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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두산그룹 (1)-박용곤 명예회장 형제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두산그룹 (1)-박용곤 명예회장 형제

    박용만(50) 두산그룹 부회장은 지난 2월 선친인 박두병 초대 회장의 가르침을 예로 들며 “두산에는 파벌이 딱 하나 있는 데 그게 두산파다. 우리 형제도 마찬가지다.”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한 적이 있다.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를 계기로 가진 만남이었지만 박 부회장의 ‘집안 자랑’은 가풍과 장자를 중심으로 한 단결력, 비즈니스 패밀리 등으로 이어지며 그는 “가족간의 인화가 두산이 109년간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재계에서도 두산가(家)를 우애깊은 형제지간으로 꼽는다.‘돈 앞에 추한 꼴’을 적잖이 보인 재계 가문이 많았던 탓인지 ‘공동 소유, 공동 경영’이라는 두산가만의 독특한 가풍을 부러워했다. 그러나 박 부회장이 그렇게 자랑했던 화목한 집안이 요즘은 쪼개져 살벌하다. 차남 박용오 회장의 퇴진과 3남 박용성 회장의 추대로 시작된 ‘형제의 난’은 ‘동생들의 쿠데타’와 ‘두산산업개발의 경영권 탈취 미수 사건’으로 각각 주장되며, 양측의 진실공방 싸움이 한창이다. 수년간 쌓여온 형제간 갈등이 이제야 곪아 터졌다는 것이 두산가 안팎의 지적이다. 피붙이가 등을 돌리면 더 무섭다고 했던가.“비리를 저지른 동생과 조카를 잡아가라.”와 “가문에서 빼버리겠다.”로 상징되는 이번 분쟁은 결국 검찰 수사 결과로 귀결될 전망이다. 이 때문에 109년 전통의 두산그룹은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에 휩싸였다. 자칫 오너가의 집단 사법처리뿐 아니라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행보에 큰 차질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승승장구하던 두산으로서는 호사다마가 아닐 수 없다. 박 부회장은 지난달 25일 우연히 그룹내 한 식당에서 기자들과 마주쳤지만, 급히 자리를 떴다.6개월 전 당당했던 그의 모습과 대비되면서 어제의 두산과 오늘의 두산이 다르다는 점을 새삼 보여줬다. ●‘박승직상점’이 그룹의 모태 국내 최고(最古)의 기업인 두산이 1일 창립 109돌을 맞았다. 보름 전만 해도 ‘잔치’를 벌일 계획이었지만 경영권 분쟁으로 쏙 들어갔다. 두산 창업주 고 박승직씨는 1896년 서울 종로에 자신의 이름을 딴 ‘박승직상점’을 열고, 두산그룹의 기초를 닦았다. 등짐 장사와 면포상, 보부상 등 밑바닥 생활 15년 만에 마련한 가게였다. 이후 박 창업주는 포목상으로 대성공, 동대문과 종로 일대에서 ‘배오개의 거상’이라 불렸다.1906년에는 중추원 의관과 정3품에 승서되는 등 이미 거상으로서 황실의 인정을 받을 정도였다. 박 창업주는 1905년 국내 최초의 주식회사인 광장을,1907년에는 국내 최초의 무역회사인 공익사 설립에 참여했다.33년에는 김연수 삼양사 창업주와 함께 소화기린맥주의 주주로 참여, 두산의 모기업인 동양맥주의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소화기린맥주는 일본 기린맥주의 국내 생산공장이다. 박 창업주는 해방 후 새롭게 출발하는 수송사업을 위해 장남인 두병의 이름 첫 자인 말두(斗)자와 묏산(山)자를 붙여 ‘두산’이란 새 상호를 짓는다.‘한 말 한 말 차근차근 쉬지 않고 쌓아올려 재화가 산같이 커져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박가분과 정정숙 여사 여느 재벌가와 마찬가지로 두산가의 3,4세 며느리들도 바깥 활동이 잦지 않다. 내조와 자녀교육이 최우선 순위다. 이는 박두병 두산 초대 회장의 며느리 고르기에서도 잘 드러난다. 장남인 용곤 명예회장의 배필감을 찾던 박 초대 회장의 안테나에 맏딸 용언씨의 친구인 이응숙(작고)씨가 잡혔다. 다소곳하고 참해 마음이 끌렸다. 박 초대 회장은 지프를 타고 한동안 이씨를 추적하며 인물과 행동거지를 자세히 살펴보고 낙점했다고 한다. 가족간 인화에 며느리가 중요하다는 박 초대 회장의 평소 지론 때문이었다. 그러나 박 초대 회장의 모친인 정정숙 여사와 그의 아내 명계춘(92) 여사는 내조뿐 아니라 남편들 못지 않은 사업수완을 발휘, 여장부로 통했다. 국내 화장품의 효시인 ‘박가분(朴家粉)’은 사실상 정 여사의 작품이다. 정 여사는 1915년 부업 삼아 분기술자 3명을 고용, 재래식 화장분을 근대적으로 포장 판매했다. 처음엔 면포상품을 구입한 고객에게 주던 미끼 상품이었다가 여성 반응이 의외로 좋아 박승직상점의 어엿한 거래 품목으로 자리잡았다. 정 여사는 국내 최초로 화장품 신문 광고를 하기도 했다. 박가분 광고 내용은 이렇다 “죽은 깨와 여드름이 없어지며, 얼굴에 잔티가 없이 피부가 윤택하고, 고아지게 하는 박가분” 박두병 두산 초대 회장의 부인인 명계춘 여사도 중고 미제 승용차와 일제 트럭 등을 구입해 한때 운수업을 벌였다.‘남자는 보다 큰 일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남편의 뜻에 따라 대신 떠맡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 사업은 훗날 두산상회의 토대가 됐다. ●귀하게 얻은 늦둥이 박 창업주는 1910년 딸만 여섯을 두다가 첫 아들을 얻었다. 박두병 초대 두산 회장이다. 박 창업주의 나이 46세로 늦게 얻은 귀한 아들이었다. 후에 우병과 기병, 규병 등이 태어났지만 우병을 빼고는 모두 어린 나이에 죽었다. 그래서 그런지 박 창업주의 자식 교육은 별났다고 한다. 두산가에서 인화를 강조할 때 자주 인용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박 창업주가 장남에게 들려준 ‘지붕에 소 올리기’다. 가장의 터무니없는 지시도 가족이 믿고 따라야 집안이 화목해진다는 내용이다. 또 부지런한 사람이 성공한다는 ‘근자성공’은 4대째 내려오는 두산가의 좌우명이다. 박 초대 회장은 경성중을 거쳐 1932년 경성고상을 졸업한 뒤,1931년 대지주인 명태순의 딸 계춘씨와 결혼했다. 이어 조선은행에서 4년간 근무하다가 박승직상점에서 본격적인 2세 경영수업을 받았다. 그는 해방 후 동양맥주를 인수해 두산그룹의 토대를 쌓았다.60년대 들어 한양식품(코카콜라·환타 제조)과 윤한공업사(현 두산메카텍), 동산토건(현 두산산업개발) 등을 설립했으며, 한국병유리(현 두산테크팩)를 인수하며 그룹의 외형을 크게 확대했다. ●두산 1번은 용곤 명예회장 두산가의 위계질서는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장유유서 원칙이 철저히 지켜진다. 현역에서 은퇴했지만 장자인 박용곤(73) 명예회장은 여전히 ‘두산의 1번’이다. 전화번호도 ‘1∼2번’을 쓴다. 이어 용오(68) 전 회장(3∼4번), 용성(65) 회장(5∼6번), 용만(50) 부회장(7∼8번) 순이다. 그래서 이번 ‘형제의 난’은 다른 그룹의 경영권 분쟁보다 상처가 유난히 깊어 보인다. 직원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우애가 좋던 형제가 어쩌다가….”라며 허탈해 했다. 두산가는 사실 이번 사태가 있기 전까지 재계에서 형제간 최고의 화음을 자랑했다. 이는 박 초대 회장의 철저한 자식 교육에서 비롯됐다. 박 초대 회장은 형제간 말썽이 나면 잘못이 있든 없든 무조건 장자를 혼냈다고 한다. 동생들을 잘못 이끌었기 때문이다. 이는 장자를 중심으로 형제들이 자연스럽게 뭉칠 수 있도록 했다. 인화와 관련된 박 초대 회장의 이야기는 지금도 입에 오른다.“가정이 평화로워야 모든 일이 잘 이뤄진다. 그러자면 형은 우애하고, 아우는 공손하고, 지아비는 화하고, 지어미는 순해야 한다. 이럴 때 한 푼의 재산이 없어도 그 가정은 언제나 평화스럽다.” 박 부회장의 설명이다.“부친은 인화가 깨질 수 있다는 이유로 직원들이 설날 세배하는 것도 못하게 했다고 하더라고요. 미풍양속 차원에서 권장할 일이지만, 개인 간에 친소관계가 만들어지면 조직이 공평해질 수 없다고 본 거죠.” 두산가는 지금도 한 달에 한 번 가족 모임을 갖는다. 명계춘 여사를 중심으로 3대(3∼5세)가 함께 모여 식사를 하며 친목과 화합을 다진다. ●“남의 눈치밥 먹어봐야….” 두산가는 기업의 오랜 역사 만큼이나 자녀 교육도 독특한 전통이 있다. 박 초대 회장은 자식들에게 “도둑이 와서 재물을 훔쳐갈 수는 있지만, 머리에 들어 있는 것은 절대 훔쳐갈 수 없다.”며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박 부회장이 들려준 부친의 자식 교육은 이렇다.“우선 남의 눈칫밥을 먹어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특히 은행 근무를 적극 권했습니다. 또 최강대국인 미국을 알아야 한다며 미국 유학을 꼭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용곤 명예회장이 일본을 강조해 일본어 공부가 추가로 들어갔죠.” 이같은 방침에 따라 용곤 회장은 한국은행, 용성 회장은 한국투자금융, 용만 부회장은 외환은행에서 각각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며,6형제 모두 미국에서 공부했다. 이들은 미국 유학생활 동안 용돈이 넉넉지 않아 자취 생활을 하면서 직접 음식도 해먹고, 짬짬이 아르바이트를 해 생활비를 충당했다고 한다. 두산가는 경영수업도 다른 재벌가와 차이가 있다. 밑바닥부터 출발해 모든 계열사를 거치게 한다. 또 30대 초반에 계열사에 배치해 평균 1∼2년에 한번씩 승진시킨다. 4세도 예외없이 이런 과정을 거쳤다.4세 중 장자인 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정원(43) 두산산업개발 부회장은 일본 기린맥주에서, 차남인 박지원(40) 두산중공업 부사장은 미국 매켄에릭슨에서 근무했다. 용오 전 회장의 장남인 박경원(41) ㈜전신전자 대표는 미국 코닥에서, 용성 회장의 장남인 박진원(37) 두산인프라코어 상무는 대한항공에서 사회의 첫발을 내디뎠다. 용현(62) 서울대 의대 교수의 장남인 박태원(36) ㈜네오플럭스 상무는 효성에서 시작했다. ●“정략 결혼은 피하라” 오랜 전통에도 불구하고 두산가의 혼맥은 의외로 담백하다. 정·관계 집안과 직접적인 사돈 관계가 없다. 대부분 평범한 집안과 통혼했으며, 간혹 재계 집안이 눈에 띈다.“자녀 혼사에 정략 관계를 두지 마라.”는 박 창업주의 당부를 후손들이 잘 지켰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 6월 박 부회장의 장남 서원(26)씨와 구자철 한성 회장의 딸 원희(26)씨 결혼은 두산가에서 눈길을 끌 만한 혼사였다. 구 회장은 범 LG가로 구태회 LS 명예회장의 4남이자, 구자홍 LS그룹 회장의 막내동생이다. 이 때문에 박 부회장은 집안의 첫 경사였지만 ‘재벌가 정략 결혼’이라는 시선 탓에 다소 부담스러워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박 부회장과 구 회장은 경기고 동기생으로 양가가 예전부터 서로 교류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 서원씨와 원희씨도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냈으며, 미국에서 공부하다 관계가 급진전된 것으로 전해졌다. 박두병 초대 회장은 모두 6남1녀를 뒀다. 장녀 용언(72)씨는 당시 실력파 검사였던 김세권(74)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김 변호사는 대검찰청 차장과 서울고검 검사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법무법인 KCL 대표변호사를 맡고 있다. 차남 용오 회장은 1962년 미국에서 만난 최금숙(작고)씨와 결혼했으며,3남 용성 회장은 66년 김선필 전 삼성물산 사장의 딸인 영희(62)씨와 혼례를 올렸다.4남인 박용현 서울의대 교수는 68년 이화여대 음대를 나온 엄명자(작고)씨와 인연을 맺었다. 5남 용만 부회장은 바깥에 잘 알려진 집안으로 장가갔다. 당시 ‘증권업계 대부’로 통했던 강성진 전 증권협회 회장이 그의 장인이다. 박 부회장은 79년 강 전 회장의 장녀인 신애(50)씨와 혼례를 치렀다. 그는 강 전 회장의 차남 흥구씨와 동기생으로 집에 놀러갔다가 신애씨를 만나 결혼하게 됐다.6남 박용욱(45) 이생그룹 회장은 이건 전 대호건설 회장의 딸인 상의(45)씨와 인연을 맺었다. golders@seoul.co.kr ■ 박두병 초대회장등 3명 상의 회장 역임 두산그룹과 대한상의는 특이한 공통점이 있다. 두산이 재계에서 최고(最古)의 기업이라면 상의도 경제5단체 가운데 가장 오래된 단체(1884년 한성상업회의소 설립)다. 두산그룹 회장은 묘하게도 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1954년 공식 출범한 이후 배출한 회장은 12명. 이 가운데 두산그룹 회장 출신은 무려 3명이나 된다. 고 박두병 초대 두산그룹 회장이 1967∼73년 상의의 회장을 맡았다. 전문경영인 가운데 재계 최초로 그룹 회장직에 오른 정수창 전 두산 회장도 1980년부터 88년까지 상의 수장을 역임했다. 박용성 현 두산 회장도 2000년 이후 상의 사령탑을 맡고 있다. 상의의 반백년 역사 가운데 총 20년을 두산측에서 집권한 셈이다. 특히 대(代)를 이어 경제단체의 수장을 맡은 곳은 두산 박씨가(家)가 재계에서 유일하다. 그래서 4세에서도 상의 회장이 나올지 주목된다.30년간 상의에서 근무한 전 임원은 박두병-용성 부자에 대해 “성격 급하고, 타성에 젖은 일들을 뒤집어 버리는 게 꼭 붕어빵”이라고 했다. 사실 두산과 상의의 인연은 이보다 더 거슬러 올라간다. 두산그룹의 창업주인 고 박승직씨가 1906년부터 5년간 상의의 전신인 경성상업회의소 상의원으로 활동했다. 무려 3대가 상의와 깊은 인연을 맺은 것이다. 박용성 현 회장은 ‘미스터 쓴소리’로 불리며 역대 회장 가운데 상의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이다. 박 회장이 상의 회장으로 출근한 첫 날 기자들에게 던진 첫 말이 이렇다고 한다.“예산 규모나 회원사 수, 단체의 역사로 보면 상의가 국내 경제5단체 중 맨 앞인데 왜 항상 전경련을 맨 앞에 세우는 것이냐. 앞으로 경제단체를 소개할 때는 상의를 맨 앞에 써라. 가나다 순으로 해도 상의가 전경련보다 앞이 아니냐, 또 우리는 법에 의한 단체고 나머지는 임의 단체로 사단법인으로 해서 승인 받은 데가 아니냐.”고. 그러나 형인 박용오 전 회장이 제기한 비자금 조성 및 분식회계 의혹으로 박 회장의 향후 행보가 그다지 순탄치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golders@seoul.co.kr ■ 3·4세 MBA출신 많아… 며느리는 ‘이화의 딸’ ‘가방 끈’이 긴 두산가문에서 MBA(경영학 석사) 학위는 당연히 따야 할 자격증처럼 보인다. 없는 사람이 이상할 정도다. 오너 집안인 데다 미국 유학이 일종의 통과의례인 만큼 3세 ‘용’자 돌림과 4세 ‘원’자 돌림 대부분은 경영학을 전공했다.3세 가운데 용오-용성-용현-용만 4형제는 ‘KS(경기고-서울대)’ 출신이다. 다만 차남 박용오 전 회장은 경기고-뉴욕대를 나왔다. 3세 가운데 MBA 학위를 딴 사람은 3남인 박용성 두산 회장과 5남 박용만 그룹 부회장이다. 박 회장은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뉴욕대에서 MBA 학위를 취득했다. 박 부회장은 보스턴대에서 MBA 학위를 땄다. 4세로 넘어가면 MBA는 그야말로 흔하디 흔하다.‘원’자 돌림 15명 가운데 박용곤 회장의 장녀인 박혜원 ㈜두산 잡지BU 상무를 뺀 9명이 MBA 학위를 갖고 있다. 또 박 부회장의 장남 박서원씨 등 학업중인 4세가 5명이나 돼 앞으로 MBA 학위 소지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집안에 MBA 출신이 많다 보니 동문들도 적지 않다.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정원 두산산업개발 부회장과 숙부인 박용만 부회장은 보스턴대 MBA 출신이다. 또 박 회장과 박 명예회장의 차남인 박지원 두산중공업 부사장, 박용오 전 회장의 차남 박중원 전 두산산업개발 상무, 박 회장의 장남 박진원 두산인프라코어 상무, 차남 박석원 두산중공업 차장, 박용현 서울대 의대 교수의 장남 박태원 네오플럭스 상무 등 6명은 모두 뉴욕대 MBA 동문들이다. 이밖에 박 교수의 차남인 박형원 ㈜두산 식품BG 차장은 조지워싱턴대 MBA 출신이며, 박인원 ㈜두산 전자BG 과장은 하버드대 MBA 학위를 땄다. 반면 며느리들은 ‘이화의 딸’들이 많다. 서미경(박경원 전신전자 대표 부인·고대 신문방송학과)씨와 이상의(박용욱 이생 회장 부인·한양대 기악과)씨를 빼면 대부분 이대 동문들이다. 맏며느리인 고 이응숙씨를 비롯해 김영희(셋째 며느리), 고 엄명자(넷째 며느리), 김소영(박정원 두산산업개발 부회장 부인), 서지원(박지원 두산중공업 부사장 부인), 정윤주(박중원 전 두산산업개발 상무 부인)씨 등 두산가의 3,4세 며느리들은 이대 선후배 관계로 맺어져 있다. 박지원 부사장과 부인은 공교롭게 이름이 같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책꽂이]

