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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경제추진회의 「노사협력」 부각의 뜻

    ◎“「회복세 경제」 산업평화로 부축” 의지/물가안정과 함께 「화합」 최우선과제 인식/“새 통상시대 수출저해요인 불용” 경고도 올해 국정운영에서 차지하는 노사문제의 비중은 얼마나 될까.또 앞으로 노사정책의 풍향은 어떨까. 23일 김영삼대통령 주재로 서울 무역협회에서 열린 신경제 추진회의는 이런 질문에 명쾌한 해답을 준다.30대 그룹의 회장과 이 회사의 근로자 대표 57명이 참석한 가운데 김대통령이 노사정책의 방향을 분명하게 제시했기 때문이다. 대재벌의 총수들과 노조 위원장들이 한자리에 모여 노사협력 문제를 논의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그만큼 대통령이 경제,특히 노사문제에 기울이는 관심이 크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정부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침체된 경제의 회복을 위해 애를 태웠다.다행히 올해에는 경기가 급속하게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따라서 현 시점에서는 물가안정과 노사화합이 가장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김대통령이 이날 노사협력이 잘 되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을 구분해 『분쟁이 계속되는 기업은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차별화」를 선언한 것도 이를 반증한다. 우루과이 라운드(UR)협상의 타결로 무한경쟁의 시대를 맞아 세계 각국이 모두 뛰는데 우리만이 앉아있을 수는 없으며,경쟁력 확보의 요체인 산업평화를 막는 어떠한 행동도 좌시하지 않겠다는 경고적 의미가 담긴 것 같다. 우리 경제는 지금 80년대 후반 이후 가장 좋은 도약의 조건을 맞았다.연초 물가를 잡는 데 곤욕을 치렀지만 지금은 물가가 안정세로 돌아섰다.생산·투자·수출 등 모든 면에서 활기를 띠고 있다.다만 노사문제만 아직 안심할 처지가 아니다.현대 계열사의 파업으로 시끄러웠던 지난해보다는 조용하지만 낙관하기는 어렵다. 중소기업의 임금교섭은 비교적 빠른 속도로 진행중이다.대기업의 임금협상 진도율도 4월말까지 작년보다 8% 포인트 정도 높은 30%에 육박했다.그러나 30대 그룹의 임금 타결률은 16.8%로 평균치에 훨씬 못미친다.정부가 올 노사관계를 걱정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날 회의에서는 금성사 창원공장의 모범적인 노사관계를 담은 15분짜리 영화가 상영됐다.회사측과 근로자를 상하관계가 아닌 수평관계로 설정하고 「노사」라는 표현 대신 「노경」(경은 경영진)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도입해서 노사협력에 성공한 사례가 소개됐다.무슨 일이 있더라도 노사안정을 이루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이해된다. 기획원의 최종찬 경제기획국장은 『정부는 올해 산업재해 예방,직업훈련 시설 확충 등의 조치를 통해 근로여건 개선에 주력할 방침』이라며 『노사화합을 위해서는 기업의 경영주,특히 30대 재벌 경영주들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국악과 어우러진 추동복 패션쇼

    ◎안지히·최지숙 등 6명 참가… 70점씩 선보여 우리 전통의 청아한 국악과 현대 패션쇼의 만남. 대한복식디자이너 협회(KFDA 회장 안지히)는 지난 3∼4일 서울 호텔신라 다이너스티홀에서 우리 전통 악기의 연주와 복합음악을 배경으로 제6회 컬렉션 「삶과 에너지」를 개최,큰 관심을 모았다. 이날 패션쇼는 94·95 가을·겨울 유행의상을 소비자와 백화점 의류바이어들에게 미리 선보인 정기 트렌드 쇼. 국립국악원 협찬으로 국악의 은은한 분위기와 현대음악이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최지숙 이윤혜 조명례김해련 김연주 안지히씨 등 6명의 디자이너가 각각 60점씩을 선보였다. 외국 대형 의류업체의 국내시장 진출을 극복하고 세계패션의 흐름에 부응하면서도「철저하게」우리의 옷을 제시하기 위해 「국악의 해」를 기념,전통음악을 배경으로 쓰게 됐다는 것이 KFDA측의 설명. 카프다 패션쇼가 제시한 올 가을 겨울의 주된 패션흐름은 롱코트 롱재킷등 길고 가늘게 흐르는 선과 강한 원색보다 회색 자갈색 검은색등 자연색상을 위주로 한 동양적 민속풍.작품성위주보다는「입고 싶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 관객들의 반응이다. 「소유에서 존재로」를 주제로 쇼의 첫무대를 장식한 디자이너 최지숙씨는 아이보리 베이지 자연색상과 니트 쉬폰 소재등을 이용,깔끔하고 단정한 의상들을 선보였으며 김해련씨는 부드러운 색조의 옷에다 진주장식 코사지등의 액세서리로 가을 분위기를 낸 옷등을 5무대로 구분,선보였다. 조명례씨는 「절정」을 주제로 흑백 과 강한 원색의 대비에 도시의 경쾌함을 담은 작품을 제시,호평을 받았으며김연주씨는 「평화로움에의 귀향」을 주제로 절제되고 풍성한 느낌의 옷을 선보였다. 흑백의 배합을 주로 한 의상이 특징인 이윤혜씨는 무성영화시대의 복고적인 분위기를 재조명한 롱재킷과 조끼등을 선보이고 미니스커트와 커다란 블라우스로 자유스런 멋을 가미했다. 국립국악원 연주자 노부영씨의 대금독주로 무대를 펼친 안지히씨가 선보인 의상은 조선초기 우리옷의 선과 빅토리아 시대의 귀족풍의 옷등을 가장 현대스럽게 재연한 재킷과 코트,원피스등.10개 무대가 모두 북과 피리 꽹과리,현대음악이 조화된 배경음악을 사용해 눈길을 모은 안씨는 은색 금속소재를 사용한 의상에다 청동 탈바가지의 디자인을 응용한 액세서리를 함께 써 전통과 미래를 동시에 표현했다.
  • 빅토리아호 공해로 죽어간다/아프리카 최대규모… 한국면적의 3분의2

    ◎산업폐기물·농약으로 갈수록 오염 아프리카 최대의 호수 빅토리아호가 공해로 죽음의 호수가 되고 있다.지구상에서 북미의 슈피리어호 다음으로 큰 빅토리아호수는 면적이 6만9천4백85㎦로 남한 면적의 3분의 2 나되며 나일강의 수원지이다.호수가 육지와 면해있는 길이는 3천4백40㎞에 달하며 우간다·탄자니아·케냐등 3국에 연해있다.1858년 영국의 탐험가가 발견,당시 여왕의 이름을 붙인 이 호수는 잉어와 농어등의 보고로 이곳에서 잡히는 민물고기들은 맨살로 떠서 유럽이나 아랍제국에 팔려 갔으나 최근 호수의 산소가 줄어 고기가 잡히지않아 연안 국가들의 어민들이 큰 타격을 받고았다. 60년대 까지만 해도 빅토리아호수에 서식하는 민물고기는 4백여종이나 되었으며 호수주변 마을은 어업으로 번창했다.빅토리아호수가 균형을 잃고 죽음의 호수가 되기시작한 것은 1920년부터이다.영국계의 공장과 농장이 들어서면서 유독산업폐기물및 비료·농약성분이 흘러들면서부터 빅토리아 호수는 처녀지의 평화로움을 잃게 됐다.1940년 이 되자 농약과 비료에포함된 질소와 인의 과다 유입은 호수의 플랑크톤 구조를 크게 악화시켰다.1960년이 되자 사태는 더욱 악화 되어 호수의 규조류 플랑크톤이 무수규산의 결핍으로 줄게 되었다.호수의 생태계가 파괴되자 다이어톰이라는 플랑크톤을 먹고사는 느게라는 물고기가 줄어들기시작,80년대부터는 아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호수안의 산소가 부족하자 물고기들이 호수가로 몰려나와 한동안 고기 낚기는 좋았으나 호수 깊은 곳에서는 큰 고기들이 죽어가고 있었다.빅토리아호수가 죽음의 호수로 변하고 있는 이유는 기상이변도 큰 역할을 하기도 한다. 우기의 빅토리아호수는 호수표면에는 따뜻한 물과 그 밑으로는 찬물이 흘러 바람이 불면 호수위의 산소가 밑의 찬 물로 들어가게 되는데 최근의 이상고온은 물의 대류 현상이 일지않아 산소는 점점 더 줄어들게 되었다. 호수 주변국가들은 죽어가는 호수를 살려 고기가 살수 있는 물을 만들자는 캠페인을 펴나 대부분 가난한 나라들이어서 자금을 마련할 길이없어 선진국들의 도움만 고대하고 있다.
  • 힌두교/이슬람교/인도선 “한지붕 두성전”(사회의 사회면)

