다. ○무교양적 처신에 환멸 이 싸움은 국가이익이 걸린 천재일우의 좋은 외교현장에서 인기 수입을 노린 경쟁추태를 다룬 보도와 고십만화가 연재되더니 급기야 추한 일이 터지고 말았으니 국민들이 볼 때 우습게 보고 있다. 야당은 야당대로 젖먹던 힘까지 합해서 독주하는 정부를 견제해도 역부족일 터인데 보궐선거에 이겼다 해서 다 된것처럼 위세를 부리는 것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다. 셋째로,좀더 긴 안목으로 인내와 성실로 소외된 계층에 관심을 두는 나라 살림을 해야 할 것이다. 물론 하루 아침에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예를 들자면 전ㆍ월세법 같은 것은 잘 해보겠다는 것이겠지만 오히려 집 없는 사람들을 울리고자살하게 하는 죄악을 범하고 있다. 『3월 한달 사이에 서울과 성남시에서 전ㆍ월세집을 구할 능력이 없는 것을 비관,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5명이나 있었다』정부가 사후처방문으로 내놓은 것이 상투적으로 「세무조사」라는 것으로 다스리려고 한다. 세무조사나 자금출처 추적조사 등은 문제가 발생하기만 하면 으레 손오공의 여의봉을 휘두르듯 하고 있으나 과연 그것으로 해결이 되었던가? 뛰는 놈이 있으면 나는 놈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런 문제도 결국 도덕성의 결여 때문이다. 이 도덕성 부재가 사회악의 근원이 된다. 예언자 엘리사의 방법대로 소금구실을 하는 도덕성,영적 정신적 각성이 지도자들에게 하루빨리 회복되는 길만이 「범죄왕국」의 오명을 씻을 수 있다.
  • 외언내언

    미륵은 원시불교집단에서 석가의 한 뛰어난 제자였다. 석가가 보살이었을 적에 미륵 역시 보살로서 같이 수행하고 있었다. 그 근기로 말하면 미륵이 석가보다 먼저 성불할 수 있을 것이었으나 수행정진에 보다 맹렬하고 진지한 석가가 보통 백겁을 요하는 보살행을 91겁으로 마치고 성불했다. 그래서 석가가 현재불이 되었고 미륵은 내세불로서 수행을 계속하고 있다고 불경은 전한다. ◆미륵은 석가세존 입멸후 56억7천만년 뒤에 다시 세상에 나와 승림원의 용화수 밑에서 성도한 다음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 그때 이 세상은 낙토로 변한다. 이처럼 미륵신앙은 유토피아적 이상세계에 대한 동경과 희구로 특정지어 진다. 그러나 이상세계가 저절로 오는 것은 아니다. 중생들의 수많은 공덕과 부단한 정진으로 해서 건설되고 전개된다. 말하자면 우리 불교의 미륵신앙은 희망의 신앙이되 또한 끊임없는 정진의 신앙이기도 하다. ◆삼국시대이래 지금까지 미륵신앙은 연면히 이어오면서 우리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 시대 미륵신앙의 유행은 미륵반가사유상이라는뛰어난 걸작품을 남길 수 있었다. 잔잔하고 평화로운 미소를 머금고 있는 불상에서는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의 평온을 읽을 수 있다. 한 손가락을 볼에 대고 사색에 잠긴 그 불상의 모습을 통해 조상들의 미래의 이상을 향한 꿈을 그려볼 수도 있다. 불안하고 어두운 사회에서 기아와 질병으로 시달리던 민중들에게 이상사회 실현을 약속하는 미륵신앙은 소박하고 막연한 기대감을 줄 수 있었는지 모른다. ◆호서 제일 가람인 속리산 법주사에 불교적 정토와 이상세계를 계시하는 청동미륵대불이 세워져 12일 회향식(준공식)을 갖는다. 세계 최대규모인 이 미륵대불의 복장에는 스리랑카에서 가져온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진다. 회향식에는 이북 불교도들이 초청됐으나 결국 오지 못했다. 선문에 적혔으되 일상생활과 평상심이 곧 부처이며 미륵이며 진리라 했다. 언젠가는 현세불이 될 미륵의 자비보살행이 북한땅에도 골고루 펴졌으면 하는 것이다.
  • 외언내언