    |유아·아동|●길 잃은 무지개 물고기(마르쿠스 피스터 글·그림, 조경수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 조약돌을 모으러 나왔다가 파도에 휩쓸려 혼자 남게 된 무지개 물고기 이야기. 남을 배려하는 마음,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 등을 일깨우는 그림책.5세 이상.1만 1000원.●엄마가 그린 새 그림(조미자 글·그림, 마루벌 펴냄) 아빠새, 엄마새, 아기새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한가롭고 평화로운 일상의 이야기. 서툰 듯하면서도 아기자기한 그림을 감상하는 즐거움이 아주 크다.3세 이상.7600원.|초등·청소년|●102가지 질문으로 읽는 성서(데니스 도일 지음, 김경은 옮김, 다섯수레 펴냄) 신약과 구약 성서의 핵심주제와 사건들을 골라내 문답 형식으로 정리한 ‘성서 입문서’. 성서 원문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려주는 진중한 색채감의 그림들이 인상적. 초등생.1만 3000원.●너는 쓸모가 없어(카렌 쿠시맨 지음, 배미자 옮김, 다른 펴냄) 14세기초 영국이 배경. 거름더미에서 한뎃잠이나 자던 떠돌이 소녀가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면서 자기애를 갖고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해가는 이야기. 초등5년 이상.8500원.|실용경제|●초우량 기업의 조건(톰 피터스·로버트 워터먼 지음, 이동현 옮김, 더난출판 펴냄) 20세기를 대표하는 3대 경영서중 한권으로 선정된 경영의 바이블. 저자들은 초우량 기업이란 평범한 기업에서 발견할 수 없는 특성을 가진 것이 아니라 평범한 기업에서도 하고 있는 활동을 전혀 다르게 하고 있다고 강조.2만 5000원.●서른살 경제학(유병률 지음, 인물과 사상사 펴냄) 실물경제를 이해할 30대를 위한 경제서. 고령화, 저성장, 양극화 시대의 직격탄을 맞을 수 있는 세대인 30대에게 새로운 경제 환경에 대응하는 실천적인 전략과 안목을 키워 준다.1만 2000원.●미인은 치과에서 만들어진다(류호성 지음, 사이버 덴탈 펴냄) 치과의사의 치아교정 이야기. 고운 치아는 예부터 미의 필수조건. 치아의 건강관리, 치아배열 및 교정, 턱의 성장과정 등 얼굴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치과 파트를 자세하게 연구해 놓은 책.1만 2000원.●내 치즈는 내가 옮긴다(리처드 템플러 지음, 황정연 옮김, 한국경제신문펴냄) 성공을 향해 달리고 싶은 이들을 위한 가이드 북. 좋은 직업, 원만한 인간관계, 경제적 여유 같은 ‘치즈’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데도 왜 여전히 탈출구가 잘 보이지 않을까?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채 무작정 치즈를 찾아 떠났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9000원.●자연을 담은 소박한 밥상(녹색연합 엮음, 북센스 펴냄) 친환경 요리 북. 생명을 파괴하는 화학조미료와 가공식품에서 벗어나 자연의 맛과 영양을 고스란히 담은 소박한 밥상을 위한 요리법이 자세하게 정리됐다.1만 2000원.
  • “로브, CIA요원 신분누설”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 중앙정보부(CIA) 비밀 요원의 신원이 언론에 공개된 이른바 ‘리크게이트’의 누설자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최측근 참모인 칼 로브 백악관 부비서실장 겸 정치보좌관임이 사실상 확인됐다. 이에 따라 백악관은 정치적 보복을 위해 국가안보 관련법을 위반하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거짓말까지 했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타임의 매튜 쿠퍼 기자에게 CIA 비밀요원 발레리 플레임에 관해 이야기해준 취재원이 로브라는 사실을 그의 변호인인 로버트 러스킨 변호사가 시인했다고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로브 부비서실장은 리크게이트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패트릭 핏제럴드 특별검사와 쿠퍼측 변호사의 요청에 따라 쿠퍼 기자가 법정에서 자신에 관해 증언하는 것을 허용했다고 뉴스위크는 러스킨 변호사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리크게이트는 조지프 윌슨 전 이라크 주재 미국 대리대사가 이라크의 핵 물질 구입 시도 의혹을 부인하는 글을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후 몇몇 언론에 윌슨 전 대사의 부인 플레임이 대량살상무기(WMD) 업무를 담당하는 CIA 비밀요원이라는 점을 지적한 보도가 잇따라 법적으로 보호받도록 돼 있는 비밀요원의 신분이 누설된 사건이다. 로브 부실장은 ‘리크게이트’가 확대된 뒤 “플레임과 윌슨에 관해 어떤 기자와도 이야기한 적이 없다.”고 언론과의 인터뷰 등에서 말해왔다. 뉴스위크는 쿠퍼 기자가 로브 부실장으로부터 플레임에 관해 이야기를 들은 뒤 이를 담당 데스크에게 보고한 이메일도 입수해 내용 일부를 공개했다. 이메일에서 쿠퍼 기자는 “로브 부실장과 초특급 비밀의 백그라운드에 관해 이야기했다.”면서 “이 내용을 보도할 때는 로브는 물론 백악관도 인용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또다른 기자가 CIA에 관련 내용을 확인토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다.쿠퍼 기자의 이메일은 이어 “로브는 이라크의 우라늄 구입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윌슨의 니제르 현지조사는 조지 테닛 CIA 국장이나 딕 체니 부통령의 승인을 받은 것이 아니며 이를 승인한 사람은 CIA에서 WMD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것이 분명한 윌슨의 아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뉴스위크는 쿠퍼 기자의 메일에는 로브 부실장이 플레임의 이름을 들먹였거나 그녀가 비밀요원임을 알고 있었다는 암시는 없지만 ‘리크게이트’의 기폭제가 된 칼럼니스트 로버트 노박의 보도를 통해 플레임의 신분이 처음으로 공개되기 전에 로브가 쿠퍼 기자에게 이에 관해 이야기한 사실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로브와 가까운 한 소식통은 그러나 “쿠퍼 기자의 메일을 읽어보면 로브가 전달한 정보는 플레임의 신원을 누설하기 위한 조직적 노력의 일환이 아니라 타임이 그릇된 것으로 밝혀진 내용을 보도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노력임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고 뉴스위크는 전했다. 한편 영국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10일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려온 플레임 및 남편 윌슨과의 인터뷰 내용을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논란의 중심에서 벗어나려고 애쓰고 있는 플레임은 워싱턴의 고급 주택가에 있는 집에서 “나는 아이들의 저녁을 준비하는 엄마일 뿐”이라며 “남편과 말하는 게 좋겠다”고 기자를 피했다고 전했다. 날씬하고 매력적인 금발머리의 플레임은 실제로 부엌에서 5세 쌍둥이 자녀들을 위해 스테이크를 요리하고 있었다고 한다. 남편 윌슨은 워싱턴기념비가 내려다 보이는 집에서 친구들에게 술을 따르고 있었으며 외관상으로는 시끄러운 리크게이트와 아무 상관없는듯 고요하고 평화로운 한 가정의 모습이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플레임은 지난 1년간의 무보수 휴가를 끝내고 최근 버지니아주 랭글리에 있는 CIA 본부에 복귀했다. 그녀는 이제 비밀요원이 아니지만 어떤 업무를 맡고 있는가는 여전히 비밀로 분류돼 있다. 윌슨은 리크게이트로 구속된 뉴욕타임스의 주디스 밀러 기자와 아내 플레임이 자신을 겨냥한 ‘더러운 음모’의 피해자라며 아내의 신원을 폭로한 로브 부실장이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dawn@seoul.co.kr
  • [현대미술의 향수] (5.끝) 빛과 색채의 화가 르누아르