    ◎4백년동안 「공동의 성인」에 예배/내부→제단·외부→뾰족탑… 건물양식도 “조화”/「이교 두공동체」 형제적 유대가 바로 “기적” 흔히 「역사는 배타적인 종교적 갈등으로 인한 추악한 피로 얼룩져 있다」고 말한다.그러나 역사가 반드시 그같은 악순환만을 되풀이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마을이 있다. 힌두교와 이슬람교 사이에 오랜 갈등관계가 계속되고 있는 인도 남부 카르타카나주 굴바르가 지역에 있는 틴시니라는 작은 마을에서는 지난 4세기동안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들이 한 성전에서 공동의 성인에게 예배를 드리며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이 마을의 힌두교및 이슬람교 신도들은 힌두교도에게는 모네쉬와르바바로,이슬람교도에게는 모나파이아라고 불리는 공동의 성인을 모셔놓은 성전에서 나란히 무릎을 꿇고 예배를 드린다.한 지붕아래 힌두교사원과 이슬람교사원이 함께 있는 셈이다. 「자신의 신념을 믿으라」는 뜻의 모네쉬와르바바 혹은 모나파이아 성인이 이처럼 이중으로 신도를 갖게된 것은 그가 힌두교도들의 추앙을 받는 성인이면서 동시에 이슬람교의 신비주의에 심취한 성인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성전에서는 해마다 열흘동안의 종교행사를 갖는데 이때 수많은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들이 이 사원으로 몰려든다.올해도 지난달 2주동안 종교행사가 열렸으며 매일 1천여명의 신도들이 틴시니 마을을 찾았다. 특이한 것은 이 성전에서는 성직자를 중심으로 한 엄격한 계율보다는 신도들의 자유로운 예배가 더 강조된다는 점이다.한 성직자는 『이곳은 논쟁을 벌이기 위한 성전이 아니며 성직자보다는 일반신도들이 중심이 되는 성전이다.중요한 것은 믿음이다.누구든 자기 방식대로 예배를 드린다』고 말한다. 성전건물도 인도와 이슬람의 건축양식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건물외부는 뾰족탑과 돔이 상징하듯 전형적인 이슬람 건축양식으로 이루어져 있다.그러나 내부로 들어가면 성소로 통하는 입구에 4개의 커다란 종이 있으며 성인의 초상화가 벽에 걸려있다.초상화 아래 작은 문으로 들어가면 힌두교식 예배를 위한 제단이 마련돼있다. 이처럼 두가지 종교가 혼합됨으로써 이 지역에 거주하는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 사이에 유대감이 생겼을 뿐아니라 정부당국으로부터도 좋은 반응을 얻고있다.성전을 관리하는 정부위원회의 14명 가운데 한 사람인 라자나 카다콜은 『성전은 두 공동체에 똑같이 신성시되고 있으며 두 종교가 훌륭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말한다. 아직 이 성전에 모셔진 성인이 초자연적인 힘을 가졌다는 증거는 나타나지 않았다.그러나 지난 4백년간 종교가 다른 두 공동체로 하여금 형제적 유대감을 갖게한 것이 바로 기적일는지도 모른다.
  • “결국엔 전쟁 터진다” 연일 대남 위협

    ◎실무접촉 결렬뒤 평양 움직임/방송·신문 등 동원 “남측에 책임” 총공세/“한국군장병 통일투쟁 나서라” 선동도 북한은 특사교환을 위한 실무접촉이 결렬된 지난 19일 이후 연일 보도매체와 각종 성명을 통해 결렬책임을 우리측에 떠넘기면서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경고와 함께 「전쟁국면조성엔 파멸뿐」이라고 강조하는등 위협을 계속하고 있다. ○…평양방송은 20일 한반도 통일문제가 『현시기 국제정치무대에서 해결을 기다리는 초미의 문제』라고 주장하면서 90년대 통일성취를 강조했다. 평양방송은 이날 「조선의 통일은 시대의 요구」라는 제하의 대담프로에서 한반도의 분열상태가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를 향시적으로 위태롭게 하는 긴장상태의 근원으로 되고 있다』면서 만약 오늘날의 첨예한 대치상태가 그대로 지속된다면 『북남사이의 불신은 더욱 커지고대결이 날로 격화될 것은 뻔한 일이고,결국은 조선땅에서 또 한차례의 전쟁이 터지는 사태가 벌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그것은 쉽사리 조선경내를 벗어나게 될 것이고,그렇게 되면 우리 민족은 말할 것도 없고 인류가 무서운 재난을 당하게 될 것』이라면서 『조선반도가 평화롭지 못하면 아시아와 나아가서 세계가 평화로울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방송은 또 북한의 통일방안이 세계의 진보세력들로부터 적극적인 지지와 성원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우리 인민의 자주적 평화통일위업은 90년대에 반드시 성취되고야 말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앙방송은 21일 남북한 특사교환을 위한 실무접촉 결렬 책임을 한국측에 전가하면서 『사태를 전쟁국면으로 몰아가는 자들에게는 민족의 저주와 파멸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 방송은 특사교환 실무접촉 북측 대표단이 실무접촉 결렬과 관련해 발표한 성명을 인용,지난해 5월 「특사교환」제의 이후 여러차례의 실무접촉을 진행해 오면서 북측은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 모든 성의와 노력을 다했으나 『남측은 거듭 인위적인 장애를 조성,특사교환의 실현을 방해했다』고 주장하면서 이로인해 특사교환이 엄중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보도했다. ○…노당당기관지 노동신문은 20일 특사교환을 위한 제8차 실무접촉이 결렬된 것과 관련,한국측이 특사교환문제를 북­미회담의 방해술책으로 악용했다고 비난하면서 이를 민족앞에 사죄하라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논평을 통해 『남조선 통치배들은 자기의 정치적목적달성을 위해 실무접촉을 결렬시키고 북남관계를 또다시 예측할수 없는 대결국면으로 몰아간 범죄적 책임을 면할수 없다』고 한국측에 책임을 전가했다. ○…평양방송은 20일 한국군 장병들에게 정부당국의 명령을 거부하고 통일투쟁에 나서라고 격렬히 선동했다. 평양방송은 이날 논단프로를 통해 한국군이 『명령에 맹목적으로 추종,동족을 해치는 북침전쟁연습에 끌려다니고 있다』면서 한국당국의 명령을 따르는 것은 『나라와 민족앞에 씻을수 없는 죄를 짓는 반역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NPT탈퇴위협 저의와 전망/「핵카드 효용」 극대화 노린 의도적 강수/제재결의 가시화되면 결행가능성도 북한이 21일 핵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기류가 강경대응 쪽으로 선회하고 있는 가운데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도 불사한다고 위협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북한이 이같은 강경반응을 보인 것은 일차적으로 특사교환을 위한 실무접촉을 결렬시킨데 이어 핵카드의 효용성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의도적인 강수라고 볼 수 있다.즉 장기적 핵게임을 염두에 두고 있는 북한으로선 아직도 본격적인 제재국면으로 들어갈 때까지는 시간이 있다고 여기고 있다.때문에 나중에 다시 꼬리를 내리더라도 현단계에선 일단 초강수로 맞섬으로써 계속해서 NPT체제를 유지하려는 미국이 팀스피리트훈련 재개와 유엔안보리 제재 등을 주도하는 데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속셈인 것이다. 이는 지난 19일 특사교환을 위한 실무접촉에서 「불바다」운운하며 대남 위협발언을 한데 이어 대북 제제를 저지하기 위한 한미관계 교란용 카드라고도 볼 수 있다. 즉 NPT체제를 유지하는데 일차적 관심을 두고 있는 미국과,한반도의 전쟁재발을 원하지 않고 있는 한국의 틈새를 교묘히 파고들어 한 차례씩 위협구를 던진 것이다. 반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부분적으로 수용하고도 내심 매달려 왔던 미·북 3단계회담을 성사시키지 못한데 대해 북한내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불길한 관측도 있다.이는 불만족스러운 IAEA사찰에 따라 확산되고 있는 국제사회의 제재 움직임에 대안없이 「자해공갈」수준의 카드로 맞서고 있다는 우려이다. 이같은 가설이 사실이라면 북한은 유엔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가 가시화될 경우 실제로 NPT탈퇴를 결행할 가능성도 있다.
  • 백제인의 불교신앙(백제를 다시본다:8)