    아프리카대륙 남서쪽,남대서양 연안에 있는 82만4천2백92㎢의 영역 나미비아. 이 이름도 1968년 유엔에 의해 지어진 것으로 그 전에는 그냥 남서 아프리카라 불렸다. ◆원주민은 부시맨. 역사는 분명치 않다. 맨처음 백인이 이곳에 상륙한 것은 1488년. 포르투갈 사람들이었다. 그로부터 3백년 가까이 흐른 1760년,케이프 타운의 네덜란드인들이 들어와 지금의 월비스 베이에 대한 영유권을 선언한다. 그 이후 독일ㆍ영국의 각축과 아프리카인들의 저항을 거쳐 1차대전과 2차대전 끝의 홍역을 치르는 나미비아. 1915년에 시작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신탁통치 이래 2차대전이 끝난 1949년부터는 실질적으로 그 나라의 속령화하면서 서남 아프리카 분쟁의 진원지로 되어 온다. ◆지난해 4월 남아공ㆍ쿠바ㆍ앙골라의 평화협정과 유엔 안보이사회 결의에 따라 독립일정 제1단계로 들어갔고 11월에는 제헌의회를 구성하는 총선거를 치렀다. 이 선거에서 나미비아 독립 게릴라 단체인 서남 아프리카 인민기구(SWAPO)가 집권에 성공한다. 남아공 치하에서 특권을 누린 백인들의 저항이 도처에서 유혈극을 벌였던 선거. 제헌의회는 독립투사 삼 누조마씨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아프리카 마지막 식민지」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 나미비아가 21일 독립했다. 유엔 안보이사회가 1969년10월까지 독립을 시키겠다고 했던 결의를 상기한다면 20년을 지각한 독립. 그 전의 식민지 시대는 논외로 쳐도 1915년부터서만 헤아려 75년만에 맛보는 이 나라 흑인들의 감격은 큰 것이리라. 5천여명의 세계 각국 하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들은 그들의 국기를 그들 손으로 게양했다. ◆하지만 독립이 곧장 행복과 평화로 연결되지만은 않는다는 것이 또 현실. 백인들의 반발 못잖게 그들 11개 부족끼리의 대립도 문제다. 당장 경제는 남아공쪽에 의지해야 할 형편이라는 점 또한 찜찜한 구석. 그들의 참다운 독립의 길을 지켜보고자 한다.
  • 통일논의와 교육의 새 방향(사설)

    90년대의 전반기는 남북한관계 전개에 있어 중대한 전환기로 전망되고 있다. 동구 사회주의국가들의 민주적 변혁과 동서화해추세,북한 내부의 경제난및 김일성부자의 권력승계문제 등 한반도 내부의 여건변화가 그러한 전망의 근거가 되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정부가 최근 주변정세변화와 남북교류협력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대국민 통일안보교육을 보다 전향적인 통일인식의「통일교육」으로 바꾸겠다는 정책의지가 바로 그것이다. 정확히 지적하건대 종래 우리의 통일관련교육은 근본적으로 안보와 반공의 논리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지나간 시대 우리에게 있어 반공과 안보와 통일은 한반도 문제해결 과정에서 삼위일체를 이루는 대명제였다. 안보와 통일문제가 정권유지차원에서 이용됐다거나 하는 부정적 시각도 여기서 비롯됐다. 통일이 먼저냐,반공이 우선이냐 하는 소모적인 국시논쟁이 한때 정치권을 소용돌이쳤던 것도 그때문이었다. 엄밀히 얘기해서 그것은 6ㆍ25동란을 겪은후의 전쟁적 산물이었다. 한반도분단의 연원과 책임을 거슬러 따질때 미국과 소련을 균형된 인식위에 올려놓는다는 정책의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사실 한반도 분단의 책임은 1차적으로 미국과 소련에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미국은 그들의 세계전략수행과정에서 한반도 허리에 38선을 그었고,소련은 38이북을 선점하고 나섰다. 그같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정확하고 객관적인 인식이야말로 한반도문제해결 노력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본다. 미소를 비롯한 한반도 유관국가들이 최근 남북한문제해결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접근하는 것도 이런 측면에서 인식돼야 할 것이다. 종래의 통일교육과 달리 한반도분단책임을 미소에 균형되게 돌린다고 해서 반미 용공이 된다거나 그것이 최근 남용되고 있는 수정주의 사관을 수용한 것이라고 지레짐작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잘못된 생각일 것이다. 우리는 그러나 통일교육의 발전적 수정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원칙은 불변해야 하리라고 본다. 첫째,통일논의의 다양성은 충분히 살리되 남북한의 통일은 궁극적으로 민주주의체제와 민족적 대도 위에서 평화적 방법으로 추구돼야 한다. 통일은 해야한다. 통일없이 한반도와 우리 민족은 평화로울 수 없다. 둘째,통일은 현재의 대립되는 남북한 양쪽의 어느 한쪽도 훼손되거나 파괴되지 않는 상태로 이뤄져야 민족적인 정당성을 갖는다. 갈라진 남북한이 이제 다시 하나의 민족공동체로 적대를 중지하고 더불어 번영하기로 한 「7ㆍ7특별선언」의 정신이 그러하다. 셋째,통일정책의 수립과 그 구체적 추진은 국민적 합의위에서 정부가 담당해야 한다. 한민족 공동체통일안이 지금 광범한 국민적 합의로 되고 있는 것도 이 세가지 원칙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한민족공동체통일안이 그동안 다소 방만하다 할정도로 흩어졌던 국민적 통일의지와 역량을 새롭게 다지는 계기였다는 평가에 인색할 국민은 없다. 앞으로의 통일교육도 그 토대 위에서 새롭게 전개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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