    [현대미술의 향수] (5.끝) 빛과 색채의 화가 르누아르

    르누아르(1841∼1919)는 인간의 영원한 아름다움에 매달렸다. 밝은 태양을 사랑한 그의 화폭에 어두운 구석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굳이 해설이 없어도 된다. 아름다움을 느끼면 될 뿐, 미술사적 의미나 구구한 이론과는 거리가 멀다. 시공을 초월해 르누아르가 사랑받는 이유다. 그의 작품은 몰아치는 속도와 경쟁에 시달리는 우리가 편안히 쉴 수 있는 그늘이자 ‘오아시스’다. “나에게 그림은 적어도 사랑스러운 가치가 있어야 하고 즐거울 수 있어야 된다. 특히 아름다워야 한다. 세상에는 즐거울 수 있는 것이 너무나 많고 그런 즐거운 것들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르누아르는 평생 아름다움만을 추구했다. 어찌 세상이 아름다울 수만 있을까? 하지만 그의 그림에는 예쁜 여자 아이와 통통하게 살찐 풍만한 여인의 나체, 꽃과 나무 같은 아름다움의 상징이 말을 건넨다. ●작고 평화로운 마을에서 전시회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크렘스. 푸른 도나우 강이 시골 마을을 끼고 흐르고, 흐드러지게 널려 있는 포도밭에는 포도주 향기가 넘쳐나는 고장이다. 저 멀리 언덕바지에 고성과 수도원이 자리잡은 고즈넉한 분위기의 이곳은 백포도주 맛이 좋다. 농가의 주민들은 앞마당에 식탁을 몇개 차려놓고 손님들을 맞이한다. 자신이 빚은 포도주에 햄, 소시지 같은 요리로 지나가는 이들을 유혹한다. 농부의 땀이 배어든 오스트리아 가정식 요리다. 르누아르는 프랑스 출신이지만, 오스트리아의 이 작고 평화로운 마을에 자리한 쿤스할레 미술관에서 자신의 특별 전시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으면 무척 기뻐할 것이다. ‘르누아르와 인상파 화가의 여성’(4월2일∼7월31일)을 테마로 한 이 특별전에는 그의 작품 40점을 포함, 동시대에 활동한 인상파 화가 19명의 작품 120점이 전시되고 있다. 인구 2만∼3만명의 작은 마을이지만 주말에는 2000∼3000명이 몰릴 정도로 인기가 높다. 타이푼 벨진(49) 미술관장은 “빈으로 출장 온 세계 각국의 비즈니스맨들이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르누아르를 만나기 위해 즐겨 찾는다.”고 말했다. 르누아르의 사랑스럽고 따뜻한 작품 성격 때문인지 어린이들을 동반한 가족들이 눈에 많이 띈다. ●아름다운 것이 좋아 미술관 1층에는 19세기에 활동한 화가들의 그림이 걸려 있다. 르누아르의 그림과 당대의 다른 화가들의 작품을 비교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했다. “풍경화에선 한가롭게 노닐고 싶게 만드는 그림이 좋고, 여자 인물화에선 젖가슴이나 등을 손으로 만져 보고 싶게 만드는 그림이 좋다.” 르누아르의 이같은 생각을 담은 작품들은 2층 전시실에 펼쳐져 있다.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그림은 ‘책 읽는 가브리엘’(1906년). 빨간 앞치마를 두르고 책을 읽는 그녀의 진지한 표정을 보면 도무지 나쁜 짓을 할 수 없도록 하는 성경책을 넘기고 있는 것 같다. 르누아르가 가장 이상적인 여성으로 생각한 사람은 바로 자신의 아이들을 돌보던 유모 가브리엘. 그가 즐겨 그린 둥글둥글한 품새의 얼굴과 엉덩이를 가진 여인에서는 깊은 영혼의 향기가 풍기고 있다. ‘아기를 안은 알게리아인’(1882년)은 ‘빛’이라는 특성을 잘 활용한 전형적인 인상파 색채의 작품이다. 아기를 안은 여인의 옷을 보고 당시 사람들은 “옷도 아니다.”고 비웃었다. 심지어 “그림도 아니다.”라는 혹평을 받을 정도였다. 타이푼 벨진 미술관장은 “르누아르는 흰 옷에 파란색을 칠해 명암을 표현했는데 이는 당시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화법이었다.”며 “그늘진 곳을 검은색이나 회색으로 표현했던 당시 화풍에선 엄청난 ‘혁명’이었다.”고 말했다. 르누아르는 여성의 벗은 몸이나 목욕하는 모습을 많이 그렸다. 그에게 여성의 나체는 아름다움이 샘솟는 원천이었다. ●르누아르에게 여성은? 르누아르의 여성은 당대 다른 화가들과 사뭇 다르다. 많은 화가들이 여인을 그렸지만, 그처럼 포근하면서도 따뜻한 향기를 가진 여인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거리에 나앉은 채 젖을 물리고 있는 어두운 표정의 여인을 그린 페르난드 펠레츠의 ‘집없는 사람들’(1883년), 깨진 그릇과 빵조각이 흩어진 문가에 기대 앉은 한 노파가 등장하는 에드가 드가의 ‘로마의 구걸하는 여인’(1857년) 등을 보면 도무지 같은 시대 사람들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특히 이번 전시장에는 르누아르와 드가의 작품 세계가 나란히 전시, 확연히 비교되도록 했다.‘나는 춤추는 사람을 그리는 화가’라고 얘기한 것처럼, 드가는 발레리나를 많이 그렸다. 그의 발레리나는 아름다움의 상징이 아니다. 힘든 동작을 취하기 위해 힘들게 ‘노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펠레츠의 발레리나도 힘들고 무표정한 표정이다. 미술관 연구원으로 전시장 가이드를 맡은 미하일 폴츨(27)씨는 “르누아르는 기분을 좋게 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는 자세로 작업에 몰두했다.”고 말했다. ●마지막 10년은 손에 붕대 감고 작업 실제로 그가 그린 여자들은 모두 아름답고, 그가 그린 아이들은 모두 착한 아이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우울한 그림을 한번도 그려본 적이 없는 유일한 화가가 르누아르가 아닐까? 그러나 그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려운 환경에서 작품 활동을 했다. 그의 그림에서 가난과 고민스러운 날들의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 는 생애 마지막에 관절염으로 고생했다. 붓을 직접 들 수 없어 다른 사람이 마비된 손가락 사이에 붓을 고정시켜줘야만 했다. 그가 변함없이 아름다운 인간의 몸을 그리려고 한 것은 어찌보면 자신의 몸이 불편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르누아르는 관절염으로 고생하면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 말년 작품에서는 그의 육체적 고통이 절절하게 배어나온다.‘사람이 있는 카뉴슈메르의 풍경’(1916년)에는 손을 제대로 들 수 없어 높은 위치의 붓질을 하기 힘들어했고, 그 붓질마저 현저하게 힘이 빠진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아름다움이라는 화두는 끝내 놓지 않았다. 전시장에서 만난 헬가 킨스키(75)씨는 르누아르에 대한 사랑을 이렇게 표현했다.“르누아르의 그림은 밝고 따뜻해서 좋아요. 말년에 휠체어를 탈 정도로 건강이 나빴지만 삶의 즐거움을 표현했잖아요?” ■ 크렘스 쿤스할레 미술관 타이푼 벨진 관장 “일본을 두번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일본인들이 경쟁사회에서 힘든 일상생활을 해나가는 것을 봤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왜 우리가 르누아르를 좋아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점차 살기가 각박해질수록 우리는 아름다운 그림을 통해 평화와 안식을 얻고자 한다.” 타이푼 벨진(49) 크렘스 쿤스할레 미술관장은 르누아르가 꾸준하게 사랑받고 있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문화역사학 박사로 독일인인 그는 1년6개월 전부터 이곳 미술관의 최고책임자로 일하고 있다.2년의 준비 끝에 40여군데에서 그림을 빌리고 엄청난 예산을 투입한 이 전시회는 “이 작은 미술관에서 10년에 한번 할까 말까한 전시회”라고 자랑했다. 인상파 성격의 그림은. -르누아르는 ‘아기를 안은 알게리아인’에서 여자의 흰 옷에 파란색을 칠했다. 인상파 화가들은 아무리 흰 옷이라도 밝은 날 햇볕을 쬐게 되면 파랗게 보이는 것을 표현하고자 했다. 파란색으로 그늘을 그려 명암을 표시했다. 르누아르와 드가를 비교하면. -둘 다 목욕하는 여자의 모습을 그렸다. 드가는 여자를 목적물로 그렸다. 여자의 움직이는 순간을 포착하는데 마치 ‘아무도 보지 않는’ 순간처럼 느껴진다. 반면 르누아르는 아름답고 부드러운 선이 특징이다. 여자 모델은 마치 누군가가 자신을 그리고 있다는 의식 속에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여성을 아름답게만 본 것은 르누아르의 한계가 아닌지. -예술에는 어떤 이념이 없다. 그는 여성을 존중, 드가처럼 창녀를 그리지 않고 유모 등 자신의 주변에 있는 여성을 그렸고, 여자를 무시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르누아르가 갖는 차별성은. -기본적으로 부드러운 그림을 그렸다. 작품은 화가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변화를 갖는데, 피카소의 경우는 점점 더 각져 갔다. 여성의 모습도 딱딱하다. 하지만 르누아르는 처음부터 끝까지 둥글게 표현하고 있다. 최광숙기자 문화부 차장 bori@seoul.co.kr 협찬 Sharp Travel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한국의 슈베르트’ 작곡가 최영섭 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한국의 슈베르트’ 작곡가 최영섭 씨

    우리는 분단시대에 살고 있다. 좌로, 우로 한(恨)도 많다. 그래서 목놓아 ‘저편의 너를’ 부르고 그리움으로 손을 뻗는다. 광복 60년이 됐지만 분단의 노래는 여전히 단장(斷腸)의 메아리다. ‘봉선화’(1919년) 이후 한국 가곡 86년사(史)에서 가장 애창된다.‘그리운 금강산.’ 분단의 비극과 통일의 염원을 켜켜이 담아냈다. 시보다 더 아름다운, 소설보다 더 감동으로 승화시킨 악상(樂想)이다.‘통일 주제가’로 ‘민족 가곡’으로 사랑받는다. 들을수록 애틋하고 향수가 있고 경건하다. 옛날이었다. 한 시인이 음악가를 꿈꾸는 중학생과 인천 앞바다를 거닌다. 시인은 오른쪽 주머니에서 소주병을 꺼내 벌컥벌컥 술을 들이켠다. 시인은 “이봐, 한 수 읊을 테니 적어봐.”라고 했다. 그러곤 “잊어버리자고, 바다 기슭을 걸어보던 날이”라고 소리친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바닷바람이 불었다. 성질 급한 학생은 “다음은요?”라고 했다. 시인은 다시 술을 마시며 “하루 이틀 사흘, 여름 가고 가을 가고, 조개 줍는 해녀의 무리 사라진 겨울 이 바다에”라고 했다. 학생은 또다시 “다음은요?”라고 보챘다. 시인은 또 목구멍으로 술을 꼴깍 넘기며 “잊어버리자고, 바다 기슭을 걸어가는 날이 하루 이틀 사흘….” 학생은 이튿날 가곡을 만들어 화답했다. 1954년 어느 날이었다.25살의 젊은 청년이 처녀가곡집을 냈다. 그러자 서울신문 문화면 전체에 다음과 같이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이 게재됐다.‘악보 출판치고는 사상 최악이다. 그러나 이 청년의 장래를 정말 주목하지 않으면 안된다….’ 앞의 시인은 2003년 작고한 조병화씨. 해방 직후 경복중학에 다니는 최영섭 학생과 인천 앞바다를 거닐며 ‘추억’이라는 시를 발표했을 때의 상황이다. 두번째는 청년 최영섭이 가곡집을 내자 당시 작곡가 나운영씨가 주저없이 나서 역설적으로 호평했던 일화다. 최영섭(77)씨.‘한국의 슈베르트’라고 한다. 샘솟듯 넘쳐 흐르는 악상과 특유의 직감으로 무려 200여곡의 가곡을 작곡해 ‘가곡의 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중 ‘누구의 주재런가∼’로 시작되는 ‘그리운 금강산’은 새삼 설명이 필요없을 만큼 민족의 송가(頌歌)로 널리 애창된다. 이 노래가 탄생된 지 올해로 45년째. 서울 종로구 세종로의 한 커피숍에서 최씨를 만났다.“희수(喜壽)가 됐으면 다 평화로워야 하는데….”라고 했다. 사연을 들어보니 지난 4월에 막내아들을 잃었다. 폐암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4년 동안 온 집안 식구가 백방으로 살리려고 노력했지만 끝내 가슴에 못질하고 세상을 떠났다는 것. 최씨는 현재 서울 서대문구 모래내 한 주택가에서 반지하 월세방을 얻어 혼자 쓸쓸히 지내고 있다. 원래 세 아들을 낳은 본처는 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한참 동안 혼자 살다가 모 방송국 PD의 중매로 둘째 부인을 만나 살았지만 1997년 뜻하지 않은 이유로 헤어졌다. 평생 살려고 약속했던 부인에게 재산을 다 주고 났더니 빈털터리가 됐단다. 그룹 ‘들국화’ 멤버였던 큰아들이 경기도 과천 집에서 함께 살자고 원하지만 집에 쌓인 책이며 음악자료들이 정들어 아직은 혼자 지내기로 했다. “평생 가곡을 만들면서 살아왔어요. 올해가 광복 60년이고 분단 60년이 됩니다.‘그리운 금강산’을 만들 때는 곧 통일도 될 것 같았는데. 솔직히 더 이상 ‘그리운 금강산’이 불려져서는 안됩니다. 세월이 지난 뒤 ‘아, 옛날 그런 노래가 있었구나.’ 하는 정도면 족하지요.” ‘올해의 의미’에 대해 오는 11월11일이 제1회 가곡의 날로 선포된 점을 강조했다. 최씨 등 가곡인들의 오랜 노력 끝에 얻어진 결실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9월8일부터 매주 목요일 가곡 연주회를 갖는다. 아울러 전야제 행사로 서울 종로구 신문로 옛 중앙기상대 건물 바로 옆 홍난파 선생이 살던 집에서 ‘봉선화의 집’이라는 현판식을 갖는다. 최씨는 “난파 선생이 돌아가시기 1∼2년 전 협박에 못이겨 일본군가를 편곡했는지는 모르지만 생전에 민족 가곡 100여개를 작곡할 만큼 우리들에게 많은 용기를 불어넣어준 위대한 작곡가가 아니냐.”고 강조했다.‘봉선화’를 작곡하는 등 평생의 95%는 우리 가곡과 동요에 헌신하고 독립을 간절히 원하며 살았는데 왜 그가 친일파로 매도돼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운 금강산’의 탄생시절로 거슬러 올라갔다.1961년 8월이었다.KBS(남산 시절)에서 ‘남산에 올라’‘한강의 노래’‘낙동강 칠백리’‘백두산은 솟아있다’ 등 정열적인 작곡 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다. 하루는 한용희(‘파란 마음 하얀 마음’ 작곡자)씨가 남산 ‘산길다방’에서 차를 마시자고 했다. 다짜고짜 “최 선생, 한강 백두산 낙동강을 다 다루면서 정작 금강산은 왜 안하는 거요.”라고 불쑥 말했다. 아차, 무릎을 탁 친 최씨는 그 길로 시인 한상억(92년 작고)씨를 찾아갔다. 숨가쁜 목소리로 “한 선생님, 여태껏 금강산이 없습니다.”고 했다. 한씨는 “허허, 나는 이미 다 써놓고 있었네. 안그래도 줄 참이었지.”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새벽 2시까지 ‘콩나물’과 씨름했다. 다른 곡 같으면 며칠이 걸렸을 법한데 ‘그리운 금강산’은 4∼5시간 만에 완성했던 것. 이튿날 방송국에 악보를 전달하고 곧 녹음에 들어갔다. 서울대 음대 동창인 이남수씨가 지휘했다.3일 뒤부터 KBS 가곡프로그램인 ‘이주일의 노래’에 연달아 방송됐다. 팬레터가 쇄도했고 32세의 청년 최영섭은 일약 가곡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이듬해 6·25전쟁 발발 12주년 때 서울 명동의 시공관에서 ‘아름다운 내강산’이란 주제로 KBS교향악단·합창단 등의 협연으로 ‘최영섭 가곡특집’을 발표했다. 이때 받은 30만원(당시 집 한채 값)으로 둘째 아들의 병원비를 충당했다. 생애 가장 잊지 못할 추억이다. ‘그리운 금강산’은 국내외 정상급 성악가 50여명의 CD에 담겨 있다. 조수미를 비롯해 플라시도 도밍고, 루치아노 파바로티, 소프라노 홍혜경, 그리고 세계적 음반회사 데카에서 낸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의 ‘마이월드(My World)’에도 ‘그리운 금강산’이 포함돼 국내외에서 애창된다. 최씨는 인천시 강화군 화도면에서 태어났다. 여섯살 때 동네 병원에서 축음기를 통해 클래식 음악을 자주 들었다. 또 마니산에 올라 연평도 쪽에서 들려오는 ‘경기뱃노래’에 매료됐다. 초등3학년 때 호르겔피아노를 처음 접하면서 천부적 음감을 확인했고 이화여고에 다니는 누나한테 음악을 배웠다. 인천중학 재학 시절에는 바이엘과 체르니를 독학으로 배웠다. 서울 경복중학으로 전학한 후 이화여대의 임동혁 교수한테 작곡수업을 받았다.49년 경복중학 6년(당시 6년제)때 첫 작곡발표회를 가졌다. 서울대 음대 시절에 김성태 선생을 만나면서 오늘날 민족 작곡가의 길을 걷게 된다. “올해 김성태 선생한테 세배를 갔더니 세뱃돈 3만원을 주더군요. 그분은 96세의 나이에도 동요를 작곡하고 있어요. 여전히 배울 점이 많아요.” 최씨는 지금까지 가곡 외에 편곡 1600여곡, 기악곡 40여곡을 만들었다. 미발표된 것도 수십곡에 이른다. 재산은 하나도 없지만 가득 쌓인 문학책과 음악자료들을 볼 때마다 남부럽지 않게 여긴다. 혼자 맥주 마시며 책들과 대화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그는 올 가을에 발표될 신곡 20곡을 기대해 달라며 식지 않은 창작열을 과시했다. 오래전부터 ‘고운산’이란 필명으로 작사도 한다. 건강유지 방법을 물으니 “지하철이 곧 헬스클럽이다. 음악이 있어 인생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라며 웃었다. 생활비는 저작권료로 받는 월 200만∼300만원으로 충당한다.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29년 강화 출생 ▲49년 경복고 졸업, 제1회 작곡 발표회, 임동혁 교수에게 작곡이론 사사 ▲54년 서울대 음대 작곡과 졸업, 재학시절 김성태 교수에게 작곡이론 사사.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악대학원 석사 ▲61년 ‘그리운 금강산’ 작곡 ▲62년 6·25 12주년때 서울 명동 시공관에서 ‘최영섭 특집 가곡 발표회’ 개최. 이후 작곡발표회 5회. ▲76년 드라마 주제가 ‘아, 이조 오백년’ 작곡 ▲95년 광복50주년 기념교성곡 ‘오 사랑하는 나의 조국’ 전 24장 발표. ▲가곡 ‘모란이 피기까지’‘추억’‘망향’ 등 200여곡 작곡. ▲인천여중고·인천여상고·이화여고·한양대·상명여대·세종대 등에 출강. ▲현재 작곡가회 부회장, 한국예술가곡진흥회 회장. ■ 상훈 인천시문화상(59년), 경기도문화상(61년),MBC방송대상(87년), 대한민국 방송대상(92년),MBC가곡 공로대상(94년), 한국음악상(96년), 세종문화상(98년), 서울시문화상(2001년)
  • 전문가가 추천하는 나만의 여행지 3