    ◎성왕이래 융성… 불국정토건설 희구/미륵신앙 대유행… 미륵사는 그 중심/6세기 불경·불상 이미 국제적 수준 「백제에는 승려와 사탑이 매우 많다」.주서의 이 기록처럼 백제에는 불교가 성했고,당시 사람들의 생활은 불교신앙에 깊이 뿌리박고 있었다.풍진세상 살면서도 때묻지 않는 연꽃의 그 맑은 마음 배우기를 희망했다.그리고 미륵불이 출현하는 아름다운 불국토를 희구하면서,불전에 향을 사르는 공양을 게을리하지 않았다.그들이 꿈꾸던 행복은 서산마애불의 따뜻하고 평화로운 웃음같은 것이기도 했다.불국은 향기로 가득한 나라다.계의 향기,삼매의 향기,그리고 해탈의 향기가 가득 피어나기를 불전에 기원하던 백제인의 염원은 최근에 출토된 아름다운 향로에도 스며있다.백제의 향로가 그토록 아름다운 것은,또 그 작은 향로에 사람과 동물이 함께 있고,음악이 또 거기에 있음은,자신을 향기롭게 닦고 세상을 향기롭게 꾸미려던 진실된 마음의 발로이기도 한 것이다. ○향로에도 불심스며 백제는 한강 유역에 도읍하고 있던 4세기 후반에 이미 불교를수용한다.그러나 웅진시대를 지나 사비로 천도할 무렵까지의 기록은 거의 없다.다만 성왕 이후의 기록이 약간 전할 뿐이다.사비시대라 할지라도 불교에 관한 기록이 적고 유물과 유적 또한 흔치 않다.그나마 단편적인 자료가 남아 이 시기 백제불교가 국제적 수준의 문화를 소화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엿보게 한다.백제 구법승의 발길은 중국은 물론이고 멀리 인도에까지 미쳤다.사비성에는 인도의 패달다삼장이 겸익을 따라와서 율부번역에 참여했다.선신니등 일본의 구법유학승이 와서 백제불교를 배웠다.사신과 구법승의 중국 내왕을 통해서 부지런히 선진의 문화를 수용했고,동시에 신라 및 일본 등지로 그들의 불교문화를 전파했다. 겸익이 인도의 구법유학에서 돌아온 것은 성왕 4년(526년)이다.왕은 그를 흥륜사에 살게하고 28명의 고승과 함께 역경에 종사토록했다.율부 72권이 번역되자 담욱과 혜인이 율소 36권을 저술한다.겸익의 인도 유학과 율부의 번역은 백제불교의 폭과 역량이 국제적인 것이었음을 일러준다.백제불교는 계율을 중시했다.율부의 번역과 주석이 그 대표적 사례다.이밖에도 법왕은 살생을 금하고 민가에서 기르는 매를 놓아주며 고기잡고 사냥하는 도구를 불사르라는 명을 내릴 정도였다.법왕이 살생을 금한 것은 불교의 윤리를 국민의 생활 속에 심어주려는 노력의 하나로 풀이될수 있다.이 세상에 자기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없다.이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도 자신은 더없이 소중하다.불살생은 자비를 적극적 실천하는 일이다.우리의 일상생활을 제멋대로 방치해둔채,새로운 인생의 행로나 역사는 열리지 않는다.계의 정신은 나쁜 행위를 막고 대신 훌륭한 일은 권장하는데 본래의 뜻이 있다.백제불교가 계율을 중시했던 것도 이 때문이 아닌가 한다. ○겸익,인도 불교유학 미륵사,미륵불광사 등의 사찰이 세워졌던 백제사회에는 미륵신앙이 유행하고 있었다.AD634년에 낙성된 미륵사는 백제 미륵신앙의 중심 사원이다.전륜성왕의 이념을 구현하고자 했던 백제 왕실의 원찰이기도 했다.이 절의 창건연기설화에서 용화산 아래의 못에서 미륵삼존이 출현했다고 한 것으로 보면 미륵사는 미륵하생신앙을 토대로 창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미륵불이 용화수 아래에서 성불할때 이 세상은 낙토로 변하고 나라는 깨끗이 잘 정돈되어 온갖 재난은 사라진다고 했다.그리고 사람들은 평화로운 삶을 살 것으로 믿었다.미륵신앙은 유토피아적 이상세계에 대한 동경과 희구라는 특징을 지닌다. ○전륜성왕의 이념 구현 그러나 미륵불의 세상은 사람들의 노력과 공덕이 뒤따르지 않으면 안된다.미륵신앙은 희망의 신앙이거니와 끊임없는 정진의 신앙이기도 하다.아무튼 백제인들은 불국토의 건설을 꿈꾸었고,그것은 미륵사의 창건으로 표출되었다.경전은 미륵불이 이 세상에 출현할때 샹카라는 전륜성왕이 등장하여 나라를 평화롭게 다스린다고 기록하고 있다.이같은 내용을 감안하면 백제 왕실의 미륵사 창건은 정치적 의도를 담았다고 하겠다.그것은 불교적 정치이념인 전륜성왕사상을 실현하려는 것이었다.전륜성왕은 무력이나 힘에 의한 지배자가 아니라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려서 천하를 통일하는 이상적인 지도자였다.왕실에서는 전륜성왕사상을 빌려서 왕권을 강화하려는 정치적 의도도 없지 않았겠지만 전륜성왕의 이념을 현실 정치에 구현하려 했던 욕구 또한 강했던 것이다. 백제의 승려들에게는 법사·율사·선사·주사 등의 호칭이 사용되었다.불교의 여러 분야중에서 어느 하나를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승려가 있었던 것이다.경전은 거의 대부분이 유통되었겠지만 기록으로 확인되는 것으로 열반경·법화경·유마경·반약심경 등이 있다.그리고 천대학이나 삼론학에 조예가 있는 고승도 있었다.현광은 위덕왕때 진나라에서 남악 혜사로부터 법화경을 배우고 법화삼매를 증득했다.귀국 후에는 웅천에서 교화했다고 한다.그는 중국에서도 명성을 떨쳤고 귀국 도중에는 용궁에 초청받아 설법했다는 설화가 전할만큼 유명했다.혜현은 수덕사에서 법화경과 삼론을 강의했고 일본으로 건너간 관륵도 삼론학에 밝았다.의영이 약사본원경소와 유가론의림을 저술했다고 하지만 전하는 것이 없다. ○일 아스카문화에 기여 백제에는 대통사·왕흥사·미륵사 등의 큰 절이 있었다.최근의 발굴로 그 규모가 밝혀진 익산의 미륵사는 삼국 중에서도 가장 큰 절이었다.신라에서는 선덕녀왕때에 황용사에 9층탑을 건립하고자 하여 백제의 기술자 아비지를 초청해간 일이 있다.이는 백제의 건축 기술이 신라에 비해서 앞서 있었던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다.많은 백제의 고승·기술자 등이 일본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지도적 역할을 담당하면서 아스카문화를 일으키는데 기여했다. 일본 고대국가의 정비에 정신적 이념을 제공한 것도 물론 백제다.성왕30년(552년)에는 일본에 본격적으로 불교를 전했다.위덕왕 24년(577년)에는 경론과 율사와 선사 등을 보냈다. AD588년에는 불사리와 사문과 화공 등이 건너갔는가 하면 AD595년에 도일한 혜총은 쇼토쿠태자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던가.AD602년에 일본으로 간 관륵은 최초의 승정이 되기도 했다. 백제가 신라에 무력으로 병합된 이후인 신문왕때에 국로가 되었던 경흥이 백제의 웅천주 출신이었음은 주목할만 하다.그는 유식학의 대가로 당시의 대표적 고승이었다.이처럼 융성했던 백제불교는 통일신라의 새로운 불교발전에도 공헌했다.삼국은 오랜 분열과 대립으로 정치·사회·문화 전반에 많은 이질적인 것이 있었지만 불교라는 공통의 문화가 존재했기 때문에 민족 융합이 가능했다.우리 민족문화속에 살아 숨쉬는 백제 불교문화의 향기는 최근에 발견된 향로에서 아직도 풍기고 있다. ◎백제불교의 역사/384년 동진서 전래… 일에 전파/사비시대 정림사·금강사 등 많은 사찰 건립 백제불교에 관한 기록은 신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약하다.이는 「삼국사기」를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삼국사기」는 AD384년 백제에 처음 불교가 들어왔다고 기록했을뿐 그 이후 성왕 19년(AD541년)까지 불교관계 기사가 전혀 나타나지 않고있다. 그러나 성왕 19년에 불교기사가 다시 등장한다는 사실은 주목할만한 대목이다.그 해는 「삼국사기」기록대로라면 불교전래 1백57년이 되는 해이고,시기적으로는 사비천도 직후에 해당한다.그렇다면 성왕 때부터 불교가 융성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실제 사비시대에 백제불교가 대단히 번창했다는 사실은 근래 부여일대에서 발굴된 절터에서도 확인되었다. 군수리절터를 비롯,동남리절터,정림사절터,김강사절터 등이 그 대표적 발굴사례다.그리고 부여에서 멀리 않은 익산 미륵사절터는 발굴결과 사비시대 최대의 가람으로 밝혀졌다.이밖에 사비시대 백제고토에 해당하는 지역에 많은 절터가 산재해 있다.또 도기가마와 기와가마에서도 불상과 연꽃무늬기와,연꽃무늬상자형벽돌 등의 불교관련유물들이 많이 출토되었다. 백제에 처음 불교가 전래된 것은 침류왕 원년(AD384년)이다.백제는 침류왕 원년 7월에 동진에 사신을 보냈기 때문에 백제에 처음 불법을 전한 호승 마라난타는 귀국길에 오른 백제사신과 함께 왔을 것으로 보고있다.그리고 나서 오랫동안 불교관계기사가 나오지 않지만,사비시대가 개막되면서 백제불교는 국제화하는 양상을 띠게된다.구법승들이 중국은 물론 서역까지 진출하는가 하면,일본의 구법승들은 백제를 찾았던 것이다. 삼국 가운데 최초로 일본에 불교를 전파한 나라는 백제다.그 시기는 AD552년이다.고구려보다 32년 먼저 일본에 불교를 전파한 백제불교에 관한 기록은 일본쪽에 더 많이남아있다.
  • 정착촌 철거거부/이인 5만명 시위

    【텔아비브 AFP 연합】 이스라엘인 5만여명은 15일 텔아비브에서 점령지내 정착촌철수 불가등을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고 경찰당국이 밝혔다. 시위대는 이날 「예루살렘과 헤브론은 이스라엘인의 영원한 안식처」「정착촌은 철거될 수 없다」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으며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총리를 땅을 평화로 바꾼 「배반자」라고 몰아세웠다.
  • 한용운선생(이달의 독립운동가/다시 새기는 그 충절)

    ◎3·1운동 주도한 저항시인/불교대표로 참여… 선언문 배포 지휘/출옥후 신간회·비밀결사 만당 결성/「님의 침묵」등 시 3백편·소설 「죽음」「흑풍」 남겨 만해 한용운선생(1879∼1944)은 토지·조세·신분문제등에 대한 불만으로 전국에서 민란의 불길이 일던 봉건왕조말기에 태어났다.선생은 청년시절 날로 기울어가는 국운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동학혁명에 가담하기도 했으나 24세때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 끝에 출가했다. ○동학혁명에 가담 입산한 지 10년만인 1913년 선생은 자유·평등사상에 기초한 「조선불교유신론」을 발간,부패가 만연한 당시의 불교계에 큰 충격을 던졌다.선생은 이 유신론에서 번잡한 각종 의식을 없애고 직접 생산에 종사하자는 혁신적 주장을 펼쳤다. 선생은 같은해 10월 친일승들이 모여 한국의 원종과 일본의 조동종을 통합하자 이를 친일매불행위로 규정한 뒤 승광사에서 전국승려궐기대회를 열고 임제종을 창립,큰 호응을 얻어냈다. 선생은 이후 불교의 대중화를 위해 방대한 고려대장경을 현대적으로 정리,불교대전을 펴냈으며 처음으로 불교잡지 「유심」을 창간,계몽활동에 뛰어들었다.당시 지식인으로 명망이 높던 최린·최남선·현상윤등도 이 잡지발간에 적극참여,암울한 식민무단통치시대에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횃불역할을 했다. 선생이 독립운동가로 본격적으로 나서게 된 것은 1919년 3·1독립운동을 추진하면서부터다. 3·1운동에 초기단계부터 주도적으로 참여한 선생은 당시 유림과 불교계의 포섭을 맡았다.전국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 독립운동에 동참할 것을 권유한 뒤 독립선언 하루전인 2월28일에는 독립선언문 3천장을 인쇄소인 보성사사장 이종일로부터 넘겨받아 중앙학림 학생들에게 전달,다음날인 3월1일 시내에 배포하도록 했다. 독립선언서의 공약삼장에 대해서는 선생이 지은 독립선언서를 수정해 삽입했다는 설과 최남선이 작성했다는 설이 나누어 있다. ○옥중에서도 태연 1919년 3월1일 하오2시 종로 태화관에 모인 민족대표들은 독립선언서를 돌려보는 것으로 낭독을 대신해 독립운동의 서막을 열었다.선생은 이 자리에서 『조선의 독립을 선언하게 돼 책임이 막중하다』며 일제에 체포되더라도 변호사를 대지 말고 사식과 보석을 요구하지 않는등 당당한 대응을 하자고 행동강령을 제시했다.민족대표들은 모임이 끝나자마자 일경에 모두 체포됐으며 선생은 옥중에서도 수도승답게 태연한 모습을 지켰다. 선생은 옥중에서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이라는 논설을 통해 『자유·평등·평화는 민족의 자존과 세계평화로 이어지는 대강령이며 이번의 조선독립선언은 국가를 창설하자는 것이 아니라 한때 치욕을 겪고 있는 고유의 독립국이 다시 복구되는 것임』을 설명했다. 3년여 옥고를 마치고 가출옥한 선생은 청년교육과 훈련에 힘을 쏟기 시작했다.1924년 불교청년회회장으로 취임,대중불교건설에 앞장섰으며 「유심」등 신문잡지를 통해 『청년들에게 역경은 큰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며 『이 땅의 젊은이들은 나라가 없다고 좌절해서는 절대 안된다』고 강조했다. 선생은 1927년 좌우합작 민족유일당운동인 신간회결성에 참가했으나 2년 뒤 이 단체가 광주학생의거 진상보고민중대회를 가지려다강제해산됨에 따라 1930년 청년불교도들이 결성한 비밀항일독립운동단체인 만당의 당수로 취임,와해되기 전까지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대학설립 수포로 이와 함께 1926년 이상재·이승훈·조만식선생등 30여명과 조선민립대학설립 기성회를 구성,대학을 세우려 했으나 일제가 이 운동을 방해하기 위해 경성제대를 설립하는 바람에 대학설립은 수포로 돌아갔다. 한국문학사에서 3·1운동세대가 낳은 최대의 저항시인으로 꼽히는 선생은 1926년 발간한 「님의 침묵」에 모두 3백여편의 시를 실었다.또 소설로는 「죽음」「흑풍」「철혈미인」「박명」등을 남겼다. 선생이 시와 소설에서 쓴 「님」은 일제치하에서 조선의 독립을 갈구하는 심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55세인 1933년 재혼한 선생은 방응모등의 후원으로 성북동에 심오장이란 택호의 집을 짓고 입적할 때까지 이곳에서 지냈다.집을 지을 때 사람들이 남향으로 터를 잡을 것을 권했으나 마주보이는 총독부건물이 보기 싫다고 끝내 북향으로 집을 틀어버리고 말았다. ○변절자 면담거부 선생은 뜻을 끝까지 같이 한 동지에 대해서는 깊은 의리를 간직했으나 변절자에게는 단호히 단교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만주에서 대한통의부총장을 역임한 김동삼선생이 일경에 체포돼 마포형무소에서 순국하자 유해를 심우장에 모시고 5일장을 치르며 눈물을 아끼지 않았으나 3·1운동당시 동지이던 최린이 변절,창씨개명을 하고 믿아오자 끝내 만나지 않았다. 일제치하에서 조선 전국이 감옥이라고 여긴 선생은 추운 겨울에도 심우장 냉방에서 꼿꼿이 앉아 지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민족이 배출한 위대한 시인이자 독립투사이며 여성해방론자이기도 한 선생은 44년6월 입적,망우리묘지에 안장됐다. 근대사의 여명기에 태어나 선각자적 삶을 통해 민족정신의 새벽을 연 선생에게 정부는 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 무한경쟁시대 대학의 전략(교육 개혁해야한다:19)