    전문가가 추천하는 나만의 여행지 3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숨겨두고 싶은 여행지’가 있을 것이다. 특히 직업상 전세계를 누비고 다니는 여행사 대표들이라면 더욱 그렇지 않을까. 오지탐험, 허니문 등 ‘색깔있는’ 테마여행 상품만을 만들어온 국내 중견 여행사 대표들로부터 가슴속에 묻어둔 여행지에 대해 들어봤다. (1) 티베트 남초 호수<석채언(44) 혜초여행사 대표> 산이 좋아 전세계 산을 누비고 다니는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해발 4718m에 위치해 ‘하늘 호수’라고 불리는 남초 호수다. 지상에서 가장 높은 자연 호수이자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염호(염류 농도가 높은 호수)다. 길이 70㎞, 너비 30㎞에 이르는 남초 호수는 성호 마나사로바가 성산 카일라스를 남편으로 받들 듯이 탕코라 산을 마주하고 있다. 드넓은 호수의 빛깔은 하늘을 닮아 푸르다 못해 눈이 부실 정도. 남초 호수는 티베트 사람들에게는 성스러운 호수로 여겨진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몇 주에 걸쳐 호수 둘레를 돌며 ‘옴마니 반메훔’을 외운다. 라싸에서 190㎞ 떨어져 있는 남초 호수는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신비의 호수이다. 비포장길을 따라 어깨를 나란히 달려온 6000m급의 히말라야 산맥과 파릇한 목초지가 빚어내는 자연 풍광은 도저히 눈으로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호수에서 바라보는 탕코라 산의 늠름한 자태는 남초를 든든한 어머니로 만들어주기에 충분하다. 호숫가 바로 옆에는 오색찬란한 룽다와 탈루초가 세찬 바람에 펄럭이고, 순례를 나선 티베트 사람들은 밀려왔다 밀려가는 호파(湖派)처럼 쉬지 않고 코라를 돈다. 호수 주위를 도는 코라는 마나사로바처럼 일주일가량 걸린다. 대부분의 티베트 사람들은 엄청나게 큰 바위산을 1시간가량 도는 코라를 즐긴다. 마음까지 깨끗해질 것 같은 남초호수, 꼭꼭 숨겨두고 싶은 곳임에 분명하다. (2) 베트남 나짱(나트랑)<이성훈(46) 가야여행사 대표> 5년전 처음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받았던 첫 인상은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도 밝게 빛나는 따뜻한 미소였다. 또 프랑스식 건축양식과 넓은 녹지, 평화로운 새들의 지저귐 속에 바게트빵과 쌀국수의 조화로 이루어진 아침식사를 먹으며 베트남의 고요한 아침을 느꼈다. 특히 베트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 나짱(나트랑)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월남전 때 한국군 야전 사령부가 있었던 곳으로 우리와의 인연도 깊다.‘동양의 나폴리’,‘베트남의 지중해’로 불리는 나짱은 약 6㎞에 이르는 해변이 고운 모래로 뒤덮여 있다. 곳곳에 푸르게 우거진 야자나무가 더위에 지친 이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한다. 나짱은 1년전 새로운 공항건물이 들어섰으며, 주변에는 새로 조성한 도로와 현대적인 시설들이 들어서 있어,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나트랑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해변 주위에는 노천카페가 늘어서 있고, 호텔을 비롯한 리조트 시설도 갖춰져 있다. 베트남의 전통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대형 재래시장과 우체국, 참족의 문화유적인 포나가르 신전 등도 잘 보존돼 있다. 아름다운 해변 나트랑에서는 각종 해양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10여명이 탈 수 있는 배로 인근 무인도를 둘러보면서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바다를 직접 체험할 수 있고, 선원들이 바다에 뛰어들어 직접 잡아 올린 생선을 그 자리에서 맛볼 수도 있다. 인근 항구에는 수많은 어선들로 가득하다. 수산자원이 더없이 풍부하다. 이곳에는 크고 작은 리조트들이 해변을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다.‘고객을 위한 아름다운 집’이라는 뜻의 아나만다라리조트는 5년 전 첫 방문했던 나를 지금도 기억하고 반갑게 맞아준다. 아기자기한 독채 빌라 형태의 객실 구조로 그동안 길들여진 빌딩 스타일의 리조트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아늑함을 선사하는 곳이다. 언제든 가고 싶은, 고향 같은 곳이다. (3) 알래스카 포스테지 빙하공원<김영규(45) 포커스투어 사장> 알래스카는 깨끗한 공기, 맑은 물, 수려한 경관, 일년내내 흥미와 스릴을 즐길 수 있는 광활하고 순수한 대지, 북미 최고봉인 매킨리산을 비롯한 수많은 국립공원들, 지구촌 어느 곳과도 비길 수 없이 완벽한 야생동물 보호지역 등 다양한 모험과 흥미가 가득한 곳이다. 알래스카는 ‘거대한 땅’을 의미하는 인디언 말. 눈, 오로라, 스키, 개썰매, 에스키모, 연어, 곰, 고래, 빙하가 함께하는 곳이다. 알래스카에서 비행기나 낚시보트를 이용해 여기저기를 이동하며 하는 낚시와 자연과 하나된 낚시캠프, 웅장한 산맥들, 화려한 오로라, 경이로운 자연의 세계는 영원한 추억으로 남는다. 주요 관광지로는 포테이지 빙하공원, 매킨리 비행관광, 프린스윌리엄 사운드, 서프라이즈 빙하관광, 디날리 국립공원 관광 등이 있다. 포테이지 빙하 호수의 나이는 80세에 이른다. 깊이는 200∼300m. 호수에는 고기가 살고 있지 않다고 한다. 이 호수 빙하만을 관광하는 유람선이 운항되고 있으며 빙벽까지 유람할 수 있다. 약 1시간 걸린다. 타키티나 비행장에서 5∼9인승 비행기를 타고 매킨리산을 관광하는 경험은 색다른 추억을 안겨준다. 한시간 코스와 1시간30분 코스가 있으며 어느 것이나 깎아지른 암벽과 험한 계곡을 누빈다. 야생동물이 뛰노는 디날리공원의 아름다운 경치를 저공비행으로 관찰할 수 있다. 서프라이즈 빙하관광은 프린스윌리엄 사운드 지역을 4∼5시간 동안 배를 타고 관광하며 바다 표범, 수달, 고래, 바다새 등과 빙하를 관람하는 코스. 알래스카의 크고 작은 빙하는 약 10만개에 달한다. 총면적은 2만 8842평방마일. 서울에서 떠나는 직항편은 대한항공이 알래스카 여름 성수기인 6월말부터 8월말까지 운항한다. 피서여행으로는 이곳보다 더 좋은 곳이 없을 것 같다.
  • 대청도 푸른밤 순수 속으로

    대청도 푸른밤 순수 속으로

    끝없이 펼쳐진 사막으로 떠나자. 사하라나 고비사막처럼 먼 곳이 아니다. 인천에서 배로 3시간 남짓이면 사막여행이 가능하다. 인천 옹진군 대청도 모래사막은 사막여행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대청도는 사막과 해송, 동백림, 독바위 해안 등 인간의 손때가 묻지 않은 태곳적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천혜의 섬이다. 공해로부터 자유로운 가족 여행지론 대청도가 제격이다. 대청도는 서해 5개 도서 가운데 하나다. 그럼에도 백령도의 유명세에 가려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덕분에 아직도 자연 그대로의 순수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그 순수함이란 곧 아직 개발되지 않아 숙박이나 교통은 좀 불편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편안하고 쾌적하기만 한 여행을 바라지 않는다면 대청도보다 더 편안한 여행지도 없을 것 같다. 가장 인상깊은 것은 대규모 사막.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기에 사막은 아직 원시의 신비로움을 간직하고 있다. 모래의 속살을 느끼며 걷거나 깨끗한 모래에서 찜질을 할 수도 있다. 또 서남단에 있는 사탄동해수욕장, 해변 주위 곳곳은 갯바위 낚시터로도 손색이 없다. 홍어, 우럭, 광어, 전복, 해삼 등 원하면 무엇이든 잡을 수 있다. 이밖에 동백나무 자생지와 해송군락지 등 다양한 볼거리를 가지고 있는 곳, 그곳이 바로 대청도다. ●울렁울렁 배를 타고 4시간 인천 연안부두에서 쾌속선 백령아일랜드호에 몸을 실었다. 쾌속선의 시설도 괜찮다.2시간쯤 달리면 배멀미가 슬금슬금 느껴진다. 가족여행땐 멀미약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3시간40분만에 대청도에 도착했다.10m 앞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섬 전체를 뒤덮은 바다구름이 먼저 사람들을 맞는다. 아마도 낯선 이방인에게 자신의 속살을 보이기가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낭패한 얼굴의 이방인에게 “점심때면 거짓말 같이 바다구름이 걷히고 파란 하늘을 드러낼 거요.”라며 지나가던 어부가 툭 한마디 던진다.“저기요!”몇 마디 더 묻고 싶었지만 순간 바다구름 속으로 사라진다. 모래언덕 저편에는 관광객들이 누워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다들 아름다움에 넋을 잃은듯 감탄사를 자아낸다. 아침을 간단하게 먹고 오랜만에 다방에서 진한 ‘아줌마’표 커피를 한잔하고 선진포구로 나왔다. 대청도 관문인 선진포구에서는 바다내음과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긴다. 포구 여기저기 어선들이 줄에 묶여 흔들거리고 곳곳에서 어부들이 잔그물 손질에 여념이 없다. 관광객이 적어서인지 식당은 3개. 노래방,PC방은 당연히 없다. 대청도의 선진포구는 이렇듯 비릿한 바다내음과 어부들의 땀냄새가 느껴지는 작고 아담한 곳이다. ●남태평양 저리 가라 포구 옆에 면사무소를 지나 고개를 넘으면 대청도의 진면목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쭉쭉 뻗은 해송들의 멋진 자태에 눈이 휘둥그레진다.“이렇게 작은 섬에 나무들이 이렇게 크다니…!” 200살은 족히 돼 보이는 해송들이 군락을 이루며 신선한 산소를 뿜어내고 있다. 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철조망 때문에 거닐어 보지 못하는 게 조금은 아쉽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시원해진다. 바로 앞 답동 해수욕장은 물이 빠지면서 폭이 300m나 되는 천혜의 모래 운동장을 만들어낸다. 얼마나 모래가 곱고 깨끗한지 뛰다가 넘어져도 상처 하나 생기지 않는다. 아장아장 걷는 아기들이 놀아도 걱정없을 정도다. 또 발아래로는 이름 모를 작은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한가로이 노닌다. 물이 고인 모래사장에 먹이를 먹는 하얀 갈매기들까지…. 정말 남태평양의 평화로운 섬나라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푸른 바다, 파란 하늘과 붉은 태양, 흰구름과 갈매기. 그곳에 가면 누구나 수채화 속의 주인공이 된다. ●여기는 사하라 사막 대청도의 가장 큰 자랑은 사막.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크다. 과장이 아니다. 해발 206m의 검은낭큰산 북쪽 산등성이까지 모래가 뒤덮인 사막이다. 파란 하늘에 반짝이는 모래언덕을 걷는 재미를 놓칠 수 없다. 신발은 물론 양말까지 벗고 걷는다. 푹신푹신 스펀지 위를 걷는 느낌이다. 모래가 아니라 밀가루처럼 입자가 곱다. 소녀적 감성이 다시 살아난 듯 주부 김성희(48)씨는 친구들과 어울려 마냥 즐거운 표정이다. 대청도 사막은 바닷가 모래가 날아와 만들어졌다 한다. 하지만 중국에서 날아 온 모래가 쌓여 만들어졌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썰물 때는 옥주포 해변의 희고 고운 모래가 북풍을 타고 높은 산을 타고 올라가 쌓인다. 이 모래는 좀 강한 바람이 불면 산등성이를 넘어 대청2리 해안까지 넘어가 쌓인다. 모래는 다시 동남풍을 받아 산쪽으로 날려간다. 이렇게 200m 고개를 넘나드는 모래구름은 사막에서나 볼 수 있는 높은 모래산과 깊은 모래골짜기를 이룬다. 풍향에 따라 파도 모양의 주름굽이나 별난 색깔의 무늬를 만들어 놓기도 한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이 산 전체가 사막이었다 한다. 바람이 불면 모래가루가 집안으로 날아 들어온다는 주민들의 민원으로 소나무를 심은 이래 사막이 줄어들고 있다 한다. 그렇다면 10년 후면 이 사막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모래가 바다에서 날아들어 오지 않고 바람에 날아가기만 하기 때문이다. 이런 천연 사막이 없어진다니 왠지 모를 아쉬움이 가슴속에 남는다. 모래 때문에 고통받는 주민들에게 돌을 맞을지는 모르지만 정부 차원에서 이러한 관광자원을 보호하고 아꼈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제는 다시 못 볼지도 모르는 사막을 가슴에 한껏 담고 대청도의 또 다른 비경을 찾아간다. ●절경이로세, 절경이야 기암괴석과 파란 바다 색의 조화가 절묘한 독바위 해안. 바다 낚시로도 유명한 이곳을 지나 대청도의 절경을 볼 수 있다는 곽난루에 올랐다. 좌우로 사타동, 갑죽도, 소청도까지 서해의 절경이 펼쳐진다. 비쭉비쭉 나온 바위 절벽을 어김없이 지키고 있는 해송. 거기에 이름 모를 바위들까지. 사방을 둘러보아도 아름다운 산과 바다뿐이다.“절경이야!”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갑자기 사탄동해안 너머로 바다구름이 밀려온다. 자연의 조화가 마냥 신비롭기만 하다. 망원경도 있어 경치를 감상하기 그만이다. 길이 2㎞, 폭은 100m의 해변을 자랑하는 농여해변. 해변 앞에 솔밭이 조성돼 여름철에 쉬기 좋고 맑고 깨끗한 바닷물과 썰물 때마다 드러나는 고운 모래밭이 일품이다. 우거진 해송과 넓은 은빛 백사장, 짙푸른 바닷물이 이국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관광객이 드물어 쾌적하다. 사탄동 해수욕장도 찾을 만하다.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는 동백나무 자생지, 노송보호지역, 옛날 원나라 순제(順帝)가 귀양살이를 했다는 삼각산(343m)등도 꼭 둘러봐야 할 곳이다. 글 사진 대청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알고가세요 대청도는 서해의 섬들 중 가장 북쪽에 위치한 섬 가운데 하나다. 면적은 440만평 정도. 면소재지로 2개의 이(里)로 구성되어 있다. 섬 전체를 둘러보는데 걸어서 2시간30분 걸리는 자그마한 섬이다. 백사장도 넓고 수심도 완만해 아이들이 놀기에 안성맞춤이다. 삼각산 등으로 둘러싸여 농경지는 거의 없다. 주민들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해 풍부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다. 대청도에서는 흑염소를 방목해 키운다. 먹이가 없는 겨울철엔 집으로 불러들였다가 봄이 되면 다시 방목한다. 야산이나 도로에 불쑥 나타나는 모습도 정겹다. 대청도 가는 길 :인천 연안부두에서 백령도를 가는 배중에 만다린호만 백령도로 직항한다.‘백령아일랜드’‘데모크라시’호가 매일 출발하며 3시간40분 정도 걸린다. 뱃삯은 대청도까지 4만 1700원. 진도운수(032-888-9600), 온바다(032-884-8700)에 전화로 문의하면 된다. 숙박은 민박을 하는 것이 좋다. 대부분 민박집에서 자동차로 포구까지 마중나오고 근처를 이동할 때도 도와준다. 대청도 숙박 시설은 여름철 성수기 바가지 요금도 없다. 여관은 2인 기준으로 3만원선, 민박은 2만 5000원 선. 엘림(032-836-5997)이 최근에 지어져 좋다. 또 김호익(836-3188), 김중만(836-2411), 정의균(836-2304), 정용택(836-2009)씨 등에 문의하면 된다. 교통수단은 마을버스가 1대 있지만 이용하기가 어렵다. 택시는 2대, 거리에 따라 요금이 다른데 선진포구에서 3000∼5000원이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 인천에서 배를 타기 전에 미리 연락하면 포구에서 기다린다. 또 택시로 2시간 정도 섬을 일주하며 관광을 하려면 미리 예약해야 한다.3만원.(032)836-0064. 여행 주의점:신용카드는 사용할 수 없다. 현금을 준비해가지 않으면 낭패를 당할 수 있다.
  • [영화속 수능잡기] 미션