    ◎“세계화·개방화 파고”… 「고품질의 교육」이 푼다/외국어·세계지역사회 연구 대폭 강화/경쟁력 제고… 인류 평화­발전 기여토록/“대학은 국가·사회·민족의 요체”… 「종합평가」 실시로 자율·효율성 높여야 김영삼대통령은 지난달 초 연두기자회견을 통해 『새해의 국정목표를 국가경쟁력 강화에 두겠다』고 밝히면서 「세계화·국제화시책의 추구」를 6대 국정운영방안의 하나로 삼겠다고 천명한바 있다. 김숙희교육부장관도 지난달 말 대통령에게 업부보고를 하면서 『국제사회에서의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교육혁신을 이룩하는데 모든 교육역량을 집중시키겠다』고 교육정책의 대강을 피력했다. 지난 5일 대통령 직속기구로 공식출범한 교육개혁위원회 이석희위원장 역시 세계화시대에 걸맞는 도덕률·과학기술·어문교육에 중점을 두고 교육개혁의 장단기 청사진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했다. 이처럼 우리사회는 어느새 정치·경제·사회·문화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세계화·국제화·개방화의 거스를 수 없는 도도한 물결에 휩쓸려 가고있는 것이다. 즉 세계화·국제화·개방화는 이제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다. 따라서 미래지향의 사회에서 교육의 역할과 기능은 그만큼 커져 가고 있다. 교육분야의 세계화 과제를 집중조명해 본다. ○다원주의가 보편화 ▷세계화 교육◁ 교육을 통해 배출되는 인력들이 세계의 다른 나라 사람들과 국제경쟁을 통해 이기고 한국의 이익을 관철시키는 한편 세계사람들과 공존공영의 길을 트도록 해야 한다. 지금은 교통·정보·통신의 발달로 인해 세계가 일일생활권화 되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 삶의 무대와 배경이 이제까지의 국가단위에서 지역국제단위·세계단위로 확대되어 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제는 여러가지의 문제들이 세계적인 성격을 띠게 되며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실례로 핵·환경오염·인권·군축·무역시장개방·평화·발전등이 바로 세계적인 문제들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제화 사회의 중요한 특징의 하나로서 이처럼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공동의 가치와 이해관계를 인식하게 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국제화와 세계화는 필연적으로 철학·사상·인종·언어·경제·문화·교육등 사회 각 부문에서 다원주의를 요구하고 있어 그동안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단일민족·단일언어·단일문화를 오랫동안 형성해온 우리에게는 상당한 당혹감을 안겨 주고 있다. 지난 92년 LA사태 당시 흑인들이 한국교포들에게 가했던 폭동은 한국이 국제화하고 세계로 뻗어나가는데 있어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가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또 경제의 대외의존성이 갈수록 높아감에 따라 우리기업의 해외현지법인 진출이 급증하고 있으나 중남미와 동남아등지에서 현지 문화에대한 이해부족과 외국어구사능력의 부족,관용의 부족,저개발국에 대한 편견등으로 갈등과 알력이 심각하게 일고 있는 것도 세계화과정의 심각한 진통이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 따른 국내시장의 개방압력 역시 세계화 과정의 과도기적 현상이다. 해외여행자유화 바람을 탄 여행자들이 무분별하고 몰상식한 언행으로 빈축을 사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마땅히 교육을 통해 풀어야 할 과제들이라 할 수 있다. ○3세계와 교류 증대 그러면 한국 교육의 세계화·국제화 과제는 과연 무엇인가. 종전에는 교육을 통해 배출되는 인력이 국내상황에 적응하고 국가사회의 발전에 공헌하기만하면 대충 되었다. 그러나 국제화시대의 교육을 통해 배출되는 인력은 국제사회에서 경쟁하여 국가적 이익을 관철할 수 있어야 하며 단지 국가에 대한 의무뿐만 아니라 지역국제사회와 세계사회의 발전과 평화에 이바지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한 방안으로 서울대교수 차인석박사는 다음과 같은 3가지 과제를 꼽고 있다.첫째로 국제경쟁력 향상을 위해 인적·물적요소를 개선하고 영재교육과 고등교육의 질적 우수성이 제고되어야 한다. 특히 대학교육의 질향상 방안으로는 ▲대학기능의 분화와 특성화 ▲교육과 연구의 질을 대학 스스로 확보·신장 ▲정부·기업·학과간·다른 대학등과의 다각적인 연계체제 수립 ▲자율적인 관리체제의 수립 ▲교육과정 편성과 운영의 다양화등을 꼽을 수 있다.한국교육 전반에서는 낙후되어 있는 외국어교육의 개선과 지역국제사회 연구의 활성화가 무엇보다 절실하다. 둘째로 우리 문화전통에 대한 교육과 한국인의 민족정체성·주체성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급속히 진행되는 국제화 속에서는 일면 국가와 정부 및 민족의 개념이 약화되어 간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더 지배적인 문화와 더 경쟁력 있는 경제가 하위문화나 경쟁력이 약한 경제를 편입시켜 나가는 갈등현상이 내면적으로는 강화되어 가고 있으므로 민족문화와 민족정체성·주체성에 대한 교육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 이는 3공·5공시절의 문화적 국수주의와는 분명히 구별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문화 전통을 너무 빨리 상실하여 간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으므로 교육을 통해 가닥을 바로잡아 나가는 일이 시급하다. 문화적 전통과 민족주체성을 갖추지 못한 국민이 전통과 주체성으로 단단히 무장된 국민들과 경쟁하여 이기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셋째로 국제사회에 대한 이해·협력과 평화 교육을 강화시켜야 한다. 언어와 종교·사고방식·피부색깔이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같이 살아 가며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어 가야할 책임과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차박사는 『선진국·우방국 위주의 기존 국제이해 교육에서 벗어나 제3 세계권 또는 저개발국과의 보다 적극적인 교류가 이루어지고 그들에 대한 지역연구도 활성화되어야 한다』면서 『세계평화와 인류복지증진에 기여한다는 뜻에서 세계문제의 해결에 동참하는 자세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대학의 국제경쟁력 제고◁ 21세기는 정보·통신·기술·문화 및 가치등의 변화에 따라 자국중심체제에서 벗어나 세계화의 추세가 지배적이 될 수 밖에 없다. ○대학 국제경쟁 치열 따라서 교육적 측면에서도 21세기는 「국가대학」에서 「세계대학」의 시대가 될 것이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고등교육연구소장 이현청박사는 『대학은 국가·사회·민족의 요체이므로 대학이 세계화·국제화의 첨병이 되어야 함은 자명하다』고 강조하면서 『세계는 공통의 문화와 공통의 교육이 일반적 현상으로 확산될 것이며 이러한 흐름에 따라대학도 국제화와 개방화·탈제도화·다양화의 특성을 지니는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대학의 고객은 바로 학생이라 할 수 있는데 21세기 대학의 특징은 「고객중심 대학」「고객중심 교육과정」「고객중심 체제」가 예측된다는 견해이다. 이에 따라 대학은 교육의 질과 전문성에 의한 국제경쟁 과정을 거치게 되고 상호경쟁체제 속에서 생존전략을 짜는 시대를 맞이하게 될것이다. 고객중심체제를 갖추지 못하고 기존의 사고방식과 교육프로그램 및 운영방식을 고수하는 경직된 체제 아래서는 대학의 존립자체가 위태로워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인구변화 추이와 대학의 정원증원 규모를 살펴보면 21세기에 들어 곧 대학정원과 대학지원자수가 비슷해져 대학들간에 학생유치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서 교육의 질과 내용이 대학의 생존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임은 필연적이다. 또 국제경쟁에서 뒤지면 국가·사회적 차원에서 대학교육이 특정국가·특정문화에 예속되는 현상이 심화돼 자칫하면 「국적없는 교육」으로 「국적없는 인간」을 배출할 우려도 있다. ○내부개혁해야 생존 반면 대학의 국제경쟁화는 대학의 개방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질을 높이고 교육내용을 다양화 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외국대학의 분교가 확산되고 우수 대학들이 앞을 다투어 상호협력프로그램이나 공동학위과정·프로그램협약·특정분야 공동운영·학위 및 인적교류 등을 활발히 할때 일부 후발대학이나 지방소재 대학들은 존립 자체가 흔들려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그러므로 앞으로 대학의 운명은 국제경쟁력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대학종합평가인정제에 의해 측정될 수 있다. 대학종합평가인정제는 ▲각 대학의 잠재적 능력을 최대한 개발하고 선의의 경쟁을 부추기며 ▲획일주의와 중앙집권적 성향에서 탈피,자율성과 효율성을 신장시키는 장점이 있어 그 활성화 방안이 절실하다. 그러나 대학종합평가 인정은 정부주도가 아니라 대학간 협력기구인 대학교육협의회에서 외부통제 없이 자율적으로 이루어져야 바람직하다. 우리나라는 올해부터 이를 시작해 2000년 이후에는 전국의 4년제 대학 전부를 대상으로 실시할 예정인데 결국 대학종합평가인정제는 국제경쟁시대를 대비한 대학개혁의 기폭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화·국제화 시대에서 대학의 우열성 여하는 민족과 국가,그리고 사회전반의 장래와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 따라서 21세기를 대비한 대학의 내부적 개혁과 국제적 대응이 시급한 과제이다.
  • “평양에 전쟁징후 없었다”/미 뉴스위크기자 그레이엄목사 동행기

    ◎대체로 평온… 연료난에 공장 가동중단/북한주민 “남한보다 미 공격 더 두렵다” 최근 평양을 다녀온 미시사주간지 뉴스 위크의 토니 클리프턴 기자는 북한주민들이 평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전쟁위험의 징후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뉴스위크 최신호(14일자)에 실린 클리프턴 기자의 방북기는 다음과 같다(요약).…최근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평양방문과 때를 같이해 관광비자로 북한을 1주일간 방문했다.부분적이지만 내가 본 북한은 나의 선입견과는 거리가 멀었다.북한주민은 심각한 식량난에 허덕이지도 않았고 핵개발을 꿈꾸는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도 아니었다. 물론 외부에서 생각했던것 가운데 일부는 사실이었다.반쯤 짓다 만 건물 위에는 크레인이 정지해 있었고 굴뚝에는 연기가 나지 않았으며 도시들은 춥고 어두웠고 모든 사람이 걸어다닐 뿐 고속도로는 텅비어 있었다.공장과 발전소에 필요한 석유와 부속품들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내가 방문한 여러 시골마을에서는 대부분의 집에서 닭을 기르고 있었으며 돼지와 거위,염소가 있는 집도 목격할 수 있었다. 도시지역에서는 상점에서 기본 생필품을 구할수 있었으며 식품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김일성과 오찬을 함께 한 그레이엄 목사는 그가 건강해보였다고 말했다.공산권지도자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남아있을 정도로 권력을 유지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유한 김일성이 핵사찰을 놓고 왜 그다지도 위험한 게임을 벌이는지에 대해선 정통한 견해가 존재하지 않는다.일부 외교관들과 외국 방문객들은 김을 불리한 카드를 쥔 포커플레이어에 비유한다.핵위협 외에는 다른 카드가 없기 때문에 이를 이용해 북한이 필사적으로 필요로 하는 국제무역과 투자를 얻어내려 한다는 얘기다. 북한군은 병력은 많지만 장비는 노후화 됐다.주력 탱크인 구식 러시아제 T­62는 걸프전에서 미군에 의해 무기력하게 폭파당하는 것을 직접 봤다. 이번 방북기간중 본 군대차량은 트럭 10대와 지프 5대였으며 무장을 하지 않았다.이들 차량 가운데 절반은 병사를 태운채 길가에 정지해 있었다.북한에선 고급관리들도 전용차를굴리지 못하고 주요 공장조차 가동이 중단될 정도로 연료 부족이 심각한 상황이다. 북한군이 남한을 침공할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수백만갤런의 연료와 수만t의 식품및 탄약,그리고 부품이 가득찬 창고가 필요한데 이들 보급품의 조달이 가능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평양의 외국인들은 북한이 전쟁동원령을 내릴 것으로는 결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그들이 목격한 것은 핵개발과 관련한 미국의 강력한 경고에 대한 반응으로 작년에 수백명의 청년들이 미국의 공격에 대비해 경찰보조 훈련을 하는등 두차례 대응 움직임이 있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북한사람들이 의식하고 있는 것은 남한에 대한 침공이 아니라 미국으로부터의 공격인 것 같았다.한 북한주민은 『미국인을 두려워하지는 않지만 공격이 무섭다.평양은 한국으로부터 1백60㎞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고 말했다. 나는 북한을 떠나면서 전쟁을 일으킬 나라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외국투자를 유치하고 서방의 경제전문가들과 뉴질랜드의 한 관광전문가까지 초청하는등 오히려 다소 느슨한 인상을 받았다.
  • “북핵 연초에 해결돼야/김 대통령,노사 평화로 국제경쟁서 승리”

    김영삼대통령은 3일 『북한 핵을 금년초에는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이날 3부요인·국무위원·민자당 당직자·경제인등 각계인사 3백13명을 청와대로 초청,신년인사를 나눈 자리에서 『남북협상이 필요하고,협상에는 상대가 있어 여러가지 곤란한 점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면서 『그러나 7천만 민족의 생존과 관련이 있는 북한핵을 금년초에는 해결해야한다는 것이 절대절명의 과제』라고 못 박았다. 김대통령은 『활짝 열린 세계와의 경쟁에서 기술개발과 좋은 상품으로 이겨나가야 한다』고 말하고 『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두 힘을 합쳐야 하며 노사협의가 어느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이어 내년이면 외국쌀이 들어오게 되는 만큼 우리 모두의 고향인 농촌을 살리는 일에 온힘을 쏟아야 한다고 말하고 첫해에 수입되는 쌀 전량을 정부가 가공해 수출할 것임을 재확인했다. 김대통령은 『교육문제도 새해에는 새롭게 해결해 나가야할 것』이라고 말하고 『환경문제도 새로운 관심을 가져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고강조했다.
  • 윤관 대법원장/법·질서 지키는 시민 불익없게(신년사)

    올해는 우리 국민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해입니다.국가간의 치열한 경쟁속에서 우리의 경제를 발전시켜야 하고,통일을 향한 노력도 게을리 하여서는 안됩니다.높은 국민의식과 새로운 가치관으로 우리 사회를 건강하고 깨끗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사법부도 국민을 위하고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부가 되기 위하여 재판제도와 운영의 개혁작업을 지속적으로 수행하여 나갈 것입니다. 이제 갑술년 새 아침이 밝았습니다.지금은 갈등과 대립을 넘어 사랑과 평화로 가득찬 앞날을 설계할 때입니다.자신의 입장과 이익만을 생각하지 않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사회,법과 질서를 지키는 사람이 아무런 불편과 불이익없이 살아가는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 올해는 「가정의 해」/장경자 생활과학부 차장(오늘의 눈)

    94년은 UN이 정한 「세계 가정의해」이다. 이에따라 우리 정부도 UN의 취지에 맞춰 올해를 가정의 해로 선포하고 연초부터 건전가정 육성을 위한 각종 행사를 펼치게된다. 가정의해는 오늘날 세계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져 가정이 깨지고 버림받은 아이들및 소외된 노인과 굶주리는 이들이 늘어나는한 인류의 장래는 밝지 못하다는 시대적 인식에서 가정이 튼튼한 받침목이 돼야한다는 취지로 로마교황청이 요청,채택하게 됐다. 「가정의 해」 영어 표시는 International Year of the Family.따라서 처음에는 영어 그대로 「가족의 해」라 불렸다. 그러나 지금 전세계가 지구촌이라 불릴만큼 좁아져가는 추세에서 내가족만의 행복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뜻에서 「가정의 해」로 공식 명칭을 정하게 된 것이다. 일반인들의 생각으론 「가족의 해」면 어떻고 「가정의 해」면 어떻냐고 할지 모른다.그러나 「가족」은 혈연관계에 의해 맺어진 사람들만을 뜻하지만 「가정」은 반드시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한집에서 식구로 함께 생활하는 사람 모두를,더 넓은 의미로는 소외받는 이웃에 이르기까지 더 포괄적 의미를 갖는다. 사회의 가장 기초단위인 가정은 밖에 나가 피곤에 지쳐 돌아오는 가족 모두를 하나하나 품어주고 그 피로를 말끔히 털어주는 쉼터요,따듯한 안식처가 돼야한다.가정에선 젊으나 늙으나 돈을 버는 사람이나 그렇지못한 사람이나 모두가 일체를 이룬다. 그러나 모든 가치체계가 물질화되고 극단적인 이기주의로 치닫는 현대사회는 가족단위까지 붕괴시킴으로써 우리 주변에는 표류하는 가정이 나날이 늘고 있다. 집을 뛰쳐나와 거리를 배회하는 청소년,자식들이 있음에도 갈곳이 없어 떠도는 노인들,가족들에게서 조차 외면 당하는 장애인들….이런 상황을 시대적 문제로만 돌릴수는 없을것같다. 이제 새해가 밝았다.새아침,우리 모두가 하나되어 마음으로 살며 평화로운 가정과 사회를 이뤄보자는 새다짐을 가져야겠다.
  • 장세동씨 어제 석방/1년6월 선고… 구속집행정치로

    ◎경호실법 위반 혐의는 무죄 5공비리 및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사건으로 구속·기소돼 1·2심에서 각각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전안기부장 장세동피고인(57)이 15일 법원의 구속집행정지 결정으로 풀려났다. 서울고법 형사4부(재판장 신정치부장판사)는 이날 장피고인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죄를 적용,원심대로 징역1년6월을 선고했으나 대통령경호실법위반(직권남용)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두 사건을 병합심리한 결과 장피고인은 그동안의 미결구금일수가 19개월(일해재단비리관련 10개월복역,창당방해사건관련 9개월복역)로 선고일수보다 1개월을 더 복역한 점을 감안,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내린다고 밝혔다. 재판부의 이같은 결정에 따라 이날 하오 6시쯤 영등포구치소에서 석방된 장씨는 『우리가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평화로운 정권교체 과정에서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며 공직생활중 대통령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해 유감』이라고 말했다.
  • 고속버스 전용차선/이종철 국립민속박물관장(굄돌)