    [영화속 수능잡기] 미션

    영화 ‘미션’은 1750년대 브라질, 파라과이, 아르헨티나의 접경 지역에서 ‘과라니’족을 선교했던 예수회 선교사에 대한 이야기다. 당시는 유럽의 강국이 된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남아메리카에 영구적인 식민사업의 기반을 다져가는 때였다. 영화의 소재가 되는, 폭포 위에 위치한 원주민 선교회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식민지의 구획 정리가 필요하던 곳이었다. 주인공 가브리엘 신부가 선교한 그 부락은 지리적으로 애매한 접경지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먼저 개척한 교회측의 승인 없이는 누가 그곳을 정치적으로 지배할지 미정으로 남아 있던 것이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당국자들은 어차피 둘 중 하나가 지배할 터이니 싸울 것 없이 교회의 판가름을 기다리겠다는 입장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원주민의 의견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 즉 자결권(自決權)이 없다. 모든 것은 바깥 세계의 힘의 논리에 따라 이루어진다. 교회는 원주민을 무차별 학살하거나 노예로 전락시키고 평화로운 마을을 모두 불태워버리는 것을 방임하게 된다. 표면적으로 교회는 미지의 땅, 야만의 땅을 문명화시키겠다는 미션(임무)을 내세우지만 따지고 보면 그것은 신대륙에서 이권을 챙기겠다는 속셈을 미화한 것에 불과했다. 제국주의자들은 세계를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적 구도로 파악했다. 야만인들을 문명화하는 것이 백인들의 의무(mission)라는 명분까지 내걸고 식민지 정복의 길로 나선 것이다. 영국의 탐험가 스탠리는 아프리카를 가리켜 ‘암흑의 대륙’이라고 명명했다. 우리는 빛이고 너희들은 어둠이다. 우리들은 이성이고 너희들은 미신이다. 우리는 문명이고 너희들은 야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너희들을 우리와 같이 계몽시키겠노라.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의 명분은 그럴싸하다. 한 민족과 국가를 침탈하는 것이 아니라 한 민족과 국가를 개화시키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너희들은 스스로 근대화를 추진할 만한 자생적 능력이 없으므로 우리가 너희들을 근대화시키겠다는 것이 식민주의자들의 궤변이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전통은 전근대적인 것이 되고 전통적 믿음은 미신이 되며, 과학이 아닌 것은 모두 비이성적인 것이 된다. 제국주의의 비뚤어진 시각도 문제지만 더욱 큰 문제는 서구의 폭력적 계몽주의가 이제는 우리 안에도 자연스럽게 내면화되었다는 데 있다. 우리는 스스로 열등한 존재로 인식하면서 우리 자신을 야만으로 규정하는 몰주체적인 사고방식이 그것이다. 서양인처럼 노랗게 염색한 머리, 토속적인 음식보다는 서양음식에 대한 선호, 동남아시아 노동자들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면서도 서양인들은 세련된 존재로 보는 우리들의 태도가 우리 안에 깊숙이 각인된 서구우월주의를 말해준다. 롤랑 조페 감독, 로버트 드 니로, 제레미 아이언스 주연,1986작. 김보일 서울배문고 교사 uri444@empal.com
  • 또 미군車에… 50대女 2.5t 트럭에 치여 숨져

    50대 여성이 미군 트럭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고 미8군 사령관은 이례적으로 곧장 조의를 표시했다.10일 오후 1시45분쯤 경기도 동두천시 생연동 동두천정형외과 앞 평화로 사거리에서 요구르트 배달을 하던 김모(51·경기도 양주시 운현면)씨가 미2사단 55헌병대 브라이언트 일병이 운전하던 2.5t 트럭에 치여 그자리에서 숨졌다. 미군 차량은 당시 동두천 사단으로 복귀 중이었으며 손수레를 끌고 가던 김씨를 미처 발견하지 못해 사고가 났다고 브라이언트 일병은 질술했다. 박모(48)씨 등 목격자들은 “미군 트럭 앞에 신호대기를 하던 차량 5∼6대가 있었고 사고를 낸 트럭과 바로 앞 차량 사이를 김씨가 손수레를 끌고 넘어갔는데 신호가 바뀌고 트럭이 출발하면서 바로 치였다.”고 말했다. 경찰은 미군 헌병대와 함께 사고경위를 조사 중이며 목격자들의 진술에 따라 김씨가 무단횡단한 책임이 있다고 보고 브라이언트 일병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불구속 입건하기로 했다. 브라이언트 일병은 사고 직후 양주경찰서 동두천지구대로 신병이 인계돼 조사를 받았다. 동두천 한만교기자 mghann@seoul.co.kr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프랑스의 농가체험 민박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프랑스의 농가체험 민박

    양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저편 언덕으로 석양이 물든 뒤 밤이 되면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하늘의 별을 세고, 아침에 일어나 새벽안개가 걷히기 시작하는 들녘을 바라보며 따끈한 모닝커피를 마실 수 있다면? 웰빙 붐을 타고 한적한 시골 농가에서 민박을 하며 전원생활의 즐거움과 훈훈한 인심을 만끽하는 ‘농가 체험 관광’이 프랑스인들의 휴가 프로그램으로 각광받고 있다. 시골 농가에서의 민박은 빡빡한 일상생활에 지친 도시인들에게는 색다른 여행의 즐거움을 주고, 손님을 맞는 농가에는 짭짤한 부수입을 제공하기 때문에 모두에게 만족을 주고 있다. |샹보르(프랑스) 함혜리특파원|정부에서도 농촌지역의 소득원을 다양화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관광·환경·농림부가 공동으로 각종 프로그램을 지원하며 농가체험 관광을 장려하고 있다. ●훈훈한 인심 느낄 수 있는 시골 민박 인기 루아르강변의 대표적인 고성(古城) 샹보르성에서 5㎞ 거리에 있는 시골마을 메르에 사는 모르미시 부부는 3층 가옥을 개조해 민박집을 운영하고 있다. 17세기에 지어진 집이지만 안을 깔끔하게 수리하고, 미적 감각이 뛰어난 안주인 조엘이 방마다 개성있게 인테리어를 장식해 편안함을 주는 이 집은 루아르강 고성지역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무척 인기가 있다. 남편 클로드(50)는 농장일을 하는 틈틈이 집안 구석구석을 살피고 정원에 등도 달며 아내 조엘(45)을 돕는다. 클로드는 “수입이 예전같지 않아 농사일에만 의존할 수 없어 민박을 시작했다.”며 “아침 일찍 일어나, 저녁 늦게까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고되기는 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즐겁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만난 여행객 모렐 부부는 “호텔에 묵으면 도시지역에만 머물게 되는데 민박을 하게 되면 작은 시골마을까지 방문할 기회가 생기고, 오랜만에 시골인심을 접하면 마음도 편안해진다.”고 말했다. 전통적인 민박은 숙소와 아침 식사를 제공하는 영국의 B&B(Bed & Breakfast)가 대표적이다. 프랑스의 경우 여행을 하다 보면 시골길 어귀에 샹브르 도트(Chambre d’Hote) 간판을 자주 만날 수 있는데 이게 바로 프랑스식 B&B다. 샹브르 도트를 그대로 번역하면 ‘주인집 방’이라는 뜻으로 지트(Gites)라고도 부른다. 큼직한 시골 농가의 일부를 깔끔하게 개조해서 숙소와 아침식사를 제공한다. 요리 솜씨가 좋은 안주인을 만나면 지역 특산물과 요리를 메뉴로 하는 식사도 준비해 준다. 시골인심이 훈훈한 것은 어디든 마찬가지. 거위간을 생산하는 농장에 묵었다면 거위간을, 포도밭이 있는 집에 묵으면 그 집의 포도주도 맛볼 수 있다. 주변의 모든 길을 훤히 꿰고 있는 시골 민박집 주인들은 외지인들에게 훌륭한 길 안내자가 되기도 한다. 민박이 인기를 끌면서 단순하게 숙박만 하는 게 아니라 농가에서 직접 농사일을 체험하는 상품도 등장하고 있다. ●테마형 민박도 인기 래프팅, 낚시, 사냥 등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곳도 있다. 조랑말을 타고 주변을 거닐거나, 동물들을 보살피며 동물 사랑하는 법을 배우도록 한 어린이 농가체험 프로그램도 인기다. 보르도, 알자스 등 유명 포도주 생산지에서는 포도 수확철에 농가에 머물며 함께 포도주를 담그기도 하고 농가에서 내려오는 전통 요리법을 배우는 프로그램도 있다. 가격은 지역별, 농가별, 등급별로 다르지만 어디든 호텔에 묵는 것보다는 훨씬 싸다. 인터넷사이트(httt:///www.chambresdotes.fr 등)를 통해 원하는 지역, 원하는 스타일의 집을 찾아 예약을 하면 된다. 사이트에는 집의 사진과 함께 근처에서 즐길 수 있는 각종 여가시설 등이 자세하게 안내되어 있다. 인터넷 상에서 집의 시설 수준을 가늠하려면 밀 이삭이나 돌의 숫자를 보면 된다. 숫자가 많을수록 좋은 집이다. 프랑스 관광부 통계에 따르면 2004년 현재 농촌지역 관광은 프랑스인 전체 관광소비의 19.7%(200억유로)를 차지한다. 프랑스인들의 농촌지역 관광비율이 높은 것은 6명중 1명이 시골 별장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 머무는 경우 가족이나 친척, 친구 소유의 별장에서 휴가나 여가를 즐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최근 들어 시골에서 농가체험을 하며 한가롭게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면서 민박 시설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전체 숙박시설 가운데 민박이 차지하는 비율은 0.4%(6만 2000개 침상)로 최근 5년새 25% 늘었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그린 투어’를 장려하고 있는 프랑스 정부는 농촌지역 발전과 자연환경 및 전통 보존을 위해 농촌지역 관광을 지원하고 있다. 전국의 민박집들을 인터넷으로 편리하게 예약할 수 있게 메인서버를 무료로 제공해 준다. 비품구입 비용에 대해 세금을 감면해 주거나 은행 대출금리를 우대해 주는 등 각종 혜택을 준다. ●유럽 전역으로 확산 중 파리시도 관광객들의 민박 수요 증가를 감안,‘Hotes Qualite Paris’라는 이름으로 민박확대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영국과 독일, 오스트리아의 경우 도시에서도 민박을 쉽게 구할 수 있지만 파리에선 흔치 않기 때문이다. 파리시의 호텔객실수가 7만 5000개인데 비해 일반가정이 제공하는 민박은 300개에 불과하다. 파리시 관광과 베르나르 브로스는 “외국관광객들은 시민들과의 직접 교류를 통해 파리를 느끼고 싶어 한다.”며 “상호교류에 중점을 둔 관광은 민박이 가장 좋지만 파리시민들은 개인적 성향이 강하고, 집이 비좁아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파리시가 정한 민박숙소는 1인당 숙소 크기가 최소 10㎡가 돼야 하며 주인은 반드시 프랑스식 아침식사를 제공해야 한다. 다른 유럽국가들에서도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농촌 관광이 인기를 끌면서 민박을 운영하는 농가가 늘고 있다. 오스트리아, 독일 등 게르만 문화권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산악지역을 중심으로 민박이 확산돼 있다. 최근 들어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전통적인 농가에서, 이탈리아는 농촌과 산악지역에서 체험관광을 하는 것이 각각 인기를 끌고 있다. 벨기에의 경우 남부 해안지역의 농가에 머물며 휴가를 보내는 것이 도시인들 사이에 유행이다. 러시아 북서쪽의 카렐리야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아름다운 휴양지이지만 숙박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 카렐리야의 스포츠·관광위원회는 농가를 개조해 관광객이 숙박하면서 러시아 농가의 일상을 체험할 수 있는 시골투어를 러시아 최초로 개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lotus@seoul.co.kr ■ 농장주 바뤼골라 부부가 사는법 |페리괴 함혜리특파원|프랑스 남서부 내륙에 있는 페리괴와 도르도뉴 지역은 오래된 농촌의 한가로운 모습과 야트막한 구릉들로 이어진 평화로운 풍경, 풍부한 문화적·예술적 유산들로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각지에서 수만명의 관광객들의 발길을 끄는 훌륭한 관광자원이 되고 있다. 이처럼 해마다 늘어나는 관광객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숙박시설을 해결해 주는 것이 바로 시골 농가의 민박(샹브르 도트)이다. 페리괴에서 지방도로를 타고 약 30㎞ 내륙으로 들어 온 미알레(Miallet) 마을의 ‘푸제라스 농장’도 그중의 한 곳. 이 지역 전통 양식으로 지어진 커다란 농가 본채에 농장 주인 바뤼골라 부부가 살고, 옆에 이어진 방 2개짜리 별채를 손님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숙박료는 아침 식사를 포함해 1인당 20유로(약 2만 5000원) 정도. 빵과 카페오레로 된 간단한 프랑스식 아침식사에서는 안주인 캬린(36)이 직접 만든 꿀과 사과주스, 각종 잼을 맛볼 수 있다.20살 가까운 나이차를 극복하고 6년전 결혼, 이 농장에 자리를 잡았다는 이들의 주업은 물론 농사와 목축이다. 남편 뤼시앵(55)은 농사일 외에도 말을 이용, 트랙터가 들어가지 못하는 깊은 산이나 숲속에서 벌목한 나무를 치워주는 독특한 일을 한다.‘샘’‘오스카’‘단스’라는 이름의 다리힘 좋게 생긴 말들을 트럭에 싣고 산으로 가 쓰러져 있는 아름드리 고목을 밧줄로 묶어 트랙터가 들어올 수 있는 장소까지 운반해 주는데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프랑스에서 단 5명뿐이라고 뤼시앵은 설명했다. “자연 속에서 생활하는 것이 행복하다.”는 이들 부부는 “민박은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에 언제나 즐겁게 손님을 맞는다.”고 말했다. lotus@seoul.co.kr
  • [새음반] 손병휘씨 3집 ‘촛불의 바다’

    가수 손병휘가 ‘전쟁과 평화’를 주제로 한 3집 앨범 ‘촛불의 바다’를 발표했다. 90년대 고려대 노래패에서 활동한 민중가수 출신 손병휘는 김광석, 안치환, 동물원 등 포크음악의 계보를 잇는다.2002년 월드컵을 거쳐 이라크 파병 반대, 대통령 탄핵 등 촛불 시위 참여로 유명해진 ‘촛불 시위 단골 가수’. 이번 앨범은 그가 올해 광복 60주년과 한국 전쟁 55주년을 염두에 두고 기획한 것. 앨범의 제목 ‘전쟁과 평화’에서 보듯 각 곡들이 전쟁의 참화와 평화를 갈망하는 일관된 내용의 흐름으로 엮여 있다. 각기 다른 내용을 담고 있지만, 끝까지 들었을 때 한편의 서사시나 뮤지컬을 감상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는 “계속되고 있는 한반도의 전쟁 위기와 이라크를 비롯해 체첸·보스니아 등 지구 분쟁지역의 참상을 고발하고, 인디언 수우족의 추장, 인도의 시성 타고르 등의 입을 빌려 평화를 노래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타이틀곡은 ‘샤이를 마시며’. 전쟁의 야만성을 고발하는 내용의 이 곡은 전운이 감도는 바그다드의 카페에서 직접 경험한 인간미와 평화로운 광경을 어쿠스틱 기타와 아코디언의 반주로 애잔하게 표현했다. 이밖에 아트록을 연상케 하는 장쾌한 편성이 돋보이는 ‘촛불의 바다’ 등 12곡의 트랙으로 구성됐다. 박노해·신동호 등 시인들이 가사 작업에 동참했으며, 배우 권해효, 전문 사회자 최광기, 개그맨 노정렬 이 음반 홍보대사를 맡았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한·중·일 공동저술 새 역사교재 ‘미래를‘ 출간

    한국·중국·일본의 양심세력들이 머리를 맞대고 집필한 3국 통합 근현대사가 26일 출간됐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이 동기가 돼 사상 첫 3국 공동 역사서가 탄생한 것이다. 세 나라 역사학자와 시민사회 인사 등 54명이 참여해 3년여 동안 만든 새 역사책의 이름은 ‘미래를 여는 역사’.‘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는 이날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출간기념회를 열고 ‘한·중·일 3국 공동역사편찬위원회’ 명의의 공동취지문을 발표했다. 편찬위원회는 “일제의 침략전쟁과 식민지배를 반성하지 않고 합리화 하는 것은 이웃나라는 물론 일본국민들에게도 불행한 일”이라면서 “불행한 과거를 넘어 3국이 평화와 인권, 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미래가 펼쳐지기 바란다.”고 밝혔다. ●일제의 침략과 강압정책 공식 인정 ‘미래를 여는 역사’는 16세기 중반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3국 역사를 ▲개항 이전의 3국 ▲개항과 근대화 ▲일본 제국주의의 확장과 한·중 양국의 저항 ▲침략 전쟁과 민중의 피해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동아시아 ▲동아시아의 평화로운 미래를 위해 등 6개 장으로 구성됐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일본 제국주의의 역사를 다룬 2장과 3장.‘미래를 여는 역사’는 1904년 러·일 전쟁 당시 대한제국이 중립을 선언했음에도 일본이 통감부를 설치해 내정간섭, 군대해산, 언론탄압, 사법권 강탈 등에 나선 과정을 자세히 설명했다. 이는 일본 극우파들이 만든 후소샤(扶桑社)의 ‘새로운 역사교과서’에서 축소되거나 왜곡됐던 대목이다. 후소샤는 대한제국 병합 과정을 ‘근대화’라고 미화했다. ‘미래를 위한 역사’는 또 “(일본이 주장한)대동아공영권은 식민지 지배를 치장하는 논리일 뿐이며 전쟁수행을 위한 자원, 자재, 노동력 조달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역시 후소샤 교과서에서 각국의 자주독립과 상호제휴에 의한 경제발전, 인종차별 철폐 등에 공헌했다고 미화했던 부분이다.‘미래를 위한 역사’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위안부로 끌려간 한국여성은 대부분 미혼의 10대 소녀들이었다. 한국, 중국, 필리핀 등에서 위안부로 동원된 각국 여성의 수는 최소 8만에서 15만명으로 추정된다.”고 썼다. ●공동 근현대사 탄생의 배경 한·중·일 3국 시민단체와 역사학자들은 2000년 일본에서 출간된 후소샤 교과서가 극우파의 역사인식을 그대로 반영하자 이를 바로잡기 위한 국제연대에 나섰다.2002년 3월 중국 난징국제학술대회에서 각국 중학생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근현대사 교재를 개발하기로 합의했으며 한국 23명, 일본 14명, 중국 17명이 공동 집필진으로 참여했다. 씌어진 언어와 책의 판형은 다르지만 내용은 모두 같다. 한·중·일을 오가며 11차례의 회의가 진행됐다. 공동교재 총괄 편집위원회에는 한국측에서 교과서운동본부 대표인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와 김성보 충북대 교수가 참여했다. 중국측에서 부핑(步平) 중국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장, 우광이(吳廣義) 중국사회과학원 세계경제정치연구소 연구원, 일본측 오비나타 스미오(大日方純夫) 와세다대 교수, 다와라 요시후미(俵義文) 어린이와교과서전국네트워크21 사무국장 등이 포함됐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中, 北에 핵포기 설득을” “6자회담 당분간 힘들것”

    “中, 北에 핵포기 설득을” “6자회담 당분간 힘들것”

    |베이징 이종수특파원| 중국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24일 “북·미 사이에 오랫동안 대결구도와 불신이 쌓여 당분간 6자회담이 재개되기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후 주석은 이날 인민대회당에서 중국을 방문 중인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만나 “한반도 비핵화를 견지하고 대화로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겠다는 것은 중국 정부의 확고부동한 입장”이라고 전제한 뒤 이같이 말했다. 박 대표는 앞서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를 위해 중국이 노력해준 데 감사드린다.”며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중국과 같은 개혁 개방으로 나아가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 돼야 하고 핵을 갖고서는 미래가 없다는 것을 앞으로도 잘 설득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전여옥 대변인이 전했다. 이에 후 주석은 “지난 2년 동안 북한에 6자회담 복귀를 설득했다.”며 “침체상태에 빠진 6자회담에 최근 새 움직임이 나타나 주목하고 있는데 한 가닥 희망이 있는 한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후 주석은 이어 “최근 며칠 동안 북·미가 서로 적극적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데 이는 쌍방이 대화와 협상의 문을 닫지 않았다는 증거”라며 “중국은 당분간 경제 건설에 모든 힘을 쏟아부을 것인데 이를 위해서도 훌륭한 주변 환경과 평화로운 국제 환경이 절실하다.”라고 덧붙였다. 박 대표는 이에 대해 “한국과 중국이 그동안 신뢰를 바탕으로 21세기 동북아시아 연대를 통한 공동 발전을 추구했듯이 앞으로도 동반자로서 공동 번영을 이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vielee@seoul.co.kr
  •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로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 참석차 내한한 오에 겐자부로(70)는 2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나이가 들면 모든 것이 용서되고, 해결될 줄 알았는데 막상 일흔살이 되니 정치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모순이 보다 극명하게 드러나더라.”면서 “주변의 모순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일이 내 마지막 작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일본이 진정한 과거 반성아래 양국관계 개선에 힘써야 한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3·1절 연설문과 4월 대국민 담화문에 큰 감명을 받았다.”면서 “일본 지성인의 한 사람으로 이에 부응하는 마음을 전하고자 포럼에 참석했다.”고 밝혔다. 일본이 나아가는 방향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방향을 말하는가. -가장 두려운 건 헌법개정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일본 정부와 여당, 재계 실력자들이 전쟁포기를 선언한 헌법9조를 개정하는데 전력을 쏟고 있다. 일본은 지금도 자위대, 군비예산, 이라크 파병 등을 통해 사실상 헌법 9조를 지키지 않고 있다. 하지만 헌법이 개정되면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된다. 전쟁을 할 수도, 무기비축을 할 수도 있는 나라가 되는 것이다. 때문에 어떻게든 이 헌법을 지켜야 한다.50년전 평화로운 세계, 전후 새로운 국가를 꿈꾸며 만든 헌법에 대한 희망을 버릴 수 없다. 그건 지난 50년간의 내 삶,40년의 내 문학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가. -지난해 중반 시작한 헌법 9조 모임은 헌법의 가치를 인정하고, 일본이 아시아에서 신뢰받는 국가가 되기를 바라는 이들의 모임이다. 평론가, 극작가, 철학자 등이 중심이 된 지식인 운동인데 그중 내가 젊은 편에 속한다.(웃음)일본 각지역을 돌면서 강연을 주로 한다. 지금까지 2만 5000여명이 참여했고, 지역별로 1500개의 소모임이 조직됐는데 이는 적지 않은 숫자다. 하지만 간과해선 안될 점이 있다. 고이즈미 총리를 비판하는 이들이 많지만 막상 선거 결과에서는 여당이 이긴다는 사실이다. 희망을 얘기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헌법이 지켜지리라는 희망은 30%에 불과하다. 그래도 우린 희망을 버릴 수 없다.7월에 1만여명이 참가하는 집회를 준비중이다. 한국 언론들이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문학적 전기(轉機)에 접어들었다고 했는데. -스물두살때부터 글을 썼으니 올해로 48년째다. 현재 집필중인 장편소설 3부작을 마지막 작품으로 생각하고 있다.2년 전 사망한 동갑내기 친구이자 존경하는 학자 에드워드 W 사이드가 죽기 일주일전 내게 논문 하나를 보내왔다. 베토벤이 마지막 생애에 자신의 음악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작품을 남긴 것을 인용하며 내게도 그런 ‘후기작품(Late works)’를 제안했다.‘안녕, 나의 책들이여’는 2년전 그렇게해서 시작됐다. 돌아가서 바로 완성해야 하기 때문에 호텔에서도 틈틈이 메모를 하고 있다. 정치나 개인이나 많은 모순들이 존재한다. 내게는 네살 정도의 지능을 가진 마흔한살 아들이 있다. 내가 죽은 뒤 그 아이가 잘 살아갈 수 있을까가 내겐 국가나 사회문제보다 더 큰 모순이다.30%의 희망밖에 없는 비관적인 상황이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현실이 내 소설작업과 일맥상통한다. 에세이집 ‘나의 나무아래서’에 등장하는 ‘자신의 나무’를 만난다면 지나온 삶에 대해 어떤 얘기를 들려주고 싶은가. -흥미로운 질문이다.‘안녕, 나의 책들이여’에도 비슷한 대목이 나온다. 숲에는 저마다 자신의 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앞에 서면 일흔살이 된 미래의 나와 대화할 수 있다는 이야기로, 어릴 적 살던 마을의 전설이다. 이제 내가 그 나이가 된 거다. 과거의 나에게 이런 얘기를 해주고 싶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소설가로 살아서 참 좋았다고. 그리고 젊은 독자들이 줄어서 슬프다고. 이 두가지를 들려주며 ‘이게 내 인생이야.’라고 말할 것이다. 아시아와 세계를 이끌어갈 다음 세대들이 민주주의적인 사람들로 자라나길 바란다는 얘기도 함께. 현재 일본을 우경화로 이끄는 정부 여당, 재계 인사들에게 천황은 어떤 존재인가. -천황 문제는 나도 분명하게 답변할 수 없다. 앞으로 일본인들이 어떤 방향으로 몰고 갈지 확실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 얘기할 수 있는 건 과거 절대군주적인 천황제로 돌아가서는 절대 안된다는 점이다. 도쿄대 불문과를 나온 오에 겐자부로는 1957년 ‘기묘한 일’을 발표하며 학생 작가로 등단했고, 이듬해 ‘사육’으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1994년 소설 ‘만연원년의 풋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당시 일본 천황이 수여한 상을 거부해 화제가 됐다. 한국의 독재정권시절 시인 김지하의 탄압에 항의하는 단식투쟁에 참여하고, 베트남전 반대운동에 뛰어드는 등 아시아를 대표하는 진보 지식인으로 명망이 높다. 그는 24일 ‘인간가치와 정치변화’를 주제로 한 세션에서 기조발제를 한 뒤 포럼 기간 중 각종 강연회 등에 참석할 예정이다. 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사진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 ‘부처님 오신날’ 봉축 법요식 “반목 거두고 화해해야”