    신석기 사람들은 물론 21세기 컴퓨터 시대까지,조상대대로 전해져온 아름다운 산과 강 넓은 들에서 정착생활을 하면서 한곳에 살아온 민족은 세계에도 그 유래가 드물다.한곳에서 300년을 살아온 해남의 연동마을이나 안동의 하회마을의 가계전승은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아름다운 자연속의 평화로운 삶,조상대대로의 선영과 역사가 숨쉬고 어린 시절의 꿈이 서린 농촌의 고향은 언제나 잊 을수 없는 추억이요,향수이다.어떻게 고향을 꿈속에서라도 잊는단 말인가. 1950년대 농촌과 도시의 인구비는 70:30이었고 농촌은 도시를 먹여 살리는 젖줄이요,모태였다.서울의 극소수 토박이를 제외하고 누구도 소박한 농촌의 토양속에 살았다.뱀장어가 산란기가 되면 자기가 태어난 강상류에 되돌아와 알을 낳듯이 우리들의 역사적,인륜적 귀소본능 또한 한국인의 보편적 민족성을 이루고 있다.그러다보니 명절이나 연휴때만 되면 기차도 사람에 실려가고 고속도로 역시 자가용에 짓밟혀서 움직이지를 못하고 있다.3∼6시간 거리를 12∼24시간 걸려서 도착하게 하는 주범은 이웃을 생각하지않는 자가용 남용 귀성행태이다. 민속규범이 숨쉬는 농촌의 공동체생활은 나보다 이웃,이웃보다 마을을 생각하는 상호인보정신이 그 기초였다.기름 한방울없이 값비싼 외화를 낭비하는 악순환을 떨쳐버리고 버스승객이 편히 갈 수 있도록 고속버스 전용차선을 연말연시라도 채택했으면 좋겠다.흙을 가꾸는 농민의 후손으로서 우루과이라운드에 속터지는 농어민을 위해서도 외화를 아껴야 한다. 주말과 연초에는 고속버스를 타고 농촌에 가 위로의 말이라도 전했으면 좋겠다.땀과 시름의 결실인 농촌쌀도,종묘값조차 건지기 어려운 시름의 배추도 한가마니씩,한묶음씩 버스 짐칸에 싣고 오자.그래서 도시와 우리를 키워온 농촌을 살리고 아픔에 동참했다는 마음의 여유도 가지자.그리고 고향에 갈때는 순박한 농민이 되어 얌체처럼 갓길을 달리는 무뢰한이나,고속도를 쓰레기장화하는 환경의 파괴범이 되지 말자.제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교통소통 행정이 이번 연말연시에는 환골탈태하는지 우리 모두 지켜보자.이를 위해 고속버스 전용차선을 93년 세밑에 시험해보자.
  • 쌀개방은 극복이 중요하다(사설)

    문민정부 출범후 최대규모의 쌀시장개방 반대집회 및 시위가 벌어졌다.역부족의 쌀시장개방으로 생존권마저 위협받는 농민들이다.안타깝고 애타는 심정을 누가 이해하지 못하겠는가.너무도 당연한 분노요 집회며 시위다.정부는 물론 온 국민도 송구스러운 심정이 아닐수 없을 것이다.생각같아서는 그냥 결사반대로 밀어붙였으면 하는 기분도 들지만 그럴수도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니 어쩌겠는가.이제는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서 차선책의 마련과 대응에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감정도,분노도,시위나 집회도 좋다.그러나 그것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될 수도 할수도 없다.우리는 지금 혁명적 변혁의 과도기적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국가적 위기요 비상사태라 할수 있다.이런때일수록 이성과 침착을 잃어서는 안된다. 7일의 집회와 시위를 앞두고 정부를 포함하는 온국민은 우려와 걱정이 태산이었다.격한 감정의 폭발이 불행한 사태를 초래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그러나 집회와 시위는 예상외로 비교적 질서있고 평화로운 것이었다.정말이지 다행스런 일이 아닐수 없다. 그러나 앞으로 얼마동안 쌀시장개방반대움직임은 전국적으로 확산될 조짐이어서 시위양상의 변화가 예상되기도 하나 계속 질서있는 집회가유지되기를 당부한다. 과격·폭력시위는 정당성에 있어서나 설득력에서 효과를 반감시키는 것이다.특히 지금은 쌀시장개방후에 불어닥칠 농촌문제를 우리 스스로 극복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집중해야 하고 그것을 심도있게 논의해야할 시점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집회는 질서정연한 가운데 쌀시장이 개방돼서는 안되는 이유와 우리의 농촌현실 사후대책에 대한 농민들의 주장이 내외에 알려지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효과적이다. 문민정부출범후 우리는 상당기간 불법·대규모집회를 볼수가 없었다.시위가 있다 해도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것이어서 시위문화의 정착을 기대해온게 사실이다.과격·불법시위는 문민정부 아래서 명분을 잃었기 때문이다.또 합법적인 것이 효과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그동안의 인식도 큰 작용을 했다. 그러한 때에 이번에 폭력시위가 발생하면 그것은 사태해결에 도움은 커녕 자칫 국론만을 분열시킬 우려가 적지 않았다.더욱이 폭력시위가 쌀개방조치를 철회시켜줄 것도 아니어서 그러하다.평화적인 시위가 폭력적인 것보다 더욱 메시지전달이 강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와함께 이날 대회를 주관한 「쌀과 기초농산물수입개방저지 범국민비상대책위원회」가 개방저지보다는 앞으로 농촌을 살리기 위해 머리를 짜내고 여론을 듣는데에 주력하는 그런 모임으로 전환되기를 바란다.그것이 이 시점에서 더 필요하다. 일부 정치인들은 우리의 농촌이 직면한 오늘의 이 위기를 더이상 정략에 이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다시 강조한다.
  • 고수협상에 온국민 힘 모아야/최호선(쌀정책을 말한다)

    ◎개방 불가피론 성급… 끝까지 저지 노력을 쌀시장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우루과이라운드 농산물 협상이 막바지 단계에 임박해지자 쌀개방을 결사 반대하는 온 국민들의 열기는 전국 각처에서 한겨울의 강추위도 아랑곳없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쌀이 차지하는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가치는 재론할 여지조차 없다.그것은 이미 전국인의 3분의1이나 되는 1천3백여만명의 국민들이 쌀은 절대 개방할 수 없다고 서명하여 쌀수입개방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나라 안팎에 알린 바 있기 때문이다. ○1천3백만명 서명 협상이 초읽기에 돌입한 긴박한 상황이라고 한다.이 중요한 시점에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의 최대 쟁점이었던 미국과 유럽공동체(EC)간의 농산물 협상이 타결의 조짐을 보이고 일본도 쌀의 최소시장 접근을 수용할 것으로 보도되자 이에 편승한 일부 언론이나 무책임한 학자들이 마치 개방은 당연하거나 살판이라도 난듯한 언사를 일삼고 공공연히 불가피론을 주장하고 있는 것은 유감스럽기 이를데 없다. 지금은 농산물 협상이 끝난 것이아니라 숨가쁘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정부 대표단이 협상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온힘을 모아주는 것이 옳겠다.본래 국가간 협상은 거미줄 같은 긴장의 연장속에서 상대국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위하여 모든 정보와 영향력을 사용하는 것이다.우리에게 쌀시장 개방 압력을 가하고 있는 상대국을 설득시키고 우리 농업을 이해시켜 협상에 영향을 줄수 있도록 온갖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 국익에 합당하다 하겠다.그러기 위해서는 비록 눈치로 한몫보는 대세론자라 할지라도 정부의 입장이 변치않고 확고한 이상 부추기거나 맞장구쳐 역기능을 조성하는 일은 삼가야 옳겠다.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란 각국의 자기이익챙기기 마당이지 무슨 비둘기를 띄운 평화의 사도행진장이 아니다. 우루과이라운드협상의 성격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강대국들이 개방하므로 어쩔수 없지 않느냐하는 숙명론적인 사고나 안이한 패배적 발상은 적전분열을 보일 뿐 국익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어처구니 없는 논리는 마치 쌀을 개방하지 않으면 가트(GATT)에서 탈퇴해야 하거나 아니면 쫓겨난다는 등의 터무니 없는 논리로 국민을 현혹시키는 것은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취할 사회지도층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다시 말하면 우루과이라운드협상은 제각기 자기 나라의 이익을 지키기위한 외교이지 무슨 강화조약같은 것이 아니다.우리나라가 국제적 고립을 면하기 위해서는 일본과 같이 조건부 쌀시장개방방식을 수용해야 한다는 것도 실로 위험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소위 최소시장접근도 바로 시장자유화로 가는 지름길임을 알아야 한다. ○숙명론적 사고 안돼 쇠고기 시장개방 사례에서 보듯이 지난 89년 국내소비의 3%수준의 쇠고기 수입할당으로 시작한 것이 불과 3년만에 56%로 수입량이 급증한 것이나 양담배의 소비격증에서,그리고 PX에서 흘러나오는 칼로스쌀에 사족 못쓰는 졸부들의 상태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알수 있다. 우리나라 농업구조의 전근대성,불균형 성장정책에서 비롯된 농촌의 현실 등을 압력을 가하는 협상상대에게 얼마나 알렸는지 냉철히 반성해봐야 할 것이다. ○농촌현실 바로 전달 이데올로기가 사라진 이 평화로운 시절에도 세계유일의 분단국으로서 북의 핵위험에 공동대처하자는 미국이 비상시 식량의 중요성을 뻔히 알면서도,전쟁이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곳,한국의 쌀을 예외없이 개방하라는 것은 그들의 오만인가,아니면 우리들의 잘못인가를 곰곰히 생각해야 한다.「혈맹」이란 단어는 「교역」이란 사전에 없다는 것도 잘 안다.그러나 그 단어를 지금도 쓰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면,어떻게 어려울때 그 특별한 관계가 고려되어야 하지 않을까. 어쨌든 협상은 또다른 형태의 전쟁이라해서 과언이 아니다.그 전쟁의 승패가 결정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민족의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국론을 모아 최후의 일각까지 역사에 여한이 없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하자.
  • 존F 케네디(뉴욕에서/임춘웅칼럼)