    ‘부처님 오신날’ 봉축 법요식 “반목 거두고 화해해야”

    불기 2549년 ‘부처님 오신날’을 기념하는 봉축 법요식이 15일 서울 조계사를 비롯한 전국 2만여 사찰에서 일제히 봉행됐다. 조계종(총무원장 법장 스님)은 이날 오전 서울 견지동 조계사 대웅전에서 10만여 사부대중이 참석한 가운데 법요식을 갖고, 부처님이 오신 뜻을 되새겼다. 법장 총무원장은 봉축사에서 “이념과 종교, 빈부와 인종을 넘어 모든 중생이 부처님의 본성을 가졌음을 깨달아 반목(反目)을 거두고 화해하며,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며, 독점하지 말고 나누며, 전쟁을 평화로 바꾸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종정 법전 스님은 “자성(自性)에서 부처를 찾을지언정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지 말라.”고 설했다. 법요식에서는 헌화·헌등과 함께 불교의 위상을 드높인 공로를 인정받은 현대아산 김윤규 부회장과 산악인 박영석씨, 축구선수 박지성씨에게 불자대상이 수여됐다. 이어 중앙종회 의장 법등 스님이 남북 불교도 대표들이 채택한 공동발원문을 낭독했다. 남북 불교도는 발원문에서 “광복 60주년,6ㆍ15공동선언 발표 5주년을 맞이해 남과 북이 한마음 한뜻으로 이 땅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를 거두어내고 하나된 민족이 되도록 보살펴 주시길 부처님께 기원한다.”고 말했다. 북한에서도 금강산 시계사 등 각 사찰에서 법요식이 열렸다. 법요식에는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 이명박 서울시장 등 각계 인사가 참석했다. 태고종·천태종·진각종 등 각 종단들도 신촌 봉원사, 충북 단양 구인사 등에서 일제히 법요식을 갖고 부처님 오신날을 봉축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문화마당] 이방인 눈으로 바라본 삶의 여유/진회숙 음악칼럼니스트

    얼마 전 개인적인 일로 유럽에 갔었다. 바쁜 일정 중에 잠시 틈을 내서 프랑스 남서부의 보르도 지방에 있는 한 해변 마을에 들렀다.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작은 휴양지로 이렇다 할 오락시설도 별로 없는 곳이었다. 파리에서 TGV를 타고 출발할 때는 날씨가 아주 나빴는데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날씨가 좋아져 다행히 바닷가에 도착했을 때는 푸른 하늘과 밝은 태양을 마음껏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해변 벤치에 앉아 모래사장에서 놀고 있는 딸아이를 바라보며 그저 하릴없이 몇 시간을 보냈다. 휴가를 가서 그렇게 아무것도 즐기지(?) 않고 그냥 몇 시간씩 앉아 있었던 것은 아마 이번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 전에는 어디 여행을 가면 그 시간을 그냥 보내는 것이 아까워서 열심히 놀 거리를 찾아 헤매곤 했었는데, 이번에는 앉아서 바닷바람을 쐬며 몇 시간을 그냥 보냈다. 사람이 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 하는 것도 일종의 문화라는 생각이 든다. 왜 여가문화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이번에 생애 처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놀지 않고 그저 조용히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나니 이것이야말로 진짜 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동안 우리는 너무 바쁘게, 너무 피곤하게 놀았다. 워낙 일상에 찌들려서 살다 보니 어쩌다 얻은 금쪽 같은 휴식 시간조차 그냥 흘려보내기가 아까웠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보다 훨씬 여가 시간이 많은, 그래서 우리처럼 어쩌다 얻은 며칠 안 되는 휴가기간 동안 그렇게 죽기 살기로 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유럽 사람들이 부러웠다. 휴양지로 떠나는 기차 안에서 여유 있게 책을 읽고, 해변 벤치에 앉아 조용히 뜨개질이나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을 우리는 감히 상상하지 못한다. 어떻게 얻은 자유 시간인데 그걸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보내?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이렇게 우리에게는 심지어는 노는 것조차 의무가 되어 버렸다. 물론 이런 과도한 에너지가 그 동안 우리를 지탱해 준 경쟁력이었음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도록 내모는 우리 사회의 각박함이 한편으로는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호텔에 여장을 풀고 저녁을 먹은 뒤, 주변 마을로 혼자 산책을 나갔다. 도저히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생각이 안 들 정도로 조용한 마을이었다. 나는 스산한 바람이 부는 고즈넉한 밤길을 홀로 걸었다. 이방인의 낯선 발자국에 반응하는 개 짖는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집의 크기는 작았지만 모든 집들이 나름대로 소박한 감각으로 꾸며 놓은 넓은 뜰을 가지고 있었다. 불을 환하게 켜놓고 있는 집은 거의 없었고, 그 시간에 무얼 하는지 레이스 커튼 너머로 보이는 집안에는 작은 촛불들만 켜져 있었다. 창문 너머로 조그만 테이블에 마주 앉아 차를 마시고 있는 노부부의 모습이 보였다. 그 풍경이 참 평화로웠다. 인간이 하나의 생물로서 누릴 수 있는 삶의 질이 바로 저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과연 나는 저렇게 살 수 있을까.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자신이 없어졌다. 어쩌다 한번은 모르겠지만 매일같이 저렇게 심심하게 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런 종류의 한가로움과 여유는 이미 내 것이 아니었다. 그런 것에서 생활의 의미를 찾기에는 내 오감의 기억 창고에 이미 너무나 많은 세속의 흥밋거리들이 입력돼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방인의 눈으로 그 평화와 한가로움을 바라보며 부러워하지만 그곳에 뿌리박고 살라고 한다면 아마도 며칠 못 가 나는 도시의 그 찬란한 불빛을, 그 찐한 부대낌과 그 속에서 느끼는 세속의 재미를 그리워할 것이다. 그날 밤, 소박한 마을길을 걸으며 나는 그 순간의 느낌을 내 기억 속에 영원히 입력해 두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삶의 각박함에 몸과 마음이 지칠 때마다 그 순간의 기억을 끄집어내어 삶의 활력소로 삼으리라. 마치 캔 속에 보관해 둔 신선한 산소를 마시듯이. 진회숙 음악칼럼니스트
  • [녹색공간] 평화가 길이다/이현주 목사

    디팩 초프라는 인도 태생으로 현재 미국에서 의사 일을 하며 명상수련에 관계된 저술을 많이 내놓은 사람이다. 그가 올봄 ‘평화가 길이다’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다.“평화가 길이다”라는 말은 마하트마 간디가 한 말인데, 간디는 그 말을 하기 전에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라고 말했다. 평화가 저만큼 있어서 사람이 그리로 갈 수 있고, 가야 하는, 그런 길은 없다는 얘기다. 내가 지금 여기에서 평화롭게 존재하는 것, 그것이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유일한 길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 땅에 사는 사람 누구를 붙잡고 물어봐도 평화는 싫고 전쟁이 좋다고 대답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있어도 정신이 이상해진 극소수 사람이나 그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인류는 거의 날마다 전쟁을 일으키고 수많은 전쟁 속에서 비참하게 죽어가는 것일까?초프라는 이런 질문으로 책머리를 열고 스스로 대답하는데, 인류가 전쟁을 계속하고 있는 까닭은 전쟁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전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수가 더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국이 이라크전쟁을 벌이려고 할 때 세계 여론은 전쟁 반대로 기울었지만 결국 부시 대통령은 발포를 명령했다. 그것은 미국 대통령으로서 당연한 결정이었다. 당시 전쟁을 반대하는 미국인보다 전쟁을 지지하는 미국인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이다. 유권자의 표를 존립기반으로 삼는 정치인으로서 다수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전쟁은 반전운동을 수반한다. 그러나 반전운동이 전쟁을 막아본 적은 한번도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무엇에 대한 반대는 무엇이 먼저 있은 뒤에야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반전운동의 근본적 한계가 있다.‘반’(反,anti)으로는, 그 뒤에 무엇이 붙든 간에, 그것이 반대하는 바를 이기지 못한다. 오사마 빈 라덴의 자살테러는 그가 말하는 미제국의 테러행위를 막지 못하고, 부시의 반테러전쟁은 그가 말하는 악질분자들의 테러행위를 막을 수 없다. 어째서 반전운동에 동참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마더 테레사는 이렇게 대답했다.“당신들이 찬평화운동을 한다면 기꺼이 동참하겠소.” 폭력을 이기는 힘은 반폭력에 있지 않고 비폭력에 있다. 초프라는 반전운동과 국제적십자사를 비롯한 인본주의적 시민단체들의 방식이 지닌 한계를 지적하면서 한번에 한 사람씩 평화꾼으로 변화시키는 방식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어찌 보면 부지하세월이라 너무나 막연한 시도처럼 보이겠지만, 전쟁이란 칼이 하는 것도 아니고 대포가 하는 것도 아니고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사람을 바꿔놓지 않고서는 전쟁을 끝장낼 다른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씩 둘씩 평화꾼으로 바뀌다 보면, 전쟁을 지지하는 사람들보다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수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초프라의 계산이다. 해가 지구를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해를 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천동설을 신봉하던 자들이 하나씩 둘씩 지동설 쪽으로 넘어와 어느 순간 임계대중을 형성하면서 지동설이 일반 상식으로 통하게 됐듯이, 하나씩 둘씩 생겨난 평화꾼들도 언젠가는 전쟁 자체가 불가능한 새로운 세상을 여는 임계대중으로 역사의 지평에 등장할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그날이 예상보다 빨리 다가올는지도 모른다고 전망한다. 전쟁꾼들보다 평화꾼들의 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전쟁꾼들의 바탕이 실상에 대한 무지(無知)인 반면 평화꾼들의 바탕은 실상에 대한 깨달음이기 때문이다. 밀가루반죽이 빵으로 될 수 있듯이 모르는 자가 깨달을 수는 있지만, 빵이 밀가루반죽으로 될 수 없듯이 깨달은 자가 다시 모르는 자로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초프라가 제안하는 방법의 중요한 가치가 하나 더 있다. 비록 원하는 목적(전쟁 없는 세계 건설)의 성취를 눈으로 보지 못하고 죽는다 해도 일생을 평화꾼으로 살았다는 긍지와 보람을 본인에게 안겨준다는 것이 그것이다. 평화에 대한 갈증만큼 깊은 좌절과 실의를 안겨주는 오늘의 현실에서, 귀기울여 들어볼 만한 제안이 아닐 수 없다. 이현주 목사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공주 마곡사 캐나다 출신 ‘파란눈의 비구니’ 자은 스님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공주 마곡사 캐나다 출신 ‘파란눈의 비구니’ 자은 스님

    번뇌와 망상, 머리카락을 무명초(無明草)라 했다. 태자 시다르타(석가모니)는 마부에게 “지금 나는 사람들과 더불어 고(苦)에서 해탈할 것을 서원(誓願)하는 뜻으로 삭발을 하겠노라.”며 수행을 떠났다고 전해진다.‘무명(無明)’이란 세속의 번뇌로 진리에 어둡고, 불법을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의 상태. 그래서 ‘삭발’은 수행 출가자의 정신자세이자 청정수행 의지의 표현으로 여긴다. 훌륭한 교수가 되려고 생화학 박사학위까지 받은 한 캐나다 여인이 어느날 문득 사람들이 왜 평화롭지 못할까 하는 물음에 부딪혔다. 자신의 연구활동에 대한 회의도 생겨났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을 택했다. 발길을 돌려 머문 곳은 한국땅. 그렇게 이역만리에서 속세의 길다란 무명초를 잘라내고 고행의 길이 시작됐다. ●교도소 실상통해 인간에 환멸감 충남 공주시 산곡면 운암리 마곡사(麻谷寺). 절간 입구에는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숲속 길따라 연등이 쭉 내걸려 있었다. 새들의 소리도 신이 난 듯 요란했다. 대웅전을 바라보며 산속으로 500m쯤 더 올라갔다. 적막 산속의 ‘은적암’이 눈에 들어왔다. 얼핏 평화로운 시골집처럼 느껴진다. 뒤로는 신록이 우거진 태화산 품에, 앞마당에는 철쭉 등 온갖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그래서 춘마곡추갑사(春麻谷秋甲寺)라고 했을까. 잠시 후 자은(慈隱·비구니·40) 스님과 찻잔을 놓고 마주 앉았다. 나이보다 훨씬 젊어보인다고 하자 들은 척도 안한다. 그저 차 한잔을 권할 뿐이다. 서울에서 찾아온 속세의 불쌍한 중생이려니 생각했을까. 순간 모든 것이 궁금해진다. 캐나다에서 어떻게 오게 됐으며 삭발은 왜 했는지, 하필 또 한국일까 등등. “한국에는 왜 오셨나요?” “인연대로.”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면 뭐가 보이나요?” “어깨뿐입니다.” “꽃이 만발한 5월입니다.” “겨울에는 죽은 것 같지만 수행을 시작하면 새 잎이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삶이란 무엇인가요?” “바로 이 순간입니다. 과거도, 미래도 잡을 수가 없어요.” “화(禍)는 어디에 있나요?” “마음에 있습니다.” “그럼, 가르침은 뭔가요?” “안다는 것은 습관입니다. 많이 알면 배울 수가 없어요. 모르는 상태로 모든 것한테 배워야 합니다.” “스님의 집은 어딘가요?” “내 발밑에 있습니다.” 자은 스님은 아직 한국말조차 능숙하지 못한 데다 밀알처럼 ‘작은 스님’일 뿐임을 강조했다. 인터뷰를 해봤자 소용이 있겠느냐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작은 인연도 소중하지 않느냐고 했다. 얘기가 계속 이어졌다. “(자신의 수행을 일컬어)씨앗을 뿌리고 이제 막 새싹 하나가 돋아나고 있을 뿐입니다. 나중에 과일이 될지 뭐가 될지 모릅니다. 또한 신맛일지, 단맛일지 알 수가 없어요. 더 멀리 가야 합니다.” 그는 198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유명한 캐나다 캘거리에서 1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속가의 이름은 조안 메이슨. 아버지(82)는 선불교에 관심이 많았고, 어머니(77)는 기독교 성향을 가진 집안이었다. 부모는 현재 고향에서 함께 노년을 보내고 있다. 조안은 어릴 적부터 공부를 무척 좋아했다. 다섯살 때 초등학교에 진학하는 오빠(리처드)를 보고 같이 학교에 보내달라며 한참동안 울었을 정도였다. 조안은 퀸 엘리자베스 고등학교에 진학후 1학년때 교회를 다녔으나 곧 그만뒀다. 학창시절에는 과학 수학 심리학 물리학 등에 푹 빠졌다. 지난 83년 앨버타대학에 진학해 생화학을 공부했다. 대학원에서도 역시 생화학 분야인 ‘바이러스학’을 전공했다. 대학원 재학때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의 자원봉사자로 일했다. 이때 교도소에서 벌어지는 비인간적 사건 등을 접하면서 인간에 대한 환멸 같은 것을 처음 느꼈다. 또한 바이러스를 연구하면서도‘이 연구를 통해 인간의 모든 질병을 없어지게 할지라도 고통이 끊어지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모든 고통은 몸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라는 고민을 하게 됐다. 아울러 바이러스 자체가 질병의 예방과 치료목적도 있지만 결국 전쟁에도 사용될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걸렸다. ●공주대 영어강사로 1998년 한국행 95년 앨버타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조안은 미국 플로리다주립대로 건너가 연구과학자로서 ‘바이러스학’ 연구활동을 계속했다. 이때 불교에 점차 관심을 둔다. 틱낫한 스님의 저서 등 불교관련 책들도 많이 읽었다. 특히 캐나다 출신으로 1950년대에 미얀마에서 출가한 남쟐 린포체를 만나면서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불교공부와 수행의 방법을 배웠으며, 동방으로의 출가를 권유한 것도 린포체였다. 조안은 인터넷을 통해 동방으로 가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결국 공주대학에서 실시하는 영어강사 프로그램을 알게 되면서 98년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출가한 지 2년쯤 됐을 때 캐나다에 갈 일이 있었지요. 그때만 해도 저는 한국생활에 매우 힘들어했습니다. 마침 린포체께서 캐나다에 계시더군요. 찾아가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상의했지요. 린포체께서는 웃으시면서 ‘한국에 돌아가 있으라.’고만 하더군요.” 마곡사와 인연을 맺은 까닭은 공주대 강사시절 알게 된 지인들과 함께 마곡사를 찾으면서 시작됐다. 자연스럽게 은적암 암주인 성호 스님도 알게 됐다.99년 봄 성호 스님을 은사 스님으로 머리를 깎게 된 것도 이같은 인연 덕분이었다. “저는 출가하기 전 학교에서 공부를 많이 해서 그런지 아는 것이 아주 많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건 한낱 ‘지식’일 뿐이었어요. 저한테는 지혜가 별로 없었지요. 출가후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남의 잘못을 보지 말고 자신의 잘못을 봐야 해요. 숭산 큰스님의 가르침도 그랬듯이 모든 것이 ‘only don’t know’입니다.” ●“씨하나 심어 물주고 풀뽑고 있을뿐” 자은 스님은 현재 청암사 승가대학 3학년에 재학중이다. 요즘에는 방학을 맞아 친정격인 마곡사에서 ‘금강경’ 공부에 몰두하고 있다. 승가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몇년 동안 본격적인 참선 수행을 거친 뒤 포교활동을 하고 싶다고 귀띔했다. 선진국에는 부자나라들이 많지만 마약과 자살사건 등이 많아 결코 부자가 아니라는 것을 평소부터 잘 알고 있던 터였다. 또한 “마음이 부자여야 한다는 것을 불교를 통해서 새삼 깨닫고 있다.”면서 마음속의 평화가 없으면 밖에서도 평화를 찾을 수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자신의 평화는 가족과 이웃, 조국과 세계를 평화롭게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알리고 싶단다. “한국 스님들은 마음이 넓어요. 저는 이제 씨 하나 땅에 놓고 물주고 풀 뽑고 있을 뿐입니다. 돈오점수(頓悟漸修)라고 할까요.” 출가 전에는 영화관람을 즐겼다. 한국에서 감명깊게 본 영화는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과‘집으로’‘공동경비구역 JSA’ 등이다. 아울러 한국의 역사와 문화도 점점 알게 됐다고 했다. 독도를 아느냐고 하자 “한국인은 일본사람보다 따뜻하다. 왜 (일본이)역사왜곡을 하는지 좀 바보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고향의 부모에게는 이메일로 안부를 전한다는 그는 “캐나다에 살고 있는 올케언니가 한국인”이라면서 “한국과 인연이 깊어졌다.”며 활짝 웃었다.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65년 캐나다 앨버타주 캘거리 출생 ▲83년 퀸 엘리자베스 고교 졸업 ▲87년 앨버타대학 생화학과 졸업 ▲95년 동대학에서 생화학 박사학위 취득 ▲95∼97년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 연구과학자 역임 ▲98년 공주대학 영어강사 ▲99년 마곡사 성호 스님 은사로 출가 ▲99년 5월∼2000년 3월 화계사 행자생활 ▲2000년 4월 사미니계(해인사) ▲2003년 청암사 승가대학 입학(현재 3학년 사교반)
  • “물질 아닌 참선만이 정신의 궁핍 치료”

    “디지털시대의 과학과 물질만으로는 정신적인 궁핍을 치유할 수 없습니다. 끊임없는 수행과 참선을 통해 지혜를 얻은 자들이 모여야 인간평화, 세계평화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원로회의 의장인 종산 스님이 ‘부처님 오신날’(15일)을 앞둔 3일 청주 보살사에서 기자들과 첫 만남을 가졌다. 지난해 4월 원로회의 의장으로 선출된 지 1년여 만에 처음으로 지난 50여년간 쌓아온 수행담과 대중을 향한 가르침을 전했다. 종산 스님은 “기계문명이 발전하고 있지만 인류는 정신적으로 궁핍할뿐 아니라 물질적 불평등도 여전하다.”면서 “우리가 고통받고 있는 오늘의 삶은 눈에 보이는 욕심만 추구해온 데서 기인한다.”고 말했다. 스님은 “나와 남, 나와 다른 세계는 늘 함께 공존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면서 “자신이 처한 현실에 만족하고 부처님의 말씀에 따라 끊임없이 수행할 때 행복은 찾아온다.”고 강조했다. ●“복을 부르려면 혀·눈·귀 맑아야” 종산 스님은 또 “분쟁과 갈등으로 얼룩진 세계는 평화를 간절히 원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면서 “세계인·국민·불자들이 불교 참선·수행을 통해 반야지혜를 열어야 하며, 보편타당한 반야지혜가 열린 분들이 정치·사회·문화활동에 참여해야 셰계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수행을 원하는 대중들을 향해서는 “책만 공부할 것이 아니라 5분이라도 참선해야 하며,24시간 중 아침에 일찍 일어나 30분이라도 수행하면 편안한 마음을 갖게돼 행복이 온다.”면서 “특히 복을 부르는 ‘삼바라밀’을 지키면 바라는 소망을 모두 이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삼바라밀’이란 망설(妄舌·교만한 마음으로 진실치 않은 말을 하는 것)·망안(妄眼·부정적인 눈으로 인간과 매사를 어긋나게 보는 것)·망이(妄耳·달콤한 유혹에 솔깃해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에 현혹되지 않는 지혜로서, 맑고 아름다운 것을 보고 듣고 말하는 노력을 의미한다. ●“수행해보니 나보다 못한 스님 없어” 올해로 81세를 맞은 종산 스님은 출가 이후 해인사·통조사·동화사·범어사 등 전국 대표 선원에서 수행하면서도 한번도 종단내 주지직은 물론, 어떤 직책도 맡은 적이 없다. 그만큼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수행에만 전념했던 것이다. 특히 범어사에서 수행할 때는 하루에 죽 한그릇만 먹으며 졸음을 쫓기 위해 판자에 못을 박고 정진한 것으로 유명하다. 종산 스님은 “수행 속에서 화두의 시작과 끝이 없는 무한 경계를 만났다.”면서 “이 세상에 나보다 못한 스님이 없고 이 세상 어떤 사람도 나보다 더 공부를 못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종산스님 ‘1000원 세뱃돈’ 영험 소문도 종산 스님은 연말연시에 시민·불자들에게 특별한 세뱃돈 1000원을 보시한다.‘중생에게 부처님의 가피가 흠뻑 내리기를 축원하는 의미’에서라고 한다. 종산 스님의 세뱃돈은 ‘영험’이 있다고 소문이 나 때마다 종교·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보살사가 붐빈다. 최근 조계종에 대한 비판에 대해 종산 스님은 “먼저 내 허물을 보고 참회하고 작은 것부터 실천하며, 계율을 목숨처럼 여겨야 한다.”면서 “서구사회에서 달라이 라마가 큰 역할을 한 것처럼 한국 선불교도 막중한 책무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종단의 돈 안쓰는 선거를 위해 선거법 개정을 추진해야 하며, 승풍을 진작하고 승단이 화합해 수행자들이 주지·원장·종회의원을 하려고 하기보다는 좋은 화상을 찾아 공부해 존경받는 스님들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 청주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이주일의 어린이책]수탉이 알을 낳았대/윤영선 지음

    ‘수탉이 알을 낳았대’(윤영선 지음, 전상용 그림, 바람의 아이들 펴냄)는 모험담에 신화적 상상력이 버무려진 창작동화다. “어떻게? 그래서?” 책은 제목만으로도 호기심에 들뜨게 만든다. 책장을 열자마자 구전설화에서 퍼온 듯한 신비한 주술문이 기다리는데, 그 지점에서 당장 어린 독자들은 상상의 꽃을 피워올리지 싶다. ‘큰개자리별이 빛나는 밤. 칠년 된 수탉은 알을 낳아서는 안 된다. 또한 두꺼비는 수탉이 낳은 알을 품어서는 안 된다. 이를 어기면 무서운 일이 생길 것이다.’ ●얼굴과 몸은 수탉인데 목은 뱀으로… 평화로운 달빛초원에 전해오는 이 오래된 전설은 안타깝게도 그대로 현실이 되고 만다. 얼굴과 몸은 수탉인데 목은 뱀으로 태어난 괴상망칙한 동물, 그는 바로 전설 속의 괴물 ‘바실리스크’였다. 그를 낳은 엄마 수탉은 두려운 나머지 도망가 버리고, 바실리스크의 홀로서기는 너무나 힘겹다. 외로워서 크게 울었더니 바위들이 깨져 숲의 동물들이 줄줄이 다치고, 내쉬는 숨결에 풀과 나무들이 말라죽고, 목이 말라 물을 마실라치면 부리에서 빠져나온 독에 멀쩡한 하마들이 다 죽어버리니…. 본의 아니게 숲속 생명들을 위협하는 그에게 친구가 있을 리 없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왕따’가 돼버린 것도 슬픈데, 숲의 동물들은 그를 없애려 갖가지 방법을 동원한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참신하게 다가갈 미덕은 여럿 있다. 무엇보다 서사의 중요한 고비에서 묘하게 빛을 발하는 신화적 상상력. 우리 신화의 독특한 향취를 넌지시 전해줄 수 있는 기회가 될만하다. 죽을 고비를 넘기는 바실리스크를 숨어서 지켜보던 수탉은 주술사 나무늘보의 귀띔대로 바실리스크가 스스로 독을 조절할 수 있는 방편을 일러준다. 산꼭대기에 있는 ‘헨드라’라는 붉은 약초를 구해먹고 사흘 동안 동굴에서 참고 지내면 몸속의 맹독을 스스로 제어하는 힘을 얻는다는 것. 이 쯤에서 아이에게 우리 단군신화의 웅녀이야기를 곁들여 들려주면 감상폭을 두배는 키워줄 수 있을 듯하다. 어렵사리 독을 조절하는 능력을 얻은 바실리스크는 어떻게 숲속 친구들과 융화할까. 메뚜기떼가 새까맣게 숲을 뒤덮고 이를 물리칠 힘을 가진 건 아무리 봐도 바실리스크 뿐인데…. ●장면장면들이 흥미진진한 모험담 서양동화의 모험서사에 입맛이 길들여진 아이에게도 충분히 매력있는 이야기 구도이다. 바실리스크와 숲속 동물들이 갈등하고 대립하는 장면장면들은 익숙하고 흥미진진한 모험담 그 자체다. 바실리스크의 희생과 용기로 동물들이 모두 화해하는 이야기 말미에서는 박수를 쳐주고 싶게 감동이 진하다. 바실리스크를 구할 방편을 찾느라 자신의 가슴깃털을 뽑고 끝내 죽음을 맞는 엄마 수탉의 모습도 코끝 찡하다. ‘수탉이 어떻게 알을?’ 첫장을 넘기며 이렇게 찍었던 물음표가 책을 덮을 땐 느낌표로 바뀔지 모른다. 세상엔 납득할 수 없는 역경도 장애도 많지만, 또한 극복하지 못할 역경도 장애도 없다는 것을! 초등 저학년.7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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