    1963년 11월22일 하오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저격됐다는 뉴스가 전해지기 시작했을 무렵,미국은 아무도 정확히 묘사할 수 없는 공포의 회오리바람속에 휘말리고 있었다고 한다. 거리의 자동차들은 미친듯이 경적을 울려대며 어디론가 질주했고 아무 차도 신호를 지키지 않았다.전화선이 끊기고 사람들의 눈빛이 변해가고 있었다.케네디가 암살됐다는 뉴스를 워싱턴의 한 택시안에서 들었던 모이니한 당시 노동부차관보는 『무엇인가 무서운 일이 금방 터질 것만 같은 분위기 때문에 운전사에게 부탁해 택시가 달릴 수 있는 최고속도로 시내를 황급히 빠져나왔던 기억이 새롭다』고 회고하고 있다. 케네디대통령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 당시 법무장관도 그때 가장 우려됐던 사태는 민중폭동이었다고 후일 회상한 일이 있다.폭동은 일어나지 않았으나 그날 이후 적어도 나흘동안 아무도 일을 손에 잡지 못했다.모두가 허탈에 빠져 있었으며 온 세계가 정지된듯했다고 회상하는 사람이 많다. 케네디의 죽음이 미국사회에 던진 충격은 미국밖의 우리들이 상상할 수 없을만큼 컸던 모양이다.어떤 사람은 미국이 건국된 이래 유지돼왔던 미국적 규범,미국적 질서들이 이 사건을 고비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있다.거리에 빈깡통을 마구 버리고 질서를 지키지 않으며 열심히 일하지 않는 풍조같은 것들이 모두 「케네디의 좌절」이후 현저해진 사회현상이라는 것이다. 요즘 미국의 신문 잡지 TV들은 연일 케네디특집으로 또 요란스럽다.케네디가 쓰러진 후 한해도 그냥 넘긴 일이 없는 미국의 매스컴이 금년에 특별히 법석인 것은 그가 간지 30주년이되는 때문이다.올해에는 케네디암살이 오스왈드의 단독범행이라는 「이설」까지 끼어들어 화제에 화제를 만들고 있다.그동안 정설이 되다시피된 「배후설」,「음모설」에 대한 반론이란 점에서는 신선함도 없지 않다.그러나 오스왈드 단독범행설은 이 사건에 대한 워렌위원회의 공식결론이었으므로 실은 뉴스가 되지 않는다. 케네디의 죽음은 왜 이처럼 미국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는가.케네디의 이름은 왜 30년이 지나도 변함없이 미국민의 뇌리속에 살아 남아 있는가. 한여론조사결과를 보면 케네디는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에이브러험 링컨대통령,미국을 대공황의 수렁에서 건져낸 프랭클린 루즈벨트대통령과 같거나 더 많은 국민의 추앙을 받고있는 대통령으로 나타나 있다.왜 그런 것일까.이런 결과에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그가 실제 추진한 정책이나 남긴 업적보다는 케네디가 풍기는 독특한 이미지와 그의 극적인 죽음이 그를 과장시키고 있다는 주장이다.그런 일면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려깊은 역사가들은 당시로서는 매우 진보적이었던 그의 철학과 대담한 정책은 역사적으로 높히 평가돼야 마땅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많은 사람들은 케네디를 미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준 대통령으로 기억하고 있다.그사람들에게 케네디의 죽음은 바로 꿈과 희망의 죽음이었던 것이다. 케네디는 흑인도 똑같은 인간으로서 백인과 똑같은 권리를 향유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한 이런 주장이 그당시 워싱턴정가 분위기에서는 「혁명적인 생각」이었던 것이다.더구나 대통령이 할 얘기는 아니었다.그의 이런 철학은 60년대 미국민권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케네디는 소련과의 공존정책을 추구했다.냉전의 절정기에,미국의 힘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던 때에 그는 소련과의 화해와 공존을 구상한 것이다.그가 댈러스에서 쓰러지기 수주전 케네디는 소련과 핵실험제한협정을 성공시켰던 것이다.지난주 필자와 만난,케네디대통령의 보좌관이었으며 「케네디의 유산」이란저서를 남긴 테드 소랜슨은 『케네디가 죽지 않았다면 냉전의 양상,세계사는사뭇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미국언론이 집요하게 추적하고 있는 『케네디를 누가 죽였는가』하는 의문의 실마리는 실은 어느 특정인이나특정세력에서보다는 미국의 사회구조 속에서 찾아야 할지 모른다.오랫동안 강력한 미국을 이끌어온 상층부 보수사회가 너무 앞서간다고 믿는 「무모한 젊은이」케네디를 거부했을 가능성이다.그러나 『케네디를 누가 죽였는가』하는 진실의 규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케네디가 추구했던 이상,즉 보다 공평한 사회,보다 평화로운 세계인 것이다.
  • 클린턴 만찬사

    김영삼대통령의 민주주의 지도력과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개인적으로 바친 커다란 희생은 전 세계의 자유를 애호하는 국민들에게는 하나의 영감을 불어넣었습니다. 한때 폭탄으로 얼룩지고 전쟁으로 황폐화된 땅이 오늘날 현대식 공장과 새로운 고층건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불과 33년만에 한국의 생산력은 놀랍게도 1백배나 성장했습니다. 이와 같이 한국을 위대한 국가로 만든 낙관주의와 인내는 이곳 재미 한인교포 사회에서도 충분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백만명이 넘는 재미 한인교포는 오늘날 우리 미국인의 생활을 역동적으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그들은 기회의 바다를 가로질러 협력이라는 유대를 형성해 나가고 있습니다. 43년전 미국과 한국은 한반도의 안전을 유지하기위하여 어깨와 어깨를 맞대고 싸웠습니다.오늘날 북한의 핵개발과 같은 새로운 도전은 우리에게 경계심과 확고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대통령각하와 저는 비전을 공유하고 있습니다.이는 바로 평화로운 한국의 비전과 그리고 언젠가는 한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하에서 통일이 되는 것입니다. 금년 7월 한국 방문시 저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의 아름다움에 감동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한국민의 정신에도 크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한국 방문시 저는 한국경제성공의 비결,즉 한강의 기적에 대해 더 나은 평가를 하게되었습니다.제가 「돌아 오지 않는 다리」의 좁다란 다리에 서 있을 때 저는 한국에서 계속되는 안보상의 도전에 대해서도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국회 연설시,저는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공약에 대해서도 인상적인 평가를 하게 되었습니다.그리고 김영삼대통령과 조깅을 할때 저는 한국 지도자의 따뜻함과 강인함,인내심에 대해 신선한 인상을 갖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민주주의가 지속적으로 융성하고 한반도의 평화통일의 꿈이 곧 현실로 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 일본인의 한민족에 대한 콤플렉스 2,000년/김홍철지음(화제의책)

    ◎일본인의 한민족 콤플렉스 분석 부제 「미움과 침략으로 일관된 적대의 역사,그 실상과 원인」. 일본인은 왜 한국인을 미워하는가.원광대 동양종교학과 교수인 지은이는 3한3국 멸망과정에서 최상급 지위의 인사가 일본으로 쫓겨가 일본의 초기국가를 건설했고 한반도에서 어렵게 살고 눌려지냈던 최저층이 끊임없이 일본열도로 건너가 2천년간 미움의 세월을 쌓아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지은이는 고대 한일관계서와 현지답사를 통해 일본인들이 우리를 지독히도 미워하는 이유가 바로 우리에 대한 뿌리깊은 원한과 콤플렉스의 산물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이같은 사실을 널리 알려 일본과 보다 우호적이고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기를 바라는 뜻에서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김홍철 지음 집문당 4천5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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